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 압수수색을 당한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4일 경찰철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최근 출소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제가 양심수 구속과 관련된 공안탄압에 대해서 아마 수 백 번 기자회견을 했는데 제 문제를 가지고 이런 기자회견에서 제가 말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 참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양심수를 돌보는데 앞장서온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4일 자신이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전날 압수수색을 받은데 대해 “내 문제를 가지고 내가 기자회견장에 나온 것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은 4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 소재 경찰청 앞에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에 대한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3일 오전 8시 30분경 권오헌 명예회장의 집으로 들이닥쳐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며 인신수색과 가택수색을 실시했다.
권 회장은 “어제 8시 좀 넘어서 경찰청 보안수사대 홍제동 분실에서, 나중에까지 보니까 열댓 명이 된 것 같다, 찾아와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내 몸과 내 집과 컴퓨터, 휴대전화 기타 여러 가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다고 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영장에는 △범민련남측본부 기념식, △7.4남북공동성명 40주년 기념식,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 기자회견 등에서 발언한 내용과,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 등이 북을 고무.찬양했다는 것.
권 회장은 “굳이 따진다면 한일협정 이후에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1964년 이후 한결 같이 하고 있다”며 “어떤 활동이든지 그것이 우리 민족의 자주와 통일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민중의 생존권에 대해서 말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고, 또한 내 양심에 따라서 발언하고 있다”며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나는 정식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규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서울연합 의장권한대행은 “범민련을 탄압하다 못해, 범민련을 지지하는 모든 통일단체들을 탄압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차냐?”며 “이것은 통일을 안 하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참가자들은 최근 3년 6개월 실형을 마치고 나온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 땅에는 겨울 한파뿐만 아니라 통일애국인사를 이 추운 겨울날 차가운 감옥으로 끌고가려는 공안탄압의 광풍도 몰아치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은 자신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이 당의 모든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며 양심적인 세력들의 뿌리를 뽑아 유신시대로 회귀하려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권오헌 선생님은 수십년동안 이땅의 통일과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으로 영장에 제시도니 내용들도 모두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한 활동들”이라며 “지금에 와서 갑자기 문제를 삼아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그 의도가 너무 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다른 나라의 공문서도 위조하여 공무원을 간첩으로 만들어내는 공안당국이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권을 구하기 위한 공안정국을 이어나가기 위해 죄도 없는 연로한 통일인권운동가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자행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현재 78세의 나이로 건강이 좋지 않으신 권오헌 선생님은 최근 들어 급격한 시력감퇴와 두통증상 그리고 무릎관절통증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안당국은 이 추운 겨울 압수수색을 자행하고 선생님을 구속시키기 위해 홍제동 대공분실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 권오헌 명예회장에 대한 공안탄압 중단, △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구속 양심수 즉각 석방, △ 유신독재 회귀 공안몰이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다.
김익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조순덕 민가협 의장과 진광수 고난함께 사무총장, 이광렬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 6월 세월호참사 다큐영화 촬영차 한국에 머물고 있을 당시 단원고등학교를 방문했다: 텅 빈 교실들, 한여름인데 플라스틱 커버로 덮힌 천장의 선풍기들, 먼지가 부옇게 쌓인 책상들, 시들어버린 하얀 국화꽃들, 4월에 멈춰버린 달력, 누군가 분필로 칠판에 써놓은 한마디: “과제: 돌아오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장난치고, 졸고, 수다떨고, 다투고, 깔깔깔, 아하하 하는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 교실은 먼지와 침묵으로만 차 있었다. 문득 책상 밑에 놓인 분홍색 무늬가 있는 새하얀 운동화 한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수학여행 가기 전 잊고 간 실내화였을까? 딱 이 아이만 신발을 수학여행 전에 교실에 두고 갔었나? 누구의 신발이었을까? 가수가 꿈이었던 예은이 신발이었을까? 친구들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경주의 신발이었을까? 아빠의 사랑을 듬쁙 받았던 세영이 신발이었을까? 용기를 내어 수학여행이 끝나면 좋아하는 오빠에게 고백을 할까하고 가슴을 두근거렸던 소녀였을까? 나는 과연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 소녀였을까? 친구하고 다투고 속상해 했던 소녀였을까? 나는 어른이 되면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소녀였을까?
곱고 고운 여자아이 신발을 보는 순간, 이 여자아이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다. 소녀의 체온을 독일에 돌아와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유가족들을 상대로 자식 팔아 돈벌려한다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비인간적인 비방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주 오래전에 그만둔 예술작업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체온이 느껴지는 신발들로 설치미술을 한다면, 이로써 이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체온이 느껴지는 신발들을 보며 아무 설명,설득 없이도 이들이 유가족들의 가진 슬픔, 아픔, 분노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숫자 만큼의 신발을 보는 순간 이 참사의 잔혹함을 한눈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4년 10월 18일, 베를린)
베를린에서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베를린 행동’이라는 이름 아래 교민과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에서 매달 세번째 토요일에 만난다. 이는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자리다. 혼자서 희생자 숫자의 신발을 모으기에는 너무나 벅차 신발설치미술 실천을 엄두도 못내고 있었던 차에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모이는 베를린 교민 그리고 유학생들이 이 설치미술을 위해 몇 주 동안 신발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 켤레, 두 켤레, 세 켤레, 그들은 열심히 뛰어 다니며 신발을 모았다. 멜리사라는16세 딸을 둔 시모네 대미르씨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이 정부로부터 아이들의 죽음에 관한 모든 질문들에 답을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하며 딸의 신발을 주었다. 나이드신 교민 한분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특별히 예쁜 신발들을 모았다고 했다.
10월 18일 모두 신발로 가득찬 봉지들을 들고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으로 모였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위한 책상, 배너, 종이배를 준비하며, 설치미술을 시작했다. 차곡 차곡 모두 함께 294켤레 신발들을 10줄로 나란히 놓았다. 배에서 죽어 나온 희생자들을, 그리고 아직 나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들을 생각하면서. 단원고 2학년에 1반부터 10반까지의 열 반을 생각하면서.
10은 특별한 숫자다. 서양이나 동양에서도 똑같이 10은 완성, 달성을 의미하며 또한 다른 차원에서의 새로운 시작의 의미라고 한다. 이 설치미술은 아이들의 죽음이, 모든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잔혹한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이는 아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한국사회가 이윤보다는 생명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말이다. 또한 유가족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로 좀 더 안전한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슬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그들의 참사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위한 싸움이 한국사회를 일깨울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말이다.
(2014년 11월 15일, 베를린)
토요일,11월 15일에도 베를린 교민, 유학생들은 또다시 함께 모여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며, 함께 신발설치를 했다. 이번 달에는 이제서야 찾게된 지현이를 생각하며 295켤레가 광장에 놓여졌다. 지난 달처럼 이번에도 세계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 독일 사람들, 남녀노소 구별없이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오가는 중 신발설치에 발길을 멈추었다. 유가족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기나긴 싸움에 관해 듣고, 신발들을 보며,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이들이 서명을 했다. 당연히 우리도 유가족들에게 우리의 연대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면서. 카메라 앞에 서서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마음으로 함께합니다라고.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을 꽉 채우는 신발들을 보며, 우리에게 와서 “이 신발들은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끊임 없이 있었고 신기해서 신발설치미술을 사진찍는 사람들, 신발을 배경으로 재미 있어하며 단체사진이나, 셀카를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다가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면 조용해지는 눈길에서 이들도 유가족들의 아픔과 분노를 공감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 여행온 관광객들에게 파는 옛 소련 군대 털모자를 익살맞게 머리에 쓴, 대낮부터 벌써 술이 거나하게 취해 손에 맥주병을 들고 떠들석하며 법석을 떠는 대여섯명의 혈기 왕성한 영국청년들이 신발설치미술 옆에 서서 큰소리로 요란을 떨었다: “야, 여기 신발 장사 하나보다.” “야, 이게 너에겐 딱이다” “야, 이것 가지고 가도 되겠다” “하하하” 하며 시끄럽게 요란법석을 떨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당신들, 이 신발설치미술이 무슨 뜻을 가진 줄 아세요?”하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300여명이 죽었고, 대부분이 학생들이었다는 것. 유가족들은 슬픔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벌써 여섯달 넘께 싸우고 있다고. 설명을 하니 시끄러웠던 술취한 청년들이 점점 조용해진다. 머쓱해 하면서, 소란을 피운 것을 민망해 했다. 한명이 다시 한번 우습게 소리를 시도했다: “그래도, 나한테는 한 켤레 팔 수 없나?” 그러니 옆에 있는 청년이 “야, 입 닥쳐!”하며 나에게 “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천치예요. 우리도 서명할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들을 생각하니, 질문이 생긴다. 유가족들의 진실을 위한 싸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유가족들이 자식들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한다고 말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유가족들의 의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일베, 서북청년단, 어버이 연합 등의 한국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도 아이가 있습니까? 형제가 있습니까? 친구가 있습니까? 조카가 있습니까? 당신들도 슬픔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은 마음을 아십니까? 살릴 수 있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심정을 아십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당신들의 답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유가족들의 단 하나의 간절함은 사랑하는 그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꼭 밝혀주고 싶다는 것에 그들도 공감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심장을 옳은 자리에 가지고 있다”라는 독어 표현처럼 심장이 옳은 제자리에만 있다면 외국인이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자식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에 대한 마음의 공감은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당연하고 너무나 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을 이해못하고, 조롱하고 욕하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는 당신의 심장은 지금 가슴 어느 자리에서 뛰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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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 김수환 추기경을 혜화동 처소로 찾았을 때의 일이다. 노후보는 자신이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종교를 무교로 쓴다고 했다.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 고 묻자 애매한 대답을 했다. 희미하게 믿는다고 했다.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고 다시 묻자 노후보는 잠시 생각하다가 ‘앞으로 종교 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라고 대답했다.
‘진실의 길’ 이기명기자가 노후보와 단 둘이 있을 때 노무현 후보에게 물었다.
“누가 시비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대답을 하셨습니까? 그냥 믿는다고 대답하시지 않고요?
노무현 후보가 대답했다.
‘거짓말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진실의 길’에 나온 기사다. 노무현대통령의 후보시절 기사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박근혜대통령의 거짓말을 말하느니 참말을 얼마나 하는지 찾는 게 오히려 쉽겠다.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에 유체이탈화법. 하긴 어디 박근혜뿐일까? 백주에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도둑질한 전두환 살인정권이 만든 정당 이름이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이였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역대 대통령의 거짓말을 말하면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부터 빼 놓을 수 없다. ‘전쟁이 발발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패기는 어디가고 수도서울이 함락됐음을 알고 자신은 대구로 도망쳐 놓고 “적을 물리치고 있으니 서울시민들은 안심하라”면서 한강다리까지 폭파해 수십만의 서울시민이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했던 사람이 이승만이다.
박정희는 어떤가? 그는 4·19혁명으로 쟁취한 민주정부를 뒤엎고 혁명공약이라는 걸 발표하면서 한 말이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고 했다. 그 후 63년 2월 27일 시민회관에서 전국민이 생중계로 방송하는 자리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면서 자신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서식을 했지만 헌법까지 개정해 영구집권을 꾀하다 19년 만에 가장 신뢰하던 부하의 손에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미지 출처 : Addons 트윗트에서>
초등학생들에게 ‘29만 원 할아버지’라는 놀림감이 된 전두환은 어떤가? 무고한 광주시민을 폭도로 분류, 학살하면서 북한의 특수부대가 침투,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어 용감한 국군들이 소탕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 전두환이다. “예금 29만 원밖에 없다.”던 그는 퇴임직후인 1988년 11월23일 사과·해명 담화에서 그는 ‘가족의 재산’이 부동산 4건과 금융자산 23억 원 등이 전부라고 밝혔다.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 받은 후 17년.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추징금을 낼 돈이 없노라”고 잡아떼 전두환은 추징금 1672억 원을 내지 않으면서 골프를 치며 호화생활을 누려 왔다. 가족이나 친지의 명의로 숨겨놓은 재산이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에 달한다는 그의 재산은 ‘전두환 추징법’으로 2013년 5월까지 추징한 금액은 모두 532억7348만4436만 원을 내고 무기명채권 188억 원에 대한 이자 100억 원을 몰수당한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군사정권을 종식시킨다면서 전두환, 노태우일당과 합당해 정권을 잡은 정치9단 김영삼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늘어놓던 이명박과 박근혜의 거짓말에 비하면 이빨도 나지 않았으니 여기서 논외로 치자.
이명박의 거짓말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은 반값 등록금이나 전 재산 기부공약은 덮어두고라도 당선 초기부터 국민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미국소고기 수입개방으로 국민들의 촛불시위에 시달려야했다. 대운하사업을 4대강사업이라고 사기를 쳐 금수강산을 오염공화국으로 만들어놓고 국민의 혈세 22조를 날린 사람이 이명박이다.
7% 성장, 4만불소득, 세계 7대 선진국이라는 747공약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나고 BBK 주가조작사건에 퇴임 후 끊임없이 국정감사요구를 받고 있는 사자방의혹은 우선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역사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이명박 폭탄. 이제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한 그의 사기행각을 밝혀야 할 책임은 주권자인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됐다.
역대 대통령 중 뭐니뭐니해도 최고 거짓말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박근혜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고 했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말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줄푸세를 말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말하더니 이제는 유체이탈화법에 멘붕시리즈까지 등장했다. 당선 초기만 해도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자 예산이 부족해 점진적으로 실현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의 대부분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바뀌면서 대선 당시 내놓았던 대부분의 공약이 총체적인 사기극이었음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고교무상의무교육시대, 맞춤형 보육서비스, 취업 스팩타파, 어르신 인플란트도 건강보험으로, 아이들 돌봄 서비스 확대… 같은 공약이 어느 시민단체에서 내놓은 개혁안을 베끼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부자들,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해 뻔질나게 해외로 나들이 하면서 발 빠르게 FTA를 체결해 주식인 쌀까지 완전 개방해 식략주권을 다국적 자본에 맡기고 전작권을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만행도 불사한다. 더구나 공공성으로 남겨 둬야 할 교육이나 의료, 철도 민영화도 마무리 단계까지 와 있다.
눈 뻔히 뜨고 404명 죽어간 세월호에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남북관계, 언론, 종교… 어느 곳 하나도 멀쩡한 곳이 없다. 그의 유체화법의 백미는 단연 문고리권력이니 만만회니 십상시니 하는 국정 농단 사건이다. 부끄러워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사실을 밝혀야 할 사람이 문건유출은 국기문란으로 단정하고 엄벌하라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고 있다. 도둑질한 놈이 나쁜게 아니라 도둑질을 왜 신고했느냐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역대대통령의 거짓말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왜 우리국민들은 이런 거짓말쟁이 정치인을 좋아할까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국민이 속으면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를 혹자는 국민의 수준을 혹자는 그들의 마취술에 놀아나고 있다고도 하고 혹은 그들의 거짓말이, 혹자는 언론의 책임론을 말한다. 기득권자들에게 장악당한 국민들의 주권. 그들이 자본가의 이익, 초국적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구경꾼이 된 민초들이 깨어나지 않는 한 소외와 배신의 정치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이 수년 전 북한 관련 게시물을 문제 삼아 한 누리꾼을 기소할 방침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언론지키기천주교모임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누리꾼 이황룡씨는 북한인터넷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원문을 트위터에 게시하고 블로그(다음, 야후, 네이버)에 북한 노동신문 등 북한 찬양 내용이 포함된 게시물을 올렸다는 혐의(이적표현물 게시)로 지난 2010년 9월 3차례 대구지방경찰청 보안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이후 이씨는 4년 동안 경찰 조사 결과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13년 초 서울지방경찰청 보안과 수사관들이 갑자기 이씨의 개인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씨는 “컴퓨터, 각종 유인물, 책, 일기장, 휴대폰 등을 압수수색 당했다”며 “대구에서 3차례, 서울에서 5차례 조사를 받고 지난해엔 압수수색도 당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씨에게 북한 관련 글을 올리지 말라는 요청을 했는데도 지속적으로 게시물을 올려 수사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씨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고 생각해 북한 소식에 대해 올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이씨가 인터넷 통일뉴스가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라는 기사(11월 3일자)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는데 경찰은 이적성이 있는 표현물을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황룡 씨. (사진 = 이황룡 씨 페이스북)
이 씨는 “수사당국은 내가 친북언론하고 관계가 있는 줄 아는데 나는 연합뉴스에 보도된 북한 관련 글도 퍼온다. 이게 과연 이적 표현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씨의 수사담당관인 서울지방경찰청 유재명 경장은 “첫 수사 이후 지금까지 이적성이 있는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려 검찰에 송치했다”며 “이 씨의 총 게시물이 6000건이 넘는데 이 중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한 게시물은 400여건이 좀 넘는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지방경찰청은 2014년 5월 이씨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씨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출두 요구를 받고 2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씨에 따르면 검찰은 조사 도중 혐의와 무관한 내용에 대해서도 집중 추궁했다. 이 씨는 “검찰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트위터에서 알게 된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를 어떻게 아는가에 대해서도 물었다”며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는 보수언론으로부터 재미종북세력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보수언론은 최근 통일토크콘서상 발언을 문제 삼아 경찰 내사 대상이 된 재미교포 신은미씨에 대해서도 노길남 대표와의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검찰은 이 씨를 국보법 7조 위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과거 박정근씨 리트윗 사건과 비교된다. 박씨는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 글을 리트윗해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지난 2012년 1월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이씨는 지난 8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박씨와 같이 이씨도 수사당국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희생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경찰은 지난 6월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확대 개편해 사이버안전국을 창설한 바 있다. 경찰은사이버범죄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며 기존 수사국 내(內) 1과(課) 4팀 64명의 인력과 조직을 사이버안전국장과 2과 1센터 12팀 111명으로 확대 개편했다.
» 간월호 모래섬은 흑두루미와 겨울 철새의 안전한 잠자리다. 날이 어두워지면 흑두루미들이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간월호 모래섬으로 날아든다.
지난달 27일 충남 서산 천수만, 해가 지자 간월호로 날아온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들이 한 마리씩 차례로 모래섬에 내려앉기 시작한다. 낮 시간 동안 천수만 주변 논에서 먹이를 찾거나 쉬다가 주위가 어두워지자 잠자리를 찾아 이곳 모래섬으로 날아든 것이다. 흑두루미들은 지난 10월22일 처음 이곳으로 날아왔지만 20여 일 동안이나 ‘한뎃잠’을 잤다.
그동안 천수만을 찾은 흑두루미가 잠을 자던 곳은 간월호 한가운데 있는 모래섬이었다. 이곳은 너구리나 삵 같은 천적의 접근이 어렵고, 주위가 넓게 트여 있어 하늘에서 날아오는 천적의 움직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먹이를 먹을 때도 무리 중 한두 마리는 반드시 보초처럼 머리를 들어 주변을 경계할 정도로 조심성이 많은 흑두루미이다. 이곳은 이들이 안심하고 밤을 보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먼길을 거쳐 이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이 모래섬은 물에 깊이 잠겨 있었다. 간월호 수위가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흑두루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20여 일을 논 한가운데서 편치 않은 잠을 잤다.
» 잠자리에 내려앉는 흑두루미 뒤로 고기잡이 배가 보인다. 현대건설이 농경지를 일반인에게 분양한 뒤로는 간월호 어로활동도 많아졌다.
간월호의 물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천수만 주변 바다 자원 보호와 어민들의 고기잡이를 위해 물을 가둬 수위를 높였던 것이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의 항의로 담수호 물을 빼 수위를 낮추고서야 흑두루미의 잠자리인 모래섬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꼭 이번 잠자리 소동만이 아니라도 천수만은 이미 두루미와 겨울 철새들에 월동지로서의 매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지역 활동가들은 2009년부터 매년 흑두루미를 위해 많은 양의 먹이를 주고 있다. 월동하는 흑두루미 수도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핸 270여 마리가 큰 무리를 이뤄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경작하던 농경지를 일반에게 분양하고 난 뒤론 낙곡률이 떨어지고 추수가 끝난 볏짚도 소여물로 쓰기 위해 볏짚말이를 해 놓아 철새들의 먹이가 부족하다.
또 지금은 농로 정비를 위한 대규모 도로 공사가 벌어져 매일 수십 대의 중장비와 사람들이 드나들어 몹시 시끄럽다. 천수만은 철새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대규모 도로 공사가 끝나면 지금은 논의만 진행중이던 환경생태공원과 골프장 등 대규모 레저시설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 간월호로 날아 온 흑두루미가 사뿐히 내려 앉고 있다.
» 내 자리는 어디? 뒤늦게 잠자리로 날아 온 흑두루미가 밤새 쉴 자리를 찾아 내려 앉고 있다.
국토 전역을 공사장으로 만든 4대강 사업은 월동지를 찾아가는 흑두루미의 하늘 길도 바꿔 놓고 있다. 낙동강을 따라 일본 이즈미로 가던 흑두루미들은 낙동강을 따라 남하하는 동쪽 길과 서산 천수만과 순천만을 따라가는 서쪽 길을 이용했다.
낙동강을 따라가는 길이 지름길에 가깝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경북 구미 해평습지와 낙동강 하류의 모래톱이 사라졌다. 먼길 가던 흑두루미들이 잠시 쉬기 위해 내려앉던 쉼터가 없어졌다.
쉼터 없는 길을 흑두루미들은 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겨우 달성습지서 몇 무리의 흑두루미가 관찰되었을 뿐이다.
» 순천만의 흑두루미 가족. 머리가 하얀 어미새들은 뒤따라오는 어린새에게 연신 경계음을 낸다.
전남 순천만 일대엔 11월30일 현재 719마리의 흑두루미가 날아왔다. 지난해 이맘때 630여 마리에 비해 수가 늘었고 해마다 월동하는 개체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순천시가 순천만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전봇대를 뽑고 먹이주기를 하며 월동지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인 전남 순천만 일대도 상황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새들이 쉴 갯벌이 풍부하지만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된 논과 주변 습지를 고려하면 한해 겨울 이곳에서 월동할 수 있는 개체수는 최대 1000~1500여 마리로 보고 있다. 현재 719마리가 있지만 날씨가 가장 추운 1월 중순쯤 천수만 흑두루미들이 합류하면 이미 거의 포화상태인 셈이다.
» 한 무리의 흑두루미들이 순천만 논위를 날고 있다.
» 흑두루미 무리와 함께 검은목두루미(오른쪽 아래) 한쌍도 매년 순천만을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다.
전 세계에 1만 2000여 마리만 남아 있는 흑두루미는 러시아 남부와 몽골 등지에서 번식을 마친 뒤 1 만여 개체가 우리나라를 통과해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 겨울을 보낸다. 일본에선 겨울철에도 마르지 않는 무논을 운영해 잠자리를 만들어 주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논에 먹이를 줘 흑두루미들이 겨울을 나게 한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흑두루미의 90%에 이르는 1만여 마리가 한곳에서 월동하는 이즈미 시는 생태적 과포화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마치 좁은 우리에 넣고 기르는 가축처럼 먹이가 놓인 논에 밀집한 흑두루미들이 한 자리서 먹고 싸는 환경은 조류독감 등 전염병 등에 노출될 경우 종 보존 자체가 위태로운 치명적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작년 8월 관계자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인사조처 지시
이틀뒤 재차 확인…“정윤회 관련 승마협 조사 미움산듯”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윤회씨의 딸 정아무개씨가 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마장마술 경기를 펼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 부부와 관련된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를 직접 챙겼다는 보도(<한겨레> 12월3일치 1면▶기사 바로가기 )와 관련해, 지금껏 베일에 가려 있던 박 대통령과 정씨 부부의 관계를 보여주는 좀더 구체적인 증언들이 나왔다.
3일 <한겨레>가 지난해 9월 이례적으로 단행된 문체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 경질 과정을 취재한 결과, 박 대통령은 그해 8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청와대 집무실로 부른 자리에서 ‘수첩을 꺼내’ 문체부 노아무개 국장과 진아무개 과장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름을 거론한 두 문체부 공무원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박 대통령은 두 공무원을 지목한 구체적인 이유나, 누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게 됐는지 등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는 이날 “국·과장의 인사는 장관 고유의 권한”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일개 부처 공무원의 이름을 불러가며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했다면, 이는 인사권을 가진 주무 장관에게 사실상 경질 또는 좌천 인사를 지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언급 직후 문체부는 ‘돌출 인사’에 대한 잡음을 우려해 처음에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과 상의하고, 한두 달 뒤 정기인사 때 해당 국장과 과장을 자연스럽게 교체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불과 이틀 뒤 두 공무원에 대한 인사조처가 어떻게 됐는지를 재차 확인했고, 이에 따라 문체부는 얼마 뒤 노 국장과 진 과장을 산하기관 등으로 내보내는 인사를 단행했다.
대통령 지시가 이뤄졌던 당시는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청와대 ‘하명’으로 승마협회에 대해 과거 전례가 없었던 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직후였다고 한다. 승마계에서는 승마 선수인 정윤회씨 부부 딸의 전국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 등을 둘러싸고 특혜 시비가 불거지는 등 정씨 부부가 청와대와 문체부 등을 통해 승마협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때였다. 익명을 요구한 문체부 관계자는 “조사 보고서에서 (청와대 뜻과 다르게) 정윤회 쪽과 반대쪽 모두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보고한 게 정씨 쪽의 반발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문체부에 승마협회 조사를 지시하며 정씨 부부와 가까운 박아무개 전 협회 전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지시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줬으나, 실제 문체부 조사 결과는 그 의도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3일 ‘박 대통령이 문체부 인사를 직접 챙겼다’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별도의 해명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했다.
당시 박지만씨의 히로뽕 중독을 국민들은 아버지 박정희가 총탄에 죽었던 충격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독재자의 아들로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했던 그에게 그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 와야 했던 현실이 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박지만씨는 수차례의 히로뽕 중독으로 물의를 일으키다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도움으로 삼양산업 부사장으로 취임했고 지금은 EG그룹 회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G그룹 회장으로 살아가는 박지만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자신을 수사했던 조응천 검사가 청와대에 입성한 점입니다.
물론 정윤회와의 파워게임에서 진 까닭에 ‘1호 국장’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청와대에서 쫓겨났습니다. [각주:2]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중앙고와 육사 동기였던 이재수 육군 인사사령관은 중장 진급 6개월 만에 2013년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됐습니다. 당시 박지만 회장의 육사 37기였던 전인범, 엄기학, 조보근 소장 등도 중장으로 진급하기도 했습니다. [각주:3]
군 정보조직을 담당하는 기무사령관으로 발탁된 박지만 회장의 절친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고작 1년 만에 전격 교체됐습니다. 한 마디로 경질된 셈입니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의 경질은 물론이고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사표 논란[각주:4] 등은 결국 박지만 회장의 권력이 축소되는 권력이동을 암시했습니다.
‘박지만의 사람들. 그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 비서관이 정윤회씨의 말에 반박하며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공격하는 이유는 박지만 라인이 권력 다툼으로 쫓겨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 중의 하나가 박근혜 정권에서 매번 문제가 됐던 인사 시스템이 벌어진 배경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재만 비서관과 같은 비서관 측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인사 실패가 많았던 이유가 '검증을 충분히 할 시간이 없었고, 검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각주:5]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청와대 인사검증을 하려고 해도,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비서관 3인방이 문고리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십상시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처음 ‘정윤회 문건’이 유출됐을 때는 문건을 작성한 박 모 경정이 아니냐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미 지난 5월 문건 유출자가 박 경정이 아니라고 파악한 걸로 확인했습니다.
박 경정도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문건을 유출했을까요?
‘김기춘 비서실장, 청와대 문건 유출 알고도 왜?’
세계일보에 따르면 박지만 EG 회장은 지난 5월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되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고 합니다. [각주:6]
박지만 회장은 지난 5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작성된 문건을 입수했습니다. 여기에는 박지만 회장 주변 인물에 대한 비리 의혹 등이 있었고,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박 대통령의 특별 지시를 받아 국정원 인력이 들어가 대대적인 점검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내려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박 회장에게 밝혔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지시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사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문건이 다량으로 유출되고, 비리와 문제점이 나오는데도 소극적으로 대처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정윤회와 박지만의 권력투쟁이 밖으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에 무조건 덮어버리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윤회와 박지만, 두 비선라인의 싸움을 통한 어부지리를 취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검찰 장악'이라는 큰 명제를 해결한 김기춘은 정윤회나 박지만 라인 모두에게 토사구팽 당해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견제를 막기 위해 김기춘은 오히려 내부 갈등은 키워 자신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하려는 계획이었을 수 있습니다.
물고 뜯고 까발려지는 청와대 권력 투쟁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지금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는지 정치를 보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지금 이들이 벌이는 암투는 오로지 자신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는 욕심이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민이 아닌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고 벌이는 싸움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독재 공화국 시대에 사는 것인지,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역사드라마로 남기에는 너무 추잡한 이들의 권력 암투를 보다 보니 악취가 너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1. 한겨레 1993년 12월 31일 ‘박지만씨 정신병원에 감정유치’
2. “조응천 ‘1호 국장’으로 불리며 막강… 교체 뒤 공직비서관실 축소” 경향신문 12월 2일http://goo.gl/GSkDRM
3. 박지만씨 동기 육사 37기 軍 핵심보직 포진. 연합뉴스 2013년 10월 25일http://goo.gl/4ECZPx
4.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던 이헌수는 정년이 됐다며 사표를 제출했지만, 이미 4월 임명당시에도 정년은 넘었었다. 논란이 일자 사표를 반려했고 유임됐다.
5. [‘정윤회 文件’ 파문] “한창 검증 작업하는 도중 人事 발표나기도” 조선일보 2014년 12월 2일http://goo.gl/Q0mCrb
6. 박지만씨 “靑문건 다량 유출” 진정 세계일보 2014년 12월 3일 http://goo.gl/Mg1GaU
독액은 매우 효과적인 방어 또는 공격 물질이지만 복잡한 화학물질이어서 만드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따라서 남이 만들어놓은 독을 가져다 자신의 독을 쓰려는 생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실제로 딱정벌레 독충을 먹어 독을 내는 독개구리와 바다의 독성 해파리를 이용해 독을 내는 갯민숭달팽이가 보고돼 있다.
유혈목이가 먹이인 두꺼비로부터 독을 얻는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은 2007년 데보라 허친슨 미국 올드 도미니언대 생물학자 등 연구진에 의해서였다. 연구자들은 일본에 서식하는 유혈목이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 일본두꺼비. 일본의 고유종이다. 한국 등 유라시아에 분포하는 두꺼비와 마찬가지로 피부에서 독액을 분비한다. 사진=오픈케이지
먼저 두꺼비가 있는 곳의 유혈목이는 목덜미 독샘이 있지만 두꺼비가 전혀 없는 섬에 사는 유혈목이에는 그런 분비행동이 없음이 드러났다. 이 섬의 유혈목이한테 두꺼비를 먹였더니 독샘에서 독액이 분비됐다.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유혈목이 새끼를 길렀을 때도 방어 독물을 분비하지 않았지만 두꺼비를 먹인 뒤에는 독이 생겼다. 또 두꺼비의 독을 그대로 보관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처리해 독성을 더욱 강화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두꺼비 독을 갖느지 여부는 유혈목이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독이 있는 개체는 성격이 대담했지만 독이 없을 때는 슬슬 도망치기 바빴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일본 교토대 연구자들은 최근 유혈목이 24마리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행동을 조사했다.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수태한 암컷의 행동이 수컷과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혈목이는 5~6월 동안 강변의 초지에서 주로 지내면서 개구리를 잡아먹는다. 그런데 초지를 떠나지 않는 수컷과 달리 수태한 암컷은 종종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발견됐다.
»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유혈목이. 사진=Komeccho, 위키미디어 코먼스
두꺼비는 강변이 아닌 숲속에 산다. 새끼를 가진 암컷 유혈목이가 두꺼비를 찾아 숲속에 들어가는 까닭은 자신의 알에 독성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늦여름에 알에서 깬 유혈목이 새끼는 입이 작아 두꺼비를 잡아먹을 수 없다. 이런 무방비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 암컷이 두꺼비를 넉넉하게 잡아먹으면 낳은 알에도 독성물질을 포함되는 것이다. 이듬해 봄 어린 두꺼비가 태어날 때쯤에는 유혈목이도 자라 스스로 두꺼비를 사냥할 수 있게 된다.
유혈목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그러나 일본에 분포하는 두꺼비는 일본 고유종으로 우리 두꺼비와는 다른 종이다. 아직 우리나라 유혈목이와 두꺼비 사이의 관계는 연구된 적이 없지만, 우리 두꺼비에도 독성이 있어 비슷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ojima & Mori. 2014. Active foraging for toxic prey during gestation in a snake with maternal provisioning of sequestered chemical defence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http://dx.doi.org/10.1098/rspb.2014.2137
Deborah A. Hutchinson et. al., Dietary sequestration of defensive steroids in nuchal glands of the Asian snake Rhabdophis tigrinus, PNAS, vol. 104 no. 7, 2265~2270, doi: 10.1073/pnas.0610785104
정윤회 : "제가 혼자서 다 만나고 다녔거든요. 박(관천) 경정도 만나고, 박지만 회장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조응천 비서관인데, 제가 문자도 여러 번 남기고 전화도 여러 번 남겼습니다. 저 혼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저는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 만나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조응천 비서관을 만나려 했는데 만날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도 안 받고 문자를 제 이름을 밝히고 좀 만나자고 그래도 안 만나주고 그래서 제가 그거를 (이재만 비서관에게) 부탁한 겁니다."
12월 2일 오후 4시에 방영된 KBS 1TV <황상무의 시사진단>과의 인터뷰에서 정윤회씨는 지난 4월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정씨는 관련 인사들을 혼자서 만나고 다녔다고 했다. 정씨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다른 언론에서 한 '문고리 권력인 비서관 3인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기존 발언을 뒤엎었다.
하루 전인 지난 12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접촉이라고는 당선 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 한 번 한 게 전부"며 "3인 비서관과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정의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데… 나는 섭섭하다"고 말한 바 있다.
▲ 조응천 전 비서관의 증언 지난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와 이재만 비서관이 지난 4월 연락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정씨가 자신이 주장한 '비서관 3인과 연락이 없었다'는 입장을 뒤집고 '통화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한 데에는 2일 <조선일보>에 등장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결정적이었다. 조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올 4월 11일 퇴근길에 이(재만) (총무청와대) 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조 전 비서관은 "이 비서관에게 '좀 생각을 해보고요'라고 답변했으나 정씨와 통화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력한 민간인' 정윤회는 어떻게 박 경정을 만났나
▲ 문제의 발단, 시사저널의 보도 '박지만 "정윤회가 나를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를 보고 정윤회씨는 청와대 내사를 담당한 박 경정과 만났고, 조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4월로 돌아가 보면 '민간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정윤회씨의 특이한 움직임과 만나게 된다. 그 발단은 3월 말 <시사저널> 보도였다. 이 매체는 <박지만 "정윤회가 나를 미행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박지만 EG 회장이 자신을 미행하는 오토바이가 있어 확인한 결과 '정윤회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됐고, 이 사실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하며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김기춘 실장에게 경고한 박지만 회장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부 ㄱ씨에게 미행사실을 알렸고, ㄱ씨는 경찰에서 파견된 부하직원 ㄴ씨에게 지시해 '박지만 미행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 <시사저널>은 익명으로 민정수석실 간부와 부하직원을 보도했다.
당시 ㄱ씨는 민정수석 산하 4명의 비서관 중 한 사람일 것으로 추측이 가능했겠지만, 경찰직원으로 소개된 ㄴ씨는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청에서 파견된 부하직원은 단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바로 익명의 ㄱ씨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ㄴ씨는 박관천 경정(전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이다.
<시사저널> 보도를 확인한 정씨는 '당사자인 자기에게 확인도 없이 내사가 진행된 것에 대해 억울함을 밝히고자 조응천 비서관과 통화를 시도'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윤회씨가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등장한다.
먼저 궁금한 대목은 정씨는 <시사저널> 보도를 보고 그 내사 문건을 작성한 경찰관이 박 경정임을 어떻게 특정했는가 하는 대목이다. 앞서 해당 매체는 보도하면서 담당자를 익명으로 처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 중인 경찰관이 10여 명인 점을 감안할 때 의문점이 생긴다. 정씨는 문건 작성 주체가 박 경정임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설령 어떠한 방법을 써서 작성자를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박 경정의 연락처를 정윤회씨가 무슨 방법으로 확보해서 만날 수 있었는지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가 만난 사람이 청와대 행정관, 그 중에서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임을 고려한다면 자신이 원할 때 그런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정씨를 다시 보게 된다.
박 경정을 만난 정씨는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현정부 출범 후 어디서 뭐하고 지내셨느냐'는 질문에 정윤회씨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그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할 수도 없고요"라고 자신의 생활을 설명했다. 3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정씨는 스스로를 "제가 무슨 힘이 있나. 너무 무력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정씨가 무슨 방법으로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고, 공직기강비서관의 휴대폰 번호를 획득해서 전화를 걸 수 있었는지 추후 검찰 수사를 통해 풀어야 할 대목이다.
극적인 대목은 조응천 비서관과 통화가 되지 않자 정윤회씨가 취한 행동이다. 그는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박지만 미행 건과 관련해) 나는 그런 사실이 없다. 조응천 비서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정씨는 이재만 비서관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고 KBS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신의 전화를 조 비서관이 받지 않자 정윤회씨는 '연락조차 없어서 섭섭했다'던 이재만 비서관에게 연락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게 그렇게 연락할 수 있다는 대목도 놀랍지만, 더욱 인상적인 대목은 이재만 비서관이 정씨의 전화를 받고 조 비서관에게 전화해서 '전화 좀 받으시죠'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각종 언론은 문고리 3인방이 철저한 자기관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사실상 외부 접촉을 끊고 지내고 있다,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보도했다. 그럴수록 정씨의 전화 한 통에 이재만 비서관이 보여준 반응은 인상적이다. 정씨는 과연 '집에만 있었다'는 '민간인'이 맞는가.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입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브리핑에서 "정윤회의 말 그대로"라고 말했다.
2일 오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했는데 이 역시 특이했다. JTBC는 이날의 대변인 브리핑 장면 전체를 '이례적'이라는 소개와 함께 방영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생략)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만남은 없었다고 합니다"라고 브리핑했다. 치열하게 '진실공방'을 벌이며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라는 브리핑을 한 것이다.
정리해 본다. 지난 4월 <시사저널> 기사를 본 정윤회씨가 취한 행동은 '비서관 3인방과 연락이 없었고, 집에만 있었던 민간인'이라는 그의 설명과는 사뭇 달랐다. 공직기강비서관 휴대폰으로 수 차례 전화했고 받지 않자 문고리 권력에게 바로 전화했다. 통화를 원한다는 그의 뜻을 문고리 권력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전했다. 이것이 지난 4월 10일~11일 일어난 일이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3일자 사설을 통해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에게 진실을 묻고 있다.
▲ 정씨와 문고리 3인방, 의심하는 조선일보 정윤회씨와 이재만 비서관과의 통화 사실 등을 보도하면서 이들의 관계를 추궁하고 있는 <조선일보> 12월 3일자 사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은 끝내 정윤회씨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흘 뒤인 4월 15일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이 불러 가보니 "그 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그만두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것으로 정씨와 조 비서관과의 악연은 끝이 난 듯 보였지만 8개월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 두 사람은 당시의 일을 놓고 '진실공방'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하루 뒤인 4월 16일의 행적을 놓고 정윤회씨는 일부 언론에 의해 '풍문'의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해당 보도와 관련해서는 '명예훼손'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의 4월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싶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그의 4월을 묻고 있다.
새해벽두부터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청구가 한국정치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 당시 검찰은 ‘RO’를 지하단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재판과정에서는 ‘RO'혐의를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재판부도 내란음모가 아닌, 내란선동이란 혐의를 끌어올 만큼 검찰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무리수였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청구를 강행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 추구하는 것은 용공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기 위한 암적 존재”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장관이 법조인의 기본을 상실한 채 선동가로 전락한 셈이다.
진보당의 거취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권에 도움이 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다. 솔직히 이제 누가 대한민국 시국사건에서 민주적 판결을 기대하는가.
시국사건에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이석기 의원은 2013년 5월, 마리스타 수녀회 강연에서 정치적으로 과도한 발언을 언급하였다고 해서 징역 9년에 처해졌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 군부의 수장자리인 합참의장에 있으면서 군부 쿠데타를 의미하는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던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9월 24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잘못한 기업인도 여건이 조성되고 국민 여론이 형성된다면 기회를 줄 수 있다”며 비리 재벌총수 사면을 시사하였다. 하지만 11월 17일, 대법원은 무려 25명이 생을 마감하게 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다.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소송에서 막다른 벼랑에 내몰리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그간 정권의 전횡과 부정에 대해 눈치를 보지 않고 투쟁해 왔다. 진보당이 해산되면 야권에는 이제 투쟁보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만 남게 될 것이다.
2. 본격적 재갈물리기
박근혜 정권의 진보당 탄압은 자연스럽게 야권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될 것이다. 11월 6일, <조선일보>는 검찰이 안보 위해(危害), 테러 등의 범죄에 대해 압수수색, 계좌 추적 요건을 완화하고 해외 및 사이버상에서 수집한 증거 능력을 좀 더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증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하였다.
이미 서울중앙지검은 김수남 지검장의 지시에 따라 공안부장들과 공안부 및 공판부 검사가 모두 참여하는 연구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증거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9.11 테러의 틈바구니에서 법원 허가 없이 수사 당국 결정에 따라 1년간 테러·간첩 혐의자의 이메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애국법(Patriot Act)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일명 “한국판 애국법”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수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나아가 "국가 안보 위해 사범에 대해서는 증거법을 완화하거나 '안보 형법'을 별도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법원의 기능을 사실상 거세한 것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들은 상시적 수사대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가는 1970년대처럼 어느 날 선글라스 낀 요원들이 찾아와 “같이 좀 갑시다.”라며 지프차로 끌어가게 생겼다. “영장없는 체포”와 “재판없는 구금”이 70년대 유신독재의 표상이었다면 2015년에는 “법원없이 만든 증거”가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터넷 상에 박 대통령을 비판했던 인사들 가운데, 누가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3. 장기집권전략 의혹
박근혜 정권이 이처럼 집요하게 투쟁세력을 해산시키고 비판세력들의 입에 재갈을 채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야권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집권당의 독재회귀가 거세지면 이는 필연코 권력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은 신통히도 1972년 유신헌법을 열었던 박정희 정권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민청학련) 사건을 일으켜 김근태, 김지하, 류근일, 서중석, 유인태, 이철 등이 인민혁명당과 조총련, 일본공산당 혁신계 좌파의 배후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이들을 구속·기소하였다. 1975년, 인혁당 관련자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여정남,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소가 기각된 다음날 곧바로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이러한 재야 탄압 끝에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계엄을 발동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비상조치로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한 10월 유신을 열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1972년 4월 민청학련 사건 – 7월 7.4 남북공동성명 – 10월 유신의 흐름은 박근혜 정권이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이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은 박정희 정권의 민청학련 탄압과 형태가 같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 발언,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 논란은 박정희 정권 시절 일시적인 대북 유화국면과 유사하다. 하물며 정치권에서는 현재 개헌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물론 지금 야권과 여권 일각에서 논의 중인 개헌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분권형 개헌이 주된 맥락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거나 대통령과 총리가 외교국방 부문과 경제민생 부문을 서로 나누어 맡는다는 분권형 개헌이 그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개헌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10월 6일, 청와대는 “개헌 논의는 경제블랙홀”이라며 강하게 반대하였다. 개헌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독주가 제 아무리 막무가내라 하여도, 87년 6월항쟁의 역사가 있는 이 땅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과연 가능할까?
정치권에서 개헌을 강력히 반대할 세력은 차례로 거세되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보수세력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였다. 박근혜 정권 내부의 “합리적 보수”세력도 차례로 쫓겨났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였던 김종인이 낙마하였다. 복지예산 논란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였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던 과정에서 최대석 검찰총장도 낙마하였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대통령을 여왕처럼 모시는 시중들이 정권의 핵심요직에 들어앉았다. 유신헌법에 관여하였던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꿰찼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모셨다는”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보좌관과 그 우두머리 격인 정윤회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부상하였다. 권력이 대통령 1인에 집중되면 반드시 그 수하들에게 암투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 정윤회 논란이 뜨거운 것도 지난 박정희 정권 시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의 암투를 연상케 한다.
국민들은 개헌을 결사 저지할 수 있는가? 이미 2012년 대선에서 보수세력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비롯한 국가기구를 동원해 국민여론을 왜곡시키고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어떠한 부정을 저지를 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극우이념은 어버이연합, 일베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으며 급기야 ‘종북척결’을 기치로 든 서북청년단이 재건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2015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리의 곳곳에 나타나 국민들에게 백색테러를 자행하고 인터넷 신상털기를 통해 민주의 싹을 거세하려 할 것이다.
상황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어버이연합과 일베충, 서북청년단이 개헌논의 마당에서 종북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을 지켜달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재집권을 호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종편과 일베가 이토록 난리치는 상황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번 한 번만 더 집권해달라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란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문건 보도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자신이 직접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하며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사건 자체를 강력 부인했다.
이어서 “이 문서 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에 대해 조속히 밝혀야 한다”며 검찰의 조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더구나 “그동안 ‘만만회’를 비롯해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국민이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문건 유출과 관련된 부분을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검사 산하 특수2부에 배당하고, 명예훼손 부분은 전담 수사 부서인 형사1부(정수봉 부장검사)에 분리 배당하는 것으로 이원수사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국정 운영의 핵심기관인 청와대 내부의 문서가 무단으로 유출된 것은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한다고 밝힘에 따라 검찰 수사는 문건 유출에 수사력이 모아질 전망이다.
이런 흐름을 보는 나는 과연 이 사건의 실체가 문건유출자만 색출하여 벌주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문제인지 특별한 관심을 갖기로 했다. 즉 아무도, 어떤 언론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내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에서 끄집어 낸다.
그 복집 골방에서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 밑에 빠져죽자”자는 말로 선거개입을 한 법무부장관, 당시 안기부 부산총책, 검찰 부산총책 등을 모아놓고 공직자가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고위 공직자, 그가 지금 이 사건의 한쪽 실세인 김기춘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 언론은 이들 고위공직자의 선거개입이라는 범법행위보다 이 범법행위를 밝혀 낸 사람을 불법도청을 한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 물꼬를 돌려버렸다. 결국 검찰은 선거가 코앞인데 공직자의 불법은 그대로 덮어두고 도둑놈을 신고한 신고자가 불법적 방법을 통해 도둑질을 밝혔다면서 신고자만 죽어라고 패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정윤회와 십상시’ vs ‘김기춘과 공안패밀리’의 내부 권력투쟁 현상...이를 두고 사건의 키를 ‘문건유출자’로 국한하여 물꼬를 돌리려는 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의 행태...이런 행태도 누군가는 고발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기록을 남긴다.
1.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의 장남인 김성원(48)씨는 올 초인 지난 1월 22일 사망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성원씨는 교통사고로 2013년 12월 31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끝내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아주 간략하게 보도하는 것으로 끝내버려서 많은 국민들이 알지 못했다.
2.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와 스위스를 국빈으로 방문하는 중이었다. 김 실장은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사경을 넘나들고 있는 관계로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아들의 사망을 막지 못했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 김 실장의 아들 사망에 대해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자발적 엠바고였다.
3. 그런데 다음날인 23일 서울신문은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그 보도의 출처는 여권과 청와대의 복수 관계자였다. 사의의 이유로는 장남의 사망 등에 따른 급격한 건강 이상 등 일신상의 이유라고 썼다. 이에 모든 언론사들은 김 실장의 사의를 확인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결국 이 법석은 외유 중인 대통령에게까지 들어갔다. 따라서 인도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를 순방 중인 대통령을 수행하던 이정현 홍보수석이 귀국길에 오르면서 기자들과 만나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4. 이때 나온 이정현 수석의 브리핑 내용은 "김 실장이 '몇 차례나 사표를 냈다고 하는 등 왜 나를 흔들려고 하는 거지? 전혀 그런 일 없는데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참 좀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며 "김 실장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였다. 그리고 귀국한 다음 날인 24일은 특별히 “김 실장을 흔들어 대서 무엇을 얻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특정인을 겨냥해서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했음에도 건강 이상이 있다고 하고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데 정말 알 수가 없다"는 말로 누군가 김기춘 실장을 흔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 3인방 김기춘 내치고 싶어하나…
당시 벌어진 이상의 정황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정윤회 국정개입설과 너무도 일치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특정한 인물의 국정개입 의혹 및 청와대 심부의 권력투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문건의 유출에 대해서만 일벌백계 운운하고 있다. 유체이탈이다. 공직사회나 청와대의 기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어떻게든 치부만 감추면 된다는 사고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일보가 보도한 1월 6일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관련 보고서에서 언급한 김 실장 사퇴 공작은 위의 4가지 사실로 보아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메인스트림이 당시 김기춘 실장을 매우 버거워하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버거운 실장을 치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박 대통령의 김기춘 신임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김기춘을 치우려 했다면 그 작전을 한 측의 실책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또 그렇다고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를 사법처리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국민들 사이에서 설만 무성하게 한 뒤 내부고발을 한 어떤 힘없는 공직자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1992년 선거에 개입한 실권자는 당당하고 선거에 패한 정주영측만 작살이 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린는 또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처럼 김기춘을 총애하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1.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2012년 당시 국정원장이던 원세훈과 서울경찰청장이던 김용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애초 청와대는 원세훈의 죄목에서 공직선거법을 빼기를 원했다. 그가 공직선거법으로 재판을 받으면 결국 2012년 대선 전체에 대한 검증이 재판을 통하여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직선거법만은 극구 막아보려 했으나 당시 검찰총장이던 채동욱은 공안부 회의라는 카드까지 쓰면서 공직선거법을 적용했다.
2.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8월 경남 사천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73세의 김기춘씨를 비서실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이후 곧바로 청와대의 말을 듣지 않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이 터지면서 낙마했다. 이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이 당 핵심들 여럿을 내란음모협의로 구속하고 법무부는 통진당을 해산하겠다고 나섰다. 이로서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이 주요 이슈에서 사라졌다.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급격하게 여권이 틀어쥐면서 김기춘 실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왕실장’ ‘부통령’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여권 내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3. 그러나 김기춘의 권력 장악이 강고해질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엉망이 되었다. 총리후보로만 안대희와 문창극이 낙마하는 등 수습하기 어려운 인사 참사가 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취임 후 곧장 흔들리던 검찰을 잡아 쥐고 강력하게 친위권력을 장악한 김 실장의 능력을 높이 산 박근혜 대통령의 김기춘 의존도는 쉽게 그를 내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갔다.
따라서 정윤회 측은 잦은 인사참사 같은 실책을 한 김기춘을 경질해야 한다고 봤던 것 같다. 즉 취임 초기 검찰을 장악하면서 권력을 안정시킨 것으로 김기춘의 역할은 끝났다고 본 것이다. 더구나 박지만과 충성 경쟁을 하는 와중에 김기춘이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는 점도 낙마시키기로 한 이유가 아닌가 보인다.
오늘(1일) 세계일보는 [정윤회씨가 지난해 말 청와대 비서관 등과의 송년모임에서 김 실장 교체설을 ‘찌라시’ 등을 통해 유포할 것을 지시했으며 이를 조사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이 모든 내용 등을 담은 정씨 동향보고서를 1월6일자로 작성했다. 그 후 이 보고서는 당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홍경식 민정수석->김기춘 비서실장 라인으로 보고되었으며 당사자인 김 실장이 이 수석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며 공식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투의 기사를 썼다.
또 [그러함에도 청와대는 1일까지 지난 1월 23일 이정현 홍보수석이 “김 실장을 흔들어 대서 무엇을 얻을지 모르겠다”며 ‘김기춘 흔들기’라고까지 규정했던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세계일보의 논조는 청와대가 이미 정윤회 측의 김기춘 흔들기 내용이 적힌 문건이 청와대 공식 문건임을 인정하면서도 문서유출만 문제를 삼는 것은 김기춘도 홍경식도 조웅천도 어찌할 수 없으며 더구나 정윤회도 어찌할 수 없음을 자인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이 사건은 더 이상 진전은 없을 것이다. 힘없는 한두 명의 공직자가 문서유출이라는 죄목으로 소추를 당하고 유야무야 될 것이다. 이를 노리고 조선일보는 사건의 실체보다 문서유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 아류들은 지금도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도가 성공한 초원복집 사건도 결국은 누가 실패자인지 나타났다. 지금 힘없는 한두 명 공직자가 처벌된다고 이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란 교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패밀리는 이처럼 역사가 주는 극명한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천도교(동학)인들이 동학혁명 120돌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역사현장을 찾았다. 해방 70돌을 앞두고서다. 지난 20~24일 4박5일간 중국 헤이룽장(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지린(길림)성 지린시까지다. 천도교는 동학혁명을 거쳐 3·1운동을 주도해 우리나라 근대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긴 종교다. 근대 우리나라에서 나온 최초의 민족종교로서 민족정신이 남달랐던 천도교인 중에도 일제가 강점한 한반도를 벗어나 압록강을 건너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적지 않다. 4박5일 항일유적지 답사. 동학 진압군과 피해자 후손도, 남과 북도, 좌와 우도 하나되었던 항일 투사들의 마음으로 화해의 마음을 모았다.
이번 답사엔 천도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격인 연원회 한광도 의장(전교령)과 강훈 부의장, 김인환 종무원장, 이순종 여성회장, 고윤지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등 주요 간부 14명이 함께했다. 이번 답사는 10년째 청년들을 데려와 항일유적지를 돌며 역사의식을 일깨웠던 ‘120주년동학혁명기념사업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인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시종일관 열변을 토하며 이끌었다. 임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매년 대학생과 천도교 청년들, 김을동·송일국 모자가 이끄는 청산리역사대장정과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팀 단장 등으로 항일유적지 답사를 이끌어왔다. 항일 당시의 고난을 되새기며 아파하는 탄식과 희망이 함께하는 전 답사과정을 동행했다.
화해1: 동학의 후예들, 동학도에게 총을 겨눈 안중근과 만남
동학의 후예들이 하얼빈국제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하얼빈역이었다. 그곳은 안중근이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 일제 동아시아 침략의 기획자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 군 참모장의 이름으로 처단한 곳이다.
하얼빈역은 1천만 인구로, 중국 동북지역 최대도시의 관문이다. 웅비하는 중국을 말해주듯 현대식 고층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다. 역 광장 한가운데 안중근기념관이 보인다. 안중근이 순국한 지 100년이 넘은 지난 1월에야 문을 열었다. 일본 아베 정권의 반성 없는 역사왜곡에 한·중이 ‘안중근’으로 하나가 되어 내놓은 것이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이 일본인 교도관들에게 써준 한자 글씨들이 맞는다.
*(바탕 큰 사진)안중근이 이토를 처단한 하얼빈역. (사진 속 작은 사진 위) 안중근이 저격한 장소, (아래)안중근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한 답사단.
외세와 봉건에 항거한 조선 근대의 첫새벽인 동학도들과 안중근은 애초 동지가 아니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안중근의 부친 안태훈은 군대를 조직해 동학군 진압에 나선다. 개화파와 연계를 맺고 있던 안태훈이 개화정책을 펴던 갑오내각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당시 16살이던 안중근도 진압군의 선봉에 섰다. 안중근 부자는 진압군이었고, 30여만명의 동학도들은 온 강토에 피를 뿌리며 죽었다.
*안중근의 글씨 '국가안위노심초사'
‘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 글씨다. 하나 같이 민족애와 결의를 담은 안중근의 글씨 숲을 지나면서 동학의 후예들도 한마음으로 안중근을 기린다. 민족 동포를 생각하는 마음이야 다름이 있으랴. ‘안중근이 일신을 버리면서 이토를 처단한 순간, 이미 진압군도 동학도도 하나가 된 것 아니냐’는 듯 애틋한 눈길로 안중근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임 교수는 “안태훈은 동학농민전쟁 뒤엔 동학 접주로 싸우다 쫓기던 청년 김구를 숨겨주기도 했다”며 “그 뒤 안태훈·중근 부자는 천주교에 입교했고, 안중근은 연해주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총까지 주어 살려보낼 만큼 신앙적 박애주의를 보였으나 이 일로 인해 노출된 은거지에 들이닥친 일본군에 패하고, 동지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아 독립운동을 포기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굴하지 않고 다시 이토 처단이란 거사에 나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답사단은 기념관 창문 너머 역구내에, 안중근이 이토의 가슴을 명중시킨 자리에 표시된 표지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하얼빈역 안중근과 그 아비가 동학토벌대였지만 하얼빈 역두에서 권총을 비우는 순간 진압군과 피해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731부대 기념관 3천여 마루타가 잔인하게 살해된 현장 중국 한국 몽골인은 같은 피해자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깃발도 나란히
화성의숙 독립전사를 길러낸 2년제 군사학교 15살 김일성이 6개월간 교육받은 곳 좌우를 넘어 우리는 한몸이었음을
*731부대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은 적은 위패들.
*하얼빈시에 있는 일제 관동군의 731부대기념관 전시물. 관동군들이 야외에서 동사 인체실험 중인 장면.
화해2: 731부대 기념관에 전시된 국민당기와 독립지도자 장제스 사진
21일 아침에 찾은 곳은 하얼빈 외곽 주거지 안에 있는 옛 731부대다. 만주지역을 장악한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다.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 중장이 1936년 만든 이 부대에선 1만여명을 대상으로 각종 인체시험을 한 곳이다. 알려진 사망자만 3천여명에 이른다. 일본은 1945년 2차대전에 패배하자 잔혹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건물을 폭파했다. 그러나 당시 폭파되지 않은 건물들이 상당수 남아 역사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정문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 터널 같은 복도 양편에 희생자 이름을 적은 위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심득룡·김성서 등 한글로 적힌 위패도 적지 않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강추위 속의 야외에서 팔을 얼리는 실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에 전율이 느껴진다. 일본군부대들은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산 채로 장기를 제거하는 등 일체의 마취 없이 모든 인체실험을 했다고 한다.
피실험자는 중국인, 한국인, 몽골인 등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인 중엔 국민당군도 공산당도 있었다. 한국인 중에도 민족주의자·사회주의자가 망라됐다. 일제 아래 그들은 모두 함께 고난을 겪던 피해자들이었다.
중앙전시장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다. 국민당기와 장제스(장개석)의 사진이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사진들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기념관에 공산당과 중국의 패권을 두고 싸웠던 국민당기와 장제스가 등장한 것이다.
반면 다음날 방문한 하이린시의 한중우의공원 내 한국독립운동가 전시실엔 좌익독립운동가들이 배제돼 있다. 한중우의공원은 김을동 한나라당 의원이 주도하는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가 김좌진의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하이린시로부터 땅을 기증받아 건립한 김좌진장군기념관 성격의 장소다. 임형진 교수는 “남한에선 여전히 보천보전투를 이끈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김원봉 등 좌쪽의 독립운동가들을 여전히 배제한 데 반해 중국은 최근 독립운동사를 통해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어 “1930년 김좌진이 산시의 정미소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공산계열의 박상실에게 암살되자 ‘공산주의자가 항일 영웅을 죽였다’며 좌우의 극한 갈등 유발 요인이 됐는데, 실제 박상실 뒤엔 일제의 끄나풀 김봉환이 있었기에, 일제에 의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내분을 조장하기 위한 술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훗날 김좌진 장군을 측근에서 보좌한 이강훈, 정환일, 임기송씨 등의 인터뷰집인 <일제하 36년-독립운동실록>엔 김봉환이 하얼빈영사관 경찰부 소속 마쓰시마 형사의 회유로 변절, 공산계 급진주의자인 박상실을 사주해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것으로 적고 있다.
*(사진 위)화성의숙이 있는 화뎬시의 휘발하강, (사진 아래)화성의숙 터에서 천도교 의식인 시일식을 거행하고 있는 답사단.
화해3: 김일성의 스승 천도교인 최동오가 이끈 화성의숙
화성의숙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지린성 둔화시에서 출발한 버스는 비포장 산길을 달린 지 5시간 만에 화뎬시 휘발하강에 도착했다.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이 당나라 군사를 대파한 곳이다. 지금은 화뎬시 시민공원이 된 이곳엔 독립운동가들이 1924년 세운 화성의숙이 있던 곳이다. 화성의숙은 독립을 위해 싸울 전사를 길러내는 2년제 군사학교였다. 이 터는 3년 전 임 교수와 정정숙 교화관장 등이 주소만 들고, 노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찾아냈다.
화성의숙 숙장(교장)이 3·1운동후 천도교 대표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해 임정 법무부장(장관)을 지낸 의산 최동오(1889~1963)다. 1926년 15살의 김일성이 이 학교에 왔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형직이 죽자 장례에 모인 친구들에 의해 부친과 친분이 있는 최동오가 이끄는 이 학교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최동오는 숙장으로 있으면서도 생계가 어려워 아들 최덕신조차 베이징의 고아원에 맡기고 와 부인의 삯바느질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일성은 그 집에서 먹은 조밥과 시래깃국을 훗날에도 잊지 못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6개월 만에 이 학교를 중퇴하고 지린시 육문중학교로 전학을 갈 때,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머리와 어깨에 눈이 하얗게 쌓이도록 서서 손을 흔들던 스승을 회고하곤 했다고 전한다. 최동오가 1948년 김구와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평양에 남북협상 대표단으로 갔을 때 김일성은 스승에게 북에 남아줄 것을 부탁했으나 최동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김일성의 ‘모시기 작전’에 의해 납북됐다. 그의 아들 최덕신(1914~1989)은 남한에서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고, 5·16 후 외무부 장관과 제7대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과의 불화로 76년 도미한 데 이어 86년 월북해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 위원장과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 겸 천도교청우당지도위원회 위원장인 류미영씨가 그의 부인이다.
임형진 교수는 “김일성이 사회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띤 것은 스승 최동오의 민족주의 교육의 영향이 적지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광도 연원회 의장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표지석이라도 세워, 좌우를 넘어선 민족정신을 찾는 장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곳을 찾은 23일은 때마침 일요일이었다. 강추위에 야외에서 천도교 시일식이 거행됐다. 천도교 주선원 감사원장은 설교에서 “현재 우리 민족은 몸통은 잃어버린 채 좌우 날개만 있는 듯하다”며 “함께 참회하고 중도를 잡아 화해해 몸통을 되찾기 위해 마음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1990년대 조선족학교 1500개 연변자치주 위주 250여개만 남아 조선족 교감은 우리말을 모르고 학생들은 중국어로 말했다
압록강 너머 간도는 옛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고대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백두산 일대에서 탄생한 청나라의 주축인 만주족이 다수인 한족을 지배하기 위해 대거 베이징으로 이주하면서 만주 일대는 텅 비었다. 청나라는 왕조의 탄생지를 신성시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봉금지역으로 설정했다. 구한말 조선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서, 그리고 일제하에선 독립운동을 위해서 이곳에 대거 옮겨갔다.
독립운동가들을 음지에서 말없이 도왔던 이들이 바로 간도의 한인들이었다. 그들은 돈을 모아 수많은 민족학교를 후원했고,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고 돌보았다. 청산리대첩 때는 이틀째 잠도 못 자며 싸우느라 끼니를 때울 수 없던 독립군들에게 주먹밥과 감자를 삶아 가서 직접 먹여주던 이들도 간도의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에 대패한 일제는 한인들에 대한 대보복을 감행한다. 그것이 간도 참변이다. 당시 일본군은 한인촌을 전소시켰다. 그때 일본군이 보이는 대로 죽인 한인이 37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답사단은 그 후손들을 찾아 헤이룽장성 오상(우창)시 조선족실험소학교를 방문했다.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23개 학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학교다. 조선족학교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북3성에 1500여개나 됐지만 지금은 250여개로 줄었다. 그나마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집중돼 있다. 인구 400만이 사는 길림성에도 조선인학교가 단 한개만 남아있다. 216만명의 중국내 한인동포 가운데 50여만명이 한국 등으로 돈벌이를 떠나 중국내 한인공동체가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독립운동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했지만, 멸문의 화를 당하고, 현대엔 경제적으로 나은 남한에서 멸시까지 감내해야 하면서 자존감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이 학교에서조차 조선족인 교감은 우리말을 할 줄 몰랐고, 운동장에서 노는 학생들도 중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천도교는 이 학교 학생들이 한글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짓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황선씨는 유엔인권위원회와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기구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 사태를 서면을 통해 알릴 것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
시자회견 문 전문
[기자회견문] 통일토크콘서트 종북몰이에 대한 신은미·황선 입장 발표
“북녘에 흐르는 물줄기가 깨끗하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새 지도자가 나타났으니 변화가 있을 거라고 북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라는 말이 어떻게 북한을 고무, 찬양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세쌍둥이를 출산할 때 헬리콥터로 후송한다”고 탈북자들조차 하는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한 북한 동포들의 다양한 생활과 생각을 알리는 것이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도움이 되리라는 취지에서 이번 토크콘서트를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TV조선을 비롯한 종편, 언론들은 우리가 진행한 토크문화콘서트를 <종북토크쇼>라고 허위․왜곡 보도하였습니다.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느니, “삼대세습을 찬양” 했다느니, 심지어는 “북한 통전부의 지령을 받았다”는 등, 하지도 않은 말들을 조작하며 우리를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런 허위 보도는 우리 뿐 아니라 콘서트 출연진과 주최 측, 그리고 관객들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남북화해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종편․언론들의 허위․왜곡보도 행태를 바로 잡고, 건전한 통일문화행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초 허위, 왜곡보도를 한 TV조선 방송사와 뉴스7 출연진과 제작진 전원, 그리고 조선일보 기자와 발행인을 이미 어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허위 왜곡 언론보도도 계속 취합하고 있으며 해당 언론사 및 관계자 모두 고소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적 대응을 넘어 통일 토크 콘서트의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첫째, 종편을 포함한 방송사, 언론사, 그리고 공안기관, 대북정책 관련 정부 당국자를 우리 통일 토크 콘서트에 정중히 초청합니다. 더불어 방송사 생중계를 제안합니다.
둘째, 우리는 유엔인권위, 앰네스티 등 국제기구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 사태를 서한을 통해 알릴 것입니다. 얼마 전 정부는 대북전단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허용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 자유는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까? 통일 토크 콘서트에도 표현의 자유는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통일 토크 콘서트가 북한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 동포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2014년 12월 2일
신은미, 황선
정중히 제안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리틀 엔젤스’라는 공연단에 들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을 위해 힘썼고, 그 공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찬에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현실을 보고 느낀 대로 전하는 것이 남북통일에 도움이 되며 최고의 국위선양이라 생각하기에 통일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2002년 방북 당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박 대통령의 그 마음과 저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해드림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향후 통일정책에 도움이 되고자 면담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2014년 12월 2일
신은미
[첨부2]
고 소 장
고 소 인 1. 신은미
2. 황선
고소인둘의 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정평(正平)
담당변호사 심재환, 권정호, 하주희, 김유정, 남성욱, 김종귀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114, 일광빌딩 6층(서초동)
전화 : 582-0606, 팩스 : 596-8004
피고소인 1. 김찬(조선일보, 조선닷컴 발행인/편집인)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52
2. 이상목(TV조선 기자, ‘뉴스7’ 앵커)
3. 성명불상자(TV조선 ‘뉴스7’ 제작PD)
4. 최희준(TV조선 '뉴스쇼 판' 앵커)
5. 이유경(TV조선 기자)
6. 성명불상자(TV조선 '뉴스쇼 판' 제작PD)
피고소인2~6 서울 중구 세종대로 21길 조선일보씨스퀘어빌딩
7. 김성민(조선일보 기자)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52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등
*조선일와 티비 조선 사장도 고소 대상이라는 것을 김종귀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밝힘
[첨부3]
이후 토크문화콘서트 전국순회일정 공지 (지역 일시, 장소)
: 대구 - 12월 9일 저녁 7시반, 대구 YMCA 3층 대강당
: 전북 - 12월 10일 저녁 7시, 원광대학교 학생회관 소극장
: 부산 - 12월 11일 저녁 7시반, 장소 미정
“국가보안법 제정 66년 오늘,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국가보안법 체제임을 선언한다.”
1948년 12월 1일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의해 “오로지 북한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권의 침해가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제기됐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관련 단체들은 1일 오후 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층에서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 사건’ 그리고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이버 상의 불법정보 삭제사건’ 사례를 발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북한’이라면, ‘종북’이라면 기본권 침해가 당연시 되는 현실에 주목한다”며 “국가의 안보를 위해 인권이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란음모 정치공작 1년 만에 실패.. 내란선동 판결 우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사례 발표를 통해 “2심에서 내란음모 사건이 무죄가 난 것에서 보여주듯이 없는 사건을 조작해서 종북몰이로 쓰였다”며 “결론적으로 내란음모 사건은 없었다. 내란음모 정치공작은 1년 만에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또한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이라 부르면 안 된다”며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2심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데 대해 “사문화됐던 내란선동죄가 이번 판결로 주목받게 됐다”며 “내란선동이 처음으로 적용돼 이것이 (대법에서) 유죄로 확정됐을 때 공안탄압의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찰이 시위자들에게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대신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처럼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 위반 사건에 대해 내란선동 혐의를 들씌울 수 있다는 것.
박 소장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 주목해야 한다”면서 “다시 우리는 표현의 자유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첩조작, 이렇게까지 밝혀졌으면 국정원 해체돼야”
이광철 민변 소속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 사건’ 전말을 소개하면서 “국정원이 만들어낸 간첩”이라며 △유 모씨 여동생을 6개월 동안 독방에 가둬놓고 허위진술을 조작했고, △중국 국가가 정식으로 발급한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두 가지 사실을 적시했다.
이 변호사는 유 씨 여동생을 극적으로 만나러 가게 된 과정, 오빠와 만나게 한 일, 인신구제절차를 거쳐 민변 주선으로 기자회견을 열게 돤 경위 등을 설명하고 이같은 노력에 의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고 정리했다.
나아가 “이렇게까지 밝혀졌으면 사실 국정원이 해체돼야 되는 것 아니냐”며 “이렇게까지 낱낱이 밝혀졌는데도 국정원 조직이 지금도 어디선가 또 새로운 조작간첩을 만들어 낼 꿍꿍이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참담하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이 변호사는 “국정원을 제자리를 찾아서 수사권을 폐지시키고 국내문제에 개입시키지 않게 하는 제도개혁이 시급하다”면서 “결국 2017년에 제대로 된 정권교체를 통해 국정원을 개혁해 낼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게시물 삭제만 20만 건 넘어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이버 상의 불법정보 삭제사건’을 사례로 들며, “국가보안법 7조를 근거로 공안당국은 사이버 상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주장들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한다”며 구체적 수치들을 제시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국회를 통해 입수한 경찰측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 8월까지 게시물 작성자와 관리자에게 요청해 삭제된 게시물 수는 206,404 건에 이르고, ‘업무협조요청’에 불응해 경찰청장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삭제를 요청한 게시물 수도 2007년부터 2014년 8월까지 6,015건이나 된다. 이 중 끝까지 삭제를 거부해 고발조치된 게시물 수는 865건, 실제 구속까지 이른 인원은 37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사이버 상의 불법 게시물 단속은 경찰서 별로 영역이 나눠지지 않아 전국 어느 경찰서에서나 어떤 사이트에 대해서도 단속이 가능한 상황이며, 서울 혜화(2,423건), 경북 경산(1,851), 서울 금천(1,213), 서울 관악(924), 대전 대덕(773), 경기 양주(700), 부산 연제(690) 경찰서 순으로 단속실적이 나타났다.
정 활동가는 “단지 북한과 관련된 정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주 당당히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며 인권운동사랑방과 노동전선이 방송통신위원회 삭제 요청을 거부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하고 올해 10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방송통신위의 삭제 행정명령에 대한 헌법소원 역시 합헌으로 결정났다.
이외에도 노동해방실천연대는 자유게시판 게시물 3개에 대한 삭제요청에 불응해 불과 한달 만에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 기소돼, 1심재판에서 300만원을 선고받고 항고 중이며, 심지어 경기 안산단원결창서는 <서울신문>에 ‘업무협조 의뢰’ 공문을 통해 서울신문 사이트에 6건의 글 삭제를 요청했다가 꼬리를 내린 바도 있다.
정 활동가는 “실제로 북한과 관련됐는지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모든 기본권 침해의 근거가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북한이라는 악마를 가지고 국가보안법을 무소불위로 휘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경찰에 의한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은 다양한 경험담을 제시하며 공동대응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사무처장의 사회로,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가보안법 체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
2013년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심각한 정치공작을 해온 국정원 등 공안기관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자기사면을 해버렸다. 그리고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정권안보를 위한 ‘종북몰이’를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 취임과 동시에 시작된 내란음모조작사건,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 등 굵직하고 끔찍한 공안 정치사건은 2014년 여전히 민주주의를 옭죄고 있다.
2013년-2014년 사이 내란음모사건은 내란음모가 무죄가 된 채 내란선동이라는 해괴한 혐의가 살아남은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변해 버렸다. 세상을 뒤흔든 RO라는 조직의 실체는 없었다. 유일한 내란음모의 증거인 녹취록 파일도 훼손되었고, 국정원이 작성한 녹취록도 검찰이 272곳을 수정하는 등 걸레가 되어 버렸다. 어찌 보면 이 사건 기획자(?)의 승리는 절반으로 그친 셈이지만 정치재판의 타협점에서 내란선동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실체도 없는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한 박근혜 정권과 국정원은 이 사건으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탈출했다.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 사건. 이 사건은 여동생을 합동신문센터에 6개월간 감금하여 허위진술을 통한 증거조작으로 간첩 만든 사건이었고 1심에서 무죄가 되자 국정원이 중국정부의 공문서를 조작했다. 그것마저 재판과정에서 변호사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꼬리가 잡혀 조작의 실체가 드러났다.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은 완전히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짜로 증거를 날조해서 간첩사건을 조작한 국정원과 이를 방조한 검찰이 몇몇 관련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소식만 접했다. 사건을 조작한 범죄가 겨우 솜방망이 처벌이라니! 왜! 국가안보를 빙자한 공안기관의 범죄는 용인되는가. 왜! 오히려 국가보안법 체제는 더욱 강화되는가!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보안법 사건은 양적으로 매우 증가해왔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80% 이상이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한 의견 개진을 한 사건들이다. 이들 사건에 적용된 혐의는 국가보안법 7조 위반이었다. 2008년 40건의 사건 수는 2010년 151건으로 증가했고 2013년 121건 등 국가보안법 사건의 양적확대가 이뤄졌다. 2014년 국정원과 검찰의 서울시공무원 조작간첩의 여파 등으로 사건 수는 줄었지만 공작의 정도와 정치 개입력으로 보았을 때 박근혜 정부 하 국가보안법체제는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내란선동’이라는 괴물이 국가보안법을 타고 또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처벌을 통한 표현의 자유의 위축은 성공했고 ‘종북’ 이라는 카드는 강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이버 상의 불법정보 삭제사건’에 주목한다. 게시물 삭제명령은 한국 사회 전반을 규율해야 하는 국가보안법이 사이버 상에서 작동하는 검열-처벌 체계이다. 정통망법을 통해 국가보안법 7조를 걸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의 제공자,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정보를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사이버 상에서 일상적인 사찰을 진행하면서 ‘업무협조요청’이라는 형식으로 정보작성자,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한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한 강제집행 이전에 대부분의 표현물들이 이렇게 경찰의 요청에 의해 자체 삭제되고 있다. 우리가 8월 <서울신문> 기사 삭제요청 사건을 해프닝이라고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북한’이라면, ‘종북’이라면 기본권 침해가 당연시 되는 현실에 주목한다. 우리는 스스로 검열하여 ‘종북’ 이 아니었으므로 무관심했고, 이 무관심은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과 오남용을 용인하게 되었다. 그러자 국정원은 탈북자를 상대로 간첩을 조작하고,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을 짓밟는 공안기관의 정치공작을 용인하게 되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동성애자도.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시민에게도 ‘종북몰이’의 대상은 확대되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는 어김없이 ‘종북’이 되는 불편한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말로만 떠들어도, 비슷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한 것도, 인터넷에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공유만 해도 처벌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우리는 다시금 직시한다. 국가의 존립과 안전,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과 고민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오로지 ‘북한’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권의 침해가 이루어지는 이 현실을 그대로 둘 것인가.
국가의 안보를 위해 인권이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이분법적인 구분에 빠져 가상의 적과 아군이 난투극을 벌이는 사이 표현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점점 질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제정 66년 오늘,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국가보안법 체제임을 선언한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는 방송 사업을 하기엔 역량이 많이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신문 기업이 방송사를 동시에 운영하면 우리 사회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여론 독과점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신문사가 방송사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황당하게도 채널을 4개나 승인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방송이 태어난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4곳(TV조선, JTBC, 채널A, MBN)은 개국 초기, 소수점 이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놀림의 대상이 됐다.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 시민단체들은 모두 종편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그런 종편이 12월 1일로 개국 3년이 되었다. 과연 지금 종편의 상황은 어떨까. 일단 월간 평균 시청률은 1%대를 넘어섰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 병원, 공공기관, 터미널, 기차역, 미용실, 이발관 등에 걸려 있는 벽걸이 TV에선 종편 화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구내식당에서는 MBN을 고정채널로 설정한 듯하다. 개국 초기의 비관적인 시청률에 비해 지금은 방송계에서 나름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종편의 합계 시청률은 지난해 3월 이미 4%를 넘었고 같은 해 7월부터는 4개 채널 모두 평균 1%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타나났다. 종편 시청률은 특히 노년층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1일 <한겨레>가 1월부터 10월까지 TNmS의 '성별·연령대별 종편 4사 평균 시청률(유료매체 가입 가구 기준)'을 분석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20대는 0.1%(남)·0.15(여), 30대는 0.1%(남)·0.275%(여)에 머문 반면, 60대 이상은 0.95%(남)·0.875%(여)로 1%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편 애청자가 돼버린 노년층, 그 이유는...
▲ 종편채널인 '채널A'는 지난 3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나는 50대 이상 노년층이 종편을 많이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뉴스채널인 줄 알고 보는 것인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알바로 일하는 곳에 자주 드나드는 5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종편을 봤는지, 본다면 왜 보는지, 어떤 점이 좋고 아쉬운지 등을 물었다.
어르신들에게 물은 결과 가장 많이 나온 공통적인 답은 '<조선일보>가 만든 방송이니 믿고 본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말했다.
"<조선일보>는 발행부수 1위 대한민국의 대표 언론이다."
"<조선일보>는 집권여당 아침회의의 안건보고서나 다름없는 신문이다."
한 마디로 어르신들 사이에선 <조선일보>의 권위가 <TV조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안보를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종편을 시청해야 한다는 강한 의견을 피력한 분도 있었다.
"아직도 남한에 간첩들이 많이 있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위험을 잊고 안보불감증에 빠져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신문을 보지 않아서 이런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러니 종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요즘 KBS도 이런 걸 제대로 방송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편 뉴스만 본다."
할아버지는 종편이 지속적으로 안보 위협을 이야기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해야만, 북한군이 남한을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행자들이 연극배우처럼 열심히 한다."
어떤 어르신은 "종편 아나운서나 진행자들은 아주 알기 쉽게 이야기 해주더라"라고 말했다. 종편 진행자는 사회문제나 이슈를 소개하며 분노, 비아냥거림, 격한 공감 등의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TV조선> '뉴스쇼판' 앵커 김윤덕과 엄성섭의 쇼맨십은 압권이다. 시청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진행자들은 감정적인 진행을 통해 시청자들이 이슈에 대해 판단해야할 수고를 덜어준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진행이 어르신들에겐 그 사안을 쉽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종편 뉴스를 보는 이유가 <TV조선>이나 <채널A>의 뉴스 진행자들이 속 시원하게 크게 말하고 비판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인층은 시사토크 프로그램 출연자에 대해서도 강한 신뢰를 보였다. 변호사, 전직 국회의원, 경찰 등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특정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덕분에 사람들이 시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건강과 생활 정보가 많아서 좋아"
더불어 어르신들은 종편의 인포테인먼트(정보전달과 오락의 결합)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포테인먼트란 MBN <황금알>, MBN <천기누설>, JTBC <닥터의 승부>, TV조선 <속사정> 등 건강, 생활 지식을 소재로 전문가들을 그러모아 만든 프로그램을 뜻한다.
한 할머니는 매일 밤마다 이런 토크프로그램을 본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주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치 있는 전문가 패널들의 입담과 더불어 각종 건강상식과 생활지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였다. 이들 프로그램이 말하는 속설과 출연진들의 사견을 왜 신뢰하시는지 물었더니 "믿을 만하니까 TV에 나왔겠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답변들이 의외라고 여겨진 이유는 이날 만난 어르신들 중엔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을 지니지 않은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할아버지는 JTBC <썰전>을 즐겨보신다면서, "<썰전> 같은 프로그램은 종편에서만 하잖아"라며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야 사람들이 시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한 어르신은 종편의 프로그램들이 "뭐든지 쉽게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다"며 "자막도 크고 소리도 큰 것 같다, 뭔가 우리를 위한 방송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어머니랑 며느리들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들 사는 것과 똑같아서 재미있다"는 시청평을 말한 분도 있었다.
의외인 것은 종편을 즐겨보신다는 모든 어르신들이 정작 특정 프로그램을 찾아서 시청하는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채널을 종편으로 맞춰서 수시로 보시는 것이지, 특정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찾아보지는 않는 듯했다. 종편에 너무 광고가 많고, 특히 "보험광고와 대출 광고로 도배를 해서 짜증스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종편이 '종합방송채널'이라서 지상파 방송국처럼 드라마와 좋은 다큐멘터리, 쇼 프로그램 등등을 모두 골고루 틀어줘야 하는 방송사임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또한 종편이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들은 제작하지 않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건강생활정보 토크 프로그램 등을 주로 만들어 전체 방영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그런 뒤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떼토크'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훨씬 싸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그런 건 모른다", "상관없다", "유익한 프로그램을 싸게 만드니까 좋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젊은층들은 종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비교적 젊은층에 속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원들은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출연진과 방송 내용에 대해 매우 큰 불신을 갖고 있었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종편을 모니터할 일이 잦은데, 지나치게 공격적인 시사토크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자의 발언 때문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모니터가 끝나고 나면 한숨을 쉬거나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사 떼토크'는 TV조선과 채널A에서 많이 방영하고 있는데, 해당 프로그램 출연진들은 두 방송사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본 '짜증스러운 사람'을 저기에서 또 보게 되는 불상사도 생긴다. '시사 토크프로그램' 출연진들은 친정부ㆍ여당 성향의 '평론가' 혹은 변호사 등 소위 '사'자가 들어간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해당분야 '전문가'로 칭하기엔 애매모호한 지점이 너무 많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주장하는 내용은 그동안 <조선> <동아>가 생산·확장시키던 '종북 프레임'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어서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분과원은 이렇게 말했다.
"종편 '시사 토크프로그램' 에서 누군가가 대통령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할 경우, 출연진은 이 사람을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종북 인사·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이어 해당 인사·세력 뒤에는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 등 '거대 악'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논리를 반복한다."
분과원들은 "해당 프로그램 출연진의 논리에선 대통령의 행보나 특정 정책에 대한 분석적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왜 대통령과 정부정책을 비판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근거도 불분명했다"고 평했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편은 정부·여당 옹호 등 지배논리 확대·재생산을 위해 태어난 채널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수많은 특혜를 누려왔다. 방통위는 '행정지도'라는 형태로 종편에게 지상파 방송사들과 인접한 황금채널을 연번으로 배정해줬고, 의무전송 채널로 지정해줬다. 또한 중간광고를 허용해줬으며, 미디어랩을 거치지 않고 광고를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종편은 이처럼 수많은 경제·시스템적 특혜를 받아왔음에도 '드라마'와 '예능'을 배제한 채 '시사·인포 떼토크' 프로그램만을 방송하고 있다.
종편에 대한 노년층과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의 상반된 평가를 들으며 나는 새삼 '조중동 방송국' 종편에 대한 어르신들의 '무한신뢰 및 사랑'을 유지·이용하기 위한 종편의 행태가 영악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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