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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가능성을 보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5/17 08:00
  • 수정일
    2013/05/17 08: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과전망] 재보궐 선거를 통해 본 통합진보당의 가능성과 과제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3/05/17 [01:02] 최종편집: ⓒ 자주민보
 
 

[통합진보당이 여전히 가능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대선과 그 이후 보여준, 할 말은 하는 선명야당으로서의 행보와 온갖 음해와 매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보적 노선, 그리고 끊임없이 노동자, 농민, 서민 속으로 들어가 어려움을 함께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_ 필자 주]


지난 4월 24일 재보궐 선거는 보수 양당의 한계와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였다.

새누리당은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이곳은 원래 새누리당이 강세였던 지역으로 승리가 당연시되던 곳이었다. 새누리당에게 정작 중요한 곳은 수도권인 서울 노원구병이었는데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가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두 배 가까운 표차로 패배하면서 수도권 민심은 결코 새누리당에게 우호적이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대선 이후 계속되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은 새누리당의 한계가 더 이상 극복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가장 중요한 서울 노원구병에 후보조차 내지 못했고 모든 선거구에서 전패하면서 민심의 버림을 받았음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대선 때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들을 믿고 시급히 당을 재정비하여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기는커녕, 책임공방으로 시간을 보내며 속속 드러나는 정부여당의 심각한 문제들을 어물쩍 넘겨 대중들의 지탄을 받았고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는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을 떠난 민심은 자연스레 안철수 의원에게 쏠렸다. 그러나 안 의원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는 거품이 많다. 노원 주민들을 만난 선거운동원들은 주민들이 안 의원의 구체적인 노선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에 실망해서 안 의원을 지지했다고 이야기한다. 평소 안 의원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던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도 5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론적이고 모호한 화법도 여전하다. 선거운동 기간 중 그가 여야관계나 남북관계 등에 관해 발언한 것을 보면 원론적 양비론 혹은 초당적 협력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안철수는 달라졌는가. 유감스럽게도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고 글을 남겼다.

이에 반해 진보당은 비록 당선자를 내지는 못 했지만 당의 현황에 비해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노원구병을 제외하고는 모든 후보가 현재 당 지지율보다 높은 득표를 했으며 특히 충남 부여·청양의 경우 지역위원회가 없는 상황에서도 5.72%를 득표했고, 부산 영도구도 11.95%나 나왔다. 기초의원 선거도 서대문구마선거구는 13.91%, 고양시마선거구는 13.81%의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진보당이 대선 이후에도 계속되는 <종북공세>에 시달리고 있으며 소속 의원과 당원들에 대한 탄압도 집중되며, 대선 책임론까지 뒤집어쓴 상황에서도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진보당이 여전히 가능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대선과 그 이후 보여준, 할 말은 하는 선명야당으로서의 행보와 온갖 음해와 매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보적 노선, 그리고 끊임없이 노동자, 농민, 서민 속으로 들어가 어려움을 함께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당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확인된 가능성을 현실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본 정신을 계속 고수하고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정체불명의 애매모호한 새정치 구호에 휩쓸리지 않고 조국과 민중을 위한 진보적 정치노선을 더욱 발전시키고 대중들에게 설파해야 한다. 진보당은 오는 6월 정책당대회를 통해 당의 노선과 정책을 토론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계기들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통일경제노선을 주목하라

진보당의 노선으로 주목할 부분은 통일경제노선이다.

통일경제노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서민들의 경제생활이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지속되는 속에서 서민경제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당연히 서민들의 생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복지를 늘리는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경제 전체가 붕괴하는 속에서 복지를 늘리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둘째로 위와 같이 세계 경제가 어렵다보니 한국 경제를 살릴 현실적인 출구로 자연히 북한이 떠오르게 된다. 지난 대선 당시 모든 후보들이, 심지어 새누리당 후보조차 남북경제협력을 중요한 경제 정책으로 제시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남북경제협력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담보인 정치군사적 문제는 진보당만이 올바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일경제노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셋째, 최근 개성공단 철수 사태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사태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가 남북경제협력을 가로막고 한국 기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역으로 확고한 남북경제협력이 한반도 위기를 완화시킬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경제노선은 단순한 남북경제협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북경제협력을 가로막는 정치군사적 문제를 해결해 통일에 기여하는 노선이며, 일방적인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살려 함께 번영하는 노선이며, 재벌이 아닌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 경제 모순을 치유하는 노선이며, 상징적인 효과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경제번영을 이루는 노선이다.

여러 연구자료들을 보면 이러한 구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서해유전의 경우 수백억 배럴이 매장되어 있어 석유를 100% 수입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브라질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철광석을 수입하지 않고 북한에서 반입하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북한의 철광석 매장량은 세계 9위다. 유럽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철도 연결이 가져오는 경제적 이득 역시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개성공단을 원래 구상대로 완성했다면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열렸을 것도 자명하다.

또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당인 진보당이라면 이러한 경제적 성과가 재벌 대기업에게 쏠리지 않고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돌아가는 경제 체질 개선까지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남북경제협력 참여 조건으로 중소기업을 1순위에 넣는다거나, 석유나 지하자원 개발 등은 공기업을 활용해 그 이익을 복지예산으로 돌릴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일경제노선은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 분야에 대한 연구 성과가 많지 않은 형편이다. 더 많은 관심과 연구를 통해 진보당이 더욱 진보된 정치노선을 수립해야 하겠다.(2013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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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와 대처, 영웅과 마녀의 죽음

 

[제3세계 눈으로본 서구열강](28) 애도와 증오의 대상이 된 두 사람
 
유태영 박사
기사입력: 2013/05/16 [22:1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차베스를 <애도하는 눈물>과 대처를 <증오하는 분노>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13년 3월 5일에 서거했다. 차베스는 3년 전에 암 수술을 받고 치료를 계속했으나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았다. 2019년까지의 4선 승리의 임기를 남겨 놓고 애석하게 떠나면서 차베스는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영웅적 <혁명의 꿈>을 못다 이루고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다.

하지만 차베스가 남겨놓은 못다 이룬 <혁명의 꿈>은 21세기 제3세계에서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차베스의 확실한 정치적 신념은 날이 갈수록 제3세계에서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한편 지구의 반대편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가 2013년 4월 8일 오랫동안 뇌졸중과 치매를 앓던 병세가 악화되어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거릿 대처 영국의 전 총리가 뇌졸중과 치매로 사망했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런던 시민들이 길거리에 뛰쳐나와 <매기, 매기, 마녀는 죽었다>라고 기뻐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런던에서 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도 역시 많은 군중들이 맥주와 함께 <잘가라 마녀, 마녀는 죽었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춤추며 거리를 행진했다. 대처 전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면서 1979-1990년에 걸쳐 11년 동안 집권 했는데 한국의 박정희 정권을 모델로 여겼다고 한다. 마거릿 대처는 한국의 6.25전쟁에 대하여 언급하여 말하기를 공산주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한국이 싸웠는데, 유럽도 한국처럼 일어나서 공산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차베스의 죽음과 대처의 죽음에 대하여 언론은 복잡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두 가지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무엇인가? <혁명의 역사>와 <침략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베스가 통치한 역사는 실제로 <혁명의 역사>였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대처가 통치한 역사는 실제로 <침략과 전쟁의 역사>뿐이었다.

대처는 1982년에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영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승리하였다. 30년이 지난 오늘도 영국은 포클랜드 섬에 영국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포클랜드 섬 주변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영국과 아르헨티나와의 영유권 문제로 대립이 보다 더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처의 <침략적 모델>과 차베스의 <혁명적 이미지>를 비교하여 고찰해 본다.

1. 마거릿 대처는 침략적 인종차별주의자

<죽은 사람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예의는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공적인 인물>에 대해서도 사회적 예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의 첫 여성 수상으로서 전세계의 정치문제에 대하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영향을 끼친 <공적인 인물>이다. 대처는 중동 제1차 걸프전 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전쟁을 시작할 때 대처는 부시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며 후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처는 칠레의 친미 독재자 피노체트를 지원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과 8년 동안 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할 때 대처는 친미적 우방국으로서 사담 후세인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처는 인도네시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수하르토 대통령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훌륭하고 소중한 친구라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더 큰 가장 최악의 문제는 대처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대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에 대하여 <만델라는 테러리스트>라고 악담을 했다. 대처의 이와 같은 악담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감을 느낀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대처의 악담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잘못된 발언이다>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처는 호주의 이민정책에 관여하여 호주가 남태평양 지역에서 동양계 이민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성 발언을 함으로써 호주의 밥 카 외무장관은 대처에 대하여 <염치없는 인종주의자의 내정간섭>이라고 혹평을 했다.

대처의 악성적인 통치행태를 <대처리즘>이라고 부른다. 대처리즘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행하여 건전한 영국 사회를 오히려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처의 통치행태는 기존의 영국 사회를 파괴하고 오직 <개인과 가정>만을 중요시하는 반사회적 정책을 주장했다. 대처는 <사회공동체>를 부인하고 많은 공공부문을 폐지하고 민영화를 강행함으로써 사회적 <복지국가>를 부인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적 정치체제를 도모했다.

대처는 신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 <타협은 없다>라는 철의 여인의 통치형태를 주장했는데 이러한 통치행태로 인하여 그때 당시 영국의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은 더욱 더 빈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처가 남긴 악담(망언)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반사회적인 것은 1987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개인과 가정은 있지만 사회? 그런 것은 영국에 없다>라는 악담이다. 이와 같은 대처의 언행은 영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치행태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처는 <사회복지론>을 완전히 부인하고 오직 부유층과 기득권자들만을 보호해주는 악덕정치를 했다. 대처는 <사회복지>를 주장하는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민중의 요구를 오히려 영국 내부의 적으로 단정했다. 대처의 사망을 계기로 하여 대처정권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영국의 국론이 둘로 분열되고 있었다. 영국의 언론들은 둘로 갈라진 국론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대처의 통치행태의 공과 실에 대하여 영국의 국론이 둘로 분열되고 있는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ㄱ. 대처의 <반 노조>와 <공기업 민영화>정책은 영국의 빈곤한 시민들에게 주어지던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사회복지혜택을 박탈했다. 하지만 영국의 막강한 귀족사회는 대처를 권좌에서 <철의 여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영국 민중의 힘으로는 대처정권을 무력화시키는데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대처정권은 약자에게 가혹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ㄴ. 대처가 죽기 전 2012년에 마거릿 대처의 삶을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이 개봉됐다. 그런데 대처를 좋아하건 대처를 혐오하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치매를 앓고 있는 대처에 대한 영화가 관심을 끌면서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다. 치매라는 끔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처량한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소름끼칠 만큼 영국 정치계에서 폭정을 감행했던 <철의 여인>에 대한 화려한 영화가 개봉되어 흥행했던 것이다.

대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단력 있는 페미니스트이자 영웅적 정치인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처의 영웅적 결단이 사실에 있어서 모두 다 <옳지 않은 결단>들 뿐이었다는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대처정권은 인두세(poll tax)를 가난한 민중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광활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백만장자들에게는 막대한 혜택을 부여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모두 스쳐가고 있다. 대처정권의 11년 집권기간에 영국의 20개 대형국영기업들이 민영화가 되어 기업주들에게 단기간에 막대한 돈을 벌게 해준 기록도 대처의 전기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대처정권 하에서 빈곤한 가정의 7세 이하의 아동들에게 우유무료급식을 중단시켰던 ‘우유날치기법’(Thatcher Milk Snatcher)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이 영화에서는 언급이 전혀 없다.

대처정권의 통치기간에 실업자가 360만 명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서민들을 위한 공공주택의 총량을 감소시킨 사실도 대처의 전기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서민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재정을 삭감하고 지방 의회에 지원해 주던 국고보조금도 삭감함으로써 대처행정부에 대한 지지가 감소되고 있었던 사실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대처를 오직 일종의 페미니스트 영웅으로만 묘사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영화이다.

ㄷ. 대처 사망 후 영국 BBC방송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처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70%가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났으며 대처주의에 대한 호감은 30%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정권의 파괴적인 정치행태에 대하여 <대처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말하기를 <대처는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여성 정치인이었다>라는 이율배반적인 극찬을 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개방을 주도한 공로로 199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소련의 반민족적인 인물 고르바초프는 대처와 동시대에 살았던 정치가로서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극찬을 했는데 <대처는 우리 시대의 역사에 남을 지도자이다>라고 말하여 초점이 흐려진 조사를 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소련의 고르바초프보다 한 수 더 떠서 대처에 대하여 보다 더 높은 평가를 했는데 오바마는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말하기를 <전 세계는 위대한 자유투사를 잃었으며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라고 찬양했다. 아마도 오바마는 영국이 아프리카에 대하여 극악한 비극적인 침략을 감행하였던 죄악의 역사에 대한 기록들을 백악관의 호화로운 생활 속에서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이 대처는 기독교적 공헌을 했다고 말한 것은 큰 실수였다. 1979년부터 11년간 대처가 여성 총리로서 펼친 영국의 경제정책은 별것이 아니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한 <레이거노믹스>를 그대로 영국에 적용한 것뿐이었다. 흔히 말하는 영국의 <대처리즘>은 미국을 추종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식 <레이거노믹스>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었다.

ㄹ. 대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영국에 전해지자 애도가 아니라 대처의 죽음을 기뻐하는 민중들의 물결이 전국에 파도치고 있었다. 왜 그런가하면 대처가 집권한지 5년 만에 실업자 수가 150만 명에서 320만 명으로 급증했었기 때문이다. 영국 국민들의 상당수는 <대처야말로 영국을 망친 영국의 지도자였다>라고 외치면서 <대처리즘>에 증오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영국의 국론이 둘로 분열된 것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트위터, 유튜브 등을 비롯해 여러 TV와 신문들도 엇갈린 부정적 보도를 발표하고 있었다.

<대처의 무덤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먼지를 내리 밟아라> 등 기사와 함께 그 외에도 대처에 대한 험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보다 더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특이했다.

ㅁ. 대처에 대한 장례식도 영국의 국론이 분열되어 애도와 비난이 교차되고 있었다. 가난한 영국 민중에게 대처는 독일의 히틀러와 같은 지도자였기 때문에 대처의 장례식은 국가적 화려한 행사가 아니라 <대처 사망 축하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처는 국가의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는 정치를 강행했기 때문에 대처의 장례식도 국가적 행사가 아니라 반드시 순전히 <민영화한 장례식>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켄 로치는 말하기를 대처의 장례식은 물론 민영화해야하고 장례비용도 가장 싼 업체를 선택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처는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정치가로서,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하고, 공장을 폐쇄했으며, 사회공동체를 파괴하는 등의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어쨌든 말 많은 대처의 장례식은 2013년 4월 17일에 국장에서 한 단계 아래인 반공식 장례식으로 치려졌는데, 의회의 승인이 아니라 단지 영국 왕실의 동의에 의한 장례식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처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냐 마느냐하는 논란으로 복잡했으나 세인트폴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식에 여왕이 결국 참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처의 장례식 비용에 세금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청원이 3만여 건이나 접수됐으며 북아일랜드 분리독립세력(IRA)의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여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장례식이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대처의 장례식은 대처의 죽음을 축하하는 수백만 민중들의 축하 파티와, 이와는 대조적으로 삼엄한 경찰의 경계 속에서 치러진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대처와 가까웠던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는 장례식 초청장을 받고도 고령에 따른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 문제로 대처와 적대관계 속에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는 아예 초청장을 보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2. 우고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자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13년 3월 5일 오랜 암 투병 끝에 지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2019년까지의 임기를 남겨 놓고 58세의 나이에 끝내 눈을 감았다.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베네수엘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군중들의 추모 열기는 베네수엘라 방방곡곡에서 물밀듯이 파도치고 있었다.

차베스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된 카라카스의 군 박물관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군중들은 차베스가 잠들어 있는 대리석 석관주변에서 기도를 하거나 석관을 바라보면서 24시간 내내 떠나지 않고 차베스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같이 광대하고 이같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남미에서도 특이한 현상으로 여겨진다고 세계 언론들은 보도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국제 사회에 전해지자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애도 메시지가 잇따라 쇄도했다. 영국의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과는 완전한 차이점을 드러낸 것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에 대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며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국가들과 지도자들의 명단을 밝힌다.

ㄱ. 쿠바 정부는 차베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쿠바 정부는 TV로 낭독한 공식 애도 성명에서 차베스는 쿠바혁명 지도자 카스트로의 사상적 아들이라고 추모했다.

ㄴ. 브라질의 호세프 대통령은 추도문에서 차베스는 <위대한 남미인>이며 브라질의 친구를 잃은 큰 손실이라고 했으며 전국적으로 1분간 묵념하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또 브라질 전 대통령인 룰라는 차베스의 사망은 남미의 민중 모두의 슬픔이라고 추모했다.

ㄷ.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TV연설에서 눈시울을 적시면서 말하기를 <차베스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서 남미 민중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ㄹ. 이란도 하루를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말하기를 <차베스는 현명하고 헌신적인 지도자이며 미 제국주의와 싸운 혁명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ㅁ.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차베스 대통령이 인도와 베네수엘라의 양국관계를 강화한 그의 공적을 찬양했다. 싱 총리는 특히 차베스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반제국주의와 투쟁한 차베스의 업적을 기렸다.

ㅂ.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차베스는 미래를 내다보는 스스로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투쟁했으며 러시아와 양국간에 단단한 관계를 만들었다>라고 추모했다.

ㅅ. 중국은 차베스에 대하여 <그는 위대한 지도자이며 중국 인민의 절친한 친구였다>라고 하면서 많지 않은 나이에 떠난 차베스의 서거를 애도했다.

ㅇ. 유럽연합(EU)의 바호주 상임의장은 공동성명을 내고 차베스 대통령은 사회개혁 정책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한 위대한 지도자라고 조의를 발표했다.

ㅈ. 영국의 외교장관인 헤이그는 차베스는 탁월한 통치이념으로 남미의 넓은 지역에 큰 영향력을 남겼다고 추모했으며,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고인의 주장을 모두 다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정의를 위해 싸운 것은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했다.

ㅊ.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일간신문에 기고하여 <차베스는 떠나갔지만 차베스주의는 페론주의처럼 남미 민중들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ㅋ.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 국가들은 공동으로 차베스 대통령이 카브리해 국가들의 연합을 위하여 공헌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차베스는 영원한 지도자라고 추모했다. 뿐만 아니라 남미의 동맹국들도 공동으로 그들의 지도자들이 차베스의 서거에 대하여 <차베스 형제의 죽음>으로 애도한다고 전했다.

ㅌ. 독일의 좌파당 카트야 릭싱어 대표, 할리우드 영화 감독 올리버 스톤과 개성파 배우 숀 펜 등과 미국의 온라인 언론 <데일리 비스트>,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 심지어 미국 마이애미주의 한 식당에 모인 군중 등, 전 세계 지구촌 여러 나라들에서 일제히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추모의 물결이 파도쳤다.

베네수엘라 현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차베스 대통령을 추모하는 민중들의 행렬은 한 달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지면상 제한으로 차베스 대통령 추모에 대한 많은 기록들을 모두 다 기록할 수 없으므로 여기서 생략한다.

ㅍ. 하지만 끝으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세계적으로 파도치는 것과는 크게 엇갈리는 매우 짧은 애매한 문구로 차베스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추가한다. 오바마는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말하기를 <베네수엘라의 어려운 시기에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지지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한다>는 이상하고 엉뚱한 발언을 했다.

그런데 오바마는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조문, 추모>라는 단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차베스 대통령이라는 칭호조차도 언급하지 않않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베네수엘라의 <국민>과 <정부>라는 두 단어만을 사용하였는데 아마도 오바마는 베네수엘라의 <국민>과 <정부>를 구별하여 상호 대립하게 하려는 미묘한 음모가 담긴 발언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오바마는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는 보다 높은 찬사를 하였다. 오바마는 <대처는 세계를 위한 자유투사이며 미국의 진정한 친구였다>라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스페인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략하고 400년간 극악한 식민통치를 감행한 죄악의 역사와 영국이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를 침공하고 있는 오늘의 역사에 대하여서는 전혀 모르는 척 하고 있다. 오바마는 차베스 대통령이 민중을 위하여 반침략주의 투쟁에 일생동안 헌신한 고귀한 정신에 대하여 흑인의 눈으로 보려하지 않고 오직 백인의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3. 차베스가 못다 이룬 꿈 베네수엘라와 남미는 어디로?

차베스는 1954년 6월 28일 베네수엘라의 시골에서 평범한 교원의 아들로 출생했는데 그의 할머니는 인디언 원주민으로, 차베스는 혈연으로 민중과 연대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의 현실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부모들은 차베스가 목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차베스는 어러서부터 남미의 해방자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의 전기를 읽고 백인들의 강포와 토착 원주민들의 비극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다.

차베스는 군관하교에 입학하여 군인으로 성장했다. 차베스는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을 본받아 베네수엘라의 민중을 위한 혁명을 꿈꾸기 시작했다. 차베스는 군인으로서 친미정권에 대항하여 반정부 항쟁을 감행했으나 실패하여 투옥되었다가 1994년에 석방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에도 항쟁을 계속했다.

이러한 차베스는 1998년에 민중투표 64%로 당선되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21세기 볼리바르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신식 사회주의 건설을 선포하자 남미의 나라들은 <제2의 피델 카스트로>, <제2의 체 게바라>가 새로 출현했다고 환성을 올렸다. 미국의 자본주의적 침략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던 남미 나라들은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등장으로 위협을 느낀 미국은 2002년에 차베스 대통령을 제거하려고 친미 쿠데타를 시도했다. 그런데 차베스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친미 쿠데타는 48시간이 채 안 되어 실패하였으며 차베스 대통령은 무사히 다시 대통령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의 쿠데타 음모를 물리친 베네수엘라 해방을 위한 차베스 대통의 통치이념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미국의 눈엣가시>가 된 차베스 대통령의 반미와 민중을 위한 개혁정치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존엄을 되찾아주었으며 그동안 중남미에서 주인행세를 하던 미국의 손아귀에서부터 베네수엘라를 해방시켰다. 베네수엘라의 반미 투쟁 승리는 우선 중남미에 확장되어 미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구심점이 되고 있었다.

차베스 대통령이 14년간 통치한 결과를 보면, 역대로 빈곤에 허덕이던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이 우선 역사상 처음으로 <하루에 세끼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집권 전에는 실업률이 20% 이상이었는데 7% 이하로 줄었다는 사실과 극빈층도 3분의 2가 줄었다고 하는 사실도 평가된다.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 2012년 10월 7일에 대통령 재임을 위한 선거가 있었다. 미국이 지원하는 막강한 반대파 후보자였던 카프릴레스를 물리치고 54% 이상의 득표로 재선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도 차베스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서민 차베스>의 민중파워가 막강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강요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물리치고 제국주의 침략을 배격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1월 브라질에서 개최한 <세계사회포럼>에서 5만 군중을 향해 반미반제의 연설을 하여 제3세계의 반제국주의 투쟁노선을 밝히는데 공헌했다.

뿐만 아니라 차베스 대통령은 UN 총회연설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부시에게는 <악의 축>, <노랑 냄새나는 악취>라고 독설을 서슴지 않고 퍼부었다. 또한 차베스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중남미를 순방하는 것을 비판하여 말하기를 <악마의 괴수>라고 혹평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집권 14년 동안에 베네수엘라에는 22개의 공립대학이 신설됐으며 교사의 수는 65,000명에서 무려 다섯 배가 넘는 350,000명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문맹퇴치와 토지개혁을 동반한 농업개혁이 농촌중심으로 지속되었고 병원과 주택이 대량으로 신축되었으며 수많은 협동조합도 농업부문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추진했던 중요한 정책은, 베네수엘라의 국운을 좌우할 수 있는 석유산업을 친미악덕 자본주의자들의 손으로부터 몰수하여 국가의 통제 하에 국영산업으로 확립한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보유하고 있는 석유매장량은 3천억 배럴에 달한다. 차베스 대통령이 2007년에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함으로써 미국의 엑손 모빌 같은 거대한 석유회사들은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에서 그 기반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뿌리 깊은 친미 기득권세력들의 <꿀단지>였던 석유산업을 과감하게 몰수하여 국가 통제 하에 들어가도록 하는 개혁에 성공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야심 찬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우선 첫 해에만도 100만 명이 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며 기초의료보험 혜택을 1,800만 명이 받았다. 또한 값싸게 식료품을 공급하는 국영소매점을 14,000개 이상 설립했다. 이와 같은 파격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들은 다방면으로 차베스 대통령의 집권 14년 동안 지속됐다.

미국의 설문조사기관인 <갤럽>의 발표에 의하면 베네수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뽑혔는데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적 생활의 만족도를 10점 만점에 7점으로 평가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것은 어떤 독재로 인함이 절대로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정치적으로 반제국주의적인 사회체제로의 개혁을 통한 사회복지 제도 때문으로 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었다.

민중의 영원한 행복을 꿈꾸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사회주의 통치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 그의 꿈을 못다 이루고 애석하게 2013년 3월 5일에 서거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우리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주의는 날이 갈수록 보다 더 강해지고 있다>, <사회주의는 평등과 정의가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등의 말을 남겼다. 이와 같이 차베스 대통령은 죽음의 순간까지 외쳤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은 못다 이룬 꿈을 베네수엘라와 남미에 남겨놓고 떠나갔다.

2013년 3월 8일에 거행된 차베스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에서 민중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으며 죽은 차베스를 <아버지> 또는 <사령관 차베스>라고 울부짖으며 뜨거운 햇볕 아래서 5-6시간 넘게 서 있는 모습들은 그저 눈물겹고 경이로운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베네수엘라의 헌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 사후에 30일 내로 새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 차베스 대통령이 생전에 후계자로 지목한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4월 14일에 치려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마두로 부통령은 정계 진출 전에 버스운전수였던 노동자 출신 부통령이다. 1994년 차베스가 쿠데타 실패로 투옥됐을 때 구명운동을 전개한 것이 인연이 되어 차베스 대통령과 절친한 정치적 동지가 됐다. 마두로 부통령(51세)은 선거에 승리하여 차베스 대통령의 후임 대통령이 됐다.

2013년 4월 15일에 치러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후보자로 키프릴레스(41세) 주지사가 출마했다. 키프릴레스 주지사는 중산층, 기득권층 출신이며 막강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출마하면서 버스운전수 노동자 출신인 마두로 부통령을 깔보는 교만한 태도로 거만한 선거전략을 펴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결과는 마두로 부통령이 50.7%의 표를 얻어 49.1%를 얻은 야권 후보 키프릴레스를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두로 대통령 당선자는 버스운전수 출신으로서 14년간 국회의장, 외무장관 그리고 부통령을 역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3년 4월 19일에 버스운전수 출신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공식 취임식이 거행됐다.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은 차베스 대통령의 대형사진과 베네수엘라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대형 초상화 앞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취임선언을 하면서 진행됐다. 취임식은 남미의 모든 나라들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진보적인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한 자리에 모이는 성대한 축하행사였다. 중국과 러시아도 정부차원에서 고위급 대표단을 보냈다.

4월 19일에 대통령에 취임한 마두로 대통령은 4월 27일에 동맹국인 쿠바를 방문하여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예방하여 취임인사를 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마두로 대통령에게 두 나라는 카리브해 지역의 <한 가족>이라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카스트로의 <한 가족>이라는 말에 화답하여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보건, 교육,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열고 <전략적 동맹> 관계를 보다 더 공고히 맺을 것을 강조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연설을 하는 도중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피델 카스트로의 둘째 딸과 군중 앞에서 포옹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를 감독한 국제기구에서 60개국의 대표들 200여 명이 선거진행을 참관했다고 한다. 2013년 4월 19일에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평화롭고 공정한 선거가 진행됐다고 국제적으로 판정되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후보자인 카프릴레스 주지사는 선거 패배를 시인하지 않고 중산층 기득권의 막강한 세력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른바 <선거개표부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동을 일으켰다.

평화롭게 진행된 선거전에서 패배한 야당 후보자로서 카프릴레스는 <선거개표부정>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카프릴레스가 제 아무리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소동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확인된 공명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대통령 후보자였던 카프릴레스가 베네수엘라의 선거결과에 대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모저모의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간추려 살펴본다.

ㄱ. 카프릴레스가 제기하는 문제는 선거 득표수 차이가 2%에도 못 미치는 23만 표인데 이 근소한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득표수의 격차가 2%에도 못 미친다는 것에 패배자로서 아쉬움이 큰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선거라고 주장할 수 는 없는 것이며 아쉬움 때문에 불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카프릴레스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이유는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강행하여 친서민 정치노선을 확립했는데 이것을 마두로 대통령이 계승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기 위함이다. 카프릴레스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히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산층계급의 기득권 세력들이 굳게 뭉쳐서 2%의 선거 격차를 문제삼기 위함이다. 또한 이것은 마두로 대통령의 정권을 흔들어 놓고 통치의 초창기부터 방해공작을 펴고 있는 음모인 것이다.

ㄴ.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투표의 개표결과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면서 야당이 억지로 <재개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백악관 대변인 제이 카니는 브리핑에서 주장하기를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 결과의 <재개표>는 유권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전 대통령의 반미의 정치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을 끝장내고 친미적인 중산층이 승리하여 정권을 잡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선거에서 극우파 친미 세력이 패배한 것을 몹시 불행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재개표> 소동을 뒤에서 지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무례한 행태는 제3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친미정권이 실패했을 경우에 항상 찾아 볼 수 있는 미국의 전통이다.

ㄷ. 차베스 대통령 사망 후 베네수엘라 후임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진행 과정에 있어서 현직 부대통령이며 동시에 강력한 차베스 대통령의 후임자로 부상하고 있는 마두로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암살 음모설이 비밀로 나돌고 있었다. 베네수엘라가 혼돈에 빠지도록 미국이 부채질을 하고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마두로 부통령에 대한 <암살 음모설>은 콜롬비아 알바로 우리베 전직 대통령을 암살 음모자로 여긴다는 AFP통신 보도를 통하여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베 전 대통령 본인은 암살 음모설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전직 대통령인 알바로 우리베는 남미의 민중반역자로 악명 높은 친미주의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베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평이 높다. 그러므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음모설에 대하여 우리베 전직 대통령을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의심이라고 여겨진다.

ㄹ. 또 하나 터무니없는 소문이 있다. 그것은 미국 CIA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전에 개입하여 야권 후보자인 기득권 친미 후보자인 카프릴레스에 대한 암살을 계획했다는 소문이다. 미국이 친미적인 대통령 후보자를 암살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조건반사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차베스의 후임 대통령으로 등장한 마두로 대통령 후보자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기 위한 복합적인 이중공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작 음모설에 대한 확실한 입증은 알려진 것이 없다.

ㅁ.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4월 19일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당으로서 의회를 4월 30일에 소집했다. 하지만 의회는 초창기부터 주먹다짐 난투극을 벌였다. 얻어 맞은 의원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 17명이나 됐다고 한다.

카베요 의장은 난동을 부리는 야당 의원들에게 <공명선거의 결과를 부인하고 의회에서 난동을 부리는 야당 의원들은 의회에서 발언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의원들이 공명선거를 부인하는 것은 의원이 된 것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동이 된다.

야당 의원들이 선거결과에 불복하여 <재개표>를 주장하고 있지만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을 무효화하기에는 법률상으로 불가능하다. 베네수엘라 대법원도 공명선거에 의하여 마두로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헌법상 승리라고 시인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새로 출범시킨 정권은 전임 차베스 대통령이 시작한 사회주의 혁명을 계승하고 완성할 수 있는 투쟁전선으로 튼튼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풀뿌리 조직들인 50여개 단체들이 수도 카라카스에 모여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모략과 음모를 폭로하고 규탄했다.

풀뿌리 조직들은 마두로 대통령을 결사 옹호하여 차베스가 못다 이루고 남겨 놓은 미완성의 혁명을 베네수엘라와 카리브해의 국가공동체에서 그리고 남미와 제3세계에서 기어이 완성할 것을 굳게 결의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버스운전사 노동자 출신인 마두로 대통령이 당당하게 대통령이 되어 통치하게 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오늘 베네수엘라와 제3세계가 어디로 가는가를 분명히 가리켜주는 나침반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글을 맺으며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중남미를 순방하던 중 코스타리카에서 언론과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기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에 대하여 미국의 <인정 여부>를 질문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엉뚱하게 동문서답식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폭력과 시위와 야권 탄압 등이 발생한 베네수엘라 대선 과정에서 민주주의, 인권, 언론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라고 대답을 했다.

기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의 요점은 <대선 결과에 대한 인정 여부>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고 즉답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초점이 흐린 언어로 베네수엘라를 비방하는 정치적 발언을 한 셈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식의 답변은 강대국 지도자들이 제3세계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강압적인 언어의 말장난이며 동시에 강대국의 책임회피의 수단과 방법이다.

이와 같은 오바마에 대하여 마두로 대통령은 직격탄을 날렸다. <오바마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우파 기득권세력의 손에 달러를 쥐어주고 있으면서 베네수엘라가 혼돈에 빠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마두로 대통령은 오바마에 대하여 <건방지고 무례한 악마의 수괴>라고 비난했다.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코스타리카에서의 발언에 대하여 말하기를 베네수엘라를 괴롭히는 미국의 역대 백인 대통령들보다 오바마가 조금도 덜한 점이 없다고 논평했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 뿐만 아나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도 역시 오바마 대통령을 편들어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을 반대한다면 우리는 재검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베네수엘라 정부의 생존 능력에 대하여 진지하게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어정쩡한 발언을 했다.

뿐만 아니라 존 케리 국무장관은 말실수로 남미 국가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남미를 <미국의 뒷뜰>이라고 지칭했다는 소문이 남미 나라들에 퍼졌다. 그런데 이 소문에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킨 나라는 바로 베네수엘라와 제일 가까우면서 상호 연대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의 나라 볼리비아이다.

볼리비아는 미국 국무부 산하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에 당장 볼리비아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추방명령을 내렸다. 미국 국제개발처는 남미의 빈곤한 나라들에게 교육, 보건 등을 지원해 준다는 명목으로 현지에 와 있지만 사실은 약소국가들에 대한 내정간섭과 스파이 행위가 주목적이라고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은 폭로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면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밀착하여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주장하여 신자유주의를 영국에 정착시킴으로서 악명을 떨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런데 미국 언론에서도 <독재자의 딸>로 불렸던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밀착하여 이른바 <북의 비핵화>와 <강력한 대북억제력> 등을 주장하여 민족문제를 미국에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입장을 한층 더 견고하게 정착시키려는 외교를 했다.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기고 간 영국의 <대처>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이 둘을 비교하다 보니,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인지 궁금해진다.(2013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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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생자 시신 보고 "어미야 홍어 좀 널어라"

[5.18 특별기획①]'일베' 이어 종편까지 '5.18' 폄훼... 역사학계 "파시즘 우려"

13.05.16 09:40l최종 업데이트 13.05.16 11:00l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이틀 앞둔 가운데 '5.18 폭동' 주장 등 도를 넘은 비방이 일부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거세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보수 커뮤니티인 '일베저장소(일베)'와 종합편성채널(종편)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폄훼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오후 10시 현재 일베에서 '5.18 폭동'으로 검색한 결과 나온 게시물 수는 7757건이다. 대부분 "5.18은 북한특수부대와 연계된 무장폭동이었다"는 주장이 담긴 게시물이다.

지난 2002년 8월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일간지에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라는 광고를 내면서 노골화된 '광주 폭동' 주장은 올해 들어 일베 등 보수 누리꾼을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제기됐다. 정확히는 지난 1월 대법원이 이같은 주장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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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 2002년 8월 16일 <동아일보>에 실린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 광고에서 지만원씨는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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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법원은 '5.18은 민주화운동이 맞지만 지씨의 비방 행위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일베 등 보수 누리꾼들은 지씨의 무죄 판결을 오용, 5.18 민주화운동을 서슴없이 '폭동'으로 규정해 비난했다. "지만원이 무죄니 그의 주장대로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이다.

'일베', 5.18 희생자를 수산시장 홍어에 비유

이후 일베를 중심으로 한 '5.18 폭동' 주장이 민주화운동 희생자 조롱 등 도를 넘은 비방으로 번지면서 온·오프라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지난 13일 <오마이뉴스> 제보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의 일부 내용이다.

"일베 사이트에서 충격적인 게시물을 발견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수산시장에 널린 홍어로 패러디하더군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익 진영논리에 파묻힌 사람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보기에는 다소 심각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이날 일베 사이트에는 '광주 홈쇼핑 ** 잘 되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제목 아래 사진에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관들이 놓인 모습이 담겼다. 일렬로 놓인 관 위에는 태극기가 덮였다. 사진에는 "배달된 홍어들 포장완료 된 거 보소"라는 설명이 붙었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을 비하할 때 쓰는 은어로 일베에서 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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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 게시물
ⓒ 일간베스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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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글을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 갈무리한 게시물
ⓒ 오늘의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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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조롱에 가까운 5.18 비방 게시물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5.18에 대한 일베의 시각'이란 글을 보면, 한 일베 회원은 일렬로 엎드려 있는 광주 시민을 계엄군이 조사하는 사진을 두고 "5월 18일 주말을 맞아 광주 수산시장을 찾은 많은 주민들이 진열돼 있는 홍어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광주 시민인 시신들이 널브러진 채 얼굴만 천으로 감싸진 사진에는 "애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어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에서도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이라고 폄훼하는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고 나섰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는 지난 13일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는 임천용씨가 출연해 5·18의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왜곡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임씨는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다" "망월동 5·18 묘역의 신원미상자 70여 명의 묘가 이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묘다" 등의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최근 넘어온 탈북자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고만 할 뿐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진행자는 발언의 수위를 제재하기는커녕 주장에 의미를 부여했다. 진행자 장성민씨는 "시민들이 빨갱이·폭도·간첩으로 매도된 데 대한 의구심을 해결한 결정적 증거와 단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북한의 특수게릴라들이 어디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5·18 폄훼 움직임,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 이후 민주통합당은 즉각 해당 방송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한 브리핑을 통해 "과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정권에 의해 유포된 유언비어들이 21세기에 탈북인사의 입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노웅래·최민희·홍영표·홍종학 의원 등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프로그램 심의를 신청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종편의 이러한 방송을 두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트위터에는 "지금이 5공 시대인가 보다" "이상한 몇몇 탈북자 말만 믿는 이상한 탈북자 전용 종편방송" "종편의 상상력은 뭘 해도 상상 그 이상" 등의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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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갈무리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서 북한이탈주민 김명국(가명)씨는 자신이 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다고 주장했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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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갈무리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다는 전 북한군 특수부대원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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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편의 '5·18 폭동' 주장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는 5·18 당시 광주에 있던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이탈주민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방송 최초 단독인터뷰'라는 제목을 달고 방송된 이날 방송에서 김씨는 자신이 "5·18 당시 남파 지휘 총책임자 호위 역할로 남파되었다"며 "광주폭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5·18 관련재단 및 역사학계에서는 보수 집단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폄훼 움직임이 자칫 역사왜곡이나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송선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역사적으로 이미 평가가 끝난 사건인데도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 아예 5·18을 둘러싼 역사왜곡이 사실과 같이 인식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집단이 지지세력과 일부 겹친다고 할지라도, 정부는 허위 주장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하고 엄중하게 해당 주장에 대한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5·18의 역사적 의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됐다"며 "그럼에도 사회가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로 흐르면서 이에 맞춰 전두환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역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5·18 폭동 주장은 국가폭력을 안보라는 논리로 미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우리사회에서 파시즘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며 "이렇게 되면 우경화가 진행되는 일본사회와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파시즘으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화·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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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 있는 '5.16 악법', 박근혜는 폐기할까?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과 관련해 16명 사건 재심 진행 중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16 오전 9:24:40

 

 19세 다방 여종업원 신OO 씨는 1961년 4월 2일 대구시 전동 교원노조 사무실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이 집회에 모인 100여 명은 오후 4시 무렵 대구역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2대 악법은 살인법이다. 죽음으로 막아내자", "장(면) 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이 제지했지만 이들은 가두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대구 데모 사건'으로 알려진 '2대 악법 반대 투쟁'이다. 당시 장면 정부가 추진한 반공임시특별법(현 국가보안법과 유사)과 데모규제법(현 집시법과 유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번지던 차였다.

시위는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반공이란 미명 아래 다시는 안 속는다'는 내용이 적힌 펼침막을 펴들고 "악질 경찰 물러가라", "마산 사건(김주열 열사 사망 사건)을 아느냐", "너희들(정권)도 자동 케이스 15년감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신 씨는 이들에 섞여 잠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경찰에 체포된 신 씨는 4월 16일 기소를 당한다. 당시 공소장에는 집회의 즉시 해산을 요구하는 경찰국 경비과장을 향해 "저 새끼 잡아 죽인다"고 소리를 지른 '죄'로 적혀 있다.

단순 시위 사건이지만, 5.16쿠데타 후 신 씨에 대한 공소장이 변경된다. 신 씨에게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이 적용됐다. 두 달 반 후 만들어진 법에 의해 처벌을 당한 것이다. 19세 다방 종업원은 졸지에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는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신 씨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지만, 청구하지 않고 있다. 그는 '악법'에 의해 현재까지도 '유죄' 상태다. 1961년 5월 16일이 개인의 운명을 바꿔버린 이러한 사례는 당시 다반사로 일어났다.

▲ 박정희의 5.16쿠데타는 무법적인 상황을 연출했고, 숱한 피해자를 낳았다. ⓒ연합뉴스

52년 전 '5.16악법', 아직도 폐기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2년 전인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육군본부를 점령했다. 같은 시각 해병대 병력이 남산 중앙방송국(KBS)을 덮쳤다. 당시 박종세 아나운서는 군인들이 들이민 '군사혁명위원회' 명의의 혁명선언문을 받아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병대 중사 하나가 소리쳤다.

"아니 이 친구, 지금 상황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혁명이 일어났다고 했잖아. 읽으라면 읽어!"

박근혜 대통령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던 5.16쿠데타의 한 장면이다. 당시 서울장충초등학교 4학년이던 만 9세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숙제를 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을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쿠데타 후 계엄령을 발동한 박정희 세력은 다음 날인 5월 17일, 군사혁명위원회 명의로 전국 지구 육군방첩대 '위험인물 예비 검속 계획'이라는 문건을 발송한다. 이 문건의 '세부 계획'에는 "예비 검속 대상자의 소재를 파악(한) 후 경찰과 합동 수사하여 체포한다"고 돼 있다. 5월 26일에는 군·검·경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한다.

1961년 6월 3일 자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의 공문 '예비 검속자 처리에 대한 건의'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18일 동안 군·검·경은 무려 2769명을 체포·검속했고, 이 중 692명을 "장차 반공특별법이 공포되면 동법을 적용해 의법 처단할 대상"으로 분류했다. 앞으로 만들어질 법에 저촉되니, 가둬놓고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쿠데타에는 법도, 상식도, 절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무법 상태의 공포 통치, 그 서막을 알린 셈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 유족들을 중심으로 1960년 4월혁명 이후 생겨나고 있던 전국의 '피해자 유족회'들은, '앞으로 반국가 행위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몰려 졸지에 '반혁명 세력'으로 체포됐고, 많은 사람들이 실형을 받았다. 재심 청구 사건 중 유족회 사건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5.16쿠데타로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해 7월 3일 의장에 오른다)는 6월 6일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만들고, 이에 근거해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설치법과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을 각각 6월 21일, 6월 22일 만들었다. 문제의 특별법은 1957년 12월 21일부터 소급해 시행된다. 무려 3년 6개월 전의 행적까지 소급 적용하도록 한 이 법은 5.16쿠데타의 무법성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4월혁명 이후 점차 목소리를 높여 가던 혁신계 정당 및 시민단체는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당시 쿠데타 세력이 '쿠데타에 반대할지도 모르는' 신 씨 같은 사람들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고 감옥에 보내기 위해 만든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은 아직까지도 폐기되지 않은 채 법전 속에 존재하고 있다. 특별법이기 때문에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지만, 완전히 폐기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폐지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5.16 악법' 관련 16명 사건 재심 진행 중

"제6조 (특수반국가행위) 정당(과) 사회 단체의 주요 간부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국가보안법 제1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그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 동조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쿠데타 세력이 제대로 된 입법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만든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안에서 가장 문제가 된 조항이다. 이 조항을 이용해 쿠데타 세력은 사실상 첫 희생양으로 언론을 택했다. 정론직필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유명한 민족일보 사건이다.

쿠데타 세력은 민족일보 관계자들을 영장도 없이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구금했다. 7월 23일 검찰은 조용수 사장을 비롯해 민족일보 관계자들을 기소한다. 한 달여 만에 1심 판결이 났고, 석 달여 만에 확정 판결이 났다. 혁명재판부는 당시 조 사장을 비롯해 송지영·안신규에게 사형을 선고했고(조용수 사장을 제외한 두 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다른 한 명에게 징역 15년, 두 명에게 징역 10년, 또 다른 두 명에게 징역 5년 형을 선고했다.

최근 민족일보 사건 관련 재심 6건에서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사건 마지막 무죄 판결은 지난달 29일 있었다. 법원은 민족일보 설립 등에 관여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송지영 씨 재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죽어서도 5.16과 싸웠던 그는 52년 만에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4.9통일평화재단과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가 함께 펴낸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제6조 위반 사건 재심 판결문 모음집을 토대로 <프레시안>이 분석한 것에 따르면, 5.16쿠데타 이후 이 법에 의해 재판을 받은 인사는 49개 사건, 총 206명이다.

이 중 당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33명을 제외하면 173명이 면소에서 사형까지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이 중 82명의 유가족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고, 66명이 무죄 혹은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16명의 재심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도 52년 전의 과거와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나머지 91명은 대부분 실형을 받았지만,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신OO 씨도 마찬가지다. 쿠데타 세력이 찍은 '요주의 인물', 이들은 혹은 이들의 유가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들에게 5.16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박근혜의 '5.16 사과', 그의 진정성은 믿을 만한가?

박근혜 대통령은 5.16쿠데타와 유신 독재에 대해 "구국의 혁명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역사 평가에 맡기자"는 견해를 고수하다가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태도를 바꿨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9월 24일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두 달 전에 5.16쿠데타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고, 약 보름 전에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두 개의 판결" 발언을 해 후보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던 때였다.

깔끔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유신 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법'을 공동 발의했다. '배상'이 아니라 '보상'이었다. 그것도 유신 피해자에 한정한 것이었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 아직 논의도 되지 않고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도 그렇다. 5.16쿠데타로 인해 정권을 잡은 당시 집권 세력의 '장물'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으로 교체됐을 뿐이다.

5.16에 대해 박 대통령이 사과 대상을 "(5.16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으로 한정한 부분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언급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과 모순되는 말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최선의 선택이지만 정치 발전을 지연시켰고 피해자를 낳았다는 논리 구조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문회를 거친 장관들 상당수가 5.16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은 5.16쿠데타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특별법 피해자' 관련 재심 판결 결과다. 재심을 통해 50여 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들도 있고, 아직 재심 절차가 진행 중인 이들도 있다.

특별법 제6조 특수반국가행위 위반 사건 재심 현황

-민족일보 사건. 재심 무죄 판결 6명.
-국제신보주필및상임논설위원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대구데모사건. 재심 무죄 판결 2명, 재심 진행사건 3명.
-조국통일민족전선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재심 진행 사건 1명.
-범혁신동지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2명.
-한국영세중립화통일추진위원회사건. 재심 진행 사건 2명.
-경상북도민족통일연맹사건. 재심 무죄 판결 5명.
-혁신당사건. 재심 무죄 판결 2명.
-중앙사회당사건. 재심 무죄 판결 4명.
-경상북도사회당사건(1차). 재심 무죄 판결 3명.
-경상북도사회당사건(2차). 재심 진행 사건 1명.
-경상남도사회당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중앙사회대중당사건(1차). 재심 무죄 판결 3명, 재심 진행 사건 1명.
-이리시사회대중당사건. 재심 진행 사건 1명.
-중앙통일사회당사건. 재심 무죄 판결 7명.
-경상남도통일사회당사건. 재심 진행 사건 2명.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사건. 재심 무죄 판결 5명.
-경상남도반민주악법반대학생공동투쟁위원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대구지구중고등학교교원노동조합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전라남도통일민주청년동맹사건. 재심 진행 사건 1명.
-경상북도민주민족청년동맹사건. 재심 무죄 판결 2명.
-경상남도민주민족청년동맹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부산민주민족청년동맹사건. 재심 진행 사건 1명.
-중앙민족자주통일협의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4명.
-충청남도민족자주통일협의회사건. 재심 진행 사건 1명.
-전라북도민족자주통일협의회사건(2차). 재심 무죄 판결 1명.
-전라남도민족자주통일협이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경상남북도피학살자유족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6명.
-경주피학살자유족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3명.
-밀양피학살자장의위원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금창피학살자합동장의위원회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동래피학살자합동장이위원회사건. 재심 진행 사건 2명.
-이낙호사건. 재심 무죄 판결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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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박원순 시장 제압' 사실이라면 'MB청문회 개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정치 공작에 관한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이 '한겨레'에 입수됐습니다.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문건을 보면 철저하게 박원순 시장과 시정 활동이 국정 운영을 저해하는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작성 배경>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이후 세금급식 확대, 시립대 등록금 대폭 인하 등 좌편향,독선적 시정 운영을 통해 민심을 오도, 국정 안정을 저해함은 물론 야세 확산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 면밀한 제어방안 강구 긴요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 중)


이 문건을 보면 국정원은 무상급식과 시립대 등록금 인하 등을 감행한 박원순 시장의 정책이 국가를 흔드는 행위로 봤고, 박원순 시장을 중심으로 야권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 문건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청난 정치 공작이요.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이 문건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사실 여부와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연의 일치? 국정원 문건과 실제 활동'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작성' 문건에는 박원순 시장을 향한 구체적인 활동 지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조사해봤습니다.

○ 어버이 연합과 보수 단체는 국정원 행동대?

11월 24일 작성된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에는 박원순 시장이 하이서울페스티벌을 방해한 시위대에 대한 손해배상을 포기할 수 있으니, 이를 보수 단체들의 시위 등을 통해 박원순 시장을 압박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를 방해한 시위대 8명의 생활형편을 이유로 손해배상 징수 포기 또는 유예 검토, 이에 대한 대책으론 건전 단체들의 항의방문,가두시위 등으로 (박 시장의 방침)철회를 압박해야 함>(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
 

 

▲ 2011년 11월 28일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는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열린 '불법시위 옹호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뉴시스

 


문건이 작성된지 나흘 뒤, 2011년 11월 28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는 어버이 연합 등 보수 단체가 모여 '불법시위 옹호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시장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가요? 정확히 문건에 나온 대로 건전 단체(국정원 입장에서)라고 부르는 보수단체가 박원순 시장이 하려고 했던 시위대 손해배상 포기를 규탄했고, 이는 박원순 시장을 압박하기도 했었습니다.

○ 경제 단체를 통한 박원순 시장 방해 사건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에서는 서울시가 기간제 노동자 28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서울지하철 해고자 34명의 복직을 검토한 것을 두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문건을 작성했습니다.

<사용자(서울시)가 지원 채용 권한을 가지고 있어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는 실정, 이를 위해 경총,전경련 등 경제단체를 통한 비난 여론을 조성해야 함>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

이 문건이 나오고 나서 그로부터 10일 뒤 2011년 12월 24일 한국경영차협회(경총)은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조갑제닷컴에 게재된 박원순 히장 비판 성명서, 조갑제닷컴에서는 성명서 발표일을 11월 22일로 했지만 이는 오류로 12월 4일 발표됐다. 출처:조갑제닷컴

 


2011년 12월 4일, 보수단체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라이트 뉴스 등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박원순 시장의 노동행정 비판 성명서'를 게재했습니다.

경총이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려는 '비정규직 센터 건립'과 '시민명예노동옴브즈만'을 비판하면서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에 나온 2800여명의 비정규직 전환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시정 정책을 거론하며, 이에 대한 대책 방안이 정확히 들어맞았던 점을 비추어 과연 이것을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 과연 국정원은 이 문건을 작성했을까?'

앞서 나온 사례만 봐도 충분히 국정원이 작성했던 문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더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문건이 작성된 배경이 도대체 누구의 지시였는지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선미 의원이 공개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사항을 보면, 11월 18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중심으로 한 '종북세력' 문구와 '선제적 대처'라는 지시사항이 나옵니다. '원장님 지시,강조말씀'이라는 이 지시사항이 나온 것이 11월 18일이었고,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은 11월 24일에 작성됐습니다.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에는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과 '희망서울정책자문위'를 '종북좌파 양성소'와 '종북좌파'로 규정했는데, 이는 '종북세력'과 '선제적 대처'에 대한 원세훈 지시사항을 염두에 둔 보고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정원 작성 추정 문건의 작성자는 국익전략실의 신모 실장이라고 알려졌습니다. 2011년 국익전략실과 신모 실장은 실제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보고서 말미에 있는 보고서는 0-0,2-0.3-0에게 배포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각기 국정원장과 국정원 2차장,3차장을 지칭하는 국정원 고유 형식의 표기 방식이었습니다.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박원순 시장 제압 국정원 문서'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국정원 정치 개입을 지속적해서 파헤치고 있는 진선미 의원도 갖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진선미 의원은 현재 이 자료가 정확히 국정원이 작성했는지를 검증하고 있으며, 아직은 공개하기 어려운 다른 사항도 조사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속해서 국정원 정치 개입을 조사하는 진선미 의원의 견해에 따르면 이 문건은 실제 국정원의 문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MB청문회를 통해 '내란죄'로 기소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이처럼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서울시장을 정치 공작을 통해 탄압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엄청난 충격이자 경악할만한 사안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정원이 국정원법을 어긴 것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뒤흔든 '내란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내란죄의 주관적 요건인 '목적'은 국토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내용으로 하여야 한다.(형법 제91조)
국토 참절 :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주권 행사를 배제하고 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
국헌 문란 :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顚覆)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그리고, '폭동'이란 다중(多衆)이 결합하여 폭동·협박을 행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적어도 한 지방의 안녕질서를 파괴할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


대한민국 법에서는 외부로부터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외환죄와 더불어 국가의 내분에서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내란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란죄를 보면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킨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국정원이 투표로 선출된 박원순 시장을 제압한다는 문건을 작성하고 정치 공작을 펼쳤다면 이는 대한민국 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또한,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도 어긴 것이 됩니다.

정확한 내란죄 적용 여부는 나중에 재판에서 판결을 받아야 하지만 충분히 내란죄 소지 여부를 검토할 사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MB정권 청문회'를 통해 이명박과 원세훈을 불러 정확한 진상 조사를 벌여야 합니다.

특히 '아이엠피터'는 MB정권이 철저히 새누리당과 연계하여 국정을 운영했던 점으로 미루어 과연 박근혜 정부와 어떤 의혹이 있는지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외신들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다루고 있지만, 한국 언론은 '윤창중'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추잡한 짓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지금 우리가 진상조사를 해야할 가장 큰 사안은 공소시효가 6월 19일로 만료되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입니다.

시간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루빨리 국정원의 대선과 정치개입 의혹을 밝히려면 검찰 조사와 함께 'MB정권 청문회'를 열어 원세훈 원장의 정치 개입이 과연 누구의 지시를 받고 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아이엠피터'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국정원의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확실히 이번 기회에 일개 블로거의 의혹이지만 국가가 나서서 풀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다루지 않는 국정원의 계속되는 정치 개입 의혹을 국민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고 있으니 더욱 큰 문제입니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MB정권 청문회','검찰 수사'를 한 점의 의혹 없이 하는 방법은 오로지 많은 국민이 이와 같은 사건이 국가를 위협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반하는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없다면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조차 관심 없던 자신들의 아버지를 향해 '비겁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제발 대한민국을 위해 작은 목소리라도 내주시길 간절히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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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조선 핵 앞에 미국 핵 무력’

 

 
북, ‘조선 핵 앞에 미국 핵 무력’
 
“인내성 한계 도달 최후 결사전” 언급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5/16 [08:2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은 한미 당국의 대화제의를 일축하고 3대 전제 조건이 충족 되지 않는한 대화는 없다는 강경 발언과 함께 전략 로켓군 손이 발사 단추위에 올려져 있다는 강경 태도를 취하고 있어 한반도 정세 전망이 어렵게됐다. ©
조선이 미국의 무모한 핵 공갈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핵보유국인 우리의 자제력과 인내성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싸일마다에는 날강도 미제의 소굴들이 첫째가는 타격대상으로 입력되어 있다”며 강경 발언을 내 놓았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6일 군사전문 논평을 통해 “조선반도에 3,4월 위기에 이어 5월에도 폭발위험을 안은 첨예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며 “군사전문가들은 이것을 핵보유국과 핵보유국이 맞선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결이라고 평하고 있다. 3,4월 핵위기의 진범인인 미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위험천만한 핵도박을 계속하고 있다. 조선반도(한반도)는 침략과 지배를 꾀하는 미국의 핵전쟁 기술연마장, 첨단 대량살육무기시험장으로 완전히 전락 되었다.”고 우려했다.

로동신문은 “미국은 무모한 핵 공갈로 조미대결을 야기 시키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핵을 보유한 우리의 의지력을 시험하려는 것은 모험중의 모험이다. 최근 미국은 남조선군부세력을 사촉하여 조선반도수역에서 전쟁연습을 연이어 벌려놓았다.”며 ㅎㄴ미군사합동군사연습의 규모와 성격을 낱낱이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하나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방대한 무력을 《훈련》이라는 명분 밑에 조선반도수역에 집결시킨 것은 우리의 핵 군사력에 대한 희롱이 아닐 수 없다.”면서 “그 본심을 미국의 9만 7,000t급 핵동력 항공모함 《니미츠》호 전투단의 기동을 놓고도 분석할 수 있다.”며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북침 전쟁이라는 것을 주지했다.

신문은 “지금 남조선과 그 주변에 집결된 방대한 전략핵무력들은 임의의 시각에 선제공격, 전면 전쟁에 진입할 태세에 있다.”며 “여기서 특히 항공모함의 화력시험은 전쟁이 임박한 지역에서도 보기 드문 군사적 움직임이었다.”고 고발했다.

신문 논평은 “동서남해에서 감행된 미국 남조선연합해상전쟁연습은 우리에 대한 압살정책에 따른 침략적인 반공화국군사적공세의 연장전”이라며 “오늘날 미국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궁극적 목적으로 한 대조선 정책에 총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것을 노정도로 그려본다면 유러시아 대륙을 제패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우리 공화국을 타고 앉는 작전개시시점에 있다. 미국이 서두르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정세변화와 관련 된다. 조선반도에서 순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정황판단을 내린 미국의 모략가들은 각 방면에 걸쳐 음모를 꾸미며 개입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이 핵 군사력을 총 발동하여 선제공격을 노리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도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 조미의 핵대치 국면”이라면서 “세계 ‘유일 초대국’의 거대한 핵무력은 오직 정의의 핵 억제력을 가진 상대 앞에 무력한 법이다. 핵보유를 목적하였다가 미국과 핵열강들의 압살책동에 투항하여 붕괴된 일부 비극적인 사태는 국제관계사에 참으로 심각한 교훈을 남겼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핵을 가진 침략세력, 지배주의 세력과는 정의의 핵 무력에 기초한 초강경입장으로 맞서야 자주권과 존엄을 빛내일수 있다는 것을 철의 진리로 새기고 당과 국가의 노선으로, 법으로 고착시켰다. 당당한 핵보유국가인 우리 앞에서 그 어떤 흥정과 우롱이 있을 수 없다.”고 피력했다.

이어 “미국의 전략핵무력이 총동원되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다 발동된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훈련이 실지 전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습으로 막을 내린 것은 바로 이로써 설명된다.”고 밝혀 좃ㄴ의 핵억제력이 전쟁을 방지했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우리는 핵보유국의 시선으로 미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미국은 《니미츠》호 항공모함을 비롯한 핵장비들을 가지고 으쓱해하고 있지만 목표가 크면 클수록 소멸하는 데는 유리한 법이라며 ”우리는 《무수단》미사일의 기동에 대한 위성 관측 자료에 기초한 논의에 대해서도 일면적인 사고로밖에 보지 않는다. 털어놓고 말하여 자행화 된 이동 미사일들의 기동을 포착하려고 애쓰는 것은 솔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대기념비적 건축물건설과 강철구조물이동이 많은 우리나라의 벅찬 현실에서 적들의 눈에는 무엇이 특수기지건설이나 미사일들의 기동으로 보였는지 알 수 없다.“고 미국과 일부 국가들의 정찰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은 조선반도유사시 3각 군사동맹에 기대를 걸고있는 것 같은데 핵대결의 시대에 남의 《핵우산》밑에서 기생하는 일본과 남조선은 우리의 상대가 안 된다.”며 “민족의 재부이며 선군조선의 국보인 핵무기를 없애라고 하는 남조선괴뢰들이야말로 이 세상 보기 드문 청맹과니라 아니할 수 없다. 첫 핵피해국이면서도 미국의 《핵우산》아래 기생하며 기승을 부리는 일본은 자존심 없는 인간, 두뇌없는 인간을 방불케 한다.”고 한미일을 싸잡아 비난했다.

로동신문 논평은 “우리의 종심대상물들과 지하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노리고 핵항공모함을 전진배치 한다, 《벙커 버스터》폭탄을 개발 한다 어쩐다 하며 발광하는 핵전쟁미치광이들에게 이 세상에 아직 있어보지 못한 핵 보유국들 사이의 전쟁을 해볼테면 해보자는 것이 우리의 배짱”이라며 “당당한 핵보유국인 우리 공화국은 아메리카제국과의 핵대결을 구태여 피하려 하지 않는다.”고 일전불사를 거듭 강조했다.

이 신문 논평은 “무적의 배짱과 담력을 지닌 전설적인 선군영장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신 우리 군대와 인민의 수중에 정의의 핵무력이 쥐여져 있는 한 조선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미 호전광들은 최후 발악적으로 군사적 모험에 나서고 있는 것”라며 “전쟁사환군들이 그 무슨 《통상훈련》이요,《방어훈련》이요 뭐요 하는것은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저들의 범죄적 정체를 가리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고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논평은 “핵보유국인 우리의 자제력과 인내성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싸일마다에는 날강도 미제의 소굴들이 첫째가는 타격대상으로 입력되어있다”며 “전략로켓군 장병들의 손은 발사단추위에 놓여있다. 언제든 도래하게 될 미제와의 최후결사전에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장담했다.

논평은 끝으로 “우리 공화국을 어째보려는 미제의 대조선 작전방안들은 언제 가도 실현될 수 없는 종잇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우리 인민은 새로운 병진노선을 따라 보무당당히 전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한미 양국은 조선의 도발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핵항고 모함인 니미츠호를 참가 시킨 가운데 군사훈련을 실시해 한반도 긴장이 가속화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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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시민이 만들자"

 

"한반도 평화, 시민이 만들자"15일 '한반도평화 연석회의' 발족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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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5  16: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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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 학계, 종교계 등이 모여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이하 한반도평화연석회의)를 15일 발족,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시민사회, 학계, 종교계 등이 모여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이하 한반도평화연석회의)를 15일 발족했다.

'한반도평화연석회의'는 정전 60년을 맞아 한반도 군사긴장의 희생자는 시민이라는 인식에 따라, 시민의 목소리가 담긴 한반도 평화행동의 필요성으로 결성됐다.

이번 연석회의 결성에는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평화포럼 소속 단체들이 중심이 됐으며, 조계종 화쟁위원회 도법스님,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상임대표를 맡았다.

또한 김광준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고, 111명이 연석회의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반도평화연석회의'는 △한반도 무장갈등 예방,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시민대안 제시와 실천, △대화와 협상, 상호존중과 역지사지의 실천, △시민주체 평화연대 형성 등을 활동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6.15선언 13주년 기념행사, △7.27정전협정 60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실천 주간, △Global Action Day(Week) to End Korean War 캠페인 등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왼쪽)와 남부원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읽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연석회의'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발족식을 이날 오후 1시반 서울시청 앞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가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도 군사적 대결과 적대행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7천만 한반도 주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이 나서서 한반도 평화해법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면서 △군사충돌 예방 및 평화적 해법 추구, △포괄적 대화 즉각 재개, △핵개발 및 핵우산 강화 모두 중단, △개성공단 재가동 등 경제협력 추진, △평화체제 구축 및 화해협력 제도화 등 실천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진정한 해결주체는 남과 북이다. 특히 남한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먼저 평화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며 "우리의 평화비전과 의지가 한반도 문제해결의 열쇠이며 동시에 한반도를 동아시아 시대의 중심으로 우뚝 세울 비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입장에서 당국간 대화에서 다루어져야 할 의제와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평화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스스로 우리가 평화의 주체이며 해결의 당사자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 시민의 힘으로 열어내자"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남부원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이도흠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등 20여명이 참가했으며, 남북 대화 촉구 퍼포먼스를 펼쳤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연석회의'의 5대 실천안을 연결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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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 앞둔 광주가 운다…고인비하에 무장폭동 주장 책까지

 

5. 18 앞둔 광주가 운다…고인비하에 무장폭동 주장 책까지
희생자 관을 "배달된 홍어들 포장완료" 등 도 넘는 비난 … “정권의 역사 인식과 무관치 않다”

 

 

33주년 5. 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사흘 앞두고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5. 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시민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이 계속되면서 법적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 18 민주화운동을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출판돼 광주 시민들의 반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5. 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일찍부터 '폭동'이라고 비난했던 일베 회원들은 기념일을 앞두고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들의 사진에 유가족까지 비하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내걸고 있다.

13일자로 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면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돼 줄지어 관이 놓여져 있는 사진에 "광주 홈쇼핑 장사 ** 잘되네"라는 제목으로 "배달된 홍어들 포장완료 된 거 보소"라고 썼다. 일베 사이트에서 '홍어'는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은어다.

광주의 거리에 시민들의 시체들이 널부러진 채 얼굴만 천으로 감싼 사진에 "애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라고 쓴 게시물도 있다. 또한 관 앞에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는 사진에서는 관 위에 택배 송장 사진을 합성해놓고 "착불이요"라는 글을 썼고, 일렬로 엎드려 있는 광주 시민을 계엄군이 조사하는 사진을 놓고는 "5월 18일 주말을 맞아 광주 수산시장을 찾은 많은 주민들이 진열돼 있는 홍어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비난했다.

해당 게시물은 13일 집중적으로 게시됐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5. 18 민주화운동기념일을 앞두고 민주화운동을 비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게시물들이 고인의 명예까지 훼손했다는 지적이 일자 게시물을 올린 일베 회원들은 스스로 삭제하고 있지만 누리꾼들은 게시물을 캡쳐해놓고 증거로 제출해 고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가족들이 저런 일을 당해도 저럴 수 있을까"라고 비난했고, 다른 누리꾼은 "국가 내란죄로 게시물을 올린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면서 소송을 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5.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광주 시민을 비하하는 일베 게시물
 

보수 성향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5. 18 민주화운동 폄훼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5. 18 민주화운동을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재미교포로 알려진 김대령씨는 '역사로서의 5·18'이라는 책을 지난 5월 12일자로 출간했다. 출판사 측은 "33년 만에 밝혀진 5·18 광주사대의 진상과 진실!! 광주사태 혹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려지는 5·18 사건의 정론 및 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서"로 소개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책의 목차 중 2장 "5·18은 사전에 준비된 무장폭동인가 사후의 저항운동인가"에서는 5. 18를 사전에 준비된 무장 봉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보문고 인터넷판의 '책속으로'라는 코너에서도 "방화사건이 고의적인 방화였으며 방화범이 사전 준비한 사건이었을 때는 그 책임의 소재는 방화범에게도 있는 것"이라며 "본서는 무장봉기로서의 5·18 사건은 사전 준비된 사건이었음을 명쾌하게 입증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 5. 18 민주화운동을 무장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책.
 

최근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에서 퇴출시키고 4천 800만원을 들여 5. 18 민주화운동 공식 추모곡을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논란은 여전하다.

5월 관련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33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하지 못하게 할 경우 기념식에 불참하고 국가보훈처장 사퇴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우선 5월 단체들은 15일 정오까지 국가보훈처 입장을 보고 식순에 노래 제창을 넣지 않으면 천막 농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5. 18 민주화운동 폄훼 움직임은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부 역사 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5. 18 연구소장을 지낸 전남대 나간채 교수(사회학과)는 "막스베버의 객관적 개연성 개념으로 보면 이 같은 행위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면서 "정권과 정권을 떠받치는 토대 세력들의 요구에 일치하는 것이니까 이런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전체는 아니지만 반공주의와 보수 이데올로기에 친화력이 있는 소수 인자들이 이런 흐름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입력 : 2013-05-14 15:01:31 노출 : 2013.05.14 15: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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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년만의 최고치 기록 CO₂…안면도 감시센터 가보니

80만년만의 최고치 기록 CO₂…안면도 감시센터 가보니

 
2013.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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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 400ppm 돌파, 태안 센터에선 427ppm

중국·인도 영향으로 높아…반도체 산업 배출 육불화황 급증 주목

 

지난 2일 미국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화산 꼭대기에서 측정한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상 최초로 400ppm(ppm은 100만분의 1을 나타냄)을 돌파했다. 사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이곳의 측정결과는 지구의 온실가스 농도의 대표치로 간주된다.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280ppm이었으며 400ppm을 넘어선 것은 빙하시추 조사로 알아낸 지난 80만년 동안의 지구 농도 가운데 가장 높은 값이다. 대기 속 이산화탄소 관측 첨병인 태안 기후변화감시센터를 찾아가 보았다.


DSC_0992.JPG » ♣H5s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기후변화감시센터 옥상에서 이정미 주무관이 오존분광광도계(브루어) 앞에서 성층권 오존을 측정하는 방법과 오존이 지구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근영 기자

 

온실가스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온도상승 한계는 0.65도에 불과한데,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관측하는 각종 온실가스 농도는 갈수록 높아져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지난 9일 찾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기후변화감시센터 온실가스 현황판에는 오후 12시52분 현재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427.0ppm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산화탄소는 메탄가스(CH₄), 아산화질소(N₂O), 육불화황(SF6)과 함께 대표적 온실가스로 꼽힌다.

 

기후변화감시센터는 이들 4종을 포함해 모두 7종의 온실가스와 에어로졸, 자외선, 성층권 오존, 대기복사 등 기후변화와 관련한 6개 분야 37개 요소의 변화를 날마다 관측하고 있다. 감시센터는 세계기상기구(WMO)가 기후변화를 감시하기 위해 지정한 세계 410여개의 지역급 관측소 가운데 하나로, 검출한 자료를 다른 관측소들과 주고받는다.

 

전광판.JPG »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자리잡은 기후변화감시센터는 이산화탄소 등 7종의 온실가스를 포함해 모두 6개 분야 37개 요소의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매일 측정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427ppm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이근영 기자 
 

남아 있는 온도 0.65도

 

기후학자들은 지구가 탄성력(회복력)을 유지하려면 산업혁명 시기를 기준으로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전망한다. 조천호 국립기상연구소 기후연구과장은 “스프링을 살짝 당겼다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세게 잡아당기면 원상태로 복원되지 않는 것처럼 지구도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한계치가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이를 2도로 설정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인류가 500만년 전 출현한 이래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간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것이 이유다. 산업혁명 이후 100여년 동안 이미 지구 온도는 0.75도가 상승했고 이미 방출된 온실가스로 인해 0.6도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돼,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 상태에 머물 수 있는 여유는 0.65도에 불과하다.
 

co2-800000-years.jpg » 빙하 속에 갇힌 과거의 공기 속에서 측정한 지난 80만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1958년 이후는 하와이에서 측정한 값이다. 그림=미국 스크립트 해양 연구소

 

온실가스 가운데 화석연료에서 주로 배출되며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국제적·국내적 억제 노력에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의 측정치는 400.1ppm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북반구에서 식물들이 본격적으로 생장하면서 이산화탄소 흡수를 시작하기 직전인 4월께가 가장 높다. 지난해에도 월평균 농도가 4월에는 404.4ppm까지 올라간 반면 숲이 가장 우거진 8월에는 392.2ppm까지 떨어졌다. 기후변화감시센터가 40m 높이(해발 86m)의 탑에서 5초마다 공기를 포집해 분석하는 것도 식물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기후변화감시센터가 안면도에 자리잡은 이유는 이 지역의 계절적 이산화탄소 농도 증폭이 크고 값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흘러들어오는 이산화탄소의 증가 동향을 파악하기에 적합하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2000년대부터 충남 태안군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 변화추이를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조천호 과장은 “몽골이나 중국 서부, 미국 중부 등 비교지역에 비해 태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데이터는 변동폭이 크다. 이는 중국에서 몰려오는 공기 때문으로, 중국의 화석연료 사용 감소는 세계적 이슈여서 미국이 중요하게 감시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keeling-curve.jpg » 하와이에서 측정한 공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추이. 그림=미국 스크립트 해양 연구소


‘육불화황’을 잡아라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가 분석을 시작한 1999년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농도는 8%, 메탄가스는 3% 증가했다. 특히 최근 우려를 낳는 것이 육불화황 농도다. 2007년에 비해 지난해 무려 41.4%나 급증했다. 육불화황은 2003∼2008년 기후변화 기여도에서 이산화탄소(86.2%), 아산화질소(7.6%), 메탄가스(2.2%)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럼에도 주목을 받는 것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양일 때 온난화 효과가 2만4000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한번 배출되면 3200년 동안 대기를 데운다. 화학적·열적으로 안정된 온실가스인 육불화황은 전기를 통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많이 사용된다.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측정한 지난해 연간 육불화황 농도는 8.2ppt로, 지구 평균(6.5ppt)을 훨씬 웃돈다. 이동일 센터장은 “주로 반도체산업에서 배출되는 육불화황 농도가 높게 나오는 원인이 세계 2위인 우리나라 반도체산업 때문인지, 중국이나 대만 등지에서 장기적으로 유입돼서인지는 좀더 많은 자료가 쌓여야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감시센터는 2011년 세계기상기구로부터 이산화탄소(미국·스위스), 메탄가스(스위스·일본), 아산화질소(독일)에 이어 육불화황의 세계표준센터로 지정됐다. 센터는 지난해 협약식을 체결한 뒤 기후변화 관측소를 운영하는 회원국들이 표준에 맞는 관측값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보조하는 등 본격 임무 수행에 나섰다.

 

안면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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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뱀' 외치는 윤창중 공모자들... 참담하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5/15 09:46
  • 수정일
    2013/05/15 09: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게릴라칼럼] 가해자 편들고 피해자 비난하는 야만사회의 민낯

13.05.14 19:51l최종 업데이트 13.05.15 00:06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롯데백화점 직원 자살, 남양유업 폭언,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대형 사건들이 한 주가 멀다고 연쇄폭발처럼 터져 나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지난 한 달, 유달리 운이 나빴던 것일까? 유난히 봄이 늦게 오더니, '잔인한 사월' 기운이 오월까지 가시지 않은 탓일까?

착각하지 말자. 이런 사건은 한국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저 교묘하게 가려져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가해자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일 수록, 피해자가 힘 없고 돈 없는 사람 수록 사건은 묻히기 쉽다.

예컨대 남성보다 여성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경제적 착취와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여성민우회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이 불안정한 여성일수록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지난해 성폭력 상담 내용 가운데 절반이 직장 내에서 일어났으며, 가해자의 87.5%가 그들의 명줄을 쥔 사업주와 상사들이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90% 이상이 성폭력을 당해도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면에서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은 힘깨나 쓰는 가해자들이 꽁무니를 숨기지 못한 '희귀 사례'에 가깝다. 이들의 추태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 손을 쓰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마저도 우연의 도움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건을 폭로한 사람의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폭언, 폭행, 착취처럼 흔적도 없이 묻혀 과거가 되고 미래로 되풀이 되었을 것이다.

권력자의 악행은 어떻게 은폐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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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사과의 뜻을 표명하며 절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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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고'로 가해 사실이 드러나기는 했으나, 배후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권력자들의 악행이 은폐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워싱턴DC 소재 주미 한국 문화원은 성추행 사건을 파악하고도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가해자와 함께 피해자를 찾아가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청와대가 가해자를 서둘러 귀국시킨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청와대는 여론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도리어 가해자가 거짓과 변명으로 가득한 '기자회견'을 하게 내버려 뒀다. 그런 뒤 귀국을 종용했느니 안 했으니, 팬티를 입었느니 안 입었느니 하며 가해자와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청와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내용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느 누구라도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주문했다. 그리고 '윤창중 재발방지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거라곤 '이번 일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기 뿐이다. '재발방지 매뉴얼'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정말 이번 사건의 원인이 '매뉴얼'이 없어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일까?

그렇다면 '윤창중 재발방지 매뉴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성공하라'고 인턴을 격려할 때는 손의 위치를 조심하라"? "아무리 바빠도 문을 열 때 최소한 팬티는 챙겨 입어라"? 당사자 윤창중은 기자회견에서 "여자가이드의 허리를 툭 한차례 쳤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물론 윤창중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

"미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 가이드에게 이 자리에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겠다."

그렇다면 매뉴얼에 이런 내용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여자를 허락 없이 만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굳이 이런 내용을 문서로 만들어 훈련시켜야 하는 존재라면 청와대 고위직보다 동물원에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이 '위로'가 아니라 '사과'라는 점도 배울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를 비교적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성을 허락 없이 만져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강자가 약자의 생존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의 크기와 그런 착취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보장되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윤창중이 성추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의 행동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희생자가 자신의 악행을 '감히' 드러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자의 생존권과 내부 고발자의 신변이 보호되지 않는 한, '행동지침 매뉴얼'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분량으로 펴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윤창중은 청와대 대변인에서 '한국문화'의 대변인으로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윤창중의 공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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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려차원에서 툭 쳤을 뿐" 윤창중 '성추행' 부인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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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사회만 그런 게 아니다. 대한항공은 '라면 진상고객'에 대해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한 일은 정보를 유출한 직원을 색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사의 잘못된 서비스 정책이 승무원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객으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만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권력자들이 이런 짓을 벌일 때는 항상 권력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부 보수시민들은 사건을 공론화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종북'이라며 비난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 신상을 털며 '꽃뱀' 딱지를 붙이는 야만에 동참하기도 한다.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 '좌빨'이 되고,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고 학대하는 범죄가 '애국'이 되는 나라, 우리는 이런 희한한 곳에 살고 있다. 왜곡된 정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분단 상황을 악용한 이데올로기가 약자의 착취를 영속화하는 구실이 되는 것이다.

극우 사이트 '일베저장소' 처럼 몰상식한 주장을 거리낌없이 하는 집단이 득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편에 서서 발언하는 데 용기 같은 건 필요 없다. 이들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대가로 자유롭게 발언할 권리를 얻는다. 이들은 보수회귀의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받는 유일한 집단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착취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있는 약자가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강원랜드 직원이 '채용'을 미끼로 아르바이트생에게 키스를 요구하고 문자로 성희롱을 저지른 것처럼 말이다. 국민의 기초생계와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건, 강자의 악행, 범죄, 착취를 보장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실을 무시한 '정의', '상생', '경제민주화'는 권력 유지를 위한 빈 구호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멋대로 착취하는 사회에서 무슨 '정의'와'공존'을 말하는가. 이는 현 정부가 목놓아 외치는 '창조경제'와도 거리가 먼 일이다. 생존에 목 맨 전쟁터에 창의성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우리는 지금 분노하고 있지만, 분노는 쉽게 사그라질 것이다. 우리가 벌써 대한항공 사건과 남양유업 사태를 잊기 시작했듯 말이다. 그러면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미래로 되풀이될 것이다. 행동과 결합되지 않는 분노가 사회를 바꾸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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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해외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 소집”

<인터뷰>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김치관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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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4 14: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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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8일 통일맞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할 때 평생 동안 조직활동가라고 생각한다. 힘은 조직에서 나온다.”

 

최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자 통일맞이 이사장을 맡게 된 이창복(75세) 의장은 8일 <통일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통일운동의 해법으로 ‘조직’을 강조했다.

이창복 의장은 14대째 삶의 터전을 이어오고 있는 원주에서 ‘카톨릭 노동청년회’(JOC) 활동을 시작으로 재야운동에 투신해 민통련, 전민련, 전국연합으로 이어지는 정통 재야운동 조직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통일맞이나 6.15남측위원회나 다 같이 민족문제에 대해서 정말 집요하고 집중적으로,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포괄적으로, 대중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정비와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맞이에 대해서는 “선각자인 문익환 목사의 생각과 행동들을 배워가면서 실천해 나가는 계승사업도 중요하다”면서도 “문익환 목사의 뜻을 펼쳐나가기 위한 대중운동 조직체로서 발돋움해야 한다. 통일운동 조직으로서 확대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6.15남측위원회에 대해서는 “6.15남측위원회가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남남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며, “조직 내부의 갈등도 우선적으로 해소”하는 것이라면서 “전 분야에, 전국적으로 조직을 해서, 조직의 힘을 좀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해외 3자의 공동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지만 안 되면 국제 학술대회라도 외국에서 소집할 계획”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공동행사가 가로막히더라도 북측까지 참여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해외에서 개최하겠다는 구상이다.

“항상 남북문제는 민간 활동부터 시작이 돼서 정부가 받아들임으로써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 순리”이며 “정부가 반대할지라도 민간운동 쪽에서는 어떻게라도 물꼬를 터서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그는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안보문제에 있어서 더 그렇다”고 평하고 “북핵문제를 비핵이 아니라 이제 만든 건 할 수 없이 인정하고 앞으로 더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북핵 협상전략을 ‘비핵화’를 전제로 하되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주변국 관계도 정상화하겠다는 문구가 있던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북 당사자 간 합의를 존중하고 주도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며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민족문제는, 한반도 평화문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끌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8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 소재 통일맞이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문익환 목사로부터 통일운동을 배웠다

 

   
▲ 이창복 의장은 지난 재야운동을 회고하면서 차분한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최근에 통일맞이 이사장과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을 맡았다. 중요한 민간통일운동단체들의 대표를 함께 맡게 됐는데, 배경이나 심경을 전해달라.

■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 성격으로서의 통일맞이는 이사로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해왔다. 내가 제일 오래된 이사여서 전임 이사장인 김상근 목사가 후임자를 선정할 때 나를 지명한 것으로 안다.

 

6.15남측위원회에서는 공동대표이자 운영위원을 맡아 왔는데 통일맞이 이사장이 되니까 또 자연스럽게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을 맡게 됐다. 하던 일에서 더 중책을 맡은 셈이다.

내가 재야에서 민통련, 전민련, 전국연합을 거치면서 일관되게 통일문제에 대해 집중해왔고, 국회에 있을 때도 그쪽에 힘을 많이 실었다. 다시 재야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맡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맡고 보니까, ‘상당히 활동하기 어려운 시기구나’ 생각된다. 그리고 통일문제, 민족문제를 주로 다루는 조직인데 지금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경직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 있어서 답답한 기분이다.

앞으로 통일맞이나 6.15남측위원회나 다 같이 민족문제에 대해서 정말 집요하고 집중적으로,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포괄적으로, 대중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정비와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오랫동안 재야에서 활동해 늦봄 문익환 목사와 친분이 있었을 것 같다. 문 목사와의 인연을 소개해달라.

■ 문익환 목사와의 관계는 1976년 명동 3.1민주구국선언을 준비할 때 뵙게 된다. 문 목사가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집회에서 여러 번 뵐 수 있었다. 한빛교회에서의 모임이라든지,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던 금요 기도회 또는 목요 기도회에서도 자주 뵐 수 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1984년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만들 때 나는 교회운동에서 재야운동으로 바꾸는 시기였다.

그때 재야 운동권의 여러 조직이 성장해오고 있는 터였는데, 그해 6월 이부영 씨를 중심으로 해서 민주운동협의회가 뜬다. 이것은 문인조직, 농민조직, 노동자조직, 부문조직들이 모여서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를 조직한다.

또 개별적인 인사들이 참 많았는데, 예를 들면 문익환 목사라든지, 백기완 선생, 계훈제 선생, 장기표 씨, 이런 운동권에 알려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1984년 9월 민주통일국민연합(민통국)을 만든다.

그래서 민민협, 민통국이 생기고, 두 조직이 활동하게 된다. 그런데 민민협 하는 사람들이나 민통국 하는 사람들이나 다 같이 한 뜻으로 움직였던 사람들인데 조직을 따로 해야 할 이유가 뭐냐? 그래서 1985년 4월에 민민협과 민통국이 통합해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약칭해서 민통련을 조직하게 된다.

민통련의 조직이 어떤 의미가 있냐면, 소위 전선조직으로서의 처음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니까 부문 조직과 지역조직의 양날개론이 제기되면서 지역과 부문이 통합해서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선조직으로서의 민통련이 출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문익환 목사를 모시고 일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됐다.

□ 문 목사와 같이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켜본 문 목사는 어떤 분이었고,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 문익환 목사는 정말 탁월한 선동가다. 그런데 그 선동이라는 게 많은 대중을 움직이는 팍 찌르는 언어의 구사가 필요하지 않나? 그것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깊은 사색과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또 하나는 젊은 청년 운동가였다. 그때 당시 70이 넘었지만 젊은이들처럼 여기 저기 뛰어다니면서,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지칠 줄 모르고 활동하던 그런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문익환 목사로부터 통일운동을 배웠다. 통일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통일운동이 어떤 내용인지, 그걸 배우게 됐다. 그때 우리 안에 ‘선민주 후통일론’, ‘선통일 후민주론’ 논쟁이 한창 벌어졌을 때인데, 문 목사가 정리해 주길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동시에 추진해야 할 것이지, 따로 떨어져서 갈 일이 아니다”라고 정리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현장에 정말 직접 뛰어다니면서 격려해주고, 병상을 찾아 위로해줬다. 그것은 정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고, 정말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남남갈등도 해소하지만, 조직 내부의 잡음도 해소해 나가야”

 

   
▲ 이창복 의장은 지난 3월 15일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개최된 6.15남측위원회 정기공동대표회의에서 임기 2년의 상임대표의장으로 선출됐다. [사진제공 - 6.15남측위]
□ 통일맞이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고 싶나?

 

■ 통일맞이는 처음 출범할 때는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로 출발했고, 지금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선각자인 문익환 목사의 생각과 행동들을 배워가면서 실천해 나가는 계승사업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제는 계승만 할 것이 아니다. 문익환 목사의 뜻을 펼쳐나가기 위한 대중운동 조직체로서 발돋움해야 한다. 통일운동 조직으로서 확대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간부회의나 이럴 때 내가 역설한다. “이제 문익환 목사를 개별적으로 좋아서 쫓아다니는 사람 중심의 통일맞이가 아니라, 서울과 지역 골고루 그 뜻에 찬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어서 조직과 함께 그 뜻을 실천해 나가고, 또 그 조직이 힘이 있는 만큼 통일운동의 선봉에 서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방향으로 앞으로 2,3년 동안 노력해 보겠다.

□ 통일맞이가 현재 지역조직이 있나?

■ 지금 지역마다 골고루 퍼져있지 않지만 대구, 부산, 강진, 대전, 이렇게 통일맞이에 참여하고 있는 멤버들이 분산돼 있다.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또 없는 데는 더 사람들을 확보해서 지역조직을 만들 예정이다. 이 지역조직을 통해 문익환 목사의 뜻을 전파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 보려고 한다.

우리의 활동이라는 것이 통일운동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을 확대하고 강고하게 만들어서 생성되는 힘으로 통일운동에 기여해야 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사람과 조직을 운영하는데 재정문제가 걸리는데, 이것을 우리가 극복해 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 늦봄문익환학교가 지난해 <동아일보>의 색깔공세를 받은 것으로 안다.

■ 교육공무원들의 좁은 안목에서 나온 행정조치였고, 그것이 일반화 됐다든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파악되기는 하지만 전국적인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좌파세력에 대한 음해라고까지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보수세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측면에서 나온 발상이고 행위들이다.

□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실질적으로 남북 민간교류의 문이 닫히면서, 6.15남측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박근혜 정부도 보수정권인데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어가야 된다고 보는지?

■ 김상근 목사가 상당히 고충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봤다. 이명박 정권과 함께 김상근 목사의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임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임기 내내 북쪽하고 왕래도 없었고 회담도 할 수 없었고, 정말 답답한 심정으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지금 와서 크게 변화가 있을 것 같으냐? 지금 현재로서 보면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인데, 이럴 때 저는 6.15남측위원회가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남남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조직 내부의 갈등도 우선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15남측위원회가 상당히 광범위한 조직이지 않나. 따라서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의견수렴도 쉽지 않다. 이런 것은 소통의 부족에서 오는 것도 있고 정파적 측면도 없잖아 있다. 이런 몇 가지 요소 때문에 상당히 결집되기 힘든 조직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 내부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의식의 전반화, 일상화를 기할 수 있는 내적 프로그램을 많이 가져야 되지 않겠나. 워크숍이라든지 세미나라든지, 지역간담회라든지 소통이 원활하게 되도록 해 남남갈등도 해소하지만, 우선적으로 조직 내부의 잡음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전 분야에, 전국적으로 조직을 해서, 조직의 힘을 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6.15남측위원회는 지역조직이 많이 구성돼 있다. 그러나 현재 구성돼 있는 조직에 만족하지 않고 그걸 확대해 나가는, 그래서 질을 끌어올리는 그런 일을 병행하고 아직 미조직인 곳은 조직을 완성해야 한다.

그 힘을 뒷받침으로 해서 남.북.해외 3자가 공동으로 6.15선언을 실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3자가 공동으로 하는 대회라든지 학술 심포지엄이라든지 여러 행사를 기획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 해서 남북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이 일을 법적으로 책임지고 있지만 항상 남북문제는 민간 활동부터 시작이 돼서 정부가 받아들임으로써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 순리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가 반대할지라도 민간운동 쪽에서는 어떻게라도 물꼬를 터서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진심으로 민족을 위하고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부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 바뀐 정부가 정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에는 조금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좀더 부딪쳐가면서, 또 그들도 정리해가면서 남북문제를 전환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북문제가 상당히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어서, 정부는 전환들을 검토해야 한다. 다시 지난 5년 동안의 정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 동안 강경하게 대처한 결과 지금 남은 것이 뭐가 있나? 남과 북에 손해만 끼치고 평화를 멀리하게 되는 위기의식만 고조돼 있는 그런 상황으로 되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지난 5년 동안의 정책을 지양하고 새로운 정책을 구상하지 않으면 이 정권도 상당한 혼미를 거듭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책 전환이 꼭 필요하고 그렇게 할 것을 기대한다.

남북.해외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 소집

 

   
▲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6.15남측위가 주최한 '종교, 정당, 시민사회 인사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창복 의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을 맡은 첫 해이기도 하고 박근혜 정부의 첫 해이기도 한데, 올해 6.15남측위의 사업방향이나 주요 사업계획이 있다면?

 

■ 올해 3자가 공동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대회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남과 북, 해외 3자의 공동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지만 안 되면 국제 학술대회라도 외국에서 소집할 계획이다.

거기에는 북도 부르고 남도 부르고, 또 관계된 나라들을 불러서 국제 학술세미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3자가 모일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방법을 탐색 중에 있다. 본행사가 안되면 학술대회라도 준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조직을 더 정비할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 남남갈등 해소와 조직 내부의 원활한 소통을 주요한 사업으로 상정하고 추진해볼까 생각한다.

□ 의사소통을 강조하는데, 예를 들어 6.15언론본부의 경우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협회, 전국언론노조 등 거의 모든 현업 언론조직들이 망라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6.15남측위원회 산하의 각 부문본부와 지역본부들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구상이나 방안이 있는지?

■ 이전에 6.15언론본부에서 세미나를 하지 않았나? 그러한 세미나를 각 부문조직이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문조직 단위를 움직여가면서, 때로는 전체가 모여서 같이 의논하고, 이러는 속에서 소통이 원만하게 되고 공통점이 설정이 돼서, 조직된 힘이 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해볼까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할 때 평생 동안 조직활동가라고 생각한다. 힘은 조직에서 나온다. 그런데 조직은 그냥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판단이 있어야 하고, 뜨거운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조직운동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근간에 시민사회운동이라든지 재야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많이 흡입돼 갔다. 인력의 이동이 생긴 거다. 그래서 통일운동권이나 일반 시민운동권의 저력이 조금 약화됐다고 볼 수 있는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문제를 다루는 이 조직은 꺾이지 않고 쉼없이 발전해가고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예전에 비해 인터넷 시대도 되고, 촛불집회 이후의 흐름을 보면 전통 재야운동도 있지만 일반 젊은층의 대중의식도 역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변화해가는 시대의 추세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고, 기존 재야운동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는지?

■ 옛날 고전적 의미에서의 재야운동은 지금 별로 보기 어렵다. 운동권에서 평하기를 문익환 목사 시대를 1세대, 우리들 세대를 2세대로 보는 모양인데, 하여튼 일반 시민운동, 또 선량한 젊은이들의 운동이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전개되기 전까지는 재야운동이 그 나름대로 상당히 역할이 있었고 활발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시간이 경과한 지금에 와서는, 우선 생각의 방향도 달라질뿐더러 생활의 패턴도 달라지고 또 젊은이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서 운동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재야운동이니 시민운동이니 청년운동이니 이러한 구분을 하기 전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어떻게 고민해야 하고 고민을 관철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다. 이런 건 다 똑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관심과 집중력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재야운동이 시민운동의 개념으로 변화되었고 또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의원시절, “국보법 손도 못 댄 것 부끄럽게 생각”

 

   

▲ 16대 국회의원 경험을 갖고 있는 이창복 의장.
[사진 - 통일뉴스]

□ 재야인사로서는 드물게 16대 의원으로서 국회의원직을 경험하고, 또다시 재야단체 대표를 맡게 됐다. 작년 총선과 대선을 보면서 야권이 상당히 무력화됐고, 진보정당은 아예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권에 대해 바라는 바, 촉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내가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제일 먼저 부끄럽게 생각한 것은, 내가 재야운동 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많이 했는데, 국회의원 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개정이라도 해야 하는데 개정도 안 됐다.

내가 소속돼 있던 새천년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개혁적인 의원들이 많지 않았다. 그 당시 법을 발의해서 서명을 받으러 다니니까, 20명 이상 받아야 발의하는데 20명도 못 받았다. 그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당 대표도 “왜 내부 풍파를 일으키려 하느냐”는 그런 류의 반응이었다. 재야에 있을 때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손도 못 댄 것을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한다.

정치권에 대한 불평이라고 한다면, 지난번 총선 때 그리고 대선 거치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당이 공평하고 새로운 환경과 정세에 적응해 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여전히 친소관계에 의해서 당이 움직여지는 것 같다.

어느 집단이든 주도세력이 있게 마련이고 계파는 있을 수 있고 필요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것에 얽매여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주도세력 중심의 정당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당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들은 한다. 그러나 결정되어 가는 것을 보면 그것을 실천하는 태도는 아닌 것 같다.

□ 이왕에 재야에서 정치권에 뛰어들었으니까 정치지도자가 돼서 정치판을 바꿔보겠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는지?

■ 그런데 나는 정치권에 들어간 계기가 내 생각과 관계없이 진입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이것을 목표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오래 머물 생각은 못 했다. 그러나 또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 됐고 안목을 좀더 넓힐 수 있는 기회는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의원활동이나 선거에 돈이 많이 들었다. 내 선거를 통해서도 지연이라든지 학연, 혈연 이런 것을 탈피해 보려고 노력했다. 돈 들지 않는 선거, 법정비용 외에는 쓰지 않는 선거, 그래서 항상 유권자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은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당신들도 투자하라”고 했다.

당에 관여해서는 당쇄신발전위원회에도 참여해서 총재제도를 없애고 경선제도를 도입하고, 진성당원제를 만들고 이런 것은 당을 개혁하는 데는 일정하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여튼 정치권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내 적성에 맞지도 않고.

□ 지금 한반도 정세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일각에서는 지금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하는 전략적 노선을 선택했고, 한국이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대응 구조가 형성돼 있다. 더구나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전략적 충돌이기 때문에 장기화, 상시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한반도의 긴장구도, 본질적인 모순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된다고 보는지?

■ 핵문제는 2003년 북한이 NPT를 탈퇴했고, 그때부터 중요한 과제로 부상됐는데, 왜 북한이 NTP로부터 탈퇴했느냐? 클린턴 정부에서 북미 제네바합의를 통해 북을 달래가면서 평화적으로 핵을 개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해서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도 지어주기로 하고 중유도 공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시 정부가 들어서자 확 달라졌다.

그래서 북으로서는 NPT를 탈퇴하고 자신들이 핵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미국 입장에서야 북한이 핵을 갖지 않길 바라겠지만 북한도 주권이 있는 한, 자기들 영토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 그것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핵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고, 그들의 선택이다. 이것을 강대국이 막는 것이 과연 옳은 건가? 또 현실적으로 파키스탄이나 인도라든지 많은 나라들에서 핵을 갖고 있지 않나?

북핵 문제는 2000년대 초반에 국회에서도 많이 거론돼 많은 생각을 해봤다. 그때 느꼈던 것은 북이 핵을 들고 있다는 것은 생존적 차원에서의, 생존수단으로서의 핵을 선택했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부터 계속 핵문제는 개발하고 또 시험도 하고 이렇게 됐는데,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지원하겠다는 이런 정책을 합의했는데, 그것이 옳은 건가? 나는 이제 우리가 정책을 좀 전환해야 한다면 비핵이 아니라 핵확산을 방지하는데 더 초첨을 맞춰야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미국도 ‘비핵.3000’이 아니라 ‘3000’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핵확산 방지를 위한 3000’을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북핵,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데 초첨 맞춰야”

 

   
▲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북핵문제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이창복 의장. [사진 - 통일뉴스]
□ 오늘 새벽 한미 정상이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공동기자회견도 가졌다. 평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인 것 같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이후 바람직한 한미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된다고 보는지?

 

■ “이번에 한미동맹을 더 강화시켰다”, 그런 이야기 아니냐? “가치동맹에서 신뢰동맹으로”, 이런 표현은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하던데, 나는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언어의 유희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

이번에 두 정상이 만난 김에 획기적으로 “정전협정 60년이 됐는데, 없애야 되는 것 아니냐?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합의했어야 한다고 본다.

또 북핵문제를 비핵이 아니라 이제 만든 건 할 수 없이 인정하고 앞으로 더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 아니냐. 여기에 합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정상회담의 새로운 합의이지 구태의연한 합의만을 자꾸 연출한 것은 답답한 회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안보문제에 있어서 더 그렇다.

물론, “비확산 합의를 해야 한다”라는 것은 근본적인 비핵화를 전제로 해서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 6.15공동선언이나 10.4선언이 역사 속으로 묻혀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 남북기본합의서는 정상 간의 합의는 아니었고 정상이 인정해 국무총리들이 사인한 것인데, 서명을 정상들이 안 했기 때문에 조금 구속력이 덜할 수 있다. 6.15선언이나 10.4합의는 양쪽 정상들이 서명을 한 것이다.

이건 지켜내야 한다.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우리 스스로가 가져야 한다. 이건 북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북이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면 북도 남도 다 같이 안심하고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 우리들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데 참 걱정이다.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민족문제는, 한반도 평화문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끌어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의 운명은 우리민족이 끌어가야지 왜 남에게 의존하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주변국 관계도 정상화하겠다는 문구가 있던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북 당사자 간 합의를 존중하고 주도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사는 곳과 건강관리나 특별한 취미활동이 있는지?

■ 게을러서 운동을 잘 못한다. 서울과 원주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운동인 셈이다. 나는 오래 살기 위한 생각은 별로 안 한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일하다가 길거리에서든 집에서든 하느님이 부르면 “예. 가겠습니다”하고 가는, 그런 생각이다. 운동을 위해서 시간을 낸다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 같다.

원주에서 14대째 살고 있고, 사는 집은 원주 시내에서 30리 떨어져 있다. 아주 공기가 좋다. 다만, 교통이 불편하지만 적응해 가면서 사는 거다. 운전은 못하니까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고 집까지는 시내버스를 탄다.

□ 원주에는 고 장일순 선생이 서화를 하고, 김지하 시인은 시 쓰고 난을 치고 주변에 문화적 소양이 높은 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취미삼아 하는 것이 있는지?

■ 장 선생 난치는 것도 많이 봤고, 김지하 씨도 많이 봤는데, 그들의 재능이다. 예술적 감각이 없으면 그거 못한다.

김지하 씨는 중학교 한해 아랫반인데 학예부 미술반장을 했다. 그러니까 중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그렇게 미적 감각이 있는데다가 장 선생한테 배우니까 더 잘 그릴 수 있었다.

눈이 아파서 독서도 잘 못하지만 시간이 있는 대로 책을 좀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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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소 유엔청원 접수! 그 감격의 순간! 그리고 5월 15일 유권소인터뷰 국민티비방송 예고!|

유권자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유권소)에서 정식으로 유엔청원서를 접수했습니다 .

이를 위해 미국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날아가신 유권소 공동대표님과 뉴욕 회원님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모았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369542

 

<유엔청원 접수 후기입니다.>

 

[유엔에 가다]

 

 

"내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나라란 말인가? 과연 이대로 저들을 용납해야 줘야 한단 말인가?"

한민족의 수치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이명박과 함께 그들의 추종세력들을 총동원해, 국가권력을 악용하여 온 국민과 지구촌을 상대로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총체적인 부정불법을 저지르며 나라살림을 강탈한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 선거!

 

총칼만 안 들었을 뿐 부정불법 날강도들을 바라볼 수 뿐이 없었던 나는 치를 떨며 수치와 분노로 눈물도 차마 흘리지 못하고 날밤을 세우던 어느날, 나는 운명적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 (이하 유권소)" 이라는 인터넷 공간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한숨 쉬는 자들과 함께 한숨 쉴 수 있었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맘껏 울 수 있었고, 짓밟힌 자들과 함께 분노할 수 있으면서 나는 차츰 나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소명을 깨달아 갔다.

 

"유엔청원!!."

제니퍼 유권소 대표님께 부탁을 드렸다.

"저를 꼭 유엔에 보내주십시요! 고종의 헤이그 밀사의 심정으로, 민주를 갈망하는 모든 유권자들의 염원을 담은 소중한 청원서를 제 손으로 꼭 전달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물어본다.

"왜 부끄러운 집안 일을 바깥으로 가져가려 하느냐?" 고 말이다.

나는 대답한다.

"집안의 문제를 집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법원으로 가져가야 하듯이, 나라 문제를 나라 안에서 해결할 수 없도록 꽁꽁 묶고 있는데, 당연히 나라 문제를 다뤄주는 유엔으로 가져가야하지 않겠나?" 라고 말이다.

혹자는 비아냥 거린다.

"왜 외국에 나가 사는 해외 동포들이 내정간섭이냐?" 고 말이다.

나는 말한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참정권을 주느냐? 대한민국은 해외동포들에게도 참정권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라고 말이다.

 

"유권소 유엔청원 특수임무팀"

온 지구촌에 퍼져 사는 민주를 갈망하는 전문가들이 가정일과 사회일을 뒤로 미뤄둔채 서로의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생들이 시작됐다.

무려 3개월 동안을...

그리고 그들의 고생들과 흘린 땀에 보답이라도 하는듯, 유권소 회원들을 위시로 온 지구촌에서 서명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3년 5월 D-day"

처음엔 유엔청원 D-day가 4월 중순 쯤이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보았다.

그러나 계속 쏟아지는 제보와 엄청난 자료들의 검증진행의 속도로 보아서는 4월 말경도 빠듯할듯 싶어, 박근혜씨의 방문일정에 맞춰 D-day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법률자문팀의 꼼꼼한 검증 결과, 이미 대외적으로도 그리고 헌법상으로도 부정불법이 명백한 국정원 문제를 더 보완하자는 결정에, 그렇다면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박근혜씨에게 시간만 벌게 해주는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지도 모를 전자개표 부정불법 건을 청원서에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 넣는다면 어느 선까지 다룰 것인가? 로 실무진들의 고뇌의 나날 속에, 이러다가는 일년에 3차례 있는 유엔회의 날짜에 못 맞추겠다 싶어, 법률자문팀의 검증이 끝나는 날로 부터 "무조건 14일을 D-day" 로 정하고선, 유엔청원 실무진들이 최종점검에만 매어달릴 수 있도록,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다 끊게 했고, 공동대표들 중 제니퍼 대표가 마지막 청원서 제작에 돌입했다.

 

"D-day 새벽 3시!"

일찍 주무시라는 제니퍼 대표의 연락에 잠을 일찍 청했지만, 페이스북, 아고라, 트윗 등 주류 언론들에서는 도무지 나눌 수 없었던 부정불법대선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눴던 수많은 민주들의 헌신과 염원이 담긴 유엔청원서를 어루만지며, "정말 내가 유엔에 가는건가?!" 라는 감격에 목이 메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데, 알람이 울린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것이다.

전날, 뉴욕의 날씨 상황을 봤었는데, 오늘 비가 온다고 했기에, 걱정스런 마음으로 다시금 날씨를 점검하는데, 다행히 뉴욕의 날씨가 풀렸다.

 

그동안 짬짬이 제작했던 시위용품들을 차에 싣고선, 잠시 마음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럴 때, 종교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도움을 청하겠구나 싶었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옛 어른들의

깨달음을 상기하며,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내 자신도 감동시키지 못할만큼 성실하지도 않은 자의 감동을 옆의 사람이 알 리가 없고, 이웃도 모르는 감동에 하늘도 알 리가 없는데, 어찌 하늘이 돕겠는가? JohnNara! 너는 지금 감동하고 있는가? 너의 조국이 꼭 좋은나라가 되리라 기대하는가?"

가슴이 뜨거워지며 꼭 다문 입술이 떨리고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드디어 뉴욕!"

뉴욕 공항에서 다른 지역에서 오신 유권소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과 눈빛을 나눈다.

좋은 학벌, 좋은 일터를 가지고, 아무 걱정없이 자기 만의 삶을 꾸려간들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음에도, 우리가 왜 이래야만 하나? 하는 고뇌가 비난 우리들 만의 것일까?

약한 자와 함께 울어주고 싶은 강한 자의 마음을 저들에게서 본다.

먼저, 첫 시위장소로 '윤창중' 문제로 곤경에 처한 한국 총영사관을 택했다.

피켓을 들었더니, 경비원이 제지를 하길래, 유권소 회원 중 한분이 '함께 시위하자! 사진 좀 찍어달라' 제의하며 서로 웃으면서 부드럽게 상황을 넘겼다.

유엔이 바라보이는 지점 도로상에 사람들이 꽤 있어 보여서, 그곳에서도 시위피켓을 들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그중 한국인도 꽤 있었다) 우리들을 사진에 담기 바빴다.

"그래, 많이들 찍어가서 대한민국 18대 대선이 부정불법선거였다는 것을 온 지구촌에 알려주거라!"

"유권소 유엔선언문 낭독!"

유엔청사 안으로 입장해서 다시금 피켓을 들려고 하는데 경비원들이 좌악 모여서 우리를 제지한다.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그들의 제지에 따르기로 하고, 사진 몇장을 찍고는, 곧바로 유권소 유엔선언문 낭독에 들어갔다.

"나 아니면 돼, 내 알바 아냐"

낭독 중에 들리는 낯익은 한국말.. 그래 한국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그냥 지나친다.

어느 국민은 시위를 하는데, 정부는 그런 국민과 전쟁을 한다.

그리고 어느 국민은 그런 그들을 "나 아니면 돼, 내 알바 아냐" 하며 방관한다.

 

 

 

 

 

 

 

 

 

 

 

 

 

 

 

 

 

 

 

 

 

 

 

 

 

"밤 11시"

유엔청원 준비위원장이신 * 박사님이 공항까지 나오셔서, "수고하셨다"며 따스하게 맞이해 주신다.

이 말은 전화로 하셔도 될텐데...,

무려 4시간을 운전해 오셔서, 한국사에 길이 남을 유엔청원을 마치고 돌아온 내 손을 처음으로 붙잡은 주인공이 되셨다.

 

또다시 4시간을 운전해서 귀가하셔야 할 *박사님의 뒷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보수의 모습을 본다.

"진정한 보수란?"

사람, 생명, 정의, 평화, 사랑 등의 존귀한 가치를 지키려 애를 쓰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란?

바로 그런 사람들이 골고루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념이나 종교 보다 사람이 먼저이다!

소수 기득권 집단의 이익이 아닌 바로 사람이 희망이다!

(끝)

 

 

 

 

 

유권자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유권소) 유엔청원서를 접수!

그 감동의 뒷 얘기들을 모아 국민티비에서 방송을 합니다.

 

*** 방송안내 : 5월 15일 오전 7시. [이슈인터뷰] UN청원서 낸 ‘유권소’ 제니퍼 리 대표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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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주진우 '박근혜정부 1호 구속인' 만들 속셈"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5/14 13:04
  • 수정일
    2013/05/14 13:0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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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주진우 '박근혜정부 1호 구속인' 만들 속셈"

 

14일 민변 등 시민단체 '구속영장 청구 규탄 기자회견' 열어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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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14 11:29:08

 

14일 주진우 시사IN 기자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검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검찰은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지난 10일 주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됐다.

민변 언론위원회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이상 가나다순)는 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입구에서 <주진우 구속영장 청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구속 수사는 부당하다"고 밝혔다.

 

 

   
▲ 주진우 시사IN 기자 ⓒ미디어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주진우 기자는 진실을 밝히는 등대 역할을 해 왔다"며 "한국사회는 언론인이 진실을 밝힐 기회를 주지 않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법부가 상식에 근거한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준현 민변 언론위원회 위원장은 "주진우 기자는 검찰이 부를 때마다 성실하게 수사를 받았다"며 "팟캐스트 나꼼수, 시사IN 기사 등이 다 남아 있는 상황에서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검찰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주진우 기자에 대한 구속 수사는 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며 "주 기자가 구속이 될 경우 민변 언론위원회는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던 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상황은 참으로 처참하기 그지 없다"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달라질 줄 알았던 언론 탄압이 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이명박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기자를 처벌하는 사례는 외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될 사안이다. 언론인이 공직자, 정치인의 의혹이 있다고 판단을 하면 그 의혹을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주 기자에 대한 탄압은 한국의 수많은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법원이 영장 청구를 기각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 민변 언론위원회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이상 가나다순)는 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잇는 대로에서 <주진우 구속영장 청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디어스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의무"라며 "이명박 정권 때에는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어 언론을 장악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자 개개인에 대한 탄압의 방식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진실을 알고도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자가 아닐 것"이라며 "정권의 광견, 충견을 규탄한다. 언론노조는 언론노동자들과 함께 결코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도 "검찰이 주 기자를 '박근혜정부 1호 구속인'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됐다"며 "무능하고 비열하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찰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봉주 전 의원, 김용민 PD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주진우 기자는 "재판 잘 받고 오겠다" "시대가 부르면 가야 한다"는 말을 한 뒤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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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사과 ‘요지경 속’

 

윤창중 만큼 황당한 박 정부의 ‘사과 매너’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사과 ‘요지경 속’
 
육근성 | 2013-05-14 09:15: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간 박근혜 대통령는 공식석상에서 두 차례 ‘송구’ ‘사과’ 등의 표현을 썼다. 지난 3월 11일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세계경제도 위기인데 경제부총리도 안 계셔서 정말 안타깝고 국민 앞에 송구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야당이 고위 공직 후보자 무더기 낙마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하자,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다.

 

 

사과 받아야 할 ‘국민’ 없는 대국민 사과

 

 

하지만 대국민 사과는 아니었다. 첫 번째 ‘송구하다’라는 표현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야당에 대한 힐난이 포함돼 있고, 두 번째 ‘죄송하다’는 말은 야당 지도부에게 한 말이지 국민에게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토록 사과에 인색한 박대통령도 ‘윤창중 사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재미동포와 피해 인턴 여대생에게도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여러분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멘트만 보면 대국민 사과가 맞다. 그러나 이 발언이 나왔던 장소와 상황, 참석 인물 등을 감안한다면 어색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장소는 청와대 회의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였다. 참석자는 수석비서관들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들어야할 ‘국민’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흘린 ‘사과 멘트’를 기자들이 주워듣고 기사화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사과 ‘요지경 속’

 

 

국민이 직접 들을 수 없는 사과를 한 것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박근혜 정부 두 달 반 동안 도합 다섯 차례 정도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매끄럽지 못했다. 사과조차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뭘까.

 

 

▲대독사과 - 3월 30일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은 17초짜리 사과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7명이 줄줄이 낙마해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청와대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다.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의 사과문을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은 것이다. “새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인사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라는 사과문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단 17초.

 

 

대변인을 통해 사과문을 읽게 해도 된다는 발상이 황당할 뿐이다. 사과를 받아야할 국민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안 한 것보다 열배, 백배 못한 사과였다.

 

 

▲셀프사과 - 5월 10일 밤 이남기 홍보수석

 

 

국민 모두를 놀라게 한 ‘윤창중 사건’ 때문에 청와대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자 이남기 홍보수석이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대독사과’ 때처럼 단 넉 줄짜리 짧은 내용의 사과문을 읽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죄송하다며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청와대 구성원의 하나로 보지 않고 사과를 받아야할 국민에 포함시킨 셈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도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판에 겨우 홍보수석이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한답시고 대통령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황당하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정권이다.

 

 

▲불통사과 - 5월 12일 허태열 비서실장

 

 

‘셀프사과’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한 직급 위인 허태열 비서실장이 나선다. 무겁고 침통한 표정으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대독사과’와 ‘셀프사과’ 논란을 의식해서 인지 4분 25초 동안이나 이어진 ‘사과문 낭독’에서 허 실장은 잔뜩 몸을 낮췄다. 세 번 고개를 숙이며 ‘송구’ ‘죄송’ ‘사과’ 등의 표현을 반복 사용했다.

 

 

‘사과문 낭독’까지는 좋았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줄행랑치듯 브리핑 장소를 빠져 가갔다. 배석했던 민정수석,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등도 곧장 허 실장의 뒤를 따랐다. ‘낭독해 주는 것만 듣고 질문을 하지 말라’는 투였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휭하니 자리를 뜨는 게 새 정부 청와대의 버릇이란다.

 

 

▲직급사과 - 사과문 낭독자? 꼼꼼히 직급 따져서

 

 

“먼저 홍보수석으로 제 소속실 사람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고 죄송스럽다.”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과문’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자신이 왜 사과문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상위직급자이기 때문에 사과문 낭독자로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직급을 따지는 버릇은 곳곳에서 관찰된다. 지난 3월 인사위원장 명의의 사과문을 대변인이 대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허태열 실장의 사과문 낭독에도 ‘직급 따지기’ 관행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윤 전 대변인의 상급자인 홍보수석의 사과가 먹히지 않자 홍보수석의 상급자인 비서실장이 나섰다.

 

 

▲간접사과 -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 회의실 사과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는 게 대국민 사과다. 박 대통령은 이런 ‘직접사과’를 꺼린다. 사과의 의도만 전달되면 됐지 구태여 국민 앞에 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이다. 회의실에서 업무 얘기를 하는 중에 대국민 사과를 하는 건 국민을 경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을 어렵게 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국민 사과를 할 때마다 왜 진풍경이 벌어지는 걸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원인제공자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 방법과 내용에 ‘국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과에 인색하다. 한다고 해도 흉내만 낼 뿐이다.

 

 

‘간접사과’를 ‘직접사과’로 둔갑시킨 언론들

 

 

취임 초 대국민 사과를 한 역대 대통령은 여럿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석달 만에 자신의 고향 땅 투기와 생수회자 투자 배경과 관련된 의혹이 일자 “이유와 과정을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하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촛불집회가 확산되자 취임 80일 만에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모두 박 대통령 같지 않았다. 직접 국민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육성으로 국민에게 용서를 구했다.

 

 

 

 

‘간접사과’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일부 언론이 거들고 나섰다. 회의 중에 한 몇 마디를 마치 ‘대국민 담화’라도 되는 양 포장하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언론들은 아예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전문’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냈다. ‘윤창중 사건’과 관련해 회의 도중 언급한 내용을 공식 사과문인 것처럼 각색한 것이다. ‘간접사과’를 ‘직접사과’로 둔갑시켜 보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주인에게 사과하는 것, 당연한 일이다

 

 

사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아버지 박정희를 닮아서 일까.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사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시시콜콜 챙기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독선적 리더십이 빚은 부작용일 수도 있다. 독선의 뿌리는 위엄과 권위다. 독선적 사고에서 출발하면 사과는 위엄과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위로 보이게 된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부족한 정권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다.국민을 진정 주인으로 여긴다면 대국민 사과를 꺼려할 이유가 전혀 없다.주인에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수치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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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손석희…비루한 언론의 현실

[데스크 칼럼] 이지 스톤과 언론인의 사명

전홍기혜 편집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13 오후 1:45:12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대통령 취임 후 첫 해외 순방, 그것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대변인의 '성 추문'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건 자체도 '진흙탕' 그 자체인데, 이것도 부족해 윤창중 전 대변인이 지난 11일 기자 회견을 자청해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나서면서 사건은 더 커졌다. 이 '뻔뻔한' 기자 회견을 통해 다시 한번 윤 전 대변인의 '함량'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청와대 귀국 지시' 의혹을 폭로하면서 불똥은 청와대 전체로 튀었다.

성추행 혐의 등을 부인한 것은 청와대가 귀국 직후 윤 전 대변인을 자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엉덩이를 만졌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 시인했다는 점을 공개하면서 일단락 됐지만, 청와대 개입 여부는 여전히 남겨진 문제다. 윤 전 대변인 주장대로 청와대의 '귀국 지시'가 사실이라면,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을 방조하고 도주를 도운 셈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능멸하고 대통령의 눈을 가리는 행위를 한 자가 윤 전 대변인 한 사람이 아니라 '윗선'에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밝혔지만, 이로 매듭지을 일은 아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청문회가 됐든, 어떤 과정을 거쳐서든 제기된 의혹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관련 기사 : 朴대통령, 윤창중 사태 사과…"美 수사에 적극 협조")
 

▲ <문화일보>에 재직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그의 인선은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입길에 오르내렸다. 그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후 '엉덩이를 만졌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청와대 진술이 공개되면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연합뉴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독립 언론인 이지 스톤(I. F. Stone, 1907~1989년)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들이 꽉 잡고 있다. 이들이 하는 말은 단 하나도 믿어선 안 된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 계기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자작극일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했던 스톤은 미국에서 진보적 독립 언론인의 롤 모델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뉴욕포스트>, <네이션> 등 기존 언론에서 일하던 그는 1953년 1인 미디어 <I. F. 스톤 위클리>를 찍어 내기 시작했다.

혼자 취재하고 자신의 집에서 편집주간지를 찍어내고, 우체국에서 신문 발송을 직접 했다. 기자실, 기자단, 기자 회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고위 소식통을 두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숱한 특종을 냈다. 초기엔 많지 않았지만 추후 발행부수가 7만 부나 됐던 <I. F. 스톤 위클리>는 초기부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버트런드 러셀, 엘리너 루스벨트 등이 구독자였다.

그는 좋은 직장을 모두 내던지고 왜 자신만의 신문을 만들려 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억압 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내 자신의 무능력에 의한 한계를 빼놓고는 그 밖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충동을 빼놓고는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때야 하는가 하는 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밖에 바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관련 기사 : I. F. 스톤을 기리며)

'윤창중 성 추문'을 보면서 뜬금없이 스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정한 지난 6일 이후 일주일을 뒤흔들었던 뉴스들이 공교롭게 언론, 언론인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문화일보> 등에 재직했던 언론인 출신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발탁했을 당시에도 큰 논란을 불러왔던 전형적인 '폴리널리스트'다. 또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중앙일보> 출신),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한국일보>, <조선일보> 출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동아일보> 출신) 등 이명박 정부에서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던 인사들과도 다른 점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을 글로 옮긴 '독설가'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선 변희재 씨와 공통점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변 씨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편을 들어 피해 여성 등에게 막말을 쏟아내다가 청와대 조사 과정이 공개되면서 망신을 당했다. 윤 전 대변인 사건은 양심과 철학 없는 언론과 언론인이 무작정 권력을 추구하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문화방송>(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간판이었던 손석희 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의 '종편행'도 충격적인 뉴스였다. 일차적으론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지만, 그 선택에 깔린 함의는 결코 적지 않다. 손석희 전 교수가 30년간 몸 담았던 MBC가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나 망가졌는지, 김재철 전 사장 등 그에 충실하게 복무한 언론인들은 후배 언론인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는지, 김재철 전 사장의 후임으로 김종국 사장이 낙점됐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MBC 안팎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더 나아가 손 전 교수가 내세운 "종편이 현실이 됐다"는 명분 역시 가볍지 않은 얘기다. '현실이 된 종편'이 가뜩이나 자본과 정치 권력에 취약한 대한민국 언론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종편 택한 손석희? 손석희 삼킨 종편!)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 실험에 대해 종합 일간지에선 처음으로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어렵게 첫 발을 뗀 프레시안의 용기를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칼럼을 낸 <한국일보>의 현재 사태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59년 전통의 기자 사관학교'로 불리던 언론이 사주 일가의 욕심으로 망가지고 있다. 더욱이 물의를 일으킨 그 사주는 회사 측에 의해 부당하게 보직 해임된 이영성 편집국장이 호소했듯이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긴 故 장기영 창업주의 아들이라니.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비루한 처신을 거부하는 기자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내고 싶다. 언론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유약한 생활인일지 몰라도, 이들이 집단으로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에서 이미 MBC, KBS, YTN 등 언론 파업을 통해 증명됐다.

<프레시안>의 언론 협동조합 실험은 이런 현실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세계사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인지라 성공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내부적인 불안감도 작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마음은 모두 똑같다. 선배, 동료 언론인들이 보여준 사명을 좇을 것이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당당할 것이다. 지난 1주일 <프레시안>의 실험을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전홍기혜 편집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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