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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집권 초와 달리 노동정책 유턴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7/13 08:52
  • 수정일
    2021/07/13 08: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특집 인터뷰]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①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기존 정규직과 취업준비생의 반발에 부딪쳤다.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발표됐을 때는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정규직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정' 담론이 등장했다. 지난 6월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파업에 들어가고 정규직이 이에 반대하는 가운데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이 비정규직의 파업 중단과 정규직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협의 테이블 참여를 요구하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6월 <경향신문>에 실은 칼럼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고 경제의 도덕화'라며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해서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월 '첫 정책 과외교사'로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만난 뒤 정 교수의 평소 지론인 '직무급'이 주목받는 일도 있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잘못된 정책일까.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은 무엇일까.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인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을 만나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조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평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바람직한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방안' 등 을 주제로 세 편에 걸쳐 게재된다.


 

▲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노회찬재단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 단식, 정권에 메시지 보낸 것"


 

프레시안 :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둘러싸고 여러 일이 있었다. 가깝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상담센터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기 부딪치는 가운데 단식에 들어갔다. 강준만 교수가 칼럼을 통해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정규직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 검색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발표 당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과 정규직을 위주로 이른바 '공정' 담론이 부상했다.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해서 보면 지난 4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승국 교수를 만나며 정 교수가 이야기해온 '직무급'이 주목받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곰곰이 뜯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조돈문 : 강준만 교수 칼럼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주요 근거는 대선 공약이었다. '약속했던 거 지켜라'였다. 핵심적인 공약을 지키지 않으니 비판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거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보다 못하다는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먼저 최근 이슈였던 건보공단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상담센터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에 대한 정규직의 반대를 보며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된 문제가 또 나왔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조돈문 : 사실 정규직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다. 정규직에게 가는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자세히 설명해달라.


 

조돈문 :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직접고용될 때 고용안정성은 강화되지만 임금 등 다른 노동조건은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기존 정규직에 비해 차별받는 '무기계약직'이 된다. 공공부문에서는 '공무직'이라는 표현도 쓴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합해 무기계약직이라는 말을 쓰겠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시행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정원은 정해져 있다. 기존 정규직 인건비와 무기계약직 인건비는 별도 예산에서 지급된다. 무기계약직은 기존 정원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정규직 인건비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는 문제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고용을 잠식한다는 공시생의 비판도 있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새 일자리를 만들거나 돈을 더 들여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게 아니다. 이미 일을 하던 비정규직을 고용형태만 바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 공공기관의 고용 여력을 잠식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런데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정규직이 반대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조돈문 :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반대하는 건 '기분이 나쁘다. 나는 시험을 봐서 들어왔다. 비정규직은 시험을 안 봤는데 비슷한 걸 시켜주냐'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이건 도덕적으로도 잘못됐지만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시험은 인력을 충원하는 최선의 선발 방식이 아니다. 최선의 선발 방식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거다.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시험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거다. 시험은 차선 혹은 차악의 선택지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은 이미 지금 하는 일을 잘해왔다. 업무 수행 능력이 검증되어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용형태가 바뀌더라도 그 일을 맡기기에 충분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정규직은 왜 반대하는 것인가.


 

조돈문 :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규직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문재인 정부보다 더 친 노동적인 정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정부가 들어서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건비를 통합하면 자기네들이 받을 임금 인상분이나 상여금 같은 것을 덜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더 친 노동적인 정부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겪어온 대통령을 보면 어떤 대통령도 그 정도로 친 노동적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려고 할 때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지만 되고 나면 그렇게 했나? 아니다.


 

프레시안 :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이 단식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돈문 : 김 이사장이 단식하고 낸 문건을 보면 '비정규직은 파업과 농성을 거둬 달라. 정규직은 전환 협의 테이블에 들어와 달라'고 되어 있다. 사실 노사가 교섭하면 당사자가 테이블에 들어오면 된다. 건보공단 정규직 전환에서 당사자는 상담센터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정규직이 들어오지 않으면 상담센터 비정규직과도 협의할 수 없다고 한 건 잘못됐다.

 

그래도 김 이사장이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하면, 정규직이 반대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어렵고 정규직 전환 뒤에도 계속 시끄러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김 이사장이 단식을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모양이 안 좋았다.


 

다만, 김 이사장 입장에서는 메시지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만 던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 가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지 않았나. 그 직후 이런 일이 생겼다면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도 직접고용 전환이 됐을 것이다. 김 이사장은 그렇게 감각이 둔하거나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안다. 그때였다면 정규직이 펄펄 뛰어도 직접고용 전환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김 이사장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럼 단식을 하며 낸 메시지의 진짜 청중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그 수신처가 현 정부라고 판독한다. '정규직이 이렇게 반대하고 비정규직이 농성하고 나는 단식까지 하지 않냐. 항복할 테니 정부가 알아서 해라' 이런 거다.


 

프레시안 : 왜 정부에서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하나

. 

조돈문 : 이건 문재인 정부의 변화와 관련돼 있다. 집권 초와 달리 노동 정책이 유턴했다. 임기 말에 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해 정권이 일선 기관에 보내는 메시지는 '직접고용하지 말라'는 거다. '건보공단 이사장이 자기가 뭔데 정권 생각과 달리 직접고용을 하려 하냐'는 데 대해 항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생각한다.

 

김 이사장이라고 안 좋은 모양새로 건보공단을 그만 두고 싶겠나. 인간다운 일을 하려는데 정권 눈치가 보이니 단식으로 메시지를 던졌다. 그런 수순으로 본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진행 중인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정규직 반대가 심하고 정권도 반대하면 '자회사 직고용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식의 절충안으로 물러서는 듯하다.


 

조돈문 :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진정성이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정책의지가 실종되면서 알리바이 찾기에 급급했다. 대표적인 알리바이가 정규직의 반대다. 그런데 이건 너무 유치하다. 뻔히 예측 가능했다.

 

 

넓게 보면, 그보다 세련된 게 중소영세기업 핑계다. 이걸로 최저임금 인상도 유턴하고 노동시간 단축도 유턴했다. 전체적으로 정부 핵심 인사들이 실력과 의지는 없는데, 꼼수에는 능하다.


 

▲ 지난달 15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관 로비에서 김용익 이사장이 단식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고객센터 직원들이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나서자 이 문제를 대화로 풀자며 단식에 나섰다. ⓒ연합뉴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조돈문 :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 전환 대상을 '직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잡고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보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에 비해 더 나은 점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 간접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거다. 정부는 간접고용을 파견·용역과 민간위탁으로 구분했다. 파견·용역을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민간위탁을 마지막 단계로 뒀다.

 

그런데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잘못된 점이 있다. 하나는 자회사 직고용 방식을 정규직으로 규정한 거다.


 

다른 하나는 정규직 전환 과정을 개별 기관에 맡긴 거다. 기관 단위로 노동자 대표, 사용자 대표, 전문가가 모여서 노사전 협의를 거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 개별 기관에 맡겨놓으면 고용 형태나 처우에서 기관별로 편차가 많이 생긴다. 어떤 기관은 흑자고 어떤 기관은 적자다. 어떤 기관은 전환 대상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 인력의 70, 80%인데 어떤 곳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상황과 조건이 다른 기관에 이를 맡겨두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 듯싶다.


 

조돈문 : 1단계인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를 전환할 때는 문제가 덜 생겼다. 2단계인 파견·용역 노동자를 전환할 때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되긴 했는데 '직접고용이냐 자회사냐'를 놓고 기관 상황에 따라 갈등이 있었다. 민간위탁 단계에 와서는 정부가 아예 손을 놨다.


 

바람직한 방안을 말하자면,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두고 초기업 단위 교섭을 하게 해야 했다. 공공부문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중앙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교육기관.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낼 때 다섯 가지 유형별로 초기업 노사정 협의를 하게 하고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모든 기관에 적용하게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업장마다 텐트 치고 농성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엄청난 노사 갈등을 겪는 건 자회사 방식을 열어두고 각 기관에 정규직화 과정을 맡겨놔서다. 

프레시안 : 산별교섭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조돈문 : 맞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각 기관에서 사용자와 정규직, 비정규직이 다 자회사 방식이 잘못됐다는데 동의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거다. 그러면 문제없다. 그런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최악은 정규직 전환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이 조직화돼있지 않은 경우다. 그러면 비정규직은 노사전협의회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사용자와 정규직이 담합해 자회사 방식으로 가는데, 그럴 경우 고용 보장이 조금 더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권 바뀌어서 기관이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면 언제든 원천무효돼버린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회사 방식을 믿을 수가 없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문 대통령 뒤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 때 정부의 노동정책이 크게 후퇴한 경험이 떠오른다.


 

조돈문 :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 전환을 못 받아들이는 거다. 

 

차악은 정규직과 기관이 담합해 반대해도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다. 그러면 비정규직이 전환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으로 조직된 곳들이 있다. 그래서 인천공항처럼 그나마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내고 30% 정도라도 직접고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거다.

 

정권 초만해도 처음에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가 100% 직접고용 되는 줄 알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찾은 인천공항 사장도 다 직접고용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막상 정규직 전환 절차가 시작되고 보니 정부 입장도 좀 달라보였고 정규직도 반대했다. 공항에 노동조합이 여러 개인데 상급단체에 따라, 현장 조직별 상황에 따라 온도가 다 달랐다. 그러니 인천공항 사장도 직접고용 안 해도 되는 줄 알게 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공항, 건보공단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은 당연한 일"


 

프레시안 : 인천공항 보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일은 공항에서의 핵심업무다. 일한 경력이 10년 이상 된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직접고용에 대해 내부 논란은 물론 사회적 논란도 있었다. 
 

 

조돈문 : 시험을 봤냐 안 봤냐를 두고 공정성 타령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시험은 차선 혹은 차악의 간접적 선발수단에 불과한데 말이다. 공항에서는 다들 안전하고 싶어한다. 비행기 타기 전부터 목숨에 위협을 느끼거나 테러를 당하거나 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가면 보안, 마약탐지, 경비견 다루는 노동자는 물론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은 사무실 안에 근무하는 일부 밖에 없다.


 

프레시안 : 사실 그런 사람들이 핵심적인 안전 인력이다.


 

조돈문 : 인천공항의 안전은 그 분들이 책임진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직접고용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통령도 상시 업무는 직접고용한다고 했고 생명·안전 업무도 직접고용한다고 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업무는 상시 업무다. 몇 년 씩 일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인천공항의 업무는 거의 모두 공항 이용객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일이다. 그럼 정부가 말한 조건을 200% 충족하는데 일부만 직접고용 됐다.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직접 가서 선언한 게 안 지켜졌다.

 

프레시안 : 지금 문제가 되는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도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책임감을 갖고 상시적으로 대민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직접고용 되지 못하고 있다.
 

 

조돈문 : 우리가 건보공단에 전화해 '보험료 왜 이렇게 됐냐. 제대로 책정됐냐. 산출근거 뭔지 알려 달라. 잘못된 건 바로 잡아 달라'고 하면 전문성을 갖춘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1차로 전화 받고 필요하면 건보공단으로 토스해 실제 업무가 수행된다. 실제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서로 긴밀하게 통합돼있다. 보통은 상담 직원과 업무 처리 직원이 다 같은 건보공단 직원인 줄 안다. 그런데 아니다.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다루는 정보에는 민원인이 어느 병원에 다녔고, 무슨 검사를 받았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가 다 들어가 있다. 의료정보만큼 민감한 사적인 정보가 없다. 그런데도 상담업무를 민간에 위탁했다.

 

이건 태초에 민간위탁하면 안 됐다. 위탁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 상담업무는 민간위탁하기 전에 정규직이 하던 업무다. 정규직들이 전화 받기 싫어해 순환근무 시켰다. 그래도 하기 싫으니 외주화했다. 그러니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120926532231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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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아웅산 테러 이야기 유감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없는 것도 문제
 
강진욱  | 등록:2021-07-12 14:41:36 | 최종:2021-07-12 14:50: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꼬꼬무’ 아웅산 테러 이야기 유감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
7월 8일 방송된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18회)가 ‘1983 버마 사건’을 다뤘다. 3월 9일 KBS <역사저널 그날>이 ‘전두환 암살 미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를 다룬 지 꼭 넉 달 만이다.(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5108).

‘어!’‘아!’ 같은 출연진의 헤픈 추임새와 이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이 돋보였지만, 내용은 허접했고 구성도 엉성했다. 매우 치밀해야 할 출연진의 멘트(해설.설명) 모두 두루뭉술했다. ‘아웅산 사건 = 북한의 테러’라는 메시지 전달 효과만을 노린 딴따라 쇼의 전형.

전두환과 장세동이 탄 차는 행사장에서 몇 분 거리에 떨어져 있고, 버마주재 한국대사(이계철)이 대통령 비서실장(함병춘)까지 대동한 채, 태극기와 버마기를 양 사이드에 달고 앞뒤로 싸이카가 배치된 벤츠를 타고 행사장에 왔고, - 꼬꼬무는 이처럼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 테러범들이 이 대사를 전두환으로 착각해 기폭 장치를 눌렸다면, 마땅히 왜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 시키는대로 토막 대본을 읽는 출연진도 궁금한 표정을 짓지 않던가.

처음에는 서울에서 왔고 영등포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진술했던 범인 강민철이 갑자기 ‘나 북한 공작원이요’ 했다면 그 진술 번복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자폭용 수류탄을 줬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껴서 그랬다고? 그러면 손목이 날아간 채 몇 날 며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그 수류탄이 자폭용인 줄 몰랐어? 그게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깨달을 일이야? 꼬꼬무는 이런 엉성한 논리로 역사를 농단했다.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에서는 딴청을 피웠다. 버마 수사당국이 남북한을 특정하지 못해 “코리언이 범인이다”라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1983.10.17), 그 다음날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성용욱. 훗날 감사원 사무총장, 국세청장)과 과장(한철흠)이 급히 버마로 날아가 강민철에게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냐!” 하며 설득한 뒤 강민철이 말을 바꿨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철흠이 누군지는 아나? 이 자는 4년 뒤 전두환네와 미국이 또 한 번 자작테러를 조작한 뒤 바레인 병원에 - 실신한 척 하고 - 누워있는 김현희를 데리려 간 인물이다. 전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라종일 씨가 2013년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서 “강민철은 김현희와 같은 부서에 있었다”고 쓴 것과 연결되는 지점. 이렇게 전후좌우로 통시적.공시적으로 살펴야 겨우 그 진상이 보일까 말까 한 ‘1983 버마 사건’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수준으로 하면 되겠어?

‘아웅산 테러 = 북한의 테러’를 강조하려 기를 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출연자들이 ‘DIPLOMATIC POUCH’라고 새겨진 검은 가방에서 클레이모아(폭탄)와 묵직한 쇠덩어리 모양의 격발장치를 꺼내는 느릿한 영상. 외교행랑 이야기는 세세연연 ‘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계속 추가되는 가공의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

‘1983 버마 사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출간된 장세동의 책 <일해재단>(1995)에도 외교행랑 이야기가 없다. (장 씨의 이 책은 이후 나오는 ‘1983 버마 사건 관련’ 책자의 기준 역할을 하고 있다.) “[범인들이 모처에서] 2주간 머물며 ... 범행에 필요한 폭약과 폭파 장치 등 모든 장비를 이곳에서 준비하였다.”(64쪽) 그의 책에 실린 버마 법원 판결문에도 “[범인들이 랭군 모처에] 도착한 지 2일 후 그들은 그 방에서 폭발물을 받았으며...”로 돼 있다(316쪽). (*외교행랑으로 받았다고 하면 버마 정부가 책임을 질 부분이 생기니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들 하지 마시라. 외교행랑으로 받건 현지에서 만들었건 어떻게 설명해도 버마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버마 법원 판결문에 외교 행랑 이야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3년 나온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범인들이] 거처를 잡은 지 이틀 후 ... 폭발물이 외교 파우치 편으로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갔다. 그런데 출처가 없었다. 전에 거론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려면 출처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출처불명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고, 지명도와 신뢰도가 높다는 ‘창비’에서 낸 책 답지 않게 구성이 매우 엉성하다.)

이북(북한)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떠벌리다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몄지만, 외교행랑으로 클레이모어 폭탄을 나른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북한 공작원들’(?)이 1주일 걸려 북한 화물선을 타고 와 버마에 온 뒤 다시 2주일 동안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는 각본만큼이나 웃기는 얘기다.

버마는 5개국과 접경하고 북동부 산악은 여러 무장 소수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태국에서 밀입국이 가능한 나라다. 전대미문의 테러를 저지를 특수공작원이 화물선에 실려 1주일, 다시 안가에 틀어박혀 2주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테러의 배후와 범인들의 잠입 경로를 북한 화물선(동건애국호)의 버마 입항 일정과 꿰맞추려다 나온 웃기는 각본이다.

2.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연예든 다큐든 강연이든 책이든 반(대)론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역사 인식은 그 시대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역사적 사실’은 항상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꼬꼬무가 감히 ‘1983 버마 사건’을 제멋대로 다루는 만용은 전두환 정권 및 그 시절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무식하니 용감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아웅산 테러를 포함해 우리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자작테러가 무려 4건이나 자행됐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때문이다.

다른 셋은 지금도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KAL 858 사건(1987.11.29, 일명 ‘김현희 사건’), 대구 미 문화원 정문 앞 시한폭탄 테러(1983.9.22),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현관 문 밖 쓰레기통 속 크레모아 테러(1986.9.14) 등이다. 전두환네는 이들 네 건의 자작테러를 벌인 뒤 ‘북괴의 소행’이라고 몰았지만 모두 자작극임이 드러나고 있다.
(참조 : 대구 미 문화원 사건에 대해서는
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901 /
김포공항 사건에 대해서는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581)

아웅산 테러의 진상을 재대로 인식하려면 위 네 건의 테러 각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왜 전두환 정권은 이런 끔찍한 자작테러를 네 건이나 자행했을까에 대한 사유가 따라야 한다. 이 사유는 우리 한반도 분단체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제로 한다.

이땅의 분단체제는 남녘의 대북 적대감을 기본 인자로 한다는 사실, 이 적대의 인자가 불식될 즈음이면 또 수상한 사건이 일어나 대북 적대감을 다시 부풀린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런 깊은 사유는커녕 개별 사건에 대해서조차 천박한 인식에 머문 채 역사를 논하는 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다.

꼬꼬무는 올 2월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최병효, 박영사)가 나온 데 고무됐던 것일까. 이 책을 보여주며 저자의 멘트를 몇 개 땄다. 그런데 그 멘트가 영 어색하다. “비동맹 외교는 허수아비와의 싸움이었다.” “비동맹 외교를 한다고 하면 정부가 예산을 잘 배정해 줬다.” 일정부분 맞는 지적이지만 ‘1983 버마 사건’의 진상을 찾는 입장에서 보면 샛길로 빠지는 얘기다.

최 전 대사는 사건 당시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이었고 36년의 외교관 이력을 갖고 있다. 아마도 ‘1983 버마 사건’에 대해서는 가장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다. 그런 이가 은퇴 직후 책을 내고 ‘아웅산 테러 =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니 모두들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기록에 가깝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을 뿐이다. 개인의 경험은 역사적 사유를 거쳐야 비로소 사회적 의의를 지닌다. 사유의 깊이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달리 부여된다. 그는 매우 유능한 외교관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현대사 및 국제관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에 심하게 경도돼 있다. 이런 협소한 역사 인식에 갇힌 상태로 남북 분단의 모순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폭발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최 전 대사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지적한 졸고.「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 한-미의 버마 공작의 시원」<진실의 길> 2021.7.9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5155&table=byple_news
그가 말하는 비동맹 외교론이 얼마나 협소하고 몰역사적인지를 지적하고 싶었다.)

TV가 우리 역사의 음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일 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이 그랬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kbs <역사스페셜>. <이제는 ...>은 문세광 사건(1974.8.15, 육영수 살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쳤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계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말짱 거짓말이며 중앙정보부가 문세광을 오래 전부터 주시해 왔다는 사실, 문세광을 사건 현장인 국립국장에 들인 것은 바로 청와대 경호실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mbc <PD수첩>은 KAL 858 사건에 대한 안기부 해설이 엉터리였음을 입증했다. 그 주인공 행세를 하는 김현희의 행로를 추적해 그의 증언과 안기부 해설이 모두 거짓임을 밝혀냈다.

( 2005년 3월 이 프로를 제작하고 진행한 김환균 PD는 현재 대전MBC 사장이다. 이 프로는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한 작품이다. 시사다큐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fsVfg2cvNvo)

이들 프로를 통해 분단체제의 늪에 빠져 있던 역사의 진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이들 프로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1983 버마 사건’의 진상도 어느 정도는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꼴통 정권’ 10년 간 언론 생태계가 엉망진창이 됐고, 이 지저분한 생태계를 살아가는 언론은 역사의 진실을 다시 구정물통에 빠뜨리려 한다. 제대로 된 다큐는 없고 빈머리 딴따라들의 잡담이 판을 치고 기레기들의 잡문만 넘쳐난다.

꼬꼬무도 지난 4월 ‘문세광 사건’을 다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LMrNm_r78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16년 전 밝힌 사건의 진상이나 박정희네 청와대 경호실 및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개입돼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은 모두 빼거나 건성건성 다뤘다.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간간이 ‘음모론’ 운운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논의를 ‘음모론’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현실을 단지 언론(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아웅산 테러나 KAL 858 사건 등은 이 나라 분단체제의 말뚝이고 쐐기와 같은 것이라 자칫 이 말뚝과 쐐기가 뽑힐까 두려워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분단체제의 말뚝과 쐐기를 박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키워온 분단적폐 세력이 그들이다. 같잖은 책을 내고 이 방송 저 방송에 같잖은 프로를 만들게 하는 것은 이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3년 아웅산 테러 30주년에 맞춰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등 여러 책들이 동시다발로 출간됐고, 장세동의 <일해재단>도 이때 <역사의 빛과 그림자>로 재출간됐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역사학자니 남북관계 전문가니 하는 이들 누구도 우리 분단체제의 근간이 무엇인지, 이 반인륜적 체제를 누가 어떻게 70년 동안 유지하고 보수하며 지탱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읽어내는 이가 없다. 전두환 정권의 수상한 언동의 내막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전두환을 ‘대인배’라 칭하기까지 하니 ...

( 오마이뉴스 2016.2.27)

꼬꼬무 진행자도 아웅산 테러 직후 전두환 정권이 보복전쟁을(?) 하려다 말았다며, ‘어느 역사학자’를 들먹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울분을 참고(?) ‘제2 한국전쟁’을 촉발하지 않은 데 대해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말한 이가 있다고. 그런데 그 역사학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코멘트를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사학자’는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씨다. 2013년 KBS 다큐멘터리 ‘아웅산 테러 그리고 2013’에서 “저는 민주진영이기 때문에 전두환을 그렇게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전두환이 집권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아웅산 사태를 평화적인 무드로 갖고 갔고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은 것”이라며 “지나 놓고 보면 그래도 전두환 정권에 점수를 줘야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에 나름 기여하고 있고 사석에서는 자신을 ‘친북.종복 역사학자’라고 말하는 그가 ‘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을까? 그래서 코멘트를 거절한 것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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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⑥] 31년 철도 노동자 김재하 “열차 운전실에서 풍경 보던 행운도 끝이네요”

현장노동자로 돌아가려고 전노협 건설 뒤 철도청 입사··· 민주노조 위해 뛴 31년

기관사 승무중인 김재하ⓒ김재하 제공

“오늘 새벽 4시 출근, 경부선 마지막 승무를 마쳤다.
기관차 운전실의 높이가 2m30cm 정도라 저 멀리까지 시야가 확 트인다.
객실에서 보는 차창 밖 풍경과는 다르다.
부산역을 발차한 열차는 경부선 물금에서 밀양까지 낙동강과 함께 간다.
저 멀리 산자락에 유달리 연두빛은 대나무 숲이며 희끗희끗한 뭉치는 밤꽃들이다.
우리 강, 우리 산. 참 좋다.
매화에서 시작하여 저 멀리 산자락 마른 가지 사이 진분홍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벚꽃, 라일락, 배나무, 사과나무, 오동나무, 아카시아, 이팝나무.
오늘은 저 집 뜨락의 석류나무 담벼락 능소화가 제법이다.
봄 내내 꽃 잔치이다.
꽃잔치는 이파리가 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진녹색 산과 들에서 계속된다.
희한한 게 피는 시기마다 꽃 색이 비슷비슷하게 닮아있다.
분홍, 노랑, 흰색, 보라, 여름이 다가올수록 붉은색이 많다.
눈 호강 31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철도 노동자 김재하는 정년퇴직을 코 앞에 둔 지난 6월 18일 경부선 마지막 승무를 마치고 SNS에 글을 올렸다. 김재하는 1990년 철도청에 입사해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 배치된 뒤 철도 노동자로 31년 동안 일했다. 기관사로 일해온 시간을 지나 정년퇴직한 철도 노동자 김재하를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교남동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6월 30일 정년퇴직 후 한국진보연대 공동 상임대표로 활동하기 위해 곧바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철도 노동자 생활을 마치고
삶의 변곡점에 서다

“1990년 7월에 철도청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정년퇴직 후에도 활동을 계속하니깐, 특별히 그만둔다는 느낌이 들진 않아요. 그래도 마무리할 때가 되니깐 30년 넘게 잘 살았는지, 활동을 잘했는지 조금은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60년생 79학번으로 올해 환갑이에요.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이 삶의 변곡점으로 느껴집니다. 삶의 절반을, 제 청춘의 대부분을 보낸 철도를 떠나는 거잖아요.”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철도노동자 김재하. 2021.07.03ⓒ김철수 기자

철도 노동자로, 노동운동가로 살아 왔던 시간이 일단락되고, 활동은 계속되지만 활동하는 장은 달라지는 변화를 그는 ‘삶의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김재하는 지난 1월 정년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 철도 현장에 복귀했다. 철도 일선을 떠나 철도노조 부산본부장으로 2년을 일하고,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8년 동안 전임으로 일한 뒤 10년 만의 복귀였다. 지난해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민주노총이 위기를 딛고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현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6개월은 짧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10년 동안 바뀐 시스템을 공부하고, 견습 승무를 거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떨리는 마음으로 열차 운전실에 올랐다.

“마지막 운행을 나서며
이제 운전실에서 이런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은 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운전실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 좋아요.
기관사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혜이고, 행운이에요.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간이 지나면 ‘승무하고 싶어도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네요.”

소중했던 6개월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그에게 남았던 가장 큰 아쉬움은 철도 기관사만이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이젠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행운은 그가 “눈 호강 31년”이라고 표현했던 벌판을 앞서 달리며 그 누구보다 계절을 먼저 만나는, 기관사들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기차 자료사진ⓒ양지웅 기자

“마지막 운행을 나서며 이제 운전실에서 이런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은 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운전실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 좋아요. 기관사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혜이고, 행운이에요. 운전실이 꽤 높아서 쫙 뻗어 있는 선로가 멀리까지 보여요, 700미터마다 신호기가 있어 그걸 살피며 운행을 하는데 그렇게 달리다 보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계절을 느끼고, 만나요. 겨울이 오는 것도, 꽃피는 봄이 오는 것도 가장 먼저 느끼거든요. 그리고,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절경도 많이 봤어요. 예를 들면 해 뜨는 풍경이 대표적이에요.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 사이에 있는 동해남부선 구간에 웨딩 촬영도 많이 하는 명소가 있어요. 경주에서 출발해 동해로 가는 새벽 열차가 해 뜰 때쯤 그 구간을 통과하는데 말 그대로 절경이에요. 일부러 보고 싶어도 못 보는 풍경이에요. 기관사를 그만둔다니 ‘이제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겠구나, 계절을 먼저 만나는 행운도 이제 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노협이 만들어지자마자
그해 몇 개월 시험을 준비해서
철도청에 들어갔어요.
현장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거든요.”

남들보다 먼저 계절을 만나는 행운의 직업인 기관사로 그가 일하게 된 건 노동 현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부산대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김재하는 그의 선배들과 동기들이 그러했듯 공장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6년 부산 사상공단에 있던 알루미늄 주물 공장인 남일금속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공장을 떠나 부양노련(부산양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교육선전 국장을 맡아 1990년 1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 만들어질 때까지 활동했다. 하지만, 노동단체 간부 생활이 길어지면서 현장노동자로 일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전노협이 만들어지자마자 그해 몇 개월 시험을 준비해서 철도청에 들어갔어요. 간부 생활을 오래 하니깐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현장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거든요.”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철도노동자 김재하. 2021.07.03ⓒ김철수 기자

1990년 7월 철도청에 입사한 그는 4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 배치돼 기관조사(부기관사)로 일을 시작했다. 철도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현장에서 부딪치며 기관사 업무를 하나둘 몸으로 익혔다.

“기관조사는 기관사를 보좌하면서 기관사 업무를 익혀요. 기관사들은 선로를 외워야 하거든요. 객실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선로는 곡선도 많고, 오르막 내리막도 있어요. 곡선 코스마다 제한속도가 있고, 노선을 운행하려면 선로 상황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해요. 거기에 기관차가 화물열차일 때와 여객열차일 때 운전법도 서로 달라요. 그런 과정을 기관조사를 하며 배우는 거예요. 또한, 안전 때문에 꼭 2명이 타야 합니다.”

햇병아리 기관조사 시절
열차 탈선으로 울산 태화강 추락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에요”

1991년 8월 입사 1년이 갓 넘은 아직은 햇병아리였던 김재하에게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열차운행 중에 큰 사고가 난 것이다. 기관조사로 일하던 당시 동해남부선 열차운행을 하다가 울산 명촌철교에서 탈선해 태화강에 떨어진 것이다. 당시 사고는 신문에 실릴 정도로 큰 사고였다.

1991년 8월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당시 사고 기사. 기사 본문엔 김재화라고 이름이 틀리게 나와 있다. 당시 사고로 김재하는 한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왼쪽은 당시 신문기사. 오른쪽은 울산시 블로그에 있는 명촌철교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울산시청 블로그

“기관조사로 일할 때예요. 과적 트레일러가 지나가면서 철교 아랫부분에 충돌했어요.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고, 신호시스템도 전자연동도 아니어서 기관사는 사고가 난 줄 알 수 없었어요. 트레일러 기사는 연락하려고 자리를 떴고, 우리는 반대 방향에서 운행하고 있었는데 선로가 휜 걸 보고 뒤늦게 제동을 했지만, 강물에 떨어졌어요. 그나마 화물열차여서 승객이 다치진 않았고, 속도도 줄어들었고, 열차가 연결된 상태에서 기관실이 있던 부분만 반쯤 물에 빠져 피해가 적었어요. 그러나 기관사와 제가 태화강에 떨어져서 크게 다치는 바람에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다 복귀했어요.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에요.”

김재하가 철도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철도 노동자들은 철도청 소속의 공무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인기 있는 직종은 아니었다. 당시 공무원은 박봉에 시달렸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월급은 적었고, 노동조건도 열악했기 때문에 대졸자들은 지원을 꺼렸다. 그가 입사할 당시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일하던 700여 명 가운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열차운행 시간에 따라 근무가 이뤄지는 교번근무여서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했어요. 거기에 노동시간도 월 240시간으로 길었어요. 요즘은 월 165시간이거든요. 지금보다 한 달에 75시간이나 더 일했어요. 더구나 당시 기관차는 열기와 냉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구조였고, 냉난방도 안 됐어요. 엄청난 소음이 나는데 방음이 안 됐어요. 그래서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는 기관사들이 많아요. 지금 그렇게 일하라고 하면 아마도 폭동이 일어날 거에요.”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렸지만, 철도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무기인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 당시 철도청은 공무원 조직이었지만 노동조합이 존재했다. 공무원 조직 가운데선 철도청과 우편을 담당하는 체신부만 노조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철도노조는 사용자인 철도청의 입장만 대변하는 ‘어용노조’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했던
어용 철도노조의 굴욕적인 역사

철도노조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철도노조는 해방 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태동시킨 조직이었다. 철도 노동자들은 해방 직후인 1946년 9월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이 조직한 총파업을 주도했던 주력부대였다. 이에 미군정과 우익 청년단은 전평을 공격했고, 철도노조도 당시 서북청년단 등 우익 출신 간부들에 의해 장악당했다. 철도노조는 1947년 우익 청년단들이 주도해 만든 대한독립촉성노동총동맹(약칭 대한노총) 산하 조직으로 바뀌었고, 철도노조 강령엔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한다는 구절이 담기게 됐다. 이후 이 구절은 57년이 지난 2004년에서야 개정을 통해 철도노조 강령에서 빠졌다.

1945년 11월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창립대회 장면. 단상에 미국, 영국, 소련 등의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걸려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라는 구호도 보인다. 철도노조는 당시 전평의 주축 세력 가운데 한 곳이었다.ⓒ기타

철도노조가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하며 ‘어용노조’를 50년 넘게 이어갈 수 있었던 건 ‘3중 간선제’ 때문이었다. ‘3중 간선제’는 세 번 간접선거를 거쳐서 철도노조 위원장을 선출하는 제도다. 각 지역 지부 조합원들이 대의원을 뽑고, 대의원들이 각 지역본부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들이 다시 노동조합 위원장을 선출할 대의원을 뽑아서, 그 대의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제도다. 당시 조합원은 3만 명이 넘었지만, 노동조합 위원장을 선출할 대의원은 93명에 불과했다.

“간접선거로 뽑히다 보니 조합원들은 단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노조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이런 현실을 바꾸려고 노조에 민주적으로 활동하라고 요구하면 오히려 노조에서 해당 조합원을 징계했어요. 그래도 끝까지 저항하면 아예 조합원을 제명했습니다. 저도 당시에 규율을 위반했다고 징계당한 적이 있어요. 이런 게 다 어용노조의 전형적인 수법이에요. 징계를 당하면 출마를 못 하거든요. 민주파를 거세하기 위한 용도로 징계를 활용한 거지요.”

1988년과 1994년
기관사들의 파업으로 뿌린
민주노조의 씨앗

이런 철저한 견제와 방해 속에서도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철도 노동자들은 꿈틀거렸다. 노조 지도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관사들이 독자적으로 나서 파업을 조직하는 등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렇게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씨앗은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제가 입사하기 전인 1988년에 기관사들이 파업에 돌입했어요. 일종의 불법 파업이었습니다. 노조에서 공식적으로 쟁의권 얻어서 한 파업이 아니었거든요. 당시 기관사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교대 없이 운전해야 할 정도로 열악했던 근무 환경을 바꾸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초과근무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며 싸웠어요. 그런데 깨졌습니다.”

당시 1988년 올림픽을 50여 일 앞두고 벌어진 파업을 전두환 정권은 강경하게 진압했다. 곧바로 전국의 농성장에 전투경찰을 투입해 1,653명이 연행됐고, 파업지도부 11명이 구속됐으며, 3명이 파면됐다. 무참하게 깨졌지만, 이때의 투쟁은 1989년 5월 훗날 민주노조의 토대가 된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 탄생으로 이어졌다. 전기협은 1994년 서울지하철노조, 부산교통공단노조와 함께 기차, 지하철 총파업에 나섰다.

1994년 6월 24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철도 파업 기사ⓒ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4년엔 전기협이 파업에 나섰어요. 철도와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이 함께 변형근로제 철폐를 요구하며 싸웠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탄력근로제 철폐를 요구한 거예요. 서울 지하철하고, 부산지하철은 합법노조였고, 철도는 기관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었지만, 노조 조직은 아니었어요, 이 세 주체가 모여 파업을 했습니다. 제가 있던 부산에선 부산지하철과 같이 파업했는데 저도 당시 간부로 일하고 있었어요. 당시에 저와 함께 있던 부산기관차 소속 동료들이 10명이나 파면됐어요.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파면 됐을 겁니다. 동료들이 잘려나가는 걸 보면서 모두들 철도노조를 민주화하지 않고는 우리들의 초보적 권리도 얻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철도노민추)를 만들고, 노조 민주화에 나섰어요, 저도 그때 징계를 당했습니다. 파면 동지들은 이후 10년이 지나 복직을 했고요.”

철도노조 민주화에 나선 노동자들
어용노조를 지탱해온 토대인
‘3중간선제’를 ‘직선제’로

1995년 철도 노민추가 만들어진 뒤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은 본격화됐다. 1996년 철도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평소 1%인 조합비를 상여금 지급한 달에는 2% 징수하도록 인상한 것에 반발해 투쟁을 조직하는 등 여러 활동에 나섰다. 아울러 어용노조를 지탱해온 토대인 ‘3중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투쟁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1999년과 2000년 철도노조 직선제 쟁취를 요구하며 격렬하게 싸웠어요. ‘3중간선제’로는 민주노조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당시 투쟁 과정에서 저도 1년 넘게 부산에서 아무 연고가 없는 동해 지역으로 일종의 유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동해에 있던 2000년 1월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에서 ‘3중 간선제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철도노조 직선제의 길이 열리게 됐어요.”

2001년 열린 철도노조 첫 직선 선거에서 민주후보인 김재길 위원장이 당선되자 환호하는 철도 노동자들. 사진은 철도노조 창립 기념영상에서 캡쳐한 장면이다.ⓒ유튜브 캡쳐

2000년 1월 14일 나온 대법원의 ‘3중 간선제 무효’ 판결은 1996년 철도 노민추가 조합비 부당 인상에 맞서 싸웠던 투쟁과 연관이 있다. 당시 조합비 인상 반대 투쟁 과정에서 철도 노민추 소속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96년 5월 전국철도노조가 ‘96년도 전국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보선하고, 조합비 납입방법 등을 개정한 것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간선제에 의한 전국대의원 선출 방식 등이 ‘대의원을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해 선출’하도록 규정한 노동조합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법한 방식으로 선출된 대의원 조직의 결의는 무효라며 ‘대의원회결의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1심과 2심에선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대의원을 간접 선출토록 한 규약이나 선거관리규정 등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7조 제2항(대의원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되어야 한다)에 위배된다”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직선제 쟁취로
드디어 올린 민주노조의 깃발

“대법원 판결 이후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만들고 본격적인 직선제 투쟁에 나섰어요.”

공투본은 규약개정 없이 대의원선거를 강행하려는 당시 지도부에 맞서 용산역에 있는 철도노조 사무실을 점거해 66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공투본 지도부를 제명하는 등 직선제를 막으려했지만, 결국 2001년 직선제가 도입됐다. 2001년 2월 열린 첫 직선제 선거를 앞두고 철도노조 민주파에선 ‘생존권 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노동자 투쟁본부’를 만들었고, 투쟁본부 김재길 위원장이 출마해 당선되면서 철도노조는 54년 만에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민주노조가 생긴 뒤 김재하는 2002년 노조 정책기획실장을 했고, 2003년엔 철도, 발전, 가스가 공동으로 민영화 저지 파업을 할 때, 공동투쟁본부 상황실장을 하는 등 열심히 투쟁에 나섰다. 그는 함께했던 민주노조 지도부들의 고생이 컸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해방시기 전평 이후
처음으로 나섰던 2003년 전면파업…
“힘든 투쟁이었지만,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어요.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철도 관련 산업재해로 많은 노동자가 죽었어요. 노동강도는 높았고, 복지나 처우는 좋지 못했어요.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하는데 직선으로 민주파가 지도부를 차지했지만, 아직 기층은 역량이 부족했어요. 당시 노조 숙소에서 생활했는데, 일 년 동안 숙소에 간 날이 며칠 안 됐어요. 기초부터 다져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각종 현안이 쌓인 상황이었는데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국토교통부가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1기 지도부로 함께 일한 동지들이 거의 집에도 못 가고 싸웠어요. 그러다 민영화 저지를 두고 발전, 가스와 함께 2003년 공동파업에 나섰어요. 철도 노동자들로 보면 해방 직후 전평 시절 파업을 한 뒤 노조 차원의 전면파업은 처음이었어요. 힘든 투쟁이었지만,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어요.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당시 철도, 발전, 가스가 같이 했는데 철도와 가스는 당시 한국노총 소속이었고, 발전은 민주노총 소속이었어요. 그런데도 의기투합하고, 동지적 의리를 잘 지키며 함께 싸웠어요. 당시 김대중 정권 시절인데 민영화 반대 투쟁에 국민적 지지도 나름 있었어요.”

“철도공사 등에선
조합원을 분열시키려고 했지만,
서로를 믿으며 집단성과 투쟁성으로
맞설 수 있었어요.”

전평 이후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하며 빼앗겼던 철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고 철도를 멈추며 감격스러운 투쟁을 벌였지만, 김재하는 이 투쟁으로 인해 구속·해직되고 말았다. 2008년 복직되기 전까지 그는 해고자 신분으로 궤도연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2004년 파업을 이끌었고, 전국철도노조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철도노조는 다른 노조와 비교해 민주노조가 늦게 만들어졌다. 다른 노조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철도노조는 2000년 들어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 민주노조가 늦게 만들어졌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노동운동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으며 여러 차례 파업 투쟁에도 나섰다. 이런 투쟁이 가능했던 건 해고를 각오하고 나섰던 철도 노동자들의 의지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집단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민영화저지 공동파업 당시 철도노조원들을 강제로 집안하는 경찰들. 사진은 철도노조 창립 기념 영상 중에서 캡쳐한 장면ⓒ유뷰트 캡쳐

“철도는 2000년 이후 파업을 많이 했어요, 때문에 많은 해고자가 나왔어요. 임금 인상 이외에 민영화 등 정부 정책에 맞선 파업은 다 불법이기 때문이에요. 지부별로 파업하면 누가 해직될지 거의 알아요. 그런데도 각오를 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을 땐 조합원 절반은 필수유지 인력으로 절반은 파업에 나섰어요. 파업에 나서면서 1천만 원 정도 손해가 생겼는데, 그 손해도 전체가 균등 분배해 나눴어요. 철도공사 등에선 조합원을 분열시키려고 했지만, 서로를 믿으며 집단성과 투쟁성으로 맞설 수 있었어요.”

"제가 후배들을 만나면 늘 이런 이야기를 해요.
노동자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
그래야 내 권리도, 자신도 보호받는다고 말해요.
이 시대에 철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아울러 민주노조 건설로 인해 더욱 커진 철도 노동자의 단결된 힘은 그들의 일터를 바꿨고, 국민을 위한 공공재인 철도가 민영화되는 것을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철도노조 민주화는 직장 내에서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어요. 철도 조직은 그동안 매우 권위적이었거든요. 규율도 세고요. 폭언, 폭행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매우 전근대적인 직장문화였어요, 그런 부분들이 민주노조 건설 이후 개선됐습니다. 또 철도 사유화에 제동을 건 것도 민주노조 건설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에요. 신자유주의 민영화, 사유화 물결을 가스 발전과의 공동파업 등으로 제동을 걸었거든요.”

민영화 물결에 제동을 걸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철도 노동자들에게 더 큰 사명감으로 요구한다. 김재하는 철도 내부 구성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꼭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을 시키겠다면서 SRT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SRT는 정식 직원이 기관사밖에 없어요. 철도 차량 정비는 물론 선로도 철도공사에서 유지보수를 합니다. 우리는 공사에서 월급을 받지만, 넓게 보면 국가 세금으로 받는 거라고 봐요. 돈벌이해서 월급 받는 게 아니거든요. 이윤을 이야기하지만, 철도는 이윤이 안 남아도 공익을 위해서 해야 하는 공적 기능이에요. 내부의 부정부패를 없애는 등 노력이 필요한 건 맞지만, 이윤과 경쟁의 논리로 운영하겠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다른 공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철도는 특히 그러합니다. 물론 내부 구성원들이 고칠 부분도 많아요, 공적 기능에 맞는 사명감도 필요하고요. 제가 후배들을 만나면 늘 이런 이야기를 해요. 노동자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 그럼으로써 내 권리도, 자신도 보호받는다고 말해요. 이 시대에 철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2015년 9월 16일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부산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노사정 야합 주범 노동부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 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을 맡았던 김재하는 삭발을 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철도를 떠나지만,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도에 대한 애정이 여전한 철도 노동자였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믿고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노조 간부 생활을 오래 했어요. 1990년에 입사해 지부 간부로 시작해 지도부로 오래 일해왔습니다. 그동안 지도부를 믿고 따라준 동료 간부들과 조합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활동하다 보면 지도부는 맡은 역할에 의해 지침 내리기도 하는데, 현장의 간부나 조합원들이 안 따라주면 소용이 없어요. 자신들 입장에선 어떤 건 감내하기 힘든 투쟁이었을 것이고, 또 지도부에게 말은 안 했지만, 그릇된 판단도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지도부를 믿고 단결하며 지침에 따라 투쟁해준 조합원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철도노조 간부로 일했던 게 복이에요.”

“지금 청년은 고통받는 세대예요.
사회 구조에 자유로울 수 없어요.
사회 시스템, 제도를 변화시켜야
출로가 열려요. 진보진영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사회개조에 같이 나서야 합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다. 이번에 많은 동료가 함께 정년퇴직했다. 철도 노동자로 첫발을 내딛던 30년 떠올려 보면 김재하는 자식 세대인 지금의 2030세대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그는 오늘의 청년들이 고통받는 세대라며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8일 서울 중구청이 노점상을 대상으로 행정대집행하려 하자 이를 막기위해 현장에 함께한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페이스북 캡쳐

“청년들을 두고 개인주의가 심화됐다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나이에 의한 차이, 시대의 흐름에 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청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아요. 아마도 우리 아버지도 날 그렇게 봤을지 모르거든요. 지금 청년은 고통받는 세대예요. 사회 구조에 자유로울 수 없어요. 대부분 취직, 주거, 앞으로의 전망 등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절망적인 표현까지 나올 정도예요. 모든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실업문제만해도 청년실업 해소는 노년 정년 연장과 충돌해요. 절대 개인이 풀 문제가 아니에요. 노동력의 재배치 등 모두가 연동됩니다. 사회 시스템, 제도를 변화시켜야 출로가 열려요. 진보진영도 이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사회개조에 같이 나서야 합니다.”

“불평등을 넘자면 우선 불평등에
저항하는 투쟁부터 시작해야 한다.”

31년 철도 노동자 생활을 마감한 김재하는 이제 ‘삶의 변곡점’에 섰다. 그동안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 각종 사회운동의 선두에서 일해온 그에게 이후의 삶도 이전의 여정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한국진보연대 공동 상임대표와 전국민중행동 조직강화특위장을 맡은 그는 얼마 전 ‘민플러스’에 기고한 글에서 “재벌과 수구보수세력은 말로는 불평등이 문제라고 떠들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 과실을 따 먹는 세력이다. 집권여당은 불평등을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의심스런 집단이다. 누굴 쳐다보고 어디에 기댈 것인가. 바로 노동자 민중, 우리 자신들”이라며 “불평등을 넘자면 우선 불평등에 저항하는 투쟁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내년 봄 대선판과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예상된다. 권력이 어디로 가든 누가 집권한들 불평등의 사회는 그대로라는 것을 우리들은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열전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도 그가 외친 건 투쟁이었다.

“한반도의 자주와 평등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대중조직,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투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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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日 근대산업시설 '강제노역' 숨겨 "강한 유감"

‘수많은 한국인 등 강제노역 이해할 수 있는 조치’ 주문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7.12 16:18
  •  
  •  댓글 0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 한국인 강제노역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강한 유감'을 표했다. [사진출처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 한국인 강제노역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강한 유감'을 표했다. [사진출처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위원회(UNESCO)는 2015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하시마) 탄광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일제시기 한국인 강제노역과 징용을 알리지 않고 있는데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했다.

당초 중국 푸저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돼 12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근대산업시설 결정문안을 통해 “당사국(일본)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은 2015년 7월 강제노역 시설 7개소를 포함한 ‘메이지(明治) 근대산업시설 23개소’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 및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2년 마다 제출하는 이행경과보고서를 두 차례(2017, 2019) 제출하면서도 “시설의 전체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 전략 마련을 권고”한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제 42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2018.6)에 이어 이번 4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도 ‘결정문’에 이같은 사항을 지적받고 이행을 촉구받은 것.

또한 일본은 지난해 6월 도쿄 소재 산업유산 정보센터(Industrial Heritage Information Centre)를 개관해 일반에 공개했지만 역시 전시 내용에는 강제 노역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의 증언 및 자료들만 전시되어 있고 강제 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도 전무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의 지정뿐만 아니라 후속 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의 지정뿐만 아니라 후속 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에 따라 유네스코(UNESCO)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 3명이 도쿄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시찰해(6.7~9)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번 제44차 결정문안에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반영됐다.

공동조사단 보고서는 △1940년대 한국인 등 강제 노역 사실 이해 조치 불충분, △희생자 추모 조치 부재, △국제 모범 사례 참고 미흡, △대화 지속 필요성을 강조하고 “1910년까지의 해석 전략에 대해서는 평가하나, 1910년 이후 등 전체 역사 해석 전략 불충분”으로 결론내렸다. “강제 노역 등 어두운 역사에 대한 고려 및 희생자 추모 목적의 센터 기능 부재”라는 결론이다.

이를 반영해 제44차 결정문 6항에 “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을 충분히 참고할 것을 요청(requests)”했으며, 구체적으로 5가지를 요청했다.

첫째, “각 시설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그리고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해석전략” 둘째,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 셋째, “인포메이션센터 설립과 같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 넷째, “유산의 OUV가 적용되는 기간과 그렇지 않은 기간 모두에 대한 해석전략과 디지털 해석자료 마련에 있어 국제모범사례 (참조)” 다섯째, “관련 당사자 간 대화 지속” 등이다.

제44차 결정문은 “당사국에 업데이트된 보존현황보고서 및 상기 이행사항을 2022.12.1.까지 제출하여 2023년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검토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further requests)”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2일 기자들에게 “외교부는 아주 강력한 유네스코의 결정문안 나왔기 때문에 일본의 도교정보센터 개선 구체조치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고 주시하겠다”면서 “일본이 이번 결정을 조속, 충실히 이행할 것을 지속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2015년 등재 당시 일본 대표 발언이 결정문 본문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며 “결정문 내용 자체가 공동조사단의 객관적 심사결과를 인용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과거 결정문안과 구별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계유산 지정 취소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유산 자체의 본질적 특성이 완전히 훼손되는 경우에 한에서만 취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당국자는 “일본이 이행하지 않으면 2년마다 권고, 더 강력한 압박이 주어질 것”이라며 “이번 강력한 권고안이 나와 일본이 성실히 이행조치를 앞으로 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적시한 ‘국제 모범 사례’에 해당되는 독일의 경우 일본과 달리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 역사에 대해 사실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피해자들 사진을 전시하는가 하면, 그들을 기리는 기념시설을 마련해 두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측도 유사한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은 ‘당사자들과의 대화 지속’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공동조사단 보고에는 “동 유산 관련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관련 당사국의 전문가들은 대화에 불포함”시켰다고 적시하고 “6.30 일본측은 한.일 양국간 면담(meetings) 목록을 제출한 바, 면담 구체 내용은 제출하지 않았으나, 대화가 실제로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한일 양국 대화 등 일부 대화가 있었으나, 향후 대화가 중요하며, 대화 지속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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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회연주단 등 예술인들과 기념촬영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7.12 08:40
  •  
  •  댓글 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받은 중요예술단체 예술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받은 중요예술단체 예술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받은 중요 예술단체 창작가들과 예술인들을 만나 축하해주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위대한 우리 시대와 위대한 우리 당 그리고 위대한 우리 국가와 위대한 우리 제도를 노래하는 성스러운 길에서 혁명의 나팔수로서의 영예를 더욱 줄기차게 빛내어가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표명하면서 국가표창을 수여받은 창작가, 예술인들과 국무위원회연주단 전체 예술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창작가, 예술인들이 우리 당의 혁명노선과 사상을 높이 받들고 노래 '우리의 국기'를 비롯하여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시대의 명곡들을 창작 형상함으로써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를 빛내이고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심과 낭만을 안겨"주었다고 평가했다.

김옥주 국무위원회연주단 성악배우에게 인민배우 칭호가, 리명일 국무위원회연주단 단장 겸 지휘자에게 국기훈장 1급이 수여되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예술인들에 대한 국가표창 수여식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예술인들에 대한 국가표창 수여식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특히 제8차당대회와 전원회의 최근까지 활발한 음악공연을 벌이고 있는 국무위원회연주단의 활동에 대해 "최근 문학예술 부문이 의연 동면기, 침체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때에 당중앙의 의도를 구현한 명작, 명공연들로 인민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감흥을 불러일으"켰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국가표창 수여식에서 국무위원회연주단 성악배우 김옥주와 국무위원회연주단 단장 겸 지휘자 리명일에게 각각 인민배우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되었으며, 공훈국가합창단 작곡가 박성남 등에게는 국기훈장 제2급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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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 1인분이 5천원? 여기는 목포입니다

[전남 신안·목포의 맛] '민어의 거리'에서 맛 본 민어회와 민어탕

21.07.12 07:29l최종 업데이트 21.07.12 07:30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사진보기 민어회는 숙성된 선어회로 내놓는다. 수분이 적당히 빠진 선어회는 그 특유의 감칠맛과 차진 맛이 더해진다.
▲  민어회는 숙성된 선어회로 내놓는다. 수분이 적당히 빠진 선어회는 그 특유의 감칠맛과 차진 맛이 더해진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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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물고기라는 민어,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생선 가시와 쓸개 빼놓고 다 먹는다는 민어를 회로 먹는다면 활어와 선어 중 어떤 게 더 맛있을까. 올여름 복달임 음식으로 민어회와 민어탕을 소개한다.

미식가들은 민어회보다는 민어 부레와 껍질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옛말에 '데친 민어껍질에 밥 싸 먹는 맛에 빠져 전답을 다 팔아먹은 사람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져 온다.

불둥거리(완도), 홍치(법성포), 보굴치, 어스래기(서울, 경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민어는 그 종류가 무려 270종에 달한다. 민어는 조기, 부세, 수조기, 보구치 등과 같은 종이다. 그중 몸집이 가장 큰 녀석이 민어다. 1m가 넘는 크기의 민어도 있다.

진정한 민어 요리 맛보려면 목포가 좋아
 
 바다에서 갓 잡아 온 활민어는 회로 먹기 위해 피를 뺀다.
▲  바다에서 갓 잡아 온 활민어는 회로 먹기 위해 피를 뺀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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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의 주산지는 천사섬 전남 신안 임자도다. 그러나 진정한 민어 요리를 맛보려면 목포로 가야 한다. 목포 민어의 거리에 가면 민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몇 곳 있다. 목포 시내 곳곳에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숨은 맛집들도 더러 있다.

민어가 제철(7~8월)이다. 민어는 예로부터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즐겨 먹었던 생선이다. 하여 '복더위에 먹는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다. 민어가 일품 보양식으로 사랑받았던 가장 귀한 생선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찜보다는 회나 탕으로 즐겨 먹는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민어 맛에 대해 '비늘과 입이 크고 맛은 담담하면서도 달아서 날것으로 먹으나 익혀 먹으나 다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고기는 살이 차오르고 지방이 적당하게 오른 산란기를 앞둔 시기에 가장 맛있다. 이때 생선 살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가장 두드러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산란기를 앞둔 생선을 가장 선호한다. 이는 산란기가 생선의 제철이기 때문이다. 제철에 잡은 민어가 육질이 가장 단단하고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민어 부레와 껍질이다. 미식가들은 민어회보다는 민어 부레와 껍질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  민어 부레와 껍질이다. 미식가들은 민어회보다는 민어 부레와 껍질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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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민어가 여름철 보양식으로 알려지면서 그 가격 또한 만만치가 않다. 목포에 가면 민어회 한 접시에 4만5천 원 남짓이다. 민어 코스 요리는 4인 기준 15만 원이다. 풍성하게 차려내는 여수의 횟집들과 달리 민어 상차림이 참 단출하다. 

 

활어도 아닌 선어회 가격이 이 정도란다. 민어 가격이 너무 비싸 언감생심 민어 정식은 꿈도 못 꾸겠다. 하기야 인기가 많아 찾는 이가 많으면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게 당연한 이치다. 부레가 유난히 큰 민어는 물 위에 내놓으면 곧바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민어 활어회 맛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횟집에서 내놓는 민어회는 숙성된 선어회다. 수분이 적당히 빠진 선어회는 그 특유의 감칠맛과 차진 맛이 더해진다.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낸 민어회의 연분홍 자태가 미각을 자극한다.

회 접시에는 일반 횟집에서 허전함을 메꾸고자 즐겨 사용하는 천사채가 아닌 양배추 채를 도톰하게 깔았다. 민어회 아래 깐 양배추 채는 식용이 가능하긴 하나 세균 번식이 우려되므로 먹지 않는 게 좋겠다.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낸 민어회의 연분홍 자태가 미각을 자극한다.
▲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낸 민어회의 연분홍 자태가 미각을 자극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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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분 5천원에 차려낸 민어탕이다.
▲  1인분 5천원에 차려낸 민어탕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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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철을 맞아서인지 민어회를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민어회는 상추나 깻잎쌈을 하는데 깻잎쌈이 더 잘 어울린다. 참기름, 된장, 겨자 소스, 간장소스가 나온다. 취향껏 먹으면 된다. 민어회 쌈에는 마늘 편이나 풋고추를 곁들여 먹는다.

맛보기 부레와 민어껍질도 내준다.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부레는 접시에 함께 담아낸 소금을 살짝 찍어 먹으면 좋다. 밥을 싸 먹으면 더 맛있다는 민어껍질도 참 별미다.

여름철 일품 보양식인 민어회에 이어 민어탕과 밥으로 마무리를 했다. 냄비에 끓여낸 기름이 동동 뜬 민어탕의 맛은 단연 최고다.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압권이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에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민어 요리가 허약한 몸을 추스르는데 더없이 좋아 보인다. 올여름 으뜸 보양식으로 민어회와 민어탕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맛사랑의 맛있는 세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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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 경찰 사칭 MBC에 “언론 궤도 이탈”

여가부, 통일부 없애자는 이준석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연상시켜”
동아일보·경향신문,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진짜 논쟁’ 당부
 

 

조선일보, 경찰 사칭 MBC에 “언론 궤도 이탈”

지난 8일 MBC 소속 기자 2명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배우자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취재하던 중 자신들을 경찰이라 사칭했다. 윤 전 총장의 부인 김씨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전아무개 교수가 과거에 살던 집을 찾아가 그 집 앞에 세워진 승용차 주인에게 전화 통화로 전 교수의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경찰이라고 속였다.

이튿날 MBC의 이 같은 취재 행위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비판이 나왔다. 같은 날 윤 전 총장 대변인실은 “김건희씨 관련 취재 과정에서 특정 언론에서 경찰관을 사칭하는 범죄 행태가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기자가 경찰관을 사칭했다면 이는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공무원자격 사칭죄’ 또는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범죄이므로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입장을 냈다.

▲지난 9일자 MBC ‘뉴스데스크’ 사과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9일자 MBC ‘뉴스데스크’ 사과 방송화면 갈무리.

이에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9일 스포츠뉴스 시작 전 사과했다. 왕종명 앵커는 “본사는 본사 취재진이 윤 전 총장의 부인 김씨의 박사 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취재 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본사는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취재진 2명을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고 사규에 따라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를 입은 승용차 주인과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MBC의 취재 윤리 위반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MBC가지난해 3월31일 채널A 기자가 윤 전 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손을 잡고 신라젠의 대주주 이철씨에게 신라젠 행사 강의를 한 적 있는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알고 있으면 진술하라고 강요했다는 보도를 한 점을 거론했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작년 총선을 앞두고 MBC는 채널A 기자가 윤 전 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손잡고 금융 사기로 구속된 전 신라젠 대주주에게 ‘유시민씨 비위를 진술하라’고 강요했다는 보도를 했다. 사기 전과자이며 윤 전 총장을 비난하던 제보자가 채널A 기자와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 이 보도가 나가기도 전에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MBC 제보자의 변호사인 같은 당 황희석 최고위원이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간다’고 했다. 당시 권력 수사를 지휘하던 윤 전 총장과 측근이 채널A 기자와 공모했다는 얼개의 MBC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해 3월3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를 지적했다.
▲지난해 3월3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검찰은 채널A 기자와 한 검사장이 공모한 혐의를 공소장에 넣지도 못했다. 윤 전 총장과 채널A의 검언유착이 아니라 권력의 ‘검언유착 조작’ 쪽으로 사실상 결론이 난 것이고 MBC가 총대를 메고 거든 셈”이라고 해석한 뒤 “그런 MBC가 이번엔 윤 전 총장 주변을 캐기 위해 경찰을 사칭하는 무리수를 뒀다.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말을 누가 믿겠나. 정권 편향 방송의 야권 대선 주자 공격을 정상적 검증을 넘어 언론 궤도의 이탈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이준석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연상시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외교, 통일 업무가 분리된 건 비효율적”이라며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꺼냈다.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라는 부처를 둔다고 젠더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통일부 둔다고 통일에 특별히 다가가지도 않는다”고 썼다. 이에 여당 의원들은 이 대표를 비판했다. 야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국정은 수학이 아니다. 쓸데없이 반통일 세력의 오명을 뒤집어 쓸 필요도 없다. 통일부는 존치돼야 한다”고 했다.

▲12일자 동아일보 6면.
▲12일자 동아일보 6면.
▲12일자 경향신문 2면.
▲12일자 경향신문 2면.

동아일보는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론이 여야 간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6면 기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꺼낸 ‘통일부 폐지론’이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쟁점으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황당한 주장’이라며 성토하고 나섰지만 이 대표는 ‘작은 정부론은 대선을 앞두고 주요하게 다뤄질 과제’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준석 리스크가 시작된 게 아니냐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2면 기사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 주장을 내놓으며 좌충우돌하고 있다. 당내 대권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자 이를 공식화하자는 입장을 내놨다가 당내외 논란에 한발 물러섰다. 통일부 폐지론은 직접 꺼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당내 일각에선 이 대표가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너무 많은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풀이했다.

언론들은 이 대표의 성과주의식 발상을 우려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30대의 제1야당 대표가 특정 부처에 대해 일도양단식 판단을 거듭 소셜미디어에 게시하고 주장하는 것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연상시킬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12일자 서울신문, 국민일보 사설.
▲12일자 서울신문, 국민일보 사설.

서울신문은 이어 “통일부는 박정희 정부가 1969년 3월 신설한 부처다. 당시에는 국토통일원이었다. 최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가 중지되는 등으로 남북 관계가 영향을 받아 수년째 교착상태다. 성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데, 성과가 없으니 폐지하자고 주장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효율을 최선으로 삼는 기업이 아니다. 이 대표가 굳이 통일부와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면 당내 반론을 탕평해 대선 공약 등으로 제시하길 바란다”고 했다.

국민일보도 사설에서 “한마디로 성과가 미미하니 폐지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야당이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문제가 있거나 존재감이 미미한 부처가 있다면 언제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과가 미흡하다고 아예 없애버리자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성과주의’ ‘능력주의’만 맹신한 데 따른 게 아닌가 싶어서다”고 짚었다.

국민일보는 이어 “무엇보다 정부조직 존폐를 ‘갑툭튀’ 식으로 제기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 당내외 여론 수렴을 거쳐 정식으로 공약으로 내세워야지 라디오·SNS에서 툭 던질 사안이 아니다. 정부조직은 헌법정신과 시대흐름, 국민과의 오랜 소통 결과 등이 반영돼 만들어진 것”이라며 “부처 폐지 주장이 얼마나 뜬금없으면 20대 남성과 극우 표를 얻으려고 갈라치기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경향신문,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진짜 논쟁’ 당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예비경선 결과 추미애·이재명·정세균·이낙연·박용진·김두관 후보(기호순)가 본경선에 올랐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국민·당원 여론조사를 거쳐 8명의 후보가 6명으로 압축됐다. 신문들은 민주당 후보자들이 진짜 논쟁을 통해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2일자 동아일보 4면.
▲12일자 동아일보 4면.
▲12일자 경향신문 사설.
▲12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민주당 예비경선에선 박용진 후보 등이 기존 구도를 깨고 선전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진 못했다. 예전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보여준 역동성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평가한 뒤 “오히려 유력 주자 이재명 후보에게 다른 후보들의 공세가 집중되면서, 이른바 ‘바지’ 발언이 나오는 등 엉뚱한 논쟁에 파묻혔다. 도덕성 검증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과도한 사생활 공방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12일자 동아일보 사설.
▲12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앞으로 본경선 기간 동안 여당 후보들은 이 같은 비전과 공약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상세하게 보여줘야 한다. 특히 복지공약은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후보들은 어떤 예산을 줄여 여유재원을 만들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또한 후보들은 너도나도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있지만, 현 정부의 공공알바를 통한 임시직 늘리기와는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당내 경선의 특성상 후보들이 강성 당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당 안에 강성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심과 일반 국민들의 민심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겠다는 후보라면 비좁은 당심에 매몰되지 말고 다수 국민의 민심을 우선시해서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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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컷오프’ 추미애·이재명·정세균·이낙연·박용진·김두관 통과

대선후보 경선 예비경선서 최문순·양승조 ‘탈락’

1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결과 발표에서 본경선에 진출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7.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대표, 박용진 의원, 김두관 의원(기호순) 등 6명은 ‘컷오프’를 통과해 본경선에 진출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탈락했다.

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이상민)는 11일 본경선에 진출할 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예비경선은 정세균 전 총리와 후보단일화해 사퇴한 이광재 의원을 제외한 8명 경선 후보를 대상으로 당원 여론조사 50%, 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해 상위 득표자 6명을 추렸다. 조사는 지난 9일부터 3일간 실시됐으며, 민주당 대선 후보 적합도를 물었다. 2인 이상 동률을 이룰 경우 여성과 연장자 순으로 순위가 결정되는 룰이 적용됐다. 이날 본경선 진출자 6명이 발표됐으나 후보별 순위와 득표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6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9월까지 대선 후보 본경선을 실시한다. 전국대의원과 권리당원, 일반당원은 물론 일반국민도 국민선거인단에 신청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민주당은 11일 오후 현재 72만명이 국민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경선에 대한 국민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8월 15일, 29일, 9월 5일 세 번에 나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우선 11일까지 접수한 국민선거인단이 8월 15일 발표될 첫 후보 경선에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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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수도권 4단계 격상, 시장 상인 한숨 더 깊어져

신규 확진자 사흘 만에 1300명대
변이 확산만큼 깊어진 시장상인 한숨
“손실보상법 시행 신속히 이뤄져야”

▲ 경기 성남시 모란민속장에서 기름집을 운영하는 시장상인 C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장사를 해왔지만 이제 이곳은 나만큼 나이든 노인네들이나 발길을 찾는다”며 “하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왔다 그냥 돌아간다. 사질 않으니 물건도 안 빠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진=현지용 기자)

 

수도권 지역에의 거리두기 4단계 이후 시장 상인들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암울해져 가는 모습이다. 상인들은 조속한 손실보상법의 시행을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9일 오전 수도권을 대상으로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지난 수일간 코로나 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날 신규 확진자 수가 1300명대 돌파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4단계는 오후 6시부터 사적모임 2명 이상, 다중이용시설 이용인원 등에 대한 제한이 강화됐다. 격상 시행 시점은 오는 1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B씨는 “임대료 절반 감면 조치가 연장됐으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며 “금요일 퇴근길 꽃을 사던 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B씨는 “임대료 절반 감면 조치가 연장됐으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며 “금요일 퇴근길 꽃을 사던 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수도권 4단계 격상으로 소상공인 시장은 날벼락을 맞은 분위기다. 사실상 주말을 앞둔 9일 금요일부터 4단계 조정이 적용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매월 4·9일 5일 간격으로 열리는 경기 성남시의 모란 5일장은 주말을 앞두고 방문하는 손님들로 붐볐지만, 대부분 고령층에 ‘빈손’으로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모란민속장에서 기름 장사를 해온 시장상인 A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장사를 해왔지만, 이제 이곳은 나만큼 나이든 노인네들이나 발길을 찾는다”며 “하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왔다 그냥 돌아간다. 사질 않으니 물건도 안 빠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가죽거리에서 수제화 공방을 이어온 사장 A씨는 “앞으로 손님이 더 적을 것이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방문 증감이 크게 체감된다”며 “코로나19 확산 전과 지금 비교하면 가죽거리 점포는 절반이나 빠졌고, 그 나머지도 빈집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가죽거리에서 수제화 공방을 이어온 사장 A씨는 “앞으로 손님이 더 적을 것이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방문 증감이 크게 체감된다”며 “코로나19 확산 전과 지금 비교하면 가죽거리 점포는 절반이나 빠졌고, 그 나머지도 빈집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경기도와 경계를 맞댄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도 4단계 격상으로 인한 시장상인들의 걱정이 느껴졌다. 지하 꽃시장에서 20년 넘게 영업해온 B씨는 “화환연합회에서 임대료 절반 감면을 연장해줘서 그나마 낫지만, 형편은 나아지질 않는다”며 “손님이 하나도 없다. 금요일 퇴근길 꽃을 사던 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다”라고 토로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가죽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수제화 공방을 이어온 사장 A씨는 “4단계가 떠서 앞으로 손님이 더 적을 것이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방문 증감이 크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매장이 있다는 곳도 코로나로 사정이 악화됐다. 코로나19 확산 전과 지금 비교하면 가죽 점포는 절반이나 빠졌고, 그 나머지를 식당과 카페가 채웠는데 그마저도 빈집이 많다. 앞으로의 2주가 매우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상인들은 말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 빨리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4단계 격상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도 사라질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사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상인들은 말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 빨리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4단계 격상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도 사라질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사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그나마 소상공인에게 가뭄 중 단비가 될 손실보상법이 지난 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최근 사흘 동안 신규 확진자 수가 연속 1000명 이상을 기록하며 상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손실보상 기준의 시급성이 대두된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9일 성명을 통해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으로 7월 경기 회복에 기대를 걸었으나,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강력한 영업 금지·제한으로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며 “소상공인들의 현장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로 손실보상 심의위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방역 대응에 공감은 가나, 소상공인을 위한 신속한 대응책이 부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시장은 손실보상에 대한 체감이 와닿지 않는다. 어느 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트이면서 보상이 이뤄졌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4단계로 올리니 특별한 대응책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상인들은 말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 빨리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4단계 격상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도 사라질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사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현지용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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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뿌려 태워죽인 것도 부족해 시신을 전시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7/11 09:03
  • 수정일
    2021/07/11 09: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의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보복학살 부르며 방식도 

21.07.10 20:09l최종 업데이트 21.07.10 20:09l


"정춘영이 나와." "애 아부지는 없는디유..." "어디 갔어?" "글씨 어제 나가서 안즉 안 왔는디유."
충남 태안경찰서 소원지서 경찰의 물음에 정춘영의 아내 이예순이 답했다. 경찰들은 찾던 사람이 없자 논에서 일하던 정춘영의 동생 정성영을 대신 연행했다. 보도연맹원 예비검속 방침에 따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태안경찰서는 상부의 명령을 받아 6월 말부터 7월 11일까지 보도연맹원들을 붙잡아 들였다. 좌익 전향자 등으로 꾸려진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이 남하하면 협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초기에 연행된 태안 지역 보도연맹원 일부는 트럭에 실려 대전형무소 방향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트럭은 예산면 오가면에서 멈췄고 그곳에서 그들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태안보도연맹원 일부가 대전 방향으로 이송된 사실은 태안경찰서 소속 조정찬 경위의 순직 사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태안서 소속 좌기 직원은 동년(1950년) 7월 9일 좌익극렬분자(보련) 등을 대전형무소에 압송도중 홍성 장곡면에서 ××의 교통방해로 인한 자동차 발화사고로 불행히도 소사 순직하였음(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석유 뿌리고 예광탄을 쏘아
 
 태안군 보도연맹원 대다수가 학살된 사기실재
▲  태안군 보도연맹원 대다수가 학살된 사기실재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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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태안군 보도연맹원 대다수는 서산군 태안면(현재 태안군 태안읍) 백화산 사기실재로 끌려 갔다. 저녁 무렵 이들을 실은 트럭은 사기실재 고개를 넘지 않고 고개에서 멈췄다. 

보도연맹원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고 트럭에 내릴 때도 짐짝 버리듯이 버려졌다. 그들은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앞서 경찰은 태안경찰서 마당에서 보도연맹원을 2인 1조로 세워 등을 마주 보게 했다. 그런 후에 두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철사로 묶었다. 고통에도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총 개머리판이 사정없이 날라왔기 때문이다.

사기실재에 버려진 이들의 머리 위에는 석유가 부어졌다. 잠시 후에 예광탄을 쏨과 동시에 일부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의 옷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옷과 살이 타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엄지손가락이 철사로 묶인 이들은 살기 위핸 몸부림을 쳤다. 몇몇은 이인삼각(二人三脚)하듯이 발을 맞춰 도망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경찰의 조준사격을 당했다. 잠시 후 시신 타는 냄새와 총소리가 뒤섞여 사기실재는 '지옥도' 그 자체였다.

참혹한 죽음보다 더 놀라운 일이 그 다음에 벌어졌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경찰들은 새카맣게 그을린 시신들을 트럭 적재함에 실었다. 총에 맞아 떨어져 나간 팔, 다리도 전부 포함됐다.

잠시 후 시신을 실은 트럭은 태안면 고추판매소 창고 앞에 멈춰 섰다. 경찰들은 새카맣게 탄 시신 백여 구를 전시(?)하고는 사라졌다. 1950년 7월 12일 초저녁의 일이다. 시신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거나 구토를 해댔다. 사망자 유족들은 경찰이 태안에서 후퇴한 다음 날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서산군 덕지천(현재의 서산시 덕지천동)에서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보도연맹원 일부가 죽임을 당했다.

앞서 등장한 모항리 정성영도 이때 죽었다. 보도연맹원인 형이 집에 없다는 이유로 대신 연행됐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정성영이 사기실재에서 죽었는지, 덕지천에서 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소원면 모항리 보도연맹원 11명을 포함한 태안군 보도연맹원 1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항초등학교 부자 교사의 죽음

 "컹컹." 그로부터 얼마 후인 9월 말경. 어두컴컴한 밤 모항리 초입에서 시작된 개 짖는 소리는 온 마을로 번졌다. 그렇게 모항초등학교 교장 국계환(당시 42세)의 집에 들이닥친 불청객은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이었다. 인민군이 주둔하고 난, 소위 인공(인민공화국) 시절 완장을 찬 이들이다.

"국계환이 나왓!" 주인장이 방문을 열자 그들은 "뭘 꾸물거려, 빨리 나오지 않고"라며 큰형뻘이자 아버지뻘인 국계환 교장에게 반말을 해댔다.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가 불청객들에게 뒷결박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화살은 국교장의 아들 국병녕(당시 20세)에게도 향했다. "야, 병녕이도 묶어"라는 지휘자의 말에 국병녕도 뒷결박을 당했다. 불청객들이 물러나자 교장 집에서는 곡(哭)이 터져나왔다.

국계환·국병녕 부자는 모항초등학교 교사로 아버지는 교장이었고 아들은 평교사였다. 이들은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지방 좌익에게 반동이라는 이유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부농도 지주도 아니었다. 단지 초등학교 선생이었을 뿐이다.

1950년 9월 20일 연행된 이들은 모항리 안상각의 소금창고로 끌려갔다. 이후 20일 가까이 구금됐던 이들은 10월 9일 모항리 해변으로 끌려 나왔다. 지방 좌익들은 국계환·국병녕 부자를 에워쌌다. 지휘자의 턱짓에 사람들 손에 쥐어져 있던 죽창과 쇠스랑이 내질러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창과 쇠스랑을 죈 이들의 옷과 얼굴에도 피가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앞선 7월 모항리에서 보도연맹으로 학살된 이의 유가족도 있었다. 보복 학살의 시작이었다.

계급갈등과 씨족갈등이 겹쳐

국계환·국병녕 부자처럼 반동과 우익(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방좌익에게 학살된 소원면 모항리 사람은 17명이다. 당시 모항리는 3개 구에 불과했으니 엄청난 수치다. 

피해자의 직업은 국계환·국병녕 부자를 제외한 15명 모두 농업이었다. 또 전직 이장 5명, 현직 이장 3명이 희생됐다. 이외에도 국교환은 대한청년단원이라며, 국응선은 형 국중곤이 경찰과 친분이 있어서, 박일옥은 이장으로 있으면서 우익조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살생부에 올랐다. 이들은 안만순·안상각 부자의 소금창고와 분주소 등지에 구금되어 있다가 모항리 해변에서 죽거나 서산군 양대리, 소원면 파도리 등지에서 죽임을 당했다.

UN군이 반격해옴에 따라 북한군과 지방좌익은 후퇴하기 직전인 1950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군경가족이나 우익인사, 그들의 가족을 집단학살했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태안군에서는 북한군과 지방좌익에 의한 집단학살(적대세력에 의한 사건)이 유독 많았고 방식도 잔인했다. 소원면 모항리가 특히 그랬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계급 갈등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찮은 면이 있다.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모항리 피해자 17명 중 국씨가 10명이다. 가해자는 지방좌익과 일부 보도연맹원 유가족이다. 그런데 후일 경찰이 수복한 후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부역혐의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모항리 사람 61명 가운데 정씨이거나 정씨 가족이 42명이었다. 즉,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과 '부역혐의 사건'의 피해자 중에 국씨(58%)와 정씨(68%)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최태육 소장은 "6.25 전쟁 전부터 소원면 모항리에 내재해 있던 씨족간 갈등이 전쟁으로 인해 증폭된 것"이라고 보았다. 전통적인 계급갈등에 씨족갈등이 더해진 경우이다. 모항리에서만 전쟁 때 89명의 민간인이 죽음을 당했다.

치안대가 처형에 앞장서

다시 시간이 얼마 흐른 1950년 10월 초.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정춘영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소원지서 경찰들이 형 정춘영이 없자 그의 동생 성영을 잡아간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상황은 비슷했다. 이번에는 그 불청객이 경찰이 아니라 치안대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또 3개월 전에는 보도연맹원을 예비검속했다면 이번에는 인공 시절(북한군 점령시절) 부역행위가 문제가 됐다.

춘영과 그의 동생 완영과 연영이 붙잡혀갔다. 정춘영 삼형제를 연행한 이들은 소원면 자치치안대(이하 치안대)원들이었다. 치안대원 중에는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도 끼어 있었다. 치안대는 소원지서 경찰이 수복하기도 전에 부역혐의자를 임의로 검거·연행했다. 경찰이 수복한 후 공식적으로 '부역자심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소원지서장이 중심이 되어 대한청년단 간부, 의용소방대 간부, 면장,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피해자 유가족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부역혐의자들을 A, B, C 등급으로 구분했다. A급으로 분류된 사람은 대부분 즉결처형되었고, B급은 일부가 처형되었고, 일부는 재분류 후 처형되거나 훈방되었다. C급은 훈방되었다.(<태안 민간인학살 백서>, 2018) 심사위원회에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 유가족들이 참여해 사감(私感)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 수복 후 충남 태안군의 부역혐의자 검거 및 학살에는 태안경찰서가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소원면과 이북면(현재의 이원면)에서는 치안대가 직접 처형에 참가했다. 소원면 모항리에서는 주민 61명이 불법 처형되었다. 모항리 정연영·완영 형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신덕리 해안에서 죽었고, 정춘영은 시목리 장재 금광구덩이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외에도 모항리 해변에서 집단학살이 발생했다. 소원면 '피의 살육제'는 1950년 10월 5일경부터 11월 4일에 걸쳐 일어났다.

학살 방식은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과 비슷했다. 죽창과 쇠스랑으로 무장한 치안대가 부역혐의자들을 떼죽음으로 몰고갔다. 모항리 해변에서 죽임을 당한 27명의 얼굴은 죽창과 쇠스랑에 훼손돼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남매 옷을 벗겨 고문을 하기도

11월 초까지 이어진 부역혐의자 학살 이후에도 치안대는 해체되지 않았다. 치안대는 정낙설 집에 사무실을 차리고 부역혐의자를 추가로 연행해 구타하고 고문했다. 정춘영의 아들 정낙관(당시 14세)도 수차례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같은 마을의 정씨 남매(집 나이 13세, 16세)도 치안대 사무실에 연행되어 옷이 전부 벗겨진 채 고문을 당했다. 야만의 시대에 광기 어린 풍경이었다.
 
 숙부들이 학살된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 해안(당시는 바닷가) 현장에 선 정낙관.
▲  숙부들이 학살된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 해안(당시는 바닷가) 현장에 선 정낙관.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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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와 함께 감옥에 가둔 자유, 벌써 8년...“문 열어! 지금 당장!”

전국 50여 곳에서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촉구 국민 행동 진행
이 전 의원 “문제가 있는 곳에 할 일 있어, 우리가 싸워 쟁취해야 할 과제” 옥중서신

홍민철 기자 
발행2021-07-10 20:15:30 수정2021-07-10 20:15:30
 

자유를 감옥에 가둔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악랄하고 잔혹한 일제 시절에도 좌익 사범들이 8년 이상의 형기를 살지 않았는데, ‘자유대한’이라는 이 땅에서 이석기 전 의원이 받은 그 9년 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는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의 말이 비수가 되어 이 땅에 박힌다.

1년여가 지나면 이 전 의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박해를 사면으로 사죄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강우일 주교는 “세계가 칭송하는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이 세상에 정의가, 진실이 바로 세워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참 멀어 보인다”고 탄식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불과 9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4년을 외면했다. 조헌정 목사는 “지난 정권의 정치적 희생양이었던 이 전 의원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위정자와 윤똑똑이들의 외면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10일 다시 전국의 거리로 나섰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서울 청와대와 부산 시청, 인천 남동구 구월동, 광주, 대구 등 전국 50개 지역에서 ‘문 열어! 지금 당장!’이라는 제목의 국민 행동이 진행됐다.

 

이날 오후 서울 도심 한복판에는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들이 걸어 들어왔다. 한 손엔 저울을 들고 하얀 망사로 눈을 가렸다. 법의 평등과 권위를 상징하는 ‘유스티티아(Justitia)’가 분명했지만 조금 달랐다. 얼굴에는 마스크가 씌어있었고, 다른 손에는 사법 권위를 상징하는 칼 대신 순백의 책이 들려 있었다. 구명위 관계자는 “이석기 의원 사면복권이 민주주의의 회복이자 정의의 회복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했다.

정의의 여신이 행진하던 그 시간, 서울 시내 전철역 40여 개 역사 300여 개 출입구에선 ‘이재용이 아니라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는 푯말을 든 시민들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 18개 시군에서는 소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이석기 전 의원 석방대회가 진행됐고, 울산광역시 주전 몽돌해변에선 석방을 촉구하는 길거리 버스킹 공연이 열렸다. 광주, 전북, 충북 등 전국 4곳에 위치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도 석방 촉구 집회가 열렸다.

최근 급격히 확산한 코로나19 방역을 의식한 ‘행진’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됐다. 경주 시내 곳곳에는 이 전 의원 석방을 바라는 시민들의 자전거 행진이, 제주도에선 시청을 출발한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고, 천안삼거리 공원에서부터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까지는 전동 킥보드가 줄지어 달렸다.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이 청와대 앞 광장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이 대형 조형물을 목마태워 행진하고 있다.(대구)ⓒ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인천)ⓒ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제주)ⓒ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천안)ⓒ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해수욕장 앞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울산)ⓒ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10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제주)ⓒ제공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대전교도소 앞에서 열린 청년문화제에서한국구명위 정진우 공동대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편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발전한 사회에서 왜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이석기를 비롯한 이들은 왜 여전히 감옥에 있는가. 우리 사회의 위선과 거짓과 무도함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고 했다.

구명위 관계자는 “대부분 회원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참가했고, 오프라인 행동은 사전 방역, 참석 인원 제한 및 거리 두기 등 방역 수칙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밝혔다.

이석기 전 의원은 이날 지지자들에게 보낸 옥중서한에서 “촛불혁명에서 민중이 제시했던 우리 사회 불평등의 해결, 나라다운 나라의 건설의 책임은 민중 자신에게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의 할 일이 있다”며 “자주, 평등과 평화 정의의 실현은 그 누구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청년세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지금은 태양이 뜨거운 계절이지만, 저 태양보다 뜨거운 청년세대들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며 “엄혹한 현실 온몸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특별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간 단 한 차례도 이른바 ‘광복절 특별사면’을 실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 가능성을 열어 놓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비판 여론이 일자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구명위는 지난 19일간 청와대 분수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진행했다. 지난 1일에는 5대 종단 지도자를 비롯해 각계각층 인사 1,700여명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다음은 이 전 의원이 보낸 옥중서신 전문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운 동지들.

이제 감옥에서 아홉 번째 여름이 시작됩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 곧 십년입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저를 감옥에 가두었던 내란음모조작사건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선언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정보기관의 도발이었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권을 정권과 거래한 사법부의 비열한 농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밝혀졌고, 촛불혁명을 거쳐 마침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낡은 것이 이미 죽어가는데도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고 하지요.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기형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러합니다. 촛불혁명과 박근혜의 탄핵, 그리고 지난 해 봄의 총선을 거쳐 낡은 지배세력은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내놓은 종부세 완화 정책이나 누더기가 되어버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언제 만들어질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차별금지법에서처럼 집권세력은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혁명 이후 우리 민중의 삶은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이런 공백은 그야말로 병적 징후를 낳고 있습니다. 검찰총장, 감사원장처럼 어제까지 현 정부의 최고위급 직위에 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야당의 대선 후보로 돌아선 것은 도무지 이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일각에서 들고 나오는 ‘공정경쟁’이니 ‘능력주의’니 하는 주장은 이미 파산된 MB시절의 시장만능주의와 승자독식 위에 간판만 새로 단 낡은 구호인 것이지요.

이처럼 범야권이라는 자들이 촛불혁명을 뒤로 돌리려는 이 병리적 상황의 책임은 온전히 현 집권세력에 있습니다. 한 때 목숨걸고 독재와 맞섰던 이른 바 여권의 586정치인들이 세대교체의 거센 바람 앞에 선 것은 그들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내세웠던 가치의 실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크게 늘어난 플랫폼 노동은 이른바 첨단 기술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강요받습니다. 미국의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투자금을 끌어모았던 온라인 쇼핑회사에서는 과로사라는 20세기적 비극이 계속됩니다. 신문에서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지금 어느 세기에 살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이들의 성공신화는 기술혁신에서 창출된 이윤이 아니라, 그저 노동자들을 더 쥐어짠 결과일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불평등은 완화되기는커녕 모든 계급 계층으로 더 심화됩니다. 이것은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오로지 자신의 과업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촛불혁명에서 민중이 제시했던 우리 사회 불평등의 해결, 나라다운 나라의 건설의 책임은 민중 자신에게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자주, 평등과 평화 정의의 실현은 그 누구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사랑하는 동지들.

한여름의 감옥 안은 뜨거운 태양의 복사열로 숨만 쉬어도 등에 땀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이 찜통더위를 견디는 힘은 미래에 대한 낙관에서 나옵니다.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의 생기발랄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 한 통, 노동 현장의 생동하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벗들의 이야기는 이 무더위를 이겨내는 한 줄기 바람과도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청년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석방을 위해 청년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헌신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첨예한 구조적 불평등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해결을 해 나갈 당사자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은 우리의 민족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체 역시 청년들입니다.

지금 청년들 앞에는 불완전한 고용과 저임금,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개인의 능력이나 책임으로 돌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청년 문제는 가장 시급한 정치적 과제인 것입니다. 이런 정치를 개척하는 것 역시 새 것에 제일 민감한 청년들의 몫입니다.

지금은 태양이 뜨거운 계절입니다만, 저 태양보다 뜨거운 청년세대들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청년들을 무한히 믿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엄혹한 현실 온 몸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 다시 한 번 특별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운 동지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21. 7. 10
대전옥에서 이석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누나 이경진 씨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눈가 젖어있다. 이경진 씨는 지난해말 말기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지만 19일 끝내 사망했다. 2021.03.21ⓒ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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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4단계에 ‘풍선 효과’?…“휴가철 앞두고 지역에 사람 몰릴라”

등록 :2021-07-10 04:59수정 :2021-07-10 09:11

 

강원·광주, 수도권 방문자 진단검사 행정명령
일부 지자체 거리두기 조정 검토
지난달 23일부터 ‘영일대 샌드아트 페스티벌’을 시작한 경북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이 9일 예정대로 개장했다. 포항시 제공
지난달 23일부터 ‘영일대 샌드아트 페스티벌’을 시작한 경북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이 9일 예정대로 개장했다. 포항시 제공
코로나19 확산으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12일부터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사적모임이 금지되는 가운데,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확진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부산·대전·제주 등은 8~9일 거리두기 단계를 상향 조정했고, 다른 지역들에서는 수도권 방문 자제와 수도권 방문자 검체검사 권고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부산·대전·제주 거리두기 상향 ‘만지작’
이달 초 하루 코로나19 확진자수가 20명 수준이던 부산에서는 7일 50명대까지 늘자 8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올렸다. 8일 오후부터 9일 오전 기준 확진자수는 62명으로 지난 4월3일 이후 석달만에 또다시 60명대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에 부산시는 9일 “10일부터 25일까지 16일 동안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가운데 2단계를 유지하되, 3단계에 준하는 강화된 방역 조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적모임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4명만 가능하다. 유흥시설·콜라텍·무도장·클럽·나이트 등 다중이용시설과 노래연습장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영업이 금지된다. 식당·카페·편의점·포장마차는 밤 10시까지 취식이 가능하고 이후부터 새벽 5시까지는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백신 접종자에 적용하던 사적모임 제외 등 인센티브도 중단된다.

거리두기 1단계가 적용되던 제주지역에서도 6일 19명, 7일 17명에 이어 8일엔 하룻동안 31명이 확진돼 비상이 걸렸다. 3차 대유행의 정점이던 지난해 12월22일(32명)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많은 수치다. 확진자 한명이 몇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주간 감염재생산지수는 지난 7일 2.41에서 8일 3.29로 증가해 지수 분석이 시작된 지난해 11월8일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제주도는 이날 “제주지역 거리두기 지표상 2단계(확진자 7명 이상)를 넘어 3단계(13명 이상) 격상 수준에 근접한 상황”이라며 “12일부터 25일까지 2주일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6일까지 176명(하루 평균 25.1명)이 확진된 대전시도 8일 거리두기 단계를 2단계로 상향 조정했지만, 9일 0시 기준(8일 하루) 확진자는 29명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대전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41)씨는 "노래방에서 델타 변이 감염, 학원 집단감염 등 확진자가 꾸준히 나와 충청권도 안심할 수 없는데, 오히려 수도권보다 주목받지 못하면서 긴장이 풀어지고 있다"며 "캠핑장이나 술집 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느는 추세라 이러다가 수도권 확산세를 이어받는 것은 아닌지 싶다"고 말했다.

확진자 추이 안정적인 지역들도 불안

확진자수 추이에 별 변화가 없는 지역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휴가철을 앞두고 거리두기 단계가 낮은 지역들로 사람들이 몰릴 수 있고, 개별 접촉이 지역내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상당수 시·도는 수도권 방문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강원도는 수도권을 방문하거나 수도권 주민과 접촉해 코로나 의심 증상이 나타난 도민에게 진단검사를 권고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경북도는 지난주부터 시·군청 전광판, 시외버스터미널, 공항 등에 안내문을 통해 수도권 방문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안내하고 있다.

광주시도 수도권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다른 지역을 방문했을 경우 꼭 진단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광주시의 한 공공부문 협력기관 직원인 전아무개(39)씨는 "광주시가 수도권 방문자의 경우 무조건 코로나 검사를 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며 "이번 주말 서울을 방문할 계획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분위기여서 결국 취소했다"고 말했다. 교직원인 정아무개(37)씨도 "주말을 앞둔 데다 곧 여름휴가인데, 수도권에서 오히려 지방으로 내려와 음식점이나 주점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질 듯해 전면 등교를 앞두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충남지역 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은 “본인이 수도권이거나 동반자 중에 수도권 지역 분이 계시면 운동 불가하오니 전화로 동반자 변경 및 취소 부탁드린다”고 공지했다.

거리두기 3단계가 적용되고 있던 춘천시는 2단계로 하향을 검토했지만 수도권 상황을 고려해 유보했으며, 2단계가 적용 중인 강릉·원주 등도 수도권 추이를 살펴가며 결정하기로 했다. 대구시도 8인 이상 모임 금지로 강화된 거리두기 1단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는 13일 방역 상황을 고려해 최종 거리두기 단계를 확정할 예정이다.

최근 일주일 동안 확진자가 90명에 그친 경남에서는 수도권과 부산 방문을 주의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강원 등 휴가철 방역에도 고삐

여름 휴가철을 맞이 방역도 고삐를 쥐고 있다.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강원도에서는 망상·낙산·경포 등 해수욕장 5곳에서 야간(저녁 7~오전 6시)시간대 백사장 음주·취식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안목·추암 등 5곳은 사전 예약 방문제를 운영하기로 했으며, 경포·속초 등 5곳은 파라솔 사이에 거리를 띄우는 현장 배정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강원지역 모든 해수욕장의 혼잡 정보를 네이버 등을 통해 알리는 ‘혼잡도 신호등제’도 시행한다. 수도권과 고속열차(KTX)로 연결된 강릉은 경포·주문진 등 4곳에 발열 환자를 확인하는 ‘방역 드론’을 띄우기로 했다.

경북 지역 해수욕장은 포항 6곳이 예정대로 개장했고, 오는 16일 경주·영덕·울진 19개 해수욕장이 문을 연다. 경북도는 해수욕장 방문자 관리를 위해 해수욕장마다 지정된 번호로 전화를 걸면 방문 기록이 남는 ‘안심콜 서비스’를 적용한다. 포항 도구·경주 관성·영덕 경정·울진 나곡 해수욕장은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통해 예약한 뒤 이용할 수 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여행지가 많은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여행지에 한정해 음주를 금지하거나 (모임) 인원 제한을 하는 등 방역 관리를 하고 있다”며 “수도권 주민들은 가급적 비수도권으로 이동하지 말 것을 권고하며, 휴가지 방역관리대책을 계속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규현 정유경 기자, 전국 종합 gyuhyun@hani.co.kr

 

[화보] 코로나19 4차 유행 비상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1002956.html?_fr=mt1#csidx41caa598632855f82d8547cf9b1e2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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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직접 고백한 ‘조국 낙마 작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회사진취재단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년여 전 검찰에서 진행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 전후 과정을 직접 고백했다.

9일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조 전 장관의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검찰 내부에서 조 전 장관 일가와 관련한 의혹을 정리하고, 압수수색 가능 여부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해당 발언은 ‘장관 지명 전부터 사모펀드 관련 내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 전 총장은 “2019년 7월 25일 발령을 받고 8월 9일 조국 장관이 법무장관 지명을 받았다.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휴가였는데, 집에서 TV를 켜는데 일주일 내내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며 “문재인 대통령한테 받아 거실 선반에 놓아둔 임명장의 잉크가 말랐나 안 말랐나 만져봤다. 잉크도 안 말랐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다음주 화요일 조 장관 딸의 논문 제1저자 건이 터졌고, 다음날 퇴근 시간에 김유철 범죄정보기획관을 불러 ‘야간작업을 하더라도 조 후보자에 대한 언론보도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이게 정말 근거가 있을 만한 것인지 보자’고 했다”고 본격적인 수사 지휘 착수 상황을 설명했다.

 

윤 전 총장은 “김 기획관이 다음 날 아침 정리해왔는데 이미 고발장이 자유한국당부터 시작해서 쫙 들어와 있었다. 야당과 언론의 수사 압박도 거셌다”며 “그래서 목요일에 대검 간부회의에 중앙지검장과 3차장도 오라 해서 같이 회의했다. 거기서 내려진 결정은 ‘일단 공개정보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 모아 압수수색 영장 청구 가능 여부만 보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는 조 전 장관이 지명을 받고, 인사청문회 일정이 잡히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즉 정치권의 검증 작업이 이뤄지기 전부터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요구되는 검찰 내부에서 장관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흔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휴가 복귀 직후 범정기획관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힌 만큼, 수사 착수에는 윤 전 총장의 적극적인 의지와 개입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고발장은 8월 19일에 접수됐고, 압수수색은 같은 달 27일 30여 곳에 대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를 두고 검찰 출신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사 관행에 비춰보면 고발장 접수되기 전에 내사하지 않고는 이렇게 많은 곳에 8일 만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해당 인터뷰에서는 윤 전 총장이 조 전 장관 관련 수사 대책을 세우기 전 정치적 상황이나 그에 따른 득실을 고려한 흔적이 보이기도 했다.

“나중에 자료가 유실됐다고 하면 완전히 봐주기 프레임에 걸려드니깐 일단은 자료를 확보해놓고 기다려보자는 거였다”, “지난 2년 동안 적폐수사를 했는데 이번엔 뭐냐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대법관들을 기소해놓은 마당인데 두말할 게 뭐 있겠나”,“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했다”는 발언이 그 근거다.

야당과 언론의 공세가 쏟아지는 여론에 편승했다는 점, 이른바 ‘적폐수사’의 균형을 기계적으로 맞춰 검찰이 받게 될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는 점 등을 언급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해당 수사 당시 “조국만 도려내면 된다. 그것이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악의적 주장”이라며 “다만 9월 9일 조 장관 임명 후 민정 관계자를 통해 대통령에게 ‘수사는 무리없이 원칙대로 진행해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으로부터의 욕은 제가 먹겠다’고 전달해달라는 이야기는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로 조 전 장관 관련 수사를 지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만두겠다고 한 문무일 총장을 설득하고 중재해 백혜련 안으로 수사권 조정이 확정되는데 기여했는데,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이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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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사령관, "지휘소훈련이 핵심", 왜?

기자명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회 승인 2021.07.09 15:13;  댓글 0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관련된 논의가 뜨겁다. 축소나 연기는 절대 안 된다는 보수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진다.

최근 우리 국회에서는 훈련 중단이나 연기 주장이 나오지만, 미 국방부와 국무부는 전직 관리들의 입을 빌어 훈련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부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대화 이후 연례적인 군사훈련의 명칭도 바꾸고 규모도 축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사훈련의 공격적 성격과 적대 행위는 결코 완화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매년 3월 키리졸브와 독수리 연습,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있다. 그러나 이 훈련 외에도 최근 ‘래드 플래그’, ‘시 브리즈’ 등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미군과의 훈련은 매우 많다.

올해만 하더라도 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 외에 4월 연합 편대군 종합훈련, 제4회 한미연합 공수화물 적·하역 훈련, 5월 화랑훈련과 대 중국 다국적 연합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훈련 형태와 방식을 쪼갬으로써 2018년 81회, 2019년 166회, 2020년 153회 이상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2018년 이후 한미연합군사훈련의 규모가 축소되었다지만 종합적으로는 더 활발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오는 8월 실시한다는 한미연합 지휘소연습(CPX)은 어떤 훈련일까? 지난 6일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연합훈련의 핵심은 지휘소 훈련이라고 밝혔다. 또한 낮은 단계의 실기동 훈련은 연중 실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과 미국은 만여 명 이상의 대규모 실기동 훈련은 없지만 보다 작은 단계에서의 실기동 훈련은 수시로 전개한다. 연합지휘소 훈련(CPX)은 이런 소규모 실기동 훈련의 지휘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작전계획의 모자이크를 맞추는 핵심적인 훈련이다.

쪼개서 진행되는 훈련들은 각 부대가 병력을 실제로 움직이는 연습이다. 이렇게 진행된 실기동 훈련의 결과를 바탕으로 연합지휘소 훈련(CPX)을 실시, 전쟁 연습을 완료한다.

1년 내내 실시한 모든 군사훈련이 연합지휘소 훈련(CPX)으로 총결집한다고 보면 된다.

전쟁 연습의 목적은 북에 대한 선제공격 및 점령이다. 실제 병력이 기동하지 않는 연합지휘소 훈련이 오히려 적대 행위의 최절정임을 알 수 있다.

확성기를 사용하는 것도 민감한 적대정책이란 이유로 폐기한 마당에 상대를 말살하는 종합적인 전쟁 지휘 연습을 두고 규모가 축소되었으니 강행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특히 오는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중에 실시되는 연합지휘소 훈련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대 중국 압박 훈련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 사진 : 국방부 홈페이지
▲ 사진 : 국방부 홈페이지

전쟁연습이 남북 대화, 북미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은 이미 지난 2018년에 확인된 바 있다. 4.27판문점선언이 나오고 2주도 채 되지 않은 5월11일부터 한미는 2018 맥스썬더 훈련을 실시했다. '판문점선언' 2조1항에서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는 약속을 전면적으로 깨버린 것이다. 이에 남북 고위급 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거나 조건없는 대화를 바란다며 북을 독촉하고 있다. 그러나 적대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대화는 있을 수 없다. 총을 겨눈 채 대화의 공을 넘기는 행위야말로 치졸한 협박이다.

분단으로 인한 피해도, 전쟁에 따른 희생도 모두 우리가 져야한다. 때문에 전쟁연습을 막는 데 가장 절박한 쪽도 우리다.

‘광복 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 추진위원회’는 전쟁연습을 막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1만 단체 선언과 10만 행동 온라인 촛불을 진행한다.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막는 일에 하나같이 떨쳐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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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3억짜리 아파트가... 투기꾼이 왔다간 뒤 벌어진 일

부동산 규제 정책에 지방으로 눈 돌린 투기꾼들... 김해 집값도 고공행진 중

21.07.09 07:31l최종 업데이트 21.07.09 07:31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부, 부동산 대책으로 LTV·DTI 강화 19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방안'(6·19 대책)에 따르면 오는 7월 3일부터 서울과 경기·부산 일부 지역, 세종 등 청약조정지역에 한해 LTV는 현행 70%에서 60%로 DTI는 현행 60%에서 50%로 강화된다. 사진은 2017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시중은행 주택자금대출 창구 모습. 2017.6.19
▲   2017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시중은행 주택자금대출 창구 모습. 2017.6.1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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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계약이 언제 끝난다고 하셨죠? 네, 근데 요즘 매물이 없어요. 수첩에 적어둔 뒤 매물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지난해 11월 공인중개사 사무소 세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올해 8월 전세 계약이 종료되기 전 살 집을 미리 구하고 싶었다. 김해시, 그 안에서도 현재 내가 사는 '장유'는 20년 전 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성장한, 인구 15만 명이 사는 지역이다.
 

장유 1동, 2동, 3동. 숫자가 높을수록 최근 생긴 도시다. 장유는 매년 커지고 있다. 장유 3동 인근 율하2지구 도시개발 사업이 90% 완료됐고, 장유신문지구 도시개발사업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터 닦기 중이다. 장유 3동에 속한 율하동, 관동동과 그 옆 율하 2지구는 율하천과 문화센터, 아웃렛, 워터파크 등 산, 하천, 도시 인프라가 집중돼 김해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가장 먼저 들썩이는 곳이다.


지금 환경보다 더 나은 곳에 살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진 욕망이다. 2004년 완공한 장유 1동의 오래된 아파트를 벗어나 장유 3동에 새 집을 얻고 싶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주택도시기금의 '신혼부부 주택구매자금' 대출을 받으면, 장유 3동에 새 둥지를 틀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작 그 아파트 사둘 걸 

'정부가 연이어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뉴스와 신문에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 발표의 영향을 내가 받을 줄 꿈에도 몰랐다.

'부산 한 아파트는 두 달 새 5억 원이 올랐대.'
'진작 그 아파트 사둘 걸.'


주변에서 부동산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를 떠들어 대도 남 일인 줄만 알았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서울, 수도권, 대구, 부산에 이어 창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넘쳐났던 부동산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공인중개사는 외지 투기꾼들이 장유 지역 매물을 싹쓸이했다고 말했다.

"아유, 2주 전까지만 해도 물량이 충분했는데 외지 투기꾼들이 들어오더니 매매고 전세고 물량이 싹 사라졌어요."

그러던 중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30평대 A아파트 매물이 딱 한 곳 나왔다 했다. 매물로 나온 집을 둘러봤다. 몇 달 전까지 매매가가 3억 원이었던 것이 3억 7000만 원으로 올랐다. 공인중개사는 매매가가 더 오르니 지금이 기회라며, 매매를 부추겼다. 나와 신랑은 고민해 빠졌다. 매물로 나온 곳이 마음에 쏙 든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매물을 더 보지 못한 채 내 집을 마련하는 게 맞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더 기다려보자."

고민 끝에 나와 신랑이 내린 결론이었다.

6개월 기다림 끝에 마주한 것

부동산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이 요동친다. 부동산 물량이 사라진 11월, 풍선효과와 비례해 매매와 전세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알아본 곳은 율하천, 중심 상권과 가까우며 시립도서관 인근 30평대 아파트였다.

국토교통부 부동산 실거래가 기준으로, A아파트는 지난해 6월 3억 2400만 원에 거래됐던 것이 같은 해 12월 3억 6800만 원으로 올랐다. B아파트는 2억 7900만 원(2020년 6월)에서 3억 원(2020년 12월), C아파트는 2억 9000만 원(2020년 6월)에서 3억 3000만 원(2020년 12월)으로 아파트 세 곳 모두 6개월 사이에 대략 3000~4000만 원이 올랐다. 율하2지구 D아파트는 3억 4900만 원(2020년 6월)에서 5억 원(2020년 12월)까지 올랐다.

매매, 전세가가 요동치니 주위에서는 내 집을 갖지 못한 자와 가진 자의 반응이 갈렸다. 내 집을 가지지 못한 자는 "지금이 아니면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른다. 오르기 전에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해 내 집 마련하자"고 매물을 찾아 나섰다. 집을 가진 자는 "매물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더 오를 테니, 조금 더 오를 때까지 이사 시기를 늦추자"며 장고에 들어갔다.

영끌로 내 집 마련에 나선 이들 중에선 부동산 최종 계약을 앞두고 매도인이 중도금을 돌려주고, 매매계약을 취소한 사례가 허다했다. 영끌로 집 마련에 나선 지인 A는 부동산 계약 전 매도인이 A에게 '1000만 원을 더 받아야겠다'며 요구한 탓에 계약서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결국 지인 A는 계약금에서 500만 원을 더 주고 매매 계약에 성공했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길 바라며 기다린 6개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니, 지난달 기준 장유 3동 A아파트는 3억 9000만 원, B아파트는 3억 4000만 원, C아파트는 3억 5000만 원에 거래됐다. 매매가는 6개월 전보다 3000~5000만 원 더 올랐다.

율하2지구 D아파트는 5억 5000만 원에 거래됐다. 율하2지구 아파트는 주택도시기금을 대출을 받는다 해도 갈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다. 결국 기다림 끝에 마주한 건 6000~9000만 원 오른 아파트 매매가였다.

'투기'하거나, '로또 당첨'이 되지 않은 이상 4인 가족의 생활비로 1년에 1000만 원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6개월 사이에 또 6000만 원이 오르다니!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유일한 희망은 청약, 그저 하늘에 비는 수밖에 
 
 더불어민주당이 공시지가 상위 2%를 종합부동산세 기준선으로 삼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개인별로 합산한 전국 주택 공시가격의 합계액으로 0~100%까지 순서를 매긴 후 상위 2%에서 기준선을 끊는 방식이다. 이 기준선 안에 들어오는 1세대 1주택자는 종부세 대상에서 빠진다. 사진은 이날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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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주택 매매 시장은 전월(5월 1.18%→6월 1.63%)대비 상승세가 확대됐다. 5개광역시(1.00%)는 상승폭이 소폭 확대됐고 기타 지방(0.77%)은 충남(0.99%), 전북(0.94%), 강원(0.90%) 등 모두 상승했다.

여러 차례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는 멈출 생각을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확인하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그래프도 꺾이지 않고 오르고만 있다. 내 속도 모르고 부동산 그래프는 자꾸만 하늘 높이 올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017년 5월~2021년 5월 서울 75개 단지 11만5000세대 아파트 시세 분석 결과'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4년간 3.3㎡당 평균 2061만 원에서 3971만 원으로 93% 상승했다. 30평형 아파트를 기준 집값은 2017년 6억2000만 원에서 올해 5월 11억9000만 원으로, 약 5억7000만 원 올랐다.

같은 기간 국민 실질소득은 298만 원(연 4520만 원→4818만 원) 올랐다. 아파트값 상승액은 소득 상승액의 192배에 달했다. 경실련은 "평균 소득의 국민이 소득을 단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더라도 서울에 30평 아파트를 사려면 25년이나 걸린다"고 지적했다.

'내가 사는 지역이라고 다를까?'

경실련의 보도자료를 보며 생각했다. 집 한 채 가진 것만으로 '벼락 부자'가 되는 세상. 이제 집을 가지지 못한 나와 신랑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신혼부부 특별공급' 주택 청약이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복권만큼 되기 어렵다는 청약을 넣고 부처님, 천지신명님, 예수님, 알라신 등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간절히 청약 당첨을 기도하며, 집 한 채 가지는 걸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퇴근 후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내 집. 아이들이 벽지에 낙서해도 허허 웃으며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는 내 집. 내 집 마련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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