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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이 만들었다

조홍섭 2019. 05. 29
조회수 235 추천수 1
 
큰뿔사슴 등이 통째로 삼켜 씨앗 퍼뜨리도록 수백만년 전 진화
 
ap1.jpg» 사과의 작물화 과정. 왼쪽은 오늘날 모든 사과의 기초가 된 4종의 야생사과이다. 이 야생사과를 낳은 것은 거대 초식동물이었다. 오른쪽은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한 사과를 나타낸다. 슈펭글러 (2019) ‘식물학 최전선’ 제공.
 
사과나무는 왜 ‘쓸데없이’ 그토록 크고 달콤한 열매를 매달까.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기울인 육종 노력의 결과라는 게 통설이었다. 사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형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증거를 토대로 파격적인 주장이 나온다. 사과나무는 사람의 육종에 앞서, 수백만년 전 지금은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이 열매를 삼켜 씨앗을 퍼뜨리도록 크고 맛좋은 열매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로버트 슈펭글러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 역사학 연구소 박사는 28일 과학저널 ‘식물학 최전선’에 실린 리뷰논문에서 사과의 기원에 관한 최근 이론의 흐름을 짚으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장미과 식물은 버찌와 산딸기 등에서 보듯이 작은 열매를 맺지만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은 열매가 매우 크다”며 “작은 열매는 새가, 큰 열매는 대형 초식동물이 삼켜 씨앗을 퍼뜨리기에 좋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그는 “화석과 유전자 증거로 볼 때 이들 대형 과일이 인간이 재배를 시작하기 수백만년 전 이미 진화했다”고 덧붙였다. 논문은 그 시기를 신생대 마이오세 말(약 600만년 전)이라고 밝혔다.
 
ap2.jpg» 마지막 빙하기 때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던 큰뿔사슴. 큰 열매의 야생사과를 퍼뜨렸을 것이다. 파벨 리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큰 열매가 달린 야생사과를 먹던 거대동물의 예로 그는 마지막 빙하기 말까지 산 큰뿔사슴과 야생말을 들었다. 역대 최대 사슴이었던 큰뿔사슴은 키가 2.1m인데 뿔은 폭 3.6m에 무게 40㎏에 이르렀으며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다.
 
그러나 거대 초식동물은 지난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부분 멸종했다. 씨앗을 퍼뜨릴 동물이 사라지면서 지난 1만년 동안 큰 열매가 달리는 야생사과의 분포지는 위축됐다. “빙하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피난처에서 근근이 살아남았고 멀리 확산하지 못한 것은 그 증거”라고 그는 밝혔다.
 
ap3.jpg» 우즈베키스탄 수도 부하라의 노점에서 전통 품종인 작고 달콤한 노란 사과를 팔고 있다. 로버트 슈펭글러 제공.
 
사과를 되살린 것은 사람이었다. 슈펭글러 박사는 “열매 크기에 견줘 씨앗이 작은 사과는 작은 사슴, 곰 등 잡식동물을 통해 확산이 가능했다”면서 “그러나 거대동물을 이어받아 사과를 고대 교역로인 실크로드 전역에 퍼뜨린 주체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사과는 2000년도 더 전에 남부 유럽에서 재배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 남아 있다. 또 고고학 유적은 1만년 이상 전에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야생사과를 채집했음을 보여준다.
 
또 유전자 연구를 보면, 현대 사과는 적어도 4종의 야생사과가 교잡된 결과인데 그 장소는 실크로드였다. 고대 교역로 곳곳에서 보관된 사과 씨앗과 묘목이 나오고, 그 요충인 카자흐스탄 톈산 산맥은 사과 유전 물질이 기원한 곳이기도 하다.
 
ap4.jpg» 톈산 산맥의 야생사과. 다 익어도 떨어지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거대 초식동물을 위한 형질이다. 마틴 스티치 박사 제공.
 
사람들은 1000가지가 넘는 사과 품종을 만들어냈고 오늘날 경제적·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일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사과는 벼나 밀이 작물화한 것과 같은 경로를 거친 것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과는 기본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과가 달리는 나무의 씨앗을 오랜 기간 선발과 증식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잡종화와 접붙이기를 통해 단기간에 또 우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사과라는 것이다.
 
그는 “사과와 같은 과수의 작물화는 곡물이나 콩의 작물화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과의 한 세대는 20년이어서 인류가 수천 년을 재배했다 하더라도 곡물처럼 2000∼3000세대에 이르지 않는다. 고고학 증거는 사과가 작물화한 지 100세대 미만임을 가리킨다. 인간의 재배로 진화를 이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슈펭글러 박사는 “작물화 과정은 모든 식물에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세대가 긴 나무의 작물화 과정을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ap5.jpg» 톈산 산맥의 야생사과 낙과를 먹는 말. 과거에는 야생말이 야생사과를 먹고 씨앗을 퍼뜨렸을 것이다. 아르투르 스트로셔러 제공.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pengler RN (2019) Origins of the Apple: The Role of Megafaunal Mutualism in the Domestication of Malus and Rosaceous Trees. 
Front. Plant Sci. 10:617. doi: 10.3389/fpls.2019.006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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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안 한 문재인 정부

끝내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안 한 문재인 정부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5/30 [09: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전교조가 법외노조 취소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새로운 투쟁에 돌입했다. (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서른 번째 생일을 결국 법외노조 상태로 맞았다전교조는 창립 30주년이 되는 5월 28일까지 정부에게 법외노조 취소 결정을 요구했지만 끝내 문재인 정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창립기념일 다음 날인 29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외침에 귀를 막고 침묵으로 답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전교조는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는 적폐인가 아닌가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로 희생된 해고자들을 방치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계승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청와대는 촛불의 명령을 외면한 채 정치 논리의 허상에 빠져 사법부와 입법부 뒤로 숨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정부가 ILO핵심협약 비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이려면 이에 따른 가시적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며 그것은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92항의 폐기라고 강조했다.

 

▲ 청와대 앞에서 농성에 돌입한 전교조 조합원들. (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전교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9일 동안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진행하던 전교조 지도부·해고자’ 천막농성을 청와대 앞으로 옮겼다.

 

전교조는 이날부터 6월 11일까지 전교조 학교단위 조직인 분회 비상 총회를 열어 현 상황을 공유하고 연가투쟁을 결의할 계획이다. 6월 1일에는 노동법 개악 없는 ILO핵심협약 즉각 비준 등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집중 참여한다나아가 6월 12일 '법외노조 취소 거부하는 문재인 정부 규탄 전국 교사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6월 17일에는 결사의 자유 쟁취를 위한 10,000미터 대행진과 법외노조 취소 촉구 촛불집회에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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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전교조 법외노조촛불 시대의 적폐로 남길 것인가

촛불 정부라면 적폐 청산으로 답하라

 

역사적인 전교조 서른번 째 생일을 결국 법외노조 상태로 맞게 되었다우리의 간절하고도 정당한 외침을 문재인 정부는 끝내 외면하였다청와대는 그동안 법외노조 취소 기회를 번번이 스스로 걷어 차버렸다오늘 우리는 다시 청와대 앞에 서서 법외노조 취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

 

박근혜 정권이 해고자를 이유로 전교조 탄압 시나리오를 시작했을 때전교조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9명의 해고자와 함께 하기로 힘있게 결정했다이는 교육민주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동료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고이에 대해 전교조 조합원들은 부당한 국가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지켜내겠다고 답했다그 대가로 전교조는 7년에 가까운 세월을 법내노조와 법외노조를 오가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전교조는 법외노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작년에는 위원장의 한 달 가까운 단식농성을 비롯하여 올해는 72,535부의 법외노조 취소 민원서를 제출하고, 326명의 사회원로와 1,610개 시민단체시도교육감협의회학부모단체퇴직 선생님 기자회견 등 각계 각층에서 법외노조 취소의 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촛불의 외침에 귀를 막고 침묵으로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를 촛불 정부라 말한다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을 말하였다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는다.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는 적폐인가 아닌가?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로 희생된 해고자들을 방치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계승할 것인가?

 

청와대는 촛불의 명령을 외면한 채 정치 논리의 허상에 빠져 사법부와 입법부 뒤로 숨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전교조는 촛불의 이름으로 이를 엄중히 규탄한다.

 

얼마전 정부는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발표했다정부가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이려면 이에 따른 가시적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그것은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 9조 2항의 폐기이다이는 청와대가 결단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행정조치로써정부가 사법부와 입법부에 법외노조 해결의 책임을 미루며 정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행정조치조차 하지 않는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전교조는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청와대 앞에서 법외노조 취소를 위한 천막농성을 시작한다모든 책임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에게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를 박근혜 정부의 적폐로 남길 것인가문재인 정부의 적폐로 남길 것인가촛불 정부라면 적폐 청산으로 답해야 한다전교조 법외노조 취소가 그 답이다.

 

<우리의 요구>

○ 전교조 법외노조즉각 취소하라!

○ 해고자를 전원 원직 복직시켜라!

○ 촛불이 명한 적폐 청산당장 이행하라!

 

2019년 5월 29

전국교직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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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한국인 7명 사망 19명 실종

단체관광객 탑승한 유람선, 크루즈선과 충돌
2019.05.30 08:36:13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국민 33명 등이 탑승한 유람선이 침몰해 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실종됐다. 

외교부는 지난 29일 오후 9시(현지 시각)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부다 지구에서 한국 단체 여행객 33명과 헝가리 승무원 2명이 탑승한 유람선이 크루즈선과 충돌,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여행객 33명 중 현재까지 7명이 구조됐으며 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실종자 19명에 대한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재외국민보호 대책본부로 격상하고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소방청 등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의 조속한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신속대응팀은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을 팀장으로 외교부 6명, 소방청 12명(구조대 포함) 등 총 18명 규모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29일(현지 시각)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관광객이 탑승한 유람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 헝가리 당국이 실종자 탐색 및 수습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외교부는 "주 헝가리 한국 대사관은 사고 인지 즉시 현장대책반을 구성, 영사를 현장에 급파해 헝가리 관계 당국과 협조하여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병원에 후송된 구조자에 대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여행사 측과 향후 대책을 협의하는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지속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도시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주요 관광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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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복 “열쇠는 남북합의, 대중적 평화운동 펼칠 것”

6.15남측위, 후원의밤 개최...'광화문 6.15민족자주대회' 추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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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0  08: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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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2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후원의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원회는 그 본연의 위상과 목적에 맞게, 남과 북이 맺은 공동선언들에 동의하는 각계각층과 더 크게 연대하기 위한 보다 큰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29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후원의밤 행사에서 “6.15남측위는 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대중적인 평화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창복 의장은 “지난 5월 23일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중국 심양에서 실무협의를 가졌다”며 “남북관계의 현 교착국면을 풀 열쇠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숙의했다”고 전하고 “그 열쇠는 바로 남북합의”라고 밝혔다.

“남북이 맺은 약속,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충실한 이행이야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는 것.

   
▲ 참석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호응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의장은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남과 북의 다양한 만남과 교류도 끊임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오는 6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6.15공동선언 19주년 민족자주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건의드린다”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구호인 ‘겨레를 잇는 평화와 통일의 오작교’를 언급하고 “우리가 오작교가 되어 우리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최은아 6.15남측위원회 사무처장은 올해 2월 금강산 새해맞이 연대모임부터 4.27 인간띠잇기, 지난 23일 심양 정책협의까지의 경과를 요약 설명하고, “판문점 선언 1조 1항에 담겨 있는 정신,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다'는 정신이야말로 지금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개척하는 가장 강력한 정신”이라고 말했다.

특히 23일 선양 남북해외 정책협의에서 “남북선언을 충실히 이행하자, 시민들과 함께하는 평화통일운동을 더욱더 활발히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에 남북해외가 뜻을 모았다”고 전하고 “다가오는 6.15 19주년에도 역시 민족공동행사를 성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측이 선양 실무회담을 당일 현지에서 취소를 통보한 기류라든지 촉박한 일정 등을 감안하면 6.15남측위가 제안한 평양 6.15공동행사는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추진’ 의지를 밝힌 것. 6.15남측위 관계자는 “가능성은 남아있고 끝까지 성사를 위해 남북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최 처장은 올해 주력사업으로 ‘코리아 평화선언’을 국내외 각계각층과 함께 조직하고, 지난해에 이어 ‘9월 UN 시민평화대표단 파견’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여름부터 각계각층이 번갈아가면서 금강산을 방문하는 운동을 펼치겠다고도 했다.

   
▲ 6.15남측위원회 후원회장을 맡은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오늘의 시대정신인 통일'을 위해 후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250여 참석자들 앞에서 함세웅 신부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삼열 6.15남측위 후원회장은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독립운동을 했다. 그때는 나라를 되찾는 운동, 독립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때 시대정신이었다”며 “오늘의 시대정신은 통일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좀더 우리가 마음을 합쳐서 통일운동에 매진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6.15남측위원회는 단군 이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평화와 통일, 우리 민족의 숙명적 과제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며 6.15남측위원회에 후원을 호소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축사에 나서 “역사적 선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길은 답답하고 우리의 가슴은 답답하다”며 “6.15선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오작교를 반드시 놓겠다는 이런 마음으로, 오늘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저도 이 자리에 함께한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초심을 갖고 이제 후배들이, 후학들이 우리 자녀세대들이 우리와 같은 뜻으로 민족일치와 화해를 위해서 앞장서 나갔으면 참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며 “6.15공동선언의 뜻이 민족의 일치와 화해, 공존의 지름길,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민의 참여를 좀더 활성화시키고 6.15정신을 다시 또 살린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우리의 결의의 표현이고 남북관계 해결을 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또 더 나아가서 동북아평화를 위한 결정적인 과제”라며 6.15남측위의 활동에 기대감를 표했다.

   
▲ 행사장 입구에서 재일 조선학교 학생 문집『꽃송이』인증사진 남기기 이벤트도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성악가 김윤태 교수의 축가 무대도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안지중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후원의밤 행사에서는 성악가 김윤태 상명대 연기뮤지컬 교수가 축가를 불렀고, 250여명의 참석자들은 만찬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황인성 민주평통 사무처장과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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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2년, 전교조가 아직 법외노조인 이유

문재인 정부2년, 전교조가 아직 법외노조인 이유

“전교조가 아직도 법외노조라고요? 설마…, 문재인 정부가 그럴 리가…”

박근혜-양승태의 사법농단으로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은 전교조가 6년째 법외노조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접하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반응을 보인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25일 열린 전교조 결성 30주년 전국교사대회에서 법외노조 취소, 해고자 원직 복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30년전 오늘 ‘참교육 함성으로’ 창립한 전교조는 그 때도 법외노조였다. 어쩌면 노태우 군부독재 하에서 전교조가 법외노조인게 더 자연스럽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합법을 쟁취한 전교조는 우리사회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했다. 그러나 독재 회귀를 노린 박근혜가 2013년 전교조를 법외로 밀어냈고, 양승태와 재판거래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해가 안되는 쪽은 문재인 정부다. 박근혜는 독재를 위해 불법부당한 줄 알면서도 전교조를 법외노조통보라는 행정처분을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 행정처분을 왜 ‘직권취소’하지 않는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역사교과서 국정화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세월호 순직 기간제교사의 산재불인정결정은 직권취소했다. 그러나 법외노조통보만은 줄곧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사안이 복잡한 것도 아니다. 6만 조합원 중 9인의 해직교사가 포함돼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것도 법원 판결도 아닌 노동부 과장 전결처분으로, 6만 교사조합원들의 단결권을 한순간에 박탈한 행위는 민주법치국가가 수용할 수 없다. 이것만 분명하면 된다.

물론 김명수 대법원이 전교조법외노조 통보처분을 부당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렇게 되면 논란 없이 해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촛불정부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비겁하게 대법원 뒤로 숨는단 말인가. 논란이 두려워 원칙을 포기한 것이 정녕 원칙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란 말인가.

도대체 왜 엉뚱하게 ILO조약 국회비준 타령을 하며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노조법시행령 개폐 작업은 안 하는가. 왜 노동부에 헌재가 제시한 적법성 기준에 따라 직권취소 여부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통보를 직권취소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뭘까? 원칙을 저버리고 ‘대법원 판결’이나 ‘ILO조약 국회비준’ 뒤로 숨은 진짜 이유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설사 법외노조라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겠지만 자유한국당 등 전교조비토세력이 강력하게 반발하면 중도지지층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결과다.

5월28일 오늘은 전교조의 서른번째 생일이다. 법외노조의 굴레를 다시 쓴 전교조는 축제는커녕 축하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생일을 맞은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가 야속하기만 하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전교조법외노조사안 처리방식보다 더 명징하게 드러내는 건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위해 이제라도 적폐세력 눈치 보지 말고 법외노조통보를 직권취소하고 민중진영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적폐의 근본 싹을 잘라낼 수 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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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박새 아시나요

옆구리 ‘김칫국물 자국’, 한국동박새 아시나요

윤순영 2019. 05. 28
조회수 237 추천수 0
 

예민하고 보기 힘든 나그네새

 

크기변환_YSY_5611.jpg» 한국동박새 부부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있다. 동박새와는 옆구리의 붉은 밤색 무늬와 연주황 부리로 구별한다.

 

동박새란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귀여운 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가 많은 남해안과 서해안 도서지방, 해안지대에서 흔히 번식하는 텃새여서 그럴 것이다. 

 

다른 새들처럼 사람을 피하거나 놀라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지내는 온순한 새다. 먹이는 식물성으로 주로 꿀과 열매 그리고 작은 애벌레를 잡아먹기도 한다.

 

동박새는 혀끝에 붓 모양의 돌기가 있어서 꿀을 빨 때 편리하다. 특히 동백꽃의 꿀을 좋아하는데, 벌과 나비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인 이름 봄 동백나무에서 무리 지어 꿀을 빨아 먹으며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동박새와 다른 한국동박새도 있다.

 

크기변환_YSY_4038.jpg» 한국동박새. 옆구리에 난 붉은 밤색 무늬가 특징이다.

 

크기변환_YSY_1600.jpg» 동박새. 옆구리의 검붉은 무늬가 없고 아래 부리도 회색이다.

 

크기변환_YSY_4547.jpg» 한국동박새는 동박새와 다른 색다른 매력이 있는 새다.

 

지난 5월 12일 우리 곁에 흔치 않은 한국동박새를 만났다. 일반적으로 동박새는 알아도 한국동박새란 새가 있는지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3일 동안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나그네새이기 때문에 잠시 머물다 가면 볼 수 없고,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요즘은 오전 6시면 날이 밝는다. 새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국동박새도 예외는 아니다. 

 

봄철 이동 시기에 한국동박새는 10~20마리 정도의 작은 무리를 이루는데 30마리가 넘기도 한다. 무리 지어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몸을 숨기며 오가면서 먹이를 먹는다. 무리를 이루는 것은 안전을 위해 중요한 전략이다.

 

크기변환_YSY_4257.jpg» 한국동박새는 옆구리의 붉은 밤색 깃털 무늬와 함께 멱의 노란색이 가슴과 이루는 경계가 깔끔하고 명확한 특징이 있다.

 

크기변환_YSY_4911.jpg» 텃새인 동박새는 옆구리에 전체적으로 옅은 밤색이 감돌고, 멱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노란 깃털의 경계가 흐릿하다.

 

한국동박새는 오전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오후에는 거의 움직임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아주 짧은 거리도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절대로 혼자 무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위협 요인이 되는 소리가 들리거나 위협을 가할 새가 나타나면 재빨리 나뭇잎 사이로 몸을 숨기거나 피한다. 아예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이 안전한 것이 확인되면 다시 무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치밀함도 보인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한국동박새다. 관찰하는 동안에도 민첩하고 은밀하게 움직여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야에서 바로바로 사라지기 일쑤다. 

 

일상처럼 이런 행동이 반복된다. 한국동박새가 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이 없다. 이런 행동은 천적을 교란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크기변환_YSY_5507.jpg» 은밀하게 상록활엽수의 나뭇잎과 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4189.jpg» 맘에 드는 새순을 고르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3585.jpg» 잎이 크고 무성한 상록활엽수는 한국동박새가 몸을 숨기기에 제격이다.

 

한국동박새를 자세히 관찰하거나 촬영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일반적인 새들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했다. 그러나 조심성은 한국동박새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편이다. 

 

텃새인 동박새의 친숙함과 여유 그리고 호기심 많은 행동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박새들은 좀처럼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새다. 한국동박새도 동박새와 비슷하게 상록수림을 선호하지만, 한국동박새와 동박새는 생활습성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한국동박새는 울음소리가 동박새와 다르고 매우 예민하여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조심성 있게 은밀하게 무리가 움직이는 것이 동박새와 크게 다르다. 한국동박새나 동박새의 애정표현은 유난히 귀엽다. 서로 곁에 앉아 몸을 치장하고 부부의 애정을 확인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깜찍하다.

 

크기변환_YSY_4534.jpg» 나무 수액을 핥아 먹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4438.jpg» 정면에서 바라본 한국동박새. 멱의 노란색과 가슴이 아주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크기변환_YSY_4474.jpg» 분주하게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한국동박새들.

 

한국동박새는 남한을 지나가는 나그네새다. 봄에는 5월 초순과 중순 사이, 가을에는 9월 중순과 10월 중순 사이에 관찰된다. 북한, 우수리, 러시아 동아시아, 중국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중국 서남부와 인도지나 반도의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북서부에서 월동한다. 

 

한국동박새의 몸길이는 11㎝인 동박새보다 다소 작은 10.5㎝다. 옆구리엔 뚜렷한 붉은 밤색 무늬가 아주 선명하다. 잘 익은 김칫국물로 찍어놓은 얼룩 같다. 일부 흐린 개체도 있다.

 

크기변환_YSY_5613.jpg» 한국동박새 부부의 다정한 모습.

 

크기변환_YSY_5597.jpg» 정성껏 깃털을 다듬는 한국동박새 부부.

 

크기변환_YSY_5657.jpg» 상대의 깃털을 다듬어 주는 몸짓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한국동박새.

 

한국동박새는 노란색 멱과 흰색 가슴의 경계가 명확하다. 가슴 옆은 회색이 감돌고 가슴은 회색이 도는 흰색, 부리 기부와 아래 부리는 연한 분홍빛이다. 

 

아래 꼬리덮깃은 노란색이다. 이마에서 등 위 꼬리덮깃까지 윗면은 흐릿한 녹색과 노란색을 혼합한 듯한 색이다. 눈 둘레에는 흰색 고리 모양이 뚜렷하다.

 

흰 고리 선이 끝나 연결되지 않은 눈 앞쪽은 검은색이다. 턱밑과 멱은 노란색, 배는 흰색, 가슴은 회색이 도는 흰색, 가슴 옆은 회색이다. 배는 흰색, 암컷은 온몸의 빛깔이 희미한 편이다.

 

크기변환_YSY_5608.jpg» 깃털을 털고 있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5633_01.jpg» 분주하게 이리저리 다니던 한국동박새 부부가 나뭇가지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동박새의 생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먹이로는 주로 거미류, 애벌레, 진드기류, 딱정벌레, 나비, 매미, 메뚜기, 잠자리 등을 잡아먹으며 작은 꽃과 꽃가루, 꽃꿀 등을 먹는다. 5~6월에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아 11~12일 동안 품는다. 새끼의 성장 기간은 11~13일이다. 다양한 환경의 산림에 서식한다.

 

5월 14일 갑자기 한국동박새 무리가 나뭇잎 사이에서 쏜살같이 뛰쳐나와 멀리 사라진다. 머물고 있던 곳에서 미련 없이 떠나는 느낌을 받았다. 

 

나그네새가 중간 기착지에서 머무는 기간은 종마다 다르다. 길게는 15일, 짧게는 3~4일이다. 지금쯤 한국동박새는 이미 만주의 번식지에 도착해 신혼살림을 꾸렸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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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박새 아시나요

옆구리 ‘김칫국물 자국’, 한국동박새 아시나요

윤순영 2019. 05. 28
조회수 237 추천수 0
 

예민하고 보기 힘든 나그네새

 

크기변환_YSY_5611.jpg» 한국동박새 부부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있다. 동박새와는 옆구리의 붉은 밤색 무늬와 연주황 부리로 구별한다.

 

동박새란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귀여운 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가 많은 남해안과 서해안 도서지방, 해안지대에서 흔히 번식하는 텃새여서 그럴 것이다. 

 

다른 새들처럼 사람을 피하거나 놀라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지내는 온순한 새다. 먹이는 식물성으로 주로 꿀과 열매 그리고 작은 애벌레를 잡아먹기도 한다.

 

동박새는 혀끝에 붓 모양의 돌기가 있어서 꿀을 빨 때 편리하다. 특히 동백꽃의 꿀을 좋아하는데, 벌과 나비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인 이름 봄 동백나무에서 무리 지어 꿀을 빨아 먹으며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동박새와 다른 한국동박새도 있다.

 

크기변환_YSY_4038.jpg» 한국동박새. 옆구리에 난 붉은 밤색 무늬가 특징이다.

 

크기변환_YSY_1600.jpg» 동박새. 옆구리의 검붉은 무늬가 없고 아래 부리도 회색이다.

 

크기변환_YSY_4547.jpg» 한국동박새는 동박새와 다른 색다른 매력이 있는 새다.

 

지난 5월 12일 우리 곁에 흔치 않은 한국동박새를 만났다. 일반적으로 동박새는 알아도 한국동박새란 새가 있는지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3일 동안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나그네새이기 때문에 잠시 머물다 가면 볼 수 없고,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요즘은 오전 6시면 날이 밝는다. 새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국동박새도 예외는 아니다. 

 

봄철 이동 시기에 한국동박새는 10~20마리 정도의 작은 무리를 이루는데 30마리가 넘기도 한다. 무리 지어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몸을 숨기며 오가면서 먹이를 먹는다. 무리를 이루는 것은 안전을 위해 중요한 전략이다.

 

크기변환_YSY_4257.jpg» 한국동박새는 옆구리의 붉은 밤색 깃털 무늬와 함께 멱의 노란색이 가슴과 이루는 경계가 깔끔하고 명확한 특징이 있다.

 

크기변환_YSY_4911.jpg» 텃새인 동박새는 옆구리에 전체적으로 옅은 밤색이 감돌고, 멱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노란 깃털의 경계가 흐릿하다.

 

한국동박새는 오전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오후에는 거의 움직임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아주 짧은 거리도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절대로 혼자 무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위협 요인이 되는 소리가 들리거나 위협을 가할 새가 나타나면 재빨리 나뭇잎 사이로 몸을 숨기거나 피한다. 아예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이 안전한 것이 확인되면 다시 무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치밀함도 보인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한국동박새다. 관찰하는 동안에도 민첩하고 은밀하게 움직여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야에서 바로바로 사라지기 일쑤다. 

 

일상처럼 이런 행동이 반복된다. 한국동박새가 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이 없다. 이런 행동은 천적을 교란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크기변환_YSY_5507.jpg» 은밀하게 상록활엽수의 나뭇잎과 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4189.jpg» 맘에 드는 새순을 고르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3585.jpg» 잎이 크고 무성한 상록활엽수는 한국동박새가 몸을 숨기기에 제격이다.

 

한국동박새를 자세히 관찰하거나 촬영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일반적인 새들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했다. 그러나 조심성은 한국동박새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편이다. 

 

텃새인 동박새의 친숙함과 여유 그리고 호기심 많은 행동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박새들은 좀처럼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새다. 한국동박새도 동박새와 비슷하게 상록수림을 선호하지만, 한국동박새와 동박새는 생활습성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한국동박새는 울음소리가 동박새와 다르고 매우 예민하여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조심성 있게 은밀하게 무리가 움직이는 것이 동박새와 크게 다르다. 한국동박새나 동박새의 애정표현은 유난히 귀엽다. 서로 곁에 앉아 몸을 치장하고 부부의 애정을 확인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깜찍하다.

 

크기변환_YSY_4534.jpg» 나무 수액을 핥아 먹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4438.jpg» 정면에서 바라본 한국동박새. 멱의 노란색과 가슴이 아주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크기변환_YSY_4474.jpg» 분주하게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한국동박새들.

 

한국동박새는 남한을 지나가는 나그네새다. 봄에는 5월 초순과 중순 사이, 가을에는 9월 중순과 10월 중순 사이에 관찰된다. 북한, 우수리, 러시아 동아시아, 중국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중국 서남부와 인도지나 반도의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북서부에서 월동한다. 

 

한국동박새의 몸길이는 11㎝인 동박새보다 다소 작은 10.5㎝다. 옆구리엔 뚜렷한 붉은 밤색 무늬가 아주 선명하다. 잘 익은 김칫국물로 찍어놓은 얼룩 같다. 일부 흐린 개체도 있다.

 

크기변환_YSY_5613.jpg» 한국동박새 부부의 다정한 모습.

 

크기변환_YSY_5597.jpg» 정성껏 깃털을 다듬는 한국동박새 부부.

 

크기변환_YSY_5657.jpg» 상대의 깃털을 다듬어 주는 몸짓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한국동박새.

 

한국동박새는 노란색 멱과 흰색 가슴의 경계가 명확하다. 가슴 옆은 회색이 감돌고 가슴은 회색이 도는 흰색, 부리 기부와 아래 부리는 연한 분홍빛이다. 

 

아래 꼬리덮깃은 노란색이다. 이마에서 등 위 꼬리덮깃까지 윗면은 흐릿한 녹색과 노란색을 혼합한 듯한 색이다. 눈 둘레에는 흰색 고리 모양이 뚜렷하다.

 

흰 고리 선이 끝나 연결되지 않은 눈 앞쪽은 검은색이다. 턱밑과 멱은 노란색, 배는 흰색, 가슴은 회색이 도는 흰색, 가슴 옆은 회색이다. 배는 흰색, 암컷은 온몸의 빛깔이 희미한 편이다.

 

크기변환_YSY_5608.jpg» 깃털을 털고 있는 한국동박새.

 

크기변환_YSY_5633_01.jpg» 분주하게 이리저리 다니던 한국동박새 부부가 나뭇가지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동박새의 생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먹이로는 주로 거미류, 애벌레, 진드기류, 딱정벌레, 나비, 매미, 메뚜기, 잠자리 등을 잡아먹으며 작은 꽃과 꽃가루, 꽃꿀 등을 먹는다. 5~6월에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아 11~12일 동안 품는다. 새끼의 성장 기간은 11~13일이다. 다양한 환경의 산림에 서식한다.

 

5월 14일 갑자기 한국동박새 무리가 나뭇잎 사이에서 쏜살같이 뛰쳐나와 멀리 사라진다. 머물고 있던 곳에서 미련 없이 떠나는 느낌을 받았다. 

 

나그네새가 중간 기착지에서 머무는 기간은 종마다 다르다. 길게는 15일, 짧게는 3~4일이다. 지금쯤 한국동박새는 이미 만주의 번식지에 도착해 신혼살림을 꾸렸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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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한·미 정상 통화 유출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한국당, 기본과 상식을 지켜달라”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입력 : 2019.05.29 11:21 수정 : 2019.05.29 11:28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을지태극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을지태극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주미대사관 참사관 ㄱ씨의 한·미 정상 통화 유출 건과 관련, “정부로서는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가의 외교상 기밀이 유출되고, 이를 정치권에서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변명의 여지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현 정부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직접 사과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고, 철저한 점검과 보안 관리에 더욱 노력하겠다”면서 “각 부처와 공직자들도 복무 자세를 새롭게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ㄱ씨로부터 3급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입수해 공개한 강효상 의원을 ‘공익제보’ ‘국민의 알 권리’ 등 명분을 내세워 두둔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기본과 상식을 지켜달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정상 간의 통화 내용까지 유출하면서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국정을 담당해봤고,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적어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 줄 것을 요청한다”며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 안보에 앞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상식에 기초하는 정치라야 국민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291121001&code=910203#csidx05812ec190f5f47a2d05f5bbda189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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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눈감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역사는 진행형

[아시아생각] 군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미완의 과제
2019.05.29 08:15:57
 

 

 

 

2019년 5월 18일, 39주년을 맞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망월동 국립묘지 추모식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인권활동가가 서있었다. 그의 이름은 베드조 운퉁(Bedjo Untung).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인도네시아 1965~66 대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베드조 운퉁씨가 대표로 있는 YPKP65(Yayasan Penelitian Korban Pembunhan 1965-66의 약자로 '1965-66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희생자 조사를 위한 재단’이라는 뜻)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1965~66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배·보상 및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 1965년 10월 인도네시아 보안군이 공산당원 혐의로 한 남성을 체포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기록원


1965 대학살은 무엇인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부로 불리던 수카르노가 실각하고, 수하르토 대통령의 32년간의 장기집권이 시작될 시점에 전국적으로 소위 '빨갱이 사냥'이 진행되었다. 학살의 각본은 군부에 의해 사전에 준비되었다. 자바와 아체,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산당 본부가 있던 발리에서의 대대적인 학살로 5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베드조 운퉁씨는 학교에 다니다가 자카르타에 있는 군 정보부에 잡혀가 재판 없이 9년을 강제노동을 하며 감금생활을 하고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1965년 10월 1일, 정보사령부의 한 대령은 "자바에서의 학살은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저지른 짓이며 그들은 창고를 약탈하여 모든 무기를 준비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반란이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군부의 계획이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은 군부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각 도시의 특공대에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죽이라는 무선 전보가 내려졌다. 1965년 10월 첫째 주부터 인도네시아 공산당원에 대한 체포가 전국적 규모로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군사작전은 반공단체 및 군대 산하조직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공산당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되었다. 여기에서 제주의 4·3사건과 서북청년단이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당원은 300만 명이었으며 지지자는 거의 260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학살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45년 헌법에 기반하여 사회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거대한 국가 인도네시아 건국을 이루며 수많은 집단의 통합을 강조하고 이를 '판차실라(Pancasila)'라는 인도네시아의 건국 5원칙에 담았다. 산스크리트어 단어인 판차실라는 '판차' (Panca, 다섯이라는 뜻)와 '실라' (Sila, 원칙 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①다양한 신앙에 대한 존중, ②정의와 문화적인 인본주의, ③인도네시아의 단결, ④ 합의제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길잡이, ⑤사회정의 구현을 이른다. 

 

1945년 6월 1일에 열린 독립준비위원회에서 수카르노는 "판차실라의 탄생"이라는 주제의 연설로 인도네시아 건국 정신인 이 원칙들을 무슬림과 민족주의자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에도 담겼던 인도네시아 통일과 단결원칙은 20년이 지난 후 수하르토와 군부에 의해 찢겨져 나간 것이었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자신들이 무고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지역 당국에 협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구금되고 고문을 받았고, 납치되기도 했다. 군부의 묵인과 방조 아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일은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전쟁도 아닌데 이 군사작전으로 최소 50만 명에서 300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수용소에서 강제노동과 납치, 고문이 이루어졌고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또 다른 광주 


세월이 흘러 1965년의 비극에 대한 미국의 외교문서가 2017년 10월 공개되었다. 공개된 3만여 쪽에 달하는 19개 문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1965년 공산당원에 대한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카르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은 살해당한 인도네시아 공산당 대표의 신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부가 인도네시아 내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지원했음이 보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문서에는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슬람 종교단체가 이 학살에 협력했음이 적시되어 있었다. 군부는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그 산하조직을 박멸하는 작전을 수행했고 그 결과 50만 명의 공산당 지지자가 죽었으며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공개된 CIA의 문서를 참조할 때 미국의 개입은 분명한 사실이며, 영국과 호주 역시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여 수카르노의 제거를 지원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미국은 이렇게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배후에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와 국제시민법정 


사건 이후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1965 대학살은 2012년에 이르러서야 밝은 햇볕 아래 실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상규명팀을 설치하여 1965년부터 1966년 사이에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위원회는 2012년 7월 23일, 1965년의 비극이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이며 살인과 구금, 고문, 약탈, 성폭행, 강제노동, 차별과 추방이 있었다고 확인·발표했다. 또 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인권법정을 설치하여 인권법에 따라 이러한 범죄를 처리할 것을 권고하였고, 학살을 자행한 군부 내 명령체계를 공개했다. 

그 결과 인권침해를 심판하기 위한 국제시민법정(민간법정)이 2015년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헤이그에서 열렸다. 여기서는 1965대학살에 대한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가 단순히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일뿐 아니라 '학살'범죄라고 확인되었다. 1965년의 비극이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박멸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박해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의 그날까지 


베드조 운퉁씨와 그가 대표로 있는 YPKP65는 현재 암매장된 유해의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살해된 사람들이 집단으로 매장된 무덤을 찾아 발굴하고 당국에 신고하는 활동을 벌인 결과 현재 319개의 학살 공간을 찾았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발리를 조사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부는 여전히 학살을 부인하고 있고, 군부에 대한 불처벌은 아직도 인도네시아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정치적 해결의지가 없는 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해결은 요원한 것이다. 80세가 넘은 노인임에도 그는 여전히 해결의 의지를 불태우며 포럼에서 만나는 참가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며 당시 후방에서 지원했던 서방국가들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같은 자리에서 독일의 나치범죄 중앙사무국장이 "세계 2차대전 패전 후 7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나치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것은 그런 범죄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자는 목적도 있지만, 미래에 대대적인 국가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라고 발언한 것과 좋은 대조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 나치 범죄의 공소시효는 1969년 의회 결의로 폐지됐다. 이로 인해서 1944년 17세의 나이에 폴란드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던 함부르크 시민(92세)은 지난 4월 살인 방조 혐의로 기소될 수 있었다. 

광주의 5‧18기념재단은 삼처럼 엉키어버린 5‧18왜곡과 폄훼에 맞서 국제사회에 과거청산의 정당성을 호소하고자 지난 5월 18일~19일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미완의 과거청산이라는 주제로 열린 아시아포럼에서는 국제적으로 이행기 정의를 비교적 잘 실천한다고 인정받고 있는 과거청산의 경험을 가진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사례와 다른 한편으로는 미완의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험을 보여주었다. 과거청산이라는 표현은 마치 과거사를 지우개로 지우듯 불을 질러 그 흔적을 없애버린다는 의미로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혹은 잘못된 과거 바로잡기(Dealing with the Past Injustice)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역사가 E.H. 카의 유명한 명제처럼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과거는 청산되어 사라지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과거문제를 올바르게 정리하거나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재나 미래의 민주주의는 담보되지 않는다. (이글에 나오는 1965대학살 내용은 베드조 운퉁씨의 광주아시아포럼 발표문과 YPKP65사이트(www.ypkp1965.org), 미국 국가안보기록원 사이트(https://nsarchive.gwu.edu/)를 참고했다. 필자)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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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군대, 모두 몰아내야 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5/29 11:01
  • 수정일
    2019/05/29 11: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미군 기지로 피해 보는 국가들 연대 필요해
 
 
 
용산 통신원 
기사입력: 2019/05/29 [00: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지난 25일, 국제민주법률가협회 및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 대표단이 용산 미군기지 답사 및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 용산통신원

 

▲ 지난 25일, 국제민주법률가협회 및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 대표단이 용산 미군기지 답사 및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 용산통신원

 

지난 25국제민주법률가협회 및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 대표단(이하 대표단)이 용산 미군기지 답사 및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용산 미군기지 답사는 김은희 용산미군기지온전히되찾기주민모임(이하 주민모임대표가 안내하고국제민주법률협회 준 사사모토 일본변호사미콜 사이어 이탈리아 변호사장경욱 변호사와 주민모임의 오숙정 회원이 통역했다.

 

용산 미군기지 답사는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이태원광장구 유엔사부지 등을 둘러보았고 용산 미군기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은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가 잘 보이는 곳으로한창 논란이 되는 한미연합사 건물도 보이는 곳이다.

 

이어 용산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 오염즉 부유 기름을 모으는 집수정이 있는 이태원 광장으로 대표단은 이동했다.

 

이곳에서 녹사평역 기름유출사고와 용산 기지 내부오염 조사 결과 공개를 위한 소송에 대해서 그리고 FOIA(미국정보자유법)에 의해 밝혀진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답사단은 오염을 시킨 자가 오염정화의 책임을 지지 않는 이상한 나라오염정보를 받아 볼 수 없는 이상한 관계의 동맹을 확인하며 모두 분노했다.

 

마지막으로 대표단은 공사가 진행 중인 유엔사 부지가 보이는 육교로 이동했다.

유엔사부지는 2006년에 반환되어 2011년에 환경오염 정화사업이 끝난 곳이다그런데 이곳에서 공사 중에 다시 오염원이 발견되었고 정화 명령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 지난 25일, 국제민주법률가협회 및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 대표단이 용산 미군기지 답사 및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용산통신원

 

▲ 지난 25일, 국제민주법률가협회 및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 대표단이 용산 미군기지 답사 및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 용산통신원

 

▲ 지난 25일, 국제민주법률가협회 및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 대표단이 용산 미군기지 답사 및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 용산통신원

 

답사를 마치고 대표단은 주민모임 회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최명희 주민모임 회원은 미군기지 오염 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문제가 발생해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등 때문에 미국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준 사사모토 변호사는 일본 오키나와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기지를 만들었는데이후 비행기 추락 사고도 잦아 현지 사람들이 미군을 상대로 소송을 많이 걸었다며 미군 부대에서 생화학무기를 발견했는데 관련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등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미콜 사비어 변호사는 전 세계 70개국에 800개 이상 미군기지가 있고 그중 한국일본독일이탈리아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비어 변호사는 “(미군 기지를 둘러싼 문제가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주민들께 박수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서는 세계 800여개의 미군기지가 있는데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처럼 불평등한 SOFA 협정으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거나 오염 문제가 발생해도 미군이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피해를 보는 국가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 함께 공감했다.

 

한편국제민주법률가협회는 전 세계 법률가들의 교류를 촉진하고 인류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1946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한 단체다.

 

아시아태평양법률가연맹은 인도와 일본네팔파키스탄 등의 인권 변호사·검사 등이 모여 201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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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마지막회
2019.05.28 09:13:27
 

 

 

 

러시아로 여행을 떠난 지인의 사진을 보게 됐다. 사진에는 우스리스크 수이푼강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수이푼 강은 헤이그 특사인 이상설의 유해가 뿌려진 곳이다. 지인은 사진과 함께 그의 유언을 언급했다. 

"나는 광복을 못 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마라."

이상설은 연해주에서 권업회를 조직하는 등 활동을 하다 1917년 사망한다. 수이푼강 인근에 이상설 유허비가 세워진 것은 2001년 일이다. 유허비란 기록은 있으나 유물과 문화재가 없는 유허지 땅에 세운 비석을 가리킨다.  

유허비에 새겨진 몇 줄 문장이 혼마저 타국에 두겠다고 한 그의 심정을 더듬게 한다. 광활한 땅에 홀로 세워진 유허비를 떠올리자니, 서툰 말로 내게 선조들의 역사를 들려준 고려인들이 떠오른다. 이상설 특사가 타국에서 눈감은 지 100년. 그의 혼이 남아있을 땅에서 온 이들을 만났다. 유허비와 그들은 닮았다. 

조선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다시 중앙아시아로. 거듭해 터전을 옮겨야 했던 러시아 한인들은 뿌리를 증명할 많은 것들을 잃었다. 러시아 신분을 얻는 과정에서 성씨는 변형됐다. 김씨는 김가이가 되고, 이씨는 니가이가 됐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족보는 사라졌다. 족보만 잃었나. 가족도 잃었다.  

그렇게 살아온 흔적들을 잃고, 남은 것은 친척들이 들려준 이야기 몇 구절이다. 기억만 남았다. 기억을 간직한 이들을 만났다. 
 

▲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건립 국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신/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건립추진위


유허지에 서 역사를 듣다 

"우리 고조할아버지 의병 지휘관이었어요. 고조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앞서 싸우자 했어요. 다들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갔어요. 잡혀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당했어요."

서툰 한국말이 의병, 지휘관, 형무소라는 단어 앞에서 멈춘다. 러시아어가 섞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기가이 소피아는 허위 의병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 불렀다.  

허위 의병장이 소속된 13도 창의군은 국내 최대 의병저항운동 세력이었다. 그는 의병을 모아 한양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가 체포되어 사형당한 후 자녀들은 조선에 머물 수 없었다. 만주와 연해주로 도피한다. 기가이 소피아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나고 자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소피아가 해줄 수 있는 허위 의병장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릴 적 할머니를 통해 들은 것이 전부라 했다. 기억을 더듬는다.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3-4세는 자신의 기억을 서툴고 짧은 문장으로 전했다. ‘일본군과 맞서 싸워 죽임을 당했다’ ‘체포하려 하자 도망쳐 러시아로 왔다’ 그 짧은 말들을 이어 붙이다보면 황량한 유허지에 서 있는 기분이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전해준 이야기는 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이상설과 허위.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러시아 한인으로 항일운동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최재형, 봉오동・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홍범도, 러시아 적백내전 시기 일본군이 소속된 백군에 맞서 싸운 대한의용군 소대장 마춘걸.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한국 최초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탄생의 주역인 이동휘, 김알렉산드라. 

이 외에도 이동녕, 이위종, 이범윤, 신채호, 장도빈… 무수하다.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낯선 땅에서 땅을 일구고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연해주로 이주했고 각자의 가치를 붙잡고 옳다고 믿는 일을 행했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이도, 죽음을 불사하는 이도 있었다. 머나먼 땅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수십 년, 아니 백년이 지나고서야 ‘고려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 후손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가깝고도 먼 사람들이 오다 

"우리 고려시대 때 온 것 아니고 조선에서 왔다면서 왜 고려인이라 불리나요?"

어릴 적 한국에 온 고려인 3,4세들이 부모를 붙잡고 한 번은 물어보게 되는 질문이다. 구소련 영토에서 '까레이츠'라 불리던 시절에는 하지 않았을 질문이다. 그때는 '까레이츠'가 한국인이라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알게 된다. '한국인'과 '고려인'은 다른 단어임을. 

한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한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나에게도 이들은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이다. 생김새는 몹시 닮았는데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수십 년을 교류 없이 각자 다른 문화권에 살았다. 이들은 '닮음'을 보이겠다며 환갑잔치 사진 같은 것을 내밀었다. 차려입은 한복이 고왔다. 사진 속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에 오래 눈이 갔다. 

기가이 소피아는 한국에 와서야 할아버지의 역사와 조우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인정받았다. 이곳에서 자녀를 키우며 살아갈 것이라 한다. 한국 땅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녀와 나의 ‘닮음’은 많아질 것이다. '차이'를 확인하는 일도 잦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선은 알아가야겠다.  

<독립운동기념비 건립을 위한 추진위> 결성을 알리는 자리에서 공동대표로 선 소피아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고려인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세우다 

잊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려인에 대해 기억할만한 것이 없다. 이들의 삶과 역사를 모른다. 한국사회에는 유허비를 세울 공간조차 없었다. 

조선에서 연해주,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다시 러시아로. 또는 한국으로. 이들을 떠돌게 한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에서 비롯한다. 그 역사를 지나 지금 ‘우리’의 삶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으나 ‘고려인’과 ‘한국인’은 역사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서로의 역사를 공유한다는 것은 옛날이야기를 회상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와 책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소피아 공동대표가 말한 '잊지 않는 일'이 시작된다.  

8만여 명의 고려인이 한국을 찾는 지금,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존재를 인정하고 정착을 지원하고 교류하는 일. 멀고도 가까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기억하려 한다. 기억하기 위해 비(碑)를 세운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연재는 펀딩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게재되고 있습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는 연해주 등지에서 이뤄진 고려인의 항일항쟁 역사를 대한민국 땅에 적어내리는 기록입니다. 낯선 땅에서 굴하지 않고 삶을 지켜낸 이들, 더 나아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러나 이름 없이 잊힐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작업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5만 명의 건립자가 되어주세요. - 고려인독립운동 국민추진위원회

 

후원 참여: 신용협동조합 131-017-209819 안산희망재단

기념비 건립 모금을 위한 스토리 펀딩 사이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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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교회, 가톨릭 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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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이 만난 사람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또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란 인류정신사의 가장 큰 주제를 오해 테마로 한 인터뷰와 이에 대한 목사와 신부, 스님, 주역의 대가와 심리학자 등 10명이 모여 토론한 대담을 선보입니다.

작지만 큰교회, 가톨릭 안동교구

조현 2019. 05. 27
조회수 137 추천수 0
 

 

두봉권-.JPG» 가톨릭 안동교구 현 교구장인 권혁주(왼쪽) 주교와 초대 교구장인 두봉 주교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가톨릭 안동교구엔 주교 2명, 신부 90명 등 92명의 성직자가 있다. 서울대교구가 주교 6명, 신부 912명인것과 비교해보면 안동교구가 얼마나 작은 교구인지 알 수 있다. 국내 16개 교구 가운데 가장 작다. 규모가 작다고 아름다운것은 아니다. 작음에도 사랑이 무한정 샘솟는 신비가 비로소 아름다움을 준다.


 현대 50년간 급격한 이농으로 교구민이 138만명에서 71만명으로 오히려 절반 가량이 줄어든 안동교구가 50돌을 맞았다. 교구 성직자와 신자들은 지난 26일 오후 2시 안동실내체육관에서 7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세례를 수많은 이들에게 주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도시로 떠나버렸으니 감사함보다는 쓸쓸함이 맴돌법할듯한 교구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초대교구장 두봉 주교와 현 교구장 권혁주 주교를 24일 안동 안기산 숲으로 둘러싸인 안동교구청에서 만나자마자 숫자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프랑스인 두봉 주교는 작은 키와 90세라는 노구를 무색케할만큼 천의무봉의 꾸밈없는 발랄함으로 사랑의 아우라를 방사했다.  청년시절부터 자신을 멘토로 삼아 어엿하게 성장한 권혁주(64) 주교를 바라보는 눈에도 사랑과 신뢰가 가득했다.

 

두봉-.JPG» 안동교구 사목 표어대로 `기쁘고 떳떳하게 살자'면 손을 드는 두봉 주교 

 두봉 주교가 이른바 ‘잘 나가는’ 큰 교구가 아닌 안동교구에 자리잡은 것은 운명같은 것이다. 그는 잔다르크의 땅으로 유명한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농사를 지어 채소를 팔아 생계를 꾸렸고, 형제 자매 5형제뿐 아니라 자기 부모가 맡아 돌본 사촌형제들까지 7형제가 복닦대며 함께 살았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로 한국에 파견됐다. 파견 전 프랑스에서 군복무 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고아였던 전우가 한국에 파병돼 전사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파견을 명 받았을 때 친구가 목숨을 바친 땅이자 너무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대전에서 15년을 지낸 뒤 1969년 안동교구가 설립되면서 첫교구장으로 부임받을 때는 오고싶지않았다고 한다. 교황청 주도로 연 제2바티칸공의회에 따라 기존의 닫힌 교회에서 벗어나 이웃과 세상에 활짝 열린 교회를 할 꿈에 부풀었는데, 유교의 고장 안동은 옛날방식만을 고집해 좀체 열린 교회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온 그는 유림들과 첫상봉에서부터 ‘공자님 말씀’을 외워가 언급하며, 자기부터 열린 모습을 보여주며 지역민들의 마음을 열었다.

 안동교구가 1973년 건립한 안동문화회관이야말로 열린 교회의 마중물이었다.  재정이 자립이 안돼 겨우 외국의 원조에 의해 살아가고 안동 내에 성당이 하나뿐인 허약한 교구 여건에 이제 그럴듯한 성당 하나 가져보자는 성직자와 신자들의 오랜 바람을 제치고, 두봉주교는 ‘가톨릭’이란 이름도 들어가지않은 문화회관을 건립했다. 당시로서는 안동에서 가장 높은 6층에, 최초로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이 건물은 예식장과 음악다방까지 갖춘 안동시민의 안식처가 되었다.

 

권혁주-.JPG» 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무엇보다 두봉주교는 농촌사목의 대부였다. 1978년 안동가톨릭농민회가 창립됐고, 다음해엔 ‘오원춘 사건’으로 알려진 ‘씨감자 피해보상 농민운동’에서 고문 당한 농민편을 들었다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기도 했다. 한국 교구의 교구장은 한국인 주교가 맡아야 한다며 교구장 교체를 4번이나 교황청에 요구했던 그였지만, ‘괜한 말썽을 일으킨다’는 교황청의 사임 요구에 ‘그런 이유로 사임할 수 없다’고 버틴 강단을 내보이기도 했다.

 1990년 퇴임 뒤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 경기도 고양 행주산성 부근 조립식가건물 공소에서 지내다가 2004년 권 주교의 간청으로 의성의 작은 공소에 머물며 70여평의 텃밭을 직접 가꾸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 피정 강연을 다니고 있다. 2012년 만해실천대상을 수상해 받은 상금 3천만원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까지 모두 안동교구에 기증할 정도로 두봉주교의 교구 사랑은 지극하다.

 권 주교는 “취임 후 사목표어로 정하고, 50돌을 맞아 다시 다짐하는 표어 ‘기쁘고 떳떳하게’는 늘 입에 달고 사는 두봉 주교님의 말씀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권 주교는 “안동교구에서 가난하고 작았기에 가족처럼 서로 알고 함께 할 수 있었다”며 “부족한 가운데도 나누면 기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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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란을 침공하지 못한다


손정목의 이슈분석

1. 미국, 이란과의 전쟁위기를 높이다

미국이 이란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한지 1년여만에 이란을 겨냥한 제재와 군사조치를 강화하면서 전쟁위기가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하더니, 지난 6개월간 원유가격의 급격한 인상을 막기 위해 8개국에 허용했던 이란원유수입 예외조치도 완전 중단하였다. 이란의 원유수출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철강, 광물수출 마저 막겠다고 나섰다. 아예 이란을 고사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무력으로 담보하기 위해 미국은 USS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전단과 B-52 폭격기 등을 걸프지역에 급파하여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나아가 이라크 주재 필수 인원을 제외한 철수명령을 내리고, 1,500여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하는 등 전쟁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 군사조치에 세계적 비난이 일자 미국은 오히려 이란이 자국의 군대와 군사외교시설 및 동맹을 공격할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조치가 이란의 공격위험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나아가 존 볼튼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에 대해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공격하면 가차 없는 물리력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제3의 군대, 민병대, 헤즈볼라가 공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란 지도부에 그 책임을 직접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침공 명분을 최대로 확장한 것이다. 이란 자체의 핵보유 시도만이 아니라 이란이 미군만이 아니라 동맹국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란과 우호적인 레바논의 헤즈블라나 시리아 정부군이 미국과 그 동맹을 공격하는 것도 이란에 대한 공격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후 미국의 패권체제하에서 미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한 나라는 없다. 비록 지금 그 지위가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패권적 지위에 있는 미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할 나라는 지구상에 극히 드물다. 미국 역시 이를 알기에 동맹인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이란과 그 우호세력에 의한 공격까지도 침공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쟁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란, 헤즈블라, 시리아 정부는 과거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음모와 공격행위에 대한 반격을 수시로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 하원의원이 "다른 사람이 먼저 주먹질하기를 바라면서 얼굴을 들이밀고 반격할 준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한 것은 타당하다.

실제로 지난 5일 볼튼 보좌관이 미군의 항모를 비롯한 대규모 무력 증강 조치 발표 이후 그 명분인 미국 동맹에 대한 공격 위험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지난 1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조선 2척을 비롯 상선 4척이 피습당하여 파손되었고, 14일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 펌프장 두 곳이 미확인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급기야 19일 이라크 미 대사관이 있는 그린존 지역에 로켓포탄마저 날아들자, 트럼프대통령 까지 나서 "이란이 싸우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란의 공식적 종말이 될 것"이라며 "다시는 미국을 협박하지 말라"고 최고 수위의 경고를 하였다. 이후에도 사우디 중부 탄도미사일 요격(20일), 사우디 남부 나즈란 공항 드론 공격(21일) 등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고, 이란군이 아랍권의 전통 범선인 다우선 2척에 미사일을 옮겨 싣는 위성사진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이 직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직접 나서 최근 걸프 해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공격의 배후가 모두 이란일 가능성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정권이 전쟁을 일으키고, 파괴와 혼돈을 퍼뜨리지 못하도록“하기 위해 30일 걸프협력회의(GCC)와 아랍연맹 긴급 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5월 들어 유례없이 연속적인 사건이 이어지자 마치 잘 짜 맞춘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 미국-이스라엘의 공모와 B팀

뉴욕타임즈(NYT)는 지난 16일 이스라엘 정보국(모사드, Mossad)이 ‘이란과 그 대리세력이 이라크의 미국인을 타격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Newsweek)도 이란이 범선(다우선)에 미사일을 옮겨 싣는 위성이미지는 미국이 자체로 확보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제공한 것이라고 폭로하였다.

캐나다의 진보적 온라인 매체 글로벌리서치(globalresearch)가 게재한 지난 22일 “이란의 위협신호는 조직적인 미-이스라엘의 속임수인가?”(Do Iranian ‘Threats’ Signal Organized U.S.-Israel Subterfuge?)라는 칼럼의 폭로는 더 구체적이다. 칼럼은 4월15일 워싱턴에서 존 볼튼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벤 샤벳(Ben Shabbat)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이 만났고, 이 자리에서 ‘걸프지역에서의 미국과 그 동맹에 대항하는 이란의 음모에 관한 시나리오’가 토의되고 통과되었다고 폭로하였다.(볼튼은 이 회담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인) 그리고 이 회담은 지난 2017년 12월12일 미-이스라엘이 맺은 ‘이란에 대항한 공동계획에 관한 비밀조약’(secret U.S.-Israeli agreement on a joint plan of action against Iran)에 의거한 것으로, 이 조약에 따라 양국은 4개의 공동워킹그룹을 설치하여 이란을 중심으로 시리아, 헤즈블라, 하마스 등에 대한 긴장고조 시나리오를 준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럼은 모사드가 미국의 항모파견 등 무력증강을 포함한 시나리오의 중심적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확실한 근거에 의해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스라엘 정보관리의 말을 인용 폭로하였다. 이것은 지금의 중동에서의 긴장고조가 미-이스라엘간 사전에 합의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과거에도 미-이스라엘은 이란에서의 색깔혁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이란 색깔혁명 관련 사안은 필자의 “이란 ‘색깔혁명’ 시도, 더 높아진 중동의 긴장”<⌜민플러스⌟. 2018.1.10.>참조)

이와 관련 이란의 모하메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이러한 상황 전개의 배후로 B팀을 지목했다. B팀이란 존 볼튼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 아랍에미레이트 왕세자 자예드 알 나옌으로 구성된 반 이란 연합조직으로 그 목적은 이란의 정권교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자리프 장관은 이를 위해 이 B팀이 이란에 경제적 테러를 가하고, 심지어 전쟁까지도 불사하려 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B팀에 의한 미끼에 걸려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3. 미국은 이란을 침공하지 못한다

트럼프대통령은 지난 20일 폭스(fox)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란과 전쟁이 아닌 경제적 ‘침공’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은 경제를 죽이고 가장 중요하게는 인민을 죽이기 때문에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압박을 통한 이란과의 관계 재정립이지 직접적인 군사대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15일에도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에게 이란과 전쟁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미국은 이란을 침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란의 군사력이 시리아보다 월등히 강하고 사거리 2,000km에 달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 ‘코람샤흐르’를 비롯 다종의 미사일을 보유하여 미 항모전단을 직접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리아전쟁에서 IS를 몰아낸 전투경험을 가진 강력한 지상전투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혁명수비대의 아미랄리 하지자데 공군 사령관은 지난 12일 "미 항공모함이 과거에는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이었으나 지금은 하나의 타격목표"라고 말했다. 이미 이란은 지난 2016년 1월 미 항모 해리 트르먼함 머리위로 스텔스 드론을 보내 그 영상을 방송하여 미군을 경악하게 하였다. 이는 이란의 군사력이 미 해군 항모타격단의 방공감시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일 뿐 아니라 드론이 보내주는 정확한 위치정보에 따라 이란의 미사일이 미 항모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과거 이라크,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이란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제재를 가해 사실상 무장해제 상태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란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 S-300을 비롯 북(조선), 중국으로부터 다량의 무기를 구입해 실전배치하는 등 전쟁대비를 확고히 하여 미국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등 무장력이 약한 나라를 상대로 확실히 승리가 담보된 전쟁을 하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 아프카니스탄의 경우는 제2의 베트남전쟁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있는 처지다. 그 이후 미국은 직접적인 대규모 참전을 꺼리게 되었고 리비아나 시리아전쟁에서 보듯이 공군력이나 IS 등을 앞세워 뒤에서 지원하는 형태의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 리비아에는 친미정권을 세우지 못했고, 시리아전쟁은 패배하여 미군철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중동패권은 시리아전쟁 패배로 결정적으로 추락했다. 그런 미국이 전쟁준비가 잘 되어있는 이란을 직접 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미국과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미국과의 대결은 ‘군사적 충돌보다는 의지의 시험’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공세에 대한 이란의 대응은 중동 어느 나라보다 강경하다. 이란은 트럼프대통령이 수차례 대화할 것을 요구하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준다 했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 없이 대화는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이란 혁명수비대의 테러조직 지정에 맞대응해 미군 중부사령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수출을 막으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하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뿐 아니라 친미적인 걸프협력회의(GCC)국가들도 이용하는 석유 수출 길로 세계 석유 운송의 30%를 차지하는 전략적 지역이다. 여기를 이란이 봉쇄한다면 가히 세계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가뜩이나 위기인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 하지 않는 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4. 이란, 북중러와 협력하여 자주적 발전 도모한다

지난 8일 이란은 미국의 군사조치에 대응해 이란핵합의의 일부 이행 중단을 선언하고, 핵합의 준수를 다짐하면서도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유럽참가국(영국, 독일, 프랑스)들에게 핵합의 사항인 금융과 원유 수출을 60일내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60일내 핵합의 이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란도 핵합의를 파기할 것이라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이로써 이란 전쟁위기는 향후 2달이 중요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지난 1월말 이란핵합의를 유지한다는 방침에 따라 미국의 이란제재를 우회하여 이란과 거래하는 인스텍스(INSTEX·무역거래 지원 수단)라는 특수목적법인을 발족했지만 현재까지도 유럽기업들의 눈치 보기와 유럽 각 국의 이해차이로 이렇다 할 가동을 못하고 있다. 인스텍스는 유럽이 중심이 된 최초의 달러배제 무역결제시스템으로 제대로 가동된다면 세계 경제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낼 것이다. 이란 역시 이에 대응하는 자국 특수 목적법인인 STFI(Special Trade and Finance Institute)를 발족하였다. 지난 10일 이란핵합의 유럽서명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는 갈수록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조건에서 이 시스템의 조속한 가동을 약속했다. 만약 이 시스템이 2달 내 정상가동하여 이란-유럽과의 교역이 정상화된다면 미국제재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미국의 전쟁위기 고조는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북(조선)을 비롯 중국과 러시아의 이란과의 협력강화는 더 강력하다. 북-이란과의 관계는 이미 지난해 8월 “동맹관계를 더욱 확대할 것을 합의”했고, 지난 4월 자리프 외교장관이 이란의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를 거론하면서 조만간 북(조선)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듯이 오랜 기간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더 격화되면서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발전을 보다 강력히 모색하게 되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미국의 중단요구에도 아랑곳 않고 원유수입을 계속하고,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이란-이라크-시리아를 잇는 철도와 도로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요구에 반하여 더욱 이란과 밀착해 나간다.

러시아 푸틴대통령도 독일, 프랑스 정상과 3자 대화를 통해 이란핵합의 유지를 합의하여 이란을 지원하고 있다. 시리아전쟁의 승리로 중동의 중심은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터키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위기감 속에 한편으론 전통적인 미국에 매달리고 다른 한편으론 러시아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사방이 적인 이스라엘을 다독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을 강화하여 이들이 무모하게 이란과의 전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위기 조성과 제재강화는 전쟁을 막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오려고 하는 북‧중‧러와의 협력과 유럽의 참여로 실패할 것이다. 그 기간 트럼프정부는 이란에 대한 제재, 압박을 계속할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대통령이 내년 재선을 위해서는 유대계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갈수록 미국의 이란 적대시는 말로 끝나고 북중러를 비롯 인도, 터키, 유럽과의 협력으로 문제가 해결돼 나갈 것이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유라시아 중심으로서 새로운 평화, 협력의 다극화된 세계 질서 건설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손정목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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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국가의 강대성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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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5/28 08:29
  • 수정일
    2019/05/28 08:2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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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국가의 강대성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5/27 [16:53]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 노동신문은 “국가의 강대함은 매 공민들의 심혼이 깃든 사업성과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북 노동신문은 27일 “오늘 우리 앞에는 융성 번영하는 천하제일강국, 인민의 낙원을 일떠세워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신문은 “국가의 강대함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며 “사회의 단결과 국방력수준, 경제기술발전지표를 놓고도 말할 수 있으며 문화 도덕적 측면을 가지고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문은 “국가의 강대성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도, 발전된 문화도 국가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공민들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 헌신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기의 운명과 행복을 국가와 뗄 수 없이 하나로 잇고 애국의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 고귀한 창조물을 마련해가는 참된 공민들이 있는 국가만이 강대한 나라로 위용떨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은 2019년 1월 1일 새해 첫날 <우리의 국기> 노래를 북 주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널리 보급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람홍색 기발 창공높이 날릴 제 바라보면 높뛰는 심장 애국의 피로 끓어라. 거세찬 펄럭임에 조국의 숨결 어리고 목숨처럼 소중한 기폭에 인민의 운명 실었네. (후렴) 사랑하리라 빛나는 우리의 국기를 나붓겨다오 이 세상 다할 때까지.” <우리의 국기> 1절 가사. 

 

“노래가 대단히 좋다. 전체 인민의 감정이 담긴 훌륭한 노래 창작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며 만족하게 생각한다. 널리 보급할 것. 2019.1.1.김정은”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노동당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것은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근본담보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북은 언론매체를 통해 “오늘 우리 인민 앞에는 애국열, 투쟁열을 총폭발시켜 조국의 위대한 역사를 써나가야 할 성스러운 과업이 나서고 있다”며 “이 투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해나가자면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우리 국가가 제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당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노동신문 2019.1.29.)

 

이어 “국력이 강하고 끝없이 융성번영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 없는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는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은 당의 영도에 의해서만 승리적으로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될 수 있다”며 “우리 공화국은 세기적인 낙후와 빈궁, 빈터와 재더미우에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로 솟구쳐 오른 기적의 나라이다”고 강조했다. 

 

북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주민 전체가 일심단결해 나라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특히 북은 주민들의 정신력, ‘애국심을 높여어려운 문제도 자력갱생의 힘으로 이겨내면서 사회주의강국건설에 모두 떨쳐나서고 있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평양을 방문한 인사들이 전하는 북한의 경제성장, 평양에 새로 건설된 고층아파트들, 400만대가 훌쩍 넘어선 무선통신 이용자수, 각종 위락시설의 발전, 그리고 평양 등 대도시의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망에서 거래되는 북한산 제품 등을 통하여 북의 경제사회가 고도로 성장했다는 일부의 평가를 전했다.(주간한국 2019.3.25)

 

북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점철된 우리의 사고를 조금씩 깨부수는 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자유롭게 북을 오갈 수 없지만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일상적인 평화로운 시대가 다가오면 북의 사회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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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백화점 현지취재', 이걸 남한서 볼 순 없을까

[인터뷰] '통일TV' 개국 준비하는 진천규 대표

19.05.27 21:52l최종 업데이트 19.05.27 21:52l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
▲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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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베트남 그리고 한국이 분단됐다고 한다. 이중 독일과 베트남은 이미 통일이 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분단 70년이 넘었는데도 38선이 한 차례 지독한 동족상잔의 비극 이후 '군사분계선'으로 바뀌었을 뿐, 여태 철조망은 걷히지 않고 있다.

나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가장 큰 배경엔 동·서독 방송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동·서독 국민들은 상호 방송을 통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분단 극복 의지를 키웠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평화통일과 겨레의 앞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온 시민들의 분단극복 의지가 꼭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북녘 조국을 제대로 봐야 하고, 있는 그대로 그들의 실상을 봐야 하며,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평화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평화통일의 그날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민의를 대변한다는 정치권에서는 색깔론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 그뿐인가. 분단극복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리며 설치고 있다. 지난날 일부 정치인들은 분단 극복은커녕 이를 교묘히 그들의 정권 연장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도 강대국에게 빌붙어 분단의 위기감을 조성시켜 정권을 탈취하려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별별 채널이 다 있다. 그런데 평화·통일을 위한 전문 채널이 하나 없다는 것은 분단국가로서 뭔가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런 가운데 남과 북의 간극을 좁히고 평화통일의 주춧돌을 놓고자 하는 진천규 통일TV 대표(전 <한겨레> 기자)를 지난 25일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왜, 지금 '통일TV'인가
 
 평양시민들이 대성백화점 ‘즉석료리’ 코너에서 맥주잔을 들고 건배하고 있다(2019. 5. 5.).
▲  평양시민들이 대성백화점 ‘즉석료리’ 코너에서 맥주잔을 들고 건배하고 있다(2019. 5. 5.).
ⓒ 진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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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규 대표. 그는 요새 무척 바쁘다. 최근에도 북녘을 자주 오가는 데다가 전국순회강연으로 남녘 곳곳을 다니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남과 북을 관통한다. 

진 대표와 나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1972년 3월 1일 서울 오산중학교 입학식 날. 나는 그의 담임교사였다. 그때만 해도 그는 젖내가 나는 소년이었는데, 그새 초로의 신사가 됐다. 진 대표와의 인터뷰는 사제간의 대화 형식을 취했음을 미리 밝힌다. 

- 자네, 그동안 북녘을 몇 차례 다녀왔으며, 가장 최근 방북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지난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제13차 방북해 주로 북녘의 교육기관을 둘러봤습니다. 평양을 떠나 개성, 판문점 등지도 둘러 봤고요."

아마도 '통일TV'를 개국하게 되면 남녘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화면을 찍어온 모양이었다. 

- 이 시점에 왜 '통일TV' 개국이 필요한가?
"지난해 1월 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 이후, 70여 년의 분단 역사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때 평창 동계올림픽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으며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뒤 4.27 판문점 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 9.19 평양정상회담으로 흐름이 이어지면서 남북간에 곧 장벽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더욱이 6.12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그 큰 흐름은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2월 하노이 회담이 이른바 '노딜(No Deal)'로 끝나면서 오늘까지 소강상태로, 다소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도 북에 대한 실상은 지속적으로 왜곡되고 부정적인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왜곡의 틀을 깨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언론인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북녘 모습, 기자정신에 충실한, 객관적인 북녘의 모습을 보여주는 TV 채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케이블 채널이 300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스포츠·역사 등 다양한 장르의 채널은 물론이고, 미국·중국·일본 등 외국 드라마 등의 전문채널도 몇 개씩 있습니다. 음식·요리·바둑·낚시·장기 등 갖가지 취미 생활 채널, 심지어 강아지 전문채널도 두세 개 있습니다.

이러한 채널 중에, 지난 70여 년 분단국가로서, 그 분단의 반쪽인 북녘을 제대로 방송하는 채널이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앞장서서 북쪽 전문 채널을 만들어야겠다는 심정으로 '통일TV' 개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언제부터 '통일TV' 개국 준비를 하셨는가?
"기본적인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2017년 10월, 재외동포 신분으로 2010년 5.24 조치 이후 대한민국 국적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방북 취재를 시작하면서, 북측 영상물 저작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이는 마치 선생님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보고 전 한국인에게 알려야겠다는 그 정신과 같습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배운 겁니다. 그리하여 북측의 '저작권사무국'과 여러 차례 회의를 해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2018년 11월 남측 '통일TV'에 북측 영상저작물을 제공한다는 '합의계약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통일TV 진천규 대표(오른쪽)가 북측 저작권사무국(왼쪽, 부국장 장철순)과 평양호텔 3층 면담장에서 '합의계약서'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2018. 11. 15.).
▲  통일TV 진천규 대표(오른쪽)가 북측 저작권사무국(왼쪽, 부국장 장철순)과 평양호텔 3층 면담장에서 "합의계약서"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2018. 11. 15.).
ⓒ 진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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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TV' 개국 준비 진행과정과 앞으로 일정은? 
"그 '합의계약서'를 시작으로 본격 '통일TV' 개국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통일TV'에서는 각 전문 분야 직원 9명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세밀하게,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개국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님, 이종찬 전 국정원장님, 권영길 전 의원님을 상임고문으로 모시고, 여러 전문 분야에서 고문·자문위원 그리고 해외자문위원 등 200여 분을 모셔서 꼼꼼하게 차질 없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달 말까지 '증자 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자금 확보 측면도 있지만, 더 많은 일반 국민들이 저희 '통일TV'에 참여해 외연을 넓히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 '통일TV' 증자 자본금은 얼마며, 최소 및 최대 청약금액은 얼마인가? 
"2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소 청약은 100주 20만 원으로, 한 분이 최대 1억 원을 넘지 않도록 결정했습니다. 어느 특정한 세력이나 특정한 분에게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함입니다."

- '통일TV' 주주에 대한 배려와 배당금 예상 지급시기는?
"'통일TV 주주님들에게는 북녘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가능한 최우선으로 알려드릴 계획입니다. 세부적인 방안은 세워놨지만, 지금 단계로서는 밝힐 수가 없다는 점을 양해바랍니다.

그리고 저희 '통일TV'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 점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대표를 맡고 있는 저로서는 상당히 신중할 수밖에 없는 예상이지만 최소한 1년 뒤부터는 이익을 발생시켜서 주주들에게 적절한 배당을 해드릴 계획입니다. 미리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안정적으로 '통일TV'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도 있습니다."

- '통일TV'에서도 상업광고를 할 예정인가?
"물론입니다. '통일TV'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운영됩니다. 앞으로 북쪽 관련된 사업이나, 제품 등이 제재가 풀리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그 수요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통일TV'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척 많고 크리라 봅니다."
  
"대한민국 현행법 준수하는 '통일TV'가 될 것" 
 
 만경대소년궁전 학생들이 공연을 마치고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도, 지휘자도 학생이었다(2019. 5. 9.).
▲  만경대소년궁전 학생들이 공연을 마치고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도, 지휘자도 학생이었다(2019. 5. 9.).
ⓒ 진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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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TV'에서 주로 다룰 프로그램은?
"저희들이 북녘에서 직접 취재한 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비롯해 남녀노소가 모두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예능성 정보, 평화통일 관련 전문가 강좌 및 대담 그리고 북녘 제작 영화·드라마와 기타 문화 영상물, 남북 스포츠 교류 관련 영상물 등 양쪽 국민들이 원하고, 서로 알고 싶어 하는 분야의 콘텐츠를 선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지금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점을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아래서 '통일TV'가 가능할까? 이런 질문도 합니다. '통일TV'라고 국가보안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더욱 철저하게 현행법을 준수할 것입니다. 저희 '통일TV'를 지켜보는 눈이 얼마나 많겠습니다. 다양한 정치적 생각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서 가장 확실한 것은 법을 준수하는 일입니다. 법 이상의 정치적 해석을 저희 '통일TV'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예민한 국가보안법을 지키는 '통일TV'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런 프로그램을 방영할 것입니다. 절대로 다른 쪽의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될 방송을 할 계획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저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앞으로 '통일TV' 평양사무소도 설치할 예정인가? 
"저희가 하고 싶다고 모두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통일TV' 평양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은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이 점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우리 정부와 북쪽 당국과 충분히 협의를 해서 진행하게 될 겁니다."
 
 평양 대성백화점  ‘즉석료리’ 코너에서 여성조리사가 휴일을 맞아 찾은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2019. 5. 5.).
▲  평양 대성백화점 ‘즉석료리’ 코너에서 여성조리사가 휴일을 맞아 찾은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2019.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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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호텔’ 2층 연회장에서 일본 오사카 지역 30여 명 ‘재일동포조국방문단’ 일행이 3박4일 동안 북녘 가족친지들과 상봉한 뒤 마지막 날 여흥을 즐기고 있다(2019. 5. 2.).
▲  ‘평양호텔’ 2층 연회장에서 일본 오사카 지역 30여 명 ‘재일동포조국방문단’ 일행이 3박4일 동안 북녘 가족친지들과 상봉한 뒤 마지막 날 여흥을 즐기고 있다(2019. 5. 2.).
ⓒ 진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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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녘에서도 남의 '통일TV'와 같은 방송국이 개설되리라 보는가?
"그것은 북쪽 당국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단지 우리나라에서 '통일TV'를 세워서 방송하는 것이 평화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통일TV' 개국 준비의 애로사항 및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여러 가지 정치적인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 듯이 보여서 그런지 현재 저희 '통일TV' 증자 운동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단지 약간의 소강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상황일 때 더 필요한 것이 '통일TV'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정치적 판단의 우려를 저희 '통일TV'는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통일TV'가 될 것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대담 그 자리에서 '통일TV' 신주청약서에 서명했다. 그가 시작한 '통일TV'가 통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의 지름길이 되길 기원하면서 가뿐한 걸음으로 원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통일TV 청약 안내문
▲  통일TV 청약 안내문
ⓒ 통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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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통일TV’ 청약관련 문의 전화 및 홈페이지 : 02-337-3991 / www. tongil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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