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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아침에 통근버스 타려고 갔는데, 버스가 떠난 다음이었다.  월요일은 10분 일찍 출발하는데 방학중에는 아니라는 공문을 받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6시 40분 버스는 30분에, 7시 40분 버스는 그대로 40분에 가는 모양이다.  터미날에 가서 버스를 탈까 하다가 급한 일도 없고 해서 그냥 기다렸다.  덕분에 이른 아침 강남역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6시 40분 현재 문 열린 가게가 스타벅스 밖에 없어 브런치를 시켜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종종 걸음을 걷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가게들도 많았다.  아침에 5시반에는 일어나야 그 시간에 그 거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리라.  젊은 이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차다.  같이 학원 수업을 듣는 듯한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반면 인생은 고해여 라는 말을 이마에 써 붙인 듯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주로 양복입은 사람들. 

 

   돌이켜보니 아침 시간에 그렇게 느긋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통근버스를 타고 오는 한 시간 이십분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커피 한 잔에 말똥말똥.  병원 도착할 때쯤 가출한 전공의 소식을 들었다.  복귀를 할 예정이고, 수련과정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교수님들 세 명 다 모여 달라신다.  ㅎ.   내 입장은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그래놓고도 다시 돌아와 일하고 배워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납득시켜야 받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전공의에 대해서 교수 노릇은 안 한다는 것이다( 나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 쩝).  나, 할 일 많다.  배우고자 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가르칠만한 시간은 없다. 

 

    어떤 전공의가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거쳐간 사람중 가장 열심히 했던 사람이다. "천원짜리 지폐를 다린다고 오천원짜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천원짜리가 다린다고 만원짜리 지폐가 되는 게 아니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오천원짜리이니 만원짜리 되란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저 검진 잘 하는 법 배워서 처자식하고 오손도손 사는 게 제 바램입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만원짜리 지폐처럼 살다가 강호에 나갔다.  그 때 나는 얼마짜리든 반듯하게 펴지면 기분좋은 거 아닌가, 다림질 열에 세균도 죽으니 좋잖아?... 이런 생각을 했다.   

 

    도착해서 다시 검진설명회 예정 사업장으로 이동.  한 시간 정도 보건교육을 하고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이 사업장은 좀 웃긴다.  내가 교육하면 사측의 담당자가 미주알 고주알 표현 그대로 적는다. 오늘도 열심히 적더라.  그리고 나서 나중에 항의한다.  ' 이런 말 하셨죠? 이 말이 산업의학전문가로서 꼭 해야 할 말입니까? ' 뭐 그리 흥분하나 해서 적은 것을 보면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에 나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변화가 필요하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  산업의학 전문의는 상식적인 이야기는 하면 안되고, 남들이 모르는 특이한 이야기만 하란 법있나?  흥 .

 

   적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노조의 노안부장인데 지금껏 몇 년동안 검진을 다녀도 말 한 마디 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은 이른바 검증된 색깔이 분명한 산업보건 전문가들만 상대한다.  몇년전엔 내가 검진하고 판정한 것을 다른 전문가에게 재판정을 시킨 적도 있다.  재판정이야 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자기네들 보관하라고 준 자료 분실하고 우리 과에 5년치 자료를 다 다시 내놓으라 해서 우리과 직원들을 생고생시켰다.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노동자들이 있으니, 일 년에 한 번 만나면 반갑다, 고맙다 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 맛에 일한다.  

 

  돌아오는 길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작년에 했던 과제 A/S를 해달란다.  서서 일하는 작업에 대하여 코샤 코드 형식(일종의 지침같은 것)으로 관리방안을 만들었는데, 그건 안 만들기로 했고, 사업장 배포용 기술 자료만 만드는데, 검토를 좀 해달란다.  코샤 코드가 형식적 구속력은 없으나 사업장 배포용 기술 자료보다는 더 힘을 갖는다.  연구 과제 시작단계에서는 코샤코드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끝날 때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사업장 배포용 지침서 형태로 바꾸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어쨌거나 나는 연구시작단계에서 합의에 준해서 한다.  다른 형태로는 못 바꾼다 하고 끝을 맺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또 A/S 해달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빼고- 예를 들면 서서 일하는 작업의 대안은 서서만 일하지 않게 하는 것 등 을 빼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만 기술자료를 채우는 것은 예방해야겠다 싶어 간다 했다.  또 휴대폰 고장나서 꺼진 상태에서 사방팔방 수배해서 임시폰으로 연락했다는 점을 높히 샀다.  물론 꼭 와야 한다고 해서 가보면 시간낭비를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더 많지만, 혹시 또 모르잖아.   

 

  음... 졸리다.  졸리니까 짜증이 나나?   오늘 마감인 학회 초록을 쓸까? 마감이 지나고도 한참된 원고를 쓸까? 망설이는 동안  점심시간이 다 되었네, 일단 밥먹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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