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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의혹 동영상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1/09 12:22
  • 수정일
    2013/01/09 12: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부정선거의혹 동영상
(서프라이즈 / 인천시민 / 2013-01-08)


이번 대선 때 혹시나 싶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짓을 좀 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 투표소에서 마감하는 걸 확인한 후 개표소까지 차량으로 따라가며 투표함이 잘 이송되는지를 확인했었습니다.

그 후 개표소(연학체육관)에 관람인 등록을 하고 개표소로 이송되어 들어오는 투표함들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제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도화동개표동영상~봉인안한봉투개표소에서봉인!!

http://bigmail.mail.daum.net/Mail-bin/bigfile_down?uid=.Jc5uIdlmMa5FLTRYgFSThHW1zKS2I7g

제가 촬영한 동영상에서는 '잔여투표용지' 봉투가 봉인처리되어 있지만 이 봉투 역시도 개표소에 도착해서 제가 촬영하기 직전 봉인처리한 것입니다.

그 후의 상황은 동영상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투표소 참관인 두 분이 계십니다.그런데 이 분들은 촬영하기 몇 분 전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문제의 서류를 소지하고 있던 해당 투표소(도화2, 3동 4투표구)의 선관위직원(투표관리관)은 개표소에 도착한 뒤 적어도 몇 십분 정도는 혼자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동영상 속의 서류가 투표함과 함께 맨 마지막으로 접수가 되었는데, 제가 개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6시20분쯤이었고 문제의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한 시각은 7시 03분쯤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동영상을 근거로 해당 개표소에 파견되어 있던 민주당 참관인들을 만나 개표소의 개표위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표소를 총괄하던 위원장은 "A4 용지에 이의제기서를 써서 제출하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이의제기를 하다가 문득 문제의 서류와 함께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투표함'에 대한 개표만이라도 우선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그 투표함을 민주당 참관인들과 찾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개표소 안으로 맨 마지막에 들어왔던 그 투표함은 이미 개봉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항의를 하는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그보다 앞서 들어왔던 투표함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참고로 수개표와 관련해서 전자개표기를 통과해 나온 투표용지(100매 한 묶음)를 1~2초 사이에 휙 스치듯 훑어보고 말았다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제가 동영상을 찍었던 연학체육관 개표소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재검을 했었습니다.

사실상 수개표 또는 수검표를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문제는 민주당입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민주당을 폭파시켜버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번에 발표된 대선결과가 의심스러운 과정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도출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는데, 그리고 그런 정황증거들 뿐만 아니라 물증들까지도 있는데, 그렇다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 당사자가 민주당인데 오히려 선거패배를 앞장서 기정사실화 하면서 이 같은 합리적인 이의제기에 대해서 조차 남 얘기 하듯 하고 있으니 정말 복장이 터질 지경입니다.

어쨌든 이번 일은 끝까지 싸워서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상황에 따라서는 다시 길거리로 나가 돌을 던지며 싸우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만 합니다.어쩌면 곧 제2의 4.19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영상을 촬영한 뒤 나름 의심해본 내용입니다.

하나. 선관위직원은 실수라고 했지만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다.다른 것도 아닌 투표서류에 대한 봉인조치를 선관위직원(해당 투표소의 관리관)이 깜빡하고 안 했다?이걸 믿으라고??

하나. 만약 어떤식으로든지 부정선거를 획책했다면, 모든 선관위직원들에 대한 포섭 내지 매수는 불가능함으로 전략적으로 필요한 지역을 관할하는 직원들에 대한 포섭 내지 매수를 진행했을 것이다.평소 선거결과가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 쪽으로 나왔던 지역이 전략지역으로 분류되었을 공산이 크다고 봄.왜냐하면 부정표를 넣어 박근혜 후보가 다득표를 하더라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만약 그렇다면 선관위의 상부층에서 포섭 내지 매수된 직원을 일부러 전략지역에 배치했을 수도 있음.

하나. 만약 동영상 속의 해당 선관위직원이 포섭 내지 매수를 당한 직원이라면, 그래서 50표가 되었던 100표가 되었던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면, 그 해당 표 수 만큼 선거인명부에 대리서명을 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그렇다면 선거인명부에 투표를 했다고 서명이 되어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실여부만 확인하면 부정선거여부를 알 수 있다.표는 어떻게 아귀를 맞추더라도 대리서명을 했다면 그 유권자들 모두를 사후에 포섭내지 매수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나. 만약 선관위직원이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면, 스스로도 선거부정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른다고 하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또 주위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몰래 그 같은 부정을 저릴러야 했기에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따른 결과로 깔끔한 상황정리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그래서 심지어는 개표소에서 봉인작업까지도 진행했을 수 있다.

하나. 해당 투표함에 대한 개표를 서두른 이유도 이 같은 흔적(여러장의 투표용지가 한꺼번에 뭉쳐서 나오는 상황)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나. 만약 이런 일이 정말 벌어졌다면, 해당 투표구의 선거인명부를 확보해 전수조사를 하면 선거부정을 밝혀낼 수 있다.여기서 정말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확인된다면 이는 조직적인 부정선거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의심스러운 투표구의 선거인명부를 확보해 같은 방법으로 확인작업을 하면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을 밝힐 수 있다.

 

인천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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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보수화'로 졌다? 하나마나한 분석!"

[박동천 칼럼] 朴 찍은 1577만 명 중 文 찍을 사람 누구냐?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9 오전 8:19:31

 

1.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패배한 후, 왜 졌는지를 나름대로 설명하려는 말들이 무성하다. 5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둥, 친노 세력이 앞장을 서서 졌다는 둥, 안철수로 단일화되지 못해서라는 둥, 민주당의 좌클릭 때문이라는 둥, 얼핏 보면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진실의 과녁을 정곡으로 찌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태의 진상에 관해서 과녁을 찌르기보다는 그 주변에서 대충 변죽 울리기로 만족하는 한편,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자 하는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안철수로 단일화했어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

2. 먼저, 안철수였다면 이겼으리라는 주장부터 따져보자. 안철수가 야권 연대 후보로 나섰다면 이겼을지 모른다는 말은 현재 시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재인이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였다면 이겼다"는 말은 헛소리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패인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도박꾼들의 관심이 상황을 지배했다는 데 있다. 안철수와 문재인 중에 누가 단일화 경쟁에서 승자로 떠오르느냐를 가지고 내기를 거는 방식으로 보도와 평론과 지지와 응원이 이뤄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가'에만 몰두하느라 '어떻게'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협상이 깨졌고 안철수가 일방적으로 사퇴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누가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했다. '감동을 주는' 단일화, '아름다운' 단일화,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 따위가 가능하려면, 쌍방이 어떻게든 단일화의 규칙에 합의하고, 그 규칙에 따라 두 세력을 하나로 합하는 역량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왜? '어떻게'보다 '누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막판에 안철수의 '가상대결' 요구를 과감하게 받아버렸어야 했다 (안철수의 요구가 일방적이었지만 그랬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먼저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만 했다. 출마 의사를 밝힌 시기도 훨씬 앞당겨야 했고, 출마 의사를 밝힌 이후에는 바로 단일화 규칙을 위한 협상에 나섰어야만 했다.

이제 와서 가정법으로 말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결과가 나타난 다음에는 무책임한 말들이 무제한적으로 횡행한다. 이제 와서 "안철수였다면 이겼다"고 말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어떻게'의 중요성은 보지 못하고 '누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안철수였다면 이겼다"를 말하기 전에, 안철수가 왜 단일 후보로 되지 못했는지, 뭘 어떻게 했어야 감동적인 방식으로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물어야 책임 있는 담론이 가능해진다.

"2010년 좌클릭은 성공, 2012년 좌클릭은 실패?"

3. 민주당이 좌클릭을 해서 중도 표를 잃었다는 말도 유행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좌클릭했다고 할 때, '좌클릭'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 좌클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체제, 복지 강화 등을 주장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것 말고 어떤 '좌클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일까?

진보세력과의 연합이 오히려 중도층의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왕당파를 상대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일반명제들 가운데 어떤 것이 현재의 맥락에 적실한지를 가리려면, 연합의 이익과 손해를 맥락적으로 따져서 저울질해야 한다.

한국에서 '청적(靑赤) 연대'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명백한 성과를 보여줬다. 그래서 그때는 '좌클릭'이 문제라는 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2012년 4월 총선,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좌클릭'이 문제였다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이기리라는 '기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주관적인 낙관 말고 도대체 어떤 정세 분석에서 그런 '기대'가 나왔는가? 그런 '기대'가 도대체 어떻게, 누구 맘대로, '예상'으로 둔갑했을까? 낙관은 원래 근거가 없는 것이고, 근거 없는 낙관은 자유다. 단, 낙관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책임은 낙관에게 물어야지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 대상을 찾으면 마녀사냥이 된다. 그리고 이런 버릇을 못 고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좌우지간, 이번 선거에서 '좌클릭'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왜 청적 연대가 성공했는지 답해야 한다.

결함은 좌클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에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는 중도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 생각 자체는 옳다) 매몰되어, 분명한 결기를 보여야 할 곳에서까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NLL과 관련해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밝히자고 오히려 민주당이 주장했어야 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녹취록을 공개하면 국익에 위배된다는 걱정은 일차적으로 새누리당과 원세훈과 이명박의 몫이었다. 이걸 뒤집어 생각한 오류 때문에, 마치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녹취록 공개에 반대하는 듯한 이미지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자료사진) ⓒ뉴시스


"'종북' 프레임에 정면으로 돌직구 날려야"

'종북', '좌익', '빨갱이' 프레임 때문에 소위 '중도'라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표를 주기 꺼려한다는 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프레임에 걸리지 않을까? '좌클릭'을 하지 않으면 될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먼저 왜 박근혜의 '좌클릭'은 득표에 도움이 되었는지부터 자문해 봐야 한다. 박근혜의 '좌클릭'은 국민대통합의 행보가 되는데 왜 민주당의 '좌클릭'은 소위 '중도층의 안보불안감'을 증폭하는 것인지를 캐물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중 기준이 프레임의 본질이다. 이 프레임을 그대로 두는 한, 민주당 및 한국의 개혁세력은 절대로 '종북', '좌익', '빨갱이'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다. 즉, 조갑제에게 '종북'이라고 낙인이 찍히기만 하면 움찔 놀라 지지를 거두는 유권자에게 어떤 다른, 보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 표를 구걸하기 보다는, 조갑제가 찍은 '종북'의 낙인에 구애받지 않을 유권자들을 찾아내서 그들의 합리적인 자부심에 호소해야 한다. 이제 와서, 선거에서 지고 나서, '좌클릭 때문에' 중도표를 잃었다는 진단은 정확히 매카시즘에 인식론적으로 굴복했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비현실적인 정책,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 면이 있었다면, 그런 면들은 사후에라도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민주당이 내 건 정책 중에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은 2011년 말에 터져 나왔던 '한미 FTA 당장 폐기론'을 깔끔하게 해소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재협상을 주장한 일 정도다. 이 건에 관해 나는 "문제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생각한다"고 한 안철수의 입장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어서 선거에서 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례하게', '공격적으로' 박근혜를 몰아붙인 이정희의 퍼포먼스 때문에 문재인이 졌다는 소리도 헛소리다. 문재인이 이길 선거였다는 근거 없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니까, 어디선가 이유를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이정희의 공격성이 박근혜의 가련한 이미지에 보탬을 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사후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조성된 가능성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었다고 말하려면, 이정희의 공격성 때문에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곧 이정희의 공격성이 없었더라면 문재인을 찍었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특성을 가지는 유권자들일지 대충이나마 추려낼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108만 표 가운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확인할 방법을 이론적인 가능성 수준에서나마 동시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이정희의 공격성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데나 찔러 보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져나가는 뺑소니 어법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좌클릭을 해서 진 것이라기보다는, 좌클릭을 하기는 한 것인지에서부터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까닭에 마지막 2% 정도의 유권자를 잡지 못해 진 것이다. 중도층을 잡으려고, '종북' 프레임에 정면으로 돌직구를 날리기보다 '종북'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위해, 모호함에 의존하다가 정작 그 때문에 중도층의 불안감을 불식하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급조한 의제들이다 보니 잠재적 지지층이 될 수도 있었던 유권자 가운데 안정을 희구하면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마지막 2%에게 침투하지 못해서 진 것이다. 간략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구호의 형태로 정책을 요약해서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문재인과 개혁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내지 못해서 진 것이다. 선거법 상으로 문재인과 같은 신인에게 시간이 절대로 부족했는데, 캠프 안에서도 민주당 안에서도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간취하고 대책을 수립할 만한 전략적 안목이 없어서 진 것이다.

4. 친노니 비노니를 따지는 짓은 단순한 책임전가 및 내분 이상의 의미가 없다. 누군가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면, '친노' 따위의 모호한 화법을 사용할 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가 왜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꼬집어 말해야 한다. 모호한 화법에 의존하는 한, '친노 책임론'은 민주당의 내분을 부추길 뿐인 프레임에 자발적으로 투신하는 꼴에 불과하다. 이 얘기를 나는 여러 달 전에 쓴 적이 있다 (관련기사 ☞ "담합과 동맹 사이에서").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박근혜 지지자를 찾아라"

5. 마지막으로, 50대의 보수화 때문에 문재인이 졌을까? 108만 표의 차이는 50대 말고도 숱한 설명이 가능하다. 충청도와 강원도 표, 경남부산 표, 그리고 경기도 표 가운데 하나만 문재인 쪽으로 바뀌었어도 문재인이 이겼으리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50대의 보수화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4지 선다형 문제에서 연필 굴리기로 답을 찍는 태도와 흡사하다.

경기도나 경남 등 지역으로 분류하든, 연령으로 분류하든, 특정 부류의 유권자들이 보수화해서 문재인이 졌다는 말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그들이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찍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단순히 "박근혜를 찍었다"는 문구를 "보수화"로 바꾼 데 불과하다.

경기도든 경남이든 부산이든 강원도든, 50대든 60대든 40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학력이 어떻든 소득이 어떻든, 108만 표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어떤 하나의 변수가 결정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와 논객과 전략가들은 4지선다형 정답찍기식 시험에 길들여진 한국인답게 '하나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1577만 표와 1469만 표 사이의 차이를 '하나의' 인구통계학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기적에 가깝도록 예외적인 사태일 것이다.

"왜 졌을까?"를 묻는 사람들은 문재인이 뭘 잘못했기 때문에 졌다는 전제를 깔고서 시작한다. "이겨야 할 선거였다"는 규범적 진술과 "질 리가 없는 선거였다"는 사실적 진술을 지속적으로 혼동한다. 이렇게 혼란스럽게 들뜬 눈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 그리하여 박근혜를 찍은 1577만 표 가운데 아무데서나 임의로 108만 표를 골라, 그 표 때문에 문재인이 졌다고 우겨댄다.

문재인이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였는데 졌다고 말하려면 승패를 가른 108만 표 가운데 적어도 55만 표는 원래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어떤 상황적인 요인 때문에 박근혜로 선택을 바꿨다는 진술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로 선택을 바꾼 사람들'의 집합은 일단 매우 추상적인 집합이다. 이들이 인구통계학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단,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대에 이들이 몰려 있으리라는 추정을 전제로 삼고 시작해서는 진상에 접근할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은 1577만 명이지만 이 가운데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1577만 명이 누구였는지도 사실은 샅샅이 찾기는 불가능한데, 그 중에서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에 답하려면 그 전에 방법론적 성찰을 하나 거쳐 가야 한다. 산술적으로 도식화한다면 1577만 명 가운데 문재인 쪽에 가장 가까운 순서로 최소한 55만 명을 추려낸다는 말이 되는 데, 애당초 '문재인 쪽에 가장 가까운 순서'라는 것을 도무지 어떤 척도로 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자문하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1577만 명 가운데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확률이 가장 높았던 순서로 최소 55만 명을 추려낸다는 일은 곧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잠재적 지지층으로 잡아서 설득하고 호소해야 할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과업과 분리될 수 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진보개혁 세력은 이와 같은 전략적 선택을 위해 지혜를 모았어야 했는데 이를 해내지 못했다. 앞으로 당장 4월에 재ㆍ보선이 있고,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등등, 줄줄이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부동층 가운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제를 가지고 호소해야 할지 기본적인 전략의 원칙을 고안해내야 한다. 아울러, 부동층 즉, 산토끼를 잡기 위해서 고정 지지층 즉, 집토끼를 소외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 민주통합당이 18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충격에 빠진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246호실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집권해서 변화 추동해낼 역량 있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다음 두 가지는 분명해진다.

첫째, '종북' 프레임에 빠져 있는 유권자보다는 그런 프레임과 상관없이 자기 나름의 분별력을 갖춘 사람들을 과녁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친노' 프레임 역시 마찬가지다. 친노가 싫어서 박근혜를 찍은 사람이라면 애당초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을 찍을 확률이 낮았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노무현이 싫어서 박근혜를 찍을 정도라면 애당초 한국 사회에서 민주진보개혁의 필요를 별로 못 느끼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해지면 아울러 마지막 세 번째 요점도 분명해진다.

셋째, 이번 선거를 주도한 실질적인 의제는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그리고 복지사회건설을 통한 성장동력 확충이었다. 이 의제들의 파괴력은 4월 총선 때부터 박근혜가 표절해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였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의제들을 민주진보개혁 진영에서 부르짖고 박근혜는 단지 제목만 표절함으로써 내용을 희석시켰는데 왜 박근혜가 당선되었느냐는 대목이다.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들'은 바로 이 부근에 위치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복지를 통한 성장 등의 의제에 주목하고, 이런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박근혜보다 문재인의 진정성이 높다는 사실도 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찍을까?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뜻하는 대로 개혁을 성취할 힘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적인 원인이고, 이것을 고치는 것이 곧 한국 사회의 민주화, 정상화, 공정화에 해당한다.

당장 국회 과반수가 새누리당인데다가, 언론, 관료제, 검찰, 학계, 그리고 자본 등, 구조적 권력이 일방적으로 문재인에게 불리하다. 노무현 정권 때 실제로 목격했듯이, 민주진보개혁 진영이라는 것은 합심해서 뭉쳐도 기득권에 대항하기가 버거운데,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높여보려고 정신없이 물어뜯고 싸웠다. 민주니 진보니 개혁이니 떠들지만 결국 각자 사춘기 수준의 자기현시욕일 뿐이고, 그 때문에 기득권 구조의 타파는 고사하고 도리어 기득권의 강력한 장벽 앞에서 무너질 뿐이다. 이 구조를 고칠 힘이 민주당에게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이 무슨 그럴듯한 정책을 내놓아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직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를 말로 떠들어댈 줄은 아는지 몰라도, 사회를 민주진보개혁적으로 바꿀 역량이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이것은 민주당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고, 소위 '원로 그룹'을 포함한 시민운동가 그룹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그래도 48%의 유권자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집권해서 변화를 추동해낼 역량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일단 기회를 줘볼 가치는 있다고 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1577만 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불쌍해서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박정희가 위대하다고 생각해서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박근혜로 대표되는 기득권에 자기가 속하기 때문에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안보가 불안할까봐 표를 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1577만 명 가운데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민주진보개혁 진영에 표를 줄 확률이 별로 높지 않다.

경제민주화, 평화, 복지에 찬성하지만, 문재인은 기득권을 누를 힘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가 물타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박근혜는 공약을 지킨답시고 흉내라도 내는 척을 할 테고, 이에 대해 기득권이 대놓고 저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의 정책에 진정성이 있지만, 어차피 기득권의 저항 (그리고 민주진보진영 과격파의 불만) 때문에 박근혜가 시늉내는 정도의 성과도 없이 정치판이 싸움판으로 전락할 바에야 차라리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와 진보와 개혁을 입에 담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고 이런 사람들의 의견과 정서를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들이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전에는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까지 망라하더라도 범진보세력이 집권할 가망은 별로 없다. 패인 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책임전가와 권력투쟁과 마녀사냥에 몰두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책임전가와 권력투쟁과 마녀사냥이라는 사실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권이 박정희와 전두환과 이건희를 숭배하는 폭력적 속물들의 집권에 비해서 왜 나은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선호할 이유를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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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대선패배는 패러다임 변화 주도 못한 탓

뒤집어 엎어 '안철수 신당', 그게 잘 될까

[게릴라칼럼] 야권의 대선패배는 패러다임 변화 주도 못한 탓

13.01.08 20:01l최종 업데이트 13.01.08 20:01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2년 대선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 가운데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이 없었더라면 이번 대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할 때에도 안철수 현상이 가장 중요한 열쇳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대선 결과를 논하기에 앞서 우선 안철수 현상이 무엇이었나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 문재인, 이 말 한마디 왜 못했나)

이번 대선의 키워드 '안철수 현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9월 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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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욕구이다. (관련기사: '군복' 걸친 박근혜-문재인, 안철수 못 이긴다 우리는 안철수를 선택해도 되는 것일까 )

뭔가 바뀌어야 한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은 선거 때마다 나온 말이었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각의 틀과 사물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엎는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일상화된 '변화'라는 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보진영이 이번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로서의 안철수 현상은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라는 안철수의 발언에 농축돼 있다. 세상은 이미 낡은 보수·진보의 대립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대를 선도하고자 했다면 이 대립구도부터 깨뜨려야 했다.

상황을 단순화시켜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전통적인 보수의 패러다임은 안보와 성장이 주축이다. 전통적인 진보의 패러다임에서는 민주화와 분배가 안보와 성장에 각각 맞서는 대립항을 형성하고 있다. 안보는 민주화를 억누르는 데에 효과적인 핑계였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감행한 것도, 유신을 단행한 것도 명목상으로는 안보가 문제였다. 전두환이 광주를 도륙할 때도 '폭도'나 '불순좌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핑계를 내세웠다.

이런 폭압적인 독재에 맞설 때 안보와 민주는 서로가 상호배제적이어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내몰린다. 성장과 분배도 비슷하다. 민주화와 87년 체제, 그리고 그 체제가 남긴 패러다임에서는 상호배제와 양자택일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우리는 그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 만족스러울 만큼 과거청산이 이루어졌는가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진보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과거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미래가 항상 우리를 기다려줄 만큼 친절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형식적이나마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안보와 민주화가 상호배제적으로 대립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안보와 민주화, 둘 다 하면 그게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성장과 분배, 그거 둘 다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NLL논란과 김대중의 '햇볕정책'

1997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은 좋은 벤치마킹의 사례이다. 평생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던 김대중이 남북화해정책인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햇볕정책을 제1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이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무력도발 응징은 물론 햇볕정책을 위한 논리적 전제조건인 측면도 있으나, 그와 함께 "김대중이 당선되면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항간의 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실제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이야 얼마 없었겠지만 수십 년 동안 빨간색 딱지가 붙은 김대중에 대한 이유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상당수였음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김대중의 이 전제조건은 말로 끝나지 않고 전략무기 도입과 해공군력 강화로도 이어졌다. 대양해군 건설을 위해 이지스함 도입을 결정한 것도 이때였다. 공중요격으로부터 함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은 이지스함은 최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그 항로를 추적하는 등 평시에도 대공방어 관련 임무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대중을 계승한 노무현은 '군국주의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략무기 도입과 자주국방에 관심이 높았다.

이번 대선에서 NLL관련 논란이 증폭될 때마다 나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떠올랐다. 왜 문재인 쪽에서는 안보문제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왜 미리 안보문제에 대해서 보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정책과 공약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예를 들어 NLL을 확고히 사수하겠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한국의 현실에서는 그 말이라는 것도 사실 지겹도록 반복해서 말해야만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과의 재래무기 군축협상을 통해 북한의 서해안 해안포나 수도권을 위협하는 서부전선의 장사정포를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든지 하는 보다 적극적인 안보솔루션이 필요했다. 이런 노력은 노무현-김정일의 10.4 선언에 담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현실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은 진보라고 해서 안보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이상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안보의 개념은 단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안보개념을 정립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 10월 12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사실이라면 제가 책임 지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한 문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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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의 오류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잠시 무릅쓰고 말하자면, 내 주변에는 "빨갱이한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거공학적으로 따져 보자면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이 NLL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물론 나는 이것이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투표 현실에서는 이것을 단지 정치공세로만 치부해버릴 수가 없다.

이와 반대로 이번 대선에 나선 박근혜의 '변신'은 화려했다. 안보와 민주가 대립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자신에게 부족한 '민주'를 메우기 위해 경제민주화라도 들고 나온 노력은 가상한 면이 있다. 물론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에는 허구적인 요소가 많지만, 적어도 박근혜가 '민주화'에 맞선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선거공학적으로 말하자면 '물타기'에 성공한 것이다. 부지불식중이었겠지만,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캠프가 오히려 안철수 현상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다.

이런 역설은 성장·분배의 대립구도에서도 재현된다. 박근혜의 복지정책 역시 허구적인 면이 많다. 가령 그의 반값등록금은 실상 국가장학금제에 불과해서, 결국 나랏돈으로 대학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3차 TV 토론 뒤에는 심장은 아파도 간은 아프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박근혜의 의료정책에는 허점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디테일일 뿐이다. 진짜 그의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외형상 박근혜는 복지, 즉 분배에 맞서지 않았다. 만약 박근혜가 복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입장을 취했더라면 이번 선거의 양상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문재인에게 쓸 만한 성장담론, 두 개나 있었지만...

성장과 복지를 모두 하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국민은 없다.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박근혜의 이런 모습이 선택의 고민을 덜어줬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문재인에게서는 성장의 담론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문재인에게는 아주 쓸만한 성장담론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김대중이 제시했던 지식기반경제이고 또 하나는 안철수라는 인물 자체이다. 물론 지식기반경제라는 것이 실체도 모호하고 벤처열풍의 거품이 거셌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임금 싸구려 상품만 만들던 경제에서 탈피해 고급인력 중심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하자는 아이디어는 지금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IT 산업의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축된 것도 어쨌든 DJ의 유산이었고, 사회 민주화로 인해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확대돼 본격적인 한류열풍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고, 그 동력으로 소득 2만 달러를 찍었던 것도 노무현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잘나가던 IT신화의 산 증인인 안철수가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안철수 현상을 다룬 여러 기사에서 이미 밝혔지만, 안철수는 '사악하지 않은 성장'의 아이콘이다. 그 이전까지는 성장을 위해 민주나 도덕성 사회정의 등을 포기해야만 했지만(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MB였다.) 안철수의 성공은 그 모두가 양립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바로 포괄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문재인 캠프는 왜 이런 훌륭한 유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까?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까지는 아니었더라도 김대중-노무현-안철수의 의미 있는 시도와 성과를 잘 받아 안는 것만으로도 정통부와 과기부를 없앤 현 정부(그리고 그에 적극 동조했던 박근혜)와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움은 윤여준의 찬조연설까지 이어진다. 물론 윤여준이라는 인물이 문재인 찬조연설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윤여준이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윤여준은 찬조연설 15분 내내 사람 좋은 문재인 만나서 2시간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만 했다. 윤여준 정도 되는 분이면 중도보수층이 문재인에게 투표하기 꺼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본인이 연설 초반부에 잠깐 언급했듯이 안보에 대한 불안감(그리고 성장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런데도 그 불안감을 해소할만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나 캠프 차원에서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이 없었던 마당에 지나친 요구를 할 수는 없으나, 다른 누구도 아닌 천하의 윤여준이 아닌가. 적어도 그가 DJ-노무현 정부의 국가안보 그리고 위기상황(구제역 파동 같은)을 관리하는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만 해 주었더라도 막판까지 고민하는 중간층에게는 어필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였던 안철수 본인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새로운 '현상'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존재 자체가 착한 성장의 징표였고 본인 입으로 보수와 진보의 낡은 대립구도를 깨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또 어떻게 그것을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본인을 통해 터져 나온 새로운 시대로의 요구, 단순한 변화가 아닌 사고와 관점과 규범의 틀인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뒤엎으라는 요구가 어쩌면 안철수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는지도 모른다.

패러다임 변화 수용한 건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상배(61)씨 집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한 뒤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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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대선의 최대의 역설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오히려 박근혜 캠프가 가장 충실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의도했던 결과인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복지사회라는 시대적 흐름을 자기 방식으로 적극 수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박근혜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 후보수락연설에서 "저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안보·민주화, 성장·분배라는 낡은 이분법적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민주화'와 '분배'를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로 커버한 것이다. (이런 커버가 가능했던 것은 보수일색의 언론과 공정하지 못한 국가기관들의 도움 때문이긴 하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포괄적 패러다임의 고민 속에서 자기완결성을 갖춘 형태로 진정성을 담아 제시된 것은 아니라고 보이지만, 최소한으로 평가하더라도 선거에서 야권후보의 차별화를 '물타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재인에게 필요했던 것은 박근혜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 못지않게 안보와 성장에서 '역 물타기'라도 감행하는 용기나 임기응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재인이나 야권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2012년의 시점에서 어느 정도 자기완결성을 갖춘 포괄적 패러다임을 생산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이 풍족하게 갖춰진 조건 속에서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그 상황 속에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 또한 정치가 아닌가. 안철수 현상이 던지는 시대적 과제,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좀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단초들이라도 하나씩 주워 담았더라면 똑같이 선거에서 패배했더라도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민주당이든 혹은 다른 새로운 진보정당이든 언제라도 권력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려면 안보·민주화 혹은 성장·분배처럼 지금까지 인식의 대립축으로 각인된 요소들을 모두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새롭게 포괄하는 수권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야권발 정계개편이나 안철수 신당 같은 소문들이 무성하다. 선거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겠다는 욕심만으로 또 이렇게 구태의연한 이합집산만 되풀이한다면 5년 뒤에도 그렇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급할수록 둘러가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지금 야권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필요한 콘텐츠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5년 내내 야권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를 '수첩공주'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야권 자신의 변화에 대한 인식수준이 박근혜만도 못한 것으로 드러나 버렸다. 무엇을 시작하든, 먼저 이것부터 반성하자. 박근혜 5년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그 정도의 반성하는 용기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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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광기 어린 '빨갱이'타령과 박노해의 '노동자'


 

 

 


1970년대 '오적필화 사건'과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김지하가 있었습니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투옥됐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으며 유신 시절 존경받는 시인으로 살아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변했습니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박정희의 딸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기도 하고 야권 인사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문재인은)반대'가 아니라 '형편없다.'
(안철수는)글쎄, 처음에는 내가 기대를 했었지. 어떤 사람인가. 모르니까 만난 적도 없고, 그런데 보름 지나서 가만히 보니까 정치발언이라는 것은, 정치발언은 숨기고 자시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대로 한마디, 한마디가 다 정치야. 그러면 뭐가 나와야 될 거 아니요? 매일 떠드는데. 가만 보니까 '깡통'이야.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지하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든 누군가를 형편없다고 막말을 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보수화가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그만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했던 발언에서 자꾸 저의 머릿속을 쿵쾅하고 때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빨갱이'라는 단어입니다.

 

◇ 김현정 > 아니, 그렇게 지원을 했기 때문에 점점 더 통일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서요.
◆ 김지하 > 어디가 가까워져요?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


김현정 앵커가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터져 나온 '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라는 김지하의 물음을 보면서 이 사람늙은 나이에 정말 이상하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유년시절 가졌던 상처를 이런 식으로 노년에 끄집어내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 김지하의 '빨갱이'에서 서청이 느껴진다'

김지하에게 '빨갱이'는 평생 그의 트라우마처럼 감추어진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맹모는 일본에서 공산주의 이념에 심취했던 인물로 인민군 점령하에서는 목표시 당 간부로 활약하다가 국군이 들어오자 영암 월출산의 빨치산으로 입산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빨갱이였기에 그 또한 빨갱이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당했고, 그는 이것을 감추기 위해 “육십 생애 안에 깊이깊이 감추어진 비밀주문”처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저 저 XX 빨갱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숱한 생목숨이 죽창에 찔려 죽어야만 했고, 구덩이에 파묻혀야 했습니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대한민국 국군과 반공극우단체들이 전국각지에서 보도연맹원을 학살한 사건으로 그 피해자 중에는 다수의 양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빨갱이였으면 그 자식도 빨갱이라는 논리 속에 수만 명의 좌익 가족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단순히 고무신 한 켤레, 쌀 한 말 받고 보도연맹 가입서류에 이름 석자 올렸다고 끌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리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김지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험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흰머리를 날리는 나이에 자신의 입으로 '빨갱이 방송이냐', '깡통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김지하가 누구를 지지하건 그 사람이 누군가를 평가하건 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엄청난 위력과 공포를 지니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이 없기에 그의 '빨갱이' 타령은 늙은이의 개인적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1946년 이북출신 청년회로 결성된 서북청년단과 2012년의 반공단체.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 중에는 북한에서 지주와 재산가들의 자식으로 토지몰수와 친일 행적을 피해 넘어왔기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은 좌익을 북한 정권과 동일시하여 철저하게 복수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찰과 국군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서북청년단(서청)이었고, 이들은 빨갱이라면 무조건 재산 강탈과 겁간,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광기의 흐름이 지금도 이어진 세상에서 '빨갱이'는 단순히 사상의 단어가 아닌 복수와 증오의 표상이 되었기에 우리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화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빛과 같던 시인의 입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나옴을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 김현정 > 아니, 그런데 윤창중 대변인은 정치인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지지하는 48%는 국가전복세력이다,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다. 이런 말까지 해서 말입니다.
◆ 김지하 > 공산화 세력을 좇아가니까 공산화 세력이 된 거지. 아니요?

 



과연 문재인을 지지했던 48%가 국가전복세력이고 공산화 세력을 쫓아가는 사람이었을까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에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으면 '빨갱이'가 되는 것인가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엠피터'는 그의 얼굴에서 문득 서청과 같은 독기와 복수를 보고 말았습니다.

'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

김지하의 1970년대가 지나고 1980년대 '얼굴 없는 시인'이라고 불렸던 박노해라는 시인이 등장합니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의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으로 선린상고 야간을 나오고 섬유,화학,금속,정비,운수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던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박노해는 무려 7년 동안 그의 얼굴조차 몰랐던 안기부에 의해 1991년 체포됐고,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라는 제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시국공안사범으로는 6공들어 처음 사형이 구형됐던 박노해.출처:한겨레

 


박노해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낡은 흑백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전시하거나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나눔문화'를 전개하면서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운동을 전개하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노해를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그는 진짜 골수 '사회주의자'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사회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NL이고 PD고 그런 사상을 잘 모르는 저에게는 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 했던 말이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회주의를 포기했나?) 현실체제,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노동,평등,사회복지,인간중시 등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는 의미가 있다' (1999년 경향신문 인터뷰 중에서)

사회주의를 말하는 어떤 텍스트와 사상의 구절 속에 노동,평등,사회복지,인간중시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버릴 수 없던 노동,평등,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지금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억압받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탑위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숨진 22명의 노동자 추모식.출처:오마이뉴스

 


박노해가 1984년 펴낸 '노동자의 새벽'이라는 시집에는 이런 시가 나옵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지금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노라면 1984년과 2013년 무엇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아직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박노해가 버린 사회주의 사상이 무엇인지, 그가 주장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무엇인지 별로 관심도 없거니와 그가 꿈꾸었던 낡은 체제는 지금에서는 그다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느꼈던 노동의 아픔과 힘듦은 아직도 구구절절 느껴집니다. 이것이 오늘 포스팅을 쓰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당선 이후 블로그에는 '종북좌파','빨갱이','간첩'이라는 댓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달립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도 NL과 PD의 차이도 잘 이해가 안 가고, 막스이론이 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바꾸는 노력을 그저 '진보'라고 부르고 무조건 '빨갱이, 종북타령'으로 일관하는 사람의 답답함을 '보수'라고 부를 뿐입니다.

왜 대한민국은 수십 년이 지나도 '빨갱이'이라 부르며 상대방을 바라볼까요? 그냥 그런 이분법적인 빨갱이라는 단어 말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요구를 그대로 인정해주면 안 될까요?

김지하는 자신의 '지하'라는 필명을 버리고 본명 김영일, 호는 노겸을 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노겸이라는 뜻은 '발에는 근로의 신을 신고,머리에는 겸손의 모자를 쓰며, 부지런히 일해 공로를 세운 다음 겸손으로 일관하는 자태'를 의미합니다. 그가 유신 시절 민주화운동을 위해 고초를 받은 것은 사실이고 공로이겠지만, 과연 말년에도 겸손으로 살아가는지는 의문입니다.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는 것이 과연 '빨갱이'가 하는 짓일까요? 어떻게 문재인을 지지하며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꿈꾼 것이 공산화 세력으로 둔갑할 수 있나요?

이제 사상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우리는 사상으로 국민을 재단하기보다 인간 스스로의 행복을 원하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에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이를 외쳐대며, 산업화를 성공한 박정희를 찬양하면서도 임금조차 받지 못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고 사상이 낡아지고 체제가 변해도 2013년 지금도 박해받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꿈꾸던 '햇새벽'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기에 여전히 우리는 타는 목마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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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구글대표단방북을 왜 두려워하나?

 

 

 

오바마, 구글대표단방북을 왜 두려워하나?
 
<분석과전망>대북적대의 종식이 불러올 충격파를 줄이기 위한것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1/08 [21:07] 최종편집: ⓒ 자주민보
 
 

1. 케리 국무장관과 헤이글 국방장관이 만들어낼 안보라인의 결정적 의미

오바마 미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국방장관에 척 헤이글(67)을 지명함으로써 오바마2기의 대북정책기조는 사실상, 대화 쪽으로 확정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헤이글은 대북유화파로 분류되는 정치인이다. 과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 날선 공격을 아끼지 않았던 데에서 그것은 대표적으로 확인된다. 그는 부시의 대북고립정책에 대해서 줄곧 반대를 했었으며 특히 이라크전쟁을 비롯하여 아프카니스탄전쟁 등까지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대북제재는 물론 이란제재에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유대인들의 대미영향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을 하는 등 반 이스라엘태도까지 갖고 있다.
공화당 소속으로서는 이례적이라할 만도 했다. 1996년 처음 상원에 진출한 이래 줄곧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해왔던 헤이글은 2008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실력 있고 비중 있는 정치인이다.

오바마 대북정책의 전환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특히 지난 해 말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존 케리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에 지명되면서부터 대북정책 전환의 기류는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케리 국무장관지명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거물급 정치인으로서 오바마가 집권 1기 내내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때 북미양자회담 개최를 주장할 정도로 대북유화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대화 쪽으로 그 기조를 바꾸게 된 것은 자신의 대북적대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아무런 성과를 내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적 평가에 기초한 것으로서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구체적으로 대북적대관계를 완화하는 방향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그런데 왜, 미국은 구글회사대표단 방북에 난리인가?

분석가들에게,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대북적대관계 완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그에 대해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는 현상들은 크게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 그 현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이다.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9명의 미국 구글회사 대표단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7일 방북했다. 슈미트 회장은 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으며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고문인 한국계 미국인 토니 남궁씨, 구글의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의 재러드 코헌 소장 등도 동행했다. 방북기간은 3박4일이다. 방북에 앞서, 리처드슨 전 지사 측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방북이 개인적, 인도적 목적이라고 밝혔다.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은 돌출적인 행동으로 평가받을 만한 행보는 결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전환이 분명하게 예고되고 있는 오바마2기의 대북대화책과 상당히 부합하는 측면이 많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회사 대표단 방북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심각하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차례에 걸쳐서이다. 미 국무부는 먼저, 방북 시점을 문제 삼았다. 지난해 말 북이 광명성3호를 발사한 이후 미국이 동맹국들과 대북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국무부는 이어 방북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사기를 올려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 등을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국무부는 “그들은 미국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강조하여 표명하는 등 우려와 반발을 많이 갖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에 대해 미국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을 두고 분석가들은 미국 내의 대북강경세력들의 반발을 의식한 행보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지만 이는 아무래도 옹색해 보인다. 이번 구글대표단의 방북은 일정이 마무리되고 미행정부에 그 내용들이 확인되고 나면 그 정치적 성과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이전에 있어왔던 고위급인사의 방북과는 달리 봐야할 부분이 적지 않다.

결정적으로는 정세적 측면에서 그렇다. 이전에 있었던 미고위급인사의 방북은 대결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결의 출구전략으로 그것도 일회적으로 모색되었던 것이거나 그 방식 역시도 돌출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러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방북은 대북화해정책으로 전환이 확고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그에 부합하는 행보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구글회사대표단의 방북에 대해 한사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미국정부의 입장과 태도가 더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일부 분석가들이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에 대한 미정부의 부정적인 태도를 주요하게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유이다.


3. 현 시기 북미대결전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야 북미대결전의 향방이 보인다.

현 시기 북미대결전의 현주소 그리고 그 향방을 제대로 가늠하는데서 주요하게 보아야할 정세지점이 약 네가지라는 것은 특별하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 모두 다 지난 해에 있었던 사건들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8월 25일 동부전선 시찰길에서 진행한 8.25 경축연설을 필두로 해서 4월 15일에 있었던 열병식과 12월 12일 광명성 3호 발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7월 말에 있었던 북미싱가포르회동이다.

<나는 이미 서남전선의 최전방부대들에 나가 적들의 무분별한 추태를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예리하게 살피며, 만약 적들이 신성한 우리의 영토와 영해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전군이 산악같이 일떠서 조국통일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면적 반공격전에로 이행할 데 대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였으며 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 수표하였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8월 25일에 했던, ‘선군혁명 시작 52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 담겨있는 핵심내용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도발에는 즉시적인 대응타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이것이 우리의 원칙적 입장이며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정세분석가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2012년 8.25연설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서 미국을 향해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를 선포한 연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조국통일대전’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한 ‘판가리 결전’ 그리고 “우리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문장을 구사한 것 등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2012.8.25연설에 대해 많은 정세분석가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미대결전의 종식경로에 전쟁이라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2012.8.25연설이 전쟁방식을 통한 북미대결전의 종식경로를 확인해준 것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해 실물적으로 뒷받침을 해준 것이 4월 15일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입증해보인 12월 12일 광명성3호 발사였다. 북이 지난해 헌법에 핵보유국이라고 명시를 한 조건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능력까지 확실하게 보여준 현실은 군사적 압박을 중심으로 해왔던 미국의 대북붕괴정책의 파탄을 의미해준다.

이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미대결전의 종식경로에는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선다. 19년만에 부활시킨 올해 육성신년연설을 통해서이다.

<혁명무력은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경축 열병식을 통하여 사상과 신념이 투철하고 그 어떤 강적도 타승할 수 있는 우리 식의 현대적 무장장비를 갖춘 백두산혁명강군의 무진막강한 위력을 시위하였으며 적들의 끊임없는 전쟁도발책동과 반공화국모략소동을 걸음마다 단호히 짓부시고 조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였습니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육성신년사를 통해 내리고 있는 지난해 열병식에 대한 규정이다. 북미대결전에서 북이 앞세우고 있는 군사무력에 대한 강조이다.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게 관철하고 주체조선의 우주과학기술과 종합적 국력을 힘 있게 과시하였습니다. 100% 우리의 힘과 기술,지혜로 과학기술위성 제작과 발사에 성공한 것은 태양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최상의 경지에 올려 세운 대경사이며 천만군민에게 필승의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 특대사변이였습니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언급하고 있는 이것은 인공위성발사에 대한 규정으로서 군사적 측면과 더불어 경제강국과 결부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육성신년사를 통해 군사강국 그리고 경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한 것은 북미대결전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종식시키는 데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을 주요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미.대남관계와 관련된 신년사의 내용들은 전반 기조에서도 확인되듯이 대화기조를 중심으로 잡아놓고 있는 것이다.

북미대결전이 대화기조로 잡혀나가게 되면 당장에라도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해 7월말에 있었던 북미싱가포르회동이다. 전쟁억지력으로서의 군사력과 생활력으로서의 경제력을 앞세워 북미대결전을 대화방식으로 종식시켜나가게 될 때, 그때 해결해야할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 북미싱가포르회동인 것이다. 그 회동에서 북은 비핵화 조건으로 평화협정체결,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4.시끄럽거나 복잡해도 돌이킬 수 없는 대화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듯

이 네가지 정세지점을 중심에 틀어쥔 다음 가장 단순하게 접근을 해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세가 미국에게 대화냐 대결이냐를 선택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강제하고 압박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의외의 상황이 준비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정세가 대화냐 대결이냐에서 벗어나 이미 대화국면에 진입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염두해두고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면 대북적대관계를 단순히 완화하려는 미국과 적대관계를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종식시키려는 북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미 정부가 두 고위급인사의 방북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대화국면을 조성하고 적대관계의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칫 그것이 적대관계를 아예 청산하려는 북의 거침없는 대화공세에 말려들 것에 대한 우려의 표현일 수도 있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항상 팽팽하게 대립을 치는 적대국을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국가에 있어서 60년 이상을 치열하게 대립해왔던 적국과의 적대관계의 급격한 청산은 제국주의에게는 자칫 정치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조성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경제위기에 내몰려있는 정세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통일학 연구소 한호석 소장은 최근의 기고문에서 ‘미국판 급변사태’라는 재미 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위기가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미국으로서는 충분히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된다. 이른바 연착륙전략을 미국은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미 고위급인사의 방북에 대한 미 정부의 우려는 결코 단순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그에 따라 흥미롭다고 말하고 말 그런 성격의 문제 또한 아닌 것으로 볼 수있다. 대북적대관계청산이 불러올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연착륙전략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이 이후 정세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하는 것 때문에 근거가 약할 수는 얼마든지 있다. 그로부터 과도한 분석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과도할 수 있는 그 측면은 그러나 이 추론을 완전하게 부정하는 데로까지는 나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을 둘러싸고 감지되고 있는, 사소할 듯이 보이는 약간의 쟁점들은 대화를 부정하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며 다만 대화국면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범주의 문제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연구해왔던 수많은 대북전문가들은 북의 최근에 보이고 있는 많은 모습들에서 북에 대해 반세기 이상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며 군사적으로 압살하려했던 미국의 대북대결정책이 이제 더 이상 존재이유를 갖기 힘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북미대결전이 대화냐 대결이냐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대화의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대화의 국면에 있게 되는 곡절과 복잡함 그리고 시끄러움은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세기를 훨씬 뛰어넘는 장구한 세월의 결전이었고 그 치열성으로 치면 역사적 전례가 없을 정도인 것이 북미대결전이다. 북미대결전을 한없이 단순화시켜내서는 북미적대관계를 ‘단숨에’ 종식시켜내려는 북과 이에 맞서 적대관계를 서서히 완화시키려는 미국의 대립대결은 기본적으로 격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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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

"한국에 정의는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 버려야
국정원 직원 앞에 '자베르 경감'은 없었다"

[신년인터뷰]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①

13.01.07 18:04l최종 업데이트 13.01.07 21:04l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에는 정의가 없다'는 패배주의는 안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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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특정한 국면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 정부 4년차에서는 반MB(이명박) 대안매체인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3인방이 선택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멘붕'(심리적 붕괴상태)에 빠진 이들이 '뜻밖의 인물'을 선택했다. 국내 경찰학 박사 1호이자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활약해온 표창원 경찰대 교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흐름에 속한 대중들이 표 교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가 범죄학을 전공했고, 그동안 현안에는 대체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보수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그런 표 교수가 지난해 12월 16일 자신의 블로그 '표창원의 범죄와 세상 이야기'에 올린 글('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요구하고 경고합니다')에서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 좌빨 주장은 집어치우라"라고 요구하면서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무한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주장해 큰 공감을 얻었다. 게다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가치가 '정의'다. 현재 '한국에서 정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전국 강연 투어까지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는 '평화'와 '신사'도 보수가 가져야 할 핵심가치다.

여기에 이르면 표 교수가 진보주의자인지 보수주의자인지 헛갈린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분배, 풍성한 자유와 건강한 평화'를 진보의 가치로 보는 관점을 따른다면 그는 분명 '진보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보수주의자'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는 분단체제 등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뒤틀리고 왜곡된 한국사회의 희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표창원 열풍'은 정의와 공정, 평화 등을 내세우면 '종북 좌빨'이라고 딱지붙여버리는 한국사회의 천박성을 향한 고발의 성격이 짙다. 단순히 대선패배의 힐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커밍아웃은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표 교수와의 신년인터뷰는 지난 3일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 오후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영화 <레미제라블>, 한국 보수와 정의, 대선 결과와 박근혜 당선인의 과제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주로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지만 "'한국에는 정의가 없다'는 패배주의는 안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정의는 대단히 천천히 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며 낙관론을 폈다.

"직업의 특성상 자베르 경감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 연말·연초는 바쁘게 보냈죠?
"정신없었다. 다들 저보고 살이 쫙 빠졌다, 다이어트 한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신종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일을 저질러라,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고민과 갈등으로 태우듯 지방을 다 태워 버려라, 그러면 일주일 내에 전혀 건강에 지장 없이 1kg 가까운 감량 효과를 볼 것이다."

- 그럼 지금보다 살이 좀 쪘다는 얘기인가?
"지금보다 좀 살이 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괜찮은 것 같다."

- '집단 힐링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영화 <레미제라블> 단체 관람을 제안했는데.
"제가 원래 <레미제라블>을 많이 좋아했다. 영국 유학 때부터 자주 봤다. 참 감동적이었다. 한국어 초연을 얼마 전에 우리 동네(용인)에서 했다. 그래서 가서 또 보고. 지난 10월 브레트 토베이라는 미국 프로파일러를 초청해 1주일 같이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했던 적이 있다. 일주일 내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레미제라블>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저한테 해줬다. 그래서 '아, 진짜냐, 나 아주 좋아하는데, 누가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가 나온다'고 했다. 제가 '그 사람들이 노래할 줄 아나?' 물었더니 '다 잘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이번 대선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예상치 않는 일에 말려 들어가고, 그런데 마침 <레미제라블>이 개봉했다. 그런 상태에서 저도 좀 치유가 필요했고, 또 워낙 보고 싶었던 영화고, 다른 분들에도 프랑스 시민혁명의 실패, 좌파의 실패를 보면 가슴 속의 응어리도 많이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한 자리에서 보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극장이란 게 묘하다. 동행한 사람 외에 다 타인들이고 낯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감정 교류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괜히 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학창 시절에 영화 단체 관람을 많이 했다. 그때는 주로 반공 영화이긴 하지만, 그게 참 재미가 있었다. 같은 친구끼리 같이 가서 막 탄성도 지르고 웃기도 하고. 그 느낌을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집단 힐링이란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도 개봉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영화를 예매하자고 했다."

- 영국 유학 때도 두 번이나 원작 뮤지컬을 봤는데, 그때는 느낌이 어땠나?
"뮤지컬을 봐서 알겠지만 일단 장발장 개인에게 방점이 가 있다. 그리고 코제트와의 연결, 마리우스 같은 혁명군은 양념적 요소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그쪽에 많이 감정 이입이 된다. 저는 직업적 특성상 자베르 경감에 많이 동일시된다. 그가 가진 고뇌, 그가 아주 냉정하고 지나칠 정도로 법과 원칙에 집착하는 것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시민혁명 부분은 제가 지내왔던 80년대 대한민국의 격동기와 맞물려 어느 정도의 공감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부분이 (공감이나 감정이입의) 주는 아니었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자살한 이유

-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은 아주 철두철미한 법치주의자, 형벌주의자, 보수주의자로 그려진다. 그런 자베르 경감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우리나라 처지에서만 본다면 (자베르 경감은) 교과서다. 이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도 그렇지만 앞서 디도스 사건 등 '권력형'만 들어가면 경찰이나 검찰이 갑자기 무력해진다. 용산 철거민이나 쌍용차 등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한 사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추상같다. 하지만 자베르는 안 그럴 거다. 자기가 모시는 상관인 시장이 (장발장으로)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자베르는 전혀 눈치 보지 않았고, 이 사람이 장발장으로 의심된다는 수사보고서를 상부에 올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잡히자 자베르가 시장에게 가서 사과한다. 상대방이 전혀 모른 상태에서 장발장으로 의심된다는 보고서를 올린 것인데도 바로 사과했다. 그런 자베르는 상대가 누구든, 그것이 상관이든 권력자든 '법을 어겼다', '범죄자다'고 한다면 사냥개처럼 무조건 수사한다. 그런 법 집행자에게서 휴머니즘을 찾고, 정치적 타당성을 찾고, 시대정신을 헤아려 이쪽 편을 들어라, 이렇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법 집행자는 공평하면 된다.

여든 야든 나쁜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은 수사하고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경영주와 노동자 중에 누가 파울 플레이를 더 많이 했느냐를 찾아서 엄정하게 처벌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서로 협약으로 풀고, 정치로 풀면 되지, 법 집행자에게 정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자베르는 교과서다."

- 자베르 경감은 결국 자살한다. 이것은 더 이상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아의 붕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자베르는 철저하고 원칙적으로 오로지 법과 진실을 정의라고 봤다. 그 위에 있는 메타(은유)적인 얘기나 광범위한 정의 부분은 모른다. 이것이 어떤 정치적 타당성이나 역사성을 가졌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자베르는 눈앞에 있는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범죄를 저질렀느냐 안 저질렀느냐, 이것만 보는 것을 정의로 알고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혁명군에게 잡혔다가 장발장에게 도움을 받는다.

자베르는 '나는 정의롭다, 나는 정의를 수행한다, 다른 것은 묻지 마라,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가 내 모든 기준이고 잣대, 정체성이고 가치'라고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사람이야, 너는 영원히 범죄자야'라고 규정했던 장발장이 아무런 이익도 없이, 이해도 없이 자기를 풀어줬다. 자베르를 풀어주면 자기한테 불리할텐데도 풀어줬다. 그것은 악의 모습이 아니다. 자베르는 거기서 첫 번째로 흔들렸다. 이제까지 자신이 규정했던 '법을 어긴 자', '범죄자'는 악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서 어떤 무거운 형벌을 내려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었고, 연민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 장발장이라는 존재가 그런 자신의 모든 신념을 뒤집어 버리고 흐트러뜨린 거다. 범죄자도 인간이고, 범죄자도 자신보다 더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자베르의 신념을 확 흔들어 버린 첫 번째 사건이다.

그 다음에 또 다시 장발장을 잡을 기회가 생겼다. 지하 하수구에서 마리우스를 업고 나오는 장발장을 보고 체포할 수 있었지만, 장발장이 호소했다. '이 청년을 바로 의사에게 보여야 하니 잠깐 나에게 시간을 달라, 그리고 내가 있는 주소를 말할테니 그리로 와 달라'고. 자베르는 거기서 얼어붙어 버렸다. 자신의 본래 모습이었다면 돌아볼 필요도 없이 수갑채워 끌고 가는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자기가 빚을 졌으니까. 자기가 저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자신의 신념과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기본 양심이 있다. 첫번째 자존감의 붕괴는 일단 고민거리로 남겨둘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행한 것(장발장을 바로 체포하지 않은 것)은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원칙을 깬 거다. 범죄자를 놔 줬으니까.

자기가 스스로, 그것도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이익, 개인적인 보은으로 말이다. 그것은 부패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고 나쁘다고 보는, 법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 원칙을 어기는 범죄자의 모습을 자기가 따라하게 된 것을 발견한 거다. 그러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기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없게 된 거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거다."

"현장에 계속 있었다면 '자베르적 정의'를 추구했을 것"
 

"저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보다 좀 인간적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다만 원칙주의자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직 정의를 구하겠다는 부분만큼은 닮고 싶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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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자베르 경감과 자신을 비교하면 좀 어떤가?
"저는 자베르보다는 좀 인간적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저라면 배고픈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쳤다는 장발장의 사정, 그리고 그 이후에도 버려져 있을 조카들 때문에 도주한 점,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그런 부분들까지 넣어 버리면 스테레오 타입(인물의 전형성)이 형성되지 않으니까 그것은 뺀 것이다. 다만 원칙주의자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직 정의를 구하겠다는 부분만큼은 저도 닮고 싶다."

- 자베르 경감은 법이나 형벌에 정의가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인데, 표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다. 저는 자베르보단 공부를 좀더 많이 했기 때문에(웃음). 아마 현장에만 있었다면 제가 추구하는 모습은 자베르적인 모습이었을 거다. 현장에서의 정의는 결국 피해자가 있고, 법이 어겨지고 있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고, 그것은 모두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을 하나라도 더 잡고 처벌하기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제가 현장에만 계속 있었다면 그런 자베르적 정의가 제 정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다행스럽게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공부하면서 '처벌이 꼭 정의일까'라는 다른 쪽 의견을 듣고 대안을 탐구했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폭넓게 보면 꼭 처벌만이 정의는 아니다. 그렇게 폭넓고 철학적인 인식이 더해진 것이 지금 제가 갖추고 있는 정의이고, 현장적 정의는 자베르적 정의일 것 같다."

- 다른 뮤지컬도 있는데 유독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일단은 <레미제라블>이 다루고 있는 시민혁명이라는 상황이 19세기다. 20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긴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동일하다 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총칼로 일어서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혁명을 해야 하는 때다. 모두 일어나서 투표율을 높이고, 색깔론이나 이념논쟁의 틀을 깨고, 독재의 잔재나 권력형 비리의 상황들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많이 고무되고 동기가 부여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처럼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의 국민들이 혁명군의 학생들처럼 패배했다. 그런 상황이 유사한 감정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거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거다. 비록 영화도 현실처럼 실패와 패배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역사에서도 그런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고, 결국 공화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레미제라블>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원제 자체가 '불쌍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지금 쌍용차나 한진중 등 다양한 노동계 현안들이 있고, 99%와 1%의 양극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본인을 서민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영화처럼 참혹한 상황은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는 참혹한 서민들의 모습을 자신의 처지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실직의 위험, 취직하기 어려운 젊은 층, 높은 등록금, 자녀 양육과 교육의 높은 부담, 아무리 노력해도 진입장벽 때문에 계층이동을 못 하는 상황을 영화와 동일시한다. 누군가 그런 상황을 다루어주고, 이야기해주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지 않나 싶다."

"혁명기에 혁명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 그런데 당시 프랑스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대선 패배라는 결과 때문에 과잉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나?
"분명히 과잉돼 있다. 다만 그게 (대선 패배와) 시기적으로 맞물리다 보니까 영화 배급사 쪽은 완전히 노난 거다(웃음.) 사실은 저도 한국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한국 영화의 발전을 돕고 싶고, 대형 할리우드 영화들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한국 영화를 돕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레미제라블>밖에 없다고 봤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과장되었지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물론 <26년>이나 <남영동 1985>도 있지만 그 영화들은 아주 직설적이다. 반면 영화 <레미제라블>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포장돼 있다. 장엄한 서사도 있고, 사랑도 들어가고. 그런 영화가 사람들 마음을 뻥 뚫어주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 혁명기에 혁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혁명기에 혁명을 하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 같나?
"저는 마리우스와 비슷했을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저도 보통사람의 정서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혁명은 아주 잔혹하고, 좀 무섭다. 다만 사랑이라는 개인 감정 때문에 중대한 사회적 부분들을 포기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값싼 감상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마리우스가 가진 고뇌가 그런 것이 아닌가. 자기에게 솔직하고 싶다, 본능에 솔직하고 싶다, 이런 거다.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랑의 대상을 찾았는데 이성을 발휘해서 이념과 혁명과 투쟁, 이것 때문에 나는 저런 값싼 감상주의에는 매몰되지 않아, 이랬다면 솔직하지 않다는 거다.그런 점에서 마리우스는 참 좋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어제는 혁명 전사였다가 오늘은 돈황이 됐구나' 하고 놀려대지만 그들조차도 (사랑을 하는) 그를 압박하지는 않는다. '너는 그러면 안 돼, 잘못됐어' 하고 압박하거나 밖으로 내쫓지 않고, 마리우스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결국은 그것이 순수하다는 것 아니겠나."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선생이 언젠가 "우리는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제대로 겪지 못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혁명을 겪지 못한 점이 지금의 역사인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필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예를 들어 동학혁명이 성공해서 일제에 복속되기 전에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민중국가를 수립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안 됐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인가? 동학혁명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고, 그들이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역사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조세희 선생의 얘기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독립혁명 와중에 계파와 이념별로 찢기고 결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독립을 불러 오지 못했다, 한국 전쟁도 마찬가지였고, 민주화도 6·29 선언까지는 이끌어 냈지만 이후 민주정부를 직접 수립하지는 못했다, 그런 주장인 것 같다. 4·19 때도 쫓아내기는 했지만 그 이후까지를 담보해내지 못했다, 결국은 또다시 정치가들과 야심가들과 독재자들의 잔치만 만들어준 것 아니냐, 그런 지적인 것 같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노력들이 허사였다거나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의 의미가 희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역사로 그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국정원 댓글 달기 의혹 사건에 무력한 경찰 보고 채무의식 벗어나"

- '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경고하고 요구합니다' 라는 글을 보면서 표 교수가 이런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범죄학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왜 그런 글을 쓴 것인가?
"쓰고 싶으니까 썼다(웃음). 그 글이 그대로의 제 마음이었다. 제가 사직서를 던지는 그 시점, 그 때의 선택에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의무감, 채무의식으로 살아왔다. 국민 세금으로 대학 4년을 공짜로 다녔고, 경찰간부라는 혜택도 누렸고, 유학도 다녀왔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그런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상해야 한다는 대단히 엄중한 채무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채무의식이 어떻게 발현되었느냐?

지금의 제 커밍아웃이나 글들도 (채무의식의 발현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좀더 좁게 봤다. 국가와 정부, 경찰이 저의 고용주이고, 저는 그들에게 채무를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요한 현안과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저는 경찰이나 정부, 국가를 위한 방패막이나 전도사로 나섰다. 하지만 늘 한쪽에서는 이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면에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도 꽤 있었다. 자유나 권리나 민주, 이런 부분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상황 자체가 한쪽에서는 인권과 자유라는 것을 가지고 경찰과 정부를 공격하고, 정부와 경찰은 법 집행이라는 것, 국가의 안녕과 질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방어해야 하는 처지였다. 저는 정부와 경찰에 고용돼 있고 (정부 등에) 채무를 진 한 사람으로서 (정부 등을) 도와줘야 했다.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왔다. 그런데 이번에 그동안 해왔던 모든 제 행동과 언행들에 쌓였던 부담감과 채무의식이 폭발한 것 같다. 이 부분이 국민적 선택,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아주 중요하고,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부터 나는 아무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정말 자유롭게 그야말로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싶다, 이것이 사직서를 던지게 된 당시의 생각이고 심리상태였다. 그 이후의 글쓰기는 그 전과는 다르다. 정말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 정말 어떤 이론과 증거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판단해봤을 때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틀렸느냐는 거다."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오피스텔 앞에서 경찰관이 벨을 누르며 문을 열어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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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무의식을 벗어던지게 된 계기가 인터넷 댓글 달기 의혹을 받던 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 앞에 경찰간부가 무력하게 서 있던 장면인가?
"그렇다. 그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전에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선언합니다'라는 글도 올렸다. 새누리당 측에서 저에게 국민안전 공약을 만드는 위원으로 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저는 정치에 몸담고 싶지 않았고, 한 쪽 편에 서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혹시 다른쪽에서도 요청이 올 수 있을 거 같아서 아예 '나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싶고 한 쪽 정치 세력에서 이런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고, 다른 요청에도 그럴 것이다, 혹시라도 인력풀을 만들려고 한다면 나는 빼달라'고 했다.

대선에서도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그 사진 한 장이 절 건드렸다. 그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주 애처롭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남녀를 떠나서 경찰서의 수사과장인데 그 얇디얇은 오피스텔 문 앞에서 마치 구걸하듯이 '문 좀 열어 주세요' 하는 것은 경찰의 모습이, 자베르 경감의 모습이 아니다. 상대방이 약자면 그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강자다. 강자 앞에 그런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경찰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채무의식이 확 터져 버렸다. 그래 나도 이제 이 사건을 좀 얘기해야겠다, 아무도 이야기할 것 같지 않고, 다들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니까, 나밖에 더 있어, 하지만 내가 이런 채무의식으로 무장된 경찰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그런 얘기를 못해. 그래서 사직하게 된 거다."

"현장에 자베르 경감이 있었다면 오피스텔 박차고 들어갔을 것"

- 결국 그 때 자베르 경감은 없었다는 말인가.
"없었다. 있었다면 부수고 들어갔다. '장발장 나와' 하고. 과거 경찰은 수배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의심되면 과감하게 박차고 들어갔다. 박종철군은 수배자도 아니고 아무런 혐의도 없었다. 단지 수배자인 선배를 숨겨주지 않았느냐는 것만 가지고 데려다가 고문해서 죽였다. 그런데 그 오피스텔 문 하나 부수면 그게 얼마나 손상이 갈까? 그게 무서워서... 인권 얘기는 난센스라고 생각하고."

- 당시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 국정원 직원이긴 하지만 여성이어서 공권력 행사의 강도가 낮아진 것 같다.
"그게 컸다. 그러니까 그 힘으로 대선 때까지 버틴 거다."

- 새누리당의 방어 논리도 그것이었다.
"저는 그런 논리를 깨려고 계속해서 '약자가 아니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가진 신분을 봐야 한다, 그 뒤에 있는 기관을 봐야 한다'고 얘기한 건데, 결국 안됐다."

- 스스로 "보수주의자이고 반공주의자다"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
"저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 현 체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적 경제기반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보수 아닌가?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서 벗어나는 관행과 행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고쳐야 하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것도 고쳐나가는 것이 보수라고 본다. 그런데 흔히들 자신이 보수라고 하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을 보수라고 하면서 보수의 핵심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개인의 인권을 유린해왔다가 국가권력에 속한 사람에게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이것은 보수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의 보수는 봉건주의를 타파할 당시에는 진보였다. 그 진보는 봉건주의의 반칙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 3성역이라고 불렸던 왕권, 성직자, 귀족의 유착에 의해서 진실이 덮여지고, 정의가 땅에 묻히고, 불의가 행해지는 것은 나쁘다고 해서 일어선 게 계몽주의이고 자유주의다. 그리고 그것이 현 보수의 가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옛날 절대왕정 때처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다. 그게 무슨 보수냐? 그래서 공정 경쟁해라, 과거의 앙시앙 레짐(구체제)을 반대하고 나왔다면 당신들을 앙시앙 레짐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도 그들에게 당당하라는 거다. '우리는 구체제가 아니다, 아직은 우리도 신체제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공정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릴 비난해? 왜 우릴 욕해? 넌 좌빨이야. 입 닫아'라고 한다. 이거는 보수로서의 당당함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 [표창원 인터뷰②] "정의 위해 나서면 지지 않는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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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MB 정부, 철도 민영화 다음 단계 강행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1/08 07:56
  • 수정일
    2013/01/08 07: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토부 관계자 "관제권 환수 위한 시행령 개정 착수"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7 오후 7:29:49

 

대선이 끝나자마자 정부가 '철도 민영화 속도전'에 돌입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후 지난해 12월 31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하위 법령 제정' 방안에 사인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방안에 '시행령 개정 사안'으로 "철도 관제권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환수해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위탁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대변인실은 "우리가 확인해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철도정책과 관계자는 이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관제권 환수를 위한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고 확인했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주중에 시행령 개정 관련 공문이 내려가고,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는 2월 이전에 국무회의를 열어 관제권 환수 방안을 의결한 후 3월부터 관제권 환수 절차에 돌입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도 관제권 환수는 'KTX 민영화'를 포함해 '철도 민영화'의 물꼬를 트는 '관문'에 해당한다.

앞서 <경향신문>은 지난해 12월 13일 "국토부는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길 경우 KTX 민영화를 위한 민간사업자 공모에 곧바로 착수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코레일 외의 제2철도공사를 설립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 박근혜 당시 후보 측 인사들이 "이런 식의 민영화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철도 민영화의 '첫 단추'로 불리는 철도 관제권 환수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정책 결정과 관련된 새 정부 후임자들이 국토부 등에 들어오기 전, 전임자들이 관제권 환수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여 새 정부가 들어와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 같다"는 관측이 국토부 내에 파다하다는 말도 나온다.

ⓒ뉴시스


철도 민영화 4단계 착착 추진 중

철도 관제권 환수에 앞서 선로 배분권은 1월 1일자로 철도공사에서 시설공단으로 이미 넘어갔다. 민간 회사가 철도 운송 사업에 진입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조치다. 그에 더해, 배차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철도 관제권까지 시설공단에 넘어간다면 국토해양부는 명실상부 민간 철도 사업자의 진입 환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철도 관계자들은 철도 민영화를 크게 4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철도 선로 배분권 환수다. 이는 지난해 9월 27일 관보에 게재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사항이다. 두 번째는 민영화의 본격적인 '첫 단계'로 꼽히는 철도 관제권 환수다. 국토해양부가 추진하는 대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선로 배분 문제와 함께 운송 시간 및 차량 배차에 관한 권한을 국토해양부가 시설공단을 통해 장악할 수 있다.

세 번째, 정부가 철도공사에 출자해 건설된 철도 역사, 차량 기지 등 철도 운영 재산을 국토부가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철도 자산 처리 작업은 국토해양부가 주도할 수 있지만,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국토부의 방침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철도 관제권이 시설공단으로 넘어가면, 철도 운영 자산 국고 환수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네 번째 단계가 사업자 선정이다. 이미 지난해 대우건설, 동부그룹 등이 '민영 KTX' 사업자 입찰에 참여하려 했다. 대우건설은 당시 여론이 악화되자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이와 달리 나머지 6~7개 건설업체들은 현재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게 철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관제권 환수가 이뤄지면 민간 기업의 'KTX 사업자' 입찰 참여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있다. 철도 관제권 환수, 민간 사업자 공모 등은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별도 입법 절차 없이 가능하지만, 현행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의 유지 보수를 철도공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만약 법 개정 없이 철도 민영화가 이뤄지면, 민간 사업자가 철도 유지 보수를 철도공사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즉 유지 보수권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철도 관계자는 "철도 시설 유지권과 관련해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한국은 완벽하게 영국식 민영화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민영화 이후 10년간 철도 요금이 50%나 인상됐다"며 "2013년이 시작되자마자 오른 요금 때문에 영국 전역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철도 산업 세분화, 한국 철도 같은 협소한 시장에선 비효율 초래"

엄태호 연세대 교수와 주효진 꽃동네대학교 교수는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기획 세미나'에서 공동 발제한 '철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철도 구조 변화에 대한 논의 : 정책전문가 인식 조사를 중심으로'를 통해 "현 정부에서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 중이며, 철도 역사 및 관제권 환수 등 철도 산업의 세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철도 산업의 세분화는 우리나라의 경우 철도와 같은 협소한 시장은 분할할수록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높은 수익이 보장된 KTX 노선의 민영화는 대기업의 KTX 사업 참여가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고 수서발과 서울·용산발 노선은 주된 고객층이 서로 달라 경쟁 효과는 없고 지역 독점만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민간에 대한 요금 규제가 곤란하여 '제2의 9호선 사태'와 같은 사건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철도 운행의 '뇌'에 해당하는 관제권 분리 시 심각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철도 민영화를 강행하면, '9호선 사태'나 '영국 사례'처럼 요금이 대폭 인상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제권 환수 여건조차 갖추지 않은 시설공단이 무리하게 관제권을 환수할 경우 여러 가지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철도 관제권과 관련해 이들은 이종열 인천대 교수의 글을 인용해 "일본과 중국처럼 수송 밀도가 높은 국가는 운영자가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안전과 직결된 '수송밀도'가 높은 수준이므로 운영자(철도공사)가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분리할 경우 중앙 관제와 로컬(지방) 관제 간에 운행 정보 교환 및 의사소통 저해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발제를 통해 "현재보다 철도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하통합체제와 같은 철도 산업 구조의 재편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트렌드'로 인식됐던 EU의 철도 상하 분리(운영과 시설의 분리) 방안을 받아들여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분리시켰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철도공사의 권한을 약화시켜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운영과 시설의 새로운 통합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권용수 건국대 교수는 이날 토론에서 "철도 경쟁력 강화 방안은 필요하다. '무조건 민영화'라기보다는 여러 민간 사업자들의 참여 통로를 열어두는 것은 철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철도 민영화 후폭풍에 시달리는 영국

2013년이 되자마자 영국이 '철도 민영화'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월 2일자 <가디언> 온라인판에는 '10년간 요금이 50퍼센트 오른 후 철도는 많은 이들에게 사치가 됐다'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달콤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간 영국인들은 4.3%의 정기 승차권 운임료 상승과 3.9%의 전체 운임료 상승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 10년 동안 영국 철도의 정기 승차권 운임은 50%나 인상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영국 전역의 주요 역에서는 철도 요금 인상과 관련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영국 전역에서 철도 운임은 빠르게 인상되고 있다. 운임 인상 속도는 구간별로 차이 난다. 이를테면 세븐오크스~런던 구간의 연간 운임은 1660파운드(약 283만 원)에서 3112파운드(약 530만 원)로 90%나 인상됐다.

영국 <트레블뉴스>가 인용한 TUC(영국노동조합회의, Trade Union Congress)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경제 공황 이후 영국 철도의 운임은 평균 임금 상승률보다 3배나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영국의 4인 가족이 맨체스터나 뉴캐슬 등에서 런던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주간 평균 임금인 481파운드(약 82만 원) 이상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UC 총장이자 '액션포레일'(철도를 위한 행동, Action for Rail) 의장인 프랜시스 오 그라디는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가계의 소비 지출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이 철도 요금 인상 소식을 듣고 실망감이 컸을 것이며, 인상된 철도 요금으로 인해 힘겨운 한 해를 보낼 것이고, 인상된 요금에 반해 서비스 여건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역무원과 매표소의 수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디언> 온라인판의 또 다른 기사는 영국 언론인 닐 클락의 말을 인용했다.

"문제는 재국유화가 아닌 민영화 제도이다. 영국 철도의 민영화로 인해 영국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 이들은 다른 유럽 시민들에 비해 정기 승차권에 10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 회계법인, 버진 트레인스(Virgin Trains)를 운영해 수십 억의 국민 세금을 빨아들인 리처드 브랜슨 같은 자본가에게는 큰 횡재로 다가왔다."

 

▲ 민영화 후 요금이 폭등한 탓에, 철도를 타는 것이 많은 이에게 사치스런 일이 됐다고 보도한 <가디언> 1월 2일자. ⓒ<가디언>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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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정원-김씨 믿을 수 없어, 국정조사 필요하다

경찰-국정원-김씨 믿을 수 없어, 국정조사 필요하다
(블로그'사람과세상사이' / 오주르디 / 2013-01-07)
 

지난 12월 16일 밤 11시. 대선 후보 방송토론이 끝난 직후다. 수서경찰서는 문재인 후보에게 비방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씨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경찰은 ‘김씨가 비방 댓글을 올린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포털 검색 ‘구글링’조차 안 하고 발표한 엉터리 수사결과

다음날 수서경찰서에서 공개 브리핑이 있었다. 경찰은 빗발치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김씨의 노트북에서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찾아냈다고 말하면서도 이 아이디에 대해 조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수사를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둘러댔다. 이러니 초동수사조차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 수밖에.

TK출신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진 수사결과 발표였다. 발표 직후 특정 후보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고, 김 청장 스스로도 이 지적이 맞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결과를 보고 받고 긴급하다고 판단해 발표를 결심했다. 의혹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포털에서 ‘구글링 검색’만 해도 상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 청장은 초동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사건에 ‘결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가 보고 받았다는 ‘결과’는 여당 후보 입장에 유리한 것이었다.

▲초동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결과 발표라니....

TK청장이 TK후보 어깨 가볍게 해주려 했나?

“의혹이 난무해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김 청장의 발언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그가 여당 후보 편에 서서 상황을 보려 했다는 게 또렷해진다. 일단 ‘국정원 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 박아 궁지에 몰린 TK 여당 후보의 어깨가 한층 가볍게 해줄 요량이었나?

수세에 몰렸던 여당 후보를 도와줬다는 비난이 일어도 김 청장은 변명조차 하기 힘들게 됐다. 중간발표를 뒤집고 남을만한 물증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이 중간수사발표 사흘 뒤인 지난 12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김씨의 하드디스크에서 나온 아이디 20개를 ‘구글링’한 결과 김씨가 16개 아이디로 진보성향의 누리집 ‘오늘의 유머’에 접속해 찬반 의견을 표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단 이틀이면 김씨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증거와 정황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경찰은 왜 ‘구글링 검색’조차 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알맹이 없는 수사결과 발표를 내놓았을까? 수사결과 브리핑 당시 이광석 수서경찰서장, 장병덕 서울시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 등은 ‘구글링’을 왜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과 박근혜 당선인

하루 4000건 글 검색한 김씨 의혹투성이

김씨에 대한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정원 상부의 지시로 그가 진보성향 누리집을 전담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하도록 여론 개입을 해온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김씨를 둘러싼 의혹들이다.

▲국정원으로부터 노트북을 지급 받고, 진보성향의 누리집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민주당 대선 경선,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 동상 방문 등 정치적 논쟁이 활발했을 때였다.

▲8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74일간 김씨가 검색한 페이지뷰는 31만여장이 넘는다. 하루 4000건 이상 글을 살펴봤다는 얘기다. 한 건 당 몇 초 동안 눈길을 주고 지나간다 해도 하루 꼬박 10시간 이상 검색을 해야 한다.

▲아이디를 발급받는데 실명인증이 필요 없고 외국계 포털이라 국내 수사 관할권이 없는 누리집을 골라 활동했다.

▲3명 이상 회원이 ‘반대’를 클릭하면 추천이 많더라도 게시글이 초기화면에 노출되지 않는 누리집의 특성을 미리 알고 ‘반대’를 눌러 여론을 조작했다.

경찰발표ㆍ국정원 해명ㆍ김씨 주장, 믿을 수 없어

김씨의 ‘활동’이 논란이 되자 국정원 측은 ‘김씨의 활동은 고유 업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이 아예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에 관여해 온 건 아닐까?

반면 김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줄곧 “공직선거법이나 국정원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혐의가 일부 드러났는데도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는 배경이 뭘까?

경찰도 의문투성이다. 엉터리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사건을 덮으려 했던 경찰 아닌가. 국정원과 여당 후보의 입장을 살뜰히 배려하려 했던 경찰이 이제 와서 드러난 사실을 그대로 밝힐 수 있을까?

국민 알권리 행사해야, 국회 국정조사 필요하다

국민들은 경찰의 발표도, 국정원의 해명도, 김씨의 주장도 믿을 수 없다. 경찰에 대한 믿음은 김용판 청장이 날려버렸고, 국정원은 납득이 갈만한 해명 한줄 내놓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의 ‘수상한 행동’이 드러났는데도 계속 오리발이다.

국민에게 알권리가 있다. 국회가 나서 국민 대신 ‘알권리’를 행사해 주길 바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국정조사’를 조속히 열어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밝혀 줘야 한다. 국회의 본분을 다하라는 얘기다.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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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다

 

'평양'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다
<인터뷰> 책 '평양의 여름휴가' 작가 유미리
 
 
2013년 01월 07일 (월) 18:57:45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좋은 느낌으로 와닿는 아름다운 국명, 내게는 환상의 조국이다."

60여년 넘게 자리잡은 분단이데올로기 그리고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이런 표현은 불편하다. 붓은 총칼을 이긴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붓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혼동의 흉기가 된다.

'가족시네마'로 국내에 유명인으로 알려진 작가 유미리 씨가 평양 기행기를 썼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독자의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미리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층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유미리 씨가 평양 기행기를 썼다더라"라고 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왜?"라고 반응한다.

책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도서출판 6.15)를 쓴 작가 유미리 씨(45)를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심가 한 찻집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 책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의 작가 유미리 씨는 "나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의 최소단위이다. 그러나 국가, 역사와 관계없지 않다. 가족사를 파헤치면 국가,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면서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출간된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는 유미리 씨의 세 차례에 걸친 방북기다. 재일 교포로 한국 국적인 그는 평소 평양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지인들을 통해 2008년 10월부터 2010년 4월, 8월, 한번에 10일 정도 방북했다.

유미리 씨는 "나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이다. 그러나 국가, 역사와 관계없지 않다. 가족사를 파헤치면 국가,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며 평양을 방문하고 책까지 낸 이유를 밝혔다.

유미리 씨의 외조부와 어머니는 경남 밀양 출신이다. 외조부는 해방공간에서 약산 김원봉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 뒤 한국전쟁 당시 탈옥,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동생은 손기정 선수의 동료 마라톤 선수로, 역시 우익계에 의해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일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정신적 이방인'으로 살아온 재일교포 유미리 씨는 자신의 가족사와 만나면서 북한땅을 밟아야겠다는 생각을 놓치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살기 때문에 일본 보도밖에 접하지 못한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북에 대해서 납치문제, 미사일, 핵문제를 주로 다룬다"며 "제한된 정보는 눈 앞 콘크리트 벽처럼 느끼게 했다. 벽이 있으면 적의를 갖고 보니까 나라라는 덩어리는 보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알 수가 없다"고 방북 목적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북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서 있는 장소를 바꾸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전면적으로 (북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서 있는 장소를 바꿨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미리 작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런 이유에서 일까. 책 '평양의 여름휴가'에는 아들 유장양 군과 동행한 방북 내용이 더 많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아이가 바라본 북한'이 어쩌면 유미리 씨가 바라본 북한일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는 "어린이라면 어른에 비해 선입견이 적다. 있는 그대로 접하는 것"이라며 "역사를 어린이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남북분단 상황을 두고 일본에서 북을 보도하는 것이고 연평도 등 사건의 배경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장소에 서서 보지 않으면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미리 씨는 책에서 거듭 '환상의 조국',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등 북한에 더 마음을 두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을 여러 번 방문한 그에게 분단선 이남의 땅은 어색한 공간에 불과할까.

유 씨는 "처음 서울에 온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외조부와 어머니가 살았던 조국의 풍경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며 "평양, 개성, 백두산 주변을 돌아보면서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았다는 풍경을 알게됐다. 향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은 일로만 왔다. 서울에서 아는 것은 찻집 뿐"이라며 "평양에서는 일이 아닌 느긋한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더욱 향수를 느낀 것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지만, '평양의 여름휴가' 뒷 부분에 "방북기를 단행본으로 출판하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백한 것처럼, 분단 조국의 냉엄한 현실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방북하고 돌아온 뒤 재일 한국영사관에 불려가 방북목적, 만난 사람 등을 취조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을 몰라서 그냥 백지로 냈다"고 고백했다.

유미리 씨의 조국을 향한 마음의 뿌리 내리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는 내년 4월 경 평양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스무살에 소설 쓸 때는 재일교포라는 설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사를 더듬어가니까 역사를 알게됐다. 어머니는 밀양 출신이고 아버지는 산청출신으로 지리산 부근이다. 지리산은 장소 자체가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그렇기에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은 역사를 더듬어 가는 것이다"

재일교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책 '평양의 여름휴가'도 유미리식 방북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조금만 톱아보면 책 '평양의 여름휴가'가 주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유미리 작가에 대한 불호가 강한, 분단현실에서 마음대로 북한 땅을 밟아 볼 수 없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북한 땅 이곳저곳을 밟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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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처드슨. 슈미트 평양도착 왜?

 

 

 

빌리처드슨. 슈미트 평양도착 왜?
 
미국 오바마 정부 특사로 방북 한듯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1/07 [21: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무부 대변인이 리처드슨과 슈미트의 방문은 미국대표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인정하는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한명도 없다. <사진 출처 구글> © 이정섭 기자


미국의 뉴 멕시코주 전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회장이 7일 평양순안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편성 체널인 뉴스 와이는 7시 50분경 ‘오늘의 북한’ 방송 중 전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의 평양 입국 영상이 입수 됐다며 이를 공개했다.

뉴스와이가 방영한 화면에는 리처드슨과 슈미트 그리고 방문 대표단 9명이 순항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으며,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기자와 대담을 하는 모습도 방영됐다.

한편 미국의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눌런드는 지난 3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을 통해 리처드슨과 슈미트의 방북 사실을 확인하는 가운데 “리처드슨과 슈미트 회장의 방문은 순전히 개인 자격으로 방북하는 것이며 시기도 적절치 않다.”며 “그들은 미국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또한 “북에 억류 중(간첩혐의)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 협상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외교 체널을 가동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적 입장이라는 리처드슨과 슈미트의 방북 관련 입장도 부정했다.

그러나 눌런드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국제정세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은 조.미 관계에 있어 공개 보다는 비공개 입장을 취해 왔으며, 공개적이라 할지라도 발표한 내용 이외에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또한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시기상 미국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9명의 대표단을 꾸리고 비자를 발급한 사실도 발언과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정부는 리처드슨과 슈미트가 지난해 10월 방북하려 던 것을 연기시켰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준호씨 석방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배씨의 석방 문제가 의제가 되고 있음을 언론에 밝힌바 있다.

최근 조선이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며 대미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정전 60돐을 맞는 2013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영향력 있는 미국 인사들이 조선을 방문하는 것이어서 미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파견되는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국제정세전문가들의 예측은 자료에 의해서도 뒷 받침되고 있다.

*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은 미국의 하원의원, 유엔대사, 에너지부 장관을 거친 후 2003년 뉴멕시코주 주지사 당선 돼 재직했다.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외교 관계에서 명성을 쌓아 여러 국제 분쟁 지역을 방문했으며, 1996년에는 이라크를 방문하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만나기도 하였다.

*빌 리처드슨은 특히 미국 특사단으로 조선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조.미 사이의 대화창구 역할을 하였고, 협상을 통해 조선에 억류된 미국인들을 구출하는 데 기여 한바 있다.

* 구글은 1998년 스탠퍼드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처음 만들었다. 1999년 6월 공동출자 지원을 받아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뒤, 2004년 8월 19일 나스닥에 상장하였다.


2008년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으로, PDF, 포스트스크립트, 마이크로소프트 문서에 대한 검색도 가능하다. 웹 문서 검색 외에 구글 이미지 검색, 구글 뉴스 , 구글 웹 디렉터리, 구글 비디오 등의 주요 검색 서비스가 있다.

*검색 외에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위성사진과 지도를 통해 전세계의 지리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 맵과 구글 어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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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조작됐어!!! 조작이 대체 몇 군데냐!!!

우리 나라 대선, 국회의원 그래프야! 왜 해명안해!
(다음아고라 / 고장난운명 / 2013-01-05)

 

2002년 대선 곡선 이게 로지스틱 S곡선인가? 그리고 그때는 밤 11시 30분쯤에 개표가 다 마무리 됐다. 선관아 빨리 김능환 불러와서 기자회견 열게 하고, 새누리당아 김무성 빨리 불러와서 해명하라. 왜 이번 대선은 S자형 완만한 곡선이 나왔는지 해명해야 할 거 아니가!


도움받은 동영상 자료
링크1: <유투브 대선 개표방송>
링크2: http://imnews.imbc.com/player/player_vod.asp


1분단위로 볼 수 있었던 동영상 자료 저녁 9시부터 10시 8분까지
링크3: http://cafe.daum.net/yogicflying/Cia1/104792?docid=1L0siCia110479220120115004615


 

총선이라고 별반 다를게 없제?! 대선과 별반 다를게 없네 그치? 아무런 의미 없는 개표 곡선이잖아... 내가 지금 이런 자료를 찾아냈으면 니들도 이것에 대한 반박이 있어야 될 거 아니가!!!

대체 이번 대선 곡선 이게 뭐나? 누가 이렇게 만들고 싶어도 못만들잖아! 선관위 니들이 볼 때도 신기하지 않나?

충청도 투표 결과는 완전 개판이야... 75.8%를 맞추기 위해서 어지간히 손봤어... 손을 보더라도 좀 티가 안나야지 이게 뭐니?

색깔 표시된 곳이 완전히 조작됐어!!! 조작이 대체 몇 군데냐!!!

개표 초반에는 문재인 표(녹색)가 앞선 곳이 많아 근데 결론은 완전히 박근혜(빨강색)으로 다 뒤집혔어

2002년 대선에는 저녁 11시 30분에 끝났는데 이번 대선은 새벽 5시 30분까지 길게 늘여놨더군... 저 빨강색 표 차이 보라고 1시간 동안에 개표된 숫자의 차이 1283표 니들 그 많은 인원수와 개표기 가지고 뭐했니??

니들 내가 제기한 조작에 대해서 해명은 했니?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248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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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바라본 '박근혜 정권과 언론'

MB에게 맞선 언론인 5인 "박근혜, 또 부역자 보내면…"

[새해 연속 인터뷰 ①] 언론인들이 바라본 '박근혜 정권과 언론'

이대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7 오전 8:02:23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이명박 정권이 막을 내리고 박근혜 정권이 닻을 올릴 날이 머지않았다.

박근혜 당선인은 18대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 '박근혜 당선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는 비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일까' 하는 세간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남긴 과제를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풀어갈 것인지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은 언론, 역사, 노동의 세 주제를 중심으로 이 사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말의 길을 열고,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해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에게 살길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권 역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이명박 정권과 같은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이명박 정부 5년. 언론계는 5공 시절 이후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KBS와 MBC, YTN, <연합뉴스> 등 상당수 언론사낙하산 사장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낙하산 사장이 취임한 언론사들은 '정부 기관지 수준의 보도만 일삼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보도, 정부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유전 개발 권리 계약 보도가 정부 선전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문은 잠겼다. 광우병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4대강 사업을 비판했던 <PD수첩>은 <PD수첩>다운 모습을 잃었다. PD들은 모두 교체되고 작가들은 해고됐다. 참신한 뉴스 포맷으로 평가받았던 KBS 2TV의 <시사투나잇>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에 폐지됐다.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KBS와 MBC에서 특별한 시사 기획 프로그램을 찾지 못했다. 방송사가 주최하는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는 방송 3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선관위가 주최한 3차례 토론이 전부였다. 대선 후보 대담 및 토론회가 수십 차례 이뤄진 17대 대선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른바 '민주화 시대'의 시작으로 불리는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언론인이 해직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 2008년, YTN 노동자 6명이 해고됐다. 이후에도 MBC에서 9명(지역 포함), 국민일보사에서 3명, 부산일보사에서 2명의 언론인이 낙하산 사장 취임에 반대하거나 자사의 보도 공정성을 문제 삼다 해고됐다. 각종 징계를 당한 이는 수백 명에 달한다.

미디어법 개정으로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대형 신문 3사가 종합편성채널로 방송권에 들어왔다. 비록 미미한 시청률이긴 하지만, 대선 이후 일각에서는 "종편이 고연령층 유권자들의 <나꼼수>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언론 지형은 이명박 정부 5년을 지나며 확실히 우편향으로 기울었다.

언론인들이 가만히 있진 않았다. 이들의 파업은 국내 언론사 노조 파업으로는 최장기 기록을 세웠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만 다섯 차례 파업을 일으켰던 MBC 노조는 마지막 파업인 지난해 '언론인 총파업 투쟁' 중 무려 170일간 파업을 계속했다. KBS에서는 정부의 장악 시도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따로 뭉쳐 새노조가 탄생했다. 파업 기간 언론인들은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자는 의미로 파업 방송을 내보냈고, 이 중 가장 먼저 출범한 해고 노동자들의 프로그램 <뉴스타파>는 이제 대안언론으로서 자립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인들의 노력은 아직까지는 성공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겨졌던 정권 교체는 실패했다. 이후 박근혜 당선인은 해고 언론인 복직 문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문제 등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현재로선 훼손된 언론 환경이 이전보다 나아지리라는 어떠한 기대도 품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남은 5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이제 언론인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프레시안>은 이명박 정부 5년을 지나며 언론인 투쟁의 대표격으로 불린 다섯 사람,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과 김현석 KBS 새노조위원장,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최승호 전 <PD수첩> PD, 최경영 KBS 기자(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를 지난해 말부터 지난 4일까지 각각 접촉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임기가 다음 달까지인 정영하 위원장은 현 집행부 조기 퇴진 의사를 밝히며 "김재철 사장도 노조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석 위원장은 "KBS의 시사 프로그램 강화"가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종면 전 위원장은 "언론 노동자의 파업을 실패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현재의 <PD수첩>을 제대로 된 복원으로 보지 않고,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고 <PD수첩>이 맡은 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영 기자는 이명박 정부 5년의 언론 후진이, 한국 사회 수준 자체의 후행을 의미한다고 일갈했다. <뉴스타파>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최 기자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언론인 총파업의 의미에 대한 진단, 대안 방송을 바라보는 시선,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 수준 등은 각기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남은 5년도 결코 언론인에게 호락호락한 시기는 아닐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언론 자유는 언론인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 형식으로 풀어 전한다.
 

▲공영방송사 장악 논란은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 국민은 새 정부에서 언론 장악 문제로 촛불이 타오르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겉으로 보기에는 지난해 MBC 노조의 파업은 실패했다. 심하게 평가한다면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MBC 보도 태도는 공정성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거꾸로 보자. 우리가 지난해 파업하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파업하지 않고 정권이 교체됐다면, 우리는 새 정권과 또 타협할 것인가. 기껏해야 우리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타협하는 데 그치는 '부역자'가 됐을 것이다. 파업은 불가피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언론인의 연쇄 파업이 언론이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을 높였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한 희생이 거름이 돼, 언론이 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5년이 앞으로 5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암담하긴 하다. 현재로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해고 언론인 문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 김재철 사장 퇴진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박 당선인이 설사 이들 문제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들, 언론 독립 문제가 정치적으로 타협되는 문제가 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당장은 안타깝지만, 박 당선인이 어떤 언론 정책을 펼 것인지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당선인이 진정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길 바란다. 그 스스로 '나는 관여 안 한다'고 말만 하면서 부역자들을 또 사장으로 앉힌다면, 그의 말은 진정성이 없는 게 된다.

일단 MBC 노조는 오는 2월 차기 집행부 구성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현 집행부가 조기에 물러나고, 차기 집행부가 더 일찍 구성될 것이다. 해직자 사태를 풀기 위해서다. 지난해 MBC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현 집행부가 반쪽의 책임을 지겠다. '우리만 옳았다'고 선언하지 않겠다. 대신 남은 반쪽 책임은 김재철 사장이 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무너진 MBC를 복원하기 위해 김재철 사장과 현 노조 집행부가 동시에 물러나야만 한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기에, 당장 차기 노조가 집중할 일은 노조의 에너지를 다시금 모으는 게 될 것이다.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건 우리 힘으로 스스로 해야 할 일이기에,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걸 이제 구성원들이 잘 안다.

김현석 KBS 새노조위원장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도 KBS 노동조합이 '나빴던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기존 노조가 흔들렸다. 언론인들이 전체적으로 보수화된 측면도 있을 테고, 공영방송의 물질적 토대가 취약해지면서 그렇게 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새노조가 출범했다. 그리고 파업에 나섰으나 이기지 못했다. 대선에서도, 그나마 기대했던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대선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던 건 사실이다. 공영방송 종사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텐데, 지난 5년 동안 공영방송 장악이 워낙 노골적이었다. 다음 대선이 5년이 지나야 있고,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길을 가리라는 우려가 새노조 안에 있는 건 사실이다. 좌절감이 크다.

당장 새 사장으로 길환영 사장이 취임한 것만 봐도 우려하던 미래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길 사장은 본부장, 부사장 시절부터 '정권 부역 방송'의 주역이었다. 여전히 새노조는 그가 KBS 사장으로서 적임자가 아니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결국 다시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언론 자유, 제작 자율성은 정권이 주는 게 아니다. 우리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대통령 교체만으로 주어지겠지, 하고 기대만 해선 안 된다. 어려운 미래가 있지만 하나하나 넓혀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새노조는 일단 시사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종편이 시사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공중파는 대선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진실검증단을 운영했지만, KBS 안에서 얼마나 많은 저항이 있었나.

보도 부문의 경우, 출입처에 의존하는 현 시스템을 개혁하자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KBS 정치외교부의 경우 정당 출입처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러다보니 뉴스가 정치공학에만 매몰된다. 리포트가 여야 공방 중심으로밖에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선 과정에서 진실검증단이 각 후보 공약의 진실성을 검증한 방식처럼, (감시자 역할에 맞게) 검증하는 보도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른바 '귀족 노조'로 불리던 언론 노동자들이 반년 가까이 길거리에서 투쟁한 건 의미가 큰 사건이다. 그만큼 이들이 견디기 힘든 상황이 이명박 정부 내내 이어졌음을 반증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전 <뉴스타파> 앵커

나는 이명박 정부 아래 계속 이어진 언론인들의 투쟁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투쟁하다가 안 되면, 혁명이 일어난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 언론이 그런 상황이라고 본다. 우리의 언론 투쟁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라는 소중한 가치 안에서 펼친 활동만으로는 언론 자유를 얻기가 불가능했다. 이걸 실패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 싸웠지만 안 됐고, 다른 수단은 못 쓴 것뿐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은 한마디로 '대통령 잘못 뽑아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5년'이다. 현 정부는 언론을 그저 자기가 얘기하면 얘기한 대로 받아쓰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홍보하는 기관으로만 이해했다. 아주 무식했다. 개인적으로는 '5공 이후 최악'이 아니라 그냥 최악의 정부였다고 본다.

언론도 잘못 아니냐는 지적에 동의하고 싶진 않다. 어디나 부역자는 있다. 그러나 결국 뿌리를 찾아가면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 부역자에게 힘을 실어줬다. 언론사를 사찰하고, 그런 '사찰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해야만 언론사 내부 권력을 쥘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근본적으로 정권의 문제다.

물론 대통령이 바뀐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리라고 본다. 출입하던 현직 종편 기자를 인수위에 넣었고, 언론인과 정치권을 수차례 오간 이에게 대변인을 맡겼다. 박근혜 정부도 상식적인 언론관을 갖추지 않았으리라 우려한다. 아니길 바란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뉴스타파>의 대안 방송사 설립 움직임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실질적인 방송사 설립 시도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른바 '대안 방송'이란, 기존 매체가 생산하는 '콘텐츠'에 상응하는 개념이지, 방송사에 상응하는 건 아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그 조직이 얼마나 그 콘텐츠를 잘 만들 것인가를 모두 고민한다고 이해한다. 방송이라면 편성을 해야 하는데, 그런 시도는 아닐 것이다.

YTN 노동자들은 늘 해직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과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부당 해고를 당했기에 복직해야 한다.


최승호 전 <PD수첩> PD

<PD수첩>이 다시 출범했다고 하지만 시용PD와 대체작가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굉장히 비정상적이다. 이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는 게 시급하다. 해고된 작가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부서로 쫓겨난 PD들이 다시 들어가서 <PD수첩>의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문제는 (물리적 복원이 아니라) '<PD수첩>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역을 비판하고,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약자의 상황을 전달해야 한다. 김재철 사장과 그가 구성한 임원진이 지배하는 현재의 MBC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이 있을 때 <PD수첩>이 제 기능을 하다가 결국 파업까지 이어진 것 아닌가. 궁극적으로 김재철 사장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PD수첩>이, MBC가 제대로 된 언론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처럼 일방적으로 질주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바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박 당선인을 반대한 48%의 유권자는 물론이고, 51%의 유권자 중에서도 상당수는 MBC 사태에 대해 비판적일 것이다. 이미 김재철 사장 문제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할 어떤 상징적인 사건이 돼 버렸다. 이를 박 당선인이 그대로 떠안고 가진 않을 것이다. 박 당선인 스스로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제도가 정치적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았나.

이명박 정부 5년은 단순히 일부 언론사, 일부 언론인에게만 나빴던 시기가 아니었다. 언론의 위기다. MBC는 이미 시청자에게 버림받았다. KBS 역시 시청률과는 별개로 여론 주도층, 지식층에게서 버림받고 있다. 워낙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하니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 언론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결국 대안 방송사 문제도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대안 방송의 중요도나 의미가 달라지리라고 본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게 되고 망가진 비판 기능을 회복한다면, 대안 방송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다시금 공영방송으로 올 것이다.

대안 방송의 성공은 굉장히 어려우리라고 본다. 어느 정도 수준을 생각하는지 아직은 감이 잘 안 오지만, 방송이 단순히 돈 몇 십억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언론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대안적인 매체로는 자리할 수 있겠지만, 일반 국민에게까지 전파력을 가진 매체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언론 운동의 힘이 공영방송 바로 세우기에 더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낙하산 사장' 문제는 항상 공영방송사의 발목을 잡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진행됐고, 박 당선인도 비록 선언적 수준이긴 하지만 이를 공약에 넣었다. 과연 실현될까. ⓒ프레시안(최형락)


최경영 KBS 기자(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제 한국의 언론이 기본적인 자유는 획득했고, '다음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봤었다. 언론이 언론 자유 문제를 넘어서 철학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조명하는 시대가 되어 갔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가 자주 쓴 '후행'이라는 말을 곱씹어야 한다.

언론의 기본권이 훼손됐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고민 수준까지 후행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고민의 수준이 다시금 언론 자유 수준으로 내려갔다. 과장해 표현하자면, 투표권 싸움을 하던 19세기의 고민과 동물의 기본권을 보호하자는 21세기의 고민이 혼재됐다. 우리 사회의 고민이 21세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19세기, 20세기 수준으로 후퇴해버렸다.

박근혜 5년에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 공중파가 지난 5년처럼 다시금 사실상 '선전' 보도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래서 대안적인 의제, 대안적인 방송 설립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비록 <뉴스타파> 제작에 관여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대안 방송 설립 움직임과 공중파 제자리 찾기 움직임은 모두 한계가 뚜렷하다.

<뉴스타파>와 같은 언론은 당장 확장성에 큰 한계가 있다. 자칫하면 제작자의 자기 만족적 매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에도 문제가 있다. KBS와 MBC의 기능을 되살리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이들 방송사에는 이미 수년에 걸쳐 정권에 의해 길들여진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 잡았다. 언론인들의 최장기 파업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기존 체제에 싸움으로 맞서는 것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답은 하나다. 여러 군데에서 계속 하던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기존 제도권 안에서도 싸우고, 대안 매체에서도 다른 플랫폼으로 부딪쳐야 한다. 그리고 기존 제도권과 새 플랫폼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언론 자유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깨지더라도 계속 달걀을 바위에 던져야 한다.

한 방에 바뀌는 건 환상이다. 미디어라는 게, 꾸준히 사람들에게 생각과 아이디어를 전달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적 언론의 세례에 젖어왔다. 미국을 보라. 흑인 민권운동이 일어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흑인 방송이 없고, 주요 방송사 앵커는 전부 백인이다.

더 냉정하게 한마디 더 하고 싶다.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됐다고 한들, 언론 자유의 확장이 이어졌을까. 기껏해야 10년 전 자유를 회복하는 수준이었지, 우리 사회의 자유를 더 확장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기존의 노동 보도, 기존의 기업 보도, 기존의 정치 보도가 민주통합당이 집권했다고 달라졌을까.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안에서 싸우는 사람, 밖에서 싸우는 사람이 다 필요하다.

<뉴스타파>의 미래는 이렇다. 1월 중 발전위원회가 어떤 형태로든 구체적으로 설립 문제를 더 공론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달 안에 뉴스를 제작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2월 중순부터는 구체적인 포맷을 만들고, 실제 취재에 나서야 한다. 이들 과정이 다 이상적으로 된다면 3월에 방송하는 게 목표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다. 이상적으로 바라는 제작 인원은 시니어 기자와 PD를 합쳐 8명이다. 그리고 이들과 같이할 주니어급 인원 24명이다. 이렇게 해서 총 4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이면 가장 좋다. 지금은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스태프까지 다 합쳐 15명 수준이다.

현재 모인 후원금 수준으로 시니어급 8명은 감당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주 2회 방송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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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말하는 '박근혜 시대의 언론'

"언론 때문에 대선 졌다? 동의 못해
박근혜 당선인, 언론 내버려둬야"

[신년인터뷰]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말하는 '박근혜 시대의 언론'

13.01.07 09:27l최종 업데이트 13.01.07 09:58l

 

 

영상을 봤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와 이명박 대통령이 나란히 한 화면에 있었다. 2007년 8월, 노종면 YTN 앵커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인터뷰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밝았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8년 10월, 노종면 앵커는 해고됐다. 노조위원장으로서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이끌었다는 이유다.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씨 사장 낙점은 이후 KBS, MBC로 이어진 '낙하산 인사'의 신호탄이었다.

이듬해인 2009년 3월, 노종면 기자는 MB 정부 들어 첫 '구속 언론인'이 된다. 1999년 방송법 파업 이후 10년 만에 벌어진 언론인 구속이었다. 이후 노 기자는 이명박 정부 5년 대부분을 '해직 언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MB 인터뷰에서 '축하드린다', 창피하다"

궁금했다. 2007년 8월 인터뷰 당시, 노종면 기자는 자신에게 닥칠 일을 과연 예상했을까. 지난 4일 서울 신도림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노 기자는 "그 영상을 보면 창피하다"고 말했다. 언론인으로서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다.

"제가 '축하드린다'고 했거든요. 그때가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날이었는데, 원칙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돼요. 편안하게 대담을 이끌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이 정도는 용인이 되는데 축하는 제가 하면 안 되는 거죠."

해직 이후 노 기자는 '언론 비평'에 관심을 쏟아왔다. 트위터를 기반으로 한 <용가리 통뼈 뉴스>, 대안방송 <뉴스타파>가 그 결과물이다. 그는 "매체 비평은 제가 감히, 수준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보도 팩트체크를 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종면 기자를 비롯한 해직 언론인들의 '겨울'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12월 19일 혹시 '멘붕(멘탈붕괴)'이 왔었나"라고 묻자, 그는 "대선 개표 방송을 보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미동도 안 하더라, 그게 우리 집에서 있었던 유일한 멘붕 비슷한 현상"이라면서 "솔직히 멘붕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겪으면서 다혈질이었던 성격이 덤덤해졌단다. 대선 다음 날, 그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아침이 밝았다. 바람이 생겼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백성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소통과 감시의 무기가 버려지지 않기를… 더 잘 벼려서 고백과 위로와 성찰과 도모의 소도를 일구는 쟁기로 삼기를… 빡시겠지만 시즌2다."

다음은 노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빡시겠지만 시즌2'는 손 놓고 있지 않겠다는 약속"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8대 대선결과에 대해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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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이후 '멘붕'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혹시 '멘붕'이 왔었나. 트위터 보니까 그 날이 결혼기념일이었던데.
"솔직히 그런 건 없었다. 못 느꼈다. 소위 멘붕의 증상들. 얼이 빠진 듯한 표정,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무기력감. 그런 건 없었다. 당일 저희 집사람이 개표방송을 보고 있는데 저는 뒤에 앉아있었고. (아내가) 앞에서 미동을 안 하더라고. 충격이 컸나보다. '이제 그만 봐라.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게 우리 집에서 있었던 유일한 멘붕 비슷한 현상?"

- 결과를 예상했던 건가?
"대선 전에 이런 저런 예상을 하지만 당일 투표율이 높아지고 이런저런 정보들이 왔다갔다하고. 그것과 다르게 나타나서 놀라기는 했다. 좀 더 강한 예상은, 반대의 예상을 했다. 박 후보가 될 거라고는…, 몰랐다."

- 트위터 프로필에 '빡시겠지만 시즌 2다'라고 썼다. 어떤 의미인가?
"새 정부 언론정책이 어떨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여러가지 우려스러운 점들이 대선기간 내내 보였다. 박근혜 캠프가 언론에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고. 안철수 후보 관련 기사는 보도하지 말라고 언론사에 압력을 가한다든지. 그런 우려에 기초해서 보면 새 정부의 언론정책도 이명박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빡실 거라고 예상을 하는 거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좀 더 길어진다고 해서 다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뭔가를 하겠다는 저와의 약속이었다."

-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지상파 뉴스의 몰락, 종편의 득세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동의하나.
"종편의 약진은 맞다. 시청률 데이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것이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종편의 평균 시청률이 뭐, 많이 나와야 하루 시청률 1%. 종편이 갖고 있는 편향성·경향성이 이미 확고하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 지지자가 그걸 보고 생각이 바뀌거나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이미 지지후보가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지지를 강화시키고 결집도를 높이는 정도? 중간층에 있던 사람의 표심을 바꾸는 정도까지 작용을 했을까 라는 의문이 있다.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연히 기성언론의 편향성은 확인된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5년 내내 유지되어온 상수라고 본다. 그런 것들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트위터, 페이스북이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기성언론을 믿지 않게 되고, 트위터에서 얻은 정보를 주변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고. 진중권 교수가 말한 '보병'들의 활약은 어느 때보다 극대화됐다. 할 만큼 했다. 중간 영역을 놓고 다퉜다고 보면 누가 영향을 미쳤을까? 비슷하다고 본다."

- '국민방송' 움직임은 어떻게 보나.
"이해되는 움직임이다.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뭔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기대해볼 만도 하고. 그런데 추진하는 주체와 기대하는 분들 사이에 약간의 시각 편차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자칫 오해를 해서 지나친 기대를 하고 나중에 실망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는 있다. 제가 이해하는 소위 말하는 국민방송 운동의 핵심은 콘텐츠의 확보, 확대 그리고 안정적인 공급이다. 주된 핵심은 콘텐츠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제약된 여러 가지 현실 속에서 그런 것들을 확보해서 기성매체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저는 보는데 기대하시는 분들은 MBC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방송국이 생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 간극은 추진하는 주체들이 빨리 메워줬으면 좋겠다."

- 처음에는 <뉴스타파><오마이뉴스><한겨레> 등을 모두 아우르는 '국민방송'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도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다양한 지향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서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거나, 모여서 하나의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각개약진의 모습으로 가지 않을까."

- <뉴스타파>는 어떻게 되나.
"우리는 뉴스를 확대해나가고, 가능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되, 재단의 형태를 가져가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이 나와서 그렇게 진행이 될 것 같다. 3월에 시즌3가 시작된다. 후원인이 대선 전에 7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만5000명으로 늘었다."

"윤창중은 두 달짜리... 억지로 그런 생각까지 해본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8대 대선결과에 대해 "'언론 때문에 졌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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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방송의 회생은 가능할까.
"방송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해직자들이 복직하는 게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복직 이후에 사측으로 불리는 경영진도 변화가 있지 않겠나. 그 과정 속에서 언론인들과 경영자들 관계 설정이 새로 되리라고 본다. 거기에 권력이 개입하려고만 안 한다면."

-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기용을 놓고 박근혜 당선인의 언론관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명박과 박근혜, 어떻게 다를 거라고 보나.
"인수위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가장 안 좋은 사례가 윤창중이다. 기자하다가 정치권 갔다가, 다시 기자하다가 정치권 갔다가, 이런 사람을 대변인에 앉힌다는 건 '언론 선전 포고'다. 물론 자신을 지지했던 여러 세력을 끌어안고 가는 권력의 속성상, '두 달만 쓰고 부담스러운 사람은 빼겠다는 취지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도 '윤창중은 두 달짜리다', '어떻게 그런 사람 데리고 가겠나', '그런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이렇게 하고 털어버리는 게 낫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러기를 바란다. 억지로 그런 생각까지 해본다(웃음).

그 사례뿐만이 아니라 채널A 현직기자를 인수위에 참여시켰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가 어때야 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언론인으로 있다가 출마를 하거나 정계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이전,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석 달 이전에 사표를 내고 본인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과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이 연계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게 기본적인 윤리다. 어떻게 현직에 있던 사람을 바로 끌어들이나. 본인이 원해도 안 된다고 해야지, 그게 상식이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당선인이 그 공부를 빨리 하셨으면 좋겠다."

-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시절에도 그렇고 그동안 언론 관련해서 거의 언급한 적이 없어서 언론관을 알기가 어렵다.
"MBC 징계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던가? 이명박 대통령처럼은 안 하겠죠. 제가 순진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해서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았기 때문에 조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 YTN 해직이 4년 넘었는데 사측과 뭔가 물밑 접촉은 있나.
"아직 없다. 배석규 사장은 이미 이런 문제를 풀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공인된 사람이다. 제 예상으로는 지금 새 정부도 배석규씨처럼 MB정부가 '정권에 충성스럽다'고 공인한 사람이 YTN과 같은 준공영 방송 채널의 사장으로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을 거다(기자주 : 원충연 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이 2009년 9월 작성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문건을 보면, 배석규 당시 사장 직무대행이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고 적혀있다). 민간인사찰조직에서 '충성심 돋보인다'고 평가 받은, 해직사태를 장기화시킨 사람이 '사회통합'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보도채널 사장이다? 이건 넌센스다."

- 배석규 사장이 지난 2일 신년사에서 "해직자들과 노조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회사도 원칙을 유지하는 바탕위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는데.
"전향적인 자세가 '전향하라'는 이야기다. 앞에 와서 무릎 꿇으라는 거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 거다. 아니, 민간인 사찰 조직의 충성심 인증을 받은 사람이…, 사찰 부산물을 가지고 몇 년을 살았으면 창피해서라도 입 닫고 있어야지. 박 당선자가 통합, 통합 이야기하니까 '통합의 제스처를 보냈는데 쟤네들이 못돼서 안 받았다'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 김재철 MBC 사장은 갑자기 해직자 2명을 복직이 아니라 '특별채용' 했다.
"둘의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 같다(웃음). 상황을 호도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통합의 흔적 같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박근혜 시대 언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물꼬만 터졌으면"

- 지난 7월, <뉴스타파> 제작에서 물러나 YTN 불법사찰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배석규 경영진, MB 정권과 벌이는 마지막 싸움이라는 일념으로 마무리를 짓겠다. 건곤일척, 지금 심정은 그거다. 다 걸고하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국정조사는 흐지부지됐다.
"이미 사실관계의 상당부분은 드러나 있고, 다른 판단이 있을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호응을 안 해줬다. 새누리당은 '이전 정부 것까지 다같이 국정조사를 해야한다'며 말도 안 되는 물타기를 했고, 그 말도 안 되는 물타기를 민주통합당이 돌파해내지 못한 책임도 있다.

물론 민주당 정치인들이 사찰문제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한 것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민주당 내에 분명히 존재했다. YTN 사찰문제가 여야 협상 과정에 걸림돌이 될까봐 노심초사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특정한 국정조사가 아니더라도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라든가, 이런 노력들이 가능했다고 보는데 민주당의 의지가 약했다. 겨우 한 것이 제가 문방위 국감 때 참고인으로 나가서 발언한 것. 배석규 사장이 증인 채택 됐음에도 외국으로 도망친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 이 정도 성과가 있었다."

- 이 사안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건가.
"배석규씨는 여전히 당장 나가야 할 사람이다. 정치권이 제대로 못하는 게 안타깝다. 인수위에서 새 정부 밑그림 그리면서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룰지 주목해서 보려고 한다. 저희들이 추가로 확보한 사찰문건도 적절한 시점에 밝히고, 인수위에도 전달할 예정이다."

- 지난 5년 동안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
"다혈질이었던 게 누그러진 것 같다(웃음). 많이 알게 됐다. 모르던 걸. 지식수준이 높아졌다는 게 아니라, 뭘 관심을 둬야 언론인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 마지막으로, 박 당선인에게 언론문제와 관련해 바라는 게 있다면
"언론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 관심 갖고 들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언론도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 권력을 견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권력자가 내버려두지 않으면 지난 5년의 반복이 된다. 이건 너무 필연적이다. 권력이 손을 대면 언론인은 저항한다. 전두환 정권처럼 숙청의 수준으로 한다면 숨죽일 수 있지만 그런 언론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둬야 한다.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그런 물꼬만 터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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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수당,보육료'보다 진짜 절실한 것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1/07 11:20
  • 수정일
    2013/01/07 11: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3년도부터는 만 0~5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소득계층과 상관없이 보육료를 지원받거나 양육수당을 받게 됐습니다. 보육료의 경우, 만0세는 39.4만원, 만1세는 34.7만원, 만2세는 28.6만원을 지원받습니다. 또한, 누리과정 대상인 만3~5세의 경우 22만원을 지원받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도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가정이 양육수당을 지원받으실 수 있는데, 12개월 미만은 20만원, 12개월~24개월 미만은 15만원, 24~36개월은 10만원, 36개월 이상부터 만5세까지는 10만원을 지원받습니다.

이렇게 2013년도부터 양육수당과 보육료가 소득에 상관없이 무상보육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면도 있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앞으로 개선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 키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고 절실히 느끼는 만 두 살 딸아이를 둔 아빠가 본 2013년 양육수당,보육료 지원의 문제점을 생각해봤습니다.

' 양육수당 VS 보육료의 불평등이 빚어낸 어린이집대란'

현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가는 아이에게 지원되는 보육료는 39만원에서 22만 원까지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아이를 키울 경우 24개월 미만은 15~20만 원이지만 36개월이후는 모두 10만원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처럼 양육수당이 너무 적다 보니 부모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 대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몰려들었습니다.

갑자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들이 많이 몰리니 가뜩이나 부족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대기표를 받고도 몇 개월씩 입학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옳은지,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판단은 가정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집은 워낙 산골이라 사회성이 떨어지고 엄마,아빠에 대한 응석만 늘어서 일부러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만약 부모가 아이를 규제할 수 있다면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낫겠지만, 저처럼 딸바보라 매번 아이 양육의 방해꾼이 있다면 어린이집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집에서는 오빠하고 매번 아이패드만 가지고 싸우던 에스더가 어린이집에 가서는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논다.

 


우리처럼 아이의 교육적인 차원에서 어린이집을 보내는 경우는 괜찮지만, 맞벌이 부부로 꼭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가정은 이렇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자리가 나지 않으면 직장과 육아 모두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과 집을 옮긴 후배는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 아이를 돌봐줄 아줌마를 매달 팔십만 원씩 주고 있지만, 경제적 부담이 심해 이럴 바에는 그냥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만 키울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자리가 없어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놀이방 등에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경우는 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영유아보육법,유아교육법에 따라 정부가 인허가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육수당을 한 달에 10만 원 주는 것만으로 무상보육이 실현된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따릅니다. 실제로 에스더는 아직 배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와 물티슈 값으로 최소 한 달에 8만 원 이상은 지출되기 때문에, 양육수당을 받아도 그것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보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부모들은 대거 어린이집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계속 어린이집 부족 사태와 재가 양육 사이의 불평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 어린이집 부족은 정부의 원초적인 잘못 때문'

어린이집이 부족한 사태가 나오자 신문과 방송에서는 일부 부모들이 무료로 혜택을 주기 때문에 몰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그 점도 맞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닌 정부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보육시설 정원과 보육수요로 나눈 어린이집 수급률이 100%이하인 곳은 강남,서초,송파구뿐입니다. 대부분은 수급률 100%을 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어린이집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실제 영등포구의 경우 어린이집 수급률은 115%나 되지만 실제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만 5세 미만의 영유아는 2만 1,245명으로 시설 정원의 2.63배나 많습니다.

정부의 보육수요 계산법에 따르면 0~2세의 41%, 3~5세 유아 수의 40.3%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으로 산정해서 보육수요를 계산하는데, 이런 계산법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어린이집이 충분하고, 실제로는 어린이집이 부족한 상황이 자꾸 나오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서는 왕복20킬로, 총 40킬로를 가야 된다.

 


'아이엠피터'가 사는 제주시 구좌읍은 인구가 1만5천명이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국공립어린이집이 한 곳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민간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서는 왕복 20킬로, 등하교를 위해서는 총 40킬로를 운전하고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집까지는 어린이집 차량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공립유치원의 경우 1명이라도 차량을 운행하지만 민간 어린이집은 힘듭니다. 아이 한 명 때문에 왕복 40킬로를 매일 운행한다면 그 기름값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시설면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국공립 어린이집에 가려고 하지만 우리 동네처럼 읍면동에 어린이집이 없는 곳은 전남 235개, 경북 221개, 경기 208개, 서울 34개 동으로 전국적으로 1천960곳이나 되니 늘 어린이집은 대학교 가기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으로 2020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의 분담률을 30% 수준까지 높이려면 최소 3천600개의 어린이집을 더 지어야 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어린이집 관련 공약.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집에서 국공립 보육시설을 50개씩 신축하고, 매년 100개씩 기준 운영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150개 정도 가지고는 우리가 셋째를 낳아도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지도 못하고 그냥 초등학교에 들어갈 숫자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무상보육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인 무상보육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은 주먹구구식에 불과합니다. 예산 또한 지금은 확충됐지만, 실제 정부의 국공립어린이집 설치 예산이 2008년 155억원에서 2010년 33억원으로 급감했듯이 언제 예산을 줄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정부의 정책이 주는 의미는 효율적이면서 계획적이고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시작되는 무상보육은 걸림돌과 준비 부족이 너무 눈에 띄게 보여, 걱정이 앞설 뿐입니다.

' 양육수당,보육료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홍보와 공공인프라'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는 2013년도부터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습니다. 일부 맘카페 등이나 게시판을 통해 퍼진 이런 루머는 사실과는 다릅니다. 보육료와 양육수당 둘 중의 하나만 받을 수 있고, 이를 받기 위해서는 보육료 지원이나 양육수당 신청을 별도로 해야 합니다.

 

 

 


보육료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아이사랑카드'를 신청해서 받고, 이 카드를 가지고 어린이집에서 결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육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읍면동사무소에 별도의 신청을 해야 합니다. 3월 전에 '아이사랑카드'나 양육수당 신청을 모두 끝내야 3월분부터 지원을 받는데, 지금 많이 몰리고 있어서 미리 신청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서도 이런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렇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양육수당이나 보육료 지원 모두를 받지 못하게 되는데,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짐없이 모두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육료 지원이나 양육수당도 필요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 느끼는 것은 대한민국의 공공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공립어린이집 이용률은 0~5세 영유아수 통계와 비교하면 10.5%에 불과합니다. 최소 30%는 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필요한 재원이나 장기적인 계획은 부실투성입니다.

여기에 기존의 민간어린이집을 확충해서 어린이집 수요를 늘리려는 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만약 어린이집 인가 제한 비율을 높이려고 하면 기존 어린이집 운영자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가방을 매고 아빠를 기다리는 에스더.

 


에스더는 어린이집을 가기 위해 무려 6개월 이상을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가 겨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어린이집은 늘 대기자로 넘칩니다.

부족한 국공립어린이집 확충과 함께 민간어린이집의 횡포와 부실 운영을 규제하거나 보완해주는 제도적인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장기적이거나 확실한 정책이 눈에 띄지 않아 걱정입니다.

양육수당을 늘려주면 아이를 더 낳거나,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를 집에서 양육하겠다는 대답한 엄마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양육과 취업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몫이 있고, 부모가 노력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부는 최소한의 공공인프라를 통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고, 부모는 그 시설이나 정책을 움직이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언제쯤이면 우리 대한민국이 우리 아이들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발 우리 아이들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때에는 어린이집,양육수당,보육료 때문에 고민하면서 직장이나 아이 낳기를 포기하지 않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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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반역무리 비참한 종말 앞당길 뿐”

 

 

 

북, “반역무리 비참한 종말 앞당길 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보도 제1018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1/07 [08: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


북은 청와대 천영우 외교안보 수석의 문화일보와의 대담을 거론하며 “반역무리에게차려질 것은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 뿐”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조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보도 제1018을 통해 “얼마 전 괴뢰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천영우 x이 언론에 나서서 이명박 역도의 대결정책을 합리화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망동을 부림으로써 내외의 격분을 자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평통서기국 보도는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지난해 12월 27일 문화일보와의 대담에서 한 “원칙있는 대북정책” “남북관계 틀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 “대북억지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충돌도 있었고 인명손실도 있었지만 그 결과로서 한반도평화결정권을 회복했다.” “북에 돈을 주고 평화를 사는 것은 안된다.” “북이 나를 강경파로 만들었다.”라고 언급한 점과 “차기 정권(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신뢰다 뭐다 해놨지만 현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다.” “기본철학은 같다.”라는 발언을 소개했다.

서기국보도는 “청와대에서 ;대북정책‘이라는 것을 고안해내며 그 집행을 주관한다고 자처하는 자가 줴친 망발은 이명박 역도의 극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으로 된다.”며 “이것이 바로 이명박 역도와 그 패거리들의 머리에 박힌 우리 공화국에 대한 관점이며 남북관계현실을 보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하고 “정말 돌부처도 낯을 붉힐 해괴망측한 추태가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보도는 “역적패당이 내들고 있는 이른바 원칙있는 대북정책이 가져온 후과는 실로 엄중하다.”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열기 속에 좋게 발전하던 6.15시대 북남관계를 극단한 대결과 전쟁접경의 관계로 몰아가고도 남북관계 틀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 역적패당”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또한 “심지어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남북협력으로 남조선기업이 살고 생계가 보장되며 안정된 삶이 유지되어 왔던 6.15시대의 평화를 돈을 주고 사는 평화로 매도하면서 파렴치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말하고 “더욱이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새 집권세력의 대북정책도 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기본철학은 같다.고 주제넘게 떠들어대면서 대결정책연장을 음으로 양으로 압박해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현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차별성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명박 역적 패당의 납작한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우고 저들과 차별화해보려는 새 집권세력에게 못을 박기 위한 어리석은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박근혜 정부를 대북적대대결로 몰아 가지 말 것을 암시했다.

특히 “사물현상을 거꾸로 보며 역사를 퇴행시키는데 만성화된 인간 오작품들의 궤변에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그러한 망동은 오히려 반역무리들의 비참한 종말을 앞 당길 뿐”이라고 강력한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

한편 북은 최근 연이어 대북적대정책을 펴 온 현정부를 비난하면서 차기정부가 화해와 협력으로 6.15와 10.4 정상 선언을 이행하여 정상적 남북 관계를 유지 할 것을 촉구하는 신호를 계속 보내오고 있어 차기정부의 대북정책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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