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 2020.08.27.ⓒ뉴시스 오는 11일 선고를 앞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에서 표창장 위조 도구로 지목된 컴퓨터(이하 PC1)의 범행 당일 위치가 새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정 교수가 2013년 6월 16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PC1을 사용해 딸 조 씨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 교수 측은 그날 PC1이 경북 영주시 동양대에 있었다고 맞선다. 정 교수가 같은 날 방배동 자택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으니 결국 제3자가 PC1으로 표창장을 재발급했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 측은 이러한 주장을 항소심에서 처음 제기했다. 검찰이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그러나 정 교수에게 유리한 디지털 포렌식 정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시작부터 ‘표적 수사’ 의혹을 받은 검찰은 ‘증거 선별’ 의심까지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객관 의무를 저버린 검찰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PC1을 확보하게 된 경위부터 통상 사건과 달랐다. 검찰은 2019년 9월 10일 동양대 강사휴게실에서 PC1과 PC2를 동양대 직원으로부터 임의제출 받았다. 전원도 연결되지 않고 모니터와 키보드도 없이 본체만 방치돼 있던 컴퓨터들이었다.
나흘 전인 9월 6일 검찰은 정 교수가 총장 직인을 직접 찍어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혐의로 기소한 상태였다. 그런데 다음 날 SBS에서 ‘정 교수의 연구실 PC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는 단독 기사가 보도됐고, 검찰은 사흘 뒤 압수한 PC1에서 총장 직인 파일을 찾아낸다. 검찰은 정 교수가 총장 직인 파일을 붙여넣는 방법으로 위조했다며 두 번째 기소를 단행했다. 검찰이 예단했다고 의심받는 정황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PC1이 그날 동양대에 있었다고 판단하면, 표창장 위조 혐의는 무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장관 청문회 중 배우자가 기소된 초유의 사태는 검찰개혁 저지를 위한 검찰의 ‘부실 기소’로 막을 내리게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항소심에서 쟁점이 됐던 부분들을 살펴본다.
서울중앙지검의 검찰 로고ⓒ뉴시스
검찰, 공소사실과 반대되는 포렌식 정보 숨겼나
정 교수 측은 검찰이 제시하지 않았던 다른 사설 IP주소들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새 국면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192.168.123.112’(이하 112) IP. 2012년 11월 30일부터 2013년 5월 18일 사이에 기록된 IP주소다. 정 교수 측은 “당시 동양대에 설치된 와이파이 공유기의 사설 IP 대역에 포함된다”라며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공유기를 사용한 정황을 제시했다.
검찰은 공인 IP와 달리 사설 IP로 컴퓨터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사설 IP로 위치를 특정한 건 오히려 검찰이었다. 검찰은 PC1에서 “2012년 7월 17일경부터 2014년 4월 6일경 사이에 ‘192.168.123.137’(137) IP가 할당된 흔적 22건이 복원”됐다는 디지털 포렌식 분석보고서를 PC1이 방배동에서 사용됐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로 들어왔다. 하나의 IP주소만 발견됐으니 PC1의 위치는 방배동 자택에서 바뀌지 않았다는 취지다. 정 교수 측 주장은 이를 반박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사설 IP를 내세운 것이다.
정 교수 측은 2013년 6월 16일과 근접한 시기에 나타난 사설 IP주소를 포렌식 보고서에서 빠뜨린 검찰의 의도를 따져 물었다. 공소사실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와 의도적으로 증거를 숨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검찰은 최종 할당받은 137 IP를 확인하고 해당 IP를 사용한 흔적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포렌식을 진행했다며 ‘증거 누락’ 의혹을 부인했다.
정 교수 측은 PC1의 IP주소가 137 IP에서 112 IP로 바뀌었다가 다시 137 IP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공유기가 바뀌면 IP주소가 변경된다”라는 설명이다.
IP주소 변경을 염두에 두면, PC1과 PC2가 모두 방배동 자택에서 계속 사용됐다는 검찰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 PC2는 2012년 말부터 2013년 11월까지 IP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 교수 측은 “두 컴퓨터가 방배동에 있었다면 PC1만 IP주소가 바뀌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집에서 공유기 몇 대를 두고 썼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 측은 PC1이 2013년 5월과 8월에 동양대에서 사용된 구체적 정황도 제시했다. 매주 월요일 수업이 있는 정 교수가 5월 20일과 27일 수업 직전 PC1에서 수업 관련 자료를 열람한 기록, 정 교수가 8월 22일 동양대 인근 우체국을 다녀온 전후 컴퓨터 사용 기록 등이다.
이를 종합해 정 교수 측은 2013년 5월부터 같은 해 8월까지 PC1이 동양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뉴시스
이를 뒷받침하는 포렌식 정보가 또 있다. 네트워크가 변경될 때 기록되는 이벤트 아이디 ‘4201’이다. 정 교수 측은 “보통 컴퓨터는 접속하던 IP로 신호를 보낸다. 네트워크 변경은 (기존 접속 IP와 새 IP 사이) 충돌이 있고 조정하다가 (새 IP에) 연결되면서 이뤄진다”라고 설명했다. 4201은 공유기가 바뀌어 IP주소가 변경됐다는 주장의 근거다.
정 교수 측은 2013년 5월 26일부터 2013년 8월 21일까지 네트워크 변경 이벤트 기록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112 IP가 계속 이어졌다”, 즉 동양대에 계속 있었다고 보고 있다. 2013년 8월 22일 4201이 기록되고 다시 137 IP가 나타난 점을 들어 동양대에 있던 PC1이 8월 말쯤 방배동 자택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포렌식 분석에 따르면, 1심 재판부가 강조했던 2013년 11월 심야 시간 한국투자신탁 홈페이지 접속기록, 2014년 3월 마비노기 게임 접속기록 등은 정 교수의 유죄 근거가 될 수 없다.
검찰이 PC1 위치를 특정한 근거로 들었던 심야 시간 접속기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 측이 검찰의 포렌식 분석을 신뢰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1심 재판부는 검찰 포렌식 보고서에서 나타난 2013년 3월 27~29일, 6월 15~17일까지 PC1의 심야 접속기록을 토대로 이 시간대 동양대 직원이 컴퓨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작아 PC1이 방배동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 교수 측은 “접속시간이 아니라 서버수정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서버관리자가 파일을 올린 시간인 서버수정시간을 접속시간인 것처럼 검찰이 속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 교수 측은 “(검찰 포렌식 보고서는) PC1과 PC2의 서버수정시간을 합쳐놔 같은 공간에서 두 컴퓨터가 사용된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라며 “실제 PC1 사용 흔적이 있는 건 6월 16일 단 하루”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 정 교수 연구실2019.09.17.ⓒ뉴시스
검찰이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가능성
검찰은 범행 당일 PC1이 방배동에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로 정 교수의 동양대 웹메일 접속기록을 제시했다. 정 교수가 2013년 6월 16일 오후 4시 34분경 동양대 웹메일에 접속했는데, IP가 방배동 자택의 공인 IP주소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 교수 측은 포렌식 분석 결과를 토대로 “PC1에는 같은 시각 인터넷 접속 활동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의 표창장 위조 타임라인에 비춰봐도 정 교수가 PC1에서 웹메일에 접속했다는 점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정 교수 측은 지적했다. PC1에는 그날 오후 2시 23분경부터 오후 5시 30분경까지 표창장을 만들고 각종 입시자료를 열람한 기록이 남아있다. 정 교수 측은 “같은 시간대 문서 작업을 했다는 이벤트 로그만 남아있을 뿐”이라며 PC1에서는 문서 작업만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날 오후 PC2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PC2 포렌식 분석에서 오후 3시 14분경부터 오후 3시 37분경까지 현대증권 웹사이트에 접속하고, 영어 영재교육센터 관련 파일을 열람하거나 쇼핑몰에서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를 웹서핑한 기록 등이 나왔다. 정 교수 측은 “방배동에서 범행이 일어났다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PC2에서 주로 작업하던 정 교수가 PC1을 켜서 왔다 갔다 했겠나”라고 지적했다.
표창장을 만들기 전후 자녀 입시서류 파일을 열어 본 흔적이 있다는 점은 검찰의 강력한 무기다. PC1에서 6월 16일 오후 2시 23분경부터 오후 5시 30분경 사이 ‘조○ 인턴십 확인서(호텔3).doc’, ‘조○ KIST 확인서.rtf’, ‘조○ 자기소개서2013-6-16.hwp’, ‘연구활동확인서-조○ 2013.hwp’ 등을 열람한 기록이 발견됐다.
정 교수 측은 당시 방배동 자택에 있던 PC2에서 표창장 작업과 근접한 시간대 프린터 에러 흔적들이 여러 번 발견된 점을 근거로 “표창장 작업자에게 입시서류 출력도 함께 부탁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추론했다.
자녀 입시비리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해,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07.09.ⓒ뉴시스
PC1이 위법수집증거라면?
정 교수 측은 검찰의 디지털 포렌식 결과로도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PC1과 PC2에 ▲서울대·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제출한 동양대 표창장 원본 파일이 없다는 점 ▲파일이 출력됐다는 흔적이 없는 점 ▲빨간색 총장 직인이 인쇄될 수 있는 컬러 프린터가 연결돼 출력된 흔적이 없는 점 등이 이유다.
정 교수 측은 “PC1이 표창장 위조 혐의 유죄를 증명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아니기에 핵심쟁점은 PC1의 위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 교수 측은 PC1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1심부터 강조하고 있다.
정 교수 측은 “보통 컴퓨터 자료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전속적인 공간에서 전원이 켜진 컴퓨터와 모니터를 피고인이 사용했다는 사실이 인정될 수 있는 관계에서 압수돼야 한다”라며 “이 사건 경우 압수된 곳은 동양대인데, 검찰은 굳이 방배동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모니터와 컴퓨터 전원을 연결한 뒤 본체를 가져가 다 끄집어내 조각을 맞추고 피고인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PC1이 위법수집증거라고 해도 최성해 총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표창장 위조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한국 수출 산업, 반도체 의존도 '절대적'
총수 부재 속 TSMC·인텔과 격차 벌어져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샤오미에 1위 내줘
삼성바이오에 '백신허브' 기대한다지만..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9일 열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심사위원회는 경쟁사에 뺏기고 추격당한 대한민국 핵심 산업의 중대고비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발 빠른 의사결정과 투자가 필요하다. 삼성은 장기간 총수 부재로 TSMC, 인텔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모양새다. 스마트폰도 샤오미에게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배터리, 코로나19 백신은 '제2의 반도체 신화'를 꿈꾸고 있는 산업이다. 결국 우리 경제의 중추가 되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선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절실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 열리는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심사위원회 결과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경우 그간 멈춰있던 투자시계가 가동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월 EUV 전용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제공=삼성전자]
◆투자 멈춘 반도체·배터리..미국이 기다린다
우선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돼 있는 동안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의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파운드리 후속주자인 미국 인텔은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하며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의 마이크론이 176단 낸드를 양산하면서 삼성의 초격차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고 결정권자의 복귀로 조속한 투자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5월 미국에 170억 달러(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신규 투자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미국 주 정부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해 답보 상태다.
이 부회장이 복귀하면 주 정부와의 협상에도 진전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7월 우리나라 수출액은 554억 달러. 이 중 110억 달러가 반도체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가격 경쟁력을 갖춘 양질의 제품을 누가 먼저 생산해 시장을 선점하는지가 중요한 산업"이라며 "투자 결정이 늦춰질 경우 TSMC, 인텔 등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길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조만간 미국 투자를 앞두고 있는 삼성SDI도 이 부회장의 공백이 크다. 삼성SDI는 지난달 27일 열린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현지 배터리 공장 설립 등 미국 거점 진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늦지 않게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의 3위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와 합작사 설립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 미국 진출이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SDI는 배터리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보다 미국 진출이 늦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0.10.28 photo@newspim.com
◆샤오미에 추월당한 삼성..백신허브 역할도 커
미국과 중국의 압박 속에 위태롭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도 이 부회장의 복귀가 간절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샤오미에게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다. 샤오미가 월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한 건 지난 2010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6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셧다운과 중국, 유럽, 인도시장에서 샤오미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았다. 삼성전자는 오는 11일 신작 폴더블폰 공개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사업의 하반기 전략 점검이 필요하다.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에서도 삼성의 역할은 지대하다. 현재 국내 코로나19 백신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말 모더나 백신의 완제품 시범생산을 앞두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8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방문해 "K-바이오가 이른 시일에 자리잡아서 한국이 세계 5대 백신국가로 성장하고 발전했으면 한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백신 생산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치켜세웠다.
◆국민 여론도 호의적.."재계 가석방 보다 사면을"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바라는 국민들의 여론도 호의적이다. 코리아리서치 등 4개 기관이 지난달 26~28일 만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22%다.
재계는 경영활동에 제한적인 가석방 보다는 사면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 "이 부회장이 직접 외국 고위 의사 결정권자들을 만나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면서 "국가 경제라는 큰 틀에서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일 아침신문의 핵심 키워드는 ‘올림픽’이다. 도쿄 올림픽이 8일 막을 내리면서 9일 아침 신문들은 올림픽 전반을 짚어보는 기사를 냈다.
목표 달성 못했지만 찬사 보낸 언론
한국은 금메달 6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종합순위 16위를 기록했다. 목표치인 금메달 7개와 종합 10위 목표를 달성하지만 못했지만 9일 다수 신문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국일보는 1면 “즐! 림픽- 선수도 국민도, 메달보다 유쾌한 도전 즐겼다” 기사를 통해 “이번 올림픽 결과만 두고 한국 선수단이 실패했다고 보는 시선은 드물다”며 “명품 궁사로 거듭난 김제덕의 우렁찬 파이팅으로 시작해 배구 여제 김연경의 아름다운 퇴장으로 마무리된 이번 대회는 공정한 선발과 승복의 가치, 원팀의 힘을 새삼 일깨운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 9일 한국일보 1면
▲ 9일 한겨레 1면
언론은 국민들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그대들 모두가 주인공-고맙다 즐겼다” 기사를 내고 “메달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보여주는 헌신과 투자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어느 대회 때보다 뜨거웠다. 금메달 개수가 중요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고 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을 통해 “이제 시민들은 메달 색깔과 숫자,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메달을 걸지 못했어도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열렬한 성원을 전했다”고 했다.
가능성 보인 종목에 ‘주목’
언론은 가능성을 보인 종목에 주목하며 앞날을 기약했다. ‘근대 5종’ 남자 개인전에서 전웅태 선수가 동메달을 땄고, 정진화 선수가 4위에 올랐다. ‘근대 5종’은 한 선수가 하루에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 등 5개 종목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종합 종목이다.
동아일보는 “근대5종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의 첫 근대 5종 메달”이라며 “두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도 충실히 서로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역시 “운동 좀비 전웅태, 근대 5종 확실히 알렸다” 기사를 내고 “전웅태 뒤에서 달린 정진화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한참 동안 후배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며 “둘은 가장 올림픽다운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한겨레는 “도쿄서 희망 쏜 4위들, 파리선 더 높이 날게요” 기사를 통해 “한국 선수대표단은 수영, 높이뛰기 등 기초 종목에서 한국, 아시아 신기록을 냈고 사격, 역도, 다이빙, 탁구에서도 희망을 쏘았다”며 “도쿄 올림픽은 선수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한 축제”라고 강조했다.
김연경과 여자배구 투혼
9일 복수의 아침신문에선 눈시울을 붉히는 김연경 선수의 사진이 실렸다. 중앙일보는 1면에 김연경 선수가 표승주 선수를 껴안은 사진을 내고 “김연경은 이 경기를 끝으로 구가대표에서 은퇴했다. 후배 표승주를 껴안은 그의 두 눈이 촉촉하다. 이들의 원팀 드라마는 큰 감동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 9일 동아일보 기사
▲ 9일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는 “금보다 빛난 원팀 남기고... 배구여제, 태극마크 여정 마치다” 기사를 통해 김연경 선수의 퇴장에 주목했다. 한국일보는 “10년 간 한국 배구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김연경의 마지막 발걸음”이라며 “쌍둥이 선수 이재영과 이다영의 공백에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았지만, 선수들은 주장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기적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2면에 김연경 선수가 눈시울을 붉히는 사진과 함께 “17년 태극마크 내려놓은 김연경 ‘꿈 같은 시간 보냈다’ 눈시울” 기사를 냈다. 동아일보는 “김연경과 함께하면서 나는 그가 왜 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인지를 이해했다. 위대한 인물이자 리더로서 김연경이 가진 카리스마에 대한 기억을 안고 돌아갈 것”이라는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의 말을 전했다.
이재명 ‘네거티브 중단’ 선언
대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8일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했다. 이재명 지사는 “다른 후보들에 대해 일체의 네거티브적 언급을 하지 않겠다”며 “당 경선 과정에서 격화하는 네거티브 공방에 대해 당원과 지지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중앙일보는 “일종의 휴전 선언이 나온 건 최근 공방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바지 발언, 백제 발언 공방, 음주운전 이력 논란, 지사 찬스 논란, 조폭 투샷 사진 공방 등을 언급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양측의 신경전이 중단되지 않은 점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는 “불안한 휴전이라는 관측이 많다”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 전 대표 측은 ‘사과가 우선’이라고 받아치며 신경전을 이어갔다”고 했다. 중앙일보 역시 “네거티브 중단 선언이 나왔지만 양측의 신경전이 이어졌다”고 했다.
▲ 9일 동아일보 기사
이와 관련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은 ‘네거티브 중단 선언’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일보는 “네거티브 중단이 형식적 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담보돼야 한다”며 “두 주자 모두 그간 적잖은 정치 활동을 해오는 동안 여러 검증을 받아왔던 만큼 이제는 수권 능력과 비전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을 내고 ‘민주당 전체의 실천’을 주문하며 “후보들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두고 경쟁을 펼치기 바란다”고 했다.
‘충북동지회’ 사건 띄우고 ‘민주노총 정체성’ 공격
이날 조선일보는 1면 등에 기사를 내고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활동한 혐의를 받는 충북의 지하조직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조명했다. 조선일보는 84차례에 걸쳐 암호화된 파일 형태의 지령문과 보고문이 오간 점을 보도하고 충북동지회가 받은 지령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민주노총’과 ‘충북동지회 사건’을 별개로 조명하면서도 연결지었다. 조선일보는 1면에 “‘민노총 10월 총파업 대한민국 정체성 공격 뒤집기 한판 준비 중’” 제목의 기사를 내고 전노협 출신인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민노총 위원장은 ‘경기동부연합 출신 택배노조 위원장은 혁명열사릉 참배’” 기사를 통해 민주노총을 북한과 연결짓는 내용을 부각했다.
▲ 9일 조선일보의 민주노총 관련 보도
▲ 9일 조선일보 충북동지회 보도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여러해 반복돼왔음에도 ‘대한민국 정체성 공격 뒤집기’라는 표현을 쓰면서 전과 다른 양상처럼 묘사하고, 민주노총 일부 인사들의 전력을 부각해 충북동지회 사건 기사와 함께 배치하면서 ‘정체성’ 문제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충북동지회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와 관련해서 충북지역 언론인 충북인뉴스는 8일 “60명 포섭은커녕 민주노총 제명당하고 진보정당선 징계…공작금도 유용” 기사를 내고 충북동지회가 민주노총 가입조차 거부당하고 진보 정당에서도 승인 없이 당의 이름을 건 활동을 해 징계 받은 전력 등을 보도했다. 충북인뉴스는 “포섭은커녕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진보정당 모두 왕따를 당한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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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 자료 고미술-일상 연결
컬렉션 비판까지 담겨야 모두 ‘향유’
[한겨레S]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인왕제색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초대권도 없다. 기념 도록도 없다. 개막 전에 이미 한달치 관람 예약이 모두 마감된 특별전. 지난달 21일 시작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이야기다. 매일 0시0분0초에 시작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치열한 예약 경쟁(16일부터는 18시 예약 개시로 변경)을 뚫어도, 전시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단 30분. 그래도 입장 시간 전부터 전시실 앞에 차례로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흥분과 설렘이 맴돌고 있었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기증이 이뤄진 것을 기념해 서둘러 마련된 이 작은 전시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드디어 전시를 봤다는 기쁨의 인증샷들이 올라오고, 트위터에 들어가면 이 전시만은 절대 보지 않겠다는 맹렬한 비판이 이어진다. 이 온도차조차 한국인들이 삼성을 대하는 복잡한 태도와 닮아 있어 흥미롭다.
차분하고 단정하게 꾸민 전시실에 배치된 44건의 전시품은 내년 봄으로 예정된 대규모 전시에 앞서 열린 예고편이다. 회화, 조각, 공예품, 전적(고문서) 등의 다양한 분야를 고루 아우른 탓에, 대강 줄거리가 담긴 트레일러보다는 짧고 강렬한 티저에 가깝다. 모두 국보나 보물 등의 지정문화재이거나 그간 전시나 연구에 자주 등장한 ‘아는 얼굴’들로, 최초로 공개되는 유물은 없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을 통해 우리 근대 미술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았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국립현대미술관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보면서도 못 봤던 고려불화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제216호)이다. 이맘때 습도 높은 한국의 여름 아침을 그대로 그림 안에 옮겨다 놓은 그림을 보노라면, 미술품 감상에도 제철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반면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을 꼽으라면, 고려 14세기에 그려진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와 <수월관음도>라고 답하고 싶다. 정확히는, 이 두 점의 작품 앞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고려불화 들여다보기’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기증품들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이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가 새로 촬영한 것이다. 전시를 총괄한 것은 미술부이지만, 이 터치스크린에는 박물관에서 2010년대 중반부터 보존과학 연구 성과를 전시로 시각화해왔던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앞으로의 연구에 달려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려 불화인 <수월관음도>, <천수관음보살도>를 첨단기술로 분석해 밑그림은 물론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도록 한 터치스크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사실 고려불화를 실제로 보는 일은 늘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좌절로 시작된다. 수백년의 시간을 버티며 화면이 어둡게 변색된데다, 쉬이 손상되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전시 공간의 조도도 낮춰놓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 속에 섬세한 비단옷을 겹겹이 걸쳐 입은 우아한 자태의 부처와 보살이 있음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대개는 작품 옆에 적힌 설명문을 읽고 안다. 보고 싶은 것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전부 선명한 디스플레이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일상에 익숙해진 관람객들에게, 이 어둑지근함은 그 자체로 낯설고 불편한 비일상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터치스크린의 밝은 화면 하나가 고려불화 감상이라는 비일상적 이벤트를 친근한 일상의 영역으로 연결시킨다. 단순히 그림을 크게 늘려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정보들까지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적외선 사진을 통해 채색 전의 또렷한 밑그림을 보여주고, 엑스(X)선 사진으로는 어떤 안료가 어디에 쓰였는지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첨단 기술을 활용한 분석 결과가 연구보고서 한쪽이 아닌 전시실 한가운데에 놓일 때, 관람객은 말 그대로 그림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경험을 통해 유물에 담긴 이야기를 자신의 시간 안에 담게 된다. 그리고 한번 더 어둠 앞에 가 눈을 크게 떠 보는 용기를 얻는다. 그저 전시가 좋아서, 우리 문화재가 좋아서 박물관을 찾는 작은 애호의 마음들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식의 시원스러운 격려처럼 여겨졌다.
기념에서 기억으로
이 기증전의 제목인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를 다시 돌아본다. 문화재 2만1600여 점을 일거에 기증한다는 전례 없는 사건은 단순히 그 수만큼의 실물이 다른 공간으로 옮겨지는 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 이광표는 고미술 컬렉션 기증의 의미를 사회적 기억(집단기억)에서 찾았다. 기증된 유물뿐만 아니라 전시와 연구를 통해 새로 공유되는 모든 이야기가 새로운 문화유산으로 기억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건희 컬렉션을 어떤 방식으로 ‘함께 누리고’ 있는가. 얼마 전 정부는 기증품에 ‘건희’로 시작되는 소장품 번호를 매기고, 등록 절차가 끝나는 대로 새로운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예정된 대규모 전시까지, 온통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며 정신적 기념비를 세우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올릭의 지적처럼, 사회적 기억은 과거의 오류에 대한 후회와 반성까지 포괄해야 역사성과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건희 컬렉션의 조성과 기증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비판 역시 이 기증의 서사 한켠에 기록되어야, 이 수만점의 문화재는 우리 사회에서 온전하고도 새롭게 공유되고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1주년 전시가 열리는 내년 봄까지 8개월여가 남았다. 이 1년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더 많은 이들에게 향유의 기억을 남겨주는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이 커다란 사건은 기념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결국 기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신지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 연구원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오늘은 행진이 없는 날이지만 행진단원들은 늦잠 대신 소이산 산행을 하였다. [사진 제공 - DMZ 국제평화대행진단]
오늘은 행진이 없는 날이다. 하지만 행진단원들은 늦잠 대신 소이산 산행을 하였다. 소이산은 과거 조선시대에도 봉수대로 활용되었던 곳으로 2011년 11월에 민간에 개방하기 전까지 군사기지였으며, 과거 한국전쟁기에는 미군의 레이더 기지가 있던 곳이라 한다.
해설을 맡은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정지석 목사님은 군사기지의 민간화가 평화 진전의 증거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 DMZ 국제평화대행진단]
오늘 해설을 맡아주신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정지석 목사님께서는 이러한 군사기지의 민간화가 평화 진전의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소이산 정상에 올라서니 맞은편에 금학산이 구름에 쌓인 채 멋지게 서있었다. 금빛 학(두루미)을 뜻하는 금학산은 천 년전부터 학이 자주 오던 산으로 궁예가 미륵신앙을 얻은 산으로 유명하다.
그 반대편으로는 DMZ(비무장지대) 경계선 넘어 북녘땅 평강지역이 내려보인다. 오전에 간 사람들은 아쉽게도 안개로 인해 보지 못했다. 평강은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고구려 왕으로 만든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 단절된 경원선을 복원하는 사업은 철원에서 평강으로 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안개 걷힌 소이산 정상 모습. [사진 제공 - DMZ 국제평화대행진단]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및 돼지열병 확산을 막기위해 DMZ 남방한계선 철책에 가장 가까이 있는 월정리역에는 가지 못하였다. 과거에는 내금강까지 전기철도가 깔려 있어 서울에서 하루코스로 내금강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남북철도를 다시 잇기 위해서는 신뢰와 화합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촉구하며 걷는 우리 대행진단은 철마가 다시 달릴 수 있도록 남은 절반의 길을 열심히 걷고자 마음을 다졌다.
잘 자란 벼의 고개가 무거워지는 초록빛 논이 넓게 펼쳐진 철원지역,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다 군사작전지역이라는 점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눈앞의 분단 철조망이지만 높은 산 정상에서 보니 우리의 반도는 계속 이어져 있었다.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건설공사 현장. 지금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사진 제공 - DMZ 국제평화대행진단]
숙소로 돌아와 정지석 목사님과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뒤 행진단원들은 밀린 빨래도 하고 물집도 터치는 휴식다운 시간을 가졌다. 햇살이 쨍쨍한 낮시간, 눅눅해진 침낭을 보송보송하게 말리며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남은 행진을 준비하였다.
저녁 식사는 봄꽃장학회에서 준비해주신 봄꽃밥차가 도착해,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4인 씩 거리두기를 지키며 식사를 했다. 밥차로 준비해주신 꼬들꼬들한 밥과 각종 반찬은 행진단의 휴식날을 마무리하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봉쇄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강도의 조치로서, 방역에 대한 긴장을 최고로 높여 '짧고 굵게', 상황을 조기에 타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도권 4단계를 시행한 첫 날(7월 12일), 문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할만큼 가장 고강도의 거리두기 조치가 '길고 굵게' 가고 있다. 델타 변이가 우세종으로 자리잡으면서 하루 확진자 1500명 이상의 4차 대유행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은 '완만한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유행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쉽사리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4차 대유행의 특징은 강력한 거리두기 조치에도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유행을 억제했지만 확진자 수를 줄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3차 대유행 당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실시해서 큰 효과를 봤고, 이번에는 수도권 야간 3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라는 더 강력한 조치를 시행했다. 그럼에도 델타 변이의 전파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짧고 굵게'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앞으로의 거리두기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현 단계를 1달 정도 유지하거나 '4단계 플러스 알파'라는 더 강력한 조치를 통해 방역의 고삐를 제대로 조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한편에서는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거리두기 체계를 바꾸고 '지속가능한 방역'을 지금부터 실시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8월 한 달은 4단계로... 수도권 800명대에서 단계 조정은 섣부르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7월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육군 현장지원팀이 시민들의 검사를 안내하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에서 800명대로 확진자가 감소할 경우 거리두기 단계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2주 후에 800명대가 되더라도 3단계로 단계를 조정할지는 미지수다.감소세가 완만하더라도 2주 후 전체 확진자는 1000명 이상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고, '개학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최소 한 달은 4단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감염병 전문가들 역시 수도권 800명대에서 거리두기를 완화하면 안되고, 60대 이상 고위험군 2차 접종이 끝나는 8월까지는 4단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델타 변이가 전파력이 높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확진자 감소를 기대하긴 어렵다"면서 "지금의 거리두기는 고위험군이 접종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2주 후에 단계를 내리게 되면 확진자가 증가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현재 방역 조치가 (확진자가 늘어나지 않게 하는) 균형점을 만들었다고 본다. 추가적인 조치는 안 하더라도 현 4단계는 몇 주 더 연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4차 대유행에 대응하는 거리두기 조치에 대해 "상승세를 꺾고 정체 상태로 놨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거리두기"라며 "감소세로 전환될 정도로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가 상황을 좀 안이하게 본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 역시 "수도권이 800명대로 내려간다고 해도 3단계로 내리는 것은 이르다. 감소세가 작기 때문"이라며 "8월 말은 되어야 수도권은 확연하게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비수도권 중에 감염 위험이 높은 지역은 중앙 정부가 직접 4단계로 격상시키고, 임시 선별 검사소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국민들 경제적 피해 누적... 재정 지원 필요"
▲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된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중심상권 일대 폐업한 일부 가게들이 임대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현재 백신 1차 접종률이 40%가 넘고, 8월 말까지 1차 접종률 50%, 접종 완료 30%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틀어막기' 식의 정책을 취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외국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백신만으로 델타 변이 감염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백신 접종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테니까, 힘들지만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지속 가능한 방역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방식의 하나가 확진자가 아니라 확산세를 초점으로 거리두기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중이용시설 운영 제한에 대해서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감염 위험 높은 시설을 백신 접종을 한 사람들에게만 허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4단계 연장 조치에도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 대해 뚜렷한 지원책이 발표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에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논평을 내놓고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기만 할 뿐 그 고통은 온전히 개인에게 떠맡기고 있다"라며 "고통이 누적되고 있다. 거리두기에 필요한 재정지원과 사회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방역의 우선순위와 형평성에 대한 재고 ▲민간의료자원의 적극적인 활용 계획 발표 ▲공공의료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 정부는 국민에게 거리두기 의무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할 사회적 재정적 정책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미군철수부산공동행동은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 2주에 걸쳐 미 영사관 앞에서 반미행동을 진행했다.
반미행동은 ‘연속 1인 기자회견’, ‘1인 시위’, ‘현수막 들기’, ‘성조기 찢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다.
김동윤 평화통일센터 ‘하나’ 대표는 연속 1인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방어적 훈련이라고 하지만 참수작전까지 포함한 공격적인 훈련이다. 훈련을 강행하면 군사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라며 군사훈련의 위험성을 짚었다.
조동주 범민련 부산연합 사무처장은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주권회복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미동맹은 전쟁동맹이고 예속동맹이다. 이런 한미동맹은 필요 없다”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한미 당국을 규탄하는 선전물을 들고 코로나19 거리두기를 지키며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장영훈 부경주권연대 회원은 “해방 이후 점령군으로 우리 땅에 들어온 미군이 주요 도시에 미군기지를 두고 70년 넘게 치외법권의 특권을 부리고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통일로 나아간다면 가장 먼저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연속 1인 기자회견’과 ‘1인 시위’에 대해 기자회견을 가장한 집회 시위라면서 ‘비엔나협약’에 따라 외국공관 100m 일대에 집회가 제한된다고 주장해 항의행동 참가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미군철수부산행동은 평화통일센터 ‘하나’, 범민련 부산연합, 부경주권연대, 노동자실천연대 ‘줏대’가 반미투쟁을 벌이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미군철수부산공동행동 통일선봉대’를 꾸려 부산지역 미군기지 항의 방문과 선전전을 계획하고 있다.
최현배 선생이 쓴 '우리말본', '조선민족갱생의도' 등 소개
가로쓰기, 풀어쓰기, 한글 자판기 이야기도 자세히 설명
3일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사건 20선' 특별전 진행
“한글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일.”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글’이라고 하면 먼저 떠올릴 위인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일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 외에도 한글의 보급에 이바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국어 운동가 외솔 최현배 선생이 그 중 한 분이다. 울산 중구에 위치한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에서 그의 행적과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은 외솔에 대해 “일제강점기에 겨레의 얼인 말과 글을 지킨 독립운동가요, 한글 보급과 기계화 정보화를 위해 평생 한 길을 걸은 한글학자이며, 페스탈로치의 이상적 교육론을 직접적으로 실현한 교육자이다”라고 소개한다.
울산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이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우리말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문법서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의 관광해설사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은 훗날 다른 문법서들이 탄생하는 데에 있어서 초석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최현배 선생은 저서를 통해 한글 보급에만 매진한 것이 아니라, 일제에 나라를 뺏긴 우리 민족의 나태한 사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내용으로 탄생한 게 바로 ‘조선민족갱생의도’다. 관광해설사는 “최현배 선생은 나라를 빼앗은 일제만 그저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며 “우리 민족의 다소 안일했던 사상으로 인해 일제에 힘없이 나라를 빼앗긴 부분을 꼬집으며 우리가 새롭게 가져야할 방향성까지 제시했다”고 말했다.실제로 최현배 선생은 1949년 한글학회 이사장에 취임해 20년 간 한글학회를 이끌며 국어정책의 수립 및 국어운동을 추진한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말본’, ‘한글갈’, ‘조선민족갱생의도’ 등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최현배 선생이 편찬한 저서들이 전시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기념관에는 최현배 선생이 편찬한 국어 교과서들도 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이러한 그의 노력은 저서를 넘어 국어 교과서까지 탄생시켰다. 최현배 선생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교과서 ‘한글만 쓰기’를 주장했다. 기념관에 따르면, ‘조선교육심의회’는 이들의 주장을 반영해 교과서 분과에서는 한글로 쓴 교과서를 만들기로 하고 한자는 꼭 필요한 경우 묶음표에 넣어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최현배 선생은 여러 국어 교과서를 편찬했다. 기념관에서는 ‘중등조선말본’ 등 최현배 선생이 편찬한 여러 국어 교과서가 소개돼 있다.
이곳의 관광해설사는 “최현배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교과서 등에서 일본어나 한자가 국어로 사용되는 것으로 인해 우리말을 더욱 지키려 했다”며 “우리가 평소 쓰는 ‘덧셈’, ‘뺄셈’, ‘도시락’ 등의 단어들은 최현배 선생이 일본어나 한자를 우리말로 바꿔 탄생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기념관에는 서재에서 책을 집필하는 최현배 선생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최현배 선생이 서재에서 책을 쓰는 모습을 재현한 전시 공간이다(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최현배 선생이 추구했던 한글 기계화에 대한 내용도 소개된다. 1957년 최현배 선생은 한글학회 안에 ‘한글타자기 자판 합리적 통일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한글타자기 글자판 통일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최현배 선생은 한글 기계화야말로 고도의 문자혁명에 대비하는 길임을 굳게 믿었고 타자기야말로 한글 발전에 혁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념관에 전시된 한글 타자기(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최현배 선생은 국어학자이면서 한글 가로쓰기를 비롯해 풀어쓰기까지, 글자의 혁명을 실천했던 글자 혁명가이기도 했다. 기념관은 이 부분을 강조하며 가로쓰기가 탄생한 과정 역시 다룬다. 최현배 선생은 1946년 300여 명의 회원을 모아 ‘한글가로글씨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장에 취임했다. 바로 여기서 최현배 선생이 완성한 가로글씨 안이 채택됐다고 한다.
기념관 2층에 올라가면 최현배 선생의 생가터도 둘러볼 수 있다. 일부 소실된 생가터는 2008년 복원돼 이용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념관 2층에 있는 최현배 선생 생가터의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기념관 내부의 체험실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한글 놀이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한글 자음과 모음 모양의 자석블록이 구비돼 있어 아이들은 좀 더 재밌는 방식으로 한글 공부가 가능하다. 이 밖에 종이블록이나 동화책 등도 구비돼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외솔기념관이 아이들에게 한글사랑을 넘어 나라사랑을 제대로 깨우치게 해주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배운 최현배 선생의 선한 영향력을 훗날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사건 20선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지원).
한편 외솔 기념관에서는 지난 3일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사건 20선’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고 역사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천안 독립기념관 연계사업으로 마련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활동 내용을 담은 사진과 그림 2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 내용에는 윤봉길이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를 하는 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위원들의 모습,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 등이 포함돼 있다.
울산 중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우리 애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숭고한 희생과 나라사랑 정신을 현장감 있게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별전은 이번 달 29일까지 펼쳐진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글이 목숨”이라며 나라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기 위해선 우리말을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고 끝없이 강조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은 최현배 선생의 이러한 우리말 사랑과 나라사랑 정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한글에 대한 익숙함으로 인해 오히려 그 소중함이 잊혀지고 있는 지금,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에 가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건 어떨까.
이름부터 바꿔야 된다. 쌀 미자 미국, 중국도 일본도 쓰고 있잖은가? 왜 우리만 아름다울 미짜 쓴단 말인가? 당장 고쳐야 하고 우리말로 “쌀 나라, 양키군대, 양키나라”로 새롭게 써야 몹쓸 점령, 침략, 주둔군인 미국군대를 몰아내기 쉬워질 것이다. 왜냐 허믄 깨어있는 촛불시민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고, 빨리 깨우치게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1945년 9월에 점령군이 들어와 옛 일본총독부 앞마당에 휘날리든 일장기를 끌어내리고, 양키나라 성조기를 올리면서 ‘일제히 거수경례하는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쌀나라 나쁜 놈들은 저희들이 점령군이면서 해방군인 것처럼 행세했던 거라서 뭘 모르는 백성들이 환영하고 만세까지 불렀던 것 아니었나? 그 시절 순박했던 시민들은 일본 왕의 항복연설을 우리의 해방으로 착각하고 8.15광복절까지 만들지 않았든가?
일찍이 쌀 나라 정보국이 앞잡이로 키워왔던 이승만이가 양키측으로부터 100만 달러의 착수금을 받었다는 사실(히로세 다카시 제1권력-290쪽 참조)은 이미 이승만은 쌀국 유학생 때부터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기 출세야욕이 앞섰던 요상한 사람으로 생각된다. 이승만 이란자가 일국의 정보국에서 100만 불씩 이권에 관한 뇌물을 달러로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양키군대는 엄청난 주둔비를 받고 있고, 기지사용료는 모두 거저 쓰고 심지어 광화문에 대사관까지 한 푼 내는 일 없이 76년째 무료사용하고 있다면? 모두들 “날강도 같은 놈들”이라고 느낄 것이다. 아닌가? 놈들이 목숨 걸고 이 나라를 지켜주니까 괜찮다는 것인가? 말해보라. 양키군대가 점령군 아니란 말인가? 성주 소성리 사드기지를 보라.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문재인대통령마저 인민을 우롱하고 있다. 쌀 나라 말이라면 꼼짝달싹도 못하지 않는가? 민족평화통일, 4.27선언, 9.19평양 연설, 무엇하나 진전 있는 발전적 기운을 느낄수 있는가? 개성공단문제도 남북대화 마저도 쩔쩔매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민중이 나서야 한다!! 촛불시민 모두가 똘똘 뭉쳐서 앞장서야 가능할 것 같다. 양키군대 몰아내고, 남북대화 시작하고, 주둔비 무효화는 양키군대 철거 운동만 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풀릴 것 이고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아가면, 박근혜 탄핵시킨 저력이 솟아나지 않겠는 가..!
2022년 대통령선거 정국이다. 각 당별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가 여론의 주목을 비교적 더 받고 있지만,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많아 다른 주자들에 대한 관심도 만만치 않다. 그 중 하나가 감사원장직을 임기 중에 내려놓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예비후보다. 일부 언론에서는 '까미남'(까도 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이라면서 여러 '미담'을 소개한다. 3대에 걸쳐 형성된 품격 있는 집안이라는 미담도 자주 거론된다. 독립유공자인 할아버지 최병규와 6.25 한국전쟁의 영웅인 아버지 최영섭을 이은 인물이 감사원장 출신의 최재형이라는 것. 사실이라면 분명 존경할 만한 집안이다.
이제 그 미담을 검증해보고자 한다.
[의문점] 왜 보훈처 공훈록에 '독립유공자 최병규'가 없다
을 남겼다. 이 회고록에서 최영섭은 자신의 아버지 최병규(1909~2008)에 대해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은 받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2002년 10월 13일에 독립유공자 서훈이나 표창을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해 8·15 광복절을 앞두고 표창한 208명의 독립유공자 중에도 평강 출신의 최병규의 이름은 없다.(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캡쳐 사진)"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평강 출신의 최병규가 없다. 얼마 전 작고한 최재형의 아버지 최영섭(1928~2021)은 자신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을 남겼다. 이 회고록에서 최영섭은 자신의 아버지 최병규(1909~2008)에 대해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은 받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2002년 10월 13일에 독립유공자 서훈이나 표창을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해 8·15 광복절을 앞두고 표창한 208명의 독립유공자 중에도 평강 출신의 최병규의 이름은 없다.(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캡쳐 사진)
얼마 전 작고한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의 아버지 최영섭(1928~2021) 해군 대령은 자신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을 남겼다. 이 회고록에서 최영섭은 자신의 아버지 최병규(1909~2008)에 대해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은 받지 못했다"고 썼다. 2008년 <강원도민일보>가 낸 최병규의 사망 소식 기사의 제목도 '춘천고 항일운동 주도 최병규옹 별세'였다.
이 정도면 최병규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은 굳이 검증이 필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의구심이 생긴다.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독립유공자를 소개하고 있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평강 출신의 최병규가 없기 때문이다.
최병규의 아들 최영섭은 대통령표창을 받은 날짜까지 책 속에 적어놨다. 하지만, 기자가 국가보훈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10월 13일에 독립유공자 서훈이나 표창을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해 8.15 광복절을 앞두고 표창한 208명의 독립유공자 중에도 평강 출신의 최병규의 이름은 없다. 이로써 <바다를 품은 백두산>의 내용과 달리 최소한 대한민국정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최영섭이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적어놨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른 주장도 등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강원도민일보>의 기사에도 "이같은 공로로 국가는 고인에게 표창 수여를 추진했으나 이를 사양하는 등 일제당시 독립운동을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한 대목이 있다. 비록 아들 최영섭의 회고록 내용과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3대에 걸쳐 형성된 품격 있는 집안'만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미담이 추가된다.
[아들의 회고록] 최병규 춘천고보 퇴학사건의 전말
▲ 춘천고보의 맹휴(1926) 최병규가 춘천고보에서 "퇴학처분"을 받은 것은 그해 10월 4일에 시작된 맹휴사건 때문이었다. 춘천고보 2, 3학년생들이 학교당국과 도학무국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교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교무주임 모리(영어담당)를 배척하는 맹휴를 단행했던 것이다.
위에서 제기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이제 최병규가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 하나하나 직접 살펴볼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19일 국민의힘 소속 정경희 의원은 최재형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최재형 전 원장의 할아버지 최병규 선생은 강원도 평강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춘천고보 3학년 재학 중 순종황제가 승하하자 상장(喪章) 달기에 앞장섰다가 퇴학당했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정경희 의원의 주장은 최병규의 아들 최영섭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의 내용과 비교해 보더라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춘천고보)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4월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서거하자 갑조 조장 이영길과 같이 전교 학생들에게 '순종서거애도 상장(喪章) 달기' 운동을 주도했다. 2주 동안 상장을 단 이 운동은 일본경찰과 일본인 교사 삼광미(森廣美) 교무주임의 추궁으로 사건이 확대되었다. 아버지는 불온학생으로 낙인 찍혀 일본경찰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지만 좌등원장(佐藤元藏) 교장의 수습으로 일단락되었다.
순종 서거 당시 순종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것은 불온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자의든 타의든 대한제국을 일제에 넘긴 순종의 죽음에 일제는 적극 나서서 조의를 표했고, 조선인들이 조의를 표하는 행위 역시 막지 않았다. 다만 그 정도와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을 뿐이다.
최영섭의 회고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당시 춘천고보 학생들은 순종의 서거에 대한 '봉도'를 위한 휴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실제로 춘천의 사립 정명여학교는 학교 차원에서 휴교를 했다. 그러나 춘천고보는 당국의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휴교를 단행하지 않았다. 이에 춘천고보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일제히 등교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휴교를 하루만 했다는 언론보도(<매일신보>)도 있고, 여러 날 했다는 언론보도(<시대일보>)도 있어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3학년 을조 조장을 맡고 있던 최병규도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을 받아 추궁을 당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것이 퇴학으로 이어질 사안은 아니었다.정작 일제가 노심초사한 것은 순종의 서거를 계기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불온한 언동'이었다. 일제는 7년 전 고종의 인산을 계기로 일어났던 3.1운동도 경험한 바 있었다. 실제로 순종 서거 이틀 후인 4월 28일에는 '송학선 의사의 의거'가 있었고, 인산일에 맞춰서는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6.10 만세운동'을 주도한 박두종, 이천진 등의 학생들은 당연히 퇴학은 물론 혹독한 고문과 함께 감옥살이까지 감내해야 했다.
6월 10일 전후로 춘천에서도 천도교교구장 허계훈의 집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긴장도 있었지만, 이영길과 최병규 등 춘천고보의 3학년 조장은 1926년 당시 학생들의 슬픔과 분노를 6.10 만세운동과 같은 항일 독립운동으로 발전시켜낼 정도의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병규가 춘천고보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것은 그해 10월 4일에 시작된 '맹휴사건' 때문이었다. 춘천고보 2, 3학년생들이 학교당국과 도학무국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교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교무주임 모리(영어담당)를 배척하는 맹휴를 단행했던 것이다.
모리는 수업시간에 술을 먹고 교실에 들어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주정을 한다든지, 운동장 청소를 제대로 못했다고 돌로 학생의 머리를 내리치기도 하는 수준 미달의 교사였다. 그런데도 학교당국은 최갑도, 최병규 등 4명의 주동자를 맹휴시작 다음날 새벽에 전광석화와 같이 '퇴학 처분' 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고, 이는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맹휴가 1학년으로까지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측에 설득된 학부형이 나서서 학생들의 등교를 설득하면서 춘천고보 맹휴사건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중단됐다.
춘천고보 맹휴사건에 대해 최영섭은 회고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는 1926년 10월 4일을 기해 한국인 학생들을 멸시하고 구타, 폭언을 일삼는 일본인 교무주임 삼광미 교사 배척을 위한 전교생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일본경찰이 아버지를 체포하려 하자 교장이 사태수습에 나섰다. (중략) 결국 일본 당국은 아버지를 퇴학 처분과 함께 강제로 고향으로 귀향시켜 평강에서의 3년 거주제한, 일명 금족령을 내렸다.
최영섭은 아버지 최병규를 비롯한 4명의 학생이 퇴학당한 춘천고보 맹휴사건의 실체를 좀 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춘천고보 맹휴사건의 기본 성격은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볼 때 '한국인 학생을 멸시하는 일본인 교사 배척운동'이라기보다는 '학생을 구타하는 등 교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한 모리 교사 배척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당시 언론은 '조선인 차별의 언행'을 하는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는 다른 학교의 맹휴를 보도할 때는 "일본인 교사 배척"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춘천고보 학생들이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이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맹휴에 나섰던 사건은 3년 후인 1929년에 있었다. 그해 5월 춘천고보 학생들은 "조선역사 조선문법 조선어 시간을 연장할 것. 독서의 자유를 줄 것. 학우회를 일체 생도에게 위임할 것" 등을 내걸고 맹휴를 추진했다.
그런데 사전에 발각되면서 주동학생 6명이 무기정학을 당하면서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춘천고보 학생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벌어지자 이에 호응해 끝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주동학생 6명이 구속됐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때도 학교당국은 이들에 대해 출교조치를 단행했다. 춘천고보 학생들은 1938년에도 독립운동 비밀결사 '상록회 사건'으로 이연호 등 137명이 검거되고 36명이 송청되는 등 큰 수난을 당했다.
[증조부 최승현] 최병규가 일본당국으로부터 '3년 거주제한형'을 당했다고?
의 평강분국장을 지냈고, 1918년 3월부터는 유진면장과 고삽면장 등을 지냈다. 최승현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면장을 계속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35년에도 유진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최승현은 1921년에는 강원도 유도천명회(儒道闡明會) 평강지회 지회장도 맡았다.(매일신보, 1918. 3. 7 기사(왼쪽)와 1921. 9. 16 기사)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최병규의 아버지 최승현의 유진면장과 유도천면회 평강지회장 추임을 알리는 매일신보 기사 1904년부터 1906년까지 평강 공립소학교 부교원으로 일했던 최승현은 경술국치 이후 어느 시점부터 1918년 3월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평강분국장을 지냈고, 1918년 3월부터는 유진면장과 고삽면장 등을 지냈다. 최승현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면장을 계속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35년에도 유진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최승현은 1921년에는 강원도 유도천명회(儒道闡明會) 평강지회 지회장도 맡았다.(매일신보, 1918. 3. 7 기사(왼쪽)와 1921. 9. 16 기사) .
최영섭이 퇴학당한 아버지 최병규에 대해 "일본 당국은 아버지를 퇴학 처분과 함께 강제로 고향으로 귀향시켜 평강에서의 3년 거주제한, 일명 금족령을 내렸다"고 한 대목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구속돼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일본당국이 어떻게 3년 거주제한을 내렸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3년간의 거주제한형'이라고 표현해 재판 결과로 그러한 판결을 받은 듯이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런 죄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최병규가 재판받기는커녕 구속된 사실조차 없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를 일본당국이 아니라 최병규의 부모가 취한 조치로 받아들이면 말이 된다. 춘천고보에 유학 보낸 아들이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조치를 당했으니 아버지로서는 귀향과 함께 '근신'을 요구하면서 '3년 거주제한' 조치를 얼마든지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최병규의 아버지 최승현(1887~1953)이 어떤 인물인가 확인해보면 이러한 가설이 보다 설득력을 갖게 된다. 최승현은 최재형 예비후보의 증조할아버지이기도 하다.
1904년부터 1906년까지 평강 공립소학교 부교원으로 일했던 최승현은 경술국치 이후 어느 시점부터 1918년 3월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평강분국장을 지냈고, 1918년 3월부터는 유진면장과 고삽면장 등을 지냈다. 최승현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면장을 계속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935년에도 유진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최승현은 1921년에는 강원도 유도천명회(儒道闡明會) 평강지회 지회장도 맡았다. 유도천명회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에 힘입어 조직된 관변단체로 악화된 지방 민심을 수습하고 총독부의 시정방침을 선전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조직이었다.
강원도 당국의 적극 지원과 관료들이 함께 참여했던 유도천명회는 유교를 바탕으로 조선인을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드는 데 앞장설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울의 경학원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최승현은 평강군에서 1943년에 펴낸 <평강군지>의 편집자가 돼 군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도 평강군 당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최승현이었다면 춘천고보에서 퇴학당한 아들 최병규에 대해 '3년 거주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최승현의 이력을 통해 최영섭이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왜 할아버지를 철저히 배제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최병규의 야심] 거주제한에서 풀려난 이후 그가 했던 일
▲ 최병규의 강원도회 의원 출마 소식을 알린 매일신보 기사(1937. 5. 8) 유진면 면협의원을 하고 있던 최병규는 1937년에는 평강군에서 1명을 뽑는 강원도회 의원 선거에도 도전한다. 이때 최병규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는데, 강원도회 의원 출마자 72명 중 양구에 출마한 정현수와 함께 가장 어린 나이였다.
최병규가 "3년의 근신이 끝난 뒤 처자식과 함께"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글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최병규가 만주로 간 것은 그로부터도 9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9년 동안 최병규는 무엇을 했을까? 이에 대해 최영섭은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1926년 평강군 고삽면 사하리 독골로 귀향한 아버지는 금족령에 처해 있던 중, 필자가 태어난 1928년부터 1942년까지 평강군 유진면 사창리 주빈동(붉은봉) 일대에 약 200만 평의 산야에 약 40만 주의 낙엽송을 심었다. 붉은봉에 가택을 마련한 아버지는 1931년 식구들을 최병렬 큰아버지 가족으로부터 분가해서 평강군 유진면 사창리 주빈동 77번지로 이사했다.
그런데 최병규는 이 기간 나무만 심고 있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중흥시조를 꿈꾼 최병규의 '야망'이 컸다. 최병규는 유진면으로 이사 온 직후인 1935년에 유진면 면협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통상 지역의 유지들이 맞는 자리임을 감안할 때 불과 스물일곱의 나이에 면협의원이 됐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같은 면협의원 선거에서 최병규의 형 최병렬도 고삽면 면협의원에 당선됐다. 이로써 아버지 최승현은 유진면 면장, 큰 아들 최병렬은 고삽면 면협의원, 둘째 아들 최병규는 유진면 면협의원을 동시에 하는 평강군의 유력 집안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지만 최병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듯하다. 1937년 평강군에서 1명을 뽑는 강원도회 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이때 최병규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는데, 강원도회 의원 출마자 72명 중 양구에 출마한 정현수와 함께 가장 어린 나이였다.
면협의원이야 말단 기관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강원도회 의원에 도전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문제는 도전했다는 것 그 자체에 있다. 최병규가 도전했던 강원도회는 3.1운동을 경험한 일제가 조선인의 독립요구를 무마하고자 '자치'를 운운하면서 1920년부터 만들었던 도 단위 자문기관이었다.
말은 도민의 의사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최병규가 강원도회의원이 되겠다고 출마했던 1937년 당시 강원도 인구 약 160만 명 중 선거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는 1790명에 불과했다. 31명의 의원 정수 중 21명이 민선의원, 10명이 관선의원이었다. 관선의원은 대부분 일본인이 차지했다. 민의를 수렴한다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다.
강원도회 의원의 지위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후 만들어진 '반민족행위처벌법'에서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제4조 8호)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가능했던 자리기도 했다. 이 기간 최병규는 아버지 "회갑 축연비를 절약하여 일금 20원을 국방헌금에 헌납"(1938. 6. 30 <매일신보>)하기도 한다.
▲ 최병규의 국방헌금 "미담" 기사(매일신보, 1938. 6. 30) 최병규는 아버지 "회갑 축연비를 절약하여 일금 20원을 국방헌금에 헌납"(1938. 6. 30 매일신보)하기도 한다. 회갑 축연비를 알뜰히 쓰고 돈을 남겨 국방헌금에 헌납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에 일제에게는 "미담 중의 미담"이었다.
최영섭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은 아버지 최병규의 일제 말기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1938년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 목단강성 해림가(海林街)로 건너갔고, 1940년에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을 해림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는 7년간 해림에서 살면서 해림가 부가장(海林街 副街長)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아 독립자금 확보와 전달 역할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아버지는 해방되기 전 1944년 12월 가족들을 데리고 할아버지가 사시는 평강군 유진면 후평리로 돌아왔다.
1920년대 춘천고보 시절의 활동만으로 독립유공자라고 하기에는 좀 낯뜨거울 수 있지만, 1938년 이후 만주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에 나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춘천고보 시절의 활동도 비록 부족했지만 만주에서의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의미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도 의구심이 발생한다. 1938년부터 1944년까지 무려 7년 동안 벌인 선친의 '독립운동기'를 이렇게 한두 줄의 설명으로 그치고 있으니 말이다. 앞에서 살펴본 1926년의 춘천고보 시절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연히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먼저 1938년에 최병규가 목단강성 해림가로 건너간 이유가 '과연 독립운동을 위해서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아버지의 3년 거주제한 조치도 감내한 후 강원도 평강에서 면협의원을 하고, 도회 의원에도 도전하고, 아버지 회갑연을 알뜰히 마치고 돈을 남겨 일제에 국방헌금까지 바쳤던 인물이 갑자기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다면 납득할 만한 이유나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해림에서 살면서 해림가 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았다는 대목에 이르면 의문은 더 증폭된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제는 1932년에 오족협화(일본인, 조선인, 한족, 만주족, 몽골족)를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괴뢰 '만주국'을 세워 만주 일대를 장악했다. 항일무장투쟁 세력이 조·중연합군을 형성해 대항하고 있었지만, 주요지역은 이미 다 일제의 치지였다. 목단강성 영안현 해림가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따라서 해림가 가장이나 부가장이라는 자리는 만주국 행정체계의 말단 조직을 의미한다. 조선거류민단장 역시 일제가 조선인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관제민간조직답게 특별한 조선인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 두 기관에서 부가장과 단장을 맡았다는 최병규는 그 자체로 최소한 일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해림가 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이 당시 하는 일은 국방헌금이나 애국기 헌납금을 잘 걷는 일, 방공훈련에 주민들 잘 동원하는 일, 일제의 중국침략을 비롯한 '대동아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창구역할을 잘하는 일 등이었다.
▲ 해림에서 애국기2기에 해당하는 금액을 헌납했다는 매일신보 기사(1945. 3. 29) 해림가 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이 당시 하는 일은 국방헌금이나 애국기 헌납금을 잘 걷는 일, 방공훈련에 주민들 잘 동원하는 일, 일제의 중국침략을 비롯한 "대동아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창구역할을 잘하는 일 등이었다.
결국 해림가 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 것은 독립운동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정반대의 근거 자료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런 직책을 맡은 이유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적진에 깊숙이 침투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지위를 이용해서 독립자금 확보를 누구로부터 얼마나 '은밀하게' 했는지, 그렇게 마련한 독립자금을 누구에게 '은밀히'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최병규의 행적에 쏠린 의혹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의혹] 최병규 만주 진출의 진짜 목적
기자는 이상의 분석을 통해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간 게 아니라, 만주 개척을 위한 일제의 정책에 호응해서 만주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고자 한다.
일제는 1937년 목단강성을 새로 만들면서 대대적인 이민 정책을 추진했다. 최병규가 만주로 건너갔다는 1938년에도 일제는 넓은 만주에 "자유이민 문호를 광개"한다면서 "영농 목적의 만주이민 취급 요강을 발표"했다. '중앙개척협회'도 만들고 도별로 '조선이주협회'라는 민간단체도 만들어 이주희망자를 모집했다.
▲ 개척결혼을 위해 해림으로 가나 전남지역 여성들 이야기(매일신보, 1943. 9. 15) 일제는 1937년 목단강성을 새로 만들면서 대대적인 이민 정책을 추진했다. 최병규가 만주로 건너갔다는 1938년에도 일제는 넓은 만주에 "자유이민 문호를 광개"한다면서 "영농 목적의 만주이민 취급 요강을 발표"했다. "중앙개척협회"도 만들고 도별로 "조선이주협회"라는 민간단체도 만들어 이주희망자를 모집했다.
아버지 최승현은 면장을 오랫동안 지내면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충실히 복무해왔고, 본인은 고향 평강군 유진면에서 면협의원까지 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일제의 정책은 최병규의 구미를 당겼을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아버지 최승현은 1917년 <매일신보>가 주최한 '만주시찰단(단장 조중응)'의 일원으로 만주를 방문해본 경험이 있었다. 최병규도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만주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최병규가 해림가 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과 조합할 때 갖는 어려움과 달리 강원 지역에서 모은 만주 개척단원들을 이끌고 만주로 간다는 내용과의 조합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이럴 때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지 1년을 경과한 1939년에도 유진면 협의원에 또다시 선출됐다는 <매일신보>의 보도 역시 의문이 풀리게 되고, 왜 해방될 때까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지 않고 1944년 12월에 귀향했을까 하는 의문도 풀 수 있다.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최병규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최병규는 독립유공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 의혹이 다분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3대에 걸쳐 형성된 품격있는 집안'이라는 최재형 예비후보 집안에 대한 '미담 신화'는 출발부터 당사자들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확인된다.
* <오마이뉴스>는 지난 3일부터 최재형 예비후보 측에 표창 진위 여부와 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 등 반론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응답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6월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A씨가 학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과 노조는 지난달 7일 기자회견을 열고 "A씨와 동료가 직무와 무관한 필기시험, 복장 품평 등 관리자의 갑질과 과로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사건 자체는 물론 이후 논란도 사람들의 입길에 올랐다. 서울대 관계자 일부는 갑질 행위자로 지목된 관리자의 '선한 의도'를 강조하며 '갑질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관리자의 행동에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 언론도 있었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는 '관리자가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에게 행한 필기시험과 복장 점검 및 품평은 업무와 무관하며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판단하며 유족과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지난 2일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사건 발생 38일만에 고인과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의견, 그리고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한국사회와 서울대에 필요한 변화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지난달 15일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TF 구성원 자격으로 동료 의원과 함께 서울대를 방문해 유족과 청소노동자를 만나고, 이어 지난달 22일 관련 토론회의 사회를 보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며 사건을 가까이에서 본 의원이다.
이 의원은 "필기시험, 복장 품평 등에 모욕감을 느끼고 코로나 이후 높아진 노동강도로 힘들어한 청소노동자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서울대 당국자들의 태도에서 섬뜩함을 느꼈다"며 "이번 사건을 둘러싼 그들의 태도는 국민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당한 모욕을 보며 "입시나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평생 멸시받는 삶을 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떠올랐다"고 하기도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한국사회가 해야 할 일로는 청소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갑질 방지 교육 강화 등을 언급했다. 서울대가 할 일로는 청소노동자 등 기관장 발령 직원과 총장 발령 직원을 나누고 이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차별적 고용구조의 철폐를 꼽았다.
프레시안 :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여러 활동을 했다.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TF 구성원 자격으로 서울대를 방문했고 관련 토론회 사회를 보기도 했다. 우선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면서 산재예방TF에서 활동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어떤 계기로 산재예방TF 활동을 시작했나?
이탄희 : 산재와는 인연이 좀 있다. 2년 전 노회찬 정의상을 수상했다. 그때 김용균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인권과 평등상을 받았다. 처음 뵙고 인사를 했고 김용균 씨 사연을 들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때 받은 상금을 유가족 모임에 쓰시라고 다 기부했다. 그러고 나서 산재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6월에는 산재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한 '양형개혁법' 발의도 했다.
이후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보니 산재 사망이 교육 이슈와도 연관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씨, 평택항 이선호 씨 같은 산재 피해자 중에는 교육 경쟁에서 결과적으로 소외된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비정규직이 되고 위험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다 목이 잘리고 머리가 터져서 돌아가신다. 교육위에서도 이런 문제의식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최근 이선호 씨 사건을 접하고 다시 산재 문제를 다뤄봐야겠다 생각해 산재예방TF 일원으로 참여했다.
프레시안 :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접하고 현장을 찾기 전에는 어떤 생각을 했나?
이탄희 : 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를 매기고 복장을 통제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관리자가 청소노동자에 대해 경제적인 통제를 넘어 인격적 통제까지 하려고 했다고 느꼈다. 청소노동자는 굉장히 열악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사용자나 관리자가 조금만 함부로 대해도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격적 통제까지 받을 때 받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건을 접했을 때 '청소노동자들이 굉장히 큰 압박감을 느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서울대에 간 날, '설국열차'라는 비유를 썼다. 서울대 안에서 머리칸에 있는 사람과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당일 대화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탄희 : 그날 서울대 당국자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고인의 동료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양쪽이 속한 세상의 풍경이 너무 달랐다. 특히나 당국자들은 설국열차 머릿칸에 사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청소노동자들이 있는 공간과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청소노동자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청소노동자들이 사전에 고지도 없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시험을 보게 되고, 거기서 0점을 맞고 그 시험지를 받아들고 이러면 엄청난 모욕감을 느낀다. 드레스코드에 대해서도 지시한 사람들은 그냥 '예쁘게 입고 오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보기에 예쁜 걸까. 지시한 사람이 보기에 '예쁘게'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듣는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이 했다는 말처럼 '최저시급을 받는데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서 정장을 사야 하는 거 아니야'하는 압박감을 느낀다.
또, 코로나로 업무량이 폭증했다. 기숙사 측은 늘어난 업무량을 어떻게 할지 청소노동자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 검열'을 한다고 하면 청소노동자들은 '사람 늘릴 생각은 없으니 내가 이 일을 다 감당하지 않으면 해고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서울대 당국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청소노동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설국열차의 머릿칸, 꼬리칸이 갈라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레시안 : 사건이 벌어진 이후 서울대 당국자나 청소노동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순간이나 말을 하나만 더 꼽는다면 어떤 것인가?
이탄희 : 좀 의외일 수 있는데, 고인의 남편을 만나 처음 들은 이야기가 ‘저희 아버지도 서울대 법대 10회 나왔어요’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에 서울대에 취업이 됐다고 해 너무 뿌듯했다고 했다. 개인적 인연도 있으니 더 그랬다는 거다. 또 서울대가 한국 사회에서 갖고 있는 상징적인 위치가 있으니까 내가 여기 구성원이 된다는 느낌에 뿌듯했다는 거다.
그런데 1년 반 정도 지난 시점에 보니, 아내는 죽었고, 남은 건 배신감과 모욕감뿐이라고 했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서울대 당국자들의 태도, 국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프레시안 : 사건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먼저 필기시험이나 드레스코드 지정, 품평과 관련해 이를 지시한 관리자나 서울대 일부 관계자의 발언을 보면, 관리자의 의도를 강조했다. 필기시험은 직무교육의 일환이고 드레스코드를 지정하고 감점 발언을 한 것은 농담이라는 식이다. 관리자의 의도를 근거로 '갑질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탄희 : 필기시험이나 드레스코드는 이미 고용노동부 조사를 통해 갑질로 인정된 일이다. 서울대 총장도 조사 결과를 수용했다. 지금은 그런 변명에 전혀 타당성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굳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서울대 당국자들이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측의 입장에만 공감하는 듯 한 태도를 보인 게 결국 서울대를 향한 신뢰에 굉장히 크게 악영향을 미쳤다. 그게 국민들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거다.
프레시안 : 언론에 관리자의 조치에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다. 고인이 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모욕감을 느꼈다는 증언이 나오는 가운데 엇갈리는 증언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이를 '갑질이 없었다'는 근거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이탄희 : 저는 굉장히 인위적인 갈라치기라고 느꼈다. 고인이 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이야기도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제가 청소노동자들과 두루두루 이야기할 때 다들 시험에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한번도 예고한 적도 없고 동의를 구한 적도 없고 억지로 시험을 보게 했다'는 거였다. 어떤 분은 '수세미 갖고 곰팡이 닦고 화장실 청소하고 손 마디마디가 아픈데 연필 잡고 글자를 쓰라고 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이게 청소노동자들이 느꼈던 모욕감의 본질인데 시험에서 1등을 했는지 꼴등을 했는지가 뭐가 중요한가. 1등 했다고 모욕감을 안 느꼈겠나. 고인도 1등을 했지만 그날 밤과 다음날 아침 주변 사람에게 '너무너무 불편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1등을 했으니 고인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 누구였을까. 시험을 낸 사람의 시각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시험을 낸 사람의 시각에서 청소노동자의 시각이 갈리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일부 언론이 받아쓰면서 청소노동자 사이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좀 악의적이라고 느꼈다.
프레시안 : 시험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한국사회에 평가 도구 혹은 좋은 일자리 등 과실을 분배하는 장치로서 시험이 갖는 위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도 더 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이탄희 : 동의한다. 시험만능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한국의 평범한 시민 사이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번 사건에서 국민들의 분노로 표출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한 번씩 성찰을 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시험은 사람의 능력을 측정하는 아주 이례적인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특히나 객관식 시험이나 필기시험은 사실상 단기적인 암기력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무궁무진한 능력 중 백분의 일, 천분의 일밖에 안 되는 작은 걸 심사하는 거다. 그걸 갖고 사람의 전체적인 능력을 판별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서울대 당국자 사이에서 노조에 대한 혐오적 혹은 적대적 발언도 나왔다. '노조가 중간관리자 갑질 프레임을 짜고 일을 키웠다'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탄희 : 노조에 대해 여러 관점이 있는 것 같다. 그 중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속에서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이 노조에 대해 느끼는 서운함, 배신감에 대해서는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해야 하고 이를 확립하기 위해 대기업 정규직이 지금까지보다는 협조적인 태도를 훨씬 더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사회적 약자들이 사용자와 대척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연대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노조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노조의 그런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절대 안 된다. 그걸 부정하면 사회적 약자는 고립되고 혼자 남는다. 자기 권리를 주장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혼자서는 내 요구가 부당한지 정당한지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이러면 '힘없는 사람들은 맞서 싸우지도 말고 앉아서 죽어라'고 이야기하는 사회가 돼버린다.
노조와 사회적 약자 사이를 갈라치는 형태의 노조에 대한 혐오적이거나 적대적인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
"코로나 이후 쓰레기 양 네 배로 늘었지만 인력 충원 없었다"
프레시안 : 고인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스트레스와 과로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병이다. 갑질이나 이를 둘러싼 서울대 당국자의 발언 뿐 아니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의 일상적인 노동조건 역시 이번 사건에서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직접 가서 들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어땠나?
이탄희 : 코로나 이후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거의 살인적인 노동량을 소화했다. 고인은 2019년 말 취업했다. 2020년 서울대 기숙사에서는 2019년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 쓰레기가 배출됐다. 2021년에는 상반기에만 2020년에 배출된 것과 맞먹는 양의 쓰레기가 배출됐다. 고인이 취업할 때에 대비해 올해 서울대 기숙사 쓰레기양이 네 배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동안 인력 충원이 안 됐다.
고인이 일하던 건물은 특히 노동여건이 열악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쓰레기봉투를 양손으로 들고 계단에서 끌며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그 봉투가 100리터 봉투였다. 이걸 '골병 봉투'라고 부른다. 청소노동자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해 공공기관에서는 사용이 금지됐다. 그런데 서울대는 무감각하게 이 골병 봉투를 쓰고 있었다.
쓰레기 양이 원래보다 네 배로 늘었는데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걸 처리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프레시안 : '청소 검열'도 고인의 노동강도를 강화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기숙사 측에서는 "안전관리팀장이 업무 지시를 하고 나서 청소상태가 좋아졌다고 해 '청소 검열'이 아닌 '청소 점검'을 했다"고 해명했다. 업무 점검은 관리자의 권한이라는 시각도 있다. 고용노동부도 이 건에 대해서는 갑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탄희 : 일단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면, 고인이 토요일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수요일에 기숙사 측이 '청소 검열'을 한다고 고지했다. 고지를 받은 고인이 목요일과 금요일 극도의 과로를 했다. 그래도 노동량을 다 소화 못해서 토요일에 나와서 일을 하다 중간에 휴게실에 갔고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이 사안의 경과를 보면 '청소 검열'이 고인에게 굉장히 큰 압박감으로 작용했고 이것이 사망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청소 검열'을 갑질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과로사를 하게 만드는 노동조건이 정당한가'라는 면에서 노사관계나 근로조건 관점으로 살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 예방 태스크포스(TF)의 이해식, 장철민, 이탄희 의원이 15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기숙사인 관악학생생활관을 현장 방문하고 있다. 사진은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다 지난달 26일 숨진 50대 여성이 생활하던 휴게공간을 살펴보는 이탄희 의원. ⓒ연합뉴스
"사용자에게는 갑질 방지 교육, 노동자에게는 법적 보호 장치 고지 필요"
프레시안 : 지난 2일 노동부 조사 결과에 대해 페이스북에 '근본적인 문제에는 근접하지 못했다'고 썼다.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한국사회 전반의 청소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 청소노동자에 대한 갑질이나 이들의 노동강도에 대한 관리자의 무관심이 서울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와 관련해 노동부 조사에서 어떤 점이 아쉬웠나?
이탄희 :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봐야할 것 같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사관계 면에서 청소노동자가 극도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삼중차별을 받는 약자'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바닥 중에 바닥 중에 바닥이라고 표현했다. 풀어서 말하면 간접노동이고, 중고령 노동이고, 그 중에서도 여성 노동이다. 극도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청소 노동자의 지위를 어떻게 격상할 것인가.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노동부 조사에서는 이를 논의하기 위한 단서를 발견하거나 제공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이번 일이 관리자가 악마여서 벌어진 일은 아닌 것 같다. 본인이 절대 강자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가 강자라는 걸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굳이 미루어 짐작하지 않은 데서 이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강자가 약자의 처지를) 이렇게 미루어 짐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행태는 서울대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다 벌어지는 일이다.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직시하고 성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단초도 노동부 조사에서는 제시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막으려면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탄희 : 역시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원론적인 면에서 '청소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도 동등한 인격이다. 경제적 역할이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이 아니다'라는 걸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 청소 노동자와의 관계에서 본인이 절대 강자고 갑이라는 걸 명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중소기업 사장이나 중간 관리자라면 '나도 전 사회적으로 보면 을인데 내가 무슨 강자냐'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 청소 노동자는 훨씬 더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본인들이 갑이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돌을 던져도 상대방은 맞아 죽을 수가 있다. 이에 대한 자발적 직시가 어렵다면 강제라도 직시할 수 있도록 소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언급한 변화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거나 구상 중인 정책이 있나?
이탄희 :사용자를 교육하고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보호수단을 고지해 둘 사이에 상대적으로 평등한 의사소통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용자에게는 갑질 방지 교육, 인권 교육 등 노사 관계에서 본인들이 절대적 강자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해야 할 것 같다.
노동자에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상의 노동자 보호 절차를 제대로 고지해야 한다. 현행 법에서도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규정'을 마련하게 했지만, 이를 노동자에게 의무적으로 고지하게 하지는 않고 있다. 이걸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고지하게 해야 한다.
"서울대의 차별적 고용구조, 청소노동자 비극에 일조했다"
프레시안 : 서울대의 특징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일반적으로는 비정규직이 산재 위협에 더 취약하다. 그런데 고인을 비롯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다수는 2018년 직접고용됐다. 그런데도 산재 사망이 일어났고 갑질과 높은 노동강도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19년에도 한 청소노동자가 열악한 휴게실에서 숨졌다.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이후에도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탄희 :서울대에는 여전히 차별적인 고용구조가 있다. (직접고용 직원 중에도) 서울대 법인의 직원으로서 총장이 직접 발령을 내는 직원이 있고, 기관장이 발령을 내는 직원이 있다.
총장 발령 직원의 인건비는 법인 예산에서 인건비로 잡힌다. 그런데 기관장 발령 직원 인건비는 법인 예산에 인건비로 잡히지 않는다. 법인 예산에는 각 기관의 운영비가 잡히고, 이 운영비에서 각 기관이 기관장 발령 직원의 급여를 지급한다. 서울대 법인 전체를 총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기관장 발령 직원 인건비는 인건비가 아니라 기관 운영비 안에 섞인 작은 비용으로 인식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서울대에서는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것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원하청 구조에서 원청은 하청업체 직원의 인건비에 신경쓰지 않는다. 도급비를 주고 끝이다. 원청이 도급비를 줄이면 하청업체는 줄어든 도급비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마른 걸레를 쥐어짜는 식으로 알아서 인건비를 낮춘다. 마찬가지로 서울대 법인도 기관장 발령 직원 인건비는 신경쓰지 않는다. 각 기관의 예산에 대해서는 원청이 도급비를 다룰 때처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전체 규모를 어떻게 줄일까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한다.
서울대에서 고인과 같은 기관장 발령 직원에 대해서는 업무량이 늘어도 새로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인건비 지출을 늘릴 수 있는 구조적인 토대가 없다. 이런 차별적인 고용구조가 비극적인 사건에 일조했다.
프레시안 : 서울대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탄희 : 총장 발령 직원과 기관장 발령 직원 사이의 차별 철폐가 급선무다. 노조도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조사나 노동조건 등을 두고 학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동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협의체 구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스스로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하지 못하면, 그때는 마지막 수단으로 외부적인 감시 감독이 필요하다. 서울대가 법인화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 동안 한 번도 교육부 종합감사를 받지 않았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스스로 어느 정도 수준의 윤리적인 경영, 윤리적인 학교 운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사회적 믿음도 조금은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믿음이 이번 사건으로 무너지게 되면 종합감사를 실시할 필요성이 강해진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사건을 통해 본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
프레시안 : 산재 사망, 갑질과 관련해 이미 있는 법과 관련한 질문을 하고 싶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등에 대한 비판이 있다.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 제정안의 법 적용 대상에서 과로사와 연관이 깊은 뇌심혈관계 질환이 제외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탄희 :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에 대해 저는 사업주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재정적인 지원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지원책이 마련되면 적용 제외나 유예의 정당성도 그만큼 약해진다. 사업주의 거부감도 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적인 지원책 마련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면 좋겠다.
과로사와 관련해서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시행령으로 (중대재해에서) 배제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함해야 한다. 단, 한국 산재 실무상 산재를 조금씩 더 인정하는 추세이기도 하니 (뇌심혈관계 질환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에는 사업주가 쉽게 면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서도 조사와 보호 조치의 주체가 사용자라는 점을 두고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탄희 :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점, 허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래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생겼을 때 사용자가 갑질 행위자와 피해자, 어느 쪽에도 몰입하지 않고 제3자 또는 중립자로서 사건을 조사하고 개선책을 내고, 피해가 확인되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주체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사용자가 갑질 행위자 쪽에만 과몰입되어 변호인인 것처럼 행동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쨌든 법적으로는 피해자가 필요하면 관할 노동지청에 신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관할 노동지청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게도 되어 있다. 서울대에 대해서도 관악지청을 통해 노동부가 관여했고, 그 결과 갑질이 인정됐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잘 해결된 사안이다.
단, 이번 사안을 참조해서 관할 노동지청이 갑질 행위 사안에 더 쉽게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를 더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등을 통해 사회적 관심이 불러일으켜지지 않은 사건에도 감독기관이 관여할 수 있는 경로를 추가해야 한다.
"'시험 떨어지면 멸시 당하며 살 것'이라는 불안 느끼는 청년들이 떠올랐다"
프레시안 : 끌으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탄희 : 사건을 접하고 처음에는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분노하는 감정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섬뜩했다.
분노한 건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의 관점에 굉장히 공감이 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적 통제를 넘어 인격적 통제까지 받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꼭 비정규직 노동자만으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많은 청년도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 요즘은 청년들이 학교 다닐 때부터 출세 경쟁이 아니라 불안 내지 공포 경쟁을 한다. 왜냐면, '내가 입시나 입사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때는 단순히 임금을 조금 받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굉장히 멸시 받고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20, 3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만 맴돌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년들이 공포 경쟁, 불안 경쟁을 한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청년, 수많은 학생이 어떻게 보면 잠재적인 청소 노동자인 거다. 이들의 처지에 공감이 돼 많이 분노했다.
섬뜩했던 건 거꾸로 청소 노동자를 통제하는 이들을 보면서였다. 서울대 당국자들이 청소 노동자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공감능력이 제거되어 있는 무감각한 하나의 사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이번 사건만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배제된 사람들의 처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섬뜩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거라는 데 대해 굉장히 경각심을 갖고 있다. 이를 좀 줄여 나가고 방지하고 모든 사람이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조중동 모두 6일 아침신문을 통해 윤 후보 발언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야당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며 윤 후보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설화’라고 지적했으며 동아일보는 ‘논란’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 ⓒ민중의소리
조선 “당내서도 공격” 중앙 “설화” 동아 “논란”
앞서 윤 후보는 4일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게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윤 후보는 발언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해당 발언은 기사에서 삭제됐다.
이를 두고 경향신문은 “윤석열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안 됐다’…또 실언 후 ‘오해’”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경향신문은 윤 후보를 향해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사설을 통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경향신문은 “위험한 윤석열의 원전 지상주의와 최재형의 빈 공약”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국가가 처한 현실과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과 논리도 갖추지 못한 채 출마만 서둘렀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의 후쿠시마 원전 발언 논란을 보도한 6일 자 조선일보 지면. 사진=조선일보
국민일보는 “윤석열 이번엔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안 됐다’…‘진의 왜곡’”이라는 제목으로 지면에 기사를 실었다. 국민일보는 “단순 말실수가 아니라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윤석열, 이번엔 ‘후쿠시마서 방사능 유출 안 돼’ 논란”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윤 후보의 발언과 달리 지난 2011년 3월 지진과 해일이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면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유출됐다”고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윤석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안 됐다’ 또 설화”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국민의힘 내부 경쟁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비판 발언을 실으며 윤 후보를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야당 인사들의 발언을 실으며 윤 후보 논란에 주목했다. 한겨레는 “점입가경 윤석열, 이번엔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안 됐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한겨레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토대로 윤 후보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의 후쿠시마 원전 발언 논란을 보도한 6일 자 경향신문 사설. 사진=경향신문
여권발 한미연합훈련 연기 주장에 시끌벅적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 74명이 5일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촉구했다.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명분을 주자”며 지도부와 다른 입장을 공개적으로 낸 것이다.
국민일보는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위해 필수적인 연합훈련을 연기하자는 여당 의원들은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며 “훈련을 연기한다고 해서 북한이 순순히 대화에 나설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사설을 통해서는 “북한에 뒤통수 맞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라며 “남북문제는 한반도 안보 상황과 주변 정세,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훈련연기는 어렵다”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전하며 “‘김여정 한마디’에 여당 의원들이 집단행동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사설을 통해서는 “이 모든 게 북한의 통신선 복원과 훈련 중단 압박이라는 화전 양면 전술에 휘둘린 결과”라고 비판했다.
▲6일 자 9개 종합일간지 1면
서울신문은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서울신문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나서지 않았는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그동안 준비해 왔던 훈련을 연기하자고 하는 건 ‘합동 군사준비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난 5월 한미 정상 공동성명과도 상충된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도 1면을 통해 송 대표와 민주당 간의 갈등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면에 “동맹 복원 석 달 만에 시험대 오른 韓‧美”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여권에서도 노출되고 있는 이견에 주목했다. 사설을 통해서는 “지금 훈련연기 정도가 아니라 은밀한 남북거래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김여정 한마디에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이 움직였다”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사설을 통해서는 “김여정 하명을 받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두고 갈린 조선과 한겨레
정부는 전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하며 재차 원전에 주목했다. 반면 한겨레는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며 보다 강도 높은 로드맵이 필요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1면에 “‘멀고 먼’ 탄소중립…석탄발전 중단 고려”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실었다. 2면을 통해서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전하며 환경계의 우려 목소리를 전했다. 환경계는 서울신문을 통해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라고 했다.
세계일보는 1면에 “2050년 ‘넷제로’ 목표 실효성 논란”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원전이 대안으로 거론되지 않았다며 실효성 논란에 주목했다. 세계일보는 3면을 통해 “탄소 저감을 위해 실질적으로 애쓰는 기업 의견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6일 자 아침신문에 실린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관련 기사. 사진=조선일보, 한겨레
조선일보는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으며 원자력학회의 입장을 제목으로 뽑았다. 조선일보는 “정부 ‘원전은 7%, 태양광‧풍력은 최대 71%’ 원자력학회 ‘국민부담 年 41조~96조 증가’”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원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탄소 저감 시나리오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조선일보와 정반대 시각으로 접근했다. 1면에 “가야 할 길 ‘탄소중립’ 뼈 깎는 전환 안 보인다”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실었다. 한겨레는 기후환경단체의 입장을 전하며 “탄소중립을 내걸고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가 사실상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역시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징벌적 손배제에 같으면서 다른 조선과 한겨레의 시각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 내용을 지면에 실었다.
전날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PD연합회, 언론개혁시민연대, 오픈넷은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법률상 ‘허위‧조작 보도’를 규정하고 이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하게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담은 언론중재법 관련 토론회 기사를 실은 6일 자 한겨레 아침신문. 사진=한겨레
조선일보는 4면에 관련 보도를 실으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을 소환했다. “언론법 통과되면 ‘최순실 보도’ 못 나온다”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언론‧시민단체 토론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9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토론회에서 나왔던 비판적 시각을 전하면서도 조선일보와 달리 언론 피해에 대한 구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겨레는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언론사 매출액을 반영한 손해배상 △제30조2의 허위‧조작 보도 특칙 등 세 가지 항목에 숙의가 필요하다”는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주장을 강조했다.
여야 국회의원 74명은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를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이 성명 발표 취지를 밝하고 있다. [캡쳐사진 - 국회미디어자료관]
여야 국회의원 74명이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를 제안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7월 1일 여야 의원 76명이 연서명한 성명에 이어 두 번째다.
더불어 민주당 설훈, 유기홍, 진성준 등 61명, 정의당 심상정 등 6명, 열린민주당 김의겸 등 3명, 기본소득당 용혜인, 무소속 윤미향 등 3명, 총 74명의 의원들은 5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하여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를 제안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설훈 의원은 이날 오후 1시 40분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7월 27일 남북 통신연락선이 17개월 만에 재개통 됐다. 그래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갈 수 있게 됐다”며 “통일부도 지난 남북 통신선 연결을 계기로 해서 지금 진행될 예정인 한미군사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반겼다.
이어 “국민의힘당과 국민 일각에서 이건 김여정 남매에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며 “남북관계를 평화롭게 이끌기 위해서는 지금 이 상황에서 미국과의 군사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하에 여야 국회의원 74명이 함께 공동의 성명을 내게 됐다”고 성명 발표의 배경을 밝혔다.
기자회견 참석 의원들이 돌아가며 성명을 낭독했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성명 일부를 낭독하고 있다. [캡쳐사진 - 국회미디어자료관]
의원들은 성명에서 “북한이 통신선 복원 이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거론한 것은 그들 역시 대화 재개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한 대내외적 명분이 필요함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조치로서 한미군사훈련의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한미연합훈련의 그 규모와 관계없이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데에는 난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는 한미 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올 것을 조건으로 8월에 실시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여 결단해 줄 것을 제안한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이는 저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저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연기를, 북한의 상응 조치를 끌어내는 협상카드로 사용하여 모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협상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원들은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데 무리하게 연합훈련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면서 “무엇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는 비핵화 협상의 신호탄을 다시 쏘아 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라는 사실을 유념하여 일대 용단을 내려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기홍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며 “만약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이 성사돼서 평양의 장충동 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모양이 전 세계에 타전이 되면 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도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진성준 의원은 “지난 7월 1일 1차 한미연합군사훈령의 연기를 주장했던 성명에 76분이 동참했고 이번에는 74분 국회의원이 동참했다”며 “모쪼록 이번 성명을 게기로 해서 남북 간의 대화와 북미 간의 대화를 만들어내는 일대 전기를 꼭 가져와주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 성명서(전문)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하여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를 제안한다!
지난 7월 27일 남북은 1년 4개월만에 통신선을 전격 복원하고 대화채널을 재가동시켰다. 이후 통일부는 민간단체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협력 물품 2건 반출을 승인하는 등 교류협력 재개에도 시동을 걸었다.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구된 후 닷새만인 8월 1일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이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은 그들에 대한 적대시정책 폐기의 상징적인 조치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므로, 이번 김부부장의 요구는 새삼스러울 게 전혀 없다.
다만, 북한이 통신선 복원 이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거론한 것은 그들 역시 대화 재개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한 대내외적 명분이 필요함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요구에 대한 우리 측의 대응 방안을 놓고 여러 가지 정치적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조치로서 한미군사훈련의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코로나19 위기와 한반도 정세 등을 감안해 대규모 실기동 군사훈련 대신, 제한적인 연합지휘소 훈련을 실시해 왔다. 한미의 이런 절제된 대응은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이바지했으며, 어쩌면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도 크게 보아 그 결과의 일환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연합훈련의 그 규모와 관계없이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데에는 난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한미 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올 것을 조건으로 8월에 실시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여 결단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저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저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연기를, 북한의 상응 조치를 끌어내는 협상카드로 사용하여 모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협상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더욱이 다시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19 비상사태를 고려해서라도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하루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서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도 하루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 4단계 방역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데 무리하게 연합훈련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현 국면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 역시 통신선 복원이 단절의 국면에서 대화의 국면으로 넘어가는 매우 중요한 전환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남북 통신연락선 복구를 통해 열리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모든 옵션과 가능성을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과 소통해 줄 것을 요청한다.
무엇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는 비핵화 협상의 신호탄을 다시 쏘아 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라는 사실을 유념하여 일대 용단을 내려 줄 것을 촉구한다.
입력 2021-08-05 | 발행일 2021-08-05 제22면 | 수정 2021-08-05 07:21
언어는 말과 글로써 형상화
각각의 특징 드러내는 구조
표현적 특성과 차이점에도
기술의 발달이 말과 글 통합
진정한 언문일치 시대 열어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간의 언어는 말과 글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형상화된다. 말은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소리인 음성에 의해, 글은 물체의 표면에 부착된 시각화된 기호에 의해 전달된다. 매개체의 물리적 성질 차이에 기인한 말과 글의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말은 청각적 정보를 제공하고 글은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 둘째, 말은 순간적이고 글은 영속적이다. 마지막으로 말은 운율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나 글에서는 운율적 요소가 배제된다. 일반적으로 언어를 언급할 경우 글보다는 말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가령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라고 말하면 '프랑스어로 음성 대화가 가능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글보다 말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현대 언어학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 언어학은 개별 언어의 특성을 넘어서는 언어 보편적인 특성과 체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데, 세계의 많은 언어들이 글이 아닌 말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을 글보다 중시하는 이들은 시간 순서상 언제나 말이 글을 앞선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말을 매개로 글이 발달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말이 글을 앞선다. 거의 모든 유아는 정규 교육 없이도 완전히 새롭고 복잡한 체계(말)를 능숙하게 습득하는 반면, 글은 정규 교육의 힘을 빌려 이미 습득한 말의 체계에 문자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게 된다.
말과 글에는 각각의 특성을 드러내는 구조와 표현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구어체에는 비정상인 문장 구조와 비속어의 사용, '한테, 랑, 더러' 등의 조사, 반말의 '요' 등이 주요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또한 화자의 즉흥적인 수정을 반영해 관형어나 부사어가 도치되는 현상이 빈번하다. 문어체에는 '-로다, -ㄹ진대, -오' 등과 같은 특정한 어미, '그, 그녀'와 같은 대명사, '매우'와 같은 부사 등과 같이 문어에서만 나타나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구조적으로는 완결된 문장 구조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문어체의 중요한 특징이다.
말과 글이 그 매개체와 구조적·표현적 특성에 따라 뚜렷이 구분이 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과 글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원래는 말로 전달된 정보들이 글로 기록되거나 글로 작성한 문서를 강연 등에서 읽어 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자의 경우에 말에서 나타나는 불필요한 반복이나 '음, 글쎄'와 같은 간투사 사용 등은 구어(말) 고유의 특징이 글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소설의 인용문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구어적 특징은 매개체만으로 문어와 구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움을 증명한다. 후자의 경우로는 연설문을 예로 떠올릴 수 있다. 분명히 음성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구어로 분류해야 하지만 완성본이 나오기 전에 여러 번 수정을 거친 문서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응집성이 뛰어나다는 문어적 특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말과 글에서 나타나는 형태, 통사, 의미, 화용 단위의 구조적 특성이 크게 차이 나는 바가 없다는 점에서 둘을 별개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주류 언어학계의 견해다. 특히 최근 기술의 발달에 따라 말은 실시간으로 글로 변환되고, 말 대신 글을 즉각적으로 주고받는 일이 가능해짐에 따라 말과 글의 구분이 더욱 모호해졌다. 말과 글이 하나로 통합되는 진정한 의미의 언문일치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일까.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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