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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30
    냥이 삼형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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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1/28
    바람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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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1/26
    이렇게 길냥이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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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1/25
    나는 애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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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1/20
    옛 글을 퍼오다.(양성 쓰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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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1/17
    나비랑 나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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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1/17
    나비랑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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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1/14
    바비킴- 고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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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1/14
    세상에서 질루 이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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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1/13
    진짜 마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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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약값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했지만 수술했을 때 떼어낸 조직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양성종양이라고 안심했었다. 회복될 일만 남은 것 같던 아버지는 다시 악화되고 방사선치료까지 받았지만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방사선이 효과가 없는 걸로 봐서 악성종양, 즉 '암'인 것이 거의 확실한데 그래서 항암제를 드시고 계시는데 문제는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안나왔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암판정'을 못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보험 적용이 안된다. 의료보험 재정의 낭비를 막기위해서 만든 규정이겠지만 참 웃기는 일이지. 그렇다면 형식상의 논리로는 암이 아닌데 의사가 항암제를 처방한 게 되는 거다. 한달에 5일간만 복용을 하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면 40만원 우린 안되기 때문에 200만원을 내고 먹는다. 오늘 이달치 약값 207만원을 지불하고 약을 받아오며 "돈 없으면 진짜 죽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아버지는 평생을 정말 악착같이 일했기에 돈없어서 죽을 일은 없지만 정말 억척스럽게 일했는데도 돈을 모으기는 커녕 근근히 생존이나 유지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미국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영국이 무상의료를 하고 있는데 작은 병에만 보험이 적용되는 우리 의료보험. 보험이란 말을 쓰지 말던가. 누구는 영국이 무상인 대신 수술 한 번 받으려면 보통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영국이 우리의 이상형이라는 말도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6개월은 커녕 6년을 기다려도 수술 받을 수 없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는 건지, 상관이 없다는 건지, 그냥 생각이 짧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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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하루'와 저작권

* 이 글은 pan님의 [아침에 왜그랬을까?] 에 대한 트랙백이긴 하지만 별 상관은 없다. 백수라는 말 때문에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백수의 힘은 뻔뻔함이야!!!!" 라는 말이 너무 절절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발적 백수가 아닌 이상 백수의 생활이 그리 유쾌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늘상 구질구질한 것만도 아닐 게다.

극소수를 빼고는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극단 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겠나.

물론 난 이 노래처럼
'조금만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이 놈의 세상이 그렇게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겠지만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맨날 시쭈구리하게(이런 전문 용어를 써도 되려나) 살 거 있겠나?

 

 

저작권

 

내가 이렇게 노래를 올리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그럼 나는 확신범인가?
실정법상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르니 말이다.
내가 처벌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까부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난 내가 산 CD에 있는 노래를 MP3로 변환해서 올리고 있다.
내 돈 주고 샀어도 이렇게 올리는 것은 불법이다.
진보넷 블로거쯤 되면 이번에 강화된 저작권법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런데 내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 때 그 때 이슈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에겐 무지 귀찮은 일지지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이 불법이라니
마냥 무관심하기도 그렇고....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난 판도라처럼 간결하게 끝내지 못하고 맨날 주절주절이다.
그래, 안 되는 것 노력하지 말고 하던 대로하자.)
다음 얘기는 아무래도 '라쇼몽' 카테고리에 들어갈 것 같다.

 

럼블 피쉬 - 백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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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건

나만 좋아하는 것은

양파링과

맥주

 

 

둘 다 좋아 하는 것은?

 




옥동자 ^^

그리고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도 좋아한다. 난 주로 딸기쨈을 넣어서 먹는데 나비는 아무 것도 안넣은 시큼한 요구르트도 무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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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디지탈 시대에 필름 카메라를 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귀찮고 미련한 짓이다. (그것도 흑백필름을!)

일단 돈이 많이 든다. 필름값, 현상료, 인화료 등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인터넷에 올리려면 스캔을 받거나 디카로 다시 찍어야 하는데 그것도 무지 귀찮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디카로 찍는게 그나마 덜 귀찮은데 디카는 필카와 가로세로 비율이 달라서 어차피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사진마다 일일이 다시 잘라내고 크기 조정을 해야한다.

 

아버지 때문에 집밖을 나갈 수 없는 나같은 경우에는 현상과 인화를 직접해야 하는데 디카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라  이짓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이중으로 커텐을 치고, 약품을 타고 확대기에 필름을 한장씩 끼고, 노출을 맞추려 몇번의 테스트를 하고, 뽑은 사진을 물에 씻어주고(수세) 집게로 하나씩 널어서 말려주고...

 

이틀전 그 짓을 했다. 2년여만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니 예전에 찍은 거라도 뽑아보고 싶었다. 참 미련하게 느껴지면서도 오랫만에 인화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늘 올리는 사진은 변산반도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전에 몇장만 뽑아보고 말았었다. 변산반도에 관한 소개는 귀찮아서 못하겠다.

 

내소사에서 찍었던 것 같다. 나무결의 느낌이 예술인데 티카로 찍어서 사이즈를 축소했더니 그 느낌이 전혀 안난다.

 

큰 절 입구에 의례 있는 사천왕상


 

같이 간 친구.  이 친구가 결혼하기 전에 어디든 한 번 갔다 오자고 해서 떠났다.


 

절은 이렇게 자연과 자연스럽게 잘어울리는데, 예전에 양수리쪽에선가 산 비탈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버리고 엄청큰 교회를 지어놓은 걸 보고 뜨악했다.

 

바로 윗사진의 문에 가까이 가면 이런 문양이다.


 

뽑고 나니 참 재미없는 사진인데 뽑아 놓은 게 아까워서.

 

사진으로 보니 그리 커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무지 큰 건물이다. 왼쪽과 오른쪽 아래에 자세히 보면 사람이 있다. 


 

교회에서 헌금을 받듯 절에서도 받는데, 이렇게 기와에 쓰고 싶은 글과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도 한다. 아마도 불전 짓는데 기와값을 보탠다는 식인 것 같다. 글 내용이 꼭 나 같은 인간이 쓴 것 같아서^^

 

내소사는 참 매력적인 절인데, 문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득실 거린다는 거다. 도저히 절을 둘러보는 '맛'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짜증이난 친구와 나는 이름나지 않은 개암사를 찾아갔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절에 가면 법당안에도 들어가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를 갖추어 삼배를 드리고 나서 둘러본다. 그냥 세배하듯이 절을 하면 안된다. 손을 양어깨만큼벌려 엎드린 상태에서 손바닥을 뒤집어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면 된다.


 

개암사에서 만난 멍멍이들. 처음으로 제법 그럴듯한 역광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장을 뽑았더니 정혜가 비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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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두권

최근 사진관련 책 두권을 샀다.

하나는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33K, 56K 전화 모뎀을 이용하던 인터넷 원시시대 시절이었다.

인터넷보다도 PC통신이 더 많이 이용되던,

사진 한 장 보려면 클릭하고 잠시 딴 짓하다가 와야하던 그 때.

사진에 관심은 있었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풍경사진은 찍는 것도 재미없고 보는 것도 재미 없었다.

앤젤 아담스 같은 대가의 작품은 좀 남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풍경사진은 풍경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사진 자체가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멋진 풍경이긴 하지만 너무 도식적인 사진들이 많았다.

그러다 인터넷상에서 우연히 '두모악'이란 싸이트에서

김영갑의 제주도 풍경사진을 봤는데 

감탄사가 나왔다.

 


 

사진은 오마이에서 퍼왔다. 출처를 밝히든 안밝히든 불법이지만 어쨌든 밝히는 것이 나의 예의다.

오마이 기사 보려면

 

그 후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소식들을 접하게 되면서

참 특이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 몇 년 후 한겨레신문에서 그의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루게릭이란 병에 걸려 몸이 마비되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사진에 미친 것 같은데

더 이상 사진을 못찍게 됐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러다 또 잊고 살았는데 이번에 오마이기사를 보고 한 권 샀다.

워낙 특이하게 살아왔기에 그의 살아온 얘기는 무척 흥미롭다.

 

반면 두 번째 책 <종이 거울 속의 슬픈 얼굴>은 좀 실망스러웠다.

최민식의 사진이야 그전부터 많이 본 편이라

이번엔 그의 생각을 좀 엿볼 요량으로 그의 글이 들어있는 책을 산 것인데

글은 좀(많이) '아니올시다'이다.

사진도 그가 직접 고른 것인데, 사실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가 골라서

엮은 최민식사진집(열화당 사진문고)의 사진들이 난 더 좋다.

책꽃이에서 그 사진집을 다시 꺼내 넘겨 보다가 이 사진에서

멈추고 말았다.

 




1972 부산 자갈치 시장

이 사진은 최민식 공식 홈피에서 퍼왔다.

 

아마도 무슨 단속반에게 끌려가는 것 같은데

이 아주머니의 표정이 정말이지...

남자에게 낚아채인 어깨춤 하며,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는 것인지,

펄럭이는 전대 앞치마에, 자갈치 시장답게 장화신은 모습까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너무 속상해서 콧날이 시큰거렸다.

처음보는 사진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사진 앞에 여러 가지 사진들을 보면서 감정이 올라가다가

이 사진에서 결정적으로 한 방 먹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사진의 내용이 30여년전의 지나간 어려웠던 추억속의 얘기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얘기를 담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내가 나이들어서 그런 것도 있을게고.

 

이 사진에는 끌고가는 남자의 얼굴이 거의 안보이지만

사진집에는 어두우나마 볼 수 있는데 그 표정이 참 '그렇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참 그렇다.

 

지난달 말지에서 '평생 빈곤에 시달리는 '엄마 노동자'들'이란 기사를

보면서도 그랬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비정규직 엄마노동자들의 고생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에 나간 이 아주머니들이 투쟁가가 나오자

박자에 맞춰 '팔뚝질'을 한게 아니라 '박수'를 쳤다는 대목이었다.

그래, 이들이 평생 팔뚝질 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어려운 살림이지만 큰 욕심 안내고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살면

그럭저럭 크게 남부럽지 않았던 이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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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 삼형제

동물병원에서 냥이 사료를 사갖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몇몇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양파 담는 망에 들어 있던 새끼 냥이들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니, 누가 고양이들을 이렇게..."

"풀어 주면 엄마찾아 가겠지 뭐."

 

냥이들이 엄마찾아 갈 확률은?

글쎄.

지들끼리 어쩔줄 몰라 뿔뿔이 흩어져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 한 어미는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 근처 냥이인지 다른 곳에서 데려와 버렸는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아마도 이런 것 같다.

자신의 집 어딘가에 길냥이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을 것이다.

냥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울어대기 시작했을 거고,

냥이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집주인은 어미가 없을 때 냥이 새끼들을 찾아내

양파자루에 담아 내다 버린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죽이지.

양파자루는 그물이라서 냥이들이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발버둥치다 굶어 죽었겠지.

행여 어미가 찾아냈다 하더라도 꺼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게다.

 

세녀석을 데리고 다시 동물병원으로 갔다.

 




한녀석은 완전히 까만 녀석이었는데

동물병원에 와 있던 아가씨가 자신이 키우겠다고 해서 즉석에서 입양시켰다.

 



퀴즈!

그런데 여기 사진에 까만 녀석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원숭이를 키우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원숭이도 산만하고 그 아가씨도 산만해서 그리 믿음이 가지는 않았는데,

워낙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키울 수 있다고 해서 보냈다.

내 연락처도 주었다. 모르는 게 있거나, 못키우겠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안되겠다고.

까만 녀석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길냥이들이 그렇듯 영양상태가 안좋았다.

그리고 길냥이답게 '하악'을 했다.

길냥이들을 키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잘 먹이기만 하면 금방 놀라울 정도로 예뻐진다.

그런데 이녀석들은 지들끼리 있어서 그런지 그전에 은별이와 달리,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인터넷에 올리자 까만 녀석을 달라는 연락이 무지하게 많이 왔다.

"All Black"인지 확인하는 전화도 많았다.

다 까맣고 발만 하얀(일명 장화신은 고양이) 냥이는 많지만 완전히 까만 녀석은 그리 흔치 않아서 그런가 보다.


까만 녀석이 제일 먼저 입양되고, 두녀석은 다행히 한 분이 모두 데려갔다.

원래는 한녀석만 데려가려 했는데,

내가 가능하면 둘다 데려가길 바란다고 했더니 하루를 고민하고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엄마랑 헤어진 것도 그런데 이녀석들을 또 떼어 놓는 것이 마음에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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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피는 사람들

  서울에 살 때는 관악산 아래였고 유선도 달지 않아서 TV가 거의 안나왔다. 굳이 볼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현장고발 치터스 (원제: Cheaters)


cheat는 '속이다'란 뜻이다. 우리가 컨닝이라고 하는 것은 콩글리쉬이고 영어로는 cheating이라고 한다. cheat는 '바람을 피우다'라는 뜻도 갖고 있으니 치터스라는 프로그램을 우리말로 굳이 하자면 '바람피는 사람들' 정도가 될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송탄에 내려와 살면서 케이블 Q채널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바람 피는 것을 몰래카메라로 담아서 배우자에게 보여주고, 배우자와 함께 현장을 덮친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이 이 훔쳐보기의 진수?를 만끽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바람피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자가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는 경우도 있고, 사돈쪽이긴 하지만 친척과 바람을 피기도 한다. 베이비씨터와 눈이 맞기도 한다. 열 번 정도 보고 나니 그게 그건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다시 예전처럼 TV 자체를 거의 보지 않는데 어쨌든 이 프로를 보면서 상당히 재미있었던 것들 몇 가지.



모자이크 처리를 관전하는 즐거움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 프로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가끔 나온다. 즉 본인 얼굴이 TV에 나오길 원치 않는 경우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인데 모자이크 없이 나오는 경우가 꽤 많다는 거다. 당연히 모든 촬영이 끝나고 나서 본인의 허락 여부를 묻는 것일텐데, 온갖 쌩쑈를 하고, 온갖 쪽팔리는 일을 다 저지르는(당하기도 하고) 장면이 모자이크 없이 나온다. 즉 본인이 동의했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아예 인터뷰도 따로 한다. 점잖게 말하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TV에서 이런 놈을 봤으면 나도 욕했겠지만 어쨌든 내가 당하고 보니 아주 엿같고, 나를 이렇게 만든 마누라도 엿같고, 이런 짓거리 하는 당신들(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도 엿같다." 뭐 이런 거였다. (fuck을 편의상 엿같다고 내 맘대로 했다. 물론 이 단어는 TV에 나오지 않는다. 입부분만 모자이크하고 소리도 안나오지만 쉽게 알 수 있다.)

 


들켰을 때의 변명 혹은 반응
열 번 정도 본 걸로 통계를 내기는 우습지만, 어쨌든 바람피는 현장을 덮쳐서 들통났을 때의 가장 흔한 반응이 뭘까? '미안하다'일까? (그럼 재미 없잖아?)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딱 한 번) 제일 많았던 것은 "바람폈다고 이런 식으로 날 망신시켜?" 물론 그걸 트집으로 화만 내고 바람 핀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흔한 반응이 "네가 이렇게 날 의심하고 뒷조사나 하니까 내가 바람을 피우지" 이거다. 이치에 전혀 맞지 않지만 정말 이런 경우가 많았다.  바람핀 상대와 떠나버리기도 하고, 떠나 보내기도 하고, 바람핀 상대가 떠나버리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경우는 남자가 새로운 여자에게 이혼한 상태라며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폈다. 즉 두 여자를 모두 속인 것이다. 그래서 두 여자끼리 동병상련으로 우호적이 됐다.

 

 

가족을 지키려는 강박관념과 진행자의 코메디
이 프로를 만드는 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완전히 코미디 프로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진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엮어나가는 진행자가 정말 너무 심각하고 진지해서 미치겠다.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자기들이 무슨 정의와 가정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처럼 말하는데 진짜 못 봐줄 지경이다. 특히 현장을 덮쳤을 때,  당황해서 카메라를 피해 도망가려고 하면 이 프로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림이 좀 덜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계속 쫒아가며 바람 핀 사람을 꾸짖는 장면은 아주 민망하다. 진행자 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이런 짓을 하다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화가 난 상대방에게 칼에 찔린 경우도 있다.)

 

그 진행자가 속으로 "먹고 살려고 나도 별 짓 다하고 있네"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봐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자기 딴에는 부정한 배우자들을 심판하고, 시청자들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줌으로써 가족의 해체를 막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람피는 것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가족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족주의 강박관념'에 대해서다. 누군가 스필버그 영화에 대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몽땅 다 가족의 소중함을 주장하는 뻔한 영화들"이라고 혹평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선뜻 공감을 하긴 쉽지 않지만 헐리우드 영화들이 가족에 대해 집착(애착이 아니라)하는 것은 사실이다. 좀 더 확장시켜 가족과 국가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동성애자 의뢰인
굳이 이렇게 끄적일 생각을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치터스를 만드는 과정은 일단 자기 배우자가 바람피는 것 같으니 조사를 해달라고 시청자가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의뢰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안가기도 하는데 어쨌든 가장 인상적인 의뢰인은 동성애자 여성이었다. 이미 '남자'와 결혼했을 때 낳은 딸도 있고 직업은 교사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네 수준에서 생각해 보자면 의뢰해서 TV에 얼굴이 나오면 학교에서도 그 교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 것이며 학부모들은 가만히 있을까? 딸은 자기 엄마가 레즈비언이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


미국은 정말 악마 같기도 한 나라이지만 어떤 면은 우리보다 훨 나은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의뢰인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바람핀 애인뿐만 아니라 바람핀 상대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라는 것이 알려져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분위기라면 그 세 명이 모두 모자이크 없이 나올 수 있을까?


"Out At Work"라는 미국 다큐를 보면 분명 미국에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긴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이 가혹한 취급을 받는 것에 비한다면 미국은 거의 천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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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냥이와

인터넷에 올려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 입양됐다.

 


초점이 안맞아 남보여주기 민망하지만 입모양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디카로 다시 찍었더니 예쁘고 까만 눈망울이 안보이네.

이름은 임시로 은별이라 부르기로 했다.

영어로 Silver Star

 


이젠 목욕을 시켜도 될만큼 사람과 친해졌다.

 

콩콩이에 대한 경계를 많이 풀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집은 좁은 골목을 꽤 들어가야 한다.

오전에 집에서 나가는 골목길에서 새끼 냥이가 어미를 애타게 찾을 때 내는 울음 소리를 들었다.

두리번 거렸는데 보이지는 않았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바로 그 지점에서 또 새끼냥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소리나는 곳에 가까워지자 소리가 뚝 끊겼다가 점점 멀어지니까 또 울기 시작했다.

다시 소리가 나던 곳으로 갔다. 당연히 울음 소리는 또 그쳤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아고고고.

지붕이나 옥상에 있는 물이 흘러 내려오는 관 밑에 물이 떨어져 얼어 있었는데

그 얼음위에 새끼 냥이가 달달 떨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아침부터 이러고 있었던 모양인데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쬐끄만게 그래도 길냥이라고 내게 "하악"을 했다.

(냥이 좋아하는 사람은 '하악'이 뭔지 아는 분들이 많을 게다^^)

움직이지 못해 도망도 못가는 주제에 너무나 전투적이기에 집에 가서 벙어리 장갑을 끼고 왔다.

새끼라도 작정하고 할퀴면 상처가 제법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냥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인 뒷덜미 잡기를 해서 집에 데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콩콩이는 뒷덜미를 잡으면 난리가 난다. 새끼 때도 그랬다.)

 

집에와서 생선 통조림을 주니 정신없이 먹었다.

그래도 경계는 풀지 않고, 내가 다가가면 하악을 했다.

다친데는 없는 것 같고, 그냥 먹지를 못해서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못움직인 것 같다.

그러니 어미가 포기를 했을테고 말이다.

비정한 어머니고 어쩌고 할 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그나마 살 수 있는 새끼들만이라도 챙겼으리라.

안그러면 다 죽으니까.

 

같이 방에 있으면 이 녀석이 너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베란다에서 재우기로 했다.

거긴 너무 춥긴 했지만 원래 출신성분이 길냥이다보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박스에 뭘 깔아주고, 바람이 덜 들어가도록 비닐로 씌웠다.

새벽이었는지 아침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베란다에 나가보니 이 녀석은---

 

보일러 온수가 통과하는 몇 개의 가늘고 짧은 관이 있었는데 그 관과 벽사이에 끼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온수가 흘러 따듯하니까 불편하더라도 그곳을 택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감탄스럽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했다.

가끔 방에도 들여놨다.

어차피 사람과 친해져야 입양을 시킬테니까 말이다.

콩콩이는 호기심에 자꾸 들여다 보는데 이녀석이 하도 공격적이라서 가까이 접근은 못했다.

 

이녀석이 이래서 언제 사람하고 친해지나 싶었다.

길냥이의 습성이 안 바뀔까봐 걱정도 했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하긴, 자기에게 밥주는 사람과 안친해지고 베겨?

 

인터넷에 올리려 사진을 찍었다.

 

이게 길냥이 데려오기의 시작이다.

다음에도 사진이 남아있는 녀석들을 올려볼까 한다.

그나저나 그 때는 참 사진을 못찍어 쪽팔린다.

여기저기 자르고 뽀샾으로 조금 보정을 해도 수습이 잘 안된다.

그나마 필카의 얕은 심도 덕분에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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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가 없지

'화'라는 책을 쓴 틱나한 스님(이름이 맞나?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이 이딴 소리를 했다고 한다. "어떤 것이던 지금의 생각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마라."

* 이 글은 알엠님의 [나는 내가 무섭다] 에 관련된 것도 같고 전혀 상관 없는 것도 같은 글이다.

 

푸른영상 타큐보기 모임에 청주에서 늦깍이 대학생이 온 적이 있었다. 뒤풀이 중에 결혼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이런 얘기를 했다.

 조카들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대하다 보면 언니들이 그래요. "네가 네 자식한테도 이러는지 두고 보자"라고요.  전 결혼해서 제 자식한테도 똑같이 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난 "그걸 증명하고 싶어서 애를 낳을 건 아니죠?"라고 농담처럼 말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 계획이 부질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전혀 다른 성질의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사람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단정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나중에 낭패를 보기 쉽다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정반대로 악용되기도 한다. 옛날부터 지겹게 들었던 말들. "네가 아직 어려서 몰라" "네가 아직 사회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데..." "결혼을 하면 알게되겠지만 말이야..." "아직 애가 없서서 그런 소리를 하는데..." "나도 그맘때는 너처럼 생각했는데 말이야, 살다 보니까..." 등등. 상당수는 자신들의 허접한 현 상황을 합리화 시키려고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분명 <경험해봐 알 수 있는 것>들도 꼭 있다. 특히 아이 문제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가 생기면서 하게되는 행동들이 다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전혀 다른 이유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서 자기 아이에게도 조카에게한 것처럼 똑같이 했다고 치자. 그럼 언니들이 "제가 자기 아이에게도 저렇게 하는 걸 보니 정말 저게 옳은 거구나"라고 생각할까? 정말 훌륭한 언니들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독한 년, 지가 뱉은 말을 지키려고 지 자식들한테까지도 저러고 있네"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렇게 되면 결국 아무 소득도 없는 거잖아? 나의 억측일까? 난 사람들의 경험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을 그리 믿지 않는다. 자신들의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나도 나의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을 터인데... *딴 소리 아이들 밥먹이려고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는 것과,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고 입시 걱정하는 것이 같은 맥락의 문제일까? 세상은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긴 하지. 알엠이 밥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는 모습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과외가 어떻고 입시가 어떻고 그러기 시작해도 난 계속 그러려니 하게 될까? 학원을 보내지 말라거나 과외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태도가 어떠냐는 거다. (서울대를 정점으로한 학벌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게 '내 자식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서울대는 안보내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겠는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변화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영악해서 어떻게 변하든 간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부치기 마련이다. 남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영악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잘 갖다부칠수록 더 쉽게 망가질 수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남들과도 많이 소통하고, 비겁해지지 말라고 자기 자신을 가끔씩이라도 쑤석거려줘야 한다. (무위도식이나 꿈꾸는 내가 왜 이런 같잖은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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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글을 퍼오다.(양성 쓰기)

맥주 한 잔 하며 인터넷을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게시판에 올렸던 옛글들을 찾아보게 됐다. (나이 먹나?) 어떤 게시판들은 이미 사라져서 볼 수 없기도 했는데 푸른영상 게시판은 모든게 그대로 있었다.

해명 바랍니다.



소식지에 올릴 글을 보낼 때 분명 '김송범수'라고 해서 보냈는데 소식지에는 그냥 '김범수'라고 되어있더군요.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 때는 내가 평소 습관대로 김범수라고 그냥 보냈다가 나중에 김송범수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범수로 실렸더군요. 그 때야 깜박 잊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나야 원래 푸른영상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 평소처럼 아무생각 없이 김범수라고 쓰셨다면 별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실수하신 것이니 사과하십시오. 그게 아니고 일부러 '송'을 빼셨다면 사과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무슨 공문서라면 말이 되죠. 하지만 '푸른영상' 소식지에서 그랬다면 이해해줄 수가 없습니다.

난 지난 30년 동안 나의 반쪽이 '송'씨였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양성쓰기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참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송'씨라고 생각을 해보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어머니에게 빚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운동이 그렇게 활성화는 안되더군요. 그래도 좋은 것은 나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어머니 성도 같이 쓰기로 했습니다. 인물과 사상이란 잡지 이번 호에 양성을 쓰다보면 자식을 낳았을 때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글이 실렸더군요. 예를 들어 김송범수와 윤김정혜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 '김송윤김철수' 라는 식의 이름이 되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양성쓰기 운동을 제안한 분들이 이런 문제를 생각 못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괜히 맘에 안드니까 딴지 걸자는 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이 부분만 빼고는 인물과사상에 실린 그 분의 글에 100% 공감합니다.)

그런게 걱정되서 양성을 못쓰기겠다면 제가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죠. 그냥 어머니 성만 쓰는 겁니다. 간단하죠? 몇 백년 넘게 아버지 성만 썼으니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앞으로 한 5백년 동안만 어머니 성만 쓰기로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엔요? 그 문제는 후세들이 고민하게 맡겨둡시다. 자 이젠 동의하십니까? 지금까지 쓰던 성을 모두 어머니 성으로 바꾸면 혼란스럽고 경제적인 비용도 많이 들 거라구요? 물론 그렇겠죠. 그러면 새로 낳는 아이들부터 그렇게 하면 되죠? 그래도 비용은 좀 들겠지만 잘못된 것 고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좀 엉뚱한 비유지만 국가보안법도 고치거나 없애지 말까요? 극우보수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아버지 같은 분들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것이고 가치관의 혼란이 올텐데, 70넘은 우리 노인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부모들이 상의해서 성을 정하기도 하고, 야예 제3의 성을 쓰기도 합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최소한 남 하겠다는 것에 딴지는 걸지 맙시다. 스스로도 얼마나 명분이 없는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차라리 솔직해 집시다. '너희들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까지 잘못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요. 자신의 잘못된 부분 한가지만 인정하면 되는데(고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걸 정당화 시키려고 하니 우스꽝그러운 논리만 만들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전 '성'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르신들에겐 '상놈' 소리를 들을 얘기죠. 그렇습니다. 저 상놈입니다. 아니 아마도 상놈일 확률이 95%입니다. 그게 어떻다는 말입니까?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양반의 비율은 5 %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는 80%로 증가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의 날카로운 추리력에 의하면 양반들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 추리 맞습니까?

실제로 당신이 그 5% 안에 드는 진짜 양반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조상이 양반이었다는 게 뭐 그리 자랑스럽습니까?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조상을 두셔서 자랑스러우십니까? 뭐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셨나 보죠? 그렇다면 당신은요? 당신도 조상 못지않게 훌륭하십니까? 게다가 확률적으로 여러분들이 자기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그 조상이 실제 뿌리가 아닐 가능성이 위에서 보듯이 95 %입니다. 분명 양반의 뿌리는 5 %밖에 안됐는데 제 주위를 보면 왜 양반 아닌 사람이 없는거죠? 게다가 그 뿌리를 더 따라 올라가면 원시공동체 사회 아닙니까? 원래뿌리보다는 거기서 뻗어나온 곁뿌리가 더 중요한 건인가 보죠? 내 뿌리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광산김씨'이나 '여산송씨'가 아니구요. 그 위에는요? 저도 모르죠. 그런 것 몰라도 난 사람들 사랑하며 잘 살아보렵니다. 여러분들도 잘 사시길 빕니다.

99/11/15

요즘은 양성 쓰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글을 쓴지 벌써 6년이나 지났네. 이제 와서 읽어보니 좋게 얘기해도 될 것을 참 싸가지 없게 말했군. 이젠 윤김정혜도 내곁에 없고.^^ 요즘엔 아예 성을 안쓰기도 하더만. 나도 내 성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림자에 작명소에서 지어준 글자 하나 붙인 내 이름도 그렇고 말이다. 난 그냥 내 스스로가 부친 '무위'란 아이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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