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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생각들

광마우스..익숙치 않아서 싫어라

나의 휠 마우스가 드디어 맛탱이가 갔다. 난 광마우스의 매끄러운 느낌이 별로여서 바꿀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 6천원에 상당한 돈을 주고 광마우스로 바꿨다. 음, 역시 맘에 안들어. 볼이 돌아가는 느낌이 없어서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이 영 아니올씨다.

나는 익숙한 것에 영영 머물고 싶은가?

 

예술치료..현무로 이름 짓다

일주일에 두시간 여러가지 재료로 표현하는 놀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드디어 시작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해자언니의 리더로 몇몇 인민들이 모였다. 오늘은 첫시간. 역시 난 파스텔과 목탄, 콩테 이런 것들이 좋다. 풍부한 느낌과 부드러운 질감...

오늘의 주제는 일주일동안 있었던 일중에서 하나를 표현해보는 것과 우연의 효과를 이루어내는 데칼코마니를 해보면서 자기 이름 정하기. 데칼코마니에서는 육질의 느낌이 역동적으로 나와서 나도 놀랐고 해자언니가 두마리 뱀이 마구 꿈틀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 이름은 현무로 정했다. 맘에 든다.

 

동생의 결혼..드디어 나는 우리 집안의 진정한 솔로가 되다

내년 군대의 사택을 받기 위해서는 10월안에 결혼신고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이달 안에 처리하기로 했단다. 내가 시간을 내지 못해 얼굴도 보지 못하고 녀석이 유부남이 된다. 동생이나 올케에게나 너무 미안하다.

내동생..여린 감수성을 가졌으나 농촌사회와 장남이어서 그것을 누르는 법을 배워야 했던 눈물많은 막내이다. 요즘도 충격을 받으면 술먹고 울면서 전화한다. 한창 진로를 결정할 당시 엄마가 아프다 보니 군인의 길로 뛰어들었는데 그때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 한마디 못했다. 미안한 것 투성이지..

11월에 녀석이 훈련 다녀오면 술이나 한잔해야겠다. 진정한 대작을 해야겠군.

그리고........

나는 드디어 우리 집안의 하나 남은 결혼 안한 자식이 되어버렸다.

흐흐...시원섭섭하네..

울엄마 날 또 들들볶는 것 아닐지 아주 기대만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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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봐도 좋았다

 

조조를 봤다. 저기 앞자리에 가서..

나는 이영화 너무 좋다. 별다른 스토리도 없고 클라이막스도 없지만 그냥 작은 느낌 대사처리 안하고 시선으로...

생각해보니..난 이런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비슷한 것 꼽으라면 8월의 크리스마스?...

또 보고 싶다..극장의 의자에 푹파묻혀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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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반겨주는 경주, 始林

대학 교지 후배 결혼식이 있어서 경주에 다녀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차에서 잠을 안자고 내내 풍경을 봤다.
동대구에서 경주까지 통근열차를 타고 갔는데 맞은편 자리에 꼬맹이와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아이와 여자를 무심히 바라보다 서른 넘으면서 가졌던 이상한 슬픔이 왈칵 치솟았다.
'나는 아마 아이를 가지고 낳는 경험을 못해보겠지.'
내가 생각하는 가장 동물적인 경험은 섹스보다 임신을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다. 그 원초적인 경험을 어쩌면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 선택일지라도 많이 우울하고 슬퍼진다.
종족보존의 본능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앞자리에 앉아있던 모자>
 
 
경주역에 내리니 '아, 그렇지 여기는 남쪽이야, 이 따뜻한 기운속에 25년을 보냈구나.' 훈풍에 감격하고 말았다.
서둘러 결혼식에 가서 후배를 만나고 교지후배들과 밥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가자고 했다.
결혼식에 온 후배들은 군대를 다녀왔고 4학년쯤 되니까 선배들을 잘 챙긴다. 마음을 헤아린다는 말이다. 감사하게도..
학교에는 고향집에 내려올 때 한번씩 들르곤 했지만 워낙 명절이 껴있으니까 교지사무실에 들어가본 일은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오랜만에 가본 사무실은 늘 그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제일 먼저 창가에 가서 동대교와 학교 앞에 펼쳐져 있는 풍광을 바라보았다. 나무들이 많이 자랐다.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이겠지.
서울에 있으면서도 가끔 그 창턱에 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보던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始林교지는 생각이상으로 내 맘에 확연한 어떤 기억인게 분명하다.
철제 캐비넷, 낡은 책상, 의자, 바닥에 날아다니던 먼지, 사람들이 오가며 피워대던 담배연기, 100원짜리 커피, 삐걱이며 열리고 닫히던 문...사람들 사람들...
<영종이가 찍어준 것!>
 
전에 만났을 때 잘 몰랐는데 군대 다녀오고 4학년이 된 영종이는 어느새 약간 능글능글한 아저씨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넘의 돼지 때문에 잘 움직이지 못하는 농촌총각 재영이도 본지 한참 되었고..(돼지고기값 올랐다고 하니 술한잔 사라고 해야겠다.)
결혼식 내내 영경이와 얘기를 못한게 영 맘에 걸리네..
1학년때 진짜 귀여웠던 00학번 우섭이는 늘 머리속에 교지 아이템으로 가득차 있는 열정적인 편집장이다.
후배들이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괜찮구나.
나이차이란 참 별거 아니다. 비슷하게 1,2학년때 얘기들 하고, 사는 얘기도 하고..그런 것이지. 그러면서 내 나이도 희미하게 저멀리 넘어갈 무렵...
 
갑자기 문이 열리며 오늘 결혼식한 후배와 비슷하게 생긴 한 꼬맹이가 들어왔다. 수습인 아이인데, 방년 19살이란다. 갑자기 나이가 내 온몸을 덮친다. 허걱...멀뚱멀뚱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후배님을 보면서 너무 귀여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아무리 우겨도 얼굴빛이 틀리긴 하더라..예쁘다.
모쪼록 고민하는 것들 잘 풀어가면서 좋은 책 만들고, 졸업들 하시길..
 
그리고 나는 석장에서 막걸리 딱 3잔 마시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진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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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바닥을 치게 한 글

민주노총 자유게시판을 뒤적이며 하염없이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이글을 보고..거의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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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주노총 상근활동가의 고백

 

 

3년전 어는 날 저녁,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사무실에 남루한 옷차림의 중년 사내가 찾아왔다. 그 사내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을 꺼낼 듯 말 듯 한참 동안을 그렇게 보내던 사내는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자기가 일하는 회사의 노동조합 위원장이 조합원 몰래,  “사납금 인상”에 합의를 해주고 잠적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택시 노동자였던 것이다. 그는 흐느꼈다. “기름값도 오르고, 승객은 줄었는데... 사납금이 오른 액수를 채울려면 1시간을 더 해야 하는데... 지금도 집에 가져가는  돈이 월 백만원도 안되는데.. ”.
  
해결 방법이 있냐고 그는 물었고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다만, “다음번에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노동조합이 대표자가 될 수 있도록 하세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서 잘못된 부분을 변경할수 있도록 요청해보세요.”라고 대답했다. 그 사내는 돌아갔고, 나는 이틀후에 그를 신문의 지면에서야 다시 볼수 있었다. 중년의 그 사내는 “불쌍한 택시노동자”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이 속해있던 회사의 노동조합 위원장을 살해했다.

나는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노동조합이 사람의 운명까지도 좌지 우지 할수 있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공포로 다가왔다.
  
민주노총의 수석부위원장이고 전 민주택시노련 위원장이었던 강승규씨의 추악한 행위가 드러났다. 택시사업주연합단체의 임원에게 돈을 요구하고, 상대방은 사업주들의 이익을 지켜줄수 있도록 돌봐달라는 청탁을 하며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아! 정말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 상상이나 해볼수 있는 일인가!  강승규! 그 이름만으로도 택시노동조합의 수많은 역사를 대변하고, 택시노동자의 희망이었던 그가,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할 수가 있었다고 상상이나 해 볼수 있는 일이었던가!
  
사업주는 노동조합을 대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노동조합 대표자를 매수하고, 노동조합 대표자는 못이기는 척 하며 투쟁상대인 사용자와 부화뇌동하는 현실! 정말로 눈물이 난다. 노동조합을 믿었던 그 많은 사람들.. 잘못된 유착에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앉아야 했던 노동자들 앞에서 우리 노동운동가들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아직도 고단한 노동을 개선하기 위해, 온몸으로 행동하고 저항하는 그 수많은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 느낄 충격과 배신감을 어떻게 위로해 준단 말인가!.
  
다시 3년전의 그 중년사내가 생각이 난다. 지금도 어디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그가 느낄 증오가 생각이 난다. “강승규”,“노동조합”, “민주노총”, 이 이름을 곱씹어 보는데, 마냥 눈물만 흐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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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

와우북 페스티발에 가서 얻은 단하나의 수확! 1,2권을 각 천원에 팔고 있어서 얼른 샀다. 하긴 99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오래된 책이라 떨이로 팔아치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보부아르는 미국의 작가 넬슨 앨그렌과 20여년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때 그녀는 이미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였고,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인 그녀의 면모와는 상당히 다른 언어와 넘쳐나는 사랑의 고백에 사실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리고 절절한 사랑의 언어와 더불어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문단과 영화, 예술 등 문화예술, 지식인 세계에 대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읽는 재미는 있다.

서툰 영어로 써야했으니까 문장을 까다롭게 다듬지 못했을 것이라는 조건이 있다 해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써내려가는 보부아르의 모습은 경이롭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구성하는 작가로서 살아가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절대적으로 지켜갔고, 넬슨이 결혼을 신청하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 정확하게 거부를 했다.

보부아르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소설들은 즐겁게 읽었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분위기와 읽으면서 상상했던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책은 '타인의 피'이다. 연애편지를 읽다보니 사춘기때 읽어서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타인의 피'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결심.

 

흐흐...사실 페미니스트들의 교과서라는 제2의 성은 읽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서구의 백인 페미니즘에 대한 묘한 반감? 질투?

오히려 제 3세계의 현실을 아우르며 고찰한 페미니즘에 대해 더 흥미있었던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 현실도 있겠고..

현실에서 30여년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늘 나의 내면과 외면의 현상에 대해서 가장 질긴 고민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온 것이 이론서들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 것도 있다. 흐흐..(이 택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야!!)

버지니아 울프의 혼자만의 방도 작년에서야 읽었는데, 그녀가 한 얘기들은 내가 20대에 들어서 고민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던데..

앞서 살았던 페미니스트들이 열어 젖힌 사유들이 있어서 나도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겠지만..

지금 뒤늦게 제 2의 성을 읽는다고 해도 별 새로운 고민을 던져줄 것 같지는 않다. 읽어보고 할 얘기여서 요즘은 제 2의 성도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다시 책얘기로 돌아오면 보부아르의 연애편지는 제 2의 성을 쓰면서 여성에 대해 고찰하던 그녀가 한편으로 모순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절절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솔직함에 경외감을 갖게 한다.

이제 이런 것도 삐딱하게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20대의 뾰족함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일까? 언어에 당황하기는 했어도 그다지 반발심이 일지 않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기도 하다. 긁적긁적..

 

오래전 내가 썼던 몇년동안의 연애편지들은 어찌 되었을까. 일주일에 2~3통씩 보냈던 그 편지들...아마 다 불태워졌겠지. 형이 편지만 한상자였다고 웃으면서 얘기했었는데..

사랑의 말과 나의 생활과 고민들이 없어진 그 편지들에 가장 상세하게 씌어져 있었을 텐데.

아, 물론 보부아르의 연애편지에 비견해서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녀처럼 훌륭한 작가도 아니고,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 요즘보다 더 형편없는 글쓰기를 했었으니까 뭐 얼굴이 붉어질 것이 뻔하다.

다만 누군가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가장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일기라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처음 운동에 입문하던 당시에 그와 사랑을 하게 되고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편지를 쓰면서 정리가 안되던 것들도 정리했던 기억도 나는구만.

답장을 내가 쓴만큼 안보낸다고 책망하곤 했는데, 보부아르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빠지면 비슷한가보다 싶어서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밤에 그런 책을 읽으면서 이런 독서일기를 쓰고 있으니 몹시 그가 그립다. 아, 정말 그립다.

 

누군가와 편지로 주고 받으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오래된 욕구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그것이 사랑이면 더 좋고, 친구라도 좋고...

21세기에 걸맞게 이메일이어도 상관없으리라..아날로그로 연필로 끄적거리면 더 정서적으로 좋겠지만..

 

초저녁 잠에서 깨어나 보부아르를 질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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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듬지] 넘어가세

오전부터 바빴다. 밀린 문화학교 일지 정리를 끝내야 교사회의에 들어갈 수 있어서 아침부터 나와서 일하고 교사회의를 했고, 점심 먹고 한숨 돌린뒤 안티 삼성, 문화제의 기획을 위한 회의에 가야했다.

이 문화제는 7월부터 삼성에 반대하는 사람들 누구나 나와서 발언하고 문화행위를 하자는 취지로 준비하기로 했으나 X파일이 공개되면서 공대위 구성이니 뭐니 밀려서 지금 급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촉박한 시일에 문화제를 준비하는 것에서 우려되는 지점은 설명할 필요없이 구구절절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삼성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내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결합하기로 했다. 남은 10월 일정은 여기 기획단으로 뛰는 것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자 마자 민주노총 경기중부지구협의 노동문화제를 보기 위해 안양까지 다시 뛰어갔다.

이곳은 알다시피 석범이형의 활동지역이고, 그형이 일하는 기차를 만드는 로템노조의 싸움은 노조집행부의 이면합의로 끝이 나고 있다. 석범이의 쓸쓸한 모습은 20년 넘게 일한 공장의 이전과 더불어 공장 생활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아프다.

어쨌든 이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패들의 각양각색의 공연들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오랜만인 것 같다.

쿄호호호..뉴코아 율동패의 멋지구리한 율동..화음이 맞지 않지만 진짜 열심히 노래하는 노래패들...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율통패 트로이카 옵빠들의 각잡힌 율동...준이형과 영석이형의 축하공연..그리고 거한 뒷풀이까지...

 

뒷풀이에서 선봉이형의 구속과 더불어 소개된 민요패 우듬지의 석범이형이 혼자서 넘어가세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짠했다. 선봉이형의 목소리까지 합쳐져야 완벽한데 말이지..

그리고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일반노조위원장님(이분은 석범이형이 17년전에 함께 학습을 한 분이라고..)이 끝내 살리라를 아주 제대로 불러주셔서, 모두 감동 먹었다.

 

노조운동의 하향곡선을 눈앞에 그리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그림이라고 하지만 한편 현장으로 가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런 그림을 일대일로 직대입하기 주저하게 만든다.

물론 큰 흐름에서 어쩔 수 없이 묻혀간다 하더라도. 또 그게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갖고 있는 건강함, 문화패들이 갖고 있는 역동성이 주는 감동이 있음을 어찌 부정할 것인가.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이런 것이겠지.

 

노문센터의 상근자의 자격을 벗고 나니 소개할 때 안해도 되는 게 너무 편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의 허선희입니다. 오늘 공연 잘 봤구요. ....점이 좋았고, .....점은 좀더 비판하고 보강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고..어쩌구 저쩌구..."

이런 인사할 때마다 긴장과 불편함에 심장이 벌렁벌렁했는데, 안하니까 하나도 아쉽지도 않고 좋구만.

현숙언니가 이번 행사 티셔츠 로고를 만들었는데 덕분에 혼자 소개를 받았다. 어찌나 놀라던지, 사진 찍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크크크..

 

오늘 구치소로 이감된 선봉이형을 비롯한 석범이형 등 노동자민요패 우듬지가 부른 넘어가세를 덧붙인다. 선봉이형 생각이 자꾸 나는 밤이다. 노래마라톤의 실황공연 녹음한 것!

그리고 써비스 써비스..노래하는 석범옹님의 사진 한장!

(2001년 노래마라톤에서..맞나?)


 

 

넘어가세(굿거리)

 

노동자 민요패 우듬지

 

넘어가세 넘어가세 붉은 오월의 진흙탕길
절뚝절뚝 춤을 추며 풍물을 울리며
솟구치는 슬픔일랑 보듬어안고
참 해방의 그 날을 찾아가세

넘어가세 넘어가세 서로 손의 손 맞잡고
어둠 한 묶음 베어내어 뭍 땅에 뿌리며
무덤 열고 나오라 고운 넋들아
참 해방의 그 날이 저기 보인다

짓밟힌자 일어서고 묶인자 풀려나는
그 날을 찾아가세 그 날을 찾아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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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거길 가고 싶게 하는 음악

449프로젝트의 연주곡 한강..

어제 거리미술전을 술렁술렁 돌아다니다가 공연시간 즈음해서 갔더니 이런이런 공연 시간이 변경 된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외톨이와 한강 밖에 못들었는데..뭐..둘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니까..

바람이 좋은 날이어서, 한강을 듣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따라 허밍을 하게 되더라..

일산 화정에 살때 mp3다운 받아서 들으면서 한강을 지나가고 지나오고 하면 기가 막혔는데...

 

오늘은 와우북페스티벌하는 곳에나 가봐야겠다. 별로 갈 생각이 없었는데..홍대에서 하니까 놀면 뭐하겠어..50~70% 할인판매 이런 거 팍팍 했으면 좋겠는데..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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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비교

투쟁가는 같이 부르는 게 맛이라고...혼자서 감격에 겨워서 부르는 일은 흔하지 않다.

나같은 경우 일년에 몇번 갑자기 단결투쟁가와 가자 노동해방을 열댓번 돌려가며 이편곡은 거의 끝장이라고 감탄하는 정도..이미 투쟁가는 여기서 다 완결되었어라고 감히 말하면서 말이다...

투사의 유언이 생각이 나서 밥자유평등 사이트에서 검색해서 4가지 버젼의 투사의 유언을 들었다.

꽃다지 버젼을 제일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없다.

년도와 그 노래를 부른 단위들을 비교하면서 들었는데 아주 재밌다.

 

그중에서 특히 두개의 다른 앨범에 담긴 투사의 유언은 정말 틀리다. 민중문화운동연합과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은 노동문화운동사에 기록되어 있는 단체들인데...내가 그시대 사람이 아니다 보니 대충 알고 있다.

그래서...자료를 뒤적거리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는지 보면서 설명이 붙어야 하니까 귀찮아서..내 사이트가 무슨 교육이나 토론, 자료사이트도 아니고 말이지...그래서 덧붙이지 않기로 했다.

궁금하면 개인적으로 은진언니와 창환이형에게 물어보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것이다.

 

86년 민중문화운동연합에서 만든 '여러분 공해는'에 실린 투사의 유언은 내가 지금까지 들은 그것과 너무나 틀리다. 묘하게 전통음악과 저기 러시아쪽의 향기가 살짝 나기도 하고, 가수의 목소리도 독특하다. 독창을 위한 노래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느린 투사의 유언은 처음이다.

게다가 86년이면 87, 88년 노동자대투쟁을 겪기 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래들어보기 : http://bob.jinbo.net/album/down.php?table=albumpiece&no=1130

(박스가 하나 뜨면 그냥 열기를 누르시길..그래서 노래가 안들리면 다운 받아서 들어야 함.)

 

91년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만든 '우리! 역사의 새주인'에 담긴 투사의 유언은 노동자대투쟁을 겪으면서 자신감과 한층더 발전해가던 노조운동의 속에서의 정서가 너무나 당당하게 표현되어 있다. 대공장의 남성조합원들의 문화가 그대로 반영되었기도 하고..익숙한 곡이다.

기교와 맬로디, 리듬의 복잡함을 다 빼버리고 그야말로 행진곡풍으로 편곡한 뒤 '적들에게 깃발아래 노동해방 앞당기자'구호를 삽입한...흐흐...

예전에 어디서였더라, 지역의 나이든 남성노래패원들이 합창처럼 이곡을 부른 것을 들었다. 묘하게 슬프고 묘한 울림이 있었다. 여하튼 그랬던 기억이....

노래들어보기 : http://bob.jinbo.net/album/down.php?table=albumpiece&no=109

박스가 하나 뜨면 그냥 열기를 누르시길..그래서 노래가 안들리면 다운 받아서 들어야 함.)

 

 

익숙하니까 91년 곡이 편하긴 하지만 86년의 그곡도 나름대로 아주 재밌다.

내생각에는 그렇다. 민중가요가 역사와 더불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 두곡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라는 것.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혁명이 가능하다라는 믿음을 줬던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민감한 예술쟁이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자극을 줬을까.

그러면서 80년대 중반과 90년대 초반까지 그들은 미친듯이 토론의 토론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용들의 수준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죽어라 싸우고 다녔으면서 도대체 이사람들은 공부는 언제 하고 이런 토론과 글들은 언제 쓴거야 할 정도로...

지나온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서 그때 보잘 것 없었던 것이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뭐 그렇다고 그시대에 태었났더라면 하는 동경은 아니고..

아우...난 감사한다. 지금 이정도의 자유라도 보장받은 세상에서 산다는 것..내 머리속과 행동이 그때의 그들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

어떻게 보면 그들 덕분이기도 하고, 내 덕분이기도 하고..흐흐...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노래의 주인공은 머리띠 묶은 남성이라는 사실이...그때는 운동의 발전이 그러했으니까라고 인정하고 넘어가겠는데..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그러할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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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열차

루이스 세풀베다..한언니의 소개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푹 빠져버린 작가이다. 이사람의 자전적 소설인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망명해서 돌아다니며 만난 남미 구석구석의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슬프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괜히 가슴 뻐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에서 짧은 애피소드 몇개만 옮긴다. 한참 전에 읽으면서 배껴놓았나 본데 메일함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자극되어서 보시는 동지들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시라..같이 얘기해보자고..

 

"<콜로노>호가 한 번 더 속도를 늦춘다. 배는 뭍에서 약 8킬로미터 이내의 거리로 들어와 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갑판으로 나온다. 나 역시 그들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남극의 고래들이나 돌고래들이 수면 위에서 펼치는 묘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고래 떼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올수록 윤곽이 뚜렷해지는 한 척의 작은 배다.
그 배는 칠로에 선적의 작은 범선이다. 길이 8미터, 너비 3미터쯤 되는 작은 배는 돛을 부풀리는 가벼운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우리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나 역시 그 배가 잘 보이는 갑판 쪽으로 다가간다. 그 작은 배가 지구의 남쪽 끝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 중의 하나임을 생각하면서.
칠로에 사람들은 말한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자가 먹을 것을 얻는다>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뱃사람은 선미에 앉아 능숙한 솜씨로 자기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키를 잡고 있다. 그는 칠로에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떡갈나무, 낙엽송, 포플러, 유카리나무에 서로 다른 중량의 돌을 매달아 놓고서 그 나무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보다 신축적이고, 보다 탄력적인 돛을 구하기 위해서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뱃사람이 <콜로노>호를 향해 손을 흔든다. 파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춰 준<콜로노>호의 선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시다. 나는 그 범선 역시 코르코바도를 향해 항해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뱃사람은 무시무시한 페나스 만과 메시에르 협만이나 인디오 협만을 지나 열린 바다를 향해서 레이더도 없이, 무전기도 없이, 항해 도구도 없이, 보조 엔진도 없이 오로지 바다와 해풍에 대한 자신의 경험으로 항해하고 있다.
그 바다의 뱃사람은 나의 형제다. 그는 지금 나의 파타고니아 여행을 환영하러 나온 것이다."

 
 
"나는 목장의 여인네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나눈다. 수의사인 마르타, 이냐키의 아내 에스날로아의 새로운 세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이사벨, 그리고 아구스틴의 아내 플로르가 그들이다. 그런데 아구스틴과 플로르는 파타고니아에서 전설적인 커플ㄹ로 알려져 있다.
결혼 전, 아르헨티나의 리오 마요에 있는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플로르에게 푹 빠져 있던 아구스틴은 한 해에 한 번쯤 대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감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플로르가 은행원과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구스틴은 형들과 형수들에게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 돌아올 터이니 신방을 단장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기타를 챙겨 들고 뗏목에 올라탔다.
결혼식이 진행될 일요일 리오 마요의 성당에 도착한 아구스틴은 신부복을 입은 플로르가 부모들과 함께 성당에 들어선데 이어 신랑이 등장하기 직전, 하객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기타 줄을 퉁기기 시작했다. 8음절 10행 시, 감미로운 기타의 선율에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시구에는 죽음이 둘을 갈롢을 때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구구절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연가는 하객들이 신랑을 제지하는 와중에 무려 2시간 동안 이어졌다. 플로르가 손을 내민 것은 아구스틴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괴로워하며 손에 든 기타를 막 내리치려던 순간이었다. 두사람-플로르는 웨딩드레스 차람이었다-은 손을 맞잡고 성당을 빠져나와 그 길로 목장을 내달았다. 그때부터아구스틴은 그 지방에서 사랑의 연가를 연주하는 최고의 가우초가 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신부를 <백색 뮤즈>로 불렀다."
 
 
"맨 먼저 차에서 내린 사람은 코이아이케의 학교 선생이자 고집불통인 파타고니아의 역사가 발도 아라야이다. 암울한 칠레 군사 독재 시절, 그는 독재 정권이 국에 덧붙인 후렴-그대 이름, 칠레를 떠받친 용감한 군인-을 거부했다. 학생과 선생들이 월요일마다 국가를 부르는 동안 혼자서 묵묵히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그 일로 군부는 그에게 가공할 많나 폭력을 행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러 달의 구금 생활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꺼지 않고 버티자 끝내는 그를 학교에서 퇴출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가. 다음날 아침에 바케다노 부대 정문에 경비견의 목이 매달렸는데, 그 짐승의 송곳니에 이런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우리를 잊고 있는 머저리 자식들에게 고한다. 너희는 부대 안에 있고, 우리는 밖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다시 경고한다. 아라야 선생님을 원상 복직시켜라.>
결국 군부는 선생을 쫓아내지 못하고 월급을 박탈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발도 아라야 선생은 파타고니아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과 아낌없는 온정 속에서 14년 동안 꿋꿋하게 세계사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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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목로주점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 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혀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 하렴아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게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벽엔 

삼십촉 백열등이그네를 탄다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가장멋진 내친구야 빠뜨리지마 

한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벽엔 

삼십촉 백열등이그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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