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후부터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25일 새벽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남북 대표들이 회의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지난 22일 극적으로 열린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25일 새벽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이로써 군사적 대치상황은 일단 고비를 넘겼고, 이후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았다.
남측에서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비서가 참가한 이례적인 최고위급 접촉인데다 사흘 밤을 자정을 넘기며 진행돼 숱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지만 남북은 상호 관심사를 공동보도문에 담아내는 ‘협상의 기술’을 발휘해 공동보도문을 극적으로 타결지었다. 그러나 이후 풀어야할 숙제들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회담 역량 쏟아
이번 접촉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이번 접촉의 직접적 계기가 된 지난 4일 지뢰폭발 사건과 10일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20일 서부전선의 교전사태 등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적 대결 문제였다.
남측은 지뢰사건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북측에 강력히 요구했고, 북측은 지뢰폭발과 선제 포격을 전면 부인하며 확성기 방송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며 맞섰다. 양측의 시각차가 너무 현격해 과연 합의문이 나올 수 있을 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협상 막바지인 2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번 회담의 성격은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도발을 비롯한 도발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마치 회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협상 타결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주류를 이루기도 했다.
청와대측은 24일 “우리측은 북한 도발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책을, 북측은 확성기 방송 중단에 회담 역량을 쏟”고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 등 다른 의제들은 “아직 논의하지도 못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결국 남북 양측은 공동보도문 6개항 중 2,3,4번 항을 통해 절묘한 합의문 채택에 성공했다. 지뢰폭발에 대한 북측의 간접 유감 표명과 남측의 확성기 방송 조건부 중단,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가 그것이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3.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의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로 중단하기로 하였다.
4. 북측은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
▲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수석대표인 남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북측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공동보도문 채택 이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뒷쪽에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이 보인다. [사진제공-통일부]
절묘한 공동보도문, 유감-중단-해제
먼저, ‘북측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북측이 남측 지역에서 남측 군인이 부상당한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접촉 종료 직후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긴장환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실장의 발언과 달리 북측은 ‘사과’가 아닌 ‘유감’을 표명했고, ‘지뢰도발’이 아닌 ‘지뢰폭발’이라는 객관적 표현으로 최종 타결돼 북측도 인도적 차원에서 남측에서 발생한 지로폭발로 인한 남측 군인의 부상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사실상 ‘협상의 기술’을 발휘한 절묘한 타협 문구인 셈이다.
북측이 다소 미지근한 ‘유감’을 표명한 만큼 남측도 확성기 방송을 25일 정오부터 중단하되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북측의 새로운 도발이나 합의사항 불이행시 이를 되돌릴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준전시 상태 해제’ 등 북측이 취하기로 한 합의사항을 불이행 하거나 새로운 도발을 하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지뢰폭발 사건을 다시 전면 부인할 경우도 염두에 둔 것으로도 확대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 남북 고위당국자접촉 대표단이 공동보도문 채택이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어쨌든 북측의 지뢰폭발 사건 유감 표명과 남측의 확성기 방송을 시한을 못박아 중단키로 한 점은 이번 협상의 핵심 합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북측이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한 대목은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
이번 고위당국자 접촉의 직접적 계기가 된 20일 군사분계선 일대의 교전에 대해 북측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일 당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21일 오후 5시부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한 바 있다.
따라서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는 20일까지의 일련의 남북간 군사적 긴상 상태를 되돌리는 중요한 조치에 해당하는 셈이다. 따라서 ‘북측의 위회적 유감 표명 - 남측의 조건부 확성기 방송 중단 -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는 하나의 패키지다.
유감 표명은 해석에 따라 ‘귀에 걸며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에 불과한 분위기 조성용 ‘립 서비스’라면 실효적이고 물리적 조치로 따진다면 남측의 확성기 방송 중단과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가 합의의 핵심인 셈이다.
북측이 강력히 제기할 것으로 예상됐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합동 군사연습’ 중단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24일 청와대측은 북측이 확성기 방송 중단에 회담 역량을 쏟으면서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의 의제는 아직 논의하지도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회의 모습. [사진제공-통일부]
‘먹튀’ 논란 불구 이산가족 상봉 명기돼
남북이 ‘유감-중단-해제’라는 패키지 딜을 통해 현안을 해결했다면, 나머지 의제들은 대체로 향후 숙제로 남겨두었다.
1.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자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초에 가지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그나마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을 약속하고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초에 진행하기로 한 5항 만이 구체적 합의이고 ‘당국자 회담’과 ‘민간교류 활성화’는 방향만을 담은 수준의 합의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남측이 강력히 희망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합의문에 포함된데 반해 북측이 원하고 있는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관광 재개는 언급되지 않았다. 한 정부 소식통은 “대표단 구성으로 봐서 북측의 협상력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회담장에서 북측이 확성기 방송 중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남측이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 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지만 남측의 금강산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등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자 ‘먹튀’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동보도문 역시 남측의 희망사항인 이산가족 상봉만 명기된 점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 대북 소식통은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이뤄졌다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남측의 조치들도 있을 것”이라며 물밑 협의에 주목했다. 다른 전문가는 “긴장을 최대한 고조시킨 뒤 대화 제의를 던져 북쪽이 판을 짰다”며 “북한이 의도한 결과를 얻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이산가족 상봉을 시발로 금강산관광 재개 등 이후 남북관계 발전 여부는 후속 당국자 회담과 민간교류 활성화 여부에 달려 있다. 당국자 회담은 ‘급’이나 ‘격’이 명시되지 않았고 개최 시한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9월초 중국을 다녀온 뒤 곧바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민간교류 활성화 역시 남북 당국의 추진의지가 필요한 사안이며, 체육.문화 교류 등 낮은 단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며, 6.15공동위원회의 민족공동행사 등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첩첩산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 남측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김양건 당 비서가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 채택 이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김관진 실장은 타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쌍방의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동보도문에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협의”했다고 밝힌 점에 대해 “기본틀을 이번에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예상한 수준에서 무난한 보도문이 나왔다”며 “당국간 회담에서 이번에 논의된 기본틀에 따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과제”라고 짚었다.
혹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1651년에 출간한 「리비이어던(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을 표현한 정치 용어입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460여 년 전이지만,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려 장난감과 놀이기구보다는 영어책과 수학공식과 더 친해져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겠다고 덤벼드는 우리의 부모들, 그리고 경쟁사회의 최전선에 서 있는 부모를 대신하여 노후도 포기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우리 어르신들…
살고 있는 곳이 강남이건, 강북이건, 신도시이건,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2015년의 대한민국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위험하고, 불안하고, 평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의 도시 정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실상을 온 국민이 확인한 것이 세월호 참사였고, 윤일병 사망사건이지요. 강남 세모녀 살해사건도 강남이라는 도시 정글이 빚어낸 대표적 참극입니다. 이들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가 자신만의 욕심과 생존을 위해 올인 하면 할수록 우리의 아이들은 더더욱 위험천만하고 불안한 조건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계속되는 악순환이죠.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무책임한 어른들에 맞서며 동료 학생들을 위기로부터 구하는 리더십을 가진 학생이 1~2명이라도 있었다면… 윤 일병이 가혹한 구타를 당할 때에 온몸을 던져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외치고 제동을 거는 선임병이 1~2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꿈같은 상상을 해본 사람이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공부하고, 위험하거나 귀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부모와 어른들로부터 배운 아이들에게 그걸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입니다.
1960~70년대의 고도성장과 1980~90년대의 민주화와 세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차츰 빈부 격차도 생기기 시작했고, 새로운 상류층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부동산 재벌, 학교 재벌, 유통 재벌, 벤처 재벌, 금융 재벌, 엔터테인먼트 재벌 등으로 기득권층이 분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의 모습이 대단히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 아이만큼은 상류층은 못되더라도 중상류 정도로는 만들어야겠다며 너도 나도 사교육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살인적인 고학력과 고스펙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국가이고 사회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마치 국가와 사회가 나와는 전혀 별개의 마치 주어진 영구불변의 것인 양 행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이건 경찰서장이건 세무서장이건 사단장이건 학교 이사장이건 모두 자신의 자리를 망각한 채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 기업인, 지식인의 부패와 사법처리 뉴스는 이어졌고, 그것은 대한민국 모든 영역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교육 열풍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대를 나와도, MBA 과정을 마쳐도, 자격증을 따도, 고시에 합격해도, 그 어떤 것도 우리 자녀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자신이 겨냥하고 있는 그 길이 마치 성공의 보증수표이고 마스터키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어른들로부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보장된다는 것을 주입받은 우리 아이들은 대학 입학 후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경험하면서 참담함 속에 한 두 명씩 멘붕 상태로 빠져들게 됩니다. 단지 그것을 좀 더 일찍 깨닫느냐 늦게 깨닫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절망하게 되죠.
이렇게 해서는 영원히 답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내 아이’가 어떻게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냐에 모두가 함몰되는 것을 이제라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우리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며 소수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죽거나 추락하는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 오게 됩니다.
특히, 70~80년대 고도성장과 민주화의 혜택만 받았을 뿐, 도덕성과 시민의식을 팽개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부추긴 386세대가 각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스스로가 국가와 사회의 중요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여 시민정신과 도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에게 ‘묻지마 성공’과 ‘잔혹한 경쟁’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건전한 공동체를 위한 사회 구성원 간 협력과 신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을 무시하고 천대하기보다는 포용하고 헌신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면 당장은 뿌듯하고 달콤할지 모르지만 패배한 누군가가 자신 혹은 자신의 자녀를 통해 또다시 복수혈전을 꿈꾸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편법과 요령을 통한 승리보다는 신의와 원칙 속에서의 패배가 더 가치 있게 평가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과 모략 속에서의 성공보다는 진실과 배려 속에서의 패배가 더 가치 있게 평가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미국 민초들의 도덕성과 시민정신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야말로 수 백 년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형성되어 온 선진국으로서의 품격이자 자부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거죠.
보수주의의 핵심은 스스로에 대한 혁신과 화합을 위한 관용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보주의의 핵심은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주의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찍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진보주의 또한 패거리 문화와 기득권 안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가 정치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는 결국 양심과 열정을 가진 시민세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정체성과 방향을 분명히 할 때에 비로소 정치권도 긴장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겁니다.
박근혜 정부, 분명히 바뀌어야 합니다.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스스로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우리 시민들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본연의 자리를 잃어버린 채 정치권을 탓하고 언론을 탓하고 기득권층을 아무리 탓해봐야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자녀들의 안전, 행복, 미래는 우리들 스스로가 열어나가야 합니다. 시민으로서의 투철한 비판의식, 격조 높은 참여의식, 우리 사회를 향한 희망과 열정이 있을 때에 비로소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입니다.
김종배 : 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도 '이슈독털'을 생략하고 '이슈 인터뷰'를 진행할 텐데요. 남북이 지난 주 토요일부터죠? 정회를 거듭하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협상을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종합점검이 필요한데요.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을 연결해서 한 번 털어보도록 하죠. 여보세요?
김종대 : 네, 안녕하세요.
김종배 : 상당히 길게 진행이 되고 있는데요, 협상이. 이 신호를 어떻게 읽습니까? 긍정적이라고 보십니까, 어떻게 읽습니까?
김종대 : 걸려도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마치 잠 안자기 경쟁을 하시는지, 철야도 벌써 이틀째고. 이거 아니라도 잠 못 주무셨을 건데. 그런데 일단은 어떤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회담이 안 깨지고 있다, 이건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양쪽의 입장이 워낙 팽팽하다보니까 쉽게 또 합의를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김종배 : 그런데 언론에서는 지금 협상의 쟁점을, 우리 측에서는 도발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북측에서는 확성기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전하고 있는데요. 제가 볼 때는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이런 의제라고 한다면 최고위급 협상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하나 있고요, 또 한 가지는 도발 사과를 요구한다고 하는데 북측에서는 자기들이 한 적 없다고 부인을 한 상태 아닙니까? 이 상태에서 도발 사과를 요구한다고 해서 협상 타결을 과연 끌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김종대 : 첫 번째와 관련해선 격 따지고 이러느라고 이런 정도의 미세 조정이 필요하고 합의문을 직접 쓸 정도라면 사실 이 분들은 위에서 지침만 주고요, 그 아래에서 실무자가 해도 될 협상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연로하신 분들이 모이셔서 문구하나까지 직접 작성을 해야 한다고 하면 굉장히 피곤한 협상이죠. 그러니까 막상 회담의 격을 따지다보니 직접 정책 결정자가 다 해야 하는 이런 피곤한 협상이 됐다, 이런 거고요. 두 번째는 상대방의 양보를 전제로 한 협상입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의 경우에는 지뢰에 대한 사과를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끌어내려는 것이고, 북한은 남측에서 자기들 최고 존엄이라고 하는 비방, 이런 확성기, 전단 살포, 이걸 안하겠다는 얘길 들으려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상대방의 굴복과 양보를 전제로 한 협상이란 건 뭐냐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대결을 해소하는 대화가 아니고 그 대결의 또 다른 연장으로써의 대화, 이제까지는 총과 대포로 주고받았던 대결 구도를 이제는 말로 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란 겁니다. 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문제의 또 다른 연장으로써의 대화죠.
김종배 : 쉽게 얘기하면 총 싸움에서 말싸움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김종대 :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다, 대화에 있어서 교착 상태라고 하는 건데. 상대방의 문제 해결이 나오길 기다려서 내가 문제 해결을 제시하는, 서로 기다리다보니 진전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이런 교착 상태로 계속 이어지면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남북 대화에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생산적인 결론을 낼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 간 명분만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뭐냐, 이걸 찾는 것 같아요.
김종배 : 여기서 유의해서 봐야할 것이 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의, 회담장에 나온느 사람들이 결정되는 과정인데요. 처음에는 북측에서 김양건 대남 비서가 김관진 안보실장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둘이 만나자, 이렇게 했던 건데 우리 측에서 그러면 황병서 총정치국장 나와라, 이렇게 수정제의를 했고, 그러면 북측에서 다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 나와라,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2+2 회담이 된 건데요. 의제가 군사적인 문제로 한정돼 있다면 북측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 나오라고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김종대 : 사실 그러면 국방부 장관도 나오고, 저쪽의 인민무력부장도 나오고 이렇게 하나씩 덧붙이다 보면 우리가 6자회담 할 때처럼 큰 테이블이 되겠죠. 그런데 사실 실무진을 대동하고 배석시켜서 김관진 실장 혼자 나가도 상관 없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도 격 따지다가 그렇게 된 거거든요? 아무래도 총정치국장이 군 서열 1위 아닙니까? 거기에 정치국이라고 하면 군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우리로 얘기하면 기무사하고 비슷한 기능이에요. 이런 실권자를 불러내서 상징성에 격을 맞추겠다, 이런 것이지 여기에 우리 통일부 장관이 한 자리 더 앉으려고 황병서를 나오라고 한 건, 이건 격 따지다 나온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지 그렇게 격에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종배 : 그럼 예를 들어서 북측에서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 통일 전선부장이고요. 남측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 그러니까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관진 안보실장이라고 한다면 포괄적, 군사문제를 비롯한 포괄적 테이블이라고 해석을 할 수가 있는데, 김양건 비서와 홍용표 장관이라고 한다면 이게 군사 문제로 한정되지 않고 의제가 더 넓어진 상태에서 논의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그런 회담 참석자 아니냐? 제 질문 요지는 이거거든요. 어떻게 보세요?
김종대 : 이런 부분들은 그렇게 생산적이지 않고요. 우선 거기서 김양건 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라는 자체가 이건 굉장히 우리 식 격을 맞추기 위한 억지주장이지, 이런 식의 테이블이 남북 간 대화에 있어서 하나의 기본 조건이자 배경이 된다고 하면 사실 과거 남북대화는 다 잘못된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이건 박근혜 정부 들어 새로운 격의 논리거든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또 군사회담은 여전히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김양건, 홍용표 라인은 군사 회담에서 벗어나 있는 조직이고요. 김관진, 황병서도 실병을 지휘하는 자리들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나중에 양 쪽의 인민무력부하고 우리 국방부가 반발하면 어떻게 됩니까, 협상 다 해놨는데.
김종배 : 남북 군사회담의 라인은 아니죠? 기존의?
김종대 : 그래서 이번 합의문에 어쩌면 합의가 안 되는 부분을 나중에 군사회담에 미루자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어요.
김종배 : 그러면 정리해서 질문을 이렇게 드려보겠습니다. 지금 이 테이블에서 뭐가 논의되고 있다고 추정을 하세요?
김종대 : 일단은 남측에서는 우회전략을 썼을 것으로 봅니다.
김종배 : 우회전략이요?
김종대 : 네, 우회전략.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당면한 지뢰 사건에서 포격 사건까지 이어지는 이 부분을 북한이 사과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뭘로 북한 대표의 체면을 세워주겠느냐는 거예요. 사과만 하는 것으로 협상을 하면 김양건, 황병서 돌아가서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김종배 : 북측에서 일방적인 굴복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면.
김종대 : 그걸 5.24조치 해제 검토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이요, 이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비군사적인 당근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단 것이죠.
김종배 : 우리 측에서요?
김종대 : 우리 측에서요. 그게 바로 우회전략입니다. 그러니까 정치·군사적인 부분에서 양보를 받아내고, 비군사 분야에서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겠다는 식의 투 트랙 전략을 갖고 올라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이건 북한에 안 먹혀들어요.
김종배 : 어떤 점에서요?
김종대 : 북한은 우리 식의 채찍과 당근이라고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들이 과거에 번번히 실패했던 건데요. 돈 몇 푼에, 다른 호의를 보여서 이거 양보하라고 하면 '우리가 거지냐' 이거죠. 바로 평양 박치기로 깨버리는 것이죠. 이렇게 하는 건 북한에 대해서 '얘들이 불리하니까, 배고파서 협상에 나왔구나' 이렇게 보는 남한 식 우월주의가 깔려있는 것인데요. 이런 것들은 항상 북한으로부터 거부되기 일쑤다. 반면 북한의 경우에는 또 너무 정치적인, 군사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일괄타결하면 마음이 급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보면 남북한이, 그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새로운 북남관계 지평을 열기 위한 통 큰 협상을 하자', 이렇게 나올 가능성이 커요.
김종배 : 돌출된 현안만 논의하는 게 아니라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하자, 이런 얘깁니까?
김종대 : 그렇죠. 오히려 난마처럼 얽힌 정치·군사 문제를 직설적으로 한 번에 풀고자 하는 마음은 북한이 더 급할 겁니다.
김종배 : 그러면 예를 들어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는 그런 성질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종대 : 그런 문제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죠.
김종배 : 북측에서는?
김종대 : 네, 그렇게 가고 싶어 하죠. 그러면 당장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DMZ에서 이런 충돌이 나고 하듯이 역시 당장 중요한 건 평화문제 아니냐? 그래서 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일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남북의 협력,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사실은 잘못했으면 사과 먼저 하지 왜 딴 소리냐, 그 쪽으로 자꾸 가면 우리가 감당 못한다, 이건 남한 쪽 반응이겠죠. 그리고 사실 이번 지뢰 사건은 어쨌든 북한의 양보와 사과로 끝내고 싶은 것이지 여기서 다른 남북 간 정치·군사적 대화를 한다? 이건 남측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큽니다.
김종배 : 그러면 일정하게는 동상이몽의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중간 정리를 하면?
김종대 : 그러니까 서로 못 알아듣는 말 하는 거예요. 서로 소련 말 하는 거죠.
김종배 : 그러니까 여기서 오히려 말싸움의 장이 되고 있다고 도입부에서 진단해주신 이유가 이겁니까, 그러면?
김종대 : 말싸움이죠. 결국 서로 다른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의 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김종배 : 접점을 찾기 힘든 대결, 이렇게 정리가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종대 : 그렇습니다. 여기까지는 부정적 진단이고, 그러나 오래 있다는 건 뭡니까? 그냥 삿대질하고 헤어지려니 아쉽다는 것 아니에요?
김종배 : 결렬의 부담을 서로 느끼고 있다, 이거잖아요?
김종대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남북 역사상 가장 어려운 회담인 것 같은데, 그냥 헤어지려니 아쉽고, 그렇다고 합의는 할 수 없는 형편이고. 이건 맞선 보는 남녀가 결혼할 수도 없고, 안 할수도 없는 처지에 빠진 일종의 딜레마 상황이라고 보는데요. 이럴 때는 다른 협상의 여지를 남기면서 빨리 절충을 해야 해요.
김종배 : 구체적인 합의까지는 도출을 하지 않고, 회담 테이블 성격을 바꿔서 이어간다, 이런 식의 합의만 이뤄진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김종대 : 애매한 합의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봐요. 애매하게 일단 가면서 당면한 긴장 자체만 수그러들 수 있는, 이런 거라도. 그러니까 결국은 말로 싸움을 할 때는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줄어드는 건 사실이니까.
김종배 : 그럼 여기에는, 이런 진단에 따르면 풀려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북측에서는 우리 확성기를 엄청나게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면서요?
김종대 : 네.
김종배 : 그러면 다른 테이블에서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고 설령 합의를 한다하더라도 그게 확성기 중단의 명분이 될 수가 없고, 따라서 확성기 중단을 끌어내지 못한다고 한다면 북측은 얻는 게 전혀 없습니다.
김종대 : 원래 이런 식의 흥정이라는 건 이렇게 다 알려지고 공개된 회의에서 하는 게 아니라, 비밀리에 막후 접촉을 해야 흥정도 되고 거래도 되죠. 전 세계가 다 쳐다보고 있고 국가의 위신이 걸려 있고. 이건 마치 링 위에서 두 선수끼리 싸우는데 계속 군사력 시위를 한다는 건 마치 경기장에서 다 응원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결국 국가의 위신이 뭐가 됩니까? 그래서 이런 정치적 부담이 없는 대화를 해서 허심탄회하게 하는 건데, 이건 비밀 막후 협상이나 아니면 영리한 중재자가 있을 때, 서로 '우리 윈윈 하자'라고 서로 터놓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회담은 그것이 안 되는 회담이란 말입니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요. 또 막후협상이란 건 박근혜 정부에선 '투명성 없는 건 안하겠다, 원칙 있는 것만 하겠다' 이렇게 해놨으니 다른 협상이 가능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어려운 외통수 회담이죠. 그래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을 거예요.
김종배 :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표는 찍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종대 : 그러니까 이건 동영상 재생되는 걸 '우선멈춤' 버튼을 누른 것이지, 다시 재생버튼 누르면 바로 예전에 했던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거든요? 완전히 스톱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우선멈춤' 버튼만 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김종배 : 그러면 지난 주 저희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런 상태가 60~70일, 2013년 상황에 준해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셨어요. 이번 초고위급 회담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긴장상태가 유지되는, 장기화되는 상황은 피해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보시는 거네요? (☞관련 기사: 김종대 "전쟁 위기, 60~70일 정도 지속될 것")
김종대 : 하나의 교착 상태로써의 한반도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의외로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걸 돌파하는 건 새로운 협의체가 만들어진다든가 국제 사회가 개입을 하고, 이런 양상으로만 출구가 보일 건데요. 그게 하루 이틀 걸리겠느냐, 이거에요. 그리고 대결 에너지가 너무 팽배되어 있습니다. 한민구 장관이 '이번에 도발의 악순환을 완전히 끊겠다'고 했는데, 목표가 너무 과대하게 설정돼 있단 말이죠. 시간 걸려도 대치상태를 인내하겠다, 이것은 남북한 체제의 경쟁 양상은 내구력 경쟁 양상이다, 누가 군사적 긴장을 오래 견딜 수 있느냐, 이런 인내심 경쟁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십시오. 2013년 하고 달리 지금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남북한 모두, 이번 대치 상황이 매우 아프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둘 다 경제 살리기가 매우 급해요. 이런 상황에서 내부 추스르기에도 바쁜 남북 정치권력이, 이 긴장을 누가 오래 견디느냐 하는 내구력 경쟁으로 끌고 가게 되면 결국은 나중에 상처뿐인 영광, 즉 내상이 커지는 성격을 갖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원해서 하는 건 아니다, 이런 식의 속내는 스스로 밝히고 대화는 많이 강조하면서 그러나 대치 상황을 멈출 수 없는.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김종배 :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고 인터뷰를 마무리하죠. 어제부터 대서특필되고 있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북한의 잠수함 50여 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둥, 북한의 포병 전력이 2배 이상 증강됐다는 둥 이런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읽으세요?
김종대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응원전'입니다, 응원전. 대화에 유리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양면 전략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워치콘을 2단계로 또 격상했는데, 이게 어디 흔한 일입니까? 준전시상태에 맞는 우리 측의 군사대비 태세도 나온 거거든요.
김종배 : 전투기 띄우고요.
김종대 : 예, 전투기 위력 시위하고요. 이런 건 응원전인데, 비스마르크가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죠.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협상은 은행 잔고 없이 수표를 발행하는 것과 같다." 이런 식으로 군사적 자산을 과시함으로써 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또 다른 대결의 연장인 것이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기초한 진정성 있는 대화가 안 이뤄지고 있단 증거입니다. 사실 북한에 대해서 대화를 하려면 지금 자세 갖고는 안 돼요. 그건 북한도 마찬가지인데, 상대방 체제에 대한 인정과 존중 없이 남북한 간의 대화라는 건 아무런 생산성 없는 소모적인 행사에 지나지 않거든요? 근데 지금은 기선제압 그 자체가 대화의 목적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남북관계의 정세가 본질적으로 대화와 협력 국면으로 전환되는 대화는 아니고 단순히 현재 상황에 대한 긴장의 '우선멈춤' 상황인데요, 이것이 뭐 대처 영국 수상이 포클랜드 전쟁을 통해서 상황을 완전히 정리하는 이런 식의 한국의 마가렛 대처가 될 수 있느냐, 박근혜 대통령이. 저는 조금 힘들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낸 것이죠. 이런 시나리오도 구현되기 어렵다고 봐요. 결국은 강대강으로 가면서 상대방의 부인하고자 하는 국가적 의지가 이번 대화를 통해서 더 구체화되지는 않을까, 이게 걱정스러운 측면이고 나중에 상대방에 대한 전쟁불사 강경정책을 펴는 데에 이번 대화가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뭔 얘기인가 하면 '우리 충분히 대화에 대한 노력하고서 이런 조치를 하는 건 불가피한 거다' 이렇게 강력한 군사정책의 명분 축적용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서로 자제하기로 했다, 이런 합의문구 하나라도 내와야합니다. 합의문에 이런 거 하나라도 내오면서 추후 다른 회담을 기약한다는 이 정도 합의서라도 못내면 이것은 더 파국으로 갈 수 도 있습니다.
김종배 : 모든 것들을 근본에서부터 다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은 사실은 그걸 기대하는 국민은 현실적으로 많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조금 더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그런 결과를 내올 수 있느냐, 없는냐 그게 관건인 것 같고 포인트 아니겠어요? 지금 말씀도 그 말씀인 것 같고.
김종대 : 이게 장기화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집토끼로부터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어요. 지금은 한방 밀고 올라가자는 분위기로 갈 텐데, <조선일보> 같은 경우에는 1면에 신문광고 나올 것이고 시청 앞에 군복 입은 분들 왕창 나올 거고 그러면서 대북 전쟁불사 강경발언 나올 것이고 이렇게 집토끼가 흔들어 대는 것, 그게 아마 야당보다 더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김종배 : 그러게요. 아무튼 협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일단 뚜껑은 한 번 열어봐야 하니깐 일단 한 번 기다리고 열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일단 이걸 먼저 체크를 해 봐야 하겠습니다. 인터뷰 일단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둘중 하나다. 평화통일이냐 전쟁통일이냐. 북에게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그 방법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지금 북이 내놓은 최근사태해결방안과 양측관계발전방안을 하나로 묶어 달리 말하면 평화통일안이다. 그게 DMZ평화지대안이든 서부전선평화지대안이든 6.15공동선언·10.4선언을 계승해 그때의 서해평화지대안처럼 평화와 통일의 방향에서 문제를 풀자는 안이다. 헌데 남이 그걸 받지않는다면, 정확히 말해 남의 상전인 미가 거부한다면 그때는 전쟁통일로 갈수밖에 없다. 평화냐 전쟁이냐는 선택이지만 통일은 필수기 때문이다. 필수인 통일을 위해 평화의 길이 막히면 전쟁의 길을 선택할밖에.
북에는 그 힘이 있다. 있어도 넘친다. 전쟁이 주는 치명적인 후과 때문에 그간 자제했을 뿐이다. 중국의 <자제타령> 때문이 아니라 아직은 때가 아니라 참았던거다. 헌데 지금은 다르다. 분단70년인 올해 반드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고 북미대결전도 이미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 미는 북의 전략적인 super-EMP FOBS와 전술적인 super-EMP SLBM에 무릎을 꿇은지 오래다. 7.1쿠바·미국관계정상화와 7.13이란핵협상타결은 이런 바탕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10.10당창건70돌전인 9월엔 북미관계정상화발표가 있을수밖에 없다.
그렇게 안되면 백두산칼바람으로 은유된 super-EMP SLBM이 워싱턴을 포함한 두개도시를 향해 날아가 21세기히로시마·나가사키로 만든다. 이걸 작년 12.17김정일선대최고리더3년탈상일에 금수산태양궁전앞에서 맹세한 북이다. 통일은 필수고 평화냐 전쟁이냐는 선택인 전제에서 미가 4번씩이 군용기방북해 제의한 안대로 안될 경우를 대비할 때 이정도의 결의는 필요하다. 그만큼 한번 터지면 걷잡을수 없이 치명적인 전쟁이다. 자칫 세계제3차대전으로 번져 인류최후의 아마겟돈이 될수 있는 전쟁이다.
남당국은 이정도까지 그림을 못그리고 있지만 미수뇌부는 그린다. 시오니스트초국적자본들도 당연히 그린다. 그리고 결정은 여기서 내려진다. 너희들 죽을래, 결정적인걸 내놓을래의 최후통첩이 지금 시오니스트초국적자본·제국주의핵심들에게 주어져있다. 북은 수십년간을 하루같이 이 전쟁을 준비했다. 모든걸 건 사활적인 전쟁인만큼 절대로 질수 없는 무력과 작전을 갖췄다. 한번도 제국주의와의 대결전에서 진적이 없는 선대최고리더들의 지략과 담력과 실력을 계승한 북의 현최고리더의 결심은 단호하고 확고하다. 지략과 담력과 실력의 대결전에서 과연 어느쪽이 승리하겠는가. 당연히 준비된 쪽이 승리한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노크 귀순'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경계태세 소홀과 상황보고 혼란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사태의 책임을 물어 신현돈 합참 작전본부장 등 장성 5명과 영관장교 9명을 엄중문책하기로 했습니다.
해당 사단인 22사단 사단장과 연대장 등은 보직해임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경계작전태세 허점 등을 이유로 군에서 취한 문책조치 중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해당부대 병사와 부사관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규정대로 근무한 것으로 나타나 문책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국방부는 문책과 함께 초소 사이에 소형 소초를 세워 이중경계를 서는 등 경계근무 개선조치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습니다.]-2012년 10월 15일 jtbc
노크귀순 당시 명백한 경계실패와 보고 혼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런 대대적인 문책을 단행했었다. 경계실패는 그만큼 엄중한 일이다. 실제 본지에 모든 철책 통문엔 경계초소가 있고 24시간 근무한다고 제보해준 김홍식 씨는 GOP근무 당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투 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실패는 용납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경계에 실패하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대가 전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cctv 사각지대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김홍식 씨 주장에 따르면 지뢰가 매설된 3차 철책과 군사분계선 사이에 최전방초소인 GP가 있어 CCTV만으로 군사분계선을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GP초소는 높은 언덕 같은 곳에 있어 주변 경계를 용이한 곳에 설치한다고 했다. 3차철책까지 인민군이 침투했다면 이 GP에서 경계에 실패한 것이며 그곳이 GP에서도 감시가 되지 않고 CCTV로도 볼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면 그런 사각지대를 방치한 관계자들이 엄중 문책을 당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김홍식 씨는 그런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설령 철책 통문까지 침투해오더라도 철책 통문엔 24시간 경계근무를 서는 초병이 상주하고 있어 그 코 앞에서 지뢰를 매설한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노크 귀순 사건 이후 소형 초소를 더 촘촘히 세워 경계를 강화하겠다고 김관진 국방장관이 대국민 사과에서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가. 따라서 사각지대를 방치했다면 김관진 국방장관이 이번엔 직접 책임을 지고 문책을 받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경계가 뚫렸는데 문책받는 사람이 없기에 국민들 속에서는 북풍용으로 조작을 한 사건이라 문책할 간부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천안함 사건도 분명히 국방부에서는 북 잠수함이 침투해 들어와 우리측 작전지역에 매복해 있다가 천안함에 어뢰를 쏘았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반드시 관련자 문책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어 국민들 사이에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천안함 함장부터 모두 진급잔치를 벌였다.
올 4월 2일 미디어오늘 조현오 기자가 윤종성 전 천안함 합도조사단 군측단장(겸 과학수사분과장)과 대담한 보도를 보면 윤 단장도 잠수함을 탐색하고 파괴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천안함이 북 잠수함 침투 경계작전 등에서 명백하게 실패한 것이라며 작전실패 책임자 문책이 없었다는 점만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이번 철책 통문 지뢰폭발 사건은 원점에서 재조사를 해야 하며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조작을 해서 보고한 것이라면 누가 어떤 이유로 조작을 한 것인지, 정말 인민군이 와서 매설한 지뢰라면 그 인민군대가 어떻게 어떤 경로로 침투해 들어왔다는 것인지, 최전방 GP초소에서는 인민군들이 최소한 3명 이상이 440미터나 왔다갔다 했을 뿐만 아니라 땅을 파서 지뢰를 3개나 묻는 것도 몰랐다면 왜 몰랐던 것인지, 원래 사각지대였다면 경계작전계획을 세운 책임자들이 왜 이를 놓쳤는지 밝혀 응당한 문책을 해야 할 것이다. 12년 노크귀순에 올해엔 대기귀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더니 이젠 북 인민군들이 와서 폭탄까지 매설하고 간다니 당나라 오합지졸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럼에도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지 않는다면 과연 국민들이 이런 국방부를 믿겠는가. 일본 등 주변국에서는 또 우리를 얼마나 얕볼 것인가. 반드시 책임자를 밝혀야 할 것이다.
특히 북측에서 폭발 동영상 원본을 가지고 북의 지뢰가 폭발한 것이 맞는지 함께 조사해보자고 했다. 북의 목함지뢰와 우리 발목지뢰는 폭발력에서 10여 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상태와 폭발 재현 실혐 등을 통해 무슨 지뢰가 폭발한 것인지 분명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국방부가 자신이 있다면 결정적으로 북을 두 손 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공동조사 아닌가.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지뢰 사건의 진상은 공동조사를 통해 차차 밝혀내기로 하고 당장은 남북 사이의 전쟁위기를 가라앉히고 남북관계를 개선할 길을 통크게 찾는 고위급 회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발뉴스 브리핑] 8.24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北 매체 황당 방송…“남조선, 전쟁공포증에 사재기 열풍” 류효상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1. 지역 일간지 기자에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이 4층 건물에서 투신했습니다. 투신한 제주시청 소속 백모(57) 국장은 허리와 배 등을 다쳐 119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몇몇 지역 언론 기자들의 갑질이 도를 넘을 때가 많지요. 기자가 무슨 벼슬인 줄 아니 원~
2. 현관문 위에 화재경보기처럼 생긴 몰래 카메라를 설치, 비밀번호를 알아내 아파트를 털어온 도둑이 붙잡혔습니다. 이들은 아파트 현관 위 천장에 몰카를 설치해 집주인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녹화한 뒤 빈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내 집 들어갈 때도 주의 살피고 도어락 안 보이게 가리고 열어야 하는가 봅니다. 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3. 서울지역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이 2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7월 서울 아파트의 ㎡당 평균 매매가격은 613만1천 원으로 지난해 7월보다 4.7% 올랐습니다. 이는 3.3㎡ 기준으로 환산하면 1년 새 1천931만 원에서 2천23만 원으로 오른 것입니다. 평당 2천만 원이니까... 한 달에 2백만 원씩 25년 모으면 30평짜리 아파트 살 수 있답니다. 참 쉽지요?~~
▲ <사진제공=뉴시스>
4. 지난 토요일 김포시 한 주민자치센터가 불꽃축제를 했습니다. 대화가 시작되긴 했으나 북한 도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하필 불꽃놀이를 한 셈인데, 김포 주민들이 엄청 놀랐다고 합니다. 이럴 때 보면 참 생각이 없는 사람들 같아... 뭐 또 원래 예정된 행사라고 그럴라하지?
5. 새누리당은 대북 '5·24 조치 해제'나 '남북 고위급 접촉 제안' 등을 주장한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상황 인식이 비정상적이어도 한참 비정상적'이라고 맹비난했다가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자 머쓱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종편에서는 아주 게거품을 물었는데... 거품 좀 닦으셨나 몰라.
6. 9월부터 암 환자에 대한 양성자 치료와 4대 중증질환 의심 시 시행하는 초음파검사 등 4개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이 확대 적용됩니다. 양성자치료는 기존보다 치료비가 1/20 수준으로 줄고, 4대 중증 질환 의심 시 검사하는 초음파도 1회 보험적용으로 1~4만 원대로 싸질 전망입니다. 암과 사투를 벌이고 계신 분들에게 희소식이네요...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7.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가구가 늘어난 영향으로 올해 2분기에 가계의 주거비 지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중산층의 월세 전환 추세가 두드러져 소비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매달 들어가는 생활비에 주거비용까지 더해지니 참 걱정입니다. 이러다 또 집 사라고 하는 건 아닌지... 거참~
8. 대기업들이 최근 '고용절벽' 해소를 위해 잇따라 청년고용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내 30대 그룹의 올 상반기 말 기준 직원 수는 약 100만5천 명으로 1년 사이 고작 8천300명이 늘어 0.8%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렇겠지... 뭐 대단한 일 하는 것처럼 떠들어도 현실은 매번 이렇다니까...
9. 올해 상반기 수도권 지하철에서 성범죄가 하루에 5.7건꼴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역사는 서울 강남역(107건)이었고, 이어 서울 신도림역(65건)과 서울 사당역(64건) 순이었습니다. 이상한 놈 만나시면 피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신고하셔야 합니다. 버릇을 고쳐놔야 해... 아주 그냥~~
10. 국내에서 재배한 토종 블루베리와 애플망고 등 이국적 과일의 생산과 수요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그동안 블루베리 공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지만, 최근 국내 재배 농가 확대와 함께 국산 블루베리 생산이 늘자 소비도 많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낮에 스콜처럼 내리는 소나기를 보면 한반도가 점점 열대화 돼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런 달콤함이 있기도 하구나...
11.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등 아열대 지역에서 건너온 '등검은 말벌'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어 비상입니다. 번식력과 공격성이 토종 말벌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데다 꿀벌을 먹잇감으로 선호해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벌이 도심에도 있다니 조심해야겠습니다. 일단 말벌을 만나면 도망가야겠죠?
12. 전남의 한 여자중학교 운동부 30대 코치가 훈련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운동부원의 안면부를 주먹으로 수차례 폭행해 과잉 체벌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은 자체 조사에 나서자 해당 코치는 자진해서 사직했습니다. 어린 중학생이 무슨 도 닦는 것도 아니고... 이 양반 좀 집중해서 혼내야 할 듯...
13. 건강은 젊을 때 지켜야 하는 것이 '진리'이지만 우리나라 30~40대는 건강생활 실천 노력을 가장 게을리하는 연령대로 조사됐습니다. 금연과 절주 걷기 등 3가지 척도의 실천 부분에서 가장 저조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노새노새 젊어서 노새 하다 보면 늙어서 고생합니다. 살짝 땀나도록 하는 걷기는 돈도 안 들자나요... 같이 걸으실래요?
14. 국민연금이 이달에만 국내 주식 투자에서 5조 원이 넘는 막대한 평가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말을 기준으로 전체 자산 497조4천억 원 가운데 19.4%인 96조6천억 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 중입니다. 수익률이 코스피 평균에도 못 미치니 완전 '마이너스 손'이구만... 근데 여기서도 막 사고 팔고 하는 거야?
▲ <사진제공=뉴시스>
15. 일본의 아베 정권이 추진 중인 '집단 자위권 법안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본 대학가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약 90개 대학에서 학생들과 교수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찬동 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론에도 꿈쩍도 안 하는 거 보면, ‘니들은 떠들어라 나는 간다.’ 이거지... 근데 우리도 다르지 않아 좀 그래...
16. 최근 5년간 자전거 교통사고로 해마다 288명가량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0∼2014년 자전거 교통사고는 모두 6만8천371건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자전거가 가해자인 사고는 1만9천317건이고, 자전거가 피해를 본 사고는 4만9천54건이었습니다. 자전거 타는 인구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안전 관리는 여전히 엉망인 거 같아요. 신경 좀 쓰시지 그러냐~
17.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더는 신기한 풍경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난해 서울 초혼부부 중 여성이 연상인 부부의 비중이 1991년 이후 처음으로 동갑내기 부부를 초월했다고 합니다. 뭐.. 그렇답니다.
18. 단원고 아이들의 교실이 폐쇄될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일부 학부모가 면학 분위기를 위해 폐쇄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여전히 이 교실에서 아이들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면학 분위기 좋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단어 몇 개 공식 몇 개는 아니잖아요... 다시 생각해 주실 거죠?
19. 지난 5월 국정원은 북한의 황병서가 숙청당했다는 보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판문점 남북 고위급 회담에 북측 대표로 황병서가 나왔습니다. 고사포로 산산조각 났다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 나왔데? 우리는 그럼 귀신이랑 회담한 거임?
20. '남조선에 전쟁 공포증이 만연해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 비행기 표가 10배 이상 값에 거래되고 있다', 남북 간의 대치 상황을 북한 매체가 묘사한 대한민국의 모습이랍니다. 가끔 종편 보면서 개콘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얘들도 만만치 않아... 뻥도 적당히 쳐야지 말야...
▲ <이미지 출처=SBS 뉴스영상 캡처>
21. 영국 남부에서 에어쇼를 펼치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7명이 숨졌습니다.
앞으로 대중교통, 도보로 출근하다 다쳐도 산재로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중국의 톈진항에 이어 산둥성의 화학 공장 폭발로 최소 9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손연재가 올 시즌 마지막 월드컵에서 개인종합 5위에 올랐습니다.
서세원 서정희 부부가 결혼 32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덥다 덥다 하다 보니 8월도 마지막 주를 맞이했네요.
8월을 정리하다 보면 정말 가을이 오겠지요?
풍성한 가을을 기분 좋게 맞이하기 위해서 이번 주도 열심히 뛰어야겠습니다.
이틀간의 남북 대화는 아직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했지만, 분명한 건 남북 모두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을 겁니다.
서로를 향해 달리는 일명 ‘치킨 게임’은 무모한 짓일 뿐입니다.
오늘 월요일 평화의 기운이 넘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남북이 23일 오후 3시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오후 6시부터 회담을 시작해 오늘 새벽 4시 15분 경 정회한 후, 이날 회담을 다시 이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협상대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남측에서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가 나선다.
남북은 1차 회담에서 10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남북긴장감을 높인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남한의 대북선전방송 재개, 북한의 포 사격 등에 대해 양 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 측은 북한이 목함지뢰‧포격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적어도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으면 협상단은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면 북한은 목함지뢰와 포격에 대해 본인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협상의 접점도 보이지 않는 셈이다.
여기에 북한은 23일 전방지대에 포병 병력을 늘리고 잠수함 수십척이 기지를 이탈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등 여전히 남북 간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 22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측 대표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 민중의소리
하지만 양 측의 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10시간이 넘는 협상에도 남북은 협상 종료가 아닌 정회를 택했고, 이날 오후 3시부터 협상을 재개하겠다고 나선 것은 여전히 대화의 여지가 남은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언론은 어떤 식으로든 합의는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민경욱 대변인은 23일 새벽 정회 후 브리핑에서 “이번 접촉에서 쌍방은 최근에 조성된 사태의 해결 방안과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고 밝힌 점은 이러한 관측에 더욱 무게를 싣는다.
‘최근에 조성된 사태’ 외에도 ‘남북관계 발전 방향’이라는 것이 이산가족 상봉과 5‧24조치에 대한 것 아니겠냐는 것이 언론의 예상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협상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이렇다 저렇다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양 측의 회담을 바라보는 각 진영의 시선이 엇갈려 눈길을 모은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남북고위급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정회됐음에도 불구하고 속개된다고 하니 천만 다행스런 일”이라면서도 “북한은 그동안의 군사 도발에 대해 사실 인정과 함께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남북 당국은 남북의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열망하는 모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통 큰 결단의 자세로 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며 “북한 당국은 군사적 도발이 남북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해주고 남북당국은 이번 회담을 역주행한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절호의 기회로 살리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새누리당이 북한의 사실인정과 사과를 강하게 강조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평화적 해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언론도 비슷하다. 23일 오후 4시 경 조선일보 온라인판 머릿기사는 <“군복‧군화 준비해놨다” 북 상습도발에 화난 예비역들> 기사인 반면, 한겨레 온라인판 머릿기사는 <연이틀 회담 예고한 듯 연이틀 오고간 ‘남북 밀당’>이다.
» 한반도의 산악지역은 ‘고대 생물’이 살아남은 세계 5대 피난처 가운데 하나여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 정부의 산악관광 진흥정책은 이런 산지의 공공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사진은 문경새재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의 모습이다. 문경/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을 하늘이 가장 파랗고 4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이라고 배웠다. 산삼을 비롯해 약초의 효능도 세계 제일이란 얘기도 자주 들었다. 이렇게 키운 한반도 자연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새 스러져 버렸다. 고도성장 기간 동안 이어진 난개발로 ‘비단에 수를 놓았다’는 산천이 난도질을 당했으니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열린 세계식물원총회에서 만난 외국 식물전문가들과 이야기하다 ‘한반도에 살아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2010년부터 국제 느티나무 보전 사업을 벌이고 있던 이들이었다.
느티나무 종류는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하다가 공룡시대 이후 기후가 차츰 서늘하고 건조해지면서 남쪽으로 피난해 살아남은 ‘고대 나무’다. 현재는 지중해 주변의 시실리, 크레타, 코카서스 등에 극소수가 살아남았고 동아시아에는 제법 많다.
유럽에서 멸종위기인 느티나무를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부럽다는 얘기였다. 느티나무는 수백만년의 환경변화를 이기고 살아남은 적응력이 뛰어난 나무다.
» 수령 500년으로 확인된 경북 예천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정자나무 거목으로 많이 남아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수형이 곱고 노거수로 자라며 항암성분이 발견되기도 한 쓸모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 야생 느티나무는 경기·충북·경북 ·전북 산지에 분포한다. 보호종도 아니고 일반인의 눈길도 끌지 않는 나무이지만 인류 탄생 이전부터 한반도를 지키고 있다.
느티나무 말고도 진달래, 밤나무, 주엽나무(쥐엄나무) 등이 그런 고대 나무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북부 등 동북아는 고대 나무가 살아남은 세계 5대 피난처 가운데 하나다(나머지 네 곳은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 플로리다 등 미국 남동부, 지중해를 둘러싼 유라시아 남서부, 중국 남부와 히말라야 등 동아시아 남부이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 많고 생물다양성도 풍부하다. 한반도가 금수강산이란 자랑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는 거듭된 빙하기 동안 직접 얼음에 덮이지 않아 춥고 건조한 날씨를 피해 이동해온 많은 생물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의 산악지대가 바로 그런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이다.
» 툰드라 지대에 분포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 암매. 한라산에 자생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대표적인 예가 한라산 정상의 바위에 붙어 자라는 떨기나무인 돌매화나무(암매)이다. 극지 가까운 툰드라지역에서나 볼 수 있고 백두산에도 없는 고위도 식물이 한라산에 산다.
암매처럼 자연사 유산의 가치를 지닌 나무는 이 밖에도 많다. 설악산에는 100여종의 북방계 식물이 산다. 키가 작아 누운 것 같은 눈잣나무는 만주, 사할린, 캄차카 등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데 남한에선 유일하게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일대에서 자란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 위쪽 사면을 수놓는 노랑만병초도 설악산 정상 부근에서 발견됐다.
지리산, 덕유산 등도 고산식물의 보고다. 그러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산악지역에서도 북방계 희귀식물이 최근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중부지방 석회암 지대가 그곳이다. 기껏 시멘트 원료가 나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이곳 산에서 함경도 고산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도여로와 너도개미자리가 확인되기도 했다.
»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 수백년 자연림을 베어낸 가리왕산. 사진=김명진 기자
이처럼 어디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 없는 국토를 우리는 어떻게 다루었나. 지난 20년 동안 산림의 2.1%가 사라졌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10년 동안 줄어든 산림면적은 530㎢로, 여의도 183개 면적의 숲이 도로나 각종 개발사업을 위해 베어졌다.
지나친 규제로 산지가 방치됐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육상 보호지역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1%는 물론이고 생물다양성협약이 2020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목표 17%에 턱없이 모자란다.
오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허용 여부를 심의한다. 그 결정에 시민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설악산뿐 아니라 모든 명산과 나아가 국토의 64%인 산지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을 관광자본에 내맡길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발표한 회칙에서 “자연환경은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라고 했다.
환경부는 자연환경 보전의 책무를 위임받은 정부기관이다. 4대강 사업을 방조한 데 이어 국립공원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문을 닫으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제보자는 또 TNT 220그램이나 되는 목함지뢰는 20그램 내외의 발목지뢰보다 폭발력이 거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발목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터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했다.
실제 비에 떠내려온 목함지뢰를 민간인이 만지다가 폭발했던 사건 당시에도 관련자는 현장에서 즉사했었다.
그런데 그 목함지뢰가 두 발이나 터졌는데 발목만 두 명 다쳤다는 것을 보면 북의 목함지뢰가 아니라 남측의 M14Q발목지뢰가 터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어쨌든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군대 특히 철책근무를 했던 병사 출신들은 이번 사건은 북의 목함지뢰 매설에 의해 터진 사건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측면이 많다고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특히 만약 북 인민군이 침투해서 매설한 목함지뢰에 우리 병사들이 다쳤다면 그 초소에서 근무했던 경계병과 관련 지휘관은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이 군법의 상식인데 처벌받은 사람이 없는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제보자는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주가 폭락을 불러오고 국민들에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안겨준 전쟁위기는 이 지뢰사건에서 촉발되었다.
부디 우리 정부가 다시 한번 이 지뢰 사건에 대한 진상을 잘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한 이땅에서 전쟁위기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진행 중인 고위급 회담에서도 난항을 거듭할 우려 또한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회원들이 제8차미대사관진격투쟁을 결행하고 성공했다.
박주호·이민경·이의선회원들은 22일 오전 5시15분 미대사관정문을 향해 진격하면서 제지·연행하는 경찰들에게 저항하며 15분간이나 완강하게 투쟁했다. 이들은 <북침선제핵타격 을지프리덤가디언 중단하라>는 플랑카드를 들고 코리아연대의 성명과 5종류의 전단을 뿌리며 <대북심리전 중단하고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을지프리덤가디언 중단하고 미군은 떠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연행과정에서 이민경여성회원을 남자경찰들이 뒤에서 목을 조르고 껴안는 집단성추행이 노골적으로 자행됐다. 이회원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여경은 단한명도 없었다. 이회원을 남자경찰이 대놓고 뒤에서 목을 조르는 장면도 영상에 촬영됐다. 종로서를 비롯 공안경찰들의 성추행행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7차때도 박유리여성회원을 처음에 남자경찰이 제지하면서 뒤에서 오랫동안 껴안는 성추행을 노골적으로 자행했다. 하지만 여자경찰이라도 중간에 나타난 제7차때에 비해 제8차때는 아예 마지막 호송차를 태울 때나 나타났다. 그 결과 이 과정에서 자행된 집단성추행은 가장 심각하고 노골적이었다. 이에 격분한 코리아연대측은 가장 철저히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매우 강경한 입장이다. 한편, 주변에서 촬영하고 있던 여성시민을 경찰이 제지하면서 앞에서 껴안는 성추행도 자행했다. 이에 항의하자 옆에 있던 남자경찰이 <(만지긴) 뭘 만져요!>라면서 적반하장격으로 나왔다고 한다.
세회원은 관악서로 호송됐다.
세회원이 뿌린 코리아연대성명은 <당장 모든 대북심리전과 을지프리덤가디언핵전쟁연습을 중단하라!>에서 <북이 가장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북침선제핵타격연습이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북이 지뢰폭발사건을 벌였다고 하며 대북심리전 방송선동과 삐라살포까지 겹쳐지고 있다.>며 전쟁위험을 경고했다.
구체적으로 북이 <최근 조선인민군전선사령부의 발표에 이어 조선인민군총참모부의 최후통첩을 통해 <8월 20일 17시 남조선괴뢰국방부에 48시간안으로 대북심리전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심리전수단들을 전면철거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간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20일 저녁에 열린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비상확대회의에서 승인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조선인민군전선대연합부대들이 불의작전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이전하며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북은 전쟁이 임박한 상황으로 보고 전선의 군대들과 해당지역의 단위들에 최고수준의 전쟁준비태세를 명령한 상태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명은 <미국은 을지프리덤가디언핵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남은 대북심리전방송을 비롯한 모든 심리전을 중지하여야 한다. 이것이 당면해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자주통일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역설했다.
한편 코리아연대는 사태가 엄중해진 20일저녁부터 철야기도회와 철야1인시위를 연이틀 잠시도 쉬지않고 진행중이다. 그 1인시위구호판은 <전쟁위험 증폭시킨 대북심리전방송 중단하라! 북침선제핵타격 을지프리덤가디언 중단하라!>라고 적혀있다.
아래는 코리아연대의 성명과 전단, 구호판사진, 그리고 8차진격투쟁의 사진과 영상들이다.
<성명> 당장 모든 대북심리전과 을지프리덤가디언핵전쟁연습을 중단하라!
이대로 가면 전쟁이다. 현재 코리아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전쟁직전상황이다. 정전협정이 사실상 무효화된 조건에서 전쟁전야에만 볼 수 있는 일들이 속출한다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북이 가장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북침선제핵타격연습이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북이 지뢰폭발사건을 벌였다고 하며 대북심리전 방송선동과 삐라살포까지 겹쳐지고 있다. 지금 남측으로부터 북측에 전달된 전쟁메시지는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우선 북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북침전쟁을 매년 끊임없이 획책한 미국이 있다고 보면서 이 외세를 등에 업고 박근혜<정권>이 기어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조선인민군전선사령부의 발표에 이어 조선인민군총참모부의 최후통첩을 통해 <8월 20일 17시 남조선괴뢰국방부에 48시간안으로 대북심리전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심리전수단들을 전면철거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간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20일 저녁에 열린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비상확대회의에서 승인하였다. 더불어 <불가피한 정황에 따라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타격, 반공격에로 이행하기 위한 조선인민군전선사령부공격작전계획이 검토, 비준>되었고 <있을 수 있는 적들의 반작용을 진압하기 위한 지역의 군사작전을 지휘할 지휘관들이 임명되어 해당 전선으로 급파>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결국 <조선인민군전선대연합부대들이 불의작전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이전하며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북은 전쟁이 임박한 상황으로 보고 전선의 군대들과 해당지역의 단위들에 최고수준의 전쟁준비태세를 명령한 상태이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박<정권>이 그간 끊임없이 북을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3년정전협정조항대로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일체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며 진작 미군을 철거시켰어야 하였고, 동시에 박<정권>은 6.15공동선언·10.4선언을 이행하며 남북(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통일단계로 진입시켰어야 하였다. 그런데 미국과 박<정권>은 오히려 그 반대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며 북을 자극하더니 기어코 살벌한 전쟁정세를 만들어놓았다.
미국은 을지프리덤가디언핵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남은 대북심리전방송을 비롯한 모든 심리전을 중지하여야 한다. 이것이 당면해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자주통일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미국과 박근혜<정권>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스스로부터 초래된 전쟁위험을 신속히 제거하고 북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모든 책임과 후과는 전적으로 미국과 박<정권>의 몫이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치명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민중, 민족이 지게 된다. 그런만큼 우리 민중, 민족은 이념과 정견의 차이를 넘어 반전평화, 반미박근혜의 기치아래 통 크게 단결하여야 한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외 호전세력과 투쟁해야 하며 그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전민중, 온겨레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길에, 외세를 몰아내고 반통일정권을 끝장내는 성스러운 길에 한사람처럼 힘차게 떨쳐나설 것을 심장으로 확신한다.
미군은 을지프리덤가디언핵전쟁연습을 중단하라!
박근혜<정권>은 대북심리전방송을 비롯한 모든 심리전을 당장 중단하라!
핵전쟁연습 중단하고 미군은 떠나라!
대북심리전 중단하고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 남북 고위급 접촉 정회... 오후 3시 재접촉 민경욱 대변인이 2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북이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로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고위급 접촉을 22일 전격적으로 진행했으나 입장차를 조율하지 못하면서 23일 오후 3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며 남북 고위급 접촉 협상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 다시 서울로... 남북관계 상황을 전반적으로 논의하는 남북 고위급 접촉이 22일 오후 6시부터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려 10시간 넘게 이어졌다. 회담을 마친 23일 오전 4시 55분께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앞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차량이 서울로 향하고 있다.
자기가 받는 임금을 깎겠다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경영자 맘대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 좋아할 노동자들이 있을까?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 해고요건 완화 △통상임금 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 △실업급여 확대 △비정규직 보호 강화
정부가 하겠다는 4대구조개혁 내용 중 노동개혁의 골자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 ‘임금피크제 도입’과 ‘업무부적격자 해고요건 완화’ 2가지다.
이러한 개혁(?)을 두고 박대통령은 “노동개혁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라고 했다. 누구의 생존인지 모르지만 무슨 말인지 그 뜻부터 보자. 첫째 ‘임금피크제’란 ‘정년연장 또는 정년 후 재고용하면서 일정나이,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기존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을 줄이는 방식)과 재고용형(정년퇴직 후 재고용하면서 임금을 줄이는 방식) 그리고 근로시간단축형(기존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은 그대로 두고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면 임금을 줄이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식) 등 3가지가 있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이유는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면 중년근로자로 계속 일할 수 있고 청년의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의 ‘업무부적격자 해고요건 완화’다. 노동시장 유연화란 ‘외부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인적 자원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재배분’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업무가 등장하였을 때 그에 적합한 지식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고(기능적 유연성), 필요한 사람 수 또는 시간만큼 인원을 투입하거나(수량적 유연성), 다양한 임금체계에 맞춰 사람을 쓸 수 있어야 한다(임금적 유연성)는 것이 원론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다.
말이 좋아 ‘노동시장 유연화’지 알고 보면 ‘업무부적격자를 경영자 맘대로 직장에서 해고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근로기준법 23조에는 사측에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방법은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다.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을 사측이 원하는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노동시장 유연화’다. 지금까지도 사측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자권익이나 따지고 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불량노동자(?)를 해고해 왔는데 여기다 임금적 유연성까지 허용하면 임금이 많은 노동자를 맘대로 해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100번 양보해 청년실업문제와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라고 치자. 그런데 오늘날 우리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는 책임은 누구 잘못인가? 이번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기업의 지배구조실태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재벌기업의 총수 지배체제와 경영권 세습’은 물론 0.05%에 불과한 오너 일가 보유 주식으로 대기업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황제경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내소비자 혹은 노동자들의 피땀흘린 결과를 정부가 재벌을 위한 편들기로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닌가?
지금 정부는 노동개혁주장에 앞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 합리적이고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구조개혁부터 해야 한다, 경제난과 청년실업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겠다는 것은 일방적인 재벌 편들기다. 통계자료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 중 정년퇴직까지 일 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7%에 불과하다. 2014년 3월 기준으로 정규직의 15%, 비정규직의 51%가 근속년수 1년 미만의 단기근속자다. ‘쉰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정년을 60세로 늘리면 청년고용이 늘어나 청년들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게 맞는 말인가?
현재 근로기준법에는 2년인 기간제 비정규직의 계약기간(35세 이상)을 노동자가 원할 경우 최대 2년까지 추가로 연장하도록 하고 있다. 4년 후에도 정규직전환이 안 되면 이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비정규직들이 1년 11개월만 쓰고 버려지듯 사용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면 3년 11개월만 쓰고 버리겠다는 정책이 ‘비정규직 규제합리화’다. 전체 근로자 중에서 근속연수 1년 미만 근로자의 비중이 35.9%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을 두고 임금피크제와 노동시장 유연화란 가혹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전체 임금 근로자 1,751만 명 중 40.2%가 최저임금, 퇴직금, 사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공식 근로자’다.
박근혜정부가 주장하는 4대구조개혁이란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다. 한계상황에 처한 저임금 근로자와 기간제 노동자를 두고 자본의 탐욕을 채워 줄 신자유주의 논리는 멈춰야 한다. 노동자들이 불행한 나라를 두고 모든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 강원도 동해안의 한 야적장에 점토 대용 부원료로 쓰일 일본산 수입 석탄재 폐기물이 쌓여 있다.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을 소각·매립할 때 부담금을 물리는 ‘자원순환법’이 제정되면 국내산 석탄재의 재활용이 늘어나면서 일본산 석탄재의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사진=최병성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저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시멘트에는 흔히 일본에서 수입된 폐기물이 부원료로 들어간다. 점토 대용으로 사용되는 석탄재가 대표적이다. 18일 환경부 집계를 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간 국내 시멘트 제조업체가 일본에서 들여와 시멘트에 넣은 석탄재 폐기물은 597만t에 이른다.
국내에 석탄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석탄재 가운데 화력발전소 인근에 매립 처리된 양만 636만t이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석탄재를 전량 대체하고도 남을 규모다. 국내 석탄재가 남아도는데 왜 일본 폐기물까지 들여다 처리해주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산 폐기물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지만 일본 석탄재 수입은 2011년 112만t, 2012년 123만t, 2013년 135만t, 2014년 131만t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과 한국의 폐기물 매립 비용 차이 때문이다.
일본에선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을 매립할 때는 높은 매립세를 물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웃돈을 얹어줘서라도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 싸게 먹힌다. 매립세가 없는 한국에서는 비싼 수송비를 들여 재활용하는 곳까지 보내주는 것보다 땅에 묻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그 결과 국내 폐기물 매립률은 일본(1.3%)보다 7배나 높은 9.3%에 이른다.
2013년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자원순환사회 전환 촉진법안’을 대표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2월까지 법안명에 ‘자원순환’이 붙은 5개 법안이 잇따라 국회에 제출됐다. 이들 법안은 모두 국내 자원의 효과적 이용을 유도해 일본 석탄재 수입을 줄일 수 있는 ‘소각·매립 부담금’ 신설을 담고 있다.
» 공중에서 내려다본 인천 쓰레기 매립지의 모습. 폐기물을 매립하기에 앞서 유용 자원을 재활용하도록 이끄는 법안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입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이정아 기자
2000년대 초부터 이런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해온 환경단체에서는 큰 기대를 갖고 법안 처리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첫 법안이 제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서다.
정부안을 포함한 5개 법안은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을 최대화해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순환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목적에 차이가 없다. 다만 실행 방법으로 내려가면 재활용할 수 있는 ‘순환자원’의 정의와 구분 방법을 놓고 둘로 갈린다. 최봉홍 의원 안과 이를 보완한 정부안은 폐기물 가운데 사람의 건강과 환경에 유해하지 않고 경제성이 있다고 정부가 인정한 폐기물만 순환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비롯한 나머지 3개 법안은 유용성만 있으면 모두 순환자원으로 보고, 유용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시장에 맡겨두자는 쪽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자원순환이 중요하다고 해서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보다 앞설 수는 없다. 유용성이 있다고 사업자가 신고하는 것을 모두 순환자원으로 인정해서 폐기물 관리에서 제외하면 유해 폐기물이 방치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 전 의원 안은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적절히 모아져 있지 않고 분리·선별 과정을 거쳐야 이용할 수 있는 폐기물도 순환자원에 포함시키고 있어 이런 우려를 더한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목표로 활동하는 전국 180여 시민·환경·소비자·여성단체로 구성된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처장은 “자원의 순환 이용은 당연히 확대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첫번째 전제조건이 안전이다. 폐기물이 좋은 자원이 될 수 있어도 어떤 조건에서 배출되고 어떻게 관리됐는지 따져서 유해성이 있을 때는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쪽은 뜻밖에도 그동안 환경단체의 우군이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다. 국회 환노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이 법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일부 의원들은 환경부가 낸 안과 여당의 최봉홍 의원이 낸 안이 더 낫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야당에서 계속 법안 심사를 미루고 있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6월16일 열린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 환노위 간사인 이인영 의원은 자원순환사회법 처리에 대한 야당의 태도 변화가 있느냐는 권성동 소위원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전병헌 의원께서 발의하신 법체계하고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법체계가 너무 다르다. 그런데 전병헌 의원이 우리 당의 최고위원이신데 원내대표도 하시고, 그래서 그냥 이대로 가기 쉽지 않다 이렇게 생각이 든다.”
정부와 다른 방향의 법안을 내놓은 같은 당 의원의 정치적 지위와 무게 때문에 법안 심사를 진행하기 난감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에 대해 이인영 의원실은 “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이 지난 대선 때 우리 당 대선 공약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어서 잘 조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취지의 발언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못한 환경단체들이 나섰다.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주요 환경단체로 구성된 한국환경회의 운영위원회는 7월23일 환노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보좌진들한테 간담회를 제안해, “자원순환법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매립장 포화 등 쓰레기 대란에 대응하며 일본 석탄재 폐기물 수입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조속한 법 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뚜렷한 변화 움직임은 없다. 환경단체들 사이에 이러다 올해 국회 회기를 넘기고 내년에 총선 분위기에 휩쓸려 법안이 자동폐기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북이 올해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한 금성3호 대함미사일은 그 모양이 러시아의 kh-35 일명 우란 대함미사일과 똑같이 생겨서 그 복제품이라는 주장이 많다.
러시아에는 썬번, 야혼트 등 순항미사일임에도 초음속을 내며 단 한발로 대형 구축함은 물론 항공모함도 격침시킬 수 있는 매우 위력적인 대함미사일이 여럿 있다. 전술핵폭탄을 탑재하면 항공모함도 한 방에 수장된다. 이들은 초음속 미사일이라 방어할 시간이 짧아 미국이 매우 두려워하는 미사일이다. 우란 대함미사일은 초음속은 아니지만 최종 타격단계에 바다에 바짝 붙어서 비행하여 타격하는 능력이 탁월해 매우 위력적인 대함미사일이다. 과거 러시아는 이런 미사일 수출을 꺼렸지만 지금은 내놓고 수출하고 있다. 하기에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도 역설계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이 우란미사일을 인도에서 수입하여 시험발사 해 본 결과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목표함선을 명중시키는 위력이 대단한 미사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특히 이 미사일은 목표물 근처까지는 레이더를 켜지 않고 관성유도장치에 의해서 날아가다가 목표함선 바로 앞에서 목표물탐지 능동호밍 레이더를 켠다. 레이더를 켜는 순간 목표물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지만 상대 함선에서도 이 레이더를 감지하여 기관포 등을 무더기로 쏘아 미사일을 요격하게 되는데 요격을 피하기 위해 이 우란 미사일은 그 목표 함선 앞에 가서는 수면에서 4미터 높이로 즉, 바다에 바짝 붙어 비행하면서 강력한 터보팬 엔진을 작동시켜 맹렬하게 목표함선을 들이박게 된다. 특히 한 두발은 요격에 걸릴 것을 예상하고 여러발을 동시에 발사하는데 단 한발만 명중해도 5000톤급 함선 정도는 격침되거나 대파되게 되는 강력한 대함 무기이다.
문제는 러시아와 북의 이 두 미사일 동영상을 잘 분석해보면 모양은 똑 같지만 추진불꽃은 달라보였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퍼지는 형태이지만 북은 살짝 끝이 붓끝처럼 모아지는 형태였다. 또 그날의 대기조건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겠는데 북의 미사일은 흰연기를 거의 내뿜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미사일은 궤적이 자세히 보일 정도로 초기 가속시 수증기나 연기로 보이는 분출물을 많이 내 뿜었다.
특히 촬영장비의 차이일 수 있지만 목표함선에 돌진하는 속도도 북의 미사일이 훨씬 빠른 것으로 보였다.
✦ 북제품이어도 더 러시아보다 위력적인 북의 미사일
역분해방식을 이용한 똑같은 복제가 아니라 엔진과 전자장비를 북 주체적으로 바꾼 완전히 다른 미사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모양이 같다고 해서 결코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커드미사일만 해도 러시아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은 걸프전쟁 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거의 같은 시기 더 싸게 북에서 스커드미사일을 수입했던 예멘의 경우는 큰 덕을 보고 있다. 지금 사우디와의 전쟁에서 그 북의 스커드 미사일이 미국의 최첨단이라는 패트리어트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사우디 공군기지 등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2006년 7월 13일부터 8월 12일 휴전협정일까지 딱 30일만에 종료되어 '30일 전쟁'이라고도 하는 레바논전쟁에서 헤즈볼라는 스틱스 계열의 구형 대함미사일로 이스라엘의 첨단 미사일구축함을 명중시켜 병사 4명이 즉사하고 함정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바 있다. 이스라엘 미사일정은 대함, 대공 미사일을 80여발 장착하고 있으며 온갖 방어장비와 최신 레이더로 중무장한 첨단 미사일함정이었다. 그런데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구형 스틱스계열 미사일에 당한 것이다. 이 대함사일은 이란이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이란은 이를 북의 기술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서 헤즈볼라는 지하 갱도로 이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대전차 미사일로 이스라엘 탱크를 초장에 40여대나 박살내버려서 기갑부대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고 이스라엘 헬리콥터도 휴대용 대공미사일에 격추되었으며 일명 카츄샤포라고 불리는 로켓포 4000여발이 이스라엘 본토를 유린하여 100여만 북부 이스라엘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로켓을 요격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정말 요격할 수 있었다면 전 주민을 대피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한 달만에 휴전협정에 도장을 찍고 이스라엘군이 퇴각한 바 있다.
이 전쟁에서 갱도전 등 북의 전법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에 타격을 준 무기가 모두 이란, 시리아 등에서 제공된 로켓무기, 즉 미사일무기였다. 이란과 시리아는 대표적인 친북국가이다.
북의 대형로켓기술은 독창적이면서 매우 위력적이라는 사실이 은하3호 위성발사를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매우 추진력이 강했다. 필리핀 영해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우회기동을 하면서도 정확하게 제 궤도를 찾아 안착시킨 첨단제어능력은 사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는 신기술이다.
이 은하로켓의 불꽃은 다른나라 로켓의 불꽃과 그 모양부터 다르다. 최근 들어 러시아나 미국에서 개발한 신형 대형 우주로켓들은 오히려 끝이 모아지는 북의 은하 로켓형태를 따라가고 있다. 추진불꽃모양만 놓고 보았을 때 북이 지금 세계 기술을 선도한다고 봐야할 정도이다.
[동영상: 작고 빠른 로켓마저 저렇게 자유자재로 따라가 요격하는 것을 보면 입을 다물수가 없다. 이런 기술을 가진 북이기에 전투기나 함선처럼 덩치가 크고 느린 목표물을 탐색하여 명중시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요격 로켓의 속도는 목표 로켓보다 정확히 두 배나 빨랐다. 매우 강력한 로켓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두고 있는 것이다. ]
북의 소형로켓분야도 이미 국제적으로 그 능력을 충분히 입증 받았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의 2005년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북으로부터 휴대용 대공, 대전차 미사일을 1250기나 수입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조갑제 닷컴의 김필재 기자도 이를 주목하여 우리 정부의 대책 마련을 주문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김필재 기자는 기술을 러시아가 제공하고 북은 생산만 담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러시아가 수호이 전투기를 인도나 중국 등에 기술이전도 하면서 수출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지 러시아가 수입하여 사용할 때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러시아도 인정하는 북의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사용할 휴대용 로켓무기를 북에서 수입한 것일 것이다.
북은 소형로켓엔진개발이나 그 자동조종체계 개발 능력에 있어서도 뭔가 매우 위력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이미 전에 개발해놓고 이제와서 하나씩 공개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소형로켓에 속하는 대함미사일 로켓도 북이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자체 기술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가 똑같은 모양의 미사일을 북이 공개해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 러시아의 첨단 무기 핵심 기술은 모두 북에 의존?
오히려 '러시아의 핵심 무기의 원천 기술이 북에서 도입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게 하는 보도도 적지 않다.
스푸트닉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올 초에 러시아의 첨단무기 관련기술 국산화율을 높이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한다. 아직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놀랄만한 사실을 북이 근년 들어 두번이나 노동신문이라는 최고 권위의 언론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대북 정보를 자주 검색해보는 한 대북전문가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북은 러시아의 신형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 '블라바' 시험발사에 성공한 사실을 높이 평가하는 보도를 하면서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첨단무기 설계로부터 조립, 생산에 이르기까지 국산화율을 2017까지 30%, 2030년까지 90% 더 나아가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을 덧붙여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러시아에서 미사일종합체 훈련(S-400으로 추정)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보도하면서 앞서 언급한 러시아 첨단무기 국산화 계획을 똑같이 덧붙여 보도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엔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핵심 전략무기기술 교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의 경우엔 러시아보다 한참 뒤떨어져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의지할 나라는 북밖에 없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첨단전략무기 중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블라바와 같은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과 S-400대공미사일 기술을 거의 북에 의존하고 있다고 북은 노동신문을 통해 은근히 암시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러시아가 지금 첨단 무기 기술을 70% 이상을 북에 의존하고 있다니 사실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북의 컴퓨터자동조종프로그램 제작능력이 탁월하여 미사일 회피기동이나 자세제어 등에 관해 러시아가 북에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했었다. 하지만 북에서 발표한 비율을 놓고 보면 거의 전부 북에서 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실 이번 북이 발사한 북극성 1호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의 불꽃은 블라바와 같은 것이었다. 북도 좀더 큰 미사일만 장착하면 블라바보다 위력적인 잠수함발사용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북의 번개5호 대공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 크기만 보면 러시아 S-300보다 더 커서 S-400급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바 있다. S-400미사일은 러시아도 어느나라에도 수출한 적이 없다. 최근 시진핑 주석의 방문 때 푸틴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에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제공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만큼 러시아에서 중시하는 전략무기이다.
결국 이런 무기들은 러시아도 현재 수출하는 곳이 없어 북이 역분해방식으로 복제 생산하려고 해도 구할 곳이 없다. 따라서 북의 첩보원이 러시아에서 훔쳐왔거나 북이 러시아보다 먼저 자체로 개발했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훔쳐왔다면 지금처럼 러시아가 북에 15조나 되는 부채를 탕감해주고 북의 철도 도로 기반시설을 건설해주는 일을 과연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올해 북에서 발표한 북의 대 러시아 주요 수출품 중에는 광학부품 등 군사용 장비에 쓰이는 것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북은 공개적으로 2000년 푸틴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북의 미사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의 탄복'이라는 제목의 북 언론보도였는데 지금은 차단되어 볼 수 없는 상태이다.
✦ 북 무장력으로는 미국과 얼마든지 한 판 붙을 수도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북의 첨단무기기술 수준이 러시아를 능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북의 화성13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러시아의 토폴M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못지 않은 위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블라바 못지 않은 사거리와 위력 그리고 정확도를 가진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도 이미 북에서는 대형원자력 잠수함에 작전배치해놓고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북이 영변에 공개적으로 소형원자로를 만든지 얼마나 지났는데 원자력 잠수함하나 만들지 못했겠는가. 금성5호 즉, 우란 대함미사일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썬번, 야혼트 등 미국에도 없는 초음속 대함순항미사일도 북은 이미 실전 배치해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여차하면 그런 미사일들이 지금 북을 압박하는 훈련에 동원되고 있는 미국의 구축함과 항공모함을 불시에 습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남측도 이제는 위력적인 대함미사일과 대공미사일, 그리고 북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 배치하고 있으며 북의 막강한 방사포에 대항할 신형 다련장로켓포도 개발에 성공하였다. 미국의 통제와 제재만 아니라면 더 강력한 사거리의 미사일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나로호를 놓고 보았을 때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아직 무리인 것 같기는 하다. 다른 여타 미사일도 핵심부품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작심하고 개발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북의 그 많은 방사포와 그 많은 고속정과 잠수함을 요격하고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다 구비하려면 국가의 전 세금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북은 사회주의시스템이기 때문에 개발비용이 우리와 다르다. 거기다가 미국은 물론 유럽 등 그 연합세력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무기량을 비축해놓고 있다.
세상에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한 번에 100여 발 시험발사하는 나라는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미국도 러시아도 그런 시험을 하다가는 군사비 감당 못한다. 그런데 북은 지난해 공개적으로 그런 시험을 진행한 바 있다. 지금도 비공개로 얼마나 많은 무기 시험을 진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북과 무기경쟁을 한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해볼 지점이 있다. 그렇다고 미국과 강대국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막고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복 핵억제력을 구축할 수도 없다.
✦ 미군만 믿고 있어도 돼나?, 한반도 평화 대책 절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서울 상공으로 군용헬기들이 날아다니고 북이 한반도 현재 상황을 전쟁상황으로 인식했다는 속보가 뜨고 있다.
제도권 언론에 주로 등장하는 군사전문가들과 여야 정치인들은 북이 감히 미군을 건드렸다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기에 미군이 있는 한 우리는 안전하다는 주장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는데 북의 군사 기술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이 북에게 북침으로 오인하게 하여 북의 선제타격을 유발할 우려도 없지 않다. 북은 이미 이라크전 수준의 미군 무장력이 한반도 주변에 집결하면 전쟁 개시행위로 간주하여 먼저 선제타격하겠다고 선언한지 오래다.
미군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아직 우리의 대북 군사력 억제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핵억제력이란 한계도 있다. 하기에 근본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즉 평화적 통일의 길을 하루 빨리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야당 문재인 대표가 찬란한 통일경제론을 최근 제시하여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것도 남북관계가 풀렸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전쟁이 나면 그런 주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정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바란다면 북미대결전이 더는 격화되지 않도록 자주적인 입장에 서서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의 행보를 보면 북이 더 위력적인 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북과 뭔가 결판을 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북도 지금까지 공개한 무기만 가지고도 미국과 일전불사를 외칠 준비는 된 것으로 판단된다. 몰론 미국도 북의 군사력을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고 북도 전쟁이 나면 심각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기에 전쟁이 그리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에 따라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너무 강력한 무력을 집결시키고 있고 연례적인 훈련 강도도 계속 높아가고 있다.
또 북의 미사일 기술만 봐도 북이 미국의 이런 무력동원을 전쟁 개시를 위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미국에 굴복하여 협상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전격적인 선제타격으로 대응할 우려도 없지 않다.
대통령과 여당이 나서지 않으면 야당이라도 나서서 이 위험천만한 한반도 전쟁위기를 막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더 미국의 압박이 강해지면 상황은 심각해 질 것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우리 현대사는 유례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일구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을 소유한 이들의 학살, 내란, 부정선거, 고문과 각종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오욕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와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준비위'는 뒤틀린 우리 역사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역사의 정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운동을 촉구하는 기획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말]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 10만여 명의 학생이 모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총격에 쓰러진 후, 잠시 동안 따스했던 이른바 '서울의 봄' 때의 일이다. 당시 서울역에 모인 학생들에게는 효창운동장에 공수부대가 출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선택의 기로. 각 학교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오랜 시간의 논쟁 끝에 군 출동의 빌미를 주지 말자며 해산을 결정한다.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뒤에 벌어진 일은 알려진 대로다. 2일 뒤인 5월 17일 확대된 비상계엄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광주의 살육으로 이어진다. 찰나의 봄, 그리고 여름과 가을을 뛰어 넘은 긴 겨울의 시작이었다.
대학가는 한동안 침묵의 움츠림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12.12군사쿠데타 1주년을 하루 앞둔 1980년 12월 11일, 서울대학교에 A4지 2장 분량의 유인물이 살포된다.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 유인물을 살포했던 4명의 학생이 연행되면서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 출범 직전의 대규모 공안사건으로 비화된다. 학림사건과 부림사건의 전조가 된 <무림사건>이다.
현재 인하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인 김명인은 당시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을 직접 쓴 무림사건의 주범이다. 연행 후 치안본부 대공분실(일명 '남영동')로 끌려간 그는 그곳에서 잔인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 이근안을 만난다. 컴컴한 남영동 고문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13일, 김명인 교수를 만났다.
▲ 김명인 인하대 교수 서울대 77학번인 김명인 교수는 일명 <무림사건>으로 이근안의 국내 공안사건의 첫 고문대상이 된다. 그러나 김명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이근안은 꽤 젊잖은 편이었다.
- 선생님은 1980년 5.17계엄 이후 서울대의 첫 시위로 알려진 일명 <무림사건>의 주모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 당시 학생운동의 상황을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70년대 후반 서울대의 상황은 민청학련 사건(1972년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이 1974년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40명을 체포한 당시 최대의 학생운동 공안사건-기자 말) 이후 1975년 5월 22일의 김상진 열사 추모집회(이른바 522사건)로 많은 재학생들이 투옥되거나 제적되고 나서는 한동안 투쟁의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서울대에는 학회라는 독특한 서클문화가 있었어요. 고전연구회나 흥사단아카데미, 기독학생회처럼 본부에 등록된 (반)공개 서클도 있었지만, 법과대의 경제법학회, 농법학회, 사회대의 한국사회연구회, 농업경제학회, 국제경제학회, 사회복지학회, 인문대의 역사철학회 등 사실상 비공개 운동서클인 각종 학회들이 무척 많았어요. 빠뜨리면 섭섭할 친구들이 있을 텐데(웃음).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고 학내 시위가 어려워지고 나서는 이 학회 핵심들이 은밀하게 모여서 학생운동의 방향, 전략 등을 논의하는 틀을 만들었는데, 이걸 '언더'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1977년부터 1979년 10.26사건이 터지기까지 일어났던 크고 작은 교내시위는 이 '언더'에서 조직됐다고 봐야 할 겁니다. 주동자들은 대부분이 학회에서 성장한 4학년생들이었는데, 저는 역사철학회의 77학번 대표로 참여했습니다.
- 그 '언더' 모임에서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시위도 주도했던 건가요? "서울역 시위 전체를 주도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울대는 주도했다고 봐야지요. 10.26, 12.12가 일어나면서 어떻게 대처할 거냐는 논의는 굉장히 많이 했어요. 우리가 본격적으로 언더 조직을 만들고 비밀리에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한 게 77년부터인데, 한 3~4년 정도 학내에 조직을 잘 만들어서 사람들을 많이 키워놨어요. 그런데 학생들의 의식수준을 끌어 올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야 더 큰 역량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했기 때문에 서울대는 1980년 5월 14일에야 첫 가두시위에 나갔습니다."
- 준비를 철저히 하려다보니 막상 대중행동에는 발이 느렸던 거군요. 5월 14일 시위에는 학생들이 많이 참여 했습니까? "당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인 사람이 대략 8천 명에서 1만여 명이라고 추산되고 있는데 사실 이게 계산이 잘 안 돼요. 전에는 그렇게 많이 모인 적이 없었으니까요. 경찰들이 교문을 겹겹으로 막고 있었는데 이 정도 숫자가 되니까 결국 뚫고 나가게 되더군요. 경찰들이 일부러 터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돌 나르고, 던지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싸워서 뚫고 나간 건 사실이에요."
-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워서 5월 15일에는 10만여 명이 서울역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학생운동 지도부들은 계속 싸우기보다 해산을 결정했어요. 우리 민주화 운동사에서 뼈아픈 실책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1만 명, 2만 명은 감당이 되는데, 각기 다른 대학에서 10만여 명이 모였으니까 우리도 많이 당황했어요. 우리 내부('언더' 그룹-기자 말)에서도 '계속 싸우자', '아니다. 해산해야한다' 논의는 분분했지만 그 엄청난 인파가 모인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의견을 모을 여건이 되지 않았어요. 설사 어떤 의견 일치를 보았더라도 당시 관광버스 안에서 난상으로 이루어지던 각 대학 학생회장단 회의에 의견을 전달할 방법도 없었고요.
또 그런 의견을 서울대 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에게 전달한다고 해도 그 사람 혼자서 대다수 온건한 입장이었던 학생회장단 전체 의견을 모을 방법도 없었을 겁니다. 결국 학생회장단에서 '해산하자'는 결정이 나오고 시위대가 흩어지기 시작하니까 다시 모을 방법도 없었어요. 당시 학생운동의 역량으로는 불가항력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회군에 대한 역사적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겠지요."
- 당시 해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의 행로가 달라졌을까요? "글쎄요. 당시 효창운동장에 공수부대가 왔다는 소식이 퍼졌어요. 물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랐죠. 그렇지만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쪽에서는 '오히려 (공수부대가 왔다면) 그게 더 좋다'는 입장이었어요. 해산하자는 쪽은 미국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공수부대까지 왔다면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거다, 회군해서 공수부대에 빌미를 주지 않고도 신군부를 컨트롤 할 수 있다'라고 본 것 같아요. 당시 운동권에 영향력이 컸던 정치인도 회군 입장이었고. 굉장히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이었어요.
만일 회군하지 않았다면 정말 공수부대를 투입했을까? 쉽게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는 정보도 부족했고, 또 누군지 모르겠지만 버스를 밀어서 전경 한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친 사건도 있었어요. 그 사건도 해산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렇지만 만일 다음 날에도 그 정도의 인원이 나왔다면 전두환도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폭력적으로 진압하든, 퇴각하든 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당시에 회군하자, 회군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번갈아 들 정도로 매우 혼란스러운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쪽이 옳았을까 판단이 잘 안 서요."
- 학생들이 해산을 결정하고 결국 광주에서는 살육전이 벌어졌습니다. 만일 공수부대가 출동했더라도 서울이었다면 광주와는 달랐을 것 같습니다. "광주는 풍선효과였어요. 서울의 상황이 안정되고 나니까 신군부 입장에서는 여력이 남아서 광주라는 제한되고 봉쇄 가능한 지역에 무장력을 투입할 수 있었던 거죠. 물론 광주가 특별히 잘 싸웠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서울역 회군이 광주시민의 희생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무림사건, 그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서울역 회군을 결정했던 학생회장들은 5월 17일, 이화여자대학교 식당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김명인은 그 다음 주 월요일(5월 19일)부터 다시 대규모 가두투쟁 방침을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학생회장단 회의를 움직이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러나 잠시 후 계엄군이 들이닥쳐 학생회장들을 연행했다. 회의장 밖에 있던 김명인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 주방으로 들어가 식당 아주머니들의 도움으로 주방복과 주방모를 걸치고 감자를 깎으며 겨우 검거를 모면했다. 계엄군과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지만 밤에도 식당 창고에서 대형 수납장을 벽쪽으로 뒤집어 놓고 숨어 있어야 했다. 결국 새벽녘에야 계엄군의 감시망을 겨우 벗어났지만, '빌미를 주지 말자'며 서울역 회군을 결정했던 학생회장들은 김명인의 표현대로라면 "평생 맞을 것을 다 맞았을" 정도로 심한 구타에 시달려야 했다.
- 학교에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7월쯤 되니까 5월에 잡힌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도 2학기에 복학했어요. 당장 싸울 수는 없었으니 제일 먼저 한 일은 서울의 대학들을 연결해서 은밀하게 대규모의 투쟁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이밍을 1981년 봄으로 잡았죠."
- 나중에 80년대 학생운동 초기 논쟁인 이른바 '학림-무림 논쟁'에서는 무림쪽이 준비론적 입장에서 시위 자제를, 학림쪽이 전면적 투쟁론을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위 자제를 주장한 것은 맞죠. 나중에 학림으로 불린 그룹들이 우리에게 '왜 시위 안 하냐, 선도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항의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는 '은밀하게 1981년 초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보안이 중요했으니까요. 물론 시위를 한 번 할 수는 있지만 시위하다가 걸리면 그 사람만 잡혀가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가 깨질 가능성이 컸어요.
그 때 은밀하게 조직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준비론을 가장한 운동 포기론자처럼 보였어요. 어떤 사람은 '저 사람들이 광주학살 때문에 질려서 운동 포기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언제나 싸우자는 쪽과 싸우지 말자는 쪽이 논쟁을 하면 싸우자는 쪽이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궁지에 몰렸죠.(웃음)"
- 1981년 초에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 '운동포기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위를 자제해 왔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무림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조직 사건이 터지면서 서울대 운동권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결과인데요? "사실 우리는 이게 그렇게 크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학내에서 하도 (시위를 벌여야 한다는) 반발이 커지고 갈등도 심해지니까 '안 되겠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 정도는 발표하자'는 결론을 내렸죠. 어차피 1981년 초에 큰 시위를 하려면 불필요한 갈등을 지속하기보다는 논쟁으로 가는 편이 좋다고 봤어요. 그래서 광주 이후에 대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입장을 내기로 했어요.
이렇게 준비한 게 1980년 12월 11일 시위입니다. 12월 12일은 12.12사건 1주기니까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망이 심할 것 같아서 하루 당긴 거죠. 그래서 저하고 현OO, 최OO 등이 기본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위를 주도할 4명으로 팀을 꾸리고 저는 선언문을 기초했는데 상당히 강도 높은 선언문을 만들었습니다.
광주항쟁의 교훈을 반영해서 70년대 학생운동권이나 재야 운동처럼 순진한 반정부투쟁 수준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민중혁명 의지를 고취하는 선언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나마 저는 제목만은 온건하게 <학우들에게 고함>이라고 썼는데 나중에 시위주동팀이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으로 바꿔버렸지요."
- 처음에는 이 시위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셨던 것인가요? "유인물을 살포하면 연행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시위를 주도한 4명이 연행되면, 그 친구들이 시간을 벌다가 현OO군의 이름을 밝히고, 그 다음에 현OO군이 연행되고 나면 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도피생활을 시작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 사건의 대내외적 파장이 커지면서 잡혀간 친구들이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어마어마한 고문을 받았어요. 전기고문에 물고문까지 받다보니 엉겁결에 제 이름까지 나온 것 같습니다."
"옷 다 벗어라" 끊임없는 몽둥이질, 물고문, 통닭구이
학생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배포했던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은 그 논리 정연함 때문에 공안당국으로부터 '외부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신군부는 유인물을 작성·배포한 이들이 간첩이거나, 북한의 사주를 받았거나, 최소한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언론에서는 "공산 폭동 혁명론이 대학가에 나타났다"고 보도했고, 대대적인 구속과 수배, 연행자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이 이어졌다. <무림사건>의 시작이었다.
- 어떻게 연행되셨습니까? "현OO군이 잡혀가면 내가 도피하기로 했었는데 당시 늘 감시당하고 있던 제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오히려 눈에 띄게 될 것 같아 일상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12월 16일에 학부 졸업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데 형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황당했죠. 계획대로라면 현OO군이 먼저 잡혀가야 하는데 제가 먼저 잡혔으니..."
- 연행되고 어디로 가셨나요? "처음에는 관악경찰서 지하실로 갔어요. 넓은 지하실에 들어가니까 첫 마디가 '옷 다 벗어라'에요. 옷을 다 벗겨 놓고 '유인물 누가 썼냐?'고 물어요. 내가 썼다고 했죠. 이미 제가 쓴 걸 다 알고 잡아온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몇 번을 확인하더니 (유인물을) 외워보라고 하더군요."
김명인은 8절지(A4 두배 크기)로 앞 뒤 두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유인물을 접속사 몇 개를 제외하고 정확하게 다 외웠다. 먼저 연행된 사람 중 한 명이 고문 끝에 자기가 썼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쓰지 않은 선언문을 외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덕에 그는 고문만 더 당했다. 그러나 김명인은 본인이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선언문을 외워냈다. 1차 임무를 완수한 관악경찰서는 그를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보냈다.
두 눈을 가린 채 고문실이 쭉 늘어져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들어간 김명인을 기다린 것은 건장한 세 사내들의 구타였다. 몇 마디 질문 이외에는 별다른 말도 없었다. 몽둥이질, 발길질, 주먹질... 엄청난 구타가 있은 다음 날에는 물고문과 일명 통닭구이 고문이 이어졌다.
- 묻기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고문은 어떤 식이었나요? "때리고 물고문 하니까 오히려 시간을 벌어준다고 생각했어요. 얻어맞고 물고문 당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물고문 할 때 할 말 있으면 손가락을 까딱 하라고 하니까 고문 받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손가락 까딱하고... 거짓 진술을 한 뒤 경찰들이 확인할 때 좀 쉬고... 선배 이름을 대라고 하면 나름대로는 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된 선배들 이름 대고... 저 때문에 죄 없는 선배들이 고생을 좀 했어요. 이틀인가 사흘 정도 그러다가 자기들이 생각하는 게 잘 안 나오니까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옮겼어요."
"자결하지 않는 다음에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별칭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고문의 고통에 시달렸다. 1985년 김근태 전 의원을 잔인하게 고문했고, 1987년에는 박종철을 고문·살해해 6월항쟁의 도화선을 만든 그곳이다.
- 남영동에서 선생님 수사는 고문수사로 악명 높은 이근안이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영동으로 가니까 얼굴이 큰 수박만하고 덩치가 하마 같은 사람이 악수를 청하더니 '내가 이근안이다. 이제부터 내가 널 맡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당시에 이근안은 다른 수사관에 비해서 굉장히 점잖았어요. 제가 그때만 해도 꽤나 동안으로 보였던 때문인지 '너처럼 애기 같고 예쁘장한 놈이 올지 몰랐다'면서 '정말 네가 썼냐? 다시 외워 봐라'고 하더군요. 내가 썼다는 걸 믿는 눈치였어요. 다 외우니까 이번에는 왜 이걸 썼는지 쓰라고 해서 몇 번을 썼죠. 평생의 일대기를 다 썼어요. 물론 숨길 건 숨겼지만."
- 이근안 하면 잔인한 고문수사로 악명이 높습니다. 선생님께도 심한 고문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 이근안은 저에게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같은 건 안 했어요. 제가 썼다는 건 이미 이야기했고 본인도 믿으니까. 대신 저를 굉장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똑똑한 친구로 본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저를 지능범으로 보고, 자기도 물리적인 고문보다는 저와 머리싸움 하는 걸 즐겼던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사람이 일찍 결혼을 해서 아들이 있었는데 저하고 나이가 같아요. 당시 그 아들이 전경으로 입대해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경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도 좀 났나 보더라고요."
- 그럼 남영동에서는 고문이 없었던 건가요? "그렇지는 않지요. 다만 칠성판(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위해 고안된 고문 도구. 이근안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기자 말)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세 가지 고문을 했어요. 첫 번째는 볼펜으로 허벅지를 찔러요. 이게 피는 안 나면서 굉장히 아픕니다. 두 번째는 손톱 누르기. 세 번째가 '관절 꺾기'였어요. 손목만 꺾어도 뼈가 탈구되는데 너무 고통스럽더군요. 남민전 관련자인 이재문씨에게도 고문하면서 무릎 꺾고 팔 꺾고 나서 '5미터만 제 발로 걸어가면 널 석방하겠다'고 했다더군요.
저도 그때 결국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대 내에 운동을 지휘하는 비밀 조직이 있다고... 그때쯤이면 대부분 도피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수사대상이 너무 많으면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댔어요. 후배들의 이름은 숨겼지만 웬만한 선배들, 운동권 명사들은 전부 관계있다고 떠벌였습니다."
- 육체적인 고통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셨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서승 선생님(재일교포인 서승은 1971년 서울대학교 유학시절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심한 고문을 받던 중 난방유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해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기자 말)이 고문을 받다가 난로 기름을 부어서 분신을 시도하신 적이 있잖아요?
저도 라디에이터에 머리를 박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어요. 내가 자결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결국... 육체적 고통보다 제가 선배와 동료들의 이름을 밝히고 조직을 와해시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최대의 치욕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문당한 사실을 말하기도 힘들었어요. 결국 적과의 싸움과 나 자신과의 싸움 모두에서 진 거니까요."
결국 축소된 무림,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
김명인은 어쩌면 운이 좋았다. 먼저 구속된 이들은 칠성판에 올라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학생사건을 처음 맡았던 이근안에게는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이 흥미는 이근안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똑똑해 보이는 그를 당시 유흥수 치안본부장이 직접 찾아와 '3급으로 특채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거부했다. 그런데 얼마 뒤 이근안의 상관인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장 박처원이 찾아와 이상한 제안을 한다.
-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소환되고 언론에서 간첩조직사건처럼 다룬 것에 비해 무림사건의 결말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경찰에서는 조직사건을 뜻하는 림(林)에, 사건이 안갯속에 있다는 뜻으로 무(霧)를 붙여서 <무림사건>으로 불렀어요. "유흥수 치안본부장이 찾아오고 나서 박처원이 찾아왔어요. 그러고는 '네 진술을 들으면 유신 때 운동권부터 다 잡아들여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크다. 줄이자'고 하더군요. 수사 받을 때는 사형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박처원이 '조직사건으로 다루면 너무 커지고 부담되니까 몇 사람이 주동한 학생시위 사건으로 하자'라고 해서 사건이 축소됐지요. 제가 지니고 있던 서적들 때문에 반공법으로 걸렸는데, 이런 것만 가지고 사건을 전체적으로 축소시켰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뒤집어놓을 엄청난 간첩조직사건인 듯 시작했던 <무림사건>은 계엄법과 반공법 위반 사건으로 변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1981년 1월 17일 기소가 되어 2월 말에서 3월 초에 첫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과 겹친 것이다. 광주에서의 살육 이후 또 다시 대형사건이 터지는 걸 부담스러워 한 신군부에서 애초의 그림보다 사건을 축소한 것이다. 최소한 사형 구형은 받을 줄 알았던 김명인도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고 1983년 8월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러나 <무림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문을 이긴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고문에 졌다는 '당연한' 결과는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함께 조사받은 후배들 대다수가 군대로 강제 징집되었고 그 중 일부는 악명 높은 <녹화사업>에 동원되어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기도 했다. 5공 시절에는 운동권 친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한 악질적인 이 녹화사업 과정에서 6명이 사망했다.
- 출소하고서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죄인이라는 생각에... 괴로웠지요. 그 와중에 녹화사업도 당하고 군대 가서 죽은 친구도 있어요. 감옥에서 나온 뒤로 두문불출하고 운동하던 친구들과도 거의 못 만났어요. 출소 두 달 후에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10개월 정도 일하다가 1984년 9월에 복학조치에 따라서 복학을 했어요. 어떻게 계속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다 출판사에 취직하고, 문화운동 특히 문학평론을 통해 싸우자고 결심했지요."
- 지금도 그 때 고문 받은 후유증은 남아 있습니까?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또 잡혀가서 옷 벗기고 항문검사 당하고 취조당하고... 지금에서야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한 달 정도를 엄청난 폭력과 심리적 압박 속에서 집중하다 보니까 강박증과 우울증 같은 게 생겼어요. 어떻게든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종의 완벽주의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누가 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실수를 추궁하면 몸이 확 나빠져요. 얼굴이 달아오르고 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온몸이 가렵기도 하고...그럴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지요.
무엇보다 죄책감이 제일 오래 남아서... 어떤 즐거운 일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었어요. 좋은 일로 기분이 좋다가도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맛있는 걸 먹어도 '내가 이걸 먹어도 되나...' 이런 식으로 계속 마음에 남았지요."
- 고문했던 이들에 대한 원망도 남아 있습니까? . "원망보다는 연민이지요. 그들도 체제가 만든 사람들이에요. 이근안도 아마 경찰이 된 후에 워낙 신체조건이 좋으니까 대공분야 쪽으로 배치된 거고, 또 공도 많이 세우고 전문가가 되니까 80년대 차츰 노골적으로 대공사건 조작이 시작되면서 인생이 망가진 겁니다. 그 사람도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걸었을 거예요. 애국한다고. 안 그러면 스스로 무너지니까. 연민이 느껴지죠."
"과거 잘못에 대한 인정을, 사죄를 통한 화해를..."
김명인의 증언에 의하면 이근안은 대공수사에서는 매우 잔인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공안사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다. <무림사건> 수사로 1계급 특진한 이근안은 이제 서울대 운동권은 끝났다고 봤다.
수사팀도 '공안팀의 승리'로 자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981년 3월, 서울대에서는 다시 격렬한 시위가 발생한다. 뒤에 벌어진 학림사건 등에서 이근안은 더욱 잔인해졌고, 결국 김근태 전 의원에 대한 악마적인 고문수사로 수배 길에 오른다. 김명인은 "이근안이 <무림사건> 이후에도 서울대에서 또 시위가 터지니까 학생들은 봐주면 안 된다고 판단하면서 돌아버린 것 같다"고 봤다. 보복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고문수사관 중에서는 이근안이 제일 유명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했던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이근안들은 정체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김명인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7월 16일 제안된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의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 김명인 인하대 교수 이근안 고문 피해자인 <무림사건> 주모자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지난 7월 16일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제안자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인정과 사죄, 용서와 화해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 지난 7월 16일에 제안된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 사업에 제안자로 참여하셨습니다. 그때의 분노심이나 복수심 때문인가요? "우리가 반(反)헌법 행위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에 제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이들에 대한 적대감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 노릇이지요.
하지만 제 개인적 복수심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운도 좋았고 학연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조건들이 좋아서 지금 이나마 잘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뿐인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 미치거나 폐인이 되거나 소리 없이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을 꽃 피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꺾였습니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어요.
우리 헌법에 다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국민이 이런 대우를, 이런 피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이게 최저선인데 이조차도 안 지켜졌다면 이제라도 지켜야지요. 가해자들도 가해자라는 사실 때문에 정상인 사람 별로 없습니다. 명백한 잘못도 부정합니다. 왜? 고통스러우니까 자기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기 암시를 걸지 않으면 그들도 못 견디는 겁니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사죄와 용서와 화해와 이뤄지면 이러한 심리적 고통과 강박은 상당히 해소됩니다. 고문 조작한 사람들, 헌법과 인권을 유린한 사람들이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받고 화해의 길로 나서는 것, 그걸 해보자는 겁니다."
고문 피해자들이 평생을 죄책감과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가해자들도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와 자기 암시에 고통 받는 나날을 보낸다. 그것을 벗어날 유일한 길은 자기 잘못의 인정이다. 인정을 통한 사죄, 사죄를 통한 용서, 용서를 통한 화해다. 용기 있는 이들의 제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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