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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여행

  • 등록일
    2008/11/06 16:55
  • 수정일
    2008/11/06 16:55

한동안 또 블로그에 너무 뜸했다.

뭣부터 써야 할까... 외면에 내면에 일어난 일들은 많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겪었던 일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는 것처럼

마음의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 경험의 홍수, 경험에 대한 해석의 홍수 속에

머리는 연일 홍수, 그 속에 신기하게도 마음은 바짝 말라만 간다.

 

늘 했던 일, 보았던 것, 들었던 것, 말했던 것들을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지만,

기록은 정리가 아니던가, 글은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틀로 조직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정리와 조직의 강박이 기록으로부터, 글로부터 도망치게 했던 거다.

게으름, 나태함, 쉽게 할 수 있는 변명이지.

사실은 두려움이 글로부터 도망치는 깊은 이유가 아니던가.

나태함을 가장한 소심함으로 행동의 세계에서 뒤걸음질 치듯,

결국은 '나'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뜨끈뜨끈해질 대로 더워진

뇌를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는 지쳐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냥 하늘에 구름 몇 점 무심히 떨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쓰고 싶었다.

 

 

바람은 그저 자유로울까?

어쩌면 부딪히는 힘들 속에 긁히고 멍들고 아파하는 그 속내를

내가 모르는 것일지도...

 

회사일로 프랑스 칸과 니스엘 갔다.

그곳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변,

밤이면 둥근 달이 금빛으로 빛나고, 그 아래

아랍 대부호들의 호화로운 요트가 떼로 정박해 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사치스런 모나코 몬테 카를로스 도박장과 명품 거리,

가게 앞에는 검은 양복을 차리입고  무전기를 든 가드들이

아마도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리라 여겨지는 보석 드레스를 지키고 서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떼제베를 타고 파리를 들리는 길에,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남프랑스의 시골 풍경을 보며,

"팀장님 전 이만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 도보여행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옆에 앉은 보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음 역에서 내려보는 상상도 했었지.

 

파리는 소문대로 불친절했지만, 한편 그들이 불친절이 부러웠고,

저렇게 감정노동을 하지 않으니 그 감정은 얼마나 풍요로울까도 생각했다.

몇 개월을 파리에 살아봤다는 에릭은 파리인들을 "나태하고 시니컬하고 무관심하다"고 묘사했다.

만나면 호들갑스럽게 인사하고, 뽀뽀하고, 살뜰히 알뜰히 챙겨주는 그 친절하기로 소문난(?)

에릭이 사랑하는  콜롬비아인들의 뜨거운 기질에 비하면 파리인들은 너무 차가운 측면이 있는 것도 같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

 

정해진 코스대로 베르사이유를 가고, 루브르를 가고 오르세 미술관을 갔다.

지하철 역무원은 내가 "루.브.르"하면 못알아 듣는다.

혀를 잔뜩 긴장시켜 목구멍으로 살짝 말아넣은 듯한 발음으로

' 뤼브ㅎ' 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불어 읽는 법을 배워왔더라면 그런 고생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을.

 

찬란했던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로부터 강탈해온 온갖 보물들이 가득한 루브르 박물관,

"아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에서 본 우첼로의 전투 그림은 생각보다 컸지만 좀 어두침침했고(아마도 보관의 문제), 한때 도서관에서 심심하면 즐겨보곤 하던 전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 몇 점을 입을 떡 벌리고 감상했다.

모나리자는 그냥 통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인상주의 이후 작품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납작납작하게 물감을 바른 세잔의 정물화는 구도의 꽃이라 할만 하고,

사진의 재현 방식과도 같은 드가의 그림을 보면,

사각형의 그림틀 안에 모든 요소를 그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서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이후 그림들의 그 고루한 강박에서 벗어나,

잘린 시선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

잘린 몸뚱아리가 얼마나 더 완벽하게 완전한 몸뚱아리를 상상케 하는지를 증명하는 듯,

구석에 앉은 술집 여인의 그림만 보아도 그 현실적 맥락이 느껴지는 듯,

강박 없는 리얼리티, 무심코 찍은 사진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예전에 바라가 그랬지, 가장 잘 찍은 사진은 그냥 잘 찍으려는 생각없이 무심코 눌러 찍은 사진이라고.

특히 요즘같은 복제도 그냥 복제가 아닌 디지털 복제 시대에 예술 영역은 도처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그냥 허공 같다.

셔터를 눌러대는 공허한 동작이

내 안에 없는 진실을 담아내려는 듯...(앗, 내가 언제 이렇게 본질주의자였던가)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킹왕짱'라는 동어반복적인 새로운 유행어가 떠돌고 있고,

증시는 연일 바닥을 치고, 예금대신 작년에 가입한 펀드는 반토막이 나 있다.

진보 지식인과 경제 학자들은 연일 빈곤을 준비하라는 칼럼을 쓰고,

친했던 친구들은 외국에 뿔뿔히 흩어녔다.

에릭이 가고, 마지막 인사할 때 그의 눈에 맺힌 따뜻한 눈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귀농하겠다면 고향 택사스로 돌아간 한 친구는 살림살이가 어려워 다시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영어강사 일을 할 것 같다.

할아버지에겐 아직 안부인사 못했고,

이번주 토요일부터 일본어 강독을 다시 시작하고,

붑은 종합병원2에서 다친 외국인 엑스트라 역을 하러 아침 댓바람부터 촬영장엘 갔다.

오늘 저녁엔 베토벤 바이러스를 볼까 바람의 화원을 볼까 살짝 고민하지만,

강마에의 독설도 시들해지고, 바화의 플롯들도 뭔가 엉성하고 맥 빠지기만 한다.

오늘 서점에서산 책이나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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