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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총파업, ‘파업’ 그 이상의 의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6/16 06:32
  • 수정일
    2021/06/16 06: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1.06.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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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다수의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서 투쟁해온 한국사회 제1노총 민주노총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1996~97년 신자유주의적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 이후, 지난 2016년 박근혜 정권 퇴진 총궐기를 제외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의 위력적인 투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올해 민주노총 총파업이 성사된다면 96~97년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노동자들의 ‘역대급’ 투쟁이 될 전망이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민주노총은 왜 역대급 투쟁을 준비할까. 총파업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

먼저, 민주노총에게 있어 올해 총파업은 ‘민주노총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회복하는 총파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지난해 노사정 합의문 추인을 두고 내홍을 겪은 민주노총이다. 겉에서 보기엔 ‘투쟁’이냐 ‘교섭’이냐를 선택하는 일면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정권의 지배 개입, 포섭전략에 맞서 투쟁할 것이냐 말 것이냐, 민주노조의 변혁성과 투쟁성을 지켜갈 것이냐의 문제였고, 이는 지난해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큰 화두가 됐다. 노사정 합의 추인을 묻는 대의원대회에서도,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결국 조합원들의 선택은 ‘투쟁’일 수밖에 없었다.

소득주도 성장,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 약속은 지키지 않았고, 최저임금 1만원 포기, 노조법·근로기준법 개악, 누더기로 만든 중대재해법 등등 노동자 반대편에 서며 반노동성을 하나둘 드러냈다.

코로나 재난 앞에서도 재벌 편, 사용자 편이었음을 더욱 크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재벌과 자본의 책임은 빠진 채 기업에 경영위기가 오면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에 적극 협력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노사정 합의안도 그렇고(결국 부결됐다), 정부가 기업에 지원한 220조라는 어머어마한 돈은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불평등 심화만 낳았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집권 여당이나 정치권에 기댄다고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제도권 안에서 ‘대화’라는 이름으로 노동계급을 묶어두고 포섭하려는 자본과 정권에 투항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들의 요구를 스스로 투쟁으로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높여가는 중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택배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택배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 예다. 정부나 택배사가 분류인력을 투입하겠다고 스스로 사회적 합의에 나선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과로사를 해결하겠다’는 노동자들이 노조로 똘똘 뭉쳐 투쟁했고, 과로사에 대한 국민의 공감까지 얻으며 정부, 국회, 택배사, 대리점연합회 등을 사회적 합의기구 테이블에 앉혔다. 지금도 합의 이행과 강제를 나 몰라라 하는 정부와 사용자들에 맞서 택배 노동자들은 “단결된 노동조합의 투쟁만이 택배현장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총파업을 택했고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연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그랬다. 중대재해 사업장의 경영자와 사업주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사례는 없다. 그들이 인심을 써서 제정된 법이 아니다. 10만의 노동자, 시민이 입법발의를 했고 유가족과 노동자들의 뼈와 살을 깎는 단식을 통해 법안 제정의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국회가 ‘가혹한 처벌’이라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받아 차 떼고 포를 떼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법이 제힘을 쓰지 못한 사이 지난 5월에만 7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사망했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이 있었으면, 최근 발생한 광주철거건물 붕괴 참사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고, 사고가 나면 사업주도 엄단할 수 있었다. 중대재해를 멈추기 위한 민주노총의 대통령 긴급면담 요구에 청와대는 산재사망 노동자 분향소 설치를 폭력으로 막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할 뿐이다.

결국, 노동자 민중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생존권을 지키는 일을 제도권에서, 정치권에서 누가 대신해주지 않으며, 스스로 조직하고 단결해 투쟁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그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증명하며 투쟁하고 있다. 그 투쟁이 하반기 110만의 거침없는 총파업으로 결집될 것이다.

▲ 지난 3월, ‘110만의 총파업 2021년 민주노총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 모인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산별노조 위원장들. [사진 : 뉴시스]
▲ 지난 3월, ‘110만의 총파업 2021년 민주노총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 모인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산별노조 위원장들. [사진 : 뉴시스]

민주노총 총파업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조직되는 총파업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아직 대선에 대한 정치방침이 없다. 지금 그 방침은 오직 ‘총파업 성사’ 하나로 귀결돼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불평등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110만 조합원 총파업으로 한국사회를 크게 뒤흔들자”고 결의했다. 올 하반기 총파업을 통해 대선 지형을 주도하겠다는 결심이다. 다시 말해, 불평등을 갈아엎기 위한 의제, 노동·진보 의제를 한국사회 핵심의제로 부각해 노동자의 힘으로 대선판을 흔들기 위한 전략, 그것이 바로 ‘총파업’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내건 5대 핵심의제는 ▲재난시기 해고금지-고용위기 기간산업 국유화 ▲재난생계소득 지급 ▲비정규직 철폐-부동산 투기소득 환수 ▲노동법 전면개정 ▲국방예산 삭감, 주택-교육-의료-돌봄 무상 등 한국사회 변화를 가져올 공세적인 요구들이다.

정부와 국회, 정치권에 읍소하고 요청하는 방식으로는 재난을 극복하는 것도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자신의 힘을 키워 노동자 민중이 제기한 노동존중 세상, 불평등 타파 의제를 대선 후보들이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선 후보와 정당이 주권자인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를 두려워하고, 후보 정책과 이후 국정 운영에 노동중심, 불평등 타파에 전력을 다하라는 명령을 받들도록 해야 한다.

최근 여야가 당 내부를 정비한 데 이어 불을 켜고 대선 전략에 골몰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노동자 민중은 배제돼 있다. 정치권의 돌풍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강조하는 ‘능력’에 기반한 공정‘경쟁’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는 것 같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를 대변하는 단어다. 신자유주의가 비정규직을 만들었고, 구조조정을 낳았으며, 지금 민주노총이 싸우고자 하는 불평등, 빈부격차를 만드는 원인이 됐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빈부격차로 출발선부터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대로 두고 공정을 이야기한들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노동자 민중이 ‘총파업’과 ‘저항’으로 대선판에 개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는 가장 위력적이고 강력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처럼 민주노총 총파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불평등 타파의 시대에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고, 촛불혁명을 승리로 만든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월14일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하반기 총파업을 조직하는 ‘총파업 대장정’을 벌였다. [사진 : 노동과세계]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월14일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하반기 총파업을 조직하는 ‘총파업 대장정’을 벌였다. [사진 : 노동과세계]

총파업 투쟁의 가장 앞자리에 선 사람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제대로 준비된 총파업을 하겠다’고, ‘위원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조합원을 조직하고, 총파업 성사로 대선판을 주도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양 위원장은 지난 4월14일부터 5월25일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전국을 돌며 간부와 조합원들을 만나 직접 교양 토론하며 총파업 조직화를 실행에 옮겼다. 지역본부를 다닌 1차 현장대장정을 마치고 이젠 산별노조를 조직하는 2차 대장정에 나섰다. 8월 이후엔 3차 대장정도 계획 중이다.

위원장의 발걸음에 맞춰 민주노총 소속 각 가맹산하 노조들도 5대 핵심의제가 구체화된 현장 투쟁으로 수위를 높인다. 노조들의 총파업 총력투쟁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오는 25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민주일반연맹 총파업 총력투쟁, 30일 사회공공성 강화, 노동권 보장을 위한 24만 공공부문 노동자 공동행동, 9월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총파업, 11월 돌봄노동자 총파업 등. 불평등을 갚아 엎기 위한 의제들이 구호만이 아닌 조합원 대중 자신들의 투쟁으로 되고 있다.

총파업을 앞둔 민주노총의 7월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7월19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총파업’을 위한 단일안건이 상정된다. 총파업 계획이 구체화 될 것이며 대의원은 물론 확대간부들까지 자리를 채워 총파업의 결심을 드높일 예정이다. 이에 앞서 7월3일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상반기 투쟁을 결집하고 하반기 투쟁, 총파업의 결의를 모으고 선포하는 자리다. 코로나 방역으로 지나치게 제약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철저한 방역 지침으로 대응하며 1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울에 모인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불평등을 갈아엎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총단결하고 거침없이 투쟁할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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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는 판문점선언 이행의 마지막 기회”

8.15대회 추진위 발족, ‘1만 선언 10만 국민행동’ 추진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6.15 12:38
  •  
  •  수정 2021.06.15 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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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대회추진위원회가 15일 오전 6.15남측위 회의실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8.15대회추진위원회가 15일 오전 6.15남측위 회의실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다가오는 광복 76돌 8.15는 판문점선언 이행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나서야 합니다.”

‘광북 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 추진위원회’(8.15대회 추진위)는 6.15공동선언 발표 21주년을 맞은 15일 6.15남측위원회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1만 단체 자주평화 선언, 10만 온라인 인증샷’을 광복절까지 추진한다고 밝혔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15일 오전 10시 6.15남측위 회의실에서 각계 대표자회의를 개최해 8.15대회 추진위를 결성하고 오전 11시 30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발족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왼쪽)과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이 발족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왼쪽)과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이 발족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8.15대회 추진위는 발족선언문에서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의 장본인인 미국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을 멈추고,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우리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나서야 한다. 한미일 동맹의 편에 설 것이 아니라 남북의 화해협력으로 한반도 평화, 번영의 미래를 개척할 힘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향후 행동계획으로 “광복 76주년 8.15까지 아래의 요구안을 국내이 각계각층 시민사회 단체 1만 선언과 10만 국민의 행동으로 만들어 가겠다”면서 “오는 8월 14일과 15일에는 전국 각지 ‘8.15 집중행동’과 ‘1천 대표자회의’ 성사에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8.15대회 추진위는 다섯 가지로 축약한 요구사항으로 “△한반도에서 70여년 이어진 전쟁과 대결을 끝내자! △남북공동선언, 북미공동성명 이행하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대화의 문을 열자! △일본 헌법 9조 개정과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한다! △군비경쟁, 무기증강을 멈추고 코로나 민생예산 확충하라!”를 제시했다.

안지중 추진위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의 여는말과 박민규 흥사단 이사장,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각계발언, 김경민 추진위 상임집행위원장의 활동계획 발표 순으로 이어졌고,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과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이 발족선언문을 낭독하고 한반도와 세계지도에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적은 깃발을 꽂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세계지도에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적은 깃발을 꽂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세계지도에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적은 깃발을 꽂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광복 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 추진위원회
발족 선언문(전문)

올해로 광복 76주년 8.15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과 그로부터 해방된 76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순탄치 않은 역사의 여정을 좌절을 모르고 전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76돌을 맞는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입니다.

2018년 평화의 봄을 기억합니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맺은 남북, 북미합의가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모든 대화는 멈췄고, 남북, 북미합의는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화가 중단된 한반도는 언제 다시 대결의 시대로 돌아갈지 모를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남북, 북미대화의 중단과 함께, 미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봉쇄전략 아래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긴장과 갈등도 한반도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은 재무장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사드 추가배치를 비롯해 미국의 MD체제 편입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반도를 또다시 강대국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모를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으로 우리 정부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2018년, 상대방을 적대하지 않는 일로부터 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시작된 남북, 북미대화를 통해 북은 핵과 미사일시험 유예를 선언했으며, 판문점선언 남북군사분야합의까지 이끌며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미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 있다고 하지만 대북적대정책을 내려놓는 어떤 행동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의 장본인인 미국이 먼저 행동해야 합니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을 멈추고,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 발전이 시급합니다.
다가오는 광복 76돌 8.15는 판문점선언 이행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나서야 합니다. 한미일 동맹의 편에 설 것이 아니라 남북의 화해협력으로 한반도 평화, 번영의 미래를 개척할 힘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시민사회의 온 힘과 결의를 담아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8.15대회 추진위원회는 광복 76주년 8.15까지 아래의 요구안을 국내외 각계각층 시민사회 단체 1만 선언과 10만 국민의 행동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 같은 의지를 모아 오는 8월 14일과 15일에는 전국 각지 “8.15 집중행동”과 “1천 대표자회의” 성사에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광복 76돌 8.15가 멈춰선 한반도의 시계를 다시 돌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싸워나갑시다.

1. 한반도에서 70여년 이어진 전쟁과 대결을 끝내자!
2. 남북공동선언, 북미공동성명 이행하라!
3.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대화의 문을 열자!
4. 일본 헌법 9조 개정과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한다!!
5. 군비경쟁, 무기증강을 멈추고 코로나 민생예산 확충하라!

2021년 6월 15일
광복 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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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친분’ 있어 도와줬다는데, 그 대상은 왜 하필 국회의원인가

이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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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생각하세요? 다랑논 공유프로젝트 추천합니다

[경남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②] 소농 공동체, 밀양 단장면 감물리 다랑협동조합 김진한씨

21.06.15 09:23l최종 업데이트 21.06.15 09:23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상남도에서 2020년부터 경남공동체협력지원가를 선발해 마을공동체 활동이나 주민활동 등을 지원한다.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전하고자 한다.[기자말]
올해 2월, 마음 맞는 애인과 함께 밀양 단장면 감물리에 귀농 왔다. 밀양으로 귀농했다고 하면 들려오는 단골 질문은 바로 "연고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이다. 나의 단골 대답은 이런 식이다.

작년에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에서 진행하는 청년 자급자족 플랫폼 교육을 들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4박5일 동안 전국 농가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고, 그중에 한 곳이 감물리에 있는 다랑협동조합이었다.
 

이곳에 정착해야겠다고 결심한 첫 번째 이유는 '자연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감물리는 밀양에서 3대 오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인지 많은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자연이 만든 저수지, 산, 그리고 다양한 생물들이 숨 쉬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다랑협동조합이다. 젊은 청년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오랜 시간 묵은 다랑이논을 자연농을 통해 살리려 하고 있다. 다백조를 비롯한 다양한 토종벼의 채종포를 만들어 우리의 토종씨앗을 살리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벼농사만 짓는 줄 알았는데 동물권운동・여성운동 등 다른 시민 활동도 열심인 분도 계셨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우리도 이곳에서 농사도 짓고 시민 활동도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무작정 다랑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경남공동체협력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한(42)씨에게 연락했다. "돈도 없다. 근데 귀농 가고 싶다. 빈 집이 있느냐"라고. 이런 당황스러운 제안에도 김진한씨는 열심히 빈 집과 논과 밭을 알아봐주셨고, 그 덕에 우리는 현재 안정적으로 감물리에 정착하고 있다. 김진한씨는 무슨 연유로 감물리에 다랑논 농사를 짓고 다랑협동조합까지 만들게 됐을까.
  
 김진한씨가 참가자들에게 모내기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김진한씨가 참가자들에게 모내기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다랑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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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리로 오기까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물리는 밀양의 3대 오지 중 하나이다. 밀양의 3대 오지마을이라 하면 일오치, 이소월, 삼감물이라 하여 산내면의 오치마을, 단장면의 바드리 마을과 감물마을을 일컫는다.

김진한씨는 "감물리가 소농 하기 딱 좋은 곳이다"라고 했다. 귀농하면 대규모 시설농이나 상업농이 대부분인데, 감물리에선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경지 정리도 안 되어 있고, 다랑논이다 보니 기계를 많이 쓸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소농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대농을 하라느니, 특용 작물을 하라느니 등의 주변 사람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기계를 쓰지 못했기에, 남는 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혼자서 이것을 꾸려나가기엔 한계가 많았다. 그리하여 다른 청년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작년부터 소수 인원으로 다랑협동조합을 꾸려 다랑논에서 벼농사를 했다.
 
 감물리 다랑논의 모습
▲  감물리 다랑논의 모습
ⓒ 박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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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논 공유 프로젝트

감물리 다랑논에는 묵은 논들이 많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벼농사가 돈이 되지 않자 손을 놓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진 탓이다. 다랑협동조합으로 사람이 모였지만 어림도 없었다. 3년만 묵어도 나무가 자라 적은 인원으로 논을 복원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을 더 끌어모아야 했다. 도시민들이 와서 체험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부산, 대구, 김해, 창원 등 인근 도시에서 온 도시민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모내기만 잠깐 체험하고 마는 게 아니라 1년 과정을 함께 한다. 모판내기, 모내기, 김매기, 추수까지 총 4과정을 함께 진행한다. 작년엔 16팀과 700평, 올해는 27팀과 1000평의 논을 마련했다.

현재는 모판내기와 모내기가 진행된 상태다. 참여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한 가족 단위 구성원부터 여성 혼자 참여한 경우까지 구성원의 형태가 다양하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을 체험시켜주고,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한 번에 내려오기는 쉽지 않은데, 이런 체험을 통해 징검다리 역할도 가능하다.
 
 모내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
▲  모내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
ⓒ 다랑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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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도부터는 밀양 감물리의 다랑논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차원에서 경남에 있는 다랑논을 대상으로 공유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거제시, 남해군, 산청군, 함안군, 밀양시까지 총 다섯 군데다. 경남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는 작년 감물리 다랑논 공유프로젝트를 체험한 경남 사회혁신추진단 허남혁 주무관의 아이디어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난한 싸움을 혼자 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올해부터는 경남에서 함께 해주니 든든한 아군을 얻은 느낌이다. 김진한씨는 "각 지역마다 색다른 특징이 있는 게 재밌어요"라며 "함안은 '언니네텃밭'이라는 친환경 텃밭 작물 판매하는 곳이 있어 텃밭 체험도 덤으로 할 수 있고, 남해는 바닷가와 인접해 있고, 산청 같은 경우는 떡 만들기와 같은 체험행사 등 지역마다 다른 방식의 행사를 취하고 있어 우리는 어떤 행사를 열 수 있을지 많은 자극이 된다"라고 말했다.

소농 생태 마을공동체

김진한씨는 "다랑논 공유프로젝트는 메인 사업은 아니다"라며 "최종적으로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사람들이 감물리를 체험하고 이곳에 와서 적게라도 자기가 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다. 다랑논 공유프로젝트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유인책인 셈이다.

벼농사에는 자본주의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낼 씨앗이 심어 있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쪼개진 단계마다 노동력을 집중 투입해야 하는 벼농사 체제의 특성상 마을 단위 공동체 시스템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산의 수원을 지키고, 수리체계를 민주적이고 공동으로 유지해나가야 하는 것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데 한몫한다. 

옛날엔 기계와 플라스틱 없이도 농사를 잘만 지었다. 김진한씨는 "소규모로 한다면 가능하다. 자급할 정도라면 기계 없이도 가능하다"라며 "과거의 방식을 연구하되, 과거의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벼농사에서 찾아보고 싶다"라고 자신의 희망을 술회했다.
 
 다랑 협동조합 조합원과 그들의 가족
▲  다랑 협동조합 조합원과 그들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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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이준석 돌풍에 이재명 유불리 계산 엇갈려

건보공단 비정규직 직고용 갈등에 이사장 단식…한겨레, 산재사망 국가적 조사기구 설치 제안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으로 기성 정치세력의 교체를 바라는 분위기가 퍼지며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유불리도 관심사다. 일부 언론에선 현재의 개혁 분위기가 이 지사에게도 좋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는 반면 한쪽에선 2030에게 호감도가 높은 이 지사는 안심할 만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 중인 가운데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비정규직들은 직고용을 요구하고 건보공단 정규직 노조는 이를 반대하는 가운데 이를 중재해야 할 이사장이 두손두발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라는 말도 나온다. 

한겨레가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국가적 조사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들을 꾸준히 보도해 온 한겨레가 이번엔 사설에서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 국가차원의 기구 설치를 주장했다. 한겨레는 “하루라도 서둘러야 할 이유는 매일 2~3명씩 생명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며 “내년 대선에 나설 후보들부터 분명한 입장과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 15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모음
▲ 15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모음

 

경향 “이재명 앞 3중고”vs 한국 “이재명은 안심”

이준석 돌풍이 여권에는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해 언론의 엇갈린 해석이 나왔다. 경향신문은 이준석 돌풍이 이재명 지사에게 걸림돌이 될 것으로 봤다. 

이 신문은 “당 내에서는 대선 경선 연기와 이 지사의 ‘기본소득’에 대한 ‘반이재명 전선’이 결집하고 있고, 당 밖에선 ‘이준석 돌풍’으로 대변되는 세대교체 여론과 국민의힘의 쇄신 행보가 위기로 엄습하면서 이 지사가 맞고 있는 6월이 어느 때보다 험난하다”며 “대권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경계 대상으로 부각했다”고 보도했다. 당내 견제세력, 이준석 대표, 윤 전 총장 등을 ‘3중 공세’라고 표현했다. 

▲ 15일 경향신문 정치면 기사
▲ 15일 경향신문 정치면 기사

 

경향신문은 “기성 정치세력 교체를 바라는 정서가 정권심판론과 만나면서 중도층까지 흔들고 있다”고 분석하며 “무엇보다 ‘청년’과 ‘개혁’ 등 이 지사가 추구해 온 두 가치를 이 대표가 보여주면서 여권 지지층의 균열 조짐마저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대표가 몰고 온 쇄신 바람을 윤 전 총장이 타고 올라갈 경우 대선 본선 경쟁 구도가 일찌감치 펼쳐질 수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 ‘반이재명 전선’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문순 강원지사 등이 만나 정치현안을 논의했는데 이에 대해 “경선 연기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 것과 “정세균 전 총리와 이광재 의원이 만나 경선 연기를 논의했다”는 것 등이다. 당내 다른 주자들이 이른바 경선연기론으로 반이재명 전선을 구축했다는 말이다. 

이는 표면적인 현상을 기술한 쪽에 가깝다. 보수언론에서 이준석 돌풍을 보도하며 대척점에 놓은 대상이 민주당 주류인 586세력인 가운데 이 지사는 이들과 거리가 있는 당내 비주류 세력이다. 당장 이 대표 공식일정 첫날인 14일부터 윤 전 총장과 신경전을 벌인 가운데 이준석 돌풍이 그대로 60대인 윤 전 총장에게 이어질지 의문이지만 윤 전 총장의 등장으로 본선 경쟁 구도가 펼쳐지면 오히려 이 지사의 지지세 결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당내 주자들의 경선연기론 역시 여권 내 이 지사의 대세를 인정하는 꼴인 동시에 현실 가능성이 낮은 주장이다. 오히려 이 지사에게 악재는 당내 다른 주자들의 지지율이 너무 낮은 점이다. 특히 이낙연 전 대표가 연초에 빠르게 추락하면서 흥행요소를 떨어뜨린 채 이 지사가 이른 시기 여권 내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보도는 더 있다. 민영뉴스통신사 뉴스1도 지난 14일 “‘청년·개혁’ 이재명 자산 다 뺏길라…이준석 돌풍에 ‘긴장’”이란 기사에서 “이 같은 상황(이준석 돌풍)이 일시적 현상일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로서는 야권 돌풍을 잠재울 복안 마련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보도했다. 뉴시스도 15일 “당안팎 협공받는 이재명, 세몰이 ‘마이웨이’”에서 비슷한 논조로 보도했다. 

▲ 15일 한국일보 정치면 기사
▲ 15일 한국일보 정치면 기사

 

한국일보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2030 호감도 높은 이재명은 ‘안심’…71세 정세균·69세 이낙연 ‘고심’”에서 “이 지사 측은 오히려 입지 공고화를 자신한다”며 “빅3 가운데 상대적으로 젊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라고 전했다. 오히려 경선연기론을 두고 싸우는 이미지를 부각할 것이 아니라 이 지사를 당 전면에 세워 야당과 혁신 경쟁을 하자는 주장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언급하며 ‘장유유서’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정 전 총리 측은 17일 정식 출마 선언을 앞두고 고심이 깊다”고 전했다. 정 전 총리의 한 측근은 “청년과 꾸준히 소통하며 ‘젊은 정치’를 추구해온 점을 내세워 정면돌파할 것”이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 

건보공단, 노조는 싸우고 이사장은 단식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원들은 지난 10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조건은 직원 1600명 직고용이다. 경향신문은 “정규직화 논의가 공단 정규직 노조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는 건 사실”이라며 “현 정규직 노조 지도부는 ‘정규직화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터”라고 전했다. 

정부 책임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고용 성격에 따라 3단계로 나눠 정규직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1·2단계와 달리 3단계인 민간위탁기관은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며 “정부가 손을 놓은 것인데 건보공단 고객센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직고용 문제를 논의할 사무논의협의회 3차회의가 오는 18일 열리는 가운데 김용익 이사장이 지난 14일 “고객센터 노조(비정규직)는 파업을 중단하고 건보공단 노조(정규직)는 ‘고객센터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하라”며 “두 노조가 이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단식을 하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 15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 15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김 이사장이 현 정부의 핵심 인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경향신문은 “김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정책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문재인케어’ 등 보건복지 분야의 대선공약 수립에 관여했다”며 “정부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터라 문 대통령의 핵심 노동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원활히 이끌 것으로 주목받았지만 건보공단의 관련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도 1면과 12면에 걸쳐 이 상황을 ‘진풍경’이라고 전하며 “서울대 의대 출신인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공약 수립에도 관여했고,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데 그런 그마저 노조를 상대로 단식 농성까지 벌이는 처지가 됐다”며 “현 정부 고용·노동 정책의 상징이었던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평가했다. 

사설에서는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이 늘어난 것은 경직적 임금 구조와 노조의 기득권이 지나치게 강한 탓이 큰데 원인을 개선하는 노동개혁은 손조차 대지 않고 정치적인 구호로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하니 곳곳에서 노노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정부는 명확한 지침도 주지 않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정책을 정치화한 부작용이 앞으로도 계속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文, 산재 사망자 500명대 공약”

한겨레가 사설 “산재 사망, ‘국가적 조사기구’ 설치를 제안한다”에서 부제를 ‘일터의 죽음, 사람부터 살리자⓵’로 정하고 일터에서 사망하는 노동자들 이슈를 적극 문제제기했다. 사설에 따르면 지난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가정은 882가구, 올해 1분기까지 238곳에 달한다. 최근 광주에서 건물 붕괴 사고가 벌어지면서 지나가던 시민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일터의 죽음은 너무나 쉽게 지나쳐버린다. 구의역 김군, 김용균씨, 이선호씨처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경우가 아니면 조용히 묻히는 죽음들”이라며 “코로나19로 숨진 이들이 14일 현재 누적 1988명인데 비슷한 기간 1100여명이 숨진 산재 사망사고는 국가의 소극적 대응과 시민들의 망각 속에 오늘도 산업현장에 만연해 있다. 드러나지 않는, 드러내지 않은 ‘숨은 팬데믹’”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시행한 김용균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 내년 시행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의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사회 전반의 인식이나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더디다는 점을 한겨레는 언급하면서 “오히려 제정된 법을 되돌리자는 철면피한 논리가 득세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대선주자들과 정부를 향해 “결연한 행동”을 촉구했다. 

▲ 15일 한겨레는 장문의 사설을 통해 산재 조사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 15일 한겨레는 장문의 사설을 통해 산재 조사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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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재정난 핑계로 ‘오세훈표 인력감축’ 예고...노조 “구의역 참사 잊었나”

기재부 “지자체가 책임져라” 책임 넘기기...노조 “정부가 공공서비스 책임져야”

최지현 기자 
발행2021-06-14 18:32:26 수정2021-06-14 18:32:26
구의역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5월 27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광진구 구의역을 찾아 김 군을 추모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재정 위기를 이유로 대규모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도시철도 노동자들이 ‘책임 떠넘기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반복되는 도시철도의 재정 위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지원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figcaption>

현재 국회 국토위원회에는 정부가 도시철도 무임승차의 손실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계류된 상태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협의회)의 전국 6대 도시철도운영기관 노동조합 위원장들과 민주노총, 정의당은 14일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8일 ‘2021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위한 노사 간 교섭에서 제출한 구조조정 계획안을 비판했다.

노조가 공개한 이 계획안에는 임금 동결과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그리고 비숙박형 근무제도 도입, 업종간 업무 통폐합, 희망퇴직, 비핵심 업무의 위탁과 외주 등을 통한 1천971명(작년 재직인원 1만6천명 기준 약 13% 수준)의 인력감축 계획이 담겨 있다. 노조는 이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협의회는 “이 계획안은 애초 5월 중에 언급된 1천여 명의 감축 계획보다 대폭 상승된 것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압력이 작용한 것은 아니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며 “실제로 오 시장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외주화를 포함한 2천명 수준의 인력감축을 진행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그 상태로 있다가 결국 터진 것이 ‘구의역 참사’였다”며 “이후 김군의 죽음으로 외주화됐던 업무는 직영이 됐지만 줄어든 일자리 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얼마 전 김군의 5주기 추모제에서도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구의역 추모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다시 일자리 수를 줄이고 외주·위탁을 운운할 수 있느냐”며 “오 시장의 귀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협의회 상임의장)은 “얼마 전 구의역 참사 현장에 오세훈 시장이 찾아 머리를 숙이고 헌화하면서 추모했다. 과연 그 자리에서 무슨 결의를 하고 무슨 추모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오 시장은 코로나19로 재정난에 빠진 서울지하철에 10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서울지하철을 다시 ‘지옥철’, ‘사고철’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안전과 무관한 인력감축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노조는 다르게 봤다. 인력감축 대상에는 영업과 승무, 기술뿐만 아니라 차량기동반, 기지기계관리, 구내운전, 특수차 운전, 보안관 등이 포함됐다. 궤도시설 보수나 역사 누수 관리 인원은 외주화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민중의소리와 만나 “대부분 안전업무”라며 “역 관리자나 보안관만 줄여도 문제가 생기면 당장 대응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도시철도 재정 위기, 구조조정 말고 정부가 투자하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라! 
< span=""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공동취재사진 / 정의철 기자<>

 

협의회는 이런 도시철도의 재정 위기가 한두 해에 지적된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름의 근거도 있다.

우선 도시철도 재정 위기를 압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에 대한 교통복지 차원의 무임 제도라는 점이다. 이는 전국의 도시철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공공 서비스’인 만큼 정부가 책임을 지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에 따른 승객 급감도 재정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승객이 줄어든 만큼 수입도 급감했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난지원금조차 없었다는 게 협의회의 주장이다.

국회에서도 여야 구분 없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정부 지원의 근거 법안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재정당국의 반대로 여전히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민홍철·조오섭·박홍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등 5인이 각각 대표발의한 도시철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한 바 있다. 하지만 곧 이어진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닥친 이후 지금까지 처리되지 못한 채 다시 계류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도시철도운영자가 노인 등을 위한 운임 감면 등 공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 등 원인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안일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지난해 11월 19일 국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영업 손실과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철도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며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안 차관은 “노인복지법 등에서는 어르신 무임승차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주체로 국가 또는 지자체를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국가시설인 일반철도의 무임승차 비용을 부담하고 있듯이 지자체는 지자체별로 (도시철도의) 해당 시설물과 관련된 무임승차 비용 등 운영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로 인해 재정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재정의 적자를 키워서 대도시의 도시철도를 지원하는 방법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안 차관은 “고령화 심화, 수명 연장, 과거에 비해 길어진 현직 연령, 늘어나는 도시철도 운영 적자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무임승차 연령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20년 넘게 유지해온 100% 감면이 적정한지, 소득과 형편을 따지지 않고 모든 분들에게 동일한 혜택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여기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선행 논의를 거쳐서 관련 입법에 대한 검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앞서 손명수 국토교통부 제2차관도 11월 17일 열린 열렸던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 "범국가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사항"이라며 바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안일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 자료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소속 이헌승 소위원장은 “‘'근본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된다’고 아주 원론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면 지난 몇 년 동안 뭘 하셨느냐”며 재정당국이 이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비판했다. 이 소위원장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논의 끝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선미 위원장은 “조금 더 진전된 입장을 들고 오라”며 기재부에 대안을 마련해올 것을 요구하면서 법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2월 3일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이 소위원장이 “소위에서 다시 논의해서 전체회의에 (대안 법안을) 회부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린 뒤로는 더 이상 공식적인 논의가 없는 상태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6대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당기 순손실은 총 1조8천5억 원에 달하게 됐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서울 1조954억 원, 부산 2천634억 원, 대구 2천62억 원, 인천 1천591억 원, 광주 374억 원, 대전 390억 원이라는 것이다. 협의회는 “올해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적자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협의회는 “이처럼 적자가 눈덩이 불어나듯 하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부채비율을 늘리는 식으로 자치단체와 운영기관이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를 두고 오죽했으면 언론이 ‘폭탄 돌리기’라고 지적했겠나”라고 한탄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의 부채율을 130%까지 올린 행정안전부를 비판한 것이다.

협의회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구의역 참사의 경험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며 “도시철도의 위기 극복을 위해 국회는 하루빨리 계류 중인 관련 개정안을 통과하고 정부는 도시철도에 대한 투자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법안 대표발의자 중 한 명인 이은주 의원은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에게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시민에게 더 위험한 지하철을 강요하는 게 ‘효율’이란 이름으로 용납되어선 안 된다”며 “안전 투자 축소, 인력 감축 등 기존의 노동조건에서 크게 후퇴하게 될 이번 (구조조정 계획안) 발표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고 정부 투자 확대와 공적서비스 의무에 대한 재정지원법 통과에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협의회는 7월 전국 6대 도시철도 노조 공동으로 대의원대회와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공동쟁의행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 결과에 따라 8월 말이나 9월 초 파업을 포함한 공동 연대투쟁을 할 계획이다. 전국 6대 도시철도가 공동쟁의행위를 결의하는 건 최초인 만큼, 실제 이뤄진다면 그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도시철도 재정 위기, 구조조정 말고 정부가 투자하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라!' 서울교통공사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6.14.ⓒ공동취재사진 / 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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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11명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6.15합의사항"

비전향장기수2차송환추진위..."누구든 조국으로 갈 권리는 있다."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6.14 23:56
  •  
  •  수정 2021.06.15 08:40
  •  
  •  댓글 1
 
양심수후원회회와 비전향장기수들은 6.15공동선언 21주년을 맞아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라며 즉각 송환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심수후원회회와 비전향장기수들은 6.15공동선언 21주년을 맞아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라며 즉각 송환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역사적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제3항에서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양심수후원회와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추진위원회는 6.15남북공동선언 21주년을 앞둔 14일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0년 9월 2일 6.15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북으로 송환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에 이어 아직 신념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비전향장기수 11명의 송환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그해(2000년) 9월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북으로 송환하는 역사적 결단은 6.15공동선언의 이행이면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주의 문제 해결의 빛나는 실천이었다"고 하면서 "남은 11명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사항"이라고 밝혔다.

6.15정신은 1차 송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자에 대해서는 꾸준히 송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문제는 2018년 판문점선언에 명시하고 시급히 해결하기로 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주의 문제'이며, '헌법과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국제인권협약에 따른 '거주·이전의 자유',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 '자국을 포함한 어떠한 나라로부터 퇴거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2000년 9월 송환 대상이었지만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한 경우, 그리고 수십년 옥고를 치렀지만 행형당국의 잔혹한 고문으로 인해 강제 전향당헸기 때문에 전향을 인정하지 않고 다투는 경우, 그리고 아예 제네바 협정에 따라 무조건 송환해야 하는 전쟁포로 출신 등을 가리지 않고 송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권오헌, 양희철, 김영식, 박희성 선생,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사무국장인 전남병 목사,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김호연 양심수후원회 이사장,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권오헌, 양희철, 김영식, 박희성 선생,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사무국장인 전남병 목사,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김호연 양심수후원회 이사장,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오헌 사단법인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이날 여는 말씀을 통해 2000년 6.15 당시 송환 관련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에, 또는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 2차 송환을 신청한 33명의 희망자가 있었고 이후 14명이 추가되어 47명의 송환 희망자가 있었으나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나면서 현재 11명이 남은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해에만 허찬형, 강담, 오기태 선생이 세상을 떠났고 올해들어 박종린 선생이 눈을 감은 것을 비롯해 2차송환 희망자 가운데 지금은 11명이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

남아있는 2차송환 희망자들도 평균 90세의 연령에 달하고,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권 회장은 "수십년전 분단으로 인해 갈라졌던 가족들이 고향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야만이 계속 되어야 하느냐"고 지적하고는 "통일부는 남북이 화해 협력하고 통일로 갈 수 있도록 당장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을 실천하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회견문에서 "이제 통일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은)최근 경색국면의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더 이상 반문명적 야만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으로 빠른 송환이 이뤄지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2차 송환 희망자인 양희철 선생(88)은 "나라의 분단이 가져다 준 민족적 슬픔은 없애야 한다"며, "내가 평양으로 가면 친남이 되어 오늘의 남쪽 의 처지와 이인영 통일부장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관을 말하리다. 외세, 한미워킹그룹의 해악성과 남북·북남 교류의 이익성을 말하리다"고 애틋한 심정을 말하기도 했다.

역시 2차 송환 희망자인 김영식 선생(89)도 "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 통일부장관은 나를 고향으로 보내주시오"라고 호소했다. 

박희성 선생(87)은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공동선언 제 3항을 또박 또박 힘주어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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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노동대화] 주52시간 연기하자고? 민노총 위원장의 답

보수언론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가상대화..."산재사망 지도 만들자"

21.06.14 07:11l최종 업데이트 21.06.14 07:11l

  

 민주노총 양경수 신임 위원장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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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든 작든 기업하는 분들은 최근 '주52시간 근무제'를 많이 언급한다. 주52시간제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우리 업종 특성에는 맞지 않는다'는 분들이 가장 많고, '영세기업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분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주52시간제를 비롯해 최저임금과 중대재해법 등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밥상머리 노동 이슈 대화에 민주노총 위원장을 초대해보면 어떨까. 노사협상 말고 그냥 편하게 차 한 잔 하면서. 노동 이슈라는 게 원래 정답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월급 주는 사람의 마음 다르고 월급 받는 사람의 마음 다르기에 자주 만나 서로의 입장도 헤아려보고 더 나은 대안도 찾아야 창의적인 조직, 공정사회가 될 수 있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언론이라도 대화창구 역할을 해야 하지만 외려 싸움만 부추기는 게 다반사. 그래서 좀 다른 시도를 해봤다. 보수신문과 민주노총 위원장의 가상 대화, 주제는 주52시간제부터 네이버의 직장 괴롭힘 사망까지 요즘 이슈로 잡았다. 

방식은 먼저 주52시간제와 관련해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보수신문의 기사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은 내용에 대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 내용은 가상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기사는 <한국경제>와 <조선일보> 기사였으며, 양경수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8일 오전 전화로 이뤄졌다.

주52시간제 시행 연기하라는 보수언론
 

한국경제 온라인 기사 (2021.6.6) 온라인 기사 갈무리
▲ 한국경제 온라인 기사 (2021.6.6) 온라인 기사 갈무리
ⓒ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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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신문 : 오는 7월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주52시간제가 확대 시행될 예정입니다. 국내 제조기업의 98%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체 제조기업 종사자의 약 51%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보원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력 30%를 더 고용해야 하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워 생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영세기업들은 7월이 두렵습니다. 업종 특성을 감안해 주52시간제 시행연기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 한국은 여전히 노동시간이 긴 사회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도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제를 꽤 오랜 기간 주장해왔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기준 자체가 주 52시간으로 오히려 후퇴해버렸어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건강 문제, 안전 문제와도 직결돼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노동력 재생산도 가능한데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주로 잔업 등 노동자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발판으로 유지해왔는데 더이상은 안됩니다. 앞으로 주 40시간 노동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주목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신문 : '코로나 이후 주문은 조금씩 들어오지만 사람 구하기 너무 어렵다'는 게 영세 제조업체 대표들 말입니다. 영세한 중소기업엔 오지 않으려 한다는 거죠. 더구나 인건비 부담도 커졌어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다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근로자마저 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일할 사람이 부족한데 이렇다할 대안도 없이 주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 경제를 뒷받침해온 뿌리기업들을 쓰러지게 해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양경수 위원장 : 사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게 임금, 복지, 그리고 고용의 안정성입니다. 영세기업들이 인력난을 겪는 이유는 최저임금만 주거나, 저임금에 비해서 노동강도는 세고 고용의 안정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 과거에는 대기업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공공기관 쪽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고용안정성이 담보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세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혹은 복지, 또 정규직 고용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열악한 조건을 내걸고 거기에 사람이 안 온다고 탓을 해서는 안됩니다. 

수입 감소, 저녁 있는 삶이 무슨 의미? vs. 잔업 없인 못사는 임금체계가 문제

보수신문 : 경북 구미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다음 달부터 퇴근 후 대리운전을 하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평소 주 68시간을 근무하며 기본급 180만원에 각종 휴일 수당과 야근 수당을 포함해 340만원가량을 받아 왔는데, 다음달부터 주52시간제가 시작되면 월급이 280만원가량으로 줄어들어 18개월 아이를 위해서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쉽니다. 이처럼 그동안 야근수당 챙겨 생활해오던 영세기업 근로자들은 '돈이 없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 무슨 의미냐'며 주52시간제 시행을 오히려 두려워 합니다.

양경수 위원장 : 예 맞습니다. (많은 영세업체들의 경우)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임금이 줄어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죠. 한국 사회의 임금체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기본급으로 불리는) 고정급 비율보다 (특근수당 등) 변동급 비율이 굉장히 높게 책정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제조업 사업장의 경우 변동급 비중이 약 40% 가까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노동시간이 줄거나 특근이나 잔업이 줄어들면 생활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때문에 저는 급여체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보장하고, 이를 미끼로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기본임금을 보장하고) 추가 근무는 주 52시간으로 시간을 제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노조도 대부분 없고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임금 체계를 바꿀 수 있죠?

양경수 위원장 : 저희가 작년에 요구한 '전태일 3법' 중에 하나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법개정 요구를 계속 하고 있어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잔업수당이든 야근수당이든 특근수당이든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휴가 자체도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직장갑질금지법에서도 제외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사실상 해고 유예에 대한 의무도 없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30~40%를 차지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적인 보완을 통해 노동시간 문제는 최저임금 등 임금체계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 노동자들의 최저생계와 건강권을 함께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52시간제가 벤처 싹도 자른다 vs. 더이상 열정페이 강요해선 안돼
 

가 보도한 "주52시간, 벤처 싹도 자른다... 실리콘밸리식 성공신화 힘들어" 제하의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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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52시간제가 벤처 싹도 자른다. 사무실에서 먹고자며 일하며 기업 일구던 실리콘밸리식 성공신화도 힘들어졌다. 주52시간제 도입 초기부터 제기되어온 '업종특성' 관련 사항인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양경수 위원장 : 저는 더이상 우리 사회가 열정페이를 강요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IT업계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알기로 한국에서 자회사가 가장 많은 기업이 전통적인 재벌 대기업이 아니라 카카오예요. 네이버같은 경우도 자회사가 100개가 넘습니다. 자회사의 경우 그 회사의 아이템이나 기술력을 이관받고 팔아치워버리는 게 IT업계의 생리거든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한다는 건 더 짧은 시간에 그들의 기술력을 흡수하고 내다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고용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네이버나 카카오같은 IT업체들이 자회사 정책을 바꿔 직접 고용해서 인재를 육성해야 합니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하는 것도 맞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재교육 활동도 병행해야 기술 개발도 될 수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을 인정해줘야 빠르게 개발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겁니다. 관행처럼 자리잡고 있는 장시간 노동의 문제, 무분별한 자회사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위해 사람들을 단기간 고용하는 문제들이 개선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보수신문 : 요즘 터진 네이버 직원 사망 사건은?

양경수 위원장 : 사실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예요. 해당 임원이 네이버에 있을 때도 넷마블에 가서 일할 때도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문제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2019년에 네이버로 다시 돌아올 때도 (네이버)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반대했어요. 하지만 (회사는) 묵살했고 그 결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거죠. 관리자들의 문제나 노동현장의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훨씬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로에 '사망사고' 표시하듯 산재사망 지도 만들자"
 

 민주노총 양경수 신임 위원장
▲  민주노총 양경수 신임 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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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대화는 여기까지.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양 위원장에게 물었다. 300kg 쇳덩이 압사, 지게차 사고 등 안타까운 산재 사망사고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럴 때 노동계에서는 언론에 대해 어떤 점을 바라고 있냐고. 특히 지역언론에 대한 바람도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기자 : 중대재해법 시행을 반년 앞두고 노동계와 재계 모두 개정이 필요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안타까운 사망사고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럴 때 언론보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양경수 위원장 : 중대재해 문제가 최근 많이 이슈가 되고 있고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하는데 최근에 중대재해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2400명 정도, 하루 7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중대재해로 사망하고 있었습니다. 언론들이 보도하기 시작하니까 최근 중대재해가 급격하게 불어난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저는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언론이 지속적으로 감시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주식 동향은 매일 언론에서 다룹니다. 주가가 얼마고 코스닥, 코스피가 얼마고 매일같이 정보를 주거든요. 언론에서 매일 노동자들의 산재사망 숫자를 알려주고 이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인식 자체가 굉장히 빠르게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지표도 중요하겠지만 언론이 노동자들의 안전지표도 그만큼 비중 있게 다루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 지역언론에 대한 바람은?

양경수 위원장 : 지역언론은 특히 지역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중대재해 문제를 더 깊이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이 행하는 부당노동 행위나 부당한 조치 때문에 노동자들이 희생된 곳이라고 알려지면 주변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겠죠. 그래서 민주노총에서는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지도를 만들어볼 생각이예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보면 교통사고 사망사고 발생지점을 표시해 놓고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한 곳에 그런 표지판을 붙여놓으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도 경각심을 갖고 조심할 수 있습니다. 또 해당 기업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경고의 의미도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기사>
"이 와중에 주 52시간, 더 버틸 힘 없다"…중소 제조업 '비명' (한국경제 온라인기사, 2021. 6.6)
"영세기업들 '주52시간 시행' 7월이 두렵다 (조선일보 온라인기사, 2021. 6.7)

'車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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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주52시간제, #중대재해법, #네이버 장시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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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윤석열 현상에 박용진·추미애 ‘반사이익’…치열한 3위 경쟁에 정세균 ‘고심’

박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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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구 르포 “이준석, 박근혜 넘는 정권교체 카드”

[아침신문 솎아보기] ‘쇄신’ 뒤늦게 바빠진 더불어민주당
공수처 9개 사건 수사 “인력 부족” 우려
부유한 지역 더 부유해지는 ‘불균등 발전’ 심화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당대표의 당선 의미를 분석한 기사가 연이어 나온다. 키워드는 젊음과 세대교체, 정권교체다. 한겨레는 르포 취재로 국민의힘 지지 ‘텃밭’인 대구 민심을 들여다봤다.

14일 한겨레 1·3면 대구 ‘서문시장’ 르포 기사 제목은 “달라진 대구…정권교체 위해 ‘젊은 보수’ 밀었다”(1면), “박근혜 지키다간 절대 정권 찾아올 수 없다는 분위기 많아”(3면)다. 한겨레는 대구 민심을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검증 안 된 ‘0선’ 30대 정치인이라도 보수의 간판으로 내세우겠다는 절박감”이라며 “‘박정희’도 넘고, ‘박근혜’도 건너야 보수의 새로운 중심을 세울 수 있다는 학습효과”라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이준석 당대표 분석 요인을 ‘영남의 전략투표’로 설명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호남이 부산 출신인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며 바람을 일으켰듯, 영남도 이전과 결이 다른 ‘합리·중도·수도권·0선·30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14일 한겨레 1면
▲14일 한겨레 1면
▲14일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갈무리.
▲14일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갈무리.

 

전략적 투표가 가능한 까닭 중 하나로 “도시 전역을 채운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짚었다. “이는 대구를 찾은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단골 민심 순례지’ 서문시장에서 확연히 감지됐다”며 “이날 오후 시장에 들어서자 곧 상인들의 대화에서 ‘이준석’ ‘나경원’ 이름이 튀어나왔다”고 전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는 또 다른 이유다. 한겨레는 “대구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준석 개인에 대한 전폭적 믿음보다는 이준석 카드를 ‘활용’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며 “내년에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크지만 다선 의원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기대할 게 없다. 이 대표는 당 인지도를 이만큼 끌어올리고 국민의힘이 변화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경북도당의 한 당직자 평가를 전했다.

▲14일 중앙일보 4면
▲14일 중앙일보 4면
▲14일 경향신문 5면
▲14일 경향신문 5면

 

야당발 세대교체 바람에 바빠진 여당

야당에서 시작된 정치인 세대교체 바람에 더불어민주당도 바빠진 분위기다. 파격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긴장감이 깔려있다. 경향신문은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 30대 이준석 당대표 체제 출범으로 긴장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졸지에 ‘꼰대 정당’ 프레임을 뒤집어쓸 위기에 놓여 이번주 안에 출범시킬 ‘대선기획단’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내에선 이번주 내에 출범시킬 ‘대선기획단’ 인선으로 유사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중앙일보는 이에 “‘청년 대선기획단장론’이 급부상하고 있다”며 “단장 후보로는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이 유력하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이 최고위원이 제안을 받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의 젊은 정치인들이 당 쇄신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향신문은 박주민·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최고위원, 장경태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의 젊은 의원은 국민의힘보다 많았으나 “이들이 쇄신 목소리를 낼 만한 분위기인가라는 점은 의문”이라며 “단적인 예로 초·재선 의원들의 쇄신 요구는 지난달 12일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가 ‘논란을 일으킨 장관 인사청문회 후보자 중 1명을 낙마시키라’고 말한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준석 당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영입과 관련해 ‘먼저 손 내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정치지도자는 정치적 거취에 본인이 책임지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구애하거나 운동장 자체를 기울여서 특정 주자에게 유리하게 하는 모습은 많은 왜곡을 낳는다”고 답했다. 윤 전 총장 없이 대선 승리가 가능하냐는 질문엔 “속단하기는 힘들지만 ‘윤석열 대세론’이 여론조사로는 나오지만 윤 전 총장의 ‘공정 어젠다’가 그때까지 갈 지는 확신이 없다”고도 밝혔다.

공수처 ‘9호 사건’, 미묘한 보도차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가 최근 한 달 동안 사건 9개에 공제 사건번호를 부여하며 수사에 나서기로 하자, 언론은 인력에 비해 사건 수가 과하다는 우려부터 정치적 편향성 의심까지 내놨다. 비판 수준은 매체 별로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14일 경향신문 8면
▲14일 경향신문 8면

 

공수처는 올해 초 출범 후 6건의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혜 채용 의혹 사건(공제 1·2호), 윤중천 허위면담보고서 작성 및 유출 의혹 사건(공제 3호),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공제 4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 금지 수사 외압 의혹 사건(공제 5·6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직권남용 및 옵티버스 사태(공제 7·8호), 엘시티 정·관계 비리 봐주기 수사 의혹(공제 9호) 등이다.

언론은 ‘인력 부족’을 공통되게 지적했다. 현재 공수처 인력은 검사 13명과 수사관 18명으로 정원의 절반 정도인데 실제 수사에 투입되는 검사는 부장검사 2명을 포함해 9명밖에 되지 않는단 점에서다. 중앙일보는 “공수처의 현재 여건으로는 1년에 1건만 제대로 처리해도 국민이 박수를 보낼 것”이라며 “지나치게 많은 일을 벌이기보다는 소수의 사건에 전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의 말을 전했다.

▲14일 한국일보 13면
▲14일 한국일보 13면
▲14일 동아일보 5면
▲14일 동아일보 5면

 

서울신문, 한국일보는 ‘문어발식’이란 강도 높은 단어를 썼다. 동아일보는 공수처가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윤 전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했다며 ‘법조계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친여 성향의 단체 ‘사법 정의 바로 세우기 행동’이 윤 전 총장과 관련해 고발한 건은 각각 공제 7·8호를 부여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혐의 입증을 위해 강제수사 등을 진행한다면 윤 전 총장이 대권 후보라는 점에서 정치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에 “사건 사무 규칙에 따라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입건한 것이고, 구체적인 이유는 수사 관련 내용이라 공개하기 어렵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고 반론했다.

경향신문은 “공수처가 최근 한 달여 사이 사건번호 9개를 정해 수사하기로 결정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며 “공수처가 선택한 사건들은 대부분 전·현직 고위 검사가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 수뇌부의 검찰 견제 의지가 수사의 배경으로 거론된다”고 지적했다.

▲14일 서울신문 6면
▲14일 서울신문 6면

 

부유한 지역 쏠림 발전, 불균등 심각

“계급이 된 통근-집과 바꾼 삶” 기획을 연재 중인 서울신문은 서울시내 지하철역 현황을 분석한 결과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지하철역 수는 총 94개로 자치구당 23.5개꼴에 달했다. 반면 8개 지역구가 포함된 동북권(성동·광진·동대문·중랑·성북·강북·도봉·노원)의 지하철역은 100개로, 자치구당 12.5개에 불과했다.

서울신문은 격차 원인으로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개발 및 이후까지 계속된 지하철역 ‘강남 쏠림’ 현상을 들었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 신규 개통된 지하철역은 235개다. 이를 자치구별로 5년 단위로 쪼개 분석한 결과 강남4구 지역에만 76개가 개설됐다. 전체 32.3%다. 2000년 이후에도 동남권을 지나는 9호선과 신분당선 노선의 35개 지하철역이 새로 생겼다. ‘모든 길은 강남으로 통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가 균형발전예산 현황을 분석한 결과도 서울·수도권 중심의 쏠림 현상이 발견됐다. “수도권 교통망 확충과 관련된 69개 사업에 균형발전예산 6조9365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교통 및 물류 분야에 배정된 전체 균형발전예산 총액(23조2587억원)의 30%에 이르는 규모”라는 것이다.

▲14일 국민일보 1면
▲14일 국민일보 1면

 

국민일보는 “올해 예산이 책정된 15개 광역철도 사업 가운데 비수도권 사업은 대구권광역철도 등 3개에 그친다. 3개 사업 예산은 501억원. 전체 예산(8218억원)의 16.4%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지자체에 직접 지원되는 예산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8년만 해도 균형발전예산 분배 금액이 361억원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적었으나 이명박정부 3년차인 2010년 들어 1493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며 “올해 서울시에 분배된 예산은 총 2267억원으로, 광주(1533억원) 대전(1682억원) 울산(1386억원)보다 많다”.

▲14일 국민일보 12면
▲14일 국민일보 12면

 

균형발전예산은 전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예산을 따로 편성하자는 취지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근거했다. 취재팀은 시민단체 ‘나라살림연구소’와 2008년부터 2021년까지 균형발전예산으로 시행되는 사업과 예산 내역을 전수조사했다.

한편 올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신입생 중엔 서울 외 지역 대학 학부 졸업생은 1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항공대 등의 특수대학을 빼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신입생 403명 중 비수도권 대학 출신 학부생은 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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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의 경제비평] 바이든 정부의 미국 국내 경제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6/14 08:35
  • 수정일
    2021/06/14 08: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발행2021-06-13 15:45:13 수정2021-06-13 15:45:13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이든 경제정책은 지난 3월 11일 확정된 1.9조 달러 규모의 구제계획(American Rescue Plan), 2.2조 달러를 소폭 상회하는 일자리계획(American Jobs Plan),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1.8조 달러의 가족계획(American Family Plan) 등 대규모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대표된다. 합계 약 6조 달러의 이 지출 계획은 전쟁 기간을 제외하면 미국 역사상 최대 수준이다. 최근 6월 9일에 하원의 심사가 개시된 일자리계획은 가족계획과 더불어 미국 경제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려는 지향을 갖는 것으로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전역의 노후 인프라를 현대화하며 제조업의 경쟁력을 지원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적극적 재정 운영과 부자 증세, 노동권 강화는 전향적인 변화

일자리계획과 가족계획은 10년에 걸쳐 시행되며 여기에는 4조 달러가 지출된다. 바이든 정부는 그 재원의 상당 부분을, 10년간 3.6조 달러 규모의 부자 증세로 조달하고자 한다. 5월말에 발표된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21%에서 28%로 오른다. 이는 2017년 트럼프 정부에서 35%를 21%로 떨어뜨린 것을 중간 정도로 되돌려놓는 조치이다. 소득세 역시 개인 기준 연간 45만 달러 이상, 부부 합산 5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37%에서 39.6%로 인상된다. 특히 자본이득(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발생한 이득)에 대한 과세가 크게 강화될 예정이다.

바이든 경제정책의 노동정책도 짚어볼 만하다. 바이든 정부는 케네디 이후 처음으로 노동운동가 출신 인사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했다. 연방정부와 계약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행정명령을 통해 15달러 최저시급이 보장되도록 했다. 3월에는 1930년대 뉴딜 이후 가장 노동 친화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동법 개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었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정부의 처벌 권한이 확대되었다.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보는 규정도 폐지되었다. 상원을 통과하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전향적인 변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뉴시스

그러나 바이든의 정책 변화를
새로운 경제 질서의 출현으로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 변화를 새로운 경제 질서의 출현으로 볼 수 있을지, 혹은 과거 뉴딜 체제로의 복귀로 낙관해도 될지는 의문이다. 일자리계획이든, 가족계획이든, 세제 개편안이든, 노동법 개정안이든, 당장 공화당 반대로 입법이 좌초되거나 그 내용이 축소 수정되기 쉽다. 입법에 성공하더라도 현재의 법안 내용을 과연 신자유주의와의 단절로 볼 수 있을지는 다시 따져볼 문제이다. 일례로 법인세 최고 세율은 인상되더라도 2017년 이전 수준에 못 미친다. 부자 감세 기조는 벗어난다고 하지만 중산층을 포괄하는 보편 증세로 나아가지 않은 점에서 미국 사회의 불평등 심화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규제 일반에 대한 정책 방향성도 아직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 환경규제가 강화된다고는 하지만 대개 트럼프 정부에서 완화된 것을 되돌리는 정도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로 국한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노동법 개정안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단체행동권에 대한 상당한 제약이 여전한 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낮은 처벌 수위가 시정되지 않는 점,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적극적으로 인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점 등이 지적된다. 연방 최저시급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내용을 구제계획에서 삭제한 것은 결국 민주당이었다. 코로나19 감염위기에도 불구하고 버니 샌더스의 전 국민 단일건강보험 공약을 거부한 것 역시 민주당이었다. 아직 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고 정세 변화에 따라서는 앞으로 얼마든지 후퇴하거나 역전될 수 있는 최근의 정책 변화를 두고 새로운 경제 질서의 출현을 거론하고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퇴조하는 조짐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가 불러온, 기존 거시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위기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국내 경제정책 기조 변화가 기존 거시경제정책 패러다임이 처한 위태로운 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그간에 거시경제학에서 논의되어온 한 가지 이론적 과제는, 통화정책(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조정해 경제를 관리하는 정책)과 재정정책(정부의 재무부처에서 지출 예산과 조세 수입의 크기를 조정해 경제를 관리하는 정책) 사이에 어떤 역할 분담(assignment issue)이 최선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00년대 초반까지 보수적인 기성 학계에서 합의된 결론은, 경제의 과열이나 침체를 막는 역할은 통화정책이 주로 맡고 재정정책은 소극적으로 재정수지(세입에서 세출을 뺀 것)가 적자가 나지 않게 관리하는 편이 최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는 경제 안정화에 있어 통화정책의 우위(monetary dominance)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1950년대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미국에서는 통화정책이 민간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중립성 원칙’(neutrality principle)이 고수되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화폐를 공급할 때 민간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나 주식을 매매하지 않고 국채(정부가 발행한 채권)만을 거래해왔다. 이에 따라 재정정책이 정부 개입에 따른 왜곡을 초래하는 반면 통화정책은 자유시장의 이상적인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통화정책 우위의 원칙이란 다름 아닌 시장원리주의 이념의 확인이었던 셈이다. 보수적인 기성 학계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 안정화를 달성하려는 과정에서도 정책 당국이 재량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최소화하고 미리 사전에 약속된 ‘준칙’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준칙주의를 주장했다. 재량에 입각한 정부 재정정책은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고 치부되었다. 통화정책 우위, 준칙주의, 중립성의 원칙은 기존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위기는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방준비제도는 ‘양적완화’(이자율이 0%와 같은 어떤 하한선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민간으로부터 자산을 매입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택저당증권이나 민간 기업이 발행한 증권을 매입했으므로 중립성 원칙의 훼손은 불가피했다. 양적완화 자체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물이었으니 준칙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따를 여유는 없었다.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는 어땠을까? 연방준비제도는 위기가 닥쳐오자 지체 없이 양적완화로 복귀했고 민간 증권의 매입에 나섰다. 준칙은 이번에도 지켜질 수 없었다. 그나마 각국에서 재정정책을 규율해온 준칙의 적용조차 유예되었다.

통화정책 우위의 원칙도 코로나19 경제위기로 도전을 받는 양상이다.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는 데 치중하는 것이므로 자산가 계층을 보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경제위기의 충격을 정면으로 맞은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분배가 크게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취약 계층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going direct) 필요성과 이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요구했다. 코로나19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이번에는 취약 계층의 직접 지원과 경제 회복을 목적으로 대규모의 재량적 재정 투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거시경제정책 패러다임에서 금기시되던 수단들이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달러(자료사진)ⓒpixabay

거시경제학의 대안적 관점과 고압경제론은
성장 경로의 전환 가능성, 이력 효과, 재정 여력에 대한 진전된 인식을 공유

그렇다면 바이든 경제정책이 근거하는 지적 전통은 어떤 것일까? 현재로서는 재무장관 재닛 옐런의 ‘고압경제론’(high pressure economy,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일정 기간 재정지출을 집중적으로 늘려 수요를 확대하면서 노동시장을 과열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 외에 어떤 새로운 경제학이 바이든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고압경제론 자체도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 혹자는 과감한 확장 재정을 강력히 지지해온 현대화폐이론(이하 ‘MMT’)이 바이든 경제정책의 근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대표적인 MMT 경제학자 스테파니 켈튼이 조각 과정에서 제외되면서 바이든 정부에 MMT의 인적 기반이 남아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이 거시경제학의 대안적 관점들과 공유하는 요소들은 분명히 있다.

주류 거시경제학의 거장 올리비에 블랑샤는 바이든 정부의 구제계획을 비판하면서 9천억 달러 이상의 재정 투입은 미국 경제의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9천억 달러라는 수치는, 실업률이 낮았던 2019년 4분기까지의 추세가 그대로 이어지는 기존 ‘완전고용’ 성장 경로로 미국 경제가 복귀하는 데에 재정 투입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리는, 경제의 미래 성장 경로를 과거 추세에 기초해 주어지는 것처럼 사고하는 주류 경제학의 경향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보수적인 기성 학설에 따르면, 마치 중력의 작용으로 사과가 늘 지구 중심 방향으로 떨어지듯 경제 역시 시장 원리가 순조롭게 작동하기만 하면 기존의 ‘완전고용’ 추세를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의 미래 성장 경로에는 막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경제가 과거의 완전고용 추세를 자동적으로 회복한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완전고용을 가져오는 성장 경로조차 유일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미래 성장 경로는 정책 효과에 따라 수많은 갈래로 길이 나눠질 것이다. 좋은 정책은 경제의 성장 경로를 상방으로, 나쁜 정책은 하방으로 전환시킨다. 고압경제론은 미래 가능한 성장 경로가 유일하지 않으며 어떤 정책이 실행되는가에 따라 더 좋은 성장 경로로 도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대안적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고압경제론은 ‘이력 효과’(hysteresis, 경제의 과거 및 현재의 상태가 미래 성장 경로에 미치는 영향)와 ‘재정 여력’(재정 투입을 늘릴 수 있는 여지)에 대한 대안적 거시경제학의 진전된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고압경제론 자체가 경제 침체의 지속성을 가져오는 부정적인 이력 효과를 극복하려는 방안으로 제안된 것이면서 동시에 충분한 재정 여력과 이를 지원하는 통화정책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점에서 그렇다. MMT가 강조해온 미국의 재정 여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바이든 정부의 과감한 지출 계획 수립을 자극하고 고무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뉴시스

근본적인 전환의 조건

바이든 정부 국내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가 근본적인 성격의 것인지, 그리하여 1960년대 이전의 뉴딜 경제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경제 질서의 근본적인 전환은 반드시 사회정치적 세력 균형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이다. 근본적인 전환의 조건은 바이든 경제정책의 변화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본의 영향을 제한하는 대항력을 형성해낼 수 있는지, 그리하여 사회 계급 간에 새로운 진취적인 균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와 같은 전환이 실제로 근본적인 것이 되더라도 그것은 장기적으로만 확인될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이끌어 갈 정치 주체의 형성에 실패하면 바이든 경제정책 전환의 비전도 퇴색되고 말 것이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정세의 가변성이 큰 상황에서 후퇴와 역전의 가능성은 너무 크다.

만약 경제 질서의 전환이 근본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장차 경제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정책 실천이 이론을 앞서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적 경제학의 씨앗이 뿌려질 수 있다. 다만 역사의 경험은 굳건한 과거의 도그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뿌리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때 번영을 위한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금본위제도가 1930년대 세계대공황으로부터의 회복을 지연시킨 요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대전환의 기회를 맞은 오늘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기성 주류 경제학의 극복되어야할 낡은 도그마부터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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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현되는 날

[개벽예감 448]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현되는 날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06/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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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2000년 2월부터 5월까지 남북미 3자관계의 동향

2.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합의하다

3. 21년 동안 이루어놓은 남북합의가 전부 사문화되었다

4. 급변하는 주변정세와 두 개 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

 

 

1. 2000년 2월부터 5월까지 남북미 3자관계의 동향

 

2021년 6월 15일은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로부터 21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상봉과 정상회담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분단체제를 뒤흔든 역사적인 사변이었다. 6.15공동선언에 따르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 사변이었다고 한다. 

 

시선을 격동의 2000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추진했던가? 이 의문을 풀어주는 이야기는 의외로 골프장에서 시작된다. 

 

21년 전, 경기도 하남시에 미8군 골프장이 있었다. 원래 미8군 골프장은 1958년 서울에 있는 미국군 용산기지에 속한 90,000여 평의 대지에 건설되었는데, 1991년 노태우 정부가 경기도 하남시에 28만2,000여 평이나 되는 거대한 성남골프장을 건설하여 미국에 상납했다. 미국은 성남골프장을 상납 받자마자 즉각 캘리포니아주에 편입시켰다. 남측 정부가 미국에 무상으로 상납한 토지들은 모두 캘리포니아주에 편입되었다. 

 

2019년 4월 1일 문재인 정부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 영내에 성남골프장보다 더 크고 멋진 골프장을 건설하여 미국에 상납했다. 지금 주한미국군이 사용하고 있는 평택골프장의 이름은 리버 벤드 골프코스(River Bend Golf Course)다.

 

지난 63년 동안 용산에서 성남을 거쳐 평택으로 옮겨온 미8군 골프장의 이전사는 미국의 한국지배와 한국의 대미예속이 응축된 굴욕의 역사다. 굴욕의 역사 속에서 미8군 골프장만이 아니라, 알짜배기 땅에 들어앉은 주한미국군기지들이 모두 캘리포니아주에 편입되었다. 이런 참담한 현실은 주한미국군이 우리 땅을 불법적으로 타고 앉은 점령군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0년 3월 중순 어느 날, 당시 점령군사령관 토머스 슈워츠(Thomas A. Schwartz)가 성남에 있는 미8군 골프장에 한국군 장성들과 함께 행차했다. 2019년 9월 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날 토머스 슈워츠는 한국군 장성들과 함께 성남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한국군 장성들에게 “나는 당신네 정부가 뭐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2000년 3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는데, 점령군사령관이 한국군 장성들에게 남북정상회담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당시 한국군 장성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비밀리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점령군사령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점령군사령관의 골프회동발언은 2000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한 비밀사항을 미국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2019년 9월 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0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장남 덩푸팡(鄧樸方)을 통해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제의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해달라고 청탁했었다. 덩푸팡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청탁을 전달받은 장쩌민 주석은 2000년 3월 5일 황쥐(黃菊) 당시 상하이 당서기를 특사로 평양에 파견했다. 

 

장쩌민 주석의 특사가 김대중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한 시점과 거의 같은 시점에 또 다른 중개자가 평양에 도착했다. 2003년 2월 1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조일무역회사 신니혼산교(新日本産業) 사장이었으며, 총련계 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 귀화한 요시다 다께시(吉田孟)는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개최제의를 2000년 3월 초 자신이 북에 전달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개최제의를 두 개의 경로를 통해 전달받고,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에 따라, 2000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싱가폴에서 비공개 예비접촉이 있었다.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싱가폴 예비접촉에서 만났다. 남과 북은 2000년 3월 17일 상하이 예비접촉과 3월 22일 베이징 예비접촉에 이어 4월 8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4차 예비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2000년 4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에게 보고했고, 이튿날 청와대는 남과 북이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했다. 2000년 4월 30일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 반기문을 백악관에 보내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그런데 2020년 7월 27일 <월간조선>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남과 북은 2000년 4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예비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확정한 ‘남북합의서’를 채택하면서 비공개 합의서도 채택하였다는 것이다.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제목의 비공개 합의서에 따르면,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 달러를 (북측에) 제공”할 뿐 아니라,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사회간접부문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국정원 계좌를 통해 북에 4억5,000만 달러를 송금했고, 나머지 5,000만 달러를 현물로 제공했고 한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달러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북에 제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송금은 백악관의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 백악관의 시각에서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자기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도 괘씸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30억 달러나 되는 현금, 투자금, 차관을 북에 제공하는 것은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보였던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북송금이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를 무력화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김대중 정부가 북에 30억 달러를 제공하지 못하게 합의이행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차단압박에 굴복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송금에 합의한 30억 달러 가운데 5억 달러만 제공했고, 나머지 25억 달러는 제공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송호경 부위원장을 만나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 것으로 하여 미국의 미움을 받은 박지원 특사는 대북송금이라는 죄목으로 2003년 6월에 구속되었고, 2006년 5월에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또한 당시 대북협력자금을 출연한 것으로 하여 미국의 미움을 받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도 대북송금으로 고초를 겪던 중 2003년 8월 4일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정도 앞둔 2000년 5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요구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박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친서를 받은 날로부터 한 주간 뒤인 2000년 5월 7일 당시 미국 국무부 고문 웬디 셔먼(Wendy R. Sherman)을 서울로 급파했다. 2019년 9월 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0년 5월 8일 서울에 도착한 셔먼 고문은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 장재룡에게 6월에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북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거론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셔먼 고문은 5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똑같은 요구를 꺼내놓았다.   

 

그런데 2000년 5월 7일 서울에 나타났던 웬디 셔먼이 6월 5일 또 다시 서울에 나타났다. 셔먼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고, 남북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전담하고 있었던 당시 국정원장 임동원도 만났다. 이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5월 7일에 이어 6월 5일에 또 다시 셔먼을 서울에 급파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6월 3일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특사를 접견하였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14일 북의 대남언론매체 <우리민족끼리> 보도에 따르면, 그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임동원 특사를 4시간 30분 동안 접견하는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북남수뇌상봉에서 발표할 문건은 지난날의 것을 반복하고 모방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용으로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할 문건에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접견석상에서 그 발언을 직접 들은 임동원 특사도 알지 못했고, 나중에 특사의 보고를 받은 김대중 대통령도 알지 못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조금 달랐다.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의 보고를 통해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그들은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문제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기하게 될는지 예상했다. 그래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셔먼을 또 다시 서울에 급파했던 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셔먼은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하면서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거론하는 경우 철군을 반대할 것을 요구했고, 북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거론할 것을 다시 요구했다. 그것은 외교적 요청이 아니라,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강박이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00년 5월 9일 미국 국무부 고문 웬디 셔먼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하는 장면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추진문제와 관련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보낸 친서를 받고, 한 주간 뒤에 웬디 셔먼을 서울로 급파했다. 셔먼 고문은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 북의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거론할 것을 요구했다. 셔먼 고문은 2000년 6월 5일에 또 다시 서울에 나타나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을 각각 만났다. 그 자리에서 셔먼 고문은 남북정상회담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거론하는 경우 철군을 반대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강박이었다.  


 

 

2.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합의하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예상과 요구는 모조리 빗나갔다. 남북정상회담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철군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철군문제는 조미협상에서 제기될 중대한 문제이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철군문제에 대한 발언권조차 갖지 못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여 회담을 난관에 빠뜨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3일 임동원 특사에게 남북정상회담 문건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 ‘새로운 내용’은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문제였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중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조국통일방안을 제시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는 것이야말로 통일국가건설과업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2000년 당시 남측에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작업을 총괄했던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은 2008년 서울에서 ‘피스 메이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회고록에는 남북정상회담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자고 제의한 발언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었다. 

 

“이번에는 첫째로 민족자주의지를 천명하고, 둘째로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련방제통일을 지향하되 일단 낮은 단계의 련방제부터 하자는 데 합의하십시다.”

 

“내가 말하는 낮은 단계의 련방제라는 건 남측이 주장하는 련합제처럼 군사권과 외교권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각각 보유하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개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합의합시다. 남측의 련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련방제가 뜻이 같은 것이니까, 낮은 단계 련방제로 북남이 협력해나가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방안을 합의하자고 제의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방안은 여기서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그 제의를 거부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거부로 조국통일방안에 관한 논의가 진척되지 않자, 회담에 배석한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끼어들었다. 배석자가 주제넘게 회담에 끼어든 것도 결례였지만, 그가 연방제를 반대하기 위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늘어놓은 것은 더 큰 결례였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남과 북에 현존하는 서로 다른 체제가 갑자기 연방제로 통일할 수 없다고 하면서, 연방제통일을 실현하려면 남과 북이 군대를 통합하고 외교를 통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기 위해 꾸며낸 궤변이었다. 남과 북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체제를 그대로 두고 통일하는 것이 연방제인데, 그는 남과 북에 현존하는 서로 다른 체제가 갑자기 연방제로 통일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니, 궤변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남과 북이 군사권과 외교권을 각각 보유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인데, 그는 남과 북이 군대를 통합하고 외교를 통합하는 연방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니, 궤변이 아닐 수 없었다. 

 

협상상대가 연방제라는 말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조국통일방안으로 합의하자고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6.15 공동선언 제2항은 매우 모호한 문장으로 표기되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위의 인용문에 들어있는,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장은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다. 그 문장에 들어있는 “이 방향”이라는 말에 구체적인 내용이 감춰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말에 담긴 속뜻을 분석적으로 고찰해보자.   

 

위에 인용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거부했고, 두 방안의 공통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장은, 남측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기초 위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모호한 문장으로 서술된 6.15 공동선언 제2항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속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그 공통성의 기초 위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로 합의하였다.” 

 

위와 같은 합리적인 해석에 따르면,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조국통일방안으로 합의한 것이다. 연방제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반통일론자들은 남과 북이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아무 것도 합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위에 서술한 대로 남북정상회담 상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면 남과 북이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조국통일방안으로 합의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00년 6월 13일 평양에 있는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담화하는 장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중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조국통일방안으로 합의할 것을 제의하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관해 자세히 해설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그 제의를 거부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 발표된 6.15 공동선언 제2항은 조국통일방안에 관해 모호하게 서술되었지만, 남북정상회담 상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면 남과북이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조국통일방안으로 합의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중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시한 조국통일방안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현존사회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군사권과 외교권도 각각 보유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이었다. 그런데 대북적개심에 사로잡혀 논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극우세력은 연방제통일과 ‘적화통일’이 같은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적화통일’은 북이 남을 적화(赤化)하는 통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적화통일’은 북이 남을 사회주의화(=적화)하고, 남과 북의 군사권과 외교권을 급진적으로 단일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서로 다른 현존사회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군사권과 외교권도 각각 보유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측이 남을 적화하는 통일이 아니다. 통일학의 관점에서 보면, 연방제통일은 ‘적화통일’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극우세력은 상반되는 두 개념이 똑같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적화통일론’이야말로 파란 색을 붉은 색이라고 우겨대는 궤변이며, 8천만 민족의 조국통일념원을 모독하는 망언이다.   

 

3. 21년 동안 이루어놓은 남북합의가 전부 사문화되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 발표된 이후 지난 21년을 돌아보면, 그 기간에 출현 남측 정부들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선언을 전면적으로 배격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6.15 공동선언이라는 말조차 기피했지만, 6.15 공동선언을 채택, 발표한 김대중 정부도 이행하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도 이행하지 않았으며, 현재 문재인 정부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지 않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6.15 공동선언 제1항에 따르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는데, 그 선언을 채택, 발표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자기들의 회담준비상황을 보고했으며, 그런 보고를 받고 상황을 파악한 백악관은 셔먼을 서울에 파견하여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준비사업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미국의 간섭을 받았던 김대중 정부는 6.15 공동선언 제1항을 철저히 외면했다.

 

6.15 공동선언 제2항에 따르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중에 조국통일방안을 논의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연합제 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의 공통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조국통일방안을 논의하는 것을 거부한 김대중 정부는 6.15 공동선언 제2항을 철저히 외면했다.  

 

6.15 공동선언 제3항에 따르면,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는데, 남북리산가족상봉은 몇 차례 진행되다가 중단되었고,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2000년 9월에 한 번만 진행되었다. 6.15 공동선언 제1항과 제2항이 이행되지 않았는데, 제3항만 제대로 이행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6.15 공동선언 제4항에 따르면,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는데, 남북경제협력은 대조선경제제재를 계속하는 미국의 차단과 방해에 걸려 초기단계에 좌절되었고, 다른 여러 분야의 협력과 교류도 몇 차례 진행되다가 남북관계경색으로 중단되었으며, 그로써 남북관계에서 신뢰가 쌓이기는커녕 불신만 더 커졌다. 

 

노무현 정부의 고위관리 세 사람이 함께 저술하여 2015년 10월 서울에서 펴낸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6.15 공동선언이 채택, 발표된 이후 5년을 돌이켜보면, 그 선언이 “상징화된 빈 구호가 되었고, 빈 종이, 빈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6.15 공동선언만 사문화된 것이 아니라, 2007년 10월 4일 채택, 발표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도 사문화되었고, 2018년 4월 27일 채택, 발표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과 2018년 9월 19일 채택, 발표된 ‘평양공동선언’도 사문화되었다. 남북합의들은 전부 사문화되고 말았다. 미국은 남측 정부가 남북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간섭하고 가로막았고, 남측 정부는 위에 열거한 네 개의 선언들과 배치되는 반북대결정책을 폐기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난 21년 동안 강화해온 대조선제재가 남북합의를 사문화시킨 주범이고, 미국과 남측 정부가 지난 21년 동안 지속해온 북침전쟁연습이 남북합의를 사문화시킨 주범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한미련합군 전차부대가 북침전쟁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한미련합군이 지난 21년 동안 지속해온 북침전쟁연습은 남북합의를 사문화시킨 주범이다. 2000년 6월의 6.15 공동선언, 2007년 10월의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선언, 2018년 4월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2018년 8월의평양공동선언은 모두 사문화되었다. 남측 정부가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고 있는현실, 그리고 남측 정부 자체가 반북대결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현실은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안겨준다. 남북정상회담으로는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측 정부가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고 있는 현실, 그리고 남측 정부 자체가 반북대결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현실은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안겨준다.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개최한다 해도,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는 남측 정부가 합의사항을 여전히 이행하지 못할 것이고, 남측 정부 자체가 반북대결정책을 여전히 폐기하지 않을 것인데, 북이 그런 무익한 남북정상회담을 왜 다시 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참담한 현실은 남북정상회담으로는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없다면, 북은 어떤 방도로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2021년 5월 9일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서 찾을 수 있다. 

 

 

4. 급변하는 주변정세와 두 개 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

 

개정된 당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함으로써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통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1년 전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함으로써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규약에서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것처럼,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정상회담으로 실현할 수 없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당규약에 명시된 철거문제와 청산문제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무력사용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이 통하지 않는 제국주의국가를 상대로 정상회담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정상회담은 전술적 의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세계사에 기록된 수많은 경험과 교훈은 어느 나라에서나 제국주의지배체제를 타도하는 반제투쟁은 해방전쟁으로 발전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날 항일선렬들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전개한 반제투쟁도 해방전쟁으로 발전되었다. 조선인민혁명군도 광복군도 독립군도 모두 일제를 타도하는 해방전쟁을 위해 존재한 항일무장조직들이었다. 그러므로 반제투쟁의 시각에서 보면, 제국주의국가의 식민통치는 악이며, 그 악을 제거하는 반제해방전쟁은 선이다. 조선총독부는 악의 화신이었고, 항일전쟁은 정의의 전쟁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조선로동당의 용어를 빌리면,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로동당은 2021년 5월 9일에 개정된 당규약에서 남조선해방전쟁을 당면목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남조선해방전쟁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북의 문헌들은 ‘전시사업세칙’과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이다. 북에서 2012년 9월에 개정되었고, 2013년 8월 22일 <동아일보>에 보도된 ‘전시사업세칙’을 보면, 제2장 제37항에 “전시무력기관사업의 기본은 (중략) 공화국 남반부를 해방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출판사가 2000년에 출판하였고, 2003년 1월 일본 언론매체가 보도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에도 “남반부 해방을 위한 혁명전쟁”,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통일을 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명시되었다. 

 

통일학의 관점에서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보면, 21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에서 말하는 남조선해방전쟁이 결속된 직후에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학의 관점에서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보면, 북에서 말하는 남조선해방전쟁이 북에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6.25전쟁과는 양상이 전혀 다른 전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날 6.25전쟁은 미국이 무력침공을 자행하는 바람에 전쟁기간이 3년으로 늘어났고, 그로써 남과 북이 모두 참혹한 전쟁피해를 입었지만, 오늘날 북에서 말하는 남조선해방전쟁은 미국의 무력침공을 원천봉쇄한 상태에서, 매우 짧은 기간에, 전쟁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결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군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기간의 단축, 전쟁피해의 최소화, 전쟁의 신속한 결속은 현대전의 3대 특징이다. 20세기에 있었던 6.25전쟁이나 윁남전쟁과 달리, 21세기 현대전이 그런 3대 특징을 보이는 까닭은, 정밀한 작전계획, 첨단화된 무기체계, 현대화된 전략전술에 의거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북에서 말하는 남조선해방전쟁도 21세기 현대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의 ‘전시사업세칙’에는 그들이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할 필요조건이 몇 가지 제시되었는데,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반도 주변정세에서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는 것을 남조선해방전쟁의 수행조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한반도 주변정세에서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면, 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전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진 4>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가 북이 바라는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세변화는 중국이 목적의식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정세의 급변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정세의 급변이다. 

 

한반도 주변정세가 북이 바라는 방향으로 급변한다는 말은, 대만해방전쟁을 수행할 준비를 완료한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극도로 긴장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왔다. 2016년 9월 1일 대만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은 2020년까지 대만해방전쟁준비를 완료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중국문제전문가 이안 이스턴(Ian Easton)은 외부에 유출된 중국인민해방군의 비밀전쟁계획문서들을 분석한 데 기초하여 집필한, 2017년 10월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 ‘중국침공위협(The China Invasion Threat)'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이 2020년에 대만해방전쟁을 수행할 비밀전쟁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중국인민해방군이 이처럼 대만해방전쟁준비를 완료하고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는 현재 상황이야말로 한반도 주변정세에서 조국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지금이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인가 아닌가하는 것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판단한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하고, 중국인민해방군에 총공격명령을 내리는 순간, 대만해방전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이 남조선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인가 아닌가하는 것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판단한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남조선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하고, 조선인민군에 총공격명령을 내리는 순간, 남조선해방전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군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을 시작하는 날, 조선인민군도 남조선해방전쟁을 시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대만해방전쟁이 개전시각으로부터 100시간 만에 중국의 승리로 끝나는 4일전쟁 씨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발생하여 늦어진대도 10일 만에 중국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는 한반도의 군사상황을 분석한 데 기초하여 북의 남조선해방전쟁이 72시간 만에 북의 승리로 끝나는 3일전쟁 씨나리오를 예상한 글을 이미 2013년 이후 몇 차례 <자주시보>에 발표한 바 있다. 

 

대만해방전쟁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공산당의 정치일정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은 2021년 7월 1일 당창건 100주년을 맞이하고, 2022년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이런 정치일정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창건 10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이 지난 10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국토완정의 역사적 임무(=대만해방)을 수행해야 할 절박한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절박한 의무감이라는 말은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차이잉원(蔡英文)을 우두머리로 하는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미국의 사촉과 지원을 받으며 대만군 무력을 증강하고, 미국이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려고 책동하고, 미국이 일본을 비롯한 추종국들을 긁어모아 반중국전선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은 중국이 대만해방전쟁을 수행하기에 불리한 정세를 조성하는 것이므로, 시진핑 총서기는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겨야 할 절박한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이 직면한 급박한 사정은 매우 심각한 군사정세가 한반도 주변에 조성되었음을 말해준다.    

 

매우 심각한 군사정세가 한반도 주변에 조성되었으므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최근 동향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북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0년 7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확대회의 중에 별도로 15명만 참석한 비공개회의가 진행되었는데, 비공개회의에서는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와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부대들의 전략적 임무와 작전동원태세를 점검”하였다고 한다. 북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1년 6월 11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2차 확대회의에서 “최근 급변하는 조선반도 주변정세와 우리 혁명의 대내외적 환경의 요구에 맞게 혁명무력의 전투력을 더욱 높이고 국가방위사업 전반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중요한 과업들이 제시”되었고,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인민군이 “고도의 격동태세를 철저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총비서가 확대회의에서 언급한 고도의 격동태세는 조선인민군이 총공격명령을 받으면 언제든지 남조선해방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전투동원태세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와 같은 보도내용을 읽어보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가 남조선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불러올 것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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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하이힐을 신어야 했다면 ‘철학자의 길’은 탄생했을까

등록 :2021-06-12 08:44수정 :2021-06-12 18:05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⑨‘걷기’조차 제한당한 여성들
 
핀투리키오, &lt;페넬로페와 구혼자들&gt;, 1509년께, 프레스코(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에 붙임), 영국 내셔널갤러리.
핀투리키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1509년께, 프레스코(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에 붙임), 영국 내셔널갤러리.
 
2019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여행을 갔다. 그곳의 대표적 관광지는 헤겔이 걸었다던 ‘철학자의 길’. 어렵게 온 김에 철학자의 길도 경험하고 싶어,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길에 들어서자 코스가 예상과 너무 달랐다. 거의 작은 산을 오르는 하이킹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은 단출한 옷에 편한 신발을 신은 사람만 환영하는 곳이었다. 경사진 길을 낑낑대며 걷다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헤겔이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여자였다면, 이 길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하이델베르크뿐 아니라 독일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덴마크 코펜하겐, 일본 교토에도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들은 길을 걸으면서 사색했고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다. 비단 철학자뿐이랴. 평범한 우리들도 종종 거리를 걸으며 활기를 얻고 영감을 수집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의 길’이라는 명칭은 ‘걷기’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옛 여성들은 이 걷기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철학자의 길이 탄생하던 시절 여성들은 폭이 좁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런 조건에서 남성처럼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사색하고, 활력을 얻을 수는 없었으리라. 물론, 하이힐 탓만은 아니었다. <걷기의 인문학>의 작가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즘을 처음 생각한 계기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맘껏 걷고 싶은데, 여성인 자신은 그러기 어렵다는 걸 느꼈던 때”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여자의 걷기를 방해하는 것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

거리, 남성들만의 공간
 

김수영 시인은 시 ‘거대한 뿌리’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습관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이 시에 등장하는 ‘그녀’는 1894~1897년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다. 비숍은 1898년에 펴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조선의 이 ‘기이한 습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大鐘)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중략) 자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다시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비숍은 더 놀라운 사실이 남아 있다는 듯,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한 양반가의 귀부인은 아직 한 번도 한낮의 서울 거리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김수영과 비숍의 글에 따르면 조선 말 존재했던 한밤중 ‘부녀자의 세계’는 잠깐이나마 여성들이 집 밖에 나올 수 있었던, 숨통 틔워주기 풍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마냥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둠의 힘을 빌려 겨우 거리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장옷을 뒤집어써야 하는 등 여성들은 거리에서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애초부터 길거리는 여성이 침입하면 안 되는, 남성들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온 세계 누빈 오디세우스 부재에
‘빈집’ 몰려든 남자들 물리치고
현명함 칭송받은 아내 페넬로페
‘자기 자리’인 집 벗어났다면
성매매 여성으로 인식됐을 수도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온 세계를 자신의 안방처럼 돌아다닌다. 그가 자의 반 타의 반 여성들의 유혹에 빠지고 자식까지 낳으며 영웅적 모험을 하는 동안 아내 페넬로페는 꿋꿋하게 집에서 남편을 기다릴 뿐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핀투리키오(1454~1513)의 그림 <페넬로페와 구혼자들>을 보자. 그림 속 페넬로페는 남편 없는 집에서 베틀로 옷을 짜고 있다. 그런데 오른쪽을 보면 외간 남자들이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다. 이 집은 다른 남자들 입장에서는 빈집과 마찬가지다. 집주인은 오디세우스이지 페넬로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먼 여행을 떠나자, 이들은 빈집과 그 집의 가구나 다름없는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아버지에게 바칠 옷을 완성하면 결혼하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낮에는 옷을 만들고 밤에는 그 옷을 다시 풀어버리는 식으로 시간을 끌며 청혼을 물리쳤다.

 

그런데 이런 지략도 한두번이어야 통하는 법. 그림 속 구혼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표정에 한 치 미동도 없는 그녀는 곧 자신의 처신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밖에 오디세우스를 태운 배가 도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마치 어제 떠난 듯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집과 아내를 되찾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호메로스는 페넬로페의 현명함을 칭송한다. 페넬로페는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알았고, 그 규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페넬로페가 20년이라는 세월에 지쳐 자신의 자리인 집을 이탈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여성의 몸까지 변형시킨 ‘제자리’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저서 <순수와 위험>에서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남성을 위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기에, 거리에 보이는 여자는 ‘더러운 창녀’였다. 이 같은 관념은 단어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거리의 남자(man of the streets)는 거리의 규칙을 따르는 남자일 뿐이지만,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는 성매매 여성(street walker)을 뜻한다. 만약 페넬로페가 집 밖에 나와 오디세우스처럼 돌아다녔으면 성매매 여성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이 같은 사회의 시선은 여성들이 집밖에서 마음껏 거닐 수 없게 한 족쇄였다.

 

여성을 향해 집 안에서 인형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의 명령은 여성의 복장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남성복을 입었던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는 회고록에서 처음 남장을 했을 때 느낀 해방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은 뒤축에 쇠를 박아서 발을 보도 위에 단단하게 디딜 수 있었다. 나는 파리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세계 일주를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입은 옷도 똑같이 튼튼했다. 나는 날씨에 상관없이 외출했고, 시간에 상관없이 귀가했다.”

 

그렇다면 남장 전의 상드는 어땠을까. “내 다리는 튼튼하고 베리 지방에서 험한 길 위를 두꺼운 나막신을 신고 걸으며 단련된 발도 믿음직했다. 그런데 파리의 보도 위에서는 내 발이 얼음 위의 배 같았다. 섬세한 신발은 이틀 만에 망가졌고 덧신을 신자니 걷기가 불편한 데다 나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진흙투성이가 되고 지쳐서 콧물이 흐르고 신발과 옷, 작은 벨벳 모자에까지 시궁창 물이 튀었고 옷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보통 여성의 남장은 전복적인 의미를 띠는 사회적 행위로 그려지곤 하지만 상드는 자신이 남장을 선호하는 이유를 실용성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동시대 중국의 경우는 복장도 모자라 아예 신체를 변형시켜 여성의 바깥 이동을 막았다. 중국에는 여성의 발을 천으로 동여매고 작은 신발을 신겼던 전족 문화가 있었다. 4살이 된 여자아이는 엄지를 제외한 네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꺾어 붙여 꽁꽁 싸매야 했다. 이는 발의 정상적 발육을 억제했고 그 결과 천천히 발의 뼈가 구부러지며 기형이 되었다. 이 때문에 전족을 한 여성은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여성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이 악습은 왜 오랫동안 지속됐던 걸까. 여성을 교육할 목적으로 쓴 <여아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어째서 발을 싸매는가? 활처럼 구부러진 모양이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쉽게 출입하지 못하도록 수없이 싸매어 구속하려는 것이다.”

원나라 사람 이세진이 쓴 <랑환기>에도 “듣자하니 여자가 가볍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 발을 싸매어 거주하는 규방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나갈 일이 있어도 장막을 친 가마를 타야 하므로 발을 쓸 필요가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전족은 여성들의 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규방에 가두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실시된 것이다.

 

스스로 자물쇠를 풀었지만…

이처럼 가부장제는 집요하게 ‘밖에 나다니는 여자는 창녀’라고 세뇌하며 갖은 방법으로 여성의 신체를 집 안에 매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가부장제의 손길을 뿌리치고, 용감히 집 밖으로 나간 여성들은 늘 있었다. 미국의 화가 메리 커샛(1844~1926)도 그중 하나였다. 11살 때 커샛은 파리국제박람회에서 본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일찌감치 화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커샛은 집 밖으로 걸어 나오기까지 험난했던 과정을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여자아이의 첫 번째 의무는 예쁘게 행동하는 것이었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예쁘지 않은 행동을 하면 금방 알아차리곤 한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 아버지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다.”

 

“유럽 가느니 네가 죽는 게 낫다”
아버지 반대 무릅쓴 미국화가 커샛
마차 운전하는 여성 그림 통해서
삶 능숙하게 운전하는 자신 투영
지금 길거리 여성한테 편한 곳일까

 

아버지는 “멜로드라마에서 타락하거나 명예롭지 못한 결혼을 한 여자에게 쓰는 말”들을 써가며 “유럽에 혼자 가서 미술 공부를 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네가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라고 딸에게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커샛은 “어쨌든, 나에게 프랑스를 달라”고 선언하며 1872년에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또한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비혼으로 살았다. 보통 여성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집안의 문지기 역할은 아버지와 남편이 맡는다. 커샛은 아버지를 거스름으로써, 또 비혼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자물쇠를 풀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랬던 그녀였기에, 19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운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를 그릴 수 있었으리라. 지붕이 없는 2인용 마차 운전석에 여성이 앉아 있다. 마부는 이 여성에게 고삐를 양보하고 뒤로 돌아앉은 모습이다. 채찍을 들고 고삐를 팽팽하게 당긴 채 마차를 몰고 있는 이 여성은 메리 커샛의 언니 리디아. 무거운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고, 폭 넓은 스커트 차림이긴 하지만 이 모든 방해를 뚫고 당당하게 운전에 몰두하고 있다.

 

커샛은 리디아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 같다. 실제 커샛은 마차 운전에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갓 개발된 자동차 운전에도 뛰어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커샛은 리디아 옆에서 팔걸이에 손을 댄 채 차분히 앞을 응시하는 소녀도 일부러 그려 넣었다. 아마 여성도 거리에 나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후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 자신이 인생의 운전대를 남성에게 넘겨주는 일 없이, 자신의 삶을 능숙하게 운전한 당사자였으니 말이다.

 

메리 커샛, &lt;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gt;, 1881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메리 커샛,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 1881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요즘 거리에는 커샛의 후예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적 장벽은 없다. 하지만 남성들만큼 여성들에게 길거리는 편안한 공간일까. 여성들이 남성만큼 한적한 둘레길을 안심하고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성들이 모임을 마친 다음 서로의 귀갓길을 염려하며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라고 인사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운전하는 여성은 종종 남성들로부터 ‘김여사’, ‘솥뚜껑이나 운전하라’고 조롱받는다는 것을 들었는가.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캣콜링’을 당하기도 한다. 캣콜링은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향해 휘파람 소리를 내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모든 게 거리가 여전히 남성이 주도하는 공간이며, 여성인 당신은 지금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가부장 사회의 신호인 셈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된장녀’에 대한 비난과 조롱, 그리고 ‘개똥녀’를 비롯하여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마녀사냥은 여성은 도로나 카페 혹은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한다”라고 적었다. 김현경에 따르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고, 그 자리를 주는 행위가 바로 ‘환대’다. 과연 여성들은 거리에서 ‘환대’받고 있는가. 아니 그 전에 남성과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는가.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3주에 한번 다룬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9079.html?_fr=mt1#csidx8d459a609086dad868353620186bb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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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이스라엘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6/13 09:07
  • 수정일
    2021/06/13 09: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임상훈의 글로벌 리포트] 세계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

21.06.12 19:29최종 업데이트 21.06.12 19:30
이 땅은 나의 것, 하나님이 내게 주셨네<br style="box-sizing: inherit;" />깊은 역사의 멋진 이 땅을<br style="box-sizing: inherit;" />아침 해가 언덕과 평원을 비추니<br style="box-sizing: inherit;" />난 마침내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땅을 보노라

긴 투쟁 끝에 얻은 자의 벅찬 가슴이 느껴진다. 이 감성을 중후함과 미성을 동시에 지닌 가수 팻 분(Pat Boone)의 목소리에 얹으니 세기적 명곡이 탄생했다. 영화 <영광의 탈출(Exodus)>의 주제곡으로 쓰인 '이 땅은 나의 것(This Land Is Mine)'의 앞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41년 동안 주말 저녁 영화광들을 잠 못 들게 한 티브이 프로그램 <주말의 명화> 주제곡으로 쓰였다.
 

▲ 영화 <엑소더스>(영광의 탈출, 1960) 포스터 ⓒ 오토 프레밍거

 
아마도 30대 이상의 한국 사람이면 이 곡을 모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영화 <영광의 탈출>을 끝까지 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려 3시간 28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도 대단하지만 대부분의 극적인 장면은 영화의 전반부에 모여 있다. 이 영화 관계자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뒷부분 2시간 정도는 관객에 따라 지루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관리하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몰려온다.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키프로스 섬에 집단 수용소를 설치한 후 모여드는 유대인들을 그 곳으로 이끈다. 수만리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온 유대인들은 정작 팔레스타인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수용소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낸다. 이때 나타난 주인공 아리 벤 캐이넌(Ari Ben Canaan)은 유대인들을 탈출시켜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끈다.

이 영화의 원작인 같은 제목(Exodus)의 레온 유리스(Leon Uris) 소설처럼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그린다. 역사적 사실 또한 영화나 소설 못지않게 극적이다. 그러니 위 노래의 가사가 이스라엘인들에게 특히 각별하지 않겠는가. 애국심과 공동체 정신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에 경의를 표할 만하다. 다만 한 국가의 건국이 예술의 소재만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분이라면, 건국이라는 사실관계는 역사 자체에 대한 인식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역사관에 따라 진실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은 누구 것?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역사학자 카(Edward Carr)의 말이 있지만, 동시대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균형 잡힌 인식을 함께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복수의 사실관계 주장도 인정해야 한다. 나(또는 우리)의 진실만큼 그(또는 그들)의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진실들은 상호 모순되기도 한다. 그래서 진실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정신을 높이 살 만하지만 '이 땅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한 보증이 '신이 주셨기 때문'만이라면 곤란하다. 왜냐면 그 땅을 거쳐 간, 또는 지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른 민족들도 똑같이 그 땅을 '신이 주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상대로 이중 계약이라도 한 걸까?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 위키커먼스

 
천상의 세계 또는 예술의 세계라면 모를까 세속적 현실에서는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국제문제에서는 국제법이나 국제관계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도 신과 함께 살기 원한다면 철학을, 인간과 더불어 살기 원한다면 수사학을 가르치라는 금언을 새겼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점유하고 있거나 팔레스타인이 점유하고 있거나 혹은 두 정치세력이 분쟁 중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은 역사 속에서도 가나안,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아랍, 오스만, 영국 등 수많은 세력들이 점유해 왔다. 물론 역사 속의 모든 점유 세력 또는 그들의 후예(있다고 가정하면)들이 모두 해당 지역의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토의 점유권 인정을 위한 합의된 보편적 국제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점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통상 중요하게 고려되는 세 요소는 분쟁자들 가운데 누가 더 먼저 점유를 시작했느냐, 누가 더 긴 시간 지배했느냐, 그리고 현재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다. 보통 실효적 지배라고 부르는 조건의 요소들이다. 그 조건을 통해 현재 점유권 다툼을 벌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면 둘의 입장이 비슷하다. 실효적 지배 조건으로도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하다.

비교적 근래의 역사만 놓고 봐도 쉽지 않다. 13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연히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피지배자 입장이었고, 그나마 다수의 유대인들은 해외를 떠돌았다. 이스라엘은 오스만 지배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해당 지역의 땅을 구매해 왔다며 이를 점유 정당성의 하나로 삼지만 법적 효력은 미약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줄곧 살아왔다.

사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체성을 말하자면 유대인과의 관계가 애매한 점도 있다. 다수가 무슬림이고 기독교와 유대교를 실천하는 이들은 소수지만 생물학적으로 이들은 아랍인보다 유대인에 가깝다. 이들의 변별적 정체성을 위해 인종적 구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수천 년에 걸친 유대인과의 지역 라이벌 관계가 19세기 이후 전 세계에 들불처럼 번진 민족국가(Nation-State) 이념과 함께 고착화된 결과의 피해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동 분쟁을 낳은 영국의 사기 계약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는 영국은 제국의 피지배자들을 이용해 전 방위적 전선을 펴는 전략을 구사한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들을 일제히 봉기하도록 한 것이다. 치밀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같지만 실상은 허술하고 치명적 오류를 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전략이었다.

영국은 오스만제국이 패망하면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아랍세계와 밀약을 한다(맥마흔 각서, 1915~16).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프랑스와 만나 지도 위에 줄을 그어가며 전후 함께 나눠먹을 파이를 협상한다(사이크스-피코 협정, 1916). 그리고 이듬해 유대인들에게 역시 같은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벨푸어선언, 1917).

이 일련의 사기 계약의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중동 분쟁 문제들이다.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이번에는 인간계에서 확실한 이중 계약 사기를 당한 셈이다.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에 분노하는 아랍 세계는 영국에 따지는 대신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수적 열세인 이스라엘은 그러나 미국의 전폭적 지지와 지원을 등에 업고 첨단무기를 갖춰 수차례의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을 물리친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 건국은 기정사실화됐고 어느 국가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서안지구로 내몰렸다. 그나마 이마저도 점점 위태로워졌다. 2000년대 들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극단화되어가는 정치지형에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언젠가 있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자 이스라엘 정부는 쉴 새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간다.
  

▲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서 6월 4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에 폐허로 변한 주택가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가자지구는 많은 주택과 건물은 물론 전력과 상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마저 망가져 재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연합뉴스

 
인구, 영토, 경제, 군사력, 외교력 등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열세에 있는 팔레스타인은 종말의 위기감 속에서 역시 극단적 저항에만 절망적으로 의지한다. 끝 모를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집권 속에서 팔레스타인 역시 평화적 협상의 희망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국제사회는 '양측의 자제'만 점잖게 타이르는 중이다. 청년과 유년이 싸우는 것을 지나가다 발견한 성인이 양측의 자제를 당부하고 서있는 게 적절할까?

그러던 이 지역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 하나 생겼다. 내각제 체제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최근 2년째 과반 의석 연정에 실패하던 중 드디어 '반 네타냐후'를 내건 8개의 야당이 과반 의석의 연정 구상에 합의한 것. 만약 이들의 구상이 의회의 승인을 얻게 되면 12년 연속 (지금까지 모든 임기를 합하면 15년) 집권 중인 네타냐후 총리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개인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그로서는 자택이 아닌 '더 큰 집'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변화 조짐, 지푸라기 같은 희망

오는 13일 이스라엘은 새로운 연정 구성을 승인하는 의회 투표를 하게 된다. 과연 새 정부 구성은 가능하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은 변할 것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지만 승인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총리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개인 비리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남은 변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연정 구성 세력의 정치적 폭이 너무 넓다는 것. 이들 가운데에는 보수 정당도 포함돼 있고, 네타냐후에 반감이 없는 국회의원들도 있다. 과연 이들 가운데 반란세력이 얼마만큼 나오느냐에 새 정부 구성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 네타냐후 총리도 새 연정을 대국민 사기라고 비난하면서 '의원 빼오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만약 새 정부 구성이 실패한다면 최대 의석 정당인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현 총리가 다시 과반 확보를 위한 교섭 주도권을 쥐게 된다.
 

▲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연합뉴스

 
새 정부 구성 가능성 못지않게 만약 구성이 된다면 얼마나 이스라엘 대외 정책이,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관계가 달라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새 연정 파트너들의 정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지난 3월 23일 총선 결과 리쿠드(30석)에 이어 제2당이 된 예시 아티드(17석)를 비롯 중도로 분류될 수 있는 의원 수가 23명 정도다. 이들은 주로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건국부터 29년간 7명의 총리를 연거푸 배출하며 장기집권을 하던 노동당은 현재 7석을 보유한 채 과거의 영광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6석의 다른 진보정당 메레츠(Meretz)와 함께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개의 별도 독립국가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좌우 스펙트럼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4석을 보유한 아랍연합명부(United Arab List)도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들, 그리고 남부의 베두인(Bedouin)족의 권익을 주장한다.

이번 연정의 결정적 승부수는 3개의 보수정당 야미나(Yamina, 7석), 이스라엘 베이테누(Israel Beytenou 이스라엘은 우리의 집, 7석), 새희망(Tikva Hadasha, 6석)의 합류다. 보수주의 노선인 이들 3개 정당 중에는 한때 현 집권세력 리쿠드와 연정을 꾸린 세력도 있지만 이번엔 반 네타냐후 전선에 합류했다. '새희망'은 중도에 가까운 우파세력이지만 '야미나'의 경우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이 지역 전체를 이스라엘 영토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당이다. 이들은 네타냐후를 거부하고 새 정부를 꾸리겠다는 공동 목표 외에 다른 연정파트너들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 이유 때문에 연정이 구성된다 해도 조기 붕괴될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도 많다. 13일 국회에서 새 정부 승인이 결정되면 4년 임기 가운데 전반기 2년은 보수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가, 그리고 후반기 2년은 중도 정당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된다.

과연 이들은 연정 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구성한다면 안정적 집권과 변화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에 더 회의적 전망과 불안감이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평화는 물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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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혈맥’ 잇는 6.15민족선언 발표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06/13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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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전진(준)은 12일 오후 5시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6.15민족선언대회’를 열었다.  © 박한균 기자

 

▲ 박준의 촛불전진 준비위원장(왼쪽)과 김지영 민주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위원장이 6.15민족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박한균 기자

 

▲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모습. 2018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도로연결 작업 중 남북한 장병이 만나 악수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백두, 한라의 물’을 서로에게 부어 분단의 아픔을 씻어내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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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균 기자

  

“군사분계선(DMZ) 7km 남쪽 파주 임진각 망배단 앞, ‘홀로 아리랑’ 노래가 울려 퍼지고 남북한 군인이 웃으며 서로 악수를 한다. 둘은 ‘백두, 한라의 물’을 서로에게 부어 분단의 아픔을 씻어낸다. 끊어진 혈맥을 잇듯 다시 손을 움켜쥐고, 기쁨의 포옹을 한다.”

 

촛불전진(준)은 12일 오후 5시 임진각 망배단 앞 ‘6.15민족선언대회’에서 2018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도로연결 작업 중 남북한 장병이 만나 악수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했다.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중 서로에게 물을 부어 얼굴을 씻는 장면에 한 참가자는 눈물을 흘렸다.

 

대회에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현장, 줌(ZOOM)으로 참가했으며, 대회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화상 참가자들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독도 지키기, 남북공동훈련 실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철도 연결’ 등의 팻말을 든 카드섹션 상징의식으로 ‘6.15민족선언’ 발표를 축하했다. 

 

이날 김지영 민주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위원장과 박준의 촛불전진 준비위원장이 대표로 낭독한 6.15민족선언에는 “한국 정부는 8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대용단을 내려야 하며, 그러면 남북 양측이 독도 지키기 남북공동훈련,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철도 즉시 연결을 위해 9월 중으로 고위급 회담을 열자. 그리고 고위급회담에 성과에 기초해 정상회담을 바로 추진하자. 우리는 남과 북이 힘과 지혜, 용기를 합쳐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평화 번영 통일의 대로를 활짝 열어나갈 것을 절절히 호소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권오민 강북노동권리찾기모임 대표는 “6월 12일 현재 2,000여 명의 사람들과 200여 개의 단체가 6.15민족선언에 함께 하고 있다”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6월에 용단을 내릴 수 있도록 더 큰 결단을 촉구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평화, 번영,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라는 말로 대회의 의의를 전했다.

 

정연진 AOK한국 상임대표는 “촛불의 힘을 전진시켜서 분단의 장벽을 넘어가고자 하는 오늘, ‘그냥 선언은 선언일 뿐이다’는 선언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나가자”라고 전했다.

 

조천호 대동세상연구회 부회장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고 없이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비행기 트랩 바로 앞에서 영접하여 두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38선을 넘어가는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 시민 15만 명에게 육성 연설한 것은 아마 평생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일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평화가 경제다는 말처럼 DMZ에 개성공단만 한 거 10개 만들어 청년 실업문제 해결하는 거다”라며 “남과 북이 함께 누리는 대동세상, 더불어 사는 대동세상, 평화통일 대동세상을 만들어 가자”라고 말했다.

 

김영학 대학생도 “한미연합훈련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훈련으로 꼽혀왔다. 평화와 번영을 논의했던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해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군사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를 떨쳐내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방해에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한반도 민족자주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역사적인 선언을 조속히 이행해 한반도 통일은 당사자인 남과 북 한민족의 힘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대회에서는 6.15민족선언을 지지하는 단체와 인사의 목소리가 영상과 발언, 공연으로 소개되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빛나는 청춘’도 ‘달려가자 미래로’ 춤 공연과 ‘통일이 오면’, ‘통일할래요’, ‘철망앞에서’ 노래공연으로 선언 발표를 축하했다.

 

한편 촛불전진(준)은 ‘6.15민족선언’에 모인 국민들의 뜻을 전달하고 정부의 용단을 호소하기 위해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6월 15일 오전 10시로 면담 제안) 면담 요청은 등기 우편, 이메일과 팩스, 온라인 민원 신청의 방법으로 이뤄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도 면담 요청서를 보냈다.

 

촛불전진(준)은 ‘6.15민족선언’ 연명 운동은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고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까지 해 내외로 더욱 확대해서 전민족적 운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권오민 강북노동권리찾기모임 대표.  © 박한균 기자

 

▲ 정연진 AOK한국 상임대표.  © 박한균 기자

 

▲ 조천호 대동세상연구회 부회장.  © 박한균 기자

 

© 박한균 기자

 

▲ 대회 참가자들이 ‘6.15민족선언’ 발표를 축하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박한균 기자

 

▲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모습.     ©박한균 기자

 

© 박한균 기자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빛나는 청춘’이 ‘달려가자 미래로’ 춤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한균 기자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빛나는 청춘’의 ‘통일이 오면’, ‘통일할래요’, ‘철망앞에서’ 노래공연 모습.     ©박한균 기자


다음은 6.15민족선언 전문이다.

 


 

8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6.15민족선언

 

2018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온 겨레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드디어 전쟁과 대결, 분단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번영통일의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라는 환희가 넘쳐났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남북관계는 단절되었고 교착상태가 지속되어 지금은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 외부 환경도 복잡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나라들 사이에 대립이 커지고 긴장이 높아가고 있으며, 어느 나라도 우리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도와주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때다. 남북이 결단하고 손을 잡으면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남북 정상은 온 겨레의 뜨거운 열망에 기초해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평화번영통일을 향해 나아가자고 약속했다. 그 선언은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안전, 번영은 과거 냉전시대의 낡은 틀과 관행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구태의연한 상호 적대정책에 기초한 한미연합훈련은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과 대결을 조장하고 위험천만한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한반도 안보의 재앙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남북이 신뢰에 기초해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면 우리 민족의 앞에는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또한 우리는 민족우선, 국익우선의 당당한 외교를 통해 동북아와 세계를 선도하는 민족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우리는 전민족의 염원을 담아 남북 정부에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한국 정부는 8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대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면 남북 양측이 <독도지키기 남북공동훈련>,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철도 즉시 연결>을 위해 9월 중으로 고위급회담을 열자. 그리고 고위급회담의 성과에 기초해 정상회담을 바로 추진하자. 

 

우리는 남과 북이 힘과 지혜, 용기를 합쳐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평화번영통일의 대로를 활짝 열어갈 것을 절절히 호소한다.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과 장애를 돌파하고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판문점선언으로 희망 가득했던 4월의 봄을, 이제 2021년 새로운 전진의 가을로 이어가자.

오랜 분단의 굴레를 과감하게 걷어내고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를 기어이 현실로 만들어내자.

 

2021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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