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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0/31
    <미썬> 이번엔 반나절투어다.(9)
    제이리
  2. 2005/10/31
    <호이안> 아무튼 이상한 사람들이다.(6)
    제이리
  3. 2005/10/29
    호이안 스페셜(8)
    제이리
  4. 2005/10/29
    제이리
  5. 2005/10/29
    <훼> 훼가 좋다.(2)
    제이리
  6. 2005/10/25
    <하롱베이> 조용한 이틀을 보내다.(10)
    제이리
  7. 2005/10/25
    <호아루-땀꼭> 다시 일일투어를 가다.(2)
    제이리
  8. 2005/10/25
    <하노이> 베트남이 점점 좋아진다.(5)
    제이리
  9. 2005/10/20
    <박하> 투어의 허접함을 절감하다.(10)
    제이리
  10. 2005/10/20
    <사파> 신고식을 치르다(10)
    제이리

<미썬> 이번엔 반나절투어다.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약 900년간 중부 근처에서 그 세력을 떨쳤다는 참파 왕국의 유적지인 미썬를 돌아보는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다. 점심도 없이 버스로 갔다가 오는데만 2불이다. 훼에서 한 황제능 투어의 경우 하루종일 보트 태워주고 점심도 주고 이만동을 받았던 것과 비교가 된다. 왜 호이안의 물가는 근처에 있는 훼보다도 눈에 띄게 비싼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누구는 호이안에 중국인들이 많이 자리를 잡아서 그런다는데 수요 공급의 원칙이 적용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느낌이 든다.


미썬 유적지로 가는 길에 또 비가 내린다. 훼부터 내렸다 그치기를 거의 일주일..이건 거의 우리나라 장마수준이다. 우산 쓰랴 사진 찍으랴 좀 번거롭긴 해도 미썬 지역이 분지라 보통의 경우면 거의 사우나 수준으로 더운 곳이라기에 차라리 내리는 비가 고맙기만 하다. 참파왕국은 지금은 베트남의 소수 민족이 된 참족이 건설한 왕조라는데 한창때는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고 한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이 왕국의 유적지는 앙코르와트의 그것과는 규모나 보존 상태 면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나 벽면의 부조 등이 매우 유사한 느낌을 준다. 한때 왕들의 장례지로 추정된다는 미썬 역시 미군의 폭격으로 한두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폐허가 되어 있다.


그나마 상태가 온전한 B-C-D 그룹


벽면의 부조


나머지는 거의 폐허가 되어있다.


훼에서 본 응웬 왕조의 유적지과 그것과 불과 이삼백년 차이가 나는 참파 왕국의 유적지는 민족적 특성과 종교적 영향 탓이겠지만 그 형태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다양한 민족들이 흫망성쇠를 거듭했을 베트남의 역사가 새삼 궁금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행 준비를 하던 그 많은 시간동안 각 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책 한권이라도 읽고 오는 건데 후회가 막심하다. 역시 공부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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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아무튼 이상한 사람들이다.

 하루동안 반짝 해가 뜨더니 호이안으로 가는 내내 다시 비가 내린다. 훼에서 호이안까지130km라는데 투어버스와 연계된 식당마다 30분씩 쉬어가더니 결국 훼를 떠난 지 6시간이 지나서야 호이안에 도착한다. 물론 도착해서도 곱게 보내주지는 않는다. 도착하기 30분전부터 연계되니 호텔과 투어 안내 브로셔가 돌더니 호텔이 얼마나 좋은 곳이지 투어가 얼마나 훌륭한지 떠들어댄다. 결국 버스는 연계된 호텔에 들러 20분가량 지체하고 -그것도 호텔직원이 버스에 올라와 왜 이 호텔에 안 묵는지 일일이 물어보고 난 뒤에- 조금 싼 다음 호텔로 향한다. 대충 지도를 보니 다음 호텔이 여행자 거리와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내려 배낭을 메고 걷는다.


그냥 얼핏만 봐도 호이안은 작은 도시 아니 동네다. 그러나 물가는 하노이보다도 비싸다. 아무리 찾아도 5불짜리 방은 없다 제일 싼 게 6불이다. 1불이면 천원인데 그냥 묵을까 하다가 나름 원칙이 베트남은 숙소가격이 좀 싸니 싱글룸에 묵을 수 있으면 묵되 5불 이상짜리 방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혼자 다짐한 게 생각이 난다. 왜 5불이냐고? 그게 내가 아는 싱글룸 최저가격이다^^ 어쩔까 하다가 도미토리에 들어간다. 베트남의 도미토리는 처음이다. 그냥 옥상 밑에 있는 트리풀룸이다. 중국처럼 이층침대도 아니고 개별 사물함도 없다. 그래도 욕실은 방에 붙어 있다. 좀 피곤하기는 해도 도미토리에 있는 것도 불편해 거리에 나온다. 그리곤 그냥 싱글룸에 묵을걸.. 천원인데.. 하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한다. 중간에 잠시 샤워하러 들어간 것 외에 그냥 아홉시 정도까지 거리를 배회하다 들어가 보니 그새 간이침대가 하나 더 들어와 있고 노란 머리 남자 셋이 반나로 자고 있다. 헉.. 어쩌랴 그냥 간이침대에 눕는다. 낼은 꼭 싱글룸으로 옮길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잠이 든다.

 


호이안 강변. 전날 내린 비로 물이 골목길까지 들어와 있다.


시인민위원회 담벼락. 믿을 수는 없지만 아직 여기는 사회주의 국가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싱글룸으로 방을 바꿔달라고 하니 어제와는 다르게 7불을 부른다. 어제 6불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그 방은 체크아웃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이젠 말섞기도 싫어져 그냥 다른 호텔을 알아본다. 적당한 방을 알아본 뒤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니 그제서야 6불에 방을 주겠단다. 방이나 보자고 했더니 발코니까지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꼭 이렇게 될 걸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 ,내가 니들집에 월세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있다가 갈걸 그냥 편하게 있다 가자 싶어 그대로 그 방으로 짐을 옮긴다. -그후 소심하게도 옮기기로 한 호텔 앞은 몰래몰래 피해 다녔다^^-


방을 옮기고 거리에 나서니 그제서야 동네가 편해보이기 시작한다. 거리라야 열심히 걸어다니면 한두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만큼 작다. 하지만 동네 전체가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옷가게며 카페, 이 지역 특산물이라는 비단으로 만든 머플러니 가방을 파는 토산품점이 즐비하다. 방값뿐 아니라 음식값도 다른 여타의 것도 물가는 거의 하노이보다 비싼 듯 하다. 여행이 한참 남았으니 이것저것 사서 짐을 늘릴 수도 없어 쇼핑을 포기하니 별로 할일이 없다. 호이안 종합입장권이란 걸 끊는다. 도시의 문화재들을 고가, 향우회관, 박물관, 무형문화재, 기타의 다섯 그룹으로 나누고 그 중 한곳씩을 선택해 볼 수 있게 만든 입장권인데 칠만오천동이다. 하지만 어느 곳을 봐도 별로 볼 건 없다. 지들도 입장권 앞에 <당신의 기부가 호이안을 보존합니다>라고 써놓았으니 그저 기부했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문화재 없이도 호이안은 그 나름의 단아한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긴 하다.


호이안 거리. 한낮이라 그렇지 이 정도로 한산하지는 않다.


호이안의 상점


오후에는 자전거를 빌려 호이안에서 4km 떨어진 끄어다이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이야 다음에 가게 될 나짱에서 실컷 보게 될테지만 해변보다는 그저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는 게 주목적이다. 해변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한 20분 달리니 해변이 보인다. 모래사장에 혼자 앉아 있으니 바로 잡상인들의 표적이 된다. 열대여섯이나 되었을까.. 파인애플을 든 여자애가 옆에 앉는다. 대꾸를 하면 안되는데 이것저것 자꾸 물어본다. 몇마디 대답을 하니 본론이 나온다. 이 파인애플은 무슨 섬에선가 나는 걸로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물건이 다르단다. 내가 대답한다. 쏘리.. 담엔 싱글이냐고 묻더니 이 파인애플을 먹으면 오늘 밤에 남자친구가 생긴단다.. 내가 웃으며 대답한다. 쏘리..  그담엔 학교에 가고 싶은데 학비는 넘 비싸고 이걸 팔아야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우는 소리다. 첨부터 대꾸를 말았어야 하는데 점점 맘이 약해진다. 이번엔 내가 묻는다. 하우머치? 그랬더니 이만오천동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 말한다. 아 유 크레이지? 아무 대답도 안했더니 점점 내려가서 만동까지 내려간다. 물론 만동도 엄청 비싼 가격이다. 첨부터 한 만동 부르면 속는 셈치고 오천동 쯤에 사줄맘이었는데 짜증이 확 난다. 니들은 내가 바보로 보이니 아님 봉으로 보이니 물론 둘다겠지만^^ 바가지를 씌우자고 해도 정도가 있는거지 이건 순진한 건지 영악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내가 자리를 피한다.


끄어다이 해변, 파라솔만 제외하면 그냥 철지난 동해 바닷가다.


일산주민과 쿠의 나이스플레이스라던 호이안은 그저 그만하다. 아마 훼보다 호이안에 먼저 들렀으면 이 한가함과 고즈넉함에 후한 점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삼일 묵고 가는 도시란 그때그때의 자신의 상태, 날씨, 일정 뭐 기타 등등에 좌우되는 것 같다. 아님 개인의 기호일까? 별로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닌 나로써는 동네 전체가 상점인 도시는 글쎄, 썩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이삼일을 호이안만의 독특한 음식들은 맛보는 재미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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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스페셜

 훼부터 중부지방 고유의 특색있는 음식들이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게 호이안으로 내려오면 호이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아예 세트메뉴화 되어 메뉴판에 자리를 잡고 있다. 뭐 달리 쇼핑할 것도 없고 해서 호이안에서는 음식이나 찾아먹고 다녔다. 지금부터 염장질 들어간다.


호이안의 국수 까오라우, 국물이 거의 없다.


호이안 빈대떡 반세오. 훼의 반코아이보다 좀 큰데 야채와 함께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는다. 소스에서 약간 된장맛이 난다.


호이안 전통요리는 아닌데 중부지방에서 많이 먹는 분팃느엉. 비빔국수 위에 숯불돼지 갈비를 얹어준다.


다음은 식당에서 먹은 코스 요리. 이름하여 호이안 스페셜이다. 가격은 사만이천동 약 2300원 정도다.


화이트로즈란 이름을 가진 만두. 만두 위에 새우가 한 마리 얹혀 있다.


스프링롤. 속에는 새우와 야채 다진 것이 들어있다.


환탄스프. 베트남 완탕인 환탄에 쌀국수를 곁들여준다.


디저트. 다른 건 다 알테고 하얀데 검은점 박힌 건 드레곤프룻 일명 용과라는 과일이다. 맛은 좀 밍밍하다.


배고픈 상태에서 이글을 보시는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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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 훼가 좋다.

밤기차를 타고 훼에 도착한 그날부터 비가 내린다. 숙소를 정하고 잠시 쉬다가 비가 멈춘 틈을 타서 거리로 나서본다. 하노이보다 훨씬 조용하고 쾌적하다. 그러나 비가 그치는 것도 잠깐 다시 비가 내린다. 뭐 열대지방의 비는 한 30분 정도 내리다가 그친다고 알고 있어서 그냥 다리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본다.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기를 몇 차례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황산에서 혹시 몰라 산 1원짜리 우비가 가방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우비를 입고 그냥 강변을 걸어 시장까지 가본다. 훼까지 내려와도 날씨는 그저 한낮에 약간 더운 정도다. 비까지 내리니 제법 선선하기 하다.


비내리는 향강


훼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였던 응웬 왕조가 1945년 바오다이 황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150년간 수도였던 곳이란다. 황궁이 있는 구시가와 여행자 거리가 있는 신시가 사이에 향강이 흐르고 있지만 그저 산책삼아 걸어 다닐만한 거리이다. 대략 비자 날짜를 세어보니 베트남에선 한도시에서 하나 3일씩 묵어도 되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노이에서 빼놨던 정신도 챙길 겸 조금씩 천천히 다니기로 한다. 이전 같으면 관광지 갈 시간을 계산해 놓고 날짜가 비면 아.. 뭐 하고 시간을 때우지.. 하는 고민이 먼저 들었는데 이 도시에선 아무 것도 안 하도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내리는 거리를 쏘다니다가 돌아와 훼의 명물이라는 반코아이에다 맥주를 한잔한다. 아.. 물론 여전히 혼자지만 그것도 뭐 이제 괜찮다.



베트남 빈대떡 반코아이


훼지방의 전통국수, 분보훼. 곁들이로 주는 숙주와 야채를 국물에 넣어 먹는다. 국수에는 살이 무지 많이 붙은 소뼈가 들어있다.

 

다음날도 그저 걸어서 황궁까지 가본다. 훼의 관광지 입장료는 베트남 물가대비 꽤나 비싼 가격이다. 공식적으로 외국인 이중가격제이기도 하다. 황궁과 각각의 황제능 입장료가 오만오천동이다. 내국인도 이만동이나 하니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가이드북에는 그 비용이 문화재복구에 쓰인다니 기꺼이 지불하자고 쓰여 있다. 입장료라면 이미 중국에서 단련된 몸, 그리 아깝지 않게 낸다. 황궁은 앞의 전각 두어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폐허다. 전쟁 중에 미군에 폭격에 의해 그리 되었다는데 몇 남은 주춧돌들 위로 푸른 풀들만 무성하다. 비내리는 황궁을 걸으며 불과 오륙십년전만해도 여기에 황제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았겠구나 생각하니 살아있다는 게 무상하게 느껴진다. 유홍준 아저씨가 쓴 문화유산답사기라는 베스트셀러에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 뭐 표현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요지는 이런거다. 답사의 고수들은 절집보다 절집의 흔적 즉 우리가 무슨무슨 사지라고 부르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고.. 뭐 답사의 고수는 아니지만 내리는 비 탓인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황궁, 폭격으로 뒷부분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그 다음날은 각각의 황제능을 보트를 타고 돌아본다. 응웬 왕실에는 9명의 왕이 있었다는데 그중 아름답다는 3개의 능과 두개의 사원을 보트로 둘러보는 투어다. 이전에는 보트가 아니면 접근이 힘들었다는데 이제 다리가 놓여 쎄옴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단다. 호치민에서 하노이로 올라가거나 반대로 내려오는 짧은 여행자들을 위해 시내관광과 묶어 하루코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상품화해 놓았다. 나야 남는 게 시간이니 굳이 시내투어까지 묶어서 할 것도 없고 보트투어 가격이 점심 포함 이천동이니 그냥 보트로 돌아보기로 한다. 물론 입장료와 두개의 황제능까지 진입하는 쎄옴 가격은 별도다.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난 향강은 그 이름 같지 않게 -향강의 영어 이름은 퍼퓸 리버다- 배설물이 둥둥 떠다닌다.


훼라고 바가지가 아니 사기극이 없겠는가. 첫번째 황제능에 가는 쎄옴을 탄다. 황제능 가는 쎄옴은 대략 왕복 이만동으로 담합이 되어있다는 정보는 입수해 둔 터다. 가격을 물어본다. 이만동이란다. 배에서 쎄옴타는 데 까지 안내해주러 온 꼬마도 쎄임쎄임이라며 빨리 타기를 권유한다. 그냥 탄다. 근데 막상 황제능에 도착하니 이 쎄옴기사, 편도 이만동이라며 우기기 시작한다. 나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만동을 건네주면서 받을려면 받고 말려면 말아라하고 버텼더니 왕복은 사만동이라고 끝까지 우긴다. 결국 같은 보트에 탔던 다른 사람들이 타고 온 쎄옴 가격을 확인하고서야 그냥 기다리겠단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만동만 주고 보내고 싶은데 돌아갈 길이 막막하니 그러라고 한다^^ 다음 황제능에서의 쎄옴은 삼만동을 부른다. 깍아서 이만동에 간다. 처음 황제능보단 조금 먼듯도 싶다. 갔다 왔더니 쎄옴 가격을 확인하느라 배안이 시끌시끌하다. 누구는 왕복 이만에, 누구는 삼만에 갔다 왔단다.. 심지어 편도 삼만씩 육만을 준 커플도 있다.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누군가 너는 얼마에 갔냐고 묻는다. 기쁘다. 이만이라고 담담한 척 대답한다^^


앞에서 두 번째 왕인 민망 황제의 능. 베트남 고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뒤에서 두 번째 왕인 카이딘 황제의 능, 프랑스의 영향으로 다른 능들과는 달리 유럽식이 많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황제능은 투어만 아니었으면 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베트남의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번에는 50분입니다, 40분입니다 하는 바람에 거의 단체 관광객처럼 정신없이 다니다 온 것 같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실 관광지로서의 베트남을 생각했을 때 몇몇 자연 경관들과 먹을 것 그리고 베트남 전쟁 정도 외엔 다른 생각은 거의 못한 것이 사실이다. 훼에서 보는 유적들은 전쟁 이전 아니 식민지 이전의 베트남은 끊임없이 주변국들의 침공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베트남이 고유의 양식과 문화를 누려오던 나라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러나 유적 어느 곳이나 어디나 전쟁 중의 폭격으로 거의 파괴되다시피 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보트를 타고 돌아오는 향강은 물이 많이 줄어있다. 내가 이 도시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훼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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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 조용한 이틀을 보내다.

하롱베이로 떠나는 날 아침 숙소 로비에서 한국여행자를 만난다. 아침에 훼에서 올라 온 친구다. 한달 반가량 인도차이나를 여행 중인데 훼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려다가 베트남에서 하롱베이를 안 갈 수 없다 해서 하노이까지 올라오는 길이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한마디 한다. 하루만 일찍오지.. (내가 얼마나 술친구가 필요했는지 아냐?) 물론 괄호안은 그냥 생각만 했다^^


빅그룹은 배와 숙소가 열악하다는데 막상 배를 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 싼게 비지떡이란 말은 최소한 베트남에선 통하지 않는 것 간다. 가장 싼 걸 선택하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다. 돈을 더 내든 아니든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뭐 한 백불씩 더 내면 물론 확실히 서비스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배에서 전날 보았던 한국인 가족을 다시 만난다. 하롱베이 투어는 그냥 배타고 갔다가 깟바라는 섬에서 하루자고 돌아오는 투어다. 스몰그룹의 경우 중간에 수영도 하고 카약킹도 한다는데 애초부터 그건 별 관심이 없었으니 대략 만족이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 갑판위에서 누워가도 크게 부담이 없다. 하롱베이 가는 4시간 동안 그저 앉아서 바다위에 떠 있는 석회암 봉우리를 바라보거나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잠시 자거나 하며 한가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악을 듣는다. 이번엔 김광석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꿈에 보았던 길/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휘파람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래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뒤 있을 일산반상회도 조금 덜 가고 싶어진다^^ 저녁 무렵 배가 깟바섬에 닿는다. 마치 월미도를 연상케 하는 이 섬은 정말 거대한 관광지다. 일설에는 보트피플로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건물을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다는데 식당이며 술집분위기가 아무래도 베트남 같지가 않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한국인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덕분에 게도 한 마리 얻어먹고 바에서 맥주도 한잔 한다. 일가족은 하루를 이 섬에서 더 묵기로 했단다. 나야 예약해 둔 기차표도 기차표지만 한 가족 사이에 끼어 수영할 일 있나.. 그저 예정대로 하노이로 돌아와 훼로 가는 밤기차를 탄다.

 


대략 이렇게 널부러진다. 일가족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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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루-땀꼭> 다시 일일투어를 가다.

허접하지만 별 수 있나.. 박하에 이어 다시 일일 투어를 간다. 하노이에서 갈 수 있는 일일투어는 호아루-땀꼭 투어와 퍼퓸파고다 둘 정도다. 그중 땀꼭 투어의 경우 신청하니 한국인이냐고 물어 볼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는데 내가 이 투어를 신청한 이유는 순전히 퍼품파고다 투어에 2시간가량의 트레킹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혼자 걸어다니는 건 몇시간이라도 하겠는데 이상하게 자, 지금부터 2시간 걷습니다. 하면 딱 걷기가 싫어지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여튼 그래서 걷는 게 없는 투어를 신청한다.


아.. 그러나 한국인이 가장 선호한다는 이 투어 버스에도 한국인은 없다. 프랑스 커플, 호주 커플, 미국인 여자 그리고 말되게 많은 네덜란드 아저씨 그리고 나 이렇게 달랑 일곱이다. 배는 둘씩 탄다는데 저 말많은 아저씨랑만 안 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일곱시에 온다던 버스는 온 동네를 다 돌아 여덟시가 넘어서야 여행자 거리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두어시간쯤 달리다 호아루에 도착한다. 호아루는 10세기 후반 베트남 어느 왕조의 도읍이었다는데 그 왕조의 시조를 모셔놓은 두 개의 사찰을 둘러보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도 이번 가이드는 좀 덜 뺀질거려 이것저것 설명도 하고 제법 살갑게 굴어준다.


호아루의 사원 두개 중 하나. 이름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으나 둘중 어딘지 모르겠음^^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또다른 버스에 실려 온 한국인 일가족을 만난다. 부부와 아이 둘, 일가족이 패키지가 아니라 자유 여행으로 왔다는데 알고 보니 아저씨가 대한항공에 다니는 덕에 이곳저곳을 많이 여행한 가족이다. 이 가족이 하롱베이 투어를 18불에 신청하셨다길래 일행이라고 하기로 하고 여행사 명함을 받아둔다. 내가 아는 최저 가격이다. 게다가 같이 신청하면 최소한 하롱베이 1박 2일 동안은 외로움에 치를 떨지 않아도 될 테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근데 이분들 정작 땀꼭 투어는 15불에 오셨단다. 참 베트남 투어는 요지경 속이다.


오후에는 배를 탄다. 땀꼭 수로를 따라 삼판이라는 노젓는 나룻배를 타고 두시간을 왕복하는 코스인데 물은 그리 깨끗하진 않지만 양수오에서 본 것 같은 동글동글한 석회암 봉우리들이 제법 운치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일단 두 커플이 먼저 배를 타고 떠나고 셋이 남는다. 어쨌든 미국 여자랑 타야 할텐데.. 하며 옆을 떠나지 않고 안되는 영어로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가이드 왈 셋이 타란다. 뭐 셋이 타는 거 까지는 그럭저럭.. 근데 이저씨 두시간 내내 떠들어댄다. 다행히 미국인 여자가 적당히 받아주어 화살이 나한테까지 오지는 않는다. 아니었으면 좀 조용히 경치구경이나 할 텐데.. 지나친 명랑과 쾌활도 때로는 남에게 방해가 된다.


배타는 곳, 저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 올라갔다 오는 것이 코스다.


반환 지점에서 배위에 물건을 올려놓고 파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엄청난 바가지다.


그리곤 버스에 실려 다시 하노이로 돌아온다. 참 점심밥도 포함된 투어였는데 밥이랑 반찬 4가지가 나오는 식단이다. 간만에 밥이랑 반찬이랑 먹으니 좋더구만.. 서양애들 서툰젓가락질로 께작거리는 사이에서 혼자만 두 그릇이나 먹었다. 나물도 있어 고추장 넣고 비비면 딱 비빔밥이겠더구만, 차마 고추장을 꺼낼 수는 없었다는 슬픈 현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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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베트남이 점점 좋아진다.

기차가 사파를 떠나자마자 이를 악문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요, 시행착오였으며 이제부터 다시는 어리숙하게 당하지 않을 것을 혼자서 국기도 없는데 굳게 다짐한다. 바가지가 바가지를 넘어서면 그때부턴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오래간다. 예컨대 오천동짜리 물건을 대략 외국인에게는 만동쯤 받는 바가지야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 근데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그 만동짜리조차 삼만동 받겠다고 설치니 이거야 신경이 쓰여서 어디 맘편히 여행이나 하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잔돈도 다르게 줬다가 아니라고 해야 제대로 주지.. 뻔한 물값 만동 불렀다가 그냥 뒤돌아서야지만 오천동으로 내려가지.. 여튼 잔신경이 무척 쓰이는 나라인 것이다. 아마 지나친 긴장감이 빚어낸 감정이겠지만 사파를 떠나올 때만해도 베트남 비자를 왜 받았을까 그냥 확 호치민으로 내려가서 이 나라를 떠나버릴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가장 괴로운 건 도무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는 일이다. 숙소에서도, 길에서도, 투어에서도 내내 이게 정상적으로 끝이 날 것인가에 온갖 신경이 집중되니 도무지 맘이 편치를 않다.


이래저래 불편한 맘으로 하노이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반경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하노이역에는 예외없이 삐끼님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버스를 물색해 본다. 그러나 항박거리로 간다던 15번 버스는 6시반이 넘도록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 기사와 흥정에 들어간다. 대략 오천동 정도가 정가라는데 만동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일단 만동에 가기로 하고도 얘가 제대로 데려다 줄라나.. 엄한데로 가서 여기라고 우기거나 만동이 아니라 십만동이었다고 우기면.. 별 생각이 다난다. 그러나 별일 없이 원하던 숙소까지 간다. 뭐 잔돈이 없다는 제스쳐를 한 번 쓰기는 했지만 단호하게 노를 외치며 거스름돈을 주기 전에 돈을 미리 건네주지 않으니 알아서 잔돈을 꺼내 준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이런 거였구나..


하노이 여행자거리. 여행자거리는 어디나 다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팬룸 싱글가격이 대략 중국의 도미토리 가격이다. 뭐 방에 따라 다르겠지만 5불 정도면 묵을 수 있다. 5불짜리 싱글룸에 짐을 푼다. 조금 안정이 되는 느낌이다. 방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다 여행자거리로 나서본다. 날씨가 의외로 선선하다. 아직까지 동남아 특유의 무더위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거리는 듣던대로 오토바이의 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중국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긴 정도가 좀더 심하다. 4차선 정도의 거리를 하나 건너고 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다가 식당에 들어가 생과일쥬스도 마시고, 아이스커피도 마시고, 거리에서 국수도 사먹어 본다. 음식에 기름기가 쫙 빠져 맛은 중국보다 훨씬 담백한데 양이 너무 적다. 그새 중국의 양에 익숙해졌는지 그게 원래 정량이었는지 여튼 국수를 먹어도 볶음밥을 먹어도 뭔가 허전하다. 그래도 음식은 뭘 먹어도 맛있다.


하노이 쌀국수 퍼보, 그릇이 너무 적다^^


그러다가 투어를 물색해본다. 숙소에 있는 킴카페 호아루-땀꼭 일일투어가 15불, 하롱베이 1박2일 투어의 경우 스몰그룹만 취급하는데 대략 28달러에 싱글차지가 5불이란다. 신카페로 가보니 호아루-땀꼭이 13불, 하롱베이 1박2일의 경우 스몰그룹은 비슷하고 빅그룹은 20불에 싱글차지가 4불이다. 몇군데 더 가봐도 비슷비슷하다.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3불에서 5불정도 비싼 가격인 것 같아 그냥 호아루-땀꼭만 13불에 신청하고 하롱베이는 투어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정보를 얻기로 하고 신청을 유보한다. (그러다가 결국 땀꼭 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의 도움으로 싱글차지 없이 빅그룹을 18불에 신청한다.) 


다음날은 뚜벅이 투어에 들어간다. 먼저 버스를 타고 호치민묘로 간다. 그리도 없던 한국인들이. 그것도 단체 관광객들이 득시글득시글한다. 덕분에 옆에 살짝 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호치민 시신은 방부처리를 위해 러시아에 가 있어서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기간이란다. 북경에서는 월요일이라 모택동묘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뭐 이래저래 방부처리된 시신들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호치민이 만년에 살았던 생가를 지나 호치민 박물관, 문묘까지 그냥 길을 따라 걷는다. 하노이 시내야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지만 관광지들 사이는 그저 쥬스 한잔씩 마시면서 걸어다닐만 한 거리다. 그리곤 전날의 뼈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하노이역에 가서 후에행 기차표를 직.접. 예매한다. 중국보다 사람도 적고, 영어도 통해 쉽게 예약이 된다. 그 뒤로 호아후 미군수용소, 역사박불관, 혁명박물관까지 다시 걷는다. 그러다보니 다시 호엔끼엠 호수가 보인다. 저녁엔 수상인형극도 함 봐주고..


호치민묘


호아루미군포로수용소


호엔끼엠호수, 어째 죄다 호자돌림일세^^


쎄옴과 실갱이없이 그저 걸어다니면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호수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친철하다. 호수에서 누가 앉아도 되냐길래 또 뭐 팔러온 앤가 앉으라고 해놓고선 뜨악하게 있었더니 신문을 이리저리 들추며 축구 얘기를 시작한다. 안정환이며, 이천수며 이름밖에 모르는 축구선수들이 나열되다가 월드컵으로 얘기가 빠지더니 한국축구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알고보니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란다. 회화연습 상대치고는 좀 부실해서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이삼십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또다른 청년은 길을 물었더니 지도를 이리저리 뒤적여보다간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지 결국 목적지인 역사박물관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선다. 그래..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자. 다 사람사는 곳이 아닌가.. 조금씩 긴장이 풀린다. 하노이에서의 또다른 하루가 저물고 베트남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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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투어의 허접함을 절감하다.

사파도 이제 더 이상 더 이상 소수민족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볼 수 잇는 곳은 아니다. 사파의 골짜기에만 100여개의 숙소가 들어서 있고 하루에서 수십번씩 물건을 파는 고산족들과 부딪쳐야 하는 철저히 상업화된 관광지일 뿐이다. 물론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또 그들만의 세상이 있겠지만 그것도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순간 사파와 비슷한 처지가 될테니 여행이란게 결국 자연과 문화의 파괴에 일조하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함이 느껴진다.


원래는 토요시장이었다는데 이젠 상설시장이 되었다.

 

사정은 박하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차이가 있다면 그나마 시장이 여전히 부족 중심의 장터라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무수한 관광객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구경하러 몰려든다.




그래도 아직 시장은 이들의 생활터전이다. 이들은 베트남의 소수민족인 몽족 중에서도 플라워 몽족이란다. 


투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아침 일찍 나가서 한시간여를 기다리다가 버스에 실려 박하에 도착한다. 12시 반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잠깐 시장을 구경하다가 식당으로 와서 주는 밥을 먹는다. 오후에는 지들 말대로 라면 아름다운 몽족 빌리지 방문이다. 버스를 타고 오백미터나 갔을까.. 몽족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백미터쯤 들어가더니 어떤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니 집안을 이리저리 구경시켜주고는 잠깐 설명 그라곤 그만이다. 뭐 나도 대단한 걸 원한 건 아니지만 참 그래도 이건 심하다 싶다. 하지만 어쩌랴.. 베트남은 거의 모든 관광이 투어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앞으로 이런 허접한 관광을 최소 대여섯번은 더 겪어야 할 것 같다.  또하나 이런 투어라도 좀 싸게 가보겠다고 아니다 바가지 좀 덜 써보겟다고 머리는 또 얼마나 굴려야 할 것인가. 어쩌랴.. 여기는 베트남인 것이다.


몽족의 집. 어디나 TV는 있다.

 

보이나, 호치민과 어깨를 겨루는 배용준 사진.. 같이 갔던 일본 관광객들이 욘사마의 허접한 옛날 모습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씩 확인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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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신고식을 치르다

밤 8시 국경도시 하커우로 가는 와석 버스를 탄다. 와석버스란 문자 그대로 누워서 가는 버스다. 침대 버스란 말은 좀 호사스럽고 그냥 누워가는 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략 3줄씩 6칸에 이층이니 모두 36와석이 나온다. 우리나라 우등고속이 한 23석 정도 되니 공간대비 효율성은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워가는 게 앉아 가는 거보다야 편하지 않겠는가? 단 10시간 이상 갈 경우에 한해서다^^ 뭐 원래 장소가 어지간만 해도 잘 자는 편인데다 나름 차에서 자는 것도 익숙해져 여기서도 그냥 그러려니 이층에서 안 떨어지고 그냥 자면서 간다. 버스 이층에 누워있으면 밤하늘을 보고 가게 되는데 뭐 달밖에 안보이지만 그것도 나름 운치있다. 


하커우행 와석버스


중국돈을 베트남에서 환전할 200원만 남기고 거의 다 써버려 5원밖에 없는 상태에서 허커우에 내린다. 다행히 국경은 걸어서 100m도 안되는 거리에 있다. 혹시나 출국세라든가 뭐 통행세라든가 이런 게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뭐 달리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은 오원으로 국수라도 먹고 국경을 건너는 건데 베트남에 도착하니 배가 무.지. 고파진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 가운데로 홍강이 흐르고 중국 쪽에서 출국 절차를 밟고 나오면 다리를 건너서 다시 베트남 쪽에서 입국절차를 밟아야 한다.  


베트남에 오면서부터 긴장이 시작된다. 출국절차를 밟고 나오니 당연히 삐기님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쟤가 중국인인가 아닌가 탐색하는 눈빛들이 역력했는데 여기서는 확실히 외국인으로 보이나 보다. 그래도 삐끼님들이 아니시면 어디서 정보를 얻겠는가. 그 중 한 명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먼저 환전부터 하겠다고 하니 위안화가 환전되는 곳에 데려다 준다. 걱정을 하면서 따라갔는데 사설 환전소도 아니고 은행인데다 환율도 그리 나쁘지 않아 200원을 환전하고 그 삐끼님의 오토바이를 타고 라오까이 기차역으로 간다. 사파로 가는 미니버스를 바로 타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배낭 여행자답게 수수료 안 주고 기차표부터 예매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 게 착각이었던 거다.    


기차역에서 월요일 하노이행 기차표를 달라고 했더니 당일 표밖에 안 파니 사파가서 사란다. 뭐 기차표 예매 안 되는 나라도 있으며, 것도 여행사엔 있는데 창구에선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싶긴 했지만 뭐 따질 수도 없고 알았다고 다시 나온다. 라오까이 기차역에서 사파가는 미니버스를 찾아보니 기차 도착 시간에만 맞춰서 나오는지 버스가 없다. 흑.. 그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던 오토바이 기사님 사파가는 버스 탈려면 터미널까지 또 오토바이 타야 한단다. 별 수 있나.. 다시 오토바이를 탄다.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가자고 했더니 이 아저씨 살살 꼬신다. 너 기차역 오느라고 돈 들었지.. 터미널 가느라고 돈 들지.. 사파 갈려면 또 돈들거지.. 거기다 좀만 보태서 그냥 오토바이타고 사파가자 뭐 그게 대략의 요지였다. 뭐 생각해보니 것도 틀린 말은 아니고 터미널에서 사람찰때 까지 기다리고 흥정하고 어쩌고 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오토바이를 타고 사파까지 간다.


사파 가는길. 가다가 쉬면서 삐끼님이랑 노가리도 까고.. 드디어 영어로 수다떠는 세월이 온 것이다 앗싸!! 


이 아저씨가 소개해 준 숙소도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것들 보다 훨씬 저렴해 그냥 묵기로 한다. 숙소는 정말 괜찮았다^^사실 여기까지야 뭐 문제겠는가. 그저 흥정에 지레 겁먹고 삐기님을 덥석 따라 미니버스의 두 배 정도의 돈을 지불했다고 한들 어차피 내가 선택한 일인 바에는 속이 그리 쓰릴 일은 아닌데.. 뭐 비극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담날 박하 선데이 마켓을 아무래도 혼자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하루 투어를 신청하러 간다. 프랜들리하다는 카페에서 박하투어를 신청하고 나서 온 김에 기차표까지 예매한다. 내가 기차표 가격을 알 턱이 있나. 그저 수수료 적당히 붙이겠거니 했는데 신청하고 나와서 보니 약 30m 거리에 사설인지 공설인지 알 수는 없으나 기차표 대행 출장소가 버젓이 있다. 거기도 수수료를 받는 곳임에도 거기보다도 대략 5불 정도를 더 받은 것이다. 헉 기차표 가격의 1/2을 수수료로 받다니.. 속이 쓰리다. 바로 취소하러 갔더니 취소 수수료가 정확하게 5불이란다. 몬살아.. 싸운다고 어찌될 일도 아니라 그냥 나오는데 그래도 미안하단다. 그래 말이라도 미안하다고 해 줘서 고맙다 생각하고 나오는데 아 여기가 베트남이구나 싶다.


그래도 숙소는 환상이었다. 사파가 내려다보이는 더블룸. 방값은 4불


박하투어 다음날 결국 여행 최대의 삽질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계속 나의 부주의함과 베트남의 바가지의 이를 갈고 있었는데 뭐 삽질의 전모는 대략 이러하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오면 한시간이 빨라지는데 그거 맞추겠다고 시계를 이리저리 건드리다가 나도 모르게 날짜를 하루 미뤄놓은 모양이다. 내가 하노이로 가는 날은 17일인데 철썩같이 그날이 18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나는 결국 예약은 18일에 해놓고 정작 17일에 가서 기차표 주세요 한 거지 뭐.. 결국 실수를 깨닫고 17일 저녁표로 바꿀 때까지 이것들이 이걸 미끼로 또 얼마나 챙길려나.. 수수료 5불 주더라도 취소하고 바로 기차역으로 갈까.. 아님 그냥 하루 더 있을까 온갖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 수수료 없이 그냥 바꿔진다.

 

그저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전화위복이 된 셈인데 - 기차역에서 끊을때도 18일표 달라고 했고 만약에 그 표가 있었다면 17일 기차역에 가서 그 사실을 알았을 테고 그럼 아무것도 없는 라오까이에서 그냥 하루를 속절없이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맘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정신이 번쩍 난다. 베트남!!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어리버리하다가는 바보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 다행히 막상 닥치니 생각했던 것 보다는 대처에 대한 의욕이 넘친다. 이제 절대 어리버리 당하진 않을 테다. 맘은 그리 먹지만 뭐 그게 쉽겠는가. 기차를 타자마자 어떤 아주머니가 커피를 먹겠냐 차를 먹겠냐 묻는다. 먼저 탄 일행도 다 마시고 있길래 서비스인줄 알고 차를 시킨다, 좀 있더니 종이컵에 립톤 홍차가 담겨져 나온다. 그리고 오분 뒤 아주머니가 다시 와서 돈을 받는다. 한잔에 20000만동.. 여행자 거리 카페에서의 씨푸드 볶음밥보다 비싼 가격이다. 뭐 또 당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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