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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의 토지와 자유] 토지주택은행을 신설하자

정부의 역할을 심판에서 시장조정자로 확장해야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발행2021-07-06 07:12:07 수정2021-07-06 07:12:07
 

민주당의 대선경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내년 3월초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이제 세간의 관심은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에 쏠릴 것이다.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경제, 그 중에서도 부동산이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대세상승이 아직 꺾이지 않았으며, 그로 인한 양극화 등 사회적 폐해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후보와 당은 부동산 공약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심판에서 균형 잡힌 시장조정자로

건국 이래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조세, 금융, 택지공급, 청약 등의 정책수단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주기적인데다 진폭도 매우 큰 부동산 시장의 가격급등락에 대한 정부의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젠 정부의 역할을 심판에서 균형잡힌 시장조정자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 가칭 토지주택은행(LHB)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토지주택은행의 기본 아이디어는 정부 등의 공공이 출자하여 토지주택은행을 신설하고, 이 토지주택은행이 토지(예컨대 LH와 지방공사 등이 개발한 신도시 및 택지개발지구의 토지 등) 및 주택(예컨대 재건축 및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이 매각하려는 공동주택의 일반분양분)을 매수한 후 이를 매각·임대하여 부동산 유통시장의 안정적 관리 및 조절을 꾀하고 국민리츠 등을 통해 주주가 된 시민들의 자산 및 소득증대를 노리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제공 : 뉴시스

물론 토지주택은행이 직접 토지 및 주택을 매수하여 소유자가 되는 방식도 있고, 리츠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토지 및 주택을 매수할 수도 있다. 시민들은 국민리츠의 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토지주택은행에 탑승할 수 있다.

 

만약 토지주택은행이 설립된다면 가격 급등기에 토지주택은행 혹은 토지주택은행이 대주주인 리츠가 소유한 주택 등을 시장에 투사해 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쇼크 및 정부정책(예컨대 주임사 혜택 폐지로 인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매물들)등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때 최후의 매수자 역할을 수행해 시장변동의 진폭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 부동산과 금융과의 관계, 금융과 실물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토지주택은행은 경기조절 기능과 위기관리 기능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동산불로소득의 공유화 &
신도시 개발사업 및 정비사업의 대안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의 구조적 불가피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건 난점이 있다. 관건은 가격 상승의 과실을 부동산 소유자가 독식하지 않고 전 국민이 고루 분배받는 것이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가 과세를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전 국민이 기본소득의 형식으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토지주택은행은 모든 국민이 국민리츠의 주주가 됨으로써 부동산 불로소득을 배당의 형식으로 공유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토지주택은행은 신도시 개발사업 및 정비사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동안 신도시는 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사와 수분양자가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전유했다. 서울 등의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의 경우 분상제의 혜택을 일반 수분양자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독식하는 구조다. 만약 토지주택은행이 직접 혹은 리츠를 통해 LH로부터 신도시의 택지를 매수해 임대 및 분양하고,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의 일반분양분을 조합과의 협상을 통해 일괄매수 후 시장가격으로 임대한다면, 신도시 개발 및 정비사업 시에 발생하는 천문학적 불로소득 중 상당부분을 사회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동시에 입지가 우월한 위치의 토지와 주택을 공공이 소유함으로써 시장에 마찰 없이 개입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첫 합동 tv 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이낙연·추미애·김두관·이광재·최문순·정세균·이재명·양승조 후보. 2021.07.03ⓒ국회사진취재단

지금의 토지은행은 한계가 명백

물론 이미 대한민국에는 토지은행이 있다. 토지은행이란 2009년 ‘공공토지의 비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동법에 근거해 2010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내에 설치된 토지은행 계정을 말한다. 이러한 토지은행은 정부가 국가 기반시설인 도로나 철도의 건설계획을 하는 경우 높은 지가로 인해 천문학적인 건설비용이 발생하였는데 사전에 토지를 취득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토지은행이 비축하는 대상토지는 ①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 ②토지시장의 안정을 위한 수급조절용 토지, ③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 제2조 제4호에 따라 조성된 매립지 및 매립예정지, ④그밖에 토지비축위원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토지에 불과하다. 또한 토지은행은 재정상의 한계가 뚜렷하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곳곳에 존재하는 빈집, 빈터, 도심공동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은행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모쪼록 이번 대선에 토지주택은행 신설을 약속하며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후보가 등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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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빗나간 예언... 당신도 속고 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7/06 10:55
  • 수정일
    2021/07/06 10: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글로벌기획 -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가 지배하는 세상] 탈진실의 시대, 가짜뉴스 작동 방식

 
 
 21.07.06 07:06최종 업데이트 21.07.06 07:05
전 세계가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종 사회 이슈부터 정치담론에 이르기까지,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맹위를 떨친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이에 대한 각 나라의 고민과 대안을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이 현상을 역사적으로 톺아봅니다.[편집자말]
 

▲ 소르본 대학 도서관. 14세기에 전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장서가 고작 1300여 권이었습니다. ⓒ Vysotsky

 
정보의 역사는 크게 두 시대로 나뉩니다. '당신 이전' 시대와 '당신 이후' 시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태어난 후 생산된 정보의 양이 그 전까지 인류가 생산한 모든 정보를 합한 것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14세기 초, 유럽 최대의 도서관은 파리의 소르본대학 도서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서관에 소장된 도서 수는 고작 1300여 권이었습니다. 이는 지금 전 세계에서 하루 출간되는 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애서가 중에 이 정도의 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디지털 정보입니다. 이제 훨씬 많은 정보들이 디지털 문서나 영상 형태로 탄생하니까요.

 

정보생산의 주체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생산하니까요. 실감나지 않는다면, 인터넷에서 영화, 책, 전자제품, 식당 등에 대한 평을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십중팔구 일반인이 올린 글이나 영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탓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미 2012년에 "(전문가가 주도하는) 전통적 마케팅은 종말을 고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시간에도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카톡, 블로그, 위키, 팟캐스트를 통해 쉴 새 없이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2021년 현재, 하루에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이 5억 개가 넘고, 페이스북에 하루 3억 5천만 장의 사진이 올라오며, 유튜브에는 매일같이 72만 시간의 영상이 업로드 됩니다. 72만 시간이 얼마나 긴지 상상이 안 되지요? 잠도 안자고 24시간을 봐도 83년이 걸리는 분량입니다. 한국인 기대수명이 83년이 조금 넘으니, 유튜브 하루치만 봐도 한 평생이 걸리겠네요.

이처럼 정보량과 생산주체의 변화는 정보에 관한 논의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과거에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정보를 손에 넣느냐'였습니다. 정보가 귀하던 시절에는 정보 획득이 곧 힘과 돈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지요. 귀족이 읽고 쓰는 능력을 독점했던 까닭도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현대에 들어 이 논의는 '정보민주주의', 즉 '어떻게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느냐'로 바뀌었습니다.
 

▲ 정보는 더 이상 드물고 값진 희소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지요. ⓒ elements.envato

 
하지만 정보는 더 이상 드물고 값진 희소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지요. 따라서 이제 핵심 사안은 '정보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사람을 압도하기 때문에 정보를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제 누구나 정보를 생산해서 유포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내용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허위정보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거나 단순한 실수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더러는 정치적, 상업적 이익을 위해 일부러 사실을 비틀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을 꾸미기도 하지요. 이런 거짓 정보들이 그럴듯한 뉴스 형태로 유통되는 것을 '가짜뉴스'라고 부르지요. 사실 거짓 정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류가 소통하기 시작한 이래 줄곧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최근 들어 논란이 되는 것일까요? 가짜뉴스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요?

'팩트체크'는 가짜뉴스를 이길 수 있을까

저는 디지털 매체를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자입니다. 사람들은 '정보' 하면, 흔히 사실을 알려주는 실용적 정보를 떠올립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깨닫게 한다'는 의미에서) '인지적(cognitive) 정보'라고 부르는데, 정보는 그 밖에도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기쁨, 슬픔, 분노 등의 느낌을 전하는 '감정적(emotional) 정보'가 있고, 아름다움, 추함, 완결성 등에 대한 '미학적(aesthetic) 정보'가 있으며, 옳고 그름의 가치관에 대한 '도덕적(moral) 정보'도 있습니다. 정보는 흔히 이 네 가지가 혼합된 형태로 유포됩니다.

정치뉴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먼저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을 한 명 떠올려 주십시오. 자, 방금 속보가 떴습니다. 그가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다고 합니다. 이 보도를 통해 독자는 사건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동시에(인지), 정치인이나 검찰의 행위를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게 되며(도덕), 그 결과 분노하거나 환호하게 되지요(감정). 여기서 정보가 의미와 효과를 발생시키는 데 있어 수용자의 입장과 역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을 거치며 한국에 널리 알려진 심리학 용어입니다. 사진은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는 동안 동행한 황 교수팀의 한 학생이 울먹이고 있는 장면. 2005.12.23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과 심형래 <디워> 사태를 거치며 한국에 널리 알려진 심리학 용어이지요. 사람들은 이미 습득한 지식과 가치관의 틀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의 관점과 충돌하는 정보를 접할 때, 두 가지 선택안이 있습니다. 하나는 두 정보를 면밀히 저울질한 후 더 타당해 보이는 입장을 채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첫 번째 대안이 더 합리적이지만, 사람의 판단과 인식이 작동하는 방식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새 정보를 받아들여 인식의 토대를 재설정하는 작업은 자신의 세계관이 흔들리는 '부조화'의 혼란과 불쾌감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사고가 유연하고, 뛰어난 지식 습득 능력과 겸손한 삶의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저 같은 학자들이 갖춰야 할 태도이지만,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한 이루기 어려운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불편한 새 정보를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보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 결과 기존의 관점은 화석처럼 굳어지고, 새로운 정보는 설 자리를 잃게 되지요. 이런 심리상태는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 집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QAnon'을 뜻하는 Q 사인을 들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 QAnon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8.8.2 ⓒ 연합뉴스

 
기존 입장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식의 토대가 되는 지식이나 가치관은 그저 머릿속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인식의 토대'라는 절대적 가치를 갖게 되니까요. 잘못된 뉴스에 대한 정정보도나 '사실 확인(팩트체크)'이 애초의 뉴스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허위정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깁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럴듯한 형식의 글, 그림, 영상을 통해 구성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송할 능력과 수단을 갖추게 된 것은 길어야 15년 안팎입니다. 읽고 쓰는 일은 공교육의 확대로 거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게 됐지만, 정보를 작성하고 유포하기 위해 필요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카톡 등 소셜미디어는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빗나간 예언의 땅에서 벌어지는 혈투

1993년, 인터넷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을 때 학자들은 웅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 고른 정보를 섭취하고,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면서 개방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지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디지털이다>의 저자이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였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인터넷이 인류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997년에는 "20년 뒤 우리 아이들은 '민족주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지요. 세계의 인류가 국경 없는 인터넷에서 교류하게 될 터이기에, 속 좁은 국가주의는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디지털이다>의 저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공동설립자입니다. 그를 포함해, 다수 전문가들이 낙관했던 디지털 세계의 미래는 전혀 다른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 Gin Kai/Alfred A. Knopf

 
20여 년이 훌쩍 흐른 현재,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치열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장이 되었지요. 민족주의뿐인가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사방팔방으로 나뉘어 서로 맹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성적인 토론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인터넷 공간을 남을 돕는 이타적 도구나 폭력적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다수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다준다거나, 온라인에서 토론자들이 다른 견해를 지닌 상대와 열린 태도로 대화하리라는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어쩌면 인터넷에 대한 낙관론은 인터넷에 대한 오해보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와 태도를 오해한 데서 출발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개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보다 '맞다'고 맞장구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합니다. 여기서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려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가요? 같은 이유로, 사람들에게 정보의 선택권을 주면, 내 견해와 충돌하는 정보보다 부합하고 지지하는 정보를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커뮤니케이션학자 다이애나 머츠는 <반대편에 귀 기울이기>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정치양극화의 온상이 된 이유를 '끼리끼리' 심리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정치 진영 간의 갈등과 대결이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런 성향을 부추기고 증폭시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는 정치인, 뉴스매체, 유튜버, 논객에게도 책임이 돌아가야 합니다.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관심유발이지 정확성, 공정성, 균형이 아닙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민감한 주제를 골라 '우리 편'과 '적' 사이에 명확한 선을 가른 뒤에, 감정적 언어로 상대편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싸움판이 만들어지고, 사람들과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상대를 통쾌하게 '발라'버리면 금상첨화입니다.

이제 기성 정치인까지 '토론 배틀'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토론 '배틀'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냐'는 결과이지, 토론 내용이 아닙니다. 승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흥행인데, 그런 탓에 상대의 뼈를 꺾거나 심장에 칼을 꽂는 스펙터클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됩니다. 토론은 원탁에서 이뤄지지만, '토론 배틀'은 증오와 조롱의 함성이 가득한 원형 경기장을 무대 삼아 벌어집니다. 인터넷에서 논쟁을 즐기는 사람을 검객에 빗대 '논객'이나 '키보드 워리어'라고 부르는 게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전사들은 '팩트'를 강조하는데,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를 들여다보면 부분의 진실이나 맥락을 무시한 정보들을 짜 맞춰 놓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들을 찾아 엮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위기감, 가짜뉴스의 토양
 

▲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관심유발이지 정확성, 공정성, 균형이 아닙니다. ⓒ Colin

 
다트머스 대학의 브렌든 나이한(Brendan Nyhan) 교수는 '가짜뉴스'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치학자입니다. 그는 2020년 <워싱턴포스트>에 '허위정보에 대한 5가지 신화'라는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웹사이트에서 허위정보를 대량소비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성향에 따라 매체를 선택하는 것은 분명하나, 대부분은 널리 알려진 매체에서 뉴스를 얻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이용하는 뉴스 사이트 중에서 출처 불분명한 뉴스를 유통시키는 곳은 6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을 주요 뉴스원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보수 성향 집단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물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얻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용자들의 논평이나 주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한은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동기를 '소속감'과 '위기감'의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성적 존재로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사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인데, 이때 나와 비슷한 대상과 무리를 짓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무리를 이루고 나면, '내편'에 안정감을 느끼는 만큼 상대 집단에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상황이 발생하면, 평상시 믿기 어려운 정보에도 쉽게 현혹됩니다.

"~가 대통령 되면 광화문에 인공기 휘날릴 것"
"~당의 집권 못 막으면 전쟁 날 것"
"우리가 선거에 못 이기면 나라 거덜 날 것"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에이즈 확산"


허위정보가 긴박한 위기감을 유발하며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야 터무니없는 정보가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편'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일한 재력, 권력, 이해관계를 나누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집단의식이나 소속감마저 허구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사실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이펠이 오래 전 실험으로 입증한 바 있습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동전 던지기로 편을 갈라도 소속감을 느끼는 게 사람이니까요.

여기에 '상대편'과 긴장을 유발하는 정보가 유포되면 소속감은 쉽게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뀝니다. 그런 점에서, 허구적 소속감과 위기의식을 털어내는 것은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첫 번째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믿기 어려운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구절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아무리 악당이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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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프란치스코 교황 평양 방문 추진 중”

“김희중 대주교, 유에레브 교황대사와 함께 추진”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7.06 10:12
  •  
  •  수정 2021.07.06 10:13
  •  
  •  댓글 0
 

박지원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박지원 원장은 5일 전남 목포시 산정동성당에서 열린 준대성전 지정 감사 미사에 참석해 예정에 없던 축사에 나서 “오늘 여기에 특별히 온 것은 김희중 대주교님과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님과 제가 함께 교황님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감사 미사는 김희중 대주교가 집전했으며, 주한 교황대사인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김영록 전남지사, 신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지원 원장은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해주셔서 교황님께서 반드시 평양을 방문해서 우리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울 18일 교황궁 'tronetto 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교황 초청의사를 전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울 18일 교황궁 'tronetto 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교황 초청의사를 전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18일 이탈리아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했고, 당시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긍정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2019년 2월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공동행사체 참석한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왼쪽)가 만찬장에서 강지영 조선가톨릭협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19년 2월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공동행사체 참석한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왼쪽)가 만찬장에서 강지영 조선가톨릭협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희중 대주교는 2019년 2월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공동행사에 참석해 <통일뉴스> 기자의 질문에 “올해 교황께서 11월에 일본 방문 일정이 예정돼 있다”며 “북한도 방문하셔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과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은 성사됐지만 방북은 성사되지 못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관구장을 역임한 윤종일 신부는 지난해 10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회칙 ‘모든 형제자매들(Fratelli Tutti)’을 발표하자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회칙 ‘모든 형제들’은 인류화합을 위해 공동체적 형제애를 사회윤리로 제시한다”고 해석하고 “교황이 시진핑 주석을 방문하여 미국과의 화해를 중재하고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논의한다면 그 자체로 인류화합을 이룰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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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포고문 보고 또 봐도 ‘스스로 점령군’임을 표방”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07/0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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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불편한 진실

 

‘미 점령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광복회가 5일 “우리나라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역사의식’”이라고 일갈했다.

 

앞서 김원웅 광복회장은 지난 6월 21일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경기도 고등학생들에게 맥아더 포고문을 있는 그대로 인용해 ‘미 점령군’ 사실을 강조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난 7월 1일 경북 안동 이육사기념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체제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라고 발언했다.

 

이에 보수 야권과 언론이 김원웅 회장,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두고 ‘이념 공세’를 퍼부었다.

 

국힘당 유승민 전 의원은 “반미, 반일몰이로 표 얻으려는 계산”, 오세훈 서울시장은 “충격적인 역사관”이라고 공격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광복회는 이날 “맥아더는 포고문에서 스스로가 ‘점령군’임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강조했다”라며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 포고문 내용을 사실 그대로 소개했다”라고 거듭 밝혔다.

 

한국인에게 고함

 

▲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 지역을 점령한다.

▲ 본 부대의 점령목적이 일본의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 북위 38도선 이남의 지역 및 지역주민에 대해 군정을 실시한다. 따라서 점령에 관한 조건을 아래와 같이 포고한다.

▲ 점령군에 대한 반항 행동 또는 질서 보안을 교란하는 행위를 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

▲ 군정 기간 중 공식 언어는 영어로 한다.

 

1945년 9월 7일

미육군 원수 더글라스 맥아더

 

광복회는 “이 포고문은 굉장히 강압적이다. 해방에 대한 축하의 말은 한마디도 없고, ‘엄벌에 처하겠다’는 등 우리 국민의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강압적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짧은 포고문에 ‘점령’이란 단어를 4번이나 사용했다”라며 “두 번 세 번 다시 봐도 맥아더가 ‘스스로 점령군’임을 강조하여 표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확인시켰다.

 

이어 “이런 사실은 역사학계에서도 학술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라며 “제대로 된 국민이라면 ‘스스로 점령군’임을 내세운 맥아더의 포고문에 불쾌해야지 왜 이 역사적 진실을 말한 광복회장을 비난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광복회는 또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때 유지했다’는 이재명 지사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광복회는 “국사편찬위 자료에도 포고문은 실려 있다. 그렇다면 국사편찬위도 폐쇄하고, 포고문을 삭제해야 하는가? 철 지난 색깔론 제기하는 자, 스스로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라며 “맥아더는 미군정 실시와 동시에 국내의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를 강제 해산시켰고, 임시정부도 해체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친일파들을 중용했다.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이란 이재명 지사의 표현은 역사적 진실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친일 미청산과 분단극복에 대한 고뇌’가 없는 정치인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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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 파견 검사는 어떻게 수산업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됐나

유희곤 기자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팀을 이끈 박영수 특별검사(69·사법연수원 10기)가 검사, 경찰관, 언론인, 정치인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수산업자 김모씨(43·구속)를 이모 부장검사(48·33기)에게 소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특검은 특검팀에서 2번 파견근무를 한 이 부장검사가 검찰에 복귀해 경북 포항에서 근무하게 되자 해당 지역의 유력가 행세를 한 김씨를 연결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부장검사는 이후 김씨로부터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부장검사는 2019년 8월 서울남부지검에서 대구지검 포항지청 형사1부장으로 부임하기 전 박 특검을 찾아갔다. 박 특검은 이 부장검사의 인사발령 소식을 듣고 “내가 아는 지역 사람이 있다”면서 전화로 김모씨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박 특검은 김씨와 수감생활에서 알게 된 언론인 출신 A씨(60)를 통해 김씨를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특검은 김씨에게 이 부장검사뿐 아니라 다른 법조계 인사들도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장검사는 2016~2017년 박영수 특검팀에 파견돼 최서원씨(65·구속)의 딸인 정유라씨(25)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 의혹 수사를 담당했다. 그는 입시 비리 의혹 수사가 어느정도 진행된 후 특검에 합류했다. 특검이 2017년 3월 공소유지 기능만 남긴 채 활동을 마치자 대부분의 파견검사들과 함께 검찰에 복귀했으나 재판을 맡고 있던 다른 검사가 해외연수로 자리를 비우면서 다시 특검에 파견됐다. 이 부장검사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연수를 가게 돼 다시 특검에서 검찰로 복귀했다. 당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은 박 특검, 특검보 4명, 수사팀장 중 한 명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이 발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검사는 본인이 특검 파견을 자원했다고 한다.

결국 이 부장검사가 수산업자 김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 단초를 박 특검이 제공했고, 이 부장검사가 특검팀에서 일하며 박 특검과 인연을 맺은 것이 그 배경으로 작용한 셈이다. 국정농단 특검팀은 현직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고 단죄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시민의 도덕적 기대 수준이 높았다.

박 특검과 김씨가 밀접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정황도 있다. 박 특검 측에 따르면, 박 특검은 지난 2월 아내에게 포르쉐 차량을 구입해주기 위해 김씨가 소유한 같은 모델의 차량을 시승용으로 4~5일 빌려 탔다. 박 특검 측 관계자는 “차량을 빌려탄 뒤 박 특검이 대구에서 김씨를 만나 시승비 250만원을 직접 지급했다. 동석자도 있었다”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부장검사는 김씨를 2번 정도 만난 사실은 인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생일이 있던 2020년 6월을 전후한 시기와 2020년 9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열린 전별행사 때 다른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김씨가 부하직원에게 시계를 사 오라고 한 문자메시지, 이 부장검사에게 수천만원대 시계를 전달했다는 김씨 부하직원의 진술 등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부장검사는 시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달 23일 김씨의 사무실과 자택,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시계는 확보하지 못했다. 이 부장검사는 김씨와의 금전거래 의혹도 받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중고차 매매를 중개해준 데 따른 대금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씨가 보낸 대게는 받았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장검사는 최근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지방 검찰청 지청의 부부장 검사로 좌천됐다.

앞서 경찰은 지난 3월 110억원대 사기 혐의로 김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검찰에 송치되기 전인 4월 초쯤 경찰에 면담을 신청해 이 부장검사, 배모 총경(50),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51), 엄성섭 TV조선 앵커(47) 등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이 부장검사 등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실제 금품이 오갔는지, 대가성이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씨의 휴대전화를 2차로 디지털포렌식한 경찰은 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 등 다른 정치인들과 언론인도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 박 원장 측 관계자는 “전직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원장 취임 이전에 여러 사람과 함께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면서 “(김씨가) 선물을 집 앞에 두고 갔고, 고가이거나 특별한 선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은 청탁 금지 대상자가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일 초과한 금품을 받을 경우 처벌받는다. 금액이 소액이면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경찰청. 김영민 기자"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107042021001#csidxa013b3a12186430a0543756f85d27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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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때문에 올여름 블랙아웃?... 언론의 거짓말

[팩트체크] 전력공급 감소 아닌 수요 증가 탓... 산업부·전문가 "탈원전과 무관"

 
21.07.05 07:28최종 업데이트 21.07.05 09:44
 

▲ 지난 5월 29일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원전 4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해 터빈이 정지했다. 신고리 4호기에서 연기가 퍼지는 모습 ⓒ 연합뉴스

 
[검증대상] 일부 언론 "탈원전 때문에 7월 말 '블랙아웃' 올 수 있다"

지난 1일 정부에서 '여름철 전력 수급 전망 및 대책'을 발표한 뒤 올 여름 전력수급 문제로 '블랙아웃(광범위한 지역에서 전력 공급이 중단돼 즉시 복구할 수 없는 대규모 정전 사태. 아래 대정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특히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그 책임을 현 정부의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에 돌렸다.

 

과연 탈원전 때문에 올 여름 '전력대란'이나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는지 검증했다.

[검증내용] 산업부 "전력수요 일시적 증가 영향... 탈원전과 무관"

산업통상자원부(아래 산업부)는 지난 1일 "이번 여름은 전력공급 능력이 작년과 유사한 수준이나, 코로나19 회복에 따른 산업생산 증가, 기상 영향으로 전력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전력예비율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현재 고장·정지 중인 발전소의 정비가 예정대로 완료되면 전력공급 능력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력예비율 하락에 대비한 추가 예비자원을 확보하여 안정적 전력공급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올여름 전력수급 문제로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 원인을 탈원전 정책으로 돌렸다. 대표적인 언론 보도는 다음과 같다.
 

- <조선일보>, 대정전 가능성에도 원전 8기 가동중단(7월 2일)
- <매일경제>, 탈원전에…올 여름 전력수급 빨간불, 8년만에 경보 발령 위기(7월 1일)
- <문화일보>, 이달말 전력수급 비상 발령 가능성...탈원전發(발) 블랙아웃 우려(7월 1일)
- <한국경제>, [사설] 전력수급 벌써 불안한데 원전 세워놓고 석탄발전소 돌리다니(7월 2일)

 

▲ 조선일보는 7월 2일 '대정전 가능성에도 원전 8기 중단' 기사에서 정부의 탈원전 탈석탄 정책이 여름철 전력 수급 불안을 불렀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조선>은 2일 기사에서 한 전문가의 말을 빌려 "정부가 탈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전력 수요를 낮춰 잡은 탓에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한경>도 2일 사설에서 "이달 넷째 주에 전력예비율이 4.2%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정부 공식 전망은 탈원전의 끝모를 폐해를 재확인시켜 준다"고 지적했다.

이들 언론이 올 여름 전력수급 문제가 탈원전 탓이라고 보는 근거는 ▲ 현재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8기가 정비 중이라는 점과 ▲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 지연 등 크게 3가지다. 하지만 이 가운데 원전 8기 예방정비와 신한울1호기 운영허가 지연은 탈원전 정책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산업부는 2일 오후 설명 자료에서 "올 여름철 전력공급 예비율 하락은 코로나19 회복에 따른 산업생산 증가, 기상 영향으로 전력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이며, 탈원전 등 에너지전환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고장·정지 중인 발전소의 정비가 예정대로 완료되면 전력공급 능력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력예비율 하락에 대비한 추가 예비자원을 확보하여 안정적 전력공급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산업부 자료를 보면, 올 여름 원전 설비용량은 24기 23.3GW(기가와트)로 지난해 여름과 동일하고, 전력 예비율이 가장 낮을 것으로 예상한 7월 넷째주 전력공급능력 전망치도 97.158GW로 지난해 여름(2020년 8월 26일 실적 97.951GW)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최대전력수요가 지난해 여름 89.1GW보다 1~5GW 정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7월 넷째주 원전공급능력이 일시적으로 2GW 줄어든다. 하지만 이는 원전 정비 지연에 따른 것이고 최대전력수요가 예상되는 8월 둘째주에는 원전 공급량을 다시 회복할 전망이다.

산업부는 지난해(2020년)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했을 때 예비력은 8.9GW(예비율 9.9%)로 비교적 여유가 있었지만, 올 7월 넷째주 최대 전력수요는 89.3GW(기준 전망)에서 93.2GW(상한 전망)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5년 피크발생일 직전 72시간 평균기온'인 29.4℃를 적용한 '기준 전망'시 예비력은 7.9GW, 예비율은 8.8% 정도지만, '최근 30년 피크발생일 직전 72시간 평균기온의 상위 3번째 기온' 30.2℃를 적용한 '상한 전망'시에는 예비력은 4.0GW, 예비율은 4.2%다.

현재 예비전력이 5.5GW 밑으로 내려가면 전력수급 비상단계를 발령하는데, 4GW는 준비(5.5GW 미만)-관심(4.5GW)-주의(3.5GW)-경계(2.5GW)-심각(1.5GW) 등 5단계 가운데 두 번째 '관심' 단계에 해당한다. 예비력이 1.5GW 아래로 줄어 '심각' 단계에 이르면 '대정전'을 막기 위해 먼저 '순환 단전(부하 조정)'을 실시한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전국적으로 발생한 정전 사태도 순환 단전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예방정비 중인 화력발전소 발전기(부산복합 4호기, 고성하이 2호기) 시운전 일정을 조정하는 방법 등으로 추가 예비자원을 8.8GW 확보했다고 밝혀, '심각' 단계까지 이를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전문가들 "관심 단계에서 '대정전' 가능성 낮고 탈원전 영향 없어" 

에너지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전력 예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고, 설사 '관심' 단계에서 '심각' 단계로 넘어가 대용량 발전기가 갑자기 멈추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예비 자원을 활용하거나, 부분적인 부하 차단(순환 단전)으로 대정전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임성희 녹색연합 에너지전환팀장은 2일 "대정전이 발생했던 국가의 전력 설비예비율은 평균 10%대인 반면 한국은 평균 20%대로 높은 편이고, 예비력이 부족해도 수요관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일부 원전 가동을 중단한 것도 평소 진행하던 예방정비 작업 때문이기 때문에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대정전이 발생했던 호주, 대만의 평균 전력설비예비율은 2016년 기준 각각 15.5%였다. 그러나 한국은 19~22%로, 영국(25.6%) 미국(22.3%), 프랑스(21.3%)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에너지경제연구원, '주요국의 전력설비예비율 비교 연구', 2018년).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도 이날 "현 정부 들어 신한울 1, 2호기를 예정대로 건설하는 등 탈원전 정책이 제대로 실행된 게 없어 현재 시점의 전력설비용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면서 "월성1호기의 경우 조기 폐쇄하지 않았더라도 안전 문제로 지금 가동을 장담할 수 없고,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고리 1호기 폐쇄를 결정하지 않고 10년 더 연장했다면 지금 전력 수급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다"라고 지적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 한국수력원자력 통계에 따르면, 원전 설비용량은 2016년 23.1GW을 정점으로 2017년 22.5GW로 줄었지만, 2019년과 2020년 다시 23.3GW로 늘었다. 원자력 발전량도 2015년 16만4771GWh(기가와트시)로 정점을 찍은 뒤 2018년 13만3505GWh까지 감소했지만, 2019년 14만5910GWh, 2020년 16만184GWh로 다시 회복했다. 2020년 현재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 차지하는 비중도 여전히 29.0%에 이른다.

오히려 박 교수는 "전력 수급 문제를 모두 탈원전 정책과 연결 짓는 보수 언론과 야당 주장도 맞지 않지만, 현 정부가 빌미를 준 측면도 있다"면서 "기약하기 어려운 60년 뒤 탈원전을 목표로 하기보다 당장 임기 5년 안에 할 수 있는 확실한 계획부터 실행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검증결과] "탈원전 발 블랙아웃" 언론 보도는 '거짓'

올 여름 정부가 예상하는 전력수급 문제 발생 원인은 전력공급량이 아닌 전력수요량 증가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원전 설비용량과 발전량은 2019년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또한 7월 넷째주 예비력 최저치인 4.0GW까지 줄어들더라도 전력수급 비상단계 2단계인 '관심' 수준으로, 5단계인 '심각' 단계로 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탈원전 정책 때문에 올 여름 대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는 '거짓'으로 판정한다.  
 

 
언론 보도

"탈원전 때문에 올 여름 '블랙아웃' 발생할 수 있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거짓
  • 주장일
    2021.07.02
  • 출처
    다수 언론 보도출처링크
  • 근거자료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올 여름철 안정적인 전력수급 관리에 총력'(2021.7.1)자료링크산업통상자원부 설명자료, '올 여름철 전력공급 예비율 하락은 에너지전환 정책과는 무관하며,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수급 관리에 총력(조선일보, 7.2일자 보도 등에 대한 설명)자료링크에너지경제연구원, ‘주요국의 전력설비예비율 비교 연구’, 2018년자료링크한국전력거래소, 발전원별 발전설비와 발전용량 추이자료링크임성희 녹색연합 에너지전환팀장 인터뷰자료링크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인터뷰자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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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윤석열 ‘점령군’ 논쟁에 조선-한겨레 보도 엇갈려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 “윤석열 전 총장 색깔 공세” 조선·중앙 “이재명 지사 운동권 사관”

점령군’ 발언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맞붙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리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체제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는 발언이 발단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게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유력 후보가 이어받았다”며 “(여권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재명 지사는 “구태 색깔공세”라며 반발했다. 

한겨레 “윤석열 전 총장 색깔 공세”
조선·중앙 “이재명 지사 운동권 사관”

5일 아침신문은 두 유력 대권주자의 ‘충돌’을 조명하면서도 다른 입장을 보였다. 우선,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 “악재 겹친 윤석열 ‘색깔론 불붙였다’”와 사설 “이재명 ‘미 점령군’ 발언에 ‘색깔론’ 공세 중단해야”를 통해 이 지사를 향한 윤 전 총장과 보수언론의 공격을 ‘색깔론 공세’로 규정했다.

▲ 5일 조선일보 1면 기사
▲ 5일 조선일보 1면 기사

한겨레는 윤 전 총장에 대해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집권세력 전체에 딱지를 붙이려는 저열한 의도”라며 맥아더 사령부가 포고문에서 스스로를 ‘점령군’으로 규정한 데다 역사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윤 전 총장에게 “사실왜곡과 과격한 선동으로 점철된 구시대적 색깔 공세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했다.

반면 보수 언론은 윤 전 총장이 아닌 이재명 지사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맥아더 포고문에 따르면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있는 건 맞다면서도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 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한다‘는 전제도 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적이 해방과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 지사의 주장이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표현한 과거 운동권 세력의 주장을 답습했다는 비판이 나왔다”며 야권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통진당식 역사왜곡” “1980년대 운동권 사관”이라며 반발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특정 정치집단을 공격하고 편 가르기 위해 현 정부가 빈번하게 동원해온 친일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다.

▲ 5일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
▲ 5일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

즉, 한겨레는 ‘점령군’ 표현 자체가 틀리지 않았다고 본 반면 중앙일보는 당시 미군이 ‘점령군’ 표현을 쓴 건 맞지만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언급한 점을 부각한 것이다. 한겨레는 윤 총장의 지적을 ‘색깔 공세’로 규정했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재명 지사의 발언을 ‘갈등을 부추기는 운동권 프레임’으로 봤다. 

한국일보는 “미래 얘기해야 할 대선에 소모적인 점령군 논쟁” 사설을 내고 양측의 대립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국일보는 “(이 지사의 발언은) 친일 청산이 부족했음을 주장해 지지층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려는 의도”라고 보면서도 “보수언론과 국민의힘 주자들이 일제히 비판을 쏟아낸 것 역시 보수층 결집을 겨냥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소모적 논쟁으로 검증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동체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했다. 

도마 위에 오른 ‘민주노총’ 집회 

지난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기습 집회’가 논란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경찰이 집회 예정지인 서울 여의도 일대를 봉쇄하자 종로3가에서 기습적으로 노동자대회를 강행했다. 

주요 아침신문 다수는 이 집회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주말 최다 확진 쏟아진 날, 민노총 8000명 불법집회” 기사를 통해 “상당수 참가자들은 1미터 이내로 다닥다닥 모였다. 어깨를 맞단 채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고 묘사했다. 서울신문은 “조합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거리두기는 충분히 지켜지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 민주노총 노동자대회를 다룬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기사
▲ 민주노총 노동자대회를 다룬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기사

보수 언론은 사설을 통해 정부가 지난해 보수단체 주도 광복절 집회 때는 반발하면서도 이번 집회에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점을 ‘이중적’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보수단체의 집회에 대해서는 살인마라고 비난했던 청와대가 이번에는 집회 자제 촉구조차 하지 않았다. 여당도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해 민주노총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조선일보 역시 “확진자 75명 때의 작년 집회가 살인이라면 확진자 759명 상황에서 강행한 민노총의 불법 집회는 무언가. 청와대와 정부는 대답해보라”고 반문했다.

서울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역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사설을 냈다. 서울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번 집회 참가자를 가리켜 “방역 정책을 비웃는 훼방꾼”이라고 했고, 국민일보는 “민주노총은 정부와 방역 당국 위에 존재하는 상급 단체인가”라고 꼬집었다.

이날 한겨레는 집회 사진 기사를 통해 집회 내용을 전달했을 뿐 방역 문제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국민 생명권이 우선’ ‘공연 야구장은 풀어놓고 거리는 왜 막나’” 기사를 내고 양측의 입장을 전했다. 이 기사는 민주노총 측의 입장을 전하며 스포츠 관람과 대중문화 공연에 대한 규제는 풀어놓은 반면 헌법이 보장한 집회에 대한 규제를 유지하는 데 대한 비판도 다뤘다. 그러면서도 “(방역 전문가들은)이번 집회에 대체로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QR코드 연계 ‘중대재해 인터랙티브’ 제작

한국일보의 이날 1면 기사는 “중대재해법 시행돼도 70%는 처벌 못한다”다. ‘법 있어도 못 막는 중대재해’ 기획 기사의 일환이다. 한국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재해조사 의견서를 입수해 이를 중대재해법에 미리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 558개 기업 가운데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70%에 달했다. 

한국일보는 이와 함께 2020년 6월~2021년 5월 전국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 780건을 분석하고 데이터시각화 전문 스타트업 뉴스젤리와 함께 ‘체험형 인터랙티브 지도’를 제작했다. 지면에는 QR코드를 넣어 온라인 기사에 연계했다. 

▲ 5일 한국일보 1면 기사
▲ 5일 한국일보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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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의 경제비평] 최저임금 1만원, 경제구조 대개혁의 시작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7/05 10:44
  • 수정일
    2021/07/05 10: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사망사고 대통령 책임 촉구 합동추모제’를 마친 후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2021.06.19ⓒ정의철 기자

지난달 19일, 노동 존중 대한민국의 경찰은 민주노총이 주최한 중대재해 노동자 합동추모제에서 영정 344개의 행렬을 끝내 막아섰다. 행렬에는 작년 10월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대구의 쿠팡 노동자 故장덕준의 부모가 함께 했다. 그날 단 한 시간의 장례식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인의 아버지는 경찰에 연행되기를 불사했다. “왜 맨날 우리는 이렇게 사정하고 부탁해야만 합니까. 왜 우리한테는 자꾸 기다리라고만 합니까.” 고인의 어머니가 토해낸 그 절규에 필자만 눈시울을 붉혔을까.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산재 사망자 수는 벌써 574명(질병 사망자 포함), 누더기 중대재해법을 비웃듯 산재 지표는 개선되지 않는다.

착취공화국 대한민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마주하는 현실

죽음에 이르는 노동은 아니더라도,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대개 최저 수준의 생계를 겨우 유지하기 위한 고단한 노동으로 채워지고 만다. 방송 보도로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故김용균에게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급된 2018년 11월 월급은 210만원이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용역업체에 지급한 직접노무비 520만원에서 약 300만원이 줄어든 금액이었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월 2백만 원도 적은 돈은 아니다. 사람값이 싼 이 나라에서는 용역이나 파견의 이름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 가운데 십년 넘게 일해도 실제 받는 월급이 백만 원을 겨우 넘거나 그것도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한 가지 이유는, 원청이 노무비를 제대로 쳐줘도 인력공급업체의 바지 사장이 가만 놔두질 않아서다. 월급을 떼먹고 그러다가 위장폐업으로 체불임금을 남기고 야반도주하기도 한다. 물론 원청이 제값을 잘 쳐주는 것만도 아니다. 올해 5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청업체의 44%는 여전히 원청의 단가 후려치기에 애로를 겪고 있다.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그래서 최고임금이 된다. 우리 사회가 누리는 물질적 부와 풍요는 일정 부분 이와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을 밟고 그 위에 서 있다. 착취공화국 대한민국의 이 절망적인 현실을 우리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2016년 6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조조정과 임금체불의 시한폭탄을 들고 하청노동자들의 불안정한 모습을 퍼포먼스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오늘의 경제구조

 

저임금 노동자들의 형벌과도 같은 삶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숙명처럼 정당화시킬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배계급과 그들을 대변하는 지배적인 정치세력들이 소상공인을 앞세워 최저임금 인상을 억누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최저임금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해 근본적인 개혁 요구의 압력을 낮추려고 한다. 최저임금이 영세한 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 사이에 을과 을의 대결이므로 그 인상 폭은 소상공인의 지불능력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해마다 잊지 않고 반복된다. 얼마 전에는 노동 존중 문재인 정부의 집권여당 대표마저 최저임금 인상을 사과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오늘 한국경제의 착취구조를 뜯어고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도급금액이 최저임금에 연동되도록 하는 것, 상시 지속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을 민간 부문에 적용하고 파견 사유를 제한하는 것과 같은 제도화 노력에 한계가 뻔하다. 그렇게 해서는 파견 대가에 대한 용역업체의 부당한 착복을 앞으로도 못 막을 것이다. 영세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 간 대결이라는 잘못된 구도를 결국 바꿔내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오늘의 경제구조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회복에 실보다는 득이 될 수 있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최저임금 결정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경제에서 최저임금은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사업장의 임금 수준을 사실상 정하는 역할을 하며 소득분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관련 연구에서는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이 분배 개선에 기여했음을, 그리고 2020년 낮은 인상률에 따른 최저임금의 사실상의 정체가 코로나 경제위기와 겹치면서 불평등 심화의 한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성장, 물가상승, 분배 개선 목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산입범위가 확대된 효과만 따져도 최소 8.9%의 인상률이 필요하다는 최근 분석 결과 역시 시사점이 있다. 그렇다면 위기로부터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양극화 추세를 제어하기 위해서도 최저임금을 충분한 폭으로 인상하는 편이 바람직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자리안정자금과 같은 보완책에 재정 투입을 아껴서는 안 되며 구조 개혁으로 지체 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회복에 실보다는 득이 될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인근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하기 위해 도로로 나서고 있다. 2021.07.03ⓒ김철수 기자

최저임금의 충분한 인상으로 근본적인 경제구조 개혁의 물꼬를 트자

오늘 주류 정치세력들은 오직 권력의 교체나 유지에만 관심을 가지며 개혁 과제는 등한시한 채 노동자 민중보다는 실체를 알 길 없는 중도층을 끌어온다고 여념이 없다. 故장덕준 어머니의 외침처럼 노동자들이 개혁을 요구하면 그들은 기다리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그들에게는 노동자들보다 착취구조의 지배자들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의 충분한 인상을 실현시켜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압박해낼 수 있는 것은 민주노조운동뿐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불퇴전의 결의로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시켜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의 목소리를, 구조개혁을 압박하는 힘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 들어설 정부가 시민사회의 압력 속에 우리 경제의 대개혁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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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된 정세 속에 나타난 정치군사동향

[개벽예감 451] 긴장된 정세 속에 나타난 정치군사동향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07/0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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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국회의원 76명이 발표한 엉터리 성명

2. 엉터리 성명에서 드러난 사실왜곡

3.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무의미한 까닭

4. 14억 중국 인민이 쌓아올린 강철의 만리장성

5.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증강개편되었다

 

 

1. 국회의원 76명이 발표한 엉터리 성명

 

2021년 7월 1일 국회의원 76명은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오는 8월 하순에 강행하지 말고 연기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날로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겉만 슬쩍 훑어본 것이다.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는 사람들은 그런 엉터리 성명은 차라리 발표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혹평할 것이다. 그들이 모처럼 발표한 성명을 왜 엉터리라고 혹평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석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성명에서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지 않고, 연기하라고 촉구했다. 한미련합군사훈련은 일시적으로 연기되었다가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영구히 중단되어야 하는데도, 그들은 연기하라고 촉구하는 엉터리 성명을 발표했다. 2021년 5월 18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기자회견에서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영구히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미국의 제국주의침략전쟁연습이기 때문이다. 미국군은 선제타격으로 조선인민군을 제압하고, 평양으로 진격하려는 작전계획에 따라 북침공격을 연습하면서도 자기들의 침략전쟁연습을 방어적인 군사훈련이라고 위장해놓았다. 위장을 벗겨내면, 태평양을 건너온 제국주의군대가 사회주의국가를 침략하려는 전쟁의 침략적 성격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한국군은 제국주의점령군 사령관의 작전통제에 따라 제국주의침략전쟁연습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가는 것이 한미련합군사훈련의 위장 속에 은폐된 진상이다. 

 

그런데 만일 미국군이 자기 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훈련을 자기 영토 안에서 자기들끼리 하고, 한국군도 미국군과 연합하지 않고 독자적인 군사훈련을 한다면, 누구도 그런 군사훈련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군이 태평양을 건너와 다른 나라 영토를 점령하고, 도발적인 핵공격연습을 벌이면서, 거기에 한국군을 끌어들이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평화파괴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미국군이 한국군을 끌어들인 제국주의침략전쟁연습을 한 해에도 몇 차례씩 감행하면서 조선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위협해왔으므로, 조선인민군도 그에 대응하여 ‘남조선해방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이 이처럼 험악해졌는데도, 국회의원 76명은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지 않고, 그 훈련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라고 촉구했다. 만일 그들이 성명에서 한미련합군사훈련을 무기한 연기하라고 촉구했다면, 비판을 받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냥 연기하라고 촉구했으니 엉터리 성명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국회의원 76명이 발표한 성명에 “훈련의 연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규모라도 축소해야한다”고 서술되었다는 사실이다. 연기하라는 요구조건마저 뒤로 물리고, 규모를 축소하여 실시해도 좋다고 했으니, 이건 또 무슨 역겨운 소리인가. 그들이 규모를 축소하여 실시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한미련합군은 규모를 축소한 북침전쟁연습을 2018년부터 계속해오고 판이다. 국회의원 76명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북침전쟁연습의 규모라도 축소해야 한다고 횡설수설했으니 이처럼 무식한 소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 이 사진은 2021년 7월 1일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의원들이 한미련합군사훈련의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성명에서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지 않고 연기하라고 촉구했다. 한미련합군사훈련은 일시적으로 연기되었다가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영구히 중단되어야 하는데도, 그들은 연기하라고 촉구하는 엉터리 성명을 발표했다. 7월 3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연기하라고 촉구한 그 성명을 거부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2021년 8월 하순 미국은 한미련합군사훈련을 강행할 것이고, 그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더욱 험악하게 변모될 것이다.  


 

2. 엉터리 성명에서 드러난 사실왜곡

 

주목되는 것은, 국회의원 76명이 발표한 성명에서 사실왜곡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엉터리 성명이 한 술 더 떠서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엉터리 성명에서 드러난 사실왜곡은 다음과 같다.    

 

1) 성명에는 2021년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가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인 의구심을 해소하고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올 커다란 명분을 제공한 것이라 할 만하다”고 서술되었다. 사실왜곡도 분수가 있지, 사실을 그 정도로 심하게 왜곡하면 괴담으로 된다. 

 

사실확인 - 나는 2021년 5월 24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2021년 한미정상회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파국촉진회담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비판의 근거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이행해야 할 비핵화 의무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조선의 핵억제력만 제거하려는 ‘강도적 요구’를 여전히 반복했다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미국과 한국이 정책공조로 조선에 대한 압박강도를 더욱 높이려는 방도를 합의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1일에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이 그처럼 파국을 촉진하는 요인을 안고 있었는데도, 국회의원 76명은 한미정상회담 합의가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인 의구심을 해소하고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올 커다란 명분을 제공한 것이라 할 만하다”고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2) 성명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6월 초 대화와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 천명한 것”은 “한미정상회담 합의 이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북한도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왜곡도 분수가 있지, 사실을 그 정도로 심하게 왜곡하면 괴담으로 된다.    

 

사실확인 -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6월 17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제3일 회의에서 바이든 정부의 대조선정책동향을 “상세히 분석하시고 금후 대미관계에서 견지할 적중한 전략전술적 대응과 활동방향을 명시하시였”으며, “우리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리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여 있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되여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조미대화와 조미대결에 다 준비되어야 하며 특히 조미대결에 더욱 빈틈없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김정은 총비서의 발언은 “대미관계에서 견지할 전략전술적 대응과 활동방향”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대미정책의 일반적인 원칙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총비서가 언급한 대미관계의 전략전술과 활동방향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의원 76명은 대미정책의 일반적인 원칙에 관한 김정은 총비서의 언급을 “한미정상회담 합의 이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북한도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실을 왜곡했다.  

 

3) 성명에 따르면, 2019년 2월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오늘까지 남북관계가 “다시 대결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고 ‘불안한 평화’를 유지해온 이유는 한미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앞세우고, 북한의 격렬한 반발과 군사적 도발을 초래할 정치군사적 조치만큼은 극구 자제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왜곡도 분수가 있지, 사실을 그 정도로 심하게 왜곡하면 괴담으로 된다.   

사실확인 - 한국과 미국이 조선의 “격렬한 반발과 군사적 도발을 초래할 정치군사적 조치를 극구 자제해왔다”는 말이 황당한 거짓말로 들리는 까닭은, 미국에서 공화당 정부가 민주당 정부로 교체된 것과 무관하게 대조선적대행동이 변함 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2020년 9월 15일 미국에서 출판된,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의 책 ‘격노(Rage)'에 따르면, 2017년 5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에 설립된 코리아임무쎈터(Korea Mission Center)는 미국 대통령의 승인에 따라 “조선의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한 은밀한 행동을 계획했다”고 한다. 2017년 9월 18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주한미국군기지 안에 코리아임무쎈터 지부를 창설하고, 그 지부에 정보요원 수 십 명을 파견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은밀히 준비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참수작전준비‘를 추종하여 2017년 12월 1일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이른바 ’참수부대‘를 한국군 내부에 창설했다는 사실이다. 한미련합군은 미국 합참본부가 수립한, ’작전계획 5015‘라는 명칭으로 위장한 ’참수작전계획‘을 해마다 연습해오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험악해졌는데도, 국회의원 76명은 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이 조선의 “격렬한 반발과 군사적 도발을 초래할 정치군사적 조치를 극구 자제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사실왜곡을 괴담 수준으로 더 악화시킨 것이다.       

 

4) 성명에서 국회의원 76명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연기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강력한 명분을 제공함과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중재력을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환상이다. 

 

사실확인 -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조선은 오랜 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4대 선결조건을 언명해왔다. 조선이 미국에 제시한 4대 선결조건은 한미련합군사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감행하는 ‘참수작전연습’을 영구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세 가지 선결조건이 더 있다. 그것은 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뒤집어엎으려는 체제전복공작도 영구적으로 중단해야 하고, 조선의 국가경제를 붕괴시키려는 대조선제제조치도 전면적으로 중단해야 하고, 조선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비렬한 인권공세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은 미국이 4대 선결조건을 해결하는 것을 가리켜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조선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전에는 조미협상이 재개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부터 완전히 철회해야 한다는 조선의 견해는 2019년 이후 오늘까지 여덟 차례나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19년 10월 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

2019년 11월 18일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담화

2019년 11월 18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 담화

2020년 6월 12일 리선권 외무상 담화

2020년 7월 4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

2020년 7월 10일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당시 직책) 담화

2021년 3월 17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

2021년 5월 2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 담화 

 

이처럼 조선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부터 철회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한 두 차례도 아니고 무려 여덟 차례나 반복적으로 밝혔는데도, 이번에 성명을 발표한 국회의원 76명은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것은 조선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문재인 정부의 중재력을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이런 허망한 예상은 국회의원들을 환상에 빠뜨리게 된다.

  

▲ 이 사진은 2021년 5월 21일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 직후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한미정상회담은 협상이 이미 파산된 조미관계를 더 심한 파국으로 몰아가는 위험한 요인을 안고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국회의원 76명이 발표한 성명은 한미정상회담 합의가 비핵화 협상에 대한 조선의 근본적인 의구심을 해소하였다느니, 조선이 비핵화 협상에 나올 커다란 명분을 제공한 것이라느니 하면서 사실을 왜곡했다.  


 

3.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무의미한 까닭  

 

이번에 성명을 발표한 국회의원들만 현실을 잘못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현실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2021년 7월 2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21일에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재개를 제의하는 친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가 제의한 회담방식은 화상회담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친서는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한 쪽에서는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참수작전’을 연습하고, 다른 쪽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는 것은 정신분렬증에 걸린 행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3월 15일과 3월 30일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발표한 담화를 쉽게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두 담화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부정적인 대북발언을 늘어놓은 문재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고 비난하면서, 임기말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려면,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기 전에,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대북적대행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친서를 보냈어야 마땅하다. 대북적대행동을 중단한다는 것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작전임무를 맡은 ‘참수부대’를 해체하고, 북침전쟁연습을 영구히 중단하고,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의 거듭된 경고와 반대를 외면하면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대북적대행동을 계속하였고, 그런 행동에 분노한 북은 2020년 6월 남북공동련락사무소를 폭파해버렸다. 그로써 남북관계는 사상 최악의 파국에 빠지고 말았다. 남북관계가 2018년처럼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북관계를 파국에 빠뜨린 대북적대행동을 중단할 의사도 능력도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무턱대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으니, 북의 시각에서 보면 대북적대행동을 계속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재개를 제의한 것은 철면피하고 후안무치한 행태로 보일 것이다. 철면피하고 후안무치한 행태라는 표현은 2021년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행동을 비난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제의에 응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 이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풍산개 새끼들에게 젖병을 물려주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7월 3일 이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공개했다. 2018년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풍산개 한 쌍을 선물했는데, 그 풍산개 암컷이 이번에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았다. 하지만 요즈음처럼 정세가 극도로 긴장하고, 남측 내부에서 온갖 사회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이 격화되는 위기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풍산개 새끼들을 돌보는 사진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시급하고 막중한임무를 외면하고 망중한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사람들의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4. 14억 중국 인민이 쌓아올린 강철의 만리장성

 

2021년 7월 1일 중국 베이징 텐안문광장에서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광장에 운집한 70,000여 명 군중 앞에서 연설하였다. 역사적인 연설은 1시간 5분 동안 지속되었다. 시진핑 총서기의 연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만해방전쟁과 중국의 완전통일을 실현하려는 중국공산당의 강렬한 의지다. 여기에 인용한 연설의 한 대목에서 그런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대만문제를 해결하고, 조국의 완전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초지일관한 역사적 임무이며, 중화민족 전체의 공동숙원이다. 우리는 그 어떤 대만독립계략도 분쇄할 것이다. 국가주권과 영토보전을 수호하려는 중국 인민의 굳은 결심과 의지와 능력을 누구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시진핑 총서기가 연설에서 대만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하지 않고, 대만문제를 해결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대만문제를 비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대만문제를 비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대만해방전쟁을 의미한다. 또한 대만독립계략을 분쇄할 것이라는 강경한 어법도 대만해방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대만해방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의 완전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초지일관한 역사적 임무이며, 중화민족 전체의 공동숙원이라는 사실을 언명한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연설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국가주권과 영토보전을 수호하려는 중국 인민의 굳은 결심과 의지와 능력을 누구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대만해방전쟁준비가 완료되어 결정적 시기가 임박했다는 것을 자신 있게 천명한 것이다. 텐안먼광장에 모인 70,000여 명 군중은 시진핑 총서기가 위와 같이 말할 때, 그 발언을 지지하여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이 극적인 장면은 14억 중국 인민이 중국공산당의 대만해방전쟁의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연설에서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이 일어나면 무력개입을 감행하려는 미국과 일본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만일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하려는 망상을 품는다면,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아올린 강철의 만리장성에 부딪쳐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가 언급한 ‘철의 만리장성’이라는 상징어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준비를 완료하였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미일동맹군이 ‘강철의 만리장성’ 가까이 접근하려는 망상을 버리라는 엄중한 경고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가 베이징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각, 미국과 일본은 ‘강철의 만리장성’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보려는 도발행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2021년 7월 1일 일본 언론 <NHK>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육군과 일본 육상자위대는 일본렬도에 산재한 여러 군사기지들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날 일본 육상자위대 막료장 요시다 요시히데(吉田圭秀)는 “중국에 강한 우려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에 때를 맞춰 진행된 미일합동군사훈련의 목적이 중국의 내전(대만해방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그에 대한 무력개입을 준비하려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일동맹군은 지난 6월 30일부터 ‘오리엔트 쉴드(Orient Shield)'라는 작전명칭을 내걸고 합동군사훈련을 계속해왔는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7월 1일에 맞춰 합동군사훈련의 규모를 사상 최대로 확대시킨 것이다. ’사상 최대 규모‘라는 말은 ’오리엔트 쉴드‘ 미일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된 1985년 이후 36년 만에 가장 큰 규모라는 뜻이다. 

 

일본 언론매체는 그날 실시된 미일합동군사훈련이 사상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군사훈련에 동원된 양측 병력은 3,000여 명에 불과했다. 미일동맹군은 중국이 구축한 ‘강철의 만리장성’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한반도의 군사상황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 이 사진은 2021년 7월 1일 중국 베이징 텐안먼광장에서 70,000명 군중이운집한 가운데 성대히 진행된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역사적인 연설을 마치면서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그는 평소에 입던 양복이 아니라 중국혁명을 상징하는 닫긴옷을 입고 연단에나섰다. 이것은 중국혁명을 계승발전시키려는 중국공산당의 변함없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진핑 총서기는 연설에서 대만문제를 해결하고 중국의 완전통일을 실현하려는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임무와 중화민족의 공동의 염원을 역설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는 중국인민해방군 연합군악단이 세계혁명가인 인터내셔널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끝났다. 중국에서 진행된 당과 국가의 공식행사에서 인터내셔널가가 연주된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5.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증강개편되었다

 

2021년 7월 2일 <데일리 NK>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지난 7월 1일 연례적인 하기군사훈련을 시작했는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출판사가 발행한, ‘전쟁준비완성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켜 당의 승리적 전진을 무력으로 튼튼히 담보하자’라는 제목의 학습제강이 지난 6월 말 각 부대 정치부 선전원들에게 배포되었고, 그에 따라 지금 전군이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배포된 학습제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현 시기 조성된 대내외 정세 속에서 인민군대가 전쟁준비완성을 위한 훈련열풍을 일으켜 조선로동당의 승리적 전진을 무력으로 튼튼히 담보해야 할 무겁고도 영예로운 임무가 절박하게 제기되였다.”

 

“정세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무력통일관은 추호도 흔들릴 수 없다.”

 

“전쟁준비완성의 열풍을 일으켜 무력으로 적들을 쓸어버리고,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오늘 인민군대 앞에 나선 절박한 과업이다.”

 

“인민군 군인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제8차 당대회에서 인민군대 앞에 제시하신 전투적 과업을 높이 받들고 하루빨리 자체의 힘으로 최후결사전을 위한 전쟁준비완성에 계속 박차를 가함으로써 당과 혁명을 보위하는 전초병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가야 할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금 조선인민군은 ‘남조선해방전쟁준비’를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전쟁준비’를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 그들의 앞장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나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현대전의 승패가 미사일작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완성단계에 이른 조선인민군의 ‘남조선해방전쟁준비’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작전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최고사령관의 친솔무력으로 되었다. 조선인민군의 다른 군종들은 최고사령부의 명령과 총참모부의 명령을 받지만,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총참모부의 명령을 받지 않고 오직 최고사령관의 명령만 받는다. 

 

그런 전략군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21년 3월 19일 <데일리 NK>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전시연유(전시에 사용하려고 비축해놓은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받고, “모든 기동 및 발사체를 전시체계로 유지하면서”, 최고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받으면 언제든지 실전에 돌입할 수 있도록 “전시상황을 가정한 최적의 발사장소에서 실전을 가상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6월 29일 <데일리 NK> 보도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지난 6월 11일에 진행된 확대회의에서 전략군사령부의 지휘체계를 서해지구와 동해지구로 나누고, 그에 따른 공격 및 방어전략을 일부 수정하기로 의결했다고 한다.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만일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경우, 서해지구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국의 중국 공격을 익측에서 방어할 뿐 아니라, 대응타격으로 미국을 제압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구체적인 지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에 내린 것이므로, 총참모부는 미국의 중국 공격을 익측에서 방어하고, 대응타격으로 미국을 제압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게 되면, 서해지구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총참모부의 새로운 작전계획에 따라 미국의 중국 공격을 익측에서 방어하는 작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원래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방어를 하지 않고 공격만 하는데, 그런 전략군이 미국의 중국 공격을 익측에서 방어하려면 군사편제를 개편해야 하고, 방어무기를 보충해야 한다. 위에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1년 6월 11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전략군을 개편하기로 의결했고, 그에 따라 조선인민군 육해공군이 각각 운용하던 미사일부대 가운데 일부를 전략군으로 이전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운용하는 최신형 반항공미사일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 가운데 일부가 서해지구에 배치된 전략군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번개-6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되었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로씨야산 반항공미사일 S-400에 버금가는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 서해지구에 배치된 번개-6은 전시에 서해 상공으로 밀려드는 미국 해군의 미사일공격으로부터 조선의 서부지역과 중국의 동부지역을 방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조선인민군 육군이 운용하는 최신형 지대함순항미사일 금성-4 가운데 일부가 서해지구에 배치된 전략군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021년 3월 26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2020년 4월과 7월, 2021년 1월과 3월에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 시험발사가 각각 실시되었다. 금성-4는 해수면밀착비행으로 적함의 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는 최첨단 순항미사일이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2021년 10월 말까지 다른 군종에 배치된 무기와 병력을 전략군으로 이전, 재배치하고, 이전-재배치정형을 11월에 검열한 후, 증강개편된 전략군은 오는 12월 1일에 시작되는 동기군사훈련에서 새로운 작전을 연습할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대만해방전쟁을 앞둔 중국인민해방군도 당연히 방어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2018년 7월 27일 로씨야 <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로씨야에서 수입한 최신형 반항공미사일 S-400을 서해지구에 인접한 산둥반도에 배치였다고 한다. 산둥반도에 배치된 S-400은 전시에 서해 상공으로 밀려드는 미국 해군의 미사일공격으로부터 중국의 동부지역과 조선의 서부지역을 방어할 것이다. 

 

실전에서는 방어보다 공격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만일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게 되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총참모부의 새로운 작전계획에 따라 대응타격으로 미국을 제압하는 공격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공격전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고출력-고주파폭탄을 장착한 정밀타격미사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하여 모든 주한미국군기지들의 무장장비와 군사시설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것이다. 고출력-고주파폭탄(High-Powered Microwave Bomb)은 인명살상이나 시설파괴를 전혀 하지 않고, 적진의 무장장비와 군사시설만 마비상태에 빠뜨리는 압도적인 공격무기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고출력-고주파폭탄으로 주한미국군기지들을 모두 마비상태에 빠뜨리면, 200,000명에 달하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다종다양한 수송수단과 침투통로를 타고 진격하여 주한미국군기지들을 포위습격하고 미국군 장병 전원을 생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한편, 중국인민해방군도 전시에 미일동맹군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력량을 부단히 증강해왔다. 예를 들면, 전시에 동중국해로 출동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격침시키는 항모공격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한 것이다. 2021년 1월 21일 미국과학자련맹(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은 중국 동부 산둥(山東)성 칭저우(靑州)기지에 둥펑(東風)-26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자행발사대차 16대를 배치했다고 한다. 둥펑-26은 사거리가 5,000km에 이르는 항모공격 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은 전시에 둥펑-26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거점인 괌(Guam)을 타격할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해방전쟁준비가 완성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맞이하여 김정은 총비서는 시진핑 총서기에게 축전을 보냈다. 김정은 총비서는 축전에서 “조선로동당과 중국공산당은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오랜 투쟁과정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자랑스러운 친선의 력사를 수놓아온 진정한 동지이고 전우”라고 언명했다. 

 

1961년 7월 11일에 체결되어 오는 7월 11일 체결 60주년을 맞는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는 “체약 일방이 어떤 한 개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되었다.

 

▲ 이 사진은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여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된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세계 최대의 탄도미사일을 촬영한 것이다.이 세계 최대의 탄도미사일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운용한다. 최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이 임박하였다는 판단에 따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증강개편하기로 의결하였다. 전략군을 증강개편하는 작업은 2021년 안으로완료될 것이다. 조선의 '남조선해방전쟁'도 중국의 대만해방전쟁과 마찬가지로 올해 안에 준비가 완료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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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7-03 17:47수정 :2021-07-03 17:53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⑩ 어린이를 평가하는 이중잣대

아이를 ‘부족한 인간’으로 얕보지만
‘성장 중’인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어른들 편리한 대로 행동하기 요구
 
윌리엄 호가스, &lt;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gt;, 1742년, 캔버스에 유채, 영국 내셔널 갤러리.
윌리엄 호가스,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1742년, 캔버스에 유채, 영국 내셔널 갤러리.
 

13살에 데뷔한 가수 보아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소개했던 일화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리포터가 “티브이(TV)에 나오면 13살다운 생활은 잘 못 할 것 같다”고 질문하자 13살 보아는 “아쉽다”면서도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 한마리 토끼라도 잡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 이상 야무진 대답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게 바로 문제였다. ‘뭔 애가 말을 저렇게 하냐’, ‘애늙은이 같다’는 악성 댓글이 무수하게 달린 것이다. 33살의 보아는 과거의 영상을 보며 “욕을 많이 먹었다. 저 이후로 내 입으로 ‘두마리 토끼’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상처받았을 어린 시절의 내게 약간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악플 테러 이후 그녀는 ‘보아답게’가 아닌 ‘어린이답게’ 행동해야 했다는 얘기다.

 

‘어린이답게’란 무엇일까? 어른이 정한 테두리에 있으라는 말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어수룩할 정도의 순진함을 기대하는데, 그 기대의 테두리를 넘어서면 당장 ‘어린이스럽지 않다’는 판결이 내려진다. 대체로 어른은 어린이를 독립 개체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 눈에 비친 어린이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기에는 미숙한 존재이고, 어른의 소유물이며, 과도기의 인간일 뿐이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도 책 <어린이, 세번째 사람>에서 다음과 같이 짚었다. “어린이는 아직 성장을 완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율성과 독자적 정체성을 부정당하면서 ‘나중에’ 말하라거나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크면 다 해주겠다는 말,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어린이의 힘을 유예시키고 창조적 도전을 저지하려는 순간에 만능 칼처럼 사용된다.” 이런 상황이니 ‘어린이답게’라는 말은 ‘부족한 인간’답게 행동하라는 말과 다름없지 않을까.

 

상류층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몸 압박하는 어른 옷 그대로 입혀
‘얌전히 있으라’고 한 관습 보여줘
 
아이의 몸을 ‘규율’한 코르셋과 슈트
 

새삼 놀라운 것은 ‘부족한 인간’이라며 어린이들을 얕보았던 어른들이, 정작 어린이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할 때는 어른이나 다름없게 대했다는 점이다. ‘성장 중의 인간’인 어린이는 모든 것이 어른 중심으로 맞춰진 사회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신이 편리한 대로 어린이들을 대해왔다. 가슴엔 순수한 동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행동은 어른처럼 하기를 어린이에게 요구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아동기’라는 개념도 탄생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의 책 <아동의 탄생>에 따르면 사회적 제도로서의 아동기는 18세기에야 비로소 발전했다. 즉 핵가족과 근대 학교 교육이 확립되기 전, 아동기는 생애주기에서 성인 기간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당시 아이들의 복장은 그것을 명확히 입증해준다. 이 시절 아이들은 같은 신분의 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처럼 옷을 입었다.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의 1742년 작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에서 ‘아동복’ 개념이 없던 시절의 어린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은 영국 왕 조지 2세의 전담 약사였던 대니얼 그레이엄의 네 자녀다. 가운데 두 딸은 당시 만 9살의 헨리에타 캐서린과 만 5살의 애나 마리아. 하지만 두 아이는 마치 성인 여성처럼 고래 뼈로 만든 딱딱한 코르셋을 입고 부풀린 치마 아래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다. 소년도 마찬가지다. 오른쪽에 버드 오르간(bird organ)을 가지고 놀고 있는 만 7살의 리처드 로버트는 조끼를 받친 꽉 끼는 슈트를 입고 스타킹을 신고 있다. 심지어 왼쪽에 황금빛 새 장식이 있는 유모차를 타고 있는 아기마저도 뻣뻣한 옷을 입고 있다. 아이들은 과연 이 차림으로 편하게 몸을 움직이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을까? 아니, 옷은 아이의 행동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규율관 역할을 했다. 아이들에게 옷은 ‘얌전히 있으라’고 경고하는 어른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에 따라 어른 옷을 입은 채 성장한 어린이들은 여러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옷이 몸을 압박해서 음식 소화에 어려움을 겪었고, 여아의 경우 코르셋 마찰로 피부에 상처를 입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 갈비뼈와 척추가 변형되었다. 이런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른 옷을 아이에게 입히는 관습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왜냐하면 이 불편한 옷은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사회적 신분과 계급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은 당대 영국 상류층이 아이들을 부와 성공을 과시하는 증표로 삼은 흔적인 셈이다.

 

‘버찌를 든 소년’ 가난한 주인공
설탕 도둑질 탄로나 세상 등졌지만
어머니는 아들 목맨 밧줄 팔 생각만
 
착취와 매질도 허용된 ‘작은 어른’
 

그렇다면 빈곤계층 아이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작은 어른’으로 여겨졌다. 어른처럼 한명의 인간으로 존중받았다는 게 아니라, 어른처럼 노동해야 했다는 의미다. 가난한 집 아이의 삶은 성인 노동자로 성장하기 위한 ‘도제살이’나 다름없었고, 아이도 스스로를 도제 단계를 거치게 될 미래의 어른으로 보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1918년 소비에트 가족헌장은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아예 입양금지 조항을 만들기도 했다. 러시아 농민들이 아이를 입양 형식으로 데려와서 노동력으로 가혹하게 부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 시대 공장의 노동자로 취직한 아이들의 상황은 더 비참했다. 자본가들은 값싼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아동의 고용을 더욱 선호했고, 그 착취의 현장에서 학대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당시 아이들은 심한 경우 하루 최대 19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식사 시간을 포함해 단 1시간만 쉴 수 있었다. 지각을 하면 일당이 4분의 1로 줄었으며, 매질도 견뎌내야 했다.

 

에두아르 마네, &lt;버찌를 든 소년&gt;, 1858년께, 캔버스에 유채, 포르투갈 굴벤키안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 <버찌를 든 소년>, 1858년께, 캔버스에 유채, 포르투갈 굴벤키안 미술관.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그림 <버찌를 든 소년>에 등장하는 알렉상드르도 밥벌이에 나선 아이였다. 그림 속 알렉상드르는 체리 한 다발을 받아들고 돌담에 기대어 해맑게 미소 짓고 있지만, 실제 알렉상드르의 생활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알렉상드르는 자신의 입을 덜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아이였다. 마침 마네의 화실이 집 근처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알렉상드르는 마네의 일을 도우며 돈을 벌게 되었다. <버찌를 든 소년>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붓을 씻거나 심부름을 하던 알렉상드르는,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부르주아였던 마네의 화실에 넘쳐나던 설탕과 음료수를 맛보고 싶은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이를 몰래 훔친 것이다. 도둑질은 금세 탄로 났고, 마네에게 모질게 야단을 맞은 알렉상드르는 그만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마네의 화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죄의식에 시달리며 주검을 끌어내려야 했던 마네는 경찰의 심문을 받은 후 알렉상드르의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이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알렉상드르의 어머니는 슬퍼하기보다는, 아이가 목을 매는 데 사용한 밧줄을 손안에 넣는 데 혈안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돈이 되는’ 이 밧줄을 여러개로 자른 다음, 이웃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목을 매단 밧줄은 행운을 가져온다’는 미신이 당시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상드르의 어머니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알렉상드르를 특별히 미워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당시 빈곤계층 아이들은 가정에서 그 정도의 위치였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상당수 어린이가 성인이 되기 전 목숨을 잃었고, 부모는 이를 가슴 아파했지만 곧 다른 자식을 갖게 되면서 쉽게 잊곤 했다. ‘일종의 익명 상태’, 이것이 바로 당시 어린이가 맞닥뜨리는 현실이었다. 피터 스턴스의 책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는 어른들이 주도하는 사회 속에서 어린이들의 지위가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촘촘히 기록돼 있다. 생산력이 떨어지는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식량부족을 이유로 살해되거나 죽도록 방치됐고, 원거리 교역이나 대륙 간 교류가 확대되면서 노예로 팔려 나갔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소년병으로 분쟁지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성인(成人)이란 낱말부터가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니 역으로 생각하면 성인이 되기 전 어린이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오죽했을까.

 

아이를 왕처럼 키우는 지금은?
 

물론 요즘 어린이는 옛날 어린이의 처지와 같지 않다. 누군가 ‘어린이를 사람답게 대접하라’고 말한다면, 많은 이들이 코웃음 칠 것이다. 요새 아이들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버르장머리가 없을 정도인데, 무슨 어이없는 말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장 호가스, 마네의 그림 속 아이들과 요즘 아이들의 상황을 비교해봐도 그렇다. 현대의 아이들은 신체 발달에 맞춘 ‘아동복’을 입고 자라며, 만약 어른이 아이에게 힘든 노동을 시키면 바로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왕처럼 키운다’는 우리 사회에는 희한하게도 어린이를 비하하는 표현이 넘쳐난다. ‘잼민이’, ‘급식충’이라는 단어는 어린이를 업신여기는 전형적 표현이고, 초보자 혹은 입문자를 일컫는 ‘주린이’, ‘캠린이’ 등 ‘○린이’라는 표현은 어린이란 본래 어설프며 서투른, 덜된 존재라는 속뜻을 담고 있다. 심지어는 어린이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노키즈존’도 곳곳에 존재한다. 수심 깊은 수영장처럼 안전을 위해서 아이의 출입을 막는 게 아니라, 단지 어른들의 ‘기분권’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어린이의 출입을 통제한다. ‘노키즈존’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이미 ‘키즈(어린이)의 존재 자체가 민폐’라는 폭력적 시선이 읽힌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어린이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13살 보아는 비난받았는데, 또 ‘어린이스럽다’는 이유로 어린이는 문전박대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어른들은 옛날과 달라서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지’라고 하면 과연 그 말이 신빙성 있을까? 어쩌면 어른처럼 ‘되바라지지’ 않으면서도 어른처럼 ‘착하게 단정히 있는’ 아이들만 존중하겠다는 뜻은 아닐까.

 

작가 박선영은 책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책임(감)을 뜻하는 영어 단어 ‘리스폰시빌리티’(Responsibility)가 응답(response)과 능력(ability)의 결합으로 이뤄진 합성어라는 사실은 절묘하다. 육아서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반응하는’(responsive)인 이유이기도 하다.” 박선영의 말처럼, 어른들은 아이에게 반응해야 한다. 단, 어른 중심의 잣대를 버리고, 아이의 관점에서 말이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우주이지만, 아직 어른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어른의 ‘책임’이라면, 이제 어른들이 먼저 ‘응답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관용과 기다림을 자양분 삼아 괜찮은 어른으로 차츰차츰 자라날, 그런 ‘작은 인간’들의 목소리에.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3주에 한번 다룬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1990.html?_fr=mt1#csidx6986bf5010236cb80bcea35724409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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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으로 살다 한 발 헛디뎌 고시촌으로 돌아온 어느 중년의 이야기

[6411 사회극장 ④] 고시원에 사는 중년 남성들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노회찬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협력 운영하고 소셜 디자이너 '두잉'이 진행하는 '6411 사회극장'입니다.

 

'사회극'은 집단이 공유하는 문제를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에 기초해 역할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인식의 개선과 확산 때로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합니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합니다.

 

'6411 사회극장'을 준비한 우리는 '사회극'을 통해 올 한해 여성,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조명하려 합니다. 이를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 합니다.


 

어쩌면 당사자들의 시선 속에 그들의 삶을 개선할 소중한 단서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네 번째 기록은 고시원에 사는 중년 남성들과 함께한 사회극입니다. 

 

중년이 돼 돌아온 고시촌...1.5평 방에 공용 부엌도 없어


 

장주영(가명, 60)씨는 2년 전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으로 돌아왔다. 그는 20대 때 5년 동안 이곳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일방향 통행길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윗동네에는 옛 고시원들이 남아있다. 사는 사람은 바뀌었다. 전국 고시원 평균 월세는 33만 4000원(2018년 국토교통부 실태조사), 사법시험이 폐지 된 뒤 이곳엔 그 평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40~60대 독거 중년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주영 씨는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 원인 1.5평짜리 방을 잡았다. 이불을 깔려면 의자를 책상 위로 올려야 했다. 공용부엌도 없었다. 화기는 절대 금지였다. 밥은커녕 라면도 끓여먹을 수 없었다. 40년 전엔 고시원에서 계란프라이와 소시지도 줬는데 다 사라졌다. 10여명이 사는 한 층에 화장실 하나, 샤워기 한 대, 세탁기 한 대가 다였다. 에어컨은 복도에만 있었다. 여름엔 다들 방문을 열고 살았다.


 

대학동 고시촌으로 돌아온 뒤 6개월 동안 그는 고시원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아팠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하지정맥류…. 당뇨 탓에 식사조절을 해야 했지만 엄두도 못 냈다. 한끼에 3500원 정도 하는 식당에서 사먹거나 사단법인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에서 공짜 점심을 먹었다. 점심과 함께 받은 빵은 저녁을 위해 남겨뒀다. 몸뿐 아니라 마음을 다쳤다. 중산층에서 한발 헛디디니 허방이었다. 시작은 부인과 갈등이었다. 함께 학원을 운영했다. 재산은 모두 부인 명의였다. 그는 맨몸으로 집을 나왔다. 그 6개월 동안 그는 자살을 생각했다. 이혼하지 않은 상태고 부인이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도 받을 수 없었다. "창피해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고시촌으로 돌아오기 전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해피인'에서 자꾸 찾아왔다. 이들을 도와 마을 전시회를 꾸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하다보니 사는 재미가 살아났다. 2년 전엔 '해피인'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이 20~30명이었는데 그새 100명으로 늘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다. 40년 전 고시공부를 하던 '형님'은 70대가 된 지금도 고시원에 살았다. 사람들이 보였다.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여기 아니면 더 갈 곳이 없다는 건 같았다. 혼자 살며 대체로 몸이 아프다는 점도 비슷했다. '수급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노인도 청년도 아닌 이들은 복지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지난 4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윗동네에 '참 소중한...' 센터를 열었다. 공용부엌이 없는 고시원 거주자들이 이곳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탁구도 쳤다. '참 소중한...' 센터 이영우 신부 등과 함께 주영 씨는 '소행모(작은 행복을 모으는 모임)'를 꾸렸다. 윗동네 주민 20여 명이 참여한 자조모임이다. 함께 나무 상자를 만들고 꽃을 심어 꽃길을 만들었다. 사진 강의도 같이 들었다. 연말엔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대학동 기록을 남기려고 소식지 만들려고 한다.

 

▲ 서울 시내의 한 고시원. ⓒ연합뉴스

"갈 곳 없어 왔지만 이곳이 제2의 고향"
 

 

지난 6월 24일 주영 씨는 '참 소중한...' 센터에서 열린 '6411 사회극장'에 참여했다. 그를 포함해 윗동네 주민 8명이 모였다. 참여자들은 자신과 이웃의 모습을 담은 가상의 주인공을 상상해 즉흥극을 만든다. 그 즉흥극 안에 기쁨과 슬픔, 바람을 담는다. 이 '상상 놀이'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 최대헌 '심리상담 청자다방' 대표,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주영 씨는 홍길동이란 인물에 자기 삶을 담았다.


 

"제 이름은 홍길동이에요. 고시촌이 만들어질 초창기에 이 동네에 살았어요. 몇 년 전에 인생의 쓴 맛을 보고 돌아왔어요. 오갈 데가 없었어요.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저는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해요."

참가자들은 각각 주인공을 떠올렸다.
 

 

"제 이름은 이도령. 12년 전에 이곳에 왔어요. 저는 몸이 굉장히 안 좋아요."


 

"제 이름은 갑돌. 나이는 60대 초반이에요. 고시 공부하러 들어왔다 여기 눌러 앉게 됐어요. 고시원 일 봐주고 잡일도 하면서 살았는데 노후가 걱정이에요."


 

"김호탕이라 불러주세요. 나이는 50대 초반이라고 하죠. 이름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요. 오래 전에 사시를 준비했는데 1차 붙고 2차 떨어지고를 반복했어요. 돈 떨어지면 지방 내려가 돈 벌어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거의 10년 한 거 같아요. 나이가 드니 아예 이곳을 떠나 지방으로 가야할지 고민 중이에요."

 

"순돌이에요. 40대 중반이고요. 사장이 임금을 안주고 날랐어요. 돈이 없어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어요."

 

"막우입니다. 50대 초반이고요. 여기 온 지 3년 됐어요. 30대까지 잘 나갔어요. 40대에 학원을 차렸는데 무리하게 확장하다 접게 됐어요.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나이가 드니 버티기 힘들더라고요. 그 뒤에 보험, 부동산 중개업 일도 했어요. 경제적 문제가 풀리지 않아 주거비가 저렴한 이곳에 왔어요."


 

"최 씨라고 불러주세요. 40대 중반이고요. 고향이 신림동이에요. 사업했는데 동업자가 돈을 갖고 날라 쫄딱 망했어요."


 

"60대 후반입니다. 이름은 이선비고요.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나버렸어요. 다른 데선 방을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버스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 여기 내렸어요. 방값이 정말 싸더라고요.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려고요. 동네 사람들하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사회자는 참여자들에게 누구 얘기를 더 듣고 싶은지 물었다. 다들 주영 씨를 가리켰다. 주영 씨의 홍길동이 오늘 사회극의 주인공이 됐다.


 

"인생의 쓴맛, 그건 죽을 맛이었어요.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였죠. 여기 다시 온 날, 그날 기억이 없어요. 날씨가 어땠는지 그런 걸 기억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어요. 아들 둘과 아내가 있는데 관계가 깨졌어요. 형이 한 분 계시고요." 

 

홍길동은 어느새 주영 씨 자신이 됐다.


 

사회자는 주영 씨에게 아이들과 아내, 형,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자신의 역할을 맡을 참여자를 뽑아보라고 했다. 무대에 주영 씨를 포함해 6명이 섰다. 사회자는 주영 씨에게 "이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어떻게 서 있을 거 같냐"고 물었다. 주영 씨는 자기를 이해하는 작은 아들 역할을 맡은 이를 자기를 바라보도록 세웠다. 주영 씨와 사이가 틀어진 큰 아들은 반쯤 뒤돌아 세웠다. 아내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 형님은 그를 바라봤다.


 

"이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 같아요?"(사회자)


 

"보고 싶지 않아."(아내), "건강하기만 하세요"(큰아들), "나중에 제가 모실게요"(작은 아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니까 나아질 거야."(형님)


 

사회자는 그에게 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착잡한데 이제 덤덤하기도 해요. 팔자려니 생각해요. 그런데 제 팔자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저기 서 있는 옛날의 나는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할 거 같아요?"(사회자)


 

"참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살아가는 모습이 괜찮아 보여. 잘 될 거야."


 

사회자는 주영 씨에게 혼자 방에 있는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1~2년 뒤에 내가 원하는 모습은?"(사회자)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일하는 게 즐거워요. 그 순간만큼은 제 존재감을 느껴요"


 

▲ 6월 24일 '참 소중한...' 센터에서 열린 6411 사회극장 네 번째 시간. ⓒ프레시안(최용락)

"건강, 취업 등 문제 복합적...종합지원센터 만들어줬으면"


 

즉흥극의 상황이 바뀌었다. 참여자들은 주민센터, 주거복지센터, 보건복지부 공무원 등의 역할을 맡았다. 그들에게 대학동 독거 중년 남성 대표로 홍길동 곧 주영 씨가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다.
 

 

"공유부엌, 공유작업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여기 주민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복합적으로 안고 있어요.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건강문제, 취업문제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이 동네 75%는 1인가구인데 그분들은 목소리를 잘 못내요. 위쪽 동네가 쪽방촌이 돼 동네 질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인식을 좀 바꿨으면 해요. 여기를 좀 더 발전시키도록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사회극장이 끝날 때쯤 참여자들은 포스트잇에 무엇이 달라지길 바라는지 써서 붙였다.
 

 

'교통(일방통행이고 길이 좁다)', '소음', '공동생활 에티켓(야간에 세탁하지 않기 등)', '독거 가구끼리 교류', '종합지원센터'….


 

홍길동의 큰 아들 역할을 맡았던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상의 삶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홍길동이 저희 아버지랑 비슷한 상황인 거 같아요. 제가 아버지를 완전히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저랑 아버지 사이엔 벽이 있어요. 홍길동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돌아섰다고 그게 진심은 아니라는 걸요."


 

'참 소중한...' 센터 앞에는 자조모임 '소행모'에서 꽃을 심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다. 그 나무 상자에 주영 씨가 심은 금잔화는 곧 만개할 테다. 한번 자라면 확 퍼져 그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2.1평 이하 공간에서 한 달 137만 원으로 사는 고시원 거주자


 

- 한국도시연구소, <서울시 고시원 실태조사>


 

고시원의 주거 환경은 어떨까. 고시원에는 어떤 사람이 살까.


 

지난해 4월 서울시 연구 용역을 받아 한국도시연구소가 작성한 <서울시 고시원 거처상태 및 거주 가구 실태조사 통계보고서>에 대략적인 답이 나와 있다. 연구진은 서울 5807개 고시원, 15만 5379가구 중 661개소 2102개 가구를 표본으로 추출해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 10가구 중 5가구는 2.1평 이하 공간에 산다. 월 평균 가구소득은 137만 1000원이다.

 

고시원 주거환경...좁고, 환기 안 되고 소음, 악취도 
 

 

고시원 가구의 주거 전용면적은 7제곱미터 미만이 53.2%로 가장 많다. 7~10제곱미터 넓이 공간에 사는 가구 비율은 29%, 10제곱미터(3평) 이상 거주 가구 비율은 17.8%다. 10명 중 5명이 두 평 이하, 8명이 세 평 이하 공간에 사는 셈이다.


 

고시원 생활환경을 묻는 5점 척도 주관적 인식 평가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도 비좁음(3.1)이다. 그 뒤는 채광(3.42), 소음(3.53), 환기·악취(3.87) 등 순이다.


 

'창문이 없거나 작아 빛이 잘 들지 않고 환기가 되지 않으며, 얇은 벽 탓에 옆 방 소리가 들리는 좁은 방'이라는 고시원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는 결과다.


 

고시원 거주자들이 이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2.5시간이다. 가구주의 연령대가 높고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이 시간은 길어진다. 100만 원 미만 가구는 하루 중 14.8시간, 60세 이상 가구는 하루 중 15.5시간을 고시원에서 보낸다.


 

고시원 거주자...소득 낮고, 남성, 30대 미만이 높은 비율


 

고시원 거주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37만 1000원, 평균 월세는 33만 5000원이다. 소득의 25% 정도를 월세로 쓰고 있는 셈이다. 

소득 분포를 보면, 고시원 거주 가구 중 37.2%가 100만 원 미만을 번다. 이밖에 100~200만 원 36.6%, 200~300만 원 18.1%, 300만 원 이상 5.7% 등이다. 고시원 거주자의 근무형태는 임시 일용 노동자 34.1%, 상용 노동자 16.8%, 자영업자 3.2% 순으로 나타났다. 거주자 중 44.7%는 무직이라고 답했다.
 

 

고시원 거주자의 성별은 남성이 76.6%로 여성(23.4%)보다 많다. 연령대로 보면 30대 미만이 29.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60세 이상 19.8%, 50~59세 19.6%, 40~49세 15.9%, 30~39세 14.7% 등이었다.

 

가족과 연락이 단절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가구도 꽤 됐다. 고시원 거주 가구 중 가족, 친척과 연락을 끊고 산다고 답한 비율은 20.8%다. 20.9%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의 질환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계속 살겠다 83.1%, 절반은 경제적 이유...주거복지, 사회복지 절실


 

고시원 거주 가구 중 83.1%는 고시원에서 '계속 살겠다'고 답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경제적 이유를 댔다. 주거비가 저렴해서 30.3%, 임차보증금 마련이 어려워서 22.9% 등이다. 통근통학에 좋은 위치라서 계속 고시원에 살겠다고 답한 사람은 22.9%였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자신이 바라는 주거복지로 공공임대주택 20.7%, 월세 보조 10.4%, 전세자금 대출 5.9% 등을 꼽았다. 고시원 거주자들이 바라는 사회복지는 소득보조 48.2%, 일자리 지원 32.3%, 의료 지원 16.5% 순으로 나타났다. 

 

최용락 기자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011611006895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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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을 수 없다" 노동자 8천명 도심 기습집회 강행한 이유

[현장] 7.3전국노동자대회, 서울 여의도 대신 종로 일대서 진행... 경찰, 집회 주최자 수사

21.07.03 18:28l최종 업데이트 21.07.03 19:33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7.3 전국노동자대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은 집회 개시 1시간 전인 3일 오후 1시까지도 이어졌다. 경찰도 이날 오전 7시부터 경찰버스 500여 대를 동원해 차벽을 세우며 여의도 일대를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경찰의 원천봉쇄에 충돌을 우려해 급히 장소를 변경했고, 서울 여의도 일대에 모인 기자들과 노동자들도 부랴부랴 서울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급히 종로3가역으로 이동했다.

비밀작전을 방불케 했지만, 연락을 받고 종로3가역에 모인 8000여 명의 노동자들은 13시 50분이 되자 민주노총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종로3가역 2번 출구 앞에 모인 뒤 기습적으로 도로를 점거했다. 그리곤 종로3가에서 종로2가로 약 300m 가량을 행진한 뒤 14시께 탑골공원 앞에 자리를 잡았다. 7.3 전국노동자대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도로는 완전히 차단됐고, 반대 차선 역시 본집회가 진행되자 경찰에 의해 통제됐다.

본집회가 시작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8000여 명(주최측 추산)의 노동자들은 개의치 않고 마스크를 쓴 채 집회를 이어나갔다. 경찰은 대형 스피커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집시법, 도로교통법 위반 등을 근거로 해산명령을 내렸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경찰 사이에 대치가 이어지긴 했지만 우려했던 무력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민주노총은 탑골공원 앞에서 45분 동안 본집회를 진행한 뒤 다시 몸을 틀어 종로5가 광장시장 방향으로 행진했다. 그리곤 청계천 배오개다리에서 마무리 집회를 진행한 뒤 15시 45분께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애초에 민주노총은 조합원들과 함께 서울시청 방향으로 행진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저지로 배오개다리에서 노동자대회가 종료됐다.

민주노총 "이대로 죽을 수 없어서 모인 것"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 유성호
 
민주노총의 집회를 두고 정치권을 비롯해 현장을 지나는 일반 시민들도 강하게 불만을 쏟아냈다. 실제로 집회 참가자들을 제외하곤 동조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현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서울시민 신정철(50대)씨도 그중 하나다. 신씨는 탑골공원 문 앞에서 노동자대회를 유심히 지켜본 뒤 "심정적으로 노동자들이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수백 명씩 나오는 상황에서 이렇게 도로를 막고 밀착해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3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794명 늘어 누적 15만 9342명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역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논평을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누구도 코로나19의 대규모 유행으로 전파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할 수는 없다"라며 "우리 사회의 공존을 위해 민주노총의 집회 철회를 강력히 요청한다"라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에서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에서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유통산업발전법 전면 개정과 대형마트 구조조정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유통산업발전법 전면 개정과 대형마트 구조조정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이날 집회를, 장소까지 바꿔가며 기습적으로 진행했다. 이에 대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대로 죽을 수 없어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서 이렇게 다들 어려움을 뚫고 모인 것"이라고 설명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약속했던 것만이라도 지켰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대통령이 노동자 생명 지킨다는 약속 포함해 이 정부가 어떤 약속 하나라도 제대로 지킨 게 있나? 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대재해 근본대책 만들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며,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어 양 위원장은 "하반기 총파업 투쟁도 제대로 준비해 노동자의 분노로 이 세상을 바로 잡자"라고 말했다. 11월 총파업을 예고하는 발언이었다.

현장에 모인 노동자들은 ▲산재사망 방지 대책 마련 ▲비정규직 철폐·차별 시정 ▲코로나19 재난시기 해고 금지 ▲최저임금 인상 ▲노조할 권리 보장 등 5가지 요구사항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경찰 "서울청 특별수사본부 편성, 집회 주최자 수사 착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자, 경찰이 코로나19 방역조치에 위배 된다며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자, 경찰이 코로나19 방역조치에 위배 된다며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에서 경찰이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에서 경찰이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유성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서 경찰이 차벽을 세워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서 경찰이 차벽을 세워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유성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서 경찰이 차벽을 세워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서 경찰이 차벽을 세워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유성호
 
서울경찰청은 노동자대회가 끝난 뒤 "서울시와 경찰의 집회금지에도 불구하고 집회 및 행진을 강행해 국민 불편을 초래한 집회 주최자들에 대해 52명 규모의 서울청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도심 집회와 10인 이상 장외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서울시도 주최 측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213개 부대를 동원해 서울 여의도 및 광화문 일대를 통제하고 한강 다리 등에서 임시 검문소 59곳을 운영하며 등 강도높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전날인 2일 민주노총 사무실을 예고 없이 방문해 집회 자제를 당부했던 김부겸 국무총리는 같은 날 담화문을 통해 "지금 수도권에서의 대규모 집회는 확산되는 코로나의 불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라며 "만약 집회를 강행한다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엄정 대응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말한 바 있다.

태그:#민주노총, #김부겸, #종로, #여의도, #노동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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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밀려온 파도는 녹색 페인트다

[현장] 금강 하굿둑 덮친 독조... "그 많은 정치꾼 다 어디로 갔나"

21.07.02 21:34l최종 업데이트 21.07.02 21:34l


  투명카약을 타고 들어간 곳마다 녹조가 가득했다.

▲ 투명카약을 타고 들어간 곳마다 녹조가 가득했다. ⓒ 조수남

금강 하굿둑에 막힌 강물이 초록빛이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 창궐하던 녹조는 세종, 공주, 백제보의 수문이 개방되면서 흘러내린 오염물질이 쌓여 더 심해진 것이다. 농민도 낚시꾼도 녹조로 가득한 물로는 살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친다. 그런데도 하굿둑의 수문은 도통 열릴 기미조차 없다.
 
그제보다 어제가, 어제보다 오늘 녹조가 더 짙다. 이대로 가다가는 '녹죽'밭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도 금강의 제4보라 불리는 하굿둑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취재하는 도중에 강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녹조 이야기뿐이다. 그 맑던 물이 왜 이 지경이 되고 그 많던 물고기가 다 어디로 갔느냐고 하소연들이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된 기사를 보고 많은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방송사부터 언론사까지 어디로 가야 녹조를 취재할 수 있냐는 것. 더 황당한 전화도 받았다. 자신이 녹조를 없애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만나자는 제의부터 녹조 영상을 보내 달라는 요구까지 수많은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관련 기사: 거대한 녹조 공장.. 이 물로 농사지어도 될까)
 
지난 1일 이른 아침부터 금강 하굿둑으로 향했다. 연이틀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조수남 작가도 일찍 도착해 있었다. 사진은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기예보와 다르게 바람도 강하게 불고 하늘도 우중충하다. 햇볕이 없어 사진이 잘 나올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서둘러짐을 옮겨 강변으로 이동했다.
 
충남 서천군 길산천과 만나는 조류관찰대 앞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더 짙은 녹색 강이다. 일회용품부터 농자재, 공사장 자재까지 둥둥 떠다니는 강물은 역한 냄새부터 풍겼다. 녹조가 썩으면서 비릿한 악취가 진동하는 것이다. 다리 위쪽 하천변에는 벼도 자라고 있다. 강물을 퍼 올려 경작하는 논이다.
 
녹조의 정확한 명칭은 남세균(사아노박테리아, cyanobacteria)이다. 남세균은 간독성을 일으키는 마이크로시스틴 등 다양한 독성이 있다. 4대강 사업 후 녹조가 창궐하면서 해당 지역에 비알콜성 간질환이 늘었다는 논문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에어로졸에 의한 인체 유입이 심각하게 연구되고 있다. 농작물이나 물고기를 통해 독성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물고기가 살 수도 없을 거여"
 
 금강 하굿둑에 핀 녹조.
▲ 금강 하굿둑에 핀 녹조. ⓒ 김종술
     
이곳에 낚시꾼이 산다. 인근에 산다는 낚시꾼은 나이가 많아서 낚시 말고는 마땅히 할 일도 없다고 한다. 다리 아래쪽에 텐트를 쳐놓고 해 질 녘까지 이곳에 있다가 저녁이면 퇴근을 하고 아침이면 다시 출근한다. 10여 개의 릴 대에 큼지막하게 떡밥을 달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누치는 개에게 삶아주고 가끔 큰 고기가 잡히면 먹기도 하고 나눠 주기도 한다.
 
어제까지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던 그의 얼굴이 오늘은 밝다. 오늘은 고기 좀 잡았나 보다. 평소 안면이 있어서 인지 커피부터 끓인다. 그런데 맑은 생수나 수돗물이 아닌 것 같다. 통에 담긴 물이 연녹색이다. 어르신의 성의를 생각해서 티 내지 않고 마셨다. 오늘은 고기를 좀 잡았는지 물었다.
 
"잡았지, 잡았어. 근데 붕어나 잉어는 안 나와. 먹지도 못하는 누치 몇 마리 잡았어"라며 잡은 고기를 넣은 살림망을 보라고 한다. 땅바닥에 꽂아둔 낚싯대가 휘면서 입질이 왔다. 느릿느릿 릴 줄을 감아올리는데 손바닥만 한 누치가 올라왔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까 조심스럽게 살림망에 고기를 넣고 앉으면서 한마디 한다.
 
"예전에는 참 물이 맑았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몰라. 그때는 물고기도 많아서 하루 낚시에 한 자루씩 잡아갔는데 요즘은 누치 저것들만 올라와. 장어도 참게도 잉어도 붕어도 다 죽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으니. 하긴 녹조가 저렇게 끼었는데 물고기가 살 수도 없을 거여."
 
어르신의 하소연을 들으며 차에 실어 온 투명카약을 내렸다. 녹조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하굿둑 가까이 다가갔다. 죽처럼 엉겨 붙었던 녹조가 노를 저어 나가면서 갈라졌다 다시 합쳐진다. 바람에 밀려 쌓인 곳에서는 떡처럼 찰진 녹조가 투명한 카약에 달라붙는다. 그나마 강 중앙은 녹색 알갱이가 보일 정도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사지어 수매하면 누가 먹을지도 모르고"
 
 서천군 길산천 하천변 경작지.
▲ 서천군 길산천 하천변 경작지. ⓒ 김종술

신성리 갈대밭과 만나는 원산천 합수부에는 황포돛배 선착장이 있다. 이 또한 4대강 사업과 함께 들어온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녹조가 가득했다. 심한 냄새가 진동하는 물속에는 죽은 새와 야생동물도 보였다. 사체가 썩어가면서 구더기가 끼고 파리가 잔뜩 달라붙었다. 그러니 이런 곳을 찾아올 사람도 없을뿐더러 왔다고 하더라도 유람선을 탈 사람도 없을 것이다. 풍악을 울려야 할 황포돛배는 움직이지 못하고 매일 문을 닫고 휴업 중이다.
 
서둘러 웅포대교 쪽으로 이동했다. 부여군 양화면 농경지에 유입되는 농수로의 녹색 물빛을 보고 차량을 세웠다. 녹조가 가득한 물이 수로를 타고 흐르다 논으로 들어갔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도 3만m²(9천 평)나 되는 벼농사도 짓고 있는 조수남 작가가 말문을 열었다. 녹조가 뒤섞인 강물이 논으로 유입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긴 한숨을 쉬어가며 말문을 이어 나간다.
 
 부여군 양화면 농경지에 유입되는 농수로.
▲ 부여군 양화면 농경지에 유입되는 농수로. ⓒ 김종술
 
"와 이곳은 심각하네요. 우리 논은 저수지에서 보내준 물로 농사를 짓는데 이렇지 않아요. 우리 논에는 그냥 맑은 물이에요. 예전 녹조에 대해 몰랐을 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녹조에 독성 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그냥 넘어가기 힘드네요. 이렇게 농사지어서 수매하면 누가 먹을지도 모르고 끔찍하네요. 다 우리 식탁에 오를 것인데..."
   
전북 익산시와 충남 부여군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는 이곳에는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강 아래쪽을 살피기 위해 다리에 올랐을 때 정박해 있던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트는 빠르게 때론 거칠게 강물을 휘저었다. 스크루에 갈라진 녹색 강물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춤을 췄다. 선착장 주변에 밀려든 녹조를 밀어내는 것이다. 한참이나 강물을 이리저리 휘젓던 보트가 정박하자 흩어졌던 녹조는 이내 다시 뭉쳤다.
 
"세상이 바뀌면 좀 좋아질 줄 알았더니"
 
 군산시 나포면 강변 선착장에 핀 녹조.
▲ 군산시 나포면 강변 선착장에 핀 녹조. ⓒ 김종술

군산시 나포면 나포리로 이동했다. 걸쭉한 녹조에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바람에 밀려온 파도는 녹색 페인트다. 주변에 나무를 주워 담갔다가 뺐더니 색이 덧칠해졌다. 이곳은 겨울철 가창오리 군무를 찍는 작가들 사이에 손꼽히는 장소다. 강변에 물고기를 잡는 선착장도 있고 어부의 보트도 정박해 있는 곳이다. 낡은 선착장은 말끔하게 손질돼 있었으나 물고기를 잡아야 할 보트는 자전거도로 주변에 올려놓았다.
 
이곳의 녹조는 어느 정도일까. 강폭이 1km가 넘으니 육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다. 다시 드론을 띄웠다. 150m 정도를 올렸지만 강폭이 커서 그런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드론을 건너편 제방까지 날리면서 바라본 강물은 온통 녹색이다. "녹조라면 믿을까요?" 동행하고 있는 조수남 작가에게 물었다. 온통 녹색 빛이니 녹조라고 믿기도 힘들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녹조가 많아서 통발이 안 보이네요."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물고기는 뭐 한다고 잡냐."

 
 금강 하굿둑부터 부여군 웅포대교까지 뒤덮은 녹조.
▲ 금강 하굿둑부터 부여군 웅포대교까지 뒤덮은 녹조. ⓒ 김종술

차량에 실린 투명카약을 싣고 와서 드론을 띄우는 우리가 궁금했는지 주변 정자에 앉아 웅성거리던 댓 명이 몰려들었다. 살짝 혀가 꼬인 것으로 보아 한 잔씩 하신 모양이다. 한 사람은 물속에 넣어 놓았다는 통발을 찾는다고 강변을 왔다 갔다 서성거린다. 통발을 놓고 실랑이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정부를 비난했다.
 
"아니 뭐 세상이 바뀌면 좀 좋아질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네요. 하굿둑 좀 열어주면 예전처럼 물고기도 잡고 살 수 있는데 왜 안 열어 준대요. 옛날에는 황복도 잡고 장어도 넘쳐나던 곳인데요. 김 양식도 하고요. 녹조가 이렇게 피어서 사람도 못살 지경인데요. 곧 선거철인데 그 많은 정치꾼 다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여요."
 
취중인지 넋두리를 풀어 놓는다. 금강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그가 보기에는 하굿둑 하나 열지 못하는 정치권이 한심했나 보다. 물그릇을 키우면 그에 비례해 물이 깨끗해진다는 4대강 환상론도 깨졌다. 그런데도 수문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썩은 물을 존치해야만 돈이 생기고 권력에 힘이 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술 취한 사람들의 안줏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이 녹조의 정확한 명칭 남세균은 맹독을 뿜는다. 간세포를 파괴하여 두통, 열, 설사, 구토, 등을 일으키고 간질환을 비롯해 만성피해를 일으킨다. 4대강 사업이 끝난 짧은 기간에 낙동강, 영산강, 금강 지역에서는 간질환이 늘어났다고 한다. 해결책은 쉽다. 물이 흘러 교란이 생기면 녹조는 사라진다. (세종·공주·부여) 금강과 영산강의 수문이 개방되고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태그:#4대강 사업, #녹조, #남세균, #금강 하굿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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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찬탈하는 것…청년이 의사결정 핵심에 도전해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7/03 09:58
  • 수정일
    2021/07/03 09: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1-07-03 09:04수정 :2021-07-03 09:09

 

 

[토요판] 커버스토리
청년과 청년정치

청년이 관심 갖는 문제 다루지 않아
정치에서 세대간 불균형 발생
젊으니 실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과 다르면 건방지다 해
 
36살 보수 야당 대표의 탄생이 한국 사회에 불러온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고, 이 대표의 정견과 지향을 놓고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청년’의 주류화가 청년 정치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주목해야 할 주제가 됐다. ‘이준석 현상’을 계기로, 그동안 청년 정치인들은 왜 이 대표처럼 청년의 열망을 끌어안거나 투영하지 못했나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치 활동에 매진해온 ‘청년 당사자’ 정치인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민경(29) 인천 연수구의원, 강민진(26) 청년정의당 대표, 우인철(36) 미래당 정책국장이 함께했다. 대담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됐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36살 보수 야당 대표의 탄생이 한국 사회에 불러온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고, 이 대표의 정견과 지향을 놓고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청년’의 주류화가 청년 정치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주목해야 할 주제가 됐다. ‘이준석 현상’을 계기로, 그동안 청년 정치인들은 왜 이 대표처럼 청년의 열망을 끌어안거나 투영하지 못했나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치 활동에 매진해온 ‘청년 당사자’ 정치인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민경(29) 인천 연수구의원, 강민진(26) 청년정의당 대표, 우인철(36) 미래당 정책국장이 함께했다. 대담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됐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지난달 11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선출 이후, 대한민국은 ‘청년’으로 뜨겁다. 이 대표 당선 닷새 뒤 열린 한 ‘긴급좌담’의 제목이 ‘이준석이라는 현실’이었다는 점은, 최소한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가 이 대표 당선에 얼마나 당혹감을 느끼는지 보여준다.

이 대표에게 동의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30대 제1야당 대표의 탄생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이미지만 소모되곤 했던 청년과 청년정치의 미래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미래당에서 각각 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 20~30대 청년 정치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조민경(29) 인천 연수구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만 25살, 최연소로 당선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연수구만 해도 연간 예산이 6500억원인데, 이런 기관이 유권자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무용지물 소리를 듣는 게 안타까웠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듯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고, “청년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면서도 당선 확률이 높은 정당”이 어디일지 생각한 끝에 민주당에 입당했다. 구정활동에선 의욕만큼 성과도 냈다. 대표적인 게 2019년 연수구 청년기본조례를 대표발의해 통과시킨 것으로, 인천에 있는 대학교 9곳 가운데 7곳이 몰려 있는 연수구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학생을 똑같은 틀에 가두려는 경쟁 교육과 인권 침해를 더는 견디고 싶지 않아” 15살에 중학교를 자퇴한 강민진(26) 청년정의당 대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당사자 운동’을 계속해왔다. 선거 연령을 만 18살로 낮추는 운동도 벌였는데, 2019년 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이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내가 열과 성을 다한 의제가 실현된 게 큰 경험이었다. 삶의 변화를 만드는 제도적인 권력에 진입해 뛰는 역할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정의당 청년대변인과 대변인을 거쳐, 올해 3월 ‘당내당’으로 만든 청년정의당 대표로 선출됐다.

 

우인철(36) 미래당 정책국장은 2011년 ‘청춘 콘서트’ 서포터즈 활동을 한 인연으로 이듬해 청년당 창당을 함께했다. 이름 그대로 청년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한 당에서 우 국장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정당득표율이 2%에 미치지 못해 당이 해산됐다. 청년정치의 꿈을 꾸는 이들과 우 국장이 다시 모여 만든 미래당(우리미래, 2017년)에서 그는 지난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고, 낙선했다. 그는 여전히 “청년이 청년 문제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마을에서 주민의 눈높이에서 ‘삶의 정치’를 경험해본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은 다르다”고 여긴다.

 

청년 정치인 세 사람의 좌담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를 두고 청년들이 화가 났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강민진(이하 강) 청년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게 원칙이라고 배웠는데, ‘부모 찬스’ 문제로 내가 알던 게 세상 돌아가는 법칙이 아니었다는 배신감을 느꼈다.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한 동시에 이 가혹한 경쟁에 지친 세대여서 ‘불공정한’ 규칙 위반에 분노하고, 약자 등 형평성을 위한 조치에도 내 것을 빼앗긴 것처럼 느낀다.

 

우인철(이하 우) ‘공정’ 때문인 것 같다. 내 삶이 불안정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없는 게 기본값이고 그 위에서 무한경쟁, 약육강식을 하는 것도 달갑지 않은데, 거기서 벌어지는 경쟁의 기준도 공정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조민경(이하 조) 어느 세대나 청년 시기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겠지만, 지금 청년은 불안이 아니라 좌절을 느낀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단어가 그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시험과 면접을 열심히 준비해서 대입이든 기업 입사든 준비하는데, 다른 경로로 쉽게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게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다. 기성세대가 청년 시절에 했던 것보다 배 이상 노력하고 ‘고스펙’을 만들어도 지금 청년들은 미래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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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들러리’였나
 

―지금까지 각 정당이 청년층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청년 정치인들을 대체로 ‘구색 갖추기’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의당에선 21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청년 비례할당이라는 적극적 우대조치를 도입해 청년 의원 2명(류호정·장혜영 의원)이 탄생했다. 찬반을 떠나서 당 안에서 이 의원들의 존재감이 굉장히 크다. 두 사람이 정의당의 대표적인 스피커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그동안 청년정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기성세대한테서) 할당받는 ‘부분’에 그쳤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 당선은 청년이 주류로 진입한 걸 온 국민에게 보여준 사례다. 청년이 중심의 역할로 진입해야 기존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의 정치적 행보나 정견에 동의한다는 게 아니라, 그분이 대표가 되면서 당의 노선이나 정체성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당의 혁신, 정체성 변화는 세대교체와 동떨어져서 갈 수 없다. 국민들이나 각 당도 청년이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청년들도 당권 등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에 공격적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다.

 

우 기득권을 쥔 세대가, 필요할 때 청년을 쓰고 들러리 세웠다고 본다. 청년 할당 자체도 얼마 안 된다. 세대독점 현상이 심각한데, 주변 한 청년이 출마하려다가 ‘이번에 나오지 마라, 다음에 밀어주겠다’고 회유 내지 협박을 당하는 경우도 봤다. 가진 게 없는 청년들은 윗세대가 청년을 어느 정도나 공천할까 결정하느냐에 운명이 달려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잠재력이나 실력은 좋고, 발언의 영향력도 크다. 국회의원 300명 이름은 다 몰라도, 청년 정치인들은 소수지만 대부분 다 알지 않나?

 

 권력은 배려하고 내어주는 게 아니라 찬탈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년 정치인들이 각 당에서 어려움을 겪은 건 당내 기반과 입지가 좁아서인데,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의 눈치를 보고, 그 입맛에 맞춰서 움직인다면 스스로 액세서리가 되는 거다. 청년들이 잘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각 당에서 새로운 세대 정치인들이 ‘우리가 기성세대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는 걸 설득하고 정당성을 얻어 그 힘으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동감이다. 하지만 기득권 세대와 공정한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내놓으라는 요구도 해야 된다고 본다. 스스로 실력 키우는 건 청년 정치인 본인의 과제지만, 불공정한 규칙과 불균등한 힘이 작동하는 정당·정치 문화 혁신은 정치 과제다.

 

 그런 점에서 청년 할당을 없애야 한다는 이준석 대표의 생각은, 우리 정치 현실에서 청년이 주류 권력에 진입하는 통로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청년 정치인 수백명이 모이는 중앙당 청년위원회에선 한 시간 넘게 당내 유력 정치인들의 ‘축사의 장’이 열린다. 우리 얘긴 안 듣고 축사만 하고 떠난다. 정당이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각종 선거 끝난 뒤 공을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청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하면서 다음 기회를 얘기하는데, 청년도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주인공일 순 없는 건가. 정치에 다음은 없다. 다음엔 또 기성세대들이 할 거다.

 

이렇게 만든 덴 청년들한테도 잘못이 있다. 청년들이 세력화해서, 1천명, 1만명 표를 갖고 정치인들 앞에서 흔들어본 적이 있나. 표를 갖고 우리 얘기를 안 들어주면 당신 안 찍어줄 거라고 요구라도 한 적이 있나. 다른 세력들은 잘하는데, 청년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것 같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었던 2018년 4월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선거권 연령 하향 촉구 청소년 농성장’에서 조영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었던 2018년 4월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선거권 연령 하향 촉구 청소년 농성장’에서 조영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청년 의제를 청년의 어법으로 말해
정치-청년의 간극 없앤 게 이준석
동년배라 가능한 ‘공통 감각’ 있고
윗세대 압도한 모습 대리만족 느껴

 

이준석 대표의 ‘비밀’
 

따로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청년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든 현실의 벽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이야기로 흘렀다. 이 대표가 어떻게, 기존 정당이나 기존 청년 정치인과 달리 청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가에 관한 분석이었다.

 

 기득권 집단은 돈과 제도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정치에 도전하려는 청년이나 돈이 없는 사람은 그 벽을 못 넘는다. 그렇게 양쪽에 간극이 벌어지면서 기성세대는 청년이 관심 갖는 주제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사명감을 갖고 검찰 개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청년들은 다른 게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찬반을 떠나 ‘내 이야기’를 한다. 청년의 의제를 청년의 어법으로 말해, 정치와 청년의 간극을 없애버렸다.

 

 맞다. 정치에서 세대 불균형 문제는 정치가 청년이 관심 있어 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 대표의 당선을 보면서 우리 세대의 전쟁이 늘 정치 바깥에서만 이뤄지다가 주류로 진입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청년들은 검찰 개혁엔 할 말이 없지만, 이 대표 주장엔 찬성하든 반대하든 할 말이 있는 거다.

 

―이준석 대표에게 투영된 청년의 열망이란 게 뭔가?

 

 청년들은 개인의 권리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 공정에 굉장히 민감한데 이 대표는 그 문제를 청년의 언어로 표현해준다. 마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함께 호흡하고 논리를 쌓아서 발화하는 것처럼 청년들과 ‘싱크로율’(유사성)이 높다. 이런 정치인은 없었다. 이건 생물학적으로 같은 나이 때문에 거기에 다가갈 수 있는, 세대의 공통적인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자신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2030 남성의 온라인상 언어를 제도권 안에서 발화했다. 가령, 우리가 정치는 아무나 못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험 쳐서 국회 들어가야 돼’라는 말을 공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대표는 공적인 자리에서 중진 의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했다. 청년의 생각을 공론화한, ‘용기 있는 행동’으로 지지받는 것 같다.

 

 청년들이 느낀 쾌감 중에 중요한 건, 이 대표가 윗세대를 압도하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거다.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청년들은 기성세대한테 짓눌리고 존중받지 못하는데, 이 대표가 주호영 의원이나 나경원 전 의원과 경쟁하면서 실력으로 그들을 압도한 것을 젊은 세대의 승리처럼 여기는 것 같다.

 

 내가 기성세대한테 듣는 조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젊으니까 패기 있게 할 얘기 다 해라. 지르면서, 실수도 하는 거야’인데, 썩 좋은 조언인 것 같지 않다. 자기가 못 하는 말을 왜 나한테 하라고 하나. 청년도 프로페셔널하게 정제된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젊으니까 오래가야 하니까 조용히 있어’가 있다. 어느 조직에서나 막내한테 ‘알아도 모르는 척해. 겸손하게 있어야 해’라고 하는 거다. 이런 조언들에서 기성세대가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드러난다. 나이에서 당위적으로 느끼는 권위, 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우위에 있다고 보는 듯한 문화 아닌가. 젊으니까 실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과 반대로 얘기하면 건방지다고 보는 거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그런 걸 다 격파했다. 당내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그런 점이 이준석의 단점일 수 있는데, 청년들이 볼 땐 이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젊은 정치인이 없었다.

 

우 청년들 중엔 기성세대를 ‘꿀 빤 세대’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20대 남성이 제일 ‘극혐’하는 게 40~50대 꼰대 남성인데, 그들은 취업도, 자산 형성도 쉬웠고,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젠더 문제 등에선 불평등도 다 저질러놓고, 우리한텐 평등과 인내를 강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6월3일 인천 연수구의회에서 조민경 연수구의원이 바이오 실험공간 등을 제공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사업인 K-바이오 랩허브의 송도국제도시 유치를 촉구하고 있다. 조민경 의원 제공
6월3일 인천 연수구의회에서 조민경 연수구의원이 바이오 실험공간 등을 제공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사업인 K-바이오 랩허브의 송도국제도시 유치를 촉구하고 있다. 조민경 의원 제공
 

민주당에 ‘배신감’, 국민의힘 ‘차악’
여권, 청년정책에 진정성 없었던 탓
청년 고위직 없어 비판한 게 아니라
여당 인사들 내로남불에 실망한 것

 

청년 정치인이라서
 

―정치를 하면서 느낀 청년으로서의 한계나 어려움이 있나?

 

 현실 정치에 필요한 건 조직력인데, 모든 청년 정치인의 공통점이 조직 기반이 약하다는 거다. 일만 하고 싶지만 당선되려면 표를 얻어야 하고 표를 얻으려면 지역 기반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도, 결혼은 안 했지만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해서 김장부터 시작했다.(웃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청년은 사회에서 쌓은 네트워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의당은 가난한 당이지만 선배 세대들 보면 그래도 학생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 학교 동기들이 직장에 다니거나 변호사가 되거나 해서 표도 모아주고 돈도 모아주는데, 우리는 주변에 누가 있나. 조직력이라는 게 정치인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얽힌 세대적 관계망이 같이 작동하는 건데, 청년들은 그런 자원이 없다. 큰 정당에선 국고에서 선거비 보전을 받으니 그나마 낫지만, 작은 정당에선 (선거비용의 50%를 보전받는) 득표율 10%를 넘기기도 쉽지 않다. 기초의회 선거라도 한 번 나가려면 빚을 많이 지게 되는 구조라, 지속가능한 청년정치가 어렵다.

 

 청년뿐만 아니라, 보통의 시민이 정치를 하려고 할 때 겪는 한계가 돈 정치다. 구의원 선거라도 출마하려면 직장은 못 다닌다. 아침부터 동네 분들 만나 인사하고 봉사하려면, 생계에 걱정이 없어야 한다. 올해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500억원 이상 자산가 2명을 빼고도 23억6천만원으로 전 국민 평균 재산의 5.3배다. 평범한 시민이 정치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에 담기지 않는 거다. 양당 독식이 가능한 선거제도도 문제다. ‘심판’이라고 하지만, 두 세력 중에 한쪽이 못 하면 다른 쪽에 차례가 오는 ‘주고받는’ 구조라서 시민들에겐 사실 선택권이 없다.

 

―청년 정치인이어서, 청년이라는 정체성만 지나치게 강요받는다고 느낀 적은 없나?

 

 중년정치, 장년정치, 남성정치라고는 안 하면서 청년정치, 여성정치라고 하는 건 청년과 여성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이자 여성이기 때문에 청년정책, 여성정책을 잘할 수 있지만, 다른 데도 관심이 있다. 지금 관심 있는 건 송도에서 서울까지 가는 교통 관련 정책인데, 이건 교통정책인 동시에 차가 없는 청년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년정치, 여성정치만 강요받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프레임을 씌우는 건 정치인을 못 크게 하는 거다.

 

 청년정치는 분야가 아니라 관심이다. 기존 정치의 관점, 주류가 기성세대, 남성,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청년정치, 여성정치, 소수자정치가 의미 있는 것이지, 이들이 그 분야 정책만 담당해서 의미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정치에 공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청년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청년정치는 청년 세대의 관점으로 모든 정책을 보는 것이어야 한다.

 

 강요라기보단, 청년정치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라고 생각한다. 기존 정치에 실망해 정치혐오가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득권과 연결성이 적고, 유능하고 깨끗하고 시민들과 가까울 것 같은 청년들이 정치를 바꿔주면 좋겠다는 바람 아니겠나. 생각이 젊어야 청년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지금처럼 특정 세대의 독점이 심한 상황에선 생물학적 연령에 따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젊은 정치인들이 정치권에 대거 들어가 새로운 정치문화, 에너지, 열정, 아이디어를 수혈하지 않으면 정치는 안 바뀐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 2030 세대가 100명이면 기득권이 무너지지 않겠나.

 

 세대교체도 중요하지만 기성세대한테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 안 된다. 아직 더 잘 일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그냥 물러나라고 하면 억울할 것 같다. 그보다, 청년들이 제도권 정치에 더 들어올 수 있도록 공천 원칙, 경선 규칙 등이 청년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정당마다 예비정치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거기서 당장 출사표를 던질 청년들에게 당협위원장은 어떻게 만나고, 권리당원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 선거 노하우는 자식한테밖에 안 알려준다는 말이 있는데, 젊고 유능한 인재를 그냥 내리꽂기만 할 게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과 선거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

 

혁신은 세대교체와 동떨어질 수 없어
다양한 가치로 곳곳서 세력화 움직임
청년이 지금 이 순간 주인공 되려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노하우 알려줘야

 

우인철 미래당 정책국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2018년 6월4일 서울시내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우인철 정책국장 제공
우인철 미래당 정책국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2018년 6월4일 서울시내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우인철 정책국장 제공
 
청년의 정치세력화는 가능한가
 

―청년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사실 청년도 성별이나 경제적 여건, 사는 지역 등에 따라 가치관과 요구가 천차만별이다. 이들이 큰 틀에서라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가치나 노선이 있을 수 있을까? 이를 바탕으로 집단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가 가능할까?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른 2030이 합의할 수 있다면,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아닐까. 2030은 진보니 보수니가 아니라 어느 당이든 내 삶에 영향을 주고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쪽의 손을 들어주려고 한다. ‘뉴웨이즈’라는 스타트업에서 정당과 상관없이 ‘젊치인’(젊은 정치인)을 후원하려고 하는데, 이런 움직임도 청년의 정치세력화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의 정치적 발화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게 정치세력화라고 한다면, 이미 ‘이대남’(20대 남성)은 이준석 대표를 통해 정치세력화를 이뤘다. 청년이 보편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청년들은 개인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에 민감하고 ‘저런 언행은 논쟁이 되겠다’고 판단하는 젠더 감수성과 공정 감수성은 발달한 것 같다.

 

 다 같이 합의할 수 있는 가치는 어떤 집단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다만, 지금 청년들은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감각이나 인식이 윗세대보다 뛰어나다. 우리 윗세대한테 나라 발전, 반공, 민주화 같은 대의 말고 다른 가치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었지만, 지금 청년들은 대의가 있으니 작은 걸 희생해라, 작은 불합리엔 눈감아라 이런 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86세대처럼 하나의 큰 가치를 중심으로 한 세대가 묶여서 역사적인 성취를 함께 만들어내고, 그런 경험에서 세대의 힘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기후위기 등 여러 가치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정치세력화가 이뤄지고 있다. 기존 사회운동의 모습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이준석 대표를 탄생시킨 힘도 다양한 정치세력화의 모습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청년특임장관직 신설을 제안했고, 청와대는 25살의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청년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이준석 대표 당선 이후 여권에서 나타나는 이런 ‘청년 대응책’을 어떻게 보나?

 

 그 자체가 나쁘다고 평가할 순 없다. 문제는 어떤 성과를 내느냐다. 이게 청년 대응책이라고 한다면 청년이 여권에 등을 돌리고 비판하는 것에 대응한 것일 텐데, 청년들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이유가 청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직이 없었기 때문인가? 그건 아니다. 청년들은 민주당 인사들이 보여준 ‘내로남불’에 실망한 거고, 집값 폭등, 먹고사는 문제가 힘들다는 거다. 그걸 해결하는 게 대응책 아닌가.

 30대에 제1야당 대표가 됐다는 게 워낙 놀라운 일이라 주목을 받는 거지만, 민주당은 원래 청년 친화적이었다. 국회 보좌진도 민주당이 훨씬 젊고, 기초의회에 진출한 사람들도 민주당이 훨씬 젊다.

 

우 하려면 임기 초에 했어야지,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준석 대표 때문에 청년이 화제가 되니까 청년을 내세우는 것 아닌가. 주변 20대들한테 물어보면, 민주당은 ‘배신감’, 국민의힘은 ‘차악’이라고 한다. 민주당 정부가 2030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탄생했고 촛불정부를 자임했는데, 권력 가진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세대 독점이 명확했고, 의제에서도 청년문제 해결에서도 어떤 변화도 못 가져왔기 때문에 배신감이 크다는 거다. 우리 또래만 해도 차악을 민주당이라고 생각하지만, 20대가 국민의힘을 차악이라고 여기게 된 건 그런 경험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한다.

 

―박성민 청년비서관을 두고 청년들 사이에서 논란이 거센 것처럼 보인다.

 

 사람만 놓고 보면 나도 응원한다. 그런데 주변 20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전하자면, 대학 졸업도 직장생활도 안 했고, 결혼이나 아이 키운 경험도 없는 사람이 청년 문제를 얼마나 알겠냐는 말을 하더라. 정무직과 행정고시가 다르지만, 어쨌든 그보다 작은 자리에 들어가려고 해도 엄청나게 노력해야 하는데 저 사람은 왜 1급 공무원이 됐을까 하는 불만도 크더라. 나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워낙 파격적인 인사라 논란이 있지만, 이걸 시작으로 앞으로 정치권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가 중요하다. 정치권이 청년에게 더 관심을 갖겠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사실 기존 정무직들 보면 나이만 많을 뿐, 실력은 별로 없거나 심지어 범죄자인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청와대 비서관 스펙을 얼마나 주의 깊게 살펴보고, 성과를 얼마나 평가해왔다고 이러냐는 거다.

 

 청년비서관이 없던 자리도 아닌데 여론이 부정적인 데는 정치적인 의도가 끼어 있다고 본다. 청년비서관이 정규직 공무원 자리가 아닌데도 ‘행정고시 합격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느냐, 1급까지 가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 이렇게 비교되는 건 국민의힘 보좌관협의회에서 성명을 내면서 왜곡된 프레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시험 봐서 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직업이 있다고 해서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박 비서관은 당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경험을 쌓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나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청년 정치인들은 얼마나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기회가 더 열릴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에서 초선 청년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들끼리 모임도 결성되고 있다. 당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워크숍을 하면서 자기가 만든 조례부터 민주당이 나아갈 방향까지 공유한다. 우리가 (정치 무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청년 시각에서 접근하는 게 가능해진 거다. 어쨌든 그동안 비주류였던 청년이 주류로 가고 있다. 개인이 노력을 충분히 갖추면 청년도 할 수 있다는 선례도 생겼다. 많은 청년들이 용기 있게 도전하면 좋겠다.

 

 정치 변화, 청년정치를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으니, 지방선거에서도 어떤 정당이 청년을 더 많이 공천하느냐, 그런 룰을 만들 거냐로 평가받을 거라 생각한다.

 

강 이준석 대표가 4·7 보궐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청년들의 유세 참여 기획을 했고 좋은 성과를 얻었다. 그 덕에, 청년은 특정 정당 지지로 고정된 표가 아니라 스윙보터라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모든 정당들이 인식하게 됐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정당이라면, 대선 때도 지방선거 때도 젊은 감각으로 캠페인, 유세, 전략을 만들려고 젊은 세대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지 않겠나.

 

―각자의 내년 지방선거 계획은?

 

우 지난해부터 서울 광진구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총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나갔다가 다시 기초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건데, 마을에서 정치를 시작해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는 경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바꿔보고 싶다.

 

강 아직 어디서 출마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내가 나갔을 때 정의당을 더 알리고 당에 가장 도움이 되는 곳의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다.

 지역구인 송도국제도시 관련 일을 해보니, (송도가 있는) 연수구가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담당하는 업무나 인천시에서 하는 사업이 많아 구의원으로서는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이번엔 인천시의원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01977.html?_fr=mt1#csidxb50b253ee971b598c3f14a2d19ee0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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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구속’ 윤석열 장모, 왜 6년 전엔 혼자 처벌을 피했을까

정치권 안팎 “검찰이 눈감아준 것 아니냐” 의혹 증폭...윤석열 “법 적용엔 예외 없다”

불법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수십억 원대 요양급여를 부정수급 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 모씨가 2일 오전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07.02.ⓒ뉴시스

 불법 요양병원을 세워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한 혐의로 2일 실형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75)씨가 과거 동업자들이 처벌받을 때는 처벌을 피한 것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그의 사위인 윤 전 검찰총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씨 장모의 불법 여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동업자들이 처벌받을 때 어떻게 윤석열 씨의 장모는 처벌을 면했는지?’라는 것”이라며 “만약 검찰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기본을 뒤흔든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그때 검찰은 경찰에서 수사기록을 넘겨받았을 것이고 당연히 (최씨도) 동업관계인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그 당시에도 검찰이 기소할 때는 공범관계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동업관계가 있는 사람이 한명 더 있는데 그 사람은 기소를 안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한 “그땐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을 때”라며 “불입건은 경찰이 하는 거지만, 기소할 때 공범관계를 검찰이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첫 번째 검찰수사에서 동업자 3명은 기소되고 유죄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왜) 이 사람(최씨)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는지 면밀히 조사, 감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의 장모는 왜 2015년에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을까”라며 “오늘 재판부는 ‘피고인이 요양병원 개설과 운영에 관여하고 요양급여를 편취한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한 사안에 대해 당시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부터 계속 검찰에 몸담고 계셨던 윤 전 검찰총장이 답해야 할 부분은 이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자료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앞서 최씨는 지난 2012년 10월 2억원을 투자해 동업자와 함께 의료재단을 세우고 경기도 파주에 요양병원을 설립했다.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이 아니었지만, 지난 2013년 5월부터 2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원 9천만원을 부정 수급하다가 적발됐다.

파주경찰서는 2015년 6월 수사에 착수해 동업자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의료재단 공동 이사장이었던 최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입건되지 않았다. 최씨가 2014년 5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책임면제각서’를 받았다는 게 근거가 됐다.

그렇게 최씨만 빠진 상태에서, 2017년 동업자 1명은 징역 4년이, 나머지 2명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이 각각 확정됐다.

하지만 3년 뒤 최씨는 재수사를 받게 됐다. 지난해 4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조대진 변호사 등이 이러한 과정에 윤 전 검찰총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그와 최씨를 함께 검찰에 고발하면서다. 당시 윤 전 검찰총장은 검찰총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가족과 측근 관련 수사 지휘에서 윤 검찰총장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다음달인 11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박순배)는 최씨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 후 첫 소환 조사였다. 곧이어 최씨를 의료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그 결과 최씨는 1심 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3부(정성균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피고인에게 공범 책임이 있느냐가 관건인데, 투자금 회수 목적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이지만 요양병원 개설·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요양급여를 편취한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며 검찰의 구형 그대로 선고했다.

대선에 출마한 윤 전 검찰총장으로선 장모의 구속이 악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검찰총장은 장모 선고 직후 대변인실을 통해 “저는 그간 누누이 강조해 왔듯이 법 적용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는 입장만 밝혔다. 그는 앞서 6월 29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장모 의혹과 관련해 “법 적용에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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