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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 농성 5일째

 

당선인은 한반도 평화 위해 진정성 있는 모습 보여야
<참관기>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 농성 5일째
 
 
2013년 02월 04일 (월) 01:06:41 강경태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 박근혜 차기정부의 남북대화와 협력, 평화실현 대북정책 촉구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은 2일 정오부터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닷새째 농성을 이어갔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한반도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북의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미국의 핵잠수함과 순양함이 진해와 부산으로 들어오고 다음 주 중으로 동해에서 한미연합무력시위가 예고되어지는 가운데 한반도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의 전면대결전에 돌입했다는 북의 발표에 이천재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은 "우리 선조들은 될 수 있으면 싸우기 전에 싸우지 않을 합리성을 먼저 찾아낸 지혜로운 민족이다. 고구려 벽화에 보면 씨름을 하기 전에 장사들이 마주보고 눈으로 기싸움을 했다. 그 기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포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으면, 해 볼 만한 상대다 싶으면 죽기살기로 싸웠다"며 정부청사 건너편에 자리한 미대사관을 향해 조소를 보냈다.

또한 전날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미국 하원 의원단을 면담한 박근혜 당선인은 남북대화에서 추진하는데 있어 우선순위로 "국군포로 조기송환" 문제를 언급했다는 기사를 접하며 "박근혜 당선인의 그 이야기를 들은 미국 관리는 한반도 문제를 꿰뚫어보는 지식이 있는 사람일 것인데, 남북대화를 추진하는데 있어 박근혜 당선인의 최고의 관심이자 최우선 과제가 '전쟁포로의 송환'이라면 그 미국 관리는 당선인이 정말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박근혜 당선인을 비판했다.

박근혜 차기정부의 남북대화와 협력, 평화실현 대북정책 촉구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은 2일 정오부터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닷새째 농성을 이어갔다.

농성에는 통일원로 선생님을 비롯하여 추모연대 이창훈 통일위원장과 추모사업회 일꾼들, 범민련 후원회가 함께했다.

추모연대 일꾼들은 광화문 앞, 세종문화회관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민자통의 한 참가자는 "박근혜 차기정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통일원로 선생님들이 시작하신 농성과 반전평화의 호소가 전국적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농성에 함께 해 줄 것"을 촉구했다.

농성단은 이어진 발언에서 "전쟁과 대결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정치적인 부담이 된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금강산 관광재개나 5.24조치의 철회 등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차근차근 취하여 남북관계 개선의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대북적대정책의 산물인 5.24조치를 당장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를 심화시키는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거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박근혜 차기정부에 대한 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천재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은 마무리 발언에서 "비상한 시국이고 어려운 때이다. 민족자주, 반전평화를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 양심을 표현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자회견은 △남북공동선언 이행 △5.24조치 전면 철회 △대북 적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금강산, 개성관광 재개 △남북경제협력과 민간교류 재개 △이산가족상봉 즉각 재개 △장기수 2차 송환 및 양심수 석방 등 주제별로 매일 오전 11시 인수위 앞에서 진행되며 농성은 2월 6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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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생물 멸종 막는 고래 주검의 힘

심해생물 멸종 막는 고래 주검의 힘

 
조홍섭 2013. 02. 01
조회수 5747추천수 0
 

심해저 사막의 오아시스 열수분출공, 이를 잇는 징검다리 고래 주검

최근 강에서 쓸려온 통나무도 같은 기능 밝혀져…수십년간 심해생물 생태계 형성

 

Skeleton of a Grey Whale six years after its death. Photo by Craig Smith.jpg » 깊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고래의 주검은 수십~수백년 동안 다양한 심해 생물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사진=크레이그 스미스, 하와이대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물속에 물고기떼가 헤엄치는 곳은 바다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바다의 93%는 수심 200m 이상인 깊은 바다이다. 이곳엔 햇볕이 닿지 않아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육지로부터 영양분이 들어오기엔 너무 멀어 늘 영양부족 상태여서 사막과 비슷하다. 하지만 사막에도 물이 솟는 오아시스가 있듯이 심해저에도 오아시스가 있다.
 

난파된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찾아내 유명해진 미 해군의 유인잠수정 앨빈은 1977년 갈라파고스 군도 근처 2000m 해저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나오는 ‘굴뚝’을 발견했다. 강산성에 400도 이상의 고온의 열수가 나오는 이 분출구 주변엔 관벌레 등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생물이 들끓고 있었다.
 

640px-East_Scotia_Ridge_-_Plos_Biol_04.jpg »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섭입이 일어나는 남극 스크티아 해 일대의 열수분출공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640px-Fauna_on_hydrothermal_vents.jpg » 열수분출공 근처는 유독물질과 고온의 열수가 뿜어나오는 곳이지만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간다. 조개와 새우, 게 종류가 보인다. 사진=미국립해양대기국(NOAA)

 

이런 열수분출공이 해저 화산 등 해저 지각이 꿈틀거리는 곳을 중심으로 잇따라 발견됐다. 이들은 광합성 대신 황 성분이 포함된 열수에서 화학합성으로 에너지를 얻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또 해저지각이 대륙지각 밑으로 파고드는 곳에선 짓눌린 땅속에서 황화수소 등이 포함된 찬물이 뿜어 나오는 냉용출수지역이 있고, 이곳에도 다양한 심해 생물이 살아가는 사실이 밝혀졌다.
 

640px-Expl1771_-_Flickr_-_NOAA_Photo_Library.jpg » 멕시코만 냉용출지역의 관벌레와 조개. 사진=미해양대기국(NOAA)

 

이로써 황량한 사막 같던 심해저는 새로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관심을 모았고, 지구 생명의 출발점을 이런 심해저에서 찾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열수분출공이나 냉용수지역 생물에겐 결정적 약점이 있다. 해저 분출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출이 끝나면 오아시스는 문을 닫고 애초 사막 환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생물은 모두 사멸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압축해 심해저를 본다면, 방대한 심해저 여기저기서 생명의 불꽃이 한동안 깜빡이다 주변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가까운 열수분출공까지 거리가 수십~수백㎞나 되는데 어떻게 비슷한 심해저 생물이 곳곳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해양학자들이 이런 수수께끼를 풀 가설로 내놓은 것이 ‘징검다리 이론’이다. 멀리 떨어진 서식지를 이어주는 임시 서식지가 군데군데 있다면 심해생물이 고립돼 멸종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Lonny Lundsten.jpg » 고래 주검이 3년에 걸쳐 생물활동으로 분해되는 과정. 사진=로니 룬드스텐, 몬터레이만수족관연구소(MBARI)

 

고래의 주검은 유력한 징검다리이다. 거대한 사체는 굶주린 심해 생물에 몇 년에서 몇십 년까지 계속되는 만찬을 제공한다. 미국 몬터레이 만 수족관연구소(MBARI)는 악취가 진동하는 고래 주검 5구를 3000m 심해에 빠뜨리고 원격조정 잠수정을 이용해 6년간 관찰하는 연구를 통해 죽은 고래가 다양한 심해생물의 서식처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처음엔 청소동물인 심해상어, 먹장어, 게 등이 몰려 살을 발라 먹었고, 이어 뼈와 찌꺼기를 먹는 다양한 동물과 미생물이 모여들었다. 이곳의 고래 주검은 10년 안에 모두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주변 여건과 생물상이 다른 해저에선 고래 사체가 완전히 없어지는데 100년까지 걸린다는 추정도 있다.

 

Osedax-mucofloris_270.jpg » 고래 뼈를 전문으로 분해하는 생물 오세닥스

 

A whale bone being recovered from the Santa Catalina Basin floor five years after experimental emplacement_Whale_fall_Whale_bone_recovery.jpg » 해저에 가라앉힌 고래 주검을 생물 조사를 위해 다시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그레이그 스미스, 하와이대

 

whales_santac1.jpg » 고래 주검에 몰려든 먹장어. 사진=그레이그 스미스, 하와이대

 

The small white anemones_newly describes species_ and also other animals characteristic of whale falls_ including the bone-eating zombie worm_ called Osedax_ frilly red plumes on bone_and scavenging crabs_mbari.jpg » 살점을 모두 뜯긴 뼈에 서식하는 다양한 심해 생물들. 뼈만을 전문적으로 분해하는 생물도 여럿이다.사진=몬터레이 수족관연구소(MBARI)


최근엔 강에서 바다로 쓸려간 통나무도 고래 주검처럼 심해저 생태계의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는 보고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과학자들은 나일강 하구에서 가까운 1700m 심해저에 통나무를 집어넣고 1년 동안 무인잠수정으로 관찰했다.
 

가라앉은 목재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나무에 구멍을 뚫는 조개였다. 이들이 나무를 조각내고 배설물을 내놓자 다양한 미생물이 번창했다. 나무 분해미생물은 1년만에 100배로 불었다. 이런 통나무는 약 35년 동안 심해 생물을 먹여살릴 것으로 예상됐다.

 

sim1.jpg » 지중해 심해저에 설치한 직후의 통나무. 사진=비엔홀트 외, <플로스 원>

 

sim2.jpg » 해저에 넣은 지 1년 뒤의 모습. 사진=비엔홀트 외, <플로스 원>

 

sim3.jpg » 통나무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 사진=비엔홀트 외, <플로스 원>

 

sim4.jpg » 통나무를 심해 바닥을 둔 지 1~2달, 3~6달, 6~12달이 경과하면서 어떤 생물이 서식하는지 정리한 포스터. 그림=비엔홀트 외, <플로스 원>

 

하지만 심해 생물이 어떻게 통나무를 찾아내는지, 분해 미생물이 물을 통해 오는지 아니면 해저를 통해 오는지 등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ienhold C, Pop Ristova P, Wenzhofer F, Dittmar T, Boetius A (2013) How Deep-Sea Wood Falls Sustain Chemosynthetic Life. PLoS ONE 8(1): e53590. doi:10.1371/journal.pone.005359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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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로서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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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단죄 드디어 희망이 보인다

드디어 희망이 보인다~~!! 원로들이 나섰다~~!!!
(다음아고라 / 금강이 / 2013-02-02)


민주화운동의 기둥이자 원로들이신 박형규 목사 등이
부정선거 진상규명에 앞장섰군요 -- 큰 희망이 보입니다

제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는 데도 야권, 언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가 대부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예수님은 유대 집권자들이 민중의 침묵을 강요할 때,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눅 19:40)이라 일갈하신 바 있다. 신학자 본회퍼도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고하였다. 만일 이번 대선에 부정이 개입되었다면 쉬쉬하며 숨기려말고 명백히 규명해야 옳다.

제18대 대선 부정선거 규명을 바라는 목회자 성명서

 

[절대권력을 가진 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힘이 결국 민중을 일으키고 절대권력을 굴복시킬 것이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암 5:24)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한 달여가 지났다. 다음달 25일이면 신정부가 들어설 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총체적 부정선거로 치러졌다는 각종 의혹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증거가 무수히 쏟아져 나온 실정이라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염려스럽다.

민주공화국의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에 해당한다. 가장 공명정대해야할 대통령 선거에 만일 부정이 개입되고 그게 용인되면 민주주의는 곧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를 바라는 목회자들로서 지금의 대선 부정선거 시비가 어서 속히 명백히 가려져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증폭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야 박근혜 당선자도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떳떳하게 5년의 대통령 임기를 채우며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은 18대 대선의 국민적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위해 정부, 선거관리위원회, 국회에 다음 1-3항을 투명하게 밝혀주기를 요구한다. 또한 이 일을 위해 야권, 언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가 적극 나서 주기를 바란다.

1. 관권선거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라.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여직원이 업무시간에 40여개 아이디로 진보성향 사이트에 접속해 선거와 관련된 댓글을 달거나 추천조작을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통상적 업무’였다거나 ‘종북세력 동향파악’을 했다는 상식에 어긋난 구차한 해명을 내놓고 있다.

또 수사를 맡은 경찰은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 16일 밤 11시 ‘비방 댓글은 없었다’는 성급한 중간발표를 함으로써 사실상 박근혜 후보 당선을 도운 혐의가 짙다.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는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의 TV토론이 끝난 지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그 의구심을 더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과연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받는 지경이다.

한편 한 전직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이 심리정보국을 두고 70여명 직원으로 하여금 인터넷 댓글 공작을 펴게 해 국내정치에 깊숙이 관여해 왔음을 언론에 폭로한 바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국가 기관의 조직적인 부정 개입으로 치러진 18대 대선은 원천무효가 되어야 마땅하다. 국회는 청문회, 국정조사 혹은 특검을 실시해 이 같은 관건선거 의혹을 어서 명확히 밝히기를 바란다.


2. 수작업에 의한 재검표를 실시하라.

 

수개표의 정의: 개표기에 나온 100매 묶음의 투표지를 개표사무원 2~3 사람이 번갈아 가며 정확히 재확인, 심사하는 것이다.(중앙선관위 개표관리매뉴얼)

지난 대선 개표에서 공직선거법 및 중앙선관위 개표 매뉴얼에 적시된 전량 육안에 의한 2-3회에 걸친 수작업 검열 과정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여러 참관인의 증언과 동영상, 수많은 관련 자료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중앙선관위는 규정대로 수개표를 하였다는 거짓 해명을 되풀이 하며 공정한 선거관리의 책무를 져버리고 있다.

수개표에 의한 재검표는 소송을 통해서나 겨우 실시 가능한 사안이 아니다. 대선 개표 시에 당연히 했어야할 수개표가 대다수 개표소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이 밝혀진 이상, 중앙선관위는 지금이라도 당장 국민이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는 개표 사무원들을 위촉해 수작업에 의한 재검표를 실시하라.


3. 선관위의 개표 데이터 조작이 실제 있었는지 밝히라.

 

전자개표기=투표지분류기+ 제어용컴퓨터, 각 각 1:1로 구성된 전산장비이다. 선관위는 전산장비인 전자개표기를 기계장비라고 속였다. 왜냐하면 전산장비는 공직선거법 부칙 제 5조에 의해 "보궐선거"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한 시민이 정보공개를 청구한 1분당 개표결과 자료가 없다고 내놓지 않다가 당선무효소송 마감시한이 지나자 그제야 공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관위가 발표한 1분당 개표결과 자료와 SBS가 방송한 자료가 익일 새벽 3시 이전까지 전부 일치하지 않는다.

선관위는 각 방송사에 1분 단위의 개표자료를 실시간으로 제공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선관위의 1분당 개표 자료와 SBS의 방송 자료가 불일치한 사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대선 개표 데이터는 로지스틱 함수의 미끈한 형태를 보여 애초 조작이 돼 있었던 게 아닌가하는 상당한 합리적 의혹도 받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이 하필 5.16 쿠데타를 떠올리게 하는 51.6%라는 사실도 이런 심증을 갖게 하는데 크게 한 몫 하는 실정이다. 이번 대선 개표는 PC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전자개표기(투표지분류기)를 단순 ‘보조수단’이 아닌 주된 수단삼아 진행되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현재 선관위가 사용하는 전자개표기(투표지분류기)는 얼마든 프로그램 조작이 가능함이 전산전문가들 의해 거듭 제기되고 있어 충분한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중앙선관위는 선거무효소송이 접수된 지 이틀 만에 서버교체 작업을 벌여 개표 조작 의혹을 더욱 키웠다. 이 모든 개표조작 의혹을 불식시키려면 전자 개표기 조작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공인기관의 검증, 선관위 서버에 대한 전수 조사, 투표인명부와 실제 투표자의 확인 대조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 진상을 밝히라.

4.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당, 언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는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더 이상 좌시 말고 철저한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서라.

 

[인주가 찍혀 있는 기표용지가 구겨진 채 쓰레게 통에 버려져 있는 사진. 이 사진을 보면 기표용지가 제주도 '구좌읍 제7 투표소'라고 적힌 종이와 '선거관리 위원회 투표록'이라고 적힌 문서가 상자에 담겨 버려져 있다]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가진 23만여 국민이 수개표를 요구하는 서명을 하였고 해외 동포 유권자들은 네 차례에 걸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도 대한문 앞 촛불집회가 거듭되고 있으며 SNS와 아고라를 비롯한 일부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진상 규명 요구가 들끓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시민들이 간곡히 요구하는 당선무효소송을 외면하였고 중앙선관위와 더불어 어설픈 개표 시연회를 연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당들도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을 밝혀달라는 국민들의 절절한 호소에 대해 뒷짐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국민의 파수군 노릇을 해야 할 언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마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벙어리 개’(사 56:10) 마냥 함구하는 기막힌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앙양심을 소중히 여기는 목회자들로서 이 같은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예언자 예레미야의 피 끓는 심정으로 호소한다. 야권과 언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는 대선 부정선거 진상 규명에 하루빨리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길 바란다.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의 전통을 잇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형국인데도 모른 체하며 침묵한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만일 대선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합리적 의혹을 이처럼 묵살하다가는 장기 독재시대의 회귀에 동조하는 격이므로 향후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

원로: 박형규, 조화순, 문대골, 이해학, 전국목정평, 일하는예수회: 안승영, 유승기, 안하원, 손은정, 장창원, 오영미, 이상은, 김수택, 김규복, 손은하, 서덕석, 정태효, 강수은, 정병진, 이정훈, 김영철, 허연, 우예현, 정충일, 서경기(이상 20명) –손주완, 백명기, 김재겸, 김용성, 우삼열, 최소영, 진영훈, 김승민, 김형찬, 이철호, 이세광, 김후용, 양영철, 김병균, 임광빈, 김명술, 김양진, 이성욱, 강은숙, 김의종, 김현, 김종옥, 진광수. (현재 연명에 동참하는 목사님들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18대 대선 부정선거 진상 규명을 바라는 목회자 모임

목회자 성명서 발표 및 기자회견

일시: 2013년 2월 5일(화요일)
시간: 오후 2시
장소: 기독교 회관(종로5가)
주최: 18대 대선 부정선거 진상 규명을 바라는 목회자 모임

연락처: 018-644-6814 정병진 목사
011-457-0211 김후용 목사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280058&bbsId=D115&searchKey=daumname&sortKey=depth&searchValue=금강이&y=10&x=28&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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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없다더니" 딱걸린 한진중공업

[현장] 영도 한진중공업 안팎의 숨가쁜 하루...김진숙 지도위원 체포영장 발부

13.02.02 20:50l최종 업데이트 13.02.02 20:53l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추모와 사태 해결을 위한 집회가 2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렸다. 한 참가자가 고 최강서씨의 유서와 회사 규탄 문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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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추모와 사태 해결을 위한 집회가 2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렸다. 조선소 안에 머물고 있는 한 노조원이 외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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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고 최강서씨의 주검의 조선소 안으로 옮겨온 지 나흘째를 맞은 2일 영도구 한진중공업는 숨가쁜 하루를 보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1500명의 사람들이 조선소 밖에서 경찰과 밀고 당기는 힘싸움을 벌였고, 조선소 내에서는 사측의 용역 배치가 발각되면서 노조원과 충돌이 일었다.

힘겨운 하루의 시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경찰은 오전 7시 30분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차벽을 설치했다. 또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지원 나온 경찰병력을 더해 총 39개 중대 2700여명의 경찰력을 한진중공업 주변에 배치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집회를 하루 전인 1일 저녁에 갑자기 취소 통보했다. 영도경찰서 관계자는 "30일 집회 이후 계속적으로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월담을 하는 상황이 벌이지고 있고 집회 인원이 많아 불법 시위가 예상돼 지휘부에서 신고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집회 신고 취소에 최강서열사대책위 측은 반발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3일전 암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 정혜금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사무처장에게까지 찾아가 경찰이 취소통보서를 줬다"며 "경찰의 이 같은 대응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밀고당기는 난장판 속에서 항의하는 할머니도 끌고간 경찰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추모와 사태 해결을 위한 집회가 2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렸다. 경찰이 집회참가자와 마찰이 발생하자 최루액을 발사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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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민주노총이 집회를 앞두고 경찰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를 비롯한 금속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충돌에 대비해 진압장비를 갖추기 시작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목격됐다. 차벽 차량과 살수차도 등장했다. 오후 3시 30분 집회를 마무리한 집회 참가자들은 이불 등의 물품 전달을 하겠다며 공장 내부에 있는 유족과 노조원들을 만나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이를 불허했다.

결국 본격적인 양측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불과 깔판을 머리에 인 사람들이 경찰 저지선을 밀기 시작했고 경찰은 최루액을 쏘면서 대응했다. 경찰은 오후 4시 30분께부터 본격적으로 집회 해산을 통보했고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경찰이 2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집회 대열과 떨어진 인도 주변에서 항의하는 할머니를 강제로 끌고가고 있다. 이 할머니를 30여 미터를 끌고간 경찰은 할머니가 주저 앉자 그 모습을 카메라와 캠코더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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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자도 발생했다. 심지어 경찰은 집회 참가자 대오와 한참 떨어진 인도 근처에서 항의하는 할머니를 두 팔로 번쩍 들어 끌고가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발을 허공에 구르며 버텼지만 손자 내지는 아들뻘 되는 경찰들의 완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제자리에 앉자 곧바로 채증 요원이 2명 달려와 캠코더와 카메라로 이 할머니의 모습을 찍는 모습이 목격됐다.

바깥 상황이 숨 가쁘게 돌아가자 조선소 안의 노조원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바깥 소식이 궁금한 노조원들은 이동식 계단형 사다리를 가져와 정문 너머로 집회 모습을 지켜봤다. 내부 노조원이 사다리를 가져오자 경찰이 무전으로 "(내부에서) 방해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이를 들은 노조원이 "아저씨, 우리가 언제 방해 했다고 그래요? 우린 구경하러 왔는데 제대로 보고하셔야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측, 용역 없다더니 노조 사무실 앞에서 "우르르"
 

 

2일 오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한 공장 안에서 몰래 숨어있던 경비용역 직원들 30여명이 노조원들에게 적발됐다. 노조는 "빈소 침탈을 위한 목적"이라 반발했고 사측은 "단순 건물경비 목적"이라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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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평온한 모습으로 양측의 충돌을 지켜보던 내부 상황이 급변한 것은 오후 5시께였다. 일부 노조원이 회사를 거닐다 수상한 남성들의 모습을 목격했고 이들이 들어간 공장 건물로 들어가자 내부에는 30여 명의 건장한 경비 용역 직원들이 문을 잠근 채 숨어있었다.

사측의 빈소 침탈 시도를 우려해 그동안 경비 용역 직원의 출입을 극도로 경계해왔던 노조원들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쇠파이프와 소화기가 등장하는 살벌한 상황이 벌어졌다. 체격은 건장했지만 아직 2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이들 중 한명은 "대학생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기위해 대전에서 왔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회사가 빈소 근처에서 용역 직원들을 배치한 것은 빈소를 침탈할 목적이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뒤늦게 달려온 사측 관계자는 "침탈 목적이 아니라 외곽 경비를 위해 오늘 40명 정도를 추가로 들인 것뿐이고 괜히 자극할까봐 노조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사측 관계자의 해명에 노조원들은 "외곽 경비라면 경비실에 있어야지 왜 빈소 옆에 문을 잠그고 숨어 있느냐"고 회사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리를 뜨는 용역 직원들에게 김진숙 지도위원은 "젊은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돈을 벌어서 좋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 노조원은 "회사가 죽은 노동자에게는 신경도 안쓰더니 용역 쓰는데는 돈을 펑펑 쓰고 있다"고 혀를 찼다. 이러한 마찰은 경비용역 직원들이 회사 신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이들이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신관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 이와 함께 조선소 외부에서 진행되던 집회도 오후 6시 30분께 정리 상태에 들어가서 7시를 즈음에 모두 해산한 상태다.

'경찰관직무집행법'도 안 지키는 경찰관...막무가내 "신분증 보여달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있는 노동자들이 이동식 계단형 사다리에 올라가 외부 집회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추모와 사태 해결을 위한 집회는 2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렸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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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민주주의, '노동자 주먹' 없었다면 불가능!

[7년의 학습 : 세계 노동 운동사]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안은별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1 오후 6:59:58

 

도합 3권, 1984쪽의 대작. 그것도 <세계 노동 운동사>(후마니타스 펴냄)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니 이 책을 만든 사람의 의지와 결의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책을 쓴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은 지난달 23일 충정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출간이 "엄청난 난산(難産)"이었다고 토로했다.

김금수 이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현장 노동 운동가로 활동했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2000~2003), 노사정위원회 위원장(2003~2006), 한국방송(KBS) 이사장(2006~2008) 등 다양한 공무 현장을 거쳤다. 한국 노동 운동의 50년 이상을 면면을 지켜본 그로서도 2000년대 이후의 상황은 특히나 더 절망적이라고 한다. 자본의 공세는 점점 더 광범위해지는데 노동 세력은 일치된 노선과
전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또한 손배가압류라는 실질적 노동 3권 억압 기제가 도사리고 있을 정도로 제도적 발걸음도 더디다.
 

▲ <세계 노동 운동사>(1권, 김금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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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절망 속에서 그는 2007년부터 '세계 노동 운동사' 학습방을 꾸렸고, 한 기 십여 명, 2013년까지 도합 오십여 명 되는 멤버들과 함께 학습하고 토론한 결과를 책으로 냈다. 이 책에는 14~15세기 자본주의의 맹아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주요 흐름들이 망라되어 있다. 잘 알려진 선진국의 사례뿐 아니라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일차적으로는 노동 운동가와 노조 활동을 위한 자료집이지만, 자신을 노동자라 자각하지 못하는 수많은 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역사서이기도 하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이 책을 통해 "1848년 프랑스 혁명을 공부하면서 촛불 집회를 이야기하고, 러시아 볼셰비키를 지켜보면서 국내 정파 갈등의 돌파구를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거듭 상기시키면서도 "노동 운동사는 사건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실패의 연속이지만 패배하고 또 패배하면서도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이 조금씩 형성되어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치열한 학습으로 탄생시킨 대작

프레시안 : <세계 노동 운동사>가 나오게 된 과정을 통틀면 10년 정도라 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간까지 오게 되었나.

김금수 : 2000년인가 노동부 산하 한국노동교육원에서 발행하는 <노동 교육>이라는 기관지가 있었다. 거기 기자 한 사람이 세계 노동 운동사의 주역 10명을 골라 그 이야기를 연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봐라, 과연 주역이 있나? 노동자들 하나 하나가 주역인데. 그러면 10대 사건은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런데 사건은 흐름 있게 연결이 안 된단 말이지. 그럼 그냥 세계 노동 운동사를 쓰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

자신은 없었는데,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국제 노동 운동사-역사와 이론의 제문제>(전 8권)를 활용하면 억지로 좀 쓰겠지 해서 시작했다. 원고를 몇 번 쓰다가 2003년에 내가 노사정위원회 들어가면서 연재가 중단됐다.

그러다 2007년, '세계 노동사 학습방'이라는 걸 꾸려봤다. 민주노총, 전교조, 철도노조의 노동 운동가들이 모여서 한 달에 두 번씩 만났다. 거기서 공부하고 토론한 결과물이다. 세미나 전에 갖고 있었던 초고는 극히 일부였고, 세미나를 통해 거의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나간 셈이다. 양이 차이니까 출간 이야기가 나왔고,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경향신문>에 파리 코뮌에 대해 쓴 글을 보고 내가 연락했다.


프레시안 : 세미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

김금수 : 미리 에이포(A4) 용지 서른 장쯤 되는 자료를 올려놓으면 참가자들이 먼저 그걸 읽는다. 다 읽었다는 전제 하에 순서대로 발제자가 되어 우선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서로들 답변한다. 그리고 토론거리 두세 개 가지고 계속 토론을 나눈다. 7시 반쯤 시작해 10시 반에 끝나고, 뒤풀이까지 하면 12시다. 지금 5기 진행 중인데 원래는 월 2회 모이던 걸 1회로 줄였다.

프레시안 : 집단 저작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러시아어 책 번역을 위해 1500만원을 들였다고 말했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 같다.
 

▲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김금수 : 세미나의 토대가 된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국제 노동 운동사>가 전부 여덟 권짜리인데 일본어·영어 번역판은 6권까지밖에 안 나왔다. 6권 내용이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선진국 노동 운동사다. 제3세계 것이 없잖나. 그래서 특파원에게 부탁해 제본을 떠봤다. 러시아어 강사 네 명에게 원고지 한 장당 4000원에 부탁했는데 총 4000매라 1600만 원 가까이 나온 거다.

그런데 번역해 놓고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다. 아시아·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 각 나라들의 시대별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뭔가 툭툭 끊기더라. 돈 들인 데 비해 활용 가치가 크지 않았다.

김금수 : 그래서 <세계 노동 운동사>가 1945년에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건가. 혹시 그 이후의 역사가 후속으로 나올 가능성은 없나.

김금수 : 그 이후의 역사는 지금 세미나로 진행 중이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또 한 번 뒤집어진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집권하고, 프랑스에서도 사회당이 집권 연합에 참여했다. 1948년까지 각 식민지들이 해방됐다. 그러다 1948~49년 냉전 체제가 정비되면서 세상이 또 한 번 바뀐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고 베트남 무장 투쟁이 전개된다.

이런 중요한 흐름들이 있고, 냉전이란 것도 큰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부가 필요하다. 2차
대전에서 끝나니 아무래도 밋밋한 감도 있고. 애초의 계획은 1980년까지 다루자고 잡았는데 자료가 뒷받침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1970년까지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노동-민주주의' 불가분의 관계


프레시안 : 노동 운동의 역사는 곧 자본주의의 역사,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300백 년에 걸친 노동 운동을 통해 우리가 이룬 것,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김금수 : 노동 운동의 지향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개혁, 때론 혁명일 텐데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한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부터는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나 복지가 가능했을까? 노동·생활 조건의 향상, 기본 권리 확보 등의 진전은 모두 노동 운동의 성과다.

그러나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게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인간의 조건, 인간다운 삶이다. 결국 이것을 계속 추구하고 있는 거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그런 삶이 지켜진다고도, 복지 수준이 높다고도 할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는 성과보다 한계가 많지만, 그렇기에 끊임없는 개혁과 극복이 필요한 때다.


프레시안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세계 노동 운동사를 통해 보았을 때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김금수 :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부터 심지어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혁명의 실체적 세력은 결국 노동자였다. 파리 코뮌으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작성한 파리 코뮌 평의회 82명의 명단을 보니까 지금 기준으로는 7~80퍼센트가 노동자더라. 그때는 변호사나 기자 같은 사람들을 노동자로 안 쳤고, 노동자란 이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영국 노동당이 없었다면 영국에 현재 같은 민주주의가 성숙될 수 있었겠는가? 프랑스 인민전선도 사회당·공산당이 주축을 이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실질 세력은 노동 세력이었다. 그래서 두 나라는
독일과 다르게 파쇼로 넘어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또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몇 번 보수당에게 넘겨주기는 했지만) 5~60년간 집권할 수 있는 것도 노동 세력이 뒷받침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세력의 세력화가 덜 진행되었고 투쟁이 미성숙한 나라들에서는 어려운 얘기다.
 

ⓒ프레시안(최형락)



방향 잃은 노동 운동

프레시안 : 책 서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 운동의 침체기라고 했다. 국제적 전선도 과거보다 그 힘이 희미한데다가 각국 내부의 상황도 다 어렵다. 한국 노동 운동의 경우 1987년 이후 약 10년간은 외국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힘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노동 운동은 어떻게 보는가.

김금수 : 비관적으로 본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땅에 떨어진 줄 알았더니 땅 속으로 들어갔더라"라고 표현하더라. 그 원인은 외부에도 있겠지만 우선은 내부적인 조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니까 자본의 공세는 어떤 식으로든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느냐는 내부적 힘의 문제이니 말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먼저 현재 한국 노동 운동에는 전략 목표가 없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향하는 사회는 대체 어떤 사회인가? 그 부분이 없다. 또 하나는 민주노총의 경우 지금 형식상으로는 산별 가입으로 바꾸기는 했는데 아직 내실이 부족하다. 명실상부한 산별 체제가 안 되고 있단 얘기다. 또 하나, 투쟁 노선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거기다 정치 세력화 문제가 있다. 말로는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만들자고 하면서 '어떻게'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에게 뭔가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자존심도 다 잃어버렸다.

프레시안 : 전략 목표가 없고 노선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김금수 : 의지의 문제다. 2000년 민주노총 단병호 집행부 시절 1년간 학자들을 동원해 운동 이념이나 노선을 닦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사회 변혁적 노동조합주의다. 그런데 정파 간 갈등 때문에 대의원회에서 보고도 못했다. 그때 작업하면서 나온 상당한 자료가 있어서 이제 임기가 다 된 김영훈 집행부에서도 해보려고 애썼는데 실제로 하지는 못 했다. 여전히 내부 의견이 분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일상적 활동에 매몰되어서 중요한 일을 유예해버린다.

프레시안 : 김 이사장의 문제 제기 중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왜 힘을 합치지 못할까?'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왜 그런가? 직접 몸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런 문제의식이 없나.

김금수 :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만나보니 다 비슷하더라'고 한다. 민주노총이 혁명하자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그에 대한 내 답변이 뭐였냐면, '양대 진영 간부들이 노래방에 가면 가사랑 번호가 다 다를 거다'라고 했다. (웃음)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비(非) 자율성을 비판하면서 나온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극복하겠다고 하면서도 점차 닮은꼴이 되어가는 것 같다. 실제 지향하는 바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나쁜 쪽으로) 비슷해지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진보 정치, 노동 정치를 하겠다는 세력들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김금수 : 사실 선거 과정에서 진보 정당들이 자기 목소리 낸 게 없잖나. 시끄럽기만 했지 역할을 한 게 없다. 그만큼 세가 약하단 이야기일 거고, 방금 말했듯이 정치 세력화에 대한 노선이나 기본 방침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민주노총 위원장 하던 사람이 보수 정당으로 가고, 민주노총 산별 간부였던 이들이 안철수 캠프로도 가는 사태가 벌어진 거다. 입으로는 '노동자 중심의 독자적인 대중 정당'을 말하면서 행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민주노동당 만들 때보다 앞으로 진보 정당 만들기가 더 괴로울 것이다. 거기다 대중적 신뢰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새롭게 노동 운동의 정치 세력화를 하려면 상당한 토대와 이론적인 근거가 필요한데, 과연 그런 작업을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독자적으로 지방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또한 현실성 약한 이야기다. 새 집행부가 들어서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정치 노선에 대한 논의를 하고, 그 노선에 따라 실행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 막는 '힘 불균형',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프레시안 : 최근 몇 년간의 가장 큰 노동 현안은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등의 집단 정리 해고 사태일 것이다. 노동 현안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들의 투쟁은 '희망 버스'라는 범사회적인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필연적이라며 무작정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에 해고자들을 보듬을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프레시안(최형락)

김금수 :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절대적으로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임금 격차로 인해 자본이 도피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말한 대로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너무도 취약하다.

또한 정리해고에 요건이 분명히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 요건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예컨대 '경영상 긴박한 필요가 있어서'라는 이유는 명분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용자 임의대로 손쉽게 하는 경우다. 결국 문제는 힘의 관계인데, 여기에 근본적인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탄탄한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정리해고가) 남발되기 마련이다. 허술한 법률 몇 개만 가지고는 막을 수가 없는 거다. 노동 시간 단축이나 직업 재훈련 같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또 현재 중요한 노동 현안 중 하나로 비정규직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비정규직이 절반인 시대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김금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이 된 게 2000년이었는데, 그때도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 10~15년 사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과 규모가 아주 심하게 확대됐다. 과거 기업 내 문제만으로 그쳤던 게 점차 사회 문제화되고 심지어 정치적 저항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나 사용자가 사용상의 편의성 같은 이점이나 기업 간 이해관계처럼 단순하게 볼 게 아니라, 이제 이것이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단기적 이득을 협박할 위험으로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은 공공 부문부터 선도하는 게 답이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게 그거다.

이런 인식 하에 제도 개선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차별 금지에 대해서는 지금 법에도 규정되어 있다. 실제 현장에서 안 지켜질 뿐이지. 결국 법률이나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특정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사용 제한을 두는 부분이다.

프레시안 : 기업별 노조가 제대로 된 노동 운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여러 노조들이 산별 노조로의 전환을 도모해 왔다. 현재 산별 노조 체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가?

김금수 : 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생겨날 때부터 기업 바깥쪽에서 생겼다. 봉제공은 봉제공끼리 모이고 기사들은 기사끼리 모였다. 즉 직종별인 셈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화·자동화되면서 직종별로는 안 되겠다 해서 산업별로 넘어간 거다. 그런데 우리 경우는 '기업별'에서 산업별로 넘어가야 하니까 어려운 거다. 일본은 우리 못지않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산별 전환에 실패했는데 그래도 우리는 형식이나마 산업별로 바뀌었다.

중요한 건 그 형식이 아니라 '교섭'이 산업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사용자 측에서 응하질 않는다고 하더라. 또 내부적으로도 산별 노조에 걸맞은 통일성, 집중력을 키우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기업별 노조의 의식이나 관행이 남아있으니까 힘이 취약하다. 또 정부도 자질구레한 법률 조항을 갖고 인정을 하네, 안 하네 이러고 있으니….


프레시안 : 김영삼 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 전 장관은 노동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정부가 하기에 따라 노사관계 발전은 물론 노동 운동의 시야나 수준 상승이 담보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 운동에 대한 정부의 역할, 어떻게 보는가?

김금수 : 노사관계에 있어 노·사 당사자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둘 간의 힘의 균형이 그나마 이루어지면 사실 정부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조정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런데 손배가압류로 파업권을 묶어 놓은 현 상황 같은 경우, 정부 역할은 노사관계를 발전시킬 가능성보다는 왜곡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법률상으로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해주고 힘을 대등하게 만들어주고 난 뒤 정부는 오히려 빠져야 한다.

박 당선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프레시안 : 지난 대선 이후 노동자 네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곧 들어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란 관측이 컸다. 박근혜 정부가 펼칠 노동 정책, 과연 어떨까?

김금수 : 박근혜 당선인이 유신의 '후예'인 건 부정 못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를 답습할 것인가 하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오늘의 국민이 박정희 시대의 국민이 아니니까, 유신 시대처럼 노동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게 되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거다.

그러나
낙관은 어려운 것이, 이명박 정부의 과(過)를 포함하여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노동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당선인 본인이나 그 정권을 에워싼 세력이 완강한 보수·지배 세력이니까 과연 합리적 노동 정책을 펼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합리적'이란 건 다른 선진국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도출한 보편적인 정책을 말한다. 박 당선인이 아무리 지지자들을 의식한다 하더라도, 이런 합리적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을 때 오는 저항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만약 다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노동 세력 스스로가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어서 인식하고, 내부의 힘을 추스르지 않으면 앞으로의 상황에 대처하기 상당히 어려울 거다. 이번에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 위원장이나 수뇌부가 누구건 간에 일대 쇄신, 권위 회복, 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노동 운동은 앞으로 안 나가면 뒤로 가기 마련이다. 새 집행부가 노동 운동의 고양기를 마련할 계기를 찾기를 바란다. 노동 세력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진보 정당 쇄신도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프레시안 :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주로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어디에서인가?

김금수 : 세계 노동 운동사를 함께 공부한 걸 생각해 보면 그래도 희망적이다. 무려 7년간 한 달에 두 번씩 열띤 토론을 나누었으니까. 이런 작업이 여기에서만 일어난 건 아닐 터다. 각 정파 조직에서도,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일어났을 거라고 본다. 이런 노력이 공식적인 계기를 맞아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노동 운동가들, 공부 참 안 한다. 대단한 듯해도 기껏해야 월 2회, A4 30장짜리 발제문이었다. 공부 좀 하자.

프레시안 : <세계 노동 운동사>는 기본적으로 노동 운동가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겠지만, 일반인이나 노조 활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거라고 보나.

김금수 : 역사를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지지 않겠나 싶다. 학교에서 배우교과서 역사는 주로 왕조의 역사, 지배 양식의 변화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 노동 계급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투쟁했는지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나와 있으니까 역사의 실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안은별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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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V의 맥박이 다시 뛴다!

 

RTV의 맥박이 다시 뛴다!

 

[한수경의 미디어의 세계, 세계의 미디어]
한수경 언론학 박사·마이그린뉴스 발행인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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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2.01 15:47:57

 

 

 

   
▲ RTV 후원회 페이스북 캡쳐

 

 

필자의 미디어스 칼럼 “뉴스타파, 국민TV방송 설립, 시민방송 RTV 함께 살려야”가 나간 이후 많은 관심이 모아져, 지난 1월 21일 RTV에서 ‘시민방송 RTV 살리기' 대책 간담회가 열렸다. RTV 임직원들과 미디어 및 방송 관계자들이 모여 RTV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가장 시급한 채널유지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곧 행동에 들어갔다. 페이스북엔 ‘시민방송 RTV 후원회’가 만들어졌고, 블로그와 트위터에서도 ‘시민방송 RTV 살리기’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시민방송 RTV는 아쉽게도 일반시민들에게 방송을 알리는데 그간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재정압박이다. 계속 유지할 수 없어, 결국 RTV채널을 포기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영석 RTV 사무국장의 표현을 빌자면, ‘막 RTV 셔터문을 내리는 순간, 잠깐! 하는 소리에 일단 멈춘’ 상황으로, 대선 이후 사실 RTV 측에서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방송 설립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RTV는 벌써 깃발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RTV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RTV를 진정한 시민방송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려고 한다. 물론 시민들이 참여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까지 시민방송 RTV는 ‘왜 시민방송 RTV를 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일반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했다. 시민방송 RTV가 존재해야할 이유는 막연한 것이 아닌, RTV가 내세우는 것처럼 구체적이다.

 

 

 

<시민방송이 있어야할 이유 10가지>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다.

비영리 재단법인으로서 자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국민주방송운동으로 시작된 진정한 국민의 방송

국민이 방송신청을 해서 방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

지금이라도 전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TV 채널

인터넷을 접하기 어려운 국민이 쉽게 볼 수 있는 TV 채널

모바일, 인터넷 등 뉴미디어 시대 정보격차 해소 가능

1인 미디어가 자유롭게 TV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

시민단체가 알리고 싶은 내용을 담아 제작한 영상을 TV로 내보낼 수 있는 유일한 채널

인터넷 대안언론이 TV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

 

 

10가지 이유들을 종합하면 ‘독립적인 국민방송’, 즉 ‘독립적인 시민방송 RTV채널’을 바로 세우는 것을 말한다. 독립적인 시민방송을 세우기 위해선 2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즉, ‘재정의 독립’과 ‘시민들의 콘텐츠 제공’이다. 아직까지 RTV의 생존방식은 정부지원에 기댄 것으로 방송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정부의 언론탄압에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 방송발전기금이 중단되고 공익채널 선정에서 탈락됨으로써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고, 결국 RTV채널 포기 상황까지 치닫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RTV가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된 시민방송’을 원한다면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는 시민방송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권에 따라 시민단체들의 존폐가 결정되거나, 아니면 정부지원을 ‘받아먹는’ 그야말로 ‘친정부 시민단체’, 즉 ‘사이비 시민단체’로 전락해 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된 구조 속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민방송 RTV 또한 생존위기에 처했던 것에 대한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과거 RTV가 받았던 방송발전기금은 시청자 및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는 지원으로 정당한 것이지만, 한국정부의 미디어정책엔 일관성을 찾아 볼 수 없고, ‘네편-내편’의 논리만이 지배적이라 시민들의 입장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는 "저소득층,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방송 소외계층이 방송을 자유롭게 향유하고 방송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는 디지털 시청자 복지 환경 조성"을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원의 목적으로 두고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진행되었다. 이제 시민방송 RTV는 정부지원에 대한 기대는 접고, 진정으로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방송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지원이 절대적이다.

 

RTV의 재정적자는 현재 약 7억 원이며 매년 4, 5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7억 원의 빚은 케이블 및 위성으로의 프로그램 송출비용이 누적된 액수다. 재정적자로 인해 RTV 상근자는 2명으로 축소되었고, 부조정실도 스튜디오도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사무실 임대료도 감당하지 못해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 새로이 이전했다. 현재 RTV가 추진 중인 사항을 살펴보면, 홈페이지 개편, CMS 후원계좌 만들기, 콘텐츠 확보와 새로운 이사진 구성으로 새로운 RTV를 준비하고 있다.

 

CMS 후원금은 KBS 시청료에 해당하는 월 2,500원으로 시민들 누구나 커다란 경제적 부담 없이 시민방송 정기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일차적으로 ‘1만 회원’ 모집으로 급박한 채널유지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으면 포기는 없을 것이다

 

시급한 최소한의 재정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RTV에겐 콘텐츠 확보가 중요하다. 현재 RTV는 프로그램 재방송을 통해 겨우 채널을 유지하는 상황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받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공익채널 선정에 탈락된 이후 제작지원을 할 수 없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민과 단체들이 사라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할 비영리민영단체들의 협조가 필요하며, 시민들의 콘텐츠 후원이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엔 채널을 반납해야 하는 최악의 상태가 된다.

 

 

 

   
▲ ⓒ민족문제연구소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RTV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새로운 콘텐츠가 제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던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이 시민방송 RTV로 방송됐다. 지난 1월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이 첫 방송된 이후 <백년전쟁 - 프레이저 보고서>가 방송되었고, 2월말까지 계속 방영될 예정이다. 앞으로 제작되는 콘텐츠도 RTV를 통해 일반 TV시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다가갈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1인 미디어로 활동하는 시민 개개인이나 시민단체들이 제작한 동영상들이 유튜브 등으로 인터넷상에서 확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RTV를 통해 TV채널로 전달된다면 시민방송을 바로 세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3월 개국을 준비 중인 대안방송 팩트TV(커널-씽크TV)도 이번 간담회에서 RTV와 협력하기로 했으며, 팩트TV '김태일의 정치야 놀자(164회)’에서 김태일 보도본부장은 RTV의 어려운 상황을 알리며 RTV 지원을 다시 한 번 약속했다. 간담회에 함께 참석했던 오마이뉴스 방송 측에서도 RTV 상황을 파악하고,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아직까지 시민방송 RTV가 생존하지 못했던 이유는 MB정부의 탄압도 문제지만, 시민들의 외면과 방치도 한 몫하고 있다. 약 1천만 가시청 가구가 반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없었던 RTV 측도 물론 책임이 크다. 1가구를 2인 정도로만 계산해도 RTV의 가시청 인구는 2천만으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RTV를 가정에서 시청할 수 있었다. 불행히도 현재 420만 가입자(가구)로 줄었지만, 여전히 대략 850만 명 정도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 ⓒ박대용/춘천 MBC

 

 

현재 RTV 상황은 최악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RTV 후원회원 모집과 콘텐츠 제공이 이루어진다면 아직 제작비 지원은 어렵지만, 앞으로 시민제작자들은 다시 제작비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기존방송이 외면한 소외계층의 삶과 또 다루기를 꺼려하는 사회의 이슈들을 RTV 위성과 케이블채널로 송출할 수 있다. ‘RTV 살리기’에 열성인 박대용 기자의 그림에서처럼, <백년전쟁>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영화관이나 인터넷이 아닌 안방과 거실에서 RTV를 통해 일반시민들도 편안히 앉아 시청할 수 있다.

 

종편채널에 대항하는 TV채널을 만들자는 국민방송 설립 목소리가 진정한 것이라면, 현존하는 시민채널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 ‘시민방송 RTV의 공’은 우리 시민들에게 넘겨졌다. 더 이상 MB정부나 RTV 관계자들에게만 RTV를 살리지 못한 책임을 떠넘길 순 없다. 응급처치로 숨이 넘어가던 RTV의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시민방송 살리기엔 이제 시민들이 나서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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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위한 기도

소를 위한 기도

 
박기호 신부 2013. 02. 01
조회수 907추천수 0
 

 

소.jpg

 

 

 

모든 존재의 생명을 주재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의 질서에 순종케 하시고
썩은 초목과 동물의 분뇨로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농부들의 손이 땅을 가꾸고 씨앗을 뿌려 곡식을 얻게 하십니다.
우리 마을 농업의 퇴비 생산을 위해서 기른 소들의 노고를 기억하면서.
소들과 함께 생활해온 시간들을 감사하나이다.
 
 
몇 마리의 송아지들이 우리 마을에 살러와서
어미소가 되고 송아지를 낳고 번식을 지속하는 동안이 은총이었습니다.
여물을 주며 소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송아지가 태어날 때마다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경탄하게 하였고
재산을 늘려주는 보람도 주었습니다.
 
우리와 함게 살아온 소들은 무엇보다도
좋은 유기질 퇴비를 제조하는 훌륭한 농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바쳐 인간의 음식이 되고자 떠나려 합니다.
우리 소들이 마을에서 태어나 살아온 한 생을 마치고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저희들은 말못하는 소들이지만 우리 마을을 위한 헌신을 기억합니다.
 
자연 생명을 주재하시는 아버지 하느님,
한 생명의 죽음은 음식을 통해서 다른 생명이 됩니다.
모든 생명은 다른 어떤 죽음으로 인하여서만 생명이 됨을 고백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소들의 희생이 사람들의 생명이자 목숨이 되오니
우리 모든 인간들도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는 정든 소들을 보내며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눕니다.
 
“소야, 그동안 함께 살아주어 고맙다.
너희가 송아지로 태어나던 순간과
무럭무럭 자라나는 과정을 보는 세월이 참 기뻤다.
너희들이 있음으로 우리 마을에 더욱 행복했음을 감사한다.
이제 너희들과 작별할 시간이 왔구나.
너희 목숨을 바쳐야 할 때가 왔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너희의 희생이 곧 많은 이들에게 음식이 되고 약이 되고 생명을 주는 것이니
너희는 이제부터 사람들의 몸으로 환생하여 함께 살아갈 것이다.
소들아, 잘 가거라. 그리고
우리를 지으신 하느님께서 주재하시는
영원 생명의 섭리를 기쁨으로 노래하자. 소들아 안녕!”
 
주님, 자연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게 건강과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모든 생명 위에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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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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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입을 전세계에 트윗해주세요-유형주

'국정원개입'을 세계 영향력 있는 트윗 100곳에 트윗
(다음아고라 / 유형주 / 2013-02-01)


'국정원 대선 개입'을 세계 영향력 있는 트윗 100곳에 트윗해주세요.

To Whom It May Concern;
It was found that a S. Korea spy agency agent tried to influence the presidential election.
This is a matter so serious as to get the president impeached. This election invalid.
Before the people demand it, the government should declare the election invalid.
But the government and the police are making mean attempt not to charge the agency.
The government continues to announce a lie that the election was not rigged.
I ask the favor of you ; Could you report this news?
The Korean very much need such help of yours.
I shall be very much thankful to you if you will help the people.

P.S. OpEdNews posted this news (click to read)

OpEdNews | Progressive Democrats of America - Illinois
www.pdaillinois.org


관계자께
한국 국정원 직원이 이번 대선에 영향을 끼친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이 선거는 무효다.
국민이 요구하기 전에 정부가 이번 선거가 무효임을 선언해야한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국정원 직원을 무혐의 처리하려고 수작을부린다.
정부는 계속 거짓말을 한다.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당신에게 부탁한다. 이 뉴스를 보도 해달라.
한국인은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다. 도와준다면 감사하겠다.

P.S. OpEdNews가 이 뉴스를 포스트했다

OpEdNews | Progressive Democrats of America - Illinois
www.pdaillinois.org


■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 100곳에 트윗하기

트위터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파급력이 막강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수개표 청원과 부정선거 의혹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트위터가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 입니다.

트위터 계정이 없으시면 꼭 만드시기를 권합니다. 주민등록번호 입력도 필요없고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됩니다. 또한 이메일 계정별로 다수의 계정을 함께 보유할 수도 있습니다.

트위터 가입 바로가기 클릭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트위터 주소들은 신문사, TV방송국, 국제기구, NGO, 유명정치인, 지식인 등을 총 망라하여 거의 이틀동안 밤새워가면서 엄선한 100곳 입니다. 지금 시국에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될만한 곳들이라고 감히 자부해봅니다.

☆ 트위터 보내는 방법

스마트폰보다 PC로 트위터를 활용하는 것이 보다 쉽고 효과적입니다. 저도 PC로 보내는 것을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먼저 아래에 나온 메시지를(연두색 부분) 드래그해서 복사를 합니다. 아래에 걸려있는 링크주소까지도 싹 완전히 복사해야합니다. 단축키는 'ctrl C'(컨트롤키 누르고 있는 상태로 C키 누르기) 입니다. 물론 다른 영어문장을 직접 작성하셔도 되며, 링크가 걸리는 글의 목록을 달리 하셔도 됩니다.

Election Fraud Suspected in 2012 South Korean Presidential Election. http://t.co/3k7MOW7D

2. 아래에 제시된 주소를 클릭하면 해당 트위터 주소로 곧바로 이동이 됩니다.

@UN (UN official)

@UN_DPA (UN 정치문제 담당부서)

@UNrightswire (UN 인권최고대표 사무소)

@secgen (반기문 UN 사무총장)

@BarackObama (오바마 미국대통령)

@whitehouse (미국 백악관)

@Oprah (오프라 윈프리)

@washingtonpost (미국 워싱턴포스트)

@nytimes (미국 뉴욕타임즈)

@latimes (미국 LA 타임즈)

@nydailynews (미국 뉴욕 데일리뉴스)

@chicagotribune (미국 시카고 트리뷴)

@USATODAY (미국 USA투데이)

@CBSNews (미국 CBS 방송)

@CNN (미국 CNN 방송)

@nbc (미국 NBC 방송)

@ABC (미국 ABC 방송)

@WSJ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iht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FinancialTimes (미국 파이낸셜 타임즈)

@FoxNews (미국 fox news)

@AJC (미국아틀란타 AtlantaJounal-Consitution)

@CNBC (미국 CNBC)

@NBCNews (미국NBC News)

@PBS (미국 PBS)

@StarTribune (미국 스타트리뷴)

@TexasTribune (미국 텍사스트리뷴)

@sltrib (미국 솔트레이크트리뷴)

@MittRomney (미트 롬니 미국 대통령 후보)

@JoeBiden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당선인)

@PaulRyanVP (폴 라이언 미국 부통령 후보)

@MichelleObama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영부인)

@ClintonTweet (미국 클린턴 재단)

@algore (미국 앨 고어)

@TheDemocrats (미국 The Democrats)

@UPI (미국 UPI 통신)

@AP (미국 AP 통신)

@Discovery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

@FreedomHouseDC (미국 프리덤 하우스)

@cnni (미국 CNN International)

@CNNEE (미국 CNN Espanol)

@CNNMex (미국 CNN Mexico)

@MiamiHerald (미국 마이애미 해럴드)

@fhollande (올랑드 프랑스대통령)

@lemondefr (프랑스 르몽드)

@reuters (프랑스 로이터)

@AFP (프랑스 AFP)

@20Minutes (프랑스 20Minutes)

@Le_Figaro (프랑스 르 피가로)

@ouestfrancefr (프랑스 OUEST)

@LeNouvelObs (프랑스옵저버)

@David_Cameron (캐머런 영국총리)

@TIME (영국 타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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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unNewspaper (영국 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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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irror (영국 데일리미러)

@reuters_co_uk (로이터 영국)

@TelegraphNews (영국 텔레그라프)

@MetroUK (영국 메트로)

@BBCWorld (영국 BBC 방송)

@Daily_Express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

@SkyNews (영국 Sky news TV)

@MailOnline (영국 daily Mailz)

@telegraaf (네덜란드 텔레그라프)

@RTLNieuwsnl (네덜란드 RTL TV)

@Angie_Merkel (메르켈 독일 총리)

@zeitonline (독일 Zeit)

@sueddeutsche_de (독일 sueddeutsche.de)

@FAZ_Topnews (독일 Frankfurter Allgemeinen Zeitung)

@BILD (독일 빌트지)

@SPIEGEL_EIL (독일 스피겔)

@SPIEGEL_English (독일 스피겔 영문판)

@Independent (독일 인디펜던트)

@ntvde (독일 N-TV)

@N24_de (독일 N24 TV)

@repubblicait (이탈리아 La Repubblica)

@la_stampa (이탈리아 la stampa)

@corriereny (이탈리아 Corriere dellaSera)

@Aftenposten (노르웨이 Aftenposten)

@CTVNews (캐나다 CTV News)

@svtnyheter (스웨덴SVT)

@NZZ (스위스 NeueZurcher Zeitung)

@el_pais (스페인 el pais)

@Yomiuri_Online (일본 요미우리 신문)

@asahi (일본 아사히신문)

@mainichijpedit (마이니치 신문)

@European_Union (EU official)

@EU_Commission (EU 위원회)

@NATO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daily_chomsky (노암 촘스키 교수)

@Nobelprize_org (노벨상 official)

@Pulitzercenter (퓰리처 센터)

@rotary (국제 로터리 클럽)

@NewspaperWorld (세계 신문협회)

@hrw (Human RightsWatch)

@amnesty (Amnesty International)

@RSF_RWB (국경없는 기자회)

@wikileaks (위키리스크)

 

3. 우측 맨 위쪽에 '로그인'을 클릭하신 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합니다.

4. 로그인이 완료되면 좌측 중간 부분에 "OOO님에게 트윗하기" 라는 글자 바로 아래에 "@"로 시작하는 네모박스가 있습니다. 그걸 클릭한 후 아까 복사했던 메시지를 붙여넣습니다. 단축키는 'ctrl V'(컨트롤키 누르고 있는 상태로 V키 누르기) 입니다.

5. 메시지를 붙여넣었다면 바로 아래에 나와있는 '트윗하기'(하늘색 박스)를 클릭하면 트위터 보내기가 완료됩니다.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화면 가운데 맨 위에 '나' 라는 부분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확인은 안해도 된답니다.^^)

6. 같은 방법으로 다른 곳에도 클릭을 하여 트윗을 보냅니다. 계속 진행하다보면 인터넷 창이 너무 많이 열려있어서 정신이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ctrl W'(컨트롤키 누르고 있는 상태로 W키 누르기)를 눌러줄때마다 열려있던 창이 하나씩 닫히게 됩니다.

※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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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우주의 먼지! '크고 아름다운' 그것이 온다!

[빅 히스토리] 역사를 넘은 역사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1 오후 6:59:55

 

질문 몇 개!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우주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요? 태양은 또 지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지구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요? 생명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암컷과 수컷이 섹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인류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넓고 넓은 우주에 외계 생명 혹은 인류와 같은 지적인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있을까요?

아마도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상식은 대개 이른바 '세계 4대 문명'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이집트 문명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천 년을 이른바 '역사'라고 일컫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시각은 온당할까요?

생각해 보세요. 빅뱅(Big Bang)부터 시작한 우주의 역사를 하루라고 가정했을 때, 인간이 지구에 등장한 역사는 1초도 못 미치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24시간 중에서 23시간 59분 59초를 생략한 채 나머지 1초도 안 되는 시간을 놓고서 감히 '역사'라고 이름을 붙여온 것입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아쉽습니다. 그간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설명할 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비중 있게 다뤄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어떨까요? 최근의 연구는 기후, 지형, 질병 그리고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호 작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 이런 반에 반쪽짜리도 못 되는 역사에 반기를 들면서 '모든 것의 역사'를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것은 단순한 '역사(history)'가 아니라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리말로 '거대사'로도 번역되는 빅 히스토리는 약 137억 년 전의 빅뱅부터 인류의 현재와 미래까지 살피는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프레시안 books'와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이 불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의 이모저모를 따져봅니다. '빅 히스토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부터 시작한 이번 과학 수다는 빅 히스토리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한국 교육의 핵심적인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번 과학 수다의 주인공은 역사학자 조지형 교수(이화여자대학교)와 진화 생물학자 장대익 교수(서울대학교)입니다. 조지형 교수는 빅 히스토리 연구를 처음 시작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데이비드 크리스천 박사와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지구사연구소를 이끌며 국내외 빅 히스토리 연구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장대익 교수는 학문 간 융합의 최첨단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진화 생물학자입니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몇 년간 조지형 교수, 또 천문학자 이명현 <크로스로드> 과학문화위원과 함께 빅 히스토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 중입니다. 이들의 수다를 정리하는 역할은 '빅 히스토리 기자'를 꿈꾸는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맡았습니다.

자, 이제 수억 년의 시간과 수백만 광년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빅 히스토리의 세계로 들어갈 시간입니다. <편집자>


왜 빅 히스토리인가?

강양구 : 오늘은 이명현 선생님도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으니, 제가 주로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우선 '빅 히스토리', 이 이름의 뜻부터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역사학자인 조지형 선생님께서는 빅 히스토리를 '거대사(巨大史)'로 번역을 했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자면, 왜 빅 히스토리입니까?
 

▲ 조지형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조지형 :

그러게요. 스몰 히스토리가 아니라 왜 빅 히스토리일까요? (웃음) 사실 빅 히스토리에 대한 굉장히 잘못된 편견이 있어요. 이름 자체가 빅 히스토리이다 보니 마치 이것이 역사학의 한 분야처럼 인식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편견은 역사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죠.

사실 역사 자체는 인간이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연의 역사, 우주의 역사 등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지요. 그런데 역사 정확히 말하면 '역사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탓인지, 빅 히스토리라고 하면 첫 반응이 "미시사의 반대인가요?" 혹은 "거시사의 다른 이름인가요?" 이렇게 오해를 합니다.

여기서 확실히 말하건대 아닙니다. 방금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고 했잖아요. 개인사, 가족사, 지방사, 민족사, 지구사, 자연사, 우주사 등. 빅 히스토리는 이 모든 것의 역사를 가능한 한 가장 크고 넓은 관점으로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빅 히스토리 안에는 우주의 역사, 생물의 역사, 인간이 역사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빅 히스토리는 역사의 시작을 이 우주가 탄생한 '빅뱅'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또 현재의 역사를 살필 때도 인간뿐만 아니라
세균, 바이러스 심지어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것 그리고 인간이 만든 수많은 인공물 예를 들어 휴대전화 같은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해요.

강양구 : 그런데 원래 조지형 선생님께서는 미국사 특히 미국 헌법의 역사가 전공이잖아요? 미국 헌법의 역사를 공부하던 역사학자가 빅 히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역사학자가 빅 히스토리에 빠져든 얘기를 들려주면, 이 빅 히스토리의 개념이 더욱더 독자에게 와 닿을 것 같아요.

조지형 : 저는 한 번도 역사를 인간만의 소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대학은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이런 의문을 가졌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왜 역사학에서는 인간의 역사만을 다룰까?' 그래서 기존의 역사학의 시각에서 보면 엉뚱한 작업도 했었습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쓴 학기말
리포트에서 미국의 우드윌슨 대통령 시기의 정치사를 스페인독감의 유행과 연결시켜봤어요. 일설에 따르면, 윌슨은 1918년부터 2년간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을 심하게 앓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쓰러져 죽었어요. 전국 순회 연설 중에 뇌졸중 유사 증상으로요. 스페인독감이 미국의 정치에 큰 영향을 준 거죠. 물론 이 리포트를 읽은 교수는 '이게 역사냐' 하고 타박을 했지만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역사를 제대로 살필 수 없어요. 미국 남북 전쟁(1861~1865년),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 등을 살펴보면, 총칼에 죽은 수보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일으키는 질병에 의해서 죽은 수가 훨씬 많아요. 예를 들어, 남북 전쟁에서는 사망자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이 질병에 의해서 죽었거든요.

그러니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다루려면 질병의 역사나 기후의 역사를 다루는 게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역사학은 그런 부분을 무시해왔어요. 인간의 역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과 맞물려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모든 것의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마땅하죠. 빅 히스토리에 빠져든 첫 번째 이유입니다.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설명하죠. 우리는 은연중에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합니다. 역사학자는 보편성/특수성을 따지죠? 그런데 이런 구분이 타당한가요? 사실 역사학자가 얘기하는 보편성이라는 건 '중세-고대-근대-현대' 이렇게 이어지는 서양사의 특징일 뿐이거든요.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나누는 이분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인간을 연구하면 인문학이고, 그 외의 것 그러니까 자연을 연구하면 자연과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자연을 구분하는 게 쉽나요?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과 자연은 떨어져 있는 게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어요.

심지어
지금은 인간/기계도 또렷하게 구분하기가 힘들어요.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컴퓨터가 버벅거리면 그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웃음) 인간의 몸이 기계인 컴퓨터와 끊임없이 상호 작용한 결과죠.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통합되어 있어요.

이런 통합적인 관계에 주목해야 역사를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관계를 갖고서 상호 연결되어 있는가? 바로 이런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 빅 히스토리입니다. 빅 히스토리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저는 비로소 제대로 된 역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이명현 : 방금 조지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빅 히스토리의 그런 관점은 사실 과학자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관점입니다. 장대익 선생님께서 빅 히스토리를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요?
 

▲ 장대익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장대익 : 2008년쯤 학부에서 '자연과 인간'이라는 과목을 강의한 적이 있었어요. 빅 히스토리를 접하기 전이었죠. 하지만 이미 저는 빅 히스토리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빅뱅, 우주의 시작, 원소의 형성, 지구의 탄생, 인간의 진화, 문명의 탄생과 발전을 한꺼번에 고려해야만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저는 빅 히스토리는 최고의 지적인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역사학의 한 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과학의 한 분야도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모든
지식을 엮어서 인과 관계나 혹은 상호 관계를 밝히는 작업이 바로 빅 히스토리죠. 그리고 가능하면 그런 작업을 통해서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까지 파악하는 거죠.

바로 이 지점에서 빅 히스토리의 또 다른 쓸모도 찾을 수 있어요. 조지형 선생님께서 빅 히스토리가 우리와 세상을 이해하는 넓고 깊은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빅 히스토리가 지혜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이게 빅 히스토리의 두 번째 쓸모죠.

과거에 어떤 분수령이 있었고, 그런 분수령을 계기로 어떤 흐름이 지속되어 왔는지를 파악하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갈지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빅 히스토리는 정말로 시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지역, 지구, 우주를 포괄하는 학문 중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양구 : 지금까지 말씀을 듣고 보니, 빅 히스토리가 왜 중요한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관점의 연구가 가능할까, 이런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장대익 : 맞아요. 역사학자 중에서도 조지형 선생님과 같은 분을 제외하고는 한국사, 미국사, 유럽사 혹은 고대사, 중세사, 현대사 이런 식으로 나뉘어서 자기 분야 외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생물학, 지질학과 같은 자연과학의 수많은 분야들, 더 나아가 심리학도 알아야 해요.

지적으로 엄청난 호기심을 가져야 하고, 그런 호기심을 직접 연구로 풀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야 합니다. 그러니 쉬운 작업이 아니에요. 결코 혼자서 혹은 소수가 모여서 할 수 있는 작업도 아니고요. 그리고 저는 장기적으로는 '빅 히스토리(The Big history)'가 아니라 '빅 히스토리들(Big histories)'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빅 히스토리의 태동기이기 때문에 마치 이것이 하나의 흐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관점의 빅 히스토리들이 나올 거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의 빅 히스토리는 아무래도 인간 중심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다루지만 결국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고찰이 되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서서 아예 박테리아의 시각에서 빅뱅부터 현재까지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통찰까지 빅 히스토리를 쓸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이렇게 여러 가지 빅 히스토리가 나오고, 그런 빅 히스토리가 서로 경쟁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애초 빅 히스토리가 의도했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명현 : 장대익 선생님의 말씀에 부연하자면, 과학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빅 히스토리에 대한 갈구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천문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별 먼지(스타 더스트, star dust)'가 생명의 기원이라고 주장했지요.
 

▲ <코스모스>(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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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이렇게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작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이건은 이 책에서 인간과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 신화에서 과학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빅 히스토리의 한 예를 보여준 거죠.

과학자뿐만이 아니죠. 한참 전에 결혼식이 있어서 부산에 갔다가 열차를 기다리기 지루해서 근처 만화방에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현세의 만화 <천국의 신화>(다크북 펴냄)를 집었습니다. 그런데 1권을 펼치자마자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인 빅뱅부터 시작해 인간이 지구에서 진화해온 과정이 묘사되고 있는 거예요. 이것도 또 다른 빅 히스토리죠. (웃음)

스토리텔링의 힘

조지형 : 벌써 다양한 빅 히스토리가 만들어질 조짐이 보입니다. 2012년 8월에 미국에서 제1회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어요. 전 세계에서 빅 히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는 전체의 3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고등학교 교사 심지어 기업가까지 정말로 구성이 다양해요.

방금 장대익, 이명현 선생님께서 과학자의 관점에서 빅 히스토리에 대한 생각을 얘기했어요. 공감하면서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걸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 뭔가?' 누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단연 '스토리텔링'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근대 과학 혁명 이전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 시도의 가장 오래된 결과물이 바로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 설화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과학적인 방법이든 인문·사회과학적 방법이든 혹은 신화적 상상력이든 인간과 세상을 연결하는 고유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왔어요.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 이른바 학문이 분화되면서 이런 스토리텔링의 전통이 파괴됩니다. 인간은 인문학, 자연은 자연과학 또 그 안에서도 쪼개지죠. 더 이상 '나는 어떤 존재인가?' 혹은 '나와 세상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인간은 더욱더 외롭고 왜소해졌어요.

전근대에 극히 드물었던 자살이 근대에 들어서 폭증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근대 이전에 인간은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달을 수 있었던 반면에, 근대에 들어서는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으니까요.

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빅 히스토리는 인간과 세상 다시 말하면 인간과 자연을 연결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빅 히스토리는 인류의 위대한 전통(스토리텔링)을 다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인 셈이죠.

장대익 : 인간은 결국 '스토리텔링하는 존재'라는 얘기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과학자로서 한 가지 불만이 있어요. 왜냐하면, 상당수 인문학자들은 여전히 과학을 그런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공급하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신화와 같은 과거의 빅 히스토리와 지금의 빅 히스토리가 다른 점이 뭔가요?

이명현 : 과학의 존재죠.

장대익 : 그렇죠. 예전에 '번개는 왜 쳐요?' 하고 아이가 물으면 할머니가 "신이 하늘에서 벼락을 던지는 거란다!" 이렇게 답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기 중에서 발생하는 정전기 현상이 번개와 천둥의 원인이라는 걸 상식처럼 알고 있어요. 감히 말하자면, 지금의 빅 히스토리가 가능한 건 과학의 '인푸트(input)'가 있기 때문이에요.
 

▲ <통섭>(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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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이 <통섭(Consilience)>(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을 쓰면서 이런 식의 얘기를 합니다. '계몽의 시대가 끝났다고? 천만에 이제야 제대로 계몽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무슨 말이야. 계몽은 실패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완의 프로젝트일 뿐이야.'

빅 히스토리야말로 이런 미완의 프로젝트를 완성시켜보려는 시도가 아닐까요? 그리고 근대 이후 축적된 과학이 바로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고요. 그런 점에서 '과학은 단순히 지식을 제공하고, 그것을 스토리텔링으로 엮는 건 인문학이다' 이런 시각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빅 히스토리의 스토리텔링 역시 과학이 감당해야 할 몫이거든요.

조지형 : 지금까지 인문학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해온 건 사실이지만, 빅 히스토리가 인문학 중심으로 흘러가는 데는 저도 반대합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장대익 선생님 지적대로 빅 히스토리의 중요한 부분을 새롭게 축적된 과학의 성과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축적한 스토리텔링의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사고 구조에 가장 부합하는 형식이거든요. 그러니 과학이 중심이 된 스토리텔링 역시 이런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즉 과학자들도 자신의 연구를 통해 축적한 과학 지식을 어떻게 스토리텔링 속에 녹일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얘기죠.

실제로 빅 히스토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다 보면 스토리텔링의 힘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과학 지식을 과학자로서의 훈련을 받지 못한 비전공자에게 전달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더구나 빅 히스토리를 접하면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저 역시 비전공자잖아요. 여기서 이야기가 힘을 발휘하는 거죠.

예를 들어 별의 역사 같은 걸 딱딱한 과학 용어가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서 얘기를 하니까 학생들이 훨씬 더 그걸 친숙하게 받아들여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A에서 B로, B에서 D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나 학생이나 바로 알게 되죠. '어, C가 빠졌잖아요?'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C가 아직 연구가 안 된 공백일 수도 있죠.

공부가 부족한 것이었다면 새로운 공부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고, 연구가 부족한 것이었다면 새로운 연구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거예요. 이야기가요! 이 과정에서 학문 후속 세대가 해당 분야에 뛰어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 C 부분의 이야기는 내가 채워 넣겠어!' 이런 식으로요.

스토리텔링의 힘은 이뿐만이 아니죠. 이야기 자체가 지식을 체계화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제가 빅 히스토리를 얘기할 때, 자주 언급하는 게 '책장 이론'이에요. 자, 여기 큰 방을 꽉 채우는 책장이 있어요. 빅뱅, 별들의 탄생, 원소의 탄생, 지구의 탄생, 생물의 탄생, 인류의 진화, 문명의 시작 등…. 그 책장은 이렇게 이야기를 따라서 칸이 나뉘어져 있죠.

빅 히스토리는 이 책장에 지식의 책을 하나씩 꽂아보는 일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지식의 책을 꽂다 보면, 어떤 분야는 충분하고 어떤 분야는 부족한지 확인할 수 있어요. 그것이 인문·사회과학일 수도 있고, 자연과학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머릿속의 책장을 만드는 일이 바로 스토리텔링이에요.

강양구 : 그것은 일종의 '지식 지도(knowledge map)'을 그리는 데도 아주 유용할 것 같은데요.

조지형 : 맞아요. 실제로 해본 적이 있어요.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가상의 책장을 만들어놓고서, 해당 분야의 대가를 한 명씩 배치해 보는 거예요. 빅뱅을 연구하는 A, 초기 우주를 연구하는 B, 별의 탄생을 연구하는 C,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는 D 이런 식으로 배치하다 보면, 일종의 한국판 지식 지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운 경험도 했지요. 생각보다 훨씬 더 공백이 많은 거예요. 예를 들어 '생명의 탄생' 이런 분야의 대가가 누굴까 궁금해서 수소문을 해봤더니 국내에는 그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과학자가 많은데 이런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니…' 하고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장대익 : 과학자들끼리는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놀라셨군요. (웃음)
 

▲ 이명현 위원.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조지형 선생님께서 과학자도 연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어떻게 이야기로 녹여낼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그런데 장대익 선생님이나 제가 걱정하는 부분을 한 가지만 덧붙여 볼게요. 과학 지식의 축적된 정도가 인문·사회과학자나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이롭습니다.

지금은 우주의 역사를 놓고도 그 나이를 1퍼센트 오차로 따집니다. 지구의 나이는 거의
100만 년 오차 범위까지 좁혔고요. 전통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인간 본성을 놓고도 과학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예술은 어떻고요. 인간의 미(美)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과학 지식이 축적되었습니다.

장대익 선생님의 지적은 조지형 선생님께서 강조하는 빅 히스토리의
스토리텔링에 이런 과학의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이 자신의 과학 지식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할지도 고민해야겠지만, 인문·사회과학자도 이제 과학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이런 상호 작용 없이는 야심차게 시작한 빅 히스토리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놓인 두 문화의 높은 벽만 확인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물론 누구보다도 자연과학의 성과에 관심이 많은 조지형 선생님께서 버티고 계시니 걱정이 덜 되지만요.
(웃음)

콜라 캔의 빅 히스토리 : 빅뱅부터 쓰레기까지

강양구 : 세 분 말씀을 듣고 보니 한 가지 질문거리가 생깁니다. 빅 히스토리가 단순한 백과사전은 아니잖아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얘기를 하는 걸 빅 히스토리라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 조지형 선생님께서도 계속 인류가 축적한 다양한 지식을 '엮고', 또 그 엮인 결과물이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시는 거죠.

이런 점에서 보면 빅 히스토리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개별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걸 포괄하면서 엮는 작업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뭔가 엮으려면 항상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엮을지가 필요하잖아요. 방금 세 분 사이에 흘렀던 약간의
긴장감도 도대체 어떤 관점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견해차가 아닐까 싶어요.

거칠게 구분하자면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할지 혹은 역사학자에게 익숙한 방법론을 적용할지에 따라서 다양한 빅 히스토리의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이런 시도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 좋지만, 실제로는 충돌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대익 : 중요한 지적입니다. 역사학계 내에서도 실크로드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같은 학문 분야 안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있는데,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없으면 이상한 거지요. 다섯 사람이 모여서 빅 히스토리를 연구하다 보면, 극단적으로는 다섯 가지 관점이 충돌할 겁니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식의 충돌은 없어요.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빅 히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도 소수고,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할 정도로 빅 히스토리 연구가 활발하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이런 문제들이 분명히 중요한 논란거리가 될 거예요.

당장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조지형 선생님을 통해서 빅 히스토리를 접하고서, 이 분야의 선행 연구를 살펴보니
공유하는 몇 가지 전제가 있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빅 히스토리가 전개하는 과정에서 '복잡성(complexity)'이 증가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진화론을 연구하는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왜냐하면,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복잡성'은 뜨거운 화두거든요. 복잡성이 증가했느냐 아니면 '다양성(diversity)'이 증가했느냐, 이런 물음은 진화론에서 굉장히 중요한 논쟁 주제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더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빅 히스토리 연구에 참여하면 이런 문제를 놓고서 큰 논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 결과 빅 히스토리의 결과물인 이야기의 흐름도 달라질 거고요. 물론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아직은 이 단계가 아닙니다. 지금은 각자가 연구해온 여러 가지 지식이 서로 떨어진 게 아니라 엮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런 지식을 엮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죠. 물론 저는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조지형 : 다양한 관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겠죠. 학문의 토대가 두터워질수록 논쟁이 많아지고, 또 논쟁이 많을수록 학문이 더욱더 발전하니까요. 장대익 선생님이 예를 든 것처럼, 실제로 여러가지 논쟁의 가능성이 있고요.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논쟁이 많아지면 그 자체가 빅 히스토리가 발전하고 있다는 방증일 거예요.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나만 덧붙일게요. 방금 다양한 관점이라는 얘기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아까 장대익 선생님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 다양한 관점이라는 것도 아직까지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빅 히스토리가 발전해서 가능한 한 최대한 인간의 관점을 배제하려는 연구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리틀(little) 빅 히스토리'라는 게 그 단초를 보여주는 연구들이죠. 그건 뭐냐면, 박테리아의 관점에서 혹은 콜라 캔의 관점에서 빅 히스토리를 연구해 보는 거예요.

강양구 : 콜라 캔이요?

조지형 : 네, 콜라 캔의 원료가 알루미늄이잖아요. 콜라 캔의 빅 히스토리는 알루미늄의 기원부터 시작하겠죠. 알루미늄의 기원을 파고들면 원소의 탄생, 우주의 탄생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콜라 캔을 통해서 빅뱅부터 현대의 쓰레기 재활용까지 빅 히스토리가 완성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대안 교육은 빅 히스토리부터!

장대익 : 지금까지 너무 장밋빛 얘기만 했으니까, 제가 악역을 좀 맡지요. 빅 히스토리든 리틀 빅 히스토리든 그럴듯한 연구가 가능하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해요. 빅뱅, 인간의 진화, 과학기술의 미래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놓을 수 있겠어요? 칼 세이건 정도라면 모를까.

강양구 : 현실적으로는 공동 연구를 할 수밖에 없겠지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팀티칭이 불가피하고요.

장대익 : 그런데 공동 연구가 말처럼 쉽나요? 또 팀티칭 단계에 들어가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죠.

예를 들어 별의 탄생, 원소의 기원 이런 것을 강의한다면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합니다. 이것도 만만한 일이 아닌데, 심지어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바통을 넘겨받은 사람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을 테고요.

그러니까, 빅 히스토리가 제대로 되려면 각 분야의 대가들 그리고 각 분야의 상호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일종의 빅 히스토리 코디네이터가 필요해요. 그런 팀이 있을 때 비로소 빅 히스토리 연구가 기존의 개별 학문과는 다른 성과도 낼 수 있고, 학생들에게도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닌 진짜 빅 히스토리를 가르칠 수 있는 거죠.

조지형 : 장대익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어요. 빅 히스토리를 처음 시작한 학자 중 한 사람이 데이비드 크리스천 박사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박사의 책 제목이 <Maps of Time>입니다. '시간의 지도'. 빅 히스토리의 목적을 잘 보여주는 책 제목입니다. 빅 히스토리는 지도입니다.

빅 히스토리는 빅뱅부터 현재까지 약 137억 년의 역사와 앞으로 올 미래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에요. 지도는 일종의 가이드잖아요.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한 분야의 대가라고 하더라도 다른 분야는 초보자입니다. 그런 초보자에게 전체를 대강이라도 보여주고, 다른 분야로 인도하는 역할이 빅 히스토리입니다.

빅 히스토리는 공유입니다. 학회에서 만난 빅 히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3, 4년 전만 하더라도 자기 분야 외에는 문외한이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빅 히스토리를 접하고 나서 불과 몇 년 만에 이들은 관심의 폭이 굉장히 깊고 넓어졌어요. 물론 특정 분야의 대가 수준에는 못 미치겠지만, 개인으로서는 놀라운 발전이지요.

저만 해도 그래요. 저도 자연과학이 쌓은 여러 지식에 관심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빅 히스토리를 접하고 나서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말을 섞을 정도의 실력은 됩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주변에 있는 지식을 훔쳐서 쓰고 있어요. 빅 히스토리를 통해서 일종의 지식의 공유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지요.

빅 히스토리에 관심이 많은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선생님, 이거 학생들 상대로 사기 치는 거 아니에요?' (웃음) 자기도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학생들에게 빅뱅부터 현재까지 137억 년의 역사를 가르치는 걸 자조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빅 히스토리는 앞에서 말한 대로 지도일 뿐이죠. 그 지도에 나온 커피숍의 커피가 맛이 있는지는 직접 그 커피숍을 찾아가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분야에 좀 더 욕구가 있는 이들은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이런 쪽으로 파고들겠죠. 그리고 그들이 빅 히스토리로 돌아와서 좀 더 정교한 지도 혹은 전혀 다른 정보를 담은 지도를 새롭게 그리겠죠.
 

ⓒ프레시안(손문상)

장대익 :

그런데 어떤 처지냐에 따라서 편차는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방금 언급한 그 고등학교 선생님의 경우에는 빅 히스토리를 만난 건 축복이죠. (웃음)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에게 빅 히스토리는 누군가가 해주면 좋겠지만, 굳이 내가 나설 이유는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연구랑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일단 빅 히스토리의 가장 큰 목적을 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어요. 방금 조지형 선생님께서 정의를 내린 것처럼, 자기 연구를 최대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일이요.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거죠. 이런 지식의 공유에 많은 이들이 나서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게 빅 히스토리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 학생들 입장에서 빅 히스토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학생들이 빅 히스토리를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일종의 태도를 배운다고 생각해요. 여러 번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세상의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그런 연관성을 인식하는 일이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거죠.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앞으로 그 학생이 어떤 학문 분야에서 무슨 연구를 하든, 또 사회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든 큰 자산이 될 것 같거든요. 이렇게 개인과 세상,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도 좀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고요.


강양구 : 그런데 빅 히스토리가 교육 외의 연구에도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빅 히스토리의 관점이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거나 혹은 기존의 연구를 보강하거나 이렇게요.

장대익 : 물론 빅 히스토리의 관점이 연구에 어떤 영감이나 통찰을 줄 수 있겠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이르지만요. 다만 그런 자극도 상호 소통에 기반을 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때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소통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예요.

조지형 : 글쎄요. 학문 분야마다 편차가 있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빅 히스토리가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제시한 경우거든요. 기존의 연구에서는 산업 혁명의 등장을 가져온 중요한 원인으로 인구의 증가를 꼽았어요. 인구 증가의 결과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에 대한 수요가 나타나고 그것이 산업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찾아보니까 18세기 후반에는 오히려 인구가 감소해요. 그런데 인구가 감소하는데도 목재 즉 땔감의 가격은 증가합니다. 기존 역사학계의 시각으로는 설명을 못하는 부분이죠. 저는 기후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1440년부터 1850년까지 지구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소빙기가 있었거든요.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유럽 등 곳곳에서 대기근이 있었죠. 그 결과 인구도 감소했고요. 추우니까 땔감으로 쓰이는 목재에 대한 수요는 폭증했고요. 그러다 목재를 대신할 새로운 자원인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에 주목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기후를 주목하니 역사를 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이 가능해졌어요.

장대익 선생님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으셨죠. 빅 히스토리가 활발하게 연구되면 그 결과로 이런 식의 새로운 자극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리라고 기대합니다. 물론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분야도 있고, 상대적으로 더딘 분야도 있겠지만요.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빅 히스토리를 보면, 우주 과학의 한 분야인 우주 생물학이 생각이 나요. 우주 생물학이 지금 1세대를 넘어서 2세대로 갔거든요. 그런데 5, 6년 전만 하더라도 학회를 가보면, 1세대 우주 생물학자로 볼 수 있는 학자들의 전공이 다 제각각이었어요. 천문학자, 미생물학자, 지질학자, 해양학자, 심리학자 심지어 SF 작가까지.

그래서 학회를 가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꼭 천문학, 화학 등에 대한 기초적인 강의를 잠깐이라도 해야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과정이 없이는 상호 소통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대학에 아예 우주 생물학과가 생겼고, 거기서 학위를 받는 학생까지 생겼어요. 당연히 이들은 체계적으로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인류학 등을 배우죠. 앞으로 빅 히스토리도 이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을까요?


강양구 : 그렇게 빅 히스토리가 제도권의 독립적인 분과 학문으로 정착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요? 장대익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빅 히스토리는 모든 학문 분야에 스며들어야 할 일종의 태도잖아요. 빅 히스토리 학과에서 석사, 박사가 나오면 또 다른 학문 분과로 고립된 채 남지 않을까요?

장대익 : 저는 빅 히스토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일 바람직한 것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학부 때부터 빅 히스토리를 배우고 나서 대학원에서는 자기 전문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모습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러니 빅 히스토리를 좀 더 깊이 고민하는 배움의 과정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설사 방금 얘기한 긍정적인 모습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분과 학문의 연계를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부동산을 사고팔 때 당사자가 직접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하잖아요. 빅 히스토리 전공자가 중개업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양구 : 일종의 빅 히스토리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는 얘기군요.

조지형 : 네, 필요합니다. 특히 지금 교육 현장에서 빅 히스토리에 대한 요구가 많아요. 그런데 빅 히스토리를 제대로 가르칠 인력이 거의 없어요. 빅 히스토리 교사를 길러낼 교육 기관이 반드시 필요해요. 실제로 빅 히스토리가 각광을 받으면서 외국에서는 그런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고요.

강양구 :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미니칸 대학 같은 곳 말이군요.
 

▲ <빅 히스토리>(신시아 브라운 지음, 이근영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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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형 : 맞아요. 국내에 빅 히스토리를 처음으로 소개한 책인 <빅 히스토리>(이근영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를 쓴 신시아 브라운이 교육학과 교수로 있는 곳이죠. 이곳에서는 약 250명가량이 1학년으로 들어가는데, 그 전체 학생 모두가 빅 히스토리 과목을 교양 필수로 들어요.

그리고 한 학기 동안 그 과목을 배우고 나서 다음 학기에는 '빅 히스토리를 통해 본 물리', '빅 히스토리를 통해 본 정치', '빅 히스토리를 통해 본 음악' 이런 식의 과목을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각자의 전공을 파고들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전공을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강양구 : 빅 히스토리 수업을 실제로 진행하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조지형 :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하면 중간고사를 전후로 수업 내용의 성격이 바뀌어요. 왜냐하면, 빅 히스토리를 쭉 이야기하다 보면 중간고사 정도에 인류가 등장하거든요. 그 전에는 빅뱅, 초기 우주, 별의 탄생, 지구의 탄생, 생명의 진화 등 주로 자연과학의 성과에 의존하는 내용입니다.

아무래도 교사가 문과 쪽이면 허점이 있잖아요. 그럼, 그런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아요.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정도만 되어도 해당 분야의 마니아인 친구가 있거든요. 이때 교사의 열린 자세가 매우 중요해요. 허점을 지적한 학생에게 아예 해당 분야를 다음 시간에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를 주면 교육 효과가 상당히 큽니다.

물론 그렇다고 빅 히스토리 수업의 전반부가 자연과학 일색은 아닙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빅뱅을 설명하면서 세상의 시작을 근대 이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등을 설명하니까요. 세계 어느 곳이나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런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있잖아요.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것이 그 답이죠.


장대익 : 제가 걱정하는 게 그런 부분인데요. 자칫하면 학생들이 근대 이전에 있었던 신화적 설명과 근대 이후의 과학적 설명을 똑같은 가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과거의 신화적 상상과 근대의 과학적 지식은 인식론적으로 큰 단절이 있는데요. 이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조지형 : 글쎄요. 학생들이 그 둘을 같은 가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우려는 과한 것 같아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신화를 무조건 폄훼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신화는 그 나름대로 고대인의 고도의 사유가 응축된 산물이거든요. 그걸 무조건 폐기할 게 아니라, 과학 이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빅 히스토리의 사유를 했었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실 인류가 계속 지금과 같은 문명을 유지하면서 발전한다면, 앞으로 수백 년 후에는 지금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과학 지식도 마치 신화처럼 인식될지 몰라요.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지금 우리가 아는 과학 지식의 상당수는 앞으로 버려질 거예요.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근대의 과학적 인식론은 끊임없이 과거의 지식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면서 발전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새로운 과학 지식이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원천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신화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도무지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똬리를 틀죠. 바로 이게 근대 이전 인식론의 특징이에요. 그리고 저 역시 이런 식의 인식론이 여전히 우리가 새로운 과학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장대익 선생님의 우려가 타당하다고 여깁니다.

강양구 : 네, 여기까지!(웃음) 지금 세 분 선생님의 논쟁은 사실 과학철학의 핵심 논쟁거리 중 하나가 아닌가요? 토머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김명자 옮김, 까치 펴냄)도 떠오르고요.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테니, 이런 견해차가 있다는 것만 독자들한테 확인시키고 넘어가면 좋겠어요.

장대익 : 한 말씀만 더 하자면, 중학생 딸이 있는데 학교에서 도대체 뭘 배우고 오는지를 생각해 보면 정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웃음) 저는 정말 학교 선생님들이 괜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지 말고 지금 축적된 지식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물론 일부 열심히 하는 선생님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건 아니고요.

오히려 그 반대죠. 학교 선생님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 이런 회고가 얼마나 많아요? 그만큼 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선생님들이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을 하느냐, 이런 회의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유독 '그 선생님 덕분에 내 인생 망쳤다' 이런 회고가 많잖아요. 일단은 저도 여기까지! (웃음)

강양구 : 그러니 자꾸 대안 학교 얘기가 나오잖아요.

장대익 : 우리도 빅 히스토리 학교를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웃음) 이게 농담만은 아니에요. 아이 때문에 최근에 우리나라 학교를 놓고 진지한 고민을 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는 교육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비민주적인 학교를 민주적인 학교로 만들자' 이런 문제의식이 강했죠.

이제는 새로운 학교 만들기가 시작되어야 할 듯해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관심이요. '과연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애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이제는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방금 대안 학교 얘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자율성과 같은 민주주의만을 강조하지,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수업을 어떻게 제공할지는 관심 밖이죠.

조지형 :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 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이 굉장히 중요해요.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면 이미 '넌 문과 적성', '넌 이과 적성' 이런 식으로 딱지가 붙여지잖아요. 그러면 아예 다른 분야는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아요. 이런 학생을 상대로 한 빅 히스토리 교육은 극히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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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 그 가능성을 찾아서

강양구 : 얘기를 다 듣고 보니, 여기 세 분의 책임이 막중하네요. 한국 사회에서 빅 히스토리를 거의 처음 시작하고 계시잖아요. 간단히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자신의 전망을 얘기하면서 이번 과학 수다를 마무리하면 어떨까요?

장대익 : 이론 생물학의 중요한 문제는 진화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에요. 진핵 세포의 등장, 암수와 성의 등장, 언어의 등장 같은 것이요. 이런 최초의 사건들을 개인적으로 재구성해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게 빅 히스토리를 구성하는 뼈대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연구가 빅 히스토리에도 기여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최신의 연구 성과가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도 기여를 하고 싶어요. 특히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학교 현장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는 대안 커리큘럼을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아까 빅 히스토리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했잖아요. 저부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죠.

조지형 : 원래 제 전공인 미국 헌법의 역사는 계속 연구를 해야겠죠.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최근 들어서 소빙기와 산업 혁명 등 이런 빅 히스토리의 관점의 역사 연구에 관심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의 리틀 빅 히스토리를 한 번 연구하고 싶어요. 오늘 이 얘기를 길게 못해서 많이 아쉬운데요.

빅뱅, 태양 이 모든 게 다 에너지의 효과거든요. 그리고 생물의 진화, 문명의 탄생과 흥망성쇠, 생태의 변화도 모두 에너지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고요. 그래서 기후, 생태, 에너지, 역사 이 넷을 아우르는 빅 히스토리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해볼 작정입니다. 또 장대익, 이명현 선생님과 함께 대안 커리큘럼도 만들고 교사를 상대로 교육도 하고요.

이명현 :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과학이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온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빅 히스토리예요. 언젠가 한국수사학회에 가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계속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얘기를 하는 거예요. 과학의 발전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 통찰을 수사학에 줄 수 있는데도, 거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지요.

저는 빅 히스토리가 이런 지적 풍토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과학이 문화로 들어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상황, 그게 바로 빅 히스토리가 만들어갈 우리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저도 그런 빅 히스토리를 만드는데 적지만 기여를 하고 싶고요.
 

ⓒ프레시안(손문상)

 

빅 히스토리에 한 걸음 다가서기
글 · 김서형 / 이화여자대학교 지구사연구소 상임연구원


최근 우리나라에서 융합 교육과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빅 히스토리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역사적 분석 대상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137억 년 전 탄생한 우주의 시작인 빅뱅으로까지 확대시켜 전체적인 패턴과 구조를 제시하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규모와 상호 관련성을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새로운 역사 방법론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빅 히스토리는 문자의 발명과 기록으로 시작되는 역사 시대 그리고 인류의 등장과 진화로 설명되는 선사 시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춘 인문학적 역사 분석을 우주의 탄생인 빅뱅이나 별과 태양, 지구의 형성, 생명체의 등장과 진화 등 자연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는 역사 분석까지 확대시킨다. 그리고 137억 년에 걸쳐 나타난 다양한 기원들을 과학적 지식과 근거들을 통해 살펴본다.


또 빅 히스토리는 단순히 분석 대상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만 확대시킨 것이 아니라 빅 히스토리의 시각과 틀 속에서 전체적인 구조와 패턴을 이해하고,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되었던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서 이들 사이의 상호 관련성을 찾고자 한다. 따라서 빅 히스토리야말로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진정한 융합 연구라고 볼 수 있다.

▲ <거대사 :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 김용우·김서형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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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소통과 공존, 상호 관련성을 강조하는 빅 히스토리를 보다 쉽게 이해하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저서들이 도움이 된다. 우선, 빅 히스토리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거대사 :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김서형·김용우 옮김, 서해문집 펴냄, 2009년)이다. 아쉽게도 이 저서에서는 빅뱅이나 별, 지구, 생명체 등의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단지 전편에서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이라는 제목으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 저서에 녹아 있는 빅 히스토리의 시각과 방법론을 통해 우리는 전체적인 구조와 패턴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 저서의 특징은 크리스천 교수가 고대-중세-근대라는 역사학적 시대 구분법을 넘어 다양한 인간 사회에서 나타난 보편성을 수렵·채집 시대-농경 시대-근대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사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크리스천은 인류 전체 즉, 호모 사피엔스 역사의 전체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오늘날은 글로벌 시대이다.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상호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 지구적으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의 노력이 아닌 지구 공동체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이 저서에서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인간 사회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공통점과 보편성을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규모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빅 히스토리이다.

빅 히스토리에서 강조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신시아 브라운의 <빅 히스토리>(이근영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를 추천한다. 총 431쪽에 달하는 이 저서는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인 '시간과 공간의 깊이'에서는 빅뱅과 지구, 생명체 그리고 인간의 등장과 수렵·채집 생활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2부인 '1만 년 동안의 따뜻한 시기'에서는 농업과 도시, 네트워크, 산업화 등을 다루고 있다.

브라운의 저서가 지닌 묘미는 특히 2부에서 잘 드러난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나타난 인간 공동체가 복잡해지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녀는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최초의 마을이었던 예리코(Jericho)나 차탈회윅, 수메르 인들의 우주관, 무슬림의 지적 문화 등은 우리가 이전에 어떤 세계사 저서에서도 전체적인 구조와 틀 속에서 총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이 저서에서 그녀가 우주와 지구의 이야기를 다소 무미건조하고 단순하게 서술하고, 인간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는 다양하고 말랑한 이야기들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떠한 저서에서도 한 권 속에서 우주의 역사와 지구의 형성 과정, 생명체의 등장과 진화, 인류의 시작과 복잡한 인간 사회의 발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는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브라운의 저서는 크리스천의 저서와 함께 빅 히스토리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이다.


<Big History and the Future of Humanity>(Wiley-Blackwell 펴냄). ⓒWiley-Blackwell
크리스천이나 브라운의 저서가 인간 사회와 역사에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면, 프레드 스피어의 <Big History and the Future of Humanity>(Wiley-Blackwell 펴냄, 2010년)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빅 히스토리의 틀과 내용에 접근하고 있다. 이 저서에서도 우주와 지구상 생명체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스피어는 새로운 특징이 나타나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조건들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복잡성과 새로움이 나타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바로 골디락스 조건(goldilocks condition)이다. 이 저서에서는 골디락스 조건 속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특징과 속성을 지닌 다양한 현상들과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논리적 흐름을 따라 137억 년 전 빅뱅과 원소의 등장, 태양과 지구의 형성, 생명체의 등장과 진화, 그리고 인류의 발전 등을 서술하고 있다.


스피어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에너지와 미래에 관련된 부분이다. 오늘날 에너지는 한 민족이나 국가 그리고 인류 전체의 미래를 전망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이다. 19세기 말부터 그 사용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는 우리에게 현대 사회의 물질적 편안함을 제공했다. 그러나 화석 연료를 둘러싼 에너지 분쟁과 마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구 전체의 환경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더 나아가 미래를 조망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소통과 공존을 강조하는 빅 히스토리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빅 히스토리는 우리가 이해하고 분석해야 할 과거를 인류의 역사를 넘어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 즉, 지구와 태양 그리고 우주 전체로까지 확대시킴으로써 좀 더 넓은 범위 속에서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통해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고자 하는 방법론이다. 이와 같은 빅 히스토리야말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좀 더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주요한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크로스로드> 2013년 2월호에 실린 김서형 이화여자대학교 지구사연구소 상임연구원의 글입니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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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만든 반값등록금... "달랑 60만원 냈어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2/02 09:02
  • 수정일
    2013/02/02 09:0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시행 1년... 학자금 대출자 1/3로 감소, 봉사활동 활발

13.02.01 20:30l최종 업데이트 13.02.01 21:16l

 

 

 

2012년 2월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2012학년도 서울시립대 입학식'에서 수많은 신입생들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날 박원순 시장은 취임 이후 추진, 결실을 맺은 반값등록금 첫 수혜자인 1859명의 신입생들을 격려하고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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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시행으로 숨통이 트였어요."

서울시립대에 재학 중인 이진운(28·가명)씨는 반값등록금으로 인한 삶의 변화를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반값등록금 시행 전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총 4학기를 학자금 대출에 의존해 학교를 다녔고 약 800만 원의 학자금 '빚'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학자금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도 학교를 다녔다. 반값등록금 덕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학기 동안 쌓인 학자금 '빚'도 갚아나갈 수 있었다. 이씨는 반값등록금 시행과 국가장학금 수혜로 한 학기당 총 60만 원의 등록금만 납부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 60만 원의 등록금도 학교에서 시행하는 '등록금 분할납부제도'로 3회에 걸쳐 20만 원씩 분할 납부했다.

이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충분히 납부할 수 있어 부담이 덜어졌고 오히려 돈이 남아 생활비로 온전히 쓰고 있다"며 "대출받았던 학자금 약 800만 원 중 400만 원을 갚았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이씨만이 아니다. 실제로 서울시립대가 반값등록금을 시행하고 난 후 학자금 대출자 수가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립대, 학자금 대출자수 1/3로 감소
 

 

서울시립대에서 공개한 2011년도 1학기부터 2012년도 2학기까지 4학기 간 등록금 대출 추이
ⓒ 서울시립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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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반값등록금이 시행되기 전인 2011년에는 대출자 수가 1489명이었던 것에 비해 시행 후 2012년도에는 543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대출금액도 2011년 31억7200만 원에서 2012년 5억4173만 원으로 큰 폭 줄었다.

서울시립대는 등록금 대출자의 감소 원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 등록금이 반값으로 감소함에 따라 부담이 완화되어 대출을 받지 않게 된 경우. 둘째로는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정부지원 장학금(드림장학금)이 2011년에는 9억2700만 원인 반면 2012년에는 처음으로 국가장학금이 실시되면서 57억7200만 원으로 수혜금액이 크게 늘었다.

1유형, 2유형이 포함된 국가장학금에서 특히 서울시립대는 2유형의 혜택을 많이 본 케이스다. 국가장학금 2유형은 대학의 등록금 인하 또는 장학금 확충 등을 통한 자체노력을 이행한 대학에게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이처럼 반값등록금 시행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됨에 따라 학생들의 부모들도 한시름 덜게 됐다. 도시공학과에 재학 중인 김동년(20)씨는 "반값등록금 시행 전에도 시립대 등록금은 싼 편이었는데도 부모님은 힘들어하셨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며 "그런데 반값등록금이 시행되고 나서는 부모님들도 좋아하시고, 부모님의 주변사람들도 '좋은 대학 갔다', '진짜 효자네' 이런 말들을 하신다. 부모님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머쓱해하면서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대학생활도 변화... 봉사활동 참여자 2배 늘어
 

 

서울시립대 동아리 'Enactus(인액터스)'의 학생들이 답십리 시장 상인들과 함께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 Enactu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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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대학생활에도 변화를 가져다줬다. 시립대에 재학 중인 이정현(26)씨는 "반값등록금 시행으로 학업에 충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대외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며 "심적으로 부담이 덜어지니 대학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등록금에 대한 심적 부담을 덜게 되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서울시립대 사회봉사활동 참여자를 보면 2010년 1649명에서 2011년 1354명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반값 등록금을 시행한 지난해에는 3042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학교에서도 '사회공헌팀'을 학생처 내에 개설했다. 사회공헌팀은 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을 전담하는 기구이다. 서울시립대 사회공헌팀 관계자는 "반값등록금 시행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나 동아리가 많이 늘었다"며 "그에 따라 2010년 11개였던 교내 봉사활동 프로그램도 3배 정도 늘려 현재는 35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내의 사회공헌팀의 지원을 받아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동아리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서울시립대 내 'Enactus(인액터스)'가 대표적인 동아리다. 이 동아리는 여러 가지의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지역 사회에 공헌을 도모한다. 그 중 '숨' 프로젝트는 지난해 6월에 시작된 것으로, 서울 시립대 근처에 있는 답십리 현대시장의 경쟁력 제고와 시장 상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다.

동아리 학생들은 '숨 프로젝트'를 통해 시장 활성화를 위한 '쿠폰북 발행'과 배송센터 수익개선을 위한 'MT팩 기획'을 진행해 시장 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이들을 키우는 주사랑 교회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 인식 개선을 돕는 '아이둥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으며, 대학생 인턴과 중소기업을 연결해 대학생의 스토리텔링과 중소기업의 인력난 극복을 실현하려는 '비상 프로젝트'도 구상 중에 있다.

이 동아리 부회장 나정수(24)씨는 "2011년도까지는 동아리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 반값등록금 시행됐던 작년에 들어서는 동아리 규모가 커졌고 학생들의 참여도 증가했다"며 "참여 증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반값등록금 시행으로 학생들의 사회공헌 의식이 높아진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반값등록금 시행으로 삶의 실질적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등록금에 대한 심적 부담을 덜고, 대학 내의 다양한 활동을 접하는 기회도 얻었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로 사회공헌이라는 긍정적 변화도 이뤄냈다. 이러한 서울시립대 내의 긍정적인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열린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올해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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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배 더 큰 강적과 맞붙을 ‘최후 결전’

 

 

 

500배 더 큰 강적과 맞붙을 ‘최후 결전’
 
[한호석의 개벽예감](48) 북이 미국에 승산있다 자신하는 이유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2/01 [21:5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인구대국, 영토대국, 경제대국, 기술강국, 핵강국에 단독으로 맞서다

지구 위에 수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없다. 만일 어떤 나라가 미국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미국의 군사적 보복을 받고 멸망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감히 미국과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제사회에 퍼져있는 ‘불문율’이며, 바로 그 ‘불문율’ 위에 미국의 세계지배체제가 존립하는 것이다.

지난날 소련이나 중국이 각각 미국과 정면으로 맞선 ‘냉전’이라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런 시기는 지나간 지 오래되었다. 오늘 러시아나 중국은 미국과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미국과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있으며, 미국도 그 두 대국과 전쟁을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과 전쟁을 벌여 반드시 결판을 지으려는 나라가 지구 위에 있으니, 북이 바로 그런 전쟁결심을 가진 나라다. 북이 미국과 전쟁을 벌여 결판을 짓겠다고 공언한 사실을 무심히 대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게 공언한 것만으로도 북은 국제사회의 ‘불문율’을 깨뜨리고 미국이 지배해온 ‘세계질서’를 용납하지 않는 특별한 나라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만일 북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날에는 미국을 이기기는커녕 되레 화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우려할 만도 하다. 왜냐하면, 물량적으로 비교해보면 북의 국력과 미국의 국력이 너무 큰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북의 국력과 미국의 국력을 물량적 측면에서 대비하면, 미국은 북을 완전히 압도한다.

인구수를 대비하면, 2012년 7월 현재 북측 인구는 2,458만 명이고 미국 인구는 3억1,384만 명이므로, 미국은 북보다 13배나 더 많은 인구를 가진 인구대국이다. 영토 넓이를 대비하면, 북은 12만 평방미터이고 미국은 982만 평방미터이므로 미국은 북보다 82배가 넓은 영토대국이다.

또한 국가경제규모를 대비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대폭 줄여서 추산한 대로라면 2011년도 북의 국내총생산(GDP)은 400억 달러이고,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15조 달러이므로, 미국은 경제규모에서 북보다 무려 375배나 큰 경제대국이다.

비교해야 할 부문이 더 있다. 과학기술 발전수준을 보여주는 우주개발부문을 대비하면, 북은 2012년 12월 12일 첫 자국산 실용위성을 발사하였고, 미국은 1958년 1월 31일 첫 자국산 실용위성을 발사하였으니, 미국은 우주개발부문에서 북보다 무려 54년이나 앞선 기술강국이다. 게다가 2013년 1월 현재 미국의 위성은 1,110기이고, 북의 위성은 1기뿐이니, 위성보유수량에서는 북이 미국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군사부문에서 결정적인 요소인 핵무장력을 대비해도 북은 미국에 비해 열세에 있다. 북은 1998년 5월 30일에 처음으로 파키스탄에서 비공식 핵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미국은 1945년 7월 16일에 첫 핵실험을 실시하였으니, 핵무기 개발 부문에서 미국은 북보다 무려 53년이나 앞섰다. 북이 실시한 핵실험은 비공식 1회, 공식 2회를 합해 3회 뿐인데, 미국이 실시한 핵실험은 1,054회나 되므로, 미국은 북보다 351배나 더 많이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5,113기이고 북측이 보유한 핵탄두는, 실제로는 훨씬 더 많겠지만 미국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약 10기밖에 되지 않는다니, 이런 추산대로라면 미국은 북보다 511배나 많은 핵탄두를 보유한 핵강국이다.

위에 열거한 각종 비교지표들이 말해주는 대로, 어떤 부문을 대비해 봐도 북은 미국과 도저히 전쟁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북은 미국과 전쟁을 벌여 반드시 결판을 지으려 하고 있으니, ‘초강대국’과 단독으로 맞붙어 최후 결전을 벌이려는 북의 배짱과 용맹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경이적이다. 자기보다 500배나 더 큰 강적과 최후 결전을 벌이려는 북의 전쟁결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쟁결심은 아무 때나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더욱이 ‘최강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과 전쟁을 하려는 결심을 내리는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주목하는 것은, 전쟁결심이란 전쟁에서 이길 승산을 면밀히 따져보고 나서 승산이 확실하다고 판단할 때 그럴 때 비로소 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으로 미국과 결판을 지으려는 전쟁결심을 표명한 것은, 북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승산도 없는데, 전쟁결심을 내릴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대북정보를 심층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터리 언론보도만 들어온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기 쉽다. 그들은 북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가망이 없다고 단정하면서, 북이 미국과 결판을 지으려는 전쟁결심을 표명한 것은,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양자협상에 끌어내려는 의도에서 전보다 좀 더 강경한 어조로 표명한 대미압박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북이 전략적 오판으로 미국과 전쟁을 벌여 화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북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북미적대관계의 현실을 거꾸로 바라보는 오판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을 결심한 것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북미군사상황을 전략적으로 오판한 것은 더욱 아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쟁결심은 북이 미국과 싸워서 이길 확실한 승산을 따져보고 내린 확고한 결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북이 자기보다 500배나 더 큰 강적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이길 것으로 믿는 확실한 승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북이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이길 승산은 이런 것이다. 전쟁관과 전쟁전략에 관해 북이 서술한 보도기사들을 분석하면, 북이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이길 승산은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사실에서 돋보인다.

첫째, 북은 사상전에서 미국을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 사상전에서 이겼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2012년 1월 19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미국군 자살률은 10만 명 중에 24.1명인데, 이것은 미국군이 하루에 1명씩 자살한 충격적인 자살률이다. 또한 2010년에 미국군이 저지른 성범죄는 1,313건이었고, 흉악범죄는 28,289건이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2011년 3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에 미국 공군에 복무 중인 여군 가운데 18.9%가 성폭행을 당했다.

2011년 1월 25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0년에 미국군의 마취제 처방건수는 370만 건이고, 진통제 처방건수는 350만 건이고,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 약물남용장애에 걸린 미국군은 40,000명이고, 약물남용으로 군복무가 불가능한 미국군이 매월 평균 250명씩 병원에 들어간다.

<AP통신> 2010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인격장애에 걸려 퇴역한 미국군은 매년 평균 1,000명에 이르렀고, 외상후 장애증후군(PTSD)에 걸려 퇴역한 미국군은 2008년에 14,000명에 이르렀고 2009년에는 17,000명으로 늘었다. 에릭 슈메이커(Eric B. Schoomaker) 당시 미국 육군 의무감은 “2005년부터 정신질환으로 입원하는 미국군이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 2010년 9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동원된 미국군 가운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66%, 외상후 장애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13%다. <유에스에이 투데이> 2010년 3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미국군이 2007년 현재 1개 여단(3,500명)마다 391명(11%) 씩이나 나왔는데, 2009년에는 567명(16%)으로 늘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2011년 3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07년의 경우, 미국군 4,698명이 탈영하였는데, 이것은 전체 군병력 가운데 1%가 탈영한 것이다. 그 가운데 캐나다로 탈출한 미국군 탈영병은 2008년 현재 약 200명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만 보더라도, 미국군의 사상정신에서는 악취가 풍겨나고 있으며, 그런 썩은 사상정신이 그들의 신체도 약체화시킨 것은 당연한 결과다. <뉴욕타임스> 2010년 8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2006년 미국 육군 훈련소의 경우, 기초체력에 미달한 훈련병 비율이 20%에 이르렀다. <유에스에이 투데이> 2009년 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 현재 비만과 과체중에 걸린 미국군은 68,786명이다. <텔레그래프> 2010년 3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육군은 기초체력이 떨어진 허약한 신입병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체력단련에서 8km 구보와 총검술을 제외시키는 대신 근육강화훈련과 민첩행동강화훈련을 도입하였다. 이처럼 사상정신적으로 썩고, 기초체력마저 허약해진 한심한 군대가 어떻게 북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북에서 말하는 ‘주체의 군사사상’에 따르면, 전쟁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은 군대의 사상정신인데, 북은 사상전에서 미국을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에서 말하는 사상전 측면을 대비하면, 미국군은 위에 열거한 자료들이 말해주는 대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상전의 ‘오합지졸’이므로, 인민군은 그런 미국군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북은 두뇌전에서 미국을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 두뇌전에서 이겼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말하는 두뇌전이란, 야전지휘관들이 적군을 제압할 기발한 전법을 많이 개발하여 이를 실전에 정확히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두뇌전을 잘 하려면 야전지휘관들이 평시에 머리를 써서 자기들의 전투환경에 맞는 다양한 전법을 개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군 야전지휘관들은 두뇌전 준비는 고사하고 줄줄이 지위강등이나 불명예 퇴역을 당하는 한심한 처지에 있다. <AP통신> 2013년 1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미국군 장성급 지휘관들 가운데 “적어도 30%”가 성희롱, 간통, 부적절한 성관계 등으로 지위강등조치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2011년 6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8개월 동안 성희롱이나 부적절한 성관계로 불명예 퇴역을 당한 미국 해군 함장은 9명, 알코올 중독으로 불명예 퇴역을 당한 함장은 3명, 그 밖의 다른 위법행위로 불명예 퇴역을 당한 함장은 2명이다. 같은 기간에 정식으로 퇴역한 함장은 29명이었는데, 불명예 퇴역을 당한 함장이 14명이나 된 것이다. 미국 육군과 공군에서 불명예 퇴역을 당한 야전지휘관들이 얼마나 많은지 공개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해군에서 불명예 퇴역을 당한 야전지휘관이 그처럼 많다면, 육군이나 공군도 그와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미국군은 야전지휘관들만이 아니라 사병들도 지능수준이 낮아서 설령 두뇌전에 의거한 전투명령을 내려도 그런 명령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할 한심한 처지에 있다. <AP통신> 2010년 1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 입대를 앞두고 실시되는 입대 필기시험에서 고교졸업생 25%가 해마다 낙방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군 입대 필기시험이란 “2 더하기 X가 4라면, X는 얼마인가?” 하는 식의 초등학교 저학년 산수문제들과 아주 간단한 독해능력을 측정하는 것인데, 3시간 동안 99개 문제 가운데 31개만 맞추면 통과하는 저급한 지능측정시험이다. 그런 지능측정시험에서도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저급한 지능측정시험을 통과하여 입대한 사병들의 지능수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미국군 사병들의 저급한 지능은 평소에 그들의 무기관리업무에서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2008년 6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미국군의 핵무기 관리상황을 점검했더니 핵무기 부품 수 백 개를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외부에 밝혀지지 않은 분실수량까지 가산하면, 사라진 핵무기 부품이 1,000개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능이 낮은 미국군 사병들이 국가안보를 좌우할 전략무기인 핵무기의 부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그처럼 무수히 잃어버리고 있으니, 다른 전술무기들에 들어가는 부품들의 관리상황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군 야전지휘관들이 두뇌전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휘하의 사병들마저 그처럼 낮은 지능을 가졌으므로, 미국군이 두뇌전에서 인민군을 당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셋째, 북은 담력전에서 미국을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 담력전에서 이겼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제아무리 강력한 전략무기를 배치하였어도, 막상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야전지휘관들이 그 전략무기를 쓸 만한 담력을 갖지 못했다면, 그들의 전략무기는 적국을 위협하는 용도 이외에 쓸모가 없다.

그러면, 전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군 야전지휘관들의 담력은 얼마나 강할까? 그들의 담력을 측정한 자료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군 소식지 <성조> 2013년 1월 25일 보도에 나온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James Thurman)의 발언을 들어보면 미국군 야전지휘관들의 담력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는 2013년 1월 23일 서울 용산기지에서 진행된 기지주둔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미국군은 (북의 공격에) 매우 취약한 시기(period of high vulnerability)에 있다. 나는 누구에게 공포감을 주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12월 12일에 일어난 일은 여기 상황을 바꿔놓았다. (줄임) 나는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지만, 다시 지적할 것은 저기 군사분계선 북쪽에 위험한 사람(a dangerous man)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서먼 사령관이 말한 ‘12월 12일에 일어난 일’이란 북이 광명성 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것을 뜻하고, ‘군사분계선 북쪽에 있는 위험한 사람’이란 김정은 제1위원장을 뜻한다. 인민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미국의 대장급 야전사령관이 북의 인공위성 발사소식을 듣고 놀라 그처럼 겁을 집어먹고 공식석상에서 나약한 소리를 늘어놓았으니, 미국군이 인민군과의 담력전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전투현장에서 발휘되는 용맹은 전투주체의 담력에서 나오는 것이며, 담력은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기겠다는 사생결단을 각오하였을 때 생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담력전이란 사생결단의 전략무기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전쟁개념이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북은 오래 전부터 담력전이라는 독특한 전쟁개념을 내오고, 담력전을 위한 실전준비를 착실히 해왔다. 북은 사생결단의 전략무기를 대미위협용으로 배치해둔 게 아니라, 미국과의 ‘최후 결전’에 쓰기 위해 실전배치해두었다. 다시 말해서, 북이 말하는 ‘최후 결전’이란 미국을 단숨에 굴복시키기 위해 사생결단의 전략무기로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하는 담력전의 총공격인 것이다.

미국이 북보다 511배나 많은 핵무기를 쌓아놓고 있어도, 미국의 전쟁지휘부가 북의 전쟁지휘부와 맞붙은 담력전에서 지면 그 많은 핵무기들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미국이 담력전에서 패하면, 북의 기습적인 전략타격을 받고 결국 굴복하게 될 것이다.

북의 ‘최후 결전’에 등장할 강력한 전략공격무기가 있다

위에서 논한 사실을 생각하면, 미국군에게는 자기들의 우수한 전략무기밖에 믿을 만한 게 없다는 점이 자연히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오로지 전략무기에만 의존하여 북과 맞붙어야 할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국가재정이 파산당할 위태로운 ‘재정절벽’에 밀려갔는데도 전략무기 유지와 개발에 무조건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미국이 전략무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만일 북이 미국의 전략무기에 맞설 강력한 전략무기를 만들어내는 경우 북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미국에 맞설 북의 강력한 전략공격무기란 어떤 것인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두 가지 전략공격무기는, 적이 방어하기 힘든 전략미사일과 전략잠수함이다. 북의 군사정보에 정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북은 전략미사일과 전략잠수함을 자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군사강국들이 보유한 전략미사일과 전략잠수함과 똑같은 전략미사일과 전략잠수함을 북이 그대로 실전배치하였다면, 그것으로는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북이 물량적으로 자기보다 500배나 큰 강적을 꺾어야 할 ‘최후 결전’에서 필요한 것은, 다른 군사강국들이 갖지 못한 특수한 전략미사일과 강력한 전략잠수함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과 맞붙을 ‘최후 결전’을 앞둔 북에게는 초전자기파 탄두(super-EMP warhead)를 장착한 특수한 전략미사일, 그리고 적진에 은밀히 접근하여 그런 가공할 전략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발사할 전략잠수함이 필요하다. 북이 초전자기파 탄두를 장착한 특수한 전략미사일과 그 미사일을 발사할 강력한 전략잠수함을 실전배치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을 피한다.

싸움을 해본 사람이 싸움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이 있듯이, 전쟁을 해본 나라가 전쟁이 무엇인지 아는 법이다. 북은 60여 년 전 미국과 격렬한 전쟁을 벌인 경험을 가진 나라다. 당시 미사일은 한 발도 없었고, 미사일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던 북은 ‘세계 최강 무력’이라고 자처하던 미국군과 3년 동안 결사전을 벌여 그들의 북진을 저지하였다.

그런 결사전 경험을 가진 북은 60년이 지나도록 미국의 반평화적 책동으로 종전에 이르지 못한 그 전쟁을 기어이 승리로 끝낼 ‘최후 결전’을 준비하고 대기하는 중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사상전, 두뇌전, 담력전에서 이미 미국군을 압도적으로 이긴 인민군은 미국군을 단숨에 굴복시킬 위력적인 전략공격무기들을 실전배치해놓고 최고사령관의 총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이 말하는 ‘승전사상’을 단지 선전구호로 오인하거나, 인민군이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했다는 말을 빈말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북의 역사가들은 앞으로 100년 뒤 세계사의 첫 갈피에 이런 역사적 사실이 쓰여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이라는 동방의 사회주의나라가 자기보다 500배나 더 강한 국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주의초강국 미국에 맞서 기상천외한 전법으로 전쟁을 벌여 미국을 단숨에 굴복시키고, 21세기 세계질서를 바꿔놓았다. 이런 세계사적인 변혁은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2013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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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 수컷의 짝짓기 유혹…가슴 크게, 더 크게

원앙 수컷의 짝짓기 유혹…가슴 크게, 더 크게

 
윤순영 2013. 01. 31
조회수 2620추천수 0
 

여러 수컷이 암컷 에워싸고 '내 가슴 어때요?' 간택 애원

다양한 겨울철새 쫓는 불법 낚시꾼…"도심공원에 새 먹이 유실수 심자"

 

크기변환_SY3_9138.jpg » 번식기를 맞아 화사하게 단장한 원앙 수컷. 천연기념물 제 327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의 보호종이다.

 

지난 1월26일 서울의 도심을 관통하는 중랑천 주변의 새를 찾아 나섰다. 중랑천은 한강으로 흘러드는 그나마 자연성을 간직한 하천으로, 전체 길이 약 36.5㎞ 가운데 서울 관내에 19.38㎞가 위치하며 평균 하폭은 150m인 제법 큰 물줄기이다.

 

크기변환_SY1_8549.jpg » 서울 성동구의 중랑천 하류 모습.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 불국산에서 발원하여 장암동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교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경기도 관내의 중랑천은 지방하천으로 분류되지만, 서울에 접어들면 국가하천으로 등급이 바뀐다.


크기변환_SY3_9810.jpg » 중랑천에는 도심 하천이라고 믿기기 힘들 만큼 다양한 새들이 몰려든다.

 

제법 다양한 새들이 엄청나게 크게 들리는 전철과 자동차 소음, 그리고 빈번하게 오가는 산책인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롭게 놀고 있다. 도시 속에서 이 정도는 학습한 결과인 것 같다.

 

크기변환_SY1_8556.jpg » 중랑천 하류 너머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동호대교와 한남대교가 멀리 보인다.

 

크기변환_DSC_9374.jpg » 크고 넓적한 부리가 특징인 오리 넓적부리.

 

산책하는 사람들마다 작년보다 새들이 많이 찾아 왔다고 즐거워한다. 눈에 보이는 물새들만 꼽아도 넓적부리, 고방오리, 댕기흰죽지, 흰죽지, 민물가마우지, 청머리오리, 황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열 손가락을 거의 꼽는다. 이곳에서 친근하지만 귀한 새인 원앙 70여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크기변환_SY3_9792.jpg » 물 위에서 크게 날갯짓을 하며 몸단장을 하는 고방오리.

 

크기변환_DSC_9308.jpg » 수컷 머리 뒤에 늘어진 댕기와 노란 눈이 특징인 댕기흰죽지 부부의 다정한 휴식.

 

크기변환__DSC3470.jpg » 민물가마우지. 깃털에 푸른 광택이 있고, 꼬리가 길어서 날 때 다리 뒤로 꼬리가 길게 나온다. 한강에 텃새로 정착하는 무리가 늘고 있다. 김포시 월곶면 보구곳리 한강 하구 유도에서 번식한다.

 

크기변환_SY3_9224.jpg » 몸에 비늘무늬 깃털과 녹색 머리, 노란 엉덩이가 특징인 청머리오리.

 

이미 새들은 번식기를 맞을 채비가 돼 있다. 암컷 원앙 한 마리에 수컷 원앙이 화려한 색깔의 깃털을 뽐내며 주위에 몰려들어 암컷에게 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환_SY3_9251.jpg » 물가에 나온 암컷 원앙 한 마리를 수많은 수컷이 둘러싸고 있다.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암컷이 지나가면 수컷은 앞가슴을 부풀려 더 크고 멋지게 보이려고 애를 쓴다. 이미 암컷을 차지한 수컷은 암컷을 지키는 일이 힘들고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짝을 찾지 못한 원앙보다는 행복한 것이 분명하다.

 

크기변환_SY3_9726.jpg » "내 가슴 좀 보세요!" 암컷 원앙이 지나가자 수컷들이 가슴을 한껏 부풀려 자태를 과시하며 관심을 끌려하고 있다.


크기변환_SY3_8940.jpg » 갈대밭 속에서도 암컷을 에워싸는 수컷들의 모습이 흔히 보인다.

 

크기변환_SY3_9131.jpg » 짝을 맺은 원앙 부부의 여유로운 산책. 수컷 원앙은 번식기가 끝나면 화려한 깃털이 사라져 암컷과 비슷해지지만 암컷은 부리가 검고 수컷은 부리가 붉은 차이가 있다.

 

크기변환_SY3_9126.jpg » '어쩌면 이렇게 잘 생겼을까.' 물위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는 수컷 원앙.

 

아쉬운 것은 새들이 쉬고 먹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수변 공간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야박하게 독차지하지 말고 야생동물과 공유한다면 오히려 지친 마음을 달래고 여유로움을 얻는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크기변환_SY3_9141.jpg » 수컷 원앙이 고개를 들어 암컷에게 다가오는 다른 수컷에게 경고하고 있다.

 

크기변환_SY3_9376.jpg » 부채 모양의 주황색 셋째 날개 깃이 위로 솟아 돛단배를 연상케 한다.

 

낚시금지 안내문이 있어도 무시하고 그나마 새들이 쉴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 하루 종일 낚시를 하는 모습도 눈에 보인다. 자연을 배려하지 않고 그저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야박한 처사 같았다. 어제와 달리 새들의 활동이 불안해 보이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크기변환_SY3_9396.jpg » 낚시 금지를 무시하고 새들의 쉼터를 점령한 낚시꾼.

 

크기변환_SY1_8571.jpg » 낚시꾼들에게 밀려 새가 떠난 자리는 황량하기만 하다.

 

크기변환_SY3_9807.jpg » 낚시 금지 구역에 들어가 불까지 피우는 낚시꾼들.

 

저녁 무렵 올림픽공원에 황여새와 홍여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1986년에 완공한 면적이 13만㎡가 넘는 큰 공원이다.

 

크기변환_SY1_8578.jpg » 올림픽 공원내 몽촌토성.

 

크기변환_SY1_8577.jpg » 올림픽공원 산책길.

 

원래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체육·문화예술·역사·교육·휴식 등 다양한 용도를 갖춘 종합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넓은 땅에서 자연에 대한 배려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 좋고 걷기 좋은 인위적인 자연을 흉내 냈을 뿐, 야생동물이 머물고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은 거의 없었다.

 

크기변환_SY2_8971.jpg » 산수유 열매.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이다.

 

크기변환_SY3_0188.jpg » 열매를 먹는 직박구리. 씨끄럽게 울고 파도 모양을 그리며 난다.

 

크기변환_SY3_8924.jpg » 노랑지빠귀.

 

크기변환_SY3_0482.jpg » 머리와 등이 진홍색인 양진이.

 

야생동물을 위한 배려를 한다면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라도 쉽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덴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나마 산수유 나무 삼십여 그루가 산책로를 따라 빨간 열매를 떨구지 않고 겨울을 지내고 있어 새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산수유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이다.

 

크기변환_SY3_0209.jpg

 

크기변환_SY3_0077.jpg » 부리가 두터운 콩새 수컷, 낙옆을 들춰 먹이를 찾고 있다.

 

크기변환_SY3_0130.jpg »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자 목을 빼고 바로 경계자세에 들어가는 콩새 암컷. 수컷보다 색이 연하다.


콩새, 박새, 홍여새, 황여새, 양진이, 직박구리, 노랑지빠귀, 흰지빠귀, 박새, 쇠박새 등 다양한 새들이 많은 산책인들의 눈치를 보며 높은 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가 안전한 틈을 타 산수유 나무로 달려들고, 먹이를 먹은 뒤 다시 날아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사람 때문에 먹이를 먹는 것도 가슴 조이는 긴장의 연속이다.

 

크기변환_SY3_9876.jpg » 꼬리 끝이 빨간 홍여새.

 

크기변환_SY3_0375.jpg » 홍여새의 뒷모습.

 

크기변환_SY3_0298.jpg » 바닥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를 먹고 있는 홍여새.

 

공원이나 정원에는 열매를 맺는 나무나 씨앗이 많이 달리는 식물을 심는 일이 흔치 않다. 이제는 새들이 풀씨와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한 그루라도 심는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환_SY3_0461.jpg » 꼬리 끝이 노란 황여새 산수유를 부리에 물고 주변을 살핀다.

 

크기변환_SY3_0470.jpg » 먹이를 물고 쨉싸게 달아나는 황여새.

 

환_SY3_0354.jpg » 바닥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를 먹고 있는 황여새.

 

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지만 해법은 늘 일상 속에 들어 있다. 머지않아 식목일이 다가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동네마다 있는 공원에 새들이 먹이로 이용할 수 있는 나무를 한 그루라도 심으면, 삭막하던 공원에 새들이 모여들어 어느덧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환_SY3_0441.jpg

 

글·사진 윤순영/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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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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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확한 감사로 더럽혀진 군인의 명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2/01 07:43
  • 수정일
    2013/02/01 07: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군 검찰 ‘문제없다’는 혐의, 감사원은 끝까지 처벌 요구

 
김동규 2013. 01. 29
조회수 283추천수 0
 

부정확한 감사로 더럽혀진 군인의 명예
 
평생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온 한 군인이 있었다. 청렴한 장교의 길을 걸어온 지 30여년. 그는 법과 양심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국가유공자 등록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청천벽력처럼 날아든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인해 그의 국가유공자 등록은 거부당했고 30년 군생활로 쌓아온 명예는 한 순간에 더럽혀졌다. 법원과 군 검찰이 무혐의를 밝혀냈지만 한 번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새도 없이 군을 나온 그는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서성였다. 지금도 억울한 마음을 품고 있지만 지나간 일이라고 애써 외면하며 분을 삭인다.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획득 계약 업무를 추진했지만 난데없는 감사를 받고 죄인이 된 A 예비역 대령. A 대령은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는 신념하에 평생을 청렴한 장교로 살아왔지만 감사원은 그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았다. 감사원은 A 대령을 업체와 짜고 국가에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손해를 끼쳤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중징계를 요구했다. A 대령은 군검찰의 무혐의 사실과 감사결과의 부당성을 들어 억울함을 소명하기 위해 재심의 청구를 했으나 감사원은 명확한 이유도 없이 이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징계처분은 그대로 진행됐고 후일 법원에서 계약에 문제가 없음이 최종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구제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감사원도 감사를 벌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전임자의 위증은 감사원이 A 예비역 대령을 비리군인으로 확신하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국방 획득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무지는 잘못된 감사 결과를 내놓는 데 결정적 원인이 됐다. 문제는 군 검찰에서 A 대령의 무혐의가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처벌을 요구한 감사원의 태도였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도 잘못된 감사 결과를 이끌어낸 정황들이 모두 허구임이 드러났지만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버텼다. 뒤 봐주는 사람도 없는 힘없는 군인에 불과한 A 대령과 부하 B 중령은 징계를 받고 홀로 속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A 예비역 대령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더럽혀진 내 명예와 부정당한 30년 군생활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감사원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A 대령의 요구에 따라 익명으로 처리했다.
 
규정따라 업무 처리했다가 죄인된 사연
 
먼저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린다.
나는 예비역 대령으로 30년이 넘는 군생활을 마친 후 지금은 민간 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획득 업무를 10여 년 이상 수행한 경험이 있어 높은 전문성을 갖춘 획득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방위사업청에 근무할 당시 감사원의 부당한 감사로 심각한 피해를 본 경험이 있으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터뷰에 응한다.
 
감사로 인해 어떤 불이익을 받았나. 구체적인 정황을 듣고 싶다.
간단히 말하자면 감사원은 내가 계약업무를 맡아서 추진할 때 업체에 불필요하게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겨줬다고 지적하며 방위사업청에 나와 담당 부하 장교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다. 방위사업청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업체와 소송까지 벌이며 부당이득을 반환받으려 했지만 법원은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에 문제가 없는 게 드러났으니 나도 무혐의 처리됐다고 본다. 무혐의가 뭔가? 무죄와 달리 혐의 자체가 부인돼 법정까지 갈 필요조차 없다는 말 아닌가. 결국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인데 감사원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군 검찰 내사결과도 무혐의 처분이었다. 군 검찰 처분결과와 관련자의 위증 사실을 모아 재심의 청구를 제출했으나 감사원은 이를 거부했다. 자신들이 한 번 내린 감사처분은 절대로 변경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나와 부하 장교에게 내려진 징계 처분이 그대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야 어느 쪽이 잘못한 건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내가 계약업무를 맡았던 사업은 해상초계기 2차 성능개량 사업이다. 지체상금 문제로 시끄러웠던 P-3C 성능개량사업이다. 현재는 사업이 종료돼 전량 해군에 인도됐다. 2004년 12월 10일에 진행된 사업 입찰에는 록히드 마틴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참여했다. 록히드 마틴은 직구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기술도입생산이었는데 양측의 도입방법만 보더라도 경쟁을 시켜서는 안 될 사업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당시 국방획득관리규정에 있는 ‘조건충족 최저비용기법’이란 방식을 적용해 해외 직구매와 기술도입생산을 가격으로 경쟁시켰다. 이렇게 출발점부터 문제가 있는 애매한 사업이었다.
 
해상초계기를 직구매로 도입할 때 1,000억 원이 든다면 기술도입생산은 대략 1,200억 원으로 약 20%가 더 필요했다. 이는 당시 국방획득관리규정에서도 인정하는 기준이었다. 기술도입생산은 록히드 마틴에서 기술을 도입한 뒤 국내에 생산설비를 구축해야 하는 등 필연적으로 직구매보다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조건충족 최저비용기법으로 두 업체를 경쟁시킨 것이다. 나는 사업자가 한국항공으로 결정된 이후인 12월 13일에 계약과장으로 보임됐으며, 보임 이전의 자세한 상황은 감사가 진행되면서 알게 됐다.
 
조건충족 최저비용기법은 작전요구성능(ROC) 등 군의 요구사항만 충족하면 무조건 저렴한 쪽이 사업자로 선정되는 기법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해외업체든 국내업체든 이런 조건에서는 경쟁입찰을 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도입 방식의 차이로 인해 한국항공은 무조건 1,200억 원이 들고 록히드 마틴은 1,000억 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찰할 때는 국내업체면 원화로 가격을 써내고 해외업체면 달러로 써내는 게 옳다. 업체들이 가격을 제출한 뒤 기준환율을 적용해 어느 업체가 가격이 낮은지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두 업체에게 달러로 된 가격만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입찰일 당시 국방부는 기준환율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예상과 달리 한국항공은 록히드 마틴보다 낮은 가격인 약 4억 2,700만 달러를 써내서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가격경쟁이 종료된 후 국방부는 환율 1,150원을 기준으로 한국항공에 지급할 사업비를 산정했다. 당시 환율은 1,100원 대였는데 달러당 50원 정도 비싸게 산정한 것이다. 책정된 예산은 원화로 4,914억 원이었다. 그런데 계약 시점에 가서는 환율이 1,050원 대로 떨어졌다. 그래서 업체는 의도치 않게 환차익으로 수억 원이 넘는 이득을 보게 됐지만 환율이 변했다고 해서 지급할 예산을 마음대로 줄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내가 계약업무를 맡기 전부터 제안요청서를 통해 업체와 사업 적용 기준환율을 정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국방부는 당시 예산을 책정하면서 2004년 예산편성 환율인 달러당 1,150원으로 계산된 금액으로 본 사업 집행을 승인했다. 이미 약속된 계약조건이 있으니 우리는 국방부에서 1,150원 환율에 맞게 예산을 준 대로만 사업을 추진해야만 했다. 그런데 감사원은 나와 부하 장교가 환율을 일부러 업체에 유리하게 산정해 한국항공에 부당한 이득을 안겨줬다고 보았다. 마치 업체에서 뇌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덧붙여 입찰 당시에는 기준환율을 정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업에서 법적인 효력을 갖는 기준환율은 제안요청서 상의 환율이다.
 
무소불위 감사원, 법 따로 행정 따로?
 
계약조건을 비롯한 사업추진 사항에 대해서는 증빙 자료가 다 남아있는 것 아닌가. 감사원도 그걸 못 봤을 리는 없는데 왜 당신과 부하의 징계를 요구했나.
내 전임자가 감사원에 “한국항공과 사전에 다 합의된 사항인데 현재 사업 담당자가 일부러 한국항공에 유리하게 계약을 맺어준 것”이라고 허위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 증언을 토대로 감사원은 내 목을 죄어 왔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 담당과장도 “담당자가 당초 합의를 무시하고 한국항공에 유리하게 해줬을 것이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바람에 ‘정직’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애초에 업체와 합의된 내용대로 원가부서와 법무실의 의견까지 물어 정당하게 계약을 맺었을 뿐인데 말이다.
 
감사를 받는 도중 국방부 검찰단도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또는 업무상배임죄 등을 염두에 두고 나와 부하장교를 내사했다. 그러나 군검찰은 내 전임자가 위증을 한 것일 뿐 나는 정당한 절차대로 계약을 체결했기에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고, 나는 즉시 군검찰 수사 자료를 토대로 감사원에 재심의를 청구했다. 무혐의가 나왔으니 감사 결과도 뒤집혀야 정상 아닌가? 입찰 당시의 계약 조건 합의 자료, 입찰장에 있었던 담당자들의 증언 등을 모아 반증 자료를 제출했지만 감사원은 이를 기각했다. 법적으로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군에서 진행된 징계절차도 그대로 진행됐다. 이후 방위사업청은 감사원의 압박에 계약담당공무원이 감사처분으로 징계를 받았으니 한국항공을 상대로 담당공무원의 잘못된 계약으로 인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항소심 모두 한국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군검찰, 민간 법원 모두 감사원의 감사 실패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억울하게 징계를 받았음에도 명예회복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나.
감사원 감사통보에 대해 국방부장관이 신청한 재심의는 약 1년여의 시간이 지나 기각을 당했고, 감사원 최종통보에 의거 징계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감사원에 대해 직접 다툴 수 있는 제도는 없었다.
 
왜냐하면 감사원은 소속 중앙관서장에 감사결과에 대해 처분을 권고하고 통보할 뿐이지 실제 담당자들에 대한 징계처분 등의 인사상 불이익은 해당 중앙관서장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징계처분으로 피해를 봤다 하더라도 엉터리 감사결과로 인한 ‘징계처분취소청구소송’은 행정소송 대상자가 감사원이 아니라 해당 관서장이 된다. 즉 변상판정 등을 제외한 행정처분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므로 감사원을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행정소송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해 당사자들이 감사원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도 재심의 거부를 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당신의 경우 무슨 이유로 재심의를 거부당했나.
은모 씨를 기억하는가. 저축은행에서 1억 원에 이르는 돈을 받았다가 구속된 전 감사위원이다. 은 씨가 재심의 건을 다루는 감사소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징계처분은 행정처분인거 아시죠? 이제 됐습니다. 가시죠.” 그런데 행정처분도 업무상 과실이 있을 때나 내리는 것 아닌가. 업체와 합의된 조건대로 계약을 맺었고, 국고 손실도 없고, 실수도 없었는데 왜 행정처분은 그대로 가야 하는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안 되는 막돼먹은 사람이 감사위원을 하는 소위의 결정사항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것인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 법적으로 무혐의가 증명됐으면 행정처분도 취소돼야 하는 게 정당하지 않은가?
은 씨의 말은 행정 따로 법 따로 있다는 말이다. 결국 나는 재심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위사업청에서 공군으로 복귀조치 됐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결국 견책처분까지 받게 됐다. 이로 인해 군생활 33년 이상 한 장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국훈장도 받지 못한 채 국가유공자 등록도 할 수 없었다. 명예로운 군인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에 한이 맺히기도 했지만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잊은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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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CK
 
자살도 생각했다
 
원래 감사원은 자신들의 감사 내용을 부정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같은 시기 방위사업청에는 특정업체를 봐줬다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를 받은 뒤 징계처분을 받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재심의 청구를 하고 갔는데 이후 이 건은 관련자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감사원도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으니 재심의를 통해 원처분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나도 반증자료들을 잘 제출하면 원처분을 취소한다는 결과를 얻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법률대리인을 비롯해 알고 지냈던 지인들을 총동원했으나 결국 원처분이 유지됐다. 재심청구 전 나와 부하장교는 무혐의로 드러난 군 검찰 수사결과를 재심의 서류에 포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각 처분을 받았다. 모든 계좌와 통신내역을 추적해 업체와 어떤 합의를 보거나 향응이나 뇌물을 수수한 정황이 없다는 게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나는 청와대로 간 사람과 달리 뒤 봐주는 사람도 없는 힘없는 군인에 불과해 두 눈을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었을 것 같다. 함께 징계를 받은 부하 장교는 어떻게 됐나?
우리 아파트 층수가 21층이다. 억울하고 분해서 몇 번씩 뛰어내릴 생각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자식들이 생각났고, “당신만 떳떳하면 된다”는 아내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곤 했었다. 내 부하장교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사관학교 출신인 부하가 감사처분을 받은 때는 자식도 사관학교에 입학한 시기였다.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명예를 먹고사는 사관생도인데 억울하게 징계를 받고 진급길도 막혀버렸으니 심정이 오죽 답답했을까. 또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심정은 어땠을까? 물론 우리도 나름 변호사를 통해 감사원에 대응하기도 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한편으로 부하장교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내가 적극적으로 재심청구를 하지 않고 방위사업청 자체감사 결과에 따라 경고나 받고 말았다면 지금쯤 아무런 문제없이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유난을 떨어서 일이 더 복잡하게 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조용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사안이기도 했다.
 
당신이 담당했던 해상초계기 2차 성능개량 사업은 여러모로 말이 많은 사업인 것 같다. 작년에는 과도한 지체상금을 부과 받은 한국항공이 민사소송을 제기해 전체 890억 원 중 약 350억 원을 감면받기도 했다.
현행 지체상금 제도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국제계약의 경우 이행보증금 범위로 더 이상의 지체상금을 부과할 수가 없지만 국내업체는 한도가 없다보니 지체상금이 계약금에 육박한다거나 상회하는 이상한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예산낭비는 물론 업체입장에서는 과도한 소송비용이 경영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형평성 차원에서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무기개발은 사업 특성상 지체가 잦고 지체의 원인이 온전히 업체에만 있는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과도한 지체상금을 부과 받은 업체가 소송을 걸면 방위사업청이 지는 경우가 많다. 지체의 원인을 면밀히 검토해 업체의 과실이 아닌 게 확실하면 지체상금을 면제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에 근무하는 한 인사에 따르면 감사원 감사가 무서워서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앞으로도 패배가 예상되는 소송을 혈세를 들여가며 되풀이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맞는 말이다. 담당자가 소신있게 일을 처리하면 불필요한 소송을 되풀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정당한 업무처리도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며 고강도 감사를 벌이면 버틸 사람이 누가 있겠나. 나처럼 무고한 희생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폐해를 곁에서 본 사람이라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업무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혈세낭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감사 결과 책임지고 피해자 구제하라
 
조사 대상자는 일단 범죄자로 취급하는 관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제오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감사원에서 조사를 받던 중 옆에서 조사받던 한 지자체 공무원에게 감사관이 책상을 내리치면서 막말까지 하는 걸 목격했다. 내게도 업체로부터 뇌물이나 향응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묻기에 명예를 먹고 살아온 군인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 적도 있다. 행정직무감사가 아니라 범죄자를 신문하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의심이 가면 형사고발해서 구속수사라도 해라”고 큰 소리로 따졌더니 옆에 있던 다른 감사관이 “어디서 온 사람이기에 그렇게 목소리가 크냐!”면서 면박을 줬다.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 그냥 넘어갔지만 당시 상황은 나를 마치 범죄자인양 대하는 분위기였다. 경찰도 참고인과 피의자 신분을 두고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조사를 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혐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감사관이라는 이유로 피감부서 인원들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감사원의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방위사업청은 1년 내내 감사를 받는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조사받는 기관이라면 획득업무에 특화된 감사관이라도 필요한 것 아닌가.
인적쇄신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감사관들의 전문성을 높여야하는데 적어도 국방획득사업을 감사하려면 획득업무를 경험해본 감사관이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획득업무는 일반 조달업무와 달리 복잡하고 어려운 점이 많다. 군의 특수성과 무기체계 특성을 이해하고 계약업무 등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정확한 감사가 어렵다. 당시 상황과 여건들은 전혀 고려치 않고 예산범위에서 계약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인 우리 두 사람을 무리하게 징계한 처사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감사원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는 또다시 발생할 것이며 선의의 피해자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사원은 국방감사단이라는 조직을 신설해 전문성을 갖추겠다고 했다. 그러나 감사관들의 잦은 보직조정과 그로 인한 전문성 결여 등은 결국 부실감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불러온다. 감사업무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조직을 개선하고 인적쇄신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감사원도 감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잘못된 감사 처분을 내린 게 밝혀져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법정에서 감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판명나면 해당 감사관에게 징계를 내리든 피해보상을 하든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감사원 감사를 받고 정신적 충격에 폐인이 되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문턱까지 갔다 왔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부디 다음 정권에서는 나 같은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전향적인 제도 개선을 기대한다. 감사관들이 왜곡해 작성한 보고서 몇 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고통을 받고 있는지 항상 염두에 두고 감사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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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에서 안에서 만난 고 최강서씨 부인과 누나

"제발 이야기 좀... 한진은 너무 잔인하다"

[인터뷰] 한진중공업에서 안에서 만난 고 최강서씨 부인과 누나

13.01.31 19:47l최종 업데이트 13.01.31 19:47l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37·오른쪽)씨와 누나 최은우(37)씨는 영도구 한진중공업 안 광장에서 최씨의 관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회사를 향해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언론과 경찰에 대한 강한 유감도 함께 표시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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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의 운구가 시작된 30일, 운구를 막는 경찰과 운구행렬이 뒤엉켰다. 마치 전쟁터 같았던 현장에서 유가족은 뜻하지 않게 이산가족이 됐다. 최씨의 아버지는 경찰에 맞아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최씨의 부인과 누나는 운구행렬을 따라 조선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휩쓸리듯 남편과 동생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지 40여일 만에 현장에 들어온 최씨의 부인 이선화(37)씨와 누나 최은우(37)씨는 밤새 고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유족은 이것이 가족보다 회사를 아꼈던 고인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경찰이 운구행렬을 막아선 것은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측이 안치를 위한 냉동탑차와 드라이아이스의 반입을 막고 있는 것에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절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유족은 만약 경찰이 시신 확보를 위해 병력을 투입할 경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기자를 향해 부인 이선화씨가 뛰어왔다. "기자님, 조중동 같이 왜곡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해 강한 유감을 갖고 있다는 표현도 꼭 써주세요"라고 당부했다.

한진중공업이 조선소 내부로 취재진의 접근을 차단한 상황에서 유족들은 봉쇄 전부터 들어와 있던 언론과만 인터뷰할 수 있었다. 현재 조선소 내부에는 <오마이뉴스>와 <민중의소리> 취재진만 남아 있다.

다음은 유가족들과 나눈 이야기다.

"가족보다 회사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회사로 왔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임시로 자리잡은 고 최강서씨의 관. 유가족과 최강서열사대책위는 경찰과 사측의 침탈 등에 대비해 주변에서 관을 지키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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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일 만에 고인의 시신을 영도조선소로 옮겼다. 어떻게 된 것인가?
부인= "40일 넘도록 사측은 교섭 한번 안 하고 조문 한번 안 온 채 말로만 애도를 표했다. 유가족과 협상할 마음이 있다면서 한 번도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렇게 조문을 오던 국회의원들도 올 때만 조속한 해결에 힘쓰겠다 했지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새정부를 기다렸는데 그쪽에서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남편의 죽음은 언급이 안 되고 있고 언론은 사측의 입장을 받아서 편파적인 보도를 한다. 대책위와 노조 분들이 서울까지 가서 상경 투쟁을 벌이는데 유가족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유가족이 다른 분들의 짐을 덜어주어야겠다 생각했다. 남편은 4살, 5살 아이와 부인을 두고 갈 만큼 회사가 우선이었던 사람이다. 유가족 뜻뿐 아니라 남편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김주익 열사의 이야기를 죽기 일주일 전쯤에 한 것으로 봐서는 마음을 그때부터 먹은 듯했다."

누나= "가족에게 남긴 유서보다 회사를 상대로 남긴 유서가 더 길었던 동생이다.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회사였고, 출근하길 원했던 회사였다. 목숨을 끊은 것도 회사였다. 회사로 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어제(30일) 운구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과의 충돌을 어떻게 바라보나?
누나= "경찰이 너무 심했다. 약간의 충돌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루액을 뿌리고 폭행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처음 최루액이란 것도 모르고 경찰이 호스로 물을 뿌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부인= "2013년도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고 70~80년대에나 있던 일인 줄 알았다. 유가족이 원했기 때문에 대책위와 합의하고 남편을 회사로 옮기자고 한 것이었고, 합법적인 절차로 행진을 한 것인데 경찰이 과잉진압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측! 대화하자면서요? 새벽이고 밤이고 언제든 기다리겠습니다"

- 충돌 과정에서 고인의 아버님도 다쳤다고 들었다. 상황을 설명해달라?
부인= "어제 제가 방송차에 올라서서 경찰에 '길을 비켜달라,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애원해도 경찰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에워싸며 압박해 들어왔고, 시신마저 경찰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서문을 열었고, 우리도 조선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 상황에서 선두에 계시던 아버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경찰은 아버지를 유족으로 알고 있음에도 단추가 모두 떨어질 만큼 멱살을 잡고, 머리채까지 잡아끌었다. 안으로 끌려간 아버님을 경찰이 방패로 내리찍고 엄청 때렸다. 아버님은 지금 입원한 상태다. 머리를 너무 맞아서 눈도 아프다고 말씀하신다. "

(이런 주장에 대해 부산 영도경찰서 경비작전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최씨의 아버지가 폭행 당했다고 하던 시점 전에는 최씨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보지 못했다"며 "이후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누나= "우린 원래 이곳에 들어올 생각도 없었다. 조중동은 우리가 계획적으로 난입하기라도 한 듯 보도했던데 우린 동생을 운구해서 회사 앞으로 빈소를 옮기려고 했던 것뿐이다. 유가족들이 지낼 집까지 회사 앞에 다 봐놓고 보일러에 기름까지 다 채워놓았는데 경찰이 막으면서 이렇게 사태를 만든 것이다."

- 대책위가 요구한 냉동탑차와 드라이아이스의 반입을 사측이 막았는데?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37)씨는 회사를 향해 교섭 창구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으니 교섭 좀 하자"며 유가족과는 대화에 나서겠다던 회사의 구체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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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있는 건지 없는건지 모르겠다. 자기들은 유가족과 장례 문제에 대한 대화를 원하고 죽음을 애도한다고 표현하던데 실제로는 회사 쪽 사람 그 누구도 유가족에게 조문 한번 오지 않고 유가족에게 만나자는 연락도 없었다. 유가족은 사측을 기다리는데 사측이 안 왔다. 지금이라도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새벽이고 밤이고 언제든지 기다리겠다"

누나= "사측은 유가족이 대화 제의를 안 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다"

- 일부 보수 언론의 보도에 평소 강한 유감을 표시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부인= "경찰은 쥐를 몰 듯 우리를 몰았고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찾는 심정에서 찾아 헤매다 서문을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보수 언론은 사측의 말만 듣고 우리가 용접기를 이용해 문을 뜯어냈다는데 당시 용접기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급박한 마음에 사람들이 문을 발로 차고 해서 열고 들어온 것이다.

보수 언론은 여전히 남편의 죽음을 회사랑은 관계없는 생활고나 밝혀지지 않는 이유라고 몰아가고 있다. 그 사람들이 유서를 못 본 것인지, 글자를 못 읽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가족들보다 회사를 향해 더 긴 유서를 남긴 남편이다. 그 뜻을 더 이상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요청드리고 싶다."

"40일간 냉동창고에 동생을 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길바닥에..."

- 사측은 대책위가 시신을 볼모로 시위를 벌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부인= "우리라고 하고 싶어서 이러겠나? 이렇게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과연 자기들이 알기나 하겠나? 회사의 말만 보면 우리가 남편을 일부러 죽여 놓고 회사를 상대로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제는 정말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다. 우리는 절박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회사와 이야기하고 싶다. 제발 이야기 좀 하자. 한진중공업은 너무 잔인하다."

누나= "빨리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 매일 매일이 속상하다. 40일간 냉동창고에 동생을 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길바닥에 두고 있다."

- 대책위는 고인을 영도조선소에 모시고 투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족은?
부인= "밖에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경찰력이 저렇게 깔려서 안에 있는 사람들 연행하겠다는데, 다 연행하고 관을 가져가면 자기들이 우리한테 장례를 치르라고 할 것 아닌가. 그건 정말이지 남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 밖에서는 경찰이 시신을 침탈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누나= "만약 그렇게 하면 강서가 죽은 자리에서 나도 죽을 수밖에 없다."

부인=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한다. 유가족은 그런 마음이다. 어머니도 경찰이 남편 운구 막자 자기를 데려가려며 울부짖었다."

- 마지막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나?
부인= "우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으니 교섭 좀 하자. 회사가 교섭에 나온다면 우리는 남편이 유언에 남긴 것과 1년 전에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서 얘기한 약속을 지키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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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 씨 출소하던 날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

[포토]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 씨 출소하던 날

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31 오후 5:18:23

 

용산 철거민 이충연 씨가 31일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9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망루에 올라 경찰특공대와 대치하다 참사를 겪었다. 그때 아버지 이상림 씨와 동료 철거민 4명을 잃고 4년 동안 수감됐다. 안양교도소에서는 모친 전재숙 씨, 부인 정영신 씨가 그를 맞았다.

감격스런 상봉.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어머니와 아내는 차례로 이 씨를 안고 꽃다발을 안겼다. 이충연 씨는 환한 얼굴로 가족을 맞았지만 비교적 담담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4년 전 망루에 올랐을 때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였다"며 참사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아버지와 철거민 네 분을 잃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개발 지역에서 대책 없이 철거민들이 내쫓긴다. 또 다른 용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그는 "저 안(감옥)에서 이웃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내가 원해서 이렇게 살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이웃을 살피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극단의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다"며 쌍용차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31일 출소한 이충연 씨를 가족이 맞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특별 사면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저들이 권력으로 나를 석방했지만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 대통령 측근용 특사의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번 사면을 비꼬았다.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도 후보 시절 했던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부인 정영신 씨는 "혼자 남편을 만나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지난 4년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다시는 이 나라에서 집이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쫓겨나고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 씨와 같이 구속된 철거민 중 4명도 이날 대구·순천·여주·춘천교도소에서 각각 출소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7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연다. 다음 날인 1일에는 용산참사 희생자가 묻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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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이충연 씨가 아내 정영신 씨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충연 씨는 2009년 1월 수감돼 꼬박 4년을 옥살이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 정영신 씨와 이충연 씨.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를 보고 있는 이충연 씨. 아내 정영신 씨는 '용산의 며느리'라 불리며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이날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기자회견 내내 어머니 전재숙 씨가 아들 손을 꼭 잡고 있다. 평범하던 전재숙 씨는 아들이 감옥에 있는 4년 동안 투쟁 사업장을 돌며 연대 활동을 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들은 재개발 지역에서의 강제 퇴거 금지와 재개발 정책 개선 등을 요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31일 오전 경기도 안양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양교도소 정문에는 '꿈과 희망을 주는 교정'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다. 이충연 씨는 감옥에서 책과 신문을 읽으며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제는 가족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이충연 씨. 역설적이게도 그는 교도소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나왔다. MB정권은 이렇게 평범했던 사람을 투사로 키웠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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