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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사실에 대한 단상

빈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대변한다.
모든 인류는 이땅에 육체를 입고 와서 살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몸을 이룬 육체가 육체의 죽음을 통해, 땅의 먼지로 변하게 된다.
모든 인간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육체의 껍테기를 이지상에 남기고,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몸의 DNA의 흔적들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난 것이다.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중에 죽음을 보지 않고, 이 지상에서 사라진 에녹과 엘리야(성경구약에 나타난 두 인물: 에녹은 신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엘리야는 하늘로 올리움을 받았다)를 제외하고 모두가 육체의 죽음을 통해, 그들은 무덤을 남겼다.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는 무덤에 들어가 시체가 되어 3일간을 그곳에 있었다.
그의 몸에는 상처투성이와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신 상처의 흔적(이것은 인간의 두뇌가 항상 생각하는 것에 죄의 영향하에 있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죄의 댓가를 치름)과
두손(손을 짓는 인간의 모든 죄에 대한 댓가를 치름)과
두발(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는 일로 분주했던 인간의 발걸음의 댓가를 치름)에 못을 박히고,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
그 십자가의 예수를 향해 로마의 병사가 옆구리를 찌르니
그곳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내렸다
(예수의 옆구리 상처는 인간의 심장 어딘가에 있을
인간의 마음에 죄를 담았던 흔적들에 대한 댓가를 치름).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일을 다 마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는 죽었다. 그의 육체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이라는 세력에 휩싸여 버렸다.

그러나 떠오르는 동녁하늘에 환히 비쳐주는 빛처럼, 죽어있던 그의 육체는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즉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리는 생명의 영의 역사로 십자가의 예수는 다시 살아났다.
그의 몸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는 생명의 영이 임하므로,
그의 죽은 몸이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죽었던 예수, 즉 그 십자가의 예수가 부활예수로 변화된 것이다.
예수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모든 인류를 언제나 무겁게 짓누르고,
억압하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다.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등 3여인은 죽은 예수의 몸에 바를 향료를 구하여,
그 무덤에 갔으나, 예수님을 찾지 못하여 있을때에, 그녀들은 어리둥절해 있었다.
갑자기 빛나는 옷을 입은 두사람이 나타나 그들 곁에 섰다.
여자들이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대자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왜 살아 계시는 분을 죽은 사람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전에 갈릴리에 계실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아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놀람과 경이로움과 큰 기쁨으로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통해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모든 인류는 죽음앞에 두려워 하며,
항상 죽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는 것이다. 죄로 인한 댓가로 누구에게난 죽음이 찾아 온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그 죽음에서 생명의 부활을 믿고
그가 약속하신 바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비록 육체의 기간이 끝나 죽음에 이르지만,
그들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언제가는 예수님처럼
그들의 죽어 썩어 흙이 되어 버린 그들의 몸이 다시 살아,
예수님처럼 영광의 몸체를 입을 날이 다가 올것이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신 생명의 하나님의 영은
예수를 믿는 이들마다의 마음속에 그생명의 약속을 보장하심으로
그들속에 생명으로 역사하신다.
그 영은 믿는 이들속에서 함께 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안고 살게 한다.
그 영은 때로 믿는 이들속에 믿음을 심어 주기도하며,
그들가운데에서 모든 분야에서 그들을 돕는 분으로 함께 하신다.
그 생명의 영은 사람들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혜택안에서 살도록 하며,
죄와 죽음의 권세의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풀어주고 자유하게 하며,
비록 육체안에 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복(평안, 목적있는 삶, 영생에 대한 보증을 통한 영혼의 안식등)을 누리며
살게한다.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그녀의 증거를 믿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집에 오셨다.
그의 부활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제자들중에 도마라는 제자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만났다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며,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의 마음에 가득 의심이 쌓여 있었다.

인간이 소유하는 믿음은 그 믿음을 갖게해 주는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고로 믿음의 대상이나 확실한 사실에 의해 사람에게 믿음이 생성이 되며,
의심을 이기고 자신안에 믿음의 확신에 이르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나 그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로 부터 나타난 증거는
그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엄연한 사실로 이해되며,
그 사실에 대한 자기확신의 경험에 이르게 된다.

8일이 지난후에 다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거기에는 의심하는 도마도 있었다.
예수님이 의심하는 도마를 향해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바닥에 넣어보고 네손을 내밀어 내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는자가 되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부활을 의심하였던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그에게는 충격적이고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도마는 평소에 사실확인을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경험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누가 자기에게 이야기 해준다고 그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앙의 신비에는 사실이나 이성의 이해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있다.
사람의 두뇌의 이성을 통한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인간 삶의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은 보통 사람들이 상식을 통해
그 사실을 납득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 상식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신이 평소에 알고 있는 이성활동(감각에서 얻은 정보에 대한 이해)을 통한 지식습득이나 혹은 자기 이해관점안에서의 경험에서
얻은 견해를 자기의 세계관이나 인식관(자기판단)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그런데 인생의 일어나는 일들중에는 그 상식이해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신앙에는 많은 요소들이 그 경계들을 넘은 부분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증명해 보이지 않는 영혼의 존재, 육체의 감각의 눈으로 인지 하기가 쉽지 않는 신의 손길,
죽음넘어의 사후세계, 영원한 차원의 세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의 영향과 현상, 원인을 알수 없는 일어난 현상들,
인간 자신의 두뇌의 활동이나, 자기 내면의 영역안에서의 이해와 활동들(마음, 정신, 영혼)등 많은 것들이 인간의 이해나 경험의 경계들을 넘어서 일어날수 있는 일들이 있다.

무엇이든지 자기경험을 통한 이해방식을 통해, 자기이해에 이르게 된다.
현대인의 세계관이나 이해방식은 증거나 증명에 의해,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 사실에 대한 자기경험의 과정을 통해 확신에 이르게 된다.
더우기 현대적인 사고방식안에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원칙이나, 가르침을 외면하고,
자기의 판단이나 경험이외의 일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기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상대적인 사람들의 판단이나 기준에 의해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하신 일들과
그가 인류에게 약속하신 사실이나 내용들은 변치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지구를 비롯한 모든 우주의 질서에 관여하시고 보존하고,
시간의 길이를 정해놓아, 그의 계획에 따라,
모든 인생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삶의 길을 살아가고 있으며,
언제가는 정해진 시간에 그들의 삶을 결산하기를 정해놓았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간 구원을 위해 보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의 부활은 변함이 없이 받아들여야 할 사실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고로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의 사실은 모든 인간에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그 부활의 사실은 죽음을 향해 가는 모든 인류에게 확실한 소망과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시는 영생과 구원에 대한 약속을 보장하고 있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부활한 예수는 지금은 영원한차원(하나님의 세계)의 존재안에서 우주를 다스리고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하였다.
(누가복음24: 1-6, 요한복음20: 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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