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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9
    버지니아 총기난사, 무엇을 말할 것인가?(3)
    은수
  2. 2007/03/16
    현실론(2)
    은수
  3. 2007/03/09
    얼굴들(4)
    은수
  4. 2007/02/11
    일방적인 말하기는 대화가 아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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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2/09
    좌파, 페미니스트(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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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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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1/26
    여성할당제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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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12/13
    운동사회내 성폭력, 다시 묻다
    은수
  9. 2006/12/02
    변화는 있다?
    은수
  10. 2006/12/01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인가?
    은수

버지니아 총기난사, 무엇을 말할 것인가?

 

 

 

[중앙일보] '당신들은 나를 피 흘리게하고 궁지로 몰았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4/19/2912810.html

 

[동아일보] 조승희, '선언문' 통해 '쾌락주의' '부자'에 복수 밝혀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4190236

 

[오마이뉴스] 8년전 '볼링 포 콜롬바인'을 기억한다

그래도 "총은 포기 못한다"는, 참 이상한 나라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5092

 

[중앙일보] 물의빚은 서울신문 만평 연재 중단키로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4/19/2912857.html

 

[뉴스툰] 미 총기사건과 한국의 왜곡된 쇼비니즘

주장 - 백무현 만평,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http://newstoon.net/sub_read.html?uid=8622§ion=section4

 

 

나는 모든 것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이 청년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그는 단지 광기어린 스토커 살인마였단 말인가?

그의 선언문은 자신의 테러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일뿐일까.

아니면, 아니면 뭐지? 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진보'의 강박일까.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주범이 '한국계'로 밝혀진 순간

전혀 다른 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비자발급부터 교민들에 대한 우려, FTA 협상에 대한 것까지.

 

서울신문의 백무현 만평은 또다른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백무현, 그가 그간 그려왔던 진보적 성향의 만평들 때문에 그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백무현의 만평이 정말,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사람들의 죽음, 을 두고 볼링 포 콜롬바인..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비인간적'인 건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말해야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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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론

나침반님의 [요즘 고민] 에 관련된 글.

 

나도 고민. 고민. 고민.

엊그제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열심히 떠들면서 술을 왕창 마셨다.

 

늘 나오는 "현실론" 얘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당장의 대안이 없는 현실, "그러니까...."라고 시작되는 그것.

근데 그 현실에 대한 판단에서부터, 대안으로 등장하는 현실론이라는 건

너무나 자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우리은행 직군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다.

여성주의의 '딜레마'-한계와 가능성이라고도 표현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직무급 평가는 그렇다치더도,

애초에 연대임금제와 같은 발상에 대해서는 도대체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게 어떻게 비정규직화를 막을 수 있다는 걸까?

설사 노사가 합의해서 연대임금제를 해서, 비정규직 임금이 올라간다 한들

그게 비정규직의 empowerment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볼 땐 그들의 현실론이 전혀 현실론이 아니었다는거다.

"노동운동의 힘이 없으니까.."라는게  이유라면

차라리 "노동운동의 힘을 기르자.."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답답한 부분이 있다.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고, '구체화된 계획' 은 커녕 '의지'조차 없어보일때,

희망이란 현실이 아닌 것이다.

"여성노동자를 조직화하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누가?

이런 질문들.

 

또 한가지는 상품화와 소비에 대한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거의 모든 것들이-친밀성의 영역까지도 '상품화'되고 있다.

제사대행, 베이비시터부터 시작해서, 애인대행 서비스까지.

주로 여성의 감정노동, 돌봄노동에 해당되었던 영역의 상품화를

소비와 소외로 연결시켜 악순환이라고 보는 건 당연하다.

Hochschild라는 학자는 '감정의 제국주의적 지배'라고도 했는데

선진국의 중산층에서 사라진 감정, 돌봄노동들이

'제 3세계' 여성들의 이주를 통해, 그녀들의 노동으로 전가된 현상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품화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구매력'과 연결을 시킨단말인가.

완전히 수요-공급론에 맞춰서, 구매력이 있으니까 소비한다.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또 파는거지.

남성노동자들은 사게 되고, 여성노동자들은 팔게 되고. 그러니까 결론은..구매력을 줄이자?

만약 내가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와 분리해서 볼 수 없는 문제다, 라고 한다면

"넌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할까? "그래서 니 대안이 뭔데?" 라고 할까?

할 수 있는게 뭐야.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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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어떤 식으로든 느낀 것들을 기록하려 했으나 결국 또 늦었다.

기사를 뒤적이다보니 다시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이 '얼굴들'을 두번째로 본 날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건,

이 다큐가 지금까지 4번밖에 상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 중 한번은 조합원들 내부에서 상영한 것이라

실질적으로 상영된 것은 3번에 불과하다.

 

어떤 이가 그런 질문을 했다.

만약 어떤 남성들의 노조에서 6년간 이만큼의 투쟁을 했다면

그리고 그 투쟁과정을 다큐로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민주노총에서 지원이 없었을까 싶다고.

 

얼굴들,은 감독의 문제의식이 빛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쉬운게 있다면 그 문제의식이

조합원들과 소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렵다.

'가족', 더군다나 '우리' 가족을

거리두고 바라보기는 정말 어렵다.

나만 해도 가끔 엄마 없는 삶을 생각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을 다 때려치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가족에 대해, 그것이 사랑이든 애증이든 증오든 간에

무자르듯 뚝 잘라질 수 있는 감정도 아니며

가족주의 혹은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는게

"가족에게 정 주지 말자" 는 것도 아니잖아?

다만 내 '어머니의 삶' '내 아버지의 삶' '내 동생의 삶'을

조금은 다른 위치에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테다.

 

실은 나도, 우리도 잘 못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다가갈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온정주의는 단호하게 끊으세요"  막 이런거지.

 

하여튼 가족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무지하게 복잡해진다.

'정의'조차 어려운 가족.

도대체 무엇이 어디까지가 '가족'인거고

사람들은 왜 '가족'을 꾸리려하는건지

나를 대입해 생각해볼수록 어려워진다.

 



기사원문 : http://sanosin.jinbo.net/Publish/labor.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803

그녀들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영상다큐《얼굴들》

  
   

  지난 2월 10일, 노동해방학생연대에서는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그녀들의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 《얼굴들》상영회와 시그네틱스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얼굴들》은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이 영풍자본에 대해 투쟁했던 기록만이 아닌, 가족 내에서의 그녀들의 위치와 여성노동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또 무엇과 싸워야 했는지를 얘기했던 다큐멘터리였다. 이른바 ‘이중의 굴레’.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자본과의 투쟁에 나서면서도 한편으로는 싸우기 위해 집을 비우는 것에 대한 남편의 ‘허락’을 구해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주지 못한 자괴감을 가슴 한 켠에 놓아두어야 했다.
IMF 이후,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치던 2001년은 시그네틱스 투쟁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이었던 한국통신계약직 투쟁이 한창이었고, 부평에서는 1750명의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 울산에서는 효성, 태광산업, 고합 화섬 3사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있었다.

그 수많았던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다시 꺼내든 것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받아안지 못했던 평가지점들이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놓쳐버린 그녀들의 투쟁은 당시 우리가 보아야 했던,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보지못하고 있는 것을 얘기해준다.

시그네틱스 투쟁에서 보여졌던 여성노동자들의 굴레들, 다큐멘터리 《얼굴들》을 소개한다.

 

2001년 염창동에서 2007년 파주까지

시그네틱스 노조의 투쟁은 200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부터 이어진 경영난에 어용노조는 임금동결과 성과급 반납까지 약속했지만 98년, 결국 한국시그네틱스(주)는 영풍자본으로 인수되었고 염창동 공장에서 파주공장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민주노조가 건설되었던 2000년 말, 영풍자본은 갑자기 약속을 바꾸어 안산공장으로의 일방적인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파주공장에 민주노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2001년 7월, 시그네틱스 노조는 안산공장은 언제 문닫을지 모르는 창고라는 사실을 알고 원래 공정이 이전된 파주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노동자’와 ‘아내,어머니’의 사이

다큐《얼굴들》은 해고판결을 내린 중앙노동위에 항의하는 와중에도 수화기를 통해 아이들을 달래는 윤민례 지회장의 모습부터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아들과 통화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 이상할 것은 없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투쟁하는 ‘노동자’와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야하는 ‘아내, 어머니’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고 갈등했던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의 시작점이었다. 《얼굴들》의 질문들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투쟁에 나서기 전에도, 후에도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항상 여성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은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뉘우기는 커녕, 가족의 식사와 뒷바라지를 해야했다. 그런데 투쟁이 시작된 후, 집회, 상경투쟁, 철야농성등의 일정들은 가족 내에서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위치와 역할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러한 균열들은 여성노동자들이 투쟁과정에서 겪는 가족과의 갈등들로 나타났다.
그러한 갈등들을 해결하는 것은 순전히 여성노동자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대부분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그 자신 또한 남성노동자인 남편의 ‘허락’이었다. 대부분 기혼이고 자식들이 있었던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은 투쟁 초기부터 남편에게 이러한 ‘허락’을 구했다.

시아버지의 68세의 생신에 참석하는 대신 집회에 오기 위해 남편의 ‘허락’을 구했던 조합원부터, 철야농성을 하고 밤늦게 온 조합원에게 바람을 폈다는 등의 얘기를 하는 시부모와의 갈등, 노조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자 남자 말을 무시한다며 화를 내는 남편과의 갈등들을 봉합하느라 애썼던 조합원들까지. 그녀들이 자본과 투쟁하는 과정은 가족 내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남자들은 서울에 2박3일 농성한다고 하면은 같이 직장생활해도 보통 마누라가 챙겨주는 양말이랑 짐싸가지고 올라와서 일보고 내려가고.. 애들이 어떻게 학원을 가고 밥을 먹는지 솔직히 대부분은 신경안쓰는데 여성들 같은 경우는 그것까지 다 대책을 세우고 신경쓰지않으면 (농성이나 상경투쟁하는) 그 2박3일 집을 나온다는 것 자체가 힘든 여건이니깐”

시그네틱스지회 교육선전국장


그녀들을 옭죄었던 건 남편과의 갈등만이 아니었다. 조합원 개인마다 깊고 얕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철야농성, 구속수배, 집회참석 때문에 아이들을 챙기지 못해 느꼈던 ‘어머니’로서의 죄책감은 그녀들을 더욱 가정에 얽매이게 했다. “우리도 그렇게 커왔으니깐..”이라며 그녀들을 옭아매고 있는 ‘어머니 역할’에 대한 무언의 강요는 그녀들로 하여금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느끼는 죄책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자본과의 투쟁 속에서 그녀들은 ‘어머니, 아내 노릇’과 ‘노동자 역할’ 사이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했다. 한 조합원과의 인터뷰 중 어디선가 들려온 “물 좀..”이라는 남편의 목소리에, 여성노동자로서 겪는 투쟁의 어려움을 얘기하던 ‘여성노동자’는 어느새 ‘아내’로 돌아가 남편에게 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모습에서 수년에 걸쳐 투쟁현장과 가족 사이를 오갔던 그녀를 발견한 것은 그저 착시에 불과했을까.
남편과 자식들의 밥을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남편으로부터의 허락, 가족 내에서 위치하고 있는 ‘아내, 어머니 역할’을 방기함으로써 가지는 죄책감, 그리고 투쟁의 정당성 사이에서 그녀들은 끊임없이 동요하고 갈등해야했다.


가족대책위, 서로 다른 의미

노동자들이 투쟁하게 되면 보통 가족과의 연대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그 ‘연대’는 남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자들에게 서로 다르게 규정된다. 가족대책위의 조직과 활동은 그것을 잘 드러내었다.
노동운동에서 가대위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남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가대위는 주로 남성노동자의 ‘가족과의 연대’를 위해,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기 위해, 때로는 실질적인 투쟁동력으로 활동하였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는 공동대책위등의 기구와 같았지만, 그 구성원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가족이라는 측면은 가대위 운동을 특징지었다. 가대위가 조직되었던 것은 남성노동자들의 사업장이 대부분이었고, 그 주목을 받은 것은 특히 98년 현대자동차 투쟁이나, 01년 대우차 투쟁, 02년 발전노조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였다. 여성노동자의 경우는 남성노동자와는 달리 조직이 거의 불가했고, 그나마 손에 꼽을 정도였다. 비정규직 투쟁에서도 하이닉스매그나칩, 현대하이스코, 포항건설노조 투쟁등 남성노동자들의 가대위가 많았다.

남성노동자들의 가대위는 투쟁의 정당성을 가족에게 얘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었기도 했지만, 돈을 벌어오는 가장에 대한 가족의 지지와 지원의 의미가 더 컸다. 하지만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에겐 조직된 가대위는 ‘아내, 어머니 노릇’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남편이 ‘허락했다 혹은 양해했다’는 의미였다.


“남성사업장들이 싸울 때는 가족대책위 역할이 더 감성적인 호소, 내 남편이 싸우고, 내 애들의 아빠가 싸우고 그런 감성적인 호소를 하고.. 근데 시그네틱스 경우는 부인들이 자기 아내인 조합원들이 하는 일을 허락한다는 느낌? 좀 그런 게 없잖아 있었던 것 같애요. 허락하고 같이 도와줄 건 도와줘야지. 이런 느낌?”

시그네틱스지회 교육선전국장

 


시그네틱스 부지회장은 인터뷰에서 “투쟁에 결합을 할려면 전보다 더 잘해야 하는거야. 우리 결혼한 조합원들은. 집에서 모범이 되야 하는거야. 반찬도 더 맛있게 하고.. 그렇게 조합원들에게 교육했고, 조합원들도 그렇게 했고... 그래야 투쟁에 결합할 수 있으니깐.”이라고 얘기했다. 가족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아내, 어머니 노릇’을 더 열심히 해야했다.
이렇듯, 남한 노동운동에서 가대위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였다.


‘가족주의’에 기댄 호소

“대책없는 정리해고 우리가정 파탄난다” <98년 현대자동차 가대위>

“처자식 걱정 뚝! 돌아오지 마세요! 승리의 그날까지”, “가정을 지키는 발전노동자의 투쟁에 승리의 순간까지 힘내세요” <02년 발전노조 가대위>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06년 현대하이스코 가대위>

2001년, 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이 전 방위에 걸쳐서 들어오던 당시, 시그네틱스 투쟁도 그 한가운데 서있었다. 시그네틱스 가대위 활동양상도 다른 투쟁에서의 가대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자 파주로! 꼭 가야한다!”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즐겨하는 구호였다. 그녀들이 가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임금동결, 성과금 삭감까지 감내하며 살려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노동자는 분명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가족’에 기댄 호소가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얼굴들》에서 보여진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발언은 이를 잘 말해준다.


 

 

“저희 기혼율이 80%입니다. 여기 있는 노동자들 다 아줌마입니다. 집에 아이들 있습니다. 아이들 챙기지 못하고, 가정 챙기지 못하고. 약정서, 약속지키라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한강대교 고공농성 중, 한 조합원의 발언


노동자 투쟁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본과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응하여 노동자들은 가대위를 통해 동정적 여론에 호소했다. 남편을 살려내라는 아내의 절규, 아빠를 일하게 해달라는 어린 자식의 외침, 혹은 어머니가 없어 아이들이 불안해한다는 남편의 말, 집에 있어야할 가정주부들까지 투쟁에 나섰다는 발언은 가대위 뿐만 아니라, 남한의 노동운동에서 자주 쓰였던 구호였다. 이는 남성노동자를 가족의 생계 주체로 놓은 “정리해고=가족생계파탄” 등식의 구호를 외침으로써 ‘남성 위주의 가족’을 신성시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동정에 기댄 것이었다.

‘남성노동자=가족의 생계주체’라는 등식은 ‘남성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으로 남편, 아내, 자식으로 구성된 정상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가족임금제가 통용되던 현대자동차, 발전노조등 대공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일면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 가족은 남성노동자의 임금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해왔고, 2006년에는 50.1%의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했다.(2006. 7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 통계청) 이러한 현실은 결코 남성노동자만이 가장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준다.

물론, 노동자들의 가족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의 이면은 남성노동자가 생계주체로서 여성의 무급가사노동에 기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에 기반한 구호들은 ‘남성=가장, 여성=주부’라는 가족 내의 성역할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족 내의 성역할’은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에 기대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는 남성과 그렇게 함으로써 재생산비용을 노동자 계급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기대한 구호들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어렵게 했다.


투쟁에 족쇄가 되어 돌아온 가족주의

보통 남성 노동자는 투쟁 중에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서 생기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는 한편, 여성노동자는 투쟁 중에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각각 가대위를 조직하는 것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고, 투쟁과정에서 외쳐졌던 가족주의, 동정주의에 호소했던 구호들도 이와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똑같은 부담일 수 없고, 또한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도 않는다. 남성노동자들의 부담은 사회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이기 때문에 희석되었고, ‘노동자의 정의를 외치는 주체로서’ 보상받는다.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아내, 어머니 노릇’은 그녀들의 투쟁에서 있어서 확실한 제약이 되었다.
이 땅의 여성노동자에게 ‘아내, 어머니 역할’은 분명 자본의 착취와 가족에 대한 희생을 동시에 강요당하는 ‘이중의 굴레’였다. 그리고 여태까지 외쳐온 ‘가족’ 또는 ‘어머니’에 관한 구호는 여성의 ‘이중의 굴레’를 숭고하게(?) 포장함으로써 남성노동자들에게는 가정에서의 남성의 지배를,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이중의 굴레’를 더욱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였다.


그리고 조금씩 자각하는 여성노동자들

오랜 투쟁으로 돈을 벌지 못해 아이들의 급식비 8만원을 주지 못했던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가서 돈 벌어서 한달에 두명에 (애들 급식비) 8만원 주면 되는데, 그걸 (학교에다가 사정설명하고) 공짜로 달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잖아. 하지만 8만원 벌려면 이걸(투쟁하는 걸) 그만둬야 하거든. 그게 싫은거야. 나가서 (투쟁)하는게 낫지. ..(중략).. 왠지 고만두면 내가 나한테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 있잖아. 그게 너무 싫거든. 그래서 그걸 지킬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는데 ○○아빠가 옆에서 계속.. 불을 지르고 있거든. 그래서 ○○아빠 마음도 안정을 시키면서 나의 자존심도 지켜가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게 요즘에 나의 고민이야.”

《얼굴들》중, 한 조합원의 인터뷰


그녀는 자신이 외치고, 돌아가려 했던 가족에서의 “어머니, 아내 노릇”이 오히려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남성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가족’이 여성노동자 자신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챙겨주지 못한 데서 오는 아이들에게 가지는 미안함, 저녁밥을 지어주지 않아 느끼는 남편의 불만등 노동자로서 정당한 자기권리를 찾고자하는 여성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여성노동자들은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녀들은 투쟁하면서 생기는 가족 내의 갈등들을 봉합하고 다시 ‘가족’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가족’을 자신이 진정으로 돌아갈만한 공간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가족주의에 기댄 구호들이 스스로를 얽매이게 하는 게 아니냐는 감독의 질문에 대한 윤민례 지회장의 대답은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공간이 바뀌어야 하는 곳임을 얘기한다.


 

“그러니깐 바뀌어야 되는 거고. 난 집에서부터 투쟁한다(고) 그러거든? 노력 중이고 투쟁 중이라고 생각해. 꼭 시그투쟁 뿐만 아니라, 시그투쟁 끝나고도”

윤민례 지회장

 



《얼굴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 <얼굴들> 상영회에는 투쟁 중인 새마을호 승무원등 많은 동지들이 참여했다
△ 간담회 중인 시그네틱스 윤민혜 지회장

 



2001년의 “얼굴들”과 2007년의 “얼굴들”을 서로를 마주한다. 그 대면은 비단 여성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마주함, 남편과 아내의 마주함, “얼굴들”은 여성노동자들의 가족 문제가 더 이상 여성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상영회가 끝난 뒤, 간담회에서 그녀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이런 내용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가대위의 남편들은 영화를 잘못 찍은 것이 아니냐고 했고, 여성노동자들은 투쟁 내용이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영화를 보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그녀들은 ‘전진’하고 있었다.
 
글 : 이강우 needle@jinbo.net
등록일 : 200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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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말하기는 대화가 아니다

 

'일방적인 말하기는 대화가 아니다'라는 일다 기사를 읽다보니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이 기사는 가족 혹은 어른에 대한 것이었지만.

난 내 말하기 방식이 점점 더 마음에 안든다.

내가 요즘 관계와 공존과 소통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래서 비폭력대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말하기 방식이 얼마나 문제인가를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 내 글도 그런가?

기린언어란 나에게 꿈만 같다.

난 그야말로 육식세계의 강자같이 '군림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고치려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

듣는 방법도 익숙지 않다.

어느 순간 보면 꼭 이야기에서 '이기려고' 하는 인간처럼 덤벼든다.

오랫동안 가져온 습관을 어떻게 한번에 고치겠냐고

핑계를 대는 순간 정말 내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흑.

 

 



 

 

.....

이미 대화를 시도한다기보다 ‘말하는 사람만 대화라고 생각하는 일방적인 듣기’를 강요하는 것이며, 때문에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

일방적인 말하기 방식은 소통의 가능성을 막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정한 인간관계가 대화의 당연한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든 간에 상대방과 나의 입장을 확인하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서로 간 소통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일방적인 말하기’는 대화가 아니다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7020800003&art_menu=12&art_sub=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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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페미니스트

慢愚님의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에 관련된 글.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메인에 있는 글들을 읽어보던중,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어디서 많이 본 논리들이 등장하기 시작, 대충 감을 잡았다. 계속해서 댓글을 보다보니 좌파와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상호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갑자기 글을 끄적대고 싶어졌다. 어찌 보면 현재의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페미니스트란 '양극단'의 어떤 것이라는 분열적 상황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렇다. 김규항, 손석춘의 글로 일어난 이른바 '중산층 페미니즘' '부르주아 여성운동' 논란, 그리고 참세상 조주은의 ING 칼럼에서 "나는 좌파 페미니스트이다"라고 했을 때 달렸던 폭력적인 댓글들-(페미니스트가 언제 좌파였냐?)

 

아주 단순한 논리다.

페미니스트=부르주아, 중산층, 자유주의/급진주의 페미니즘, 좌파와 관계없음, 오히려 적대적

좌파=운동권, 마초 남성들, 맑스주의, 혁명되면 다 된다-일상적 실천을 아주 깔봄. 페미니스트와 관계없음, 오히려 적대적

 

나는 영원히 적대적일 것만 같은 이 두 정체성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마치 내 신체가 절반으로 갈라져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절반은 좌파? 절반은 페미니스트? 물론 나는 이 두가지 정체성이 겹칠 수 없다거나-이미 진보넷 블로그에서만 봐도 수많은 정체성이 겹쳐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좌파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보이는 '현상'에 대한 내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나는 '운동권'과 '페미니스트' 진영을 조금씩은 경험했기 때문에 양쪽의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마다 갑갑함을 느낀다. 

 

딱 까놓고 서로는 서로를 싫어한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운동권들이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하는 거하고, 페미니스트들이 운동권들을 싫어하는거 하고 동급으로 놓을 순 없어." 그래, 그건 사실이다. 여성운동의 역사를 보더라도, 여성운동가들이 독자적인 조직과 여성주의라는 사상을 필요로 했던 건, 좌파 운동 조직 내의 극심한 성차별주의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래놓고도 나가는 이들의 뒷통수에 '분리주의자' '계급의식이 없는' 이런 수식어들이 붙었던 역사가 있다. 지.금.도.

 

 

결국 이 모든 건 개념정의의 문제일텐데 좌파가 사회변화라는 '큰'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다면  당연히 페미니스트도 좌파고, 좌파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현실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두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을까?

 

난 솔직히 먼저 변화해야 하는 건 '운동권' /'좌파'라고 본다. (이렇게 말하면 역시 별수 없는 꼴통페미라고 할건가?) 케케묵은 이론을 들고 2007년 한국 여성운동(도대체 실체가 뭔가?민족주의자를 같은 좌파로 묶으면 너네는 분명 화를 낼 것이다.) 을 bg니 어쩌고 하면서 비난하는 짓 따위는 그만두어야 한다. 엥겔스의 <기원>하나 딸랑 읽고 여성억압에 대한 해답지를 찾은 것만 같은 자만감은 버려야 한다. 성폭력 사건 앞에서 자본주의 근본모순 어쩌고 하는 짓 따위는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marishin님의 말처럼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엔 운동권 남성들이 여성주의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내세우듯이 사상적/철학적 기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투쟁의 역사를 부끄럽게 만들고, 그들 자신이 변화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많은 학생출신들이 노동계급의 삶으로 채 들어가기도 전에 튕겨져나온 경험들이,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삶으로 받아들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처럼. 여성주의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자신의 삶 구석구석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못 견디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착취를 이야기하면서도 부인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자신을 직면하기가, 직면하면 더이상 '좌파' 혹은 '진보적이지 않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마치 어떤 이들이 "이제 혁명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이들은  "여성주의는 우리와 사상적 기반이 달라,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의식이 없어." 라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여성주의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한다.

 

 

이렇게 냉소적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지만, 아직은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한다고 믿고 싶고, 서로의 변화 '가능성'과 소통 '가능성'을 기대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디쯤엔가에 내가 위치하고 있다고 다시 한 번 내 스스로를 확인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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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보고 있어

당신의 고양이님의 [어떤 변명] 에 관련된 글.

navi님의 [그렇고 그런 얘기] 에 관련된 글.

트랙팩님의 [나에게 (진보)블로그란 ?] 에 관련된 글.

   

  실은 며칠전에 별 생각 없이 클릭, 클릭- 두번의 클릭을 통해 뜻하지 않게 아는 이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그래, 역시 이 바닥(?)은 좁았어. 나는 그 사람과 같은 field에 있다는 그 자체도, 그리고 그렇다면 그 사람이 이미 내 블로그를 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지하게 싫었다. 네이버처럼 '서로 이웃' 제도라도 있어야 하는가, 아님 다시 미니홈피로 도망가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나에게 블로그는 어떤 공간일까.  요사이 안만나던 사람들을 평소보다 자주 만나면서, 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상당한 압박을 느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했던건 내 운동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쩌면 조직적으로 풀수 없는 넋두리들을 하려고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용도로는 쓰지 않지만 그래도  누가(특히 나를 오프에서 아는 이들이) 볼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생각도 다양, 나이대도 다양, 성별도 다양한) 그 이들이 글을 쓰는 내내 유령처럼 내 모니터 옆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__- 그러면 navi님의 말처럼 자체검열을 시작해야만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받아들일까 저렇게 받아들일까 막 고민하다보면 결국 글은 다 찢겨져서, 내 글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은 과감히 접어두기로 했다. 다만 아는 이들은 '그냥' 보지 말고 덧글이라도 달아주던가 오프에서 만났을 때 생각이라도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같은 블로거들의 경우엔 대부분 내게 덧글을 달아준 이들의 블로그를 습관처럼 가보고 이름을 기억해두려 조금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해서 왕래가 잦아진 이들도 있다. 블로거들끼리 오프모임을 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하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글은 글대로 읽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내가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거름장치들이 있어서, 그들이 특정 성별, 특정 조직, 특정 운동을 하는 사람 일수도 있다면 내가 그들의 글을 '순수하게' 읽을 수 없을까봐 겁도 난다. (소심한 나는 다른 이들의 거름장치가 두려워, 내 신상정보-이를테면 내 소속,  '현재의' 성정체성 등등-가 드러나는 일들을 거의 쓰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글'과 실제 '캐릭터'가 매치가 안될까봐 겁도 난다. 확실히 온라인에서만 가질 수 있는 소통의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암튼 얼마전에 어떤 블로거의 성별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실은 내가 가정하고 있던 것과 달라서 상당히 놀랐다. 또 내 거름장치때문인건지 퍽퍽퍽 자학을 해보았지만, 그건 반대로 내가 글은 글로 받아들일 뿐 글쓰는 이들의 성별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일수도 있을거란 누군가의 말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글쓰기능력을 부러워하는 당고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든 생각은 왜 연애이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하는 점인데. 만약 여기가 네이버를 비롯한 다른 블로그거나 미니홈피라면 안그랬을텐데, 여기가 '진보'넷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문제 아닌가? 당고님은 아니라고 했지만 "연애이야기는 '시시껄렁'하다-정치 혹은 진보와 무관하다- 그래서,여기 있는 사람들(?) 혹은 누군가 내글을 보고 있을 사람들은 이해못할꺼야" 라고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들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던건 아닐런지. 이건 잠깐 다른 얘기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항상 '조직적 소통'을 강조하지만, 그 '조직적'인 대상에는 항상 연애는 빠지는 것 같다. 실은 연애 얘기해서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연애기간에는 모든 일들을 두배로 완벽하게 해야만 할테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것도 연애때문' '저것도 연애때문'이라는 무수한 태클들이 날아올 껄. 암튼 굳이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연애든 무엇이든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역들을 피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부분들을 그저 소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 만약 연애가 사적인 문제일뿐이라면  블로그는 사적인 공간인가, 공적인 공간인가? 말도 안되는 질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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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당제를 넘어

재원님의 [여성할당제를 넘어 토론회 후기]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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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회내 성폭력, 다시 묻다

푸른들판님의 [운동사회 성폭력, 아니 여성을 이야기하다] 에 관련된 글.

운동

조직관

연애

의사소통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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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있다?

* 민중언론 참세상[반여성성에 대해 민주노총에 고함] 에 관련된 글

 

 

답답한 마음으로 글을 내려 읽어갔다.

기자가 '변화는 있다'는 소제목을 달아놓았다.

글을 읽다 변화가 과연 있는 것일까? 변화는 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문제제기 하는 이들의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많은 여성들 중 한사람으로서) 끝도 없는 회의주의에 빠져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답답한 건 답답한 거다.

 

 

얼마전에 <민족민주운동과 가부장제>라는 논문을 요약해놓은 '진보적 운동권의 뿌리깊은 성차별'이라는 글을 본 일이 있다. 1995년에 쓰여진 것이니까 거의 10년도 더 된 글이다.

그런데 거기에 쓰여진 내용들은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변화가 있다해도 너무나 더디어 감지하기 힘든 것인지도.

 

 



[진보적이면서 동시에 보수적일 것임을 요구받는 자기분열적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여성'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권 여성들의 많은 수는 자신을 "여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운동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들이 택하는 전략 중의 하나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 그리고 대신 자신을 남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여성들 스스로 남자들의 언어와 화법, 남자들의 관심사, 그리고 사물에 대한 남성적 관점 습득을 통해 남성과의 동일시를 시도해왔다. 여성 정체성의 거부와 남성과의 동일시, 그리고 '(과잉) 남성화전략'은 운동조직 내에서 존재하는 성희롱과 성폭행의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그리고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려는 사회 일반의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부인이 생계의 주 담당자이다.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하는 남성들에게 있어서 가정을 돌보는 일은 일종의 소시민적 사치일 수 있으며,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돌보는 문제에 있어서도 이들은 무관심한 성향을 지닌다. 자연히 남성들은 가족생계부양이라는 전통적 성역할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면제받는다. 반면 그 역할과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된다. 운동권의 남성들이 가족부양책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성의 권력이나 권리가 침식당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부인에게 의존하면서도 남성들은 당당하다. 오히려 가족생계책임과 양육노동, 가사노동의 분담으로 운동을 지속하지 못하는 부인을 "가족 이기주의에 빠진" 돈에만 관심이 있는 "속물"이라고 비난한다. 가사, 양육노동의 부담과 함께 생계책임의 부담은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과 더불어 운동의 장을 떠나도록 강요하는 중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을 옮겨적다보니 다큐<얼굴들>에 나온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녀들은 많은 남성활동가들과는 달리 남편들에게 투쟁을 '허락' 받는 입장이었고, 그래서 투쟁하는 동안 더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완벽'하고자 했다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이라는 '뚜렷한 억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성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로 간주되었고, 단결을 해치는 어떠한 문제제기도 허용되기 어려웠다. "단결에 대한 강조, 분열을 가져오는 분파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가 암시하는 바는 운동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여야 하며 여기서 개인의 권리나 자율성 등의 문제는 일단 덮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변혁사 운동을 볼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여성문제의 제기는 흔히 운동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분파주의자, 분열주의자로 매도되어왔으며 심각하게 논의되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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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인가?

NeoScrum님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中 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혁명적 고양기도 아니고, 20세기초 러시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던져졌던 레닌은 우리의 착각만 크게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됩니다. 80년대 간절히 혁명을 원하던 우리는 그 시기를 레닌의 눈을 통해 20세기 초 러시아의 혁명적 시기라고 착각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민중운동의 성과를 수확하는 시기가 아니라, 아직 젊디 젊은 우리의 운동이 이제 막 던져진 씨앗을 파릇파릇 새싹으로 가꾸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중운동의 결과물을 수확하는 레닌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잡초를 솎아내고 오랜 기간 그 속에서 함께 할 활동가들입니다. 우리는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이 등장하기 이전의 러시아 민중운동을 살펴봐야 합니다. 민중들이 계급정당의 탄생을 요구하게 된 과정을 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레닌의 막판 뒤집기가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민중운동일 것이며, 차베스 이전의 베네수엘라 민중운동 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가졌던 '혁명적' 착각에서 벗어나 왜곡된 운동 진영의 구조를 개편하고, 새롭게 인식한 상황에 따른 전망과 이에 걸맞는 활동가 재생산 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만약 레닌에게 배워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항상 주장했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선전을 바탕으로 조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상황을 한번 돌아보지요. 좌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사회과학 서점과 출판사가 문을 닫고, 민중문화 단체가 하나둘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건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입니다. 과연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요? 현재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다면, 그 '소위' 좌파는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재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문화를 포기했습니다. 이는 '싸움'은 있더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투쟁들은 과거의 축적된 운동을 소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은 현재의 운동뿐만 아니라, 미래의 투쟁까지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노정연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더 착잡합니다.

아직도 '커리큘럼'이라는 게 있는 곳들을 뒤져보면, 80년대 만들어진 학습 과정이 버젓이 버티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만들어진 19세기의 이론으로 21세기를 바꾸겠다고 주장하는 건 한마디로 코메디입니다. 이건 '운동'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꿈 속에나 있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 그건 활동가가 아니라 몽상가이겠지요.

최소한 30년을 준비하는 좌파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자. 이게 기본입니다. 현재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각 조직에서는 헤게모니 싸움에 역량을 소비하기 보다는 2-3년 앞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의견으로 '조직내 조직활동'을 전개해 나갑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혁명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혁명은 '우리' 활동가의 혁명이 아니고, 민중과 노동계급의 혁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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