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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0
    북치고 장구치고(자우림 실리콘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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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4/18
    세상에서 질루 이쁜 고양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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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4/13
    노트북 장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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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4/07
    한대수- 물 좀 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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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4/06
    하나둘셋(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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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복제 DV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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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이면 반응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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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3/30
    화성침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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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3/26
    기차길 옆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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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3/23
    Before & Aft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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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고 장구치고(자우림 실리콘벨리)

Silicon belly is silicon valley?

 

자우림 5집 실리콘벨리 (작사 작곡 김윤아)

 

솔로 앨범의 김윤아가 더 좋긴 하지만 자우림의 김윤아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김윤아가 직접 쓴 '실리콘벨리'는 아마도 가슴성형을 위해 실리콘을 넣어

가슴에 계곡(valley)을 만든다는 뜻인 것 같다.(아님 말구)

표현도 재미있다.

"그녀는 뇌의 일부분을 가슴에 가득 채워 넣고"

뇌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를 다 집어넣는다고 해도

그녀가 원하는 풍만함을 만족시킬 수 있겠나?

그러니 실리콘으로라도 마저 채워야지.

"그녀는 좀 더 높은 값에 자신을 사줄 이를 찾기 위해 태어나 존재하고 있네"

몸뚱아리마저 상품화된, 그리고 스스로 상품화되려고 발악을 하는 듯한

silicon brainsilicon breast를 가진 silly girl.

이 정도면 김윤아의 말장난 솜씨도 수준급 아닌가?

 

 



김윤아는 화장품 광고를 찍었을만큼 예쁘게 생겼잖아?

지는 안고쳐도 그렇게 이쁘니까 저러고 있지.

그 얼굴 좀 더 손보느니

그냥 냅두고, 뜯어고치는 인간들 비웃어주는게 더 폼나서 저러는 거 아냐?

거기다 노래는 좀 잘해?

지가 외모때문에 차별받아 보기나 했겠어? 오히려 덕을 봤음 봤지.

 

물론 성형수술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같이 미쳐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너무 심한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잖아?

성형중독도 분명 문제고 말이야.

 

무슨 중독은 좋은 중독있니?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그리고 심하고 안심하고의 기준을 누가 정할건데?

 

그런데 예쁘지 않은 가수가 불렀다면 설득력이 있었을까?

 

'못생긴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어쩌구 저쩌구 하면 되지.

니가 뭐라고 하던 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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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질루 이쁜 고양이

'고슴도치도 제자식은 이쁘다'라는 말을 난 경험한 일이 없다.

내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져볼 생각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유사체험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처음 기른 냥이인 콩콩이를 난 세상에서 질루 이뿐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콩콩이와의 인연 옛글)

내자식이라 더 이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했지만

그걸 떠나서 객관적으로 봐도 이만큼 이쁘고 매력적인 녀석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동물병원 갔다가 너무너무나 잘생긴 검은 고양이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내게 세상에서 질루 이쁜 냥이는 콩콩이였다.

그런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

 

나의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 중의 하나가

누굴 보고 싶어하거나 그리워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잊으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지만) 난 비교적 금새 잊고 산다.

내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콩콩이와 꼬맹이를 정혜가 데려갔고, 난 이따금 콩콩이 생각이 나긴 했지만 곧 잊고 살았다.

 

그 후 일년쯤 있다가 나비가 나의 새가족이 됐다.

(나비와의 인연 옛글)

같이 살다보니 참 우습게도 이젠 나비가 '세상에서 질루 이뻐' 보였다.

그제서야 이게 고슴도치 부모 마음이란 걸 깨달았다.




콩콩이와 콩콩이가 낳은 꼬맹이


 

한참 후에 콩콩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나비에겐 미안하지만 역시 세상에서 질루 이뿐 녀석은 콩콩이다.

물론 나비도 예뻐미치겠지만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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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장만

두어달의 고민끝에 노트북을 샀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인터넷과 워드, 엑셀 정도만을 쓸 때는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을 별로 못느꼈는데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이것 저것 조금씩 하다보니 컴터가 너무 버벅거렸다. (셀 500 이 어련했겠나)

 

데스크탑을 살지 노트북을 살지 고민하는데 한 달 이상 걸린 것 같다. 물론 새로 사야하는지 자체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노트북이 예전처럼 비쌌다면(여전히 고가지만) 아무 고민 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삼보에서 값을 파격적으로 내렸다. 전에는 중고조차도 그럭저럭 쓸만한 걸 사려면 100만원은 줘야 했는데 이젠 새것을 그 가격에 살 수 있게 됐다. 성능도 제법 괜찮고 말이다. 용산에 있는 아는이의 말에 따르면 삼보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현금을 돌리려고 거의 원가 이하로 팔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꼭 노트북이어야 했나?

 

좁은 가게, 음악들을 때의 소음 등 몇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노트북의 가장 큰(거의 절대적인) 장점은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집밖에 들고 나갈 일이 없다. 그럼 노트북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 맞다.

 

놀러갈 때 생각해서 예전에 노트북을 사고 싶은 때가 있었다. 여행하면서의 느낌을 그때 그때 글로 남길 수도 있고, 디카의 메모리를 하나 더 사는 방법도 있지만 노트북을 장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디카로 찍은 것을 즉석에서 CD로 구워줄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당장의 현실을 생각하면 같은 돈으로 빵빵한 데스크탑을 사던가, 같은 성능의 데스크탑을 몇십만원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새 컴터를 사면 최소한 3년은 사용하고 보통 5년까지는 버틴다. 가장 최고사양이 필요한 이들은 그래픽을 다루거나 최신 3D 게임을 즐기는 경우인데 난 둘 다 상관 없기 때문에 5년 정도는 쓸 것 같다.

 

나는 마냥 아무데도 갈 수 없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디에 갈 수 있으려면 아버지께서 병이 낫거나, 정반대로 돌아가셔야 가능해진다. 아버지 병이 나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하더라도 "아버지 돌아가시면 꼭 한 번 가봐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게 너무 거시기 하지 않은가? 그래서 어디 가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려고 노력한다. 

 

...

이번 노트북을 살 때 그리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다른 문제도 있었는데, 그 얘기는 관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조만간 정리해볼 것도 같기도 하고)

 

그래도 정신없던 가게방이 약간은 정리되었고, 노트북인 것과는 상관없지만 컴터가 빨라져서 느므 흐뭇하다. LCD라 눈도 덜피곤하고 말이다. 기왕 비싼 장난감 샀으니 좋게 좋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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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물 좀 주소

물 좀 달라는데?

 

한대수의 곡 중 '행복의 나라' 다음쯤으로 가장 알려진 노래 아닐까 싶다.

현재도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현역 가수'  한대수를 자꾸 옛가수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가급적 그의 옛노래는 안올리려고 했는데

얼마전 나온 라이브 앨범의 '물 좀 주소'는 느낌이 또 달라서...

 

'물좀주소'는 곡 자체보다는 박정희 시절 금지된 것 때문에 더 알려진 것 같다.

하지만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곡 자체도 만만치 않다.

이곡의 특이한 점은 전주 없이 곧바로 한대수의 걸쭉한 목소리로 "물~ 쫌 주소"라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요즘도 이런 방식은 흔치 않은데 이 노래가 나올 당시에는 아예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시도였다고 한다..

 

한대수에게 '물'은 자유이며 사랑이었는데 독재자 박정희에겐 참을 수 없는 것이었겠지.

박정희때는(이승만때부턴가?) 자본주의 체제를 자본주의라 하지않고 

'자유민주주의'라 자꾸 우겨쌌는데 (아직도 그런 인간들 많다.)

박정희는 결코 '자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민주'도 좋아했을리가 없고. 

 

투사보다는 히피의 피가 흐르는 자유주의자 한대수는

이 끔찍한 상황을 참지못하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이 노래를 금지한 것만으로도 나는 박정희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

(사실 이건 그가 저지른 다른 악행들에 비교하면 얘깃거리도 안되는 가장 순한? 악행에 속하는데)

아직도 죽은 박정희가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참 엿같다.

 

 

카태고리 이름을 아예 한대수로 바꿀가? ^^

이 노래의 코러스는 강산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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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셋

장면 1

네 아버지 처음 입원했을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서  어찌할지 모르겠더니 이젠 그렇지는 않다.


- 계속 그 때 같으면 어디 사람 살겠어요?


그건 그래

 

 

고민 2

아버지 원하는 데로 해드리는 것이 어머니를 점점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어머니도 70대 중반에 여기저기 아픈 노인네인데.

 

 

알 수 없어 3
어머니 편하시라고 하는 건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자식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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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복제 DVD

서울에 가면 가끔 용산에 들른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형편상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일단 내가 사는 송탄엔 영화관이 없다.

송탄은 작은 곳이긴 하지만 노는 문화가 나름대로 창궐?해 있는데

대부분이 술집, 노래방, 클럽 등이고 영화관은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영화관이 여러개였고 인기도 꽤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나둘 문을 닫았고, 가끔씩 새로운 영화관이 개관을 했다가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마지막 영화관이 망한지도 10여년은 되가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이 왜 영화를 안보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비디오 가게도 한참 가야  있고.

 

영화가 두 시간 짜리라고 해서 두 시간만 투자하면 영화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서울을 간다고 해서 영화볼 시간이 쉽게 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보고싶은 영화들은 대개 금방 막을 내리던가

아니면 겨우 두어개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에 두 번만 상영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찜찜함을 애써 외면하고 불법 복제 DVD를 가끔 산다.

주말에 용산에 가면 가판에서 이런 것들을 판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거나 상영 예정인 영화들도 나와있다.

(한국영화는 극장상영이 끝나야 나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내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데

- 현재 상영중인 영화를 사기도 하지만

- 극장상영은 끝났으나 비디오나 DVD로 나오려면 아직 먼 경우

- 비디오나 DVD로 나올 때가 되긴 했으나 대중성이 없어

  울동네 비됴 가게에서 갖다놓을지가 심히 의심되는 영화

-두 번 이상 볼 것 같거나 남에게 빌려주고 싶은 영화

뭐, 대충 이렇다.

2주전에 갔을 때는 불법2장, 정품 3장을 사왔다.

 

<마이 제너레이션>

사는 일상도 우울한데

굳이 영화보면서까지 우울해지고 싶지 않다면 이영화를 보지말 것.

말로 먹고 사는 평론가들이 많은 얘기를 써 놓았으니 나까지 보텔 생각은 없고

정말 괜찮다.

 

 

<사이드 웨이>

우리말로 하면 '옆길', '샛길' 정도 되겠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잭니콜슨을 비참한 궁지까지 몰아넣었던 알랙산더 페인이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구질구질한 Loser들의 얘기지만 전혀 우울하진 않다.

씨네21 기사를 보니 인디영화 감독인 페인이

헐리우드의 잘나가는 배우 조지클루니를 직접 만나 설득했다고 한다.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천만에! 제발 이 영화 포기하라고 말이다.

 

한겨레 신문에서 즐겨보는 코너가 '정이현의 해석남녀'이다.

(정이현의 해석남녀 <사이드웨이> 의 '마일즈와 잭'  보러가기)

 

위 두 영화는 모불 불법 복제품이다.

정품을 산 것 3장중 본 것은 아직 공각기동대뿐이다.(네 번째 봤다.)

한 두번 더 보고 이 영화는 나중에 따로 얘기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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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면 반응한다.

고양이과 동물의 특성 중 하나가 '움직이면 반응한다'라는 것이다.

나도 나비에게 가끔 당한다.

책을 보며 무심코 볼펜을 돌리고 있는데 나비가 갑자기 내 손을 덮치기도 한다.

DVD를 보다가 일시 정지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컴퓨터 화면 보호기 같은 것이 뜬다.

'공'모양이 계속해서 화면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움직이는 것'에 역시 나비가 '반응'을 보인다.


공이 위로 올라가자 몸을 일으켜 따라가고


아래로 내려오자 앞발로 낚아채려고 한다.

잡힐 리가 있나.^^

 



아침에 일어나면 내 옆에서 이러고 자고 있다.

꼭 나보다 늦게 일어난다.

(고양이과 동물은 하루의 80%를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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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침공? ^^

몇년만에 수원 화성에 다시 가 보았다.

 

일요일 오후

아버지도 안좋으신데 어머니까지 허리병이 나서 심난했다.

서울에 갈까말까 망설이느라 아무 약속도 잡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용산에 가서 불법 DVD라도 몇장 사올까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우리동네까지 뚫린 전철도 타볼겸,

오랫만에 사진도 찍어볼겸 해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 화성에 갔다.

그런데 초입부터 짜증이 좀 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은 것이야 그러려니 했다.

입구에 있는 설명을 보니

70년대 국방유적 복원 사업의 하나로 복원이 시작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냥 '유적 복원'이 아니라 '국방'유적 복원이라니

역시 위대한 박통 깍까 시절다운 발상이다.

그래, 그것도 괜찮았다.

온 나라를 병영화 하고, 온 국민의 생활 깊숙히까지 군사문화를 찬연하게 꽃피우게 했던

박정희 덕에 복원이라도 시작했으니 까짓거 넘어가 주자.

 

나를 짜증나게 만든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공사중"

복원을 위한 공사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이건 그게 아니다.

흙길을 없애고 시멘트를 쳐바르면서 야경을 위해서 바닥에 조명을 까는 공사다.

밤에 보면 열라 멋지겠지? 기다렸다 그 멋진 야경사진을?

시멘트 깔아 놓으면 비가와도 질퍽거리지 않고 되게 좋겠다. 그지?

빌어먹을.

몇년 전 왔을 때는 없었던 기념품 판매점.

그 옆에 만들어 놓은 "효원의 종"

일반 시민도 칠 수 있다.

단--!!!!! 타종권이란 걸 돈주고 사란다. (자본주의 만세다)

"타종 안내"는 더 웃긴다.

돈내면 3번 칠 수 있는데 무식한 중생들이 아무 생각없이 칠까봐 걱정이 됐나?

친절하게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까지 지정해 주셨다.

- 1타: 부모의 건강 기원 (고아는 치지 말라?)

- 2타: 가족의 건강 기원 (부모는 가족 아닌가? 뭘 따로 쳐?)

- 3타: 자신의 발전 기원(차라리 부적을 사라!)

'사적 제 몇호'라고 되어 있는데 올라가 보면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낙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근데 복원이라는게 시멘트 바르는 방법밖에 없나?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하는데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오우삼인양 비둘기나 찍고

화성 바로 옆에 있는 50년 역사와 전통의 이발관이나 찍고.

유치찬란함의 백미는 역시 '화성열차'

서울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열차에서 영감을 얻었나?

지난 번에는 성 안쪽으로만 돌았는데 이번에 성 바깥쪽으로 나가봤다.

이 사진을 왜 올렸을까?

다음 사진을 보고 알아 맞출 것.

나중에 복원 된 벽이다.

두 개가 합쳐지면 이렇게 된다.

성벽 아래에는 조명시설이 줄줄이 박혀있다.

이번에 처음 가 본 것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도 같다.

그런데 몇년 전의 모습과 비교가 되면서 정말 '꽝'인 일요일 오후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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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길 옆 공부방

한겨레 신문에 '인천 만석동 기찻길옆 작은학교’라는 기사를 보면서 서경화 감독이 만든

'기차길옆 공부방'이란 다큐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 당시 푸른영상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참 마음에 안든다.

그래도 일단 올려본다.

내 스스로 가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기차길옆 공부방

 

 일단 재미있게 봤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면 TV에서 맨날 보는 최루성 휴먼 다큐멘타리 한 편이 추가되는 것으로 끝났을

것 같다.

 

 인권영화제에서 어떤 분이 말한 "가난이라는 것을 너무 낭만적인 시각에서

그렸다."라는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그 분 의견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꼭 한 번 거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물론 그 분이 철거민들을 거론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비교였다. 그렇게 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최소한 굶어'죽을' 걱정까지는

안하는 철거민들 얘기를 다루는 것도 배부른 소리가 되지 않는가?)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

 

 거의 일년이 다되가는 것 같다. 전에 경화씨와 술먹으며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난 거기서 같이 살아가기로 작정한 분들이 궁극적으로는 원래

가난한 사람들과 절대 같아질 수 없다고 말했고, 경화씨는 동의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분들의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다. '가난하다'는 현재의

결과가 동일하다고 해서 결코 그들이 같아질 수는 없다. 이런다면 말이 된다.

'처음엔 자발적으로 가난해졌는데 이젠 그 가난이 지겨워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데 잘 안된다.' 아니면 '원래 가난했던 분들이 이젠 가난의 미덕을

발견하고 평생 그렇게 가난하지만 아름답게 살겠다고 작정한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같아지는 것이라고 본다. 극히 부분적으로는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아직은 '차이점'이 더 많을 것 같다. 오히려 이 차이점을 인정해야 올바른 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영화속의 이모, 삼촌들은 이 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생각이

정립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경화씨가 뭘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경화씨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

 

 자 이제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 미리 겁먹고 말하는 것이지만

'지가 그렇게 못사니까 괜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건다'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말 들어도 상관은 없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니까.

 우선 만석동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신 분들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참으로

의미있게 사신다고 본다. 하지만 그 분들도 '자 이제 우리 모두 가난하게

살아야만 합니다'라고 주장할 것 같지는 않다. 즉 '자발적 가난'이란 의미있는

삶의 모델 중의 한가지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고지선의 유일한 가치이며 모두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4천만이 모두

가난해지려고 노력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문제가 한 가지 생긴다. 그 분들의 자식들에게 가난이란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가?

 말지 이번 호에 김동원 감독의 기사를 보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그 자식들도

가난하게 살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는 말이 나온다.(내 기억력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자발적 가난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김동원 감독도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난 김동원 감독을 가난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다른 것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발적 가난을 택한 부모를 둔 자식들은 그 덕분에 '선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타고난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서 말 좀 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면 부모님을 이해할 확률도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못한다면? 이해는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이 땅에서 살면서 가난하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상당히 좁게 만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게 살아라'

같은 것은 강요해도 되겠지만 '가난하게 살아라'하고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이러지는 않을까? '우리집은 원래 가난하진 않았어. 훌륭하신

우리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렇게 하신거야.' 라고.

자식이 우리집은 왜 이렇게 못사냐고 칭얼대면 비슷한 말을 해주게 되지는

않을까? 그렣게 되면 자식대에까지도 원래 가난했던 분들과 같아지는 것은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몇가지 것들

 

 경화씨의 평소 끼(?)로 봤을 때 나래이션을 아주 잘 할 법도 한데 솔직히 좀

어색했다. (물론 성우를 쓰는 것보다는 좋았을 것이라 본다.) 이런 면에서

경화씨보다 별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서명진씨의 경우엔 '봉천동 사람들'에서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나래이션의 '시점' 차이가 아닐까?  명진씨는 회상하는 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정리하듯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경화씨의

경우는 (아마도 만석동에서 생활하면서 그때 그때 적어두었던 것을 활용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계속 현재 시점으로 지금 겪고 있는 것처럼 하려니 어느 정도의

연기력이 필요한데 다소 역부족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이상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조금, 아주 조금 아쉽다는 말이다.

 

 마지막 정리할 때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 한 명씩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인가 보다. 'Women Outside'에서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아주

깔끔하고 인상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후로 그렇게 끝나는 것을 몇 개

봤지만 그렇게 매끄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럼 기차길옆 공부방은? 글쎄다. 별

무리는 없었다고 보는데 뭔가 아쉽다. 하긴 이건 다큐도 뭔가 극적이고 폼나게

해서 사람들을 좀 움직이길 바라는 나의 (어쩌면 잘못된) 취향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딴 소리

 

 위에 쓴 글은 작품평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뭔가 생각나는 데로라도

말해주는 것이 경화씨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쓴 것이다. 앞으로 이런 글을 다시

쓰게될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나에게 회원기간이

만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1년치 회비를 낼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게됐다. 보증을 서준 것이 문제가 되서 일년동안 매달

41만원씩 갚게됐다. 꿔준 돈 천만원을 못받게 된 것은 그나마 여유돈을 빌려준

것이라 속이 좀 쓰리지만 마음을 비우면 되는데, 이번 문제는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상황이 다르다. 내 한 달 수입은 육칠십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정혜 공부도 하고 몇 푼 안되지만 처가집에 다달이 용돈도

보내드리며 잘 먹고 잘 살았는데(이게 다 탁월한 나의 살림솜씨 아니겠는가!),

이젠 거의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난 처분할 재산이 있으니

절망적이지 않다. 정혜는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쉽게 생각하느냐?'라고

하지만 어렵게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뭘 힘들게 어렵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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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 After

 

아래 사진과 글은 알엠이 2003년에 올린 것이다.

 

며칠 전부터 고양이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같은
그런 어린 고양이들이 동네를 아장거리고 있었다.
귀엽다기보다는 애처롭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어린 생명들.

어제 밤에 열명 정도 되는 동네 아이들이
자동차 아래에 숨어있는 고양이를
막대기로 쑤시며 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동네를 돌며 고양이를 데려왔다.
그대로 있다간 죽어버릴것같아서이다.
뭐...안죽더라도 길냥이로 살아가겠지.

세 마리인데..
고양이를 키우실 분..연락바랍니다.
암튼 정말 고민이군요...

 



이 녀석들을 내가 데려왔다.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아마도 한 녀석은 알엠이 입양시켰다가 파양되서 나중에 따로 왔던 것 같다.

이쁘다고 별 생각없이 입양해가는 사람들, 정말 무책임하다.

 

일단은 케이지에 넣어서 작은방에 두었다.

급작스럽게 환경이 변화했는데  너무 신경을 써주면 오히려 애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처음 며칠간은 사료주고 응가한 것 치울 때 말고는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생긴 것 하고 성격이 어쩜 이렇게 일치하는지! 아마도 표정 때문이겠지?

이 녀석은 호기심은 많은데 겁도 무지하게 많았다.

 

완전한 역삼각형에 카리스마 있는 눈빛!

겁이 많다기 보다는 사람을 많이 경계해서 친해지는데 제일 오래 걸렸다.

 

코 주변의 점들 때문에 좀 웃기게 생겼는데 하는 짓도 제일 웃기다.

가장 활달하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기 좋아하고, 나에 대한 경계도 가장 빨리 풀었다.

 

내 카메라 가방을 뜯고 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알엠은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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