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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뺀 마이그런트들의 축제를!

  • 등록일
    2006/05/29 23:00
  • 수정일
    2006/05/29 23:00

물론 어떤 기대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다.

약 3주 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온 J와 만나서 수다떨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그 친구도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던 차에, 마이그런트 아리랑엘 가자고 했던 것이다.

행사가 열리는 올림픽 공원은 여기저기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북적거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각국의 부스에는 전통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과 악기들,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나라별 부스를 지나니 법무부와 문화부의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해 마이그런트 아리랑은 수년동안을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이주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완전히 배제되고, 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상당히 고압적인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 이주활동가들은 벽에 몰래 "강제추방 반대"나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등등의 구호등을 적어넣기도 하고, 주최측과 정부의 눈치를 보아가며 구석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

속추방 반대 서명을 받으며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지만,

행사를 보는 내내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삭히며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해야 했다.

 

올해 마이그런트 아리랑은 작년에 비해 더 노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인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

한복은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얼굴이 뚫린 인형에 이주노동자가 뒤에서 올라 서면, 한복을 입은 이주노동자 인형이 된다. 스피커에서는 한국을 홍보하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윤도현인지 누군지가 부른 월드컵 노래도 나온다.  

문화의 다양성은 전시되어 있는 옷가지와 음식들로 간단히 대체된다. 

이런 문화들을 숨긴채 한국 노래를 부르고 김치를 먹고, 한복을 입고, 한국을 사랑한다며 가끔 아첨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이주인들의 현실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우리는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줘!" 하며 애원하라고 강요한다. 이건 그야말로 주인이 노예에게 힘을 보여주는 가장 야비한 방식이다.

 

이번 마이그런트 아리랑에서 나를 더욱 아연실색케 했던 것은,

"코리아 드림, 디딤돌이 되겠습니다!"라고 프랭카드를 내걸어 놓고,

가짜 여권과 진짜 여권을 식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법무부 부스였다.

한국인이 되라며, 한국인이 되지 못하면 시늉이라도 하라며, 한국 문화에 동화될 것을 요구하는 정부가 정작 이주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보장못하겠단다.  한국인이 되라고 하고서는 진짜 한국 시민으로서의 지위는 주지 않겠다고 한다. 시민의 지위는 커녕 제대로된 노동자의 지위도 못주겠단다. 그저 3년 정해진 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고 나가란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우리가 정해놓은 기간만큼만 너희들은 일해주면 된단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이 땅에 아예 뿌리 박을 까봐 안 된단다. 너희들의 정주화는 단일민족인 우리의 피를 흐리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단다.

 

이런 조건속에서 정부가 어떻게 디딤돌이 되겠다는 것인가? 그 디딤돌에 올라가다 아래로 떨어지면 꿈이 깨져버린다는 것일까? 얼마전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출입국의 추격을 피해 3층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처럼...

 

솔직히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정부는 그렇다고 쳐도 이주노동자 센터들이나 외노협쪽 활동가들이 이런 행사를 정부 눈치보며 주도하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문화적 다양성과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보다 널리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 걸까? 권력에 기대는 척 하며 권력을 이용해야한다는 그 흔한 구실과 변명에서 일까?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에서라도 돈을 받아 뭔가 크고 근사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엘리뜨들이 가진 그런 외양과 사이즈에 대한 강박일까? 아니면 권력을 향한 의지인가? 아니면 단순한 매너리즘인가?

 

어차피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그렇게 많이 불러모을만큼 동원력이 없다.

그래서 각종 단체와 센터에 프로젝트들을 맡기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을 아예 맡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조건을 붙이는 것만으로 약간의 탈주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무부의 부스는 차리지 않는다는 조건,

축제가 열리는 그 주 동안에는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

한국문화를 배제하겠다는 조건,

보다 자유롭게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해준다는 조건 등등.

지금의 마이그런트 아리랑은 그저 관의 시녀역할을 할뿐이다.

 

약간의 탈주가 시시하다면 그냥 저항하면 된다.

행사장 앞에서, 법무부 부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자.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무시하는 마이그런트 아리랑을 당장 중단하라."

"한국인의,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마이그런트 아리랑"

"단속추방을 즉각 중단하라" "아리랑 뺀 마이그런트의 축제를 준비하자" 등등

무수히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이번 행사에서 이런 시위를 친구들과 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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