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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의 진실과 한겨레신문의 진실>

춘몽의 진실과 한겨레신문의 진실
(서프라이즈 / 명태 / 2013-03-15)


한겨레신문을 창간 때부터 거의 빼지 않고 주요 기사, 사설, 칼럼을 읽어왔다. 그러다가 얼마 전 보급소에 신문을 넣지 말라고 전화했다. 그래도 계속 넣고 있지만, 바로 쓰레기통에다 버리고 있다.

방금 한겨레신문 검색창에서 ‘춘몽’을 찾아보았더니 나오지 않았다. 국민신문, 민중신문을 자처하는 한겨레신문이 어떻게 이다지도 국민과 민중을 배신할 수 있는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단식 12일째, 춘몽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러다가 죽기 십상이다. 아니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 가더라도 이미 장기들이 손상되어 온전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한다.

리영희 선생은 당신에게는 진실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씀하셨다. 춘몽은 부처님의 진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다. 한겨레신문과 그 종사자들은 어떤 각오로 살고 있는가?

수개표를 하지 않고 개표결과를 컴퓨터로 마음대로 조작하여 발표한 증거들이 수도 없이 쌓여 있는, 부인할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는 원천적 불법부정선거는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닌가? 춘몽이 살신성인의 각오로 목숨을 걸어놓은 단식투쟁은 보도할 가치가 없는가? 한겨레신문이 지키려 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답변하라, 답변하라, 답변하라.

<춘몽님의 절규 인터뷰>(동영상)

http://korea3d.blogspot.kr/2013/03/8.html

<춘몽님의 트윗>

http://cafe466.daum.net/_c21_/recent_bbs_read?grpid=1RLza&fldid=EzjK&contentval=00128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976&regdt=20130314124422

<춘몽, 새누리의 배를 가르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320491

<단식 11일째인 춘몽의 건강을 걱정하는 애국시민의 모습>

 

▲ 촛불처럼 희생하며 초인적인 의지로 단식 10일째를 넘긴 애국시민 춘몽 모습


 

▲ 단식 8일째부터 산소흡입기로 산소를 흡입하지 않으면 자체호흡이 힘든 상황입니다


 

▲ 2012년 12월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춘몽이 직접 만든 홍보물


 

▲ 국가정보원 부정선거 개입 규탄 촛불집회를 주최한 부정선거 진상규명 시민대표와 사회자


 

▲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애국시민과 함께하는 부정선거 진상규명 시민 촛불집회


 

▲ 영하의 날씨인데 길바닥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잠을 자는 애국시민 춘몽 모습


 

▲ 매일 물을 마시지 않고 초인적인 의지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춘몽이 단식 날짜를 직접 씀

2013년 3월4일 오전 12시부터 여의도 새누리당사앞 길바닥에서, 물을 마시지 않는 초인적인 단식을 시작한 애국시민 춘몽이 단식 11일째인데, 보통 사람들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7일째가 생과 사의 갈림길이랍니다

애국시민 춘몽이 초인적인 의지로 물을 마시지 않는 단식 10일째에, 춘몽과 함께하는 부정선거 진상규명 촛불집회를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오후 9시쯤에 끝낸후,부정선거 진상규명 시민모임 대표께서 병원으로 후송할려고 119를 불러 119 대원과 차가 왔습니다

기력과 체력이 몽땅 떨어진 춘몽이 벌떡 일어나서 춘몽의 건강을 걱정하는 애국시민에게,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섬뜩한 말을 했습니다

부정선거 진상규명 촛불집회에 참석하신 애국시민이,춘몽이 의식이 있을 때는 힘들고 어렵다는 판단에,의식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24시간 비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 27일부터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혼자 1인 시위를 67일 했지만,2012년 12월19일 제 18대 대통령 부정선거 진상규명 촛불집회를 방송과 신문이 보도를 하지않아,대한민국 4천 1백만 유권자의 99.9%가 컴퓨터에 대권을 사기당한 현실을 캄캄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애국시민이 이번에 컴퓨터 범죄를 반드시 뿌리봅지 못하면,지방자치 단체장 선거,국회의원 선거,대통령 선거등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 5%미만의 박빙선거에서는,아무때라도 부정선거 조작이 가능한게 전산개표기의 문제점이랍니다

향후 대한민국의 모든 선거에서는 독일이나 영국처럼 시간이 걸리고 답답하더라도,반드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개표 선거가 관행이 될 수 있도록,다음아고라 청원란에 글을 올린 그루터기추억이 실종되고 행방불명된지 50일째입니다 ? 그루터기추억이 다음아고라 아이디도 빼앗기고,부정선거 음모 세력 사기꾼들이 그루터기추억의 이름을 도용하여,희망과 절망이라는 자살을 주제로 글을 올려도 무섭게 침묵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애국시민 춘몽이 얼마나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졌으면 물을 마시지 않는 고통스러운 단식의 길을 선택했겠습니까 ?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애국시민들의 부정선거 진상규명 촛불집회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민주당과 문재인은,민주당 지지하신 애국시민의 표 떨어지는 소리가 소낙비처럼 확실히 들리는데,아직도 정신을 차리리 못하고 민주당이 분열되고 망하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과 문재인 의원은 애국시민 춘몽이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시면,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애국시민의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과 민주당 국회의원과 문재인 의원도 살아나고 애국시민 춘몽도 함께 살 수 있는 슬기롭고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3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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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에 끝날 단기속결전

 

 

 

3일만에 끝날 단기속결전
 
[한호석의 개벽예감](54) 예상되는 북의 전쟁시나리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3/16 [01:14] 최종편집: ⓒ 자주민보
 
 

군사전문기자가 그린 전쟁만화

무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쌍방은 전쟁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그것은 군사적 ‘관례’다. 인민군은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그들의 군사용어로 어떻게 부르는지조차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민군도 당연히 전쟁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주기적으로 수정, 보완해오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대북군사정보를 거의 전적으로 미국군에게 의존할 뿐 아니라 전시작전통제권도 갖지 못한 한국군은 전쟁시나리오를 작성하지 못하고 전술훈련시나리오만 작성한다. 미국 군부가 작성한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는 군사기밀이어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과 미한연합군이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 언제나 미한연합군의 패배로 끝나는 컴퓨터 모의실험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에게 작전명령을 내리고 있으므로, 한미연합군이 아니라 미한연합군이라고 표기해야 정확한 뜻이 전달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민군의 통일대전시나리오와 미한연합군의 북진전쟁시나리오라는 두 개의 상충적인 한반도 전쟁시나리오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두 개의 한반도 전쟁시나리오 이외에, 남측 언론기관의 군사전문기자들이 이따금씩 써내는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도 있다.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가 2013년 3월 13일 보도기사에서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서술하였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인민군이 240mm 방사포로 백령도에 선제기습포격을 가하는 경우,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대 6여단은 자주포, 130mm 다련장로켓포, 155mm 견인포로 인민군 포병부대에 대응포격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군의 대응포격을 받은 인민군이 포격을 계속할 경우, 한국군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공대지 미사일로 인민군 군단지휘소를 정밀타격하여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서술은 정확한 군사정보를 가지고 작성한 전쟁시나리오가 아니라 빈약한 상상으로 대충 그려본 전쟁만화다. 주요 일간지 군사전문기자가 전쟁만화를 보도기사로 써내고 있으니 좀 한심해 보인다. 그가 그린 전쟁만화에서 드러난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면 이렇다.

첫째, 인민군 포병부대가 백령도를 공격하는 경우, 그 섬 전체를 날려버릴 막강한 화력을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근거 없는 공상이 아니다.

2013년 3월 11일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백령도에서 아주 가까운 월내도에 있는 섬방어대를 시찰하면서 “현재 우리의 화력밀도가 대단히 높다. 백령도의 적대상물들을 3중 4중으로 타격할 수 있다. 백령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싸움의 날, 불바다에 잠기고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적진을 방어대장이 직접 사진을 찍어 최고사령부에 전송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같은 날 인민군 제641군부대 관하 장거리포병 구분대를 시찰하면서 “백령도의 적들이 움쩍하기만 하면 괴뢰6해병려단 본부와 관하 해병대 대대들을 무자비한 화력타격으로 초토화할 데 대한 임무를 수립하시였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가 예상한 백령도 한국군 해병대 6여단의 반격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며, 황해남도 해안지대에 배치된 인민군 포병부대들의 집중포격을 받아 궤멸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예상이 믿어지지 않는 독자는, <조선일보> 2010년 4월 12일 보도기사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전반기에 인민군 4군단 26사단 49포병대대 3대대 참모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어떤 탈북자는 그 기사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예를 들어 4군단의 1차 타격목표로 선정돼 있는 서해 백령도는 전쟁개시와 함께 첫 타격으로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다. 섬의 특정지역을 강타하는 것이 아니라 섬 전체를 하나의 목표물로 정해 포탄으로 뒤덮어 버리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밀대전략’이라고도 부른다.”

둘째,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는 자기의 전쟁시나리오에서 한국군 전투기들이 출격하여 미국산 공대지 순항미사일로 인민군 군단지휘소 창문을 맞출 것이라는 식의 ‘족집게식 정밀타격’에 대해 언급하였지만, 그것도 역시 전쟁만화다.

‘족집게식 정밀타격’에 관하여 진짜 전쟁만화 같은 이야기가 <중앙일보> 2013년 3월 15일 부에 실렸다. 그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전투기에 탑재되는 미국산 공대지 순항미사일(SLAM-ER)의 엔진에 결함이 있어 작전에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그 순항미사일을 한국군에게 팔면서 기술정보를 넘겨주지 않은 것은 물론, 한국군이 그 순항미사일을 분해하여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모방생산을 할까봐 분해조차 금하였다. 그런 까닭에 순항미사일 엔진에 생긴 결함은 한국군이 조사하지 못하고 미국군이 남측에 가서 조사해야 하는데, 미국군 미사일 전문가들의 남측 방문, 조사, 분석, 수리에 앞으로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 국방부가 자기들은 1발 당 8억 원에 조달한 그 순항미사일을 한국군에게는 20억 원 넘는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팔아먹었는데, 수입단가가 너무 비싸서 한국군은 그 순항미사일을 수 십 기밖에 수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오늘 몇 발 되지 않는 그 순항미사일마저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한국군 지휘부가 느끼는 당혹감은 너무 클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이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쓸 수 없게 된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쌍방이 방대한 규모의 화력을 총동원하여 벌이는 격렬한 전면전에서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동원한 정밀타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 격렬한 전면전에서는 정밀타격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비유로 말하면, 좁은 골목 안에 격투기 선수 100명이 몰려들어 혈투가 벌어진 상황에서 누가 누구의 턱을 칠 것인가 아니면 명치를 칠 것인가 하는 정밀타격문제는 무의미해진다. 100명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격투에서는 수적으로 우세한 쪽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순항미사일 정밀타격에 대한 한국군의 과신은 작전실패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전면전은 총화력전으로 시작될 것이다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가 그린 전쟁만화는, 북이 백령도 포격전 같은 국지전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전면전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가 그린 국지전 만화는 전면전이 일어날까봐 공포에 떠는 독자들에게는 심리적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허상을 현실로 믿어버리는 것은 전쟁공포보다 더 해로운 정신착란증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북이 준비한 전면전은 백령도 같은 어느 특정목표를 240mm 방사포와 중장거리포로 파괴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전방에 배치한 모든 종류의 타격수단을 총동원하여 전체 전선에서 일제사격을 퍼붓는 총화력전으로 시작될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짝 접근하여 대치하고 있는 밀집전선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면전은 총화력전이 될 것이며, 그런 총화력전에서는 어느 쪽이 더 많은 타격수단을 전투에 동원하는가 하는 문제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문제로 된다. 그러므로 총화력전 개념에 의거하여 작성된 한반도 전쟁시나리오가 실제 전쟁상황에 가장 가까운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60년 전에 일어났던 6.25 전쟁처럼 전선이 남으로, 북으로 자꾸 밀고 밀리면서 몇 해 동안 전쟁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6.25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되었던 주된 이유는, 당시 전투에 동원한 화력이 지금처럼 막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60년 전 북위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쌍방이 총화력전을 벌였다면, 장기공방전이 아니라 단기속결전으로 끝났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질 총화력전은 미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끝나게 될 단기속결전이다. 그렇게 예상하는 까닭은, 전쟁 쌍방 어느 쪽도 장기소모전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북은 오래 전부터 단기속결전을 준비해왔고, 국가재정파산에 빠진 미국도 장기소모전을 벌일 수 없는 처지다. ‘달러’로 침략전쟁을 벌이는 미국에서 전비가 바닥났으니, 그들이 처한 국가재정형편에서 장기소모전은 생각하기 힘들다. 또한 미한연합군의 북진전쟁 작전계획은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미국군사령관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미국군이 장기소모전을 할 수 없다고 하면 한국군도 그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그럴 리 없지만, 만일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전쟁을 가상해도, 한국군에게는 유류, 탄약, 전투장비, 식량 등 장기소모전을 지속할 전쟁물자가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실 장기소모전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동아일보> 2011년 11월 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의 전투예비탄약 보유일수는 15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155mm 자주포의 포탄 부족량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또한 <동아일보> 2011년 1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 4,593기 가운데 20%에 이르는 908기가 2016년 안에 수명주기가 끝나 폐기처분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일보> 2011년 4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러시아에서 대전차미사일 9,700발을 1,500억 원 들여 수입했는데, 지난 2년 동안 진행한 발사훈련에서 60%가 불발 또는 오발하는 사고를 일으켰다고 한다. 러시아가 불량품을 팔아먹은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만일 한반도에서 단기속결전이 일어나는 경우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전쟁시나리오들 가운데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6.25 전쟁처럼 종전으로 가지 못한 채 제2정전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한반도 단기속결전은 개전 이후 불과 며칠 안에 신속히 끝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쌍방의 전쟁수행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미한연합군의 북진전쟁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보다 북의 통일전쟁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군이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진행해보면 그 결과는 언제나 미한연합군이 패배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미한연합군이 청천강까지 진격하여 평양과 원산을 점령한다는 북진전쟁시나리오는 속어로 표현하면 완전한 ‘뻥’이다.

정확한 군사정보를 가지고 예상하면, 미한연합군의 북진은 인민군의 강력한 화력에 막혀 불가능하다. 미한연합군이 북진하기는커녕 인민군의 남진을 막아내야 하는데, 그런 남진저지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예상하는 까닭은, 한국군 보병부대들이 동서로 249km나 이어진 군사분계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횡렬방어선은 인민군의 강력한 ‘쐐기전법’으로 뚫릴 것이기 때문이다. ‘쐐기전법’이란 쇠망치로 내려쳐 깨뜨리지 못하는 단단한 물체에는 쐐기를 박아 깨뜨린다는 뜻이다.

인민군 전방군단은 서부전선 2군단과 4군단, 중부전선 5군단, 동부전선 1군단이다. 전시에 인민군 1개 전방군단이 작전할 전선폭은 32km이므로, 서부, 중부, 동부전선의 작전폭을 모두 합하면 96km다. 4개 전방군단의 화력을 96km의 작전폭으로 총집중하여 미한연합군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것이 인민군의 ‘쐐기전법’이다. 그런데 한국군 보병부대는 동서로 200km나 길게 늘어선 횡렬방어선을 지키고 있다.

한반도 지형을 보면, 동부전선은 산악지대이고,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은 평야지대다. 그러므로 인민군이 남진하려면 평지에 도로들이 뚫려있는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돌파해야 하는데, 서부전선은 서울방어를 맡은 미한연합군이 지키고 있으므로, 인민군으로서는 중부전선을 돌파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인민군이 강력한 화력을 총집중하여 중부전선을 ‘쐐기전법’으로 돌파하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이 준비한 단기속결전은 인민군 포병부대가 방사포 몇 발 쏘고, 미한연합군이 다련장로켓포 몇 발로 반격하는 식의 공방전이 전혀 아니다. 연평도 포격전 경험을 상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최후돌격명령을 내린 시각, 전방에 대기 중인 인민군 4개 군단 예하 포병부대들은 전체 전선에 걸쳐 곳곳에 파놓은 갱도진지에서 수많은 방사포와 중장거리포를 꺼내 미한연합군 전방기지들을 향해 상상을 초월한 일제사격을 개시할 것이다.

발사명령을 받은 즉시 126,000발 쏠 수 있다

인민군 4개 전방군단 예하 포병부대들이 보유한 화력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것이 240mm 방사포다. 3축6륜 군용트럭에 설치한 22련장 240mm 방사포는 최대사거리가 90km인데, 북이 1980년대 중반에 개발한 것이다. 이전에 북측 인사들이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22련장 240mm 방사포의 타격력을 두고 한 발언이었다.

북이 실전배치한 신형 방사포는 4축8륜 발사차량에 탑재한 40련장 240mm 방사포다. 이 신형 방사포는 2013년 2월 24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지도한 포병화력타격훈련을 통해 외부에 그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2010년 11월 23일 인민군 포병부대는 22련장 122mm 방사포를 연평도 포격전에 동원하여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는데, 만일 40련장 240mm 신형 방사포를 발사하면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파괴력이 나올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인민군 전방사단 포병대대 참모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0년 4월 12일 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전반기에 인민군 1개 전방군단이 보유한 240mm 방사포는 280문이었고, 중장거리포는 1,700문이었다. 인민군 전방군단은 4개이므로, 1990년대 전반기에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이 보유한 240mm 방사포는 1,120문이었고, 중장거리포는 6,800문이었다.

그런데 남측 군사전문기자들은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이 보유한 240mm 방사포는 300문밖에 되지 않고, 중장거리포는 1,000문밖에 되지 않는다고 저평가하면서 사실을 왜곡한 기사를 써내곤 하였다. 이를테면, <신동아> 2004년 12월에 실린 기사가 그렇게 왜곡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와 조금 다르게, 남측 국방부는 2010년에 펴낸 <국방백서>에서 전후방에 있는 모든 인민군 포병부대가 방사포 5,100문, 중장거리포 8,500문을 보유하였다고 기술하였다. <국방백서>는 인민군이 보유한 방사포 5,100문 가운데 4개 전방군단에 배치한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또 방사포 5,100문 가운데 240mm 방사포가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에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이 추산할 수 있다. 즉 인민군이 전방군단에 ⅔에 이르는 화력을 배치하였고, 전방군단에 화력이 가장 강한 240mm 방사포를 집중배치하였다고 본다면,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이 240mm 방사포 3,400문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전반기에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이 보유한 240mm 방사포가 1,120문이었으므로,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2009년에 240mm 방사포가 3,400문으로 증강되었다고 보는 것은 전혀 무리한 추산이 아니다.

또한 <국방백서>는 전후방에 있는 모든 인민군 포병부대가 중장거리포 8,500문을 보유하였다고 기술하였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인민군이 전체 포병화력 가운데 ⅔를 전방군단에 배치하였다고 보는 경우,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은 중장거리포 약 5,600문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인민군 포병대대 참모 출신 탈북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1990년대 전반기에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이 보유한 중장거리포가 6,800문이었으므로, <국방백서>의 서술대로라면 지난 15년 동안 중장거리포가 1,200문이나 줄어들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지난 15년 동안 인민군이 중장거리포를 증강시켜온 추세를 생각하면, 1,200문이 감소한 게 아니라 거꾸로 그만큼 증가되었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다. 따라서 지금 인민군 4개 전방군단은 중장거리포 8,000문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 편, 남측 국방부가 펴낸 2010년도 <국방백서>에 따르면, 한국군이 보유한 다련장로켓포는 200문이고, 중장거리포는 5,200문이다. 인민군 전방군단이 보유한 240mm 방사포는 3,400문인데 한국군이 보유한 다련장로켓포는 200문밖에 되지 않고, 인민군 전방군단이 보유한 중장거리포는 8,000문인데 한국군이 보유한 중장거리포는 5,200문이니 쌍방의 화력격차가 너무 크다.

240mm 방사포나 중장거리포를 쏘는 인민군 포병들은 자기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있는 타격목표를 향해 포탄을 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놓은 타격구역을 조준하여 쏜다. 인민군 4개 전방군단 예하 포병부대들은 전시에 각기 자기들이 일제사격할 타격구역을 미리 분할해놓았다.

미리 정해진 타격구역에 대한 240mm 방사포와 중장거리포의 일제사격을 지휘하는 곳이 군사분계선에서 가까운 높은 산꼭대기마다 건설된 산정감시소들이다. 그 산정감시소들에서는 전방군단 포병부대의 일제사격을 지휘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제사격이 개시되는 순간 미한연합군을 향해 강력한 방해전파를 쏘기도 한다. 산정감시소들에서 강력한 방해전파를 남쪽으로 쏘면 미한연합군이 운용하는 각종 군사장비들에서 오작동이 일어나게 된다. 인민군 전방군단의 산정감시소들은 미한연합군의 포격에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지하요새로 건설되었다.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굽이굽이 감아도는 가파른 벼랑길을 올라가 최전방 산정감시소를 자주 시찰하곤 하였는데, 바로 그 최전방 산정감시소가 방사포 집중사격과 방해전파 공격을 지휘하는 거점인 것이다.

최전방 산정감시소에 오른 인민군 포병지휘관은 군사분계선 너머 남쪽에 타격좌표를 정한 뒤에, 산 아래 북사면(北斜面)에 파놓은 갱도진지에서 대기 중인 포병부대 중대장들에게 감청방지용 유선통신망으로 발사명령을 내린다. 발사명령을 받은 포병들은 갱도진지 차폐문을 열고 방사포와 중장거리포를 꺼내 남사면(南斜面)에 있는 포대로 이동시켜 발사한 다음, 미한연합군의 대응타격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갱도진지로 돌아가 재장전하고 갱도를 통하여 다른 포대로 이동하여 2차 발사를 하게 된다.

인민군이 보유한 240mm 방사포는 22련장과 40련장 두 종류가 있는데, 240mm 방사포 1문이 평균 30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계산하고, 같은 시간 안에 중장거리포 1문이 평균 3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240mm 방사포 3,400문이 102,000발을 발사하고, 그와 동시에 중장거리포 8,000문이 24,000발을 발사하게 된다. 이것은 인민군 4개 전방군단 예하 포병부대들이 발사명령을 받은 즉시 126,000발을 미한연합군 전방부대들에 쏟아 붓는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전쟁영화에서 수 천 명 궁수들이 한꺼번에 쏜 화살 무더기가 하늘 전체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장면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현실이 펼쳐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인민군 전방사단 포병대대 참모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근무했던 포병중대는 포탄창고에 포탄 4,000발을 쌓아놓고 있었는데, 오래된 포탄부터 포탄창고에서 꺼내 연습용으로 쏘았고, 새로운 포탄이 계속 공급되어 포탄창고에 쌓이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인민군은 240mm 방사포와 중장거리포만이 아니라 타격정확도가 높은 지대지 단거리미사일 1,000발도 언제든지 발사명령만 내리면 즉각 쏠 수 있게 대기해 놓고 있다. 그 지대지 단거리미사일 1발을 쏘면 축구장 3∼4개 면적이 초토화된다.

인민군 단기속결전의 전개양상을 예상하면

단기속결전 첫째 날, 인민군 4개 전방군단 예하 포병부대들은 발사명령을 받은 때로부터 30분 동안 240mm 방사포와 중장거리포 250,000발과 지대지 단거리마시일 1,000발을 미한연합군 기지들을 향해 소나기처럼 퍼부을 것이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일제사격을 북에서는 ‘불마당질’이라 한다. 원래 마당질이란 논밭에서 거둬들인 볏단이나 콩대를 마당에 펴놓고 그 주위에 빙 둘러선 농민들이 도리깨로 연속 후려치며 이삭이 다 떨어질 때까지 터는 농사일이다. 군사학에서 말하는 연속타격개념, 화력집중개념, 섬멸타격개념이 모두 ‘불마당질’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인민군 포병부대의 ‘불마당질’은 미한연합군 포병부대의 선제타격을 받고 보복하는 대응타격이 아니라, 미한연합군에 대한 불시의 선제타격이 될 것이다. 북에서는 미한연합군 포탄이 한 발이라도 자기 지역에 떨어지면, 즉각 ‘불마당질’을 하겠다고 공언하였지만, 그것은 수사적 표현이고 전시에 인민군 포병부대의 ‘불마당질’은 대응타격이 아니라 선제타격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 동서구간의 249km 횡렬전선처럼 쌍방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전선에서는 불시에 먼저 공격하는 쪽이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 인민군 4개 전방군단에 배속된 특수전 병력인 경보병부대 50,000명이 개전시점보다 조금 먼저 남진갱도를 통하거나 잠수정을 타고 남측 각지에 사전침투하여 대기하다가 개전 즉시 미한연합군 후방에 있는 공군기지, 해군기지, 레이더기지, 미사일기지, 발전소, 공항, 항만 등을 기습공격할 것이다. 미한연합군은 경보병부대 50,000명의 기습공격을 막기 위한 미한연합기동타격대를 배치하여 기지방호전을 준비하고 있으나 수적으로 너무 열세이고, 발전소, 공항, 항만은 사실상 거의 무방비상태다. 그것만이 아니라, 인민군 최정예 병력으로 알려진 ‘폭풍군단’은 서울을 비롯한 남측 도시들에 진입하여 주요거점을 점령하고, 남측 도시들에 체류하는 미국인 150,000만 명을 포로로 붙잡을 것이다. 전투종심이 짧은 한반도 전쟁에서 후방지역에 대한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침투작전과 기습작전은 미한연합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인민군이 불시에 선제타격 ‘불마당질’을 시작하면, 장갑차량에 탑재되지 않아 피격위험이 높은 한국군 견인포들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갱도진지를 구축해놓지 못한 미한연합군 보병부대들은 궤멸상태에 빠질 것이고, 미한연합군 공격헬기들은 이륙하지도 못하고 주기장에 세워둔 채로 파괴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인민군의 선제타격 ‘불마당질’이 강력한 방해전파 공격과 동시에 개시될 것이라는 점이다. 연평도 포격전 때 인민군이 방사포를 일제사격하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방해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포병무력을 무력화시킨 경험을 기억하면, 인민군의 선제타격 ‘불마당질’과 방해전파 공격이 동시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인민군이 강력한 방해전파를 쏘면 미한연합군의 단거리미사일(ATACMS)이나 한국군의 자주포에서 오작동이 일어날 것이고, 방해전파 공격과 특수전 병력의 기습공격을 이중으로 받을 미한연합군 미사일기지는 점령당하지 않으면 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미한연합군 부대들 가운데 인민군의 선제타격 ‘불마당질’에서 살아남을 부대는 전차와 장갑차를 운용하는 기갑부대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한연합군 기갑부대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그들이 군사분계선 전 구간에 걸쳐 구축해놓은 거대한 콘크리트장벽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콘크리트장벽에는 북진하기 좋은 위치마다 출입구가 나 있지만, 미한연합군 기갑부대가 전차와 장갑차를 일렬종대로 정렬시킨 뒤에 그 출입구로 한 대씩 통과시키는 것은 인민군의 대전차미사일 타격에 완전히 노출된 자멸행위다.

이처럼 미한연합군 기갑부대가 진퇴양난에 빠지면, 인민군 항공군의 SU-25 대지공격기, IL-28 폭격기, MI-24 공격헬기들이 나타나서 콘크리트장벽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미한연합군의 전차와 장갑차들을 공대지미사일과 유도폭탄으로 파괴할 것이다.

단기속결전 둘째 날은 인민군이 남진 총공세를 시작하는 날이다. 인민군 항공군의 대지공격기, 폭격기, 공격헬기들이 미한연합군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한 직후, 대형수송기, 병력수송헬기, 병력수송쌍엽기에 탑승하고 남측 각지 상공에 도달한 인민군 항공륙전려단 병력 10,500명이 낙하산을 타고 서울을 비롯한 남측 대도시 80m 상공에서 저공강하를 시작할 것이다. 그로써 인민군 항공륙전려단은 한국군 후방부대들과 시가전을 벌이게 되는 것인데, 한국군 후방부대가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인민군 항공륙전려단과의 교전에서 이길 가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인민군은 남진 총공세에 나설 것이다. 인민군은 폭탄이나 미사일로 파괴하기 힘든 군사분계선 콘크리트장벽을 폭발력 1킬로톤급 초소형 핵탄 1발로 날려버리고 남진통로를 열어놓을 것이다.

미한연합군 최전방 방어선이 그렇게 무너지면, 인민군 최강부대로 알려진 4개 기계화 군단이 전차 4,600대와 장갑차 3,000대를 몰고 군사분계선 콘크리트장벽에 뚫린 여러 남진통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물밀듯이 밀고 내려갈 것이다. 그런데 인민군 4개 기계화 군단의 남진 총공세를 저지해야 할 미한연합군의 전투기와 공격헬기는 인민군의 선제타격 불마당질로 파괴되거나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기습공격으로 발이 묶여있기 때문에, 7,600대에 이르는 인민군 전차와 장갑차의 남진은 큰 저항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남측 주민들이 버리고 간 각종 차량들이 뒤엉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고속도로에 들어선 인민군 전차부대와 공병부대가 뒤엉킨 차량들을 ‘청소’하며 길을 열어놓으면, 군용수송차량에 탑승한 인민군 보병부대가 그 길을 통과하여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 도시들에 진입할 것이며,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한국군 후방부대들과 시가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단기속결전 마지막 날은 아래와 같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대피훈련을 해본 적도 없고, 실제로 전쟁이 터져도 대피할 곳이 없는 서울시민들은 대혼란 속에 빠질 것이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모든 도로는 각종 차량들이 뒤엉키면서 금세 막혀버릴 것이다. 전기공급, 식수공급, 식량공급, 도시가스공급, 차량연료공급 그리고 교통망, 통신망, 방송망이 끊어질 것이다. 완전히 고립된 서울 도심에 갇힌 1,000만 명의 인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5일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만 그런 게 아니라, 남측의 다른 지방도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단기속결전 마지막 날 실제 전투는 거의 없을 것이고, 인민군이 점령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하고 전기, 식수, 식량, 도시가스, 차량연료의 공급체계를 복구하여 도시기능을 회복시키는 ‘안정화 작전’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인민군은 단기속결전을 시작하는 때에 맞춰, 자기의 단기속결전을 무력으로 저지할 태세를 취한 미국군 태평양사령부 휘하 전력을 강력한 대량파괴무기로 선제공격하여 순식간에 제압할 것으로 보이는데, 북미 전면전에 관해 논하는 것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인민군의 통일대전시나리오는 3일 안에 끝나는 전쟁시나리오다. 인민군은 실제로 자기들의 통일대전이 3일 간의 단기속결전으로 끝날 것으로 믿고 있으며, ‘3일 결전 시나리오’를 연습해오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인민군의 통일대전시나리오를 살펴보면, 미국 군부가 미한연합군의 북진전쟁시나리오를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계속 연습해오면서도,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국 군부가 지금 진행 중인 ‘키 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에 7함대 항모강습단, F-22 스텔스 전투기, B-52 전략폭격기를 참가시킬 것처럼 하더니 결국 참가시키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난 까닭도 짐작할 수 있다.(2013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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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소방관 방화복이 서울보다 17배 낡은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3/15 10:17
  • 수정일
    2013/03/15 10: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19가 필요한 소방관들 ②] 소방 조직의 이원화와 국가직 전환 문제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15 오전 8:14:45

 

불. 사람들이 소방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다. 맞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매일 목숨 걸고 불과 싸우는 이들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하는 일은 화재 진압만이 아니다. 불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몫이다. 예컨대 보행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고층 건물얼음도 깨고, 가스 폭발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어김없이 출동한다.

이렇게 소방관은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공무원이다. 하지만 소방관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잘 아는 시민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소방관들의 안타
까운 순직이 이어지고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현실도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프레시안>은 소방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119가 필요한 소방관들
① 소방관들의 호소 "제발 우릴 때리지 마세요"


지난 1월 21일, 일부 일간지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정부와 국민은 우리의 가족과 동료를 지켜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현직 소방관이 주축이 돼 만들어져 현재 8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소방발전협의회가 한국소방정책연구소와 함께 실은 의견 광고였다. 5000원 남짓의 밥값을 아껴 십시일반 광고비를 모으고, 인증샷을 찍어가며 광고를 만들었다.

이 광고가 나간 뒤 3주쯤 후인 2월 13일 오전 4시 15분, 경기도 포천시 플라스틱 공장 화재를 진압하던 윤영수 소방교가 순직했다. 결혼 3년차 새신랑. 남은 아이는 한 살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일지 모를 이 광고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순직한 윤 소방교는 주목받았다. 한 소방관은 "우리가 죽어야 관심을 받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말미에 적은 광고를 통해 소방발전협의회는 "소방 국가직 전환 없인 소방 순직 사고 해결 없다", "직장협의회 불허는 소방관을 화재 현장에 맨몸으로 밀어 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직 전환과 단결권 보장. 각종 화재 현장에서 까맣게 그을려가는 그들의 핵심 요구다. 노조나 직장협의회가 없는 소방관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십시일반 모금해 의견 광고를 내는 것뿐이다. 전국 3만8000여 명의 소방관은 요구 사항을 모아 목소리를 낼 통로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 소방발전협의회와 한국소방정책연구소가 낸 신문 광고. ⓒ소방발전협의회


군인·경찰과 다른 소방 공무원의 '이원 체제'

"숙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소방 공무원은 '국가직 전환'을 꼽는다. 치안이나 국방만큼 소방 분야도 신속하고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하지만, 경찰이나 군인과 달리 소방관은 대부분 '지방직 공무원'이다.

1992년 광역 소방 체제로 전환한 소방 조직은 현재 '이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국가의 지시를 받지만, 소속은 지방자치단체라는 것이다. 1995년에는 내무부 산하 민방위 재난통제본부가 각 시도 소방본부 소속 소방관들을 통제했었다. 이후 2003년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2004년 행정자치부(현 안전행정부) 독립 외청 형태로 현재의 소방방재청이 생겨났다.

그러나 같은 안전행정부 외청인 경찰청과 달리 소방방재청은 중앙과 지방의 이원 체제를 유지한 채 탄생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행정학교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지방자치가 조금씩 발전하면서 소방 업무를 지역 업무로 보는 관점이 자리 잡아 현재까지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소방관은 중앙의 소방방재청에 소속된 국가소방공무원과 16개 광역시도 소방본부에 소속된 지방소방공무원으로 나뉜다. 전체 소방관의 90%가량이 지방 공무원이다. 소방공무원법과 소방기본법 등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장과 광역자치단체 소방본부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광역자치단체 소방본부장은 소재지를 관할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소방방재청은 방재, 훈련, 교육 등 전반적인 소방 정책 분야를 관장하고, 시도지사는 일선 소방 업무를 지휘하는 시스템이다.

소방 관계자는 "쉽게 말해 소방방재청은 지자체가 뽑은 소방 공무원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청장이 교육을 받으라고 하면 받고, 지자체장이 불 끄라고 하면 끄는" 식으로 이원화돼 있다는 말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올해 방재청 예산은 약 8600억 원이다. 이 예산으로 소방방재청은 예방, 방재, 구호 등의 활동을 비롯해 각종 소방 정책을 수행한다. 소방방재청이 수립하는 소방 정책은 전국 각지의 지방직 소방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경기도의 경우 2013년도 예산이 총 15조5600억인데, 이 중 소방관 인건비를 포함한 소방 관련 예산은 3900억 원이 조금 넘는다. 도 예산의 2.5% 정도다. 경기도 소방 예산에서 국가 예산은 33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즉 대부분의 소방관이 지자체에서 월급을 받고 국가 사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 지난 10일 있었던 포항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엔 지역 편차 없는데"…지역별로 차이가 큰 소방 업무의 질

소방 공무원 조직의 이 같은 '이원화'는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찬열 의원이 낸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소방 업무에서 지방자치 사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1년 63.5%에서 2011년 27%로 20년 동안 절반 이상이 감소했다. 반면 국가 사무는 15.4%에서 41%로 20년 만에 두 배가 넘게 됐다. 실제로 큰 재난이 발생할 경우 소방관은 도지사나 시장의 지시가 아니라 사실상 중앙정부 기관인 소방방재청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관련된 구호 활동의 경우 당시 전국 3개 시도에서 인원 142명, 장비 39대가 투입됐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큰 재난의 경우 중앙정부가 사실상 전국 소방 공무원을 지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쟁이나 치안, 방재와 같은 사안은 일원화된 조직 체계가 필수다. 각종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 조직은 군대·경찰과 달리 이원화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업무 과정에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일선 소방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인기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지자체장의 소방 행정 철학이 소방방재청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일선 소방 공무원들이 애를 먹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소방관은 "OO도지사는 과거에 소방본부 때문에 덴 적이 있다. 그 후 소방본부를 굉장히 나쁘게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 숭례문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소방방재청과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여 눈살을 치푸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모두 소방 업무의 비효율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더해 소방 공무원들의 근무 환경이 악화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지자체별로 재정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소방 공무원의 처우를 비롯해 소방 업무의 질도 지역별로 편차가 커진다. 단적인 예로 서울이나 경기도처럼 재정 자립도가 비교적 높은 지자체에 비해 강원도나 전라도와 같은 지자체의 소방 장비는 노후화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 박남춘 의원이 분석한 지난해 9월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소방관 개인 안전 장비의 노후율은 16개 시도별로 양극화가 뚜렷했다. 방화복의 경우 노후율이 가장 높은 광주(49.2%)와 서울(2.9%)은 17배 차이를 보였다.

한 소방관은 "안전에는 지역 편차가 없는데, 재정에는 지역 편차가 있다"고 푸념했다. 장비의 노후화는 사고로 직결될 수 있다. 근무 환경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안전 차원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은 어떨까. 대부분 한국과 같은 광역 소방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국가 사무가 강화되는 추세이고 영국도 중앙 통제가 강력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미국독일은 지방정부의 예산 권한 등이 막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지방직'과 개념이 아예 다르다. 정기신 교수는 "미국의 경우 각 주정부가 소방 업무를 관장하는데, 주가 각각의 '국가' 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한국의 지자체 개념과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국가직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소방에 대한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고, 소방관들의 대우 수준도 높다. 2001년 9.11테러 당시 현장에서 활약한 소방관들의 모습과 미국의 소방 시스템 등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지난 2011년 '소방관 국가직 전환 법안'을 낸 유정현 의원이 제시한 해외 소방관 쳬계 사례.


국가직 전환, 불가능한 일인가?

모든 소방 공무원의 국가 공무원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소방 공무원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소방 공무원을 현 지방공무원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소방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도 시도지사에서 소방방재청장에게 넘기도록 해야 한다.

국가직 전환의 걸림돌로 꼽히는 두 번째 사항이 예산 문제다. 지난 2011년 박연수 당시 소방방재청장은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의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는 인건비 포함 고정 지출 예산이 총 2조5000억 원가량이고, 기타 장비 도입 및 시스템 구축에 약 1조5000억 원이 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굳이 4조 원의 예산을 추가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세출 배분은 4대 6이다. 지방세 비율이 전체 세수의 20%밖에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정부는 부족한 지방 예산을 교부세로 보전해 주고 있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소방 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할 때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던 소방 예산을 국가가 가져가게 되는 만큼, 국가가 보전해주는 지방 교부세 지원을 줄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 지원하는 교부세를 줄이는 방식으로, 지자체의 소방 관련 예산을 국가가 사실상 환수하면 문제가 풀린다는 말이다. 물론 이와 별도로 소방 공무원의 3교대 근무를 원활하게 하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 등은 추가로 확보해야 할 일이다.

궁극적으로, 경찰청과 같은 중앙정부 소속의 독립 '소방청(가칭)'을 신설해 모든 소방 관련 조직과 예산을 일원화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국가직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의지다. 다만 고려해야 할 상황도 있다. 지방정부의 반발 가능성이다.

정기신 교수는 국가직 전환의 걸림돌과 관련해 "추가로 드는 예산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실제 부딪힐 문제는 주로 기술적인 사항들"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만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줄어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제 살 깎기'를 하면서 소방 관련 예산을 국가에 돌리는 일을 흔쾌히 할 지자체장이 있을까. 또 소방 업무를 직접 관장한다는 것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지자체장에게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소방 공무원의 숙원인 국가직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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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 날아든 새의 뜻은

바티칸에 날아든 새의 뜻은

 
조현 2013. 03. 14
조회수 3380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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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출 직전 바티칸 굴뚝에 날아와 앉아있는 새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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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 직후 신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프란치스코 교황 AP/뉴시스

 

 

 

성령의 바람이 어디로 불 것인가.

 

세계 가톨릭을 이끌 제266대 교황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76) 추기경이 선출됐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시리아 출신이었던 그레고리오 3세(731년) 이후 1천282년만이다. 시리아도 옛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지중해 지역이었던만큼 이번 교황은 비유럽권 최초의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새 교황은 교황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프란치스코(1182 ~ 1226) 성인은 아틸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모든 소유물을 걸인들에게 나눠줘버리고 출가해 평생 청빈과 가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해 ‘제2의 그리스도’로 까지 칭송 받는 인물이다. 요즘으로 보자면 그는 재벌가의 후계자였는데, 그 모든 부를 버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이다. 예수회는 종교걔혁 바람이 불던 1534년 로욜라가 설립한 수도회다. 루터가 가톨릭을 박차고 나가 개혁을 주창했다면 로욜라는 가톨릭 내에서 개혁을 했던 인물이다.

 

 예수회는 국내에서도 빈민지역에 가서 사목을 한 대표적인 수도회다. 정일우 신부나 박문수 신부처럼 빈민사목의 대부들이 예수회 출신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가톨릭 대학이자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서강대가 바로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이다.

 

프란치스코성인과 로욜라성인은 둘 다 전쟁에 참전했던 전사였다. 그들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뒤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빈민과 사회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철도노동자 출신에 예수회 출신이고, 빈민사목에 그처럼 관심을 보여왔기에 50년 전 요한23세에 의해 시작돼 1978년 바오로 6세가 선종할 때까지 대변혁이 시도된 '제 2차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을 되살릴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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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으로 선출되기 며칠 전 아르헨티나에서 교황의 서민적인 모습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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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 내에 전시돼 있는 생전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 사진 조현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은 요한 바오로 2세와 전임 베네딕도 16세의 보수 회귀 정책에 의해 멈춰진 상태다.

 한 국내 예수회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야당 성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톨릭은 교황이 전 세계의 주교 임명권을 갖고 있는 일사분란한 조직이기 때문에 교황의 의중이 중요하다. 예수 이후 가장 큰 변혁을 가져온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한 요한 23세는 그런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세계 가톨릭을 이끌던 비오 12세(1876 ~ 1958, 재위1939~1958)가 갑자기 서거하자 교황청은 새로운 정식 교황을 맞아들이기 전에 77세의 노인인 요한23세를 임시로 내세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래서 요한 23세가 교황이 되었을 때 ‘임시 교황’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바로 그로 부터 나왔다.

 

 “모두들 내가 임시적인 혹은 과도기적인 교황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앞으로 해야 할 큰일을 앞두고 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거부하지도 않는다고 했던 성 마르티노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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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해 예수 이후 최대의 개혁을 시작한 요한23세

 

 

 1962년 81살의 교황 요한 23세은 이런 발언으로 가톨릭 교회의 변혁을 시작했다. 이렇게 1962년 10월11일 소집돼 1965년 12월8일 폐회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을 가톨릭 신자에서 전 인류로 확대했고, ‘교회의 사명은 선교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 증진과 공동선 실현’이라는 이상주의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임시교황’또는 ‘징검다리 교황’쯤으로 여겨졌던 교황 23세는 지금 역대 교황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가톨릭의 심장인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한 가운데는 260여명의 교황 가운데 그의 유해만이 유리관으로 안치돼 전세계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의 경배를 받고 있다.

 

 요한 23세가 서거한 뒤 그의 뒤를 이은 262대 교황 바오로 6세(1897~1978, 재위 1963~78)는 요한 23세의 서거로 자동 폐회된 공의회를 재개해 완결시킨다. 바오로 6세는 동방정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등 다른 기독교 종파 지도자들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협정을 맺어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가 등장해 대표적인 보수 신학자인 라칭거 추기경(후에 베네딕도 16세 교황)을 전통 교리의 수호자인 교리성장관으로 임명해 보수로 회귀시키면서 개혁의 시계를 멈췄다.

 

 과연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신앙인들은 자연의 현상에서조차 신의 징표를 찾고 싶어한다.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사임을 발표한 지난달 11일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지붕위에 번개가 내려치자 ‘사람들이 이를 신의 뜻으로 보았다’는 외신이 이를 말해준다. 교황청의 부패 스캔들과 잇따르는 고위성직자들의 성추행 스캔들 등에 대한 신의 분노의 표출이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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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베네딕도 전임교황 사임 발표날 바티만 첨탑에 내려친 벼락 사진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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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 내 프란치스코 동상을 지키고 있는 비둘기 한쌍 사진 조현

 

 

 그런데 13일 오후(현지시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신자들과 전 세계의 이목이 새 교황의 선출 여부(선출되면 하얀 연기, 선출 안되면 검은 연기를 내보냄)를 알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 쏠려 있을 때,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흰 새 한 마리가 무려 40분 간이나 굴뚝을 지킨 이후에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지자 이를 ‘성령의 강림’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는 외신이 또 전해진다.

 

 새가 날아간 지 불과 20분 뒤 드디어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성령께서 새 교황 선출의 희소식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이후 멈추버린 개혁 시계에 안타까워하던 이들도 그 하얀 새가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부는 신호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옛부터 새는 성령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동안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해 비둘기를 성령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긴다.

 

새 교황이 교황명으로 정한 프란치스코 성인도 새와 깊은 인연을 보인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나고 자란 곳에 세워진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 내 프란치스코상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둘기가 있다.

 

 성당쪽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선종한 뒤 지금까지 한 쌍 중 한쪽이 숨을 거두면 다른 비둘기가 찾아와 짝을 채우면서 끊임없이 한 쌍의 비둘기가 프란치스코 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성인과 비둘기의 우정은 1,000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민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구원의 약속을 예수께서 인류 전체로 확대했다면, 인간에게만 국한된 ‘하느님의 축복’을 대자연으로 넓힌 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이었다.

 

세상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끝없이 낮아져 인류의 약자들은 물론 동물과 자연물까지 형제로 여겼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계승된다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다시 보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견인할 새로운 세상을 기대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오,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제가 위로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위로할 수 있도록

 사랑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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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찰 피해자' 박근혜, 유혹 떨쳐낼까

 

수사권 이전 등 국정원 개혁 요구 고조... '군인' 출신 남재준은 다를까

13.03.14 21:42l최종 업데이트 13.03.14 21:42l

 

 

민주통합당 진선미 진성준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주영 회장, 참여연대 장유식 행정감시센터 소장이 1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개입 근절을 위해 입법청원한 국정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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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괴물 같은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을 박근혜 정부에서 바로 잡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기자회견이 끝날 즈음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행정감시센터 소장)가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14일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가 국회 정론관에서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입법청원했다고 밝히는 자리였다. 명칭을 국정원에서 해외정보원으로 바꾸고, 국내정보 수집 권한은 폐지하면서 수사권을 분리·이전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 등이 골자다.

특히 장 변호사는 국정원의 수사권에 주목했다. 그는 "국정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지면서, 당시 나치의 게슈타포(Gestapo)나 구소련의 KGB처럼 수사권을 가진 비밀경찰로 출범해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경쟁력이 있는 비밀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수사권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입법청원을 소개한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선기간 벌어진 국정원 직원의 온라인 여론 조작 등 불법 선거운동 사건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민주주의 핵심요체인 선거제도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스스로 '사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국정원 구조 개편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3월 18~19일 예정된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국내 파트' 폐지한다더니... 국정원 활용 유혹 벗어나지 못한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과 이명박 대통령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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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정원이 보여준 불법사찰·선거개입 논란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일부 언론이 "국정원 직원 K씨가 정부 전산망에 접속해 이명박 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 등 이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거래내역을 열람한 혐의를 잡고 국정원이 감찰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후보 측은 "국정원의 불법적 자료열람은 야당후보 죽이기로 불법을 일삼는 국정원 국내파트를 폐지해야 한다"(나경원 대변인)고 발끈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국정원을 국내 정치 정보 수집의 도구로 활용하고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정권을 운용하려는 유혹을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면서 국내 정치 개입 의혹 논란을 예고한 것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 2009년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가 체제 전복세력의 침투 대상이므로 (국정원이) 정치 정보를 수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국정원 역할을 국가안보에서 정권안보로 전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09년 희망제작소 사업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지난해 "국정원 직원이 찾아와 'VIP'(이명박 전 대통령)가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폭로해 연예인 사찰 파문이 일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여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은 절정에 달했다.

사찰을 하다가 들켜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지난 2010년 5월 표현의 자유 문제를 조사하러 한국을 방문한 유엔 보고관을 미행, 사찰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지난 2011년에는 우리나라 무기를 구입하겠다고 방문한 인도네시아 사절단의 호텔방에 잠입한 것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당하기까지 했다.

특히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국정원으로부터 사찰을 당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1년 6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세종시 문제로 파란을 겪은 후 2009년 4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사찰하기 위한 팀이 약 20명 인원으로 국정원 안에 꾸려졌고, 이모 팀장의 지휘 아래 4월부터 7월까지 박 전 대표를 집중 사찰했다"며 '박근혜 사찰팀' 의혹을 폭로한 것이다.

이 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사를 찾아가 박 전 대표의 신상문제·주변 인물을 조사하고 가까운 친인척을 접촉해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부산MBC 등 재산관계도 소상히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당시 이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지난 2월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해 19대 국회의원 선거 전후로 "(정치사찰의) 같은 피해자"라며 "(박 대통령은)지난 정권과 현 정권을 막론하고 정치 사찰과 허위사실 유포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근혜 측근 남재준도 해바라기형 국정원장 될 듯"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사진은 지난 2004년 12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당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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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초기 국정원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국내 정치 개입 논란과 함께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지만 국정원은 그 사실을 52시간이나 지난 뒤 나온 북한의 TV발표를 접하고서야 알았다. 앞서 2011년 5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에는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단독 방중 했다고 밝혀, 세계적인 오보 소동이 일었고,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를 제때 감지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박 대통령의 불행한 개인사 역시 국정원 구조 개편의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에 의해 시해됐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국정원의 정치 개입에 대한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최측근 정치인이나 민간인이 아닌 육군참모총장 출신 남재준 후보자를 국정원장으로 지명한 것을 두고 국내정치 상황 등에 휘둘리지 않고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오히려 남재준 후보자 역시 박 대통령의 특보를 지낸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을 대통령의 직할체제로 운영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남재준 후보자는 지난 2007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당시 국방안보 분야를 조언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캠프 국방안보 특보로 활동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현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남재준 후보자는 군에서 정보 등을 수집하는 작전통이었기 때문에 국정원의 고유업무를 담당할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그런 사람에게 국정원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김현 의원은 또 "원세훈 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민간인 사찰·국내 정치 개입 논란이 불가피했던 것"이라며 "남 후보자도 박 대통령의 특보를 지낸 측근이라는 점에서 오로지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맞춤형 원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불거진 국정원 직원 여론 조작 사건과 관련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일부 혐의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도 그의 국정원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국회 정보위원회는 3월 18∼19일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민주당은 남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 직원 여론 조작 사건'과 함께 국정원 개혁 문제를 집중해서 검증할 예정이다. 남재준 후보자의 입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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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노리고 벌인 박근혜의 '사기의 기술'

 


2012년 11월 21일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기, 대다수 국민의 관심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였습니다. 이날 밤 11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를 놓고 TV토론을 벌였습니다. 두 사람의 후보단일화 토론이 있기 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박근혜 대선 후보 교육정책 발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합니다.

이날 박근혜 후보는 교육정책을 발표함으로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 쏠리는 유권자의 관심을 돌리는 선거전략을 펼쳤고, 일정부분 그 효과는 유권자에게 먹혀들어갔습니다.

특히 박근혜 후보가 발표한 교육 정책 일부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사교육 근절' 방안의 하나로'온종일 무료 돌봄교실'을 운영 하겠다는 정책이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 박근혜 후보는 교육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오후 5시는 물론이고 밤 10시까지 무료 돌봄을 실시하겠다고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했다.

 


박근혜 후보는 초등학교에서 '온종일 학교'를 운영하여 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오후 5시까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맞벌이 가정 등 늦은 시간까지 돌봄을 원하는 경우를 위해 오후 10시까지 무료 돌봄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방과후 학교운영 및 교육복지지원법'을 제정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박근혜 후보의 이런 교육정책 발표가 있자 11월 21일 당일과 11월 22일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 버금가는 보도가 언론의 지면과 방송을 뒤덮었습니다.

 

 

▲ 밤 10시까지 무료 돌봄을 보도했던 11월21일,22일 신문들.

 


TV 방송과 신문들은 '밤 10시까지 초등학교 무료돌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고, 이를 본 맞벌이 가정이나 일하는 엄마들은 '역시 여성대통령'이라는 말을 쏟아 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밤 10시까지 초등학교 무료돌봄' 등의 교육 정책이 나오면서 방송과 언론은 후보단일화를 놓고 벌이는 두 야권 후보보다 정책 위주의 박근혜 후보가 더 낫다는 식의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11월22일 조선,중앙일보 기사.

 


박근혜 후보가 교육 공약을 발표한 다음 날 조선일보는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이 여성의 마음을 움직여 지지율이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가 단일화를 놓고 격돌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공약 행보를 하면서 올바른 선거 운동을 하는 식으로 그녀를 미화했습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만이 그녀의 교육 공약을 찬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상파 방송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 11월2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박근혜 후보의 교육 공약 발표 당일 MBC 뉴스데스크는 박 후보의 기자회견을 보도하면서 "사교육 근절"이라는 제목을 달면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야권 단일화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요행수라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2012년 11월 21일 대선을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야권 단일화에 맞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교육 공약을 내세움으로 단일화에 밀려 이슈를 선점하지 못했던 고지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 교육관련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정과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를 보면 저녁 10시까지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온종일 돌봄교실 운영에서 '무료'라는 말이 빠져 버렸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방과후 ~오후 5시 주간 초등돌봄교실은 무료로 운영하고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야간 돌봄교실 이용학생에게는 비용을 받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본인의 입으로 선거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발표한 선거 공약이 거짓으로 밝혀진 셈입니다. 또한, 박근혜 후보가 말한 오후 5시까지의 초등학생 방과후 돌봄프로그램은 진짜 '무료'가 아니었습니다.

 

 

▲ 초등돌봄교실 안내문

 


현재 진행되는 초등 돌봄교실의 수강료(프로그램비)와 간식비는 별도로 청구됩니다. 현재 프로그램 비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간식비만 월 15,000원을 내야 합니다.

'아이엠피터'가 사는 제주 농촌 학교는 그나마 지원금이 교육청에서 나오니 저렴하지만 육지나 도시 지역은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에 돌봄교실 비용은 더 올라갈 전망입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가정은 무료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사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선정기준 4인 가족 월 149만원 이내) 선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결국, 대다수의 보통 가정은 돈을 내고 초등돌봄교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과연 이것이 박근혜 후보가 말한 '무료'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 준비되지 못한 대통령이 남발한 거짓 공약'

박근혜 후보가 '무료'로 온종일 돌봄교실을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실천되지 않은 이유는 재원은 생각하지도 않고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교육청은 484억원이던 초등돌봄교실 운영비를 무려 161억원이나 삭감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학교마다 난리가 나서 월 5~6만원이던 학부모 부담비를 1만원가량 인상해서 부족분을 메꿀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도교육청이 운영비가 줄어드니 학교에서는 돌봄교실 프로그램 강사를 모집하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질문:2011학년도 초등 돌봄 교실 운영교로 지정이 되었으나 돌봄강사를 구하지 못해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봄강사를 구할 때까지 운영을 미루어도 될까요?
답변:돌봄강사를 구하지 못했더라도 돌봄교실 아동과 돌봄담당교사가 지정된 상황이므로 돌봄교실을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학교 저학년 교원들의 협조를 얻어서라도 돌봄강사를 구할 때까지 운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질문:우리 학교는 시 지역에 위치한 학교로 도교육청으로부터 인건비를 월 60만원 지원받았으나 60만원으로 돌봄강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돌봄강사 인건비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답변:수익자 부담금의 일부를 강사료 보전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수익자 부담 금액과 사용 내역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합니다.



돌봄강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교육부는 무조건 학교 선생님을 활용해서라도 돌봄교실을 하라고 하는데, 온종일 수업을 하고 잔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이 다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까요?

특히 인건비가 부족하다보니 돌봄강사 중에는 무자격자가 수두룩하고, 부족한 금액은 학부모에게 거둬 운영하라고 하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돌봄교실이 운영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박근혜 후보의 교육 정책을 담당했던 행복교육추진단 김재춘 교수는 당시에 1조 7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 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성 있는 예산은 마련하지도 못하고 청와대로 가버렸습니다.

예산이 충분히 필요한 교육 공약을 그저 야권 후보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남발했던 점을 보면, 과연 박근혜 후보가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생각하기는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밤 10시까지 무료 돌봄교실 운영은 공약집에는 빠져 있습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나갑니다. 과연 문서와 대국민 기자회견, 어느 말이 법적인 효력이 있을까요?

"내가 당신 부부가 맞벌이하는 동안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무료로 봐주겠다."
"정말입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역시 자애롭고 마치 우리 친정어머니와 같으시군요"
"아니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돈을 내라고 하십니까? 시간도 밤 10시도 아니고 겨우 5시라니, 그때는 우리 부부가 퇴근도 못할 때인데, 어떻게 아이들을 데리러 갑니까?"
"내가 말은 했지만, 문서에는 밤 10시까지 무료라는 조항이 없잖아, 문서에 없으면 거짓말 아니야"


 

대통령이 되겠다고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무료'라는 말을 거침없이 그리고 당당하게 하고, 다른 후보들보다 유리하게 여론의 혜택을 본 사람이 박근혜 후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통령이 되니 공약에 나왔던 '무료'는 진짜 무료도 아니었고, 밤 10시까지도 흐지부지되고 있습니다.



 

▲ 교육공약 기자회견에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언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어쩌면 대한민국 맞벌이 학부모들은 박근혜 후보의 이런 공약에 사기를 당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이런 별거 아닌 공약으로 사기꾼이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위에 친척도 없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들이 5시에 끝나면 그들을 데리러 회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예 학원에 보내 퇴근 시간까지 사교육에 아이들을 맡겨야 합니다.

획기적인 "사교육 근절" 방안이라고 방송에서 칭찬했던 박근혜 후보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묘한 선거상술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아니 아예 사기에 가까운 사기성 선거전략이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은 '사기의 기술'에 당하여 타짜 대통령을 뽑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은 2012년 12월 19일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억울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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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미 개시된 반미대결전의 승리를 위하여"

 

 

 

북, "이미 개시된 반미대결전의 승리를 위하여"
 
"오늘 절호의 기회 놓치면 통일강성국가 멀어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3/15 [07: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와 이어진 오늘의 결정적인 시기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라며 전면대결전을 이어가겠다고 암시해 주목된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5일 사설을 통해 "만일 우리가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반세기이상 통일강성국가의 휘황한 미래를 내다보며 허리띠를 조이면서 준비해온 민족의 숙원실현이 아득히 멀어지게 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로동신문은 "미국과 괴뢰패당의 광란적인 북침핵전쟁소동인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군사연습이 본격적인 단계에서 강행 되고 있으며, 미국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우리에 대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시도하고 있다."며 일촉즉발의 긴장 된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정전협정과 남북 불가침 합의가 백지화로 우리 혁명무력은 무자비한 정의의 총대로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수인 미제 침략자들과 총결산하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대업을 이룩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는 최대열점지역에 위치한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하신데 이어 월내도방어대를 찾으시어 일단 명령이 내리면 미친 광증에 걸린 적들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명줄을 완전히 끊어놓아 백두산혁명강군의 진 짜전쟁맛을 제대로 보여 주라고 가르치셨다"며 전대미대결전을 고조 시켰다.

신문은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판가리 싸움의 그날이 오면 침략자들을 씨도 없이 무자비하게 족쳐버리고 전승의 축포가 오르는 열병식 광장에 보무당당히 들어 설 불 같은 결의에 넘쳐 있다."며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용납 못할 추태의 후과로 이 땅에서 또 다시 바라지 않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에서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은 수치 스러운 파멸을 맞을 것이며 위대한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김정은 원수의 말을 게재했다.

또한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제국주의자들이 그 것을 강요하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의 전쟁으로 대답하는 영용한 혁명가들로, 세계는 선제타격을 떠드는 침략자들에게는 보다 앞선 선제타격으로 대응하고 핵공갈에는 그보다 더 위력한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맞서며 자주와 정의를 철벽으로 지켜가는 우리 인민의 영웅적 기상과 위력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이어 "미국과 그 추종세력과의 전면대결전은 통일되고 강성번영하는 우리 조국,우리 민족의 찬연한 새날을 안아오기 위한 최후결전"이라며 "우리는 조국통일대전의 최후 승리와 이어진 오늘의 결정적인 시기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반세기이상 통일 강성국가의 휘황한 미래를 내다보며 허리띠를 조이면서 준비해 온 민족의 숙원실현이 아득히 멀어지게 된다."고 하면서 반민 대결전에 나설 것을 고무했다.

아울러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일심단결과 그 어떤 대적도 씨도 없이 소멸해버릴 수 있는 무진막강한 군력을 가진 강국으로 일단 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방사포와 같이 우리 당과 인민이 결심하고 개시한 미국과의 전면대결전은 끝장을 볼 때까지 계속 될 것이며 우리는 조국통일의 역사적대업을 기어이 이룩하고야 말 것"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특히 "최후승리를 위한 전면대결전에 돌입한 오늘의 준엄한 정세는 전당, 전군, 전민 앞에 영예로운 전투적 과업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모든 것을 반미대결전의 최후승리를 위하여,이것이 현시기 우리 군대와 인민이 억세게 틀어쥐고나가야 할 전투적 기치"라고 피력했다.

로동신문 사설은 "우리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최대의 애국 유산이며 후손만대의 삶의 터전인 사랑하는 조국을 지키는 길에서 사나운 맹수가 되고 육탄, 자폭영웅이 되여야 한다.1950년대에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 놓았다면 오늘의 전면대결전을 통하여 미제를 이 지구상에서 영영 매장 해버릴 각오와 배짱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에서 생산과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야 한다. 오늘의 첨예한 정세는 언제 어느 지점에서 불과 불이 오갈지 예측할수 없다.우리는 전시생산을 중단없이 보장 할 수 있게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며 전시생산 보장을 차질 없이 해 나갈 것을 호소했다.

사설은 "우리의 전체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판가리결사전에 산악같이 떨쳐 나섰다."며 "천만군민의 심장마다에 필승의 신념이 만장약 되어있고 온 나라 강산이 멸적의 기상으로 세차게 끓고 있다."며 "모두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국통일대진군에 떨쳐나 선군조선의 영웅적기상을 만방에 힘 있게 과시하자."며 일심단결을외쳤다.

한편 조선의 강도 높은 행동에 대해 국방부는 특이 동향이 관찰 되지 않고 있다며 북의 행동이 포착되면 대응 할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다고 맞불을 놓고 있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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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냐, 쌀이냐…국민대토론회 열자"

[한미FTA 발효 1년 인터뷰 ①] 송기호 변호사 "한미FTA 대응 전략 필요"

이대희 기자,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14 오전 10:00:0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5일로 딱 1년이다. 노무현 정부가 시작해 불붙은 찬반 격론은 수년간 이어졌다. 결국 이명박 정부 말기에 이르러서야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 아래 발효됐다. 불씨는 발효 이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발효 직후 열린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 일부 항목이 핵심 이슈가 되기도 했다.

발효 1년을 맞아
관세청과 무역협회는 한미FTA 성과를 보여주는 자료를 발표키로 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일부 공개된 이 자료의 핵심은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있으나 한국의 대미 수출은 한미FTA 덕에 소폭 흑자를 유지했다는 것과 우려했던 농업 부문 적자 규모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아예 '농업 피해 우려는 기우였다'는 내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과연 그런가. <프레시안>은 송기호 변호사와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를 연달아 만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문제점이 많고, 한미FTA가 가져올 불행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송기호 변호사 인터뷰는 12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한미FTA 이후 전략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며 공개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했다. 나아가 한미FTA는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사회, 곧 미국식 사회로 뜯어고치는 '새 체제'의 상징이며, 이로 인해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특히 송 변호사는 한미FTA로 인해 쌀 시장의 개방은 필연적이며, 이는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라는 의견까지 내놨다.

송 변호사는 '한미FTA가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시했다. 그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반복되는 내용이 있음에도 가급적 줄이지 않고 전한다. 다음은 송 변호사 인터뷰 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FTA라는 미국식 새 제도를 선택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한미FTA라는 괴물이 거리를 배회한다"

프레시안 : 무역협회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어쨌거나 한미FTA 발효 1년간 대미 경제 성적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했고, 곡물과 육류 수입량은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송기호 : 1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앞으로 관세 철폐 항목이 점차 늘어난다. 정부의 이번 통계를 그대로 믿기도 힘들다. 통계 대상·시기를 교묘히 조정했다.

<동아일보>가 인용한 정부 통계의 기준 시기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이다. 그런데 2월의 잠정치를 포함하면 대미 수출이 오히려 줄어들었다(편집자: 관련 통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두 번째 인터뷰 이해영 교수 편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따라서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판단을 지금 성급하게 내리긴 힘들다.

더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 한미FTA의 본질은 단순한 관세협정이 아니라 제도 변화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한미FTA라는 제도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작동 원리를 되짚어보고, 특히나 지난 1년간 얻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다시금 한미FTA 대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한미FTA로 인해 변화되는 제도가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짚고, 그런 변화가 우리 사회에 끼칠 영향이 어떠한지를 공개적으로 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에 적극 제안한다.

프레시안 : 송 변호사는 한미FTA 발효 전 정부 주장을 비판하고, 한미FTA를 반대했다. 당시 한미FTA를 단순한 경제협정으로 보지 않고, 한국 사회를 완전히 바꾸는 새 시스템으로 해석했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이 '한미FTA 체제' 1년이 한국 사회를 예상한 만큼 바꿨다고 보나?

송기호 : 발효 전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관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제 그 괴물이 관에서 나왔고, 우리 사회가 달라졌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미FTA는 우리 피부에 닿지 않는 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박주선 의원실이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한미FTA 발효를 전후해 우리 법률 23개를 바꿨다. 우리의 공적 체계와 법적 장치를 미국식으로 바꿨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정부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도입 시기를 2015년으로 늦추지 않았나. 이 제도는 온실가스 과다 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마련된 제도였는데 한미FTA로 인해 적용하기가 어렵게 됐다. (☞관련 기사 : 한미FTA, 결국 공공 정책 발목 잡았다)

프레시안 : 구체적인 사례를 좀 더 제시해 달라.

송기호 : 예전에는 저작권 위반이 친고죄로 다뤄졌다. 위반 소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 처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미FTA 발효 후에는 피해자 주장이 없더라도 곧바로 검찰이 형사소추를 할 수 있게 됐다.

2년 후에는 발효 전에도 크게 논란이 된 의약품 허가 특허 연계 제도가 도입된다. 이 제도야말로 기존 우리 상식과 크게 다른, 상징적인 미국식 제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미국에 집중된) 세계적 제약 회사의 특허권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보장된다. 지극히 사적인 특허권 보호를 위해 우리 사회의 공공 부조로서 역할을 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무력화된다. 보편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특허 이익이 우리 사회에도 엄연한 기업의 권리로 일반화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있다. 우체국 보험 가입 한도액을 40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이 역시 (한미FTA 협정문 위반 우려로 인해) 좌절됐다.

이렇게 미국식 제도로 변화하는 것은, 긴 시간에 걸쳐 우리 사회 구성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공공 영역이 축소된다. 최근 복지가 우리 사회의 담론이 된 데서도 드러나듯, 우리는 그간 공공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경제 민주화, 복지국가 담론, 지역 상권 보호 등의 노력이 대표적이다. 한미FTA는 이런 노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프레시안 : 송 변호사의 말은 '한미FTA는 한국 사회를 장기간에 걸쳐,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미 한국 사회 작동 원리의 기반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닌가?

송기호 :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사회 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성균관대 교수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한·중·일의 '소농 사회'를 꼽았다. 19세기~20세기의 개화마저 소농 사회 체제에 비하면 그 의미가 작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동아시아는 영미권과 다른 사회적 특성을 갖고 있다.

소농 사회의 특성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공의 영역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사익을 양보하는 체제다. 한미FTA는 이런 동아시아적 체제, 곧 소농 사회를 미국식 사익 추구 국가로 바꾼다.

물론 1997년 (IMF) 외환 위기 사태라는 충격파가 오긴 했다. 그러나 IMF 사태는 충격파였다. 한미FTA는 충격을 법률로 제도화한다.

한미FTA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 확대를 내걸고 당선됐다. 한미FTA 협정문과 정부 정책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FTA는 (IMF 외환 위기로 경험한) 미국식 사익 추구 체제의 충격을 제도화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송기호

: 아직 박근혜 정부의 구체적인 비전을 알기 힘들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를 '선진화'와 '경제 민주화'로 잡는다면, 한미FTA와 충돌하는 부분에서는 정부의 국정 목표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정부의 국정 목표 상수에 한미FTA, 나아가 미국 정부가 자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미국의 수출을 종전의 2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제조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수출 시장으로 아시아 시장을 잡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정부는 서비스 산업, 특히 지적재산권 부분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는 제도만 바꾸면 부가 창출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미국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한국에 미국 기업의 이익 실현을 더욱 강하게 강요할 것이다. 미국의 요구와 한국 사회의 요구가 충돌할 때 박근혜 정부가 한국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 관련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긴 힘들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한미FTA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태껏 노무현·이명박 정부에는 한미FTA 발효 전략밖에 없었다. 발효 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한미FTA로 인해 미국이 바꿔야 할 법률은 얼마 없다. 반면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많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숙제는 한국에 있다.


프레시안 : 어떤 대응 전략이 필요한가?

송기호 : 어렵다. 앞으로 수년간 더 개방해야 할 항목이 한둘이 아니다. 기간 통신도 의제 법인에 개방해야 하고, 농업 관련 수많은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이제부터 본격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각 세부 항목별로 정부 전략이 뭔지를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학교 급식친환경농산물을 과연 제대로 도입할 수 있을지, 미국이 한미FTA 항목을 들이밀어 이를 지적한다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확대되는 개방 폭에 대해 정부는 단계적으로 어떤 전략을 수립할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6-7년간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FTA 발효를 밀어붙였다. 이제 와서 정확하지도 않은 통계를 제시하고 나 몰라라 할 때가 아니다.

ISD 재협상 가능하다… 왜?


프레시안 : 당장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재협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다. ISD,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 쇠고기 추가 개방 요구에 대응할 방안 등을 준비해야 하리라는 지적이 많다. 부문별로 알아보자. 어느새 '재협의'로 의미가 축소된 ISD 재협상 문제는 한미FTA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 중 하나다. 재협상, 가능할까?

송기호 : ISD 문제 해결은 미국에 달렸다. 미국에 한미FTA는 동아시아 역학 관계에 변화를 줄 지렛대다. 미국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중국을 고립시킨다는 이 전략의 핵심은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은 TPP 참가는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참가 조건으로 ISD는 제외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의 핵심 지지층이 우체국과 의사회, 농업 종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자민당은 이런 기본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ISD를 빼야 한다는 태도다. 역시 TPP 대상인 호주도 FTA 협상에서 ISD를 제외하는 게 국가 방침이다.

결국 미국은 TPP를 현실화하기 위해 ISD를 완전히 조약에서 빼거나, 적어도
독소 조항은 크게 후퇴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이 정리돼야 한미FTA에서 ISD 재협의도 가능하다. 만약 미국이 ISD를 약화시키기로 한다면, 한미FTA에서 재협상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정부는 ISD 조항 중 항소 제도를 강화하거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협상안을 재협상 대상으로 제시하는데, 이건 이미 기존 협상안에 다 있는 내용이다. 지금 정부의
목소리는 단순히 대내적으로 '우리도 미국에 뭔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우리 요구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요구도 받아들여야 한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문제를 미국이 협상 카드로 제시하리란 전망이 많다.

송기호 : (촛불 집회로 인해 만들어진) 2008년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자체가 굉장히 타협적이었다. 미국이 계속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쇠고기 수입 시장을 30개월령 이상으로 확대 개방하면, 이를 지렛대로 일본에도 교역 수준을 낮추라고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쇠고기 수출 시장 확대를 위해 압박을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
 

▲한미FTA 발효를 하루 앞둔 지난해 3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올레스퀘어 앞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환영 대회'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무현·오바마·이명박 대통령 모습의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미FTA는 노무현 정권이 시작해 이명박 정권이 타결했다. ⓒ뉴시스


개성공단은 정치적 산물…"노무현 정부의 잘못"

프레시안 : 개성공단 문제는 북핵 변수로 인해 사실상 정부가 손대기 어렵게 됐다. 입주 중소기업은 (한미FTA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변수라는 더 어려운 환경을 맞았다.

송기호 : 나는 2006년에 쓴 <한미FTA의 마지노선>에서 '개성공단을 한미FTA에 포함시키는 게 한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개성공단이 한미FTA의 협정 대상이 된 건, 순전히 정치적 고려였다고 생각한다.

1단계로 개성공단 생산품이 국산 지위를 받고, 2단계로 미국의 대북 전략이 수정돼 북미 수교로 이어지는 그림, 곧 정치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즉, 미국은 노무현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유인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의 명분을 '국내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개성공단이라는 정치적 상징물을 필요로 했다.

개성공단 문제는 한미FTA를 통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아니다. 지금도 미국 의회의 별도 승인을 받아야만 풀린다. 한미FTA와 상관없이, 개성공단 문제는 북미 간 수교가 이뤄진 후 양자 대화를 통해 풀면 끝이다. 개성공단 상품이 관세 혜택을 받느냐는 이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한미FTA와 개성공단을 연결하려는 전략 자체가 잘못됐다. 개성공단을 한미FTA 협상 대상에 포함시킴에 따라, 한미FTA가 북미 관계에도 완전히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프레시안 : 한미FTA는 결국 노무현 정부로부터 시작했다. '친노 세력' 중에는 여전히 한미FTA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많다.

송기호 : 나는 민주주의 정부를 지탱한 이른바 리버럴의 잘못된 엘리트주의가 낳은 결과물이 한미FTA 체제라고 본다. 한미FTA 체제의 도입 시동은 분명 노무현 정부가 걸었다. 노무현 정부가 없었다면 한미FTA가 지금과 같은 형태를 보이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그들이 솔직히 얘기했으면 좋겠다. 지난 총선 때 적잖은 야권 인사들이 '한미FTA 재협상'론을 들고나왔는데 그게 진심이었는지, 당선을 위한 수사에 불과했는지 궁금하다.

역사에는 과문하지만, 민주화의 성과를 가장 많은 대중에게 돌려줘야 할 민주화 세력이 오히려 정반대 결과를 낳을 한미FTA를 추진했다. 수많은 사람의 피로 얻은 민주주의 체제의 성과가 이제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으려는 때에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나는 어떤 사람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하는 최근의 냉소적인 분위기의 배경에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엘리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무지하다. 우리는 선각자다. 우리가 먼저 한미FTA를 추진하고 나서면, 언젠가는 우리의 생각에 대중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라는 생각이 한미FTA를 추진한 원동력이라고 본다.
 

▲한미FTA 발효를 앞둔 지난해 3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건물 앞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규탄 및 추가 보완 대책 조속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농축산연합회 회원들이 FTA 발효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FTA로 인해 농업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뉴시스


농업 포기냐, 한미FTA 체제 유지냐

프레시안 : 지난 1년간 농업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지만, 농업 부문의 피해가 가장 크리라는 건 명약관화하다. 정부는 한미FTA 피해 대책 예산의 대부분을 농업 부문에 쏟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 자료에서도 드러났듯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농업 부문 보호를 위해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는 뭔가?

(편집자: 박주선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감사원 산하 감사연구원은 '농업 부문 FTA 보완 대책의 추진 현황 및 위험 분석'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농업 부문 FTA 대책 예산의 대부분이 한미FTA 대책이며, 이를 뜯어보면 "살처분 보상금 등 FTA 피해와 직접적 관련성이 낮은 사업들이 FTA 대책에 포함"되는 등 실질적인 한미FTA 대책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 농업 대책 중 일부는 "농가 재무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이었고 이 때문에 "한미FTA 대책 중 상당수, 특히 핵심 신규 사업들은 대부분 (…)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감사연구원은 지적했다.)

송기호 : 농가 대책의 핵심은 쌀이다. 당장 2014년 이후에는 일정 물량의 쌀 수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나아가 쌀 수입 자유화로 치달을 것이다. 현재 우리 법은 정부 허가 없이 쌀을 수입하면 범죄로 취급하는데, 이게 없어진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대책이 없다. 쌀 수입이 자유화되면 우리 농가의 중심인 소농 사회가 무너진다. 박근혜 정부가 직면할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나는 답은 하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한다. 우리 사회 운영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농업이 무너지더라도 미국이라는 요인을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생산물의 무역을 자유화하는 건 반대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프레시안 : 쌀을 지킬지, 한미FTA를 지킬지 양자택일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건가?

송기호 : 그렇다. 지난 10여 년간 온갖 쌀 대책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농업의 부가가치는 성장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미FTA로 관세장벽마저 없앤다면, 우리 사회에서 쌀은 농산물로서 의미를 잃는다. 어떠한 대책도 안 듣는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 역시 생색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책을 위한 대책에만 119조 원이 투입됐다. 오직 농업의 급격한 해체를 막기 위한,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책에 불과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이처럼 정부의 대응책이 실효성이 떨어졌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다.

그래서 이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너지는 농업을 기반으로 나머지 사람의 삶이 윤택해졌다. 그러나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다. 한미FTA 체제로 인해 더 이상 결정을 늦출 여지란 없다. 쌀은 전 세계 생산량의 7~8%만 교역된다. 즉,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 우리는 그 체제를 벗어날 것인지, 한미FTA를 폐기할 것인지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한다.

 
 
 

 

/이대희 기자,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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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돈을 노린 박정희의 '화폐개혁' 무참히 실패

 



어제 인터넷 검색어와 SNS는 때아닌 '화폐개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박근혜 정부가 화폐개혁을 추진한다는 보도로 시작된 화폐개혁 논란은 기획재정부가 "재정부는 화폐개혁에 대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함으로 우선 일단락되었습니다.

화폐개혁을 전혀 검토한 적이 없다고 기획재정부는 말하지만, 사실 화폐개혁을 전혀 검토하지 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에서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손꼽힙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그가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사실 그를 경제 대통령으로 부르기에는 일부러 미화시켰던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그가 경제 정책에서 실패한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화폐개혁이라는 화두와 함께 박정희가 왜 '화폐개혁'에 실패했는지 알아봄으로 우리가 화폐개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북한군에게 뺏긴 조선은행권 지폐 원판'

190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 과정에서 발생한 화폐개혁을 빼고 한국에서의 화폐개혁은 총 3번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그 중의 한 번은 박정희의 화폐개혁이고 나머지 두 번은 한국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화폐개혁이었습니다.

 

 

▲1차 화폐개혁으로 구화폐는 무효가 됐다.

 


한국정부는 조선은행이 아닌 한국은행을 새로 발족함으로 구조선은행권을 폐기하고, 새로운 한국은행권을 발행하려고 했으나 한국전쟁이 발생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남한 지역 대부분이 북한군 수중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북한군은 당시의 조선은행권 천원권(A기호) 원판과 백원권 (48A 기호)수중에 넣게 됩니다. 천원권과 백원권 원판을 확보한 북한군은 천원권을 대량으로 찍어내서 전국에 유통합니다.

북한군의 통화공작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1950년 8월 28일 자로 '대통령 긴급명령 조선은행권 유통 및 교환에 관한 건'을 공포하고 일차로 영남지방 및 제주도 일대의 조선은행권을 우선 정리합니다. 그 후 10월 25일부터 11월 3일까지 10일간 전국적으로 구화폐를 교환해주고, 이후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2차 화폐개혁으로 바뀌어진 화폐 단위. 출처:1953년 동아일보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지만, 한국은 전쟁으로 통화남발이 발생하면서 인플레이션율이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한국전쟁 전에 통화량은 560억원이었는데 1952년 말에는 1조원이 넘었으니 얼마나 인플레이션이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고 100원을 1환으로 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그동안 사용됐던 일본정부 지폐와 주화, 조선은행권, 원표시 한국은행권 등의 유통을 금지합니다. 이처럼 2차 화폐개혁을 통해 11,367억원이 발행됐던 구권을 97%인 11,066억원을 회수하기도 했습니다.

1차 화폐개혁이 1:1의 화폐 교환이었다면 2차 화폐개혁은 화폐의 명칭변경과 함께 명목절하가 이루어진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이었습니다.

'폭발물로 위장해 들여온 새 화폐'

5.16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군사쿠데타로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정권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재정적자는 물론이고 인플레이션이 점점 위험 수위에 올라가자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6월 9일 저녁 밤 10시에 '긴급통화조치'를 실시합니다.

 

1) 화폐단위를 환화에서 원화로 바꾸고 10환=1원으로 1/10의 명목절하
2) 유통화폐의 은행등 금융기관의 환화표시 금전채무의 거래를 금지. 단 국가,지방자치단체,금융기관,주요 관리기업체 등은 원화표시 화폐로 지급
3)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구권과 6월10일 이전에 발행된 수표. 어음 또는 우편환 증서 등은 금융기관에 신고하고, 6월17일까지 신고하지 않은 청구권은 무효


쿠데타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발생한 화폐개혁은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재무장관 천병규를 비롯한 5명의 화폐개혁 준비반은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기밀 누설시 총살형도 감수한다"는 선서를 했을 정도입니다.

화폐개혁에 사용할 돈은 영국 드라뤼 회사에서 제조됐는데, 영국제 새 화폐는 화폐개혁이 있기 44일 전 부산항에 도착, 폭발물로 보안 처리된 상태에서 보관되기도 했습니다.


 

 

▲ 은행 앞에서 화폐를 교환하기 위해 밤새 줄 서 있는 시민들.

 


 

전혀 예상치 못한 박정희 군사정부의 화폐개혁은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생활비에 한해 6월17일까지 10대1의 비율에 따라서 가구당 한 사람에게 5백원 한도로 새은행권을 바꿔준다고 했지만, 9일밤 저녁 10시에 발표된 화폐개혁은 10일이 일요일이라는 점을 노려 통제를 됐지만, 사회적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특히 이날은 통금 시간까지 앞당겨져서 귀가하는 시민들이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택시 기사가 구권은 이제 소용없다면서 승차거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포목상과 쌀집은 늦은 밤에도 현금을 들고 와 치마 저고릿감을 사거나 쌀을 사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에 발표된 화폐개혁으로 귀가하는 시민들은 버스와 택시로부터 승차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화폐개혁이 단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돈이 없는 서민들은 술에 취해 '알게 뭐냐'고 외치기도 했으며, 지방에 있는 가족에게 화폐개혁을 알리고 빨리 신고하라는 전화를 하는 사람이 많아 전화 교환양은 '눈코 뜰 사이가 없다'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군사정부가 급작스럽게 시작한 화폐개혁은 대한민국의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일으키면서 그냥 밀고 나가면 할 수 있다는 군사문화의 전형적인 정책과정을 보여줬습니다.

' 지하 자금으로 군사정부를 살리려 했던 박정희의 화폐개혁'

박정희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후 누적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하루빨리 자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화폐개혁'을 통해 부정축재자와 화교의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군인들로 구성된 혁명위원회는 부정축재자들은 검은돈을 몰래 숨겨 놨을 것이고, 화교는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있어 현금을 다발로 집에다 모아 놨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막상 화폐개혁이 시행되자 이런 자금은 별로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긴급통화조치의 결과로 1962년 6월 17일까지 예입된 총액은 1,873억환인데, 이중에서 1,582억환은 환화이고 나머지 291억환은 수표 등의 지급수단이었습니다. 6월 9일 당시 우리나라의 화폐발행액은 1,653억환이었으므로 71억원만이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신고액을 보면, 100만환 이하 금액이 90.5%를 차지하였고 1억환을 초과하는 경우는 불과 7건 12억에 불과하였다.

즉 박정희는 화폐개혁만 하면 이런 지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박정희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을 현금으로 거액 보관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오히려 금과 같은 현물을 보유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박정희의 화폐개혁은 1961년 최고회의 재경위원이었던 유원식이 박정희에게 제안하여 시작됐는데,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심지어 한국은행 총재와 최고회의 재경분과위원장이었던 김동하조차 몰랐습니다.

 

▲10환을 1원으로 화폐개혁을 했던 1962년 6월10일자 경향신문. 한국은행 앞에 총을 든 군인 사진이 보인다.


미국은 박정희의 '무계획'적이고 비전문가적인 '화폐개혁'에 불같이 화를 냈고, 화폐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봉쇄한 예금계정을 빨리 풀지 않으면 아예 원조를 중단하겠다는 협박을 했습니다. 화폐개혁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은 경제 혼란과 함께 산업계의 자금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해 오히려 경제 침체만 더 가중됐습니다.

혁명정부 예산의 반을 미국 원조자금에 의존하고 있었던 박정희 군사정부는 미국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예금봉쇄를 해제함으로, 처음 계획했던 퇴장자금을 끌어내 군사정부의 재정적자를 막겠다는 박정희식 '화폐개혁'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화폐개혁을 주도했던 유원식,천병규 등은 1963년 증권파동 사건으로 구속된다. 출처:경향신문

 


박정희 '화폐개혁'이 실패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62년 군사정권을 영구히 하기 위해 증권파동으로 불법자금을 마련했던 군인들 머리에는 법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만 존재했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경제 지배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군사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경제정책에 따라 겨우 경제를 회복했고, 박정희는 미국의 도움으로 성공한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상한 현상이 한국사회에 미화된 것입니다.

'화폐개혁'을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은 없습니다. 경제가 변화되고 시대가 변화되면 '화폐개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과 철저한 계획으로 '화폐개혁'을 준비해야지, 그렇지 못할 경우는 아예 않으니만 못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박정희식 '한강의 기적'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경제 정책의 성공 배경은 미국이었고, 실패는 박정희 자신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 박정희가 왜 실패했고, 그가 미국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깨닫는다면 좋겠지만, 실패는 본받고, 미국의 경제 지배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녀 또한 군사문화처럼 독재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어설픈 지식과 실력으로 큰일을 벌이면 국민이 고통을 받는다는 아버지의 실패를 명심하고, 박근혜 정부 5년을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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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동안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제 그만 불렀으면"

[이 사람의 삶] 겨레 동요 작곡가 안병원

13.03.13 16:30l최종 업데이트 13.03.14 09:44l

 

 

겨레의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곡가 안병원(87)씨가 1947년 처음 작곡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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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동안이나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니…. 부끄러운 일이에요. 이제 그만 좀 불렸으면 좋겠어요."

94주년 3·1절을 며칠 앞둔 지난 2월 말, 굴곡의 한국현대사의 증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작곡가인 안병원씨가 털어놓은 말이다. 올해 87세인 안병원씨는 '민족의 노래'라고 일컬어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곡했지만, 노래의 유명세 만큼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음악인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곡한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면 열 중 아홉은 고개를 흔든다. "'안병원'이라는 분인데요, 동요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도 작곡한 분입니다"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외국 동요 '힌눈사이로 썰매를 타고…' 우리말 번역자이기도 한데요"라고 말하면, "어, 그래요?"라는 반응이 나온다.

안병원씨는 혼런스러웠던 해방공간에서 대학 2학년이었던 약관 22세에 겨레 동요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곡했다. 작사자는 바로 그의 아버지 안석주(1950년 2월 작고)였다. 노래는 남고 그 노래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작사자 안석주씨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인 1950년 2월에 작고했고, 작곡자 안병원씨는 1974년 어머니와 손아래 동생이 살고 있던 캐나다로 홀연히 이민을 떠났기 때문이다.

청량한 초원의 빛이 대지를 어루만지는 2월 말, 미국 플로리다 목초지에서 열린 기독교 건강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 노선영(77)씨와 함께 올랜도에 온 안병원씨를 만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 얽힌 삶의 역정을 들었다. 안씨는 긴 거리 보행에서나 사용하는 지팡이를 한 손에 들었지만, 90세를 앞둔 노인 답지 않게 목소리는 카랑카랑 했고 눈매와 혈색은 젊은이 못지 않게 밝고 맑았다.

다만 살아온 날 수 만큼이나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탓인지 종종 중요한 사건의 앞뒤 정황을 혼동하는 바람에 평생의 동반자인 부인 노선영(77)씨가 인터뷰를 도왔다. 또 일부 연대기 등은 안씨가 보내온 회고록 <음악으로 겨레를 울리다>에서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안씨의 회고록 <음악으로 겨레를 울리다>
ⓒ 삶과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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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당시 노래의 제목은 '독립의 노래'였죠? '우리의 소원은 독립' 작곡 당시의 정황은 어땠나요? 역사에 기록될 곡의 탄생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처음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어. 중앙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 담당 배준호가 어느날 나를 찾아온 거야. 그는 '해방 후 두 번째 맞이하는 3·1절에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없냐'고 물어왔어. 이리저리 의논하던 끝에 우리는 '독립의 날' 노래극을 만들어보자는데 합의를 보았지."

- 처음부터 작곡은 '내가 해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나요?
"아마도 친구는 처음부터 내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왔던 듯해. 음대생이니 작곡은 내가 할 터이고, 작사는 언론인인 아버지에게 부탁할 심산이었던 것 같았어. 당시 방송국 사정으로는 대본 원고료, 작사료, 작곡료 등을 지불할 형편이 못 되었고, 반주 악기도 피아노 밖에는 없었다고. 더구나 나는 그 당시 이미 어린이 합창단인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지."

-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반응은 어땠습니까.
"아버님은 엄격한 분이셨어. 특히 9남매의 장남인 내가 공부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늘상 쏘다니는 걸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셨거든. 찾아간 그날도 신문일로 바쁘신 아버님이 '이놈이 또 무슨 일을 벌이려나' 하는 귀찮은 눈빛을 보이셨어. 우리의 뜻을 상세히 말씀드렸더니 한참 생각하시더니 '써주겠다'고 하시는 거야. 기특하다고 여기셨던 게지."

결국 안병원과 배준호는 아버지 안석주로부터 25분짜리 노래극 원고를 받아냈다. 5곡이나 되던 노래 모두 안병원이 작곡을 맡았고, 출연진은 안병원이 만들어 지휘하던 '봉선화 동요회'가 담당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배준호가 막연하게 내놓은 '노래극'은 안병원 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북치고 장구치고 한 잔치가 된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곡 당시의 안병원씨. 약관 22세 서울대 음대생이었다.
ⓒ 안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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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를 받은 후 작곡 구상은 주로 어디에서 했습니까.

"당시 친구 권길상의 아버님이 목사님으로 있던 명륜중앙교회에서 밤낮으로 살다시피 했어. 풍금을 두들기다 말고 한숨을 짓고 교회 의자에 드러누워 그대로 쓰러져 밤을 새우기도 했지. 그렇게 수주 동안을 뒹굴며 고민하던 끝에 5곡의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어. 그 가운데 하나인 '독립의 노래'는 일주일 동안의 고통 속에서 탄생했다네. 당초 '독립의 노래'용으로 3곡을 작곡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겠더라고."

- 고민해서 세 곡을 만들었는데, 그중 한곡을 어떻게 낙점하게 되었나요.
"다시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그 가운데 유난히 마음이 간 하나를 짚으며 '이게 어떨지 모르겠다' 넌지시 내밀었더니 '야, 그거 참 좋다, 그거면 되겠다'고 하시더라고. 부전자전 이심전심이었던 거야."

안병원의 아버지 안석주는 일제말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학예부장 등으로 일한 언론인이자 화가다. 당시 그의 신문소설 삽화와 한컷 짜리 만평은 장안의 화제였으며, 웬만한 논설 집필자보다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으로 시작하는 '독립의 노래'가 안병원-안석주 부자에 의해 탄생했다. 이 노래는 삼일절 방송을 타기 전인 2월 28일 오후 2시 종로 YMCA 대강당에서 연 삼일절 기념 아동음악회에서 '봉선화 동요회'가 먼저 합창으로 불렀다.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오후 5시 30분 방송을 타고 전국 곳곳에 퍼진 후에 나타난 반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당시의 반응을 회고하실 수 있으신지. 겨레의 신데렐라가 된 그날의 광경을.
"(천장을 쳐다보며) 허헛참, 요샛말로 장난이 아니었지. 9남매 중 장남으로 늘 꾸중만 듣고 자란 터에 아버님으로부터 오랫만에 칭찬이란 것을 듣었다고. '야 너 참 잘했다' 그러는데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 그런데 말야, 전국의 지방 방송국들은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판 알지도 못하는 학교들로부터도 악보를 보내달라는 성화가 빗발치는 거야.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어."

- 1947년 2월이면 이미 해방이 된 지 1년 6개월여가 지난 때였는데요. 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라는 노랫말을 짓게 되었나요.
"당시 웬만큼 뜻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진정한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아버지 역시 우리 민족이 진정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봐. 당시 미군정이 계속되고 있었고, 정부 수립 문제로 좌우가 대립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때였잖아."

잠시 덧붙이면, 안병원 부자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을 만들고 있던 당시 한반도는 단독정부냐 통일정부냐를 놓고 정치세력들 간에 밀고 당기는 쟁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독립의 노래가' 전국 방송망을 타던 그날 제주도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에서 좌익계 인사들을 포함한 제주 주민들이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죽고 6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시발이 되어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제주 4·3사태가 발생하여 2만5천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었다. 우연 치고는 가슴이 아픈 일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뀐 사연
 

1954년 어린이음악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48개주를 순회하던 당시, 이들의 활동을 톱기사로 다룬 미국의 일간지
ⓒ 샌프란시스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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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게 된 계기가 궁금하군요.

"독립의 노래가 만들어졌던 다음해인 1948면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고부터 삼팔선이 막혀버렸지. 어느날 문교부로부터 '이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고쳐 부르는 게 좋겠다'는 제안이 왔어. 1950년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처음 실리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아예 단골로 교과서에 실리게 된 거야."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안병원은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에서 어린이 음악프로그램을 담당하기도 했고, YMCA어린이합창단 지휘, 경기여중고, 경복중, 용산중고 교사, 숙명여대 강사, 각종 음악인 단체장 등을 지내며 캐나다 이민 전까지 엄청나게 바쁜 세월을 보냈다.

전쟁이 막 끝난 1954년에는 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3개월 동안 미국 48개주를 순회했는데, 가는 곳마다 미국 언론과 미국인들로부터 열띤 환영과 갈채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순회공연은 많은 신문에 보도됐고 미 전역 97개 TV에서 방송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또 공연 도중 뉴욕 유라니아(URANIA) 레코드사가 어린이 합창단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경무대와 국회의사당을 방문하고 국무위원 초청 파티 등에 참석했다. 또 이들을 위한 귀국환영대회가 시청 앞에서 열렸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동요가 아닌 '가곡'으로 분류하자는 주장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내가 반대했어. 나는 처음부터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겨 부를 수 있는 동요를 작곡한 것이었어. 나는 어렸을 적부터 동요인생을 살고 싶었다고."

- '동요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계기는?
"동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생 시절이었지. 어느날 신문사 학예부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극장 티켓을 얻어 오셨는데, 빈 소년 합창단 순회공연 영화 티켓이었어. 당시 부민관(전 국회의사당)에서 상영된 그 영화가 준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해. 그날 어린 합창단원들이 내는 소리에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나도 후에 어린이 합창단을 조직하여 세계 일주 음악 공연을 하고야 말겠다'는 뜻을 세웠다네. 1954년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음악사절단을 이끌고 미국 48개주를 순회해 내 꿈을 어느정도는 달성했다고 봐."

안병원은 일찌감치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보여줬고, 오로지 동요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작곡한 동요는 '우리의 소원', '구슬비', '가을 바람', '학교 앞 문구점', '나 혼자서', '푸른 바람' 등을 포함해 300곡이 넘는다. 번안 동요까지 합치면 족히 500곡이 되고도 남는다. '흰눈 사이로', '소나무여, 소나무여' '노래는 즐겁고' 등으로 현재까지 즐겨불리는 외국 동요를 비롯한 수많은 번역동요은 안병원의 청년시절 작품이다.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중간중간에 '헤이!'를 넣어 부르게 한 것도 그였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현제명으로부터 사사할 정도로 음악에 푹 빠진 그는 1945년 해방이 된 두달 후인 10월 친구 권길상과 함께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었다. 이 동요회는 나중에 YMCA어린이합창단, 육군 및 해군 정훈어린이음악대, 중앙방송국 어린이 음악프로그램, 미국 순회 어린이음악사절단의 기틀이 된다.

그가 젊은 시절 음악인생을 살며 키워 냈거나 영향을 받으며 후에 음악인으로 또는 사회인으로 대성한 인물들을 대략만 꼽아보면, 한동일(피아니스트), 이규도(성악인), 이화영(이화여대 교수), 신갑순(잡지 <삶과꿈> 발행인), 장영신(애경유지 회장), 김경순(이수성 전 국무총리 부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김자경, 이흥렬, 오현명, 이인범, 황병기 등 이름만 대면 금방 알 만한 음악가들과 한두 번씩 인연을 맺으며 한창 시절을 보냈다.

눈에 밟히는 윤이상 선생의 뒷모습
 

안씨는 1993년 동경에서 열린 <한겨레 음악회>에서 40년 만에 윤이상 선생을 만났던 일을 회상하며 그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고 털어놨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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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이 만나신 분들 가운데 윤이상 선생도 눈에 띕니다. 윤이상 선생님에 대한 기억 한토막을 듣고 싶습니다.

"윤이상 선생을 생각하면 늘 어둡게만 보이던 얼굴과 쓸쓸하게 느껴지던 뒷모습이 떠올라. 1953년쯤인가 한국작곡가협회 일로 종로의 다방에서 자주 뵈었지만, 이미 이름있는 음악가 선배여서 가까이 하지 못했어. 그러다 무려 40년만인 1993년 4월 동경에서 열린 <한겨레 음악회>에 참가했다가 같은 호텔에서 1주일쯤 지내게 되었어. 윤 선생은 남한의 음악계에 대해 매우 궁금해 했고, 고향을 무척 가고 싶어 했어. '다리가 너무 쑤시고 아픈데, 한국에 가 침을 맞으면 금방 나을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리던 모습이 눈에 밟혀. 참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 과거 언젠가 '안병원은 반정부 좌빨이다'는 비난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좌빨입니까?
"하하 참, 말도 안 되지.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철공장도 다니고, 편의점도 하고, 빵집도 열어 자식들 키우면서 사느라 정신 없이 지냈고, 종종 한국 초청으로 음악회에서 지휘 몇 번 한 것이 내 삶의 전부였어.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나 북에서 초청장이 왔을 때도 '이산가족들도 가지 못하는 데 내가 무슨 낯으로 북한을 가나' 하고 사양했다고. 2001년에 북한에 갔을 때 북측에서 자기들 체제 찬양 발언을 슬며시 요청해 왔을 때도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서 못하겠다'고 했지."

- 지난 수년 간 종종 유화전을 열어 '북한어린이 돕기' 등을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동기가 있나요?
"난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돕겠다는 것이었지. 2003년인가 서울 프레스센터 서울 갤러리에서 '안병원 북한아동돕기자선유화전'을 열었는데 모두 팔려 나가더라고. 바로 옆에서 국내 유명화가들이 현대미술전을 열었는데 거의 팔리지 않았어. 이걸 본 한 화가가 내 유화전을 보고 '뭔가 생각할 점이 많다'는 얘길 했다고 해. 그날도 내 유화전이 '빨갱이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기가 막히더라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65년 동안이나 부르다니"
 

안병원씨 부부는 1990년 '남북 송년음악회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7차례나 불려진 것을 일생 최고의 감격적인 일로 회상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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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 음악인으로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1990년 12월 서울에서 250여명의 남북음악인들이 함께 모여 남북송년음악회를 열었는데, 그때의 감격을 평생 잊을 수 없어. 난 그때 청중석에 앉아 있었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이 자리에 우리 민족에게 귀중한 분이 왔다"며 나를 부르는 거야. 그래서 갑자기 단 위에 올라가 남북 음악인들을 세워 놓고 지휘를 했지. 청중석에서 재청이 거듭되고, 그래서 아예 뒤를 돌아서 청중들을 지휘했는데, 또 부르자고 난리를 치는 거야. 모두 일곱 차례나 불렀는데, 눈물바다를 이루었어. 행사가 끝나고 여기 저기서 몰려오더니 악수를 하고 부둥켜 안고. 아이고 그때 분위기로는 통일이 멀지 않은 것만 같았어. 누가 연출하라고 해도 그런 거 다시 못할 거야."

"(노선영씨가 다시 나서며) 북한 사람들이 이양반 손을 잡고 막 우는 거야. 그런데 이상도 하지. 나중에 들으니 데모를 하는데 '우리의 소원'을 부른다고 금지곡이 될 뻔 했다고 했다네요."

- 현재의 답답한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을 듯한데.
"이제 그만좀 했으면 좋겠어요. 남이나 북이나 너무 미워하고 너무 많이들 죽고 죽이고 그랬어요. 북한은 남쪽 적대시만 하지 말고 자존심 버리고 사정 털어놓고 도와달라는 얘기 왜 못하나. 남쪽도 그래 자신감이 생겼으니 좀 양보했으면 좋겠어. 서로 요구만 하지 말고 조금씩 양보하면 되지 않겠어? 양쪽 모두 잘 못하고 있는 거 같아."

- '우리의 소원' 말고 '안병원' 개인의 소원은 뭡니까.
"(이때 부인 노선영씨가 기다렸다는 듯 먼저 말을 꺼냈다) 참, 말도 안되고 부끄러운 일이에요. '우리의 소원'이 65년이나 불려지다니. 세상에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또 어디 있나요?"
"(안병원씨가 끼어들며) 기막힌 일입니다. 제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흘러간 옛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의 마지막 소원은 통일이 되는 날 판문점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원' 합창을 지휘하는 것이야."

덧붙이는 글 |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에도 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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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북이 밝힌 군사 무력

 

<사진> 북이 밝힌 군사 무력
 
미사일.조선인민군. 로농적위대 등 담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3/14 [07:11] 최종편집: ⓒ 자주민보
 
 
최근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와 외무성, 인민무력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의 강경 입장을을 담은 담화와 성명이 이어 지고 있는가운데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조평통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무력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키리졸브. 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조선의 인공지구위성, 제3차 지하핵시험에 대한 대북제재로 촉발 된 한반도 전쟁위기가 가시고 평화협정이 체결돼 민족공동의 번영의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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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공동선언 이행, 북.미는 평화협상 시작”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3/14 10:29
  • 수정일
    2013/03/14 10: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반전평화 공동행동 7일차
 
 
2013년 03월 14일 (목) 02:10:25 강인옥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 광화문 정부청사 정문 앞에서 반전평화 공동행동 칠일째 농성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12일 저녁에 잠시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난 7일 전쟁연습 중단촉구 기자회견 중 현기증으로 주저앉으신 한재룡 선생은 그 후 농성에 결합하지 못하고 계신다. 이천재 선생 역시 무리해서 농성에 참가하더니 다시 병석에 누었다.

통일원로 선생님들의 건강이 걱정이다.

   
▲ 속도 모르는 취재 기자들은 농성장을 마련하자마자 몰려들어 '구호를 외쳐달라' '한 번 더 해달라' 요구하는데 참 야속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속도 모르는 취재 기자들은 농성장을 마련하자마자 몰려들어 '구호를 외쳐달라' '한 번 더 해달라' 요구하는데 참 야속하다. 그래도 키리졸브 연습 중단의 목소리가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야 한다고 원로선생들은 피켓을 높이 들고 목청껏 구호를 외친다.

반전평화 공동행동은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키리졸브 연습 중단과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반대해왔다. 그러나 강도 높은 선박검색과 금융제재를 내용으로 대북제재가 채택되었고 키리졸브는 계속되고 있다.

   
▲ 왼쪽부터 문승진 최진미 강경란 이상훈 김영승 발언자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농성을 운영하는 범민련 남측본부 김성일 사무차장은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북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북과 대화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항복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키리졸브 훈련과 관련해서는 언론 보도도 거의 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미 항공모함이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는데 군사훈련을 크게 진행하지 않으면서 북에 대한 자극을 중단하겠다는 건지, 또 다른 위기 국면을 만들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은 대화하자고 하지만 상대의 변화만을 강요하거나 위기국면을 만들었던 원인들을 해소하지 않고 대화하자는 것은 기만이고 사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려면 미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폐기시키고 키리졸브 훈련을 중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키리졸브 중단 촉구 1인 시위를 할 때면 일명 '보수 할아버지'가 나타나 "늬들이 전쟁을 알어?"라며 전쟁불사를 외치곤 한다. 그러나 또 역시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마이크를 잡은 김영승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의 연설은 그들과 너무도 다르다. 한 마디로 '국민생명을 담보로 하는 키리졸브 당장 집어치워라'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전후방이 따로 없다. 왜냐면 핵전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을 위해 우리가 죽어야 하는가. 나만 살고 너는 죽어야한다는 생각이 전쟁을 불러온다. 상인들은 북의 도발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한다. 국민들이 이렇게 전쟁정세를 모르고 있는데 전쟁연습 반대를 외치는 우리가 너무 적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도 외쳐야 한다. 촛불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나는 진보진영의 단결이 있어야 가능하다."

코리아연대 이상훈 공동대표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서로 사전의 협상도 없이 총성 한 번으로 우리 땅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최대위기를 굴욕과 예속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한반도의 운명이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투쟁"하자고 했다.

   
▲ '농성 7일째'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최근 건강 문제로 병원 신세를 진 전국여성연대 최진미 집행위원장이 아직은 혈색이 좋지 않은 얼굴로 농성에 함께했다. 그는 곧 군입대해야 하는 부모로서 간이 콩알만 해지곤 한다는 심정을 밝혔다. "전쟁을 부추키는 보수세력은 평화를 얘기하면 종북이라면서 늬들이 6.25를 아냐고 공격한다. 그걸 잘 안다는 분들이 어떻게 또 전쟁을 하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전쟁으로 인간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경험하신 분들이 또 전쟁을 하자는 건 어떻게 된 사람인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1천 회가 넘도록 수요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분들의 상처도 원한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만큼은 다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길 바란다."

두 아이를 둔 통합진보당 구로을 문승진 위원장은 "따뜻한 봄 햇살이 쏟아져도 전쟁이 나면 모두가 참혹하게 죽어야한다는 게 두렵다.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조차 지켜주지 못할 것이 두렵다. 구로광장에서 매일 선전전을 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전쟁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 사는 것 자체가 전쟁 같아서, 철탑에 올라 농성을 하고,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새벽밥 지어먹고 자정에야 퇴근하는 노동자들 삶 자체가 전쟁 같아서 전쟁을 느낄 틈이 없나 생각됐다"고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또, "전쟁주의자들은 연평도 같은 국지전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도시가스 배관 문에 서울과 수도권은 포탄 하나로 전멸될 수 있다."며 구로에서 아침저녁으로 진행하는 선전전에 더 열을 올려 전쟁연습 중단 촉구의 마음을 많은 대중들 가슴에 스미도록 하겠다고 결의했다.

통합진보당 강경란 여성부장도 "전쟁위기 때문에 고령에도 거리에서 농성을 하시는 선생님들께 부끄럽다"고 인사하고 "오랫동안 분단이 지속되고 전쟁위기가 닥쳐오면서 누구보다 통일열망이 높은 선생님들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라며 정전60년을 평화협정 체결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겠다고 했다.

청소년들 사이에 휴교령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린이들도 심각하게 전쟁위기를 받아들이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보수언론들은 전쟁을 부추키고 국민복지를 약속했던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미국 뒤에 숨어있다. '육사 정부'라고 별칭까지 불려지는 박근혜 정부는 유신세력들로 청와대를 장악하면서 나라를 안보정부로 만들려한다.

   
▲ 변함없이 농성장을 지키는 통일원로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7일차 농성 참가자들은 미국이 지금의 대결국면에서 발을 살짝 빼려는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남북 긴장을 부추키는 장본인은 미국'이라며 '시작도 미국이었으니 결자해지도 미국이 해야 한다'면서 하루속히 북과 평화협상에 임해야한다고 했다.

농성을 마무리하고 지금의 위기상태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박순경 6.15학술본부 명예대표와 전화통화를 했다. 남북은 6.15공동선언으로 북미는 평화협상으로 나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다음은 박 명예대표와의 전화통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 '시민과 함께'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박순경 6.15남측위원회 학술본부 명예대표 '남북은 공동선언 이행, 북.미는 평화협상'>

상황의 문제부터 이야기하면, 한미연합 키리졸브라는 전쟁훈련으로 북핵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이 틀렸다. 전쟁훈련으로서 대응할 것이 아니다.

이런 대응방법은 북.미대립, 남북대립을 끝없이 지속시키는 것 밖에 아무 효과를 얻지 못한다. 이렇게 한미연합으로 대북 전쟁훈련을 하면 북에서도 비상사태가 벌어지거든. 군대나 무기를 배치하고 이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실전의 계기가 터질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한미가 전쟁연습으로 대응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는 것이다.

북이 핵을 개발하고 세계에 공표하고 있는 것은 대미 평화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평화협상의 요구인거지 미국에 대해서 핵전쟁도 가능하다는, 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미국이 이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국이 북의 의도대로 되게끔 놔두질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북의 핵개발, 핵보유에 대한 한.미.일의 대응이 잘못됐다. 북의 핵은 자체의 안보체제를 위한 보호체계이다.

지금까지 북은 미국과의 협상을 추진해왔지만 조금도 성공한 게 없다. 미국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버렸다. 그럼에도 협상을 요청하고 있는 거다. 미국을 돌파하지 않으면 북이 세계와 교류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남한이 미국과 북쪽을 중재해야지, 이걸 꼭 미국을 업고서 어떻게 해서든 북과 대결을 해보자는, 그 대결에서 승리하자는 구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북의 핵개발은 대미관계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러니까 남측은 이걸 풀어야 하고 중요한 것은 대결구도가 아니라 통일로 풀어야한다는 것이다. 통일의 궤도는 핵문제와는 상관없이 열어 나가야하고 핵문제는 북.미관계에서 해결 되어야한다. 미국의 대북 안보위협 가능성이 제거되기 전에는 핵문제 해결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완화시키고 해결할 구도는 통일이다. 북핵과 상관없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실천의 길을 추진하는 길 밖에 없다. 정부든 통일운동 단체든 마찬가지다. 즉, 통일로 나아가면서 북.미관계를 화해와 평화적인 관계로 이끌어 갈 수가, 그 길을 열어나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

북이 핵실험을 했다 해도 남쪽이 떠안고 대북 대결구도로 대응하면 우리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생전가도 안 된다. 남쪽이 대북 대결로 나가면 미국이 옳거니 하면서 이 계기를 계속 이용만 하게 된다. 남북관계도 북.미관계도 해결이 안 된다. 우리가 반민족행위를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북은 남과의 통일을,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한다는 통일의 길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우리 민족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통일을 해야 동북아에서 평화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동북아, 세계를 불러올 수 있는 초석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민족은 남북공동선언 이행으로, 북과 미국은 평화협상으로 풀어가야지, 북핵은 절대로 안 된다거나 일방적으로 폐기하라고 해선 안 된다. 대북 전쟁연습과 북핵 폐기는 양립할 수 없다.

북.미관계에서 핵폐기는 요원한 문제인데 오히려 남측이 이것을 떠안으려 한다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과 옥신각신만 하지 돌파구가 될 수 없다. 게다가 남측이 미국을 돌파하지 못 하는데는 새누리당 정권, 군부, 그리고 반북세력들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북핵 포기를 주장하면 한도 끝도 없고 통일도 없다. 그리고 대북 전쟁연습 중단이 아니라 폐기를 외쳐야한다. 북핵포기라는 것은 양립도 안 될뿐더러 일각에서 ‘북도 자제’하라고 하는데 지금은 자제할 단계가 아니다. 북의 요구를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북.미 간의 평화협상이 성립되도록 남쪽이 궤도를 바꿔야 한다. 미국과는 평화협상, 그것이 관건이다. 북핵문제는 평화협상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북의 안전 체제 보장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키리졸브 관련한 뉴스를 보다보면 답답하다.

사태를 왜 이렇게 만드나, 이것은 국력소모다. 우리 국민들 생활도 곤궁한데 왜 이렇게 우리를 소모시키고 연평도 주민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나. 평화롭게 대응할 수 있음에도 왜 우리를 더 궁핍으로 몰고 괴롭히기만 하나. ‘전쟁훈련이 어느 선을 넘지 않으리라’ ‘전쟁으로 비화되는 상황은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왜 미국에 하나. ‘북이 도발하면 전쟁도 불사다’라고 하면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해놓고 왜 우리 국민을 미국에 의지하게 만드나. 이게 어떻게 민족의 자존심인가. 정말 안타깝다.

다시 강조하건대 북.미관계에서 해결 되어야 한다.

북은 체제안정 보장 그리고 미국과의 평화관계로 세계로 진출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진로를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미국은 왜 자꾸 틀어막나. 미국은 북의 요구를 뻔히 알면서 제재하고 압박하고 차단하는 건 미국의 악의다, 악의.

북이 이 위기 상황을 잘 넘겨줬으면 한다. 남북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실천으로 이 위기상황을 잘 넘어간다면 북.미협상도 일어나게 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에게도 유리한 것 아닌가. 도대체 박근혜 정부는 신뢰프로세스는 언제 써먹을 건지. 단번에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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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역사학자가 말하는 박근혜시대 단상

원로 역사학자가 말하는 박근혜시대 단상

 
휴심정 2013. 03. 12
조회수 374추천수 0
 

[복음과상황 267호 커버스토리] 박근혜 시대와 개신교의 역할/[267호] 2013년 01월 24일
이만열 mahnyol@hanmail.net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18대 대선 다음날 새벽 2시. 엎드려 그분의 뜻을 물었습니다. 매일 읽는 순서를 따라 누가복음 24장을 읽었습니다. 스승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이 그들을 격려하며 부활의 새 소망을 들려주십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5)라는 구절이 와 닿았습니다. 성경 읽기에 이어 찬송을 불렀습니다. 먼저 찬송가 460장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뜻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 함이 주님의 뜻이라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발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뒤 이어 찬송가 373장을 불렀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주소서
(2, 4절)
 
시련을 당할 때마다 말씀은 탈진한 육신에 회복제가 되었고, 찬송은 새로운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말씀과 찬송을 통해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이 주는 영적 소성(蘇醒, 다시 살아남)에 힘겹게 이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난 대선이 저 사악한 정권과 그 정권을 뒷받침하는 정당을 심판하는 재판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반이 넘는 유권자들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이른 바 ‘정책 대결’ 대신 네거티브와 감성에 호소하는 세력에 표를 던졌습니다. 하여, 나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승리일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하여 마침내 “정의가 사는” 꿈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깊고 어두운 새벽녘, 우리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시 110:3)에게는 “새벽을 깨우는”(시 57:8) 사명이 여전히 주어져 있습니다.
 
지난 MB 정권을 두고 반민주, 반민족, 반인권, 반생태, 반통일 정권이라 거듭 비판해 온 건 나름 근거를 둔 것이었습니다. MB 정권은 총체적으로 거짓된 정권이자, 역사를 공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볼 때 아주 사악한 정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번 대선이 사악한 정권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그 뒷받침인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박근혜 당선자는 1970년대 유신 독재하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퍼스트레이디로서 발을 담갔으니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가 있고서야 우리 민족사에 그가 대통령 후보든 대통령이든 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최근 외신에도 보도된 바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제정 선포하기 전 북한 김일성 정권에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북에서도 소위 사회주의 헌법을 만들었는데, 바로 김일성을 초국가적, 초당적인 존재로 만드는 법안이었습니다. 결국 40여 년 전인 1972년 12월 27일, 같은 날 남에서는 유신헌법을, 북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남북의 독재체제 강화였습니다. 대선 전에 이미 그런 지적을 한 바 있지만, 외신에서도 이번 대선 이후 40년 전과 비슷한 구도가 나올 수 있겠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미 3대째 세습이 이어지고 있고, 남한에서도 유신체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통해서 당선한 박근혜 당선자의 경우를 어찌 북한의 3대 세습에 견줄 수 있느냐고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라면 박정희 대통령도 거쳤으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에 손댄 북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선 결과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때, 신앙적으로 보자면, 하나님께서 MB 정권의 악이 아직 턱밑까지 차지 않았으니 이를 마저 채워서 심판하시겠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악한 정권의 악이 더 확대되거나 연장되지 않도록 추궁하고 때에 따라 분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MB를 뛰어넘겠다고 몇 번 말한 적 있는데, 그런 공언(公言)에 대해 책임질 수 있게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압박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혼자 추스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성적 네거티브 선동의 승리
 
그러나, 민주당의 준비 부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만 되면 정권 교체가 가능하리라 전망한 것은 참 안이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대해 “정의가 승리한다” “국민의 수준을 믿는다”는 식의 막연한 발언 외에는 별다른 전략적 대응이 없었습니다. 이번 대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MB 정권에 대한 심판과 정권 교체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이 무엇인지, 젊은 세대에게든 5, 60대에게든 제대로 계몽하고 조직화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새누리당은 정책을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박근혜 후보가 TV토론회에 나와서 자신의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정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다 보니, 상대방 의혹 부풀리기와 선동질에 기우는 건 필연일 겁니다. 감성적 선거 전략 말입니다.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지요. 정책 대결을 하자는 이성적 접근은 무시되고 감성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없는 사실도 반복적으로 얘기하면 사람들은 그 얘기를 진실인양 착각하게 됩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이 점을 공격적으로 활용하여, 날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의혹 부풀리기를 펼쳤습니다. 그런 식으로 새누리당의 감성적 접근과 선동은 유권자들의 건전한 이성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대선에 대해 주로 ‘50대의 역습’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의 이런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방송 황금 시간대에 <KBS>는, 박근혜 후보의 경우는 정확하고 또박또박한 말을 편집하여 전달한 반면, 문재인 후보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야당 쪽에서 정책 대결을 펼치려 했다면, 좀더 논리적이고 호소력이 있으며 그래서 시청자에게 설득력이 있는 박영선 의원 같은 인물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박 후보의 또박또박한 유세를 박 의원이 상쇄시킬 수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정수장학회 문제나 그 밖에 항간에 떠도는 문제들을 네거티브로 물고 늘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책 대결 위주로 젠틀하게 선거전을 치르고도 이겼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순진하게도’ 네거티브 전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여전히 우리 시민의식이 그런 감성적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분별할 정도로 성숙하진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NLL 논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새누리당은 이를 국경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철통같이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들도 NLL(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이 국제법적으로도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국제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경선을 북한이 침범하게 놔두는 게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냐는 식으로 감성적 선동으로 나가고 보니, 공산주의를 경험한 세대는 판단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무조건 민주당이 잘못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NLL 대화록’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적으로 함부로 공개, 열람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을 새누리당이 모르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이걸 계속 물고 늘어졌습니다. <경향신문> 칼럼에도 썼지만, 차제에 대화록을 공개해서 진실을 밝힘으로써 허위 비방과 선동을 한 당사자를 처벌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좌빨’ ‘종북’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함의하는지 분명치 않기에, 평화와 통일, 인권을 말하는 이들에게 불온딱지 붙이듯 갖다 붙여서 무차별 공격을 해댑니다. 안보 무능으로 드러난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쪽이 안보와 국방 문제를 들고 나와 큰소리치면서 국민의 이성을 흐리게 한 것입니다.
 
MB 정권과 개신교
 
이명박 정부 때 한국의 개신교는 정권과 밀착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MB가 대통령이 되는 데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설교를 통한 음성적 지원은 있었던 걸로 압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독교가 예언자적 사명을 완전히 망각했다는 것입니다. 권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언자적 위치에 서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함에도 주류 교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감싸고 돌거나 눈감았습니다. 어떤 목사는 정부가 시민단체에 주는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 거래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기독교는 예언자적 사명을 상실하고 ‘개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 모두 기독교인으로서 실패한 정치인들입니다. 이승만, 김영삼의 경우 그들의 실패를 기독교와 직접적으로 연결짓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MB 정권은 워낙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기독교와 정교(政敎) 유착 행태를 드러냈기에 선교의 문까지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유례없는 일입니다. 물론, 기독교가 정치권과 밀착해서 좋은 결과를 낸다 한들 그게 교회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존폐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한국의 기독교는 기로에 섰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땅히 통절한 반성과 재를 무릅쓰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새 정부에 대한 고언
 
박근혜한겨레자료사진.jpg
 
이제 새로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에서든, 대내 관계에서든 최소한 MB가 취한 정책을 바로잡고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남북 관계에서는 MB가 차단한 것을 풀어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정상회담이라도 해야 합니다. 물론, 극우 세력이 야단을 치겠지요. 그래도 실타래처럼 꼬여 버린 남북 관계를 풀어내려면,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남북 관계를 복원한 토대 위에서 중단된 6자 회담을 다시 여는 단계로 나아가는 획기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 관계에서는 대통령의 일관되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내 관계에서 MB는 ‘불통 정권’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말을 해도 아예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어머니처럼 국민을 품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런 소신을 행동으로 내보여야 합니다. 그 일은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MB 정권에서 강도 만난 사마리아인들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품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울러, 전문가 그룹에 귀를 열어놓고 경청해야 합니다. MB 정권은 5년 내내 역사교과서 문제로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국사학계와 정권의 갈등이었는데, 역사교과서 문제를 전문 사학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정치적으로 접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 그룹에 귀를 기울이고 맡길 일은 맡기면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역사학자로서 개인적으로는 새 정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박 당선인이 정말 좋은 대통령이 되려면 자기 견해가 있더라도 학계가 논의해서 역사 문제를 풀어가도록 맡겨야 합니다. 학자들에게 정부가 의도하는 것 외의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면 MB 정부 이상의 갈등이 빚어질 것입니다. 정말 좋은 대통령이 되려면, 역사학계의 합의에 맡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행보를 봐서는 사실상 크게 기대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한 정당의 대표나 대통령 후보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니 모든 언행이 더 폭넓게 공개될 것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를 잡았으니 멋진 지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 당나라 2대 황제였던 태종 이세민의 연호가 곧을 정, 볼 관을 쓴 정관(貞觀)이었습니다. 그가 신하들과 나눈 대화록이 바로 <정관정요>(貞觀政要)인데, 역사가 오긍이 편찬한 이 책이 제왕학의 교과서처럼 명성을 얻어 군주와 제왕들이 탐독했고 조선에서도 두루 읽혔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세민은 신하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이 틀렸을 경우 바로 인정하고 고쳤습니다. 당태종 이세민이 동양의 제왕들 중 명군(明君)으로 꼽히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영화배우 출신의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도 썩 유식한 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전문가 그룹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회와 기독 청년들에게 고함
 
박근혜 정부하에서 한국 개신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지난 17대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보수 정치권을 지원하는 개신교 내의 ‘묻지마 지지’ 세력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속한 이들이 새 정부에서 자리를 얻거나 긴밀히 밀착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MB 정권에 지나치게 밀착했던 개신교 주류의 행태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라도 거리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성찰하는 시간과 더불어 예언자적 위치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한국의 개신교가 복원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 개신교 자체가 변해야 합니다. 교회의 ‘가난 실천’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의 교회는 부유하고 가진 것이 많습니다. 교회가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이는 작은교회운동을 지향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고통받는 이웃들,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 속으로 들어가는 풀뿌리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교회는 복원력과 자생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단지 새 정부 아래서 한국 개신교가 해 나가야 할 과제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쏙 빼닮은 한국교회가 회생(回生)의 길을 밟으려면, 가장 먼저 가난 실천과 작은교회 운동을 통한 영성 회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정권과 밀착했던 대형교회가 풀뿌리교회운동, 가난 실천의 작은교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리라고 당장 기대하긴 어려운 현실임을 모르진 않습니다. 구조적인 대전환이 일어나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한국교회가 살 길이 없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대형 교회가 스스로 나서서 가진 것을 나누고, 교회 건물이나 토지를 매각해서 슬림화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또 몹시 더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사고를 지닌 이들이 한국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면 가능성이 있으리라 봅니다.
 
이번 대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젊은 세대가 선거 이후 패배감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생을 웬만큼 산 나에게도 이번 선거 결과는 가슴에 큰 상처가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아직도 골리앗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심정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무너진 채 엎드려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힘을 내야 합니다. 어디서 무너졌는지 철저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동시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당겨주고 밀어주면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좌절해서 자포자기하면 이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특히 기독 청년들이 좌절하면 안 됩니다. 비신앙인들이 좌절할 때 우리는 신앙인답게 힘을 내고 위로하면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고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정의가 사는 꿈”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외치면서 이 ‘깜깜한 새벽을 깨우러’ 나갑시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mahnyol@hanmail.net
 
 
이만열 님은 한국의 대표적 역사학자로 숙명여대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길러내는 일에 매진했다. 전두환 군사독재하의 해직 사태 때 교수직에서 해직당해 4년의 광야생활을 보내는 동안,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에 힘을 쏟았고 한국 교회사 연구 수준을 격상시켰다. <복음과상황> 공동발행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및 이사장,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숙명여자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만열 교수의 민족 통일 여행일기> <한국기독교사특강>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등 다수의 책을 썼다.
 
 
*이 글은 <복음과상황(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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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대표"색깔론에 얽매이지 말고 똘똘뭉쳐 평화를 지킵시다"

이정희 대표, ‘전쟁위기 해소· 한반도평화를 위한 비상시국 기자회견’발언
(통합진보당 / 2013-03-11)

 

○ 전쟁위기 해소, 한반도평화를 위한 비상시국 기자회견
○ 3월 11일 13:00/ 프레스센터 19층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어디서 총소리가 날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위기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일전불퇴’ 의사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국회도 북을 규탄하는 대북결의안 채택이외에 어떤 실질적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전쟁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과 북이 동시에 상대를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남북 양측이 벌이고 있는 군사훈련 모두 동시에 중단되어야합니다. 서로를 향한 적대적 발언을 거두고 겨눈 총부터 내려놔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벌써 세 번째 호소 드립니다. 박근혜 정부는 북과 대화를 시도하십시오. 즉시 대북특사를 보내셔야 합니다.

오늘 전쟁반대 평화수호의 한목소리로 많은 종교인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모이셨습니다.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도, 지켜낸 평화를 영구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평화협정체결을 위해서도 끝까지 함께 해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평화수호를 위한 공동의 기구를 건설하자는 오늘의 제안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더 폭을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힘도 크게 모아낼 수 있습니다. 색깔공세 같은 비이성적인 시비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우리 후손들과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사상과 종교, 정견을 뛰어넘어 단결해야합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3월11일
통합진보당 대변인실

 


<‘한반도 전쟁방지를 위한 긴급 호소문’>

전쟁은 절대 안 됩니다.

지금 한반도가 다시 전쟁 위기 속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외교와 정치가 사라지고 상대를 위협하는 군사 행동과 위험한 언술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정전협정까지 무력화되는 사태 전개는 군사적 긴장의 일상화와 충돌의 위험성을 크게 높이는 절대적 위기의 상황입니다. 전쟁이 일시 중단된 '정전'상태의 한반도에서, 쌍방의 무력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전협정마저 백지화된다면 전쟁의 위험을 제어할 수단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참담한 마음입니다.
지금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의 태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 양국의 ‘실패한 정책’도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대화와 협상을 배제하고 제재만을 취해 온 정책은 상대에게 선택의 여유를 주지 못합니다.
이 과정에서 평화협정 논의가 실종되었습니다. 남북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모여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하자고 합의한 때가 2005년 9월 19일입니다. 도대체 8년이 다 되도록 반반한 대화 한번 못해 보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전쟁을 걱정하게 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한단 말입니까?

국민여러분!
위기입니다. 모든 전쟁이 그랬듯이,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채 우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하면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표방되는 남북 당국의 목소리에 참화의 위험이 담겨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위기상황은 미국이 직접 연결되어 있는 대치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남북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벌이는 이 무모한 행위를 더는 두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서로를 자극하는 일체의 군사행동을 양측 모두 중지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겨레가 만들어 온 평화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팀스피리트로 명명되던 연례적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결단 속에서 북미대화의 물꼬를 열었던 1992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전히 군사독재의 암운이 드리워져 있었던 노태우 정부 시절의 일입니다.
이 교훈대로 한미당국은 한미연합 키리졸브 군사연습을 중단하고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불가침합의 무효화 등을 즉각 철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한미당국과 북한은 일체의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평화를 위한 대화로 나서야 합니다.

평화협정 논의 선언이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논의를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평화협정은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인 동시에, 불안한 정전상태를 항구적인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입니다. 이 주장을 누가 먼저 하느냐 하는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간 한미양국이 선핵폐기만을 외친 채 평화협정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온 결과 무엇이 남았습니까? 북이 선제핵타격을 공언하는 작금의 이 엄청난 사태를 전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고 한반도를 항구적 평화상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평화협정 논의입니다.

남북대화를 제안하십시요.
지금 전쟁 고조의 구조는 북미간 적대관계입니다. 남북관계를 이 구조속에서 독립시켜 틀을 흔들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평화를 선도하는 일, 한국 정부가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책임에서 자유로운 새 정부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 첫길이 대통령 특사 파견입니다.

국민여러분!
이 땅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됩니다.
6.25의 참화를 기억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 어떤 말도 전쟁을 합리화시킬 수 없습니다.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국민평화기구를 만듭시다. 종교와 정당, 시민사회가 합심하여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여기 걸릴 우리의 표어는, "전쟁은 절대 안 됩니다" 가 될 것입니다.


2013년 3월 11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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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9000개 늘렸다'는 대우조선, 대부분 비정규직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3/13 10:02
  • 수정일
    2013/03/13 10:0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편지] 박 대통령의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은?

13.03.13 09:22l최종 업데이트 13.03.13 09:22l

 

 

지금 세계 조선업은 깊은 불황에 빠져 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로 인해 전 세계 물동량이 급감하고, 유럽과 미국 선주사들의 수주 계약 해지로 국내 선박업계도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2012년 국내 조선업체 수주량은 750만 CGT로 2008년 대비 41%로 줄어들었고, 수주잔량 역시 2008년에 비해 57%로 급감했습니다.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영업이익률도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6일에는 삼성중공업이 유럽 선주사로부터 수주한 네 척의 천연가스저장 선박의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습니다.

중소 조선소의 사정은 더욱 심각합니다. 조선경기 침체로 허덕이던 세코중공업·삼호조선·세광중공업은 2011~2012년 청산했고, 신아SB·21세기조선 등 중소조선소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조선강국 한국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1년 새 정규직 900명... 사내하청은 8200명 증가

<서울경제>는 지난 3월 7일, '서프라이즈! 대우조선해양, 일자리 1년 새 9000개 창출'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 인터넷 서울경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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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반도 남쪽 끝 거제 옥포만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1년 동안 9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습니다. <서울경제>는 지난 7일치 신문 1면에 '서프라이즈! 대우조선해양, 일자리 1년 새 9000개 창출'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우해양조선의 핵심 사업은 컨테이너선 등 일반 상선에서 해양플랜트로 이동했습니다. 한 척당 100~200명의 노동자가 투입되는 일반 상선에 비해 대형 해양플랜트 작업에는 10배가 넘는 2500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지난 1년 사이에 정규직 노동자 900명, 사내하청 노동자 8200명 등 총 9100명이 늘어 정규직 1만3200명에 사내하청 2만7300명을 합쳐 총 4만500명이 됐습니다.

이는 지난 1년 사이 새롭게 창출한 일자리의 90%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것이며,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사무직·기술직·생산직 노동자 4만500명 중에서 67.4%가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뜻입니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의 '인력'이라고요?

'세계 초인류 조선해양 전문기업'이라는 대양조선해양은 자사 인력 규모를 3만여 명으로 밝혔습니다.
ⓒ 인터넷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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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은 누리집을 통해 자사를 '세계 초인류 조선해양 전문기업'이라고 소개하며 '인력 3만여 명(협력사 포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년 사이에 늘어난 9100명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물량팀과 일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우조선해양 자신들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당당히(?) '인력'에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두 차례나 판정한 현대자동차나, 지난 2월 28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판결한 GM대우차,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이마트 모두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자신들의 '직원'이나 '인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직원으로 표현한 이유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을까요?

해양플랜트 기능직 노동자 10명 중 9명 사내하청

한국조선협회의 <조선소별 인력사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2011년 말 기준 사내하청 노동자는 1만5500명이며, 전체 직원은 2만7201명입니다. 여기에 사내하청 노동자 8200명, 정규직 900명이 늘어났다고 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2만3700명, 전체 직원은 3만6301명이 됩니다. <서울경제> 기사와는 대략 4000명 가량 차이가 납니다.

이 인원 차이는 물량팀 때문으로 보입니다. 파워공 등 일부 고숙련 노동자 중심으로 활용됐던 물량팀이 다단계 하도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취부·용접·사상 등 선박 건조 거의 대부분의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하청업체당 1개 이상의 물량팀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하청 노동자 현황을 보면 충격적입니다. 기능직(생산직) 노동자의 68.2%가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입니다. 즉 현장의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해양플랜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입니다. 사실상 '비정규직 공장'이라는 것입니다.

'해양플랜트 100억 달러 수주' 이면에 깔린 그림자

지난해 대우조선은 세계 조선업계 처음으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100억 달러 이상 수주해 조선업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습니다.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해체선 등 현재 옥포조선소에는 모두 아홉 기의 해양플랜트 건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아홉 기의 해양플랜트 건조작업에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입돼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새로 뽑은 정규직 노동자 900명은 대부분 기술직 엔지니어이며, 생산직 노동자는 사내하청과 물량팀으로 해양플랜트를 건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사장은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양플랜트는 선가가 일반상선의 10배나 되며 투입되는 인원도 10배가 넘는다"며 "이를 통해 회사의 이익증대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최대 화두인 고용창출에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양플랜트를 통한 대우조선해양의 고용창출은 비정규직에 의해 이뤄지며,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증대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주가 늘어나면 사내하청을 늘렸다가 건조작업이 끝나거나 수주가 줄면 비정규직을 자르는 게 '고용창출에 크게 공헌'하는 것입니까?

비정규직이 떠받치는 한국 조선


대우조선해양뿐만 아닙니다. 선박건조 분야에서 기능직(생산직) 대비 현대중공업(66.3%)과 삼성중공업(63.9%)의 사내하청 비율은 모두 60% 이상이며, 현대삼호중공업은 73.6%이고, STX조선은 무려 86.2%에 달합니다. 한국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의 70%는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이며, 해양플랜트의 경우 80~9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배 만들다 죽어나가는 노동자도 비정규직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NO.2 드라이도크. 사진은 지난 2월 24일 세계 최대 크기의 1만8000TEU 컨테이너선 진수식 당시.
ⓒ 대우조선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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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5일 오후 2시 10분, 5~6톤 짜리 선박 받침대 이동 작업을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박아무개(48)씨가 받침대 아래에 깔려 숨졌습니다.

이어 두 달 뒤인 1월 15일에는 오후 2시 30분 조선소 내 2도크에서 컨테이너선을 조립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민아무개(23)씨가 325톤짜리 선박 블록이 머리 위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2월 7일 오후 2시 30분에는 대우조선해양 컨테이너선 위에서 선박건조작업을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전아무개(18)씨가 20여 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꽃다운 청춘이 배를 만들다 사라졌습니다.

3개월 동안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여졌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모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생산 공정의 70~90%를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 조선강국 대한민국의 '쌩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2월 20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업 공기를 맞추는 데 급급한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3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3월 14일 서울로 올라와 대우조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지난 2월 20일 경총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에게 이희범 경총 회장은 "고용경직성이 강하다, 이 점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고려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이희범 경총 회장은 정규직은 관리자들 뿐이고 모든 생산공정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운영해왔던 경남 창원의 STX중공업 회장입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고용경직성에 대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입장을 고려해서 해법을 찾자"고 말했습니다.

전국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일자리를 늘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이 죽음의 조선소 대우조선해양입니까. 생산공정이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로 운영되는 비정규직 조선소입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박점규 기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 <레디앙> <참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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