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영적성장에 대한 권면

히브리서 5: 12-6: 3

육체적인 성장에 장애를 받는 것에 성장 장해 증후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로 다운 신드롬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몸의 상태를 나타납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를 않습니다.
육체의 다운 증후군이 있는가 하면 영적인 다운 증후군도 있습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오랜 신앙 생활을 하여도 아직도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며,
신앙의 성장하는 길을 모르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저 그 자리에서 맴도는 신앙의 성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의 방해는 어린아이와 같은 초보의 상태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늘 돌봄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 기다가, 걸어 다니다가, 스스로 밥을 먹습니다.
영적인 나이는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훈련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영적 생활은 교회 생활의 시간이 아니라, 영적인 훈련을 받고,
영적인 은혜와 말씀으로 성장하는 데 있습니다.

신앙인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1.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성장하지를 않습니다.
영성의 성장나이는 교회 생활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말씀의 훈련과 신앙의 연단을 통해 성장하거나 성숙합니다.
오랜 교회 생활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받아들임과 순종에서 오는 신앙 훈련을 거쳐야 성장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육체의 성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의 성장이 골고루 영양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며.
적당한 운동을 하고, 영적인 활동을 통해 성장합니다.
영적인 성장도 그러한 영적인 음식들을 먹으며,
적당한 운동을 하며, 영적인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의 방해는 내면의 쓴 뿌리와 잘못된 편견
그리고 자기의 고집스런 생각들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의 쓴 뿌리는
부정적인 생각, 교만함, 과거의 상처들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돌짝밭을 만들며,
말씀을 받아들일때에 마음 밭에 뿌려지는 말씀의 씨앗들을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고로 신앙의 성장을 위해 그러한 과거의 잘못된 패턴들,
잘못된 편견들을 갉아 엎어야 합니다.

세상의 삶에 대한 근심과 염려하는 태도,
그리고 세상의 재물에 대한 지나친 과욕은 신앙을 성장하는 데
방해하는 가시 떨기의 역할을 합니다.
신앙 성장을 가져오려면 자기 생각을 쳐서 복종케 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보다 새로워지려는 자기 변화의 마음이 열려서 주님의 은혜로 변화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초보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법, 말씀을 읽는 법,
세례와 헌신을 결단하는 것, 전도하는 법, 주님과 교제하는 법,
말씀의 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중생의 도리등,

1.젖을 먹는 어린아인 영적인 상태는 자기 것만을 고집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으며,
매사에 모든 일을 자기 중심에서 생각하기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나서는 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자세입니다.
고로 신앙인에게 자기 생각과 반대이면
무조건 거부하려는 태도는 신앙에 좋은 태도는 아니며
영적인 자기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2.영적인 어린아이는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자라기를
거부하려는 태도로 남을 배려하는 것 보다는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자기 의견과 반대이면 무조건 거부하려는 경향이나,
영적인 도전에 대해 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려는 이들은
영적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모든 영적인 일에 사모하는 태도를 갖습니다.
고로 영적으로 자라려고 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일에 대해 늘 배고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늘 갈급해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려고 사모합니다.
영적인 갈급함이 영적인 성장을 가져옵니다.

3.또한 영적인 아이들은 신앙 생활이나 영적인 생활에서
늘 자기의 영적으로 성장하는 은혜 나눔과 영적인 양식에 대해
누가 떠 먹여야 하는 수동적인 자세로만 일관합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 하는 설교만 듣기만 하지 말고,
능동적인 태도로 말씀을 스스로 먹어야 합니다.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합니다.
주일날만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말씀을 먹는 습관을 좇아 살아 갑니다.

4.어린아이는 유치합니다. 세상에 대해 순진한 것은 좋으나,
세상이나 영적인 세계의
중요한 일들에 어리석게 대할 수 있습니다.
마치 대학생의 나이가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젖을 먹는 어린아이는 신령한 영적인 일을 모르며,
영적 세계에 대해 거의 문외한입니다.
고전 3:1에 육신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를 비교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육신에 속한 자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로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모릅니다.
영적인 세계를 모를 뿐 아니라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신령한 자가 있으며, 그 신령한 자는 성숙한 자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자이며,
믿음의 비밀을 깨우친 자들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그 육신에 속해있다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육체의 판단을 따라 삽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 육체의 생각을 좇아 삽니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고 신앙에 대해 어린아이 인 신자는
누가 주는 젖을 먹는 그 습관에 따라 엄마의 품 안에서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고
즉 자신 스스로의 영적인 갈급함의 동기와
그리고 그 동기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지 않으며,
그 속에 있는 믿음의 비밀이나 하나님 나라의 영양소를 섭취를 소홀히 하고
자신의 신앙이나 영성에 변화를 주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육신에 있는 자라고 여기고 영적인 일을 등한히 하면서,
보다 깊은 신앙의 세계나 영적 세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 현실에 나타나 보이는 현상을 좇아가며,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얻는 영적인 양식과
영혼의 갈급을 채움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여,
그 말씀이 주는 영적 세계의 원리를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여기의 장성자는 에베소서 4:13에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장성자가 되어 갑니다.
믿음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성장을 가져 옵니다.
단지 지식의 배움이 아니라 믿음의 배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경험합니다.
그 경험은 순종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신앙의 성숙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습니다.
믿음의 지각을 사용합니다. 은혜의 생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단단한 식물은 자기 생각을 넘어가는 하나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믿음을 사용해야 이해 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진리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믿음이 있어야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다양하게 역사합니다.
각 사람에게 각 모양으로 역사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다르다고 해서 남이 받은 은혜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성장은 마음에 연단을 받아 자기 생각을 쳐서 말씀의 뜻에 복종시키며,
그리고 내면과 마음의 변화를 받습니다.
자신의 고정된 마음에 편견과 좁은 생각들을 쳐서 복종케 하며,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얻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불안하고 근심스러우나 하나님의 은혜는 뛰어난 평안함을 주십니다.
고난 속에서의 평안함, 핍박 속에서의 담대함 등입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매사에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시조는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어리석은 교만함에 빠져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선악을 분변함은 모든 영적인 일에 있어,
옳고 그름을 분변하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선악을 아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그것을 아담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주관과 통치를 떠나는 교만의 지혜를 좇아갔습니다.

고로 참된 선악을 분변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 분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앞에 자신의 겸손함을 통해 얻습니다.
하늘의 각양 좋은 은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집니다.
말씀을 통해 선악을 분변함으로 그 분의 가르침과 진리를 얻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배웁니다.

제가 꿈을 꾸었는데, 거짓 게임과 진실 게임이라는 것인데,
어느 것이 옳은지를 가리우는 것은 먼저 거짓은 진리를 알면 거짓을 알 수가 있고,
진리는 거짓의 잘못을 겪어 보면 비로소 진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게임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중에 이사야가 이사야 7:15에 선악을 아는 일이
미쳐 버터와 꿀을 먹기 전에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은 선악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는 그 지혜가 하나님에게 있으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그 지혜를 얻어 영생을 얻습니다.

영적 성장의 항해에는 마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가 묶여 있다면 항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 배가 묶여 있는 것이 풀려있어야 항해할 수 있듯이
신앙의 항해를 위해 힘차게 나가기 위해
나의 신앙의 배를 잡고 있는 끈들을 풀어야 합니다.
세상에 붙어 있는 끈, 자기 편견이나 생각들, 쓴 뿌리 등입니다.

* 그리스도의 초보는 어떻습니까?
처음 신앙 생활에 들어오려면 불신 때에 가졌던
자신의 죽은 행실을 회개함을 가져야 합니다.
죽은 행실은 주님과 단절된 인류의 원죄의 영향아래에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놓여있는 범죄한 영혼에서 나온 모든 행태의 범죄함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영과
단절된 혼의 추구에 따르는 인간 중심의 사고나, 관점을 통해 하나님께 대항하며
그의 다스리심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독자의 세계에서 주님의 법을 어기며 살고 있습니다.
고로 인간은 그들의 원죄와 자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관계로 남아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돌아서는 마음의 회개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
외적인 부르심을 받을 때에 갖는 의식적인 신앙이 있으며,
내면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감성과 의지를 포함하는 결단의 신앙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응하는 순종의 신앙과
주님의 기적을 믿는 특별한 은사로서의 신앙이 있습니다.
세례들은 처음 믿을 때 받는 물 세례, 성령 세례 등입니다.
신자들은 처음에 믿을 때에 공중서약의 의미로 받는 물세례에서부터
내면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성령의 세례등,
십자가를 통한 자아 변화(옛 자아에서 새로운 자아로 변화되는 과정은
지속되는 경험) 세례 등을 받습니다.
안수 받음에 대한 것 등/ 그 안수에는 병자를 위한 치유 안수,
축복을 위한 축복 안수, 서약을 위한 서약 안수,
목사를 세우는 목사 안수나 안수 집사를 즉
평신도 항존직을 세우는 집사 안수 등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리 등입니다.
내세에 대한 교리 등을 배우는 일들이 신앙의 초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앙의 성장을 위한 온전한 길로 나가야 합니다.
온전한 길로 나가는 데는 세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겸손함으로 은혜 받는 것이나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 생활에 첫째도 겸손, 마지막도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마음의 그릇의 태도입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부여해주십니다.
주님의 팔복의 교훈 중에도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리라 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허한 사람은 모든 이에게 유익을 주며,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는 그의 광야에서의 지도자의 생활에 그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의 성품보다도 겸손하여 그의 온유함은 모든 이보다 뛰어나다 하였습니다.

2.사랑을 따라 구하고 실천합니다.
사랑을 따라 은사를 구하고, 사랑을 따라 봉사합니다.
사랑은 가장 큰 은사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주님의 교훈의 핵심도 사랑하라는 데 있습니다.
그도 인류를 위한 사랑을 따라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이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랑을 따라 하는 모든 것에 배가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천국의 생활의 모습입니다.

3.장성한 사람 되는 길을 따릅니다. 그는 신앙 성장의 법을 좇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적인 일에 배우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헌신하며 날마다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늘나라가 더 가까이 다가 옵니다.
성장하는 영적 생활은 이지상에서의 천국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