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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학교에서 방학중에 선생님 및 몇몇 분들과 함께 미셸 푸코 세미나를 하고 있다. <광기의 역사>를 살피면서 푸코의 이런저런 면모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참 매력있는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푸코는 프랑스 공산당을 탈당한 이후로 단 한번도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지만, 마르크스주의들도 그의 글쓰기 방식으로부터 착안할 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 그의 역사 탐구도 체제를 탐구하는 미시적인 노력들에 있어서는 아주 긍정적 의의가 있다.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푸코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들은 대개 교조적으로만 다가왔던 것 같다. <광기의 역사>를 읽다가 참고 서적으로 읽은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마단 사럽, 조형교육)과 <철학의 외부>(이진경) 등을 살펴보면 그들이 푸코에 대한 비판이라고 언급한 부분들이 대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그것과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판의 맥이 원인-결말 식의 단순 도식의 논리로 채워져있으며, 이론적 합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그럼 대체 누구에게 저항하라는 말이냐"라는 식의 읍소 내지 하소연을 긍정적 '비판'으로서 들어줄 의무 또는 필요성이 하나도 없다. 교조주의와 서구근대적 합리성에 얽매인 계몽주의자들이 네그리나 푸코를 비판할 때 사용한 도식들은 그 자체로 자기 과학의 빈약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푸코는 노동자계급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묶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사회 관계는 권력 관계 이기에 권력은 도처에 널려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푸코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체제하의 경제적 심급의 문제에 대해 주요한 권력의 출발점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푸코는 권력은 그렇게 꼭 집어낼 수 있는 시작점 따위가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번 세미나때는 푸코에 대해 정밀하고 예리한 비판을 준비해가야겠다. 멍청하지않은 마르크스주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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