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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거취 논란’에 실종된 비전…민주당, 긿을 잃었다

 

등록 :2023-03-26 07:30수정 :2023-03-26 09:57

 
[한겨레S] 성한용 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73
여전히 외면받는 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기소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법적 책임은 재판으로 가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책임은 검찰의 추가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 도중에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 “총선에서 지면 내 정치도 끝난다. 승리를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한가지 궁금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고 지도부를 새로 꾸리기만 하면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정치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 민주당의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아닙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퇴 여부에 모두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진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대선 이전부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가며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세밀한 복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권자 연령대에 따라 투표 성향이 확연히 엇갈리는 현상을 세대투표라고 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세대투표가 처음 나타난 것은 노무현·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2002년이었습니다.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은 노무현 후보를 많이 찍었습니다. 50대와 60대 유권자들은 이회창 후보를 많이 찍었습니다. 40대 유권자들은 두 후보를 비슷하게 찍었습니다.

 

20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20대는 40대가 됐습니다. 당시 30대는 50대가 됐습니다. 지난해 3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40대와 50대는 이재명 후보를 훨씬 많이 찍었습니다. 그러나 30대는 윤석열 후보를 조금 더 많이 찍었습니다. 20대는 이재명 후보를 조금 더 많이 찍었지만, 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젊은 세대 확보 싸움에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에 밀렸고, 그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것입니다.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외면하는 조짐은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오세훈 후보와 박영선 후보가 맞붙은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 결과 박영선 후보는 40대에서만 이겼고, 모든 연령층에서 패배했습니다. 박형준 후보와 김영춘 후보가 겨룬 부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은 왜 민주당을 외면했을까요? 2019년 조국 사태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조국 사태는 20대와 30대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을 ‘내로남불 기득권 세력’으로 각인시켰습니다. 2030은 분노했습니다. 2020년 4·15 총선에서는 코로나 사태에 파묻혔습니다. 그러나 2021년 엘에이치(LH) 사태를 계기로 다시 터져 나와 민주당에 치명타를 가한 것입니다.

 

민주당의 약점을 국민의힘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2021년 6월11일 전당대회에서 1985년생 이준석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30 유권자, 특히 남성들의 표심이 국민의힘으로 급속히 쏠렸습니다. 2022년 3·9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와 30대에서 젠더 격차가 뚜렷합니다. 결국 민주당은 ‘세대 전쟁’과 ‘젠더 전쟁’에서 패배했고, 그래서 5년 만에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됐습니다.

 

 

여권 지지 이탈층, 민주당 지지 유보

 

3·9 대선과 6·1 지방선거 패배 뒤 민주당 안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습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로고침위원회를 만들어 반성문을 썼습니다. 변화한 유권자 지형을 대규모 온라인 조사로 살폈습니다. 2030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외면한 이유를 심층면접으로 분석했습니다.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보고서도 냈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민주당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28일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들어섰지만, 민주당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맞서 열심히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대선 연장전입니다.

 

최근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의 윤석열 대통령 지지 철회와 국민의힘 이탈이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24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 평가는 긍정 34%, 부정 58%였습니다. 연령별로는 18~29살 긍정 24%, 부정 60%, 30대 긍정 23%, 부정 69%입니다. 40대는 긍정 19%, 부정 80%, 50대는 긍정 34%, 부정 61%입니다. 60대와 70대 이상은 긍정이 더 많습니다. 2030 유권자들의 국민의힘 지지율도 함께 하락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34%였는데, 18~29살은 22%, 30대는 25%였습니다. 지난해 대선 2030 표심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조선일보>가 이런 현상을 3월20일치 정치면에 “여 지지율 34%인데 20대는 13%… 당내 위기감 커져”라는 제목으로 소개했습니다. 3월21일치에 사설까지 썼습니다. “청년 지지율 추락 ‘도로 청년 외면 당’된 국민의힘”이라는 제목입니다. 걱정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서 떨어져 나온 2030 유권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24일 발표한 한국갤럽 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8~29살 응답자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22%, 민주당 25%, 정의당 7%, 기타 및 무당층 46%였습니다. 30대는 국민의힘 25%, 민주당 40%, 정의당 4%, 기타 및 무당층 32%였습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실히 기타 및 무당층이 많습니다. 기타 및 무당층이 40대는 29%, 50대는 20%, 60대는 17%, 70대 이상은 11%입니다.

 

 

 

바닥 민심에 밝은 민주당 수도권 국회의원 몇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2030 유권자들이 여당에서 이탈했지만,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고 무당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론조사 수치와 일치하는 분석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2030 유권자들의 이탈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엠제트(MZ) 세대의 눈치를 보며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뒤집고, ‘1000원 아침밥’ 사업을 확대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재명 지키기’에 밀려 새 비전 실종

 

민주당은 2030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을 별로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몰라서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해 9월2일 나온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의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보고서는 민주당이 재집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가치 지향에 따라 6개 유권자 그룹을 구분했습니다. 평등·평화 그룹(37.7%), 자유·능력주의 그룹(21.5%), 친환경·신성장 그룹(18.8%), 반권위·포퓰리즘 그룹(9.3%), 민생 우선 그룹(6.4%), 개혁 우선 그룹(6.3%)이었습니다. 민주당의 이른바 ‘전통적인’ 지지층은 평등·평화 그룹과 개혁 우선 그룹입니다.

 

위원회는 민주당이 지지층에 전통적 진보 가치뿐 아니라 환경, 혁신성장 같은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고, 특정한 정치개혁 이슈에 대한 과격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국민의힘 지지층인 능력주의 보수 그룹과 가치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제의했습니다. 이를 통해 친환경·신성장 그룹과 반권위·포퓰리즘 그룹, 민생 우선 그룹으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이러한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위원회의 제안대로 가치와 정책을 과감하게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건의가 몇차례 있었지만,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검찰의 공세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다른 전선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고 합니다. 이재명 대표를 지키느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새로고침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온라인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 제고를 위해 시급한 과제를 물었더니 ‘윤석열 정부 견제’는 8순위에 불과했다”며 “민주당 자신의 신뢰를 높이지 못하면 지지도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지층 확장 위한 의제 제시해야”

 

새로고침위원회를 만들었던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에게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재명 대표 거취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다. 검찰 수사는 그것대로 강하게 대응하면 된다.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지지층을 확장하려면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의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당 지도부의 관심과 역량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저는 우상호 전 위원장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결국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작위가 아니라 작위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사이익에 안주하는 정당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다음날인 3월9일치 <경향신문>에 ‘이제 시선은 민주당의 혁신으로’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성찰과 혁신, 가치와 신뢰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민주당의 역동성이 살아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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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대통령? 윤석열 사과, 박진·김성한·김태효 파면"

[현장] 민주당·정의당·진보당 및 시민·사회단체 '4차 범국민대회' 열어... "더 이상 국민 모욕 말라"23.03.25 20:07l최종 업데이트 23.03.25 20:07l글: 소중한(extremes88)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와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와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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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이 "윤석열 정부의 망국외교 및 강제동원 굴욕해법"을 비판하는 범국민대회를 열고 윤 대통령의 사과와 박진 외교부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은 25일 오후 서울광장 동편에서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 대법원 판결 이행 요구 4차 범국민대회'를 열고 "인간 존엄의 회복을 위해 평생 싸운 (일제) 피해자와 국민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며 결의문을 발표했다.

해당 범국민대회 집회는 지난 3.1절 이후 매주말 열려 이날 네 번째로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는 정의기억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등도 참여해 함께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재명 "강제동원 해법, 일본에만 유익"
이정미 "입만 열면 사고, 똑바로 일하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와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와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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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주최한 야당의 대표들은 단상에 올라 윤 대통령을 강하게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잔뜩 퍼주기만 하고 하나도 받아오지 못했다"라며 "외교에 있어 우리의 이익만 챙길 수 없단 사실을 인정하지만 최소한의 균형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져선 안 되는 게 기본 원칙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독도에 대해 그들(일본 정부)이 이야기할 때 '절대 아니다'라고 항변했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했을 때 대체 뭐라고 말했나"라며 "우리는 지소미아 원상복구를 아무 조건 없이 했지만 일본은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 복귀시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에 대해 대체 뭐라 말했나. 식탁에 방사능 오염 농수산물이 올라올 지도 모르는데 (윤 대통령은) '안 된다'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지키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그 책임을 과연 제대로 이행했나"라며 "일본에 유익하기만 한 강제동원 해법이라고 내놓은 것이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줬나. 그들은 대체 무엇을 양보했나.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은 그들은 오히려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말하며 추가 청구서만 잔뜩 손에 들려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입만 열면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야기하는 윤 대통령이 주 69시간 동안 일을 하라고 한다. 세계의 경제 대국들은 주 35시간 노동에 주 4일제로 나아가고 있는데 세계경제 10위권을 이뤄온 우리 국민들이 무엇이 부족해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휴일엔 실신 상태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라며 "대한민국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윤 대통령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하는 일마다 사고이고 하는 일마다 마이너스의 생산성을 보이는 윤 대통령 스스로나 똑바로 일하길 바란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은 '한국 야당이 부끄럽다'는 말을 했는데 이런 말을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하나 챙겨왔나. 어떤 국익을 만들어왔나"라며 "우리 국민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스스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90% 이상을 복구해 낸 저력 있는 국민이다. 왜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향해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는지 똑똑히 듣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윤희숙 진보당 대표도 "사과는 가해자가 시혜나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됐다고 할 때까지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 말대로 일본이 통절한 반성을 했다면 일본 전범기업이 우리 국민에게 배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가 3자 변제할 필요도 없다"라며 "여기서 명백하게 정리하겠다. 일본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 팩트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일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모든 것이 헌법 위반이므로 원천 무효다. 행정부 수장이 자기 맘대로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고 피해자 권리를 박탈한다면 어떻게 삼권분립이 지켜지며 그 누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겠나"라며 "국민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국민을 배신한 정권을 단호히 심판할 때이다. 다가오는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 1년을 윤석열 정권 심판의 날로 만들자"라고 밝혔다.
 
▲ 대학생 “윤석열 대통령, 강제동원 피해자 걸림돌로 여긴다면 우리들은 철벽 되겠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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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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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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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 발표 "외교 실패 덮기 위해 국민.피해자 걸림돌 취급"

이날 범국민대회 주최 측은 결의문을 통해 ▲ 굴욕망국 외교 윤석열 정부 심판 ▲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 ▲ 대법원의 신속한 판결 이행 ▲ 일본 정부의 사죄 및 전범기업의 배상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철회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국가의 존립근거를 흔들고 치욕과 상처를 입히더니 미래세대에 넘어갈 부채만 잔뜩 쥔 채 돌아왔다. 그러고도 (윤 대통령은) 최소한의 해명이나 사과는커녕 당당한 외교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배타적 민족주의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세력'으로 폄훼하고 갈라치기에 몰두하고 있다"라며 "또한 오만한 일본 측 망언에 강력한 항의는커녕 '(일본이) 과거이 수 십 번 사죄했다'며 일본정부를 감싸고 '더 이상 사죄를 요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궤변까지 늘어놨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와 우익에게 보여준 성의의 1/100도 우리 국민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외교 실패를 덮기 위해 국민과 피해자들을 걸림돌 취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며 "한국 고위 정부관계자란 자는 화해치유재단 잔여금 처리를 운운하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 성노예제 용어 사용 불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제기를 불가하게 만들 2015년 위안부 합의 풀패키지 실현에 동조할 모양새다. 도대체 어느 나라 녹을 먹는 사람인가"라고 밝혔다.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제4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 방류 계획 철회,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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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온 ‘양금덕 할머니’ 호칭이 이상했다면

  • 장슬기 기자 
  •  
  •  입력 2023.03.25 05:05
  •  
  •  댓글 0

[언어 저널리즘 (06)] 불평등한 가족 호칭에 시댁·처가 대신 시가·처가, 사위만 백년손님인가

도련님·아가씨 등 시대착오적 호칭 대신 친족 간에도 ‘OO씨’ 이름 부르자는 제안도

한국어는 서열을 전제한다. 상대와 나의 위치를 파악해 높임말과 낮춤말을 적절히 골라야 한다. 비민주적인 표현도 많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지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독재의 유산이 언어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언어에도 신분이 있다. 표준어는 나머지 지역어(방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언론은 그동안 이러한 한국어의 특징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지 못했고 오히려 널리 유포해온 책임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저널리즘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2023년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지 살펴보고, 저널리즘은 언어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언어 저널리즘’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주

<양금덕 할머니 “대통령 옷 벗으라”…野 외통위 단독 진행>

<“미쓰비시 돈 받아낸다” 다시 소송 나선 양금덕 할머니>

각각 지난 13일 KBS, 지난 16일 MBC 기사 제목이다. 최근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해법’을 내놓으면서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 목소리도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피해자를 부르는 방식이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보도할 때도 똑같이 발생했던 일인데 언론에선 ‘양금덕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로 표기하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피해자를 가리킬 때 ‘OOO 할머니’라고 쓴다. 

미디어오늘은 이전 기사 <뉴스 호칭에 녹아있는 전관예우를 없앨 수 있을까>에서 언론이 호칭에 서열을 만들어 예우하고 싶은 대상에는 ‘이름+직함(직업)’으로 하고 그게 아니면 ‘이름+씨’로 표기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두환은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기에 일부 언론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닌 ‘전두환씨’라고 하는 것이나 대통령 배우자에 ‘여사’가 아닌 ‘씨’를 붙이면 지지자들이 항의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동원 피해자를 이용수씨나 양금덕씨보다 ‘이용수 할머니’나 ‘양금덕 할머니’로 표기하는 건 언론에서 그들을 예우하기 위해 붙인 호칭으로 볼 수 있다. 기사 본문에서 처음 등장할 때는 ‘양금덕 할머니’로 쓰고 그 다음부터는 ‘양 할머니’라고 쓴다. ‘이 할머니’, ‘양 할머니’. 어딘가 좀 어색하지 않은가. 

▲ 지난 16일 MBC 뉴스 화면 갈무리

 

할머니, 공론장에서 배제된 여성노인의 상징

할머니는 내 부모의 어머니를 부르는 말이다. 가족관계를 가리키는 표현이 보편적인 여성노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확대된 것이다. 영어에서 내 부모의 어머니가 아닌 여성노인을 가리킬 때 Ma’am과 같은 말을 쓴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여성노인을 지칭할 단어가 없다. ‘어르신’이란 말은 남성에게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고, 통상 미디어에 등장하는 65세 이상은 주로 남성 전직 국회의원과 같은 기득권층이다. 평범한 사람, 사회적 약자로서 노인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언어가 없으면 그 존재도 없다. 가족관계를 벗어난 여성노인을 지칭한 표현이 없다는 건, 여성노인이 공적 영역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족관계에서 사용하는 ‘할머니’를 가져와 ‘양금덕 할머니’라고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일상에선 ‘선생님’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뉴스에서 ‘양금덕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 역시 어색하다. 

영화 <69세>를 보면 여성노인의 발언이 얼마나 거대한 장벽에 갇혀서 신뢰받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69세의 여성이 29세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어떠한 2차 피해가 발생하는지, 실화를 모티브로 그렸다. 치매를 의심받아 성폭력 존재 여부를 의심받거나 젊은 남성을 꼬셨다며 오히려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사건에선 범죄 증거가 있는데도 가해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가 아이거나 젊은 여자였다면 그놈이 구속됐을 것”이란 내용이 유서에 있었다. 

▲ 영화 '69세' 포스터

 

2018년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도 여성노인의 미투를 찾기 어려웠던 까닭을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적 영역에서 배제됐다는 건 이들의 문제나 목소리가 사회문제로 공감받거나 공론장에서 고민해야 할 대상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노인이라는 소수성이 중첩되면서 많은 여성이 성폭력을 말하는 분위기에서도 소외됐다. 

여성들이 받는 차별은 개인이 예민한 문제가 아니라 젠더의 구조적 문제라는 주장,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여기서도 적용해야 한다. 여성노인의 사적인 것도 정치적이다. ‘할머니’를 대체할 말이 필요하다. 

결혼하면 발생하는 불평등한 가족 호칭

보통 가족관계는 사적영역으로 분류되지만 대다수 가족에게 적용되는 문제는 공적영역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가족내 젠더 불평등은 꽤 오래된 사안이다.

▲ 1966년 2월17일자 동아일보 기사

 

1966년 2월17일 동아일보에는 <네 살배기 ‘애기씨’>라는 독자 기고문이 실렸다. 독자의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네 살짜리 시누이한테 ‘애기씨’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하소연을 담았다. 해당 독자는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모시고, 손아래 시누와 시동생은 내 동생처럼 사랑으로 다루어야 한다. 하녀가 아닌 바에야 동생들에게 도련님이니 작은아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가족적이고 친근하지 않을까?”라고 썼다. 50년 이상 흐른 지금 기고로 봐도 무방할 만큼 고질적인 문제다. 

결혼하면 여성과 남성은 서로의 가족과 연결된다. 하지만 그 호칭을 보면 동등하게 연결되지 않았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남성쪽 집안은 시‘댁’이고 여성쪽 집안이 처‘가’다. 시가와 처가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여성은 ‘아버님’, ‘어머님’이라며 남편 부모님에게 실제 부모를 높이는 호칭을 쓰지만 남성은 ‘장인어른’, ‘장모님’이라는 별도의 호칭을 통해 자신이 직접적인 자녀가 아니라고 밝힌다. 

동아일보 독자기고에서 보듯 여성은 손아래 시누이(남편의 여동생)를 ‘아가씨’,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남편의 남동생)을 ‘도련님’으로 부르는데 이는 신분제 사회에서 하인이 주인집 자녀를 부르던 말과 같다. 남성은 아내의 여동생을 ‘처제’, 아내의 남성형제를 ‘처남’으로 부른다. 아내가 남편 형제자매를 높여 부르는 것과 달리 남편은 장인어른, 장모님처럼 아내쪽 가족일 뿐이라며 일종의 선을 긋는 형식의 호칭을 쓰게 된다.

시‘댁’에서 며느리를 부르는 말과 처‘가’에서 사위를 부르는 말도 차이가 있다. 시‘댁’에선 며느리를 ‘새아가’, ‘며늘아가’라며 ‘아가’ 취급을 한다. 며느리를 높여부르는 호칭은 없다. ‘얘야’나 ‘너’로 부르는 집도 흔하다. 그러다 아이를 낳으면 순식간에 ‘에미야’로 바뀐다. 처‘가’에선 사위에게 ‘김 서방’ 등으로 높여 부르는 호칭이 있다. 장인·장모 입장에서 사위는 늘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의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속담도 있다. 

▲ 결혼하면 상대 배우자 가족과 관련해 시대착오적이고 낯선 호칭을 사용하게 된다. 사진=pixabay

 

시‘댁’과 처‘가’의 이러한 불균형은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으로 이어진다. ‘새아가’에겐 반말이 붙고, ‘O서방’에겐 ‘~하시게’가 따라붙는다. 남편 형제의 서열대로 각 배우자의 서열도 결정된다. 형님(남편 형의 부인)이 나이가 어려도 존댓말을 써야하고 형님은 손아래 동서에게 반말을 쓴다. ‘처제님’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처럼 처‘가’쪽 호칭엔 대부분 ‘님’이 붙지 않는 반면 시‘댁’쪽 호칭엔 ‘님’이 붙거나 어울린다. 

가족내 성차별의 문제는 호칭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1978년 4월18일 경향신문 <남녀불평등 여전히 깊다>란 기사를 보면 김복길 당시 한성여대 교수의 논문 ‘한국인의 양성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1975~1977년 서울 주요 일간지에 실린 부고 500여건을 조사한 결과, 남편이 사망했을 때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았으니 죄인이라는 뜻의) 미망인으로 표기한 경우가 42.8%(334건 중 143명), 처(妻)로 표기한 경우는 불과 0.9%(3명), 아예 기재하지 않은 것은 56.23%(188건)로 나타났다. 또 유족을 기재할 때 아들만 쓴 경우가 49.9%(255건)에 달했다. 

어색한 호칭이 가져온 불통

도련님, 아가씨도 그렇지만 여성이 남편의 형에게 ‘아주버님’이라고 부르거나 남편 여동생의 배우자에게 ‘서방님’이라고 하는 것은 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최근 결혼한 부부의 경우 서로의 형제자매, 그 배우자들과 만남에서 호칭이 어색해서 아예 대화를 걸지 않거나 호칭을 생략한 채 본론만 말하는 경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A씨는 오랫동안 연애하던 연인과 결혼했는데 이전부터 남편(남자친구) 남동생의 이름을 ‘누구야’라고 불러왔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하루아침에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A씨는 “입에서 도저히 ‘도련님’이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호칭을 부르지 않고 명절 때만 도련님이라고 불렀는데 남편이 듣기에도 민망했는지 그냥 다 같이 이름을 부르자고 제안했다”며 “남편도 내 여동생한테 이름을 불러오다가 처제라고 하기 어색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A씨는 “남자친구의 동생이어서 이름 부르던 때와 달리 결혼 초 도련님으로 부르고 그쪽은 나한테 ‘형수, 형수’ 이렇게 하는 것 자체로 (도련님이) 조금 건방지게 변한 것 같았다”며 “결국 모두가 ‘OO씨’라고 이름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A씨와 그의 남편 형제자매들 간 이름 부르기로 한 합의에 대해 시어머니의 이해도 구했다. 

호칭이 어색하면 소통에 제약이 있다. 최근 결혼한 B씨는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부를 때 “호칭을 쓰지 않고 그냥 할 말만 한다”며 “서로 나이대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소통은 하지만 호칭이 어색해서 부르진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안부를 수시로 묻고 카톡을 자주하며 소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도련님 잘지내세요’라고 통화를 시작했다면 전화하기 부담스럽지 않나”라고 했다. 

비교육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족관계상 서열로 인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하대하는 표현을 쓰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집안 아이들이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A씨는 “아버지 세대를 보면 이제 눈치 주는 어른이 없지만 그러한 호칭에 익숙해져서 고치지 않는다”며 “집안 아이들이 보는 게 교육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 배우자 형제자매 관련 부분. 자료=국립국어원

 

가족단위에서 호칭 변화를 끌어낸 A씨는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당시 국립국어원에서 ‘도련님’ 같은 호칭 대신 ‘OO씨’로 부르자고 권고하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러한 권고가 우리 가족이 실제 호칭을 바꾸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2017~2018년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2020년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라는 책자에서 “배우자의 동생을 ‘○○씨’와 같이 이름을 넣어 불러 친근함을 드러낸 것처럼 배우자 동생의 배우자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씨’로 이름을 부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적인 관계로만 치부됐던 가족·친족 간 시대착오적 호칭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 참고문헌

신지영, 언어의 높이뛰기

신지영, 언어의 줄다리기

장슬기, 그런 말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 미디어오늘은 여러분의 제보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new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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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청년 목소리 듣겠다”던 노동부 장관의 ‘보여주기식 소통’

청년 쓴소리 전달하려 했더니 간담회 하루 전 ‘전면 비공개’ 통보, 간담회서는 “오해”라는 말만 되풀이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2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근로시간 60여시간 연장 관련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근로시간 연장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2023.03.24 ⓒ민중의소리
'주 최대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한 거센 반발 여론에 정부가 뒤늦게 의견 수렴 절차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보여주기식 소통'으로 흐르고 있다. 고용노동부와의 간담회에 직접 참석한 청년 노동자도 "소통이 많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등이 주로 모인 단체 '청년유니온'과 만나 1시간 20여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시작 전부터 불통 논란이 터져 나왔고, 간담회 내용 역시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 장관은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언론에는 진솔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얘기해달라"는 당부까지 남겼다.

당초 간담회는 이 장관과 청년유니온 위원장의 모두 발언과 청년유니온이 청년 노동자들에게 받은 의견을 전달하는 순서까지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노동부가 간담회 하루 전 돌연 전면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간담회 시작 30여분 전에는 '오전 회의 지연'을 이유로 면담 장소를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로 변경했다가, 시간을 다소 늦춰 사전 예고한 장소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됐다.

노동부와 소통해온 청년유니온 나현우 사무처장은 "장관 비서실 쪽인 것 같은데, (청년유니온이 취합한) 청년 노동자의 의견을 전달받는 모습은 사진 찍히고 싶지 않다며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이 이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전달하려 한 청년 노동자의 의견에는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는 이들의 서러움과 현실을 모르는 정부 개편안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다. 지난 18일부터 5일간 15~39세 청년 노동자 222명이 응답했으며, 응답자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과 같은 안정적이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였다.

미디어·문화 직종에 종사하는 이은진(31) 씨는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잦습니다. 법의 테두리가 있어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업무를 강행합니다"라며 "새벽 3시에 퇴근하려는 저에게 '벌써 가냐'고 묻던 대표의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리도 당당합니까. 지금도 지켜지지 않는 52시간을 넘겨 더 긴 시간을 기업에 허용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런 만행을 허용해주는 꼴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청년유니온 김설 위원장은 간담회 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칫 잘못했으면 바람 맞을 뻔했다. 청년의 의견을 전달하고자 한 것뿐인데 왜 간담회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간담회 장소를 여기저기 바꾸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청년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정부의 태도가 맞는지 의심마저 든다"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보면, 대부분 장시간 노동이 삶을 얼마나 망가트리는지, 현행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며 "정부는 계속 입법예고안에 대해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소통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읽어보면 오해가 아닌 정부의 '바짝 일하고 장기간 휴가 갈 수 있는 제도'라는 주장이 허황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간담회도 내실 있는 내용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간담회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이 왜곡돼 알려졌다는 취지의 해명을 주로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 장관은 '노동부의 입장에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주 69시간이 프레임으로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주가) 주 52시간 넘게 일을 시키면 불법이 되고, 처벌을 하는 게 부당하지 않느냐. 노동자도 주 52시간을 넘어서는 돈을 못 받는 문제가 부당하지 않느냐'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현장 도입이 어렵다는 것은 알겠지만 바로 도입하겠다는 게 아니라 먼 방향성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이 장관이 말했다"고 부연했다.

반면, 청년유니온은 이 장관에게 "노동시간 개편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시간 노동 체제인 데다가 무노조,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정부가 주장하는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공짜 야근을 조장하는 포괄임금제가 오남용되고 있으며 연차 사용이 어려운 실정도 함께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은 정부 주장과 달리 총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는 노력과 역행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이 장관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노동시간 개편안의 입법 예고 기간인 내달 17일까지 이같은 소통 일정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300만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있는 양대노총과의 면담 일정은 여전히 잡지 않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대노총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원래 저희의 계획은 개편안이 나오면 현장부터 국회까지, 노사 모두를 폭넓게 만날 예정이었다"며 원론적으로 답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청년유니온 근로시간 제도개편 의견 수렴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3.03.2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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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 부활로 경제 위기 돌파 노린 일본의 흉계

  •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장
  •  
  •  승인 2023.03.24 22:04
  •  
  •  댓글 0
  •  
  • -일본 한때 세계경제 2위로 미국 추격

    -미국의 견제와 장기불황

    -희망 없는 일본경제

    -전쟁 국가로 부활하여 해외침략으로 위기 돌파

    1. 일본 한때 세계경제 2위로 미국 추격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배 이후 미국의 종속국이 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는 아시아의 군사 거점으로 삼기 위해, 전쟁 범죄를 묵인하고 재무장을 추진하였다. 크게 국방은 미국이 담당하고 일본은 피폐해진 경제 부흥에 주력했다. 특히 일본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후방 역할을 맡으며 군수물자 등 특수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일본은 1955~1973년까지 19년 동안 실질GDP 성장률이 9.3%를 기록하며, GDP 세계 2위(미국의 75%)로 뛰어올라 미국을 추격하였다. 1980년대까지 일본산 반도체, 가전제품, 자동차 등이 미국 시장을 휩쓸었고,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미국 전체 부동산의 4배에 이르렀으며, 1인당 GDP도 미국을 추월하였다.

    2. 미국의 견제와 장기불황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와 90년대 반도체협정으로, 일본의 추격을 차단하였다. 군사적으로 종속된 일본은 미국의 일방적인 환율조정과 보호무역 정책을 수용하여 산업경쟁력이 약화되고 무역적자가 발생하였다. 일본은 수출 위축을 내수 진작으로 회복하고자 초저금리 경기부양 정책을 썼으나, 오히려 누적된 자산 거품이 붕괴되어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이 평균적으로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림 1) 일본 경제성장률 추이 (전년대비, %) 자료 : 통계청 각 년도, 3개년 이동평균, 2023년은 전망치(1.5%)

    장기침체 상황에서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극우 아베 정권이 2012년 출범하였다. 아베는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으로 엄청난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도모하였으나, 경제회복은 단기 호황으로 끝나고 디플레이션이 고착되었다. 돈 풀기 정책의 후과로 일본은 국가부채가 GDP 대비 260%에 이르렀고, 국채 채무를 갚기 위해 신규 국채를 다시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3. 희망 없는 일본경제

    1990년대 시작된 불황은 한 세대(30년) 동안 지속되어,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무기력하고 희망이 없다. 사토리(해탈) 세대는 경쟁에 관심이 없고, 파트타임을 하면서 먹고 살아도 만족한다고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본경제의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일본은 국가 부채가 1,255조엔(1경 2,300조원)으로 GDP 대비 세계 1위이며(260%), 1인당 국가 부채는 9,825만원이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일본은행이 돈을 찍어내어 인수하는 방식이다. 일본은행이 발행 국채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적자 재정이 구조화된 것으로 매년 정부 지출의 약 24%가 국채비로 소요된다. 2023년 예산을 보면 국채 채무상환비가 15조 2,645억엔이고 이자지불액은 8조 4,943억엔으로 합계 23조 7,588억엔이다. 만약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부채 부담은 3조 6,000억엔 증가하여 재정이 붕괴된다.

    둘째,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버린 초고령사회로 65세 이상 인구가 30%나 된다. 고령화와 함께 수십 년 간 실질임금 하락과 비정규직 증가로 내수경제가 침체되었다. 부양할 노인들은 넘치고 세금 낼 젊은이는 부족하다. 고령화로 국민연금, 의료비, 간병비가 크게 늘어 사회보장 지출이 예산의 32.3%나 된다. 반면 세수는 부족하여 예산의 40%를 신규 국채를 발행하여 충당한다.

    셋째, 일본은 평화헌법에 의해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인데도 방위비가 급속하게 늘어 2023년 전체 예산의 9%나 된다. 국채비, 방위비, 사회보장비를 합하면 예산의 63%로, 생산에 쓸 예산은 거의 없다.

    넷째, 디지털 경제에서 산업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부품·소재 등 장인기술로 아날로그 산업에서는 경쟁력이 있었지만 디지털 산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는데, 엔저 시대에 해외투자를 많이 하여 배당금과 이자 등으로 경상수지는 아직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다섯째,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일본도 물가가 4.3%까지 올랐고 금리인상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엔화 약세로 에너지 등 수입 물가가 폭등한다. 반면 금리를 인상하면 부채 폭탄(국채 이자)이 터질 수 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다.

    4. 전쟁 국가로 부활하여 해외침략으로 위기 돌파

    패전 후 일본은 평화헌법을 제정하고 해외 침략의 과거를 반성하여 군대를 보유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미국의 지원으로 극우세력들이 등장하면서 해외파병, 군대보유, 무기증강, 선제공격 등을 추진하면서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일본 헌법 9조 [전쟁 포기, 전력 및 교전권 부인]

    ①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추구하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군국주의자들은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으나 의회 2/3를 통과하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이에 자민당은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여 평화헌법을 무력화시켜 왔다. 특히 2022년 12월 3대 안보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를 개정하여 사실상 전쟁 국가로 전환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도·태평양지역 안보환경이 변해, 중국(최대의 전략적 도전)과 북한(긴박한 위협), 러시아(우크라이나 침략, 중러 군사훈련)의 도전이 강화되고 있다. 둘째 ‘반격능력 보유’를 명시하여,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명백한 위험이 임박한 사태에, 개별적 자위권에 입각한 무력행사를 감행할 수 있다. 즉 선제공격을 열어놓은 셈이다. 셋째 향후 5년간 방위비 43조엔(415조원)을 투입하여 토마호크 수입, 탄도미사일 개발 등에 쓰도록 하였다. 실제 2023년 방위관계비가 6조 7,880억엔(67조원)이고, 방위력 강화자금이 3조 3,806억엔(34조원)으로 합하면 방위비는 10조 1686억엔(101조원)에 달한다.

    그림 3) 일본 방위비 추이 (단위 : 조엔) 자료 : 일본 방위청 * 2023년 방위력 강화자금 3.4조엔은 제외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위기 때마다 해외 침략으로 돌파구를 찾았는데, 21세기 군국주의 세력들이 다시 과거의 향수를 쫒으며 전쟁을 추구하고 있다.

    첫째, 일본은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5)으로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고 남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였다.

    둘째, 일제는 세계대공황의 충격을 중국 침략으로 돌파하고자, 만주사변(1931)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고 중국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았다.

    셋째, 한국전쟁(1950)으로 일본은 전후 잿더미에서 미국에 군수물자를 조달하며 빠르게 회생하였다.

    넷째, 일본은 ‘30년 장기침체’와 ‘천문학적 국가부채’ 등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출구가 필요하다. 군국주의 망상을 가진 정치가들에게 전쟁과 해외침략은 일본의 21세기 출구가 될 수 있다. 주변국의 전쟁으로 군수물자를 팔거나, 일본이 직접 전쟁에 개입하여 제국주의 부활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일본은 안보 3대 문서를 개정(2022.12)하고 선제공격을 명문화하여 전쟁 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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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무인수중공격정'·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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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무모한 전쟁연습 중단 촉구.."압도적 전쟁억제력으로 절망안기겠다"

    • 기자명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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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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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3.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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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북한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 핵전략무기체계'인 '핵무인수중공격정' 시험과 모의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 핵전략무기체계'인 '핵무인수중공격정' 시험과 모의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 핵전략무기체계'인 '핵무인수중공격정' 시험과 모의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통신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핵반격 가상종합전술훈련을 조직지도한데 이어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에 걸쳐 또 다른 군사적 공격능력의 시위로서 적들에게 실질적인 핵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자위적 핵력량의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한 훈련들을 지휘하였다"고 하면서 이 기간에 진행된 훈련내용을 뒤늦게 알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요 무기시험과 전략적 목적의 발사훈련을 지도한 뒤 "철저한 전쟁억제력의 압도적 시위로써 미제와 괴뢰들의 선택에 절망을 안기고 지역에서 군사동맹강화와 전쟁연습확대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으며 더 큰 위협에 다가서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요 무기시험과 전략적 목적의 발사훈련을 지도한 뒤 "철저한 전쟁억제력의 압도적 시위로써 미제와 괴뢰들의 선택에 절망을 안기고 지역에서 군사동맹강화와 전쟁연습확대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으며 더 큰 위협에 다가서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 위원장의 뒤쪽 '핵무인수중공격정'의 모습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 위원장의 뒤쪽 '핵무인수중공격정'의 모습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수중 운행하는 핵무인수중 공격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수중 운행하는 핵무인수중 공격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핵무인수중공격정 시험용 탄도의 수중폭발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먼저 "지난 3월 21일 함경남도 리원군 해안에서 훈련에 투입된 핵무인수중공격정은 조선동해에 설정된 타원 및 《8》자형 침로를 80~150m의 심도에서 59시간 12분간 잠항하여 3월 23일 오후 적의 항구를 가상한 홍원만 수역의 목표점에 도달하였으며 시험용 전투부가 수중폭발하였다"고 밝혔다.

    시험결과 모든 전술 기술적 제원과 항행 기술적지표들이 정확히 평가되고 신뢰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었으며, 치명적인 타격능력이 완벽히 확증되었다고 덧붙였다.

    '핵무인수중공격정'에 대해서는 "은밀하게 작전수역에로 잠항하여 수중폭발로 초강력적인 방사능해일을 일으켜 적의 함선집단들과 주요 작전항을 파괴소멸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며, "임의의 해안이나 항 또는 수상선박에 예선하여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1월 열린 8차당대회에서 '핵무인수중공격정(해일)'로 명명된 후 그해 10월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당 정치국에 비공개 보고되었으며, 지난 2년간 50여 차례의 서로 다른 최종단계 시험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이 29차례의 무기시험을 직접 지도한 뒤 지난해 말 당 6차전원회의에서 작전배치가 결정됐다고 했다.

    통신은 새로운 수중공격형 무기체계에 대한 시험이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고 하면서 "우리 국방과학연구기관은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2012년부터 새로운 시대의 전쟁양상을 연구하고 제국주의 침략군대의 군사기술적 우세를 견제하기 위한 자위력강화의 발전방향을 규제하면서 새로운 작전개념으로부터 출발한 수중 핵전략공격무기체계 개발사업을 진행하여왔다"고 말했다.

    북한의 수중핵무기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북이 발표한 '수중폭발, 초강력 방사능해일, 적 함선과 주요 항 소멸, 59시간 12분 잠항 ' 등의 내용으로 미루어 한반도 동해 전역을 작전 대상으로 하여 상륙작전을 위해 접근하는 함단과 해군기지를 타격대상으로 하는 '핵무기를 탑재한 수중 드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전문가들은 현재 무인잠수체(UUV : Unmanned Underwater Vehicle)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고성능 배터리 탑재와 재충전, 정찰 및 감시, 표적식별과 공격까지 가능한 수준이지만, 북의 이번 발표로만 보면 배터리로 구동해 근거리 표적을 타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장 지난 20일부터 시작해 4월 3일까지 진행되는 한미 연합 대규모 상륙작전 '쌍용훈련'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1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1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1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군 전략순항미사일 부대들이 지난 22일 발사훈련을 진행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전략순항미사일들의 공중폭발 장면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지난 22일에는 전략순항미사일부대들을 전술핵공격 임무수행 절차와 공정에 숙련시키기 위한 발사훈련이 진행됐다.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 작도동에서 발사된 전략순항미싸일 《화살-1》형 2기와 《화살-2》형 2기는 조선동해에 설정된 1,500㎞와 1,800㎞ 계선의 거리를 모의한 타원 및 《8》자형 비행궤도를 각각 7,557~7,567s(2시간 5~6분)와 9,118~9,129s(약 2시간 32분)간 비행하여 목표를 명중타격하였다"고 알렸다.

    전략순항미사일에는 '핵전투부를 모의한 시험용전투부'가 장착되었으며, 초저고도 비행시험과 변칙적 고도조절 및 회피비행능력 판정 시험도 진행하고 기종별로 각 1발씩 600m의 설정고도에서 공중폭발 타격방식을 적용해 핵폭발조종장치와 기폭장치의 '동작믿음성'을 재차 검증했다고 말했다. 

    발사훈련에 앞서 "핵공격명령 인증절차와 발사승인체계 등 기술적 및 제도적 장치들의 가동정상성과 체계안전성을 재검열하고 그에 따르는 전략순항미싸일 구분대들의 행동조법과 화력복무 동작들을 반복적으로 숙련시키기 위한 훈련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행거리가 1800km로 늘어난 화살-2형을 새로 공개하고 저고도 비행을 하는 전략순항미사일에서도 파괴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공중폭발 능력을 과시한 것이 특징.

    앞서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지난 22일 오전 10시15분경부터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순항미사일 수 발을 포착했다고 밝혔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전날 북한이 순항미사일 4발을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 무기시험과 전략적 목적의 발사훈련'을 지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하고는 "철저한 전쟁억제력의 압도적 시위로써 미제와 괴뢰들의 선택에 절망을 안기고 지역에서 군사동맹강화와 전쟁연습확대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으며 더 큰 위협에 다가서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무모한 반공화국전쟁연습 소동을 중단할 것"을 거듭 경고했다.

    통신은 "공화국 핵무력은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려는 우리 당과 정부와 인민의 기대와 념원대로 전쟁광들의 대결망상을 철저히 분쇄하기 위한 자기의 책임적인 전투적기능과 사명을 더욱 파괴적인 위력으로 제고해나갈 것이며 압도적 핵대응태세를 백방으로 비상히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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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준칙 근거로 둔갑한 '문재인 정부탓', 근거없는 억지다

[나원준의 좌회전 경제] 증세 없는 재정준칙, 예산 축소로 이어질 것

나원준 경북대 교수  |  기사입력 2023.03.24. 06:25:06 최종수정 2023.03.24. 09:18:43

 

<프레시안>이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의 새로운 연재 '좌회전 경제'를 시작합니다. 나원준 교수는 여러 진보적 매체에 글을 써 왔습니다. 나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활동이 필요함을 오랜 기간 주장해 왔습니다다. 나 교수는 앞으로 매월 1회씩 재정 문제를 비롯해 우리 경제가 떠안은 과제들을 점검하고 진보적인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여당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추진해온 재정준칙 법제화가 어쩌면 곧 실현될지 모르겠다. 법안에 담긴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의 흑자액을 제외한 것)가 적자 3%를 넘지 않도록 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2%까지만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기존에 반대 입장이 분명했던 더불어민주당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이 이번에는 소위원회에서 사실상 합의해줬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타법과의 연계협상으로 재정준칙 도입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려온다. 

 

지난 3월 14일 국회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정부가 제출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반대 진술했던 필자로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뜬소문이길 바라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감이 지배적이었던 2020년이나 2021년에 비하면 올해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진 듯도 하다. 찬반의 논점을 흐리는 주장들이 엇갈려온 탓도 있을 법하다. 

 

그놈의 지난 정부 탓 

 

사실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된 그 날 공청회에서는 필자가 절망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특히 한 위원이 지난 정부가 재정 중독에 빠져 돈을 펑펑 쓴 탓에 결국 물가가 폭등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그랬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일반정부 재정수지를 보면 지난 정부 기간 2017년 2.2% 흑자, 2018년 2.6% 흑자, 2019년 0.4% 흑자, 2020년 2.2% 적자, 2021년 0.0% 균형이었다. 포퓰리즘이나 재정 중독이라고 불릴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다. 같은 기간 선진경제권 평균은 2017년과 2018년 2.4% 적자, 2019년 2.9% 적자, 2020년 10.4% 적자, 2021년 7.2% 적자로 나타났으니, 지난 정부 기간 한국은 재정 중독과는 거리가 가장 먼 나라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2년 공개한 국내 인플레이션 결정 요인 실증연구 결과를 보면 소비자물가의 급등 원인은 원자재 가격 변동과 공급망 차질로 상당 부분이 설명된다. 수요 측 요인의 영향은 단 1%, 즉 10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은 수요 측 요인과 연관되므로 이와 같은 결론은 재정지출 때문에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난 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는 것인가. 한마디로 억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억지 논리가 재정준칙 도입을 촉구하는 근거로 둔갑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재정 중독? 포퓰리즘? 근거 없는 억지!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 있다고 가정할 때 현재의 정책으로 달성되는 재정수지인 구조적 재정수지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상대적으로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다. IMF 추산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21년 사이에 한국에서 구조적 재정수지가 적자로 나타난 적은 2020년 단 한 해 뿐이었다. 코로나19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한 해를 제외하면 한국 정부가 이십여 년 동안 늘 세수 범위 내로 지출을 한정해 흑자를 달성하는 긴축 기조를 유지해온 셈이다. 반대로 선진경제권 평균값은 1990년 이래 매년 늘 적자였다. 

 

2021년 한국의 일반정부 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51.3%였다. 반면 선진경제권 평균은 117.9%로 한국의 두 배가 넘었다. 총부채에서 보유 금융자산 등을 차감한 순 부채는 2021년에 GDP의 20.9%에 그쳐 선진경제권 평균 86.2%와 차이가 더 벌어졌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기재부와 보수적인 재정학자들은 시급히 재정준칙을 도입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고, 더 건전해지자고 한다. 

 

포스트 코로나의 국가적 과제와 재정의 역할 

 

경제적 합리성만 놓고 따지더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가재정은 한국경제가 직면한 다면적 불확실성과 대전환의 과제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 기민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히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과 저출생 등 사회적 위기 대응을 비롯해 한국경제가 마주한 대전환의 과제는 하나 같이 만만치 않다. 이 과제들과 씨름하며 한국경제의 미래 경로를 열어가야 할 전환기에 재정은 전략적으로 편성되어 국가적 임무의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기후위기나 각종 사회적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계획은 없으면서 재정준칙 도입으로 재정운영의 신축성부터 제한하려 드는 모양새다. 

 

물론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적자지출보다 증세로 재원을 조달하는 편이 낫다. 적자지출은 전략적 공공투자에 국한하고 일반 지출은 증세로 조달하는 원칙도 검토될 수 있다. 단 세입 기반을 확충해가는 과도기적 단계로서 재정구조가 불안정한 전환기에는 필요에 따라 적자지출을 신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경제에 나쁘지 않다. 본격적인 증세 없이 현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 하에서 개정법률안의 재정적자 상한선을 지키려면 상당한 정도로 긴축적인 재정운영이 불가피하다. 그렇게는 국가적 임무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증세 없는 재정준칙은 나쁜 축소 균형을 불러올 것

똑같은 재정적자 3%라도 내용에 따라서는 좋은 경제적 균형의 산물일 수 있고, 나쁜 경제적 균형의 산물일 수도 있다. 충분한 증세에 기반한 재정적자 3%가 국가적 임무를 달성하고 경제의 역량이 커지는 좋은 확장 균형이라면, 감세로 긴축이 강제되면서 나타나는 재정적자 3%는 경제가 수축되는 나쁜 축소 균형이다. 증세 없는 재정준칙은 긴축이고 곧 축소 균형을 불러온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저출생 고령화로 이미 인구구조가 경제 정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적극적인 인구정책은 부동산과 사교육의 고비용 구조를 바로잡는 포괄적인 대책을 요구하므로 재정투입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재정투입 없이 될 문제도 아니다. 특별히 재정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은 궁극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부담할 생산연령의 부양 인구 규모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하자. 그렇다면 실효납세자 수를 실효수혜자 수로 나눈 재정부양비율이야말로 장기에 있어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고 볼 일이다. 

 

한국경제로서는 이 재정부양비율의 하락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경제와 재정이 모두 쪼그라드는 나쁜 균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개정법률안의 재정준칙은 저출생을 이미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정부양비율의 하락에 손 놓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인구구조가 변하고 그래서 재정소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지속적으로 긴축해야만 한다는 논리다. 그런 식으로는 나쁜 축소 균형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포기된다. 

 

증세 없는 재정준칙으로는 불평등 해소도, 기후위기 대응도 못 한다 

 

어디 그뿐인가. 개정법률안의 재정준칙은 또한 공적 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 재정준칙의 기계적인 준수 과정에서는 복지재정이 최우선적으로 삭감 대상이 되기 쉽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여태 너무나 자주 목도해 왔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지금보다 더 악화시키면서까지 정부와 여당은 기어코 재정비율 숫자 값 몇 개를 고집해야 하겠는가. 

 

특히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지금이야말로 재생에너지 공급을 공공부문 주도로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일종의 '빅 푸시(big push)' 전략이 시급히 요청되는 상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한테는 시간이 없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정책의 전환은 성격상 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재정준칙 없이도 국가재정법을 선진적인 재정규범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유럽연합(EU) 재정준칙의 역사는 이번 개정법률안에 담긴 것처럼 고정된 숫자를 못 박는 방식의 재정준칙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없음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심지어는 독일조차 2003년 이후 준칙을 지킨 해가 거의 없다. 남유럽 국가들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재정준칙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재정을 긴축했다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2020년 이후 EU 21개 회원국은 부작용 큰 재정준칙 적용을 중단한 다음 재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개정법률안이 도입하고자 하는 EU 방식의 재정준칙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이미 실패했다. 왜 우리는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려고 하는가. 

 

기실 우리의 기존 국가재정법 자체가 상당히 엄격한 수준의 '재정규범'으로 간주할 만한 특징들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국가재정법을 다듬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재정규범을 만들 생각부터 해야 한다. 어떻게든 예산 통제를 강화하려고 재정준칙까지 밀어붙이는 기재부 권력에 기대할 일은 아니겠지만, 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부라면 대외적으로 한국을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신축적이어서 가장 선진적인 재정규범의 발전을 이끄는 나라로 홍보해야 옳다. 

 

재정준칙에 근거한 재정총량의 제한은 기재부의 예산 통제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것이 기재부가 그토록 줄기차게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해온 이유다. 필자는 묻고 싶다. 우리는 사회정책 확대와 공공성 확장 의제의 전선 한 축이 이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재정준칙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이번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절대로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나원준

나원준 경북대학교 교수는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 등을 가르치며 진보적인 관점의 경제발전 모형과 대안적 경제정책 체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경제학>, <MMT 논쟁> 등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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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축소는 위헌’ 한동훈·검찰 논리, 헌재 판결로 깨졌다

헌재 “법무부 장관은 청구인 자격 없어, 검찰도 권한 침해 안 받아”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료사진. 2023.02.27. ⓒ뉴스1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은 위헌’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깨졌다. 그동안 검찰은 헌법에서 검사의 수사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 법 개정은 위헌이라고 주장했지만, 헌재가 판결로써 이러한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헌재는 이날 한 장관과 검사 6명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앞서 법무부와 검찰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통과한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이 법안은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기존 6대 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부패·경제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한 것이 골자다.

법무부와 검찰은 헌법(12조 3항, 16조)에서 검사에게 영장신청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헌법이 부여한 검사의 수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검찰총장 재직 당시 검찰의 수사권 축소는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하지만 헌재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헌재는 한 장관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안은 검사의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법무부 장관은 수사권·소추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검찰에 대해서는 청구 권한은 있으나 “헌법상 권한 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수사 및 소추는 원칙적으로 입법권·사법권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기능으로 우리 헌법상 본질적으로 행정에 속하는 사무”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법부·사법부가 아닌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부여된 헌법상 권한”이라고 전제했다.

헌재는 그동안 헌재 판결을 예로 들며 “행정부 내에서 수사권 및 소추권의 구체적인 조정·배분은 헌법사항이 아닌 ‘입법사항’이므로, 헌법이 수사권 및 소추권을 행정부 내의 특정 국가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님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입법자는 검사, 수사처 검사, 경찰, 해양경찰, 군검사, 군사경찰, 특별검사와 같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내의 국가기관들 사이에 수사권 및 소추권을 구체적으로 조정·배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헌재는 “헌법은 검사의 수사권에 대해 침묵”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짚어냈다.

헌재는 헌법에서 검찰의 영장신청권을 규정한 이유에 대해 “법률전문가이자 인권옹호기관인 검사로 하여금 제3자의 입장에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 남용 가능성을 통제하도록 하는 취지에서 영장신청권이 헌법에 도입된 것으로 해석된다”며 “헌법상 검사의 영장신청권 조항에서 ‘헌법상 검사의 수사권’까지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헌재는 국민의힘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해서는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법 효력은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입법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되긴 했지만, 본회의에서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법률 가결 선포는 무효가 아니라고 봤다. 

한편, 한동훈 장관은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헌재 판결에 대한 질문을 받자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부) 위헌 위법이지만 (해당 법이) 유효하다는 결론에 공감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해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규탄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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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위기가 가실 때까지 우리는 계속 행동할 것”

구산하 통신원 | 기사입력 2023/03/2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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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아래 민족위)는 23일 오후 2시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 촉구를 위한 평화행동 보고 및 결의대회’(아래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오늘 결의대회는 민족위가 상반기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에 대응해 지난 13일부터 펼쳐온 ‘매일평화행동’을 마무리하고 향후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였다. 

 

맨 처음으로 신은섭 민족위 운영위원장이 ‘매일평화행동’ 기간 진행한 ‘전쟁 반대 평화선언’, ‘현수막 행동’, ‘전쟁 반대 평화선언대회’, ‘17차 평화촛불’ 등의 사업에 대해 간략하게 보고하였다. 

 

▲ '매일평화행동' 기간 사업을 보고하는 신은섭 운영위원장     ©구산하 통신원

 

 민족위는 13일부터 이날까지 매일 오후 2시 광화문 네거리와 미 대사관 앞에서 연설, 유인물 배포, 스티커 설문, 미 대사관에 항의 서한 전달, 상징의식 등의 형태로 ‘매일평화행동’을 진행했다. ‘현수막 행동’은 모두 92명이 보낸 후원금으로 진행했는데, 총 5차례에 걸쳐 130장의 현수막을 서울 시내 곳곳에 게시하였다. 그리고 ‘전쟁 반대 평화선언’에는 모두 221명(3월 23일 오후 2시 현재)이 동참하였다.

 

▲ 지난 17일 '매일평화행동' 중 광화문 네거리에서 미 대사관으로 평화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구산하 통신원

 

▲ 4차 현수막 행동 보고 선전물     ©구산하 통신원

 

이어 발언한 한성 민족위 공동대표는 “상반기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는 오늘로 끝나지만 한미 훈련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위기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 위기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우리는 계속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한성 민족위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구산하 통신원

 

▲ 김병관 조중동폐간시민실천단 단장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조중동폐간시민실천단은 '매일평화행동' 기간 거의 매일 함께했다.    ©구산하 통신원

 

마지막으로 김해성 민족위 회원이 ‘항의 서한문’을 낭독하였다. 민족위는 ‘항의 서한문’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각종 전쟁 연습을 벌이는 것과 같은 한미의 행보가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기를 부쩍 높였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력이 가장 밀집한 지대인 한반도에서 만에 하나 작은 불꽃이라도 잘못 튄다면 전면 전쟁으로,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기어이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 생각인가. 핵참화 불러오는 한미연합훈련 즉각 중단하라!”라고 주장하였다.

 

▲ 김해성 회원이 '항의 서한문'을 낭독하고 있다.     ©구산하 통신원

 

참가자들은 미 대사관을 향해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 미 대사관을 향해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참가자들.     ©구산하 통신원

 

▲ 참가자들을 가로막은 경찰.    ©구산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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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축소법 ‘유효’ 헌재에 조선일보 “정치적 판단한 것”

  •  김예리 기자 
  •  
  •  입력 2023.03.24 07:48
  •  
  •  댓글 3

[아침신문 솎아보기] 헌재 결정에 한겨레 “올바른 판단” 조선 “정치적 판단”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 사퇴, 경향 “최악의 관치 폭거”

헌법재판소가 23일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개정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권한 침해가 있었지만 법 자체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과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낸 무효 확인 청구를 이날 5 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이 법 때문에 검사 수사권이 침해됐다며 낸 청구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24일 경향신문

▲24일 아침신문 갈무리

개정법은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줄이는 내용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지난해 4~5월 국회를 통과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축소하고 검찰권 행사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헌재는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법사위원장의 개정안 가결·선포행위가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안 심의와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법안 자체는 무효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선 재판관이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는 아니며, 법사위 절차상 하자만으로 본회의 심의·표결권을 침해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5명이 법안이 유효하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한 장관과 검사들은 개정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검사 수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이는 헌법적 근거가 없으며 행정부 내 수사권과 소추권의 배분은 입법사항이라고 밝혔다. 청구를 제기할 자격이 인정되지 않아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한 것이다.

▲24일 국민일보

▲24일 조선일보

▲24일 한국일보

앞서 국민의힘은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위장 탈당’한 뒤 안건조정위원회에 무소속 몫으로 참여해 법안 처리에 정족수를 채운 절차가 위헌적이라며 지난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24일 아침신문들은 이 소식을 1면에 다뤘다. 해석은 갈렸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헌재는 과거에도 절차상 문제는 인정했지만 시행 중인 법률안 자체를 무효로 한 사례가 없어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정”이라며 “민주당은 위장탈당 등 무리한 입법 폭주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도 “‘검수완박’은 정권교체로 탄압이 심해질 것이라 내다본 민주당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법률”이라며 “입법 이후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을 대폭 늘림으로써, 입법 취지 자체도 무색해졌다”고 했다.

▲24일 한국일보

경향신문은 관련 기사에서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리여서 함부로 축소해선 안 된다는 법무부와 검찰의 주장이 깨진 것”이라고 했다. ”한 장관이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셈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며 “한 장관은 9월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 개정도 주도했다”고 했다.

▲24일 경향신문

한겨레는 사설에서 “검찰개혁은 검찰의 비대한 권한 축소가 필수적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올바른 판단”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한 장관은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시행령을 개정해 검찰의 수사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검찰 수사 범위를 2개(부패·경제) 범죄로 제한한 것을 사실상 모든 부패 범죄로 확대한 것”이라며 “입법 취지에 맞게 이를 바로잡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24일 한겨레

조선일보는 헌재 결정을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를 들었다. 조선일보는 “헌재는 2009년에도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대리투표 등에 대해 문제가 있지만 법안은 유효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며 “검수완박 입법 과정의 위장 탈당 등은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해 결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법이 유효하다고 인정한 것은 국회에 앞으로 그런 행위를 해도 된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은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다. 이 중 5명이 이른바 진보 성향이라는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라며 “정치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24일 조선일보

헌재 전원일치 “국회의장 공관 100m 집회 금지 헌법 위배

한편 헌재는 같은 날 국회의장 공관 100m 이내의 집회를 전면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전원일치 의견이다. 국회는 이에 따라 내년 5월31일까지 해당 조항(집시법 11조2호, 3호 등)을 개정해야 한다.

헌재는 ‘국회의장 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는 집회가 개최되더라도 국회의장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거나 공관 출입·안전에 위협을 가할 우려가 없는 장소가 포함돼 있다고 봤다.

“집시법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의 주최 금지 등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을 보호할 다양한 규제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며 “소규모 집회가 일반 대중의 합세로 인해 대규모 집회로 확대될 우려 내지 폭력집회로 변질될 위험이 없는 때 집회 금지를 정당화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향신문이 이를 보도했다.

▲24일 경향신문

한편 경찰은 이태원 참사 유족과 시민단체를 상대로 집시법과 관련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한겨레는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4일 오전 10시 안지중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운영위원장을 조사한다”며 “이태원 참사 유족과 시민단체가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할 때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경찰이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시는 해당 분향소를 ‘불법으로 규정해 철거를 예고해왔다. 시민대책회의는 ’관혼상제‘의 경우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 사퇴, 경향 “최악의 관치 폭거”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자가 23일 사퇴했다. 3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서다.

9개 아침신문이 모두 이 소식을 전했다. 신문들은 윤 후보가 22일 KT 이사진과 간담회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버티면 KT가 망가질 것 같다”며 사퇴이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부터 KT 내부는 대표이사 선임 절차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구현모 현 대표이사가 연임을 선언했지만 KT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공개 반대를 선언한 뒤 후보직을 내려놨다. 이후 추천된 윤경림 사장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공개 비판에 나섰다.

다수 신문은 사퇴의 결정적 이유로 정부와 여당의 외압을 꼽았다. 국민일보는 “‘정면 돌파’ 의지를 강하게 보이던 윤 후보가 자진 사퇴로 돌아선 배경에 여권의 압박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여권에서 구 대표, 윤 후보를 비롯한 KT 전·현직 사내외 이사진을 ‘이익 카르텔’이라고 비난하고 있어 새 후보를 KT 출신으로 세우기는 어렵다”고 했다.

▲24일 경향신문

▲24일 국민일보

KT 새노조는 정부여당의 개입을 비판하면서도 구현모 대표이사의 측근인 윤경림 내정자 선임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KT이사회의 3번에 걸친 후보 선출 실패는 애당초 자기들의 인력 풀 내에서만 고르려는 아집 끝에 흠결이 이미 드러난 이들을 무리하게 뽑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KT이사회는 앞서 ‘쪼개기 후원’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구현모 현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자로 결정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결국 구현모 현 대표가 자진 사퇴하고 이사회가 새로 뽑은 사람이 윤 후보자”라며 “윤 후보자가 적임자든 아니든, 정부나 정치권이 선임에 개입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24일 한겨레

경향신문은 “윤 후보가 사의를 표명하자마자 여권이 미는 대표 후보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 2월 KT 차기 대표 공모에 지원했다 탈락한 윤석열 캠프 출신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또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KT 사태는 현 정권이 직권을 남용한 최악의 관치 행태”라고 했다.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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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후과 “14년 만의 무역 적자, 적자 구조는 더욱 심각”

  • 기자명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3.03.23 2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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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주도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의 전환은 불가피”

    “러시아는 질 수 없는 전쟁, 우크라이나는 이길 수 없는 전쟁”

    “세계화 선언 30년 한국,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 3월 2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우크라이나전쟁 1년, 그리고 한국사회’ 토론회가 열렸다.[사진제공: 사단법인 안보통상학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시에 세계는 지역을 불문하고 동시다발적인 고인플레이션 국면에 돌입했다. 물론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코로나 봉쇄로 인한 공급망 체계의 붕괴 역시 큰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21년 물가 상승률보다 2022년 물가 상승률이 더 가파르다는 점에서 코로나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토론회 자료집의 표를 재구성함

    3월 22일 “우크라이나 전쟁 1년, 그리고 한국 사회”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울산과학대의 백일 교수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백일 교수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률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저성장 추세로 전환했다. 코로나 발발기인 2020년 대비 2021년 주요 국가의 성장률은 반등세가 뚜렷했는데, 2022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고인플레이션으로 인해 2021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2.1%)을 기록했다.

    ▲ 토론회 자료집의 표를 재구성함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22년 한국은 14년 만에 무역적자로 돌아섰으며 총 477억 달러 적자로 전년대비 –263%의 증감률을 보였다. 마지막 적자를 기록했던 2008년의 132억 달러 적자의 4배에 달한다.

    적자 구조를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은 일본과 주요 자원 수입국인 호주, 말레이시아, 아랍 산유국이었다. 그러나 백일 교수에 따르면 2022년의 무역 적자는 이런 전통적인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장기 무역 흑자를 기록했던 중국권 수출(중국 –4.4%, 홍콩 –26%)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70% 전후의 무역의존도를 가진 한국의 경제는 중대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백일 교수는 진단한다. 토론회에서는 1년을 경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다양한 진단이 제시되었다.

    한설 예비역 육군 준장은 초기에 제한된 대리전쟁으로 시작되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사실상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러시아 경제를 약화하기 위해 시작된 대러 경제제재가 오히려 미국과 유럽 경제를 위협하는 ‘자해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경제제재보다 군사적 성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 역시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진단한다.

    한설 준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질 수 없는 전쟁”, “우크라이나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징이다. 첫째, ‘전장의 제한성과 주도권’ 문제이다. 군사작전은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만 진행된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지정한 장소와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강요한 장소와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작전 지속 능력’ 문제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전쟁을 치른다.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 사라지만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그런데 2023년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의 전쟁 지원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한설 장군의 분석이다.

    셋째, ‘작전 수행 방식’의 문제이다. 전투력이 약한 우크라이나는 단기 결전을 수행해야 하나 러시아에 주도권을 빼앗겨 장기소모전 양상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단기 결전을 수행할 작전지휘 능력이 부족하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는 러시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설 장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지 러시아의 승리라는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국제질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결집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역시 약화하고 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비서구 국가들(소위 G7 국가들)의 결집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안보통상학회의 회장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 역시 미국 주도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의 전환은 현실이라며 국제질서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인식, 준비, 태세는 이 현실과 과도하게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진단이자 문제의식이다. “한국이 세계화를 선언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화되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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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부터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추진해왔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중앙은행의 민주적 통제가 더 중요하다

임수강 금융평론가  |  기사입력 2023.03.23. 06:27:26

 

<프레시안>이 임수강 금융평론가의 진보적인 금융 정책 대안을 찾는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를 매월 1회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한국의 경제·금융 기사와 칼럼은 절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가치에 기울어 있습니다. 대안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는 기존과 다른 시각, 기존과 다른 깊이로 독자 여러분께 어려워만 보이는 금융의 오늘을 진단하고, 그 진보적인 대안을 짚어드릴 예정입니다. 임수강 박사는 금융기관에서 실무경험이 많은 전문가입니다. 국회,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일했고 <지속가능한 공정경제>, <달러제국과 한국경제> 등의 저서를 공저했습니다. 최근에는 아담 레보어의 <바젤탑>(더늠 펴냄)을 번역해 국내에 출간했습니다. 앞으로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에 큰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왜 지금 중앙은행 독립이 문제인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을 달성해야 할 바람직한 상태로 본다. 사실 한국은행 총재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로부터 독립한 중앙은행이 화폐가치의 안정을 이루는데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주장은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주장은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 되는 공리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 독립성이 진보적인 가치를 갖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이렇게 된 데는 우리나라에서 중앙은행 독립 주장이 나온 독특한 배경이 한 몫 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 독립 주장은 1987년 6.29 선언 직후 경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던 국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정부가 은행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이른바 관치금융의 폐해가 쌓여 있던 때라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일정 부분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행 독립은 관치금융의 폐해를 극복하는 개혁의 지렛대이며 나아가 경제 민주화의 한 요소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중앙은행 독립 개념은 매우 보수적인 지적 전통에 끈이 닿아 있다. 시카고학파-통화주의-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 항목 가운데에 중앙은행 독립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에 깊게 엮인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할 때 중앙은행 독립을 요구한다는 데에서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앙은행 독립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위기에 대응하면서 중앙은행과 행정부는 긴밀하게 협력해야 했다. 특히 여러 나라 중앙은행들이 유통 화폐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사들이면서 두 정책주체의 협력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은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굳이 독립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는지를 묻게 했다. 그 물음의 연장선상에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통합하는 것이 낫다는 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분배 효과는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를 따져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양적완화로 생겨난 돈은 상품과 서비스 지출로 향하기보다는 주로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이는 자산가격 거품을 만들어냈다. 위기 이후에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은 이러한 주요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정책과 관련이 깊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같은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생긴 이득은 대부분 소수의 자산가 계층에게 돌아갔다. 그리하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도 얘기하듯이 중앙은행들이 편 양적완화 정책은 커다란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분배 효과를 만들어냈다. 

 

중앙은행의 정책이 분배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한 전제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벗어난 중립적인 전문가들이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정책 판단을 내린다는 가정이 중앙은행 독립성 논리의 바탕에 깔려 있다. 만약 어떤 정책이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에 유리하게 기능한다면 그것은 이미 전문가 영역이라기보다 정치의 영역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정책이 부의 편중을 부르는 분배 효과를 낳는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이다. 

 

이러한 사정들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향한 의문이 생겨나는 배경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따져보아야 할 이유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아담 레보어가 <바젤탑>에서 설명하듯이 2008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연준의 양적 완화 정책은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자산가격도 끌어올렸다. 이창용 총재의 말대로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했던 탓에 연준 정책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우리나라의 집값이 크게 오른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집값이 급등할 때조차 문재인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산가격 안정을 비롯하여 정부와 중앙은행이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숱한 과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앙은행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가 금융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자 할 때도 역시 중앙은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성이라는 허울이 정부와 중앙은행 사이의 협력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자산가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불평등을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의 해결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향한 시각을 교정하는 것이야말로 진보 금융을 찾아 나서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은행 독립이 필요한 이유에 관한 설명들 

 

그렇다면 중앙은행 독립성이란 무엇인가? 최근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언급한 바 있다. 올해 초 스웨덴 중앙은행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파월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통화정책 결정을 단기적인 정치적 고려로부터 차단한다는 이점을 가진다"며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율이 높을 때 물가안정을 회복하도록 인기가 없지만 필요한 조치(금리 인상을 통한 경제 둔화)를 정치적 고려 없이 취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책 기관에 대한 "독립성 부여는 단기적인 정치적인 고려로부터 보호가 명백히 필요한 사안들"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서 보듯 파월은 중앙은행 독립을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정치적인 고려 없이 정책 결정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독립을 얘기할 때는 누구에게서 독립한다는 것인지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파월은 그 대상을 선출된 권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대상은 외국 중앙은행 정책이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될 수도 있다. 연준 부의장을 역임한 앨런 블라인더 교수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중앙은행 독립이 정부 내 기능상의 독립인지 정부 자체에서 독립인지의 구분이 있지만, 이는 중앙은행이 정부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목적 외에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사실 중앙은행 독립성을 얘기할 때 대부분은 선출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중앙은행은 왜 정치와 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인가? 중앙은행 독립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의 속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선거를 통해 평가받아야 하는 정치 권력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눈앞의 선거 결과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정책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은행 독립론자들은 만약 정부가 금융정책을 맡는다면 선거를 의식하여 선심성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그러면 확장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생길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정책을 정치에서 떼어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보장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좀 더 세련된 근거는 1980년대 초에 완성된 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 개념이다. 쉽게 얘기해서 이 개념은 중앙은행 정책이 효력을 내는 데는 길고 변덕스러운 시간이 흘러야 하는데, 현재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최적이라고 판단한 정책이 나중에도 최적으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빠질 수 있는 선출 권력을 대신하여 장기적인 시야를 가진 전문 기술관료에게 금융정책을 맡기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라고 중앙은행 독립론자들은 주장한다. 

 

IMF처럼 중앙은행의 독립을 지지하는 그룹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강한 국가들에서 더 낮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나라들 사이의 비교연구를 통해 뒷받침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중앙은행 독립성의 정도가 강할수록 물가안정이 이뤄지고 경기 변동 폭도 작다는 많은 실증 연구들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만만치 않았다. 경험 연구를 통해서는 중앙은행 독립이 실제로 낮은 물가를 보장하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앙은행 독립과 물가안정 사이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사람들을 특히 괴롭힌 문제는 이른바 '일본 문제'다. 일본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강하지 않은 나라로 알려졌지만 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법과 제도상의 독립성과 실질적인 독립성으로 나누기도 했다. 일본은행은 법과 제도상의 독립성은 약하지만 실질적인 독립성은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요구에 따랐던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성도 결코 강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오랜 세월 중앙은행을 연구해온 찰스 굿하트는 중앙은행 독립성과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약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놀라운 사실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물가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넘쳐나지만 그것이 경제성장이나 실업률에는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앙은행 독립성은 물가뿐만 아니라 실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해서도 연구가 이뤄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중앙은행 독립이 불평등을 키운다

중앙은행 독립의 효용성을 두고는 일찍부터 반론이 제기되었다. 가장 잦은 문제 제기는 국민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정책을 중앙은행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주체가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느냐는 점이었다. 정부 경제정책과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이 꼭 상충하는 것도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분리보다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독립성이 강한 중앙은행이 반드시 금융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독립성이 강한 중앙은행은 자기의 위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과 가능한 한 충돌을 피하면서 오로지 독립성만을 계속 유지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반론의 핵심 내용이다. 

 

2008년 위기 이후에는 중앙은행 독립성이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2021년에 세계은행이 발간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불평등이 크게 증가한 데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은행 조사보고서가 제시하는 중앙은행 독립성의 불평등 확대 경로는 세 가지다.

 

첫째, 사회정책 경로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재정정책을 간접적으로 제한하여 정부의 재분배 능력을 떨어트렸다. 이는 사회복지 지출의 삭감으로 이어져서 저소득층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금융정책 경로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로 하여금 금융시장 규제 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줄어든 복지를 모기지 확대와 같은 대출로 메우려 했고 이를 위해서 규제 완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제 완화는 자산가치의 상승세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자산의 대부분은 부유층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노동시장 경로이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의 협상력을 떨어트리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이 커질수록 화폐시장 긴축과 실업률 증가를 예상한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노동시장 규제 완화로 대응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하여 중앙은행 독립은 비정규직 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의 증가 현상을 만들어냈고 결국 불평등을 키웠다. 

 

세계은행 조사보고서는 중앙은행 독립이 직접 불평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단다. 그럼에도 중앙은행 독립이 정부 정책을 바꾸도록 밀어붙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결국 불평등을 키운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한다. 이 보고서는 121개국의 1980~2013년 데이터를 이용하여 포괄적인 경험 연구를 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불평등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불평등을 일으키는 세 가지 경로도 확인된다. 

 

중앙은행 독립에 누가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는가를 따져봄으로써 중앙은행 독립성이 불평등의 확대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중앙은행 독립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는 그룹은 금융부문이다. 금융부문은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보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통할 때 더 유리한 거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따라서 금융부문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선호한다. 중앙은행가들은 독립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다. 그 이유는 독립한 중앙은행을 통해서 자기의 위치를 가장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독립한 중앙은행이 실업률을 낮추는 데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라고 점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선호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정치 영역에서 금융정책이 다뤄지기를 바라는데 그 이유는 거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금융 기업들은 산업 분야, 재무 구조, 무역 의존도 등에 따라 중앙은행 독립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차입이 많은 기업은 긴축 정책보다 완화 정책을 선호하고 따라서 중앙은행 독립에 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보통의 비금융 기업들은 대체로 경제의 안정성이 장기투자를 보장한다고 보아 중앙은행 독립을 선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금융 기업들은 중앙은행 독립이 전반적인 금리 수준을 높이고 자금 사정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그런 면에서 비금융 기업들의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영향력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은 금융세력이 항상 꿈꾸어 왔던 목표였다. <바젤탑>의 저자 아담 레보어에 따르면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을 이뤄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결제은행(BIS)의 설립을 추진했다.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이 설립된 것은 1930년이다. 그러므로 거의 100여 년 전부터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조직적으로 추진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융세력은 항상 중앙은행의 독립을 추진해 왔지만 그것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세계대전 중에는 중앙은행 독립이 있을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도 1970년대 초까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케인스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에는 중앙은행의 여러 기능 가운데 재정 확장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은행"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었다. 이때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기여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새삼 강조되기 시작한 계기는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그에 이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발생이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 금융자본은 자기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이 정치와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또한 그들은 중앙은행이 그동안 정부의 재정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행해 왔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부상한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은 1980년대에 이론적 체계화를 거친 다음 1990년대에는 세계 여러 나라들로 퍼져나갔다.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성이 강조되던 시기에 중앙은행들은 금융시장의 관리자 역할이 아니라 후견인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예를 들어 미국 연준의 경우 주식시장이 무너질 때는 항상 그 뒤를 돌봐주었고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에는 대마불사의 원칙에 따라 거액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리고 2008년 위기 이후 자산가격이 무너질 때는 중앙은행이 스스로 나서서 시장 조성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산가격의 회복을 도왔다. 

 

중앙은행들은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구호 뒤에서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점차 잃어갔다. 중앙은행 정책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자본의 개입을 허용하자는 주장과 동의어가 되었다. 중앙은행들은 시장과 소통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의 기대와 요구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지속된다면, 정운찬 교수가 얘기하는 바와 같이, 금융정책의 "사실상 사유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연준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교수(정운찬 교수의 지도교수) 같은 경우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그런데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누구인가? 재벌 대기업, 금융그룹, 부유층이 금융시장의 주요한 참가자들이다. 실제로 중앙은행이 이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세계 중앙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세계적인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는 미 연준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앙은행 정책의 중요성과 진보적인 정책의 방향 

 

중앙은행은 금융정책의 수립이라는 임무를 떠안고 있다. 이것은 재정정책과 함께 거시경제정책을 떠받드는 두 축이다. 오늘날 중앙은행은 금융의 지휘자 역할을 수행한다. 중앙은행은 이자율이나 유통 화폐량을 조절해 화폐가치에 영향을 끼치고 이를 통해 경제 활동이나 자산가격의 전반적인 움직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부동산, 유가증권 등 자산가격의 변동은 분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중앙은행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이제 중앙은행 독립과 관련이 있는 몇 가지 진보적인 정책 과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첫째,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행해야 할 중앙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정할 수 있다. 중앙은행 독립 개념은 정부와 정치로부터의 독립, 외국 중앙은행(연준)으로부터의 독립,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갖는다. 여기에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은 진보와 거리가 먼 개념이다. 우리가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신화에 갇히면, 문재인 정부가 그랬듯이, 중앙은행에 꼭 요구해야 할 임무를 제기조차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와 달리 중앙은행이 연준이나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둘째, 특수 이익보다 일반 이익을 우선하는 중앙은행 거버넌스를 갖춰야 한다. 이것은 중앙은행이 연준이나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중앙은행은 그 속성상 노동자들의 이해보다는 금융업자나 재벌 기업의 이해에 기울기가 쉽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앙은행의 의사결정 기구가 대체로 특수 이익만을 반영하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책임성을 갖는 중앙은행이라면 일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행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을 바꿔야 한다. 현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금융업자나 기업들의 특수 이해만을 반영하는 비민주적인 구조로 이뤄졌다. 금통위를 일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바꾸기 위해서는 거기에 노동자, 소상공인, 농민 등의 대표를 포함시켜야 한다. 미국의 경우도 연준이사회의 감시를 받는 연준 지역은행이사회에는 농업, 상업, 서비스업, 노동자, 소비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셋째, 중앙은행이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중앙은행이 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서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앙은행의 임무를 최소한으로 좁혀야 한다고 보는데, 사실 이러한 견해는 보수주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불평등, 금융배제, 기후위기와 같은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중앙은행의 임무를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행법은 금융통화위원회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그러한 권한을 사용하기는커녕 사문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더 많은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권한을 실제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대정부 직접 여신이나 국채 직접 인수와 같은 조항을 활용하여 특별 기금을 만든다면 금융배제와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움받은 자료> 

송종운, "중앙은행 전성시대, 새로운 실험대에 올라선 한국은행", <참세상>, 2014.5.9. 

아담 레보어 저, 임수강 역, <바젤탑>, 더늠, 2022.11. 

앨런 블라인더 저, 정운찬 역, <소리 없는 혁명-중앙은행 현대화>, 2009. 

조지프 스티글리츠 저, 박형준 역, <유로>, 2017. 

한국은행 워싱턴 주재원, "현지정보" 2023.1.10. 

Adam Tooze, "The Death of the Central Bank Myth", FT, 2020.5.13. 

Michaël Aklin, Andreas Kern, Mario Negre, "Does Central Bank Independence Increase Inequality?",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9522, 2021. 

Thomas F. Cargill, "The Myth of Central Bank Independence", MERCATUS Working Paper, 2016.

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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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속이고 위험에 빠뜨린 산림청, 여기 증거 있다

▲ 거센 산불로 산림이 불에 타고 있다. ⓒ 최병성

 
3월이 되자 건조한 봄바람에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소중한 산림을 태우고 있다. 지난 15일 산림청은 '산불재난 최소화를 위해 산불진화임도 확충 시급'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남성현 산림청장이 직접 임도 확충 전략을 발표했다. 산림청이 임도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에 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도가 있으면 진화인력과 장비가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조기 진화할 수 있지만, 임도가 없으면 산불 진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산불 진화에 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 2022년 화재가 발생한 울진, 임도가 있었지만 주변 산림이 모두 불에 탔다. ⓒ 최병성


산림청 주장은 사실일까? 지난해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은 피해 지역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산림청이 근거로 내세운 울진 산불에서 임도가 없어 산불이 대형화된 것인지 현장을 돌아보았다. 시커멓게 불탄 숲에 산림청이 산불 진화에 필요하다는 임도가 있었다. 그러나 주변이 모두 불에 탔다. 
 

▲ 2022년 화재가 발생한 울진, 임도보다 더 넓은 2차선 도로가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만 모두 불에 탔다. ⓒ 최병성

 
폭 3m의 임도보다 넓은 2차선 도로가 있어 산불 진화 장비와 인력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도로 곁 야트막한 산림마저 다 불에 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2022년 화재가 발생한 울진 주변, 4차선 동해고속도로가 있고 2차선 국도가 산 능선을 지나고 있다. 진압 장비와 인력이 산불 현장에 진입하기 용이하지만, 바다까지 가고서야 산불이 저절로 꺼졌다. ⓒ 최병성

 
4차선 고속도로와 2차선 국도가 산을 가로지르고 있다. 산도 야트막하고 임도보다 더 널찍한 도로들이 곳곳에 퍼져 있다. 화재 현장에 장비와 진화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러나 산림청은 산불을 잡지 못했고, 산불은 4차선 고속도로와 2차선 국도를 넘어 바다까지 달려갔다.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바닷가에 도착해서야 저절로 꺼졌다.
 

▲ 한울 원전 마당까지 산불에 다 탔다. 그러나 이 사실이 감춰져 있고, 마치 산림청이 산불을 진화한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원전 앞에 2차선 도로가 있지만 산불이 원전으로 날아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 최병성

 
산림청은 산불을 잡기 위해 울진 한울 원자력발전소 정문 앞에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산불이 한울 원전 마당 안까지 들어와 나무를 태우는 것을 막지 못했다. 울진 산불의 최초 발화지점에서 한울 원자력발전소 사이에는 수많은 임도는 물론 2차선 국도와 4차선 고속도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산불은 원전으로 날아들어 원전 울타리 안의 숲을 몽땅 태웠다.

한울 원전이 불타지 않은 것은 콘크리트 구조물이었기 때문이지 산림청이 불을 꺼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사실이 감춰진 채 산림청이 원전을 지켜냈다고 포장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돔 형태의 원전 구조물 바로 앞 언덕의 나무들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산불이 원전 마당까지 들어올 때까지 산림청은 무엇을 한 것일까?

산불을 진화해줄 국가가 없었다 
 

▲ 산불 진화에 무능한 산림청으로 인한 피해 현장. 주민들에겐 안전을 지켜줄 국가가 없었다. ⓒ 최병성

 
울진에 산불로 피해 입은 주민들이 많은 이유가 있다. 산림청이 원전을 지킨다며 주변 마을 민가들이 불에 타는 것을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산불 진압 장비가 신속하게 달려올 수 있는 2차선 도로가 있고, 마을 길이 있건만 주민들은 집이 불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산불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공통으로 한 말이 있었다. 그들에게 산불을 진화해줄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산불 진화의 주체인 산림청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고, 숲도 지켜내지 못했으며, 원자력발전소도 지켜내지 못했다.
 

▲ 산림청은 최초 발화지점에서 울진 한울원전을 향한 전진 산불을 잡지 못했고, 며칠 동안 천천히 타오르는 후진 산불마저 제대로 진화하지 못했다. ⓒ 최병성. 카카오맵


15일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지난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 산불이 났을 때 임도 덕분에 소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며 임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임도 덕분에 소광리 소나무를 지켰다는 면적은 울진 산불 피해 전체 면적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울진 산불 진행 과정을 살펴보자. 최초 발화지점에서 거센 전진 산불이 몇 시간 만에 울진 한울 원전으로 옮겨갔고 삼척 LNG 기지로 퍼져나갔다. 이후 불길이 약해진 후진 산불이 며칠 동안 타오르며 응봉산과 소광리 소나무 숲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그런데 산림청은 불길이 약해진 후진 산불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산림청이 소나무 숲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임도 덕이 아니다. 세력이 약해진 후진 산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원전을 향해 달려가던 불길이 강한 전진 산불이었다면 임도보다 더 넓은 고속도로가 있다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림청은 산림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한 무능을 사과하기보다, 임도 덕에 소광리 소나무를 지켜냈다는 말로 국립공원 임도 건설 예산을 확보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
 

▲ 능선을 따라 임도가 잘 놓여 있지만, 산림청의 주장과 달리 모두 불에 타도록 산불을 끄지 못했다. ⓒ 최병성

 
산림청이 지난해 울진 산불을 제대로 끄지 못한 것은 산불 면적이 넓었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20년 6월 발생한 안동 산불 현장으로 가보자. 산 정상까지 콘크리트 포장으로 임도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바로 곁에 낙동강이 보인다. 산불을 끌 수 있는 물도 충분했다. 임도가 있으니 장비와 산불 진화 인력 투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모두 불에 탔다.
 

▲ 밀양 산불은 임도를 따라 이동했다. 임도가 산불이 이동하는 통로가 되었다. ⓒ 최병성

 
지난해 5월 산불이 발생한 밀양이다. 임도가 있지만 여기도 모두 불에 탔다. 밀양 산불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산불이 임도를 타고 더 큰 산불로 확산 이동된 것이다. 나무가 없어 바람이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임도가 산불 진화용이 아니라 오히려 불길의 이동 통로였던 것이다.

산림청이 임도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
 

▲ 강원도 횡성 매더피골에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이 사라졌다. ⓒ 산림청. 소방청


15일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산불 진화와 산사태 예방을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임도는 산사태 예방이 아니라 산사태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지난 2022년 8월 10일, 강원도 횡성의 매더피골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이 사라졌다. 산꼭대기에서부터 엄청난 토사가 밀려 내려왔다. 산림청이 만든 임도때문이었다.
 

▲ 산림청이 울진의 금강송을 벌목하기 위해 만든 임도에서 산사태가 줄줄이 발생했다. 산사태 복구를 위한 혈세를 산속에 퍼붓고 있는데, 산림청 그 누구도 책임지지도 않고 처벌도 받지 않았다. ⓒ 최병성

 
울진의 또 다른 현장을 보자. 산사태가 줄줄이 발생했다.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울진에 왜 이런 처참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임도 때문이었다. 임도를 건설하면 안 되는 지형에 마구잡이로 임도를 건설했다. 빗물이 흐를 물길도 없었다.

산사태가 매년 여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깊은 산속에 산사태 복구를 위해 계속 혈세를 퍼부어야 하는 현실이다. 이곳에 산사태가 난 이유는 간단하다. 산림청이 울창한 소나무들을 벌목하기 위해 임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2020년엔 최병암 산림청장이 탄소 흡수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더니, 이번엔 남성현 산림청장이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기자회견하고 있다. 임도를 위한 명분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 산림청


지난 15일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지난해와 올해 대형산불을 보며 산불 진화에 임도가 반드시 필요함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3년 전인 2020년 12월 23일, 당시 최병암 산림청장은 '임도 신설 확대와 체계적인 관리로 산림 탄소흡수 기능 및 산림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제목으로 임도 개설을 강조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탄소 흡수를 위해 임도를 주장하다가 먹히지 않으니 이제 산불을 내세워 임도 건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산림청은 청장들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할만큼 임도 개설을 위한 여론 조성과 예산 확보에 목을 매고 있다.
  

▲ 임도를 건설한 후 벌목량이 증가하였다는 조사 보고서. ⓒ 한국임학회지

 
산림청은 왜 임도 건설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보여주는 보고서 두 편을 찾았다. 2015년 <한국임학회지>에 실린 '임도 시설에 따른 접근성 개선 및 산림작업비용 절감효과Ⅰ.Ⅱ'다. 임도 개설 전 숲가꾸기 등의 사업이 평균 28.5%에서 임도 건설 후 90.3%로 3.2배 증가했고, 벌목은 25.2%에서 88.3%로 3.5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결국 임도가 있어야 벌목해서 나무를 실어 나를 수 있고, 벌목을 많이 해야 벌목한 자리에 조림을 이유로 기획재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목과 숲가꾸기와 조림 등을 산림경영이란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국회와 국민을 속여 온 것이다.
 

▲ 임도를 만들자 아름드리 금강송들을 싹쓸이 벌목했다. 임도는 산림경영이라는 이름하에 벌목하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 최병성

 
카카오맵 항공사진에 진실이 담겨있다. 장소는 금강소나무로 유명한 울진군이다. 2012년 임도가 만들어졌다. 5년 뒤 2017년 임도를 따라 울진의 거대한 금강송들을 싹쓸이 벌목했다. 2019년에 또 임도를 따라 더 많은 면적의 금강송들이 잘려 나갔다. 
 

▲ 임도가 있으니 손쉽게 싹쓸이 벌목을 했다. 산림청이 임도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산림경영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하는 싹쓸이 벌목을 위한 것이다. ⓒ 최병성


이게 바로 산림청이 임도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다. 산불 진화 명목은 임도 건설 예산을 따내기 위한 핑계일뿐이다.
  
국민 기만하는 산림청
 

▲ 산림청이 임도가 있는 합천과 임도가 없는 하동을 비교해 임도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엔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이 들어있다. ⓒ 산림청


15일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두 개의 산불 현장을 비교해 임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남 합천은 임도가 있어 진화대들이 밤샘 작업을 통해 다음날 조기 진화 할 수 있었으며, 경남 하동의 지리산 국립공원은 임도가 없어 밤새 산불이 타들어 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언론이 산림청 보도자료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베껴 쓰며 임도가 없는 하동의 국립공원이 산불을 제때 끄지 못해 산불 피해가 컸다고 보도했다.
 

▲ 산림청 홈페이지 산불 상황도와 현황을 비교표로 만들었다. 하동의 경우 임도가 없어 산불 피해가 컸다는 것은 심각한 거짓말이다. ⓒ 최병성. 산림청


산림청의 주장은 사실일까? 합천 산불과 하동 산불은 발생 시기가 3일 차이에 불과하고 두 지점의 거리가 가깝다. 산불 피해 현장을 비교해보자.

산림청 홈페이지 산불 발생 현황에 따르면, 합천 산불은 지난 8일 발생해 67시간 만에 진화되었으며 피해 면적이 163ha다. 그런데 임도가 없다는 하동은 11일 발생해 27시간 만에 진화되며 91ha를 태웠다. 임도가 있어 산불을 조기 진화했다는 합천이 더 오랜 시간 불에 탔고, 산불 피해 면적도 두 배 정도 더 넓다.
 

▲ 산불 피해 모습도 임도가 있는 합천이 임도가 없는 하동보다 심각하다. ⓒ 홍석환

 
산불 피해 강도를 비교해보자. 멀리서 보기에도 합천과 하동의 산불 상황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합천 산불은 나뭇가지 끝까지 타죽는 수관화였고, 하동 산불은 바닥으로만 스쳐 지나가는 지표화였다. 하동 산불 현장에 시커멓게 탄 수관화도 극히 일부 있지만, 대부분 지표화로 큰 피해 없이 산불이 꺼졌다. 같은 시기, 비슷한 지역에 발생한 산불인데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산불 현장에 답이 있다. 합천 산불 현장에선 산림청이 산림경영이라고 주장하는 숲가꾸기 흔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나무만 남기고 키 작은 나무와 활엽수들이 모두 잘려 나갔다. 그러나 하동은 국립공원이고 임도가 없으니 산림청이 숲가꾸기를 할 수 없었다. 하층부에 잡목이 그대로 존재한다.
 

▲ 임도가 있어 산림청이 자랑하는 숲가꾸기로 인해 소나무만 남기고 활엽수를 모두 잘라버린 탓에 수관화로 모두 불타 죽었다. 그러나 하동은 임도가 없어 지표화로 산림 나무들이 살았다. ⓒ 홍석환

 
산림청이 숲가꾸기 한 곳과 잡목이 밀집된 지역의 산불 피해를 비교해보자. 소나무 외에 활엽수들을 잘라 숲가꾸기를 한 합천은 나무 꼭대기까지 불에 탔다. 이 나무들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그런데 하동 국립공원은 잡목이 가득하다. 산림청의 주장대로라면 불에 탈 연료가 많다. 그런데 불길이 지표화로 타다 꺼졌다.

산불의 확산 여부는 '연료'가 아니라 '바람'이다. 숲가꾸기 한다며 활엽수들을 베어낸 숲은 바람이 잘 통하여 불길이 나무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타고 오른다. 그러나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연료가 많은 숲은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불길이 힘을 잃고 힘없이 바닥을 기다가 저절로 꺼지는 것이다. 

산림청은 그동안 대형 산불의 원인을 기후 위기 탓으로 돌려왔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아니라 산림청이 산림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산림을 불에 잘 타는 숲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숲가꾸기를 한 지역은 심각한 생태계 파괴뿐만 아니라, 숲이 더 건조해진다. 한번 불이 나면 쉽게 꺼지지 않는 대형 산불이 되는 것이다.

산불 며칠 만에 생태복원 토론회?

산림청은 23일 하동 산불이 발생한 인근에서 '산불 피해지 산림 생태복원 현장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12일 오후에 하동 산불이 진화되었다. 산불이 꺼진 지 불과 10여 일 만에 생태 복원 토론회란 불가능하다. 국립공원 산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불이 꺼지자마자 토론회를 개최하는 산림청에 의혹의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하동 산불은 사진으로 보듯 지표화로 끝났다. 대부분의 나무가 활엽수이기에 불길이 지났어도 다 살아난다. 사람이 손을 댈 필요가 없다. 복구한다며 사람이 손을 대는 순간, 더 큰 생태 파괴만 이뤄질 뿐이다.

산불 피해지 생태복원이란 산불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산림의 변화를 살펴 그에 맞는 복원을 계획해야 한다. 산림청 토론회 참석자 중에 과연 합천과 하동 산불 피해 현장 두 곳을 꼼꼼히 다 살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산림청이 '국립공원에 임도를 건설하겠다'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생태복원의 이름을 단 꼼수 토론회를 여는 게 아닐까. 

아직 3월이라 전국 곳곳에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산림청이 산불 후 단 며칠 만에 복원 계획을 세워 산불 현장에서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을까? 산림청의 한 관계자는 내게 '산림청이 산불 피해지마다 찾아다니며 이렇게 생태복원 토론회를 열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15일 보도자료에서 남성현 산림청장은 '해외 산림에 비해 임도가 적어 산림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국회와 기재부 등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임도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 산림청은 해외엔 임도가 많다는 이유를 임도 건설의 타당성으로 내세우지만, 해외와 우리는 지형과 기후에 차이가 크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미 여름마다 발생하는 산사태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 김종원

 
그러나 계명대학교 김종원 교수의 '소나무재선충과 동해안 산불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 소나무, 무엇이 문제인가'(2005)에 따르면, 유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만한 구릉 형태 또는 대지 형상이며, 연간 강수량이 800~1000mm 이하이면서 연중 고르게 분포해, 급경사지에 집중호우 및 태풍을 동반하는 우리나라와는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며 국내 산림 임도의 부적절함을 강조했다. 

산림청이 지형과 기후의 차이를 감추고 임도 길이만으로 국민을 속여 막대한 임도 건설 예산을 타내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여름마다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회와 기획재정부가 산림청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밀양 산불 키운 주범은 산림청... 현장에 남은 끔찍한 증거들 (https://omn.kr/1zgo8)
-산불 현장서 벌어지는 기현상... 결국 누가 돈을 버나 (https://omn.kr/1ysj9)
-전문가도 놀란 동해안 산불 현장... 국민 모두 속았다 (https://omn.kr/1ynir)
-동해안 대형 산불의 진짜 원인, 산림청은 정말... (https://omn.kr/1ybuz)
덧붙이는 글 산불 진화 및 임도, 벌목, 숲가꾸기, 재선충 등 산림청의 잘못된 정책을 검증하는 시리즈 기사를 시작합니다. 산림청의 잘못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은 cbs5012@hanmail.net으로 제보해 주세요. 대한민국 숲을 살리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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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재명 기소에 신문이 지적한 한계는

  •  노지민 기자 
  •  
  •  입력 2023.03.23 08:03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종편 모기업 신문들, 이틀 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본회의 직회부 일제히 비판

위례신도시·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은 22일 이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 및 부패방지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5개 혐의로 기소했다. 2021년 9월 대선 국면에서 대장동 수사가 시작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23일자 주요 신문들은 모두 이 대표 기소 관련 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주로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4년 민간업자들에게 유리한 구조의 대장동 개발사업을 승인해 성남도시공사에 4895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가 제목에 올랐다. 한겨레는 이 대표가 개발 이익 중 428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약정설 의혹이 공소장에 없었다는 점을 짚었다.

경향신문: 검찰, 이재명 기소 ‘최종 책임자’ 규정

국민일보: ‘대장동’ 피고인 된 이재명

동아일보: 檢, 이재명 4895억 배임 등 5개 혐의 기소…李 “답정기소”

서울신문: 중대범죄 혐의 법정行 초유의 제1야당 대표

세계일보: “4895억 배임·133억 뇌물” 검찰, 이재명 불구속기소

조선일보: 매주 재판받는 野대표 이재명

중앙일보: 4895억 배임, 133억 뇌물…이재명 5개 혐의 기소

한겨레: ‘대장동’ 이재명 기소…428억 의혹은 빠졌다

한국일보: 검찰, 이재명 ‘대장동 사업 4895억 배임’ 기소

▲3월23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신문별 사설에선 검찰 수사의 한계나 과제를 지적하는 내용들도 눈에 띈다. 동아일보 사설(1년 반 만에 이재명 기소…이젠 법정에서 진실 가릴 때)은 “검찰 역시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해 이 대표 관련 사건들에 300차례가 넘는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던 만큼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크다. 이를 위해선 이번 공소장에서 빠진 이른바 ‘428억 원 약정설’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 부분이 확인돼야 범행 동기가 설명이 되고 ‘그분’의 실체도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사설(‘400억 약정’ 빠지고, ‘정치수사’ 논란 남긴 이재명 기소)은 “그동안 검찰이 막대한 수사 인력을 투입해 역대 가장 박빙의 대선을 치렀던 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을 두고 정치적 시비가 끊이질 않았는데, ‘400억원 약정’이 빠지면서 이번 수사 결과로 정치적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물증도 없이 유동규 전 본부장 등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른바 ‘50억 클럽’ 수사 성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향신문 사설(이재명 기소, 대장동 실체·정치탄압 여부 법정서 가려야)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씨 녹취록에는 50억원씩 줘야 하는 대상으로 곽상도 전 의원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별검사,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의 실명이 거론됐다”며 “검찰은 이 대표 기소와 별개로 50억 클럽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면 당직을 정지하도록 당헌을 둔 민주당이,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인 경우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들어 이 대표의 대표직을 유지하게 한 결정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국일보 사설(기소되고도 당대표 이재명…법정서 시비 가려야)은 “사법부 판단을 앞두고도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니 당을 방패로 쓴다는 비판을 어떻게 해명할 건가”라고 물었다.

▲3월22일 검찰의 이재명 대표 기소 관련한 경향신문 23일자 기사

▲3월22일 검찰의 이재명 대표 기소 관련한 한국일보 23일자 기사

일부 신문은 이번 기소 외의 혐의들을 언급하면서 이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중앙일보 사설(기소된 이재명…이제 자신의 거취 진지하게 고민해야)은 “이 대표는 이미 선거법 위반으로 2주에 한 번꼴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기소로 더 자주 법정에 서야 한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백현동 특혜 의혹 등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다른 사건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사설(1년 6개월 만에 대장동 핵심 피의자 기소, 신속 재판으로 혼란 줄여야)은 “추가 수사 과정에서 대북 송금 의혹 등과 관련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다시 제출될 수도 있다”며 “민주당은 대표 개인 비리에 끌려다니면서 무리한 맞불 놓기용 정치 공세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종편 모기업 신문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비판

이른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으로 불리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가운데, 일부 신문은 이 법안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사설을 냈다. 이 법안은 그간 여야 정당이 비공식적으로 좌우해온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권을 언론 현업인 단체 등 다양한 주체에게 분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국민의힘 의원들이 투표를 거부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및 무소속 의원 찬성으로 방송법 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바 있다.

이틀전 본회의로 넘겨진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선 주로 종합편성채널 관련 신문들의 사설이 눈에 띈다. JTBC 모기업인 중앙일보 사설(공영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해칠 방송법 강행 처리)은 법안 처리 절차를 두고 “이사회 추천을 국회(5명), 직능단체(6명), 학회(6명) 등이 하도록 했는데, PD연합회 등 직능단체와 방송·미디어 학회 중엔 친민주당 성향을 보여 온 곳이 많다”며 “민주당이 공영방송 개혁을 진심으로 원했다면 2016년 당론으로 채택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했어야 한다. 여야가 7 대 6으로 이사를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토록 했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인물은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 보장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3월23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방송법 개정안) 관련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사설 제목

TV조선 모기업인 조선일보 사설(한 정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고 법을 만든다니)은 방송법 개정안을 두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잃든 방송만은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송법 개악을 막는 일 못지않게 지난 정권의 방송 장악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방송통신위원회를 바꾸는 일도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주무 국장·과장·심사위원장이 얼마 전 구속됐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부 조직이 설립 취지를 스스로 허물었다. 방통위의 근본적 개선도 더 미룰 수 없다”고도 했다.

이 밖에는 서울신문도 <방송법까지 법사위 패싱…巨野 입법독주, 끝이 없다> 제목의 사설에서 “거대 야당이 억지로 임시국회를 열어서는 법사위를 ‘패싱’하고 본회의로 직행한 법안이 벌써 아홉 개다”라며 “뒷감당을 어쩌려고 이런 입법폭주를 하는지 걱정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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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청년학생들 반미항전 집회..'22일 미사일 발사는 침묵'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3/23 09:06
  • 수정일
    2023/03/23 09:0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3.23 08:09
  •  
  •  수정 2023.03.23 08:27
  •  
  •  댓글 0
 
22일 평양시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청년학생들의 반미항전 집회가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22일 평양시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청년학생들의 반미항전 집회가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수발을 발사했다는 전날 합동참모본부(합참)의 발표에 대해 23일 침묵하고 있어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비롯한 관영 매체들은 23일 전날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전날 평양시내에서 열린 청년 학생들의 반미항전 집회 소식을 전했다.  

통상 미사일 발사 당일 합참이 탐지사실을 국내 언론에 공지하고 이에 대해 북측이 다음 날 관영매체를 통해 발사 배경이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사후 발표를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이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합참은 전날 "우리 군은 오늘(3.22) 10시 15분경부터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순항미사일 수 발을 포착하였다"고 발표했다.

이날 통신은 23일 마무리되는 전반기 프리덤실드 한미연합연습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기정사실화한 침략전쟁연습'이라고 규정하고는 "전국의 열혈청년들이 인민군대입대, 복대를 탄원하고 전민항전의 기세가 더더욱 격앙되는 속에 무분별한 반공화국 압살책동에 미쳐 날뛰는 미제와 괴뢰역적들을 단호히 징벌하기 위한 청년학생들의 집회가 22일 평양시청년공원야외극장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평양시내 거리에서 '전시가요대열합창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이날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평양시내 거리에서 '전시가요대열합창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간부들이 참가한 집회에서 청년 학생들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는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엄숙한 천명이 무서운 철추가 되여 도발자들을 어떻게 징벌하는가를 세계앞에 보여줄 때가 왔다"고 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앞장에서 내달릴 맹세를 다짐하였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를 마친 후 평양시내 거리에서 '전시가요대열합창행진'을 진행했다.

앞서 북한은 전국 각지에서 군 입대와 복대를 위한 청년들의 탄원모임이 연일 진행돼 '조국보위성전'에 나서려는 청년들이 19일 현재 140만여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청년 학생들의 집회 소식과 함께 지난달 25일 착공식을 한 평양시 서포지구 건설현장에서 전국청년기동해설대의 집중경제선동과 방송선전경연이 21일부터 진행되고 있다고 알렸다.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효과적, 공세적으로 행사'하겠다고 한 지난 12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결정에 따라 군대를 농촌진흥과 지방건설 등 주요 전역에 파견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경제건설 사업에도 사회적 자원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달 전 착공식을 한 평양시 서포지구 건설현장에서는 전국청년기동해설대의 집중경제선동과 방송선전경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한달 전 착공식을 한 평양시 서포지구 건설현장에서는 전국청년기동해설대의 집중경제선동과 방송선전경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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