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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가 남긴 또하나의 유산 ‘건강 불평등’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625792.html
대처가 남긴 또하나의 유산 ‘건강 불평등’ (한겨레,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연구원, 2014.02.25 19:22)
건강 렌즈로 본 사회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늘날 나타나는 전 세계적인 ‘건강 불평등’이 결코 우연한 자연현상도, 인간사의 필연적인 운명도 아니라고 했다. 이는 전적으로 불공정한 경제 질서, 불량한 사회정책, 나쁜 정치가 조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정치는 불공정한 경제 질서를 더욱 촉진할 수 있고, 반대로 경제 위기에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국제보건서비스저널> 최근호에 발표된 앨릭스 스콧새뮤얼 영국 리버풀대 교수의 논문은 이런 맥락에서 ‘대처리즘’이라는 정치적 유산이 영국인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다.
영국이라는 강대국의 여자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정치적 행보 자체가 남성 주도의 정치 세계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단호함이 공공시설과 서비스의 민영화, 금융시장의 규제완화, 부자와 기업의 세금 삭감, 노동유연화와 노동조합 파괴였다. 이처럼 대처 정부가 취한 개혁 조치의 핵심은 ‘사회적인 것’을 철폐하고 이를 ‘시장’에 맡기는 것이었다. 비단 산업 부문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기업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위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긴밀했다. 예컨대 1981년 국립보건서비스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슈퍼마켓 체인인 세인즈베리의 전직 사장을 자문관으로 초청할 정도였다. 대처 자신과 켄 클라크 보건부 장관도 퇴임 뒤 각각 담배기업 필립 모리스의 고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의 이사로 일했다.
대처 집권 시기(1979~1990년)에 실업률과 빈곤율은 치솟았고, 소득 불평등이 빠르게 악화됐다. 물론 이 시기를 포함해 지난 1세기 동안 영국인들의 사망률은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나 대처 집권 동안 술, 약물, 자살, 폭력으로 인한 사망이 뚜렷이 늘어났다. 특히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사망률 감소 추세 자체가 둔화됐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직업계층이나 지역 빈곤 수준에 따른 사망 불평등이 눈에 띄게 심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 건강불평등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특별조사보고서 두 편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1986년에는 직업계층에 따른 건강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원래 주기적으로 공개되던 사회계층 자료 형태를 마음대로 바꾸기도 했다. 당시 점잖은 <영국의사협회지>마저 “거짓말, 터무니없는 거짓말, 금지된 통계”라는 제목의 격정적인 비판논설을 실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립보건서비스를 전면 민영화시키는 것은 대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처가 회고록에서 고백했듯, 국립보건서비스에 대한 영국인의 지지가 워낙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3년 처음으로 국립보건서비스의 급식, 청소, 세탁 서비스를 외주화했고,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이른바 ‘경쟁을 통한 효율’ 달성 체계를 도입했다. 이때 국립보건서비스 체계에 깊숙하게 침투한 시장 혹은 효율이라는 기풍은 오늘날 대처리즘을 계승한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의 국립보건서비스 민영화에 중요한 토대가 됐다.
대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공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아직도 살아남아서 영국인의 건강과 안녕을 해치고 있다. 그의 유산은 국경마저 쉽게 넘어, 그의 시대에 꽃을 피운 모든 것인 민영화, 실업, 빈곤, 건강 불평등 등은 오늘날 우리에게 낯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참고문헌: Alex Scott-Samuel, Clare Bambra, Chik Collins, David J. Hunter, Gerry McCartney, and Kat Smith. THE IMPACT OF THATCHERISM ON HEALTH AND WELL-BEING IN BRITAIN.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2014;44(1):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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