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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5·18 당시 ‘최초 발포 장갑차’ 사진 공개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4/0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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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투입된 차륜형 장갑차 사진. [사진출처-국가정보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연행되는 학생 모습. [사진출처-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초 발포는 차륜형 장갑차에서 이뤄졌다’는 진술을 뒷받침하는 사진을 비롯해 관련 기록물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에 제공했다.

 

차륜형 장갑차는 일반 차량처럼 타이어가 달린 장갑차이다.  

 

국정원은 5일 보도자료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1,242쪽 분량의 기록물 22건과 사진 204장을 진상규명위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특히 국정원이 진상규명위에 제공한 자료 중에 5·18 항쟁 초기 시위학생 연행 사진 및 차륜형 장갑차 사진 등이 포함되었다. 

 

진상조사위는 “차륜형 장갑차 사진의 경우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초 발포는 광주고 앞길에서 바퀴가 고장 난 차륜형 장갑차에서 이루어졌다’, ‘그 장갑차를 제외하고 다른 계엄군 장갑차는 모두 궤도형이었다’라는 진술과 문헌 내용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라고 평가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2월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진상규명위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를 제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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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선 직후 대폭 개각...총리·경제부총리 다 바뀌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4/06 08:25
  • 수정일
    2021/04/06 08:2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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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조정식·박광온 의원
▲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조정식·박광온 의원

 

문재인 대통령이 4·7 재보궐선거 이후 단행할 것으로 보이는 개각 폭과 대상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4·7 재보궐 선거 이후 상당 폭의 개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부분 국정 쇄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대권 도전을 위해 사임할 것이 유력시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재보궐 선거 결과와 정 총리의 거취가 개각의 시발점이 되는 셈이다. 

 

정 총리는 4·7 재보선 후 이란을 방문해 지난해 1월 오만 인근 해역에서 나포된 ‘한국케미호’ 선장 석방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정 총리는 이 문제를 마무리한 뒤 총리직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  

 

차기 총리 지명과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실제 물러나는 시기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관측된다. 

 

또 김상조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전격 경질되면서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교체를 통해 새로운 경제팀을 개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일자로 재임 845일을 맞아 최장수 기재부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등을 두고 여당과 파열음을 빚으며 이미 두 차례 사의를 밝혔고 피로감도 높은 상태다. 

 

다만 총리 교체 시 직무대행을 부총리가 맡게 될 수도 있어 바로 교체하기보다는 시차를 두고 바뀔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시한부 유임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 재직 2년이 넘은 장수 장관들도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재직한 지 2년이 가까워진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교체될 경우 개각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가에선 후임 총리로는 김진표 의원, 김부겸 전 민주당 국회의원, 박지원 국정원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박광온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군으로는 은성수 금융위원장, 방문규 수출입은행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고형권 주OECD 대사 등이 꼽힌다. 

 

이미 사의 표명을 수용한 변창흠 국토부장관 후임에는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농림부장관에는 김종회 전 의원과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 산업부 장관에 정태호 의원과 김관영 전 의원이, 해수부 장관 후보에는 전재수 의원 등이 거론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 모두 지면, 전면적인 개각 카드가 나올 것”이라며 “차기 총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경제부총리나 경제장관들 인사도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경기신문 = 정영선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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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파트 지어 100억 수익 낸 윤석열 장모 ‘농지법 위반’ 투기 의혹

등록 :2021-04-05 04:59수정 :2021-04-05 07:10

 

장모, 양평 농지 불법매입 의혹
농민 아닌데 농지 900평·임야 수천평
2006년 부동산회사 세워 집중매입
가족회사에 헐값 ‘편법증여’ 논란도

양평군, 석연찮은 용도변경
장모 땅 산 뒤 LH사업 무산시키곤
이듬해 100% 녹지에 개발구역 승인
장모쪽, 승인 확신한듯 농지 추가매입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한 뒤 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한 뒤 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장모 최아무개(75)씨와 최씨의 자녀들이 경기 양평군에서 아파트 시행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최씨가 일대 농지 수백평을 사들인 사실이 확인됐다.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살 수 있도록 한 농지법을 위반한 전형적 투기 수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씨는 이 과정에서 공시지가가 최소 2배 이상 오른 땅을 매입가격으로 그대로 자녀들이 주주로 있던 가족회사에 팔아 편법증여 논란도 제기된다.
<한겨레> 취재 결과, 최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부동산개발회사 이에스아이엔디를 통해 2006년 12월6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공흥리 일대 임야 1만6550㎡를 매입하고, 같은달 자신의 명의로 공흥리 259번지 등 일대 농지 다섯 필지(2965㎡, 약 900평)도 사들였다. 이에스아이엔디는 최씨와 최씨의 자녀들이 지분을 100% 소유한 가족회사다. 영농법인이 아닌 부동산개발회사는 법률상 농지를 살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느슨하게 관리됐던 개인 명의 농지 취득을 택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최씨가 회사 설립 다음날부터 한달 동안 임야 수천평과 농지를 잇따라 사들인 것을 두고 전형적 투기 수법이라 지적한다. 농지법상 농지는 자경 목적이 아니면 소유할 수 없다. 한 농지법 전문 변호사는 “애초 농사가 아닌 부동산 개발 목적으로 농지를 산 것으로 보인다. 농지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1993년에도 농지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최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업 취소 직후인 2011년 8월 양평군에 위 토지들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고, 양평군은 이듬해인 2012년 11월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승인했다. 문제는 양평군의 승인 전에 최씨가 인근 농지 46㎡를 더 샀고, 이에스아이엔디 역시 회사 명의로 임야 2585㎡를 추가 매입했다는 점이다. 사업 승인을 확신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2012년 양평군 도시개발계획 고시를 보면, 사업 대상 토지는 국토해양부 소유의 도로를 제외하면 모두 최씨와 최씨가 대표였던 이에스아이엔디 소유였다. 양평군은 100% 자연녹지인 이곳 토지 2만2199㎡ 중 1만6654㎡를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해줬다. 이 과정에서 농지법 위반 등도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사업은 그대로 통과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형질 변경의 경우도 땅의 가치가 바뀌는 대단한 특혜인데 이런 식의 일처리는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농지법 위반 역시 관할 지자체가 누구 땅인지 모를 수 없는데 이를 따지지 않은 건 석연치 않다”고 짚었다.그 뒤 최씨는 2014년 6월 시공계약을 맺고 아파트 분양을 시작했다. 최씨와 이에스아이엔디는 이 시행 사업으로 800억원대 분양 매출과 100억원에 가까운 순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와 이에스아이엔디가 사들인 농지와 임야는 아파트 건설이 확정된 2014년 공시지가가 매입 당시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왼쪽은 해당 토지 인근의 2008년 모습이고, 오른쪽은 최근의 모습이다. 카카오맵 갈무리
최씨와 이에스아이엔디가 사들인 농지와 임야는 아파트 건설이 확정된 2014년 공시지가가 매입 당시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왼쪽은 해당 토지 인근의 2008년 모습이고, 오른쪽은 최근의 모습이다. 카카오맵 갈무리
시행 사업 과정에서 최씨의 편법증여 의혹도 제기된다. 최씨는 2014년 5월 분양을 앞두고 자신이 갖고 있던 땅을 2006년 매입가(5억원)로 이에스아이엔디에 팔았다. 공시지가만 2배 이상 오른 땅을 8년 전 가격에 넘긴 것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시세보다 싸게 땅을 매도해 회사 지분을 소유한 자녀들이 경제적 이득을 봤다면, 세금 탈루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씨는 최씨가 땅을 가족회사에 넘길 때까지는 이에스아이엔디 사내이사였다가 2014년 6월 아파트 시공계약 직후 이사직에서 사임하고 같은해 지분도 정리했다.한편 최씨는 2001년에도 토지개발이 예정된 충남 아산시 일대 땅을 경매로 약 30억원에 낙찰받아 3년 만에 토지보상금 등 약 132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한겨레>는 최씨와 윤 전 총장에게 최씨의 농지법 위반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9602.html?_fr=mt1#csidxcb0ab7efe1ae735a78aa5342deb69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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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생태탕 주인에 조선일보 “진술 바꿔” 한겨레 “아들이 확인”

높은 사전 투표율에 신중한 언론, 일부는 야권 우세 무게... ‘내로남불 금지’에 야당·보수언론 반발

 

 

4·7 재·보궐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2005년 6월 처가가 소유한 서울 내곡동 땅 측량에 참석했는지가 논란이 됐다. 당시 한 생태탕 식당 주인이 오 후보가 가게에 들렀다고 밝히면서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가 제시됐다. 그러나 생태탕 식당 주인이 증언에 앞서 진행했던 일요시사와 인터뷰가 뒤늦게 공개됐는데,  당시에는 오세훈 시장 방문 여부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김어준 방송에선 ‘오 기억난다’ 하더니 생태탕집 주인, 그 나흘전엔 ‘기억 없다’” 기사를 내고 “식당 주인 황모씨가 나흘 만에 진술을 바꿔 논란이 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야당은 ‘제2의 김대업 만들기냐’ ‘생떼탕 끓이느냐’고 반발했다”고 전했다. 김대업씨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장남이 돈을 주고 병역을 면제받았다며 허위 의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 5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 5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반면 한겨레는 “내곡동 생태탕집 아들 ‘오세훈 분명히 온 거 맞다” 기사를 냈다. 한겨레는 “식당 주인 아들 ㄱ씨가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오 후보가 분명히 우리 가게에 왔다’고 거듭 밝혔다”며 “그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의 정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생태탕집 사장 아들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내가 어머니를 설득해 오 후보가 생태탕을 먹으러 왔다는 사실을 언론에 밝혔는데 있는 사실을 말해도 마치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지금 상황에 화가 난다”고 했다. 

지난 3일 일요시사가 공개한 어머니 인터뷰 내용이 번복된 이유에 대해 생태탕 식당 사장 아들은 “어머니가 외부에서 전화를 받고 머리 아픈 일 신경 쓰면 피곤하니까 ‘그때는 오래전 일이라 모른다’ 답했다”며 “제가 오히려 어머니를 설득해 방송 인터뷰까지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뉴스공장’도 방송 인터뷰 나가기 전에 예전에 전화 통화했을 때는 ‘나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답했었다”고 했다. 

▲ 5일 조선일보 기사.
▲ 5일 조선일보 기사.

생태탕집 사장 아들은 5일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 “어머니께서는 내곡동에서 35년 정도 가게를 하셨기 때문에 외부에서 ‘하지 말라, 그냥 모른다고 해라’ 이렇게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며 이후 자신이 설득해 증언을 하게 된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김어준씨는 “저희도 어머님께 처음 연락드렸을 때 어머님이 인터뷰를 거절하셨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라고 했다.

▲ 5일 한겨레 기사.
▲ 5일 한겨레 기사.

서울 높은 사전 투표율, 샤이진보 결집? 정권심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사전 투표율이 21.9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치구별 투표율은 종로구가 24.44%로 가장 높았고 이어 동작구(23.62%), 송파구(23.37%) 순으로 나타났다. 

여야는 높은 사전투표율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다. 민주당은 “여권 지지층이 뭉친 것”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정권 심판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더불어민주당이 높은 사전투표율에 기대를 거는 건 사전투표율이 20%를 넘긴 최근 세 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모두 이겼던 경험 때문”이라며 “반면에 국민의힘은 ‘사전투표율 상승=민주당의 유리’란 공식이 깨졌다고 본다”고 전했다.

▲ 5일 동아일보 기사.
▲ 5일 동아일보 기사.

이와 관련 동아일보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동아일보는 “눈에 띄는 점은 서울시장 선거의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송파구가 투표율에서도 상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라며 송파구가 부동산 문제에 민감한 곳이지만 강남3구 중 유일하게 민주당 의원을 21대 총선에서 배출한 곳이라 유불리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코로나19 때문에 선거 당일을 피해 투표한 노년층도 적지 않았다”며 “선거의 높은 관심도와 사전투표제 안착이라는 의미 이상은 과잉 해석”이라고 밝히면서 “(야권 우세인)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그 근거로 “금천구 등 민주당 강세 지역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전했다.

부산도 높은 사전투표율

부산지역 역시 사전투표율이 역대 재보선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율은 18.65%를 기록했다. 

부산일보는 ‘우열을 판단하기 힘들다’고 봤고, 국제신문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야권 강세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다.

부산일보는 “이번 보선에선 부산 중서구와 중동부 권역의 사전투표율이 20.1%, 19.57%로 부산 전체 투표율보다 높았다”며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서부는 민주당 김영춘, 중동부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각각 우세를 보인 곳이라 권역별 사전투표율 수치로도 어느 한쪽에 치우쳤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 5일 국제신문 기사.
▲ 5일 국제신문 기사.

국제신문은 “부산의 지역별 투표율을 보면 일단 보수 지지세가 강한 원도심과 중앙대로 벨트, 동부산에서 비교적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며 “반면 북구, 강서구, 사하구, 사상구 등 상대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인 서부산은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제신문은 “여야의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내로남불 금지’에 보수정당·언론 반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7 재·보궐선거 투표를 독려하는 현수막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자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선관위는 “특정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하지만 선관위는 작년 총선에서 ‘100년 친일청산 투표로 심판하자’ 문구를 허용했다가 본투표 이틀 전에애 다시 불허했었다”며 “반대로 당시 야당 측이 쓰려던 민생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라는 문구는 현 정권을 연상하게 한다면서 하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내고 “선관위가 편향성 시비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한 시민단체가 ‘보궐선거 왜 하죠?’ 캠페인을 하려 하자 선관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제지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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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개벽예감 438] 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정치학 박사) | 기사입력 2021/04/0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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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2. 생사운명 가를 특대형 산포탄과 함화공작

3. 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4.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은 허점투성이

 

 

1.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2020년 12월 3일 미국 해군연구소가 주최한 화상토론회에서 마크 밀리(Mark A. Milley)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조선과 (대치한) 상황에서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리 미국군 가족들이 피해를 많이 입을 것이다. 이것은 문제다. 하지만 미국군 전투원들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에 속하므로 문제로 되지 않는다.”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은 경기도 평택기지에 거주하는 미국군 가족들이 전시에 피해를 많이 입을 것으로 우려했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이 평택기지에 집중될 것임을 예상한 발언이다. 한미련합사령부가 서울 용산기지에서 평택기지로 이전되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은 한미련합군 지하전쟁지휘소가 있는 평택기지를 제1차 공격대상으로 지정해놓았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평택기지를 선제타격으로,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평택기지에는 얼마나 많은 전투원과 비전투원들이 몰려있을까? 그 인원수는 다음과 같다.   

 

미국군 지휘관 및 전투원 - 14,500명

미국군 가족 - 11,000명

미국군 군무원 - 5,400명

한국군 전투원 - 800명

한국군 지원병력(KATUSA) - 1,600명

한국인 근로자 - 1,100명

총 34,400명 

 

위에 인용한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평택기지에 배치된 전투원들이 전시에 위험에 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 기지에 거주하는 비전투원들까지 위험에 빠지질 것이 우려된다는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은, 한미련합군에게 평택기지 방어능력이 없음을 자인한 것이다. 미국군은 페이트리엇(Patriot)-3 지대공미사일을 장비한 제35방공포려단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였지만, 그 지대공미사일의 전과를 보면, 미국 국방부가 실망할 만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수리아내전에서 이스라엘군이 그 지대공미사일을 사용했는데, 전투기 2대와 무인항공기 5대를 격추했고, 무인항공기 2대는 격추하지 못했다. 무인항공기 격추에 실패한 초라한 요격능력이라면,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을 요격할 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더욱이 페이트리엇-3 지대공미사일은 컴퓨터로 탄도비행궤적을 계산하여 요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탄도비행이 아니라 저고도활공도약형 변칙비행을 하는 조선인민군의 신형 전술유도탄과 신형 대구경 조종방사포를 요격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전시에 한미련합군은 평택기지를 비롯한 동두천기지, 오산공군기지, 군산공군기지, 대구기지, 왜관기지 등 모든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조선인민군의 통합화력타격으로부터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화력타격은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기동포, 박격포, 순항미사일을 동시다발로, 파상형으로, 일제사격으로 수 천 발씩 연속발사하여 적진을 무자비하게 짓뭉갠다는 뜻이다. 

 

2) 평택기지에 배치된 전투원들이 전시에 위험에 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 기지에 있는 비전투원들까지 위험에 빠질 것이 우려된다는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은, 평택기지의 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전시에 안전지대로 긴급히 대피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자인한 것이다. 미국군은 ‘작전계획 5077’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비전투원소개작전계획에 따라 주한미국인 비전투원들을 긴급히 대피시키는 훈련을 진행해왔다. 미국군은 오산공군기지에 집결시킨 비전투원들을 대형 수송기를 태워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일 년에 한 차례씩 진행하는데, 참여인원이 극소수인 것을 보면, 보여주기식 훈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각종 작전헬기들이 늘어서 있는 평택기지 헬기리착륙장을 촬영한 것이다. 평택기지는 미국군이 운용하는 수많은 해외기지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크고,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이 가장 현대화된 군사기지다. 평택기지의 둘레는18.5km이고, 면적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맞먹는다. 한미련합군 사령부와 지하전쟁지휘소가 평택기지에 있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은 평택기지를 제1차 공격대상으로 지정해놓고, 평택기지를 공격하는 화력타격전, 포위전, 습격전, 점령전을 계속 연습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평택기지의 군사시설과 군사장비는 조선인민군의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을 받고 초토화될 것이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그 기지를 단숨에 점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생사운명 가를 특대형 산포탄과 함화공작

 

미국군 지휘부가 우려해야 할 심각한 문제는, 전시에 긴급대피통보를 받은 주한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오산공군기지에 집결시키는 것이야말로 자멸행위로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오산공군기지가 조선인민군의 제1차 공격대상목록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은 개전과 동시에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을 오산공군기지에 집중시켜 완전히 초토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좀 더 부연하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오산공군기지로 발사할 신형 전술유도탄에는 중량이 2.5t이나 되는 육중한 탄두가 장착되는데, 크기가 정구공만한 자탄(submunition) 1,000발이 그 탄두 안에 들어있다. 이런 탄두를 특대형 산포탄(cluster bomb)이라고 한다. 특대형 산포탄은 1발만 발사해도, 축구장 150개를 합친 면적에 달하는 직경 1km의 넓은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특대형 산포탄을 6발만 쏘면, 오산공군기지는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 있다. 6.25전쟁, 윁남전쟁, 이라크전쟁, 꼬쏘보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피폭사태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군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으로 대량살상만행을 저질렀지만, 조선인민군은 무차별 화력타격으로 대량살상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이 집결되어 있는 곳에 강력한 화력타격을 퍼부으면 비전투원들에게 뜻하지 않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조선인민군은 전투원만 선별적으로 살상하는 고도의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화력타격수단을 개발, 배치했다. 원래 방사포는 고도의 정밀타격기능을 지닐 필요가 없는 화력타격수단이지만, 조선국방과학원은 고심 어린 탐구 끝에 고도의 정밀타격기능을 지닌 여러 종의 대구경 조종방사포를 개발했다. 그것은 강력한 화력타격을 퍼부어도 비전투원들에게는 인명피해를 주지 않는 인도주의적 작전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적 전투원이라고 해서 마구 살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진을 전격적으로 포위하고, 군사장비를 파괴하는 것으로 적 전투원들 속에서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하여, 그들이 저항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함화공작을 수행하고, 투항자들을 생포하여 무장을 해제하는 특이한 전법을 쓴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에는 전 세계 어느 나라 군대도 갖지 못한 함화공작대가 편성되어 있는 것이다. 전투 중에 “총 한 방 쏘지 않고 많은 적을 투항시킬 수 있는” 함화공작의 중요성과 그 실행방법에 관한 서술은 2012년에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발행했고, <월간조선> 2013년 1월호의 보도를 통해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진 ‘적군와해사업 학습제강’이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비전투원들에게 인명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별적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화력타격수단들을 사용할 것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평택기지에 있는 미국군 가족들이 막심한 인명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다. 만일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고도의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순항미사일을 동시다발로 발사하여 평택기지에 있는 군사시설과 군사장비들만 선별적으로, 절제수술식으로 적출, 파괴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군 가족 11,000명이 거주지역 아파트 안으로 긴급히 대피하면 인명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엄청난 폭발충격이 아파트 건물을 통째로 뒤흔들어 유리창이 모두 박살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비책은 세워야 할 것이다. 

 

미국군이 정말로 우려해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는, 전시에 발생하지도 않을 주한미국인 비전투원들의 인명피해가 아니라, 전시에 엄청나게 발생할 주한미국군 전투원들의 인명피해다. 이런 예상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가지고 설명된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으로 평택기지의 군사시설과 군사장비를 단숨에 날려버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벼락전법이다. 벼락전법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이 장거리전략갱도를 통해 한국군 방어선 후방지대에 불시에 출현하여 평택기지를 향해 노도처럼 진격할 것이다. 그들은 평택기지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습격전을 벌여 그 기지를 순식간에 점령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폭풍전법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한 함화공작대는 영어로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합화력타격의 ‘지옥불’ 속에서 살아남은 주한미국군 패잔병들을 상대로 함화공작을 할 수 없다. 두말할 나위 없이, 조선인민군의 함화공작은 한국군에게만 통하는 것이다. 평택기지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주한미국군 패잔병들은 함화공작마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항복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지만, 상황을 오판하고 저항할 수도 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저항하는 패잔병보다 투항하는 패잔병이 더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군은 정신무장과는 거리가 먼 군대이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4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전쟁 중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외상후 장애스트레스(PTSD)를 앓는 미국인 제대군인들이 64만8,992명이라고 한다. 이런 놀라운 현실은 미국군이야말로 정신무장을 모르는 오합지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전시에 대피하지 못하고 군사시설 안에 남아있거나, 군사장비 곁에서 우물쭈물하는 주한미국군 전투원들은 조선인민군의 엄청난 통합화력타격을 받고 전멸할 것으로 우려된다. 주한미국군 28,500명 중에서 특히 경기도 동두천기지에 전진배치된 미국 육군 제2보병사단 제210화력려단 전투원 3,000명은 가장 먼저 전멸할 것이다. 이 전투원들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엄청난 선제타격을 가장 먼저 받게 될 것이므로, 미처 반격에 나설 틈도 없이 현재 위치에서 전멸할 것으로 보인다. 

 

개전시각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조종방사포를 숨 쉴 틈도 없이 연속발사하는 엄청난 선제타격을 퍼부을 것인데, 저고도활공도약형 변칙비행으로 날아오는 조종방사탄을 요격할 방어수단이 한미련합군에게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이 열압력탄(thermobaric bomb)을 장착한 대구경 조종방사탄을 일제사격(salvo)으로 연속발사하면, 제210화력려단에 배치된 다련장로켓포(MLRS)와 지대지미사일(ATACMC)은 천지를 뒤덮은 ‘지옥불’ 속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이다. 이런 소름 끼치는 광경은 전쟁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2013년 4월 7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WND>와 단독대담을 진행한 익명의 미국군 정보장교가 예상한 바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조선인민군은 사전에 입력된 타격대상들을 향해 방사포와 미사일을 일제사격으로 연속발사할 것이므로 전방에 배치된 주한미국군은 전멸할 것이라고 한다.    

 

제210화력려단만 전멸하는 게 아니다. 그 화력려단이 속해 있는 주한미국군 제2보병사단 전체가 전멸할 것이다. 제2보병사단의 전투병력은 동두천기지에 주둔하고, 사단지휘부는 평택기지에 있는데, 그 두 군사기지는 조선인민군이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을 퍼부을 제1차 타격대상들이다. 그런데 주한미국군 제2보병사단에게는 조선인민군의 통합화력타격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고, 대피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제2보병사단은 1950년 8월 말 낙동강전선에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와 격전을 벌였었는데, 또 다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와 맞붙으면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야간열병식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전술유도탄과 발사대차다. 무한궤도차량위에 절반이 갈라지는 덮개가 설치되었고, 그 안에 전술유도탄 2발이 탑재되었다. 무한궤도차량은 포장도로가 아닌 험한 산길에서 운행하는 이동수단이며, 전술유도탄은 저고도활공도약형 변칙비행으로 미사일방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첨단미사일이다.육중한 탄두에는 특대형 산포탄이나 열압력탄이 장착된다. 조선인민군의 전술유도탄은 선제타격에 최적화된 위력적인 무기다.  

 

 

3. 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동서고금 전쟁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전쟁의 운명은 선제타격에서 결정된다. 선제타격을 먼저 시작하였는데도 패전한 사례도 있지만, 교전상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화력으로 선제타격을 개시하는 쪽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전상대를 압도할 강력한 선제타격이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된다. 

 

이런 작전원리를 이해하면, 압도적인 선제타격을 실행하기 위해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순항미사일, 자행포, 견인포, 기동포, 박격포를 타격거리에 맞춰 일곱 겹으로, 전선에 골고루 집중배치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작전방안을 짐작할 수 있다. 개전시각에 그들은 압도적인 선제타격으로 한미련합군의 지하전쟁지휘소, 방공기지, 공군기지부터 먼저 파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11월 5일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은 국정감사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이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100km에 이르는 전방지대, 다시 말해서 황해북도 사리원과 강원도 통천을 동서로 잇는 전방지대에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 8,000문을 전진배치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것은 근 10년 전에 수집된 낡은 정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조선인민군은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기동포, 지대지 순항미사일을 아직 갖지 못했었다. 지난 10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기존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강하며, 타격정밀도가 높고, 강력한 고체연료엔진을 장착한 신형 전술유도탄, 신형 대구경 방사포, 신형 대구경 기동포, 신형 지대지 순항미사일을 보유했고, 각종 포들도 더 많이 생산하여 배치했으므로, 그 수량을 전부 합하면 10,000문이 넘는다. 가히 압도적인 선제타격력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선제타격시간은 개전시각으로부터 1시간을 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의 운명은 바로 그 1시간 안에 결정되는 것이다. 

 

2017년 8월 15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에 실린 보도사진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군사분계선 이남 전역을 남북으로 4등분한 통합화력타격권을 설정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설정한 4등분 통합화력타격권 안에 있는 타격대상은 몇 개인가? 2017년 6월 21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3월 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간부들이 참석한 내부회의에서 남측 전역에 10,000개의 타격대상을 지정해놓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10,000개의 타격대상을 향해 10,000문의 화력타격수단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미련합군이 북측 전역에 지정해놓은 타격대상은 700개밖에 되지 않는다. 2016년 3월 7일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미련합군은 북침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에 합동요격지점(Joint Designated Point of Impact) 700개를 새로 지정하고 검증을 마쳤다고 한다.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을 제압하기 위한 선제타격력을 강화해왔다. 그것이 ‘킬체인(Kill Chain)’이라는 작전명칭의 선제타격체계다.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가 나타나면, 먼저 선제타격을 개시하려는 것이다. 이 선제타격체계에 따르면,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를 포착하면, 30분 안에 대상을 타격한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1일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표적탐지에 1분, 좌표식별에 1분, 무기선정 및 사격결정에 3분이 걸리므로, 30분 안에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군은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신형 자주포를 개발했고, 현무 계렬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개발했으며, 2020년에는 사거리가 800km이며, 탄두중량이 2t인 현무-4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이 통합화력타격훈련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갸름한 형태의 불줄기는 방사포탄이 뿜어내는 것이고, 뭉게구름 형태의 발사화염은 대구경 장거리포가 뿜어내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순항미사일은 물론 자행포, 방사포, 견인포, 기동포, 박격포를 타격거리에 맞춰 동시다발로, 파상형으로, 일제사격으로 수 천 발씩 연속발사하는 통합화력타격을 개시할 것이다. 이것이 조선인민군이준비한 선제타격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미련합군에게는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징후을 사전에 탐지할 능력도 없고,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을 방어할 능력도 없다. 한미련합군은 화력타격에서 절대적 열세다.  

 

 

4.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은 허점투성이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한국군의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에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1) 한국군은 선제타격계획에 필요한 탄약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2009년 9월에 진행된 한미년례안보협의회 군수협력회의에서 한국군은 미국군에게 탄약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군은 한국에서 자체로 탄약을 생산하던지, 아니면 미국산 탄약을 사가던지 하라고 응답하면서 탄약지원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다급해진 한국군은 자기들과 미국군이 합의한 전시지원절차에 탄약지원문제가 들어있음을 상기시키면서, 탄약지원문제를 다시 거론했으나, 미국군은 그런 절차가 없다고 잡아떼면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5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최소 30일치, 최대 60일치의 예비탄약과 예비미사일을 확보해야 하는데, 전술유도탄은 3~4일이면 바닥나고, 자주포 포탄은 7일이면 바닥나고, 해군 함선의 120mm 함포에서 발사하는 포탄과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잠대함미사일은 각각 7일이면 바닥나고, 대잠수함어뢰인 홍상어는 3~4일이면 바닥나고,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공대공미사일은 7일도 되지 않아 바닥나고, 공대지미사일은 9~15일이면 바닥난다는 것이다. 전시에 교전쌍방은 상대의 탄약창고와 미사일보관고부터 파괴할 것이므로, 탄약과 미사일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사활적인 문제인데, 한국군은 탄약과 미사일이 부족해서 전쟁을 하지 못할 판이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전방지대에 배치한 각종 화력타격수단 10,000문을 연속발사할 포탄과 미사일을 충분히 준비해두었다. 1997년 9월 군사분계선을 넘어 탈북월남한 조선인민군 포병중대 군관(소좌)의 경험담이 <조선일보> 2010년 4월 12일 부에 실렸는데, 그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이 군사복무했던 포병중대 포탄저장고에 포탄 3,000발이 쌓여있었고, 예비포탄저장고에 포탄 1,000발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대에서 대대, 연대, 사단, 군단으로 올라가면서 포탄저장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하면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남측 전역을 10cm의 두께로 뒤덮을 엄청난 양의 폭약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2) 한국군은 탄약과 미사일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탄도미사일을 운용할 전문병도 부족하다. 2021년 1월 14일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2016년에 미사일사령부를 창설했고, 각종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지만, 그 미사일을 운용할 부사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숙련되지 않은 일반병사들이 미사일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사일오발사고가 우려된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 전략군 소속 미사일전문병은 대폭 증원되었다. 한국 국방부가 2021년 2월 2일에 펴낸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 미사일려단이 9개에서 13개로 증편되었다고 한다. 여러 종의 신형 미사일이 개발되고 배치되었으므로, 미사일려단을 증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3개 미사일려단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은 2,600발로 추산되고, 배속병력은 26,000명으로 추산된다. 

 

3) 한국군이 보유한 현무 계렬 탄도미사일은 조선인민군의 번개-6 지대공미사일로 요격당할 수 있다. 한국군 지대공미사일은 조선인민군이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탄과 신형 조종방사포를 요격하지 못하지만,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은 한국군이 발사한 현무 계렬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번개-6 지대공미사일은 탐지거리가 600km이고, 사거리가 400km며, 탄도미사일 요격고도는 60km다. 번개-6은 스텔스전투기와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위력적인 반항공무기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사거리가 7km이고, 사고도가 3km인 자행고사로케트로 한국군의 현무 계렬 순항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4) 한국군의 ‘킬체인’ 선제타격체계에서 드러나는 가장 심각한 결함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를 사전에 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항공정찰능력이 미약해서 미국군 정찰위성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미국군 정찰위성도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찰위성의 실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정찰위성을 띄워놓고 조선 전역을 24시간 뚫어지게 감시하는 미국군이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 소속 미사일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가 지하갱도에서 밖으로 나와 사격점까지 이동하는 장면을 우주공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비근한 실례를 들면, 미국군 정찰위성은 조선국방과학원이 2021년 3월 25일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신형 전술유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조선국방과학원은 이전에도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여 수없이 시험발사했지만, 미국군 정찰위성에 발사징후를 노출한 적은 없다. 미국이 몇 차례 포착했다는 발사징후라는 것은, 신형 미사일을 탑재한 발사대차가 발사점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아니라,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가 시험발사를 진행하기로 예정된 발사점에 미리 출동하여 사전준비작업을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실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위성감시망이 지상에 있는 10cm 크기의 작은 물체까지 식별할 정도로 엄청난 감시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 소속 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의 이동장면을 우주공간에서 내려다보는 줄로 상상한다. 하지만 미국 정찰위성은 지상에서 물체가 이동하는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고, 지상에 고정된 물체만 정지영상으로 탐지할 수 있다. 미국군 정찰위성의 실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군 정찰위성 1기가 조선 상공을 지나가면서 촬영하는 기회는 하루에 한 차례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을 통과할 때 촬영시간은 약 3분으로 제한되고, 촬영범위도 10~50km로 제한된다. 미국은 약 50기의 정찰위성을 띄워놓고 전 세계를 감시하는데, 50기의 정찰위성을 순차적으로 조선 감시에 전부 동원해도 하루에 약 2시간 30분밖에 촬영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은 레이저측정기를 사용하여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과 고도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피해 미사일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를 이동시키면 사격징후를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 소속 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가 지하갱도에서 밖으로 나와 발사점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포착하고, 사격징후를 탐지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지구위성궤도를 날아가는 장면이다. 태양빛전지판을 날개처럼 펼쳤고, 접시처럼 생긴 위성안테나가 얹혀져 있다. 사진에는보이지 않지만, 정찰위성이 지구표면을 내려다보는 정찰위성 하단부에는 고성능 전자광학촬영기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정찰위성의 실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에서 지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샅샅이, 24시간 감시하는줄로 상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군 정찰위성은 하루에 한 번 조선 상공을 지나면서 약 3분 동안 촬영할 수 있고, 촬영범위도 10~15km로 제한된다. 그래서 지상에 고정된 물체는 촬영할 수 있지만, 지상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이동장면은 촬영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나타나는 시간과 촬영각도를 피하여 움직이므로,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는다.  

 

한미련합군이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징후를 탐지하는 또 다른 방도는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선통신량이 급증하는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무선통신량이 평소보다 급증하는 특이한 현상은 선제타격징후로 된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동안 무선통신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무선통신수단을 사용하여 한미련합군에게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면, 한미련합군으로부터 선제타격을 받을 것이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무선통신량은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또한 <신동아> 2020년 1월호에 실린 분석기사에 따르면, 현재 조선인민군이 사용하는 신형 무선통신기는 한미련합군의 감청체계로는 통신내용을 해독할 수 없는 고성능 무선통신기라고 한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제3자가 감청하지 못하는 최첨단 무선량자암호통신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인민군은 평시에도 유선통신망을 사용하여 통신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전시상태를 선포하면, 최고 수준의 통신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유선통신망마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군사통신망을 완전히 중단하면, 최고사령부의 작전명령이 각급 전투부대 지휘부에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2015년 8월 21일 <조선일보> 보도에서 풀린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8월 위기사태’로 조선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던 2015년 8월 2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파견한 연락군관과 작전지휘관이 각급 전투부대들에 내려가 비상작전회의를 소집하여 최고사령관의 작전명령을 직접 하달하고, 작전통제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한미련합군은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징후를 정찰위성으로도 포착하지 못하고, 무선통신감청으로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불시선제타격으로 한미련합군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로, 한미련합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미련합군이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동안 무선통신량이 급증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화력타격수단들이 공격에 유리한 지대로 이동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시에 북진공격에 앞장선다는 한국군 제7기동군단은 전차 800대를 보유했고,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자주포, 탄약보급장갑차도 엄청나게 많이 보유했는데, 그처럼 방대한 기갑무력이 작전을 개시하려면, 엄청난 양의 유류를 보급받아야 하므로 유류보급차량 100여 대가 유류저장소를 들락날락하면서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조선인민군 정찰부대가 그처럼 뚜렷한 징후를 포착하지 못할 수 없다. 2021년 3월 15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대남담화에서 한미련합군이 “우리의 눈을 피해가며 2018년에는 110여차, 2019년에는 190여차, 2020년에는 170여차의 크고 작은 전쟁연습을 도적고양이처럼 벌려놓았다”고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 정찰부대가 한미련합군이 은밀히 진행한 대대급 야외기동훈련을 면밀히 감시하였음을 말해준다. 대대급 규모의 야외기동훈련을 감시할 능력을 가진 조선인민군 정찰부대가 군단급에서 벌어지는 방대한 규모의 선제타격준비상황을 포착하지 못할 리 없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분석기사에 따르면, 전방지대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2014년 이후 보병부대의 경우에는 여단별로, 그리고 땅크부대의 경우에는 대대별로 자체 유류저장소를 각자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최고사령부가 파견한 연락군관과 작전지휘관으로부터 공격명령을 받으면, 다른 곳으로 기동하지 않고 현재 위치에서 유류보급을 끝내고 즉각 전투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조선인민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선제타격을 할 수 있지만, 한미련합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한미련합군이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면, 그 징후를 포착한 조선인민군은 곧바로 선제타격을 가할 것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을 지내면서 북침작전계획수립에 직접 참여했던 장-마크 조나스(Jan-Marc Jounas)는 2017년 11월 7일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에 보낸 자신의 서한에서 한미련합군이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어떤 소규모 군사행동을 하더라도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이제 명백한 결론에 이르렀다. 조선인민군은 화력타격과 정신무장에서, 전법과 작전계획에서, 탄약비축과 훈련수준에서 한국군을 압도하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가 집필했고, 2020년 9월 15일에 발간된 ‘격노(Rage)’라는 제목의 책에 서술된 일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8월 5일 당시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보내 친서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고 한다.

 

“며칠 전 남조선의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를 도발과 위협으로 간주하고, 만약 우리가 도발과 위협을 계속하면 그들은 우리 군대를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에도, 미래에도 남조선군은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다. 당신이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 없는 강한 군대를 갖고 있고, 남조선군은 우리 군대의 상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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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누명에 떠돌다 귀천 후에야 고향땅 밟은 세계적 작곡가

[손호철의 발자국] 13. 경남 통영 : 동백림 사건으로 '상처받은 용', 윤이상 이곳에 잠들다

하지만 아름다운 다도해와 세월을 비껴간 것 같은 아담한 도심, 그리고 한국 최대의 굴 생산지답게 싱싱한 굴 요리로부터 충무김밥, 중앙시장의 시락국 등 풍부한 먹거리와 좋은 지인(고 노회찬 의원의 고등학교 동기이며 이곳에서 '건강한 굴양식'을 하는 시인 장석 씨) 때문에 자주 찾는다.

 

▲ '한국의 나폴리' 통영의 야경 ⓒ손호철

이 같은 매력과는 별개로, 통영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특히 2018년부터 찾게 된 미륵도 관광특구의 언덕에 서면 그러하다. 이 언덕에 서있는 멋진 현대식 건물 뒤쪽으로 가면 커다란 천연석으로 만든 묘비석이 통영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돌에 새겨진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맑다'는 뜻의 글 밑에는 '윤이상 1917~1995'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통영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이지만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해외간첩단사건'인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의 희생자였던 윤이상의 고향이다. 따라서 이곳에 서면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에 대한 자부심과 동백림 사건이 웅변적으로 보여준 분단의 슬픔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2000년대 들어 그가 우리 사회에서 '복권'이 되어 그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통영국제음악당을 지은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8년에는 독일에 있던 그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 윤이상 묘가 있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내려다본 통영의 모습 ⓒ손호철
▲ 통영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윤이상의 무덤 ⓒ손호철

충남 예산에는 비구니들의 절인 수덕사가 있다. 그 앞에는 초가지붕을 한, 풍치 있는 수덕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수덕여관 앞에는 땅에 누운 커다란 바위에 글자를 닮은 특이한 암각들이 눈에 띈다. 윤이상과 함께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파리에서 활동하던 화가 이응로 화백(1904~1989)의 흔적들이다. 일본에서 생활했던 그는 해방 후 귀국해 수덕여관을 인수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바위에 새겨놓은 그림들도 그의 작품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두 명의 세계적인 예술가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간첩의 누명'을 쓰고만 것이다.


 

▲ 충남 수덕사 앞 바위에 새겨진 이응로 화백의 글씨. 그 역시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치렀다. ⓒ손호철

"나는 공산당이 아니다." "아이들아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다." 1967년 6월 말. 윤이상을 심문하던 조사관이 조사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서 보니, 벽에는 피로 이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윤이상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조사관이 잠든 사이 윤이상은 책상에 있던 사각형 재떨이로 머리를 쳐 자해를 하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 쓴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7월 3일부터 17일까지 무려 7차례에 걸쳐 유럽 거주 지식인들과 유럽에 유학한 바 있는 국내 교수들, 이들 교수들과 연결된 학생운동 지도자 등 203명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벌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전복을 꾀했다는 동백림 사건('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적화공작단사건')을 발표했다. 203명에는 윤이상, 이응로, 윤이상 씨 부인 이수자 등 해외 거주 교민 30명과 황성모 서울대 교수, 김중태, 현승일 등 서울대 학생운동 지도자들 이외에 시인 천상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독일에서 공부한 서울대 문리대 교수이자 한일회담 반대투쟁 등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의 지도교수였던 황성모 교수를 통해 북한이 학생운동을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몰아갔다. 대한민국은 충격에 빠졌고 총선 부정선거 규탄투쟁을 벌이던 학생운동은 풍비박산 났다. 중앙정보부가 공작원들을 파견해 독일과 프랑스에 윤이상, 이응로 등을 사실상 불법적으로 납치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제 여론도 들끓었다.

 

▲ 윤이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동백림 사건 당시의 윤이상 모습 ⓒ손호철

윤이상과 이응로는 공통점이 많다. 서양 예술에 각각 동양적 음악과 동양화 기법을 도입해 주목을 받은 것이 그러하고, 둘 다 1950년대 후반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윤이상이 통영의 죽마고우로 월북한 음악가 친구의 소식을, 이응로는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들 소식을 물어보려 동백림(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을 방문한 것도 비슷하다.

 

서베를린에 살고 있던 윤이상은 이후 북한대사관을 10여 차례 방문했고 여비 등의 명목으로 금품도 받았다. 자신의 작품 테마로 구상하고 있던 고구려 강서고분도 보고 북한의 실상을 보고 싶어 1963년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윤이상은 재판과정에서 "북한의 노동당 가입 권유는 일언지하에 거부했으며 북한과 접촉한 것은 결코 사상적으로 동조해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부인 이수자는 윤이상이 돈을 받은 의리 때문에 북한대사관에서 전화가 오면 몸서리를 치면서도 찾아갔고, 다녀와서는 "내가 백림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괴로워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윤이상 등 동백림 사건 관련자들이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대접을 받고 금품도 받았으며 일부는 북한은 방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지시를 받아 간첩 행위를 했다는 정부의 발표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박정희 체제하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간첩죄에 대해서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고, 다만 '적국'인 북한 방문 등에 관해서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이에 화가 난 박정희는 유신 후 판사 재임명제를 도입해 사법부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변질시켰다).


 

윤이상, 이응로는 국제예술가들의 서명운동과 독일, 프랑스 등의 압력으로 석방되어 독일과 프랑스로 돌아갔다. 황성모 교수와 김중태 등 학생운동 지도자들 같은 민비연 관련자들도 가벼운 형을 받는데 그쳤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이들 유럽의 지식인들은 국내와 달리 국가보안법 등을 잘 몰랐고 북한에 대해 강한 적대감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었고, 외화송금 제한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유학생 등은 북한의 호의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많은 유학생 등이 북한에 대해 알고 싶거나 한식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도 동백림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다.


 

문제는 독일 유학 시절 북한대사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 임석진 교수가 자신의 대북접촉 전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보기관에 자수를 하면서 불거졌다. 이를 보고받은 박정희는 임 교수를 직접 청와대로 불러 설명을 듣고 공작팀을 만들어 유럽 등에서 관련자들을 잡아오도록 지시한 것이다.


 

당시 반공에 목을 매고 있던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이들을 좌시할 수 없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판단해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법을 무시하고 이들을 독일, 프랑스 등에서 잡아 온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옥고를 치른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는 "국내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동서독 간 교류를 보고 동백림을 왕래해서 그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사전에 한국대사관이 경고라고 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이들에게 무리하게 간첩죄를 씌워 상처를 주었지만 대법원이 간첩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을 간첩으로 발표해버림으로써, 그가 간첩이란 오명을 쓰고 평생 쓰고 살도록 했다. 그 결과 윤이상, 이응로와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소위 '반한친북인사'로 만들고 말았다.


 

주목할 것은 동백림 사건의 해외 불법납치공작의 경험이 1970년대의 비극적 사건들을 잉태했다는 점이다. 1973년에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과 1970년대 말에 있었던 '김형욱 살해사건'이 그것들이다, 유신 선포 당시 외국에 있었던 김대중은 일본을 중심으로 반정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중앙정보부가 그를 납치해서 서울로 끌고 왔다. 김형욱 사건은 더욱 극적이다. 중앙정보부장으로 동백림 사건을 터트린 김형욱은 권력에서 밀려나자 해외로 도주, 미국에서 반(反)박정희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는데 중앙정보부가 그를 프랑스로 유인해 비밀리에 살해한 것이다. 이처럼 동백림 사건은 이후 이어진 박정희 정권의 불법해외공작의 효시이다.


 

▲ 통영 윤이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곡 중인 윤이상의 모습이 담긴 사진 ⓒ손호철

윤이상은 1969년 독일로 돌아간 뒤 독일로 귀화했고 1972년 오페라 '심청'으로 뮌헨올림픽의 서막을 여는 등 세계적인 작곡가로 주가를 날렸다. 동백림 사건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성숙해진 그는 1980년 광주학살을 보고 '광주여 영원하라'를 작곡했다. 1988년에는 자신이 직접 옥고를 치르며 체험한 분단을 넘어서기 위해 남북한 정부에 민족합동음악축전을 제안해 1990년 분단 45년 만에 남북 간의 음악 교류를 성사시켰다.


 

▲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식에 '심청'을 공연해 서구음악의 정상에 섰다. ⓒ손호철

윤이상은 통영을 무척이나 사랑해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다. 1994년 서울 등 국내 주요 도시에서 윤이상음악축제가 열리면서 귀국을 준비했으나, 한국 정부가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옹졸하게 요구하자 귀국을 거부했다. 윤이상은 독일 예술에 기여한 공으로 독일 대공로훈장과 괴테상 등을 받았다.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목숨을 거둔 그는 이제 윤이상 생가터에 세워진 윤이상공원의 동상으로 우리를 맞는다. 공원에 세워진 윤이상기념관에 가면 그의 천재성과 분단과 동백림 사건으로 '상처받은 용'의 아픔 등 그의 체취를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윤이상의 음악관을 배울 수 있다.


 

"우주에는 항상 흘러 다니는 음(音)이 존재한다." "음악은 작곡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음을) 낳는 것이다." 음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서양음악과 달리 그는 도교적 관점에서 이처럼 주장했다. 그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나의 음악언어는 차라리 정의를 향한 절규에 더 가깝습니다. 나의 음악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단결을 호소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 음이 하나의 우주라는 윤이상의 음악관에 대한 설명 ⓒ손호철

천의무봉한 시인 천상병 하면 우리는 하늘나라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로 끝나는 아름다운 시 '귀천'을 생각한다. 그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한 친구에게 막걸리를 얻어먹은 죄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성기에 전기고문까지 받고 나와 쓴 '소풍'이란 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통영을 떠나려는데 '소풍'의 슬픈 구절이 생각났다. 박정희 정권은 동백림 사건을 통해 이 땅에서 가장 맑은 영혼을 가진 '귀천'의 시인까지도 이처럼 절규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아름다운 저 세상 소풍 끝나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삶이 소풍이었다고? / 그 소풍이 아름다웠다고? /

(중략) 

오늘 / 반쪽의 일터에서는 굴뚝 위에서 농성을 하고 / 바람이 바뀌었다고 / 다른 쪽의 사람들은 감옥으로 내 몰리는데 / 이 길이 소풍길이라고? / 

(중략) 

홀로 밤길을 걷고 / 길을 비추는 달빛조차 몸을 사리는데 / 이곳이 아름답다고?


 

▲ 윤이상기념관 앞에 세워진 윤이상 동상 ⓒ손호철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041256063147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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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애의 법원삼거리] 다시, 4월입니다

오민애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
발행2021-04-04 16:44:25 수정2021-04-04 16: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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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노원구 일가족 살해 20대 남성, '퀵서비스' 가장해 침입

오경민·유희곤 기자 5km@kyunghyang.com

입력 : 2021.04.04 11:00 수정 : 2021.04.04 11:11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2일 오후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도봉경찰서 유치장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2일 오후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도봉경찰서 유치장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남성 김모씨(25)가 ‘퀵서비스’를 가장해 집에 침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3일 오후 5시30분쯤 큰 딸인 A씨의 여동생이 혼자 있을 때, 퀵서비스라며 초인종을 눌러 A씨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갔다. 김씨는 집에 침입해 A씨의 여동생을 살해한 뒤, 밤에 A씨의 어머니(60)가 귀가하자 살해하고 이후 집에 돌아온 A씨까지 살해했다. 앞서 서울 노원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구두로 전한 피해자들 사인이 모두 ‘목 부위 자상’이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범행 직후 세 모녀의 집 거실에서 흉기로 자해를 시도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던 김씨를 지난 2일 오전 체포해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 주변인 등의 증언과 김씨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결과 등을 종합해 김씨가 범행 수개월 전부터 A씨를 스토킹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시의 범죄 전력이나 병력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일 경찰이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함에 따라, 김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4일 오후 2시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다. 경찰은 다음 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041100001&code=940100#csidx394853ce77778b89ab1643b8a871b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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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이주 100년...오늘 쿠바 아이들은 BTS를 커버해 유튜브에 올린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4/04 11:10
  • 수정일
    2021/04/04 11: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유튜브 '까날쿠바' 운영하는 정호현 감독 "한-쿠바 역사 100년을 기록하기 위해"


 "100años de coreanos en CUBA(쿠바 한인 100년) 축하공연"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다.

 

'까날쿠바'(CanalCuba, 채널 쿠바)라는 이름의 이 유튜브 채널에선 쿠바의 10대, 20대들이 나와 익숙한 K-POP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훤칠한 아이들이 BTS, ITZY, SuperM, BlackPink, 4MINUTE 등등 익숙한 그룹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서도 한국어 가사에 반응하며 마치 한국인처럼 입모양을 들썩인다.

 

▲까날쿠바 채널 갈무리
 

우리에게 멀고 생소한 나라지만, 쿠바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정도로 지구상에서도 '별난 나라'. 그 곳의 아이들에게도 K-POP열풍은 여지없이 불어왔다. 과거에는 한국 드라마나 대중가요가 '매니악'한 취미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지금 쿠바의 10대, 20대들은 다르다. 쿠바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고, 미국의 제재로 인해 어쩔수 없이 전 세계와 단절된 나라이지만, 그들은 다른 세계의 아이들과 똑같이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다. 젊은 쿠바 친구들에게도 K-POP은 선풍적 인기다. 리듬과 춤이 일상인 나라, 살사와 룸바의 나라 쿠바에서도 세련된 이미지의 K-POP은 매력적인가 보다.

 

올해는 쿠바 한인 이주 100년이다. 100년이라는 특별한 숫자가 아득해 보이지만, 100년 전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대에 상륙했던 한인들은, 100년 후 한국 문화의 쿠바 상륙을 맞이할 줄 알았을까.


 

쿠바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 열악한 자본 환경에서 이 영상을 제작한 이는 쿠바에 거주하는 정호현(훌리아) 감독이다. 다큐 영화 <쿠바의 연인>을 연출했던 그답게 영상 촬영과 편집에서 베테랑의 기운이 느껴진다.

 

"쿠바 한인 이주 100년인데 너무 조용히 지나가는 게 아쉬워서 유튜브에 100년 기념 영상을 올렸어요. 유투브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배워가고 있어요. 자막 공들여야 하고, 번역해서 스페인어 넣어야 하고. 생각보다 일이 많더라구요. 그래도 코로나로 '집콕'인데 유튜브 덕분에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 [CanalCuba]K-POP en CUBA,쿠바 아바나 말레꼰 커버 댄스
 
▲ [까날쿠바] C.A.I 'K-POP en CUBA' 'K-POP en HABANA' 쿠바 아바나 커버댄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만 이렇게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K-POP 팀만 100팀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한다. 아바나뿐 아니라 쿠바 전역에서 K-POP을 즐기고 K-POP 경연대회가 열린다. 이들은 '축제'처럼 K-POP과 함께 모여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교양 유튜브 채널'에 가까워보이는 까날쿠바 채널인데, 정 감독은 처음에 쿠바 친구들의 K-POP 커버 영상을 채널의 한 코너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춤추는 친구들에게 '잘 찍고 잘 편집한 영상'을 선물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추천을 받아 처음에 3팀의 친구들과 영상을 찍었다. 쿠바의 명소 탁 트인 말레콘에서 춤을 추니 느낌이 좋아 보였다.

 

▲쿠바에 거주하며 까날쿠바를 운영하는 정호현 감독 ⓒ정호현
 

"쿠바의 남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K-POP 세계(?)에 몸담고 있는지 저도 미처 몰랐어요. 한번은 제가 길을 걷고 있는데, 쿠바 아주머니들이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보더라구요. 한국에서 왔다 했더니, 딸이 K-POP을 너무 좋아한다면서 연락처 받아 가기도 했어요. 한국 관련 행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면서요. 이런 영상들이 소문이 나니까, 지금도 제 와츠앱에는 '우리들이 연습한 K-POP을 추고 싶다. 영상으로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땀 뻘뻘 흘리며 K-POP 연습하고, 자기들 휴대폰으로 찍어서 올리고, 공유하고 그런 모습이 보기가 좋았어요."


 
 

그렇게 말레콘에서 3팀과 함께 촬영을 했다. 그런데 곧바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면서 쿠바에 방역3단계가 적용돼 아바나가 봉쇄됐다. 그러나 K-POP에 열정적인 젊은 친구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내 촬영 장소를 섭외하러 다녔다. 마침 좋은 스튜디오가 나왔다.


 

"사장님이 돈 없어도 장소 빌려줄 테니, 언제든지 와서 찍으라고 해서 너무 고마웠죠. 저는 장소 구하고, 촬영감독 섭외하고, 아이들 팀 선정하고, 연락하고 등...즉 촬영 컨디션 및 촬영 일정을 잡고요. 춤, 의상, 화장 등은 각 팀이 갈고닦은 솜씨를 선보이는 거예요."


 

까날쿠바에 업로드되는 영상 자체가 십시일반으로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영상 촬영을 도와주는 친구가 드론 영상도 선물해 줬고, 영상 촬영하는 친구의 친구가 오디오까지 도와줬어요. 그 친구들에게 저는 제육볶음, 돈까스, 카레로 감사 표시를 했죠."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은 사실 쿠바에서 먹기가 어렵다. 물자가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 한국식으로 다듬은 식재료 자체가 없다. 이를테면 돈까스를 튀기려면 직접 빵을 부숴 빵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로 더 열악해진 환경에서 한국 음식까지 만들어 스테프들에게 대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까날쿠바'와 K-POP 팬들의 '호의'에 비하면 대수가 아니었다.


 

문제는 있었다. 특히 영상 업로드가 문제였다. 쿠바에서도 비대면 교육 때문에 아이들 수업이 인터넷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인터넷 환경은 매우 좋지 않다. 3분짜리 영상 하나 올리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유튜브를 보기도 쉽지 않다. 쿠바 사람들도 공원 등지에서 공공 와이파이를 통해 영상을 보는데, 공기처럼 인터넷이 깔린 한국과 비교하면 바깥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은 우리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쿠바에서 조회 수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아요. 집에서 와이파이가 안 되니까 밖에 나가야 하고, 더군다나 코로나 시대인데다가, 여하튼 돈이 나가는 작업이니까.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다운받아서 서로 공유하는 문화들이 있어요."


 

영상에 등장해 춤을 추는 쿠바의 K-POP 팬들은, 왜 K-POP이 좋은 걸까. 궁금했다. 무엇이 그들을 K-POP에 빠지게 할까.

 

"그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에게 대화를 걸어주는 듯한 노랫말이 좋다. K-POP 안에는 춤, 팀 플레이, 색감, 패션 등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서 보는 맛, 추는 맛, 함께하는 맛을 즐길 수 있다.'...남미 남성들 하면 고정관념이 타투, 금목걸이, 근육, 구릿빛 피부 등인데, 한국 K-POP 가수들처럼 마른 몸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귀걸이하고 때로 화장도 하고 춤추는 것에 대해 쿠바 부모들도 거부감이 일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자녀들과 함께 K-POP을 좋아해 아들이 K-POP 춤을 추는 것을 지원하고 돕는다는 부모들도 있어요."

 

▲ [CanalCuba] 쿠바에서 100년! 너도 한번 살아봐. 100años! #쿠바이민100년 # 여성독립운동 #대한애국여성회 #에네깬

쿠바 한인 이주 100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영상으로 남기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지구의 국경선 쿠바도 예외는 아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쿠바의 현재 코로나 확진자 수는(2일 기준) 7만6276명이고, 사망자 수는 425명이다. 사망률은 0.6%로 코로나 방역 모범국인 한국(1.7%)보다 낮다. 남북미를 통틀어 가장 가난한 나라로 인식되지만, 남북미를 통틀어 사망자 수가 가장 적은 나라들(도시국가 수준의 인구 소국 제외) 중 하나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한 고립은, 코로나라는 외생변수로 더 심각해졌다. 1년에 1만 명에 달하던 한국인 관광객도 코로나 여파로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삶이 이어진다. 당연하게도.


 

올해는 쿠바 한인 이주 100년 되는 해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트럼프는 오바마 전임 대통령의 대쿠바 정책을 거의 폐기하다시피 했다.) 분위기와 함께 한-쿠바 관계 100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소박하게나마 활기를 찾았을 터다. 

1905년 5월 14일. 인천을 떠난 1033명의 한인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다. 주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그들 중 300여 명의 한인은 1921년 3월 멕시코를 떠나 쿠바로 이주했다. "쿠바가 매우 잘 살아서 사탕수수를 자르는 노동자들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일한다고 했고, 물을 마시지 않고 대신 우유와 맥주를 마신다고도 했다"는 말에 혹해서 떠났으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한인들은 쿠바 아바나에서 2시간가량 거리인 마탄사스 등에 정착해 한인촌을 이루고 대한국인국민회를 만들었다. 그들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한글 학교를 세웠다. 도서관을 만들고 한인 사회 소식을 공유하기 위한 간행물을 출판했다. 대한인국민회 한인들은 강령을 만들었다.


 

"대한인국민회 회원들은 한국의 진보적인 정치 이상을 지지하며 모든 수단을 다해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

 

그들은 에네켄 농장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을 아껴 아바나의 중국 은행을 통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보낸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 생소한 섬에서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살아가기 시작한 지 100년. 정호현 감독은 까날쿠바로 한국인들, 그리고 쿠바인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원래는 K-POP은 물론이고 쿠바에서 사는 이야기, 훌리아가 만난 사람, 쿠바 한인 이주의 역사 등을 다루고 싶었다. 까날쿠바 채널에는 정 감독이 직접 만든 쿠바 한인 이주 100년 역사 관련 영상도 있다. 정 감독은 "지금은 100년 한인들이 삶을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좀 더 조명해 보고 싶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 하기 힘드니까. 그리고 지금 80대이신 어르신 분들 다들 돌아가시면 못하니까, 거기에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쿠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쿠바의 성소수자 문제, 쿠바의 영화 문제다. '까날쿠바에 들어가면 쿠바의 이런저런 소식이 있더라. 내용이 들쑥날쑥해도 재미는 있네. 볼 만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채널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021818508797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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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울대 보내지마라"... 자유인 채현국 영원히 잠들다

[현장] 노무현도 찾아갔던 학교, 효암학원 명예이사장... 추모 분향소에서 만난 사람들

21.04.03 18:32l최종 업데이트 21.04.03 19:06l
 양산 개운중학교에 마련된 고 채현국 효암학원 명예이사장의 분향소.
▲  양산 개운중학교에 마련된 고 채현국 효암학원 명예이사장의 분향소.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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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깨우치는 과정이다.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썩는다. 공부를 하면 썩어도 덜 썩는다. 상 받는 아이들은 상 받지 못하는 아이들 덕분에 상을 받는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2일 영원히 잠이 든 고 채현국(1935~2021) 효암학원 명예 이사장이 한 말이다. 고인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숱한 어록을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다. 아버지(채기엽)가 1956년 설립한 흥국탄광을 돕던 고인은 사업가의 길을 걸었고, 한때 '전국 소득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973년 재산을 모두 분배하고 사업을 정리했던 그는 이후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때 핍박받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채기엽은 1968년 효암학원을 인수했고, 1974년 양산에 효암고등학교가 개교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 채현국 선생은 1988년부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효암학원은 효암고와 개운중을 두고 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 개운중 추모분향소 조문 이어져 
 
큰사진보기강의하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예술터에서 열린 '쓴맛이 사는 맛' 초청 강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예술터에서 열린 "쓴맛이 사는 맛" 초청 강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2015.3.19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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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특1호(3층)에 마련되었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가 놓여 있다.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는 개운중 중앙현관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했다.

학교 정문에는 "시대의 스승 채현국 명예이사장, 영원히 잠들다"고 쓴 추모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곳 추모분향소는 4일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

분향소에는 류경렬 전 효암고 교장과 강호갑 효암고 교장 등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는 김일권 양산시장을 비롯해,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여태전 남해상주중 교장 등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가 놓여 있다.

비가 내리는 속에 추모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2002년 12월 6일 '학교 수업'
 
큰사진보기 고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때인 2002년 12월 6일 양산 효암고등학교에서 수업했고, 이 학교는 교실 앞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업한 교실'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았다.
▲  고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때인 2002년 12월 6일 양산 효암고등학교에서 수업했고, 이 학교는 교실 앞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업한 교실"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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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선생과 관련한 일화는 많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도 눈에 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효암고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2002년 12월 6일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유세했던 노 대통령은 부산 지역 학교에서 수업하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김순남 교사(효암고)는 "당시 부산 쪽 학교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부담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 학교 쪽에)요청이 와서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했다.

현재 효암고 2층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수업한 교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당시 효암고 교장은 이내길 교장이다.

류경렬 전 교장은 전교조 출신이다. 류 전 교장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복직했고, 2002년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이듬해 교장이 되었다.

류경렬 전 교장은 "이사장님은 이념적 문제에 있어 앞서가셨던 분이다"며 "전교조 해직 교사를 더군다나 사립학교에서 받아들이고 그것도 교장에까지 임용한 것은 당시 전국 교육계에서도 유일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효암고 오기 전에 몇 번 만났다. 그때 하신 말씀 중에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권리도 있지만,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일방적으로 자기 욕구대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고 떠올렸다.

또 그는 "이사장께서는 '너무 서울대 보내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다"며 "졸업식 때 '이사장상'을 수여하시는데 상을 수여하면서도 '상을 받지 않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안 받는 사람이 있으니 상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지식인 허위의식에 단호했던 당당한 자유인"
 
큰사진보기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  뉴스타파 <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중에서5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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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갑 교장은 "이사장님께서는 늘 자발성을 강조하셨다. 공부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야 재미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시켜서 하는 일은 재미가 없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부터 학교에 오시지 못하셨다. 그 전에 학교에 오시면 학교운영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으셨고, 수목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학교에 수목이 울창한 것도 고인 덕분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여태전 남해상주중 교장은 "채현국 선생을 수식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당대의 기인', '현대판 임꺽정', '거리의 철학자', '한때 전국 10대 거부' 등이다"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만나는 입장에서 채현국을 바라볼 것이다"고 했다.

여 교장은 "제가 만난 채현국 선생은 우상과 허영을 넘어선 당당한 자유인이었다. 돈과 권력과 명예보다도 책과 사람과 대자연을 더 좋아했다"며 "특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단호했다. 배움과 성찰의 끈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치열하게 질문하고 뜨겁게 사유하는 겸손한 자유인이었다"고 했다.

채현국 선생은 언론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갖가지 '어록'을 남겼다. 특히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란 말은 '당당한 자유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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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200여 명 전국 미군기지 앞 반미행동 “4.3 학살 책임, 미국은 사죄하라!”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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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학살 책임, 미국은 사죄하라!”

“코로나부대 주한미군 철수하라!”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 주한미군 철수하라!” 

 

4.3항쟁 73주기인 3일, 전국의 주요 미군기지 앞에서 울려 퍼진 함성이다.

 

▲ 4.3항쟁의 넋이 비로 뿌린 3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은 서울 미 대사관 기자회견을 필두로 해서 용산 미군기지·평택 캠프 험프리스·군산 미군기지·대구 캠프 워커·부산 미8부두 앞에서 ‘4.3항쟁 73주기 대학생 반미행동(이하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대학생을 막는 한국 경찰들.  © 김영란 기자

 

▲ 용산 미군기지 6번 게이트에서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서울대진연 회원들을 경찰이 막고 있다. [사진제공-서울대진연]  

 

▲ 경기인천대진연과 대전충청대진연은 평택 캠프 험프리스 담벼락에 선전물을 부착하고 있다. [사진출처-경인대진연 반미행동 동영상 화면 갈무리]  © 김영란 기자

 

▲ 군산 미군기지에 계고장을 붙인 광주전남대진연과 전북대진연. [사진제공-광전대진연]  

 

▲ 대구 캠프 워커에서 주한미군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하는 대경대진연 회원들. [사진제공-대경대진연]  

 

▲ 3일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대진연  © 김영란 기자

 

4.3항쟁의 넋이 비로 뿌린 이날,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은 서울 미 대사관 기자회견을 필두로 해서 용산 미군기지·평택 캠프 험프리스·군산 미군기지·대구 캠프 워커·부산 8부두 앞에서 ‘4.3항쟁 73주기 대학생 반미행동(이하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대진연은 반미행동에서 주한미군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모든 미군기지 앞에서 한국 경찰은 “주한미군은 항의서한을 받지 않는다”라며 대진연 회원들을 저지했다. 

 

대진연 회원들을 “학살자 미국은 사죄하라”. “주한미군 철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완강한 투쟁을 벌였다. 

 

대진연은 항의서한에서 4.3항쟁 학살 책임자인 미국이 73년이 지나도록 사죄 한마디 없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이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하고 있는 것과 주한미군이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짚었다. 

 

대진연은 “미국은 단 한 번도 동맹국이 아니었다. 이들이 말하는 동맹은 허울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했다.  

 

용산 미군기지에서는 주한미군이 가장 많이 다니는 6번 게이트와 13번 게이트 앞에서 약 120명의 학생이 15개조로 나뉘어 반미행동을 했다.

 

서울과 중앙대진연 회원들은 약 70m 간격을 두고 미군기지를 에워싸고 연설과 상징의식을 했다. 

 

▲ 서울대진연 회원들이 성조기를 뚫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대진연]  

 

 

 

▲ 용산 미군기지 13번 게이트에서 반미행동을 하는 중앙 대진연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성조기 찢는 상징의식.  © 김영란 기자

 

▲ 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행진하는 학생들  © 김영란 기자

 

▲ “4.3 학살 책임, 미국은 사죄하라!”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 김영란 기자

 

“통일된 한반도, 자주로운 한반도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4.3항쟁 영령들의 뜻을 계승하겠다.”

 

“제주도민들의 그 숭고한 정신과 애국심을 이데올로기로 조작하고 무차별 학살한 미국은 제주도민들이 겪어왔을 아픔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해야만 한다.”

 

“미국은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고 제대로 된 사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주한미군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미군의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서울대진연은 6번 게이트를 시작해서 전쟁기념관까지, 중앙대진연은 13번 게이트에서 6번 게이트까지 행진을 하고 반미행동을 마쳤다. 

 

용산 미군기지 앞 반미행동에 참가한 대진연 회원들은 아래와 같이 심정을 토로했다. 

 

“첫 투쟁이어서 매우 떨렸는데 대학생들 모두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뜨겁게 외치는 모습을 보고 힘을 받아 더욱 뜨겁게 투쟁할 수 있었다. 투쟁하는 내내 우리의 목소리가, 학살당한 제주도민들의 절규가 담벼락을 넘어 미군에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4.3항쟁 학살배후인 미국이 제주도민들의 고통에 머리 숙여 사죄하고 한국에서 떠나는 그날까지, 전 국민이 미국의 실체를 알게 되는 그날까지 목소리 내리라 다짐했다.”

 

“4.3학살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미국의 모습에 대해 너무 화가 난다. 미국은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이 땅을 당장 나가야 한다.”

 

“끔찍한 4.3 학살을 자행한 미국이 지금까지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은 것에 너무나 화가 난다. 그리고 경찰이 항의서한문 전달을 가로막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가 너무 크다는 것을 행진하면서 실감했다. 이 땅을 미군이 사용한다는 것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 경기인천대진연과 대전충청대진연은 평택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사진제공-대청대진연]  

 

▲ 평택 캠프 험프리스 앞 반미행동 [사진제공-경인대진연]  

 

 

경기인천대진연과 대전충청대진연은 평택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내정간섭을 일삼는 미국을 규탄했다. 또한 4.3학살 사죄를 요구했다. 그리고 4.3항쟁과 관련된 시 ‘경계의 사람’와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의 문예공연을 진행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모든 국민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감내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노마스크 댄스파티 등을 벌이며 한국의 방역법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코로나부대 주한미군은 필요 없다. 당장 나가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캠프 험프리스 담벼락에 반미 내용의 선전물을 부착했다. 

 

▲ 광주전남대진연과 전북대진연은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사진제공-광전대진연]  

 

▲ 군산 미군기지에 계고장을 붙이는 대학생들 [사진제공-광전대진연]  

 

 

광주전남대진연과 전북대진연은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4.3학살 배후 미국 사죄하라”.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반대한다”. “한반도 전쟁위기 조장하는 미국을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미국이 한미동맹을 앞세워 우리를 도와준다는 것은 허상이다. 미국은 방위비분담금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고, 전쟁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다. 주한미군은 당장 이 땅을 떠나라”고 강조했다. 

 

구중서 ‘군산 우리 땅 찾기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반미행동에 함께 참여해 연대발언을 했다. 

 

이들은 군산 미군기지 문에 계고장을 붙이는 행동을 한 뒤에 반미행동을 마쳤다.

 

▲ 대구 캠프 워커 후문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한 대경대진연이 대형 성조기를 찢고 있다. [사진제공-대경대진연]  

 

 

대구경북대진연(이하 대경대진연)은 대구 캠프 워커 후문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대경대진연은 “4.3항쟁 학살자, 미국은 사죄하라”, “캠프 워커 환경오염 주한미군이 책임져라”,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주한미군 철수하라”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경대진연 회원은 “반환예정인 캠프 워커에서 비소·다이옥신·카드뮴·석면 등이 검출되었다. 그런데 미군은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지려하고 있지 않다. 주한미군이 환경오염 문제를 책임지고 정화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책임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라고 결의를 밝혔다.  

 

대경대진연은 성조기와 이승만 사진에 물풍선 던지기와 성조기를 찢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 부경 대진연 회원들의 항의서한 전달을 가로막는 경찰들 [사진출처-부경대진연 반미행동 동영상 화면 갈무리]  

 

부산경남대진연(이하 부경대진연)은 부산 8부두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부경대진연 회원들은 “4.3학살 배후 미국은 사죄하라”, “코로나부대 주한미군은 이 땅을 떠나라”, “8부두 세균실험실 당장 폐쇄하라”등의 구호를 외쳤다 

 

특히 부경대진연은 “주한미군은 코로나보다 더 위험한 세균실험을 이곳 미8부두에서 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세균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세균실험실 폐쇄를 요구했다.   

 

부경대진연은 성조기를 찢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한편, 대진연 회원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아래는 항의서한문 전문이다.

 

---------아래---------------

 

4.3항쟁 73주기, 학살 책임자 미국은 사죄하라!

 

제주 4.3항쟁이 73주기를 맞았다.

제주 4.3은 미군정과 분단에 반대하며 자주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제주도민의 뜨거운 항쟁이었다. 그러나 몇 년간 지속된 싸움에서 제주도민 3만 명이 학살당했고, 그 수법 또한 잔혹했다. 그 해 감자와 갈치는 인간의 피와 살을 먹고 자라 팔뚝만 했다고 한다. 제주도 학살은 미군정 하에서 자행됐다. 작전권을 가지고 있던 미군이 개입한 사실 또한 분명하다. 미국이 학살의 책임자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학살의 책임은 결코 지울 수도, 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미국은 73년이 흐르도록 사죄 한마디 없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의 기만적인 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의 두 정상이 세 차례에 걸쳐 합의한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며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 지난 3월에는 북 선제 타격과 지도부 참수 작전을 명시한 전쟁훈련을 진행하는가 하면, 2+2 회담에서는 대북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미국은 이미 국민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자리에 사드를 배치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두 가지 역량을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말은 무슨 심보인가. 미국의 존재는 안보를 강화하기는커녕 한반도에 긴장감만 조성할 뿐이다. 

 

바이러스까지 퍼뜨리는 주한미군의 존재는 정말이지 무용지물이다. 

코로나로 인해 국민의 삶이 위태롭다. 주한미군은 코로나 방역에 협조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주한미군은 어떠한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입국한다. 지난 12월에는 미군기지에서 댄스파티까지 벌였고, 이후에는 열댓 명이 모여 술을 마시다 집단감염까지 일으켰다. 심지어 미군기지는 치외법권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는다. 주한미군 발병률은 우리 국민의 16%에 달한다. 확진자 소식은 연일 들려온다. 그럼에도 주한미군은 최근 용산 지역의 코로나 보건조치를 ‘브라보’로 완화하는 등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주한미군은 단 한 번도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헤아린 적이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는 이상 한반도 평화는 물론이고 국민의 안전 또한 담보할 수 없다. 우리를 지켜주겠다고 이 땅에 들어온 주한미군은 제주도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또한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며, 급기야 바이러스까지 퍼뜨리고 있다. 미국은 매번 본인의 패권을 고수하기 바빴다. 미국은 단 한 번도 동맹국이 아니었다. 이들이 말하는 동맹은 허울에 불과하다. 뻔뻔하고 파렴치한 주한미군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사죄 한 마디 없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주한미군은 당장 이 땅을 떠나라. 

 

4.3 학살 책임 미국은 사죄하라!

코로나부대 주한미군 철수하라!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 주한미군 철수하라! 

 

2021년 4월 3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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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아니면 투기해도 됩니까? 공분해야죠”

등록 :2021-04-02 23:48수정 :2021-04-03 07:38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국의 헨리 조지’ 김윤상 명예교수

실정법 해석 그쳤던 법학에 실망
70년대 ‘투기 바람’ 토지 문제 관심
“토지불로소득 환수로 문제 해결”
100여년 전 헨리 조지 사상과 일치

불로소득 과세 정공법 피하니
택지소유상한제·토지거래허가제 등
시장경제 어긋나는 무리수 나와
‘지공주의’가 진정한 자본주의

“자산보다 임금 불평등” 장하성
‘보유세 강화’ 겁냈던 김수현
진단·대비 틀렸던 문재인 정부

LH 사태 뒤 근본대책 내놔야 하는데
여전히 적발·처벌 중심의 땜질 머물러
우선 백지신탁·이해충돌방지법부터
사진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사진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두번의 실패는 없다”는 없다고 했지만 패색이 짙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얘기다. 집값은 올랐고 서민들은 주거 불안에 떠는데 공공택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은 땅투기에 나섰다가 꼬리가 잡혔다. ‘윗물은 맑다’더니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당 국회의원들은 주택임대차보호법 발효 전 임대료를 ‘남들이 하던 대로’ 올렸다. 언행일치는 물론 역지사지도 없었다. ‘지공주의의 태두’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보는 문제의 핵심은 ‘토지 불로소득’이다. 토지를 ‘깔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이득이 생기면 투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자고 했다. 오늘도 “부동산 투기는 전 국민이 언제라도 감염될 수 있는 팬데믹”이라며 이를 종식하기 위한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백신으로 제시하지만 기득권의 반발은 언제나 그랬듯 강고할 것이다. 지난달 22일 대구 경북대에서 만난 김 교수가 자신의 생애와 지공주의 이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자는 이상은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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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찾아간 대구 경북대학교. 들머리에 ‘진리·긍지·봉사’라는 글씨가 돋을새김된 상징탑이 청명한 하늘과 잘 정돈된 캠퍼스 잔디밭을 잇고 있었다. 고개 들어 향유할 수 있는 하늘과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 땅.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고 하지만, 땅 위의 사람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집값이 치솟아 주거불안에 떠는 서민들의 반대편엔 갖가지 방법으로 땅부자·집부자가 된 ‘성투(성공투자)’ 사례가 부동산 카페에 넘쳐난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급기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사례까지 터져나왔다. 땅에 돈 놓고 돈 먹으며 영혼과 윤리마저 저당잡힌 현실.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국의 헨리 조지’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행정학)를 만났다. 추가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했다.

법학도, 토지정책을 연구하다

사회정의·토지정책을 연구한 노교수의 학부 때 전공은 법학이다.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돌이 지나기 전 6·25가 터졌으며 부모 품에 안긴 채 피난을 내려왔다. 아버지 직장인 미군부대의 주둔지를 따라 경남 거제를 거쳐 대구에서 자라게 된다. 경북고 시절 그는 양주동 박사의 고려가요 해설서인 <여요전주>를 읽으며 국문학도를 꿈꿨다. 그러나 어려운 집안 형편에 “국문과 가면 밥 못 벌어먹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친구들이 다 법대를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검사 출신이었던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법대 동기다.

―법학 공부 해보니 어떻던가요?

“막연히 생각하기에는 법 공부를 하면 사회정의라든지 큰 철학적 원리를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고… 법학이라는 게 실정법 해석이에요. 돈 빌린 사람이 어떻게 갚도록 해야 한다든지. 너무 재미가 없었죠.”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67년 6월 총선이 치러졌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175석 중 129석을 싹쓸이했다. 부정선거 논란이 가열되면서 전국 대학에는 휴교령이 떨어졌다. 이 시기 청년 김윤상은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 기자 활동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세상물정을 알고 인간적으로 성숙하려면 고등학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결국 고시 공부를 안 하셨습니다.

“67년도에 부정선거도 있고 졸업 무렵에 유신도 있었으니까 학교 다니기가 참 어려웠어요. ‘이런 시국에 공무원 되면 뭐 하냐’는 마음이 컸죠. 피난 내려와서 어렵게 타지에서 사는데 친척 중에 출세한 사람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으니 판검사가 좋은지도 몰랐죠.”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교양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정치학·경제학 등 ‘인접 학문’에 눈을 돌렸다. 그러던 중 행정학·도시계획학을 전공한 노융희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한다. “컴퓨터, 통계학, 사회과학 전반을 공부하면 사회를 보는 눈이 커질 거 같았다”는 게 전공을 바꾼 이유였다.

도시계획학을 공부하며 그는 토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60~70년대는 대규모 토목공사와 개발로 전국의 땅값이 들썩이던 시기였다. 서울 강남 개발이 시작되고 1966년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착공되면서 3.3㎡(1평)당 300원 하던 강남 신사동 일대의 땅값은 1년 새 10배가 뛰었다. ‘복부인’이라는 말도 이때 등장했다. 투기장으로 변한 서울에서 그는 석사를 마치고 1976년 경북대 교수로 채용됐다. 박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이어 하버드-옌칭 연구소 장학생으로 선발돼 1978년 미국으로 떠났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 학위 전공도 도시계획학이었다. 그는 유학 시절 “사회정의와 같은 가치 있는 주제를 택해서 학위논문을 쓰고 싶었지만 영어가 짧아서 못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아쉬움은 1982년에 귀국한 뒤에도 계속됐다. 1986년 펴낸 첫 저서 <도시모형론> 서문에서 “이제는 도시모형 연구에서 멀어지고 싶다. 우리 사회에 보다 절실한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얄팍한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한국적 현실에서 사회에 기여할 바가 있을지”를 고민했고 부동산 투기 광풍에 따른 빈곤의 심화를 목격하면서 연구 주제를 토지정책으로 바꿨다. ‘토지는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므로 토지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돈을 버는 건 불로소득이며, 이런 이득을 제거하면 투기도 사라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강원 태백시 성공회 수도원의 대천덕(아처 토리 Archer Torrey, 1918~2002) 신부가 쓴 <토지와 경제정의>라는 책을 읽고 헨리 조지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100여년 전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한 헨리 조지와 자신의 생각이 일치했다. 김 교수는 1989년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처음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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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을 펴낸 헨리 조지의 젊은 시절 모사진. 위키피디아
땅으로 이득? 은행 이자만큼만

―<진보와 빈곤>을 처음엔 완역이 아닌 축약본으로 번역하셨습니다.

“빨리 전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또 부동산값이 오르고 전셋값이 없어서 일가족이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시한 번역자의 책이지만 예상 밖으로 보급이 됐습니다.”

미국의 언론인·사상가였던 헨리 조지는 토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지대(토지 사용료와 매매차익)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고 진단했다. 서부개척과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놓이고 도시가 개발되며 땅값이 폭등하던 시기였다. 헨리 조지는 하늘에서 주어진 땅을 우연한 기회에 소유하게 됐다는 이유로 이득을 보는 건 정의가 아니라고 봤다.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이 베풀어준 기회를 개인이 독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근본적인 정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토지 사용자가 땅주인에게 토지 이용료를 내는 건 “사용자가 정당하게 벌어들인 사유재산을 땅주인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며 이는 강도행위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근로소득보다 불로소득에 세금을 우선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출발한다.

헨리 조지는 이렇게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국가가 가져가면 사실상의 ‘토지 공유’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이 “사회의 성장에 따라 증가하는 사회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연법이 마련해주는 기금”이라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이를 모두 환수(지대조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김 교수는 토지 가격만큼에 대한 은행 이자는 인정하고 나머지를 세금으로 걷는 ‘지대이자차액세’를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토지사유제가 정착된 지 한참 됐고 현재 땅을 갖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자기 돈 내서 샀습니다. 어제 1억원 내고 땅을 샀는데 오늘 지대조세제 실시하면 땅 매매가격이 0원이 됩니다. 매매가격은 미래 지대의 합인데 미래 지대를 다 거두면 현재 매매가격은 0이 되는 거죠. 그러면 사유재산 침해의 문제가 생기고 땅 가진 사람으로서는 억울합니다. 또 땅값이 0원이 되면 땅을 담보로 잡고 빌려줬던 은행 대출은 어떻게 됩니까. 은행 다 망할 거 아니에요. 가격을 떨어뜨려선 안 되고, 가격만 안 떨어지면 토지공개념을 정착시키고 투기도 막을 수 있으니 이자는 빼고 세금으로 걷자는 겁니다.”

―여기서 이자란 토지 매입 자금을 은행에 맡겼을 때를 상정한 이자를 말하는 건가요?

“정기예금 이자로 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 대출 이자와 은행 정기예금 이자 중간으로 볼 수 있고. 실무의 문제니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결정이 되겠죠.”

―내 돈 내고 산 게 아니라 상속받은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속받을 당시의 시세가 있으니까 그것에 대한 이자가 되겠죠. 그러면 ‘부동산 소유 안 할래’ 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을 갖고 있어 봐야 부담만 되지, 이익 될 게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토지 국유화로 가는 거 아닙니까?

“빌려서 쓸 거냐, 소유해서 쓸 거냐 선택해야 할 때 소유해서 쓰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빌려서 써도 임대료를 내야 하고 소유를 해도 그만큼을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드는 돈은 똑같아요. 그런데 소유를 하면 누가 나가라고 안 하니까, 안전하니까, 부담이 똑같다면 사람들이 소유하는 걸 택하겠죠. 물론 취득세·양도소득세는 모두 없어집니다.”

―실수요자만 남게 되면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거래하게 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좋죠. 싱가포르가 그래서 부동산 정책에 성공한 것 아닙니까. 토지임대료가 부담되는 계층한테는 환매조건 붙여서 깎아주면 되고.”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교정의 벚나무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교정의 벚나무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하늘이 준 땅은 우리 모두의 것

지대이자차액세의 과표는 건물을 제외한 토지다. 김 교수는 2004년 8월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해 거래세가 아닌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며 “건물이 아닌 토지에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를 사서 월세를 놓았을 때 임대료는 토지와 건물 사용료를 합친 것이 됩니다. 과세 대상은 토지 사용료가 될 것인데 토지 사용료와 건물 사용료를 어떻게 가를 수 있습니까?

“똑같은 품질의 아파트를 서울 강남과 대구 경북대 앞에 지었을 때 가격 차이가 납니다. 땅값 때문이죠. 가격 평가는 전체 단지의 아파트 가격을 전부 평가한 다음에 대지 지분으로 나누면 됩니다. 신축할 경우에 든 비용을 계산해서 만약 10년이 지났으면 그동안 감가상각이 된 금액이 건물 가격이죠. 전체 가격에서 감가상각된 건물 가격을 빼면 나머지는 다 토지 가격이 됩니다. 그 토지 가격을 건물 평수로 나누면 되죠.”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교통시설이 확충되고 그게 또 집값에 반영됩니다. 이런 기반시설도 토지 가치에 반영된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죠.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 환수하게 되면 개발이익 얻으려고 사람들이 들입다 싸우고 그런 일은 없어져요. 붕괴 위험 있을 때 공공이 나서서 보조금 줘가면서 하는, 정말로 필요한 재건축만 하게 되죠. 지금 쓸데없는 재건축 해서 멸실되는 아파트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대이자차액세가 시행되면 당장 내가 가진 집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큰 차익을 잃게 되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크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불로소득을 기대하면서 집을 소유한 경우라면 물론 실망이 크죠. 그러나 ‘도둑질하려고 했는데 도둑질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라며 저항하는 것과 똑같죠. 설득을 해야 하고 토론을 하면 설득이 될 걸로 봅니다. 결국엔 나한테 그게 이익이구나 알게 된다는 거죠.”

―헨리 조지는 지대만 세금으로 걷는 지대조세 단일세를 주장했습니다. 지대이자차액세만으로 세수 충당이 가능한가요?

“안 되죠. 극단적으로 지대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연히 국가가 돈을 내줘야 해요. (지대보다 이자비용이 커서) 마이너스가 되면 (국가가 그 차액을 개인에게) 내줘야죠. 그렇게 되면 정부가 또 다른 대책을 세워야겠죠. 전반적으로 경기가 후퇴하고 인구도 줄고 지대도 줄고 그러면 정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그건 정말 고민이죠.”

―지대보다 이자가 더 많이 나가면 정부가 내줘야 한다고요?

“가령 동네에 혐오시설, 공공에 필요한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오면 그 주변 토지의 지대가 떨어질 거 아닙니까. 지대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 차액만큼 돈을 내줘야죠. 땅이 우리 모두의 것이고 토지 가치가 우리 모두의 것이라면, 손해 보는 것도 우리 모두가 손해를 봐야 하니까요.”

―이런 말씀은 처음 듣습니다.

“땅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말을 안 하죠. 그러나 원론대로 하면 내줘야죠. 그렇게 되면 님비 현상도 많이 줄어요. 예를 들어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고 주민들이 난리를 칩니다. 말로는 치안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땅값 떨어질까봐. 그러면 안 되는데 요즘 공공임대주택 짓는다고 하면 막 반대하잖아요. 그런 게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경제적으로는 세금을 덜 내게 되니까.”

우파의 방식으로 좌파의 가치를

김 교수는 헨리 조지의 사상을 ‘지공주의’(地公主義)라고 명명했다. “지대 환수가 단순 세제가 아니고 ‘제3의 이념’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붙인 이름이다.

“토지와 자본을 모두 사유화하는 게 전통적 자본주의이고 이를 모두 국공유화하는 게 사회주의입니다. 토지는 원칙적으로 공유하고, 자본은 사유로 하는 그런 사상을 대변하는 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유를 한다는 건 토지 몰수를 한다는 게 아니고 철학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토지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또 토지공개념의 두 글자가 겹치니까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해서 지공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었죠.”

이런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토지공개념에 보수세력은 종종 ‘좌파 사회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아 비판하지만 김 교수는 이를 “마음에 안 드는 대상에는 일단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나쁜 버릇”이라고 반박한다. 지공주의는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우파적 방법으로 좌파의 가치인 분배정의와 사회보장을 지향한다. 김 교수가 말하는 ‘좌도우기(左道右器)론’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등장했던 토지공개념 정책 중 시장기능과 어긋나는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시장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말씀하신 건지요?

“순수한 시장경제는 가격·소유·거래 규제를 하면 안 돼요. 그런데 토지거래허가제는 거래 규제, 분양가상한제는 가격 규제, 택지소유상한제(1998년 폐지)는 소유 규제입니다. 이런 건 순수한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거예요.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 안 하기 때문에 그런 무리한 방법이 나오거든요. 시장에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고 모든 소유자가 실수요자가 되면 그런 가외의,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규제가 뭐 필요하냐는 거예요.”

―토지 불로소득 환수로 확보되는 세수만큼 부가가치세나 소득세를 깎아줘야 한다는 주장도 하셨습니다.

“세금 중 제일 나쁜 게 부가가치세예요. 부가가치는 전부 사람이 생산한 생산의 결과잖아요. 거기에 세금을 매기는 건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보는 거고. 그다음 순위는 소득세. 소득은 좀 섞여 있어요. 땀 흘려서 번 노력소득이 있는가 하면, 운에 의한 소득도 있고, 시장의 권력관계에 의한 소득도 있고.”

“국민의 사분, 정부가 공분으로 바꿔야”

문재인 정부가 선포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지공주의의 지향과 같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도 집값 상승을 막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3월15일인가 청와대에서 회의할 때 문 대통령이 ‘드러나는 현상에 대응해왔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현상유지에 중점을 뒀어요. 투기 국면에 현상유지가 됩니까. 그런 정책의 실세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수현씨와 장하성씨라고 생각해요. 장하성씨가 낸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보면 ‘우리나라는 임금 불평등이 크지, 자산 불평등은 크지 않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려 놨어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상식을 가진 사람입니까? 임금주도성장을 해본들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오르는데 무슨 효과가 있어요.”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은 김수현 전 실장이 집값 잡기에 실패했으니 결국 ‘지공주의의 실패다’, 이런 지적들도 나옵니다.

“김수현 교수는 참여정부 때는 이정우 교수(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와 한 팀이 돼서 헨리 조지 사상을 긍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그 양반이 책 쓴 거 보면 보유세 인상에 겁을 먹고 있어요. ‘보유세 인상을 하면 정치적으로 부담이 커진다, 온통 수구언론이 세금폭탄이라고 해서 정권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이번 정부에 들어가서도 참여정부 자기네 팀이 만들어놨던 보유세 강화 같은 거 안 했잖아요. 그거만 회복시켰으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폭등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는데….

물론 원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만들었죠. 노무현 정부가 만든 걸 형해화시키고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펴서 휘발유 좍 깔린 상태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장하성 같은 사람이 근본대책 안 세우고, 자산 불평등 얼마 안 된다고 했으니. 자기 강남 집값이 굉장히 오르고 있는데도 그런 소리를 했잖아요. 이 정부가 진단과 대비를 잘못한 거지.”

2018년 7월3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재정개혁특위는 이명박 정부가 감면한 종합부동산세율을 찔끔 인상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3주택 이상 보유세 중과는 결론도 내지 못했다. 3일 뒤 기획재정부는 2020년까지 공정시장가액비율(과표를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 비율) 목표치를 재정개혁특위 권고(100%)보다 더 낮은 90%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도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이 시장에 전파됐다. 부동산 대책이 거듭 발표돼도 집값은 잠깐 꺾였다 급등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고 공공택지·주택을 공급하는 엘에이치 임직원들이 투기에 가담한 사건까지 터져나왔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처음 전개된 과정을 보면 목표와 분노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정보 이용해서 다른 사람보다 쉽게 돈을 번 건 나쁜 일이에요. 그걸 비난하는 데 이의가 없지만 내부정보를 취득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에 타깃을 맞추면 근본대책이 어그러져요. 그러면 내부정보 이용 안 했으면 괜찮으냐, 다른 공직자가 하면 괜찮으냐, 공직자 말고 일반국민이 하면 괜찮으냐, 이런 질문을 계속하면서 그러면 근본대책을 세우자, 누구도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지 못하게 하자, 이런 식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적발·처벌 쪽으로 치우쳤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분노의 성격을 ‘공분’과 ‘사분’으로 구분하며 말을 이어갔다.

“‘나보다 더 유리하게 돈을 벌었어, 이건 참을 수 없다’는 건 사분입니다. 처음에는 사분이 많이 작용해서 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고 생각해요. 이제 정부가 할 일은 끓어오르는 사분을 공분으로 바꾸는 작업이죠. 이참에 이 분노를 기회 삼아서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없애는 지대이자차액세 같은 근본대책으로 나아가야죠.”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직전 전셋값을 14% 올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경질하고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지시했다. 뒤이어 나온 대책이 ‘1년 미만 보유 토지’의 양도소득세 강화와 토지 담보 대출 규제다.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는 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 장관, 검찰총장 권한대행, 경찰청장 모두 기획부동산 근절에 뜻을 모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부동산 투기는 전 국민이 언제라도 감염될 수 있는 팬데믹”이라며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강도 높은 환수 정책이 없는 한 “근본적 대책이 아닌 땜질”이라고 평가했다. “꿀에 개미가 꼬이면 꿀을 치워야 하는데 꿀은 놔두고 개미들에게 이름표만 붙이는 식”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시절 ‘주자유택’ 훼손된 도시화

헨리 조지는 1879년에 <진보와 빈곤>을 출간했지만 142년 전 경고에도 부동산 투기와 자산 불평등은 여전하다. 복지 강화 등 자본주의를 수정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있었지만 토지 불로소득 문제는 왜 교정되지 못했을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 이런 식으로 딱 양분이 되니까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조지 사상이 발붙일 수가 없었죠. 또 시장경제라는 건 사유재산제가 전제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대가를 주는 게 사유재산제입니다. 시장경제라면 지공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물은 모든 사람의 것이고, 인공물은 인공을 가한, 생산한 사람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돼야 진짜 시장경제가 된다고 지공주의는 생각하는데, 우파 경제학에서는 왜 그걸 못했느냐? 한마디로 싫으니까요. 가진 사람이 (그런 식으로 부를 빼앗기는 게) 싫으니까요. 땅으로 부동산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계층에서 양보를 안 하는 거죠.”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라고 보십니까?

“농민들이 종래의 형편없는 소작제도 속에서 고생하다가 농지개혁으로 해방이 됐죠.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도시화 과정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도시 토지에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주택의 경우에는 사는 사람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 즉 ‘주자유택’ 원칙을 적용했어야 합니다. 다른 토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정권 도시화 과정에서 그런 문제가 간과됐군요.

“경자유전 원리를 도시 토지, 산업화 과정에서 응용해야 했는데 그걸 못했죠. 투기 생기면 투기 대책 내놓고, 경기 시원찮으면 투기 진작시키고.”

―투기에 가담해서 정치자금도 만들고요.

“경부고속도로 처음 생길 때 강남 개발하면서 공화당에서 정치자금 마련하고 그랬잖아요. 고위공직자 특혜 분양하고 정경유착하고. 자기한테 이익이 돌아오는데 개혁하려고 하겠어요?”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2016년 경북대 교수회가 개교 70주년을 맞이해 세운 교수헌장 비문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김 교수가 교수헌장 제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이정우 교수 등이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교수헌장 중 “사회적 양심”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치” 등을 강조하며 “개혁적인 내용이 많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2016년 경북대 교수회가 개교 70주년을 맞이해 세운 교수헌장 비문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김 교수가 교수헌장 제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이정우 교수 등이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교수헌장 중 “사회적 양심”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치” 등을 강조하며 “개혁적인 내용이 많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너무 이상적? 과거 노예제 철폐도 그랬다”

김 교수는 1994년 대구에서 이정우(경북대)·전강수(대구가톨릭대) 교수와 함께 헨리조지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여기에 기본소득 연구자인 강남훈 교수(한신대)와 시민사회 영역의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 등이 합류해 2018년엔 헨리조지포럼으로 확대됐다. 이들을 포함해 이원영(수원대)·정세은(충남대) 교수 등이 함께하는 토지정책학회가 이달 말 발족된다. 지공주의 학파의 외연이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전 교수와 강 교수는 2017년 대선 때 이재명 예비후보 캠프에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공약을 입안했고, 강 교수는 지금도 경기도 기본소득위원장을 맡고 있다.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해 이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자는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는 조세저항을 우회할 수 있는 전략적 방식이라고 이들은 설명한다. 90%가 넘는 국민이 결국은 수혜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공주의 학자들이 이재명 경기지사를 도왔고 현재도 돕고 있습니다.

“이 지사가 이야기하는 공직자 백지신탁제도 제가 주장했던 겁니다. 정책결정자들이 부동산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자꾸 안 하려고 하잖아요. 제가 살고 있는 수성구는 주호영 의원의 전 지역구입니다. 서울에 아파트 가지고 있고 단기간에 시세차익이 십수억원이라고 하는데 ‘시세차익 한 푼도 없어도 좋으니 이런 개혁 하자’고 하는 게 되겠어요? 자기 불로소득 얻은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의도치 않게 생긴 운이고, 세금 올리는 건 부담되니까 싫다, 내가 잘못하는 거 있느냐, 이렇게 자꾸 합리화하게 되잖아요. 그런 걸 없애려면 고위공직자 백지신탁부터 해야 한다고 했어요. 백지신탁제부터 해야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토지보유세 올리자는 게 먹혀들어가죠.

그런데 그 안을 제가 처음 낸 게 아닙니다. 예전(2004년) 박근혜 천막당사 시절에 워낙 다급했는지 자산백지신탁제를 제안했어요. 자산 안에는 당연히 부동산이 들어가죠. 그런데 그중에서 관련성 있는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제만 제도화됐어요. 부동산 백지신탁은 고위공직자가 실수요 아닌 부동산 가졌을 때 전부 백지신탁하자는 건데 그걸 하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그리되면 이해충돌방지법도 쉽게 채택되지 않을까요. 완전한 토지 불로소득 환수제도가 들어오기 이전에 공직자 대상으로 해야 할 건 부동산 백지신탁제와 이해충돌방지법 두 가지입니다. 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이론·운동·정치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땅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기득권의 구심력도 강고하다. 지공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교수님 말씀은 맞지만 너무 이상적이다, 과연 가능할까, 이런 회의적인 시각도 많을 것 같습니다.

“노예제 폐지는 200년 전까지 감히 꿈도 못 꿨습니다. 100년 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이제 남녀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게 되겠나’라며 회의적으로 생각하면 노력도 안 하게 돼요. 결국 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이상적이라는 얘기는 ‘그거 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헨리 조지도 <진보와 빈곤>에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도 같은 별을 본다는 사실을 알 때 더 확신을 가지고 별을 보게 된다.”

대구/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9473.html?_fr=mt1#csidx59caffaf1d306c9a3d58df72362b0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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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제주 95% 노동자 총파업 돌입, 실화냐?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1.04.03 08:42
  •  
  •  댓글 0
 
 
 
 

[다시 쓰는 현대사] 제주4.3과 3.10총파업

▲제주도교육청이 발간한 초등5~6학년 4.3 교재에 실린 '3.1시위' 화가 강요배 그림.
▲제주도교육청이 발간한 초등5~6학년 4.3 교재에 실린 '3.1시위' 화가 강요배 그림.

1947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후 제주 관덕정에서 가두시위를 구경하던 어린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마경찰이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을 그대로 빠져나가려 하자 군중들이 항의했고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6명이 숨졌다.

“해방된 우리 땅에서 경찰 총에 맞아 죽다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데,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고 또 넘었는데”라는 절규가 쏟아졌다.

3.1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일제 경찰 출신이 82%인 당시 제주도 경찰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에 3월 10일 유례없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3월 13일까지 나흘간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0여개 기관과 단체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를 핑계로 미군정은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빨갱이 섬)라 칭하고 군병력을 동원, 파업주모자라는 이유로 2500여명을 구금했다. 제주4.3항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을 사는 노동자라면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3.1사건 발생 열흘 만에 노동자 95%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광복 2년이 지났는데 3.1절을 기념한 이유

총파업 성사 요인을 찾기에 앞서 우선 광복된 지 2년이나 지났는데 3.1절 기념행사에 제주도민 절반에 해당하는 6만 명이나 모이게 된 이유부터 알아야한다.

해방이 되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제주도민들이 돌아왔다. 그 수는 12만 제주도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6만 명에 이르렀다.

사선을 넘어 해방된 고향 땅에 돌아온 이들은 9월 15일 제주읍 인민위원회를 시발로 노동조합, 부녀동맹, 교육자동맹 등 각종 대중단체를 잇따라 조직해 과거 일본인의 재산(적산)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등 새조국 건설에 떨쳐나섰다.

그러나 9월 28일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은 적산을 송두리째 강탈하고, 일제의 밀정 출신들로 경찰을 구성해 치안을 담당케 했다. 당시 제주도(지)사 스타우트 소령 휘하의 경찰 총수 1,157명 중에 일제 경찰이 949명으로 82%를 차지했다.

미군정은 인민위원회와 노동조합 등 민주단체 인사들을 불순분자로 몰아 구속하는 등 파괴공작을 감행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군정의 비호아래 자행된 ‘한라단’ 사건(친일파들의 테러조직 한라단이 인민위원회를 습격한 사건)이다.

이렇게 되자, 일제 대신 제주를 점령한 미군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인민위원회는 ‘3·1투쟁기념행사제주도위원회’(이후 제주도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이양)를 결성해 1947년 3월 1일 대규모 반미 시위를 계획했다.

3.1절 당일 “미군은 물러가라”는 시위군중의 현수막과 기념식 개회사는 당시 제주도민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다. “우리 제주도민은 모두 3.1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 안세훈의 개회사 중)

▲제주 민주주의민족전선 [건국5칙] 1.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세우자! 2.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3.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4.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5.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제주 민주주의민족전선 [건국5칙] 1.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세우자! 2.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3.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4.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5.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95% 노동자가 총파업에 돌입한 이유

3.1사건 직후에 바로 총파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 점령군의 실체가 만천하에 폭로됐기 때문이다.

처음 미군정이 시작될 때만해도 그들의 말대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파견된 해방군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독립만세를 외치는 조선인에 총을 겨누는 미군은 결코 해방군일 수 없다.

조선총독부가 미군정청으로, 일본군이 미군으로, 친일 경찰이 친미 경찰로 바뀌었을 뿐 해방은 아직 멀리 있음이 3.1사건으로 드러났다. 이에 제주 노동자들은 미군정에 맞서 총파업을 결행했다.

총파업이 성사된 또 다른 요인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라는 강력한 노동자 조직이 제주 인민위원회와 제주 민전의 기둥으로 망라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노동운동이 금지됐던 일제치하를 벗어나자마자 조선광산노조를 시작으로 금속, 철도, 출판, 섬유, 토건, 화학, 전기, 조선 등 각 분야에 노조가 결성되었다. 1945년 11월 5일 전평 결성대회에는 1,194개의 노조, 50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한 505명의 대의원이 참석했다.

전평은 자신들의 과제를 경제투쟁을 넘어서서 정치투쟁을 통한 일제잔재 청산과 반제‧반봉건 민중혁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평이 주도한 주요 투쟁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947년 ‘3월 총파업’을 꼽을 수 있다.

철도노조에서 시작한 9월 총파업은 11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해 전국의 주요도시와 지방 60여개 군으로 확산되었다. 미군정은 전평의 요구사항을 묵살하고 강경대응 방침을 세웠다. 9월 30일 미군정은 탱크를 앞세우고 군경 3천여 명과 우익단체 청년 2천여 명을 동원해 용산 철도파업 현장을 습격했다.

2차 총파업으로 불리는 3월 총파업은 일제 부역 경찰간부 처벌과 경찰 민주화, 구속된 노조간부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파업이었다. 제주 3.10파업이 바로 전평의 지휘아래 제주에서 벌어진 총파업인 것이다.

2차 총파업 역시 미군정의 강경진압에 의해 2천여 명이 구속되며 끝이 났지만 전평은 1948년 다시 3차 총파업을 감행한다. 이 역시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정치파업이었다. 3차 총파업은 제주4.3으로 이어졌고, 3만 명에 달하는 제주도민이 미군정의 초토화 작전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전평은 3차례의 총파업으로 인해 수많은 간부들이 검거되거나 살해 당해 조직과 세력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단독정부 선거일에 맞춰 다시 총파업을 조직했고 전국 규모로 확산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역시 잔혹하게 진압 당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4.3항쟁을 이어 5.10단선을 무산시키는 데 성공한다.

▲ 4·3사건 발생 한달여 만인 48년 5월 5일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바로 제주4.3학살의 주범들이다. 왼쪽 두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 4·3사건 발생 한달여 만인 48년 5월 5일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바로 제주4.3학살의 주범들이다. 왼쪽 두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제주4.3은 반제자주, 조국통일을 향한 전민항쟁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어둠을 가르는 한발의 총성은 순식간에 제주도를 흔들어 전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라산의 봉우리마다 붉은 봉화가 올라가고 미군정의 탄압에 맞선 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탕’하는 총성은 5.10 분단선거를 무력으로 저지하라는 공격개시의 신호임과 동시에 제주도민 전체의 궐기를 촉구하는 호소였다.

3천여 명의 무장대원들은 각지의 산봉우리에 일제히 올려진 봉화와 총성에 동서남북으로 호응하여 봉기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제주도민에게 전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경애하는 부모 형제 여러분!

4월3일 금일, 여러분의 아들 딸과 형제들은 무기를 손에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적 단독선거에 반대하여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독립을 찾기 위해.

여러분에게 고난과 불행을 강요한 압제자와 그 하수인의 압제의 사슬을 풀기 위해.

여러분의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을 풀기 위해.

저희들은 오늘 분연히 떨쳐 일어섰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몸을 던져 싸우는 저희들에게 협조하시고 저희들과 함께 조국과 민중이 인도하는 길로 결연코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경찰관 여러분!

탄압하면 항쟁할 뿐이다. 제주도 빨치산은 민중을 수호하고 민중과 함께 한다.

항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민중의 편에 서라.

 

양심적인 공무원 여러분!

하루라도 빨리 선(조직선)을 찾아가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직장을 수호하며, 악질 동료와 최후까지 용감하게 투쟁하라.

 

양심적인 경찰, 장병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있는가?

한국 민중이라면 조국과 민중을 유린하는 외적을 내쫓는 투쟁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과 민족을 팔아먹고 애국자를 학살하는 반역자를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총구는 놈들에게 향하라. 결단코 여러분의 부모 형제에게 향해서는 안 된다.

제주4.3의 전평이 오늘 민주노총에 묻는다

3만여 제주도민의 생명을 앗아간 주한미군이 76년 째 주둔하고 있다. 제주도민을 학살하라 명령한 주한미군은 여전히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다. 자신의 부모 형제를 쏴 죽인 주한미군에게 제주도민의 세금이 방위비분담금으로 지급된다.

11월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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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기라고 반대하던 그 무상급식, 지금 세계의 자랑"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4/03 08:32
  • 수정일
    2021/04/03 08:3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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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교육감④]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11대 교육의제' 제안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21.04.02 20:19l최종 업데이트 21.04.02 20:19l

 

 

혁신교육 10년 무엇을 남겼나? 이를 알아보기 위해 혁신교육감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편집자말]
<동아일보>에 게재한 무상급식 관련 광고.큰사진보기에 게재한 무상급식 관련 광고
▲  서울시가 2010년 12월 21일자 <동아일보>에 게재한 무상급식 관련 광고.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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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무상급식 때문에...'란 제목의 광고를 기억하시는가? 벌거벗은 초등학생 아이가 식판으로 주요 부위를 가린 그 광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재직하던 2010년 12월, 서울시가 몇몇 신문에 낸 유료광고다.

내용은 '무상급식 때문에 저소득층 급식비 지원 등 선별복지정책이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 광고가 나온 뒤 8개월여 만에 치른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오세훈 당시 시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린 아이 벌거벗긴 그 광고  그렇게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이 시작됐고,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초중고 친환경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이어 이제 유치원 전면 무상급식까지 앞두고 있다.


2014년부터 7년째 서울시교육감을 맡고 있는 조희연(65) 교육감은 3월 31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퍼주기라던 친환경 전면 무상급식이 지금은 세계의 자랑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룬 보편적 무상급식은 세계 교육사에서도 모범이 되는 사례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가정의 부담도 덜고, 아이들 건강을 위해 급식의 질도 높이고,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도 살리는 폭넓은 상생의 길이 펼쳐졌습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희연 서울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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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육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갈등을 겪으면서 어렵게 시작한 서울의 초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은 잘한 일이고 자랑스런 일"이라면서 "우리나라의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해 영어 안내 자료를 만들어서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8일 '서울시장 후보자에게 제안하는 11대 교육의제'에서 '유치원 친환경 무상급식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어린이·청소년 행복특별시 서울 2021 시민선언 추진위는 지난 3월 22일 "서울시민 2075명을 대상으로 '10년의 교육변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무상급식과 고교 무상교육을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관련기사: '교육정책 10년' 최고 변화? 1등 무상급식, 2등 무상교육 http://omn.kr/1sjfh)

또한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말에 낸 '2020 국공사립학교 회계분석 종합보고서'에서 공립초중고에 대한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비율이 2015년 27.98%에서 2019년 16.82%로 5년간 11.16%p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5년 한해 학부모 1명의 평균 부담금은 851만6000원이었지만 2019년에는 672만5000원으로 감소했다. 최근 5년 사이에 학부모의 한 해 부담비용이 179만1000원 줄어든 셈이다. (관련기사: '무상급식' 등 효과... 학부모 교육비 5년간 평균 179만원 줄어 http://omn.kr/1sm42)

조 교육감은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과 협력 필요성에 대해 "퍼주기란 이름으로 보수정당이 반대하던 보편적 학생 무상복지는 이제 대세가 되었다"면서 "친환경 무상급식 제공과 25개 혁신교육지구 사업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출신인 조 교육감은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을 거쳐 2014년 7월부터 서울시교육감으로 일하고 있다. '조희연이 제안한 것은 국가 교육정책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도적인 정책 대안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제안한 교사 백신 우선접종, 등교 확대, 학교 현대화 사업(그린 뉴딜 미래학교) 등은 교육부와 청와대 정책으로 수렴됐다.

조 교육감이 지난 8일에는 서울시장 후보자에게 11대 교육의제를 제안했다. 이를 제안한 이유와 서울교육 현안에 대한 해법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31일 서울교육감실에서 90여분간 진행됐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안한 11대 교육의제는 ▲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확대 ▲ 아동‧청소년 복합시설 확대 ▲공사립 유치원 친환경 무상급식 ▲ 학교와 마을의 경계를 넘는 방과후 돌봄서비스 연계체계 ▲ 생태전환도시 서울 시스템구축 ▲ 교육안전망 통합시스템 구축 ▲ 학교 밖 청소년 맞춤형 지원 확대 ▲ 문화예술친화도시 구축 ▲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 ▲ 특성화고 지원 ▲ 고교학점제 활성화를 위한 일반고 인프라 확충이다.  

학교에 '따릉이'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희연 서울교육감실 한켠에 세워진 자전거.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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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자전거를 열심히 타십니까?
"주말마다 자전거를 탑니다. 업무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주말에 자전거 타기입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 서울시장에게 제안하는 11대 교육의제 내용 가운데 하나가 '따릉이 사업 학교까지 확대' (생태전환도시 서울 시스템구축)입니다. 따릉이 대여소를 학교 안팎에도 설치해달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박원순 시장 때 만든 대표적인 사업 가운데 하나가 서울 공영자전거시스템 따릉이입니다. 학생들이 따릉이를 타게 되면 기후위기 시대에 친환경 이동수단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기회가 될 겁니다. 규모가 큰 학교들은 모두 설치해주면 좋겠습니다. 신임 시장을 만나면 꼭 요청을 드릴 겁니다."

- 친환경 생활화는 어른들이 먼저 솔선수범이 필요해 보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벌써 1년 전에 따릉이 대여소를 정문 앞에 설치해달라고 요청해서 관철시켰습니다. 이걸 학교로까지 확대 설치해달라는 겁니다. 서울시교육청과 교육지원청, 산하기관은 4월부터 화장실에 손 휴지도 없애기로 했어요. 일회용 종이 휴지 대신에 손수건 사용을 독려하기 위한 겁니다." 

- 올 2월에 서울지역 중고교 신입생들은 입학준비금 30만원을 받았습니다. 왜 서울시에 이 내용을 제안하셨습니까. 
"원래는 서울시의원들이 무상교복을 지원하자는 제안을 했고요. 저는 입학준비금으로 지원하자고 다시 제안한 겁니다. 교복 자율화를 한 학교들도 있기 때문에 무상교복 사업으로 국한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보편복지 형태로 제로페이 30만원씩 지원을 했고요. 이 돈은 교복, 체육복, 생활복 등 의류와 원격수업에 필요한 스마트기기 등을 학생의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살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재원을 서울시와 분담해야 하는 사업이라 서울시에 제안한 겁니다."

- 최근 서울시장 후보자들에게 '11대 교육의제'도 제안했습니다. 교육의제를 제안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들과 청소년이 살아가는 공간은 학교 안과 밖이잖아요. 서울시교육청의 교육행정과 서울시의 일반행정은 필연적으로 공동으로 다뤄야 할 의제가 아주 많습니다. 2021년 현재 4대 분야 38개 교육협력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울 아동‧청소년의 행복한 삶과 꿈을 빈틈없이 지원하기 위해서 11대 교육의제를 제안하게 됐습니다."

- 교육의제 제안 가운데  '유치원 친환경 무상급식 도입'이 있더군요. 유치원 무상급식도 서울시와 함께 해야 하는 겁니까?
"현재, 유치원 무상급식 추정 예산은 약 834억 원입니다. 해마다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 서울시, 자치구와 재원 분담이 필요합니다. 비율도 교육청 : 서울시 : 자치구가 각각 5 : 3 : 2으로 협의해야 합니다." 

- 유치원 전면 무상급식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서울시장 후보가 한 명도 없던데요?
"박영선 후보에 이어 오세훈 후보도 찬성을 했죠?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 제안은 모든 분들이 다 받은 겁니다. 이미 우리가 11대 의제를 제안한 이후에 민주당 박영선, 진보당 송명숙, 기본소득당 신지혜, 미래당 오태양 후보가 서울시교육청을 직접 방문해서 11대 교육의제에 대해 찬성하는 뜻을 전했습니다."

- 그러면 학교 무상급식 정책이 퇴보하는 일은 없겠군요. 
"일각에서도 무상급식을 후퇴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인데요. 초중고교 무상급식을 역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무상급식 빈자리 얼마나 컸나"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희연 서울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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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10년 전에 당시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직후에) 사퇴하면서 초등 무상급식을 곽노현 교육감이 추진했고요. 오 시장 사퇴 뒤 당선된 박원순 시장 1호 결재가 바로 이 보편적 무상급식이었습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잘 한 것이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무상급식 추진 교육감 2기인 셈인데요. 고교 무상급식에 이어 이번에 유치원 무상급식까지 제안한 것입니다. 2019년 2학기부터는 고3 무상교육이, 2020년부터는 고2 무상교육이 확대 시행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2020년) 2학기부터는 고1 무상교육을 한 학기 앞당겨 시행했습니다. 고교까지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이 확대됐으니까, 이제 유치원 무상급식까지 성취된다면 전 교육과정 친환경 무상급식이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되돌립니까?" 

-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급식이 없어서 속앓이 하는 학부모들이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등교수업이 안 되니, 학교 무상급식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습니까? 가정의 부담을 생각해보세요. 특히 한국 무상급식은 친환경입니다. 높은 품질에다가 학생들 건강에도 좋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에게도 도움이 되어 상생이 되는 사업입니다. 한국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 무상급식을 왜 그렇게 평가하시나요. 
"2011년에 보편이냐, 선별이냐 하는 무상복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퍼주기'라고 반대하던 보수정당도 있었고요.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세계교육사에 있어서도 모범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에 친환경을 결합한 보편복지는 세계에 충분히 자랑할 만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들도 우리처럼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는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밥 먹었니? 진지 드셨어요?'가 안부인사가 된 것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밥상 공동체가 있는 겁니다. 무상급식은 단순히 점심 한 끼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넘어 학생들에게는 안정된 학교생활을, 학부모에게는 교육청에 대한 신뢰를, 선생님들에게는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의미로 확대됐습니다. 결국 무상급식 확대가 학교의 교육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영어자료를 만들어서 전 세계에 알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서울시청, 자치구와 교육청의 협력사업 가운데 최근 주목되는 것이 정부의 자치구·학교 협력 돌봄인 '학교돌봄터' 시범사업입니다. 이 사업을 신청한 자치구가 몇 곳이나 되나요?
"아직 신청한 자치구는 없습니다. 저는 학교돌봄과 지자체 돌봄이 통합적으로 연계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학교돌봄터 사업에 동의하는데요. 지자체에서는 이것이 재정 부담이 될까봐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최근 자사고 소송에서 서울시교육청이 계속 패소하고 있습니다. '유감'이라는 입장문을 내셨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절차를 문제삼은 것이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정책적 당위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가 문제 삼은 그 평가지표는 2015년 박근혜 정부 교육부조차 거의 수용한 내용이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했습니다. 법률적‧행정적 문제가 없었어요. 우리 교육청은 2015년부터 학교평가 가이드북을 통해서 2019년 평가지표를 꾸준히 안내해서 학교의 예측 가능성을 충분히 보장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재판부가 '예측 가능성이 없었다'는 자사고 측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했습니다."

- 최근 10년간 임용된 판사 1482명의 출신고를 보면 모두 서울에 있는 대원외고, 명덕외고, 한영외고, 대일외고 출신이13.8%였고 SKY 대학 출신은 79.3%였습니다. 이런 점이 재판에 영향을 줬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판사들의 학벌이나 학연 때문에 부정적 판결이 내려졌다고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사법부의 독립성을 신뢰합니다. 이런 전제 속에서 보더라도 우리 사회 상위 직인 판사들 가운데 서울지역 외고 출신이 14%에 이른다는 건 위기의 신호입니다. 고교체제 개혁이 시대적 당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봅니다. 오는 2025년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고·자사고의 사회적 소임은 이제 끝났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희연 서울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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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2025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실현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런 흐름은 역전이 어려우리라 봅니다. 다수의 시민들은 일반고 전환에 찬성합니다. 자사고와 외고 학부모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이고요. 동의하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와 강력하게 반대하는 소수가 공존하는 상태로 봅니다. 만약 어느 정부가 일반고 전환 정책을 역전시키면 다수의 침묵하는 동의자들이 저항할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학생의 희망에 따른 교육과정의 다양화가 실현 가능해졌습니다. 이전에는 '고교 다양화 정책'을 통해 고교 간 교육 다양화가 이루어졌다면, 앞으로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고교 내 교육 다양화가 가능해집니다. 외고‧자사고의 사회적 소임은 이제 다했습니다."

- 지난해 12월 22일엔 혁신학교 지정 반대운동을 펼친 서울 서초에 있는 경원중 주변 주민들을 고발했습니다. 민선 교육감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인데요.
"저희도 굉장히 고민했고요. 혁신학교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니까요. 그런데 반대 자체가 교권침해 방식으로 이뤄진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 중엔 지역 부동산 업자와 연결된 이도 있었다고 보고요. 학교교육과 직접 관련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교장 실명을 적고 '나는 너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는 저주 현수막을 학교 문 앞에 내건 것을 보고 정말로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학부모를 고발한 것이 아니라, 교권을 침해한 인사들을 고발한 것입니다."

- 결국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했는데요. 앞으로 혁신학교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겁니까?
"혁신학교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공교육 시범학교예요. 당연히 혁신학교 포기는 없습니다. 혁신학교를 포기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만, 미래고 뭐고간에 학원형 수업을 해주길 바라는 학부모도 분명히 있습니다. 대학입시와 학벌체제 효과인 것인데요.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는 대학 서열화 해소와 학벌체제 개혁과 함께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입과 수능이 블랙홀이 되어서 초중등교육을 왜곡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교육은 성공의 길이 아니라 성장의 길'이 되는 미래교육을 만들고 싶습니다."

- 경원중 주민들이 내세웠던 명분은 '혁신학교가 지정되면 학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저하'에 대한 명확한 실증연구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2016년 고교 학업성취도 결과의 경우 혁신고와 자사고, 특목고를 포함한 전체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 결과를 비교한 것입니다. 지역 여건이나 가정‧경제적 요인 등에 대한 고려가 없는 단순 비교였어요. 아시듯 혁신학교는 형편이 열악한 지역에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학력이 낮은 채로 출발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성취도 향상을 살펴보면 일반고교에 비해서 오히려 높습니다. 학력은 단순히 시험 치는 능력이 아닙니다. 지식을 깊이 이해하고 소통하며 협업하는 역량까지 아우르는 학력 개념에 비춰보면, 혁신학교는 오히려 학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 경원중 주민 얘기 중에 딱 하나 동의가 됐던 내용이 '수능을 강화하면서 뭐 하러 수능에 불리한 혁신학교를 지정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표적인 역진 사례가 수능 확대인 것 같습니다. 학원형 입시교육을 벗어나기 위해 박근혜 정부도 자유학기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수능 확대 기조가 갑자기 나오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제라도 새롭게 전열을 재정비해서 전면적인 입시개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교육혁신은 8부 능선에 와 있습니다. 8부 능선을 넘을 때가 가장 힘듭니다. 이 8부 능선을 넘어서 학벌체제를 고치는 데까지 전진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교육혁신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자사고와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고교체제 개혁, 고교학점제 도입,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 도입, 이 3가지 전환적 계기가 상호 결합이 되어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2025년이 1995년 5.31 교육개혁에 버금가는 커다란 전환점이 되리라 봅니다."

 "아날로그형 교육혁신에 인공지능형 혁신 결합해야"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희연 서울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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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방향 가운데 하나로 AI(인공지능) 교육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완전한 AI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위험하고, 사교육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존재입니다. 낯선 존재에 대해 환상이나 편견을 품고 대하는 일은 흔한 현상이죠. 그럴수록 AI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 융합역량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최근 문해력 교육이 강조되는데, 이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면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은 사교육 업체들의 목표와는 정반대 방향을 지향합니다. 기존 혁신학교는 아날로그형 혁신 측면이 있었어요. 원격수업 시대에 디지털형 혁신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인공지능형 혁신과도 결합을 시켜야 합니다. 물론 민간과 관계에서 공공적 규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장 부분과 공공부분이 만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2/3가 등교하는데, 중학교만 1/3이 등교합니다. 불공정한 거 아닌가요? 
"원격수업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매일 등교하는 학년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초1-2와 고3은 밀집도 예외 대상입니다. 이러다보니 초등학교와 고교는 2/3가 등교하게 됐고요. 중학교만 1/3 등교입니다. 이건 수미일관의 원칙에도 어긋나죠. 중1도 밀집도 예외로 해야 합니다. 이 학생들은 지난해 초6 때 코로나로 학교에도 많이 못 갔잖아요."

- 등교수업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 가인데 하나가 과밀학급인데요. 과밀학급은 어떻게 해소하면 좋겠습니까?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 감소가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맞으면서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기획재정부에서 관할하는) 교원 정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교육은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만 계산하면 안 돼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고 교육의 질을 중요시하는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교원 간 경쟁은 불행한 학교 만들어"
 

- 교원성과상여금을 균등지급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임을 고려해서 제안을 한 것인데요. 교육부는 인사혁신처와 협의해서 S, A, B 등급 간 비율을 조정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원 간 경쟁을 조장하는 현행 교원성과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성적 경쟁이 불행한 학교생활을 만들 듯이, 교원 간의 경쟁 또한 불행한 학교를 만듭니다. 부정적 측면이 너무 많습니다."

- 임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은 무엇입니까?
"제가 교육감이 된 뒤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17년 만에 공립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동시에 앞으로는 학교를 신설하거나 증축할 때, 특수학급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2월 서진학교 졸업식에 참석해서 첫 번째 졸업생 20명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는데요. 모든 아동‧청소년은 언제 어디서나 공평하게 배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확인했습니다. 지금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특수학교를 가지지 못한 구가 8개나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모든 자치구에 공립 특수학교를 설립하려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1일 발표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에서도 '장애·다문화 학생·성 소수자 등 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고 인권 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성 소수자 보호'에 대해서는 일부 우익과 종교계 세력이 '동성애 조장'이라고 거세게 반발했지만, 해당 내용이 그대로 들어갔다. 

-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일에 집중할 생각이십니까?
"저는 요즘 '통합교육복지'라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7년동안 교육감을 했는데, 학교 현장을 보면 아이들에 대한 교육복지가 파편화되고 개별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같은 학생인데 교육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교육부, 교육청, 서울시, 자치구, 여가부 등 다 다릅니다. 이래서는 행정적 장벽 때문에 통합교육복지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교육복지 행정부서들이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관련기사]
[혁신교육감 ①] '일제잔재 청산교육' 나선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http://omn.kr/1rz3n 
[혁신교육감 ②] 민병희 "공부만 시키는 건 해악, 의사와 판검사 사람 만드는 게 교육"  http://omn.kr/1s7pp   
[혁신교육감 ③]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이 '학종교' 신도로 통하는 이유 http://omn.kr/1sf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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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긴 산하, 아직 평화롭지도 하나되지도 못했다”

‘분단시대의 망명객 故 정경모 선생 추도식’ 열려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4.01 20:25
  •  
  •  수정 2021.04.01 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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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의 망명객’ 정경모 선생의 추도식이 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분단시대의 망명객 故 정경모 선생님 유해봉환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배우 문성근 씨가 고인과 부친 문익환 목사와의 각별한 관계를 회고하는 추도사를 했다. [사진 - 조천현]
‘분단시대의 망명객’ 정경모 선생의 추도식이 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분단시대의 망명객 故 정경모 선생님 유해봉환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배우 문성근 씨가 고인과 부친 문익환 목사와의 각별한 관계를 회고하는 추도사를 했다. [사진 - 조천현]

“2000년 6.15선언에 그 내용이 그대로 옮겨앉은 89년 4.2공동성명이 발표된지 벌써 32년, 그 선언들을 아직도 우리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천은커녕 그 선언을 만들어내신 정경모 선생님을 생전에 고국에 모시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51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분단시대의 망명객’ 정경모 선생의 추도식이 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분단시대의 망명객 故 정경모 선생님 유해봉환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이날 추도식은 [통일의집] 유튜브 채널과 <통일뉴스>를 통해 생중계됐다. 

1989년 고인과 더불어 방북길에 올랐던 문익환 목사의 3남 배우 문성근 씨는 추도사에서 “정경모 선생님과 문익환 목사는 영혼의 동지셨다”며 이부영 선생이 “이제라도 정경모 선생을 문익환 목사가 누워계신 모란공원에 유원호 선생과 함께 나란히 모시자”고 제안해 “아~ 정말 좋다. 김구 여운형 장준하 선생이 어울리고 계신 ‘찢겨진 산하’에 이제 정경모 선생님도 문익환 목사 손을 잡고 들어가시겠구나”라며 반겼던 심경을 전했다.

『찢겨진 산하』는 고인이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씨알의 힘> 제6호(1983년 6월)에 여운형, 김구, 장준하의 구름 위 정담(三先覺雲上經綸問答) 제목으로 발표했고, 1984년 이를 단행본으로 엮은 책으로 국내에도 번역돼 널리 읽혔다. 죽임을 당한 세 분의 선각자 여운형, 김구, 장준하가 사후세계에서 만나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51년 만에 유골로 고국에 돌아온 정경모 선생(1924-2021).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51년 만에 유골로 고국에 돌아온 정경모 선생(1924-2021).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고국의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지원하며 한 평생을 바쳤고,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지난 2월 1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영면에 들어 2월 19일 유해로 돌아왔다.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과 1일 서울 중구 충무로역 인근 ‘공간 채비’에서 일반인 조문을 받았고, 2일 오전 19시 ‘채비’에서 발인해 오전 11시 고 문익환·박용길 부부의 자택이었던 서울 수유리 ‘통일의 집’에서 노제를 지낸 뒤 오후 2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사진 - 조천현]
[사진 - 조천현]
[사진 - 조천현]
[사진 - 조천현]

이승환 통일맞이 이사장은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9년 선생님과 문익환 목사님께서 한반도 탈냉전과 화해의 일념으로 방북하셨고, 그때 만들어진 4.2공동성명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4.2공동성명은 민(民)의 투쟁과 성찰의 성과 속에 만들어진 기념비적 남북합의이며, 이 민의 성과를 이어받아 6.15공동선언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 6.15를 계승한 숱한 남북선언들의 초석이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아가 “우리는 4.2공동성명을 6.15선언의 마중물로만 해석하는 일반의 오해를 넘어 민이 만들어낸 평화와 통일의 장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4.2공동성명의 정신은 바로 오늘의 위기 앞에 남북이 사상과 제도, 신념과 가치를 뛰어넘어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익환 목사와 정경모 선생은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고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4.2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문익환 목사는 감옥에 갇혔고 정경모 선생은 일본 망명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는 4.2공동선언 4항은 이후 6.15공동선언 2항의 통일방안 합의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소선합창단과 평화의나무합창단이 추도곡을 공연했다. [사진 - 조천현]
이소선합창단과 평화의나무합창단이 추도곡을 공연했다. [사진 - 조천현]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4.2 남북공동성명은 바로 2000년 6.15 남북정상선언의 기초가 되었고 그 이후 여러 차례 이어진 남북정상선언의 길을 열어놓았다”며 “문익환 목사님과 정경모 선생님이 내놓으신 길을 갈아엎으려는 그 어떤 만행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선생의 생애 대부분을 망명객으로 살게 한 국가보안법의 낡은 틀은 여전하다”며 “둘로 찢긴 산하는 아직 평화롭지 않고 하나되지도 못했다. 소중한 겨레의 약속들이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고 “이제 남은 몫은 우리들에게 남겨 놓고 부디 영면하소서”라고 추도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고인의 장남 정강헌 씨는 조카 정진영 씨가 대독한 ‘감사의 말씀’을 통해 “아버지께서는 작년 가을부터 오연성폐렴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다 11월에 퇴원하시고 퇴원한 지 3개월 만인 2월 16일 목숨을 다했다”며 “기소정지 상태인 아버지는 ‘정보 당국과 화해하려고 했었는데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사라진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역사에 남길 것도 의의가 있다’고 귀국에 대해서는 그리 고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강헌 씨는 “민주화니 통일이니 분주했기에 문자 그대로 무일푼, 식구들은 경제적으로 고초를 겪어온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저희 아버지가 마석 모란공원에 문익환 목사님, 유원호 선생님과 함께 안장되게 된 것에 대해 유가족으로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의를 표했다.

추도식 마지막 순서는 분향과 참배로 마무리됐다. [사진 - 조천현]
추도식 마지막 순서는 분향과 참배로 마무리됐다. [사진 - 조천현]

김재규 전 통일맞이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에는 함세웅 신부, 이낙연 전 총리,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등이 추도사를 했고, 이소선합창단과 평화의나무합창단이 추도곡을 공연했다.

추도식은 영정을 앞세우고 만장을 휘날리며 모심굿으로 시작했고, [통일의집]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으며, <통일뉴스>를 통해서도 중계됐다.

추도식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 임재경 <한겨레> 초대 부사장, 이해학 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문영금 통일의집 관장,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등이 참석했다.

 

정경모 선생 연표

1924년 7월11일 - 서울 영등포 출생

1942년 - 경기중학교 38회 졸업

1943년 -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 입학, 45년 3월 본과 입학

1945년 - 6월 도쿄 공습 피해 귀국

1945년 - 9월 서울대 의대 입학

1947년 - 이승만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에모리대학 화학전공

1950~53년 - 도쿄 맥아더사령부 통역관 차출, 한국전쟁 정전회담 통역 배석, 주일 미군 한국어 교사

1951년 7월 - 요코하마 하숙집 딸 일본인 나카무라 지요코와 문익환 목사 주례로 결혼

1956년 - 귀국, 서울 원남동 거주

1962~67년 - 상공부 기술고문으로 울산공업센터(석유화학단지) 건설 참여, 기공 기념 박정히 축사 작성

1970년 9월 - 박정희 군사독재 반대 일본으로 망명. 반체제 인사로 입국 불허.

1973년 -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 기고 계기로 한국문제 시사평론가, 문필가 활동 시작

1973~78년 - 재일 한민통 기관지 <민족시보> 주필, 김대중 납치 구명운동 등 민주화운동

1981년 - 한국문제 전문지 <씨알의 힘> 발행, ‘씨알 어학숙’ 설립 운영

1985년 - 몽향 여운형 선생의 39주기 첫 번째 도쿄 추도강연회 주최

1988년 12월 - 몽양 둘째딸 여연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초청으로 첫 번째 북한 방문

1989년 - 늦봄 문익환 목사·유원호 씨와 두 번째 방북, 김일성 주석 면담, ‘4.2공동선언’ 초안 작성

1991년 - 일본의 평화와 조선의 통일을 생각하는 ‘씨알의 힘’ 모임 발족

1994년 - 문익환 목사 별세 충격으로 뇌경색 와병

1995년 7월 - 김일성 주석 1주기 추모식 초청으로 박용길 장로와 함께 세 번째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 접견.

1999년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와 통일맞이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귀국 추진, 준법서약서 요구로 무산

2001년 - 제6회 늦봄통일상 선정(동생 정성모 대리 수상)

2003년 - 노무현 참여정부에 귀국 의사 표시, 자수서 요구 거절. 송두율 교수 구속 사태로 무산

2009년 5월~11월 - <한겨레> ‘길을 찾아서’ 회고록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연재

2010년 - 연재 회고록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 출간

2011년 - 회고록 일어판 <역사의 불침번>(후지와라서점) 출간, 도쿄에서 출판기념회

2019~20년 - 문재인 정부와 귀국 협의, 자수서 요구로 또 다시 무산

2021년 2월16일 - 요코하마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 향년 97. 망명 51년째. 

 

[자료제공 - 유해봉안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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