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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책 현장토론, 넉달만에 꽃이 피다

 

http://www.hani.co.kr/arti/558551.html
과학기술정책 현장토론, 넉달만에 꽃이 피다 (한겨레, 이승아 한양대학교 학부생, 물리학·산업공학 [공동취재/ 이승아, 이은지], 2012.11.01 14:44)
마지막 타운미팅 토론마당…10~70대 50여명 참석
정책제안 문건 11월중 세 대통령 후보 캠프에 전달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놓고서 몇 차례에 걸쳐 집중 토론을 진행한 타운미팅은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선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여러 개인과 집단이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뤄진 진행 과정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현장 과학기술인과 시민이 주체가 된 ‘과학기술 정책 제안’ 토론장에서 토론을 진행해온 정완숙 디모스플러스 대표가 넉 달 가까이 진행된 네 차례의 토론마당 가운데 마지막인 이날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가을비 내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피날레
지난 27일, 행사장인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 회의실로 출발하던 아침부터 흩뿌리던 가을비 때문에 오늘 토론 행사에 참석자가 줄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다. 빗줄기가 잦아들 무렵에 서울 지역에서 출발한 참석자들의 전세버스가 늦게 도착하면서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은 예정 시각보다 늦게 시작됐다. 다행히 궂은 날씨였지만 전국에서 10대 고교생부터 70대 원로 과학자까지 모두 5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세 차례의 타운미팅을 거치며 이제는 제법 친숙해진 사람들도 생겼다.
지난 7월7일 대전 시내의 ‘카페 눈오는 밤’에서 열린 첫 번째(0차) 타운미팅, 그리고 8월과 9월에 서울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1차, 2차 타운미팅에 이어, 이날 3차 토론마당은 그동안 나온 토론 의제와 정책 제안들을 최종 정리하고 수정·보완 토론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날이었다. 2차 타운미팅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시민과학센터, 카이스트·포스텍 대학원 총학생, 한겨레 사이언스온, 한국 과학의 자생적 생태계를 위한 현장 과학기술인 모임, 15개 전문연구정보센터협의회 단체가 참여했으며, 사회적 기업 디모스플러스가 행사를 주관했다. 또한 스무 명가량의 개인 자원봉사자들이 준비모임을 꾸려 행사의 실무를 진행했다.
널찍한 회의 공간 때문인지 가을비 때문인지, 마지막 타운미팅은 각 분과별로는 열띤 토론이 오갔지만 전체 분위기는 차분하게 진행됐다. 격식 없이 소박하고 진솔한 자리였다. 먼저 3차 타운미팅 행사를 지원하는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의 박찬 회장이 쑥스런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많은 분들이 먼 길 오신 만큼 이 자리에서 좋은 정책 제안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며 참석자들을 맞았다. 이어 1차 타운미팅 때부터 참가해 분과 간사로 활동해온 ‘너굴’ 님이 0~2차 모임의 과정과 참석자들의 이메일 설문조사 결과를 간략히 발표했다. “자료집이 점점 두꺼워지는 걸 보면서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도 뭔가 만들어져간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며 말문을 연 그는 이어 0~2차 참가자를 대상으로 벌인 이메일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그동안 나온 정책 제안들을 두툼하게 정리한 3차 토론 자료집은 타운미팅 페이지에서 내려받아 볼 수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타운미팅 참석자들은 대체로 인터넷이나 사회연결망서비스(SNS), 인맥 등을 통해 타운미팅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대학원생의 참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너굴 님은 이런 결과를 두고 “대학원생들이 민주적 의사소통 방식에 가장 크게 아쉬움을 느끼는 집단이기 때문 아니겠는가”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다소 낯선 타운미팅이라는 회의 방식에 대해 참석자들은 대부분 ‘만족한다’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막바지 조정, 조율, 투표...어둠 내린 밤 7시40분에야 끝나
이어 정완숙 대표의 진행으로 토론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3차 타운미팅은 지난 세 차례의 타운미팅에서 나온 갖가지 의제와 정책 제안을 놓고서 참석자들이 마지막으로 수정·보완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정책 제안 타운미팅의 목표가 현장 사람들이 ‘당당하고 유쾌한’ 토론으로 마련한 과학기술 정책을 대선 후보에 제안한다는 것인 만큼, 참석자들은 이날 그동안 나온 정책 제안들을 놓고 현실성을 고려하는 세심한 의견 조정 과정을 거쳤다.
토론은 먼저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여러 분과의 테이블을 오가며 토론하는 ‘월드 카페’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모두 10개의 분과 테이블에서 참석자들은 3개의 분과를 순회하며 기존에 나온 분과별 토론 결과를 보완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분과별로 정책 제안을 최종 확정하는 긴 토론이 진행됐다. '월드 카페'에서 추가된 의견을 기존 제안과 연관된 의견, 그리고 새로운 제안으로 분류하고, 이 결과에서 도출된 새로운 내용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책 제안으로 삼을지를 정했다. 이렇게 추가된 안까지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 것이 이날 토론의 핵심이었다.
타운미팅은 예정된 폐막 시간인 오후 6시30분을 넘겨 창밖에는 이미 어둠이 깔린 가운데에서도 계속됐다. 이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40여 명의 참석자들이 1인1표 응답기를 이용해 제안된 정책들에 대해 ‘공감도 진단’까지 하고 나니 이날 토론은 밤 7시30분을 넘기고야 막을 내렸다.
이날 타운미팅에는 과거 정부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데 관여했던 인사 서너 명도 1인1표의 참석자로 토론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박기영 순천향대 교수(생물학과)는 ”타운미팅 관련 기사들을 읽으며 소식을 듣고 있다가 타운미팅에서 나오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함께 느끼고 싶어 참석했다”면서 “특히 젊은 연구자들의 생각이 잘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이들이 기득권층이 아니기에 시민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책 제안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여기에서 나온 의견들이 정책 수립과 정책 방향 설정 과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는 임춘택 카이스트 교수(원자력및양자공학과)는 “토론, 소통, 참여는 이 시대의 화두이고 그래서 타운미팅 같은 모임은 아무리 활발해도 나쁠 게 없고, 설사 어떤 부작용이 있다 해도 그것마저도 아주 요긴하고 필요한 것 같다”는 말로 타운미팅 참여의 소감을 말했다.
"대선 후보에 효과적으로 전달돼야" "토론 '과정' 자체가 소중한 경험"
이번 타운미팅은 과학기술 정책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현장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뤄낸 첫 번째 타운미팅이다. 그만큼 큰 의미가 있지만, 아쉬움도 있고 여전히 기대도 크다. 1차 때부터 참여해온 한 대학원생은 “좋은 내용이 많이 나왔지만 이것이 ‘문제의식 공유’에 그칠 것 같아서 다소 걱정”이라며 향후에 정책 제안이 대선 캠프에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0차 모임 때 행사 공간을 기부한 카페 ‘눈오는 밤’의 주인장은 “일반 시민으로서 과학기술 정책 논의가 이 정도의 열성으로 진행된다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 과학과 기술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분과 간사인 ‘재규어’ 님은 ”어찌 보면 정책 제안 내용들에 새로운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현장 사람들이 모여 현장의 눈높이로 정책을 제안해가는 ‘과정’ 자체가 매우 의미있었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차 타운미팅의 토론 내용은 지금까지 토론 결과를 정리한 문건에 보태져 최종 문건으로 다듬어질 예정이며, 타운미팅 준비모임은 현장 사람들의 정책 제안 문건을 적절한 방식을 통해서 대선 후보 캠프에 정식으로 전달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타운미팅 준비모임은 현재 대선 후보들의 과기정책 공약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최종 문건의 정식 전달에 앞서 이날 배포된 ‘정책제안 분과토론 3차 자료집’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선 후보의 캠프 쪽에 이메일을 통해서 전달했다.
흔히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정책이 크게 출렁일 정도로 바뀐다는 불만을 이야기한다. 이번 네 차례의 타운미팅에서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정권이나 유행에 따라, 또는 소수 결정자들에 의해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데 대한 현장 과학기술인의 불만이 매우 크다는 점이 여러 토론의 자리에서 확인됐다. 타운미팅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는 비록 적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책 결정자와 시행자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이들 목소리의 울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번 타운미팅이 정책과 현장이 더욱 가까져야 한다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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