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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이야기들

어제 밤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출근버스를 타고 졸다가 깨어보니 병원 앞이다. 보통검진을 하는 날은 다른 날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일찍 자고 아침도 든든하게 먹고 나온다. 오늘처럼 잠을 한 시간 정도 부족하게 잔 날은 온 몸이 물에 젖은 솜과 같고, 말하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목소리를 깔고 조용 조용 꼭 필요한 얘기만 간신히 하면서 검진을 진행.

 

범상하지 않은 분위기의 60세 남자가 들어왔다. 슬립지를 보니 청력이 나쁘고 전에 발파작업을 했다고 쓰여 있다. 십 오년전부터 고혈압, 당뇨병에 대해서 치료중이라는데 오늘 검사한 혈압아 160/100 mmHg, 단백뇨가 4+. 문진표를 보니 주 4회 소주 반병 정도 술을 드시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기입했다. 약만 먹는다고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는 것이 아니니 체중조절, 음주 절제, 운동 실천 등을 같이 해야 한다고 설명해 보지만 듣는 이의 표정이 멍하다. 주치의가 뭐라 하시냐 물어보니 아무 말 없이 약만 준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검자는 왼쪽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협심증 의심되어 순환기 내과 진료를 좀 보시는 게 좋겠다 하니 전에도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200만원 정도 든다하고 해서 포기했다 하신다. 폐지 수집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보호대상자로 혼자 산다고 한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마음이 따뜻한 간호사를 오라 해서 사회사업팀에 연결을 부탁했다. 되든 안 되든 할 수 있는 일은 해보자는 마음. (삼십분쯤 지나서 사회사업팀장이 일단 면담을 해 보겠다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런 일을 묵묵히 챙겨주는 그녀가 고맙다).

 

인근 사업장에서 8명이 특검재검을 위해 들어 왔다. 2003년부터 자주 다녔던 사업장이고, 회사규모가 커져서 간호사를 고용한 뒤로는 검진만 하는 곳. 작년에 두 번 방문해서 건강진단 사후관리를 위한 상담을 실시했는데, 새 보건관리자가 잘 해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들어온 사람 중 한명은 오 년째 고혈압, 고지혈증을 진단받았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고혈압 가족력이 있고 야간작업을 7년째 하고 있다. 치료를 안 하는 이유를 탐색해서 약물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는 상황. 본인도 답답한 모양이고 질문이 많다. 수검자 대기시간 압박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전 검진이 얼추 끝나간다. 오늘따라 할 얘기가 많은 수검자도 많고 나도 그냥 보내기도 찜찜한 사람도 몇 명 있어 좀 피곤해서 얼른 끝나고 좀 누워 있어야 겠다 생각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몇 달 전 무릎 관절 손상으로 산재신청을 했던 사람이다. 2년 전 한차례 정리해고를 세게 당한 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고용불안 때문에 아무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 사업장이었다. 피재자, 피재자 부인, 신임 노안부장, 그리고 그 옆 회사의 경험 많은 노안부장까지 네 명이 왔었다. 피재자는 무릎에 부담이 되는 다양한 작업을 번갈아 가면서 했지만 이른바 11대 근골격계 부담작업 에 속하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 피재자는 처음에 사측에서 공상처리를 해줄 것처럼 이야기했다가 개인질환이라고 산재신청서에 날인을 거부한 점에 대해서 무척 억울해했다. 오늘 산재승인 통보를 받았단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재활치료 잘 받으시라 하고 끊었다.

 

음... 피곤하다. 모두 반복되는 이야기들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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