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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주권 없이 평화도 통일도 없다”

6.15남·해외[측위, 판문점선언 3주년 기념식 및 공동토론회 개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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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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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04.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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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원회와 6.15해외측 위원회는 27일 오후 서울 YWCA 등에서 오오프라인으로 4.27판문점선언 3주년 기념식과 공동토론회를 개최했다.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총무가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원회와 6.15해외측 위원회는 27일 오후 서울 YWCA 등에서 오오프라인으로 4.27판문점선언 3주년 기념식과 공동토론회를 개최했다.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총무가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판문점선언 이행이 좌절된 지난 3년은 주권 없이 평화도, 통일도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습니다. 미국의 간섭과 방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자주와 평화, 민족의 대단결을 위해 싸워 나갑시다.”

3년 전, 온 겨레와 전 세계인이 생중계로 생생하게 지켜봤던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먼 옛이야기처럼 희미해진 오늘, 민간단체들의 목소리는 ‘자주’로 귀결됐고 그 타겟은 ‘미국’으로 모아졌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해외측위원회가 27일 오후 5시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온-오프라인으로 공동 주최한 ‘4.27 판문점선언 3주년 기념식’에서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남북관계 발전이 우선이 아니라 북미대화에 기대고, 비핵화를 앞세워, 발목이 잡힌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의장이 영상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의장이 영상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특히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한반도에 다시 군사적 긴장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앞으로 예정된 한미군사연습을 중단하고 판문점선언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복 의장은 “3년 전, 민족의 평화, 번영, 통일의 새 날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뜨거웠던 순간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하지만 오늘, 그날의 봄이 언제였던가 싶게 남북관계는 얼어붙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오늘의 기념식과 공동토론회가 민족의 역량과 힘을 키우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형근 6.15해외측위 위원장은 일본에서 영상 기념사를 통해 “일본에서는 코로나 확대 방지 긴급사태선언이 내려져 도쿄행사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며 “공동선언이 전혀 이행되지 않고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어 가슴이 답답한 심정”이라고 인사했다.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이 영상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이 영상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일본을 비롯한 6.15해외측위원회와 6.15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해 참여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일본을 비롯한 6.15해외측위원회와 6.15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해 참여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해외위측 참가자들은 온라인으로 참여했고, 일본 도쿄에서도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다. 방한 중인 김광일 6.15대양주 위원장만 서울 행사장에 직접 참석했다.

이어 “대북적대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고립되고 궁지에 몰린 것은 미국측”이라며 “바이든 정권의 대북적대정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대의 요구는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자주’와 ‘반미’에 방점을 찍었다.

손형근 위원장은 “우리는 오늘부터 10.4선언 14돌까지의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한 공동행동기간’에 돌입하게 된다”며 “자주의 기치아래 굳게 연대연합하여 함께 전진해나가자”고 호소했다.

이흥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가 온라인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흥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가 온라인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행사장에는 30여명의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행사장에는 30여명의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흥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온라인 축사에 나서 “남북미 대화는 중단되고 남북교류와 인도적 지원 등의 평화적 수단과 상호주의적 노력마저 여전히 제재에 묶여 있다”며 “한미동맹은 퇴행적인 분단냉전동맹이 아니라 선진적인 평화동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면, 종전선언과 평화조약 체결, 상호불가침 조약체결, 북미수교로 이어지는 일련의 평화적 환경 구축과정이 비핵화의 길로 이어지게 하는 평화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민간교류를 조건 없이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 국민이 지닌 주권재민의 민주의식 위에 남북정상들의 평화선언과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세계종교시민사회와 함께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한반도종전평화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총무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됐고, 기념식에 이어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서울-도쿄 공동토론회’가 ‘판문점 선언 3년, 한반도 정세와 통일운동 과제’를 주제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개식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개식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 발제자인 한충목 정책위원장(왼쪽)과 최은아 사무처장이 공동토론회에 임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 발제자인 한충목 정책위원장(왼쪽)과 최은아 사무처장이 공동토론회에 임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 정책위원장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렴문성 일본 조선대학 준교수, 이영채 일본 게센여학원대학 교수, 최은아 6.15남측위 사무처장이 발제에 나서고 공동결의문이 채택, 낭독될 예정이다. 공동토론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서울 YWCA 행사장에는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 정종성 6.15청학본부 상임대표, 김동환 6.15학술본부 공동대표, 이태형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장미란 YWCA 평화통일위원장, 오은정 전교조 통일위원장,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 윤희숙 진보당 공동대표 등이 자리했고 온라인으로 황철하 6.15경남본부 상임대표 등이 접속했다.

<추가> 6.15남·해외측위, ‘민족자주’ 강조한 공동결의문 발표

6.15남측위원회와 6.15해외측위원회는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서울-도쿄 공동토론회’ 결과를 담은 공동결의문을 채택, 발표했다. 정종성 6.15청학본부 상임대표와 조명진 6.15일본위 천학협 공동회장이 공동결의문을 온라인을 통해 함께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 - 6.15남측위원회]
6.15남측위원회와 6.15해외측위원회는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서울-도쿄 공동토론회’ 결과를 담은 공동결의문을 채택, 발표했다. 정종성 6.15청학본부 상임대표와 조명진 6.15일본위 천학협 공동회장이 공동결의문을 온라인을 통해 함께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 - 6.15남측위원회]

비공개로 진행된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서울-도쿄 공동토론회’에서 ‘민족자주 정신으로 평화, 통일로 나아가자!’ 제목의 공동결의문이 채택, 발표됐다.

참석자들은 정종성 6.15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와 조명진 6.15일본지역위원회 청년학생협의회 공동회장이 공동낭독한 공동결의문을 통해 “온 겨레의 큰 기대 속에서 탄생한 선언은 오늘날 단 한 조항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약속의 불이행은 신뢰를 무너뜨렸고,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하고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정신으로 남북공동선언을 실현하자!”고 결의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내정간섭, 민족분열정책을 단호히 거부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대북제재 등 공동선언에 역행하는 적대행위를 중단하여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하자”, “자국의 패권 실현을 위해 갈등과 대결을 강요하는 미국의 부당한 압박과 일본의 도전에 단호히 맞서 나가자”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미국을 ‘근본적 걸림돌’로 적시하고 “이 땅의 분단과 전쟁을 활용하여 저들의 패권 이익을 실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강대국들의 부당한 패권 정책과 이를 추종하며 주권을 포기하고 대결정책에만 몰두하는 사대세력들의 행태를 반드시 저지하자”고 결의했다.

나아가 “민족의 고통은 그 어느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 않으며, 오로지 단결된 겨레의 힘만이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며 “4.27-10.4 기간 동안 남북해외 온 겨레가 세계 곳곳에서 적극적인 실천을 펼쳐, 적대와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자주와 평화, 통일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기념사(전문)

4.27 판문점선언 발표 3주년 기념식과 공동토론회에 참석하신 내외빈 여러분,

특별히, 멀리서 함께 하고 계시는 해외측위원회 손형근 위원장님과 성원들께 뜨거운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3년 전, 민족의 평화, 번영, 통일의 새 날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뜨거웠던 순간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판문점선언은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연이은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를 낳으며 남북관계 발전의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확성기가 철거되고 군 통신선이 이어지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적대행위가 중단되는 등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 것은 무엇보다 중대한 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과 북, 두 정상이 선언한 대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날의 봄이 언제였던가 싶게 남북관계는 얼어붙었습니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경제시대’를 주창했지만 금강산을 열 길도, 개성공단 재개, 남북간 도로와 철도를 이을 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약속은 있는데 방법이 없다며 답답했던 시간들이 안타깝게 흘렀습니다. 과연 그랬습니까?

“판문점 선언의 실천이 속도 내지 못한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제적인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대북제재가 엄연한 장벽이긴 했지만 민족 내부관계인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결단해야 할 것들은 제 때 결단하고 넘어서야 했습니다. 더구나 대북제재와 무관한 대북전단살포 금지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것은 불신을 자초한 일입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관계가 정체되면서 남북관계는 멈춰 서 버렸습니다. 남북관계 발전이 우선이 아니라 북미대화에 기대고, 비핵화를 앞세워, 발목이 잡힌 꼴입니다. 한미워킹그룹의 애초 취지는 어떠했을지언정, 결과적으로 미국이 남북관계를 통제하고 가로막는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한반도에 다시 군사적 긴장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판문점선언으로 이룬 군사적 긴장완화의 성과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습니다.

한미군사연습의 중단이 남북, 북미대화의 입구가 될 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남북미 3자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재개된 한미군사연습이 통상적인 수준이라고 하지만, 규모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북에 대한 선제타격 계획을 유지하는 한 ‘적대성을 띤 연습’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3월 남측과 해외의 각계 시민사회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미군사연습의 중단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또 한번 중대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제라도 결단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앞으로 예정된 한미군사연습을 중단하고 판문점선언을 지켜내야 합니다.

바이든 정부는 출발부터 노골적으로 미중패권 경쟁을 격화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발전을 사사건건 방해해 온 미국은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미중패권 경쟁의 희생양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판문점선언 이행이 좌절된 지난 3년은 주권 없이 평화도, 통일도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습니다. 미국의 간섭과 방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자주와 평화, 민족의 대단결을 위해 싸워 나갑시다.

오늘의 기념식과 공동토론회가 민족의 역량과 힘을 키우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기념사에 대신하겠습니다.

 

6.15해외측위원회 손형근 위원장 기념사(전문)

판문점선언 발표 3주년, 기념식과 공동토론회에 참석하신 남측 동지 여러분!

일본에서는 코로나 확대 방지 긴급사태선언이 내려져 도쿄행사가 가지지 못하게 되었지만 어려움을 뚫고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는 여러분들께 해외측위원회를 대표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연대 인사를 보냅니다. 특히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의장께 경의를 표합니다.

평화, 통일, 번영을 위한 판문점선언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더라면 3주년을 맞는 오늘은 참으로 기쁨에 넘치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선언이 전혀 이행되지 않고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어 가슴이 답답한 심정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6.15민족공동위원회에 주어진 임무는 명확한 분석에 따라 통일운동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공동선언이 이행되지 않는 원인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통일의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해 단결된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일환으로 개최된 오늘의 공동토론회에서 우리 모두가 정세인식을 같이 하여 공동행동을 힘있게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한미합동군사연습 중지를 결단하지 못해 남북관계 개선의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남북관계 교착상태는 여당의 보궐선거 패배이유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권은 금후 계획된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합니다.

북부조국은 미국에 굴복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이미 불가역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이든 정권이 알아야 합니다. 대북적대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고립되고 궁지에 몰린 것은 미국측입니다. 바이든 정권의 대북적대정책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우리 공동행동기간의 운동으로 만들어 봅시다.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대의 요구는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투쟁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전세계 곳곳에서 비판과 공격을 받고 내부적으로도 분열되고 있으며 쇠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굳은 결의로 불퇴전의 투쟁을 벌이면 승리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10.4선언 14돌까지의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한 공동행동기간》에 돌입하게 됩니다. 자주의 기치아래 굳게 연대연합하여 함께 전진해나갑시다.

오늘의 공동토론회가 승리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공동결의문(전문)

민족자주 정신으로 평화, 통일로 나아가자!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정신으로 남북관계를 보다 전면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4.27판문점선언 발표 3년이 되었다.
그러나 온 겨레의 큰 기대 속에서 탄생한 선언은 오늘날 단 한 조항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약속의 불이행은 신뢰를 무너뜨렸고,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겨레 앞에 맺은 약속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굳은 결단과 일관된 행동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합의라도 결실을 거둘 수 없다.

분단과 전쟁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은 온 겨레의 간절한 염원이다.
오늘 4.27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겨레의 절절한 통일염원을 담아 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정신으로 남북공동선언을 실현하자!
그 어떤 간섭과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민족자주의 입장에서 온 겨레의 힘과 지혜를 합쳐 나갈 때, 겨레 앞에 놓인 난국을 타개하고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
민족자주의 기치 아래 남북공동선언들을 반드시 실현하자!
미국의 내정간섭, 민족분열정책을 단호히 거부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대북제재 등 공동선언에 역행하는 적대행위를 중단하여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하자!

자국의 패권 실현을 위해 갈등과 대결을 강요하는 미국의 부당한 압박과 일본의 도전에 단호히 맞서 나가자!
자국의 패권을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합의도 외면한 채 대북, 대중국 압박에만 몰두하는 미국의 패권정책은 겨레의 자주권과 이 땅의 평화를 훼손하는 근본 걸림돌이다. 군사대국화를 꾀하면서 과거사 왜곡, 동포 차별, 독도 등 영유권 침해를 서슴지 않는 일본은 최근 핵 오염수 방류라는 환경파괴 범죄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 땅의 분단과 전쟁을 활용하여 저들의 패권 이익을 실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강대국들의 부당한 패권 정책과 이를 추종하며 주권을 포기하고 대결정책에만 몰두하는 사대세력들의 행태를 반드시 저지하자!

자주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모두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 겨레의 앞길을 우리 힘으로 개척해 나가자!
민족의 고통은 그 어느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 않으며, 오로지 단결된 겨레의 힘만이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 땅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남북관계 개선과 자주, 평화를 위한 행동에 적극 나서자!
4.27-10.4 기간 동안 남북해외 온 겨레가 세계 곳곳에서 적극적인 실천을 펼쳐, 적대와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자주와 평화, 통일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자!

2021년 4월 27일

4.27 판문점선언 3주년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서울-도쿄 공동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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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며 걸려오는 전화, 그 뒤엔 죽을듯한 감정노동

등록 :2021-04-27 05:03수정 :2021-04-27 10:32

나는 투명노동자입니다 : 자살예방 전화상담 김슬기

보건복지부 소속 무기계약직
코로나19로 상담콜수 폭증
휴일, 연장수당 받기 어렵고
정신건강 돌보기도 쉽지 않아
 
보건복지상담센터 위기대응상담팀 김슬기 상담사가 경기 수원 자신의 집에서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 김씨는 임신으로 재택근무 중이다. 수원/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보건복지상담센터 위기대응상담팀 김슬기 상담사가 경기 수원 자신의 집에서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 김씨는 임신으로 재택근무 중이다. 수원/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저희는 한마디로 총알받이예요.”김슬기(28)씨는 ‘죽고 싶다’는 전화를 매일 받는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이들이 1393번(자살예방 상담전화)으로 전화를 걸면 김씨와 그의 동료들에게 연결된다. 김씨는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 위기대응상담팀에서 일하는 상담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그는 자살 예방이라는 공무를 담당하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공무직이다. 공무원과 임금 체계나 복지 수준이 달라 호봉제를 적용받지 못한다. “급여가 적고, 경력에 따라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라 이직률이 높아요.” 상담센터 직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지난 3월 김씨의 실수령액은 220만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그는 자살 예방이라는 공무를 담당하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공무직이다. 공무원과 임금 체계나 복지 수준이 달라 호봉제를 적용받지 못한다. “급여가 적고, 경력에 따라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라 이직률이 높아요.” 상담센터 직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지난 3월 김씨의 실수령액은 220만원이었다.

 

슬기씨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슬기씨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코로나19 영향으로 상담전화 건수가 대폭 늘었지만, 상담사 수는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393번으로 월평균 1만4542건의 상담전화가 왔는데, 코로나19 이전보다 60%가량 늘어난 수치다. 상담사 36명이 4조 3교대로 24시간 전화를 받고 있지만, 상담사에게 닿은 전화는 5000건 정도다. 상황이 이러니 민원인들 불만도 크다.“상담사들이 전화를 못 받아 자해했다고 탓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 전화를 받으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어요.”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매일 여러번씩 들으며 감정노동을 하고 있지만, 김씨 자신의 정신건강을 돌보기는 쉽지 않다. 상담센터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상담사의 정신건강에 대한 지적을 받고서야 위기대응상담팀 소속 직원들에 한해 심리상담 2회를 지원했다.

 

슬기씨의 업무용 노트북에 ’돈보다 생명을’ 스티커가 붙어 있다. 박종식 기자
슬기씨의 업무용 노트북에 ’돈보다 생명을’ 스티커가 붙어 있다. 박종식 기자
 
김슬기씨는 코로나19로 상담업무가 폭증하는 중에도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복지부는 포괄임금계약을 맺어 기본급에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이 포함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은 고용노동부에 2019년 11월 임금체불 진정을 냈고 13개월이 지난 올해 1월에야 밀린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수원/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2728.html?_fr=mt1#csidx35f1dff0d38433b8f1bfdcf2cda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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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다음 제휴 ‘파격’ 방안, 권역별 지역 매체 선정

지역언론 ‘가산점’ 논의했으나 ‘권역별 할당제’로 선회, 할당 기준 논란 여지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네이버와 다음의 뉴스제휴 심사에 지역 권역별 1개 언론사씩 선정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지역언론과 시민단체가 포털에 지역 다양성 구현을 요구한지 2년 만에 개선안을 내놓은 것인데, 전보다 다양한 지역언론을 포털에서 볼 수 있게 됐지만 권역 구분 기준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지난 23일 전원회의를 통해 별도 심사 전형을 신설해 지역언론 9개 권역별로 1개 언론사씩 선정하는 내용의 특별 심사규정을 의결했다. 

뉴스제휴평가위는 논의 끝에 지역을 인천·경기,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전북, 광주·전남, 강원, 세종‧충북, 대전‧충남, 제주 등 9개 권역으로 확정했다. 9개 권역의 신문·방송사들이 경쟁을 통해 권역별로 가장 점수가 높은 1개 언론사만 CP 제휴를 맺게 된다.

▲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네이버와 다음의 언론사 제휴 및 퇴출 심사 기준을 만들고 실무를 담당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네이버와 다음의 언론사 제휴 및 퇴출 심사 기준을 만들고 실무를 담당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CP제휴(콘텐츠 제휴)는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를 구매하고 포털 내에 인링크로 서비스하는 개념으로 금전적 대가를 제공하는 최상위 제휴다.  

당초 뉴스제휴평가위는 지역 언론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추진했다. 뉴스제휴평가위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존 입점 심사 결과를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가산점을 주더라도 CP(콘텐츠 제휴)에 통과하는 지역 언론은 미미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지역언론 할당안이 비중 있게 논의됐다. 복수의 전현직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포털측은 도별 1개사만 제휴를 맺는 방안에 무게를 두며 신규 제휴를 최소화하려 했다. 반면 언론계 일부 위원은 광역단위별 1개사씩 제휴를 맺는 방안을 제시하며 맞섰다. 논의 끝에 절충안으로 9개 권역으로 합의한 것이다. 

▲ 2019년 6월 전국언론노동조합·전국민주언론시민연합·한국지역언론학회·지방분권전국회의·(사)지역방송협의회가 지난달 2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앞에서 ‘네이버의 지역 언론 배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제공
▲ 2019년 5월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전국민주언론시민연합·한국지역언론학회·지방분권전국회의·(사)지역방송협의회가 지난달 2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앞에서 ‘네이버의 지역 언론 배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제공

경상도를 예로 들면 포털이 선호하는 안은 경상도 1개 언론과 제휴를 맺는 내용이다. 반면 언론계 일부 위원의 안은 대구, 부산, 울산, 경남, 경북 등 5개 언론과 제휴하는 안이다. 최종 타결된 절충안은 부산·울산·경남 1개, 대구·경북 1개 등 2개 언론과 제휴를 맺는 내용이다. 뉴스제휴평가위 내부에선 이견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절충안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뉴스제휴평가위는 지역언론이 지역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입점 때 기본 요건인 자체기사 30%(보도자료 기사, 기자 바이라인 없는 기사 등을 제외한 자체적으로 취재한 기사) 뿐 아니라 지역 자체기사 80% 이상 작성을 추가 요건으로 두고, 통상 6개월 단위로 이뤄진 퇴출 평가를 지역 언론에 한해 3개월 단위로 모니터링해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해지할 수 있게 했다. 

CP 자격을 박탈당한 지역 언론사는 1년 동안 제휴심사를 받을 수 없고, 이 기간 동안 다른 언론사들이 경쟁을 통해 제휴를 맺게 된다.

현재 포털 CP제휴 매체 가운데 지역언론은 네이버 기준 3개사(매일신문, 부산일보, 강원일보)에 불과하다. 권역별 할당제는 기존 입점 매체는 예외로 하기에 네이버 기준 12곳의 지역언론이 입점하게 된다.

▲ 네이버 기준 지역언론의 비중은 제휴 등급이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검색제휴 매체 가운데 지역언론 비중은 16.7%로 나타났다. 스탠드 제휴에선 14.2%로 검색제휴에 비해 소폭 줄었다. 최고등급 제휴인 콘텐츠 제휴에서는 4.1%(연예매체·연합뉴스 외신 전용 제휴 제외)에 불과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네이버 기준 지역언론의 비중은 제휴 등급이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검색제휴 매체 가운데 지역언론 비중은 16.7%로 나타났다. 스탠드 제휴에선 14.2%로 검색제휴에 비해 소폭 줄었다. 최고등급 제휴인 콘텐츠 제휴에서는 4.1%(연예매체·연합뉴스 외신 전용 제휴 제외)에 불과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하지만 지역 할당 방식과 기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전대식 전국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전 지역신문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지역언론을 별도 트랙에 태워 심사하겠다는 점은 의미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2년 이상 기다렸는데 부실한 제품을 내놓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전대식 수석부위원장은 권역 기준에 대해 “지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구분한 것”이라며 “지역에 따라 인구 규모 등에 차이가 있고, 도 단위로 보면 영역이 상당히 넓어 같은 지역으로 보기 무리 있는 경우가 있다. 지역별 시청자와 독자에 대한 고민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전대식 수석부위원장은 권역별 할당이 아닌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 심사 기준과 언론 영향력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지수를 활용해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그간 언론노조, 시민단체 등에서 관련 논의를 요구했는데 포털과 뉴스제휴평가위는 응하지 않았다. 안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지역 언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토론회 등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어 설명]

△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 네이버와 카카오(다음)가 직접 실시해오던 언론사 제휴 심사를 공개형으로 전환하겠다며 공동 설립한 독립 심사기구. 심사 공정성 논란에 시달린 포털이 심사 권한을 외부에 넘기면서 논란을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론사 단체 중심으로 구성돼 초기부터 비판을 받았다. 출범 과정에서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 등을 포함해 외연을 확장하기도 했다.

△ 콘텐츠제휴(CP), 검색제휴 : 포털 뉴스 제휴방식. 검색제휴는 포털이 전재료를 지급하지 않고 검색 결과에만 노출되는 낮은 단계의 제휴로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다. 콘텐츠제휴는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를 구매하는 개념으로 금전적 대가를 제공하는 최상위 제휴다. 포털 검색시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되지 않고 포털 사이트 내 뉴스 페이지에서 기사가 보이면 콘텐츠 제휴 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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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강원 청소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전력투구"

[인터뷰] 임기 10년 맞은 최문순 강원도지사... "강원도 고성을 남북한 통일특구로"

21.04.27 07:21l최종 업데이트 21.04.27 07:27l
 최문순 강원도지사
▲  "제가 북한에 가서 "강원도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자기네 강원도로 안다. 북한 강원도에도 도지사(도당위원장)가 있다.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남북의 강원도지사가 함께 서명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조직위원회도 같이 꾸리고, 행사도 같이 하고, 개막식과 폐막식을 남북의 강원도에서 번갈아가며 치를 수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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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고기를 잡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부지런히 많이 잡으세요. 그래야 애들 공부도 시키고 효도도 하지요. 재고는 걱정하지 마세요. 잡는 게 어렵지 파는 게 어렵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잡으세요. 다 우리 도민들의 일입니다. 공복(公僕)은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말은 무엇보다 큰 힘으로 다가왔다... 그 많던 도루묵이 팔리고, 그 돈은 어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감자의 꿈>에 실린 고성수협장의 글

낮에는 감자 탈을 쓴 채 전통시장을 누비고, 밤에는 SNS에서 도루묵을 팔아 '도루묵지사', '감자지사'로 불렸던 최문순. 춘천에 사는 이문경씨는 "90도 인사. 갑을이 따로 없다. 장관, 기관장, 청소노동자, 어민, 장애인... 누구에게나 대충인 법이 없다"며 '문순C의 인사법'으로 그를 기억한다.

2011년 4월 27일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 연달아 두 차례 선거에서 이겨 올해 도지사 임기 10년째를 맞은 그를 지난 21일 오후 여의도 커피숍에서 만났다.

'임기 10년 소회'를 묻는 첫 질문에도,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는 이어진 질문에도 최문순 지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꼽았다. "분단과 대립의 땅이었던 강원도의 정체성이 남북의 평화·화해·협력을 더 우선에 두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평창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북한이 ICBM 화성15호를 쏘아올려 올림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가 그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감자의 꿈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지금까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최 지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다. 남과 북이 유일하게 같은 행정구역 명칭을 쓰는 도(道)가 강원도이고,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가 아닌 도 이름이 붙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강원 청소년올림픽은 남과 북이 함께 하기에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기초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남북이 동일한 이름을 쓰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최 지사가 남북관계에 목을 매는 건 강원도의 발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 전후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었을 때 강원도는 사회간접자본(SOC)이 확대되면서 성장했다. 강원도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광역지자체다. 그런 탓에 '인구 3%의 벽'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같은 한계도 남북 강원도의 교류가 활발해질 때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40대 후반에 MBC 사장을 맡았고, 이후 국회의원(비례대표)과 광역 지자체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그에게 내년 대권 도전에 대해 묻자 "질문만으로도 영광이지만, 강원도지사도 겨우 하고 있다"며 몸을 낮췄다. 강원도지사 임기 후에는 남북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정치 철학은 '인간의 존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바탕 위에서 빈부격차, 청년실업, 기후변화 등의 문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강원도지사 임기 내내 문순C가 바라 마지않았던 '감자의 꿈'이기도 하다.

"감자 한 알 한 알이 모두 귀한 감자들입니다. 누구도 버릴 수 없습니다. 감자들 한 알 한 알이 존중받고 존엄하게 여겨지는 감자밭! 못생긴 감자도 찌그러진 감자도 굼벵이 먹은 감자도 귀퉁이에서 자란 감자도 덜 자란 감자도, 모두가 귀하게 여겨지는 감자밭! 그것이 '감자의 꿈'입니다."

다음은 최문순 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현장에 나가보면, 정치라는 게 국민을 먹여살리는, 그 분들의 주머니 속에 돈을 넣어주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치열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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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뒤 지금까지 세 차례 강원도지사 직을 맡고 있다. 올해 4월 27일이 만 10년째다. 소회가 남다를텐데.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내려갔을 때 강원도의 정치 지형은 진보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남북으로 나뉜 강원도의 정체성은 분단과 대립의 땅이었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전쟁을 치렀고 피해도 컸다. 북한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는데, 금강산관광과 평창올림픽을 거치면서 평화가 더 낫다는 생각이 커졌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평화 이슈가 분단과 대립을 넘어서고 있다. 정치 이념도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 지난 10년 동안 강원도정을 이끌면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최문순 표' 정책은 무엇인가.

"가장 큰 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다. 국민들의 성원과 IOC(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한 세계인들, 그리고 북한이 참가한 가운데 올림픽을 평화롭게 치렀다. 강원도의 정체성이 바뀌는 과정이기도 했다. 올림픽 계약자였던 강원도지사로서 제일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년 뒤에 치러지는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도 유치했다. 남북 공동개최를 제안하려고 한다. 원래 올림픽은 서울올림픽, 베이징올림픽, 베를린올림픽처럼 도시 이름을 쓴다. 그런데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은 '강원'이라는 도(道)의 이름을 쓴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강원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서 정부와 IOC에 건의했고, '강원' 이름을 쓰기로 합의했다."

남한에도 강원도, 북한에도 강원도가 있다

- 북한도 강원도라는 명칭을 쓰나.

"그대로 쓴다. 제가 북한에 가서 '강원도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자기네 강원도로 안다. 북한 강원도에도 도지사(도당위원장)가 있다.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남북의 강원도지사가 함께 서명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조직위원회도 같이 꾸리고, 행사도 같이 하고, 개막식과 폐막식을 남북의 강원도에서 번갈아가며 치를 수 있다. 원산의 마식령스키장도 이미 개발돼 있어서 남북이 합의만 하면 공동개최에는 문제가 없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강원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했고, 철원역은 서울역과 크기가 비슷했다. 물류·관광의 요지였는데, 분단이 되면서 졸지에 변방이 됐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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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부심을 갖는 또다른 '최문순 표' 정책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게 경제, 일자리다. 강원도의 일자리는 비교적 괜찮다. 제가 처음 취임했던 2011년에는 고용률이 (광역지자체 가운데) 전국 꼴지였다. 매년 조금씩 올라가 지금은 중위권이다. 평창올림픽을 치르면서 KTX 등 철도, 서울-양양고속도로,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확장됐다. 그에 따라 인구도 조금 늘어났고."

- 도지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평창올림픽 때 남북이 공동입장했던 순간이다. 강원도는 38선이 바로 지나가고, 한국전쟁 당시 사망자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았던 지역이다. 속초 아바이마을 등 이산가족들도 많이 살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감회가 남달랐다. '강원도가 이제는 평화와 화해, 협력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됐구나', 이런 극적인 전환을 실감했다."

잊혀지지 않는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ICBM 쏘아올린 날

-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2017년 11월 29일이다. 평창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이 그날 새벽 3시30분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호를 쏘아올렸다. 그리고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전했다). 올림픽 티켓을 팔고 붐을 일으켜야 할 때였는데, 지금 도쿄올림픽 같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당시 IOC에선 연기·취소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더라." (※ 북한은 올해 초 11월 29일을 '로케트공업절'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후 반전 포인트는 무엇이었나.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시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 아휴, 안도감이랄까...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오는 것과 안 오는 것은 천지차이다. 안전, 숙소, 이동거리 등 모든 준비 상황이 다 달라진다. 심지어 올림픽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고 하니까요."
 
 최문순 강원도지사
▲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남과 북의 행정 명칭이 같은 게 고성이다. 고성의 땅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다. 남북의 공통된 "강원도" 안에 있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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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으로 훈풍이 불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금 교착상태에 빠졌다.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러들었고.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는가.

"평창올림픽 전후에는 그 이전까지 금기시됐던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남북의) 분위기가 좋았다. 불가침협정, 평화협정, 정전협정... 이후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망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이 중요하다. 남북 공동개최를 제안하자고 새 총리에게 건의하려고 한다. 국제 스포츠 경기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체면 상하지 않으면서 참석할 수 있다. 스포츠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보려고 한다." 

- 내년 도지사 임기를 마치기 전에 북한에서 공동개최 제안을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텐데.

"그렇다. 북한 강원도당위원장(도지사)이 박정남이라는 사람이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하노이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했다. 북한은 베트남 방식으로 개혁개방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래서 데려간 사람이 박정남 위원장이다. 개발을 마친 원산을 먼저 개방하고 싶어한다. 호텔과 콘도로 지난해 4월 완공했다. 국제 스포츠 경기를 남북 공동으로 치를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마련돼 있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을 수 있다."

"정치라는 건 국민 호주머니에 돈 넣어주는 일"

- 강원도 농수산물 판매에 직접 팔을 걷어붙여 '도루묵지사', '감자지사' '완판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왜 시작했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반응은 어땠나.

"대개 정치라고 하면 추상적이거나 법률·정책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나가보면, 정치라는 게 국민을 먹여살리는, 그 분들의 주머니 속에 돈을 넣어주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치열해야 한다. (민생) 현장에서 원하는 건 서로를 비난하는 여의도 방식의 정치가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든 문제를 풀어주길 원한다. 그래서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세일즈에 홍보맨을 자처했다.

농수산물을 파는 것도 노하우가 쌓여야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홍보했는데도 생각보다 안 팔렸다. 게다가 하루종일 매달려야 하고, 클레임이나 사소한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해줘야 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여러 차례 하다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나중에는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준비된 물량이 다 팔렸다. 농수산물은 자칫 팔 시기를 놓치면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다 팔리니 고마워한다."

- 다른 한편에서는 농수산물을 싼 가격에 팔아서, 아직 팔지 못한 농수산물의 판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해당 농수산물을) 판매하기 전에는 미리 시장조사를 한다. 시장 가격도 보고, 서울 가락동시장에 가격 조사를 하러도 나간다. 선의로 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교하게 가격과 물량을 결정한다.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관료들에게 그냥 맡겨둔다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경제, 문재인 정부 때는 일자리 경제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을 붙인다고 실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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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는 인구 약 154만 명으로,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 그런 탓인지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속상하다. 그래서 '인구 3%의 벽'이라는 얘기를 한다. 강원도의 인구 수가 우리나라 인구의 3% 정도를 차지한다. 정치·경제·행정·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강원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했고, 철원역은 서울역과 크기가 비슷했다. 물류·관광의 요지였는데, 분단이 되면서 졸지에 변방이 됐다.

북강원도 150만, 남강원도 150만, 먹고 살기 힘드니까 밖으로 떠난 사람이 150만, 원래의 인구는 500만 정도였다. 당장 인구 3%의 벽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유일하게 남과 북 모두 똑같은 명칭을 쓰는 도(道)가 강원도다. 남북 강원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존재감과 중요성이 더 부각될 거라고 본다.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강원평화특별자치도가 돼야 한다. 남북이 군사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율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끔. 법안도 추진 중이다.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남과 북의 행정 명칭이 같은 게 고성이다. 고성의 땅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다. 남북의 공통된 '강원도' 안에 있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기자 주 - 21대 국회에는 3건의 평화경제특구법안이 상정돼 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심사 계류 중이다.)

강원도, '인구 3%의 벽'을 넘어서려면...

- 강원도 홍천에 추진 중인 '한중문화타운'을 둘러싸고 차이나타운 건립 반대 여론이 거선데.

"좀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도 하다. 이건 2009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일이다. 부지가 민간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다 짓고 땅이 남으니까 거기에 호텔과 콘도, 공연장 등을 지으려고 한 거다. 그러다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반중(反中) 정서 영향으로 갑자기 문제가 불거졌다. 사실이 아닌 게 사실인 것처럼 퍼지는 얘기도 많다. 그래서 걱정이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65만 명가량이 청원동의를 했다. 공식 답변은 어떻게 하게 되나.

"강원도 차원에서 답변 내용을 정리해 청와대에 전달하면, 청와대가 검토한 뒤 절차에 따라 공식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업의 주체는 민간기업이고, 강원도는 인·허가 주체다. 공공 프로젝트가 아니다. 해당 기업이 중국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어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 춘천 중도에 짓고 있는 레고랜드 테마파크는 내년 초에 개장할 예정이다. 선사유적지가 발굴된 터여서 오랫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서울에서도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화재위원회에 물어보고 그 결정에 따른다. 강원도도 똑같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세 가지를 결정했다. 첫째, 이걸 더 발굴하는 건 우리 세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그대로 덮어놓아라. 둘째, 노출된 유적은 그 상태로 공원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해라. 셋째, (옮길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은) 박물관을 만들어서 전시해라. 강원도는 그 결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남북관계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할 때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은 사람을 보고 한다. (평창올림픽 등) 북한과의 신뢰를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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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했는데, 올해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는 큰 격차로 패배했다. 더욱이 20대는 철저하게 민주당을 외면했다. 1년 사이에 민심이 급격하게 변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민들은 진보·개혁 정권이 빈부격차,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다. 언론·검찰 개혁보다 더 밑바탕에는 이런 요구가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이고, 코로나 여파로 (경제적인 상황이) 더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더 치열하게 (민생을) 고민했어야 한다.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부동산 문제도 기본적인 철학과 토대가 단단하지 않았다.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니... 공공기관을 평가할 때도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가 아니라 채용 문제 등 고용에 대한 노력을 더 중요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

-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 4년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남북관계에 있어서 군사 대치를 현저하게 완화돼서 더 이상 그 전 단계로 돌아가지 않게 한 것이 가장 큰 공이다. 코로나 방역도 일부 비판이 있긴 하지만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게 분명한 공이다. 이에 반해 빈부격차와 청년들의 빈곤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기저질환이 더 심화한 건 과라고 본다. 남은 임기 동안에라도 '고용국가'가 될 수 있도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코로나 잘 대처했고 일자리는 안타까워"

- 문재인 정부도 일자리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관료들에게 그냥 맡겨둔다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경제, 문재인 정부 때는 일자리 경제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을 붙인다고 실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강원도에서는 도비로 월급을 지원하는 '취직사회책임제'를 추진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취업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더 파격적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 연달아 세 번 강원도지사를 역임했기 때문에 내년 지자체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다. 임기를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남북관계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할 때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은 사람을 보고 한다. (평창올림픽 등) 북한과의 신뢰를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북관계 일은 느슨하면 다시 뒤로 돌아가고 진전이 안 되기 때문에 온몸을 바쳐서 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 위에서 빈부격차, 기후변화, 청년실업 등에 대한 민주당의 진보적인 색깔을 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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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후반에 MBC 사장을 했고, 이후에는 국회의원(비례대표)과 광역 단체장을 세 차례나 맡았다. 이러한 이력은 매우 드물다. 필요조건(스펙)은 갖췄다고 볼 수 있는데 대권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그런 질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만, 제가 그런 역량을 갖췄다고 보지는 않는다. 강원도지사도 겨우 하고 있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남북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게 더 급하고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잇달아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의 해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의 도정 철학이 '인간의 존엄'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헌법 철학이기도 하다. 독일 헌법 1조 1항에는 인간의 존엄이 명시돼 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에 따라서 나라의 틀을 짜는 거다.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도 인간의 존엄이라는 관점에 따라서 다시 틀을 짜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 위에서 빈부격차, 기후변화, 청년실업 등에 대한 민주당의 진보적인 색깔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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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세계 국방비는 증가...미국 압도적 1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4/27 11:40
  • 수정일
    2021/04/27 11: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백남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4/2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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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국면에서도 작년 전 세계 군비지출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39%를 차지하며 압도적 1위를 유지했다. 

 

▲ ▲ 전 세계 군비지출 추이. (자료 :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   © 편집국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는 26일(현지시간) ‘2020년 세계 군비지출 흐름’ 보고서에서 작년 전 세계 국방비 지출 총액을 2019년보다 2.6% 늘어난 1조9,810억 달러(약 2,200조8,910억 원)로 추산했다. 

 

연구소가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8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2.2%에서 2.4%로 0.2%포인트(p) 오르며, 2009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미국은 2020년 전 세계 국방비의 39%에 해당하는 7,780억 달러를 지출하며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상위 12개국의 국방비 합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 국방비는 7년간 줄였다가 최근 3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2020년 국가별 군비지출 비중. (자료 :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  © 편집국


알렉산드라 마크스타이너 SIPRI 연구원은 미국의 군비지출 증가와 관련해 핵무기 현대화와 대규모 무기 조달 같은 여러 장기 프로젝트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2,520억 달러로 2위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군비지출 비중의 13%다. 중국의 군비 지출은 26년 연속 증가했다. 

 

그 외 인도(729억 달러), 러시아(617억 달러), 영국(592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575억 달러), 독일(528억 달러), 프랑스(527억 달러), 일본(491억 달러)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전 세계 군비 지출의 2.3%에 해당하는 457억 달러를 사용하며 10위를 기록했다. 

 

상위 5개국은 전 세계 국방지출의 62%, 상위 10개국이 75%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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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조정 3개월, ‘경찰 수사 부실’ 통계 자료 낸 검찰

강석영 기자 
발행2021-04-27 09:50:57 수정2021-04-27 09: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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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자가격리에 연차 내라…코로나 1년 휴업·휴가 강요 2700건

등록 :2021-04-26 04:59수정 :2021-04-26 09:49

노동부, 휴업·휴직·휴가 익명신고센터 개설 1년
격리기간 등 연차사용 강요 937건 가장 많아
휴업수당 미지급 756건, 휴직강요 525건도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초기상담 창구 인근에서 시민들이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초기상담 창구 인근에서 시민들이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해 6월 경남 김해시에 있는 한 병원은 코로나19로 매출이 하락하자 병원 노동자들에게 두 가지 동의서를 내밀었다. 하나는 직원들에게 이미 근무해서 받아야 할 월급 가운데 30%를 받지 않겠다는 동의서였다. 다른 하나는 정확한 날짜나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무급휴가 동의서’였다. 직원들은 서명을 원치 않았지만, 사용자의 압박에 결국 두 가지 동의서 모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얼마 뒤 이 사안은 고용노동부의 ‘휴업·휴직·휴가 익명신고센터’(익명센터)에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 접수를 전달받은 근로감독관은 병원 쪽에 노동자 동의 없는 임금 삭감과 휴직 강요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미 제공된 노동에 대해 노동자에 지급되지 않은 임금을 모두 지급하고, 휴직 
회사가 음성 직원에 격리 지시하곤 연차사용 강요
신고 사례 가운데에는 회사가 휴업과 연차, 휴직 등 여러 부문에 걸쳐 부당하고 불법적인 지시를 내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기 수원시의 한 제조업체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지난해 5월 서울 이태원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이 회사는 이태원 방문 이력이 있는 노동자에 대해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지시했다. 이후 회사는 이태원 방문 이력이 확인된 노동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자가격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자가격리 기간 가운데 이틀은 연차휴가를 쓴 것으로 처리하고, 이틀은 무급휴가로 처리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났는데도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면 이는 사업주의 귀책사유에 해당해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연차와 무급휴가로 처리할 수도 없다. 이 사례 역시 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서 근로감독관이 지도에 나섰고, 회사는 뒤늦게 조처를 취소하고 해당 노동자의 자가격리 기간을 유급휴가로 바꿨다.
 
앞서 노동부는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사용자들이 일방적으로 휴업과 휴직, 휴가 등에서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생기면서 이를 신속하게 방지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가족돌봄휴가 익명신고센터’를 확대·개편해 현재의 포괄적 익명센터를 개설했다. 원래는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지면서 운영이 연장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사업주가 노동관계법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당하게 휴업·휴가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익명센터를 활용하면 근로감독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사업장을 개선할 수 있으니, 코로나19 국면을 고려해 이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코로나19를 근거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쉽게 불이익을 주고 해고하고 있다”며 “소규모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등 신고되지 않은 사례도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이미 신고된 사례들도 제대로 처리됐는지 끝까지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현재 사용자의 부당한 처사를 신고하고 싶다면, 노동부 누리집 휴업·휴직·휴가 익명신고센터 시스템에 접속해서 피해 내용, 사업장 정보 등을 입력하면 된다. 익명은 물론 실명으로도 신고할 수 있다. 내용이 등록되면 담당 근로감독관이 배정돼 해당 사업장에 개선을 지도한다.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신고 사건을 각 지역 노동관서 등이 맡아서 담당하거나 담당자가 신고인에게 근로감독 청원 절차를 안내한다.
코로나19 관련 휴업·연차·휴직 등 노동관계법 주요 내용△감염병예방법에 따라 회사(사용자)는 소속 노동자가 입원하거나 격리된 뒤 보건당국에 의해 유급휴가 비용을 지원받기도 합니다. 이때 노동자는 반드시 유급휴가를 부여받아야 합니다.△노동자 가운데 확진자, 유증상자, 접촉자 등이 없거나, 확진자의 방문으로 인한 방역조처가 완료된 뒤에도 회사가 휴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방역당국의 조처가 아닌 회사가 자체 판단으로 휴업하는 것인데, 이 경우 노동자는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코로나19로 부품 공급이 중단된 제조업체가 휴업하거나 여행사 등에서 예약취소·매출감소 등으로 인한 휴업을 하더라도 노동자는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넓은 범위에서 회사의 책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경영 악화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할 때 유급 휴업‧휴직 등의 고용유지 조처를 한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해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급여 삭감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개별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원칙적으로 휴업수당은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회사는 평균임금의 70%가 통상임금을 초과하면 통상임금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할 수 있습니다.△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회사는 연차 유급휴가를 노동자가 요청한 시점에 줘야 합니다. 다만 회사는 병가·휴직 등으로 일시적으로 인원이 부족하거나, 휴가청구일이 집중되는 등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노동자의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휴가 자체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법 위반입니다.참고 자료: 지난해 3월 노동부가 발간한 코로나19 관련 노동관계법 주요 큐앤에이(Q&A)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92541.html?_fr=mt1#csidx8d95e31fd488cd187030da5a0001a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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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노동절, 그리고 노동자가 만들어낸 역사의 진보

이완배 기자 
발행2021-04-26 08:14:22 수정2021-04-26 08: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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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사진작가, 나무 막대기 들고 다니는 이유

[인터뷰] '우포늪 사진가' 정봉채의 시선과 철학21.04.26 07:39l최종 업데이트 21.04.26 08:38l조우성(cws1691)

 

 우포늪에 비친 아름다운 반영 풍경
▲  우포늪에 비친 아름다운 반영 풍경
ⓒ 정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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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정봉채 사진작가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정봉채 갤러리에서
▲ 정봉채 사진작가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정봉채 갤러리에서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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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채 사진작가는 2000년부터 경남 창녕의 우포늪을 사진에 담기 시작해 올해로 21년이 지났다. 우포에 거처를 마련해서 사진을 찍은 지는 14년 됐다. 그는 2008년 제10차 람사르 총회 공식 사진작가로 초대됐고, 서울 청담동의 줄리아나 갤러리에 전속돼 중국 상하이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작품들이 모두 '완판'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싱가폴, 미국 등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혀 왔다. 2016년에는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라고 하는 스위스 바젤 솔로 프로젝트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그의 작품만 초대전시되기도 했다. 외국전시회를 통해 팔린 그의 작품이 100여 점을 넘는 등 그의 사진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인기가 더 많다. 

그를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정봉채 갤러리에서 만나 우포와 사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따오기를 찍는 이유
 

 아름다운 따오기의 모습
▲  아름다운 따오기의 모습
ⓒ 정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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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의 관심은 온통 따오기에 집중돼 있다. 따오기는 창녕 우포늪의 상징이다.

 

"따오기는 환경의 지표가 되는 새입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농사를 지으면서 따오기가 줄어들기 시작해 1979년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40년이 지난 2019년 복원해 현재까지 80마리를 방사했습니다.

일본도 우리보다 10년 빠르게 따오기를 복원해 사도섬에 방사했는데, 섬 주민들이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따오기들이 자연부화도 하고 성공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도섬의 쌀은 일본에서 다른 쌀보다 10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합니다. 사도섬 사람들은 쌀농사만 잘 지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어 따오기를 '행운을 가져다 준 새'라고 말합니다."

'친환경을 상징하는 행운의 새', 이것이 그가 따오기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였다.

"사람들이 제 사진을 통해서 아름다운 따오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을 한 번 되짚어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한 3년째 방사된 따오기를 추적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거죠."
            
최근 그의 작품에 줄풀도 많이 보인다.

"줄풀이 원래 벼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이게 철새들의 주식이 됩니다. 우포늪에 줄풀이 많이 자라는데, 겨울 지나면 철새들이 다 먹어버려요. 그러면 남은 잔해가 떠다니면서 거기서 싹이 올라와서 자라나고 뿌리를 내리게 되죠."

그는 줄풀이 우포늪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줄풀의 대 안에 여러 가지 생명들이 기생하다가 겨울이 지나 날이 따뜻해지면 줄풀의 대 안에서 살던 여러 곤충들이 나와서 번식합니다. 줄풀의 대 안이 소위 생명의 집인 셈이죠. 또 줄풀이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작업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줄풀이 사실은 늪에서 굉장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자연의 순환을 깨달아 줄풀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줄풀 사진을 많이 찍게 됐습니다."
 
 줄풀사진
▲  줄풀사진
ⓒ 정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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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한 곳만 바라보다

정봉채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2008년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제10차 람사르 총회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눴다.

"람사르 총회 이전에는 제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포늪 한 곳만을 반복해서 바라보며 한없이 사유하다 보니 저의 내적 인성에 변화가 와요. 자신을 너무 과시하거나 겸손한 태도를 갖지 못하는 것이 사진에서 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결국 '사진은 내 마음'이고, 사진가의 좋은 마음이 바로 좋은 사진을 만들고, 마음이 안 되면 좋은 사진을 못 갖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사람이 사진을 만드는데,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 자체가 사진'이라고 봐요. 그 사람이 살아온 삶, 생각들이 사실은 모두 다 사진인 거죠. '사진은 바로 마음으로 찍는다'라는 것이 진실이고, '사진은 바로 카메라가 찍는다'라는 게 오해예요. 제 자신을 먼저 정화하고, 성숙시키고, 겸손한 태도를 갖고 살아가면 저절로 좋은 사진이 나오고, 그 사진이 결국은 사람들에게 소통이 되는 것이죠."

그는 우포늪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제가 자연에서 제일 크고 만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어요. 함부로 숲속을 지나다니고, 풀도 마음대로 밟고, 밑에 뭐가 깔려서 죽는지도 모르게 생물들을 밟고 다녔죠. 그런데 지금은 발을 쿵쿵거리며 지나가든지, 생물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나무 작대기를 툭툭 치면서 지나가든지 하게 돼요. 길이 나지 않은 곳은 억지로 다니지 않고 동물이나 사람이 길을 내놓은 곳으로만 다니게 되고요.

자연을 바라보며 사유하다 보니까 자연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고, 상대편의 입장도 생각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배려심도 생기고, 존중하는 마음도 생기고, 태도도 변하고요. 이렇게 제자신도 변하고, 저의 변화에 따라 사진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차피 사람은 자연 속에 있다"
 
 우포늪의 겨울 풍경
▲  우포늪의 겨울 풍경
ⓒ 정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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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사진 시장에 대해 물었다.

"우리나라에 사진 시장은 아직 없어요. 지금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젊은 친구들 때문에 약간 시장이 생기기도 했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예술로 인정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사진을 들여와 사진관을 먼저 열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는 사진관 문화가 있어요. 사진을 예술로 생각하기 보다는 사진관처럼 쉽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카메라를 돈이 엄청 많은 사람들의 놀이, 장난감처럼 생각한 거죠. 돈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보니 사진을 팔지 않고 그냥 나눠주었다는 거예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보니 사진을 그림처럼 예술작품으로 생각 안하고, 사진을 사고판다는 개념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외국의 사진 시장은 어떨까?

"외국 같은 경우, 특히 뉴욕은 그림보다 사진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진 시장이 훨씬 많아요. 제가 국내외 아트페어를 40~50번 정도 다녀봤는데, 저 같은 경우 외국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요.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이 제 사진에 관심이 많고, 반응도 좋고, 많이 팔려요. 심지어 완판까지 되니까 함께 갔던 화가들이 깜짝 놀라요. 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사진과 그림에 그렇게 경계를 두지 않아요. 오히려 사진에 관심을 더 두죠."

외국인들은 주로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외국인들은 주로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일단 단순한 걸 좋아해요. 복잡한 풍경 사진은 별로예요. 단순하면서 주제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들은 솔드아웃(완판) 된 것들이 좀 많죠."

그는 마지막으로 우포늪을 찍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들려줬다.

"자연을 사랑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차피 자연 속에 사는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자연 밖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자연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병이 들고, 내가 자연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파괴되거든요. 그래서 인간은 자연속의 존재라는 걸 생각하고 자연과 늘 가까이 하다 보면 결국은 행복해질 수 있어요. 좋은 작품도 나올 수 있고요. 모든 작품의 아이디어 소스는 자연에 있습니다."
 
 우포늪에서 물을 저으며 가는 어부의 모습
▲  우포늪에서 물을 저으며 가는 어부의 모습
ⓒ 정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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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개벽예감 441]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04/2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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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미국 전쟁실록에 수록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군공

2. 하동전투와 마산방어선 돌파전

3.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4. 고속기동군의 비대칭전법과 속결전씨나리오

 

 

1. 미국 전쟁실록에 수록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군공

 

모란봉악단이 2014년 9월 3일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신작음악회를 열었다. 모란봉악단의 공연종목 가운데는 2014년에 창작된 노래 ‘근위부대자랑가’도 있었다. 모란봉악단 성악가수들이 경쾌한 곡조로 부른 ‘근위부대자랑가’는 6.25전쟁 시기 근위칭호를 받은 8개 전투부대들의 군공에 관한 가사를 담았다. ‘근위부대자랑가’에서 일곱 번째로 나오는 근위부대가 바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6.25전쟁에서 어떤 군공을 세웠기에 근위칭호를 받았으며, 7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부대명칭이 대중가요에 오를 만큼 유명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2015년 2월 7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개성과 연안, 강령과 옹진반도, 김포, 인천 등지를 해방하였으며,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 경상남도를 종횡무진하면서 령활무쌍한 전술과 전법으로 남조선의 많은 지역들을 해방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락동강도하전투에서 무적의 공훈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1950년 8월 29일 근위칭호를 수여받았고, 6.25전쟁에서 특출한 군공을 세운 수십 명의 공화국 2중영웅과 공화국영웅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6.25전쟁에서 조선인민군과 격전을 벌인 미국군도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군공을 인정했다. 미국 육군역사연구소(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가 역사학자 로이 애플먼(Roy E. Appleman)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1961년에 펴낸 전쟁실록의 제목은 ‘남으로 낙동강까지, 북으로 압록강까지(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인데, 이 전쟁실록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전투기록이 서술되었다. 전쟁실록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코리아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기동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실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미육군 제8군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전투부대를 재배치해야 했고, 미국 극동군사령부와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자기들의 전쟁계획을 변경해야 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어떤 군공을 세웠기에 미국 육군역사연구소가 그처럼 높이 평가한 것일까? 6.25전쟁 초기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작전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월 25일 개성, 옹진 점령

6월 28일 한강하구 도하, 김포반도 점령

7월 3일 서울 영등포 점령

7월 4일 경기도 인천 점령

7월 8일 충청남도 천안 점령

7월 11일 충청남도 온양, 예산, 홍성 점령

7월 19일 전라북도 군산 점령, 금강 도하

7월 20일 전라북도 이리, 전주, 김제 점령 

7월 22일 전라북도 고창 점령

7월 23일 전라남도 영광 점령

7월 24일 전라남도 나주, 목포, 남원, 구례 점령

7월 25일 전라남도 순천, 여수 점령, 섬진강 도하

7월 26일 경상남도 하동 점령

7월 30일 경상남도 진주 점령

7월 31일 경상남도 마산 근교로 진격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개전 당일 개성을 점령하고 그로부터 한 달 만에 목포를 점령한 것은 매우 빠른 진격속도로 기동전을 전개했음을 말해준다. 어떻게 그처럼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있었을까? 다음에 열거한 사실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한국군을 압도하는 강한 무장력을 갖추었다. 6.25 전쟁 시기에 조선 주재 군사고문단 단장이었던 울라지미르 라주바예브(Vladimir N. Razuvaev)가 작성하여 소련군 총참모부에 보고한 문서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무장장비는 땅크 4대, 자행포 16문, 견인포 64문, 반땅크포 48문, 박격포 99문이었다.

 

2)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진격한 한강 이남 서부전선에는 한국군 전투부대가 없었고, 경찰대만 있었다. 사실상 무방비상태였다. 경찰대는 조선인민군이 땅크를 앞세우고 진격해온다는 소문만 들어도 줄행랑을 쳤다. 이런 사실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교전을 거의 하지 않고 전진하는 기동전을 전개하였음을 말해준다.  

 

3) 6.25전쟁 시기에 미국군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한강 이남 서부전선을 기동전으로 신속히 돌파한 뒤, 남부 해안지대에서 우회기동하여 부산으로 진격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군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전라남도 목포를 거쳐 경상남도 하동을 점령할 때까지 그들이 언제 어디로 기동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적진의 가장 약한 취약지대를 기동전으로 신속히 돌파하여 허를 찔렀음을 말해준다. <사진1>

 

▲ <사진 1> 위의 사진은 1950년 7월 20일 대전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조선인민군이 땅크를 앞세우고 대전 시내를 행진하는 장면이다. 대전전투에서 미국군 제24보병사단은 사단장 윌리엄 딘(육군 소장)이 조선인민군에게 생포되고, 1,15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궤멸적 타격을 입고 대전 이남으로 패주했다. 조선인민군 제3보병사단, 제4보병사단, 제105땅크사단이 대전을 포위하고 미국군 제24사단을 격파한 바로 그 날,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전라북도 이리, 전주, 김제를 연속점령했다. 1950년 7월과8월 당시 조선인민군은 부산을 향하여 파주지세로 진격하고 있었다.  

 

 

2. 하동전투와 마산방어선 돌파전

 

한강 이남 서부전선에서 교전을 거의 하지 않고 남진하여 목포를 점령하고 부산을 향해 우회기동하던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1950년 7월 25일 경상남도 하동에서 처음으로 교전다운 교전을 벌였다. 위에 인용한 미국 육군역사연구소의 전쟁실록 ‘남으로 낙동강까지, 북으로 압록강까지’에 하동전투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고 부산을 방어하던 미육군 제8군 사령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선인민군 전투부대가 하동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다급한 정찰보고를 받았다. 미육군 제8군 사령부는 마산방면에 배치된 제29독립보병련대를 1950년 7월 24일 하동방면으로 출동시켰다. 

 

그런데 하동방면으로 이동하는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 제3대대 대대장 해롤드 무어(Harold G. Moor, jr.) 중령의 뒤를 한국군 지휘관 한 명이 따라다녔다. 그가 바로 채병덕이다. (서울방어전에서 대패하고 한강 이남으로 패주한 채병덕은 한국군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고 영남관구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전투부대가 없는 허수아비 사령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군 중령의 뒤를 따라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 제13련대는 하동의 어느 야산에 매복하고 있다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에 불의의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미국군 대대장의 뒤를 따라가던 채병덕은 머리에 기관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고, 미국군 전투원들은 많은 전사자와 무기를 버려두고 황망히 패주했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계속 추격해오자 미국군 패주병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들이 입고 있던 군복과 신고 있던 전투화까지 모두 벗어던지고 거의 벌거숭이로 물에 뛰어들어 내를 건넜다. 내를 건너는 동안 수영을 하지 못하는 많은 패주병들이 물살에 휩쓸려 익사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미국군 패주병 60~70명이 약 2.5km를 허겁지겁 도주하다가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능선에서 불쑥 나타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또 다시 그들의 머리 위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위에 인용한 전쟁실록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집중사격을 또 다시 받은 미국군 패주병들은 “놀란 꿩들이 숨을 곳을 찾아 도망치듯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 그들은 군화도 신지 못한 맨발로 어둠 속을 밤새 걸어 이튿날 아침 미국군 제19보병사단 전초선에 간신히 도착했다. 살아남은 패주병은 10명이었다.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는 하동전투에서 38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하고, 313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부지기수가 실종되었다. 사상자들 가운데는 현장지휘관들이 많았다. 그래서 미육군 제8군 사령부는 제29독립보병련대를 개편해야 했다. 이런 정황은 제29독립보병련대가 하동전투에서 패하여 사실상 궤멸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동전투에서 미국군 보병련대를 궤멸시킨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파죽지세로 진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마산 근교까지 진격했다. 그들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한 최후의 돌격전에 앞서 전렬을 정비했다. 

 

마산역에서 부산역까지 직선거리는 45km밖에 되지 않는다.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보유한 각종 견인포들 가운데 122mm 견인곡사포가 가장 멀리 포탄을 날려보낼 수 있었는데, 그 사거리는 20km였다. 그러므로 마산 근교까지 진격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을 점령하고 5km만 더 전진했더라면, 122mm 곡사포로 부산 도심을 타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전쟁사가들은 당시 마산 근교까지 진격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부산을 점령하기 위한 측면돌파전을 벌이고 있었던 1950년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1개월 기간이야말로 6.25전쟁 중에 미국군이 최악의 패전위기에 몰렸던 위급한 시기였다고 지적했다.  

 

위급한 상황에 몰려 패전공포에 사로잡힌 미국군과 한국군은 낙동강에 의지하여 불퇴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선인민군의 도하작전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당시 도하장비가 없는 조선인민군 제3보병사단과 제4보병사단은 급히 통나무로 떼를 무어 낙동강을 건넜으나, 항공무력의 화력지원을 받은 미국군과 한국군의 격렬한 저지선을 뚫지 못한 채 많은 사상자를 냈다. 낙동강전투는 격전 중의 격전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탄우는 햇빛을 가렸고, 사상자들의 핏물은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미국군 제25보병사단은 마산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했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1950년 8월 2일부터 9월 14일까지 무려 34일 동안 미국군 제25보병사단을 계속 공격하면서 마산방어선을 뚫고 나가기 위한 돌파전을 벌였다. 만일 마산 근교까지 진격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을 점령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측면에서 돌파했더라면,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 직전에 전쟁을 결속하고 부산에서 8.15해방 5주년을 맞았을지 모른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1950년 7월 25일 전투가 벌어진 경상남도 하동을 미국군 정찰기가 공중에서 촬영한 것이다. 하동전투에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 제13련대는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에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하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파죽지세로 진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마산 근교까지 진격했다.미국군 제25보병사단은 마산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진격을차단했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34일 동안 마산방어선 돌파전을 벌였다. 만일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을 점령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측면에서 돌파했더라면,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 직전에 전쟁을 결속하고 부산에서 8.15해방 5주년을 맞았을지 모른다.  


 

3.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격전의 포성이 정전으로 멈춘 뒤에 조선인민군은 부산 인접지역까지 진격했으면서도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한 피의 교훈을 되새겼다. 조선인민군이 6.25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은 무엇인가? 

 

만일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더 빠른 진격속도로 기동전을 벌였다면, 그들은 부산으로 후퇴하는 미국군과 한국군보다 먼저 부산에 도착했을 것이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 근교까지 진격하기까지 1개월이 걸린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한강하구, 금강, 섬진강을 도하할 때 부교가 없어서 신속한 도하작전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민군 제3보병사단과 제4보병사단도 부교가 없어서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미국군 증원무력이 부산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신속히 결속하려면 진지전이 아니라 기동전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강과 하천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기동전을 하려면 도하작전능력과 상륙작전능력을 비상히 강화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6.25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이 얻은 피의 교훈이었다. 

 

피의 교훈은 정전 이후 오늘까지 70여 년 동안 조선인민군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지난 날 도하장비가 없어 떼에 올라타 강과 하천을 건너야 했던 그들은 오늘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을까? 

 

조선인민군의 무장장비는 고속기동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맞춤형 무장장비로 변화되었다. 2020년 10월 10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과 2021년 1월 14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열병식에 각각 등장한 각종 무장장비들은 고속기동전에 적합하게 경량화되고, 차량화되고, 장갑화된 첨단무장장비들이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도하작전, 상륙작전, 고속기동전에 참가하는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  

 

조선인민군이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는 사실은 2017년 1월 11일 한국 국방부가 발간한 ‘2016 국방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15개 군단을 17개 군단으로 증편했다고 한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2개 군단을 증편한 것은 사회안전성(당시 인민보안성)에 소속된 공병총국(제7총국)과 도로총국(제8총국)을 국방성(당시 인민무력성) 소속 2개 공병군단으로 개편한 조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1개 전연군단(전방에 배치된 군단)에 공병련대가 1개씩 배속되었고, 1개 기계화군단에 도하공병대대가 1개씩 배속되었고, 1개 차량화보병려단에 공병중대가 1개씩 배속되었는데, 그와는 별도로 2개 공병군단이 더 증설된 것이다. 조선인민군 1개 군단의 병력수는 63,000명이므로, 2개 공병군단에 배속된 공병은 총 126,000명이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증강하였음을 보여준다. 

 

조선인민군의 공병무력이 엄청나게 증강되었다는 사실이 한국 국방부의 ‘2016 국방백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이 진행되었다. 그 열병식에서 조선인민군 공병군단 소속 전투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등장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조선인민군 공병군단의 장비가 얼마나 질적으로 발전했는지를 현실로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2016년의 그들 모습과 2020년의 그들 모습을 비교해보자.  

 

2016년 3월 19일 조선인민군은 강원도 원산만에서 상륙 및 반상륙방어연습을 진행했는데, 그날 연습에 공병정찰조가 참가했다. 그들은 바다와 개펄을 고속으로 질주하는 공기부양정을 타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질풍 같이 달려가 해안 모래사장에 신속히 상륙했다. 조선인민군 공병정찰조는 상륙구역에 은밀히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상륙구역 해안에 설치된 용치(龍齒) 같은 차단물을 폭파하여 상륙돌격로를 열어놓는 작전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공병군단 소속 전투원들은 전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차단물을 폭파하고, 진격로를 열어놓는 공병정찰조인 것이 분명하다. 

 

주목되는 것은, 지난 5년 사이에 조선인민군 공병정찰조의 장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2016년 3월 19일 원산만에서 진행된 상륙연습에 참가한 공병정찰조는 얼룩무늬전투복을 입고, 방탄모가 아닌 군모를 쓰고, 어깨에 자동보총과 배낭을 메고, 손에 삽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열병식에 참가한 공병정찰조 및 공병도하조 열병종대가 행진하는 장면이다. 열병종대 전반부의 공병정찰조는 무인정찰기 또는 무인로봇을 조종하는 전자장비가 들어있는 특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메었고, 열병종대 후반부의 공병도하조는 고성능폭약이들어있는 방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메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삽자루를 손에 들고 상륙연습에 참가했던 공병정찰조가 5년 뒤에 미래전을 수행할 최신형 전자장비를 어깨에 메고 열병식에 나타났으니 실로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인민군은 고속기동전에 참가할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  

 

그런데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가한 공병정찰조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그들의 모습은 매우 특이하게 보였다. 이를테면, 그들은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신형 자동보총을 들었고,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신형 위장무늬전투복을 입었으며, 5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탄조끼를 입었다. 

 

그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열병종대 전반부는 투명한 얼굴가리개(면갑)가 부착된 방탄모를 머리에 썼고, 검은색 접시형 물체가 달린 특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멨고, 열병종대 후반부는 보안경이 부착된 방탄모를 머리에 썼고, 구명조끼를 입었고, 방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멨다는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투명한 얼굴가리개가 부착된 방탄모를 쓴 전투원들은 전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는 공병정찰조다. 그리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안경이 부착된 방탄모를 쓰고, 구명조끼를 입은 전투원들은 전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고, 강이나 하천에 부교를 설치하는 공병도하조다.   

 

그렇다면 공병정찰조가 어깨에 멘, 접시형 물체가 달린 특수야전배낭은 무엇이며, 공병도하조가 어깨에 멘 방수야전배낭은 또 무엇인가?

 

그 야전배낭에 얽힌 궁금증을 풀려면, 2017년 1월 27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현지지도 밑에 진행된 도하공격전술연습에 관한 언론보도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그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도하공격전술연습을 현지에서 지도하면서, “공병정찰기재의 현대화, 무인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데 대한 문제”를 제시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화되고, 무인화된 정찰기재로 공병정찰조를 장비시킬 과업을 제시한 것이다. 그 과업을 받은 조선국방과학연구원 산하 공병연구소가 기술적 난제를 자력으로 극복하면서 연구, 개발한 첨단정찰기재가 바로 접시형 물체가 달린 특수야전배낭이다. 접시형 물체는 안테나이므로, 그것이 달린 특수야전배낭 속에는 무인정찰기 또는 무인로봇을 조종하는 전자장비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공병정찰조는 적진 상공에 무인정찰기를 은밀히 침투시켜 적정을 정찰하거나 적진에 무인로봇을 침투시켜 무인총격전을 벌이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날 열병식에 참가한 공병도하조가 어깨에 멘 방수야전배낭 속에는 적진에 설치된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는 고성능 폭약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공병도하조는 적진에 침투하여 고성능 폭약으로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고 부교를 부설하는 것이다. 

 

5년 전에 삽자루를 손에 들고 상륙연습에 참가했던 공병정찰조가 5년 뒤에는 미래전을 수행할 최신형 전자장비를 어깨에 메고 열병식에 나타났으니 실로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4. 고속기동군의 비대칭전법과 속결전씨나리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으면, 동서로 240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이 조국강토를 갈라놓은 가슴 아픈 모습이 보인다. 서부전선, 중부전선, 동부전선으로 구분되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은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각각 배치했다. 그런 한국군의 배후에는 태평양을 건너와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한 미국군이 상시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다.

 

전쟁이 언제 재발할지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정전상태에서 그처럼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동원하여 첨예하게, 그리고 그처럼 오랜 기간 동안 대치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군사분계선 인접지대밖에 없다. 조미협상과 남북협상이 모두 중단되어 평화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사라진 지금, 우리나라 안팎에 조성된 긴장된 정세는 바로 그 지대에서 전쟁이 재발할 위험이 차츰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을 집필한 동기는 그런 정세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이 각각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군사분계선 중앙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한국군 제7기동군단은 중부전선을 돌파하여 북진할 기세로 배치되었고, 조선인민군 땅크군단과 기계화군단도 중부전선을 돌파하여 남진할 기세로 배치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경기도 파주, 동두천, 연천에서 강원도 철원, 화천, 양구, 인제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모양의 작전지대에서 최대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6.25전쟁 시기에도 바로 그 지대에서 최대 격전이 벌어졌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은 한국군과 다르다. 달라도 정말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이 갖지 못한 강점과 특징을 가졌는데, 그것이 바로 비대칭전법이다. 남측에서는 비대칭전법이라 하고, 북측에서는 주체전법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전법이란 적진의 가장 약한 작전지대에 불의의 공격을 집중하여 방어선을 신속히 무너뜨리고 고속기동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자기의 비대칭전법에 따라 공격을 집중하여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고속기동전에 돌입하게 될 작전지대, 다시 말해서 한국군 방어선에서 가장 약한 작전지대는 어디일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가장 약한 작전지대는 쌍방의 방대한 무력이 대치한 군사분계선 중앙부에서 벗어난 익측지대다. 익측지대 두 군데가 보인다. 군사분계선 서단에 있는 김포반도와 군사분계선 동단에 있는 강원도 해안지대가 익측지대다. 

 

그러면 조선인민군이 익측지대에서 비대칭전법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예상해보자. 전시에 익측지대에서 비대칭전법을 수행할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는 고속기동군이다.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땅크사단, 기계화사단, 자행포려단, 방사포려단, 차량화보병려단으로 편성되는데, 화력타격력, 장갑방호력, 고속기동력에서 가히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속기동군은 익측지대에서 어떤 비대칭전법을 수행할 것인가?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개성시 개풍구역에서 한강합수부(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수역)를 도하하여 김포반도에 상륙한 다음, 인천을 점령하고 곧바로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남진하는 고속기동전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고속기동전씨나리오가 근거 없는 전쟁소설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아래에 서술된 내용이 말해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한강합수부를 도하하여 김포반도에 상륙하려면, 다음과 같은 작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1) 조선인민군 공병정찰조가 김포반도에 침투하여 그 지역을 방어하는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의 움직임을 정찰하게 된다. 공병정찰조가 김포반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한다는 말은 잠수복을 입은 공병정찰조가 어둠이 깔린 한강합수부에서 수중으로 침투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식의 수중침투는 옛날이야기다. 공병정찰조는 한강합수부 강바닥 아래 깊은 곳에 건설된 하저갱도를 타고 김포반도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다. 개성 인근에서 한강합수부를 건너 김포반도까지 이어지는 하저갱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980년 6월에 월남한 탈북자의 진술을 담은 <월간조선> 1992년 6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저갱도를 통해 김포반도 곳곳에 침투한 공병정찰조는 무인정찰기를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의 머리 위로 날려 그들의 움직임을 촬영한 정찰영상을 조선인민군 전선지휘부에 실시간으로 전송하게 된다.       

 

2) 실시간 정찰정보를 받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와 항공군 비행대는 즉시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에 대한 정밀타격을 개시하게 된다.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을 가장 먼저 공격할 전투단위는 조선인민군에서 최강 포병부대로 알려진 독립포병려단이다. 독립포병려단은 5개 방사포대대로 편성되었다. 1개 방사포대대는 3개 방사포중대로 편성되었는데, 1개 방사포중대가 운용하는 방사포는 9문이다. 그러므로 독립포병려단에는 방사포 135문이 배치된 것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독립포병려단 3개를 동원하여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을 공격할 것으로 예견되는데, 이것은 대구경방사포 405문이 상상을 초월한 화력타격을 퍼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경방사포의 집중타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은 황해남도 태탄군에 있는 태탄비행장에서 이륙한 수호이(Sukhoi)-25 지상공격기, 무장헬기, 습격기의 순차적인 파상공습을 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인민군 독립포병련대가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을 정밀조준하여 대구경방사포를 사격하는 순간,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한미련합군 공군기지들과 방공기지들을 정밀조준하여 조종방사포를 사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련합군 공군기지들과 방공기지들은 조종방사포 공격을 받고 30분 만에 전부 파괴될 것이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들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공습작전을 벌이게 된다.  

 

3) 전시에 조선인민군 공병도하조는 한강합수부에 도하구역을 확보하고, 부교를 설치하게 된다. 땅크사단, 기계화사단, 자행포려단, 방사포려단, 차량화보병려단으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부교도하, 잠수도하, 수상도하로 한강합수부를 신속히 건너 김포반도와 인천을 점령하게 된다. 고속기동군은 인천에서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로 진격하게 된다. 

 

4)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고속도로를 타고 매우 빠른 진격속도로 기동전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전시에 수많은 차량들이 밀려나와 고속도로가 꽉 막히면, 운전자와 탑승자들이 자기 차량을 버리고 떠나버리게 된다.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버려진 차량들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진격하려면, 그 차량들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는 도로정비작전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은 전시에 도로정비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전투단위를 창설했으니, 그것이 바로 이름도 생소한 도로군단이다. 

 

2017년 1월 11일 한국 국방부가 발간한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2개 공병군단을 증설했는데, 그 중에서 1개 공병군단이 도로군단이다. 조선인민군 도로군단은 도로건설부대가 아니라, 중장비를 동원하여 전시도로정비작전을 수행하는 공병부대다. 도로군단의 존재는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날 열병식에 20번째로 등장한 열병종대는 주철희 륙군소장이 지휘하는 도로군단 소속 공병들이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도로군단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고속도로에 버려진 차량들을 밖으로 밀어내며 고속기동군의 진격로를 열어놓게 된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2017년 1월 27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현지지도 밑에 진행된조선인민군 땅크장갑보병련대 겨울철도하공격전술연습의 한 장면이다. 근위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 제1련대가 주력부대로 이 연습에 참가하였다. 도하공격전술연습은 공병정찰조가 가상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가상적진을 불의에 기습점령하고 종심으로 이동하고, 화력타격과 공습타격으로 가상적진의 거점들을 파괴하고, 공병도하조가 도하구역의 얼음을 폭파하여 부교를 설치하고, 땅크와 장갑차들이부교로 도하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위의 사진은 공병도하조가 설치한 부교 위를 장갑차들이 건너는 장면이다. 수륙량용도하차량은 부교로 도하하지 않고 수상도하를했고, 땅크와 수륙량용장갑차도 부교로 도하하지 않고 잠수도하를 했다. 부교도하, 수상도하, 잠수도하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도하해야 더 많은 무장장비와 전투병력이 신속히 도하할 수 있으며, 도하장비가 경량화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강원도 고성군을 방어하는 한국군 제22보병사단 방어선을 돌파하고, 속초를 점령한 다음 곧바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부산까지 진격하는 고속기동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들의 고속기동전씨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조선인민군 제1군단이 강원도 고성군을 방어하는 한국군 제22보병사단을 전방에서 공격하는 동안, 조선인민군 산악보병사단은 한국군 제22보병사단 후방 산악지대에 진출하고, 조선인민군 륙전대는 한국군 제22보병사단 후방 해안지대에 상륙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 제22보병사단은 포위망에 들어갈 것이다. 원래 한국군 제22보병사단은 군기가 해이하여 경계작전실패사건을 주기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약골부대이므로, 조선인민군의 포위공격을 받으면 몇 시간 견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 땅크사단, 기계화사단, 자행포련대, 방사포련대, 차량화보병려단으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한국군 제22보병사단 방어선이 무너진 동부전선 해안지대로 진격하여 속초를 점령하게 된다. 고속기동군은 속초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으로 진격하게 된다. 서해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동해고속도로에서도 조선인민군 도로군단이 고속기동군의 진격로를 열어주게 된다. 

 

목포를 점령한 고속기동군과 부산을 점령한 고속기동군은 각각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우회진격하여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경계선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속기동전을 완료한 조선인민군은 동해, 서해, 남해의 해안지대를 따라 남측 전역을 포위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조선인민군의 비대칭전법은 주력부대가 전선중앙에서 남진하는 동안, 익측의 고속기동군이 동부해안지대와 서부해안지대에서 각각 진격하는 전법이다.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동해, 서해, 남해 해안지대에서 기동전을 종료하는 것과 함께 내륙에서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전략갱도를 타고 지하로 침투하고, 수송기와 습격기와 헬기를 타고 공중으로 침투하여 서울, 춘천, 대전, 광주, 대구를 비롯한 대도시들을 신속히 점령하게 된다. 시가전을 거의 하지 않고 신속히 점령할 것이므로 무혈입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쟁피해를 최소화하고, 개전 72시간 만에 신속히 결속되는 초단기속결전은 그렇게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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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편지

이상훈 광화문 희망사진사

입력 : 2021.04.25 07:47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으로 출근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으로 출근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녕하십니까? 오세훈 시장님! 시장 당선과 취임을 서울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만 50세의 홈리스(노숙인) 남성입니다. 지금 영등포의 한 사우나에서 휴대전화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원고지 16매를 쓰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언론사 기자에게는 카카오톡으로 글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저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희망사진관’에서 사진사로 일했습니다. 고 박원순 시장 재임시절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님의 제안으로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교육 프로그램 ‘희망프레임’이 시작됐고, 2012년부터 매년 수십명의 노숙인이 사진을 배우고 시민청과 광화문광장에서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100만원 남짓한 적은 월급에 겨울 3개월, 혹서기 한달을 무급으로 쉬는 일자리였지만 참으로 소중한 일자리였고 자활의 터전이었습니다.

희망사진사들은 매년 희망아카데미 홈리스 사진문화대학에서 조세현 선생님을 도와 보조강사로 활동했고, 때때로 시골장터를 돌며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찍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진사로서의 역량을 꾸준히 키워나갔고, 다른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성장해 왔습니다. 2019년에는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희망사진관 2호점을 오픈하고 언젠가는 희망사진관을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여 자력으로 운영해 볼 꿈까지 꾸게 되었습니다. 2020년 봄이 되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희망사진관 폐쇄로 사진사 생계 막막
2020년은 누구에게나 잔인한 한 해였겠지만 희망사진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3월부터 문을 열기로 했던 광화문광장과 어린이대공원의 희망사진관은 코로나19 1차 대유행으로 일단 한달 늦춘 4월에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희망사진관 두곳을 깨끗하게 청소해 두고 미뤄진 오픈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고, 결국 4월에도 사진관 문을 열지 못한 채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을 맞게 되었습니다.

5월 코로나19가 주춤했을 무렵 서울시 자활복지과 담당자들이 희망프레임에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다시 일할 수 있게 되는 건가? 기대를 가지고 그분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질문은 모두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희망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구입한 카메라를 확인하고 예산을 어떻게 썼는지를 집요하게 확인하면서 희망사진관 재개관에 대해선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희망사진사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몇달간 받아왔던 구직급여는 끝나서 공공근로를 신청하거나 대리운전을 하고, 편의점 캐셔를 하면서 이제나저제나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6월 하순에는 도저히 이대로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박원순 서울시장께 보내는 편지를 시사주간지에 기고했습니다.

당장 사진관 문을 여는 게 어렵다면 희망사진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다른 임무를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서울시 방역현장에 파견해 필요한 사진을 찍는 일에 투입해 달라고 했고, 코로나19로 위축된 일상을 보내고 계신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순회하며 찍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다시 문을 열 날을 기다리겠다는 각오를 전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기고문을 보셨는지 박원순 시장이 화답을 하셨습니다. 그간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홈리스 사진사 하성수(사진왼쪽)와 최범석씨가 2013년 3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사진관 1호점 개소식을 마친 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사진작가 조세현씨를 첫손님으로 찍고 있다./ 정지윤 기자

홈리스 사진사 하성수(사진왼쪽)와 최범석씨가 2013년 3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사진관 1호점 개소식을 마친 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사진작가 조세현씨를 첫손님으로 찍고 있다./ 정지윤 기자

기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7월 초에 들려온 소식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박원순 시장의 실종과 사망이었습니다. 슬프고 화나고 허탈한 뉴스였습니다. 이제 희망사진관은 어찌 되려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시 응답소에 민원도 넣어봤습니다. 한달쯤 후에나 돌아온 답변은 코로나19 감염이 계속되고 있고 희망프레임 프로그램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 희망사진관을 열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모두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홈리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오픈된 공간인 공공시설은 모두 문을 닫아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은 사라졌고, 마스크나 손소독제 등에서도 홈리스는 소외됐습니다. 왜 저희같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재난지원금은 따로 없는 건가요? 모든 국민이 다 받는 재난지원금을 한번 받았을 뿐 자영업자, 소상공인, 프리랜서 등이 받는 지원금을 홈리스들은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방역수칙 지키면서 일하고 싶어
서울에서 가장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런 지원 없이 어떻게 기본적인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노숙인인 제가 케이크와 화과자를 만들어 팔면서 동료 노숙인들을 돌보고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저도 지치고 힘들어서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몇년 전 다쳤던 어깨를 방치한 탓에 최근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올해가 작년과 같다면, 과연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도 크게 위축됐습니다.

희망사진관은 홈리스들에게 밥벌이 이상의 공간입니다. 저는 홈리스들이 이 공간을 기반으로 꿈을 가지고 일어서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바라는 것은 새로 부임한 오세훈 시장께서 희망사진관의 재개관을 꼭 한번 검토해주시는 것뿐입니다. 시장께서 얼마 전 발표하신 ‘서울형 거리 두기’에서 전 한가닥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희망사진관에도 자가진단 키트를 갖추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나간다면 이 봄이 지나가기 전에라도 다시 문을 열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희망사진관을 통해 서울이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서울시민의 밝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희망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시장님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마지막으로 제가 2019년 희망사진관 개관 때 낭독했던 자작시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나의 집은 광장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네

그대의 영혼이 잠시 머물 곳이네

오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당신은 다시 젊어지네

이렇게 젊어진 당신을 담았네

내 사진은 당신을 춤추게 하고

당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소중한 순간들을 움켜쥐게 하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250747001&code=940100#csidx5967d5de42fcfbc893742a0ce26b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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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사람을 해고하나? 사람이 사람을 해고하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4/25 09:04
  • 수정일
    2021/04/25 09: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포토스케치] 해고 1년...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의 오체투지와 단식 농성

지난해 5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청소하는 하청업체 아시아나케이오에서 비정규 노동자 8명이 정리해고됐다. 회사의 무기한 무급 휴직 방침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회사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 해고를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서울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이를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돈 없다던 회사는 복직 대신 대형 로펌 변호사 3명을 선임해 소송을 시작했다. 현재 남아 있는 해고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1년째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올해 4월과 5월말 정년이 되는 2명의 해고자들은 13일부터 열흘 넘게 단식 농성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부당해고 판정에도 이를 이행시키는데 소극적인 정부와 노동청에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어느새 봄은 다시 돌아왔다. 해를 넘긴 해고자들의 마음은 어지럽다. '비정규직 제로'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비정규 노동자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지 묻는다. 코로나만 탓하기엔 비정규 노동자를 향한 세상의 냉대와 국가의 방치에 대해 여전히 많은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22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이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이날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 22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오체투지가 시작됐다. 이들은 '진짜 사장' 박삼구 회장의 집이 있는 한남동에서 시작해 24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까지 오체투지를 이어간다. ⓒ프레시안(최형락)
▲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과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29일 전국의 직장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 감소와 실직 피해에 더 시달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비정규직의 실직 위험은 정규직에 비해 5배 높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걸린 고용 피해 사례를 쓴 마스크들. ⓒ프레시안(최형락)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현재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금호문화재단은 아시아나항공의 재하청 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의 100퍼센트 지분을 갖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약속은 어디로 갔을까. 노동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오체투지를 하던 김계월 지부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0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남(왼쪽), 기노진(오른쪽) 조합원. 이들은 올해 4월과 5월에 정년이 돼 복직해도 회사에 다닐 수 없지만, 부당함을 바로 잡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은 중앙노동위원회와 서울, 인천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김앤장 변호사 3명을 선임해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오체투지는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로 자리 잡아왔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에 세상이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이들은 거리에 나설 수 밖에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 벌써 농성 1년이 다 되어간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의 천막. ⓒ프레시안(최형락)
▲ 봄은 다시 돌아왔다. 길 위의 해고자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프레시안(최형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222355466476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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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일본대사관 앞에서 전범기 찢으며 “독립군처럼 싸우자”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4/2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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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저지 1만 국민행동’에서 전범기를 찢는 시민들.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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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인 국민행동 참가자들은 발열 체크를 비롯해 연락처 기록 등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진행되었다.   © 김영란 기자

 

▲ 시민들은 전범기와 함께 자신이 만든 선전물을 들고 3시부터 5시까지 일본대사관을 에워싸고 1인 시위를 했다.   © 김영란 기자

 

▲ 시민들은 1만인 국민행동 마무리로 일본에 규탄 대자보를 적었다.   © 김영란 기자


“학생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1주일 이상 비도 맞으며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주기 위해서 나왔다. 그런데 일본이 전혀 반성하는 기색도 없고 한국의 책임 있는 관계기관, 정치인들이 모르쇠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이 소리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스가가 먼저 방사능 오염수 먹어라.”

 

“일하다가 참을 수 없어 나왔다. 일본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난다. 대학생들이 싸우는 모습이 눈물이 날 정도로 짠하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에 기가 막히고 말도 안 나온다. 이를 규탄하기 위해서 나왔다. 농성하는 대진연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 반대한다. 일본을 규탄한다.”

 

“우리 함께 독립군처럼 일본에 항의하고 싸워야 한다.”

 

시민들이 24일 오후 2시부터 일본대사관 앞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저지 대학생 긴급 농성단(이하 농성단),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진보대학생 넷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저지 1만 국민행동(이하 1만 국민행동)’을 개최했다.  

 

시민들은 1만 국민행동에 함께 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일본대사관 앞으로 온 것이다. 

 

시민들은 3시부터 일본대사관을 에워싸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시민들의 손에는 일본 전범기와 함께 직접 만들어 온 선전물이 들려있었다. 

 

문화예술인들은 거리공연을 하면서 1만 국민행동에 참여했다. 

 

오후 5시, 시민들은 9명 이하로 조를 짜서 일본대사관 주변 7~8곳에서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의 첫 시작은 일본 전범기를 찢는 것이었다. 

 

▲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24일에는 농성단을 응원하는 선전물을 들고 일본대사관 앞으로 온 시민들도 많았다.   © 김영란 기자

 

최수진 학생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한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방사능에 노출될 것이다. 방사능 오염수 저지를 위해 오늘부터 더 강력한 행동을 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포천에서 온 시민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을 반대한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대학생 ㄱ 씨는 “과거의 제국주의적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전 세계 국민들을 상대로 위험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일본에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라고 호소했다. 

 

농성단은 이날 격문을 통해 “후안무치의 끝을 달리는 일본정부가 방사능 오염수 방류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전 세계 국민들 앞에 진정으로 사죄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 내고 일본을 맹렬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일본에 항의하는 규탄의 말을 대자보에 적고, 찢은 전범기는 일본 방사능 휴지통에 버리는 것으로 1만 국민행동을 마무리했다. 

 

1만 국민행동은 서울·수원·춘천·대전·대구·부산·광주에서 집회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온라인으로도 함께 진행되었다. 

 

한편, 이날 경찰은 일본대사가 우려한다며 과잉대응을 해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 경찰은 24일 일본대사관 앞에 가림막을 설치해 농성단을 고립하고, 시민들의 통행을 가로막았다.   © 김영란 기자

 

▲ 시민통행로라고 표시했지만 경찰이 길을 가로막아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 김영란 기자

 

▲ 경찰들이 행사를 위해 발전기를 들이려는 학생들을 가로막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수원에서 온 시민은 “경찰이 여학생에게 반말하고 욕하며 겁을 주더라. 한국 경찰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유동에서 온 시민은 “국민들은 평화적으로 충분히 집회를 할 수 있는데 경찰이 상황을 더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라고 경찰의 행태를 지적했다. 

 

지나가던 시민은 “경찰이 너무 한다. 대체 길을 막고 뭐 하는 것이냐”라고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경찰의 과잉·폭력 대응에 대해 관계 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아래는 농성단이 24일 발표한 격문이다. 

 

-------------아래------------------------ 

 

일본정부는 파렴치한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을 철회하라

 

전 세계 인류에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일본을 맹렬히 규탄한다! 지난 13일, 일본 정부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존엄, 안전을 철저히 위협하는 방사능 오염수 125만 톤을 무단방류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다.

 

인간이라면 어찌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망발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방사능 오염수는 해양 생태계를 비롯해 모든 것을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할 뿐이다.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은 자국민과 더불어 전 세계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방사능 오염수 보관 비용을 아끼려는 악덕무도한 만행임을 만천하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강경한 대응 입장을 내놓자, 일본은 “한국정부 따위에는 비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극악무도한 망발을 내뱉었다. 과연 이뿐인가?  한국 정부에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학생들을 강제해산 시키라고 명령한 것도 일본 정부이며. 대한민국 경찰과 건물관리인을 앞세워 국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가로막는데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 바로 일본정부다. 비상식의 끝을 달리고 있는,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단 1도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일본의 반인륜적인 만행들을 배후에서 묵인하며 지지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미국이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방침에 대해 ‘일본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며 일본이 저지른 파렴치한 악행에 동조했다. 미국은 일본의 든든한 뒷배로서, 국제사회의 우려는 무시한 채 일본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호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이 한통속이 되어 우리 바다를 일본의 하수구 취급하는 것이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방사능 오염수는 단순한 환경파괴 문제를 넘어, 전 세계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인류의 존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제국주의적 책동이다. 도쿄 올림픽 불참, 지소미아 파기, 한일 수교 단절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일본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막아내야만 한다.

 

오늘 결사항전의 각오로 일본정부와 맞서 싸우자. 전국 1만 공동행동으로 전 세계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 평화를 엄중히 위협하는 일본의 만행을 반드시 저지시키자. 인류의 미래를 앗아가는 범죄행위를 우리는 단 한 치도 용납할 수가 없다, 후안무치의 끝을 달리는 일본정부가 방사능 오염수 방류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전 세계 국민들 앞에 진정으로 사죄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 내고 일본을 맹렬히 규탄하자!

 

일본 정부는 지금 당장 방사능 오염수 방류방침을 철회하라!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무단 방류 비호하는 미국을 규탄한다!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방침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강력대처 촉구한다!

 

2021년 4월 24일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저지 대학생 긴급 농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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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을 뺏기고 더 작은집을 얻은 사람들

코로나로 휴업 요청, 응했더니 구청이 몰래 마차 가져가…“앞으로 장사하면 몇 년이나 한다고”
고급아파트 들어서며 민원쇄도, 자연도태되는 노점상인들…“세상 사람들이 싫어하지” 

나라가 부도난 지 어언 2년. 연일 ‘대우사태’로 뉴스가 도배되던 1999년 10월13일, 그날은 맑았다. 이영임씨는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국전력 앞에 ‘작은집’을 마련했다. 한가을, 저녁엔 쌀쌀하니 천막을 내리면 이슬이 송골송골 맺혔다.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밤 깊은 마포종점’ 인근이다. 사라진 전차 종점이지만 언젠가 이곳은 ‘강 건너 영등포 불빛’을 바라보며 ‘비에 젖어 갈 곳 없는’ 이들을 감싸주던 곳이었다. 

이씨는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여길 ‘작은집’이라 불렀다. 이삿짐센터 일을 하던 남편의 몸이 많이 망가지면서 개별화물 넘버를 잃었다. 생활이 안 되는데 애들은 가르쳐야 했다. 밥은 먹고 살겠거니, 5년만 할 생각이었다. 친척이 하던 걸 이어받았다. 그땐 바람을 막으려 내린 ‘포장’이 여덟 개였다. 손님도 많았다. 지금보다 넓었던 도로변에 차를 대고 많이들 한잔하다 대리운전을 불러 가곤 했다. 

작은집엔 오후 6시부터 손님들이 온다. 4시면 출근해 남편이 ‘마차’를 한전 앞 인도로 이동해주고 무거운 물건도 옮겨줬다. 호떡을 팔만한 작은 마차는 사람이 밀어 옮기지만 이 ‘작은집’은 모터가 달려있어 ‘운전’을 한다. 끝나면 다시 남편이 나와 뒷정리를 도와주고 같이 ‘큰집’으로 돌아가 눈을 붙였다. 초창기엔 밤새 손님이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턴 새벽 1시에도 발걸음이 끊겼다. 여덟집은 여섯집으로 줄었다. 

여름마다 오던 일본인 손님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재작년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비즈니스 한다고 하나둘 데려와 소개했다. 한국말을 못해 손짓발짓으로 띄엄띄엄, 맛있다고 했다. 초콜릿 선물을 가져온 적도 있다. 가끔 얼굴을 비치던 중국인 손님도 기억했다. 푸짐하게 시켰었다. 이씨네는 6번집, 끝집이라 자연스레 찾는 손님도 있었다. 인터넷에선 ‘염리초 앞 포장마차거리’로 유명해 직장인들이 많이 찾았다. 

옆집 한옥순씨는 올림픽을 준비하던 33년 전 이곳에 왔다. 학교 다닐 나이에 ‘식모살이’하러 상경했고 식당과 공장을 전전하다 마차를 마련했다. 그땐 스무집이 넘었다. 포차거리 맞은편이 ‘진주아파트’였던 시절이다. 1988년 터 잡자마자 철거당한 적이 있다. 국제행사를 앞둔 그땐 거리 곳곳을 밀어내기 바빴다. 

긴 세월만큼 험한 꼴도 여러 번 당했다. 진주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대기업브랜드 아파트가 된 뒤니까 10년이 좀 더 됐을까, 청와대 주인이 바뀐 신호 같았다. 이씨의 말이다. “일부러 여자들도 투입시켰지. 한 300명은 됐는데 포크레인·지게차까지 쳐들어와 마차를 납작하게 눌러 빗자루 하나까지 안 남기고 쓸어갔는데. 새카만 양아치들. 뭐 설득이나 대화도 없고, 깨끗한 거리 만들겠다나” 

▲ 마포구 염리초 앞 포장마차 거리에서 과거 장사하던 이영임씨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 마포구 염리초 앞 포장마차 거리에서 과거 장사하던 이영임씨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포장마차는 모순의 공간이다. 쓰레기처럼 치워버릴 땐 언제고 선거 때가 되면 여야 없이 노점상을 방문한다. ‘정치인들이 여기도 오냐’는 질문에 이씨는 “그럼요. 한 표 부탁하고 가는 사람들 많은데 나중엔 막상 즈그들이 나몰라라 하는거지”라고 했다. 선거땐 당선행 첫번째 정거장 같으면서도 평소엔 무심(無心), 철거당할 땐 무시(無視)의 대상이다. 

단속을 명분으로 불법과 폭력을 일삼는 구청을 탓하는 이는 없었다. 노점위치에 따라 단속기준이 다른 것도 의문이다. 두더지 잡듯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단속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 상인들끼리만 중얼거린다. 이명박 정권 초 난리통 이후론 6만원씩 두 번, 1년에 12만원 내던 도로점용료(변상금)를 안 걷는 것도 웃긴 일이다. 대신 점포를 임대해 장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 심지어 백종원씨한테 컨설팅을 받아 새 메뉴를 개발해보라는 훈수까지 듣는다. 말이 쉽다. 

“그 누가 노점상을 하고 싶어 하느냐/ 처자식 먹여 살리려 거리에서 장사한다”(늙은 노점상의 노래), “하루 벌어 하루살이 노점상 인생/ 노점상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놈의 세상이 거꾸로란 걸”(노점상인생), 노점상인들의 노래가사 중 일부다. 백종원을 만나 조언받을 만했다면 진작 점포 얻어 사업을 했지 길거리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ILO(국제노동기구)는 2002년 노점상 등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권리를 보장하라고 국제결의를 했지만 말 그대로 다른 나라 얘기다.

▲ 마포구 염리초 앞 포장마차 거리에서 마차를 빼앗기기 전 장사하던 이영임씨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 마포구 염리초 앞 포장마차 거리에서 마차를 빼앗기기 전 장사하던 이영임씨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월세 내야지, 인건비 나가야지, 지금 여기서 혼자 하는 것도 힘든데. 거기다 코로나로 기존 점포들도 망하는 분위기이고. 내가 포장마차 하면서 조카 식당을 5년을 도와줬어요. 투잡인데, 거길 도와줘서 일으켜 인수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게 됐고. (상인 6명이) 다들 여기서 20~30년 장사했는데 이 나이에 어딜 가요.” 이씨의 말이다.

가장 젊은 이씨가 65세, 나머지는 대부분 70대다. 77세도 두 명이다. 이씨는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뼈가 서로 닿는다. 서서 일하다 보니 다들 허리와 무릎 통증은 기본 증상이다. “앞으로 하면 몇 년이나 하겠어요. 젊은 사람들도 코로나에 더 힘든데. 굳이 코로나 때 마차를 가져가야 하나 싶네요.”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몫을 찾아주는 게 ‘정치’라면 정치는 실종했고 길거리 질서유지의 ‘치안’만 남았다.

“포차는 우리 문화로 외국에도 알리는 것 아니냐”, “외국엔 가서 그렇게 장사도 하고 하는데 정작 한국에선 왜 못하게 하고 없애냐” 상인들은 외국에서 연예인들이 포차를 운영하는 예능프로 ‘국경없는 포차’를 종종 말했다. 제작진은 홈페이지에 “한국의 맛과 정을 듬뿍 실은 포장마차” “따끈한 정이 담긴 길거리 음식과 시원한 소맥 한잔”, “국경을 넘어간 닭똥집과 소주는 과연 통역이 될까요”라고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 예능프로그램 '국경없는 포차' 홈페이지 갈무리
▲ 예능프로그램 '국경없는 포차' 홈페이지 갈무리

 

소설가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에서 사업실패로 가족이 동반자살해 혼자 남은 ‘나’는 공장노동자 상훈과 동거한다. 사실 상훈은 공장에 위장취업해 가난을 체험하는 부잣집 대학생이다. 뒤늦게 상훈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며 ‘고생을 모르는 걸 걱정해 아버지가 가난체험을 권유했다’고 말한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는 그간의 소감과 ‘월세와 연탄비 아끼려 남자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뻔뻔한 충고에 ‘나’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부자들이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위해 가난마저 훔친다는 걸 깨닫는다. 

상인들이 ‘국경없는 포차’ 얘기를 자꾸 꺼내는 건 서글픈 일이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천막을 언제 걷어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온전히 상인들의 몫인데 TV엔 상인들을 제거했다. 연예인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가난마저 빌려가 예능으로 활용하는 이 프로그램에라도 상인들은 기대야 했다. 이들에겐 삶을 직시할 여유도 이유도 없고 편들어주는 정치인 하나 없다. 노점은 멀리서 보면 낭만의 공간, 가까이서 보면 불안정 그 자체다. 

촛불을 들고 정권이 바뀌더니 세상이 달라졌단다. 진짜 그랬다. 지난해 9월, ‘상생’을 말하던 구청은 거리에 세워둔 마차 5대를 ‘몰래’ 가져갔다. 용역·폭력·충돌 따윈 없었다. 포장마차는 한여름 더위를 피해 잠시 장사를 쉰다. 더위가 한풀 꺾이자 코로나가 심해졌다. 조금 더 쉬어달라는 구청 요청에 협조했다. 그러던 사이 마차를 실어갔고 그 자리에 대형 화단을 세웠다. 공간을 성형하려는 구청의 선전포고다.

생존을 잃은 상인들이 반격했다. 화단까지 세워둔 건 아예 장사를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라고 생각했다. 화단을 저쪽으로 치우고 마차를 가져간 구청에 항의했다. 다른 지역 노점상인과 함께 구청 앞에 모여 집회라도 해야 했지만 코로나로 모일 수가 없는 상황. 곰인형 수십개를 깔아놓고 대신 시위를 시켰다. 지난해 10월 한씨는 빼앗긴 마차를 찾고자 구청 앞에서 유방암 수술 이후 다시 자라난 흰머리를 다 밀어냈다. 

▲ 지난해 9월 빼앗긴 마차를 돌려달라며 삭발을 한 노점상인 한옥순씨(오른쪽)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 지난해 9월 빼앗긴 마차를 돌려달라며 삭발을 한 노점상인 한옥순씨(오른쪽)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 지난해 마포구청 앞에 노점상인들이 코로나로 집회가 어려워지자 곰돌이인형으로 시위를 대신하는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 지난해 마포구청 앞에 노점상인들이 코로나로 집회가 어려워지자 곰돌이인형으로 시위를 대신하는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술을 팔지 말라” 마포구청이 마차를 가져간 이유다. 보통 마차를 짜는데 600만~700만원, 천막과 받침대 등 1000만원은 족히 든다. 이씨는 마차를 빼앗기고 잠을 설친다. 속에서 뜨거움이 차오를 때가 있다. 병원가 상담을 받고 진정제를 먹는다. “미리 계고장이라도 붙였다면 마차 안에 요리재료라든지 원래 먹던 관절약, 영양제, 동전도 다 모아놨는데 그런 거 빼놨을 텐데…” 

코로나 탓인지 지난해 3월부터 손님이 줄었고 여름 휴식기인 8월 이후론 아예 장사를 못했다. 온몸이 성치 않으니 약값이라도 내 손으로 벌겠다며 꼬박꼬박 장사하던 일상이 끊겼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보험사 약관대출로 근근이 하루를 버틴다. 마차는 1000만원이 아니라 유일한 재산이자 생존수단이다. 

법, 집값, 민원. 
세상엔 밥보다 중요한 게 많았다. 

지난해 9월 마차를 빼앗긴 마포 한전 앞 노점상인들은 “이제껏 구청에서 술 판매를 문제 삼은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고 마포구청 측은 “수도 없이 알렸다”고 반박했다. 상인들은 “코로나를 기회로 노점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고 구청은 “이젠 분식으로 메뉴를 바꿔달라”고 했다. 양측의 대화는 만나지 못했다. 지난 1월15일 오전 10시 구청 1층 로비 앞 상황이다. 

“떡볶이 팔아서 우리 생활이 유지되면 뭐하러 힘들게 밤에 장사를 해”
“분식을 하다가 안 되면 (저희가) 지원을…”
“(포장마차를) 되게끄름 해줘야지. 그 자리에서 30년씩 해왔는데”
“30년 동안 법적으로 문제 있었던 걸 이젠 아셨잖아요”
“검사들도 와서 먹고 국회의원들도 와서 먹었는데”
“없어지는 추세이고 술 판매는 허가를 받아야죠”
“30년간 해왔는데 이제와서”
“예전에는 몰라서 암암리에 장사를 한 거고요”
“그럼 상생위는 왜 만들었냐고”
“상생위가 법 위에 있는 건 아니죠”“마차는 우리 재산인데 왜 안 돌려주고”
“책임질 수 있는 분이 와서 (술 안 팔겠다고) 약속하면 돌려드릴게요”
“장사 쉬어달라고 해서 쉬었는데 그새 마차 가져갔죠?”
“서울시에서 (쉬어달라고) 요청한 거죠. 근데 항상 도로에 세워놓으니까요.”
“그럼 범칙금을 청구해. 도로점유세 낼테니”
“나중에 찾아가실 땐 1㎡당 10만원씩 부과될 거에요”
“자꾸 법법 하지마요. 없는 사람들이 법 더 잘 지키니까”

실은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내내 수시로 벌어진 풍경이다. 상인들은 법의 언어로 구청을 이기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불투명한 미래 못지않게 이들을 괴롭히는 건 조여오던 과거의 경험이다. 구청의 요구를 듣더라도 언젠가 다시 밀려날 걸 상인들은 알았다.

▲ 지난해 1월 마차를 돌려달라며 마포구청에 항의하고 나서 1층 로비에 주저 앉은 노점상인들. 사진=장슬기 기자
▲ 지난해 1월 마차를 돌려달라며 마포구청에 항의하고 나서 1층 로비에 주저 앉은 노점상인들. 사진=장슬기 기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한 2002년, 억울함을 풀지 못한 노점상인 박봉규 열사가 분신한 걸 봤다. 2003년 청계천 복원공사를 앞두고 행정대집행에 맞서던 노점상인들이 다치거나 구속되는 걸 봤다. 동대문운동장 터로 이주시켜 방치한 서울시의 모습을 봤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자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청계천 2차 복원을 추진한다며 다시 노점상들을 이주시킨 걸 봤다. 이주해서 상권이 사라지면 노점도 무너진다는 걸 봤다. 

2007년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정책’이라며 ‘노점상종합관리대책’을 내놓았다. 지하철역·횡단보도 옆 3m 금지처럼 세세하게 제시했다. 노점면적이나 운영시간까지 정했다. 이를 언론에 흘리고 노점상을 파격적으로 줄여가는 모습을 봤다. 같은해 10월 경기 고양시 노점상 이재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를 노점상인으로 만든 건 IMF사태였고, 이씨의 죽음은 그의 배우자까지 때린 400여명의 용역깡패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감지했다. 

상인들은 자신들이 ‘비공식’의 존재라는 걸 안다. 행정이 만든 질서가 언제나 ‘공식’이라는 것도 안다. 공식이 용역이라는 비공식을 동원했고, 법이 폭력이라는 불법을 포함했다. 2009년 마포구 건설관리과는 예산 6억5000만원 중 절반 가까이 노점단속에 썼다. 상인들은 공평한 법집행이라는 공식이 자신에겐 예외라는 걸 안다. 행정이 내킬 때만 법을 적용해도 주민의 지지를 받는 걸 안다. 기존 노동시장에서 쫓겨나 노점을 차리는 순간 공식 사회안전망에서도 밀려난다. 

그래서 2017년 아현고가 밑 노점상을 폭력으로 밀어낼 때, 염리초 앞 포장마차 상인들은 장사를 접고 아현동을 찾았다. 이씨는 “한곳이 쓰러지면 전체가 쓰러지니까”라고 연대의 이유를 말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아현동 좌판 노점은 다 없앴고 두 곳은 가게를 얻었으며 박스형으로 7개 남았다”고 말했다. 

이젠 노점을 ‘거리가게’라고 부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은 통제 대신 관리, 강제퇴거 대신 자연도태의 방식을 택했다. 2019년 마포구는 상생위원회를 만들고 노점상인을 위원으로 위촉했지만 포차 논란의 최대 쟁점인 술판매 문제는 다룬 적이 없다. 실질적으로 회의가 열린 적도 없다. 마포에서 꼼장어에 소주한잔 기울일 포장마차는 이제 없다. 거리의 상인들이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공간에도 우생학이 작동한다. 과거 정치권력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노점을 밀어냈다면 이제 더 높은 아파트가격을 위해 노점상은 조용히 밀려나야 할 존재가 됐다. ‘주민들도 동네에 술 한잔할 포차하나 있으면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구청 관계자는 질색하는 얼굴이었다. 구청 측은 민원이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예전에 그 주민이 아니다.

한국전쟁 피란민이 터 잡아온 아현동 노점은 2017년 쫓겨났다. 2005년 아현뉴타운으로 지정됐던 근방엔 푸르지오 등 고급아파트단지가 대규모로 들어섰다. 염리초 옆 진주아파트는 재건축 결과 자이아파트로 변신했다. 마포는 용산·성동와 함께 강남 아파트값 추격자로 자리잡았다. 

이씨는 구청이 떡볶이로 메뉴를 바꾸면 박스형 새 노점을 지원해주겠다는 말에 달가워하지 않는다. “손님들이 먹을 자리가 없어요. 쪼끄매. 떡볶이 판다고 달라질랑가. 또 위생이 어쩌고 불량식품 파네 걸고 넘어지려면 걸지” 근방에서 붕어빵을 팔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역시 지난해 구청의 요구로 장사를 접은 이야기도 꺼냈다. 구청 관계자는 “기존하던 분들만 관리하고 노점상 신규진입은 금지한다”고 했다. 

소상공인 지원에서 노점상 몫은 없었다. 4차 재난지원금에 와서야 노점상인도 포함하자는 말이 나왔다. 이씨는 “우린 해당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언론과 여론에서 벌떼같이 달려들어 노점상에 지원금을 주지 말자는 논지를 폈다. “사업자등록도 해야하고,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지”라며 손을 휘저었다. 

마포구는 아직 기준을 정하지 않았지만 보통 구청은 3억원 이상 자산이 있으면 노점상을 금지한다. 사실상 집이 있으면 쫓겨나는 셈이다. 최근 언론보도만 보면 정부가 지원금을 주기 위한 단순 행정절차로 사업자등록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응하는 순간 구청이 짜주는 작은 박스안에서 조리공간만 겨우 확보한 채 구청이 원하는 메뉴로 장사를 해야 한다는 걸 안다. 재산기준에 걸려 쫓겨나거나 상권이 죽어 소멸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정부는 지난 5일부터 노점상 4만명에게 재난지원금 5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다. 50만원 받으려고 목줄을 내놓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씨는 영등포역 맞은편도 이런 과정으로 노점을 정리한 것을 말하며 “남은 마차도 몇 대 안 되는데 장사를 못하게 돼 세상을 떠나는 분들은 언론에 나오지도, 어디 흩어졌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차를 빼앗긴 지 반년, 지난 2월초, 설연휴가 끝나면 영업시간 제한이나 거리두기 단계가 풀릴 거라 기대했다. 그러면 분식이라도 일단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3월초 마차 안에 있던 물건만 간신히 찾아왔다. 술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마차를 주겠다고 했지만 상인들은 일단 각서를 쓰지 않았다. 분식을 팔 작은 마차를 구했다. 포차를 하던 ‘작은집’보다 더 작은집이다. 

▲ 빼앗긴 마차를 돌려받지 못한 상인들은 다른 마차를 구해 지난달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한옥순씨와 황희성씨(오른쪽)의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 빼앗긴 마차를 돌려받지 못한 상인들은 다른 마차를 구해 지난달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한옥순씨와 황희성씨(오른쪽)의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지난 3월12일 떡볶이·순대·어묵·파전으로 하는 첫 장사를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집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자리라도 지키려면”, “장사가 잘 안될 건 알지만”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라고들 했다. 노점상의 가장 어려운 점은 공간을 지켜내는 일이다. 자리가 밥줄이다.

함께 마차를 빼앗긴 이웃 황희성씨는 ‘작은집’을 차린 지 40년이 넘었다. 그도 첫날을 정확히 기억했다. 1980년 10월27일. 황씨도 이씨처럼 가을 어느날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구청은 그런 이들의 유일한 생존수단인 마차를 가을에 가져갔다. 이들 6명, 지난 겨울을 마포구청 1층 차가운 로비에서 지냈다. 봄이 왔지만 이들은 결국 마차를 돌려받지 못한 채 장사를 시작했다. 

분식장사 사흘째, 옆에서 한씨가 “어제 우리 여섯집 다 합해서 3만원 팔았어”라고 외쳤다. 황씨는 고요한 봄 거리를 초점 없이 쳐다봤다. 온몸이 ‘바근바근하다’던 황씨는 “어제 허리에 주사를 7방 맞고 왔다”고 했다. 황씨 앞에 놓인 철판에 떡은 쫄깃했지만 고추장 양념은 떡이 배어들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말라붙었다. 

“벚꽃이 피면 주말에도 나와 장사하겠다”던 황씨는 벚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장사하러 나오지 못하고 있다. 

▲ 마차를 빼앗기기 전 벚꽃이 만개한 '염리초 앞 포장마차 거리'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 마차를 빼앗기기 전 벚꽃이 만개한 '염리초 앞 포장마차 거리' 모습. 사진=서울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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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게임대회를? 랜선운동회 ‘막전막후’

김백겸 기자 
발행2021-04-23 20:04:27 수정2021-04-23 21: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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