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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깨달음

 

"세상에는 오직 한 명의 그리스도인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 니체 

 

 

 

소중한 친구요, 스승이요, 도반인 창섭씨가 예전에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깨닫는 이들'은 그들의 별자리 차트를 해석하다보면 "죽음"이 여러번 나온다고.

즉, 깨닫는 것과 죽음은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영지주의 문헌 속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웃으며 죽는다.

"아, 이제 내가 이 육체를 벗어나는구나."하면서.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라기보단 그것이 과연 성자다운 태도였을까.)

 

그는 정말로 죽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하느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면서.

그가 진실로 죽었기에 그는 진실로 부활할 수 있었다.

 

 

 

요즘 전보다 기도가 조금씩 깊어지면서

나에게도 깊은 어두움이 있다는 걸 요즘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이 어두움은 이전에 내가 고민하던 '죄'(기독교 도덕론의 견지에서의)와는

다른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나태함이라던지, 건강문제라던지, 거짓말이라던지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평생 이 단계에서 머물러 산다.)

 

그보다 더 심층의 어두움.

빛이 강할 수록 더 진하게 나타나는 그림자로서의 어두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어떠한 종류의 '힘'에 대한 추구인 듯 하다.

 

이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내가 진일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일보하는만큼 이 어두움 또한 나를 붙잡을 것이다.

 

창섭씨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내 차트에서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

이건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지 않는 것.

이건 위험하다. 아예 영적으로 진일보하지 않는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음을 받아들여야 인간은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연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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