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갔던 데가 천정궁인지 몰라’ 나경원에 최민희 “이따위 허접한 변명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12/28 17:11
  • 수정일
    2025/12/28 17: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당·조국혁신당 비판 이어져

이유진기자

  • 수정 2025-12-28 16:26등록 2025-12-28 16:18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11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의원실에서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1심 선고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교 시설에는 간 적 있다”면서도 “(내가 간 곳이) 천정궁인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서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고백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지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5선 국회의원이자 보수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이 통일교의 상징적 공간인 ‘천정궁’을 방문하고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는 말이 과연 본인 스스로에게도 납득 가능한 설명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냥 갔다’, ‘아무런 맥락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더욱이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유명 정치인이 그 공간을 찾았다는 설명을 국민에게 그대로 믿으라는 태도는 무책임하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최민희 민주당 의원도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민을 뭘로 보고 이따위 허접한 변명을 늘어놓냐”며 ‘천정궁인지는 모른다’는 나 의원의 발언을 비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같은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나 의원은 ‘국힘 제로’가 왜 필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박병언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28일 논평을 내어 “나 의원은 단순히 통일교 시설에 ‘놀러 갔다 온’ 정치인이 아니라 통일교와 국민의힘을 연결시키는 중요 인물이었다는 것이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반복하여 확인되고 있다”며 “통일교 등 특검이 열리면, 나 의원은 적어도 참고인으로는 반드시 조사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나 의원은 26일 광주방송(KBC) ‘박영환의 1시 1번지’에 출연해 “(내가 간 곳이) 천정궁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통일교 시설을 가본 건, 2020년에 총선 낙선하고 야인 시절에 여러 명이 같이 가서 시설 한 번 보고 온 게 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역 시절에는 바빠서 누가 시설을 둘러보자고 얘기해도 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동영 장관도 야인 시절에 친구들하고 가서 둘러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정 장관하고 비슷한 얘기”라고 덧붙였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을 바탕으로 “정동영 의원(통일교 장관)은 금품을 거절했고, 나경원 의원은 천정궁에 방문했으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열린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알선수재 혐의 재판에서는 나 의원과 이현영 전 통일교 부회장과의 통화 녹취가 공개되기도 했다. 통화 내용은 나 의원이 지난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통일교 쪽에서 주선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면담을 당사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나 의원은 언론에서 천정궁 방문 여부에 관한 질문을 연달아 받았지만 “제가 더는 말씀 안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죠”(17일), “그것이 논란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22일)며 즉답을 피한 바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소설 '앵무새 죽이기'가 보여주는 배심제의 허와 실

김원근 변호사

wkim7577@gmail.com

다른 기사 보기

  • 사법개혁

  • 입력 2025.12.27 22:00

  • 수정 2025.12.28 15:00

  • 댓글 1

미국 사법제도와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근본 차이

미국 배심재판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 많아

주민선거로 선출되는 미국의 사법인사제도

기소권 없고 공소유지권만 있는 미국 검사들

성폭력 재판, 반드시 피해자 법정심문 거쳐야

법률문제와 사실문제 판단 나눈 견제 균형 시스템

배심제와 법관재판 적절히 병행하는 사법개혁 필요

* '주권자 국민에 의한 사법개혁' 연속세미나에서 김원근 변호사가 재판의 배심제에 대해 발표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민들레에 싣는다. 김 변호사는 국내에서 10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미국 유학 후 2007년부터 버지니아주 워싱턴DC 등에서 변호사활동을 하고 있다(편집자 주).

우리에게는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미국 소설 <To Kill a Mocking Bird>는 1930년대의 앨라배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백인여성 때문에 어떤 흑인 남성이 강간범행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 흑인 남성은 어릴적의 사고로 왼손의 일부가 잘려져 있었고, 그 때문에 그의 왼손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피해자는 자신의 오른쪽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왼손에 일부 장애가 있는 흑인 남성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모두 백인 남성들이었다. 이들은 흑인 남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범인으로 그 흑인 남성을 지목했다는 점 외에는 유죄의 증거가 부족했지만 그를 범인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배심제도의 모순점을 통한 미국사회-백인 남자들로 대표되는 주류 백인들로 구성된 사회- 지배세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이 소설은 편중된 관념을 가진 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재판제도가 아닌 좀더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배심원들에 의한 사법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사회의 현실을 토대로 흑인과 백인이 고르게 섞인 배심재판제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직업법관/검사에게 전적으로 위임된 사법제도가 아닌, 일반 시민의 참여에 의한 재판제도를 강조하는 것에 빗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편향된 시각이 지배하는 재판제도가 아닌 다양한 일반시민들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는 재판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직업 법관/검사들의 고정적인 관념과 철학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위 작품의 문제의식으로 본다면 비판의 대상이 된 편향된 재판제도일 수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법률실무를 하면서 시민참여에 의한 시민 사법주권과 관련해 많은 관찰을 할 수 있었고,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재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 미국 현지의 판사 검사 변호사들에게 배심원제도에 관해 질문을 해 보면 모두 한결같이 배심원들의 판단을 존중하며 받아들인다고 대답했다. 모두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배심원들의 판단이 직업법관의 판단과 비교해서 더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손해배상액과 관련한 판단이 직업 법관의 판단과 비교해 더 수긍할만 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배심 재판정의 모습. 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우리나라 판사재판제도에 도입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안

법률판단과 사실판단의 구별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려하는 배심제도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법률과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배심원이 그 어려운 법률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회의적인 시각은 완전히 잘못된 오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시민 참여재판이 판사의 보조역할에 그치고 있고, 또 이용율이 저조한 이유는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배심제도에서는 법률문제는 판사가, 사실문제 판단은 배심원이 하는 것으로 구분되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배심원에게 사실판단 권한을 부여하고 판사는 법률판단 권한을 가지는 식으로 사법권력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직업적 법관이 사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는 것으로 기본 제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법률과 사실관계 이슈를 나누어서 판단하지 않고 모두 묶어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배심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재판절차에서는 이를 구별해서 진행한다.

필자의 관찰로는, 법률과 사실판단을 기준으로 사법권을 나누고 이를 재판제도에서 실행하고 있는 미국의 배심제도는 시민이 사법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된다면 직업법관제도에서 볼 수 있는 편향된 시각 문제를 시민들이 견제하고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겠다. 형사사건에서 증거능력의 판단, 예컨대 수사기관에서 수집한 증거가 위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어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는 법률전문가에 의한 직업법관이 판단하고, 이후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 판단은 배심원들의 판단에 맏긴다. 이는 법관과 배심원들이 재판권을 나누어 행사하는 제도 운영이 될 것이다. 민사사건에서 교통사고 피해보상의 예를 들면, 가해 차량에게 법률이 요구하는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는 직업법관이 판단하게 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과실을 몇 퍼센트로 나눌 것인지 여부는 일반 시민들이 판단하게 한다면, 이는 법률과 사실판단을 나눠서 하는 경우다.

민사재판의 경우, 실제 법원에 제출되는 케이스의 30퍼센트 정도는 (주장하는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가정하더라도 법률적으로 구제받을 수 없는 성격이어서) 초기단계에서 종결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 재판제도에서는 끝까지 진행된다. 미국의 재판제도에서는 그럴 경우 소장답변서 단계에서 기각판결을 해버리는 것과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소장을 초기에 종결하는 절차는 디스커버리(Discovery. 미국 등 영미법계에서 발달한 제도로, 재판 전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이 가진 증거와 정보를 미리 공개하여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쟁점을 명확히 하여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이끌어내는 증거개시 절차)의 남용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데 우리나라의 재판제도에는 활용되지 않다. 이는 디스커버리 도입과 운용 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소/수사과정에서 시민의 참여 및 재판과정에서의 시민의 결정권

미국의 배심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현재 우리나라 형사재판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인데, 배심원들이 판사/검사들에게 조언을 하는 (advisory) 역할이 있다. 이는 미국의 경우 기소/수사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대배심 (Grand Jury)이라고 한다.

미국 연방법원의 형사재판 기소는 (검사가 아닌) 대배심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검사는 기소를 하기 전에 대배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대배심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승인해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연방대배심의 기능을 통과의례에 불과한 불필요한 절차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뉴욕 시 검사장인 르티티아 제임스 (Letitia James)를 대배심에서 기소하기를 거부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배심이 기소를 거부할 권한도 있다. (르티티아 제임스는 뉴욕 시의 검사장으로 뉴욕시민을 대표하여 트럼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고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권에서 보복성 기소를 하려고 했는데 대배심이 이의 승인을 거부했다)

주법원의 기소는 연방법원과 약간 다르다. 주법원에서는 수사기관인 경찰에서 공소제기를 (검찰이 아닌) 법원에 직접 하고, 법원에서 기소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의 주 형사재판절차에서 법원에서 기소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검사는 기소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수사기관이 법원에 넘긴 케이스와 관련해 법원의 기소결정을 얻어내기 위한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이 때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의 판사는 (우리나라에는 치안판사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검사역할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공개된 법정에서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피고인에게도 증거조사를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검사는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단계에서부터)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모두 공개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피고인은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나라에서 보는 조서가 없다는 점이다. 치안판사가 보는 데서 공개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피고인/증인 신문이 모두 녹음되어 이게 조서 역할을 한다. 판사 주재로 공개법정의 정식절차를 거쳐 기소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검사실에서 모든 절차가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제도와 비교해 보면) 놀랄만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큼 검사의 권한이 강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치안판사의 심리가 끝나면 정식기소를 하기 이전에 대배심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 치안판사와 대배심이 기소를 위해 하는 역할은 각 주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때 대배심의 역할은 순수한 조언자의 역할이다. 케이스가 기소하기에 충분한 혐의가 있는지 여부는 치안판사가 공개된 법정에서 증거조사 절차를 거친 뒤 판단한 것이어서 대배심은 별다른 이의 없이 모두 승인해준다. 이때 대배심은 조언자 역할을 하며, 이는 참심제(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참심원이 직업 법관과 함께 재판부[합의체]를 구성하여, 형사 사건의 사실 인정[유무죄]과 양형[형벌 결정]에 대해 토의하고 결정하는 제도)에서의 시민의 역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수사과정에 대배심이 관여하는 경우에는 대배심이 결정권자 역할을 한다. 대배심 절차는 검사가 시민들의 감시/승인을 받아 조사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대배심 절차를 거치는 수사는 규모가 있거나 중요한 케이스들에 한정된다. 예를 들면 공직자의 뇌물, 대규모 사기 횡령 기타 정치적인 형사사건들은 대배심의 승인절차를 받아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때의 대배심은 결정권이 있다. 유명한 케이스로 2023년 트럼프에 대한 형사기소를 들수 있는데, 그때 검사는 대배심 절차를 거쳐서 조사를 진행했고 대배심의 승인을 얻어 뉴욕시 법원에 기소했다. (대배심의 승인을 얻으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법원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기소를 할 수 있다) 이런 케이스에서 검사들은 피의자 증인 소환 압수 수색을 모두 대배심의 승인을 얻어서 진행한다.

일반인의 고소/고발 케이스들과 관련한 케이스의 진행도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경찰에서는 일단 사인간의 분쟁일 경우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일반인은 경찰 외에 법원을 통하여 직접 고소/고발을 접수할 수 있지만, 위에서 본 치안판사의 공개 법정 변론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치안판사의 공개 변론절차를 거쳐야 하고, 또한 피고소/고발인에게도 증거조사 및 증인신문을 충분하게 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고소/고발이 있다고 해서 바로 기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개인이 고소/고발을 하는 것은 자유롭게 허용되지만 기소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치안판사 주재의 공개 재판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 검사는 기소결정권은 없지만 공소유지에 관련해서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가 공소유지를 거부하는 케이스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공소유지를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형사사법절차의 사인 소추는 우리나라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유죄협상으로 알려져 있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수사에 협조[다른 범죄자 정보 제공 등]하는 대가로 검찰이 더 가벼운 혐의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주는 '유죄협상제' 또는 '사법거래')의 전제조건은 기소결정 이전 단계에서부터 피의자/피고인에게 디스커버리와 적극적인 증거조사권을 부여하여 검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것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검사가 일방적으로 피의자/피고인 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증거수집을 독점하고 피의자/피고인은 방어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는데, 이런 불평등한 조건에서 진정한 플리바게닝은 도입되기 어렵다고 본다.

시민들이 결정권을 가질 때의 개선점들

다음으로 법원절차에서 이용되는 배심제도는 배심원들이 판사와 완전히 독립하여 결정권을 행사하는 (decision maker)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배심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절차에서 미국식의 배심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현재와 비교해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있을 수 있는 인맥에 의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배심원은 무작위로 선정되고, 소집된 배심원 중에서 다시 최종배심원들을 재판 당일날 선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판진행을 잘하는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증거법과 디스커버리 등 발전된 사법제도들이 필수적으로 도입돼 운영될 것이다. 배심원들이 듣고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하는 증거자료들을 사전에 거르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그게 증거법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증거법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미국의 경우 로스쿨 1학년의 필수과목으로 증거법이 중요시되고 증거법이 단일법으로 별도로 제정되어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소송법에 일부 들어 있을 뿐이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따라서 증거능력의 판단에서 많은 부분이 법관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루 빨리 현대화된 증거법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배심제도에서는 배심원이 듣게 되는 증거자료들을 사전에 상대방에 공개하고 또한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디스커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역시 전적으로 판사의 권한으로 되어 있는데 배심제도에서는 당사자에게 증거조사에 관한 많은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

성폭력 케이스를 예로 들면, 미국의 형사재판제도에서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예외적으로 증거법상의 특별 예외규정이 있긴 하지만) 반드시 법정에 출석하여 반대신문에 답변해야 하기 때문에 2차 가해는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고 박원순 시장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런 경우 미국의 법정에서는 피해자를 반대신문하지 않고 유죄판단을 할 수 없다. 또한 참고인/증인 역시 법정에 출석하여 피고인의 반대신문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고인/증인의 법정외 진술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하지 않는다. (부연하면 고 박원순 시장의 경우 본인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증거법상으로 약간 다른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법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을 한 번은 거쳤어야 증거법의 원리에 맞다).

배심원들은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용납하지 않고 사회질서유지 차원에서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액수를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배심원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우리나라의 불법행위 관련 민사재판은 손해배상액수도 적을 뿐더러 피해자에게도 과실상계를 하고 있어서 전혀 현실과 맞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가 이익을 보게 하는 재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현실과 많은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에서 제대로 해결이 안되니까 피해자들은 고소/고발에 의한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아주 뚜렷하고, 이 때문에 수사기관이 권력기관이 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배심원재판에 의한 민사법정에서 불법행위 가해자에게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수사기관에서는 사회정의를 해치는 범죄행위의 단속 예방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해악이 되는 불법행위의 척결에 배심재판제도가 거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사재판제도와 배심제도: 효율과 비용 절약

미국식의 배심제의 비판으로 비용과 효율 측면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배심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다. 배심제에서는 모든 재판을 집중심리제로 진행한다. 배심원들을 한 번 소집해서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케이스가 시작되면 배심원에 의한 최종 재판일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추어서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재판절차가 지연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판사재판의 특징은 불필요한 변론을 자주 여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판은 거의 기계적으로 변론을 속행하고 불필요하게 변론을 열어준다. 우리나라 판사재판에 의한 재판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생각해보면 그 답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에서 준비서면이라는 서면교환을 하는데, 이는 법정에 가지 않고도 당사자간에 주고 받으면 되는 것이다. 준비서면 진술을 위하여 변론을 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변론기일에 귤껍질 벗기듯 조금씩 증거를 제출한다. 재판을 무슨 게임하듯이 한다.

배심재판제도에서는 이런 비효율적인 절차는 전혀 볼 수 없다. 재판절차가 진실 발견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당사자들에게 디스커버리를 통하여 증거수집 기회를 주고, 이후 수집된 증거들 중에서 필요한 증거를 한꺼번에 제출하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 이게 배심재판제도에서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법률적인 이슈가 있을 경우에 한정해서 변론을 열어준다. 법률적인 이슈가 없으면 배심원에 의한 최종재판에서 한꺼번에 판단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재판진행이 가능하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증거수집의 기회를 충분히 가지게 한 뒤 최종재판으로 한꺼번에 해결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또한 경제적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미국식의 재판제도를 선호하여 미국법원을 이용하고 있는 사례가 계속 소개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배심재판을 기본으로 운영되는 미국식의 재판방식이 더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판명이 되었다.

판사 인사이동 시기에 재판이 지연되는 일은 배심제에서는 있을 수 없다. 배심원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복잡한 케이스라면 배심원의 최종판단까지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 때문에 변론을 속행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점도 우리나라의 판사재판제도와 다른 점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케이스들은 배심제에 의한 재판을 하지 않고 법관에 의한 재판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즉 배심제로 진행하는 케이스들과 배심제가 아닌 직업법관이 진행하는 케이스로 나누어서 법원의 구조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합의부 재판에 배심재판을 도입하고, 단독재판은 직업법관에 의한 재판진행으로 하는 것이다. 또는 사실관계가 복잡한 고의 과실 케이스들과 비교적 간단한 계약위반 케이스들을 기준으로 구별해서 따로 진행할 수도 있다) 즉 미국에서도 모든 케이스가 배심재판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법정에서는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판사의 사전 승인이 없이도) 증거조사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당사자 원하는 증인은 (본인신문 포함) 얼마든지 법정에 불러서 증언을 들어볼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다. 배심원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최대한 많은 증거들을 접해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 의한 사법권력의 참여 및 판단으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법정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권력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존중하는 문화, 판사 검사가 가진 권력을 시민들이 나눠가짐으로써 사회전반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배심제와 참심제의 차이점

필자는 시민들이 조언자 역할을 하는 참심제가 아닌 결정권자 기능을 하는 미국식의 배심제도가 더 좋은 제도라고 감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참심제를 채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에는, 법률문제에 관한 판단에서 직업법관이 일반 시민보다 더 잘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법률판단과 사실판단을 구별해서 재판진행을 한다면 시민들에게 훨씬 더 많은 직접 참여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수준이 높다. 우리보다 못한 미국에서 하는데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판사재판이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사법민주주의이고 미국식의 배심제도의 장점을 활용하는 첫걸음이다.

주민선거로 선출되는 미국의 사법인사제도

미국의 인사제도 역시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연방검사는 대통령에게 임명권한이 있지만 주검사장은 주민의 선거로 선출된다. 주보다 아래 행정단위를 구성하는 카운티 검사장도 역시 주민의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다. 필자가 직접 만나본 이 곳 카운티 검사장은 본인을 뽑아준 주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며 주지사가 어떤 명령을 해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의 임명절차는 각 주별로 많이 다르다. 공통적인 특징은 우리나라처럼 시험을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동료들의 평가, 그 동안의 소송수행 실적, 변호사협회에서 공개토론을 통한 실력검증을 거치고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임명이 되는데, 주기적으로 의회의 검증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각 주별로 판사/검사/경찰에 관하여 불만이 있는 시민들이 직접 불만제기를 할 수 있는 위원회들이 독립기관으로 설치되어 있는 등 시민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판사/검사/경찰들의 업무를 감독할 수 있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최근에 현직 판사가 변호사들의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 의회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퇴직한 사례가 있다.

미국 전직 법관/검사들의 변호사 업무

미국에서는 판사/검사 퇴직 이후 변호사를 개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실정법은 없다. 하지만 판사가 퇴직 후 법정출입을 하는 변호사 일을 하는 것은 미국전역을 통하여 전혀 사례가 없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일부 로펌에서 자문역할을 하는 사례가 있고 조정인이나 중재인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은퇴하면 (주법원의 시니어 법관제도는 예외) 세속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필자가 실제 현직 판사와 전관의 변호사 개업문제에 관련해서 얘기를 나눠보았는데 현직 판사들은 전직 판사의 변호사개업을 죄악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가리고 응징한다고 하면서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검사들은 변호사 개업하는데 제약이 없지만 검사의 업무성격이 기소권조차 없고 다만 공소유지 권한에 불과하기 때문에 케이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어서 인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법원에서는 은퇴한 판사들을 시니어 판사로 고용하고 있는데, 시니어 판사들은 각 법원에서 재판을 담당할 판사들이 부족할 경우 이를 커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법원 사정으로 재판에 공백이 생기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검사가 현직에서 가지고 있는 권한이라는 것이 공소유지 외에 결정권이 거의 없다는 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기소는 수사기관에서 직접 법원에 하거나 대배심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검사는 이후 수사과정에서도 그 역할이란 것은 법률적인 조언자 혹은 대배심의 조사과정을 도와주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소결정 과정 및 기소 이후 정식재판 과정에서도 주된 결정권은 판사에게 있고 검사는 피고인의 변호사와 반대입장에서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역할에 그친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검사와 비교해서 권한이 현저하게 적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을 허용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검사 또는 수사관에게 부여하고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현직에서의 권한 행사가 지금처럼 결정권이 있는 지위라고 한다면 (기소여부 혹은 수사종결권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검사에게는 변호사 개업을 허용하면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속보] 이 대통령,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보수당 출신’ 이혜훈 파격 발탁

수정 2025.12.28 15:12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한나라당 출신 김성식 전 의원, 장관급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명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통령 정무특보 발탁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내달 2일 출범을 앞둔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보수당 출신인 이혜훈 전 국회의원 지명했다. 예산처는 이재명 정부의 조직개편에 따라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분리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하는 기관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장·차관급 7명의 인선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에 김성식 전 의원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에는 이경수 인애블퓨전 대표(전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를 각각 임명했다. 김성식 전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소속이었고,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의당 의원을 지냈다.

또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과 정책특별보좌관에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을 각각 임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에는 김종구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이, 국토교통부 제2차관에는 홍지선 남양주시 부시장이 임명됐다.

이유진 기자

정치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통일뉴스 선정 ‘2025년 한반도 10대뉴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시진핑-푸틴-김정은’ 등장 / 윤석열 탄핵...SNS 기사보내기

 

한반도 정세의 고착과 남북관계의 교착상태가 장기간 지속됐지만 2025년에는 북한과의 대화를 바라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귀환과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 어느 해보다도 정세의 변화가 예측되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시작해 당선과 취임 이후에도 줄곧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구애를 던졌으며,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초부터 대북 유화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한국과는 일체 만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는 조건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재명-트럼프’ 조합이 여전히 북측과의 대화를 원하기 때문에 충분조건은 갖춰진 셈이고, 내년 1월 초 북측의 제9차 당대회와 4월에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이 두 개의 사건에서 대북대화의 필요조건이 발생하길 기대하면서 통일뉴스가 선정한 ‘2025년 한반도 10대뉴스’를 발표합니다. / 편집자 주

 

1. 이재명 대통령 당선(6월 3일)과 대북 유화 조치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 다음날인 6월 4일 첫인사를 단행했다. 왼쪽부터 이종석, 김민석, 이 대통령, 강훈식, 위성락, 황인권.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 다음날인 6월 4일 첫인사를 단행했다. 왼쪽부터 이종석, 김민석, 이 대통령, 강훈식, 위성락, 황인권. [통일뉴스 자료사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및 파면으로 치러진 6.3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다. 3년 만에 정권교체가 된 것. 이 대통령은 새 정부를 ‘국민주권정부’로 불렀으며, 출범 이후에는 내란·김건희·순직 해병 등 ‘3대 특검’이 동시 진행됐다. 특히 이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북한과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표명한 뒤, 바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및 전단 살포 중지를 지시했다. 이어 6.15공동선언 25주년을 맞아 북측에 “중단된 남북 대화채널부터 신속히 복구하자”고 제안했으며, 8.15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북측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금지’ 등을 표명해 왔다. 이에 북측은 호응하지 않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대북 유화 조치는 계속되고 있다.

2. 중국 전승절 80주년, ‘시진핑-푸틴-김정은’ 등장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서서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보는 북.중.러 정상. [사진 갈무리-CCTV]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서서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보는 북.중.러 정상. [사진 갈무리-CCTV]

톈안먼 망루에 ‘시진핑-푸틴-김정은’이 등장하는 강렬한 광경이 펼쳐졌다. 중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열병식이 열린 지난 9월 3일이다.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서는 상황이 연출된 것. 옛 소련 시절까지 포함하면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동 이후 66년 만이다. 이 한 장의 그림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반서방·반미국 연대’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이 세계 평화와 국제 질서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중국이 미국과 맞먹는 패권 국가로 부상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등장한 다자 외교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 확보와 함께 그동안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완전히 회복했다.

3. 윤석열 탄핵(4월 4일)과 외환유치 시도

'윤석열탄핵심판' 선고요지를 낭독하는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 [사진 갈무리-MBC 유튜브]
'윤석열탄핵심판' 선고요지를 낭독하는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 [사진 갈무리-MBC 유튜브]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4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탄핵소추를 인용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권력분립 원칙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했고,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윤석열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헌정사상 두 번째 탄핵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내란·김건희·순직 해병 등 3대 특검이 7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특히 윤석열 등이 12.3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 무인기 작전’, ‘북한 오물풍선 원점타격 시도’ 등으로 전쟁을 유발하려 했음에도, 특검은 12월 15일 북한과 사전 모의가 없었다며, 적국과의 ‘통모’가 요건인 ‘외환유치’가 아닌 ‘일반이적’ 혐의를 적용했다.

4.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1월 20일)과 다카이치 첫 일본 여성 총리 등장(10월 21일)

취임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갈무리-PBS 유튜브]
취임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갈무리-PBS 유튜브]

한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2025년에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으며,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첫 여성 총리가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보다 더 강경한 국익 우선주의와 포퓰리즘 노선을 재가동했다. 트럼프의 복귀는 지구촌 정치, 경제, 안보와 관련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변곡점으로 평가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해외원조를 줄였으며, 전 세계를 상대로 일방주의적 관세정책을 선언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트렸다. 또한 다카이치 총리가 140년 만에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됐다.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극우 성향을 지닌 다카이치 총리는 11월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한 이후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5. ‘이재명-트럼프’ 한미 정상회담 (8월 25일)

긴장 속에 시작됐으나 화기애애하게 끝난 한미 정상회담. [사진-백악관]
긴장 속에 시작됐으나 화기애애하게 끝난 한미 정상회담. [사진-백악관]

이재명 대통령이 6월 초 당선되자 지난 1월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과 언제 만나느냐가 관심을 모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임하면 곧바로 미국 대통령을 만나야 하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로 굳어진 탓이다. 두달여 만인 8월 25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의 구미에 맞게 준비한 맞춤형 언사를 늘어놓은 덕에 우려했던 ‘돌발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피스메이커, 이재명-패이스메이커’ 역할분담을 제시하며 ‘한반도에도 평화를 만들어달라. 김정은도 만나라’고 대북대화를 권했다. 트럼프는 “매우 좋은 일”이라며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토로했다. 특히,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김정은’ 만남을 추진해보자는 얘기가 오갔다.

6. 경주 APEC 정상회의(10월 31일-11월 1일)와 트럼프의 ‘김정은 구애’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시작됐다. [사진 갈무리-KTV 유튜브]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시작됐다. [사진 갈무리-KTV 유튜브]

10월 말 전 세계의 이목이 경주에 쏠렸다. 이재명 정부 들어 첫 국제행사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미-중-일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참여해 적지 않은 화제를 남겼다. ‘이재명-트럼프’는 두 번째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협상을 일단락하고, 핵 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을 이뤘다. 이 대통령은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연이어 소화하며 ‘국익중심 실용외교’ 기조를 유지했다. 또 하나의 관심은 ‘트럼프-시진핑’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양국 갈등을 일시 봉합했으며, 진검승부는 2026년 4월 트럼프의 중국방문으로 미뤘다. 사실상 가장 큰 관심은 트럼프가 보여준 ‘김정은 구애’였다.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길에 올라 경주로 향하면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나아가 ‘김정은이 만나고 싶어 하면 한국에 있을 것’이라며 APEC 일정을 연장할 수도 있음을 내비칠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7. 정동영 통일부 장관 취임(7월 25일)과 대북 유화 공세

정부서울청사 별관 2층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44대 장관으로 취임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부서울청사 별관 2층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44대 장관으로 취임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북관계가 장기간 교착인 상태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했다. 정 장관은 ‘어게인 2005’를 의식한 듯 의욕적으로 임했다. 정 장관은 2005년 평양 6.15공동행사에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진척이라는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어 자타의 기대가 컸다. 취임 첫날부터 판문점을 찾아 남북 연락채널 복원 의사를 밝혔으며, 민간단체들의 ‘북한주민접촉 신청’도 활발해졌다. 정 장관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출입 불허와 관련 “주권국가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소신발언에 이어, 대북정책 주도권을 놓고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충돌과 NSC 상임위원장 자리다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북은 아무런 접촉조차 이루지 못했다. 북즉은 김여정 부부장의 남북관계의 ‘조한관계’(7월 28일) 명칭 변경과 김정은 위원장의 ‘한국과는 일체 만나지 않겠다’(9월 21일)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8. 북한군의 ‘러-우전’ 파병 확인 (4월 26일)

'김정은-푸틴' 2024년 6월 19일 정상회담 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러-우전'에 북한군의 파병이 이뤄졌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푸틴' 2024년 6월 19일 정상회담 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러-우전'에 북한군의 파병이 이뤄졌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이 장기화되면서 어느 순간 북한군이 이 전쟁에 참전했다는 ‘파병설’이 돌았다. 그 참전규모와 참전지역이 쟁점이었다. 북러가 ‘동맹관계’ 수준의 조약(2024년 6월 19일)을 맺으면서 이 소문은 사실일 공산이 커졌다. 올해 4월 들어 러시아와 북한이 ‘북한군 파병’과 ‘쿠르스크 전투 참가’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러시아는 4월 26일 쿠르스크 지역 해방을 선포하면서 ‘쿠르스크 국경 지역 해방에 북한군 참가’를 알렸다. 북한도 4월 28일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에 참전한 우리 무력 구분대들은... 우크라이나 신나치스세력을 섬멸하고 러시아연방의 영토를 해방하는데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밝혔다. 양국은 북러 조약 제4조 자동군사개입조항에 따라 북한군이 참전해 쿠르스크 지역에 들어갔지만 우크라이나 땅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9. 북,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 진행 (6월 24일)

북한이 해안관광도시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끝내고 24일 준공식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해안관광도시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끝내고 24일 준공식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의 숙원 사업의 하나인 해안관광도시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준공됐다. 약 2만명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 여관, 민박, 방갈로를 비롯해 은행, 헬스장, 극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명사십리 백사장에는 하루 4만여 명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준공 테이프를 끊은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을 위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우리 당이 오랫동안 공력을 들여온 숙원사업이 장쾌한 현실로 결속되었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남측 관광객이 금강산 관광처럼 대규모 참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산갈마 관광이 남북 접촉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10. <노동신문> 반쪽 개방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025년 12월 25일자 1면.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025년 12월 25일자 1면.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정부가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일반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55년 만에 규제를 푼 것. 정부는 12월 26일 국정원과 통일부 등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노동신문을 일반 국민이 접근할 수 없는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언론매체와 유튜브 등에서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이 인용돼 기사 형태로 보도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종이 신문에 한정되고 인터넷 사이트 접속은 여전히 차단된다. ‘반쪽 개방’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12월 19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노동신문 공개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당근’에서 만나서 밤에 ‘경도’ 놀이?··· 한밤중 청년들의 도둑잡기 현장 가보니

수정 2025.12.27 09:34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학생·자영업자·직장인 등 청년 30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몸 풀고

“경찰이다”, “도망쳐!” 술래잡기 즐겨

참여자들 “추억의 놀이가 건전한 자극”

지난 25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운동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동물 머리띠를 쓴 청년들 10여명이 골대 앞에 모여 운동장을 훑어봤다. “오른쪽부터 갈까요.” “그러시죠.” ‘작전’을 세운 이들이 “경찰들 갑니다!”라고 외쳤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들뜬 비명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술래잡기 ‘경찰과 도둑’(경도) 모임이 유행하고 있다.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성탄절인 이날 밤에도 청년들은 가까운 친구·연인을 만나는 대신 낯선 이들과 술래잡기를 즐겼다.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청년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경도는 경찰과 도둑으로 역할을 나누어 쫓고 쫓기는 놀이다. 주어진 시간 내 일정한 수의 도둑을 잡으면 경찰이 승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경찰에 잡힌 도둑들은 ‘감옥’으로 정한 구역에 모이게 되는데, 이때 아직 잡히지 않은 도둑이 감옥 구역에 들어와 ‘탈출!’이라고 외치면 잡힌 도둑들이 풀려나는 등 다양한 규칙이 적용된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은 지역생활 플랫폼 당근 앱을 통해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각인 이날 오후 6시30분이 되자 청년들이 쭈뼛거리며 하나둘 나타났다. “혹시 여기 경도인가요?” 민망한 웃음과 함께 청년들이 눈인사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파에 패딩과 핫팩으로 무장한 청년들은 뻘쭘한 분위기에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설레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자영업자·직장인 등 청년 30명이 모였다.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청년들이 ‘경찰과 도둑’을 하며 달리고 있다. 우혜림 기자

청년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으로 몸을 풀었다. 1명이 술래, 2명이 심판 역할을 맡고 나머지 청년들이 운동장 끝에 섰다. 술래가 구호를 외치자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움직인 분들 양심적으로 나가주시죠.” 심판의 말에 열댓명의 청년들이 얌전히 따라 나왔다. 구호를 외칠 때마다 술래 옆으로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늘어섰다. 한 명이 술래의 등 뒤에 도착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구호보다 빨리 술래의 등을 치는 순간 청년들이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며 달렸다.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청년들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청년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경도였다. 동물 머리띠를 쓴 경찰 열댓명이 우렁차게 20초를 센 뒤 운동장을 누비고 다녔다. 혼비백산으로 튀어 나간 도둑들이 곧 ‘연행’돼 왔다. “거기 서라, 도둑들!”, “오지 마세요!” 외치는 소리에 장난기가 묻어났다. 주어진 시간 내 도둑을 잡은 경찰들이 “이겼다, 청렴한 나라!”하고 외쳤다. 추운 날씨에 귀 끝과 손끝이 벌게졌지만 청년들은 겉옷을 벗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정수기 앞으로 달려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허리 아파요.” “어릴 땐 이걸 어떻게 2시간이나 했죠?” 한바탕 뛰어논 사이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한 청년이 운동장에 누워 쉬고 있다. 우혜림 기자

청년들은 경도 등 추억의 놀이가 ‘건전한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김성민씨(22)는 “현생(바쁜 현실의 삶)에 치여서 살다 보면 일상이 권태롭다”며 “어릴 때처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고 말했다. 박준서씨(19)는 “요즘은 각자도생하다 보니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없지 않냐”며 “항상 (대화와 만남이) 고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현우씨(26)는 “‘너 언제 어른 될래?’라는 말을 듣지만 동심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가치 같다”며 “이런 놀이를 통해 현실을 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가민씨(24)는 “모르는 사이라 체면치레하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 (모임이) 악용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청년들이 운동장에 모여 앉아 있다. 우혜림 기자

이날 청년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손수건 돌리기’를 하며 서로 소개말을 주고받았다. “저 재수생인데 대학 합격했어요.” “애인이랑 헤어졌어요.” 사소하고 진심 어린 고백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한밤중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청년들이 운동장에 모여 앉아 있다. 우혜림 기자

우혜림 기자

사회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변덕'과 '거래' 트럼프 외교…승자와 패자는 어디?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다른 기사 보기

  • 국제

  • 입력 2025.12.27 08:05

  • 수정 2025.12.27 08:53

  • 댓글 0

중국ㆍ사우디ㆍ시리아ㆍ아르헨ㆍ파키스탄 '승자 대열'

포린 폴리시 "가장 가까운 파트너십 흔들어"

"중국, 부산 회담 통해 유리한 무역 휴전"

사우디, 숙원 '주요 비나토 동맹국' 지정

트럼프,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까지 압박

이란 핵시설 '폭격'…남아공엔 고율 관세

인도에 50% 관세 …20년 래 관계 최악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가장 수혜를 본 나라들과 피해를 본 나라들은 어디일까?

미국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P)는 '트럼프 새 외교 정책의 승자와 패자'란 24일 자 기사에서 승자로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등 5개 국을, 패자로 베네수엘라,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인도 등 5개 국을 각각 선정해 소개했다.

포린폴리시는 먼저 트럼프의 외교를 "변덕"과 "거래"로 특징지었다. 그러면서 거래적 특징은 미국의 몇몇 동맹국, 파트너국, 그리고 적대국에도 괜찮았던 반면, 변덕스러운 특징은 지난 1년 심지어 가장 가깝고 가장 오래된 파트너십 중 일부마저 뒤흔들었다 비판했다. 다만 분쟁 당사자들인 이스라엘과 하마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의도적으로 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부산 김해공군기지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의 시선 방향이 흥미롭다. 2025. 10. 29 [백악관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변덕'과 '거래' 트럼프 외교, 승자와 패자

"중국, 부산 회담 통해 유리한 무역 휴전"

우선 승자 명단에 미국의 최대 적대국이자 경쟁국이 포함됐다. FP는 "중국이 트럼프 2기 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며 "심지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되고 확대됐던 집권 1기의 치열한 무역 전쟁과 기술 통제에 비하면 특히 그렇다"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반도체 칩 판매와 중국 플랫폼 틱톡 금지 등 일부 기술 통제의 완화 움직임을 들었다.

또한 임기 초엔 대중 관세를 극심하게 인상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10.29 부산 회담을 계기로 관세를 빠르게 낮췄다고 전했다. FP는 "중국은 핵심 광물과 희토류란 막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트럼프가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 회담은 대체로 중국에 다소 더 유리한 무역 휴전을 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 5일 발표된 '2025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이 희망했거나 워싱턴의 대중 매파들이 우려했던 만큼 양보하지는 않았다"면서도 "NSS는 '국가 주권'을 강조하고 '통치 체제와 사회가 우리와 다른 국가들"을 인정한다는 내용은 베이징이 환영할 만한 현실주의를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실세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8일 백악관 건물 안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 11. 18 [백악관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트럼프, 사우디 '주요 비나토 동맹국' 지정

시리아 알샤라, 백악관 방문에 제재 해제

다음은 사우디아라비아다. FP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선택한 점을 거론한 뒤 "워싱턴과 리야드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11월에 트럼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위해 말 그대로 레드카펫을 깔아줬다"고 썼다.

회담에서 미국은 사우디를 '주요 비나토 동맹국(MNNA)'으로 지정하고 F-35 전투기 판매를 약속했다. 양국은 인공지능(AI), 원자력 에너지, 핵심 광물 분야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더 강력하고 유능한 동맹이 양국의 이익을 증진할 것이며, 평화란 최고 이익에 봉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셋째는 시리아다. 시리아 정상으론 80년 만에 처음 아메드 알샤라 대통령이 11월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의 환영을 받았다. FP는 "작년 말까지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던 전직 알카에다 무장 대원에게 일어난 놀라운 반전이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독재자였던 바샤르 알 아사드 축출 이후 알샤라의 부상은 외형적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방문 기간에 트럼프를 성공적으로 설득해 시리아에 대한 미국 제재 대부분을 해제하도록 했으며, 12월 미국 의회는 일부 제재를 유지하던 법안을 폐지하기로 의결했다"고 소개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7일(현지시간) '페론주의(Peronism) 충성의 날'을 맞아 친정부 시위대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1945년 10월 17일 투옥된 페론주의 창시자인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대적 시위가 벌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 전폭 지지 '밀레이의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테러 배후 체포 도와 관계 반전

넷째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란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과의 개인적, 정치적 유대가 강하다. FP는 "그들의 유대는 매우 깊어서, 트럼프는 10월 아르헨티나 중간선거 당시 밀레이를 대놓고 지지했으며, 그의 선거 승리를 위해 무려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트럼프는 "그가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떠날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밀레이는 승리했지만, 트럼프의 200억 달러 구제금융 약속은 워싱턴에서 여야 모두의 반발을 샀고,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백악관 전략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파키스탄도 승자 명단에 들었다. 1기 때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 테러범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 원조 대부분을 중단했으나, 2기 출범 몇 주 만에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테러 배후 체포를 도와 트럼프에게 조기 성과를 안겨주면서 양국 관계가 반전됐다. FP는 "아첨과 대화, 그리고 암호화폐에서 핵심 광물, 노벨 평화상에 이르기까지 각종 거래가 뒤따랐고, 여기에는 파키스탄의 전권을 쥔 군 최고지도자 아심 무니르에 대한 트럼프의 개인적 호감도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22일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카라카스에서 농식품 및 산업 부문 엑스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12. 22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까지 압박

이란 핵시설 '폭격'…남아공엔 고율 관세

이번에는 패자 명단이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가 "먀약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으며 좌파인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교체까지 압박하는 베네수엘라가 꼽혔다. 트럼프는 마두로가 마약으로 미국을 뒤덮고자 마약 카르텔과 공모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FP는 "대미 관계에서 베네수엘라는 북부 연안 인근 선반들에 대한 미군의 공습, 지상 타격 가능성, 정권 교체의 유령 등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라고 지적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베네수엘라 인근 군사 행동에 "이 마약 테러리스트들은 우리(서) 반구의 알카에다이며, 우리는 알카에다를 추적했던 것과 똑같은 정교함과 정밀함으로 그들을 사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도 패자 명단에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12일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묵인'한 데 이어, 6월 22일 직접 B-2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나탄즈, 포르도 등 이란의 핵심 핵시설 3곳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해 상당 부분 파괴했다. 또한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의 하마스 등 친이란 무장 세력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과 섬멸 시도, 긴밀한 동맹국이었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붕괴와 친미 아메드 알샤라 대통령의 부상 등도 큰 타격이었다. FP에 따르면, 또한 미국은 올해 "이란의 석유 밀매 네트워크와 불법 금융 부문"에 일련의 추가 제재에 들어갔으며 "재정적으로 이란 정권의 목을 죄었다"고 전했다.

 

미국 U-2 전폭기가 벙커버스터를 투하한 이란 포르도 지하핵시설의 22일 위성사진. 2025.6.22.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인 남아공도 올해 트럼프의 '표적'이 됐다. FP에 따르면, 트럼프가 남아공에 반감을 품게 된 몇 가지 요인 중 "일부는 허구이고 일부는 사실"에 기반한다. 트럼프는 유럽 식민 지배자의 백인 후손인 아프리카너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겪고 있다는 허위 주장을 밀어붙이며 이들에게 일괄적 난민 지위를 승인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가자 제노사이드를 비난하며 남아공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행위에 분개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는 HIV/AIDS 퇴치 사업 등에 투입되던 수억 달러의 대외 원조를 삭감했고, 남아공 제품에 30%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지난 11월 남아공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내년 12월 미국이 주최 G20 정상회의에 남아공 참석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9월 1일 중국 톈진의 메이장 컨벤션 및 전시 센터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 기구(SCO) 정상회의 2025를 앞두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환담을 하고 있다. 2025.9.1. 로이터 연합뉴스

캐나다, 트럼프의 '51번째 주', 관세 시달려

인도, 50% 관세 맞아…20년래 관계는 최악

다음은 이웃 나라인 캐나다다. 양국 관계는 올해 초 트럼프가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반복적으로 위협한 이후 최악의 냉각기에 들어섰다. FP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은 더는 영토 확장 문제를 거론하지 않지만, 최대 교역 상대국 중 하나인 캐나다에 여전히 상당한 공격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여러 분야에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구체적 데이터 없이 캐나다 정부가 대미 펜타닐 거래에서 역할을 하는 것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J.D. 밴스 부통령은 11월 X에 올린 글에서 캐나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민 광기"를 통해 다양성을 장려함으로써 국가의 생활 수준을 해치고 있다고 가세했다.

끝으로 인도도 패자 명단에 올랐다. FP는 "트럼프의 눈에 비친 파키스탄의 부상은 숙적 인도의 대미 관계가 2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과 맞물려 더욱 두드러진다"고 풀이했다. 트럼프와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1기에 이어 2기 초반에도 방미를 통해 긴밀한 유대를 지속할 걸로 예상됐다. 그러나 지난 5월 인도-파키스탄 간 무력 충돌 이후 트럼프의 휴전 중재에 대해 인도가 '공로'를 인정하지 않은 점과 인도의 무역 정책 및 러시아산 석유 구매 등에 실망한 트럼프는 50%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관세를 인도에 부과했다. 하지만 양국이 최근 10년 기한의 국방 협력 협정에 서명하고, 트럼프 NSS에 "인도와의 상업적(및 기타) 관계를 지속해서 개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양국 관계의 근간은 견고하다는 시각도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마음이 길을 만든다… 김종훈, ‘사람 살리는 정치’ 향한 새 도전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동한 기록

정치는 사람 살리는 책임의 길

AI 활용 설정

ⓒ백은지 현장기자

12월 26일, 울산 종하이노베이션센터가 사람 열기로 가득 찼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저서 『마음이 길을 만든다』를 펴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매서운 한파도 길을 내려는 의지를 막지 못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동한 기록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권영길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와 노동계 인사, 진보당 당원을 비롯해 시민 2,000여 명이 자리를 메웠다. 권 대표는 김종훈을 “무상 보육과 무상 교육을 30여 년 전부터 외쳐온 원조”라 불렀다. 30년 넘게 함께 투쟁한 현대중공업 퇴직 노동자는 노래로 김종훈이 걸어온 길을 증명하며 앞날을 응원했다.

행사는 주민과 나누는 대화로 꾸몄다. 책 속 생생한 현장 사례가 무대에 올랐다.

▲청년 희망 짓는 공유주택: 대구에서 울산으로 이주한 청년 전대환은 노동자 공유주택에서 찾은 공동체 희망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설계한 놀이터: 아이들이 투표로 직접 참여해 만든 ‘미끄럼틀 없는 놀이터’는 행정 고정관념을 깼다.

▲주민 감정 담은 행정: 대기업 횡포를 막으려 위생 점검에 나섰던 ‘마트 습격 사건’은 주민 눈물을 닦으려는 결단이었다.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정치는 사람 살리는 책임의 길

김 구청장은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향한 길”이라 단언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세상을 떠난 모자 비극을 언급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다. 생명보다 귀한 가치는 없음을 다시 새겼다. 그는 “침묵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거침없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자라며 현장을 선택했을 때 한숨 쉬던 어머니 울음소리를 그는 잊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끝까지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다. 이번 행사는 과거를 돌아보는 자리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향한 출발선이 됐다.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피고인 윤석열' 첫 최후진술 "공소장은 코미디 같은 얘기"

[체포방해 결심] 여전히 계엄 정당화, '시간 더 달라' 호소...재판부, 1월 16일 오후 2시 선고 재확인

사회 박소희(sost)

25.12.26 20:14최종 업데이트 25.12.26 21:06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5년 9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특수공무 집행 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은 정당하다. 국회의 입법독재가 국가비상사태를 발생시킨 원인이다. 나는 법률가고 수사전문가다. 이 모든 것은 정치적 수사이고, 정치적 재판이다.

피고인 윤석열의 첫 최후진술 주요 내용이다. 기존 태도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란특검법이 정한 '6개월 내 1심 선고' 기한에 맞춰 내년 1월 16일 체포방해 사건 결론을 내겠다는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 부장판사)에 '시간을 더 달라'는 요청도 한결 같았다. 다만 26년 간 검사로 살았던 윤씨가 이제 "검찰(특검) 측이 만들어놓은 운동장에서만 축구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장면이 낯설었을 뿐이다.

26일 재판부는 오전 재판에서 특검의 '징역 10년' 구형 의견 등 최종 의견 진술을 듣고, 오후 재판에서 윤씨 쪽 신청 증거의 조사와 최후변론 등을 진행한 다음 예정대로 변론을 종결했다. 윤씨는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과 마찬가지로 최후진술에 나섰다. 58분 간 발언을 쏟아내며 특검의 공소장을 가리켜 "코미디 같은 얘기"라고, "아무리 파면됐지만, 전직 대통령을 이걸로 범죄구성을, 어떻게 보면 엮어서" 기소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딱 하나, 윤씨가 차분하게 재판부를 설득하고자 했던 대목이 있다. 그는 지난 16일 재판부가 '1월 16일 선고' 계획을 밝힌 이후부터 줄곧 '내란우두머리 사건 선고를 보고 판단해달라'고 주장해왔다. 결심 공판에서도 다시 한번 "내란 피고 사건의 재판 결과를 좀 보고 선고해주십사 부탁드린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월 18일 구속기한 만료로 풀려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피고인 윤석열'의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받길 원해서라고 했다.

"저는 이게 굉장히 무리한, 시작 자체가 그 내란 피고 사건에 대해서 구속이 취소돼서 제가 자유의 몸이 되니 저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서 참 무리를 좀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런 범죄 사실로 보고 있다. 하여튼 뭐 저는 정치 상황이 이런데, 제가 뭐 1월 18일이 이 사건 구속 만기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하고 있다. 제 아내도 지금 구속이 되어 있고, 제가 집에 가서 뭘 하겠나."

하지만 윤씨의 목소리는 다시 높아졌다. 그는 일반이적죄 혐의도 그렇고, 이 재판의 공소사실도 "도대체 형사사건으로 이런 거를 구성해가지고..."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 측이 만들어놓은 운동장에서만 축구를 할 수 없는 거고, 저희 입장에서도, 다른 운동장에서, 저희가 제시하는 관점에서 봐주십사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며 "그런 점에 대해서, 한 번 추후 제출하는 증거를 보시고 재판부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선처해주시길 앙망한다"고 했다.

오후 6시 31분,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끝나자 백대현 부장판사는 "변론을 종결합니다. 이 사건 판결은 2026년 1월 16일 오후 2시 서관 311호 중법정에서 선고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은 윤석열씨가 자신의 혐의에 관해 58분간 전부 무죄를 주장한 최후진술 가운데 주요 발언을 정리한 내용이다.

[국무회의 심의를 형해화하여 국무위원의 심의권 침해 혐의]

"제 생각을 좀 말씀드리면, 일단은 이 계엄 선포는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우리나라 헌정사나 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권력분립이라든지 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든지 이런 것을 완전히 망각하고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반국가세력이나 체제 전복세력, 외부의 국권침탈세력하고 언제든 연계하고,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손잡는 이런 방식으로 해서 우리 정부의,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동맹에 충실하게 가려는 정부의 발목(잡는 것)을 사실 취임 초부터 시작했다. 거기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이 사건이 내란 피고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저도 참 많이 인내했다고 생각한다. (중략) 감사원장 탄핵과 중앙지검 간부 탄핵 추진이 (2024년) 11월 하순경 시작됐는데, 그때 저는 이게 뭐 정부 초기부터 시작해서 아주 입법 봉쇄, 예산 이런 문제는 제가 수도 없이 그동안 작년 12.12 담화나 1월 15일 공수처에 체포될 때 페북에 올린 대국민 말씀이나 헌재 탄핵심판에서, 최후진술에 상세하게, 제가 일관되게 언급했지만 정말 이런 반헌법적인 국회의 독재로 인해가지고 국정이 마비되고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권력분립이라든가 의회민주주의, 이런 헌정질서가 붕괴되는 상황이 (중략) 이 국가비상사태를 발생시킨 원인이 국회, 거대 야당이기 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을 깨우고 국민들로 하여금 도대체 정치와 국정에 이렇게 무관심하지 말고 제발 일어나서 관심을 가지고 비판도 좀 하고 이렇게 해달라는, 그런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 병력을 최소화시켜서, 딱 국회에 질서유지 병력 소수하고, 그다음에 선관위에 또 소수의, 서버 보안시스템을 1년 전에 국정원에서 시정권고했던 그것이 시정됐는지 워낙 확인 안해주니까 고것만 점검하는 것으로 조치했는데, 그럼 왜 국무회의를 주례국무회의처럼 하지 못했는가. 절대 보안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이미 계엄 선포 전에 국무회의를 시작하면서 이게 다 알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불안하면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고. (중략) 과거 계엄 같은 트라우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병력 규모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보안이 필요했던 거다.

특검 얘기대로 이것이 일반 주례 국무회의할 때처럼 다 들어오라고 얘기 안 했다고 하는 것이, 이게 뭐 권리행사방해 직권남용 범죄가 된다고 하면, 국무위원이 21명이다. 11명이 의사정족수인데. 그러면 19명 전화 하고 두 명 안했다고 두 사람의 심의권이 챔해되며, 20명 얘기했다면 (나머지) 한 명도 심의권 침해며, 저희는 13명 연락했지만 두 사람 기다리다가 안 오니까 (중략) 더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략) 또 하나는, 이게 인제 국가긴급권 행사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어떤 독점적, 배타적 헌법상 권한으로 돼있다. 우리가 이건 헌법상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라는 정치적 통제에 의해서 제한되게 있을 뿐이지 이거 자체를 갖고 형사법정에 세워서 형사처벌을 해야된다, 말아야 된다 하는 것 자체가 앞으로 아마 상당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제도라는 걸 운영해 나가는 데에, 제왕적 대통령을 규제하기 위한 거라는데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건 없다. 여기 보셨잖아요. 그냥 대통령이 계엄 해제했는데도 그냥 막바로 뭐 내란몰이하면서 대통령 관저에 막 밀고 들어오는 거 보셨잖아. 얼마나 대통령을 가볍게 생각하면 이렇게 하겠나."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2025년 1월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공수처 측과 경호처가 대치하고 있다.이정민

[부정적 여론 무마를 위한 외신기자 대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

"외신대변인 PG(Press Guidance) 문제는요. 일단 대변인이라는 건 언론의 관심사항에 대해서 자신이 대변하는 기관과 기관장 등의 입장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뭐 팩트체크해주는 대변인이라는 거는, (사실확인은) 언론에서 자기가 취재하는 것이고, 언론에서 뭐라고 어떤 팩트에 대해서 묻거나 정책에 대해서 묻더라도 (대변인이) 거기에 대해서 입장을 얘기해주면 그거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언론의 몫이다. 저는 제 입장을 얘기한 거고. (PG 내용 중에) 국회의원 진입을 차단했냐, 안 했냐. 그래서 제가 저 내란피고사건의 재판 결과를 좀 보고 선고해주십사 부탁드린 거고. 거기서 지금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제가 그걸 막았다고 했던 증언들이 족족이 깨지고 있고, 지금 마지막 증인 한두 명이 남아있는 상태고, 그리고 '의원 끌어내라, 체포해라' 얘기는 거의 다 무너졌다고 생각되고."

[절차적 하자 은폐를 위한 허위 공문서 작성, 행사 및 폐기 혐의]

"저는 뭐 공직생활, 저도 한 26년 했지만 이런 종류의 공문서라는 게 과연 대한민국에 존재하나 싶다. (중략) 대통령실에서, 그것도 비서실도 아닌 그냥 대통령 뒷바라지해주는, 의전 뒷바라지해주는 부속실에서 기안한다는 거는, 공문서는 관리와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서명하는 사람이 작성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기안자가 이 문서를 만드는 거다. (중략) 도대체 관리 주체가 없고, 누가 어떻게, 어느 기관에서 관리하는지 안 정해진 공문서가 어디 있으며, 관리 주체와 관리 방식과 이런 게 정해져야, 적어도 보관 자체도 무리하게 보면, 그걸 행사라고 해석할 수 있는 건데, 저는 이거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저 대통령 부속실이라는 거는 어떤 공문서도 작성할 권한이 없다. 유일하게 있다고 그러면, 아마 대통령기록관에다가 저기 뮙니까. 선물 들어온 것. 선물 들어온 것들을 일단 대통령 청사 창고에 보관하다가 그걸 기록관에 보낼 때 아마 공문을 작성할 거다. 그것 말고는 대통령 부속실장이 도대체 무슨 공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게 어떻게 뭐가 허위라는 건지, 또 이 공문서의 내용과 취지가 뭐라는 건지, 정말 이런 거를 가지고, 제가 아무리 파면됐지만 전직 대통령을 이걸로 범죄구성을, 어떻게 보면 엮어서, 그리고 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시도되는 2025년 1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구역에 공수처 수사관과 경찰이 진입하고 있다.권우성

[비화폰 기록 은폐 지시 등 증거 인멸 시도 혐의]

"비화폰 (기록 은폐 지시 관련) 직권남용에 대해서, 공소사실과 같은 지시를 저는 한 적도 없거니와 기본적으로, 도대체 비화폰 단말기를 수사기관이 못 보게 하라는 얘기도, 저를 수사하려는 수사기관조차도 처음에 인식 못하고 있던 걸 마지막에 제 신병을 확보하고 영장을 받아내려고 분석한 모양인데 (중략) 제 머릿 속에 들어온 건 보직해임되거나 그만 둔 사람들 10여명의 비화폰을 경호처가 수거하거나 수거 못할 상황이면 잘 얘기해서 홍장원 같이 막 언론에 나가지 않게 하는 정도가 보안조치라고 생각한 거지, 자기들끼리 막 기술적으로 검토해서, 이런 복잡한 내용은 대통령으로서 알지도 못하고, 이런 거를 아무리 파면됐다고 하더라도 당시 현직 대통령에게 이런 걸 걸어서 직권남용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제왕적 대통령이면 이런 걸 할 수 있는 건지 참 의문이다. (중략) 통화내역 남은 걸 군 검찰, 검찰, 공수처, 경찰이 비화폰 단말기를 입수했다면 바로 화면을 열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을 텐데, 그걸 사후에 안 보이게 막는 자체가, 저도 수사 오래했던 사람으로 이 공소장을 딱 보니까 이거 자체가 딱 코미디 같은 얘기란 생각이 들었다."

[체포영장 집행 등 수사기관의 적법한 수사 방해 혐의]

"저는 그런 생각을 했다. 2024년 12월 하순에, 공수처가 체포영장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원래 체포영장하고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언론에 안 내거든요. 원래 기민하게 해갖고 하는 건데 그걸 영장 청구하면서 아예 보도해버렸다. 보통 체포영장하고 압수수색 청구하면서 언론에 풀(공지)하는 게 없는데, 상식에 반한다. 그래서 밤인가 새벽에 보도 나오고 김홍일 변호사와 통화하면서 '이게(공수처가) 내란 수사권도 없으니 검찰,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 받았지만 아마 출구전략 세우느라고, 기각당하려고 영장을 넣었나보다' 그런 얘기를 둘이 순진하게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제한사항을 명시한) 110조, 111조를 예외한다고까지 해서 영장이 발부되는 걸 보고 거의 경악을 금지 못했다.

(중략) 그리고 제가 경호처를 무슨 사유화했다고 얘기하는데, 여러분 보시지 않았나. 대통령이 탄핵소추되고 나니까, 그러면서 바깥에서 막 흔드니까 남○○ 같은 사람이 이미 다 경찰하고 선이 닿아가지고 밖에 나가서 대통령 관저의 내부상황을, 이미 기밀 누설을 다 해준다. 그러니까 벌써 탄핵 소추 분위기가 되니까 경호관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벌써 쫙 벌어져가지고, 무슨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경호처를 사유화하는 것도 어렵지만, 더구나 탄핵 소추 위험이 있는, 탄핵 인용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공무원들은 생각했을 텐데. 당시에 탄핵 반대 운동이 벌어지는 그런 현장을, 실제로 무슨 광화문이라든가 세이브코리아 집회라든가 이런 대학 집회라든가 안국동 집회 이런 데를 실제로 가보지 않고 그냥 메이저 언론, 방송만 보는 사람들은 탄핵 가능성을 90%, 거의 100%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제가 어떻게 경호관을 사유화할 수 있나."

[관련기사] 특검 "반성은커녕 교묘한 법 기술 동원...윤석열 징역 10년 구형" https://omn.kr/2gi2t

#윤석열 #체포방해 #내란특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정은 영도에 풍작”…윤석열 정부는 왜 노동신문 기사를 공개했을까

노동신문 등 북한 자료 접속 허용 집중분석

보수정권도 통일부 사이트에 수만건 공개

국힘 의원 12명도 접근 확대법안 공동발의

김남일기자

  • 수정 2025-12-26 09:11등록 2025-12-26 08:54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9일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이 진행되었다고 21일 보도했다. 공장구내 둘러보는 북한 주민들. 연합뉴스

□ 올해 농사 풍작 및 김정은 영도 선전(12.3. 노동)

o “올해에 사회주의 전야마다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흐뭇한 결실”, “2024년 풍요한 작황은 절세위인의 심혈·노고의 응결체, 전인민적 애국충정의 결실”

o “원수님 덕에 이루어진 풍작”, “총비서 영도의 손길 아래 2024년 풍요한 가을이 시작, 열매를 맺었으며 사회주의의 격동적인 한해가 흘렀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정보포털(nkinfo.unikorea.go.kr/nkp/trend/list.do) 사이트에는 어김없이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동정을 알리는 노동신문 기사가 게시됐다. 전문이 아닌 축약한 내용이지만 “원수님 덕에 이루어진 풍작” “총비서 영도” 등 김 총비서를 찬양하는 표현을 가감 없이 노출했다. 정부가 이적표현물이라며 일반 국민의 북한 매체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면서도, 북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동신문 보도 내용을 대신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북한정보포털에 공개되는 북한 동향은 윤석열 정부 때와 다르지 않다. 지난 17일에는 노동신문에 실렸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4주기 추모 사설(“일심단결은 장군님이 물려주신 혁명의 제일재부” 등)을 요약 공개했다.

북한정보포털에는 1991년 1월 이후 북한 동향 자료 4만2317건(25일 기준)이 올라와 있다. 정치·군사·경제·사회·교육·문화 분야를 망라한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1월에 북한이 중앙방송과 한국민족민주전선방송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 신년사를 “군사파쇼 통치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극히 파렴치한 것” “외세를 등에 업고 승공 흡수통일의 꿈을 실현해 보려는 망발”이라고 비난했다는 내용,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조국통일 방안”으로 거론하고 남한에 “북을 적대시하는 법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는 내용 등이 공개돼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9월24일 “우리 녀자축구대표팀이 꼴롬비아에서 진행된 국제축구연맹 2024년 20살 미만 여자월드컵경기대회 결승경기에서 일본팀을 타승하고 영예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1면 갈무리

통일부 사이트엔 조선중앙TV 편성표까지

김정은 총비서 동향은 ‘김정은 위원장 공개활동 동향’이라는 코너를 아예 따로 만들어 하루 단위로 공개한다. 가장 최근 동향으로는 △삼지연 관광지구 호텔들 준공식 참가(23일) △신포시 지방공업공장 준공식 참가(21일) △장연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 참가(19일) △김정일 사망 14주기 금수산태양궁전 참배(17일) 등이다. 세부 내용도 빼놓지 않는다. 김정일 사망 14주기 참배와 관련해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업적을 전면적 국가부흥의 장엄한 새 전기로 빛내여”, “김정은 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일심충성으로 받들어나갈 굳은 맹세” 등 노동신문 주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조선중앙티브이(TV) 프로그램 편성표는 ‘분 단위’로 공개한다. 북한정보포털에 공개된 12월23일치 편성표는 오전 9시5분 ‘삼지연관광지구에 새로 일떠선 호텔들이 준공’, 오전 10시1분 ‘붉은 당원증’(특집), 오후 2시16분 ‘감기치료에 효과적인 약물사용법’(건강과 생활섭생), 오후 2시20분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과 3대 혁명’, 오후 3시37분 ‘이딸리아 1부류 축구련맹전-렛체 : AC밀라노’(록화실황), 밤 9시59분 ‘김정은, 삼지연관광지구 호텔 준공식 참석’ 등 32개 꼭지를 담고 있다. 이런 분 단위 공개 역시 윤석열 정부 때와 동일하다.

체제 경쟁하던 55년 전 지침이 아직도

언론인·연구자는 보도 및 연구 목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노동신문·조선중앙티브이 등을 일반 국민은 볼 수 없다. 노동신문 접속 차단 등의 근거가 되는 국가정보원의 ‘특수자료 취급지침’은 남북한 체제 대결이 한창이던 1970년 2월 제정됐다. 체제 경쟁은 이미 오래전 대한민국의 압승으로 끝났다.

지난 19일 통일부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며 북한 사이트 접속 해제, 노동신문 등 북한 자료 공개 확대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홍진석 통일부 평화교류실장은 노동신문을 예로 들며 “현행법상 일반 국민은 노동신문에 대한 실시간 접근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오늘 이 순간에도 많은 언론이 노동신문을 인용해 기사를 쓰고, 연구자들은 노동신문을 연구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국민이 그 선전전에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 “국민을 주체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저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할 계기가 될 것 같다” “국정원 정도는 이런 걸 봐도 안 넘어가는데 국민은 이런 거 보면 홀딱 넘어가서 종북주의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냐” 등의 지적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노동신문 등에 대한 접근 제한을 풀라고 지시하면서 “북한 자료를 공개하자고 하면, 대한민국을 빨갱이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 아니냐는 공격이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 노동신문을 놓고는 우리 국민들이 못 보게 막지 말라고 호통쳤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북한에 백기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북방송 중단·대북전단 금지 조처를 한 이재명 정부가, 반대로 북한의 대남선전 통로는 확대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남북한 체제 경쟁이라는, 진작에 사라진 구시대 프레임을 들고나온 것이다.

북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1일 황해북도 곡산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이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국힘 의원 12명도 북한 자료 접근 확대법 발의

노동신문 열람 허용 등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추진됐던 사안이다. 당장 당내에서도 이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석열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신문 등 북한 자료 개방 주장에 대해 보수층은 대체로 비판적이지만, 우리 국민들을 신뢰하고 북의 자료들에 대해 개방할 때가 됐다”고 했다. “북은 체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회이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체제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국민들도 북의 노동신문을 보고 현혹되기보다는 북한 체제가 어떤 언어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는 이유다.

장동혁 대표가 파악을 못한 것 같지만, 지난달 18일 국민의힘 의원 12명(김기웅·김석기·백종헌·김건·이만희·권영세·김형동·임종득·이성권·김재섭·서명옥·박성훈)이 일반 국민의 북한 자료 접근을 확대하는 내용의 ‘북한 자료의 수집·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지금까지 이적표현물 해당 여부에 중점을 두고 국가정보원의 특수자료 취급지침에 따라 폐쇄적으로 관리되어 왔지만, 최근 학술·언론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북한에 대한 이해도 제고 목적으로 북한 자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북한 자료 공개 등을 국정원이 아닌 통일부에서 맡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대구 중구남구)은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대통령실 통일비서관,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 공동발의자인 김건 의원(비례)은 윤석열 정부에서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임종득 의원(경북 영주영양봉화)은 군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윤석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2차장을, 권영세 의원(서울 용산)은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각각 맡았다. 보수정권에서 남북관계와 군사·안보 정책에 관여했던 주요 인사들이 ‘이제는 노동신문 등에 대한 일반인 접근을 풀어도 문제없다’는 인식을 공유한 셈이다.

여당에서는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양천을)이 21·22대 국회에서 일반 국민의 북한 자료 접근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지난 7월 대표발의한 ‘북한 자료의 관리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대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검토보고서(9월16일 상정)를 보면, 통일부와 국정원은 이재명 정부 들어 이미 관련 협의를 진행해 왔다.

국정원은 노동신문 사이트 등 그동안 차단해 온 60여개 북한 사이트의 접속 허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25일 공개한 국정원 서면 답변서를 보면, 국정원은 “과거 남북한 대결 구도에서 북한 자료 취급 인가 제도를 시행해 왔지만, 변화된 시대 상황에서 국민의 알권리 신장을 위해 통일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면 북한 자료 관리 주체를 통일부로 일원화하겠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김남일 기자

홍시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고 생각했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라 말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KBS의 세밑 “'복지부동' 박장범 1년은 낙제점”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10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파업에 돌입했다. KBS본부는 박장범 사장 취임 1주년을 맞아 <파괴와 붕괴의 박장범 1년… 단체협약 체결해 KBS를 사수하자>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쟁의 행위의 시작을 알렸다. KBS본부는 중앙위원과 대의원 13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지명 파업을 시작으로 쟁의 행위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KBS는 1년 반이 넘도록 무단협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KBS본부는 쟁의행위 결의문에서 “공영방송 KBS가 존재하느냐 사라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KBS 붕괴를 이끄는 박장범 체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선포했다. 파업 상황과 함께 박장범 사장 1년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19일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박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AI 활용 설정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박장범 사장 취임 1년이 됐어요. 10일부터 쟁의 행위 돌입했는데?

 

“11월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찬반 투표 실시했고 투표 결과 조합원들이 쟁의 행위를 결의하면서 10일 하루 지명 파업으로 시작했어요. 10일 오전에 쟁의 선포 기자회견 통해 우리가 다시 쟁의 행위에 들어간다는 걸 외부에 알렸고, 오후에는 토론회 열어서 박장범 1년을 평가하고 앞으로 과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지난해에도 쟁의 행위 기간에 파업은 하루씩 두 차례 진행했거든요. 앞으로 쟁의 행위는 여러 가지 상황 점검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벌일 계획인데요. 그중 하나가 10일 박장범 1년 맞아서 하루 지명 파업 진행한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명 파업이라는 게 뭔가요?

 

“쟁의대책위원장이 파업 대상자를 지명하는 겁니다. 보통 파업이라고 하면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죠. 그와 달리 조합원 가운데 일부만 참여하거나 제조업 사업장처럼 하루 2시간 파업, 4시간 파업 이런 식으로 특정 시간에만 파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걸 지명 파업, 부분 파업이라고 해요.

 

과거 기자나 PD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가면 협회는 임의단체라서 합법적인 쟁의 행위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조합 차원에서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직종을 대상으로 지명 파업 지침을 내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저희가 직종에 상관없이 집행부와 중앙위원, 대의원 대상으로 지명 파업을 시행한 거죠.”

AI 활용 설정

‘파괴와 붕괴의 박장범 1년… 단체 협약 체결해 KBS를 사수하자’ 기자회견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파업하면 외부에서 응원을 보내야 동력이 생길 텐데, 이렇게 하면 외부에선 잘 모를 것 같아요.

 

“장기 파업하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상황을 알기는 힘들죠. 방송사에서 파업한다는 걸 알게 하려면 방송이 안 나가야 되는데, 2017년 파업 당시에도 비노조원 인력이 있어서 방송이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일일 지명 파업은 내부적으로 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진행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파업에 대한 내부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이 다양하죠. 지명 파업 말고 전면 파업을 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들도 있고, 반대로 지금 당장 전면 파업은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들도 있고요. 집행부 차원에서 지금은 전면 장기 파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박장범 체제를 끝내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 내부에선 다들 동의하고 계시죠.”

 

박장범 사장 1년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다들 낙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처음 사장에 임명 제청되었을 때, 기자 495명이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김건희가 받았던 명품 가방을 조그마한 파우치로 축소하면서 권력의 치부를 덮는 데 급급했고, 논점을 명품백 수수가 아니라 경호 논란으로 바꿔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박장범 사장이 공영방송 KBS를 권력에 헌납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반대했었죠. 윤석열 정권이 특히 공영방송 KBS를 사실상 말살시키려고 수신료 분리징수까지 추진한 상황에서 권력에 맞서 KBS를 지켜낼 적임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거였어요.

 

그리고 실제로 이런 우려는 박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바로 드러났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사규인 편성규약에서 정한 임명동의제도 거치지 않고 주요 국장들을 임명했거든요. 임명동의제도 거치지 않은 국장들이 결국은 <시사기획 창>을 검열하는 수준으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고, <추적 60분> 불방 사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압을 막고 제작 자율성을 보장할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 금방 드러났었죠.”

AI 활용 설정

추적 60분 ‘계엄의 기원 2부 :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방송 촉구 피케팅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박민 사장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박장범 사장이 더 심각하죠. 지난 1년 동안 무능 경영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인은 수신료 분리징수 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있지만, 낙하산 박민 때와 비교해 보면 광고 수입이나 콘텐츠 판매 같은 모든 수입 부분이 감소했어요. 본인이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던 하반기 드라마 같은 경우에도 실제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적자 부담을 키웠던 측면에서 보면 사장으로서 경영 능력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조합 입장에서 봤을 때, 박장범 체제는 박 사장뿐만 아니라 간부들이 자리보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요. 윤석열 정권에서 미디어 정책이라는 게 검열하고 탄압하고 말살하는 것뿐이었잖아요. 근데 새 정부 출범 이후 미디어 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장범 사장은 전혀 대응을 못 하고 있어요. 레거시 미디어인 지상파방송이 가뜩이나 침체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박민 때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신문사 출신인 박민 사장 때보다 더 안 좋다고요?

 

“일단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 외압을 막는 역할을 사장이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박민이든 박장범이든 똑같이 안 했습니다. 그런데 박장범 같은 경우에는 자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사 경영 능력에서 낙제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 심각하다고 얘기하는 거죠.”

AI 활용 설정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가장 큰 문제가 적자 경영일까요?

 

“적자도 중요한 부분이죠. 사실 KBS는 공사이고 적자 나는 상황이 불가피할 수도 있습니다. 적자라는 것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적자의 원인에 대해 구성원들이 감당해야 할 이유라는 부분에 대해 사장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문제는 지금 그런 게 전혀 안 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몇 년 동안 고생하더라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이쪽이고, 이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비전이라든지 방향성을 제시하면 구성원들이 힘들더라도 그 시간을 참고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박장범 사장 경우에는 비전이나 로드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금의 적자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박장범 사장은 달라진 게 없나요?

 

“오히려 복지부동이 더 심해지고 있죠.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박장범 사장의 운명이 결정됐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장범 체제 사측 간부들도 시간이 지나면 리더십이 교체될 거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같아요. 사내에 있는 내란 동조 세력들이 마지막까지 어깃장을 놓으면서 KBS를 망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AI 활용 설정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어떤 부분에서요?

 

“무엇보다 보도와 관련해서 굉장히 노골적입니다. 내란 심판 보도에서 주요 사안을 누락하거나 축소하는 건 기본이고요. 주요 쟁점들 같은 경우에도 물타기 하는 보도가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내란 재판이 진행되면서 윤석열 정권의 실정과 관련해 하나둘 터져 나오는데 이런 내용들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팩트 보도만 하고 맥락 설명하는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왕고래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당시 <뉴스9>에서 박장범 사장이 앵커로 있을 때 무려 10꼭지를 보도하는 등 타사 대비 압도적인 보도량을 보였었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윤석열 정부 치적 띄우기에 적극 나섰는데, 이번에 사실상 실패로 밝혀졌을 때는 <뉴스9>에서 단 한 꼭지만 나갔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KBS 경영진이 계엄을 사전에 인지하고 방송 준비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어떻게 됐나요?

 

“윤석열도 22시에 KBS 생방송이 예정되어 있다고 말했던 만큼 어떻게 계엄 방송이 준비됐는지, 계엄 선포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찰 고발까지 했거든요. 근데 초기에는 경찰이 추가 자료를 요구하면서 수사가 진행되는 듯했는데 지금은 중단된 것 같아요. 전해 듣기로는 내란 방조 측면이 있어서 내란 특검에 이첩됐다는데, 확인된 사항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박장범 사장이 윤석열 정권의 낙점을 받아서 당시 박민 사장이 사장 교체 통보를 미리 받았다는 내용도 있었거든요. 이런 의혹과 관련해서도 저희가 공영방송의 인사 개입이라는, 방송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측면에서 공수처에 고발했는데 역시 수사가 안 되고 있습니다.”

 

수사가 안 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내란 사태 이후에 검찰이든 경찰이든 모든 수사 역량이 내란 진상 규명, 김건희와 관련된 각종 의혹 그리고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실 규명하는 데 역량이 집중되다 보니까 언론과 관련된 내용들은 후순위가 된 것 같아요.”

AI 활용 설정

KBS 사장 선임 ‘용산 개입’ 의혹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본부 노조에서 박장범 사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데, 정권 교체와 맞물려 공영방송 사장이 교체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은?

 

“일단 부적격 사장을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죠. 그런데 부적격이지만 들어와서 그나마 KBS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구성원들과 함께 공영방송의 가치를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면 저희가 다른 방안을 검토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박장범 사장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사장이 바뀌는 게 부담 되니 공영방송 사장으로 걸맞지 않은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가자고 얘기하는 게 오히려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되는 건 권력이 공영방송 사장을 억지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지,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하도록 내부에서 투쟁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정연주 사장과 김의철 사장의 사례가 있고 또 고대영 사장의 사례가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사장이 교체된 형식적인 부분에 있어 닮은 꼴이라고 두 사안을 똑같이 보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최근 방송법이 개정돼 이사회가 새로 구성되면 사장 교체할 수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되어 가나요?

 

“새로 꾸려진 이사회에서 사장을 새로 뽑을 건지 말 건지를 판단할 겁니다. 바뀐 방송법에 따라서 이사회를 꾸리려면 정치권뿐만 아니라 종사자, 시청자위원회, 학회, 법조 단체에서 이사들을 추천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 이사 추천과 관련된 내용들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규칙으로 정해야 합니다.

 

오늘(19일)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이 취임하지 않았습니까. 위원회가 꾸려지고 규칙이 정해지면 그다음에 그 규칙에 따라 이사를 추천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저희도 지금 방통위 규칙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AI 활용 설정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무단협 상황은 지속되고 있는 거죠?

 

“지금도 계속 무단협 상황입니다. 사측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공익위원들이 제시했던 조정안마저 거부했어요. 개별 교섭 상황에서 다른 노조와 교섭도 지지부진한 거 보면 사실상 사측은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지가 없다고 보여요. 지금 중노위 조정이 결렬돼서 쟁의 행위에 돌입한 상황이지만, 만약 사측이 체결 의지가 있으면 쟁의 행위 중이라도 교섭에 나와야 하는데 그런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측이 단협 체결을 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단체협약 체결이 중요한 현안인데 사측이 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합이 어떤 일을 할 건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 중이에요. 그리고 단협 체결을 위한 투쟁과 더불어 개정 방송법 취지에 따라 편성규약 개정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투쟁할 계획입니다.

 

왜냐하면 단체협약에 임명동의제나 공정방송위원회 같은 장치들이, 사규인 편성규약을 근거로 단체협약에 위임된 구조이기 때문에 편성규약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단체협약에서 공정 방송 장치를 튼튼하게 만들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편성규약을 제대로 만드는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투쟁해 나가려고 합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언론 또…'현대차 회장 장남 만취 운전' 기사 무더기 삭제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다른 기사 보기

 

  • 미디어비평

  • 입력 2025.12.26 02:55

  • 수정 2025.12.26 06:01

  • 댓글 0

정의선 아들 정창철 씨, 4년 전 음주 추돌 사고

 

서울 도심서 인명 피해 이어질 뻔한 만취 상태

 

법원, 벌금 900만 원형…언론 당시 앞다퉈 보도

 

SBS·YTN·연합뉴스 등 돌연 기사 내리거나 수정

 

정 씨 '경영 수업 시작' 부각되자 흑역사 지우기

 

재벌 광고주에 불리한 사안 축소·은폐 '고질병'

 

이를 비판하는 매체도 거의 없는 '침묵의 담합'

 

"정 씨 기사 포털에 얼마 안 남아, 자본에 굴복"

AI 활용 설정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5일 경기 용인 기아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아 80주년 기념식을 마친 뒤 이동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12.5. 연합뉴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아들이 4년 전 서울 도심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추돌 사고를 냈다는 기사가 근래 무더기로 삭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차 측의 요청에 따라 여러 언론사가 담당 기자와 협의도 없이 자사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등에서 해당 기사를 임의로 내린 것이다. 재벌 광고주의 사전·사후 광고 및 협찬을 고리로 각 기업에 불리한 사안을 축소·은폐해주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가 또 한 번 여실히 확인됐으나, '침묵의 담합' 속에 이 사실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매체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정의선 회장의 장남인 정창철 씨는 지난 2021년 7월 24일 새벽 4시 45분쯤 서울 광진구 강변북로에서 현대차 제네시스 GV80 차량을 몰다가 영동대교 램프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이후 청담대교 진입로 근처에서 멈춰선 정 씨의 차량은 운전석 앞 범퍼와 타이어 등이 크게 파손됐지만 다른 차량과는 충돌하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다.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고 발생 약 1시간 뒤 측정한 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4%로 면허 취소 수준인 0.08%의 2배가 넘었다.

 

차량이 가드레일에 부딪혀 멈추지 않았다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만취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아파트에서 지인과 술을 마신 뒤 3.4km가량을 직접 운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동승자는 없었다. 정 씨가 몰았던 제네시스 GV80은 부친인 정의선 회장의 소유였다고 한다. 사고 당시 정 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서 일본 도쿄올림픽 현지 일정을 소화하느라 국내에는 없는 상태였다.

 

광진경찰서는 정 씨를 입건한 뒤 같은 해 8월 6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서울동부지검은 8월 10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벌금 9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이에 서울동부지법 형사39단독 이재석 부장판사는 같은 해 9월 15일 정 씨에게 벌금 9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약식명령은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사건에서 공판 절차를 밟지 않고 약식으로 벌금 등의 재산형을 내리는 형사 절차다.

 

AI 활용 설정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일간지와 방송사, 통신사, 각종 인터넷 매체들은 정 씨의 음주 추돌 발생, 경찰 송치, 검찰 수사 및 기소, 법원의 벌금 부과 등 각 단계별로 상당량의 기사를 앞다퉈 냈다.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불리는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재벌 일가, 특히 향후 경영 참여가 매우 유력한 사주 장남의 만취 운전 사고라는 점에서 보도 가치는 충분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올해 9월부터 SBS와 YTN을 비롯한 많은 언론사가 관련 기사들을 돌연 삭제했다. 연합뉴스는 기사 제목에서 '현대차'와 '정의선'을 뺐다가 문제가 되자 일부 복구하기도 했다.

 

거대 광고주인 현대차의 임원들이 나서 각 언론사 국장급 간부들을 상대로 기사 삭제 또는 제목 수정을 요청한 탓이다. 이는 "정창철 씨가 올해 초 현대차그룹 일본 현지법인인 현대 모빌리티 재팬에 평사원으로 합류해 상품기획 파트 담당으로 신차 개발과 상품성 검토 등 업무를 맡아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는 연합뉴스TV의 <[단독] 삼성 장남 군 입대·현대차 장남 일본행…재계 3·4세 행보 주목>이라는 9월 11일자 보도가 발단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4년 전에는 워낙 세간의 보는 눈이 많아 기사를 막는 게 무리였으나, 이제 시간이 흘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해군 장교로 입대한 뉴스와 함께 정창철 씨의 행보가 다시 부각되자 '흑역사'의 흔적을 최대한 지울 필요가 있었던 듯하다.

 

현대차 요구에 의한 기사 삭제 사례를 조사해온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는 24일 <'재벌 봐주기' 기사 삭제 무더기 발견…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현대차 장남 음주운전'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남아있는 건 KBS, MBC, 한겨레, 경향신문, 노컷뉴스의 기사 정도"라며 "정상적으로 보도됐고 사실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기사가 뒤늦게 무더기로 사라진 것"이라고 밝혔다.

 

민실위가 언론노조 소속 지부·본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9월 무렵 여러 언론사에서 문제의 기사가 잇따라 삭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그룹'이라고 실명으로 나갔던 기사를 'H그룹'으로 바꾼 곳도 있었다. 당시 기사를 썼던 기자 본인과 담당 부서장도 모르게,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슬그머니 삭제하거나 고친 게 공통점이었다고 한다.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원래대로 고친 경우도 있었다. 언론노조 지부가 없는 곳까지 포함하면 기사를 삭제한 언론사는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사측의 해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오래된 기사라서.' '타사에도 다 나간 기사라서.' '이미 방송된 기사라서.' 이를 두고 민실위는 "기자가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라며 "이에 비하면 '4년 전 사건을 계속 언급하면서 협찬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 골치'라는 현대차 측 이야기에 삭제했다는 말은 차라리 솔직하다. 하지만 광고주의 민원 해결이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AI 활용 설정

연합뉴스TV가 9월 11일 단독 보도한 '삼성 장남 군 입대·현대차 장남 일본행…재계 3·4세 행보 주목' 화면 갈무리

아울러 "왜 사건 당시도 아닌 올해 9월이었을까. 지난 9월에는 정 회장의 장남이 일본 법인에 입사해 경영 수업의 첫발을 떼었다는 기사가 났다. 장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4년 전 음주운전 사건이 새삼 회자되자 그룹에서 대응에 나섰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재벌에 불리한 기사를 슬쩍 삭제해주는 언론이 권력을 올바로 감시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자본의 영향을 받는 언론이 정치 권력의 영향은 받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비슷한 일이 또 있지 않았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편집권 독립을 위해 투쟁해 온 언론노조 민실위는 여러 언론사가 이렇게 손쉽게 자본에 굴복한 것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자본 권력에 의한 중대한 편집권 침해 사례"라며 "민실위는 기사를 삭제, 수정한 모든 언론사에 문제의 기사를 원래 승인됐던 대로 복구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현대차그룹에도 경고한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정상적인 언론 보도를 없애려 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전했다.

 

기사를 삭제한 언론사 중에서 SBS 노조는 공개적으로 사측을 강도 높게 규탄하고 나섰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사라진 재벌가 '범죄' 기사, 짓밟힌 자본 독립>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재벌가의 범죄행위를 기록한 SBS의 기사 3개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삭제됐다"면서 "보도본부 디지털 수뇌부는 해당 기업의 요청을 받고 기사를 삭제해 줬다고 실토했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는 일언반구 언질도 없었다"고 분노했다.

 

이어 "현대차의 임원이 SBS에 건 전화 한 통에 그렇게 된 것이다. 삼성가 장남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장교로 입대한다는데, 현대가 장남은 음주운전을 했다며 비교가 되니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 부끄러움은 그렇게 SBS 구성원의 몫으로 넘어왔다"며 "재벌 광고주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기사를 지워줬을까? 이런 삭제 사례가 이번 한 번뿐이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 건, 긴급히 보도 편성위를 개최하자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보도 최고책임자가 '바쁘니 다음 달에 논의하자'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장 삭제된 기사들을 원상 복구하라.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은 그만두고 기사 삭제까지 전 과정을 명명백백히 밝혀라. 그리고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 지금 뼈를 깎는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제 더는 시청자 앞에 신뢰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은 "고환율로 인해 내년 물가 상승 압력 올라가"…2.3%까지 오를수도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5.12.26. 06:30:04

 

한국은행이 고환율로 인해 내년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은 25일 발표한 <2026년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안> 보고서에서 "높아진 환율, 내수 회복세 등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예상보다 확대될 수 있다"며 "향후 물가와 성장 흐름 및 전망 경로상 불확실성, 금융안정 측면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부 및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관련해 한은은 지난 11월 내놓은 수정경제전망에서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1.9%에서 2.1%로 상향조정했다.

 

아울러 원달러 환율이 내년에도 1470원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내년도 물가상승률이 최고 2.3%로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요 투자은행도 한국의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올리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 집계 결과에 따르면 이달 중순 주요 금융기관 37곳이 제시한 한국의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중간값은 지난달 말 1.9%에서 0.1%포인트 올라간 2.0%로 집계됐다.

 

보름여 만에 37개 금융기관 중 14곳이 전망치를 상향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크레디 아그리콜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1.8%에서 2.1%로 0.3%포인트 올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글로벌은 1.9%에서 2.0%로, 피치는 2.0%에서 2.2%로 상향조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현재 원달러 환율 상황을 두고 "위기라 할 수 있다.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소비자심리도 높아진 물가로 인해 어둡다. 한은이 24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9.9로 11월(112.4)보다 2.5포인트(p) 떨어졌다. 비상계엄이 있던 지난해 12월(-12.3%p) 이후 최대 낙폭이다.

AI 활용 설정

▲2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9.9로 11월(112.4)보다 2.5포인트(p) 떨어졌다. 비상계엄이 있던 지난해 12월(-12.3%p) 이후 최대 낙폭이다. ⓒ연합뉴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이대희 기자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용하던 독일인들이 연말만 되면 돌변... 악귀 쫓는 의식이라고?



[고정희의 오마이 베를린] 새해 전야에 터지는 3천 억 원의 폭죽, 북유럽의 겨울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

민족·국제 고정희(yohannah)

25.12.25 11:22최종 업데이트 25.12.25 11:22

 

AI 활용 설정

▲베를린 성탄절 조명베를린 도심 포츠다머플라츠의 가로수가 푸른 빛 성탄 조명을 받고 있다.고정희

 

독일 속담에 이르기를 소비하기 전에 1센트짜리라도 한 번 더 뒤집어 보라고 한다. 필요한 소비인가 재삼 따져 보라는 뜻이다. 이렇듯 절약이 몸에 밴 구두쇠들이 성탄절이 지나고 연말이 다가오면 딴사람이 된다. 성탄절 선물은 미리 주문을 받고 영수증까지 첨부하여 예쁘게 포장해서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아둔다.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성탄절 연휴 다음날이면 백화점에 반품된 선물들이 산처럼 쌓인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새해 전야가 되면 1억 유로가 넘는 분량의 폭죽을 하릴없이 하늘로 쏘아 올린다. 자정이 되는 순간 포화를 방불케 하는 굉음이 전국의 공기를 찢는다.

 

처음에 이 조용한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인으로 변해서 폭죽을 쏘아 올리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했다. 한해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만의 놀이가 아니다. 수년 전엔 소문을 듣고 올림픽 경기장에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경기장 앞의 넓은 광장을 그득 채운 사람들. 아버지와 아들이 팀이 되어서 미니 로켓 발사대를 설치해 놓고 폭죽을 연달아 날리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그렇게 폭죽을 쏘고 나서는 밤새 춤을 춘다. 클럽이나 파티장에 가서 추기도 하지만 대개는 친구들끼리 집에 모여서 춤을 춘다. 그날 밤은 어차피 잠은 포기해야 한다. 전 도시가 밤새 쿵쾅거리기 때문이다. 그날은 푸틴이 폭탄을 던져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연말연시를 왜 그리 시끄럽게 보내느냐고. 대답이 의외였다. "악귀를 쫓기 위해서"란다.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혹은 재미로 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악귀 쫓는 의식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게르만족, 켈트족의 자연 신앙에서 유래한다. 통계를 보니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넘어가는 그 한 밤에 독일 전체에서 쏘아 올린 폭죽값이 약 1억 9700만 유로, 당시의 환율로 환산해서 3200억 원이 넘는다. 일 년 내내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들이 한 해 마지막 밤, 단 몇 시간 만에 문자 그대로 다 날려버린다. 대체 왜?

 

성탄절?

 

이 글이 발표되는 날은 공교롭게도 성탄절이다. 그런데 독일의 성탄절은 하루의 축제가 아니다. 11월 말부터 시작되어 12월 26일까지 이어진다. 문자 그대로 성탄 '절기'인 셈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기 4주 전 일요일부터 성탄 절기가 시작된다. 거리에 일제히 성탄절 조명이 켜지고 수십 곳에 성탄절 장이 선다. 성탄절 장은 중세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치 동화 속 난쟁이 집같이 통나무로 예쁘게 만든 작은 상점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고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과 장식품을 판다. 늘 그렇고 그렇다고 투덜대면서도 한 번쯤은 가보게 된다. 가서 글뤼바인이라고 하는 뜨겁고 달고 향기로운 포도주를 마신다.

 

각 가정에서도 전나무, 구상나무 등 상록수 가지로 집안을 장식한다. 나뭇가지를 여기저기 걸어놓기도 하지만 대개는 둥글게 화환처럼 엮은 뒤 커다란 붉은 초 네 개를 꽂아 둔다. 그리고 4주 전 일요일에 첫 번째 촛불을 밝힌다. 그다음 주 일요일에 두 번째 촛불을 함께 밝히고 4주째 일요일이면 촛불 네 개를 모두 켠다. 그럼 곧 성탄절이 된다는 뜻이다. 올해의 경우 성탄절이 목요일이기 때문에 마지막 촛불을 밝히고도 4일을 기다려야 했다.

 

이들이 신앙심이 깊어서 아기 예수 탄생을 4주 전부터 기다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회가 텅 빈 요즈음, 성탄절과 아기 예수 탄생을 실제로 연결하여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이들에겐 그저 명절이다. 아이들은 신나지만, 어른들은 성탄절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그날은 우리의 설날처럼 가족들끼리 보내는 것이 전통이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고 형제자매를 만나게 되어 즐겁고 반갑기도 하겠지만 가족 간에 다투는 날이기도 하다.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오고 스트레스가 폭발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꼬박꼬박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보면 습관이나 전통이 무섭긴 하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게르만족의 동지 축제였다. 가장 긴 밤이 지나고,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북유럽 사람들은 이날을 중대한 전환점으로 여겼다. 율(Yule)이라는 게르만족의 동지 축제가 나중에 기독교의 성탄절이 되었다.

 

AI 활용 설정

▲성탄절 장중세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 11월 말에 시작해서 1월 6일에 끝난다. 겨울철 누구나 한 번 쯤은 방문해서 달고 뜨거운 와인을 마시는 곳고정희

 

성탄절 이후의 열두 밤

 

성탄절이 지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열두 밤"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이 역시 자연 신앙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시기를 그들은 '시간이 멈추는 때'로 여겼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떠돌고, 악령들이 활개 치는 위험한 시간대다. 옛날엔 외출을 금하고 집에서 향을 태우고, 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려 악령을 쫓았다고 한다. 지금은 12월 31일 하루에 폭죽과 굉음으로 대신한다. 그 빛과 소리에 놀란 악령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간다는 것이다.

 

1월 6일이 되어야 열두 밤이 끝난다. 그와 동시에 긴 성탄 절기가 막을 내린다. 이날 저녁 거리의 조명은 꺼지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일제히 거리에 내어놓는다. 그러면 시 청소과에서 수거해서 바이오연료를 만든다. 광란의 긴 겨울 축제 기간이 끝났으니 이제는 새해와 마주해야 한다.

 

베를린의 12월은 아침 여덟 시가 넘어서야 밝아오고 오후 네 시가 되면 다시 캄캄하다. 하루에 겨우 여섯 시간 해를 보는 셈이다. 그것도 희미하고 낮게 걸린, 힘없는 겨울 해다. 이 어둠이 11월 말부터 시작해서 1월 말까지 석 달을 이어진다. 햇빛 부족으로 인한 계절성 우울증은 독일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비타민 D 결핍, 세로토닌 감소, 생체리듬 교란. '겨울 시련'은 의학적으로도 설명된다.

 

그러므로 한 달이 넘는 축제는 결국 어두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동화와 마법을 낳는 겨울

 

이걸 뒤집으면 다른 면도 보인다. 겨우내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였던 시절이 있었다. 눈 쌓인 풍경에 고즈넉이 내려앉은 어둠은 외투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아이들에겐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절기이기도 하다. 북유럽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가 가장 많이 나온 것이 과연 우연일까? 벽난로 앞에 앉아 동화를 쓰고 있는 안데르센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창밖으로는 눈 쌓인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바로 이 북유럽의 긴 겨울밤이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 전 인류를 매혹하는 마법 이야기 역시 북유럽 문화의 산물이다.

 

신데렐라, 백설 공주, 눈의 여왕, 성냥팔이 소녀. 이 모든 동화의 공통점은 어둠/추위/죽음에서 빛/따뜻함/생명으로의 이동이다. 이것은 북유럽 사람들이 매년 겨울마다 간절히 바라는 것, 그들이 매년 통과해야 하는 시련의 서사다.

 

독일에서 화약을 이용한 폭죽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18세기부터였다. 처음에는 귀족들 전용이었지만 19세기 후반 산업화로 저렴한 폭죽이 대중화되었다. 요즘은 슈퍼에서 12월 29일부터 폭죽을 판매한다. 환경단체들이 아무리 미세먼지를 이야기해도, 동물보호단체들이 겁에 질린 애완동물들을 이야기해도, 소방서가 화재 위험을 경고해도, 여전히 폭죽은 터진다.

 

크리스마스 시장의 수천 개 전구, 집집마다 걸린 조명, 교회의 크리스마스 미사와 콘서트, 가족 모임, 선물 교환. 그리고 열두 밤의 향 연기. 그리고 마침내 새해 전야의 폭죽.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북유럽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발전시켜 온 겨울 생존 시스템이다.

 

AI 활용 설정

▲베를린 소니센터의 화려한 성탄절 조명화려하지 않은 베를린 사람들이 성탄절 조명만큼은 마음껏 화려하게 장식한다. 일년 내낸 아끼다가 겨울에 다 쓰는 사람들고정희

 

이 겨울의 염원

 

우리는 여전히 어둠과 추위를 두려워한다. 여전히 겨울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소음에 매우 민감한 편이라 폭죽은 터트리지 않는다. 그 대신 촛불을 남들보다 많이 밝힌다. 일주일에 하나가 아니라 매일 하나씩 보태고 있다. 1월 6일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이제 촛불을 켤 때마다 염원해야 할 것이 생겼다. 그리고 연말 자정의 종소리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할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며칠 전 10만인 클럽 안내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를 위해 기록합니다'라는 구절이 가슴을 후볐다. 10만인 클럽이 100만인 1000만인 클럽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가입했다.

 

돈보다 생명이 귀한 세상이 부디 되돌아오게 하소서.

#베를린 #성탄절 #새해전야 #폭죽 #동화와마법의겨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완수...확신갖고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12/25 10:13
  • 수정일
    2025/12/25 10: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25년 송년특집] ③북한 내부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5.12.24 11:00
  •  
  •  수정 2025.12.24 11:11
  •  
  •  댓글 1
 

2025년에는 한국에 이재명 정부가,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각각 새로 출범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북한의 거부와 무응답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고 또한 북한도 제9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있어, 한반도 문제의 세 주역인 남-북-미의 새로운 조합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올 것을 기대하면서 [2025년 송년특집]을 ①북미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 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전진 속도는 가속화되었고 자생력은 배가되었다.'

지난 6월 24일 6년만에 준공식을 진행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전경 [사진-노동신문]
지난 6월 24일 6년만에 준공식을 진행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전경 [사진-노동신문]

지난 2021년 시작된 조선로동당 제8기 5년을 마무리하는 제13차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국가정책 집행에 대해 이같이 총평했다.

압축한 결론을 풀이하면 "각이한 도전과 애로를 마주한 속에서도 인민경제 주요 공업부문들이 줄기찬 증산절약투쟁으로 상향된 생산계획을 책임적으로 수행하고 농업부문에서 지난해보다 더 높은 알곡수확고를 기록하였으며 많은 중요대상건설을 훌륭히 완공함으로써 올해 경제발전 목표들과 함께 5개년계획이 완수되였다"는 것.

2021년 1월 제8차당대회에서 공식화한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 발전' 노선에 따른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달성했다는 언명과 함께 "인민경제 주요부문들의 현대화사업과 기술하부구조들을 보강하는 사업들이 결속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하여 다음 단계 전망목표 수행에 보다 확신성있게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과 담보가 마련되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방발전 20X10 정책'에 따른 지방공업공장을 차질없이 세우고 의료시설과 종합봉사소 등 '확대되고 진보한' 방식으로 완공한 것은 '인민들의 복리실현에서 자부할만한 결과이자, 국가의 동시적인 발전상을 과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의 현대화 방침에 따라 국방력 강화를 위한 의미있는 성과들이 있었다며, 전 지구적 변화속에서도 안전보장을 위한 많은 문제들이 효과적이고 올바로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발전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년을 규율한 제8차 당대회의 기본사상과 노선, 전략,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성공을 공표한 셈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완수

북한 전역에서 연일 결산분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11월 10일 평양시 강남군 고천농장의 결산분배장 [사진-노동신문]
북한 전역에서 연일 결산분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11월 10일 평양시 강남군 고천농장의 결산분배장 [사진-노동신문]

제8차 당대회의 기본사상은 "사회주의 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 발전' 노선은 '국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와 나라의 모든 지역이 동시적이고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며,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는 것'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과 겹치는 시기 정비·보강전략의 목적은 "경제사업 체계와 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연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 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조선의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림 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정상궤도에 올려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아직 일정이 공개되지 않은 내년 초 제9차 당대회에서는 이같은 성과를 토대로 203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도달하기 위한 '다음 단계의 거창한 투쟁을 연속적으로 전개'하는  노선과 전략, 5개년계획 등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 보다 올해 더 높은 알곡수확고를 기록했다는 것.

관개 건설의 뚜렷한 진전과 농기계 확대 및 과학영농, 농지면적 확대 등에 힘입어 '새시대 농촌혁명 강령'이 본격 실행된 지난 2022년 이후 꾸준히 국가알곡생산계획이 초과달성되고 있다는 것이 자체 평가이다. 

올해에도 고온과 폭우, 가을철 잦은 비 등 재해성 이상기후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2021년 대비 밀 수확량이 3배 이상 늘고 지방공업공장 건설에 양곡관리소를 병행하도록 한 조치 이후 가공능력은 2배 성장해 백미와 밀가루 위주로 식생활 구조를 개선하는 조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지난 9월 올해 북한의 옥수수 생산을 최근 5년 평균보다 1% 늘어난 약 230만t, 벼생산은 5년 평균보다 5% 많은 227만t(정곡기준 147만t)으로 파악한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과학농사로 자리잡은 알곡 증산...지방발전정책 2년차 성과

지난 12월 15일 강동군 지방공업공장과 종합봉사소 준공식에서 준공 테이프를 끊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노동신문]
지난 12월 15일 강동군 지방공업공장과 종합봉사소 준공식에서 준공 테이프를 끊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노동신문]

지난해 20개 시,군에 건설된 지방공업공장은 올해들어 시,군 보건시설과 종합봉사소(과학기술거점), 양곡관리시설 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20개 시,군에서 준공이 마무리되고 있다. 당 정책을 생활에서 체감하며 신뢰가 커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동군 지방공업공장, 종합봉사소 △평안남도 신양군 지방공업공장 △자강도 랑림군 지방공업공장△평안북도 대관군 지방공업공장 △함경북도 부령군 지방공업공장(이상 12.15.), △황해북도 황주군 지방공업공장(12.16), △황해남도 장연군 지방공업공장 △평안남도 북창군 지방공업공장 △강원도 철원군 지방공업공장 △자강도 장강군 지방공업공장(이상 12.18.), △함경북도 길주군 지방공업공장(12.23.)등 12월 24일 현재까지 16곳에서 연속적으로 준공식이 진행됐다.

북한은 2022년 1월부터 2024년 말까지 3년간 10만 세대를 훨씬 넘어서는 농촌주택을 건설한데 이어 올해에만 130개 시,군에 2만여 세대의 주택을 건설한다며, 수시로 농촌 새집들이 소식을 소개해왔다. 도·농 균형발전의 상징적 징표이자 농민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요인으로 파악된다.   

가장 낙후한 것으로 지적되는 의료분야의 현대화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평양 외곽 강동군병원(11.20.)과 평안북도 구성시병원(12.13.) 준공식에서 김 위원장은 앞으로 해마다 20개 시,군에 병원을 건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그에 앞서 5년만에 준공(10.6.)한 평양종합병원 준공식장에서는 '제2종합병원 추가 건설' 계획도 밝혔다.

전체적으로 내각 중심의 생산지휘 및 관리 체계를 포함한 정비·보강 전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12개 중요지표가 연속 달성되었으니 다음 단계로 확신을 갖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이다.

평화적 발전을 위한 안전 환경이 더할 나위없이 절실하다는 명분으로 '강위력한 힘의 상시 유지'가 필수불가결하다는 논리가 계속 힘을 받고 있다.

△신형 극초음속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1.6) △5천t급 다목적구축함 '최현'호 진수(4.25) △5천t급 2호 구축함 '강건'호 진수(6.12) △탄소섬유복합재료를 이용한 대출력고체엔진 지상분출시험(9.8) △당 창건 80돌 경축 열병식에 차세대 ICBM '화성포-20'형 등장(10.10)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10.22) 등 '국방력 강화노력'은 멈추지 않고 있다.

탄소섬유복합재료를 이용해 그간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ICBM 재진입기술, 다탄두탑재능력 등을 향상시켜 미 본토 타격능력을 강화하는가 하면 해상작전능력 확대를 위한 구축함 진수,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 포탄 증산과 무인생산 수준 제고 등 다방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북은 '순간의 정체도 없이 확고한 승세와 초강력을 지향하는 방위력 강화'를 역설하기도 했다.

평화적 발전위한 안전환경 절실...방위력증강·적대적 두 국가관계 배경

지난 10월 10일 당창건 80돌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ICBM '화성포-20'형 [사진-노동신문]
지난 10월 10일 당창건 80돌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ICBM '화성포-20'형 [사진-노동신문]

안전환경을 위한 '강위력한 힘의 상시 유지'와 함께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것도 평화적 발전을 위한 북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군사분계선에 방벽을 치고 도로를 폐쇄한 것도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위한 주체적 힘과 내적 동력이 끊임없이 증대되는 과정'에 훼방받지 않고 전념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제9차 당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이 당규약에 명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화적 발전을 위한 대외 환경은 어느 때보다 북한에 유리하다.

지난해 6월 19일 평양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한 이후 러시아는 사실상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전방위적으로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2일 무렵 북한이 쿠르스크 지역에 특수작전부대를 파병하고 올해 6월 이후 전후복구 인력 추가파병을 단행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상호 전략적 안전보장을 확약하는 혈맹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27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서면입장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의해 일시 점령상태였던 쿠르스크 해방작전을 위해 군을 파병해 작전을 성공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미국은 본토 안전을 우려하며 북과 정상회담을 바라고 미국과 전략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군축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 지지' 문구를 삭제하는 중대변화와 더불어 대북제재 공조에서도 한발 빼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개적이진 않더라도 중국이 곧 대규모 물자교역을 승인할 것이라는 징후가 최근 북중 국경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 본격 체계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치적으로 인정되는 성과가 쌓이고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의 믿음'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집권 14년째에 접어든 김 위원장의 위상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뚜렷히 확인되어 주목된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최고인민회의 및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은 연초부터 <위대한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자!>는 제목의 연재를 연중 게재하고 있다.

2025년 <위대한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자!> 연재

[노동신문]
우리당 5대건설로선이 밝힌 작풍건설의 본질과 중요요구(2.5.)
창당리념과 정신의 진수(3.24.)
우리 당건설사상의 중핵(4.24.)
당의 결정, 지시집행에서 나서는 중요요구(4.28.)
자강력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방식(6.1.)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의 본질과 지위(6.8.)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의 기본요구(6.10.)
당의 작풍건설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6.15.)
국력평가의 기준, 국력강화의 결정적요인(6.20.)
경제건설의 전략적로선(8.4.)
자주, 자존의 원칙(8.24.)
우리 국가의 고유한 특징(9.3.)
국가건설의 총적목표(9.11.)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본질(9.27.)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사상정신적기초(9.29.)
국가건설의 근본원칙(10.26.)
3대혁명로선의 전략적지위와 변혁적의의(11.13.)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의 전략적로선(11.15.)
당건설의 기본원칙(11.22.)
당건설의 기본방향(12.4.)


[민주조선]
인민대중제일주의의 근본핵-위민헌신(2.28.)
사람의 집단주의적요구에 관한 사상(3.6.)
정치의식에 관한 원리(3.11.)
주체의 인민관, 인민철학(3.19.)
믿음의 철학에 관한 사상(3.28.)
자주, 자존의 원칙(4.2.)
사상제일주의원칙(4.8.)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5.11.)
주체혁명의 총적방향, 총적목표에 관한 사상(5.16.)
사회주의강국의 징표(6.5.)
우리 국가제일주의에 관한 사상(6.12.)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에 관한 사상(6.17.)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에 관한 사상(6.22.)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의 전략적로선에 관한 사상(7.17.)
공산주의건설의 기본요구(8.1.)
사회주의기본정치방식(8.6.)
경제전반의 균형적동시발전(11.11.)
새로운 발전기준과 본보기를 창조하고 일반화하는 방법(12.4.)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이라는 표현은 [민주조선] 2015년 11월 26일자 사설에서 처음 확인되며, 2021년 4월 6일 제6차 세포비서대회 개막일에 조용원 당 비서의 보고에서 언급된 이후 신문 사설과 기사는 물론 연구토론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등에서 공식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지난해 4월 20~23일까지 진행된 제2차 선전부문 일꾼강습회에서 "위대한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전당과 온 사회를 일색화하는데 당사상사업의 총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 정해진 뒤부터 본격적으로 체계확 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평가된다.

아런 분위기속에 사회과학원 김일성-김정일연구소는 지난 4월 10일 일본 내 조선언론정보기지 웹사이트(KPM)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의 본질, 기본내용, 특징, 역사적지위'에 관한 4편의 소논문을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계간으로 발행하는 [철학, 사회정치학연구] 2025년 2호는 '위대한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은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하기 위한 우리 당과 혁명의 위대한 지도사상'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에서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은 "내용에서 위민헌신을 근본 핵으로 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일관되고 구성에서 사상, 리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하면서 정식화를 시도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성과를 보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완수가 가져다 준 자신감을 토대로 다음 단계로의 진입을 계획하는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혁명사상'이 어느 시점에 정교한 형태로 완성될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석영 작가의 ‘광주 기록’에 대한 문제제기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namoo0011@hanmail.net

다른 기사 보기

 

  • 민들레 들판

  • 입력 2025.12.24 19:00

  • 수정 2025.12.25 08:40

  • 댓글 1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사실은 바로잡히길"

최근 시민언론 민들레에 게재된 기사를 읽으며 한동안 잊고 살고자 했던 기억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로 황석영 작가에 관한 기사(♬"소설가 황석영"♬…그의 삶을 노래로 부른다)이다. 해당 기사 중 ‘광주’ 관련 부분은 다소 부정확하고 오해가 있다고 판단되어 바로잡고자 한다.

 

해당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구백팔십년 광주의 피거리를 걸었네” - 1980년 황석영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이 됐어요. 그는 5.18 현장을 목격했어요. ‘피거리’, 이 단어의 무게감. 문자 그대로 피로 물든 거리였어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서 / 그 기록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혔다네” - 1985년 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건 실제 책 제목이자, 광주의 진실을 담은 증언이자, 그 시대의 양심 그 자체였어요. 2만 권이 압수됐지만, 지하에서 입에서 입으로 퍼져서 87년 6월 항쟁의 불씨가 됐어요. 그리고 황석영은 이 기록 때문에 감옥에 갇혔어요."

 

마지막으로, ‘광주가 날 놓아주지 않았고, 그 덕분에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황석영 문학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는 사실입니다.

 

2011년 신동아의 ‘광주항쟁 기록’ 보도

 

2011년 신동아 1월호는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넘어’)가 필자가 쓴 ‘광주백서’를 윤문하고 가필하고 베꼈다고 보도하였다. 이러한 보도 내용은 물론 ‘넘어넘어’ 측이 인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동아 보도는 ‘광주백서’와 ‘넘어넘어’의 문장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비교 분석하면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전반부는 ‘광주백서’에 전적으로 기댔다. 골간은 물론이고, 에피소드 전개 순서, 디테일이 같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엔 ‘광주백서’ 출간 이후 수집한 내용도 섞여 들어가 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후반부에도 ‘광주백서’ 내용이 그대로 담겼으나 전체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신동아 2011년 1월호).”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러한 신동아의 치밀한 분석 보도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넘어넘어’가 ‘광주백서’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필자가 1981년 초에 쓰고 그 이듬해 전국에 배포했던 ‘광주백서’는 뒷날 1985년 전남대 복적생으로서 광주항쟁 당시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던 이재의 씨가 정상용 전 의원 등 광주 운동권의 요청으로 광주항쟁 기록을 정리할 때 “(‘광주백서’가) 여러 자료 가운데서도 가장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리된 기록으로서 큰 도움이 되었다(집필을 담당했던 이재의 씨의 증언).” 이재의 씨가 재구성한 그 기록은 광주백서와 글의 전반적인 틀과 구성이 거의 일치하였고, 다만 시민군의 광주시내 장악 이후의 내용이 더욱 충실히 보강되었다. 신동아가 분석한 그대로이다.

 

이렇게 정리된 기록은 이후 풀빛출판사에 넘겨졌고 대중적 명성이나 책의 상업성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황석영 작가의 명의를 빌리기로 결정되었다. 내용은 전혀 손대지 않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다만 서문과 광주 문화운동 그룹 활동 관련 내용 등이 보강되어 1985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제목의 책이 제작되었다. 전 전남대 5·18연구소 소장 나간채 교수도 그의 저서 『광주항쟁 부활의 역사 만들기』의 ‘5·18 기록 출판운동’ 부분에서 ‘광주백서’부터 ‘넘어넘어’ 출간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AI 활용 설정

5·18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광주백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필자는 1980년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서울 학원사태 배후조종자로 전국에 지명 수배되어 1980년 겨울 광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1979년에 필자가 학생 데모 사건으로 성동구치소에서 복역하고 있을 때 알고 지냈던 조봉훈 선배를 만나 같이 살게 되었는데, 당시 그 선배는 광주에서 광주항쟁 기록을 추진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필자가 집필을 담당하게 되어 선배가 수집한 관련 자료들을 정독하고 또 많은 증언을 들었다. 故 신영일, 故 노준현, 김상집, 박몽구, 이현철, 전용호 등 10여 명은 자신이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실을 필자에게 증언하였다. 특히 항쟁의 발단이 된 전남대 정문 앞 계엄군과의 충돌은 당시 정문 현장에 있었던 박몽구 씨의 자세한 증언을 청취하였고, 시민들의 무장 및 이후 중요 과정에 대한 집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여 증언을 들으려 노력하였다.

 

필자는 수집된 자료와 증언 가운데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되거나 사실성이 결여된 것으로 여겨지는 내용들은 최대한 배제하였다. 최대한 확인된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를 위하여 당시의 상황을 취재 보도한 동아일보 등 각 신문 기사도 자세히 정독하여 참조하였다. 당시 필자는 잘 먹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장결핵과 복막염을 앓는 등 매우 쇠약한 상태였지만 스스로 막중한 임무를 깨닫고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만 해도 광주 시내 곳곳에서는 아직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착검한 총을 손에 든 공수부대를 가득 태운 군 차량이 질주하고 있었다. 살벌하였다. 여러 사람의 목숨과 관계된 일이라 모든 일이 비밀스럽게 진행되어야 했다. 필자는 자다가도 꿈에 5월 그 날의 참상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자리에서 일어나곤 하였다. 질병으로 통증이 심한 배를 움켜쥐고 하루에 몇 장씩 조금씩 손으로 써나갔다.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5월에 들어 ‘광주백서’의 집필을 완성하였다.

 

바람 새는 골방에서 숨어 읽었던 ‘광주백서’

 

당시에 아직 ‘광주’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횃불은 반드시 ‘광주’를 그 출발점으로 해야 했다. 따라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광주백서’를 몸에 지니고 서울로 올라온 필자는 1982년 1월 항쟁기록을 전국에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수기, 手記로 쓴 이 ‘광주백서’의 원본은 유인물로 제작, 배포된 후에도 필자가 지니고 다니다가 수배자의 신분으로서 너무나 위험하여 결국 태워 없애고 말았다). 인천 구월동 아파트단지에서 故 김근태 선배 아파트 옆에 방 한 칸을 얻고 살면서 함께 기거하던 박우섭(전 인천 남구청장), 민종덕(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故 이범영(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박승옥 등 수배자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광주백서’를 타이핑하였다. 손으로 한 장 한 장 작업하는 등사기는 남대문시장에서 박우섭 선배가 구입하였고, 타자기는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필자가 구입하였다. 또 서울 중구에 있는 인쇄골목에 가서 지물포에서 종이를 구입, 재단하고 인천 구월동까지 아픈 몸에도 그 무거운 종이를 지하철을 타고 운반해온 기억이 생생하다. 타자 작업은 민종덕 형이 맡았다. 그리고 추운 겨울 구월동 방에서 재단해온 종이에 등사기로 일일이 한 장씩 42쪽 팸플릿을 약 120부 인쇄했다.

 

이 ‘광주백서’ 팸플릿이 완성된 뒤 필자는 광주에서 제작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일부러 광주로 내려갔다. 광주 현지 우체국에서 원주의 이창복 전 의원 등 20여명 앞으로 익명을 써서 등기로 발송하였다. 뒤이어 기독교인권위원회(NCC) 등 서울의 여러 민주화운동단체, 서울대 인문대 학회실 등 들키지 않으면서도 용이하게 배포될 수 있는 장소에다 3~5부씩 놓아두었다.

 

당시 이 ‘광주백서’ 팸플릿은 배포되자마자 복사본으로 만들어져 바람 새는 골방에서 비밀리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다. ‘광주백서’라는 명칭도 본래 제목도 붙이지 않은 팸플릿이었지만, 사람들에 의하여 ‘광주백서’라고 칭해진 것이다. 광주의 비극과 참상을 생생히 담은 이 ‘광주백서’는 그간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광주의 진실을 복원시켜 1980년대 학생운동 및 민주화운동의 불길을 노도와 같이 타오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황석영 작가에 대한 해당 기사의 내용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부연하고자 한다. 해당 기사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로 황석영 작가가 구속되었다고 했는데, 황 작가는 그 출판으로 인해 구속된 적이 없다. 또 황 작가가 광주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필자가 알기로는 황 작가는 80년 당시 다른 도시로 피신한 상태였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기록들이 이어지고 확산되어선 결코 안 될 일이다. 그러한 것들이 쌓여 결국 사회의 기본과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될 수 없다고 믿고 있기에 오늘 여기에 분명히 기록해두고자 한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