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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20 08:34
  • 수정일
    2019/06/20 08: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원유헌의 전원일기](2)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원유헌 cameragaga@naver.com
입력 : 2019.06.20 06:00 수정 : 2019.06.20 06:01
 

제 논에 물 대기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로 논 바닥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동안 배수로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다시 논에 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 방울이 아쉽다. ⓒ 원유헌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로 논 바닥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동안 배수로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다시 논에 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 방울이 아쉽다. ⓒ 원유헌

 

“뺨따구 안 날렸소?” 

옆 마을 동생 S가 트럭을 멈추고 내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예초기로 논두렁 풀을 베던 중이었고,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논두렁 옆면의 풀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S가 한 말이다. 왠지 피 튀기는 현장의 냄새가 느껴져 뉘앙스를 맞췄다. 

“응, 좀 이따 갈아불라고.” 

바야흐로 모내기 시즌이다.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다. 씻나락을 물에 담그면서 시작하는 벼농사는 모내기까지 정해진 시간표대로 오차 없이 진행돼야 한다. 60도의 온탕소독을 마친 나락이 하얀 싹을 틔우고 못자리로 이주해 야들야들 자라는 동안 논에서는 별도의 작업을 수행한다. 1차 마른 로타리(흙을 잘게 부수는 작업) 후 논에 물을 가득 담아 2차 로타리 작업과 써레질(논 흙의 높이를 일정하게 다듬는 작업)을 한다. 다시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을 뺀 후 모내기를 하고 나서 재차 모가 잠기지 않을 정도까지 물을 방방하게 받아둬야 한다. 여기까지가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나락 농사의 절반’이다. 

짧게 설명하기 억울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물론 로타리와 모내기는 트랙터와 이앙기가 한다. 운전은 기계 주인이 하는데, 나는 주인이 아니므로 기계 주인의 상황과 일정에 맞춰 논의 상태를 스탠바이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논에 물 받기다.

논에 받는 물의 양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보통 경지정리된 논의 한 구역을 ‘한 단지’라고 표현하는데, 보통 가로 30m·길이 100m를 기준 크기로 하며, 4마지기반, 900평, 3000㎡ 모두 같은 크기의 한 단지 면적이다. 이런 단지 논에 물을 받으려면 땅을 적시는 양을 포함해서 대략 10㎝ 정도의 높이는 돼야 한다. 계산은 간단하다. 100m×30m×0.1m=300㎥. 즉 300t의 물이 필요하다. 5t짜리 소방차 60대 분량이다. 몇 년 전 심한 가뭄에 심각한 표정으로 소방차 호스를 잡았던 정치인들도 이 정도 계산은 가능했을 텐데. 

부모 자식 간에도 물싸움을 한다고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논에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뭄 때는 물론이고 물이 충분하다고 해도 다툼은 생기기 마련이다. 논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람과 트럭이 적이다. 논농사를 홀로 전담하는 여성 농민이 드문 이유는 순간적으로 뿜어야 하는 근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간혹 거칠게 밀어붙여야 하는 힘겨루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근거 미약한 분석도 해본다. 

며칠 전에도 “낼 모래 써레질 할 수 있게 물 받아 놓으시게요” 하는 기계 주인의 청유형 명령이 떨어졌다. 불퇴전의 각오로 저수지부터 우리 논까지 수로를 훑으며 물길을 뚫어 내려왔다. 한 방울의 물도 흘려 보내지 않겠다는 자세로 수로 바닥까지 꼼꼼히 막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사장님, 절반만 흘려 보내주시믄 안 되까요이.” 

나보다 아래쪽 논 임자인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얼굴만 보자면 논이 아니라 주인이 물을 마셔야 하는 상태였다. 안 된다고 인상 쓰면 수로에 쓰러질 각오가 드러났다.

“이만큼이면 되시겠습니까?” 

물이 내 것도 아니건만 내 논이 상류에 있다고 돌 조금 치워주면서 유세를 떨고 앉았다. 더 상류 쪽 사람들에게 습득한 말투였다. 그나마 물길 터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부드럽게 “사장님~”이라 불러서 기운이 좀 샌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사장님’이란 호칭에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리는 내가 신기하다. 소상공인 전력 한번 없으면서 말이다.

이곳에서 ‘사장님’은 잘 모르는 사람(남자)을 부를 때 실례나 시비를 최소화시키는 호칭이다. 사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직원의 유무를 떠나 웬만하면 사장이다. 소상공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농민들은 생산, 유통, 포장, 영업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직접 하고 있다. 오히려 사장 아닌 사람이 드물다. 자연스러운 호칭이다. 

지금까지 들어본 호칭은 다양한 편이다. 사장님, 아버님, 선생님, 아저씨, 형님, 원씨, 어이 등. 상황에 따라 수긍할 만한 호칭도 있고, 참 어색하고 불편해서 귀에 익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도 그나마 부르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참고 적응하는 편인데, 최근 색다른 호칭을 들었다.

농협에서 진행하는 농작물 피해보험의 손해평가원 교육이 있어 순천으로 갔다. 구례에는 감나무가 태풍 피해나 냉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일반 농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뒤 실전에 투입하기 위한 교육이다. 주변 시·군에서 모여서 교육장인 2층은 로비까지 붐볐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만원이라 귀찮아도 1층 화장실로 내려가니 한적하고 좋았다. 손 씻고 엉덩이에 물기 문지르며 다시 계단으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두어 발짝 더 가는데, 또 불렀다. 싸한 느낌에 ‘설마’ 하며 돌아보니 멀리서 한 여인이 다가왔다. 누군가를 부르던 그 여인과 나 사이엔 아무도 없었다. 조명도 안 켜져 실루엣만 보이던 그 여인은 한껏 다가서며 살갑게 말했다. 

“어르신, 엘리베이터 이용하세요. 이리 오세요.” 

왜 가슴이 내려앉았을까. 점점 다가오면서 드러나는 그 여인의 액면 연령은 어림잡아도 내 아래는 아니었다. 나처럼 그 여인도 나의 실루엣만 봤을 텐데, 무슨 근거로 어르신이라고 불렀을까. 생전 처음 듣는 호칭에 심장은 계속 나대고 있었다. 약간의 어색함, 그보다 좀 더한 억울함 때문이었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이맘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지는 시간이다. ⓒ 원유헌

모내기를 마친 논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이맘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지는 시간이다. ⓒ 원유헌

사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대상의 기준이 객관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만 65세 이상의 대한노인회 소속 회원증을 소지하거나, 노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서 도움과 공경이 필요한 정도의 노인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동네에서도 여든 넘은 분들 중 일부만 듣는 극존칭이다. 물론 모르는 분들을 ‘어머님. 아버님’ 하기 쑥스러워 어르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렇게 소리지른 것은 폭행이었다. 

그 여인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됐다 괜찮다며 계단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이후 2시간여 진행된 교육은 기억에 없다. 내내 생각했다. 도대체 뭘 보고 어르신이라고 불렀을까. 내 몸이 이미 어르신 체형인가? 다리가 짧아서? 팔이 굵어서? 목이 거의 없어서? 

결론은 자세였다. 어쩌면 흐느적, 어쩌면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이 몸이 불편한 노인의 걷는 모양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순간적으로나마 아무런 근거 없이 그 여인이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선택했을 리 없고,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내가 제공했을 것이다. 자가배양하던 억울함을 진정시키고 반성 모드로 전환했다. 힘 있게 걸을 것이다. 꼿꼿이 펼 것이다. 턱은 당기고 엉덩이를 모으면서 발끝을 뻗을 것이다. 

예상대로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또 나와 타협하고 허물어졌다. 그러니 아랫논 임자의 사장님 호칭도 고마웠던 것이다. 

동생 S의 말대로 논두렁 뺨따구를 마저 날린 뒤 잠깐 집으로 갔다. 아르바이트 겸 배운 도둑질 써먹느라 군청 일을 하던 것이 시간에 몰렸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독촉이 쏟아졌다. 왜 일은 이렇게 한꺼번에 몰리는지, 하마터면 억울할 뻔했다. 

누군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고 했다. 며칠 내내 뛰듯 지내는 이유는 분명 며칠을 걷는 만도 못하게 지낸 탓일 거다. 손 더디고 발 느린 걸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 뛰기 싫으면 서둘러 걷기라도 할 일이지, 안 하고 미룬 일 고스란히 자신이 할 거면서 괴롭기 전에 편안함을 먼저 누린 죗값이다. 나의 선택일 뿐이다. 

4시간 만에 돌아온 논의 물꼬는 심하게 변형돼 있었다. 모인 물이 논으로 흐르도록 댐처럼 가로막았던 돌무더기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수로에 길게 흩어져 있고, 그나마 바닥에 붙어 내려오던 물은 누군가의 상류 댐에 가로막힌 듯했다. 빠진 기운 추슬러 다시 한번 수로를 따라 여행을 해야 했다.

만약,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논에 물이 심하게 들어가 넘칠 것을 걱정하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물이 방방해서 잡초가 덜 나는 것이오” 할 것이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논에 물이 가득하고 논두렁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여 물 한 방울, 우렁이 한 마리 새나가지 않아 일 좀 줄고 편안히 농사짓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혼자 잘 노는 편이다. 농사의 좋은 점은 몸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머릿속은 맘대로 놀아도 된다는 것이다. 명상-상상-공상을 이어가다 지치면 라디오 청취도 좋다. “이번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 선수들은 정말 신체적인 피지컬이 대단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이란다. 심리적인 마인드가 안정되고 정신적 멘털이 강하다면 전설적인 레전드가 나올 거라는 예상은 나도 하겠다. 라디오는 아침에만 들을 만했다. 껐다. 

해는 저물고 자동으로 몸이 지쳐갔다. 수로를 따라 내내 숙인 제법 큰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들어보니 예전에 인사드렸던 옆 동네 어르신이 지나고 있었다.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일은 다 끝내셨어요?” 

반가워하려다 정색을 하셨다. 

“일이 어떻게 다 끝나나. 죽어야 끝나지.” 

아무 말도 못했다. 까불다 걸린 것 같아 창피했다. 맞다. 어르신들께 일이란 건 그냥 생활이고 습관이고 숨 쉬는 방식일 뿐이다. 끝내야 하는 과업이 아니다. 일생 동안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며 일을 자신의 일부로 흡수한 모습이었다. 멋지다. 

아닌가? 혹시 저 어르신도 호칭 때문에 삐치신 걸까? 모르겠다. 다음엔 그냥 아버님이라고 해야겠다. 단순한 게 좋은데. 이젠 ‘어르신’ 죽어도 안 쓴다. 에이. 
 

▶필자 원유헌 
 
[원유헌의 전원일기](2)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1967년생. 44년간 서울에서 살다가 2011년 연고가 전혀 없는 전남 구례로 내려가 농부입네 살고 있다.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각종 아르바이트로 현찰을 보충하며 연명한다. 2018년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르네상스)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으나 8년째 나아진 건 없다.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며 산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00600045&code=100100#csidxb952e38658c4657a9b6c172574e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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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열사 투쟁의 의의

열사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열사 투쟁의 의의최인기 빈민스토리(10)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06.19 19:50
  • 댓글 0
▲ 추모제 참석한 노점상

1. 추모(追慕)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기록한다는 것이다. 기록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된다. 책임을 묻지 않게 되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추모연대" 관계자는 추모에 대한 사전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추(追)’라는 말은 추억하고 기린다는 뜻보다 ‘따른다’라는 실천적인 뜻에 훨씬 가까운 말이다. ‘모(慕)’라는 말은 마음과 정신으로 사모한다는 뜻이다.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고 계승하는 일이란 이들이 생전에 추구했던 사상과 실천을 남은 자들이 마음과 정신으로 따르는 일이 된다. 이 밖에도 열사에 대한 사전적 의미와 정의를 찾는다면 의로운 뜻을 가지고 이를 지키기 위해 굳게 싸우다 가신 분들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은 시대의 정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인권에서도 사회권이 중요하듯이 노점상 투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분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지금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를 개별적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서 잊힌 이야기를 들춰내고 다시 세상에 던지는 이유는 우발적인 사건처럼 보이는 이야기의 숨겨진 이면을 통해 새롭게 추모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 이후 그 이듬해 1996년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던 장애인 노점상 이동재 씨 분신 사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반신 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이용해 살아가던 그의 분신 소식은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면서 과거 언론과 신문 기사에만 의존했던 소식들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노점상 단체의 활동가들은 부산으로 급히 파견되어 이 사건에 개입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지역의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 그리고 부산 사상과 부산역 등을 중심으로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이후 울산 대구 등 영남권 조직을 확대해 나간다.

거리에서 쓰러지고 저항하다 유명을 달리하거나 상처를 당하는 사람은 다음 해 1997년 평택의 노점상 양승진 열사, 그리고 1998년 종로 5가의 장애인 노점상 전창옥 씨, 2002년 역시 단속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부산의 장애인 노점상 하재명 씨로 이어진다. 소위 군부독재 정권이 물러나도 여전히 노점상 생존권은 변하지 않았음을 이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특정 이슈를 둘러싸고 희생되거나 유명을 달리할 경우 저항의 과정은 보통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저항 주체의 역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역부족한 경우로, 저항이 폭발하지 않고 열사 투쟁 그 자체로 잠잠해지는 경우다. 양승진 씨는 경찰의 회유로 가족이 장례식을 서둘러 치르게 된다. 종로 5가 전창옥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건들이 개별적, 우발적으로 발생하여 저항 주체와 결합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노점상 조직은 열사가 돌아가시는 사건을 계기로 지속적이고 완강한 주체들을 형성하고 조직을 발전시켜 나갔다. 장애인 노점상 하재명 씨는 부산지역의 활동가들이 긴밀하게 결합하여 저항이 확대되는 경우였다. 그리고 이러한 탄압과 이에 대한 투쟁은 자연스레 민주화운동 과정과 결합하여 부당한 체제나 국가,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대전의 장애인 노점상 윤창영 열사와 2002년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여성 노점상 최옥란 열사다.

2. 윤창영 열사 이야기

오래전 대전역 근처의 가락국수 포장마차는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고 출출한 배를 채우던 곳이었다. 오래전 대전역 광장을 가로질러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웅크려 장사하던 장애인 한 분이 계셨다. 3살 때부터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왼쪽 다리와 양손이 반쯤 마비된 2급 장애인으로 언어마저도 매끄럽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윤창영 씨로 대전역 광장을 배회하던 노숙자들에게는 큰형님으로 불렸다. 윤창영 씨는 매주 일요일 물을 끓여서 주변 노숙자에게 컵라면을 나누어주고 틈틈이 용돈까지 보태주었다. 불우한 그가 또 다른 불우한 이웃을 도왔던 셈이다. 그는 어눌한 목소리로 허리띠, 라이터와 같은 물건들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장 밑바닥 삶을 온몸으로 기어 하루하루 버텨냈다. 그러던 1999년 7월 7일 오전 9시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노점 물품을 구청 직원들이 압수해 갔다. 이미 그 전날에도 한 차례 물품을 단속받은 상태였다. 대전역 근처에서 장애인으로서 장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려 연일 그에게만 계속되던 소위 "표적 단속"이었다. 그는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 평소 거칠게 구청에 저항하고 항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창영 씨는 동구청을 방문하여 내 물건을 돌려 달라 애원하자 구청 직원과 용역반은 비웃는 눈초리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어찌 보면 사람은 누구나 절박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처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만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격분한 윤창영 씨는 온몸에 불을 붙였다. 온몸에 김이 모락모락 나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장애인의 생계를 보장하라! 장애인도 노점상도 인간이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외치며 쓰러졌다. 분신 직후 대전의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해 서울의 한강 성심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창영아 제발 죽지만 마라!” 가족들은 절규하며 며칠 밤을 새웠다. 윤창영 씨는 임종하기 직전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집에 가서 죽고 싶다. 어머니 곁에 묻어달라.”는 짧은 유언을 남기고 7월 10일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우리는 노점상 단체 의장과 한강성심병원에서 임종을 지켜봤다. 이미 대전에서 올라온 경찰과 몇몇 공무원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유가족과 장례 문제를 급히 협의하기 시작했다. 시신은 다시 대전으로 옮겨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대전 충남대 병원 장례식장 주변에 윤창영의 분신자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포장마차 하는 아주머니, 잔업을 마치고 온 노동자, 그리고 청년 학생, 한쪽 팔이 없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목발을 짚은 사람, 그리고 거리에서 아무렇게 뒹굴던 노숙자까지 하나둘 모여들었다.

노점상단체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에 연락을 취해 ‘비상대책위’를 서둘러 꾸렸다. 대자보를 붙이고, 현장에 모인 학생과 청년들을 모아 사수대를 조직했다. 일부는 모금함을 들고 거리 선전전을 펼쳤다. 그리고 7월 15일 대전역 광장에 모여 노점상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대전지역은 노점상 단체가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노점상을 상대로 유인물을 돌려 윤창영 씨의 분신 사망 소식을 전달하고 자발적 참여를 호소했다. 유인물을 받아 든 대전역 주변에서 노점을 하는 김지현 씨는 “구청 직원이 몰려와서 물건을 실었습니다. 울면서 봐달라고 하자 햇빛도 못 보게 징역을 보내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의 물건은 강제로 빼앗겨 구청에 있습니다. 이제 곧 장마고 IMF 이후 장사도 안 되는데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노점상 결의대회에 참석한 시위대를 대상으로 경찰은 집시법을 들먹이며 거리진출을 막았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곤봉과 함께 사람들은 넘어지고, 옷이 찢기고, 신발이 벗겨졌다.

하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영안실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특히 8.15대 회를 앞두고 전국을 순회하던 대학생 통일선봉대가 합류하자 집회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대전 동구청에서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서둘러 사과를 하고 ‘비상대책위’와 함께 대책 마련에 들어가 유가족과 합의에 이른다.

마침내 7월 20일 윤창영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행렬은 고인의 영결식 장소인 광장을 벗어나 동구청과 대전 시청까지 행진했다. 이날은 노점상이 관의 눈치나 보면서 쫓겨나는 그런 날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대전지역 노점상들이 장례행렬에 선두에 섰다. 검은 만장이 물결을 이루며 대전 거리를 뒤덮고 출렁였다. 동양백화점을 지나 도청과 대전 시청 앞에 다다르자 시위대에 의해 현관 유리창이 박살 나기도 했다. 격렬해진 노점상의 분노를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윤창영 열사의 혼이 담긴 꽃상여를 실은 영구차는 그의 고향인 금강의 묘역으로 향했다. 대전의 장애인 노점상 윤창영 열사의 성과로 전국철거민연합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연대체 ‘전국빈민연합’을 다시 결성하기에 이른다. 1999년 뜨거웠던 여름날의 이야기다.

3. 최옥란 열사 이야기

서른일곱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장애인 노점상 최옥란 열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따라 그 죽음은 정의를 세우는 소중한 역사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더불어 모순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처지와 실정에 차이가 있겠으나 이들이 살았던 삶처럼 실천하는 것이 박제된 삶이 아닐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이들의 삶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조명하고 이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최옥란열사 10주기

그런 측면에서 최옥란 열사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옥란 씨는 1998년 청계천 8가에서 장난감과 치약, 구제 옷 등을 팔던 노점상이었다. 최정환 열사 투쟁 이후 장애인과 노점상이 함께 만든 ‘장애인 자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게 되자 여기에 합류했다. 함께 장사하던 조성남 씨에 따르면 “옥란 씨도 노점상 자리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누구도 그녀의 삶의 의지를 쉽게 꺽진 못했지요.” 전경과 단속반도 그녀를 피해갔고, 경찰서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회상한다.

최옥란 열사를 이야기 회상할 때 장애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혼 이후 아들 준우를 키울 수도 없었다. 전 남편의 위자료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다 아들조차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1999년 재판장에게 면접 교섭권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장문의 글을 쓴다. “…재판장님 저의 간절한 소망을 이해하시고 꼭 나의 아들 준우를 만나게 해주세요. 냉정하게 판단해 주세요. 지금 저의 형편이 어렵습니다. 노점상을 하기에는 너무 체력적으로 힘이 듭니다. 남편의 형편도 알지만 나보다 나은 조건입니다. 나머지 주어진 삷을 좌절하지 않고 살 수 있게끔 희망을 주세요…”

그녀의 건강도 그를 괴롭히는 요인이었다. 1999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서 자궁 원추 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고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병원의 의료과실로 의료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건대 민중병원 진료 기록에 따르면 머리에 혹이 생겨 약 6개월가량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많은 장애인이 ‘이동권’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는데 옥란씨는 이 과정에서 전경과의 충돌로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활 유지능력이 없거나 어려운 사람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아래 필요한 급여 등을 제공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신설된 법률이다. 기존의 복지제도를 혁신했다는 정책은 정작 옥란 씨의 형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수급자가 되기 위한 소득의 기준선은 33만원이었다. 그녀는 기초 생활 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수급자가 되었지만 약간의 수입원이었던 노점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최저생계비를 초과해 수급비와 의료비 그리고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의료보장마저 지원받을 수 없었다.

2001년 12월 3일, 뇌성마비 1급 중증 여성장애인 최옥란 열사는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명동성당 농성 투쟁에 들어갔다. 가난한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제도가 생계를 위협하는 이상한 제도가 되었다. 노점에서 버는 돈이 추정소득으로 잡혀 수급권자에서 탈락할 처지가 되자 최저생계비의 현실을 알리고자 일주일간 명동성당에서 텐트 농성을 하게 된다.

“당신도 장애인이면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저의 작은 꿈들을 다 잃게 했습니다. 노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그나마 노점 해서 돈을 벌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을 찾으려고 힘이 들어도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장사도 못 하게 해 이제는 더 살 수 없는 심정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구걸하더라도 치사해서 수급권을 못 받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무총리에게 26만 원을 반납하러 갑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며 26만 원을 반납하기에 이른다.

2001년 어머니에게도 남긴 유서에 따르면 “엄마, 엄마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그리고 용서해 주세요. 힘이 많이 들어요.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나를 죽음으로 가게끔 하는군요. 엄마, 엄마. 목이 메어 글 쓸 수가 없네요. 엄마. 우리 좋은 세상에서 만나요. 언니 오빠 동생 모두에게 미안해.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적혀 있다.1)
주1) 시대를 울린 여자 최옥란 평전 seoul post 230쪽

약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 달 생계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던 중 수급권마저 빼앗긴 뇌성마비 중증 장애 여성의 어눌한 외침은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02년 2월 아직 봄이 오기 전 최옥란 씨는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치료를 받던 중 3월 26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3월이면 아직 추운 날씨였다. 겨울이 가고 봄은 아무렇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보고서야 서럽게 봄을 맞이했다.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정책과 기초생활보호법이 실시된 이후 이 법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보장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을 고착화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려낸 투쟁이었다.

아쉽게도 당시 노점상 단체는 최옥란 열사가 유명을 달리한 그 시간 인도에서 열린 ‘국제노점상연합’ 창립을 앞두고 국제회의 일정으로 적극적인 참석을 하지 못했다. 유명을 달리한 이후에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적극적인 공감이 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또 한 사람 장애인의 슬픔 소식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 후 반빈곤연대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운동적 각성이 있었다. 최옥란 열사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손을 잡고 새로운 연대기구 결성을 도모하기 시작하고 그 후 "빈곤사회연대"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최옥란“ 이름 석 자는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이름이 되었다. 어떤 이름은 이렇게 죽어서도 투쟁한다. 

4. 열사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나 경험했을 테지만 작은 성냥불에 손끝을 데어도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시적인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일그러진 형태로 그리고 후유증으로 이어진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노점상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저항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다는 것이고 그 고통은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전이되어 두고두고 남는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이 죽음의 공통점은 장애인으로서 노점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주기적으로 2~3년에 한 번씩 열사 투쟁을 치렀다.

2005년 8월 국회 앞마당에서 분신한 장애인 노점상이 있었다.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서 온몸이 일그러진 채 응급실에 누워있는 장애인 노점상. 그의 이름은 황효선 씨다. 55세로 한국장애인문화협회 부천 이동상담소 소장이었다. 기자들은 연신 분신한 이유에 관해서 묻고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죽지 못해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분신이 있기 한 달 전에도 이미 부천 북부역에서는 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동반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7월 10일 새벽 3시경 쇠망치와 파이프로 무장한 150여 명의 용역반이 부천역으로 들이닥쳤다. 새벽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포장마차를 상대로 무차별 단속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노점상들은 아스팔트 위로 나동그라졌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 부천역 광장 한쪽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걸어 잠그고 언어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석유를 부어 분신을 기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은 연기와 불이 활활 타오르자 새벽에 행인이 차 문을 부수고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2006년 6월 20일, 인천시 부평구에서 지체 장애 2급인 장애인 노점상 주수길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평공원 야시장 내 단속과정에서 난투극 끝에 사람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오후 3시경 250여 명의 용역이 부평공원으로 몰려들었다. 난투극 현장은 부평 경찰관이 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30분 이상 진행되었고, 약 20여 개의 노점상을 철거하는 과정이었다. 이날 용역 가운데 장애인 용역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애인 노점상을 장애인 용역이 단속하는 것이다. 목격자에 의하면 고 주수길 씨는 ‘맥주병에 맞아 힘없이 쓰러졌다’고 진술하고 있다. 주수길 씨는 119에 의해 부평구청 맞은편 세림병원에 실려 갔지만, 병원에 사람들이 많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병원 측에서는 사망 시간을 대집행이 일어난 날 저녁 시간으로 추정하였으며 뇌진탕 증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용역과의 대치과정 중 싸움이 그 원인이었다.

지자체는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을 용역으로 고용하였다. 그들의 신체적인 장애를 이용하여 길거리로 나와 장사 할 수밖에 없는 즉 노점상을 단속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는 결국 저항하는 한 장애인을 죽음의 길로 몰게 한 것이다. 빈곤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노점상을 하다 숨진 장애인이나 어쩔 수 없이 단속반으로 나선 장애인이나 공통으로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였다. 주수길 씨의 사망 사건은 그의 누나가 대표로 경찰 입회 아래 장례식을 치르기로 전격 합의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 투쟁은 서둘러 끝난다. 이 시기 서울은 재개발 재건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뉴타운 사업이 현란하게 전개되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길은 헐리고 자고 나면 새 빌딩과 아파트로 빼곡히 들어찼다. 누군가는 들어오고 또 그만큼 누군가는 어디론가 떠났다. 서울 사람들은 고향이 없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한때 서울 어딘가에 집 한 채 갖고 있던 사람조차 보금자리에서 내몰릴 위협에 처했다. 개발은 집을 갖고 있던 사람이나 집 없이 세 들어 사는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삶의 기초를 위협했다.

5. 글을 마치며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살리며 생존권을 지켰던 사람들의 삶은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노점상 이야기를 다루는 데도 자의든 타이든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삶을 살펴보고 이들 삶에 의미를 제대로 조명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도리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합법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열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명예회복과 정신계승사업도 제도권 차원에서 일정 정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덕인 열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안 된 부분도 있다. 국가폭력이라 할 수 있는 용역 깡패에 의한 폭력적인 개발과 단속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빈민운동진영은 종종 빈민 열사 추모제 개최를 한 바 있으나 지속해서 이어지지는 못했다. 최근 들어서 개별 열사 추모 행사나 묘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유가족을 제외하고 관계도 점차 단절되고 있다. ‘열사 추모사업’의 복원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족과의 상호소통이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을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개별화되지 않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계승사업은 시기마다 다양한 빈민, 반빈곤 의제들의 흐름과 결합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려는 연장선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삶에 역동적 의미를 살펴보고 "점“ 하나하나가 모여 선으로 이어지듯 민주주의의 개념을 사회권 일반으로 확대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 혹은 수많은 의문사’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으로 나가야 한다. 열사는 삶의 길을 찾던 누군가에게 희생으로 다가간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길을 닦고 또 그 길을 걷는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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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노조 "'갈등 조장 분열 획책' 김호성 해임하라"

YTN노사, 김호성 YTN라디오 상무 해임 문제로 갈등… 정찬형 사장 "시스템과 원칙에 따를 것"
송창한 기자 | 승인 2019.06.19 15:49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지민근)가 김호성 YTN라디오 상무의 해임을 촉구했다. YTN지부는 김 상무가 YTN의 갈등과 분란을 조장해왔으며, 자회사인 YTN라디오 경영악화의 책임자라고 규탄했다. 이 같은 노조의 요구에 정찬형 YTN 사장은 절차와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19일 서울 상암동 YTN사옥 앞에서는 김 상무의 해임을 촉구하는 언론노조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 사장 취임 이후 지난 9개월 간 김 상무의 해임을 요구해왔지만, 정 사장의 거듭된 입장번복 등으로 김 상무의 직을 유지하는 안이 오는 21일 예정된 YTN라디오 이사회에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상암동 YTN사옥 앞에서는 김 상무의 해임을 촉구하는 언론노조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기자회견에서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최남수 사장 사퇴 이후 상암동 이 자리에 다시 선 게 참담하다. 김 상무는 최남수 사장을 지킨다고 노조와 구성원들을 이간질하고, 많은 노조 조합원들이 책임지라 했는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방송을 하고 있다"며 "자기 책임을 망각한 파렴치한 행위를 계속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YTN지부는 김 상무를 청산해야 할 적폐인사로 꼽는다. 김 상무는 YTN 창립멤버이자 초대 노조위원장으로서 2012년 다른 부장급 직원 4명과 함께 'YTN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우리의 호소'라는 기명 성명을 내 좌천됐다. 그러나 2015년 '낙하산 밀실 인사' 논란이 일었던 조준희 사장 시절 기획조정실장으로 발탁된 이후 YTN 총괄상무를 역임하면서 YTN 구성원들에게 보도 공정성 및 해직자 복직 문제를 꼬이게 한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YTN지부가 이날 정 사장에 제출한 '김호성 해임 촉구안'에는 YTN지부가 김 상무를 '적폐'로 꼽는 이유가 상세히 명시돼 있다. 

YTN지부가 김 상무를 적폐로 규정한 이유는 ▲2015년부터 2년간 기조실장을 역임하며 해직자 복직 문제를 퇴직금 누진제 폐지와 연계해 분란을 조장 ▲2017년 YTN 총괄상무 시절 사장 선임 절차의 관리자 역할을 내던지고 직접 후보로 뛰어들어 구성원 집단 반발 자초 ▲2차 사추위 기간 사장직무대행으로서 60명 넘는 대규모 인사 명령을 강행했다 역풍에 직면, 전면 백지화 ▲최남수 사장 선임 전후 사내게시판에 'YTN' 명의로 수없이 올라온 마타도어를 기획·승인 ▲최남수 사장 불신임 투표 당시 총괄상무의 본분을 망각하고 노골적인 신임 투표를 독려 ▲최남수 사장 퇴진 이후 삼성 동영상 관련 인사위의 위원장으로서 류제웅 전 기조실장에게 6개월 감봉 징계로 면죄부 부여 등이다.

YTN지부는 김 상무가 YTN 라디오의 경영실적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해임의 근거로 들었다. 김 상무가 본사와 라디오 상무를 겸직하며 6개월간의 라디오 경영 공백을 초래했으며, 2017년까지 3년연속 흑자였던 YTN라디오의 영업이익은 김 상무 취임 첫해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자본잠식률은 다시 90% 목전으로 치솟았다는 지적이다.

YTN지부는 "김 상무는 적자전환의 원인을 코바코 광고 매출 하락으로 돌리고 있지만, 라디오는 자체적인 영업으로 유치하는 협찬 매출이 광고 매출보다 오히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상무의 영업력이 실적으로 직결되는 매체"라며 "또한, 적자전환의 가장 큰 원인은 매출은 대폭 줄어든 반면, 비용은 대폭 늘어나는 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데 있다"고 비판했다. 

또 YTN지부는 김 상무가 본사와 라디오 상무를 겸직할 수 있었던 YTN의 시스템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상무는 최 사장 사퇴 이후 사장직무대행을 맡으며 '새 대표이사가 오면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밝혔지만 본사 상무직만을 내려두고 자신이 겸직하고 있던 자회사 YTN라디오의 상무 자리를 지켰다. 

YTN지부는 김 상무가 최 사장 사퇴 이후 YTN에서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라디오 상무를 겸직했다고 보고있다. 지민근 YTN지부장은 "최남수 사장 옹립에 앞장서고 불신임 투표 당시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신임 투표를 독려한 김호성은 파업 당시 이미 본사 촐괄상무를 맡고 있었음에도 라디오 상무를 겸직했다"며 "최남수 사장이 쫓겨났을 때를 대비해 자신의 안위를 챙긴 것이다. 심지어 셀프인사를 통해 아침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에 앉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TN지부는 김 상무 해임 문제에 대한 정 사장의 입장번복을 사태악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YTN지부는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김호성이 물러나야 YTN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고 정찬형 사장이 내정자였던 때부터 김호성 해임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사장은 '시간을 달라',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그러나 실질적인 조치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사장은 스스로 시간을 흘려보냈고, 스스로 믿음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 사장은 애초 김 상무의 자진사퇴를 제안했지만 김 상무의 반복되는 거절에 비등기이사 재계약, 등기이사직 유지 및 보수체계 변경 등의 안을 제안했다. 줄곧 김 상무 해임을 요구해왔던 YTN지부는 정 사장의 입장번복과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오정훈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지민근 YTN지부장이 정찬형 YTN 사장에게 '김호성 해임 촉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기자회견 종료 후 노조의 '김호성 해임 촉구안'을 받아든 정 사장은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 사장은 "'시스템에 의한 청산'을 기조로 최초에 말씀드렸고, 그 기조하에 미래발전위원회라든가 조직적인 검토 끝에 나올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반영하도록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이사회에서는 라디오의 경영혁신을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은 무엇인지 찾아 회사가 상생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좋은 방안을 찾도록 할테니 조합에서도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YTN 바로세우기 및 미래발전위원회'는 2008년~2017년까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했던 보도·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된 YTN의 노사합의 기구다. 미래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와 이사회 논의 등의 절차를 통해 김 상무 해임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YTN지부는 정 사장의 결단을 김 상무 해임 문제 해결의 열쇠로 보고 있다. 미래발전위원회는 YTN 본사의 노사합의 기구로 자회사 인사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우며 중소기업중앙회, 한림제약, 대교홀딩스, 제이에스티나 등 YTN라디오의 주주들은 YTN라디오의 대주주인 정 사장의 결단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YTN라디오의 사원들은 YTN지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라디오 사원 14명 중 11명은 지난달 17일과 20일 낸 성명을 YTN지부 기자회견 장소에서 배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YTN라디오의 구성원은 YTN 사측, 노조 그 어디와도 대립하고 싶은 의사가 없다. YTN라디오가 아닌 프로그램 및 경영 관련 사항을 간섭받고 싶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YTN지부가 YTN라디오의 방송과 경영에 간섭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지상파 방송사인 YTN라디오의 독립권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icon관련기사iconYTN노조, 김호성 YTN라디오 상무 해임 공론화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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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북, ‘서울행 징검다리’ 또는 ‘플랜B 시동걸기’

 북중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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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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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4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3월부터의 네 차례 북중 정상회담은 모두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이루어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주춤거리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번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북중 양국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이자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한다고 17일 저녁 발표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6.28~29)를 코앞에 둔 절묘한 시점으로, G20에서는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G20 직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을 두고 ‘서울행의 징검다리’라며 의미를 축소하는 분석과 ‘북한의 플랜B 가동’이라는 적극적 의미부여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북미협상 중재 여부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1. 조성렬, 중국의 ‘한국 떼어내기’

북중 정상회담 개최가 양국에서 동시에 발표되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밤 “정부는 지난주부터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 추진 동향을 파악하고 예의 주시하여 왔다”며 “그간 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이의 조기 실현을 위해 중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여 왔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이례적인 신속하고 구체적인 중국과의 협의 사실 확인은 이른바 ‘한국 패싱’을 우려한 조치로 읽힌다. “북중 간에 만남이 있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느냐”는 식의 질문이 쏟아질 것에 대해 자문자답한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에서 ‘한중관계를 소중히 하지만 우리 특성상 북한을 먼저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조성렬 위원은 “결국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은 서울행을 위한 징검다리”라고 짚었다. 중국은 10월 1일 주변국 정상들을 초청한 가운데 대대적인 건국 7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있어 시 주석의 서울행은 9월 중순 이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선’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실제로 미국은 10월말 11월께 열릴 SCM(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전면 참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동참할 경우 중국의 입지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으로 껄끄러워진 ‘한국 달래기’, 즉 미국으로부터 ‘한국 떼어내기’에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것.

실제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고, 김대중 정부 이래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편입 논란 때문에 미뤄왔던 SM-3 미사일 도입은 ‘신형 이지스함 3척 건조’ 결정으로 고삐가 풀렸다. 최근 사드 추가배치 의혹까지 불거져 중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을 서울행 징검다리로 보고 있는 조성렬 위원은 이례적인 시진핑 주석의 19일자 <노동신문> 기고에 대해 “평양에 줄 선물이 없어서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북미간 힘겨루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대폭적인 양보를 끌어낼 묘책이 없고, 치열한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대북 경제제재를 누그러뜨리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기고글은 19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실렸지만 탑기사가 아닌 사설 아래에 작게 배치됐고, 국빈방문 치고는 1박2일의 소략한 일정이라는 점도 이같은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2. 김동엽, ‘북한의 플랜B’ 시동걸기

이에 비해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시 주석의 방북 자체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엽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입장이 안 바뀌면 미국을 통한 지름길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관계 속에서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플랜 B’를 꺼내든 것”이라며 “지난번 러시아 방문이나 최근 유엔이나 국제기구에의 접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연말까지 미국에 협상 시한을 제시했지만 그때까지 미국만 쳐다보고 기다리기 보다는 “6월을 변곡점으로 연말까지 (플랜B로 나아가는) 스텝을 밟아나가겠다는 구상”이라는 것.

김 교수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그런 의미에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시진핑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를 “북한의 선택과 길을 전면 지지하고 협력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주”라고 분석했다.

시진핑 주석은 기고문에서 “우리는 김정은위원장동지의 옳바른 결단과 해당 각측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조선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대세가 형성되고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쉽지 않은 력사적 기회가 마련됨으로써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정과 기대를 획득한데 대하여 기쁘게 보고있다”며 “중국측은 조선측이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는것을 지지하며 대화를 통하여 조선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것을 지지한다”고 분명하게 북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을 의식해 대북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시 주석에게는 심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나는 이번 방문을 통하여 김정은위원장동지와 조선동지들과 함께 중조친선협조관계를 설계하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려고 한다”고 밝혔고, “이미 합의한 협조대상들을 잘 리행”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  지난해 5월 7일 중국 다롄에서 개최된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주하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박태성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간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19일 <통일뉴스> 기고문에서 “지난해 중국 다롄(대련)에서의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 내용 중 중국측이 훈춘-청진간 고속철도 건설과 청진항 개발 사업을 제안했던 것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중국은 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 건설 지원과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등을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지만 국제적 제재에 묶여 실현된 것은 없다.

김한신 대표는 “체제보장과 비핵화를 ‘빅딜’하고 경제발전에 매진하려는 북한의 의중을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증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에 중국자본과 해외자본이 투자하는 형태의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만약, 시진핑 주석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해줄 수 없는 조건에서 30만톤 정도의 대규모 식량지원을 한다면, 카드가 될 수 있다”며 “그 정도면 북한이 협상시한인 연말까지 미국과의 힘겨루기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 정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북미협상 중재 기대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좀더 진전된 비핵화 양보를 얻어내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제재완화의 상응조치를 약속받는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진전”이라며 시 주석이 북측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권고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또한 “미국 측에서도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며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미국 간에 대북 정책에 대한 일치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목표가 같고 대북제재에도 발을 맞춰왔다는 판단이 깔린 것.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조기 재개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9일 ‘2019 한반도국제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아예 “모든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환경조성에 있다"고 초점을 좁혔다.

남문희 <시사IN> 한반도담당 선임기자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진핑이 자신있게 방북하겠다고 나선 걸 보면 그동안 북중간 물밑 조율을 상당히 했나 보다”며 “결국은 1월 북이 약속했던 ‘영변+알파’ 약속을 김위원장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에 줄 수 있는 것은 뭘까? 남 기자는 “지난 1월처럼 북한이 비핵화에서 더 크게 양보해 미국이 유엔안보리 제재를 해제 또는 완화하게 하면 원하는 것 주겠다고 하자니 이미 구문이라 먹히지도 않을 터이고, 결국은 뒤로 드러나지 않게 뭔가를 챙겨주는 식 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뒤가 아닌 앞으로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인도적 지원에 해당하는 식량지원 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의 방북과 중재 역할도 중요하지만 역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미 양자관계에 달려있다는 것은 공통된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북미 간, 또 남북 간에 물밑에서 대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북미 간, 또 남북 간의 대화가 너무 늦지 않게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한참 앞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비건 대표가 판문점이나 평양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 친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해 판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며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을 빼고 비건의 급을 높여서 비건-최선희 제1부상의 고위급실무회담에서 윤곽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입지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으로 더욱 줄어든 느낌이다.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9.19군사분야합의서를 실천하는 길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고유한 영역인 셈이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친서 전달과 이희호 여사의 유족에 대한 조의문 전달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자의 첫 북미간 남북간 직접 소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동향”이라며 “한미 양국은 이러한 계기를 잘 살려 다시 북미대화,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고 나면 김정은 위원장이 10월쯤 답방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 전후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정세상으로는 높아진다”고 관측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시 주석 방북, 북중 정상회담(6.20~21) → 미중 정상회담(6.28~29) → 한미 정상회담 → 남북 정상회담 → 시 주석 방한, 한중 정상회담 →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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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한껏 멋 부린 ‘진객’ 흰눈썹울새

윤순영 2019. 06. 18
조회수 130 추천수 0
 

극히 드물게 찾아오는 나그네새, 날쌘 땅 위의 사냥꾼

 

크기변환_YSY_2326.jpg» 파랑, 빨강, 주황색으로 한껏 멋을 부린 흰눈썹울새 수컷.

 

우리나라가 애초 번식지나 월동지가 아닌 새가 어쩌다 들르는 일이 있다. 반가운 이런 손님을 나그네새라고 부른다. 흰눈썹울새는 나그네새 가운데도 극히 만나기 힘든 새인데, 운 좋게 관찰 기회가 왔다. 지난달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서 흰눈썹울새를 만났다.

 

수컷의 멱과 가슴은 푸른색이며, 가운데는 진한 주홍색 깃털이 있다. 자세히 보면, 푸른 가슴 아래 검은색, 그 밑에 흰색, 진한 주홍색의 깃털이 차례로 나 있다. 가슴과 멱까지 울타리를 쳐놓은 것 같은 깃털이 특이하다. 인디언 추장이 목걸이를 한 것 같다.

 

 

크기변환_YSY_2396.jpg» 흰눈썹울새의 자세가 당당하다.

 

크기변환_YSY_0484.jpg» 꼬리를 바짝 올린 채 풀밭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흰눈썹울새는 땅 위에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한다. 하천과 습지 주변의 갈대밭이나 풀밭에 살며 땅 위에서 곤충이나 거미를 잡아먹는다. 가슴을 활짝 펴고 꼬리를 위로 바짝 치켜든 채 덤불을 바쁘게 돌아다니거나 뛰어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처음 만난 흰눈썹울새는 절대 곁을 주지 않고 얼굴만 내밀었다. 마주치면 숨어버리기 일쑤다. 돌아다니는 동선이 매우 정확하다. 매우 가까이 곁을 주는 듯하다가 멀리 가고 다시 다가오는 듯하다 멀리 떠나는,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다.

 

 

크기변환_YSY_2152.jpg» 몸을 숨긴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1700.jpg» 꼬리를 치켜세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땅에서 사냥하는 새들은 발걸음이 매우 빨라, 위협을 느끼면 재빨리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예민하고 경계심과 조심성이 강하다. 몸을 바짝 세워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크기변환_YSY_0819.jpg» 달음질치는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1804.jpg» 먹이를 사냥하는 흰눈썹울새.

 

빠른 걸음으로 갑자기 ‘휙’ 지나가면 뭐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먹잇감은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사냥당한다. 흰눈썹울새는 진정한 ‘땅 위의 사냥꾼’이다.

 

크기변환_YSY_1940.jpg» 도망치지 않고 버틴다.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크기변환_YSY_2261.jpg» 돌 위에 올라서서 가슴을 한껏 내밀고 자신감을 과시하는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1805.jpg» 다리를 쩍 벌리고 선 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빠른 행동이 다소 방정맞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4~15㎝의 작은 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잠시 멈춰 주변을 살필 때, 이 작은 새는 천하를 호령하듯 가슴을 내밀고 꼬리를 한껏 위로 치켜든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도도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면, 호랑이가 다가와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크기변환_YSY_1676.jpg» 경계심이 강하지만 반대로 호기심도 많다.

 

크기변환_YSY_0539.jpg»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경계한다.

 

크기변환_YSY_2020.jpg» 사냥감을 발견하면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다.

 

나는 새가 나무보다 땅을 좋아하는 것은, 목숨을 걸더라도 먹을거리가 당장 눈앞에 널려있다는 얘기다. 흰눈썹울새는 겨울에 단독으로 생활하다 번식기에 암수가 함께 땅 위에서 산다. 5∼7월 땅바닥 작은 구멍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5∼7개의 알을 낳아 13~14일 동안 품는다.

 

크기변환_YSY_9185.jpg» 바닷가를 찾은 흰눈썹울새.

 

곤충이나 거미를 좋아하지만 식물의 열매도 먹는다. 수풀 규모가 작거나 늪지, 단일 종의 나무숲 산림지대를 좋아한다. 수컷은 다양하고 매우 모방적인 노래를 부른다.전형적인 채팅 방법을 동원하여 수다를 떨듯이 울어댄다 

 

크기변환_YSY_0497.jpg» 바위에 올라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는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2410.jpg» 긴장을 풀고 몸단장을 한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오호츠크해 연안, 캄차카, 알래스카 서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아프리카 북부, 인도, 동남아시아로 이동한다.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봄철에는 4월 초순부터 5월 중순까지, 가을에는 10월 초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통과한다. 귀하고 흔하지 않은 새다. 매우 적은 수가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월동하기도 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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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끼리”라면 개성은 열린다

[기획연재] 6.15와 판문점선언(3) 6.15와 경제협력

6.15공동선언 발표 19돐을 맞아 6.15시절 ‘우리민족끼리’가 사회 전반에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통해 4.27시대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기 위한 과제를 조망해 본다.

[기획연재] 6.15와 판문점선언
(1) 6.15와 민족화해 : 너와 나 함께했던 그 시절
(2) 6.15와 반미자주 : 미국이 점점 싫어지는 이유
(3) 6.15와 경제협력 : '우리민족끼리'라면 개성은 열린다
(4) 6.15와 수구보수

“개성공단에서는 개성공단에 맞는 운전면허증을 발급합니다. 면허증 일련번호 마지막 숫자는 ‘615’로 통용됩니다. 개성공단이 남과 북, 6.15공동선언이 만든 ‘옥동자’라는 의미 때문입니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이 한 라디오(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다.

2000년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 4항.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6.15선언 발표 이후 남북은 착실히 합의를 지켜나갔다.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라 하는 ‘개성공단’.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조선) 아시아태평양위원회의 <개성공단 건설 및 운영 합의서> 체결을 시작으로, 12월 남북이 장관급회담을 열어 <남북경협 4대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2003년 6월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을 연다.

1년만인 2004년 6월, 시범단지 2만 8천 평 부지조성을 완료하고 15개 입주업체를 선정해 입주 계약을 체결한다. 2005년 3월엔 남측 지역에서 개성공단으로 전력공급이 시작됐고, 2005년 12월엔 개성공단과 남측 지역 간 통신이 연결됐다.

▲ 개성공단의 모습 [사진 : 뉴시스]

개성공단이 위치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봉동리는 군사분계선에서 최단거리가 2.5km, 비무장지대에서 서쪽으로 고작 500m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개성공단이 들어서기 전 북한(조선)군 6사단, 64기갑사단, 62포병여단이 배치돼 있었다. 북한(조선)은 개성공단 부지조성을 위해 이 지역 군병력을 10~15km 뒤로 물렸다. ‘군사지역’을 ‘경제협력지역’으로 변화시키고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개성공단이 담당했다. 김진향 이사장이 개성공단을 “평화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개성공단은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노동력과 토지를 활용해 진정한 의미의 ‘남북 상생의 경제협력모델’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징’이라는 표현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개성공단이 처음 가동된 2004년을 시작으로 10년간 개성공단 기업체 수는 8배, 생산액은 30배로 늘었다. 2005년 1500만 달러로 시작해 10년간 누적 생산액은 23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개성공단 방문 인원은 누적 94만 명에 달했다.

2000년 이후 남북교역액은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기 전까지 꾸준히 증가해, 2015년 남북교역 규모는 27억 15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류 건수에 있어서도 2000년 이후 총 470여 건, 이중 개성공단 관련 사업이 총 390건으로 약 80% 이상을 차지했다.

▲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조선) 노동자들 [사진 : 뉴시스]

남북의 경제협력, 나아가 남북 간 긴장 완화와 관계발전에 기여했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 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북한(조선)에 대한 남북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투자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제재 조치 ‘5.24조치’를 발표해 개성공단을 축소하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도 모두 중단했다. 2013년 4월 한미합동군사훈련으로 인해 잠시 가동중단을 겪기도 한 개성공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북한(조선)의 4차 핵실험을 이유로 2월 전면 중단에 이른다.

남북경제교류협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남북철도 연결, 그리고 금강산관광이다.

6.15시대였던 지난 2003년 경의선을, 2005년 동해선 일부를 복원한 남과 북은 철도로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2007년, 한국전쟁 이후 56년 만에 경의선이, 57년 만에 동해선이 남북을 종단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하게 추진된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다.

1998년 금강호 첫 출항 이후 6.15의 바람을 타고 2005년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한 후 금강산관광은, 2008년 이후 10년 이상 멈춰 있다. 그간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200만 명이 넘었다.

6.15공동선언 발표로 활발했던 남북경제교류협력은 결국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모두 멈춰 섰다.

대북제재로 멈춰선 남북경협… 공동선언 정신으로 돌아가야

▲ 사진 : 뉴시스

지난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엔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4월 판문점선언에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 나가기로 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했다.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도 갖기로 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이유이기도 하면서 미국이 대북제재를 시행한 이유는 북한(조선)의 핵실험이다. 북한(조선)은 이를 1년이 훨씬 넘도록 중단했다. 그러나, 원인은 해소됐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여전히 폐쇄상태에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 그리고 한미워킹그룹의 간섭과 통제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은 미국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에 이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 직후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11월 비건을 미국 측 대표로 해, 대북제재와 남북관계를 조정하는 ‘한미워킹그룹’ 출범 이후 미국은 사사건건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했다.

미국은 남북철도 연결, 그리고 금강산관광 재개 역시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8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남과 북은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경의선 북측구간 남북공동조사를 추진했다. 그러나 유엔군 사령부의 통행불허로 무산됐다. 연내 치르기로 한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은 한미워킹그룹을 거치고 나서야 지난해 12월26일 겨우 치를 수 있었다. 전문가들도 “대북제재와 관련없다”, “행정명령으로 재개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금강산관광 역시 대북제재에 묶여있다.

▲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조선)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서울-평양 표지판 제막식’ [사진 : 뉴시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대북제재는 더욱 노골화됐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 “아직 적기가 아니”라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제재 유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경제협력에 노력을 기울이던 문재인 정부에 한미워킹그룹은 한미사이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자리가 아니라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로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김연철 통일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의 발전과 발을 맞춰야 한다”면서 남북관계 발전에 속도조절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제재가 남북경제협력에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제2의 6.15시대, 판문점선언 시대를 열겠다는 시민, 사회단체들의 여론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2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68.9%, 반대 26.5%로 집계됐다. 지난 2017년 6월에 실시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찬성 49.4% vs 반대 39.9%)에 비해 찬성 여론이 약 20%p 확대된 결과다. (사)겨레하나는 6.15공동선언 발표 19주년을 앞두고 지난 14일, 6150명이 작성한 금강산 방문신청서를 통일부에 직접 접수하는가 하면, 금강산 가기 운동은 지역과 단체들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 (사)겨레하나는 지난 14일 6.15공동선언 발표 19주년 맞아 6,150장 금강산 방문신청서를 통일부에 직접 접수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온 겨레가 북남관계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4월 시정연설에선 “(대북제재는)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인 것만큼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도 방관시 할 수도 없다…”면서 제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사 또한 명확히 했다. 6.15공동선언, 판문점선언을 합의했던 정신으로 돌아와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지다.

지난달 17일, 정부는 3년 만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점검을 위한 방북신청을 승인하면서 “기업인들의 조기 방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경제협력과 남북관계 개선, 대북제재를 대하는 남쪽의 선택 역시 다른 데 있지 않다. 6.15공동선언과 이를 계승한 판문점선언에 답이 있다.

“나라의 통일 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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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부인 “그냥 아는 아저씨, 내가 아니면 결혼 못할 것 같았다.”

검사가 돈을 쫓아가면 스폰서 검사로 타락합니다
 
임병도 | 2019-06-19 09:02: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윤 후보의 이력이야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 언론은 잘 보도되지 않았던 그의 부인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윤 후보자 부인의 재산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윤 후보자가 부인과 결혼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줘
돈도 없고 내가 아니면 결혼 못할 것 같았다.

윤석열 후보자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스님이 나서서 결혼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윤 후보를 왜 아는 아저씨라고 불러왔을까요? 김 대표는 윤석열 후보자보다 12살이 어립니다. 단순히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결혼 당시 윤석열 후보자의 나이는 53살이었습니다.

윤 후보자가 53살에 결혼했으니 재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혼입니다. 김 대표의 말처럼 그냥 아는 아저씨처럼 살다가 옆에서 보다 못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준 셈입니다.

윤석열 후보자의 결혼이 늦은 이유는 사법시험을 무려 9수 끝에 합격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윤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 재학 도중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학내 모의재판에서 검사역을 맡았습니다. 윤 후보자는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한동안 강원도로 도피하기도 했습니다.

윤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차에서 계속 낙방하다가 1991년에야 합격합니다. 32살의 나이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윤 후보자는 나이가 많았던 탓에 23기 사이에서는 형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자보다 4살 어린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이 4 기수 선배이고, 14기였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고작 1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 ‘아저씨’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대표는 윤석열 후보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가진 돈도 없고 내가 아니면 영 결혼을 못 할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결혼할 때 남편이 가진 것은 통장에 2000만 원이 전부
자기 명의 집도 없는 검찰총장 후보

김건희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결혼할 때 보니 남편이 가진 것이라고는 통장에 2000만 원이 전부였다. 돈이 너무 없어 결혼 안 하려고까지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윤 후보자가 돈이 없었던 이유로 “빚내서라도 자기가 먼저 술값 내고 밥값 내는 사람이라 월급이 남아나질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마 윤 후보자가 나이가 많았기에 형이라며 따르는 사람이 많아, 술값이고 밥값을 도맡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윤 후보자가 돈이 없는 것은 결혼하고 7년이 지났지만 똑같습니다. 2019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을 봐도 윤 후보자의 재산은 예금 2억 1300만 원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김건희 대표의 재산입니다.

김건희 대표의 재산을 살펴보면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의 토지와 서울 서초구에 주상 복합 건물 한 채가 있습니다. 이외에는 49억의 현금과 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산 내역 어디를 봐도 윤석열 후보자 명의로 된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집도 한 채 없이 살아온 것입니다.

윤 후보자가 재테크 등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그가 여주지청장 시절이었던 2013년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잘 드러납니다. 당시 윤 후보자는 부인 재산 신고를 누락했다는 오해를 받았는데, 재산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대출금 4억 5000만원까지 포함해 과다 신고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윤석열 후보자는 “지난해 결혼해 처음으로 아내 재산을 신고하면서 착오가 생겼다”고 해명했는데, 착오가 아니라 재산 신고를 별다르게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검사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부동산이 하나 없었던 사람이 부인이 보유한 부동산을 신고하려니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부인 재산? 김건희 대표 재산이 맞다.
결혼 후 재산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까먹고 있다.

만약 지금 윤석열 후보자가 이혼하면 재산분할은 어떻게 될까요? 윤 후보자 예금 이외에는 분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보유한 재산 대부분은 김건희 대표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윤 후보자의 기여도는 0입니다.

“결혼 전에도 시아버지가 맨날 남편 빈 지갑 채워주느라 바빴다고 들었어요. 결혼 후 재산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까먹고 있어요. 나중에 변호사 하면 그래도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그 기대도 접었습니다. 1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의뢰인들 혼내다 끝났다고 하더군요.”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주간조선 인터뷰 )

언론은 윤석열 후보자 부인의 재산이 50억이 넘는 점을 앞다퉈 강조합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미 결혼하기 전이었던 1990년대 IT 주식으로 종잣돈을 마련해 문화콘텐츠 등의 사업으로 재산을 만들었습니다.

김건희 대표는 윤 후보자를 가리켜 “남편은 거짓 없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부인이라 남편을 치켜세운 말은 아닙니다.

과거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국회의원 당선 후 사법연수원 동기들끼리 축하 모임을 했습니다. 당시 윤석열 검사는 모임에 참석해 10분 간 말없이 술 한 잔만 마시고 떠났습니다. 박범계 의원은 “국회의원과 현직 검사가 사석에서 함께 있으면 검찰의 정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검사가 돈을 쫓아가면 스폰서 검사로 타락합니다. 그런 면에서 윤 후보자는 평생을 돈이 아닌 검사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지만, ‘검찰 장악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는 참여할 듯보입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내내 윤 후보자의 부인 재산을 공격하며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집 한 채 없이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석열 후보자에게 물을 것은 부인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가 아닙니다. 앞으로 검찰 개혁을 어떻게 해나가고 끝까지 국민에게만 충성하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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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

“정부가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6/18 [23:16]  최종편집: ⓒ 자주시보
 
 

경찰이 지난 3~4월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김 위원장이 간부들과 사전 공모해 국회에 무단 침입하는 등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가 상당하고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에 민주총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정부가 결국은 그릇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정책 추진에 거세게 저항하는 민주노총을 굴복시키기 위한 시도이며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극우 집단들의 끊임없는 민주노총 때리기에 대한 편승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정가 구속하려 하는 것은 김명환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라며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아 노동기본권 보장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더욱더 힘찬 투쟁에 온 몸을 던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경사노위 불참에 대한 정치 보복이며적폐세력의 반격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 만들기라며 “‘너희도 민주노총 꼴 나기 싫으면 잠자코 순응하라는 대국민 협박에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민중당은 온갖 불법으로 경영권 승계하고 증거까지 인멸하는 재벌과는 희희낙락 맥주 마시며 기념사진이나 찍는 주제에 노동자에게 불법 시위를 죄로 묻다니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불법이 그렇게 죄라면 이재용부터 잡아 가둬라고 주장했다.

 

노동당도 성명을 통해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대응은 노동존중 사회가 얼마나 기만인지를 다시 보여준다며 노동법 개악이 전제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라며 민주노총 길들이기를 시도하더니이제는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찰은 당시 국회 앞 투쟁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74명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 하고 있다민주노총 조직쟁의실 소속 간부 3인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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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영장 신청에 대한 민주노총 성명

 

정부가 결국은 그릇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

 

경찰은 18일 온갖 혐의를 붙여 김명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이는 개별 사안으로 책임을 몰아 본질을 흐리려는 탄압에 불과하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정책 추진에 거세게 저항하는 민주노총을 굴복시키기 위한 시도이며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극우 집단들의 끊임없는 민주노총 때리기에 대한 편승이다.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대변하는 조직이다정부가 구속하려 하는 것은 김명환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다.

 

민주노총이 이 같은 겁박에 굴복한다 생각하는가정부가 자본의 탐욕과 구태에 무릎 꿇고 이전과 다름없이 후진국형 저임금장시간 노동체계를 유지하고 악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인 이상민주노총의 답변은 확실해졌다.

 

민주노총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아 노동기본권 보장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더욱더 힘찬 투쟁에 온 몸을 던질 것이다.

 

2019년 6월 18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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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노동신문 기고 통해 ‘북중친선’ 강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6/19 11:18
  • 수정일
    2019/06/19 11: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반도 문제 관련 대화와 협상 진전 이루도록 추동”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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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09: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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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일 북한을 첫 국빈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19일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북중친선 강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진전 추동 의지를 밝혔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날 시 주석은 ‘중조친선을 계승하여 시대의 새로운 장을 계속 아로새기자’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조친선협조관계를 공고발전시킬데 대한 중국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변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 측은 김정은 위원장 동지께서 조선당과 인민을 이끌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관철하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개선에 총력을 집중하여 조선이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롭고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시는 것을 견결히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의 올바른 결단과 해당 각측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조선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대세가 형성되고 조선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역사적 기회가 마련됨으로써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정과 기대를 획득한데 대하여 기쁘게 보고 있다”면서 “중국 측은 조선동지들과 함께 손잡고 노력하여 지역의 항구적인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함께 작성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하여 김정은위원장동지와 조선동지들과 함께 중조친선협조관계를 설계하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략적 의사소통과 교류를 강화하고 서로 배우면서 전통적인 중조친선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할 것”이고 “고위급 내왕의 훌륭한 전통과 인도적 역할을 발휘하여 중조관계발전의 설계도를 잘 작성하고 중조관계발전의 방향을 잘 틀어쥘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여러 급의 의사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당적교류를 심화시키며 국가관리 경험을 교류하여 자기 당과 자기 나라의 사업을 훌륭히 계승하고 훌륭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고 “친선적인 내왕과 실무적인 협조를 강화하여 중조관계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의사소통과 대화, 조율과 협조를 강화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며 “중국 측은 조선 측이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는 것을 지지하며 대화를 통하여 조선 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조선 측 및 해당 측들과 함께 의사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조선반도문제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이 이룩되도록 공동으로 추동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방북 기간 시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과 회견, 회담하고 평양 시내에 있는 ‘중조우의탑’ 등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확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주일 사이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모두 만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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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혀있는 진실, 유해의 주인 찾아낼 수 있을까?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19-06-18 10:50:31
수정 2019-06-18 10:50:3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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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10세 아동을 성폭행한 35세 남성의 형량이 2심에서 대폭 감형돼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누리꾼들은 2심 재판부 재판장의 이름과 사진을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아동 성폭행범 감형 판사를 기억하자’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습학원 원장 이 씨(35)는 지난해 4월 채팅앱으로 만난 초등학생 A 양(10)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소주 2잔을 마시게 한 뒤, 취한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3일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한규현)는 이 씨의 항소심에서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를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미성년자의제강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이 씨의 정보를 5년간 공개하고,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의 취업제한과 보호관찰 5년을 명령했다.

1심과 2심의 형량을 가른 것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 인정 여부다. 이 씨는 애초 해당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은 이를 유죄로 봤다. 해당 혐의는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다.

그러나 2심은 강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씨가 A 양을 ‘폭행·협박’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대신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면 폭행·협박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 혐의를 인정했다. 형법은 해당 혐의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선고 직후 각종 SNS는 한규현 판사의 이름과 사진으로 도배됐다. ‘자기 자식이어도 그랬을까’, ‘국민 법 감정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등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다음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판사 파면하라”라는 제목으로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청인은 “어떻게 아동과의 관계를 합의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라며 “가해자들의 감형은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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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안 때렸으니 강간 아니다?
35살 남성이 10살 여아 눌렀는데 ‘폭력’ 아니라는 법원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고법은 지난 17일 이례적으로 사후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해명에 나섰다. 선고와 동시에 판결문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일은 종종 있으나, 논란이 된 판결 내용에 대해 사후에 해명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원은 피해자 진술만으로 이 씨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시 피해자 진술을 녹화한 영상물만으로 ‘이 씨가 손으로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은 “(영상물 속) 피해자는 ‘이 씨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라고 진술했는데, 조사관이 ‘이 씨가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라는 취지로 묻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라며 폭행 여부 관련 경찰 조사가 불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나이가 만 10세 불과하다는 사정을 염두에 놓고 살펴봐도, 이 씨가 피해자의 몸을 누른 행위가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가 법정 진술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지만, 피해자가 증인 출석이 어렵다는 의사를 밝혀 무산됐다고 법원은 덧붙였다.

법원의 이러한 해명은 상식적으로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35세 성인 남성이 10세 여아의 몸을 눌렀다면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법체계는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강간죄를 인정한다. 이른바 ‘최협의설’은 피해자의 저항 여부로 폭행·협박을 가장 좁게 해석해 현실 속 성폭력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두 사람의 물리력 차이를 생각한다면 최협의설로 판단해도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강간죄 구성요건인 ‘폭행’은 주먹 등으로 신체를 때리는 행위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물리력까지 모두 폭행으로 간주한다. ‘이 씨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라는 피해자 진술을 근거로 이 씨의 강간 혐의에 면죄부를 준 법원이 비판받는 이유다.

가해자 의심한 1심은 유죄
피해자 의심한 2심은 무죄

2심 판단이 잘못된 이유는 1심과 비교해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강간죄를 판단할 수 없다던 2심과 달리,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이 씨의 강간 혐의를 유죄로 봤다.

1심은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자연스러워 믿을만하다고 판단했다. 2심이 강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근거로 든 ‘이 씨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라는 피해자 진술에 대해, 오히려 1심은 “솔직하다”라고 평가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증언임에도 피해자가 숨기지 않고 말해 진술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두 사람의 나이 차이 등을 생각하면 가해자가 몸을 누르는 행위만으로도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 씨의 폭행을 인정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가해자의 진술 번복을 고려하지 않았다. 1심은 이 씨의 강간 혐의를 인정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의 진술 신빙성을 따졌다. 조사 과정에서 처음 이 씨는 피해자와의 성행위 자체를 부인하다가 DNA 증거가 나오자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력은 아니다’로 말을 바꿨다.

이번 판결에서 사법부가 여전히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형식적인 법리에만 치우쳐져 있음이 드러났다. 13세 미만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를 무조건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할 때, 직접적인 폭행·협박 여부가 아동·청소년 성폭행범의 형벌을 결정하는 중대한 기준이 된 이번 판결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다.

폭행·협박은 가중 처벌의 요소일 뿐, 그것이 없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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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기득권 안주라는 달콤한 유혹을 벗어던져야 한다

<시론> 소수기득권과 부정의, 민중과 정의의 요구앞에서 양자택일해야 한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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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보통 그 자리를 차지하기위해서 온갖 미사여구와 화려한 언변을 동원해야하는 자리이다. 군사깡패도당은 말할가치조차 없지만 소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인물들조차도 온갖 달콤한 말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구슬러서 일단은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고 보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속성이 아닌가하고 그 구성원들이 이제 여기는 상황이다. 이것은 정치권력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산산히 깨져버린 이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암담한 단면이 아닐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지난 대선에 나서서 온갖 화려한 수사로 자신이 당선되면 무슨 무슨 일을 해주겠다, 어떤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온갖 있는 없는 약속을 다해서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국민대중의 여망을 안고 행정부수반이라는 최고결정권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자세는 그가 과연 그같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조차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이석기 의원이나 노조 통일인사 등 양심수들의 석방, 납치된 북식당 종업원의 귀환조치 등 마음만 먹으면 할수있는 최소한의 조치조차도 취하지 않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자세는 한마디로 촛불정권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스러운 철저한 전대 보수정권의 지속, 그것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다. 대체 무엇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는 말인지 묻고싶다. 
 
그 가운데서도 국민들과 한 가장 큰 약속이 바로 부정부패를 뿌리뽑고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부의 불균등해소 부정부패척결 재벌개혁 양심수석방 규제개혁 대미종속탈피 사드폐기 갑갑한 남북합의 실천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국민들은 제대로 나가고 있다고 느끼질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여망을 대변하지 않고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 그는 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일까. 그가 변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그런 인물이던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자리란 국민들의 온갖 소망을 대변하는 자리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실상은 기득권을 고수하고 지켜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즉, 일단은 그 자리에 올라가봐야 그 인물의 본질적인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당선되기 전에 아무리 꿀발린 소리를 해 봐야 그것은 하나의 신기루일 뿐인 것이다.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간 이후에 기득권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민중의 편에 사느냐는 오로지 그 인물의 됨됨이와 그릇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된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지금 대통령과 집권당은 충분히 할수도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기본적인 일 조차도 방기하고 또 외면하고 있다. 양심수석방 같은 최소한의 조치조차도 외면하면서 마치 야당등 기득권의 저항으로 인해 할일을 못하는 것처럼 대립구도로 만들며 민중들의 눈을 호도하기에 급급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그들만의 정략적 정쟁이며 기득권체제를 개선시킬 의향이 배제된 그들만의 닭싸움식 대척구도를 즐기고 있다는 말이된다.  
 
국민대중들은 지금 엄청난 회의와 함께 정치염증을 느끼고 있다. 적폐를 청산해 줄 절호의 기회를 놓칠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으로 비판도 지지도 할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여론이 양분되고 국론은 분열되고 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국민들은 또 다시 분노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꼭 때를 놓친후에 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개혁을 못했다고 땅을 칠 것인가. 얼마나 더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인 자세를 보여줄 것인가.
 
 
촛불민심은 지금의 문재인 정권에 대해 둘도 없는 기회를 주었다. 천금과도 바꿀수 없는 민심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끝까지 나몰라라하고 이런 민심을 외면한다면 성난 민심은 추호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 집권당의 자리가 그리도 느슨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적폐에도 못하고, 재벌에도 못하고,  미국에도 말 못하고, 오직 야당만을 상대로 한 인기대결 여론조사 결과만 내세워서 무얼 어쩌자는 말인가. 그것이 한때 인권변호사였던 대통령의 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인가. 
 
대체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그저 검찰이나 내세워 뒷조사나하고 몇몇 구속시킨다고, 행사장에 가서 몇마디 진보적인 발언 따위로 차별성을 보인다고해서 이 나라가 달라지고 이 땅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대다수 정책들에서 재야세력과 시민단체 노동자대표 단체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촛불정부가 가야할 길인가. 지금 상황에서 재벌의 경제기여를 강조하며 삼성의 재벌범죄자와 함께 동행하면서 재벌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취하는것이 과연 국민들의 개혁여망에 부응하는 행위인가. 언제까지 어처구니없는 촛불정부 흉내를 내자는 것인가. 
 
문재인 정권은 이제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자신들의 뿌리라는 참여정부에서 저지른 실수를 수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이같은 자세가 계속된다면 민심은 철저하게 촛불의 배신자들로부터 등을 돌릴 것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스스로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달콤한 유혹을 먼저 벗어던져야 한다. 소수기득권과 부정의, 민중과 정의의 요구앞에서 이제는 양자택일해야 한다. 권력의 달콤한 맛에젖어 복지부동하는 아랫사람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본인에게 적폐청산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스스로가 계속해서 이리 저리 눈치를 보면서 지금처럼 양다리를 걸치다가는 정권자체가 공중분해되고 다시 적폐들의 세상이 다가올 것이다. 그 험악한 꼴을 국민들이 또 다시 감당하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박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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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남북 정상회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인터뷰]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9.06.18 09:50:23
 

 

 

 

이달 말로 계획된 한미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 분수령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며 재차 북한에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남북 정상 간 먼저 만나 비핵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전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실제 북한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책임이 남한에도 있는 만큼, 남북 정상회담의 목적을 북한의 비핵화에만 한정 지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올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언급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에 의해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교환하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는데, 회담 이후 미국 내부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핵 신고'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분석했다.  

갑작스러운 핵 신고 카드에 북한은 '강도'라는 표현을 쓰며 극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인 미군 유해 송환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이는 미국에 불만은 있지만 일단 협상은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그렇게 7~8월이 지나간 이후 9월 19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핵 신고와 종전선언 교환이 북미 간 협상의 핵심이었던 이 때 남북은 이 프레임을 뛰어 넘어 영변 핵 시설 폐기라는 다른 카드를 제시했다.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덮을 수 있는 더 큰 프레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남북은 평양공동선언 5조 1항에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하면서 검증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이 합의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문제는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이 이 합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았고, 미국과 협의된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김동엽 교수는 "한미 사이에 종전선언과 신고‧검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공유된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조항이 한미 양측 간 사전에 논의된 결과였다면 이후 협상은 좋은 방향으로 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영변 핵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치로 덮어버린 상황에서 북한은 올해 2월 미국과 2차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여기서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5개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결과는 회담 결렬이었다.  

김 교수는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 합의한 것을 미국에 요구한 셈"이라며 "따라서 이 회담은 북미 간 결렬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 5조 2항의 결렬이고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결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북한이 남북 관계에서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5조가 무산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9월 평양공동선언 전체가 불발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실제 북한의 매체들에서 남한에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는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일까? 김 교수는 "아예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북미 간 협상에서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행동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마치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를 하기 위한 디딤돌인 것처럼 인식돼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 자연스럽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북한은 남북 간 9월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을 가지고 남한이 트럼프를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은 우리와 만나봐야 또 우리를 설득하려고 할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며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남북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는 중요하다. 남북 정상이 남북의 평화를 보여주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깨지는 않지만 담대함을 담은 내용이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지난 2월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추가적인 정상회담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이에 어떻게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후 협상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면 우선 2차 정상회담의 결렬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김동엽 : 2차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측 모두 서로에 대한 이해 및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실기하고 실수하게 된 것인데, 북한은 실기, 실수라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한이 이렇게 실기, 실수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남한이 제공했다고 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1차 북미 정상회담에 비해 남한이 아주 깊게, 간접적으로 개입됐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이 가능해 보인다.  

일단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부터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회담에서 나온 북미 공동선언만 보자면 이 회담은 북한의 명백한 승리였다. 또 당시 회담에서 합의문에는 담겨있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북한 <노동신문>, 또 회담 이후 나왔던 북한의 입장 등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데 북한은 1차 정상회담 이후 2~3달 동안 종전선언을 대단히 강조했다. 또 안팎에서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북미 간 종전선언과 관련한 약속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에서 제재와 연락사무소 이야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상당 부분 구체성이 있는 대화가 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조치가 담겨있지도 않았던 합의문을 들고 미국에 돌아갔을 때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 본인이 북한과 이야기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합의문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종전선언과 북한의 핵 신고가 교환돼야 한다는 프레임이었다. 

이건 북한 입장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프레임이었다. 북한 입장에서 종전선언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핵‧미사일 시험 유예한 것에 대한 미국의 대응조치라고 생각했다. 즉 북한은 이같은 조치를 비핵화 프로세스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 정도는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싱가포르의 북미 공동선언을 통해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동이 걸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어떻게 보면 치욕스럽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중국의 비행기를 빌려 타고 싱가포르까지 날아갔다. 이를 보더라도 김 위원장이 이미 비핵화를 향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인민들에게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나 국제사회의 제재에 굴복해서 싱가포르행을 택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대신 미국과 담판을 통해 인민들이 경제에 매진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핵을 사실상 내려놓으려는 상황에서 그러면 안보는 어떻게 하냐는, 내 자식들 군대에 가 있는데 국가 안전은 누가 지키냐는 생각이 인민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유를 정당화하고 인민들의 불안함을 달랠 수 있는 카드가 종전선언이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을 받아 왔다고 하면 인민들은 김 위원장의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최소 9.9절 전에 이를 달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가서 엄청난 비판에 시달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종전선언에 대한 확답을 주는 대신 '핵 신고'라는 또 다른 조건을 던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7월 평양에 들어가서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더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폼페이오가 평양을 떠난 이후 미국이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거기서 판을 깰 수 없었던 북한은 일단 북미 합의대로 유해송환은 진행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당시 양보하고 핵 신고와 종전선언을 교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설사 북한이 양보해서 미국이 제시한 이번 허들을 넘었다고 치더라도 이후에도 허들은 계속 생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의 모든 나라와 관계에서 강자가 패자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프레임을 계속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단 약속한 유해송환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이 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9월 19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여기서부터 찾을 수 있다.  

프레시안 : 남북 정상회담이 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김동엽 : 평양에서 열린 당시 회담의 결과를 보면 남북은 '종전선언 대 핵 신고' 라는 허들을 넘지 않은 상태에서 '장대높이뛰기'를 시도했다. 즉 기존에 북미 간 이야기되고 있던 차원을 넘어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할테니 미국에게 싱가포르 합의 정신에 따라 다음 조치를 취하라는 식으로 협상의 프레임을 바꿨다. 남북은 9월 평양 공동선언 5조에 이 내용을 담았다. 

북한은 자신들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없앴다면서 이제 종전선언 하자고, 출발점에 들어섰다고 했는데 미국은 "그게 출발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풍계리 정말 없앴는지 모르겠는데?"라며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북한은 5조에 검증을 이야기했고 1항에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집어 넣었다.  
 

▲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9일 평양 백화원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9월 평양 공동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즉 미래 핵의 물리적 장소인 풍계리와 미래 미사일과 관련한 물리적 장소인 동창리를 모두 없애고, 미국이 못믿겠다고 하니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이를 진행하겠다며 검증을 시사한 것이다. 물론 1항에는 동창리만 언급돼있으나 이는 풍계리에 대한 검증도 가능하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미국에서 종전선언을 못하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북한의 풍계리 폐쇄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북한이 미국에 "너네들이 여기 들어와서 직접 보라"고 한 것을 미국이 넙죽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검증단이 들어갔는데 북한 말대로 정말 풍계리가 모두 폐쇄됐다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부분에 있어서 남한과 미국이 협의가 안됐던 것 같다는 점이다. 즉 한미 사이에 종전선언과 신고‧검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공유된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조항이 한미 양측 간 사전에 논의된 결과였다면 이후 협상은 좋은 방향으로 풀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전에 논의된 것은 없었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은 하노이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은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민생 부문의 5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는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5조 2항과 연관돼 있는 사항이다. (평양공동선언 5조 2항 :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즉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남북 간 평양에서 합의한 내용을 미국에 요구한 셈이다. 따라서 이 회담은 북미 간 결렬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 5조 2항의 결렬이고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결렬된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 북한이 남북 관계에서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평양공동선언의 5조가 무산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9월 평양공동선언 전체가 불발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매체들에서 남한에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프레시안 : 종합해보면 북한은 남북이 합의한 대로 북미 회담을 추진했고 이를 미국이 보장해줄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은 셈이다. 

김동엽 :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 당시 평양공동선언에 사인하기 직전 김 위원장과 단독 회담을 했다. 당시 회담 마치고 나오는 문 대통령의 얼굴이 상당히 어두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이 이 때 5조 2항에 언급돼있는 미국의 상응조치 부분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 같다. 즉 제재 해제를 위해 남쪽이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 같다. 

실제 남북 정상회담 끝나고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순방 중간중간에 계속 제재 해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도 남한 정부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라는 문구를 집어넣는 대신 제재 해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받은 셈인데, 대통령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참모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를 말렸어야 했다.  

프레시안 :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남한의 상황 인식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인가?  

김동엽 :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본다. 평양공동선언에 넣은 내용을 미국에 설득했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남한 정부가 이러한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이야기는 안하고 대통령이 제재 이야기만 하다가 미국이 세게 견제하니까 사실상 북미 중매 역할을 끝낸거 아닌가 싶다.  

북미 양측이 하노이에서 만나게 됐는데 중매를 했던 이후에 남한은 '이제 만나게 했으니까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빠진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믿고 갔다가 결국 창피만 당하고 돌아온 셈이 된 것이다. 

북한의 실기는 경제적 발전을 해야한다는 김 위원장의 조급함과 상황 자체에 대한 안이한 판단, 여기에 남한의 중재 등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미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나? 

김동엽 : 1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코너에 몰려있던 트럼프는 그래도 북한과 협상을 복원해보기 위해 종전선언 대 핵 신고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김 위원장의 양보를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 프레임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10월 이후에 제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미국은 남한에 경고장을 날렸다. 그래서 우리가 중매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미 간 협상 상황을 6월 12일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빅딜' 아니면 '노딜'로 가려고 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강자로서 북한을 굴복시킨 상태로 승전물을 가지고 워싱턴에 돌아갈 수 있으면 협상이 성과가 있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 결과물은 없는 것이었다.  

또 트럼프는 북한이 빨리 비핵화를 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급함을 읽은 것 같다. 그걸 알고 북한에 더 센 요구사항을 던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핵화 협상의 답은 북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래도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했다. 즉 트럼프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고 하더라도 협상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 지난해 5월 24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의 '목적' 바꿀 때  

프레시안 : 북한이 남한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와 인도적 지원에 대해 일체 대응하지 않는 것이 핵 문제와 관련한 남한의 중재 역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가? 

김동엽 : 그렇다고 본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북한은 자신들이 남한을 믿은 것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불신도 있고. 

그런데 지금 비핵화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북미 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은 아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북한을 불신하기보다는 오히려 신뢰하고 있을 수 있다. 싱가포르, 하노이까지 온 김정은을 통해 미국은 오히려 그의 비핵화 의지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에 의지가 있냐고 묻는 것은 '너가 비핵화 한다고? 너 비핵화 하는 순간 죽여버릴 건데 그래도 할 수 있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으니 지금보다 더 꿇으라는 것이다. 즉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신뢰로 인해서 생기는 강자의 유혹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는 미국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보장자 역할이 아니라 미국 내부를 움직이는 것에 힘을 써주는 역할이 더 필요하다.  

프레시안 :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김동엽 : 북한은 남북, 북미 관계를 따로 가져가려는 것 같다. 즉 북미 관계에서 남한의 중재나 촉진 역할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이런 것이 북한 내부 인사에도 반영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교체됐는데, 이는 지난해부터 협상 국면을 만들어 온 서훈-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을 더 이상 가동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그동안 유지됐던 남북미 라인이 필요없어지게 됐다는 뜻이고 이는 남북은 남북대로, 북미는 북미대로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남한이 미국을 설득하는 모습은 기대하지 않겠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그러면 북미 간 협상에서 이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어진 것인가? 

김동엽 : 아예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북미 간 협상에서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행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 남북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마치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를 하기 위한 디딤돌인 것처럼 인식돼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 자연스럽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선순환 관계가 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미국의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남북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남북 간 군사적 합의를 이행하고 사람이 오가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고 이를 국제사회에 보여준다면 그 자체로 미국을 설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여전히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가지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동엽 : 우리가 북미 간 사안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친서만 보더라도 현재 남한이 상당히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지금까지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가지고 있던 구조를 깨자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북미를 견인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해 5월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꺼질 뻔한 1차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렸다. 또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8월 교착상태를 보였던 북미 간 협상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시동을 걸게 했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이 1,2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남한의 역할에 대한 북한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한은 남북 간 9월 합의 내용을 가지고 남한이 트럼프를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은 우리와 만나봐야 또 우리를 설득하려고 할거야'라는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를 설득하겠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남북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면 남북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들고 나가야 할까? 저는 여기서 남북의 평화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게 좀 교묘하게, 즉 국제사회의 제재를 깨지는 않지만 뭔가 좀 담대함을 담은 내용이 필요하다. 미국이 보면 기분은 나쁘지만 당장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는 없는 것이 필요하다. 

김정은, '새로운 길'로 가나?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연말까지로 협상 시한을 사실상 정해놓은 상태다. 또 올해 신년사에서는 '새로운 길'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이 북미 협상이 아닌 새로운 길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동엽 : 북한이 유엔이나 국제기구, 국제사회에 식량 문제를 이야기하며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낼까? 아프리카 돼지열병 문제도 국제사회에 이야기한 이유가 뭘까? 하나는 정말 이게 문제적인 사안이고 북한이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전 북한이었으면 국제사회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에 이렇게 태도가 바뀐 이유는 '우리 국가 제일주의'와 '새로운 길'에 있다고 본다.  

북한은 지금 만들어 놓은 핵을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핵을 내려놓고 경제 발전하고 국가를 정상적으로 가져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해내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은 미국과 담판이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핵 신고' 카드를 들고 나왔음에도 북한이 협상 판을 깨지 않은 이유는 미국과 담판이 경제 발전과 정상국가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인 지난 3월 주중국, 주러시아, 주유엔대사를 평양으로 소집했고 중국과, 러시아와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우군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또 남한에 대해서도 실망은 했지만 남북 관계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게 남북이 나름 계속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에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이게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속 이러한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는 생각이 북한에 있는 것 같다. 북미 간 담판이 아닌, 정교한 '플랜 B'를 만드는 것이 북한의 새로운 길이라고 본다. 
 

▲ 지난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로동신문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는 지름길을 생각하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자력 갱생'을 바탕으로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주변국뿐만 아니라 특히 남한과 잘 지내야 한다. 남북관계가 나쁜데 국제사회에서 평화나 비핵화를 이야기할 수 없지 않나? 그러니까 이를 통해 국제사회와 소통하려고 할 것이다. 대북 제재를 통해 굴복시키려는 세력을 '닭 쫓던 개'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완전히 미일 동맹으로 붙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유연함과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한미동맹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이 손을 놓지 않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이 한반도의 평화를 전달할 수 있는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즉 남한에서 북한에 이번에는 북미 정상회담이나 비핵화 이야기하지 말고 남북 이야기하자고 어젠다를 던지면 북한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북한이 연말을 제시한 이유는 북한이 미국의 정치 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 선거 앞뒤로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내년에 있기 때문에 북한은 그걸 알고 연말이라는 시한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원활하게 가져가면 이것 때문에 미국이 움직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대한 반발로 지난달 초에 방사포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동엽 : 북한의 반응을 너무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북한은 상대방의 훈련에 대한 자신들 자체 매뉴얼에 따라 그들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본다. 또 이렇게 해야 나중에 협상 국면에 가서 이를 하나의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남쪽만 훈련하고 북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군의 사기 문제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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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100인 청와대 앞에서 삭발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6/18 [07: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100인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집단 삭발식을 진행했다. (사진 : 학비노조)     © 편집국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00인 집단 삭발식을 가졌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는 17일 오전 11시 청와대 사랑채 옆 도로에서 집단삭발식 및 대통령 공약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공정임금제’ 시행과 교육공무직 법제화’ 등을 요구했다.

 

▲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 : 학비노조)     © 편집국

 

학비노조는 오늘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의 청와대 집단 삭발은 3년차 문재인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하는 상징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며 왜 보수야당과 재벌들적폐세력의 공격에 초심을 잃고 운전대를 돌리는가?”라고 현 정부를 비판했다.

 

학비노조는 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60~70% 수준인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을 80%수준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며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격차 80%의 공정임금제는 2017년 더불어 민주당 대선공약집 87페이지에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학비노조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50%가까이를 차지하는 학교비정규직은 작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가장 큰 규모의 피해 직군이라며 단체교섭으로 어렵게 만든 복리후생비가 산입범위에 포함되면서 일부 직원은 작년보다 임금이 줄어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집단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 : 학비노조)     © 편집국

 

또한 학비노조는 전체 교직원의 41%를 차지하는 학교비정규직을 당당한 교육의 주체로 인정해 달라며 교육공무직에 대한 법제화를 요구했다학비노조는 교육공무직법은 2016년 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야당국회의원으로 대표발의하고 100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동참했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학비노조는 전국 교육청이 두 달 넘게 집단 교섭을 파행시켰다며최근 시작된 본 교섭에도 불성실하게 임한다면 7월 초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교육부 17개 시도교육청과 집단교섭을 진행하고 있으나, 2달째 교섭절차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비노조는 18일 오전 11시 파업찬반투표 결과발표 및 총파업 선포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7월 2일 최종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개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 삭발로 7월 총파업 결의를 다지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사진 : 학비노조)     © 편집국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식이 이어졌다. 100명의 노동자들이 삭발을 거행하자 곳곳에서 울음들이 터져 나왔다.

 

학비노조의 기자회견 후 서비스연맹 차원으로 ‘7월 총파업 승리결의대회를 개최하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을 벌였다. 

 

▲ 청와대 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참가자들. (사진 : 학비노조)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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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집단삭발식에 임하는 학교비정규직노동자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기자회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100인의 삭발은 유래가 없는 투쟁이다.

 

오늘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의 청와대 집단 삭발은 3년차 문재인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하는 상징적인 자리가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바램은 한결같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대통령의 약속을 지켜주라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확실히 해달라는 것이다왜 보수야당과 재벌들적폐세력의 공격에 초심을 잃고 운전대를 돌리는가촛불로 이번 정부를 탄생시킨 노동자들은 이렇게 삭발과 눈물로 여전히 호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은 올해 2019년이 대통령의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 이행을 받아낼 마지막 해라고 생각한다마지막이기에 더 절절한 마음으로 투쟁한다.

 

먼저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60~70% 수준인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을 80%수준으로 올려 달라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격차 80%의 공정임금제는 2017년 더불어 민주당 대선공약집 87페이지에 있는 내용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50%가까이를 차지하는 학교비정규직은 작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가장 큰 규모의 피해 직군이다단체교섭으로 어렵게 만든 복리후생비가 산입범위에 포함되면서 일부 직원은 작년보다 임금이 줄어들게 되었다.

 

2019년 집단교섭의 사용자 측 당사자인 교육부와 학교비정규직의 실질 사용자인 정부가 책임있는 입장을 보여 달라!

 

둘째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학교비정규직 즉, ‘교육공무직에 대한 법제화를 요구한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정원 배치기준과 인건비 예산 기준이 마련하고전체 교직원의 41%를 차지하는 학교비정규직을 당당한 교육의 주체로 인정해 달라교육공무직법은 2016년 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야당국회의원으로 대표발의하고 100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동참했던 사안이다.

 

현재 학교비정규직의 법적 사용자인 시·도 교육감들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2달째 계속된 집단교섭 파행의 책임은 권한없는 교섭위원을 내세우고 뒤에 않은 시·도 교육감들이다.

 

1년 전 선거 시기 진보교육감임을 내세워 맺은 학교비정규직 차별해소에 대한 정책 협약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을 통해 어렵게 시작한 본교섭조차 파행이라면 우리는 7월 무기한 총파업으로 사용자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번 삭발에는 정년퇴직을 앞둔 조합원이 다수 동참한다취업준비생인 딸이 직접 엄마의 머리를 깍아준다특성화고 졸업생과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 머리를 깍아준다.

 

오늘 머리에 흰서리 내린 노동자들이 삭발까지 하는 것은 단순하다.

 

본인은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왔지만 아이들에게만은 비정규직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정규직/비정규직이 사회적 신분이 되어버린 이 더러운 세상을 내버려 둘 수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민주노총의 7월 총파업에 5만 5천 조합원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가장 많은 파업 대오로 앞장설 것이다.

 

학교비정규직의 눈물어린 집단삭발에 대통령이 약속 이행으로 화답해주길 촉구한다.

 

■ 7월 강력한 총파업으로 집단교섭 승리하자!

■ 2019대통령은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을 이행하라

■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자!

 

2019년 6월 17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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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옥상에 섰다, 행렬의 바닥도 끝도 안 보였다

[홍콩 현지취재] 이희훈 기자, 200만 운집한 홍콩 '검은행진' 24시간 추적기

19.06.17 23:07l최종 업데이트 19.06.18 07:23l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하며 애드미럴티역 인근을 지나고 있다. 이날 주최측 추한 참가자는 200만명이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하며 애드미럴티역 인근을 지나고 있다. 이날 주최측 추산 참가자수는 200만명이다.ⓒ 이희훈
   
홍콩의 중심이 검은 물결로 출렁였다.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흰색 리본을 단 홍콩 시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대규모 행렬을 이뤘다. 

홍콩정부가 추진했던 범죄인 인도법, 속칭 송환법이 추진되자 시민들과 야당은 거센 항의의 행동을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저항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무력진압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굴하지 않고 더 큰 집회와 파업을 예고했다.  

그 과정에서 고공시위를 하던 30대 남성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검은 행진'의 규모를 키우는 도화선이 되었다. 

격화되는 사회분위기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집회가 열리기 전날인 15일 송환법 추진을 잠정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6일 주최 측 추산 20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현지에 파견된 <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가 홍콩 시민들이 벌였던 저항의 24시간을 시간대별로 기록했다.


[16일, 11:00] 노란 우비 청년의 죽음, 애도의 물결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열릴 예정인 16일 오전 홍콩 애드미럴티역 인근 공사현장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다 추락사한 량씨를 추모하는 한 시민이 흰색 리본을 달고 있다.
16일 오전 홍콩 애드미럴티역 인근 공사현장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다 추락사한 량씨를 추모하는 한 시민이 흰색 리본을 달고 있다. ⓒ 이희훈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열릴 예정인 16일 오전 홍콩 애드미럴티역 인근 공사현장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다 추락사한 량씨를 추모하던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16일 오전 홍콩 애드미럴티역 인근 공사현장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다 추락사한 량씨를 추모하던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지난 밤, 송환법을 반대했던 30대 남성 량아무개씨가 홍콩정부청사와 가까운 애드미럴티역 부근 대형 쇼핑몰 외벽공사현장에서 추락했다. 소방당국과 경찰이 출동해 에어매트가 깔렸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고 이번 시위의 첫 번째 사망자가 되었다. 청년의 죽음에 홍콩시민들은 흰 꽃과, 종이백합, 종이학 등으로 추모를 했고 그 규모는 점점 늘었다.

[16일, 13:00] 전장에 들어설 준비

홍콩 시내의 중심 코즈웨이 베이 골목 구석구석, 상점 곳곳마다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검은 행진'에 참가하기 위한 홍콩시민들이 빅토리아 파크에 도착하기에 앞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고 주변에는 마이크와 확성기를 들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한 두꺼운 피켓 뭉치를 든 사람들은 행진 참가자들에게 재빠른 손놀림으로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나눠줬다. 

[16일, 14:30] 검은행진의 시작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결집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로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공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히 운집한 군중은 홍콩 정부가 추진했던 '범죄인 인도법'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무대에 설치된 스피커로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고 군중들의 함성이 모이자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행렬은 움직이는 듯 움직이지 않는 듯 서서히 앞을 향해 전진 했다. 

[16일, 17:00] 다시 찾아간 코즈웨이베이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 참가자들이 홍콩 중앙정부청사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을 목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구경하고 있다.
16일 오후 ‘검은 행진’ 참가자들이 홍콩 중앙정부청사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을 한 주민이 아파트 옥상에서 구경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오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나아가려 했지만 모든 골목은 검정 옷을 입은 사람으로 가득 차 쉽지않았다. 멀리 15층 높이의 아파트가 보였다. 걸어서 10분이 걸리지 않을 거리를 '익스큐즈미' 수 천번을 외치며 겨우 도달했고 마침내 옥상에 올랐다.

옥상 난간에 서니  두 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틈을 뚫고 나온 게 믿어지지 않았다. 홍콩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순간 몇 년전 광화문의 함성이 떠올랐다.

[16일, 18:00] 온종일 걷고 또 걷고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뛰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발이 너무나 아프고 지쳤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른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잠시의 휴식을 접고 조금이라도 빨리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하지만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는게 보였다. 

[16일, 20:00] 행렬 속 혼자 멈춘 노란 우비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오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검은행진의 사람들은 조금씩 조금씩 중앙정부청사로 움직이고 있었다. 해가 지고 하늘은 검푸른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추락사한 량씨의 추모 장소에 추모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수 많은 인파 때문에 길을 건널 수 없어 맞은편에서 지켜보는 순간 한자로 '반송중(反送中.중국송환반대)'이라고 적힌 노란 우비가 보였다. 노란 우비는 량씨가 숨질 때 입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고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았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행렬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16일 22:00] 우산혁명의 성지, 다시 모인 평화 행진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이 중앙정부청사 앞에서 검은 복장을 하고 피켓을 들고 서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이 중앙정부청사 앞에서 검은 복장을 하고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이희훈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5년전 홍콩 우산혁명이 일어난 중앙정부청사에 첫 시위가 열린 지난 12일 경찰의 고무탄, 최루탄 등으로 폭력진압이 일어났다. 이날 행진에는 경찰의 저지나 무력진압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코스의 마지막인 중앙정부청사의 고가 도로 위에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지막 행렬을 기다리며 잠을 청하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6일 21: 30] 환호성 속 울리는 하나의 외침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끝난 16일 오후 민주당 소속 로이 궝천유 의워이 중앙정부로 모인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 의원은 폭력 진압에 대한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등을 촉구했다.
‘검은 행진’이 끝난 16일 오후 민주당 소속 로이 궝천유 의원이 중앙정부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 의원은 폭력 진압에 대한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등을 촉구했다.ⓒ 이희훈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끝난 16일 오후 민주당 소속 로이 궝천유 의워이 중앙정부로 모인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 의원은 폭력 진압에 대한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등을 촉구했다.
‘검은 행진’이 끝난 16일 오후 민주당 소속 로이 궝천유 의원이 중앙정부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 의원은 폭력 진압에 대한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등을 촉구했다.ⓒ 이희훈
 
'로이, 로이, 로이, 로이" 군중들이 반복해서 외쳤다. 이내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가 퍼져 나왔고 사람들은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홍콩 민주당 소속의 로이 궝천유 의원이었다. 군중 사이를 뛰어다니며 집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송환법 반대와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경찰의 폭력진압의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의 검은 물결 속 외침은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었다.

[17일 24:00] 중앙정부청사 한켠에 밝혀진 촛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행진을 마치고 중앙정부청사 주변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행진을 마치고 중앙정부청사 주변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행진을 마치고 중앙정부청사 주변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행진을 마치고 중앙정부청사 주변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희훈
 
 행진에 참여했던 일부 시민들은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 자리를 떠났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부종합청사 한켠에 촛불을 든 사람들이 보여 불빛을 쫓아가봤다. 고공농성 중 사망한 량씨의 임시분향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촛불을 세워 추모했다. 추모의 메시지가 적힌 메모장도 벽면을 채웠다.

[17일 03:00] 끊이지 않는 평화를 향한 찬송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청사 내 광장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청사 내 광장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희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청사 내 광장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청사 내 광장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희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청사 내 광장에서 평화노래 밤샘 농성을 이어가던 시위 참가들이 바닥에 누워 쪽잠을 자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청사 내 광장에서 평화노래 밤샘 농성을 이어가던 시위 참가들이 바닥에 누워 쪽잠을 자고 있다. ⓒ 이희훈
 
중앙정부청사 광장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성가대에서 부를 법한 거룩한 분위기의 찬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확성기를 중심으로 눕거나 앉아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대부분 차가운 바닥에 누웠지만 순서를 바꿔가며 노래를 이어갔다. 

"싱 할렐루야, 싱 할렐루야,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

네 소절의 노래와 함께 동이 터 올랐고 도로를 점거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몇백명을 남기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17일 09:00] 충돌 없이 끝난 경찰과의 대치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도로점거 철수를 요구하며 다가오자 한 시민이 손 피켓을 들고 마주하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해산을 요구하며 다가오자 한 시민이 손 피켓을 들고 마주하고 있다.ⓒ 이희훈
'폭력진압' 대신 투입된 협상 경찰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도로점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폭력진압'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어 경찰은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 '폭력진압' 대신 투입된 협상 경찰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폭력진압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어 경찰은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희훈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도로점거 철수를 요구하며 대치하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해산을 요구하며 대치하고 있다.ⓒ 이희훈
 17일 오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도로점거 철수를 요구하던 경찰들이 자리를 떠나고 있다.
17일 오전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에게 도로점거 철회를 요구하던 경찰들이 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희훈
 
날이 밝자 거리에 긴장감이 돌았다. 밤을 새운 일부 시위참가자들이 헬멧을 쓰고 양팔에 비닐 랩을 싸기 시작했다. 취재하던 기자들도 행진 때는 쓰지 않던 헬멧을 착용하고 방독면도 준비했다. 

마침내 경찰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장을 하지 않은 협상 전담 경찰관들이 선두에 있었고 시민들과 경찰은 대치했다. 일부 점거물을 철거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시민들과 마이크로 대화하던 경찰은 이내 모두 철수하며 아무런 충돌 없이 상황이 끝났다.

[17일 11:00] 평화롭게 마무리 된 검은행진
 
 1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16일 ‘검은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도로를 점거했던 시위대는 자리를 떠났고 거리는 평화를 되찾았다. '홍콩의 자유'를 외치며 행진한 200여만 시민의 행진은 폭력없이 끝났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한 홍콩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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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점점 싫어지는 이유


[기획연재] 6.15와 판문점선언 (2) 6.15와 반미자주

6.15공동선언 발표 19돐을 맞아 6.15시절 ‘우리민족끼리’가 사회 전반에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통해 4.27시대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기위한 과제를 조망해 본다.

[기획연재] 6.15와 판문점선언
(1) 6.15와 민족화해
(2) 6.15와 반미자주
(3) 6.15와 경제협력
(4) 6.15와 수구보수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한국의 가장 큰 의식변화는 ‘반북’정서가 줄고, ‘반미’감정이 높아진 것이다.

1993년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북한 44% Vs 미국 1%]로 응답한 반면 2005년에는 [북한 14% Vs 미국 55%]로 조사됐다.

특히 대미 의존형 한미관계를 탈피해야 한다는 여론도 2002년 28%에서 2005년 72%로 급성장했다.

자료참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료참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반북의식이 사라진 이유는 이해가 간다. 6.15이후 평양 방문자 4만여명, 금강산 관광객 200만 시대였으니, 북한(조선)을 직접보고 느끼면 반감이 없어지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반미의식은 왜 이렇게 폭발하게 됐을까?

해방이후 미군정 기간 재등용된 토착왜구와 그 후손들의 숭미주의를 제외한 대부분 우리 사회 친미의식은 크게 두 가지 우려 때문에 생겨났다. 하나는 주한미군이 없으면 북한(조선)이 남침할 수 있다는 걱정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은 강대국이며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이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6.15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반북 정서는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주된 명분이 되었다. 예속적인 한미관계도, 독재정권의 폭압도, 과도한 군사비 지출도 모두 북한의 ‘적화통일’이니 ‘남침 위협’ 따위의 반북 선전을 통해 유지될 수 있었다. 주한미군 주둔으로 인한 주권 침해도, 주둔비 부담도, 끊임없는 범죄와 환경오염도 모두 북한(조선)에게서 한국을 보호해준다는 명분 때문에 우리 국민이 참아야 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에서 ‘우리민족끼리’가 강조되면서 남침으로 인한 전쟁위협은 사라지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남과 북이 잘살아보자는 기운이 넘쳐나면서 미국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터지면서 반미의식으로 폭발했다. 오죽했으면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미국에 NO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 미국에 사진이나 찍으러 가진 않겠다”고 했을까. 이런 발언은 반미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고, 득표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했다.

이 같은 국민적 의식변화에 힘입어 2000년대 반미투쟁은 활화산처럼 번져갔다. 부산 하야리야 미군부대 투쟁, 용산 군산 미군기지 폐쇄투쟁,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투쟁, 평택 미군기지 폐쇄투쟁, 경산 함안 대전 등 전국으로 번진 미국의 양민학살 진상규명 등 반미자주화 투쟁에 봇물이 터졌다.

▲ 미대사관 앞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6.15공동선언 발표 19년,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이 있은지도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의 자주권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의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는 모욕적인 말을 대놓고 내뱉었다.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적대행위 중지, 종전선언 등이 미국의 노골적인 방해와 거부로 중단돼 있다.

‘9월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동서해 관광특구,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등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이 미 국무부 일개 관리에 의해 차단됐다.

스티븐 비건을 미국측 단장으로 하는 한미 워킹그룹은 마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행세를 하며 남북관계 발전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방해한다.

비건의 워킹그룹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까지 미국의 승인을 받으라며 통제하고 있으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6.15시절 ‘우리민족끼리’ 정신으로 효순이•미선이 추모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반미자주의 촛불이 거대한 횃불로 번질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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