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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이 엄마',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 우리 아이들을 수장시키겠어?"

'호성이 엄마',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 우리 아이들을 수장시키겠어?"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5/05 [10: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 촛불문화제 ‘다시 촛불’이 오후 6시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렸다.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을 촉구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 촛불문화제 ‘다시 촛불’이 오후 6시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렸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유한국당 해산하라!", "황교안, 나경원 처벌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황교안, 나경원 처벌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자유한국당 해산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 촛불문화제 ‘다시 촛불’이 오후 6시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렸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 촛불문화제 ‘다시 촛불’이 오후 6시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렸다.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을 촉구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민주주의 침탈하는 자한당을 해체하라!

세월호 범죄자 황교안을 수사하라!

황교안을 비호하는 자한당을 해체하라!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 촛불문화제 ‘다시 촛불’이 오후 6시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렸다.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 주최로 열린 이날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참가자가 늘어나 2쳔 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안순호 4.16연대 대표,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권오민 청년당 공동대표.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사회를 맡은 안순호 4.16연대 대표는 “세월호 참사 5주기 광화문 ‘기억문화제’와 안산 5주기 기억식에 함께해주신 시민 분들께 깊이 감사한다”는 인사로 집회를 열었다. 

 

첫 발언자로 나선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황교안(대표)이 누구인가, 세월호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 시절 해경수사를 가로막았고 기소를 방해한 자이다.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국민들과 함께 만든 4.16연대를 압수 수색한 인물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가로막은 범인이다. 지난 5년간 아이들과 유가족을 모욕하고 패악질한 자들이 또다시 국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1700만 촛불시민을 모욕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주범들을 처벌하는 것이 곧 적폐청산”이라면서 “집회를 방해하려는 저들(보수단체)의 행태를 바로잡아달라”고 경찰에 요구했다.

 

다음으로 지난달 30일 자유한국당이 광화문광장에 천막당사를 치겠다고 밝히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긴급촛불을 들고 밤샘 1인 시위를 이어가면서 막아 나선 청년당의 활동보고가 이어졌다.

 

권오민 청년당 공동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 광장에 어떻게 자유한국당이 들어올 수 있는가? 너무나도 분노스럽다. 어떻게 유가족이 계시는 기억광장에 감히 들어온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사람입니까?” 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일부 시민들은 “짐승이요, 짐승!”이라고 답했다. 

 

이어 권 대표는 “오는 5월 11일 자유한국당 해산심판 ‘시민헌법재판소’를 개최한다. 177만 국민들이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동참했으나 자유한국당은 이것이 IP조작이니 북한의 소행이라느니,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이곳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자유한국당 해산을 심판할 것이다. 매주 촛불과 함께 자유한국당 해산 심판을 위해서 이 자리로 모여달라”고 호소하면서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끝까지 촛불을 들고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 세월호 유가족 '호성이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다시 촛불로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을 몰아내고 평범한 시민들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호소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이어 세월호 유가족 ‘호성이 엄마(신호성 군 어머니)’ 정부자 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호성이 엄마’는 “아이에게 나서지 말고 반박하지 말고 살라면서 억지로 수학여행을 보냈다. 그런 아이가 그 배에서 애타게 엄마를 불렀을 텐데 나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 우리 아이들을 수장시키겠어. (전원구조 보도를 보며) 감사합니다’ 했던 미친 엄마였다. 그런 대한민국이 이런 엄마를 정말 미치게 만들었다. 내 자식에게 가만히 있고 나서지 말라고 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내 자식이 했듯이 저들에게 맞서며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로 살기로 했다”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내가 내 자식을 잃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장 서고 있는 것이다. 다시 촛불로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을 몰아내고 평범한 시민들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발언을 듣던 참가자들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작태를 풍자하는 가극단 ‘미래’ 김말순 여사(김지영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 공연 중에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세력이 도로 한복판에 음악을 틀어놓고 방해를 벌이자, 한 시민이 저지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막아 나서며 충돌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평화집회”를 연호하며 충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 시민제보

 

▲ 공연 중에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세력이 도로 한복판에 음악을 틀어놓고 방해를 벌이자, 한 시민이 저지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막아 나서며 충돌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평화집회”를 연호하며 충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 시민제보

 

공연 중에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세력이 도로 한복판에 음악을 틀어놓고 방해를 벌이자, 한 시민이 저지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막아 나서며 충돌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평화집회”를 연호하며 충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자유한국당 해체 국민청원에 함께한 178만이 넘는 국민들이 모두 이 거리로 나올 수 있게 우리가 힘을 모으자. 폐륜집단 자한당을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해상교통사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디와 이어져 있는가. 적폐세력이다. 세월호와 관련된 자들 처벌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합법적인 집회를 방해하는 세력을 그냥 두고 있는 것을 강력히 항의한다”며 지적했고 참가자들은 동의의 함성을 질렀다. 

 

이어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 공연으로 촛물문화제가 마무리되었다. 

 

▲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작태를 풍자하는 가극단 ‘미래’ 김말순 여사(김지영씨)의 공연과 우리나라 공연모습.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오는 5월 11일(토) 오후 4시 반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특설무대에서 '자유한국당 해산심판 시민헌법재판소'가 열린다.     © 청년당

 

앞서 5시에는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으며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 나경원 처벌! 촛불문화제 ‘다시 촛불’은 앞으로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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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매체, 김정은 장거리방사포·전술유도무기 사격훈련지도 확인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 담보...전투력 강화 투쟁 더욱 줄기차게 벌여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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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5  08: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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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아래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의 사격훈련이 진행됐다고 확인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방사포들과 전술유도무기의 사격훈련이 진행됐다고 확인했다.

<노동신문>은 5일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 5월 4일 조선 동해해상에서 진행된 전연 및 동부전선 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 훈련을 지도하시었다"며 "훈련은 전연 및 동부전선 방어부대들의 대구경 장거리방사포,  전술유도무기 운영능력과 화력임무수행 정확성, 무장장비들의 전투적 성능을 판정 검열하고 이를 계기로 전군을 명사수, 명포수운동에로 더욱 힘있게 불러 일으키며 경상적인 전투동원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감시소에서 구경별 화력타격수단들의 화력타격 계획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대구경 장거리방사포들과 전술유도무기의 사격준비과정을 검열한 후 화력타격 순서와 방법을 전해 사격명령을 내렸으며, 이후 "천둥같은 폭음이 터지고 번개같은 섬광속에 시뻘건 불줄기들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어떤 세력이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우리의 생존권을 해치려 든다면 추호의 용납도 없이 즉시적인 반격을 가할 영웅적 조선인민군의 견결한 의지를 과시한 훈련은 가슴 후련하게 끝났다"고 훈련 모습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사격훈련을 끝내고는 "인민군대가 현대적인 대구경 장거리방사포들과 전술유도무기 운영을 정말 잘한다고, 모두가 명포수들이라고, 현대적인 무기체계에 정통하고 훈련을 강도높게 진행한 결과 그 어떤 정황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임무수행 능력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예고없이 불의에 조직한 화력타격 훈련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언제 어느 시각에 명령이 하달되어도 즉시 전투에 진입할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전연과 동부전선 방어부대들의 신속반응 능력"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고는 "전체 인민군 장병들이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담보된다는 철리를 명심하고 그 어떤 세력들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도 나라의 정치적 자주권과 경제적 자립을 고수하고 혁명의 전취물과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 수 있게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면서 전투력 강화를 위한 투쟁을 더욱 줄기차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훈련지도를 김평해·오수용 당 부위원장과 리병철·조용원 당 제1부부장이 참관했으며, 현지에서 리영길 군 총참모장, 박정천 포병국장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과 전선 및 동부전선 방어부대 지휘관들이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 전술유도무기라고 밝힌 로케트 발사 장면. [캡쳐사진-노동신문]
   
▲ 대구경 장거리방사포 발사 장면. [캡쳐사진-노동신문]
   
▲ [캡쳐사진-노동신문]

한편, 우리 군 합동참모본부는 4일 오전 9시 6분께 북한이 동해 원산 북방 호도반도 일대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단거리 발사체 수발을 발사했으며, 발사체는 동해상까지 약 70km에서 200km까지 비행했다고 발표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 단거리 발사체 1발이 더 발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처음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가 40여분만에 '단거리 발사체'수정했으며, 추가정보에 대해서는 한미당국이 정밀 분석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구경 장거리방사포 수발에 이어 전술유도무기 발사시험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합참은 지난 17일 김 위원장 참관하에 이루어진 국방과학원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에 대해서는 한미공조하에 평가한 결과라고 하면서 유엔안보리 결의들이 금지하고 있는 탄도미사일은 아니고 '지상전투용 유도무기'라고 평가한 바 있다.

   
▲ 김 위원장은 '인민군 장병들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는 철리를 명심하고 전투력 강화를 위한 투쟁을 더욱 줄기차게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캡쳐사진-노동신문]
   
▲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발사 모습. [캡쳐사진-노동신문]
   
▲ [캡쳐사진-노동신문]
   
▲ [캡쳐사진-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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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압박을 위한 북한의 저강도 군사조치

대미 압박을 위한 북한의 저강도 군사조치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입력 : 2019.05.04 15:08 수정 : 2019.05.04 16:04
 

대미 압박을 위한 북한의 저강도 군사조치
 

북한이 4일 오전 단거리 발사체 수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함으로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의 대치 국면의 긴장도를 높였다. 이번 발사는 지난 17일 북한 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에 이어 긴장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인 것이다.

한·미 정보당국은 우선적으로 이 발사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발사체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의도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발표에서 ‘불상의 단거리 발사체 수 발’이라고만 밝혔다. 비행거리가 70~200㎞에 이르기 때문에 신형 방사포를 발사한 것인지 단거리 미사일을 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일단 북한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이날 발사한 것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면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안보리는 과거에도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는 즉각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의 이날 발사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전면전을 선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이 이처럼 선을 넘지 않는 ‘저강도 군사 조치’를 취한 이유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보냄으로써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행동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북한에 대해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표시를 하고 ‘포괄적인 비핵화 약속’을 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비핵화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이 현재의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30일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경우 우리는 분명히 경로를 변경해야 할 것”이라며 “경로 변경은 미국만의 특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북한의 발사는 최 부상이 말한 경로변경 가능성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핵실험·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제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일시 중단함으로써 사실상의 ‘쌍중단’ 상태가 유지돼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중 하나는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위협이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날 발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느긋하게 버틸 수 있는 근거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의미가 포함돼 있다.

아직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 약속을 깬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날 발사는 미국 내 대북 인식을 악화시키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불신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누누히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변화가 있을지 여부도 주목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41508001&code=910100#csidxa122b04509d9fe9a2b971864276c9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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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다시’ 밝혀진 촛불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나경원 처벌”

416연대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촉구 집회 열어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19-05-04 22:09:07
수정 2019-05-04 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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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는 4일 광화문 ‘기억과 빛’ 옆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나경원 처벌! 다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1차 집회다.
416연대는 4일 광화문 ‘기억과 빛’ 옆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나경원 처벌! 다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1차 집회다.ⓒ416연대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해 약 2000명의 시민들이 자유한국당 해산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416연대는 4일 광화문 ‘기억과 빛’ 옆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나경원 처벌! 다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1차 집회다.

이날 광장에 모인 2000명(집회측 추산)의 시민들은 ‘민주주의 침탈하는 자한당을 해체하라’, ‘세월호 범죄자 황교안을 수사하라’, ‘황교안 비호하는 자한당을 해체하라’, ‘숨기는 자가 범인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세월호 유가족은 노란 옷을 입고 무대 앞 쪽에 자리 잡았다. 오후 6시부터 약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집회에는 해가 저물어 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젊은 커플부터 중년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민이 참여했다. 자녀들과 함께 온 30·40대 부부, 친구들과 무리를 이룬 청년들도 보였다.

이들 손에는 ‘자유한국당 해산하라’, ‘황교안 나경원 처벌하라’ 등 문구가 양면에 새겨진 피켓이 들려있었다. 하늘이 짙어지는 7시경에는 촛불이 광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유가족·시민들이 진상규명 외친 광장, 자유한국당이 더럽히지 못하게 막아야”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선 자유한국당의 광화문광장 천막농성 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여기 세월호광장은 유족들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목숨 걸고 단식을 하고, 시민들이 5년간 눈, 비, 먼지 맞으며 유가족 곁에서 참사를 기억하며 진상규명을 외친 곳”이라며 “세월호 1주기 때 위로와 사죄가 아닌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뿌리며 유가족을 모멸한 자들이 세월호 광장에 천막당사를 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304명을 40m 물밑으로 수장한 후 청와대 기록물을 봉인하고, 악랄하고 지긋지긋하게 진상규명을 방해한 범죄자 집단”이라며 “저들이 광장을 더럽힐 수 없도록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는 탑승자를 구하지 않았으며 생존자는 스스로 탈출했다”며 “우리는 304명의 고귀한 목숨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 알고 있다. 국민 모두가 목격자, 증인, 피해자”라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 “더 좋은 세상 위해 앞장서겠다”

장 위원장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자유한국당 해산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특권층을 보호하려 유가족을 탄압한 황교안을 처벌하고 특권층을 해체해 적폐청산을 이뤄야 한다”며 “자유한국당 해체에 유가족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6반이었던 고 신호성 군 어머니 정부자씨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식 이름을 걸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수학여행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설득해 보냈는데 대한민국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며 "알면 알수록 나라가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1% 기득권의 노예가 아닌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걸 자식을 잃고 이렇게 알게 됐다”며 “자식이 돌아오지는 않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힘 줘 말했다. 또한 “다시 촛불로 저들을 몰아내고, 사람다운 대한민국으로 만들어보자”고 호소했다.

정씨는 “참사 당시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자식이 죽어가는 화면을 보며 감사해했다. 이런 미친 나라가 어디있나”라고 외치는 대목에서는 절규하듯 말들을 토해냈다. 광장은 숙연해졌고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416연대는 4일 광화문 ‘기억과 빛’ 옆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나경원 처벌! 다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1차 집회다.
416연대는 4일 광화문 ‘기억과 빛’ 옆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황교안·나경원 처벌! 다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1차 집회다.ⓒ416연대

“적폐세력 자유한국당 처벌해 참사 반복되는 악순환 끊어야”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적폐세력이 처벌받지 않고 참사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자유한국당을 해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적폐세력을 처벌하지 않으면 사회 곳곳에 똬리 틀며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유엔이 얘기하고 있다”며 전두환 사면복권 언급했다.

박 대표는 “전두환이 대표적이다. 사면복권을 해줬으나 국민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만원 같은 괴물이 북한군 개입설을 퍼트리고 김진태와 이종명 등이 동조하고 있다. 가짜뉴스에 동조하는 세력이 생기고 이를 자유한국당이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는 세월호 참사도 북한이 했다고 할 것”이라며 “지금도 유가족에 대해 망언을 쏟아내는 자유한국당을 꼭 해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처벌이 쉽지는 않다. 공소시효 내에 수사를 하고 기소도 해야 한다”며 “국민고발인 운동을 하려고 한다. 대표 고발인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재난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대단히 미흡했다”며 “말단 공무원만 처벌해 같은 유형의 참사 반복되는 걸 지난 5년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조위는 조사는 할 수 있지만 수사를 할 수 없다. 황교안의 세월호 수사방해도 확인을 못하고 있다”며 특별 수사를 촉구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박 공동대표는 황교안 대표에 대해 “황교안은 박근혜 정권 법무부 장관 당시 세월호 수사 방해한 것도 모자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을 때는 기록물을 봉인해버렸다”며 “기록물에 세월호 관련 황교안의 범죄사실로 들어있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민주주의 위기봉착’과 ‘저항권’인데 도대체 어떻게 공부했는지 기가 차다”며 “개념조작의 달인”이라고 말했다.

“국민 허리 휘게 하는 자유한국당 해산해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자유한국당의 모순되는 정책행보를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은 지난 정부까지 자행된 불공정와 불평등에 맞서 공정하고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다”며 “저소득층 소득을 올리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교육·주거·의료·통신 비용으로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을 올려서 나라가 망했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리면서도, 소상공인을 위해 카드수수료 낮추려고 하면 벌떼처럼 나와 막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외에도 전월세 상한제와 의료 건전성 강화, 통신비 인하, 금융기관 예대 마진 인하 정책을 자유한국당이 막고 있다며 “허리 펴고 살 수 없는 세상을 살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 소장은 민주자유한국당부터 이어져 온 적폐세력을 이번에는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돌이켜 보면 민정당 해체을 외쳤었는데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쳐 자한당 해체까지 외치고 있다”며 “국민을 짓밟은 집단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만큼은 자유한국당을 반드시 해체하자”며 “다음 집회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도록 다시 힘 모으자”고 했다.

안 소장은 “살다살다 이렇게 나쁜 사람만 모인 집단은 처음 봤다”며 “518과 세월호를 모욕하는 집단을 몰아내지 못하면 어찌 떳떳하게 살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한편, ‘자유한국당 해산’ 청와대 국민청원 추천수는 이날 오후 9시 30분 기준으로 177만 7000명을 넘어섰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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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아이들

미등록 아동 실태 파악할 수 있는 실효적 통계도 미비…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 방안은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2019년 05월 04일 토요일
 

외국인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와 결혼한 뒤 한국에서 태어난 8살 A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친척들에게 입양됐다. 그러나 A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척들은 친생자 소송을 통해 A를 파양했다. A는 그때부터 ‘미등록 체류 아동’이 됐고, 혼자 양육을 떠안게 된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A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약 8개월 뒤 발견된 A의 몸에는 어머니로부터 당한 학대 흔적이 남아 있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소위 ‘다문화 가정’ 출신 자녀들이 처한 어려움들이 토로됐다. 이주배경 아동들이 국내출생, (외국 출생 후) 중도입국, 미등록 등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미등록’ 아동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중도입국 청소년 실태 및 자립지원 방안 연구, 2016년)에 따르면 공교육제도 밖 중도입국 청소년 비율은 약 30%로 추정된다.  

교육부의 다문화학생 통계는 공교육에 진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등록 아동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실효적 통계는 미비한 상황이다. 출생등록이나 외국인등록이 돼 있지 않은 아동은 나이도 거주지도 알 수 없어 하루아침에 사라지더라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미등록 이주 아동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체류하면서 낳은 아이들이라 생각하는 게 대부분인데 굉장히 다양한 환경에서 생겨나고 있다”며 “결혼이민자로 입국했다가 한국인과 혼인관계가 끝나고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 체류 자격을 연장하지 못하거나, 영주권·국적을 취득 못한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난민신청을 했다가 인정이 불허된 사람들이 체류하게 되면서 미등록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가인 한국은 이주배경 아동들에게 공교육 진입을 허용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2008년부터 초등학교, 2010년부터는 중학교에도 출입국 사실증명이나 외국인등록이 없는 외국 국적 아동의 전·입학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의무교육 권리를 ‘국민’에게 한정하는 교육기본법에 의해 의무교육 대상에서는 이주배경 아동이 제외돼, 부모의 방임이나 학대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의무교육대상이라는 건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 뿐 아니라 다니지 않고 있으면 찾아가야 하는 게 의무인 것”이라며 “갑자기 연락이 없이 결석이 장기화될 경우 아동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아동 안전을 확인하는 절차가 이주아동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사진=노지민 기자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사진=노지민 기자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강제 퇴거 집행을 유예하는 방식의 법무부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 한계도 지적된다. 한국에 들어와 초·중·고교를 마치고 대학 입시에 합격하더라도, 유학 체류비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진학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자랐기에 할 줄 아는 언어는 한국어 뿐, 본국에 가족이 없어 일용직으로 전전하는 사례들이 나오는 이유다.

 

양계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배경청소년을 ‘이주배경’보다는 ‘아동・청소년’이라는 데 초점을 두어 정책을 추진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청소년은 그들의 국적이나 기 타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지금까지 국적 또는 등록여부에 따라 교육권이 제한되었던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재의 제도 및 절차들을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한국사회를 포용사회로 이끌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이 시흥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은 “시・도별 다문화인구 비율이 다르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문화 학생이 많은 지역의 학교와 그렇지 않은 지역 학교의 경우 지원되는 정책과 서비스의 갭이 너무나 크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권이 ‘운’에 의해 결정되고 ‘복불복’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일례로 서울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중학교까지 입학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입학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고, 경기도교육청은 각 시·군에 1곳 이상 학교를 지정해 한국어 시험 보고나면 학적을 받을 기회는 준다는 것이다. 강 센터장은 “교육부에서 보다 강력하게 공교육진입 문턱을 최소로 낮추고 이것을 전국에 평준화 시킬 수 있는 정책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문화’ 용어에 대한 문제 의식도 제기됐다. 문화적 소수자들을 가리키는 수식어로서의 ‘다문화’ 용어의 사용은 이들을 대상화·타자화하고 다문화 사회 문제를 문화적 소수자 문제로 한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다.  

서광석 인하대학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는 “다문화(비다문화), 다문화가정(자녀, 학생, 청소년), 외국인주민, 이주민(이민자) 등 다문화사회 즈음한 각종 용어들이 혼란스럽게 하며 특정 용어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며 “공공성이 확보된 표준화된 용어, 학문적으로 접근한 전문적 용어, 정부의 공식 용어 등 정립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서 교수는 또 “법무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정부 여러 부처에서 이민(다문화, 외국인) 관련 업무가 분절적으로 운영이 되다보니 중앙부처의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이민정책 업무가 정부 여러 부처에 나누어 기획, 집행이 되다보니 유사・중복사업 등으로 예산 투입대비 그 효과 또한 미미하다”며 관련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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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순록이 기후변화 이기는 법, 다시마 먹기

조홍섭 2019. 05. 03
조회수 2034 추천수 0
 
겨울비 땅에 얼어붙으면 스발바르순록 먹이 찾아 해안으로
 
r1.jpg» 비가 얼어붙어 지표의 먹이를 찾기 힘들자 해안으로 나와 해조류를 먹는 스발바르순록. 브라게 B. 한센(NYTNU) 제공.
 
스발바르순록은 지구 최북단에 서식하는 순록이다. 기후변화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는 이 동물은 생존을 위해 기발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례적으로 더운 겨울, 바다가 얼어붙지 않아 작은 섬에 고립된 순록은 눈 위에 내린 비가 얼어붙자 이끼마저 구하기 힘들어졌다. 순록은 바닷가로 이동해 파도에 떠밀려온 다시마를 먹기 시작했다.
 
r2.jpg» 춥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스발바르순록의 여름철 모습. 파르홀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순록 가운데 스발바르순록은 약 5000년 전 이 섬에 고립돼 고유종이 된 아종이다. 섬의 부족한 먹이 때문에 보통 순록보다 몸 크기가 절반에 불과하고, 포식자가 없는 데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포기해 다리가 짧고 추운 날씨에 적응해 털이 두껍고 통통하다.
 
스발바르순록을 장기 연구해 온 브라게 브렘셋 한센 노르웨이 과학기술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에코스피어’ 4월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 순록이 “기후변화 영향으로 해빙이 사라져 외딴 섬과 반도에 고립됐지만 유연한 행동과 보조 자원을 이용해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r3.jpg» 겨울철 해안으로 내려와 필사적으로 먹이를 찾는 스발바르순록. 라리사 T 보이메 제공.
 
연구자들은 스발바르제도 북쪽 스피츠베르겐 섬에서 눈 녹은 얼음층 실태와 함께 2199마리의 순록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해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또 해안과 내륙의 순록 배설물을 분석해 이들이 실제로 해조류를 먹이로 섭취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눈에 내린 비가 두껍게 얼어붙은 해일수록 해안으로 이동하는 순록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해안에 온 순록의 배설물 속에서 다시마 등 해조류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기후변화의 영향은 고위도로 갈수록 커진다. 
 
북위 79도에 있는 스발바르제도에서는 이상 난동이 문제다. 2009∼2010년 겨울엔 특히 그랬다. 바다가 완전히 녹은 데다 험한 산과 대규모 빙하로 고립된 순록은 섬 안에서 먹이를 찾아야 했다.
 
r4.jpg» 스발바르제도 북서쪽에 있는 스피츠베르겐 섬의 모습. 해빙이 녹으면 순록은 이 섬에 고립돼 먹이를 찾아야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영구동토에 내린 비는 지표면에서 얼어 얼음층을 형성했다. 연구자들은 “얼음층을 파 땅속의 식물과 이끼를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힘들어진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이 겨울 모든 순록 개체수의 3분의 1이 해안에서 해조류를 먹는 것이 목격됐다.
 
그렇다면 다시마 등 해조류는 순록의 대체식량이 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를 보면 단백질 등 해조류의 영양가는 육상식물과 비슷하다”며 “그러나 해조류는 주 식량은 아니고 보조적인 칼로리 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주 저자인 한센은 “순록이 해조류만으론 살 수 없어 보인다. 매일 해안과 얼지 않은 식물이 있는 곳을 오가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먹이를 함께 섭취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조류를 많이 먹은 순록에서 염분 과다 섭취 탓인지 설사가 많았다. 순록이 해조류로 기근을 이긴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순록을 치는 사미족 원주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논문은 적었다. 연구자들은 “지구온난화로 다시마는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해조류는 스발바르순록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기상에서 살아남는 점점 더 중요한 생명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r5.jpg» 지표면이 얼음으로 덮이자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은 어린 스발바르순록. 이런 이상기상이 연달아 찾아와도 튼튼한 성체는 무사히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게 B. 한센 외 (2019)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제공.
 
스발바르순록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다른 연구도 있다. 한센은 다른 연구진과 함께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한 논문에서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얼음층이 덮이는 사태가 빈발할 때 순록 집단이 어떤 타격을 입는지 모의 연구했더니 오히려 집단이 안정화하더라는 결과를 밝혔다. 얼음층이 덮이면 취약한 어리거나 늙은 순록이 죽으면서 집단 규모는 작지만 강건해지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age Bremset Hansen et al,  Reindeer turning maritime: Ice‐locked tundra triggers changes in dietary niche utilization. Ecosphere 10(4):e02672. 10. 1002/ecs2.267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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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ICBM 시험발사... 쿠바인 수백만 반미 시위

류경완의 국제평화뉴스 19.05.03(301)
  • 류경완 KIPF 공동대표
  • 승인 2019.05.03 13:43
  • 댓글 1
▲ 2018년 5월30일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면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18.6.15[사진 : 뉴시스]

1. 수백만 쿠바인들이 미국이 새로 부과한 제재와 베네수엘라 전복을 위한 개입에 분노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석유 및 의료인들을 교환하는 협정을 포함해 다수의 합작 거래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베네수엘라는 일 4~5만 배럴의 석유를 보내고 쿠바는 2만2천 명의 의사 및 전문가들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뉴스1>
☞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양키 제국의 위협과 도발, 거짓말, 비방 등에 강력하고 단호하고 혁명적인 대응을 할 것"

2. 37명을 참수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집행에 대해 유엔과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십대 소년 몇 명은 (반정부 평화)시위에 관한 왓츠앱 메시지를 보낸 이유로 처형당했고, 대부분 잔인한 고문과 가족살해 위협 등으로 거짓 자백을 했지만, 변호인 접근이 거부되고 법정에서도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South Front>

3. 미국이 ICBM '미니트맨3'를 시험발사했습니다. 1970대 실전 배치된 미니트맨3는 히로시마 원자탄의 23배 위력을 보유한 W78 열핵탄두 3기를 실을 수 있고, 무게 35톤, 최고 시속 마하 23, 사거리 1만3천km에 3단 고체연료 로켓을 사용합니다. 미국은 약 400기의 미니트맨3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30년까지 운영할 방침입니다. <통일뉴스>
☞ 미 공군 "21세기 위협과 동맹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차원의 시험 발사"

4. (과이도의 군사 봉기 시도를 진압한) 마두로 대통령이 군의 단결을 촉구하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는 워싱턴의 달러에 자신을 판 반역자들의 쿠데타 시도를 물리치고 단합한 군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합>
☞ 마두로 "미, 개입 위해 학살과 내전 이용... 볼리바리안 군대, 쿠데타 시도에 맞서 충성... 세계에 역사적인 교훈 줘"
☞ NYT "트럼프 행정부, 반 마두로 세력의 (군사 봉기)능력 과대평가하는 오류 저질러"

5. 마두로 대통령이 쿠바로 망명할 준비까지 다 마쳤으나 러시아가 만류했다고 폼페오 장관이 주장한 데 대해 마두로는 "폼페오 장관, 제발 좀, 이건 정말 어이없는 소리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자카로바 러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베네수엘라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도덕성을 실추시키려 시도하고 있으며 가짜 뉴스를 정보전의 일환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Sputnik/연합>

6. 사설 군수업체 블랙워터의 설립자인 프린스가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위해 5천 명의 용병 군대 파견을 제안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와 베네수엘라 망명자들로부터의의 개인 투자와 수십억 달러의 베네수엘라 동결자산으로부터 4천만 달러의 자금을 요청했다고 소식통이 밝혔습니다. <Sputnik>

부유한 자동차 부품 재벌가 출신인 프린스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에 이르는 분쟁 지역에 사설 용병들을 파견했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미군을 민간 계약자로 대체하려 시도했습니다. <Reuters>

☞ 볼턴, 1월 "콜럼비아에 5천명의 병사" 메모 노출
☞ 폼페오 "미,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선호하지만, 필요하다면 군사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 라브로프 "미국의 공격적인 조치, 심각한 결과 초래할 것"

7.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해 한층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WSJ이 보도했습니다. '원유 수출봉쇄'에 이어 '달러화 돈줄'을 아예 틀어막겠다는 취지로, 석유화학 제품부터 소비재까지 이란의 무역 전반을 '봉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란의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에 이어 두 번째 수출품으로 연간 360억 달러에 달합니다. <연합>

8.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국제 원유시장에서 이란을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현재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세계 모든 시장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우디와 UAE가 미국의 요구대로 대이란 제재로 발생하는 원유 공급 공백을 메우기로 한 데 대해서는 "OPEC은 집단으로 결정하는 기구로, 개별주의는 없다"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습니다. 또 "OPEC은 정치화되지 않으려 한다"라며 "OPEC 회의에 올 때는 여권을 집에 놔두고 오라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합>
☞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 "이란은 국익 위해 OPEC에 가입... 다른 회원국이 이란을 위협하거나 국익에 해가 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

9.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우리 정유공장의 기술은 여러 나라의 원유에 적합하지 않다"면서 "이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단기간에 다른 나라 원유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중국도 "이란과 협력하는 것은 국제법 틀 안에서 이뤄지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이라며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 로이터 "한국, 인도, 일본 등은 미국 조치 수용"

10.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자들이 향후 10년 간의 이스라엘 원조계획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다고 디펜스뉴스가 보도했습니다. 네타냐후는 방위원조 예산을 50% 늘려 2018~2028년 기간 420억~450억 달러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결정한 2007~2017년 총 지원액은 300억 달러였습니다. <The Times of Israel>

11. 미국 매체 '더네이션'의 탐사보도 기자 팀 셔록은 스페인 주재 북 대사관 습격 사건 전반을 다룬 기사에서 "스페인 경찰과 정보기관 당국자들은 에이드리언 홍 창이 스페인에서 CIA 당국자들과 만났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당국이 확보한 증거에 사진과 통신기록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합>

한편 미 연방 검찰은 기소장에서 홍 창이 지난 2월 22일 오후 5시쯤 대형 칼과 방어용 스프레이, 가짜 총기 등을 소지한 6명의 용의자와 함께 북 대사관에 침입했으며, 외교관 3명을 포박하고 소윤석 상무관을 폭행한 뒤 화장실로 데리고 가 손을 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용의자들은 소윤석 상무관에게 탈북을 설득했지만, 소 상무관은 "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이후 용의자들은 펜 드라이브, 컴퓨터, 폐쇄회로 영상이 포함된 하드 드라이브와 핸드폰을 탈취해 밤 9시 40분쯤 도주했습니다. 미국에 입국한 홍 창은 FBI 관계자와 만나 습격 사실을 시인했고, 대사관에서 압수한 물품을 건넸습니다. <통일뉴스>

12. KAL858기 추락 현장을 탐사 중인 신성국 신부는 1990년 미얀마 해양관리청에서 한국 정부에 KAL858기 동체가 나왔다고 연락해 한국 대사관에서 두 명이 나와 동체를 확인하더니 "KAL858기 부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라고 눈으로만 판명하고 끝냈다고 밝혔습니다. 미얀마 바닷가에 방치된 동체들은 결국 태국의 고물상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동안 국토부와 국정원, 외교부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사실을 은폐하고 재수색 문제는 회피하며 사건의 진실을 조직적으로 덮어 직무유기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금년 내 KAL기 동체의 직접 수색을 예고했습니다.

13. 우리민족끼리는 최근 평택 미군기지에서 실시된 사드 모의탄 장착 훈련을 언급, "어렵게 조성된 조선반도의 평화분위기를 깨는 군사적 도발"이며, 북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 공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 정부를 향해서도 "미국의 무모한 적대행위에 추종하다가는 좋지 못한 결과밖에 차례질 것이 없다"면서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미국은 남조선당국에 '속도조절'을 노골적으로 강박하고 있으며 북남합의 이행을 저들의 대조선 제재압박 정책에 복종시키려 각방으로 책동하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춰야 하며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연합>
☞ 조선의 오늘 "남측 군 당국, 북남관계를 판문전선언 발표 이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어" 
☞ 던퍼드 미 합참의장 "우리는 (한미연합)훈련을 종료하지 않았다. 훈련 범위를 조정... '오늘 밤 싸울' 준비태세 계속"
☞ 남북연락사무소 소장회의 10주째 불발

14.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이) 그 무슨 '해상차단 활동', '국제적 압박공조', '납치문제 해결'을 떠들며 부산을 떨어대는 것도 평화 대세의 도래로 말미암아 '알몸'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저들의 군사 대국화 기도를 가리려는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며 "묻건대 가랑잎으로 알몸뚱이를 가릴 수 있는가"라며 일본을 조소했습니다. <자주시보>
☞ 아베 "조건 붙이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15. 시리아를 방문한 박명국 북 외무성 부상은 "우리는 시리아의 역내 재건을 돕는 데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린 항상 시리아와 같은 편에 서 있고, 시리아의 입장을 지지한다"며 "최근 서방 강대국의 폭력에 맞서 시리아군이 실현한 업적과 시리아 국민의 한결같은 모습을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스1>
☞ 조선중앙통신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북 방문 의사 전해"

□ 2017년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금지된 인도주의 연관 품목들 <민중의소리>
- 농업용 손도구들(삽, 호미, 가래 등), 농업, 원예, 혹은 삼림 기계용 칼날, 농산품 건조기, 농업용 분사기, 관개용 장비, 쟁기, 씨뿌리기 삽, 수확기와 탈곡기, 과일쥬스용 압착기와 분쇄기, 갖가지 농기구들, 곡식과 콩을 세척하고 분류하는 기계
- 식량과 음료를 개인이 가공하기 위한 기계들
- 트랙터와 트랙터 부품들, 농업용 트레일러, 농업용 차량과 카트
- 조립식 온실, 축사
- 손톱깎이, 의료용 소독기, 휴대용 스프레이, 소독용 자외선 램프
- 앰뷸런스, 장애인을 위한 이동장비
- 초음파장비, 심전도기, 피하주사기, 바늘, 카데터, 치과와 안과용 장비 등 의료장비들
- 인공호흡기와 같은 기계적 치료 장비들
- 장애인을 위한 정형외과 장비들, 엑스 레이 장비
- 의료용, 수술용, 치과용, 혹은 수의과용 가구(수술대, 병원용 침대)
- 금속 물탱크, 가정의 물 공급을 위한 펌프를 포함한 액체용 펌프
- 온수기, 정수기, 우물을 파기 위한 기계
- 금속관, 파이프, 파이프 연결장치
- 지붕공사용 자재, 외장재, 바닥재, 지붕 배수 장비
- 나사, 볼트, 못, 스테이플 등
- 난로, 화덕, 쇠살대, 레인지, 바베큐 시설 등
- 철, 강철, 혹은 알루미늄 철사, 알루미늄 호일
- 냉장, 냉동 장비, 발전기, 변압기, 인덕터, 배터리
- 원심분리기와 원심 건조기
- 전자장비(스위치, 계전기, 퓨즈, 순간고전압방지기)
- 태양전지판, 절연선, 절연케이블, 현미경
- 다양한 사무용품들(프린터, 프린터 카트리지, 플래시 드라이브, 바코드 스캐너, 스테이플러, 가위, 바인더, 종이클립 등)

[단신]
• 비건 8∼10일 방한할 듯…'워킹그룹 회의' 800만 달러 대북지원 등 협의 관측
• 김연철, 개성공단 기업인과 오찬…"앞으로 긴밀 소통"
• 6.15남측위 등 715개 단체, '4.27 민의 평화선언' 청와대와 미대사관에 전달
• 강제동원 피해자들, 전범기업 국내 재산 '강제몰수' 절차 돌입…일 정부 강력 반발
• 민변 "투자자-국가소송 첫 패소 판정문 비공개 약정 있었다"

• 북 자체 개발 스마트폰 '푸른하늘' 호평...'아리랑', '평양', '진달래' 브랜드도 대량 생산... 청년과학자들로 구성된 강력한 연구집단이 국산화 실현 
• 김영재 대외경제상 ""제재를 백 년 천 년 하려면 하라... 신경 쓰지 않는다"
• 미 국무부 "제재 이행이 적법한 대북 인도지원 방해해선 안 돼"
• 미 구호단체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CFK) 재방북...미 정부, 방북 승인 속도 빨라져
• 국제당뇨연맹 관계자들 방북…치료약·의료장비 전달
• 러, WFP 통해 400만 달러 대북 지원
• 폼페오, 최선희 제1부상의 거듭된 경고에 "위협 제거 시작하는 비핵화"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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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대일로, 126개국 이상 지지하는 국제 공동체의 새 얼굴, G20보다 크고 다원화... 중러 실크로드 구상, 유라시아를 대규모 자유무역지대로 전환 <Russian Insider>
• 일 국민 64% "평화헌법 바꾸지 말아야"...아베정권 개헌 반대 52%
•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 "성경에 쓰여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점령 권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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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징계’ 답변 피한 황교안, 도망치듯 끝난 30분짜리 광주행

황교안 “지역 간 갈등 있던 시대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나라 돼야”

광주 = 김도희 기자
발행 2019-05-03 17:47:38
수정 2019-05-03 23: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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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은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은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부당성을 알리겠다며 광주를 찾았지만, 쇄도하는 시민들의 분노만 맞닥뜨린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황 대표는 이날 광주 일정 내내 눈물과 고성, 생수와 찢어진 피켓 등이 동원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자유한국당은 황 대표 취임 이후 지난달부터 광화문 집회, 전국 순회 투쟁 등 장외 일정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껏 진행된 장외 일정 중 지지자보다 비(非)지지자가 더 많이 몰렸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단체 등이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2019.05.03
5·18 단체 등이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광주시민 분노만 키운 황교안 방문,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

황 대표에 대한 광주의 감정은 싸늘함과 분노로만 표출됐다. 광주진보연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오월어머니회,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등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황 대표가 도착하기 30분 전인 오전 10시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100여 명의 광주시민이 함께했다.

시민단체는 광주 송정역 앞에 모여 피켓을 들고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들은 ‘5·18 역사 왜곡, 적폐 몸통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1700만 촛불, 170만 청원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세월호 7시간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국정농단 이석기 내란 음모 조작 황교안은 감옥으로’, ‘황교안은 박근혜다. 광주를 당장 떠나라’ 등의 문구를 내걸고 자유한국당 해체와 황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는 황 대표 도착에 앞서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에 대한 광주시민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라고 강조하며 “자유한국당과 황교안에 대한 광주의 마음을 똑똑히 보여주자”고 결의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광장 중앙에서 정부 규탄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항의를 의식해 변두리로 장소를 옮겨 일정을 진행했다. 황 대표 도착 직전 일부 당원들이 ‘문재인 STOP! 광주·전남 시·도민이 심판합니다!’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며 집회 시작을 예고했다. 이에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는 시민들의 반발도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자유한국당 일부 당원은 “남의 당 대표 행사에 와서 감히 건방지게 뭐 하는 거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황 대표의 등장과 함께 긴장감은 더해졌다. 시민들은 각자 준비한 피켓을 들고 일제히 자유한국당 집회 현장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황교안은 물러가라”,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구호가 울려 퍼졌고, 광장 한쪽에서는 시민단체가 준비한 차량 스피커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흘러나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이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이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이에 질세라 황 대표의 주변에 나란히 선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원들은 ‘경제 파탄 문재인 STOP’, ‘지역구의원 줄이는 선거제 반대’, ‘민주주의 파괴하는 공수처 반대’, ‘사법부 장악 공수처 반대’ 등 피켓을 들어 보였다.

황 대표는 가장 먼저 모두발언에 나섰다. 그는 “자유한국당 당원 여러분”을 부르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즉각적인 반감을 보인 시민단체들이 더욱 크게 “황교안은 물러가라”고 항의했다.

이에 황 대표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을 들으시라”고 말했다. 그는 몇 차례 발언을 이어가려 했지만,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 더 이상 발언 진행은 어려웠다. 결국 황 대표는 마이크를 조경태 최고위원에게 넘겼다.

조 최고위원, 신보라 청년최고위원을 거쳐 황 대표는 마지막으로 다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광주 전남의 애국시민 여러분께서 피 흘려 헌신하신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말로 할 수 없으니 장외로 나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황 대표는 “저희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시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저희를 믿어달라. 경제 살리는 당은 자유한국당밖에 없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광주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황 대표의 메시지는 광주시민들의 울분 섞인 목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전달되지도 못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가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황 대표 길을 막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가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황 대표 길을 막고 있다.ⓒ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한 뒤 5·18 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역무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한 뒤 5·18 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역무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2019.05.03ⓒ뉴시스

광주시민 질문에 아무 답도 않은 황교안, 역무실로 피신한 뒤 시민단체 눈 피해 전주행

도착부터 규탄대회 진행까지 20여 분만에 일정을 마친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 일행과 함께 급히 역 안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황 대표로부터 ‘왜 광주에 왔는지’, ‘5·18 망언에 대한 사과는 없는지’ 등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광주시민들은 황 대표의 이동을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일부 시민들은 황 대표를 향해 생수병에 든 물을 뿌리기도 했다.

황 대표는 시민들에 둘러싸여 수 분간 옴짝달싹 못 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다 오르기까지 10여 분이 걸렸다.

황 대표는 우산까지 펼쳐 든 경찰들의 보호 속에서 어렵사리 송정역 역무실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한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역무실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5·18 희생자 유가족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우리가 국회 앞에서 87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우리말 좀 전하고 싶다”, “몇 마디만 하려 한다”며 황 대표와의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황 대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 대표는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단체와 취재기자들의 눈을 피해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그는 전주행 열차를 타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광주시민들한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지역 간의 갈등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나라가 돼야 한다”며 “단일 민족인 한나라가 나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민 여러분께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자유한국당 ‘5·18 망언’ 의원들의 징계와 관련된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남기지 않은 채 열차에 탑승했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40대 광주시민 A 씨는 “진상규명은 하나도 안 해주고 와서 얼굴만 비추고 가면 뭐하냐”며 “광주를 어질러놓고만 갔다”고 날을 세웠다.

70대 광주시민 B 씨는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패스트트랙을 해서 반대 운동을 한다고 온 모양인데, 전라도 사람들은 와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4당이 국회에 돌아오라는데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B 씨는 “질 것 같으니 안 들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볼 때 자유한국당은 정치를 잘못한 걸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아마 자유한국당 당원들 빼고는 마음이 다 비슷할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은 많이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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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채이는게 기자들이더니 이젠 아무도 안 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5/04 09:26
  • 수정일
    2019/05/04 09: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고성·속초 산불 한 달] 마지막 남은 대피소 가보니... "벌써 잊혀질까 두렵다"

19.05.03 22:40l최종 업데이트 19.05.03 23:09l

 

"시집 와서 60년 동안 맨들어 논 살림살이 눈 깜빡 할 사이에 다 태웠는데 그날을 어떻게 잊어? 농사꾼들인데 기계도 다 탔잖아. 모 심는 기계, 벼 베는 기계, 벼 말리는 기계... 얼른 감자도 숨고 옥수수도 숨어야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우. 이젠 테레비에 여기 불 난 얘긴 나오지도 않잖아? 한달 지나니까나 정치인이란 놈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고성군 용촌리의 산불 이재민 변아무개(76·여)씨가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지난달 4일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 이후 한 달. 변씨를 비롯한 고성 이재민 959명, 속초 이재민 173명은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남겨진 사람들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 이곳은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대피소다. 이재민 30명이 아직 여기에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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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위치한 이재민 대피소를 찾았다. 대피소 본부 격으로 한때 120명 넘는 이재민을 수용했던 이곳엔 현재 16개 텐트, 30명의 이재민만 남아있다. 각종 부식차, 그리고 기업이나 종교 단체에서 차려놓은 구호 부스들과 수십명의 자원봉사자로 붐볐던 체육관 앞은 이제 밥차와 세탁차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불 대응 초기 운영되던 3개 대피소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피소는 천진초 체육관이 유일하다.

고성군 관계자는 "이재민들이 생활하기 더 편한 연수원이나 콘도 쪽으로 대부분 인원을 이동시켰다"면서 "마지막 남은 천진초 대피소엔 주로 고령이라 콘도 생활을 불편해 하는 분들, 또는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데 차량이 없어 이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남아 계신다"고 설명했다. 고성군에 따르면 고성 이재민 959명 중 607명은 연수원과 콘도, 109명은 마을회관, 213명은 친인척이나 지인 집, 그리고 30명은 천진초 대피소에서 임시 숙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변아무개(76)씨는 "이쪽이 그나마 집에서 가깝고 버스가 많이 다닌다, 집은 다 탔지만 집터도 살피고 밭에도 왔다 갔다 해야 하지 않나"라며 "콘도가 편하다지만 우리 같이 차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갈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변씨는 "여기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나처럼 집이 전소된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천진초 대피소에 남아있는 이재민들은 인근 봉포리, 용촌리, 인흥리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천진초 체육관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천진초 체육관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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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지만 이곳 이재민들에게 그날의 기억은 아직 생생한 듯 했다. 누군가 얘길 시작하자 한 명 한 명 핸드폰을 꺼내 전소된 집터 사진을 내보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저녁 먹고 이렇게 혼자 누워 자고 있는데, 글쎄 동네 집사님이 '불이야!'하고 난리가 난 거야. 놀래서 자다가 그냥 튀어나왔지. 다음날 일 나가려고 옷하고 모자하고 방문 앞에다가 미리 준비해놨었거든. 손에 잡히는 대로 그것만 들고 이렇게 내복 바람으로 나온 거야. 너무 무서웠지.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이리로 휙, 저리로 휙, 그런 도깨비불이 없었다니까. 나오니까 벌써 집 앞에 불똥이 튀어가지고... 그냥 자고 있었으면 그대로 죽을 뻔 했지."

대피소 텐트에서 홀로 생활하는 김순분(81·여)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가슴을 쓸었다. 김씨 집은 결국 전소됐다고 했다. 최영자(65·여)씨도 "집이 다 타고 나니 생전 없었던 몽유병까지 생겼다"라며 "얼마 전엔 내가 새벽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뭘 막 뒤지더니 '우리 집에 불났어'하고 소리를 지른다고 남편이 그러더라, 시간이 좀 지났지만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시뻘겋게 타던 불이 머릿속에 계속 클로즈업 된다"고 호소했다.

이들 집처럼 완전히 불에 타버린 주택은 고성에만 353동에 이른다. 반소된 주택은 56동, 일부분만 탄 주택은 72동으로, 전체 481동의 주택이 산불 피해를 입었다. 속초는 총 84동의 주택이 피해를 봤다.

감기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 산불 이재민 김장호씨(65)가 마스크를 쓴 채 불이 나던 당시 상황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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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을 하니까 추운 건 아닌데,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그런지 밤에 잘 때가 되면 여기서 콜록, 저기서 콜록, 다들 감기 때문에 아주 고생들이야." (서아무개, 73세, 여)

"그래도 그나마 지금은 날이 풀려서 훨씬 낫지. 처음에는 날씨가 추워가지고 힘들었수. 늙으면 더 추워. 고맙게도 여기서 약도 주고 해서 맨날 먹고 있는데... 글쎄 한 달이 지났는데 감기가 낫질 않어. 늙은이가 맨날 약 타 먹는 것도 미안하고. 아이쿠..." (함상애, 80세, 여)


천진초 이재민들은 유행하는 감기와 기침 때문에 곤혹이라고 했다. 서아무개(73)씨는 "밥도 제때 주고 잠자리도 마련해줘서 크게 불편한 건 없지만, 불이 나서 경황이 없고 공동생활이 길어지니 아무래도 스트레스도 받고 몸이 약해지지 않겠나"라며 "한번씩 감기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피소 내부에선 마스크를 쓴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노점순(57·여)씨는 "공기가 너무 안 좋아 아침 저녁으로 코피도 나고 감기가 안 떨어진다, 중학생인 딸도 독감에 걸려 병원에 5일간 입원했다"라며 "공기청정기라도 하나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크 차림의 지아무개(15·여)씨는 "5월이지만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침엔 아직 춥다"라며 "얼른 집이 복구돼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씨는 천진초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유일한 학생이다.

더 큰 불안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한때 120명이 넘었던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들은 주변 연수원과 콘도로 대부분 떠났다. 현재 천진초에 남은 텐트는 16개. 이곳 이재민들은 인원이 줄자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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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초 이재민들은 감기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점차 관심이 사라져가는 데에 대한 불안"이다.

"처음엔 여기서 아주 발에 채이는 게 기자들이었어. 자꾸 들이대니까 불편하고 싫었지. 근데 지금 봐. 아무도 없잖아, 아무도. 그냥 그때만 딱 '빤짝' 하고 끝인 거야. 이제 우리 얘긴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자꾸 밀리고 잊혀지고... 근데 지금까지 뭐 된 게 있나?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데, 아이고 참. 지금 어떻게 되고 있다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또 처음에는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안 온 사람이 없어 여기. 근데 지금 봐. 며칠 지났다고 오지도 안잖아." (김준환, 61세, 남)

"뉴스 좀 봐봐. 아니 한국당 놈들 싸우는 거만 대문짝만하게 나오지 지금 '불재민'들이 이렇게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하나도 안 나오잖아." (지병소, 63세, 남)

"소외된달까? 아무래도 그런 불안이 있죠. 아직 보상도 다 안 됐는데 벌써 잊혀지는 것 같고... 한전이랑 싸워야 한다는데 관심도 못 받으니... 예전에 여기 대피소에 사람들이 많았을 적에는 높은 사람들도 오고 관심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신경도 안 쓰잖아요. 안 쓰는 텐트도 다 철거해 가고, 괜히 사람들 불안하게... 며칠 전에도 대통령이 왔다 갔는데 여긴 안 들르고 다른 데만 둘러보고 갔잖아요. 그런 게 서운하죠... 다들 사정이 있어서 여기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한연옥, 65세, 여)


이재민들은 피해 복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점차 잊혀지는 게 두렵다고 했다. "대피소에 많이 모여 있으면 관리하기도 힘들고 기사도 많이 나갈 테니까 정부에서 일부러 연수원이나 콘도로 분산시킨 것 같다"는 이재민들도 있었다.

지병소씨는 "긴급 재난 상태라고 언론에 말만 할뿐 긴급한 행동은 없었다"면서 "지금쯤 옥수수를 심었어야 사람들이 많이 놀러오는 여름 바캉스 철에 장사를 할 수가 있는데, 지원이 더뎌 벌써 물 건너 갔다"고 하소연했다. 지씨는 "빨리 추경을 하든 긴급 예산을 투입하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며 "한전이든 정부든 다들 무책임하다, 언론도 처음에만 떠들고 지금은 침묵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백아무개(67·여)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4월 26일 산불 피해 지역 방문을 두고 "이제 천진초엔 사람이 얼마 안 남았으니 오지도 않는 것이냐"라며 "산불 피해 지역 온 것도 DMZ 행사 가는 참에 들른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산불 발생 다음날인 4월 5일 피해 지역 방문 시 천진초 대피소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4월 26일 오전 방문 땐 이곳을 찾지 않고 서울시공무원연수원과 성천리 마을을 방문한 뒤 DMZ '평화의 길' 행사로 떠났다.

4월 5일 방문 때 이곳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했던 함상애(80·여)씨도 "대통령은 왜 한전 사장에게 보상하라고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난달 18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생긴 불티 때문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국과수 발표가 나오면서 한전의 책임론이 부각됐지만, 아직 최종 경찰 수사 발표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다른 소외

지난 4월 30일, 한숨만 짓던 이재민들 얼굴에 잠시 안도와 감사의 표정이 찾아왔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보내온 성금이 배분됐기 때문이다. 집이 전파된 가구의 경우 계좌이체로 3000만원이 지급됐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저기서 "국민들에게 정말 고맙다. 앞길이 막막했는데 당장 굶어 죽진 않을 것 같다",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이렇게 많은 성금이 모인 게 기적 같다", "국가가 해준 게 뭐가 있나. 다 국민들이 해준 것이다"는 등 탄복이 이어졌다.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천진초 대피소의 이재민들이 모여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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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중에 세입자가 나 포함해서 두 명이 있어. 집주인들은 다들 3천만원씩 성금 받았다는데 우린 아직 못 받았어. 답답하지... 혈압이 팍팍 올라가고... 불안하고..." (임아무개, 72세, 여)

그러나 함께 웃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세입자 이재민들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1일 '강원도 산불피해 종합복구계획 당정협의' 발표 때 "이번 피해와 관련 국민성금은 470억원(4.29, 잠정)이 모금되었으며, 전액 피해 주민을 위해 사용한다. 지난 4월 30일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주택 전파 3000만원, 반파 1500만원, 세입자 1000만원 등 주택 피해 복구에 우선 173억원을 긴급 지원했다"고 밝혔지만,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고성군 세입자의 경우에는 아직 1000만원의 모금액이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2일 통화에서 "고성군은 세입자 확인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 속초, 강릉, 동해 등 다른 지역 세입자에게만 먼저 성금을 지급했다"면서 "고성군 세입자도 명단이 확정되는 대로 성금을 배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월 30일엔 속초, 강릉, 동해의 총 31세대 세입자에게 성금이 지급됐다"면서 "아직 집계 중이지만 고성군 세입자 이재민은 110명 이상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세입자 이재민인 임아무개씨는 "아직 성금을 못 받은 것도 못 받은 거지만,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준 걸 이런 식으로 배분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집은 똑같이 탔는데 왜 집 가진 사람과 세 사는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나"라고 했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중 또 다른 세입자인 이아무개(62·남)씨도 "세입자들은 집이 전소돼서 아무것도 없이 목숨 하나 남아있는 건데 국민 성금을 다르게 나눠주는 건 잘못된 것 아니냐"라며 "세입자들은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입자 이재민은 정부의 주택 복구 지원금(전파 1300만원, 반파 650만원)을 받지 못한다. 단,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의 세입자 보조금을 지원 받는다. 2년간 무상으로 지원되는 7.3평짜리 조립식 컨테이너 주택 혹은 2년간 임대아파트 입주(관리비 본인 부담) 중 선택 지원은 세입자에게도 다른 이재민들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 산불 이재민 박병설씨(62)가 불에 탄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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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라는 거야, 그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뭐. 당장 집 지을 형편은 안 되니까,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는 컨테이너 집만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거밖에 없어..."

박병설(62·남)씨가 타들어가는 담배를 털며 말했다. 대피소 내 다른 이재민들 얘기도 비슷했다. 하루 빨리 정부가 약속한 컨테이너 주택이라도 지급돼 일상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고성군 관계자는 5월말이나 6월초께 조립식 주택 지급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대피소 생활이 앞으로도 최소 한 달 정도 더 남았다는 것이었다. 아직 천진초 대피소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 중 위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을 옮긴다.

"68년도 해일 났을 때 이후로 이렇게 심하게 동네가 망가진 건 처음이야. 내가 노가다를 하는데 집 뿐만 아니라 집에 쌓아놓은 자재들도 다 타버렸어. 정부가 원래대로는 못 지어주더라도 살 수는 있게끔만 집 만들어주면 나는 만족해. 내가 살아봐야 20년인데 뭐. 크게 바라는 거 없어..." (김장호, 65세, 남)

"알바 하는 카페에서 어른들이 보상될 거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부모님 걱정 하시지 않게, 다시 집 지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지아무개, 21세, 남)

"돈 있는 사람들이야 다시 살아갈 수 있겠지만은, 우리 같이 보험도 안 들었고 돈도 없는 사람들은 앞길이 깜깜하우." (함아무, 79세, 여)

"나는 콘테이너 말고 임대아파트 지원 신청했어. 5월 중순부터 입주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지금 가서 뭐해? 가전제품이고 뭐고 다 타서 아무것도 없는데. 들어가서 그냥 벽만 보고 있어? 최소한 다시 생활할 수 있게끔은 해줘야 들어가든 말든 할 거 아냐. 내가 혈압이 원래 없었는데 지금 거의 160까지 올라." (이아무개, 62세, 남)

"걱정은 안 해.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살았으니 됐다고 생각해야지..." (김아무개, 68세, 남)

"우리가 불낸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서 너도나도 집을 잃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참... 내가 이런 일 겪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딴 거 없어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게 다죠. 집으로요, 집으로." (왕아무개, 75세, 남)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 산불 이재민 차광주씨가 불에 타 무너진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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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천진초 대피소의 이재민들은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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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2번째 큰 황제펭귄 번식지 붕괴

남극 2번째 큰 황제펭귄 번식지 붕괴

조홍섭 2019. 05. 02
조회수 1010 추천수 0
 
2만여쌍 번식지 3년째 새끼 못 태어나…폭풍으로 해빙 일찍 녹은 탓
 
an1.jpg» 번식지 해빙 위에서 새끼를 기르는 황제펭귄. 헤엄칠 깃털이 나기 전에 해빙이 깨지면 새끼는 모두 익사할 수밖에 없다. 마이클 반 워르트, 미 해양대기국(NOAA) 제공.
 
남극의 겨울이 시작되는 4월 황제펭귄은 강풍에 떠밀려 빙붕 주변에 형성되는 정착빙에 모여 번식한다. 혹한 속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12월까지 새끼가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길러 바다로 데려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황제펭귄 번식지에서 지난 60년 동안 계속된 일이었다. 그러나 남극대륙 북쪽 웨델 해에 위치한 핼리 만의 황제펭귄 번식지는 2016년 새끼를 한 마리도 길러내지 못했다.
 
그해 10∼11월 이례적인 폭풍이 불어 해빙이 너무 일찍 깨졌기 때문이다. 미처 헤엄칠 깃털이 나지 않은 새끼 황제펭귄 수 천마리가 바닷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an2.jpg» 세계 2번째 황제펭귄 서식지였던 핼리만 번식지(지도에 윈디 크리크 ‘Windy Creek’로 표기) 위치. 프레트웰 외 (2019) ‘남극 과학’ 제공.
 
해마다 1만5000∼2만4000 번식 쌍이 모여 ‘기후변화의 피난처’로 기대를 모으던 핼리 만 번식지는 2017∼2018년까지 3년 연속 황제펭귄의 번식에 실패했다. 이런 사실은 영국 남극조사대가 이 번식지를 수년 동안 정밀한 위성사진으로 관측한 결과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펭귄이 흰 눈 위에 남긴 배설물 오염 면적을 800㎞ 상공의 위성으로 관측해 개체수를 추정해 왔다. 피터 프레트웰 영국 남극조사대 연구원 등은 26일 과학저널 ‘남극 과학’에 실린 논문에서 “다른 황제펭귄 번식지에서도 해마다 번식 성공률은 들쭉날쭉하지만 이처럼 장기간 번식 실패가 이어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황제펭귄은 펭귄 가운데 가장 커 키 120㎝, 몸무게 40㎏에 이르며 20년을 산다. 이 펭귄은 얼룩무늬물범의 먹이이지만 다양한 물고기와 크릴을 먹는 중간 포식자로서 남극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an3.jpg» 핼리 만 번식지의 위성사진. 왼쪽 위가 붕괴 전 모습. 지난해 번식기(오른쪽 아래)에 극소수가 돌아왔다. 프레트웰 외 (2019) ‘남극 과학’ 제공.
 
이번에 사라진 핼리만에서는 세계 황제펭귄의 8%가량이 번식해 왔다. 다행히 번식에는 실패했어도 황제펭귄의 상당수는 이웃 번식지로 옮겨간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핼리만에서 55㎞ 남쪽에 있는 도슨-람튼 번식지의 황제펭귄이 평소의 수천 쌍 규모에서 지난해에는 1만4000여 쌍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해리 만 번식 쌍이 모두 이웃 번식지로 옮긴 것은 아니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위성사진을 샅샅이 뒤졌지만 새로운 번식지를 찾지는 못했고, 더 먼 곳의 번식지에 소수가 이동했을지는 모르지만 위성으로 파악은 안 된다”며 “황제펭귄이 번식을 포기하고 몇 년 뒤 다시 핼리 만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남극의 황제펭귄은 금세기 말까지 개체수가 50∼7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황제펭귄이 해빙이 사라지는 재앙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장차 이 종이 어떤 처지에 놓일지 예측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an4.jpg» 황제펭귄의 번식 일정. 4월에 해빙에 오른 뒤 11월까지 새끼를 기른 뒤 12월 바다로 돌아간다. 폭풍으로 10∼11월 해빙이 깨지면 번식은 실패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ter T. Fretwell and Philip N. Tranthan, Emperors on thin ice: three years of breeding failure at Halley Bay, Antarctic Science (2019), doi:10.1017/S095410201900009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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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경향신문 선임 기자 https://leekihwan.khan.kr/

입력 : 2019.05.03 09:23 수정 : 2019.05.03 10:16
 

의열단의 초기멤버 사진. 의백(단장) 김원봉과 곽재기·강세우·김기득·이성우 등 창립 초기 단원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곽재기 의사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를 분석해 확인했다. 1920년 3~5월 사이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租界) 안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을 보면  신분노출을 꺼려 중국식 복장을 한 의백 김원봉 외 단원들은 모두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 있다.

의열단의 초기멤버 사진. 의백(단장) 김원봉과 곽재기·강세우·김기득·이성우 등 창립 초기 단원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곽재기 의사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를 분석해 확인했다. 1920년 3~5월 사이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租界) 안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을 보면 신분노출을 꺼려 중국식 복장을 한 의백 김원봉 외 단원들은 모두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 있다.

 

“내가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 지 몰라.” 약산 김원봉(1898~1958)과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의 악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물론 1차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1900~1987)과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담, 독립운동가 송남헌(1914~2001)의 <해방3년사>, 그리고 이런 자료들을 재구성한 <김원봉 평전>과 각종 논문 등을 종합해보자. 디테일은 어떨지 몰라도 대강의 윤곽은 잡을 수 있다. 1947년 3월 22일 서울 청계천 은신처에서 변소에 앉아있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이 체포됐다, 김원봉 선생이 누구인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의열단 의백(단장)이자, 조선의용대장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였다. 그런 선생이 변소에서 큰 볼일을 보다가 채 뒷정리도 하지 못한채 엉거주춤 고의춤을 잡고 일어선 채로 붙잡히고 말았다. 이쯤으로도 치욕일진대 천하의 김원봉 선생에게 수갑을 채운 자가 바로 악질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이었다. 노덕술은 한술 더떴다.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 의열단을 이끈 이를 단장이 아니라 의백이라 했다. 의형제의 맏형이라는 뜻 이다. 남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유혈투쟁을 벌이겠다는 의미였다.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 의열단을 이끈 이를 단장이 아니라 의백이라 했다. 의형제의 맏형이라는 뜻 이다. 남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유혈투쟁을 벌이겠다는 의미였다.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의열단장 

“의열단이라고 까불지 마라. 지금 이 나라에서는 빨갱이라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아.”

선생이 “의열단이 너같은 친일경찰 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꾸짖자 노덕술은 선생의 따귀를 때리며 참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노덕술은 독립투사를 때려잡는 악질경찰에서 해방 후에는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애국경찰로 둔갑해 있었다. 그렇게 노덕술에게 갖은 수모를 당한 김원봉은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 선생(1900~1987) 앞에서 통곡했단다.

“조국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도 한 번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 있소. 내가 여기서는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 지 몰라.” 

1923년 1월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과 2월의 폭탄반입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호외. 왼쪽 사진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의 21살 사진이다.

1923년 1월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과 2월의 폭탄반입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호외. 왼쪽 사진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의 21살 사진이다.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록에도 당시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가 약산(김원봉)이 왜정 때부터 악명이 높았던 노덕술로부터 모욕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분개했던 일이 기억난다. …의열단의 의백(義伯·의형제의 큰형님)이었고… 임시정부의 국무위원겸 군무부장을 지낸 사람이 악질 왜경 출신자로부터 조사를 받고 모욕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민족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분개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아무래도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정화 선생은 “그런 약산이 얼마 후(1948년 4월) 월북했다”고 첨언했다. 노덕술과의 악연은 왜 김원봉 선생이 월북했는지를 그 이유를 알려주는 실마리가 된다. 

황푸군관학교 옛 정문. 김원봉 선생은 1926년 의열단원 20여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즉 국공합작으로 창설 운영되던 황푸 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교한다. 코민테른이 파견한 소련 군사고문단도 학교운영에 참여했다. 6개월간 교육받고 10월5일 졸업한 선생의 황푸군관학교 이력은 항일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황푸군관학교 옛 정문. 김원봉 선생은 1926년 의열단원 20여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즉 국공합작으로 창설 운영되던 황푸 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교한다. 코민테른이 파견한 소련 군사고문단도 학교운영에 참여했다. 6개월간 교육받고 10월5일 졸업한 선생의 황푸군관학교 이력은 항일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열단의 맏형, ‘의열단 의백’ 김원봉 

김원봉 선생이 누구인가. 1920년대 이후 김구 선생과 함께 중국내 독립운동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선생의 이름은 12개나 된다. 김약산, 최림, 진국빈, 이충, 김세량, 왕세덕, 암일, 왕석, 윤봉, 김국빈, 진충, 김약삼 등이다. 그만큼 천의 얼굴로 신출귀몰 일제와 싸웠다는 뜻이다. 1918년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폭력투쟁만이 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굳혔다.
 

1919년 11월9일 김원봉을 비롯한 조선의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청년 13명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바후먼(把虎門) 밖의 농가에 모였다. 밤새워 행동강령을 토론한 청년들은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했다. 의열단의 공약 제1조가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것이었다. 의열단은 ‘7가살(可殺)’, 즉 암살대상으로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장성, 대만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적 양반·지주 등을 꼽았다. 또 ‘5파괴’, 즉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각 경찰서·기타 왜적의 중요기관 등을 파괴대상으로 선정했다. 

동아일보 1924년 4월25일자. 김지섭 의사의 도쿄 일왕 거주지 입구의 니주바시(二重橋) 폭탄투척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동아일보 1924년 4월25일자. 김지섭 의사의 도쿄 일왕 거주지 입구의 니주바시(二重橋) 폭탄투척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비뽑기로 거사의 주인공을 결정하다 

김원봉은 의열단의 ‘의백(義伯)’으로 추대됐다. ‘의백’은 한마디로 의형제의 맏형을 뜻한다. 즉 남이지만 피의 맹세로 의형제의 결연을 다졌음을 의미한다. 의열단의 파괴·암살 폭력투쟁은 1920년 3월부터 본격 개시됐다. 

즉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1920년 9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12월),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투척(1921년 9월), 김익상·오성륜·이종암 등의 일본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저격미수(1922년 3월),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후 교전(1923년 1월), 황옥·김시현의 폭탄반입사건(2월), 김지섭의 도쿄 일왕 거주지 입구의 니주바시(二重橋) 폭탄투척(1924년 1월), 베이징에서 일제 밀정 김단하 암살(1925년 3월),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및 식산은행 폭탄투척(1926년 12월)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사건에 가담한 의열단원들은 극적으로 탈옥한 이(오성륜)도 있었지만 끝까지 싸우다 자결한 이(박재혁·김상옥·나석주)들도 있었고, 일제경찰에 게 암살당한 이(김익상)도 있었으며 옥사(김지섭)하거나 사형당한 이(최수봉)도 있었다. 

거사참여는 곧 죽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의열단원들은 서로 “내가 먼저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나중에는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은 셈이다.

김원봉 선생은 동지 박문호의 누이이자 여성혁명가인 박차정 선생과 혼인했다. 박차정 선생은 조선의용대 시찰에 나섰다가 적탄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박차정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김원봉 선생은 동지 박문호의 누이이자 여성혁명가인 박차정 선생과 혼인했다. 박차정 선생은 조선의용대 시찰에 나섰다가 적탄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박차정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멋진 친구들 

김산의 전기인 <아리랑>을 쓴 님 웨일스(1907~1997)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멋진 스포츠형의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다. 어떤 경우에도 결벽스러울 정도로 아주 깨끗하게 차려입었다.” 

일제와 친일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 외무대신은 “김원봉을 체포하면 즉각 나가사키(長岐) 형무소로 이송할 것이며, 소요경비는 외무성이 직접 지출한다”는 요지의 훈령을 상하이 총영사관에 하달하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웃지못할 해프닝이 터졌다. 강도들이 재물을 빼앗으면서 ‘난 의열단원인데 군자금으로 가져가니 그리 알라’고 엄포를 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충청도에서는 경찰이 좀도둑을 잡아놨더니 좀도둑이 ‘내가 의열단이다’라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순경들이 놀라 도망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923년 8월30일 미국 정보기관의 첩보를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일본 상하이 총영사의 첩보는 “의열단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됐다”고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의 학맥이 된 국공 합작의 황푸군관학교 

선생은 1926년 의열단원 20여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즉 국공합작으로 창설 운영되던 황푸 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교한다. 코민테른이 파견한 소련 군사고문단도 학교운영에 참여했다. 6개월간 교육받고 10월5일 졸업한 선생의 황푸군관학교 이력은 항일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한일운동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지원세력을 중국 군대와 정부 내에 구축할 수 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을 막론하고 두터운 학맥을 쌓은 것이다. 이 학교 교장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주석이었고, 정치부 주임은 공산당의 저우언라이(周恩來)였다. 황푸군관학교 출신들은 국공 합작이 깨진 뒤에도 중국 국민당 국민정부에서 장제스 주석의 친위대 역할을 했다. 저우언라이(정치부 주임)와, 선생의 동기생(4기)인 린뱌오(林彪) 등도 공산당의 핵심인물이 됐다.

김원봉 선생의 가족들. 망건을 쓰고 있는 노인인 부친 김주익이다. 선생의 가족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거의 모두 처형됐다.

김원봉 선생의 가족들. 망건을 쓰고 있는 노인인 부친 김주익이다. 선생의 가족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거의 모두 처형됐다.

■골수 보수우익단체의 재정지원까지 받다 

선생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인 안광천(1897~?)의 영향을 받아 1930년 4월 레닌주의 정치학교를 개설했다. 또 공산당 재건동맹에 참여했다. 이때가 선생의 항일투쟁사에서 가장 좌경화 했던 때였다.

그러나 선생의 ‘왼쪽 투쟁’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일본이 1931년 9월 만주를 침략 점령하고 괴뢰국을 세우자(1932년 3월) 선생은 이때야말로 일제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제휴해서 과감한 항일투쟁을 전개할 때라고 여겼다. 선생은 1932년 봄 중국 국민정부가 있는 난징(南京)으로 떠났다. 여기서 학맥을 찾았다. 황푸군관학교 동창생들을 찾아다니며 의열단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선생이 접촉한 조직은 국민당 정부의 ‘삼민주의 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 였다. 남색옷을 입는다고 ‘남의사(藍衣社)’라고도 했던 이 조직은 중국 국민당 산하의 파시즘 비밀조직이었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황푸군관학교 출신 20여명이 구성했는데, 공산당을 탄압하고 당 내부의 반대파를 제거하고 숙청하는 우익조직이었다. 

마침내 남의사의 지원이 결정됐다. 중국의 국민당 정부는 난징 교외의 장잉진(江寧鎭) 탕산(湯山)의 사찰에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김원봉 선생은 그곳에 지도급 독립투사들을 길러낼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열었다. 2년 뒤인 1934년 4월에는 임시정부 지도자인 김구 선생이 학교를 방문해서 ‘조선혁명을 위해 최후까지 분투해 줄 것’을 격려했다. 김구 선생은 학생들에게 만년필 한 자루씩을 선물했다. 졸업생 중에는 항일민족시인 이육사 선생(1905~1944)이 끼어 있다. 학교는 1932년 10~35년 9월까지 3년간 125명의 독립군 간부와 전사를 키워냈다.. 
 

■실용주의적 좌파 민족주의자 

이 대목에서 살펴 볼 것이 있다. 우파로부터 조선공산당 재건동맹 참여와 레닌주의 정치학교 운영으로 골수 공산주의자 소리를 듣고 있는 김원봉 선생이 아닌가. 그런 선생이 이젠 공산당을 탄압한 국민당 정부, 그것도 모자라 백색테러단체인 남의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선생은 그 때문에 좌파로부터도 배반·변절자로 손가락질 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원봉 선생은 본디 어떤 사람인가. 

훗날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분대장이었던 김학철(1916~2001)의 회고담은 선생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장제스를 암살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청하자 김원봉 선생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938년 10월10일 조선의용대 창립 기념사진. 맨 앞줄 휘장 가운데가 김원봉 대장이다.

1938년 10월10일 조선의용대 창립 기념사진. 맨 앞줄 휘장 가운데가 김원봉 대장이다.

“장개석(장제스)이를 해치우는 것은 우리의 급선무가 아닙니다. 그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지만 지금 그 자의 속셈은 우리를 이용해보자는 거요. 우리도 그 자와 맞장기를 두어 안될게 뭐 있소? 일제를 타도하려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이면 어떤 거나 다 이용해야 하지 않겠소.”

김원봉 선생이 실용주의적 사고를 둔 민족주의자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니라는 얘기다. 항일투쟁을 위해서는 어떤 단체나 국가와도 연대한다는 유연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김원봉 선생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였다’라는 설명이 맞겠다. 더 정의하자면 김구 선생이 민족주의 우파세력의 지도자라면 김원봉은 좌파세력의 한 축을 이룬 지도자라 할까. 

중국 산시성 쭤취안현 윈터우디촌 마을 입구 절 문 정면에 적힌 조선의용대의 항일선전문구. ‘강제병 끌려나온 동포들 팔노군이있는 곧마당(곳마다) 조선의용군이있으니 총을 하랄노(하늘로) 향하여 쏘시요!’라 했다.  중국군 산하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의용대는 주로 후방에서 일본군의 귀순종용 업무 등을 맡았다.

중국 산시성 쭤취안현 윈터우디촌 마을 입구 절 문 정면에 적힌 조선의용대의 항일선전문구. ‘강제병 끌려나온 동포들 팔노군이있는 곧마당(곳마다) 조선의용군이있으니 총을 하랄노(하늘로) 향하여 쏘시요!’라 했다. 중국군 산하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의용대는 주로 후방에서 일본군의 귀순종용 업무 등을 맡았다.

■우리 군대, 조선의용대의 창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다급해진 장제스 중국군사위원회 위원장은 한·중 항일 연합 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김원봉 선생은 ‘옳다구나’ 했다. 선생은 예의 ‘학맥의 자양분’이었던 황푸 군관학교 출신의 중국 유력인사들을 만나 조선인 부대, 즉 조선의용대 결성안을 추인받는다.

중국은 마침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제2차 국·공 합작을 이룬 때였다. 중국은 군사위원회 정치부에서 이 부대를 관할한다는 조건으로 창설을 승인했다. 마침내 1938년 10월10일 우한(武漢) 한커우(漢口) 중화기독청년회관에서 역사적인 결성식이 열렸다. 조선의용대 창설 소식이 미국의 각 신문에 보도되자 재미교포들이 자진해서 의용대 후원회에 지원했다. 총대장은 김원봉 선생이 맡았다. 비록 남의 땅이고, 200여명의 소수인원이었지만 나라가 망한 후 국제정규전에서 독립군이 직접 참전한 것은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조선의용대는 1940년대 중국 관내에서 한인의 양대군사조직이던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의 창설 및 발전을 선도했다.

김원봉 선생은 1942년 민족혁명당을 이끌고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선생과 조선의용대원 일부는 1942년 7월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됐다. 2년 뒤인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등과 연립정부를 건립하는데 이때 민족혁명당의 김규식은 임정 부주석으로, 김원봉 선생은 임정 군무부장에 추대됐다.

환국하기에 앞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포즈를 취한 김원봉 선생(딧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키 큰 분). 앞줄 오른쪽 두번째부터 신익희, 조소앙, 김규식, 김구, 이시영 선생.

환국하기에 앞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포즈를 취한 김원봉 선생(딧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키 큰 분). 앞줄 오른쪽 두번째부터 신익희, 조소앙, 김규식, 김구, 이시영 선생.

■좌우익 화해를 필사적으로 주도한… 

해방 이후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한사람으로 환국한 선생은 일관되게 주요 정치세력들의 연대를 적극 추진했다. 이른바 좌우합작을 향한 의지였다. 하지만 1946년 1월 열린 임시정부의 비상국민회의 주비회가 우익 편향으로 기울자 김원봉 선생 같은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설자리를 잃었다. 선생은 결국 비상국민회의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1942년 충칭(重慶)에서 성립된 임시정부를 매개로 한 다양한 단체의 협동전선은 붕괴됐다. 미군정에서 정보를 담당하고 군정청의 공식 전사편수관이었던 리처드 로빈슨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1946년 2월1일 즈음 김구의 임시정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진보적 분자들이 떠났다. 김규식과 김원봉이 김구의 지도권을 벗어나 그들의 당파를 구성하여 주도했다.”(리처드 로빈슨의 <미국의 배반>) 

그러나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해방정국이 어떤 때인가. 우익과 좌익, 남한과 북한, 미국과 소련 등 대결구도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이분법 진영논리가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우경화한 임시정부에서 벗어난 좌파 민족주의자는 왼편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좁았다. 

“김원봉은 우익과 좌익 사이에서 화해를 주선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하자…확실히 한 개인에 대한 위협은 그를 공산주의 노선에 있도록 했다.”(리처드 로빈슨)

1947년 3월22일 김원봉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는 경향신문 25일자. 이때 선생은 미군정청 수사과장으로 변신한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1947년 3월22일 김원봉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는 경향신문 25일자. 이때 선생은 미군정청 수사과장으로 변신한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와 위험한 동거 

임정을 탈퇴한 임정 군무부장이자 광복군 부사령 출신의 좌파 민족주의자는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민주주의 민족전선(민전) 결성에 합류했다. 드디어 공산주의자들와 위험한 동거생활을 했다.

하지만 선생은 민전 내에서도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생존의 길을 도모하고자 했다. 선생은 민전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는 독선이 아니며…남북일체를 규합하여 속히 임시국회를 열어 강력한 우리의 통일정부를 수립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원봉은…공산당에 가입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와 여운형은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중도파였기에 공산당의 고질적인 전체주의와 소련의 권위를 거부했다.…김원봉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 기꺼워 하지는 않았지만 별 도리 없었다.”(리처드 로빈슨)

1947년 1월25일 자유신문 기사.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 기록영상물이 상영되는 순간 우익잔체 청년들이 몰려와 해설자를 구타하고 필름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1947년 1월25일 자유신문 기사.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 기록영상물이 상영되는 순간 우익잔체 청년들이 몰려와 해설자를 구타하고 필름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만삭의 부인 앞에서 붙잡힌 선생 

그러나 미군정이 박헌영·이강국 등 조선공상당 간부들에 대한 검거령을 내리면서 김원봉 선생 등도 ‘민전’의 지도자라는 이유로 도매금으로 넘겼다. 경남 통영극장에서는 조선의용대 기록영화가 백색테러를 당했다. 

“1월16일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장군의 대일 실전 조선의용대 기록영화를 상영하던 중 광복청년단원 20여명이 영화관을 습격해서 해설중이던 황용암씨를 무수히 난타한 뒤 통영경찰서에 인도했다. 경찰은 황씨를 4일간 구금했다. 이 영화는 공보부의 검열을 받고 정식으로 허가받아 상영했는데….”(1947년 1월25일 자유신문) 

김원봉 선생은 1946년의 총파업과 10월 대구 항쟁, 그리고 남로당 결성 등을 거치면서 미군정 반공정책의 속죄양이 되어 탄압받았다. 급기야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노덕술에게 체포되었을 당시 선생의 22살 연하 부인인 최동선은 출산이 임박한 만삭이었다. 둘째에게는 선생이 철창에 구금되었을 때 낳았다고 해서 철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원봉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해방정국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정적을 마구잡이로 암살하고 납치·구금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송진우(1945년 12월 30일)-여운형(1947년 7월19일)-장덕수(1948년 3월12일)에 이어 김구 선생(1949년 6월26일)까지 백색테러에 의해 암살되었던 시절이었다. 어느 한 편도 아닌 민족의 통일을 위해 좌우합작 운동을 끈질기게 폈던 선생의 목숨 역시 풍전등화였다.

김원봉 선생에 대한 인물평 중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평이 하나 있다. “약산 김원봉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군청정의 역사편수관도 “비공산주의 계열의 좌익지도자인 김원봉이…”라든가, “여운형과 더불어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중도파였기에 공산당의 고질적인 전체주의와 소련의 권위를 거부했다”든가 하는 표현을 썼다. 특히 김원봉 선생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미군정청 관리는 “미국의 강력한 지도자가 될 

노덕술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린 서울신문 기사.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를 3명이나 고문치사시켰다고 한다.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가했는지 유진흥이라는 독립투사는 ‘노 놈! 노 놈!’이라 울부짖으며 죽어갔다고 한다.

노덕술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린 서울신문 기사.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를 3명이나 고문치사시켰다고 한다.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가했는지 유진흥이라는 독립투사는 ‘노 놈! 노 놈!’이라 울부짖으며 죽어갔다고 한다.

수 있었던 한 사람을 잃은 것”이라고까지 했다. 

심지어 “만약 남북조선이 통일되었다면 북조선의 김두봉(1889~?)과 남조선의 김원봉은 조선공산당에 반대해서 민족적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조선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나왔다. 더나아가 “그렇게 되었다면 통일협상은 성공적인 결론을 얻고 또한 내전(한국전쟁)까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런 선생에게 후손들이 별 생각없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에게는 임시정부를 담당했던 미 전략국 요원이었던 클레런스 윔즈의 ‘김원봉 보고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원봉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단체들과 손잡고 일했다. 일례로 그는 황푸군관학교 졸업생들이 결성한 극우파인 남의사의 일원이었으며 그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다.”

김원봉 선생은 독립을 이룰수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실용적 좌파 민주주의자였던 것이다. 모든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가미하는 민주사회주의를 추구한….

1949년 2월18일 경향신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악질친일경찰 노덕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게 붙잡히자 “노덕술이는 나라에 필요한 기술자이니 풀어주라”고 강권했다. 김상덕 반민특위위원장과 김상돈 부위원장이 이 대목을 지적하며 개탄하고 있다.

1949년 2월18일 경향신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악질친일경찰 노덕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게 붙잡히자 “노덕술이는 나라에 필요한 기술자이니 풀어주라”고 강권했다. 김상덕 반민특위위원장과 김상돈 부위원장이 이 대목을 지적하며 개탄하고 있다.

■김원봉의 천려일실 

하지만 김원봉 선생에게 천려일실이 하나 있다. 월북이다. 선생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기정사실화하고 신변에 어마어마한 위협을 느끼자 월북하게 된다. 충칭 시절 선생의 비서였던 사마로는 자서전에서 “북한으로 가지말라는 말에 김원봉은 ‘나도 그리 가고 싶은 곳은 아니지만 남한의 정세가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노덕술 같은 악질 친일경찰에게 수모를 당했으니…. 

선생이 월북한 것은 1948년 4월9일이다. 선생은 김구·김규식 선생 등도 참석한 이른바 남북한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에 남는다. 북한정권에서 초대 국가검열상(감사원장)이 됐다. 선생은 북한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민전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이라는 단일기구로 통합하기도 했다. 

1952년 7월 검열상에서 노동상으로 이동한 선생은 그해 박헌영·이강국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미제 간첩죄’로 처형당했을 때도 건재했다. 57년 9월 노동상에서 해임된 선생은 1958년 9월9일 조소앙의 장례식 때 참여한 뒤 소식이 끊였다. 선생의 최후를 두고 여러 설이 나온다. 국제간첩 혐의로 숙청됐다는 설과, 장제스의 스파이로 몰려 수감됐다가 자살했다는 설, 그리고 은퇴설 등이다.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에 기록된 노덕술의 상훈 기록. 한국전쟁 때 화랑무공훈장 2개, 충무무공훈장 1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에 기록된 노덕술의 상훈 기록. 한국전쟁 때 화랑무공훈장 2개, 충무무공훈장 1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떼죽음 당한 남한의 가족·친척들 

남한에 남은 가족·친지들은 그야말로 떼죽음을 당했다. 9남 2녀의 형제 중 친동생 4명과 사촌동생 4명이 이른바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음을 당했고, 아버지 김주익은 외딴 곳에 유폐되었다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이다. 그러나 이 단체의 좌익전향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빨갱이’라는 이유로 군과 경찰에 의해 떼죽음을 당했다. 의열단장과 조선의용대장, 임정 군무부장이었던 김원봉 선생이었지만 ‘월북 빨갱이’의 낙인이 이런 참사를 빚었다. 
 

■‘기술자가 필요하다’며 부활한 친일경찰 노덕술 

최근들어 김원봉 선생의 서훈을 두고 해묵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200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가라도 항일투쟁을 벌여 나라를 되찾는데 몸과 마음을 받친 분이라면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지만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한 권오설 선생(1897~1930)과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사 54명이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국가유공자 포상을 하려면 매우 중요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항일투쟁의 공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거나, 또는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한 인물은 포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정권에서 초대 국가검열상과 노동상을 지낸 김원봉 선생은 해당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만 추가해보련다. 노덕술의 케이스다. 노덕술은 일제강점기에 혹독한 고문으로 3명의 독립투사를 죽였던 악질경찰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경험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군정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중용됐다. 독립투사를 잡는 일제경찰이었던 노덕술은 빨갱이를 탄압하는 반공경찰로 변모했다. 

김구 선생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대표주자인 김원봉 선생에게도 모욕을 주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949년 1월24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경대가 노덕술을 체포·구금했다. 그러자 이틀 뒤 이승만이 기가 찬 명령을 내린다. 반민특위 임원들을 경무대로 불러 “노덕술이는 나라를 위해 요긴히 쓰일 기술자이니 석방하도록 하라”는 지시했다. 이승만과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세력의 방해공작에 따라 반민특위가 와해되고, 마포형무소에 수감돼있던 노덕술은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공소기각으로 처리된다. 

노덕술에 대한 단죄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노덕술은 1년 뒤인 1950년 헌병중령으로 이직하여 1사단 헌병대장과 부산 육군범죄수사대장(CID)으로 경력을 이어갔다. 노덕술은 이후에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 경상남도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노덕술은 1968년 4월 사망했다. 

노덕술은 1960년 7월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울산 을)에 출마했다. 그러나 노덕술은 1744표를 얻어 8명 중 6등에 머물렀다.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대명천지에서도 국회에 진출할 꿈을 꾸었던 것이다.

노덕술은 1960년 7월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울산 을)에 출마했다. 그러나 노덕술은 1744표를 얻어 8명 중 6등에 머물렀다.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대명천지에서도 국회에 진출할 꿈을 꾸었던 것이다.

■노덕술이 받은 훈장과 김원봉이 받지못한 훈장 

그러나 노덕술과 관련해서 한가지 기막한 사실이 있다. 노덕술이 한국전쟁 때의 공로로 세차례나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는 “노덕술이 1950년 12월 30일과 51년 7월8일 화랑무공훈장(4등급)을 한번씩, 1953년 2월15일에는 충무무공훈장(3등급)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화랑 및 충무 무공 훈장은 한국전쟁 등에 보통 이상이나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주는 훈장이다. 한국전쟁 때 헌병사령부 등 소속이었던 노덕술이 어떤 무공을 세웠을까. 이것도 궁금하다.

악질친일경찰 출신의 노덕술이 단죄는커녕 승승장구하면서 화려한 경력을 이어갔고, 국가가 주는 무공훈장을 세번이나 챙겼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의 상훈을 취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인 상훈법에서 친일행적이 있다고 서훈을 다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열단장과 조선의용대장, 광복군 부사령, 임시정부 군무부장의 화려한 독립운동경력에도, 훗날 북한정권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김원봉 선생과, 악질친일경찰 출신으로 해방 이후에도 고문치사 등의 죄악을 저질렀지만 친일세력의 비호를 받아 공훈장을 세번이나 

받은 노덕술….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논문과 단행본, 자료 등을 두루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참고자료> 

김영범, <한국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비평사, 1997 

한상도, ‘해방정국기 김원봉의 정치활동-독립운동가에서 정치가의 길로’,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8 

염인호, ‘김원봉-의열투쟁과 무장독립운동의 선구자’, <한국사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김삼웅, <약산 김원봉 평전>, 시대의창, 2008 

문화방송 시사제작국,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 특별기획-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MBC문화방송, 2002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30923001&code=960100#csidx56e321c11122efe96605522a6c083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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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도, ‘악질사장’도 없으려면..반드시 필요한 노동인권교육

[전교조 창립 30주년 기획]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③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5-02 18:01:01
수정 2019-05-02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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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자료사진

5월 28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창립 30주년을 맞습니다. 민중의소리는 다섯 차례에 걸쳐 전교조 30년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세번째 기사에서는 전교조 설립 당시부터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학교 현장 노동인권교육 도입에 관해 살펴봅니다.

1) 전교조 30년, 한국 교육이 변했다
2) 학교 현장이 바뀐다 ‘딥 체인지(Deep Change)’
3) 제2의 구의역 김 군·이민호 군 없으려면..반드시 필요한 노동인권교육
4) 특권과 승리가 아닌 삶과 행복을 위한 교육
5) 싸움만 한다구요? 국민과 함께 하는 전교조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 군(19)은 달려오는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숨졌다. 2017년 1월 23일 전주시 덕진구의 한 저수지에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 모(19)양이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홍 양은 2016년 9월부터 전주 소재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엘비휴넷)에서 근무했는데, 사측의 실적 압박과 고객들의 폭언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 2017년 11월 9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신분 이민호(19) 군은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한 음료 공장에서 기계를 수리하다 제품 적재기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열흘 뒤인 19일 숨을 거뒀다.

2019년 1월 28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청소년 가운데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은 적이 있는 응답자가 34.9%,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16.3%에 달했다. 고객으로부터 언어 폭력과 성희롱, 폭행을 당한 경험은 8.5%였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70.9%는 이 같은 부당처우를 계속 참고 일했다고 답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에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김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에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김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김슬찬 인턴기자

일하는 청소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이어지는 것은 청소년들이 노동의 가치와 의미,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지위와 권리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로 일터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대책마련하는 현실 안타까워”
“노동인권교육은 학교교육이 담당해야”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초대 사무처장과 9대 위원장을 역임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사회적 비용을 많이 치르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런 걸 예방할 수 있게 교육하고, 교육 과정에 노동 인권에 대한 내용을 반영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학교 교육이 당연히 담당했어야 하는데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학생들 대부분이 고등학교, 대학 졸업 후 노동자가 된다. 그런데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모른다. 살벌한 노동현장 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이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자기 사업을 하게 될 학생들도 타인의 노동권을 존중하고, 합법적 경영을 하려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수호 이사장 지적처럼, 학생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지만 적지 않은 숫자는 사장이 된다. 치킨집, 편의점이라도 직원을 두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를 하대하며 ‘갑질’을 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악질사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노동인권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는 “이제 외국 사례를 드는 것도 구차하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 인권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부터 체계적으로 제대로 가르치자”고 말했다.

없음
 

교육 받은 학생들..부당처우에 적극적 대응
현장 교사 다수 “노동인권교육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노동인권교육’을 충분히 받는다면 인권을 침해당하거나 부당처우를 견뎌야만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실태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국 19~24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황여정 외 3인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연구(2014)’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부당 처우를 당했을 때 다양한 대응태도를 보였다. ‘참고 계속 일했다’는 응답이 40.9%, ‘일을 그만 뒀다’는 응답이 36.7%였다. ‘개인적으로 항의했다’는 19.8%, ‘어디에다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 몰라 아무것도 못했다’는 답변은 12.7%, ‘주변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11.4%, ‘고용노동부나 경찰에 신고했다’는 답변은 6.2% 였다.

2018년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와 함께 발간한 ‘노동인권교재 개발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는 위 실태조사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해 냈다. 학생들이 노동인권교육 경험에 따라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응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의 경우 ‘개인적 항의’, ‘주변인의 도움’, ‘노동부 경찰 신고’ 등을 하며 비교적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응했다고 답한 비율이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청소년들이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으면 부당대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드러난 조사 결과다.

없음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교사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전교조는 자신들의 ‘참교육 실천 강령’에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교육을 실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는 2015년 11월 조합원 39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인권교육 실태 및 조합원 의식 조사 보고서’를 냈다. 이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98%(매우필요하다 77%, 필요하다 21%)가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노동인권향상 해결책의 1순위로 ‘학교에서 체계적인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76%)을 꼽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교육 자료 발간
전교조 “정식교육과정 내 체계적 노동교육 시작” 평가

이처럼 효용성, 필요성이 대두되자 지자체, 교육청, 단체 등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승욱 교수의 ‘노동인권교육 지원의 실태와 과제(2019)’보고서에 따르면, 현재(2018년 10월 기준) 전국 총 67개 기관과 단체에서 총 211개의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중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월 제정된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조례」에 따라 올해부터 일반고,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를 발간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사진 제공 = 서울시교육청

교육청 관계자는 “2019년 일반고·특성화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활용 연수’를 실시하여 학교 현장에서 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라며, ‘2019년에는 중학교용, 2020년 초등학교용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달 16일엔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동영상’을 개발하여 관내 중·고등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서울시교육청의 시도에 대해 전교조는 ‘노동인권 교육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정식교육과정 내 체계적인 노동교육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래의 노동자인 아이들에게 노동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자신의 노동을 긍정하며,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을 가르치는 것을 공교육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인권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승욱 교수는 위의 보고서에서 “중앙정부의 총괄적이고 정책적 지원이 없는 채 각 지역 및 단체 별로 노동인권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교육의 지속성 및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교육대상과 그의 상황에 따라 주무부처가 달라지기 때문에 관할 문제, 예산 배분 문제가 발생한다”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총괄할 주무 부처를 정할 것, 노동인권교육 지원법을 제정할 것,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리할 것, 관련 강사 인력을 관리하고 교육할 것, 교재를 만들고 강의안 등을 개발 배포 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한국 노동교육의 진단과 미래방향’이라는 보고서(2019)에서 정홍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필요성 제기에 비해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노동인권교육이 부족하다’ , ‘특성화고를 제외하면 교과목에 노동인권이 없다’, ‘상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특강형태다’,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기보다는 단순 지식 전달에 그치고 있다’, ‘교원들이 충분한 교육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아 외부 강사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등의 한계점을 짚었다.

정 부연구위원은 학교 현장 노동인권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초등~고등학교 과정의 노동교육 커리큘럼을 체계화할 것, 관련해 교육과정을 개편할 것, 교사들이 중심이 돼 노동교육을 수행할 것 등을 제안했다.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노동총동맹(CGT)본사 본관 중앙 로비의 모습.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노동총동맹(CGT)본사 본관 중앙 로비의 모습.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민중의소리

교육과정에 노동 관련 내용 담은 유럽 국가들
시민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는 ‘노동자’

해외에서는 어떻게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면 우리 학교 교육이 노동인권교육 커리큘럼을 어떻게 정립하고 실행해 나갈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시민교육’이라는 필수교과 안에 노동인권교육 내용을 담아 교육과정 전체에 반영하고 있다, 시민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를 ‘노동자’로 꼽고 이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교육한다. 프랑스 역시 ‘시민교육’이라는 필수과목을 통해 노동문제에 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은 자유, 평등, 인권 등과 함께 노동권에 대해서도 배우며, 교과서는 시위나 파업 등 노동 쟁의가 자연스러운 노동자의 권리행사임을 인식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사회’와 ‘실업’과목에서 노동인권에 대해 다룬다. 사회 과목에서는 노동의 사회정치적 측면에 대해 가르치며, 노동조합 내, 노사관계에서의 민주적 갈등해결 원칙, 공동결정 원리 등에 대해 전달한다. 실업 과목에서는 노동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배우도록 하는데, 인간과 기술·사회 간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고 장래의 직업 선택 및 노동 생활을 준비토록 교육한다. 각 과목의 교과서에는 노동관 및 직업관부터, 사회 시스템 내에서 노동의 역할, 사회 변화에 따른 노동방식의 변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의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노동에 관한 내용을 담는 것은 물론, 초등학교 8~9학년(한국의 중학교 2~3학년)에게 2주간에 걸쳐 ‘진로교육 및 직업체험’(PRAO)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직접 노동현장에 가서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고, 어떤 일들을 시키는 지를 직접 보게 된다. 직업체험 과정과 교육내용, 규정은 교육적 목적을 고려하여 학생, 학교, 기업 측면에서 모두 세심하게 정해져있다. 청소년들은 해당 과정을 거치며 미성년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기본 내용도 배울 수 있으며, 향후 직업을 위해 어떤 고등학교 프로그램을 선택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의 국가들은 학교에서 개인의 노동관에서부터 노동과 노동자의 사회적 의미, 실제 노동 현장의 분위기와 자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법 제도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가르친다. 학생들이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렇게는 안 된다. 어떻게든 가르쳐 보내자” 
노동인권교육 하러 애쓴 전교조 교사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전교조가 30여년 전 설립 당시부터 학생들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려고 애썼던 데 대해 언급했다. 이 이사장은 “전교조에 실업학교 선생님들 중심으로 ‘이거는 안 되겠다. 어떻게든지 가르쳐서 보내자. 따로 교과서라도 개발하자. 어떻게든지 교육과정 속에 넣어보자’며 애썼다.”고 회상했다.

이 이사장은 교직에 몸담을 동안 특성화고인 선린인터넷고(구,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의 교사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현장에 가는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필요했다. 더 문제가 됐던 건, 고교 재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이 점을 교묘히 악용해서 이익을 편취했다. 임금을 떼이는 것은 보통이고, 임금에서 일정액을 남겨놓고 ‘그만둘 때 모아서 준다’는 명목으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치료비용을 기업주가 부담하고 정부가 책임지고 치료해준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필요성이 인식되니 교사들이 ‘노동인권교육’에 나섰다고 회상했다. 그는 “교육과정에 넣고 교과서 만들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당장 나가서 일해야 하고 졸업하면 현장에 가야 하니 꼭 필요한 내용이라도 단시간에 배우게 했다. ‘이런 것이라도 알고 가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그는 아직도 학교에서 제대로 노동인권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노동인권교육이 학생들이 취업했을 때나 아르바이트 할 때 사측에 어떻게 대응할 지, 불이익 당하지 않게 어떻게 노력할 지 같은 구체적 현실적 내용과 함께 노동의 가치와 의미 등 본질적 근본적 내용까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우리 사회가 노동형태나 노동의 질, 이런 것들의 변화가 심하다. 요즘은 IT산업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와서 노동의 여러 가지 형태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을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줄어들고 있다. 사회가 변했다. 지금은 플랫폼 노동이란 게 등장했고, 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나.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 문제인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자로서의 자세나 태도, 사회관계 속에서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전통 속에서 혹은 자본주의 문화에서, 일 안하고 놀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는데 굉장히 문제다. 자기에 맞는 일을 적당히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 것이다. 일과 놀이, 일과 휴식, 일과 문화생활 이런 것들의 의미와 경계에 대해서도 잘 못 이해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렬:가운데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렬:가운데ⓒ김슬찬 기자

학교에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는 노동인권교육
“법·제도 개선과 더불어 교사 자율성도 보장되어야”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인권교육이 현장에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며 “선생님들이 노동인권이란 주제를 가지고 각 교과의 특성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다. 미술과에서는 노동자들의 몸을 그리고, 국어과에서는 인터뷰 글쓰기 부분에서 노동자들을 인터뷰 한다. 사회과에서는 노사 교섭, 사회권으로서의 노동인권, 헌법에 노동인권은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나 등을 가르친다”고 사례를 들었다.

이어 “교과수업 뿐만 아니라 학급활동 시간이라든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영화 등 노동 관련한 자료들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며, “노동절에는 노동절 관련 역사를, 때로는 최저임금에 대해서 짧게 나마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김 직업교육위원장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나 교과목 중엔 노동인권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교과영역은 아니지만 범교과영역 범주에 노동인권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답하며 “현재 사용되는 교과서의 일부 단원에서도 언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동인권교육 관련법 제정, 교과목 신설, 개별 교과서 편찬만큼이나 중요한 점이 ‘노동문제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교육 주제로 자리잡는 것’이라며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본질적인 내용을 더 충분하게 가르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노동인권교육이 잘 되게 하려면, 그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자율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님들이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필요한 것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입시교육으로부터 자율성을 부여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김 직업교육위원장은 “최근 정부에서 일률적으로 ‘안전’, ‘인성’ 교육을 강조해왔지만, 하루아침에 학교 현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행정적이고 권위적인 사고다”라며, “제도를 바꾸는 것은 물론,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 속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좀 더 멀리를 내다보며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위한 2019년 전교조의 계획
‘지역 별 편차 없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게 할 것’

학교 현장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본격화하기 위한 전교조의 노력은 2019년 더욱 활발해질 예정이다.

전교조는 올해 사업 계획을 통해 ‘참교육 실천 역량을 늘리기 위한 기본사업’으로 ▲계기수업자료 개발·탑재 ▲ 교육활동 자료 제공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계획에는 노동인권교육을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전교조 교사들은 그간 지속적으로 계기수업(사회적 이슈에 대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신문기사, 사설, 칼럼 등의 다양한 부교재를 통해 알기 쉽게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해왔다. 올해에는 분과나 지부에서 공동으로 계기수업을 할 수 있도록 자료 개발과 지원에 힘쓰기로 했는데, 이 계기수업 주제들 중 하나에 ‘노동인권’이 포함되어 있다. 또 현장 교사들이 교과수업·비교과수업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교육자료도 제공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노동·직업’ 주제가 들어있다.

또 직업교육위원회 차원에서도 계획을 내고 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노동인권실태 파악 및 대책 활동’을 진행해, 지역별 편차 없이 정규교육과정 내 노동인권교육이 포함되도록 할 예정이다. 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 제정, 정책 개발, 교육청과의 단체 협약 체결 등을 시민사회와 손잡고 추진해 갈 방침이다. 이외에도 노동인권교육이 학교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사 연구회, 학생 동아리 활동 활성화에 힘쓰기로 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열린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열린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노동인권교육 도입 가로막는 보수언론
전교조, 진보교육감에 대해 이념공세 펼쳐

이처럼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분명하고, 학교에 도입하려는 각계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막아서고 비난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의 전교조에 대한 공세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수호 이사장은 “노동인권교육에 대해 전교조가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써왔는데,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 좀 어렵게 된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안 알려지고 어쩔 수 없이 ‘법외노조 철회’ 투쟁하면 그것만 보수언론에 나온다. 그러면 정치적 비난이 쏟아진다. ‘교사들이 애들이나 잘 가르칠 일이지, 그런 것 가지고 난리냐’는 것이다”며 답답해했다.

이어 “현장에서 구체적 교육내용으로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많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실천하는 전교조 선생님들도 많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교교육을 바로 잡고,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건 잘 안 알려진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전교조의 상황”이라고 짚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민중의소리

보수언론들은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이 ‘노동인권교육 지도자료’를 냈을때도 몰려들어 포문을 열었다.

한 보수신문은 기사에서 “상생이나 협력을 강조한 분량은 적고 노사 간 대립과 집단 행동을 강조한 분량은 많아 균형이 맞지 않는다”, “기업의 긍정적 역할이나 협상의 중요성을 별도로 다룬 단원이 없다”, “불법 파업이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언급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편향된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사회과 과목인 ‘법과 정치’, ‘경제’ 등의 교과서에는 기업과 기업가의 긍정적 역할, 파업 등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 내용은 오래전부터 교육과정에서 다뤄왔지만, 노동자와 노동인권에 대해서는 다룬 바가 거의 없으니 이를 가르치기 위해 새로이 교육 자료를 퍼낸 것이다. 지도 자료가 발간된 맥락에 대해서는 교묘히 숨기고 이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보수 신문은 기사에서 더 노골적으로 “좌편향식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보수신문은 사설을 통해 “직접 노동인권 교육 자료를 만든 저의부터 의심스럽다”며 “교육 오염이 현실화하기 전에 전량 회수, 폐기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한 대학생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 문제 관련 경총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 대학생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 문제 관련 경총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 같은 보수언론들의 주장은 경영계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2011년,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며, 이를 위해 교육청 안에 노동인권 교육을 담당할 민주시민교육팀을 신설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러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경총)은 입장문을 내고 “노동인권 교육은 어느 교사들이 맡게 되든지 간에 계급적 성향의 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 출신의 교육감이 이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이념노동운동가의 양성을 꾀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노동인권교육은 이념적인 편향성과 결부되어 학생들에게 반기업 정서, 반시장경제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사건 사이에 8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경영계의 인식과 보수언론의 인식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인권교육이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깊게 뿌리내리려면 이런 장애물들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 ‘전태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을..전태일 재단의 도전

서울시교육청과 전태일재단은 2018년 11월~12월 동안 공동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서울시내 노동인권 관련 현장 탐방지를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중고등학생 900명(30학급)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학생들은 종로구 소재 평화시장 및 전태일다리 주변에 있는 노동인권 관련 장소를 연결한 코스를 다니며 전태일과 노동인권에 대해 배웠다.

이수호 이사장은 이에 대해 “현장체험 중심이고 단기간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최소한의 기본적 경험을 하게 했다. 학생들이 전태일을 알고 노동과 노동자의 여러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게 대다수 평가”라고 밝혔다.

전태일재단에서는 노동인권교육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왔다.

이 이사장은 “아이들이 전태일에 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한 후에 평화시장과 전태일 다리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여기에 온다. 그럼 강의를 해주고 관련 장소를 보여준다. 그렇게 오기 힘들 경우 재단에 요청을 하면 저희가 강사를 파견한다. 최근에 광주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모둠학습을 한 후에 강사를 파견해달라고 해서 사무총장님이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해주고 왔다. 그 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번에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만드는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비용에 저금통을 깨 얼마라도 보태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구체적인 참여와 행동은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교육 요청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서, 이에 맞춰 다양한 교육 내용과 형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전태일기념관이 마련돼 교육 여건이 더 나아지자 요청이 폭주하고 있다. 문의와 신청이 많이 온다. 거의 줄이 서 있는 형편이다. 주중과 주말까지 매일 하루 몇 팀씩 온다”

“기념관의 전시물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관련 공연을 보여주며 교육하는 등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방문한 학생들의 형편에 맞춰서 한 시간 가량 기념관 둘러보는 것에서부터 몇시간 투자해 현장에 다녀오는 것까지 만들 계획이다. ‘맞춤형 체험학습 프로그램’인 셈이다”

애니메이션 ‘태일이’
애니메이션 ‘태일이’ⓒ애니메이션 ‘태일이’ 스틸컷 이미지

향후 전태일재단과 전태일기념관은 연극, 음악, 웹툰,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문화 장르를 통해 전태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 밖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전태일 50주기인 2020년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개봉할 예정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희망의 불꽃이 된 대한민국 노동 운동사의 상징적인 인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삶을 그린 감동 드라마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성과를 내고, 영화 ‘카트’를 통해 노동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 온 명필름이 전태일 재단, 스튜디오 루머와 공동제작한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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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다. 1만원 이상 후원하면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소개된다. 현재 (4월 25일 기준) 16,727명(단체 포함)의 시민들이 참여해 정성을 보탰다.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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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근혜가 아니라 나경원이다. ‘TV조선’ 보도 클라스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닌 이유
 
임병도 | 2019-05-03 08:54: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자유한국당이 불법을 저지르며 선거제 개혁안과 공수처 신설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고 있던 지난 4월 26일, 사개특위가 열리는 2층 회의장에 앞에 드러누웠던 나경원 원내대표가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계단을 통해 5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직자로부터 513호라는 얘기를 들은 나경원 원내대표는 보좌관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복도를 정말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정개특위가 열리는 회의장이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개특위가 열리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뛴 것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경원 원내대표를 따라다니면서 든 생각은 과연 이들이 국민을 위해서도 이토록 열심히 뛰어본 적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이런 열심(?)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나경원의 패션 변화? 박근혜 패션 기사와 흡사했다.

▲(좌)2019년 4월 30일 <머니투데이> 나경원 의원 패션 관련 기사 (우) 2013년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 패션 특집 기사

4월 30일 <머니투데이> 마아라 기자는 ‘패스트트랙 정국 속…’나다르크’ 나경원의 패션 변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나다르크’라는 별명을 얻고 있으며 ‘정치계 패셔니스타’라고 칭합니다.

마 기자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입은 셔츠와 슈트, 심지어 신발과 시계까지 어떤 색상의 옷을 입고 착용했는지 아주 세세하게 보도합니다.

<머니투데이>기사를 읽다 보니, 2013년 <동아일보>가 보도한 ‘박근혜 패션 프로젝트’라는 특집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도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을 자세히 소개했었습니다.

도대체 패스트트랙 정국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패션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보도한 ‘유명 디자이너 대신 입이 무거운 개인 디자이너’가 나중에 국정농단 최순실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나경원 원내대표도 뭔가 있나요?

패션을 통해 정치인을 스타로 만드는 기법은 언론이 정치인을 띄어줄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연관기사:박근혜 패션은 찬양했던 중앙일보, 김정숙 여사는 조롱)

평상시 정치인 여러 명의 패션을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는 자유한국당 때문에 국회가 난장판이 됐던 시점에서 굳이 패션 관련 기사가 필요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비어천가? 박비어천가와 똑같았다.

▲2019년 4월 29 <TV조선>보도본부 핫라인 프로그램에 나온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 자막과 2011년 <TV조선> 개국기념 박근혜 의원 특집 인터뷰 자막 ⓒTV조선 화면 캡처

지난 4월 29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활약상(?)을 아래와 같은 자막으로 표현했습니다.

‘쇠지렛대 든 나경원… 엘리트 정치인에서 투사로’
‘한국당 의원 “나경원, 하루에 30분도 안 자”
‘나경원, 육탄전으로 민주당 막아내고 눈시울 붉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나경원 원내대표를 마치 투사처럼 묘사한 <TV조선>을 보면 2011년 개국기념 박근혜 당시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던 낯 뜨거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와 별 차이 없는 아부성 자막입니다.

<TV조선>만 보면 나경원 원내대표가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투사나 독재정권에서 민주화투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국회선진화법을 어긴 범죄자로 고발이 된 상황입니다.


언론은 양비론을 버리고, 폭력 사태 책임은 자유한국당에 있다고 보도해야

▲<동아일보> 4월 27일 사설. 여당과 자유한국당이 모두 잘못했다는 양비론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PDF

언론은 중립을 지키며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도 여당도 자유한국당도 모두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감금하고 법안을 탈취해 파손하고, 팩스를 부수고, 회의장을 점거하는 폭력 사태의 책임은 모두 자유한국당에 있었습니다. 명백한 사실 앞에서 ‘양비론’으로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론이 이번 사태를 양비론으로 보도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언론이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해 발생하는 폐단입니다.

패스트트랙은 법안이 통과된 것이 아닙니다. 최장 330일 동안 토론과 합의를 통해 수정될 수도 있는 합리적인 민주주의 절차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면 정부가 정당 해산을 청구할 수도 있다’라고 명시돼 있는 헌법의 중요한 항목을 위반한 것입니다.

언론이 정치인을 어떻게 촬영하고 보도하느냐에 따라 투사도 범죄자도 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불법을 저지른 국회의원을 투사로 포장하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닌 이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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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다급한 카톡 "진짜 고마운 분들이 나타났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5/03 09:11
  • 수정일
    2019/05/03 09:1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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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산불 이후] 농민 1년 걸릴 일을 한나절에 끝내준 고마운 사람들

19.05.02 20:18l최종 업데이트 19.05.02 22:19l

 

지난 4월 4일 강풍에 불씨가 도깨비불처럼 튀어다녔다. 결국 남양 2리 산등성이는 새까맣게 탔다. 그리고 부모님은 밭을 잃었다. 올해 3월 심었던 1100그루의 엄나무 묘목과 30년을 가꿔온 밤나무 50그루가 자라던 땅이었다.

눈앞에서 잃은 돈만 300만 원이었다. 밤으로 얻을 1년 소득 100만 원과 엄나무 묘목값 200만 원. 앞으로 잃게 될 돈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약 천 그루의 어린 엄나무는 퇴직 앞둔 부모님의 연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고민거리가 또 있었다. 1381평에 걸쳐 뿌리를 박고 선 숯덩이 나무들이다. 부모님은 나무를 베어 버릴 계획을 짰다. 두 분의 평균 연령은 60세, 가진 장비는 전기톱 한 자루와 포터 한 대. 장년의 근력과 부족한 장비로 벌목하기에는 1년도 부족해 보였다. 게다가 애써 일해도 결국 죽은 나무를 치우는 일이었다. 10원 벌이도 없을 일에 들여야 할 공을 생각하니 앞이 까마득했다. 

'다 잘 될 거예요'라고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근거 없이 희망만 이야기하는 건 계몽적인 태도라 삼갔다.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재해 앞에 두 분은 불행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지난 4월 강릉 산불로 새로 심은 천 그루의 어린 엄나무와 30년 된 밤나무 50그루가 불에 탔다. 곧은 가지 위로 개두릅(엄나무 순)을 틔우던 엄나무도 죽었다.
지난 4월 강릉 산불로 새로 심은 천 그루의 어린 엄나무와 30년 된 밤나무 50그루가 불에 탔다. 곧은 가지 위로 개두릅(엄나무 순)을 틔우던 엄나무도 죽었다.ⓒ 최다혜
  
고마운 분들의 등장

산불에 탄 밤나무들이 익숙해질 즈음인 5월 1일, 아빠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진짜 고마운 분들이 나타났어. 이 분들 이야기를 기사로 좀 써줄 수 있겠니. 사람들이 수십 명 와서 불탄 나무를 오전 8시 30분부터 지금(오전 11시)까지 치워주고 있어."

연락을 받은 시간 11시. '어서 와 취재하라'는 아빠의 성화를 피하고 싶었다. 3살, 5살 어린 두 아이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선약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운전면허 잉크가 막 말라가는 6개월 차 초보 운전자. 허기진 두 녀석을 태우고 어설픈 운전 실력으로 태백산맥 기슭까지 들어오라니! 

그런데도 자원봉사자 이야기라면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박한 세상에 타인을 도우러 온 낯선 이들이라니. 막연했던 '희망' '해피엔딩'이란 단어를 꺼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겨났다.

결국 글로 남기기로 했다. 선약으로 만난 친구와는 의자에 온기가 스미기도 전에 헤어졌다. 어린 딸들 입에는 닭국밥을 대충 말아 넣었다. 구부정한 강릉시 옥계면 남양 2리까지 좁은 산길을 따라 진땀을 빼며 자동차로 엉금엉금 기어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름아닌 공무원들이 있었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최다혜
 
1년 예상한 벌목, 한나절 만에 끝내다

나는 왜 공무원들이라 상상을 못 했던 걸까. 부모님 밭을 정리해주던 분들은 책상 밖으로 뛰쳐나온 '농촌진흥청 공무원'들이었다.

농촌진흥청 공무원들은 '전국 농촌진흥기관의 장비와 농업기계 안전전문관을 활용해 농작업 대행 등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범국민적 복구 및 영농지원'을 목적으로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고 했다. 총 188명. 트랙터, 관리기, 이앙기, 굴착기, 로터베이터, 배토기, 운반차량 등 137대의 농업기계를 들고 강원도로 온 이들은 강릉, 동해, 속초, 고성, 인제 등 산불 피해지역을 복구 대상으로 정하고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작업을 진행했다.

전기톱 한 자루와 포터 한 대를 갖고 있던 평균연령 60세 부모님 앞에 이들은 영웅이었다.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팀장 이청희 씨.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팀장 이청희 씨.ⓒ 최다혜

"이 땅(산불 피해 지역)의 터가 좋네요. 풍수지리학상 돈이 빠져나갈 곳이 없어요. 자손 대대로 번성할 거예요."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팀장 이청희씨는 풍수지리학까지 거들어가며 덕담을 했다. 덕담뿐이랴. '농업기계 안전전문관'이라 새겨진 형광 노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은 나무를 베고 벌목한 밤나무를 운반기로 날라 한곳에 모았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한 작업이 오후 3시 30분경 종료됐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천 평의 벌목 작업이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한 나절 만에 끝이 났다.

이들이 도와준 곳은 부모님의 밭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본 공무원들은 1팀뿐이었다. 같은 시간 2팀은 산불로 농기계가 망가진 주민들을 위해 벼이앙을 하고 있었다. 3팀은 속초에서 벼이앙을, 4팀은 고성에서 논·밭 로터리 작업을, 5팀은 인제에서 순회점검에 나섰다.
 
 미래농업교육원 원장 박순홍 씨
미래농업교육원 원장 박순홍 씨ⓒ 최다혜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4월 6일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농촌진흥청도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강원도에 복구 지원을 계획했다.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은 응급 대책, 재해 구호와 복구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세제 등의 특별 지원을 받는데, 특별 재난지역 선포의 근거는 헌법에 있다. 헌법 제34조 6항에 따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국가 기관에 일하는 이들로부터 보호 받고 있었다. 
뜻밖의 재해는 구체적 개인의 힘으로 돌리기 힘들다. 그러므로 국가는 재난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발생한 결과를 신속하게 복구하는 능력과 노력 역시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 <지금, 다시 헌법> 중.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지음.
1988년생인 나는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라 생각하라'고 배웠다. 주어진 여건에 분노하기보다 개인의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번 산불도 마찬가지였다. 산불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수습은 우리 가족만의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고마운 분들이 왔다'고 연락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을 떠올렸다. 제도의 도움보다 개인의 품앗이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간 그렇게 위기를 극복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 산불 피해를 수습하면서 공무원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님은 사회 안전망 속에 있었다. 물론 자원봉사자 분들과 멀리서 찾아와 준 관광객분들의 공은 더더욱 값지다. 이해 관계없이 손품, 발품 팔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도 농촌진흥청의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 영농지원 계획'에 감탄했던 이유가 있다. 사회 시스템에 의한 안정감을 오롯이 느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최다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헌법 전문 중에서

다시 헌법을 들여다봤다. 어렵고 두꺼운 데다가 딱히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도 없었기 때문에 멀리해왔다. '우리와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라는 71년 전 쓰인 헌법 전문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귀한 우리 손주들 괴롭히면 혼날 줄 알아!'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으름장을 놓은 기분도 났다.
 
 한 달이 흘러도 여전히 시커먼 땅에 각시 붓꽃이 피었다. 산불이 나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각시 붓꽃과 형광 노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 덕분에 체감한다.
한 달이 흘러도 여전히 시커먼 땅에 각시 붓꽃이 피었다. 산불이 나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각시 붓꽃과 형광 노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 덕분에 체감한다.ⓒ 최다혜
 쉽게 불에 타버린 소나무와 달리 활엽수들은 타버린 밑둥을 치유하며 잎을 틔웠다.
쉽게 불에 타버린 소나무와 달리 활엽수들은 타버린 밑둥을 치유하며 잎을 틔웠다.ⓒ 최다혜
 
강릉 남양 2리의 봄은 더디게 오고 있다. 다른 동네는 노란 민들레로 아파트 화단이 다 덮였는데 여기는 검은 땅에 몇몇 야생식물만 비죽이 싹을 틔웠다. 그래도 봄이 오긴 왔다. 생명력 강한 종들이 기어이 꽃을 피웠다. 꽃뿐이랴. 1년 치 벌목에 대한 갑갑증을 해소한 부모님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들었다. 

아빠는 외손녀의 손을 잡고 밑동만 남은 밤나무밭을 한 바퀴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빠 속이야 알 수 없다. 그래도 삼가왔던 희망적인 말을 건네기엔 충분해진 듯하다. 

"아빠, 이제 다 잘 될 거예요."
 
 1년을 가늠했던 불 탄 밤나무 밭 정리는 한나절 안에 끝났다.
1년을 가늠했던 불 탄 밤나무 밭 정리는 한나절 안에 끝났다.ⓒ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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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찰,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비선캠프’ 자임 활동

[단독] 정보경찰,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비선캠프’ 자임 활동

등록 :2019-05-02 05:00수정 :2019-05-02 12:04

 

MB청와대 보고 문건 입수 
박원순 공격 ‘색깔론’ 제안하고
보수언론 활용한 ‘여론전’ 조언
강·약점 분석 ‘맞춤 컨설팅’까지…
토론서 종북공세, 문건과 판박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를 들고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를 들고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보경찰’이 여당이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비선 캠프’ 역할을 자임한 경찰 내부문건이 드러났다. 야당 후보 동향 파악, 야권 시민단체 사찰, 선거 판세 분석, ‘나경원 귀족 이미지’ 희석 방안, 선거 전후 청와대의 국정 운영 방안까지 담고 있다. ‘정책정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찰의 선거개입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치경찰’이 된 정보경찰 기능의 축소 또는 폐지가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선거 50일 전-“이념 공세로 보수층 결집을”

 

 2011년 10·26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 패배로 물러나며 치러졌다.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였지만, 그해 9월6일 ‘박원순-안철수’ 단일화가 이뤄지며 선거 판세가 급격히 요동쳤다. 1일 <한겨레>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당시 정보경찰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들을 확보했다. 이 문건 내용은 당시 이명박 청와대를 거쳐 한나라당 지도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연대 인사가 많은데,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고 공격했다.

 

같은 문건에는 “보수단체·언론을 활용해 박원순 변호사를 지원하는 측근 인사들의 그간 불법 행위를 재조명, 좌파 진영에 대한 경계심을 조성”해야 한다는 네거티브 공세도 제시됐다.

 

■ 선거 직전-“나경원 귀족적 이미지…확장성에 한계” 분석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정보경찰은 ‘맞춤형 정치컨설팅’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망’ 문건(10월7일)에서 정보경찰은 나 후보에 대해 “외모, 판사 출신으로서의 청렴성,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보여준 보수 가치 수호 의지 등”이 강점이라면서도 “‘학원 재벌의 딸’ ‘온실 속 화초’ 등 귀족적 이미지가 강해 서민층으로의 표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신망이 있고 경륜을 갖춘 인물을 정무부지사 등으로 사전 내정, 러닝메이트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치 고려사항’을 제시했다.

 

“당이 전면에 나서는 대신 확실한 자료를 갖고 보수언론·단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설득력·신뢰성 면에서 유리”하다는 제안도 했다. 실제 그즈음 보수단체 연합체인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나경원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박원순 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 선거 직후-MB, 정보경찰 조언대로 라디오연설 진행

 

서울시장 선거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정보경찰의 보고는 ‘청와대 책임론 차단’과 ‘보수단체를 통한 박원순 공격’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선거 당일 작성된 ‘서울시장 보선 결과 관련 고려사항’ 문건(10월26일)에는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선거였던 만큼, (대통령은) 일상적 언급보다는 라디오연설 등을 통해 진정성 있는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젊은층의 높은 정치 참여 의식이 확인”됐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문건 작성 5일 뒤인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연설에서 “지난주 재보궐선거에서 변화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갈망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학력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보경찰은 노골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할 포인트를 짚어주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 시정운영 관련 평가’ 문건(11월21일)에는 “박 시장이 소통 행보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며 “서울시정이 반향을 일으키며 긍정 평가를 받을 경우 국정운영 및 선거에 부담이 예상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보경찰은 대책(조치 고려사항)으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등 보수 시민단체의 감시 활동을 통해 서울시정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야권에 대한 기대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11년 10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경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1년 10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경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선거관련 문건 작성 수십년 관행”이라는 정보경찰

 

지난 30일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4월 총선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를 받는 정창배 중앙경찰학교장(치안감)과 박기호 경찰인재개발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 치안감은 “선거 관련 문건 작성은 수십년간 계속된 관행이다. 정무직 공무원은 청와대를 보필하러 갔으니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치안감과 정 치안감은 박근혜 정부 당시 각각 경찰청 정보국 정보심의관과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며 청와대와 정보경찰 사이 연락창구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치러진 선거 때마다 정보경찰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관여하고, 관련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진박(진실한 친박근혜계) 공천’이 극심했던 2016년 4월 총선 때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구에서 정보경찰이 선거 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개혁위원회 정보경찰소위 위원이었던 양홍석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3천명에 이르는 정보경찰이 정부 여당의 승리를 위해 선거에 동원된 것으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2328.html?_fr=mt1#csidx79ca2246ac72a28ab5cf65319d892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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