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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제자의조건

누가14: 26-34
26.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녀와 형제 자매, 심지어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가 없다.
27.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 제자가 될 수 가 없다.
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 할 때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할 만한 돈을
가졌는지 비용을 계산해보지 않겠느냐:
29. 만일 기초 공사만 하고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모두
기초 공사만 시작하고 마무리를 못하면 시작 아니 함만 못하다는 것을
30. ‘이 사람이 시작만 해놓고 끝내지 못했군’하고 비웃을 것이다.
31. 또 어느 왕이 다른 왕과 싸우러 갈 때 먼저 앉아 병력 10,000명으로
20,000명을 거느리고 오는 왕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일 당해 낼 수 없으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 평화조약을
제의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4.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다시 짜게 할수
있겠느냐?

예수는 그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 중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규정을 세웠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따르는 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자세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제자의 삶의 기본 철학이 되며, 제자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제자가 되는 데는 자신에 대한 결단과 결단에 따르는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결단의 의지와 희생을 각오하는 자세는 제자에게 필수적인 태도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와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에만 진정한 제자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보다 나은 가치와 숭고한 사명의 삶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보다 고양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가지 보통의 삶을 넘어가는 자기 조절과 훈련이 필요하다.

누구나 예수에게 오는 자는 그에게만 관심을 갖고 그를 따르는 일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그를 온전히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가족 이상이며, 그는 인생과 만물의 근본이다. 그는 모든 것의 우선이다. 고로 그를 따르는 일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부모와 아내, 형제들, 자매들 등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름은 긴급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를 따라 나서는 길만이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를 따라 나서는 결단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에 필요하다. 자기 생명을 구하려면 그에게로 나와야 한다. 그는 우리의 생명 이상이며, 그는 인간에게 구원의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주님은 이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사신 것처럼, 주님을 따르는 자들도 주님의 이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생활은 자기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이다. 자기 할 일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할 일을 위해 충실한 자세로 삶을 감당한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 자기 할 일에 대한 자각 의식을 갖고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이다.

건물을 지으려 할 때에 건물을 짓는 비용을 계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건물에 대한 청사진이나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설계에 나온 대로 건물을 짓는데 소용되는 재료나 사람들의 인원 동원등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의 견적이나, 계획 등을 세워 필요한 물자나 재정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데에도 자신의 결단과 더불어 그를 위한 자신의 삶을 드리고, 그를 위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한 충분한 계획과 지략과 전략등이 필요할 것이다. 일에 대한 무슨 정책이 필요한가? 과거에 이루어 놓은 일에는 과거에 필요한 전략이 있듯이, 현재에 진행해 가는 일에는 현재에 필요한 정책의 수단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나 유동적인 일의 변화의 상태가 지금보다 다르다는 것이다.

70,80년대 한국 기독교의 선교 정책이나 대 사회적인 전략이 민주와 공산 진영의 우리 사회의 특유의 흑백 논리에서 그 가운데에 살고 있는 진정한 사람들의 기본권에 대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다면, 지금은 한국 기독교의 갈 길은 남북의 가치의 변화를 통한 통합의 논리로 교회는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며, 다가올 새로운 미래의 준비된 세계의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일제 시대 안에서의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에 대한 청사진 갖고서 끊임없이 추구한 조국의 해방된 내일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민족의 가능성에 희망과 기대감을 불어 넣어 주었듯이 작금의 기독교는 교회의 자체의 성장이나 혹은 청사진에 매달리지 말고 기독교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세울지를 질적으로 기독교의 가치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왜 기독교의 가치가 의미가 있어야 하는 가? 그리고 그들에게 제시할 만한 민족이나 우리 사회의 존재의 목적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 목적은 사라질 세상의 환상에서 깨어나, 인간의 불합리와 모순의 상태를 보게 하고, 기독교의 가르침 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가치를 대신하는 대안 가치 목표를 보여주며, 그 가치 목표를 달성할 것을 내세우며, 거기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할 만한 그들과 소통하는 가치의 전략으로 방법을 정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물자나 재정등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만 해놓고, 그것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 일은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을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은 진행이 되며, 일을 하는 이의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그 과정 중에서 일이 착착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고로 모든 일의 성취자의 고백적인 좌우명은 우선 시작하라는 것이다. 공부도, 연애도, 사랑도, 사업도, 그리고 중요한 사역을 계획하는 것도 실행 이상으로 나을 수 없는 것이며, 한발을 실천으로 내디디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천하는 자에게는 성취나 일의 결과가 주어질 것이다. 물론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방해나 반대를 무릎 쓰고 전진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논리이다. 일을 하는 데 시작만 해놓고 그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면, 참으로 낭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할 때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이다.

전쟁에서 나가 승리하려면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정보를 잘 분석하여 대처하여야 한다. 그 중에 해야 하는 일들은 서로의 전략이나,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의 수와 전쟁 수행 능력이나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물자등을 살펴보는 일이다.

주님의 제자의 표시는 그가 주님을 위해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다. 그분을 위해 수고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며, 제자로서 살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물이나, 자기 기준의 가치등을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소금처럼 유용한 인물이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소금의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맛을 내는 것과 부패 방지의 역할을 하는데 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소금처럼 제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며, 그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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