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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첫 소설집 ‘타워’, 불온한 현실 풍자 ‘사회파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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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현실 풍자 ‘사회파 SF소설’ (경향, 이영경기자, 2009-06-11 17:37:04)
ㆍ배명훈 첫 소설집 ‘타워’
 
배명훈(31)의 첫 소설집 <타워>(오멜라스)는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과학소설(SF소설)에 대한 통념을 깨버린다. 어렵고 전문적인 과학기술, 우주탐험이나 외계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 사회에 불온할 정도의 날카로운 풍자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의 소설을 ‘사회파 SF소설’이라 이름 붙이면 어떨까.
 
지상 최대의 빌딩이자 도시 국가인 빈스토크(Beanstalk·‘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까지 솟은 콩줄기). 높이 2408m, 674층 규모에 너비도 5㎞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빌딩은 인구 50만명을 수용한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로, 완공 6주년 되던 해에 역사상 최초의 도시국가로 대내외적인 주권을 인정받는다. 부동산 가격과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영토 내 모든 시공간이 빈틈없이 상품화된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곳이다.
 
“서울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집중해서 농축된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도시 하나를 네모난 데 꽉 집어넣는 느낌이랄까요.”
 
배씨의 말처럼 빈스토크는 대한민국을 기묘하게 축약한 요지경 같은 곳이다. 층수에 따라 부촌과 빈촌이 나뉘고 좌파와 우파를 연상케 하는 ‘수평주의자’와 ‘수직주의자’들의 갈등이 있다. 권력의 압력 속에서 자연주의로 전향한 작가 K의 이야기를 다룬 ‘자연예찬’은 “시 정부에서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먼지를 털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게 아니라 다른 규칙들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다”라고 표적 수사 문제를 풍자한다. 용산참사를 연상케 하는 재개발 구역 주민의 죽음이 있고, ‘카페 빈스토킹’에는 광장공포증에 빠진 권력에 대한 풍자가 번뜩인다. 
 
SF 작가인 그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서울대 외교학 석사를 마친 배씨는 “외교학도 세계관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SF소설에서는 세계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는데 둘이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2004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소재로 한 <테러리스트>로 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다룬 <스마트 D>로 과학기술창작문예에 당선되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신문만 보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릅니다. 다들 요즘 힘들다고 하는데 작가로서는 역설적으로 좋은 때죠. 현 정권은 ‘뮤즈’와 같습니다. 무한한 영감을 불어넣어주니까요.”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 속에서도 배씨는 소설적 재미를 잃지 않는다. 소설집의 처음을 여는 ‘동원박사 세 사람’에서 주인공이 27층에서 건물 꼭대기인 674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로, 작가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설계한 빈스토크의 탄탄한 구조를 볼 수 있다. ‘영화배우 P’로 불리는 인기 영화배우이자 빈스토크 권력의 정점에 있는 개는 소설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한국의 SF소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창작이 이뤄지며 오프라인 출간도 최근 늘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 환상문학 사이트 ‘거울’(http://mirror.pe.kr)은 SF소설 및 판타지 소설이 활발히 창작되는 곳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서점을 통한 SF 소설 연재도 늘고 있다. 배명훈의 <타워>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연재했던 소설이며, 교보문고에 김보영씨가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계간 ‘판타스틱’을 통해 SF소설 등 장르소설들이 지면에 꾸준히 발표되고 있으며 최근 1~2년 사이 출판사 ‘행복한 책읽기’ ‘황금가지’ ‘오멜라스’ 등이 SF소설을 출간해오고 있다.
 
국내 SF 작가로는 기존에 왕성한 활동을 했던 듀나, 복거일 작가 등이 있으며 최근 들어 배명훈·김보영·박성환·김창규 등 젊은 작가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져 박민규·윤이형·김언수 등의 작가들도 SF적 상상력이 들어간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박상준 오멜라스 대표는 “SF소설은 판타지의 이영도와 같은 스타급 작가가 빈곤하다”며 “SF스타 작가가 나와준다면 SF소설 시장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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