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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수교육보조원으로 공익근무를 하고 있다.내가 돌보는 학생은 아닌데, 3학년에 자폐? 증상이 있는 학생이 한 명 있다. 여자애다.
이 녀석이 작년엔 안 그러더니 올해는 매일마다 반에서 오줌을 싼다던지
말썽을 피운다던지 한다.
작년엔 안 하던 짓을 올해는 왜 하는 것일까? 이게 그냥 단순하게 이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한국사회의 비극이 있다.
올 해 이 학생의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한 20년 교사 생활을 하신 분인데
그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장애학생을 맡은 게 '처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학생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무관심, 모르쇠'다.
아마 이 분이 나쁜 사람이어서, 뭔가 그 학생이 싫어서 학생을 막 대하는 것이거나
무관심한 것이라면 실컷 욕이라도 해 주면 될 텐데 그게 아니다.
이 분은 '모른다'. 장애학생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그 두려움은 이내 짜증으로 자라난다.
"왜 이런 '이상한 애'가 있어서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이 안 되는 것일까?"
그 학생이 선생님의 그런 기분을 모를리 없다. 말로 다가오는 게 없어도
아이들은 눈치로 다 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학생 역시 그 반에서의 수업에 더욱 더 애정이 떨어지고
자꾸만 말썽을 부리는 거다.
그럼 학교 혹은 국가에서는 그 학생을 그냥 방치해두었나?
아니다. 교육청에서는 '특수교육보조원'을 두어서 그 학생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런 선생님과 만나면 본인이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기도 한다. "보조원이 있으니깐 뭐...."라는 식이다.
게다가 이 선생님.
지난 주 토요일에는 "나 얘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다. 얘 좀 그냥 특수학급에서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 때문에 너무 힘들다.ㅡㅡ;; 그 애도 당신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거다.
사실 그 선생님이 보조원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은 하루에 한시간도 안 된다.
그 하루에 한 시간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거다.ㅡㅡ;;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사고가 터졌다. 이 학생이 가위를 집어 던진 것.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선생님은 너무나 화가 나고 겁이 나서
또 특수학급에 전화했다.
"얘 좀 그냥 특수학급에 넣어 달라. 안 된다면 교장, 교감한테 이야기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 난 도저히 얘 못 보겠다."
나는 별로, 이 선생을 욕하고 싶진 않다.
욕 먹어야 할 건 너무나 단일지향사회인 우리 사회고, 지금까지의 장애인 차별의 역사다.
교사, 특히 초등학교 교사는 다 교대 출신이다. 서울의 교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서울교대"라는 한 학교를 나왔다.
이 분들은 거의가 계급적인 위치도 비슷하고, 교육수준도 비슷하고, 살아온 길도 비슷하다.
아니, 거의 같다.(이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회생활을 수 년간 해온 사람들이 그 바깥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 장애인이 그렇게 많지만... 막상 저런 사람들이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만나고
접해보는 건 참 힘든 일인 것이다.
교대에도 교사가 되려는 장애인들이 1/10은 되어야 한다. 1/10은 전체 인구 중 장애인의 비율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사가 되고, 자연스럽게 '교사들의 사회생활' 속에서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암튼 쫌 슬프다.
도무지 노력할 생각을 하거나, 자신의 무지함과 무력함을 탓할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 걸 다 학생 탓으로, 특수학급의 몫으로 돌리는 저 선생님의 무능함도 싫지만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거대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게 쫌 우울하다.
그냥 우울해서 횡설수설이다...ㅡㅡ;;
나도 이런데 그 애는 어땠겠나... 정말로 "가위를 던질만큼 싫었어."가 아닐까.
댓글 목록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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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보다가 보니 저도 급 우울해지는군요... 그 교사의 문제는 그렇다치고 이런 인식구조가 "너무나 단일지향사회인 우리 사회고, 지금까지의 장애인 차별의 역사"때문에 자리잡혔고,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 더 아프군요.부가 정보
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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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탓하며 혹은 든든해하기도하며 그래서 은근슬쩍 책임을 미루면서들 제자리걸음걸음걸음 : 저 아래부터 차근차근 같이 살피지 않고 당장만 봉하느라 정신없으니, 참 그래요,,문득(언제나 그렇듯이) 적극적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들춰내고 소통하는 데 참으로 어려운 사이/공간 : 어떻게? 어떻게? 움,, 점심 먹으며 곰곰 생각해봐야겠당
(ㅎ학교에 있군요 요즘 : 왠지 이야기하고 싶은 거 무지 많을 거 같은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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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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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라는 게 얼마나 편한 변명이고, 안전한 도피처인지...안 그러려고 하지만 자꾸 그렇게 생각이 되는 요즘입니다.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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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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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많은 이들의 피흘림과 투쟁을 통해서 제도는 참 좋아졌는데, 그것을 현장에서 다루고 적용해야 하는 교사들은 아직 변화가 참 많이 부족하다는 거...ㅜㅜ괭이눈/흑흑.ㅜㅜ 저는 그 선생님이 좀 차분하게 '생각'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어요. 조사도 좀 해 보고. 작년에는 안 그러던 애가 올해는 왜 저러는 걸까, 내가 저 애와 어떻게 관계 맺으면 좋은 걸까. 정도만이라도. 근데 그게 힘드신 것 같아요....
거리/저도.. '무지'를 이유로 도피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거리님 말대로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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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ㅇ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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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해마시라 : 여기서 서로란 교육당국의 여러 정책이나 제도 등과 교사 사이를 말하는 거ㅎ(한편) 전교조 분회 사람들한테 생각해보자고 띄웠더니 특수학급 선생님이 이런 답신을 :
그러게요.. 저는 이런 경우 많이 접해봤습니다.. 제가 노력해도 해줄수 없다는게 안타까웠죠...
=======
일반 학교 특수학급 교사들은 그대 글에 특히 공감할 것 같은데..
그때,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이야기하면 일반학급 교사들도 좀더 관심을 가지고 긴장하지 않을까 싶은데.. 한편, 그게 말이 쉽지, 혼자서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노력하는 건 역시 힘들겠다 싶기도 하고 말해도 귓등으로 그냥 넘기는 모습을 보면 힘이 딱 빠질 것 같기는 하네요 : 아, 어렵다 어려워
(글구 나 또한) 담임일 때와 달리, 전담인 요즘엔 열개 반 중 두개 반에 특수학급 학생이 있는데,, 그 시간을 넘으면 안되니까 꽉 짜여진 수업대로밖에 못하는 상황에서, 좀더 느긋하게 그애들한테 맞는 수준의 무엇인가를 건네기가 참 힘들어요,, 과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_ 여튼 재미나하며 듣고 있을 땐 몰라도 아무것도 안하려고 할 때는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긴 해요
그래서 그 아이 또는 그 아이와 관계하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나눠야 할텐데 참 안되는 게 사실....끙;
하지만 적어도 반 친구들이 교사가 누군가가, 자기를 다르게 바라보고 대하느냐 아니냐는 정말 날카롭게 감지되는 것 같은데 : 그런 의미에서 서로의 소통에 게을러지는 + 은근 외면하려는 내 자신을 좀더 냉혹하게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움움
(근데근데) 쫌 놀랐다는! 특수교육보조원으로의 공익근무를 위해 최소한의 연수나 교육도 따로 없이 투입된다면서요? 그대같은 친구라면 모를까ㅎ,, "과연 움,,,," 싶은데_
여튼 쏘주 먹고 싶은 날씨_ 곱씹을 안주꺼리도 있겠다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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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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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일상화된 관행과 제도를 바꾼다는 건, 참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내요.부가 정보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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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눈/맞아요, 공익근무요원 쓰는 거 열라 문제 많죠...ㅡㅡ;; 4급 판정을 받는 것도 사실 사정이 다양한데(훈련소에서 제 옆 자리엔 '포주'가 있었죠..ㅡㅡ;;) 게다가 교육 일주일 하긴 하는데 다 자요. 뭐, 돈을 받고 제대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국방부 시계만 쳐다보고 사는 공익이 뭐 하러 열심히 하겠어요.ㅜㅜ도토리/감사합니다~ 사실 저야 그닥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특수학급 선생님이 열라 고생하시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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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단에 같은 장애우 선생님이 계셔야 한다는 말씀이 귀에 들려옵니다...성취되시기를 빌어드립니다...부가 정보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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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확률인걸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