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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죽으나 병들어죽으나..." 탑골공원 100m 줄 어쩌나

[데이터로 본 사회적 거리두기 ①] 종로 일대 노인들 전체 수는 줄었지만

20.03.30 07:18l최종 업데이트 20.03.30 07:18l
그래픽: 이종호(sowhat2)

 

코로나19 시대, 우리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서울시와 KT가 제공하는 '서울생활인구' 데이터와 현장 취재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증적으로 알아봤습니다. [편집자말]
 25일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공원은 2월 20일부터 문을 닫았다.
▲ 25일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공원은 2월 20일부터 문을 닫았다. ⓒ 선대식
 
25일 오전 10시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 한산한 거리에 노인들이 한 명씩 나타나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섰다. 이곳은 무료급식소 앞이다. 오전 11시가 되자, 100명이 넘는 노인들로 인해 긴 줄이 만들어졌고 좁은 돌담길은 혼잡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기간'이 무색했다.
 
박아무개(71)씨도 줄을 섰다. 사업이 망해 1년 전부터 이곳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빵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되지 않는지 물었다. 박씨의 답이다.
 
"우린 다들 배고픈 사람들이다. 나처럼 노숙하거나 쪽방 노인네들이 많다. 다른 급식소는 문을 닫아서, 밥을 얻어먹을 데가 없다. 여기 탑골공원 근처 두 군데만 밥을 주니까 여기 많은 사람들이 나온 거다. 여기에서 못 얻어먹으면 굶는다. (코로나19가) 위험한데, 굶어죽거나 병들어죽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곧 무료급식소에서 노인들에게 빵과 요구르트를 나눠줬다. 250명 분은 순식간에 동났다. 노인들은 한 끼 식사를 들고 곧 사라졌다. 탑골공원 뒤쪽의 또 다른 무료급식소에서도 많은 노인들이 줄을 서 기다린 뒤 주먹밥을 받고 사라졌다. 탑골공원 돌담길은 곧 한산해졌다.
  
[종로1·2·3·4가 70대 남성 수] 1월 8일 7348명 → 2월 5일 5874명 → 3월 4일 4721명

코로나19 이후 탑골공원 일대를 찾는 노인들의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오마이뉴스>는 서울생활인구 데이터를 통해 1~3월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탑골공원 일대를 포함한 서울 종로1·2·3·4가 70대 남성의 숫자를 분석했다. 서울생활인구는 서울시와 KT가 공공빅데이터와 통신데이터를 이용하여 추계한 서울의 특정지역·특정시점에 존재하는 모든 인구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기 전인 1월 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1·2·3·4가의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7348명이었다. 이 수치는 1월 중하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월 말 설 연휴 직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2월 5일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5874명으로 줄었다. 1월 8일에 비하면 20% 줄어든 것이다.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2월 말 다시 한번 큰 폭으로 줄었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고 사망자가 연달아 나온 때였다. 서울 확진자도 크게 늘기 시작했다. 결국 3월 4일 4721명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해지자,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조금씩 늘었다. 3월 18일에는 다시 5000명 선을 넘었다.

코로나19가 젊은 세대보다 노년층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탑골공원 주변의 노년층 인구는 예년보다 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일정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으며, 단순 수치를 넘어 현장 상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좋지 않다. 그 중심에 무료급식소가 있다.
 
[무료급식 줄은 오히려 증가] 문을 닫았더니, 배곯은 노인들이 문을 두드리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회복지원각의 고영배 사무국장은 "무료급식 줄을 서는 어르신들은 오히려 늘었다, (예전에 이 곳에서) 못 봤던 분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곳 무료급식소도 코로나19로 2월말부터 3월초까지 3주간 문을 닫았다. 급식 중단은 1993년 문을 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초 무기한으로 무료급식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고영배 사무국장의 말이다.
 
"무기한 중단을 하려고 했다. 어르신들이 밥을 드시다가 확진자가 나오면 어르신들한테도 송구스럽고 무료급식 운영도 큰 타격을 받으니까. 그런데, 닫힌 문을 두드리면서 언제 밥을 주냐고 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래서 급식을 하는 대신 길에서 빵, 떡, 우유, 요구르트를 나눠주기로 했다."

무료급식소를 제외하면,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은 확연히 줄었다. 탑골공원은 지난달 20일부터 문을 닫아걸었다. 탑골공원 돌담길의 수많은 장기판이 사라졌고,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 영화관도 문을 닫았다.
 
탑골공원 돌담길 초입에서 20년째 구두닦이를 하는 하아무개(67)씨는 최근 두 달 만에 다시 나왔다. 하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두 달 동안 장사를 접었는데,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주부터 다시 이곳에 나왔다. 그런데 장사가 안 된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아침부터 낮 1시까지 일하면서 1만5000원 ~ 2만 원을 벌었다. 며칠 전 다시 나온 날에는 4000원 벌었다. 그만큼 사람이 없다. 무료급식소 앞 말고는 사람이 잘 안 다닌다."
 
 25일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의 모습.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공원은 2월 20일부터 문을 닫았다.
▲ 25일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의 모습.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공원은 2월 20일부터 문을 닫았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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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심판’ 내건 서병수 전 부산시장…부산노동자들 “정치에도 염치가 있어야”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서병수 전 시장 비리 의혹
 
임병도 | 2020-03-30 08:59: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3월 27일 부산시청 앞에는 전현직 부산지하철 노조 위원장들이 모였습니다. 이의용 부산 북구강서을 정의당 국회의원 후보의 서병수 전 부산시장 총선 출마 규탄 기자회견 때문입니다.

이의용 후보는 서병수 후보가 부산시장 재임 시절인 2016년 부산지하철 노조 위원장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지하철노조는 다대선 개통을 앞두고 부산교통공사에 안전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파업을 했습니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노조의 합법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당시 8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을 직위 해제했고, 수십 명에 달하는 노조간부들을 해고했습니다.

이의용 후보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던 일진이었다. 해고로 저희 노동자들의 가정은 파탄이 날 뻔했다”면서 “가정파괴범, 일자리 파괴범 서병수 전 시장이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피가 끓는 마음으로 오늘 나섰다”라며 기자회견을 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서병수 전 시장 비리 의혹

▲문재인 심판 피켓을 들고 선거 운동을 하는 서병수 후보 ⓒ서병수후보 페이스북

서병수 후보는 ‘문재인 정권 심판’이라는 피켓을 들고 선거 운동을 합니다. 이의용 후보는 서 후보를 가리켜 ‘염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의용 후보는 “서병수 전 부산시장 재임 기간 중 많은 일이 있었다”며 ‘부산지하철 구조조정을 통한 시민 안전 문제와 부산교통공사 사장의 편법적 ‘꼼수 연임’’‘영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한 부산국제영화제 파행’‘부산시립예술단 법인화 논란’‘측근들의 엘시티 비리 의혹’‘퇴임 후에도 진행된 아시아드CC 사장 비리 혐의’ 등을 하나씩 열거했습니다.

이 후보는 서병수 후보에게 “지금 가야 할 길은 국회의원 출마가 아니다”라며 “부산시장 재임 시절 노동자를 탄압하고, 부산 시민의 자랑 국제영화제를 파행시키고, 부산의 수치스러운 적폐 엘시티 비리에 측근이 연루되는 등 부산의 자존심을 떨어뜨린 것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진구에서 격돌하는 서병수 전 시장과 김영춘 의원

▲후보자 등록 후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미래통합당 서병수 후보 ⓒ서병수후보 페이스북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26일 부산진구갑 국회의원 후보로 등록했습니다. 서 후보와 맞붙는 민주당 부산진구갑 후보는 김영춘 의원입니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만약 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민주당 오거돈 시장의 행보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김영춘 후보가 당선된다면 문재인 정부와 오거돈 부산시장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한편 시민 사회에서는 가덕동 신공항 유치에 실패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서병수 전 부산시장을 언급하며 선거보다 재임 시절 비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영상보기: ‘문재인 심판’ 내건 서병수 전 부산시장…부산노동자들 “정치에도 염치가 있어야 한다.” (ft.이의용)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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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치 소장 "미 코로나19 사망자 20만 명에 이를 수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3/30 10:18
  • 수정일
    2020/03/30 10: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트럼프, 코로나에 굴복 "사회적 거리두기 4월 30일까지"

미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9일(현지시간) 오후 8시 현재 14만1125명, 사망자가 2458명이 넘어서는 등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자 지난 24일 경제를 위해 부활절인 4월 12일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입장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오후 백악관의 코로나 태스크포스(TF) 일일 브리핑에서 "부활절은 너무 이르다. 모험을 할 수 없다"며 4월 30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련된 지침(10명 이상의 모임 금지)을 4월 30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잘하면 할수록 이 모든 악몽은 더 빨리 끝날 것"이라며 6월 1일까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월 12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까지 거론하며 '경제활동 재개'를 주장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금요일을 기점으로 미국이 중국으로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국가가 됐을 뿐 아니라 뉴욕 등 일부 지역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감염이 확산되면서 또다시 '신중' 모드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심각한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등 3개 주에 강제격리 명령을 검토한다고 밝혔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이는 백악관 회의에서 사실상 봉쇄를 의미하는 강제격리 조치가 증시 등 경제에 미칠 악영향과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권한 사이의 갈등 등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고집'을 꺾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 3개주 주민에게 앞으로 14일간 꼭 필요하지 않은 국내 여행은 자제할 것으로 촉구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파우치 소장 "미 코로나19 사망자 20만 명이 이를 수도" 

 

이런 가운데 백악관 코로나 TF의 핵심 책임자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이날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20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예측모델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수백만명, 사망자는 10-20만 명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는 움직이는 목표물이기 때문에 예측을 고수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추세가 "앞으로 몇 주간 계속될 것이다. 내일도, 확실히 다음 주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난 19일 오후 확진자가 1만1000여명, 사망자는 164명으로 집계됐는데, 불과 열흘 만에 확진자는 13배, 사망자는 20배 가량 증가하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파우치 소장의 이같은 전망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처럼 큰 수치는 믿지 않는다"면서 파우치 소장에게 직접 발언할 기회를 줬지만, 파우치 소장은 동일한 전망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핫 스팟' 뉴욕, 의료장비 부족해 '쓰레기 봉투' 입은 간호사 등장 

 

미국에서 현재 가장 상황이 심각한 뉴욕주는 현재 확진자가 5만9513명, 사망자가 965명으로 집계됐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29일 기자회견에서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사망자가 수천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8일 현재 뉴욕이 2001년 9.11테러 사태를 방불케 하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응급을 요청하는 911 전화는 보통 하루 4000여 건 걸려오는데, 지난 26일에는 7000건이 넘는 응급 전화가 걸려왔는데, 이는 9.11 테러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통화량이라고 한다. 

 

또 인공호흡기 등 중증 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료 장비 뿐 아니라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진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의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뉴욕 브루클린의 한 응급구조사가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심정지 환자를 돌보느라 갖고 있던 제세동기 배터리가 방전됐다"고 안타까워 했으며, 또 다른 응급구조사는 자신의 스카프와 커피필터로 '수제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 다른 요원은 N95 마스크를 며칠 동안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욕은 이미 의사, 간호사, 소방대원 등 다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까지 뉴욕 소방국 대원 206명이 확진자 판정을 받았고, 지난 27일에는 뉴욕 시나이 웨스트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지 1주일만에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뉴욕의 한 병원에선 코로나 19 사태로 의료 장비가 부족해지면서 간호보조사에게 쓰레기봉투를 보호복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의 한 병원에서 의료 장비 부족으로 쓰레기봉투를 방호복 대신 입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 페이스북에 이 사진이 올라와 큰 화제를 모았다. ⓒ페이스북 갈무리
전홍기혜 특파원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300720421505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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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탄저균 생물학무기 세균 실험실, 이제 폐쇄해야 할 때

<칼럼>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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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30  0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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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국내외 사회가 가히 준 전시상태이다. 이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큰 파장으로 한국사회도 큰 고통과 사투 속에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현재도 코로나19 보다 더 무서운 탄저균 생물학무기 세균 실험실을 한국에서 4곳이나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탄저균이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있고, 미국 질병통제센터가 제1급으로 분류할 만큼 가장 유해한 생물작용제(무기)이다.

그런데 주한미군 탄저균 생물무기 세균 실험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공개가 아직도 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그래서 한국 시민단체가 수년전부터 주한 미군의 탄저균 반입금지와 동 세균실험실 폐쇄 그리고 정확한 정보요구를 하였지만, 미군당국은 모두가 면피용 해명성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부산 시민단체들은 2020년 3월 25일 가해자인 주한미군사령관과 해외 배송업체인 한국 페덱스를 드디어 검찰에 고발하였다.

좀 더 부연 설명하면, 주한미군은 생화학 방어프로그램(일명: 주피터/JUPITR)을 한국에서 실제로 운용함에도 이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이 2015년 4월 살아있는 탄저균을 반입할 때 페스트균도 함께 들어온 게 확인됐으며 당시 주한미군과 한국외교부 사이에 재발방지개선책을 위한 “합의권고문(Agreed Recommendation)”에 서명한 바도 있다.

그런데 그 후 주한미군은 권고문을 어기고 평택, 군산, 부산, 서울 용산기지 4곳에서 세균실험실을 운영한 것이 최근 밝혀졌다. 2009년에서 2014년까지 용산 미군기지에서 15차례, 오산기지에서 1차례 총 16차례 탄저균 실험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최근 2019년 부산 제8부두 소재 생화학실험실 운영을 둘러싸고 이에 대한 미군당국의 해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성 의혹의 파장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20년 들어서 한국에서 코로나19의 심각한 파장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도 없이 몰래 반입하여 2015년 이래 큰 물의를 일으켜온 주한미군기지내 생물무기 탄저균 실험실의 존폐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철저히 재점검할 시점이다.

지난 2020년 3월 25일 부산 제8부두 세균무기 실험실 추방 부산대책위, 감만동 미군부대 세균무기실 철거 남구대책위, 민주사회변호사협회 부산지부 등은 주한미군사령관과 국제배송업체인 페덕스(FedEx)를 비롯하여 3인을 고발하였다.

동 시민단체들은 남구 부산항 제8부두 앞 기자회견에서 “세균실험실의 불법적인 독소 반입과 실험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수사, 투명한 정보공개를 다시 요구하고, 실험실 폐쇄를 강하게 요구하였다. 피고발인은 로버트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 , 동 부사령관 및 한국 페덱스 3인이며, 제1차 고소인단은 170명이다.

미국은 생물무기금지협약(Biological Weapons Convention.1975) 가입국으로서 동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 동 협약의 당사국은 생물무기의 개발, 생산, 저장, 취득, 보유를 하지 않을 의무, 폐기 또는 평화적 목적에 사용할 의무, 어떠한 사람에게도 양도하지 않을 의무를 가진다.

미군은 1998년부터 존재했던 탄저균 실험실을 오산기지에 버젓이 운영해 왔고, 주피터 프로그램에 의하여 2013년부터 탄저균을 반입하여왔다. 특히 2015년 살아있는 탄저균 배송사고는 민간 택배회사인 페댁스에 의하여 배달되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게 더 큰 재앙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2019년에는 미군의 구차한 해명과는 달리 부산항 제8부두 등 한국 각지에서 생화학실험을 포함하여 이를 반입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는 미국이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영토 안으로 몰래 생물무기인 탄저균을 수입하고 보유한 것이 되어 한국 국내법인 생화학무기금지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주한미군은 2019년 보툴리늄, 리신을 비롯한 독소들을 부산항 제8부두를 비롯한 국내 미군기지에 반입했다. 산자부, 질병관리본부 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위 독소들에 대한 한국국내법적 허가,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내에 몰래 반입하였다고 한다. 다만 미군이 해당 독소의 국내반입에 대한 계획을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는 존재하나 비공개 처분으로 사실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해당정보에 대한 별도의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실시할 계획이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군은 2019년 12월 부산항 8부두에서 “샌토(CENTAUR)” 체계 생화학실험실 관련 현장 설명회를 면피용으로 개최한 바 있다. 정보비공개 비판과 철거를 요구하는 주민의 반발이 계속되자. 이후 한-미 합동조사가 이루어졌고, 주한미군은 재발방지와 추후 독소 반입에 있어 사전 통보를 약속했다.

그러나 재발방지책에 대한 실효성도 확실하지 않다. 주한미군이 향후 검사용 샘플을 국내로 들어올 때 “일방적으로” 우리측에 통보하고, 만약문제가 생기면 “공동으로” 관련 조사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즉, 주한미군의 샘플에 대해서 우리 측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주한미군이 제공하는 정보에 국한되고, 뒤늦게 문제를 파악하더라도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미국측과 함께 조사를 할수 있도록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생물학 무기가 될 수 있는 병원균의 반입여부조차 한국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주도적으로 대처를 못하는 상황이라면, 한미관계는 동맹관계가 아니라 비정상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일 뿐이다. 과연 한국정부가 이러고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근본적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종합하면, 미군은 2019년 12월 부산 제8부두 설명회에서 세균샘플 반입을 시인하였고, 실험장비가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비밀반입의 허점이 주한-미 주군지위협정(SOFA) 및 상기 합의권고문에서 합의되어 봉합되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20년 3월 현재 탄저균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피터 프로그램과 같은 탄저균의 불법 반입, 실험, 훈련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더구나 코로나19가 한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이 순간에, 주한 미군기지내 탄저균 세균의 관리 부실로 한국인의 건강과 안전을 더 악화시킬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근본적인 출구전략을 더 늦기전에 미군당국과 정부에 강하게 지적하고 싶다.

첫째, 탄저균의 불법 반입.실험.훈련의 전면 재조사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미군당국과 국방부에 요구한다.

둘쨰, 주한 미군기지의 일체의 생물무기 폐기와 더불어 탄저균 실험실과 주피터 프로그램의 폐쇄를 공식적으로 요구한다.

셋째,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제9조(통관과 관세), 5항(다) “미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화물”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세관검사를 하지 않는 다는 조항을 즉시 개정해야한다. 그리고 미군 기지.시설내에 위험한 무기반입과 미군의 군사작전시에는 사전에 한국에 통고하는 규정이 반드시 한-미 SOFA 규정에 명시돼야 할 것이다. 미-일 SOFA 지침과 미-필리핀 협정은 이러한 규정을 두고 있다. 미-일 SOFA지침과 미-필리핀 SOFA협정처럼, 미군 시설과 기지내에 위험한 무기 반입(탄저균 무기 등) 및 미군 병력의 이동에 대해서는 사전 접수국(한국)에 통보하는 규정을 SOFA 규정에 반드시 명시하도록 개정돼야한다.

넷째, 미군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서 운송, 비축을 금지하는 생화학무기금지법을 위반하였다. 동시에 한국 영토안으로 생물무기인 탄저균을 수입하고 보유한 것이 되어 한국 국내법인 생화학무기금지법을 위반하였다. 관련자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섯째, 국회내 탄저균 전면 재조사 및 진상규명 및 미군기지 환경오염 피해조사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한다.(국회의원, 전문위원, 민간전문가)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남북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 평화마라토너와 함께하는 사람들’(평마사) 상임공동대표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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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친서외교, 씁쓸한 종말

[개벽예감 388] 트럼프의 친서외교, 씁쓸한 종말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3/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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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트럼프의 친서내용이 공개되었다

2. 트럼프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연

3. 담화에 담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견해

4. 비일상적인 용어에 들어있는 몇 가지 의미 

 

 

1. 트럼프의 친서내용이 공개되었다

 

2020년 3월 22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하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왔다고 하면서, 친서의 요점적 내용을 공개하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를 분석, 고찰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담화발표의 주체가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조선외교발언과 관련된 조선의 담화는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명의로 발표되었다. 이를테면,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2019년 9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명한 선택과 용단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했고, 2019년 10월 24일 조미수뇌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된 담화를 발표했고, 2019년 11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하는 결단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했으며, 2020년 1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생일축하인사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했다. 대미외교활동에서 풍부한 경험과 관록을 지닌 김계관 고문은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대조선외교발언과 관련된 담화를 전담하여 발표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관례를 뛰어넘어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조선외교발언과 관련된 담화가 아니라, 그의 친서와 관련된 담화이기 때문에 김계관 고문이 발표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를 직접 대변하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발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답신을 보내지 않고,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였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답신을 보내지 않고,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로 답신을 대체한 것은 조미관계가 얼마나 경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2020년 1월 11일에 발표된 담화에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당시 백악관을 방문한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일을 축하하는 인사를 전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탁을 청와대가 긴급통지문을 통해 북에 긴급히 전달한 것을 두고 “아마도 남조선당국은 조미 수뇌들 사이에 특별한 련락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었는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도 그 특별한 연락통로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해진 것이 분명하다.   

 

셋째, 외부에 국가원수의 친서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외교관례다. 조미관계에서도 그런 외교관례가 통용되었다. 지난 2018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몇 차례 받았으나, 그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담긴 내용을 공개하였다. 이런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홀시하였음을 말해준다. 만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중시하였다면, 2018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친서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 친서의 내용을 분석, 고찰할 필요가 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공개한 친서의 내용을 읽어보면, 조미관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2020년 3월 22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는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왔다고 하면서, 친서의 요점적 내용을 공개하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발표는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를 대변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답신을 보내지 않고,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로 답신을 대체한 것은 조미관계가 얼마나 경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국가원수의 친서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외교관례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담긴 내용이 공개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홀시하였음을 말해준다.  

 

1)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친서에서 지난번 위원장 동지의 탄생일에 즈음하여 보낸 자기의 축하의 인사가 위원장 동지에게 정확히 전달된 소식에 기뻤다는 소감을 전”해왔으며, “위원장 동지 가족과 우리 인민의 안녕을 바라는 따뜻한 인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전한 것이 아니라, 정중한 인사를 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정중한 인사를 전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자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최근에 의사소통을 자주 하지 못하여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앞으로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련계해나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이 인용문이야말로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 자기 의사를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2)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조미 두 나라 관계를 추동하기 위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관계와 관련된 구상을 담은 친서를 보낸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김여정 제1부부장은 친서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관계를 추동한다”는 비일상적인 용어를 썼다. 관계를 개선한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관계를 추동한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왜 그런 비일상적인 용어를 택했을까?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서 관계개선과는 다른 구상을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서 언급한, 조미관계를 추동하기 위한 구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 문제는 오늘 조미관계동향을 파악하는 데서 중요하므로,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3)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전염병 사태의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자기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국무위원장 동지의 노력에 대한 감동을 피력하면서 비루스방역부문에서 협조할 의향도 표시하였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하였던 바로 그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 만일 조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미국이 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검진장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발언은 헛소리다. 왜냐하면, 최근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확산은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빠뜨렸고, 미국이 보유한 의료시설 및 검진장비로는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이 코로나바이러스환자가 한 명도 없는 조선에게 검진장비를 지원해주겠다니, 길을 지나던 소가 들어도 껄껄 웃을 일이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초기방역에서 실패하여 미국을 사상 최악의 재앙에 빠뜨린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다급한 나머지 2020년 3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한국산 코로나바이러스검진장비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처럼 곤경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검진장비를 보내주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잠꼬대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잠꼬대 같은 발언을 최대한 좋게 해석하면, 검진장비지원을 전환계기로 삼아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 트럼프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연

 

누구나 직감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은 이따금 기이한 행실로 세계를 놀라게 하였지만,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그의 행동에는 기이한 행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사연이 얽혀있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3일에 시행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에 분주하기 때문에, 그의 관심은 조미대화에서 멀리 떠났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20년 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외교정책보좌관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코로나바이러스확산에 대응하는 국가방역사업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환자는 시시각각 폭증하였고, 미국인들은 혹독한 괴질재앙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괴질확산추세를 억제하지 못하면,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확진자수는 앞으로 한 달 안에 100만명 선으로 폭증하여 국가체제가 완전히 마비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미증유의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처럼 대선문제에 몰두하면서 국가방역사업에 골머리를 앓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서 조미대화를 재개하는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는 것이 그간 정세분석가들의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반적인 판단이 뒤집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외교를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담은 친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대선문제에 몰두하면서 국가방역사업에 골머리를 앓는 트럼프 대통령이 뜻밖에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 것은 그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어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련계해나가기” 위한 친서외교를 재개할 의사를 표명하였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에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기에, 그의 관심이 조미대화에로 기울어진 것일까?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온라인매체 <악시오스> 2020년 1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로벗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월 10일 <악시오스> 취재기자와 대담하면서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어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를 “여러 통로를 통해” 조선에 전달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생일축하친서도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이 언급한 여러 통로들 가운데 어느 한 통로로 전달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지난 1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축하친서를 보낸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의 생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생일축하친서를 보내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동맹국 국가원수에게 생일축하친서를 보낸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더욱이 조선과 가까운 동맹국 국가원수들이나 우호국 국가원수들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축하친서를 보낸 사례도 아직 없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축하친서를 보냈으니, 백악관 외교사에서 처음 있는 특별한 일로 기억될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의 외교관례를 뛰어넘어 각별한 성의를 보이며 생일축하친서를 보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만든 냉담한 반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가 그런 냉담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축하친서에 답신을 보내는 것 대신,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명의로 담화를 발표하게 하였다. 김계관 고문은 담화에서 조선이 미국과 협상하면서 “1년 반이 넘게 속히우고 시간을 잃었다”고 개탄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고 “혹여 우리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가진다거나 또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질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축하친서를 보내는 것으로 친서외교를 재개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시도가 실패하는 바람에 실망했다. 다혈질인 그로서는 실망만 느낀 게 아니라, 기분도 언짢았을 것이다. 콧대 높은 트럼프 대통령이 적대국 국가원수로부터 그런 무시를 당한 이후 그의 입에서 친서외교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2020년 3월 22일 김여정 제1부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하였던 바로 그날,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만일 조선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미국이 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검진장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발언은 헛소리다. 코로나바이러스확산을 막는데 실패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빠진 미국이 코로나바이러스침습을 가장 성공적으로 차단하여 확진자가 한 명도 없는 조선에게 검진장비를 지원해주겠다니,길을 기나던 소가 들어도 껄껄 웃을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 까닭은, 친서외교를 다시 시도해보려고 기회를 엿보던 중 미국의 대조선방역지원에서 그 기회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답지 않은 별난 행동을 하였다. 그는 감정을 누르고, 친서외교를 다시 시도하기 위한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서외교를 다시 시도할 방도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500km에 이르는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인접한 중국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었으니, 그 괴질이 국경을 넘어 조선에로 침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사람들은 우려하였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기우였다. 조선은 선제적이고, 강력하고, 신속한 국가방역사업을 단행하였다. 괴질침습을 차단하기 위해 조선은 2020년 1월 20일 국경을 전면봉쇄하는 비상조치를 취했고, 국가방역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2월 2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조선의 국가방역력량을 더욱 강화하면서, 방역수단, 방역체계, 방역법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되어,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재앙을 겪게 된 오늘, 유독 조선에서만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친서외교를 다시 시도해보려고 기회를 엿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조선방역지원에서 그 기회를 찾게 되었다. 2020년 2월 13일 미국 국무부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한 것은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첫 번째 시도였다. 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조선에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외무성은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성명을 무시해버렸다. 조선으로부터 그처럼 계속 무시를 당하면서도 미국은 조미대화를 재개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지 않았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2020년 3월 18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뉴스>와 대담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방역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조선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미국이 조선에 방역사업을 지원해주는 것을 구실로 조미대화를 재개하려는 생각을 가졌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조선 외무성은 미국 국무부의 제안을 또 다시 무시해버렸다. 미국 국무부의 접근시도들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자,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이 그가 2020년 3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뜻밖의 친서를 보낸 내막이다. 

 

 

3. 담화에 담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견해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1)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김정은 위원장 동지도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특별한 개인적 친분관계에 대하여 다시금 확언하시면서 대통령의 따뜻한 친서에 사의를 표시하시였다”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를 통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한 것은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의 친서에 대해 사의를 표하는 외교관례이므로, 어떤 특별한 의미는 없다. 

 

2)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조미 사이의 관계와 발전은 두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놓고 서뿔리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에 따라 전망하고 기대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관계와 조미관계를 철저히 분리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2019년 2월 28일 윁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 중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왼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회담장 밖으로 나서는 모습이다.조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조중정상회담, 조로정상회담이 진행될 때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곁에서 진행일정을 점검하고 업무를 보좌하였다. 그런 김여정 제1부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친서외교를 재개하려는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도한친서외교가 종말을 맞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3)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공정성과 균형이 보장되지 않고 (미국이) 일방적이며 과욕적인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에로 줄달음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지금 조미관계가 파탄상태에 빠진 것은 미국이 조미관계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보장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과욕적인 생각을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조미협상과정 중에 조선은 녕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제안하였지만, 미국은 녕변핵시설 폐기에 상응하는 등가적인 조치를 제시하지 않은 채 조선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요구를 꺼내놓았다. 조선은 미국이 제기한 일방적인 핵포기 요구를 가리켜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하였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이 제기한 그런 강도적인 요구는 조미협상을 완전히 중단시켰고, 조미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과욕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하면서 비판수위를 좀 낮추면서도, 미국이 일방적인 요구를 거두지 않으면 조미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4)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두 수뇌들 사이의 친서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력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여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외교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조미관계에서 평형과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조미대화를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나 보낼 생각은 하지 말고, 조미관계의 평형을 유지하고 공정성을 보장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 것이다. 

 

 

4. 비일상적인 용어에 들어있는 몇 가지 의미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나오는, 조미관계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으나, 조미관계에서 “력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듣기 힘들다. 이 특이한 어법에 대한 분석적 고찰이 요구된다.  

 

첫째,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나오는 역학적 평형이라는 말은 힘의 균형을 뜻이므로, 조미관계에서 역학적 평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조미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적대적인 조미관계에서 유지되는 힘의 균형은 무력균형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더욱이 핵보유국들 사이에서 유지되는 무력균형은 핵무력의 균형이므로, 조미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말은 핵무력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흥 핵보유국인 조선과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이 핵무력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은 조선이 미국의 핵무기보유량에 버금갈 만큼 엄청나게 많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조선은 대미관계에서 핵무력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수 천 발의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조미관계에서 핵무력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미국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연습을 계속 벌이는데, 조선은 미국 본토 가까운 곳에서 핵전쟁연습을 하지 못하므로, 조미관계에서 핵무력의 심한 불균형이 유지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 핵무력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본토 가까운 곳에 접근하여 핵전쟁연습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조미관계에서 핵무력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조미관계에서 핵무력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한반도에서 핵무력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핵무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이 북침핵전쟁연습을 영구히,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다.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미국이 북침핵전쟁연습을 중단하는 것이 조미관계에서 핵무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도로 되는 까닭은, 미국의 일방적인 북침핵전쟁연습으로 조미관계에서 핵무력의 심한 불균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북침핵전쟁연습을 영구히, 완전히 중단하려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주한미국군이 유지되는 한, 미국은 북침핵전쟁연습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백하게도, 주한미국군을 유지하는 목적은 북침핵전쟁연습을 계속하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한미동맹체제도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이므로, 주한미국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체제가 해체되는 경우 한반도 정세가 혼란에 빠지고 동북아시아안보환경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동북아시아안보환경이 충격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는 것이 조선에도 이익이고, 미국에도 이익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서도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동북아시아안보환경이 충격을 받지 않게 되는 방도는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이 군비를 상호감축하여 전쟁위험을 해소하는 것이다.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군비감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주한미국군이 철수해야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동북아시아안보환경이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조미평화협정체결과 남북군비감축이 당면과제로 제기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서방측 상업위성이 평안북도 녕변군에 있는 녕변핵시설의일부를 촬영한 것이다. 추정자료에 의하면, 녕변핵시설에서 생산되는 핵물질은 조선 전역에서 생산되는 핵물질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면, 핵물질생산량의 70~80%가 대폭 감축되는 것이며, 당연히핵무기생산량도 그만큼 감축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말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녕변핵시설 폐기는 조선의 핵무기생산량을 70~80% 감축하는 파격적인 조치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녕변핵시설 폐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등가적 조치는 주한미국군 철수와 북침핵전쟁연습 중단이다. 조선의 핵물질과 핵무기를 100% 폐기하는 것이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와북침핵전쟁연습 중단에 상응하는 등가적 조치로 될 수 없는 까닭은,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북침핵전쟁연습을 중단해도, 미일동맹군이 북침핵전쟁연습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군보다 훨씬 더 강한 무력을 가진 미일동맹군이 종전보다 더 위험한 북침핵전쟁연습을 감행할 판인데, 조선이 자기의 핵물질과 핵무기를 100% 폐기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한편,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여 북침핵전쟁연습을 영구히, 완전히 중단하는 경우, 조선도 그에 상응하는 등가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선의 등가적 조치는 녕변핵시설을 영구히,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다. 다른 등가적 조치는 있을 수 없다. 조선의 녕변핵시설 폐기가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 및 북침핵전쟁연습 중단에 상응한 등가적 조치로 되는 까닭은, 녕변핵시설이 폐기되면 조선의 핵물질생산이 대폭 축소되고, 그에 따라 조선의 핵무기생산도 대폭 축소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인 씩프릿 헥커 박사는 2019년 3월 19일 <동아일보> 취재기자와 전자우편으로 대담하면서, 녕변핵시설에서 생산되는 핵물질이 조선 전역에서 생산되는 핵물질의 70~8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는데, 그런 추정에 따르면,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면 핵물질생산량의 70~80%가 대폭 감축되는 것이다. 조선이 핵물질생산량을 70~80% 감축하면, 당연히 핵무기생산량도 그만큼 감축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말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녕변핵시설 폐기는 조선의 핵무기생산량을 70~80% 감축하는 파격적인 조치인 것이다.  

 

그런데 몰지각한 사람들은 조선이 녕변핵시설만이 아니라 다른 핵시설들까지 모두 폐기하여 핵물질생산을 100% 중단할 뿐 아니라, 조선이 이미 생산한 핵무기들도 100% 폐기하는 것이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와 북침핵전쟁연습 중단에 상응하는 등가적 조치로 될 것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뭐가 뭔지 모르는 소리다. 조선의 핵물질과 핵무기를 100% 폐기하는 것이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와 북침핵전쟁연습 중단에 상응하는 등가적 조치로 될 수 없는 까닭은,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북침핵전쟁연습을 중단해도, 미일동맹군이 북침핵전쟁연습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군보다 훨씬 더 강한 무력을 가진 미일동맹군이 종전보다 더 위험한 북침핵전쟁연습을 감행할 판인데, 조선이 자기의 핵물질과 핵무기를 100% 폐기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와 북침핵전쟁연습 중단에 상응하는 조선의 등가적 조치는 조선이 핵물질과 핵무기를 70~80% 감축하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둘째,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도덕적 평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원래 도덕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관계에서 양심적인 행동규범을 지킨다는 뜻이다. 조미관계를 논하면서 왜 도덕문제를 제기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핵보유국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핵협상은 국제법에 의거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평형에 의거하여 성사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핵협상을 규제하는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핵협상을 벌여놓고, 협상상대를 속이는 비양심적인 행동은 협상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요인이다. 

 

2018년 3월부터 2019년 7월까지 1년 반 동안 이어진 조미협상과정에서 미국은 비양심적인 행동을 거듭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조선과 핵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외교압박과 경제제재를 사상 최대로 강화하였으며, 선제타격과 평양점령으로 조선의 국가지도력을 제거하려는 ‘참수작전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협상 중에 협상상대를 인정, 존중하지 않고, 적대행동을 계속 자행한 비양심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2020년 1월 11일 담화에서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탁에서 1년 반이 넘게 속히우고 시간을 잃었다”고 개탄했었다. 그래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조선과 미국 “두 나라 사이에 력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여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명했던 것이다. 

 

또한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두 나라의 관계가 두 수뇌들 사이의 관계만큼이나 좋아질 날을 소원해보지만 그것이 가능할지는 시간에 맡겨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 시간을 허무하게 잃거나 랑비하지 않을 것이며 그 시간 동안 두 해 전과도 또 다르게 변했듯 계속 스스로 변하고 스스로 강해질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조미관계가 파탄상태에서 벗어나 개선될 것인지를 시간에 맡겨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조미관계개선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외교적 수사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므로, 조미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조미 두 나라 관계를 추동하기 위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였다고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려는 어떤 의사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아니나 다를까,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2020년 3월 25일 팜페오 국무장관은 국무부 출입기자들에게 미국의 주요 동맹국 7개국이 “북조선의 불법적인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데 계속 힘써야 하고, 7개국이 단합하여 북조선에게 협상복귀를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외교고립과 경제제재로 최대압박을 가하면서, 그리고 조선의 국가지도력을 제거하려는 ‘참수작전연습’을 계속 감행하면서, 조선의 일방적인 핵무력 포기를 요구하는 조미협상을 재개하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조선적대정책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조미관계개선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비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도한 친서외교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발표로 씁쓸한 종말을 맞았다. 친서외교의 종말은 마지막 의사소통마저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비적대관계에서 의사소통이 끊어지면 무관심으로 흐르지만, 적대관계에서 마지막 의사소통이 끊어지면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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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끝이 아니다, 쓰레기 대란이 온다

수도권 매립장 4년 후면 포화 상태... 매립장 80% 차지하는 건설·사업장 폐기물 줄여야

20.03.28 13:17l최종 업데이트 20.03.28 13:17l

 

 

 쓰레기 포화로 매립이 종료된 수도권 제2매립장. 우측 뒤 제3매립장에 쓰레기가 매립 중이다. 그 뒤로 경인운하가 보인다.
▲  쓰레기 포화로 매립이 종료된 수도권 제2매립장. 우측 뒤 제3매립장에 쓰레기가 매립 중이다. 그 뒤로 경인운하가 보인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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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우주정거장이 아니다. 서울시와 경기도 그리고 인천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다. 그동안 반입된 쓰레기를 산성처럼 쌓아 올렸다.  

서울과 경기·인천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만간 엄청난 쓰레기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수도권 매립지 수명이 2025년으로 이제 겨우 5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쓰레기 매립을 시작해 2000년 10월 매립 종료된 제1매립장은 이미 골프장으로 변신했고, 제2매립장은 2018년 10월 매립 종료됐다. 제3매립장이 2018년부터 사용 중인데 앞으로 사용 기간은 2025년 8월까지다.

수도권 매립지 제3매립장은 하루 1만2천t 쓰레기 반입을 예상해 사용 기간을 2025년 8월까지로 잡았다. 그러나 하루 1만3천t 쓰레기들이 반입되면서 2024년 11월이면 매립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와 인천시 등 수도권 64개 시·군·구가 폐기물을 실어 오고 있으며, 1일 반입되는 1만3천t 쓰레기 중 서울시가 42%, 경기도가 39%, 인천시가 19%의 폐기물을 매립하고 있다.

제2매립장을 사용하던 지난 2015년 6월 환경부와 서울시·경기도·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문제 해결을 위한 4자 합의를 했다. 지금의 수도권 매립지가 아닌 새로운 매립지를 확보하는 조건으로 제3매립장을 2025년까지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의 이후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대체 매립지 조성은 고사하고 매립지 선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와 경기도와 인천시는 새로운 매립지 조성에 필요한 비용 1조 2500억 원의 절반을 국고로 지원해 줄 것을 환경부에 요청했지만 '폐기물 처리는 지자체 소관'이라며 환경부는 거부했다. 이 때문에 4자 협의는 멈춘 상태다.

새로운 매립지 조성에는 7~10년이 필요하다. 입지선정위원회 구성과 입지 후보지 타당성 조사 그리고 환경영향평가를 통한 최종 입지 선정까지 1년, 매립지 실시 설계 2년, 공사기간 3~4년 등 최소 7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쓰레기 매립량 폭주로 사용 종료가 앞당겨지는 2024년 11월까지는 지금부터 겨우 5년도 남지 않았다. 
 
 CNN이 보도한 경북 의성 쓰레기산. 온갖 종류의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뿐만 아니라 건설폐기물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불법 방치·투기 쓰레기산이 전국에 가득하다.
▲  CNN이 보도한 경북 의성 쓰레기산. 온갖 종류의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뿐만 아니라 건설폐기물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불법 방치·투기 쓰레기산이 전국에 가득하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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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연장 위한 고육책 내놓았지만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매립장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반입 폐기물량 줄이기에 나섰다. 그동안 무료이던 연탄재에 2020년 7월부터 다른 생활폐기물 반입 단가와 동일한 1t당 7만 56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환경부와 3개 시·도는 2020년부터 수도권 매립지에 들어오는 생활 쓰레기의 양을 지자체별로 제한하는 반입 폐기물 총량제에 합의했다. 2018년 생활폐기물 배출량 기준 10%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지자체는 일정 기간 수도권 매립지에 쓰레기를 들여올 수 없다.

지자체별 할당된 반입량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대해 현재 생활폐기물 1t당 반입수수료 7만 56원의 2배인 14만 112원을 2021년에 지불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쓰레기 반입도 5일간 정지되어 지자체마다 쓰레기 수거가 중단되는 '쓰레기 대란'의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지자체와 시민들에겐 큰 부담이다.

그러나 반입 폐기물 총량제에서 줄여야 하는 생활폐기물은 수도권 매립지에 반입되는 총 폐기물 중에 겨우 18.9%에 불과하다. 18.9% 중 10%를 감축한다고 수도권  매립지 수명이 연장될 수 있을까?

수도권 매립지에 반입되는 폐기물은 생활폐기물만이 아니다. 사업장폐기물과 건설폐기물도 포함된다. 수도권 매립지에 반입되는 폐기물의 종류와 반입량을 알면 매립지 수명 연장을 위한 진짜 폐기물 감량 대책을 찾을 수 있다.

생활폐기물을 빼면 수도권 매립지에 반입되는 총 폐기물량 중 49.78%는 건설폐기물이, 30% 정도는 사업장 폐기물이 차지하고 있다(2018년 기준). 수도권 매립지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반입 폐기물의 49.78%를 차지하는 건설폐기물과 30%에 해당하는 사업장 폐기물의 반입량을 줄이는 것이다.
 
 폐기물 발생량 추이. 건설폐기물이 약 50%에 이르고 사업장폐기물이 30%에 이른다.
▲  폐기물 발생량 추이. 건설폐기물이 약 50%에 이르고 사업장폐기물이 30%에 이른다.
ⓒ 환경관리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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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 쓰레기의 절반은 건설폐기물

폐기물이라 하면 흔히 폐플라스틱과 폐비닐류를 떠올리며 전국 폐기물 발생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은 간과한다. 특히 정부가 지난 2018년 11월 29일 발표한 '불법 폐기물 근절 대책 - 방치·불법투기 폐기물 발생예방 및 처리대책'에 따르면, 방치·불법 투기 폐기물 중에 폐합성수지(12.3%), 사업장폐기물(4.2%) 오니(2.6%) 기타(1.1%) 순이고, 건설폐기물이 무려 79.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국의 방치·불법 투기 폐기물 비율
▲  전국의 방치·불법 투기 폐기물 비율
ⓒ 환경부 보도자료 인용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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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유행처럼 일어나는 재건축과 재개발 탓에 건설폐기물 발생량이 많다. 건설폐기물은 전국 불법 투기 폐기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쓰레기 매립장의 수명을 줄이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수도권 매립지에 들어오는 폐기물의 49.78%를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의 반입량 감축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수도권 매립지의 수명 단축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8년 11월 1일 기준 국내 주택은 1763만 호인데 이 중 아파트가 1083만 호로 국내 전체 주택 중 약 61.4%를 차지한다. 주택의 변화를 살펴보면, 단독주택은 2017년 396만3천 호(23.1%)에서 394만9천 호(22.4%)로 1만4천 호가 감소한 반면, 아파트는 2017년 1038만 호(60.6%)에서 2018년 1083만 호(61.4%)로 45만 호 증가했다. 1년 동안 재개발과 재건축이 많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총 주택 1763만 호 중에서 20년 이상된 주택은 840만 호(47.7%)로 2017년 797만 호(46.5%)에 비해 44만 호 증가했다. 단독주택 395만 호 중 20년 이상 된 단독주택은 290만 호(73.4%)이고, 30년 이상 된 단독주택은 무려 195만 호(49.3%)에 이른다. 또 아파트의 경우 1083만 호 중 20년 이상된 아파트는 429만 호(39.6%)이고 30년 이상된 아파트는 78만 호(7.2%)다.
 
 20~30년 된 노후 건축물이 늘어나면서 재개발·재건축으로 건설폐기물 발생량이 급증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20~30년 된 노후 건축물이 늘어나면서 재개발·재건축으로 건설폐기물 발생량이 급증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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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을 요구하는 노후 주택이 급증하는 이유는 노태우 정부의 수도권 200만 호 공급에 따라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졸속으로 지어진 주택들이 수명을 다하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재건축·재개발로 시멘트 소비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으며,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설폐기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매립지 포화는 물론 엄청난 쓰레기 대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70년 사용치만 남았을 뿐인데 오늘도 하루살이 아파트가 올라간다

오늘도 쑥쑥 올라간다. 마치 서로 먼저 하늘을 점령하려 경쟁하는 듯 오르고 또 올라간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 아파트 숲이다. 정부는 집값 안정화를 위해 곳곳에 신도시를 만들어 서울을 수평 확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초록 숲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숲이 대신 채우고 있다.

오랜 시간에 형성된 마을이 사라지고 건설회사 이름이 달린 콘크리트 숲만 가득하다. 건설회사 이름이 달린 똑같은 아파트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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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시멘트와 철근만으로 집을 지을 수 없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을 혼합해 만든다. 시멘트는 접착제 역할을 할 뿐이다. 건축물 특성에 따라 배합 비율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시멘트 1, 모래 4, 자갈 5의 비율로 혼합한다. 콘크리트 건축물은 90%를 차지하는 모래와 자갈이 반드시 필요한데 앞으로 국내에 사용 가능한 모래와 자갈은 70년치밖에 남지 않았다. 

건축재료인 모래와 자갈은 국가 경제 성장과 국민 복지 향상에 기반이 되는 건설산업의 기초 재료로서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이에 국토교통부장관은 골재채취법 제5조에 따라 5년마다 골재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제5차(2014~2018) 골재수급기본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전국 골재 부존량은 약 263억㎥으로 이 가운데 개발 가능량은 약 172억㎥으로 평가된다. 이 중 1993년에서 2013년까지 20년간 이미 26억㎥의 골재를 사용했다. 국내 건축현장에 1년마다 사용되는 골재량이 약 2억㎥ 가량임을 고려하면, 2014년 이후 개발 가능량은 146억㎥으로 앞으로 약 70년 정도 사용치에 불과하다. 대체 자원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국토의 70%가 산이요, 강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아파트 건축 재료인 모래와 자갈 재료가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강모래는 바닥난  지 이미 오래다. 섬진강은 이미 2004년11월 골재채취가 영구 금지되었다. 한강에 모래가 사라진 지 오래고, 낙동강의 그 많던 모래 역시 4대강사업으로 사라졌다.

서해와 남해에서 퍼올리던 바다모래 채취는 어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바다 어장이 심각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산림 골재 채취량 역시 무한하지 않다. 그리고 골재 채취로 발생한 산의 환경훼손 복원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형편이다.
 
 콘크리트용 자갈 채취로 산이 통째로 훼손되었다.
▲  콘크리트용 자갈 채취로 산이 통째로 훼손되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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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모래는 바닥이 났고, 바다모래는 어장이 파괴된다 해서 어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  강모래는 바닥이 났고, 바다모래는 어장이 파괴된다 해서 어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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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쑥쑥 올라간다는 것은 대한민국 그 어느 강에서 파낸 모래와 서해와 남해 바다에서 퍼 올린 모래와 전국의 어느 산봉우리를 싹뚝 잘라 파쇄하여 만든 자갈이 도심의 아파트라는 건축물로 자리를 옮겨 온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에너지만이 아니다. 모래와 자갈도 사용 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래에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도 집을 짓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70년 뒤엔 이 나라에 집을 지을 건축 재료가 없다. 그런데 골재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고작 20~30년짜리 아파트만 계속 지어대며 골재원의 부족을 부채질 하고 있다.

겨우 70년 사용치밖에 남지 않은 골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첫째는 수명이 긴 건축물을 지어 자원을 절약하는 것이다. 둘째는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철거한 건설폐기물을 골재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건설폐기물인 폐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을 혼합해 굳힌 것에 불과하다. 폐콘크리트를 파쇄 선별해서 시멘트를 분리해 내면 모래와 자갈은 언제든 다시 사용이 가능한 소중한 자원이 된다.
 
 철거된 아파트 콘크리트가 굵은 골재와 모래로 다시 거듭나고 있다.
▲  철거된 아파트 콘크리트가 굵은 골재와 모래로 다시 거듭나고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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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을 남발하며 골재 부족을 부채질하는 우리에게 건설폐기물 재활용은 미래를 생각하는 중요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부족한 골재 자원을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골재 채취로 인한 환경파괴를 예방하며, 폐기물 매립장의 수명을 연장하기 때문이다.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기 전에 다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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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1명씩 직원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업장

[해설] '선진 경마'가 무너뜨린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 마필관리사의 삶

 
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271121318393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직장 동료가 2년에 1명씩 일터의 부당함에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정이 아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명화, 박진희, 박용성, 박경근, 이현준, 조성곤, 문중원. 350여 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일하는 부경경마공원에서 지난 14년 간 해당 직종에서만 7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유서 중 일부다. 

 

"체중을 더 줄여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훈련해도 돌아오는 건 차가운 질책뿐. 이제는 고통도 없고 편히 숨 쉴 곳에 가고 싶다."(이명화) 

"경마장은 내 기준으로는 사람이 지낼 곳이 못 된다. 부산경마장 기수들이 최고 힘들고 불쌍해,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의 자살 시도냐."(박진희) 

"제 생활은 전혀 없고 어디 교도소에서 사역하는 기분입니다. 지금도 한 달 벌어 한 달 생활합니다. 이제는 그런 쳇바퀴에서 벗어나려 합니다."(박용석) 

"X같은 마사회"(박경근) 

"내가 좀 아는 마사회 직원들은 대놓고 나한테 말한다.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문중원) 

 

그들 중 마지막인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둘러싸고 100일여 간 이어진 싸움은 일단락됐다. 마사회는 지난 11일 문중원시민대책위, 열사대책위와 기수 처우 개선 등 합의서에 공증했다. 지난 18일에는 마사회장 명의로 "고 문중원 기수의 명복을 빌며 유족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로 시작하는 입장문을 냈다. 

 

지난 2018년 박경근, 이현준 두 마필관리사의 죽음을 계기로 마필관리사들이 한 걸음을 디뎠다면, 이번에는 기수들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그러나 더 이상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누군가의 죽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자면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처한 상황을 정리하고 남은 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이 있다. 서울과 제주에도 경마공원이 있다. 그간 세상을 떠난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모두 부경경마공원 소속이다. 

 

▲ 다시는 문중원 기수의 죽음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선진 경마' 명분 하에 경쟁 강화, 책임 약화 

 

부경경마공원에서 일어난 일의 배경을 한 마디로 함축하는 키워드는 '선진 경마'다. 부경경마공원은 전국에 있는 세 곳의 경마장 중 '선진 경마'가 가장 잘 시행된 곳으로 꼽힌다. '선진 경마'를 다시 한 마디로 설명하면 '무한경쟁'이다.

 

지난 1월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발표한 '왜 부경경마공원에서 계속 사람이 죽는가?'라는 글에는 부경경마공원의 '선진 경마'가 만들어낸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임금체계를 간명하게 요약했다.

 

"부가순위상금도 없애고 순전히 순위상금으로 임금이 주어지는 방식을 택했다. 게다가 비경쟁성 상금을 줄이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했다." 

 

부가순위상금은 순위 상금의 일부를 분할해 기본급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서울경마공원은 이를 통해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최소 수입을 월 300만 원에 맞춘다. 

 

부경경마공원은 2004년 처음 개장할 때부터 서울경마공원과는 달리 전면적인 '선진 경마'를 시행했다. 급여는 순위 상금과 경쟁성 상금 위주로 책정됐다. 성적이 좋은 기수는 억대 연봉을 받고 성적이 떨어지는 기수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고광용 부경경마공원지부장은 "기수든 마필관리사든 35살이 넘어가면 내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기수의 수입을 결정하는 성적도 꼭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 마주는 시민대책위 진상조사팀에 아래와 같이 말했다. 

 

"조교사는 '누가 타더라도 우승하는 말'을 특정 기수에게 태울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기수에게 갑이 된다." 

 

조교사는 경마 경기의 감독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조교사가 사장격인 마방에서 조교사의 노무관리를 받으며 일한다. 문 기수는 유서에서 조교사의 부정 경마 지시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울경마공원도 노무관리체계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서울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조교사협회에 고용되어 있다. 부경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조교사 개인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그나마 2018년 박경근, 이현준 두 마필관리사의 죽음과 이에 따른 싸움 이후 부경 마필관리사는 조교사협회가 고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안현규 부경경마공원지부 부지부장은 마필관리사의 조교사협회 고용 이후 상황에 대해 "그나마 예전에 비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부경 기수는 여전히 조교사 개인에게 고용된다. 서울 기수와 마필관리사, 부산 마필관리사는 특정 조교사에게 찍혀도 협회를 통해 다른 마방에 고용될 길이 있다. 부경 기수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면 돌아갈 길이 없다.

 

여기에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개인 사업자라는 점이 더해진다. 이 역시 '선진 경마'의 일환이었다. 마사회는 1993년 개인 마주제 전환과 함께 직접고용 했던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개인 사업자로 전환했다. 여기에도 경쟁을 강화한다는 논리가 주효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뭉쳐 사장과의 갑을관계를 완화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개인 사업자'에게 뭉쳐서 사장에게 대항할 법적 수단은 없다. 기수와 마필관리사에 대한 마사회의 사용자 책임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임금체계를 상금 위주로 짜 경쟁을 붙이고 고용구조를 개인 사업자, 개인 대 개인의 계약으로 잘게 쪼개 책임 소재마저 없앤 뒤에도 마사회는 품위 유지 조항, 기수 면허 갱신권. 마방 배정 심사권 등을 손에 쥐고 그 위에 군림했다. 이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곳에 놓인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의 삶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무너졌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비로 해외연수까지 다녀오며 열심히 조교사를 준비한 문 기수의 꿈은 '고위 간부와 친한 아무개가 내정되어있다'는 소문대로 결정되는 마방 배정 앞에 가로막혔다. 

 

임금, 재해, 마방 배정, 부정 지시 등 개선 단초 마련한 합의 

 

마사회와 양 대책위가 작성한 합의는 부경 기수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막판까지 쟁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부분은 명쾌하지는 않다. 책임자 처벌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합의서의 제2조 1항은 "고 문중원 기수 사망사고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 형사 책임과 별도로 마사회 인사위원회에 면직 등 중징계를 부여한다"고 되어 있다. 

 

문 기수가 유서에서 '마방 배정이 늘 마사회 모 고위간부의 뜻에 따라 소문대로 결정됐다'고 적었고 실제 취재과정에서도 수많은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소문대로 결정되는 마방 배정'을 증언했지만 해당 간부의 처벌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라는 단서가 붙었다. 별도 조사위원회 구성은 없다. 

 

하지만 제도개선에 대해서는 꽤 많은 단초가 담겼다. 문 기수의 부인 오은주 씨는 늘 "또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운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이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끝에 얻은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우선 '기수의 월평균 소득이 세전 300만 원 이상이 될 수 있도록 지원', '부경 기수 상금 중 일부에 서울의 부가 순위상금 공제율 적용' 등이 눈에 띈다. 단, 단서조항과 함께 몇 가지 과제가 남았다. 

 

소득이 300만 원 이상이 되도록 지원받으려면 경주 기승횟수가 월 8회를 충족해야 한다. 2019년 출전 기록을 보면 부경 기수 34명 중 5명이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서울 부가 순위상금 공제율 적용의 전제는 기수 전원의 동의다. 이를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조합 등을 통해 부경 기수 전원의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이후 두달째 부경 기수의 노동조합 설립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 시민대책위 자료상 일반 사업장의 135배에 달하는 높은 재해율을 보이는 기수의 건강관리와 관련해 재해위로기금 증액,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운동처방사 지원 △ 조교사의 부당지시 금지 △ 외부심사위원 확대 등 마방 배정 심사 투명성 확보 △ 평균 기승횟수 10% 미만 기승 기수의 면허 갱신 불허 조항 삭제 등이 담겨있다.

 

아직 갈 길이 남았지만, 임금, 부정 경마 지시, 불공정한 마방 배정, 높은 재해율 등 기수들이 겪고 있는 문제 전반을 개선할 실마리를 담은 합의서인 셈이다. 

 

▲ 기수들의 경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pixabay

 

"정말로 합의가 지켜지는지 6개월 뒤에 한번 찾아와주세요" 

 

합의가 지켜질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2018년 두 마필관리사의 죽음 이후 이어진 싸움을 통해 마필관리사의 처우 개선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한 부경경마공원지부 관계자들은 "그 중 지켜지고 있는 것은 조교사협회를 통한 마필관리사 고용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마필관리사의 기본급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이다. 

 

이런 탓에 고 지부장은 취재 중 모든 기자에게 건네는 말이라며 이같이 이야기했다. 

 

"싸움이 끝나고 나면 정말로 합의 사항이 지켜지고 있는지,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의 삶이 좀 나아졌는지 6개월 뒤에 한번 찾아와주세요." 

 

부경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작은 균열이 났지만 연 8조 원여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공기업 마사회가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조건을 바꾸겠다고 결심한 부경 기수들의 노동조합 설립필증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부경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삶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271121318393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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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종교 ‘천부경’ 발견 <북 신문>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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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3/29 10:12
  • 수정일
    2020/03/29 10:1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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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장군봉마루서, 단군 상징하는 푸른색옥돌판도 발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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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8  0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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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장군봉마루에서 대종교 관련 유물인 1930년대 대리석판에 새긴 천부경과 단군을 상징하는 푸른색옥돌판이 발견됐다고 <노동신문>이 28일 학자들의 고증 결과를 보도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백두산 장군봉마루에서 대종교 관련 유물인 1930년대 대리석판에 새긴 천부경과 단군을 상징하는 푸른색옥돌판이 발견됐다고 <노동신문>이 28일 학자들의 고증 결과를 보도했다.

신문은 “백두산에서 대종교관련 유물들이 발굴되여 주목을 끌고있다”며 “최근년간 216사단직속 인민보안성련대 군인건설자들은 백두산의 장군봉마루에서 글이 새겨진 대리석판과 바른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력사학부와 조선어문학부의 강좌장, 교원, 박사원생들로 연구집단을 무어 현지에 파견”했고, “인민보안성련대 지휘관들과 군인건설자들의 적극적인 방조속에 연구집단은 과학적인 발굴사업을 전개”했다는 것.

“대리석판은 장군봉마루에 있는 해당 지점주변의 땅속 30㎝깊이에 묻혀있었다. 푸른색옥돌판은 대리석판이 나온 자리로부터 2m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것이였다.

새로 발굴된 대리석판은 길이 31㎝, 너비 21.5㎝이고 푸른색옥돌판은 한변의 길이가 17.5㎝정도이다.

글은 잘 연마된 대리석판의 앞면에 새겨져있었는데 붉은색의 색감을 발라서 획들이 뚜렷이 나타나게 하였다. 푸른색옥돌판의 앞면과 옆면들은 잘 연마하여 매끈하게 하였다.

대리석판 앞면 웃부분에는 <천부경>이라는 제목이 한자로 새겨져있다. 그아래에 새겨져있는 글은 모두 81자로 되어있다.”

신문은 이같이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고, 앞서 <조선중앙TV>는 2월 28일 8시뉴스에서 관련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한 바 있다.

   
▲ 2월 28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백두산 장군봉마루에서 발견된 <천부경> 대리석판. [캡쳐사진 - 조선중앙TV]
   
▲ 2월 28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백두산 장군봉마루에서 발견된 <천부경> 대리석판과 정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 [캡쳐사진 -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에 담긴 대리석판의 천부경은 남쪽에서 ‘농은 민안부 천부경’으로 알려진 갑골문 형태의 천부경과 매우 유사한 글자체로 글씨에 붉은 칠이 칠해져 있고, 푸른색옥돌판은 정삼각형 모양이다. 대종교에서 원·방·각은 각각 환인, 환웅, 단군을 상징한다.

신문은 “연구집단은 백두산에서 발굴된 대리석판과 푸른색옥돌판에 대한 고증사업을 심화시키였다”며 “력사자료와 글자에 남아있는 색감에 대한 분석자료에 기초하여 그들은 대리석판의 글자들이 1930년대에 새긴것이라는것과 81자의 글자들의 대부분이 매우 오래전에 사용되였던 옛 문자라는것을 밝히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푸른색옥돌판은 단군을 상징하여 만든것이라는것도 확증되였다”고 덧붙였다.

특히 “연구집단이 고증한데 의하면 81자로 새긴 글은 대종교의 기본경전의 하나인 <천부경>이였다”며 “대종교는 우리 나라의 건국설화에 나오는 환인, 환웅, 환검(단군)을 신주로 하는 순수한 조선종교로서 1909년에 발생하였다”고 전했다.

대종교는 홍암 나철(1863-1916) 등이 1909년 서울에서 중광(重光)한 우리 민족 전통 신교(神敎)로 전반기 항일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고 청산리대첩 등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에서 주력을 형성했으며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3대 경전으로 삼고 있다.

신문은 “우리 민족이 백두산을 높이 숭상해왔다는것을 보여주는 력사기록들과 유적유물들은 적지 않다”며 “몇해전 백두산천지호반의 향도봉소분지에서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제단유적이 발굴되였다”고 전하고 “제단유적에서 2개의 금석문도 발굴되였는데 조선봉건왕조초기에 이곳에서 힘을 비는 제를 지냈다는것 등의 내용을 담고있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또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조종의 산 백두산에 대하여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우러러보았는가 하는것은 백두산 장군봉밑의 천지기슭바위의 비석에 새겨진 <대태백 대택수 룡신비각>이라는 글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고, 나라의 생존이 심히 우려되였던 20세기초에 대종교나 천불교의 관계인물인 천화도인에 의하여 세워진 그 비석에도 밝혀져있는것처럼 백두산을 지키는 천지의 룡신이 이 나라 사람들을 무궁토록 안정하게 해줄것을 기원하고있었다고, 백두산에 대한 숭상은 곧 조선에 대한 숭상이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였다고 회고하시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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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조주빈은 유일하고 이상한 악마가 아니다”

등록 :2020-03-28 09:04수정 :2020-03-28 09:08

 

[토요판] 커버스토리
텔레그램 엔(n)번방 취재기

지난해 11월부터 엔번방 범죄
쫓아온 김완, 오연서 기자 대담
4개월여 추적의 분노와 좌절감

법과 문화 바꾸지 않으면 근절 못해
“경찰 조사 다 받게 해 기록 남겨야”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지난해 11월 <한겨레>가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물 유통을 고발하는 연속 기획보도를 내보낸 지 4개월 만에 핵심 인물인 ‘박사’ 조주빈(24)씨가 검거됐다. 조씨 구속 이후 엔(n)번방 등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운영자와 회원(관전자)의 엽기적인 성착취 행태를 알리는 기사가 넘쳐나지만, 당시 <한겨레> 보도 이후 다른 언론은 이상하리만치 침묵했다. 한국 사회에 성착취 동영상 유통은 언제나 있는데 뭐 대단한 일이냐는 안일한 인식 탓이다. 오히려 보도로 박사방을 찾아온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조씨는 비밀대화방 이용료를 높이고 다른 운영자들은 <한겨레>에 내 대화방도 보도해달라고 조롱했다. 그렇게 또 묻혀버릴 수 있는 ‘사건’을 끈질기게 공론화하고 성착취 범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것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을 만들어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나서고 트위터 등을 통해 엔(n)번방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했다. 대학생 2명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은 비밀대화방에 잠입해 수집자료를 차곡차곡 모아 보도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성범죄자들이 잇따라 경찰에 검거되고 있다. 하지만 출발일 뿐이다. ‘제2의 조주빈’이 탄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사건을 취재한 김완·오연서 기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2층 사이버안전과에서 16일 22시~(17일 새벽) 1시에 조사받던 피의자가 코로나19로 의심돼 검사진행(하고) 긴급 방역 중.”

 

지난 17일 오후 5시 서울지방경찰청이 출입기자들에게 자료를 냈다. 기사 마감을 끝낸 기자들이 분주해졌다. 코로나19 의심 피의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쏟아지는 전화에 서울지방경찰청은 두번째 자료를 보낸다.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과 관련해 3.16~17 박사방을 운영한 유력 피의자를 포함 총 4명을 검거하여 현재 조사 중에 있음. 현재 수사 중인 관계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리기 어려움을 양해해주기를 바람.”

 

‘박사방을 운영한 유력 피의자’란 지난해 11월 <한겨레>의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연속 기획에서 사건의 핵심 ‘지배자’로 등장했던 ‘박사’를 말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미끼로 여성들을 교묘히 꾀어 신상정보를 털어낸 뒤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도록 하고 이를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유통하면서 돈을 벌어온 인물이다. 피해자들에게 ‘나는 박사의 노예다’라고 몸에 새기도록 지시하고 성착취물을 공유하며 ‘얘(피해자)는 나에게 약점이 잡혔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니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설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 취재를 한 김완 <한겨레> 24시팀 기자는 이날 돌봄휴가로 하루 쉬면서 아이들 목욕을 시키다가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취재를 하면서 비트코인 주소 등 박사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자료를 경찰에 다 넘겼다. 그래서 금방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경찰은 ‘진도 많이 나갔다. 곧 잡는다’고 하면서도 4개월이나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기자들한테 박사방 유력 피의자가 알려졌다니 놀랍고 어이없었다.” 김 기자는 그 피의자가 박사이며, 학보사 기자 출신의 20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를 취재해온 오연서 기자는 박사 조주빈(24)씨 검거 소식을 피해자들에게 전했다. “다들 놀라면서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더라. 처음엔 ‘잘됐다,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후 보도가 쏟아지자 ‘잊고 지냈던 당시 피해가 다시 떠올라 병원에 갔다 왔다. 차라리 안 잡혔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조씨가) 봉사활동을 하고 학점도 높았다는 뉴스를 보고 ‘나중에 모범수로 나오면 어떡하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다른 운영자의 시기성 제보였다

 

지난해 11월 <한겨레>는 ‘인천에 있는 고등학생이 9천명 정도 가입된 텔레그램 대화방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통한다’는 제보로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통을 고발하는 최초의 보도를 했다. 지난 25일 두 기자에게 취재 과정과 소회를 들어봤다.

 

―첫 보도가 지난해 11월11일에 나왔고, 25일부터 나흘간 연속 기획을 네차례 내보냈다. 시작은 제보라고?

 

김완(이하 김) “나중에 알았는데 첫 제보는 다른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의 저격, ‘견제질’이었다. 우리가 처음 보도한 비밀대화방 ‘공식 링크(Link) ○○○○방’은 성착취 영상과 사진 링크를 공유하는 일종의 포털과 같은 ‘허브’였다. 이 방이 너무 커지자 견제하려고 다른 운영자가 제보한 것이었다. 그 세계에서 제일 무시무시한 형벌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제보자는 ‘○○○○방’ 운영자가 ‘오늘 급식 메뉴로 뭐 나왔다’라는 식의 채팅글을 남긴 것을 단서로 그 지역 중고등학교의 급식 메뉴를 확인해서 그를 특정해냈다. 그 제보를 확인하는 취재를 하면서 텔레그램 성착취물 제작·유통이라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마주한 것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1분도 안 쉬고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글이 올라왔다. 카피방, 파생방 등 하루에도 수십개씩 대화방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는데, 취재할 당시 엔(n)번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수백개였다.”

 

―어떤 채팅글이 오가나? 기사에 ‘토할 것 같았다’는 표현도 썼는데.

 

 “말로 옮길 수가 없다. 완전히 인간성이 파괴된 현장이었다. 여성을 대상화, 사물화해서 보고, 여성을 종속시키고 지배하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곳이었다. 여성을 강간 대상으로 취급한다. 여러번 토할 뻔했다. 특히 조주빈이 올리는 건 다 그랬다. 무엇보다 그걸 회원들이 왜 기다리는가, 왜 찬양하는가 궁금했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지배 욕구를 그렇게 푸는 것이다. 공범이라는 쾌감도 있는 것 같고, 그 환호를 보며 다시 한번 구역질이 났다. 최소한의 윤리나 수치심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오연서(이하 오) “성착취가 범죄라는 걸 알지만 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얘들(피해자)한테 하는 건 범죄가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얘네는 돈 때문에 왔잖아, 노예잖아, 신고 안 할 거잖아, 그래서 협박하고 농락하는 게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천명의 남성이 범죄에 환호하고 더 수위 높은 영상을 구걸했다. 한 인간의 인격을 살인하는 그 현장에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지만 공포감은 의외의 순간에 몰려왔다고 오 기자는 말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 여성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담은 불법쵤영물 영상을 봤을 때였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실제로 찍힌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 곁에서 일어나는 일이구나,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구나 소름이 돋으면서 한참을 봤다. 피해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피해 사실을 취재했는데 다음날 그것과 일치하는 동영상을 본 적도 있다. 피해를 신고하고 삭제를 요청해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여전히 계속 유포되고 있는 거였다. 그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피해자를 인터뷰한 내가 그 영상을 보고 있으니 내가 가해자가 된 것은 아닌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성착취방을 이용한 모두가 공범이다’ ‘26만 성착취 공범 제대로 처벌하라’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성착취방을 이용한 모두가 공범이다’ ‘26만 성착취 공범 제대로 처벌하라’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보도 뒤 엔(n)번방 유입이 늘었다

 

최초 고발 보도와 엔번방, 박사방 등의 성착취 행태와 구조를 추적한 연속 기획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언론은 이상하리만치 침묵했다. 빅카인즈에 등록된 54개 언론사 중 지난해 12월까지 엔번방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는 <한겨레>가 유일했다. 올해 들어 에스비에스(SBS)의 <궁금한 이야기 와이(Y)>, <국민일보>의 ‘n번방에 잠입하다’ 등 후속 보도가 나왔다.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새롭지 않다고 본 탓이다. 인터넷상에서 성착취 동영상은 언제나 있었는데 뭐 대단한 일이냐가 본 거다. (텔레그램 등을 통한 성착취 범죄에 대한 처벌 법안을 논의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논의 수준이 그렇고, 언론과 수사기관의 인식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런 나이브한 생각이 사이버 성착취물 유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인터넷이 탄생한 이래 계속, 여기까지 오게 했다.”(김완)

 

―소라넷이나 양진호 웹하드 사건 등 성착취물 유통 과정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엄벌한 적이 없다. 특히 텔레그램은 국외에 서버가 있고 신원을 감출 수 있어 수사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졌다.

 

 “경찰이 수사에 소극적인 게 사실이었다. 범죄가 너무 잔혹해서 여성 수사관을 배정해달라고 했는데 수사관이 없다고 하고, 텔레그램 범죄는 잡기 힘들다며 전화번호나 적고 가라고 하기도 했다. 채증 자료도 요구하는데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은 3초 만에 사라지는데 그게 쉬운가. 특히 나체 사진 등을 피해자 스스로 캡쳐해놓는다는 게 얼마나 가능한가. 어렵게 마음먹고 경찰서를 찾은 피해자가 신고 접수를 다시 주저할 수밖에 없다. 여성단체가 고발하려고 하면 피해자가 직접 와야 한다고 하면서 접수를 해주지도 않았다.”

 

 “경찰도 사이버 성착취 수사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없다’고 답답해한다. 24시간 붙어서 텔레그램 대화방을 두서너달 감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잡아도 초범이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나니까. 그렇게 수사인력을 투입할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탐사보도 이후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통이 위축된 게 아니었나?

 

 “처음 보도가 나갔을 때는 이용자들이 흩어져서 텔레그램이 망하겠다고 했다. 그 뒤 <한겨레>만 간헐적으로 보도하니까 오히려 유입이 늘었다. 이용자들이 <한겨레> 보고 왔다면서 박사방을 찾으러 다니고 박사는 신나서 대화방을 더 많이 개설했다. 대화방 입장료를 200만원까지 올리고, <한겨레> 기자 신상을 털어 오면 박사방 입장을 무료로 해준다고 프로모션했다. 나는 실제로 개인정보가 털려서 아이들 사진까지 유포됐다. ‘길 다닐 때 항상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겠다’는 협박 글에다, ‘(박사방처럼 인기 얻도록) 내 대화방도 보도해달라’는 조롱 글, 나를 기레기로 묘사한 만화까지 쏟아졌다.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 곱씹기도 했다.”

 

오 “무엇보다 피해자들한테 미안함이 커서 힘들었다. 가해자들이 너무 버젓이 활보하고 다니니까 이러다가 정말 안 잡히는 거 아닌가, 그럼 피해자들은 어떻게 하지 싶었다. 보도 이후에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가 많이 연락해온 것도 아니었다. 초반에 서너통 왔을 뿐이다. 결국 우리 보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박사가 피해 여성 사진을 유포하면서 ‘한겨레 피해1’ ‘한겨레 피해2’라고 일종의 워터마크를 박았다. 취재를 계속하면 피해자가 더 생긴다고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여성을 사물화하고도 죄의식 없어

 

―피해자들이 왜 성착취를 당하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겠다.

 

김 “실시간으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걸 채팅으로 봤는데 3시간도 안 걸리더라. 처음 접촉해서 성착취물 동영상을 찍게 하는 데까지 말이다. 어느 날 오전, 오후 한때 정신없이 훅 지나가는 일이다. 피해자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신체 사진을 올려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취약한 여성이다. 그 고리를 잘 아는 박사와 마주 앉게 되니까 일단 지고 들어가는 거다. 신상정보 다 털렸고 동영상 공개됐고 완전히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조주빈이 검거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참여하고 이 문제를 계속 공론화했던 젊은 여성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보도는 큰 반향 없이 끝나고 경찰 수사팀의 외로운 사투만으로 남을 뻔했다. 그런데 20대 여성들이 국회 입법 청원을 올리고 여성 독자층이 많은 작은 매체들이 끊임없이 언급한 것이 이 문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트위터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단어가 엔번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계속 목소리를 높인 많은 사람이 있었다.”

 

실천하는 여성들의 첫자리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가장 먼저 알린 대학생 취재단 ‘추적단 불꽃’(불꽃)이 있다. 지난해 7월 아동·청소년 착취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은 비밀대화방에 회원으로 잠입해 두달여간 대화를 모니터링했다. 성착취물 피해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수집자료를 차곡차곡 모아 경찰에 신고했다. 취재 결과물로는 지난해 9월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뉴스통신진흥회를 통해 보도했다. <한겨레>도 텔레그램 대화방 제보를 받고 지난해 10월 취재를 시작하면서 이 보도를 확인했고, 불꽃 취재단에서 자료를 협조받았다. 무엇보다 최근 지방경찰청이 디지털 성범죄자를 잇달아 검거하는 것에도 이들의 수집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단체 ‘리셋’(ReSET)이 활동을 시작해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나서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오 기자는 “젊은 여성들이 나선 것은 가해 행위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 신상이 다 공개되고 집까지 쫓아와서 협박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두렵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피해자들이 인터뷰해준 것이다. 어떤 피해자는 친구 집으로 피신한 상태였는데 그 친구한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고백한 그들이 출발점이구나 나중에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피해 사진에 ‘한겨레’ 워터마크

 

―과거처럼 또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박사는 유일하고 이상한 악마가 아니다. 그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이 성착취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고 그것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자란 것, 그것이 이 범죄를 가능하게 한 토대다. 그것 위에 박사방도, 엔번방도 다 얹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한번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엄벌주의를 해본 적이 없다. 현행법으로 못 잡으면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회원인 ‘관전자’를 포함해서 과태료 처분이라도 해야 한다. 이 행위는 범죄이고, 사회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김 기자는 보도가 나간 뒤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남자 고등학생들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녀의 휴대전화에 텔레그램이 깔렸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가 이미 몇달 전부터 돌았다고 알려줬다. 실제로 2019년 초 텔레그램 엔번방이 생겨났을 때 텔레그램이 구글 앱스토어에서 상위에 랭크됐다. 당시 유입된 수가 30만에서 50만명 정도다. “많은 10대가 여성을 사물화하고 범죄 대상으로 바라봤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각을 새기게 해선 안 된다.”

 

오 기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고 했다. ‘엔번방 기록을 어떻게 지울 수 있나’ 같은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에서 성착취물을 보던 이들이 엔번방 국민 청원에 동의하라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엔번방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분리 전략을 쓰는 것이다. “‘구글 드라이브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영상을 봤는데 다 삭제했다, 괜찮을까’ 묻는 말에 ‘지금은 엔번방만 대상이기에 우리는 상관없다’고 답하더라. 우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잡힐 일이 없고 그러니까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형량을 따지지 말고 경찰 조사를 다 받게 해 기록이라도 남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부터 해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4589.html?_fr=mt1#csidx0086faa8a72a6fea1cfe207fe2488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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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띄우는 편지] 힘내세요, 한국이 다른 나라의 희망입니다

[현지 리포트] '코로나 쇼크'로 지금 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본문듣기 등록 2020.03.27 13:49 수정 2020.03.27 14:57
 

▲ 프레스크섬 주립공권 ⓒ 강인규

 
저는 공원 호숫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이기에, 평상시라면 카페 탁자 위에 컴퓨터와 찻잔을 놓고 앉아 있었을 테지요. 지난 주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즐겨 찾던 찻집은 좌석을 모두 없앤 뒤 포장용 주문만 받고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가 내린 행정명령 때문입니다.

현재 도시의 모든 극장이 문을 닫았고, 오케스트라 등 공연단체는 올해의 일정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슈퍼마켓과 식료품점도 영업시간을 대폭 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페에 갔던 날,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과 마주쳤습니다. 육류와 냉동식품 진열대가 텅 비어 있던 것입니다.
 

▲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이틀 뒤, 슈퍼마켓 육류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 강인규


어느 나라에서 왔든, 미국 슈퍼마켓에 처음 간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무지막지한 물건들을 누가 다 사?" 게다가 미국 상점은 재고관리 하나는 철저해서, 선반에서 물건이 빠져나가면 어느새 귀신같이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국 슈퍼도 공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휴지와 키친타월 선반 위에도 선택받지 못한 물건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앞에는 '고객당 3묶음씩만 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이후 숫자 '3'은 곧 '1'로 바뀌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나이 지긋한 직원에게 "과거에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백발이 고운 그 분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60년대 이래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분은 "내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들키고 말았네"하고 웃으며 영수증을 건넸습니다.

주지사는 지난 주말에 '생존에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을 것'을 지시하는 강화된 조처를 발표했습니다. 제가 강의하고 있는 주립대학도 폐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학생들은 한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교수와 직원들은 계속 출근했습니다. 저도 이제 집에서 수업을 해야 합니다.
 

▲ 평상시 선반 위에 가득 놓여있던 빵이 비상사태 이후 한꺼번에 팔려나갔다. ⓒ 강인규


미국, '느긋함'에서 '허둥대기'로

금요일 저녁, 연구실에서 노트북과 출석부를 가져오기 위해 학교로 갔습니다. 기척이 사라진 교정이 좀비 영화 <28일 후>의 시가지를 방불케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심지의 밤은 유독 컴컴했습니다.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고, 도로의 차도 확연히 줄어 있었습니다.

반가운 장면이라곤, 주유소 앞에 내걸린 휘발유 값뿐이었습니다. 사업장들이 시간을 단축하거나 중단한 데다가, 이동 자제, 금지, 국경 폐쇄 등으로 여행이 끊긴 탓에 유류소비가 대폭 줄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되레 생산을 늘리는 상황까지 발생했지요.

하지만 행동 반경이 줄어든 만큼, 차에 기름을 채울 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상황은 보름도 안 돼 극에서 극으로 변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사력을 다해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던 2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안일하다 못해 천진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사라질 거예요.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거라니까요."

2월 27일, 트럼프가 "상황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면서 "별 걱정 안 한다"며 한 말입니다. 미국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나라보다 늦게 도착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정확히 한국과 같은 날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이 이 상황을 심각히 받아들인 반면, 미국 정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지요.
 

▲ '코로나19' 관련 기자 질문 받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AP


이러던 백악관이 정확히 보름 뒤인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다수의 병원에는 진단키트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포 일주일 전부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으나, 사실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사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연락을 취한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3월 말인 현재까지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증상이 나타나도 승인을 받은 환자에 한해 선별적 검사가 이뤄지고 있고, 무엇보다 의료진은 병상 수와 진료용 마스크, 장갑, 산소마스크 등의 의료장비 부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새 확진자와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비상사태 선포 당일까지도 미국의 확진자는 (한국의 4분의 1도 안 되는) 1700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열흘 뒤인 23일에는 4만3천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550명 이상으로 증가해, 한국의 4배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26일 현재(미국 시간), 확진자는 한국의 10배 가까운 8만 5500여명으로, 그리고 사망자는 1300명으로 늘었습니다. 사망자는 아직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확진자 수에서는 이미 중국을 넘어섰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휴교, 행사 취소, 공공시설과 영업장의 제한과 폐쇄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것을 볼 때, 환자의 가파른 증가세는 검사 확대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소극적 대처 당시 감염된 환자들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 공원의 모든 시설이 폐쇄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 ⓒ 강인규

 
미국, 제2의 이탈리아가 될까, 한국이 될까

미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능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의 사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나 대만은 한국에 비해 인구도 적고, 최근 들어 2차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2차 확산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뒤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보다 많은 사망자를 낸, 이탈리아의 안타까운 사태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3월 26일 현재(현지시간),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8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8200명을 넘어섰습니다. 확진자 수는 중국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고, 사망자는 무려 두 배 반이나 됩니다.

당연히 미국은 한국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만찮은 장애물과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이탈리아를 바짝 뒤쫓는 미국이 한국 쪽으로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이 '한국'과 '이탈리아'의 어느 뒤를 따를지를 분석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 뉴욕타임스

 
우선 널리 알려진 미국의 민영화된 의료체계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습니다만, 의사와 병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막대한 치료 비용은 둘째치더라도, 그에 앞서 치열한 '입원경쟁'부터 뚫어야 합니다. 현재 뉴욕 주에서 코로나 환자 8명 가운데 1명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상황을 말해 줍니다.

미국인 한 명당 의사와 병상 수는 이탈리아보다도 적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입니다만, 기대수명은 78.6세로(2017년 기준), 한국이나 이탈리아보다 4년 이상 낮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이라며 불온시해 온 것이 첫 번째 원인입니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 중 28위에 머물지만, 놀랍게도 미 정부의 보건지출은 압도적인 1위입니다. 시민들의 세금이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대형병원, 의료업체, 제약회사, 보험사 등 영리기업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며 의료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듯 (한국의 전체 병상 수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보다 낮습니다), 미국에서도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마스크, 방호복, 장갑 등의 의료용품과 의료장비의 생산을 국유화할 것을 연방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트럼프는 이 제안을 거부했지만, 앞으로 펼쳐질 상황은 미국 의료제도의 치부를 드러낼 것이고, 이는 의료제도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 장을 보던 한 남성이 빈 선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강인규

 
공원에서 퇴근하며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갑니다. 이제 컴퓨터를 접어야겠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제게도 소중한 깨달음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삶의 구석구석이 타인과 연결된 이 세상에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입니다.

그동안 제게 찻집, 식당, 마트 등에서 일상적으로 도움을 베푼 직원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이었는지 마음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경제도 활발히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온라인 경제'니, '디지털 세상'이니 하며 침을 튀겨도, 사람의 손과 발을 거치지 않고는 우리 곁에 편지 한 장도 도착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물리적 관계 속에서 느끼는 충만함을 인터넷은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제가 온라인으로 강의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점입니다. 이처럼 그동안 당연시해 온 일상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또 한 가지 느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시민들이 촛불 이후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저력입니다. 국경 차단이나 지역 봉쇄 등의 조치는 말할 것도 없고, 극장, 공연장, 식당 등의 강제 폐쇄도 없이 사태를 진정시켜 온 한국의 모습은 국제사회에 큰 교훈과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대처방안을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잘 대응하면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낼 수 있다'는 희망까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랜 싸움으로 지쳐갈지는 모르나, 앞으로도 잘 싸워 가시리라 믿습니다. 한국인이 희망을 잃는다면, 그 어느 나라도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도 공원으로 출퇴근하면서 응원하겠습니다.

멀리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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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불러들인 기회: 4.27정상회담 'Ver.2를 상상하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일회담’으로 개최하자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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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8  0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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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모르긴 몰라도 역사와 변화는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인 교집합에 의해 발전되어 갈 것이다. 대입하면 지금의 남북관계가 바로 그 우연에 의해 획기적으로 전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 

타이밍이 꼭 그렇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근거 첫째, 필자 본인이 누누이 얘기해오고 있지만 제비 한 마리가 왔다하여 봄이 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희망적 사고로 본다면), 친서는 분명 잔뜩 움츠렸던 남북관계가 이 친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지개를 펼 수도 있는 좋은 청신호임에는 분명하다. 그것도 시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거의 동시적으로 남과 북, 북과 미 정상들 사이에 이뤄진 친서교환이니 더더욱 폄훼할 이유는 없다. 

둘째 근거, 유엔(UN)이 G20정상회의(현지시각, 3.26)를 앞두고 각국 정상들에게 서신 하나를 보냈다. 모든 제재완화가 핵심인데, 쿠테흐스 사무총장은 “제재대상의 국가들이 식량, 의약품 그리고 코로나-19(COVID-19 ) 퇴치에 필요한 지원을 쉽게 받기 위한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도록 촉구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연대할 시점이지, 배제를 지속할 때가 아닙니다(강조, 필자)”라고 언급했다. 앞서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지난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북을 언급하며 "코로나19 확산이 전 세계에 미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 제재 완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 발언을 대북제재에 대입시키면 쉽게 답은 나온다. 

셋째 근거, 코로나-19가 준 역설의 선물이 또한 그 중 하나이다. 다름 아닌, 2020년 3월에 실시되려든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단된 것이 그것이고, 이는 정치적 산물로서 연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좋은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해서 위 3요인을 조합해 해석하면 이렇다. 

3요인 하나하나는 제비 한 마리일 뿐이고, 각기 다른 우연이겠지만, 3요인이 합해지면 인식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양질 전환의 법칙에 따라 필연으로 전환된다.

필연으로써 남북관계가 그렇게 찾아왔다.  

이제 그 활용은 대한민국 정부의 능력문제이다. 좀 더 직설하자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 능력의 문제이고, 좁히면 청와대 통일·외교 관련 참모들이 이 상황을 정확히 캐치해내고, 대통령께 보고(혹은, 직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첫째, 정치적 타이밍이 정말 좋다.

분명 역발상하면 그렇게 보이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4월 총선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선거라는 것이 각 정당이 중심되어 치러지는 치킨게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한 발 빠져 있을 수 있다.

반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상황은 영 다르다. 연말 대선에서 본인이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재선문제가 달려있어 자기 코가 석자일 수밖에 없다. 대선에 올인 해야 할 수밖에 없고, 남북-북미문제는 당략과 관련된 대선의 직접적 이슈가 아니니 관심 밖이 된다.

두 상황은 이렇듯 두 대통령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시선을 향하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은 당면한 코로나-19 대응은 물론, 남북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문제에 올인 하게 한다. 때문에 득표요인에 결정변수가 아닌 남북관계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비례하여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남북문제에 있어 독자적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기회가 그렇게 찾아온다. 

어떻게?

① 미국 국내 상황이 대선국면으로 급격히 빠져들어 가버리기 때문에, 이때를 활용해 남북관계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무력화 할 수 있다. (해체까지 검토 가능)
② 동시적으로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총선이 끝나자마자(물밑에서는 지금부터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직후 코로나-19 협력을 매개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 

물론 대전제는 있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에게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야 하는데, 그 핵심에 기간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약속이행을 하겠다는 보장을 해 주어야 하고, 동시적으로 이제까지 해 왔던 ‘선 한미협의-후 남북협의’ 방식이 아니라, ‘선 남북합의-후 미국설득(남북공동으로)’이라는 민족공조 방식에 대한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결과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다. 의제도 6.15와 10.4, 4.27과 9월 평양선언 모두 다 총화 되는 집적으로서의 통일회담이다. 그렇게 남북관계가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순항하게 되는 것이다(“양 정상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중략)”, <9월 평양공동선언 전문> 중에서).

둘째, 한미동맹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남북관계 모멘텀(momentum)도 반드시 만들어 낼 수 있다. 근거는 이렇다. 

코로나-19로 인해 남측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모범국가로 칭송받는다.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채택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북측도 오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의료체계특성(무상의료체계와 예방의학)과 여러 요인들이 겹쳐 현재까지 단 한명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는 유일국가(?)이다.  

사실로부터 남북관계도 모범적으로 해날 갈 수 있다는 충분한 명분이 우리(민족)에게 있고, 국제사회의 지지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남측은 방역시스템과 진단키트 등 우수한 의료기술과 제도를, 북측은 개성공단 재가동을 통한 마스크 대량생산, 그렇게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전 세계의 의료 방역시스템에 획기적으로 기여한다면 이는 우리 민족이 21세기형 인도주의 모범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 바탕위에서 우리(민족)는 코로나-19만큼이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도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국제사회에 주지시킬 수 있고, 동시적으로 '한국식 모델로 분단 문제도 반드시 풀릴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줄 수 있다.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아래와 같다. 

① 코로나-19 남북협력은 전 세계의 지지를 받으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미국 등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② 개성공단 재가동은 전 세계에 공급될 코로나-19 마스크 생산을 명분으로 제재해제를 보장받고, 국제사회로부터 대북제재 해제 전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다.

③ 코로나-19 계기로 ‘잠정’ 중단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 중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 기간 안에 - 잠정 중단된 한미합동군사훈련 그 기간 안에 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만 된다면 이는 당연히 통일회담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 한미동맹체제는 자연스럽게 그 운명이 다하고,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군사적 긴장고조의 근원적(본질적) 원인이 제거된다. 

결론적으로 이렇듯 지금의 국면은 위 ‘첫째’와 ‘둘째’를 상상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는 절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한낱 일장춘몽이 정말 아니길 바란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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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조국, 위성정당…이런 선거는 처음이지?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정치 퇴행

4.15 총선 후보등록일이 27일 마감됐다. 공식 선거운동은 다음달 2일부터지만 지역구 대진표가 완성되고 정당기호 등이 결정되면서 본선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됐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무당층이 늘어나는 등 정치와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최악의 총선 투표율을 보일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달라진 공직선거법의 빈틈을 노려 우후죽순 등장한 비례정당들의 난립에 여야를 가르는 굵직한 쟁점마저 보이지 않아 통상 현 정부 중간평가로 인식돼온 전국단위 선거의 성격과 거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과 의원 꿔주기를 경쟁하며 꼼수 논란을 일으켰고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코로나 정국', 총선 블랙홀로 

 

지난 1월 하순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사태는 두 달째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이다. 감염자 확산 초기,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76만 명이 서명하는 등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져 정부여당이 한때 위기에 몰렸다. 수요‧공급 예측에 실패해 '마스크 대란'을 일으킨 점도 감점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유럽 등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감염자 확산 추세 속에 한국 정부의 감염병 관리 수준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사정이 변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호평에 힘입어 지난주보다 6%포인트 오른 55%로 집계됐다. '코로나 정국'의 주도권은 문 대통령으로 기울어 있다. 

 

미래통합당도 코로나19 사태를 고리로 한 정부 비판에서 한 발 빼는 분위기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마구잡이식 현금 살포"라고 맹성토했던 통합당은 경기도 등 여권 지자체장들이 주도한 재난생계지원 방안에 여론의 호응도가 높아지자 '40조 국채 발행'을 제안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다만 일일 100명 선으로 관리되고 있는 신규 확진자수가 좀처럼 안심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감염병의 특성 상 언제든 다시 폭증할 수도 있어 코로나19 사태가 총선에 미칠 영향력을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평가다.

 

'화학적 결합' 부실한 보수 통합, 위력은? 

 

선거구도 정비 면에서는 보수 통합에 성공한 미래통합당이 한 발 앞서있다. 유승민 의원이 이끌던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에 사실상 흡수 합병되는 방식으로 지난 2월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3년 여 만에 보수 단일대오가 완성됐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이 '옥중 서신'을 통해 미래통합당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태극기 세력'에 주문함으로써 통합당은 강경 친박 지지층들의 이탈도 단속할 수 있게 됐다. 총선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민경욱 의원이 기사회생 하는 등 막판까지 잡음이 일었지만,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상징성 있는 친박 중진들과 대구‧경북(TK) 지역에 대한 물갈이가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논란만 한차례 일으키고 무산된 것으로 보였던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끝내 총괄선대위원장에 내세운 점도 중도 확장성 면에서 득표 요인이다. 

 

그러나 보수 통합의 관건적 문제이던 '탄핵의 강' 논란이 여전히 잠복해 있는 데다, 합당 이후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침묵이 이어지고 있어 형식적 보수 통합이 내용적으로도 완성됐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황교안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와 빚은 갈등,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순번 파동을 거치며 빈약한 리더십을 노출한 점도 '김종인 효과'로 극복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총선 정국에 드리운 '조국 그림자' 

 

50% 위로 치고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미래통합당의 '정권 심판론'을 방어하는 형국이지만, 민주당의 총선 전열 정비는 총체적인 실패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폭발적 균열이 일기 시작한 '진보 내전'이 총선을 앞두고 봉합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반란'으로 보는 '친문‧친조국' 성향의 지지자들과 '개혁의 외피를 쓴 정권 실세가 드러낸 불평등 세습 사회의 민낯'으로 보는 진보 진영의 설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국 사태라는 정권적 위기를 맞아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 개혁으로 논점을 바꾸면서도 총선에서 조국 프레임이 전면화 되는 데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공개선언을 한 데 이어 강성 지지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금태섭 의원이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범여권 내부 논란의 핵심은 '조국이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특히 김남국 변호사 등 '조국 키즈'들이 속속 민주당 공천장을 받아 쥐었고, 대놓고 '친조국'을 표방하는 인사들이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창당해 지지층 표심을 가르는 점도 여권이 조국 프레임을 피할 수 없는 배경이다.

 

민주당 위성정당 전략 자충수?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저)가 비유하듯 ,'60대 건물주' 세력과 '50대 부장님' 세력 사이의 도덕적‧계급적 경계를 허문 조국 사태에 이어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이 앞 다퉈 만든 위성정당 논란은 정치적으로도 두 세력의 차이를 분간하기 어렵도록 했다. 

 

지난해 선거법 개정 자체를 반대했던 통합당은 "우리가 만든 비례정당은 민주당과 야합 정당들이 만든 선거법에 대응해서 나온 것"(황교안 대표)라는 말로 미래한국당 창당 명분을 내세운다. 

 

반면 통합당의 위성정당 만들기를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국민의 눈초리도, 체면도, 염치도 모두 다 버렸다"(이인영 원내대표)고 비판했던 민주당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은 '문 대통령 탄핵론'을 내세워 부랴부랴 위성정당에 비례대표를 파견했다. 

 

민주당은 특히 시민사회 원로들이 제공한 위성정당 플랫폼을 걷어차고, 친조국 성향의 인사들이 주도한 더불어시민당과 손을 잡아 소수정당 원내진출이라는 마지막 명분마저 포기했다. 또 다른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이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재까지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지지율 이전 효과는 마이너스다.

 

27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정당지지도가 37%인 반면, 비례대표 투표 의향을 묻는 조사에서 더불어시민당은 25%를 얻는데 불과했다. 미래통합당의 정당 지지율은 22%였으나 미래한국당에 비례대표 투표를 하겠다는 응답은 24%로 불어났다. 

 

총선 득표력과는 별개로, 민주당이 위성정당 전략을 채택한 효과는 진보 진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꼼수 따라하기'로 규정하며 등을 돌린 데다, 정의당은 지지율 하락, 녹색당을 비롯한 원외 소수정당들은 내부 논란을 겪는 등 진보진영 전반이 후폭풍을 겪고 있다.
 
※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24~26일 휴대전화 무작위걸기 표본 프레임에서 추출한 유·무선전화 표본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면접 방식으로 시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4%다. 설문지 문항과 통계보정 기법 등 조사 관련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경구 기자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271824251818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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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사건 10주기에 부쳐

국가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직과 진실’ 뿐
 
신상철 | 2020-03-26 10:12: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2010 천안함 침몰 사건

오늘로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지 꼭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010년 3월 26일 밤 비운의 천안함은 항해당직사관의 운항과실과 잘못된 판단으로 좌초를 겪은 직후 이어진 충돌사고로 반파 침몰되어 46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두 번의 불행이 겹쳐진 복합 해난사고였습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은 아닙니다. 운항자가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사고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사건 자체보다 더 크고 심각한 비극은 그 사고 이후 정부와 군 당국이 줄곳 행하고 있는 ‘거짓과 왜곡’ 그리고 ‘조작과 은폐’이며 그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의 ‘침묵’입니다.

그로 인하여 천안함 침몰사건은 사고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은커녕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한 채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 사건인 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선박이 어떠한 곳을 항해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해저와 수로지형에 대한 정보부실이 어떠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선체가 침수를 겪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침몰한 선체에서 인명구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무수히 많은 과제들이 <적의 공격>이라는 허구의 조작아래 묻혀버렸습니다.

대형 해난사고의 정확한 원인규명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 대책과 대비를 위한 교훈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행했어야 할 합당한 의무를 저버린 결과는 불과 4년 뒤의 참극 속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 2014 세월호 침몰 사건

그날의 바다를 떠 올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아릿하게 저며오는 느낌은 세월이 흘러도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기다리라’는 메시지만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울화의 응어리가 되어 아직도 목구멍에 걸려있는 듯합니다.  

그날 사고 순간 현장에 있었더라면.. 방 마다 문을 젖히며 ‘Abandon Ship!(탈출)’을 목이 터져라 외칠 수 있었더라면.. 유리창마다 망치로 깨 아이들을 물속으로 뛰어들게 할 수 있었더라면.. 주변 배들에게 섬 쪽으로 밀게 해 인위좌초를 시킬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쉬움의 편린들이 한숨 되어 흘러나옵니다. 

세월호 사건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6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고의 원인, 관계자들의 조치와 처신의 적절성, 해난사고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밝혀진 것도 매듭지어진 것도 없습니다.

정부 당국과 관계기관들의 거짓과 왜곡 그리고 조작과 은폐 속에 그 또한 녹슨 세월의 부식물 아래 깊숙이 매몰되어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분노가 치밉니다.

국가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국가가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은폐하는 짓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3. 2020 COVID-19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작금 전 세계는 COVID-19 펜더믹으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매일 수 백 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위기의 상황을 바라보며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나는, 만약 이러한 수준의 바이러스 위기가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시절에 발생했더라면 우리의 현재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응을 적절히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정직하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하였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우리는 그들로부터 너무나 분명하고 확고하게 학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2010년 3월 백령도 해역에서 침몰하여 4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던 천안함 침몰사건, 2014년 생떼와 같은 아이들을 잃어야 했던 비극적인 사건들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거짓으로 진실을 덮어버렸을 때 그것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과 다름아닙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직과 진실’뿐입니다. 그래야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고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며 그것을 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망각한 대가는 반드시 혹독한 결과로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늘 가르쳐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신상철

덧글 : 지난 1월 30일 천안함 항소심 최종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선고 이틀을 앞두고 재판부에서 변론재개를 통보하여 오는 4월 23일 항소심 재판이 속개될 예정입니다. 이 사건이 마무리 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리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10년간 그랬듯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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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 묻힌 왕닥

휴심정 2020. 03. 25
조회수 29 추천수 0
 

 

*이글은 한겨레테미여행팀으로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다녀온 최순자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장에 보낸 것입니다.

 

안나푸르나에서 별이 된 셰르파 왕닥을 기억하며

 

 

111-.jpg» 지도를 펼쳐들고 한겨레테마여행 안나푸르나 트레킹 셰르파 왕닥이 트레킹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왕닥은 한겨레테마여행을 안내한 직후 안나푸르나의 눈사태로 실종됐다.

 

 

새해 안나푸르나 눈사태 사고

나를 안내해 줬던 셰르파 왕닥도 포함

 

지난 1월 하순 경한국 교사 4명과 현지인 3명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눈사태로 실종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그 중 한 명이 사고 바로 직전내가 다녀온 한겨레테마여행팀(2019.12.24~2020.1.1) 셰르파 왕닥(Wangdak)’이다.

 

네팔 안내인 고팔(Gopal) 씨와 최근 연락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현지인 3명은 네팔 가이드 1버리야(포터포터는 영국식으로 하인의 의미이므로 버리야로 불러달라고 함) 1중국 가이드 1명이라 한다버리야도 우리와 함께 한 민 버하두르 따망(Min Bahadur Tamang)’ 씨라 한다아쉽게도 따망 씨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이 글은 셰르파 왕닥과의 추억을 엮어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왕닥을 처음 만난 것은 해발 2,700m 무스탕 수도 좀솜에서다지난해 12월 27(아침 7시 30분경이었다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카트만두포카라를 거쳐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등반대장이 셰르파 왕닥을 소개했다그는 인사를 하고 지도를 펴서 우리가 걸을 코스를 설명했다일행은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하고나서 서로 손을 얹고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 후 안나푸르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드디어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설산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설렘과 처음이 주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116-.jpg» 트레킹 도중 묵은 숙소 롯지에서 식사시간에 노래를 부르는 동료의 장단에 맞춰 냄비를 두드리는 왕닥(맨오른쪽)

 

 

 

 

27년 셰르파 역할을 한

순수한 아이와 같았던 그

 

나는 앞서가는 그에게 다가가 얘기를 나눴다나는 더듬거리는 영어였지만그는 유창한 영어로 이 일을 시작한 지 27년이 됐고 가족은 먼 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우리보다 몇 발 앞에서 한발 한발 천천히 말없이 걸으며 길을 안내했다그의 뒷모습은 외경스러움 마저 느껴졌다얼마나 많은 곳을 저렇게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그에게 히말라야는 자신의 분신이거나 어쩌면 그 자신일지 모른다그의 영혼은 이미 그 산과 맞닿아 있는 듯 했다.

 

히말라야를 쉽게 내 줄 수 없다는 듯 밤새 바람이 세차게 울었던 칼로파니 마을을 함께 둘러보고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중년인 그가 가무잡잡한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엿보였다겨울바람 내려앉은 방에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그에게 말하자 잠시만요.” 하더니 만물박사처럼 불이 환하게 들어오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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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숭늉을 건네주고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던 그

 

그는 세 끼 식사 때는 밥과 국반찬을 나르며 음식을 만드는 사람 일까지 도왔다김치를 더 달라고 하면 어느새 주방으로 달려가 김치가 든 양푼을 들고 와 김치김치라며 접시에 덜어주었다식사가 끝나면 숭늉슝늉” 하며 숭늉과 뜨거운 물을 건네주었다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조금이나 따뜻하게 잘 자라고 핫팩에 뜨거운 물을 넣어주기도 했다새벽 5시 전후로 어김없이 문을 두드리며 각 방을 돌면서 뜨거운 차를 건네주었다추운 곳에서 잔 우리들을 위해 먼저 일어나 준비한 것이다잠자리에서 일어난 손님에게 따뜻한 물을 대접하는 것은 고산지역의 풍습이라고도 한다.

 

노천 온천이 있던 따또빠니 숙소에서 저녁으로 백숙을 먹던 날현지 가이드 고팔 씨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분위기와 감정에 취해 네팔 민요를 불렀다그는 눈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옆에 서서 냄비 뚜껑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115-.jpg

 

 

 

 

마중 나와 준 그에게

마지막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트레킹 일정 중 가장 힘든 코스를 걸었을 때다일행 제일 뒤쪽에서 내 스타일대로 천천히 걷다 보니 약 10시간 정도 걸렸다고도 약 2,900미터 고라파니 숙소에 먼저 도착한 그는 자기 배낭을 놓고내 배낭을 들어줄 현지인을 데리고 마중 나왔다나에게 다 왔으니조금 더 힘내세요.”라며 격려했다.

 

벽난로가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서 트레킹 고도 중 가장 높은 3,200미터 푼힐 전망대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환호성을 내며 일출을 조망했다이번 트레킹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안나푸르나다울라기리마차푸차레투쿠체 등 아름다운 설산을 바라보며 감격했다.

 

일행은 가슴을 설레게 했던 하얀 만년설이 쌓인 안나푸르나 봉우리를 뒤로했다랄리그라스 숲을 지나 한참 걷다가 높은 설산을 바라보며 넓은 마당에서 국수로 점심을 먹었다그는 역시 식당과 식탁을 오가며 부지런히 식사를 도왔다그러던 그가 뜨거운 물이 든 주전자를 들고 오다 그만 주전자 손잡이가 떨어져 주전자가 땅바닥에 나뒹굴고뜨거운 물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와 동행한 남편 옷에 튕겼다남편은 얼른 괜찮아요.”라고 했다나중에 남편은 그의 잘못이 아니고 주전자가 오래된 탓이기에그가 너무 미안해 할까봐서 애써 빨리 그렇게 말했어.”라고 살짝 귀뜸했다.

 

점심 식사 후우리 일행은 트레킹 하는 동안 산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준 현지인들짐을 날라다 준 현지인들과 셰르파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별도로 만나 악수를 하고 작지만마음을 전했다그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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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jpg» 뒷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검지를 들고 있는 이가 실종된 셰르파 왕닥이다.

 

 

 

 

별이 되어 히말라야 길잡이가 된 그의 영혼이

그곳에서 편안히 잠들길 바란다

 

사고 처음에는 연일 뉴스가 나왔는데 요즘은 잠잠하다네팔 현지인에게서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실종자 찾기가 아직까지 어렵다는 소식까지 접했다세상은 코로나19로 소란스럽지만자연은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도 아직은 춥겠지만 봄이 왔을 터이다내가 걷던 지난 12월 말에 곧 봄이 올 것이라며 농사지을 채비를 하던 농부들을 만났었다봄날의 따스한 햇살로 눈이 녹아내리기를 바랄뿐이다.

 

우리팀 등반대장은 세계 최초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최종열 탐험가였다홀로 외롭게 사막을 걸으며 죽을 고비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그때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영혼이 사하라 사막이 가장 편안하다면나는 여기서 죽어도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히말라야 여기저기를 누빈 셰르파 왕닥의 영혼은 어쩌면 히말라야가 가장 편안했을지 모르겠다그곳에서 그가 편안하게 잠들길 두 손 모은다(다른 희생자도). 그는 히말라야를 찾는 숱한 트래커를 안내하는 별이 되었을 성싶다.

 

 

최 순 자(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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