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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

오늘 업무 분장을 받았다. 학교신문 업무를 예체능부로 다시 되돌린단다. 그래서 업무를 쫓아 예체능부로 왔다. 예체능부에 오니 학교신문과 더불어 학예를 담당해달란다. 작년에 업무가 아니어도 했었는데 하지 뭐. 학교신문과 학예는 줄창 나만 따라 다닌다.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기니 정리가 좀 된다. 조금.

 

독서와 국어생활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를 받았다. 책을 보니 막막하다. 수업을 어찌 할까 싶어 뒤적뒤적 하다보니 막막해진다.

 

새로운 반 아이들과 첫 대면을 했다. 내가 담임 되었다고 애들은 겉으로라도 좋아라 한다.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첫 만남에서 내 교육관을 얘기했다. 어젯밤 어떤 말을 첫말로 꺼낼까 고민고민하다 내 교육관을 이해시키는 것이 처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래저래 맞춰 내놓은 생각이 대충 이렇다.

 

칠판에 "교육과 훈육"이라는 말을 썼다. 교육이 edu+care라면 훈육은 '기른다'는 의미와 질책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교육이 훈육보다 인간적이며, 동어반복이겠지만 더욱 교육적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가들의 사상도 있었고, 순자로부터 비롯된 법가의 사상도 있었다. 공자는 군주가 어질고 덕이 있으면 백성이 모여들고 그래서 부강한 나라가 된다고 했다. 맹자는 何泌曰利라 했다. 맹자는 소위 성선설을 주장하며 '맹모삼천지교'라며 좋은 환경을 강조했다. 하지만 순자는 인간은 악하다는 성악성을 주장하며 이를 이은 법가는 인간은 법으로 다스려야 할 존재라 여겼다. 그래서 목수승직이라 했다. 원래 나무는 굽었으므로(인간은 악하므로) 먹줄을 받아(훈육) 곧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의 이 사상들 중 어느 사상이 중국을 통일하게 되냐면 인과 덕을 말한 유가의 사상이 아니라 법과 엄격함을 말한 법가의 사상이 중국을 통일했다. 물론 현대의 판단은 유가의 사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학교의 교육은 당연히 '교육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꼭 그러하냐 했을 때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나는 공자 노릇만 할 수는 없다. 순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굽은 나무'가 있다면 당연히 '먹줄'을 튕길 것이다.

 

 

적절한 얘기였는지 자꾸만 후회가 되려고 한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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