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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4
    우리밀(6)
    무나
  2. 2008/11/13
    왜 애꿎은 사람들만 때려잡나?
    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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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마석에서
    무나
  4. 2008/11/06
    파리여행(2)
    무나

우리밀

  • 등록일
    2008/11/24 10:41
  • 수정일
    2008/11/24 10:41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주최로 전남 구례의 우리밀 공장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30년 전부터 유기농을 마을 단위로 실천해온  홍성 홍동면 풀무마을.

오리농법을 위해 길렀던 오리들이 주변 개울가를 활개치고 다니고,

텃밭에는 유기농 무우와 배추들이 소복하게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 안쪽에 자리잡은 유기농 제품 공장들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로 세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 구례 농업체험관이라는 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곳에는 80년말부터 우리밀을 제배하며 꾸준히 운동을 해오신 분이 있다.

그분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먹는 밀 중 우리밀이 점유하는 비율은 고작 0.2퍼센트,

그 비율도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안 했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종자라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는 우리밀 운동이지만

앞으로는 식량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또는 안전하지 않는 먹거리의 대안으로 충분히 떠오를만 하다.

밀은 초겨울에 심어서 봄에 재배하기 때문에 추수가 끝난 논과 밭에 심어도 되고,

겨울을 나기 때문에 따로 방충제를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단, 제초제를 뿌리는 밀과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밀이 있는데, 후자 앞에는 "친환경" 이란 수식어가 붙는 다는 것.

예전에 먹었던 우리밀은, 사실 질감과 맛이 좀 거칠다랄까?

그래도 자연스럽게 일반 수입밀가루에 입이 갔었다.

요즘 나오는 우리밀가루는 새로운 기계 등을 들여와 더 부드러워졌다.

하루에 밀가루 음식을 먹는 걸 계산해보면 밥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아침에 빵 한조각, 점심에 밥, 저녁에 스파게티나 국수, 간식으로 과자...

밥은 고작 한끼 정도를 먹는 것 같다.

물론 수입밀 안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거 하나 먹는다고 죽겠나'하는 하는 생각으로

사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먹다간 죽겠구나 싶어진다.

미국에서 기계와 농약으로 대규모로 제배된 밀을 20일씩 30일씩 운반해오는 과정에서

약을 치는데, 그렇게 해서 생산된 밀가루는 쥐도 안 먹고 바그미도 끼지 않는다.

어떤 이는 밀가루를 방충제 대신 작물에 뿌린다고 한다.

그런 밀가루를 하루에 두끼 이상을 섭취하면 정말 소리소문없이 죽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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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꿎은 사람들만 때려잡나?

  • 등록일
    2008/11/13 18:36
  • 수정일
    2008/11/13 18:36

그래 그렇다 치자.

국가 경제의 안정과 내국인 고용보장을 위해,

해외에서 유입되는 인력의 안전한 국가 관리를 위해

외국인 인력은 관리되어야 한다고.

그렇다고 치자고. 

(물론 이 전제에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근데 왜 외국인을 때려잡아야 하지?

미등록 외국인을 고용한 회사를 문닫게 만들면 되지 않나?

미등록 외국인 무서워서 못쓰게 만들면 되지 않나?

그러면 굳이 이주노동자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인권을 유린하지 않아도 될텐데.

들어올만한 이유가 없거나, 들어왔어도 일자리가 없으면 자연 나갈텐데.

사람 몸에 손끝 하나 안 대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근본적인 뿌리는 건들지도 못한채,

글로벌소싱은 꿈도 못꾸는 영세기업,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하나 세우지 못하는 주제에,

외국인을 불러들이고, 이들이 '불법'이 되게 하는 구조, 그놈의 고용허가제는 손도 못대고,

오직 궁핍한 변명, 미등록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100명씩 때려잡고 있다.

때려잡다, 뛰어내리고, 다치고, 죽는다.

 

좀 더 조용하고, 좀 더 인간적이여 보이고, 좀 더 평화로운

(그러나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똑같이 침묵하는)

그런 방법들이 있음에도 그 대안을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세계의 인권단체들에게 욕을 먹어도 때려잡는 방법만 능사란다.

왜?

 

타 인종과 타 문화에 대한 존중도 없고

특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무시하는 천박한 졸부 자본주의와

피가 절대 섞여서는 안된다는 파시스트적인 순혈주의.

외국인이니까 그것도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이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는 보통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거다.

더 나아가 예의를 배워본 적인 없는 교육현실이 문제다.

나도 한번도 초중고등학교때  인권교육이란 걸 받아보지 못했다.

인간이라면 피부, 종교, 문화, 빈부를 떠나, 똑같이 먹고 싸고 자고 사랑하고 놀고 일하며 산다는 것에 대한공감력과

그렇게 사는 것에도 조금씩 다 차이가 있다고 하는 차이에 대한 상상력,

이런거 배우고 훈련해야하는 거 아닌가?

 

다른 나라에서도 다 그렇게 때려잡는다고 하면,

단속 자체의 비도덕성과 비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지나?

남들 하니까 다 한다, 이게 변명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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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석에서

  • 등록일
    2008/11/13 13:07
  • 수정일
    2008/11/13 13:07

어제 마석에서 10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에 잡혀갔다.

100명이다 그것도 하루만에...

미친 MB정부, 그냥 썅... 욕밖에 안 나오네.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id=44592

http://migrant.nodong.net/bbs/view.php?id=news_notice&no=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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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여행

  • 등록일
    2008/11/06 16:55
  • 수정일
    2008/11/06 16:55

한동안 또 블로그에 너무 뜸했다.

뭣부터 써야 할까... 외면에 내면에 일어난 일들은 많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겪었던 일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는 것처럼

마음의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 경험의 홍수, 경험에 대한 해석의 홍수 속에

머리는 연일 홍수, 그 속에 신기하게도 마음은 바짝 말라만 간다.

 

늘 했던 일, 보았던 것, 들었던 것, 말했던 것들을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지만,

기록은 정리가 아니던가, 글은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틀로 조직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정리와 조직의 강박이 기록으로부터, 글로부터 도망치게 했던 거다.

게으름, 나태함, 쉽게 할 수 있는 변명이지.

사실은 두려움이 글로부터 도망치는 깊은 이유가 아니던가.

나태함을 가장한 소심함으로 행동의 세계에서 뒤걸음질 치듯,

결국은 '나'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뜨끈뜨끈해질 대로 더워진

뇌를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는 지쳐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냥 하늘에 구름 몇 점 무심히 떨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쓰고 싶었다.

 

 

바람은 그저 자유로울까?

어쩌면 부딪히는 힘들 속에 긁히고 멍들고 아파하는 그 속내를

내가 모르는 것일지도...

 

회사일로 프랑스 칸과 니스엘 갔다.

그곳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변,

밤이면 둥근 달이 금빛으로 빛나고, 그 아래

아랍 대부호들의 호화로운 요트가 떼로 정박해 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사치스런 모나코 몬테 카를로스 도박장과 명품 거리,

가게 앞에는 검은 양복을 차리입고  무전기를 든 가드들이

아마도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리라 여겨지는 보석 드레스를 지키고 서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떼제베를 타고 파리를 들리는 길에,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남프랑스의 시골 풍경을 보며,

"팀장님 전 이만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 도보여행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옆에 앉은 보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음 역에서 내려보는 상상도 했었지.

 

파리는 소문대로 불친절했지만, 한편 그들이 불친절이 부러웠고,

저렇게 감정노동을 하지 않으니 그 감정은 얼마나 풍요로울까도 생각했다.

몇 개월을 파리에 살아봤다는 에릭은 파리인들을 "나태하고 시니컬하고 무관심하다"고 묘사했다.

만나면 호들갑스럽게 인사하고, 뽀뽀하고, 살뜰히 알뜰히 챙겨주는 그 친절하기로 소문난(?)

에릭이 사랑하는  콜롬비아인들의 뜨거운 기질에 비하면 파리인들은 너무 차가운 측면이 있는 것도 같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

 

정해진 코스대로 베르사이유를 가고, 루브르를 가고 오르세 미술관을 갔다.

지하철 역무원은 내가 "루.브.르"하면 못알아 듣는다.

혀를 잔뜩 긴장시켜 목구멍으로 살짝 말아넣은 듯한 발음으로

' 뤼브ㅎ' 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불어 읽는 법을 배워왔더라면 그런 고생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을.

 

찬란했던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로부터 강탈해온 온갖 보물들이 가득한 루브르 박물관,

"아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에서 본 우첼로의 전투 그림은 생각보다 컸지만 좀 어두침침했고(아마도 보관의 문제), 한때 도서관에서 심심하면 즐겨보곤 하던 전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 몇 점을 입을 떡 벌리고 감상했다.

모나리자는 그냥 통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인상주의 이후 작품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납작납작하게 물감을 바른 세잔의 정물화는 구도의 꽃이라 할만 하고,

사진의 재현 방식과도 같은 드가의 그림을 보면,

사각형의 그림틀 안에 모든 요소를 그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서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이후 그림들의 그 고루한 강박에서 벗어나,

잘린 시선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

잘린 몸뚱아리가 얼마나 더 완벽하게 완전한 몸뚱아리를 상상케 하는지를 증명하는 듯,

구석에 앉은 술집 여인의 그림만 보아도 그 현실적 맥락이 느껴지는 듯,

강박 없는 리얼리티, 무심코 찍은 사진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예전에 바라가 그랬지, 가장 잘 찍은 사진은 그냥 잘 찍으려는 생각없이 무심코 눌러 찍은 사진이라고.

특히 요즘같은 복제도 그냥 복제가 아닌 디지털 복제 시대에 예술 영역은 도처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그냥 허공 같다.

셔터를 눌러대는 공허한 동작이

내 안에 없는 진실을 담아내려는 듯...(앗, 내가 언제 이렇게 본질주의자였던가)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킹왕짱'라는 동어반복적인 새로운 유행어가 떠돌고 있고,

증시는 연일 바닥을 치고, 예금대신 작년에 가입한 펀드는 반토막이 나 있다.

진보 지식인과 경제 학자들은 연일 빈곤을 준비하라는 칼럼을 쓰고,

친했던 친구들은 외국에 뿔뿔히 흩어녔다.

에릭이 가고, 마지막 인사할 때 그의 눈에 맺힌 따뜻한 눈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귀농하겠다면 고향 택사스로 돌아간 한 친구는 살림살이가 어려워 다시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영어강사 일을 할 것 같다.

할아버지에겐 아직 안부인사 못했고,

이번주 토요일부터 일본어 강독을 다시 시작하고,

붑은 종합병원2에서 다친 외국인 엑스트라 역을 하러 아침 댓바람부터 촬영장엘 갔다.

오늘 저녁엔 베토벤 바이러스를 볼까 바람의 화원을 볼까 살짝 고민하지만,

강마에의 독설도 시들해지고, 바화의 플롯들도 뭔가 엉성하고 맥 빠지기만 한다.

오늘 서점에서산 책이나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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