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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주당도 한반도 평화 모드 트럼프 성과로 인정"

[프레시안 人스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2019.06.12 06:26:55
 

 

 

 

"대통령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고, 완벽한 평화 모드로 만들었다. (북한과 미국) 정상들이 두 번이나 회담을 했다. 이제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합창을 한다. 트럼프 정부가 잘한 것은 하나, 북한과 평화 모드를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빠른 속도로 진전되던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이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초조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말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면서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더 조마조마하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정치참여 운동을 하고 있는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대표는 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에 고정된 시선을 미국 의회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 구조상 대통령을 견제하는 의회의 권한이 중요한데, 의회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볼턴 경질 가능성 높지 않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북한 문제에 대한 이견의 무게가 크지 않다고 김 대표는 분석한다.  

"북한 문제를 가지고 볼턴이 계속 강성 발언을 하니까 트럼프의 뜻을 거스르는 것 아니냐, 경질되는 것 아니냐고 한국 언론들에서 물어보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볼턴과 트럼프의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거나 이후 일정이 늦춰지는 것처럼 보지만, 그런 영향을 아주 미세하다.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데, 결국 키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 그래서 볼턴만 도려내면 북미 협상이 잘 진척될 것처럼 보지만 아니다."

김 대표는 또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볼턴이 경질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볼턴이 옆에서 강성 발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트럼프에게 도움이 된다. 볼턴은 네오콘으로 구권력의 주류다. 그런 강성 발언이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트럼프는 '저 사람이 감히 공개적으로 내 발언에 반대를 해' 이렇게 사고할 사람이 아니다. 굉장히 계산적이고 유연한 사람이다. 

둘째, 유대계 출신인 존 볼턴의 외교 정책은 첫번째도 중동이고, 두번째도 중동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자기 아이디어는 없다. 볼턴은 관료로서 자리 욕심이 있지만 갈 데가 없다. 유엔 대사까지 지냈으니 장관을 하고 싶어 하지만, 청문회 통과는 어불성설이다. 공화당도 고개를 가로젓는 강경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턴은 자리보전을 위해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트럼프를 거스르지 않는다.  

셋째, 볼턴은 트럼프의 세번째 안보보좌관이다. 안보보좌관을 또 교체하는 것은 트럼프에게도 정치적 부담이다. 이미 미국은 대선모드로 진입했다. 외교정책이 미국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여론의 흐름을 만들 때도 있다. 미국 유권자들 입장에서 나프타(NAFTA), 중국, 멕시코 등과 협상 같은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내수에 영향을 미치니까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여기에 유태인들의 지지를 붙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내년까지는 볼턴을 끼고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트럼프 탄핵 가능성 없다" 

미국 정계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대선정국에 돌입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탄핵 보다는 퇴임 후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위터를 통해 "펠로시는 형편 없고 앙심을 품은, 소름 끼치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공방도 다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대통령 탄핵'에 대해 김 대표는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하지만 미국은 상원에서 투표로 탄핵을 결정짓는다. 상원 민주당 의원들 중에도 탄핵까지는 아니라고 하는 의원들이 십여명 있다. 탄핵 가능성이 없는데 탄핵을 발의하면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지금 민주당에서 트럼프 탄핵을 언급하는 의원들은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다. 로버트 뮬러 특검 결과를 놓고 그렇게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뮬러 보고서 결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흑백논리로 봐서는 안 된다. 뮬러는 트럼프가 충분히 탄핵할 만큼의 죄가 있지만, 미국의 국익을 위해 탄핵 얘기까지는 자제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자체가 국가적 위기 상황이니까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 제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의 트럼프(오른쪽)와 김정은. ⓒ연합뉴스


 

 

"철저하게 지지층만 바라보는 트럼프...재선 가능성 높아"

김 대표는 오히려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6년 대선에서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해 승리를 거머쥔 트럼프는 집권 이후 영악하게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기반을 확대하는 계산적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 전략이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은 첫 중간선거를 통해 실험을 했고, 처음부터 계산된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자기네를 위해서 일한다고 했는데 진짜 그런지 지켜보고 있다. 그 시선을 다음 선거 때까지 붙들어놓아야 한다. 그게 반이민 정책이다. 미국 내에서 이민자들을 내쫓고, 가두고, 또 어떤 때는 중남미에서 올라온 캐러밴을 막는다,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쌓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반이민 정책 이슈를 만들어냈다. 중간선거 결과를 보니 하원은 졌지만 백인 지지층은 오히려 결집하고 확대됐다. 

또 멕시코와 불법 이민자 문제 관련 협상을 최근 타결시켰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협상에서 성공한 셈인데, 이처럼 반이민 이슈를 대도시의 안전 문제, 내수 문제와 연관시키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그랬는데,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보라. 대도시는 절대 안 간다. 자신에 대한 지지가 높은 시골 지역 중심으로 유세를 다닌다. 트럼프는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다. 철저하게 한명만 이기겠다는 전략을 썼다. 지난 대선 때 여론은 힐러리는 79점 맞으면 떨어지는 것이다. 힐러리의 커트라인은 80점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커트라인은 30점이다. 31점이면 '트럼프가 생각보다 잘하네'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전략을 썼고,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는 떨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가 "신규 백인 유권자들의 증가"로 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투표를 하려면 자기 지역의 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투표를 하지 않았던 상당수의 백인 유권자들이 트럼프 이후 유권자 등록을 했다. 지난 중간선거 때도 전체 유권자 숫자가 늘었고, 투표율도 증가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풀뿌리 권력" 

김 대표는 트럼프가 '공화당 vs. 민주당'이라는 기존 정치 틀거리에 들어맞지 않는 '정치적 이단아'라는 사실이 오히려 그의 강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자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는 총기협회로부터 돈을 제일 적게 받은 대통령 후보 중 하나다. 그러니까 총기협회 간부들 모아놓고 백악관에서 회의하면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규제가 일리가 있다'는 얘기를 막 할 수 있다. 지금도 재선거를 위한 후원금 내역을 보면 오바마만큼이나 '스몰머니'(소액 후원금)를 걷었다. 트럼프는 오바마처럼 군중노선을 걸었다. 이런 '스몰 머니'는 '스트롱 머니'이고, 못할 게 없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시민사회 세력이지, 기득권 계층이나 자본가의 대리인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길을 안 비키고 있는 민주당의 주류들은 어떤가.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는 지역 유지들을 불러서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거기 가려면 부부가 1만불 내야 했다. 옛날 방식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자본이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더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 이슈와 구심점 모두 없어" 

현재 20여 명의 대선후보가 난립하면서 "이슈와 구심점 모두 못 만들어내고 있는 민주당"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2016년 대선도 트럼프가 이긴 것이 아니라 힐러리가 진 선거다. 공식 선거 후보는 힐러리인데, 정책은 버니 샌더스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지지를 받았다. 버니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를 주장했다. 트럼프와 똑같다. 버니의 골수 지지층은 백인 노동자들인데, 이들은 순식간에 트럼프와 통한다. 이처럼 지난 대선 때 내부 조직의 힘으로 결정된 후보와 주요 의제가 변리됐다. 그래서 후보가 된 힐러리를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뭉쳐야 하는데, 샌더스 지지자들은 떨어져나갔다. 지금도 그런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 되고 더 사분오열이 됐다.  

힐러리의 측근이었던 10선의 조 크롤리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뉴욕 14선거구)에게 당 경선에서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민주당 주류 지도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순순히 물러나겠나.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이미 장악에 성공한 공화당이 대선에 훨씬 유리하다." 

"트럼프 재선이 한국에 끼칠 영향은...." 

아직은 좀 이른 전망이지만, 트럼프 재선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김 대표는 "북미관계는 트럼프가 돼야 유리하다"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전임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한다는 걸 가장 보여주고 싶어한다. 북한이 그런 이슈다. 재집권을 하게 되면 의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서 북핵 이슈를 실질적으로 풀 여력이 된다. 북미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보면 트럼프 집권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포스트' 전략의 그늘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우려했다.  

"트럼프의 무조건 미국의 이익에 우선하는 '아메리카 포스트' 전략은 미국과의 교역량이 많은 나라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중국과 전선이 강화되어 중국이냐, 미국이냐라는 선택의 길로 갈수록 한국은 고통스럽다. 경제 문제를 놓고 볼 때 트럼프의 재선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미주한인사회의 '앤디 김 지키기'

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미주한인사회의 당면한 과제로 앤디 김(민주당·뉴저지 3선거구) 의원의 재선을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앤디 김은 30년 동안 공화당이 지키고 있던 지역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한 외교안보전문가로 민주당 내 개혁세력(Progressive)에 속하는 젊은 정치 유망주 중 한명이다.  

김 대표는 "소수민족으로 자기 의원을 한명을 내면 90점, 두명을 내면 91점이지만, 한명도 없으면 0점"이라면서 앤디 김 의원이 미주한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차원 뿐아니라 미 의회에서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1996년 뉴욕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면서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치참여운동을 해왔다.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것도 그 성과 중 하나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바로가기)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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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노동자 삼성본사앞 고공농성투쟁

절규하는 노동자 삼성본사앞 고공농성투쟁

<사진기사>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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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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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정은의 아름다운 편지 받았다”

볼턴, “3차 정상회담 가능..김정은이 열쇠 쥐고 있어”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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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2  05: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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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일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폭스TV 동영상 캡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으로부터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고 11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했다. 

<폭스TV>에 따르면, 그는 이날 회견에서 ‘이달 말 한국 방문 중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해 논의 중인가’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편지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시점은 “어제(10일)”라고 밝혔다.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1주년에 맞춰 발송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채널을 통해 ‘친서’가 전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현재 북미 간에는 ‘뉴욕채널’이 열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편지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따뜻하고 매우 좋은 편지였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지리적 위치를 거론하면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핵실험도 없다. 중요한 미사일 발사도 없다”면서 “아주 긍정적인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7년 2월 살해된 김정남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원이었다’는 전날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대해서는 “그의 이복형 관련 CIA에 대한 정보를 봤다”며 “내 집권 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김 위원장에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관련해 “나는 그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말로 김정은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뜻”이라고 공을 넘겼다. 

트럼프 행정부 내 대외정책을 둘러싼 엇박자에 대해서는 “우리 시스템 내에서는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피해갔다. “나는 국가안보 보좌관임을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국가안보(정책) 결정권자가 아니다.”

(추가,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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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보 “남북선언 적극적 이행이 미국의 궤도이탈 막는 것”

조선신보 “남북선언 적극적 이행이 미국의 궤도이탈 막는 것”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6/11 [17: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남측 당국이 북과 보조를 맞춰 실천적 행동을 보인다면 북측이 화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신보는 11일 조미 교착 국면에서 더더욱 중요한 북남선언 이행이라는 기사를 통해 위와 같이 강조했다.

 

매체는 북미 관계 교착과 더불어 남북선언들 이행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는데 이는 우리 정부가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북측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매체는 북이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를 표했지만우리 정부는 <대북제재의 유지>라는 미국의 강압으로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고심지어 <한미워킹그룹>에 이 문제를 상정해 사업재개의 길을 스스로 막았다고 주장했다또한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압박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심양에서 615 민족공동위 실무협의가 무산된 것은 우리 정부의 대미의존 자세가 민간차원의 교류 협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예라고 매체는 주장했다.

 

매체는 지난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연동을 해 진전을 이루었는데 이런 선순환이 이어지자면 정상회담들에서 채택된 선언들이 지체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공동성명의 정신을 뒤집고 북에 <선 핵 포기>와 일방적인 무장해제만을 고집해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게 하지 못하게 했다고 매체는 주장했다.

 

매체는 우리 정부는 미국의 태도를 두둔하고 있다며 미국이 <빅딜(big deal)>을 주장하여 하노이 수뇌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자 그 무슨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며 <선 핵 포기요구를 그대로 담은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좋은 거래>을 거론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어 매체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은 조선의 일방적 핵무장 해제가 아니라 교전쌍방인 조미의 대결종식과 신뢰구축에 기초한 비핵화라고 못 박았다.

 

계속해 매체는 조미공동성명에는 조선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한다고 명기되었다. ‘조선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였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한 판문점 선언에서 북과 남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조선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으며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면서 북측은 민족의 합의에 따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비핵화를 위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였지만남측 당국은 대미의존과 결별하지 못하고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체는 북미 교착국면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남북선언 이행을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선언 이행에 나서야 한다며 바로 그것이 미국의 궤도 이탈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남북선언들을 이행하여 평화번영에 대한 민족의 지향을 현실화해야 미국에 북미 공동성명 이행을 강력히 촉구할 수 있고남북-북미 관계 진전의 선순환도 복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경기장에서 한 연설을 상기시키면서 민족자주가 근본 문제를 풀어내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매체는 남측 당국이 북의 동족과 보조를 맞추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단을 내린다면 북측의 화답이 있을 것이며 역사적인 시정연설에서도 천명된바와 같이 남측 당국과 손잡고 평화롭고 공동 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시려는 최고 영도자의 결심은 지금도 확고부동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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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반미, 이란의 저항 경제(Resistance Economy)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7)]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을 가는 나라① 이란

중동의 40년 반미국가 이란

세계 석유 매장량 4위의 석유대국이고 천연가스도 풍부한 8천여 만명 인구의 이슬람국가 이란에 대해 미국 부시대통령은 북한(조선)-이라크(사담 후세인정권시기)와 함께 ‘악의 축’이라 불렀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후 40년 동안 중동에서 반미투쟁 한길을 걷고 있는 반미국가이다.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발사 로켓 ‘시모르그’(Simorgh, 이란어로 불사조라는 뜻)와 연구목적 인공위성 ‘오미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시키는 등 과학기술수준이 높고, 단거리,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핵무기 개발까지 넘보는 중동의 군사강국이다.

이슬람혁명의 승리와 석유국유화

‘검은 황금’ ‘땅 속의 진주’인 석유를 지배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쟁으로 석유를 약탈하려고 했다. 이란의 석유는 1909년 영국이 장악했다. 변화는 민족주의세력의 지도자 모하마드 모사데크(Muhammad Mosadeq)가 1951년 석유국유화운동을 주장하고 “외국을 몰아내자, 빈곤을 추방하자, 이란을 이란인의 손에!”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석유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곧바로 쿠데타를 사주하여 모사데크 민족주의 정부를 전복하고 팔레비 왕정을 복원시켰다. 이때부터 이란 민중의 반미감정이 촉발되었고, 1979년 2월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 혁명이 성공으로 이어졌다.(‘아야톨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성직자 의미이다) 이 혁명으로 이란 민중은 팔레비 왕으로 대표되는 친미 독재집단인 샤(Shah)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때껏 이란 석유를 거저 가져가다시피 하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석유 주권을 되찾았다. 이슬람혁명의 성공은 1953년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미 CIA가 개입한 친위쿠데타로 실각한 뒤 무려 26년 동안 미국 40%, 영국 40%, 팔레비 왕조 20%로 나뉘었던 석유 이권을 이란 민중의 손으로 되찾았다는 것을 뜻했다. 혁명의 성공으로 석유 이권을 빼앗긴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었고 지난 40년 동안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미국과 이란은 적대적인 관계가 이어졌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8일(현지시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탈퇴를 선언한 것과 관련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전국으로 생중계된 TV방송 연설을 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연설에서 "JCPOA가 완전 파기될 경우 이란은 앞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우라늄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또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JCPOA 협정 체결 국가들과의 협상 의사를 밝혔다.[사진 : 뉴시스]

이란핵합의(JCPOA)와 트럼프의 핵합의탈퇴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이란은 오래전부터 희망했다. 미국과 수교를 맺을 경우 그동안 투자 제한 등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를 비롯한 압력이 느슨해질 것이고, 이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대통령은 2013년 8월 당선된 후 대이란 경제제재를 풀고 경기회복을 위해 미국, EU와 핵협상을 이끌어 2015년 7월14일 이란과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및 독일(P5+1)이 참가하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타결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역내 주변국과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외국인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내경제 활성화를 실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8일 JCPOA 탈퇴를 선언했고, 미국이 완화했던 대이란 제재를 재부과할 것임을 천명하여 2018년 11월부터는 제재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제재를 극복하고 자립경제를 위한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

이란은 미국의 제재가 있는 조건에서도 석유 중심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다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제재 기간 동안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체제 구축을 목표로 두고 수입대체산업 육성에 주력하였으며, 특히 2021년까지 진행되는 제6차 5개년 개발계획 통해서는 차세대 11대 전략산업을 선정한 바 있다.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는 2011년 3월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최초로 언급한 용어로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에 대응하여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경제체질개선 정책이다. 석유화학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선정하여 석유화학단지 조성을 통한 생산량 확대, 민영화, 관련 기업 육성 및 인프라를 개발하고, 자동차산업부문을 중점적으로 개발하였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프랑스와 독일 기업이 이란 석유화학 부문의 높은 성장 잠재력과 이란 정부의 전략적 육성 정책에 기대를 가지고 적극적 투자의지를 보였지만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조달의 어려움과 투자 프로젝트의 동력이 위축되고 있다.
이란의 자동차산업부문은 중동 지역내 최대 자동차생산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으나 경제제재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급감하였다가 제재해제 분위기를 타고 잠시 회복세였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란 정부는 외국기업의 투자 및 기술이전을 강조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자국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수입완제품 고관세율 정책, 수입허가 등 각종 규제책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경제제재 금융제재에 군사적 위협까지 하고있는 현 정세에서 저항경제의 추진도 시험대에 올라있다.

다시 이란에서 울리는 ‘미국에게 죽음을!’

이슬람혁명 40주년을 맞은 올해 2월에 이란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또다시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외쳐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맞서 자국 군사력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증강할 것"이고, "서방의 제재로 이란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민이 서로 돕는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적들의 사악한 목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걸어온 길을 지속해서 걸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란은 트럼프 정부의 제재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인 이라크와 경제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이란 핵합의 당사국인 유럽국에 대해 경제적으로 제재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중동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경제가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이유를 뚜렷이 보여준다.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은 자주적 정치세력의 집권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와 사민주의적 경제민주화의 길을 걸어간 나라들은 보수정권인가 진보적 정치세력인가 상관없이 재벌체제개혁,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여 경제발전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란의 경우를 볼 때 제3세계 나라에서 자주적 민주적 경제정책을 위해서는 정치민주화를 선행하여 민주정권 집권이 선차적이다. 부패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자본주의경제인가 사회주의인가라는 경제체제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나라의 자원, 기술, 기술자들을 통해 제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자주적 경제민주화로 자립경제를 추구하는 길은 필연적으로 미국패권과 맞서게 되며 이를 위한 강력한 군사적 담보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20세기에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구실로, 21세기에는 대테러전쟁과 인권보장과 인도주의실현을 운운하면서 미국패권에 도전하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를 타겟으로 경제제재와 금융봉쇄, 전쟁불사, 군사적 위협을 가혹하게 자행해왔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을 약탈하려는 미국과 강대국에 맞설 수 있는 정권, 가혹한 경제제재와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추구할 수 있으려면 자주적 민주정권이 집권해야 자주적 경제민주화는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경자 객원기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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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커만가는 침략군의 탐욕과 치부 -<우리민족끼리> 보도

날이 갈수록 미국의 흉악한 심보가 계속 드러나고있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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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끼리 11일자 보도> 

북의 매체 <우리민족끼리> 11일자 보도에서 <날로 커만가는 침략군의 탐욕과 치부>라는 글이 실렸다. 

 

 

▲     © 프레스아리랑


 

 

이 글에서는 "최근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이며 강도적인 행태가 도를 넘고있어 각계의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고있다"며 "남조선강점 미군유지비문제, 《싸드》배치 및 전략자산의 전개비용문제, 대미수출품에 대한 관세부과문제 등에서 날이 갈수록 미국의 흉악한 심보가 계속 드러나고있다"고 지적했다. 

글은 이어 "지난 2월 남조선과 미국간에 제10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이 체결되어 남조선강점 미군유지비를 지난해보다 8.2% 증액된 9억 1 890만US$로 확정되였다"고 소개하고 "문제는 여기서 그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정한 사실이다. 지난 시기에는 남조선과 미국사이에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유효기간이 5년이였다. 그런데 이런 관례를 깨고 1년으로 정하였으니 여기에는 《방위비분담금》을 해마다 계속 늘이려는 미국의 강도적인 흉심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글은 이어 "사실 미국이 해마다 남조선으로부터 옭아내고있는 《방위비》라는것은 침략군의 탐욕과 치부, 변태적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수탈금에 지나지 않는다.

알려진데 의하면 남조선강점 미군은 현재 받고있는 유지비도 다 쓰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글은 이어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얼마전 남조선의 어느 한 언론은 《해마다 주<한> 미군이 쓰고 남는 <방위비분담금>만 해도 적지 않다. 이렇게 축적되는 많은 자금이 남조선과 미국의 은행들에서 불법적인 리자소득을 위한 밑천으로 도용되고있다.》고 하면서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의 명목으로 뜯어내는 돈이 얼마나 많았으면 남조선에 있는 미군이 그것을 가지고 풍청거리다 못해 변놓이까지 하고있겠는가.》고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외에도 지금 미국이 《싸드》배치 및 전략자산의 전개비용문제, 대미수출품에 대한 관세부과문제 등을 빗대고 남조선으로부터 짜내려고 하는 국민혈세는 실로 막대하다.

남의 땅을 가로타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며 악행만을 일삼고 《방위비》 등의 각종 명목으로 막대한 자금을 강탈하여 탕진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내라고 을러메는 미국이야말로 희세의 날강도가 아닐수 없다.

오죽했으면 남조선각계에서 《미국이 우리를 말리워죽이려 한다.》, 《세상에 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미국의 자금원천고인가.》 등 비난과 불만의 목소리가 련일 울려나오고있겠는가.

미국이 입만 벌리면 남조선에 대해 《우방국》, 《빛샐틈없는 <동맹>》타령을 늘어놓아도 그것은 저들의 리익추구를 위한 위선이며 기만에 불과하다.

미국에 있어서 남조선은 한갖 저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비게덩어리, 제 마음대로 수탈하고 부려먹을수 있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미국의 파렴치한 혈세강탈책동을 계속 방임해둔다면 남조선인민들이 당하는 수치와 굴욕, 불행과 고통은 더더욱 가증되게 될것이다.

묻건대 언제까지 남조선인민들이 외세의 이런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강요속에 속수무책으로, 함구무언으로 살아야 하는가. 

김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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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접경, 다자협력 진척 더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11 14:10
  • 수정일
    2019/06/11 14: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러 연해주 중심 블라디보스토크, 하산·자루비노 북러국경지대를 가다
블라디보스토크=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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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0  1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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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토크와 남단 루스키 섬을 잇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斜張橋)인 루스키 대교. 2012년 열린 제 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건설했다. [사진-조천현]

지난 3~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진행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 참가를 위해 7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와 북·중·러 접경 지역인 하산, 자르비노, 크라스키노 등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을 돌아보고 왔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수년간 추진하는 신동방정책의 핵심지역인 연해주에서 블라디보스톡 자유항법, 선도개발구역법, 국유지 무상제공을 골자로 한 극동헥타르법 등 투자 여건 개선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미국의 제재속에 개발 프로젝트 진척은 다소 더딘 상황이다.

지난해 연해주 총교역 규모 75억달러에서 13억 5,000만달러(18%)에 달하는 제2위 교역국인 한국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고 1위 교역국이자 거대 이웃인 중국과의 협력사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12년 APEC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건설된 루스키대교가 지역의 개발과 성장을 견인하고 지난 2015년 이후 매년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더욱 빠른 성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한편으로 발해성터에 대한 유적 발굴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허허벌판에 IER(Integrated Entertainment Resort, 종합위락단지)라는 이름으로 골프장, 카지노, 호텔 등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다국적 투자 유치가 적극 진행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연해주 소재지를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전하는 결정을  해 앞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 경제협력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보였다. 

지난 4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방문해 정상회담 일정을 시작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두만강 차량도로 건설 합의 등 뒤늦은 북·러 합의소식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일방적인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별 성과는 없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운영회사인 북·러 합작의 라손콘트라스(RasonContras) 이반 톤키(Ivan Tonkikh)  사장은 4일 열린 포럼에서 두만강철교와 함께 지난 북러정상회담에서 두만강 자동차도로에 대한 합의가 있었고 올해안에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한국의 물동량을 기대하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 중국과 맞닿아있는 국경지대 다자간 초국경 협력사업은 기대와 달리 아직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하산역에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석탄 열차. 하루 두 세 차례씩 중국 훈춘 외곽의 화물 전용역까지 러시아산 석탄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궤를 쓰는 러시아 열차는 훈춘에서 표준궤를 쓰는 중국 열차에 화물을 옮겨 싣고 중국 내륙으로 운송된다. [사진-조천현]
   
▲ 하산역사 인근 주거지. 한때 북측 근로자들이 많이 상주했으나 지금은 인적이 없다.[사진-조천현]

두만강철교를 지척에 두고 있는 하산역에서는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줄줄이 서 있지만 나진항으로 가는 길은 오래 전에 막혔고 지금은 하루 두 세차례 중국 훈춘으로 내 보내는 게 전부라고 했다. 한때 운송작업 등을 위해 역 주변 숙박시설에 상당수 체류하던 북측 노동자들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른 걸레질을 하는 여성들 주변에는 따분한 표정으로 근무복을 차려입는 역 관계자 여러 명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으며, 오직 한 젊은 직원만은 석탄이 적재된 화물열차 사진은 지워야 한다고 단속에 여념이 없다.

   
▲ 자르비노 항. 저 너머 두대의 크레인이 덩그러니 서 있는 항구 앞으로 때 여객이 오르고 내리던 접안시설이었을 이곳은 내려 앉은 채 방치되어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자르비노항 전경. 움직임이 전혀 없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훈춘과 가까워 특히 중국이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하산 지역 포시에트 만의 자르비노항. 하역장에 내려진 콘테이너는 보이지 않고 두개의 화물 크레인은 서있었으며, 일부 접안시설은 내려 앉은 지 오래인 듯 방치된 상태 그대로였다. 

한때 한국의 속초항에서 자루비노항까지 운행하던 동춘해운의 페리는 멈춘지 오래이고, 바다로 진출하는 것이 숙원사업인 중국쪽에서는 2022년까지 훈춘 내륙항을 건설하고 그 전에 자루비노항과 연결하는 해양열차로 통관지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정작 러시아쪽에서는 한편으로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천혜의 자연이 미개발 상태로 있는 연해주. 러시아 정부는 이 곳을 △극동지역 선도개발구역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제도 추진 △경제특구 운영 및 복합 카지노단지 착공 △루스키섬 개발(테크노파크, 의료 클러스터 조성) 등 극동개발의 거점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4시간을 달리도록 도로 양옆으로 참나무와 단풍나무, 너른 초지가 끝도없이 이어지고 깊은 바닷물이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조선 동해'가 따라오는 광활한 대지가 연해주이다.

개발의 가장 큰 장애는 미국의 제재.

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북중 접경지역의 가능성을 현실화시켜 오랜 갈등관계인 중국과 협력을 이끌어 내고, 한국과 북한을 대륙으로 잇는 신동방정책의 큰 그림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한편, 연해주(沿海州)는 한반도 북단 두만강 하구와 잇닿아 있는 하산으로부터 북쪽 사마르가 강 상류에 이르는 면적 16만 4,673㎢, 인구 191만명의 러시아 극동 프리모르스키(Примо́рский, '바다와 접해있다')지방을 이르는 명칭이다.

이 땅은 제2차 아편전쟁 결과 1860년 10월 청나라와 체결한 베이징조약에 러시아가 끼어들어 차지하게 되었으나, 그에 앞서 1500년전인 698년부터 926년까지 한때 발해가 지배하던 곳이다.

   
▲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하바로프스키 거리 신한촌 기념비. 1914년 경성부 인구가 21만명일 때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 이 6만 4,000명에 달했다. 1921년 시내 중심가인 바닷가 아르테거리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옮겼으나 지금은 살고 있는 이가 그마저 없다.  [사진-조천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제국주의 시대인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봉건 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최초로 연해주에 정착해 한때 약 17만명이 거주하면서 연해주는 우리 민족과 다시 땅의 연대를 맺었다. 

안중근, 홍범도, 최재형, 이범윤, 이상설·이위종, 이동녕, 이동휘, 신채호, 장도빈의 독립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는 극동 주둔 일본군에 의해 볼셰비키 적군과 함께 수천명의 고려인이 학살당하는 4월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종합대학교 청사 A동 건물.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의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러시아 정부가 매년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골프장, 카지노, 호텔 등 최고급 휴양시설이 한창 건설중이다. 한편으로는 2000년전 역사유적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천혜의 자연조건을 만끽하며 여름 '조선동해'를 가르는 서핑객. 북측 나진에 비해 염도가 2도 낮다고 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지난 4월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시 '레스나야 자임까' 식당. 숲속의 작은 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중심에서 동북 방향으로 53km 떨어진 아르쫌 지역에 있다. 왼쪽 뒤로 보이는 명판에는 2002년 8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연방 원동연방구 방문과정에 이 곳 식당을 다녀갔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나무로 지어진 레스나야 자임까 식당 내부. 이곳 직원들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사진 왼쪽에 마련되어 있 무대를 바라보고 창가에 앉았다고 설명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루스키대교와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바라보고 있는 레닌 동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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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는 이희호다

"여자는 남자 밑 보조, 승복할 수 없었다"
2019.06.11 10:23:29
 

 

 

 

이희호가 잠들었다.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그리고 민주화 투사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그가 향년 9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희호의 삶은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가 아닌, 이희호 자체였다. 10여 년 전 이희호가 쓴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여성운동가 이희호  

이희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화목한 유년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남아 선호 사상이 지배했던 시대에 아들딸 차별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화고녀 시절, 그는 모국어인 조선어가 제2외국어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화여전에 다니면서는 황국신민 교육 지도원으로 농촌 지역에 파견되기도 했다. 

"이때 지켜본 농촌 아낙네들의 현실은 가혹했다. 권위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중노동에 짓눌렸다. 농촌 여인들의 삶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희생뿐이었다."(<이희호 자서전 - 동행> 26쪽) 

해방 후 이희호는 남녀공학인 서울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여학교에서 비교적 민주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의 눈에는 기를 펴지 못하는 여학생과 마음껏 호연지기를 뽐내는 남학생의 모습이 불공평하게 비쳤다.  

"그때 여자들의 자리는 당연히 안방이나 부엌이었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언제나 뒷자리 차지이며 이등 시민이었다. 남녀공학 체험은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었다."(같은 책, 34쪽)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그도 부산 피란길에 올랐다. 정부도, 학교도, 팔도 각지 사람들도 모두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이희호는 친구 김정례, 박기순, 장옥분과 의기투합해 별도의 여자 청년단을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는 남자 청년단 산하 여성국이 아닌 독립적인 여자 청년단을 꿈꾸면서 "여자는 왜 늘 남자 밑에서 보조로 일해야 하는지 승복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나는 여성운동이 하고 싶었다.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남성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하면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순국선열의 반열에 올라간다. 그러나 후방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는 불명예와 수모만 있을 뿐이었다. 몽골군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는 화냥년으로, 일제 강점기에 끌려간 '정신대'는 가문의 수치로, 한국전쟁의 피해자는 '양공주'로 낙인찍히고 멸시당했다. 원인은 가부장제였다. 우리말 속에는 남성을 중시하고 여성을 경시하는 말이 수없이 많다. 무심코 던지는 말 가운데 스며 있는 여성 비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남자는 도둑질 말고는 뭐든지 해도 된다' 등등. 나는 유독 '그녀'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그남'은 없는데 왜 '그녀'라고 하는지. 이는 일본어 '가노조'에서 온 일제 문화의 잔재다. 나는 한때 우리말 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은 남성들의 터무니없는 우월 의식과 그 언사를 연구하여 책을 내려고 한 적도 있다."(같은 책, 39쪽)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오랫동안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 대부분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불공정과 불이익을 자각하지 못했다. 일상의 언어에서도 차별과 비하가 만연했다. 

이희호는 황신덕, 이태영, 박순천 등과 함께 '여성문제연구원'을 만들어 본격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매달 법률 강좌를 통해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 특히 민법상 여성의 권리를 집중적으로 계몽하며 무료 상담을 진행했다.  

여성문제연구원은 오늘날 '가정법률상담소'의 모태가 됐다. 또한 여성들의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1989년 가족법 개정에 영향을 끼쳤다.  

이희호의 여성운동은 정치적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제1, 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순천이 1954년 5월 윤보선을 상대로 종로에서 출마하자, "여성은 여성 대표를 찍읍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그때 내가 선거운동을 신명 나게 하자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오해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운명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었나 보다. 후에 결혼하게 될 사람도 이 선거에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같은 책, 44쪽) 

이희호는 그해 8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8년 뒤, 석사 학위를 들고 귀국했다. 그는 학문의 길과 사회운동이라는 갈림길에서 대한YWCA연합회(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벌인 캠페인은 '혼인신고를 합시다'였다. 첩을 둔 남자가 많던 때, 혼인신고는 여성의 권리 찾기였다.  
 

ⓒ김대중평화센터


민주화 투사 이희호  

"이희호 총무가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부드러운 성격에 강한 책임감으로 좋은 사회운동가 자질을 타고났다고 기대를 많이 걸었던 YWCA 관련 어른들은 김대중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기로 했다. 조건이 나쁜 그와의 결혼으로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에 빠져 좋은 일꾼 하나 빼앗기고 앞으로 여성 지도자로 대성할 재목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공작을 폈다. 그러나 평소 신중했던 그가 비장한 각오로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는 더 이상 반대를 할 수 없었다."(같은 책, 66쪽) 

이희호의 이화여전 스승이자 대한YWCA연합회 회장은 지낸 김갑순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결혼은 당시 여성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희호의 결심을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1962년 5월 10일 이희호는 김대중과 결혼했다.

그는 김대중과 만남을 "운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된 민주주의"와 "국민"이 들어간 김대중의 청혼이 "무척 정치적이고 논리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같은 책, 69쪽) 

이희호와 김대중의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 <동행>에 등장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독재자가 한창 '요정 정치'를 이어가던 1960년대, 이희호와 여성 단체들은 '4.4 운동'이라는 이름의 요정 정치 반대 운동을 벌였다. 어느날 이희호가 김대중에게 "남자들은 요정이 아니면 정치를 못하나요?"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김대중은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희호는 곧바로, "언젠가 남자들 큰코다칠 겁니다"라고 경고했다.  

요정 정치의 폐단은 이내 현실로 드러났다. 1970년 요정 아가씨 정인숙이 피살당한 것. 이 사건으로 당시 최고위층 정치인들을 둘러싼 풍문은 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랑보다는 신뢰로 동여맨 결혼이었지만, 이희호는 "정치는 배우자에게 최대의 경쟁자"이자 "자녀들에겐 최대의 적"이라고 말했다. 김대중의 부재와 상관없이 집에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가족이 사생활을 영위할 공간도 시간도 사라졌다.  

그 와중에 김대중은 국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말 잘하는 김대중'이라는 브랜드까지 생겼다. 

"내가 그를 돕는 일은 신문을 샅샅이 읽어 정책 제안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이었다. 영자지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국제 정세를 보는 미국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자료들이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선 나 자신에게 큰 공부가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이후에 그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제사회를 향해 구명 운동을 할 때 나침반이 되었다. 또한 그가 옥중에서 시대의 흐름에서 낙오하지 않고 미래를 볼 수 있게끔 독서 목록을 만드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같은 책, 82쪽)

이희호는 계속해서 김대중에게는 도움이 되는, 동시에 자신에게는 공부가 되는 일을 해나갔다. 1967년 6월 7대 총선 당시 그는 목포 골목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로써는 후보자의 아내가 유권자들을 일대일로 만나는 일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그 역시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마음을 담아 상대방의 손을 꼭 쥐는" 이희호 식 악수가 시작됐다. 그는 이후 김대중 지지를 호소하는 찬조 연설가로도 나섰는데, 언론은 그를 "후보 부인 찬조 연설 1호"라며 "웬만한 정치 연설꾼 실력을 웃"돈다고 평가했다.  

"나는 선거 과정을 통해서 만난 서민들이 참 좋았다. 그들에게서 지식인으로부터 느끼지 못하는 따스한 진정을 느끼곤 했다. 하루 종일 산동네를 다녀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설이나 추석 명절 때 국회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수위 아저씨들 선물을 먼저 챙겼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어느 매체에서 의원 사무실을 청소하며 많은 의원을 지켜본 아머니들이 가장 인상에 남는 의원 중 한 사람으로 남편을 꼽았다. 그가 아주머니들에게 존칭을 쓰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었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잊지 않았던 결과다. 선거용 선심이 아니라 그도 나도 서민들을 편하게 느끼는 감성을 공통으로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이후에 그의 경제정책이 소수 독점재벌이 아닌 중산층과 서민층을 돌보는 대중경제론으로 정착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같은 책, 100쪽) 

이희호와 김대중은 서민뿐 아니라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공통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이 주도해 제13대 국회를 통과한 '가족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김대중의 양성 평등 인식은 알려진 대로, 문패 일화에서 드러난다. 김대중은 1963년 당시 변두리였던 동교동에 집을 마련하고 '김대중'과 '이희호'라는 두 개의 문패를 직접 마련해 걸었다. 그때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부부가 동등하다는 걸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입시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당선되면 여성지위향상위원회를 두겠다는 공약 발표를 시작으로 대선과 총선, 모든 선거에서 가장 앞선 여성 정책을 제시한 페미니스트 후보였다."(같은 책, 292쪽) 

그러나 여성계의 우려처럼 김대중과의 결혼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독재 정권은 정적의 아내인 이희호의 사회 활동 역시 집요하게 방해했다. 이희호는 1982년 김대중과 미국 망명길에 오르면서 결국 모든 직책을 사임한다. 사실상 강제된 중단이었다. 
 

ⓒ김대중평화센터


독재자가 바뀌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희호와 김대중의 '동교동 교도소' 생활은 계속됐다. 1985년 2월부터 1987년 6월까지 28개월 동안 무려 54차례 '연금 중'이었다. 당시 정권은 김대중을 고사(枯死)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야만과 광기의 1980년대 이희호는 5.18 광주에 아파하고,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했다. 민주화 투쟁 속에 유가족은 늘어만 갔다. 그들은 일이 생길 때마다 동교동을 찾았고, 이희호와 김대중 역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들을 만났다. 이희호는 영부인이 되어서도 '동교동 사모님'으로 불렸다. 

 


이희호는 여성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 그리고 김대중의 정치적 동지로 1998년 2월 25일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희호는 행사 참여 등 내조 중심이었던 제2부속실의 역할을 아동과 여성을 위하는 일로 확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성평등과 인권을 중심으로 한 '일상의 민주화'를 실천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새롭게 신설된 여성부 및 문화관광부, 환경부, 보건복지부에서 4명의 여성 장관이 나왔다. 이어 주러시아대사를 비롯한 4대국 여성 대사가 등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희호와 김대중의 합작품이다.  

이희호는 또 2002년 5월 유엔 총회 의장국 대표로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첫 여성이었다. 당시 그는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해 '전 세계 아이들을 빈곤, 학대, 질병과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자'고 촉구했다.  

이희호의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동지였던 김대중은 2009년 8월 먼저 눈을 감았다. 그는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희호와 김대중에게는 정치가 각자의 꿈을 이루는 길이었다. 그 고난의 길, 서로가 있어 견디었다.  

 

▲ 김대중은 이희호가 자서전 <동행>을 출간한 이듬해, 잠들었다. ⓒ김대중평화센터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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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놔두고 10억 '혈세 유람' 떠나는 교장들

[제보] 초등교장 5천여 명, 평일 1박2일 행사... '남진 공연' 보고 '남도 유람'도

19.06.11 10:38l최종 업데이트 19.06.11 10:38l

   

 한국초등교장협 연수 일정을 적어놓은 서울지역 한 교장회 문서.
▲  한국초등교장협 연수 일정을 적어놓은 서울지역 한 교장회 문서.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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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7개 시도 초등학교 교장 5000여 명이 평일에 학교를 비우고 1박2일로 전남 목포에 모인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이하 한초협) 하계연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남도 유람으로 채워진 지역별 교장단 일정표가 발견돼 '세금 낭비' 지적을 받고 있다.  

연수는 3시간만... 성인가수 공연 보고 남도 탐방?

10일, 한초협과 서울지역교장협이 학교로 보낸 공문에 따르면 한초협은 오는 13일부터 14일까지 1박2일간 전남 목표실내체육관 등지에서 하계연수회를 연다. 참석예정인원은 이 단체에 소속된 교장과 장학관 5000여 명이다. 지난해엔 행사가 여름방학 기간에 열렸지만 올해엔 평일 근무시간에 열려 이틀간 전국 학교를 일제히 비우게 됐다.

 

출장비 또한 학교별로 교장 한 명당 각각 평균 20여만 원씩 지급한다. 모두 10여 억 원의 학교 돈으로 이번 행사가 치러지는 것이다. 한국교총 산하조직이었던 한초협은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사단법인)다.

문제는 이렇게 학교 돈으로 치르는 연수가 이름만 연수일 뿐 연수시간은 사실상 3시간에 그친다는 것.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가수 남진의 공연을 보거나 남도 유람으로 채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지역 3개 교장회가 만든 행사일정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다. 참고로 50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다 보니 본 연수 3시간만 같고 나머지는 지역별로 가는 곳이 다르다.

서울성북강북교장회가 안내한 '연수회 일정' 문서를 보면 한초협은 행사 첫날인 13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목포실내체육관에서 전체 연수회를 연다. 그 가운데 30분은 대중 가수 남진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초대비는 800만 원이다.

첫날 나머지 시간은 호텔과 주변 식당 등지에서 '화합의 시간' 등을 가진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첫 행사로 '남도문화답사와 선진학교 방문'을 적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3시간에 걸쳐 천사대교 방문, 암태도 답사활동, 추포도 생태탐사, 암태초 방문 등이다. 학교 방문은 암태도 답사를 위한 구색 맞추기인 것으로 보인다.

오후 시간도 남도특산품 구입을 위해 목포수산물시장 등을 방문하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채운다. 다른 서울 두 지역 교장회의 일정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암태도 갔다가 추포도 갔다가 수산물시장 가는 게 연수?

그나마 첫날 3시간 연수시간조차 상당한 시간을 대회사와 환영사, 격려사, 결의문 낭독 시간 등으로 채운다. 혁신학교 우수사례 발표와 외부 강사 연수 시간은 많아야 한두 시간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초협이 만든 문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다.

박형준 전교조 서울지부 참교육실장은 "초등학생들은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도 켜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고 교사들은 학생체험학습을 위한 사전 답사도 2명만 출장비를 지급받는 형편"이라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평일 전국 초등 교장 5000여 명이 10억 원대의 돈을 써가며 성인가수 공연을 보고 유람을 나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상윤 한초협 회장은 "이미 전임 회장단에서 평일로 일정을 잡아놓아 바꾸지 못했다. 여름방학 때 일정을 잡으면 숙소를 구하기 어려운 것을 감안한 결정이었을 것"이라면서 "학기 중에 연수회가 이뤄지기 때문에 충실한 연수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일부 지역 교장회의 경우 교육적인 요소가 부족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관련 지적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한 회장은 "지금이라도 내용을 바꿔 연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역 교장회에 안내할 예정이며, 시대 변화의 선두에 서는 교장회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초협 "교육적인 요소 부족한 점 있었다"... 유치원 원장, 원감까지?

한편 유치원 관리자들의 단체인 한국유아교육행정협도 전국 국공립유치원감 연수와 원장 연수를 각각 6월 27일~28일과 7월 11일~12일 1박2일로 여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대부분의 국공립 유치원 원장과 원감이 평일에 출장비를 받고 자리를 비우게 된 것이다. 장소는 호텔인터불고 대구와 대전 유성호텔 등지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그동안 지침 등을 통해 교원들에 대해 '평일 학생 수업시간 중 연수 지양'을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교장과 원장, 원감에 대해서는 이 지침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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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항쟁 32주년을 맞으며…

6·10 항쟁 32주년을 맞으며…
 
 
 
김용택 | 2019-06-10 09:21: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 글은 6,10항쟁 32돌을 맞는 세종시 기념식에서 시민대표로 발표한 기념사입니다.

존경하는 세종시민 여러분! 오늘은 32번째를 맞는 6·10항쟁 기념일입니다. 6·10항쟁은 4·19혁명정권을 뒤엎고 군사통치, 유신통치로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가 그의 부하 김재규의 손에 죽자 전두환일당들이 12·12쿠데타와 광주시민을 학살, 폭압적인 군사통치를 자행해 왔습니다.

32년 전인 1987년 6월 10일 그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전두환정권은 6만여 명의 경찰을 투입,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6.10항쟁하면 우리는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경찰의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열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정권장악에 혈안이 된 전두환정권은 광주학살도 모자라 서울대 박종철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해 ‘유신헌법철폐와 민주정부수립’을 원하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최루탄을 발사. 이한열군을 숨지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전국 34개 도시, 4개 군에서 150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떨쳐 일어나 전두환의 4·13호헌조치를 철회하고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6·29선언」을 쟁취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요, 민주주의를 수호한 자랑스러운 국민들입니다. 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는 우리민족의 국민성, 정의감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은 동학혁명의 정신이요, 이 정신이 일제에 저항한 3·1혁명으로 4·19혁명과 광주항쟁 그리고 6·10항쟁으로 이어져 마침내 촛불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역사를 조망하면 진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민족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입니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리, 국회의원과 사법부 그리고 경찰이 행사하는 권리는 주권자인 우리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라고 잠시 맡겨 둔 권리입니다. 주권자가 주인의식, 민주의식을 갖지 못하면 그 주인은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선조들, 선배들이 지켜온 민주주의는 우리가 다듬고 가꿔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대한헌법 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해 모든 국민이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국가는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촛불이 만든 문재인정부는 지난 2017년 취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라고 약속했습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주인인 나라. 주권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주권자인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동학혁명과 3·1혁명, 4·19혁명과 6·10항쟁의 정신은 불의에 저항하는 숭고한 민족정신입니다. 이제 우리도 남아공이나 스위스같이 좋은 헌법을 만들어 주권자인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우리의 소원인 민족통일을 앞당겨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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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에서 미·중 대결시대까지...한국정치의 향방은?

[특별기고] 해방 후 한국정치의 밑그림
2019.06.10 07:53:41
 

 

 

 

2016년께일 것이다. 우리나라 소설의 대가, <태백산맥>의 조정래 씨가 나를 만나자더니 정치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도움을 구한다. 나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로 김상현 전 국회의원을 연구해보라는 것이다(김 의원은 그 후 별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숨기는 게 많았기에 마치 <춘향전>에서 이 도령을 따라다닌 방자와 같은 김상현 의원을 연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전남 장성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구두닦이 등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닿아 정치에 입문, 마지막에는 미국에 망명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대리해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대리를 맡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 중 국내에서 거둬들인 정치 자금 사용처를 놓고 둘 사이가 멀어지더니, 마지막에는 김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김 전 대통령에 맞서 당권에 도전해 둘 사이는 갈라지고 말았다. 김 의원은 "진짜로 김대중 씨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고, 전당대회에서 당권 경합이 있는 게 민주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니, 보기에도 좋은 게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여하간 김 의원 연구가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생애를 다룬 한 작가의 전기가 있기는 하나,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빠진 것 같다. 
 
두 번째로 나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추천했다. <동물농장>만큼 정치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은 없다할 것이다. 이 소설이 나온 때가 서방 세계와 공산 소련이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 협동하고 있을 때라 이 소설이 소련을 지나치게 신랄하게 풍자, 공격했다고 해서 국제적으로 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동물농장>만큼 정치의 실상을 고발한 작품은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도 추천했다. <1984>는 정보화·감시 사회의 도래와 그 위험성을 경고한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이 나왔을 때도 물의가 있었다. 마침 그 때가 영국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라, 노동당 정부의 복지정책 확충에 따른 관료제 강화를 풍자·비판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다. 그러나 점차 심화하는 정보화·감시 사회의 현실에 비춰볼 때 <1984>는 중요한 비판적 소설이라 하겠다.  
 
세 번째로 나는 영국의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키의 <국가론>을 추천했다. 라스키는 지난날의 영국 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국가론>은 그의 대표적 정치이론서다.  
 
조정래 작가에게 위 세 가지를 권고했지만, 실은 나도 그 세 가지가 제기한 문제들을 탐구는 해야겠는데 아직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위 세 가지를 잣대로 계속 탐구해보려 한다.  
 
해방 후 한국 정치의 흐름 
 
우리나라 정치는 해방 후만 볼 때 ①정부 수립 이전의 혼란기 ②이승만 대통령 시대 ③4.19 학생 혁명과 장면 정권의 막간극 ④5.16 군사 쿠데타와 박정희 장군의 장기 집권 ⑤박정희 피살 후의 혼란기와 신군부 쿠데타 ⑥그 후 문민정부 집권기 등의 시기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①남한 미군정, 북한 소군정 시기 
 
해방 후 남한에 전승국인 미군이 주둔하고, 북한에는 역시 전승국 소련군이 주둔한 것은 한국 정치를 규정한 현실이다. 따라서 남한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이승만 박사가 집권하고, 북한에는 소련에서 돌아온 김일성이 집권한 것은 역학상 맞았다. 둘에 비해 여운형 선생 등 중간파의 노력이나 김구 선생 등의 남북협상파의 노력은 비록 이상의 추구이기는 하나 비현실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남로당원이었다가 전향해 휴전협정 전 단신 북한으로 넘어가 이승엽을 만나고 온 박진목 씨는 평소 "태평양 전쟁에서 그 막강한 군국주의 일본을 꺾고 남한에 진주한 미군에 대항하려 한 남로당은 참으로 무모했다"고 말했다. 
 
"今日不可無 崔遲川和戰論 百歲不可無 三學士主戰論." (오늘날에 있어서 지천(최명길의 아호)의 화전론이 없을 수 없고, 긴 세월을 두고 볼 때 삼학사의 주전론이 없을 수 없다.) 병자호란 당시를 둔 대구(對句)다. 해방 후의 현실론자와 이상주의자를 두고도 같은 대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떠날 때 백범 김구 선생은 광복군 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에게 위 대구를 인용하면서 그의 심정을 토로했다 한다. 내 나름대로 이렇게 풀이해보겠다. "전승국인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한을 분할 점령한 마당에 각각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민족의 분열을 막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남북 협상은 지난한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력임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심산 김창숙 선생을 모셨던 이윤기 전 국회의원에게 들었는데,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②건국 초기 대통령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의 초대 대통령은 거의가 장기집권이라는 유혹에 빠졌다. 미국에서 오래 있었던 이승만 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등 미국의 정치 문화에 젖었던 이승만 박사의 경우는 매우 실망스럽다 할 것이다.  
 
신생국에서 새로이 떼를 이루어 정계에 진출한 새내기 정치인들이 마치 일벌이 여왕봉을 중심으로 모이듯 초대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한 결말인 것도 같다. 
 
③장면 정권은 인테레그눔(interregnum) 
 
4.19 학생 의거는 여하간 혁명적 사태였다. 그런데 장면 정권은 그런 혁명적 사태에 비혁명적 방법으로만 대처하여 혁명의 격랑에 침몰하고 말았다. 그러한 시기를 정치학에서는 interregnum(왕위 공백기)이라고 한다. 장면 정권 시기야말로 권력의 소재가 묘연했다. 그때 혁명의 열기는 각계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숙정을 요구했고, 민주화와 경제 발전과 민족 통일의 성취를 위한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면 정권은 그 혁명적 격류를 무시한 채 아주 평상시처럼 모든 것을 서서히 정상적 방법으로만 대응하려 한 것이다. 그러니 권력의 표류가 있게 되고 권력의 소재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른바 ‘왕위 공백기’ 시대가 된 것이다. 
 
④전쟁으로 비대해진 군부의 진출 
 
그러한 interregnum에 6.25 전쟁으로 비대해진 군부가 공백을 메운 것이다. 만주군 출신의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박정희 장군의 세력이다. 중국에서 보아온 것이 군벌의 사병화 노름이 아닌가. 그리고 일본 관동군의 군벌정치다. 그 세력은 민주화·경제발전·통일을 열망한 학생 혁명의 주장을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여 강력히 집중 추진하여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⑤광화문통에 굴러다닌 권력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 씨는 권력의 안위는 망각한 채 집권 경쟁에만 열중했다. 최규하 과도 대통령이 맡고 있던 권력은 "광화문통에 굴러다녔다." 최규하 대통령은 어쩌다 대통령 지위에 오른 사무관료일 뿐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고 방어하는 정치적 역량이 전혀 결여된 인물이었다. 그때도 왕위 공백기였다. 무주물(無主物)로 굴러다니다시피 한 권력을 주워 삼킨 게 구군부를 모방한 신군부의 쿠데타다. 해방 대한민국에서 민주 교육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 신군부는 일제 하에서 일본의 교육을 받은 구군부보다 별로 낫지 못했다. 6.25 동란 등으로 그들의 민주화 교육 과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⑥5년 단임의 문민 대통령들 
 
오랜 군부 통치와 거기에 대항하는 피어린 시민의 항쟁으로 문민 정권이 들어서는 민주화가 이룩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여 지금의 민주화는 아직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하기는 이르다. 그 동안의 문민정부 모두가 참신한 정책 몇 건을 새로 펴려고 노력하는 데 급급했다는 인상이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조용히 구상, 추진하는 노력은 덜 보인 것 같다.  
 
극우세력과 강대국 외교  
 
남북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 하에서 그 동안 축적된 극우세력이 앞으로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지 걱정되기도 한다.  
 
극우의 등장은 국제관계의 변화와도 밀접히 관련될 것이다. 조선조 때 광해군은 새로이 등장하는 여진족 세력(나중에 청나라가 된다)에 유념하여 비록 그때는 명나라에 사대 외교를 할 때였지만, 그들에 대하여 충분히 배려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인조는 오로지 명나라에 사대 외교만 할 뿐, 새로 등장하는 여진족 세력을 무시했다. 그래서 겪은 것이 두 번의 이른바 호란이 아닌가.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의 유일 강대국 체제의 영향 하에 있었다. 그런데 새로이 등장한 중국이 무시 못 할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강대국 외교는 서서히, 그리고 아주 현명하게 조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정기가 국내 극우세력이 경우에 따라서 순조로운 전환을 허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이행을 방해하고 난국으로 이끌 수도 있는 시기인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기존의 강대국과 새로이 부상하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외교의 시련기를 맞은 것이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 정치의 난국을 맞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광해군과 인조 때의 강대국에 대한 외교를 심사숙고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권력 구조와 선거제도 개혁 
 
근래 제기된 개헌론에서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자는 주장이 강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대통령 5년 단임제도 무방할 것 같다. 5년 단임으로의 개헌 당시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4강의 치열한 경합이 있었기에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여 골고루 기회를 갖자는 일종의 야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5년이 너무 짧다고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지난날의 농경 사회, 초기 산업 사회와는 달리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후기 산업 사회·정보화 사회가 아닌가.  
 
권력 구조 문제를 놓고는 대통령 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 하는 문제를 검토할 시기가 곧 닥쳐오리라고 본다. 남북한 간에 긴장이 대폭 완화되거나, 비록 지난한 일이지만 통일이 이룩될 경우다.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내각제가 대세이며 대통령제는 오히려 소수라 할 것이다. 대통령제가 성공한 나라는 미국 하나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유럽에서 이민 온 개척자들이 이룩한 신생국가였다. 이들은 모든 국민이 각각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무기에 관한 특수한 문화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각 주의 권한이 강한 연방제 국가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미국의 대통령제는 거의 예외적이라 할 만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타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통령제는 십중팔구 준 독재 체제로 흐르지 않았는가. 오늘날 한국에서 대통령제의 비교적인 성공도 전 세계적인 안목에서 보면 예외적이라 할 것이다. 
 
"다수는 결정의 원리요, 비례는 대표의 원리"라는 금언이 있다. 가령 의견이 60대 40으로 갈려 있다면 그 중 60이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6대 4의 비율로 대표가 선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례대표의 원리다. 그러나 어떠한 결정이 필요할 때는 우선 다수파와 소수파가 타협을 시도하지만, 타협이 불가능할 때는 최종적으로 다수결에 의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은 결정의 원리인 것이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도 확산되고 있지만, 의회의 선거는 비례대표에 따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례대표에 의한 의회의 구성은 내각책임제와 불가피하게 연관된다.  
 
우리나라도 국회의원 선출에 있어서 완전 비례대표로 하는 것이 이상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비례대표를 대폭 확장하여야 할 것이다. 근래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비례대표의 확대에 합의한 것은 좋은 방향으로의 진척이라고 본다. 
 
요즈음 우리나라 의회 정치의 수준은 별로 높다고 할 수가 없다. 아니,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오히려 수준이 낮으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겠다. 몇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소선거구 종(從)다수에 따른 의원 선거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의 의회에서는 정책 토론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선거구 종다수선거제 국가에서는 선거구의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거나 정책 토론이 뒤로 물러나고, 인기몰이 선동 선전이 앞으로 부상하기가 쉽다. 한국 의회 정치의 질적인 수준 향상을 위해서도 비례대표제의 확충이 요청된다.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며 이념을 떠나 보수와 진보 양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 연재한 기고를 바탕으로 <언론·정치 풍속사>를 냈고 이후 대담, 연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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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지하전쟁지휘소가 완공되는 날

[개벽예감 351] 평택에서 지하전쟁지휘소가 완공되는 날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6/10 [08:0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최첨단 군사전략시설이 매물로 나온 사연

2. 쓰지 않는 ‘탱고’ 관리비 떠안게 된 한국

3. 연합사령부를 미국군기지에 두려는 속셈

4. 세상에는 허수아비 사령관도 있다

5.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없는 이유

 

 

1. 최첨단 군사전략시설이 매물로 나온 사연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0년 3월 21일 <코리아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2007년부터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 국방부에게 ‘탱고’를 사거나, 빌려 쓰라고 요구해왔는데, 2010년 3월 한미합동전쟁연습 중에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월터 샤프가 한국군 당국자들에게 ‘탱고’를 사라고 또 다시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탱고(TANGO)는 유네스코가 2009년에 세계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라틴아메리카의 사교춤이 아니라, 전구공중해상지상작전(Theater Air Naval Ground Operations)의 영어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그러므로 탱고지휘소(Command Post TANGO)라는 말은 육해공군작전을 지휘하는 전쟁지휘소를 뜻한다.  

 

미국은 1970년대에 경기도 성남시 인근에 있는 해발고 618m의 청계산에 굴을 뚫어 지하전쟁지휘소를 만들었다. 총건설비는 50억 달러다. 전술핵공격에 견딜 수 있게 건설되었다는 이 지하전쟁지휘소를 탱고지휘소라고 부른다.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는 총면적이 33,000㎡로 너무 넓어서, 근무자들이 전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에는 군사지휘관들이 대형 화면을 통해 화상회의를 하며 육해공군작전을 통제하는, ‘전쟁실(war room)’이라고 부르는 작전통제상황실이 있는데, 거기에 ‘스킾(SCIP: Security Cooperation Information Portal)’이라고 부르는 최첨단 정보통신시설이 설치되었다. 이 정보통신시설은 정찰위성, U-2 고고도유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고고도무인정찰기가 보내오는 영상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영상정보망, 미국 국방부와 인도양-태평양사령부에 직보하고 그들로부터 명령을 받는 연락망, 한국군 합참본부와 주일미국군사령부에 각각 연결된 통신망,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에 각각 연결된 정보망을 통합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은 그런 군사전략시설을 팔거나 빌려주겠다고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물론 최첨단 정보통신장치들은 떼어내고, 팔거나 빌려주겠다는 뜻인데, 어째든 이것은 주한미국군이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전쟁지휘소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이상한 소린가?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5년 8월 17일 미국 연방의회 상원의원 탐 카튼이 경기도 성남시 부근에 있는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미국이 1970년대에 청계산에 굴을 뚫어 건설한 이 최첨단 군사전략시설은 북침전쟁지휘거점들 가운데 하나다. 전술핵공격에 견딜 수 있게 건설되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궁륭식 천장이 매우 높고, 전동버스가 돌아다닐 정도로 내부면적이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크고 넓은 군사전략시설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려면, 디젤발전기로는 감당하지 못하므로 전략잠수함에 들어가는 소형 원자로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은 2007년부터 한국에게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사들이거나 빌려쓰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지하전쟁지휘소를 두 개소나 운영하는 한국은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여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매입하거나 임차할 필요가 없다.     

 

<코리아타임스> 2010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게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팔거나 빌려주겠다고 매물로 내놓은 때는 미국이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돌려주기로 결정한 2007년이라고 한다. 미국이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는 것과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매물로 내놓은 것은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 것일까? 미국군 소식지 <스타즈 앤 스트라입스> 2010년 4월 13일 보도기사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월터 샤프는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는 상황변화에 대처하여 미국코리아사령부(U.S. Korea Command, KORCOM)를 2010년 안에 창설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미국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미국코리아사령부로 전환되지 않았다.)   

 

월터 샤프가 위와 같이 발언한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13년 7월 25일 미국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험프리즈에서 미국코리아사령부 작전본부 착공식을 진행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작전본부(Operation Center)는 지하전쟁지휘소를 뜻하므로, 그날 평택 미국군기지에서는 미국코리아사령부 지하전쟁지휘소 착공식이 진행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미국이 왜 청계산 전쟁지휘소를 매물로 내놓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한국에게 팔아넘기고, 새로 건설될 평택 지하전쟁지휘소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를 사야 할 필요도 없고, 빌려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서울 한강 남쪽 관악산 지하에는 B-1이라고 부르는 지하전쟁지휘소가 있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지하에도 B-2라고 부르는 지하전쟁지휘소가 있기 때문이다. 지하전쟁지휘소를 두 개소나 운영하는 한국이 미국에게 많은 돈을 주고 지하전쟁지휘소를 사들이거나 빌려 쓸 필요는 전혀 없다.  

 

 

2. 쓰지 않는 ‘탱고’ 관리비 떠안게 된 한국

 

<동아일보> 2011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평택 미국군기지에 건설되는 미국코리아사령부 방호시설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의 기준에 맞춰 대폭 강화할 것을 한국에게 요구하였고, 그에 따라 한국은 미국코리아사령부 방호시설을 건설해주기 위한 약 5억 달러의 건설비를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방호시설은 지하전쟁지휘소를 뜻하고, 국방위협감소국의 기준은 전술핵공격에 견딜 수 있는 핵방호력기준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국은 주한미국군이 사용할 평택 지하전쟁지휘소를 전술핵공격에 견딜 수 있는 견고한 핵방호시설로 건설해주는 비용 5억 달러를 전액 부담하게 된 것이다.   

 

<경향신문> 2008년 11월 1일 보도에 따르면, 평택 지하전쟁지휘소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지하 3층으로 설계되었는데, 1,000여 명이 들어가서 한 달 이상 밖에 나오지 않고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핵전쟁을 전제로 하는 평택 지하전쟁지휘소 같은 군사시설은 유럽이나 중동에는 없다고 하였다. 

 

<연합뉴스> 2019년 3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를 한국에게 떠맡기고, 관리비 전액을 부담하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한국 국방부는 그 요구를 도저히 받아줄 수 없어 난색을 표했으나, 미국은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비를 한국에게 떠넘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청계산 밑으로 커다란 수맥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그 산을 뚫어 지하전쟁지휘소를 건설해놓았기 때문에 그 지휘소 곳곳에서는 지하수가 줄줄 새고 습기가 심해 해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내부를 보수해야 하고, 방수설비와 방습설비를 1년 내내 가동해야 한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3년 7월 18일 평택 미국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경내에서 진행된 '미국코리아사령부 작전쎈터' 착공식 장면이다. 미국의 계획은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는 것과 더불어 주한미국군사령부를 미국코리아사령부로 전환하고, 평택 미국군기지에 그 사령부를 설치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한국이 돌려받는 것은 명목상 전작권이다. 실질적인 전작권은 여전히 미국코리아사령관이 행사하게 될 것이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작전쎈터라는 말은 지하전쟁지휘소라는 뜻이므로, 그날 미국은 평택 지하전쟁지휘소 착공식을 진행한 것이다. 지금도 건설 중인 평택 지하전쟁지휘소는 총면적이 34,838 평방미터이며, 850명이 근무하는 최첨단 군사전략시설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 최첨단 군사전략시설 건설비를 한국에게 떠넘겼고, 앞으로 쓰지 않게 될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비도 한국에게 떠넘겼다.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뜯어가도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상납해야 하는 것이 오늘 한국이 처해있는 대미예속관계의 현주소다. 자주성을 갖지 못하면, 평화와 통일을 실현할 수 없다.     ©

 

미국이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를 한국에게 떠넘기는 까닭은, 미국의 연간 군사예산에 들어있는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비를 지출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사정은 2019년 3월 18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다급하게 추진하는 메히꼬국경장벽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 36억 달러를 연방의회의 반대로 마련하지 못하게 되자, 미국 국방부에게 국방예산의 일부를 전용하여 메히꼬국경장벽을 반드시 건설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국방부는 연방의회에 제출한 건설사업목록에서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비로 배정된 2019년도 예산 1,750만 달러를 메히꼬국경장벽건설에 전용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제야 미국의 흉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은 평택 지하전쟁지휘소 건설비 전액 5억 달러를 한국에게 떠넘기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연간관리비 1,750만 달러를 메히꼬국경장벽건설비로 돌려쓰고, 그 대신 한국에게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비 1,750만 달러를 해마다 부담시키려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갈취범의 고약한 심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주성이 없는 한국은 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에게 막대한 자금을 상납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굴종의 비극이 아니면 무엇인가!  

 

 

3. 연합사령부를 미국군기지에 두려는 속셈

 

2019년 6월 3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국방장관과 60분 동안 회담하였다. 그 회담에서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창설에 관한 중대한 결정이 내려졌는데, 그 결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정경두-섀너핸 회담의 결정에 따르면,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경기도 평택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현재 평택 미국군기지에는 주한미국군사령부, 미8군사령부, 미육군2사단 본부가 있고, 미국코리아사령부 지하전쟁지휘소가 건설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둔다는 결정은 무슨 뜻인가? 

 

2017년 10월 28일 서울 국방부에서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 49차 회의에서 당시 한국 국방장관이었던 송영무와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두자고 구두로 합의하였고, 2017년 12월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두기로 명시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였다. 

 

그런데 2018년 11월 8일 로벗 에이브럼스 육군대장이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상황이 급변하였다. 그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가 아니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미국 국방부는 전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서명한 양해각서를 일방적으로 폐기하였을 뿐 아니라, 2019년 6월 3일 정경두-섀너핸 회담에서 기존 구두합의를 번복하면서,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겠다는 자기들의 주장을 내리먹였다.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두는가 아니면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는가 하는 것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부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결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만약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두면, 한국군 합참의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을 겸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경두-섀너핸 회담에서 결정된 대로,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면, 한국군 합참의장이 합참본부를 떠나 평택 미국군기지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당연히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닌 한국군 육군대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기존 합의를 뒤엎고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려는 미국의 속셈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닌 한국군 육군대장을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하려는 데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6월 3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국 국방부를 처음으로 방문한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을 위한 환영식 장면이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을 국방부 청사로 안내하면서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2017년 10월 28일 한국 국방부에서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 49차 회의에서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두자고 구두로 합의하였고, 같은 해 12월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둔다고 명시한 양해각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2019년 6월 3일에 진행된 정경두-섀너핸 회담에서 미국은 위와 같은 구두합의를 무효화했고, 양해각서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미국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가 아니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한국은 그 주장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자주성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2018년 10월 31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 50차 회의에서 정경두 국방장관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을 겸직하고, 미국군 대장이 미래한미연합부사령관을 맡는 지휘부 구성방안을 검토하기로 하였는데, 2018년 11월 8일에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로벗 에이브럼스 육군대장은 그 방안을 폐기했다. 그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닌 한국군 육군대장을 미래한미연합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미국코리아사령관(현재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미래한미연합부사령관을 겸직하는 자기 주장을 내리먹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미예속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니더라도 한국군 육군대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되면, 그가 한미연합군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대미예속관계는 그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한국 국방부가 바라는 대로,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한국 국방부 경내에 두고, 한국군 합참의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을 겸직한다고 해도, 그에게 주어질 한미연합군 전작권은 명목상 권한이 될 판인데, 정경두-섀너핸 회담에서 결정한 대로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고,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닌 한국군 육군대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되게 되었으므로, 한미연합군 전작권은 미국코리아사령관(미래한미연합부사령관)이 사실상 장악하게 될 것이고, 한국군 합참의장은 군령권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 전작권은 현재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 모자를 쓰고 행사하고, 한국군 합참의장은 전작권을 행사하지 못하는데, 앞으로 미래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어도 한국군 합참의장은 여전히 전작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주성이 없는 한국은 그런 굴욕을 당해도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살아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예속의 비극이 아니면 무엇인가! 

 

다른 한편,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을 맡게 될 한국군 육군대장도 사령관 모자를 쓰고 있지만 명목상 사령관일 뿐이고, 한국군 합참의장처럼 전작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예견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4. 세상에는 허수아비 사령관도 있다

 

(1)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평택 지하전쟁지휘소가 완공되면, 청계산 지하전쟁지휘소 관리를 한국 국방부에게 떠넘기고, 평택 지하전쟁지휘소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건설 중인 평택 지하전쟁지휘소의 설계와 시공은 한국 건설업체가 아니라 미국 건설업체가 맡았다. 평택 지하전쟁지휘소를 극비보안시설로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국방부가 신뢰하는 미국 건설업체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긴 것이다.  

 

평택 지하전쟁지휘소의 소유자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가 아니라 미국 국방부이고, 그 지휘소를 관리, 운영하는 책임자는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이 아니라 미국코리아사령관이다.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될 한국군 육군대장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청사에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만, 그 청사 바로 옆에, 지하통로 연결된 지하전쟁지휘소에는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극비보안시설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시설이 아니라, 미국 국방부 시설이기 때문이다. 육해공군작을 지휘통제하는 모든 군사정보가 평택 지하전쟁지휘소에서 처리되는데,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이 그곳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면, 군사정보접근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한미연합사령관 모자를 쓰고 평택 미국군기지에 들어갈 한국군 육군대장이 군사정보접근권을 갖지 못하면,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싶어도 수립하지 못한다. 사령관이 군령권(전작권)을 행사하려면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권한을 가져야 하고, 작전계획을 수립하려면 군사정보접근권을 가져야 하는데, 군사정보접근권이 없는 사령관이 무슨 수로 작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권한은 미래한미연합부사령관 모자를 쓴 미국코리아사령관(현재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할 것이고,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실무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참모장, 기획참모, 작전참모가 맡을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9년 6월 3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국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국방장관과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고,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닌 한국군 육군대장을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하려는 자기 주장을 내리먹였다. 미래한미연합사령부가 미국의 주장대로 창설되면, 미국이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준다고 해도 한국군 합참의장은 전작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고, 미래한미연합사령관 모자를 쓰고 미국군기지에 들어간 한국군 육군대장도 전작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평택 미국군기지에 두려는 미국 국방부의 속셈은 한국군 전작권을 형식적으로 돌려주고, 실제로는 자기들이 전작권을 장악, 행사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창설될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미국코리아사령부 산하기구로 만들려는 것이 미국의 음흉한 계략이다.     

 

그렇다면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참모장은 한국군과 미국군 중에서 어느 쪽이 맡게 되고, 기획참모와 작전참모는 또 어느 쪽에서 맡게 되는가? 2017년 10월 28일 서울 국방부에서 한미안보협의회 49차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는 그 회의에 제출된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창설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군 중장과 미국군 중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참모장을 공동으로 맡는 방안이 그 창설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매티스는 공동참모장이 아니라 미국군이 단독으로 참모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창설안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티스가 미국군이 미래한미연합사령부 참모장을 단독으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은 군사정보접근권과 작전계획수립권을 모두 미국군이 장악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장관이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주장하면, 실권이 없는 한국 국방장관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주장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래한미연합사령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군직들인 참모장, 기획참모, 작전참모를 모두 장악한 미국군 지휘관들은 미래한미연합사령부에서 실권 없는 군직에 임명될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보조업무나 맡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된 한국군 육군대장은 미국군 참모장, 미국군 기획참모, 미국군 작전참모가 작성하여 제출한 서류를 읽어보고 결재나 하는 무권한상태에 빠질 것이 너무 뻔하다. 

 

(2) 조미군사대결은 사회주의핵무력과 제국주의핵무력의 대결이다. 만약 조미전쟁이 일어나면, 선제전술핵타격과 보복전술핵타격이 오가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핵교전이 벌어질 것이다. 조선핵무기연구소가 사회주의핵무력을 완성한 때에 맞춰 조선인민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으로부터 핵전쟁교리를 받았고, 전군을 사회주의핵무력을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다른 한편, 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핵전략자산을 중심에 둔 작전계획을 수립해놓고, 핵전략자산을 동원하는 제국주의북침전쟁을 연습하고 있다. 

 

그런데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될 한국군 육군대장은 핵탄두를 만져보지도 못했고, 재래식 무력을 지휘한 경험밖에 없다. 그런 한국군 육군대장이 미국의 핵전략자산들인 항모타격단과 장거리전략폭격기 편대를 지휘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될 한국군 육군대장이 한미연합군 전작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미래한미연합사령관 모자를 쓴 한국군 육군대장이 한미연합군 전작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소외당할 때, 미래한미연합부사령관 모자를 쓴 미국코리아사령관은 평택 지하전쟁지휘소에서 자기 측근들인 참모장, 기획참모, 작전참모를 데리고 한미연합군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작성한 작전계획서에 결재서명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은 미국코리아사령관이 미래한미연합부사령관 모자를 쓰고 한미연합군에 대한 실질적인 전작권을 행사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지금 미국 국방부는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미국코리아사령부 산하기구로 만들려는 계략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9년 4월 15일 서울 중구에 있는 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평화의 시대, 냉전의 유물 유엔사 해체를 촉구하는 1차 국제선언 발표 기자회견' 장면이다. 한국의 진보단체대표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행정부에게 미국이 불법적으로 만든 유엔사를 해체하고, 남북협력을 방해하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이미 오래 전에 유엔총회는 미국이 6.25전쟁에 파병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조작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조선도 미국이 불법적으로 조작해놓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라고 거듭 요구하였건만, 오만방자한 미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미국이 유엔사령부를 계속 틀어쥐고 있는 까닭은,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의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3) 이제껏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해오는 것처럼, 앞으로 미국코리아사령관도 유엔사령관을 겸직할 것이다. 유엔사령관 임명권은 유엔안보리가 아닌 미국 국방부에 있으므로,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된 한국군 육군대장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에 유엔총회는 미국이 6.25전쟁에 파병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조작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하였건만, 오만방자한 미국은 그런 결의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또한 조선은 미국이 불법적으로 조작해놓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라고 거듭 요구하였지만, 오만방자한 미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이 유엔사령부를 계속 틀어쥐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다국적 증원군에게 유엔기를 내주고 그들을 한반도 전선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고,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의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25전쟁 시기 한반도 전선에 파병된 친미추종국 군대들은 미국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유엔군보충대에서 미국의 전쟁교리에 의거하여 단기전투훈련을 받은 뒤에 미국군 사단에 대대단위로 배속되었는데, 만약 조미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그런 사태가 또 다시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미국코리아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쓰고 한반도 전선에 파병된, 일본자위대, 영국군, 오스트레일리아군, 캐나다군, 뉴질랜드군 등을 미국군이 지휘하는 유엔군에 편입시킬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경우에도, 유엔사령부를 일본으로 이전하면 전시에 친미추종국 군대들을 유엔군의 이름으로 한반도 전선에 끌어들일 수 있다. 미국이 유엔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조선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유엔사령부를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전시에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리라는 점이 명백하다.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은 평시에도 전시에도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사령관이다. 

 

 

5.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없는 이유

 

2019년 3월부터 매달 한국군 합참의장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주관하는 특별상설군사위원회(SPMC)가 월례회의를 계속 소집하고 있다. 그 회의에서는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받기 위해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평가하는데, 오는 8월에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사령관을 맡고,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부사령관을 맡는 임시지휘체계로 전쟁지휘소연습을 진행하여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평가하기로 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대로,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받더라도 한국군이 한미연합군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한국군 합참의장은 전작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미국코리아사령관이 한미연합부사령관 모자를 쓰고 전작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유엔사령부가 존속하는 한, 유엔군 전작권도 미국코리아사령관이 장악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한국군 전작권은 한미연합군 전작권과 유엔군 전작권에 이중으로 종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준다고 해서 한국군 합참의장이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군 육군대장이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된다고 해서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작권을 돌려받는 문제 또는 한국군 육군대장을 미래한미연합사령관에 임명하는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군사주권을 운운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매체들의 예상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에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면서 주한미국군사령부를 미국코리아사령부로 전환하고,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미일동맹군을 비상히 증강시켜 미일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최대화하고 있는 지금,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그에 반비례하여 최소화하고 있는데도 미국 국방부는 주한미국군을 철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미래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는 것과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최소화되는 것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최소화되면, 미국 국방부가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장악하는 것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국방부는 왜 미래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려는 것일까? 그들의 욕망은 주한미국군 철수를 반대하는 입장과 결부된다.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국군 철수를 반대하는 까닭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경우 미국군 대장, 중장, 소장을 비롯한 고위군직들이 사라지고 많은 군사지휘관들이 현역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철군문제는 퇴직문제이므로, 군직을 지키려는 자들이 철군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 미국 국방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몇 차례 제기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그리고 군출신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는 바람에 철군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직을 지키려는 철군반대파의 저지와 만류를 물리치고 철군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결정을 내리느냐 혹은 내리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한 가지 요인은 조미핵협상이 진전되어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경험들은 평화협정 체결이 철군을 불가피하게 동반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조미핵협상이 진전되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철군결정을 내릴 수 있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우두머리로 하는 백악관의 철군반대파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킨 까닭은, 조미핵협상이 진전되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철군반대파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시키는 바람에 조미핵협상이 진전되어 평화협정을 체결할 전망이 당분간 불투명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결정을 이끌어낼 다른 한 가지 요인이 아직 남아있다. 그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철군압박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철군압박을 가중시키며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으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철군결정을 내려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철군압박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중단하고, 핵탄두 증산과 미사일발사훈련을 재개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지금 조선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중단하였고, 녕변핵시설을 계속 가동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증산하고 있으며, 지난 5월 초 미사일발사훈련을 재개하였다. 그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제3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의사를 거듭 표명하는데도, 조선은 응답하지 않는다. 더욱 안달이 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 28일부터 29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일본 오사까에서 진행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을 방문하려고 한다. <세계일보> 2019년 6월 7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마친 6월 29일 오후에 서울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청와대는 1박2일 일정을 원하고, 백악관은 무박1일 일정을 선호한다고 한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9년 4월 11일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이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협상과 남북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남북미 3자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제기하였고, 트럼프 대통령도 그 방안에 찬성의사를 표하였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일본 오사까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판문점으로 가서, 남북미 3자정상회담을 개최하려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제의하기 위해 북측에 여러 차례 연락하였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하고 조선식 비핵화 방안을 놓고 협상하는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조선은 그 어떤 형태의 회담도 재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목적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그와 정상회담을 하려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중에 잠깐 시간을 내어 정상회담을 하면 된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한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아닌 어떤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목적인가?  

 

2019년 4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청와대에서 진행된 보좌관 회의에서 지난 4월 11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단할 경우 남북미 3자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협상과 남북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남북미 3자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제기하였고, 트럼프 대통령도 그 방안에 찬성의사를 표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함께 판문점으로 가서, 남북미 3자정상회담을 개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이 계산법을 바꾸지 않으면, 협상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아예 못을 박아놓았다. 미국의 계산법을 바꾸라는 것은 외교적인 표현인데, 조선에게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하고, 조선식 비핵화 방안을 놓고 다시 협상하자는 뜻이다. 조선식 비핵화 방안 속에 평화협정체결방안과 철군방안이 들어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만 하면, 조미협상과 남북협상은 곧바로 재개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미국의 계산법을 철회하지 않았으므로, 조선은 남북미 3자정상회담 개최제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식 계산법을 말끔히 철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바로 그것이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협상과 남북협상을 재개하는 길이다. 교착을 넘어서는 길은 오직 그 길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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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깨지는 '미국은 은인의 나라'라는 미신

<시론> 친미 사대주의의 몰락은 역사의 대세이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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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주어진 근거들을 놓고 볼때 미국은 은인이 아니라 민족을 반으로 갈라놓고 유린하는, 우리민족에게는 원수인 나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로인해 벌어지고있는 우리의 민족적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아직도 미몽에 빠져 미국을 ‘은인의 나라’라며 떠받들고 숭상하는 인간머저리의 무리들이 남녘땅에서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대체 언제가면 이 땅에서는 숭미라는 이 원시적인 부락신앙이 사라지고 망국적인 식민지 노예의식과 사대주의라는 샤머니즘이 종말을 고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오늘날 민족문제의 향배를 좌우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일제치하에서 국권을 잃고 온갖 민족적 멸시와 핍박을 받아오면서도 조국광복의 꿈을 접지않았고 기어코 투쟁을 통해 일제를 타승했다. 그리하여 당당히 자주권이 살아있는 나라를 이 땅 한켠에서 세울수 있었다. 일제의 패망은 그 누가 그저 가져다준 선물이 아니라 우리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싸워 쟁취한 고귀한 민족유산인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남녘땅에 기어들어온 이래로 이 땅을 점령지로 삼고 온갖 횡포와 학정을 가하면서 이에 항거한 대구 제주 여순 광주 등지에서 자신들의 앞잡이들을 내세워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등 민족을 대상으로 용서할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왔다. 미국은 남녘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에게 행한것과 같은 피의 인종청소를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가짜 민족자치정부를 만들어놓고 민족성을 완전히 거세하려고 발악적으로 몰아쳤다. 그 결과  오늘날 남쪽땅은 온갖 사대주의와 식민사상 미국숭배라는 미신에 물들여진 채 일찌기 이 민족역사상 본적이 없는 극단적인 타락사회가 되고 말았다. 
 
작금의 대한민국사회는 각종 사회적 불행과 빈부격차, 비리와 범죄, 인간증오사상과 공동체 파괴 등으로인해 하루에만도 40~50명이나 자살해야하는 등 만성적인 부작용이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본질적인 무정부 상태가 되고 있다. 이로인한 민중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미국이 이 나라에다 선사한 치명적인 민족분리 바이러스에서부터 기인한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교활한 식민지 지배전략으로 인해 남녘땅에서는 마치 미국이 그 무슨 호의나 베푸는 것처럼 ‘은인의 나라’로 착각하도록 하는 현상이 나라전역에 팽배해 왔었다. 그것은 일제의 '황국신민'화를 추월하는 완전한 세뇌화와 우민화의 완결이었다. 
 
이땅에서는 일제에 복무하던 친일 앞잡이들을 기용한 미제의 간계와 끝없는 우민화 세뇌화 작업으로 말미암아 정작 점령국인 미국은 우방으로 둔갑하고 멀쩡한 북의 동족이 만든 나라가 적국으로 뒤바뀐 것이다. 그동안 일제36년 미제74년을 합해 도합 110년이라는 장장 한세기가 넘게 지속된 식민지 예속체제는 철저하게 민족혼을 유린하고 이 땅에 새로운 내선일체사상인 종미숭미 사대주의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려 놓고야 말았다. 
 
이런 가운데 남녘사회의 대중의식은 심각할 정도로 변질되었고 민족의식과 민족문화의 파탄정도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것은 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친일파로 조작된 ‘정부’와 우민화를 통해 식민지지배를 지속하고자 획책한 미제의 교감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까지 남녘땅에 만연된 미국의 지배에 대한 대중적 무감각, 각종 우민화 정책으로 일상화된 마취적인 안락감은 실로 심각한 지경임을 우리는 목도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잠자는 남녘땅의 동포들이 언제가서야 민족정의의 큰 길로 합류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이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품게된다. 남쪽의 동포대중들은 과연 언제쯤이면 그 지독한 식민사관의 늪에서 깨어날 수가 있을까. 이 사회는 언제가면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관, 옹졸하기 짝이없는 자기합리화적 역사관에서 깨어나 올바른 길로 나아갈수가 있을까하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그 지독한 식민사관에서 깨어나 미제의 지배와 간섭에서 탈피하는 세상을 스스로 일으켜 세울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반드시 그렇다’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객관적인 관련지표들을 놓고 보아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남녘땅의 대중의식 수준과 민심의 향배를 알수있다. 지난 세월동안 금성철벽일것 같았던 미국과 북에 대한 완고한 미신적 의식은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 예전과같이 미국을 자신들의 구세주처럼 여기는 인간들이란 어리석은 자한당 태극기 무리들같은 보수 늙다리층을 제외하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한 북을 맞서 싸워야 할 원수로 여기는 어리석은 인간군들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언론같은데서는 공작활동의 영향으로 가짜뉴스와 가짜댓글이 널리 유포되어 있지만 이는 실제 일반민심의 향배와는 큰 차이가 나고있다.
 
조선일보와 국정원 자한당류의 사대주의 친미앞잡이들이 그같은 대세를 막기위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안간힘을 다해 돌이켜 보려고 시도하지만 진리에 다가가려는 민심의 지향과 역사의 대세는 이제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쯤이면 남녘땅의 민중들은 자기의 힘으로 진정한 자주적인 세상의 기틀을 마련할 수가 있을 것인가. 남녘 민중들은 지나온 세월에 비해 앞으로 머지않아 자기자체의 힘으로 미국이 구세주라는 자기들의 미신에서 완전히 탈피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를 통해 당당하게 북과 자주적인 통일을 이룰 확고한 자기기초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사회는 느린것같지만 꾸준히 전진해온 사회라는 사실을 돌이켜 본다면 이같은 예상은 결코 무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남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가장 최근에 벌어진 촛불항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씩 차례로 딛고 일어서면서 역사의 발전과 그 전진의 궤를 함께해온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시절 감히 입에도 담지 못했던 반미가 이제는 하나의 당연한 주장이 되고 있고 ‘더 이상 미국에 끌려가서는 안된다’ ‘미국은 더 이상 우리의 우방이 아니다’라는 대중적인 자각과 공감대가 사회적으로도 빠른 확산일로에 있다. 미국과 한통속이 된 사대주의 친미앞잡이들은 이같은 상황변화에 질겁한 나머지 어떻게 해서든지 이같은 민심의 흐름을 되돌리기위해 온갖 방법을 다 강구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오늘은 비록 미제에 복무하는 대리정권들이 민중들의 여망에 걸맞는 확고한 민족주체적인 정치적 결사체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그것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반드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민중들의 힘의 계선이 언젠가는 폭발할 그날이 올 것을 예견하며 한층 더 가열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박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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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포·박격포 처형설의 허구를 파헤치다

<연재> 출처와 근거가 없는 처형설을 조작하는 극우언론들의 허구를 파헤치다 (1)
최재영  |  9191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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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9  22: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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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최근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극우언론들의 북한 왜곡기사들이 도를 넘고 있다. 이미 몇 년 전 현송월과 모란봉악단 처형기사가 국내외에서 가짜뉴스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과·정정보도는커녕 2019년 월간조선 4월호(최우석 기자)는 현송월을 제외한 은하수관현악단 12명을 고사포로 처형한 후 시신을 탱크로 뭉개버렸다는 가짜뉴스를 또 다시 대서특필했다. 연이어 5월 31일자 조선일보(김명성 기자)는 하노이회담의 실무주역들에 대한 처형설들을 거짓으로 퍼트려 신뢰도가 추락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아울러 이보다 하루 앞선 30일자 동아일보(주성하 기자)는 한 술 더 떠 김성혜가 억류조치 후 정치범수용소에 유배되었고 박철은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추방되었으며 리선권·김혁철은 취조를 받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허위예측 기사들을 남발했다. 

이에 필자는 3회에 걸쳐 이들의 허위 예측보도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자 한다. 오늘은 현영철·은하수관현악단 등을 비롯해 지금까지 70명 이상의 고위관료들과 장성들, 예술인들을 고사총으로 끔찍하게 처형했다는 조선·동아일보의 주장에 대한 허구를 파헤쳐 볼 것이다. / 필자 주


고사포 처형장소로 유명한 강건종합군관학교는 평양순안공항 앞에 있다

필자는 고사포·박격포 처형설의 허구를 파헤치기 위해 유료결재 구글 인공위성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위치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평양순안공항과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 그리고 순안공항과 강건종합군관학교(이하, 강건학교) 사격훈련장과의 거리 비교 측정과 주변 지형에 대한 확인에 들어갔다. 아울러 강건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탈북자 홍강철 씨를 통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진술을 통해 사실 확인 작업을 병행했다. 또한 미국의 반북 단체들이 공개한 강건학교 사격장 처형 장면 위성사진을 판독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도 받았다. 그러나 필자는 강건학교가 위치한 장소 확인만으로도 지금까지 70명 이상을 고사총으로 끔찍하게 처형했다는 극우언론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조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인공위성 지도로 강건학교 운동장과 사격장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두 곳 모두 평양 순안공항 코앞에 위치해 있었다. 순안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여객기들이 평소 이착륙 과정에서 강건학교 운동장과 사격장 상공 위를 한 두 바퀴 순회하는 영역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동안 평양순안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공항 주변 상공을 맴도는 여객기 안에서 무심코 창밖으로 내려다보던 바로 그 장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안공항을 이착륙하는 외국인과 해외동포 승객들의 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건학교 운동장에서 벌건 대낮 2시에 수천 명의 학생들과 군중을 모아놓고 고사총으로 총살한 후 시신을 탱크로 짓이겨 버리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허위기사를 작성해도 발품을 팔아가며 이것저것 자세히 알아 본 후에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어떤 극우 매체는 강건학교 ‘운동장’에서 처형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극우 매체는 강건학교 ‘사격장’에서 처형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난 월간조선 4월호에서는 운동장과 사격장 위치 확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결과 ‘두 곳을 동일한 장소’로 착각해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허구를 쓰다 보니 이런 오류들이 발생한 것이다. 

강건학교 운동장과 사격훈련장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7킬로 정도 떨어져 있고 꼬불꼬불한 비포장도와 산길로 거리를 측정하면 그 길이는 실제로 더 멀다. 아무튼 필자가 그동안 여러 극우 매체들의 고사포·박격포 처형 기사들을 수집해 일일이 분석해보니 내용들이 전혀 일관성이 없고 뒤죽박죽이라 일일이 분석할 가치조차 느낄 수 없었다.

공항 청사를 출입하는 길목에 있는 강건학교 운동장에서 수천 명의 구경꾼들을 집결시켜 고사총으로 요란하게 처형한다면 이착륙하는 여객기 안에서 망원경 없이 육안으로도 훤히 보인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잔혹한 처형 장면들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곳에서 집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 ①평양순안공항’과 ‘②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은 차량으로 2분 거리에 불과하다. 순안공항에 이착륙하는 여객기 안의 외국인 승객들은 강건학교 운동장을 손금 보듯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고사포와 탱크로 처형한다는 주장은 날조된 허구에 불과하다. (사진출처: 최재영 목사)
   
▲ 평양 순안역 전경. 순안역 바로 앞 2백 미터에 강건종합군관학교 캠퍼스 출입문(서문)이 있다. 순안역은 때로는 북경역을 출발한 기차가 외국관광객들을 잔뜩 실고 이 역을 경유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고사포로 처형한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 (사진출처: 최재영 목사)
   
▲ 평양 순안역 정면 일부 모습. (사진제공: 신은미)
   
▲ 위성사진으로 본 ‘①순안공항-②순안역-③강건종합군관학교 캠퍼스’ 위치. 공항을 이착륙하는 상공에서 모두 육안으로 자세히 보이는 거리이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 처형설의 허구

강건학교 캠퍼스의 도로상 위치는 평양순안공항 입구에 있는 순안역 바로 앞에 있다. 순안역은 때론 북경을 출발한 기차가 외국인 관광객을 잔뜩 싣고 경유하는 기차역이다. 그런데 역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강건학교 운동장에서 고사포와 박격포로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순안공항 상공에서도 강건학교 운동장이 사람을 구분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인다. 순안역 앞에는 강건학교 캠퍼스 출입문(서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운동장을 중심으로 많은 교사동과 부속건물들, 사적관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위성사진에서 보듯 학교 담벼락 너머에는 수많은 민가 주택들이 캠퍼스를 포위하듯 부채꼴로  빽빽하게 둘러쳐있다. 이런 주택가 인근에서는 결코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강건학교를 졸업 후 보위부에서 근무했던 탈북자 홍씨는 “무엇보다 이런 운동장 구조에서는 물리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도저히 고사포 사격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또한 “고사포·고사기관총 등 반항공무기를 실제로 가르치는 군관학교는 평안북도 정주시에 따로 있다. 물론 이곳 평양 강건학교 캠퍼스에도 반항공무기에 대해 가르치기는 하나 실탄을 지급해서 사격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주로 엘리트 장교들을 배출하는 학구적인 사관학교인 셈이다. 홍 씨의 증언에 의하면 “운동장 부근에는 본 청사(기본청사)에 강건 동상이 세워져 있고 이어서 ‘강의실’, ‘김일성동지혁명사적관’, ‘제1 군사연구실’, 제2 군사연구실’, ‘침실(내무반)’, ‘의무실’ 등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증언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다녀가거나 숙박한 ‘사적건물’과 김 주석이 이 학교 1대대 1중대를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생활하던 ‘110조 사적지’도 있다”고 강조하며 “이런 최고지도자를 기념하는 사적지 바로 앞에서 죄수들을 사형시킨다는 것은 북측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2012년 여름날 오후 2시쯤 이 운동장에서 고사포를 동원해 은하수관현악단 12명을 처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조선일보 기사는 미국 내 반북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 ‘올소스 아날리시스(Allsource Analysis, Inc.)’가 제공한 사격장 위성사진(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됐음을 필자는 곧 바로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저 단체들은 고사포의 제원이 적의 항공기나 헬기 등을 격추하는 대공 무기인 ‘소련제 ZPU-4’ 모델이라고 밝혔다. 이 모델은 4신 고사총(1대당 총열이 4개 달린 포)으로 총탄 구경은 무려 14.5 밀리미터이며 사거리가 4킬로미터나 된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고사총을 트럭에 실고 와서 운동장에 설치한 후 12명의 죄수들을 말뚝에 묶어세운 후 인민재판을 시작했고 곧이어 사형대 40m 앞에서 4신 고사총으로 한명씩 돌아가며 총살했고 마지막에는 탱크를 동원해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들 짓밟으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뭉개버렸다”고 기사를 썼다.

최대 사거리 4km인 이런 기관포로 사형수에게 총격을 가한다는 것은 엄청난 후폭풍 등으로 인해 운동장 주변과 건물들이 쑥대밭이 될 정도로 파괴된다는 사실을 조선일보는 알지 못한 듯 했다.

허구라는 증거는 또 있다. 홍 씨의 증언에 의하면 평양강건학교에서는 가끔 ‘상학준비검열’을 실시하는데 이때 전교생 2,500명을 모두 소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때 “전교생이 모두 다 집결할 경우 운동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 찼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간조선 기사에는 “처형하는 날 김일성종합대학 3학년생들과 장철구평양상업대학 3학년생을 비롯해 평양시내 대학교 3학년 학생들이 모두 집결했다”라고 썼다. 그러나 홍 씨는 “평양시내 대학교 3학년생들만 모두 모여도 2만 명 이상이 넘는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모란봉악단 현송월이 분명히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나 사과는커녕 여전히 은하수관현악단 12명 처형설을 집요하게 재반복하며 북한 실상을 날조하고 있고 더불어 동아일보는 여기에 편승해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퍼나르거나 덧입혀 왜곡하고 있다.

   
▲ 위성사진으로 본 ‘①순안공항-②순안역-③강건학교운동장-④강건학교사격장’ 위치. 모두 여객기 안에서 육안으로 자세히 보이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 위성사진으로 본 ‘①순안공항’과 ‘②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의 거리는 7-8Km가 넘는다. 순안공항을 이착륙하는 상공의 여객기 안에서 육안으로 자세히 보이는 거리에 있다. (사진출처: 최재영 목사)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 처형설의 허구

위에서 밝혔듯이 원래 강건학교 고사포 총살설은 미국내 반북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올소스 아날리시스(Allsource Analysis, Inc.)’가 제공한 사격장 위성 촬영 사진과 보고서 때문에 최초로 제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UN COI)’와 남한의 ‘북한전략센터’가 조선일보를 동원해 그 내용을 소설처럼 매우 사실감 있게 덧입혀 날조한 것이다. 이 단체들과 조선일보는 강건학교 소화기 사격훈련장에서 현영철 등이 박격포와 고사포 등의 대공화기로 공개 처형됐으며 총살 후에는 그 시신을 화염방사기로 태워버렸다는 끔찍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더욱 한심한 사실은 이 같은 가짜 기사들을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의 국정원에서 앞장서서 동조하고 확인해줬다는데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 반북단체들은 2014년 10월 7일 촬영된 사격장 일대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북한의 참혹한 처형 장면”이라며 국제사회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저들이 공개한 위성사진을 자세히 판독해보면 사격수들이 서야 할 위치에 대공포 6대 정도(그중 1대는 나무에 가려져 있어 사진 상에는 5대만 보인다)가 나란히 배치돼 있고 대공포에서 30-4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형대 같은 모양의 기둥들이 6-7개정도 세워져 있었다. 사형수를 세워놓고 대공 고사포로 처형했다는 증거로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사격장 주변 도로에는 대형 트레일러와 버스 트럭 등이 몇 대 정도 주차되어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단체들은 형체도 알기 힘든 6대의 대공포 제원이 바로 ‘소련제 ZPU-4’ 모델의 고사총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필자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과 모여 사진을 판독해본 결과 이미 최대치로 확대되어 찍힌 저 위성사진을 또 다시 우리가 확대해 살펴봐도 대공포라고 주장하는 물체가 정확히 ZPU-4 고사포라고 단언할 만한 그 어떤 증거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위성사진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태양이 비추는 방향과 그림자 방향 등이 부자연스럽거나 일치하지 않았으며 사형대라고 주장하는 물체와 고사포라고 주장하는 물체가 조작되었다는 가능성을 참석자 모두가 제기하였다. 

그뿐 아니라 또 탈북자 홍 씨를 비롯해 또 다른 전문가는 “이 사격장은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에서 거리가 20리(7-8킬로)정도 떨어져 있으며 강건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평양방위사령부 소속부대 군인들을 비롯해 다른 군부대의 사격훈련장으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이 사격장에는 다양한 화기들이 동원되어 군인들의 사격 이론연습과 훈련 등을 실시하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이 위성사진이 조작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이 위성사진 장면은 군인들의 통상적인 사격훈련 장면이 포착된 것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저 단체들은 죄수들을 처형한 후에 화염방사기를 동원해 시신의 흔적조차 없애 버렸다고 주장했으나 위성사진 그 어디에도 화염방사기는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앞서 밝혔듯 이 사격장은 바로 세계화의 관문이라고 하는 평양국제순안공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이착륙을 위해 공항 주변을 한 두 바퀴 정도 순회하는 여객기  안에서는 창밖으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넓은 평지 장소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의 반북단체들의 주장과 한국의 극우 언론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조작설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5월 31일 대형 가짜뉴스 사고를 친 조선일보는 하노이회담의 실무자인 김혁철의 처형장소로 평양미림비행장을 지목했다. 그러나 필자가 실제 방문했던 평양미림승마장 바로 앞에는 미림비행장이 있고, 그 부근에는 국제스카이다이빙 클럽 등이 있어서 이 지역은 그야말로 외국 관광객들과 해외동포들로 넘치는 유명 관광지다. 특히 창공에서 행글라이더나 경비행기 등을 타거나 승마를 즐기려는 외국인들과 해외동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런 곳에서 총살하는 장면을 세계만방에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끝으로, 지금부터 5년 전(2013.10.11.)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쓴 칼럼 기사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중략) 최고 존엄을 근거 없이 비방 중상했던 언론이나 정보기관은 패가망신합니다. 북에서 한국 언론에 배상금 청구는 못하겠지만, 대신 남쪽에선 언론이나 정보기관이 신뢰도에 목을 매기 때문에 거짓을 거짓이라 밝혀주는 것이 최대의 보복이 될 겁니다”라며 자기 스스로 가짜뉴스에 대한 후폭풍과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는 조선일보 가짜뉴스에 편승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조선일보보다 더 교활한 방식으로 동아일보 칼럼과 자신의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북을 날조하고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음 회는 이번 하노이회담 실무자들의 숙청설을 가장 먼저 최초 보도한 동아일보의 허위 예측기사를 반박하고자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도 사대주의 매국노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공안기관들이 노리는 것은 북을 악마화하고 최고지도부의 잔학성을 조작해 내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치부를 가리는 것이다. 반북 반통일적 가짜뉴스로 전 국민들을 기만하는 조·중·동의 사기행각은 조만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

   
▲ 진위 여부가 불확실한 평양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 위성사진 모습. 강건학교 고사포 총살설을 최초로 제기한 장본인들은 미국 내 반북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올소스 아날리시스(Allsource Analysis, Inc.)’들이다. 이들이 제공한 사격장 위성사진과 보고서 때문에 고사포 총살설이 촉발되었다.
   
▲ 필자가 직접 확인한 평양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의 구글 위성사진.
   
▲ 5월 31일자 조선일보는 하노이회담의 실무자인 김혁철의 처형장소로 평양미림비행장을 지목했다. 그러나 미림비행장 앞에는 미림승마장이 있고 그 옆에는 국제 스카이다이빙 클럽 등이 있어서 외국관광객들이 창공에서 행글라이더, 경비행기 등을 타거나 승마를 즐기는 곳이다. 여기서  총살하는 장면을 세계만방에 보여준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 (사진출처: 최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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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대회 종합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풍부히 알 수 있는 계기”

발표대회 종합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풍부히 알 수 있는 계기”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6/08 [14: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의 한 주제. 이번 대회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높이기 위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 자주시보

  

▲ 8일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 학생들이 연구한 주제들이 벽면에 부착되어 있다. 아래는 남북정상회담 등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 자주시보

 

▲ 6월 8일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가 끝난 후 모든 참가자들의 단체 사진     © 자주시보

 

6월 8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이하 발표대회)”를 열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일이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이 축사에서 밝혔듯이 한국 사회에서 최초이지만 통일의 시대에 늦은 감이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연구들이 많이 벌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4개월여 걸쳐 연구한 결과를 후대사랑 헌신성 민족애 음악 정치 대담함 세심함 겸손함으로 발표했다.

 

학생들은 연구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자료를 접하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그러나 이 대회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시대의 부응하는 행사이기에 각종 자료를 취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영상으로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내용에 맞는 사진과 그림 등을 만들고 내용도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며칠 간 밤을 새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발표대회에 선보인 영상 모두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었다.

 

심사위원들도 한결같이 대학생들의 노력과 완성도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다.

 

윤한탁 심사위원장은 이 시대에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주체는 청년들뿐이다시대의 올바른 요구를 담고 있다작품이 하나하나 내용이 감동적이었다어느 하나를 못 했다고 지적할 수가 없었다김정은 위원장의 풍모에 대해 잘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장경욱 심사위원은 오히려 내가 배우는 자리였다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 더 알아나가도록 하겠다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이런 소중한 성과를 일반 국민들에게 알려주었으면 한다판문점선언 시대, 9월평양공동선언 시대에 부합하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문경환 심사위원은 “10년 전에 대학생 논문대회가 있었다당시에 논문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이번에 영상을 보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작품 하나하나가 뿌듯하고 대단한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발표대회에서 우수상최우수상대상의 시상이 있었다.

 

우수상은 발로 뛰는 심부름꾼을 발표한 서울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이었다.

 

최우수상은 변화의 시작-겸손성을 발표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 대상은 음악정치로 꽃피우다를 발표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최초로 열린 이번 발표대회가 북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국민들이 더 많이 알아나가통일을 준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 8일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 대상. 김정은 위원장의 음악정치를 연구한 학생들이 대상을 받았다.     © 자주시보

 

▲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 최우수상. 김정은 위원장의 겸손성을 연구한 학생들이 수상했다.     © 자주시보

  

▲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 발표대회 우수상. 김정은 위원장의 헌신성을 주제로 연구한 학생들이 수상했다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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