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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반파, ‘어뢰폭발 가능성은 0%’

<천안함 9주기 인터뷰> ‘천안함 살인사건’ 저자 이광섭
광주=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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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5  22: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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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살인사건...>의 저자 한민국 박사가 천안함 9주기를 앞둔 23일, 처음으로 <통일뉴스>와 이광섭이라는 실명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송정미]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수밀문 폐쇄’ 주장,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 좀더 길게 한다면 ‘좌초 후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다. 여기서 핵심은 수밀문 폐쇄가 반파의 직접적 원인이고 46 장병들의 사망 원인이라는 거다.”

올해 1월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 천안함 살인사건의 10가지 물리적 증거>(밥북 출판사)를 출간한 ‘한민국’ 심리학 박사가 천안함 9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이광섭’(54)이라는 실명으로 23일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천안함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경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PCC-772)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국가 안보차원의 중대한 사태’라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이를 근거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대북 제재인 5.24조치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북한제 ‘1번 어뢰’의 피격으로 발생한 ‘버블제트’에 의해 천안함이 반파됐다는 국방부의 공식 발표는 숱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 한민국, 『한사람을 기다리며 천안함을 고발하다 1.2』, 밥북, 2015.7.
한민국,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 천안함 살인사건의 10가지 물리적 증거』, 밥북, 2019.1.

앞서, 2015년에도 <한사람을 기다리며 천안함을 고발하다>(밥북 출판사)를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한 바 있는 그는 “조작이 불가능한 10가지 물리적 증거를 가지고 인과관계를 검토해본 결과 잠수함 충돌설은 두 개 내지는 세 개 인과관계가 성립하고, 어뢰 폭발은 두 가지 정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며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가능성이 0%”라고 논박했다.

그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천안함의 반파 모습, 우리가 경시하는 생존자들의 상태, 사망자들의 상태”라며 △반파 후 함수가 오랫동안 표류하고, 함미가 곧바로 가라앉았다 △함미의 장병들은 대부분 큰 상처 없이 익사하였다 등 ‘10가지 물리적 증거’의 기준을 내세웠다.

<10가지 물리적 증거>

⚫증거1. 천안함의 좌현보다 우현의 손상이 훨씬 크다.

⚫증거2. 천안함은 중간보다 조금 뒤쪽이 절단되었다.

⚫증거3. 천안함의 우현하단이 수축하고, 좌현상단이 팽창하였다.

⚫증거4. 스크루 프로펠러가 전진모드에서 우현 프로펠러들이 안쪽으로 휘어졌다.

⚫증거5. 반파된 함수가 우현으로 넘어갔다.

⚫증거6. 반파된 함미와 파편들이 함께 있다. ☞ 반파와 동시에 함미가 가라앉은 증거

⚫증거7. 반파 후 함수가 오랫동안 표류하고, 함미가 곧바로 가라앉았다.

⚫증거8. 함수의 장병들은 큰 상처 없이 바닷물에 젖지 않고 생존하였다.

⚫증거9. 함미의 장병들은 대부분 큰 상처 없이 익사하였다.

⚫증거10. 천안함의 함미가 좌초하였다.

이같은 물리적 증거들에 부합하는 유일한 사고 원인은 ‘좌초 후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라며 “좌초가 원인이라기 보다는 좌추 후에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데 거기서 수밀문 폐쇄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반파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결과론적이지만 함장과 국방부의 판단착오”라는 것.

그는 2015년 첫 책을 낸 뒤 ‘천안함 살인사건’으로 단정하고 천안함 함장과 국방부를 고소했지만 모두 기각당했고, 지난해 3월에는 ‘천안함 46장병에 대한 함장과 국방부의 살인혐의 조사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다음카페 ‘천안함의 재구성: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http://cafe.daum.net/warship772)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사실은 지금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지금 정부에서 전 정권 국방부의 입장을 수용한다니까 이번 정부도 사실은 책임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짚고, “그래도 가능성 있다 생각하는 것은 (신상철) 천안함 재판부”라며 “TOD(열상감시장비)와 CCTV 조작을 지양하고 원본 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결국 9주기가 됐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죽은 자도 원통하고 산 자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라며 살아남은 장병들에게 “이제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라고. 당신들이 경험한 참혹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 국민들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당신들을 따뜻하게 가슴으로 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당부했다.

천안함 사건이 5년이 흘러도 진상일 밝혀지지 않자 2015년 생업을 포기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매달려 왔다는 이광섭 박사는 ‘한민국’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본명으로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피해가 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와 국방부의 범죄행위에 맞서 싸운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심리학 박사이자 임상심리전문가인 그는 인터뷰 내내 ‘물리적 증거’ 보다는 자신의 ‘심리적 추론’이 앞서나가지는 않나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결론에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도 살아남은 장병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소지는 없는지 조심스러워했다.

다음은 천안함 9주기를 앞두고 23일 오후 광주광역시 전남대 인근 한 카페에서 이광섭(필명 한민국) 박사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죽은 자도 원통하고 산 자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 이광섭 박사와의 인터뷰는 23일 오후 광주광역시 전남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사진 - 송정미]

□ 통일뉴스 : 책을 두 차례 냈는데, 두 번 다 ‘한민국’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유가 있나?

■ 이광섭 박사 : 솔직하게 말하겠다. 내가 생각할 때, 본명으로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피해가 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한민국이 대한민국의 한민국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와 국방부의 범죄행위에 맞서 싸운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한민국이라는 필명을 쓰게 됐다.

필명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검찰이나 법원이나 청와대나 여러 군데서 내 본명을 알고 있다. 최근에 연락을 취하고 있는 해군 감찰반도 내 본명을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핸드폰 실명 확인을 하고 카페에 가입했다. 천안함 활동을 위해서 수많은 카페에 가입했는데 거기에도 내 본명이 다 들어가 있다.

□ 먼저, 천안함 사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계기가 있다면?

■ 그건 내 캐릭터하고도 좀 관련돼 있는데, 내가 충동적인 면이 좀 있다. 1주기 때 우연히 TV를 보는데 (천안함) 함장이 나와서 북한에 대해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나도 화가 나더라. 자신의 부하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저렇게 TV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뻔뻔하게 북한의 책임 운운하고 보복을 운운하는 듯한 것을 보고 내가 너무 분노했다.

그래서 그날부로 싸우려고 했는데, 집에서 아이들한테 이야기 하니까 아이들이 말리더라. 하지 말라고. 우리집은 대체 어떻게 되느냐고. 그래서 5주기까지 보자. 5주기까지도 천안함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 아빠가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5주기가 됐는데도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그때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5주기 때 천안함 장병 묘소를 참배하고 그 자리에서도 스스로 다짐했다. 억울한 죽음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맹세했다. 아이들과의 약속, 46 장병들에 대한 맹세를 지키는 차원에서 이것을 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누구나 천안함의 의혹이 밝혀지기를 바랄 텐데, 생업을 접고 나선 것은 특별해 보인다. 수입쇠고기, 세월호 등 여러 사회적 현안들이 많았는데 유독 천안함 사건에 뛰어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쇠고기도 마찬가지고 세월호도 마찬가지고 남들이 대부분 알고 투쟁을 하고 그러는데 내가 나설 이유가 없는 거다.

그러나 천안함 같은 경우는 내가 볼 때 적어도 진실을, 본질을 전혀 보지 못하고 엉뚱한 문제제기나 엉뚱한 논쟁 속에 빠져 해결은 멀어지는, 이런 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사실은 생존자들이 다 알고 있다. 그들은 알고 있지만 대부분 거짓말을 하고 침묵하고 있는데, 그 외에 진짜 천안함의 진실을 가지고 문제제기 한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알렸다.

□ 천안함 관련 책을 2015년에 두 권, 올해 한 권을 냈다. 천안함 사건 9주기가 되는데, 개인적 소회는?

■ 매우 안타깝다. 사실 죽은 사람도 너무 원통하고, 너무 처참하게 죽었다. 함미에 갇혀서 천천히 그것도 시간이 걸려서, 자기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죽었다.너무도 원통한 이유는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죽음을 당하고, 함미에 갇혀서 위기상황에 빠진 자신들을 아무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과정에서 너무도 참혹하고 너무도 원통함 속에서 죽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게 안타깝다. 그리고 또 죽어서도 산 사람을 위해서 다시 매장당하는, 두 번 죽임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죽음에 책임있는 사람이 다시 어떻게 보면 매장해 버린 거다. 진실이 알려지지 않게 바닷 속으로 매장해 버린 거다.

산 사람도 안타깝다. 언론에서 보면, 사실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 있다.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고도 웬만해서는 그 고통을 대개는 극복을 하는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많은 경우에는 내 가슴 속에서 그걸 처리를 못하는 거다.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유는 대부분이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그걸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두니까 이 부분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작용하는 거다. 자기가 죽음의 처참한 것을 목격한 것도 있지만, 그 처참한 목격 속에서 내가 아무 것도 못했다는 죄의식 속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이것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날의 진실, 가슴 속에 있는 참혹한 것을 그대로 표현해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9주기가 됐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죽은 자도 원통하고 산 자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 심리학 박사로 직업도 심리전문가인 것으로 아는데, 전문가로서 보더라도 돌아가신 분들도 원통하게 돌아가셨을 것이고, 살아있는 이들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을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면 직접 이들을 만나서 상담치료를 해볼 생각은 없나?

■ 그런 부분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가슴을 열기 전에는 사실 어려운 거다. 가슴을 열지 않고 지금 여러 가지 문제로 복합적인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혼란에 빠지고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슴을 열기 위해서는 그런 조건이 만들어져야 된다는 거다. 사회적으로 천안함의 진실이 어느 정도 공론화 돼 문제가 해결되고 그런 해결 과정 자체가 그들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과 같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 이광섭 박사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사진 - 송정미]

□ 개인적으로는 심리전문가로서 전체도 풀어야 되고 개인도 풀어야 되는데, 우선 전체적으로 풀고 있다고 보면 되나?

■ 일단 사회적으로 풀어야하고,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 그들에 대한 지지, 의료적 지원이나 나아가서는 생활이 어렵다면 경제적 지지까지도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계가 있고, 그런 부분까지 국가가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이 말을 못하는 것도 국가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 2015년에 최초로 책을 발간하고 천안함 함장과 국방부를 고소도 하고, 여러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 올해 초에도 다시 책을 발간했는데, 반향은 어땠나? 큰 반향을 기대하지 않았나?

■ 그 부분은 조금 다르다. 내가 심리학자지만, 사람들은 흔히 결국은 증언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증언 안 한다. 그들은 거기에 대한 이유가 있다. 천안함 사건을 있는 그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심리적 관점에서 보니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책이나 글에서는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언급을 안 한다. 추론적인 영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반향이나 이런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큰 반향이 있으리라 예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게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 불편하다. 밝혀지지 않기를 원한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민들 다수도 마찬가지다.

□ 전문가로서 그런 심리적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니 그런 측면도 조명이 필요할 것 같다. 두 번이나 책을 냈지만 쉽게 밝혀지지는 않을 걸로 봤다는 건가?

■ 그렇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책을 낼 때도 사실은 지난 번 책 냈던 사장이 자비로 출판하는데, 내지 말자고 하더라. 왜냐하면 이미 끝났다고, 이미 천안함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표현을 하더라. 출판사 사장이니까 천안함 관련 책들 판매 현황을 알 텐데, 거의 안 팔린다고.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내 의무감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낸 거다. 마지막으로 한번 싸워보겠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출판을 하게 됐다. 그래서 큰 반향 일으킬 거라 생각은 그렇게 안했다. 약간 이번에 자극적인 제목을 줬지만 역시나 예상한 바와 같이 뭐 큰 반향이나 이런 것은 사실 없다.

□ ‘좌초 후 반파’, 폭발이나 충돌이 없는 좌초 후 반파라고 큰 틀에서 추론하고 있는데, 정부 쪽은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 어떤 분들은 충돌이나 잠수함 이야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배제된다고 봐도 맞나?

■ 일단 질문에서 ‘좌초 후 반파’라고 했는데. 제 주장은 좌초 후 반파가 아니다. 큰틀에서 보면 좌초후 반파는 반파의 직접적인 원인이 좌초라는 가정이 내포돼 있다. 그런데 나는 좌초가 원인이라기 보다는 좌추 후에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데 거기서 수밀문 폐쇄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반파가 이루어졌다는 거다. 그래서 굳이 큰틀에서 짧게 표현한다면,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수밀문 폐쇄’ 주장,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 좀더 길게 한다면 ‘좌초 후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다.

여기서 핵심은 수밀문 폐쇄가 반파의 직접적 원인이고 46 장병들의 사망 원인이라는 거다. 그리고 책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사실은 잠수함 충돌이나 정부의 어뢰폭발 이런 것은 1%의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천안함의 반파모습”

   
▲ 이광섭 박사는 ‘10가지 물리적 증거’에 입각해 사고원인을 ‘좌초 후 수밀문 폐쇄의 의한 반파’로 특정했다. [사진 - 송정미]

□ 10가지 물리적 증거에 비추어볼 때 논리정합성이 없다는 건가?

■ 논리의 기본이다. 인과관계에서 선행사건 A가 B의 원인이라면 A와 B는 인과관계가 성립돼야 한다. 결과들이 여러 가지 있으면 A와 B의 모든 인과관계가 성립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에 있어서는 인과관계가 모두 확립되는 게 사실 없지 않나.

10가지, 그것도 조작이 불가능한 10가지 물리적 증거를 가지고 인과관계를 검토해본 결과 잠수함 충돌설은 두 개 내지는 세 개 인과관계가 성립하고, 어뢰 폭발은 두 가지 정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가능성이 0%라는 거다. 조작이 불가능한 모든 물리적 증거와 인관관계가 성립하는 원인만이 진실인 거다. 이것은 근대 논리학, 근대 합리론이 정립한 논리의 기초로 보고 있다.

□ 조작 불가능한 객관적 10가지 물리적 증거에 부합하느냐로 접근한 건데, 가장 논리적인 접근이랄 수도 있지만 거꾸로 어떤 결정적인 구체적인 물증이나 현실에서 증명된 것은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가능할 것 같다.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객관적 증거로 TOD(열상감시장비)에서 반파 장면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 반파장면으로 원인을 알 수 있나? 거기에도 복잡한 추론이 필요하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이 뭐냐? 조작이 불가능한 천안함 반파 모습이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 핵심이 아닌 것, 부차적인 것, 이걸 기본적으로 구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핵심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부차적인 문제, 핵심이 아닌 문제, 이런 사소하고 자잘한 것 가지고 이야기하고 논쟁하고, 이런 것을 볼 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거다. 여기에 대해서 실제 뭐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여기 시신이 있다. 옆에 칼이 있다면, 칼로 시신을 죽였을 거라고 추정하는 거다. 그러나 칼은 사실은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신의 모습이다. 시신이 만약 동일한 칼 자욱이 없고 망치로 맞은 흔적이 있다면 칼은 아무 관계가 없는 거다. 어뢰도 마찬가지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시신은 사망 원인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다.

시신보다도 더 정확한, 조작이 불가능한 게 사실은 천안함이다. 천안함은 조작이 불가능하다. 시신이야 조작도 가능하고 결과도 조작할 수 있겠지만 천안함은 너무나 거대해서 개인이, 집단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천안함의 반파 모습, 우리가 경시하는 생존자들의 상태, 사망자들의 상태,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거고 가장 본질적인 거다. 가장 객관적인 거다. 여기에 근거해 내가 주장하는 거다. 그래서 결정적인 게 없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렇지만 사람들은 결정적 증언이나 물증을 내놔라 이런 식이다. 수밀문 폐쇄로 인해 천안함이 ‘사선 상태’에서 반파됐다는 게 핵심 주장이고, 거기에 근거해 함장과 국방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선박사고시 침수가 되거나 하면 수밀문을 폐쇄하는 게 매뉴얼에 있나?

■ 그건 내가 정확히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볼 때 수밀문은 존재 이유가 건물로 보면 방화벽이다. 건물에서 불이 났을 때 방화벽을 차단하고, 차단하기 전에 사람을 빼야 한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거다.

함선에서 수밀문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폭격이나 어뢰공격이나 여기에서 곧바로 배가 가라앉지 않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대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대피 과정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밀문 폐쇄의 기본적인 원칙이 사람들을 대피시키면서 수밀문을 폐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볼 때는 천암함 같은 경우는 함미에 있는 사람을 함수로 이동시키면서 차례대로 수밀문을 폐쇄시켰어야 했다. 수밀문의 기본적인 원칙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심리학자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좌초했을 때 혼란이 있고 기본적으로 수밀문을 차단할 수 있다. 차단하고 그때 판단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함미의 장병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CCTV로도 봤을 거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차단한 상태로 있었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적어도 좌초에서 반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 천안함이 반파되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제시했다. 이광섭 박사는 TOD 관측병들의 진술과도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출처 - 다음카페]
   
▲ 수밀문이 닫힌 상태에서 함미에 물이 차 '사선 상태'가 된 천안함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반파됐다는 것이 이광섭 박사의 논리적 추론이다. [자료출처 - 다음카페]

□ 그때 퇴선 명령을 내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이 차오르면 퇴선명령을 내려 함미 장병들도 일단 배 밖으로 탈출했을 것이라는 거다.

■ 책에서는 말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들이 왜 그러면 잘못된 판단이지만 수밀문을 차단한 상태에서 북상을 했느냐? 내가 볼 때는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런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함미가 좌초해서 물이 들어올 때, 최고속도로 간다면 배가 가라앉지 않고 뜬다.

문제는 갑작스런 상황이 전개된 것도 맞다. 백령도 근해에서 좌회전을 하면서 정지했는데 우측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좌회전을 하면서 우측으로 넘어가면서 정지하니까 그때부터 갑작스럽게 상황이 커져 버린 거다. 빨리 가던 추진력이 사라지면서 함미가 가라앉게 되는 거다.

이 상황에서는 수밀문을 열어야 할지, 그대로 있어야 할지 판단이 어려운 면이 있다. 사실 함미가 가라앉은 위기상황에서 수밀문을 열고 함미의 장병들을 탈출시키기는 어렵다. 함수의 장병들도 함께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이 오기 전, 바로 천안함의 좌초 직후에 함장은 함미의 장병들을 대피시키면서 수밀문을 차례대로 폐쇄시켜야 했다. 그리고 또 백령도 방향으로가 아니라 사실은 대청도 방향으로 바로 해안으로 대피했어야 한다. 결과론적이지만 함장과 국방부의 판단착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TOD나 CCTV 원본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광섭 박사는 더이상의 저술 활동은 필요하지 않다며 TOD나 CCTV 원본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 송정미]

□ 1월 책 출간 이후 새롭게 추론이 진전되거나 새로 발견된 사실, 또는 책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있다면?

■ 그 이후 새로 발견된 사실은 없다. 이번 책은 새로운 내용이라기 보다는 추가된 내용이 있지만 기본적인 주장, 골격은 2015년에 출간한 책에 기본적으로 내용들이 다 있다. 2015년 책은 두 권이고 사람들이 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좀 물리적 증거 중심으로 간략하게 범죄를 밝혀보자 해서 이번에 책을 쓴 거다.

□ 유일하게 천안함 관련해 진행 중인 신상철 씨 재판에 많은 증인들이 법정증언을 했다.

■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왜 증언을 하지 않는가. 그런 부분들은 상당히 심리학적인 부분과 관련돼 있다. 생존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목격자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도 증언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심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추론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 이후에 이 사안이 어떻게 풀려나가야 한다고 보나?

■ 쉽지 않은 문제다. 내가 함장과 국방부를 2015년에 살인혐의로 고발했다. 그런데 기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함구했다. 사실은 검찰이나 수사기관이든 정부기관이든 기본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된다.

사실은 지금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지금 정부에서 전 정권 국방부의 입장을 수용한다니까 이번 정부도 사실은 책임이 있게 되는 거다. 이상적으로 보면 정부에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렵다.

그래도 가능성 있다 생각하는 것은 천안함 재판부다. 그런 의미에서도 신상철 씨 재판이 중요하다. 거기서 가장 먼저 TOD와 CCTV 조작을 지양하고 원본 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TOD나 CCTV 시간이 다 조작돼 있다.

TOD는 상단과 하단을 잘라서 검게 처리하고 그 위에 다시 뭘 쏘아서 시간이나 방위각을 표시해서 그걸 다시 합친 거다. 왜 이리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TOD 동영상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공개했겠나. CCTV도 마찬가지다. CCTV원래 화면에 시간이 포함됐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잘라서 따로 제시하지 않나. 그게 뭐냐? 왜 시간을 따로 분할을 해서 다시 붙여서 이런 식으로 조작을 하나?

그걸 천안함 재판부에서 걸고 넘어져야 한다. 사실 국방부가 조작된 증거를 천안함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당연히 범죄행위다. 신상철 씨 측에서 TOD나 CCTV 원본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고소도 해보고 청와대 국민청원도 해봤는데, 이후에 저술이든 활동 계획이 있나?

■ 저술활동의 계획은 없다. 사실 저술이 더 이상 필요 없다 생각하는 것이, 2015년 책과 이번 책으로 국방부가 자행한 범죄는 완전히 규명됐다고 생각한다. 이걸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강연이라든가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하고, 토론회도 참여하고 이렇게 하고 싶다. 그런데 이제 분위기가 그렇게 요구하는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 하고 싶은,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마지막으로 천안함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라고. 당신들이 경험한 참혹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 국민들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당신들을 따뜻하게 가슴으로 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수정, 26일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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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정치스타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3/26 10:38
  • 수정일
    2019/03/26 10: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4.27시대연구원의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 맛보기(1)

4.27시대연구원이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성급 다가온 북한(조선)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돕고자 올 상반기 중에 (가칭)<북 바로알기 100문100답> 단행본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맛보기로 몇 꼭지를 민플러스에 공개하오니 많은 관심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첫 순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스타일에 관한 것입니다. [편집자]

[문]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 스타일, 국정운영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파격(破格)’이 아닐까 싶은데요. 새것에 민감한 젊은 지도자이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존 관행이나 형식에 얽매지 않는 행보가 두드려진다고 하겠습니다.

가까운 예로는 이달 중순 치러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북의 최고지도자가 1948년 정권 수립 이래 처음으로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빠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북의 공식 설명이 없어 추측만 가능한데 아마도 형식주의를 싫어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각 지역 선거구에서 뽑는 만큼 실제 지역을 대표할 인물을 뽑는 게 맞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요? 물론 다음달 14기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전 인민의 대의원’으로 선출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지켜볼 일입니다. 

그 직전 있는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김 위원장의 서한 역시 놀랄만합니다. 최고지도자(수령)의 위대성을 교양하는데서 나타난 ‘신비화’ 경향을 꼬집었습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지요. 김 위원장은 서한에서 “위대성 교양에서 중요한 것은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령도자라는데 대하여 깊이 인식시키는 것”이라며 “만일 위대성을 부각시킨다고 하면서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위대성 교양 역시 인민의 눈높이에 맞게 ‘진실’에 근거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수령의 사상리론도 인민들을 존엄높이 잘살게 하기 위한 인민적인 혁명학설이고 수령의 령도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그 힘을 발동시키는 인민적 령도이며 수령의 풍모도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고 인민에게 멸사복무하는 인민적 풍모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생활적으로 알게 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앞서 신년사 발표에서의 잇단 파격도 눈길을 끌었지요. 
올해 1월1일 신년사를 집무실 소파에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듯 발표한 것도 이채로웠지만 사실 더 놀라웠던 건 두 해 전인 2017년 신년사였습니다. 
그는 조선중앙TV로 전국에 중계된 신년사 말미에 “또 한해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나를 굳게 믿어주고 한마음 한뜻으로 열렬히 지지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운을 떼곤 “언제나 늘 마음뿐이였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반성과 다짐을 밝힌 건데요, 이 역시 전례 없던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파격은 내치(內治)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더 두드러졌습니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기억하겠지만, 남북 정상이 11년 만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만난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첫 악수를 나누면서 김 위원장이 건네 화제가 됐던 말입니다. 문 대통령이 분계선을 넘어 방남하는 그에게 “나는 언제쯤 (북에)넘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즉석에서 분계선 북쪽으로 함께 건너갔다 오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어 판문점 남쪽 평화의집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선 점심식사를 위해 평양에서 냉면을 준비해 온 사실을 알리다가 “(평양이)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하고 말해 첫 상봉에 긴장된 회담 분위기를 일순간 누그러뜨리기고 했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이후 9월18~20일 평양 정상회담은 파격의 절정이었습니다. 
남쪽 정상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도 처음이고, ‘9월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이튿날 저녁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함께 관람하고 문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 앞에서 직접 공개 연설한 것도 처음입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네요. 
김 위원장은 또 리설주 여사와 함께 이날 점심(옥류관)과 저녁(대동강수산물식당) 모두를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날 백두산 산행도 마찬가지지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파격은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6.12싱가포르 정상회담 전날 밤 예정에 없던 싱가포르 쥬빌리 다리 산책은 물론, 지난 2월27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중국대륙을 종단하는 4500km 기차여행도 그렇습니다. 또 두 차례나 현장 미국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확대정상회담 직전 기자가 “비핵화할 것이냐”고 물은데 김 위원장이 “그럴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능란하게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의 대답”이라고 감탄하기도 했지요. 북의 최고지도자가 미국 기자의 즉석 질문에 답변한 건 처음입니다. 
잇단 김 위원장의 파격적인 외교행보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4.27 판문점회담 이후 4차례 중국 방문과 싱가포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및 베트남 방문 등 숨 가쁘게 일정을 이어왔지요. 

이런 김 위원장의 파격 행보들은 어쩌면 그가 집권한 때부터 예견됐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돼 공식 집권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012년 5월초 평양 만경대유희장 현지지도에서 그가 격노했다는 사실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보도블록 사이 잡풀을 뽑으며 “일꾼들의 눈에는 이런 것이 보이지 않는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는가”라고 엄하게 질책했다는 내용인데요, 선대 최고지도자들의 현지지도 보도에선 없던 양상입니다. 일부러 공개한 거겠는데요, 김 위원장이 “이 기회에 (일꾼들의)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을 똑바로 간직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형식주의와 무사안일에 경고장을 날린 셈이지요. 

그리고 두 달 뒤인 7월초 북의 조선중앙TV와 로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을 관람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와 한 여성이 나란히 선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했습니다. 부인 리설주 여사였습니다. 리 여사의 신원은 10여일 뒤 조선중앙TV 등이 김 위원장의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석 소식을 전하며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에 나오시였다”고 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 또한 선대 지도자들 시대엔 전례 없던 것이었습니다.

4.27시대연구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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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강공책, 과연 성공할까?

[아침햇살18]미국의 대북강공책, 과연 성공할까?
 
미국에게는 자기 정책을 실행할 방도가 없다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9/03/26 [09: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미국이 대북강공책을 벌이고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에 강한 압박을 넣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3월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정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의 개념은 “영변 핵시설 등 모든 핵연료 주기와 주요 부품과 핵분열 물질,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며,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영구히 동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핵연료 주기(Nuclear Fuel Cycle)란 우라늄 광석을 핵연료로 만들고,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폐연료를 재처리하거나 저장소에 저장하는 전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 원료를 추출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FFVD란 현존하는 핵무기에 더해 미래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도 없애며, 미사일은 물론 북한이 인정한 적도 없는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영구 동결까지를 말한다. 

 

또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더 밝은 미래는 검증된 비핵화 뒤에 와야 한다”면서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제재 강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 입장을 강조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 자주시보

 

동시행동도, 단계적 해법도 버리고 일방적으로 북한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미국의 태도는 협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본질에서 대북적대정책에 기초한 강공책이며 리비아처럼 무장해제시켜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은 협상을 계속 하려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북한을 헷갈리게 만들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위장술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강공책은 과연 성공할까? 상대를 적대시하고 와해시키겠다면 실행 방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다른 적대국가들, 구 소련, 중국, 북한,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을 상대로 써먹은 수법들을 보면 크게 네 가지 방도가 있었다. 

 

첫째는 정치사상적으로 상대를 분열시키고 내부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군사력으로 상대를 위축시키고 직접 공격해 초토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경제적 압박으로 내부 혼란을 유도하고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다. 넷째는 외교적으로 철저히 고립시켜 외부의 도움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상이 미국이 지금껏 사용해온 전통적 수법이며 북한에게도 이런 방법을 사용할 텐데, 과연 유용한지 살펴보겠다. 

 

2. 정치사상적 공작

 

정치사상적 공작의 핵심은 지도부와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지도부가 국민의 지지를 잃으면 국정 운영이 어려워지고 경제, 국방 등 사회 전 영역이 취약해지며 심각한 사회혼란에 이어 정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국민 속에서 국가와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떨어져 군사, 경제적 압박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 미국은 북한 지도부와 체제를 비난하는 대북방송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공작원과 탈북자를 동원해 직접 침투하거나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식으로 사회혼란을 유도해왔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모습은 미국의 정치사상적 공작이 무용지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와 국민 사이의 일심단결은 파괴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지금 해외 언론 어디서도 북한 내부가 분열하고 갈등한다는 소식은 들어볼 수 없으며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북한 국민의 지지가 탄탄하다는 얘기만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관람해 화제를 모았던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보자. 학생부터 전문 배우까지 무려 10만여 명이 출연해 1시간 20분 동안 진행하는 이 공연은 몇 달 동안 준비와 연습을 거친 대작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한 공연은 원래 내용과 크게 달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북측 고위 관계자가 “9·9절에 봤던 것과 비교해보면 내용이 70% 바뀌었다, 9·9절 뒤로도 5차례 정도 대집단체조를 했는데 나머지 닷새 동안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는지 내가 봐도 신기하다”고 말한 이야기를 전했다. 공연 총연출을 맡았던 김목룡 북한 피바다가극단 총장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성원들을 배려해 직접 수정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몇 달 동안 연습해야 하는 공연을 5일 만에 해낼 수 있으려면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철저한 신뢰와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공연 장면     © 자주시보

 

지난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국 대통령이 중요한 회담을 위해 해외에 나간 사이에 청문회를 열어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북한은 자기 지도자가 먼 길을 떠났다며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 오른 최고지도자에 대한 그리움과 충정을 안고 위훈을 떨쳐나가자”고 호소했고 “온 나라는 불도가니마냥 끓고 있다. 각지의 일꾼들이 현장에 좌지를 정하고 화선식 지휘를 하고 있으며 공장, 기업소들과 중요대상 건설장들, 사회주의 협동벌과 과학연구기지, 교육기관을 비롯하여 그 어디에서나 영도자에 대한 그리움이 무서운 힘으로 폭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미국의 정치사상적 공작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3. 군사적 수단

 

미국이 즐겨 사용하는 군사적 수단은 크게 3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강한 군사적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해 상대가 극도의 긴장과 경계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람도 극도의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자율신경에 혼란이 조성되고 면역력이 떨어져 건강을 크게 해친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극도의 긴장과 경계심이 지속되면 국가 체계가 정상가동을 못하고 사회 전반에 피로감이 쌓여 마비 현상이 온다. 실제로 미군은 정찰기가 북한을 지속적으로 정찰하거나, 한미연합훈련을 예고 없이 장기간 지속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작전계획 5030을 작성하였다. 연중 거의 쉬지 않고 진행하는 한미연합훈련도 이런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는 중소규모의 전투를 통해 상대방을 약화시키고 군사적, 심리적 타격을 주되 전면전으로 나가지는 않는 것이다. 외과수술식 타격, 저강도 전쟁 등이 포함된다. 실제로 미군은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 오시라크(Osirak) 핵시설을 집중 폭격한 사례를 본 따 북한 내 전략 거점만 선별해 정밀 타격하겠다는 작전계획 5026을 작성하였다. 

 

셋째는 전면전인데 이라크처럼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고 리비아처럼 내전으로 위장해 간접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미군은 전면전을 통해 북한 전역을 점령하겠다는 작전계획 5027을 작성하였다. 현재 위의 작전계획들은 작전계획 5015로 통합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런 군사적 수단이 과연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먼저 두 번째 수단인 중소규모 전투의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푸에블로호 사건, EC-121 격추사건, 판문점 도끼사건 등 각종 군사적 충돌에서 미국은 매번 패배하였다. 1994년에는 영변 핵시설만 외과수술식으로 폭격하려 했으나 핵시설 정보도 부족하고 북한의 보복으로 인한 전면전 우려 때문에 포기하였다. 

 

다음으로 세 번째 수단인 전면전의 과거 사례인 한국전쟁을 살펴보자. 정전협정에 서명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1954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나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한 최초의 미군 사령관이 되었다는 부끄러운 이력을 갖게 되었다. 나는 패배감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협정 조인을 끝낸 후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에 빠졌다”고 하였다. 정전협정 당시 미군 사령관이 한국전쟁을 패배했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후로도 푸에블로호 사건 등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미국은 말로만 전면전을 다짐했을 뿐 정작 전면전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검토 결과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소규모 전투나 전면전으로는 미국이 북한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위의 사례들은 모두 북한이 핵개발을 하기 이전 사례다. 당시 북미 사이의 군사적 대결은 전통적으로 북한이 미국에 공세를 취했지만 압도적이진 않은 모습이었다. 지금은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기에 상황도 바뀌었다. 이제는 북한의 공세가 미국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첫 번째 수단인 군사적 압박은 어떨까? 원래 군사적 압박은 북미 사이에 막상막하의 상황이었다. 미국이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면 북한도 국가 전체가 긴장하며 맞대응하였고, 이에 미국도 긴장하면서 훈련을 취소 혹은 단축하거나 조용히 진행(이른바 로우키)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2017년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막상막하의 상황이 북한의 압도적 상황으로 바뀌었다.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직후인 2017년 12월 2일 맥매스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과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크고 시급한 위협은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이라고 말했다. 그 전인 2월 27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첫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미사일 발사, 핵실험이나 연구는 없다”면서 “더 이상 북한의 핵 위협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취임했던 날보다 훨씬 더 안전해졌다는 것을 이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미국 지도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북한의 핵미사일에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하와이를 떠들썩하게 했던 북한 미사일 발사 오보 사태나, 올해 1월 네스트 보안 카메라의 북한 핵미사일 경고 오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라고 선포하였고 지난 3월 6일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꾼대회 참가자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우리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날강도적인 전쟁위협이 무용지물로 된 것”이라고 하였다. 북한 국민들이 즐겨 부르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은 이런 ‘승리자’의 여유를 보여준다. 

 

이처럼 북미 사이의 군사적 대결에서 북한의 우세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압박을 가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없다. 실제로 미국은 그간 한반도 전쟁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 독수리(Foal Eagle),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3대 훈련을 모두 중단했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은 키리졸브 연습의 명칭을 ‘동맹’으로 바꾸고 독수리 훈련을 연중 대대급 규모의 훈련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중단했다고 선언하고 몰래 하는 꼴이다. 

 

실제로 군인들이 훈련을 하면서도 중단했다고 선언하는 상황 자체가 미국에게 수모를 안겨준다. 뭐가 무서워서 훈련을 훈련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름을 바꾸냐는 조롱을 피할 수 없다. 군인과 국민도 열등감, 패배감에 빠져 사기가 떨어진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단을 선언해야만 했다. 

 

북한의 이른바 동창리 미사일 기지 움직임을 이야기하면서도 군사적 대응을 언급하지 못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원래대로라면 ‘만약 미사일을 쏘면 요격하겠다’, ‘정밀 타격을 통해 미사일 발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과거 북한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거나 심지어 인공위성을 발사해도 이런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제재를 강화하겠다는 경고만 할 뿐 아무런 군사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혹시 이미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위협비행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공개할 수 없는 처지다. 

 

4. 경제적 압박

 

보통 미국의 경제제재가 들어가면 웬만한 나라들은 심각한 혼란과 경제 붕괴를 경험하며 굴복하거나 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제재에 북한은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70년 넘게 지속되어 왔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북한 경제는 오히려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도 이겨낸 북한을 경제적 압박으로 굴복시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북한은 처음부터 자립경제노선을 걸어 외부 충격에 면역력을 키워 왔다. 1962년 소련이 자국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 통합 시도였던 코메콘(COMECON: 경제상호원조회의) 가입을 요구했을 때도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고수하며 가입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소련의 경제적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이런 북한의 모습을 미국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도 한국이 그동안 약간의 경제적 압박에도 미국에게 쉽게 굴복해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60년대 황태성 사건을 보자. 박정희 대통령이 친형보다 더 따랐다던 황태성은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자 남북협상을 위해 한국에 밀사로 들어왔다. 그러나 미국에게 민족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 의심을 받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황태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버렸다. 그러자 미 중앙정보국(CIA)이 직접 조사를 한다며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당시는 한미양해각서에 따라 CIA가 지휘하는 미군 502군사정보단이 대공 용의자를 조사하는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주저했다.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을 미국이 조사하고서 남북 사이에 비밀 접촉을 한다고 판단하면 안 그래도 의심받는 처지에서 낭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황태성 인계를 거부하자 미국은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1961년 10월 경 2주 동안 미군에게 황태성을 인계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원조 밀가루를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이 원조 중단을 무기로 한국 정부를 위협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말만 해도 한국 정부는 겁을 먹고 무릎을 꿇는다. 

 

5. 외교적 수단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북한에 대한 고립과 압박을 지금껏 가한 것보다 더 가할 수 있을까? 찾아봐도 특별한 수단이 없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외환경이 점점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지난 3월 20일, 미국이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하는 속에서도 중국의 해상 운송 업체인 보하이페리는 북한 남포시와 옌타이-남포, 다롄-남포 노선 독점 운영권을 골자로 하는 전략적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남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해상 환적 유류 수입의 근거지로 꼽은 곳이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재무부가 중국의 ‘다롄 선 문 스타 국제물류무역’이 남포를 통해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며 제재를 가한 적도 있다. 한 마디로 중국이 미국의 대북제재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오는 5월부터 옌지-평양 항공 노선도 재개하기로 했다.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나온다.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지난 3월 19일 모스크바에 도착, 수차례 크렘린궁을 방문해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조율하고 23일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언론은 조만간 모스크바 혹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러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월 1일 베트남을 공식친선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베트남 사이의 친선협조를 강화하며 특히 경제, 과학기술, 국방, 체육문화예술, 출판보도부문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로 하였다. 

 

물론 남북관계는 앞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승인을 받아 움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이 남북관계 악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대북강공책을 써도 북한이 ‘새로운 길’이나 핵대결로 가지 못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북한이 일시적으로 철수한 것을 보면 미국의 기대는 재론의 가치도 없는 것 같다. 

 

북한은 통일의 첫 번째 원칙으로 민족자주를 꼽는다.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을 기본 원칙으로 합의했다. 이것이 갖는 의의를 잘 알아야 한다. 북한의 정책은 북한이 이야기한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북한은 남북관계도 민족자주를 전제로 한다. 북한은 미국의 연장선 위에서 미국의 정보원 역할이나 하는 한국 대통령과는 대단결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말하는 민족대단결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민족자주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승인이나 기다리는 한국 정부와 대화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 같다. 

 

한편 미국은 외교적 수단에서 여전히 중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초반부터 북한 문제를 자신의 최대 국정현안이라 규정하면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2017년 2월 27일 양제츠 중국 국무위원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북한”이라며 중국의 협조를 촉구했다.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도 2017년 4월 17일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열린 중-미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 등 중-미 현안을 제쳐두고 북한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미국은 심지어 중국과의 무역분쟁조차 북미 대결의 수단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8월 29일 트윗을 통해 “우리와 중국 간의 대규모 무역분쟁 때문에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중국이 북한에 자금, 연료, 비료 및 다른 상품을 포함한 상당한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알고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기자 인터뷰에서도 “북한 문제의 일부는 중국과 무역분쟁 때문에 야기된 것으로 생각한다”며 “중국은 북한으로 가는 경로이며, 93%의 상품과 물자가 중국을 통해서 북한으로 간다”, “(무역전쟁 때문에) 중국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북한과 우리의 관계 측면에선 훨씬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쉽게 말해 북한은 중국의 지원이 없으면 버틸 수 없으니 무역분쟁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이 북한을 굴복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 중-미 정상회담.     © 자주시보

 

볼턴 보좌관은 지난 3월 21일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을 거세게 압박하는 문제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중국은 분명히 북한의 지배적인 무역 파트너이고 북한 대외무역의 90% 이상이 중국과 이뤄진다”며 “우리는 중국과 지금 무역협상 중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단단히 결심한 상태”라고 하였다. 이를 해석하면 중국이 북한을 제대로 압박하면 무역분쟁에서 중국에게 양보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전히 중-미 무역전쟁을 대북압박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바람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일단 중국이 압박한다고 북한이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나아가 중국이 미국의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도 낮다.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무역분쟁에서 중국이 치명적 타격을 입어야한다. 그러나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 무역분쟁에서 타격은 중국보다 미국이 더 크게 입는 듯하다. 미국의 블룸버그는 2017년 1월 24일 무역전쟁을 시작하면 중국보단 오히려 미국 기업의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진단했다. 

 

실제로 무역분쟁 발발 후 미국 기업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중국산 저가 부품을 사용하는 애플, 휴렛패커드 등 미국 정보통신기업과 미 소매업협회는 미 무역대표부에 관세부과 반대 서한을 보냈고 미 정보기술산업위원회도 미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관세부과를 반대했다. 2017년 7월 6일 미국의 1차 보복관세 이후 미국의 대중국 월별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확대되는 현상도 발생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계속 증가했지만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줄어든 것이다. 2018년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06년 이후 사상 최대치인 4192억 달러를 기록했다. 

 

게다가 이탈리아가 3월 23일 중국의 전략 사업인 일대일로에 동참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은 자신의 동맹인 유럽 나라들에 일대일로 불참을 요구해왔다. 미국은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며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 역시 흔들리고 있다. 모나코는 이미 화웨이와 5세대 이동통신 장비 계약을 공식 체결했다. 독일 역시 5세대 이동통신 구축에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독일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안보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겠다며 협박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단호히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중국은 북-중-러 협력체제를 강화할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6. 미국이 강공책에 매달리는 이유

 

지금까지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살펴봤지만 대북강공책이 성공할 방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왜 대북강공책에 매달리는 것일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미국의 패권적 본질이 바뀌지 않아, 즉 욕심을 못 버려서 대북적대정책에 매달리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이 욕심에 눈이 멀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국가도 과욕을 부리면 주관주의에 빠져 자기 생각대로 상대가 움직이며 자신이 이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진다. 그래서 패권주의와 주관주의는 함께 다닌다. 미국은 패권에 집착하면서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해 고장 난 레코드처럼 똑같은 이야기만 무한반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북한의 압박에 초보적인 정책적 지성을 완전히 잃은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지금 미국의 모습은 이성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수단과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이런 것 없이 막무가내로 대북정책을 가져가고 있다. 국가 정책 작성의 초보적인 절차와 기능마저 마비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으로 대북제재 취소를 언급했다가 미국 행정부가 일대 혼란에 빠진 사건을 보면 사정이 매우 나빠 보인다. 전 세계가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정부의 행태를 두고 럭비공 같다, 미치광이 같다는 평을 하는데 실제로 미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을 만나면 공포에 질려 이성이 마비되고 만다. 소련도 무너뜨린 미국이 북한을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이니 충분히 정책적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공황상태의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편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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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6일, 안중근 국장일로 정하자

[박도 칼럼] 안중근 순국 109주년을 맞이하면서

19.03.26 07:38l최종 업데이트 19.03.26 07:38l

 

 뤼순감옥에서 수형번호를 달고 있는  안중근 의사
▲  뤼순감옥에서 수형번호를 달고 있는 안중근 의사
ⓒ <영웅 안중근> / 눈밫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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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전에 두 아우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에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냄)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날로부터 109년이 흘렀다. 하지만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고, 고국으로 반장도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여태 국권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음인가? 아니면 아직도 우리는 친일 민족반역의 무리와 그 후손들의 영향력 속에 살고 있음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추모하는 마음이 부족함인가?

아직 이루지 못한 안중근의 유언
  

 1909년 3월 10일 안중근 의사가 두 아우와 홍석구(빌렘) 신부를 면회하면서 유언을 남기고 있다.
▲  1909년 3월 10일 안중근 의사가 두 아우와 홍석구(빌렘) 신부를 면회하면서 유언을 남기고 있다.
ⓒ <영웅 안중근>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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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년에 즈음하여 이에 통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 당국에게 제의한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내년 2020년 3월 26일을 안중근 의사 국장(國葬)일로 정하여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서 엄숙히, 그리고 성대히 장례를 치르기를 건의한다.

일본정부는 하얼빈 역두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탄(義彈)을 맞고 절명한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를 사건 발생 9일 만인 1909년 11월 4일 도교 히비야 공원에서 국장으로 성대히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나라의 원수를 단신으로 쓰러뜨린 영웅 안중근 의사의 장례는 고사하고, 여태 유해의 존재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다. 이는 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권 국가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1909년 10월 26,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탄을 맞고 쓰러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  1909년 10월 26,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탄을 맞고 쓰러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 <영웅 안중근>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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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 히로부미의 국장 장의행렬
▲  이토 히로부미의 국장 장의행렬
ⓒ <대한국인 안중근>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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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정부는 한일 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서 안 의사의 묘역 위치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일본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라. 그리하여 안 의사 유해 존재 유무를 정확히 규명해주기 바란다.

속 좁은 일본인들이 끝내 자기네는 모른다고 발뺌을 한다면 더 이상 그들에게 구걸도 하지 말고, 미련도 갖지 말자. 그리하여 우리 나름대로 국론을 모아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내년 2020년 3월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성대한 국장으로 안 의사의 고혼을 달래 드리자. 이는 뒤늦게나마 나라의 체통을 살리는 일이요, 후손된 도리를 다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정말 '나라다운 나라'로 만드는 데 앞장서라. 주권 국가로 자긍심도 드높이자.

마지막 행장 160여 일을 뒤쫓다

나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앞둔 지난 2009년 10월 26일 속초에서 연해주로 떠나, 러시아 크라스키노의 엔치야(연추하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00년 전 안중근과 우덕순 의사가 탔던 그 열차를 탔다. 그리하여 2박 3일 동안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쑤이펀허를 경유하여 하얼빈으로 갔다. 거기서 안 의사가 묵었던 숙소와 의거 현장을 답사한 뒤, 계속하여 지야이지스코(채가구), 창춘을 거쳐 2009년 11월 2일 다롄으로 갔다.
  

 안중근 의사의 이승에서 마지막 종착역인 뤼순 역
▲  안중근 의사의 이승에서 마지막 종착역인 뤼순 역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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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롄대학교 역사학과 유병호 교수에게 가장 궁금한 안중근 의사 유해에 대해 물었다.

"안 의사 순국 후 동생들이 형의 시신 인도를 일본 측에 요구했으나 거절 당했습니다. 뤼순감옥소 측의 말로는 안 의사 시신은 사형수 무덤에 매장했다는데, 거기에 매장되었다면 당시 법으로 3년 후에 소각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지요. 다만 안 의사는 특수한 경우이니까 일본이 별도 매장해서 관리하였다면 찾을 수 있을 테지요. 어쩌면 일본 어딘가 깊은 곳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유 교수의 견해도 이제까지 알려진 이상 특별할 게 없었다. 그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특종으로 이미 의사의 유해는 고국으로 반장되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유 교수가 소개해준 현지 다롄 안중근연구회 박용근 회장의 안내로 이틀 동안 다롄 뤼순 일대의 일제강점기 유적지와 뤼순 안중근 의사 유적지인 일본관동지방 법원, 뤼순감옥, 뤼순감옥묘지를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박 회장의 견해도 옹졸한 일본인들이 안 의사를 특별대우하여 유해를 별도로 보관치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날 박 회장과 함께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찾아가는 길옆에는 온통 고층 아파트들이 한창 들어서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뤼순감옥 옛 묘지마저도 곧 개발로 사라질 듯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새 일백 년이 훨씬 지났으니, 뤼순인들 어찌 변치 않겠는가. 게다가 일제가 어찌 안중근 의사의 무덤을 제대로 남겼겠는가.
  
 안 의사 사형 집행 후 묘지로 운구된 뤼순감옥 마차
▲  안 의사 사형 집행 후 묘지로 운구된 뤼순감옥 마차
ⓒ <대한국인 안중근>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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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롄안중근연구소 박용근 회장이 뤼순감옥 묘지를 가리키고 있다.
▲  다롄안중근연구소 박용근 회장이 뤼순감옥 묘지를 가리키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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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다, 하지만 내년엔

박 회장은 뚜벅뚜벅 앞장서 가다가 한 돌비석 앞에 섰다. 흰 비석에 '뤼순감옥구지묘지(旅順監獄舊址墓地)'라고 새겨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꿇어 절을 두 번 드린 뒤 그곳 흙을 두어 홉 비닐 봉지에 담아 비닐주머니에 넣고 하산했다. 아마도 그 흙에는 안중근 의사의 육신과 넋이 그대로 녹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흙이나마 광복 후 백범 선생이 효창원에 모신 가묘에 덮어주고 싶었다.

나는 아흐레간 안중근 의사의 이승에서 마지막 160여 일 행장을 샅샅이 답사한 뒤 2009년 11월 3일 귀국하였다. 귀국 후 곧장 효창원에 있는 안 의사 무덤을 찾아갔다. 백범기념관 홍소연 자료실장이 영접해 주었다. 나는 안중근 의사 무덤(가묘)에 엎드려 고유인사를 드린 뒤, 뤼순감옥 묘지에서 담아 온 흙을 봉분 곳곳에 헌토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안 의사 사형 집행 후 다른 죄수와 마찬가지로 송판으로 된 관에 담겨 마차로 운구, 뤼순 감옥 공동묘지로 갔다고 한다. 그날로부터 벌써 109년이 지났다. 이제 와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수습해 안장해 드리는 일은 생물학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일제가 안 의사의 시신을 그곳에 묻었다면 지금의 뤼순 감옥 옛터에는 안 의사의 육신과 혼이 그대로 녹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안중근 국장에 적극 나서서 국장을 주관해주기 바란다. 이 모든 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앞장서서 먼저 국론을 모은 뒤(가능하다면 북측과는 협의한 뒤) 202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기념일을 국장일로 제정하라. 또한 광화문 광장에서 안중근 의사 국장을 성대한 장례로 치러주기를 간곡히 청원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국장 추념일로 자자손손 길이 계승하자.
 
 기자가 효창원에 있는 안중근 가묘 봉분에 뤼순감옥 옛 묘지에서 가지고 온 흙을 헌토하고 있다.
▲  기자가 효창원에 있는 안중근 가묘 봉분에 뤼순감옥 옛 묘지에서 가지고 온 흙을 헌토하고 있다.
ⓒ 홍소연(전 백범기념관 자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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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품절되었던 박도 지음 <영웅 안중근> (눈빛출판사 刊) 5쇄가 막 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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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주한미군 생화학 장비 검증은커녕 문서조차 확보 못해

존재 인정했던 주한미군 시설도 ‘군사보안’ 이유로 답변 거부...전문가 “검증된 장비” 자체가 어불성설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9-03-24 16:47:59
수정 2019-03-24 16:53:5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미 국방부 합동생화학방어국(JPEO-CBD) 홈페이지 모습.
미 국방부 합동생화학방어국(JPEO-CBD) 홈페이지 모습.ⓒJPEO-CBD 홈페이지 캡처
 
 

국방부가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주한미군의 생화학 관련 시설에 대해 “건설 중에 있다”며 그 존재를 인정했으나, 최근에는 ‘주한미군과 관련한 군사보안’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또 국방부는 주한미군 생화학 실험 장비에 관해 “이미 검증된 상태”라며 ‘앵무새’ 답변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실제로 국방부나 전문기관이 해당 주한미군 시설에 설치된 장비를 검증하지 못했으며, 관련 문서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거세질 전망이다. 

22일 국방부는 주한미군 평택기지에 ‘관련 시설이 언제 완공되었는지와 이에 소요된 우리 국민의 예산 및 규모를 알려 달라’는 기자의 질의에 보낸 공식 답변에서 ”국방부는 주피터 프로그램 추진사항에 대해서는 주한미군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시설에 관한 세부 정보는 주한미군 관련 사안으로 군사보안상 답변이 제한된다”고 밝혔다. 앞서 본보는 단독 기사를 통해 새로 이전한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에 미군의 생화학 관련 실험실 예산이 책정돼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단독] 세계 최대 ‘주한미군 평택기지’에 위험천만 ‘생화학 실험실’도 들어섰다 

국방부는 28일 공식 답변을 통해 주한미군 평택기지 내의 생화학 실험실 존재에 관해 ‘주한미군과 관련한 군사보안’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또 생화학 실험 장비에 관해서도 “이미 검증된 상태”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국방부는 28일 공식 답변을 통해 주한미군 평택기지 내의 생화학 실험실 존재에 관해 ‘주한미군과 관련한 군사보안’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또 생화학 실험 장비에 관해서도 “이미 검증된 상태”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해당 문서 캡처

하지만 이는 해당 실험실의 운영 예산일 뿐, 그 시설은 평택기지가 건설될 때 완공된 것으로 우리 국민의 혈세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짙다. 기자는 질의서에도 “국민의 세금이 90% 이상 들어간 이전 사업”이라며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질의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해당 시설의 존재를 인정하기는커녕 ‘주한미군 관련 군사보안’을 이유로 답변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또 해당 시설 건설과 완공에 들어간 국민 혈세도 전혀 밝히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지난 2015월 ‘살아있는 탄저균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6월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주피터 프로그램 관련 시설은 지금 세 군데, 용산, 오산, 군산은 있고 평택은 건설 중에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전 장관은 “제일 먼저 만든 것은 1998년도에 만들어졌다”면서 “그게 아마 오산기지로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택은 건설 중이냐’는 질의에 재차 “예”라고 답변하면서 “구체적인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저희가 지금 확인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방부가 당시에는 “건설 중”이라고 확인한 것을 현재는 ‘주한미군 군사보안’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한 것이다. 2015년 당시는 새로 이전할 평택기지가 약 80% 가까이 완공 중이었고, 한 전 장관도 이를 인정했지만, 막상 완공되고 운영되는 시점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셈이다.

미국 유타주에 있는 미군 생화학 연구시설인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한 요원이 생물학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자료 사진)
미국 유타주에 있는 미군 생화학 연구시설인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한 요원이 생물학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자료 사진)ⓒ유타주 해안경비대 공개 사진

우희종 교수 “공개 안 된 안전성 없는 시설에서 하는 행위는 ‘위험천만’한 것”

국방부는 또 ‘살아있는 탄저균 사태’ 이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약속에도 미군 문서에 나와 있는 ‘살아있는(live) 매개체 테스트 등 위험성’에 관한 질의에는 “장비는 시험을 통해 이미 검증된 상태”라며 “생화학 실험과는 관계가 없다”는 앵무새 답변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장에서 안전성 검증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의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 주한미군 측이 검증을 했다면, 관련 문서를 받은 것이 있느냐’는 질의에도 답변을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이에 관해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은 기자에게 “전에 탄저균 사태가 났을 때 한 번 부산 8부두 시설을 방문한 것이 전부”라며 “안전성 검증을 해본 적도 없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당시 미군 측에서 미국에서 전문가가 와서 설명하기로 했는데, 이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주한미군 정보소식통도 “해당 프로젝트는 펜타곤(미 국방부) 생화학합동방어참모국에서 주관하는 것이라, 우리(주한미군)도 알 수가 없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한국(국방부)에서 문의가 오면 해당국에 문의해서 답변을 전달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관해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방부가 아직도 생화학 실험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기본도 모르는 이야기”라며 “검증된 장비라는 눈가림식의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고 말이 안 되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우 교수는 “장비 자체가 검증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주피터 프로그램은 해당 장비를 검증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한 검증 과정에서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탐지와 방어만을 위한 장비라는 말도 더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려면, 처음에는 죽은 샘플을 사용해도 최종적으로는 살아있는 샘플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리 도입 목적의 정당성을 내세우더라도 테스트라는 말 자체가 위험한 데, ‘방어용’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생물학 공격 방어용이라고 하는데, 적이 죽어있는 균을 사용하느냐”고 반문하면서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생물학안전등급(BSL)도 갖추지 않은 시설에서 이 같은 실험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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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시대는 통일완성시대!

이정훈의 반도평론 (2)
  •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9.03.25 10:37
  • 댓글 0

1. 7.27의 회상

한국(조선)전쟁은 기이한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핵을 처음으로 거머쥔 거대 패권제국이 핵도 없는 동방의 작은 신생공화국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강대성 신화가 처음으로 여지없이 깨진 전쟁이었다. 전쟁 초기 미 합참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쟁에 승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여 핵무기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미국은 속전속결과 승전을 낙관하였으나 이 전쟁은 미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1950년 12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전쟁승리를 장담하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총공세가 대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경악했으며, 더 이상 전쟁의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맥아더는 한반도에서 원자폭탄 26개를 사용할 목표물을 지정하기도 했으며 원자폭탄 30~50개를 투하해 동해에서 서해까지 ‘방사능 코발트 벨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전쟁 개시 6개월 만에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핵사용 가능성, 중국과의 확전과 인민군의 분산 집중전술에 밀려 결국 핵을 사용치 못했다. 핵무기가 사용될 뻔했던 가장 위험한 시기는 1951년 4월로 알려져 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를 중국과 이북 목표물에 투하하라는 명령서에 서명까지 했다고 한다.

▲ 더글러스 맥아더(왼쪽), 존 볼턴(오른쪽)

오늘의 워싱턴 군산복합체를 대변하는 존 볼튼과 유사한 ‘反(반)휴전파’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이다. 맥아더와 트루먼의 대립은 극심했는데 휴전협상은 1951년 4월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한 뒤인 1951년 7월 개시되어 2년 넘게 이어지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으로 매듭지어졌다. 트루먼이 핵을 쓰지 않고 정전협상에 임한 것은 그가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승산 없는 전쟁에서 후퇴하는 현실적인 길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2년여의 휴전협상 기간 중에 전투는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전체 전쟁 사상자의 70%가 이 기간에 발생했다.

7.27 정전협정은 체결되었으나 전쟁의 양상은 ‘총성 없는 핵 대결’로 바뀌어 70년 가까이를 지속해 왔다. 그러다가 2017년 11월 조선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다시금 전변되었다. 동아시아 국지전에서 열핵 세계대전으로, 미국의 일방적 핵 위협에서 조미 상호 국가전멸을 위협하는 전쟁으로 바뀌었다. 중국 이외에 사회주의국가로는 처음으로 조선이 핵보유국 지위에 오르자, 냉전 해체로 가라앉았던 미국과 서방의 자본주의체제 안전보장 문제가 다시 전면에 대두된 것이다. 끝나지 않은 한국(조선)전쟁의 질적 전화, 이것이 역사적인 조미 정상회담이 열린 근본 배경이다. 이 회담의 본질은 엄밀히 말하면 흔히 알고 있듯 비핵화 회담이 아니다. 한국(조선)전쟁을 완전히 종결하는 종전회담이자 평화회담이다.

트럼프 정부의 요청으로 66년 만에 종전회담이 열렸으나 양상은 7.27의 연장선에 있다. 7.27 당시 미국 내부가 핵 확전과 정전협정을 두고 찬반으로 갈렸던 것처럼 오늘의 미국은 종전을 두고 갈라져 있다. 협상은 시작됐으나 마지막 전투와 술수는 과거보다 더 심하다. 오리무중의 협로에다 중단과 재개의 반복은 7.27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2. 선의에 악의로 답한 결과

3월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긴급기자회견에서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부상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이 (핵·미사일 실험 유예 등) 우리가 취해온 조처들에 상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거나 정치적 계산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요구에 양보하거나 협상을 계속할 의사가 없다.” “미국은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고 우리는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그리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등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미국 AP와 러시아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협상을 계속할지, 핵시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모라토리엄)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해 조만간 밝힐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의 핵시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자신의 가장 큰 외교적 성과로 내세워 왔다. 역사상 처음인 조미협상 개시만으로도 트럼프는 오랜 동안 누적 심화된 미국 국가안보 위기의 급한 불을 끈 셈이다. 역대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가시적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그런데 급한 불을 끄자마자 트럼프 정부는 북의 비핵화 의지와 선제적 핵 시험장 폐기, 그리고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조처를 악용해 나섰다. 과감히 결단해야 할 대북제재 문제를 두고 좌고우면하면서 시간을 끌고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그러면 북이 후퇴하여 더 유리한 자리에서 협상을 주도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베트남 하노이 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조미관계를 진전시키려 한 게 아니라 다른 정치적 계산 아래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고 시간 여유를 부렸다.

최선희 부상의 긴급회견 직후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모라토리엄은)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이라며 달래기에 나섰으나 북은 지난 22일 전격적으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단행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곧이어 미 재무부의 대북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했다. 북은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통해 미국뿐 아니라 미국에 편승하는 남쪽의 태도도 문제 삼고 있음이다. ‘미국의 제재 범위에서 남북교류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자세와 마치 완전 폐지하는 양 떠벌이던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키리졸브)을 ‘동맹’ 훈련으로 지속하는데 대한 북의 대응이다. 남쪽과 미국이 4.27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조미공동선언을 위반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상유지를 하면서 유리한 입지를 염두에 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협상의 밑돌이 빠지면 그동안의 성과는 물론 협상 자체가 허물어질 수 있다. 지금의 위기가 바로 그렇다. 북도 미국 내부의 심각한 정쟁과 반트럼프 세력까지를 감안하며 대응하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번 위기는 사실 트럼프가 자초한 ‘오판’의 결과라고 하겠다. 진정 트럼프가 이런 결과를 의도했다면 협상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대통령 재선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에겐 부메랑으로 작용해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조미간 협상에서 유일한 성공비결은 이른바 ‘빅딜’이나 일방적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간 상호신뢰에 기초한 ‘단계별 동시행동’이다. 이것이 회담의 전제이고 대원칙이다. 조미협상에서는 힘을 통한 제재나 미국내 정쟁을 염두에 둔 정치적 술수 따위가 더는 통할 수 없음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만약 일방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협상에서 이미 마련된 우호적 환경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협상 자체에 위기를 부를 것이다. 뚫지 못할 벽에다 찬 공은 결국 트럼프에게 되돌아갔다.

3. 4.27시대, 자주통일투쟁의 지위

4.27시대란 과연 어떤 시대이며 4.27시대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4.27시대를 ‘한반도 평화시대’, ‘공동번영시대’, ‘통일시대’ 등으로 일컫는다. 모두 의미 있는 규정이다. 필자는 지난 6.15시대가 통일의 준비기였다면, 4.27시대는 민족의 단합된 자주역량으로 결론을 짓는 통일시대라고 본다. 한마디로 ‘자주통일을 여는 시대’라 하겠다. 4.27시대는 남북의 반제민족자주역량이 외세를 제압하기 시작한 승리의 시대이다. 그래서 4.27시대의 최종 목표와 완결은 자주통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체감하듯 4.27시대의 양상과 경로는 탄탄대로가 아니다. 새로운 통일 역사를 창조해가는 4.27시대 역시 역풍과 외풍, 그리고 진퇴와 우여곡절은 피할 수 없으며 그런 가운데서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4.27시대의 전진은 필연이다. 4.27시대를 만든 근본 힘은 외세나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남북해외 우리민족의 70여년 반외세 자주역량이기 때문이다.

4.27시대 자주통일의 완성을 앞당기려면 조미간에 계산할 것이 있으며 남북당국과 정당, 사회단체가 제각기 할 역할이 있다. 한국 진보 역시 커다란 역사적 책무가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성은 원래 변하지 않아 조미협상은 성공 가능성이 없으니 기대와 관심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지난 7.27정전협상 과정과 결과는 무의미하고 국지적 개별전투만 중요하다는 주장처럼 단견이다. 반대로 조미협상에 일희일비하며 스스로의 노력과 투쟁 없이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의 이익만 계산하는 태도 역시 문제다.

새로 열린 4.27시대는 온 국민에게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년도 안 되는 동안 3차례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으로 한국 민중은 북녘 지도자와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맞았다. 미국의 부당 간섭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민족단합의 기운이 높아가고 국민들은 북과 미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내부 정쟁과 대결을 끝내고 전면적인 남북 교류협력이 진행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온 국민이 남북 철도와 도로의 연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갈망하고 있으며, 나아가 유라시아 철도 연결과 러시아 가스관의 서울 진입이라는 새 시대를 고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통일이 단순히 평화만이 아니라 민생이며 일자리이자 젊은 새 세대의 활로임을, 통일이 밥이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아 가고 있다. 누가 통일을 원하며 누가 우리민족의 번영을 방해하는지도 알아가고 있다. 역사적인 고비에는 모든 감추어진 본질이 대중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나는 법이다. 4.27시대는 대중적 통일열망과 함께 대중적 자주통일운동이 새롭게 열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4.27시대에는 분단적폐 청산이 중핵적 과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단적폐청산투쟁, 자주통일투쟁과 민족의 단합을 위한 거국적 ‘북 바로알기 운동’과 ‘통일국가 건설운동’, 이것이 4.27시대 일관되게 한국 진보가 해야 할 선도적 역할이다. 우선 알아야 통일이다. 새 시대의 주인인 대중은 새로운 정보와 진실을 원한다. 4.27시대가 깊어갈수록 ‘북 바로알기’는 필연적으로 새 세대와 근로대중 자신의 요구로 발전한다. 통일의 주인은 소수가 아닌 대중이다. 주류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된, 북에 대한 그릇된 허상을 깨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접해 ‘마음의 38선’을 허무는 것이 통일의 시작임은 물론이다.

4. 제재를 넘어 남북 전면교류로, 통일로!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4.27시대 한국 진보 앞에 놓인 과제들이다. 바위처럼 무겁지만 4.27시대가 전진하며 온 민족의 힘으로, 대중의 힘으로 능히 하나씩 해결할 수 있다. 당면해서 대북제재는 단순히 북을 봉쇄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번영과 행복추구권을 동시에 봉쇄하고 있다. 대북제재가 아니라 우리 남북 민족에 대한 제재이다. 대북제재는 미국이 그어놓고 붙들고 있는 ‘새로운 38선’이다. ‘통일 제재’이자 ‘민족번영 제재’이다. 따라서 제재 문제는 조미간만의 협상의제가 아니다. ‘새로운 38선’ 제재 문제 해결 없이 번영과 통일은 없다.

나라의 독립도 통일도 결코 저절로 오는 법은 없다. 촛불투쟁이 그러했듯 민중과 함께 한국 진보가 움직여야 국민대중이 움직이고 대중이 움직여야 ‘그들도’ 움직인다. 4.19 이후 들었던 통일구호가 다시 생각난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 가도 못하느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개성, 금강산에서!” 온 국민의 염원을 모아 “남북 전면교류 확대! 제재 반대!” 미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간섭을 중지시키고 전면교류를 우리 힘으로 실현시켜야 한다.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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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 북미 관계엔 남한을 들이셔야 합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와 남북공조

19.03.25 08:46l최종 업데이트 19.03.25 08:46l

 

 

호치민 묘소의 김정은 위원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를 참배하고 있다.
▲  북미 정상회담이 특별한 소득 없이 끝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한 채 장고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3월 2일 하노이의 호찌민 묘지를 참배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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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남조선은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이지 중재자는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한국의 역할에 대한 불편함 내지 서운함을 표시한 데 이어, 22일에는 북한 정부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직원들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북한 땅에 남한 사람들을 놔둔 채 북한 사람들만 철수하는 흔치 않은 모양새가 벌어지게 됐다.

북한이 겨냥한 주된 표적은 미국이겠지만, 22일의 조치 속에는 한국에 대한 북한의 전통적인 시각이 묻어 있다. 하노이 회담을 깬 당사자는 미국인데도 한국과의 호의적 관계를 일방적으로 후퇴시키는 북한의 태도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해온 북한의 오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객관적인 국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미 자신감을 갖고 있다. 누구의 도움이 없더라도 미국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런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

북한이 자신감을 갖는 역사적 사례들... 하지만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 통상을 요구하면서 대동강에 침투한 미국 상선을 격침함.
1871년 신미양요: 아시아함대 병력 1230명과 군함 5척의 침공을 받고도, 미국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며 미군을 퇴각시킴.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북한 영해를 침범한 미군 정찰선을 나포한 일로 인해 미국의 전쟁 위협과 해상봉쇄를 받았지만, 결국 미국의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냄.
1969년 EC-121기 사건: 북한 영공을 침범한 미군 정찰기를 격추한 일로 인해 미국의 전쟁 위협과 해상봉쇄를 받았지만, 결국 미국의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냄.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북한 군인들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일로 인해 미국의 전쟁 위협을 받았지만,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사건이 종결됨.

 
말기의 조선왕조 국력으로 서양 열강의 일원인 미국와의 대결을 승리로 장식한 1866년·1871년 사건과, 조선왕조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영토를 갖고도 세계 최강 미국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밀리지 않은 1968년·1969년·1976년 사건은 오늘날 북한의 대미 자신감을 키워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런데 위 5건의 사건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미국이 제3자와의 전쟁에 연루됐을 때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1866년과 1871년은 미국과 인디언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일 때였다. 이 전쟁은 1886년에야 끝났다. 1968년·1969년·1976년은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거나 그 후유증에 시달릴 때였다. 미국이 조선왕조 혹은 북한과의 대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시점에 일어난 일들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에서 북한과 일대일로 대결한 사례로는 1993년 제1차 북·미 핵위기를 들 수 있다. 이때는 1990년에 이라크와의 걸프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데 이어 1991년 12월에 구소련이 붕괴한 뒤였다. 이로 인해 미국의 세계패권이 일시적으로 강화된 상태에서 핵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에, 미국은 이전 어느 시기보다 훨씬 더 대북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핵위기가 발생한 1993년 3월부터 제네바 합의로 위기가 봉합된 1994년 10월 사이에 미국이 제3국과의 전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기간에 미국은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또 1993년 6월에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며 이라크를 공습했다. 1994년 9월에는 아이티를 침공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결정적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여타 시기에 비해 훨씬 강한 집중력을 대북관계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북한과 미국은 전쟁을 불사할 듯한 곡예를 벌이다가 결국 제네바 합의로 사태를 봉합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무승부나 다름없는 제네바 합의를 거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위의 5건과 달리 이때는 미국의 굴복을 얻어내지 못했다. 미국의 대북 집중력이 높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미국과 제3국의 관계 악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음을 뜻한다. 물론 세상 일이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므로, 미국과 제3국의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도 북한이 미국을 꺾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객관적 조건만 놓고 보면, 제3국의 '협조' 없이 북한이 일대일 대결에서 미국을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단계에서 북한이 대미관계를 평화적으로 풀고 경제제재 해제와 북미수교를 얻으려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플레이어가 됐든 중재자가 됐든, 북한을 돕는 누군가의 작용이 있어야만 북한의 목표가 수월하게 성취될 수 있음을 뜻한다.

플레이어든, 중재자든, 북한은 누군가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러시아는 아직까지는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고도화할 만한 여력이 없다. 설령 러시아가 나선다 하더라도, 북한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중재는 미국인들에게 거부감만 줄 뿐이다. 일본은 능력을 떠나 자격이 되지 않는다. 이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중국 역시 북한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없다는 점은 1997년 시작된 4자회담에서도 충분히 드러났다. 4자회담은 제1차 핵위기 2년 뒤인 1996년 4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한미 공동발표문을 통해 제안된 것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남북한·미국·중국의 4자 협의체다.
 
 4자회담 설명회에 참석한 북한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지금의 외무성 부상). 1997년 3월 6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  4자회담 설명회에 참석한 북한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지금의 외무성 부상). 1997년 3월 6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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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제안했지만, 회담을 주도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도권을 쥐었지만, 중국의 행보는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4자회담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상당히 드러난 시점인 1998년 8월 장공자 충북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 '4자회담의 전개 과정과 전망'은 중국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은 4자회담에 대해 원칙상으로는 지지하나 미국을 제외한 남북한 당사자 해결 원칙을 고수하며, 미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 행사에 제동을 걸고 한반도 문제 해결에 발언권을 강화코자 한다."
- 충북대 사회과학연구소가 발행한 <사회과학연구> 제15권 제1호 수록.
 
4자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언뜻 보기에는 고마운 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의도는 한반도 문제의 키를 쥔 미국을 견제하는 데 있었다. 북한과 미국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함에도, 남북한의 주체적 해결을 지지하는 엉뚱한 해법을 제시했던 것이다. 위 논문에 이런 대목도 있다.
 
"중국은 ······ 북한의 대미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기대가, 자칫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에 일익을 담당케 될 것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에 지나치게 목을 매다가 미국 편이 되지 않을까를 중국이 우려했던 것이다. 그런 중국이 주도권을 잡았으니, 북한과 미국이 차분하게 논의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4자회담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중국이 중간에 끼어봤자 북한에 이로울 게 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 점은 제2차 북미 핵위기 때 개최된 6자회담에서도 드러났다. 6자회담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베이징에서 열렸다. 중국의 중재 하에 오랫동안 열렸지만, 실질적 성과는 별로 없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란 측면에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2009년 7월 15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발언한 것은 6자회담이 무용할 뿐 아니라 중국의 중재도 무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러시아? 일본? 중국? 글쎄... 지난날을 돌아보면
 
 6자회담의 한 장면. 2007년 2·13 합의 당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  6자회담의 한 장면. 2007년 2·13 합의 당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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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은 북미관계에 실질적 도움을 준 실적을 갖고 있다. 한국이 플레이어 혹은 중재자로 낀 결과, 2018년과 금년에 북한은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회담이 실질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북한과 미국 정상들이 한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한국이 개입한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이 같은 성과가 도출됐다는 사실은, 중국·러시아·일본이 할 수 없는 일을 한국은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선희 부상의 플레이어 발언과 연락사무소의 일방적 철수를 통해 북한은 남한을 낮게 평가해온 전통적인 대남 인식의 일면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호전적 정권만 출현하지 않는다면 한국이 북미관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제까지의 역사가 잘 증거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북미관계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북한이 단독으로 혹은 중국 등의 중재 하에 미국을 상대하기보다는 동족인 한국과의 협조 하에 미국을 상대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북미관계에 남북공조가 유익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여하를 떠나서, 한국만큼 열의를 보여주기 힘들다. 그들은 한국보다 강한 대미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런 영향력을 북한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 약한 영향력이나마 북한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플레이어나 중재자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같은 피가 흐르는 동족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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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새로운 역할을 기대한다: 퓨전접근(Fusion Approach) 제안

<칼럼>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곽태환  |  thkwak3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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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5  00: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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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말이 아니게 손상시켰고 현재 그 신호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북한이 받은 상처, 2차 정상회담에 대한 실망, 좌절감,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혹은 ‘가교 역할’에 대한 불만이 여러 북한매체를 통해 전달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은 그 불만들을 실질적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2018년 9월 14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 이후 190일 만인 3월 22일 북측은 갑자기 일방적 통보를 하고 철수했다. 개소 이후 6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 하에 북측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전원철수 하는 이유도 밝히지 않아 그 배경이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외무성 최선희 부상이 평양기자회견(3.15)에서 문재인 정부를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그가 ‘워싱턴의 동맹’이며 “남조선은 중재자가 아니고 플레이어”(player)라고 말했다.  이 말의 참뜻은 문 정부가 중재자 혹은 가교 역할은 그만 두고 플레이어, 즉 미국 편보다 북한 편에 서서 당사자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북측 <메아리>는 3월 22일 노골적으로 문 정부를 비판했다. “중재자,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 북한의 의도가 담겨있다. 문 정부의 역할과 관련하여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의 길을 뚫어달라는 당사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만도 무시 못 할 정도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 결정(3.22)을 하는데 큰 몫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북측이 요구하는 당사자가 아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일이 현실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 회담의 장밋빛 전망만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가 협상 결렬 이후 촉진자 역할이나 가교 역할을 뛰어넘어 보다 당사자로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문 정부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임이 틀림없다.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미국이 남북협력사업에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다. 지금까지 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에 성공했지만 이제부터는 문 정부는 북한 편에 서서 당사자로서 역할을 해 달라는 북한의 요구는 만만치 않다. 이러한 북한의 일련의 행동들은 북미관계가 개선되어야 남북관계도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문 정부에 던진 것이다. 따라서 현 북미관계는 남북관계 발전을 어둡게 하고 있다.

향후 북미 간 협상이 진척이 없으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개도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일정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 본다면 내년도 재선을 위해 늦어도 금년 가을까지 북한과의 핵 타결을 해야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남북관계도 청신호가 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특히 ‘비핵화-평화체제’와 관련하여 향후 어떤 역할이 바람직한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요인을 분석해 보면 북미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각자의 해법을 놓고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정상회담 협상에서 ‘노딜’ (no deal)로 끝나 결국 정상회담은 결렬(breakdown)되어 유감스럽다. 그러나 북미 최고지도자간 대화와 협상의지가 강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6.12 북미공동선언문 4개항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에 향후 새로운 비핵-평화 로드맵에 합의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아래 새로운 융합접근(Fusion Approach)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2차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나타난 북미 협상의 핵심 장애물은 북미 간에 합의된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로드맵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합의된 비핵화 로드맵이 없으니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향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언제 갑자기 그의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져서 대북 정책전환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므로 먼저 북미 간 상호 신뢰구축이 급선무이다. 신뢰가 없는 데 미국의 영변 외 +a ‘빅딜’ 제안을 현실적으로 북한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역지사지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북미 양측의 전략가들이 각자 시각에서 주장해온 바와 같이 미국의 “일괄타결식 방안”과 북한의 “단계적,. 동시 행동 방안”이 상호 배타적인 개념으로 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필자의 주장은 두 개념의 융합(fusion)을 주장하여 두 개념이 상호배타 적인 개념이 아닌 상호보완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두 개념을 융합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퓨전 접근(Fusion Approach)을 통해 두 개념을 융합하여 상호보완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함으로서 한반도 비핵화-평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

이 두 개념을 새로운 융합접근 방식으로 접목하면, 현재 미국의"일괄타결식" 방안을 향후에 합의하게 될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에 담고, 실행할 때는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이행하는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행 로드맵을 만들게 되면 두 개념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역할은 무엇인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가교 역할”을 계기로 북미정상회담이 2차례 개최된 것은 그 공로를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촉진자’ 혹은 ‘가교 역할’에서 완전하게 탈피하여 이제부터 한국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새 역할은 문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평화제제 구축 로드맵을 만들어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3국 정상이 로드맵에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융합방식의 포괄적 로드맵 속에 일괄 타결방식과 단계적 이행 로드맵이 공존하게 되어 북미가 주장하는 두 방식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융합접근 방식으로 만든 실행 로드맵은 북미 양국이 고집하는 비핵화 접근 방식이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북미 양측은 문재인 정부의 새 역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입구론과 출구론을 포함한 로드맵에 합의한다면 한반도에서 비핵-평화시대가 가까 운 장래에 도래할 것으로 확신한다.

 

곽태환 박사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 원장)

   
 

한국외국어대 학사, 미국 Clark 대학원 석사,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국제관계학 박사. 전 미국 Eastern Kentucky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교수; 전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미국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 전략 연구원 이사장,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LA) 회장 등, 글로벌평화재단이 수여하는 혁신학술연구분야 평화상 수상(2012). 31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칼럼, 시론, 학술논문 등 250편 이상 출판; 주요저서: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공저: 『한반도 평화체제 의 모색』 등; 영문책 Editor/Co-editor: One Korea: Visions of Korean Unification (Routledge, 2017);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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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수작전기들은 왜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는가

[개벽예감340]미국의 특수작전기들은 왜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는가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3/25 [08: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미국의 특수작전기들이 한반도에 집결한 심각한 상황

2. 미국이 감행하려는 해상검문검색,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

3.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갑자기 철수한 이유

4. 한반도의 비핵화 넘어 태평양의 비핵화 제기한 김정은 위원장

 

 

1. 미국의 특수작전기들이 한반도에 집결한 심각한 상황

 

한반도 정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되었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낭패를 본다는 뜻이다. 지난해부터 조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성사되었는데 한반도 정세가 설마 더 악화되겠는가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최근 한반도 정세를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알지 못해서 생겨나는 착오다. 최근 한반도 정세를 계속 악화시키고 있는 사건들은 무엇인가?  

 

(1) 한국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9년 3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본토에서 주일미국군기지로 이동배치된 RC-135U 전자정찰기가 서해 상공을 비행하면서 조선을 감시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군에 단 두 대밖에 없는 RC-135U 전자정찰기는 레이더파를 감시하거나 레이더를 교란시키는 특수작전기다. 이 전자정찰기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인근에 있는 오펏공군기지에 배치된 것인데, 최근 오끼나와 가데나공군기지로 이동배치되어 조선인민군의 레이더파를 감시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 <중앙일보> 2019년 3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RC-135W 전자정보수집기가 RC-135U 전자정찰기와 함께 최근 수시로 한반도 인근 상공에 나타나 조선을 감시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RC-135W는 무선통신을 감청하는 전자정보수집기다. 미국군이 특수작전기들을 동원하여 조선인민군의 레이더파를 감시하고, 조선인민군의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정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악화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건이다.   

 

(2) <중앙일보> 2019년 3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19일 E-3 조기경보통제기가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동해 상공을 비행하였다가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고, U2 고고도정찰기와 글로벌 호크 무인정찰기도 한반도 상공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군이 조선인민군에게 공중감시활동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정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악화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건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미국 공군이 단 두 대밖에 운용하지 않는 RC-135U 전자정찰기를 촬영한 것이다. 이 전자정찰기는 레이더파를 감시하거나 레이더를 교란시키는 특수작전기다. 원래 이 전자정찰기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인근에 있는 오펏공군기지에 배치된 것인데, 최근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공군기지로 이동배치되어 조선인민군의 레이더파를 감시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이 전자정찰기와 함께 무선통신을 감청하는 RC-135W 전자정보수집기도 한반도 인근 상공으로 출동시켜 대조선감시작전을 벌이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은 조기경보통제기, 고고도정찰기, 무인정찰기도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키고 있다. 이런 정황은 한반도 정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악화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미국이 전자정찰기, 전자정보수집기, 조기경보통제기, 고고도정찰기, 무인정찰기를 비롯한 특수작전기들을 한반도 상공에 집결시킨 목적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징후를 탐지하려는 데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선통신과 레이더파를 발신하게 되고, 9축18륜 발사대차를 발사지점으로 이동시키게 되므로, 미국은 여러 종류의 감시수단들을 한반도 상공에 집결시켜 발사징후를 탐지하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정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징후를 노출하였기 때문에, 미국이 바짝 긴장하여 각종 특수작전기들을 한반도 상공에 집결시켰음을 말해준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 2017년 12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던 2017년 11월 29일 당시 미국은 시험발사 72시간 전에 발사준비정황을 포착하였고, 시험발사 2시간 전에는 화성-15를 탑재한 9축18륜 발사대차가 야간에 발사지점으로 이동하여 거대한 미사일 동체를 수직으로 세우는 장면을 포착하였다고 한다. 당시 미국이 화성-15 시험발사준비정황을 72시간 전에 포착했다는 말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시험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신한 무선통신과 레이더파를 포착하였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만일 RC-135U 전자정찰기와 RC-135W 전자정보수집기가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무선통신과 레이더파를 포착하여 본부에 긴급보고하게 되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그로부터 72시간 안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면, 2017년 11월에 쏘았던 화성-15를 다시 쏘는 게 아니라 아직 한 번도 시험발사하지 않은 화성-16을 쏠 것이 분명하다. 만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화성-16 시험발사를 단행하면, 2017년 11월에 있었던 화성-15 시험발사와는 대비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메가톤급 충격파가 워싱턴을 강타할 것이다. 그것 한 방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생명을 마감하게 될 것이고, 미국은 국가안보파탄위험의 충격과 공포 속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조선은 왜 미국을 상대한 협상을 중단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준비하는 징후를 노출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언약한 중대한 공약을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미국군과 한국군이 합동으로 전개하는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고 언약해놓고서도, 올해 들어와 그 중대한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미국군과 한국군은 ‘키 리졸브’라는 작전명칭을 내걸었던 대조선전쟁지휘예행연습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동맹’이라는 작전명칭을 내건 새로운 대조선전쟁지휘예행연습으로 대체하였다. 미국군과 한국군은 ‘동맹 19-01’이라는 작전명칭을 내건 전쟁지휘예행연습을 2019년 3월 4일부터 12일까지 7일 동안 감행하였다. 일본 오끼나와에 전진배치된 미국 해병 제3원정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이며, 한미연합해병대를 지휘하는 연합해병구성군사령관인 에릭 스미스가 ‘동맹 19-01’ 전쟁지휘예행연습에 참가하였는데, 그는 전쟁지휘소에 들어앉아 컴퓨터모의프로그램으로 가상적인 전쟁예행연습을 지휘한 줄로 알았더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실전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미국 해병대의 기습상륙전연습을 직접 지휘하였다. 

 

그의 지휘통제를 받으며 미국 해병대와 특수작전대가 대규모 기습상륙전연습을 진행하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군 소식지 <스타즈 앤드 스트라입스> 2019년 3월 22일 보도를 통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제31해병원정대, 제3해병사단, 제3해병병참대, 제1해병항공대, 미국 공군 제353특수작전대, 미국 육군 제1대대 및 제1특수작전대가 ‘동맹 19-01’이 감행되고 있었던 지난 3월 11일부터 14일까지 대규모 기습상륙전을 가상한 ‘원정전진기지작전’이라는 것을 일본에서 벌여놓았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일본 오끼나와에 속한, 미국 해병대 훈련기지가 있는 섬 리시마(伊江島)에 기습상륙하여 점령하는 연습을 감행하였는데, F-35B 전투기들이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고, 해병대 포병부대가 장거리포를 쏘아대고, 해병대 상륙부대와 특수작전부대가 수송기를 타고 공중급유를 받아가면서 1,440km를 날아가 가상적진에 강하하는 기습상륙전연습을 실전분위기 속에서 감행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기습상륙전연습에서 공중기동거리를 왜 1,440km로 정했을까? 오끼나와에서 원산까지 직선거리가 약 1,440km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그들이 오끼나와에서 이륙한 수송기를 타고 원산 해안에 강하하여 그 도시를 점령하는 기습작전을 연습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2019년 3월 21일 조섭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은 워싱턴에 있는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인 애틀랜틱 카운슬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지난날 ‘독수리’라는 작전명칭을 내걸었던 한미합동야전기동훈련을 올해는 대대급, 중대급으로 나뉘어 중령 이하 지휘관들이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사단급 전투부대를 동원하였던 기존 한미합동야전기동훈련을 대대급 및 중대급 전투부대를 동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한미합동야전기동훈련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한미합동야전기동훈련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인 ‘키 리졸브’와 ‘독수리’를 중단한 것이 아니라, 간판만 바꿔달거나, 형식만 바꿔놓고 여전히 감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세상을 속이려는 어설픈 기만술책이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한다고 언약하였던 중대한 공약을 올해에 들어와 깨버리고, 기만술책으로 변형시킨 대조선전쟁연습을 감행하라는 명령을 미국군에게 내렸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위반과 기만술책, 바로 이것이 조선을 자극하여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킨 근본원인이다. 

 

조미협상은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공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언약한 대조선전쟁연습 중단공약을 위반하였으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약한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 중단공약을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준비하는 징후를 노출한 까닭은, 중대한 공약을 위반하여 조미협상을 위기에 빠뜨리고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망동을 징벌하는 대응행동이다. 

 

 

2. 미국이 감행하려는 해상검문검색,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

 

미국은 조미협상을 위기에 빠뜨린 이후에도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9년 3월 21일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은 이른바 ‘불법환적주의보’라는 것을 갱신, 발표하였다. 그들이 불법환적주의보를 발표하는 목적은, 유엔안보리의 대조선제재조치를 위반하면서 정제유를 불법환적으로 수입하고, 석탄을 불법환적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유조선과 화물선에게 국제감시를 집중시키고, 경고를 주려는 데 있다. 2018년 2월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은 조선의 유조선과 화물선 24척을 불법환적주의보에 등재하였는데, 이번에는 조선의 유조선과 화물선만이 아니라 조선과 교역하는 다른 나라들의 유조선과 화물선까지 추가하여 95척을 무더기로 등재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대조선제재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행동은 불법환적주의보 갱신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2019년 3월 25일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 4,500톤급 최신형 경비함 버솔프함이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였다. 이 경비함은 2019년 1월 20일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항을 떠나 3월 3일 일본 나가사끼현 사세보항에 전진배치되었다가, 이날 제주해군기지로 들어간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경비함은 한국 해양경찰 소속 경비정과 함께 합동검문검색연습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검문검색은 조선의 유조선과 화물선을 해상에서 강제로 정선시켜 검문검색한다는 뜻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에 나타난 사람은 미국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이다. 그는 조선, 중국, 러시아, 꾸바, 베네주엘라 같은 나라들에게 제재조치를 가하는 소동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이 그런 소동을 일으키는 진원지다. 2019년 3월 21일 해외자산통제국은 이른바 불법환적주의보라는 것을 갱신, 발표하였다. 2018년 2월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은 조선의 유조선과 화물선 24척을 불법환적주의보에 등재하였는데, 이번에는 조선의 유조선과 화물선만이 아니라 조선과 교역하는 다른 나라들의 유조선과 화물선까지 추가하여 95척을 무더기로 등재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제재조치는 적대감을 표시하는 대결행위이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대조선제재조치에 매달리는 한, 조미핵협상은 진전되기 힘들다.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과 핵협상을 재개하려면 제재조치부터 중지해야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하였으면, 미국이 그것을 빌미로 삼아 조선에게 들씌웠던 제재조치도 마땅히 해제되어야 하는데, 미국은 인민경제에 대한 제재조치부터 우선 해제하라는 조선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조선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면서, 조선의 유조선과 화물선에 대한 검문검색까지 감행하려는 것이다. 만일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 경비함과 한국 해경 소속 경비정이 국제해로를 정상적으로 운항하는 조선의 유조선이나 화물선을 강제로 정선시키고 검문검색을 감행하면,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여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조미협상은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므로,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한 조선의 조치를 외면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하였으므로, 조선도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한 선의의 조치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준비하는 징후를 노출하는 까닭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한 조선의 성의 있는 노력을 외면하였을 뿐 아니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조선의 핵시설을 먼저 해체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꺼내놓아 회담을 결렬시켰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대조선제재조치를 더 강화하려는 도발행동으로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재무부가 앞으로 며칠 뒤에 발표하려던 대조선추가제재조치를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만일 미국이 대조선추가제재조치를 발표하면, 조선이 그에 대응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단행할까봐 겁을 먹은 트럼프 대통령은 황급히 취소명령을 내린 것이다. 미국이 약소국들을 강압하는 데 써먹었던 도발행동이 조선에게도 통하리라고 타산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3.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갑자기 철수한 이유   

 

2019년 3월 22일 오전 9시 15분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북측이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상주하는 자기측 인원들을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고 남측에 통보한 뒤 일방적으로 철수한 것이다. 그 동안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는 북측에서 15~20명, 남측에서 23명이 상주해왔다. 북측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면서 “실무적 문제는 차후에 통지하겠다”고 남측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긴급지시에 따라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하였음을 말해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룩된 소중한 성과들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9월 14일 개성에 설립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개소식 이후 189일 만에 무기한 가동정지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함으로써 여러 방면에서 추진되어오던 남북관계개선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갑자기 철수하면서 남북관계개선이 무기한 중단되자, 문재인 정부는 큰 충격을 받고 매우 당황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남북관계개선을 중단하였을까?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개선까지 중단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론하였지만, 그것은 뭐가 뭔지 모르는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조미협상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남북관계개선까지 중단할 필요는 없다. ‘통남봉미’라는 말도 있듯이, 북측은 조미협상이 중단된 상황에서 남북관계개선을 더 진척시켜 미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해야 할 형편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개선을 중단하였으니,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결렬과 북측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개선을 중단한 까닭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위반하면서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에 적극 가담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의 경험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화근은 언제나 남측 정부의 대미추종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입으로는 대화니 협력이니 하는 요란한 수식어를 늘어놓고, 그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국을 추종하여 동족에게 칼을 겨누는 전쟁연습을 벌여놓았으니, 북측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외세추종과 동족대결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철저히 배격하는 최악의 행위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9월 14일 개성에 설립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립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룩된 소중한 성과들 가운데 하나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는 북측에서 15~20명, 남측에서 23명이 상주하였다. 그런데 2019년 3월 22일 북측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상주해온 북측 인원을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철수하였다. 이 정황은 남북관계개선이 무기한 중단되었음을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는 큰 충격을 받고 매우 당황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개선을 중단한 까닭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위반하면서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에 적극 가담하였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대화니 협력이니 하는 요란한 수식어를 늘어놓고, 그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국을 추종하여 동족에게 칼을 겨누는 전쟁연습을 벌여놓았으니, 북측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돌이켜보면, 북측은 남북관계가 오늘처럼 위기와 난관에 빠지기 오래 전에 문재인 정부가 알아들을 만큼 심중한 경고를 주었었다. 북측 언론매체들은 2019년 1월 7일과 1월 13일 한국군이 미국군과 합동하여 북침전쟁연습을 더 이상 감행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남측이 미국산 전쟁장비들을 반입하는 것도 중단하라고 거듭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위반하고 한미연합군의 대조선전쟁연습을 감행하였으며, 미국산 전쟁장비들을 반입하여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입으로는 남북관계개선을 말하면서, 등 뒤에서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에게 칼을 겨눈다면, 그를 누가 대화상대로 인정하겠는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킨 엄중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자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조선을 침공하려는 전쟁연습을 벌여놓고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궤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궤변을 그만두고, 대조선전쟁연습을 영구히 중단하여 조미핵협상을 재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다른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걸핏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상호협력을 말하지만, 미국과 야합하여 북을 침공하려는 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평화니 협력이니 하는 수식어를 늘어놓는 것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궤변을 그만두고,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여 남북관계개선을 재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4. 한반도의 비핵화 넘어 태평양의 비핵화 제기한 김정은 위원장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센터 총책임자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비롯한 조미협상에 직접 참가하였고, 2018년 12월에 퇴임한 앤드루 김(김성현)이 며칠 전 서울을 방문하였다. <동아일보> 2019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앤드루 김은 3월 20일 서울에서 진행된 비공개 강연회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조미협상내막을 밝혔다고 한다. 그의 강연내용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때부터 미국이 핵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해왔을 뿐 아니라, 괌과 하와이에 배치된 미국의 핵전략자산도 미국 본토로 철수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이제껏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번에 앤드루 김의 비공개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협상전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협상전략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넘어 태평양의 비핵화로 확장된 것이다. 태평양의 비핵화! 이것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제껏 사람들은 비핵화라고 하면 의례히 한반도의 비핵화만을 생각하였고, 태평양의 비핵화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였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협상전략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한 태평양의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은 신중하지 못한 속단이다. 태평양의 비핵화라는 개념이야말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상상을 초월하는 핵협상전략을 말해주는 핵심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기한 태평양의 비핵화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공약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안전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 눈길을 끄는데, 그것은 안전담보라는 개념이다. 

 

조미핵협상이 진전되어 미국이 조선에게 제공해야 할 안전담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한 안전담보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위험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전담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조선에 대한 핵공격위험을 제거하는 안전담보는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는 것이다.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핵우산은 한반도 상공 높은 곳에 떠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핵우산이 설치된 곳은 미국의 태평양작전구역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하려면,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된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미국 본토로 멀찌감치 철수되어야 한다.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된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한 태평양의 비핵화다. 

 

미국이 태평양작전구역에 어떤 핵전략자산을 배치하였는지는 미국의 핵안보전문가 핸스 크리스텐슨이 2005년 9월 28일에 발표한 논문 ‘미국 핵무기의 한국 배치역사(A History of U.S. Nuclear Weapons in South Korea)’가 잘 말해주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1958년부터 1991년까지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핵폭발력이 1킬로톤급에서 100킬로톤급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W70 핵탄두 54발을 괌의 핵무기고에 보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라북도 군산공군지기에 주둔하는 제8전술비행단, 오끼나와 가데나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18전술비행단, 필리핀 클락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3전술비행단을 출격시켜 조선을 침공하는 핵공격계획(SIOP)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B61 핵폭탄을 탑재한 전투기들을 활주로 끝에 24시간 대기시켰다고 한다.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핵전략자산들은 1991년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1991년까지 군산공군기지, 가데나공군기지, 클락공군기지에서 핵폭탄을 탑재하는 전투기들이 조선에 대한 기습공격명령을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면, 1991년 이후에는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서 더 많은 핵폭탄을 탑재하는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들이 조선에 대한 기습공격명령을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기습공격명령을 받은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편대가 핵폭탄을 싣고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하면 6시간 만에 한반도 중부 상공에 도착한다. 이런 가공할 현실을 직시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왜 태평양의 비핵화를 요구하였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이 태평양작전구역에 핵전략자산을 배치하고 조선침공을 노리고 있는 현실이 이처럼 심각할진대, 설령 미국이 조선에게 불가침선언문을 써주더라도 조선이 그것을 어떻게 안전담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미국이 태평양작전구역에 핵전략자산을 배치하고 있는 한, 미국이 조선에게 불가침선언문을 100장 써준대도, 그것은 종잇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기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 활주로를 촬영한 것이다.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는 작전기들은 전시에 장거리를 비행하여 적국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들이다.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편대가 핵폭탄을 싣고 앤더슨공군기지를 이륙하면 6시간 만에 한반도 중부 상공에 도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조선에 안전담보를 제공하겠다고 확언하였는데, 조선에 안전담보를 제공하려면 조선을 겨냥한 핵우산을 철거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핵우산 철거는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한 핵전략자산을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한 태평양의 비핵화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험성은 그것만이 아니라, 더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 협정, 합의를 위반하고 파기하는 악질상습범으로 국제사회에서 악명이 높다. 이를테면, 2018년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에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상대로 하여 다자협정으로 체결한 이란핵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서 탈퇴하였고,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 행정부가 1987년에 소련과 체결하였던 중거리핵무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을 파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조약이나 협정마저 제멋대로 위반하거나 파기하는 미국이 조약이나 협정과 달리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불가침합의 또는 불가침선언을 이행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현실이 이처럼 심각할진대, 설령 미국이 조선에게 불가침선언문을 써주더라도 조선이 그것을 어떻게 안전담보로 믿을 수 있겠는가. 외교문서가 아니라 핵전략자산 철수가 안전담보로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태평양의 비핵화방안은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된 핵전략자산을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안전담보방안이다. 하지만 미국에게 있어서 태평양의 비핵화는 태평양지배체제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요구한 태평양의 비핵화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는 태평양의 비핵화를 요구한 것일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트럼프 대통령이 핵협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선의 비핵화(조선의 자위적 핵억제력 포기)를 요구하는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핵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는 태평양의 비핵화(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 포기)를 요구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협상전략은 철두철미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다.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는 태평양의 비핵화를 요구한 까닭은 미국이 조선을 겨냥한 핵전략자산을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하고 있는 한, 조선도 그에 맞서는 자위적 핵억제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이 조선의 지위적 핵억제력을 포기시키려는 헛수고를 할 게 아니라 조선의 핵억제력을 인정하고 핵전쟁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깨우쳐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탁월한 협상술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조선의 자위적 핵억제력을 인정하고 핵전쟁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핵동결과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를 합의하는 것이다. 

 

조선의 핵동결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하고, 녕변핵시설단지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에 관련된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다. 조선의 핵동결은 미국이 조선의 자위적 핵억제력을 인정하고 핵전쟁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비핵화 해법으로 된다. 핵동결 이외에 다른 해법은 있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조선의 핵동결에 상응하는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는 미국이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한 핵전략자산을 미국 본토로 철수하지 않는 조건에서 조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안전담보로 된다. 철군 이외에 다른 안전담보는 있을 수 없다. 

 

물론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더라도, 태평양작전구역에 핵전략자산이 배치되었으므로 조선에 대한 핵위협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 조선의 핵동결이 실현되더라도, 조선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으므로 미국에 대한 핵위협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조선의 핵동결과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가 상호핵위협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이외에 두 나라가 합의할 수 있는 다른 해법은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조선의 핵동결과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는 최선의 해법으로 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9년 2월 28일 윁남 수도 하노이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 둘째날 회담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태평양의 비핵화를 요구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선의 비핵화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의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태평양의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담은 결렬되었다. 앞으로 조선과 미국이 핵협상을 재개하려면, 미국이 조선의 자위적 핵억제력을 인정하고 핵전쟁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선의 해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핵동결과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수를 합의하는 것이다. 다른 해법은 있을 수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얼마 전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명백한 진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능지수가 낮아서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자위적 핵억제력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핵협상을 잘 하면 조선의 자위적 핵억제력 가운데 60% 정도는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2019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한반도전문가들과 사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일 조선이 미국이 요구한 핵폐기대상들 중에서 60%만 해체해도 다행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사석에서 털어놓은 이 발언은 그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부분적 비핵화를 협상목표로 정해놓았음을 말해준다.

 

(2)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제기한, 조선이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판단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핵협상을 통해 조선의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조선의 비핵화라는 것은 자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핵협상을 벌여 조선의 핵무력 가운데 60%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3) 미국 언론매체 <타임> 2019년 3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가 뉴욕 주재 유엔조선대표부를 통해 조선과 연락통로를 다시 개설하려는 것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과의 핵협상을 중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선과의 핵협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직접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핵협상을 벌이면, 조선의 부분적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다. 만일 그의 생각대로 조선의 부분적 비핵화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미국도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한 핵전략자산 가운데 60%를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부분적 비핵화를 실현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적 비핵화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므로 미국이 태평양의 부분적 비핵화를 실현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조선의 부분적 비핵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부분적 비핵화라는 환상을 버리고 조선의 핵동결을 협상목표로 정해야 하며, 조선의 핵동결에 상응하여 미국이 조선에게 제공할 안전담보로 주한미국군 철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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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뿌리뽑자!” 자한당 해체, 적폐청산 전국동시다발 촛불대회

“제대로 뿌리뽑자!” 자한당 해체, 적폐청산 전국동시다발 촛불대회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3/24 [12: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3.23 범국민촛불대회에 참가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자유한국당해체'를 외치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3월 23일 범국민촛불대회 참가자들이 "자유한국당 해체하라","적폐청산 완수하자","역사왜곡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가 23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에 의해 '100번째 광수'로 지목된 백종환씨가 "내가 진짜 간첩이라고 생각되면 지금 당장 휴대폰을 꺼내 간첩신고하라"고 지만원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3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가 개최되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을 촉구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3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가 개최되었다. 참가자들이 '촛불개혁 실현하라!' 피켓을 들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3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가 개최되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행진 선두에 섰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촛불은 들고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적폐청산 완수하자” 

“역사왜곡 처벌하라” 

 

23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범국민촛불대회는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반전평화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렸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도 광장은 조속한 적폐청산을 원하는 참가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첫 기조발언자로 나선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대표는 “촛불항쟁 2년이 되도록 박근혜 일당만 퇴출되었지 서민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법적폐 판사들이 그대로 법정에 앉아 재판하는 참담한 현실인 것이다. 적폐청산 똑바로 하고 5.18학살 역사왜곡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다시 촛불 시민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적폐세력을 쫓아내자!”고 이날 대회의 의미를 전했다.  

 

이어 무대에 선 이는 장 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었다. 장 위원장은 “적폐청산은 세월호 진상규명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우리 아이들을 죽인 범인들을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는 것 한 가지다. 황교안, 자한당 모두가 범인이다. 우리 유가족들이 다 죽어서 아이들 곁에 갈 때까지 이것 하나만 보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했다. 

 

이어 사회자는 “자유한국당이 세월호 참사의 범조집단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들을 처벌하지 않으면 지금 5.18민주화운동이 훼손되는 것처럼 앞으로 40년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이 참에 뿌리 뽑아야 한다는 사실을 유가족들이 한 자리에 있는 이곳에서 더 뼈에 새기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최근 나경원 의원 사무실에 방문해 면담 요청 투쟁을 진행하며 집중 받은 바 있는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민은서 대학생은 “우리 대학생들은 나경원 의원 사퇴, 자유한국당 해체, 그리고 이들의 원조격인 5.18광주민주화항쟁 학살의 주범 전두환이 역사 앞에서 심판받기를 원한다. 이제는 자유한국당과 보수 정권을 완전 청산하지 못한다면 기생충처럼 살아남아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우리 대학생들이 적폐세력을 뿌리 뽑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우리 민족이 함께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 서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 이날 대회에는 적폐세력을 규탄하는 영상상영 및 ‘4.16합창단’의 노래 공연,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노래단 ‘내일’의 노래 공연,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4.16합창단'이 '함께가자 이길을' 부르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이날 대회에는 적폐세력을 규탄하는 영상상영 및 ‘4.16합창단’의 노래 공연,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노래단 ‘내일’의 노래 공연,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노래단 ‘내일’의 공연 모습.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이날 대회에는 적폐세력을 규탄하는 영상상영 및 ‘4.16합창단’의 노래 공연,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노래단 ‘내일’의 노래 공연,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노래단 ‘내일’의 공연 모습. 노래패 우리나라 공연 모습.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전두환을 감옥으로' 상징의식.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황교안을 감옥으로' 상징의식.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참가자들이 우산에 '5.18망언 규탄', '나베는 일본으로', '전두환 감옥으로'라는 구호를 붙이고 행진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참가자들이 우산에 '5.18망언 규탄', '나베는 일본으로', '전두환 감옥으로'라는 구호를 붙이고 행진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범국민촛불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청소년들이 '불태우자 자한당!'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이날 대회에는 적폐세력을 규탄하는 영상상영 및 ‘4.16합창단’의 노래 공연,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노래단 ‘내일’의 노래 공연,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종각사거리를 지나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행진을 진행했다. 

 

사물놀이가 이끄는 행진 대열이 적폐청산 구호를 이용한 다양한 퍼레이드를 펼치자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지켜보았다. 

 

이날 촛불대회에 즈음하여 전국 곳곳에서 자유한국당 지역위원회 앞 1인 시위, 규탄 회견, 캠페인, 시민대회 등이 개최된 바 있으며 23일 적폐청산 촛불대회는 광화문광장뿐 아니라 부산, 대구 경북, 광주, 전남, 강원 춘천, 경기 지역 등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한편 적폐청산 촛불대회는 이날 서울을 시작으로 다음 주 내내 전국 동시 다발적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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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지났지만 죽은 내 아기들을 어찌잊나”

 

입력 : 2019.03.24 09:07:00 수정 : 2019.03.24 09:25:11

송순희 할머니(95)가 지난 3월 14일 인천 자택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순희 할머니(95)가 지난 3월 14일 인천 자택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순희 할머니(95)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전쟁 이후 인천에 정착했고 지금도 인천에서 산다. 나이 때문인지 안 아픈 곳이 없지만 그래도 건강한 편이다.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10년 전부터는 주말이면 꼬박꼬박 성당을 찾는다. 뒤늦게 세례도 받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금실은 좋았다. 12살 연상인 남편은 송 할머니에게 평생 극진했다. 벌이도 나쁘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딸은 “엄마가 웃는 걸 잘 보지 못했다”며 “항상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때로는 그런 엄마가 답답하기도 했다. 

자식들이 엄마가 제주 4·3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0여년 전이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60년 세월 동안 가슴에 묻어놓았다. 남편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남편은 눈치로 조금씩 알게 됐다고 했다. 송 할머니는 첫 결혼에서 얻은 아이 셋을 4·3을 겪으면서 모두 잃었다. 1년간 육지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제주를 떠나면서 묻은 일이다. 

그날 마을 전체가 불탔다 
송 할머니는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살에 결혼해 딸 셋을 낳았다. 송 할머니는 “먼저(첫 번째) 신랑도 얼굴이 미끈하고 정답게 살았다”고 했다. 1948년 10월 출장 다녀온다던 남편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서북청년단이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인다는 소문이 한창일 때였다. 세 살배기 아이는 등에 업고, 네 살된 아이 손을 잡고 남편을 찾아나섰다. 막내는 뱃속에 있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녀도 남편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군인들이 곧 마을에 불을 지른다는 소문만 돌았다. 시어머니는 송 할머니 손을 잡고 울면서 “너랑 나랑 아이 하나씩 데리고 숨자. 내가 그릇 같은 거 땅에 묻어놨으니까 죽지 않으면 그거 파서 쓰고 살아라”고 말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시냇가 옆 동굴에 몸을 숨겼다. 그 날 마을 전체가 불탔다. 

낮에는 경찰과 군인 눈을 피해 숨어다니고 밤이면 불탄 집터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날 총소리가 ‘와지기땅 와지기땅’ 해. 사람을 죽이면서 오는 소리였어. 아기를 업고 울면서 막 뛰었어. 시냇가 굴에 숨고 앉았더니 ‘이 개 같은 X 나오라’ 그래.” 고개를 들자 칼을 꽂은 총부리가 눈앞에 있었다. 

“살려달라고 하니까, 신랑을 내놓으라는 거야. 빨갱이 지집 너 신랑 내놓으래. 신랑이 면사무소에 다니고 이름난 사람이니까, 동네 사람들은 다 알거든. 그 사람 이름이 ○○인데 날 보고 ○○이 지집년이래.” 옆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죽창으로 다른 여자를 찌르고 있었다. 피가 솟구쳤다. 여자가 쓰러지자 경찰은 총으로 여자를 쐈다. 

경찰과 군인, 그리고 서북청년단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들은 잡힌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죽창과 칼로 마구 찔렀다. 옷이 찢어지고 죽창이 살을 파고들었다. 업고 있던 아이의 다리도 칼에 찔렸다. 송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옷은 모두 찢겨 알몸이 훤히 보였다. 시어머니가 속옷을 벗어 송 할머니에게 입혔다. 한쪽에서는 총소리에 이어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만 해도 그 이상의 공포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서귀포경찰서로 끌려간 뒤 시작됐다. “이 빨갱이 지집X, 폭도한테 쌀 몇 가마 (산에) 올렸어?”라는 질문이 반복됐다. “배급 타 먹는 사람이 쌀을 어떵(어떻게) 올릴 수 있수꽈?”라고 답하면 몽둥이가 날아왔다. “어깨에 피가 줄줄하지. 온몸이 전부 검은 거야. 멍으로.” 그때 맞은 어깨는 평생 할머니를 괴롭혔다.

“50가마 올렸수다. 50가마 올렸수다.” 아무렇게나 답했다. 경찰은 송 할머니를 끌고가 유치장에 넣었다. 밥 때가 되면 보리와 콩을 섞은 주먹밥이 툭툭 던져졌다. 그걸 못받으면 굶었다. 하지만 굶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름이 불린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한 유치장 안에서 가족의 이름이 불려도 소리내 울 수 없었다. 
 

제주도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각명비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제주도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각명비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감옥에서 죽은 둘째, 감옥에서 태어난 셋째  
며칠 뒤 ‘재판’이 열렸다. 유치장 사람들은 모두 강당으로 옮겨졌다. 앞쪽에는 군인들이 서 있었다. “장부 같은 걸 척척 넘기면서 아무개 석방, 아무개 몇 년, 아무개 무기, 아무개 사형, 착착 불러요. 우리 시어머니는 그때 석방됐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양반(시어머니)이 우리 큰아이 업고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걸어갔대요. 그런데 그렇게 나간 양반을 죽여버렸다는 거야.”

송 할머니는 1년형을 받았다. 죄명은 알려주지 않았다. “난 재수 있으니까 1년을 받은 거야. 재수없는 할망들은 무기 받았지. 지금도 생각나. 50이 넘는 제주시 여자가 무기를 받았는데 ‘아이고 내가 무슨 죄가 있나. 동네 사람하고 개인감정이 있으니까 나를 빨갱이로 몰아가지고 이렇게 됐다’ 이래요.” 그렇게 허술한 ‘재판’이었다. 

육지로 가는 배에 올랐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물어볼 엄두도 못냈다. 옆에 있던 여자가 갑자기 “내 아기가 죽었다”고 울면서 말했다. 한겨울, 엄마가 며칠을 굶어 젖이 나오지 않아 굶어죽은 것이었다. “그 여자, 아이를 묻어주지도 못하고 형무소로 끌려갔어.” 도착한 곳은 전주형무소였다. 칼에 다리를 찔린 아이가 시름시름 앓았다. 살이 썩어 뼈가 보였다. “형무소 간수가 그걸 보고 울어요. 독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하더니 아이 먹을 거 들여 주더라고요. 아기가 그걸 먹어보기나 했으면 내 가슴이 덜 찢어졌을까. 안고 있다가 깜빡 봤더니 목숨이 떨어진 거야.”

송 할머니는 얼마 뒤 안동형무소로 이감됐다. 전주형무소가 ‘미어 터진다’는 이유였다. “안동형무소는 방도 넓고 화장실도 따로 있고 지내기는 전보다 편하고 좋았는데 난 너무 힘들더라고. 귀찮고 살맛이 안 나요. 시어머니가 데려간 큰아이는 어찌 됐을까. 죽은 아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리고 그해 여름 셋째 아이가 형무소에서 태어났다. 

감형이 됐는지 10개월 후에 석방됐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살아있는 게 아무 소용없이 느껴지는 거라. 아이도 죽고 남편도 죽었을 것이고 마을이 다 불타버렸는데 어디 가서 무얼 하며 살까. 그래도 가족이라도 만나보고 싶어서 꾸역꾸역 고향에 가본 거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시댁 식구는 몰살당했고 남편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친정 사정도 비슷했다. 5남매 중 2명이 사망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동생이 마산형무소에 수감됐었나봐요. 마산형무소에서 병이 나서 사람이 다 죽게 됐으니까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다는데 데리러 갈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다 죽고 사람이 어디 있어. 동생은 거기서 죽어가지고 시체도 못찾았어요.”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신고만 1만5000건에 이른다. 일가족이 몰살당했거나 육지나 일본으로 도피한 사례, 살아남았어도 신고도 하지 못한 사람이 허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희생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제주도민 8분의 1(3만명에서 최대 8만명) 이상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갈 곳이 없어 친척집에 신세를 졌다. 그리고 얼마 안가 형무소에서 낳은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더니 깨어나지 못했다. 아이가 죽은 다음날은 눈이 많이 왔다. 걸을 때마다 눈에 발이 푹푹 빠졌다. 4·3 당시 아이들이 어찌나 많이 죽었던지 아이들만 따로 묻는 곳이 있었다. “내 품에서 아이 둘을 보낸 거야. 셋째는 내가 안고 가서 묻었지.” 
 

송 할머니(왼쪽에서 두 번째)가 30대 시절 찍은 사진. 딸은 “엄마는 웃는 사진이 없다”고 말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송 할머니(왼쪽에서 두 번째)가 30대 시절 찍은 사진. 딸은 “엄마는 웃는 사진이 없다”고 말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고… 
하지만 억울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4·3 사람’들을 죽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실제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민들은 또 한 번 고통을 겪었다. 송악산 기슭의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일어난 학살이 대표적이다. 그 희생자들의 묘는 ‘백조일손지묘’(백 할아버지의 한 무덤)로 불린다. 서로 얽힌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다.

“시가 친척이 하는 이야기가 ‘조카, 여기 있으면 못살아. 시집가서 다른 데 가서 살아. 시집가지 않으면 죽어’ 그래.” 남편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살아야 했다. 서둘러 재혼을 했다. 제주 사람인 남편은 인천에서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첫째 남편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산형무소에 수감돼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재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때가 이런 때라 아무 관계없으니 나오라’고 해요. 먼저 신랑한테 재가했었다고 말 안할테니까 마산으로 면회가라고. 아이가 들어섰는데 어떻게 해. 임신했다고 말도 못하고. ‘아이고 난 마산 못가요’ 해놓고는 친정에 가서 엄마 붙들고 막 울었어요.”

인천에 자리잡고 살면서 제주에서의 일은 모두 잊고 싶었다. 재혼한 지 8년 만에 제주도를 찾았다. 막내동생의 결혼 때문이었다. 결혼식에서 첫째 남편을 만났다. “스물네 살에 헤어졌는데 서른여섯에 만난 거야. 서로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그냥 한이 맺혀서….” 몇 년 뒤 첫째 남편이 술병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만 들었다. 

송 할머니는 60년 동안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품에서 자식들이 죽고,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은 살아 돌아오고. 속옷을 벗어줬던 시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자신의 인생이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시국 때문에 팔자가 망했다”는 말로 정리했다. 

10년 전, 제주 4·3도민연대가 할머니를 찾아오고 나서야 그동안 말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송 할머니 이야기는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간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더라도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게 맞는 건지, 혹시나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지난 1월, 수형인 18명이 70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송 할머니는 재심 청구 소식을 듣지 못해 함께하지 못했다. 그는 남은 생존자들과 함께 재심을 청구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는 “이제 와서 사과를 받아 무어해”라고 하면서도 “이제 죽을 때가 되니까 그때 고비고비 어떻게 맞은 거, 내 아기 죽은 거, 그런 생각만 나더라고.” 할머니는 여전히 1948년에 머물러 있다.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4·3도민연대’는 2013년부터 수형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 이하늬 기자

‘4·3도민연대’는 2013년부터 수형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 이하늬 기자

 
제주 4·3 수형인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하고 무죄를 받기까지는 ‘4·3도민연대’(도민연대)의 역할이 컸다. 도민연대는 재심보다는 국가배상소송을 우선하자는 변호인단에 ‘무조건 재심’을 주장했다. 법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영란 도민연대 조사연구원은 “어쩌면 단순, 순진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도민연대의 공식 명칭은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다. 1999년 이전까지 4·3과 관련된 활동은 위령사업과 학술연구, 문화·예술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제주도 내에서 다른 차원의 ‘운동’을 하자는 목소리가 모여졌다. 1999년 3월 8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도민연대가 꾸려졌다. 도민연대는 거리투쟁과 상경투쟁 등을 펼쳤다. 특별법은 2000년 1월 제정됐다. 

1999년에는 ‘수형인 명부’가 세상에 알려졌다. 추미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냈다. 많은 이들이 특별법이 제정됐으니 당시 무작위로 잡혀간 수형인들에 대한 진상규명도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2003년 진상보고서가 나왔지만 수형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시피 했다. 수형인들은 2007년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4·3 피해자로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법체포와 구금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도민연대는 전국을 다니며 ‘4·3 형무소 순례사업’을 하고 있었다. 순례 도중 수형인이었던 생존자를 만나기도 했다. 이후에는 생존자와 함께 순례를 하며 증언을 들었다. 2013년 도민연대는 수형인 명부에 기재된 2530명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양동윤 도민연대 공동대표는 “정부가 할 줄 알고 기다렸지만 몇 년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서 결국 민간이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수형인 명부에는 순번, 직업, 성명, 연령, 본적지, 항변, 판정, 언도일자, 복형장소가 한 줄로 쓰여 있다. 순번으로 구성된 수형인 명부를 본적지를 중심으로 다시 분류했다. 조사원들이 마을별로 다니며 60년 전 주소를 찾아 “아무개씨 계시냐”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이사했을 경우, 물어물어 새로운 주소지로 찾아갔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이미 60년 가까이 지난 시점, 생존자는 극히 일부였다. 수형인 명부 외에 아무런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생존자의 증언은 매우 중요했다. 증언이 쌓일수록 흩어져 있던 편린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기고, 한데 모여 큰 이야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수형인 명부에 쓰인 내용이 실제 실행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하거나 국가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민연대 상근자는 0명이다. 양동윤 공동대표가 무보수로 일하고 조사연구원은 3명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연구비’를 받고 생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그리고 도민연대 활동과 연구를 지원하는 ‘지원단’이 있다. 열악한 환경은 20년째 바뀌지 않았다. 양 공동대표는 “정의감 같은 근사한 이유로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생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 이미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문소연, <늑인>, 각, 2018
 
 
관련기사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240907001&code=940100#csidx6a1aa8bc66b2c8a9b897381885e21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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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에 그친 촛불…국회 적폐 자유한국당 청산해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3/24 13:23
  • 수정일
    2019/03/24 13: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18 역사왜곡·항일운동 부정·세월호참사 주범 등 비판 쏟아져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19-03-23 20:15:47
수정 2019-03-23 20: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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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시민단체들이 자유한국당 해체·적폐청산·사회대개혁을 주장하며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반전평화국민행동 소속 단체들을 비롯해 총 700여개 단체들은 23일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3.23 범국민 촛불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5.18학살왜곡처벌법 제정 정치개혁 완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사법농단 적폐판사 탄핵’ 등을 주장했다. 

양손에는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촛불개혁 실현하라’, ‘5.18 모독 역사왜곡 처벌하자’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있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는 “5.18학살을 부정하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망동과 망언을 일삼고 있는데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은 지난달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유공자를 ‘괴물’로 매도하는 발언을 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박 공동대표는 “황교안은 세월호 참사를 수사하는 광주지검에 압력을 가해 방해했던 범죄자일 뿐 아니라 통진당을 강제해산시킨 사법농단 주범”이라며 “박근혜와 같이 퇴장해야 하는데 다시 제1야당 대표로 등장했다”고 꼬집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됐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근혜만 쫓아냈지 국회의 적폐는 청산하지 못했다”며 “촛불 혁명을 뒤집겠다는 망상으로 총공세를 가하는 적폐세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공동대표는 ‘5.18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과 더불어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도 주장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세월호 유가족도 마이크를 잡았다.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진상규명에서부터 적폐청산을 시작해야 한다”며 “박근혜와 그 보위 세력이 세월호 참사 범인이라는 걸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누구도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구할 수 있는 시간에 구하지 않았다”며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그날 희생자를 구하지 않은 범인을 처벌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종대왕 동상을 기준으로 아래쪽에서는 촛불대회가 위쪽에서는 보수단체 집회가 열렸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아래쪽까지 내려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팔을 불며 집회를 방해하려 했다. 

장훈 위원장은 “방금 ‘교통사고로 죽은 애들 때문에 나라 뒤집혔다. 빨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는 “유가족들은 죽어서 아이들에게 갈 때까지 진상규명 하나만 볼 것이다. 함께하는 국민들이 있는 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에 내몰리고 농민들은 쌀값 변동직불제마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도시빈민들은 철거에 쫓겨날 걱정하고 있다”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이런 짓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적폐세력이 날 뛸 수 있는 건, 집권여당이 제대로 이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힘으로 응징하지 못해서이다”라며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민은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을 기만했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최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6명이 나 원내대표에게 이른바 ‘반민특위 발언’에 대한 사과를 듣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가 사무실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 원내대표 측은 본회의 및 의원 총회 일정 때문에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는 우산을 만들고 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는 우산을 만들고 있다.ⓒ김철수 기자

민은서 회원은 “나경원 의원은 본회의에서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연설하는 중 퇴장했다. 정말 중요한 회의였다면 왜 퇴장했나. 그리고 왜 면담을 무시했나”라며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나 의원은 사퇴하고, 망언을 일삼는 자유한국당도 해체해야 한다. 5.18 주범 전두환은 역사 앞에 심판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민중당 등 범진보 진영 정당 관계자들도 참여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5.18을 왜곡·날조하고 민족자주독립 항일운동을 부정하는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누워서 침 뱉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미강 민주평화당 최고위원은 “사회를 둘러보니 비상식적 우익들이 존재하다. 바로 자유한국당이다”라며 “몰역사적 인식으로는 시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오병윤 민중당 사법적폐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40년 지난 5.18이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도 못했다”며 “국민들이 힘을 모아 단결하지 않으면 정치권은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 기억해야”한다고 강조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4.16연대, 5.18시국회의,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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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내 인생"이 마지막 대화...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피해자 유가족이 1심 판사에 보내는 편지

19.03.24 11:06l최종 업데이트 19.03.24 11:06l

 

 

 사고 후 피해자 차량
▲  사고 후 피해자 차량
ⓒ 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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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사님, 저는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피해자 유가족 유지은입니다. 2월 21일 판사님이 가해자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2018고단7796 사건입니다. 2018년 10월 3일 새벽 2시12분 경 만취운전자가 일으킨 8중 추돌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 당했는데, 사망한 사람이 제 어머니입니다. 제가 이렇게 공개편지를 쓰는 이유는 판사님의 판결에 대한 의문점과 판사님을 비롯한 대한민국 사법부에 촉구하는 바를 밝히고자 해서입니다.

판사님, 저는 판사님께서 검찰이 5년을 구형한 사건에 왜 2년을 선고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첫째 벌금형 외의 다른 전과가 없다는 점, 둘째 암 투병 중이던 가해자의 어머니가 재판 중 사망했다는 점, 셋째 차량을 폐차하였다는 점,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전치 2주 이내)과 합의되었다는 점을 양형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게 과연 3년을 감형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가해자는 2년도 부당하다며 항소를 한 상황입니다. 최악의 경우 2심에선 집행유예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더욱 분통이 터집니다. 왜 유가족인 저희가 국민 청원, 전단 배포, 현수막 설치 등으로 처벌 실태를 알리고 합당한 처벌을 요구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판사님의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음주운전을 어떤 무게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지표입니다. 사법부의 음주운전 처벌 강화에 대한 약속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 정도인가요? 솜방망이 처벌로 잠재적 음주운전을 방지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점입니다.

어떤 판결을 하느냐는 판사 고유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판사님께서 주신 양형 사유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판사님께서 듣지 못하신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꼭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쭙겠습니다. 판사님의 아내였어도 징역 2년을 선고하셨을까요?

한 가정 행복 앗아간 음주운전
 
 사고의 영향으로 운전 좌석에 튕겨나온 닭갈비 재료
▲  사고의 영향으로 운전 좌석에 튕겨나온 닭갈비 재료
ⓒ 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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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는 지난 20여 년간 해외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의 기둥 역할을 하셨습니다. 사춘기 자식 둘이 장성하기까지 홀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직장과 집에서 쉴 틈 없이 일하셨습니다.

단 하루도 자신을 위해 써본 적 없던 어머니는 평생을 사회적 약자,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 왔습니다. 회사의 팀장으로 수십 명 팀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길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의 좌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사고를 당한 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인이 하는 닭갈비 사업이 어려워지자 팀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도 가족과 함께 먹을 요량으로 잔뜩 사 늦은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오붓한 저녁 식사를 할 생각으로 돌아오던 어머니는 혈중알코올농도 0.093%, 면허 정지 수준으로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 차량에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소중한 내 인생"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피해자의 마지막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
▲  피해자의 마지막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
ⓒ 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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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있던 날 오전, 어머니는 저에게 "소중한 내 인생이 영어로 뭐야?"라고 물은 후 자신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My precious life'로 바꾸었습니다. 어머니 생의 마지막 하루가 될 줄은, 이 대화가 가족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 가해자의 무책임한 음주운전으로 어머니는 자신의 소중했던 삶과 작별할 기회, 최소한의 정리 시간조차 가지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하다못해 흉악범, 사형수들에게도 주어지는 여유도 가지지 못하고 스러지고 만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말씀드립니다. 제가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법 뒤에 사람이 있고 사연이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피해자 김씨가 아니라 55년간 고군분투하며 세상을 밝힌 훌륭한 어머니 김주은씨입니다.

고 윤창호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국을 울렸고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계속돼야 할까요. 앞으로도 수많은 얼굴 없는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고 판사님들은 가해자에게 벌을 내리시겠죠. 부디 무거운 형벌로 음주운전 방지와 가해자 교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편지가 판사님들의 마음에 닿아 다른 잠재적인 피해자 혹은 유가족이 저희가 겪는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국민청원] 어머니를 살해한 음주운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도와주세요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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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님, 밀어내면서 놓치는 것을 생각해주길"

'박원순 개인전' 24일 마감...참여 예술가들 '작가와의 대화' 열어
2019.03.24 11:17:06
 

 

 

 

지난 8일 문을 연 '박원순 개인전'이 24일을 끝으로 전시를 마감한다. 이 전시회는 서울시의 개발 담론에 문제의식을 가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프로젝트 팀 '서울-사람'이 주최했다. 심승욱, 오세린, 일상의실천, 정용택, 차지량, 최황, 한정림, CMYK 등 총 8팀의 예술가들이 이번 전시회에 참여했다. 
 
이 전시회가 언론 등에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가'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박 시장이 진행한 도시재생, 재개발사업의 현상들을 작품소재로 사용하면서 박 시장을 작가로 소환했다. 이에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어시스턴트'라고 칭했다. 일종의 풍자다. 
 
그러한 '어시스턴트'들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상업화랑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상업화랑은 '박원순 개인전' 전시회를 치른 곳이다. 이들이 풍자 가득한 전시회를 연 이유는 무엇일까.  
 

▲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참여한 예술가들. 가운데 비어 있는 자리는 박원순 시장 자리다. ⓒ프레시안(허환주)

"예술은 사회에 계속 말을 걸어야 해" 
 
"작용과 반작용 법칙이 있는데, 재개발에서는 반작용 보다 작용의 힘이 매우 세다. 재개발, 자본의 시장논리가 워낙 힘이 세다 보니 재개발 지역 원주민들, 그리고 그곳에서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들의 저항, 즉 반작용이 생겨나지 않는 듯하다. 을지로 지역은 작업할 때 필요한 재료를 사러 자주 오던 곳이다. 내겐 매우 중요한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이는 다른 작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이유다." 최황 
 
'박원순 개인전'은 최황 시각예술가가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축으로 포털 사이트들이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촬영한 파노라마 '로드뷰'를 모아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든 것을 전시했다.  
 
최황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이유를 두고 "예술로 사회를 바꿀 수는 없어도, 예술로 사회에 계속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형의 언어로 사회에 말을 걸었다는 지점에서 이번 전시회는 흥미로운 해프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번 전시회는 언론과 세간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박원순 시장을 '작가'로 데뷔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박 시장에게 전시회 초청장까지 보냈다. 이날 '작가와의 대화'에는 작가 자리로 박 시장 자리를 비워두기도 했다.  
 
작가그룹 CMYK는 '옥탑방 겨울나기 종합세트'라고 쓰인 선물 상자를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이는 지난 2018년 한여름 당시, 강북구 옥탑방에서 한 달 간 거주했던 박 시장을 상기하면서 준비한 작품이다. 당시 박 시장은 겨울에는 금천구에서 거주를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CMYK는 이를 풍자하면서 박 시장을 도와줄 겨울 종합선물세트를 전시한 것이다. 세트 안에는 뽁뽁이, 분무기, 털신, 난로 등이 들어 있다. 관람객 응모 이벤트를 통해 100명을 추첨해 선물 세트를 증정하기도 했다. CMYK는 "박원순 시장에게도 선물세트를 보냈으나 반송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 작가그룹 CMYK의 '옥탑방 겨울나기 종합세트'. ⓒ프레시안(허환주)

 
사회 이슈를 예술이란 매개로 대중과 소통 
 
이번 전시회의 의의는 박 시장 개인을 단순 조롱거리로 만들기보다는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위트 있고 세련되게 박원순 시장의 재개발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 있다.   
 
공예가 오세린 작가는 시들고 깨진 귤을 본떠 금속제 조형물로 만든 뒤, 도금한 오브제를 선보이면서 쓸모없고, 망가진 것들은 내다 버리는 서울시의 행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사회적 이슈를 매개로 한 예술적 행위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디자인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은 2011년~2019년까지 박원순 시장의 발언을 비롯해, 그의 뒤축 닳은 구두, 안경 등 물건들과 박 시장이 방문했던 장소 등을 모두 문자와 기호로 수집한 뒤, 이를 디지털 화면에서 조합한 결과물을 종이로 출력하는 작업을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주목할 점은, 관람객들이 이 작업에 참여, 즉 직접 기기를 조작해 박 시장의 발언, 안경, 신발 등의 그래픽물을 색지에 편집한 뒤, 이를 출력할 수 있게끔 했다는 점이다. 이 출력된 종이를 관람객들은 을지로, 청계천 일대에 전단지로 부착할 수 있고, SNS에 공유할 수도 있다.  
 
일상의실천팀은 "그간 박 시장이 했던 워딩을 정리하면서 과거 내가 투표해서 뽑았던 박 시장과 지금의 워딩 속 박 시장과는 괴리가 크다는 생각을 했다"며 "관람객들도 직접 작업을 해보면서 각자의 답을 내길 바랐다"고 말했다.  
 

▲ 일상의실천은 관람객이 직접 포스터를 구성해 출력까지 바로 완성 할 수 있게 구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프레시안(허환주)

"밀어내면서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주길" 
 
작가들은 "박원순 서울시장 임기 중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과 재개발 사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로 '박원순 개인전'을 준비했다"며 "이를 토대로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의 현주소를 조명해보고자 했다"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작가들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은 남아 있는 듯했다. 박 시장이 이제라도 좀더 주변을 살피며 사람 중심의 행정을 해주기를 당부했다. 
 
"서울 이곳에 사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것을 밀어내는지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이곳 을지로를 밀어내고 들어서는 것은 금융과 사무실 등 반짝거리는 것들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이겨야만 한다. 그래야 반짝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밀어낸다. 그래야 내가 반짝거린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도 반짝거리는 것을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박 시장이 그런 반짝이는 것보다는 밀려나는 이들을, 그리고 밀어내면서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오세린  
 
CMYK는 "삶에서 중요한 건 '동료찾기'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시장 자리에 가기까지 많은 동료의 응원과 도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동료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장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조언했다.  
 
최황 작가는 박 시장을 두고 "분노보다는 실망이 더 크다"며 "박 시장의 초창기 모습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 작가는 "박 시장이 다시는 이런 식으로 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여기에서 나온 목소리를 듣고, 변화와 모색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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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6학년 4반 소파의 비밀

입력 : 2019.03.23 06:00:04 수정 : 2019.03.23 06:35:22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의 자랑이자, 쉬는 시간이면 학급 구성원들의 총애를 받던 적갈색 소파는 어쩌다 하루아침에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됐을까.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의 자랑이자, 쉬는 시간이면 학급 구성원들의 총애를 받던 적갈색 소파는 어쩌다 하루아침에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됐을까.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누구에겐 “반의 상징”… 누구에겐 “소파”… 누구에겐 “친구”
한순간에 우리 반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은 너, 어쩌면 좋니?

그날 소파는 느닷없이 등장했다. 지난 12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 뒤편에 있던 적갈색 소파에 갑자기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선생님과 학생들은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특별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소파는 PVC(폴리염화비닐) 재질이고요. 납 안전기준이 300PPM인데 250PPM 나왔어요. 그런데 브롬이라는 물질이 1200PPM 정도 나왔어요. 브롬계 난연제라는 물질이 있는데 불이 났을 때 불길이 확 번지지 않도록 물건에 화학처리를 하는 거예요. 더 정확한 건 연구소에 가져가봐야 알겠지만, 브롬이 1000PPM 이상 함유되면 보통 브롬계 난연제가 사용됐다고 볼 수 있어요.”

이날 특별강사로 초빙된 박수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사무국장이 소파에서 브롬이 검출됐다고 말하자, 선생님과 아이들의 입에선 “아…” 하는 탄식과 함께 한숨이 나왔다. 박 국장은 이날 휴대용 XRF(X선 형광분석기)로 교실 곳곳의 물건들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되는지 점검했다.

“브롬이 뭐예요?” 

“음… 브롬계 난연제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는데요. 여러분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선 어린이제품에 브롬계 난연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물질로 지정했거든요.” 

“헉….” 다시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일단 이런 제품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고요. 갑자기 소파를 바꿀 수 없다면, 면으로 된 천이라도 덧대서 여러분 피부에는 직접 닿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소파는 원래 이날 수업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생활 속에서, 교실 안에서 쓰는 물건들이 어떤 화학성분으로 구성돼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플라스틱 지우개, 화장품, 교실 뒤 게시판 시설 등 화학성분이 들어갔을 것 같은 제품들을 따져봤다. 그런데 갑자기, 소파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됐다. 이 소파는 담임인 배성호 교사가 아이들이 교실을 좀 더 편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교사휴게실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이었다. 

“그동안 소파가 있어서 좋았죠?” 배 교사가 물었다. “네!” “우리 반만의 상징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할까요?” “갖다 버려요!” “천을 씌워요!” “중고나라에 팔아서 다른 걸로 사요!” “다른 반에 줘요!”

“우리에게 좋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 건데,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줘도 될까요?” 배 교사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곧 깨졌다. “그럼 계속 써요!”(모두 웃음) 

배 교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소파를 버리면 더 안전한 제품을 살 수 있을까요? 안전한 제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번엔 더 긴 침묵이 흘렀다. 한 학생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소파랑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요.” 

이 반의 자랑이자, 쉬는 시간마다 편하게 눕거나 앉아 쉴 수 있는 특별한 애장품이던 적갈색 소파는 불과 몇분 만에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됐다. 
 

◆우리 반 소파에 발암물질? 그럼 버려요, 누굴 줘요? 지우개·틴트에는요?

서울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화학물질을 그려봤다(첫번째·세번째 사진). 가운데는 ‘유해화학물질 특별수업’을 마친 뒤 이혜원 학생이 적은 소감문으로 “모든 물건에 성분정보가 쓰여 있으면 좋겠다”고 썼다.

서울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화학물질을 그려봤다(첫번째·세번째 사진). 가운데는 ‘유해화학물질 특별수업’을 마친 뒤 이혜원 학생이 적은 소감문으로 “모든 물건에 성분정보가 쓰여 있으면 좋겠다”고 썼다.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 수업시간 
방금 앉아 놀던 교실 뒤 소파에서
‘브롬’이라는 물질이 검출됐단다 
버릴 수도 없고 누굴 줄 수도 없고
일단 안전한 천을 씌워 놓기로 한다 
유지파·제거파·보완파 나눠 조사
모의법정서 소파 운명을 정하기로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이 소파를 두고 빠진 고민은 한국 사회가 화학물질을 대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우리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을 채우고 있는 많은 화학물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모두 폐기?).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인가(안전한 제품 개발?). 누군가에게 넘길 것인가(저소득 국가로 떠넘기기?). 당장 체감되는 위험만 없다면 그냥 두고 쓸 것인가(모르는 게 약이다?). 

이날 수업을 지켜본 또 한 명의 특별강사,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소파에 던지는 질문처럼 저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소파에 대한 여러분의 판단이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에 대한 판단과 같을지도 몰라요. 지금 인류가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이거예요. 우리가 안전하게 화학물질을 쓰는 방법.” 

■ 학교를 구하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12일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특별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형광펜, 비누, 액괴(액체괴물 장난감), 지우개 등의 성분을 의심했지만, ‘믿고 있던’ 소파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자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은 소파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천과 곰인형을 올려두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12일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특별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형광펜, 비누, 액괴(액체괴물 장난감), 지우개 등의 성분을 의심했지만, ‘믿고 있던’ 소파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자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은 소파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천과 곰인형을 올려두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삼양초는 지난해 10월 노동환경연구소에 체육관에서 사용하는 용품들에 대해 중금속 측정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 총 58개 제품 중 절반에 가까운 27개 제품이 PVC(폴리염화비닐) 재질로 나타났다. PVC는 열가소성 플라스틱의 하나로 원래 딱딱한 물질인데, 화학처리를 통해 유연성과 탄력성을 높인 뒤 제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PVC가 사용됐다는 것은 환경호르몬이 발생하는 프탈레이트(phthalate) 가소제가 함유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학생들이 많이 쓰는 농구공에선 카드뮴이 기준치(75PPM)를 2배 이상 넘는 165PPM이나 검출됐다. 뜀틀매트에선 기준치(300PPM)를 26배 초과한 납성분이 7939PPM 검출됐다. 라켓, 공바구니, 원목뜀틀, 투호 등에서도 기준치를 뛰어넘는 납과 브롬 등이 검출됐다. 

학교는 우선 학생들과 임신 중인 교사들이 체육교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뒤, 예산을 투입해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된 교구들을 안전한 제품들로 교체했다. 그러나 매트리스와 뜀틀 등 교구 중 20%는 안전한 대체재가 없어서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삼양초가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부터 새내기 선생님까지 유해화학물질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김신범 부소장의 책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를 읽은 배성호 교사가 교사 연수에 김 부소장과 박수미 사무국장을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교사들은 학습 자료를 만들기 위해 거의 매일 쓰는 커팅매트(물건을 자르는 받침대)에까지 발암물질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 교사는 “30년 동안 교직에 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몰랐다”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겠다”고 했다. 

교사들은 뜻을 모아 학생들이 쓰는 체육교구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기로 했고, 결과를 본 교장 선생님은 추가 예산 투입을 결정했다. 최현섭 삼양초 교장은 “갑자기 추가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처음 조사결과를 보고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당장 우리 아이들이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망설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삼양초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이런 문제를 왜 개별 학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가. 수은이 나온 인조잔디, 납이 든 우레탄 트랙 등 이미 10여년 전부터 학교공간의 유해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됐다. 완구, 문구용품이 납범벅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2015년에는 어린이들이 쓰는 제품의 안전기준을 만든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제정됐다. 민주당 김민기의원실이 2016년 발표한 ‘안전한 학교만들기 학교 유해물질 실태보고서’를 보면 학교에서 사용 중인 체육교구와 학습교구 총 35종을 조사한 결과 제품 중 74.3%에 PVC 재질이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학교의 경우 교실과 학교도서관만 환경안전관리기준 대상에 해당될 뿐, 그 외 공간은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학교운동장은 법률상 어린이활동 공간이 아니다”라며 법의 맹점도 지적했다. 아이들이 거의 매일 쓰는 체육교구와 학습교구 역시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품목이 많다.

그렇다면 교육부나 환경부, 보건복지부가 나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공간의 안전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2019년 3월 현재까지 이런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가 만든 ‘학교 안전교육 7대 표준안’에도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관심 있는 학교들만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진행하고 대체용품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이 안전점검을 해주겠다고 해도, 조사결과가 학교장의 책임으로 돌아올까 봐 점검을 반대하고 발암물질을 끌어안고 사는 학교들도 많다.

삼양초 교장부터 새내기 선생까지 
화학물질 없애는 데 앞장서지만…
교육부도, 환경부도, 복지부도 
왜 정부에서는 나서지 않는 걸까

정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교사들이 움직이고 있다. 현장 교사들이 모인 실천교육교사모임(회원 1500명)은 학교 공간의 유해화학물질 문제를 안건으로 채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교사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의 한희정 서울대표(서울 정릉초)는 “적어도 성장기 아이들이 매일 생활하는 학교에 반입되는 물품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다 강력한 안전기준을 만들고,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은 반입을 금지해야 한다”며 “교사들 중에도 불임과 유산, 아이의 아토피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일 학습교구나 체육교구를 만지고 정리하는 교사들도 유해물질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오는 5월2일 아동건강권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강신만 전교조 부위원장은 “초·중·고교생들의 건강을 학교 안에서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아동들의 생활·학습공간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를 두고 시민단체와 정부, 교육·환경·복지전문가들이 모이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22일 정책안전기획관 주재로 유치원과 초·중등학교 체육교구·학교시설 내장재 담당자, 유해물질 전문가, 현장 교사 등이 모여 ‘학습교구와 학교시설 내장재 유해물질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서울시 친환경급식센터처럼, 교육청이나 지자체가 안전한 학습교구들을 구비한 ‘안전교구센터’를 만들고, 각 학교는 센터를 통해 학습교구들을 구입하는 방안도 교사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현재는 책걸상 등 덩치가 큰 교구는 학교가 조달청을 통해 구입하지만, 각 학급에서 수업에 활용하는 학습교구들은 교사들이 직접 문구점이나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 유해화학물질과 이별하는 법  

[커버스토리]6학년 4반 소파의 비밀

삼양초 6학년 4반의 소파는 아직 교실에 있다. 아이들은 소파를 버리지 못했다. 대신 면으로 된 천을 씌워 사용하고 있다. 소파와 작별하고 싶다던 아이들은 당장 새 소파를 사거나 버리는 대신 유해화학물질을 공부하고 있다. 23명의 학생들이 ‘소파 유지파’ ‘소파 제거파’ ‘소파 보완파’로 나뉘어 각각 자료 조사를 하고 있다. 한 달 뒤 ‘모의 법정’을 열어 소파의 운명을 결정할 예정이다. 달라지고 있는 것은 소파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프탈레이트 지우개’와 천연성분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지만 입술에 바르면 따가운 틴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교실 뒤 과제물을 전시한 초록색 게시판에 압정을 꽂을 때마다 유해물질이 뿜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더 나아가 ‘왜 성분 표시는 어른도 아이도 알아볼 수 없도록 깨알처럼 표기돼 있는지’ ‘왜 4000만원이나 되는 기계(XRF)를 쓰지 않고서는 나쁜 성분이 들어갔는지 아닌지 제대로 알 수 없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고민의 과정을 노래와 책으로 만드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 

반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배성호 교사는 “학교라고 하면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게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배 교사는 “저 역시 학교 안의 유해화학물질을 공부하며 많이 놀랐지만, 아이들이 쉽게 소파를 버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며 “아이들처럼 함께 지혜를 모으고 기준을 만들어나간다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어린이가 안전해야 ‘안전 사회’…낯설어도 화학물질 알고 바꿔가야”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왼쪽)과 박수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사무국장이 지난 12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과 만나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박 국장이 손에 든 것은 물건의 중금속 성분을 측정하는 X선 형광분석기로, 아이들은 “헤어드라이어 같다”며 신기해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왼쪽)과 박수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사무국장이 지난 12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과 만나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박 국장이 손에 든 것은 물건의 중금속 성분을 측정하는 X선 형광분석기로, 아이들은 “헤어드라이어 같다”며 신기해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안전한 학교 만들기’ 운동하는 전문가들, 김신범·박수미씨

유공(현 SK케미칼)이 세계 최초로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한 것은 1994년. 첫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1995년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유독성을 공식 확인하고 판매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2011년. 이미 1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아이에게 안심”이라는 포장지에 덮인 독성물질을 사용한 후였다. 2018년 8월까지 접수된 피해사망자만 1335명이지만,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습기살균제가 10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린 것은 그만큼 우리가 화학물질에 무지하고 안이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조금 안전해졌을까. 지난 19일 서울 중랑구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두 전문가를 만났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49)은 직업병 연구와 함께 유해화학물질 알권리 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박수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사무국장(50)은 2011년 어린이 제품 분석을 시작으로 유해화학물질 현장점검과 정책제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은 “화학물질은 모두에게 불편하고 낯선 문제”라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함께 힘을 모으면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유해물질 없는 건강한 학교 만들기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김신범(이하 김) =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주로 공장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을 해왔는데, 공장에서 발암물질을 아무리 찾아내도 없애질 않는 거예요. 근데 2009년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되니까, 소비자들이 화들짝 놀라 석면 없는 제품을 찾겠다고 나서더라고요. 몇 년을 싸운 ‘나쁜 접착제’ 문제도 ‘새차증후군’이 이슈가 되니 없어졌어요.(웃음) 노동자를 보호하면 소비자도 당연히 보호된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맨 끝단에 있는 소비자들만 대책을 찾으려 하니 근본적인 대책이 안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한편으론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공장도 바뀔 수 있겠구나, 생각한 거죠. 석면베이비파우더 사건 이후로 여러 시민사회단체, 노조, 연구자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박수미(이하 박) = 2011년에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을 결성하면서 안전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출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어요. 우선 ‘어린이가 안전해야 사회가 안전하다’는 합의를 했고요. 그럼 어린이들의 생활환경부터 점검해 보자고 해서 2011년에 처음으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문구와 완구, 장신구 등을 분석했는데 유해화학물질이 엄청나게 나온 거죠. 이후 학교교육현장으로 옮겨 2013년 ‘PVC(폴리염화비닐) 없는 학교 만들기’를 진행했고, 2015년부터는 서울시 녹색서울실천공모사업으로 ‘유해물질없는 건강한 학교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어요.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문구, 완구에서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환경호르몬 프탈레이트와 납, 카드뮴 등이 검출되자 여론이 들끓었고, 2015년 만 13세 이하 어린이들이 쓰는 제품의 유해물질 안전기준을 정한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2016년 6월4일부터 발효됐고, 이후 만들어진 어린이용 제품은 이 기준을 통과해야만 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전에 만들어진 ‘발암물질 덩어리’ 제품들도 여전히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별법상 ‘어린이용 제품’의 기준과 범위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2016년부터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적용되고 있죠. 좀 나아졌나요.

김 = 저는 어린이특별법이 아니라 ‘어린이품공법(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이라고 불러요. 예방적으로 문제를 찾아내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서 이미 심각하게 문제가 확인된 몇 가지만 관리하는 식이거든요. 기업은 이 법을 ‘정부가 제시한 안전기준만 지키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해석해요. 어린이특별법인데 왜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리하고 있을까요. 기업에 가는 영향이 최소한이 되도록 산업부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거죠. 

‘발암’ 지적에도 없애지 않던 석면 
베이비파우더에서 검출되자 파장
소비자 관심이 세상 바꿀 수 있어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 시행 4년
2016년 이후 출시 제품에 한정돼 
KC마크 있다 해도 문구 확인해야

- 정부가 최소한의 시험을 만들어서 그것만 지키면 넘어가도록 하고 있다는 거군요.

김 = ‘프탈레이트’라는 물질이 종류가 굉장히 많아요. 정부는 그중 여섯 종류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 3개만 완전 금지, 나머지는 함량 정도를 관리해요. 그럼 기업들은 조금만 구조를 바꿔서 똑같은 독성을 가진 물질을 개발합니다. 새 독성물질은 저촉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죠. 기업이 ‘우리가 어떤 원료를 사용해서 만들었고, 어린이들은 이렇게 사용하면 안전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밝히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만들어놓은 기준 몇 개만 지키면 기업을 처벌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과연 기업이 지금보다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까요. 

박 = 법 적용대상이 너무 협소해요. 필통의 경우, 누가 봐도 아이들만 쓸 것 같은 캐릭터 제품만 대상으로 정했어요.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에서도 어른도 좋아할 것 같은 품목은 제외했고요. (무채색, 민무늬 필통은 무조건 성인제품으로 보는 건가요) 네. 요즘 애들은 눈높이가 있어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계속 항의하니까 그 지침이 없어졌어요. 한 학교 선생님이 농구공에서 다량의 화학물질이 검출됐다고 항의하니까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왜 성인이 쓰라고 만든 농구공을 가져다 애들 수업시간에 썼느냐’고 했대요. 지금 지침대로라면 초등학교 체육시간에도 유치원에서 쓰는 완구 공을 써야 돼요. 

- 어린이들이 꼭 어린이전용제품만 쓰는 건 아니잖아요. 발육 정도에 따라 성인제품이 맞는 경우도 있고요. 

김 = 그렇죠. 우선은 기어 다니고 여러 제품을 물고 빠는 아이들이 유해화학물질에 훨씬 더 심각하게 노출되어있기 때문에 유아·어린이들이 쓰는 제품부터 관리하자고 하는 것은 옳다고 봐요. 그런데 그 수준의 법으로 모든 어린이가 보호된다고 착각해선 안 되는 거죠. 아이들 몸속에 환경호르몬이 들어가는 경로는 아주 많으니까요. 

박 = 욕실 슬리퍼의 경우 아빠, 엄마 것과 아이 것을 따로 쓸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죠. 변기매트도 유아용을 따로 쓰지 않잖아요. 

- 어린이제품을 살 때 보통 ‘KC마크(국가통합인증마크)’가 있는 제품을 사면 안전하다고 믿는데 맞나요. 

박 = 우선 어린이제품 관리제도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관리품목이 세 가지로 구분돼요. 첫째는 안전인증대상 품목인데 물놀이기구처럼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당장 생명과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제품이에요. 둘째는 안전확인대상 품목인데 학용품이나 유아용 침대, 보행기 등이죠. 첫 번째와 두 번째 품목은 정부에 시험성적서를 내고 인증번호와 확인번호를 받아요. 그런데 세 번째 품목인 공급자적합성확인대상(어린이용 롤러스케이트, 어린이용 면봉, 어린이용 섬유제품 등)은 시험성적서를 정부에 내지 않아도 돼요. 자체적으로 인증기관에서 시험성적서를 받고 국가기술표준원 홈페이지에서 KC마크를 다운받아서 붙이면 되는 거죠. 품공법에 따른 KC마크와 특별법에 따른 KC마크가 다르기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실 때는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 KC인증’ 여부를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김 = 포장만 있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이런 안전기준이면 된다’는 헛된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있는 겁니다. 

박 = 단적인 예가 ‘액괴(액체괴물 장난감)’인 것 같아요. 어린이제품인데 가습기살균제 원료였던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가 검출되니까 부랴부랴 사용 규제를 했어요. 근데 그다음엔 붕소가 검출됐죠. 이 제품에 어떤 성분들이 사용되는지 모르니까,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처리하는 거예요. 

-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요.

박 = 굉장히 노력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2013년에 악기 케이스에서 납농도가 높게 나와서 지적했더니, 해당 제조업체 사장님이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며 찾아오셨어요. 그 업체는 결국 납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천케이스를 제작했어요. 한 줄넘기 업체는 자발적으로 보급용과 전문가용 모두 줄넘기와 케이스까지 안전한 제품으로 제작했어요. 그 제품은 아이쿱(협동조합) 온라인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저희가 연결해드렸어요.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은 자체 분석을 거쳐 홈페이지(www.nocancer.kr)를 통해 ‘안전한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 = 사실 기업들도 힘들어요. 안전한 제품,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했던 업체들이 많이 망했어요. 소비자들이 알아봐 줘야 되는데, 여전히 시장에선 브랜드만 보고 사죠.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믿고 지켜주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어요. 좋은 예로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작은 문구업체들이 많이 도산했는데, 유해물질 문제가 확산되며 문구협동조합들이 움직이고 있거든요.

- 환경호르몬, 유해화학물질의 문제는 알면 불편하기만 하다는 인식도 많습니다. 괜히 공포를 조장한다는 시선도 있죠. 

김 = 생활 속 화학물질은 만들어진 지 몇십 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낯설고 어려운 문제죠. 이제 막 답을 찾는 단계고요. 이 문제는 물건을 대하는 마음과도 연결돼요. 주변의 많은 물건들이 (값싸고 편리해 보여도) 위험한 물질들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화학물질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유럽도 여러 불행한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씩 고쳐나간 거예요. 우리도 힘을 모으면 바꿀 수 있어요.

박 = 초등학생들을 만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저희가 5년 동안 학교 유해물질 관련 사업을 해왔는데 과연 아이들이 갖고 있는 궁금증에 귀를 기울였었나 싶더라고요. 초등학생들이 화장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다양한 제품을 사용하는 줄은 몰랐거든요. 누구나 자신의 생활과 밀접해야 관심을 갖는 거잖아요. 아이들 입장이 아니라,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것만 전하려 했던 게 아닐까. 소통이 너무 적었구나 싶었어요. 유해화학물질은 세대를 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니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목적이 아니에요. 학교든 정부든 당장 내 업무영역이 아니라거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떠넘기지 말고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230600045&code=940100#csidxc5aa0cad689c7e5a86de5aaec013e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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