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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유를 망각한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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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유를 망각한 ‘노동부’

 

민주노총 제천단양지구협, 노동부 충주지청 근로감독과장 퇴진 요구

 

 

조장우 미디어충청 기자 (youthtree@nate.com)

 

우리 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설립된 정부기관이 노동부이다. 노동부는 당연히 노동자의 권익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무이며, 존재의 이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망각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지난 8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제천․단양지구협의회(이하 제천단양지구협)’의 노동조합 대표들이 철도청에서 간부를 제외하고도 평조합원 880명의 대량징계를 내린 행위에 대해 노동청의 관심과 조사를 촉구하기 위해 ‘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 충주지청(이하 충주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서 충주지청 근로감독과장은 불안한 상태의 노동자들에게 노동부로서의 판단책임을 방기하는 발언을 했으며,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면담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대다수의 사무실 남성직원들이 몰려왔고, 위협적인 행동과 폭언을 이어 갔으며, 결국 근로감독과장은 음료수병으로 책상유리를 부수고, 유리병까지 바닥에 던져 깨진 유리 파편에 제천단양지구협 배호상 의장은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오는 과정에서도 근로감독과장은 계속 따라오며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제천단양지구협’은 12일 충주지청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폭언과 폭력을 저지른 ‘근로감독과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천단양지구협 배호상 의장은 “그 날의 폭언 내용과 폭력의 정도를 생각해 볼 때 노동조합에 조차 소속되지 못한 힘 없는 노동자들이 그동안 노동부에서 어떤 취급을 당했을 지 뻔하다”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질 없는 근로감독과장을 퇴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윤기욱 수석부본부장은 규탄사에서 “노동부가 자신의 본분을 어기고 용서받지 못할 행위를 한 것은 두고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대응할 것이며, 싸워 나갈 것이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근로감독과장의 행위는 국가공무원법 상 56조 성실의무, 59조 친절공정의 의무, 63조 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한 것과 동시에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제4조 친절공정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파면에 준하는 징계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요구사항을 성실히 이행되지 않는다면 민형사상의 책임이 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장과 충주지청장에게 돌아갈 것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표자 4명은 충주지청장과의 면담을 가지려고 했으나 충주지청 관계자들이 취재를 온 기자들의 동석을 원하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면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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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0:46 2010/01/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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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건설기계지부 또다시 부도, 임금체불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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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건설기계지부 또다시 부도, 임금체불 당해

 

다단계 하청속에 속타는 특수고용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새해 벽두를 달구고 있다.

국토해양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발주한 <청주 내덕(율량) - 청원 북일(북이)> 도로 건설구간의 하청 건설업체인 수일건설이 작년 12월 15일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에 따라 이 구간에서 일하던 덤프노동자 56명이 지급 받아야 될 유류대를 제외한 순수 임금 3억 2천여만원 등 총 11억원의 장비대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발생한 체불금액은 많게는 1인당 1,300여만원까지 되나, 현행법상 노동자가 아닌 형식상 사용자이기에 장비 대금으로 분류, 우선 지급순위에서 밀려 받을 길이 막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건설노조 충북건설기계지부(지부장 이용대)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명시된 노임 미지급 시 ‘원하청연대 책임’ 조항에 의거하여 원청인 대우건설에서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해당 관청인 청원군청이 지역주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1월 12일(화) 오전 10시 20여명의 침울한 표정의 건설노동자들은 청원군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청원군청이 체불노임 등 10억여원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체불임금이 반복됨에 따라 수차에 걸쳐 발주처와 원청 시행사인 대우건설에 수차례에 걸쳐 개선요구를 한 바 있다”며 이번 부도사태는 '건설노조의 지적을 외면한 관리감독관청의 직무유기로 발생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겨울나기를 위해 쉼없이 일했건만, 냉방살림을 해야 할 판”이라며 “임금체불 중 가장 서늘한 것이 동절기 임금체불”이므로 “지자체의 적극적인 ‘온기 행정’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지부는 체불임금 해결을 위해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내일(12일)부터는 부도사태의 핵심 주무관청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 앞에서 집회를 갖고 무기한 노숙투쟁을 전개하는 등을 강경하게 투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구간을 담당한 업체 역시 지난 해 9월 부도가 난 한신공영과 동일한 원청업체인 대우건설의 하청업체다. 한신공영의 부도로 인한 5억여원의 임금체불 투쟁은 한달 여 진행된 바 있으며, 투쟁기간 동안  조합원들은 천막농성과 집회 투쟁을 이어갔으며, 진천군수는 천막농성장을 방문하고, 진천군 의회가 사태해결을 위해 나서는 등 지자체가 적극 나선 바 있다. 한달간의 완강한 투쟁으로 발주처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과 원청인 대우건설이 나서 체불임금의 대부분을 해결한 바 있다.

 

발주처인 국토관리청의 직무유기와 원청의 무분별한 하도급으로 애매하게 특수고용노동자인 건설노동자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 그때 그때 임기응볍식의 처리가 아닌 건설현장의 본원적 해결방안이 요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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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15:12 2010/01/1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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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9.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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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9. 신자유주의

 

케인즈 주의는 소련 등 사회주의화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체제다. 이로 인해 케인즈주의는 사회복지를 확대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자본진영은 과도한 세금으로 인한 자본의 이윤율의 하락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에 따라 과잉생산이 해소되었기에 초기 높은 이윤율로 인해 버틸수 있었으나, 60년대 이후 서구유럽과 일본의 경제회복으로 미국중심의 단일시장경제 위협을 받게 되고, 무한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런 무한 경쟁은 이윤율의 저하를 급속하게 가져오고, 이는 독점에 따른 특별잉여가치 창출을 위한 과잉자본의 신규설비(불변자본)에 투하를 가져온다. 이는 또다시 구조조정을 통한 실업률 상승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냉전체제로 인한 대규모 전쟁이 아닌 국지전은 군수산업을 한계지점에 도달하도록 하였으며, 사회복지로 인한 예산의 증대와 도산해가는 기간산업의 국유화, 경기부양을 위한 뉴딜정책, 모두 국가예산의 심각한 적자를 가져왔다.

 

 

1973년, 1979년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분쟁으로 인해 1,2차 오일쇼크가 전세계를 강타한다.

이스라엘과 아랍계의 전쟁은 기원 후 135년까지 올라간다. 고대 로마제국에 의해 식민지가 된 이스라엘은 수차례의 항전 끝에 완전히 해체되어 뿔뿔히 흩어져 유럽을 떠다니는 신세가 됐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은 시온주의(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를 가슴속에 품고 온갖 박해(기독교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를 이겨나갔다. 그러던 중 1800여년이 흐른 1차대전 중 독일에 맞선 미국, 러시아의 참전을 위한 영국의 유대인 국가 건설 약속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미국 등 자국 금융산업을 장악한 유대인의 압력 등으로 인해 유대인촌이 형성,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된다. 집나간지 1800년만에 돌아와 내땅이다라고 선포한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아랍계와 중동전쟁이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철저히 이스라엘 편에서 전쟁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아랍국가들은 OPEC을 통해 1973년, 1979년 두차례에 걸쳐 원유의 감산과 유가 폭등을 일으켰다.

 

원자제 가격의 폭등으로 전세계 경제는 경제침체 속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구조적 불황의 원인을 하이에크(198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프리드만 (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는 ‘국가 폐해, 즉 관료주의와 이윤원리의 침해, 사회복지의 남용, 자유로운 시장의 훼손’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케인즈주의, 사민주의를 비판하고, 결국 시장으로부터 국가 개입을 축출할 것을 주창한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소련과 동구유럽 등 사회주의권의 궁핍화와 몰락의 징후가 주요하게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영국의 대처수상과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이 전폭적으로 수용,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이들은 핵심적으로 자본시장 개방, 탈규제화, 공공부문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나타난다. 즉 독점기업을 위한 감세와 사회복지예산의 감축, 대외적 개방확대와 상품서비스, 자본, 금융의 자유화, 노동의 유연화로 전면화 된다.

 

봉건제

자유주의

국가독점자본

新자유주의

영주/농노의 신분적 불평등

형식적 완전한 평등권 보장

약자에 대한  사회(노동)권 인정

사회권 전면 축소=>노동시장의유연화

농민의 토지 소유권 불인정

생산수단의 전면적 사적 소유권 인정

보호무역, 독점규제, 금산분리 등 사적소유권 제한

국가간, 국가내 각종 규제 전면 완화

생산물의 영주 착취 / 부등가 교환

생산물의 시장에서의 등가교환

사회복지, 공기업 등 부등가 교환

사회복지 축소, 공기업 민영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공황의 책임을 자국의 노동자 민중에게, 제3세계에 전가하며 수탈을 전면화 하겠다는 표현이다. 즉 신자유주의의 타겟은 노동자 민중이 된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대처수상은 1984년, 1년 내로 20개 이상의 탄광을 폐쇄하고 2만 명을 정리해고한다는 내용의 ‘석탄산업 합리화 계획’을 발표했고, 1년여의 투쟁 끝에 탄광노조를 패배시켰다.

레이건은 1981년 자신을 공개 지지했던 항공관제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돌입하자마자, 시범케이스로 48시간만에 1만2천여명을 일순간 해고하며, 이들이 다시는 항공관제사로 일할 수 없는 조치까지 취했다.

 

두 사건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는 각종 임금 위원회가 폐지되고, 연대파업금지, 단체행동권 제약, 조합비 원천공제 폐지, 노조에게 손배 청구, 실업관련 예산 삭감 등 노동관계법을 대폭 개악, 비정규직 확산,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작업장 유연화, 일방적 노동배제 정책을 통해 고용불안을 극대화 시키고, 실질임금을 대폭 하락시켰다.

 

반면 감세정책을 한다며 상위 부자들의 감세(최상위계층 83%=>40%로, 최하위계층 33%=> 25%)를 대폭적으로 단행했고, 긴축재정을 하겠다며 주택기금, 교육예산 등 사회복지예산을 삭감했다.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늘어난 국채를 갚는다며 석탄, 철도, 수도, 전기, 가스, 항공 등 공기업 노동자를 대량해고(영국의 경우 206만명의 공기업노동자를 84만명만을 남기고 해고했다)하고, 민영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출처 : Dumenil and levy, "Neoliberal Income Trends"

미국, 최상위 - 최하위 계층의 조세율

 

 

 

이렇듯 작은 정부를 외치는 신자유주의는 노동자 민중, 제3세계에는 단호했다.

석유자원을 위해 미국정부는 두차례의 이라크전을 감행했고, 지금도 아프카니스탄 전을 수행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하에 석유자본과 군수산업복합체의 충실한 대리인을 자처하고 있다. 레이건 재임기간

국방비는 20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로 급증했으며, 이는 지금까지 미국 재정적자의 주요한 원인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정책은 금융시장의 자유화, 세계화다.

제조업에서의 이윤율의 하락을 견딜 수 없었던 자본은 눈을 돌려 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이후 고정환율제가 폐지되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됨에 따라 외환시장도 돈벌이(1992년 9월 파운드화 위기 때 조짓로스는 일주일만에 10억달러(1조2천억원)를 벌었다)가 될 수 있었다. 석유파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중남미에 투자해서 평균 이윤율보다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이제 초국적금융자본을 형성, 돈을 찾아 전세계를 헤멘다. 주식과 외환, 채권, 나아가 옥수수, 원유 등 모든 영역이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카지노 자본주의가 시작된다.

 

이런 금융자본의 투기자본화를 촉발시킨 것은 바로 컴퓨터 시스템의 발전이다. 그 이전 미국에서 영국의 철도주식을 사려면 지사를 내던지 해서 현지에서 달러를 파운드화로 바꿔 주식을 사야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앉은 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만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형성된 금융자본은 세계화를 외치며 전지구를 투기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룻동안 거래되는 지구적 금융자본의 규모는 1조 5천억달러에서 3조달러(한국예산의 10배 규모)라고 한다. 그 중 수출입을 위한 대금결제에 사용되는 5%에 불과하다고 한다. 95%가 투기성 금융자본의 거래인 셈이다. 금융자본은 이윤을 찾아 세계를 떠돌아 다니고 돈이 되지 않으면 그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던, 그 나라 국민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던, 가차없이 떠난다. 1980년 중남미와 97년 동아시아 위기 등이 비근한 예다. 이미 컴퓨터 네트워크로 하나가 된 지구경제는, 어느 한 나라의 위기가 곧바로 도미노처럼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87년 10월 블랙먼데이라 불리는 뉴욕증시 폭락과 그에 따른 전세계 증시 동반 폭락, 2008년 9월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발발한 전지구적 금융위기가 금융자본의 분탕질로 발발한다. 초국적 금융자본은 전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켜낸다.

 

 

금융자본은 이렇게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을 파탄으로 내몰고, 그 처방으로 IMF를 내세워 신자유주의를 강요한다. IMF는 긴축재정, 공기업 민영화와 각종 금융 등 규제완화,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요한다. IMF의 처방은 오히려 각 나라들의 외채 규모를 더욱 늘리고, 긴축재정에 따른 사회복지 예산의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에 따른 외국독점기업의 소유 및 공공요금의 폭등, 규제완화에 따른 독점자본 강화, 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와 빈곤실업의 증가로 귀결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확대되고 각국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내몰린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우리나라 역시 똑같은 IMF 처방으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 된다.

80년 이후 노태우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내세운다. 이어 정확한 의미도 모른체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외치며 신자유주의의 첫걸음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구성, 96년 12월 26일 신자유주의 핵심인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법’을 개정하려다 민주노총의 저항으로 무력화 된 바 있다. 이렇듯 주춤하던 신자유주의는 97년 말 IMF 경제공황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다.

 

 

김대중 정부는 98년 2월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 근로자파견법 등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를 시작한다. 한국노동운동의 최대노조인 현대자동차에 대한 총공세를 통한 정리해고 수용강요, 이어진 만도기계노조에 대한 공권력 진압을 통해 노동운동의 기선을 제압하고 자동차, 금융, 공기업 등 전반에 대한 산업구조조정을 진행하며대대적이고 폭력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한다.

 

 

각종 노동법을 개악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 한다. 고용의 유연화를 위해 정리해고, 근로자파견법, 비정규법을 도입하고, 성과주의임금 체계 (연봉제, 팀제, 직무직능급제)를 도입해 임금의 유연화를 이뤄낸다.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위해 탄력(변형)근로시간제를 도입하며 다기능화, 배치전환의 일상화, 품질관리운동 등을 통한 작업장 유연화를 완성해 나간다. 나아가 일방적 노동배제 정책을 통해 노동조합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며, 노동3권을 전반적으로 후퇴시켰다. 노동시장 유연화 결과 구조조정은 일상화되었고, 비정규직은 200만명이 늘어났으며, 일상적인 실업자가 넘쳐나며, 남아 있는 정규직 역시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꾸준한 감세정책을 통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개악, 산재보험 개악, 의료보험료 인상 등 각종 복지제도를 축소하고 있으며, KT, KT&G 민영화, 발전소 분할 매각 시도, 철도 공사화를 통한 민영화 추진 등 공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사회공공성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우리은행.대우조선해양.현대건설.하이닉스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 금융기관,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본을 위해서는 출자총액제, 금산법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준다. 이어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교육, 의료의 시장화 및 개방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미FTA 체결을 통해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시장을 개방하려 하고 있다. 자본(주식)시장 개방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 대부분이 외국인 소유지분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이다. (삼성전자 54.35%, 한국전력 30.15%, 국민은행 85.81%, 현대자동차 45.81%, 포스코 68.76% 등한국증권전산 2006. 01 자료)

 

 

결국 신자유주의는 전세계 노동자 민중, 특히나 제3세계에게는 더더욱 가혹하게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전세계 민중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여나간다.

96, 97년 한국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은 전세계 노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8-90년대를 거치며 벌어진 전세계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이 패배하는 가운데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주노총의 투쟁은 이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어 94년 멕시코 사빠띠스따 무장봉기, 97년 프랑스 실업자 투쟁, 99년 시애틀(WTO각료회의) 투쟁, 2000년 체코 프라하 (IMF 연차총회) 투쟁, 2000년 볼리비아의 물 사유화 저지투쟁, 2002년 독일 노동자 투쟁, 2007년 프랑스 최초고용허가제 투쟁 등 파고를 높여왔다. 특히 2001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은 매년 신자유주의 맞서 전지구적 대안사회를 논의하는 장올 발전했고, 전지구적 민중들의 연대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완성인 WTO를 좌초시켰다.

 

또한 남미에서는 베네주엘라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미국가연합(UNASUL, 회원국 12개국, 옵서버국 파나마, 멕시코)이란 새로운 호혜평등에 기반한 시도가 진행중에 있다.

 

 

 

 

 

TIP.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통제되지 않은 초국적금융자본은 2008년 전지구를 고통의 수렁으로 내몰았다.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어 세계 최대 증권사와 보험, 부동산 회사 등을 보유한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됐다. 미국 최대의 보험사 AIG 그룹은 미국 정부로부터 85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는다. 이어 9월 28일 미 의회는7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의 단계적으로 투입을 골자로 한 구제금융 합의안을 도출한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는 1조달러를 찍어내며 경제살리기에 올인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곧바로 전세계 증권시장을 폭락으로 이끌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날 하루에만 51조원이 넘는 돈이 증권시장을 빠져나갔고, 작년 한해 600조가 사라졌다. 세계적으로는 28조 달러(3경7700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금융위기는 곧바로 부동산, 자동차, 선박, 철강 등 제조업 전반의 침체를 가져왔고, 달러의 무분별한 발행은 유가와 곡물가의 급등을 가져오는 등 실물경제로 이전되면서 전세계 민중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이 모든 사태는 ‘서브프라임모지기론’이라는 파생상품으로부터 시작된다.

1990년 후반 초국적 금융자본은 실리콘벨리의 IT라는 첨단벤쳐사업으로 몰린다. 뉴욕증시는 희망에 넘쳐 과열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2000년초 기대와 달리 IT산업에서의 이윤율이 저조하자, 급물살을 타고 금융자본이 빠져나가며 뉴욕증시가 폭락한다. 경기하락을 막기 위해 미 연방준비은행은 기준금리를 6%에서 3%로 내린다. 시중의 자금을 은행이 아닌 실물경기로 쏠리도록 하기 위한 수단였다. 이 저금리 정책에서 재앙은 시작됐다. 갈 곳을 몰라 헤메던 초국적 금융자본은 주택시장이란 먹잇감을 포착한다. 금융자본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란 대출상품을 만들어 신용도가 낮은 도시서민들까지 이 투기 시장으로 내몰았다. 저금리로 인해 이자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서민들까지 주택 사재기에 가담했고, 주택가격은 2000년부터 매년 20-30%씩 올라간다. IT버블이 주택버블로 전이된 현상였다.

 

 

이런 상황속에 금융회사들은 소위 파생상품이란 돈이 돈을 낳는 기형적 산물을 내놓은다.

주택소유자가 대출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다. 대출은행은 대출채권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총부채상환비율(DTI)등을 통해 주택가격의 40-50%까지만 대출이 되도록 규제를 한다. 미국의 경우 이런 규제가 전무했다. 주택가격의 10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 대출채권을 소유한 대출업체(모기지은행)는 이를 모기지(주택)담보증권(MBS)으로 증권화 해서 유동화 전문회사에 판매한다. 유동화전문회사는 대출채권 미회수의 위험성을 분산시킨다며 모기지담보증권 중 위험도가 높은 도시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브프라임모기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알트에이모기지, 신용도가 높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프라임모기지 등을 섞어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만들어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 UBS, 우리은행 등 투자은행에게 판매한다. 또한 이런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보증해준다며 AIG는 신용부도스왑(CDS, 신용파생상품, 일종의 보험)라는 상품을 만들어 투자은행에 판매한다. 위험성을 최소화 한다는 금융파생상품이 오히려 위험성을 극대화 시켜낸 것이다. 1000만원의 대출채권이 MBS-CDO-CDS를 거치며 뻥튀기가 된다. 이 뻥튀기 된 부채담보부증권(CDO)는 전세계로 팔려나간다.

 

 

그러나 주택가격의 거품은 반드시 꺼질 수 밖에 없다. 가격이 오를때는 대출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없지만 가격이 정체된 상황에서, 프라임모기지보다 3% 정도 높은 변동이자를 갚아야 하는 도시 서민들의 연체가 늘어난다. 늘어난 연체로 인해 2007년 11월 국책 모기기 업체인 프래디맥, 페니메이가 사상최대의 손실을 기록한다. 08년 3월 파생금융상품의 부실에 따라 월가 4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즈가 파산한다. 9월 전세계로 퍼진 파생금융상품의 부실은 리먼브라더스를 시작으로 전세계적 금융위기란 폭풍으로 발전한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만에, 미국 실업자는 무려 216만 명이 증가하여 940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그 사이 6개월 이상 실업상태인 장기실업자는 60만 명이 늘었다. 공식 실업률은 6.1%이지만, 한계실업자와 경제적 임시취업자를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이미 10%를 넘어선 상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앞장섰던 미국, 영국, 스페인, 아이슬랜드 등은 초국적금융자본은 투기적 성격으로 인해 심각한 침체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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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8 15:17 2010/01/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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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8. 자본주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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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8. 자본주의 변천사

 

 

공황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 불치병이다. 통제되지 않는 자본의 이윤추구의 결과이다.

이런 공황은 10년의 파고로 주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한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의 양상에 따라 구조적 위기로 내몰린다. 1873년, 1929년의 공황과 1974년, 79년의 공황이 바로 구조적 위기이다. 또한 2008년의 공황 역시 구조적 위기이다.

 

 

자본주의는 이 세차례의 구조적 위기속에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부터 1873년 공황 까지의 자본주의를 자유경쟁 산업자본주의 로 구분한다. 이 시기는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등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력화 시키고, 신분제를 혁파한다. 또한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화에 의한 대량생산체제를 구축, 노동자들의 탈숙련화 시켰고, 숙련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내몰아 실직적으로 노동자들을 자본에 종속, 자본주의를 완성시켰다.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춰) 방식의 생산은 숙련된 기술 때문에 노동자들이 형식적으로만 자본에 종속되어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몬 것이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기계파괴(러다이트)운동을 전개했으나,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러다이트 운동과 관련해서 맑스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이유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뒤로 돌리는 반동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즉 과학기술의 진보는 노동자들이 적극 수용하며, 그 방식은 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등일 것이다.

 

 

TIP. 하이패스 달아야 돼? 말아야 돼?

최근의 ‘하이패스’ 장착의 경우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역시 동일할 것이다. 진보진영에 몸을 담은 이들의 경우 톨게이트 입금원에 대한 고용불안을 이유로 하이패스 장착을 기피한다.

정답일까? 아닐 것이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하이패스 장착을 미룬다고 ‘입금노동자의 고용’ 이란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 입금원에 대한 고용을 노조차원에서 일자리를 나누고, 고용을 보장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도로공사노조가 그럴 의지가 없으니까 문제이지만...

 

 

1873년부터 1929년 대공황 까지를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 단계로 구분한다.

1873년 공황으로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약육강식의 무제한적 경쟁, 공황을 거치며 자본은 집적과 집중을 통해서 거대해 진다. 이제 수많은 자본이 경쟁을 통해서 평균적으로 획득하는 이윤 대신에 경쟁을 제한/배제하며 평균 이윤율 이상의 이윤(특별잉여가치)을 획득하는 독점자본이 형성된다.

그에 비해 노동력 역시 소수의 자본가 밑에, 소수의 공장으로 집중되어 노동자들의 조직적 저항이 가능해진다.

 

또한 보다 많은 이윤을 위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융합되므로 거대 금융자본을 형성한다. 이렇게 비대해진 금융자본들은 지배계급 중에서도 이제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유력자들에 의해서 지배받게 된다. 이들은 산업/금융계 뿐 아니라 정치계와 관료집단, 그리고 그를 통해서 국가의 무력까지를 두루 지배하는 금융과두체제로 발전, 제국주의 단계로 발전한다.

이들은 자국내 전반적인 과잉생산과 화폐자본의 과잉축적을 돌파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제국주의 시대, 자본에 영합한 국가권력은 폭력적으로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켜낸다. 바로 식민지 침탈이다. 식민지는 과잉된 자본의 새로운 투자처이자, 과잉 생산된 상품을 그 가치 이상으로 팔수 있는 판매처이다. 또한 값비싼 본국의 노동력을 대신할 풍부한 노동력이 널려있다.

또한 과잉자본을 소비할 군수산업이라는 새로운 투자처가 생긴다. 본격적인 식민지 전쟁이 시작된다. 이렇게 제국주의는 제3세계 민중의 피와 땀, 생명을 빨아 먹으며 성장한다.

 

 

선도적으로 제국주의 단계에 오른 영국과 프랑스, 뒤늦게 제국주의 반열에 오른 독일, 이탈리아 등은 이제 식민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결국 이들의 식민지 쟁탈전은 1, 2차 세계대전을 가져온다.

 

 

이런 독점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친다.

거대 독점자본과 금융과두제의 지배에까지 이른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극대화 됨에 따라 식민지를 둘러싼 경쟁이 심해진다. 한편에서는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의 증가로 인해 자국 내 빈곤층으로 전락한 노동자계급은 빈곤과 무지, 질병, 억압, 무권리의 상황속에서 소비층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극단적인 혁명의 길을 선택한다. 식민지 피지배 계급의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도 전면화 된다.

이런 가운데 독점자본의 이윤율이 압박을 받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상품의 생산가격에 의해서도, 상품의 가치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고, 구매자의 욕망과 지불능력에 의해서 규정되는 독점이윤을 위해 독점자본은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카르텔은 막대한 설비투자로 인해 과다한 비용이 지출되고, 부문간 경쟁을 차단은 기술의 진보를 가로막는다.

 

독점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전면적 위기가 도래한다.

그 첫 폭발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후발 자본국인 독일 등은 국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이 본격화 되며, 식민지 피지배 민중들의 민족해방투쟁이 일어난다. 1917년 재정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1919년 조선에서 3.1 운동이, 중국에서 5.4 운동이 일어난다.

 

1차 세계대전으로 해소처를 찾았던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은 또다시 보다 높은 이윤을 위해 금융자본화, 주식, 부동산, 심지어 농산물까지 투기를 일상화 한다. 과잉설비 투자로 인해 생산은 과잉되고 있으나, 소비를 할 세력이 없는, 1929년 대공황에 빠지게 된다.

1929년의 대공황은 4년간 진행되었고, 전세계 공업생산의 44%가 줄었고, 미국의 실업자는 1200만명으로 국민의 25%가 실업자였다. 또한 이 사이 세계 무역은 65%가 감소했다.

 

상품은 남아도는데 살 사람이 없는, 밀과 커피등 곡물이 대서양 한가운데 그대로 버려지는, 그럼에도 굶주림에 떠는 수백만의 실업자가 공존하는 이상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1929년 구조적 위기를 둘러싸고는 계급적으로 성장한 노동자들의 수많은 투쟁이 진행된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프랑스 군과 독인 해군 병사들의 반란, 191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혁명, 헝가리의 독립혁명 승리, 1919년 아일랜드 게릴라전, 1920년 독일 총파업, 이탈리아 공장점거, 1923년 프랑스 루르 폭동, 1926년 영국 총파업(패배), 1929년 미국 증시폭락, 1931년 스페인 혁명, 1936년 프랑스 스페인 인민전선 승리, 미국 CIO 결성, 1939년 2차 세계대전...

 

 

1929년 구조적 위기속에서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투쟁했다. 그 투쟁의 결과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들어섰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했다. 29년의 공황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격화시켰고, 이 결과 자본주의 사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케인즈식 자본주의와 독일을 중심으로 파시즘식 자본주의로 양분된다.

 

이렇게 1929년 대공황이후부터 1979년 공황까지를 국가독점자본주의, 혹은 케인즈식 자본주의라 부른다.

미국에서는 1933년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루즈벨트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이론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도입한다. 뉴딜 정책은 국가가 세금과 국채발행 등을 통해 자본을 형성,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양보로 사회복지와 테네시강 개발공사 등 국가기반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주고, 노동3권을 강화시켜 주는 등의 유화책으로 계급 화해를 도모한다. 이렇게 창출된 일자리를 통해 유효소비를 늘려 과잉생산된 상품을 적극적인 국가개입 정책이다. 이 케인즈주의는 전시국가독점자본주의를 거쳐 2차 세계대전이후 서구유럽 자본주의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성장한다.

 

반면 패전국가였던 독일에서는 실업과 패전에 따른 배상 등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히틀러는 강력한 자국민에 대한 탄압과 국가주의, 전쟁을 통한 극우 파시즘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이런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는 각자 살길을 도모한다. 미국과 북미를 중심으로 한 달러블럭, 영국과 식민지를 중심으로 한 파운드 블럭, 프랑스와 식민지를 중심으로한 프랑 블록 등 보호무역주의로 돌입한다. 식민지를 갖지 못한 독일, 이태리, 일본은 중대한 기로에 설 수 밖에 없다.

 

1939년 5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2차 세계대전은 29년 대공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된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29년 대공황의 골칫거리였던 과잉생산과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 문제를 일거에 해소한다. 전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파괴된다. 5,000만명이 사망함에 따라 과잉인구(실업자)가 해소된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 12개 나라가 사회주의로 전환했고, 제3세계 식민지 국가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한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사회로 양분, 격렬한 대립속에 발전한다.

 

미국의 경제는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했다. 1917년 미국정부는 군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쟁산업국을 신설, 전쟁 물자를 유럽의 전쟁국에 팔아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물론 이 대금은 패전했을 경우 종이 쪼가리로 전락할 파운드화나 프랑이 아니라 금이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전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게 된다. 또한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했고, 두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후발주자로 전쟁에 가담, 승리를 거며 쥐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력 등 최강대국이 탄생했다.

 

 

미국은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내보여야 했고, 이를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을 자신의 주도하에 성장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세계를 재편한다.

선 2차세계대전이 영국과 프랑스 등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주의들의 보호무역주의와 무리한 식민지정책에 있었다는 판단속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경쟁체제의 구축과 민족해방 투쟁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분리, 분쇄 전략을 펼친다.

 

우선 전쟁으로 파괴된 서유럽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사회주의 확장을 가로막기 위한 미국의 주도하에 마샬플랜이 기획, 12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원조를 하게 된다.

또한 안정적인 세계 금융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외환거래시 미국의 달러를 전세계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1온스=35달러)를 채택하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회주의권 확산을 막기 위한 제3세계 국가에 대한 경제원조을 담당 할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체제를 구축한다. 또한 보호무역주의를 탈피하여 자유무역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GATT(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를 구축함으로써,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가 완성된다. 이로서 자본주의 사회는 기축통화로서의 미국의 달러와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우위를 통한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cana.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 체제가 확립됐다.

 

 

 

전시국가독점자본주의 형태였던 케인즈주의는 전후 자본주의 나라들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지만 케인즈주의는 사회주의 우파세력인 사회민주당 세력을 포괄하며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간다. 일부 산업이지만 잉여가치의 원천인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함으로써 국가가 유효수요를 창출, 자본주의 고유 모순인 과잉생산과 과소소비, 이로 인한 공황을 방지 코저 한다.

국가가 국채발행과 세금 징수를 통해 이윤이 나지 않거나, 막대한 초기비용이 들어가는 석탄, 석유, 철강, 전력, 철도, 전화 등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화한다. 이를 통해 사적자본의 이윤추구를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대중들에게도 저렴한 사회적 공공서비스를 제공, 소비를 활성화 한다.

또한 주거, 의료, 교육 등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 국가가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체제를 인정하는 효과와 함께, 노동력의 재생산비(사회적 임금을 억제)를 저렴하게 유지해 줄뿐 만 아니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해 준다. 이런 노동력을 통해 유효수요를 늘려나간다. 이렇게 전후 자본주의는 197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호황을 누리며 발전을 한다.

 

 

그러나 케인주주의는 노동의 소외를 유발하는 단순반복노동의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한계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제어하지 못했다. 케인즈주의의 유효수요 창출은 그에따른 국채의 발행과 과중한 세금징수가 필연적이었다.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세금 등은 거꾸로 기업의 이윤을 제약, 참을 수 없을 만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또한 필연적으로 국가가 돈을 풀어대니 시중의 자금이 항상 넘쳐나는 인플레이션이란 고질적인 병폐를 불러올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했다. 경제가 잘 나갈때는 인플레이션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면 74년의 1차 오일쇼크 같은 사태가 왔을 경우는 경기침체 속 물가인상이라는 초유의 스테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됐다.

 

 

1960년대 서유럽, 일본 등의 경제 회복으로 인한 과잉생산, 과잉경쟁이 다시 촉발한다. 서유럽과 일본 등은 경제 회복에 따라 미국과 자유경쟁으로 나간다. 유일한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미국은 사회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외원조를 위해, 베트남전에 따른 전비 조달을 위해 달러를 발행한다. 이로써 1온스=35달러라는 금태환제가 위협받게 된다. 이 공식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총 금의 보유량과 달러보유량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달러를 발행한 미국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달러를 보유한 유럽국가들은 달러를 금으로 환전해 줄 것을 요구한다. 달러 투매현상이 일어나고 금의 투기적 매입 사태가 발생한다. '금 가격'의 폭등에 따라 미국은 보유금을 시장에 방출함으로써 '금의 가격'을 '1달러=1/35온스의 금'이라는 '공정가격' 수준으로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한계치에 다다르면서 결국 자유금시장의 달러화 가치 안정정책을 포기하고, '금의 시장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대로 방치,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의 "특별성명"을 통한 '금-달러 교환' 정지로 구 IMF를 중심으로 한 브레튼우즈체제는 붕괴한다.

 

 

케인즈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자본진영으로부터 주거, 의료, 교육 등 사회보장제도, 공공부문을 통한 공공서비스 제공, 노사정 사회적 합의주의 등을 쟁취한다. 이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성과물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임금노동'이라는 착취관계를 안정화/영속화시키려는 자본의 대응이었다. '사회적 합의주의' 역시 투쟁의 산물이었으나, 이후 노동자계급의 상층부를 관료화 시켜내고, 회유/매수하는 수단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력을 무력화시키는 기구로 전락시켰다.

전투성을 상실한 서구유럽의 노동자 계급과 사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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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8 15:04 2010/01/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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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7.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공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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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7.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공황

 

 

자본주의 시장경쟁은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한다. 강자는 끊임없이 약자를 잡아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자본 간의 경쟁으로 인해 각 기업들은 이윤을 최소화하면서라도 경쟁에서 이겨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계설비 등 불변자본의 증대는 은행 이자 등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한 위표와 같이 불변자본의 증대는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 시켜 필연적으로 이윤율을 하락시킨다. 이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라 한다.

이를 간단한 수식을 보자.

 

 

 

 

결국 자본가들은 이윤율의 하락에 대항해서 이윤의 절대량을 늘려나간다. 즉 무자비한 생산 경쟁으로 내몰리며 생산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극한의 무정부적 생산을 해 나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자본가들은 필사적으로 이윤율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몸부림을 펼친다.

 

경제위기시 구조조정 등으로 노동자들은 대규모 실업으로 내몰리고, 늘어난 실업자를 무기로 살아남은 자들의 양보를 강요한다. 각종 사회복지 등 임금성 수당들이 양보된다. 쌍용차 등과 같이 기업 도산을 협박으로 절대적 잉여가치(노동강도 강화와 30분 일찍 출근하기 운동 등)를 늘리며 노동 착취를 강화해 내며 이윤율을 높일 수 있다. 아웃소싱 등을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 상대적 잉여가치(임금삭감)를 늘려 이윤을 높인다.

대외무역을 통해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뒤처지는 제3세계에 보다 많은 이윤을 책정해 특별잉여가치를 높임으로써 이윤율 하락을 저지한다.

이외 에도 공간재정립을 통한 공장의 중국, 필리핀 등 제3세계로의 이전을 통해 이윤율 저하를 저지하며, 생산기술의 진보,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등 기술조직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틈새시장 혹은 중소기업이 생산하던 시장에 진입하는 제품재정립, 금융산업으로의 진출을 통한 금융재정립 등을 통한 이윤율 하락에 저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본의 이윤율은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왔다. 물론 70년, 80년, 96년 공황시기를 지나면서 산업구조조정을 거치며 반등하기는 했지만 30년의 장기적 관찰결과는 명백히 이윤율은 20%대에서 10%대로 하락 한 것이 분명하다.

 

 

자본은 이윤율이 하락하면 하락 할수록 이를 반등시키기 위해 이윤의 양을 늘려 대항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량이 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기술과 설비투자를 늘려야 한다. 이런 행위 자체가 다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여 이윤율을 하락시킨다. 자본은 살아남기 위해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독점이윤을 위해 독점자본을 형성해야 하고, 서로 물고 물리는 과잉 중복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생산은 통제 불가능 할 정도로 과잉되고, 과잉생산 속 이윤의 양은 거대하게 축적된다. 반면 이윤율은 자본이 견딜 수 없도록 하락한다. 기술과 설비투자는 잉여인력을 발생시키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속에 희생되어 길거리로 내몰린다.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고 오히려 소비가 위축된다. 이에 산업자본은 새로운 탈출구로 투기의 시장으로 내몰린다. 금융자회사를 설립하고 주식과 환투기, 원유 등 원자재 투기, 부동산, 파생상품 투기 등 이윤을 위해 몰려다닌 금융시장은 곧 버블을 형성한다.

 

 전세계 자동차 산업을 한눈에 보여준다. 자동차 시장의 독점화가 극에 달해 있다.

 

 

이런 전 과정이 일어날 때 현상적으로 주식, 부동산 시장 등이 최고치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올라간다. 자본주의의 최고 호황이 눈앞인 것 같은 환상이 불어 닥친다. 그렇지만 과잉중복 투자로 이미 이윤율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 형성된 거품은 꺼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완성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한 나라의 거품이 붕괴되는 순간 물고 물리는 전세계 금융권이 동반 폭락하고, 곧바로 실물 경제로 옮겨와 과잉 자본이 순식간에 도산으로 내몰린다. 바로 공황 이다.

 

 

상품을 생산하는 주체는 개별 자본인데 그 소비는 철저히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의 적정한 수요를 뛰어넘는 과잉 생산,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의 하락과 실업의 확산, 이에 따른 소비의 위축, 금융시장의 버블이 종합적으로 몰아닥쳐 공황을 불러온다. 결국은 자본의 아귀같은 이윤추구가 전세계 노동자 민중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그러나 자본은 공황이란 표현을 하지 않는다. 단지 경제위기라 칭하며 위기를 외면한다. 1929년 공황의 두려움에 따른 자본의 취사선택 일 뿐이다.

공황의 현상은 1998년, 2008년을 겪은 우리는 너무나도 잘알고 있다.

주가, 부동산 가격 폭락, 환율폭등, 금리인하(98년 인상), 예금인출 쇄도, 생산의 중단, 잇단 기업들의 부도, 도산, 대량실업, 임금삭감, 물가 폭락,자살의 증대, 정치불안, 사회불안 등...

한가지 다른 사실은 98년은 동아시아의 위기였기에 바닥난 외환보유고를 채우기 위해, 외국의 달러를 끌어들이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는 사실 정도 일 거다. 표현은 간단하지만 그 고통은 어마 어마 했다.

 

 

공황은 자본에게도 역시 가혹했다. 자본의 가치파괴가 시작된다. 거리에는 온통 '40-50% Sale' 현수막이 도배를 한다. 상품이 자신의 가치 이하로 팔려나간다. 공황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는 자본들이 부도, 도산한다. 이에 따라 공장과 기계설비 등이 폐기되거나 상품 가격 이하로 투매된다.

 

자본과 정권은 이 기회에 산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사양산업을 퇴출시키고, 생산 설비와 기술투자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려, 대규모 실업자들이 발생, 빈곤화된다. 이를 통해 취업노동자는 임금삭감과 근로조건 저하을 강요 받는다. 이렇게 구조조정된 자리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가 촉진된다.

 

 

반면 공황의 파고를 극복한 자본은 이윤율의 반등 기회를 잡는다. 자본의 집적, 집중을 고도화 하며 파산된 경쟁사를 퇴출시키거나, 흡수통합을 이뤄낸다. 다시 한번 독점이 강화된다.

 

공황시기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가는 위기극복 이데올로기를 펼치며,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실업대책을 요구하는 민중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진압한다. 자본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법제도를 개악해 주며 자본의 편에 확실히 선다. 또한 도산되는 자본을 구출하기 위해 국민혈세를 공적자금이란 명목으로 지원한다. 1998년 IMF 구조조정 당시 투여된 공적자금 168조 4천억원 중 89조 1천억 원(52.9%)가 회수되었고, 69조 회수가 불가능 했다. 이렇게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해서 정상화 시킨 건실한 기업은 다시 독점자본에게 헐값으로 팔렸다.

 

 

 

 

TIP. 한국사회의 공황

민주주의는 배가 고플때 발현된다(?) 2006년 대선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뒷걸음치게 할 것이 뻔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보다는 현실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의 결과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이해가 된다. 해방이후 격동의 60년을 바라보자.

1960년 4.19 혁명이 있었다. 물론 61년 5.16 쿠데타에 의해 무산됐지만...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다. 개인의 저항이었을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저격당했다. 1980년 5.18 광주민중의 항쟁이 있었다.

1987년 민중들의 6월 항쟁이 발발했으며, 7,8,9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난다.

1996, 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IMF구제금융을 받는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전세계 금융위기가 발발, 국내 경제도 직격탄을 맞는다.

 

 

대략 10년의 시간을 주기로 굵직 굵직한 정치적 사안이 발생한다. 단순히 정치적 사안일까? 아니다. 해방이후 본격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편입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인 ‘공황’에 휩싸일때 일어난 필연적인 저항이었다.

 

 

1960년 4월 혁명의 경제적 배경은 전후 최초의 본격적 공황이었다.

해방이후 농민층이 분해되면서 농민의 도시유입이 본격화 된다. 반면 자본주의가 본격화 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미국의 무상원조에 따른 삼백(제분, 제당, 방직)산업에 의존한다. 그러나 삼백산업의 과잉, 전후 최초의 공황의 영향에 따른 미국의 원조 축소로 인해 공황에 돌입한다. 실업이 만연하고, 배고픈 민중들은 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다. 이런 민중들의 경제적 욕구가 3.15 부정선거와 맞물려 정치적 민주화의 항쟁으로 승화한 것이다.

물론 이런 민중의 요구는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좌절한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민중들의 생존권적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경제개발에 전념을 한다. 자본주의적 공업, 상업, 금융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남북 대립이라는 냉전체제속에 자본주의 쇼윈도 효과(사회주의인 북한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며 자본주의 사회의 우월성을 입증)를 위해 미국과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은 타 제3세계 국가보다 급속한 발전을 이뤄낸다. 또한 국가에 의한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적산불하, 원조물자 배급, 한일 회담 보상금 등을 통해 통한 재벌체제가 구성된다.

 

 

1970년대 한국은 종속적 경제구조 속에 미국의 개입력이 한층 강화되며, 미국 등 자본주의는 최대 호황기를 지나며 점점 공황으로 가기 시작한다. 68년 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위기를 겪은 미국은 이후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전시공황에 빠지게 된다. 미국경제에 종속되어 있던 한국경제는 다시 한번 공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상황에서 전태일 열사라는 대표적인 분신저항으로 표출된다. 이런 저항을 박정희 정권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유신헌법을 제정, 파시즘으로 극복한다.

 

이후 한국경제는 전세계가 74년 1차 오일쇼크로 경제공황에 돌입하지만, 거꾸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한 저가 수출과 중동건설 붐으로 호황기에 돌입하다. 그러나 1979년 종합상사를 통한 덤핑수출의 한계(율산부도)와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국제유가의 급등으로 공황상태 돌입한다.

이런 공황속에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부산마산 항쟁 등 민중들은 생존권을 둘러싼 투쟁에 휩싸였다. 박정희식 군사독재의 말로였다. 이런 경제, 정치적 상황이 김재규의 박정희 피격을 가능케 했다.

박정희의 피격으로 일시적으로 열린 민주화의 공간속에서 민중들의 투쟁은 활기를 띄었으나,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의 쿠데타와 5.18 광주민중들에 대한 본보기식 학살로 정치, 경제적 민주화는 다시 뒤안길로 사라진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전세계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중공업을 국유화하는 등 강제적 구조조정을 진행, 위기의 탈피를 모색한다.

 

이런 속에 86년 '3저(저유가, 저달러(엔고), 저금리) 호황과 86년 아시안 게임, 88년 올림픽 특수를 타고 한국경제는 최대의 성장을 이뤄낸다.

이런 경제적 성과는 그동안 억눌렸던 민중들의 정치 경제적 민주화의 욕구를 폭발시킨다.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는 대통령직선제 쟁취로 표출, 6.29 개헌합의로 마무리 되었으며, 노동자들은 7,8,9월 대투쟁을 통해 경제적 민주화를 이끌어 낸다.

노태우 정권 들어서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한국경제는 자본의 이윤율이 극도로 저하된다. 이윤율 저하에 대항하기 위해 부동산, 증권 시장이 호황을 누리자, 부동산 시장의 폭등에 정치적 위기감을 느낀 노태우 정권은 가장 사회주의적인 정책인 ‘부동산 실명제’를 도입하는 초 강수를 두기도 한다.

이에 자본진영은 정권차원의 업종 전문화의 폐기를 요구하며 이윤을 위해 새로운 영역을 모색한다.

 

 

김영삼 정권은 96년 전세계에서 29번째로 OECD에 가입,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다.

자본진영은 이윤의 확장을 위해 업종전문화를 무력화 시키면서 과잉 중복투자로 출혈경쟁 (철강, 자동차, 건설, 반도체 등)에 돌입한다. 그러나 OECD 가입에 따른 세계 시장의 전면경쟁은 국내재벌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정경유착에 따른 온갖 특혜속에 어항속 금붕어같은 성장을 해온 국내재벌이 무한 경쟁에 내몰린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속에서 OECD가입에 따른 신용도 상승은 재벌의 종합금융사를 통한 투기를 활성화 시켜낸다. 높은 신용도를 통한 국제금융기관으로 부터의 저금리 단기부채를 차입, 고율로 동남아시아에 대부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진출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자유화에 따른 국제적 과잉 중복 투자는 동아시아를 경제 위기로 내몰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부채 상환 불능을 선포하자, 국내 경제위기로 상륙 한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대우 등 30대 재벌 중 8개 재벌을 도산시키고, 금융시장과 주식시장, 외환시장을 커다란 혼란에 빠뜨렸다.

 

10월 말 218억달러에 이르렀던 외환보유고는 11월말 68억으로 줄어,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IMF구제금융 이후 김대중 정부는 한국 경제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편입, 살아남은 재벌의 개혁과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현대전자의 LG반도체 빅딜 등 독점을 강화시킨다. 또한 위기 상황을 틈타 노동자의 투쟁으로 무력화 시켰던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을 즉각 시행시키고,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으로 일관하는 등 신자유주의를 본격화 시켜나갔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한국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급속하게 재편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식 호황은 부자감세와 자본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한 이윤율 상승, 사회복지 축소와 공기업 구조조정(정리해고)을 통한 비용절감(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 비정규직화를 통한 임금삭감(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 등 빈익빈 부익부를 극대화 시키는 고용 없는 호황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소비는 위축되고,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는 수입과 수출에 대한 비중이 날로 커져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대외의존도의 증가는 전세계 경제의 흐름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킨다.

 

이런 구조적 위기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

9월 17일 하루새 국내 증권시장에서는 51조원이 증발했으며, 08년 한해 600조원이 증권시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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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11:44 2010/01/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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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6- 확대재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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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재생산 - 독점자본의 형성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확대재생산 방식을 알아보자. (이윤율 200% 가정)

생산설비를 갖추고 원료비와 인건비로 50만원을 투하, 100만원원의 이윤을 남겼다. 이중 자본가는 20만원만을 소비하고, 30만원을 저축하고, 50만원을 재 투하한다. 다시 100만원의 이윤을 남기면 30만원 소비, 모아두었던 자금까지 한꺼번에 생산시간(8시간=>16시간 교대제)을 늘려 100만원을 투하한다. 200만원의 이윤이 발생, 40만원을 소비하고 생산시간(16시간=>20시간)을 늘려 160만원을 투하한다. 320만원의 이윤이 발생하면 다시 50만원을 소비하고 생산시간(20시간=>24시간)을 늘려 200만원을 투하하고, 70만원을 저축한다. 이 단계가 오면 24시간 이상 생산을 할 수 없는 물리적으로 더 늘릴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다. 자본가는 일정규모 이상의 이윤이 모일 때까지 저축을 하며 기다렸다가 자본으로 전환, 새로운 기계설비, 공장 증축 등을 통해 생산 확대해 나간다. 이렇게 이윤을 재투자해서 자본으로 전환하는 자본의 운동을 ‘축적’이라 한다.

 

 

밀가루

제빵

노동시간

가치

임금

잉여가치

유기구성

이윤율

잉여가치율

A

8

8

8

8

24

3

① 5

5 .3

0.21

1.67

B

1

1

1

1

3

0.38

0.63

 

 

 

C

1

1

1

0.50

2.50

0.25

0.75

 

 

 

D

16

16

16

8

40.0

2.50

② 5.50

12.8

0.14

2.20

E

1

1

1

0.25

2.25

0.23

0.78

 

 

 

F

32

32

32

8

72.0

2.25

③ 5.75

28.4

0.08

2.56

G

1

1

1

0.13

2.13

0.21

0.79

 

 

 

H

64

64

64

8

136

2.13

④ 5.87

60.1

0.04

2.76

I

1

1

1

0.06

2.06

0.21

0.79

 

 

 

J

128

128

128

8

264

2.06

⑤ 5.94

124.3

0.02

2.88

 

A과정에서 D로, F로, H로, J로 자본은 끊임없이 기계설비를 확충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확대재생산을 해 나간다.

 

상대적 잉여가치를 예로 들었던 예로 다시 돌아가자. A의 생산단계를 개똥이라 중소기업, D의 생산단계를 소똥이 대기업이라 가정하자. 자본주의 경쟁에서 소똥이회사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이윤을 5만5천원이 아닌 5천원만 남기기로 하고 빵 16개의 가격을 35만원에 판매를 한다고 가정하자. 그리하면 개똥이 회사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35만원으로 가격을 내린다. 개똥이회사는 단한푼의 이익도 내지 못한다. 5천원이라도 이윤을 남긴 소똥이회사가 다시 생산설비를 확충한다. 이에 F 방식의 생산으로 진화한다. 그렇다면 소똥이회사는 빵 16개의 가격을 34만5천원(밀가루 16+기계 16+임금 1.15+이윤 1.35 = 34만5천원)으로 내린다. 자신들은 비록 적더라도 1만3천5백원의 이윤을 남긴다. 반면 개똥이회사는 만들면 만들수록 5천원씩 적자가 생긴다. 개똥이회사는 은행의 대출을 받아 신규설비를 들여와 D방식으로 생산을 진행한다. 간신히 적자를 면한다. 그런데 똑같이 개똥이 회사가 다시 신기술을 개발해 H의 생산방식으로 진화한다. 개똥이 회사는 가격을 34만원(밀가루 16+기계16+임금 0.53+이윤 1.47=34만원)으로 내린다. 다시 소똥이 회사는 5천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결국 소똥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로 인해 폐업을 한다. 그러면 개똥이 회사는 소똥이 회사를 헐값에 인수하고, 소똥이 회사를 구조조정 한다. 그러면서 생산의 규모를 축소한다. 고정적인 수요에 비해 공급이 확연히 줄었으니 자연히 가격은 40만원까지 올라간다. 개똥이 회사는 7만5천원의 독점이윤을 가져간다. 또한 시장을 장악했으니 이윤의 절대량도 올라간다.

 

 

수치가 좀 어렵지만 반도체 시장을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가진 S 전자는 독일, 미국, 대만, 일본 등 경쟁사들과 치킨게임을 벌인다. 위의 경우처럼 앞선 기술로 타기업들이 2G 메모리를 2만원에 판매할 때 4G 메모리를 시장에 3만원에 대량으로 내놓는다. 타 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적자를 감수하며 2G 메모리를 1만원-1만5천원 수준으로 내놓은다. 간신히 4G 메모리 개발에 성공해서 3만원에 내놓는 순간 S기업은 또다시 8G메모리를 개발하며 4G 메모리를 2만원에, 8G메모리를 4만원에 내놓는다. 결국 자금력이 딸린 경쟁사들 중 몇 개 업체가 넘어가는 순간 S기업은 4G는 4만원에, 8G는 8만원으로 올리며 공급을 대폭 줄인다. 도산된 경쟁사를 헐값에 인수 한다. 이것이 반도체시장의 치킨게임이다. 이 결과 S기업과 H 반도체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독점자본의 탄생은 독점이윤을 창출한다.

 

이렇게 연구개발, 신기술 도입 등을 통한 확대재생산을 통해 자본의 크기를 불리는 과정을 ‘자본의 집적’ 이라 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을 인수 합병하면서 자본의 덩치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자본의 집중’ 이라 한다.

 

 

자본은 끊임없는 이윤추구로 생산을 확대해 나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잉여가치는 자본 분파간의 대립과 통일속에 배분을 해 나간다. 산업자본가는 주주배당이란 명목으로, 상업자본가는 유통마진이란 명목으로, 금융자본가는 이자란 명목으로, 지주자본가는 지대란 명목으로 노동자들이 생산해 낸 잉여가치를 나누어 갖는다. 아! 또 하나 국가는 세금이란 명목으로 잉여가치의 일부분을 떼어간다. 물론 차떼기 등 정치 비자금도 잉여가치에서 배분된다. 결국 노동자들이 생산해 낸 잉여가치를 가지고 자본 분파들이 나눠먹기 때문에, 때로는 각 분파들이 서로 더욱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 경쟁을 진행한다. 그렇지만 이번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와 같은 전체 자본의 이익이 달린 문제는 전경련, 경총 등을 통해 일사분란한 대응태세를 갖춘다.

 

한편 이런 독점자본은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고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말살한다. 이들은 중소기업을 하청계열화 시켜내고, 자신이외의 다른 독점기업과의 관계를 단절시켜낸다. 이렇게 독점기업은 하청계열화를 통해 자신들과 한배를 만든 뒤,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고갈시키고, 동일품목을 2-3개 하청으로 나누고, 하청단가 후려치기, 노조 말살 정책 등을 통해 독점이윤을 창출한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으로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던 SSM(Super SuperMarket)의 경우를 보면 너무나 잘 알수 있다. 독점 유통자본들이 이제는 동네슈퍼까지 진출해 토착 영세자본을 말살하고 있다.

 

 

시장을 독점해 타 부분보다 훨씬 높은 독점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정유사들의 LPG가격 가격담합, 이동통신사들의 통신요금 담합 등을 통한 부당이득이 바로 시장을 독점한 몇몇 독점자본에 의한 독점이윤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최근 80%가 넘는 국내 자동차 시장 장악력을 가지고 신차 판매시 수출물량 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를 하고 있다. 진입장벽이 높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특수성을 이용한 독점자본의 횡포에 다름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 독점자본의 경우 재벌이라는 취약한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예로 S그룹의 경우 E라는 놀이동산(여기만 지분이 50%를 넘는다)을 지주회사 삼아 수십개가 넘는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불과 1%가 조금 넘는 지분으로 수백조, 수천조의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바로 상호출자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 구조가 지속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수많은 계열사들이 모두 안전 할때만 가능하다. 만약 그 중 하나라도 넘어진다면 그룹 전체가 넘어진다. 우리는 지난 98년 IMF를 통해 너무 잘 보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점자본은 풍부한 자금력으로 새로운 기술 도입을 위한 연구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예를 든 S전자는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치킨게임을 벌여 독일기업을 파산시키고, 대만기업을 만성적자로 만들고, 미국과 일본의 경쟁사와 큰 격차를 벌이며 완벽한 독주체제를 만들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독점자본으로 막강한 자금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이런 자금력을 가지고 해외시장 개척 및 해외공장 설비투자 등 공격적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독점자본에 대한 핵심은 소유구조에 대한 지주회사, 출자총액제 등 개혁과 정책결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 독점이윤 및 잉여가치 전반에 대한 법인세 인상 등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인터넷 신문 '아이뉴스24' 2006년 7월 30일자에 실린 우리나라 독점재벌들의 지분현황이다.

삼성의 경우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이 0.85%(작년 발표는 1.2% 정도로 올랐다)이다. 총수일가는 이 지분으로 계열사 지분을 48.52%를 보유하며, 삼성그룹을 지배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된다.

 

총수일가가 5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놀이동산 '에버랜드'다. 51.1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지분으로 시작해서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을 13.34%, 삼성생명은 전자를 7.26%, 전자는 SDI의 20.4% 등 순환식 출자를 진행한다. 서로 물고 물리는 순환출자를 통해서 총수일가는 1%의 지분으로 전체 그룹의 50% 가까운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주주자본주의를 외치는 자본주의 경제학에 있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96년 IMF구제금융 당시 기아, 해태 등 유수의 재벌들이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 순환식 출자가 가장 큰 몫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재벌사 중 한 곳이 쓰러질 경우 순환출자구조로 인해 그룹 전체가 무너져 갔다. 삼성 역시 총수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자동차 산업으로 진출이 대한민국 1위 그룹 삼섬을 몰락시킬 뻔 했다. 삼성이 몰락했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을 거다.

 

총수 1인의 과욕이 나라 경제를 망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재벌의 순환출자를 법제도로 제한하고, 의사결정에 있어 보다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본격화 되면서 이런 법제도에 의한 재벌의 규제가 허물어 지고 있다.

한 회사가 계열사에 출자를 할 경우 전체지분의 25% 이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출자총액제였다. 이 출자총액제가 김대중, 노무현을 거치며 완화되더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무력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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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10:18 2010/01/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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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5 - 잉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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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자본론 05 - 잉여가치

 

잉여가치를 늘려라

 

TIP. 이윤율과 잉여가치율

우리는 우리의 노동력을 추가 지출해서 생산해 낸 잉여가치를 얼마만큼 생산해서 자본가에게 빼앗겼는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잉여가치율을 계산한다.

잉여가치율이란 ‘잉여가치/임금’으로 잉여가치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착취율도 함께 증가한다.

반면 자본가는 자신이 투하한 총자본으로 얼마나 많은 이윤(잉여가치)을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이에 자본가들은 이윤율이란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윤율이란 ‘이윤(잉여가치)/총투하자본(불변자본(공장,기계설비,원료 등)+가변자본(임금))이다.

 

자본가들의 절대 절명의 과제가 도출된다. “잉여가치(이윤)을 늘려라”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늘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으며 폭력적으로 가장 단순하게 잉여가치를 늘이는 방식과 노동자들의 저항을 피해가며 교모하게 잉여가치를 늘이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전자의 방식은 가장 간단하다. 노동시간을 늘리면 된다. 이런 방식을 ‘절대적 잉여가치 의 창출’이라 부른다.

8시간 노동하던 것을 10시간으로 늘이면 된다. 늘어난 2시간 분에 대해서는 무급으로 늘이는 것이다. 그러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본가의 이윤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초기 실업자가 널려있고 빈곤이 상시화 된 상황에서 이런 비상식적인 방식이 통할 수도 있었다.

어리버리 회사 (8시간 근무)

산출된가치

이윤

투자된 자본

건물 감가상각

80만원

(10억/1250일)

400만원 (상품가치)

80만원

(400-320)

원자재

160만원

임금

80만원

(4만원 *20명)

이윤율

잉여가치율

320만원

0.25

1

 

무지막지 회사 (10시간 근무)

산출된 가치 

이윤

투자된 자본

건물 감가상각

100만원 (10억/1천일)

500만원 (상품가치)

120만원 (500-380)

원자재

200만원

임금

80만원 (4만원 *20명)

이윤율

잉여가치율

380만원

0.32

1.50

 

 위 표에서 본것 같이 무지막지란 회사가 강제적으로 2시간을 늘린다면 당연히 이윤의 양 (80만원 => 120만원) 뿐만 아니라 이윤뉼도 0.25 => 0.32로 늘어난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이건 말도 안되는 강도짓거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무지막지란 회사의 노동자들은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에 돌입할 것이 뻔하다. 이렇다면 무지막지란 자본가는 오히려 피해만 심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비상식적 잉여가치의 창출이 가능하기도 하다.

  

 <어! 쌍용차 공장 풍경이 달라졌네>

 

 절대적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시간을 강제로 늘리는 방식은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는 것 또한 포함된다. 위의 결과를 너무도 자랑스럽게 기사화 하는 경제지와 조중동의 작태를 보면 살아남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삶이 너무나 뻔하게 드러난다.

절반으로 줄어든 노동자들이 오히려 생산을 더한다? 자랑스럽게 기사화한 “평일 잔업과 토요일 특근으로 입술이 터졌지만 그래도 출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쌍용차 노동자의 말은 죽지 않기 위해 모든 권리를 버리고, 노동강도가 강화되던 말던, 내 건강은 상관없이 일만한다는 말이다. 절대적 잉여가치가 자연스레 창출되는 것이다. 노동력의 추가 지출의 두배 세배로 늘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언제까지 이런 노동력에 대한 착취로 기업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역사 였다.

기계를 파괴하고, 스스로 단결해서 단체행동을 하고, 더 나아가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며 총칼을 들고 혁명을 한다. 이런 노동자들의 저항에 정부와 자본은 타협책을 제시한다.

1819년 9세미만 아동고용 금지를 도입한다. 그럼 대체 그 이전에는 몇 살짜리 아이들이 일을 했단 말인가?

1825년 16이하 소년근로 주간 12시간 근로금지가 시행된다. 1819년 이전에는 9살 미만의 아이들도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1819년과 25년 사이는 9살에서 16살 아이들이 13-14시간씩 일을 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16살 이상의 성인들은 12시간 이상을 일 시켜도 된다는 말이다.

이시절의 노동자들의 일상은 아침에 엄마, 아빠, 아이들이 일어나 모두 공장으로 직행하고, 엄마는 기계장치를 조작하고, 아빠는 무거운 원료를 운반하고, 아이는 청소를 12시간 이상씩 하다가 차례로 집으로 들어와 잠을 자고 다음날 일나가는 기계을 것이다. 이러니 당시 노동자들의 수명이 채 30을 못 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1848년 1일 10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 1886년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를 기치로 5월 1일 총파업을 전개, 지금까지 노동절로 전세계의 노동자들의 동시에 노동시간 단축을 외치는 날이 되었다.

 

돌아보자. 우리 노동자들의 상태는 어떤가? OECD 기준으로 최하위다.

우리 노동자들도 이제는 쉬면서 일할 권리가 있다.

 

  

노동시간을 아무리 늘리려 해도 하루 24시간 이상은 늘리지 못한다. 더욱이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자칫 잘못하면 자본주의 자체가 끝장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반발을 피해가며 잉여가치를 늘려야 한다. 다시 자본가들은 새로운 잉여가치를 찾아 떠난다.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받아가는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면 된다. 이런 방식을 ‘상대적 잉여가치 의 창출’이라 한다.

  

하나의 방식은 좀 단순하지만 필요노동시간, 노동력 재생산비를 줄여주면 된다. 박정희 정권 초기 미국의 값싼 농산물이 대거 유입된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력 재생산비의 핵심인 식대를 줄이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쳐 나간다. 노동력 재생산비가 줄어드니 저임금 정책을 강요해도 노동자들은 근근히 살아간다. 살길이 없는 농민은 도시로 유입된다. 대량 실업으로 인해 저임금 정책을 통한 경제발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한계가 분명히 있다. 언젠가는 곡물도 제 가격을 찾아갈 것이니까.

 

 다른 방식은 생산성을 늘리는 것이다. 동일한 노동량을 소비하더라도 생산량을 늘리면 절대적인 이윤량이 늘어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새로운 작업방식, 공정을 도입한다. 기계설비를 신형으로 교체한다. 교육을 통해 숙련도를 높인다. 이렇게 해서 인건비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늘린다.

 

자본주의 초기 개별 수공업자를 모아 공장제 매뉴팩춰를 개시한다.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며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후 분업을 도입하며 획기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된다. 전문 수공업자들이 하던 일을 기계가 도맡아 하며 기계제 대공업이 발달하며 자본주의는 완성된다. 이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포드주의로, 나아가 적기공급체계를 도입한 린생산 방식(도요타주의)로 발전하며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급격히 성장한다.

 

 

밀가루

제빵

노동시간

가치

임금

잉여가치

A

8

8

8

8

24

3

① 5

B

1

1

1

1

3

0.38

0.63

C

1

1

1

0.50

2.50

0.25

0.75

D

16

16

16

8

40.0

2.50

② 5.50

E

1

1

1

0.25

2.25

0.23

0.78

F

32

32

32

8

72.0

2.25

③ 5.75

G

1

1

1

0.13

2.13

0.21

0.79

H

64

64

64

8

136

2.13

5.87

  

좀 복잡한 표다. 그렇지만 간단하다.

A공정으로 가보자. 빵 8개를 생산하기 위해 자본가는 밀가루 등 원재료를 8만원어치 구매한다. 이어 제빵기계를 구입하고 그 감가상각분을 계산 8만원어치를 새로운 상품에 전이시킨다. 이어 우리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하고, 임금으로 3만원을 가져가고 ① 5만원의 잉여가치를 생산해 낸다. 즉 노동력을 재생산 할 수 있는 임금은 3만원이고, B처럼 단순화 시켜보면 3만원의 임금으로 노동자들은 빵을 1개 구입할 수 있다.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한다. 생산성이 두배로 뛴다. 그 이전에 한시간 노동하던 것을 30분만 일해도 생산량이 같아진다. C 공정의 노동시간이 0.5로 줄어든다. 빵 1개의 가격은 2.5만원으로 줄어든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똑같이 8시간을 일을 한다. 결과 D의 결과가 나타난다. 동일하게 8시간을 일했는데 생산해 낸 빵은 16개가 된다. 반면 이윤량은 5만원에서 ② 5만 5천원으로 근소하게 증가한다.

 

다시 새로운 생산설비를 도입한다. 동일하게 생산성이 두배로 뛴다. 결과 F 동일한 8시간 노동에 빵은 32개가 생산된다. 이윤양은 ③ 5만 7천 5백원으로 다시 근소하지만 증가한다. 생산 속도가 빨라진 만큼 불변자본에 대한 투하가 늘어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이윤의 절대량을 늘이기 위해 과잉생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돌입한다.

  

반면 A와 D를 개별 회사로 보자. A는 개똥이란 중소기업이고 D는 소똥이란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이라 가정한다. 개똥이회사가 빵 16개를 만드는데 투하된 총자본을 산출하면 밀가루 16+기계 16+임금 6 = 22만원이며 잉여가치는 ① 10만원이다. 소똥이회사의 경우 밀가루 16+기계 16+임금 5 = 21만원이며 잉여가치는 ② 5만 5천원이다. 빵 16개의 가격을 개똥이회사는 48만원에 소똥이회사는 40만원에 판매를 한다면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지므로 개똥이회사와 소똥이 회사는 담합을 하여 44만원에 팔기로 한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개똥이회사는 6만원, 소똥이회사는 6만 5천원을 챙기게 된다. 동일한 상품을 생산함에 있어 앞선 기술력이나 생산설비, 생산방식의 효율화를 가져와 경쟁사보다 높은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잉여가치의 창출 방식을 ‘특별잉여가치’ 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타 기업보다 많은 이윤을 위해 이 특별잉여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른 방식은 임금을 삭감하면 된다. 말도 안된다. 반발이 거세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비정규직을 만들며 실제 임금을 줄이기도 한다. 귀족화 된 정규직과 파편화된 비정규직. 투쟁 동력이 없으면 임금삭감을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도 가능하다.

  

자본가들은 절대적 잉여가치던 상대적 잉여가치던 이윤을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생산을 늘려간다.

이렇게 생산을 늘려가는 것을 확대재생산 이라 한다.

확대재생산에 대비되는 말은 단순재생산, 혹은 축소재생산이다.

 

단순재생산 이란 생산설비를 구입하고, 이후 원료비와 인건비 등을 구매, 생산을 진행하고 남은 이윤 중 자신이 소비하고 남은 새로이 생산에 투하하는 비용이 처음과 동일한 생산 형태를 말한다. 원료와 인건비로 50만원을 투하해 100만원의 이윤이 남으면 그중 50만원을 개인이 소비하고, 나머지 50만원만 다시 원료와 인건비에 투하한다. 다시 100만원의 이윤이 남고 그중 50만원을 개인이 소비하고, 나머지 50만원만 다시 원료와 인건비에 투하하는 단순반복 투자 형태의 생산을 일컫는다.

축소재생산이란 말그대로 50만원 투하해서 50만원을 남기고, 30만원을 소비하고 20만원만 재투하하고, 40만원의 이윤을 남기고, 이중 30만원을 소비, 10만원을 재투하하는 생산의 규모가 계속 줄어드는 생산방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도산할 수 밖에 없는 사업운영이다.

2009년 09월 06일 (일) 08:03 연합뉴스

쌍용차 생산성 구조조정 이후. 2800명이 한달에 5500대를 제작. 공장가동율 90% 이상

쌍용차 생산성 구조조정(법정관리) 이전. 5천여명이 평균 4784대 제작. 공장가동율 60%...

노조 전임자 수를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잔업수당도 반납했습니다. 업무강도가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출근해서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예전에는 근로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기피했으나 이제는 모두 자청해 즐겁게 한다고 전했다.

평일 잔업과 토요일 특근으로 입술이 터졌지만 그래도 출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파업사태 전에 조립공장에서 일했던 직원 480여명(현 350여명) 가운데 매일 월차를 내고 나오지 않은 직원이 50여명에 달했다"며 "월차예고제를 사용하면서 월차를 내는 직원이 거의 없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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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11:12 2010/01/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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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을 황소바람속 소백산에서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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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다.
암울했던 2009년.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오로지 부자들만을 위해 모든 정책을 강행하는 이명박 정권. 그 하이라이트는 12월 31일 밤에 이뤄졌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한나라당 독자로 4대강으로 위장된 대운하 예산이 오히려 정부의 원안보다 1억원이 증액되어 본회의를 통과됐다. 소통을 무시한 이명박정권의 막가파식 정치가 도를 더해간다. 야당의 무능도 빛을 더해간다.

 

암울한 2009년을 보내고 반격의, 희망의 2010년을 맞이하기 위해 신년산행을 기약한다.
황소바람으로 유명한 소백산 비로봉을 간다. 새벽 2시 모여 출발한다.
오늘의 목표는 어의곡통제소에서 비로봉에 올라 해돋이를 본 후 국망봉을 거쳐  늦은맥이재에서 다시 어의곡 통제소로 내려오는 능선종주였다.
 

부지런한 일행들이 다섯시도 되기 전에 오르기 시작한다. 해돋이가 동해가 7시 30분이면 비로봉은 빨라도 7시 4-50분인데...
헤드렌턴이 말썽이다. 배터리가 다됐나 싶어 갈아보아도 들어오질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은 배터리가 얼어 기능이 죽었었다) 다행히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눈밭에 비춰 랜턴이 없이도 길을 갈 수가 있다.

 

오늘도 팀웍은 생각도 않는 형님이 뒷사람들은 염두에도 없이 저 혼자 기어오른다. 여기에 지기 싫어하는 형님 역시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렇게 오르면 두시간이면 오르는데... 그랬다가는 비로봉에서 황소바람 맞으며 죽음인데... 시간조절을 하면서 오르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역정을 낸다. 국망봉에서 보면 된다고 하며 그냥 오른다. 뒤에 형님은 계속 쳐지는데...

 

어쩔수 없다. 내가 페이스를 조절하면 설마 앞에서 기다리겠지 하면서 여유를 갖고 뒤에 형님을 챙겨가며 올라간다.

 

능선에 돌입하기 직전, 일단 멈춰서 뜨거운 물한잔 하며 옷차림을 정비한다. 다행히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얼른 고어텍스 자켓을 벗고 우모복으로 갈아 입니다. 지난 태백산에서의 고통을 재연하고 싶지않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이 입는다는 우모복으로 단단히 동여매고 능선에 오른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바람의 세기로는 한라산 다음으로, 춥기로서는 태백산 야간등반 다음이다. 아이들은 황소바람에 오르기를 포기한다. 성인들도 계단의 밧줄을 잡고 간신히 버티며 비로봉으로 향한다. 살을 에인다는 표현으로는 불가능하다. 비로봉까지 가는 3-400m. 정말 끔찍했다. 뒷사람 생각않고 혼자 올랐던 형님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딱 맞았다. 비로봉에 도착하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서 디카를 꺼내드는데... 먹통이다. 당연하다. 기온이 -18도다. 바람까지 하면 체감온도는 -30도는 되는 것 같다. 당연히 배터리가 얼어 디카는 먹통이다. 이럴때를 대비해 DSLR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바람과 추위로 촛점을 잡을 수가 없다. 떠오르는 해에 촛점을 맞추려는 왼손이 거의 마비 상태다. 주변은 온통 새해을 맞는 즐거움과 추위와 바람에 의한 비명으로 가득하다. 아니 너무 추워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울고 있다. 정말 추위와 바람이 장난 아니다. 1월 1일 7시 40분 그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 맘속에 간절히 빈다. "제발 이명박 좀 안 보고 살게 해달라"고...

 

초 스피드로 사진을 찍고 다시 황소바람을 맞으며 피난한다.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포기다. 함께 간 이들의 차림이 그리 당부를 했건만 얼어죽기 십상이다. 이미 몇몇은 제정신이 아니다. 바람만이라도 피하니 살 것 같다. 이미 우모복을 입은 부위를 제외하고는 얼어버렸다. 손가락과 발가락에 감촉이 사라졌다. 허벅지는 찢어질 것만 같다. 우모복으로 중무장한 내가 이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정말 사색이다. 뜨거운 물로 몸을 살짝 데우고 아이젠을 하며 하산 채비를 한다.
 

뜨거운 라면으로 몸을 녹일 생각에 가스버너를 꺼내는데... 역시나 먹통이다. 가스가 얼었다. 버너 고장이란다. (집에 돌아와 켜본 결과 버너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포기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하산길에 오른다. 두시간 여의 하산길... 오로지 빨리 하산하자라는 마음밖에 없다. 온통 따뜻한 해장국만 어른거린다.

 

정말이지 추웠다. 2년전 태백산 해돋이 산행을 한 이후 처음이다. 이리 추운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산행일 거다. 물론 같이 갔던 이들 모두... 정말 고생 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뉴스, 우리가 소백산으로 떠나는 그 시간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예정에도 없던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노동관계법을 상정, 통과시켰다는 비보를 들었다. 정말이지 너무 막간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새해을 맞이 한 것 처럼, 올 한해 반격을 준비해야 겠다. 맘 단단히 먹고...

 

 

 2010년 오전 7시 37분. 소백산 비로봉앞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정열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속에 떨며 일출을 보고 있다.

 

 저 멀리 연화봉까지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추웠다. 차림은 희말라야 가는 차림이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거다. 그 추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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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2 19:00 2010/01/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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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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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법 개악 저지 ‘충북노동자 결의대회’ 개최

 

조장우 미디어충청 기자 (youthtree@nate.com)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29일 한나라당 충북도당 앞에서 ‘민주노조 사수, 노동법 개악 저지, 한나라당 해체를 위한 충북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및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등의 사안을 법률로 규제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오히려 노사간, 노정간의 갈등은 더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보아도 상식을 넘어서는 개악법률이라는 지적을 했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이정훈 본부장은 대회사를 통해 “노사정 밀실야합을 깨기 위해서 지금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며, 노동법 개악안을 당장 폐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노조활동 자체도 부정하는 이명박 정부의 본심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복수노조 2년 유예, 전임자 임금 ‘타임오프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그리고 금속노조 오병욱 캄코지회장의 ‘노사정 밀실야합 규탄’, 공공노조 김선태 충북본부장의 ‘4대강 삽질 규탄과 민생예산 확보’, 전국화학산업노조연합 박상대 의장의 ‘민주노조 사수와 총파업투쟁 결의’ 등 힘찬 투쟁사가 이어졌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갈등 증폭 법안’이자 ‘국제적 망신살 법안’, ‘노동 후진국 회기 법안’의 폐기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고양이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쥐박이 쥐포를 굽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 당기를 불태우면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28일부터 소속 모든 단위노조에서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비상대기 및 노조사무실 내 농성돌입, 사업장 출퇴근 선전전, 시내 곳곳에서 매일 대국민 선전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또한 30일에는 충북지역 500여명의 조합원들이 상경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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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09:48 2009/12/3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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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만만히 봤다가 큰 코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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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갈림길 (20분(0.6Km)) 벽련암 (75분(1.6Km)) 서래약수 (25분(0.6Km)) 불출봉 (45분(1.1Km)) 내장사합류점 (50분(1.5Km)) 까치봉 (5분(0.3Km)) 신선봉갈림길 (45분(1.1Km)) 신선봉 (15분(0.5Km)) 신선약수안부 (15분(0.6Km)) 연자봉 (45분(1.4Km)) 내장사 - 총 소요시간 : 6시간 총 소요거리: 9.3 km

 

단풍의 산 내장산을 간다. 워낙 단풍의 산이라 해서 산 자체는 별로 어렵거나, 이쁠 거라는 기대는 안했다. 다만 지난 주에 눈이 워낙 많이 왔다고 해서 눈산으로 가자고 충동질을 해서 떠난다. 떠나는 길 황사에다가 가는 겨울비까지 내린다. 젠장이다. 분명 어제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눈이 정상에는 많이 쌓여 있다고 했는데 이 비로 녹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침 여덟시 길을 나선다. 일주문 바로 전 우측으로 백련암 가는 언덕으로 오른다.

오르는 길. 정말 많다. 겨우살이가 가득하다. 겨우살이는 참나무 등에 기생한다는데 항암작용에 탁월하다고 해서 왠만한 산에서는 구하기가 어렵다. 대나무에 톱을 묵어서 자르던지 해서 다 채취한다고 하는데 내장산을 그런면에서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온통 나무가 겨우살이로 가득하다.

 

백련암 가는 길 백련약수가 졸졸 흘러 나온다. 겨울이라 물을 받을 만큼은 아니다. 받아먹으려 해도 워낙 양이 적어서 포기한다.

 

전날 먹은 술을 백련암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서래봉으로 다시 오른다. 오전까지는 약한 황사가 남아 있다고 하니 시계는 꽝이다. 바로 앞 장군봉도 가물 가물 하다.

서래봉에 오르니 칼바람이 옷깃을 여민다. 눈은... 흩뿌리는 것 빼고 거의 없다. 어제 비로 다 녹아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눈산행은 포기다. 아이젠으로 땡땡히 언 얼음산과 싸워야 할 것 같다.

 

서래봉에서 불출봉 가는 길. 정말 미치겠다. 채 십 센티미터 정도의 위태 위태한 계단이 바짝 서있다. 발 디디기가 너무 위험하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끔찍하게 내려간다. 거의 바닥까지 얼음산을 위태위태하게 내려간다. 길이 맞나? 하는 의구심 마져 든다. 다행히(?) 관리공단 직원을 만난다 이길이 맞단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그 길을 간다며 앞장선다. 순간 우리와 우리 뒤에 오던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버린다. 유괘한 산행에 불청객이 끼었다. 젠장... 어쩔수 있나? 간다.

 

불출봉 가는 길도 녹녹한 길이 아니다. 암산이라 곳곳이 위태 위태하다. 계단이 너무 좁아 거동도 어렵고, 곳곳에 얼음이 얼어 아이젠도 잘 안 박힌다. 어려움속에 오른 불출봉은 참 이쁜 비경을 안겨준다. 잠시 쉬면서 공단 직원들에게 사과주스를 주며 슬쩍 물어보니, 다행이다. 이 사람들 여기서 내장사로 내려간단다. 그러면서 만해봉 길찾기 힘드니 조심하라고 걱정까지 해준다. 사과주스 한개의 효과다.

 

그나마 눈꽃이 남아있는 만해봉에 오르니 바로 옆 정읍시와 저수지가 훤히보이고, 멀리 서래봉 등 우리가 지나온 길과 신선봉 등 가야 할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주를 한잔하고 이제는 제법 눈이 발목까지 남아있는 능선 종주를 시작한다. 내리기는 급경사인데 오르기는 완만한, 그렇지만 눈과 얼음으로 위태한 종주를 하며 연자봉을 거쳐 까치봉에 오른다.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메다가 30분 정도 더 전진해 헬기장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간 라면과 먹다만 쇠고기, 만두 등 잡탕찌개를 맛나게 해치운다.

 

배를 두드리며 내장산 최고봉 신선봉으로 향한다. 지금까지의 봉우리는 표지석 하나 없더니 최고봉이라고 커다란 표지석까지 준비해놓고 있다. 사람들이 꽤 있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온 일행들이다. 에궁...

 

남은 내장산 8봉 중 일곱번째 봉인 연자봉에 오른다. 일행 중 한명이 꼭 내장사에서 백팔배를 해야 한다고, 장군봉을 남겨두고 하산 하자고 한다. 아쉽지만 능선종주 8봉 중 장군봉을 남겨두고 하산한다.

 

하산길. 이 사람들. 케이블카를 타고 와서 아무 준비없이 내장사로 내려간다. 땡땡하게 얼어 붙은 급경사를 위태 위태하게 내려간다. 다행히 여유분의 작은 아이젠이 있어 아주머니에게 빌려주고 내장사로 내려온다. 내장사에 도착한 부부,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제발 겨울산 아이젠만큼은 챙기시기를... 여차하다 골로 간다.

 

기대한 눈산은 아니었지만 참 이쁜 산이다. 단풍은 이 땅에서 제일이란다. 다만 시즌에 오면 차와 사람에 쳐 죽는다니 주중 휴가라도 한번 내서 와봐야 겠다.

 

 

내장산 개념도

 

초입 일주문. 일주문은 옆으로 돌아가는 거란다. 정문이 아니라.

 

백련약수다. 똑똑 떨어져 먹을 수 가 없다. 

백련암 가는 길 우리 일행들이다.

 

백련암 담벼락 너머 서래봉이다. 

서래봉 가는 길.  얼음이다. 끔찍하다.

 요런 암벽을 넘나들어야 한다.

서래봉에서 바라본 좌측이 백련암이고 우측이 내장사다.

 가야 할 길, 오른쪽이 불출봉, 가운데가 만해봉이고 좌측 옆이 연자봉이다.

불출봉 가는 길 이런 위태위태한 계단의 연속이다.

 불출봉에서 바라본 서래봉.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다.

눈꽃이 만발한 만해봉 정상이다.

연자봉 가는 길에 눈꽃이 만발한 소나무가 바위를 뚫고 늠름하게 서있다. 

최고봉. 신선봉이다. 만만한 산이 아니다. 저 뒤로 서래봉이 보인다. 

천연기념물이라는 굴거리 나무란다. 잎사귀가 말라 비틀어져 왠지 을씨년 스럽다. 

가지 가지에 피어있는 겨우살이. 이 나무 하나면 일년은 끓여 먹을 수 있겠다. 

 내장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서래봉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단다.

이게 말라 비틀어지지 않은 굴거리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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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7 14:12 2009/12/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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