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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서평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102132911
세상 바꾸는 열쇠? 마르크스로 '백 투 더 퓨처'! (프레시안,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2012-11-02 오후 7:09:30)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에릭 홉스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
모리스 돕, 크리스토퍼 힐, 로드니 힐턴, 빅터 키어넌, 조지 루드 그리고 E. P. 톰슨. 이 이름은 모두 당대 최고의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명단이다. 여기에 에릭 홉스봄(1917~2012년)이 함께 한다. 이 인물들은 모두 1946년 창설되었던 영국 공산당의 '역사가 그룹'(1992년 '사회주의 역사회'로 개칭) 출신으로, 당시 영국에서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던 냉전 정치의 선봉에 선 매카시즘과 학문적으로 대결했던 지식인들이었다.
이런 맥락을 주시하면, 홉스봄이라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역사가의 출현은 단지 그의 역량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지식인 집단의 존재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진보 정당이 역사학이라는 학문에 매우 치열한 집단적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곧 정치와 직결된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홉스봄은 역사학자로서 정치의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해왔고 그것은 현실에서 변화를 목표로 한 실천이라는 점에서도 그의 마르크스주의 사관과 일치했다. 그런 까닭에 그의 마지막 저작의 제목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이경일 옮김, 까치 펴냄)로 되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마르크스와 역사 그리고 정치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떻게 구축되어갔는지 그 초기의 시점부터 분석하고 있으며, 마르크스 사후 그의 사상과 이론적 작업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변화되어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의 시대에서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새롭게 성찰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런데 에릭 홉스봄의 마르크스에 대한 해설과 이해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실천이라는 점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의 문제와 역시 직결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학자 홉스봄의 마르크스 해석이기도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 대한 그의 이론적 결론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흔히 마르크스의 이론적 저작들이 주목하는 최대의 관심은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규명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이며 이것을 풀어나가는 '정치'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을 넘어서 변화에 대한 실천의 강조는 바로 이 정치의 복원과 재편에 대한 그의 철학적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각도로 보자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정치 조직인 정당에서 중요한 이론적 활동과 연구 작업을 했다는 것은 매우 타당해보일 수밖에 없다. 홉스봄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의 그람시를 다루는 대목에서 이러한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승리하는 사회주의 전략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르크스를 인용하면, 인간이 "싸워서 해결하는" 방법이다. 혁명의 근본 문제는 이제까지의 하층 계급을 어떻게 헤게모니적으로 만들고, 잠재적인 지배 계급으로서 자신을 믿게 하고 다른 계급들에게 그렇게 믿음을 주는가이다. 여기에 그람시가 보기에 정당(현대의 군주)의 중요성이 있다. 그는 노동 계급이 자신의 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연 발생적인 경제적-조합적 혹은 노동조합적 단계를 극복하는 것은 정당의 운동과 조직을 통해서뿐이라는, 즉 그가 보기에는 정당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치의 복원 vs. 자본의 지배
홉스봄의 그람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홉스봄 자신의 삶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공산당원이고 그 안에서 활동한 역사학자라는 사실로 집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과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이 정당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정당인이면서도 지식인으로서의 독자성을 가진 면모는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의 지적 자존심이자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정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기본명제라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마르크스주의 해방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엔리크 뒤셀은 그의 <정치에 관한 21개의 테제(Twenty Theses on Politics)>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의 철폐를 부르짖는다. 정치를 자본의 논리에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철폐는 곧 인간의 삶을 부인하는 것이다. 정치는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직업이자 소명이다."
대공황기를 지나고 있던 1936년에 영국에서 '레프트 북 클럽'이 만들어져서 좌파의 지식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는데, 여기서 좌파 정치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날린 해럴드 라스키, 런던정경대학(LSE)의 창설자이고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의 중심 인물인 시드니 웹 부부 등의 책을 출간했다. 레프트 북 클럽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팜 덧을 들 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의 주축이었다. 홉스봄은 팜 덧을 추모하면서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인 역사가"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레프트 북 클럽과 팜 덧
팜 덧은 인도 출신의 영국인으로서, 영국 공산당을 이끈 지도적 인물인 동시에 역사학자로 대단히 뛰어난 통찰력을 보인 지식인이었다. 그는 유럽 노동 운동의 패배는 파시즘을 가져올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했고, 1936년에 레프트 북 클럽에서 낸 <세계 정치 : 1918-1936>에서 세계 대전의 발발에 대한 흐름을 정확히 분석, 예견했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의 내면적 구조와 성격에 대한 명징한 이해가 기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을 창출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진입하면서 전 세계를 경제 관계 망으로 서로 더욱 가깝게 재편해냈다. 그런데 이는 여전히 노예적 노동과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세계 통합은 적대적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본이 독점 체제 구축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적대적 관계는 누군가를 배타적으로 배제하려 들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그 갈등을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해결하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팜 덧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증명해냈는데, 홉스봄의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바로 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그가 만들어 낸 "장기 19세기"(the long nineteen century, 조반니 아리기가 이후 이를 따서 "장기 20세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의 개념으로 분석해낸 것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장기 19세기는 부르주아 체제의 세계적 확장 과정이었고, 그 결과는 홉스봄이 "극단의 세기"라고 부른 20세기의 끔찍한 전쟁으로 인류를 몰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꾸준히 정리해온 홉스봄의 지적 뼈대에 있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이다. 따라서 그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가 진보가 아닌 비극으로 굴러 떨어지고 오늘날에는 자본의 지배가 위력을 발휘하는 듯했으나 자본의 틀 자체가 동요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마르크스를 다시 진지하게 읽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 강조하는 핵심은?
마르크스가 활동했던 당시 그는 허버트 스펜스에 비해 거의 무명에 다를 바 없었으나, 오늘날 '구글' 검색에서 다윈과 아인슈타인만 그의 명성을 앞지를 뿐 애덤 스미스와 프로이트도 그의 뒤에 있다. 이런 마르크스의 사상적 위력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만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도리어 주목할 정도가 되었다. 홉스봄은 그가 가장 주력했던 논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것은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끌어올리는 자기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들쭉날쭉한 리듬이 주기적 과잉 생산의 위기를 초래하며, 이런 과잉 생산의 위기는 조만간 자본주의적 경제 운영 방식과 양립하기 어렵게 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낼 것이고, 자본주의는 이런 갈등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홉스봄에 따르면, 이러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견해는 초기에 파급력을 갖지 못했으나 1870년대 세계 경제의 위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특히 세계적 변혁 운동과 제3세계 해방 정치가 등장한 1960년대와 1970년대 등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재평가 되고 재해석되었다.
하지만 냉전의 붕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로 세계사가 이어지면서 마르크스주의는 퇴조의 단계로 접어들었고 "실패한 신"의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런데 홉스봄이 보기에, 이러한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세계 자본주의 작동 방식에 균열이 생기면서 마르크스는 다시 호출되고 있다.
좌와 우를 넘어서 마르크스를 다시 호출
"자본주의의 미래가 사회 혁명의 위협이 아니라 속박되지 않는 전 세계적인 작동이라는 그 자신의 본성 때문에 의문시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본주의에게 되새기는 세상이 되면, 마르크스는 다소 예상하지 못하게 회귀할 것이다. 그런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인 작동에 관해서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의 합리적 선택과 자유 시장의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통찰력 있는 길잡이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홉스봄의 예견대로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는 "1973년에서 2008년 동안의 시장 사회에 대한 절대적 환원론 신봉자들도 무력한 상태로 남겨"지게 했고, "기존 체제의 해체, 심지어는 붕괴의 가능성이 더 이상 배제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러면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좌우를 넘어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양편은 모두 한 주요한 사상가에게 되돌아가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1848년에 그가 예견했듯이, 이 사상가의 본질은 자본주의에 대한 그리고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어디로 향할지 깨닫지 못했던 경제학자들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시장은 주요한 위기들 사이에서조차 21세기를 마주하는 주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명백하다. 유지하기 어려운 이윤을 추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무제한적이고 갈수록 기술 집약적인 경제 발전이 전반적인 부를 창출하기는 하지만, 생산, 인간 노동, 덧붙이자면 세계의 자연 자원이라는 갈수록 불가결한 요소들을 희생한 것의 대가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는 단독으로든 아니면 결합되어서든 21세기의 문제들에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없다. 다시 한 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
헤게모니 교체를 위한 정치
역사를 명료하게 분석하고 이를 통해 "헤게모니 교체를 위한 정치를 복원"시켜, 자본의 독점적 권력과 이와 손을 잡은 정치권력의 동맹 체제를 해체하는 것,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홉스봄의 조언과 일깨움은 그래서 깊은 경청의 가치를 갖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불합리를 바꾸어나갈 세력 교체의 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항상적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마르크스를 다시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시대에서 이전과는 다른 "장기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장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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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56660.html
홉스봄, 세상에 남긴 최후의 충고 (한겨레, 장동석/출판평론가, 2012.10.19 20:25)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까치·2만3000원

“인류 역사상 가장 별스럽고 지독한 시기”(<미완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급진적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지켜온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지난 1일 세상을 떠났다. 홉스봄은 소련 몰락 이후 현실사회주의가 막을 내리면서 용도 폐기된 듯 보였던 마르크스주의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는 이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해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했고 역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부박한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홉스봄의 마지막 저작으로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시차를 두고서 마르크스주의에 관해 집필한 글들을 묶어서 출간한 논문 모음집”이다. 논문 모음집이라고 해서 과거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옮긴이 후기를 보면, “홉스봄은 마지막 열정을 살라 자신의 이전 원고들을 추려서 늘리거나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새로 덧붙임으로써 세상에 남길 최후의 충고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홉스봄은 먼저 오늘날 카를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천착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혼동하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때아닌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지금 세계는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홉스봄은 자본주의 초기 현상만으로 “영리 추구와 최대의 지속 성장이라는 자본주의 시장의 규범”을 읽어낸 마르크스를, 자크 아탈리의 표현을 빌려 “정치적이자 경제적이고 과학적이자 철학적인 전체로서의 세계를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히 혁명을 외치는 불온한 사상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세밀하게 읽어낸 “보편적인 포괄성”을 지닌 사상인 것이다.
사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의 과거를 정리한 책이다. 홉스봄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치사상과 견해, 그 사상의 영향과 발전, 퇴조 등을 조목조목 살핀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의 이론가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중요성을 간파한 안토니오 그람시를 전면에 내세워, 유럽과 아메리카 일대로 퍼져나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을 추적한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실상 “20세기 사회혁명의 국제적 원리”가 되었다고 홉스봄은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홉스봄의 표현에 따르면 “국제적 정통성의 결합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가 영영 사라져야 하는, 간단한 사상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본질이자 핵심인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초기를 지나 그 폐해가 극에 이른 오늘, 아니 내일에 더 유효하기 때문이다. ‘마크르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과거지향적 부제와 달리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미래지향적 제목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들춰내 오늘과 내일을 비추자는 게 홉스봄의 생각인 것이다. 옮긴이는 이를 두고 “독자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홉스봄은 책 마지막 문장에 “다시 한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고 쓴다. “이윤을 추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무제한적이고 갈수록 기술집약적인 경제발전이 전반적인 부를 창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산, 노동, 자연자원 등 “불가결한 요소들을 희생한 것의 대가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결국 지금의 자본주의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지금도 해결할 수 없다면 먼 미래에는 작은 답조차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하자는 홉스봄의 주장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92128545&code=900308

[책과 삶]홉스봄 유작… “자본주의 운명 예견한 마르크스, 그가 다시 필요하다” (경향, 김종목 기자, 2012-10-19 21:28:54)
▲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릭 홉스봄 지음·이경일 옮김 | 까치 | 2만3000원
지난 1일 타계한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의 마지막 책이다. 1956년부터 2009년까지 쓴 글을 엮은 이 책에 대해 홉스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했고, 사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라고 소개했다. 그는 평범하고 간결한 언어로 연구 결과를 설명하면서 의미심장한 제목(원제: How to change the world)을 붙였다. 마르크스·엥겔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통시적 접근에서 현재 상황을 읽어내고, 어떤 변혁 가능성과 의지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다.
16편 중 서문 격인 ‘오늘날의 마르크스’에서 홉스봄은 과거의 마르크스를 이렇게 규정한다. “한 명의 사상가가 20세기에 지울 수 없는 주요한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면, 그는 바로 마르크스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마르크스는 21세기를 위해서 다시 한번 너무도 필요한 사상가”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마르크스가 세상에 관해서 언급해야만 했던 것들을 참작해야 할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여전히 넘쳐난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자들이 발견한 ‘오늘날의 마르크스’에 관한 일화도 전한다. 금융자본가 조지 소로스는 ‘21세기의 전환기’에 홉스봄과 만나 마르크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유의해야만 할 자본주의에 관한 무엇인가를 150년 전에 발견했군요.” 20세기 이후 성경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한 작은 책자 <공산당 선언>에 관한 언급이었다.
책은 마르크스 사상의 기원과 영향, 그 흐름을 개괄한다. 홉스봄은 정치, 경제, 철학이라는 학문 분과와 당대의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이념,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국가들의 경험을 종합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건한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조명한다. 마르크스 당대와 사망 이후 주요한 역사적 분기점에서 그 영향과 부침도 정리했다.
홉스봄의 분석과 해석의 주요 잣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접 세상에 대해 말한 것들이다. 그중 하나가 <공산당 선언>이다. “현대의 독자에게 분명히 충격을 줄 것은 <공산당 선언>이 부르주아 사회의 혁명적 성격과 영향에 대해서 내놓은 놀라운 분석”이다. 홉스봄은 “1990년대에 등장한 세계화된 자본주의 세계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예견했던 세계와 결정적인 측면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똑같았다”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계가 논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될 운명에 놓였는가를 예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공산당 선언>이 수송과 교통 혁명, 생산의 세계화, 압도적인 산업화와 가족 파괴 등 “오늘날 대규모로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전망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분석의 영역을 떠나 현재로 진입했을 때, 정치적 가능성을 가진 선택 가능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홉스봄은 마르크스가 생애 대부분을 일관한 ‘계급 정당’의 중요성을 여러 편에 걸쳐 강조한다. “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들의 조직’은 ‘그러므로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홉스봄은 마르크스의 핵심 작업을 이렇게 정리했다. “노동운동을 계급운동으로 일반화하는 것이고, 노동운동의 존재 속에 내포된 목표, 즉 공산주의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보다 즉각적으로는 노동운동을 정치운동으로, 즉 여러 계급을 포괄하고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모든 정당들과 결별한 노동계급 정당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홉스봄은 공산주의의 여러 위기와 논란에도 영국공산당 당적을 꿋꿋이 유지했다.
홉스봄이 마르크스의 무오류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가 썼던 많은 글들이 시대착오적이며 그중 일부는 이제는 혹은 더 이상 받아들일 만하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명백한 것은 “마르크스의 분석 중 많은 핵심적인 특색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적절하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첫 번째 이유를 “억누를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전반적 역동성”, 즉 “가족 구조와 같은 인류 유산의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위력”을 분석한 데서 찾는다. 두 번째는 “갈수록 세계화된 경제로의 경제적 집중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내재적 ‘모순’을 발생시키는 자본주의 성장 메커니즘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홉스봄의 마르크스 분석은 현재와 닿아 있다. “마르크스의 본질은 자본주의에 대한, 그리고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어디로 행할지 깨닫지 못했던 경제학자들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가 지금 여기에서 유효한 이유는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인 작동에 관해서 마르크스는 자본의 합리적 선택과 자유시장의 조절 메커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통찰력 있는 길잡이인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좌파 역사학자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은 “세계경제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팽창해 환경이 파괴되면서, 무제한적인 경제성장을 제어할 필요가 갈수록 긴급”해진 현실에서 비롯된다. 홉스봄에게 자본주의와 시장은 답이 아니라는 점도 명백하다. 그는 경제적·정치적 자유주의도 당면한 21세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결론 격의 글인 ‘마르크스와 노동: 장기(長期)의 세기’에서 홉스봄은 물음에 대해 유지(遺志)와 과제를 남기듯 답한다. “다시 한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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