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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땅 속에서 ‘훈민정음’ 금속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등록 :2021-06-29 09:01수정 :2021-06-29 09:45

 
옛 한양 중심부 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중요 과학유물도 함께 나와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이건 조약돌이 아니라 금속활자입니다!”

 

이달초 서울 도심 문화거리인 인사동 피맛골 재개발 지구 유적을 발굴중이던 수도문물연구원 조사팀은 16세기 건물터의 땅 속에서 나온 도기 항아리의 일부 내용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항아리 옆구리 구멍으로 삐져나온 조약돌 모양의 유물 몇개를 세척해보니 금속활자로 드러난 것이다. 흥분한 연구팀은 항아리 안의 흙을 모두 덜어내고 집중분석 작업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항아리 내부에 무려 1600여개의 금속활자가 가득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살펴보니 15세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즈음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초기 세종~세조대의 한글 금속활자 실물과 세종이 만든 한자 금속활자인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들이 처음 발견된 것이라는 판독 결과가 나왔다. 이 금속활자들중 일부는 서양에서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145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 활판인쇄를 시작한 때보다 제작시기가 수십여년 앞서는 것들로 추정된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소자.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소자.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한글 연주활자.
한글 연주활자.
 

문화재청은 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인사동 79번지 ‘공평구역 15, 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의 16세기 건물터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세종~중종 때의 금속활자 1600여점을 찾아냈다고 29일 발표했다. 청은 아울러 세종~중종대 제작해 쓴 것으로 보이는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 부품인 주전(籌箭)과 세종 때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의 부품들, 중종~선조 때 만든 무기인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들도 같은 유적에서 함께 묻힌 형태로 발굴되었다고 덧붙였다.

세종 때 만든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들. 크기상 소자(小字)에 해당한다.
세종 때 만든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들. 크기상 소자(小字)에 해당한다.
 
도기 항아리 내부를 채운 금속활자들. 출토 당시의 모습이다.
도기 항아리 내부를 채운 금속활자들. 출토 당시의 모습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세종 때 제작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들이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한글 금속활자를 이루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 등에 사용된 소자(小字), 특소자가 모두 출토됐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됐고,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들이 모두 출토된 점 등은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된 ㅭ, ㆆ, ㅸ 등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연결표기해 토씨(어조사)의 구실을 한 희귀본 연주활자(連鑄活字)들이 10여 점이나 나왔다.

 

물시계의 시보를 작동시키는 주전 부품들. 이번 발굴로 처음 실물이 출토되었다.
물시계의 시보를 작동시키는 주전 부품들. 이번 발굴로 처음 실물이 출토되었다.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인 ‘주천도분환’.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인 ‘주천도분환’.
 
물시계의 중요 부품인 주전. 처음 확인되는 실물이다.
물시계의 중요 부품인 주전. 처음 확인되는 실물이다.
 

한자 활자도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시대의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20년 이른 세종시대의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돼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금속 활자가 한 곳서 출토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와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한글활자와 세종이 만든 한자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실물이 사상 처음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내 인쇄문화사에 획을 긋는 발견”이라며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조사단 쪽은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해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들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이런 부품 형태들은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하여 자동물시계의 시보장치를 작동시킨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이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나왔다.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의 시계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출토 유물은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현존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와 동종이 땅 속에서 드러난 모습.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와 동종이 땅 속에서 드러난 모습.
 
출토된 승자총통.
출토된 승자총통.
 

소형화기로 총구에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불씨를 붙여 발사하는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이 나왔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정도다. 새겨진 명문을 판독한 결과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된다. 장인 희손(希孫), 말동(末叱同)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희손은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뉘어 발견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손잡이 용뉴(龍鈕)가 달렸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 특징이다. 종 몸체 윗부분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사 지역은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한양도성의 중심부다.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에 속했던 곳이다. 견평방은 조선 전기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사법기관 의금부와 왕실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과 상업시설 운종가 등이 자리했던 도성 안 경제 문화 중심지였다. 유적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된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 부분으로, 건물터 유구와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나왔다.

 

금속활자가 무더기 출토된 인사동 79번지 피맛골 조선초기 건물터 유적 전경.
금속활자가 무더기 출토된 인사동 79번지 피맛골 조선초기 건물터 유적 전경.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들은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있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출토품들 가운데 가장 시기가 내려가는 유물이 1588년을 뜻하는 만력 무자년 간기가 새겨진 소승자총통이어서 늦어도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이 확실하다. 오경택 연구원장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시기적으로 가까워 당시 전란을 맞으면서 유물들을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묻어두고 피난을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수도문물연구원 제공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01298.html?_fr=mt1#csidx760e1b36387053fb6787564083ee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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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말은 피아를 구분... 정은경 말엔 사람의 온도"

[인터뷰]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펴낸 강원국 작가

21.06.29 07:19l최종 업데이트 21.06.29 07:19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큰사진보기를 출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도 준비한 글을 읽으신다. 물론 준비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엄청 고친다고 들었다. 그건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세 분 대통령은 모두 반드시 본인의 언어로 다듬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서 최종적인 글(말)로 완성한다." 강원국 작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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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한다고 대화를 잘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말을 못해도 대화는 잘할 수 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대화에 서툴 수도 있다.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 역량이다. 대화를 잘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나 유재석 모두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 글쓰기 3부작을 펴냈던 강원국 작가가 이번에는 '말하기' 책을 들고 돌아왔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여 동안 KBS 1라디오에서 강 작가가 진행을 맡았던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의 방송 내용을 다듬고, 수십 꼭지의 새로 쓴 글을 보태 만들어졌다.

'실어증에 가까울 정도'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는 강원국 작가. 그의 '말문이 트인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의 말(연설문)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모들의 말하기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야겠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면서부터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아래서 일하면서 강 작가는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와 말하기를 배운 셈이다.

"김대중은 글 같은 말, 노무현은 말 같은 말" "김대중 대통령은 '글 같은 말'이다. 말씀하신 걸 풀어보면 그냥 글이 된다. 충분히 곱씹고 머리 속에서 퇴고까지 마친 뒤에 꺼낸 말씀이다. 연설할 때도 애드리브가 없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말 같은 말'이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김 대통령은 '연설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셨고, 노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건, 전문가의 권위뿐만 아니라 말의 바탕에 따뜻한 '사람의 온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 작가는 말한다. 30대에 제1 야당의 수장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말은 '쉽고 전략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준석의 말보다는 이준석으로 표출된 젊은 세대의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윤석열 전 총장은 앞으로 '말의 광장'에서 검증 받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작가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말하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꼽은 '눈높이 말하기의 7가지 기본 원칙'은, 눈을 맞추고 말해야 한다, 성향을 맞춰야 한다, 속도를 맞춰야 한다, 관심사를 맞춘다, 스타일을 맞춘다, 수위를 맞춰서 말해야 한다,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조언은 '말 안에 진실된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국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1시간30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강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펴낸 강원국 작가가 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말의 특징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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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글'이 아니라 '말'을 주제로 삼았나.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기업 CEO나 고위 공직자의 경우 글 쓸 일보다 말 할 일이 많다. 그런 분들이 종종 말하기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제가 예전에 했던 대통령 연설문 작업도 결국은 '말'이었으니까. 출판시장도 글쓰기보다 말하기 책의 비중이 더 높다.

또 하나는, 글쓰기의 출발점이 말하기라는 것이다. 강의를 해보니 더욱 절감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말하기가 먼저다. 그런 상황에서 말하기를 얘기하지 않고 글쓰기만 얘기하는 건 뭔가를 건너뛴다는 느낌이었다. 말하기의 내용은 나중에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돌이켜보니까, 제 자신도 말을 먼저 하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책으로 펴냈던 거였다."

- 말하기와 글쓰기, 어느 게 더 힘든가.

"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연설도 있고, 토론도 있고, 발표도 있고, 대화도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기고문과 SNS의 글은 차이가 크다. 종류에 따라 말이 편하기도 하고 글이 편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글이 더 편했는데, 요즘에는 말이 더 편한 것 같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늘지만, 느는 속도는 말하기가 훨씬 빠르다. 말은 상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뇌가 학습하고 다른 말을 반영한다. 말은 하는만큼 비례해서 느는데 반해, 글은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주로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정체기를 맞는 시점도 온다.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순간이다."

"글쓰기보다 말하기 실력이 더 빨리 는다" 

- 강원국의 말과 글의 특징은 무엇인가.

"글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께 배웠다. (주로 연설문을 쓰다보니) 단문이고, 수식이나 수사를 많이 구사하지 않는, 담백하고 간결한, 메시지 전달에 신경을 쓴 글이다. 그래서 저는 논쟁을 벌이거나 누구에게 감동을 주는 글쓰기에 취약하다. 다만, 스토리텔링과 서사(敍事)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본다. 직접 겪은 일화나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얘기하는 것도 잘 한다."

-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실어증에 가까운 상태였다. 조별 토론은 물론이고, 짧게 자기소개 하는 것조차 내 차례가 돌아오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사적으로, 한두 사람과 대화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발표하고 토론하는 공적인 말하기를 어려워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말수가 적으니 오히려 진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비서 생활을 할 때는 그런 점이 덕목처럼 여겨져서 덕을 봤다.

그러다 벽에 부딪힌 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나서부터다. 노 대통령은 말수가 적은 참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토론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참모를 좋아한다. 그때부터 '나도 말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 것은 결국 그 분들의 '말'을 쓴 것이고, 그 분들로부터 말을 배운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해'라고 제게 첨삭지도를 해주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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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사람들은 답변하는 사람(인터뷰이)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질문하는 사람(인터뷰어)이다. 답변이라는 건 결국 질문을 듣고나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도 "질문"에 우선권이 있다." 강원국 작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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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기와 글쓰기에도 슬럼프가 찾아올텐데, 언제 그런가.

"말하기와 글쓰기의 소재가 소진됐을 때다. 다 말해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쟤, 밑천 떨어졌구나', 사람들이 잘 안다. 다른 경우는, 내가 느끼는 내 수준보다 더 나은 걸 보여주려고 할 때 그렇다. 말이건 글이건 간에 내 생각의 깊이나 수준보다 더 나은 것처럼 보여주려고 하면 어려워진다. 포장을 하려고 하니까. 

'이게 나의 한계구나'라고 느낄 때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럴 때는 그냥 쉬거나 공부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쉬면서 재충전하거나 공부를 해서 새로운 걸 채워야 한다. 제가 '말하기'라는 주제로 눈을 돌린 것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말 공부를 통해서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사람은 다 퍼내서 고갈된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 오른다."

- 글이나 말이 그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렇다. 저는 스피치 작가에서 강사·저자가 되고, 나중에는 저의 말과 글로 발전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서 수입도 생기고 나름 지명도도 얻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제대로 하게 되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나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힘이 생긴다. 계속 하다보면 실력도 늘어난다. 말과 글이 나아진다는 것은 내가 성장한다는 거다. 내 말과 글의 수준이 높아지면 내 수준이 높아진다.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고."

"강자의 말하기는 두괄식, 약자는 미괄식" 

- 말에도 태도와 스타일이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강자와 약자의 말은 어떻게 다른가.

"윗사람의 말은 구구절절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아랫사람들은 전제를 달거나 설명을 한다. 그런 점에서 강자의 말은 결론부터 꺼내는 '두괄식', 약자의 말은 과정을 설명한 뒤에 결론을 얘기하는 '미괄식'에 가깝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괄식은 결론부터 얘기하니까 미괄식에 비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더 있다."

- 책에서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의 역량"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의 말을 잘 이끌어내려면?

"질문을 잘 해야 한다.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질문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의 역량도 결국 스스로 '질문하는 힘'에 달려있다. 대본에 쓰여져 있는대로 하는 질문을 넘어서는 질문을 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하려면, 먼저 사안에 대해 이해를 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주도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저도 라디오 진행을 해봤는데 부족함을 절감했다.

흔히 사람들은 답변하는 사람(인터뷰이)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질문하는 사람(인터뷰어)이다. 답변이라는 건 결국 질문을 듣고나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도 '질문'에 우선권이 있다. 오래 전 제가 모셨던 대기업 회장님께서 '높은 사람은 3심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욕심, 변심, 의심. 여기서 '변심'은 변화에 뒤쳐지지 않는 것, 의심은 반문하는 힘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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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유능함이라면, 사람의 온도는 따뜻함이다. 정 청장의 말은 그러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 진심이다"라는 게 그냥 전달된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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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말하기는 심리다"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께서 좋아하셨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경제가 좋아질 거다'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가지면 실제로 좋아진다는 뜻으로 쓰셨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의 '합리적 기대가설'의 요지를 '경제는 심리'로 이해하고 제가 대통령 연설문에 넣었는데, 김 대통령께서 그걸 채택하셨다.

김 대통령께서 그 말씀을 계속 하시니까, 어느 날 경제수석이 연설담당관실에 오더니 '그 말을 누가 (대통령께) 입력해드렸냐'고 묻더라. '합리적 기대가설'과 '경제는 심리다'는 그렇게 연결되는 게 아니라면서. 그래서 저는 혼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웃음). '말이 씨가 된다'고 하고, 말의 어원이 마음에서 왔다고 하듯이 그야말로 '말은 심리'라고 할 수 있다."

-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어떤 특징이 있나.

"김대중 대통령은 '글 같은 말'이다. 말씀하신 걸 풀어보면 그냥 글이 된다. 충분히 곱씹어서 머리 속에서 취사선택해 퇴고를 한 다음에 꺼낸 말씀이다. 연설할 때도 애드리브가 없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말 같은 말'이다. 글로 옮기려면 다소의 교정이 필요하다. 물론 말 자체의 강점을 갖고 있어 현장에서 직접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걸 잘 안다. 글 쓰는 참모를 불러 본인의 생각을 구술할 때도 '내가 받아적으라고 할 때 받아 적으세요'라고 하신다. 말씀을 하면서 정리를 하고,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 본격적으로 (받아쓰기용) 구술을 한다. 그때부터는 '글 같은 말'이 된다.

김 대통령은 '연설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셨다. (말도) 결국은 글로 남는다는 것. 그러니까 '글 같은 말'에 방점을 두셨다. 노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현장에서 연설할 때 청중과의 교감이 잘 이뤄졌다. 두 분 대통령의 '글 같은 말'과 '말 같은 말'은 차이가 있지만, 두 분 모두 그 내용을 연설 전에 이미 다 본인의 것으로 만드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말과 글에 애착 강해"

-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도 준비한 글을 읽으신다. 물론 준비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엄청 고친다고 들었다. 그건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세 분 대통령은 모두 참모가 써준 것을 그대로 읽지 않는다. 반드시 본인의 언어로 다듬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서 최종적인 글(말)로 완성한다."

-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께 야단을 많이 맞았나.

"김대중 대통령 때 저는 일개 행정관이었기 때문에 직접 혼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비서관이었기에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사보타주 하는 거냐,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는 질책을 들은 적도 있다. 물론, 일을 제대로 못 했을 때 그랬다.

취임 이듬해, 매우 중요한 3·1절 연설문을 작성할 때였다.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단호하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셨다. 그런 대통령의 뜻을 전달해준 분께서 조금 누그러뜨려 말씀을 했고, 연설비서관실에서는 더 누그러뜨리다보니 하나마나한 말이 돼 질책을 받았다. 제가 행정관 때 일이다. 노 대통령은 말과 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연설비서관실 방을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 옆으로 옮기게 했을 정도다."
 
큰사진보기를 출간했다." 
▲  "이준석 대표의 말은 직설적이고 전략적이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아군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있다. 비유나 예시에도 능하다. 선문답을 안 하고, 쉽게 알아듣도록 말한다. 한편으로는 핵심으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런 말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는 시원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강원국 작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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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임기말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할 때도 "정치는 말이 90%입니다"라고 말씀할 정도로 '말'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정치인은 말을 통해서 자기 생각이건 정책을 국민들에게 전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인은 말을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없는, 참모가 써준대로만 읽는 정치인은 국회의원이나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국민을 대리해 국민의 생각을 말로 전하는 정치인이 자신의 말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에 관한, 강원국 작가의 예전 기고문이 인상적이었는데.

"정은경 청장의 말에는 좋은 의미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있다. 정 청장의 말을 사람들이 신뢰하는 바탕에는 '사실(fact)'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네가 뭐 그리 똑똑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정 청장의 말에 호의적인 건, 그의 말에서는 듣는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애정, 사랑, 이와 같은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유능함이라면, 사람의 온도는 따뜻함이다. 정 청장의 말은 그러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 진심이다'라는 게 그냥 전달된다. 그런 면에서 정 청장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정은경 청장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 30대 정치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됐다. 이준석 대표의 말을 어떻게 평가하나.

"말의 힘으로 큰 조직의 대표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준석 대표는 말의 힘이 컸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전략적이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아군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있다. 비유나 예시에도 능하다. 선문답을 안 하고, 쉽게 알아듣도록 말한다. 한편으로는 핵심으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런 말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는 시원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세를 결집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대표는 10년 동안 적극적으로 방송에 나가서 말 공부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당 대표가 됐다고 할 수는 없다.

'이준석'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의 특징이 있다. 유튜브 세대인 그들은 똑똑하다. 어찌보면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똑똑한 첫 세대다. 역전이 일어난 거다. 이전 세대의 경험이 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전 세대도 그들을 가르칠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전 세대들이 젊고 똑똑한 자신들에게 (사회·정치적인) 기회를 잘 안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자기들은 젊었을 때부터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해놓고, 왜 똑똑한 우리들에게는 기회를 안 주느냐'는.

그런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 깊게 묻어져있던 다이너마이트가 '이준석'으로 터진 게 아닐까 싶다. '이준석 현상'은 거기에 불을 붙인 셈이다. 젊은 세대의 한 축은 이준석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생각한 거고. 이준석이 그 세대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더 컸다고 본다."

-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로 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은?

"그 분의 말은 아직 뭐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 한 마디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정치로 뛰어든만큼 윤석열 전 총장도 '말의 광장'에서 검증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현재로서는 그의 말을 들어본 게 없고,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윤 전 총장이 전략적으로 말을 아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에 나선다면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일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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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 진실규명, 평화공원 마무리될 때까지 지원” 호소

‘제22차 산내사건희생자 합동위령제’ 열려

  • 기자명 대전=정성일 통신원 
  •  
  •  입력 2021.06.27 22:45
  •  
  •  수정 2021.06.28 09:25
  •  
  •  댓글 0
 
6월 8일부터 시작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 뒤로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6월 8일부터 시작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 뒤로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옆 편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위령제가 진행되었다.

1950년 6월 28일 시작된 학살, 2000년이 되어서야 넋을 기릴 수 있었던 사건이기에 위령제의 명칭은 이름도 긴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1주기 제22차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공식 명칭이다.

27일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 임시추모공원에서 진행된 합동위령제는 코로나19로 제한된 인원으로 진행되었으며, 유튜브 대전통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되었다.

대전통에서 생중계한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1주기 제22차 희생자 합동위령제 영상

이날 위령제에는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한 제주4.3희생자유족회대전위원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전남지회 등 전국의 산내학살사건희생자 유족들이 함께 하였으며 여순민중항쟁전국연합회,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등의 단체 대표 및 회원들도 함께 하였다.

또한 황인호 대전동구청장, 박민자 동구의회 의장, 장철민(대전 동구) 국회의원, 박영순(대전 대덕구) 국회의원,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박규용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들도 자리에 참석하였다.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허태정 대전광역시장, 권중순 대전광역시의회 의장이 추도사를 전했으며, 황운하(대전 중구), 박병석(대전 서구갑), 박범계(대전 서구을), 조승래(대전 유성갑), 이상민(대전 유성을) 국회의원도 추도사를 전해 22차례의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처음으로 대전지역 국회의원 전원이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과 진상규명 약속을 전하는 위령제가 되었다.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은 “지난해 유해발굴에서 이승만 묘지보다 작은 면적에서 무려 234구의 희생자 유해가 발굴되었고, 올해 유해발굴에서도 수많은 유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쪼개지고 부서지고 총알구멍이 뚫린 유해가 나올 때마다 유가족들의 속은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렸다.”며 “유해발굴, 진실규명, 평화공원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하였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이 참석자들에게 유족 대표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이 참석자들에게 유족 대표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금까지 접수된 사건들의 진실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망설이는 분들이 주위에 계시면 용기를 가지고 우리 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할 것”을 호소하였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활동 종료 후 10년만인 2020년 12월 10일에 재출범하였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이 추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2기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이 추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작년 9월부터 42일간 진행된 골령골 유해발굴은 최소 234구의 유해를 발굴하였으며, 발굴단원 뿐만 아니라 많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로 연인원 700여명이 참여한 발굴이었다. 올해도 6월 8일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최소 80여 구의 유해를 추가 발굴해오고 있다.

자원봉사 또한 모집받고 있으며 다음 링크에서 신청 가능하다. (https://forms.gle/ms44VmpvKXNLowA48

2022년 유해발굴이 완료되면 이 자리는 2024년까지 ‘진실과 화해의 숲’으로 조성될 계획이며, 전국 민간인 희생자 유해 3000여구가 이곳에 모셔질 예정이다.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헌작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헌작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전통 타악그룹 굿 한기복 대표(대전민예총 음악위원장)가 사전공연으로 북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전통 타악그룹 굿 한기복 대표(대전민예총 음악위원장)가 사전공연으로 북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신순란 유족의 손녀 가수 설가령 씨가 추모공연으로 “자식 잃은 어머니의 눈물”, “골령골 산허리”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신순란 유족의 손녀 가수 설가령 씨가 추모공연으로 “자식 잃은 어머니의 눈물”, “골령골 산허리”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청년회 회원들은 위령제 전날인 26일 대전 으능정이에서 시민들과 함께 추모글귀가 담긴 리본을 제작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위령제 현장에 전시하였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청년회 회원들은 위령제 전날인 26일 대전 으능정이에서 시민들과 함께 추모글귀가 담긴 리본을 제작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위령제 현장에 전시하였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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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중립 걷어찬 최재형” “출정식 전 검사에게 전화한 윤석열”

[아침신문솎아보기] 조선, 최재형 7월중순 출마선언 뒤 8월 국민의힘 입당…청와대 검증실패, 여권 내에서 인사수석 책임론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임명 3개월 만에 경질됐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인사책임자인 김외숙 인사수석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침묵하고 있다. 

▲ 29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 29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정치중립을 자신의 대권 자산으로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권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것에 대해 경향신문은 1면 톱기사 “최재형 사표…대권 위해 감사원 ‘중립’ 허물었다”에서 “감사원과 검찰에서 ‘정치적 중립’을 앞세워 여권과 각을 세워온 두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기 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도 사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최 감사원장과 윤 전 총장의 중도 사퇴는 감사원·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기관장 임기를 정한 제도 취지에 반한다”며 “특히 감사원은 설립 근거가 헌법에 명시한 헌법기관이다. 4년인 수장의 임기 역시 헌법으로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헌법 제98조 2항에 ‘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며 “정치 참여를 위한 최 원장의 사퇴는 헌법이 규정한 이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송두리째 훼손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최 원장이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을 사임 배경으로 밝힌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라며 “최 원장 스스로 헌법기관장이 야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을 몇 달간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감사원의 한 직원은 한겨레에 “감사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업무를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지 그것으로 국민한테 인기를 얻어 정치의 밑받침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게 모양새가 안 좋다”며 “(감사원을 향한) 의리가 없다”고 했다. 

▲ 29일자 경향신문 만평
▲ 29일자 경향신문 만평

 

야당에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최 원장에 대해 항상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고 저희와 공존할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최 원장은 정치적으로 ‘윤석열의 대안’으로서 위치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윤 전 총장의 최대 약점은 ‘처가 리스크’와 두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 수사에 따른 강경 보수 지지층의 반감”이라며 “최 원장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야당에서는 윤 전 총장이 독자적인 대변인실을 구성한 것을 두고 반감이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회창 전 총재가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하다가 갈등 때문에 잘리고 당에 혈혈단식으로 들어왔다”며 “1~2명만 데리고 당에 들어와서 오히려 당을 장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역시 윤 전 총장의 한계로 최 원장에게는 기회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신문은 “최 원장이 감사원장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며 “낮은 인지도와 약한 반문 상징성도 한계로 지적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최 원장이 7월 중순에 출마선언을 한 뒤 8월초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최 원장을 ‘대안 후보’로 내세우는 야권 인사들은 “최 원장의 숙고가 아주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8월 말 경선을 예고한 상황에서 최 원장이 그 전에 입당 등을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일보는 “국민의힘에선 영남권 의원들이나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 원로 그룹이 최 원장의 잠재적 우군이 될 것”이라며 “최 원장은 이날 사퇴의사를 밝히며 태극기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고 보도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날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간담회 이후 기자들에게 최 원장을 높이 평가했다. 

▲ 29일 한겨레 만평
▲ 29일 한겨레 만평

 

윤석열, 아직도 검찰총장?

윤 전 총장이 지난 주말 자신과 가까운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에 흔들리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한겨레는 “부적절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대선 출마를 앞둔 상황에서 인사 관련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지난 25일 차장과 부장 등 검찰 중간간부 625명에 대해 인사발령을 냈는데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일부 검사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자리를 지켜라. 다음 기회를 보자’며 다독였다고 한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검사는 한겨레에 “곧 공식 출마를 앞두고 있어 사실상 정치인인데 검찰 간부에게 전화해 인사 관련 발언을 하는 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검찰 재직 시절 ‘보스 리더십’을 발휘해 온 윤 전 총장이 검찰 밖에서도 자신의 계보를 챙기는 행태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평검사는 한겨레에 “윤 전 총장이 검찰에 있을 때 ‘윤석열 계보’에 들어가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 간부들이 있었다. 적절한 행동은 아니다”고 말했다. 

▲ 29일 중앙일보 만평
▲ 29일 중앙일보 만평

 

이러한 지적과 달리 현 정권을 비판한 곳도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문재인 정권의 전횡과 폭주, 법치의 훼선이 이들(윤석열·최재형)을 정치의 길로 불러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이 오늘(29일) 정치선언을 예고한 가운데 그의 검증 포인트를 짚은 칼럼이 나왔다. 경향신문 김민아 칼럼 “윤석열, 당신은 누구입니까”를 보면 크게 세가지를 꼽는다. 윤 전 총장이 어떠한 나라를 꿈꾸는가, 누구를 대표하는가, 어떤 ‘태도’를 가진 정치인인가 등이다. 

김민아 논설실장은 “그가 검찰총장을 사임할 무렵부터 일관되게 밝힌 메시지는 공정과 상식인데 문제는 ‘어떤 공정인가’다”라며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공정은 ‘시험(성적)’을 잣대로 삼는 공정인데 윤 전 총장이 이에 동의하는지, 즉 “윤석열이 만들고 싶은 ‘공정한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훈 전 대변인 표현으로는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포괄하는 압도적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다만 현재 이념적 스펙트럼은 꽤 복잡하다. 김 실장은 “안철수는 한때 극중주의까지 내걸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인구 5182만명, 18세 이상 선거권자 4399만명인 나라에서 모두를 대표하는 일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이 대표하겠다는 시민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전 총장은 최근 ‘X파일’에 대해 정치공작, 불법사찰 등의 표현을 쓰며 사안을 회피했다. 김 실장은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지도자라면 보다 낮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며 “이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슈를 태도는 훨씬 더 중요하다. 기자회견에서 직접 X파일에 대해 언급할 그 순간을 주목하는 이유”라고 했다. 

▲ 29일 한겨레 3면 톱기사
▲ 29일 한겨레 3면 톱기사

 

여권에서도 김외숙 경질 주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8일 김기표 전 비서관 경질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신속하게 처리했다”며 “왜 이런 사안이 잘 검증되지 않고 임명됐는지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고, 백혜련 민주당 최고위원도 라디오에서 “인사수석이 검증 문제에 대한 총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29일 1면 톱기사로 전했다. 이 신문은 “송 대표가 지난 26일 직접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김 전 비서관에 대한 조속한 정리를 요구했고, 여당 일부에선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했다”며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친문 진영 측은 김 수석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등 대선주자들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며 “청와대는 민주당의 인사수석 경질 요구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오히려 청와대 내부에선 ‘집권 여당이 나서서 청와대 인사수석 책임론을 따질 문제냐’, ‘청와대 인사 시스템도 잘 모르면서 왜 공개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며 “민주당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부동산 문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반면 청와대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말 30%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진보성향의 신문에서도 청와대 책임론을 말했다. 한겨레는 관련 기사 제목을 “청와대 ‘부동산 검증’ 하긴 했나…여당 “인사수석 책임져야””로 정하고 “잇단 검증 실패 ‘총체적 부실’ 지적” “여당 의원마저 ‘부동산 무감각’ 질타” 등을 부제로 뽑았다. 경향신문도 1면에 “여당 내부에서도 김외숙 경질 요구”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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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전범기 태우기] 12. "일본은 전범 역사 사죄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6/29 08:48
  • 수정일
    2021/06/29 08: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1/06/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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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이 전범기를 불태우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 대학생이 전범기를 불태우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 이동하려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가로막혀있다.     ©하인철 통신원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의 전범기 태우기가 계속되고 있다.

 

28일 오후 3시 대진연 회원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전범기를 불태웠다. 

 

대진연 회원은 전범기를 태우며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는 명백한 영토 침략이며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라며 일본의 행태를 규탄했다. 이어 “일본은 자신들의 범죄 역사부터 먼저 사죄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학생으로 이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죄를 받아낼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대진연 회원이 전범기를 다 태우고 이동하려 하자 불심검문을 하겠다며 이동을 가로막았다. 

 

대진연 회원들이 “왜 불심검문을 이유로 가로막느냐”라며 항의했다. 

 

경찰은 무엇을 태웠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매일 전범기를 태우는 것이 불법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진연 회원의 항의가 이어지자 경찰은 황급히 상황을 마무리 짓고 현장을 떠났다. 

 

대진연의 전범기 화형식은 내일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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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일본 기술자립 ‘마지막 벽’ 깰 일만 남았다

김영배 기자41 등록 :2021-06-28 04:59수정 :2021-06-28 09:31
[일본 수출규제 2년]
동진쎄미켐 발안공장을 가다


일본 3대 규제 중 완전 국산화 안된
유일한 품목 ‘포토레지스트’
정부 예산지원·기업들 밀착 협력
일본 장악한 시장서 ‘10% 점유율’
 
실리콘 웨이퍼 위에 포토 레지스트를 코팅하는 모습. 웨이퍼를 빠르게 회전시키면 고른 막이 형성된다. 동진쎄미켐 제공
실리콘 웨이퍼 위에 포토 레지스트를 코팅하는 모습. 웨이퍼를 빠르게 회전시키면 고른 막이 형성된다. 동진쎄미켐 제공
 

공장 방문 전 보내온 안내 전자우편에 휴대 물품 목록을 적어달라고 돼 있었다. 전화기 외엔 원칙적으로 갖고 들어갈 수 없다는 취지였다. 사진 촬영도 어렵다고 난색이었다. 청정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보안시설이라는 점과 함께 빛에 민감한 물질을 제조하는 시설이기 때문이라 했다.

 

지난 22일 오후 동진쎄미켐 발안 공장(경기도 화성시) 안내동의 보안 검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공장 터가 넓게 펼쳐졌다.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농공단지 시설처럼 보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재현 부사장은 “전체 부지 면적이 5만평을 좀 넘는다”고 말했다.

 

외벽에 ‘3’이라고 적힌 건물에 들어서자 주유소에 온 듯 화학약품 냄새가 훅 끼쳤다. 입구로 진입하면서 맞닥뜨리는 벽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포토레지스트’(반도체·디스플레이용 감광액) 제조 과정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솔벤트, 폴리머(합성수지), 감광제 등 원재료를 정제하고 적정한 비율로 섞어 감광액을 만드는 과정은 물과 감미료를 섞어 음료수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석유에서 추출된 갖가지 화합물을 정제, 혼합해 제조하는 옅은 주황색의 포토레지스트는 특수 제작된 1갤런(3.8리터)짜리 갈색 유리병에 담겨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회사들에 납품된다. 정제, 혼합은 물론 마지막에 유리병에 담는 과정 모두 자동처리되며 3층에 있는 관제소에서 이를 제어한다.

 

포토레지스트 제조사로는 국내 대표 격인 동진쎄미켐의 발안 사업장 제3공장 준공·가동(올해 4월)이나,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기술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사실 모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가 없었다면 현실로 나타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디스플레이 소재)와 함께 수출 규제 강화 3대 품목이며, 2019년 7월 일본의 규제 뒤 2년에 이른 지금도 완전한 의미의 국산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유일한 품목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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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포토)에 ‘저항하다’(레지스트)라는 뜻을 담고 있는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쓰이며 반도체 첫 공정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빛을 받으면 반응하는 성질을 띠어 판화의 음각, 양각처럼 구분되는 모양을 형성할 수 있다. 웨이퍼에 포토레지스트를 회전 방식으로 코팅해 일정한 두께의 막을 형성한 뒤 회로 모양을 새긴 ‘포토 마스크’를 씌우고 빛을 쬐면 웨이퍼에 그 모양대로 패턴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이른바 포토 공정(노광 공정)이다. 이 밑그림에 따라 이어지는 공정에서 반도체 회로가 최종 형성된다.

 

포토레지스트는 사용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불화크립톤(KrF·248㎚)용, 불화아르곤(ArF·193㎚)용, 극자외선(13.5㎚)용 등으로 나뉜다. 회로 선폭을 뜻하는 숫자가 작을수록 미세 공정에 유리하다. 일본에서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 전략물자가 바로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이다.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며 국내에서는 현재 삼성전자에서만 양산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국내에선 독보적인 동진쎄미켐은 지난 2년에 걸쳐 두가지 중요한 성취를 이뤘다. 둘 다 일본 수출 규제에 맞대응해 예산을 투입한 국책 사업으로 추진됐다.

 

하나는 기존 소재보다 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한 일이다. 오래전부터 거래관계를 맺고 있던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에도 업그레이드된 불화아르곤용을 작년 11월부터 공급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실마리다. 그동안은 일본 업체들에 거의 다 장악돼 있던 분야였다.

 

김 부사장은 “일본의 규제 당시 내심 걱정되는 바도 있었지만, 당연히 기회로도 여겼다”며 “과제 실행에 착수하는 시점에서 곧바로 예산이 나올 정도로 정부 대응과 지원이 빠르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2019년 9월 개발에 착수해 예상보다 훨씬 빨리 9~10개월 만인 이듬해 6월 개발 작업을 마무리 짓고 그해 11월에 제품화, 상업화 단계에 이른 주요인으로 꼽힌다.

 

동진쎄미켐 작업자들이 포토 레지스트를 담은 특수 유리병을 들고 있다.
동진쎄미켐 작업자들이 포토 레지스트를 담은 특수 유리병을 들고 있다.
 

김 부사장은 “고객사(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테스트 작업을 많이 해준 것에도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과거 한번에 2~3개 정도 테스트했다면 많게는 20개씩 할 정도로 평가를 많이 해줘 개발 속도를 높이고 좋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본 쪽의 압박으로 비롯된 절실함이 소재 수요자와 공급자를 밀착시켰던 셈이다.

 

현장 방문 때 같이 만난 동진쎄미켐의 길명군 전무는 “국내 포토레지스트 시장에서 일본 쪽의 점유율은 85% 수준으로 여전히 높지만 동진의 점유율이 규제 이전 6~7%에서 지금은 10%를 웃돌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쎄미켐 자료를 보면, 국내 포토레지스트 시장 규모는 1조4천억원 수준이다.

 

또 하나 중요한 성취가 이뤄진 분야는 바로 문제의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쪽이다. 동진은 소재의 성능 향상에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아울러 안정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극자외선용 분야에서 완전한 의미의 국산화로 여길 수 있는 제품화, 상업화 단계에 이를 시점은 미정이라고 김 부사장은 전했다. 성능을 좀 더 개선하는 노력과 더불어 “어제 만든 것과 오늘 만든 것이 동일한 성능과 품질을 갖는지” 따위를 반복적으로 테스트한 뒤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 개발 중이며 양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결 숙제 하나를 안고 있는 셈이다.

국내 소재·부품 업체들이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로 김 부사장은 일본과 다른 발전 경로를 밟았던 점을 들었다. 일본이 기초산업을 발달시켜 위로 차곡차곡 쌓듯 올라가면서 산업을 키웠다면 우리는 거꾸로 위(상위 산업)에서 먼저 산업을 키우고, 아래(소재, 부품)로 내려오는 압축성장 방식이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뒤 일본 업체(TOK)나 미국 듀폰이 국내에 투자해 포토레지스트를 생산, 공급함에 따라 숨통을 틔웠지만, 국산화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고 김 부사장은 말했다. 진정한 의미의 국산화, 자립화는 제품 개발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위 디바이스(제품)에 필요한 소재, 부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 기술 자립으로까지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외국 업체들이 국내에 투자해 공급 병목 현상을 해소했다 해도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 업체가 국내에 진출해 있지만 메인(주류) 개발 사이트는 그들의 본사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기초부터 다지는 작업을 순수 국내 업체가 해야 한다고 본다.”

 

김 부사장은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는 것을 보고 우리 회사가 반도체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듯 동진과 같은 포토레지스트 업체가 성장하면 그 원자재를 사업화하려는 국내 업체들이 생겨나고, 이어서 그 업체들에 원료를 공급하는 기초원자재 산업이 연쇄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초원재료부터 반도체에 이르는 안정된 공급망이 생겨나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산업 체계는 이런 경로를 통해 형성된다는 설명이었다. 

 

화성/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동진쎄미켐은 어떤 회사?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재료, 대체에너지용 재료와 발포제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1967년 설립돼 피브이시(PVC) 및 고무 발포제를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발, 국산화하고, 1973년부터는 발포제를 수출하고 있다.발포제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들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재료 산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1989년 반도체용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을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뒤 이뤄진 정부의 지원책, 반도체 회사의 협업에 힘입어 한 단계 격상된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했다.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경기도 화성과 시흥시, 충북 음성군에 제조시설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등에 현지법인도 두고 있다. 1999년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으며 2020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9378억원, 1263억원이다. 직원 수는 3월 말 현재 1182명에 이른다.포토레지스트란?빛에 반응(감광)해 녹거나 굳어지는 성질을 띤 고분자 재료. 반도체 기판(웨이퍼) 위에 집적 회로를 찍어낼 때 사용한다. 웨이퍼에 포토레지스트를 골고루 바르고, 그 위에 회로 모양을 새긴 마스크를 씌워 빛을 쬐면 회로 밑그림에 해당하는 일정한 패턴이 형성된다. 이를 ‘포토 공정’이라고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01103.html?_fr=mt1#csidx798f8223132d9d3a64480b511fd5f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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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리스크 커지는 사이 최재형 대안 급부상”

[아침신문 솎아보기] 3월 대선 일정 본격 시작, 윤석렬 X파일 등 흔들리자 최재형에 관심 높아지기도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사퇴를 하겠다고 밝히고,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출마선언을 하는 등 내년 3월 대선을 향한 일정이 본격 시작된다. 윤 전 총장이 출마 전부터 X파일이 언급되고 대변인이 사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언론은 ‘대안’이라는 표현을 쓰며 최재형 감사원장에 주목을 보였다.

또한 두 야권 대선 기대주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라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 대선 기대주를 키우지 못한 상황이라고 봤다.

더불어민주당은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고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도 출사표를 낸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28일부터 30일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다음달 8일까지 예비경선 선거전, 9일부터 11일까지 국민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50 대 50 비율로 하는 선거를 진행, 상위 6인에게 본경선 기회를 부여한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두관 의원, 박용진 의원, 이광재 의원, 최문순 강원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등이 등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종합일간지는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월요일 1면에 이 소식을 다뤘다. 다음은 대선 레이스 시작과 관련한 주요 종합일간지 1면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예비 등록·출마선언…여야 ‘대선 슈퍼위크’”
국민일보 “윤석열·이재명 출격… 대선 슈퍼위크 개막”
동아일보 “최재형 ‘오늘 감사원장 사퇴’ 마음 굳혀”
서울신문 “대선 ‘골든 위크’”
세계일보 “링 위 오르는 주자들… 대선 레이스 윤곽”
조선일보 1면에 대선 관련 기사 없음
중앙일보 “이재명 1일 출마 선언, 최재형은 오늘 사퇴…대선 레이스 본격화”
한겨레 “이번 주 ‘톱2’ 출마 선언…대선판 달군다”
한국일보 1면에 대선 관련 기사 없음

▲28일 한겨레 1면.
▲28일 한겨레 1면.

출마 선언 전부터 ‘윤석렬 X파일’ 등이 언급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이 사퇴를 하는 등 모습이 보이자 신문들은 윤 전 총장이 이런 공세를 돌파하는 모습에 지지율이 흔들릴 것이라 봤다.

세계일보는 1면 기사에서 “본격 검증대에 오른 윤 전 총장이 각계 현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X파일’ 등 일각의 공세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흔들릴 수 있다”며 “그 지지율 추이에 따라 국민의힘 입당 시기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썼다. 4면에서도 최재형 감사원장을 윤석열 전 총장의 경쟁자로 그렸다. 

▲28일 세계일보 4면.
▲28일 세계일보 4면.

윤 전 총장에 대한 이러한 경향은 또 다른 야권 대선 주자인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퇴에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겨레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언급하며 윤 전 총장에 대한 ‘대안’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한겨레는 1면에서 “한겨레 윤 전 총장을 둘러싼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커지는 사이, ‘대안’으로 급부상한 최재형 원장은 28일께 사의를 표할 것으로 전해졌다”고 전했다.

다른 신문들도 1면 기사에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분량이 많았다. 특히 28일 사퇴를 알리면서다.

▲28일 중앙일보 5면.
▲28일 중앙일보 5면.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야권의 대안 후보로 급부상한 최재형 감사원장은 28일 사퇴하면서 감사원의 중립성·독립성 훼손 문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 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 원장이 당장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지는 않겠지만 사퇴만으로도 사실상 링에 오르는 셈이다. 최 원장이 ‘분권형 개헌’ 카드를 고리로 세력화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최재형 감사원장에 우호적인 1면 기사에 이어 5면으로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야권에선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최 원장의 강점으로 꼽는다”며 “처가를 둘러싼 의혹 등 네거티브 대응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윤 전 총장과 달리 도덕성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최 원장이 정치 보폭을 더 넓게 가져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고 윤 전 총장과 비교했다.

이어 “한국전쟁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 부친 등 가족사도 최 원장에겐 플러스 요소다”라며 “하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근간으로 하는 감사원장직 사퇴 후 정치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중립성 논란이나 대중적 지지 여부 등은 최 원장에게 따라붙는 물음표”라고 짚었다.

“이들을 야권 대선 기대주로 만든 기반은 문 대통령”

국민의힘에서 키운 후보들이 대선에서 뚜렷한 두각을 내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지명한 인사들이 야권의 대표 대선 주자가 된 점을 언론은 주목했다.

한겨레 1면은 “윤 전 총장과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 공직자였고, 자신을 임명한 정부와 이견을 노출하며 정치 활동의 동력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현직에 있다가 정치 참여를 결심하고 사실상 대선 가도로 직행한 점 때문에 중립성 시비가 거세다. 이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두 사람에게 놓인 과제”라고 짚었다.

조선일보는 1면이나 사설에 대선 레이스와 관련한 기사나 사설을 배치하지 않았다. 1면 기사에서 윤석렬 전 총장과 비교하며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해 분량을 할애한 중앙일보와 다른 모습이다. 6면 정치면에 실은 대선 레이스와 관련한 기사도 건조하게 다뤘다.

이날 조선일보에서 대선 레이스와 관련해 읽어볼만 한 글은 자체 기사나 사설이 아닌 외부 칼럼이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산업화·민주화 세력 모두 구시대… 옛날식 보수·진보, 수명 다했다”라는 정기기고다.

▲28일 조선일보 34면.
▲28일 조선일보 34면.

이 글은 “이전 대선과 비교할 때 올해 유독 흥미로운 점은 야권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원장과 같은 당 외부 인사가 주요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라며 “아직까지는 국민의힘 당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 인기 1위인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고, 명시적으로 정치 참여에 대한 입장조차 밝히지 않은 최재형에게도 밀리고 있다”고 썼다.

이어 “어쩌면 이들을 주목하게 된 더 중요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당장 문 대통령과 ‘다툴 만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일지 모른다”며 “결국 이들을 야권의 대선 기대주로 만든 기반은 문 대통령”이라고 짚었다.

강 교수는 “야당이 권력을 되찾아오고 싶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에서 만족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아예 그것을 송두리째 넘어설 수 있는 시대적 새로움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의 표명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김기표(49·사법연수원 30기)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수용했다. 그는 지난 3월 31일 임명됐다.

사퇴 배경은 지난 25일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자료가 관보에 게재되면서부터다. 김 비서관은 총 39억 2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고 부동산이 91억 2000만원, 금융 채무가 56억 2000만원에 달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빚투’ 논란이 일었다. 변호사 시절 2017년 매입한 4900만원 상당의 경기 광주 송정동 임야는 도로가 연결돼 있지 않은 맹지이지만, 송정지구 개발로 신축 중인 아파트·빌라 단지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28일 조선일보 1면.
▲28일 조선일보 1면.

서울신문은 1면에 “정부의 부동산 부패 청산 드라이브 속에 반부패비서관이 투기 의혹에 휘말리자 민심이 들끓고 여권에서조차 우려가 커지면서 속전속결로 정리한 모양새지만, ‘부동산 내로남불’ 프레임 재소환과 부실 인사검증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이 이슈를 1면 탑기사로 배치하고 사설 “文 정권 司正 라인은 범죄·부패·투기 집단”에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일보 역시 이를 1면에 배치, 사설 “구멍 뚫린 청와대 인사 검증, 계속 이대로 둘 건가”에서 “공직자라기보다 부동산 전문 투자자로 보일 정도여서 많은 국민이 혀를 차는 상황”, “더구나 반부패비서관은 부동산 투기를 포함한 공직자 부패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신설한 자리”라며 비판했다.

한겨레도 사설 “또 ‘인사 검증 부실’ 드러낸 김기표 비서관 사퇴”에서 “인사 검증 과정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한 점을 청와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청와대가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관련 도덕성 잣대를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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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⑤]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김은희 “강아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지 몰라요”

노조 가입 권유했던 이가 탄압 심해지자 먼저 탈퇴… “솔직히 너무 배신감이 컸어요.”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앞에 있는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 2021.06.22ⓒ정의철 기자

“지난주에 교섭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박근서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지회장은 22일 12시 30분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소속 조합원들에게 지난 17일 열렸던 사측과의 교섭 결과를 알렸다. 협상이 결렬됐고,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거쳐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박 지회장의 설명에도 조합원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한국쓰리엠지회는 2009년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사측의 탄압에 계속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노조에 따르면, 포스트잇, 스카치 테이프, 산업용 마스크 등으로 유명한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한국쓰리엠(3M)은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근무평가를 빌미로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임금을 차별하고, 조합원들의 탈퇴를 회유하는 등 ‘노조 탄압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온갖 일을 벌였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노동 탄압’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우리에겐 어색하게 들린다. 드라마 ‘송곳’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주인공인 구고신 노무사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라고 말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업의 압력으로 누더기가 된 ‘살인기업처벌법’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법과 제도는 기업에게 ‘그래도 되는’ 무한한 폭력을 부여했고, 노동자들의 생존은 위기에 몰렸다.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박근서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지회장이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 2021.06.22ⓒ정의철 기자

“김은희 조합원은 그동안 사무장을
연임해서 활동했고,
지금은 여성부장을 맡았어요.
늘 노조 운동의 선두에서
열심히 해요.”

‘그래도 되는’ 나라에 사는 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하다. 박 지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또 다시 ‘중식 선전전’을 비롯해 각종 투쟁이 이어질 것임을 직감한 조합원들 사이에 한 여성 조합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날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리를 정리하고, 사무실 주변을 쓸고 닦으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던 조합원 김은희다. 박 지회장은 김 조합원을 “그동안 사무장을 연임해서 활동했고, 지금은 여성부장을 맡았어요. 늘 노조 운동의 선두에서 열심히 해요”라고 추켜세우며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화성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백계탁 수석부지회장은 “함께해서 든든한 동지예요. 늘 힘이 돼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 불의한 것엔 참지 않는 싸움꾼”이면서 동시에 “노조 활동을 묵묵하게 책임지는 살림꾼”이라고 김 조합원을 칭찬했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합원 김은희를 지난 22일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 있는 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은 노동조합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일꾼인 김은희지만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가 되고, 노조 조합원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7월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 입사하면서 그의 삶은 분기점을 만났다.

“집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결혼 10년 만인 서른일곱 살에
공장일을 시작했어요.”

“올해로 입사한지 15년 됐어요.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왔는데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에요. 결혼 전엔 교회 어린이집에서 2년 정도 일한 게 전부였어요, 취직자리를 알아보다 생활정보지에 나온 취업 광고를 봤어요. 한국쓰리엠이 화성에 공장을 세우고 직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화성공장 1기로 입사했어요. 그렇게 결혼 10년 만인 서른일곱 살에 공장일을 시작했어요.”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이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6.22ⓒ정의철 기자

김은희가 공장에서 맡은 일은 IP 업무라 불리는 검수업무였다. 모니터, 내비게이션 등에 들어가는 필름을 포장 직전에 마지막으로 불량이 없는지 확안하는 업무였다. “처음엔 멋모르고 일했어요. 공장에서 처음 일 해본 거였거근요,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일이 많아서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일했습니다. 힘은 들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선지 아무 생각 없이 했어요. 당시에 딸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봐줄 사람이 없어서 여러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늦게 애들 아빠가 찾아서 돌봤습니다. 집안 부모님 도움은 받지 못했어요. 그런 딸아이가 지금 스물일곱 살이에요.”

시키는 대로 멋모르고 3년 넘게 일했던 김은희는 지난 2009년 노조가 만들어질 때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1977년 한국 진출 이후 32년 동안 노동조합이 없던 한국쓰리엠에 2009년 5월 노조가 세워진 것이다. 그해 5월 14일 한국쓰리엠 나주공장 노동자 70여 명이 노조를 설립했고, 이후 나주공장과 화성공장에서 현장직 노동자들의 가입이 이어졌고, 현장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해 조합원 수는 670여 명에 육박했다.

2009년 노조 결성…
조합원 670여 명 참여

한국쓰리엠지회는 그해 8월 임금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근무평가제도, 여성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 보수 언론에선 “32년 무분규 전통이 민노총 가입 후 와르르 무너졌다”고 보도했지만, 한국쓰리엠 노동자들이 말하는 현실은 달랐다. 노조는 당시 연 2천억 원에 달하는 주식 배당금을 챙겨간 한국쓰리엠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정년을 몇 년 앞둔 노동자들의 희망퇴직과 임금삭감, 복지 축소를 단행했고, 근무를 평가해 임금을 차별지급했던 근무평가제 등 노동자들의 불만도 많이 쌓여 있었다고 말한다. 현장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가입한 건 이들이 처했던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때의 파업투쟁으로 임금협상이 타결되면서 노조의 앞날엔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2009년 5월 14일 열린 한국쓰리엠지회 결성 총회 모습. 사진 제일 왼쪽이 박근서 지회장이다.ⓒ금속노조광주전남지부

하지만, 임금협상 이후 단협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한국쓰리엠을 두고 ‘노조 탄압 백화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조 흔들기가 계속됐다. 2010년 노조가 파업과 농성을 통해 사측에 대응하자 6월 나주공장에 용역을 투입해 농성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는 등 조합원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8월에 농성을 시작한 화성공장에도 용역들이 상주하며 충돌이 벌어졌다. 그해 한국쓰리엠은 기존의 경비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민간방호기업인 컨택터스를 불러들여 공장 경비를 맡겼다. 컨택터스는 2007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의 경호를 담당한 후, MB정권 동안 한국전력이 발주한 국책사업 현장에 투입될 정도로 급성장한 업체로 SJM, 발레오만도, KEC,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 각종 노동 분쟁 현장에서 악명 높았던 기업이다. 별 생각없이 주변의 권유로 노조에 가입했던 김은희에게 이런 현실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측에선 용역 동원해 노조에 폭력
“노조가 이렇게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냥 여기서 노조가 생긴다고 주변에서 가입을 권유해서 함께하게 됐어요. 노동조합에 특별히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별 생각업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을 파괴하려고, 용역깡패가 들어왔어요. 2010년 당시 공장 앞에서 싸운게 기억나네요. 조합원들이 코뼈가 부러지고, 병원에 실려가고 했어요. 저도 약간 다치긴 했지만 찰과상 정도였어요. 용역들의 폭력을 촬영하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해 지키다가 넘어지고 부딪혀서 다친 거에요. 그런 식으로 싸운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결국 싸우다 구치소까지 갔던 동료도 있었어요. 노조를 세울 때 방해가 많다 보니 노조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회의감도 들었어요. 당시엔 그런 걸 전혀 몰랐거든요. 노조만 만들어지면 그냥 순조롭게 가는 줄로만 알았어요. 노조가 이렇게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2010년 11월에 열린 금속노조 상경투쟁에 함께한 한국쓰리엠지회 조합원들이 용역들의 폭력 사진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한국쓰리엠지회

피와 땀을 쏟으며 싸운 한국쓰리엠 노동자들은 사측의 압박이 전방위적이었다고 증언한다. 사측은 한국컨택터스의 폭력에 맞선 조합원 19명을 해고했고, 징계도 250여 건에 이르렀다. 노동조합 지도부를 상대론 2억 6천만 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로 압박했다. 조합원의 본가를 찾아가고 조합원들을 일일이 만나 노조 탈퇴를 회유하기도 했다. 전문 부서까지 만들어 전환배치를 통해 소위 강성 조합원을 격리하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 경력 십 년이 넘는 노동자들에게 풀을 베고 페인트칠을 하고 청소를 하는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부터 외쳐왔던 여성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해서도 한국쓰리엠에선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들이 맡고 있는 검수업무가 대표적이다. 검수업무만 15년째 해온 김은희는 자신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필름 검수를 오래하다보니 이 정도면 나가도 되고,나가선 안 된다는 게 쉽게 판단돼요. 그런데도 회사에선 간단한 업무로만 취급합니다. 그래서 검수업무를 ‘IP 직군’이라고 아예 별도 직군을 만들어서 진급도, 승진도 없고, 아무리 경력이 오래되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만 줘요. 기계를 만지는 일이나, 검수하는 일 모두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15년 동안 보람을 가지고, 많은 제품을 검사해왔어요. 어떤 면에선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맡아온 건데 그에 맞는 대접을 안 해주네요. 사측에선 말로는 그런 노고를 인정한다면서도 절대 제도는 바꿀 수 없다고 해요.”

근무평가제로 노조 압박
얼마 전 임금 협상에선
임금 인상률 낮추자는 노조 제안에도
근무평가제 고수
“회사에선 근무평가제 폐지하면
관리가 힘들다고 해요.
말이 관리지, 결국 회사에
목소리 안내고, 자기들 하자는 대로
따라오게 노동자들을
조종하겠다는 거잖아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한국쓰리엠이 노조를 견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근무평가제’다. 노조를 만들 당시부터 폐지 요구가 많았지만, 오히려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엔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김은희는 증언한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이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6.22ⓒ정의철 기자

“근무평가를 1차는 파트장이 하고, 2차는 팀장이 해요. 두 점수를 합산해 평가하는데, 조합원의 경우 파트장이 점수를 많이 주면 팀장이 점수를 적게 주는 경우가 많아서 늘 낮은 점수를 받아요. 근무평가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부서에 고득점자와 저득점자 비율을 정해놓고 하는 일종의 상대평가거든요. 그런데, 늘 고득점은 비조합원, 저득점은 조합원 위주로 돼요.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아요. 이렇게 근무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 조합원들은 승진이 힘들어요. 노조를 처음 만들었을 때 조합원 중에 조장을 맡았던 이가 있었는데,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노조를 만들면서 정직도 당하고 해서 근무평가가 낮아졌거든요. 지금은 조합원 가운데선 경력이 많아도 조장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회사는 차별이 아니라고 해요. 정당한 근무평가에 의한 진급이라고 주장하거든요. 또 노동조합에선 매번 폐지를 주장하지만, 회사에선 폐지하면 관리가 힘들다고 해요. 말이 관리지, 결국 회사에 목소리 안내고, 자기들 하자는 대로 따라오게 노동자들을 조종하겠다는 거잖아요.”

지난 17일 열린 한국쓰리엠 사측과 노조의 협상 과정에서도 근무평가제는 가장 큰 논란이 됐다. 박근서 지회장이 22일 화성공장 조합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지난 협상에서 사측은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면서도 근무평가 등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차등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노조에선 차등 지급은 안 된다면서 차라리 임금인상률을 낮추더라도 정률 인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에선 이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노조에선 스스로 인상률을 낮출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사측이 이를 거부한 건 한국쓰리엠이 근무평가제만큼은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조룰 먼둘 덩사 600명이 넘던 조합원은 1년 여 만에 100여 명으로 줄어들었고, 사측이 근무평가제 등으로 압박을 계속하면서 조합원 가입률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한국쓰리엠지회 확대간부토론회에 참석한 김은희 조합원(사진 제일 왼쪽)ⓒ한국쓰리엠지회

“현재는 조합원이 화성공장에 31명, 나주공장에 83명이에요. 많은 조합원들이 견디지 못하고 노조에서 탈퇴했어요. 그리고, 비조합원들은 사측이 무서워 노조 가입을 꺼려하고 있고요.”

“노조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 유형이죠.
‘진심’인 사람. 노조에도, 사람에도, 투쟁에도
가식없이 진심인 사람,
그런데 따뜻한 사람이 바로
김은희 동지에요.”

김은희는 함께 노조활동을 하던 이들이, 특히 노조에 함께하자고 자신을 이끌었던 동료가 먼저 탈퇴하면서 인간적인 상실감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저희 조장이 먼저 노조에 가입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상황이 힘들어지니깐 먼저 탈퇴했어요. 너무 배신감이 컸어요.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어요.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지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밉고 싫어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하고 고양이한테 정을 줬어요. 강아지와 고양이가 없었으면 어땠을지 몰라요.”

김은희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에게 사람이 아닌 강아지와 고양이가 힘이 되어 주었다는 고백을 언젠가 금속노조 모임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은희의 진솔담백한 고백은 함께 모여 노조활동이 힘들다고 울먹이면서 신세한탄을 하던 사람들을 와하하 웃게 만들었고, 그제서야 사람들이 편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엄미야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은 말한다.

“맞아, 맞아. 그땐 정말 (배신하고 떠나는 조합원들이) 인간 같이 안 보이지.”
“회사보다 조합원들 때문에 힘든것 같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노조 간부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엄 부지부은 당시 모임 현장에서 동료 노조 활동가들의 마음을 움직인 김은희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급단체 소속인 제가 백마디 ‘힘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무색해지더라구요. 찐으로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감, 따뜻함, 그리고 이어지는 격려와 위로. 그게 김은희 동지가 가진 최고의 힘이라고 그 때 생각했어요. 어설픈 공감이나 어설픈 위로는 종종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고, 자신의 힘듦이 별거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이 더 낮아지고 하곤 하거든요. 그런데 김은희 동지는 달라요. 예전에 쓰리엠 노조 만들때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누가 ‘꼬셔서’ 막판에 가입을 했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어려울 때 떠나더래요. 그때 어려웠는데 지금은 괜찮다. 이렇게 절대 말하지 않더라구요. 지금도 미운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지금 같이 하는 수석부지회장도 자기 속을 얼마나 썩였는데 지금도 아웅다웅한다고 솔직히 말하죠. 그런데 눈빛에서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요. 노조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 유형이죠. ‘진심’인 사람. 노조에도, 사람에도, 투쟁에도 가식없이 진심인 사람, 그런데 따뜻한 사람이 바로 김은희 동지에요.”

“우리 목소리를 현장 안에서
낼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에요.
비조합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목소리를 제대로 못내거든요.”

노조에 함께하자고 했던 이들이 나중엔 김은희에게 탈퇴하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은희는 그런 제안을 “나는 끝까지 남겠다”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후 11년 가까이 그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의원으로 시작했던 노조 활동은 사무장이란 중책을 맡아 여러 해 일했고, 지금도 여성부장을 맡아 활동하며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이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6.22ⓒ정의철 기자

힘겨운 여정이지만, 노조 건설 이후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이 공장에서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회사에 당당하게 할 말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목소리를 현장 안에서 낼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에요. 비조합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거든요. 이 때문에 주변의 비조합원들 가운데서도 노조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요. 그럴때 자부심과 보람을 느껴요.”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불합리했던 공장의 부조리가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나주공장 등에선 친인척, 아는 동생, 고교동창, 고교후배 등 지역사회에서 얽혀있는 관계 때문에 제대로 체계가 서지 못했어요. 현장에선 ‘야’, ‘너’, ‘이 새끼’ 등 노동자들을 함부로 불렀어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막무가내로 16시간 작업도 하는 분위기였는데 노조가 생기고 나선 이런 일들이 없어졌어요. 법대로, 규정대로 이뤄져요. 또 작업복, 작업화 등 물품 지급도 바뀌었어요. 그전엔 달라 그래도 안 줘서 본인이 사비로 사서 쓰기도 했거든요. 심지어 볼펜 등 사소한 문구류도 다 개인이 샀어요. 당연히 개인이 사야하는 거로 알았는데 이제는 회사에 달 라고 하면 바로 지급이 돼요. 연차도 눈치가 보여 못쓰는 바람에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가끔 비조합원에겐 눈치를 주기도 하지만, 조합원에겐 절대 그러지 못하거든요.”

“노조활동이 활성화되는 건
청년들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기도 해요.
자녀를 키우는 조합원들에게
저는 항상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녀들은 더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해요.”

이렇게 공장을 바꾸고,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한국쓰리엠 노조와 조합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고, 특히 자신의 딸과 같은 예비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일이라고 김은희는 믿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2월 복직을 위해 희망뚜벅이 행진을 할 당시에 함께 한 김은희 조합원(사진 왼쪽에서 두번째)ⓒ한국쓰리엠지회

“청년들이 취직이 힘들다면서도 중소기업이나, 노동현장으로 가는 건 꺼려요. 청년들이 그런 현장에 가지 않는다고 욕할 수 있을까요? 노동이 대접을 잘받는다면, 일한 만큼 받는다면 청년들도 주저없이 그런 곳에서 일하겠죠. 노조활동이 활성화되는 건 청년들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기도 해요. 자녀를 키우는 조합원들에게 저는 항상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녀들은 더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해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노동자인 자신의 딸과 청년 노동자들에게 김은희는 이런 당부를 전했다.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노동자로서 나의 목소리를 낼수 있고 들어주는 곳은 노동조합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노동조합은 노동자 편이란 걸 꼭 기억했으면 해요.”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서 15년 넘게 일해온 김은희는 이제 정년을 9년여 앞두고 있다. 남은 정년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는 김은희의 꿈은 ‘신규조합원 가입’이다. 힘겨운 현실 때문에 벌써 10년여 동안 정체된 신입 조합원을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아직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지만, 가식없이 진심으로 자신의 약속을 묵묵히 지켜온 그는 조합원들에게 끝까지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조합원들한테 하고픈 이야기는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는 거에요. 끝까지 해야지요. 이제와서 그만 둘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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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松柏)아 끝없이 푸르고. 강수(江水)야 한없이 울어라!

[특별기고] 백포 서일 순국 100주기 특집② - 김동환

  • 기자명 김동환 
  •  
  •  입력 2021.06.28 00:00
  •  
  •  수정 2021.06.28 08:33
  •  
  •  댓글 0
 

김동환 /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인물은 역사연구의 출발이자 본질이다. 또한 특정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인물에 대한 연구만큼 우선하는 것도 없다. 어떠한 인물에 대한 선택과 해석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치관과도 무관치 않다. 백포(白圃) 서일(徐一, 1881-1921)은 일제강점기를 포효한 몇 안 되는 인물에 꼽힌다. 그럼에도 가장 저평가 된 인물 중의 하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치 수준과 맞물린다.

서일은 일제강점기 종교·철학·교육·무장투쟁 등 여러 방면에서 실로 기적에 가까운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손에 꼽힐 정도다. 무장독립투쟁분야 연구에 있어,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와 관련하여 간접적으로 언급된 것이 주종을 이룬다. 그나마도 김좌진이나 홍범도·이범석 등의 명성에 덮여, 그들을 통솔했던 서일의 이름은 너무도 희미하다.

올 해는 백포 서일이 순국한 지 꼭 100주기가 되는 해다. 인간 행동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그 개인의 가치관이다. 정신적 측면을 간과한 행동적 방면에서만의 접근은 본질을 외면한 채 현상구명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일이 수많은 독립군들을 통솔하던 용기와 지혜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수행·연구 속에서도 무장투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의 토대는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백포 서일의 삶의 의미를 3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연재하고자 한다. /필자 주

 

서일은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모든 이들이 그를 ‘보이지 않는 선생’으로 존경한 이유다. 대종교의 항일선언이자 중광단선언(重光團宣言)인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1919년에는 대종교 교주(敎主)였던 무원(茂園) 김교헌(金敎獻)이 교주의 자리를 양여하려 하였을 때도 겸허히 사양하였다.

대종교의 중광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사진제공 - 김동환]
대종교의 중광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사진제공 - 김동환]

서일이 도모한 동원당(東圓黨)이라는 비밀단체도 주목된다. 동원당의 실체는 서일의 그림자와 같았던 이홍래(李鴻來)의 가출옥문서에 등장한다. 또한 1925년 4월 6일 청진지방법원 판결서에도 그 명칭이 언급되고 있다. 이홍래는 중광단과 대한정의단, 그리고 북로군정서의 핵심으로 마지막까지 서일과 동고동락했던 인물이다.

동원당은 서일을 중심으로 한 대종교의 비밀결사다. 서일이 수명의 동지가 협의하여 1912년 음력 8월 화룡현 삼도구(三道溝) 청파호(靑波湖)에서 조직하였다. 독립운동을 완수하기 위한 체계적 활동을 결정하고 이를 지도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당시 청파호는 홍암 나철이 기거한 곳으로 대종교 포교와 항일투쟁의 거점이었다. 강우·이상설·신규식·류완무·현천묵·백순·박찬익·김영학 등등이 드나들며 대종교의 발전과 항일투쟁의 포석을 구상하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 확보에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인물이 안중근의 백부(伯父)인 안태진(安泰鎭)이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동원당이 언제까지 존속했고, 대종교의 또 다른 비밀결사인 귀일당(歸一黨)과 동체이명(同體異名)인지의 여부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동원당이 ‘대종교=항일투쟁기지’의 등식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조직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이러한 움직임은 1919년까지도 지속되었다. 서일이 1919년에도 연길현 국자가(局子街)에서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자유공단(自由公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것이 그 근거다. 그 단원이 무려 1만 5천명에 이르렀다.

서일은 나입네 하는 성격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천성이자 덕성이다. 가장 극렬한 저항을 누구도 모르게 실천해 갔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숨겨진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의 길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진중(陣中)에서도 늘 수행(修行)과 연구(硏究)를 함께 하였다. 서일에게는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이 곧 항일의 무기였다. 그것을 증명해 보인 인물, 그가 바로 서일이다.

중광단은 1919년 5월 일부 공교도(孔敎徒)들과 연합하여 대한정의단으로 변모된다. 그러나 정체(政體)의 이견으로 순수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당시 공교도들은 보황주의(保皇主義)를 내세웠다. 그러나 대종교인들은 대종교의 교의(敎義)인 홍익인간에 부합한 공화주의를 주장했다. 이것이 결별의 이유다.

대한정의단 역시 대종교 정신을 토대로 한 무장투쟁을 추구했다. 단장으로 추대된 서일은 독립군정회(獨立軍政會)라는 무장조직을 따로 설치하고 본격적인 무장혈전을 준비하였다. 또한 『일민보(一民報)』와 『신국보(新國報)』라는 순수한글신문을 발행하여 재만동포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순수한글신문 발행 역시 대종교 정신과 무관치 않다. 언어와 역사와 철학을 통한 정체성 투쟁의 중심이 대종교였다. 한글과 민족주의역사학 그리고 삼일철학(三一哲學)의 정착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 홍암 나철의 정신을 이은 주시경·김두봉·이극로·최현배 등, 한글개척의 선각자들 역시 모두 대종교도였음을 상기해 보자.

서일의 한글 구사 능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스승 나철이 1916년 순교하며 「순명삼조(殉命三條)」라는 유언을 남겼다. ‘대종교를 위하여, 천하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이 유언의 골자다. 서일은 그 삼조의 유언을 새기며 스승의 주검 앞에 「가경가(嘉慶歌)」라는 추모가사를 아래와 같이 바쳤다.

한검교 참이치 밝히려고 목숨을 다하신 한스승이여
가냘프고 약한 어린 우리 가셔도 못잊음 아옵나니
아사달메에 두르던 그 노을빛 그 환으로
더러운 티끌을 녹이시며 늘 도우소서 늘 도우소서
한배검 큰 도를 넓히려고 목숨을 마치신 한스승이여
옳으신 그 뜻을 아오나 저희는 두려울 뿐이오니
저만치 밀지 마옵시고 늘 때때로 일깨우소서
저 환하고 거룩한 그 빛깔에 늘 쪼이소서 늘 쪼이소서
우리의 허물을 걷어지고 목숨을 바치신 한스승이여
저희는 귀먹고 눈 어두워 즐거움과 새로움도 모르오니
아사달메 하늘집에 둥근 송이 큰 얼굴로
피었던 고운 꽃 그 빛으로 늘 씻으소서 늘 씻으소서

*한검교-대종교, *아사달메-구월산, *한스승-홍암 나철

무장투쟁의 대명사로만 인식되는 서일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해 주는 가사다. 우리말의 탁월한 구사는 많은 대종교지도자들의 상식적 능력이기도 했다. 이 추도가사는 후일(1942년) 고루 이극로(李克魯)가 개사(改詞)·정리하여 대종교 노래 「가경가」로 정식 편입되었다.

한편 서일은 대한정의단에 대한 정비와 더불어 왕청현을 중심으로 대종교 정신을 통한 민중적 기반 또한 확고히 다져 갔다. 이러한 토대 위에 김좌진·조성환·박성태 등 대종교계 군사전략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 역시 대종교의 중심인물들로서 대한정의단의 약점이었던 체계적 무장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가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태동하는 것이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일명 북로군정서)다.

대한군정서는 중앙조직 체계를 총재부와 사령부로 나누었다. 총재부는 주로 대한정의단의 중심인물들이었으며 사령부는 주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었다. 물론 그 연결의 끈은 대종교였다. 정신의 상징인 총재부와 행동의 상징인 사령부의 체제는 서일이 지향하던 군교일치(軍敎一致)·수전병행의 효율적 수행(遂行)을 위한 조직체계였다.

또한 대한군정서 관할 구역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종교 신자들이었던 까닭에 모연대(募捐隊)를 통한 군자금의 징수와 모금이 훨씬 수월했다. 일제강점기 대종교의 교당은 곧 학교이자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는 종교적 성금은 곧 후학을 기르는 학자금인 동시에 항일투쟁을 위한 군자금이었다. 군교일치의 실천을 그대로 확인시키는 부분이다.

대한군정서의 경신국(警信局) 조직을 보면 이러한 군교일치의 지향이 더욱 확연해진다. 경신국이란 경사(警査)와 통신(通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경사 업무는 민정시찰, 각 단체의 행동과 적정(賊情) 정찰, 군사기밀조사, 내부 불순분자 색출, 임원 경호 등이었다. 또한 통신 업무는 신보(新報) 전파, 보도 및 통신 전달, 서령(署令) 및 선유문(宣諭文) 배포, 하물(荷物) 운반 등을 관할하였다.

대한군정서의 경신국 조직이 39분국까지 펼쳐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아가 각 분국을 보면, 소분국은 1과에서 대분국은 20과까지를 두어 총 218과를 운영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 분국장이나 과장들이 모두 대종교인들이었다. 대한군정서 경신국 조직이 대종교의 시교당·포교소 조직과 동일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관할 지역 교포의 7할 이상이 대종교도였으며, 대종교의 확장이 곧 독립운동의 확장이었다는 주장과도 합치된다. 또한 독립군들 대부분이 대종교의 신앙에 뭉쳐서 파벌이나 사리잡념이 없었고 광명정대했다는 증언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10월 상달이 되면 돌로 제단을 쌓아, 어려운 재정에도 불구하고 돼지와 소를 잡아 제천보본하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빌었다고도 한다. 이 역시 대종교 군사제천(軍事祭天)의 전통과 그대로 부합하는 주장이다. 대종교단에 전해 내려오는 아래의 신가(神歌, 어아가·얼노래) 내력을 알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신가(얼노래)는 어느 시대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사기(古事記)에 ‘동명성왕 시절 제천 때가 아니더라도 항상 이 노래를 불렀으며, 광개토대왕 시절 전쟁에 임할 때에 군사들에게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청산리독립전쟁 당시 대한군정서의 연성대장으로 참전한 이범석은, 청산리전쟁의 승리 또한 대종교라는 신앙의 힘과 민족정신에 불타는 신념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서일의 군교일치·수전병행의 행동가치가 승리의 원인임을 알게 해 준다. 서일 총재를 비롯한 말단사병, 심지어는 경신조직에 참여한 민간인들까지도 대종교 정신으로 무장된 이념집단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일제는, 그들이 당한 수모를 대종교도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로 앙갚음했다. 당시 희생당한 대종교도들만도 수만 명이 넘었다는 것이 대종교 내부의 증언이다.

청산리대첩 후 일제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중소 접경지역인 밀산으로 집결한 독립군 부대릉은 대한독립군간을 결정하고 백포 서일을 총재로 추대했다. 중국 조선족 후예들이 '서일 총재 항일투쟁 유적지' 기녀비를 밀산에 세운 이유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청산리대첩 후 일제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중소 접경지역인 밀산으로 집결한 독립군 부대릉은 대한독립군간을 결정하고 백포 서일을 총재로 추대했다. 중국 조선족 후예들이 '서일 총재 항일투쟁 유적지' 기녀비를 밀산에 세운 이유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서일은 청산리독립전쟁 이후 동포들의 희생을 최소화시킨다는 계획 하에 북만주 밀산(密山)으로 이동하였다. 그 때가 1920년 12월 말 경이다. 서일은 이곳에서 대한군정서를 중심으로 10여개의 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총재로 추대되었다. 군단 휘하에 상급부대로 여단을 두고 그 아래 3개 대대 9개 중대 27개 소대를 편성하였으며 총병력은 3,500여명에 달하였다. 당시 대한독립군단의 수뇌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 재 서일(徐一)
부총재 홍범도(洪範圖)
고 문 백순(白純)·김호익(金虎翼)
외교부장 최진동(崔振東)
참모부장 김좌진(金佐鎭)
참 모 이장녕(李章寧)·나중소(羅仲昭)
군사고문 지청천(池靑天, 이청천)
제1여단장 김규식(金奎植)
참 모 박영희(朴寧熙)
제2여단장 안무(安武)
참 모 이단승(李檀承)
제2여단기병대장 강필립
중대장 김창환(金昌煥)·조동식(趙東植)·오광선(吳光鮮)

일제의 문서에 실린 대한독립군단 임원의 명단 [사진제공 - 김동환]
일제의 문서에 실린 대한독립군단 임원의 명단 [사진제공 - 김동환]

만주 항일운동지도자들이 총집합하였다. 그러나 대한독립군단은 재정의 궁핍과 군세(軍勢)의 분산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완전한 정착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욱이 서일의 반대에도 홍범도·이청천·오광선·안무 부대 등이 자유시로 넘어갔다. 이후 러시아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살상되는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된다.

서일은 밀산에서 둔전(屯田)을 통한 재기를 도모했다. 이 시기 이홍래를 대동하고 수행과 연구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러나 1921년 음력 8월 26일, 수백 명의 토비들이 야습하여 살인·방화 그리고 약탈을 자행했다. 함께 둔전(屯田)하며 훈련하던 전사들이 이들을 대적하다 장렬하게 산화했다.

청산리 치욕을 씻기 위한 일제의 광란, 독립군의 전선(戰線)을 무너뜨린 자유시 참변, 그를 따르고 의지했던 최후의 전사들의 참변, 역사의 무게가 한 순간에 그를 덮쳤다. 그들의 대부분이 대종교도이자 독립군이었다. 종단(宗團)의 최고 간부로, 독립군을 지휘하는 총수로, 자진순명(自盡殉命)의 비장한 각오를 새기게 된다. 서일의 마지막 상황을 『독립신문』(1921년 12월 6일)은 이렇게 적었다.

“씨(氏, 서일-인용자 주)는 무장군인 십이 명을 거느리고 앞서 말한 한 촌가에 머무르면서 군무(軍務)에 관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바, 돌연히 같은 해 구월 이십 팔일에 토비 한 무리가 이 촌락을 포위하고 공격하여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며 재물을 약탈을 행하므로, 그의 부하 열두 의사(義士)가 그들을 대항하여 분전하다가 중과부적이 되어 마침내 몰사한지라. 산상(山上)에서 이 비참한 광경을 바라보던 씨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호천호지(呼天號地)하다가, 이 슬픔을 견디지 못해 자상(自戕)하야 비상한 최후를 마쳤는데, 그가 통제하던 군서(軍署)에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달려와 그의 유체를 수장한 후에, 곧 총재 대리를 보선하야 군무를 진행 중이다.”

1921년 음력 8월 27일 백포 서일이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 밀산 당벽진 마을 뒷동산.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21년 음력 8월 27일 백포 서일이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 밀산 당벽진 마을 뒷동산.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21년 음력 8월 27일 서일은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대종교의 재도약과 흩어진 독립진영의 재기를 다지고자했다. 그는 죽음의 목전에서도 스승인 나철의 가르침을 되뇌었다. 나철 유서 중의 다음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생을 마감했다.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도깨비 뛰노니 하늘·땅의 정기빛이 어두우며, 뱀이 먹고 돼지가 뛰어 가니 사람·겨레의 피고기가 번지르하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

때로는 죽음의 힘이 삶의 의미를 앞설 때가 있다. 물론 생사의 경계를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마땅히 살아야 하지 않을 때 오래 살면 이것은 도리어 욕됨이다.(不當壽而壽 斯反辱矣)”[『회삼경(會三經)』「삼망(三妄)」]

독립군 총재 서일의 저술 속에 담긴 구절이다. 그는 황천(黃泉)에 늘 발을 걸치고 살았다. 그에게 죽음이란 한걸음 내딛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죽을 때와 죽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았던 인물이 서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죽음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의 철학적 투쟁의 본질과도 맞닿는다.

서일의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슬픔이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아픔이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통곡했다. 기독교 목사로서 『독립혈사(獨立血史)』의 저자인 일재(一齎) 김병조(金秉祚)도 울었다. 김병조의 「고(故) 서일 선생을 조(吊)함」이라는 추모글(현대어로 번역·윤문함)을 여기 소개해 본다.

『독립신문』 1면 맨 앞에 실린 일재 김병조의 서일 선생 추모 글. [사진제공 - 김동환]
『독립신문』 1면 맨 앞에 실린 일재 김병조의 서일 선생 추모 글. [사진제공 - 김동환]

아, 슬프도다.
선생의 돌아가심이여!
누구를 위하여 오늘의 소동이 일어났으며
누구를 위하여 오늘의 죽음을 맞이하였는가.
선생의 죽음은 과연
이천만 동포의 자유와 존영을 위한 것이며
선생의 죽음은 또한
십삼 의사와 수백 양민이 무고히 피해 입음을 위함이시니
생을 마침도 나라를 위하심이요
비장한 죽음도 동포를 위하심이라.
곧 선생의 고결한 의기는
스스로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으로 인정치 아니하고
오직 동포의 생명으로 자신의 목숨을 삼으심이며
동포의 생사도 자신의 생사와 같이함이시니
그의 삶도 동포와 더불어 사셨고
그의 죽음도 또한 동포를 위하여 돌아가셨도다.
선생이시여!
선생이 만일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살피는 자리에 계셨더라면
나라의 희로애락를 같이하는 충성스런 신하의 자격이 선생이시며
필부의 얻지 못함으로 세상을 채찍질함과 같이
천하를 떠맡은 어진 선비 또한 선생이실지라.
만리초보(萬里初步)의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바로 눈앞에 두시고
죽음으로써 살신성인하시며 의를 취하심은
비록 선생의 양심에 부끄럼 없고
천손만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실지나
아직도 살아있어 거적에 누워 창을 베고
백전고투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만리장성이 무너짐이며 큰 집의 대들보가 부러짐과 같도다.
하물며 청산리 전역에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던 소리
우리의 귀에 잊혀질 수 없는 경종(警鐘)이 되질 않았던가.
밀산(密山)의 송백(松柏)이 만고에 푸르름은
우리 선생의 절의(節義)를 딛고 선 것이요
파저강수(婆猪江水)가 천추(千秋)에 오열함은
우리 선생의 풀지 못한 한을
울음으로 안고 흐르는 것이니
아! 송백(松柏)아 끝없이 푸르고
아! 강수(江水)야 한없이 울어라!
감지 못할 선생의 두 눈이
해와 달이 되어 보시느니라.(『독립신문』1921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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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와 부동산 개혁

꾸준히 주창해온 지대개혁
민주당 부동산 정책 ‘우클릭’과 추미애 “촛불개혁 완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3ⓒ정의철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대선에 출마했다. 그의 출마 선언문은 크게 네 단어로 요약된다. 평화, 불평등, 촛불 그리고 부동산이다.

추 전 장관은 양극화와 불평등·불공정이 구조화됐다고 봤다. 그 원인을 부동산이라고 진단했다. 토지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과 이를 독점하는 소수의 특권은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대개혁은 특권의 해체이며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추 전 장관은 전부터 같은 주장을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7년 9월, 그의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대표적이다. 39분에 달하는 긴 연설 시간 동안, 당시 추 전 장관은 해방 직후 이뤄진 1950년 농지개혁부터 시작해 19세기 사상가 헨리 조지와 진보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을 언급하며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핵심에는 ‘지대 추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대로 얻는 불로소득이 연간 300조원에 달하고, 인구의 1%가 개인 토지의 55.2%를, 인구의 10%가 97.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한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해법으로 세금 강화를 제시했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과세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설 이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대 개혁을 강조했다.

 

“지대추구의 덫이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17년 9월 19일, 지역경제 활성화 토론회)

“헨리 조지가 지금 살아 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
(10월 9일, 기자간담회)

“지대추구의 모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바꾸자는 국민 여론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의 끊임없는 치열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11월 10일,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 축사)

“토지에 있어선 모두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12월 14일, 러시아 방문중 특강)

“땅보다 땀이 보상받는 사회가 우리가 갈 방향이다”
(2018년 1월 16일, 신년기자회견)

조세개혁특위, 토지 공개념 개헌
무위로 끝난 지대개혁

추미애 전 장관의 주장은 보유세 강화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듬해인 2018년, 대통령 직속으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부동산 보유세를 비롯한 조세정책 전반을 논의했다.

위원장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이었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가 맡았다. 그는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두 배로 인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참여연대 세법 개정방안’ 보고서의 산파 중 한명이었다. 보유세 강화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 부동산 개혁 요구도 컸다. 그해 4월 출범한 특위는 이런 열망을 담아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특위 권고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보유세 중 재산세 강화안은 솜방망이었고, 종부세 역시 당시 여당이 추진하던 세율 강화 방안보다 낮았다. 금융권 분석에 따르면 당시 9억원이던 은마아파트 종부세 부담은 불과 2천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참여연대는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재정개혁특위’라고 촌평했다.

특위와 함께 논의된 것은 개헌이었다. 헌법에 담긴 토지 공개념을 강화해 보유세 인상의 근거를 탄탄히 하자는 취지였다. 토지 공개념이란 개인의 토지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정신이다.

헌법 122조는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만들어진 조항으로, 노태우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가구당 200평 이상 택지 소유자에게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택지소유상한법, 유휴토지 등의 소유자에 대해 3년 단위로 전국 평균 지가상승률의 150%를 넘은 수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초과이득세법, 택지개발 등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익의 25%를 부담금으로 물리는 개발이익환수법이 바로 토지공개념 3법이었다.

이들 법안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차례차례 부정됐다. 헌법에 불합치(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하거나 위헌(1999년, 택지소유상한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불합치나 위헌은 복잡한 법리를 따져 나온 결정이지만, 헌법 122조에 담긴 토지공개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법조항이 애매모호해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전 장관 등 청와대와 여당은 헌법 조항 구체화에 나섰다. 보유세 강화 근거를 다지는 작업이었다. 기존 문구를 수정했다.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라는 문구를 넣어 토지 공개념을 구체화했다. 여기에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해 기존 개념과 다른 보유세 부과 근거를 만들었다. 진일보한 개헌안이었지만, 야당의 표결 불참으로 결국 자동 폐기됐다.

결국, 추미애 전 장관이 주장했던 지대개혁은 실패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다시 “촛불개혁 완수” 깃발 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부동산 정책 흐름을 고려하면 추 전 장관 인식은 돋보인다. 여당은 재보궐 선거 패배를 세금 부담에서 찾고, 종부세와 양도세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지난 5월 추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감세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내 집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면서 세금은 적게 내겠다는 이중적인 심리에 영합하는 대증요법일 뿐”이라며 “인기 영합을 버리고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시행해야 주택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H사태로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지시했을 때도 “헌법 속에 잠들어 있는 토지공개념에 다시 생명의 숨을 불어넣을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는 것이 부동산 적폐 청산의 궁극적 지향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추후 개헌을 통해서라도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에는 ‘금부분리’를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동산과 금융을 분리하자는 뜻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3명이 경제에서 땅의 역할과 가치를 분석한 책 ‘땅과 집값의 경제학’을 예로 들었다. 책의 핵심 중 하나는 토지의 금융화다. 주택담보대출이 이례적으로 확산하며 부와 소득, 생활 수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추 전 장관은 이 책을 추천하며 “21세기형 금부분리를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 내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은 물론, 때로는 진보정당의 목소리보다 더 급진적이다. 대권에 도전하려는 현실 정치인이 전면에 내세우기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일각에선 추미애 장관의 독특한 스타일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의 투기 광풍은 과연 현실적인가. 비상식적인 지대추구를 지금까지의 규제로 잠재울 수 있을까.

추 전 장관 인식에도 한계는 있다. 당 대표 시절 보유세 강화를 추진하며 “1주택자는 안심해도 좋다”고 누차 강조했다. 지대개혁을 추진하며 1주택은 제외하자는 모순은 민주당의 한계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타 정치인, 관료와 달라 보인다. 보유세 강화를 주택가격 조절 수단이 아닌 양극화·불평등 해소의 핵심으로 규정하는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추미애 전 장관의 출마선언문에는 “촛불개혁 완수”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구조화된 불평등과 불공정을 깨지 못한다면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다시 촛불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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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용산미군기지 일대 행진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반미 월례행동'으로 정례화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6.26 22:15
  •  
  •  수정 2021.06.26 2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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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미군기지 일대를 행진하며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을 외치는 시민평화단체들의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이 26일 오후 처음 진행됐다. 범민련남측본부 관계자들이 행진 도중 국방부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 일대를 행진하며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을 외치는 시민평화단체들의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이 26일 오후 처음 진행됐다. 범민련남측본부 관계자들이 행진 도중 국방부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일대를 행진하며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등 구호를 외치는 시민평화단체들의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이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인 26일 오후 처음 진행됐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평화통일시민행동, 범민련남측본부, 미국은들어라 시민행동, 8.15서울추진위 등 참가단체들은 이날 남영역과 삼각지역 사이 '캠프킴'을 9명 이내 7개조로 분산 출발해 삼각지 교차로를 거쳐 국방부 앞, 미군기지 4번게이트까지 행진했다 다시 3번게이트로 유턴하여 전쟁기념관에서 마무리하는 경로로 용산미군기지 일대를 행진했다.

이들은 행진 출발 장소인 캠프킴 앞에서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 주범 미국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미군기지 정화비용을 오염부피 192만m3에 1m3당 토양정화비용 50만원을 적용해 총 9,600억원으로 산정하고 주한미군과 미국에 오염정화비용을 청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나아가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반환된 용산미군기지 중 '캠프킴' 부지에는 앞으로 공공주택이 건설될 예정인데 토양오염조사 결과 맹독성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기준치를 초과했을 뿐만 아니라 주거지역 '발암 위해도'가 너무 높아 환경정화 전에는 접근을 차단해야 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미군기지 캠프킴 부지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 캠프킴 부지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미동맹 폐기', '한미일 동맹 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미동맹 폐기', '한미일 동맹 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앞 '사드반대', '한미동맹 해체' 피켓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앞 '사드반대', '한미동맹 해체' 피켓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 게이트2앞으로 지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 게이트2앞으로 지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행진이 진행되는 1시간 30분 동안 동안 참가자들은 주변 시민들을 향해 '전쟁동맹 한미동맹 폐기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 '사대굴종 문재인정부 규탄', '한반도 평화위협하는 싸드뽑고 미군뽑자', '한미일군사협력 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남북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의 길로 인도해 나갈 남북정상선언은 철저히 무시되고 남북관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비를 대폭 인상시키고 한미일 3각동맹을 강요하고 있으며 한미합동 전쟁연습을 강화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주축으로 '광북 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 추진위원회'(8.15대회 추진위)가 발족한 것을 계기로 각자 미국 규탄 활동을 벌여오던 서울지역 단체들이 모여 '반미 월례행동'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앞으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3시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 행진을 정례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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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미 대사관에 항의서한 전달하려는 대학생들 폭력적으로 연행

황석훈 통신원 | 기사입력 2021/06/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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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진연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황석훈 통신원

 

▲ 기자회견중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황석훈 통신원

 

경찰이 주한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던 대학생 4명을 연행했다. 

 

서울대학생진보연합(이하 서울대진연)은 26일 오후 12시 반경 ‘주차관리노동자 묻지 마 폭행 주한미군을 규탄’하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주한미대사관에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연행되었다. 

 

서울대진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2일 홍대 대로변에서 술에 취한 주한미군소속 군무원이 주차관리인을 폭행한 사건을 규탄했다. 

 

주차관리원을 폭행한 주한미군 군무원은 SOFA 협정에 따라 한국 경찰에 조사조차 받지 않고 주한미군으로 인도되었다.  

 

기자회견에서 서울대진연 ‘ㄱ’ 회원은 “계속해서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주한미군의 범죄로 너무나도 많은 우리 국민들이 피눈물 흘리고 있다. 더 이상 주한미군에 의한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며 “주한미군을 처벌할 수 없는 소파협정을 폐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 'ㄴ'은 “지난 세월 주한미군의 민간인 학살과 강력범죄, 환경오염을 보면 주한미군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우리 국민 괴롭히는 주한미군은 사과하고 철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서울대진연은 “뻔뻔한 범죄자 주한미국이 이 땅에서 나갈 때까지 목소리 내겠다”라고 의지를 피력했다.

 

▲ 서울대진연 회원들이 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황석훈 통신원

 

▲ 경찰의 연행 과정에서 떨어진 신발을 다른 참석자들이 챙기고 있다.     ©황석훈 통신원

 

경찰은 기자회견을 끝내고 미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서울대진연 회원 6명 중 4명을 15분 만에 연행했다. 

 

연행 과정에서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얘, 끌어내”, “이것, 저것”과 같은 막말을 했고 한 명의 대학생을 여러 명의 경찰이 연행하는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옷과 신발이 벗겨지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울대진연은 연행된 학생들이 석방될 때까지 종로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이어갈 계획이며 석방촉구탄원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진연은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http://bit.ly/애국대학생4명석방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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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닭 '잎싹이'

[나의 비질 이야기] <마당을 나온 암탉>의 현실판을 경험했습니다

21.06.25 19:35l최종 업데이트 21.06.26 10:46l
 

우리는 도계장 앞에 있는 닭 한 마리를 구조했다. 처음에는 닭을 구조하기 위해 도계장에 간 게 아니었다. 도계장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그토록 참혹한 현장에서 동화 같은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23일 DxE와 서울애니멀세이브 등 동물권 활동가들과 새로운 비질(도축장 등을 방문해 목격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행동)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답사에 나섰다. 오전 8시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이동해 경기도에 있는 도계장 부근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초록빛의 논과 산, 맑고 푸른 하늘까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비질이라는 게 본래 죽음을 마주하는 자리이기에 가벼운 마음일 수 없지만, 풍경과 날씨 덕분인지 여행 온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정류장에서 도계장으로 걸어가는 길, 잡초들 사이로 새의 털이 엉겨 붙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로드킬 당한 새의 오래된 사체로 짐작했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로변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도계장 근처 길가 풀 위에 엉켜 붙은 닭의 털이 있다.
▲  도계장 근처 길가 풀 위에 엉켜 붙은 닭의 털이 있다.
ⓒ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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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장에 도착하고서 깨달았다. 우리가 본 엉겨 붙은 털은 로드킬의 흔적이 아니었다. 도계장으로 향했던 어떤 닭들의 흔적이었다. 도착한 도계장 앞에는 닭을 실은 트럭들이 대기 중이었다.

4.5톤 트럭에 약 3천 마리의 닭이 실려 있었다. 트럭에 실려 있던 닭은 평생 알을 낳는 강제노동을 하는 산란계였다. 무게는 약 1.7kg, 특대로 분류된다. 3천 명의 생명이 좁은 닭장에서 움직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트럭 닭장에 가득 실린 산란계
▲  트럭 닭장에 가득 실린 산란계
ⓒ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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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춤을 추는 초록 빛깔의 나뭇잎과 푸른 하늘, 힘없이 처진 빨간 벼슬, 하얀 털의 수많은 닭. 눈물이 나오기는커녕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풍경에 입을 벌리고 생각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닭도 있었고 더위와 스트레스에 지쳐 풀썩 주저앉은 닭도 많았다. 이미 눈을 감은 채 숨을 거둔 닭도 보였다. 똥오줌, 깨진 알과 3천 마리의 닭이 섞여 고약한 냄새가 났다. 죽은 이에게도, 산 이에게도 그곳은 지옥이었다.
 

 닭장의 산란계와 알
▲  닭장의 산란계와 알
ⓒ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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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만큼이나 알이 많았다. 닭장에는 알이 여기저기 닭들과 섞여 있었고 둥그런 알은 구르다가 땅으로 떨어져 깨지기도 했다. 바닥에는 깨진 알 껍데기들이 보였고 노란 물들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었다. 노란색이 이토록 참혹한 색이었는가. 노른자 위에 파리들이 꼬였고 닭의 털들이 엉켜 있기도 했다. 트럭 위 계사에는 물도, 모이도, 화장실도 없었다.

알을 낳는 산란계가 도계장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농협 축산정보센터에 따르면 산란계 1마리는 1일 110g의 사료를 먹고 생후 146일부터 560일까지(414일간) 일생동안 347개의 알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1년 6개월, 최대 2년 정도 알을 낳는다. 사룟값 대비 알 생산 효율이 떨어지면 도계장으로 온다. 평생 알을 낳다가 결국 고기가 된다. 산란계의 1년 6개월 삶에 기적이란 존재할까.

기적

한참 비질을 할 때였다. 트럭들에 갇힌 닭들 사이로 자유롭게 땅을 거니는 닭이 보였다. 트럭에 실린 하얀 닭들과 색깔도, 크기도 달랐다. 갈색 빛깔의 아직 병아리 티를 벗지 못한 어린 닭이었다. 기묘한 풍경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닭들 사이로 뛰노는 닭이라니. 닭은 그곳이 어디인지 자각하지 못한 것처럼 평온하게 이곳저곳을 누비기도 하고 한편에 마련된 모이를 먹기도 했다. 운송 기사들이 한편에 마련해준 것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랬다. 도계장에 들어가기 전 트럭에서 간혹 닭들이 빠져나오곤 하는데 보통은 다시 닭을 잡아 계사에 넣는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잎싹이는 살아남았고 결국 운송 기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열흘가량을 그곳에서 지냈다.
 

 도계장 차량 대기 장소에서 열흘 가량 지낸 잎싹이
▲  도계장 차량 대기 장소에서 열흘 가량 지낸 잎싹이
ⓒ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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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혜린은 닭을 구조하자고 했다. 나는 닭을 구조해서 추후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걱정되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도시의 방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머뭇거렸다. 나와 명일은 어찌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동안 혜린은 발을 동동 구르며 트럭 밑에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잎싹이를 잡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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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고양이도 있고 도계장 앞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는 일단 구조해야겠어."

결국 우리는 일단 구조하기로 했다. 운송 기사에게 닭을 데려가도 되겠냐고 하자 운송 기사는 흔쾌히 승낙했고 그때부터 잎싹이 구조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닥치는 대로 자신의 동료를 잡아 내팽개치고 죽이고 먹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가 닭을 잡으려 할 때마다 닭은 다 자라지 않은 날개로 힘껏 날갯짓하거나 두 발로 콩콩 달리며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얼른 구조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힘차게 도망치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몸을 웅크려 트럭 밑에 들어가기도 하고 풀숲을 헤치기도 했다. 우릴 지켜보던 운송 기사는 보다 못해 닭을 잡을 때 사용하는 쇠막대기를 건네주는 친절(?)을 베풀어주기도 했다. 한 시간가량 쫓고 쫓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우리가 정말 닭을 구조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커질 무렵, 트럭 바퀴 위에 올라간 닭을 혜린이 두 손으로 낚아챘다. 죽이는 손이 아니라 살리는 손이었다. 몇 번의 푸드덕 날갯짓 끝에 활동가 혜린 품에 안긴 닭은 삐악삐악 소리를 냈다. 우리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활동가 혜린이 잎싹이를 구조한 뒤 품에 안고 있다.
▲  활동가 혜린이 잎싹이를 구조한 뒤 품에 안고 있다.
ⓒ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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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하는 동안 총 3대의 차량, 9천 마리의 닭이 도계장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구조한 닭은 사육장, 운송차, 그리고 도계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생존자의 이름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에서 따와 '잎싹이'라고 지었다. 우리는 9천 마리의 닭을 무기력하게 보냈고 잎싹이 한 명만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택시 기사는 오늘 첫 손님은 강아지였는데, 닭 손님은 난생처음 태워본다며 신기해했다.

잎싹이

활동가 집으로 온 잎싹이는 침대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도망치느라 긴장하고 피곤했을 잎싹이가 심신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우리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10분이 지났을까. 옆방에 있던 잎싹이가 우리에게로 한 발 한 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잎싹이에게 쌀과 물을 건넸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백미, 현미, 퀴노아는 골라 먹었고 흑미는 먹지 않았다. 취향이 분명했다. '닭대가리'라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잠시 후 잎싹이는 활동가 명일의 무릎에 올라섰다. 입이 떡 벌어졌다. 집에 온 지 불과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잎싹이는 우리의 팔과 등, 어깨에 올라섰다. 잎싹이 발을 통해 잎싹이의 온기가 전해졌다. '경계심에 숨어 지내진 않을까, 식음을 전폐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우리 넷은 어느새 서로의 몸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돌이켜보면 잎싹이에게 도계장이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잎싹이를 만나기 전에 내가 알던 '닭의 세계'는 모두 무너졌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앞으로 잎싹이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갈 동물해방의 여행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 여행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활동가 명일의 무릎에 올라간 잎싹이
▲  활동가 명일의 무릎에 올라간 잎싹이
ⓒ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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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구조된 잎싹이는 당분간 활동가 자택에서 머물며 추후 거처를 정할 예정입니다. 도계장에서 나온 잎싹이의 새로운 삶을 위해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건강검진을 비롯해 추후 거처 마련, 식비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개인 브런치 계정에도 실립니다.

* 서울애니멀세이브 홈페이지 : https://linktr.ee/seoulanimal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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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나선 공공부문 공무직·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제로’ 4년, 차별은 여전”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조합원들이 25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민주일반연맹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식'에서 비정규직 철폐, 대정부 교섭 쟁취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1.6.25ⓒ뉴스1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무직 노동자들이 25일 하루 일손을 놓고 총파업에 나서 노동인권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총파업 총력투쟁을 열고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 차별투성이 무기계약직, 직무급 저임금체계라면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며 비정규직 전환 이후에도 여전한 노동인권 차별을 지적했다.

이날 집회에 앞서 경찰 측이 집회 장소인 고용노동부 앞 도로에 설치한 펜스를 두고 이를 철거하려는 노조와 경찰의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3,500여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날 체감온도 30도에 이르는 무더위에 뙤약볕 아래서 노동자들은 팔뚝을 흔들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철폐 쟁취하자"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그늘도 없는 아스팔트 위에서도 손부채와 얼음물로 열을 식히며 자리를 지켰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민주일반연맹 조합원 4,500여명도 각각 사업장에서 연가 투쟁 등을 통해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열린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의 '총파업 총력 투쟁 선포식'에 앞서 거리두기를 위해 설치해 놓은 펜스를 두고 경찰과 집회 참석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2021.06.25.ⓒ뉴시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자화자찬 정규직 전환율 사기치지 말라"라며 "수두룩한 미전환 사업장, 민간위탁 전환율 0.7%,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가짜 정규직, 공공기관 80여개의 자회사는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고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들은 "성별·연령·학력의 차이, 비정규직·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의 차이로 임금차별은 부당하다"면서 "그러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결정은 아직도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책상에서 잠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용역업체·위탁업체·자회사의 바지사장, 권한 없는 자치단체장, 가짜사장은 비켜라. 정부가 진짜 사장이다"라며 "우리는 장관과 교섭을 요구한다"고 정부를 향해 대정부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김유진 민주일반연맹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생색낸 정규직 전환은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었고, 자회사에서도 차별은 자행되고 있다"면서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는 위선과 생색내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공무직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안한 단일직무급제 도입에 대해서는 "공무직 직무별로 별도의 임금 책정 범위를 정하고 이를 공공부분을 넘어 민간까지 확산하려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며 "직무급제를 도입하려 하는 단 하나의 문구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했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낸 결정문을 통해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전환돼도 임금, 교육, 복리후생 등 고용 조건 전반이 여전히 열악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중앙행정기관 공무직의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무직위원회가 구성돼 논의를 시작했지만, 정부가 모든 공무직에 대한 단일한 임금체계안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무려 대통령이 직접 비정규직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었다"면서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기만, 사기,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헀다.

이어 양 위원장은 "대통령의 약속이 온전히 지켜졌다면 노동자들이 이 자리에서 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 더 이상 저들의 약속에 기대도, 희망도 걸지 말고 비정규직 없는 나라를 우리 힘으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의 '총파업 총력 투쟁 선포식'이 열려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1.06.25.ⓒ뉴시스

"전환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자회사, 공무직 노동자 모두 차별"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여전히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공무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을 지적했다.

부평구서 용역업체 소속으로 생활폐기물 수거원으로 일하다 지난 4월말 해고된 옥세형 씨는 "회사는 하루 7천원씩 나오는 밥값을 안 주고 획책하다 '밥값달라'는 기자회견을 하자 몇개월 전에 있었던 사고를 이유로 해고시켰다"면서 "도대체 환경부는 뭐하는 건가. 환경미화원 임금은 저하시키고, 업체들 뱃속 채울 궁리만 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사측의 차별을 받고 있었다. 중부발전서비스 특경지회 전근수 지회장은 "회사가 '정규직 버금가는 처우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거대 자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곧 좌절과 분노로 바뀌었다. '제발 자회사로 전환해달라'며 모회사가 했던 약속은 버려졌고 자회사는 용역보다 못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오히려 모회사로부터 차별과 천대는 심해졌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운이 좋아 정규직이 됐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무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에게도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공공연대 전북본부 김금숙 농촌진흥청지부장은 "고용안정이 되면 공무직 노동자의 처우개선도, 근로조건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4년 전 그날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족이 있어도 공무원만 받는 가족수당,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공무원만 받는 성과급"이라면서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결의대회 이후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부처 건물을 돌며 행진을 진행했다. 행진을 마무리하고 관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하던 중 이를 빼앗으려는 경찰과 마찰이 벌이지기도 했다. 큰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노조는 방역을 위해 참가자 전원의 명단과 체온을 기록했으며, 참석 중 마스크 등을 쓰도록 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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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오늘날 온다면 어디로 갈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6/26 10:29
  • 수정일
    2021/06/26 10:2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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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케치]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2년 정직, 이동환 목사의 천막에서

2000년 전의 예수가 오늘날 온다면 어디로 갈까? 해고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같은 이 시대의 억눌린 이들에게 가지 않을까? 예수는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죄인, 병자와 함께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과연 교회의 일인가? 생각이 다를 때 혐오의 방식만이 답일까? 시대에 맞게 성서를 새로 읽으려 애써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의무 아닌가? 이 목사의 생각들이다.


 

24일 광화문, 거대한 빌딩 앞 작은 천막을 찾았다. 그 안에서 묵직한 질문들이 쏘아올려지고 있었다. 7월의 2심 재판은 공개 재판으로 진행된다. 천막이 있는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 이동환 목사의 천막. 목회자인 그는 거리에 천막을 치고 교단과 싸우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2019년 8월 인천에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징계를 받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천막농성을 시작하자 교단이 반응을 보였다. 협의 끝에 7월 중 2심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최종심인 2심은 공개재판으로 진행된다. ⓒ프레시안(최형락)
▲ 문제가 된 이동환 목사의 기도는 대략 이렇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서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이며,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다' 이 평범한 기도가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생긴 감리교의 재판법 3조 8항 때문이다. 이 조항에는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직·면직·출교에 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24일 찾아간 천막 앞 기도회. 이 자리에서 시편의 한 구절이 여러 번 인용됐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히는 것은 아니며, 억눌리고 가난한 이들이 영원히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골리앗과 같은 교단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동환 목사는 희망을 얘기했다. 이번 일이 불거지면서 수십 명의 기성세대 목사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예수가 오늘날 온다면 어디로 갈까? 해고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억눌린 이들에게로 가지 않을까? ⓒ프레시안(최형락)
▲ 한국에 비해 비교적 성소수자 문제에 진보적인 서구 교회의 경우, 성소수자가 신자가 되는 문제를 넘어서 목회자가 되는 문제, 성소수자의 결혼을 교회에서 어떻게 주관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논의된다. 수천년 전의 편견이 녹아든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242157246572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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