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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우리가 탄핵한 건 '돈도 실력인 사회'였습니다

[연속 기고-이재용 사면을 반대한다] 그날의 촛불을 기억하십니까?.   

21.07.14 07:29l최종 업데이트 21.07.14 07:29l

 

정재계를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면'론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재용 사면에 반대하는 각계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이재용 사면과 가석방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짚어봅니다.[편집자말]
큰사진보기박근혜를 향한 외침 "국민의 명령이다 즉각 퇴진하라" 수많은 시민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지연 어림없다-박근혜 황교안 즉각 퇴진 특검연장 공범자 구속을 위한 16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  지난 2017년 2월 18일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지연 어림없다-박근혜 황교안 즉각 퇴진 특검연장 공범자 구속을 위한 16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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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 우리를 기억하십니까? 

2017년 2월 18일, 대통령님과 저는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8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촛불을 밝혔던 그날, 우리는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재용은 시작이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재용도 구속됐다, 박근혜도 구속하라" 같은 구호 말입니다. 그날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법정 구속된 이후 처음으로 촛불집회가 있었던 날입니다.  

그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며, 헌법에 보장된 법 앞의 평등이 드디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재벌 총수는 죄를 지어도 구속되지 않는 나라, 구속돼도 '3.5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나는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습니다  그날 촛불을 들었던 우리 모두가 함께, 뇌물을 준 사람(이재용)이 구속됐으니 당연히 뇌물을 받은 사람(박근혜)도 탄핵과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촛불의 요구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단죄를 받았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촛불을 밝힌 시민들의 힘이 만든 결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촛불이 탄핵한 '삼성공화국'의 망령이 다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재계의 건의를 시작으로 올해 들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사면·가석방 논의 말입니다. 분명 그날 촛불을 함께 들었을 여당 유력 정치인들의 입에서마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며 매번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요구와 다짐이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지도 않은 이 시점에 뒤집어진다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촛불의 염원으로 출범한 정부의 수장이 국정농단 범죄자를 위해 사면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니, 그 자체로 끔찍한 비극입니다.   

촛불이 만들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빠져나오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7년 2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빠져나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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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이 법정 구속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이게 나라냐'라는 국민의 분노에 마침내 사법부가 응답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불 시민의 요구를 명확히 알고 계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국정농단 사태에 가담해 뇌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한 재벌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라라고 부를 수 없다는 외침에 동의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내려진 징역 2년 6개월형은 그가 행한 범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형기를 다 채우지 않은 시점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 현실을 보며, 다시 '이게 나라냐'고 묻게 됩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촛불의 구호를 다시 꺼내들어야만 하는 심정은 비통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회사 자금을 횡령해 국정농단의 주범에게 뇌물을 바치고,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국민연금의 재정에까지 큰 피해를 입히며 삼성 계열사 불법 합병을 꾀해놓고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같은 이재용의 행태는 오로지 자신의 사적 이익, 불법 승계를 추구하기 위해 행해졌습니다.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활성화라는 빌미로 이재용 부회장을 석방시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재벌공화국의 망령을 다시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정권들에서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재벌 사면이 이뤄졌으나, 재벌 사면과 경제활성화 간의 실증적 인과관계가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권력에 기대어 불법적으로 부와 기득권을 승계해온 재벌을 법 앞에 단죄하지 않고서, 대한민국의 공정과 정의, 평등은 허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성 재벌 이건희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용이 뒤이어 재벌 총수 자리에 올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행한 불법에 제동을 건 것이 바로 촛불의 외침이었습니다.

그 말은 아무 뜻 없었다고 말씀해주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네번째), 구광모 LG 그룹 회장(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와 간담회에서 앞서 환담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네번째), 구광모 LG 그룹 회장(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와 간담회에서 앞서 환담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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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갖기 위한 불법과 조작을 저지르는 일에 삼성그룹과 정권의 조직적 조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유라가 단지 최서원의 딸이기에 이재용으로부터 몇십 억원 대의 마필을 받았듯, 이재용과 정유라, 박근혜가 살았던 세상은 그들이 단지 누군가의 아들딸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평범한 아들과 딸들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들과 우리가 적어도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탄핵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돈도 실력인 사회'까지 탄핵했습니다. 처벌받지 않는 권력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뇌물 준 사람'인 이재용 부회장이 석방되면, '받은 사람'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 논의도 자연히 물꼬가 터지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그날의 촛불을 기억하신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은 임기 내에 결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공언해주십시오. 대기업 회장들을 만나 "이재용 사면에 대해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라고 발언하셨던 것은 아무 뜻 없었던 말이었던 거라고, 확실하게 말씀해주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강민진씨는 청년정의당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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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9,160원… 민주노총 “저임금노동자 기만한 것”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1.07.13 10:24
  •  
  •  댓글 0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최저임금인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05%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최저임금 8,720원보다 440원 인상된 것으로, 월 단위(주 40시간, 유급주휴 포함, 월 209시간 기준)로 환산하면 191만 4,440원이다. 이로써 문 정부가 출범하며 내걸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폐기됐다.

▲ 12일 밤 최저임금위원회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9천160원으로 의결됐다. [사진 : 뉴시스]
▲ 12일 밤 최저임금위원회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9천160원으로 의결됐다. [사진 : 뉴시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2일 밤 정부세종청사에서 9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이같이 의결했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을 표결해 찬성 13표, 기권 10표로 가결한 것.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위원들은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9,030원~9,300원)에 반발해 표결 전 전원 퇴장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희망고문이 임기 마지막 해에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기만으로 마무리된 것”이라고 분노했다.

“공익위원이 제시한 3.6~6.7%는 도저히 받아들이고 논의할 수 없는 수치”, “6.7% 인상돼도 산입범위 확대 개악으로 실질인상률은 2% 미만”이라며 “코로나 19로 증폭된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불가피했음에도 (공익위원 제시안은)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앞서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코로나19로 심화된 경제 불평등 및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에 적정해야 한다”며 23.9% 인상안(시급 10,800원)을 최초 제시안으로 제시한 후 노사이견을 좁히기 위해 10,440원, 10,320원에 이어 10,000원을 수정안으로 내놨다. 그러나 사용자 측은 8,740원과 8,810원, 8,850원을 수정안으로 제시했다. 사용자위원 측은 8차 회의에서 “수정안을 내라고 해서 어쩔수 없이 낸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결국 9차 회의에서 공익위원회는 심의촉진구간(9,030원~9,300원)을 제시했고, 공익위원 단일안인 9,160원으로 의결됐다.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위원 5명은 찬성표를 던졌고, 지난 29일 최초제시안으로 ‘최저임금 동결안’을 제시하며 지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위원들은 “영세·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이유로 인상안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12일 오후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사진 : 뉴시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12일 오후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사진 : 뉴시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에 앞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지난 2020년과 2021년 최저임금을 역대 최저 수준인 2.87%와 1.5% 인상을 주도하며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을 훼손하고, 저임금노동자의 생존권을 외면하고, 공익위원이란 지위가 무색하게 실질적으로 정부의 의중을 관철시키는 ‘정부위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며 작년과 재작년처럼 최저임금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결정을 예상하며 우려를 표해 왔다. 결국, 내년 최저임금도 공익위원들의 단일안이 공익위원들의 찬성표에 힘입어 결정됐다.

민주노총은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해 하반기 총파업 투쟁으로 매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최저임금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의제기 절차 등을 거쳐 최저임금 결정·고시 시한인 8월5일까지 최저임금을 고시하면 내년 1월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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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日 방위백서 ‘독도 영유권’ 되풀이에 ‘강력 항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7/14 07:06
  • 수정일
    2021/07/14 07:0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변인논평, 즉각 철회 촉구...주한일본공사·국방무관 초치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7.13 15:19
  •  
  •  수정 2021.07.13 17:27
  •  
  •  댓글 0
 

일본 정부가 13일 발표한 <방위백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데 대해 정부는 즉각 강력 항의하고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방위백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방위백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2시 30분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7월 13일 오늘 발표한 방위백서를 통해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부질없는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오늘 아침 아태국장이 주한일본대사관의 총괄공사를 초치해서 일본 측이 방위백서를 통해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강의하고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고 확인했다.

최 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금번 방위백서를 포함, 일본 정부가 최근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해 주목된다. 최근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 외교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일본의 부당한 주장이 계속 강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최 대변인은 “ 정부는 일본 정부의 부당한 주장이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우리 주권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재차 분명히 하며,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엄중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도 “독도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은 언제나 변함없이 결연하다”고 덧붙였다.

이경구 국방부 국제정책차장도 주한 일본 국방무관인 항공자위대 마쓰모토 다카시 대령을 국방부 청사로 초치해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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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35]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칭송, UFO

이형구 | 기사입력 2021/07/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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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  타임지 2021년 7월호 아시아판 표지


 

1.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칭송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 문재인 대통령 타임지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9일 미국 주간지 타임과 인터뷰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26일 연합뉴스와 세계 6대 뉴스통신사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상당히 유연성이 있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주로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유연성이 있고 결단력 있다고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 번영,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며 실현할 의지가 매우 높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 번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기 생각과 주장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면서도 수용할 건 수용하고 다소 민감한 부분도 과감히 결정짓는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연하고 결단력 있다며 극찬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한 바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3월 29일에 보도된 SBS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자신감과 확신에 차서 지휘하고 있는 걸 봤다”라며 대단히 결단력 있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볼턴 전 보좌관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볼턴 전 보좌관을 북한에 데려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북한 강경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 볼턴은 나쁜 사람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미국 정부 안에서도 가장 강경한 대북적대정책을 펴려 했다.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볼턴 전 보좌관이 생화학무기를 폐기하라는 등의 이야기를 꺼내 회담을 결렬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런 볼턴까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잊을 수 없는 지도자로 추켜세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예찬하던 사람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북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매우 영리한 사람이자 위대한 협상가”, “아주 전략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말 현명하다”, “굉장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능력을 수없이 반복해서 찬양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책 ‘격노’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라고 묻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명석하고 비밀스럽지만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북미정상회담 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위대한 인격에 매우 똑똑하다. 좋은 조합”이라고도 말했다. 우리는 살면서 배려심이 많다던가, 남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을 보며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곤 하지만 ‘훌륭한 인격’을 지녔다고까지 평가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극찬 중의 극찬인 것이다.

 

이렇게 문재인 대통령과 볼턴 전 보좌관, 트럼프 전 대통령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계속해서 칭송하고 있다.

 

(2) 민심의 반응

 

문재인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졌을 때 국민 속에선 별다른 반향이 일어나지 않았다.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는 말은 대다수 국민이 특별히 거부감을 보이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북한을 찬양했다며 색깔론에 휩싸였을 법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국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평가가 맞는다고 여긴 것이다. 즉 인터뷰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국민은 북한에 대해서 적폐언론이 보도하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신문이나 뉴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적폐세력은 이 점을 이용해 북한의 지도자를 헐뜯는 반북 보도를 일삼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남북정상회담이 생중계되고 국민이 얼마든지 북한 사진과 영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국민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등을 직접 방송과 사진으로 봤다. 그러자 적폐세력이 유포했던 반공반북 색깔론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사진과 영상은 참 많은 것을 전달한다. 사진만 봐도 누가 어떤 사람인지 얼추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 사진을 보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 독재자라고 쓰여 있는 듯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사진을 봐도 이 사람은 권위주의적인 사람이겠구나 하는 게 눈에 보인다. 

 

만약, 국민이 남북정상회담 등 북한 최고지도자의 영상을 직접 보았더니 반북 세력이 그동안 왜곡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 보였다면 적폐세력이 이를 엄청나게 부각시키며 떠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볼 때도, 적폐언론이 볼 때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어디에서도 흠잡을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적폐언론도 예전처럼 북한 지도자에 대한 음해 왜곡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 볼턴 전 보좌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높이 평가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국힘당과 윤석열, 조선일보 같은 세력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며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국민은 ‘쟤네가 저렇게 말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뿐 적폐세력의 말에 동의하진 않았다.

 

(3) 미치는 영향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의 ‘점령군’ 발언이 화제가 됐다. 이재명 예비후보가 7월 1일 자신의 고향인 안동에서 이육사 시인의 딸 이옥비 여사를 만나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았나”라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보수언론을 비롯한 적폐세력이 모두 들고 일어나 대대적인 색깔론 공세를 폈다. 

 

그동안 적폐세력이 공세를 펴면 막강한 힘을 발휘해왔다. 적폐세력은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고도 언론을 총동원해서 북한의 소행인 양 몰아갔고 자신이 마치 정당한 행위를 한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1987년 칼기 사건 때도 적폐세력이 대대적인 색깔론 공세를 펴 국민을 세뇌시키다시피 했다. 조국 사태 때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해 왜곡·편파보도를 수도 없이 쏟아냈고 올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도 LH사태로 신문지면을 덮어버렸다. 

 

이번에 적폐세력은 자기가 가진 힘을 동원해 이재명 예비후보의 점령군 발언을 맹공격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재명 예비후보의 미 점령군 발언은 대선 국면을 크게 좌우하는 핵심 의제로 떠오르지도 않았고 부분적인 싸움에 그쳤다. 그마저도 적폐세력이 일방적으로 이재명 예비후보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적폐세력이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펴고 있다는 반격이 일어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오히려 적폐세력이 시작한 공방전에서 이재명 예비후보 측이 약간의 우세를 점했다. 홍준표 국힘당 의원도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 최초 상륙한 미군은 점령군이 맞다”라며 “점령군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라고 인정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점령이 맞다”, 정태일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팩트(사실)를 두고 피곤한 말씨름하는 건 생산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등 역사학계도 미군은 점령군이 옳다고 밝혔다. 뉴스 댓글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말한 이재명 지사보다 이재명 지사의 말을 비틀어 왜곡, 이재명을 비난하는 수구 방가일보(조선일보) 등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추천 9,325회, 비추천 431회)”, “이재명 지사 말 백 퍼센트 공감한다. 철 지난 색깔론 진짜 역겹다(추천 3,702회, 비추천 31회)”라는 여론이 공감을 얻었다. 

 

이 공방전을 통해서도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반공반북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아직 국가보안법이 남아 있는 등 색깔론의 영향력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다만, 과거와 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동안 색깔론이 얼마나 맹위를 떨쳐왔던가. 1945년 해방 후 친일파는 미군정과 결탁하고 빨갱이 사냥을 함으로써 기득권으로 부활했다. 1969년 5.16군사쿠데타, 1972년 유신독재, 1980년 광주학살과 1987년 대선 때 칼기 폭파 사건 등에서도 온통 반공반북 빨갱이 사냥이 한국을 지배했다. 민주화가 된 후에도 적폐세력은 민주화, 자주화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반공반북 빨갱이 사냥을 벌였다.

 

그러나 오늘날엔 어떤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미군이 점령군이었다고 발언을 하고 적폐세력은 이 발언을 가지고 빨갱이 몰이를 하려다 도리어 역공을 당하는 상황이다. 이준석 국힘당 대표, 윤석열 예비후보, 조선일보 등이 달려들어 이재명 예비후보의 점령군 발언을 공격했지만, 그 무슨 여배우가 근거도 없이 이재명 예비후보를 헐뜯는 것보다도 위력이 없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반공반북 빨갱이 사냥의 힘이 줄어든 것이다. 반공반북 색깔론의 위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근본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한국 사회에 대한 지배력,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여전히 국민 속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나빴더라면 반공반북 색깔론은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따라서 반공반북 색깔론의 위력이 줄어드는 배경엔 북한에 대한 인식 변화, 특히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하는 세계적인 분위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북한과 대결하고 있는 미국, 미국인 중에서도 가장 반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볼턴 전 보좌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니 색깔론이 힘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볼턴 전 보좌관마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높이 평가하는 걸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감화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대결하는 사람끼리는 상대방을 높게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이 조국 전 장관의 인성을 높게 평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볼턴 전 보좌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잊을 수 없는” 지도자로 여겼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볼턴 전 보좌관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인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높은 인간적 매력과 인격을 가졌다는 것일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진 감화력의 수준을 잘 가늠하기 어렵다.

 

볼턴 전 보좌관마저 이러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헐뜯는 사람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북적대정책을 펴는 미국, 일본, 친미친일보수세력의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자주, 평화,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우리 국민과 동포들, 전 세계적인 양심의 입지가 넓어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하는 듯한 분위기가 높아지는 게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 ▲ 미국 해군이 촬영한 UFO    

 

 

2. UFO

 

6월 25일, 미 국가정보국장실(DNI)이 미확인비행물체, UFO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미 군용기에서 관측한 144건의 UFO를 분석한 보고서다. 보고서가 공개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외계인이 실제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겠다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공개된 보고서는 외계인 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144건의 UFO 목격 사건 가운데 1건은 수축하는 풍선이었고 나머지 143건은 뭔지 잘 모르겠다고 쓰여있던 것이다. 아니, 이럴 거면 대체 보고서를 왜 공개했단 말인가.

 

그런데 이 보고서는 외계인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보고서는 우선 이 현상이 장비 이상으로 인한 식별 오류가 아니라 모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실제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UFO가 무엇일지 추측해놓았다. ▲새 떼처럼 레이더 목표물을 방해하는 공중 간섭물 ▲대기 현상 ▲미 정부의 개발 프로그램 ▲외국 적대세력의 시스템 ▲기타 등이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외국 적대세력의 시스템이라는 항목이다. 미국은 자신이 관측한 UFO가 러시아와 중국의 극초음속 신기술 실험 같은 최첨단 기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다. 미국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물리 현상을 발견했는데, 그게 러시아와 중국이 개발한 군사 무기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러시아와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미국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는 뜻인가? 현대 과학으로는 규명할 수 없어 외계인의 소행으로 보일 만큼 압도적인 수준이라는 것인가? 만약 미국의 분석대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무기라면 미국과 러시아·중국 사이의 대결은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파악할 수도 없는 무기로 얻어맞을 판인데 어떻게 대결을 할 수 있겠는가.

 

더욱 중요한 건 미국이 공식 보고서에 이런 가능성을 적어 대중에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개한 건 미국이 자신의 패배를 자인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게 아니라면 러시아와 중국의 소행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할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이 보고서를 발표해서 얻을 이익도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군비증강을 하기 위해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일부러 과장한 거 아니냐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부 위협을 허위로 날조했다고 하기엔 파장이 너무 큰 내용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과학기술이 미국을 아슬아슬하게 뒤쫓아오고 있다고 해야 효과가 있지 미국을 아득히 넘어버렸다고 해서야 역효과만 날 뿐이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미 국가정보국장실 요원들은 보고서에 자신으로선 파악할 수 없는 비행체가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무기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적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러시아와 중국이 가진 미지의 기술 수준에 경탄하고 희열을 느꼈을까 아니면 공포심을 느꼈을까? 이 보고를 받은 미 정부 관계자들은 러시아와 중국을 생각하며 우리도 국력을 키워야겠다며 전의를 불태웠을까? 좌절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그리고 미국 국민은 이 보고서를 보고 역시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보다 낫다며 체제우월감을 느끼기라도 했을까? 미국의 추락을 느끼며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심을 느끼진 않았을까?

 

미국은 이 보고서를 대체 왜 공개한 걸까? 미국이 훗날 러시아와 중국에 밀렸을 때 그 충격을 덜기 위해서 미리 미국 국민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였던 건 아닐까. 그것 말고는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한편, 미국이 왜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미국이 전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이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 중에는 자기가 무언가를 구경했다며 북한이 UFO를 개발했을 수도 있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은 UFO가 러시아와 중국의 소행일 수 있다면서도 북한이 했을 가능성은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 북한이 한 일일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북한이 UFO를 만들었다고 발표하면 그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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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잠재취업·초단기근로…일하고 있는데 일이 고프다

[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알바·잠재취업·초단기근로…일하고 있는데 일이 고프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입력 : 2021.07.13 06:00 수정 : 2021.07.13 06:00

 


 ㆍ(1)노동시장 바깥서 맴돌다

수도권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상향 첫날인 12일 서울 종로에서 한 청년이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이용해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상향 첫날인 12일 서울 종로에서 한 청년이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이용해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기 알바 등 취업자인 동시에
입사 시험 준비하는 ‘실업자’들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 해당

취업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자
시간 관련 추가취업가능자: 취업자 중 취업시간이 주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고 추가 취업이 가능한 자
초단시간 취업자: 취업자 중 취업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 희망하고 추가 취업이 가능한 자
일시휴직자: 직업이 있지만 일시적인 병, 휴가·연가, 일기 불순, 노동쟁의, 사업 부진, 조업 중단 등의 사유로 일하지 못하는 자. 유급이나 무급휴직도 해당
실업자: 취업을 희망하고 4주 내 구직활동을 했고, 현재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비경제활동인구: 가사 또는 육아를 전담하는 주부, 학생 및 일을 할 수 없는 연로자 및 심신장애자, 의무군인, 불로소득자, 자발적으로 자선 사업 또는 종교단체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
잠재취업가능자: 4주 내 구직활동을 했고, 일시적인 병 등의 이유로 현재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잠재구직자: 4주 내 구직활동 없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
 

일을 하고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은 취업자일까, 아니면 실업자일까. 대한민국 청년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이 이 같은 ‘경계 청년’으로 노동시장을 떠돌고 있다. 이들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업자’인 동시에 입사를 준비하는 ‘실업자’들이다. 통계청은 완전한 실업도, 그렇다고 취업도 아닌 경계지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실업의 시간과 기간을 기준으로 추가취업자·잠재취업가능자·잠재구직자·구직단념자·쉬었음 등으로 복잡하게 나눈다. 반면 1시간이라도 임금을 받고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한다. 실업률이 낮다고 하지만, 체감실업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박성훈씨(30·가명)도 ‘경계 청년’ 중 한 명이다. 수년 전 대학을 중퇴한 이래 관공서나 대학 행사의 영상편집 일감을 받아 쉬지 않고 일했다. 회사에 정식으로 소속된 적은 없지만 학자금과 생활비는 벌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구직 상태였다. 불안정한 지금의 일자리 대신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으려 취업 준비를 병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그나마 있던 일감마저 끊겼다. ‘프리랜서’라서 실업자로 인정되지 않아 실업급여는 받지 못했다. 최근에 그의 일자리는 패스트푸드점, 주 20시간짜리 아르바이트다. 그는 “아침에 나가서 기름솥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이러다가 평생 알바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구직활동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많은 2030 청년들이 취업과 실업 사이에서 맴돈다. 지난해 청년층 확장경제활동인구(482만6000명) 중에서 경계취업자(14만9000명), 잠재경제활동인구(69만3000명)에다 실업자 37만명을 포함하면 25.1% 수준인 121만2000명이 ‘경계 청년’에 해당한다. 자발적으로 실업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자리 부족 또는 미스매칭 탓이라 엄밀하게는 ‘비자발적’인 선택이다. 코로나19 이후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이 늘면서 청년들은 경력을 쌓을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다. ‘MZ세대’가 직장 소속감이 낮다지만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일자리 질이 얼마나 좋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채용 사이트를 뒤지며 노동시장 내 사다리 오르기를 시도하는 ‘경계 청년’이 늘어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저출생 문제 역시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정책이 나오려면 일단 통계와 진단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19 시대, ‘경계청년’의 위기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충격은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을 경계로 더 많이 몰아넣었다. 비교적 안정적 일자리를 갖고 있던 사람도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차현웅씨(34·가명)도 코로나19 이후 ‘취업자’와 ‘실업자’ 중간지대에서 떠도는 중이다. 차씨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상대로 운영하던 여행사를 접었다. 귀국한 이후 대기업 하청업체의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다 어려워진 회사가 희망퇴직을 받자 그 일도 그만뒀다.

현재는 간간이 벽지 시공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통계청 분류로 보면, 현재 그는 주 36시간 미만으로 일하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시간 관련 추가취업가능자’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3월부터 크게 늘어난 이들 중 한 명인 셈이다. 여행사 사장이나 생산직 노동자일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그는 ‘취업자’로 묶이지만, 현실의 차씨는 계속 일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 취업자’로서 경계청년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노동시장 밖 경계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여행사에서 2년간 일한 이사라씨(28·가명)는 지난 4월 코로나19 타격으로 여행사가 문을 닫으며 실업자가 됐다. 이씨는 “사장님도 버틸 만큼 버텼지만 월세 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19가 이렇게 길게 갈지 몰랐다”고 말했다. 실업급여와 퇴직금으로 생활 중인 이씨는 2개월째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여행 관련 일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터라 미래가 막막하다. 이씨는 ‘잠재구직자’로서 자신의 전공이나 경력과 상관없는 직종으로 이동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사진 크게보기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

‘취업 뽀개기’ 해도 재탈출

코로나 등으로 일자리 잃은 사람들
알바로 버텨가며 다른 일거리 찾는
‘시간 관련 추가취업가능자’ 신분 돼

취업에 성공해도 저임금·고강도에
자발적 퇴사 선택 ‘구직단념자’로

한국의 고질적 노동 문제도 경계청년을 만드는 원인이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은 낮은 임금, 고강도 노동, 불예측적 해고, 책임없는 노사관계 등의 문제로 노동시장 밖으로 나와 자발적으로 경계청년이 되기도 한다.

김효은씨(20·가명)는 특성화고를 다니면서 반도체 공장 생산직 정규직원으로 취업했지만 수개월 만에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 그는 “철제로 된 반도체를 오븐에 넣고 빼내는 작업을 했는데 생산량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압박을 심하게 받았다”며 “선배님들 손에는 화상 자국이 흔했다”고 말했다. 회사 밖은 더 지옥이었다. 코로나19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 그는 일일 임상·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아르바이트를 했다. 자신의 몸을 약 부작용 시험 대상으로 맡긴다는 점에서 위험하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씨는 자발적으로 경계청년이 됐는데,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취업자’로 살게 될지는 몰랐다.

20대 윤정희씨(가명)도 2년간 치위생사로 일한 병원을 최근 그만뒀다. 의료계 집단 괴롭힘, 일명 ‘내리 갈굼’이 문제였다. 그는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로 아직 정신과 치료 중인데 현재는 실업급여를 받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쉰 지 반년이 넘은 윤씨는 ‘쉬었음’ 인구이면서 구직활동에 소극적인 ‘구직단념자’다. 2020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단념자는 전년 대비 7만3000명 증가한 60만5000명인데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였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을 떠나 경계청년이 되는 대표적 이유 중에는 낮은 임금도 있다. 2020년 기준 청년 취업자의 58.7%가 첫 일자리 월 임금이 200만원 미만이었다. 최저임금 월 환산액이 18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청년 절반이 첫 직장에서 매우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첫 직장 근속 연수도 매년 짧아지고 있다. 2020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도 1년5.5개월로 10년 전과 비교해 1.5개월 줄었다.

첫 일자리에 실망한 청년들은 더 나은 일자리로 전환하기 위해 퇴사와 동시에 자격증이나 취업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실업-교육으로 이행하는 사람을 두고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등 학계에선 ‘요요 이행’이라고 부른다. 더 나은 직장에 가기 위한 이 ‘이행 행위’에는 돈이 든다.

최유진씨(26·가명)는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했지만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자 일을 그만두고 언론사 취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포기했다. 그는 “언론사 취업 준비를 하려면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야 하는데 월세 포함 100만원 정도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며 “최근 본가인 대구로 내려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외부에 서 있는 ‘주변인’

취업시장 얼어붙어 발 못 디디고
주변 맴돌다 “경쟁력 없다” 포기도

얼어붙은 취업시장 때문에 단 한 번도 노동시장에 발을 디뎌보지도 못한 채 주변만 맴도는 경계청년들도 적지 않다. 8월 대학 졸업예정인 서지현씨(28·가명)는 올 상반기 50곳에 입사 서류를 냈지만 서류 합격은 손에 꼽는다. 그는 “이제 상반기 채용 공고도 거의 안 올라오고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원서를 안 넣고 있다”며 “매일 일어나서 상식시험 대비 모의고사를 풀고, 채용 사이트를 뒤지고, 자기소개서를 이런저런 방향으로 수정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고 말했다.

이성원씨(25·가명)도 올 초부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용돈벌이를 하던 알바도 모두 정리했다. 그는 “부모님에게 월 50만원의 용돈을 받으면서 생활한다. 가뜩이나 돌아갈 곳 없는 신분이라 불안함이 큰데 부모님에게 손까지 벌리고 있어서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구직활동 없이 취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유경준씨(22·가명)는 조만간 현재 다니는 서울 소재 대학교를 그만둔다. 유씨는 “스펙이 좋은 동년배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주변을 보면 자격증을 따고 바늘구멍을 통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지 않나. 크게 한탕 노리자는 생각에 주식투자자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난 4월부터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최근엔 생계를 이어갈 만큼 돈을 벌고 있지만 어딘가에 소속돼 있지 않기에 ‘취업자’는 아니다. ‘실업자’는 물론, 취업을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잠재구직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은 노동시장 외부에 머물기로 마음먹었지만 언젠가 내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늘 컴퓨터 앞에서 돈이 오가는 것만 보니 머리도 아프고 외로움도 탄다. 외로움은 해소하기보다 그냥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7130600015&code=920100#csidxe61793036296522a20a1f7d054fb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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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집권 초와 달리 노동정책 유턴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7/13 08:52
  • 수정일
    2021/07/13 08: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특집 인터뷰]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①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기존 정규직과 취업준비생의 반발에 부딪쳤다.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발표됐을 때는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정규직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정' 담론이 등장했다. 지난 6월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파업에 들어가고 정규직이 이에 반대하는 가운데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이 비정규직의 파업 중단과 정규직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협의 테이블 참여를 요구하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6월 <경향신문>에 실은 칼럼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고 경제의 도덕화'라며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해서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월 '첫 정책 과외교사'로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만난 뒤 정 교수의 평소 지론인 '직무급'이 주목받는 일도 있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잘못된 정책일까.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은 무엇일까.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인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을 만나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조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평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바람직한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방안' 등 을 주제로 세 편에 걸쳐 게재된다.


 

▲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노회찬재단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 단식, 정권에 메시지 보낸 것"


 

프레시안 :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둘러싸고 여러 일이 있었다. 가깝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상담센터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기 부딪치는 가운데 단식에 들어갔다. 강준만 교수가 칼럼을 통해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정규직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 검색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발표 당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과 정규직을 위주로 이른바 '공정' 담론이 부상했다.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해서 보면 지난 4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승국 교수를 만나며 정 교수가 이야기해온 '직무급'이 주목받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곰곰이 뜯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조돈문 : 강준만 교수 칼럼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주요 근거는 대선 공약이었다. '약속했던 거 지켜라'였다. 핵심적인 공약을 지키지 않으니 비판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거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보다 못하다는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먼저 최근 이슈였던 건보공단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상담센터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에 대한 정규직의 반대를 보며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된 문제가 또 나왔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조돈문 : 사실 정규직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다. 정규직에게 가는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자세히 설명해달라.


 

조돈문 :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직접고용될 때 고용안정성은 강화되지만 임금 등 다른 노동조건은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기존 정규직에 비해 차별받는 '무기계약직'이 된다. 공공부문에서는 '공무직'이라는 표현도 쓴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합해 무기계약직이라는 말을 쓰겠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시행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정원은 정해져 있다. 기존 정규직 인건비와 무기계약직 인건비는 별도 예산에서 지급된다. 무기계약직은 기존 정원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정규직 인건비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는 문제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고용을 잠식한다는 공시생의 비판도 있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새 일자리를 만들거나 돈을 더 들여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게 아니다. 이미 일을 하던 비정규직을 고용형태만 바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 공공기관의 고용 여력을 잠식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런데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정규직이 반대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조돈문 :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반대하는 건 '기분이 나쁘다. 나는 시험을 봐서 들어왔다. 비정규직은 시험을 안 봤는데 비슷한 걸 시켜주냐'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이건 도덕적으로도 잘못됐지만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시험은 인력을 충원하는 최선의 선발 방식이 아니다. 최선의 선발 방식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거다.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시험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거다. 시험은 차선 혹은 차악의 선택지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은 이미 지금 하는 일을 잘해왔다. 업무 수행 능력이 검증되어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용형태가 바뀌더라도 그 일을 맡기기에 충분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정규직은 왜 반대하는 것인가.


 

조돈문 :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규직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문재인 정부보다 더 친 노동적인 정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정부가 들어서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건비를 통합하면 자기네들이 받을 임금 인상분이나 상여금 같은 것을 덜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더 친 노동적인 정부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겪어온 대통령을 보면 어떤 대통령도 그 정도로 친 노동적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려고 할 때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지만 되고 나면 그렇게 했나? 아니다.


 

프레시안 :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이 단식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돈문 : 김 이사장이 단식하고 낸 문건을 보면 '비정규직은 파업과 농성을 거둬 달라. 정규직은 전환 협의 테이블에 들어와 달라'고 되어 있다. 사실 노사가 교섭하면 당사자가 테이블에 들어오면 된다. 건보공단 정규직 전환에서 당사자는 상담센터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정규직이 들어오지 않으면 상담센터 비정규직과도 협의할 수 없다고 한 건 잘못됐다.

 

그래도 김 이사장이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하면, 정규직이 반대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어렵고 정규직 전환 뒤에도 계속 시끄러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김 이사장이 단식을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모양이 안 좋았다.


 

다만, 김 이사장 입장에서는 메시지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만 던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 가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지 않았나. 그 직후 이런 일이 생겼다면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도 직접고용 전환이 됐을 것이다. 김 이사장은 그렇게 감각이 둔하거나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안다. 그때였다면 정규직이 펄펄 뛰어도 직접고용 전환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김 이사장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럼 단식을 하며 낸 메시지의 진짜 청중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그 수신처가 현 정부라고 판독한다. '정규직이 이렇게 반대하고 비정규직이 농성하고 나는 단식까지 하지 않냐. 항복할 테니 정부가 알아서 해라' 이런 거다.


 

프레시안 : 왜 정부에서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하나

. 

조돈문 : 이건 문재인 정부의 변화와 관련돼 있다. 집권 초와 달리 노동 정책이 유턴했다. 임기 말에 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해 정권이 일선 기관에 보내는 메시지는 '직접고용하지 말라'는 거다. '건보공단 이사장이 자기가 뭔데 정권 생각과 달리 직접고용을 하려 하냐'는 데 대해 항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생각한다.

 

김 이사장이라고 안 좋은 모양새로 건보공단을 그만 두고 싶겠나. 인간다운 일을 하려는데 정권 눈치가 보이니 단식으로 메시지를 던졌다. 그런 수순으로 본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진행 중인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정규직 반대가 심하고 정권도 반대하면 '자회사 직고용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식의 절충안으로 물러서는 듯하다.


 

조돈문 :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진정성이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정책의지가 실종되면서 알리바이 찾기에 급급했다. 대표적인 알리바이가 정규직의 반대다. 그런데 이건 너무 유치하다. 뻔히 예측 가능했다.

 

 

넓게 보면, 그보다 세련된 게 중소영세기업 핑계다. 이걸로 최저임금 인상도 유턴하고 노동시간 단축도 유턴했다. 전체적으로 정부 핵심 인사들이 실력과 의지는 없는데, 꼼수에는 능하다.


 

▲ 지난달 15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관 로비에서 김용익 이사장이 단식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고객센터 직원들이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나서자 이 문제를 대화로 풀자며 단식에 나섰다. ⓒ연합뉴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조돈문 :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 전환 대상을 '직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잡고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보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에 비해 더 나은 점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 간접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거다. 정부는 간접고용을 파견·용역과 민간위탁으로 구분했다. 파견·용역을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민간위탁을 마지막 단계로 뒀다.

 

그런데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잘못된 점이 있다. 하나는 자회사 직고용 방식을 정규직으로 규정한 거다.


 

다른 하나는 정규직 전환 과정을 개별 기관에 맡긴 거다. 기관 단위로 노동자 대표, 사용자 대표, 전문가가 모여서 노사전 협의를 거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 개별 기관에 맡겨놓으면 고용 형태나 처우에서 기관별로 편차가 많이 생긴다. 어떤 기관은 흑자고 어떤 기관은 적자다. 어떤 기관은 전환 대상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 인력의 70, 80%인데 어떤 곳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상황과 조건이 다른 기관에 이를 맡겨두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 듯싶다.


 

조돈문 : 1단계인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를 전환할 때는 문제가 덜 생겼다. 2단계인 파견·용역 노동자를 전환할 때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되긴 했는데 '직접고용이냐 자회사냐'를 놓고 기관 상황에 따라 갈등이 있었다. 민간위탁 단계에 와서는 정부가 아예 손을 놨다.


 

바람직한 방안을 말하자면,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두고 초기업 단위 교섭을 하게 해야 했다. 공공부문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중앙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교육기관.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낼 때 다섯 가지 유형별로 초기업 노사정 협의를 하게 하고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모든 기관에 적용하게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업장마다 텐트 치고 농성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엄청난 노사 갈등을 겪는 건 자회사 방식을 열어두고 각 기관에 정규직화 과정을 맡겨놔서다. 

프레시안 : 산별교섭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조돈문 : 맞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각 기관에서 사용자와 정규직, 비정규직이 다 자회사 방식이 잘못됐다는데 동의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거다. 그러면 문제없다. 그런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최악은 정규직 전환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이 조직화돼있지 않은 경우다. 그러면 비정규직은 노사전협의회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사용자와 정규직이 담합해 자회사 방식으로 가는데, 그럴 경우 고용 보장이 조금 더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권 바뀌어서 기관이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면 언제든 원천무효돼버린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회사 방식을 믿을 수가 없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문 대통령 뒤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 때 정부의 노동정책이 크게 후퇴한 경험이 떠오른다.


 

조돈문 :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 전환을 못 받아들이는 거다. 

 

차악은 정규직과 기관이 담합해 반대해도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다. 그러면 비정규직이 전환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으로 조직된 곳들이 있다. 그래서 인천공항처럼 그나마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내고 30% 정도라도 직접고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거다.

 

정권 초만해도 처음에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가 100% 직접고용 되는 줄 알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찾은 인천공항 사장도 다 직접고용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막상 정규직 전환 절차가 시작되고 보니 정부 입장도 좀 달라보였고 정규직도 반대했다. 공항에 노동조합이 여러 개인데 상급단체에 따라, 현장 조직별 상황에 따라 온도가 다 달랐다. 그러니 인천공항 사장도 직접고용 안 해도 되는 줄 알게 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공항, 건보공단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은 당연한 일"


 

프레시안 : 인천공항 보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일은 공항에서의 핵심업무다. 일한 경력이 10년 이상 된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직접고용에 대해 내부 논란은 물론 사회적 논란도 있었다. 
 

 

조돈문 : 시험을 봤냐 안 봤냐를 두고 공정성 타령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시험은 차선 혹은 차악의 간접적 선발수단에 불과한데 말이다. 공항에서는 다들 안전하고 싶어한다. 비행기 타기 전부터 목숨에 위협을 느끼거나 테러를 당하거나 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가면 보안, 마약탐지, 경비견 다루는 노동자는 물론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은 사무실 안에 근무하는 일부 밖에 없다.


 

프레시안 : 사실 그런 사람들이 핵심적인 안전 인력이다.


 

조돈문 : 인천공항의 안전은 그 분들이 책임진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직접고용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통령도 상시 업무는 직접고용한다고 했고 생명·안전 업무도 직접고용한다고 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업무는 상시 업무다. 몇 년 씩 일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인천공항의 업무는 거의 모두 공항 이용객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일이다. 그럼 정부가 말한 조건을 200% 충족하는데 일부만 직접고용 됐다.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직접 가서 선언한 게 안 지켜졌다.

 

프레시안 : 지금 문제가 되는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도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책임감을 갖고 상시적으로 대민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직접고용 되지 못하고 있다.
 

 

조돈문 : 우리가 건보공단에 전화해 '보험료 왜 이렇게 됐냐. 제대로 책정됐냐. 산출근거 뭔지 알려 달라. 잘못된 건 바로 잡아 달라'고 하면 전문성을 갖춘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1차로 전화 받고 필요하면 건보공단으로 토스해 실제 업무가 수행된다. 실제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서로 긴밀하게 통합돼있다. 보통은 상담 직원과 업무 처리 직원이 다 같은 건보공단 직원인 줄 안다. 그런데 아니다.


 

건보공단 상담센터 비정규직이 다루는 정보에는 민원인이 어느 병원에 다녔고, 무슨 검사를 받았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가 다 들어가 있다. 의료정보만큼 민감한 사적인 정보가 없다. 그런데도 상담업무를 민간에 위탁했다.

 

이건 태초에 민간위탁하면 안 됐다. 위탁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 상담업무는 민간위탁하기 전에 정규직이 하던 업무다. 정규직들이 전화 받기 싫어해 순환근무 시켰다. 그래도 하기 싫으니 외주화했다. 그러니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120926532231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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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아웅산 테러 이야기 유감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없는 것도 문제
 
강진욱  | 등록:2021-07-12 14:41:36 | 최종:2021-07-12 14:50: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꼬꼬무’ 아웅산 테러 이야기 유감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
7월 8일 방송된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18회)가 ‘1983 버마 사건’을 다뤘다. 3월 9일 KBS <역사저널 그날>이 ‘전두환 암살 미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를 다룬 지 꼭 넉 달 만이다.(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5108).

‘어!’‘아!’ 같은 출연진의 헤픈 추임새와 이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이 돋보였지만, 내용은 허접했고 구성도 엉성했다. 매우 치밀해야 할 출연진의 멘트(해설.설명) 모두 두루뭉술했다. ‘아웅산 사건 = 북한의 테러’라는 메시지 전달 효과만을 노린 딴따라 쇼의 전형.

전두환과 장세동이 탄 차는 행사장에서 몇 분 거리에 떨어져 있고, 버마주재 한국대사(이계철)이 대통령 비서실장(함병춘)까지 대동한 채, 태극기와 버마기를 양 사이드에 달고 앞뒤로 싸이카가 배치된 벤츠를 타고 행사장에 왔고, - 꼬꼬무는 이처럼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 테러범들이 이 대사를 전두환으로 착각해 기폭 장치를 눌렸다면, 마땅히 왜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 시키는대로 토막 대본을 읽는 출연진도 궁금한 표정을 짓지 않던가.

처음에는 서울에서 왔고 영등포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진술했던 범인 강민철이 갑자기 ‘나 북한 공작원이요’ 했다면 그 진술 번복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자폭용 수류탄을 줬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껴서 그랬다고? 그러면 손목이 날아간 채 몇 날 며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그 수류탄이 자폭용인 줄 몰랐어? 그게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깨달을 일이야? 꼬꼬무는 이런 엉성한 논리로 역사를 농단했다.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에서는 딴청을 피웠다. 버마 수사당국이 남북한을 특정하지 못해 “코리언이 범인이다”라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1983.10.17), 그 다음날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성용욱. 훗날 감사원 사무총장, 국세청장)과 과장(한철흠)이 급히 버마로 날아가 강민철에게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냐!” 하며 설득한 뒤 강민철이 말을 바꿨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철흠이 누군지는 아나? 이 자는 4년 뒤 전두환네와 미국이 또 한 번 자작테러를 조작한 뒤 바레인 병원에 - 실신한 척 하고 - 누워있는 김현희를 데리려 간 인물이다. 전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라종일 씨가 2013년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서 “강민철은 김현희와 같은 부서에 있었다”고 쓴 것과 연결되는 지점. 이렇게 전후좌우로 통시적.공시적으로 살펴야 겨우 그 진상이 보일까 말까 한 ‘1983 버마 사건’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수준으로 하면 되겠어?

‘아웅산 테러 = 북한의 테러’를 강조하려 기를 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출연자들이 ‘DIPLOMATIC POUCH’라고 새겨진 검은 가방에서 클레이모아(폭탄)와 묵직한 쇠덩어리 모양의 격발장치를 꺼내는 느릿한 영상. 외교행랑 이야기는 세세연연 ‘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계속 추가되는 가공의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

‘1983 버마 사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출간된 장세동의 책 <일해재단>(1995)에도 외교행랑 이야기가 없다. (장 씨의 이 책은 이후 나오는 ‘1983 버마 사건 관련’ 책자의 기준 역할을 하고 있다.) “[범인들이 모처에서] 2주간 머물며 ... 범행에 필요한 폭약과 폭파 장치 등 모든 장비를 이곳에서 준비하였다.”(64쪽) 그의 책에 실린 버마 법원 판결문에도 “[범인들이 랭군 모처에] 도착한 지 2일 후 그들은 그 방에서 폭발물을 받았으며...”로 돼 있다(316쪽). (*외교행랑으로 받았다고 하면 버마 정부가 책임을 질 부분이 생기니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들 하지 마시라. 외교행랑으로 받건 현지에서 만들었건 어떻게 설명해도 버마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버마 법원 판결문에 외교 행랑 이야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3년 나온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범인들이] 거처를 잡은 지 이틀 후 ... 폭발물이 외교 파우치 편으로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갔다. 그런데 출처가 없었다. 전에 거론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려면 출처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출처불명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고, 지명도와 신뢰도가 높다는 ‘창비’에서 낸 책 답지 않게 구성이 매우 엉성하다.)

이북(북한)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떠벌리다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몄지만, 외교행랑으로 클레이모어 폭탄을 나른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북한 공작원들’(?)이 1주일 걸려 북한 화물선을 타고 와 버마에 온 뒤 다시 2주일 동안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는 각본만큼이나 웃기는 얘기다.

버마는 5개국과 접경하고 북동부 산악은 여러 무장 소수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태국에서 밀입국이 가능한 나라다. 전대미문의 테러를 저지를 특수공작원이 화물선에 실려 1주일, 다시 안가에 틀어박혀 2주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테러의 배후와 범인들의 잠입 경로를 북한 화물선(동건애국호)의 버마 입항 일정과 꿰맞추려다 나온 웃기는 각본이다.

2.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연예든 다큐든 강연이든 책이든 반(대)론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역사 인식은 그 시대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역사적 사실’은 항상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꼬꼬무가 감히 ‘1983 버마 사건’을 제멋대로 다루는 만용은 전두환 정권 및 그 시절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무식하니 용감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아웅산 테러를 포함해 우리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자작테러가 무려 4건이나 자행됐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때문이다.

다른 셋은 지금도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KAL 858 사건(1987.11.29, 일명 ‘김현희 사건’), 대구 미 문화원 정문 앞 시한폭탄 테러(1983.9.22),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현관 문 밖 쓰레기통 속 크레모아 테러(1986.9.14) 등이다. 전두환네는 이들 네 건의 자작테러를 벌인 뒤 ‘북괴의 소행’이라고 몰았지만 모두 자작극임이 드러나고 있다.
(참조 : 대구 미 문화원 사건에 대해서는
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901 /
김포공항 사건에 대해서는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581)

아웅산 테러의 진상을 재대로 인식하려면 위 네 건의 테러 각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왜 전두환 정권은 이런 끔찍한 자작테러를 네 건이나 자행했을까에 대한 사유가 따라야 한다. 이 사유는 우리 한반도 분단체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제로 한다.

이땅의 분단체제는 남녘의 대북 적대감을 기본 인자로 한다는 사실, 이 적대의 인자가 불식될 즈음이면 또 수상한 사건이 일어나 대북 적대감을 다시 부풀린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런 깊은 사유는커녕 개별 사건에 대해서조차 천박한 인식에 머문 채 역사를 논하는 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다.

꼬꼬무는 올 2월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최병효, 박영사)가 나온 데 고무됐던 것일까. 이 책을 보여주며 저자의 멘트를 몇 개 땄다. 그런데 그 멘트가 영 어색하다. “비동맹 외교는 허수아비와의 싸움이었다.” “비동맹 외교를 한다고 하면 정부가 예산을 잘 배정해 줬다.” 일정부분 맞는 지적이지만 ‘1983 버마 사건’의 진상을 찾는 입장에서 보면 샛길로 빠지는 얘기다.

최 전 대사는 사건 당시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이었고 36년의 외교관 이력을 갖고 있다. 아마도 ‘1983 버마 사건’에 대해서는 가장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다. 그런 이가 은퇴 직후 책을 내고 ‘아웅산 테러 =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니 모두들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기록에 가깝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을 뿐이다. 개인의 경험은 역사적 사유를 거쳐야 비로소 사회적 의의를 지닌다. 사유의 깊이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달리 부여된다. 그는 매우 유능한 외교관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현대사 및 국제관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에 심하게 경도돼 있다. 이런 협소한 역사 인식에 갇힌 상태로 남북 분단의 모순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폭발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최 전 대사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지적한 졸고.「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 한-미의 버마 공작의 시원」<진실의 길> 2021.7.9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5155&table=byple_news
그가 말하는 비동맹 외교론이 얼마나 협소하고 몰역사적인지를 지적하고 싶었다.)

TV가 우리 역사의 음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일 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이 그랬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kbs <역사스페셜>. <이제는 ...>은 문세광 사건(1974.8.15, 육영수 살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쳤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계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말짱 거짓말이며 중앙정보부가 문세광을 오래 전부터 주시해 왔다는 사실, 문세광을 사건 현장인 국립국장에 들인 것은 바로 청와대 경호실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mbc <PD수첩>은 KAL 858 사건에 대한 안기부 해설이 엉터리였음을 입증했다. 그 주인공 행세를 하는 김현희의 행로를 추적해 그의 증언과 안기부 해설이 모두 거짓임을 밝혀냈다.

( 2005년 3월 이 프로를 제작하고 진행한 김환균 PD는 현재 대전MBC 사장이다. 이 프로는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한 작품이다. 시사다큐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fsVfg2cvNvo)

이들 프로를 통해 분단체제의 늪에 빠져 있던 역사의 진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이들 프로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1983 버마 사건’의 진상도 어느 정도는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꼴통 정권’ 10년 간 언론 생태계가 엉망진창이 됐고, 이 지저분한 생태계를 살아가는 언론은 역사의 진실을 다시 구정물통에 빠뜨리려 한다. 제대로 된 다큐는 없고 빈머리 딴따라들의 잡담이 판을 치고 기레기들의 잡문만 넘쳐난다.

꼬꼬무도 지난 4월 ‘문세광 사건’을 다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LMrNm_r78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16년 전 밝힌 사건의 진상이나 박정희네 청와대 경호실 및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개입돼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은 모두 빼거나 건성건성 다뤘다.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간간이 ‘음모론’ 운운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논의를 ‘음모론’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현실을 단지 언론(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아웅산 테러나 KAL 858 사건 등은 이 나라 분단체제의 말뚝이고 쐐기와 같은 것이라 자칫 이 말뚝과 쐐기가 뽑힐까 두려워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분단체제의 말뚝과 쐐기를 박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키워온 분단적폐 세력이 그들이다. 같잖은 책을 내고 이 방송 저 방송에 같잖은 프로를 만들게 하는 것은 이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3년 아웅산 테러 30주년에 맞춰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등 여러 책들이 동시다발로 출간됐고, 장세동의 <일해재단>도 이때 <역사의 빛과 그림자>로 재출간됐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역사학자니 남북관계 전문가니 하는 이들 누구도 우리 분단체제의 근간이 무엇인지, 이 반인륜적 체제를 누가 어떻게 70년 동안 유지하고 보수하며 지탱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읽어내는 이가 없다. 전두환 정권의 수상한 언동의 내막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전두환을 ‘대인배’라 칭하기까지 하니 ...

( 오마이뉴스 2016.2.27)

꼬꼬무 진행자도 아웅산 테러 직후 전두환 정권이 보복전쟁을(?) 하려다 말았다며, ‘어느 역사학자’를 들먹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울분을 참고(?) ‘제2 한국전쟁’을 촉발하지 않은 데 대해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말한 이가 있다고. 그런데 그 역사학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코멘트를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사학자’는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씨다. 2013년 KBS 다큐멘터리 ‘아웅산 테러 그리고 2013’에서 “저는 민주진영이기 때문에 전두환을 그렇게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전두환이 집권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아웅산 사태를 평화적인 무드로 갖고 갔고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은 것”이라며 “지나 놓고 보면 그래도 전두환 정권에 점수를 줘야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에 나름 기여하고 있고 사석에서는 자신을 ‘친북.종복 역사학자’라고 말하는 그가 ‘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을까? 그래서 코멘트를 거절한 것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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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⑥] 31년 철도 노동자 김재하 “열차 운전실에서 풍경 보던 행운도 끝이네요”

현장노동자로 돌아가려고 전노협 건설 뒤 철도청 입사··· 민주노조 위해 뛴 31년

기관사 승무중인 김재하ⓒ김재하 제공

“오늘 새벽 4시 출근, 경부선 마지막 승무를 마쳤다.
기관차 운전실의 높이가 2m30cm 정도라 저 멀리까지 시야가 확 트인다.
객실에서 보는 차창 밖 풍경과는 다르다.
부산역을 발차한 열차는 경부선 물금에서 밀양까지 낙동강과 함께 간다.
저 멀리 산자락에 유달리 연두빛은 대나무 숲이며 희끗희끗한 뭉치는 밤꽃들이다.
우리 강, 우리 산. 참 좋다.
매화에서 시작하여 저 멀리 산자락 마른 가지 사이 진분홍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벚꽃, 라일락, 배나무, 사과나무, 오동나무, 아카시아, 이팝나무.
오늘은 저 집 뜨락의 석류나무 담벼락 능소화가 제법이다.
봄 내내 꽃 잔치이다.
꽃잔치는 이파리가 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진녹색 산과 들에서 계속된다.
희한한 게 피는 시기마다 꽃 색이 비슷비슷하게 닮아있다.
분홍, 노랑, 흰색, 보라, 여름이 다가올수록 붉은색이 많다.
눈 호강 31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철도 노동자 김재하는 정년퇴직을 코 앞에 둔 지난 6월 18일 경부선 마지막 승무를 마치고 SNS에 글을 올렸다. 김재하는 1990년 철도청에 입사해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 배치된 뒤 철도 노동자로 31년 동안 일했다. 기관사로 일해온 시간을 지나 정년퇴직한 철도 노동자 김재하를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교남동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6월 30일 정년퇴직 후 한국진보연대 공동 상임대표로 활동하기 위해 곧바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철도 노동자 생활을 마치고
삶의 변곡점에 서다

“1990년 7월에 철도청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정년퇴직 후에도 활동을 계속하니깐, 특별히 그만둔다는 느낌이 들진 않아요. 그래도 마무리할 때가 되니깐 30년 넘게 잘 살았는지, 활동을 잘했는지 조금은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60년생 79학번으로 올해 환갑이에요.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이 삶의 변곡점으로 느껴집니다. 삶의 절반을, 제 청춘의 대부분을 보낸 철도를 떠나는 거잖아요.”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철도노동자 김재하. 2021.07.03ⓒ김철수 기자

철도 노동자로, 노동운동가로 살아 왔던 시간이 일단락되고, 활동은 계속되지만 활동하는 장은 달라지는 변화를 그는 ‘삶의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김재하는 지난 1월 정년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 철도 현장에 복귀했다. 철도 일선을 떠나 철도노조 부산본부장으로 2년을 일하고,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8년 동안 전임으로 일한 뒤 10년 만의 복귀였다. 지난해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민주노총이 위기를 딛고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현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6개월은 짧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10년 동안 바뀐 시스템을 공부하고, 견습 승무를 거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떨리는 마음으로 열차 운전실에 올랐다.

“마지막 운행을 나서며
이제 운전실에서 이런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은 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운전실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 좋아요.
기관사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혜이고, 행운이에요.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간이 지나면 ‘승무하고 싶어도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네요.”

소중했던 6개월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그에게 남았던 가장 큰 아쉬움은 철도 기관사만이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이젠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행운은 그가 “눈 호강 31년”이라고 표현했던 벌판을 앞서 달리며 그 누구보다 계절을 먼저 만나는, 기관사들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기차 자료사진ⓒ양지웅 기자

“마지막 운행을 나서며 이제 운전실에서 이런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은 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운전실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 좋아요. 기관사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혜이고, 행운이에요. 운전실이 꽤 높아서 쫙 뻗어 있는 선로가 멀리까지 보여요, 700미터마다 신호기가 있어 그걸 살피며 운행을 하는데 그렇게 달리다 보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계절을 느끼고, 만나요. 겨울이 오는 것도, 꽃피는 봄이 오는 것도 가장 먼저 느끼거든요. 그리고,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절경도 많이 봤어요. 예를 들면 해 뜨는 풍경이 대표적이에요.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 사이에 있는 동해남부선 구간에 웨딩 촬영도 많이 하는 명소가 있어요. 경주에서 출발해 동해로 가는 새벽 열차가 해 뜰 때쯤 그 구간을 통과하는데 말 그대로 절경이에요. 일부러 보고 싶어도 못 보는 풍경이에요. 기관사를 그만둔다니 ‘이제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겠구나, 계절을 먼저 만나는 행운도 이제 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노협이 만들어지자마자
그해 몇 개월 시험을 준비해서
철도청에 들어갔어요.
현장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거든요.”

남들보다 먼저 계절을 만나는 행운의 직업인 기관사로 그가 일하게 된 건 노동 현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부산대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김재하는 그의 선배들과 동기들이 그러했듯 공장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6년 부산 사상공단에 있던 알루미늄 주물 공장인 남일금속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공장을 떠나 부양노련(부산양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교육선전 국장을 맡아 1990년 1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 만들어질 때까지 활동했다. 하지만, 노동단체 간부 생활이 길어지면서 현장노동자로 일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전노협이 만들어지자마자 그해 몇 개월 시험을 준비해서 철도청에 들어갔어요. 간부 생활을 오래 하니깐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현장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거든요.”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철도노동자 김재하. 2021.07.03ⓒ김철수 기자

1990년 7월 철도청에 입사한 그는 4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 배치돼 기관조사(부기관사)로 일을 시작했다. 철도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현장에서 부딪치며 기관사 업무를 하나둘 몸으로 익혔다.

“기관조사는 기관사를 보좌하면서 기관사 업무를 익혀요. 기관사들은 선로를 외워야 하거든요. 객실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선로는 곡선도 많고, 오르막 내리막도 있어요. 곡선 코스마다 제한속도가 있고, 노선을 운행하려면 선로 상황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해요. 거기에 기관차가 화물열차일 때와 여객열차일 때 운전법도 서로 달라요. 그런 과정을 기관조사를 하며 배우는 거예요. 또한, 안전 때문에 꼭 2명이 타야 합니다.”

햇병아리 기관조사 시절
열차 탈선으로 울산 태화강 추락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에요”

1991년 8월 입사 1년이 갓 넘은 아직은 햇병아리였던 김재하에게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열차운행 중에 큰 사고가 난 것이다. 기관조사로 일하던 당시 동해남부선 열차운행을 하다가 울산 명촌철교에서 탈선해 태화강에 떨어진 것이다. 당시 사고는 신문에 실릴 정도로 큰 사고였다.

1991년 8월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당시 사고 기사. 기사 본문엔 김재화라고 이름이 틀리게 나와 있다. 당시 사고로 김재하는 한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왼쪽은 당시 신문기사. 오른쪽은 울산시 블로그에 있는 명촌철교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울산시청 블로그

“기관조사로 일할 때예요. 과적 트레일러가 지나가면서 철교 아랫부분에 충돌했어요.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고, 신호시스템도 전자연동도 아니어서 기관사는 사고가 난 줄 알 수 없었어요. 트레일러 기사는 연락하려고 자리를 떴고, 우리는 반대 방향에서 운행하고 있었는데 선로가 휜 걸 보고 뒤늦게 제동을 했지만, 강물에 떨어졌어요. 그나마 화물열차여서 승객이 다치진 않았고, 속도도 줄어들었고, 열차가 연결된 상태에서 기관실이 있던 부분만 반쯤 물에 빠져 피해가 적었어요. 그러나 기관사와 제가 태화강에 떨어져서 크게 다치는 바람에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다 복귀했어요.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에요.”

김재하가 철도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철도 노동자들은 철도청 소속의 공무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인기 있는 직종은 아니었다. 당시 공무원은 박봉에 시달렸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월급은 적었고, 노동조건도 열악했기 때문에 대졸자들은 지원을 꺼렸다. 그가 입사할 당시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일하던 700여 명 가운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열차운행 시간에 따라 근무가 이뤄지는 교번근무여서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했어요. 거기에 노동시간도 월 240시간으로 길었어요. 요즘은 월 165시간이거든요. 지금보다 한 달에 75시간이나 더 일했어요. 더구나 당시 기관차는 열기와 냉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구조였고, 냉난방도 안 됐어요. 엄청난 소음이 나는데 방음이 안 됐어요. 그래서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는 기관사들이 많아요. 지금 그렇게 일하라고 하면 아마도 폭동이 일어날 거에요.”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렸지만, 철도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무기인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 당시 철도청은 공무원 조직이었지만 노동조합이 존재했다. 공무원 조직 가운데선 철도청과 우편을 담당하는 체신부만 노조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철도노조는 사용자인 철도청의 입장만 대변하는 ‘어용노조’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했던
어용 철도노조의 굴욕적인 역사

철도노조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철도노조는 해방 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태동시킨 조직이었다. 철도 노동자들은 해방 직후인 1946년 9월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이 조직한 총파업을 주도했던 주력부대였다. 이에 미군정과 우익 청년단은 전평을 공격했고, 철도노조도 당시 서북청년단 등 우익 출신 간부들에 의해 장악당했다. 철도노조는 1947년 우익 청년단들이 주도해 만든 대한독립촉성노동총동맹(약칭 대한노총) 산하 조직으로 바뀌었고, 철도노조 강령엔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한다는 구절이 담기게 됐다. 이후 이 구절은 57년이 지난 2004년에서야 개정을 통해 철도노조 강령에서 빠졌다.

1945년 11월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창립대회 장면. 단상에 미국, 영국, 소련 등의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걸려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라는 구호도 보인다. 철도노조는 당시 전평의 주축 세력 가운데 한 곳이었다.ⓒ기타

철도노조가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하며 ‘어용노조’를 50년 넘게 이어갈 수 있었던 건 ‘3중 간선제’ 때문이었다. ‘3중 간선제’는 세 번 간접선거를 거쳐서 철도노조 위원장을 선출하는 제도다. 각 지역 지부 조합원들이 대의원을 뽑고, 대의원들이 각 지역본부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들이 다시 노동조합 위원장을 선출할 대의원을 뽑아서, 그 대의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제도다. 당시 조합원은 3만 명이 넘었지만, 노동조합 위원장을 선출할 대의원은 93명에 불과했다.

“간접선거로 뽑히다 보니 조합원들은 단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노조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이런 현실을 바꾸려고 노조에 민주적으로 활동하라고 요구하면 오히려 노조에서 해당 조합원을 징계했어요. 그래도 끝까지 저항하면 아예 조합원을 제명했습니다. 저도 당시에 규율을 위반했다고 징계당한 적이 있어요. 이런 게 다 어용노조의 전형적인 수법이에요. 징계를 당하면 출마를 못 하거든요. 민주파를 거세하기 위한 용도로 징계를 활용한 거지요.”

1988년과 1994년
기관사들의 파업으로 뿌린
민주노조의 씨앗

이런 철저한 견제와 방해 속에서도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철도 노동자들은 꿈틀거렸다. 노조 지도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관사들이 독자적으로 나서 파업을 조직하는 등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렇게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씨앗은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제가 입사하기 전인 1988년에 기관사들이 파업에 돌입했어요. 일종의 불법 파업이었습니다. 노조에서 공식적으로 쟁의권 얻어서 한 파업이 아니었거든요. 당시 기관사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교대 없이 운전해야 할 정도로 열악했던 근무 환경을 바꾸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초과근무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며 싸웠어요. 그런데 깨졌습니다.”

당시 1988년 올림픽을 50여 일 앞두고 벌어진 파업을 전두환 정권은 강경하게 진압했다. 곧바로 전국의 농성장에 전투경찰을 투입해 1,653명이 연행됐고, 파업지도부 11명이 구속됐으며, 3명이 파면됐다. 무참하게 깨졌지만, 이때의 투쟁은 1989년 5월 훗날 민주노조의 토대가 된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 탄생으로 이어졌다. 전기협은 1994년 서울지하철노조, 부산교통공단노조와 함께 기차, 지하철 총파업에 나섰다.

1994년 6월 24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철도 파업 기사ⓒ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4년엔 전기협이 파업에 나섰어요. 철도와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이 함께 변형근로제 철폐를 요구하며 싸웠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탄력근로제 철폐를 요구한 거예요. 서울 지하철하고, 부산지하철은 합법노조였고, 철도는 기관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었지만, 노조 조직은 아니었어요, 이 세 주체가 모여 파업을 했습니다. 제가 있던 부산에선 부산지하철과 같이 파업했는데 저도 당시 간부로 일하고 있었어요. 당시에 저와 함께 있던 부산기관차 소속 동료들이 10명이나 파면됐어요.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파면 됐을 겁니다. 동료들이 잘려나가는 걸 보면서 모두들 철도노조를 민주화하지 않고는 우리들의 초보적 권리도 얻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철도노민추)를 만들고, 노조 민주화에 나섰어요, 저도 그때 징계를 당했습니다. 파면 동지들은 이후 10년이 지나 복직을 했고요.”

철도노조 민주화에 나선 노동자들
어용노조를 지탱해온 토대인
‘3중간선제’를 ‘직선제’로

1995년 철도 노민추가 만들어진 뒤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은 본격화됐다. 1996년 철도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평소 1%인 조합비를 상여금 지급한 달에는 2% 징수하도록 인상한 것에 반발해 투쟁을 조직하는 등 여러 활동에 나섰다. 아울러 어용노조를 지탱해온 토대인 ‘3중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투쟁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1999년과 2000년 철도노조 직선제 쟁취를 요구하며 격렬하게 싸웠어요. ‘3중간선제’로는 민주노조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당시 투쟁 과정에서 저도 1년 넘게 부산에서 아무 연고가 없는 동해 지역으로 일종의 유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동해에 있던 2000년 1월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에서 ‘3중 간선제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철도노조 직선제의 길이 열리게 됐어요.”

2001년 열린 철도노조 첫 직선 선거에서 민주후보인 김재길 위원장이 당선되자 환호하는 철도 노동자들. 사진은 철도노조 창립 기념영상에서 캡쳐한 장면이다.ⓒ유튜브 캡쳐

2000년 1월 14일 나온 대법원의 ‘3중 간선제 무효’ 판결은 1996년 철도 노민추가 조합비 부당 인상에 맞서 싸웠던 투쟁과 연관이 있다. 당시 조합비 인상 반대 투쟁 과정에서 철도 노민추 소속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96년 5월 전국철도노조가 ‘96년도 전국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보선하고, 조합비 납입방법 등을 개정한 것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간선제에 의한 전국대의원 선출 방식 등이 ‘대의원을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해 선출’하도록 규정한 노동조합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법한 방식으로 선출된 대의원 조직의 결의는 무효라며 ‘대의원회결의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1심과 2심에선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대의원을 간접 선출토록 한 규약이나 선거관리규정 등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7조 제2항(대의원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되어야 한다)에 위배된다”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직선제 쟁취로
드디어 올린 민주노조의 깃발

“대법원 판결 이후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만들고 본격적인 직선제 투쟁에 나섰어요.”

공투본은 규약개정 없이 대의원선거를 강행하려는 당시 지도부에 맞서 용산역에 있는 철도노조 사무실을 점거해 66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공투본 지도부를 제명하는 등 직선제를 막으려했지만, 결국 2001년 직선제가 도입됐다. 2001년 2월 열린 첫 직선제 선거를 앞두고 철도노조 민주파에선 ‘생존권 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노동자 투쟁본부’를 만들었고, 투쟁본부 김재길 위원장이 출마해 당선되면서 철도노조는 54년 만에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민주노조가 생긴 뒤 김재하는 2002년 노조 정책기획실장을 했고, 2003년엔 철도, 발전, 가스가 공동으로 민영화 저지 파업을 할 때, 공동투쟁본부 상황실장을 하는 등 열심히 투쟁에 나섰다. 그는 함께했던 민주노조 지도부들의 고생이 컸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해방시기 전평 이후
처음으로 나섰던 2003년 전면파업…
“힘든 투쟁이었지만,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어요.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철도 관련 산업재해로 많은 노동자가 죽었어요. 노동강도는 높았고, 복지나 처우는 좋지 못했어요.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하는데 직선으로 민주파가 지도부를 차지했지만, 아직 기층은 역량이 부족했어요. 당시 노조 숙소에서 생활했는데, 일 년 동안 숙소에 간 날이 며칠 안 됐어요. 기초부터 다져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각종 현안이 쌓인 상황이었는데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국토교통부가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1기 지도부로 함께 일한 동지들이 거의 집에도 못 가고 싸웠어요. 그러다 민영화 저지를 두고 발전, 가스와 함께 2003년 공동파업에 나섰어요. 철도 노동자들로 보면 해방 직후 전평 시절 파업을 한 뒤 노조 차원의 전면파업은 처음이었어요. 힘든 투쟁이었지만,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어요.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당시 철도, 발전, 가스가 같이 했는데 철도와 가스는 당시 한국노총 소속이었고, 발전은 민주노총 소속이었어요. 그런데도 의기투합하고, 동지적 의리를 잘 지키며 함께 싸웠어요. 당시 김대중 정권 시절인데 민영화 반대 투쟁에 국민적 지지도 나름 있었어요.”

“철도공사 등에선
조합원을 분열시키려고 했지만,
서로를 믿으며 집단성과 투쟁성으로
맞설 수 있었어요.”

전평 이후 ‘멸공통일의 전위대임을 자임’하며 빼앗겼던 철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고 철도를 멈추며 감격스러운 투쟁을 벌였지만, 김재하는 이 투쟁으로 인해 구속·해직되고 말았다. 2008년 복직되기 전까지 그는 해고자 신분으로 궤도연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2004년 파업을 이끌었고, 전국철도노조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철도노조는 다른 노조와 비교해 민주노조가 늦게 만들어졌다. 다른 노조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철도노조는 2000년 들어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 민주노조가 늦게 만들어졌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노동운동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으며 여러 차례 파업 투쟁에도 나섰다. 이런 투쟁이 가능했던 건 해고를 각오하고 나섰던 철도 노동자들의 의지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집단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민영화저지 공동파업 당시 철도노조원들을 강제로 집안하는 경찰들. 사진은 철도노조 창립 기념 영상 중에서 캡쳐한 장면ⓒ유뷰트 캡쳐

“철도는 2000년 이후 파업을 많이 했어요, 때문에 많은 해고자가 나왔어요. 임금 인상 이외에 민영화 등 정부 정책에 맞선 파업은 다 불법이기 때문이에요. 지부별로 파업하면 누가 해직될지 거의 알아요. 그런데도 각오를 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을 땐 조합원 절반은 필수유지 인력으로 절반은 파업에 나섰어요. 파업에 나서면서 1천만 원 정도 손해가 생겼는데, 그 손해도 전체가 균등 분배해 나눴어요. 철도공사 등에선 조합원을 분열시키려고 했지만, 서로를 믿으며 집단성과 투쟁성으로 맞설 수 있었어요.”

"제가 후배들을 만나면 늘 이런 이야기를 해요.
노동자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
그래야 내 권리도, 자신도 보호받는다고 말해요.
이 시대에 철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아울러 민주노조 건설로 인해 더욱 커진 철도 노동자의 단결된 힘은 그들의 일터를 바꿨고, 국민을 위한 공공재인 철도가 민영화되는 것을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철도노조 민주화는 직장 내에서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어요. 철도 조직은 그동안 매우 권위적이었거든요. 규율도 세고요. 폭언, 폭행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매우 전근대적인 직장문화였어요, 그런 부분들이 민주노조 건설 이후 개선됐습니다. 또 철도 사유화에 제동을 건 것도 민주노조 건설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에요. 신자유주의 민영화, 사유화 물결을 가스 발전과의 공동파업 등으로 제동을 걸었거든요.”

민영화 물결에 제동을 걸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철도 노동자들에게 더 큰 사명감으로 요구한다. 김재하는 철도 내부 구성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꼭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을 시키겠다면서 SRT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SRT는 정식 직원이 기관사밖에 없어요. 철도 차량 정비는 물론 선로도 철도공사에서 유지보수를 합니다. 우리는 공사에서 월급을 받지만, 넓게 보면 국가 세금으로 받는 거라고 봐요. 돈벌이해서 월급 받는 게 아니거든요. 이윤을 이야기하지만, 철도는 이윤이 안 남아도 공익을 위해서 해야 하는 공적 기능이에요. 내부의 부정부패를 없애는 등 노력이 필요한 건 맞지만, 이윤과 경쟁의 논리로 운영하겠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다른 공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철도는 특히 그러합니다. 물론 내부 구성원들이 고칠 부분도 많아요, 공적 기능에 맞는 사명감도 필요하고요. 제가 후배들을 만나면 늘 이런 이야기를 해요. 노동자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 그럼으로써 내 권리도, 자신도 보호받는다고 말해요. 이 시대에 철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2015년 9월 16일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부산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노사정 야합 주범 노동부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 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을 맡았던 김재하는 삭발을 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철도를 떠나지만,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도에 대한 애정이 여전한 철도 노동자였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믿고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노조 간부 생활을 오래 했어요. 1990년에 입사해 지부 간부로 시작해 지도부로 오래 일해왔습니다. 그동안 지도부를 믿고 따라준 동료 간부들과 조합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활동하다 보면 지도부는 맡은 역할에 의해 지침 내리기도 하는데, 현장의 간부나 조합원들이 안 따라주면 소용이 없어요. 자신들 입장에선 어떤 건 감내하기 힘든 투쟁이었을 것이고, 또 지도부에게 말은 안 했지만, 그릇된 판단도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지도부를 믿고 단결하며 지침에 따라 투쟁해준 조합원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철도노조 간부로 일했던 게 복이에요.”

“지금 청년은 고통받는 세대예요.
사회 구조에 자유로울 수 없어요.
사회 시스템, 제도를 변화시켜야
출로가 열려요. 진보진영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사회개조에 같이 나서야 합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다. 이번에 많은 동료가 함께 정년퇴직했다. 철도 노동자로 첫발을 내딛던 30년 떠올려 보면 김재하는 자식 세대인 지금의 2030세대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그는 오늘의 청년들이 고통받는 세대라며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8일 서울 중구청이 노점상을 대상으로 행정대집행하려 하자 이를 막기위해 현장에 함께한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페이스북 캡쳐

“청년들을 두고 개인주의가 심화됐다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나이에 의한 차이, 시대의 흐름에 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청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아요. 아마도 우리 아버지도 날 그렇게 봤을지 모르거든요. 지금 청년은 고통받는 세대예요. 사회 구조에 자유로울 수 없어요. 대부분 취직, 주거, 앞으로의 전망 등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절망적인 표현까지 나올 정도예요. 모든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실업문제만해도 청년실업 해소는 노년 정년 연장과 충돌해요. 절대 개인이 풀 문제가 아니에요. 노동력의 재배치 등 모두가 연동됩니다. 사회 시스템, 제도를 변화시켜야 출로가 열려요. 진보진영도 이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사회개조에 같이 나서야 합니다.”

“불평등을 넘자면 우선 불평등에
저항하는 투쟁부터 시작해야 한다.”

31년 철도 노동자 생활을 마감한 김재하는 이제 ‘삶의 변곡점’에 섰다. 그동안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 각종 사회운동의 선두에서 일해온 그에게 이후의 삶도 이전의 여정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한국진보연대 공동 상임대표와 전국민중행동 조직강화특위장을 맡은 그는 얼마 전 ‘민플러스’에 기고한 글에서 “재벌과 수구보수세력은 말로는 불평등이 문제라고 떠들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 과실을 따 먹는 세력이다. 집권여당은 불평등을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의심스런 집단이다. 누굴 쳐다보고 어디에 기댈 것인가. 바로 노동자 민중, 우리 자신들”이라며 “불평등을 넘자면 우선 불평등에 저항하는 투쟁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내년 봄 대선판과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예상된다. 권력이 어디로 가든 누가 집권한들 불평등의 사회는 그대로라는 것을 우리들은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열전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도 그가 외친 건 투쟁이었다.

“한반도의 자주와 평등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대중조직,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투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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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日 근대산업시설 '강제노역' 숨겨 "강한 유감"

‘수많은 한국인 등 강제노역 이해할 수 있는 조치’ 주문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7.12 16:18
  •  
  •  댓글 0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 한국인 강제노역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강한 유감'을 표했다. [사진출처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 한국인 강제노역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강한 유감'을 표했다. [사진출처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위원회(UNESCO)는 2015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하시마) 탄광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일제시기 한국인 강제노역과 징용을 알리지 않고 있는데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했다.

당초 중국 푸저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돼 12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근대산업시설 결정문안을 통해 “당사국(일본)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은 2015년 7월 강제노역 시설 7개소를 포함한 ‘메이지(明治) 근대산업시설 23개소’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 및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2년 마다 제출하는 이행경과보고서를 두 차례(2017, 2019) 제출하면서도 “시설의 전체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 전략 마련을 권고”한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제 42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2018.6)에 이어 이번 4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도 ‘결정문’에 이같은 사항을 지적받고 이행을 촉구받은 것.

또한 일본은 지난해 6월 도쿄 소재 산업유산 정보센터(Industrial Heritage Information Centre)를 개관해 일반에 공개했지만 역시 전시 내용에는 강제 노역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의 증언 및 자료들만 전시되어 있고 강제 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도 전무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의 지정뿐만 아니라 후속 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의 지정뿐만 아니라 후속 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에 따라 유네스코(UNESCO)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 3명이 도쿄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시찰해(6.7~9)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번 제44차 결정문안에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반영됐다.

공동조사단 보고서는 △1940년대 한국인 등 강제 노역 사실 이해 조치 불충분, △희생자 추모 조치 부재, △국제 모범 사례 참고 미흡, △대화 지속 필요성을 강조하고 “1910년까지의 해석 전략에 대해서는 평가하나, 1910년 이후 등 전체 역사 해석 전략 불충분”으로 결론내렸다. “강제 노역 등 어두운 역사에 대한 고려 및 희생자 추모 목적의 센터 기능 부재”라는 결론이다.

이를 반영해 제44차 결정문 6항에 “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을 충분히 참고할 것을 요청(requests)”했으며, 구체적으로 5가지를 요청했다.

첫째, “각 시설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그리고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해석전략” 둘째,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 셋째, “인포메이션센터 설립과 같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 넷째, “유산의 OUV가 적용되는 기간과 그렇지 않은 기간 모두에 대한 해석전략과 디지털 해석자료 마련에 있어 국제모범사례 (참조)” 다섯째, “관련 당사자 간 대화 지속” 등이다.

제44차 결정문은 “당사국에 업데이트된 보존현황보고서 및 상기 이행사항을 2022.12.1.까지 제출하여 2023년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검토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further requests)”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2일 기자들에게 “외교부는 아주 강력한 유네스코의 결정문안 나왔기 때문에 일본의 도교정보센터 개선 구체조치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고 주시하겠다”면서 “일본이 이번 결정을 조속, 충실히 이행할 것을 지속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2015년 등재 당시 일본 대표 발언이 결정문 본문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며 “결정문 내용 자체가 공동조사단의 객관적 심사결과를 인용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과거 결정문안과 구별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계유산 지정 취소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유산 자체의 본질적 특성이 완전히 훼손되는 경우에 한에서만 취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당국자는 “일본이 이행하지 않으면 2년마다 권고, 더 강력한 압박이 주어질 것”이라며 “이번 강력한 권고안이 나와 일본이 성실히 이행조치를 앞으로 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적시한 ‘국제 모범 사례’에 해당되는 독일의 경우 일본과 달리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 역사에 대해 사실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피해자들 사진을 전시하는가 하면, 그들을 기리는 기념시설을 마련해 두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측도 유사한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은 ‘당사자들과의 대화 지속’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공동조사단 보고에는 “동 유산 관련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관련 당사국의 전문가들은 대화에 불포함”시켰다고 적시하고 “6.30 일본측은 한.일 양국간 면담(meetings) 목록을 제출한 바, 면담 구체 내용은 제출하지 않았으나, 대화가 실제로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한일 양국 대화 등 일부 대화가 있었으나, 향후 대화가 중요하며, 대화 지속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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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회연주단 등 예술인들과 기념촬영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7.12 08:40
  •  
  •  댓글 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받은 중요예술단체 예술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받은 중요예술단체 예술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받은 중요 예술단체 창작가들과 예술인들을 만나 축하해주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위대한 우리 시대와 위대한 우리 당 그리고 위대한 우리 국가와 위대한 우리 제도를 노래하는 성스러운 길에서 혁명의 나팔수로서의 영예를 더욱 줄기차게 빛내어가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표명하면서 국가표창을 수여받은 창작가, 예술인들과 국무위원회연주단 전체 예술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창작가, 예술인들이 우리 당의 혁명노선과 사상을 높이 받들고 노래 '우리의 국기'를 비롯하여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시대의 명곡들을 창작 형상함으로써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를 빛내이고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심과 낭만을 안겨"주었다고 평가했다.

김옥주 국무위원회연주단 성악배우에게 인민배우 칭호가, 리명일 국무위원회연주단 단장 겸 지휘자에게 국기훈장 1급이 수여되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예술인들에 대한 국가표창 수여식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예술인들에 대한 국가표창 수여식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특히 제8차당대회와 전원회의 최근까지 활발한 음악공연을 벌이고 있는 국무위원회연주단의 활동에 대해 "최근 문학예술 부문이 의연 동면기, 침체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때에 당중앙의 의도를 구현한 명작, 명공연들로 인민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감흥을 불러일으"켰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국가표창 수여식에서 국무위원회연주단 성악배우 김옥주와 국무위원회연주단 단장 겸 지휘자 리명일에게 각각 인민배우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되었으며, 공훈국가합창단 작곡가 박성남 등에게는 국기훈장 제2급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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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 1인분이 5천원? 여기는 목포입니다

[전남 신안·목포의 맛] '민어의 거리'에서 맛 본 민어회와 민어탕

21.07.12 07:29l최종 업데이트 21.07.12 07:30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사진보기 민어회는 숙성된 선어회로 내놓는다. 수분이 적당히 빠진 선어회는 그 특유의 감칠맛과 차진 맛이 더해진다.
▲  민어회는 숙성된 선어회로 내놓는다. 수분이 적당히 빠진 선어회는 그 특유의 감칠맛과 차진 맛이 더해진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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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물고기라는 민어,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생선 가시와 쓸개 빼놓고 다 먹는다는 민어를 회로 먹는다면 활어와 선어 중 어떤 게 더 맛있을까. 올여름 복달임 음식으로 민어회와 민어탕을 소개한다.

미식가들은 민어회보다는 민어 부레와 껍질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옛말에 '데친 민어껍질에 밥 싸 먹는 맛에 빠져 전답을 다 팔아먹은 사람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져 온다.

불둥거리(완도), 홍치(법성포), 보굴치, 어스래기(서울, 경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민어는 그 종류가 무려 270종에 달한다. 민어는 조기, 부세, 수조기, 보구치 등과 같은 종이다. 그중 몸집이 가장 큰 녀석이 민어다. 1m가 넘는 크기의 민어도 있다.

진정한 민어 요리 맛보려면 목포가 좋아
 
 바다에서 갓 잡아 온 활민어는 회로 먹기 위해 피를 뺀다.
▲  바다에서 갓 잡아 온 활민어는 회로 먹기 위해 피를 뺀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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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의 주산지는 천사섬 전남 신안 임자도다. 그러나 진정한 민어 요리를 맛보려면 목포로 가야 한다. 목포 민어의 거리에 가면 민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몇 곳 있다. 목포 시내 곳곳에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숨은 맛집들도 더러 있다.

민어가 제철(7~8월)이다. 민어는 예로부터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즐겨 먹었던 생선이다. 하여 '복더위에 먹는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다. 민어가 일품 보양식으로 사랑받았던 가장 귀한 생선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찜보다는 회나 탕으로 즐겨 먹는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민어 맛에 대해 '비늘과 입이 크고 맛은 담담하면서도 달아서 날것으로 먹으나 익혀 먹으나 다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고기는 살이 차오르고 지방이 적당하게 오른 산란기를 앞둔 시기에 가장 맛있다. 이때 생선 살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가장 두드러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산란기를 앞둔 생선을 가장 선호한다. 이는 산란기가 생선의 제철이기 때문이다. 제철에 잡은 민어가 육질이 가장 단단하고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민어 부레와 껍질이다. 미식가들은 민어회보다는 민어 부레와 껍질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  민어 부레와 껍질이다. 미식가들은 민어회보다는 민어 부레와 껍질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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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민어가 여름철 보양식으로 알려지면서 그 가격 또한 만만치가 않다. 목포에 가면 민어회 한 접시에 4만5천 원 남짓이다. 민어 코스 요리는 4인 기준 15만 원이다. 풍성하게 차려내는 여수의 횟집들과 달리 민어 상차림이 참 단출하다. 

 

활어도 아닌 선어회 가격이 이 정도란다. 민어 가격이 너무 비싸 언감생심 민어 정식은 꿈도 못 꾸겠다. 하기야 인기가 많아 찾는 이가 많으면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게 당연한 이치다. 부레가 유난히 큰 민어는 물 위에 내놓으면 곧바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민어 활어회 맛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횟집에서 내놓는 민어회는 숙성된 선어회다. 수분이 적당히 빠진 선어회는 그 특유의 감칠맛과 차진 맛이 더해진다.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낸 민어회의 연분홍 자태가 미각을 자극한다.

회 접시에는 일반 횟집에서 허전함을 메꾸고자 즐겨 사용하는 천사채가 아닌 양배추 채를 도톰하게 깔았다. 민어회 아래 깐 양배추 채는 식용이 가능하긴 하나 세균 번식이 우려되므로 먹지 않는 게 좋겠다.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낸 민어회의 연분홍 자태가 미각을 자극한다.
▲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낸 민어회의 연분홍 자태가 미각을 자극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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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분 5천원에 차려낸 민어탕이다.
▲  1인분 5천원에 차려낸 민어탕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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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철을 맞아서인지 민어회를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민어회는 상추나 깻잎쌈을 하는데 깻잎쌈이 더 잘 어울린다. 참기름, 된장, 겨자 소스, 간장소스가 나온다. 취향껏 먹으면 된다. 민어회 쌈에는 마늘 편이나 풋고추를 곁들여 먹는다.

맛보기 부레와 민어껍질도 내준다.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부레는 접시에 함께 담아낸 소금을 살짝 찍어 먹으면 좋다. 밥을 싸 먹으면 더 맛있다는 민어껍질도 참 별미다.

여름철 일품 보양식인 민어회에 이어 민어탕과 밥으로 마무리를 했다. 냄비에 끓여낸 기름이 동동 뜬 민어탕의 맛은 단연 최고다.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압권이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에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민어 요리가 허약한 몸을 추스르는데 더없이 좋아 보인다. 올여름 으뜸 보양식으로 민어회와 민어탕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맛사랑의 맛있는 세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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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 경찰 사칭 MBC에 “언론 궤도 이탈”

여가부, 통일부 없애자는 이준석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연상시켜”
동아일보·경향신문,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진짜 논쟁’ 당부
 

 

조선일보, 경찰 사칭 MBC에 “언론 궤도 이탈”

지난 8일 MBC 소속 기자 2명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배우자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취재하던 중 자신들을 경찰이라 사칭했다. 윤 전 총장의 부인 김씨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전아무개 교수가 과거에 살던 집을 찾아가 그 집 앞에 세워진 승용차 주인에게 전화 통화로 전 교수의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경찰이라고 속였다.

이튿날 MBC의 이 같은 취재 행위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비판이 나왔다. 같은 날 윤 전 총장 대변인실은 “김건희씨 관련 취재 과정에서 특정 언론에서 경찰관을 사칭하는 범죄 행태가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기자가 경찰관을 사칭했다면 이는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공무원자격 사칭죄’ 또는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범죄이므로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입장을 냈다.

▲지난 9일자 MBC ‘뉴스데스크’ 사과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9일자 MBC ‘뉴스데스크’ 사과 방송화면 갈무리.

이에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9일 스포츠뉴스 시작 전 사과했다. 왕종명 앵커는 “본사는 본사 취재진이 윤 전 총장의 부인 김씨의 박사 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취재 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본사는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취재진 2명을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고 사규에 따라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를 입은 승용차 주인과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MBC의 취재 윤리 위반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MBC가지난해 3월31일 채널A 기자가 윤 전 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손을 잡고 신라젠의 대주주 이철씨에게 신라젠 행사 강의를 한 적 있는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알고 있으면 진술하라고 강요했다는 보도를 한 점을 거론했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작년 총선을 앞두고 MBC는 채널A 기자가 윤 전 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손잡고 금융 사기로 구속된 전 신라젠 대주주에게 ‘유시민씨 비위를 진술하라’고 강요했다는 보도를 했다. 사기 전과자이며 윤 전 총장을 비난하던 제보자가 채널A 기자와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 이 보도가 나가기도 전에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MBC 제보자의 변호사인 같은 당 황희석 최고위원이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간다’고 했다. 당시 권력 수사를 지휘하던 윤 전 총장과 측근이 채널A 기자와 공모했다는 얼개의 MBC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해 3월3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를 지적했다.
▲지난해 3월3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검찰은 채널A 기자와 한 검사장이 공모한 혐의를 공소장에 넣지도 못했다. 윤 전 총장과 채널A의 검언유착이 아니라 권력의 ‘검언유착 조작’ 쪽으로 사실상 결론이 난 것이고 MBC가 총대를 메고 거든 셈”이라고 해석한 뒤 “그런 MBC가 이번엔 윤 전 총장 주변을 캐기 위해 경찰을 사칭하는 무리수를 뒀다.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말을 누가 믿겠나. 정권 편향 방송의 야권 대선 주자 공격을 정상적 검증을 넘어 언론 궤도의 이탈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이준석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연상시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외교, 통일 업무가 분리된 건 비효율적”이라며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꺼냈다.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라는 부처를 둔다고 젠더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통일부 둔다고 통일에 특별히 다가가지도 않는다”고 썼다. 이에 여당 의원들은 이 대표를 비판했다. 야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국정은 수학이 아니다. 쓸데없이 반통일 세력의 오명을 뒤집어 쓸 필요도 없다. 통일부는 존치돼야 한다”고 했다.

▲12일자 동아일보 6면.
▲12일자 동아일보 6면.
▲12일자 경향신문 2면.
▲12일자 경향신문 2면.

동아일보는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론이 여야 간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6면 기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꺼낸 ‘통일부 폐지론’이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쟁점으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황당한 주장’이라며 성토하고 나섰지만 이 대표는 ‘작은 정부론은 대선을 앞두고 주요하게 다뤄질 과제’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준석 리스크가 시작된 게 아니냐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2면 기사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 주장을 내놓으며 좌충우돌하고 있다. 당내 대권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자 이를 공식화하자는 입장을 내놨다가 당내외 논란에 한발 물러섰다. 통일부 폐지론은 직접 꺼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당내 일각에선 이 대표가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너무 많은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풀이했다.

언론들은 이 대표의 성과주의식 발상을 우려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30대의 제1야당 대표가 특정 부처에 대해 일도양단식 판단을 거듭 소셜미디어에 게시하고 주장하는 것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연상시킬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12일자 서울신문, 국민일보 사설.
▲12일자 서울신문, 국민일보 사설.

서울신문은 이어 “통일부는 박정희 정부가 1969년 3월 신설한 부처다. 당시에는 국토통일원이었다. 최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가 중지되는 등으로 남북 관계가 영향을 받아 수년째 교착상태다. 성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데, 성과가 없으니 폐지하자고 주장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효율을 최선으로 삼는 기업이 아니다. 이 대표가 굳이 통일부와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면 당내 반론을 탕평해 대선 공약 등으로 제시하길 바란다”고 했다.

국민일보도 사설에서 “한마디로 성과가 미미하니 폐지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야당이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문제가 있거나 존재감이 미미한 부처가 있다면 언제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과가 미흡하다고 아예 없애버리자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성과주의’ ‘능력주의’만 맹신한 데 따른 게 아닌가 싶어서다”고 짚었다.

국민일보는 이어 “무엇보다 정부조직 존폐를 ‘갑툭튀’ 식으로 제기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 당내외 여론 수렴을 거쳐 정식으로 공약으로 내세워야지 라디오·SNS에서 툭 던질 사안이 아니다. 정부조직은 헌법정신과 시대흐름, 국민과의 오랜 소통 결과 등이 반영돼 만들어진 것”이라며 “부처 폐지 주장이 얼마나 뜬금없으면 20대 남성과 극우 표를 얻으려고 갈라치기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경향신문,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진짜 논쟁’ 당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예비경선 결과 추미애·이재명·정세균·이낙연·박용진·김두관 후보(기호순)가 본경선에 올랐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국민·당원 여론조사를 거쳐 8명의 후보가 6명으로 압축됐다. 신문들은 민주당 후보자들이 진짜 논쟁을 통해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2일자 동아일보 4면.
▲12일자 동아일보 4면.
▲12일자 경향신문 사설.
▲12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민주당 예비경선에선 박용진 후보 등이 기존 구도를 깨고 선전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진 못했다. 예전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보여준 역동성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평가한 뒤 “오히려 유력 주자 이재명 후보에게 다른 후보들의 공세가 집중되면서, 이른바 ‘바지’ 발언이 나오는 등 엉뚱한 논쟁에 파묻혔다. 도덕성 검증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과도한 사생활 공방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12일자 동아일보 사설.
▲12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앞으로 본경선 기간 동안 여당 후보들은 이 같은 비전과 공약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상세하게 보여줘야 한다. 특히 복지공약은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후보들은 어떤 예산을 줄여 여유재원을 만들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또한 후보들은 너도나도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있지만, 현 정부의 공공알바를 통한 임시직 늘리기와는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당내 경선의 특성상 후보들이 강성 당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당 안에 강성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심과 일반 국민들의 민심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겠다는 후보라면 비좁은 당심에 매몰되지 말고 다수 국민의 민심을 우선시해서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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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컷오프’ 추미애·이재명·정세균·이낙연·박용진·김두관 통과

대선후보 경선 예비경선서 최문순·양승조 ‘탈락’

1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결과 발표에서 본경선에 진출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7.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대표, 박용진 의원, 김두관 의원(기호순) 등 6명은 ‘컷오프’를 통과해 본경선에 진출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탈락했다.

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이상민)는 11일 본경선에 진출할 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예비경선은 정세균 전 총리와 후보단일화해 사퇴한 이광재 의원을 제외한 8명 경선 후보를 대상으로 당원 여론조사 50%, 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해 상위 득표자 6명을 추렸다. 조사는 지난 9일부터 3일간 실시됐으며, 민주당 대선 후보 적합도를 물었다. 2인 이상 동률을 이룰 경우 여성과 연장자 순으로 순위가 결정되는 룰이 적용됐다. 이날 본경선 진출자 6명이 발표됐으나 후보별 순위와 득표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6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9월까지 대선 후보 본경선을 실시한다. 전국대의원과 권리당원, 일반당원은 물론 일반국민도 국민선거인단에 신청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민주당은 11일 오후 현재 72만명이 국민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경선에 대한 국민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8월 15일, 29일, 9월 5일 세 번에 나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우선 11일까지 접수한 국민선거인단이 8월 15일 발표될 첫 후보 경선에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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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수도권 4단계 격상, 시장 상인 한숨 더 깊어져

신규 확진자 사흘 만에 1300명대
변이 확산만큼 깊어진 시장상인 한숨
“손실보상법 시행 신속히 이뤄져야”

▲ 경기 성남시 모란민속장에서 기름집을 운영하는 시장상인 C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장사를 해왔지만 이제 이곳은 나만큼 나이든 노인네들이나 발길을 찾는다”며 “하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왔다 그냥 돌아간다. 사질 않으니 물건도 안 빠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진=현지용 기자)

 

수도권 지역에의 거리두기 4단계 이후 시장 상인들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암울해져 가는 모습이다. 상인들은 조속한 손실보상법의 시행을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9일 오전 수도권을 대상으로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지난 수일간 코로나 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날 신규 확진자 수가 1300명대 돌파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4단계는 오후 6시부터 사적모임 2명 이상, 다중이용시설 이용인원 등에 대한 제한이 강화됐다. 격상 시행 시점은 오는 1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B씨는 “임대료 절반 감면 조치가 연장됐으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며 “금요일 퇴근길 꽃을 사던 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B씨는 “임대료 절반 감면 조치가 연장됐으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며 “금요일 퇴근길 꽃을 사던 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수도권 4단계 격상으로 소상공인 시장은 날벼락을 맞은 분위기다. 사실상 주말을 앞둔 9일 금요일부터 4단계 조정이 적용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매월 4·9일 5일 간격으로 열리는 경기 성남시의 모란 5일장은 주말을 앞두고 방문하는 손님들로 붐볐지만, 대부분 고령층에 ‘빈손’으로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모란민속장에서 기름 장사를 해온 시장상인 A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장사를 해왔지만, 이제 이곳은 나만큼 나이든 노인네들이나 발길을 찾는다”며 “하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왔다 그냥 돌아간다. 사질 않으니 물건도 안 빠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가죽거리에서 수제화 공방을 이어온 사장 A씨는 “앞으로 손님이 더 적을 것이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방문 증감이 크게 체감된다”며 “코로나19 확산 전과 지금 비교하면 가죽거리 점포는 절반이나 빠졌고, 그 나머지도 빈집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가죽거리에서 수제화 공방을 이어온 사장 A씨는 “앞으로 손님이 더 적을 것이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방문 증감이 크게 체감된다”며 “코로나19 확산 전과 지금 비교하면 가죽거리 점포는 절반이나 빠졌고, 그 나머지도 빈집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경기도와 경계를 맞댄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도 4단계 격상으로 인한 시장상인들의 걱정이 느껴졌다. 지하 꽃시장에서 20년 넘게 영업해온 B씨는 “화환연합회에서 임대료 절반 감면을 연장해줘서 그나마 낫지만, 형편은 나아지질 않는다”며 “손님이 하나도 없다. 금요일 퇴근길 꽃을 사던 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다”라고 토로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가죽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수제화 공방을 이어온 사장 A씨는 “4단계가 떠서 앞으로 손님이 더 적을 것이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방문 증감이 크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매장이 있다는 곳도 코로나로 사정이 악화됐다. 코로나19 확산 전과 지금 비교하면 가죽 점포는 절반이나 빠졌고, 그 나머지를 식당과 카페가 채웠는데 그마저도 빈집이 많다. 앞으로의 2주가 매우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상인들은 말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 빨리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4단계 격상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도 사라질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사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상인들은 말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 빨리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4단계 격상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도 사라질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사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그나마 소상공인에게 가뭄 중 단비가 될 손실보상법이 지난 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최근 사흘 동안 신규 확진자 수가 연속 1000명 이상을 기록하며 상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손실보상 기준의 시급성이 대두된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9일 성명을 통해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으로 7월 경기 회복에 기대를 걸었으나,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강력한 영업 금지·제한으로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며 “소상공인들의 현장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로 손실보상 심의위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방역 대응에 공감은 가나, 소상공인을 위한 신속한 대응책이 부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은 “시장은 손실보상에 대한 체감이 와닿지 않는다. 어느 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트이면서 보상이 이뤄졌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4단계로 올리니 특별한 대응책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상인들은 말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 빨리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4단계 격상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도 사라질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사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현지용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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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뿌려 태워죽인 것도 부족해 시신을 전시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7/11 09:03
  • 수정일
    2021/07/11 09: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의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보복학살 부르며 방식도 

21.07.10 20:09l최종 업데이트 21.07.10 20:09l


"정춘영이 나와." "애 아부지는 없는디유..." "어디 갔어?" "글씨 어제 나가서 안즉 안 왔는디유."
충남 태안경찰서 소원지서 경찰의 물음에 정춘영의 아내 이예순이 답했다. 경찰들은 찾던 사람이 없자 논에서 일하던 정춘영의 동생 정성영을 대신 연행했다. 보도연맹원 예비검속 방침에 따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태안경찰서는 상부의 명령을 받아 6월 말부터 7월 11일까지 보도연맹원들을 붙잡아 들였다. 좌익 전향자 등으로 꾸려진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이 남하하면 협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초기에 연행된 태안 지역 보도연맹원 일부는 트럭에 실려 대전형무소 방향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트럭은 예산면 오가면에서 멈췄고 그곳에서 그들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태안보도연맹원 일부가 대전 방향으로 이송된 사실은 태안경찰서 소속 조정찬 경위의 순직 사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태안서 소속 좌기 직원은 동년(1950년) 7월 9일 좌익극렬분자(보련) 등을 대전형무소에 압송도중 홍성 장곡면에서 ××의 교통방해로 인한 자동차 발화사고로 불행히도 소사 순직하였음(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석유 뿌리고 예광탄을 쏘아
 
 태안군 보도연맹원 대다수가 학살된 사기실재
▲  태안군 보도연맹원 대다수가 학살된 사기실재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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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태안군 보도연맹원 대다수는 서산군 태안면(현재 태안군 태안읍) 백화산 사기실재로 끌려 갔다. 저녁 무렵 이들을 실은 트럭은 사기실재 고개를 넘지 않고 고개에서 멈췄다. 

보도연맹원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고 트럭에 내릴 때도 짐짝 버리듯이 버려졌다. 그들은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앞서 경찰은 태안경찰서 마당에서 보도연맹원을 2인 1조로 세워 등을 마주 보게 했다. 그런 후에 두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철사로 묶었다. 고통에도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총 개머리판이 사정없이 날라왔기 때문이다.

사기실재에 버려진 이들의 머리 위에는 석유가 부어졌다. 잠시 후에 예광탄을 쏨과 동시에 일부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의 옷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옷과 살이 타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엄지손가락이 철사로 묶인 이들은 살기 위핸 몸부림을 쳤다. 몇몇은 이인삼각(二人三脚)하듯이 발을 맞춰 도망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경찰의 조준사격을 당했다. 잠시 후 시신 타는 냄새와 총소리가 뒤섞여 사기실재는 '지옥도' 그 자체였다.

참혹한 죽음보다 더 놀라운 일이 그 다음에 벌어졌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경찰들은 새카맣게 그을린 시신들을 트럭 적재함에 실었다. 총에 맞아 떨어져 나간 팔, 다리도 전부 포함됐다.

잠시 후 시신을 실은 트럭은 태안면 고추판매소 창고 앞에 멈춰 섰다. 경찰들은 새카맣게 탄 시신 백여 구를 전시(?)하고는 사라졌다. 1950년 7월 12일 초저녁의 일이다. 시신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거나 구토를 해댔다. 사망자 유족들은 경찰이 태안에서 후퇴한 다음 날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서산군 덕지천(현재의 서산시 덕지천동)에서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보도연맹원 일부가 죽임을 당했다.

앞서 등장한 모항리 정성영도 이때 죽었다. 보도연맹원인 형이 집에 없다는 이유로 대신 연행됐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정성영이 사기실재에서 죽었는지, 덕지천에서 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소원면 모항리 보도연맹원 11명을 포함한 태안군 보도연맹원 1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항초등학교 부자 교사의 죽음

 "컹컹." 그로부터 얼마 후인 9월 말경. 어두컴컴한 밤 모항리 초입에서 시작된 개 짖는 소리는 온 마을로 번졌다. 그렇게 모항초등학교 교장 국계환(당시 42세)의 집에 들이닥친 불청객은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이었다. 인민군이 주둔하고 난, 소위 인공(인민공화국) 시절 완장을 찬 이들이다.

"국계환이 나왓!" 주인장이 방문을 열자 그들은 "뭘 꾸물거려, 빨리 나오지 않고"라며 큰형뻘이자 아버지뻘인 국계환 교장에게 반말을 해댔다.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가 불청객들에게 뒷결박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화살은 국교장의 아들 국병녕(당시 20세)에게도 향했다. "야, 병녕이도 묶어"라는 지휘자의 말에 국병녕도 뒷결박을 당했다. 불청객들이 물러나자 교장 집에서는 곡(哭)이 터져나왔다.

국계환·국병녕 부자는 모항초등학교 교사로 아버지는 교장이었고 아들은 평교사였다. 이들은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지방 좌익에게 반동이라는 이유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부농도 지주도 아니었다. 단지 초등학교 선생이었을 뿐이다.

1950년 9월 20일 연행된 이들은 모항리 안상각의 소금창고로 끌려갔다. 이후 20일 가까이 구금됐던 이들은 10월 9일 모항리 해변으로 끌려 나왔다. 지방 좌익들은 국계환·국병녕 부자를 에워쌌다. 지휘자의 턱짓에 사람들 손에 쥐어져 있던 죽창과 쇠스랑이 내질러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창과 쇠스랑을 죈 이들의 옷과 얼굴에도 피가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앞선 7월 모항리에서 보도연맹으로 학살된 이의 유가족도 있었다. 보복 학살의 시작이었다.

계급갈등과 씨족갈등이 겹쳐

국계환·국병녕 부자처럼 반동과 우익(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방좌익에게 학살된 소원면 모항리 사람은 17명이다. 당시 모항리는 3개 구에 불과했으니 엄청난 수치다. 

피해자의 직업은 국계환·국병녕 부자를 제외한 15명 모두 농업이었다. 또 전직 이장 5명, 현직 이장 3명이 희생됐다. 이외에도 국교환은 대한청년단원이라며, 국응선은 형 국중곤이 경찰과 친분이 있어서, 박일옥은 이장으로 있으면서 우익조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살생부에 올랐다. 이들은 안만순·안상각 부자의 소금창고와 분주소 등지에 구금되어 있다가 모항리 해변에서 죽거나 서산군 양대리, 소원면 파도리 등지에서 죽임을 당했다.

UN군이 반격해옴에 따라 북한군과 지방좌익은 후퇴하기 직전인 1950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군경가족이나 우익인사, 그들의 가족을 집단학살했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태안군에서는 북한군과 지방좌익에 의한 집단학살(적대세력에 의한 사건)이 유독 많았고 방식도 잔인했다. 소원면 모항리가 특히 그랬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계급 갈등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찮은 면이 있다.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모항리 피해자 17명 중 국씨가 10명이다. 가해자는 지방좌익과 일부 보도연맹원 유가족이다. 그런데 후일 경찰이 수복한 후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부역혐의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모항리 사람 61명 가운데 정씨이거나 정씨 가족이 42명이었다. 즉,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과 '부역혐의 사건'의 피해자 중에 국씨(58%)와 정씨(68%)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최태육 소장은 "6.25 전쟁 전부터 소원면 모항리에 내재해 있던 씨족간 갈등이 전쟁으로 인해 증폭된 것"이라고 보았다. 전통적인 계급갈등에 씨족갈등이 더해진 경우이다. 모항리에서만 전쟁 때 89명의 민간인이 죽음을 당했다.

치안대가 처형에 앞장서

다시 시간이 얼마 흐른 1950년 10월 초.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정춘영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소원지서 경찰들이 형 정춘영이 없자 그의 동생 성영을 잡아간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상황은 비슷했다. 이번에는 그 불청객이 경찰이 아니라 치안대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또 3개월 전에는 보도연맹원을 예비검속했다면 이번에는 인공 시절(북한군 점령시절) 부역행위가 문제가 됐다.

춘영과 그의 동생 완영과 연영이 붙잡혀갔다. 정춘영 삼형제를 연행한 이들은 소원면 자치치안대(이하 치안대)원들이었다. 치안대원 중에는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도 끼어 있었다. 치안대는 소원지서 경찰이 수복하기도 전에 부역혐의자를 임의로 검거·연행했다. 경찰이 수복한 후 공식적으로 '부역자심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소원지서장이 중심이 되어 대한청년단 간부, 의용소방대 간부, 면장,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피해자 유가족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부역혐의자들을 A, B, C 등급으로 구분했다. A급으로 분류된 사람은 대부분 즉결처형되었고, B급은 일부가 처형되었고, 일부는 재분류 후 처형되거나 훈방되었다. C급은 훈방되었다.(<태안 민간인학살 백서>, 2018) 심사위원회에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 유가족들이 참여해 사감(私感)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 수복 후 충남 태안군의 부역혐의자 검거 및 학살에는 태안경찰서가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소원면과 이북면(현재의 이원면)에서는 치안대가 직접 처형에 참가했다. 소원면 모항리에서는 주민 61명이 불법 처형되었다. 모항리 정연영·완영 형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신덕리 해안에서 죽었고, 정춘영은 시목리 장재 금광구덩이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외에도 모항리 해변에서 집단학살이 발생했다. 소원면 '피의 살육제'는 1950년 10월 5일경부터 11월 4일에 걸쳐 일어났다.

학살 방식은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과 비슷했다. 죽창과 쇠스랑으로 무장한 치안대가 부역혐의자들을 떼죽음으로 몰고갔다. 모항리 해변에서 죽임을 당한 27명의 얼굴은 죽창과 쇠스랑에 훼손돼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남매 옷을 벗겨 고문을 하기도

11월 초까지 이어진 부역혐의자 학살 이후에도 치안대는 해체되지 않았다. 치안대는 정낙설 집에 사무실을 차리고 부역혐의자를 추가로 연행해 구타하고 고문했다. 정춘영의 아들 정낙관(당시 14세)도 수차례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같은 마을의 정씨 남매(집 나이 13세, 16세)도 치안대 사무실에 연행되어 옷이 전부 벗겨진 채 고문을 당했다. 야만의 시대에 광기 어린 풍경이었다.
 
 숙부들이 학살된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 해안(당시는 바닷가) 현장에 선 정낙관.
▲  숙부들이 학살된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 해안(당시는 바닷가) 현장에 선 정낙관.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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