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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의 시작 기륭 언니들..."위험하니까 남자들은 뒤로 가"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③ 기륭전자분회의 유흥희 님을 만나

 

지난 40년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바뀐 것도 있으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6월 5일 전설의 투쟁을 했던 여성노동자들을 모시고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이야기마당을 개최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그녀들이 해왔던 투쟁과 현재의 고민을 연재한다. 편집자.

 

※ 이야기마당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은 5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중계된다.(☞바로가기 : "전설의 투쟁을 했던 여성노동자들을 모십니다.")

 

0. 연재 순서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① 동일방직 해고자 김용자 님을 만나(☞바로가기)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② 구로동맹파업투쟁의 김준희 님을 만나(☞바로가기)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③ 기륭전자분회의 유흥희 님을 만나

 
▲4일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우개선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300리길 행진하는데 함께 하고 있는 유흥희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집행위원장.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에게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이야기마당에 나오라고 했더니, "내가 어디 대선배님들과 같이 하냐"며 고개를 젓는다. 사실 유 분회장은 활발하게 투쟁하는 현직이다.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에 대한 법적 소송도 조금 남았다. 게다가 그녀는 요즘 눈에 띄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의 집행위원장이다. 나는 "기륭전자는 살아있는 전설이지. 여성비정규직 투쟁을 그렇게 치열하게, 그렇게 길게, 공장의 벽을 넘어 한 곳이 있어?"하며 꼬드겼다.


 

마음의 고향, 구로공단


 

유 분회장은 정화여상 재학 시절, 학내 민주화운동을 했다. 사학비리를 알린 전교협 선생님들을 지지하는 사학비리 투쟁을 함께했고, 그 과정에서 시험거부 투쟁(백지동맹)과 농성을 했다. 고등학교 때 투쟁한 적이 있으니, 혹시나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구로공단에 들어간 것은 아닌가 싶어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92년에 상고를 졸업하고 경리직으로 몇 곳에서 일했지. 마지막에 화장품 회사 경리를 했는데 대리점에서 장부 조작을 요구하는 거야. 나는 안 한다고 대리점장하고 대판 싸우고 나왔지. 사실 조그만 사업장에서 경리는 빛 좋은 개살구야. 뻑 하면 커피 심부름, 담배 심부름,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그걸 매번 거부하는 것도 힘들고, 고등학교 갓 졸업했다고 애 취급하는 시선도 넘 싫고, 공장에 가서 마음 편하게 일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로공단에 갔지. 그런데 사람들이 나보고 정신 나갔다고 했어. 92년이니까 사회주의권이 망하고 운동이니, 노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패배적인 시각이 컸을 때잖아. 그러니 내가 노동운동 하러 가는 걸로 생각한 사람들이 말린 거지."


 

생계를 해결하러 공단에 갔는데 어쩌다 보니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경우라 다들 정신 나갔다고 했다. 유 분회장은 공단에서의 첫 1년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공장에서는 위장 취업자와 같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시늉만 하는 사람을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분위기가 여전했다. 작은 떡볶이 모임만 가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사람들을 따로 만나기만 해도 요주의 인물처럼 관리했다. 결국 4년 7개월 만에 제대로 모임조차 만들지 못하고 현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 구로지역 도서관에서 단체 상근활동을 시작한다. 을지로의 인쇄노조 취업알선센터 상근자로도 일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뒤,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다시 구로공단으로 돌아갔다. 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녀에게 공단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파견직만 뽑는 달라진 구로공단


 

2005년 구로공단의 모습은 92년과 확 달라져 있었다. 구로공단에도 인력사무소, 파견업체가 넘쳐났다. 공장에서 노동자를 직접 뽑는 곳이 아예 없었다. 벼룩시장이나 인터넷으로 뽑았다. 1998년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통과된 후 비정규직 사용하는 회사가 늘어난 것이다. 옛날 굴뚝형 공장이 사라지고, 아파트형 공장들이 들어섰다. 바뀐 공장 대부분은 50명 미만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공장들이 많았다. 그래도 규모가 있는 곳을 들어가고 싶었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나이는 많고 경력은 짧고, 게다가 경력 단절의 시간까지 있어서 인지 취업이 잘 안 됐다. 파견회사를 통해 들어간 곳에서 생애 처음 해고라는 것을 당해봤다. 그러다 2005년 6월, 워커스테이션이라는 파견회사를 통해 취업을 했다. 가리봉역에서 봉고차에 태워져서 들어간 곳이 우연하게도 기륭전자였다.


 

"처음에 갔던 곳은 핸드폰 케이스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는데 새벽까지 야근, 특근을 했는데 해고됐어. 내가 이걸 '대청소 해고'라고 말했지. 하루는 파견직만 불러 놓고 청소를 시키는 거야. 핸드폰 케이스 중에서 단종된 품목들 정리하고 청소를 시키더니, 청소가 끝나고 정규직만 빼고 구두로 해고를 시켰어. 해고에 항의하다가 사과만 받고 그만뒀지. 혼자 싸울 자신이 없었거든. 다시 파견업체 통해서 취업하려는데, 담당자가 가리봉역으로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봉고차를 타라는 거예요. 인신매매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차 안에 아줌마, 아가씨들이 많은 거예요. 그 차에서 내려준 곳이 기륭전자였어. 당시 김소연이 기륭전자에 있는 걸 알아서 얼굴 안 마주치려고 애썼지."

 

면접은 간단했다. 33세라는 나이가 있으니 길게 일할 수 있는지, 혹시 결혼은 하지 않을지 물었다. 돈이 필요해서 길게 다닐 거고 야간특근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입사일만 적힌, 기간이 없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조용히 지내려고 했다. 

기륭전자의 파견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 8540원을 받았다. 잔업과 특근을 많이 해도 겨우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기륭전자에는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등 여러 고용형태가 있었다. 무분별한 해고와 차별적인 문화가 넘쳐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노조에 가입했다.


 

"첫날부터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나 들으라는 듯 크게 말을 해. '지각하지 마라', '옆에서 잡담하지 마라', '조장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 이런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거야. 아파서 안 나와도 해고되기도 하고. 조·반장들은 정규직도 갈구더라고. '영원한 정규직은 없다. 파견이 줄 서있다', '눈 밖에 나지 말고 줄 잘 서라' 그러면서 1등, 2등, 3등 줄 세우고. 이건 아니다 싶고. 하루를 다녀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노조에 가입했지."


 

기륭전자 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만든 노조다. 여성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이었으나 남녀 차별은 존재했다. 남성은 다 정규직이었다. 반면 여성은 생산직 중 조장 정도만이 정규직이었다. 정규직 중에 산전산휴 휴가를 쓰고 온 사람이 생긴 후에 기륭전자는 젊은 여성노동자는 6개월만 계약했고, 나이든 기혼 여성노동자는 1년 계약을 했다. 젊은 여성노동자는 결혼하거나 임신할 수 있다는 가정을 깔고 계약기간을 다르게 정한 것이다.


 

같은 포장업무를 해도 남성이 더 임금이 많았다. 심지어 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육아휴직 갔다 왔다고 괴롭히기도 했다. 노조는 노동부에 남녀 임금차별 진정을 해서 시정명령을 받았고, 실제로 법을 통해 차별된 임금을 받아 내기도 했다.

 

1895일, 간접고용 불법파견 투쟁


 

두 번째라 노조활동은 자연스러웠다. 2005년 노조는 인력파견업체들을 불법파견·파견직 임금차별(임금미지급)로 노동부에 진정했다. 파견법에는 제조업의 파견노동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륭전자 직원 500명 중 연구원 200명은 정규직인데 반해 생산직 300명 중 정규직은 단 10명에 불과했다. 계약직이 40명이었고, 250명은 파견노동자였다. 감사 나온 노동부에서도 이런 구조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 2005년 8월 초 파견법 위반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노조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8월 24일부터 공장점거 파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시작된 불법파견 비정규직 투쟁은 1895일이나 이어진다.


 

"이렇게 길게 싸울 줄은 몰랐지. 기륭전자에서 일한 기간보다 싸운 기간이 길어도 너무 길잖아요. 하하. 나만이 아니라 우리 조합원들 대부분이 파견이거나 계약직이었으니까. 그래도 후회는 안 해. 할 수 있는 싸움을 원 없이 했으니까."
 

 

실제 근무한 기간이 짧았는데도 왜 계속 싸웠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파견이 넘쳐나니 어딜 가도 하루살이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어서"라고 답한다. 그리고 너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것이 억울했다고.
 

 

"투쟁하면서 노동부에 갔는데 같이 싸우다 중단하고 나간 언니를 만났어요. 일자리 알아보려고 온 거지. 그런데 그 언니가 이렇게 말해. 계속 싸워서 공장에 들어가라고. 어차피 나와도 공단에서는 3개월, 6개월 파리목숨 처럼 짧게 일한다고."


 

불법파견은 기륭전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견이 확산되면서 3개월짜리, 6개월짜리 불법파견이 넘쳐났다. 파견노동자들은 길어야 1년을 일하고 나면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신세다. 노조가 파견문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끝까지 싸워야 할 이유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기륭전자는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를 이유로 이들을 전원 해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기륭전자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검찰은 사측에 불법파견 혐의를 적용했으나 500만 원 벌금이 끝이었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업무방해와 손해배상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고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남성들은 뒤로 가라고 했지


 

오랜 시간 싸우면서 무서웠던 적은 없냐고 물으니 '공장에서 용역들하고 싸울 때'라고 했다. 오석순 조합원의 목을 조르는 남성 구사대(사측이 만든 노동운동 파괴조직)를 볼 때 정말 끔찍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구사대와 맞서는 것을 연대 온 사람들에게 미루지는 않았다.


 

"2006년 싸움 때도 남자 용역이 많았어. 남자 용역들이 막은 공장 문을 해머로 부수고 현장에 열 발자국 들어간 것도 여성조합원들이 나서서 했다. 9박 10일 투쟁 할 때, 바닥에 눕는 투쟁도 우리가 앞장섰지. 거친 투쟁은 남자가 한다거나,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치마를 입어본 적도 없어. 현장에서의 성차별이 있었지만 싸울 때 우리가 여성노동자라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는 게 컸거든. 연대자는 연대자인 거니까. 당사자가 풀어야지. 그래서 우리는 남성동지들이 연대와도 '남자들은 앞으로 오세요'가 아니라 '뒤로 가세요' 그랬지."


 

그렇다보니 노동운동계에서 '기륭형님'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유 분회장은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비정규직문제를 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비정규직운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투쟁 촉발


 

공장점거 파업 이후에 삭발투쟁, 단식투쟁, 고공농성, 그리고 오체투지까지 했다. 2008년 투쟁 전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열렸을 때는 조명탑 위에서 고공농성도 했다. 함께 올라간 최은미 조합원이 고소공포증으로 벌벌 떨면서 올라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두려움을 잊으려 함께 불렀던 비정규직 철폐가! 과거로 돌아간 듯 눈빛이 반짝인다.

 

유 분회장에게 67일간의 단식투쟁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괜찮았다며, 힘든 건 2010년이었다고 했다. 2010년은 교섭이 지지부진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선까지 갔던 거 같아. 사회적 연대로 버틸 수 있었어. 윤종희, 오석순, 김소연이 모두 올라가 있어서 내가 발로 뛰어야 했잖아. 교섭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고민이 많았어. 내가 내뱉은 말을 다 지킬 수 있을까, 거짓말이 되면 어쩌나 되돌아보게 됐지. 그런데 사실 출투(출근투쟁)가 더 힘들었어. 출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는 거니까. 매일 회사를 볼 때마다 '정말 내가 이 회사를 다니고 싶은 걸까' 스스로 묻게 되니까 힘들었어."
 

 

2008년 투쟁은 고공농성과 단식투쟁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회적 연대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당시 나도 기륭전자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들락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2005년 시작된 투쟁이 1000일을 넘기려 하고 있었다. 특히 김소연 분회장이 94일의 단식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며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함께 단식을 시작한 유 분회장은 뼈만 남은 모습으로 먼저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오래된 동지 김소연을 두고 가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1000일 투쟁하고 나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을 무엇일까 생각해봤어. 아마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닐까.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니까. 조합원들과 수많은 시민들과 단체 활동가들, 서로가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돼 있는 느낌이지. 자기 시간과 마음을 내주고 함께 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이걸 끊고 가. 아마도 계속 싸웠던 건 나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인 거 같아. 이미 사회적 연대로 우리 투쟁은 기륭만의 싸움이 아니게 된 거잖아."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단식투쟁을 하면서도 조합원들은 연대 온 사람들 밥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뿐인가. 기륭전자 투쟁 과정에서도 다른 투쟁에 연대를 쉬지 않고 했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싸움에, 한진중공업 김진숙 크레인농성 희망버스에, 쌍용자동차 투쟁 등 안 간 곳이 없다. 자기 사업장 투쟁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함께 싸워야 이긴다고 생각했다.

 

 

2010년 사회적 합의로 싸움이 일단락됐다고 여겼을 때에는 연대해준 시민, 단체, 문화예술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그녀들의 사회적 연대에는'정'이 묻어있다. 연대나 투쟁에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힘든 오체투지 과정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진 적이 없다.


 

▲2020년 1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자들이 최동열 회장 집앞에서 체불임금 지급하라는 집회를 한 후 기념촬영 ⓒ기륭전자분회
 

사회적 합의를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나  

 

조합원들은 국회의원회관 점거농성까지 하며 치열하게 싸워 정치권을 움직였다. 2010년 11월 정규직 직접고용 복직 합의가 이뤄졌다. 그때만 해도 없던 불법파견 관련한 의무조항이 생기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회사는 2013년, 본사를 옮기더니 신대방동 건물에 출근한 노동자들에게 업무도 주지 않았다. 합의이행을 거부한 것이다. 그해 12월 최동열 회장은 임직원도 자르고 야반도주했다. 돌아갈 공장이 없어진 것이다.
  

 

다시 거리로 나와 오체투지를 했다.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지 않고는 그 무엇도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는 투쟁을 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경투쟁을 할 때 쉴 수 있는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들기로 결의한다. 많은 시민사회가 마음을 모아 꿀잠이 2017년 만들어졌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명분을 중요시 여겼고 투쟁의 원칙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했어. 모두가 동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 조합원들이 흔쾌히 동의해준 게 고맙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더욱 나빠지는데 투쟁은 흩어져 있었다. 촛불투쟁 이후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 분회장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18년 11월,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공동투쟁'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함께 투쟁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당사자들의 절박함도 중요할 뿐 아니라 같이 싸우면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비정규직 제도가 만든 개별화된 현실을 바꿀 무언가가 되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그녀는 현재까지 집행위원장으로서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유 분회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전설'의 낱말 뜻이 다시 훅 새겨진다. 기륭전자투쟁을 여성비정규직의 전설적 투쟁이라고 일컫는 것도 어쩌면 포기하거나 타협하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자기 사업장의 문제로만 싸운 적이 없어서는 아닐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50007481932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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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혐오·욕설 NO! ‘슬기로운 초등 유튜브 생활’, 우리가 직접 만들어요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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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회 먹으러 가던 육교 위엔 2년째 푸른 천막들이

[포토스케치]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논란, 끝나지 않은 이야기

노량진수산시장 얘기다. 현대화 사업으로 세워진 신시장이 상인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지어져 입주 거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구시장을 떠나지 않으려는 상인과 구시장을 헐어버리려는 수협의 싸움은 이후 4년간 격렬하게 이어졌다. 명도 집행이 10차까지 이어졌고 매번 충돌이 컸다. 공실 관리라는 명분으로 폭력적인 퇴거 작전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상인들은 똘똘 뭉쳐 싸웠지만 싸움은 쉽지 않았다. 입주를 거부하면 그 자리를 일반분양하겠다는 압박과 단전, 단수 등의 극단적 조치로 많은 상인들이 신시장으로 옮겨갔다. 이 중에는 결국 장사를 접고 신시장을 떠난 상인도 적지 않았다. 신시장은 높은 임대료에 맞춰 판매 가격을 올리면 고객이 줄고 매출이 떨어지는 구조의 악순환이었다. 구시장에 끝까지 버티던 상인들은 2019년 8월 열 번째 명도 집행에서 모두 끌려나왔다. 그리고 구시장은 지난해 헐렸다.

 

2019년 8월 육교 위에서 농성이 시작됐다. 구시장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다. 애초 700명에 가깝던 상인은 현재 80여 명 남아 있다. 장사를 하지 못해 보험과 적금을 헐어가며 버티고 있지만, 이들은 새로운 공간 마련을 서울시와 협의 중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손배·가압류는 여전히 이들을 괴롭힌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총 51억. 가압류도 개인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대에 이른다. 1, 2심에서 승소했지만, 수협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초기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사업을 추진했다가 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한 바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용산까지의 케이블카 계획이나 복합 쇼핑몰 건립 계획 등도 꾸준히 나돌고 있다. '돈 되는 건물' 지으려고 수산시장을 축소한 것 아니냐는 상인들의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신시장은 한 개층을 쓰던 구시장의 구조를 2개층으로 나눠 점유 면적을 좁혔다.


 

노량진을 찾았다. '잘못된 설계' 하나가 어떤 파탄을 초래하는지를 생각하다가, '배제'와 '획일'이 끝내는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막연한 '개발 논리'를 가진 집단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개발 논리'의 든든한 뒷배가 우리 사회가 아닌지 생각했다. 육교 위 푸른 천막이 있는 풍경을 담았다.

 

▲ 노량진역과 수산시장을 잇는 육교 위. 구시장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2019년 8월 명도집행 직후부터 2년 째 농성 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량진역 육교 위에 푸른 천막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상인들이 그린 자화상 ⓒ프레시안(최형락)
▲ 농성장의 부엌. 상인들은 매일같이 이곳에서 같이 밥을 먹고 천막을 지킨다. 교대로 밤 근무도 선다. ⓒ프레시안(최형락)
▲ 남아있는 80여명의 상인들은 손배·가압류에 시달린다. 다행히 1심에서는 일부 승소, 2심에서 승소를 했지만 수협은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수협은 현대화 사업 초기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사업을 구상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했다. 지금도 용산까지의 케이블카나 복합쇼핑몰 등의 계획 등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2015년 지어진 신시장은 한 개층을 쓰던 구시장의 구조를 2개층으로 나눴다. 상인들은 시장에 들어가는 부지를 줄여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복합건물을 더 짓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신시장의 내부. 신시장은 임대료가 구시장에 비해 월등히 높다. 임대료 상승은 수산물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상인의 매출 감소와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서 불거진 문제점은 부산 자갈치시장과 송파 가락시장의 현대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있었다. 구조적 문제를 찾아 고치지 못하는 한 과오는 계속 되풀이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40103004490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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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수호 집중 北과 지혜로운 평화프로세스 재개 필요"

정세현 수석부의장, 평통 40주년 포럼...'불안하지 않은 평화'가 요체

  • 기자명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근 입수된 조선노동당 개정 당규약을 통해 들여다 본 북의 변화 흐름은 운명공동체인 우리에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올해들어 '반

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묵과해서는 안된다며 강경하게 체제수호를 강조하는 북을 상대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북은 사방에 철옹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틈새는 있을 것"이라며,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측 문화가 들어오는데 대해서 겁을 내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해야 북측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고민했다.

단적으로 "김일성 주석 시절만 해도 자본주의 문화는 모기장으로 걸를 수 있으니 돈은 들어와도 좋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김정은 시대에서는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으로 다 막으려고 하고 있다"며, "남북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 수석부의장에 따르면, 종전선언 구상도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평화프로세스는 그걸 통해서 경제 및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정치 공동체까지 나아가자는 것. 다시 말하면 서서히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이 최소화되는 방향에서,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남측이 생각한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한 징후는 2005~2006년부터 시작됐다.

1977년 당시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으로 첫발을 내딛어 45년 가까이 남북문제를 다뤄 온 전문가답게, 남북관계 역사흐름속에서 현황을 설명했다.

남측에서 바라는 바로는 '시장사회주의'라는 표현 정도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햇볕정책'을 썼지만, 지금의 북은 '시장'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본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방향을 잡았다는 것. 

한때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이었던 청년단체의 명칭이 얼마 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뀌었으며, 단체 명칭 중 '애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결사옹위하자는 사상교양의 일환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북이 이른바 국가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일련의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며,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며,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 수석부의장은 최근 당규약 개정을 통해 본 북의 변화에 대해서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동유럽에서 체제전환이 일어나던 시기 동·서독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북이 체제위기를 관리해 온 과정을 짚어가며 해설했다.

그에 따르면, 1991년 5월 북은 유엔 동시가입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7월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냈고 뒤이어 9월 초 신청서를 제출한 남이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여 남과 북은 국제법적으로는 두개의 코리아가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남북 상호 체제인정과 존중 △상호 내부문제 간섭 중지 △상호 비방중지 △상대 파괴·전복위한 일체 행위 중지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군사정전협정 준수 등 체제안전에 관한 합의를 1조부터 5조까지 빼곡히 관철했다.

1992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간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철회할테니 수교하자는 파격제안을 했다. 서울에 있는 대사관은 그대로 두고 평양에도 대사관을 설치하되 그 조건으로 주한미군을 용인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이같은 수교제안을 거절했다.

비록 미국과의 수교는 불발됐지만 유엔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로 체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확보했다고 생각한 북은 이후 6.15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측과의 교류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2005년 무렵을 정점으로 북은 남측의 우월한 경제력에 주민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정 수석부의장은 짚었다.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하여 북이 남측이 바라는 방식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사방에 철옹성을 치고 있는 북을 상대로 지혜롭게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할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왼쪽부터 김희준 YTN통일외교안보부장,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김희준 YTN통일외교안보부장,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과 공동주최한 포럼에서 배기찬 사무처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멈춰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하면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라는 시민의 요구와 시대의 명령을 남북이 함께 만나서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현숙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공동대표는 개회사에서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은 국내외에 탄탄한 역량을 갖춘 민주평통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 포럼은 그 첫발걸음이다"라며, "오늘 포럼을 통해 종전의 문을 열고 평화를 이끄는 평화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축사에서 "분명한 것은 적대와 갈등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남북미가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이라며, "이제 다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재개와 성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를 나눌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미·중 경쟁시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전략'을 주제로 진행된 1세션 발제에서 "미국과 중국사이의 상호의존성이 너무 높아져서 양국 스스로도 경쟁적 공존으로 갈 수 밖에 없으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이다. 우리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이익에 맞게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에서 중요한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의 우려사항을 핵동결-핵능력감축-군비통제 등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점진적·단계적 수순으로 정리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한미군사연습 중단,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과 제재해재와 관련한 수순과 연계하여 안보-안보 교환 프로세스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북중관계의 특수성과 중국의 대북영향력, 중국이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중국의 관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포럼의 2세션은 '한반도 종전 평화를 위한 국제여론 형성 및 시민평화외교 방안'을 주제로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와 이태호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상임집행위원, 신승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협력화해통일국장, 박종범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 부의장, 이철호 코리아피스나우 그래스루트 네트워크 LA 코디네이터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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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2)]곧 사라질 직장에 다니는 석탄 노동자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입력 : 2021.06.04 06:00 수정 : 2021.06.04 08:33

 
기후위기 시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소멸과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석탄화력발전은 순차적 폐지가 예고됐다.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다. ‘모두’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이같은 전환이 필수적이라면 전환 과정 역시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손실을 나눠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이 일어날 때,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전환 책임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향신문은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기획을 통해 전환 대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석탄 발전’ ‘내연기관’ 이라는 큰 이름에 가려져 있는 노동자 삶으로 들어가 그들이 체감하는 전환의 상황은 어떻고, 바라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기후위기도, 산업 전환도 결국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한태교씨(왼쪽)와 박낙호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권도현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한태교씨(왼쪽)와 박낙호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권도현 기자

 

“한때는 선망의 직장…이젠 ‘석탄발전소 다닌다’ 어디서 말 못해” 

석탄발전이 사회적으로 지탄 대상 되며
노동자들까지 ‘잠재적 범죄자’처럼 위축
발전소 일 해도 기후위기 둔감하진 않아
 

박낙호씨(38)는 3년 반쯤 뒤면 사라질 직장에서 일한다. 그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의 경상정비 노동자다. 하역부두에서 들어온 석탄을 발전기 안에 집어넣는 석탄취급설비의 계측제어 업무를 10년째 맡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 있는 총 10개의 발전기는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박씨는 1·8호기에서 일하는데, 그중 1호기의 폐지 시점은 2025년이다.

그는 몇년 전 강릉의 영동화력발전소가 바이오매스 연료로의 전환을 앞두고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뒤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태안으로 넘어온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발전소가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죠. 그 당시엔 언론에서도 기후변화라든가, 미세먼지라든가, 이런 게 이슈화된 적이 없었거든요.” 폐쇄된 발전소에서 일거리를 찾아 태안까지 넘어온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실감하지 못한 일은 불과 몇년 만에 박씨가 맞닥뜨린 현실이 됐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정의로운’ 과정을 거칠 수 있을까. 석탄 노동자들은 지금까지의 과정은 정의롭지도, 정부의 표현대로 공정하지도 않다고 했다. 직장이 한순간에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지만 그 이후의 대책은커녕 직장이 문 닫게 되는 시기도 정확히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현재 5개 발전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1만3846명, 비정규직 노동자는 1만1286명으로 추정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자 수가 거의 비슷하지만 전환에 따른 일자리 상실 등 피해는 공기업 직원인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경향신문은 현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석탄 노동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미세먼지, 기후위기… ‘안정된 직장’의 쇠락 

지금은 ‘끝이 정해져 있는’ 직장이 되었지만 박씨의 동료 이태성씨(48)가 22년 전 입사했을 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선망받는 직장이었어요. 안정적이고, 지역에도 대공장이 처음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화력발전소에 대한 인식도 좋았죠. 젊은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이 입사지원서를 냈고, 지역특채 가점까지 주면서 채용했어요.” 그는 “국가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자긍심도 있었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은 미세먼지가 본격적으로 사회 이슈가 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이슈가 나오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어요. 그냥 일하는 노동자가 언론을 통해서 지탄받는 대상이 된 거예요.” 이씨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를 맡고 있다. 그가 노조 일을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많이 위축됐어요. 잠재적 범죄자 같은 느낌도 있는 거예요. 예전엔 누가 직장을 물으면 ‘화력발전소 다닙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뭐 그냥, 발전소 다녀요’라고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어요.”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남상무, 이진길, 장성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기자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씨는 기후위기에 대해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남상무, 이진길, 장성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기자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씨는 기후위기에 대해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석탄 노동자들도 느끼는 기후위기 

전 세계적으로 석탄발전은 폐지되고 있다. 석탄 노동자들도 기후위기를 체감한다. 신보령화력에서 일하는 남상무씨(58)는 올해 초 미국 텍사스 지역에 닥친 이상 한파를 보고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남씨가 말했다. “저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우리 어렸을 때와 지금과 기상이변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고요. 우리 세대가 아닌 우리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될까 하는 생각이 들죠.” 당진화력에서 일하는 손일원씨(41) 느낌도 그렇다. “변화를 느껴요. 열대야도 심해졌고, 진짜 비 오는 것도 예전보다 많이 준 것 같아요. 겨울에 눈 내리는 것도요. 솔직히 걱정은 돼죠.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북극에 얼음 녹아내리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돼요.”

먼지에 뒤덮인 발전소 일을 한다고 미세먼지에 둔감해지는 건 아니다. 손씨의 동료 김경민씨(36)는 서해대교를 넘어갈 때마다 의문이 든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게 해무(바다 안개)인지, 아니면 미세먼지인지 저도 헷갈려요.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는 없지만 느끼는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남씨의 동료 이진길씨(48)는 남씨가 걱정한 ‘텍사스 겨울폭풍’은 정말 ‘남의 나라 일’ 같다고 했다. “제가 사는 곳에선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보령화력의 장성일씨(27)는 “체감으로 느낀 적은 없다”면서도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사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심각하게 여기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묻는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에서도 ‘불안하다’는 답은 45.4%에 불과했다. 절반이 되지 않는 이 수치조차 기후변화가 지금보다 덜 이슈였던 2018년 49.3%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22%는 ‘불안하지 않다’, 32%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폐지 일정 

정확한 폐쇄 일정 아무도 안 알려줘 답답
폐쇄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 쌓이기도
“현장 사람들에게도 이해와 동의 구해야”
 

곧 문을 닫는 직장에 다니는 석탄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아무도 이들에게 정확한 폐쇄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령화력 1·2호기는 지난해 12월 폐지됐다. 하지만 폐지 직전까지 누구도 보령화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그 시점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들은 1·2호기가 ‘언제 폐지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 10번이 넘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화력발전에서 일하는 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같이 일하는 동료의 입을 통해 들은 대략적인 일정만 짐작하고 있다.

당진화력의 손씨는 당진 1·2·3·4호기의 폐지 시점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했지만, 제9차 전력수급계획이나 언론보도, 노동조합을 통해 알게 된 것일 뿐 공식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발전소 폐지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노동조합을 하니까 일정을 알고 있는 거거든요. 조합원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같은 발전소에 있어도 모르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태안화력의 박씨도 “원청이나 (소속된 하청) 회사로부터 들은 건 없다. 뉴스를 통해서도 봤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게 더 빠르다”고 했다.

폐지해야 하는 이유도, 폐지 일정도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폐지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쌓인다. 노동자들은 기후변화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는데 그 발전한 기술로 발전소를 개조해 운영하면 안 되는 것인지 물었다. 탄소 저감 기술로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이 있고, 일부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을 그대로 유지한 채 CCS 기술만으로 기후위기를 막기는 어렵다. ‘기후솔루션’의 박지혜 변호사는 3일 “CCS 기술을 이용해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도 있겠지만 CCS와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 수준을 비교해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재생에너지 기술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방침을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제대로 된 설명’ 없는 일방적 폐지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당진화력의 김씨는 “현재의 자원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을 우리가 당겨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탄소 저감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다만 ‘전환의 당사자’인 이들에게 누군가는 제대로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산업 자체를 없앨 정도의 위기인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동의를 구하면 되지 않나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주지 않고) 주야장천 ‘탄소 배출이 문제야, 탄소를 줄여야 돼, 그러니까 석탄화력을 없애야 해’ 이렇게 공표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보령화력의 이씨는 정부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고 느낀다. 그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닥친 2018년 여름의 발전소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 내내 풀 출력으로 (발전소를) 돌리고 난리가 났었어요. 비상이었어요. 한 기라도 가동 중지되면 안 되니까 교체운전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불과 얼마 전 일인데, 그렇게 돌리다가 이제 와 다 없앤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업무는 다양하다. 크게는 항만에서 석탄을 나르는 일(석탄하역), 그 석탄을 발전기에 넣는 일(연료설비), 발전기를 돌리는 일(메인설비), 그 설비들이 모두 잘 돌아가도록 점검하고 정비하는 일(정비),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일(환경설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인설비인 발전기를 돌리는 일은 발전사 정규직이 담당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 몫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 중 일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익혀야 하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에 한정된 업무도 많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면, 많은 이들이 하던 일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당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경민씨(왼쪽)와 손일원씨가 당진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당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경민씨(왼쪽)와 손일원씨가 당진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하던 일만 계속할 수 있다면… 

석탄화력발전소에만 한정된 업무 많아
폐쇄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 가장 큰 걱정
“일 계속할 수 있다면 거주지 이전 감수”
 

먼저 폐지된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충남 서천군의 신서천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A씨는 그 전에는 보령 1호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황을 제거하는 탈황설비 일을 했다. 지난해 12월 보령 1·2호기가 폐지될 때쯤 새로 지어진 신서천화력이 운행을 시작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신서천에서 경력자들이 좀 필요했어요. (수요가) 맞아떨어진 거죠. 지원자를 뽑길래 옮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옮겼어요.” 집에서 20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40~50분으로 늘었지만 어쨌든 그는 거주지를 아예 옮기지 않고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사업장만 옮겼을 뿐 같은 업무를 하기 때문에 처우의 변동도 없었다.

“타이밍이 좋았죠.” 신보령화력의 남씨가 말했다. “보령 1·2호기 인력은 대부분 신서천화력으로 옮겨갔어요. 삼천포화력 인력은 고성발전소로 옮겨갔고요. 기존 발전소 폐지와 신규 발전소 가동이 맞물며 오히려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더 이상 지어지지 않는다.

석탄 노동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발전소 폐지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다. 연료설비, 환경설비 같은 업무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만 필요한 일이다. 경상정비의 경우 플랜트 등 다른 분야에서도 할 수 있지만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석탄 노동자는 거주지를 옮겨서라도 A씨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평생 살던 지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아서 지역을 옮기지 못할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반반이에요. 이 일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지역을 옮겨서라도 하겠다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태안화력의 이씨가 말했다.

태안화력의 박씨가 하는 계측제어 일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대체발전소가 들어와도 일을 계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역을 옮기고 싶지 않지만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옮겨야겠죠. 이 업무를 계속 영위만 할 수 있다면, 지역이 바뀌더라도 갈 용의는 있어요.”

환경설비를 하는 보령화력의 이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에라도 가야죠. 그렇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저 혼자만 가더라도 해야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노동자들은 다른 발전산업으로의 이직을 준비하기도 한다. 보령화력의 장씨 역시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산업 분야가 꼭 발전일 필요는 없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지는 못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이들의 일자리 

새로 지어지는 대체발전소에서 일을 계속하길 희망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LNG발전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 30기 중 24기를 LNG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한태교씨(42)는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석탄취급설비 일을 하다가 폐지된다고 다른 지역의 석탄설비로 보내지 말고, 다시 교육을 시켜서 LNG발전소에서 일하게 하는 게 옳지 않나요? LNG에 있는 기계들을 정비하는 것도 정비업체에서 하는 거고 제어시스템도 제어과에서 하는 건데, 교육만 받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없애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없애겠다는 건데, 고용을 보장해 줘야죠.”

“고용 전환은 되는지, 어떤 재교육 받을지…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LNG·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기기 위해
재교육받는다고 해도 미래는 불투명
임금·복지 등 동일하게 유지 어려울 듯
 

석탄 노동자들이 LNG발전이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길 경우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야 관련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노동 전환을 위해 필수적으로 연구돼야 할 부분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연구하고 있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체발전소로 가도 오작동 등 기초매뉴얼에 대한 습득 기간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의 임금 수준과 비슷한 업무로 가려면 1년6개월 이상은 교육받고 배치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재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모든 이들이 LNG발전소로 갈 수는 없다. LNG발전에는 기존 석탄화력에서 일하는 인력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인력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탄발전소가 폐지된 지역에 LNG발전소가 그대로 들어서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인 이들의 고용 전환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사)정의로운전환을위한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충남연구원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 ‘탈석탄 예정지역 연구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했다. “연료환경설비 노동자는 석탄발전소에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 교육을 통해 LNG발전소에서도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러나 발전사 정규직과 달리 이들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전환 배치는 공기업 발전사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

사실 환경 측면에서 본다면 LNG발전은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LNG는 가스전에서 채취한 메탄을 액화시켜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 방식이다. 발전 과정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덜 하지만, 이를 위한 채취 과정부터 되짚어보면 온실가스 배출에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많다. 박지혜 변호사는 “가스개발 단계부터 비교해 보면 LNG발전의 탄소 배출량은 석탄화력발전과 비슷하다”고 했다.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남상무, 장성일, 이진길씨(오른쪽부터)가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권도현 기자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남상무, 장성일, 이진길씨(오른쪽부터)가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권도현 기자

■재교육받는다 해도 불투명한 미래 

운이 좋아 대체발전소로 옮긴다고 해도 ‘지금의 처우가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다른 직무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받던 임금은 깎일 가능성이 크고, 복지 수준도 담보할 수 없다. 당진화력에서 일하는 김씨가 말했다. “사람은 일정한 양의 금액을 갖고 생활할 것으로 계획하잖아요. 그런데 그 금액을 엄청나게 줄여가면서 다른 지역으로까지 가야 한다고 하면, 그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죠.”

노동자들은 재교육받을 준비가 돼 있다. 태안화력의 박씨는 “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하지만 재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지, 재교육이 취업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태안화력의 한씨는 “교육을 한다면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도 명확한 게 없다. 나한테 꽃꽂이를 가르치고, 화원에서 일하라고 할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진화력의 손씨도 말했다. “교육을 다 받았는데 취업이 안 되면 또 문제잖아요. 또 교육은 일을 그만두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요. 실업급여만 받아가면서 교육을 받기에는 생활이 힘들잖아요.” 김 연구위원은 “실업급여 외에 부족한 부분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실업급여에 준해 줄 것인지, 아니면 정의로운 전환 기금에서 줄 것인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정부 

충남도는 지난 2월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을 위한 조례를 공포했다. 2025년까지 100억원의 전환 기금을 조성해 산업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지역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충남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먼저 이런 기금을 조성한 이유는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28기가 충남에 있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충남의 지역경제와도 직결된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찾아 지역을 빠져나가면 그것 자체로 큰 타격이다. “10년 전쯤인가,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회식을 금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발전소 주변 식당 주인들이 와서 회식 금지 취소하라고 시위를 했어요. 발전소 노동자들이 없으면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거예요.” 신보령화력의 남씨가 말했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지자체의 노력은 아직까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지자체에는) 기대를 못해요. 실사한다고 발전소를 오거든요? 그럼 ‘깨끗한 곳’만 가요. 실제로 저희가 일하는 공간은 정말 더럽고 힘든데, 그런데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김용균씨 사고 이후에 잠깐 왔다 갔을 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저희는 전혀 공감을 못하겠어요.” 태안화력의 박씨가 말했다.

지자체보다 더 힘 있는 곳’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다뤄주길 바라기도 한다. “지자체는 서로 눈치를 볼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곳이 뭔가 할 때까지 기다릴 것 같아요. 먼저 했다가 몰매 맞는 건 피하고 싶을 테니까요. 지자체의 파워가 얼마나 있는지도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정부와 입장이 다르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자체장인가, 아닌가가 중요해질 것 같아요.” 당진화력 김씨의 말이다.

‘대응이 늦다’는 지적을 받지만 노동조합은 나름대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노조는 최근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함께 비정규직 석탄 노동자 3600여명을 대상으로 현재의 전환 과정에 대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해 발표했다. 사실 노조가 아니라 더 풍부한 자원과 인프라를 갖춘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이다. “석탄발전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사회적으로 비판이 커지는 것을 보고 석탄발전이 오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던 거죠. 그런데 원래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이태성씨가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박낙호씨가 지난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태안화력 1호기는 2025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림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권도현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박낙호씨가 지난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태안화력 1호기는 2025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림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권도현 기자

■정의로운 전환이 되려면 

현장의 목소리 들어줄 ‘창구’가 절실
정부가 ‘공정한 전환’을 추진한다면
노동자들도 지원방안 논의 참여해야
 

‘전환의 당사자’인 석탄 노동자들이 보기에 지금까지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일단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줄 ‘창구’가 없다.

태안화력의 박씨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저희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어요. 이런 (인터뷰할)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저희 목소리를 내는 건 청와대나 광화문 앞에 가서 시위하는 그런 방법밖에 없고… 정부가 ‘공정한 전환’을 한다고 하면, 폐쇄되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를 정해서 같이 대화를 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항상 그림자인 거예요. 저희도 실체가 있고, 사람이고, 이 나라의 국민인데….” 이태성씨는 “옆에 있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해서 우리는 5조3교대도 감수할 수 있다. 줄어드는 임금을 전환 기금에서 일부 보상해주고, 재교육도 시키고, 그렇게 공정하게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식으로 ‘완만하게’ 갔으면 좋겠는데, 그냥 갑자기 폐지한다고만 하니까 불만이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오는 7월 산업 전환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이해당사자로서, 이 지원방안의 논의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이씨는 “정의로운 전환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으니, 사전에 촘촘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40600075&code=940702#csidx9e0ecfff944cc56bdca62073b0030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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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99일째... 언론의 예측은 틀렸다

접종률, 백신 수급, 예약률 모두 '청신호'... 11월 이전 집단면역 달성 가능 전망도

21.06.04 07:09l최종 업데이트 21.06.04 07:09l
 조선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자고나면 하나씩 차질 빚는 백신' 기사
▲  조선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자고나면 하나씩 차질 빚는 백신" 기사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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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 중앙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문 대통령 약속한 모더나 백신, 공수표 될 우려' 기사
▲  중앙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문 대통령 약속한 모더나 백신, 공수표 될 우려" 기사
ⓒ 중앙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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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5일)이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지 딱 100일째다. 99일째인 4일 현재,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분위기는 암울했다. 백신 수급은 불안했고, 접종률은 낮았다. 백신 접종 한 달이 지나도록 인구 대비 1%대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부 목표였던 4월 300만 명, 6월 1200만 명 접종은 어림없어 보였다. 심지어 4월 7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논란으로 60세 미만 접종이 중단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11월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라는 지적과 함께 접종 계획을 현실적으로 수정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언론도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4월 말 화이자 2000만 명분 추가 도입, 300만 명 1차접종 목표 달성,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위탁생산 계약, 5월 27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60~74세 대규모 접종 시작, 잔여 백신 접종 열풍, 원활한 백신 수급 등...


언론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가 됐다. 
  
언론이 집단면역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근거는 '접종률과 백신 수급'이었다. 하지만 백신이 제때 들어오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백신 수급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상반응 관리만 잘한다면 괜찮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인구 대비 접종률은 13.1%로, 5월 27일부터 대규모 접종이 시작되면서 7일만에 5.3%p를 끌어올렸다. 6월까지 1400만명 접종이 무난한 분위기다. 오히려 정부는 접종 속도를 올려서 11월 이전 집단면역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얀센 예약 폭주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제1스포츠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제1스포츠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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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논란을 겪고 한국을 비롯해 유럽 다수 국가에서 접종 중단이 일어나면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 실제로 5월 대규모 접종까지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을 담는 기사는 반복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잔여백신 접종예약 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국민들은 줄곧 정부가 강조해왔던 아스트라제네카의 안전성을 믿었고, 접종예약 서비스를 이용했다. 

역시 '희귀 혈전'이 발생해 우려를 낳았던 얀센 백신 역시 대환영을 받았다. 미국으로부터 오는 100만회여분 중 일반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에게 공개된 백신분 90만회분이 18시간만에 예약을 마감했다. 

분명 '백신 보릿고개'였다. 4월 중순에는 그나마 300만 명 접종을 위해 한창 접종을 했지만, 5월 마지막주가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2차 접종에만 집중했다. 정부가 5월 14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공급된다고 밝혔지만, 예정대로 온다고 마냥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 발표대로 4일까지 2분기에 공급될 물량인 아스트라제네카 724만회분을 받게 된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700만회분중에 260만회분을 남겨두고 있고, 이 역시 6월 중에 순차적으로 공급받을 예정이다.

60~74세 접종 예약률 80% 육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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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5월 12일자 1면에 실린 <"아스트라 불신"...고령층 접종 예약률 예상치 밑돌아> 기사.
ⓒ 동아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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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1400만명 접종 목표에 가장 우려가 됐던 부분은 60~74세의 접종 예약률이었다. 그러나 2일 0시까지 77.7%로 정부의 목표치인 80%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갑 교수는 "무엇보다 내 친구가 맞았다는 것, 즉 사회생활이 비교적 활발한 60~74세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맞고 괜찮은 것을 보고 안심을 하게 된 것 같다"면서 "종교집회 등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크게 독려가 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역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자체가 좋은 신호다. 효과성과 안전성을 증명할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하지 않은 20%는 걱정스럽다. 20%를 접종 현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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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준형 “우리가 먼저 미국에 대북제재 면제조항 요구하며 치고 나가야”

국립외교원장이 말하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과제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은 이후 북한은 약 열흘 만에 비난 성명을 내놓았는데,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국내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은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수차례 언급해왔다. 실제로 북한은 비난 성명에서 한미 정상의 대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겨냥하지 않고,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만을 문제 삼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로 비난했다. 김 원장은 2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최근 나온 북한 반응을 두고,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우리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올 불쏘시개를 선제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북한이 오랜 기간 고심하다가 ‘조선중앙통신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 명의로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위가 생각보다 높지 않고, 명의자(직급)가 낮았어요.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거죠. 보통 북한은 비난할 때 비난 성명이 빨리 나오거든요. 그래서 반응 나오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민이 깊었다는 것이고, 수위는 (빨리 나올 때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성을 과거에 보였습니다.

결국 이렇게 볼 수 있죠. 한미 정상회담에서 결정적인 ‘불쏘시개’는 없었지만, 북한 반응에서도 결정적인 ‘소화기’는 없었다는 겁니다. 불을 꺼버리는 소화기는 없었다는 거죠. 결국 다시 이후의 후속 조치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지난주 한반도평화포럼 토론회에서 예상했던 부분과 거의 일치합니다.
“제가 북한 반응 나오기 전에 언론에서 했던 이야기가 뭐냐면, ‘비판을 안 하고 지나가긴 힘들 거다’라는 것이었어요. 왜냐면 (한미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원하는 핵심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당 부분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완전히 판을 깨는 정도의 비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행간을 읽어야 하고, 수위를 봐야 한다고 했죠. 그리고 세 번째가 ‘누구 명의로 나오느냐’는 것이었죠. 다만 ‘이슈’ 부분은 확실히 좀 예상 밖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원장은 26일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의 토론회에서 “북한은 지금까지 해온 얘기들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환영한다’는 얘기가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문제는 수위 부분에서 여지를 남기는지, 헹간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관측했었다.

- 북한이 그동안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미사일 지침 해제’를 비난했는데, 왜 하필 그걸 꺼내들었을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본질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그걸 거절하거나 찬성해야 되는 것이 따라오잖아요. 그렇게 되면 자기들의 고민을 우리 쪽이나 미국 쪽에서 오해해서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오히려 다른 이슈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 ‘미사일 지침’이 북한과 아예 무관하다고 볼 순 없지요?
“네. 북한 쪽에서 보면 한미 군사력(증대)이 자기들한테 적대시가 되고, 그 적대시 정책이 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였으니깐요. 결국 큰 틀에서 보면 그런 군비경쟁이라는 부분을 치고 들어간 것 같고, 그다음 남북 간 군사합의 문제도 있고요. 또 그것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미사일 문제는 국내에서 나오는 것처럼 중국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좀 들어갔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와 관련해 “미국이 남조선 미사일 족쇄를 풀어준 목적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군비경쟁을 더욱 조장해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데 있다. 이와 함께 남조선 미사일 사거리를 늘려주는 대가로 우리 주변 나라들을 겨냥한 중거리미사일 배비(배치)를 합법적으로 실현해보려는 것이 미국의 속심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 북한이 매우 강경하게 나올 여지는 없었을까요?
“북한이 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해왔잖아요? 그 적대시 정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재고, 다른 하나는 군사적 압박이죠. 만약 (한미가) 북한 체제 안전 보장에 관한 부분을 건드렸다면, 아마 북한에서는 ‘더이상 의미 없다’, ‘대화에 나오지 않겠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으로 대표되는 ‘실용적 접근법’ ‘최대유연성’을 두고 ‘권모술수’라고 한 문장 비판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정상회담 전체를 언급했다고 보긴 어렵고, 오히려 ‘우리에게 위협이 되니 빨리 해결하라’는 소리로 들릴 수 있죠.”

남북미 대화 복원을 위한 출발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 중 희망적인 부분은, 바이든 정부가 2018년 트럼프 정부 때 남북 간 판문점 선언과 북미 간 싱가포르 성명을 추인했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대결 구도와 전쟁 위협 제거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완성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싱가포르 성명에서 북미는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약속했다.

김 원장은 최근 펴낸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에서 판문점 선언에 대해 “강대국 이해관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담겼다. 길잡이를 넘어 당사자라는 인식을 담아 평화를 주도할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길을 선택했다”고 했고, 싱가포르 성명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불신의 구조를 뒤로하고 비핵화와 평화의 새판 짜기를 위한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현 단계는 최소한 2019년 ‘하노이 노딜’ 이전의 상황까지로 복원된 상태다. 따라서 남북미 모두 교착상태가 더욱 고착화될 경우 자칫 폐기될 가능성도 있었던 과거 합의들을 구체적인 약속과 실천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을 모두 안고 있다. 한미가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고, 북한은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 답한 상태다. 다만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서 미국의 대북 대화 긴급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 미국은 대화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급하게 하진 않겠다’는 것 같습니다.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성명, 한반도 비핵화 등 인풋들이 다 들어가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실제적으로 타임라인이 안 나와 있고, 타임라인을 당길 수 있는 긴급성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거죠. 물론 그것까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미국이 한국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양보 조치를 선제적으로 던진다는 건 지나친 기대였을 수 있어요.”

김 원장이 강조하는 건 한국 정부의 선제적 역할론이다.

-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요인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 정부가 1년도 안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급한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느긋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단 북한 문제보다 우선순위에 놓인 과제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북한 문제는 풀기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거든요. 그것과 동시에 풀어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왜냐면 문제를 풀려면 먼저 양보 조치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결국 급한 쪽에서 첫 단추를 끼우거나, 실질적인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고 했잖아요. 그건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불쏘시개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죠.”

- 결국 그 ‘불쏘시개’가 무엇일까 했을 때 염두에 둘 건 무엇일까요?
“북한은 미국이 모든 걸 한 방에 줄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자기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보다 미국이 주는 것들이 대부분 후반부에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아요. 그러다 보니 북한이 그동안 미국에 요구했던 게 뭐냐면, ‘우리가 뭔가를 포기할 수 있는 정도의 신뢰를 보여달라’는 것이었어요.

- 북한의 대미 신뢰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북한이 지금까지 제시했고, 또 테스트하고 싶은 건 세 가지에요. 군사훈련과 종전선언, 그리고 제재완화죠. 일단 북한이 보기에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안 지켰다고 보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군사훈련이 이슈가 되고 있죠. 그리고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전된 생각을 내놓거나 해야죠.”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 결국 핵심적인 사항인 대북 제재 부분에서도 우리가 밀고 나가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미국은 제재 완화라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요. 또 북한에 먼저 제재 완화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전체 제재 체제가 붕괴될 수 있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그걸 우회할 수 있어요.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먼저 제재 완화를 꺼내는 것보다 한국이 요구해서 항목별로 예외조항을 두는 건 덜 부담스러울 수 있죠. 그리고 미국이 말한 남북 대화와 협력 지지를 근거로 해서 미국에 대북 제재를 면제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거죠. 결국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실질적으로 북한에 도움이 되는 걸 줄 수 있게 제재면제조항을 만들어낸다면 북한이 우리를 다르게 보죠.

그러기 위해선 북한이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돼요. 북한이 본질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 구분해서 이야기하지만, 본질적인 것만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비본질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있겠죠. 예를 들어 김정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양 종합병원에 의료기기를 지원한다든지, 이런 건 북한에서도 확실히 요구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하반기에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든지, 개성공단·금강산 문제나 인도적 지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을 거고요. 평화조약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이죠.”

“내년 초 하노이 3주년 즈음 북미 정상회담 성사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즉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면 일단 물밑에서라도 남북 접촉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통일부장관)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은 최근 한 언론사 대담에서 “정부가 6월 상순 중으로 남북 사이 특사(급) 판문점 (물밑)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문정인 이사장은 ‘6월이 골든타임’이라고 했습니다.
“5월에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나왔고, 북한도 대북정책 리뷰를 봤겠죠. 그렇다면 서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절차, 넥스트 스텝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아무것도 없이 또 한 달이 지나가면 다시 관리 수준으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으니깐요.”

- 먼저 연락해서 접촉을 하든지 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알기로는 한미 간에 각층에서 꾸준히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과 관련해 북한에 제안할 게 있으면 제안할 것이고요. 그렇다면 북한도 반응의 수준이 있겠죠. 우리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반응했을 때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미국의 경우도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 조치 다음에 해줄 것을 미리 얘기할 수가 있죠. 당신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조치를 하면 제재에 대해 어느 정도 (풀어줄) 용의가 있다든지, 이런 신호는 서로 주고받아야 (협상안이) 맞춰지는 거니깐요.”

- 내용상 공개적인 만남은 어렵겠습니다.
“비핵화 조치나, 재제 완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비공개 회담이라고 생각해요. 상당한 밀당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실무접촉 내용이) 생중계되듯이 진행되는 건 하노이 때 등 여러 경험들에 비춰봤을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 그런 절차가 큰 무리 없이 진행된다고 했을 때, 북미 정상 만남 시기를 예측해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부터 북한하고 조율을 한 다음, 하반기에 북미 실무접촉이 비공개로 본격화돼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가능하다면 이르면 올해 말, 내년 초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합의안을 추인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겠죠. 하노이 3주년이 되는 시기가 제일 좋은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다른 중요한 변수, 8월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어떻게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완전히 안 하는 건 미국 쪽이 싫어할 거고, 원스케일대로 하면 북한을 완전히 자극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2월 수준에서 꼭 필요한 부분으로만 규모를 축소해서 하는 방안이 있을 겁니다.”

“동결론+영변 합친 ‘하노이 리패키지’로 간다면 굉장한 성과”

한미 정상회담으로 인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최소 요건은 충족됐지만, ‘하노이 노딜’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노이 노딜’의 여파는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일부 완화를 맞바꾸는 ‘스몰딜’을 버리자, 미국 정치권이 일제히 그 선택을 지지했다. 이후 볼턴 등 강경파들이 대북정책 주도권을 잡았다. 나아가 ‘리비아식 빅딜’, 즉 선제적 비핵화를 요구하며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결렬됐던 교환조건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결과라고 보고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 북한의 조치는 비가역적인데, 미국의 상응 조치는 가역적입니다. 불균형 문제가 존재하는데요.
“북한이 계속 불만인 게 그런 겁니다. 그래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제재 완화를 한번 교환해봄으로써, 미국을 믿을 수 있는지 가늠해보겠다는 것이었죠.”

- ‘단계론’이요?
“그렇죠. 그 원리가 그대로 작동했던 게 이란 핵합의,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잖아요. 10년 간 두고 봐서, 서로 믿을 수 있으면 비핵화로 가는 것인데, 하노이는 그 모델 그대로 갖고 있다고 봐요. 그걸 했던 사람들이 지금 다 바이든 정부였고, 그리고 그들이 대북정책을 리뷰하면서 단계론을 받았단 말이에요.”

- 하노이로 돌아가서 다시 뭔가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보시는 거네요?
“굉장히 가능한 이야기죠.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중간단계론이 하노이 때 거의 손안에 잡혔다가 사라진 것이거든요. 일단 영변에서 비가역적 비핵화가 이뤄지면 그게 성과잖아요. 지금까지 있었던 말뿐인 약속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죠. 그런 면에서 하노이 리패키지는 최고의 카드라고 생각해요.”

- ‘리패키지’면 그때보단 교환조건이 더 들어가게 되는 겁니까?
“하노이에서 북한이 가져와서 최선희가 들이밀었던 ‘노란봉투’에 북한이 더 양보할 뭔가가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 생각해보니 ‘동결론’이거든요. 핵시설 돌리고 있는 걸 일단 정지하는 것과 영변 폐쇄를 합치는 것. 그리고 미국도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북한의 체제보장에 관한 불가침 선언, 종전 선언, 평화조약 이런 것들을 모두 합쳐서, 하노이 때가 ‘스몰딜’이었다면 ‘미디엄딜’ 쯤으로 리패키지한다면 굉장한 성과라고 봐요.”

- 미국으로선 쉽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나 원샷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갖고 있는 위협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위협감소’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비핵화가 최종적 목표가 되는 건 맞지만, 위협감소를 중간단계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실제적인 예가 바로 동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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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당규약 개정, 남북대화에 긍정적 영향 줄 것"

[기고] 제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유영구

  • 기자명 유영구 
  •  
  •  입력 2021.06.03 12:34
  •  
  •  수정 2021.06.03 16:51
  •  
  •  댓글 1
 

유영구 /  전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저자

 

북한은 지난 1월 9일,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 5일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개정된 당 규약은 공개되지 않았고, 최근 [한겨레] 단독보도 이후 확인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지난 1월 9일,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 5일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개정된 당 규약은 공개되지 않았고, 최근 [한겨레] 단독보도 이후 확인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의 5일째 회의가 진행 중이던 1월 9일 결정서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 대하여》를 채택했다. 이 결정서는 1월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는데 개정 당규약(이하 제8차 당규약)의 전문(全文)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이하 제7차 당규약)과 마찬가지로 공개되지 않았다.

제8차 당규약이 최근 국내에 입수된 가운데 몇 대목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로동당규약은 당의 지도사상, 노선과 정책을 기본으로 하여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고 세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해석상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밝혀보고자 한다.

서문, 김일성-김정일주의 부각

첫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에 관한 규정이 삭제되고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부각된 점이다. 조선로동당은 이념정당이고 지도사상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이기 때문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문의 첫 네 문장은 당규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①“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이다.” ②“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전일적으로 체계화된 혁명과 건설의 백과전서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투쟁 속에서 그 진리성과 생활력이 검증된 혁명적이며 과학적인 사상이다.”(지도사상)

③“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들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수반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이다.”(당의 정치적 기반. 수령은 김일성․김정일, 수반은 김정은 지칭) ④“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당의 성격)

제7차 당규약 서문에는 제8차 당규약 서문의 ①과 ③ 사이에 ‘당의 창건자’‘영원한 수령’인 김일성 주석, ‘당의 상징’‘영원한 수반’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당의 강화 발전과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이끄는 ‘영도자’ 김정은 당위원장의 업적에 관한 긴 문장들이 이어져 있었다.

이 업적 서술을 제8차 당규약에서 제외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의 승계’와 업적을 당규약에서 상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 안팎과 국내외에서 충분한 ‘인증’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7차 당대회와 제8차 당대회 사이의 5년 간 일어난 일에 대한 당중앙의 총화(결산)의 측면이다. 이 기간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와 확대회의,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와 확대회의 등이 빈번히 열렸고(거의 정례적이라 할 만큼), 그 내용의 일부가 공개되는 등 당의 제도적 운영이 자리를 잡았다.

당의 제도적 운영이 안정화된 여건에서 ‘수령들’의 업적을 내세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된다. 당의 운영에서 볼 때 ‘오늘의 현안’이 중요하고 당의 지도사상(김일성-김정일주의)과 노선이 더욱 중요해진다.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②문장을 제외한 각 문장의 ‘주어’를 조선로동당으로 한 것은 ‘제도화된 당’을 중시한다는 방증이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 수행’ 삭제

둘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 수행’을 삭제하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변경한 점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 ’북 주도의 혁명통일론의 폐기‘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 것과 관련해 짚어 봐야 할 점이 있다. 일단 이 부분의 전체 문맥을 보자.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①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며 ②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③최종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번호 표시는 필자)

①에 대해 제7차 당규약에서는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며”라고 되어 있었다. ‘사회주의강성국가’라는 표현을 버리고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라는 표현을 채택한 것이다. ‘강성국가’를 삭제하고 ’실천 가능한‘ 사회주의사회를 만들겠다는 미묘한 변화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진다.

②에서 ‘전국적 범위에서’는 남북한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전국적 범위에서’가 과거에는 ‘국토완정론’의 입장에서 언급됐던 것이지만 지금은 ‘시대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남북한은 두 개의 사상과 제도를 지닌 민주공화국이 ‘정치적 실체’로서 존재하고(대한민국은 자유주의 민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민주공화국), 두 국가에 의거해 점진적 평화통일(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성에 기초한 통일 노력=6.15남북공동선언)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남한의 연합제 안을 둘러싸고 ‘남북연합’과 ‘국가연합’의 논의가 남아 있지만, 남한에서 국가연합을 계속 주장할 경우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서 그 접점을 찾으려고 할 수 있다.

②에 대해 제7차 당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라고 되어 있던 것이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로 바뀌었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시정방침의 둘째 항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나라의 전 지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민주주의를 실시하며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제안이 나올 때 북한은 ‘무력통일’ 노선을 사실상 포기했지만 당규약에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또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남겨놓음에 따라 남한에서 북측의 의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국가보안법은 도대체 왜 폐기를 안 합니까? 우리도 남쪽에서 제기하는 옛날 당 규약과 강령을 새 당대회에서 개정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이런 합의를 감안하면 북한의 제8차 당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을 삭제한 것은 앞으로 남북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일찍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남쪽 사회에서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를 둘러싼 사회구성체 논란을 남겼다. 남한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으로 인한 정치군사적 종속상황이 남아 있다고 해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시대는 아니라는 인식이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변경함으로써 ‘혁명’을 제거했다. 제8차 당규약은 남한에서의 ‘혁명’을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여전히 남겨 놓고 있다. 자주에는 ‘반미(반제)자주’가, 민주주의에는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더 나은 민주주의’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제7차 당규약 서문에서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제8차 당규약에서는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며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와 ⓐ는 표현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다. ㉯와 ⓒ에서는 ‘미국의 지배’를 분리했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가 새로 추가됐다(‘경제적 지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시대변화에 따른 것이다).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은 북한의 첨단 전략무기 개발에 따라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변화를 감안해 제8차 당규약에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가 삭제된 것은 북한이 남한 내부의 정치투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남북한이 줄곧 합의해온 ‘내정불간섭’의 원칙). 새로 들어간 ⓓ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기 위해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겠다는 것은 최첨단 전략무기의 개발능력과 그 향상에 자신감을 보인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8차 당대회 이전과 이후(엄밀히 말하면 《화성》계열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북극성》계열의 지상․수중발사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2017년 이후)의 근본적인 차이를 감안해 이 대목을 추가한 것이다. 핵무력 완성과 전략무기 개발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계속 강조해온 것을 당규약에 반영한 것이다.

㉲와 ⓔ의 차이는 제8차 당규약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고”라고 함으로써 평화통일을 향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와 ⓕ의 차이는 ‘민족의 공동번영’이라는 남북한의 ‘합의적 표현’으로 바꾸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 바탕에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당연히 내재되어 있다. 이상의 전체를 관찰해야 제8차 당규약 서문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7차 당규약의 당원의 의무에서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 투쟁해야 한다”는 대목이 제8차 당규약에서 삭제됐다고 주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당원의 의무에서 삭제됐지만 사실상 위의 ⓔ에 반영됐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짐작컨대 조국통일 주제가 당원들의 일상적인 의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자리로 이동 배치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③과 관련하여 제7차 당규약 서문에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고 되어 있었다.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는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자주성 실현’에서 ‘공산주의사회 건설’로 바뀐 것은 심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지난 4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0차 대회 등의 정치행사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언급이 잦았다. 이를 감안하면 김정은 당 총비서를 위시한 당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들은 ‘공산주의사회 건설’의 꿈(최종목적)을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심히 살펴보면 제8차 당규약 서문에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하여 투쟁한다”가 새로 추가됐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 발전단계론과 관련하여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선군정치와 병진노선 사라져

셋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로 규정함에 따라 ‘선군정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에 연동하여 ‘자주, 선군, 사회주의의 노선과 원칙’은 ‘노동계급적 원칙, 사회주의적 원칙’으로 바뀌었다. 김 총비서의 집권 초기의 정치노선이었던 ‘자주․선군․사회주의의 노선’은 10년이 안 되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넷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이 삭제되고 ‘자력갱생의 기치 밑에 경제건설을 다그치고’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이 채택된 이래 2018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병진노선의 삭제는 당연한 일이었다.

201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재편성이 채택된 것을 반영하여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자력갱생의 기치 밑에 경제건설을 다그치고’라는 표현으로 변경한 것이다.

병진노선을 삭제한데 따라 국가방위력과 관련해서도 변화가 있었다. “공화국무력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부단히 강화하고 자립적 국방공업을 발전시켜 나라의 방위력을 끊임없이 다져나간다”는 문장을 당규약 서문에 첨입했다. 제7차 당규약의 ‘혁명무력’을 제8차 당규약에서 ‘공화국무력’으로 수정할 정도로 당규약 개정은 과거에 비해 국가를 중시한다. 이것은 ‘공화국’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한편, ‘혁명무력’이 ‘무력혁명’을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섯째, 제7차 당규약 서문에 “전 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고 되어 있던 것에서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는 이에 더하여 해외동포의 권리․이익 보장과 그들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다. 해외동포들이 “조국의 통일발전과 융성번영을 위한 길에 적극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 그 표현이다. 융성번영은 ‘민족의 공동번영’과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에 해외동포들이 기여해야 한다는 담론으로 읽힌다.

제1비서 신설, 아직 공석인 듯

여섯째, 당의 중앙조직에서 다섯 가지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1)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위원장을 추대한다”(제23조 4)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를 선거한다”(제23조 5)로 바꾸었다. ‘추대’를 ‘선거’로 바꾼 것이 실제로는 차이가 없겠지만(‘만장일치에 의한 찬성 선거’일 것이기 때문), 당규약에서 이처럼 바꾼 것은 조선로동당이 민주집중제에 의한 민주주의적 절차를 수행한다는 것을 내외에 보여주려는 면이 있다.

당 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규정하던 것(제7차 당규약 제24조)에서 당 총비서를 ‘당의 수반’으로 전환한 것(제8차 당규약 제24조)도 같은 맥락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당 위원장은 “당을 대표하며 전당을 영도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당 총비서는 “당을 대표하며 전당을 조직영도한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도’와 ‘조직영도’의 차이는 가볍지 않을 수 있다.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2)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중요한 사업으로서 제7차 당규약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선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 선거 △정무국 조직 △당중앙군사위원회 조직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선거 등을 들고 있다(제26조). 이에 비해 제8차 당규약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선거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 비서들 선거 △비서국 조직 △당중앙군사위원회 선거 △당중앙검사위원회 선거 등이었다(제26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조직하는 대상 가운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비서로, 정무국이 비서국으로,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가 당중앙검사위원회로 각각 변경되었다. 그런데 비서들 외에 ‘제1비서’를 선거한다는 새 규정이 있었고 제1비서는 “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라는 규정이 붙어 있었다(제8차 당규약 제26조).

제8차 당대회 기간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전원회의(1월 10일)에서 선거된 인원들(발표)에는 분명 ‘제1비서’가 없었다. 이것으로 보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이후의 어느 전원회의에서 ‘제1비서’를 선거할 수 있을 것이다. 총비서는 ‘전당의 조직영도’ 권한을 갖고 있으니 ‘대리인’도 그러한 권한을 대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리인’ 규정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제1비서와 비서들, 비서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당중앙검사위원회 등의 선거 및 조직에 관한 규정과 같은 조항(제26조)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제1비서는 김정일 총비서를 ‘영원한 총비서’로 모시고 김정은 자신은 제1비서로 낮추었던 때(2012년 4월~2016년 5월)와는 명백히 다르다. 그 당시에는 제1비서가 ‘최고영도자’였고 지금은 “당 수반인 총비서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조용원 조직비서와 같은 최측근의 제1비서 임명 등에 관한 일각의 추측보도는 틀릴 수 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제1비서를 선거했을 것이고, 최근의 ‘공개방식’에 따라 공개됐을 것이다. 조용원은 조직비서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이 직책의 성격상 업무가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

그를 김정은 총비서의 업무와 권한을 대리할 ‘대리인’으로 지명하려면 조직비서를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당은 조용원 조직비서, 국가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군은 리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이다. 이렇게 진용이 짜여져 국정을 운영하는 여건에서 총비서의 ‘대리인’인 제1비서를 선거하게 된다면 다른 인물을 생각하고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북한의 역사를 돌아보자. 1974년 2월 김정일 조직비서가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당은 거의 전적으로 김 조직비서가 담당했고 김일성 총비서(국가주석)는 국가와 군대를 담당했다. 1975년 이후에는 김정일 조직비서가 군의 당조직(인민군당위원회와 그 집행기관인 총정치국)을 통해 군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는 김정일 조직비서가 김일성 총비서의 ‘후계자’로 추대된 상황이었다. 김 주석이 62세의 나이로 환갑을 넘겼고 김 주석과 김 조직비서는 30세의 연령 차이가 난다. 지금은 ‘후계자’를 운운할 시기가 아니고 ‘잠정적 후계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북한에는 ‘2인자’의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제1비서가 누구든지 2인자가 되는 순간, 혹은 되려는 순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따른 엄청난 비판과 공격에 직면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1비서는 말 그대로 ‘총비서의 대리인’이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김정은 총비서 밑에 당․국가․군대의 각 책임자를 두고 있으면서도 새로 제1비서의 규정을 당규약에 신설한 것은 당․국가․군대의 전체 업무를 당 총비서와 ‘함께’, ‘대신하면서’ 수행할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중앙당에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국가․군대의 국정 전반을 세밀하게 총괄하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제1비서 제도를 생각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제1비서를 신설하는 당규약 개정 과정에 중앙당의 조직지도부를 비롯해 여러 부서에서 의견을 제출하고 김정은 총비서를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했을 것이다.

‘백두혈통’의 젊은 지도자 김여정 당 부부장 혹은 제3의 인물, 또는 조용원 조직비서 등을 적절한 시기에(앞으로 5년 안에, 혹은 그 다음 5년 안에) 제1비서로 선거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비서가 ‘2인자’나 ‘후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1비서로 선거된 인물이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교체될 것이다. ‘제1비서 제도’의 기능이 예상처럼 효율적이거나 원활하지 못하면 다음 제9차 당규약에서 제1비서를 삭제할 수도 있다.

(3)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조직’에서 ‘선거’로 바뀌었는데 그 의미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서들을 선거한 뒤에 비서국을 조직하는 것과 달리,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선거하는 것으로만 규정되어 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대하여 제7차 당규약에서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 군사분야에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당적으로 조직 지도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제8차 당규약에서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의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다”라고 표현했다. 당 총비서가 위원장인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지금까지도 실질적으로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는데 굳이 이 표현을 당규약에 새로 포함시킨 데에는 필시 그럴만한 사유가 있음직하다.

군의 당조직과 관련하여 총정치국은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로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한다”는 규정(제7차 당규약 제50조)에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한다”는 부분이 제8차 당규약에서는 삭제됐다. 이것은 총정치국은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라는 규정으로 충분하기 때문이고, 총정치국은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다’고 하기 보다는 “도당위원회 기능을 수행”하는(제8차 당규약 제48조)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이기 때문이다.

(4) 제8차 당규약 제26조에서 “당중앙위원회의 부서(비상설기구 포함)를 내오며 필요한 경우 당규약을 수정하고 집행하며 당대회에 제기하여 승인을 받는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당중앙위원회에 부서 설립에 따른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한다.

정치국 상무위원회 권한 강화

(5)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별개 조항(제27조)으로 독립될 정도로 중요성이 커졌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시급히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며 당과 국가의 중요간부들을 임면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군사적으로 시급히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의 결정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은 정치국회의를 사회할 수 있다”는 내용이 같은 조항에 포함됐다. <조선중앙통신>이 1월 10일 보도한 당 결정서에 따르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관한 새 조치는 “당수반의 혁명영도를 더욱 원만히 보좌하며 당 사업과 당 활동을 보다 민활하게 진행해나가기 위한 현실적 요구를 구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총비서를 제외한 4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 즉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이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가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정치국회의를 사회할 수 있게 됐다. 정치국회의 사회는 지금까지 총비서의 고유권한이었다. 제도의 탄력적 운영과 당중앙위원회의 역동적인 활동을 예고하는 규정이라 할 수 있다.

당대회 개최의 5년 정례화 등 기타 사항은 생략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제8차 당규약 서문과 조항들에서 이전 당규약과 달라진 점은 여러 차원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특정 구절을 뽑아서 과잉 해석하다보면 전체 맥락에서 빗나갈 수 있다. 북한에서 당규약이 갖는 중요성과 정치적 비중을 고려해 신중히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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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사사건건 일본 편, 토착왜구 국힘당 해체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6/04 08:28
  • 수정일
    2021/06/04 08: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편집국 | 기사입력 2021/06/0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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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당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 대해 그 어떤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회원들이 3일 국힘당 중앙당사·강원도당사·광주광역시당사·경기도당사 앞에서 국힘당의 이런 행태를 규탄하면서 국힘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하는 행동을 동시에 진행했다. 


 

◆서울, 사사건건 일본 편! 침묵 일관하는 토착왜구 국힘당 해체하라!

 

▲ 국힘당사 앞에서 기자회견 진행 중인 서울대진연 회원들     ©최수진 통신원

 

▲ 도쿄 올림픽 로고와 "독도는 일본 땅"이라 써있는 우드락을 부수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최수진 통신원

 

▲     ©최수진 통신원

 

서울대학생진보연합(이하 서울대진연)은 오후 2시 여의도 국힘당 당사 앞에서 ‘독도는 일본 땅 주장 도쿄올림픽을 반대하지 않는 토착왜구 국힘당은 해체하라! 대학생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대진연 회원들은 친일망언과 친일행적을 일삼던 국힘당이 이번 독도 영유권 주장과 전범기 공식 사용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규탄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김용환 회원은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오승권 회원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표기한 도쿄올림픽 지도를 두고 “치졸하고 옹색하기 짝이 없다”라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오승권 회원은 “일본 문제에서 항상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자들이 있다. 바로 국힘당이다. 국힘당은 민심을 못 본 척하지 말라. 침묵은 암묵적 동의이다. 자기 자신들에 밥그릇 싸움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기회주의자 국힘당, 일본에 한마디도 못 하는 국힘당은 지금 당장 해체하라”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공개질의서를 낭독하고 일본에 대한 분노를 담아 도쿄 올림픽 상징물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문구를 붙인 선전물을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서울대진연은 국힘당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범기 공식 사용을 선포한 일본 정부에 국민의 반대 입장을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라는 내용의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최수진 통신원] 

 

◆강원, 국힘당의 본질은 ‘토착왜구당’, ‘친일정당’

 

▲ 강원대진연은 국힘당의 본질은 ‘토착왜구당’, ‘친일정당’이라고 비판했다.  © 정주희 통신원

 

강원대학생진보연합(이하 강원대진연)은 오전 11시 국힘당 강원도당 사무실 앞에서 ‘도쿄올림픽에 반대하지 않는 토착왜구 국힘당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강원대진연은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최근 일본이 도쿄올림픽 성화봉송 코스를 표시하는 지도에 독도를 마치 자신들의 땅인 것처럼 표시해 크게 논란이 되었고, 이에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도 토착왜구 국힘당은 진심이 없는 말과 행동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어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첫 번째 순서로 이준석, 나경원 국힘당 당대표 후보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이 했던 친일 망언을 짚으며 국힘당의 본질은 ‘토착왜구당’, ‘친일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토착왜구’, ‘국민의 힘’ 두 가지 단어로 창작한 4행시를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규탄성명서를 낭독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강원대진연은 규탄성명에서 “국힘당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언제 한 번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나선 적이 없다. 2019년 일본의 무역보복 당시,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손해’라며 우리 국민의 반일운동을 폄하하고, 그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세력도 국힘당이었다”라고 짚었다.

 

또한 “국힘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당이다. 본인들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모든 국민은 ‘토착왜구’라고 하면 국힘당을 떠올린다. 국힘당이 진정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분노한다면 그동안의 친일행위를 사죄하며 당장 해체로 답하고, 도쿄올림픽 불참운동에 적극 나서라”라고 주장했다. [정주희 통신원]

 

◆광주,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24시간 안에 달라

 

▲     ©김태현 통신원

 

▲     ©김태현 통신원

 

오늘 오전 11시 광주전남 대학생진보연합(이하 광전대진연) 소속 회원들이 국힘당 광주광역시당에 도쿄올림픽에 반대 목소리 내지 않는 국힘당을 규탄하며 시당위원장에 면담요청을 했다. 

 

그러나 국힘당 광주시당은 면담요청 자체를 거부하며 경찰을 동원해 대학생들을 쫓아냈다.

 

광전대진연은 “최근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도쿄올림픽에 불참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힘당은 침묵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왔다”라면서 국힘당 광주시당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국힘당 당직자는 대학생들을 보자마자 “당신들이 뭔데 시당위원장을 오라 마냐 하느냐”, “젊은것들이 예의가 없게 무슨 짓이냐” 등의 막말을 하며 면담요청 자체를 거부했다.

 

이에 대학생들은 “대화를 하러 온 것이며 공개질의서도 미리 보냈다. 면담에 필요한 절차에 모두 응하겠다. 대신 우리 앞에서 시당위원장에 보고하고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라고 요구하면서 면담요청을 했다.

 

하지만 국힘당 당직자는 대학생들이 들고 간 선전물을 트집 잡고, 현장 생중계하는 핸드폰을 강압적으로 뺏으려고 했다. 이와 같은 대치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 결국 국힘당은 경찰을 동원해 대학생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대학생들은 국힘당 당사 앞에서 1인 발언을 이어가며 국힘당을 규탄했다. 

 

광전대진연 회원은 “국힘당은 도쿄올림픽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찾아온 국민과 대학생을 무례하다고 쫓아냈다. 입장이 없다면 도쿄올림픽 불참에 대해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 어디까지 논의된 것인지 밝히라고 했으나 경찰을 불러 내쫓았다. 이게 국힘당의 본질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정당이다”라고 발언을 했다.

 

광전대진연은 ‘▲국힘당은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한 전국 지도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국힘당은 일본 도쿄올림픽 선수들의 유니폼에 전범기인 욱일기가 그려진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힘당은 도쿄올림픽을 불참해야 한다는 청원과 국민들의 반응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국힘당은 국회에서 도쿄올림픽 불참을 의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24시간 안에 줄 것을 요구했다. [김태현 통신원]

 

◆경기, ‘국민의힘’이 아니라 ‘일본의힘’이다

 

▲ 경인대진연 회원들은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도쿄올림픽 불참과 같은 항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국힘당을 규탄했다.   © 이종오 통신원

 

▲ 경인대진연은 국민의힘’이라는 글씨가 적힌 피켓을 ‘일본의힘’이라고 바꿔 적고 피켓을 부수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 이종오 통신원

 

경기인천대학생진보연합(이하 경인대진연) 회원들은 오후 2시 국힘당 경기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경인대진연 회원들은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도쿄올림픽 불참과 같은 항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국힘당을 규탄했다. 

 

이찬슬 회원은 ”지금 온 국민이 나서서 도쿄올림픽 불참을 촉구하고 있는데 도쿄올림픽 불참에 나서지 않는 국힘당은 걸림돌이다. 이 상황에서 걸림돌이 되는 국힘당은 해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영학 경인대진연 대표는 ”국힘당은 2015년 위안부 할머니들과 어떠한 상의도 없이 단 10억 엔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위안부 졸속합의에도 찬성했다. 또한 2019년 일본 불매운동을 하면 안 된다고 뻔뻔하게 외쳤다. 본인들이 친일 세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왔다“라며 국힘당의 과거 행태를 짚었다. 

 

이어 김영학 대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도쿄올림픽 불참에 나서지 않는 토착왜구 국힘당은 이제는 반드시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국민의힘’이라는 글씨가 적힌 피켓을 ‘일본의힘’이라고 바꿔 적고 피켓을 부수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경인대진연 회원들은 공개질의서를 국힘당 경기도당에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당직자들의 반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당 사무실 입구 간판에 공개질의서와 선전물을 부착했다. [이종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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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센, 예방 효과 낮다는데…기다렸다 다른 백신 맞을까요?

등록 :2021-06-03 05:00수정 :2021-06-03 07:47

‘백·알·맞’(백신 알고 맞자) Q&A ⑤
“얀센 백신 예방·중증화·사망 방지 효과 충분해”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바이오엔텍, 얀센(존슨앤존슨), 스푸트니크 브이(V) 백신 바이알 모형. REUTERS/연합뉴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바이오엔텍, 얀센(존슨앤존슨), 스푸트니크 브이(V) 백신 바이알 모형. REUTERS/연합뉴스
▶전문가 자문을 거쳐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풀어보는 코너 ‘백·알·맞’(백신 알고 맞자) Q&A로 질문을 보내주세요. 이메일(watchdog@hani.co.kr)로 문의를 받아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 등에 대한 얀센 코로나19 백신 90만명분 사전예약이 진행되던 1일, 젊은 남성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얀센 예방률이 너무 낮던데. 66프로. 난 나중에 화이자나 모더나 들어올 시기에 맞을랜다.”이런 반응은 앞서 접종을 시작한 미국에서도 나왔습니다. 지난 3월 마이크 더건 미국 디트로이트 시장은 “최고의 백신은 모더나와 화이자다. 주민들이 최고의 백신을 맞도록 하겠다”고 얀센 백신 수령을 거부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번복하기도 했습니다.임상시험에서 각 백신의 예방효과는 얀센 66%, 화이자 95%, 모더나 94%로 보고됐습니다. ‘30%나 차이가 나니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맞는 게 낮지 않으냐’는 질문이 나올 법합니다. 판매 가격도 얀센은 한 회당 10달러, 화이자는 20달러, 모더나는 25~37달러로 매겨져, 앞서 접종을 시작했던 미국에서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일단, 화이자와 모더나는 영하 90~60도의 초저온 상태로 보관·배송을 해야 하는 점이 가격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커, 가격과 효능을 연관짓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예방효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백신의 예방효과 수치엔 임상시험 시기와 시행 국가의 차이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모더나와 화이자는 주로 미국 내 유행이 잦아들었던 하절기인 지난해 8~11월에 3상 임상시험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얀센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임상 3상을 수행했습니다. 지난 겨울은 미국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심각해지던 시기였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데버라 풀러 미국 워싱턴대 교수(미생물학)는 미국 언론 <복스>에 이 점을 지적하며 “만약 모더나나 화이자 백신의 임상시험을 얀센 백신이 했던 기간에 했다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예방효과 수치를 보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차 유행 한참일 때 임상시험한 얀센

특히 주로 미국 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모더나나 화이자와 달리 얀센은 참여자의 44%만 미국에서 참여했고, 나머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 7개국에서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선 접종 4주 뒤 예방효과가 72%였지만, 베타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한 남아공에선 64%였습니다. 이런 여러 나라에서 나온 수치를 합치면서 66%란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미 존스홉킨스 보건안전센터의 아메시 아달야 박사도 <복스>에 “백신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이 백신들을 같은 나라 같은 시기에 같은 임상시험에서 연구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며 “임상시험이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된 것이 아니면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 임상통계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얀센 백신을 유행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국내에서 접종했을 때는 예방효과가 더 좋게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2~4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주 접종 대상이었던 60살 이상에서 예방효과를 계산했을 때 아스트라제네카는 86%, 화이자 백신은 89.7%로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임상시험에서 보고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예방효과 62~70%보다 수치가 더 높게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신을 평가할 때는 감염을 얼마나 막았느냐는 예방효과보다 중증화와 사망을 얼마나 방지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 더 중요합니다. 코로나19에 걸려도 중환자실에 입원하거나 사망으로 이르지 않는다면, 코로나19는 독감처럼 그다지 무섭지 않은 질병이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업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얀센 백신은 임상시험에서 중증예방엔 85%, 사망 예방에는 100%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캐나다 보건부의 지난달 21일 발표를 보면,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도 베타 변이에 대해 64%로, 화이자(75%)와 노바백스(55%) 백신 등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1회 접종이어서 우려된다는 생각에는?

얀센 백신은 1회 접종이라 예방효과가 유지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내년께 전 국민이 예방효과와 유지 기간을 강화해주는 추가접종, 일명 ‘부스터 샷’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국내만이 아니라 미국,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다른 백신으로 추가접종을 받는 교차 접종에 대해 임상시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각 국가의 백신 도입과 접종 상황상 추가접종까지 같은 백신을 맞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얀센은 1회 접종 백신이라 효과와 지속 기간이 떨어질 수 있지만, 내년께 대부분 백신 접종자들이 추가접종을 받게 될 것으로 보여 이런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하반기 예방접종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접종자 접종이 시작될 오는 10~11월까지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가 원하는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때까지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위험성이 남아 있고,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주어지는 자가격리 면제 혜택 등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중에 화이자나 모더나 들어올 시기에 맞겠다”는 선택이 합리적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은 “팬데믹 상황에선 ‘어떤 백신이 좋으니까 그걸 맞겠다’는 전략은 전체 백신 접종 속도를 늦춰서 사망자를 증가시킨다. 일각에서 이런 백신의 사회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백신의 우열을 따지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백신이 가장 좋은 백신일까요? 얀센 백신처럼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 미 식품의약국(FDA) 등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에서 효과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사용을 허가한 백신이라면, ‘빨리 맞을 수 있는 백신이 가장 좋은 백신’이라는 것이 신뢰할만한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참고로 저도 민방위 대원 자격으로 얀센 백신을 사전예약해 가장 빠른 날짜인 오는 10일 접종할 예정입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997817.html?_fr=mt1#csidx009776a2d320f3cb831d733d46675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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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일본 전범기 불타다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일본 전범기 불타다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6/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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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연 회원들이 일본 전범기를 불태우고 있다.     ©김영란 기자

 

▲ 전범기에 불을 붙이는 대진연 회원  © 김영란 기자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문 앞에서 일본 전범기가 순식간에 불탔다. 

 

일본이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서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표기하는 것에 항의하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회원들이 2일 오후 3시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문 앞에서 일본 전범기 화형식을 했다. 

 

대진연 회원은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지 76년이 지났지만 현재 2021년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에서 전범기를 사용하고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는 등 또다시 우리 민족을 침략하려 하고 있다”라며 “이번 전범기 화형식을 시작으로 하여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 기필코 막아내겠다”라고 말했다.

 

대진연 회원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 정부 규탄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전범기에 불을 붙였다. 

 

어제(1일) 일본대사관 앞에 이어 오늘은 독립문 앞에서 전범기 화형식을 한 것이다.

 

한편, 어제 전범기 화형식을 한 대학생들은 현재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다. 종로경찰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대진연 회원들을 연행했다. 

 

대진연은 연행된 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 수가 현재 450여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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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이준석 분석한 한겨레 “보수 본색 여실히 드러나”

4대 그룹 대표 간담회 대통령 사면 발언 인용 보도 즐비, 코로나19 학력 격차 공식 확인… 한겨레 이준석 비판 조명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이 4대 그룹 대표를 만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해 긍정적인 취지로 발언하자 중앙일보는 이를 1면 머릿기사로 썼다. 다른 전국 종합일간지도 대부분1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대통령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사면을 예측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3일 중앙일보 “이재용 8·15 특별사면 유력”하다를 1면 기사 제목으로 붙였다. 2일 낮 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4대 그룹 대표와 가진 초청 오찬 간담회 내용을 전한 기사다. 구광모 LG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참석했다.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갈무리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갈무리

 

청와대 대변인은 최태원 회장이 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하자 문 대통령은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기업에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시기상조 등의 이유로 사면 가능성에 선을 그어온 입장이 미묘하게 바뀐 것.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면에 여지를 열어 두는 쪽으로 서서히 변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에는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지난달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선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돼 우리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높여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도 밝혔다. 2일엔 이보다 더 나아가 ‘국민이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3일 중앙 1면
▲3일 중앙 1면
▲3일 동아 1면
▲3일 동아 1면

 

3일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 이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기사는 적었다. 조선일보는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8·15 광복절 특별 사면 또는 가석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며 “반도체는 대형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의사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거나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 시대에 앞으로 2~3년이 중요하다. 건의(사면)를 고려해달라”는 등의 4대 그룹 대표 발언을 강조했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은 문 대통령 입장 변화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최근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경제 회복 국면에서 기업의 역할을 부쩍 강조하고 있고,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을 포함한 4대 그룹이 대대적인 대미 투자 보따리로 문 대통령의 방미길에 힘을 실어준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면서도 “횡령·뇌물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대기업 총수를 경제 논리를 앞세워 사면해주는 것은 기업 범죄에 면죄부를 주고 사법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3일 조선 5면
▲3일 조선 5면
▲3일 한국 3면
▲3일 한국 3면

 

한국일보도 “'국민 공감대'와 '기업 역할론'을 말한 건 '사면을 위한 외형적 조건이 갖춰졌다'는 뜻으로, 문 대통령이 8ㆍ15 광복절 특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됐다”며 “이 부회장 사면은 문 대통령 스스로 세운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뇌물, 알선수재 및 알선수뢰, 배임·횡령 등 5대 범죄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형을 받은 사범들은 사면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한다고 공약했다.

코로나발 기초 학력 붕괴… 교육 격차 더 벌어져

코로나19로 등교, 수업 등에 차질을 빚은 중·고등학생들의 ‘기초 학력 붕괴 현상’이 확인됐다.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기초 학력 미달에 해당하는 학생 비율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2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기초학력 미달’에 해당하는 1수준 중학생 비율이 국어 6.4%, 수학 13.4%, 영어 7.1%로, 영어는 지난해(3.3%)보다 두 배 이상, 국어는 지난해 4.1% 대비 2.3% 포인트 늘었다고 밝혔다.

▲3일 서울 9면
▲3일 서울 9면
▲3일 경향 1면
▲3일 경향 1면

 

1수준 고등학생 비율은 국어 6.8%, 수학 13.5%, 영어 8.6%였다. 서울신문은 “고등학교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13.5%로 전년 대비 4.5%나 증가했다”며 “이번 평가 결과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의 증가 폭이 빠르고 가파르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통학력’에 해당하는 3수준 이상의 비율은 하락했다. 중학교에서는 3수준 이상 비율이 국어 75.4%, 수학 57.7%, 영어 63.9%였으며 고등학교에서는 국어 69.8%, 수학 60.8%, 영어 76.7%로 나타났다.

여학생보다 남학생의 기초학력 붕괴 현상이 더 심했다. 남학생의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보면 중학교 16.0%, 고등학교 16.3% 등에 달했다. 서울신문은 “중·고등학교 모든 과목에 걸쳐 남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여학생보다 많게는 4배까지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학업 성취도는 떨어져도 학생들의 행복도는 높아졌다’는 최근 수년간의 흐름도 바뀌었다. 학교생활 행복도가 ‘높다’고 답한 비율은 중학교 59.5%, 고등학교 61.2%로 지난해보다 각각 4.9% 포인트, 3.5% 포인트 줄었다.

2학기부터 전면등교를 실시할 예정인 교육부는 오는 14일부터 등교수업을 확대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의 학교 밀집도 기준을 3분의 1에서 3분의 2로 상향 조정하고, 직업계고 학생들은 거리두기 2단계까지 전면등교한다.

▲3일 한겨레 3면
▲3일 한겨레 3면

 

한겨레 이준석 평가 “노골적인 엘리트주의”

오는 11일 국민의힘이 당 대표 선거를 앞둔 가운데 한겨레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정치성을 분석했다. 그의 저서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2018)와 <공정한 경쟁>(2019), 최근 언론 인터뷰 및 토론회 발언 등이 분석 근거다.

한겨레는 “젠더 이슈에 의문을 나타내며 반페미니즘 정서를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것은 다른 대중 정치인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 최고위원이 여성을 포함한 정치적 소수자의 우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에서 “이런 기조는 ‘트럼프식 갈등 이용 행태’라는 비난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층과 비지지층을 갈라치기 하고 이를 이용하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또 “‘공정’과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배경엔 그의 노골적인 실력주의 가치관이 내재돼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전 최고위원이 아버지와 친분관계가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의 인턴으로 정치 경험을 쌓은 점에서 “그의 신념과 배치되는 ‘내로남불’ 행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고도 지적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저서, 인터뷰 등에서 “체제 우위를 통한 흡수통일 외에 방법이 없다. 통일 교육도 필요 없다”고 통일관을 밝혔다. 일자리 문제에선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해야 경영 효율성이 높아져 결국 사회에 득이 될 것”이라거나 “청년 일자리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육체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일자리를 구분해 취업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에 “스스로 ‘진보와 보수의 중간 어디쯤 머문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그의 ‘보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3일 국민 1면
▲3일 국민 1면
▲3일 세계 4면
▲3일 세계 4면

 

한편 국민일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지인들에게 밝혔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의 익명의 측근은 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백넘버 2번을 달고 대선에 나가겠다고 밝혔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국민의힘에 합류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당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이 이르면 이달 중 평당원 자격으로 입당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며 “대규모 캠프 대신 소규모 참모 조직을 꾸리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대선준비팀을 수행·공보·정무·정책 등 핵심 기본만 구성하고, 윤 전 총장 처가 관련 의혹을 방어했던 법률 대리인들이 합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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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kg 파지더미 깔리기 전날 딸이 한 말 “사고 많이 나던데 아빠도 조심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6/03 09:37
  • 수정일
    2021/06/03 09:37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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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망사고 화물노동자의 21살 둘째 딸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요”

이승훈 기자 
발행2021-06-02 19:16:30 수정2021-06-02 19:16:30
 

“아빠와 전날 밤 저녁 먹고 같이 얘기를 나눴어요. 최근에 이런 (산재사망)사고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아빠도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 쌍용 씨앤비 공장 산재사망사고 화물노동자 故 장창우 씨의 둘째 딸 장 모(21) 씨

지난 5월 26일 쌍용 씨앤비(C&B) 공장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다가 쏟아지는 압축 파지더미에 깔려 숨진 화물노동자 故장창우 씨 둘째 딸의 말이다.

21살 둘째 딸 장 씨는 2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평소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고 전날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함께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 씨는 아버지가 딸의 걱정 어린 말에 “조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 창우 씨는 다음날 일터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창우 씨는 자기 업무도 아닌 위험 작업을 수행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일 서울 동작구 쌍용 씨앤비 본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에는 사망노동자의 두 딸과 처음 사고를 목격했던 동료 노동자가 참여했다.ⓒ민중의소리

파지 부스러기 날린다고 위험작업 지시
산재사망사고 28분 만에 사고현장 청소
사망노동자 둘째 딸의 절망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일 서울 동작구 쌍용 씨앤비 본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에는 사망노동자의 두 딸과 처음 사고를 목격했던 동료 노동자가 참여했다.

기자회견에서 둘째 딸은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사고현장을 훼손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나”라며 “그런 행동은 사람 목숨을 공장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한 취급 하며 생명을 멸시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크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당연히 지켜달라는 것만 지켜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라고 한탄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15분쯤 화물노동자 창우 씨는 쌍용 씨앤비 작업장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다가, 경사로 때문에 입구 쪽으로 쏠린 300~500kg의 압축 파지더미가 쏟아지면서 산재사고를 당했다. 창우 씨는 동료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하게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12시15분경 상태 악화로 숨졌다.

쌍용 씨앤비 측은 산재사고 위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1년여 전까지만 해도 “경사로로 내려가기 전에 컨테이너 문을 연 후 컨테이너 내부 짐을 내려놓는 곳까지 후진하여 상·하차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작업장에 파지 부스러기가 날린다고 미리 열지 말고 경사면을 모두 내려온 뒤 컨테이너 문을 열라고 작업 지시를 했다고 동료와 유족은 전했다.

산재사망사고 직후 작업이 재개되는 모습ⓒ화물연대본부 제공 CCTV 화면 갈무리

또 회사는 119가 출발하기 무섭게 사고현장을 훼손하고 작업을 재개했다. CCTV를 보면, 사고 당일 오전 9시40분경 119구급대가 창우 씨를 구급차량에 태운 뒤 이송을 위해 문을 닫았다. 그리고 2~3분 뒤인 9시43분경 지게차로 파지더미를 다시 나르기 시작했다. CCTV에는 사고 현장이 사고 발생 28분 만에 훼손되는 장면도 담겼다. 이날 오전 10시15분경 회사는 지게차로 창우 씨를 덮친 파지더미를 치웠다. 이어 오전 11시쯤 창우 씨가 몰았던 화물차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 현장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둘째 딸이 “사람의 목숨을 공장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하게 취급했다”고 분노한 이유다.

딸 장 씨는 사고 직후 28분 만에 사고현장이 훼손된 사실을 듣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생각했다고 한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무엇보다 사고 이후 회사가 보여준 작태에 분노한다”라며 “화물노동자가 공장 정규직이 아닌 특수고용직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이고 인간이다. 인간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회사는 오로지 비용만 (따지고) 있었다. 사람은 없었다. 화물노동자는 없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화물연대본부는 2일 서울 동작구 쌍용 씨앤비 본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위험작업 강제하는 업계의 관행
“자본의 탐욕이 부른 타살” 분통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인명 경시인지, 안전 불감증인지, 화물노동자들을 한낱 그림자 취급하는 것인지…”라며 똑같은 형태로 잇따르는 화물노동자들의 산재사망사고에 한탄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짐을 싣던 화물노동자가 스크루(Screw)에 깔려 숨졌고, 같은 해 11월 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도 혼자 석탄재를 차에 싣던 화물노동자가 추락해 5분가량 방치돼 있다가 숨졌다. 올해 3월 한국보랄석고보드에서도 석고보드를 하차하던 화물노동자가 적재물에 갈려 숨졌다.

이 사고 모두 화물노동자의 업무가 아닌 상·하차 작업을 업계가 관행처럼 강요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이 위원장은 “화물노동자 업무는 운송”이라며 “관련법에 따른 안전운영 고시를 보면, 업무 범위가 명확히 명시돼 있다. 안전사고가 날 수 있는 경우면 해당 업무를 화물노동자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도 회사는 이익을 위해 사고 위험이 큰 경사진 도크 안에서 위험한 노동을 강제했다”라며 “누가 보더라도 자본의 탐욕이 부른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관련해서, 국토교통부도 화물자동차 안전운임 고시 유권해석을 통해 “컨테이너 문을 개방하여 내부를 검사하거나 청소하는 작업이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있으면 화물노동자에게 해당 작업을 수행하게 하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날 오후 5시40분경 유가족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화물연대본부와 사 측은 합의안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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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은 전설의 언니들을 만났다..."길이 보여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① 동일방직 해고자 김용자 님을 만나

0. 연재 순서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① 동일방직 해고자 김용자 님을 만나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② 구로동맹파업투쟁의 김준희 님을 만나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③ 기륭전자분회의 유흥희 님을 만나 

*행사 참여 링크 http://bit.ly/21바람후원행사신청


 

▲김용자 동일방직 복직투쟁위원장. 2019년 톨게이트여성노동자들에게 후원금과 후원물품을 전달했다. ⓒ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김용자 동일방직 복직투쟁위원장을 처음 만난 건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싸움 때였다. 1978년에 있었던 철저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40년이 지난 2019년에도 반복되고 있기에, 이들을 응원하고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법원도 인정한 직접고용의무를 저버린 채 자회사를 거부한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을 집단해고 했는데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톨게이트여성노동자들도 상의탈의 투쟁, 고공농성, 노숙농성, 단식농성 등 하지 않은 게 없었다. 왜 40년이나 흘렸는데 달라진 게 없을까?
 

 

어용노조를 만들려는 남성노동자들에 맞서


 

70년대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인 동일방직 투쟁은 어땠는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는 성차별적인 여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으려 김용자 위원장을 만났다. 김위원장은 단호하고도 차분한 어조로, 43년째 복직투쟁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돌아갈 현장이 있기 때문에 투쟁도 길게 했어. 동일방직 사건 같은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들이잖아요. 똥물사건, 나체시위까지. 똥물을 끼얹고 그 사람들을 해고시키고. 피해자들을 내몬 거잖아. 우리도 억울하니까 포기할 수 없었지. 사실 한국노총, 국가권력, 회사 이 3자가 합심해서 우리를 탄압한 거잖아."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동일방직의 민주노조를 없애기 위해 한국노총만이 아니라 중앙정보부도 개입했다. 사찰의 흔적이 국정원과거사진상규명에서 드러났다. 78년 2월의 똥물투척사건도 당시 어용이던 한국노총과 회사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주요 행위자는 남성노동자들이었다. 그 이전의 투쟁인 1976년의 상의탈의 시위도 남성노동자들이 사측관리자와 함께 여성집행부를 불신임하려고 하자 이에 대항하면서 벌어진 투쟁이다.


 

왜 남성노동자들은 사측의 입장에 서서 폭력을 행사했던 것일까.


 

회사는 당시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소수의 남성노동자들에게 특권을 주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성차별적인 편견이 넘쳐났던 시대라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과 무시도 극에 달했다. 이른바 성별화된 노동통제다. 여성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남녀 성별 권력관계의 차이를 이용해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극대화한 것이다. 70년대 말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의 임금 절반인 5~6만원을 받았다.

 

"동일방직 직원 1300명 중에 남자들이 180명밖에 안됐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주도권을 잡아야한다고 생각한 거지. 임금도 굉장히 차이가 컸어. 그러니까 노동조합 여성지부장을 탄생시킨 거지, 도저히 안 되겠거든. 3교대인데 화장실 갈 시간이 밥 먹을 시간이 없었어." 

 

국무총리가 나오는 행사를 망치다


 

똥물투척 사건 이후 124명이 해고되었다. 해고된 후 갈 곳이 없었던 대다수 조합원은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산선)에서 생활한다. 산선 앞은 항상 사복형사들이 즐비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미행했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해고는 국가권력과의 공모로 이루어진 것이니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해고싸움은 국가기관에 대항한 싸움과 국가와 공모한 어용인 한국노총에 대항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충체육관에서 벌인 시위로 생방송을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1978년 3월 근로자의 날 행사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국무총리까지 참석하는 규모있는 행사였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행사장에 가서 "우린 똥물을 먹고 살수 없다"며 현수막을 펴고 구호를 외쳤다. 대부분 연행됐다. 나머지는 명동성당에 가서 단식농성을 했다. 나중에 종교 측의 중재로 일부는 현장에 복직했으나 나머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래 명동성당에서 합의할 때는 조건 없이 복직을 시켜준다고 했어. 그런데 그렇지 않은 거지. 노조도 인정하고 우리가 해고됐던 기간의 임금도 보장하라. 그 조건으로는 못 간다 했지. 124명 중 76명이 남은 거지. 들어간 사람들이 한 달도 안 돼 나왔어. 못 견디고 다 나왔어. 현장에서 일하는데 형광등 깨고 협박하고 그랬나 봐요. 어떻게 혼자 들어가서 제대로 일하겠어. 노동조합이 살아서 (현장에) 들어가도 힘든데, 어리석은 결정인 거죠. 혼자라도 들어가는 게 내가 살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에요. 동지들을 배신할 수 없어. 그건 내 인생의 패배야. "

 

새롭게 집행부를 꾸리고 싸움을 이어갔다. 한국노총도 점거하고 동일방직을 다룬 연극을 하면서 투쟁을 이어가기도 했다. 1978년 9월 동일방직 똥물투척사건을 다룬 연극을 하던 여성노동자들은 연극을 하던 중 현수막을 들고 종로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다. "노동3권 보장하라","유신헌법 철회하라" 경찰은 바로 진압에 나섰다.

 

"연극하고 다 잡혀갔어. 그때 정말 무서웠지. 그때 한 30명 이상은 구류됐어. 안기부, 치안부에 갔지. 매일 밤 11시만 되면 끌려가서 맞고 오고 그랬어. 가차 없었지." 

 

김위원장은 똥물 사건만이 아니라 해고 이후의 싸움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고 이후에 동일방직 노동자들하고 감옥에 간 사람이 60명이야. 구속사유는 폭력. 인천지역 사람들과 연대해서 인천 노동청을 점거 농성했지. 6명 다 구속됐지. 잡혀가면 정말 죽을 만큼 맞았어. 대우 이런 건 없었어. 구류 아니면 구속이지. 그때는 노동자들한테 특히 가혹했지." 

 

투쟁을 통해 얻은 존재감


 

가혹한 탄압을 받았으나 여성노동자의 정신, 사회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고 살았다. 나중에 들어간 현장에서도 열심히 하다 보니 일곱 번이나 해고당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동일방직투쟁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며,'동일방직대학교'라고 작명까지 했다.


 

"당시로 되돌아가도 그런 선택을 하냐고 누가 물어. 나는 당연히 그 선택을 할 거 같다고 해. 그렇게 싸움으로써 내 존재감을 알았고 나도 쓸모 있는 인간이란 걸 배웠거든. 해고 안 당했으면 이 자리에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이름도 없었어. 그때만 해도. 공순이 공돌이였거든. 근데 우리가 그걸 깬 거야. 나는 공순이가 아니다, 내 이름을 불러라. 내 이름이 있는데. 공장에서 나만 일하는 게 아닌데, 똑같은 인간이고, 귀천이 어디 있냐. 뭘 하든 똑같은 인격체로 바라봐야지. 우리가 그걸 주장한 거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나는 생각해. 그래서 그 삶이 고단했지만 그래도 다시 선택할 거 같아."
 

 

그러면서 그것조차도 동지들과 함께 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블랙리스트로 취업도 안 되고. 내일 먹을 쌀도 없었어, 너무 무서웠지, 칼 들고 죽는다고 옥상에 올라간 사람도 있었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동지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야."


 

그래서인지 43년째 하는 모임인데도, 만나면 서로 밤새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사회문제를 이야기 하느라, 고단했던 투쟁을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모자란다고 했다.


 

최근 있었던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투쟁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가 2천만 원으로 회유해서 몇 명이 투쟁을 접었고 나며지는 나중에 이겨서 현장으로 복귀한다고 했다.
 

 

"자신이 선택할 걸 잘못했다고 후회하면 내가 불행할 거 같아. 어렵게 가진 그 가치관을, 동지들과 이어온 그걸 포기하는 게 진짜 포기지. 그냥 잠시 생계를 위해 쉬는 거랑 다르지."


 

ⓒ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길이 보여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냐고 묻자 길을 알아서 싸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알바를 하더라도 마음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런 투쟁의 과정이 있으니까 단단해진 거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그런 거기도 했고. 앞에 길이 보여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너무너무 깜깜한데다 벼랑 끝이라 설 때가 없는 거야, 죽기 살기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길이 없잖아.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지. 노동자들도 권리를 얘기할 수 있고 싸우면 이길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지. 지금도 후배들한테 말해. 우리의 삶 속에 그 정신은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되는 거라고."

 

김위원장은 회사가 폐업했지만 복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작년에 인천 만석동에 있는 사업장은 문을 닫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복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일방직에는 계열사도 13개나 있으니까. 방직은 아니더라도 상징적으로라도 나는 복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작년 하반기에 민변하고 만났어. 마지막으로 우리가 회사 상대로 복직 소송을 할 수 있느냐. 팀이 꾸려졌어. 원직복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법리 해석을 했지. 시효도 있고 나이도 있고 공장도 없고 이런 부분에서 볼 때 어려울 거 같다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우리가 그냥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난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했어. 어렵겠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왜 복직을 하고 싶냐고 재차 물었더니 "억울하니까"라고 답한다.


 

"내가 당했던 것들이 너무 잘못됐기 때문에 그거를 바로잡기 위해서지. 원직복직은 반드시 해야 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됐지만 종이때기 하나로 명예회복이 되는 건 아니야, 완전한 명예회복은 현장 복직이야. 하루라도 복직돼야지." 
 

 

43년 만에 복직이라! 한 생애에 걸친 싸움을 하는 모습이 눈이 부시다. 자신이 세운 가치관을 지키며 동지들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맑고 그러나 무겁지만은 않다. 김위원장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싸운다고 했다. 얼마 전 갔던 개울물과 바위가 떠올랐다. 바위틈에 고인 물은 따뜻하지만 이끼가 피었고, 흐르는 저편 물은 깨끗하고 시원했다. 흐르는 물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역사에서 절대 지워지면 안 되겠구나! 묘한 사명감을 느끼며 인터뷰를 마쳤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21358339954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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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조국 사과’ 역사···‘검찰개혁’과 ‘마음의 빚’ 사이에 민심을 보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입력 : 2021.06.02 11:20 수정 : 2021.06.02 11:47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경향신문 자료사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조국 사태’를 두고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지위와 인맥으로 서로 인턴을 시켜주고, 품앗이 하듯 스펙 쌓기를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며 “민주당이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취임 한 달이 되는 날 나온 송 대표의 사과는 지난 2년간 여권의 사과가 ‘부족했다’는 당 안팎의 평가에서 출발한다. 사과를 하면서도 검찰수사가 과도했으며 불법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결과적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과의 진정성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식지 않자 재차 사과를 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 대한 민주당 차원의 첫 사과는 2019년 10월30일 나왔다. 당시 이해찬 대표는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직에서 사퇴하고 보름여 뒤 공식석상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보니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검찰개혁에 몰두했다고 반성하면서도 검찰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번 일은 검찰의 오만한 권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검찰개혁을 향한 국민 열망도 절감했다”면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내부 조직문화와 잘못된 관행을 철저히 개혁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내로남불’과 ‘불공정’ 등 청년들의 박탈감에 공감하면서도 ‘검찰개혁 필요성’을 상기시킨 이 대표 사과는 조국 사태에 대한 민주당 공식 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검찰개혁 주장은 결국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도했다는 ‘연민 의식’을 토대로 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완전한 사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 전 장관의 관점에서 조국 사태를 사과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불공정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녀 입시 ‘아빠 찬스’ 혜택은 도의적 문제이지 법을 어긴 건 아니지 않냐는 주장이 민주당 기류로 자리 잡아왔다. 이는 “전직 고위공직자로서 정무적·도의적 책임을 무제한으로 지겠다”며 법적 다툼을 이어온 조 전 장관 입장과 사실상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조 전 장관이 ‘우리 아이가 국민들이 누리지 못한 혜택을 누려 죄송하다’면서 합법적이라는 얘기를 했다”며 “이는 국민들에게 ‘계속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예전에 조국 사태가 문제가 됐을 때 지역에 가서 ‘이게 불법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며 “조 전 장관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청년들의 좌절감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도 수 차례 사과했으나 결과적으로 취지가 무색해졌다. 조 전 장관을 연민하는 발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이 사퇴한 직후 “결과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2019년 10월14일 수석·보좌관회의), “많은 국민들에게 많은 갈등을 주고 국민들을 분열시키게 만든 것에 대해 정말 송구스럽다”(2019년 11월19일 국민과의 대화)며 거듭 사과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 그것만으로도 저는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께 좀 호소하고 싶다. 이제는 조국 장관은 좀 놓아주고 유무죄는 재판 결과에 맡기는, 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끝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국민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보수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조국 옹호에 열을 올린다”(김성원 당시 자유한국당 대변인)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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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21120001&code=910100#csidx1a8aabfd0e9806d909f51be059a6c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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