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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없이 민족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찾아준 설명절
 
“민속 없이 민족 없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2/09 [13: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설명절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웃 어른을 공경해 세배를 하는 전통은 남과 북이 똑 같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서 보면 남쪽에서 아랫사람에게 세배돈을 주는 대신 북에서는 책을 주는 모습이 이채롭다. © 이정섭 기자


민족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조선도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동신문은 9일 “선군으로 존엄 높은 조국 땅 이르는 곳마다에 민족의 정서와 향취가 넘쳐흐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명절날과 휴식 날이면 팽이치기, 연띄우기, 장기놀이, 씨름을 비롯한 민속놀이로 흥성거리는 거리와 마을들, 민족의 향취가 넘쳐나는 민족음식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새 없는 옥류관, 청류관을 비롯한 곳곳의 급양 봉사망들, 노래는 노래마다 민족적선율 차 넘치고 춤은 춤마다 민족적률동이 흘러넘치는 자랑스러운 현실…”이라며 명절 분위기를 그렸다.

신문은 “이 모든 것을 대할수록 우리의 마음속에는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의 우수한 민속전통과 문화를 빛내어 나가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되새겨진다.”고 김정일 위원장을 회고했다.

▲ 설명절을 맞은 조선의 어린이들이 전통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은 남과 다르지 않다. © 이정섭 기자









또한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내려오면서 우수한 민족적 전통을 이룩하였습니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어록을 싣고 일꾼들과 대화를 통해 설명절의 의의와 전통 등을 설명하고 문화유산을 계승해야 한다고 전해 설명절과 대보름 등 민속명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언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옛 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설을《세주》,《연수》 혹은 《원일》이라고 하였다. 설을 맞으면서 무엇보다도 음식을 잘 준비하였는데 그것을 세찬이라고 하였다. 설을 맞으면서 새 옷도 만들어 입었는데 그것은 설빔”이라고 한다면서 “설을 맞으면서 그믐밤을 지새우는 풍습도 있었다. 설 날에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과 동리의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하였고 어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덕담(좋은 말)을 주고받았다.윷놀이,널뛰기,연띄우기,썰매타기,팽이치기 등으로 남녀노소가 설명절을 즐겼다.”며 설명절 풍습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했다.

또한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과 같은 명절놀이에서 뿐아니라 노동생활, 문화생활, 도덕생활 등에서 우수하고 훌륭한 민속전통을 창조하였다고 하시며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창조한 민속전통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귀중한 민족적 유산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 조선은 우리민족이 전통적으로 입었던 조선옷(한복)을 즐겨 입으며 고상한 복식 문화를 계승 발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정섭 기자


신문은 “민족의 우수한 민속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대대손손 빛내어 나가는 문제를 민족의 존망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속전통을 고수하고 빛내어 나가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일군들은 숭엄한 격정 속에 우러렀다.”다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온 민속전통에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사상 감정과 예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호와 특성이 반영되어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민속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높은 긍지를 간직하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 특성을 더욱 빛내어 나가야 한다고, 민속을 버리면 민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위원장의 설명을 들은 일꾼들은 “민속이 단순히 한 민족의 세태나 풍속이 아니라 거기에 바로 민족의 숨결과 넋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고유한 모습과 발자취가 어려 있기에 민속이 없으면 민족도 없다는 심오한 진리를 가슴깊이 새겨 안게 되었다.”고 피력했다.

로동신문은 끝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민족성을 고수하고 그 전통을 빛내어 나가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의 손길에 의하여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의 우수한 민속전통과 문화가 나날이 빛을 뿌리고 있다.”며 김정일 위원장의 혜안을 높이 평가했다.

로동신문의 오늘 기사는 수수만년 전통과 문화를 함께 누려 온 우리민족이 하루 빨리 하나로 통일된 세상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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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별대수송' 첫날, 첫차 운전실에서 바라본 귀성 풍경

'명절 전문 기관사'의 고백 "내 생애 최초의 뇌물은…"

[동승 취재] '설 특별대수송' 첫날, 첫차 운전실에서 바라본 귀성 풍경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9 오전 8:36:10

 

설 특별대수송기간 첫날인 8일, '올겨울 가장 강력한 한파! 서울 -17도~-7도' 속보가 스마트폰 액정에 떴다. 귀를 찢을 듯한 새벽 추위를 뚫고, 기관사 박 아무개 씨가 분주하다. '설 수송 대작전'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될 오전 6시 10분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1201호 첫차 운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철도노조 홍보팀의 협조로 운전석에 동승할 수 있었다. 기자에게 기차에 대한 추억은 기근 수준이다. 그 흔한 간이역 하나 없는 지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찻길 옆에 있는 외가에 갈 때마다 철길 주변에서 서성대곤 했다. 거대한 기관차가 연기를 뿜고 철로 주변 돌을 튀기면서 경적을 울리면, 거기에 맞춰서 큰소리로 '빠아앙'을 외치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한 번은 단비처럼 기차를 탈 기회를 잡았다. 명절에 할머니를 따라 기차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날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달걀을 삶으셨고, 회색 빛깔 습자지에 흰 소금을 정성스레 담아 접고 또 접었다. 반투명 비닐 '봉다리'에 담긴 삶은 달걀에 더 관심이 많은 손주의 손을 잡고 할머니는 인근 도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새마을호, 좁은 객실 통로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승무원을 잡고 사이다를 산 할머니는 달걀을 까서 손주에게 쥐어주셨다.
 

 

▲ 귀성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8일 새벽 6시 서울역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그런 추억들이 다들 있을 겁니다. 근대화의 상징적 산물인 기차 노선이 영국에서 처음 탄생한 이래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게 됐죠. 숯검댕이 기관사들과 정비사 같은 옛 철도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속에는 산업화에 대한 경외감, 혹은 전쟁의 기억, 노동운동의 치열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 같은 것들이 들어 있죠. 철도만큼 인간의 집단 기억에 남긴 강렬한 대상도 없을 겁니다. 이를테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아버지는 철도 노동자였죠. 네루다의 시에 철도 노동자 얘기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무궁화호 기관사 박 씨의 말이다.

"고향 가는 승객의 꿈과 희망을 싣고 오늘도 달린다"

서울역에서는 새벽잠이 덜 깬 귀성객들이 추위로 빨갛게 물든 양 볼을 감싸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고향 갑니다. 대전이에요. 가까워서 자주 내려가는 편이지만, 설 때 내려가는 건 더 각별한 의미가 있죠. 왜 무궁화호를 타냐고요? 싸고, 느긋해요. 귀성길에 동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박 아무개 씨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기관사 박 씨가 "어서 오세요"라며 운전실 문을 열어줬다. 박 씨는 자신이 '무궁화호 기관사'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기관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관차입니다. 시야 확보가 쉽고, 운전도 비교적 편한 편이에요."

박 씨는 "운이 좋은 기관사들은 설에 쉬기도 하지만 극소수예요. 특별대수송기간에는 3분에 한 대씩 발차합니다. 기관사들도 그만큼 많이 근무를 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설 연휴 때, 우리 차가 8량이거든요. 1000명 이상의 귀성길을 책임지는 만큼, 뿌듯한 감도 많이 들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난 곳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제 고향은 서울이라 감흥이 없는데, 기관차를 운전하다 보면 동화가 됩니다. 이를테면 승객들의 꿈과 희망을 싣고 가는 거죠"라고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는 "저는 명절 전문 기관사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기관사는 꼭 명절에 쉬는 날이 걸리는 운 좋은 기관사도 있어요. 물론 명절에 거의 못 쉬는 운 나쁜 기관사도 있죠. 그래도 '운이 좋은 기관사들은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나보다' 생각하고 말죠."

박 씨는 이날 새벽 4시 32분에 수색 기지로 출근했다. 여기서 박 씨는 오늘의 선로 상태 정보, 즉 서행해야 하는 구간, 공사 구간 등 상황을 체크한 후 기관차 기능을 점검한다. 그리고 객차를 연결한 뒤에,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점검한다. 이 모든 게 완료되면 기지에서 출발해 서울역으로 열차를 옮겨 놓는다.

서울역 승강장에서는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승객들이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직 주변은 컴컴하다. "그래도 새벽 공기는 언제나 상쾌합니다"라고 말한 박 씨는 노치(NOTCH, 주제어기)를 손에 얹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출발 신호등이 켜졌다. 파란 신호에 맞춰 열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상쾌한 기분이 들어요. 박 기자는 호강하는 거예요. 운전실 앞 유리로 바깥 풍경을 보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를 겁니다. 사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런 '눈호강'으로 보상을 받죠."

두 시간 동안 승객 1000여 명과 기자는 '운명 공동체'가 됐다. "운전실은 좀 많이 흔들리죠. 객차는 아늑하게 갈 수 있도록 장치들이 많이 돼 있는데 운전실은 덜컹거려요. 운전실이 너무 아늑하면 안 되니,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죠."
 

 

▲ 영등포역에 진입하고 있는 1201호. ⓒ프레시안(박세열)

 

 

▲ 평택역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날이 밝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 평택역을 지나 충청도로 진입했다. 동이 텄다. ⓒ프레시안(박세열)

 

"'수고했다'며 담배 한 갑 건넨 어르신…기관사 생애 최초의 '뇌물'"

열차에는 여객전무 두 명과 기관사 한 명이 탄다. '
오징어 땅콩 있어요' 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승무원은 이 열차에 없다. 대신 '카페칸'이 있다. 승객들은 그곳에서 커피를 한잔하기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카페칸의 '코레일유통' 직원 두 사람을 합치면 총 5명이 이 열차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영등포역, 수원역에 들러 승객들을 가득 실은 후 본격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밤새 켜져 있던 마을 불빛들이 동트기 전 어스름 속에서 여전히 빚나고 있었다. 도로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파지만, 1201호 열차의 계기판은 시속 140킬로미터를 가리켰다. 운전실 창문 옆으로 눈 덮인 논밭이 휙휙 지나갔다.

"평택쯤 도착하면 해가 뜰 거예요. 기관사들이 시간관념 하나는 귀신같습니다." 박 씨가 말했다. 정확했다. 평택역을 지나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맞은편 상행선에서 열차가 '쿵' 하고 소리를 내며 1201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박 씨는 무전기를 켜고 맞은편 열차에 "1302호, 고생 많았습니다. 잘 올라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
지금은 철도 옆 도로에 차가 별로 안 지나다니잖아요. 오후 돼 보세요. 완전 주차장입니다. 특히 회덕인터체인지 고가를 이 열차가 지날 텐데, 명절 때는 '고속도로 주차장'이 돼죠." 승용차로 귀성길에 나선 '서울 사람'들을 안쓰러워하는 말이었다. 시속 140킬로미터로 곧게 뻗은 철로 위를 쌩쌩 달리는 박 씨는 왠지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박 씨에게 귀성열차에 얽힌 추억을 묻자, 박 씨는 머리를 긁적였다.

"기관사는 숨겨진 존재죠. 승객들이랑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운전실 창문도 지하철과 달리 굉장히 높아서 승객들이 기관사 얼굴을 볼 기회도 없죠. 굳이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예전에 귀경객을 싣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였는데요, 한 나이 지긋한 승객이 운전실 창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담배를 한 갑 주더라고요. 어르신이니까 그런 오지랖도 있는 거겠죠. 제 생애 처음 받아보는 '뇌물'이었어요. 기관사는 평생 뇌물 한 번 못 받는 직업이랍니다."
 

 

▲ 터널을 지나기 직전의 1201호. ⓒ프레시안(박세열)

 

 

▲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의 철교. ⓒ프레시안(박세열)

 

"기관사는 철로에 서성대는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풍광에 넋을 놓고 있는데,
천안을 지나쳤다. "이제부터는 시골길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멋진 드라이브 코스죠"라고 박 씨가 말했다.

"여기에서 장항선(천안, 군산, 익산을 잇는 오래된 철도로 추억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으로 빠질 수 있는데, 제가 과거에 장항선을 다닐 때는 기찻길 옆 집들을 많이 봤어요. 건널목도 있었고요. 기차길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지날 때마다 기차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요. 기관사는 그 아이들이 크는 과정도 봐요. '아 저 아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갔나보네. 작년에는 키가 작았는데 벌써 저렇게 컸네', 혹은 '저 집 개는 이번에 새끼를 낳았구나' 하는 것들이 죄다 보이는 거죠. 모르는 아이인데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얼굴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참 신기하죠."

열차는 어느덧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를 지나쳤다. "여기가 그 유명한 '홍대 앞'입니다." 박 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적한 '2차선'을 신나게 달리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 있었다. 아침 빛을 머금은 붉고 신선한 태양이 운전실을 비췄다.

대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8분. 이곳에서 약 2분간 정차하게 된다. 대전충남본부의 기관사가 서울본부에서 온 박 씨와
교대한 뒤 부산까지 남은 운행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박 씨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부산발 서울행 열차를 대전에서 받아 서울로 다시 '귀향'을 한다고 했다. 박 씨는 "말동무가 있어서 즐거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 '설 특별대수송기간'이 시작된 8일 오전 8시 10분, 대전역에 모인 승객들. ⓒ프레시안(박세열)


대전역 주변에서는 군인 한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상병이었다. "명절에 맞춰 휴가를 나왔습니다. 고향이 안양이어서 안양까지 기차를 타고 갑니다. 100일 정도 후면 제대인데, 그동안 휴가 때마다 기차를 타고 안양까지 왔다 갔다 했어요. 그 전에는 기차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데, 군인이 되니 기차가 친근하네요. 제대해도 대전에서 안양까지 가는 기차는 생각이 많이 나겠죠." 기자가 "여자친구 보러 가느냐"고 물었다. "두 달 전에 헤어졌어요. 부모님이랑 명절 같이 지내야죠." 아뿔싸. 괜한 질문을 했다.

할머니 한 분이 서성대다가 기자를 발견하고 길을 물었다. "열차표 끊는 곳이 어디요? 길을 잃었어요." 명절인데 어디 가시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아들 보러 서울 가요. 인제는 우리 같은 사람이 가야지 젊은 사람들이 편하죠." 추위에 보자기를 머리에 꽁꽁 감아 쓴 할머니는 '역귀성'을 하는 중이었다. 예매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매할 줄 아는데 그냥 왔어요"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보였다.

할머니는 고향을 싣고 기차 타고 서울 간다. '설 특별대수송기간' 첫날, 첫차를 타고 내려오며 본 풍경은 그랬다. 매표 창구로 가는 할머니가 종종걸음을 놓는다. 골이 깊이 팬 할머니의 손이 움켜쥐고 있는 저 보따리 안에는 '달걀'이 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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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점유율, TV 강세 속 인터넷이 신문 제쳐

한국사회 여론영향력 최강자는 KBS
매체별, TV>인터넷>신문>라디오 순

[여론집중도 조사] 지상파 3사 합해 영향력 거의 절반, 조-중-동-매 22.3%

13.02.08 21:25l최종 업데이트 13.02.08 21:34l

 

 

주요 매체계열의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 분포 그래프. 문회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신문은 열독점유율, TV는 시청점유율, 라디오는 청취점유율, 인터넷뉴스는 체류시간점유율을 조사해 각 매체별로 가중치를 곱해 위 결과를 도출했다. (출처 :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위원장 조성겸)의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신문-TV-라디오-인터넷 4대 매체를 통틀어 가장 여론영향력이 높은 언론사는 KBS로 나타났다. 2개 TV 채널과 4개 라디오 채널을 운영 중인 KBS는 TV 부문에서 55.9%, 라디오 부문에서 24.2%의 영향력을 기록해, 전체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 29.0%를 보였다. 이는 2위를 기록한 MBC보다 2.7배 이상 높다.

1개 TV 채널과 2개 라디오 채널을 운영 중인 MBC는 10.7%를 기록했다. 역시 1개 TV 채널과 2개 라디오 채널을 운영중인 SBS(지역민방)는 7.5%로 3위였다.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의 점유율을 합하면 47.2%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기존 신문에 이어 종합편성채널까지 탑재한 조선·중앙·동아·매경의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22.3%였다. 각각을 보면 조선 계열(<조선일보>, TV조선, <조선닷컴>) 7.0%, 중앙 계열(<중앙일보>, JTBC, <msn조인스>) 5.4%, 동아 계열(<동아일보>, 채널A, <동아닷컴>) 5.3%, 매일경제 계열(<매일경제신문>, MBN, <매경닷컴>) 4.6%를 기록했다.

지상파 3사와 종편 운영 중인 4사의 여론영향력 점유율을 합하면 69.5%로 압도적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점유율 3% 미만을 보였다.

이 결과는 신문 부문은 열독점유율, TV 부문은 뉴스·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시청점유율, 라디오 부문은 뉴스·시사보도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채널의 청취점유율, 인터넷 부문은 체류시간점유율을 기준으로 각 부문별 영향력 가중치를 곱해 합한 수치다. 부문별 영향력 가중치에서 TV 부문이 48.2%로 월등히 높다.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이같은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7일 발표했다. 조사위는 "매체부문간 교차 소유 형식이 다양화, 복잡화 되어감에 따라 매체 다원성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구체적, 실증적 방법이 필요했다"면서 "한국사회의 주요 매체 부분을 대상으로 여론집중도조사를 처음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 포털과 소셜미디어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점 ▲ 스마트폰 등 새로운 매체가 배제된 점 ▲ 기준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인터넷 부문에서 체류시간 점유율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은 점 등 한계점도 명확하다. 위원회는 "전체 매체의 영향력 집중도 수준과 추세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며 "연구 설계 및 조사방법을 연차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중장기적인 추세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향력 점유율, TV 강세 속 인터넷이 신문 제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과 신관. KBS는 2013년 2월 7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에서 가장 여론집중도가 높은 언론사로 나타났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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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신문-TV-라디오-인터넷 4대 매체 부문의 영향력 점유율을 산출한 것이다.

위원회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7000명을 대상으로 면접원의 가구방문을 통한 일대일 대인면접 방법으로 아래 7개 문항을 질문했다(2012년 8월 24 ~ 9월 30일. 현대리서치연구소). 답변 항목은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으로 중복 응답이 가능했다.

- "일상의 뉴스 및 시사정보를 어떤 매체를 통해 얻으십니까?"
- "정치·경제·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어떤 매체의 뉴스 및 시사정보에 주로 의존하십니까?"
- "대통령 선거에 대한 뉴스 및 시사정보를 어떤 매체를 통해 얻으십니까?"
- "국가정책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데 어떤 매체가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 "정치·경제·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는 데 어떤 매체가 도움이 됩니까?"
- "지지하는 후보나 정치인을 결정할 때, 주로 어떤 매체에 의존하십니까?"
- "정치·경제·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해 귀하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어떤 매체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체 응답 빈도수에 대하여 각 매체 부문의 응답 빈도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산출한 결과, TV가 48.2%으로 과반에 가까운 1위였고, 인터넷 26.0%, 신문 17.3%, 라디오 8.4%였다. 이는 TV 부문을 기준으로 볼 때 인터넷뉴스 부문은 1/2, 신문 부문은 1/3, 라디오 부문은 1/5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용자들이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TV의 영향력이 가장 높고 라디오 부문이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은 예상 가능했지만, 신문 부문이 인터넷뉴스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위원회는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매체부문간 영향력 변동이 발생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고 밝혔다.

젊을수록 인터넷 영향력 커... 신문 위축 조짐 뚜렷
 

매체 부문별 영향력 점유율. TV의 점유율이 높은 가운데 인터넷뉴스가 신문을 제친 것이 뚜렷하다. (출처 :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

 

연령대에 따른 매체부문별 영향력 점유율 분포. 젊은층으로 갈수록 인터넷뉴스의 영향력이 크다. (출처 :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


이 조사 결과를 연령대별로 들여다보면 더욱 시사적이다. TV의 영향력은 전 연령대에서 40% 이상 높게 나타났지만, 20대에서는 TV 42.0% - 인터넷뉴스 42.4%로 근소하게나마 인터넷에 1위 자리를 내줬다. 20대는 인터넷 42.4%, TV 42.0%, 신문 11.3%, 라디오 4.4% 순이었다.

30대는 TV 42.7%, 인터넷 34.5%, 신문 14.9%, 라디오 7.9% 순을 보였다. 40대 역시 TV 44.7%, 인터넷 26.2%, 신문 19.5%, 라디오 9.6% 순이었다.

반면 50대 이상부터는 신문이 인터넷을 앞섰다. TV의 점유율도 더 높아졌다. 50대는 TV 51.2%, 신문 22.9%, 인터넷 15.6%, 라디오 10.3% 순이었다. 60대는 TV 66.0%, 신문 18.8%, 라디오 10.3%, 인터넷 5.0% 순이었다.

위원회는 "매체부문별 여론영향력은 연령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경향성을 나타낸다"면서 "특히 20대의 경우 인터넷뉴스의 영향력이 매우 높은 반면 신문, 라디오방송의 영향력은 매우 낮다는 특성을 보였다, 이에 반해 60대 이상 세대에서는 텔레비전방송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향후 매체부문간 영향력 구도에 있어서 인터넷의 부상 및 신문의 위축으로 대표되는 변화가 초래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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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무상 견인서비스' 무조건 믿지 마세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2/09 09:53
  • 수정일
    2013/02/09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설날 명절 귀성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모처럼 고향 방문에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지만, 가뜩이나 짧은 연휴 기간에 차량이 몰리면서 고속도로는 정체되고 추운 날씨에 노면이 얼어붙은 지역은 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대부분 연쇄 추돌 사고인 경우도 많고 사고 처리도 힘들어 늘 애를 먹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견인차를 부르는 문제입니다. 사고가 나며 어떻게 알고 견인차가 그리도 많이 오는지 많게는 10여 대까지도 오는 일도 있습니다.[각주:1]

사고 지역을 빨리 벗어나 쉬고 싶지만, 견인비용이 비싸 함부로 견인도 어렵거니와 많은 견인차 중에서 어떤 차를 선택할지도 답답합니다. [각주:2]

현재 고속도로에서 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입된 보험회사에서 보내주는 견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 사설 견인 서비스를 받는 일입니다. 보험회사에서 제공하는 견인서비스는 10킬로까지는 무료이고, 그 이후부터는 추가 비용이 듭니다. 문제는 사설 견인 서비스를 받는 경우 견인 비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입니다.
 

 

▲국토해양부 공식 견인 비용과 일반적으로 견인 서비스를 받았을 때 청구되는 비용. 이 금액은 공식적이거나 정해진 비용이 아닌 일반적인 비용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견인 기사와 다툼을 벌여도 소용이 없다.

 


국토해양부가 정한 견인비용은 10킬로까지 51,600원이고 이후부터 킬로미터수에 따라 비용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 견인비용에 더하여 작업비와 주말,야간 할증비,후방안전조치비용,대기료 등의 다양한 비용이 부과되기 때문에 10킬로를 견인하는 비용만 해도 20여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이 비용도 현재 견인차 기사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비용일 뿐, 실제 견인기사들이 부르는 비용은 천차만별입니다. 겨우 15킬로 남짓 견인했는데도 50만원을 부르거나 불과 10킬로 이내에도 앞서 보여 드린 각종 비용을 청구하기 때문에 국토해양부 고시 견인비용만 주겠다고 하면 견인 기사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큰소리치기 십상입니다. [각주:3]
 

 

▲견인피해 보도를 다룬 방송화면, 출처:채널A

 


과다하게 청구됐던 견인 비용 때문에 2011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견인 피해 상담수만 501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피해 상담을 받거나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정식 재판까지 가도 소비자들이 이기거나 구제받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각종 할증 비용도 현재는 시청에서 다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각주:4]

이처럼 고속도로 견인비용이 비싸다 보니 몇 해 전부터 SNS에서는 한국도로공사에서 하는 '무료 긴급 견인서비스'라는 글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설 견인차를 이용하면 돈이 들지만, 한국도로공사에서 하는 견인 서비스는 무료이기 때문에 적극 이용하라는 내용입니다.
 

 

▲경기지방경찰청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올라온 한국도로공사 '긴급 견인서비스' 관련 글.

 


한국도로공사 무료 긴급 서비스는 아직도 문자는 물론이고 페이스북,트위터,블로그,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모르면 바보라는 식으로 꼭 알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도로공사 '긴급 견인서비스'가 있기는 있지만, 글처럼 고속도로 사고 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원해주는 시스템은 절대 아닙니다.
 

■ 한국도로공사 긴급 견인서비스
○ 비용: 무료
○ 거리: 사고 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휴게소,영업소 등 최인근 안전 지역
○ 그 이후: 운전자 본인 부담


무료 견인서비스를 해주기는 하지만 사고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휴게소나 영업소까지만 해주기 때문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마저도 쉽게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사고가 나서 경찰에게 한국도로공사 무료 긴급 견인서비스를 받겠다고 말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마저도 빠른 사고 처리를 위해 사설 견인서비스나 보험 견인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종용하기 일쑤입니다. 여기에 한국도로공사에 전화해도 견인차가 다른 곳에 출동했을 때는 이용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듣는 일이 많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민자고속도로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요새 민자고속도로가 워낙 많이 개통되어 있어,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수시로 민자고속도 구간을 지나게 됩니다.만약 경부선을 타고 다시 천안에서 논산천안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이 구간에서는 한국도로공사 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있지만, SNS에서 떠도는 글만 무조건 믿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하면 사고 처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화기로 언성만 높이다가 명절 분위기를 망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면 시시비비를 절대 가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일단 차량이동이 가능하면 갓길로 이동을 시키고, 만약 불가능하면 비상등을 켜고 사람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차량 사고에 대한 처리는 보험으로 할 수 있지만 2차 사고로 인한 피해, 특히 인명 사고는 돈으로도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대피했다면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이때는 경찰 (119),한국도로공사(1588-2504) 보험회사에 모두 연락을 합니다. 만약 차량을 이동하지 못했다면 도로공사에 차량 이동이 불가능하니 긴급 견인 서비스를 신청하면 더 빨리 보내주거나 일단 가까운 휴게소와 영업소까지라도 갈 수는 있습니다.
 

 

 


경찰이나 도로공사,보험회사에 연락할 경우, 사고 난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빠릅니다. 이때 갓길에 있는 '시점표지판'을 이용하면 편한데, 12번 무안-광주 고속도로 광주방향 14.6킬로 지점이라고 말하면 정확한 위치를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고가 나면 사진 촬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차량 파손을 촬영하기보다는 동영상으로 사고 이전 거리부터 사고 지점, 사고 이후 도로 상황을 전체적으로 촬영해 놓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파손 여부야 차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동영상으로 도로 상태나 주위 차량의 모습이 있으면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짧은 연휴라 서울에 올라가지 못하고 제주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견인서비스는 오히려 제주가 훨씬 부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이엠피터'가 사는 곳은 산골이라 견인서비스를 받기도 어렵거니와 가장 가까운 정비소도 25킬로는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속도로처럼 시점표지판도 없어 대충 어디 가는 길 중간에 있어요라고 말하면, 찾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계속 휴대폰만 붙잡고 시간은 한없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한국도로공사의 긴급 견인서비스 공지사항. 출처:한국도로공사

 


사고가 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은 미리 정확히 알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일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중의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도 정확한 긴급 견인 서비스 안내문을 설날이나 명절 등 차량이 몰리는 기간에는 홈페이지나 방송을 통해 정확히 알려주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즐거운 설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절대 사고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1. 견인 기사들은 제보비를 주는 조건으로 택시기사나 버스 기사와 연락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2. 견인기사 중에는 무조건 견인을 위한 고리를 차량에 연결하면서 끌고 갈려고 하는데, 함부로 그들 말만 믿고 견인을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본문으로]
  3. 대부분의 견인비용은 견인비 포함 내역의 항목을 합산하기 때문에 고시된 견인비 이외 작업비는 얼마이고,할증은 얼마나 붙고, 후방안전조치 비용이나 대기료는 시간당 얼마인가 정확히 알아보고 견인 서비스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본문으로]
  4. 대부분의 견인기사는 사고난 점을 악용해 고가의 비용을 청구하고 나중에 불만을 제기하면 민원해도 소용없다.재판까지 가자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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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민소비품 생산 꽝꽝 쏟아져

 

 

 

북, 인민소비품 생산 꽝꽝 쏟아져
 
식료 일용품 1.5배 생산 일대 혁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2/09 [05: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현대화 된 평양밀가루 공장에서 각종 당과류(과자) 등이 쏟아지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조선이 당과류를 비롯한 식료품과, 일용생필품 생산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우리민족끼리는 9일 “공화국의 식료일용공업부문에서 새해 첫 달 인민소비품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밀가루가공공장, 평양곡산공장, 선흥식료 공장의 일꾼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은 현대적으로 일떠선 생산 공정들이 더 큰 은을 내도록 설비관리, 기술 관리를 짜고 들면서 생산에서 연일 혁신을 일으켜 사탕, 과자를 비롯한 당과류생산을 계획의 1. 5배 이상으로 늘였다.”고 전했다.

▲ 평양곡산공장에서 흐름식 생산공정을 따라 쉼없이 흘러 나오는 과자, 공장은 CNC로 가동되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신문은 “대동강식료공장, 경련애국사이다공장을 비롯한 공장들에서도 생산돌격전을 과감히 벌려 새해 첫 달에 높은 생산실적을 기록하였으며. 락랑영예 군인수지 일용품공장, 평양 식료품포장재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도 일터마다에서 증산투쟁을 힘 있게 벌려 여러 가지 포장재를 많이 생산하였다.”고 게재했다.

또한 “청진 기초식품 공장, 강계기초식품공장, 회령기초식품공장들에서 간장, 된장을 비롯한 기초식품생산계획을 앞당겨 수행하였다.”고 알렸다.

이어 “현대적으로 꾸려진 평양수지연필공장, 평양화장품공장의 일군들과 기술자, 노동자들은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지니고 생산을 줄기차게 내밀어 필기도구생산과 맡겨진 공업총생산액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고 덧붙였다.

▲ 낙랑구역영예군인 수지일용품공장 © 이정섭 기자


아울러 “평양일용품공장, 신의주법랑철기공장,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강계연필공장, 전천성냥공장의 노동자, 기술자들도 계획수행기간 설비가동률을 높이면서 머리빈침, 연필, 성냥, 법랑철기, 비옷, 장화를 비롯한 소비품생산을 늘였다.”고 강조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식료일용품생산에서 이룩된 성과는 머지않아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며 높은 생산 실적에 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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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수호 남북대화 협력 촉구 결의대회

 

“한반도 평화의 숨통을 열어내자!”
한반도 평화수호 남북대화 협력 촉구 결의대회
 
 
2013년 02월 08일 (금) 16:11:50 강인옥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 박근혜 차기정부에 남북대화와 협력을 촉구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의 농성을 6일 마무리하며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박근혜 차기정부에 남북대화와 협력을 촉구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의 농성을 6일 마무리하며 집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는 평화를 수호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자는 결의의 자리이자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은 첫날 인수위에 공개질문장을 발표했으며 농성을 마무리한 이날은 요구서한을 통해 미국에게는 대북제재와 압박을 중단하고 즉각적인 평화협상 시작을, '원점타격' 등 군사적 대응에 열을 올리는 이명박 정부에는 긴장을 부추기는 일체의 움직임 중단을, 박근혜 당선자에게는 군사적 충돌 위험 행위를 통제하고 대북 특사 파견 등 대화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또한,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심각한 위기국면이라 우려하고 '한미당국과 박근혜 당선자가 이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하거나 의도성을 갖고 강경압박 정책을 추진한다면 심각한 군사적 충돌을 포함하여 매우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될 것이며,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언론이 "긴박한 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언론이 "긴박한 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한다"며 "북 핵실험의 시기나 대처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북이 핵실험을 왜 하는지, 대응타격만이 능사인지'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국가에는 파산을, 사람으로 치면 질식사시키겠다는 것”이라 강력하게 비난하며 '국제조약에도 평등하지 않고 민족적 입장에서도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자는 “한반도 문제에 스스로 주도권을 잡고 평화지향적으로 가야하며 이것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의 결별이자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세계만방에 보여주는 것”이라 촉구하면서 “자주통일진영은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고 박근혜 차기정부를 적극적으로 추동해야한다”고 우리의 과제를 밝혔다.

   
▲ 통합진보당 강병기 비대위원장은 “대화는 사라지고 제재만 있는 위험천만한 국면을 위기라 느끼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통합진보당 강병기 비대위원장은 “대화는 사라지고 제재만 있는 위험천만한 국면을 위기라 느끼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우려하며 차기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으로 북미 핵타결을 내온 것처럼 대북 선제타격 전쟁연습 즉각 중단”을 주장하며 “한반도 평화의 숨통을 열어내자”고 했다.

한국진보연대 최은아 자주통일위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계 한미합동 군사훈련은 단순한 연례적 훈련이라 볼 수 없다며 그동안 겨울철에 대규모 함정이 참가하는 가운데 해상군사훈련이 없었던 점, 한미 해병대훈련도 처음인 점 등을 봤을 때 이는 북을 겨냥한 무력시위의 연장선상이라 했다.

또한, 지난 2011년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실질적 대북 무력시위라 밝힌 바 있다며 이는 대북 적대적 의사이고 지금처럼 군사적 긴장이 첨예하고 심지어 이명박 정부동안 군사분계선 일대에 충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지금의 군사훈련은 남북간 충돌을 더 부추기는 것이라 평가했다.

그는 핵잠훈련, 공격형 대규모 한미연합 상륙훈련들은 군사적 긴장 고조뿐만 아니라 긴장해결을 위한 해법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면서 예정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평화를 위한 협상과 대화를 하는 것이 충돌을 방지할 수 있고 근본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빈민해방실천연대 김영진 위원장은 “상식의 반대는 야만이며 야만은 곧 불통을 의미”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빈민해방실천연대 김영진 위원장은 “상식의 반대는 야만이며 야만은 곧 불통을 의미”한다며 “불통의 박근혜 정부가 과연 통일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박근혜 정부가 될지” 똑똑히 주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북공동선언들을 깡그리 뭉게 버린 야만의 역사가 수치스럽다”며 “통일원로 선생들의 꿈과 옥중투쟁하는 통일인사들의 꿈을 위해서라도 진보진영이 제대로 싸워 당당한 조국을 후대들에게 물려주자”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다시는 진보정치가 난도질당하지 않게 민중진영의 단결을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엄혹한 위기 상황에 더 큰 불을 지르는 전쟁연습을 반드시 중단시키고 진보진영의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투쟁해나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 이날 집회에는 노래패 '희망새'가 출연해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 '5.24조치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통일원로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강인옥 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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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목사님들18대대선부정선거규탄성명서발표

<목사님들의 부정선거 관련 동영상>-꼭 보세요!!!
(서프라이즈 / 명태 / 2013-02-07)

 

기독교목사님들18대대선부정선거규탄성명서발표

 

 

기독교목사님들18대대선부정선거규탄후질문타임


http://korea3d.blogspot.kr/2013/02/1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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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때문에 인생이 바뀐 어느 기관사 이야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2/08 09:32
  • 수정일
    2013/02/08 09: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④] 4분 때문에 인생이 바뀐 어느 기관사 이야기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8 오전 7:37:18

 

<프레시안>은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기획을 통해 기관사의 근무 환경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에는 사고를 낸 기관사의 심리 상태를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지난해에 발생한 '오산대역' 사고는 기관사가 느끼는 압박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족 등의 2차 피해 가능성 때문에 기사에서 실명은 생략했다. <편집자>


돌이킬 수 없는 4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1년여 전인 지난해 1월 15일 오후 7시 46분, 경부선 오산대역 하행선에서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역을 지나쳐 운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 역에서 예정 시간보다 1분 늦게 출발한 이 전동차 기관사는 가속 운전을 했고, 승강장을 지나치는 실수를 했다. 함께 탄 열차 승무원이 비상 제동을 걸었다. 정차 위치에서 312미터 나간 지점에서, 전동차는 멈췄다.
 

▲ 지하철 기관사들은 '사고'에 민감하다. 사고 전에도, 사고 후에도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연합뉴스


기관사는 퇴행(후진)을 해야 했다. 왜 지나쳤을까. 아픈 아이의 건강에 대해 걱정을 하기는 했었다. 기관사는 순간의 실수에 당황했다. 게다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속도를 냈다. 퇴행 시 규정 속도(시속 25킬로미터)를 넘겨 시속 29킬로미터를 찍자 함께 탄 승무원이 다시 비상 제동을 걸었다. 33미터 정도 퇴행한 후였다.

시간이 없었다. 당황한 기관사는 다시 퇴행을 했고 속도 표시판은 시속 46킬로미터를 찍었다. 정차 위치를 다시 지나쳤다. 다시 전방으로 이동해 간신히 승강장에 멈췄다. 승객을 내리고 태운 후 전동차가 움직였다. 예정 시간보다 4분 늦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언론은 이 실수를 크게 보도했다. 한 유력 신문은 "이번에도 기관사 '딴 생각'…코레일, 또 역주행"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관사에게 쏠렸다.

사고 당일 있었던 승무적합성 검사를 보면 해당 기관사는 음주, 질병, 휴양 관계에서 모두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7시간 수면을 취한 상태였다. 건강하던 이 기관사는, 이 4분 때문에 남은 생을 괴로워하다 지난해 6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지는 지탄, 중징계, 그리고…
 

▲ 기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지러운 자필 글씨로 써 내려갔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철은 앞뒤 몇 분 간격으로 직렬 운행된다. 뒤에서 오는 열차와 앞에 가는 열차 사이에서 끼여 4분을 허비한 기관사의 마음도 앞뒤로 폐쇄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은 5일 이 기관사의 유품들과 사고 관련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료를 보여준 철도노조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열차가 3~4분 지연돼 마음이 조급해진 기관사가 속도를 내다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하는 사고도 있었다"며 "오산대역 사고 때도 몇 분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빠른 속도로 퇴행을 했다. 결국 그것이 징계의 주요 사유가 된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음날 중징계가 내려졌다. 43일간 독방에서 고등학생이 영어 단어를 외울 때 숙제로 '깜지'를 쓰듯 철도 운전 규정을 필사해 검사를 받았고, 복도 청소도 해야 했다. 이전에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징계 방법인 '기관사 인증 재심의'까지 거쳐야 됐다. 일종의 기관사 면허 시험인 인증 심의를 다시 받는다는 것은, 대학생중학교 입학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징계로 인증 심의를 다시 받게 한 전례는 없었다. 굉장히 굴욕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관사는 그해 2월 28일 업무에 복귀했지만, 조울증에 시달렸다. 동료 기관사들은 당시 이 기관사가 "어느 날은 '난 이제 운전을 할 수 없어'라고 좌절하다가, 그다음 날에는 '난 운전이 천직이야'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 기관사는 감봉 처분을 받고 전직을 요청해야 했다. 그는 '차량 검수'로 전직을 요청하면서 그해 6월 22일, 삐뚤빼뚤한 자필로 '고충신청서'를 힘겹게 작성했다. 그날 이 기관사와 승무사업소장의 면담 내용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는 그날 소장과 담당 팀장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귀가했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아파트 옆 동에 올라가 투신했다.

자살한 기관사가 남긴 기록…"미친 듯이 지적 확인"

이 일이 있은 후 철도공사 노사는 징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별개로 이 기관사가 남긴 기록은 사고를 겪은 기관사의 심리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 '안전 규정'을 필사하는 굴욕을 당하고 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첩에 메모를 했다. 자신에게 '호통'을 치는 형식을 취한 모습도 확인된다.

이 기관사는 "잊지 말자 오산대역 사고(잡념)"라고 큼지막한 메모를 했다. 수첩 곳곳에 "지적 확인(기자 : 기관사가 운전을 할 때 일일이 손으로 계기판 신호등 등을 가리키면서 신호 상황, 작동 상황 등을 점검하는 일) 환호 응답의 생활화", "자신을 보호하고 업무상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하여"라고 적었다.

그는 특히 "지적 확인"을 수차례 반복해 적었다. "큰소리로 팔을 곧게 펴고 정확히 발음한다", "미친 듯이 지적 확인, 틀리면 바로 기립 집무, 창문 개방", "위규 운전은 엄벌에 처함", "비상(제동)을 아까워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을 지적 확인으로 막을 수 있는데 왜 안 하려고 하느냐. 정년까지 무사히 가려면 지적 확인은 필수, 규정에 입각한 조치는 꼭 필수, 위규 운전(조치는) 최악(최대의) 벌(중징계)이다"라고 자신에게 처절하게 말을 걸었다.

오산대역 퇴행 시 속도 조절을 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 듯 "임의 퇴행하면 죽는다 (명심) X된다(절대 퇴행 금지)"라는 식으로 속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사고 발생 과정과 문제점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지적 확인만이 살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꼭 꼭 (지루함)" 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기관사들은 수도 없이 사고를 겪는다. 지난 4일 부산 지하철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20대 여성이 맞은편에서 들어오는 전동차 앞으로 뛰어드는 일도 일어났다. 다행히도 그 여성이 곧바로 선로 사이 기둥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이 신문 사회면 '단신'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눈앞에서 뛰어드는 여성을 본 기관사에 대한 소식은 그 단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기관사는 "자살하기 위해 눈앞에 뛰어드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는 기관사들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 사고를 겪고 내일 운행 걱정을 하는 기관사의 마음은 아플 수밖에 없다.
 

▲ 기관사가 남긴 수첩의 일부. ⓒ프레시안(박세열)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②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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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4백억 횡령 '사학 대도(大盜)' 어떻게 풀려났지?


 

 

 



2012년 11월 대학 등록금 등 교비 1004억원을 자기 재산처럼 사용했던 서남대학 설립자 이홍하라는 사람이 구속됐습니다. 학생들의 피 같은 등록금을 횡령한 이홍하는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병보석으로 풀려납니다.

75살의 고령이고 건강 악화가 문제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구치소에서도 꾸준히 팔굽혀펴기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위독하다고 재판부는 병보석을 허가했습니다.


혈장 확장 스텐트 삽입술은 입원기간이 1주일에 불과한 수술이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병보석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던 심장병 수술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홍하는 구속된 지 69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사위가 1004억원 교비 횡령 재판을 맡은 재판장과 사법원수원 (25기) 동기였습니다

서남대학 설립자 이홍하라는 사람은 이번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수차례 교비 횡령으로 구속됐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풀려남으로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줬습니다.

'목욕탕집 주인, 사학 재벌이 되다'

서남대학교 설립자 이홍하는 원래 전남 고흥 태생으로 조선대 동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순천고와 광주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쳤던 교사였습니다. 부인 서복영 한려대 총장 역시 고등학교에서 가정과목을 가르쳤습니다.

 

 

▲이홍하의 목욕탕과 이홍하,서복영의 모습. 출처:MBC 뉴스캡쳐,

 


이들 부부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광주에서 목욕탕을 운영해 돈을 모았고, 1977년 부동산에 투자해 모은 돈 5천만원으로 남편 이홍하의 홍자와 부인 서복영의 복자를 합쳐 '홍복학원'을 설립합니다.

홍복학원을 설립한 이홍하는 1979년 옥천여상을 시작으로 대광여고와 광남고를 설립했으며 91년 전북 남원에 서남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홍하가 세운 학교들. 출처:MBC 뉴스캡쳐,

 


이홍하와 서복영은 93년 광주예술대학을 시작으로 94년 광양전문대(광양대) 95년 한려산업대(한려대) 등을 설립하는데 1년마다 대학 1개씩을 설립하는 초스피드 대학 설립의 재능을 선보입니다.

1998년 이홍하는 경기도 안산에 '안산산업대'를 교육부에 인가 신청을 하기도 했고, 광주보건전문대를 비롯해 충남 아산에도 대학을 설립하려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빼내 학교를 세우다'

이홍하가 이처럼 대학을 초스피드로 설립할 수 있는 배경은 자신의 돈이나 재산이 아닌 오로지 학생들의 등록금이었습니다. 이홍하는 초기에 목욕탕과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을 종잣돈으로 옥천여상을 설립합니다.

상업 학교의 특성상 실습실이 필요했지만, 실습 시설은 책상과 의자,칠판,백묵이 전부였습니다. 오죽하면 사무용품 살 돈이 없어 선생들이 자신의 돈으로 사서 수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몽땅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이홍하는 이 돈을 가지고 학교를 계속 늘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이홍하는 처음 세운 학교에서 나온 학생들의 등록금을 가지고 땅을 먼저 사고 모자란 돈은 직원이나 교수들의 명의로 대출을 받습니다. 총 151건 41억원을 교수와 직원들 명의로 대출받은 이홍하는 이 돈을 가지고 유령 건설회사와 짜고 가건물을 몇 동 지어 놓고 학교 인가를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홍하는 무려 7개의 학교를 설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종 부정과 불법, 부실 공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풀 뽑는 대학교수, 학위가 취소된 학생'

이홍하는 최소한의 인건비만 빼고는 학교에 들어오는 수입 대부분(등록금,교육부 지원 예산)을 모두 다른 학교를 설립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러다보니 학교 건물관리는 교수와 학생이 하고, 기자재,실습실은 부족하고 건물은 수년째 공사만 하고 있습니다.

 

 

▲이홍하가 세운 한려대,서남대의 부실공사와 비리운영을 1999년데 보도했던 MBC카메라 출동. 출처:MBC 뉴스캡쳐,

 


어디 중고 재활용센터에서 주운 고철 의자와 책상을 몇 개 놓고 강의실이라고 만들어 수업을 들으라 하기도 하고, 건축허가도 받지 않은 가건물을 동아리방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운동장 풀을 교수들에게 뽑으라 강요하기도 했는데, 교수들이 거부하자 학교 운동장은 잡초로 무성했습니다. 물이 새는 건물은 기본이고 대학의 기본인 도서관조차 수년째 공사만 하고 있습니다.

 

 

▲홍복학원 대광여고 전교조 교사들이 이홍하 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인 장면.

 


이홍하가 세운 홍복학원의 대광여고와 서진여고 교사들은 사학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연금기여금 납부 독촉장을 받았습니다. 급여에서 원천징수되는 연금기여금을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공제하고도 사학연금관리공단에 내지 않은 것입니다.

대광여고 교사들은 출장을 다닐 때마다 자신들이 사용했던 경비를 받지 못한 일은 다반사였고, 재단의 강요에 의해 개인 명의로대출을 받아 재단 측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했는데 20명이 넘는 교사들이 적게는 4천만 원에서 1억원의 대출을 받아 재단에 빌려준 것입니다.

 

 

▲서남대학교 부속 병원 모습. 출처:지역포털 사이트.

 


교육과학기술부는 이홍하가 세운 서남대를 특별감사한 결과 서남대 의대 졸업생 134명의 학위를 취소하라고 서남대에 요구했습니다. 원래 의대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실습과정 최소 이수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인턴 수련병원의 지정 기준에 미달하는 서남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외래교수 자격이 없는 의사에게 의대생들이 실습을 받은 것입니다.

이홍하가 세운 학교는 돈이 없으니 자격 있는 교수진을 섭외하지 못했고, 병원 운영비가 없어 병원이 부실하니 환자가 오지 않아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실 대학을 세운 이홍하라는 인물 때문에 비싼 등록금 내고 의대를 다녔던 134명의 서남대학교 의대 졸업생은 학위도 받지 못한 무자격 의사들이 된 것입니다.

'대학은 나의 돈벌이 수단, 온 가족이 돈 빼먹는 금고'

이홍하가 등록금을 가지고 학교만 세웠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대학을 자신과 가족, 친인척들의 사금고로 이용하면서 수십 억원대의 재산을 빼돌리니 엄청난 부실과 비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홍하가 세운 한려대는 동생과 부인,조카와 측근이 운영했다. 출처:MBC 뉴스캡쳐,

 


이홍하가 세운 한려대학교의 재단 이사장은 이홍하의 동생 이홍수였고, 총장은 부인 서복영, 서무과장은 조카 한윤수,교무처장과 학생처장은 자신의 측근으로 모두 임명했습니다.

부인과 조카,동생,측근으로 채운 대학교가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했고, 이들은 대학 설립과정에서 건설회사와 짜고 수백억 원의 돈을 빼돌렸습니다.

 

 

 


서남대는 캠퍼스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이홍하의 부인,매제 등이 이사로 있는 건설회사에 65억 원을 과다 지급했습니다. 건설회사에 과다하게 돈을 지급했지만, 학교 건물은 부실투성이였습니다.

서남대 건물중 하나인 봉황관은 서남대에서 큰 건물 중의 하나인데 건물 자체가 15도 기울어져 있고, 아예 지어놓고도 건물을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완공도 하지 않았는데 공사비는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수십억 원의 돈을 더 받은 건설회사는 이 과다 지급된 돈을 빼돌려 이홍하와 그의 부인 등의 주머니에 넣었고, 이홍하는 이 돈을 가지고 아들에게 수십억 원대의 부동산을 물려주는 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등록금으로 구입한 땅을 재단명의가 아닌 이홍하 개인과 아들 명의로 바꾼 증거자료. 출처:MBC 뉴스캡쳐,

 


경기도 화성군이 청사 이전을 하는 남양면 주변 토지를 이홍하는 대학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현지인을 내세워 토지를 위장으로 매입했습니다. 이 토지는 재단 명의가 아닌 이홍하 명의로 이전됐고, 나중에 이홍하 아들의 명의로 바뀌었습니다.

학교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땅을 샀지만 재단도 아닌 이홍하의 아들 재산으로 바뀐 것입니다.

' 사학 대도(大盜)가 살 수 있는 나라 '한국'

홍복학원 이사장 이홍하는 1999년부터 수차례 사학비리로 교수,학생,교수협의회 등으로 고발을 당했고, 방송에도 몇 번이나 재단비리가 방영됐던 인물입니다. 여기에 교비 횡령과 사문서 위조,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건재했고, 대한민국은 결코 그를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이홍하는 1998년 교비 409억원 횡령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9개월을 선고 받았지만, 최종 판결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풀려났습니다. 이마저도 2개월 만에 사면복권됐는데, 당시 법무부 장관 박상천은 이홍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2007년 교비 3억 8천만원 횡령으로 다시 구속됐던 이홍하는 징역3년2개월의 1심 결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징역 1년6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받아 풀려났습니다.

2012년 천억대의 교비 횡령 혐의로 이홍하가 구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가 더는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검찰이 조사를 받으라고 출두하라고 했지만, 명령을 듣지 않아 검찰이 구치소까지 찾아가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는 이마저도 거부했고 결국 구치소 수감 69일 만에 '생명 위독'이라는 이상한 법원의 판단에 따라 따뜻한 병원 특실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1999년 방송됐던 이홍하 홍복학원 이사장 관련 카메라출동. 출처:MBC 뉴스캡쳐,

 


오늘 사용했던 이미지는 대부분 1999년 MBC 카메라출동에 나왔던 화면입니다. 그런데 당시 한려대 사태를 수차례 방송에서 보도했지만, 그는 건재했고, 그동안 서남대에서 천억 원대의 돈을 자녀 유학비용이나 재산 상속, 자신들의 호화로운 생활비로 사용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학 재벌의 비리는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그러나 방송에 보도되고 구속됐어도 그는 여전히 보석으로 풀려나 학교 운영에 관여했습니다.

교육사업을 고철장사처럼 생각하는 사학 재벌은 이홍하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정치인과 법이 힘을 합쳐 그들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정치] - '차기 서울시장' 노리는 사학재벌딸 나경원 의원.
[정치] - 사학재벌 딸 나경원을 위한 사학법 개정안

우리가 흔히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훔친 조세형을 대도라고 부릅니다. 그를 대도라고 부른 이유는 부잣집 재산을 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홍하와 같은 사학 대도는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의 피 같은 등록금을 훔쳤습니다. 이들이 훔친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부모들의 희망까지도 훔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훔친 사학 대도가 '대한민국'이니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1999년부터 불거진 비리를 2012년까지 처단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정치과 법은 사학 대도을 방조한 공범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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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막강한 국력으로 짓부셔 버릴 것”

 

 

 

북 “군력은 곧 국력이다”
 
“무진 막강한 국력으로 짓부셔 버릴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2/07 [10:1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우리민족끼리는 이례적으로 이번 기사를 통해 2012년도 태양절 열병식에서 공개한 화성 13호 사진을 공개했다. © 이정섭 기자

북이 지난달 22일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 채택 이후 강경 대미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반공화국적대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셔 버릴 보복의지로 심장을 불태우고 있다“고 밝혔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우리는 위대한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력강화에 계속 큰 힘을 넣어 조국의 안전과 나라의 자주권을 믿음직하게 지키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기여하여야 한다.”는 김정은 원수의 말을 게재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떨치는데서 경제력을 우선시하는 나라도 있고 문화와 전통을 내세우는 나라도 있다. 지식경제시대인 오늘날 세계적 범위에서 과학기술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과학기술발전수준을 국력평가를 위한 기본징표의 하나로도 보고 있다. 이것은 현 시기 강력한 국가건설지향이 세계적 추세로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조선의 국력이 크게 신장했음을 과시했다.

이신문은 “강력한 국가는 강한 국력을 지닌 나라를 의미한다. 강한 국력에서 민족의 자부심과 영예가 생긴다.”며 “국력을 강화하자면 모든 징표들이 발전해야 하지만 특히 군력이 강해야 한다. 아무리 과학기술과 역사와 문화가 발전하였다고 하여도 군력이 약하면 그것이 무의미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군력이자 국력이며 국력이자 군력이라고 말하는 것”라고 전해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표명했다.

신문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언급하고 “우리 공화국처럼 미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압력과 침략위협을 받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연합세력은 사회주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오랜 세월 피를 물고 달려들었다.”며 이후 미국에 의한 침략적 의도와 고립압살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공화국이 제국주의자들의 무모한 군사적 침략책동을 단호히 짓 부셔 버릴 수 있은 것은 바로 총대가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수십년간 국방력강화에 선차적 힘을 넣으면서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자립적인 국방공업을 발전시켜왔다.”며 민간경제에 우선해 국방공업에 힘을 기울여 왔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공화국의 전쟁억제력, 그 불패의 위력은 조선반도정세가 초긴장상태에 처할 때마다 실천에서 뚜렷이 확증 되었다.”며 “만일 우리 공화국이 틀어쥔 총대가 강하지 않았더라면 조선반도에서는 몇십번 더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 우리 공화국은 탁월한 선군령장의 손길아래 세계적인 군사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섰으며 위성제작 및 발사국, 핵보유국으로 되었다.”고 주장하고 “우리 인민이 최 근년간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 고립 압살 책동 속에서도 강성국가건설의 한길에서 경이적인 성과들을 다 계단으로 이룩할 수 있은 것도, 공화국의 종합적 국력을 온 세상에 힘 있게 과시 할 수 있은 것도 천출명장의 걸출한 영도에 의해 억세게 벼려진 백두산총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군력이자 국력이라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횡포 무도한 책동이 노골적으로 감행되고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자주권이 난폭하게 유린되는 세계정세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며 “제국주의의 역사는 침략과 약탈의 역사이다. 20세기에 기록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은 제국주의자들의 군사력에 의거한 노골적인 침략 전쟁 이었다.”고 미군 침략사를 고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군사적 우세와 힘의 만능론을 떠들며 다른 나라의 자주권을 유린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 본성은 냉전 시기는 물론 그것이 종식된 후에도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그 교활성과 횡포성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미국의 횡포를 거듭 비난했다.

신문은 “제국주의자들은 제재와 압력으로 반제자주적인 나라들의 군사적 힘을 약화시키고 주권국가들을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방법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 경제는 발전하였어도 군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결과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공갈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일부 나라들은 물질생활은 풍요하지만 국방력이 약한 것으로 하여 제국주의자들이 부당한 요구조건을 내대고 큰소리만 쳐도 겁을 먹고 있다.”고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폭로했다.

이 매체는 “이것은 총대를 강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족하고 풍부한 물질생활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제국주의자들에게 눌려 나라의 정치적 독립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엄연한 진리, 군력이자 국력이라는 역사의 철리를 웅변적으로 새겨주고 있다.”고 피력했다.

또한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굳건히 다져온 무적의 군력, 우리 공화국의 무진 막강한 국력으로 반공화국적대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짓 부셔버릴 보복의지로 심장을 불태우고 있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신문은 마지막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앞으로도 군력이자 국력이라는 역사의 철리를 굳건히 새겨 안고 위대한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나아 갈 것”이라며 “조국의 안전과 나라의 자주권을 믿음직하게 지키고 동북아시아, 나아가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려는 공화국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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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민경협 "개성공단 건들면 군사지역으로"

 

北 민경협 "개성공단 건들면 군사지역으로"
통일부 반출물품 검색강화에 '대응조치' 밝혀 (전문)
 
 
2013년 02월 07일 (목) 15:24:52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북한 내각 산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는 "개성공업지구를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군사지역으로 다시 만들 것"이라며 6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 4일 통일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087호에 따라 개성공단 반출물품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발표에 따른 대응이다.

 

   
▲ 개성공단종합지원센터 전경. [자료사진-통일뉴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민경협은 "통일부 대변인은 개성공업지구 통로를 통해 유엔이 규제하는 물품들이 북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들의 조치가 유엔 제재 결의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라고 노골적으로 줴쳤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유엔 결의를 코에 걸고 개성공업지구에 반입되는 물자들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려는 것은 또 하나의 반공화국 대결 망동이며 북남관계를 더욱 파국으로 몰아넣는 반민족적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민경협은 "개성공업지구는 역사적인 6.15통일시대의 산물로 우리가 군사적으로 극도의 첨예한 최전연지역을 통채로 남측에 내주어 건설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협력의 상징"이라며 "우리가 마치 개성공업지구에서 큰 이득을 얻는 듯이 떠들고 있지만 그것은 어처구니 없는 역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대인 개성공업지구를 통채로 내어준 그 용단을 무엇으로 다 계산할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제재 소동에 괴뢰당국의 다른 부서도 아닌 대북정책을 주관한다는 통일부와 그 수장이 앞장에 서서 피대(핏대)를 돋구는 것이야 말로 경악할 일"이라며 "개성공업지구에 대해 제재요 뭐요 하는 것은 결국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격이 될 것이며 그 후과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6.15정신의 견지에서 개성공업지구의 존속을 바라지만 만일 그 누가 어떤 형태로라도 공업지구를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우리에 대한 극악한 제재로 간주하고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모든 특혜를 철회하고 그 지역을 우리의 군사지역으로 다시 만드는 등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우리가 이번에 취한 조치는 유엔 결의에 따라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개성공단을 보다 안정화하기 위한 방침"이라며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는 등의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제재놀음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전문)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대변인 담화]

지난 4일 괴뢰통일부는 <국회>업무보고라는 자리에서 유엔의 <대북제재결의>를 <실효적으로 리행>하고 <상응한 대가를 부과>할 것이라고 하면서 개성공업지구에 들어가는 물품들에 대한 점검을 강화할 거이라고 공언하였다.

이에 대해 괴뢰통일부 대변인은 개성공업지구 통로를 통해 유엔이 규제하는 물품들이 북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들의 조치가 유엔 <제재결의>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라고 로골적으로 줴쳤다.

괴뢰패당이 유엔<결의>를 코에 걸로 개성공업지구에 반입되는 물자들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려는 것은 또 하나의 반공화국대결망동이며 북남관계를 더욱 파국에 몰아 넣는 반민족적범죄행위이다.

다 아는바와 같이 개성공업지구는 력사적인 6.15통일시대의 산물로서 우리가 군사적으로 극도의 첨예한 최전연지역을 통채로 남측에 내주어 건설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협력의 상징이다.

하기에 개서공업지구는 선포된 첫날부터 온 겨레와 전세계의 커다란 관심을 끌었으며 내외에서 호의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명박패당은 집권하자마자 북남공동선언들에 대한 부정, 유린말살에 악랄하게 매달리면서 6.15산아인 개성공업지구를 없애버리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으며 특히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자기측 인원들과 물자를 제한, 차단하는 등으로 공업지구를 질식시켜보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역적패당은 개성공업지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서도 심히 우롱하면서 한사코 외면하고 방해하였다.

역적패당이 우리가 마치 개성공업지구사업에서 큰 리득을 얻는 듯이 떠들고 있지만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역설이다.

우리가 개성공업지구를 내준 것은 전적으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것이며 남조선의 중소기업들과 령세민들에 대한 동포해의 정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더우기 우리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대인 개성공업지구를 통채로 내여준 그 용단을 무엇으로 다 계산할 수 있겠는가.

이번 <제재>소동에 괴뢰당국의 다른 부서도 아닌 <대북정책>을 주관한다는 통일부와 그 수장이 앞장에 서서 피대를 돋구는 것이야말로 경악할 일이다.

이런 자들이 북남관계의 길목에 버티고 서서 동족대결에 미쳐 날뛰고 있으니 어찌 오늘의 파국적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개성공업지구에 대해 <제재>요 뭐요 하는 것은 결국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격으로 될 것이며 그 후과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제재>놀음이 우리에 대한 압력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오산은 없다.

우리는 6.15정신의 견지에서 개성공업지구의 존속을 바라지만 만일 그 누가 어떤 형태로라도 공업지구를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우리에 대한 극악한 <제재>로 간주하고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모든 특혜를 철회하고 그 지역을 우리의 군사지역으로 다시 만드는 등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로하여 초래될 엄중한 후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역적패당이 지게될 것이다.

괴뢰역적패당은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무분별한 <제재>놀음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는가를 똑바로 알고 헤덤벼야 한다.

주체102(2013)년 2월 6일
평양 (끝)

(출처-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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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제왕 흰꼬리수리, 총알 4발 박힌 채 신음

하늘의 제왕 흰꼬리수리, 총알 4발 박힌 채 신음

 
김영준 2013. 02. 06
조회수 3819추천수 1
 

김영준의 야생동물 구조 24시

멸종위기종 1급, 피투성이인 채로 숨만 깔딱깔딱

날개 쫙 펴면 2.4m, 무게 7.5㎏까지...수명 21살

  
흰꼬리수리의 영명은 ‘흰 꼬리를 지닌 바다 수리’라는 뜻의 ‘White-tailed sea eagle’입니다. 미국의 국조인 흰머리수리(bald eagle, Haliaeetus leucocephalus, leuco-는 흰, -cephalus는 머리라는 뜻입니다)와 같은 바다수리류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밖에도 참수리가 살고 있습니다. 참수리는 ‘스텔라의 바다 수리’란 뜻의 ‘Steller‘s sea eagle’로 부릅니다. 학명은 Haliaeetus pelagicus로 여기서 pelagicus는 바다 혹은 대양을 뜻합니다. 학명을 잘 알아보면 동물의 일반적인 특징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ag1.jpg » 다 자란 흰꼬리수리.

eag2.jpg » 다 자란 참수리.  

eag3.jpg » 검독수리 어린 새.  
 
흰꼬리수리의 학명은 할리아에투스 아빌리실라(Haliaeetus albicilla)로 Hali- 는 바다/소금 -aeetus는 수리 즉 바다수리라는 의미이며, albi- 는 하얗다는, cilla-는 꼬리를 뜻합니다. 흰꼬리 바다 수리라는 뜻이죠.
 
우리나라에서는 흰꼬리수리는 멸종위기 1급, 1973년 천연기념물 제243-3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는 동물임에도 총을 아무렇게나 갈겨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1월19일 충남 금산군청에서 부상당한 흰꼬리수리가 있다는 신고가 왔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등에서 피를 흘리고 입안에 피를 머금은 흰꼬리수리 성조가 다리도 움직이지 못한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직감컨대 총상이었죠.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천연기념물은 국가지정문화재로서 제92조는 “국가지정문화재를 손상, 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류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을 포획ㆍ채취ㆍ훼손하거나 고사시킨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하고, 이를 상습적으로 어긴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함께 물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엄한 벌칙에도 총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총상으로 추정된 흰꼬리수리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로 옮겨와 엑스선 사진을 찍었더니 총알 4발이 목과 복부, 다리에 박혀 있었고 가슴을 관통하여 엉덩이뼈를 뚫고 나와 숨이 새어나오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보기도 드문, 아름다운 새에게 총질을 해대는 인간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요? 과연 입으로 밥이 넘어갈까요?
 
혈액검사는 더욱 비참했습니다. 혈액내 고형물질의 양은 통상적으로 37~41%는 돼야 하는데 이 흰꼬리수리는 고작 17%였습니다. 피를 심각하게 많이 흘린 것이었죠. 숨쉴 때마다 등에 난 관통상을 통해 피거품이 끓어오르고, 숨이 새어나왔습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eag4.jpg » 센터에 도착한 흰꼬리수리입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eag5.jpg » 입가에는 피가 묻어있고, 척추를 다쳐 다리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eag6.jpg » 등에 난 총상은 관통상입니다. 날고 있는 개체를 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eag7.jpg » 저 아름다운 눈빛은 과연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eag8.jpg » 호흡기를 다쳐서 숨을 쉬면서 피가 입안으로 넘어옵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동물에게 이런 아픔을 줄 권한을 가졌을까요?

eag9.jpg » 숨이 새어나오면 호흡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어 일단 관통상을 폐쇄해 두었습니다만, 내부장기는 얼마나 다쳤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eag10.jpg   

eag11.jpg »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한반도에 찾아왔을까요? 차라리 멀고 먼 동토에서 그냥 어렵더라도 버털 것이지.  
  
eag12.jpg » 가슴에도 큼지막한 상처가 있습니다.  
  
eag13.jpg » 적어도 한개 이상의 총알은 관통해 버렸고 나머지 4개의 총알이 몸안에 남아있습니다. 흰점이 탄환.
 
eag14.jpg » 내부장기가 훼손되었지만 현재의 몸 상태로는 내부장기를 수술하기 위해 마취를 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1월 초순 방문했던 경북 울진군 왕피천 하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흰꼬리수리 어린 새 2마리와 참수리 어린 새 한마리가 날고 있는 사이로 원격조정 모형비행기를 몰아대며 위협하던 사람들입니다. 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가진 것일까요?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동물을 돕기 위한 노력도 있습니다.
 
지난 2011년 1월 20일에 발견된 흰꼬리수리 어린 새입니다. 농약에 중독된 뒤 낙동강변에 쓰러져 있다가 다리가 물과 함께 얼어붙어 상주 의용소방대분들이 얼음을 깨고 구조한 흰꼬리수리 어린 개체입니다.


<iframe title="동물(조류)구조" height="360" src="http://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7gBMJm8-fNk$&play_loc=undefined" frameborder="0" width="640" scrolling="no"></iframe>
 
eag15.jpg »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을 움직이는 인대의 손상이 심해서 발가락을 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ag16.jpg » 발가락을 펴지 못해 발가락 등 부분이 손상당하는 것을 막고자 인조잔디를 깔아주었죠.  
  
eag17.jpg » 또한 다리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가죽끈으로 양다리를 묶어두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발목에 해당하는 부위에 욕창이 생겨 추가적인 손상을 막고자 부목을 대두었죠.
 
최종적으로 2개월 정도 극진한 간호 끝에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이 개체는 드디어 비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상현님의 도움을 얻어 야생 훈련을 진행하였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eag18.jpg  
 
eag19.jpg » 동상으로 인해 좌측 다리 아래쪽의 깃털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요.  

eag20.jpg  
 
eag21.jpg » 때때로 이러한 훈련은 야생 적응에 도움이 됩니다.   

흰꼬리수리는 어떤 새인가

Yathin sk_660px-White-tailed-eagle.jpg » 노르웨이에서 촬영한 흰꼬리수리. 사진=야틴 S K, 위키미디어 코먼스  
 
흰꼬리수리는 매우 큰 대형 수리종이다. 수리라고 하면 말 그대로 큰 맹금류를 뜻한다. 보통은 3㎏이 넘어가는 종을 가리킨다. 전신은 약 66~94㎝에 달하고 양 날개를 편 길이는 1.8~2.4m에 이를만큼 큰 조류이다.

 

암컷은 일반적으로 4~6.5㎏에 달하며, 수컷은 3.1~5.4㎏까지 나가지만 암컷이 여전히 더 크다. 유럽 스코틀랜드에서 확인된 가장 큰 개체는 7.5㎏에 달할 정도였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거대하고 무거운 수리 종으로 알려져 있다.

 

날개는 문짝처럼 넓고 길게 발달해 있고, 큰 머리에 크고 두터운 부리를 가지고 있다, 다 성장한 성체는 회백색의 몸깃이 있고 날개는 다소 검다. 하지만 이름처럼 꼬리는 완전히 하얗게 변한다. 부리와 다리는 노랗다. 어린 개체는 부리와 꼬리가 검고 꼬리는 얼룩덜룩하다. 나이가 들수록 꼬리깃과 부리의 색은 점차 변해간다.
 
야생에서는 25년 이상 생존하며, 평균적으로 21년 정도를 산다고 알려져 있다.
 
북유럽과 아시아 북부에서 주로 서식한다, 유럽에서는 노르웨이의 연안에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고 2008년도 조사에서 전 세계에 약 9000~1만 1000쌍의 개체가 살고 있다. 한반도를 찾는 흰꼬리수리는 주로 러시아에서 겨울에 찾아오며, 남해안의 신안군 일부 섬에서는 번식 개체군이 있다.
 
지난 겨울에 날려보낸 흰꼬리수리 어린 새는 아무르강 중앙부에 위치한 섬에서 여름을 났고, 현재 동해안에 들어와 있는 게 확인되었다.
 
흰꼬리수리는 디엔에이(DNA) 연구 결과 북미에 서식하는 흰머리수리와는 매우 유사종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북태평양에 서식하던 개체군이 동부로 이동하면서 북미의 흰머리수리로 진화하였고 서부로 이동한 개체군은 유라시아 대륙에 정착하여 흰꼬리수리가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먹이는 매우 다양하고 기회주의적 먹이습성을 보인다. 즉 보이는대로 먹으며, 계절에 따라 먹이를 달리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먹이는 물고기, 조류와 포유류를 포함한다. 종종 청소동물로서 살아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수달 같은 포식동물이나 가마우지 등 다른 조류가 잡은 먹이를 가로채기도 한다. 동물사체를 잘 먹는데, 고래류부터 가축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토끼와 오리류도 잘 잡는 맹금류이기도 하다. 하루에 필요로 하는 먹이량은 500~600g 정도이다.
 
유럽에서는 검독수리와 서식권이 겹치기도 하는데 검독수리에 비해서 더 높은 밀도로 서식이 가능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검독수리에 비해서 덜 활동적이기도 하지만, 장의 길이가 더 길어서 영양분의 흡수력이 나아 적은 먹이로도 더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공격성에 대한 재미있는 보고가 있는데, 1932년 6월 5일 노르웨이의 한 시골에서 흰꼬리수리가 4살짜리 여자 아이의 옷을 뒤에서 잡아채 들고서 해발 800m 정도에 위치한 둥지로 들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약 1.6㎞를 날아갔는데 둥지에서 약 15m 정도 낮은 절벽 모퉁이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주민이 재빨리 수색대를 조직해 둥지로 찾아갔더니 아이는 많이 다치지 않았는데, 발톱이 아이의 옷만 잡아서 들고 온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흰꼬리수리는 약 4년에서 5년 정도 성장해야 번식을 할 수 있다. 한번 짝을 지으면 평생을 같이 하며, 짝이 죽어야 다른 짝을 맞는다. 이러한 짝짓기는 텃세권이 명확해진 이후에 가능하다. 아주 특징적인 공중제비 구애를 펼치는데 공중에서 서로 발톱을 끼워서 붙들고 지면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떨어지는 구애 행동을 한다.
 
둥지는 주로 절벽이나 나무의 중간 가지를 이용해서 만든다. 대부분 둥지는 다시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몇 세대에 걸쳐 수 십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슬랜드의 한 둥지는 150년 넘게 사용된 적도 있었다.
 
세력권은 일반적으로 30~70㎢ 정도이고 거의 바닷가를 끼고 살지만 경우에 따라 큰 호수나 강을 따사 살기도 한다. 검독수리의 세력권과 겹치기도 하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검독수리가 산악이나 황무지 지대를 선호하는데 반해 흰꼬리수리는 연안이나 바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단 성장을 하게 되면 더는 천적이 없는 최상위 포식자가 된다.
 
알은 매년 1~3개 정도를 낳고 3월에서 4월에 2~5일 간격으로 하나씩 낳는다. 알을 품은 지 약 38일 뒤 부화한다. 5~6주 정도 성장한 이후부터 스스로 먹이를 먹을 수 있으며 11~12주 정도 자라면 이소를 시작하여 둥지 주변을 돌아다닌다. 이후 6주에서 10주(생후 네달 반에서 5달 반 정도) 정도 더 부모들이 돌본다.
 
폴란드에서 설치한 흰꼬리수리 둥지의 웹캠으로 이 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글은 위키피디아의 관련 항목을 참고했습니다. )

 

글·사진 김영준/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전임수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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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선임수의관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의 공동저자, <천연기념물 야생동물의 구조 치료 및 관리>의 대표저자. 단순한 수의학적 지식보다 야생생물의 생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의사로, '야생동물소모임'의 회원이다.
이메일 : ecove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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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제의 역설, 박근혜 정부가 되풀이해선 안 돼"

[인터뷰]이효성 전 방송위 부위원장 "사회 제 세력의 합의, 깨선 안된다"

도형래 기자 | media@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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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2.07 02:54:58

 

 
▲ 이효성 전 방송위 부위원장 ⓒ미디어스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물었다. 이효성 교수는 “방송을 합의제 위원회 체계에서 관할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며 “방송정책의 독임제 부처 이관은 역사의 퇴보”라고 지적했다.

 

 

이효성 교수는 2기 방송위원회 부위원장과 방송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학계 원로교수 가운데 한 명이다. 정부가 방송과 언론을 직접 통제하던 1980년대 말 ‘정치언론’이란 책을 출간해 정부의 직·간접적인 언론 통제를 비판했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판 언론학자다. 특히 합의제 방송위원회의 틀을 만든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의 논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효성 교수는 방송개혁위원회를 통해 방송이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합의제 위원회로 넘어오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의의를 설명하며 방송과 언론이 정부부처의 통제를 받는 과거로 회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효성 교수는 “민주통합당이 안 되는 것은 안 되도록 막아야 한다”며 야당으로서 원칙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이효성 교수 인터뷰 전문이다.

 

-방송정책을 어디에서 담당하느냐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시작도 안했는데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딴죽을 건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칙과 발목잡기는 다르다. 방송이나 언론정책을 합의제 기구가 수행하는 게 원칙이다. 민주당이 여당이었을 때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해왔던 것을 생각해 보라. 민주당이 그들처럼 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적어도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야당으로서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당도 대선 당시 ICT총괄부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논란이 있다. 민주당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의 공약을 뒤집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ICT를 산업적 측면에서 진흥하는 부처와 언론정책을 전담하는 조직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대선 때 ICT 진흥을 위한 총괄부처를 두고, 방송정책은 별도의 합의제 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것을 제안했다. 언론 정책, 특히 방송정책은 전례가 있어서 정부 부처로 되돌리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기본적으로는 과학부처다. 게다가 ICT관료가 방송정책을 관장하게 된다. 방송은 여론을 수용하는 합의제 기구에서 맡아야 한다. 적어도 방송에 관한 규제 정책 기능은 산업적 측면보다 정치적인 측면, 공정성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 돼야한다.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과 방송을 육성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독임제 부처가 아니라 합의제 기구에서 방송에 대한 규제, 진흥, 정책을 담당해야 한다. 독임제 부처에서 방송 규제까지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방송정책을 합의제 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게 원칙이라고 할 수 있나?

 

김영삼 정권과 그 이전에서 방송을 공보처가 담당하면서 국가의 선전 수단으로 이용했다. 미창부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정부가 미디어를 통제하는 것은 정권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언론의 감시 감독 기능이 활발하게 살아나야 정권이 조심하게 된다.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면 부패하기 마련이고 무리한 일을 많이 하게 된다.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정권 말 부정부패가 터져 나오게 된다. 언론 통제의 역설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미창부가 공보처 같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다르긴 하다. 공보처 시절에는 언론인들이 공보처에 들어가서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했다. 미창부는 공보처와 달리 관료들이 언론정책을 담당하는 구조다. 구조나 행태가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언론을 장악할 개연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8년 방개위가 만들어졌을 때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시대적 화두였다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송과 언론이 정권에 장악돼 있었다. 언론이 편파적인 상황에서 DJ정부가 들어섰다. 신문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출발점은 방송이었다. 대다수 나라에서 합의제 기구가 방송을 관할하고 있었다. 미국 FCC, 영국 Ofcom, 캐나다 CRTC, 프랑스 방송통신 총괄기구로서의 방송위원회 등은 모두 합의제 위원회다. 이런 합의제 기구를 만들기 위한 기구가 방송개혁위원회다. 그 또한 사회 제 세력이 참여하는 위원회였다.

 

2000년 방송위원회가 생기면서 방송에 관한 정책기구, 규제기구, 진흥기구가 탄생한 것으로 야당도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다. 방송위가 3기까지 이어지고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나 상황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진화가 이뤄졌다.

 

-방개위 시절 자료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논의가 진행됐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제 세력이 모두 모였다. 지상파, 케이블, 노동조합 모두 참여했다. 정치권에서도 참여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만 참여하지 않았다. 참여하라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국민의 정부’ 때 야당에서 협조한 건 거의 없었다.

 

-방통위 출범과 관련해 치열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최근 논의 정도는 주춤하다는 판단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발언에 자유가 있었다. 발언에 따라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발언의 자유가 위축되고 몸 사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유로울 때는 떠들지 않아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론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고 싸워야한다. 물론 방송사 노조처럼 열심히 요구하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

 

-방송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방송위 시절에 합의제 기구 정신이 잘 반영됐나

 

합의제 기구 정신이 잘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 다수결도 있었지만 중요한 사항은 합의했다. 서로 타협하고 양보해 합의를 이끌었다. 그러나 최시중 씨(전 방통위원장)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양보도 타협도 없이 독임제 형식으로 진행했다.

 

독임제는 장관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다. 협의해 결정하는 게 아니다. 위원회는 협의하고 합의하라고 있는 곳이다. 합의하라고 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위원장이 독주했다. 위원들이 견제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합의제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방통위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된 거다. 그런데 인수위가 마치 제도가 잘못된 것처럼 방통위를 퇴색시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도의 기본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망가질 수 있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선거로 뽑혔지만 계엄령을 선포하고 선거를 없애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법을 지키고 않고 힘으로 하면 어쩔 수 없다. 법이 잘못됐다고 말 할 수 없다.

 

미창부로 방송정책을 이관하면서 마치 제도가 나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제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전임 위원장이 운영을 잘못해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방송 정책 이외에 정부부처가 가져가지 말아야할 것은

 

통신 쪽은 다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송 일체는 안 된다. 통신과 달리 방송은 공공서비스다. 모든 사람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서비스의 이용료 보다 공정한가, 다양성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방송은 주파수를 사용하고, 주파수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사회 제 세력의 합의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합의제로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독임제에선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 독립성, 다양성이 해치게 된다.

 

통신을 가져가도 방송은 남겨야 한다. 방송의 정책, 규제, 진흥 기능을 모두 남겨야 한다. 또 이런 기능이 제대로 되려면 주파수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방송용 주파수는 방통위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유료방송 정책과 방송 콘텐츠 정책이 넘어가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다

 

케이블이던 위성방송이건 방송은 산업적 가치 보다 전파되는 내용의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방송 규제와 정책을 산업을 담당하는 부처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문제다.

 

-IPTV나 OTT같은 방송과 통신의 중간쯤 있는 영역도 있다

 

IPTV와 일반방송이 구분 되나? 선로만 다른 것이다. 방송이다.

 

통신은 기본적으로 비밀을 요하는 서비스, 방송은 공개를 지향하는 서비스이다. 통신과 방송의 구분은 이러한 지향점으로 나눠야 한다. 플랫폼이나 망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IPTV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기를 바라는 서비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이다.

 

방송통신 융합은 망의 혼합을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서비스냐 아니냐를 가지고 통신과 방송을 구분해야 한다. 방송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방송이고 통신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통신이라는 구분은 융합 환경에 맞지 않는다. IPTV법이 별도로 있지만 시청자에게 물어보면 통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IPTV는 기본적으로 방송서비스이지만 통신서비스망을 이용해서 통신서비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어떤 망 이용하느냐는 별 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조직개편 논의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창부를 만드는 것도 좋고, 과학과 기술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도 좋다. 문제는 거기에 왜 방송을 가져가느냐다. 과학과 기술을 진흥하는 부처에서 방송을 규제하고 진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져가는 것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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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노무현 차명계좌’ 조현오에 실형 구형

 

검찰, ‘노무현 차명계좌’ 조현오에 실형 구형
 
조 전 청장 “유족들에 송구”... “차명계좌 있다” 기존 입장은 번복 안해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2-07 00:12:15 | 최종:2013-02-07 00:23: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현오 전 경찰청장
‘차명계좌’ 발언을 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검찰이 6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20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인데 재판부가 조 전 청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할지 주목된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쯤 나보다 정보력이 훨씬 뛰어나고 믿을만한 유력인사에게 우연히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다”며 “강연에서 말한 것은 그에게 들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은 또 “2010년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이후 같은 해 12월 검찰 관계자 2명에게서 차명계좌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를 각각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은 “차명계좌 얘기를 한 검찰 관계자가 누구인가”라는 이 판사와 검찰의 질문에는 “(그들이) 처벌받을 수 있어 절대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날 피고인 신문에서 “강연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에 송구스러운 심정이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논란이 된 차명계좌의 존재여부를 놓고는 “청와대 부속실 직원들의 계좌내역 등 법정에서 제출한 자료들은 차명계좌의 객관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유족들에게 상처를 줬다”며 “설령 차명계좌 얘기를 유력인사에게 들었더라도 고위 공직자로서 수백 명 앞에서 믿기 어려운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이 문제의 발언을 한 지 1년만 7개월만인 지난해 9월 노 전 청장을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조 전 청장이 주장한 ‘차명계좌’ 존재 여부에 대해 대검 중수부에서 보관중인 노 전 대통령 수사기록을 조사했으나 찾지 못했으며, 또 권 여사가 민주당에 특검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발언도 마땅한 근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이던 지난 2010년 3월 경찰기동대 대상 특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린 바로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 그래서 특검 이야기가 나왔는데 권 여사가 민주당에 얘기해 특검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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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관을 날마다 여는 심정, 아시나요?"

[동행 취재]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 유족의 잔인한 하루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6 오후 8:51:26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요. 저희는 힘이 없으니까. 그런데요. 의원님들 하루가 저희한텐 한 달 같고 일 년 같습니다. 신랑이 너무나 아꼈던 형이에요. 서른다섯 살밖에 안 됐던 그 형 시신을 지금 옆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마음 잘못 먹지 말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데요. 얼마나 더 죽어야 나서주실 건데요. 몇 명 죽으면 도와주실 건데요.

저희처럼 힘없고 아무것도 아닌 노동자도 국민이거든요. 저도 이 나라 국민이고, 저희 남편도 이 나라 국민이고, 강서 씨도 국민이었어요. 제발
회사대화라도 할 수 있게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높으신 분들 있는 데 와서 이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런데요.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인 송지영(가명·31) 씨가 이렇게 말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책상 위로 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상 아래로 내린다. 그러고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송 씨의 남편은 지금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서 고(故) 최강서 씨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송 씨의 옆에는 고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64) 씨가 앉아 있다. 양팔로 작은 배낭을 끌어안고 있는 최 씨. 짐이 별로 없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서울로 온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한숨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극단의 상황에 놓인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침착함이다.

최 씨는 "국회에 올 일이 살다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물론 서른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현실'이다. 끔찍한 공포 영화악몽이 아니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당면한 현실.

최 씨는 자신의 그 '현실'을 무서우리만큼 담담하게 읊었다. 아들의 시신이 차가운 공장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누워 있고, 며느리와 딸이 매일 한 번씩 아들의 관을 열고 새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최 씨의 주검에선 이미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다섯 살배기 손자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새벽까지 울어댄다. 고혈압에 힘겨운 늙은 아내가 손자를 달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말이 없다.

이에 앞서 고 최강서 씨는 "민주노조 사수",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158억 철회"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손해배상을 철회하지도, 유족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지도 않고 있다.

최 씨와 송 씨에겐 이 잔인한 현실을 넘어설 힘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로, 국회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조남호 회장을 못 만나도, 국회의원들은 회장을 만날 수 있겠지"란 생각에서였다. "기자들이 우리를 아무리 외면해도, 국회의원들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란 생각도 했다.

지난 5일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아내 7명(이하 가족 대책위) 등이 국회를 찾았다.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절박함'뿐이었다. 온종일 국회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들은 "정치권이 나서 노사 대화의 물꼬를 터 달라"고 호소했다.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지도부 면담] "공장에 들어가고 싶었던 게 아니다"
 

▲ 고(故)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들이 5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만나 사측과 대화를 주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최 씨 등을 처음 만난 건 민주통합당이었다.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한정애 의원, 전순옥 의원, 은수미 의원, 이석행 전국노동위원장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최 씨는 지난달 30일 최강서 씨의 주검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원래는 우리가 갈 적에 회사 정문 앞에, 거기에 시신을 옮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 그 뭐냐, 토끼몰이를 당하다 그리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못 나오게 하고, 음식물도 못 들어가게 하고….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한상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도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향해 같은 설명을 했다. 한 부지회장 설명에 따르면, 당시 유족들은 사측이 대화에 나서지 않자 영안실에서 최 씨의 주검을 꺼내 조선소 정문 앞으로 옮긴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신을 볼모로 싸운다는 비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안실에 주검을 그대로 두어서는 회사가 대화에 나서지 않으리란 게 확실했다. 이미 네 차례 교섭 요청에도 응답이 없는 회사였다.

결국, 노조는 유가족 뜻에 따라 영안실에서 주검을 꺼내 조선소로 행진했다. 그러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생겼다. 최 씨의 주검을 든 이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마침 하나 있었던 퇴로는 조선소 서문. 시위대는 주검을 들고 공장 안으로 '어쩌다 보니' 들어가게 됐고, 그 길로 공장 문은 닫혔다.

이후 언론은 시신 농성이란 단어를 기사 제목에 넣고, 앞뒤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최강서 씨의 아내 이선화(37) 씨가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싸움은 '시신 농성'이란 끔찍한 단어로 손쉽게 묘사되고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故 최강서 부인 "어떤 부인이 남편 시신 볼모로 싸우냐")

애타는 이들, 돌아오는 건 "기다려라" "기다려라"
 

▲ 고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 씨. ⓒ프레시안(최하얀)


면담 자리에 있던 민주통합당 의원 중 일부는 이미 최 씨를 만난 적이 있다. 지난달 16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최강서 씨의 빈소를 찾아 위로의 뜻을 전했다. 당시 문 비대위원장 등을 만난 최 씨는 "조문만 하고 끝내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 국회의원 60명인가 70명인가 왔다 갔습니다. 오는 사람한테마다 얘기했습니다. 절 한 번 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오셨으면 책임을 지시라고. 그런데 국회의원 배지 구경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못 풀 문제라 생각이 들면 손 확 들어버리시고, 풀겠다고 말을 했으면 행동을 보여달란 말입니다."

최 씨의 이런 토로에 자리에 있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뜻을 거듭 내비쳤다. 하지만 "사측과 대화가 성사되기 전에라도 장례를 치르는 건 어떠냐"는 설득도 계속됐다.

한정애 의원은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을 만나 유가족과 교섭이 아닌 간담회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라며 "노조도 손해배상·가압류 철회와 노조 인정 문제까지 포함해 사측과 일괄 타결하려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바꿔서 장례와 유가족 보상 문제를 먼저 푸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에 한상철 부지부장은 "우리는 이미 어제 조건 없이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그냥 대화만 시작할 수 있도록 중재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일전엔 시신을 빼면 대화하겠다고 했다가 이제 와선 공장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시신을 보내야 대화하겠다고 대화 조건을 바꾸었다"고 전했다.

한정애 의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의원은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유가족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유가족의 삶이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례를 먼저 치르도록 도와주고, 남은 것들은 우리 몫(민주통합당과 노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의원의 말을 가로막았다. 문 비대위원장은 "한정애 의원님, 지금 말씀하시는 건 사측과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고 하시는 말씀이세요?"라고 묻더니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방 안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시 말문을 뗀 사람은 이석행 민주통합당 전국노동위원장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그는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참…"이라는 말로 시작해, "우선해야 할 일은 새누리당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비대위원장에게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최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힘을 쏟자는 얘기를 해달라'고 제안했다"며 기다려달란 뜻을 전했다.

"기다려달라", "새누리당을 설득해보겠다", "대선에서 이겼어야 하는데" 등의 말들은 송 씨 등의 가슴을 들쑤셔 놓았다. 40여 분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가족 대책위 7명은 복도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송 씨는 "선화 언니(최강서 씨 부인)가 생각나면 밤에 잠을 못 자겠다"며 "우리가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냐"고 물었다.

[오후 2시, 새누리당 지도부 면담 요청 거부] "대선 때는 다 만나주지 않았나"
 

▲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가족 대책위가 새누리당 지도부 면담을 요구하다 무산된 후 국회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들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정오께 노회찬·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만났고, 점심 후엔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 이상규 의원, 이혜선 최고위원 등을 만났다.

같은 호소가 매 자리에서 이어졌다. 최강서 씨의 주검이 공장 안까지 들어가게 된 경위, 사측과 대화를 주선해달란 호소, 긴박한 영도조선소 상황 등. 같은 노래가 반복해 나오는 라디오처럼,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오전 중에만 세 번에 걸쳐 쏟아냈다. 지칠 법도 했지만, 눈물은 마를 줄을 모르고 때마다 흘러내렸다.

오후 2시께, 먼 길을 떠나온 이들은 "국회까지 온 김에 새누리당 지도부도 꼭 만나고 가야겠다"며 새누리당 대표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이들을 막아 세웠다. 곧 몸싸움이 벌어졌고,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가족대책위 김순애 씨는 "왜 다 만나주는데 새누리당만 안 만나주는 것이냐"며 "대선 때는 재래시장도 가고 쪽방촌도 가서 다 만나주지 않았냐"고 항변했다.

열 명이 되지 않았던 방호과 직원들은 순식간에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한진중공업 사람들이 국회 안에 있다'는 소식이 이미 나돌았는지, 이날 경비는 유난히 삼엄했고 무전은 특히 신속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울며 주저앉는 가족들과 사지가 들린 최 씨의 모습을 향해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결국, 새누리당 지도부는 만날 수 없었다. 최 씨 등은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국회 본관 후문 근처로 쫓겨나갔다.

[오후 3시 40분,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면담 성사] "당내 여론이…"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과 만난 최용덕 씨와 가족 대책위원들. ⓒ프레시안(최하얀)


본관에서 쫓겨난 이들은 본관 옆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본청에서 '난동'을 부린 인물로 낙인찍힌 이들은 의원회관에서도 '출입 정지'를 당했다.

최 씨 등은 의원회관 로비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김성태 의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사이 최 씨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로비에 전시돼 있던 설 선물 상자들이었다. 건물 밖에 주차된 택배 트럭들은 쉬지 않고 설 선물들을 쏟아냈다. 최 씨는 "저건 의원들 주는 겁니까"라더니 "국회의원은 좋네. 아들 똑똑하게 키워 국회의원 시킬 걸 그랬네"라고 말했다.

오후 3시 40분, 김성태 의원이 회관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를 방문한 열두 명 중 최용덕 씨를 포함한 2명만 의원실에서 만나자는 가족 대책위 쪽 제안은 이미 거부된 후였다. 대신 김 의원이 로비로 나와 이들을 만났다.

김 의원은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신을 영안실로 옮길 수는 없겠냐"고 말했다.

가족 대책위 전 대표 도경정 씨는 "밖에 있을 때 사측이 안 만나주지 않았냐"며 "지금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면 대화하겠다는 회사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설 전에 사측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면서도 "당내 여론이 기업 노사 관계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쪽이라, 당 대표 면담을 주선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오후 5시, 한진중공업 본사 피켓 시위] "조남호 회장 얼굴 한 번 봤으면…"

별 소득은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더는 없었다. 이들은 국회를 떠나기로 했다. 대신 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건설 부문 본사에서 잠깐이라도 피켓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가족대책위 도경정 씨는 말했다.

이동 차량에는 곧바로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40분을 운전해 도착한 본사 건물 앞에서는 이미 노란 형광 조끼를 입은 전투경찰들과 본사 직원 수십 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비로 바뀌어 있었고, 아내들은 남편들의 동료, 최강서 씨의 영정을 들고 본사 앞에 일렬로 앉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조 회장을 끝내 만날 수 없었다.

형체를 잃어가는 주검, 깊어가는 슬픔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뒤로 최씨의 주검이 담긴 관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국회부터 한진중공업 본사까지 두루 다녔지만 이들은 이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측과 대화하는 자리를 약속받는다는 소박한 바람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신을 옮기고 장례부터 치르라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야당 의원들은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고, 여당에서는 이들을 사실상 찬밥 취급했다. 서울로 올라올 때보다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이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제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드라이아이스로 최 씨의 주검이 부패하는 것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금씩 형체를 잃어가는 최 씨의 주검 옆에서, 아내 이선화 씨는 언제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슬픔에 겨워해야 할까. 아버지 최용덕 씨는 "나도 아들을 따라 죽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절박한 외침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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