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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계획을 하고 떠난 여행과 그 여행기입니다.

5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1/05
    지리산(10)
    풀소리
  2. 2008/11/11
    가을산(5)
    풀소리
  3. 2008/11/03
    당원 북한산행(4)
    풀소리

지리산

1. 산청 '봄이 오는 집' 지난 토요일(1월 3일) 산청에 있는 이준 선배네 집에 갔다. 이준 선배네 집은 간디학교가 있는 산청 둔철에 있다. '봄이 오는 집' 이준 선배네 집 이름이다. 거기엔 언제나 봄날씨처럼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준 선배네 '봄이 오는 집'/ 낮에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웠다. 우리는 오후 5시가 넘어 도착했다. 주인네는 우리가 온다고 통영까지 나가서 여러가지 횟감과 굴을 사왔고, 집에서 가꾼 겨울배추를 내왔다. 나는 허리띠를 끄르고 먹고, 또 먹고를 반복했다. 이준 선배네 집 처마에 마르고 있는 곶감/ 플레시 때문에 색깔이 다르게 나왔지만, 정말 예쁘고 맛있다. 2. 지리산 다음날(4일) 우리는 아침을 먹고 지리산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도인촌으로 유명한 청학동에 있는 삼신봉에 오르기로 했다. 원시림으로 변해가고 있는 지리산 깊은 계곡과 숲 삼신봉 정상 근처는 커다란 떡갈나무 듬성듬성 자라고 그 밑으로는 조릿대가 초원처럼 자리잡고 있다. 삼신봉은 세석평전에서 남쪽으로 가장 길게 뻗은 남부능선 중간 쯤에 있는 봉오리로 높이가 1,284m에 달했다. 지리산 남쪽에서는 지리산 능선이 모두 보이는 유일한 봉우리라고 한다. 삼신봉에서 바라본 천왕봉과 세석평전 삼신봉에서 바라본 노고단과 반야봉/ 북사면에는 추운지방 나무인 구상나무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다. 오르는 산길 주변 숲은 울창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모두 잿더미로 변했었겠지만, 이미 50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만큼 숲은 깊었다. 삼신봉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나무들은 듬성듬성하고, 그 밑으로 조릿대가 초원처럼 펼쳐져 있다. 세석평전까지 힘차게 뻗어 있는 남부능선/ 고사목 지대는 화재의 흔적이라고 한다. 삼신봉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연무에 번진 연봉이 아주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아주 전형적인(?) 기념사진 삼신봉에서는 아까 말한대로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의 주 능선 봉우리가 모두 보인다. 돌아서서 동쪽과 남쪽을 보니 엷은 안개 넘어로 연봉이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3. 산천재 중산리, 내대 거림골을 모두 품고 있는 곳이 시천면이다.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에는 남명 조식의 유적이 많다. 무덤이 있고, 사당이 있고, 그를 추모해 후학들이 세운 덕천서원이 있다. 그리고 그가 생전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던 '산천재'가 있다. 남명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산천재/ 고목이 된 매화나무가 잘 어울린다. 물론 지금 있는 산천재는 남명이 세운 그 건물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여러번 다시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산천재 앞에 서 있는 낙락장송과 키 큰 배롱나무 이제는 스스로 지탱하기조차 힘든 고목이 되어버린 매화나무 등이 지키고 있어 남명의 뜻이 후학들을 통해 면면히 내려왔음을 느끼게 한다. 남명이 누구인가? 퇴계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이다. 퇴계가 부러워했던 건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참 처사의 삶을 살았던 이이기 때문이다. 남명은 어린 아들(명종)의 섭정으로 정치를 농단하던 문정왕후를 향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통해 '일개 과부'라고 일갈하던 이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그의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써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선다. 수제자였던 정인홍이 인정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죽지만 않았어도 남명학파는 퇴계학파 못지 않게 풍성했을 것이다. 산천재 앞 노송 옆으로 멀리 보이는 천왕봉/ 남명선생은 일부러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에 학당 터를 잡았다고 한다. 4. 남사마을 예담촌 덕산에서 원지로 나오다 보면 남사리 예담촌이 나온다. 말 그대로 고래등 같은 옛 기와집들이 동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양반마을 아니 정확하게는 지주마을이다. 어찌됐든 과거 잘 보존되어 있는 동네다. 높은 담이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배타적인 부(富)를 말해주고 있겠지만, 생각 없이 그냥 걷기에 좋은 동네이기도 하다. 남사 예담촌 골목길 최씨 고가 행랑채/ 매우 우람하게 지어져 있다. 최씨 고가 안채 ps 1 : 1박 2일 꿈같은 여행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봄날처럼 따뜻한 이준 선배네 부부로부터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고 잘 먹고, 잘 자고, 편안하게 다녀온 여행이었다. 좋은 여행을 함께 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이준 선배네 부부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ps 2 : 3일(토) 밤 10시 넘어서 별똥별비(유성우)가 내린다고 했다. 우리는 시간 맞춰 밖으로 나갔다. 별이 참 많았다. 미리 소원도 준비해갔는데 별똥별이 도무지 안 보였다.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하늘을 응시했다. 드뎌 내 소원을 담은 별똥별 하나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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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노조를 그만뒀기 때문인지 이번 가을엔 산을 제법 자주 갔다. 특히 단풍 든 북한산을 벌써 서너번 째 가는 거 같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번에는 중학교 진학문제를 가지고 교육청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운영위원들과 학부모회 대표들이 함께 앞장섰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결과가 좋았다. 그 결과 운영위원, 학부모회 대표들과 어울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하는 일이 여러 번 생겼다. 이번에는 산에 함께 가자고 했었고, 그 결과 지난주 수요일(11. 5)에는 송추 오봉능선을 올랐다. 여성봉에서 바라본 오봉/ 역광이라 빛은 좋지 않았지만, 바위는 너무 희고 좋다... 내가 학생운동부터 노동조합 활동까지 너무 오랫동안 운동권 사람들하고 부딪끼며 살아와서 그런지 운영위원들이나 학부모 대표들하고 어울리는 건 쉽지 않다. 아마도 문화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어찌됐든 나는 그들과 함께 산에 갔고, 어찌됐든 산은 있는 그대로 너무나 좋았다. 능선길 들머리에 뿌리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노간주나무/ 아직은 살아있다... 산은 여럿이 올라도 혼자일 수도 있고, 혼자라는 것이 특별히 이상하지도 않다. 새소리든, 햇빛을 엷게 받아 번지는 숲속의 깊은 내면이든 멀리 보이는 끝없는 산맥이든 아니면 회한이든, 사랑이든, 열정이든 때로는 곧은 시선과 때로는 흐린 시선이 산속에선 모두가 눈에 띄지 않고 녹아낼 수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단풍빛이 엷게 번지는 깊은 숲 가을은 쓸쓸한 계절이다. 살아있는 빛들이 빠르게 퇴각하고, 겨울의 무채색 빛들이 빈 자리를 또 그렇게 빠르게 채운다... 높은 산부터 서리가 먼저 오고, 보기에 당당한 두터운 잎들도 서리 앞에서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빈 가지들이 회색빛 휭한 자리를 채운 떡갈나무숲이 산봉우리부터 점점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빠르게 빠저나가는 빛의 행렬 오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북한산 암군은 언제봐도 당당하다. 수락산 너머로 운해 위로 먼 연봉들이 끝없이 펼쳐저 있다. 함께 산행을 한 운영위원들과 학부모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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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북한산행

이미 2주 전에 공지된 산행이었다. 진보신당 고양시위원회에서 당원들의 여러 모임이 있었지만, 당원들과 함께 하는 본격적인 산행으론 이번이 처음이었던 거 같다. 차윤석 의장이 이번 산행에서 내게 북한산과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나는 꼼짝없이 산행에 얽히게 되었다. 어쨌든 같은 시간 돌잔치를 한 남희에게 미안하다... 단풍이 든 북한산/ 쪽두리봉 근처에서 이북5도청 쪽을 바라본 풍경. 저 끝에 내가 다니는 연수원도 있다. 준비를 마치니 약속장소에 겨우 시간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빠듯했다. 그래도 마침 나오는 밥상이 미안해서도 아침밥을 챙겨먹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마을버스도 잘 오지 않는다. 전철도 10분이상 기다려야 했다. 결국 15분 정도 약속시간보다 늦었다. 차윤석의장 부부, 인혁이 인명이 두 아들, 오동식, 유진, 박태하, 이순명, 최경순 얼추 계획했던 대로 10명에 가깝다. 차윤석 의장 가족 독박골에서 쪽두리봉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급경사다. 힘들다. 요즘 난 등산개념 보단 산책에 가까운 산행에 익숙하다. 완경사 산길을 넉넉하고 길게 걷는 걸 더 좋아한다. 그래도 일단 올라가보자. 멀리 쪽두리봉이 보인다. 볼록 나온 바위가 쪽두린가 보다. 열흘만에 다시 온 북한산이다. 이미 단풍이 다 졌을 줄 알았는데, 단풍이 아직도 한창이다. 다만, 내가 즐겨가는 북한산성길이 단풍나무가 많아 붉은색조라면, 이쪽은 떡갈나무 등 참나무류가 많아 노랑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차이 뿐... 떡갈나무의 노랑단풍이 한창이다. 산을 좋아하고, 자주가는 오동식은 보는이에게 무게감을 못느낄 정도로 가파른 산길을 가쁜가쁜하게 오른다. 중1 인혁이도 젊어서(?) 그런지 못지 않다. 오동식과 차인혁 오동식/ 자기 블로그에 올리겠다 한다. 그래서 오동식 사진은 다 올리기로 했다. 쪽두리봉을 올랐다. 급경사가 이어진 길이었지만, 그래도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본 쪽두리 사색에 잠긴 이순명 점심은 사모바위에 가서 먹기로 했다. 산행 속도는 점점 더 벌어졌다.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겼고, 향로봉을 지나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일행이 도시락을 풀었다. 선두 그룹은 후미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순명이 사온 막걸리는 얼름이 서걱서걱 씹히는 게 시원했다. 음식을 다 먹고, 과일 후식도 먹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후미가 왔다. 배가 몹시 고풀 터인데도 사모바위에 가서 점심을 먹겠다고 한다. 2차 점심 사모바위/ 연인을 기다리다 바위로 변했다는 어느 청년이란다... 하산길로 접어들자 멀리 백운대 암군이 보인다. 북한산은 다른 봉우리에 가서 백운대를 바라보는 게 제일 멋있다고 오동식은 말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자. 멀리 백운대 암군이 보인다. 일행들 기념사진 오동식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1시간이면 내려가고, 밑에 막걸리집도 있다고 오동식은 유혹한다. 길도 평탄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오동식의 말은 그져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수사이든지 아님 자신의 탁월한 등산실력을 기준으로 한 것일 뿐이라는 게 곧 밝혀졌다. 하산길에 요런 곳이 수시로 나타났다는.../ 그래도 풍경은 너무나 좋았다. 밝은 햇살아래 드러난 북한산 단풍 산길에서 만난 은은한 단풍/ 사진으론 표현이 덜 되었는데, 너무 좋다... 예정보다 많이 지체된 산행이었다. 모처럼 코스를 제법 탔고, 왁자지껄한 산행이었다. 나는 산을 다 내려와서도 그렇게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 노랑빛이 이글대는 풍경이 오래도록 내 기억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구파발 포장마차에 들려 소주잔을 기울이며 해산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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