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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총비서, 국가비상방역전에 ‘중대사건 발생’ 언급

북, 정치국확대회의 개최...간부 문제 집중 토의

  • 기자명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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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3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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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노동신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하에 29일 열렸다. 국가비상방역에서 발생한 중대사건을 다뤄 주목된다. [사진 - 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재한 정치국 확대회의를 29일 개최하고 “일부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행위”를 다뤘으며, 특히 국가비상방역에서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킨 문제를 지적해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하에 29일 열렸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 성, 중앙기관 당, 행정책임일군들, 도당책임비서들과 도인민위원장들, 시, 군과 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들, 무력기관, 국가비상방역부문의 해당 일군들”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총비서동지께서는 국가중대사를 맡은 책임간부들이 세계적인 보건위기에 대비한 국가비상방역전의 장기화의 요구에 따라 조직기구적, 물질적 및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울데 대한 당의 중요결정집행을 태공함으로써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킨데 대하여서와 그로 하여 초래된 엄중한 후과에 대하여 지적하시였다”고 적시해 주목된다.

북한은 그간 국가비상방역을 대대적으로 벌여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대내외에 천명해왔다. 따라서 김 총비서가 언급한 ‘엄중한 후과’를 낳은 ‘중대사건’은 코로나19 감염과 관련된 사건을 적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은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회의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

신문은 “책임간부들이 현시기 조국과 인민의 안전, 사활이 걸린 국가비상방역체계의 지속적강화와 나라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안정에 엄중한 저해를 준데 대하여 심각히 지적하였다”며 “당전원회의가 결정시달한 국가적인 정책을 외곡(왜곡)집행한 이들의 무능과 무책임한 일본새는 단순한 실무적과오가 아니라 당과 국가의 고충을 한몸 내대고 맡아 풀겠다는 자각이 결여된데로부터 산생된 극심한 태만, 태업행위라고 강하게 타매하였다”고만 전했다.

[사진출처 - 노동신문]
이번 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간부 문제에 대한 의정(의제)이 주로 다뤄졌다. 회의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 노동신문]

이번 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간부 문제에 대한 의정(의제)이 주로 다뤄졌으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자료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당결정과 국가적인 최중대과업수행을 태공한 일부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행위가 상세히 통보되였다”는 것.

또한 “보신주의와 소극성에 사로잡혀 당의 전략적구상실현에 저애를 주고 인민생활안정과 경제건설전반에 부정적영향을 끼친 과오의 엄중성이 신랄하게 분석되였”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들에서 토의결정한 중요과업관철에서 무지와 무능력, 무책임성을 발로시킨 간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전개되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다음으로 당결정에 대한 태도와 관점이 불투명하고 패배주의에 빠져 맡은 사업을 혁명적으로 전개하지 않고있는 중앙과 지방의 일부 일군들에 대한 자료통보가 있었으며 이들을 철저히 당적으로, 법적으로 검토조사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울데 대한 결정이 승인되였다”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고 당중앙위원회 비서를 소환 및 선거하였으며 국가기관 간부들을 조동 및 임명하였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8차 당대회와 두 차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을 거치며 인사문제가 일단락 됐지만 다시 한번 간부들 재배치가 이뤄진 셈이다. 신문은 구체적인 인사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간부 문제에 대한 의정(의제)이 주로 다뤄졌
이번 회의에서는 간부들의 재배치가 이뤄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노동신문이 사진으로 보도한 주요 발언자들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사진 - 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총비서는 ‘강령적인 결론’을 통해 “현시기 간부들의 고질적인 무책임성과 무능력이야말로 당정책집행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고 혁명사업발전에 막대한 저해를 주는 주되는 제동기”라며 “지금이야말로 첨예하게 제기되는 경제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간부들의 정치의식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당생활을 통한 교양과 단련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각급 당조직들에서 간부대렬을 충실성에 있어서나 혁명성, 인민성, 실력에 있어서 알차게 준비된 대상들로 정간화, 정예화할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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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앞에 선 ‘정치인 윤석열’, 정권교체 목청 높였지만 정치 비전은 모호

“부패·무능 세력의 집권 연장 막아야, 모든 걸 바칠 준비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9ⓒ김철수 기자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링 위에 올랐다. 대변인 입을 빌린 '전언정치'로 비판받았던 윤 전 총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첫 자리였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다"며 정치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윤 전 총장의 출사표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현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정치인 윤석열'은 어떤 정치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셈이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권을 두고 "경제 상식을 무시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시장과 싸우는 주택정책,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자영업자·중소기업인·저임금 근로자들이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상식과 공정, 법치를 내팽개쳐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좌절과 분노에 빠지게 했다"며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고 맹비난했다.

 

윤 전 총장은 "이들의 집권이 연장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며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세력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야권 통합을 발판으로 한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이어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개악과 파괴를 개혁이라고 말하고, 독재와 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과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되어 국민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부패완판'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할 준비가 되었음을 감히 말씀드린다"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모든 분들과 힘을 모아 확실하게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국가상에 대해서는 키워드 식으로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한 "청년들이 마음껏 뛰는 역동적인 나라,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나라, 국제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제시했다.

다양한 질문 쏟아졌지만
여전히 모호했던 윤석열의 정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2021.6.29ⓒ김철수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대권 주자로서 윤 전 총장의 구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날 윤 전 총장에게는 시대정신으로 꼽히는 공정과 경제 정책, 한일관계 해법 등 다양한 분야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윤 전 총장의 답변은 모호하기만 했다.

그는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내세우는 공정과 윤 전 총장이 강조하는 공정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는 "공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나는 특정 분야에서 특정 시장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경쟁하고 거기에 따라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이 있고 국민 전체, 국민 한 분 한 분의 생애 전주기에 기회의 공정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윤 전 총장은 "지금은 청년 세대가 취업이라든가 입시라든가 이런 데 있어서 불공정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어떤 특정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을,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국가나 정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이 생애 전 주기에 자기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 공정한 기회의 보장이 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복지와 성장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부분에 더 방점을 찍느냐는 질문에도 복지와 성장 모두 중요하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싶다"며 "복지도 지속가능한 재정이 있어야만 제대로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와 성장 중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으로는 "이 정부 들어와서 망가진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이런 것들과 한일 간 안보 협력이라든가, 경제 무역 문제 등 이런 현안들을 전부 다 같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며 "한미관계처럼 한일관계도 국방 외무 또는 내무 경제 이렇게 2+2, 3+3의 정기적인 정부 당국자 간 소통이 향후 관계를 회복하고 풀어나가는 데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시했다.

반면, 윤 전 총장이 비판받는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반박했다.

그는 우선 "2019년 가을부터 총장으로서 수사한 내용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자신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검찰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관행"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공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을 위한 검찰이 돼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독립, 그리고 최고 지휘자인 검찰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절대적 원칙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 검찰 공무원이 선출직에 나서는 게 맞나, 안 맞나라는 논란은 제가 볼 때 일반적으로는 관행상 하지 않았지만, 결국 국민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그는 "정치철학 면에서는 국민의힘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향후 제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이미 이 자리 서기 전에 말씀을 다 드렸기 때문에 그것으로 갈음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국민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저 역시도 그런 국민들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윤 전 총장의 정치참여 선언식이 진행된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윤 전 총장의 지지자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행사 시작 전부터 윤 전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과 현수막들이 기념관 주위를 둘러싸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이 선언식을 마친 뒤 행사장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렸던 지지자들은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했다.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윤 전 총장은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의 열망, 기대, 저 역시 실망시켜드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며 "우리가 다 함께하면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9ⓒ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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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미가 아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④ 유럽 에콜로지 사상과의 만남

한국에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화는 쟁취했으나 민주화운동 세력의 집권은 좌절됐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군사독재가 종식됐고 87년 여름부터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지면서 노동자들의 조직화(민주노총)가 이뤄졌으며, '3저 호황'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약진으로 산업화가 급진전됐고 환경 문제 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1980년대는 근대 국가의 양대 목표인 산업화와 민주화가 1차 완성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김종철에게 1980년대는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던 '에콜로지' 사상에 접하면서 문학에서 생태평화운동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전환의 시기였다. <녹색평론>의 사상적 준비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83년 가을 "한국에서 혼자 어설프게 읽고 있던 맑스주의 문학비평에 관해 좀 심화된 학습을 해볼 요량으로" 미국으로 떠났으나 정작 그곳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된 것은 당시 세계 지식사회의 새로운 테마로 대두하고 있던 에콜로지 사상이었다.

 

김종철은 "버펄로의 (뉴욕주립) 대학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새로운 세계로 시야를 열어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면서 당시 "선구적 에콜로지 사상가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현대문명의 관행이 이대로 계속되기만 하는 것으로도 파국은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대지의 상상력> 8쪽)고 밝혔다.


 

▲ 루돌프 바로(Rudolf Bahro)의 책 <동유럽에서의 대안(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과 <적색에서 녹색으로(From Red to Green)> 표지(두 권 모두 국내 미번역).

당시 김종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동독 출신의 반체제운동가 루돌프 바로의 <적색에서 녹색으로(From Red To Green)>(1984)가 꼽힌다.


 루돌프 바로(1935~1997)는 본래 동독 공산당원으로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나 1977년 동구 공산주의와 서구 자본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동시에 비판하고 새로운 문화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한 책 <동유럽에서의 대안(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1978)이 서독에서 출판된 직후 동독 당국에 체포돼 8년 징역형에 처해졌고, 이후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의 구명운동으로 1979년 10월 석방돼 같은 해 서독 녹색당의 창당 멤버가 되었다.

 

그는 2년의 투옥 기간 중 성서 공부를 통해 종교와 영성의 중요성에 눈을 떴으며, 새로운 인간적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자급자족에 의한 소규모 공동체, 개인 내면의 변화와 영성의 재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0년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고, 1982년에는 국제분업에 의거한 세계시장과 자본주의적 산업체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당시 서유럽에서 일어난 반핵평화운동에 동참했다.


바로는 녹색당 내부에서도 가장 원칙적인 이념을 견지했고 녹색당이 점차 현실정치 속에서 산업체제와 타협적으로 되어가고 있다고(녹색당은 1983년 서독 연방의회 진출) 비판하던 중, 1985년 녹색당과 결별하고 생태공동체 건설을 위한 운동에 헌신하다가 1997년 베를린에서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녹색평론> 9호(1993년 3/4월호)에는 1982년 바로가 한 진보적 문화운동단체와 가진 대담이 '인간은 개미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이를 통해 그의 에콜로지 사상을 엿볼 수 있다.(<녹색평론선집 2> 146~154쪽에 수록)

 

바로는 "현재의 역사적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금은 산업화로 인하여 세계가 파괴와 죽음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문명은 자기파멸적으로 되고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에콜로지와 평화운동"이라고 대답한다.

 

현재의 산업문명체제란 선진산업국가의 지구 자원의 독점적 약탈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3세계와 미래세대의 삶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와 같은(서유럽, 미국, 일본 등 산업국가들의) 생활을 전체 인류가 할 수 있게 하려면-사회정의의 원칙에 따라서 누구든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게 할 수 있어야 한다-지금 우리가 가진 것의(자원 및 에너지) 20배 이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은 총체적인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생산은 인간의 필요에 맞춰져 있지 않고,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한 노동자가 저녁에 맥주 한 병을 들고 텔레비전 앞에 앉을 수 있기 위해서는 18세기 (독일 시인) 쉴러가 자기의 평생의 작품을 창조하는 데 필요했던 에너지의 열 배 이상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가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가 그렇게 엄청나게 변화하였다. 예컨대 오늘의 하부구조는 노동자가 출근하는 데 승용차를 필요로 하게 한다."


 

그는 기술발전을 통해 인류의 생활 수준 향상과 행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서구 좌파의 믿음에 대해 "기술 발전의 방향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술적 성과란 없다"면서 "나는 지난 2000년 동안의 어떠한 기술적 성과라도 그것이 그 자체로서 성과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특히 그는 2차 대전 후 서구의 노동자 세력의 투쟁이 자본으로부터 보다 나은 조건을 따먹는 데, 그리하여 (서구의) 산업 메트로폴리스의 중심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식민주의적 지배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라며, "부유한 나라들의 임금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는 결국 문명의 자기파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오로지 물질적 생활 수준 향상을 삶의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인류는 물질문화라고 하는 제2의 본성을 스스로 창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정의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의 에너지와 특히 인간적인 여러 능력들이 주로 물질적 확장에 투입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확장·팽창 과정이 이제 독립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아직 자기인식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기통제, 자신의 힘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인식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물질의 재생산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통제되지 않고, 여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산업문명에 "대파국, 종말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이제까지 외부 지향의 노동, 즉 외부적 진화에 몰두해 있던 인간의 노력이 내면적 능력의 계발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타고 나기를 개미집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개미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세운 사회구조에 돌이킬 수 없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 생산 확대에 몰두했던 이제까지의 움직임으로부터 우리의 에너지를 거둬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에너지가 의사소통-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의-영역으로 완전히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에 따르면 새로운 인간적 사회를 위해서는 비집중화, 분권화, 분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일상생활의 필수품 대부분이 자급자족 되어야 한다. 일인당 물질과 에너지 소비가 열 배, 스무 배나 증가해 있는 오늘의 상황이 극복되려면 우리의 기본 욕구가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생산된 것으로 채워지고 교환도 대부분 근린지역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식량과 주택을 비롯하여 학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사회화되고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넓은 범위에 걸쳐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땅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농업은 정말 근원적인 조건이다.


 

간디와 노자에도 정통했던 그는 "노자의 경제개념에 의하면 공동체들은 서로 너무 가까이 접근해 있어서는 안 된다. 제일 좋은 것은 이웃나라를 방문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


 

김종철은 바로가 녹색당과의 결별 이유를 밝힌 연설 '구원의 논리'를 <녹색평론> 17호(1994년 7/8월호)에 소개하면서, 근대 산업문명에 대한 바로의 근원적 비판을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바로는 미국 중거리 핵미사일의 서유럽 배치를 두고 격렬한 반핵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1983년 가을, 반핵운동 단체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했다. 당시 서유럽 시민들은 '왜 유럽이 미소 핵군비경쟁의 볼모가 돼야 하느냐'고 거세게 반발했고, 미국의 평화운동 세력도 이에 호응하고 있었다. 때는 김종철이 버펄로에 도착했을 무렵이다.

 

그런데 바로는 반핵집회에서 지금 뉴욕의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자동차들도 그 본질에 있어서 핵무기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해 좌파 운동가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바로의 발언은 기술발전을 통해 빈곤계층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바로의 발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기술에 대한 미신적 신앙, 자연을 정복의 대상, 또는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만 간주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생산력중심주의적 사고, 그리고 기술발전의 무한한 추구는 결국 생태계를 파탄 낼 것이라는 점에서 자동차와 핵무기의 생산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핵무기는 기술문명의 필연적 산물이며 자기파멸적 세력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김종철은 이 글이 실린 <녹색평론> 17호의 머리말 '생산력이 아니라 공생의 윤리를'에서 "우리는 에콜로지 문제를 우선적으로 보면서, 이것을 중심으로 인간의 현실과 역사를 보는 관점이야말로 오늘에 있어서 세계의 가장 진보적이고 과학적이며 의미 있는 정치철학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예컨대 "노동운동이 자동차의 생산 자체를 반대하는 데까지 갈 수 있는가"라고 투박하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 수준'이라고 하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개인주의적 개념이 늘 필수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왔다는 데 20세기 사회변혁운동의 실패와 비극의 핵심적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물질적 재화의 소비 규모의 과다에 의해서 측정될 수밖에 없는 생활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핵심적인 기준이 될 때, 토착문화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파괴되고, 전통적인 농업이 사라지고, 생태적 재앙이 따르고, 공동체가 해체되며 인간의 도구화가 심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생활 수준의 향상을 꾀하는 '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부의 독점은 심화되고, 빈곤 문제는 갈수록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된다"고 강조했다.(<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86~88쪽)


 

김종철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려면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자동차부터 반대하라"는 권정생 선생의 발언을 최고의 생태평화 메시지로 꼽았는데, 이는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그의 에콜로지 신념에서 말미암은 것일 것이다. 
 

 
▲ <녹색평론선집>은 격월간 <녹색평론>에 발표된 글 중 선별해 따로 엮은 책이다. <녹색평론>이 창간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녹색평론>에 수록된 글 중에서도 엄선된 글을 볼 수 있다. ⓒ녹색평론사

미국에서의 1년간의 독서 끝에 김종철은 마르크스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인류와 지구가 당면한 핵심 문제는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여부임을 확신했다. "서구식 근대문명이란 처음부터 생명파괴적 원리를 내포한 채 출발한 문명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오랜 의문이 틀린 게 아님을 확인했고 "한국의 군사독재는 조만간 종식될 것이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전개될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수십 년에 걸친 경제성장이 빚어낸 산업사회의 모순과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최대의 과제로 생각됐다.


 

군사독재 종식 이후 동구사회주의가 붕괴한 데 대해 한국의 진보파 지식인들이 침로를 잃은 채 극심한 사상적 혼돈 상태를 드러낸 데 대해, 김종철은 "한국 지식사회의 이런 모습은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적지 않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그동안 소련식 사회주의 혹은 정통적 맑스주의에 큰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른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내가 이해하는 한, 소비에트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생산력의 증대와 고도의 산업화를 사회 반전의 불가결한 전제로 상정하는 정통 맑스주의도 서구식 근대문명이 직면한 최대의 난제, 즉 생태적 지속불가능성이라는 문제에 대한 어떤 합리적 해법도 갖지 않은 사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도 그러한 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좋은 사회를 꿈꾸어 왔다면, 한국의 지식사회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누군가가 한국의 지식사회의 사상적 혼미에 대해서 강한 문제 제기를 하고, 우리들의 공동의 미래를 위해서 왜 생태주의적 세계관과 비전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활발한 토론의 장을 열어주기를 기다렸으나" 군사정권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나도록 그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결국 자신이 <녹색평론>의 창간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대지의 상상력> 9~10쪽)


 

사실 루돌프 바로의 전향과 그의 저서 <동유럽에서의 대안>은 무엇보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겨냥하는 것이었다. 대학생 때까지 레닌, 스탈린의 신봉자였던 그는 1956년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비판한 흐루쇼프 비밀연설을 알게 된 뒤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1956년 폴란드, 헝가리 노동자 봉기 때는 대자보 등을 통해 봉기를 응원하고 동독 당국의 정보 통제에 항의했다. 결정적으로 1968년 초 체코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 운동이 그해 8월 소련군 탱크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동구 사회주의에 완전히 절망했다. 훗날 그는 소련군이 프라하에 진입하던 1968년 8월 21일은 자기 인생의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회고했다.

 

 

특히 그는 1957년부터 10년간 언론인 활동과 함께 고무공장과 플라스틱 공장의 조직전문가로 일하면서 동독의 경제 상황이 위기라는 것, 그 근본원인은 현장노동자의 발언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1967년 말 동독 공산당 서기장 월터 울브레히트에게 공장 내 '풀뿌리 민주주의'의 도입을 건의했으나 묵살됐다. 그리고 몇 주 후 체코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 운동이 무력진압 된 것이다.(위키피디아 참조)


 

인간해방을 추구한다면서 오직 생산력 증대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라면서 실제로는 그들을 종속적, 예속적 지위로 격하시키며, 각 나라의 자발적 개혁 노력이 무력으로 진압되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바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고 1968년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면서 <대안>을 준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는 이미 1960년대 말부터 동구 사회주의의 미래를 비관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광주항쟁의 결과 1980년대 이후 대학가와 운동권에서 반미주의와 함께 마르크스 학습 열풍이 일었고, 1984년부터는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그러나 별 소득 없이 전개됐다. 세계 지식사회의 흐름에 어두웠던 한국 지식계의 모습이었다.


 

정지창 전 영남대 독문과 교수는 1984년 미국에서 돌아온 김종철이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치투쟁도 중요하지만 탐욕스러운 서구문명으로부터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할 근본적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면서 "'사구체(사회구성체)'가 콩팥 같은 장기의 일부인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던 그의 악동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존경하는 벗 김종철 형을 보내며', <창작과 비평> 189호, 2020년 가을호, 327~328쪽)

 

그런데 김종철이 미국에서 배워온 것은 에콜로지 사상만이 아니었다. 그는 1997년 초 김우창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버펄로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인디언에 대한 관심을 얻었다'고 답한 것이다.('시적 인간과 자연의 정치',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422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281803230795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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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33] 성 김은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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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림
  • 등록일
    2021/06/30 09:44
  • 수정일
    2021/06/30 09: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형구 | 기사입력 2021/06/2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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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방한했다. 성 김 특별대표가 방한한 목적은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6월 17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과 대결할 가능성이 크니 대결을 잘 준비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미국은 이 발언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발언에 대해 “흥미로운 신호로 본다”라며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기다리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 김을 한국에 보내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했다. 성 김은 6월 21일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희망한다”라며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6월 22일 미국의 행태를 “꿈보다 해몽”이라고 풍자하며 미국의 대화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리선권 외무상은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성 김 특별대표는 결국 북한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히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북한을 만나보겠다고 한국까지 날아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 속된 말로 ‘개무시’를 당했다. 미국이 이야기를 하자는데 만나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나라가 북한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으로선 엄청난 수모와 망신을 겪은 셈이다. 성 김은 출국하기 전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을 떠났다. 

 

사실 미국의 수모는 예견된 것이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3월 17일 미국의 시간벌이에 응해 줄 이유가 없다며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도 미국이 새로 결정한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며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절했다. 그 후 북한이 태도를 바꿀 만큼 상황이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까지 와서 북한에 만나달라고 요청했고 예상대로 거절당했다. 미국은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바이든 정부는 4월 30일 발표한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동맹국, 실전 배치된 주둔 병력의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고려하면 성 김 특별대표의 방한은 미국과 일본,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한 차원의 행동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을 적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지난 3월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했고 다가오는 8월에도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대북제재도 지속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인권공세도 펴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강 대 강, 선 대 선’의 원칙으로 미국을 대하겠다고 했다. 또한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고 밝혔다. 5월 31일에는 “우리의 과녁은 남조선군이 아니라 대양 너머에 있는 미국이다”라고 말해 미 본토를 겨냥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다급한 미국은 어떻게든 북한과의 대결이 격화되는 걸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설사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북한에 대화 의지를 계속 피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문전박대 당할 걸 알면서도 성 김 특별대표를 한국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대화하는 시늉이라도 내서 시간벌이를 하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성 김 특별대표가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 파장은 생각보다 멀리 퍼졌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일어난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6월 23일, 러시아 전투기 수호이에서 바라본 영국 구축함 HMS 디펜더의 모습. 러시아 발표에 따르면 영국 구축함이 러시아 영해를 침범했다가 러시아의 경고사격을 받고 물러갔다고 한다.


 

 

2. 크림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미국은 6월 28일부터 7월 10일까지 유럽의 흑해에서 다국적 연합해상훈련 ‘시 브리즈21(Sea Breeze 21)’을 실시한다. 시 브리즈는 러시아 압박용 군사훈련이다. 올해 시 브리즈 훈련은 특별하게 준비됐다. 2017년엔 18개 나라가, 작년엔 9개 나라가 참가했는데 올해엔 32개국이 참가하게 되었다. 미국이 예년에 비해 훈련 규모를 두세 배 키운 것이다.

 

미국이 시 브리즈 훈련의 규모를 키운 건 크림반도를 둘러싼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는데 2014년 러시아가 자기네 영토로 편입했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로도 분쟁이 지속됐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국민들은 2014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들을 제압하려 했다. 그래서 일어난 군사충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에도 우크라이나는 군을 동부지역에 보내 진압하려 했지만 지난 4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으로 대규모 군대를 보내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견제했다. 러시아는 4월 8일 우크라이나군이 행동에 나서면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6월 23일에는 흑해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일이 일어났다. 영국 해군 구축함이 크림반도 러시아 해역을 3km 침범한 것이다. 러시아는 전략폭격기 수호이를 출격시켜 폭탄 4발을 위협투하했고 그러자 영국 구축함이 러시아 영해 밖으로 도망쳤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러시아에 패배한 것이다.

 

영국 국방부는 이런 사실을 부인했다. “영국 해군 함정은 국제법을 준수하며 우크라이나 영해를 무해통항* 중”이었고 “경고사격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러시아는 러시아 영해로 넘어온 영국 구축함 영상을 공개했다. 영국 구축함에 타고 있던 BBC 기자도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사격하겠다는 경고가 들렸고 이후 멀리서 사격하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증언했다. 이를 보면 러시아의 발표가 사실인 것 같다.

*무해통항: 아무 문제의 소지 없이 항해하는 것

 

크림반도를 둘러싼 대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로 재편됐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 큰 파열구를 내는 중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이다. 다음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해 미국을 위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7년 북한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것이다. 이 사건들이 파열구를 내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는 자본주의 체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패퇴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느끼는 지경이 됐다. 

 

사실 미국이 러시아와 대결에서 밀려난 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2008년에는 러시아와 조지아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원래 조지아는 소련 소속 국가였는데 소련 붕괴 후 친미 국가로 변했다. 나라 이름도 소련 시절엔 러시아어식으로 그루지야였지만, 친미 국가로 돌아서면서 영어식으로 조지아로 바꾸었다. 

 

조지아에서도 우크라이나처럼 영토분쟁이 있다. 1990년대 초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은 조지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껏 조지아와 남오세티야는 갈등을 빚고 있다.

 

조지아는 2008년 미국의 지원 약속을 믿고 남오세티야를 공격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해 조지아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때 지원을 약속했던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조지아가 패배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 개입하지 못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에서도 대결한 적 있다. 미국은 시리아 반정부군을 지원했고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대리전을 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슬람국가(ISIS)를 격퇴하겠다며 직접 시리아 땅에 군대를 들이밀기도 했다. 이 대결은 미국이 2019년 시리아에서의 철군을 결정하며 사실상 미국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터키가 미국의 미사일을 사느냐 아니면 러시아의 무기를 사느냐를 두고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이 펼쳐졌다. 미국은 터기를 경제제재까지 하면서 미국 무기를 살 것을 강요했지만 터키는 끝내 러시아의 무기를 구매했다. 터키는 친미 국가에 속했지만 이제는 반미 국가에 가까워졌다. 

 

독일은 러시아와 천연가스관을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미국은 대러제재 위반이라며 중단시키려 했지만 독일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러시아와의 가스관 연결을 강행했다.

  

이렇게 미국은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렸던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크림반도 사건은 이들 사건과는 다른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우크라이나도 과거 소련에 소속돼 있는 나라였다. 우크라이나엔 소련이 배치한 핵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는 별안간 핵보유국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그 대신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자기네 영토로 병합시키는데도 미국과 서방사회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영토 병합은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대결 중에 가장 강력한 승리다. 권투 시합으로 말하면 러시아가 미국을 다운시킨 것과 다름없다. 1991년 소련 해체를 겪으며 패배했던 러시아가 2014년 미국에 역전타를 날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이대로 방치하면 제국으로서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 군사력으로 세계를 재패했다는 미국이 러시아가 영토를 빼앗는 데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하고 손 놓고 있는다면 누가 미국을 따르겠는가.

 

미국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게서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일본의 일본경제연구센터와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소 등은 2028년이면 중국의 GDP가 미국의 GDP를 추월할 거라고 내다보았다. 대체로 길어도 10년 정도면 중국이 미국 경제 규모를 따라잡는다고 예상한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쥘 수 있었던 힘 중 하나인 경제력에서 세계 2등 국가로 전락할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북한과의 대결에서 하염없이 당하고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 운운하면서 대결정책을 폈다. 그러다 북한이 2017년 11월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자 미국은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군사적 압박을 당했다. 매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은 “(미 본토가 공격당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랴부랴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계가 좋다며 자랑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북미정상회담을 열어 전쟁을 막았다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쥘 수 있었던 또 다른 힘인 군사력에서 북한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은 내부적으로도 무너지고 있다. 올해 1월 6일에는 바이든 정부 출범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미 의사당을 점거당하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또한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라 ‘절망의 나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절망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절망사란 빈부격차가 커져 좌절을 느낀 빈곤층이 자살, 알코올 중독, 마약으로 죽게 되는 걸 말한다. 미국에서의 절망사는 1995년 6만 5천 명이던 게 2018년 15만 8천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절망사 때문에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단축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6월 24일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12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붕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마치 오늘날 미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미국은 패권이 몰락하는 상황을 뒤집어 보려 발버둥 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바이든도 대선 슬로건으로 “재건”을 내세웠다. 미국이 크림반도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련을 붕괴시킴으로써 세계를 제패했듯 러시아에 맞서 크림반도를 되찾음으로써 재역전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생각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고 있다. 영국을 내세워 구축함을 들이밀어 보았지만 보기 좋게 패퇴하고 말았다. 사실 미국 자신도 2014년 크림반도 사건 초기에 흑해에 구축함 도널드 쿡함을 진입시킨 적 있다. 그러다 러시아가 출격시킨 수호이가 고도 150m까지 내려와 위협비행을 하는 바람에 후퇴했다.

 

그래서 미국은 상황을 만회해보고자 이를 갈고 시 브리즈 훈련을 규모를 크게 늘리며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이 발표한 시 브리즈21 참가국. 한국이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3. 시 브리즈 훈련에 한국이 불참한 사연 

 

 

시 브리즈 훈련 준비 과정에서 또 하나 특이한 일이 있었다.

 

미국은 시 브리즈 훈련 공식 발표 자료에 한국을 훈련 참가국으로 명시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미국이 초청한 바는 있지만 참가하지 않고 참관할 계획도 없다며 부인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한국군이 공개적으로 참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건 미국이 참가하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미국은 왜 한국군의 불참을 허용했을까? 그건 바로 북미대결이 우려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이 시 브리즈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군함을 파견하면 그만큼 대북 군사 태세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앞서서 미국 패권에 결정적인 파열구를 낸 3가지 사건으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중국의 경제적 부상,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꼽았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는 상당히 강경대응 하고 있다. 미국이 크림반도를 수복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앞서서 살펴봤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도 대만을 지원하며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대만과는 단교했다. 그런데 2019년 미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표기하고 2020년엔 대만에 무기를 수출했으며 올해엔 특사단을 파견해 대만과의 교류를 가졌다. 이에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어 중국과 미국-대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싱크탱크 ‘중국해협아카데미’는 중국과 대만의 전쟁위험성을 지수로 나타냈는데 그 수치는 7.21로 평가됐다. 과거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내전을 치렀던 1950년대의 위험 지수가 6.7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은 무척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 연구원은 “미국과 대만의 긴밀한 관계가 중국과의 무력충돌 위험을 높이는 가장 큰 요소”라며 “현 상황이 지속되면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강경대응을 하고 있는데 유독 북한에게만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무리 모욕을 당하고 멸시를 당해도 초지일관 대화를 제안한다. 그 이유는 미국이 본토를 공격당할까 봐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는 군사충돌이 일어나더라도 그 지역에 국한한 충돌로 조절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군사충돌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에 국한된 충돌로 그치는 게 아니라 미 본토를 공격당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과는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한다. 

 

북한은 미국의 대화 제의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이는 물론 미국의 시간벌이 놀음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뜻이며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에 상응하는 강경대응을 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은 데에는 북중러 연대의 의미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면 미국은 본토가 공격당할 위험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미국은 북미대결에 투입했던 역량을 중국이나 러시아와 대결하는 데로 돌릴 수 있게 된다. 

 

만약 북한이 성 김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미국은 러시아를 상대할 역량을 더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국 구축함이 러시아 영해에 들어갔다가 충돌이 일어났을 때 후퇴하지 않고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하며 더 큰 공세를 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면 미국과 유럽에 크림반도에서 진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대화를 거절함으로써 미국과의 대결국면을 지속시켰다. 그 결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한눈을 팔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해군을 흑해로 불러오는 걸 포기하고 한국이 훈련에 불참하는 걸 용인해주게 된 것이다. 

 

 

4. 결론 

 

 

세상이 넓다 하지만, 때론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성 김이 북한에 수모를 당하고 돌아간 것과 한국군이 시 브리즈 훈련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락받은 것, 그리고 영국의 구축함이 흑해로 들어갔다가 후퇴하게 된 것도 모두 연관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와 크림반도, 이 두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 진영과 북중러 사회주의 반제진영의 세계적 대결이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세계적 대결에서 미국과 서방세계 진영은 자기 스스로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낄 정도로 수세에 빠져 있다. 반면 북중러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상당히 강한 공세를 펴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려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하는 식으로 서로 분열이 되는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공고한 전략적 유대·협력을 하고 있다. 6월 28일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화상정상회담을 가졌다. 시진핑 주석은 “아무리 험난한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협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22일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도자가 중국과 군사동맹을 언급한 건 1950년 이후 처음이다. 북중관계는 2018년에 수차례 정상회담을 열며 최상의 경지로 올라섰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9년 정상회담을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서로 칼을 선물로 주고 받았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적인 힘을 상징한다”라며 칼 선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주고 받은 바로 그 칼이 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패권을 베어버리려는 듯하다. 

 

미국과 서방세계의 위기와 북중러의 공고한 연대는 오늘날 세계적 대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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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문 대통령 인터뷰에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과장과 왜곡, 그리고 외신물신주의

 21.06.30 07:24최종 업데이트 21.06.30 07:24
 

▲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주간지 타임 인터넷판 인터뷰 표지. ⓒ 타임 홈페이지

 
미국의 시사 격주간지 <타임>(Time)이 최근 호(인터넷판 기준 6월 23일)에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퇴임을 1년 조금 못 남긴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되짚으며 성과와 한계를 함께 조명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관련 보도와 인터뷰를 누리집(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관행대로 이 기사도 공개했다.

이후 이 기사에 대한 국내 반응은 어떤 의미로든 폭발적이었으며 관련 논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 내용 어땠기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조국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Makes One Last Attempt to Heal His Homeland)라는 제목의 최근 기사에서 <타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주민을 상대로 연설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 때가 굴곡 많았던 남북 화해 프로세스의 정점이었다고 말했다.

 

<타임>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등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됐다면서 그럼에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을 동계 올림픽에 초대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18개월 동안 엄청난 속도로 외교의 시간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이 시사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을 겪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느리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바라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라는 난제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고 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전부터, 사실 그의 탄생과 삶 자체가 그의 정치적 발자취를 이끌어 왔다면서 한국이 겪은 격동의 상처가 그를 학생운동으로,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결국 청와대로 인도했다고 평가한다.

<타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임자의 외교정책 대부분을 뒤집었지만 대북 관련 트럼프 행정부의 모호한 합의는 향후 협상을 위한 토대로 삼기 위해 받아들였다면서 이것이 문 대통령에게는 희망적인 일이 된다고 평가했다.

그 외 <타임>이 꼽은 두 가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희망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는 팬데믹. 코로나19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가 더 이상 미국의 중요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식량 원조까지 거부하며 외부세계와 격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봉쇄와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임>은 국내 한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재만으로 북한을 무릎 꿇게 하긴 힘들다"는 지적을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교역은 전년 대비 80% 급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브로맨스' 이후 미국 공화당의 반대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온건파는 물론이고 친 트럼프 진영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들의 대북 정책을 정반대로 뒤집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지의 목소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다. 빈센트 브루크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 모두 진보 정부가 집권한 상황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고 <타임>에 말했다. 한국, 북한, 미국 모두 "기회의 창"을 엿보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 언론은 말한다. 북한이 시간을 끌며 결국 파키스탄처럼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할 것이라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은 따라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고, 이런 바이든 대북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지연 전술'일 것이라고 이 글은 전망했다.

이처럼 매우 적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매우 적대적이지도 않을 바이든식 대북 외교의 '복합성'은 워싱턴에서 이미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이 보도는 말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장 응답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협상 노력을 바이든 대통령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미국이 얻는 이익이 있다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계산이다. 그것은 바로 대 중국 전략적 동반 파트너 확보다. 중국에 맞서야 하는 미국은 한국 정부의 한반도 화해와 평화 정책에 협력함으로써 대중국 지원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는 거래다. 실제 미국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국의 정보통신 혁신 기술과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지지와 투자를 약속 받았다고 이 언론은 전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타임(TIME)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타임>은 이러한 문재인 대통령의 집요한 대북 화해 정책은 구체적 성과가 없는 답보 상황에서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싶은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주택 공급 계획의 난항, 성희롱에 이은 자살 사건 등으로 집권당의 지지가 하락했으며 그것은 일부분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타임>은 지적한다.

결국 남북문제에 참신한 아이디어는 없으며 30년 동안 관여-협상-도발-소원-화해라는 순환을 그리고 있는 것이 남북문제고, 또 다음 시도가 있더라도 권태 섞인 한숨이 함께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자의 주관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는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뭔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깨달음이 그의 진정한 유산이 될지 모른다."

과장된 해석과 왜곡... 외신물신주의

글 내용 가운데는 한반도 문제, 남북문제, 그리고 국내 일부 이슈와 관련해 심각한 오류와 몰이해도 발견되지만 본래의 취지에 집중하기 위해 그 문제는 생략하기로 하자. 문제는 이 기사에 대한 국내의 반응이었다. 외신 보도에 대해 유독 민감한 것이 한국 여론이지만 과장된 해석과 왜곡에 근거한 편중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외신을 둘러싼 광적으로 민감한 반응은 지속돼 왔다. 이번 기사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의 힘 소속 윤희숙 의원의 반응. 그는 페이스북에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데도 청와대는 자랑만, 정상적인 나라 어렵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윤 의원은 "청와대가 자랑하길래 내용을 들여다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면서 홍보전략으로 이 인터뷰를 추진한 청와대가 현실감 없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 보도를 청와대가 자랑을 했다'는 것. 그리고 윤 의원에 따르면 그 망상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대통령에 대해 숨기고 싶어 했던 점을 (해당 보도가) 정확히 집어'냈다는 것이다. 이어 '문 정부는 2017년에도 아무 근거 없이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며 국제사회에 보증을 섰'다면서 우리나라가 우습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나씩 따져보자.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기자의 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에는 '다수의 북한 관측통의 시각으로' 그렇다고 쓰여 있다. 이 말을 윤 의원은 마치 해당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망상이라고 보도한 듯 옮겨놓고 있다.

국제사회에 북한 보증을 서 우리나라가 우습게 됐다는 말도 근거가 이상하다. 윤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내면에 대해 보증을" 섰다면서 그 근거로 "말살·고문·강간 등 반인륜 범죄를 주도한 김을 문대통령은 '정직하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다고 표현한 것은 그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솔직하고, 아주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면서 국제적 감각도 있다"도 대답했다. "하지만 혹시 잊을까 해서 밝혀 두자면 김 위원장은 자신의 고모부와 이복형을 냉혹하게 살해했으며 …… 몰살, 고문, 강간, 기근 장기화 야기 등 반인륜 범죄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말한 건 <타임> 기자다. 윤 의원은 기자의 이상한 논리를 따라 대통령이 반인권적 보증을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에서 국내 정치, 특히 대통령 관련 외신의 보도는 유독 민감하다. 유사한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경우는 좀 유별난 듯하다.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정치적 감수성이 큰 이유도 있지만 국내 언론의 부정적 책임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외신 보도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국내 주요 언론들은 정보 접근에 유리한 특권을 이용해 심심치 않게 국내 독자들에게 외신 보도를 왜곡 전달해 왔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을 비롯해 정보 접속을 용이하게 해주는 수단들이 늘어가면서 과거와 같은 노골적 왜곡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미 국내 언론 보도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많은 독자들은 외신보도에 눈을 돌렸고, 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외신의 보도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방송 매체에서도 외신보도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물론 외국에도 외신보도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언론들이 있다. 외부의 다른 시각을 통해 국내 이슈를 객관적으로 읽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이 대표적 사례로, 언론의 사회적 기여와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 토끼를 다 잡은 성공 케이스다. 이 언론이 성공했던 이유는 시각의 다양성, 관점의 풍요로움을 극대화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타임(TIME)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하지만 국내 언론 환경에서 보는 외신에 대한 태도는 그것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다양성과 풍요로움, 객관적 시각을 위해서라기보다 획일화와 확증 편향, 사실 왜곡을 위한 수단으로 외신이 도용되고 있다. 언론과 독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 판단에 근거가 될 만한 외신보도들을 찾아 나서고 급기야 과정과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서 결국 외신에 대한 과잉 신뢰에까지 이르게 된다. 국내 상황에 대한 외신의 보도는 그 어떤 국내 언론보다 진실을 담보하는 듯 여긴다. 하지만 상당수의 외신들은 한국 관련 보도를 통신사를 포함한 한국 언론을 근거로 생산한다. 특파원의 직접 취재가 아닌 이상 말이다. 결국 국내 언론이 보도한 것을 외신이 받아 적으면 국내 언론은 다시 그것으로 진실성을 검증 받는 해괴한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번 <타임>의 기사에서도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보도한 부분들이 있다. 한 가지 예로 '한국이 초기에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을 했지만 현재 백신 접종에서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면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것을 국내 정치 실패 사례로 들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은 확진자 발생 규모와 결정적 비례관계에 있으며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확진자 규모가 커 국가 보건 체계가 흔들리는 나라들이었다. 영국, 이스라엘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백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이들 국가의 확진자 규모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철저한 방역 체계가 따라주지 않은 결과다.

반면 체계적 방역 수준을 유지하는 한국은 급격한 백신 도입 없이도 최고의 항바이러스 방어 능력을 보여줬으며 그것이 결국 인명 보호 차원은 물론 국내 총생산과 수출의 다른 선진국 대비 비교 우위로 이어졌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 각종 단체가 외신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그 보도 내용을 맹신하고 모든 사실관계의 근거로 삼는 이상 지금까지 한국 언론계에 팽배한 '외신 물신주의'는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특정 외신 보도 또는 '외신' 자체를 우상화하고 성역화 하는 행위, 특히 과장, 왜곡까지 해가며 성역화 하는 행위는 결코 언론과 민주주의의 건강한 공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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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땅 속에서 ‘훈민정음’ 금속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등록 :2021-06-29 09:01수정 :2021-06-29 09:45

 
옛 한양 중심부 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중요 과학유물도 함께 나와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nbsp;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이건 조약돌이 아니라 금속활자입니다!”

 

이달초 서울 도심 문화거리인 인사동 피맛골 재개발 지구 유적을 발굴중이던 수도문물연구원 조사팀은 16세기 건물터의 땅 속에서 나온 도기 항아리의 일부 내용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항아리 옆구리 구멍으로 삐져나온 조약돌 모양의 유물 몇개를 세척해보니 금속활자로 드러난 것이다. 흥분한 연구팀은 항아리 안의 흙을 모두 덜어내고 집중분석 작업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항아리 내부에 무려 1600여개의 금속활자가 가득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살펴보니 15세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즈음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초기 세종~세조대의 한글 금속활자 실물과 세종이 만든 한자 금속활자인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들이 처음 발견된 것이라는 판독 결과가 나왔다. 이 금속활자들중 일부는 서양에서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145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 활판인쇄를 시작한 때보다 제작시기가 수십여년 앞서는 것들로 추정된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소자.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소자.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한글 연주활자.
한글 연주활자.
 

문화재청은 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인사동 79번지 ‘공평구역 15, 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의 16세기 건물터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세종~중종 때의 금속활자 1600여점을 찾아냈다고 29일 발표했다. 청은 아울러 세종~중종대 제작해 쓴 것으로 보이는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 부품인 주전(籌箭)과 세종 때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의 부품들, 중종~선조 때 만든 무기인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들도 같은 유적에서 함께 묻힌 형태로 발굴되었다고 덧붙였다.

세종 때 만든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들. 크기상 소자(小字)에 해당한다.
세종 때 만든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들. 크기상 소자(小字)에 해당한다.
 
도기 항아리 내부를 채운 금속활자들. 출토 당시의 모습이다.
도기 항아리 내부를 채운 금속활자들. 출토 당시의 모습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세종 때 제작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들이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한글 금속활자를 이루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 등에 사용된 소자(小字), 특소자가 모두 출토됐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됐고,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들이 모두 출토된 점 등은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된 ㅭ, ㆆ, ㅸ 등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연결표기해 토씨(어조사)의 구실을 한 희귀본 연주활자(連鑄活字)들이 10여 점이나 나왔다.

 

물시계의 시보를 작동시키는 주전 부품들. 이번 발굴로 처음 실물이 출토되었다.
물시계의 시보를 작동시키는 주전 부품들. 이번 발굴로 처음 실물이 출토되었다.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인 ‘주천도분환’.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인 ‘주천도분환’.
 
물시계의 중요 부품인 주전. 처음 확인되는 실물이다.
물시계의 중요 부품인 주전. 처음 확인되는 실물이다.
 

한자 활자도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시대의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20년 이른 세종시대의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돼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금속 활자가 한 곳서 출토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와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한글활자와 세종이 만든 한자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실물이 사상 처음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내 인쇄문화사에 획을 긋는 발견”이라며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조사단 쪽은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해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들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이런 부품 형태들은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하여 자동물시계의 시보장치를 작동시킨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이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나왔다.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의 시계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출토 유물은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현존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와 동종이 땅 속에서 드러난 모습.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와 동종이 땅 속에서 드러난 모습.
 
출토된 승자총통.
출토된 승자총통.
 

소형화기로 총구에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불씨를 붙여 발사하는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이 나왔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정도다. 새겨진 명문을 판독한 결과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된다. 장인 희손(希孫), 말동(末叱同)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희손은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뉘어 발견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손잡이 용뉴(龍鈕)가 달렸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 특징이다. 종 몸체 윗부분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사 지역은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한양도성의 중심부다.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에 속했던 곳이다. 견평방은 조선 전기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사법기관 의금부와 왕실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과 상업시설 운종가 등이 자리했던 도성 안 경제 문화 중심지였다. 유적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된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 부분으로, 건물터 유구와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나왔다.

 

금속활자가 무더기 출토된 인사동 79번지 피맛골 조선초기 건물터 유적 전경.
금속활자가 무더기 출토된 인사동 79번지 피맛골 조선초기 건물터 유적 전경.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들은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있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출토품들 가운데 가장 시기가 내려가는 유물이 1588년을 뜻하는 만력 무자년 간기가 새겨진 소승자총통이어서 늦어도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이 확실하다. 오경택 연구원장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시기적으로 가까워 당시 전란을 맞으면서 유물들을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묻어두고 피난을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수도문물연구원 제공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01298.html?_fr=mt1#csidx760e1b36387053fb6787564083ee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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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말은 피아를 구분... 정은경 말엔 사람의 온도"

[인터뷰]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펴낸 강원국 작가

21.06.29 07:19l최종 업데이트 21.06.29 07:19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큰사진보기를 출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도 준비한 글을 읽으신다. 물론 준비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엄청 고친다고 들었다. 그건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세 분 대통령은 모두 반드시 본인의 언어로 다듬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서 최종적인 글(말)로 완성한다." 강원국 작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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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한다고 대화를 잘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말을 못해도 대화는 잘할 수 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대화에 서툴 수도 있다.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 역량이다. 대화를 잘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나 유재석 모두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 글쓰기 3부작을 펴냈던 강원국 작가가 이번에는 '말하기' 책을 들고 돌아왔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여 동안 KBS 1라디오에서 강 작가가 진행을 맡았던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의 방송 내용을 다듬고, 수십 꼭지의 새로 쓴 글을 보태 만들어졌다.

'실어증에 가까울 정도'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는 강원국 작가. 그의 '말문이 트인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의 말(연설문)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모들의 말하기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야겠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면서부터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아래서 일하면서 강 작가는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와 말하기를 배운 셈이다.

"김대중은 글 같은 말, 노무현은 말 같은 말" "김대중 대통령은 '글 같은 말'이다. 말씀하신 걸 풀어보면 그냥 글이 된다. 충분히 곱씹고 머리 속에서 퇴고까지 마친 뒤에 꺼낸 말씀이다. 연설할 때도 애드리브가 없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말 같은 말'이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김 대통령은 '연설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셨고, 노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건, 전문가의 권위뿐만 아니라 말의 바탕에 따뜻한 '사람의 온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 작가는 말한다. 30대에 제1 야당의 수장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말은 '쉽고 전략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준석의 말보다는 이준석으로 표출된 젊은 세대의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윤석열 전 총장은 앞으로 '말의 광장'에서 검증 받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작가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말하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꼽은 '눈높이 말하기의 7가지 기본 원칙'은, 눈을 맞추고 말해야 한다, 성향을 맞춰야 한다, 속도를 맞춰야 한다, 관심사를 맞춘다, 스타일을 맞춘다, 수위를 맞춰서 말해야 한다,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조언은 '말 안에 진실된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국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1시간30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강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펴낸 강원국 작가가 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말의 특징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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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글'이 아니라 '말'을 주제로 삼았나.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기업 CEO나 고위 공직자의 경우 글 쓸 일보다 말 할 일이 많다. 그런 분들이 종종 말하기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제가 예전에 했던 대통령 연설문 작업도 결국은 '말'이었으니까. 출판시장도 글쓰기보다 말하기 책의 비중이 더 높다.

또 하나는, 글쓰기의 출발점이 말하기라는 것이다. 강의를 해보니 더욱 절감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말하기가 먼저다. 그런 상황에서 말하기를 얘기하지 않고 글쓰기만 얘기하는 건 뭔가를 건너뛴다는 느낌이었다. 말하기의 내용은 나중에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돌이켜보니까, 제 자신도 말을 먼저 하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책으로 펴냈던 거였다."

- 말하기와 글쓰기, 어느 게 더 힘든가.

"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연설도 있고, 토론도 있고, 발표도 있고, 대화도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기고문과 SNS의 글은 차이가 크다. 종류에 따라 말이 편하기도 하고 글이 편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글이 더 편했는데, 요즘에는 말이 더 편한 것 같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늘지만, 느는 속도는 말하기가 훨씬 빠르다. 말은 상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뇌가 학습하고 다른 말을 반영한다. 말은 하는만큼 비례해서 느는데 반해, 글은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주로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정체기를 맞는 시점도 온다.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순간이다."

"글쓰기보다 말하기 실력이 더 빨리 는다" 

- 강원국의 말과 글의 특징은 무엇인가.

"글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께 배웠다. (주로 연설문을 쓰다보니) 단문이고, 수식이나 수사를 많이 구사하지 않는, 담백하고 간결한, 메시지 전달에 신경을 쓴 글이다. 그래서 저는 논쟁을 벌이거나 누구에게 감동을 주는 글쓰기에 취약하다. 다만, 스토리텔링과 서사(敍事)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본다. 직접 겪은 일화나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얘기하는 것도 잘 한다."

-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실어증에 가까운 상태였다. 조별 토론은 물론이고, 짧게 자기소개 하는 것조차 내 차례가 돌아오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사적으로, 한두 사람과 대화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발표하고 토론하는 공적인 말하기를 어려워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말수가 적으니 오히려 진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비서 생활을 할 때는 그런 점이 덕목처럼 여겨져서 덕을 봤다.

그러다 벽에 부딪힌 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나서부터다. 노 대통령은 말수가 적은 참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토론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참모를 좋아한다. 그때부터 '나도 말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 것은 결국 그 분들의 '말'을 쓴 것이고, 그 분들로부터 말을 배운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해'라고 제게 첨삭지도를 해주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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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사람들은 답변하는 사람(인터뷰이)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질문하는 사람(인터뷰어)이다. 답변이라는 건 결국 질문을 듣고나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도 "질문"에 우선권이 있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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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기와 글쓰기에도 슬럼프가 찾아올텐데, 언제 그런가.

"말하기와 글쓰기의 소재가 소진됐을 때다. 다 말해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쟤, 밑천 떨어졌구나', 사람들이 잘 안다. 다른 경우는, 내가 느끼는 내 수준보다 더 나은 걸 보여주려고 할 때 그렇다. 말이건 글이건 간에 내 생각의 깊이나 수준보다 더 나은 것처럼 보여주려고 하면 어려워진다. 포장을 하려고 하니까. 

'이게 나의 한계구나'라고 느낄 때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럴 때는 그냥 쉬거나 공부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쉬면서 재충전하거나 공부를 해서 새로운 걸 채워야 한다. 제가 '말하기'라는 주제로 눈을 돌린 것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말 공부를 통해서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사람은 다 퍼내서 고갈된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 오른다."

- 글이나 말이 그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렇다. 저는 스피치 작가에서 강사·저자가 되고, 나중에는 저의 말과 글로 발전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서 수입도 생기고 나름 지명도도 얻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제대로 하게 되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나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힘이 생긴다. 계속 하다보면 실력도 늘어난다. 말과 글이 나아진다는 것은 내가 성장한다는 거다. 내 말과 글의 수준이 높아지면 내 수준이 높아진다.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고."

"강자의 말하기는 두괄식, 약자는 미괄식" 

- 말에도 태도와 스타일이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강자와 약자의 말은 어떻게 다른가.

"윗사람의 말은 구구절절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아랫사람들은 전제를 달거나 설명을 한다. 그런 점에서 강자의 말은 결론부터 꺼내는 '두괄식', 약자의 말은 과정을 설명한 뒤에 결론을 얘기하는 '미괄식'에 가깝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괄식은 결론부터 얘기하니까 미괄식에 비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더 있다."

- 책에서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의 역량"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의 말을 잘 이끌어내려면?

"질문을 잘 해야 한다.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질문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의 역량도 결국 스스로 '질문하는 힘'에 달려있다. 대본에 쓰여져 있는대로 하는 질문을 넘어서는 질문을 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하려면, 먼저 사안에 대해 이해를 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주도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저도 라디오 진행을 해봤는데 부족함을 절감했다.

흔히 사람들은 답변하는 사람(인터뷰이)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질문하는 사람(인터뷰어)이다. 답변이라는 건 결국 질문을 듣고나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도 '질문'에 우선권이 있다. 오래 전 제가 모셨던 대기업 회장님께서 '높은 사람은 3심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욕심, 변심, 의심. 여기서 '변심'은 변화에 뒤쳐지지 않는 것, 의심은 반문하는 힘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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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유능함이라면, 사람의 온도는 따뜻함이다. 정 청장의 말은 그러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 진심이다"라는 게 그냥 전달된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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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말하기는 심리다"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께서 좋아하셨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경제가 좋아질 거다'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가지면 실제로 좋아진다는 뜻으로 쓰셨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의 '합리적 기대가설'의 요지를 '경제는 심리'로 이해하고 제가 대통령 연설문에 넣었는데, 김 대통령께서 그걸 채택하셨다.

김 대통령께서 그 말씀을 계속 하시니까, 어느 날 경제수석이 연설담당관실에 오더니 '그 말을 누가 (대통령께) 입력해드렸냐'고 묻더라. '합리적 기대가설'과 '경제는 심리다'는 그렇게 연결되는 게 아니라면서. 그래서 저는 혼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웃음). '말이 씨가 된다'고 하고, 말의 어원이 마음에서 왔다고 하듯이 그야말로 '말은 심리'라고 할 수 있다."

-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어떤 특징이 있나.

"김대중 대통령은 '글 같은 말'이다. 말씀하신 걸 풀어보면 그냥 글이 된다. 충분히 곱씹어서 머리 속에서 취사선택해 퇴고를 한 다음에 꺼낸 말씀이다. 연설할 때도 애드리브가 없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말 같은 말'이다. 글로 옮기려면 다소의 교정이 필요하다. 물론 말 자체의 강점을 갖고 있어 현장에서 직접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걸 잘 안다. 글 쓰는 참모를 불러 본인의 생각을 구술할 때도 '내가 받아적으라고 할 때 받아 적으세요'라고 하신다. 말씀을 하면서 정리를 하고,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 본격적으로 (받아쓰기용) 구술을 한다. 그때부터는 '글 같은 말'이 된다.

김 대통령은 '연설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셨다. (말도) 결국은 글로 남는다는 것. 그러니까 '글 같은 말'에 방점을 두셨다. 노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현장에서 연설할 때 청중과의 교감이 잘 이뤄졌다. 두 분 대통령의 '글 같은 말'과 '말 같은 말'은 차이가 있지만, 두 분 모두 그 내용을 연설 전에 이미 다 본인의 것으로 만드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말과 글에 애착 강해"

-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도 준비한 글을 읽으신다. 물론 준비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엄청 고친다고 들었다. 그건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세 분 대통령은 모두 참모가 써준 것을 그대로 읽지 않는다. 반드시 본인의 언어로 다듬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서 최종적인 글(말)로 완성한다."

-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께 야단을 많이 맞았나.

"김대중 대통령 때 저는 일개 행정관이었기 때문에 직접 혼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비서관이었기에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사보타주 하는 거냐,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는 질책을 들은 적도 있다. 물론, 일을 제대로 못 했을 때 그랬다.

취임 이듬해, 매우 중요한 3·1절 연설문을 작성할 때였다.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단호하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셨다. 그런 대통령의 뜻을 전달해준 분께서 조금 누그러뜨려 말씀을 했고, 연설비서관실에서는 더 누그러뜨리다보니 하나마나한 말이 돼 질책을 받았다. 제가 행정관 때 일이다. 노 대통령은 말과 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연설비서관실 방을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 옆으로 옮기게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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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대표의 말은 직설적이고 전략적이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아군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있다. 비유나 예시에도 능하다. 선문답을 안 하고, 쉽게 알아듣도록 말한다. 한편으로는 핵심으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런 말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는 시원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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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임기말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할 때도 "정치는 말이 90%입니다"라고 말씀할 정도로 '말'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정치인은 말을 통해서 자기 생각이건 정책을 국민들에게 전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인은 말을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없는, 참모가 써준대로만 읽는 정치인은 국회의원이나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국민을 대리해 국민의 생각을 말로 전하는 정치인이 자신의 말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에 관한, 강원국 작가의 예전 기고문이 인상적이었는데.

"정은경 청장의 말에는 좋은 의미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있다. 정 청장의 말을 사람들이 신뢰하는 바탕에는 '사실(fact)'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네가 뭐 그리 똑똑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정 청장의 말에 호의적인 건, 그의 말에서는 듣는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애정, 사랑, 이와 같은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유능함이라면, 사람의 온도는 따뜻함이다. 정 청장의 말은 그러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 진심이다'라는 게 그냥 전달된다. 그런 면에서 정 청장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정은경 청장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 30대 정치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됐다. 이준석 대표의 말을 어떻게 평가하나.

"말의 힘으로 큰 조직의 대표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준석 대표는 말의 힘이 컸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전략적이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아군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있다. 비유나 예시에도 능하다. 선문답을 안 하고, 쉽게 알아듣도록 말한다. 한편으로는 핵심으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런 말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는 시원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세를 결집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대표는 10년 동안 적극적으로 방송에 나가서 말 공부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당 대표가 됐다고 할 수는 없다.

'이준석'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의 특징이 있다. 유튜브 세대인 그들은 똑똑하다. 어찌보면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똑똑한 첫 세대다. 역전이 일어난 거다. 이전 세대의 경험이 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전 세대도 그들을 가르칠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전 세대들이 젊고 똑똑한 자신들에게 (사회·정치적인) 기회를 잘 안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자기들은 젊었을 때부터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해놓고, 왜 똑똑한 우리들에게는 기회를 안 주느냐'는.

그런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 깊게 묻어져있던 다이너마이트가 '이준석'으로 터진 게 아닐까 싶다. '이준석 현상'은 거기에 불을 붙인 셈이다. 젊은 세대의 한 축은 이준석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생각한 거고. 이준석이 그 세대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더 컸다고 본다."

-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로 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은?

"그 분의 말은 아직 뭐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 한 마디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정치로 뛰어든만큼 윤석열 전 총장도 '말의 광장'에서 검증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현재로서는 그의 말을 들어본 게 없고,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윤 전 총장이 전략적으로 말을 아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에 나선다면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일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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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 진실규명, 평화공원 마무리될 때까지 지원” 호소

‘제22차 산내사건희생자 합동위령제’ 열려

  • 기자명 대전=정성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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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7 22:45
  •  
  •  수정 2021.06.2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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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부터 시작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 뒤로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6월 8일부터 시작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 뒤로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옆 편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위령제가 진행되었다.

1950년 6월 28일 시작된 학살, 2000년이 되어서야 넋을 기릴 수 있었던 사건이기에 위령제의 명칭은 이름도 긴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1주기 제22차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공식 명칭이다.

27일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 임시추모공원에서 진행된 합동위령제는 코로나19로 제한된 인원으로 진행되었으며, 유튜브 대전통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되었다.

대전통에서 생중계한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1주기 제22차 희생자 합동위령제 영상

이날 위령제에는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한 제주4.3희생자유족회대전위원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전남지회 등 전국의 산내학살사건희생자 유족들이 함께 하였으며 여순민중항쟁전국연합회,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등의 단체 대표 및 회원들도 함께 하였다.

또한 황인호 대전동구청장, 박민자 동구의회 의장, 장철민(대전 동구) 국회의원, 박영순(대전 대덕구) 국회의원,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박규용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들도 자리에 참석하였다.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허태정 대전광역시장, 권중순 대전광역시의회 의장이 추도사를 전했으며, 황운하(대전 중구), 박병석(대전 서구갑), 박범계(대전 서구을), 조승래(대전 유성갑), 이상민(대전 유성을) 국회의원도 추도사를 전해 22차례의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처음으로 대전지역 국회의원 전원이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과 진상규명 약속을 전하는 위령제가 되었다.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은 “지난해 유해발굴에서 이승만 묘지보다 작은 면적에서 무려 234구의 희생자 유해가 발굴되었고, 올해 유해발굴에서도 수많은 유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쪼개지고 부서지고 총알구멍이 뚫린 유해가 나올 때마다 유가족들의 속은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렸다.”며 “유해발굴, 진실규명, 평화공원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하였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이 참석자들에게 유족 대표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이 참석자들에게 유족 대표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금까지 접수된 사건들의 진실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망설이는 분들이 주위에 계시면 용기를 가지고 우리 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할 것”을 호소하였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활동 종료 후 10년만인 2020년 12월 10일에 재출범하였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이 추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2기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이 추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작년 9월부터 42일간 진행된 골령골 유해발굴은 최소 234구의 유해를 발굴하였으며, 발굴단원 뿐만 아니라 많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로 연인원 700여명이 참여한 발굴이었다. 올해도 6월 8일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최소 80여 구의 유해를 추가 발굴해오고 있다.

자원봉사 또한 모집받고 있으며 다음 링크에서 신청 가능하다. (https://forms.gle/ms44VmpvKXNLowA48

2022년 유해발굴이 완료되면 이 자리는 2024년까지 ‘진실과 화해의 숲’으로 조성될 계획이며, 전국 민간인 희생자 유해 3000여구가 이곳에 모셔질 예정이다.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헌작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헌작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전통 타악그룹 굿 한기복 대표(대전민예총 음악위원장)가 사전공연으로 북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전통 타악그룹 굿 한기복 대표(대전민예총 음악위원장)가 사전공연으로 북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신순란 유족의 손녀 가수 설가령 씨가 추모공연으로 “자식 잃은 어머니의 눈물”, “골령골 산허리”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신순란 유족의 손녀 가수 설가령 씨가 추모공연으로 “자식 잃은 어머니의 눈물”, “골령골 산허리”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청년회 회원들은 위령제 전날인 26일 대전 으능정이에서 시민들과 함께 추모글귀가 담긴 리본을 제작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위령제 현장에 전시하였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청년회 회원들은 위령제 전날인 26일 대전 으능정이에서 시민들과 함께 추모글귀가 담긴 리본을 제작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위령제 현장에 전시하였다. [사진-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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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중립 걷어찬 최재형” “출정식 전 검사에게 전화한 윤석열”

[아침신문솎아보기] 조선, 최재형 7월중순 출마선언 뒤 8월 국민의힘 입당…청와대 검증실패, 여권 내에서 인사수석 책임론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임명 3개월 만에 경질됐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인사책임자인 김외숙 인사수석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침묵하고 있다. 

▲ 29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 29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정치중립을 자신의 대권 자산으로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권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것에 대해 경향신문은 1면 톱기사 “최재형 사표…대권 위해 감사원 ‘중립’ 허물었다”에서 “감사원과 검찰에서 ‘정치적 중립’을 앞세워 여권과 각을 세워온 두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기 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도 사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최 감사원장과 윤 전 총장의 중도 사퇴는 감사원·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기관장 임기를 정한 제도 취지에 반한다”며 “특히 감사원은 설립 근거가 헌법에 명시한 헌법기관이다. 4년인 수장의 임기 역시 헌법으로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헌법 제98조 2항에 ‘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며 “정치 참여를 위한 최 원장의 사퇴는 헌법이 규정한 이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송두리째 훼손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최 원장이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을 사임 배경으로 밝힌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라며 “최 원장 스스로 헌법기관장이 야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을 몇 달간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감사원의 한 직원은 한겨레에 “감사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업무를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지 그것으로 국민한테 인기를 얻어 정치의 밑받침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게 모양새가 안 좋다”며 “(감사원을 향한) 의리가 없다”고 했다. 

▲ 29일자 경향신문 만평
▲ 29일자 경향신문 만평

 

야당에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최 원장에 대해 항상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고 저희와 공존할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최 원장은 정치적으로 ‘윤석열의 대안’으로서 위치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윤 전 총장의 최대 약점은 ‘처가 리스크’와 두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 수사에 따른 강경 보수 지지층의 반감”이라며 “최 원장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야당에서는 윤 전 총장이 독자적인 대변인실을 구성한 것을 두고 반감이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회창 전 총재가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하다가 갈등 때문에 잘리고 당에 혈혈단식으로 들어왔다”며 “1~2명만 데리고 당에 들어와서 오히려 당을 장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역시 윤 전 총장의 한계로 최 원장에게는 기회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신문은 “최 원장이 감사원장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며 “낮은 인지도와 약한 반문 상징성도 한계로 지적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최 원장이 7월 중순에 출마선언을 한 뒤 8월초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최 원장을 ‘대안 후보’로 내세우는 야권 인사들은 “최 원장의 숙고가 아주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8월 말 경선을 예고한 상황에서 최 원장이 그 전에 입당 등을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일보는 “국민의힘에선 영남권 의원들이나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 원로 그룹이 최 원장의 잠재적 우군이 될 것”이라며 “최 원장은 이날 사퇴의사를 밝히며 태극기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고 보도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날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간담회 이후 기자들에게 최 원장을 높이 평가했다. 

▲ 29일 한겨레 만평
▲ 29일 한겨레 만평

 

윤석열, 아직도 검찰총장?

윤 전 총장이 지난 주말 자신과 가까운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에 흔들리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한겨레는 “부적절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대선 출마를 앞둔 상황에서 인사 관련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지난 25일 차장과 부장 등 검찰 중간간부 625명에 대해 인사발령을 냈는데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일부 검사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자리를 지켜라. 다음 기회를 보자’며 다독였다고 한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검사는 한겨레에 “곧 공식 출마를 앞두고 있어 사실상 정치인인데 검찰 간부에게 전화해 인사 관련 발언을 하는 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검찰 재직 시절 ‘보스 리더십’을 발휘해 온 윤 전 총장이 검찰 밖에서도 자신의 계보를 챙기는 행태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평검사는 한겨레에 “윤 전 총장이 검찰에 있을 때 ‘윤석열 계보’에 들어가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 간부들이 있었다. 적절한 행동은 아니다”고 말했다. 

▲ 29일 중앙일보 만평
▲ 29일 중앙일보 만평

 

이러한 지적과 달리 현 정권을 비판한 곳도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문재인 정권의 전횡과 폭주, 법치의 훼선이 이들(윤석열·최재형)을 정치의 길로 불러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이 오늘(29일) 정치선언을 예고한 가운데 그의 검증 포인트를 짚은 칼럼이 나왔다. 경향신문 김민아 칼럼 “윤석열, 당신은 누구입니까”를 보면 크게 세가지를 꼽는다. 윤 전 총장이 어떠한 나라를 꿈꾸는가, 누구를 대표하는가, 어떤 ‘태도’를 가진 정치인인가 등이다. 

김민아 논설실장은 “그가 검찰총장을 사임할 무렵부터 일관되게 밝힌 메시지는 공정과 상식인데 문제는 ‘어떤 공정인가’다”라며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공정은 ‘시험(성적)’을 잣대로 삼는 공정인데 윤 전 총장이 이에 동의하는지, 즉 “윤석열이 만들고 싶은 ‘공정한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훈 전 대변인 표현으로는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포괄하는 압도적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다만 현재 이념적 스펙트럼은 꽤 복잡하다. 김 실장은 “안철수는 한때 극중주의까지 내걸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인구 5182만명, 18세 이상 선거권자 4399만명인 나라에서 모두를 대표하는 일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이 대표하겠다는 시민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전 총장은 최근 ‘X파일’에 대해 정치공작, 불법사찰 등의 표현을 쓰며 사안을 회피했다. 김 실장은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지도자라면 보다 낮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며 “이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슈를 태도는 훨씬 더 중요하다. 기자회견에서 직접 X파일에 대해 언급할 그 순간을 주목하는 이유”라고 했다. 

▲ 29일 한겨레 3면 톱기사
▲ 29일 한겨레 3면 톱기사

 

여권에서도 김외숙 경질 주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8일 김기표 전 비서관 경질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신속하게 처리했다”며 “왜 이런 사안이 잘 검증되지 않고 임명됐는지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고, 백혜련 민주당 최고위원도 라디오에서 “인사수석이 검증 문제에 대한 총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29일 1면 톱기사로 전했다. 이 신문은 “송 대표가 지난 26일 직접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김 전 비서관에 대한 조속한 정리를 요구했고, 여당 일부에선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했다”며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친문 진영 측은 김 수석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등 대선주자들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며 “청와대는 민주당의 인사수석 경질 요구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오히려 청와대 내부에선 ‘집권 여당이 나서서 청와대 인사수석 책임론을 따질 문제냐’, ‘청와대 인사 시스템도 잘 모르면서 왜 공개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며 “민주당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부동산 문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반면 청와대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말 30%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진보성향의 신문에서도 청와대 책임론을 말했다. 한겨레는 관련 기사 제목을 “청와대 ‘부동산 검증’ 하긴 했나…여당 “인사수석 책임져야””로 정하고 “잇단 검증 실패 ‘총체적 부실’ 지적” “여당 의원마저 ‘부동산 무감각’ 질타” 등을 부제로 뽑았다. 경향신문도 1면에 “여당 내부에서도 김외숙 경질 요구”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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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전범기 태우기] 12. "일본은 전범 역사 사죄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6/29 08:48
  • 수정일
    2021/06/29 08: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1/06/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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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이 전범기를 불태우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 대학생이 전범기를 불태우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 이동하려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가로막혀있다.     ©하인철 통신원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의 전범기 태우기가 계속되고 있다.

 

28일 오후 3시 대진연 회원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전범기를 불태웠다. 

 

대진연 회원은 전범기를 태우며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는 명백한 영토 침략이며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라며 일본의 행태를 규탄했다. 이어 “일본은 자신들의 범죄 역사부터 먼저 사죄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학생으로 이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죄를 받아낼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대진연 회원이 전범기를 다 태우고 이동하려 하자 불심검문을 하겠다며 이동을 가로막았다. 

 

대진연 회원들이 “왜 불심검문을 이유로 가로막느냐”라며 항의했다. 

 

경찰은 무엇을 태웠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매일 전범기를 태우는 것이 불법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진연 회원의 항의가 이어지자 경찰은 황급히 상황을 마무리 짓고 현장을 떠났다. 

 

대진연의 전범기 화형식은 내일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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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일본 기술자립 ‘마지막 벽’ 깰 일만 남았다

김영배 기자41 등록 :2021-06-28 04:59수정 :2021-06-28 09:31
[일본 수출규제 2년]
동진쎄미켐 발안공장을 가다


일본 3대 규제 중 완전 국산화 안된
유일한 품목 ‘포토레지스트’
정부 예산지원·기업들 밀착 협력
일본 장악한 시장서 ‘10% 점유율’
 
실리콘 웨이퍼 위에 포토 레지스트를 코팅하는 모습. 웨이퍼를 빠르게 회전시키면 고른 막이 형성된다. 동진쎄미켐 제공
실리콘 웨이퍼 위에 포토 레지스트를 코팅하는 모습. 웨이퍼를 빠르게 회전시키면 고른 막이 형성된다. 동진쎄미켐 제공
 

공장 방문 전 보내온 안내 전자우편에 휴대 물품 목록을 적어달라고 돼 있었다. 전화기 외엔 원칙적으로 갖고 들어갈 수 없다는 취지였다. 사진 촬영도 어렵다고 난색이었다. 청정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보안시설이라는 점과 함께 빛에 민감한 물질을 제조하는 시설이기 때문이라 했다.

 

지난 22일 오후 동진쎄미켐 발안 공장(경기도 화성시) 안내동의 보안 검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공장 터가 넓게 펼쳐졌다.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농공단지 시설처럼 보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재현 부사장은 “전체 부지 면적이 5만평을 좀 넘는다”고 말했다.

 

외벽에 ‘3’이라고 적힌 건물에 들어서자 주유소에 온 듯 화학약품 냄새가 훅 끼쳤다. 입구로 진입하면서 맞닥뜨리는 벽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포토레지스트’(반도체·디스플레이용 감광액) 제조 과정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솔벤트, 폴리머(합성수지), 감광제 등 원재료를 정제하고 적정한 비율로 섞어 감광액을 만드는 과정은 물과 감미료를 섞어 음료수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석유에서 추출된 갖가지 화합물을 정제, 혼합해 제조하는 옅은 주황색의 포토레지스트는 특수 제작된 1갤런(3.8리터)짜리 갈색 유리병에 담겨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회사들에 납품된다. 정제, 혼합은 물론 마지막에 유리병에 담는 과정 모두 자동처리되며 3층에 있는 관제소에서 이를 제어한다.

 

포토레지스트 제조사로는 국내 대표 격인 동진쎄미켐의 발안 사업장 제3공장 준공·가동(올해 4월)이나,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기술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사실 모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가 없었다면 현실로 나타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디스플레이 소재)와 함께 수출 규제 강화 3대 품목이며, 2019년 7월 일본의 규제 뒤 2년에 이른 지금도 완전한 의미의 국산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유일한 품목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빛’(포토)에 ‘저항하다’(레지스트)라는 뜻을 담고 있는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쓰이며 반도체 첫 공정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빛을 받으면 반응하는 성질을 띠어 판화의 음각, 양각처럼 구분되는 모양을 형성할 수 있다. 웨이퍼에 포토레지스트를 회전 방식으로 코팅해 일정한 두께의 막을 형성한 뒤 회로 모양을 새긴 ‘포토 마스크’를 씌우고 빛을 쬐면 웨이퍼에 그 모양대로 패턴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이른바 포토 공정(노광 공정)이다. 이 밑그림에 따라 이어지는 공정에서 반도체 회로가 최종 형성된다.

 

포토레지스트는 사용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불화크립톤(KrF·248㎚)용, 불화아르곤(ArF·193㎚)용, 극자외선(13.5㎚)용 등으로 나뉜다. 회로 선폭을 뜻하는 숫자가 작을수록 미세 공정에 유리하다. 일본에서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 전략물자가 바로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이다.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며 국내에서는 현재 삼성전자에서만 양산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국내에선 독보적인 동진쎄미켐은 지난 2년에 걸쳐 두가지 중요한 성취를 이뤘다. 둘 다 일본 수출 규제에 맞대응해 예산을 투입한 국책 사업으로 추진됐다.

 

하나는 기존 소재보다 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한 일이다. 오래전부터 거래관계를 맺고 있던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에도 업그레이드된 불화아르곤용을 작년 11월부터 공급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실마리다. 그동안은 일본 업체들에 거의 다 장악돼 있던 분야였다.

 

김 부사장은 “일본의 규제 당시 내심 걱정되는 바도 있었지만, 당연히 기회로도 여겼다”며 “과제 실행에 착수하는 시점에서 곧바로 예산이 나올 정도로 정부 대응과 지원이 빠르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2019년 9월 개발에 착수해 예상보다 훨씬 빨리 9~10개월 만인 이듬해 6월 개발 작업을 마무리 짓고 그해 11월에 제품화, 상업화 단계에 이른 주요인으로 꼽힌다.

 

동진쎄미켐 작업자들이 포토 레지스트를 담은 특수 유리병을 들고 있다.
동진쎄미켐 작업자들이 포토 레지스트를 담은 특수 유리병을 들고 있다.
 

김 부사장은 “고객사(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테스트 작업을 많이 해준 것에도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과거 한번에 2~3개 정도 테스트했다면 많게는 20개씩 할 정도로 평가를 많이 해줘 개발 속도를 높이고 좋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본 쪽의 압박으로 비롯된 절실함이 소재 수요자와 공급자를 밀착시켰던 셈이다.

 

현장 방문 때 같이 만난 동진쎄미켐의 길명군 전무는 “국내 포토레지스트 시장에서 일본 쪽의 점유율은 85% 수준으로 여전히 높지만 동진의 점유율이 규제 이전 6~7%에서 지금은 10%를 웃돌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쎄미켐 자료를 보면, 국내 포토레지스트 시장 규모는 1조4천억원 수준이다.

 

또 하나 중요한 성취가 이뤄진 분야는 바로 문제의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쪽이다. 동진은 소재의 성능 향상에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아울러 안정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극자외선용 분야에서 완전한 의미의 국산화로 여길 수 있는 제품화, 상업화 단계에 이를 시점은 미정이라고 김 부사장은 전했다. 성능을 좀 더 개선하는 노력과 더불어 “어제 만든 것과 오늘 만든 것이 동일한 성능과 품질을 갖는지” 따위를 반복적으로 테스트한 뒤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 개발 중이며 양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결 숙제 하나를 안고 있는 셈이다.

국내 소재·부품 업체들이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로 김 부사장은 일본과 다른 발전 경로를 밟았던 점을 들었다. 일본이 기초산업을 발달시켜 위로 차곡차곡 쌓듯 올라가면서 산업을 키웠다면 우리는 거꾸로 위(상위 산업)에서 먼저 산업을 키우고, 아래(소재, 부품)로 내려오는 압축성장 방식이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뒤 일본 업체(TOK)나 미국 듀폰이 국내에 투자해 포토레지스트를 생산, 공급함에 따라 숨통을 틔웠지만, 국산화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고 김 부사장은 말했다. 진정한 의미의 국산화, 자립화는 제품 개발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위 디바이스(제품)에 필요한 소재, 부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 기술 자립으로까지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외국 업체들이 국내에 투자해 공급 병목 현상을 해소했다 해도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 업체가 국내에 진출해 있지만 메인(주류) 개발 사이트는 그들의 본사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기초부터 다지는 작업을 순수 국내 업체가 해야 한다고 본다.”

 

김 부사장은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는 것을 보고 우리 회사가 반도체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듯 동진과 같은 포토레지스트 업체가 성장하면 그 원자재를 사업화하려는 국내 업체들이 생겨나고, 이어서 그 업체들에 원료를 공급하는 기초원자재 산업이 연쇄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초원재료부터 반도체에 이르는 안정된 공급망이 생겨나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산업 체계는 이런 경로를 통해 형성된다는 설명이었다. 

 

화성/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동진쎄미켐은 어떤 회사?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재료, 대체에너지용 재료와 발포제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1967년 설립돼 피브이시(PVC) 및 고무 발포제를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발, 국산화하고, 1973년부터는 발포제를 수출하고 있다.발포제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들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재료 산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1989년 반도체용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을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뒤 이뤄진 정부의 지원책, 반도체 회사의 협업에 힘입어 한 단계 격상된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했다.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경기도 화성과 시흥시, 충북 음성군에 제조시설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등에 현지법인도 두고 있다. 1999년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으며 2020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9378억원, 1263억원이다. 직원 수는 3월 말 현재 1182명에 이른다.포토레지스트란?빛에 반응(감광)해 녹거나 굳어지는 성질을 띤 고분자 재료. 반도체 기판(웨이퍼) 위에 집적 회로를 찍어낼 때 사용한다. 웨이퍼에 포토레지스트를 골고루 바르고, 그 위에 회로 모양을 새긴 마스크를 씌워 빛을 쬐면 회로 밑그림에 해당하는 일정한 패턴이 형성된다. 이를 ‘포토 공정’이라고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01103.html?_fr=mt1#csidx798f8223132d9d3a64480b511fd5fcf 

-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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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리스크 커지는 사이 최재형 대안 급부상”

[아침신문 솎아보기] 3월 대선 일정 본격 시작, 윤석렬 X파일 등 흔들리자 최재형에 관심 높아지기도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사퇴를 하겠다고 밝히고,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출마선언을 하는 등 내년 3월 대선을 향한 일정이 본격 시작된다. 윤 전 총장이 출마 전부터 X파일이 언급되고 대변인이 사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언론은 ‘대안’이라는 표현을 쓰며 최재형 감사원장에 주목을 보였다.

또한 두 야권 대선 기대주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라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 대선 기대주를 키우지 못한 상황이라고 봤다.

더불어민주당은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고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도 출사표를 낸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28일부터 30일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다음달 8일까지 예비경선 선거전, 9일부터 11일까지 국민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50 대 50 비율로 하는 선거를 진행, 상위 6인에게 본경선 기회를 부여한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두관 의원, 박용진 의원, 이광재 의원, 최문순 강원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등이 등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종합일간지는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월요일 1면에 이 소식을 다뤘다. 다음은 대선 레이스 시작과 관련한 주요 종합일간지 1면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예비 등록·출마선언…여야 ‘대선 슈퍼위크’”
국민일보 “윤석열·이재명 출격… 대선 슈퍼위크 개막”
동아일보 “최재형 ‘오늘 감사원장 사퇴’ 마음 굳혀”
서울신문 “대선 ‘골든 위크’”
세계일보 “링 위 오르는 주자들… 대선 레이스 윤곽”
조선일보 1면에 대선 관련 기사 없음
중앙일보 “이재명 1일 출마 선언, 최재형은 오늘 사퇴…대선 레이스 본격화”
한겨레 “이번 주 ‘톱2’ 출마 선언…대선판 달군다”
한국일보 1면에 대선 관련 기사 없음

▲28일 한겨레 1면.
▲28일 한겨레 1면.

출마 선언 전부터 ‘윤석렬 X파일’ 등이 언급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이 사퇴를 하는 등 모습이 보이자 신문들은 윤 전 총장이 이런 공세를 돌파하는 모습에 지지율이 흔들릴 것이라 봤다.

세계일보는 1면 기사에서 “본격 검증대에 오른 윤 전 총장이 각계 현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X파일’ 등 일각의 공세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흔들릴 수 있다”며 “그 지지율 추이에 따라 국민의힘 입당 시기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썼다. 4면에서도 최재형 감사원장을 윤석열 전 총장의 경쟁자로 그렸다. 

▲28일 세계일보 4면.
▲28일 세계일보 4면.

윤 전 총장에 대한 이러한 경향은 또 다른 야권 대선 주자인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퇴에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겨레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언급하며 윤 전 총장에 대한 ‘대안’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한겨레는 1면에서 “한겨레 윤 전 총장을 둘러싼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커지는 사이, ‘대안’으로 급부상한 최재형 원장은 28일께 사의를 표할 것으로 전해졌다”고 전했다.

다른 신문들도 1면 기사에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분량이 많았다. 특히 28일 사퇴를 알리면서다.

▲28일 중앙일보 5면.
▲28일 중앙일보 5면.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야권의 대안 후보로 급부상한 최재형 감사원장은 28일 사퇴하면서 감사원의 중립성·독립성 훼손 문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 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 원장이 당장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지는 않겠지만 사퇴만으로도 사실상 링에 오르는 셈이다. 최 원장이 ‘분권형 개헌’ 카드를 고리로 세력화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최재형 감사원장에 우호적인 1면 기사에 이어 5면으로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야권에선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최 원장의 강점으로 꼽는다”며 “처가를 둘러싼 의혹 등 네거티브 대응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윤 전 총장과 달리 도덕성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최 원장이 정치 보폭을 더 넓게 가져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고 윤 전 총장과 비교했다.

이어 “한국전쟁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 부친 등 가족사도 최 원장에겐 플러스 요소다”라며 “하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근간으로 하는 감사원장직 사퇴 후 정치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중립성 논란이나 대중적 지지 여부 등은 최 원장에게 따라붙는 물음표”라고 짚었다.

“이들을 야권 대선 기대주로 만든 기반은 문 대통령”

국민의힘에서 키운 후보들이 대선에서 뚜렷한 두각을 내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지명한 인사들이 야권의 대표 대선 주자가 된 점을 언론은 주목했다.

한겨레 1면은 “윤 전 총장과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 공직자였고, 자신을 임명한 정부와 이견을 노출하며 정치 활동의 동력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현직에 있다가 정치 참여를 결심하고 사실상 대선 가도로 직행한 점 때문에 중립성 시비가 거세다. 이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두 사람에게 놓인 과제”라고 짚었다.

조선일보는 1면이나 사설에 대선 레이스와 관련한 기사나 사설을 배치하지 않았다. 1면 기사에서 윤석렬 전 총장과 비교하며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해 분량을 할애한 중앙일보와 다른 모습이다. 6면 정치면에 실은 대선 레이스와 관련한 기사도 건조하게 다뤘다.

이날 조선일보에서 대선 레이스와 관련해 읽어볼만 한 글은 자체 기사나 사설이 아닌 외부 칼럼이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산업화·민주화 세력 모두 구시대… 옛날식 보수·진보, 수명 다했다”라는 정기기고다.

▲28일 조선일보 34면.
▲28일 조선일보 34면.

이 글은 “이전 대선과 비교할 때 올해 유독 흥미로운 점은 야권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원장과 같은 당 외부 인사가 주요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라며 “아직까지는 국민의힘 당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 인기 1위인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고, 명시적으로 정치 참여에 대한 입장조차 밝히지 않은 최재형에게도 밀리고 있다”고 썼다.

이어 “어쩌면 이들을 주목하게 된 더 중요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당장 문 대통령과 ‘다툴 만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일지 모른다”며 “결국 이들을 야권의 대선 기대주로 만든 기반은 문 대통령”이라고 짚었다.

강 교수는 “야당이 권력을 되찾아오고 싶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에서 만족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아예 그것을 송두리째 넘어설 수 있는 시대적 새로움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의 표명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김기표(49·사법연수원 30기)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수용했다. 그는 지난 3월 31일 임명됐다.

사퇴 배경은 지난 25일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자료가 관보에 게재되면서부터다. 김 비서관은 총 39억 2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고 부동산이 91억 2000만원, 금융 채무가 56억 2000만원에 달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빚투’ 논란이 일었다. 변호사 시절 2017년 매입한 4900만원 상당의 경기 광주 송정동 임야는 도로가 연결돼 있지 않은 맹지이지만, 송정지구 개발로 신축 중인 아파트·빌라 단지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28일 조선일보 1면.
▲28일 조선일보 1면.

서울신문은 1면에 “정부의 부동산 부패 청산 드라이브 속에 반부패비서관이 투기 의혹에 휘말리자 민심이 들끓고 여권에서조차 우려가 커지면서 속전속결로 정리한 모양새지만, ‘부동산 내로남불’ 프레임 재소환과 부실 인사검증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이 이슈를 1면 탑기사로 배치하고 사설 “文 정권 司正 라인은 범죄·부패·투기 집단”에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일보 역시 이를 1면에 배치, 사설 “구멍 뚫린 청와대 인사 검증, 계속 이대로 둘 건가”에서 “공직자라기보다 부동산 전문 투자자로 보일 정도여서 많은 국민이 혀를 차는 상황”, “더구나 반부패비서관은 부동산 투기를 포함한 공직자 부패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신설한 자리”라며 비판했다.

한겨레도 사설 “또 ‘인사 검증 부실’ 드러낸 김기표 비서관 사퇴”에서 “인사 검증 과정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한 점을 청와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청와대가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관련 도덕성 잣대를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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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⑤]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김은희 “강아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지 몰라요”

노조 가입 권유했던 이가 탄압 심해지자 먼저 탈퇴… “솔직히 너무 배신감이 컸어요.”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앞에 있는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 2021.06.22ⓒ정의철 기자

“지난주에 교섭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박근서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지회장은 22일 12시 30분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소속 조합원들에게 지난 17일 열렸던 사측과의 교섭 결과를 알렸다. 협상이 결렬됐고,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거쳐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박 지회장의 설명에도 조합원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한국쓰리엠지회는 2009년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사측의 탄압에 계속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노조에 따르면, 포스트잇, 스카치 테이프, 산업용 마스크 등으로 유명한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한국쓰리엠(3M)은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근무평가를 빌미로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임금을 차별하고, 조합원들의 탈퇴를 회유하는 등 ‘노조 탄압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온갖 일을 벌였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노동 탄압’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우리에겐 어색하게 들린다. 드라마 ‘송곳’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주인공인 구고신 노무사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라고 말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업의 압력으로 누더기가 된 ‘살인기업처벌법’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법과 제도는 기업에게 ‘그래도 되는’ 무한한 폭력을 부여했고, 노동자들의 생존은 위기에 몰렸다.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박근서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지회장이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 2021.06.22ⓒ정의철 기자

“김은희 조합원은 그동안 사무장을
연임해서 활동했고,
지금은 여성부장을 맡았어요.
늘 노조 운동의 선두에서
열심히 해요.”

‘그래도 되는’ 나라에 사는 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하다. 박 지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또 다시 ‘중식 선전전’을 비롯해 각종 투쟁이 이어질 것임을 직감한 조합원들 사이에 한 여성 조합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날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리를 정리하고, 사무실 주변을 쓸고 닦으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던 조합원 김은희다. 박 지회장은 김 조합원을 “그동안 사무장을 연임해서 활동했고, 지금은 여성부장을 맡았어요. 늘 노조 운동의 선두에서 열심히 해요”라고 추켜세우며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화성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백계탁 수석부지회장은 “함께해서 든든한 동지예요. 늘 힘이 돼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 불의한 것엔 참지 않는 싸움꾼”이면서 동시에 “노조 활동을 묵묵하게 책임지는 살림꾼”이라고 김 조합원을 칭찬했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합원 김은희를 지난 22일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 있는 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은 노동조합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일꾼인 김은희지만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가 되고, 노조 조합원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7월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 입사하면서 그의 삶은 분기점을 만났다.

“집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결혼 10년 만인 서른일곱 살에
공장일을 시작했어요.”

“올해로 입사한지 15년 됐어요.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왔는데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에요. 결혼 전엔 교회 어린이집에서 2년 정도 일한 게 전부였어요, 취직자리를 알아보다 생활정보지에 나온 취업 광고를 봤어요. 한국쓰리엠이 화성에 공장을 세우고 직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화성공장 1기로 입사했어요. 그렇게 결혼 10년 만인 서른일곱 살에 공장일을 시작했어요.”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이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6.22ⓒ정의철 기자

김은희가 공장에서 맡은 일은 IP 업무라 불리는 검수업무였다. 모니터, 내비게이션 등에 들어가는 필름을 포장 직전에 마지막으로 불량이 없는지 확안하는 업무였다. “처음엔 멋모르고 일했어요. 공장에서 처음 일 해본 거였거근요,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일이 많아서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일했습니다. 힘은 들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선지 아무 생각 없이 했어요. 당시에 딸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봐줄 사람이 없어서 여러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늦게 애들 아빠가 찾아서 돌봤습니다. 집안 부모님 도움은 받지 못했어요. 그런 딸아이가 지금 스물일곱 살이에요.”

시키는 대로 멋모르고 3년 넘게 일했던 김은희는 지난 2009년 노조가 만들어질 때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1977년 한국 진출 이후 32년 동안 노동조합이 없던 한국쓰리엠에 2009년 5월 노조가 세워진 것이다. 그해 5월 14일 한국쓰리엠 나주공장 노동자 70여 명이 노조를 설립했고, 이후 나주공장과 화성공장에서 현장직 노동자들의 가입이 이어졌고, 현장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해 조합원 수는 670여 명에 육박했다.

2009년 노조 결성…
조합원 670여 명 참여

한국쓰리엠지회는 그해 8월 임금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근무평가제도, 여성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 보수 언론에선 “32년 무분규 전통이 민노총 가입 후 와르르 무너졌다”고 보도했지만, 한국쓰리엠 노동자들이 말하는 현실은 달랐다. 노조는 당시 연 2천억 원에 달하는 주식 배당금을 챙겨간 한국쓰리엠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정년을 몇 년 앞둔 노동자들의 희망퇴직과 임금삭감, 복지 축소를 단행했고, 근무를 평가해 임금을 차별지급했던 근무평가제 등 노동자들의 불만도 많이 쌓여 있었다고 말한다. 현장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가입한 건 이들이 처했던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때의 파업투쟁으로 임금협상이 타결되면서 노조의 앞날엔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2009년 5월 14일 열린 한국쓰리엠지회 결성 총회 모습. 사진 제일 왼쪽이 박근서 지회장이다.ⓒ금속노조광주전남지부

하지만, 임금협상 이후 단협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한국쓰리엠을 두고 ‘노조 탄압 백화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조 흔들기가 계속됐다. 2010년 노조가 파업과 농성을 통해 사측에 대응하자 6월 나주공장에 용역을 투입해 농성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는 등 조합원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8월에 농성을 시작한 화성공장에도 용역들이 상주하며 충돌이 벌어졌다. 그해 한국쓰리엠은 기존의 경비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민간방호기업인 컨택터스를 불러들여 공장 경비를 맡겼다. 컨택터스는 2007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의 경호를 담당한 후, MB정권 동안 한국전력이 발주한 국책사업 현장에 투입될 정도로 급성장한 업체로 SJM, 발레오만도, KEC,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 각종 노동 분쟁 현장에서 악명 높았던 기업이다. 별 생각없이 주변의 권유로 노조에 가입했던 김은희에게 이런 현실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측에선 용역 동원해 노조에 폭력
“노조가 이렇게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냥 여기서 노조가 생긴다고 주변에서 가입을 권유해서 함께하게 됐어요. 노동조합에 특별히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별 생각업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을 파괴하려고, 용역깡패가 들어왔어요. 2010년 당시 공장 앞에서 싸운게 기억나네요. 조합원들이 코뼈가 부러지고, 병원에 실려가고 했어요. 저도 약간 다치긴 했지만 찰과상 정도였어요. 용역들의 폭력을 촬영하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해 지키다가 넘어지고 부딪혀서 다친 거에요. 그런 식으로 싸운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결국 싸우다 구치소까지 갔던 동료도 있었어요. 노조를 세울 때 방해가 많다 보니 노조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회의감도 들었어요. 당시엔 그런 걸 전혀 몰랐거든요. 노조만 만들어지면 그냥 순조롭게 가는 줄로만 알았어요. 노조가 이렇게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2010년 11월에 열린 금속노조 상경투쟁에 함께한 한국쓰리엠지회 조합원들이 용역들의 폭력 사진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한국쓰리엠지회

피와 땀을 쏟으며 싸운 한국쓰리엠 노동자들은 사측의 압박이 전방위적이었다고 증언한다. 사측은 한국컨택터스의 폭력에 맞선 조합원 19명을 해고했고, 징계도 250여 건에 이르렀다. 노동조합 지도부를 상대론 2억 6천만 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로 압박했다. 조합원의 본가를 찾아가고 조합원들을 일일이 만나 노조 탈퇴를 회유하기도 했다. 전문 부서까지 만들어 전환배치를 통해 소위 강성 조합원을 격리하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 경력 십 년이 넘는 노동자들에게 풀을 베고 페인트칠을 하고 청소를 하는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부터 외쳐왔던 여성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해서도 한국쓰리엠에선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들이 맡고 있는 검수업무가 대표적이다. 검수업무만 15년째 해온 김은희는 자신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필름 검수를 오래하다보니 이 정도면 나가도 되고,나가선 안 된다는 게 쉽게 판단돼요. 그런데도 회사에선 간단한 업무로만 취급합니다. 그래서 검수업무를 ‘IP 직군’이라고 아예 별도 직군을 만들어서 진급도, 승진도 없고, 아무리 경력이 오래되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만 줘요. 기계를 만지는 일이나, 검수하는 일 모두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15년 동안 보람을 가지고, 많은 제품을 검사해왔어요. 어떤 면에선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맡아온 건데 그에 맞는 대접을 안 해주네요. 사측에선 말로는 그런 노고를 인정한다면서도 절대 제도는 바꿀 수 없다고 해요.”

근무평가제로 노조 압박
얼마 전 임금 협상에선
임금 인상률 낮추자는 노조 제안에도
근무평가제 고수
“회사에선 근무평가제 폐지하면
관리가 힘들다고 해요.
말이 관리지, 결국 회사에
목소리 안내고, 자기들 하자는 대로
따라오게 노동자들을
조종하겠다는 거잖아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한국쓰리엠이 노조를 견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근무평가제’다. 노조를 만들 당시부터 폐지 요구가 많았지만, 오히려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엔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김은희는 증언한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이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6.22ⓒ정의철 기자

“근무평가를 1차는 파트장이 하고, 2차는 팀장이 해요. 두 점수를 합산해 평가하는데, 조합원의 경우 파트장이 점수를 많이 주면 팀장이 점수를 적게 주는 경우가 많아서 늘 낮은 점수를 받아요. 근무평가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부서에 고득점자와 저득점자 비율을 정해놓고 하는 일종의 상대평가거든요. 그런데, 늘 고득점은 비조합원, 저득점은 조합원 위주로 돼요.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아요. 이렇게 근무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 조합원들은 승진이 힘들어요. 노조를 처음 만들었을 때 조합원 중에 조장을 맡았던 이가 있었는데,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노조를 만들면서 정직도 당하고 해서 근무평가가 낮아졌거든요. 지금은 조합원 가운데선 경력이 많아도 조장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회사는 차별이 아니라고 해요. 정당한 근무평가에 의한 진급이라고 주장하거든요. 또 노동조합에선 매번 폐지를 주장하지만, 회사에선 폐지하면 관리가 힘들다고 해요. 말이 관리지, 결국 회사에 목소리 안내고, 자기들 하자는 대로 따라오게 노동자들을 조종하겠다는 거잖아요.”

지난 17일 열린 한국쓰리엠 사측과 노조의 협상 과정에서도 근무평가제는 가장 큰 논란이 됐다. 박근서 지회장이 22일 화성공장 조합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지난 협상에서 사측은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면서도 근무평가 등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차등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노조에선 차등 지급은 안 된다면서 차라리 임금인상률을 낮추더라도 정률 인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에선 이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노조에선 스스로 인상률을 낮출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사측이 이를 거부한 건 한국쓰리엠이 근무평가제만큼은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조룰 먼둘 덩사 600명이 넘던 조합원은 1년 여 만에 100여 명으로 줄어들었고, 사측이 근무평가제 등으로 압박을 계속하면서 조합원 가입률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한국쓰리엠지회 확대간부토론회에 참석한 김은희 조합원(사진 제일 왼쪽)ⓒ한국쓰리엠지회

“현재는 조합원이 화성공장에 31명, 나주공장에 83명이에요. 많은 조합원들이 견디지 못하고 노조에서 탈퇴했어요. 그리고, 비조합원들은 사측이 무서워 노조 가입을 꺼려하고 있고요.”

“노조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 유형이죠.
‘진심’인 사람. 노조에도, 사람에도, 투쟁에도
가식없이 진심인 사람,
그런데 따뜻한 사람이 바로
김은희 동지에요.”

김은희는 함께 노조활동을 하던 이들이, 특히 노조에 함께하자고 자신을 이끌었던 동료가 먼저 탈퇴하면서 인간적인 상실감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저희 조장이 먼저 노조에 가입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상황이 힘들어지니깐 먼저 탈퇴했어요. 너무 배신감이 컸어요.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어요.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지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밉고 싫어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하고 고양이한테 정을 줬어요. 강아지와 고양이가 없었으면 어땠을지 몰라요.”

김은희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에게 사람이 아닌 강아지와 고양이가 힘이 되어 주었다는 고백을 언젠가 금속노조 모임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은희의 진솔담백한 고백은 함께 모여 노조활동이 힘들다고 울먹이면서 신세한탄을 하던 사람들을 와하하 웃게 만들었고, 그제서야 사람들이 편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엄미야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은 말한다.

“맞아, 맞아. 그땐 정말 (배신하고 떠나는 조합원들이) 인간 같이 안 보이지.”
“회사보다 조합원들 때문에 힘든것 같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노조 간부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엄 부지부은 당시 모임 현장에서 동료 노조 활동가들의 마음을 움직인 김은희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급단체 소속인 제가 백마디 ‘힘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무색해지더라구요. 찐으로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감, 따뜻함, 그리고 이어지는 격려와 위로. 그게 김은희 동지가 가진 최고의 힘이라고 그 때 생각했어요. 어설픈 공감이나 어설픈 위로는 종종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고, 자신의 힘듦이 별거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이 더 낮아지고 하곤 하거든요. 그런데 김은희 동지는 달라요. 예전에 쓰리엠 노조 만들때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누가 ‘꼬셔서’ 막판에 가입을 했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어려울 때 떠나더래요. 그때 어려웠는데 지금은 괜찮다. 이렇게 절대 말하지 않더라구요. 지금도 미운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지금 같이 하는 수석부지회장도 자기 속을 얼마나 썩였는데 지금도 아웅다웅한다고 솔직히 말하죠. 그런데 눈빛에서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요. 노조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 유형이죠. ‘진심’인 사람. 노조에도, 사람에도, 투쟁에도 가식없이 진심인 사람, 그런데 따뜻한 사람이 바로 김은희 동지에요.”

“우리 목소리를 현장 안에서
낼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에요.
비조합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목소리를 제대로 못내거든요.”

노조에 함께하자고 했던 이들이 나중엔 김은희에게 탈퇴하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은희는 그런 제안을 “나는 끝까지 남겠다”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후 11년 가까이 그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의원으로 시작했던 노조 활동은 사무장이란 중책을 맡아 여러 해 일했고, 지금도 여성부장을 맡아 활동하며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여성부장 김은희 조합원이 22일 경기 화성시 한국쓰리엠 화성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6.22ⓒ정의철 기자

힘겨운 여정이지만, 노조 건설 이후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이 공장에서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회사에 당당하게 할 말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목소리를 현장 안에서 낼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에요. 비조합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거든요. 이 때문에 주변의 비조합원들 가운데서도 노조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요. 그럴때 자부심과 보람을 느껴요.”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불합리했던 공장의 부조리가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나주공장 등에선 친인척, 아는 동생, 고교동창, 고교후배 등 지역사회에서 얽혀있는 관계 때문에 제대로 체계가 서지 못했어요. 현장에선 ‘야’, ‘너’, ‘이 새끼’ 등 노동자들을 함부로 불렀어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막무가내로 16시간 작업도 하는 분위기였는데 노조가 생기고 나선 이런 일들이 없어졌어요. 법대로, 규정대로 이뤄져요. 또 작업복, 작업화 등 물품 지급도 바뀌었어요. 그전엔 달라 그래도 안 줘서 본인이 사비로 사서 쓰기도 했거든요. 심지어 볼펜 등 사소한 문구류도 다 개인이 샀어요. 당연히 개인이 사야하는 거로 알았는데 이제는 회사에 달 라고 하면 바로 지급이 돼요. 연차도 눈치가 보여 못쓰는 바람에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가끔 비조합원에겐 눈치를 주기도 하지만, 조합원에겐 절대 그러지 못하거든요.”

“노조활동이 활성화되는 건
청년들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기도 해요.
자녀를 키우는 조합원들에게
저는 항상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녀들은 더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해요.”

이렇게 공장을 바꾸고,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한국쓰리엠 노조와 조합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고, 특히 자신의 딸과 같은 예비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일이라고 김은희는 믿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2월 복직을 위해 희망뚜벅이 행진을 할 당시에 함께 한 김은희 조합원(사진 왼쪽에서 두번째)ⓒ한국쓰리엠지회

“청년들이 취직이 힘들다면서도 중소기업이나, 노동현장으로 가는 건 꺼려요. 청년들이 그런 현장에 가지 않는다고 욕할 수 있을까요? 노동이 대접을 잘받는다면, 일한 만큼 받는다면 청년들도 주저없이 그런 곳에서 일하겠죠. 노조활동이 활성화되는 건 청년들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기도 해요. 자녀를 키우는 조합원들에게 저는 항상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녀들은 더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해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노동자인 자신의 딸과 청년 노동자들에게 김은희는 이런 당부를 전했다.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노동자로서 나의 목소리를 낼수 있고 들어주는 곳은 노동조합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노동조합은 노동자 편이란 걸 꼭 기억했으면 해요.”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서 15년 넘게 일해온 김은희는 이제 정년을 9년여 앞두고 있다. 남은 정년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는 김은희의 꿈은 ‘신규조합원 가입’이다. 힘겨운 현실 때문에 벌써 10년여 동안 정체된 신입 조합원을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아직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지만, 가식없이 진심으로 자신의 약속을 묵묵히 지켜온 그는 조합원들에게 끝까지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조합원들한테 하고픈 이야기는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는 거에요. 끝까지 해야지요. 이제와서 그만 둘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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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松柏)아 끝없이 푸르고. 강수(江水)야 한없이 울어라!

[특별기고] 백포 서일 순국 100주기 특집② - 김동환

  • 기자명 김동환 
  •  
  •  입력 2021.06.28 00:00
  •  
  •  수정 2021.06.28 08:33
  •  
  •  댓글 0
 

김동환 /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인물은 역사연구의 출발이자 본질이다. 또한 특정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인물에 대한 연구만큼 우선하는 것도 없다. 어떠한 인물에 대한 선택과 해석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치관과도 무관치 않다. 백포(白圃) 서일(徐一, 1881-1921)은 일제강점기를 포효한 몇 안 되는 인물에 꼽힌다. 그럼에도 가장 저평가 된 인물 중의 하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치 수준과 맞물린다.

서일은 일제강점기 종교·철학·교육·무장투쟁 등 여러 방면에서 실로 기적에 가까운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손에 꼽힐 정도다. 무장독립투쟁분야 연구에 있어,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와 관련하여 간접적으로 언급된 것이 주종을 이룬다. 그나마도 김좌진이나 홍범도·이범석 등의 명성에 덮여, 그들을 통솔했던 서일의 이름은 너무도 희미하다.

올 해는 백포 서일이 순국한 지 꼭 100주기가 되는 해다. 인간 행동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그 개인의 가치관이다. 정신적 측면을 간과한 행동적 방면에서만의 접근은 본질을 외면한 채 현상구명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일이 수많은 독립군들을 통솔하던 용기와 지혜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수행·연구 속에서도 무장투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의 토대는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백포 서일의 삶의 의미를 3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연재하고자 한다. /필자 주

 

서일은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모든 이들이 그를 ‘보이지 않는 선생’으로 존경한 이유다. 대종교의 항일선언이자 중광단선언(重光團宣言)인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1919년에는 대종교 교주(敎主)였던 무원(茂園) 김교헌(金敎獻)이 교주의 자리를 양여하려 하였을 때도 겸허히 사양하였다.

대종교의 중광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사진제공 - 김동환]
대종교의 중광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사진제공 - 김동환]

서일이 도모한 동원당(東圓黨)이라는 비밀단체도 주목된다. 동원당의 실체는 서일의 그림자와 같았던 이홍래(李鴻來)의 가출옥문서에 등장한다. 또한 1925년 4월 6일 청진지방법원 판결서에도 그 명칭이 언급되고 있다. 이홍래는 중광단과 대한정의단, 그리고 북로군정서의 핵심으로 마지막까지 서일과 동고동락했던 인물이다.

동원당은 서일을 중심으로 한 대종교의 비밀결사다. 서일이 수명의 동지가 협의하여 1912년 음력 8월 화룡현 삼도구(三道溝) 청파호(靑波湖)에서 조직하였다. 독립운동을 완수하기 위한 체계적 활동을 결정하고 이를 지도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당시 청파호는 홍암 나철이 기거한 곳으로 대종교 포교와 항일투쟁의 거점이었다. 강우·이상설·신규식·류완무·현천묵·백순·박찬익·김영학 등등이 드나들며 대종교의 발전과 항일투쟁의 포석을 구상하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 확보에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인물이 안중근의 백부(伯父)인 안태진(安泰鎭)이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동원당이 언제까지 존속했고, 대종교의 또 다른 비밀결사인 귀일당(歸一黨)과 동체이명(同體異名)인지의 여부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동원당이 ‘대종교=항일투쟁기지’의 등식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조직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이러한 움직임은 1919년까지도 지속되었다. 서일이 1919년에도 연길현 국자가(局子街)에서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자유공단(自由公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것이 그 근거다. 그 단원이 무려 1만 5천명에 이르렀다.

서일은 나입네 하는 성격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천성이자 덕성이다. 가장 극렬한 저항을 누구도 모르게 실천해 갔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숨겨진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의 길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진중(陣中)에서도 늘 수행(修行)과 연구(硏究)를 함께 하였다. 서일에게는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이 곧 항일의 무기였다. 그것을 증명해 보인 인물, 그가 바로 서일이다.

중광단은 1919년 5월 일부 공교도(孔敎徒)들과 연합하여 대한정의단으로 변모된다. 그러나 정체(政體)의 이견으로 순수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당시 공교도들은 보황주의(保皇主義)를 내세웠다. 그러나 대종교인들은 대종교의 교의(敎義)인 홍익인간에 부합한 공화주의를 주장했다. 이것이 결별의 이유다.

대한정의단 역시 대종교 정신을 토대로 한 무장투쟁을 추구했다. 단장으로 추대된 서일은 독립군정회(獨立軍政會)라는 무장조직을 따로 설치하고 본격적인 무장혈전을 준비하였다. 또한 『일민보(一民報)』와 『신국보(新國報)』라는 순수한글신문을 발행하여 재만동포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순수한글신문 발행 역시 대종교 정신과 무관치 않다. 언어와 역사와 철학을 통한 정체성 투쟁의 중심이 대종교였다. 한글과 민족주의역사학 그리고 삼일철학(三一哲學)의 정착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 홍암 나철의 정신을 이은 주시경·김두봉·이극로·최현배 등, 한글개척의 선각자들 역시 모두 대종교도였음을 상기해 보자.

서일의 한글 구사 능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스승 나철이 1916년 순교하며 「순명삼조(殉命三條)」라는 유언을 남겼다. ‘대종교를 위하여, 천하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이 유언의 골자다. 서일은 그 삼조의 유언을 새기며 스승의 주검 앞에 「가경가(嘉慶歌)」라는 추모가사를 아래와 같이 바쳤다.

한검교 참이치 밝히려고 목숨을 다하신 한스승이여
가냘프고 약한 어린 우리 가셔도 못잊음 아옵나니
아사달메에 두르던 그 노을빛 그 환으로
더러운 티끌을 녹이시며 늘 도우소서 늘 도우소서
한배검 큰 도를 넓히려고 목숨을 마치신 한스승이여
옳으신 그 뜻을 아오나 저희는 두려울 뿐이오니
저만치 밀지 마옵시고 늘 때때로 일깨우소서
저 환하고 거룩한 그 빛깔에 늘 쪼이소서 늘 쪼이소서
우리의 허물을 걷어지고 목숨을 바치신 한스승이여
저희는 귀먹고 눈 어두워 즐거움과 새로움도 모르오니
아사달메 하늘집에 둥근 송이 큰 얼굴로
피었던 고운 꽃 그 빛으로 늘 씻으소서 늘 씻으소서

*한검교-대종교, *아사달메-구월산, *한스승-홍암 나철

무장투쟁의 대명사로만 인식되는 서일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해 주는 가사다. 우리말의 탁월한 구사는 많은 대종교지도자들의 상식적 능력이기도 했다. 이 추도가사는 후일(1942년) 고루 이극로(李克魯)가 개사(改詞)·정리하여 대종교 노래 「가경가」로 정식 편입되었다.

한편 서일은 대한정의단에 대한 정비와 더불어 왕청현을 중심으로 대종교 정신을 통한 민중적 기반 또한 확고히 다져 갔다. 이러한 토대 위에 김좌진·조성환·박성태 등 대종교계 군사전략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 역시 대종교의 중심인물들로서 대한정의단의 약점이었던 체계적 무장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가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태동하는 것이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일명 북로군정서)다.

대한군정서는 중앙조직 체계를 총재부와 사령부로 나누었다. 총재부는 주로 대한정의단의 중심인물들이었으며 사령부는 주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었다. 물론 그 연결의 끈은 대종교였다. 정신의 상징인 총재부와 행동의 상징인 사령부의 체제는 서일이 지향하던 군교일치(軍敎一致)·수전병행의 효율적 수행(遂行)을 위한 조직체계였다.

또한 대한군정서 관할 구역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종교 신자들이었던 까닭에 모연대(募捐隊)를 통한 군자금의 징수와 모금이 훨씬 수월했다. 일제강점기 대종교의 교당은 곧 학교이자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는 종교적 성금은 곧 후학을 기르는 학자금인 동시에 항일투쟁을 위한 군자금이었다. 군교일치의 실천을 그대로 확인시키는 부분이다.

대한군정서의 경신국(警信局) 조직을 보면 이러한 군교일치의 지향이 더욱 확연해진다. 경신국이란 경사(警査)와 통신(通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경사 업무는 민정시찰, 각 단체의 행동과 적정(賊情) 정찰, 군사기밀조사, 내부 불순분자 색출, 임원 경호 등이었다. 또한 통신 업무는 신보(新報) 전파, 보도 및 통신 전달, 서령(署令) 및 선유문(宣諭文) 배포, 하물(荷物) 운반 등을 관할하였다.

대한군정서의 경신국 조직이 39분국까지 펼쳐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아가 각 분국을 보면, 소분국은 1과에서 대분국은 20과까지를 두어 총 218과를 운영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 분국장이나 과장들이 모두 대종교인들이었다. 대한군정서 경신국 조직이 대종교의 시교당·포교소 조직과 동일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관할 지역 교포의 7할 이상이 대종교도였으며, 대종교의 확장이 곧 독립운동의 확장이었다는 주장과도 합치된다. 또한 독립군들 대부분이 대종교의 신앙에 뭉쳐서 파벌이나 사리잡념이 없었고 광명정대했다는 증언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10월 상달이 되면 돌로 제단을 쌓아, 어려운 재정에도 불구하고 돼지와 소를 잡아 제천보본하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빌었다고도 한다. 이 역시 대종교 군사제천(軍事祭天)의 전통과 그대로 부합하는 주장이다. 대종교단에 전해 내려오는 아래의 신가(神歌, 어아가·얼노래) 내력을 알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신가(얼노래)는 어느 시대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사기(古事記)에 ‘동명성왕 시절 제천 때가 아니더라도 항상 이 노래를 불렀으며, 광개토대왕 시절 전쟁에 임할 때에 군사들에게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청산리독립전쟁 당시 대한군정서의 연성대장으로 참전한 이범석은, 청산리전쟁의 승리 또한 대종교라는 신앙의 힘과 민족정신에 불타는 신념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서일의 군교일치·수전병행의 행동가치가 승리의 원인임을 알게 해 준다. 서일 총재를 비롯한 말단사병, 심지어는 경신조직에 참여한 민간인들까지도 대종교 정신으로 무장된 이념집단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일제는, 그들이 당한 수모를 대종교도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로 앙갚음했다. 당시 희생당한 대종교도들만도 수만 명이 넘었다는 것이 대종교 내부의 증언이다.

청산리대첩 후 일제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중소 접경지역인 밀산으로 집결한 독립군 부대릉은 대한독립군간을 결정하고 백포 서일을 총재로 추대했다. 중국 조선족 후예들이 '서일 총재 항일투쟁 유적지' 기녀비를 밀산에 세운 이유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청산리대첩 후 일제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중소 접경지역인 밀산으로 집결한 독립군 부대릉은 대한독립군간을 결정하고 백포 서일을 총재로 추대했다. 중국 조선족 후예들이 '서일 총재 항일투쟁 유적지' 기녀비를 밀산에 세운 이유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서일은 청산리독립전쟁 이후 동포들의 희생을 최소화시킨다는 계획 하에 북만주 밀산(密山)으로 이동하였다. 그 때가 1920년 12월 말 경이다. 서일은 이곳에서 대한군정서를 중심으로 10여개의 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총재로 추대되었다. 군단 휘하에 상급부대로 여단을 두고 그 아래 3개 대대 9개 중대 27개 소대를 편성하였으며 총병력은 3,500여명에 달하였다. 당시 대한독립군단의 수뇌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 재 서일(徐一)
부총재 홍범도(洪範圖)
고 문 백순(白純)·김호익(金虎翼)
외교부장 최진동(崔振東)
참모부장 김좌진(金佐鎭)
참 모 이장녕(李章寧)·나중소(羅仲昭)
군사고문 지청천(池靑天, 이청천)
제1여단장 김규식(金奎植)
참 모 박영희(朴寧熙)
제2여단장 안무(安武)
참 모 이단승(李檀承)
제2여단기병대장 강필립
중대장 김창환(金昌煥)·조동식(趙東植)·오광선(吳光鮮)

일제의 문서에 실린 대한독립군단 임원의 명단 [사진제공 - 김동환]
일제의 문서에 실린 대한독립군단 임원의 명단 [사진제공 - 김동환]

만주 항일운동지도자들이 총집합하였다. 그러나 대한독립군단은 재정의 궁핍과 군세(軍勢)의 분산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완전한 정착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욱이 서일의 반대에도 홍범도·이청천·오광선·안무 부대 등이 자유시로 넘어갔다. 이후 러시아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살상되는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된다.

서일은 밀산에서 둔전(屯田)을 통한 재기를 도모했다. 이 시기 이홍래를 대동하고 수행과 연구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러나 1921년 음력 8월 26일, 수백 명의 토비들이 야습하여 살인·방화 그리고 약탈을 자행했다. 함께 둔전(屯田)하며 훈련하던 전사들이 이들을 대적하다 장렬하게 산화했다.

청산리 치욕을 씻기 위한 일제의 광란, 독립군의 전선(戰線)을 무너뜨린 자유시 참변, 그를 따르고 의지했던 최후의 전사들의 참변, 역사의 무게가 한 순간에 그를 덮쳤다. 그들의 대부분이 대종교도이자 독립군이었다. 종단(宗團)의 최고 간부로, 독립군을 지휘하는 총수로, 자진순명(自盡殉命)의 비장한 각오를 새기게 된다. 서일의 마지막 상황을 『독립신문』(1921년 12월 6일)은 이렇게 적었다.

“씨(氏, 서일-인용자 주)는 무장군인 십이 명을 거느리고 앞서 말한 한 촌가에 머무르면서 군무(軍務)에 관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바, 돌연히 같은 해 구월 이십 팔일에 토비 한 무리가 이 촌락을 포위하고 공격하여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며 재물을 약탈을 행하므로, 그의 부하 열두 의사(義士)가 그들을 대항하여 분전하다가 중과부적이 되어 마침내 몰사한지라. 산상(山上)에서 이 비참한 광경을 바라보던 씨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호천호지(呼天號地)하다가, 이 슬픔을 견디지 못해 자상(自戕)하야 비상한 최후를 마쳤는데, 그가 통제하던 군서(軍署)에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달려와 그의 유체를 수장한 후에, 곧 총재 대리를 보선하야 군무를 진행 중이다.”

1921년 음력 8월 27일 백포 서일이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 밀산 당벽진 마을 뒷동산.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21년 음력 8월 27일 백포 서일이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 밀산 당벽진 마을 뒷동산.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21년 음력 8월 27일 서일은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대종교의 재도약과 흩어진 독립진영의 재기를 다지고자했다. 그는 죽음의 목전에서도 스승인 나철의 가르침을 되뇌었다. 나철 유서 중의 다음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생을 마감했다.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도깨비 뛰노니 하늘·땅의 정기빛이 어두우며, 뱀이 먹고 돼지가 뛰어 가니 사람·겨레의 피고기가 번지르하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

때로는 죽음의 힘이 삶의 의미를 앞설 때가 있다. 물론 생사의 경계를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마땅히 살아야 하지 않을 때 오래 살면 이것은 도리어 욕됨이다.(不當壽而壽 斯反辱矣)”[『회삼경(會三經)』「삼망(三妄)」]

독립군 총재 서일의 저술 속에 담긴 구절이다. 그는 황천(黃泉)에 늘 발을 걸치고 살았다. 그에게 죽음이란 한걸음 내딛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죽을 때와 죽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았던 인물이 서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죽음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의 철학적 투쟁의 본질과도 맞닿는다.

서일의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슬픔이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아픔이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통곡했다. 기독교 목사로서 『독립혈사(獨立血史)』의 저자인 일재(一齎) 김병조(金秉祚)도 울었다. 김병조의 「고(故) 서일 선생을 조(吊)함」이라는 추모글(현대어로 번역·윤문함)을 여기 소개해 본다.

『독립신문』 1면 맨 앞에 실린 일재 김병조의 서일 선생 추모 글. [사진제공 - 김동환]
『독립신문』 1면 맨 앞에 실린 일재 김병조의 서일 선생 추모 글. [사진제공 - 김동환]

아, 슬프도다.
선생의 돌아가심이여!
누구를 위하여 오늘의 소동이 일어났으며
누구를 위하여 오늘의 죽음을 맞이하였는가.
선생의 죽음은 과연
이천만 동포의 자유와 존영을 위한 것이며
선생의 죽음은 또한
십삼 의사와 수백 양민이 무고히 피해 입음을 위함이시니
생을 마침도 나라를 위하심이요
비장한 죽음도 동포를 위하심이라.
곧 선생의 고결한 의기는
스스로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으로 인정치 아니하고
오직 동포의 생명으로 자신의 목숨을 삼으심이며
동포의 생사도 자신의 생사와 같이함이시니
그의 삶도 동포와 더불어 사셨고
그의 죽음도 또한 동포를 위하여 돌아가셨도다.
선생이시여!
선생이 만일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살피는 자리에 계셨더라면
나라의 희로애락를 같이하는 충성스런 신하의 자격이 선생이시며
필부의 얻지 못함으로 세상을 채찍질함과 같이
천하를 떠맡은 어진 선비 또한 선생이실지라.
만리초보(萬里初步)의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바로 눈앞에 두시고
죽음으로써 살신성인하시며 의를 취하심은
비록 선생의 양심에 부끄럼 없고
천손만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실지나
아직도 살아있어 거적에 누워 창을 베고
백전고투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만리장성이 무너짐이며 큰 집의 대들보가 부러짐과 같도다.
하물며 청산리 전역에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던 소리
우리의 귀에 잊혀질 수 없는 경종(警鐘)이 되질 않았던가.
밀산(密山)의 송백(松柏)이 만고에 푸르름은
우리 선생의 절의(節義)를 딛고 선 것이요
파저강수(婆猪江水)가 천추(千秋)에 오열함은
우리 선생의 풀지 못한 한을
울음으로 안고 흐르는 것이니
아! 송백(松柏)아 끝없이 푸르고
아! 강수(江水)야 한없이 울어라!
감지 못할 선생의 두 눈이
해와 달이 되어 보시느니라.(『독립신문』1921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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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와 부동산 개혁

꾸준히 주창해온 지대개혁
민주당 부동산 정책 ‘우클릭’과 추미애 “촛불개혁 완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3ⓒ정의철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대선에 출마했다. 그의 출마 선언문은 크게 네 단어로 요약된다. 평화, 불평등, 촛불 그리고 부동산이다.

추 전 장관은 양극화와 불평등·불공정이 구조화됐다고 봤다. 그 원인을 부동산이라고 진단했다. 토지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과 이를 독점하는 소수의 특권은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대개혁은 특권의 해체이며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추 전 장관은 전부터 같은 주장을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7년 9월, 그의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대표적이다. 39분에 달하는 긴 연설 시간 동안, 당시 추 전 장관은 해방 직후 이뤄진 1950년 농지개혁부터 시작해 19세기 사상가 헨리 조지와 진보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을 언급하며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핵심에는 ‘지대 추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대로 얻는 불로소득이 연간 300조원에 달하고, 인구의 1%가 개인 토지의 55.2%를, 인구의 10%가 97.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한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해법으로 세금 강화를 제시했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과세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설 이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대 개혁을 강조했다.

 

“지대추구의 덫이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17년 9월 19일, 지역경제 활성화 토론회)

“헨리 조지가 지금 살아 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
(10월 9일, 기자간담회)

“지대추구의 모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바꾸자는 국민 여론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의 끊임없는 치열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11월 10일,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 축사)

“토지에 있어선 모두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12월 14일, 러시아 방문중 특강)

“땅보다 땀이 보상받는 사회가 우리가 갈 방향이다”
(2018년 1월 16일, 신년기자회견)

조세개혁특위, 토지 공개념 개헌
무위로 끝난 지대개혁

추미애 전 장관의 주장은 보유세 강화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듬해인 2018년, 대통령 직속으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부동산 보유세를 비롯한 조세정책 전반을 논의했다.

위원장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이었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가 맡았다. 그는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두 배로 인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참여연대 세법 개정방안’ 보고서의 산파 중 한명이었다. 보유세 강화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 부동산 개혁 요구도 컸다. 그해 4월 출범한 특위는 이런 열망을 담아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특위 권고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보유세 중 재산세 강화안은 솜방망이었고, 종부세 역시 당시 여당이 추진하던 세율 강화 방안보다 낮았다. 금융권 분석에 따르면 당시 9억원이던 은마아파트 종부세 부담은 불과 2천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참여연대는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재정개혁특위’라고 촌평했다.

특위와 함께 논의된 것은 개헌이었다. 헌법에 담긴 토지 공개념을 강화해 보유세 인상의 근거를 탄탄히 하자는 취지였다. 토지 공개념이란 개인의 토지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정신이다.

헌법 122조는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만들어진 조항으로, 노태우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가구당 200평 이상 택지 소유자에게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택지소유상한법, 유휴토지 등의 소유자에 대해 3년 단위로 전국 평균 지가상승률의 150%를 넘은 수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초과이득세법, 택지개발 등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익의 25%를 부담금으로 물리는 개발이익환수법이 바로 토지공개념 3법이었다.

이들 법안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차례차례 부정됐다. 헌법에 불합치(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하거나 위헌(1999년, 택지소유상한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불합치나 위헌은 복잡한 법리를 따져 나온 결정이지만, 헌법 122조에 담긴 토지공개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법조항이 애매모호해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전 장관 등 청와대와 여당은 헌법 조항 구체화에 나섰다. 보유세 강화 근거를 다지는 작업이었다. 기존 문구를 수정했다.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라는 문구를 넣어 토지 공개념을 구체화했다. 여기에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해 기존 개념과 다른 보유세 부과 근거를 만들었다. 진일보한 개헌안이었지만, 야당의 표결 불참으로 결국 자동 폐기됐다.

결국, 추미애 전 장관이 주장했던 지대개혁은 실패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다시 “촛불개혁 완수” 깃발 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부동산 정책 흐름을 고려하면 추 전 장관 인식은 돋보인다. 여당은 재보궐 선거 패배를 세금 부담에서 찾고, 종부세와 양도세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지난 5월 추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감세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내 집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면서 세금은 적게 내겠다는 이중적인 심리에 영합하는 대증요법일 뿐”이라며 “인기 영합을 버리고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시행해야 주택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H사태로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지시했을 때도 “헌법 속에 잠들어 있는 토지공개념에 다시 생명의 숨을 불어넣을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는 것이 부동산 적폐 청산의 궁극적 지향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추후 개헌을 통해서라도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에는 ‘금부분리’를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동산과 금융을 분리하자는 뜻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3명이 경제에서 땅의 역할과 가치를 분석한 책 ‘땅과 집값의 경제학’을 예로 들었다. 책의 핵심 중 하나는 토지의 금융화다. 주택담보대출이 이례적으로 확산하며 부와 소득, 생활 수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추 전 장관은 이 책을 추천하며 “21세기형 금부분리를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 내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은 물론, 때로는 진보정당의 목소리보다 더 급진적이다. 대권에 도전하려는 현실 정치인이 전면에 내세우기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일각에선 추미애 장관의 독특한 스타일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의 투기 광풍은 과연 현실적인가. 비상식적인 지대추구를 지금까지의 규제로 잠재울 수 있을까.

추 전 장관 인식에도 한계는 있다. 당 대표 시절 보유세 강화를 추진하며 “1주택자는 안심해도 좋다”고 누차 강조했다. 지대개혁을 추진하며 1주택은 제외하자는 모순은 민주당의 한계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타 정치인, 관료와 달라 보인다. 보유세 강화를 주택가격 조절 수단이 아닌 양극화·불평등 해소의 핵심으로 규정하는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추미애 전 장관의 출마선언문에는 “촛불개혁 완수”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구조화된 불평등과 불공정을 깨지 못한다면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다시 촛불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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