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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알고보니 병도 고치더라

내성천 알고보니 병도 고치더라

 

김성만(채색) 2013. 01. 14
조회수 7369추천수 0
 

지율스님과 함께 한 낙동강 답사기 ①

대형댐 들어설 내성천 약수로, 썰매로 느끼기 "신나지만 슬퍼요"

경작 중지된 논에는 생명체 풍성…몇 년 뒤엔 수장되겠지만

 

눈이 많이 내렸다. 기온도 ‘영’ 아래로 쑥 내려갔다. 1월 3일. 이틀 뒤가 소한인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 안에서 움츠리고 있을 때, 영주역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지율스님을 필두로 한 강 답사단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어른들, 봉화에서 온 나와 유하,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 문종호님 등이다. 모두 모이고 나니 스무명 가량 된다.

지율스님은 수 년 전부터 강에 깃들어 살고 있다. 강의 신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내성천 강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두고서 강을 바라보며 살고 있고, 강이 처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알리고 있다. 조계사 앞에서 1년이 넘도록 내성천의 현실을 알리는 전시공간 ‘스페이스 모래’를 운영했고, 현장에서는 ‘물빛 풀빛 별빛 내성천 텐트학교’나 다양한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답사도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좀 다른 것은 내성천의 상류(즉, 낙동강의 상류)에서 낙동강의 하구까지 둘러본다는 것이다. 1월 3일부터 1월 9일까지 정확히 일주일간의 일정이다.

내가 가져간 해리포터(유하와 나의 차, 기종은 포터II)에 사람들의 등짐을 모두 실었다. 사람들이 모두 타기 위한 조처다. 신기하게도 내 차엔 짐을 싣기 위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짐에 녹물이 배지 않게 깔 수 있는 방수천이 있었고, 짐을 묶기 위한 고무밴드도 있었다. 나 답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한 것처럼. 답사도 이처럼 술술 풀리면 좋겠건만! 예감이 좋다.

_MG_2624.jpg » 물야저수지와 백두대간 줄기. 내성천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다.


영주역에서 출발한 차는 소백산 자락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내성천의 발원지로 향하는 길이다. 불과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산야는 온통 흰 색이었다. 심지어 도로도 흰 색.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다. 도로 위로 듬뿍 뿌려진 모래 덕에 크게 무리는 없다. 뒷 좌석의 사람들은 김서린 창을 문질러 밖을 확인한다. ‘아름답다’는 표현들이 들린다. 느린 속도 덕분에 아름다운 경치를 얻은 셈이다.

부석사 입구를 지나치고 드디어 봉화의 물야면에 닿았다. 왼쪽 차창 밖으로 보이던 백두대간을 이제 정면으로 두고 달렸다. 차 안에서 그나마 그 지역을 아는 내가 설명을 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저 능선이 ‘백두대간’이에요. 저기 골짜기 곳곳에서 물이 흘러와 내성천이 되는 거에요.”

 

곧 오전약수라는 곳에 도착할 거라고 덧붙였다. 강은 어느 한 곳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야 전체에서 발원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으나 차는 금세 오전약수에 도착했다.

지율스님은 앞장서 걸어가 약수 앞에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30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그 땐 정말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정말로 병을 고쳐나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조선시대 약수대회에서 1등을 했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람도 고치는 강’인 셈이다.

_MG_2595.jpg » 물야저수지.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그들은 이곳에서 물을 꾸준히 마시고 요양한 뒤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_MG_0534.jpg » 거북이 조형물에서 '병도 고치는' 약숫물이 끊임없이 나온다.


_MG_2588.jpg » 물 맛을 보는 참가자들. 처음 맛보는 물에 대해 표정이 제각각.

_MG_2591.jpg » '철봉 맛'을 본 참가자 재희. 표정에서 물 맛이 느껴진다.

_MG_2594.jpg » 어느 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토록 큰 낙동강도 처음에는 작은 개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다.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물은 70%내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생명의 생성과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물이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은 우리를 만들어 주고 또 치료도 해 주는 그야말로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

그런 막강한 능력을 가진 약수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거북이 입에서 많지 않지만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 물맛이라면 내가 판단하기로 ‘철봉 맛’이다. 병을 고치는 이유가 아니라면 보통의 맹물처럼 벌컥벌컥 들이킬 ‘맛’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스님의 설명 덕인지 아이들도 한 바가지씩 들이킨다. 처음 맛보고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했던 나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도 고치는 내성천 발원지를 조금 떠나 하류 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넓디 넓은 호수가 나왔다. 다름아닌 물야저수지다. 얼음이 얼고 그 위로 눈이 쌓였다. 꼭 드넓은 설원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인공적인 호수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괜히 심술이 났다. 참가자들도 ‘멋지다’, ‘아름답다’ 같은 말들을 뱉어냈다. 그들에게 ‘4대강 사업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乃城川 三百里(내성천 삼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하고 새겨진 발원지 비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다. 이른 아침 따뜻한 이불 속에서 지었던 ‘귀찮은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부터 진짜 답사의 시작이다.

_MG_2621.jpg » 내성천 발원 기념비 앞에서 단체사진. '소한'의 혹한에도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다.

내성천은 봉화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일대에서 발원해 물야면과 봉화읍내를 관통한다. 영주의 이산면과 평은면 사이사이의 크고 작은 논 밭 사이를 흘러흘러 예천군의 산야도 비껴 흘러간다. 이제는 유명해진 회룡포에서 360도 방향을 튼다. 이렇게 300리, 즉, 120㎞ 정도를 흐른 뒤 경북 예천의 삼강마을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공식적(?)으로 낙동강은 태백시의 황지에서 발원한다고 하지만 강으로 흘러오는 산골짜기 곳곳이 어찌 ‘발원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내성천은 발원하자마자 물야저수지에 갇혀 강 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도중에 크고 작은 수많은 농업용 보들로 멈칫거린다. 봉화 읍내를 지나 이산면에 이르면 내성천은 자연적인 모습으로 회복한다. 좌우로 굽이치며 한 쪽은 가파름을 한 쪽은 완만함을 남겨둔다. 완만한 쪽엔 깨끗한 모래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다양한 생물들의 쉼터가 된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곳의 아름다움은 크나큰 덤이다.

특히나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또 세계적으로도 드문 모래강이다. 강 표면에 드러난 곳은 물론이고 영주댐을 건설하며 드러났 듯 강 속 20m 내외까지 모래가 가득 차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는 물은 충분히 흘러가고 유기물은 걸러낼 만큼의 공간이 있다. 걸러진 유기물은 모래 알갱이에 붙어사는 다양한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 덕에 모래강은 ‘정수기’ 노릇을 톡톡히 하며 맑은 물을 유지시켜주는 특별한 강인 셈이다. 더군다나 낙동강에도 엄청난 모래를 공급하여 ‘정수기’ 구실을 전해주기도 한다. 안동댐 상류의 낙동강 모습과 내성천이 합류한 다음의 낙동강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내성천에 거대한 댐이 건설되고 있다. 영주시 평은면에 공공기관(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과 여러 민간건설사(삼성물산과 동부건설 등)이 힘을 모아 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갇혀버리면, 댐 상류는 거대한 호수가 되어 버리고, 하류는 모래가 끊겨 자갈만 드러나게 된다. 모래강의 특징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세워졌던 댐 계획은 1999년에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고, 10여년간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왔던 걸 생각하면, 댐 건설 목적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영주댐 홍보물에는 댐 건설의 첫번째 목적으로 ‘중하류지역의 수질개선을 위한 하천유지용수’라고 밝히고 있다.

모래강의 신비나 영주댐으로 인한 파괴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지율스님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첫 날의 메인 프로그램을 ‘내성천 얼음썰매 타기’로 넣었을 것이다.

_MG_2709.jpg » 어른이 아이의 썰매를 끌어주기도 하고,


_MG_2674.jpg » 어른이 어른의 썰매의 끌어주기도 했다. 썰매에 타면 일단 아이로 변신!


_MG_2679.jpg » 강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함박 웃음을 주었다.


_MG_2681.jpg » 이렇게!


_MG_2711.jpg » 썰매타기의 마무리는 뜨끈뜨끈한 군고구마로.


봉화읍내에는 내성천 위에 모래를 조금 걷어낸 뒤 물을 가두어 만든 얼음썰매장이 있다. 게다가 썰매는 무료로 빌려주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신나서 썰매를 들고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며칠 전만 해도 얼지 않아 운영을 못 했다. 강추위가 고맙기도 하다.

썰매 위에 앉거나 무릎을 꿇었다. 못이 박힌 작대기를 얼음판 위에 꽂고 뒤로 밀었다. 쌓인 눈 때문에 ‘신나게’ 가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웃음소리만큼은 얼음판 여기저기로 미끌어져 갔다. 서로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얼음판을 즐겼다.

이 썰매장 홍보물에는 ‘추억의 썰매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강 가장자리가 얼면 나무 판자에 길고 날카로운 쇳조각을 대고 썰매를 만들어 탔다. 논에 물을 대고 얼려 아이들을 위한 썰매장을 만들기도. 어른들의 ‘추억’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주는 셈이다. 이젠 이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도 이날의 썰매타기는 오래동안 기억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다 컸을 때, 그들의 아이들도 이와 같이 탈 수 있다면 좋겠다. 다 사라지고 지금은 이렇게 진짜 강 위에서 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은 몇 안되니 말이다.

썰매장의 흥분 때문이었을까 괴헌고택으로 이동한 뒤에도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았다. 강은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져 있었고, 논은 경작금지 팻말을 앞세우고는 여러가지 들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강 일대 새들의 생태를 설명할 요량으로 참가한 박중록 선생님(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은 우리들이 도착하자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이 ‘쑥새’라고 설명했다. 그는 “쑥새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있는 건 처음 봅니다.”라며 이곳 일대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알렸다.

지율스님은 “댐이 건설되면서 이곳에 농사를 못 짓게 했어요. 1년 정도만 묵혔을 뿐인데 여러가지 생명들이 돌아왔어요.” 두더지나 곤충들, 그리고 새들도 기존의 논에 비해서 훨씬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이 논들은 사실, 제방이 생기기 전까지는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강 습지 였다.

_MG_2762.jpg » 이산면 일대의 논은 지난해 농사를 짓지 않았다. 불과 1년 정도만 지났을 뿐인데 많은 생명들이 돌아왔다.


_MG_2783.jpg » 말똥가리는 하늘에서 답사단을 반겨주었다.


_MG_2755.jpg » 수몰지구 내에 있는 괴헌고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 하더라도 그 '문화'까지 옮길 수 있을까?


_MG_2724.jpg » 괴헌 고택 안을 살펴보는 지율스님.


_MG_2728.jpg » 괴헌 고택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 아이들.

곧이서 큰 새가 날아올라 우리 위를 빙~빙~ 돌았다. 말똥가리였다. 이들도 곤충이나 작은 새들, 두더지들과 함께 불어났다. “와~ 크고 멋진 새가 우리를 반기네요!” 아이같은 순수가 섞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지율스님이었다. 마치 이곳의 자연이 다소나마 살아난 것이 자신이 살아났다는 듯한 인상이다. 얼마나 기쁜 목소리인지!

아쉽게도 파헤쳐진 강은 이곳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즐겁게 놀던 아이 준일이도 ‘멋진 새’를 올려다보다 휘청하며 강 쪽으로 떨어질 뻔 했다. 그가 서 있던 곳이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가파르게 쌓아놓은 작은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영주댐이 완공되고 담수를 하게 되면 몇 년동안은 이곳 논은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결국엔 수장되고 말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빌었다.

숙소 봉화전원생활센터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동국대학교에서 생태학을 가르치는 오충현 교수님이다. 그는 답사단에게 복잡하지 않은 ‘생물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리산에 방사한 몇 마리의 곰들이 번식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진 뒤 생명들이 대를 잇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개체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호랑이의 경우에는 암수 각각 300마리 이상이 있어야 ‘유전자의 다양성’이 유지되어 그들이 멸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근친으로 태어난 자식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_MG_2820.jpg »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그는 참가자들에게 '생물다양성'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또 다른 질문으로 “‘종’보전을 위해 동물원만 있으면 될까요?”하고 던진 뒤, 그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생’의 서식지가 없으면 보전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범위는 어떤 동물은 좁고, 어떤 동물은 넓다. 서식범위가 넓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충분한 서식지가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론을 강에 접목시켜 설명했다. 강이 댐이나 보들로 가로막혔을 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기존의 환경에 적응해오던 동물들이 호수가 된 강에서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은 수위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많이 날 뿐 아니라 흐름도 각기 다르다. 갑자기 그런 곳이 깊은 호수로 변했을 때 어떻게 될까? 강 속의 생태가 바뀌면 그 강에 적응해 있던 강 밖의 생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내성천은 더군다나 모래강으로 모래에 적응해 살고 있던 생물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생물이 이곳에서 멸종되면 전세계에서 멸종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흰수마자’가 그런 꼴일 것이다.

낮의 쾌활했던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아닌가. 우리가 내성천의, 낙동강의 슬픈 현실을 알았다면 행동하면 될 일. 희망을 갖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기쁜 일이다.

_MG_2793.jpg » 가장 활기차게 뛰어놀던 아이, 준일. 갑자기 눈 밭에 드러누워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_MG_2796.jpg » 조심스레 일어나 머리위에 선을 하나 그었다. '천사'라는 설명이다. 그는 강변에 천사를 남겨두고 왔다.

 

글·사진 김성만(필명 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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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메일 : sungxxx@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likeb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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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탕평' 원한다면 특권층 1%와 싸워야

박근혜, 사도세자를 두 번 죽이지 말기를...

[게릴라칼럼] 진정한 '탕평' 원한다면 특권층 1%와 싸워야

13.01.14 19:53l최종 업데이트 13.01.14 21:37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교부받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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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은 취임 직후부터 '대탕평 인사'를 국정 키워드로 표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실현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약속이다.

탕평은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의 '홍범' 편에 나오는 정치이념이다. 여기에는 군주가 지켜야 할 9가지 정치원칙인 홍범구주가 나온다. 이 중에서 제5원칙이 탕평과 관련된 내용이다.

제5원칙의 핵심 내용은 군주가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5원칙을 다룬 부분은 "황극(皇極)은 임금이 표준을 세우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군주가 표준을 세우는 상태' 즉 '군주가 중심이 되는 상태'가 황극이며, 이 황극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 제5원칙이다. 황극의 실현 방법과 관련하여 다음 두 문장이 특히 관심을 끈다.

"일반 백성들이 은밀히 뭉치지 않고 높은 사람들이 뭉치지 않는 것은 임금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제1문장.
"치우침이 없고 당을 만들지 않으면 왕도가 탕탕(蕩蕩)하고, 당을 만들지 않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평평(平平)하다."-제2문장.

제2문장의 '탕탕'과 '평평'을 압축한 게 탕평이란 두 글자다. 탕평의 의미는 제1문장에 나온다. 백성들이 파벌을 만들어 끼리끼리 뭉치는 상태를 배격하는 것이 바로 탕평이다. 바꿔 말하면, 여러 집단과 계층이 골고루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탕평이다. 이 같은 탕평을 통해 '임금이 중심이 되는 상태'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탕평의 본질, 국가가 특정 파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것
 

영조의 어명으로 세워진 탕평비가 보관돼 있는 탕평비각.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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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국가의 중심이 되는 것이 탕평이라면, 이것은 군주 독재를 위한 논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탕평의 본질은 국가가 특정 파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백성들이 끼리끼리 뭉치지 않도록 군주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특정 당파가 아닌 백성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 조직이 움직이도록 군주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보다는 '높은 사람들' 즉 특권층이 당파를 만들 위험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제5원칙의 궁극적 목표는 특권층 내의 파벌이 국가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모으는 것은 탕평이 아니다. 국가가 백성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탕평이다. 이것은 인사조치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가의 법률제도까지 과감히 뜯어 고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1% 귀족의 나라'가 아닌 '100% 만백성의 나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왕권도 자연스레 강해질 것이라는 게 옛날 왕들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왕권이 비교적 강했던 중국과 달리, 귀족이 더 강했던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탕평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었다. 1%를 규제하고 100%를 위하는 군주는 1%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임금은 폭군이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1%가 99%보다 훨씬 더 강했기에, 옛날 우리나라의 왕들은 탕평을 감히 추진하기 힘들었다.

탕평이 공식적으로 추진된 것은 조선 후기인 18세기 초반부터였다. 숙종 임금(재위 1674~1720년) 때에 당파 투쟁이 최고로 격렬해지고 이 틈을 타서 숙종이 당파들을 교묘히 대립시키고 지치게 만들면서, 당파 정치는 이전과 달리 크게 약해졌다. 물론 그 후에도 보수파인 노론당 계열이 여전히 제1당이었지만, 숙종시대 후반부터는 노론당을 포함한 당파들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렇게 당파 정치가 약화된 틈을 타서, 숙종의 아들인 영조가 선언한 것이 바로 탕평정치였다. 그는 '1% 양반 귀족의 나라'가 되어 버린 조선을 '100% 만백성의 나라'로 바꾸려면 특정 당파의 독점을 깨고 당파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왕권이 자연스레 강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이런 시도의 결과로 영조가 즉위한 1724년부터 정조가 사망한 1800년까지는 '1% 조선' 이 아닌 '100% 조선'을 위한 탕평정치가 추진되었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구현된 것도 아니고 또 노론당이 힘을 잃은 것도 아니지만, 이전 시기와 비교하면 이 시대의 정치는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었다.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던 경모궁 터. 서울대병원 뒤편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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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사망한 장소인 창경궁 문정전 앞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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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대에 영조나 정조보다 훨씬 더 교과서적으로 탕평을 추진한 인물이 있었다.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영·정조는 약간 타협적으로 탕평을 추진했다. 탕평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특정 당파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특히 영조는 정권 유지를 위해 외척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처럼 완벽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이전의 왕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한 것을 그들이 용감하게 시도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특권층과 죽기 살기로 싸운 이유

다소 타협적인 영·정조에 비해 사도세자는 매우 원칙적으로 탕평의 이념을 고수했다. 그는 1749~1762년의 13년 동안 영조를 대신해서 대리청정(권한대행)을 수행했다. 따라서 탕평정치가 시행된 76년 중에서 13년 동안은 실질적으로 사도세자의 시대였다. 그러므로 탕평정치의 계보는 영조-정조가 아니라 영조-사도세자-정조였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사도세자는 '100% 조선'을 이루려면 특권층인 노론당과 외척세력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노론당을 얼마나 경계했는지는 나이 열 살 때부터 노론당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노론당을 비호한 영조의 태도까지 비판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처가인 홍씨 가문이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선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그는 외척세력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견제했다. 노론당과 외척으로 이루어진 '1%'를 견제했던 셈이다. 한마디로, 그는 '100% 조선'에 목숨을 건 용감한 사나이였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 13년 만에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은 것은, 그가 교과서적인 탕평을 추구했고 그것이 특권층에게 공포심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화병을 앓았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뒤주에 갇힌 본질적 요인은 '1%'와의 갈등이었다.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의 복원품.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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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1%로부터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는,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죄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인 정조가 왕의 자리에 있을 때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왕의 아들이 아닌 사람이 왕이 되면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정조는 끝내 이 일을 하지 못했다. 사도세자에 대한 특권층의 거부감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된 것은 구한말 때인 1899년이었다. 100%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1%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를 수 있는지를 사도세자는 온몸으로 보여줬다.

사도세자는 251년 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그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탕평을 외치고 있다. 서울 시민은 물론이고 지방 사람들도 많이 찾는 대학로 서울대병원의 바로 뒤편에는 그의 위패를 모셨던 사당인 경모궁의 터가 남아 있다. 또 경모궁 터에서 왼쪽으로 직경 500미터 거리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사망한 곳인 창경궁 문정전 앞뜰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탕평을 원한다면, '1% 대한민국'이 아닌 '100% 대한민국'을 정말로 원한다면, 경모궁 터와 문정전 앞뜰에서 울려퍼지는 사도세자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의 정치환경에서는 사도세자처럼 특권층과의 대결을 불사하지 않고서는 탕평을 추진할 수 없다. 한여름 날씨에 8일간 뒤주에 갇혀 세상과 작별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탕평이다.

박 당선인이 '100% 대한민국'을 위한 대탕평을 하고자 한다면, '죽기 살기로' 1%와 싸울 각오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진정성 있는 탕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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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가능한 부정 기획개표 매카니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1/15 09:49
  • 수정일
    2013/01/15 09: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추론가능한 부정 기획개표 매카니즘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시스템과 실행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가능


 

(서프라이즈 / 독고탁 / 2013-01-14)


 

"해킹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중앙선관위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방송사와의 인터뷰에 나서서 전국민을 상대로 외칩니다. 선관위 전산시스템은 어떤 해커들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을 보장받은 듯 주장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굳이 거창하게 '해킹'할 필요조차 없어 보입니다. 단순히 기계의 특성만 이용해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니까요.


 

OMR 카드리더기

* OMR(Optical Mark Reader, 컴퓨터 입력 장치의 하나로, 빛을 이용해 마크 시트 따위의 용지에 연필이나 펜 등으로 표시한 부분에 빛을 비추어 판독하고 전기 신호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한다. 자료의 내용이 비교적 단순하고 양이 많은 업무를 고속으로 처리하는 데 널리 이용되고 있다. 주로 시험의 해답을 체크하는 데 이용된다. - 네이버백과)

대학수능시험에서 사용하는 OMR 답안지에 학생들은 수성사인펜으로 마킹을 합니다. 한 과목에 수십개의 문항이 들어 있습니다. 과목에 대여섯개 되니 대략 300여개의 문항에 마킹을 하는 셈입니다.

 

 

학생들이 작성한 OMR 답안지가 모이면 OMR 카드리더기로 판독을 합니다. OMR이 처음 개발되어 상용화된 것이 1950년대 부터이니 상당한 역사가 흐른만큼 기술도 측적되었을 것입니다.

 

 

위의 기종은 비교적 낮은 사양에 속하는 OMR카드리더기로 가격도 저렴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무려 분당 300매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보다 사양이 높은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 리더기는 분당 처리속도가 500매입니다. 즉, 1초당 8장의 OMR 카드를 처리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1장을 리딩할 때마다 200회 이상 데이터비교 검색이 가능하다고 하니, 처리 속도가 빨라서 오류가 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군요.

OMR카드리더기의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을까요? 만약 대입 수능시험에서 OMR 카드리더기의 문제로 인해 학생들의 성적이 뒤죽박죽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번>에 색칠을 했는데 <1번>에 색칠한 것으로 채점이 된다면 학생들 성적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학부형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OMR 카드리더기가 실수한 것 본 적 없다 - 30년 교사의 증언

OMR 카드리더기도 기계인데 오작동이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30년 경력의 현직 고등학교 교사에게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습니다.

"OMR카드리더기가 고장이 나서 아예 작동을 하지 않으면 모를까, OMR카드리더기를 통해 나온 결과가 틀리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제가 있는 답안지는 바로 튀어나온다. 채점 후 OMR카드를 학생들에게 돌려주는데 문제가 있다고 들고 찾아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 경우라도 색상이 희미하거나, 두 개를 선택했거나 모두 학생들의 실수나 잘못으로 판명이 나지 기계가 잘못읽어 오류가 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OMR카드리더기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이 증언은 OMR 카드리더기가 그만큼 정확도가 높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 주변에 고등학교 교사들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주변의 교사분들께 한번 물어보셔서 확인하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카드리더기>의 성능이 어떤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그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학부모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자녀의 대학입학 문제일 것입니다. 만약 교과부에서 사용하는 OMR카드리더기의 기능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면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단 한 장의 잘못 읽혀진 카드가 발견된다고 해도 교과부로 달려가서 쑥대밭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에서 카드리더기가 엉망진창으로 읽고 분류를 했는데도 왜 아무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는 걸까요?


전자개표기에는 '인공지능' 기능이 달여있지 않다

우리가 기계를 사용하는 이유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단순 반복되는 일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위배하면 기계를 사용할 이유 자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위 '기술'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사람 백이면 백 길을 막고 한 번 물어보십시오.

국가에서 하는 업무를 위해 납품받는 기계가 센서를 이용하여 결과물을 분류했는데, 저토록 선명하고 분명하게 두 번째 칸에 마킹이 된 것을 첫 번째 칸에 마킹한 것으로 오인하여 분류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한 번 물어나 보십시오. 과연 저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한 번 물어 보십시오.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요.

 

 


(박근혜 묶음표에서 발견된 문재인표)

 

정상적으로 제작이 되었고, 검사를 거쳐 제대로 납품된 기계가 저런 결과를 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 제품을 납품한 회사는 망했어야 합니다. 회사 사장은 처벌받고 손해배상은 물론 패가망신했어야 하는 거지요. 제조회사가 저토록 부실한 제품을 국가에 납품하고도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요?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기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아닐까요? 저러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애지중지 사용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저 회사 사장을 집어 넣어야 옳은 것 아닌가요?


 

기계의 특성을 이용한 부정 기획개표 매카니즘

지금부터 드리는 얘기는 이번 대선에서 부정이 저질러진 방식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추론입니다. 그리고 전제가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사용한 자동개표기가 적어도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OMR카드리더기 만큼의 정확도와 신뢰성을 갖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기계가 잘못되어서 그렇다'라는 주장은 개무시한다는 뜻입니다.

기계가 잘못되어서 그런지 여부는 <기계의 정확도를 검증하는 기회>에 하면 될 일입니다. 국정조사를 하든, 제조업체에 대한 조사를 하든, 샘플링을 하든, 관련 세미나를 하든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기계가 별 것 있나요. 기계는 기계일 뿐, 그것의 신뢰도를 검증하는 것은 일도 아닌 일입니다.

 

 

개표소에서 테이블 위헤 무작위도 쏟아진 표를 사람들이 대충 모아서 자동개표기에 넣습니다. 그런데 자동개표기를 거쳐서 나온 결과물 100장 속에 무려 10장 씽이나 잘못된 결과물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상황에서 저질러진 부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을 탈 겨를도 없이 기계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니까요. 그런데 <전자개표기가 적어도 OMR카드리더기 수준의 정확도와 신뢰도가 있다>고 전제한다면 이것은 기획(프로그램)된 결과물로 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기획(프로그램)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지금부터의 추론입니다. 전자개표기는 컴퓨터의 제어를 받습니다. 선관위에서는 <단순 분류기>라고 거짓말을 해댔지만 <컴퓨터의 제어를 받는 전자개표기>라는 사실은 수많은 네티즌들의 검증과 사진증거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첫째, 유치하고 뻔한 방법입니다만, 프로그램 제어 방식으로 일정 분량의 상대표가 포함되어 들어가도록 제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멀쩡한 표가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는 원리를 설명하기 어여룬 것이지요. 결국은 사람의 일입니다. 그렇게 부정을 저지를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에 딸린 문제입니다. 기계는 그런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실행가능한 환경을 제공할 뿐이지요.

둘째, 일정 시간 센싱기능의 정지입니다. 눈으로 보면 멀쩡하게 돌아가지만 내부에서 분류할 때 예를 들어 분당 300장을 리딩하는 기계라면 초당 5장을 처리하게 되는데, 1분 가운데 단 1초 동안이라도 센싱(Sensing)기능이 동작하지 않도록 셋팅한다면 5장이 랜덤(Random)으로 섞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는 반반 섞여 들어가는 거지요. 그것을 제대로 걸러내는지 여부는 뒤에 앉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기계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동개표기가 적어도 국내 수많은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OMR카드리더기 만큼의 성능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이번에 나타난 현상은 위의 두가지 조작 방식외에는 추론할 방법이 없습니다.

독고탁


덧글 : 선관위는 전자개표기가 아닌 전자분류기라고 주장하지만 아래의 사진을 보면 선관위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센싱하면서 부지런히 집계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여 있으니까요. (사진출처 : 아고라 - 안양 만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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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②] 이명박 정권, 노동자 대상 손배 본격화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5 오전 8:09:10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노동자들의 죽음을 현 정권과 연결시키려는 주장은 잘못됐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말이다. 이 장관은 "손배나 가압류 문제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유서에 언급됐으나,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고 개인에 대한 사항은 없다"면서 이와 같이 발언했다.

이 장관은 "손배는 노무현 정부 때가 건수는 훨씬 많고 금액은 이명박 정부 때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때 손배와 가압류 건수는 각각 62건, 60건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33건, 26건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이 지적한 대로 손배·가압류 문제가 이명박 정권 들어 처음 나타난 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손배·가압류는 존재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씨가 분신 자살했고, 같은 해 10월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던 2003년 당시 언론은 손배·가압류를 '신종 노조 탄압 수단'으로 지목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손배로 노동자가 죽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였던 최강서 씨는 지난해 12월 21일 '158억 손배 철회, 민주노조 사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손배는 어떻게 '신종 노동 탄압' 수단이 됐나?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손배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경영계는 주요 파업 대처 방식으로 민사소송보다는 형사소송을 통한 파업 주동자 구속·수감을 택했다. 노조 간부 구속 및 수억 원대 손배 청구동시에 이뤄졌지만, 파업이 끝난 후 노사가 서로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관례였다.

2000년대 초반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경영계에서 손배 청구는 노조에 대처하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적 압박 카드'로 부상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설 연구원이 2004년 내놓은 '불법 쟁의 행위와 손해배상·가압류에 관한 연구'를 보면, 경영계는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최소한의 자구 조치"라고 주장했다.

손배의 양태도 달라졌다. 경영계는 '노조 조직'에만 부과하던 손배를 2000년대 이후 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평조합원, 가족, 신원보증인에게도 부과했다. 가압류 대상도 노조 조합비에서 노조원 개인의 임금 및 퇴직금, 노조원의 아버지나 형제의 선산까지로 확대됐다. 친척에게까지 '연좌제' 성격차압이 들어오니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 관계가 파탄 나는 것은 당연했다.

배달호·김주익 씨가 숨진 2003년 전후 손배는 '노조에 대처하는 협상 카드'에서 '노조 탈퇴 압박 수단'으로 차츰 진화했다. 사측은 전방위적으로 손배·가압류를 걸어 노동자를 압박한 뒤,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가압류를 취하했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손배를 갚을 수 있는 길은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한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라며 "그렇게 노조 간부들이 회사와 손잡고 해고 명단이나 손배 대상에서 빠지면, 노조는 완전히 깨진다"고 말했다.

배달호 씨의 죽음은 '손배 탄압'의 상징이었다.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던 배 씨는 2002년 단체협상이 어그러지고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이 압류됐다. 배 씨는 구속된 이후 현장에 복귀했지만, 가압류로 6개월 이상 사실상 임금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초반에 배달호 씨의 죽음을 외면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김주익 지회장마저 '손배'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 전 대통령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났다. 2003년 11월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열고 급여에 대한 가압류 범위를 최저임금이 보장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경영계도 신원보증인과 평조합원에 대한 손배 청구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가압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이 주로 '징계 해고자'라는 점이다. 이미 해고돼 최저임금만큼 남겨둘 '급여'조차 없는 노조 간부들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은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차압됐다. 해고 시 가압류로 퇴직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이명박 정부 때에도 이어졌다.

"민주노총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 575억→1582억"

이명박 정부 들어 변한 것도 있었다. 우선 이채필 장관 스스로 밝혔듯 손배 액수가 절대적으로 늘었다. 민주노총이 2011년에 낸 정책 보고서를 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은 2003년 10월 575억 원에서 2011년 5월 1582억7000만 원으로 3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손배 액수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고용노동부 자료를 따르더라도, 손배 총액은 2010년 121억4200만 원에서 2011년 7월 700억1000만 원으로 6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2010년 13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160억4900만 원으로 12배가 됐다.

손배 액수가 커진 이유에 대해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2003년 직전까지만 해도 돈 있는 사측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손배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나,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제한하려는 노력이 없다 보니 마구잡이로 금액을 청구한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노조에 대한 손배 청구 본격화

이전까지 손배 청구 주체가 주로 사측이었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 정부가 노조와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손배를 청구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가 대표적이다.

2009년 당시 1년치 최루액 사용량의 90%를 사용해 파업을 진압했던 정부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상대로 경찰 치료비와 경찰 개인 위자료 및 장비 손상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의 원고 '대한민국 및 경찰'이 피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노동자 103명에게 세 차례에 걸쳐 청구한 손배 금액만 22억 원이다. 65명을 대상으로 청구한 가압류 금액도 20억 원에 달한다.

2011년 사측이 공격적으로 직장 폐쇄를 한 유성기업에서도 정부가 유성기업 노동자 30여 명에게 '경찰 피해 및 장비 손상비' 1억1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2800만 원의 가압류를 신청했고, 해고자인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장의 퇴직금을 압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국가가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승소한 손배 소송 수는 8건, 압류를 마친 손배 액수는 1억6000만 원이다. 이는 정부가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화물연대(특수고용직) 파업에 대한 손배 소송, 그리고 패소한 소송과 진행 중인 소송은 제외한 수치다.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이전에는 회사만 손배를 때렸지만, 국가까지 나서서 노동권이 있는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며 "다친 사람은 우리가 더 많은데 경찰 개인 위자료 2억 원까지 청구하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공공 부문에서 정부가 '손배로 적극 대응' 독려하기도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파업 유도→고소·형사처분→파업 불법화→징계해고·손배 소송→노조 파괴'를 묵인하거나 조장한다고 분석한다. (☞ 관련 기사 : "노동부, 타임오프 감독하며 금속노조 찍어 관리", "용역한테 쇳덩이 맞고 살려달라고 해도 경찰은…", "폭력을 상품화한 그들, 몸통은 현대차")

정부와 경찰의 묵인 하에 손배는 '노조 압박' 수단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민주통합의원이 아산경찰서에서 입수한 문건을 보면, 경찰은 "유성기업 파업은 적법"하다고 자체 판단했지만 "(파업) 상황이 악화하고 여론 지지를 확보한 뒤 경찰력 투입, 노조 지도부 체포영장 조속 발부를 통한 (노조) 지속 압박, 사측에 손해배상 청구 유도를 통한 지속적 노조 압박" 등의 대응책을 내부 문건으로 공유했다. (☞ 관련 기사 : 구사대 동원 트라우마, 유성기업 노동자 자살)

공공 부문에서는 정부가 더 노골적으로 '노동 탄압'을 주문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한국전력 자회사인 발전회사들의 노조 탄압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가 직접 주관한 회의에서 공기업의 "(민형사상) 고소, 고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독려했다는 점이다.

2009년 9월 17일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주재로 '노사관계 회의'가 열렸다. 노동부, 행안부, 지경부, 교과부, 방통위 등 정부 부처 국장이 참석한 자리였다. 발전노조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철도공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노조 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지 실천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준 차장은 "해당 기업이 고소, 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 당부"라며 손배를 포함한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독려했다.

이영호 비서관은 "인사권, 경영권에서 양보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대처"하되 "이면계약 등 노사 간의 이면 합의는 절대 용납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정부가 이미 일어난 노사 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정부가 직접 '노사 문제에 개입'해 노사 분규를 유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영호 비서관이 '노조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한 철도공사의 상황을 보자. 철도공사는 2006년 3월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철회, 인력 충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걸고 불과 나흘간 돌입한 파업을 빌미로 2009년 100억 원대의 손배 소송과 가압류를 단행했다. 2009년 파업 때도 노조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200여 명이 해고됐고 1만3000여 명이 징계됐으며,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뒤따랐다.

결과는 참혹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참여한 이후 해고자가 된 허모 씨(39)는 2011년 11월 21일 화장실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가 '발전노조 대응 회의'를 한 지 두 달 뒤인 2009년 11월에는 동서발전이 발전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파업을 유도했다. 한전은 발전회사 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실적과 '노조 사무실 회수' 노력을 경영 평가에 반영했다. 같은 해 발전노조 영흥화력 남성화 지부장은 '근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됐다. 발전회사가 노조에 걸었던 손배 소송은 결국 법원에서 기각됐다.
 

▲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 민영화 등에 반대해 4일간 파업을 벌였다가 철도공사로부터 100억 원대 손배 소송에 휘말렸다. 사진은 철도노조가 지난해 2울 서울역 광장에서 KTX 민영화 반대 결의대회를 여는 모습. ⓒ연합뉴스


수십억 원대 손배액은 합당한가?

손배 가압류가 노동자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에도 경영계는 손배·가압류가 '불법 파업을 막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합법 파업'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은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법원은 파업권과 경영권이 충돌하면 경영권이 우선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철도노조가 KTX 민영화에 반대하거나, 한진중공업 지회가 정리해고에 반대하거나, 언론노조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거나, 두산중공업 노조가 회사 매각에 반대해 파업하면 '불법'이다. 파견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원청 사업장에서 파업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사측이 청구하는 수억, 수십억 원대의 손배액이 합당한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일례로 경주 발레오만도가 파업 참가자 32명에게 청구한 손배액 26억4800만 원에는 영업 손실액, 용역 투입비와 더불어 파업에 따른 '사장의 명예훼손 및 정신적 피해 위자료'가 포함됐다.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파업으로 손해가 안 생겼을지라도 사측은 노조 압박 수단으로 손배 대상이 안 되는 천문학적 액수를 일단 청구하고 본다"며 "설사 법원에서 몇 년 뒤에 기각 판결이 나더라도 당장 파업을 진행하는 노조를 무력화해야 하고, 가압류도 (되면 좋고) 법원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이 신청한 '가압류'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신속하게 재산을 차압해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사측의 자료를 넓게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 법률원장은 "노조로서는 영업 손실액이 적절한지 확인할 정보가 없고, 법원은 사측이 면밀한 손실액을 입증하지 않아도 사측 자료를 편의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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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 최고 스타 '박근혜 기초노령연금 공약' 뒤집어지나

 


대선기간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수많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정치쇄신부터 경제민주화,일자리,고용복지,중산층 재건,골목상권 살리기,대학등록금 등 수백 가지의 공약을 국민에게 제시했고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공약이라는 것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말입니다.

앞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어떻게 그 공약들을 실천할지 검증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우선 '기초노령연금'을 다루고자 합니다.


 

 

▲박근혜 후보 공약집 중 '기초연금 도입'부분 출처:박근혜 후보 공약집http://park2013.com/policy/down/peo_3.pdf

 


'노인정의 스타, 박근혜 기초노령연금 공약'

박근혜 후보는 대선기간 '기존의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현재의 2배 수준(약 20만 원)으로 인상해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이 공약이 나오자 많은 노령층은 반겼고, 노인정을 비롯한 각종 노인회에서 박근혜 후보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기초노령연금 트윗, 같은 내용은 하루에 4번 이상 올렸다. 출처:이노근 의원 트위터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선거운동원들은 박근혜 후보의 '기초노령연금'을 들고 노인정을 찾아다녔고, 노인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기초노령연금 인상에 대해서 대다수 노인들이 20만 원으로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기초노령연금'은 박근혜 후보의 잘 나가는 공약 중의 하나였고, 이 공약으로 많은 표를 얻었다는 사실은 직간접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새누리당에서 '기초노령연금' 인상은 없었던 말이고, 그 시기 또한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공약 뒤집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인 나성린 의원은 14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대선 공약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내년부터 20만 원씩 지급한다'고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분명 공약집에는 '기초연금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인상하여 지급'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또한 '내년부터라는 말이 없고 2013년부터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공약집에는 '기초노령연금법의 기초연금법 전환개정(2013년)'고 명시되어 있으며, 소제목으로 '새누리당의 실천'이라고 굵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공약은 했지만, 재원 마련은 요원하기만 하고'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과 다르게 말을 주장하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기초노령연금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올려주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기초노령연금을 인상할 경우 소요 재정이 4조 원가량으로 드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연간'3조6천억 원'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전문가와 보건복지부는 11일 업무보고에서 연간 4조가 아니라 '연간 9조원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략 4조 원의 재원마련도 어려운데 실제 업무부서에서는 '연간9조원'이 드는 계산 결과가 나오니 박근혜 당선인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고, 이는 인수위 브리핑에서 '부처와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사이의 불협화음이 나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도대체 기초노령연금은 뭐고, 기초연금은 뭘까?'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기초노령연금 대상과 기초연금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현재 노인들 중 하위 70%가 받는 (대상자 2012년 420만 명)이 받는 '기초노령연금'과 공약집에 나온 '기초연금'은 다른 것으로 기초노령연금은 정부가 인상안을 앞으로 논의할 것이고, 30%에 해당하는 대상자는 국민연금에 편입하여 모든 노인이 20만 원을 대략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공약집에 맞추어 해석하자니 나성린 부의장의 말이 맞지가 않거나 나부의장의 말대로 하자니 공약집과 너무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검토해 본 결과 새누리당 나성린 부의장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급한다고 한 적은 없다. 나머지 30%는(국민연금 가입자) 국민연금과 연계하여 이미 다양한 형태의 연금을 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에 편입해서 통합 운영하겠다.(새누리당 나성린)



결국, 모든 노인 매월 20만 원 공약은 현재까지 어떤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도 아니고, 법 개정이 올해 안에 실현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이렇게 새누리당이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을 뒤집는 이유는 '국민연금'에 관한 젊은 세대의 반발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국민연금은 내 자산인데??'

새누리당이 복잡하게 말을 바꾸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막대한 재원 때문인데, 현재 박근혜 당선인은 증세 없이 기초연금을 확대하기 위해 국민연금 재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실제로 가입자의 '사유재산' 성격이 강합니다. 이에 반해 기초노령연금은 '공적부조'로 실질적인 복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재원을 기초연금으로 충당된다고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의 추가 재원이 없다면 분명 국민연금의 재원은 흔들릴 것이고, 이 때문에 현재 국민연금가입자가 추후에 받는 연금은 축소 또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초노령연금과 기초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전체복지를 어떻게 재원을 마련해서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재원을 마련해서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 원씩 지급할 수 있다면 오해의 소지가 없겠지만, 재원이 없다 보니 '국민연금으로 재원을 충당한다', '모든 노인이 지급 대상이 아니다',' 법 개정을 이제부터 하겠다'라는 말만 무성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TV 토론에서 '기초연금은 모든 국민들에게 65세 모든 국민에게 다 드릴 수가 있고, 이번에 제가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꼭 이것은 실행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초노령연금과 기초연금은 성격의 차이가 있는 제도입니다. 새누리당은 대선 기간 마치 모든 노인이 그냥 공짜로 매월 20만 원씩 받는다고 노인에게 홍보했지만, 사실 기초연금의 일부분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자신이 낸 연금을 돌려받는 것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한노인회를 방문회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출처:민중의소리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집과 지금 새누리당과 인수위 입장을 보면 복잡한 약관을 보여주지 않고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못된 보험모집인과 닮았습니다. 나만 믿고 보험만 가입하면 엄청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막상 보상을 받아야 할 시기가 다가오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복잡한 절차와 약관을 들이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보통 보험모집인의 잘못된 보험 모집으로 손해 보면 해약이 가능하지만, 대선 전의 공약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국민에게 피해를 준 경우는 어디에 가서 민원을 제기해야 하나요? 그리고 순진하게 보험모집인의 말만 믿고 도장을 찍어준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올해부터 받기로 한 20만 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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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된 철거민 김재호·김대원씨를 만나다

중국집·금은방 사장이 '호형호제'하는 이유
"몇 곱절 오른 땅값은 세입자의 피눈물"

[용산참사는 진행형①] 가석방된 철거민 김재호·김대원씨를 만나다

13.01.14 09:36l최종 업데이트 13.01.14 09:36l

 

 

2009년 1월 20일 새벽의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4년이 흘러도 그 시간에 묶여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평범한 주부는 '거리의 시위자'가 됐고, 중국집 사장은' 테러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돌아왔다. 4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는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의 실제를 살펴본다. 먼저, 경찰을 죽였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김재호, 김대원씨를 만났다. [편집자말]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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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9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된 김재호(57)씨. 그는 출소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떴다. 오랜 교도소 생활로 새벽 기상이 몸에 밴 것이다. 그는 곧장 용산의 남일당 터를 찾았다. 그 자리에는 용산참사의 현장은 사라지고 2m 높이의 철제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펜스 안 공터는 임시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펜스에는 이곳에서 비참한 죽음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 금은방이 이쯤 되겠구나 짚어봤어요. 그런데 공허함이 밀려왔어요. 그날 새벽에 흐르던 긴장감, 던져지던 화염병, 경찰특공대 모두 다 사라졌어요.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그날 아침에 체포됐으니… 3년 9개월이 지나 다시 남일당 자리에 섰는데 믿기지 않았어요."

벌써 4년이 지났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용산참사. 참사 당일 구속돼 4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김재호씨와 김대원(43)씨를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문 옆에 설치된 농성촌에서 만났다. 천막 안에는 '용산참사 진상규명', '철거민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 등 집회, 기자회견에서 쓰이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참사로 희생된 양회성·이성수씨의 유가족, 김영덕·권명숙씨도 천막안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경찰을 죽였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힌 셈이다. 하지만 이날 만난 두 사람은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가졌다. 인터뷰 내내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이를 드러내면서 웃기도 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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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사장과 손님으로 만나 이제는 '호형호제'

참사가 있기 전, 두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금은방 '진보당'을 운영하던 재호씨는 중국집 '공화춘'을 운영하던 대원씨에게 전화를 걸어 짜장면을 시켜먹곤 했다. 철가방을 들고 대원씨가 배달가면 재호씨는 짜장면을 맛있게 비벼 어린 딸에게 먹였다.

2006년 4월, 두 사람의 가게가 자리 잡은 용산구 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가 용산4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광풍이 불어닥쳤다. 권리금은커녕 보상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쫓겨날 판이었다. 2008년 상가 세입자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동지가 됐고, 참사로 같은 날 구속되고 같은 날 출소하면서 이제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함께 구속된 나머지 6명은 아직도 각기 다른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두 사람은 출소 후 이들을 한 명 한 명 면회했다. 기쁘게 자신을 맞은 한 사람은 '남일당 헐린 데 가서 천막 쳐 놓고 시위 안 하냐'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듣는 두 사람의 마음은 달랐다. 감옥에 묶여 있는 동지를 대신해 진상규명 촉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에 앞장서고 싶지만 가석방 기간이라 조심스럽다. 두 사람은 오는 19일이 되면 형 만기가 돼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수감생활은 쉽지 않았다. 구속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재호씨의 딸은 우울증에 걸렸다. 아내가 생계를 위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갑자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딸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딸의 소식을 들은 재호씨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딸이 보기 쉽게 만화(이 편지를 묶은 책, <꽃피는 용산>(서해문집)이 1월 중 출간될 예정)도 그렸다. 그리고 출소하는 날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여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이 흥행하고 있다는 신문 보도였다. 잊히는가 싶던 용산참사가 다시 화제가 되면서 구속된 이들이 사면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대원씨는 감옥을 나가게 되면 꼭 이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형 만기가 다 되도록 <두 개의 문>을 관람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대원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내 감정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4주기 전에는 꼭 봐야죠.(웃음)"
 

지난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철거민들을 제압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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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쌓아온 상권...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재개발 광풍

당시 두 사람은 재개발 동안 인근에 임시 상가를 지어달라고 요구하면서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싸웠다. 재호씨는 29년 동안, 대원씨는 17년 동안 일궈온 상권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의 이주는 그들의 생계 기반인 단골과 거래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세입자들은 조합이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제시하면서 협상도 없이 철거를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재호씨와 대원씨는 조합의 행태에 분노했다.

"조합에서 원체 터무니없는 보상금을 제시하니까 그 돈으로는 다른 곳에서 자리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우는 거죠. 열심히 살아서 단골도 모으고 상권을 키웠는데… 억울한 거죠."

"건물 주인들은 몇 곱절의 개발 이익을 받죠. 하지만 그 상권을 키운 것은 세입자들입니다. 세입자들도 실질적으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몇 곱절의 개발 이익은 땅 가진 사람만 독차지하고 열심히 노력한 세입자들은 내몰리는 실정, 말이 안 되는 거죠"

두 사람은 '강제퇴거 금지법'을 통해 세입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요구대로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 등 20여 명의 의원이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해 10월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불법적인 철거, 퇴거를 금지하며 위반 할 때에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 법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전국철거민연합에 따르면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17개의 구역에서 철거민들이 내쫓길 위험에 처해 있다. 강제퇴거 금지법의 계류는 제2의 용산참사로 번질 불씨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잠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실려 고공투입된 가운데, 철거민들이 농성중이던 가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채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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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가진 사람에서 땅에 사는 사람 중심으로"

이같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소유자'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거주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땅을 가진 부자들보다 실제 땅에서 살면서 지역 사회를 이루는 세입자, 거주자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세입자도 재개발로 얻은 이익을 나눠 가져야 해요. 몇 갑절 오른 땅값은 열심히 일해서 상권을 키워온 세입자들의 피눈물이에요. 땅주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만 불리는 게 맞나요? 땅값 올려준 우리도 분명 권리가 있어요. 땅 가진 사람들을 위한 법, 뜯어 고쳐야 해요"

전문가들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 지역에서 터를 잡은 거주자들, 세입자들을 재개발 업체와 땅 주인들이 배려해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방안은 없다. 지난해 10월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의 대표 발의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마찬가지로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건물 주인이 철거 또는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상가 임차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한다. 이 법안의 처리 여부는 부동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 때문에 미지수다.

인터뷰를 하던 이날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의 사면과 함께 용산참사 구속자의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재호씨는 "이 대통령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임기 끝나기 전에 최측근들 내보내려고 하는 꼼수다, 정권 바뀌면 본인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모두 사면되길 원해요. 저희는 간첩도 아니고 도시를 파괴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시민이에요. 살기 위해서 망루에 올라갔을 뿐이에요. 진상이 규명돼 우리 이름에 그인 빨간 줄 없어지길 원해요. 또 철거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는 20일은 용산참사 4주기다. 이날에 맞춰 구속자가 모두 사면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농성촌의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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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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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돈의 힘에 짓눌리다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4 오전 7:53:57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태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 고(故)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이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은 이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의 죽음을 계기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도마에 올랐다.

노동계는 재작년에 이어, 다시금 '희망버스' 등을 조직하며,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각계각층의 2만3000여 명은 최근 부산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문제가 되는 158억 원의 손배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손배는 파업 기간에 발생한 각종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란 게 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26일에는 최 씨의 자살을 두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라며 노조의 교섭 요청을 거부했다.

과연 그럴까. 최 씨의 죽음을 단지 '사적인 선택'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그러기엔 손배·가압류 문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너무나 많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실제 죽음이 아니더라도, 일상 경제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사실상 사회·경제적 죽음 상태로 몰아넣은 사례도 많다.

 

▲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앞에서 민주노총과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집결했다. 이들은 해고된 뒤 재취업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씨를 추모하며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가 끝난 뒤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사회 단체 단원들이 한진중공업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잊을 수 없는 죽음"…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등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사측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는 최 씨만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람이 이 문제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는 사실상 '연쇄 살인 무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지난 9일 10주기를 맞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죽음이다. 노동계가 '손배·가압류'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바로 배 씨, 그리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이다.

고 배달호 씨는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65억 원 규모의 손배와 가압류를 청구·신청했다. 배 씨는 2003년 1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하며 사측이 제기한 손배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일이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졌다. 김주익 당시 노조 위원장은 구조조정손해배상 청구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6월부터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재작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올랐던 그 크레인이다. 그러다 그해 10월 17일, 김 위원장은 농성 129일 만에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3일 후,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를 사측은 취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9년 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같은 이유로 동료를 또 한 번 떠나보냈다.

생사람 잡는 손배·가압류…"내 권리 요구하다 '패가망신' 한순간"

최강서,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외에도 손배·가압류가 '(사회·경제적) 사망 선고'를 내린 노동자들은 많다. 경우에 따라, 임금·노조통장이 가압류돼 생활이 불가능해짐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까지 경매에 부쳐진 사례도 있다.

6년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딱 그런 경우다. 재능교육은 지난 2008년 노조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냈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항의 농성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를 통해 사측은 노조원 8명의 급여와 통장을 가압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중앙지법에 강제 압류를 신청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재능교육 직원 6명이 법원 집행관과 함께 오수영 전 노조 사무국장 집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오 전 사무국장의 시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서 세탁기, 김치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등 총 127만 원어치의 가전 제품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이 일에 대해, 오수영 전 사무국장의 남편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저희 집에 법원 집행관과 자칭 채권자 교육기업 재능교육에서 와서 집안 집기들에 빨간딱지들을 붙이고 갔습니다. 육아 때문에 2년 전에 합가해 모시고 있는 어머님 혼자 계실 때, 장정 6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와 제대로 설명도 없이 왜 함부로 들어오냐니까 우리는 그냥 문 따고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집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딱지를 붙였다는군요."

"집사람이 노조일 한다고 애 돌볼 여력이 안 돼서 곧 칠순인 어머니하고 합쳤습니다. 몇 년 전에 세 아들네가 주는 용돈들 모아서 사신 김치냉장고에 딱지가 붙었습니다. 당신이 드시려는 생각보다는 김치 담글 줄 모르는 며느리들 생각에 많이씩 담가서 나눠 먹이려고 당신 용돈 모아서 사신 거지요. 그 김치냉장고에 붙어 있는 딱지. 보니까 참 거시기합니다."

 

▲ 오수영 전 사무국장 집에 붙은 빨간 압류 딱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제공


이것만이 아니었다. 사측은 오 전 사무국장의 집안 집기를 압류하고 두 달 후인 2010년 12월, 유득규 재능지부 조합원의 자택을 실제로 경매에 넘겼다. 강제 경매 통보를 받은 집은 유 씨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었다. 당시 유 씨와 유 씨의 오빠 식구까지 총 다섯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노조원 재산 압류는 당시 시민사회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측이 실제 빨간 압류 딱지를 들고 자택에 들이닥치거나, 집을 경매에 부쳐버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 사건이 노조 탄압의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유 조합원 자택에 대한 강제 경매는 재작년 법원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또 오 씨에게서 압류한 재산에 대해서도 재작년 사측은 경매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그 외에 사측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벌였던 20억 원 규모의 손배와 여타 경제적 압박도 현재는 일부 해제된 상태다. 단, 강종숙 학습지 노조위원장의 급여는 재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100% 압류되고 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손배·압류 사례는,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노동자들의 경제생활을 얼마든지 파탄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또 그에 따른 고통은 노사갈등 당사자인 노조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겪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이와 관련,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조 활동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인식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도"라며 "손배·(가)압류는 매우 반인권적인 신종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힘들게 지켜온 노조, 사측의 가압류 협박으로 '산산조각'

또 하나 눈여겨볼 사례는, 반도체 공장 KEC가 노조를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사용한 방식과 목적이다.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청구액을 노조로부터 전부 받아내려는 게 손배를 청구하는 사측의 진짜 목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KEC 등 많은 사례에서 손배·가압류는 사측이 자신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노조를 파괴하거나, 집단행동을 조기에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KEC 노조는 지난 2010년 6월 '노사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14일간 옥쇄 파업(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러다 노사 양측은 '즉시 교섭, 징계·고소·고발·손해배상 등의 최소화' 원칙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당시 야 5당도 참여해 '사회적 합의'라 불렸다.

하지만 막상 파업이 끝나자, KEC는 노조 간부 및 조합원 88명(점거 농성자)을 대상으로 무려 30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KEC 지회 김성훈 지회장은 "사측에서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손배 안 걸고 희망퇴직금 몰아줄 테니 퇴사하라고 설득했다"며 "이런 노조 파괴 작업을 통해 당시 조합원 150여 명이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150여 명이 떠났으니 노조의 기세가 기우는 건 당연했다. 김 씨는 "한번 노조가 꺾였다는 소문, 회사가 사표 내면 손배를 안 건다는 소문이 현장에 퍼지기 시작하자 퇴직이 줄줄 이어졌다"며 "조직이 무너지니 정말 답답했다. 힘들게 공장을 점거해서 교섭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가 해고와 구속, 그리고 손배였다"고 말했다.

현재 KEC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56억 원으로 줄었다. 재판 과정에서 입증이 어려운 부분을 사측 스스로 취하하면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커다란 심리·경제적 압박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 지회장은 "손배를 빌미로 한 사측의 노조 탈퇴 작업으로 빠져나간 많은 사람의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정말 간신히, 간신히 지켜가고 있다"며 "사측은 지금도 손배 1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집행을 하겠다는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고(故) 최강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도 남다르다. 김 지회장은 "최강서 열사를 보면, '저게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며 "그래서인지 최근 노조 분위기가 부쩍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가진 걸 다 뜯어가도 156억 원이 나올 리 만무하다. 사측도 이를 당연히 알고 있다"며 "회사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느낄 불안이나 공포, 절망감"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까지 밀어 넣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 싶은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앞에서 민주노총과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집결,했다. 이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를 추모하며, 사측에 손배 철회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 사업장만 해도 총 709억6000만 원 손배, 20억8000만 원 가압류

2013년 1월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총 12곳에 이른다.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만 총액 약 709억6000만 원이고 가압류 금액도 20억8000만 원에 이른다. 이 밖의 다른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까지 생각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와 금속노조에는 약 430억9000만 원 규모의 손배 및 구상권 청구가 걸려 있다. 이와 함께, 일부 노조 간부들의 임금 및 퇴직금, 부동산 등(28억9000여만 원 규모)이 가압류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는 전주 지회 소속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22억6000만 원, 아산 지회에는 16억7000만 원대 손배가 청구됐다. 발레오만도 노조에는 26억4800만 원, 포항 DKC 노조에는 26억 원, 유성기업 노조에는 58억6400만 원의 손배가 걸려 있다.

이 같은 수십 억, 수백 억대 손배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무색해졌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더라도, 사측이 제기하는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소송)은 쉽사리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양형근 쌍용자동차 지부 조직실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압박하는 것만큼 잔인한 압박 방법이 어디 있겠나"라며 "자신의 일자리, 노조, 가족 등을 지키기 위해 벌인 투쟁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손배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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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력신문 '부정선거의혹' 보도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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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1/14 08:47
  • 수정일
    2013/01/14 08:47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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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력신문 '부정선거의혹' 보도
‘AGORAVOX' 18대대선 부정선거의혹 기사보도

(플러스코리아 / 이형주 / 2013-01-13)


[서울 플러스코리아]이형주 기자= 1월 11일 프랑스 유력 신문인 ‘AGORA VOX(http://www.agoravox.fr/actualites/international/article/fraude-electorale-en-coree-du-sud-128678)’ 가 대한민국 18대 대선 선거부정 의혹을 심도있게 다뤘다.

 

▲ 프랑스 유력 신문인 ‘AGORA VOX'가 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는 장면. © 이형주 기자


이 신문은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와 ‘SNS’를 통해 불거진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이명박정권이 자행한 언론 상황을 보도해 파장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지난 1월 4일 선거소송인단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당선무효 및 재검표의 수개표 요구 소송을 법원에 제소한 것을 비롯해 선거부정 의혹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을 짚었다.

이어서 “여성이(박근혜가) 최초로 당선됐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한반도의 두 나라인 남한과 북한이 독재자의 자손에 의해 주도된다”면서 '독재자의 자손'으로 서슴 없이 표현하고 있어 한국인의 자존심을 떠나 창피한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이 신문은 온라인 사진과 수학으로 식별된 문제의 동영상과 증인을 공유하며, 수동으로 재검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15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보도하고, 선거 기간 동안 확인 된 컴퓨터 계수 장치의 사용 (제5조 선거 법 일정) 및 수동 계산의 누락 (선거 법 제178 ) 의 이유로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1월 4일 제소한 사진을 실었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항과 한국의 선거법은 전자계산(전자개표기)은 선거법 위반이며, 미국 백악관 사이트에 2월 18일까지 25,000명 서명 청원서가 걸려있다고 소개하고, 지난 1월 4일 당선무효, 직무정지가처분과 재검표 요구에 의해 법원이 재검표하라는 판결과 함께 재검하여 결과가 나오면 대통령 선거를 취소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대한민국의 언론 상황에 대해 이명박 정권 내에서 박근혜 후보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제어되는 남한의 대부분의 언론들이라며 이러한 상황은 “2012년 mbc 170일, kbs 95일 파업발생”으로 이어 졌다며 “파업은 특히 공정하고 공평한 미디어를 위해 이명박 정부에 의해 ‘낙하’된 그들 보스의 사임을 요구했다. 이 파업의 끝은 해고 및 전보발령 등의 처벌로 이어졌다. SNJ (기자연합), 지난 5 년 동안 이명박 - 박(박근혜 의미임)의 정부에서 20명의 기자가 ‘해고’, 135명의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직무에서 ‘일시 중지’, 66명의 기자는 ‘감봉’, 120명 기자는 ‘경고’. 62명 기자는 직무에서 ‘일시 중지’되었다.”고 보도했다.

 

▲ 한영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노조위원장이 선거소송인단 대표를 맡아 18대대선무효소송을 접수하기전에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전자개표만으로는 선거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18대대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 플러스코리아편집부


참고로 이 신문에서 보도한 주요 내용과 전문에 따른 네티즌 해석을 싣는다.

▲ 제19대(18대인데 잘못 표기됨)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부정선거의혹을 국민에 의해 1월 4일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당선무효소송 및 재검표의 수개표 요구 소송)법원에 제소했다는 점.

▲ 2012년 12월 19일 한국에서 18대 대통령 선거를 개최했다. 결과는 여성이 최초로 당선됐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한반도의 두 나라 남한과 북한이 '독재자의 자손'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

▲ 그러나 한국과 외국의 주요 미디어 매체(언론)의 침묵에도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선거부정 대한 논쟁이 매우 활발하고 있으며, 많은 국민의 실망에도 패배 당사자는 현재 매우 신중하며, 공식적으로 결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

▲ 현재, 네티즌은 온라인 사진과 수학으로 식별된 문제의 동영상과 증인을 공유하며, 수동으로 재검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15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선거 기간 동안 확인 된 컴퓨터 계수 장치의 사용 (제5조 선거 법 일정) 및 수동 계산의 누락 (선거 법 제178 ) 의 이유로 1월 4일부터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점.

▲ 이 재판은 대통령 선거를 취소 할 수 있다. 유일한 전자계산(전자개표. 특히 38% 개표했을 때 3대 TV에서 특정후보의 당선을 발표했는데 두 후보 간의 격차가 0.93%으로 동결되는 점)는 선거법 위반이며, 선거부정 의혹으로 백악관 사이트에 2월 18일까지 25,000명 서명 청원서가 걸려있다고 소개. 국내 및 국제 미디어가 침묵하고 있다는 점.

▲ 보수적인 이명박과 현재정부에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제어되는 남한의 대부분의 언론들. 이명박의 미디어 개입은 그의 재임기간 동안 특히 중요했다. 이러한 상황은 2012년 mbc 170일, kbs 95일 파업발생. 파업은 특히 공정하고 공평한 미디어를 위해 이명박 - 박 정부에 의해 "낙하"된 그들 보스의 사임을 요구했다. 이 파업의 끝은 해고 및 전보발령 등의 처벌로 이어졌다. SNJ (기자연합), 지난 5 년 동안 이명박 - 박의 정부에서 20명의 기자가 해고, 135명의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직무에서 일시 중지되었다, 66명의 기자는 감봉, 120명 기자는 "경고". 62명 기자는 직무에서 일시 중지된 점.


 

▲ 거리로 나선 시민들. 사진=AIMHIGH INTL © 이형주 기자



Fraude électorale en Corée du Sud
한국의 부정선거

vendredi 11 janvier 2013
2013년 1월 11일(금요일)자 기사

Soupçons de fraude électorale portant notamment sur le déroulement et le résultat du dépouillement de l’élection présidentielle du 19 décembre 2012 et plainte déposée le 4 janvier 2013 par les citoyens coréens mobilisés contre la CCCE (Commission Centrale de Contrôle des Elections)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투표 결과를 포함한 부정선거 의혹과 2013년 1월 4일 한국 시민들이 집결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기한 소송(에 관한 기사)

Le 19 décembre 2012 a eu lieu en Corée du Sud la dix-huitième élection présidentielle. Park Geun-Hye, candidate du GPN (Grand Parti National, conservateur) et fille du dictateur Park Chung-Hee (1917-1979), remporte contre son adversaire, Moon Jae-In du PDU (Parti Démocratique Uni, centre gauche). Ce résultat signifie que le pays va être dirigé pour la première fois par une femme mais, ironie de la situation, les deux pays de la péninsule coréenne, le Sud comme le Nord, seront dirigés par des descendants de dictateurs.
2012년 12월 19일 한국에서는 제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후보이자 독재자 박정희(1917~1979)의 딸인 박근혜가 야당인 중도좌파 정당,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 결과는 이 나라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음을 의미하지만, 한반도의 두 나라, 즉 남한과 북한이 독재자의 후손들에 의해 통치된다는 아이러니를 의미한다.

Cependant, malgré le silence de grands médias coréens (voir la fin de ce texte sur le silence des médias) et étrangers, les résultats ont suscités beaucoup de scepticisme et des contestations au sein de la population qui allait s’exprimer sur les réseaux sociaux et en particulier sur Twitter. Des nombreuses irrégularités, des autorités qui ne respectent pas la loi électorale sud-coréenne, et un débat très intense mobilise les citoyens : – sur le nécessaire recomptage manuel des votes ; – sur la réalité de la victoire de Park Geun-Hye ; – sur le caractère organisé et prémédité de la fraude.
그러나 한국의 메이저 언론들과 외신들의 침묵에도 불구하고(언론의 침묵에 관해서는 이 기사의 하단 참조),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들 사이에서는 SNS, 특히 트위터 상에서 많은 의혹과 이의제기가 일어났다. 많은 불법행위와 한국의 선거법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기관들, 그리고 수개표의 필요성과 박근혜가 과연 승리한 것인지의 여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선거)부정에 대한 아주 격렬한 논쟁이 시민들을 모이게 했다.

Le parti perdant, le PDU, reste pour le moment très prudent, au grand désarroi des citoyens mobilisés, et n’a pas encore officiellement dénoncé la fraude et contesté les résultats.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은 현재 우려하는 시민들에게는 대단히 실망스럽게도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면서, 공식적인 부정선언과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Actuellement, des internautes continuent d’une part de mettre en ligne des photos et des vidéos des témoins oculaires des problèmes relevés sur les lieux du dépouillement. Ils se mobilisent pour réclamer un dépouillement manuel. Des citoyens ont manifesté le 4 janvier malgré le froid (-15 degrés).
http://cafe.daum.net/SwDharmaAntar/EgCj/3673?docid=1Qq8hEgCj367320130105210008&sns=twitter
현재 네티즌들은 개표 현장에서 인지된 문제들에 대한 사진과 영상 증거들을 온라인상으로 계속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수개표를 요구하기 위해 집회에 모인다. 시민들은 1월 4일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모여 의사표시를 했다. http://cafe.daum.net/SwDharmaAntar/EgCj/3673?docid=1Qq8hEgCj367320130105210008&sns=twitter




Le prochain rassemblement est prévu pour le samedi 12 janvier.
다음 집회는 1월 12일 토요일에 있을 예정이다.

Un dépôt de plainte a été effectué le 4 janvier 2013 pour un procès contre la CCCE (Commission Centrale de Contrôle des Elections) concernant les nombreux cas de fraude relevés lors des scrutins, l’utilisation d’appareil de dépouillement informatique (article 5 de l’Annexe de la Loi électorale) et l’omission du dépouillement manuel (article 178 de la Loi électorale) (voir les photos du dossier de la plainte : http://cafe.daum.net/electioncase/EzjK/752). Ce procès pourrait faire annuler cette élection présidentielle.
2013년 1월 4일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선거과정에서 확인된 많은 부정사례와 전산개표장치의 사용(선거법 부칙 5조) 및 수개표 절차의 생략(선거법 178조)의 건으로 소송이 제기되었다. (소장 사진 참조 : http://cafe.daum.net/electioncase/EzjK/752). 이 소송은 이번 대통령 선거를 무효화할 수도 있다.

Différents problèmes lors de ces élections relevés par des citoyens mobilisés
시민들이 이번 선거에 대해 제기한 다양한 문제들

- Le dépouillement par la seule voie électronique : une infraction à la loi électorale
- 전자개표 처리만 한 것은 선거법 위반

Selon la loi électorale sud-coréenne, on ne peut pas utiliser le dépouillement informatique pour une telle élection. Les erreurs dues au mauvais fonctionnement de ces appareils ont été déjà rapportées avant cette élection présidentielle (élections législatives d’avril 2012). Des votes pour le parti opposant ont été découverts, soit classés comme votes pour le parti majoritaire, soit invalidés. C’est pourquoi des citoyens se sont indignés contre l’utilisation de la machine pour le dépouillement. Sur ce point, la CCCE répond que les machines en question étaient de simples machines de tri des votes, alors qu’elles sont reliées à un système informatique interne. Il aurait fallu, de toutes les façons, un dispositif supplémentaire pour trier des votes selon un tri manuel.
한국의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개표 및 집계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장치의 오작동으로 인한 오류는 이미 대선 이전의 2012년 4월 총선에서 알려진 바 있다. 야당표가 여당표나 무효표로 분류되는 것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시민들이 전산개표기 사용에 분노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 중앙선관위는 문제의 기계들은 단순한 투표분류기라고 말했지만, 그것들은 인터넷 컴퓨터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 어쨌든 수작업 분류에 따라 투표지를 분류하는 보조장치가 있어왔다.

Lors du dépouillement de cette élection, le nombre des votes sortant de la « machine du tri » était immédiatement comptabilisé sur ordinateur et annoncé publiquement comme résultat du dépouillement. Ce que demandent ces citoyens mobilisés, c’est justement le dépouillement manuel. Une pétition est actuellement ouverte sur une page du site de la Maison Blanche, « Your Voice In Our Government » (voir la fin du texte pour signer la pétition : 25,000 signatures nécessaires jusqu’au 28 janvier 2012).
선거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투표분류기”를 통한 투표수는 즉각 알 수가 있었고 개표결과로서 공개되었다. 집결한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바로 수개표다. 현재 백악관 홈페이지 "Your Voice In Our Government"에는 청원이 개설되어 있다(청원 서명을 위한 하단부를 보면 2012년 1월 28일까지 2만 5천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 Des soupçons d’irrégularités !
- 부정행위에 대한 의혹들

Tout d’abord, lorsque 35 % des votes furent dépouillés, les trois principales chaînes de télévision (toutes trois proches du parti au pouvoir) annoncèrent en direct la candidate Park Geun-Hyé comme « vainqueur certaine ». Mais ce qui le plus troublant, c’est qu’à partir de 68% des bulletins dépouillés et ce jusqu’à 100 %, l’écart entre les deux candidats n’a plus varié (51,6% pour la candidate Park du parti sortant et le 48% pour le candidat d’opposition Moon). Autrement dit, l’écart est resté le même, à la décimale près, avec 10 millions de bulletins supplémentaires.
우선, 개표가 35% 이뤄졌을 때, 방송 3사(모두 친여당 성향)는 박근혜 후보를 “당선 확실” 이라고 생방송으로 공표했다. 그러나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개표율 68%일 때부터 100%가 될 때까지 두 후보 간의 차이가 전혀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박후보 51.6%, 문후보 48%). 즉, 아직 천만표가 미개표된 상황에서 차이가 소수점 1자리 수까지 일정하게 유지된 것이다.

http://www.amn.kr/sub_read.html?uid=7718 (사진 및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해외 유권자 및 동포들의 성명서> 참조)







•Selon l’animation suivante, l’écart entre les deux candidats aurait resté figé le même à 0,93% pendant presque 7 heures ! http://4.bp.blogspot.com/-WTFineepRBw/UNnwCRRnocI/AAAAAAAAAG4/mjzhWCE0dmo/s1600/%EC%84%A0%EA%B1%B0%EB%B6%80%EC%A0%95_%EC%8B%9C%EA%B0%84%EB%B3%84.gif
다음의 그래프를 보면 두 후보 간의 격차율이 거의 7시간 동안 0.93%로 고정된 채 똑같이 유지되었다. http://4.bp.blogspot.com/-WTFineepRBw/UNnwCRRnocI/AAAAAAAAAG4/mjzhWCE0dmo/s1600/%EC%84%A0%EA%B1%B0%EB%B6%80%EC%A0%95_%EC%8B%9C%EA%B0%84%EB%B3%84.gif









- La CCCE dénoncée pour son laxisme, un laxisme qui fait penser à la couverture de fraudes
중앙선관위는 부정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자신들의 부실(을 지적하는 주장들)에 대해 반박을 내놓았다.

La CCCE avait déjà été l’objet de sévères critiques de l’opposition lors de la dernière Législative du 11 avril 2012 en raison de son mauvais contrôle de l’élection.
중앙선관위는 이미 2012년 4월 11일 총선에서 선거관리 부실로 인해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 바 있다.

Lors du dépouillement de cette présidentielle, la CCCE a, par exemple, passé sous silence les problèmes de « votes en liasse », mungchipyo, plusieurs bulletins de votes pliés ensemble. De nombreux témoignages ont également signalés des problèmes liés à la position du sceau sur les bulletins : des bulletins qui devaient être annulés parce que le sceau avait été posé entre deux candidats ont été comptabilisés pour Park ; des bulletins marquant clairement des votes pour Moon ont été comptabilisés comme nuls (voir la photo à la fin de l’article :
http://news.zum.com/articles/5055776)
예를 들면, 대선 개표 중, 중앙선관위는 여러 장의 투표지가 함께 겹쳐져 있는 “뭉치표”의 문제를 무시했다. 많은 증인들은 투표용지 상의 기표 위치에 관한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두 후보 란의 중간에 기표되었기 때문에 무효표로 처리되어야할 투표지가 박 후보의 표로 처리된 것이다. 또 문 후보 란에 분명히 기표된 표들이 무효표로 처리되기도 했다. (다음 기사 상단의 사진 참조 http://news.zum.com/articles/5055776 )





De plus, alors que l’on utilisait des urnes en métal à l’époque du président Roh Moo-Hyun, la CCCE a utilisé des urnes en carton lors de la dernière législative (avril 2012) et a cette fois autorisé des urnes en plastique dont la solidité du système de fermeture semblait douteuse (voir des photos des urnes de vote vers la fin de cet ARTICLE (EN ANGLAIS) TRES COMPLET : http://2012skpreselection.blogspot.fr/2012/12/the-actual-vote-counting-hasnt-started.html et un court article sur CNN iReport http://ireport.cnn.com/docs/DOC-904967)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에는 철제 투표함이 사용되었었는데, 중앙선관위는 지난 총선(2012년 4월) 때는 종이상자 투표함을 사용하기도 했고, 이번에는 봉인의 강도가 의심스러워 보이는 플라스틱 투표함을 허용했다. (다음 글 하단의 투표함 사진들 http://2012skpreselection.blogspot.fr/2012/12/the-actual-vote-counting-hasnt-started.html
및 CNN iReport의 짧은 기고 글 http://ireport.cnn.com/docs/DOC-904967 참조)

















La période de cette campagne présidentielle était également une véritable guerre sur Les réseaux en ligne : la Police Nationale a fini par arrêter une employée de 28 ans de l’Agence Nationale de l’Information pour avoir diffamé durant la période de campagne le principal candidat de l’opposition, Moon Jae-In, en utilisant 16 Identifiants différents (lire cet article en anglais sur ce sujet : http://www.upi.com/Top_News/World-News/2013/01/04/S-Korea-spy-agency-agent-questioned/UPI-87361357313873/)
이번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온라인 상에서는 일대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경찰은 결국 28살의 국정원 직원을 야당의 가장 강력한 문재인 후보를 16개의 다른 아이디를 사용해서 폄훼한 혐의로 조사했다. (역자 주 : 원문은 체포이나 오류이므로 수정번역) (이러한 내용의 UPI의 영문기사 http://www.upi.com/Top_News/World-News/2013/01/04/S-Korea-spy-agency-agent-questioned/UPI-87361357313873/ 참조)

LE SILENCE DES MEDIAS NATIONAUX ET INTERNATIONAUX…
국내외 언론들의 침묵 ...

Le paysage des médias sud-coréen est majoritairement maîtrisé par des personnalités proches de l’actuel gouvernement du conservateur Lee Myung-Pak, président dont le mandat touche bientôt la fin. L’interventionnisme du gouvernement de Lee Myung-Pak dans les médias a été particulièrement important pendant son mandat : les deux directeurs de MBC et de KBS, les deux chaînes majeures de la télévision, ont été remplacés par les personnages de droite et de pro-gouvernementaux. Globalement, la période Lee Myung-Pak (du même parti que Park Geun-Hye, un président coréen ne pouvant faire qu’un seul mandat) a été marquée par l’affirmation croissante de la tendance progouvernementale dans l’ensemble des grands médias.
한국의 미디어 지형은 주로 보수파인 임기 말 이명박 대통령의 현 정부에 가까운 인사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개입은 그의 재임기간 중 특히 중요한 일이었다. 한국의 양대 TV 방송사인 MBC와 KBS의 두 사장들은 친정부적 우익인사들로 교체되었었다. 전반적으로 이명박 재임시는 모든 메이저 언론에서 친정부적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졌었다.

Cette situation a déclenché en 2012 des grèves sans précédent de 170 jours à MBC et 95 jours de grève à KBS. Les grévistes réclamaient un média équitable et impartial et surtout la démission de leurs patrons « parachutés » par le gouvernement Lee Myung-Pak. La fin de ces grèves a été suivie de licenciements et mutations-punitions tous azimuts. Selon le SNJ (Syndicat National des Journalistes), durant les cinq dernières années du mandat de Lee Myung-Pak, 20 journalistes ont été licenciés, 135 journalistes ont été suspendus de leurs fonctions, les salaires des 66 journalistes ont été réduits en guise de punition, 120 journalistes ont fait l’objet des « avertissements » et 62 journalistes ont été suspendus de leur fonction. Certains évoquent même le plus grand massacre de la presse depuis la période de Chun Doo-Hwan, l’auteur du Coup d’état militaire après l’assassinat de Park Chung-Hee, feu le père de Park Geun-Hye.
이러한 상황은 2012년 전례 없는 170동안의 MBC 파업과 95일 간의 KBS 파업을 촉발시켰다. 파업참가자들은 공정방송과 특히 이명박 정부가 ‘낙하산’ 인사로 임명한 그들의 사장 해임을 요구했었다. 이 파업이 끝나자 해고와 처벌적 성격의 전보 조치가 전방위적으로 뒤따랐다. 전국언론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재임 기간 5년 동안 20명의 기자들이 해고되었고, 135명의 기자들이 직무정지들 당하고, 66명 기자들의 감봉 조치를 당했다. 이를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피살 이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이래 가장 큰 언론 대학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출처 :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8796§ion=section32§ion2=정치/이슈
참고 : http://www.agoravox.fr/actualites/international/article/fraude-electorale-en-coree-du-sud-128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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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선진 문명강국에 올려 세울 것

 

 

 

북, 선진 문명강국에 올려 세울 것
 
수학, 음악, 체육계 세계 정상 우뚝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1/13 [14: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유선종양센터에 도입 된 최첨단 의료기구 ©
북이 사회주의문명국 건설의 도약대가 튼튼히 마련되었다며 교육, 문화, 의료에서 문명국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김일성조선의 새로운 100년대가 시작된 첫해인 2012년은 공화국을 발전된 사회주의문명국으로 건설하기 위한 튼튼한 도약대가 마련된 자랑찬 한해였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전반적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 할 것에 대한 법령에 의하여 우월한 사회주의교육제도가 한층 강화되고 교육부문 사업이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개선되었다. 대학과 중, 소학교들에서 컴퓨터에 의한 교육이 높은 수준에 올라서고 대학들에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학과목들과 첨단기술 산업분야를 개척하였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교육의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결과 우리나라의 중학생들은 국제수학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을 쟁취하고 국제청소년 쇼팽 피아노 경연에 참가한 학생들과 어린이들도 1등상과 특별상을 받아 사회주의교육제도의 우월성을 힘 있게 과시하였다.”고 밝혀 2012년 조선이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음을 확인했다.

▲ 지난해 개원 된 평양유선종양연구센터 건물 ©
또한 “지난해 인민보건사업에서는 최신식의료설비들을 그쯘히(거뜬하게) 갖춘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가 일떠서고 전국의 의료봉사기지들과 의약품, 의료기구생산단위들의 기술개건이 힘 있게 추진됨으로써 보건사업의 물질기술적토대가 한층 강화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김만유 병원과 평양산원, 평양안과병원을 비롯한 중앙병원들에 20여개의 전문과들이 새로 생겨나 인민들이 전문과적인 의료봉사를 더 잘 받을 수 있게 되었다.”며 “우리의 의학자들은 나라의 심장수술분야를 보다 높은 수준에 올려 세웠으며 암 재발, 전이를 예방치료 할 수 있는 왁찐(예방 백신)과 3세대항암제 등 새로운 진단, 치료방법들, 치료약제들을 수많이 개발함으로써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전해 보건 의료부분에서도 획기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 평양에 들어 선 초고층 아파트, 이 곳에는 노동자, 근로자, 교원 등 평범한 사람들이 무상으로 공급 받아 입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작년에 완공된 야외인민빙상장 이 빙상장은 4계절 운영되며 선수들이 아닌 일반인들만 이용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아울러 “무대예술부문에서도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었다.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버이장군님의 음악정치의 위대한 업적과 생활력을 영원히 빛내어 가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조직된 모란봉악단의 특색 있고 참신한 공연활동이다. 모란봉악단은 지난해 7월 자기의 모습을 온 세상에 알리며 시범공연의 첫 막을 올린데 이어 주요 계기 때마다 혁명성과 전투적기백이 차 넘치는 특색 있는 공연무대를 펼쳐 인민들에게 커다란 신심과 낙관을 안겨주었다.”며 문화예술 부문에서도 커다란 성과가 있었음을 전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무대예술부문에서는 김일성상 계관작품 경희극 《산울림》 500회 공연과 혁명가극 《꽃파는처녀》, 1,500회 공연이 진행되어 천만군민을 강성국가건설에로 힘 있게 고무 추동하였고, 에스빠냐(스페인)와 중국에서 진행된 제6차 발렌씨아 국제교예축전과 제10차 무한국제교예축전에서 우리나라(조선) 교예작품들이 축전최고상을 쟁취한 것도 교예부문에서 이룩한 자랑 할 만 한 성과”라고 알려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상도 소개했다.

이 신문은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을 소개하며 “인민 야외 빙상장, 롤러스케이트장, 통일거리운동쎈터를 비롯한 훌륭한 체육시설들이 련이어 일떠서고 공원들이 꾸려져 전 사회적으로 체육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고 알렸다.
▲ 기존 건물을 완전히 드러내고 새롭게 개건 완성 된 만경대 유원지 전경 ©

신문은 이어 “인민극장과 릉라인민유원지, 평양민속공원과 류경원, 현대적으로 개건보수된 만경대유희장과 대성산유희장, 전변된 수도의 수십개 공원 등 어딜 가나 새 모습, 새 풍경이 펼쳐져 사람들의 기쁨과 감탄을 자아냈다. 원산을 비롯한 전국 도처에 새로 일떠선 유희장들과 공원들은 또 그 얼마인지 모른다.”며 평양과 지방 도시들의 발전상을 소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지금 새해를 맞이한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인민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올해에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원대한 구상을 받들어 교육, 보건, 문학예술, 체육을 비롯한 모든 문화 분야를 선진적인 문명강국의 높이에 올려 세울 불타는 열의에 충만 되어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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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뉴스'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면

 

 


우리가 뉴스를 접하는 통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TV뉴스를 젊은 세대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그날의 뉴스를 접합니다. 그런데 보통 많은 사람이 보는 네이버 메인의 뉴스 제목을 보면 항상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충격','경악','결국'이라는 단어입니다.

1월 12일 오후 5시경 네이버 메인의 톱뉴스입니다. 한 페이지에 '충격'이라는 단어를 쓴 언론사가 세 곳이나 있습니다.

'소녀시대 하이힐 포기, 안무에 '충격'
'수원역 사탕할아버지 16년간 거리 내몰려 '충격'
'톱아이돌女, 아동학대 노출 화보 논란 '충격'


소녀시대가 선보인 안무가 어려워 하이힐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그리 무에 '충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기자가 볼 때에는 충격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볼 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속성상 클릭률이 승패를 좌우하는 언론사로써는 기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제목을 포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언론사의 이런 낚시성 제목에 한두 번 속아본 독자는 으레 제목만 보고 대충 어느 수준의 기사인 줄 짐작하기도 하지만, 앞서 봤듯이 한 페이지에 서너 개씩 나오는 저런 '충격적인 제목'을 독자가 무조건 피할 수는 없습니다.

' 낚시 기사 감시 사이트' 고로케'

언론사의 낚시 기사에 화가 난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이런 언론사의 낚시성 기사를 모아 놓은 사이트를 오픈했습니다. 이준행씨는 ‘충격고로케(hot.coroke.net)’라는 사이트를 통해 낚시성 기사를 자주 사용하는 언론사 목록을 분석했습니다.
 

 

▲고로케 사이트 캡쳐 이미지

 


이진행씨는 '최근 가장 충격받은 언론사는 '중앙일보'입니다'라는 설명을 통해 중앙일보가 '충격'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기사를 50개 발행했다는 사실을 집계했습니다. 이처럼 '고로케' 사이트는 '충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언론사를 집계했는데 2위는 한국경제 (30개) 3위 스포츠조선(27) 4위 아시아경제(21) 5위 동아일보 (20개)였습니다.

'충격' 과 함께 많이 사용하는 '경악'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언론사는 어디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로케 사이트 캡쳐 이미지

 


'경악'을 자주 남발하는 언론사는 '매일경제'입니다. 2위는 동아일보, 3위는 한국경제,4위 디지털타임스,5위는 중앙일보가 차지했습니다.

이진행씨는 '충격,경악,이럴수가'라는 단어의 정의를 '부디 꼭 클릭해달라고 독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거나 독자를 낚아보기 위해 언론사가 기사제목에 덧붙이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밝혔는데, 이처럼 언론사가 기사 자체보다는 제목만으로 독자를 낚는 모습을 신생 인터넷 언론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언론이라고 자칭 주장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선두에 나서 한다는 사실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한민국 언론이 저널리즘보다는 상업성, 그것도 아주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삼류잡지와 같은 수준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낚시성 기사 더보기



' 시청자를 바보로 만드는 TV 뉴스'

신문이 낚시성 기사를 통해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면 TV는 화면과 내용을 통해 시청자를 조정하거나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어떻게 TV가 저널리즘과 동떨어진 뉴스를 보도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KBS 2012년 7월23일 뉴스 캡쳐이미지

 


KBS 뉴스는 <정부 “총부채상환비율 DTI 일부 완화”>라는 보도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노력을 보도했습니다. 앵커는 첫 화면에서부터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라는 표현을 쓰고, 이어진 화면에서는 늦은 밤 청와대의 모습과 시계를 보여줌으로 마치 '나 지금 밤새도록 공부하고 있어요' 자랑하는 학생마냥 보도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재계와 민간 관계자들의 얘기를 꼼꼼하게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친인척 측근 비리 의혹의 충격을 딛고 일 중심의 경제 사령탑 행보를 재개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자는 뉴스에서 '꼼꼼하게 경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친인척 측근 비리 의혹의 충격을 딛고"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런 식의 기사는 그저 멍하니 보면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 저널리즘에서 보면 기사가 아닌 마치 청와대 대변인과 같은 어법과 같은 모습입니다.

즉, 기자가 아닌 청와대 대변인으로 국민에게 '홍보 뉴스'를 보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012년 5월17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화면(위) /16일 밤 권재홍 앵커가 청원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아래)ⓒMBC노조

 


MBC뉴스데스크는 자사의 메인뉴스에 "권재홍 앵커가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배현진 앵커가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어젯밤 10시20분쯤 본사 현관을 통해 퇴근하려는 순간 파업 중인 노조원 수십명으로부터 저지를 받았다”며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 20여 분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화면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권재홍 앵커는 청원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퇴근을 했으며, 부상도 처음에는 신체 일부라고 주장했지만 '정신적 충격'이라는 해명을 다시 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뉴스가 진실과는 거리가 먼 편향적인 보도를 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MBC뉴스 화면 캡쳐 이미지

 


런던올림픽 기간에 MBC는 재벌, 특히 한화와 SK가 운동선수를 후원해서 금메달을 땄다는 뉴스를 내보냅니다. 화면에는 계속해서 한화 김승연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의 치적이 소개됩니다. 이 기사가 나오고 3일 뒤 김승연 회장은 구속됩니다. 김승연 회장의 구속을 보도하면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김 회장이 직접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해 성사시킨 신도시 건설사업, 세계 1위를 목표로 미국 기업까지 인수합병해 추진한 태양광 사업. (한화그룹은) 회장 이름을 내걸고 밀어부쳤던 사업들이 동력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김승연 회장의 구속으로 이라크 사업이 안 될 것처럼 걱정해주는 의도는??

“재계에 대한 반감이 커 경제단체마저도 우군이 돼줄 수 없는 상황, 한화는 물론 SK도 외롭고 힘든 싸움을 벌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기자의 눈에는 범죄자의 구속과 재판이 외롭고 힘든 싸움?



MBC뉴스를 보면 재벌의 홍보팀이 운영하는 '한화뉴스'나 'SK뉴스'인지 '공영방송'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보면 재벌 입장에서 아주 유리한 뉴스가 나오는데 우리는 멍하니 그저 진실인양 그 모든 것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아마 이래서 TV가 바보상자로 불리는가 봅니다.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

대한민국에서 저널리즘이 과연 존재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모호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참다운 기자와 언론인은 존재하지만, 그들이 보도하는 기사는 묻히기 일쑤이고, 데스크에서 킬 당하거나 열심히 준비한 취재가 엎어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널리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기자연합회'는 '저널리즘특별위원회'를 조직해서 저널리즘의 문제를 자신들 스스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널리즘특위에서는 현재 방송언론이 가진 문제점이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특위의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 보고서,

 


저널리즘특위가 분석한 현행 저널리즘의 문제 유형을 보면, 특정 정파와 특정인에 관한 노골적 찬양기사나 철저한 팩트 확인보다 무조건 보도를 해대는 무검증 오류 기사,출입처와 기자의 동화로 발생하는 홍보성 기사, 관행적으로 철마다 쓰는 매년 똑같은 기사를 손꼽았습니다.

언론에 나오는 뉴스를 그대로 믿기보다 아래의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에 대입시켜 보면 그 기사가 과연 진실을 전달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속보를 그대로 베껴다가 온 나라에 거짓을 퍼트리는 언론들'
'특정 정파에 불리한 사안은 감추고 다른 정파를 공격하는 정치 방송'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는 행동이 마치 나라 경제를 위협한다고 불안을 조성하는 재벌 홍보지'
'경찰이나 검찰,청와대의 의중을 그대로 전달하는 나팔수'
'자사의 이익이라면 뉴스거리가 되든 말든 목소리를 높이는 방송사와 종편,신문사'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상이라도 시청률만 높일 수 있다면 여과 없이 방송하는 몰지각한 방송'
'매년 똑같은 기사를 그대로 써먹으면서 마치 자신이 가본 듯한 전지전능한 도술을 부리는 기자들'


사실 대한민국 언론에서 참언론인은 있었어도 참언론사는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예전 신문,방송,잡지를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선전하고 독립지사를 '테러리스트'로 비난했으며, 독재 시절에는 그들을 미화하고 찬양하기에 바빴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이 해외순방을 끝내고 오자 '지루한 장마를 끝내고 남국의 화사한 햇빛을 안고 귀국'했다는 KBS의 뉴스나 조선일보의 '인간 전두환'을 보면 우리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 신적인 지도자를 대통령을 모신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무슨 민족지라고 떠들고 있지만 그들의 친일언론 만행은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고, 이런 언론의 왜곡은 독재자를 '위대한 지도자'로 둔갑시키는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언론사와 방송사가 권력에 기생하여 국민을 기만할 때도 참언론인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주와 언론사가 그들을 지켜주지 않아 그들은 쫓겨났고, 계속해서 저널리즘이 자꾸 무너져 지금은 언론이라 부르지 못할 지경이 된 것입니다.

 

 

 



블로거를 1인 미디어로 부르지만 사실 그런 점에 대해서 늘 부끄러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 저널리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점과 오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블로거를 1인 미디어로 부르는 이유는 진짜 언론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언론을 비판하는 동시에 '아이엠피터'의 블로그가 가진 문제점 또한 처절하게 반성하고 개선하려고 합니다. 블로그는 뉴스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뉴스처럼 본다면 블로그도 그와 똑같지는 않아도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을 논하는 글을 쓰면서 많은 반성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방송기자연합회의 저널리즘특위를 보면서 희망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제 언론을 믿기보다 그 언론을 제대로 판단하는 시청자와 독자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쓰레기 언론이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보는'뉴스' 그대로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전지전능한 기자가 아니라 마치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믿기보다는 여러분의 냉철한 판단력과 지혜, 그리고 양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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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3킬로 담비가 10킬로 고라니 사냥…최상위 포식자로

무게 3킬로 담비가 10킬로 고라니 사냥…최상위 포식자로

 
조홍섭 2013. 01. 13
조회수 46추천수 0
 

호랑이 없는 남한 생태계 담비가 ‘왕’…연중 고라니, 멧돼지 사냥

국립환경과학원 첫 조사…농사 피해 청설모, 말벌도 주식, 농민과 야생동물 보호 공존 기대

 

dam0.jpg » 무인센서카메라에 포착된 담비. 족제비과의 중형 포유류이지만 남한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했다.

 

호랑이와 표범 등 맹수가 사라진 남한의 깊은 산에서 담비가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담비는 족제비, 오소리, 수달과 함께 족제비과에 속하는 중형 포유류로서 청설모와 쥐를 주로 잡아먹고 때로 멧토끼, 어린 노루 등을 사냥하기도 하는 잡식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담비가 다 자란 고라니와 멧돼지 새끼 등 대형동물을 연중 사냥하는 생태계 최고 포식자 구실을 하고 있음이 무선추적기와 무인센서카메라를 이용한 조사와 먹이분석 등을 통해 드러났다.
 

dam6.jpg » 무선추적기를 부착한 담비

 

국립환경과학원은 13일 지난 4년 동안 담비에 대한 조사결과 “담비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이자 넓은 행동권을 지닌 우산종으로서 생태계 보전에 활용 가치가 큰 동물임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우산종이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불곰이나 극동 러시아의 아무르호랑이처럼 행동권이 큰 동물의 서식지를 보전하면 동시에 다른 종들을 보호하는 효과가 나 생물다양성이 유지되는 종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지리산, 속리산 등지에서 담비의 발자국을 추적하고 배설물을 분석하는 한편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해 담비의 생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본격 조사했다.
 

무인센서카메라에 촬영된 담비의 여러가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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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참여한 최태영 국립환경과학원 자연평가연구팀 박사는 “담비의 사냥 모습을 직접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발자국을 추적하면서 사냥 잔해물을 확인하고 배설물 속에서 연중 관찰되는 털 등을 분석해 담비가 연중 대형 포유류를 사냥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담비는 큰 수컷이라야 몸무게가 3㎏ 정도이지만 조사 결과 무게 10㎏인 고라니 성체까지 사냥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위해 3~5마리가 무리지어 협동 사냥하는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실제로 고라니의 사체가 손상된 상태를 보면 귀와 눈 등과 함께 배가 공격받은 흔적이 드러나, 담비 한 마리는 고라니 등에 뛰어올라 얼굴을 공격하고 다른 한 마리는 배의 내장을 공격해 결국 주저앉히는 전략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호랑이처럼 단숨에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과거 승냥이가 떼지어 사냥했던 방식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냥한 고라니의 절반쯤은 성체였고 멧돼지의 90%는 어린 개체였다. 연구진은 3마리로 이뤄진 담비 한 무리가 연간 다 자란 고라니 또는 멧돼지 새끼 9마리를 사냥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dam1.jpg » 담비가 무리지어 사냥한 다 자란 고라니. 눈과 귀 등 얼굴과 배에 공격받은 흔적이 있다.

 

dam2.jpg » 사냥한 고라니를 뜯어먹는 담비 가족

 

포유류 가운데 담비가 즐겨 잡아먹는 먹이로는 청설모가 가장 많아 전체의 20%를 차지했고, 이어 노루 혹은 고라니가 16%, 멧돼지·비단털들쥐·하늘다람쥐가 13%로 뒤를 이었다. 그밖에 다람쥐, 멧토끼, 등줄쥐, 두더지도 배설물에서 흔적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담비 한 무리가 연간 75마리의 청설모를 잡아먹는 것으로 계산했다.
 

전체적으로 먹이 가운데 동물성과 식물성은 비슷한 비중이었는데, 동물성 먹이 가운데는 포유류가 가장 많았고 이어 조류, 꿀, 곤충, 양서·파충류 순서로 비중이 높았다. 식물로는 다래, 버찌, 머루, 감 등 달콤한 열매를 주로 먹었다.

 

graph.jpg » 그림=국립환경과학원
 

담비는 꿀을 좋아해 전체 먹이의 6.2%를 차지했는데, 흥미롭게도 담비는 벌 가운데는 꿀벌의 천적인 말벌만 잡아먹었고 특히 먹은 말벌의 절반 이상이 여왕벌이어서 말벌 개체군을 조절하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담비가 주로 사냥하는 고라니, 멧돼지, 청설모, 말벌은 농사에 피해를 끼쳐 농민과 갈등을 일으키는 대표적 동물이어서 이들의 천적인 담비가 야생동물 보호에 새로운 긍정적 시각을 불러모을지 주목되고 있다.

dam5.jpg » 담비가 공격한 멧비둘기의 사체 잔해

 

dam4.jpg » 담비의 주식인 청설모의 사체 잔해

 

dam3.jpg » 담비 배설물 속에 들어있는 말벌의 머리. 담비는 주로 말벌 여왕벌을 먹는다.

 

무선추적조사에서 담비는 행동권이 22.3~59.1㎢로 매우 넓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멧돼지(5.1㎢), 삵(3.7㎢), 오소리(1.2㎢), 너구리(0.8㎢) 등의 행동권에 비해 10~20배가량 컸으며, 특히 어미로부터 독립한 새끼는 40㎞ 이상 멀리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넓은 행동반경은 생태축을 복원하거나 생태통로를 조성할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로드 킬 등의 위험도 크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2011년 4월 전남 구례의 지리산에서 태어난 담비 암컷이 이듬해 4월24일 어미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났는데, 5월4일 전남 순천시 송광면에서 도로를 건너다 로드 킬을 당한 일이 있다.
 

map1.jpg » 담비 7마리의 행동권. 왼쪽이 지리산, 오른쪽이 속리산이다.

 

map2.jpg » 지난해 어미로부터 독립한 어린 담비의 이동 경로. 두 개의 고속도로와 섬진강을 건너 77킬로를 갔지만 자동차에 치어 죽었다.

 

또 담비는 대부분 낮 시간 동안에 활동을 하며 능선 부의 오솔길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야생동물보다 등산객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먹이 동물이 늘어나면서 최근 담비의 개체수는 깊은 산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며 지난해엔 울산시 언양읍내에서 구조되는 등 서식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서식밀도는 지리산에서 10㎢당 1~1.6마리로 환경과학원은 추정하고 있다.
 

최 박사는 “이번 연구는 담비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사람은 자연 보호, 자연은 사람 보호’란 구호가 맞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농민과 양봉가 등도 담비 보전에 참여해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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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8분간(16:47~16:55)의 의혹!

결정적 8분간(16:47~16:55)의 의혹!!
(다음아고라 / 천민 / 2013-01-12)


18대 대선에는 유령도 투표했나?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정선거의 의혹이 너무나 많습니다.

1. 전자개표기를 사용하면서 수개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
2. 혼표와 무효표가 나왔다는 것은 전자개표기 제어시스템의 조작이 있어야 가능하다는점.
3. 방송3사를 제외한 모든 언론의 출구조사에서 문재인이 앞섰다는 점.
4. 실시간 개표방송의 투표자수와 선관위의 투표자수가 다르다는 점.


앞서 제가 올린 글에서 보셨듯이 방송 3사는 실시간 개표방송 시에 선관위와
숫자를 정확히 못 맞췄습니다. 방송국이 선관위에서 알려주는 수치대로 발표를 안 하고 마음대로 방송을 했을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요.

있는 사실대로 안 하고 뭔가 거짓으로, 더군다나 실시간 방송으로 하려니 삑사리가 날 수 밖에 없었겠지요.

누가 누구를 지지했건 김무성이가 계속 부르짖던 51:49에 맞춰서 전자개표기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분류만 척척 잘해주면 그냥 이기는 거지요?

그런데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백만표 이상을 확실히 이겨 상대방을 확 눌러버릴 심산으로 유령까지 동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던 차에 어제 주권 방송에서 한영수, 김필원, 신상철 3분이 생방송 대담을 하시는 것을 듣고 감을 잡았습니다.

선관위에서 투표지를 투표인수에 맞게 주는 것이 아니고, 3~5% 더 인쇄를 해서 여유분을 갖고 있으며, 투표지는 지역선관위에서 인쇄를 해서 쓴다고 하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쪽이 언제든 나쁜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후보의 표를 늘릴 수가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수능 문제지도 기밀에 부쳐 보안과 관리를 철저히 하는데, 대선이 수능보다도 못하다는 말입니까?

우째 이런 일이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군요. 보안과 관리가 철저해야 하는 투표함마저 동네 쓰레기통 옆에 버려져 있질 않나.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투표수(투표율) 조작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서, 18대 대통령 MBC 개표방송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동영상은 유튜브에 가서 보시면 됩니다.

아래 표를 자세히 보십시오. 이상한 점이 보이시나요?

MBC는 개표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방송을 합니다.
4시 8분경에 현재 투표율을 공개합니다.


 

4시 8분에 전국의 투표율이 65.2%라고 말하며 각 지역의 투표율을 아나운서가 말하고 있습니다. 선관위의 자료와 정확히 일치 합니다.

그리고 5시 8분 전국투표율이 70.1%라고 하며 또 각 지역의 투표율을 소개합니다. 이 역시 선관위의 자료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문제는 선관위에서 공개하지 않는 4시 8분과 5시 8분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 사이의 방송을 자세히 보면, 4시 8분의 투표율이 4시 47분에 가서야 전국 투표율 65.4%로 바뀝니다. 41분 동안 겨우 0.2p 변합니다.

화면 아래 자막으로 실시간 투표율을 4시 47분부터 4시 55분까지 딱 8분간만 내보내 줍니다. 그리고 그 8분 사이에, 0.2p ~ 0.5p 씩 변화하며 계속 올라갑니다.

위의 표와 캡쳐사진을 함께 보겠습니다.


 


 

방송으로 자막이 나오는 8분 동안만 투표율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전후의 몇십 분간의 투표율 변화는 0.2p나 0.9p 인데 반해, 방송에 표기되는 8분간은 무려 3.8p나 뛰어 오르지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모두가 그렇습니다.

4시 8분과 5시 8분 사이에 고루 분배되어 있으면 하등의 이상함을 못느끼지요. 하지만 왜 하필 저 8분간이고, 왜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저런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며, 선관위는 왜 저 부분만을 공개하게 했을까요? 저 8분내에 왕창 몰려 와서 투표한 자들은 누구일까요? 진짜 사람일까요? 유령 일까요?
유령이 표만 투표함에 넣고 갔나 봅니다.ㅋㅋ

나머지 다른 지역도 참고로 올립니다.


 


 

울산시와 세종시는 계속 변화가 없거나 미미하다가
5시 8분에 각각 3.9p4.8p가 한꺼번에 뛰어오릅니다.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지역 모두 방송에서 공개되는 8분안에서만 투표율이 껑충 뛰어오르고 있습니다.


 


 

경남, 제주 지역도 역시 방송에서 공개되는 8분 안에서만 투표율이 급격히 높습니다.
유령들이 출몰 투표했었나? (방송 3사 다 같을 것)


 

거 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256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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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부정 의혹 여론 확산되나

 

개표 부정 의혹 여론 확산되나
 
주요 신문, ‘이정희 재검표 청원 가세’ 일제히 보도...현직 기자도 의문 제기
 
인병문
 
 
18대 대선 개표 부정 의혹이 해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외면으로 일관하던 국내 언론이 점차 변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살짝만 건드리면 톡 터질 분위기다. 특히,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가 재검표 청원에 동조하고 나서자 국내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정희 전 후보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재검표 주장이 새 정부 정당성 훼손 음모라... 2002년 재검표 요구해 실시한 분들이 이렇게 말하면 안 돼죠. 우리도 해봤다, 깔끔하게 재검표하자고 하셔야 맞죠”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와 <경향신문> 등 국내 주요 언론은 12일 <이정희 “재검표해야”...민주, 재검표 여론에 ‘부담’> <이정희도 ‘대선 재검표’ 주장에 가세> <이정희 “재검표 주장이…훼손 음모라”> 등의 제목으로 상세히 보도했다. 언론은 또 국회청원 소개의원으로 나선 정청래 의원과 민주당의 미온적 분위기도 함께 전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시민청원단의 국회청원이 이뤄질 14일을 거쳐, 당선무효소송과 투표지 재검증 요구 유효시점인 18일 전까지가 당사자인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여론 확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주요 일간지 현직 기자도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허재현 <한겨레> 기자는 최근 한 인터넷신문에 <부정 개표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인터넷에 올라온 누리꾼 의혹 제기 대부분은 과장된 것들”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논란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 데에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전자개표기에 대한 불신”이라고 밝혔다.

허 기자는 “선관위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설명해도 기본적으로 전자개표기는 마음만 먹으면 (설사 조작하다 현장에서 걸리더라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기계이기 때문”이라며 “이경목 세명대학교 전자상거래학과 교수가 2008년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전자개표기의 조작가능성을 시연하며 경고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허 기자는 이어 “전자개표기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는 것은 문제”라며 “괜한 음모론 확산이라고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빠른 개표와 개표 과정에 대한 무논의’보다는 ‘정확한 개표와 개표 과정에 대한 활발한 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 기자는 끝으로 “어차피 100만표 차이니까 부실 선거를 했더라도 괜찮은 걸까” “승패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선거과정에 대해서 어떤 문제제기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활발한 논의와 검증 필요성을 시사했다.

팟캐스트와 유투브 등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인터넷 <주권방송>도 특집 생방송을 통해 선거 부정 논란을 다뤘다. <주권방송>은 10일 저녁 ‘대담 - 선거부정논란, 해법은 무엇인가?’에 한영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노조위원장과 신상철 <진실의 길> 대표, 김필원 전 안기부 정치과장 등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부정선거 의혹을 심도 깊게 파헤쳤다.

이들은 ▲투표기간 동안 벌어진 명백한 부정선거 사례 ▲투표함 제작, 관리 절차의 문제점 등을 제시하며 선거 부정과, ▲전자개표기 사용에 대한 법적 논란 ▲전자개표기 해킹과 조작 가능성 등 정확한 근거와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개표 부정을 주장했다.

국내 언론 침묵 속 <주권방송> <서프라이즈> <사람일보> 등 분투

<서프라이즈>와 <사람일보>도 ‘개표 부정 의혹’을 연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서프라이즈>에는 누리꾼들의 선거 부정 의혹 제보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람일보>는 해외 유권자들의 여론을 전파, 국내외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여론 확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미온적 태도다. 이석현 의원과 김정길 전 의원 정도가 진상규명에 동조할 뿐, 지도부가 나서 공론화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석현 의원의 10일 고위정책회의 모두발언 내용을 민주당 공식 브리핑에서 “이석현 의원의 수개표 관련 발언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의견이고, 이 건과 관련해 현재 행안위 차원에서 검증과 청문이 진행 중이다”라는 입장을 밝힐 정도다.

23만명 누리꾼들의 서명 참여와 해외 유권자들의 집단 성명,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집회와 농성, 사회단체의 ‘국정원 선거 개입’ 국정조사 요구와 정보공개 청구, 각계 인사들의 압박 등이 이어지는 상황을 민주당이 언제까지 외면할지 주목된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실시했던 재검표를 두려워하는 민주당의 속내가 궁금하다. 진실규명과 공정보도를 책임진 언론의 태도 또한 지켜볼 일이다.


<인병문 기자>

 
 
 
 
 
기사입력: 2013/01/13 [09:53] 최종편집: ⓒ 사람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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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언론 대신한 <나꼼수>에 대한 탄압을 보며

그간 고마웠다, <나꼼수>..."김어준 쫄지마"

[게릴라칼럼] 무너진 언론 대신한 <나꼼수>에 대한 탄압을 보며

13.01.12 20:49l최종 업데이트 13.01.12 20:49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조용하다. 시쳇말로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처음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않는 게 낫지. 게다가 그들은 공식적으로 마지막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MB 시대가 끝나면 사라진다고도 했고, 대선 바로 직전 마지막이라는 타이틀도 올렸었다. 비극적이지만 그들의 말은 대부분 이뤄졌다. 가슴 시린 결말만 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역시 아이폰 팟캐스터를 뒤적인다. 혹여나 그들이 스스로를 배신하고 방송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도 '깔대기' 정봉주가 이제 막 출소해서 입이 근질근질한데 설마 아무 말 없을까? 아무리 시대가 하 수상하다고는 하지만 '멘붕(멘탈붕괴)'에 빠진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쯤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미련을 버린다.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절대 그럴 리 없기 때문이다. 까짓거 선거에서 졌으니, 여당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압수수색이 들어오니 다시 마이크를 잡겠다고? 아니다. 그들은 끝까지 '쿨해야' 한다. 바로 <나꼼수>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기울지 않았던가. 김어준은 김어준대로, 주진우는 주진우대로, 김용민은 김용민대로, 정봉주는 정봉주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또다른 최선을 다 할 것이며 이후 기회가 있을 때 또다른 모습으로 다시 뭉칠 것이다.
 

지난 12월 25일 자정, 홍성교도소에서 출소한 정봉주 전 의원과 김용민씨.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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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것은 그런 <나꼼수>를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이들이 그들의 지지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혹자들은 이번 대선의 야권 패배 이유 중의 하나가 <나꼼수>임을 지적하고 나섰고, 보수언론들은 출소한 정봉주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인용해 <나꼼수> 내부에 갈등이 있었던 듯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아직도 SNS나 언론사 게시판에서는 그들이 명명한 소위 '십알단'류의 이들이 <나꼼수>를 조롱하고 힐난하기에 바쁘다.

<나꼼수> 스스로 그 끝을 이야기했건만, 정작 그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나꼼수>를 붙잡고 있는 작금의 형국.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나꼼수>를 그만큼 두려워하고 불편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힘이 가장 센 지금, 제2의 <나꼼수>가 다시는 나타날 수 없게 손을 보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여권의 공세에 대해, 그리고 그 외곽조직의 비난과 조롱에 맞서서 야권의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혹자는 오히려 패배주의에 휩싸여 그런 여권의 주장에 동조하며 <나꼼수>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4월 총선의 패배의 책임이 김용민에게 있었다고 손쉽게 주장했듯이, 대선의 패배 역시 마녀사냥 하듯 <나꼼수> 탓을 하는 것이다.

당장 정봉주 전 의원의 출소를 떠올려보자. 과연 얼마나 많은 의원이 그를 찾아 왔던가. 그는 분명 민주당을 대표해서 BBK 의혹을 제시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 10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통합당은 그의 사면에 대해 일언반구 하나 없다. 도대체 그런 당을 위해 누가 열심히 일할 수 있단 말인가.

<나꼼수>, 다시 정치를 외치다

<나꼼수>는 지난 2년여 동안 작게는 야권의 승리를 위해서, 크게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었다. 삼엄한 경계와 감시 속에서,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내었다. 그들은 항상 웃어 보였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선에서 야권이 패배한다면 그들이 겪을 고초는 모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목숨까지 걸었다고 했을까.

덕분에 <나꼼수>는 정치와 담을 쌓고 있던 이들을 다시 정치의 장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기득권 세력들이 우리의 무관심과 외면을 어떻게 기만하고 이용하는지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사람들을 분노케 했으며,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냈던 뉴스의 그 소식들이 우리의 뒷통수를 얼마나 강하게 가격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기득권 세력들이 얼마나 후지고 추악한지 고발함으로써 우리에게 정치 참여가 왜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이번 대선에서 20~30대의 괄목할 만한 투표율 신장은 결코 <나꼼수>와 별개로 이야기 할 수 없다.

혹자들은 <나꼼수>에 찬성하는 사람만큼이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하게 뭉치고, 그들의 막말에 반대하는 이가 더 많아졌다며 역효과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과연 <나꼼수> 때문에 문재인 찍으려다가 박근혜를 찍은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혹 누군가가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나꼼수>의 기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치자. 그것은 <나꼼수>의 책임이 아니라, <조선일보> 1면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비극이요, 그와 같은 비극을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한 우리의 책임일 뿐이다. <나꼼수>는 어디까지나 해적방송일 뿐, 어젠다를 만들고 정책을 계획하는 건 사실 그들의 몫이 아니다.

또한 <나꼼수>는 우리들을 대신하여 MB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워줬다. 사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모두 주눅들어 있었다. '아침이슬'을 들으며 반성했다던 MB가 유모차 끌고 나온 주부들에게 얼척없는 벌금 때리는 것을 보며,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던 용산 철거민들과 쌍용차 해고자들이 강제 진압되는 것을 보며, 그리고 멀쩡한 사람이 대통령 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찰당하는 것을 보며 우리 모두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먼저 나섰다가는 왠지 크게 당할 것 같다는 불안감.

이때 <나꼼수>가 등장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공포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웃음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광대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가카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모토만으로 기득권 세력을 조롱하고 농락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신명나는 모습에 기꺼이 웃었고, 이를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었다. <나꼼수>를 통해 새로운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쫄지마 씨바'를 외쳐대던 그들. 이는 결코 단순한 욕지거리가 아니다. <나꼼수>는 저 천박한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해적방송'으로 규정했고, 그 정의를 통해 한낱 해적방송의 지껄임도 참아내지 못하는 MB정권의 몰상식과 비민주성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시정잡배 넷이 골방에 모여 앉아 시시껄렁 잡담하며 낄낄 웃어대는데, 정부가 거대 사정기관에 정보기관까지 동원시켜 그들을 압살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정부가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을까? 방송할 때마다 욕을 입에 담고, 고상함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자칭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가 감히 언급한다면 그것 역시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꼼수>는 그렇게 우리를 대신해서 기득권과 싸웠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조금이나마 숨통을 틜 수 있었다.

혹자들은 <나꼼수>가 정권초가 아니라 정권말이니까 가능했다며 폄훼하지만 이것 역시 헛소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정봉주 전 의원은 구속되었으며, MB정부 5년 내내 박근혜 당선인은 공공연한 차기 대통령으로 대세론을 유지해 오지 않았던가. 악독한 MB정부를 상대로 2년간 줄기차게 떠들었던 <나꼼수>.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무너진 언론을 대신했던 <나꼼수>
 

▲ 김용민 성대모사에 웃음 터진 <나꼼수> '국내 최초 가카의, 가카에 의한, 가카를 위한 가카헌정공연 <나는 꼼수다>(나꼼수)' 서울콘서트가 2011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렸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조현오 경찰청장,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성대모사를 하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 등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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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나꼼수>를 언급하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들이 MB정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는 것이다. MB의 등장과 함께 권력의 감시 기능은 고사하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공중파 방송들. <나꼼수>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여권을 감시하고, 그들의 꼼수를 막아냈던 거의 유일한 매체였다.

12월 18일 정오를 복기해보자. 당시 난 업무상 강남 모처에서 점심을 먹은 뒤 까페에서 거래처 직원들과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대선 하루 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이쯤되면 한 건 터뜨릴 때도 됐는데. 진짜 김정남이 망명 안 하는 건가?"
"<나꼼수>가 이미 말했잖아. 노출된 카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들어보니 MBC가 어제 새벽까지 인터뷰 내용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내려놨다던데. 결국 또 <나꼼수>한테 말린거지 뭐."

뒤를 돌아보니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30대 중반 내 또래의 직장인들이었다.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이 김정남 망명에 대해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운운했던 <나꼼수>를 들었거나 관련 기사를 보았을 것이며, 그 전날 밤 MBC의 수상한 동태를 이야기했던 이상호 기자의 트윗을 보거나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2012년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였다. 공영방송은 신뢰하지 못한 채 팟캐스트에 떠도는 <나꼼수>와 같은 해적방송을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추측해야만 하는 시대. <나꼼수>는 그와 같은 현실에서 언론들이 하지 못하던 그들의 기능을 대신했으며, 팟캐스트라는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다른 목소리를 원했던 국민들에게 대안언론으로서 새로운 매체와의 접촉을 가능케 만들었다. 현재 야권 지지세력들은 대선 패배 이후 기존 공중파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칭 국민TV 창설을 추진 중인데 이 역시 <나꼼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나꼼수>는 끝났다. 개인적으로 '멘붕'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보다 더 위급한 처지에 놓여있는 <나꼼수> 멤버들을 생각하노라면 이렇게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치이지 싶다. 어쨌든 우리는 그동안 <나꼼수>에게 엄청난 빚을 졌고, 현재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 헤쳐 나가리라 믿지만.

<나꼼수>, 그 동안 고마웠다, 수고했다. 당신들이 뿌려놓은 희망의 씨앗을 꽃피우는 건 우리의 몫임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당신들에게 말할 차례다.

"쫄지마 씨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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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서 눈물의 ‘야전식사’ 함께 한 소년

 

 

 

최전방서 눈물의 ‘야전식사’ 함께 한 소년
 
[한호석의 개벽예감](45) 김정은 제1위원장, “고난의 행군 못 잊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1/12 [13: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로동신문>에 실린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

북에서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되는 <로동신문>은 일반적인 일간지가 아니라 당보다. 당보는 단순한 사실보도를 싣는 게 아니라 북측 인민들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사상정신적 량식”을 주기 위한 글을 싣는다. <로동신문>에 실린 글들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의도에 따라 북측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해 기사화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013년 1월 7일 <로동신문>에 실린, ‘우리가 사는 시대’라는 제목의 ‘정론’도 북측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한 글이다.

그런데 그 ‘정론’에 들어있는 특별한 내용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회상한 글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북이 1990년대에 겪은 ‘고난의 행군’은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힘든 시련이었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혹심했던 시련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회상한 내용이 인용문 형식으로 그 ‘정론’에 담긴 것이다. 인용문은 아래와 같다.

“나는 고난의 시기 전선시찰의 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장군님을 수행하면서 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무한한 헌신성, 송고한 인민적 풍모를 가슴 뜨겁게 새겨 안게 되었으며 장군님의 그 강행군길에 나의 발걸음을 맞추어 나갔다. 나는 고난의 행군 시기 풋강냉이 한 이삭으로 끼니를 에울 때도 있었으며 거의 매일과 같이 줴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웠다. 나는 고난의 행군 전 기간 장군님을 모시고 인민들과 함께 있었고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겪었다. 만일 후날에 력사가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은은 어떻게 지냈는가고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떳떳이 말해줄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나는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나는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 이에 대한 증견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을 것 같지 못하다.”

북에서 발간되는 모든 종류의 글에 최고영도자의 발언이 실리는 경우 예외 없이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는 인용의사를 명시한 뒤에 이중꺾쇠 인용부호를 붙이는데, 서술이 아니라 담화의 경우에는 존댓말로 표기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내용은 예외적으로 인용의사도 명시되지 않았고, 이중꺾쇠 인용부호도 없으며, 존댓말로 표기되지도 않았다. 존댓말로 표기되지 않은 것을 보면, 위의 인용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담화가 아니라 회고서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을 왜 그처럼 예외적인 형식으로 기사화하였는지 북측 외부에서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서술한 글을 기사화하는 경우 그런 형식으로 표기하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은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쓴 글로 생각된다.

회고서술에서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 전 기간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당시 북측 인민들이 겪고 있었던 고생을 함께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에 대해서는 악담과 거짓말밖에 할 줄 모르는 <조선일보>가 2013년 1월 7일 보도기사를 통해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다. 대북악담 중독증에 걸린 <조선일보>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호화 유학생활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다른 반북수구언론들도 일제히 그렇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거듭된 보도사례를 돌아보면, 반북수구언론이 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으며,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심지어 없는 일까지 날조하면서 북을 헐뜯으려는 악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 대한 반북수구언론의 주장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의 유학생활

가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지도자의 사생활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법이다. 특히 북에서는 최고영도자의 ‘혁명활동’만 보도하는 것이 철칙으로 지켜지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추대되었을 때, 남측, 미국, 일본의 수구언론매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자본주의나라들의 수구언론매체들까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에 관해 일제히 보도한 바 있어서, 북측 외부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 유학하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문제는, 대북악담 중독증에 걸린 반북수구언론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해외유학에 관해 너무 심하게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데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스위스 연방수도인 베른(Bern)의 쾨니츠(Köniz) 지역의 리베펠트(Liebefeld)에 있는 슈타인휠츨리(Steinhölzli) 공립학교에서 3년 동안 유학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학교에 입학한 때는 1998년 8월이다. 스위스 학제에 따르면, 새 학기는 8월에 시작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8년 8월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 7학년(남측 학제로는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고, 3년 동안 그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2000년 가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02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여 5년 학과과정을 마치고 2007년에 졸업하였고, 야전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한 때가 1998년 8월이라는 사실은, 미카엘로(Micaelo)의 회고발언에서 확인된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Telegraph)> 2010년 9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미카엘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같은 반에서 옆자리에 앉아 함께 공부한 급우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는 1995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3년이다. 북은 1997년 말까지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였고, 1998년 1월 1일부터 2년 동안은 일종의 조정기인 ‘사회주의강행군’ 시기를 거쳤으며, 2000년 1월 1일에 발표한 공동신년사설에서 ‘사회주의강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측 인민들에게 ‘강성대국 건설구상’을 처음 밝힌 것은,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고 ‘사회주의강행군’을 시작하였던 1998년 8월에 있었던 일이다.

위와 같은 시기구분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스위스에 유학하였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 엉터리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결속한 뒤 약 7개월이 지난 1998년 여름에 스위스로 해외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대북악담에 중독된 <조선일보>의 사실왜곡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호화스러운 유학생활”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 역시 왜곡이다. 아래와 같은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스위스 연방수도 베른에는 그 도시에 장기체류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 자녀들이나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베른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가 있다. 베른의 무리 베이(Muri bei) 지역에 있는 스위스 주재 북측 대사관저에서 ‘베른 국제학교’까지 직선거리는 동쪽으로 1.3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북측 대사관저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가 4.1km나 떨어진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측 대사관저에서 생활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까지 통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먼 곳에 있는 학교에 입학한 것일까?

2013년도 ‘베른 국제학교’ 학비사정을 알아보면, 6-8학년생의 연간 학비는 1인당 27,900 달러이고, 9-12학년생의 연간 학비는 1인당 31,350 달러다. 학비 이외에 생활비까지 계산하면, 1인당 연간 50,000 달러 이상 지출할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이나 그 ‘귀족학교’에 다닐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스위스 베른에서 3년 동안 국제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유학하였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공립학교는 근로대중 자녀들이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니는 서민학교이며,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녔던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는 다른 나라들에서 스위스에 갓 건너온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전형적인 서민학교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그 공립학교 전교생 가운데 무려 45%가 외국인 자녀들이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베펠트 키르흐슈트라쎄(Kirchstrasse) 10번지에 있는 연립주택에 방을 얻어 살면서 약 200m를 걸어서 통학하였다. GPS 위성지도로 찾아보면, 그 연립주택은 근로자들이 사는 검소한 거주공간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닌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 공부하였던 급우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임호프(Imhof)의 회상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밤에 절대로 외출하지 않고, 파티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규율 있는 유학생활을 하였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 베른에서 3년 동안 유학하는 기간 대사관저가 아니라 검소한 연립주택에 살면서 서민학교에서 공부하며 규율 있는 유학생활을 한 것은, 인민적 풍모를 지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는 독일어로 교육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급우였던 미카엘로는 포르투갈 이민자의 아들이어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인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거주하는 연립주택에 갔을 때, 그곳에 사는 ‘가족’들이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미 중학생 시절에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미국 <CNN> 방송 2010년 9월 28일 보도에 나온 미카엘로의 회상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학교 유학시절에 특별히 농구와 컴퓨터를 아주 잘 했고,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텔레그라프> 2010년 9월 26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카엘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유학생활을 할 때 북측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특히 북측 애국가를 자주 불렀다고 회상하면서, “지금도 그 노래(북측 애국가를 뜻함 - 옮긴이)를 기억하고 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얼마나 애국가를 자주 불렀으면, 외국인 급우의 기억 속에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먼 나라에 가서 유학하면서도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심을 지니고 생활하였음을 말해준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지난 냉전시기부터 북이 서방세계와 접촉하는 통로였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바로 그 통로에서 3년 동안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서, 서구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였고 외국어 실력을 쌓았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활지침은 이미 소년시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학생활지침이기도 하였다.

최전방에서 눈물의 ‘야전식사’를 함께 나눈 소년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었다고 술회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5년 초부터 1997년 말까지 이어진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북측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외부사람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회고서술을 무심히 대할 수 있지만, 북에서는 그 회고서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까닭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북측 자료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경제 생산현장들에 대한 시찰을 뒤로 미루고 인민군 야전부대들에 대한 시찰에 집중하였다. 산짐승도 오르기 힘든 고지 위에, 바람 세찬 작은 섬 언덕에, 적진 가까운 긴장된 해안지대에 자리 잡은 야전지휘소, 경계근무초소, 전투훈련장, 병사들의 숙소와 세목장, 식당과 부식창고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간 시찰대상이었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강도 전선시찰은 ‘북한 정권 붕괴’를 노리며 대북침공을 물리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미국의 선제공격위험으로부터 북을 지키고 사회주의의 미래를 수호하기 위한 실로 간고한 혁명투쟁이었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2월 16일 기사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그 길은 제국주의자들과의 총포성 없는 싸움이였다.” 당시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간고한 반제혁명투쟁을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3년 동안 수행하였던 것이다.

둘째,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은 최전방 야전부대들을 시찰한 것이다. 그 시절로부터 퍽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북측 인민들은 철령, 초도, 오성산, 대덕산, 351고지 등 수많은 인민군 야전부대를 시찰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의 회고서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 자신이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고 회상하면서 “이에 대한 증견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술회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전방 야전부대들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였으므로 당시 최전방 야전지휘관들은 자기 부대를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10대 소년시절 모습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회고서술에서 말한 증견자들이 바로 그 야전지휘관들이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인민군 야전지휘관들은 ‘고난의 행군길’에서 그렇게 상봉하였던 것이다.

그 특별한 상봉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을 후계자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인민군대 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까닭은, ‘고난의 행군’ 시기 최전방 야전지휘관들이 줴기밥(남측에서는 주먹밥)으로 ‘야전식사’를 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던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을 직접 만났기 때문이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였던 초강도 전선시찰은 적들과 첨예하게 대치한 최전방을 돌아보는 것이므로, 그런 전선시찰길에서 식사시간에 맞춰 대중식당에 가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최전방에 대중식당이 있을 리 없으며, 더욱이 식량부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각지의 대중식당들도 때로 문을 열지 못했거나 단축봉사를 해야 하였을 것이다.

그런 시련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택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당시 북측 인민들이 먹었던 죽 한 공기를 아침식사로 들고 문을 나섰을 것이며, 부인이 싼 밥곽(남측에서는 도시락)을 야전차에 싣고 전선시찰을 떠났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에 따르면, 밥곽 안에는 줴기밥이 들어있었고, 줴기밥도 먹을 수 없는 때는 삶은 풋강냉이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남측 독자들은 전선시찰 도중 줴기밥을 나누는 ‘야전식사’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전식사’를 말해주는 북측 자료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 어느 날 동해안 쪽으로 전선시찰을 떠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점심시간에 야전차를 세우고 길가에 있는 너럭바위에 수행원들과 둘러앉았는데, 한 사람마다 줴기밥이 두 덩이씩 주어졌다. 줴기밥 두 덩이와 함께 “무오가리와 절인 오이에 까나리”가 밥반찬으로 나왔다. 무오가리는 말린 무를 잘게 썰어 무친 것으로 보이고, 절인 오이는 오이장아찌인 것으로 보이고, 까나리는 바다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날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나눈 ‘야전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배가 고플 때 먹곤 합니다. 밥은 줴기밥이 제일 맛있습니다. 나하구 함께 다니느라면 이제 줴기밥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줴기밥은 감도 특별한 것이 필요 없고, 만드는 데 품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급히 길을 떠나야 할 때 준비하기 쉬워서 좋고, 가다가 아무데서나 펼쳐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얼마 떼우지 않고, 현지 일군들이나 주민들에게 폐도 끼치지 않아서 좋습니다. 줴기밥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도중식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북측 자료도 있다. 1998년 4월 15일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최전방 군부대를 시찰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마침 점심시간이 되자 “변변치 못하지만 내가 싸온 점심밥도 함께 들자고 하시며 마련해가지고 오신 점심곽을 풀어놓으시였”는데, “밥곽들에는 크지 않은 줴기밥 몇 덩이와 몇 가지 나물채가 들어있었”다.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이 설마 “이런 밥곽을 싸가지고 다니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군부대 지휘관들은 “왈칵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울음을 삼키는 군인들 앞에 밥곽을 밀어놓으시며 어서들 들라고, 그래야 나도 먹을 게 아닌가고 하시면서 오늘은 뜻깊은 명절날이니 한 잔씩 들자고 하시며 축배도 부어주시였다”고 한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야전부대 지휘관들이 눈물 속에서 나누던 ‘야전식사’ 현장에서 함께 줴기밥을 들었던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런 눈물 어린 체험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서 “나는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을 것 같지 못하다”고 술회하였던 것이다.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부터 받아 안은 사상정신적 양식

북의 최고영도자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문제는, 북에서 매우 중대한 정치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북측 시각에서 바라볼 때, 최고영도자는 자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혁명활동을 통해서, 그런 간고한 투쟁 속에서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상호결합되고, 그런 운명공동체 안에서 최고영도자로 추대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북에서 말하는 ‘혁명적 수령관’의 핵심내용이다.

북에서 간행된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김일성 주석은 1930년대 항일혁명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민들과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25 전쟁시기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한 평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1950년대 후반 전후복구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민들과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었다. 당시 소년기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과 함께 전후복구의 구슬땀을 흘린 노동현장들이 숱하게 많지만, 그 가운데서 소년기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가한 대규모 건설공사만 손꼽으면 1958년에 있었던 평양시 2만 세대 살림집 건설을 위한 경상골 부재생산 전투와 해주-하성 광궤철도 부설공사, 그리고 1958년과 1959년에 있었던 대동강 호안 공사 등이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한 시련이었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미 소년기에 혁명활동에 동참하면서 ‘일심단결 운명공동체’ 속에 들어선 것으로 된다. 만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지 않고 호의호식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추대한 것과 ‘혁명적 수령관’은 서로 합치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기 때문에, ‘혁명적 수령관’에 의거하여 후계자로 추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북에서 후계자가 단지 혈연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북의 혁명적 후계추대를 봉건국가의 혈연적 세습책봉으로 단정해버린 북측 외부의 주장이 왜 이치에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3년 동안 수행한 경험은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세계관 및 인생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최고사령관과 야전지휘관들이 최전방에서 함께 나누던 그 눈물의 줴기밥은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부터 받아 안은 사상정신적 양식이었다.(2013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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