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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86억과 5천 원의 국격 차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6/08 07:42
  • 수정일
    2021/06/08 07: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민플러스
  •  
  •  승인 2021.06.0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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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가석방 추진에 대한 단상

1.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86억 뇌물을 건넨 혐의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재계와 만난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문제를 거론한 데 이어 지난 6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석방을 언급했고, 7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에 호응하면서 이 부회장의 사면‧가석방에 이목이 쏠린다.

2.

지난 1월 A씨는 고시원에 침입해 5000원 상당의 훈제계란 18개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코로나19 사태로 일거리가 없어지고 여기에 무료급식소까지 문을 닫자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생계형 범죄인 데다 이 부회장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자, 2심 재판부가 형량을 감축해 A씨는 출소를 앞두고 있다.

3.

한미 정상회담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4대 그룹이 총 44조 원이 넘는 미국 투자를 결정했다. 때를 같이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 사면을 촉구했다. 제임스 김 AMCHAM 회장은 “삼성에서 가장 중요한 임원인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 최고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3일 경제 5단체장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요청을 재차 건의하자 김부겸 국무총리는 "경제계의 목소리와 뜻을 대통령에게 충실히 전달하겠다"고 언급했다.

4.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돈을 횡령해 뇌물을 건넸기 때문에 뇌물액(86억 원)이 곧 횡령액이었다. 횡령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이 법대로라면 이 부회장은 5년 이상의 실형을 살아야 하지만, 재판부는 절반인 2년6개월이라는 초법적인 선고를 내렸다.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5.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배가 고파 계란을 훔친 A씨에게 1년형을 선고한 사법부는 86억을 횡령한 이 부회장에 특혜 선고를 내렸다. 코로나 여파로 국내 경제는 불황과 일자리 문제로 몸살을 앓는데, 대통령은 삼성을 부추겨 미국에 수 조원을 투자, 미국 경기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함으로써 국격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에 이어 여당 대표까지 나섰으니 이 부회장의 출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8.15광복절엔 특별 사면도 고려된다. 한편,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었던 A씨는 오는 27일 출소 한다. 이 부회장과 A씨의 출소 장면이 묘하게 겹친다.

  민플러스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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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반석에 새겨 오롯이 후대에 전해지길"

유가협,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재추진.."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6.07 17:28
  •  
  •  댓글 0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3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발의되었다가 '셀프특혜'논란에 휩싸이면서 자진 철회했던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 제정이 다시 추진된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6월항쟁 정신계승 및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6월항쟁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화운동이 제대로 기억되고 평가될 때, 이들의 희생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우리의 역사와 사회 속에 확고하게 지켜내낼 수 있을 것"이라며, 21대 국회가 즉시 '민주유공자법' 심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유가협은 기자회견문에서 "민주제단에 바쳐진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하여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은 민족민주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며 "이들의 죽음과 희생을 제도화하여 후대에 교훈으로 삼자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전통을 반석위에 새기는 일"이라고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05년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국가보훈기본법'은 국가보훈의 적용 대상을 △일제로부터의 조국의 자주독립 △국가의 수호 또는 안전보장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국민의 생명 또는 재산의 보호 등 공무수행에 해당하는 희생·공헌자로 정의하고, 독립유공자·전쟁유공자·민주유공자로 구분하여 관련 법률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나 이중 '민주유공자법'만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1994년 제정)과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2000년 제정)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과 달리 민주유공자 관련 법률은 지난 15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의는 되고 있으나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특히 4.19혁명 유공자에 대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5.18민중항쟁 유공자들에 대해 '5.18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로 인정하는 것과 달리 6월항쟁 열사들을 비롯하여 노동자·농민·학생열사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21대 국회는 지난해 9월 발의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8개월이 지나도록 변변한 논의조차 못하고, 지난 3월 말에는 민주당 설훈 의원을 비롯한 73명의 의원이 민주화 유공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교육·취업·의료·대출 지원을 하는 내용의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철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86운동권 국회의원들의 셀프 특혜 논란이 배경이 되었다. 

유가협은 "국회의원 자신들보다 민주유공자로 등재되어야 할 국민들이 수없이 많다"며, "이 해괴한 논리 때문에 국회가 '보다 나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고령이 된 민족민주 유가족들에게는 금전적 해택이 거의 없고 대부분 자녀가 없던 미혼인 열사들에게도 '혜택'이라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으며, 자녀가 있더라도 이미 다 성장하여 교육·취업 등 실질적인 혜택도 무의미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명예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이제 남은 유가협 부모들도 1/3 정도 생존해 있는 상황이라며,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지난 1998년 4월부터 422일간 국회앞 농성을 통해 2000년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에서 열사 136명과 부상자 700~800명을 비롯해 수감, 해직, 학사징계 등 9,000명의 대상자들이 제한적인 이 법의 대상이 된 바 있으나 그 뒤 한번도 논의가 진행된 바는 없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명칭 자체부터 당시 정치권에서 유가족들의 요구를 우회하여 일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사회적 평가가 유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가협은 민주화 관련 열사(사상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민주유공자법을 만들고, 현재 논란이 되는 명예회복에 관한 문제는 추후 개정을 통해 접근하자는 입장이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국회에서 민주유공자법을 반드시 통과시켜달라고 당부했다.

장 회장은 "이미 유가협 부모들은 고령으로 1/3정도만 생존해 있는 상황"이라며,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급한 사정을 알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인 김남주 변호사는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만들어진 헌법의 전문에 3.1운동과 4.19이념은 계승한다고 되어 있으나  5.18과 6월 항쟁 민주이념은 여전히 기재되어 있지 않다"며, "민주유공자법은 단순히 금전 보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적을 잊지 않겠다는 사회적 평가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보상법에 대해 '운동권 셀프 보상법'이라고 반대한 세력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1987년체제, 6공화국에 대한 의도적 폄훼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박인기 수도권 추모연대 의장과 장원택 서울대민주동문회 회장, 이종문 전국민중행동(준) 집행위원장 등이 각 단체의 입장으로 민주화보상법 추진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6월항쟁 정신계승과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문 [전문]

이제 며칠 있으면, 1987년 6월 항쟁 국가기념일이 다가온다. 올해는 34주년 기념식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자식을 비롯한 자신들의 피붙이들을 민주제단에 받친 우리 민족민주유가족들은 맘 편히 그날을 기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나라에서는 국가유공자를 ‘국가보훈의 주요 영역인 독립⋅호국⋅민주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애국의 세 기둥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국가유공자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국민들과 함께 기억하고 보답하며, 보다 나은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국민통합시대를 여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민주유공자의 경우 4.19혁명과 5.18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된 유공자들만 인정하고, 6월 항쟁 열사들을 비롯하여 노동열사, 농민열사, 학생열사 등 우리사회의 여러 곳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다가 희생당하신 분들은 아직도 국가유공자로서의 예우를 못 받고 있다.

민주화운동유공자법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15대 국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국회는 예산타령을 하면서 법안을 받아드리지 않았으며, 21대 국회에서는 지난해 9월에 발의된 법안은 8개월이 지나도록 논의되지 않고 있으며, 지난 4월 보궐선거 기간에 제출된 법안은 셀프법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하루 만에 법안이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속담처럼 국회의원 자신이 혜택 받는 법안을 국회에서 만들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보다 나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회는 국민의 대변자이다. 자신들보다 민주유공자로 등재되어야 할 국민들이 수없이 많다. 게다가 우리 민족민주유가족들은 이제 고령의 나이가 되어 받을 수 있는 금전적 혜택도 거의 없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녀들은 이미 성장하여 일가를 이루고 있으며, 의료보험을 비롯한 기타 사회적 지원도 그리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 남은 것은 명예회복이다. 현재 사회적 위상이 전혀 없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명칭은 과거 정치권이 유족가족들의 전적인 동의 없이 편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나라의 민주제단에 받쳐진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하여 기리자는 것은 가족들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죽음과 희생을 반석에 새겨 후대에 교훈으로 삼자고 하는 것이다. 6월항쟁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제대로 기억되고 평가될 때만이 이들의 희생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우리의 역사와 사회 속에 확고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제출된 법안에서 문제점이 있으면 유가족들과 당사자들과 협의하여 해소하면 된다. 재정이 부족하다면 부족한대로 지원을 하도록 논의하면 될 것이고, 소위 일부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셀프법안이라면 셀프법안이 되지 않도록 논의하여 법을 제정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민주유공자법이 발의만 되고 30년이 다돼가도록 국회 해당 위원회의 담당 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6월 항쟁 34주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21대 국회는 당장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심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

벌써 많은 유족들이 사망하고 말았다. 더 이상 법제정을 미룬다면 자신의 피붙이를 민주제단에 받친 유족들이 한을 다 풀어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결과를 맞닥뜨려야 하며, 유족들의 원망은 대한민국이 존속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나라가 진정 국민을 위한 나라가 맞는다면, 우리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데 당장 나서야 할 것이다.

 

2021. 6. 7.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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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이란판 단군신화' 속 페르시아 왕자·신라 공주의 '사랑'과 '전쟁'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입력 : 2021.06.07 06:00 수정 : 2021.06.07 07:18
 

벌써 13년이 훌쩍 흘렀네요. 2008년 초에 이란을 답사하고 있었는데 테헤란에서 이주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란 젊은이들이 답사단 멤버인 한국 여성들을 보고 ‘양곰이 양곰이’하고 몰려들었던 겁니다. ‘양곰이가 누구야’ 했더니 글쎄,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Janggumi)’의 이란식 발음이었습니다.

. 이란학자의 번역결과 서사시에는 ‘Bashilla(바실라·더 좋은 신라)’, 즉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800여쪽 중 500여쪽에 달했다."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none; outline: none 0px; vertical-align: top; background: none 0px 0px repeat scroll transparent; display: block; max-width: 710px;">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이란의 서사시인 <쿠쉬나메>. 이란학자의 번역결과 서사시에는 ‘Bashilla(바실라·더 좋은 신라)’, 즉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800여쪽 중 500여쪽에 달했다.

 

■이란과 한국의 공통적인 역사

2006~2007년 사이 이란 국영 채널 2에서 방영된 ‘대장금’이 평균 시청률 85~90%에 달할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는데요. ‘대장금’ 외에도 ‘주몽’과 ‘동이’도 60% 이상의 시청률를 기록할만큼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는데요. 왜 그렇게 한국의 사극이 이란에서 인기냐고 물었더니 그러더라구요.

한국 사극의 서술이 이란 역사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인류이동 및 동서문명의 교차로인 이란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세력과 충돌을 빚었는데요. 지금도 15개국과 국경 및 바다를 접하고 있구요. 또한 이슬람 내에서도 다수파인 수니파의 협공 속에 시아파의 전통을 이어가느라 고난의 역사를 걸었다는군요.

온갖 역경을 딛고 마침내 꿈을 이루는 ‘대장금’과 ‘주몽’, ‘동이’의 주인공들이 파란만장한 이란인들의 역사와 맞아 떨어진다는 겁니다. 또 한국 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의상이 헤자브 등을 쓰고 몸 전체를 가리는 이란 여성과 닮았다는 점도 친근감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은 시청률 85~90%에 이를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none; outline: none 0px; vertical-align: top; background: none 0px 0px repeat scroll transparent; display: block; max-width: 710px;">

2006~2007년 사이 이란 국영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시청률 85~90%에 이를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쿠쉬나메> 발견의 충격

몇년 후 아주 흥미로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1998년 이란 학자(잘랄 마티니)가 11세기 이전 300~400년간 전해 내려오던 이란의 서사시인 <쿠쉬나메>를 번역했는데, 그 속에서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사실은 이란 국립박물관의 동아시아 담당 큐레이터이자 아자드대 교수(다르유시 아크바르자데)가 중동 전문가인 당시 이희수 한양대교수(성공회대 석좌교수)에게 연락을 해온 건데요.

이란은 인류이동 및 동서문명의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세력과 충돌을 빚었다. 지금도 15개국과 국경 및 바다를 접하고 있다. 또 한국 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의상이 헤자브 등을 쓰고 몸을 가리는 이란 여성과 닮았다는 점도 이란인들에게 어필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란은 인류이동 및 동서문명의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세력과 충돌을 빚었다. 지금도 15개국과 국경 및 바다를 접하고 있다. 또 한국 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의상이 헤자브 등을 쓰고 몸을 가리는 이란 여성과 닮았다는 점도 이란인들에게 어필한다는 분석이 있다.

곧바로 이란으로 건너가 자료를 확인한 이희수 교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답니다. ‘페르시아와 신라가 혈맹관계’ 였음을 알리는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데요. 요약하면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226~651)의 왕자가 신라 공주와 혼인해서 왕자를 생산하고, 그 왕자가 귀국해서 아랍의 폭정자(자하크)를 물리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총 800여 쪽 가운데 신라 관련 부분만 500여쪽에 이를 정도였답니다.

역사기록으로 살펴볼까요. 사산조 페르시아는 637년 카디시야 전투에서 아랍군에게 패배한 뒤 모술·니하반도·하마드한·라이·이스파한 등 주요도시들을 잇달아 잃으면서 멸망하는데요. 사산조 페르시아의 마지막 황제 야즈데게르드(재위 632~651)의 왕자 페로즈(피루즈·?~708)는 끝까지 저항했으며,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이란인 잔존세력을 이끌고 공동체를 이룹니다.

②황남대총 북분의 은제잔에 표현된 여인은 아나히타 여신을 부조한 사산조 페르시아 산 항아리와 흡사하다."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none; outline: none 0px; vertical-align: top; background: none 0px 0px repeat scroll transparent; display: block; max-width: 710px;">

①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제잔(보물 627호). 세부문양에 인물상이 보인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②황남대총 북분의 은제잔에 표현된 여인은 아나히타 여신을 부조한 사산조 페르시아 산 항아리와 흡사하다.

■페르시아-신라 연합군의 공동작전

대서사시인 <쿠쉬나메>의 역사적인 배경은 바로 이 무렵(7세기 중반), 마지막 왕자 페로즈가 중국으로 망명한 뒤 사망한 시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으로 망명한 마지막 왕자 페로즈는 ‘쿠쉬나메’에서 아비틴(Abtin)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요. 그런데 중국에서 이란 공동체를 이끌던 아비틴은 중국내 정치 격변기를 맞아 제3국으로 재망명을 결심합니다. 이 때 주변국인 마친(Machin)의 국왕이 “지상 낙원인 신라는 침략이 불가능한 안전한 나라”라고 치켜세우며 추천했는데요. 과연 신라왕(테후르)은 망명객인 아비틴 일행을 환대합니다. 서사시는 ‘바실라(Bashilla·더 좋은 신라, 아름다운 신라라는 뜻)’를 “달처럼 아름다운 인형 같은 선녀들이 가득찬 향기로운 낙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7세기초 조성된 경북 찰곡의 송림사 전탑에서 나온 사리기 유리잔(왼쪽).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유행한 고리무늬가 장식됐다. 오른쪽 사진은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커트 글라스(Cut Glass·무늬를 새긴 유리). 아비틴의 고향인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의 유리잔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이한상 교수 제공

7세기초 조성된 경북 찰곡의 송림사 전탑에서 나온 사리기 유리잔(왼쪽).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유행한 고리무늬가 장식됐다. 오른쪽 사진은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커트 글라스(Cut Glass·무늬를 새긴 유리). 아비틴의 고향인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의 유리잔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이한상 교수 제공

“낙원처럼 꾸며진 궁 내부는 진정으로 군주의 처소 같았다. 궁 전체가 하늘색 배경에 금으로 장식돼 있었고, 모든 의자에 사파이어와 루비가 세공돼 있었다. 궁녀들은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신라왕 테후르는 “우리 역사는 천년 이상이고, 아무도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더할 수 없는 환대를 받은 아비틴은 신라 국왕과 페르시아 스포츠인 폴로(격구)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 황제가 신라왕을 협박하는 편지를 보낸 뒤 신라를 침공합니다. 이에 굳건한 동맹을 이룬 신라-페르시아 연합군은 중국 침공군을 물리칩니다. 이어 중국이 아비틴의 신라 망명을 주선한 마친왕을 핍박하자 신라-페르시아 연합군은 중국 원정길에 오르는데요. 이때 아비틴이 연합군을 지휘했는데요.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아비틴은 신라왕의 딸(프라랑)과 혼인합니다. 아비틴 부부는 곧 임신하는데요. 그런데 아비틴의 꿈에 “장차 태어날 왕자가 바그다드의 자하크(아랍의 폭정자)를 물리치고 이란인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는 계시가 나타납니다.

경주에서 출토된 ‘입수쌍조문’ 석조. 나무를 사이에 두고 새 두 마리가 서있는 모티브 역시 사산계 페르시아 건축물 등에서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경주에서 출토된 ‘입수쌍조문’ 석조. 나무를 사이에 두고 새 두 마리가 서있는 모티브 역시 사산계 페르시아 건축물 등에서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결국 아비틴은 부인과 함께 이란으로 떠났는데요. 그러나 아비틴은 자하크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페르시아-신라 혼혈왕자인 페리둔은 훗날 페르시아의 적인 자하크를 물리치고 이란의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이란의 신라공주(프라랑)는 신라의 아버지(테후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버지, 제 아들 페리둔이 자하크의 군대를 모두 죽였습니다.”

손자의 승전 소식에 신라왕은 성대한 연회를 열고요. 피를 나눈 사이가 된 신라-페르시아 양국은 이후 교류와 협력관계를 이어갑니다. 이것이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의 내용입니다.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수형 유리병과 이란 국립박물관 소장 유리병.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흡사하다. | 이희수 교수 제공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수형 유리병과 이란 국립박물관 소장 유리병.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흡사하다. | 이희수 교수 제공

■경주에서 확인된 이란의 여신 ‘아나히타’

어떻습니까. 그저 신화일 뿐 역사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말하겠죠. 그러나 ‘쿠쉬나메’는 그리스 로마신화나 단군신화가 그렇듯 페르시아 문화와 역사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신라-페르시아 관계를 알려줄 비밀코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한번 살펴보죠. 곱씹어 보면 <쿠쉬나메> 이전부터 신라-이란간 국제교류가 활발했다는 단서는 많습니다. 5~6세기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리제품을 봅시다. 특히 페르시아 지방의 기법으로 제작된 ‘커트 글라스(Cut Glass·무늬를 새긴 유리)’도 왕비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됐습니다. 커트 글라스는 ‘쿠쉬나메’의 주인공인 아비틴의 본향, 즉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이거든요. 또 7세기 초 조성된 경북 칠곡군 송림사 5층 전탑에서 나온 금동제 사리그릇도 페르시아계입니다. 유리잔 표면에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유행했던 고리무늬가 장식돼있습니다. 아비틴의 나라인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입니다.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페르시아산 뿔잔(왼쪽 사진)과 부산에서 출토된 신라산 말머리장식 도기 뿔잔. 역시 흡사한 제품이다. | 이희수 교수 제공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페르시아산 뿔잔(왼쪽 사진)과 부산에서 출토된 신라산 말머리장식 도기 뿔잔. 역시 흡사한 제품이다. | 이희수 교수 제공

황남대총 북분에서 확인된 5~6세기 은제잔은 어떻습니까. 여인 한 사람이 조각돼 있는데요. 이 여인은 이란의 아나히타(Anahita) 여신상과 흡사하답니다. 아나히타는 풍요와 전쟁, 농경을 관장하는 여신입니다.

지금도 이란에서는 사산초 페르시아 시대에 축조된 아나히타 신전이 산재해 있을 정도로 고대 신상의 중심인물이라는데요. 국가의 정신적인 통합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신이 그릇이나 도구에 조각돼 있다면 그것은 일반교역품으로 보기는 어렵고요. 최고위층의 신앙의례나 국가적인 통치의 상징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신라왕실과 사산조 페르시아 왕실 사이에 고도의 교류행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쿠쉬나메’에서 페르시아 왕족의 후예인 아비틴이 신라왕(테후르)의 딸인 신라 공주(프라랑)과 혼인했다고 했지않습니까.

원성왕릉을 호위한 무사상.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고 뒷부분을 보면 터번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 이희수 교수 제공

원성왕릉을 호위한 무사상.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고 뒷부분을 보면 터번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 이희수 교수 제공

■흥덕왕의 수입 금지품목에 오른 페르시아 제품

834년 신라 흥덕왕은 “백성들이 다투어 사치와 호화를 즐기며 해외명품만 선호한다”고 한탄하면서 몇몇 해외명품들을 국법으로 금했는데요.(<삼국사기> ‘잡지’)

이 해외명품 목록에 이란산 에메랄드를 알알아 상감한 ‘슬슬전(瑟瑟鈿)’하고, 양모를 주성분으로 섞어짠 페르시아(波斯)산 직물인 구수와 탑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라백성들이 ‘페르시아 카펫(구수와 탑등)’을 깐 걸상까지 수입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또 경주 구정동 방형 무덤의 네 모서리에 부조된 무인상을 보면요. 눈이 깊고 코가 큰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이 서역인상은 왼쪽 옷깃만을 바깥으로 접은 절금을 착용하고 가죽장화를 신었습니다. 또 두 손을 보면 페르시아 스포츠인 폴로(격구)용 스틱 같은 것을 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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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구정동 고분의 네 모서리에 부조된 무인상(왼쪽 사진). 페르시아 스포츠인 폴로경기용 스틱을 쥐고 있다. <쿠쉬나메>에 아비틴과 신라 왕이 폴로경기를 벌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오른쪽).

어떻습니까. <쿠쉬나메>에서 페르시아인과 신라 왕·귀족간 폴로경기를 벌였다고 했잖습니까. 폴로(격구)는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래됐고, 중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한 유목민족의 스포츠거든요.

또 <쿠쉬나메>를 보면 신라왕이 왕자 2명을 항구로 보내 아비틴 일행을 영접합니다. 그리곤 서울로 모신 뒤 갖가지 연회를 베풀며 환대하고, 마침내 공주와 아비틴의 혼인을 허락합니다. 이 이야기의 구조를 보면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이 가락국에 도착하고, 김수로왕이 허황옥을 극진히 접대한 뒤 혼인해서 왕자(거등왕)를 낳는다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은 “신라에는 금이 많고 그곳에 가는 무슬림은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출처:KBS ‘파노라마-쿠쉬나메편’)"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none; outline: none 0px; vertical-align: top; background: none 0px 0px repeat scroll transparent; display: block; max-width: 710px;">

가장 먼저 신라를 언급한 이븐 쿠르다드비의 <도로와 왕국총람>은 “신라에는 금이 많고 그곳에 가는 무슬림은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출처:KBS ‘파노라마-쿠쉬나메편’)

■“신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또 <쿠쉬나메>에서 신라왕과 망명한 아비틴이 ‘황금왕좌’에 앉아 친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은 어떨까요. 과장일까요. 그러나 별로 놀랄 일이 아니죠. ‘신라=황금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신라의 전성기에 35채(실제는 39채)의 금입택(金入宅)이 있다”(<삼국유사> ‘진한조’)의 내용도 있구요. 뭐 중세 아립지리학의 거장인 알 이드리시(1100~1165)는 “신라의 금은 너무도 흔해서 심지어는 개 목걸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황금으로 만들었다”(<천애횡단갈망자의 산책>·1154)고 했지 않습니까.

사학자이며 지리학자인 알 마크디시(946?~1000?)는 966년 “신라인들은 가옥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한다. 식사 때는 금으로 된 그릇을 사용한다”(<창세와 역사서>)고 했잖습니까.

이런 문헌기록 뿐 아니라 6세기 신라 적석총에서 출토되는 금관을 비롯한 온갖 황금유물들이 이같은 아랍인들의 언급이 거짓이 아님을 웅변해주고 있죠.

<쿠쉬나메>를 보면 중국의 변방국왕인 마친은 아비틴에게 신라를 망명지로 추천하면서 ‘신라=낙원의 나라’로 했다지요. 9세기에 필사된 이븐 쿠르다드비(820~912)의 <도로와 왕국총람>은 “신라에는 금이 풍부하다. 그곳에 가는 무슬림들은 좋은 환경에 매료되어 영구 정착해 버린다”고 했어요.

또 지리학자 알 카즈위니(1203~1280)는 “‘알라의 은혜’ 덕분에 질병에 걸린 사람이 신라에 가면 곧 완치되고, 신라로 들어간 사람들은 정착해서 떠나지 않는다”(<여러 나라의 유적과 인류소식>)고 했습니다. 카즈위니는 심지어 “신라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니 ‘쿠쉬나메’의 아비틴이 당연히 정착하고 싶어했겠죠.

흥덕왕이 수입 사용을 금지시킨 해외명품 목록에는 페르시아산 머리장신구(슬슬전)과 구수와 탑등 같은 페르시아산 직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수와 탑등은 페르시아산 카펫일 것이다.

흥덕왕이 수입 사용을 금지시킨 해외명품 목록에는 페르시아산 머리장신구(슬슬전)과 구수와 탑등 같은 페르시아산 직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수와 탑등은 페르시아산 카펫일 것이다.

■혈맹일지 모르는 이란

또 <쿠쉬나메>에는 중국왕은 신라왕을 협박하는 편지를 보낸 뒤 신라를 공격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삼국사기> 문무왕조를 볼까요. 671년(문무왕 11) 신라가 가림성을 공격해서 당나라군 5300명의 목을 베었는데요. 그러자 당나라 총관 설인귀(613~683)가 문무왕(661~681)에게 협박편지를 보냅니다.

“신라왕이 전에는 충성스럽고 의롭더니 지금은 역적의 신하가 되었구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해 제사가 끊어질 것이니 조심하라.”

실제로 당나라는 675년(문무왕 15년) 20만 대군을 동원, 매소성에서 신라군과 맞섰는데요. 그러나 신라의 반격을 받아 한반도에서 완전히 쫓겨가죠. <쿠쉬나메>에서 중국군이 신라를 공격했지만 완패당한 뒤 중국으로 쫓겨간 상황과 흡사합니다.

물론 <쿠쉬나메> 속 이야기가 실제 역사냐 하고 따져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요. 페르시아 왕족이 신라공주와 혼인했고, 그 후손이 이란의 영웅이 됐다는 이야기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태도변화에 따라 한국-이란 관계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적어도 남의 장단에 맞춰 이란을 ‘불량국가’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압니까. <쿠쉬나메>에서 보듯이 한국과 이란이 1400년 된 혈맹일 수도 있으나까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70600001&code=960100#csidx8de8e2da1f11069bd550cdabda07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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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윤석열 향해 “간보기 정치 그만두라”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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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1/06/07 09:40
  • 수정일
    2021/06/07 09:4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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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과천 4000가구 공공주택 무산에 한겨레 “정부, 일을 왜 이렇게 하나”
여성 부사관 사망 사건에 ‘박원순’ ‘김어준’ 꺼내든 조선일보
한국일보 “윤석열, ‘간보기 정치’ 그만하고 검증대 오르길”

신문들 “과천이 나쁜 선례 남겨” 비판

지난해 8·4 부동산대책에서 국토교통부는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아파트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일 당정 협의에서 원래 공급 부지로 정했던 과천청사 대신 다른 지역에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과천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는 30·40 젊은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직주근접의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려고 했으나, 지자체와 주민들은 “해당 지역에는 공원 조성 등이 요구된다”며 임대주택 공급으로 인한 집값 하락 우려에 반발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종천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신청하기도 했다.

▲7일자 아침종합일간지 1면.
▲7일자 아침종합일간지 1면.

갈수록 오르는 집값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공공주택을 공급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것. 이에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들은 일제히 “과천이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2면 기사에서 “문제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정부의 공급대책이 좌초되는 선례를 남기면서 과천과 유사하게 지자체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다른 도심 내 공급부지에서도 백지화 사례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과천청사를 포함해 노원구 태릉골프장(1만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호), 용산구 용산캠프킴(3100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1천호) 등 지난해 8·4 대책 발표 당시 실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도심 내 공급부지 가운데 지자체 협의를 완료한 뒤 인허가 단계에 들어간 곳은 한 곳도 없다”고 우려했다.

▲7일자 한겨레 3면.
▲7일자 한겨레 3면.
▲7일자 한겨레 사설.
▲7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지 정부·여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신규 주택 공급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집값 안정이 국가적 과제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면서도 집값 하락 등을 걱정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주택 공급은 반대하는 것이 ‘님비’다. 하지만 사전에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계획을 발표한 정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어 “정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땅이어서 밀어붙일 수 있다고 쉽게 판단했던 것 같다. 치밀한 검토 없이 ‘숫자 맞추기’에 급급해 주택 공급 물량만 그럴듯하게 발표해놓고 뒷감당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한 뒤 “문제는 다른 지역들이다. 과천이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는 이 사안을 내년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엮어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6면에 “내년 6월1일 치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의 주택 공급책이 서울에서 ‘태풍의 핵’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천은 2002년 이후 내리 보수정당 소속 시장을 뽑다가 2018년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시장을 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16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차지한 과천시장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짚었다.

▲7일자 한국경제 6면.
▲7일자 한국경제 6면.
▲7일자 한국경제 사설.
▲7일자 한국경제 사설.

한국경제는 “정부·여당이 지난 4일 과천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급대책을 백지화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종천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임박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주민 간 갈등을 조기에 수습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주민 반발로 중요 정책이 바로 뒤집혔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한 뒤 “궁극적으로 ‘공공 주도 공급’의 취약성·허구성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정부 땅에 정부가 집 짓는 것도 무산됐다. 비어있는 청사 유휴부지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판국에 민간 주택지역의 재개발·재건축을 공공 주도로 하는 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와 한국경제 모두 정부의 이런 태도로는 집값을 안정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정부 대책이 오락가락하면 국민의 믿음을 잃게 되고 집값 안정을 물건너가게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했고, 한국경제도 “오락가락할수록 서민 주거복지도, 시장 안정도 더 요원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여성 부사관 사망 사건 대통령 사과에 ‘박원순’ 꺼내든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성추행 피해로 숨진 이아무개 공군 부사관의 추모소가 마련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이 부사관의 부모에게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서도 “아직도 일부 남아 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들게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7일자 한국일보 1면.
▲7일자 한국일보 1면.
▲7일자 한국일보 3면.
▲7일자 한국일보 3면.

조선일보는 2개의 사설로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우선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식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짚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6·25 전범인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5년 연속이다. ‘6·25’ 언급도 없었다. 국군 통수권자가 ‘북한’과 ‘6·25 남침’을 번번이 빠뜨리는 연설을 한다. 삼일절날 독립 얘기 안 하고, 5·18 기념식에서 5·18을 언급 않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짚었다.

조선일보는 또 “지난 4년간 우리 군이 탈북민은 물론 취객과 치매 노인에게도 뚫리고 북 미사일을 놓치는 등 경계와 감시에 실패했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급식’과 ‘성추행’에는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붕괴한 현실에 대해 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현충일에 천안함 용사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대통령은 군 성추행을 사과한다. 그 비정상적인 풍경이 참담한 군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썼다.

▲7일자 조선일보 사설들.
▲7일자 조선일보 사설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사설에서 ‘박원순’ ‘김어준’ 이야기를 꺼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공군 참모총장을 사실상 경질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전한 기사에 ‘어떨 때 침묵하고 어떨 때 엄중 수사 지시냐’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박원순·오거돈의 성범죄엔 침묵했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상관이 부하에게 저지른 성범죄란 점에서 박원순·오거돈 사건은 공군 부사관 사건과 다르지 않다. 조직적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고, 2차 가해까지 있었던 점도 같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민주당 시장들의 성범죄에 대해선 수사 지시는 물론이고 입장조차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피해자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박원순 사망 6개월 뒤에야 무슨 뜻인지도 모를 ‘안타깝다’는 말만 했고, 오거돈 성범죄에 대해선 언급조차 않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불리한 뉴스만 나오면 ‘언론개혁’ 타령인 정권이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국민 눈을 속여온 정치 장사꾼을 ‘언론자유’라며 감싼다. 아무리 내로남불 정권이라지만 이 정도면 병적 수준”이라고 썼다. TBS 교통방송에서 김어준씨를 하차시켜달라는 국민청원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한 청와대 답변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일보 “윤석열, ‘간보기 정치’ 그만하고 검증대 오르길”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현충일 전날인 지난 5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방명록에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적었다. 지난 6일 현충일 당일엔 군 폭발사고 피해자와 천안함 생존자를 만나기도 했다.

▲7일자 동아일보 5면.
▲7일자 동아일보 5면.
▲7일자 한겨레 5면.
▲7일자 한겨레 5면.

한겨레는 6면 기사에서 “사실상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그가 보수 지지층을 겨냥한 ‘안보 일정’으로 대선 행보를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겨레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일 안상수 전 인천시장을 만나 “동서고금을 봐도 검사가 바로 대통령이 된 경우는 없다”고 말한 사실을 전하면서 “김 전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석달이 지나도록 유력 대선주자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지 않은 채 ‘잠행 정치’를 거듭해온 윤 전 총장에 대한 회의론을 드러내면서 ‘킹메이커’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7일자 한국일보 사설.
▲7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윤석열에게 ‘간보기 정치’를 그만하라고 경고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정치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가 이어진다. 공식적으로 정계 진출을 밝히지 않고서도 대선 주자 지지율이 늘 수위에 꼽히는 기이한 일이 수개월째다. 윤 전 총장으로서야 검증을 최대한 늦추는 게 대선으로 가기 위한 유리한 전략이라고 판단했을지 모르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메시지만 내는 것은 당당하지 않은 행동이다. ‘간보기 정치’를 그만두고 출마 선언을 해서 정치력을 보이고 국민의 검증을 받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현충원에 찾아 방명록에 쓴 윤 전 총장의 글은 정치하겠다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고 짚은 뒤 “그렇다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그에 책임지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국민입장에서는 당연히 유력 대선 주자를 꼼꼼히 따져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검증은 피하고 지지율만 얻겠다는 계산이라면 큰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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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개정된 당규약에 명시된 최고강령과 최저강령

[개벽예감 447] 심층분석 - 개정된 당규약에 명시된 최고강령과 최저강령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06/0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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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 - 김일성-김정일주의

2.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주한미국군 철거

3.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미국의 대남지배 청산과 외세간섭 배격

4.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근원적인 군사위협 제압

5.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연방통일국가 건설

6.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

7.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남조선혁명

8.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 건설

9. 조선로동당의 최종목적 - 인민의 이상적인 사회 건설

 

 

1.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 - 김일성-김정일주의

 

2021년 1월 초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제5일에 토의된 의정은 조선로동당 규약을 개정하는 문제였다. 2021년 1월 10일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중앙위원회는 혁명발전의 요구와 당 앞에 나선 새로운 투쟁과업에 따라 당사업발전과 원리에 맞게 당규약의 일부 내용들을 수정보충하여 당 제8차 대회 심의에 제기하였”고, 당 제8차 대회에서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가 전원일치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규약 개정안이 채택된 날은 2021년 1월 9일이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2021년 6월 1일 남측 언론매체들이 당 제8차 대회에서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관해 뒤늦게 보도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관한 남측의 언론보도는 최악의 오보였다. 남측 대북전문가들도 최악의 오보에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을 보면, 남조선혁명을 사실상 포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느니, 또는 조국통일을 사실상 포기하고 ‘두 개의 조선’을 인정한 남북평화공존으로 전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느니 뭐니 떠들어대며 허언랑설을 퍼뜨렸다. 남측 언론의 오보와 대북전문가들의 착오를 뛰어넘어야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 중에서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 조국통일과 조선혁명(Korean revolution)에 관한 내용을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조선로동당 규약은 당의 최고강령을 명확히 서술했다.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조선로동당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당의 최고강령으로 한다”고 명시되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최고강령이 명시되었다. 

 

원래 당의 강령은 최고강령(maximum Program)과 최저강령(minimum program)으로 구분되는데, 최고강령은 당이 실현하려는 최종목적을 밝힌 것이며, 최저강령은 당의 최고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당면목적을 밝힌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은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자기의 지도사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백히 밝혔다. 그런데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자기의 지도사상이라는 조선로동당의 견해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려면, 다음과 같은 선행인식이 요구된다. 

 

자본주의집권당들에게는 개인주의(individualism), 자유주의(liberalism), 이기주의(egoism)가 혼란스럽게 뒤엉킨 이념적 혼합물이 있을 뿐, 과학적인 지도사상은 없다. 자본주의(capitalism)은 약육강식과 빈부격차의 야만적 법칙이 지배하는 낡고 썩은 사회체제를 뜻하는 개념이지, 과학적 지도사상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자본주의집권당들에게 지도사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지도사상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는다. 

 

그와 달리, 사회주의집권당들에게는 지도사상이 있다. 그들의 지도사상을 사회주의(socialism)이라고 통칭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사회주의집권당들은 자기의 지도사상에 의거하여 창건되었고, 그 지도사상에 의거하여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집권당의 존립근거이며 발전동력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사람들이 사회주의라고 통칭하는 혁명사상은 지난 150년 동안 세계사회주의운동의 현실 속에서 부단히 검증되고, 발전되어왔는데,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그 검증발전과정의 최고정점에 도달한 완성체가 김일성-김정일주의(Kimilsung-Kimjongilism)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전일적으로 체계화된 혁명과 건설의 백과전서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투쟁 속에서 그 진리성과 생활력이 검증된 혁명적이며 과학적인 사상”이라고 명시된 것이다. 

 

문외한들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맑스-레닌주의에서 갈라져나온 파생사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맑스-레닌주의가 조선의 현실에 구현된 토착사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맑스-레닌주의가 계승발전된 아류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파생사상도 아니고, 토착사상도 아니고, 아류사상도 아니며, 독창적인 혁명사상이라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맑스-레닌주의와는 근본이 다른, 독창적이고, 새로운 사상이라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세계철학사에 제기된 철학의 근본문제(fundamental question of philosophy)에 완벽한 해답을 준 사상이고, 사회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가장 과학적으로 해명한 사상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원칙과 과업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밝혀준 사상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6년 10월 2일에 발표한 ‘김일성주의의 독창성을 옳게 인식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과 1996년 7월 26일에 발표한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맑스-레닌주의와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 독창적이고 새로운 사상인지를 논증한 바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독창성에 관해 고찰하려면 방대한 서술이 필요하므로, 그 문제에 대해 논하는 것은 여기서 멈춘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0년 12월 20일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대표증수여식 장면이다. 대표증수여식장에는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자!'라는 구호가 게시되었다. 이 구호는 조선로동당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자기의 지도사상으로 한다는것을 의미하며, 조선로동당이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는 최종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주한미국군 철거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을 자기의 당면목적으로 인정했다. 이 인용문은 세 가지 구성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구성부분은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이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미제의 침략무력”이라는 용어는 주한미국군을 뜻한다. 조선로동당의 시각에서 보면,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은 외국(=대한민국)이 아니라 자국 영토(=공화국남반부)이므로, 주한미국군은 공화국의 남반부지역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북침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침략군으로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자국 영토를 강점한 침략군을 무조건, 하루빨리 영토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침략군 철거는 누구도 시비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주권국가의 당면임무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서는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수시킨다”고 하지 않고, “철거시킨다”고 했다. 철수는 남측에서 자국군대를 거두어들인다는 뜻이고, 철거는 남측에서 미국군대를 몰아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남측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오류다. 주한미국군 철거라는 말을 써야 한다. 

 

위에 인용된 문장은 주한미국군 철거가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원래 당면목적이라는 말은 눈앞에 다가온 시급한 목적이라는 뜻이므로, 조선로동당은 자기의 당규약에 따라 하루빨리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려는 것이다. 

 

 

3.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미국의 대남지배 청산과 외세간섭 배격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것이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주한미국군을 철거시켜야 남측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국적 청산”은 다른 일을 하고 마지막에 청산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청산한다는 뜻이다. 

 

조선로동당의 시각에서 보면, 남조선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중추기관들은 주한미국군사령부, 주한미국대사관, 미국중앙정보국 한국지부로 보일 것이므로, 이 3대 중추기관을 전부 철거해야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이라고 한다. “온갖 외세의 간섭”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온갖 외세”는 복수 형태로 쓰인 말이다. 조선로동당이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고 미국의 대남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정세의 대격변 중에 주변대국들이 정세에 개입, 간섭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주변대국들의 간섭이란 중국과 로씨야의 간섭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로동당이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고 미국의 대남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그 어떤 외세도 간섭할 수 없고, 간섭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4.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근원적인 군사위협 제압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압이라는 말은 강한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고 통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선로동당은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강력한 국방력으로 억누르고 통제하는 것을 자기의 당면목적으로 인정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위의 인용문을 다시 읽어보면, 조선로동당이 강력한 국방력으로 제압하려는 대상(=근원적인 군사적 위협)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로동당이 강력한 국방력으로 제압하려는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조선로동당의 시각에서 보면,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한반도를 노리는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회보고에서 “우리의 국가방위력이 적대세력들의 위협을 령도 밖에서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언명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로동당은 영토 밖에서 한반도를 위협하는 적대세력들인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를 강력한 국방력으로 억누르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주한미국군은 조선로동당의 철거대상이고,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는 조선로동당의 제압대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고,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를 제압하는 것은 조선로동당의 눈앞에 다가온 당면목적이다. 조선로동당이 그런 당면목적을 실현할 결정적인 시기가 언제인지 누구도 정확히 예언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에 올 수도 있고, 2년 뒤에 올 수도 있다. 요즈음 한반도,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첨예한 정세가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3년 뒤로 늦춰질 것 같지는 않다.   

 

 

5.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연방통일국가 건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인용문은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강령을 서술한 것이다.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강령은 두 개의 문장으로 서술되었다. 

 

첫 번째 문장을 보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강령에 천명된 민족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이미 수많은 문헌들에서 거듭 확인되었다. 

 

2016년 5월 9일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는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강령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었는데, 이것은 1972년 5월 3일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방문한 남측 정부대표(이후락)에게 제시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서는 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평화통일의 원칙을 생략하고, 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긴다고 서술했다. 당규약 개정안을 준비하는 중에 실수로 평화통일의 원칙을 생략한 것이 아니라, 당규약에서 평화통일의 원칙을 삭제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조선로동당이 조국통일 3대 원칙에서 제2원칙인 평화통일의 원칙을 삭제한 것은, 평화통일의 원칙을 무력통일의 원칙으로 변경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은 자주, 무력통일, 민족대단결로 변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는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긴다”고 명시되었는데, 평화통일의 원칙을 무력통일의 원칙으로 변경한 것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무력통일의 원칙에 따라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력통일의 원칙에 따른다는 말은 조국통일전쟁을 수행한다는 뜻이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긴다는 말은 조국통일전쟁 이후에 평화적으로 연방통일국가를 건설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조국통일전쟁과 연방통일국가건설은 논리적 모순관계가 아니라 절차적 선후관계인 것이다. 

 

연방제통일은 조국통일전쟁 이후에 실현될 평화통일이고, 조국통일전쟁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절차라는 것이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의 조국통일강령에 담겨있는 새로운 인식이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실현한다”고 서술된 것이 아니라,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긴다”고 서술되었다. 앞당긴다는 말은 예상한 시기 또는 예정된 시기보다 더 일찍 실현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연방통일국가를 예상시기보다 더 일찍 건설하려는 조기실현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연방제통일을 조기에 실현하려는 조선로동당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조선로동당이 연방제통일을 실현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언제인지 누구도 정확히 예언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에 올 수도 있고, 2년 뒤에 올 수도 있다. 요즈음 한반도,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매우 첨예한 정세가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3년 뒤로 늦춰질 것 같지는 않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9년 8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2019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촉진대회'의 한 장면이다. 그 대회에서 참가군중은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파기시키자는 결의를 표명했다. 조국통일촉진대회에서 반미투쟁을 결의한 것은, 미국의 대남지배체제를 제거해야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반미자주화를 언급하지 않는 조국통일론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6.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서술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의 공동번영은 남측 사회, 북측 사회, 해외동포사회가 다함께 번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연방통일국가를 조기에 건설하고, 8천만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하려는 조선로동당의 의지가 당규약에 표명된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따르면, 연방통일국가를 조기에 건설하고, 8천만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방도는 “전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하며, 해외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와 리익을 옹호보장하고 그들을 애국애족의 기치 아래 굳게 묶어세우며 민족적 자존심과 애국적 열의를 불러일으켜 조국의 통일발전과 륭성번영을 위한 길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로동당이 “전조선(=남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을 당면목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조선로동당의 표현을 빌리면, 공화국북반부의 사회주의력량과 남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의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은 조선로동당이 창건 이후 75년 동안 견지해온 전략로선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는 통일전선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전문부서가 있다. 국정원이나 통일부가 상대하는 통일전선부가 바로 그 전문부서다. 2020년 6월 12일과 6월 17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이 각각 담화를 발표했고, 2020년 6월 5일에는 익명의 통일전선부 대변인이 담화를 발표했다. 

 

원래 통일전선(united front)은 정치적 성격이 다른 세력들이 어떤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합하는 것이다. 통일전선은 한시적, 전술적으로 제휴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시적, 전략적으로 연합한 단일역량으로 편성되는 정치적 연합이다. 일시적으로 이용하다가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함께 투쟁하는 것이 통일전선전략이다. 

 

통일전선전략은 세계사회주의운동에서 중요한 혁명전략이다. 세계사회주의운동사 초기에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문제는 정치적 성격이 다른 세력들이 한시적, 전술적으로 제휴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1930년대 항일전쟁시기에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독창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은 통일전선이 전술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제국주의의 폭압에 의해 국가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통일전선은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과 지역적 범위의 통일전선으로 구축되는데,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은 연방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전민족적 통일전선이고, 지역적 범위의 통일전선은 남조선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지역통일전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전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고 명시된 것을 보면, 연방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전국적 통일전선에 대해 언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통일전선의 연합대상은 남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이다. 이것은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데서 정치적 연합의 기준은 애국주의(patriotism)과 민주주의(democracy)라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매국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은 통일전선의 연합대상이 아니라 타도대상이다. 조선로동당이 전국적 범위에서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당면목적은 애국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사회정치세력들과 손잡고 연방통일국가를 조기에 건설하는 것이다. 

 

 

7.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남조선혁명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따르면, 남조선혁명의 당면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2016년 5월 9일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는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남조선혁명의 당면목적이라고 서술되었는데,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는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것을 남조선혁명의 당면목적이라고 서술했다.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남조선혁명의 성격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했다면,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는 남조선혁명의 과업을 남조선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 당규약에 서술된 남조선혁명의 성격과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서술된 남조선혁명의 과업을 결부시켜야 조선로동당이 수행하는 남조선혁명전략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로동당은 남조선혁명의 성격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고 규정했고, 남조선혁명의 과업을 남조선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음을 알 수 있다.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이라는 말은 남측에서도 널리 쓰이는 일상적인 언어다. 

 

조선로동당은 남조선혁명에 관한 문헌들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조선로동당의 남조선혁명전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대남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1995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부여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체포된 김동식이 집필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 전개와 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조선로동당의 남조선혁명전략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논문의 주요내용은 <월간조선> 2013년 3월호에 실렸다. <월간조선> 보도내용에 따르면, 1991년 5월 24일 김정일 총비서가 “대남부서 책임간부들 앞에서 한 연설”은 북에서 “5.24 비공개 문헌”으로 출판되었는데, 김정일 총비서는 비공개 문헌에서 남조선혁명의 성격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였다고 한다.    

 

남파공작원 출신 김동식은 2017년 1월 31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강연했는데, 그의 강연원고를 읽어보면 조선로동당이 수행하는 남조선혁명의 과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강연원고는 전문이 2017년 2월 4일 자유경제원 웹싸이트에 실렸다. 강연원고에 따르면, 민족해방혁명의 과업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통치체제를 타도하고 남조선사회의 자주적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고, 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은 남조선의 예속적 자본주의체제를 전복하고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2021년 1월 초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연단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조선로동당은 제8차 당대회에서조선로동당이 추구하는 최종목적이 인민의 이상적인 미래사회 곧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김정은 총비서는 모든 인민들이 무탈하여 편안하고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돕고 이끌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공산주의미덕과 미풍이 확립되어 있는 사회가 곧 미래의 공산주의사회라고 언명한 바있다. 조선로동당은 다른 나라 사회주의정당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공산주의사회의 새로운 미래상을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 -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 건설

 

이번에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 명시된, 조선로동당이 수행하는 조선혁명의 당면목적은 두 가지다. 조선로동당이 조선혁명의 당면목적을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보는 까닭은, 분단체제가 분리시킨 북측 지역(공화국북반부)과 남측 지역(공화국남반부)에서 발전단계가 서로 다른 두 개의 혁명이 각각 수행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따르면, 북측에서 수행되는 사회주의혁명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주의혁명은 인민의 이상사회인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계속혁명인 것이라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은 계속혁명을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이라 부른다. 김일성 총비서는 1970년 11월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에서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을 제시했다.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사상의식을 자주적으로 개조하는 사상혁명을 앞세우면서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따라세우는 것이다. 또한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낡은 문화와 생활양식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생산력을 고도로 발전시키는 사회변혁이라는 것이다. 

 

 

9. 조선로동당의 최종목적 - 인민의 이상적인 사회 건설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당의 최고강령으로 한다”고 하였다. 조선로동당이 말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화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그것은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이 종국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인민의 자주성이 고도로 실현되어 사회주의적 인간관계가 완성되고, 물질기술적으로 끝없이 발전하여 부강한 사회주의적 생산력이 완성되고, 문명한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이 완성된 인민의 이상적인 사회다. 조선로동당의 견해에 따르면, 인민의 이상적인 사회는 곧 미래의 공산주의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은 조선로동당의 최종목적을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명시했던 것이다. 

 

일찍이 칼 맑스(Karl Marx)는 1875년 5월에 집필한 ‘고타강령비판(Critique of the Gotha Program)'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회적 생산력이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받을 수 있을 만큰 고도로 발전된 이상적인 미래사회가 공산주의사회라고 정의했었다. 김일성 총비서는 1975년에 출판된 ’김일성저작선집‘ 제3권에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적 생활원칙이 완전히 실현된 이상적인 미래사회가 공산주의사회라고 정의했다. 2021년 5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인민의 심부름군당’이라는 제목의 정론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는 “공산주의사회는 모든 인민들이 무탈하여 편안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돕고 이끌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공산주의미덕과 미풍이 확립되여 있는 사회”라고 언명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은 다른 나라 사회주의정당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공산주의사회의 새로운 미래상을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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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법 개정하고 반민족행위자 등 묘 이장하라”

-대전단체들, 현충원 맞아 대전현충원에서 시민대회 개최

  • 기자명 대전=임재근 객원기자 
  •  
  •  입력 2021.06.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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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정문 앞에서 ‘2021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정문 앞에서 ‘2021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현충일을 맞아 6월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입구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하고, “친일 반민족행위자 등 부적절한 자의 묘를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대회 여는 발언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김창근 운영위원은 “우리는 결코 자신의 영달을 통해 호의호식했던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국가가 마련한 경건한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이와 같은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수십 년 전부터 민족반역자들을 국립묘지에서 물아 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근 운영위원은 이어 “그것은 바로 이 나라의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것이며, 민족혼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라며, “진정한 국립묘지를 만들어 후손들이 역사를 올바로 배우고 나라를 세우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연대 발언에 나선 광복회대전광역시지부 윤석경 지부장은 지난해 7월 15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을 거론하며, “백선엽이 묻힌 바로 옆 애국지사 4묘역은 김준엽 애국지사가 잠들어 계신다”며, “왜 김준엽 애국지사와 백선엽이라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도로 하나를 두고 같은 국립묘지에 잠들게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런 모순적 적폐를 청산해 달라며 우리는 민주당에게 180여 석이라는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었는데, 1년 넘도록 온갖 패악질만 일심고 있는 적폐 세력들 눈치만 보고 있다”며 한탄했다. 윤석경 지부장에 이어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안정섭 위원장과 대전민중의힘 김율현 상임대표도 연대 발언을 했다.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가 규탄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가 규탄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은 마지막에 규탄 성명서를 통해 “친일반민족 행위자와 군사반란에 가담한 자 등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 될 부적절한 자들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공개하는 등 이들의 이장을 실천하는 여론 조성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선엽, 김창룡, 소준열, 안현태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 유족들을 향해 “그들이 국립묘지에 있는 한 국민들은 그들의 죄상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알게 되고 손가락질을 더 할 것”이라며,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현충원에서 그 묘를 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한 “언론과 애국시민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하루빨리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도록 여론을 만들고 힘을 보태야 할 것”이라며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밝고 가며 볼 수 있도록 국립묘지 바깥으로 이장할 대상자들이 적힌 현수막을 인도에 설치했다. 이들이 선정한 이장 대상자는 총 74명이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밝고 가며 볼 수 있도록 국립묘지 바깥으로 이장할 대상자들이 적힌 현수막을 인도에 설치했다. 이들이 선정한 이장 대상자는 총 74명이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37명)를 비롯해 군사반란 가담자(22명), 민간인학살 관련자(8명), 반헌법행위자(7명) 총 77명을 국립묘지에서 이장할 대상자로 선정해 이를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을 시민대회를 개최하기 전까지 진행했다.

한편, 매년 시민대회 후에 진행해 왔던 김창룡 묘 파묘 퍼포먼스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고려해 올해는 진행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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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억울한 죽음 낳은 병영 폐습 송구"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에 사과…"보훈은 인권과 일상 지켜주는 것"

군내에 이어지고 있는 부실 급식 문제, 성추행을 당한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해 군통수권자로서 처음 사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보훈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나라를 지키는 일에 헌신하신 분들의 인권과 일상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군 장병들의 인권뿐 아니라 사기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했다.

 

현충일 추념사를 통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잇따르는 군 성추행 사건에 대한 엄정 수사·조치를 지시한 데 이어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유가족, 국민들을 향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 직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사망한 부사관의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애통하시냐"는 위로의 말과 함께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을 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유족들은 "딸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고, 문 대통령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면서 "부모님의 건강이 많이 상했을 텐데, 건강 유의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함께 추모소를 방문한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철저한 조사 뿐 아니라 이번 계기로 병영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한반도 비핵화 다시 큰 걸음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가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강화한 한미동맹 의미를 강조하며 "정부는 튼튼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안보환경에 더욱 주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강력한 '백신동맹'으로 코로나를 함께 극복하기로 했고, 대화와 외교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향해 다시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번 회담에서 '미사일 지침'을 종료한 것은 미사일 주권을 확보했다는 의미와 동시에 우주로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우주 분야 협력을 확대하고,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우주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제 애국심도, 국경을 넘어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2001년, 일본 도쿄 전철역 선로에서 국경을 넘은 인간애를 실현한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의 희생은 언젠가 한일 양국의 협력의 정신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61145190347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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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모욕받는 천안함 생존자들

등록 :2021-06-06 09:06수정 :2021-06-06 09:11
 
 
[토요판] 기획
천안함 생존장병의 트라우마

천안함 사건 뒤 11년 지났지만
생존장병 여전히 패잔병 취급
제대로 된 지원이나 관심 없고
사건만 볼 뿐 생존자 주목 안해
 
천안함재단과 46용사 유족회, 생존자전우회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승섭 제공
천안함재단과 46용사 유족회, 생존자전우회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승섭 제공
▶ 2010년 3월26일 해군 천안함 장병 46명이 숨지고 58명이 살아남았다. 진보와 보수 진영은 이 사건을 두고 첨예한 정치 공방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작 그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의 고통을 살피는 이는 드물었다. 한 생존장병은 지난 11년을 “보수는 이용했고, 진보는 외면했다”라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다른 양상의 진영 대결이 이어졌다. 그렇게 고통에 대한 공감은 취사선택됐다. 두 사건 생존자를 모두 연구한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이들의 고통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진영에 따라 고통의 크기를 다르게 재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그들의 손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레시오 아베난티 박사는 2010년 <현대 생물학>(Current Biology)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합니다. 연구팀은 흑인과 백인 각각 18명씩으로 이루어진 36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낯선 사람의 손등을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동영상과 부드러운 면봉으로 자극하는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동영상을 보는 동안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 전자기 자극을 가하고 손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측정합니다. 낯선 이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알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손의 피부색이 3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실험은 백인, 흑인, 그리고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보랏빛 피부색을 가진 사람의 손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연구 참가자의 인종에 따라 나눠 본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흑인 참가자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흑인의 고통에는 공감했지만, 백인과 보라색 피부를 가진 사람의 고통에는 그처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백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영상 속 백인의 통증은 자신의 것처럼 느꼈지만, 흑인과 보라색 피부를 가진 이가 겪는 고통은 그만큼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종의 고통만을 선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보라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

2018년 <한겨레>와 함께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를 하며 이 실험이 종종 떠올랐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은 제가 연구를 하며 만났던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약자 집단 중에서도 비교 대상을 쉽게 찾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가 알려진 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그 참혹한 현실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우리 모두가 무관심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른 대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많은 이들이 천안함 생존장병을 다른 ‘인종’으로 생각했었던 것 아니었을까요.타인의 상처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내주었을 때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진보 진영은 2018년 이전까지 한 번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인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안함 사건의 정치적 의미에만 주목했지 정작 그 배를 탔던 이들의 고통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매년 3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와 사진을 찍어 갔지만, 그 이후에는 어떤 연락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존장병들은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그 슬픔을 함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지난 11년을 버텨왔습니다.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트라우마를 겪은 군인들을 조사한 연구들은 피해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일관되게 지적합니다. 하지만, 생존장병들은 지지받지 못했습니다. 군대에서 그들은 ‘패잔병’으로 취급받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신음하는 군인들의 고통은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는 이유로 꾀병으로 폄하됐습니다. 그런 낙인 속에서 그들은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말을 번번이 목에서 삼켜야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트라우마로 배를 타지 못했던 생존장병 중 몇몇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동안 배를 타지 않은 탓에 장기복무에 필요한 점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직업군인으로서 꿈을 접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내쳐졌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손팻말에 적은 “그래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라는 말이 안타깝다. 김승섭 제공
국가로부터 내쳐졌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손팻말에 적은 “그래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라는 말이 안타깝다. 김승섭 제공
 

군과 정부는 생존장병들을 보듬는 대신 이 참혹한 사건의 방패막이로 활용했습니다. 생존장병들은 천안함 사건이 벌어진 지 불과 2주 뒤인 2010년 4월7일, 환자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에 응해야 했습니다. 그 기자회견을 두고 여러 언론이 비난했습니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인이 환자복을 입고 언론에 나왔다거나, 군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말들이 한국 사회를 떠돌았습니다.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랐습니다. 생존장병들은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전날 밤에 통보받았습니다. 그들은 급작스레 기자회견에 투입되어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말해야 했던 시간을 내내 아쉬워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로는 그들이 세상에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경위도 알 수 없습니다. 군에서 처음에는 군복을 입으라고 했다가 갑자기 환자복으로 바꿔 입으라는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생존장병들은 그 이유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군은 생존장병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심선언을 해라”라는 말이나, “도대체 이명박한테 얼마를 받았길래 진실을 그렇게 숨기냐”는 댓글을 보면 생존장병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합니다.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한 대다수의 장병은 국가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고 더 보여줄 진실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해했습니다. 앞장서서 의심을 풀어야 할 군은 여전히 생존장병 뒤에 숨었습니다. 생존장병들이 군에 왜 온갖 억측과 음모론에 대응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럴 가치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어떤 이들은 최원일 함장이 천안함 사건 이후에 정부와 모종의 거래를 했고 그로 인해 ‘고속 승진’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올해 전역을 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한 차례도 승진하지 못했습니다. 한 생존장병은 새로운 발령지에서 상사로부터 “함장이 죽었어야 니들이 보상금을 받는데, 걔가 살아 있어서 니들이 못 받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최 함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 군 감찰단의 고소로 입건되어 조사를 받는 모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 조롱하는 잔인함
지난달 28일 최 함장을 만나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한 군인이어도 누가 욕하고 때리면 아픈 인간일 텐데,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틴 거냐.’ 한참을 생각하던 최 함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내가 죽었다면 사고로 처리해버렸을 것 같다. 그럼 천안함에 탔던 104명의 장병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나. 살아남았기에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다.”저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용역연구 책임자로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었습니다. 물론 2010년의 천안함과 2014년의 세월호는 침몰 원인과 그 사회적 대응이 전혀 달랐고, 오늘날 전자는 보수, 후자는 진보의 사안으로 여겨져 아무런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사건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서해바다에서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을 잃었던 생존학생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던 전우들을 잃었던 생존장병을 모두 만나 그들의 상처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던 제가 보기에 이 두 사건은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라우마를 겪은 피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앙상한 실력이 드러난 사건들이라는 점과 그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만개한 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학생이 자살 시도를 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그 가족들이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이 자살 시도가 세월호 참사와 연관성이 있다는 게 증빙되지 않으면 개인 의료보험으로 입원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만약 치료비를 심사하는 위원회에서 이 자살 시도가 참사로 인한 게 아니라고 하면 병원은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자는 내 고통이 재난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전역자 21명 전액 사비로 치료
세월호 생존 피해자 모습과 겹쳐
국가가 우선 심리치료 지원해야

 

천안함 생존장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일은 생존장병의 몫입니다. 제대 이후 치료비가 없어서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했는데, 그 시기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 네 상태는 천안함 사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세월호 생존학생과 천안함 생존장병 모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과 같이 재난과의 연관성이 충분히 알려진 질병에 대해서는 일단 국가의 지원으로 치료를 해주고, 그 인과성이 의심되는 경우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증빙서류를 국가가 제출하는 경우에 한정해 심사를 거쳐 개인이 사후적으로 돈을 내게 하는 게 맞습니다. 2018년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중 연소득 2천만원이 안 되는 비율이 40%에 이르렀던 점을 생각하면 이는 절실하게 필요한 변화입니다.천안함과 세월호의 생존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와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보상금을 떠올리고 상처를 헤집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생존학생의 부모에게 어떤 이웃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수억원의 보상금을 언급하며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돈은 없었다고 말하자, “다 아는데 뭘 감추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국가가 결정한 생존학생의 특례입학 제도를 두고 ‘친구 팔아 대학 간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고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간혹 “살아서 좋냐”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총살해야 한다” 같은 댓글을 만날 때면 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차가운 세상을 견디는 데 필요한 것

이러한 비난은 진영 논리 속에서 강화되었습니다. 진보, 보수라는 이름으로 나뉘어서 생존자의 상처에 생채기를 더하면서 자신이 정의롭다는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정의의 이름을 독점한 사람들이 가장 잔인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의 생존자를 두고 양 진영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얼마나 더 가혹해질 수 있는가를 두고 경쟁하듯 상대방을 모욕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건의 피해자를 함께 애도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천안함 생존장병과 세월호 생존학생은 누구보다도 비슷한 상처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중 가장 젊은 군인의 당시 나이는 20살로 세월호 생존학생이 참사를 겪었던 17살과 불과 3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생존자 트라우마와 싸우는 동안
주위에선 “살아왔다”며 모욕도
우리 사회가 그들 지킬 외벽 돼야

 

남극에서 무리 지어 살아가는 황제펭귄은 가혹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허들링’을 합니다. 피부를 맞대고 원형으로 모여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무리의 바깥쪽과 한가운데는 온도가 섭씨 10도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됩니다. 어떤 펭귄도 계속해서 차가운 무리의 바깥 경계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동료의 몸으로 체온을 보존한 펭귄은 곧 바깥으로 나아갑니다. 차가운 세상을 감당한 펭귄이 무리 안으로 들어와 몸을 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펭귄들은 함께 살아남습니다.하지만, 가장 위태로운 자리를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며 평화의 대가를 치렀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에게 사람들 속으로 돌아와 자신의 몸을 데우며 삶을 추스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낙인찍고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생존장병은 누구도 그 고통을 온전히 공감해주지 않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었던 보라색 펭귄이 되어 무리 밖으로 버려졌습니다.그렇게 내쳐진 생존장병들이 천안함 유가족분들과 함께 지난 4월20일부터 국방부 앞에서 매일 아침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2010년 3월26일 전사한 뒤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된 46명 용사와 달리, 같은 배에 탔던 생존장병 중 다수는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생존장병 34명 중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한 21명은 자신의 치료비를 전액 사비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천안함 전우회는 굿즈 판매 등을 통해 치료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생존장병들은 이 시위가 서해바다에서 이 땅을 지켰던 군인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합니다.1953년 휴전협정 이후 국지전이 끊이지 않았던 한반도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불안정한 평화는 군인들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모욕받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황제펭귄에게 허들링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외벽이 되어 그들을 지킬 차례입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8138.html?_fr=mt1#csidx37ea0ccf73d72329811ea202f8c37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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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100일’ 복지부 “접종률 세계 평균 이상, 상반기 목표 조기 달성”

허지영 기자 
발행2021-06-05 15:53:03 수정2021-06-05 17:50:55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민중의소리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5일로서 100일을 맞았다. 정부는 국내 인구의 14.5%가 1차 접종을 마쳤으며, 현 속도라면 11월 집단 면역 형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 보건복지부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시작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라며 “이는 우리나라 인구 대비 약 14.5%로 세계 평균을 뛰어넘는 수치다”라고 설명했다.

권 장관은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사전예약률은 80%를 초과하였으며, 실제 접종하신 분들도 99.8%에 달하는 높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상반기 백신 물량도 순조롭게 도입되고 있다. 총 1억 9,300만 회분의 물량이 확보되었으며, 이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맞을 수 있는 충분한 물량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60세 미만 국민의 참여도 함께 이루어진다면, 7월에는 전국민의 25%가 1차 접종이 완료될 것이고, 이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변화될 것”이라며 “나와 우리 가족, 모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예방접종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계획대로 예방접종을 확대해 6월까지 1300만 명+a 접종을 달성하겠다”라며 “세계 공동체의 방역에도 기여하는 백신 허브 국가 달성과 우리 국내 백신 개발에도 매진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26일 만 65세 미만 요양병원·요양시설 종사자와 입원·입소자 등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1차 접종자 수는 누적 743만 5천726명이다. 7일부터는 접종 대상이 약 396만 명 규모인 60~64세로 확대되며 접종 속도에 더욱 가속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달까지 1차 접종 누적 1천300만명+α 목표를 조기 달성하고, 3분기에는 국민의 70%인 3천600만 명을 대상으로 1차 접종을 완료해 11월에는 집단 면역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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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의 시작 기륭 언니들..."위험하니까 남자들은 뒤로 가"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③ 기륭전자분회의 유흥희 님을 만나

 

지난 40년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바뀐 것도 있으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6월 5일 전설의 투쟁을 했던 여성노동자들을 모시고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이야기마당을 개최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그녀들이 해왔던 투쟁과 현재의 고민을 연재한다. 편집자.

 

※ 이야기마당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은 5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중계된다.(☞바로가기 : "전설의 투쟁을 했던 여성노동자들을 모십니다.")

 

0. 연재 순서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① 동일방직 해고자 김용자 님을 만나(☞바로가기)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② 구로동맹파업투쟁의 김준희 님을 만나(☞바로가기)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③ 기륭전자분회의 유흥희 님을 만나

 
▲4일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우개선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300리길 행진하는데 함께 하고 있는 유흥희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집행위원장.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에게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이야기마당에 나오라고 했더니, "내가 어디 대선배님들과 같이 하냐"며 고개를 젓는다. 사실 유 분회장은 활발하게 투쟁하는 현직이다.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에 대한 법적 소송도 조금 남았다. 게다가 그녀는 요즘 눈에 띄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의 집행위원장이다. 나는 "기륭전자는 살아있는 전설이지. 여성비정규직 투쟁을 그렇게 치열하게, 그렇게 길게, 공장의 벽을 넘어 한 곳이 있어?"하며 꼬드겼다.


 

마음의 고향, 구로공단


 

유 분회장은 정화여상 재학 시절, 학내 민주화운동을 했다. 사학비리를 알린 전교협 선생님들을 지지하는 사학비리 투쟁을 함께했고, 그 과정에서 시험거부 투쟁(백지동맹)과 농성을 했다. 고등학교 때 투쟁한 적이 있으니, 혹시나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구로공단에 들어간 것은 아닌가 싶어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92년에 상고를 졸업하고 경리직으로 몇 곳에서 일했지. 마지막에 화장품 회사 경리를 했는데 대리점에서 장부 조작을 요구하는 거야. 나는 안 한다고 대리점장하고 대판 싸우고 나왔지. 사실 조그만 사업장에서 경리는 빛 좋은 개살구야. 뻑 하면 커피 심부름, 담배 심부름,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그걸 매번 거부하는 것도 힘들고, 고등학교 갓 졸업했다고 애 취급하는 시선도 넘 싫고, 공장에 가서 마음 편하게 일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로공단에 갔지. 그런데 사람들이 나보고 정신 나갔다고 했어. 92년이니까 사회주의권이 망하고 운동이니, 노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패배적인 시각이 컸을 때잖아. 그러니 내가 노동운동 하러 가는 걸로 생각한 사람들이 말린 거지."


 

생계를 해결하러 공단에 갔는데 어쩌다 보니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경우라 다들 정신 나갔다고 했다. 유 분회장은 공단에서의 첫 1년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공장에서는 위장 취업자와 같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시늉만 하는 사람을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분위기가 여전했다. 작은 떡볶이 모임만 가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사람들을 따로 만나기만 해도 요주의 인물처럼 관리했다. 결국 4년 7개월 만에 제대로 모임조차 만들지 못하고 현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 구로지역 도서관에서 단체 상근활동을 시작한다. 을지로의 인쇄노조 취업알선센터 상근자로도 일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뒤,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다시 구로공단으로 돌아갔다. 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녀에게 공단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파견직만 뽑는 달라진 구로공단


 

2005년 구로공단의 모습은 92년과 확 달라져 있었다. 구로공단에도 인력사무소, 파견업체가 넘쳐났다. 공장에서 노동자를 직접 뽑는 곳이 아예 없었다. 벼룩시장이나 인터넷으로 뽑았다. 1998년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통과된 후 비정규직 사용하는 회사가 늘어난 것이다. 옛날 굴뚝형 공장이 사라지고, 아파트형 공장들이 들어섰다. 바뀐 공장 대부분은 50명 미만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공장들이 많았다. 그래도 규모가 있는 곳을 들어가고 싶었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나이는 많고 경력은 짧고, 게다가 경력 단절의 시간까지 있어서 인지 취업이 잘 안 됐다. 파견회사를 통해 들어간 곳에서 생애 처음 해고라는 것을 당해봤다. 그러다 2005년 6월, 워커스테이션이라는 파견회사를 통해 취업을 했다. 가리봉역에서 봉고차에 태워져서 들어간 곳이 우연하게도 기륭전자였다.


 

"처음에 갔던 곳은 핸드폰 케이스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는데 새벽까지 야근, 특근을 했는데 해고됐어. 내가 이걸 '대청소 해고'라고 말했지. 하루는 파견직만 불러 놓고 청소를 시키는 거야. 핸드폰 케이스 중에서 단종된 품목들 정리하고 청소를 시키더니, 청소가 끝나고 정규직만 빼고 구두로 해고를 시켰어. 해고에 항의하다가 사과만 받고 그만뒀지. 혼자 싸울 자신이 없었거든. 다시 파견업체 통해서 취업하려는데, 담당자가 가리봉역으로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봉고차를 타라는 거예요. 인신매매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차 안에 아줌마, 아가씨들이 많은 거예요. 그 차에서 내려준 곳이 기륭전자였어. 당시 김소연이 기륭전자에 있는 걸 알아서 얼굴 안 마주치려고 애썼지."

 

면접은 간단했다. 33세라는 나이가 있으니 길게 일할 수 있는지, 혹시 결혼은 하지 않을지 물었다. 돈이 필요해서 길게 다닐 거고 야간특근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입사일만 적힌, 기간이 없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조용히 지내려고 했다. 

기륭전자의 파견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 8540원을 받았다. 잔업과 특근을 많이 해도 겨우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기륭전자에는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등 여러 고용형태가 있었다. 무분별한 해고와 차별적인 문화가 넘쳐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노조에 가입했다.


 

"첫날부터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나 들으라는 듯 크게 말을 해. '지각하지 마라', '옆에서 잡담하지 마라', '조장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 이런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거야. 아파서 안 나와도 해고되기도 하고. 조·반장들은 정규직도 갈구더라고. '영원한 정규직은 없다. 파견이 줄 서있다', '눈 밖에 나지 말고 줄 잘 서라' 그러면서 1등, 2등, 3등 줄 세우고. 이건 아니다 싶고. 하루를 다녀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노조에 가입했지."


 

기륭전자 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만든 노조다. 여성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이었으나 남녀 차별은 존재했다. 남성은 다 정규직이었다. 반면 여성은 생산직 중 조장 정도만이 정규직이었다. 정규직 중에 산전산휴 휴가를 쓰고 온 사람이 생긴 후에 기륭전자는 젊은 여성노동자는 6개월만 계약했고, 나이든 기혼 여성노동자는 1년 계약을 했다. 젊은 여성노동자는 결혼하거나 임신할 수 있다는 가정을 깔고 계약기간을 다르게 정한 것이다.


 

같은 포장업무를 해도 남성이 더 임금이 많았다. 심지어 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육아휴직 갔다 왔다고 괴롭히기도 했다. 노조는 노동부에 남녀 임금차별 진정을 해서 시정명령을 받았고, 실제로 법을 통해 차별된 임금을 받아 내기도 했다.

 

1895일, 간접고용 불법파견 투쟁


 

두 번째라 노조활동은 자연스러웠다. 2005년 노조는 인력파견업체들을 불법파견·파견직 임금차별(임금미지급)로 노동부에 진정했다. 파견법에는 제조업의 파견노동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륭전자 직원 500명 중 연구원 200명은 정규직인데 반해 생산직 300명 중 정규직은 단 10명에 불과했다. 계약직이 40명이었고, 250명은 파견노동자였다. 감사 나온 노동부에서도 이런 구조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 2005년 8월 초 파견법 위반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노조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8월 24일부터 공장점거 파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시작된 불법파견 비정규직 투쟁은 1895일이나 이어진다.


 

"이렇게 길게 싸울 줄은 몰랐지. 기륭전자에서 일한 기간보다 싸운 기간이 길어도 너무 길잖아요. 하하. 나만이 아니라 우리 조합원들 대부분이 파견이거나 계약직이었으니까. 그래도 후회는 안 해. 할 수 있는 싸움을 원 없이 했으니까."
 

 

실제 근무한 기간이 짧았는데도 왜 계속 싸웠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파견이 넘쳐나니 어딜 가도 하루살이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어서"라고 답한다. 그리고 너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것이 억울했다고.
 

 

"투쟁하면서 노동부에 갔는데 같이 싸우다 중단하고 나간 언니를 만났어요. 일자리 알아보려고 온 거지. 그런데 그 언니가 이렇게 말해. 계속 싸워서 공장에 들어가라고. 어차피 나와도 공단에서는 3개월, 6개월 파리목숨 처럼 짧게 일한다고."


 

불법파견은 기륭전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견이 확산되면서 3개월짜리, 6개월짜리 불법파견이 넘쳐났다. 파견노동자들은 길어야 1년을 일하고 나면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신세다. 노조가 파견문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끝까지 싸워야 할 이유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기륭전자는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를 이유로 이들을 전원 해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기륭전자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검찰은 사측에 불법파견 혐의를 적용했으나 500만 원 벌금이 끝이었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업무방해와 손해배상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고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남성들은 뒤로 가라고 했지


 

오랜 시간 싸우면서 무서웠던 적은 없냐고 물으니 '공장에서 용역들하고 싸울 때'라고 했다. 오석순 조합원의 목을 조르는 남성 구사대(사측이 만든 노동운동 파괴조직)를 볼 때 정말 끔찍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구사대와 맞서는 것을 연대 온 사람들에게 미루지는 않았다.


 

"2006년 싸움 때도 남자 용역이 많았어. 남자 용역들이 막은 공장 문을 해머로 부수고 현장에 열 발자국 들어간 것도 여성조합원들이 나서서 했다. 9박 10일 투쟁 할 때, 바닥에 눕는 투쟁도 우리가 앞장섰지. 거친 투쟁은 남자가 한다거나,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치마를 입어본 적도 없어. 현장에서의 성차별이 있었지만 싸울 때 우리가 여성노동자라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는 게 컸거든. 연대자는 연대자인 거니까. 당사자가 풀어야지. 그래서 우리는 남성동지들이 연대와도 '남자들은 앞으로 오세요'가 아니라 '뒤로 가세요' 그랬지."


 

그렇다보니 노동운동계에서 '기륭형님'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유 분회장은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비정규직문제를 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비정규직운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투쟁 촉발


 

공장점거 파업 이후에 삭발투쟁, 단식투쟁, 고공농성, 그리고 오체투지까지 했다. 2008년 투쟁 전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열렸을 때는 조명탑 위에서 고공농성도 했다. 함께 올라간 최은미 조합원이 고소공포증으로 벌벌 떨면서 올라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두려움을 잊으려 함께 불렀던 비정규직 철폐가! 과거로 돌아간 듯 눈빛이 반짝인다.

 

유 분회장에게 67일간의 단식투쟁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괜찮았다며, 힘든 건 2010년이었다고 했다. 2010년은 교섭이 지지부진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선까지 갔던 거 같아. 사회적 연대로 버틸 수 있었어. 윤종희, 오석순, 김소연이 모두 올라가 있어서 내가 발로 뛰어야 했잖아. 교섭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고민이 많았어. 내가 내뱉은 말을 다 지킬 수 있을까, 거짓말이 되면 어쩌나 되돌아보게 됐지. 그런데 사실 출투(출근투쟁)가 더 힘들었어. 출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는 거니까. 매일 회사를 볼 때마다 '정말 내가 이 회사를 다니고 싶은 걸까' 스스로 묻게 되니까 힘들었어."
 

 

2008년 투쟁은 고공농성과 단식투쟁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회적 연대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당시 나도 기륭전자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들락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2005년 시작된 투쟁이 1000일을 넘기려 하고 있었다. 특히 김소연 분회장이 94일의 단식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며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함께 단식을 시작한 유 분회장은 뼈만 남은 모습으로 먼저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오래된 동지 김소연을 두고 가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1000일 투쟁하고 나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을 무엇일까 생각해봤어. 아마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닐까.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니까. 조합원들과 수많은 시민들과 단체 활동가들, 서로가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돼 있는 느낌이지. 자기 시간과 마음을 내주고 함께 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이걸 끊고 가. 아마도 계속 싸웠던 건 나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인 거 같아. 이미 사회적 연대로 우리 투쟁은 기륭만의 싸움이 아니게 된 거잖아."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단식투쟁을 하면서도 조합원들은 연대 온 사람들 밥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뿐인가. 기륭전자 투쟁 과정에서도 다른 투쟁에 연대를 쉬지 않고 했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싸움에, 한진중공업 김진숙 크레인농성 희망버스에, 쌍용자동차 투쟁 등 안 간 곳이 없다. 자기 사업장 투쟁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함께 싸워야 이긴다고 생각했다.

 

 

2010년 사회적 합의로 싸움이 일단락됐다고 여겼을 때에는 연대해준 시민, 단체, 문화예술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그녀들의 사회적 연대에는'정'이 묻어있다. 연대나 투쟁에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힘든 오체투지 과정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진 적이 없다.


 

▲2020년 1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자들이 최동열 회장 집앞에서 체불임금 지급하라는 집회를 한 후 기념촬영 ⓒ기륭전자분회
 

사회적 합의를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나  

 

조합원들은 국회의원회관 점거농성까지 하며 치열하게 싸워 정치권을 움직였다. 2010년 11월 정규직 직접고용 복직 합의가 이뤄졌다. 그때만 해도 없던 불법파견 관련한 의무조항이 생기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회사는 2013년, 본사를 옮기더니 신대방동 건물에 출근한 노동자들에게 업무도 주지 않았다. 합의이행을 거부한 것이다. 그해 12월 최동열 회장은 임직원도 자르고 야반도주했다. 돌아갈 공장이 없어진 것이다.
  

 

다시 거리로 나와 오체투지를 했다.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지 않고는 그 무엇도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는 투쟁을 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경투쟁을 할 때 쉴 수 있는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들기로 결의한다. 많은 시민사회가 마음을 모아 꿀잠이 2017년 만들어졌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명분을 중요시 여겼고 투쟁의 원칙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했어. 모두가 동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 조합원들이 흔쾌히 동의해준 게 고맙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더욱 나빠지는데 투쟁은 흩어져 있었다. 촛불투쟁 이후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 분회장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18년 11월,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공동투쟁'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함께 투쟁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당사자들의 절박함도 중요할 뿐 아니라 같이 싸우면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비정규직 제도가 만든 개별화된 현실을 바꿀 무언가가 되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그녀는 현재까지 집행위원장으로서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유 분회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전설'의 낱말 뜻이 다시 훅 새겨진다. 기륭전자투쟁을 여성비정규직의 전설적 투쟁이라고 일컫는 것도 어쩌면 포기하거나 타협하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자기 사업장의 문제로만 싸운 적이 없어서는 아닐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50007481932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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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케치]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논란, 끝나지 않은 이야기

노량진수산시장 얘기다. 현대화 사업으로 세워진 신시장이 상인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지어져 입주 거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구시장을 떠나지 않으려는 상인과 구시장을 헐어버리려는 수협의 싸움은 이후 4년간 격렬하게 이어졌다. 명도 집행이 10차까지 이어졌고 매번 충돌이 컸다. 공실 관리라는 명분으로 폭력적인 퇴거 작전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상인들은 똘똘 뭉쳐 싸웠지만 싸움은 쉽지 않았다. 입주를 거부하면 그 자리를 일반분양하겠다는 압박과 단전, 단수 등의 극단적 조치로 많은 상인들이 신시장으로 옮겨갔다. 이 중에는 결국 장사를 접고 신시장을 떠난 상인도 적지 않았다. 신시장은 높은 임대료에 맞춰 판매 가격을 올리면 고객이 줄고 매출이 떨어지는 구조의 악순환이었다. 구시장에 끝까지 버티던 상인들은 2019년 8월 열 번째 명도 집행에서 모두 끌려나왔다. 그리고 구시장은 지난해 헐렸다.

 

2019년 8월 육교 위에서 농성이 시작됐다. 구시장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다. 애초 700명에 가깝던 상인은 현재 80여 명 남아 있다. 장사를 하지 못해 보험과 적금을 헐어가며 버티고 있지만, 이들은 새로운 공간 마련을 서울시와 협의 중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손배·가압류는 여전히 이들을 괴롭힌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총 51억. 가압류도 개인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대에 이른다. 1, 2심에서 승소했지만, 수협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초기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사업을 추진했다가 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한 바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용산까지의 케이블카 계획이나 복합 쇼핑몰 건립 계획 등도 꾸준히 나돌고 있다. '돈 되는 건물' 지으려고 수산시장을 축소한 것 아니냐는 상인들의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신시장은 한 개층을 쓰던 구시장의 구조를 2개층으로 나눠 점유 면적을 좁혔다.


 

노량진을 찾았다. '잘못된 설계' 하나가 어떤 파탄을 초래하는지를 생각하다가, '배제'와 '획일'이 끝내는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막연한 '개발 논리'를 가진 집단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개발 논리'의 든든한 뒷배가 우리 사회가 아닌지 생각했다. 육교 위 푸른 천막이 있는 풍경을 담았다.

 

▲ 노량진역과 수산시장을 잇는 육교 위. 구시장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2019년 8월 명도집행 직후부터 2년 째 농성 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량진역 육교 위에 푸른 천막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상인들이 그린 자화상 ⓒ프레시안(최형락)
▲ 농성장의 부엌. 상인들은 매일같이 이곳에서 같이 밥을 먹고 천막을 지킨다. 교대로 밤 근무도 선다. ⓒ프레시안(최형락)
▲ 남아있는 80여명의 상인들은 손배·가압류에 시달린다. 다행히 1심에서는 일부 승소, 2심에서 승소를 했지만 수협은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수협은 현대화 사업 초기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사업을 구상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했다. 지금도 용산까지의 케이블카나 복합쇼핑몰 등의 계획 등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2015년 지어진 신시장은 한 개층을 쓰던 구시장의 구조를 2개층으로 나눴다. 상인들은 시장에 들어가는 부지를 줄여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복합건물을 더 짓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신시장의 내부. 신시장은 임대료가 구시장에 비해 월등히 높다. 임대료 상승은 수산물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상인의 매출 감소와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서 불거진 문제점은 부산 자갈치시장과 송파 가락시장의 현대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있었다. 구조적 문제를 찾아 고치지 못하는 한 과오는 계속 되풀이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40103004490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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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수호 집중 北과 지혜로운 평화프로세스 재개 필요"

정세현 수석부의장, 평통 40주년 포럼...'불안하지 않은 평화'가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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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근 입수된 조선노동당 개정 당규약을 통해 들여다 본 북의 변화 흐름은 운명공동체인 우리에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올해들어 '반

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묵과해서는 안된다며 강경하게 체제수호를 강조하는 북을 상대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북은 사방에 철옹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틈새는 있을 것"이라며,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측 문화가 들어오는데 대해서 겁을 내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해야 북측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고민했다.

단적으로 "김일성 주석 시절만 해도 자본주의 문화는 모기장으로 걸를 수 있으니 돈은 들어와도 좋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김정은 시대에서는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으로 다 막으려고 하고 있다"며, "남북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 수석부의장에 따르면, 종전선언 구상도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평화프로세스는 그걸 통해서 경제 및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정치 공동체까지 나아가자는 것. 다시 말하면 서서히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이 최소화되는 방향에서,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남측이 생각한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한 징후는 2005~2006년부터 시작됐다.

1977년 당시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으로 첫발을 내딛어 45년 가까이 남북문제를 다뤄 온 전문가답게, 남북관계 역사흐름속에서 현황을 설명했다.

남측에서 바라는 바로는 '시장사회주의'라는 표현 정도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햇볕정책'을 썼지만, 지금의 북은 '시장'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본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방향을 잡았다는 것. 

한때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이었던 청년단체의 명칭이 얼마 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뀌었으며, 단체 명칭 중 '애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결사옹위하자는 사상교양의 일환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북이 이른바 국가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일련의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며,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며,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 수석부의장은 최근 당규약 개정을 통해 본 북의 변화에 대해서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동유럽에서 체제전환이 일어나던 시기 동·서독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북이 체제위기를 관리해 온 과정을 짚어가며 해설했다.

그에 따르면, 1991년 5월 북은 유엔 동시가입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7월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냈고 뒤이어 9월 초 신청서를 제출한 남이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여 남과 북은 국제법적으로는 두개의 코리아가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남북 상호 체제인정과 존중 △상호 내부문제 간섭 중지 △상호 비방중지 △상대 파괴·전복위한 일체 행위 중지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군사정전협정 준수 등 체제안전에 관한 합의를 1조부터 5조까지 빼곡히 관철했다.

1992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간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철회할테니 수교하자는 파격제안을 했다. 서울에 있는 대사관은 그대로 두고 평양에도 대사관을 설치하되 그 조건으로 주한미군을 용인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이같은 수교제안을 거절했다.

비록 미국과의 수교는 불발됐지만 유엔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로 체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확보했다고 생각한 북은 이후 6.15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측과의 교류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2005년 무렵을 정점으로 북은 남측의 우월한 경제력에 주민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정 수석부의장은 짚었다.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하여 북이 남측이 바라는 방식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사방에 철옹성을 치고 있는 북을 상대로 지혜롭게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할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왼쪽부터 김희준 YTN통일외교안보부장,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김희준 YTN통일외교안보부장,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과 공동주최한 포럼에서 배기찬 사무처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멈춰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하면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라는 시민의 요구와 시대의 명령을 남북이 함께 만나서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현숙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공동대표는 개회사에서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은 국내외에 탄탄한 역량을 갖춘 민주평통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 포럼은 그 첫발걸음이다"라며, "오늘 포럼을 통해 종전의 문을 열고 평화를 이끄는 평화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축사에서 "분명한 것은 적대와 갈등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남북미가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이라며, "이제 다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재개와 성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를 나눌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미·중 경쟁시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전략'을 주제로 진행된 1세션 발제에서 "미국과 중국사이의 상호의존성이 너무 높아져서 양국 스스로도 경쟁적 공존으로 갈 수 밖에 없으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이다. 우리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이익에 맞게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에서 중요한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의 우려사항을 핵동결-핵능력감축-군비통제 등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점진적·단계적 수순으로 정리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한미군사연습 중단,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과 제재해재와 관련한 수순과 연계하여 안보-안보 교환 프로세스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북중관계의 특수성과 중국의 대북영향력, 중국이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중국의 관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포럼의 2세션은 '한반도 종전 평화를 위한 국제여론 형성 및 시민평화외교 방안'을 주제로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와 이태호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상임집행위원, 신승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협력화해통일국장, 박종범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 부의장, 이철호 코리아피스나우 그래스루트 네트워크 LA 코디네이터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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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2)]곧 사라질 직장에 다니는 석탄 노동자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입력 : 2021.06.04 06:00 수정 : 2021.06.04 08:33

 
기후위기 시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소멸과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석탄화력발전은 순차적 폐지가 예고됐다.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다. ‘모두’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이같은 전환이 필수적이라면 전환 과정 역시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손실을 나눠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이 일어날 때,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전환 책임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향신문은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기획을 통해 전환 대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석탄 발전’ ‘내연기관’ 이라는 큰 이름에 가려져 있는 노동자 삶으로 들어가 그들이 체감하는 전환의 상황은 어떻고, 바라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기후위기도, 산업 전환도 결국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한태교씨(왼쪽)와 박낙호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권도현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한태교씨(왼쪽)와 박낙호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권도현 기자

 

“한때는 선망의 직장…이젠 ‘석탄발전소 다닌다’ 어디서 말 못해” 

석탄발전이 사회적으로 지탄 대상 되며
노동자들까지 ‘잠재적 범죄자’처럼 위축
발전소 일 해도 기후위기 둔감하진 않아
 

박낙호씨(38)는 3년 반쯤 뒤면 사라질 직장에서 일한다. 그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의 경상정비 노동자다. 하역부두에서 들어온 석탄을 발전기 안에 집어넣는 석탄취급설비의 계측제어 업무를 10년째 맡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 있는 총 10개의 발전기는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박씨는 1·8호기에서 일하는데, 그중 1호기의 폐지 시점은 2025년이다.

그는 몇년 전 강릉의 영동화력발전소가 바이오매스 연료로의 전환을 앞두고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뒤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태안으로 넘어온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발전소가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죠. 그 당시엔 언론에서도 기후변화라든가, 미세먼지라든가, 이런 게 이슈화된 적이 없었거든요.” 폐쇄된 발전소에서 일거리를 찾아 태안까지 넘어온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실감하지 못한 일은 불과 몇년 만에 박씨가 맞닥뜨린 현실이 됐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정의로운’ 과정을 거칠 수 있을까. 석탄 노동자들은 지금까지의 과정은 정의롭지도, 정부의 표현대로 공정하지도 않다고 했다. 직장이 한순간에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지만 그 이후의 대책은커녕 직장이 문 닫게 되는 시기도 정확히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현재 5개 발전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1만3846명, 비정규직 노동자는 1만1286명으로 추정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자 수가 거의 비슷하지만 전환에 따른 일자리 상실 등 피해는 공기업 직원인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경향신문은 현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석탄 노동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미세먼지, 기후위기… ‘안정된 직장’의 쇠락 

지금은 ‘끝이 정해져 있는’ 직장이 되었지만 박씨의 동료 이태성씨(48)가 22년 전 입사했을 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선망받는 직장이었어요. 안정적이고, 지역에도 대공장이 처음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화력발전소에 대한 인식도 좋았죠. 젊은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이 입사지원서를 냈고, 지역특채 가점까지 주면서 채용했어요.” 그는 “국가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자긍심도 있었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은 미세먼지가 본격적으로 사회 이슈가 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이슈가 나오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어요. 그냥 일하는 노동자가 언론을 통해서 지탄받는 대상이 된 거예요.” 이씨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를 맡고 있다. 그가 노조 일을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많이 위축됐어요. 잠재적 범죄자 같은 느낌도 있는 거예요. 예전엔 누가 직장을 물으면 ‘화력발전소 다닙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뭐 그냥, 발전소 다녀요’라고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어요.”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남상무, 이진길, 장성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기자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씨는 기후위기에 대해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남상무, 이진길, 장성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기자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씨는 기후위기에 대해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석탄 노동자들도 느끼는 기후위기 

전 세계적으로 석탄발전은 폐지되고 있다. 석탄 노동자들도 기후위기를 체감한다. 신보령화력에서 일하는 남상무씨(58)는 올해 초 미국 텍사스 지역에 닥친 이상 한파를 보고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남씨가 말했다. “저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우리 어렸을 때와 지금과 기상이변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고요. 우리 세대가 아닌 우리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될까 하는 생각이 들죠.” 당진화력에서 일하는 손일원씨(41) 느낌도 그렇다. “변화를 느껴요. 열대야도 심해졌고, 진짜 비 오는 것도 예전보다 많이 준 것 같아요. 겨울에 눈 내리는 것도요. 솔직히 걱정은 돼죠.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북극에 얼음 녹아내리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돼요.”

먼지에 뒤덮인 발전소 일을 한다고 미세먼지에 둔감해지는 건 아니다. 손씨의 동료 김경민씨(36)는 서해대교를 넘어갈 때마다 의문이 든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게 해무(바다 안개)인지, 아니면 미세먼지인지 저도 헷갈려요.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는 없지만 느끼는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남씨의 동료 이진길씨(48)는 남씨가 걱정한 ‘텍사스 겨울폭풍’은 정말 ‘남의 나라 일’ 같다고 했다. “제가 사는 곳에선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보령화력의 장성일씨(27)는 “체감으로 느낀 적은 없다”면서도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사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심각하게 여기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묻는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에서도 ‘불안하다’는 답은 45.4%에 불과했다. 절반이 되지 않는 이 수치조차 기후변화가 지금보다 덜 이슈였던 2018년 49.3%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22%는 ‘불안하지 않다’, 32%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폐지 일정 

정확한 폐쇄 일정 아무도 안 알려줘 답답
폐쇄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 쌓이기도
“현장 사람들에게도 이해와 동의 구해야”
 

곧 문을 닫는 직장에 다니는 석탄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아무도 이들에게 정확한 폐쇄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령화력 1·2호기는 지난해 12월 폐지됐다. 하지만 폐지 직전까지 누구도 보령화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그 시점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들은 1·2호기가 ‘언제 폐지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 10번이 넘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화력발전에서 일하는 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같이 일하는 동료의 입을 통해 들은 대략적인 일정만 짐작하고 있다.

당진화력의 손씨는 당진 1·2·3·4호기의 폐지 시점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했지만, 제9차 전력수급계획이나 언론보도, 노동조합을 통해 알게 된 것일 뿐 공식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발전소 폐지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노동조합을 하니까 일정을 알고 있는 거거든요. 조합원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같은 발전소에 있어도 모르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태안화력의 박씨도 “원청이나 (소속된 하청) 회사로부터 들은 건 없다. 뉴스를 통해서도 봤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게 더 빠르다”고 했다.

폐지해야 하는 이유도, 폐지 일정도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폐지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쌓인다. 노동자들은 기후변화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는데 그 발전한 기술로 발전소를 개조해 운영하면 안 되는 것인지 물었다. 탄소 저감 기술로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이 있고, 일부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을 그대로 유지한 채 CCS 기술만으로 기후위기를 막기는 어렵다. ‘기후솔루션’의 박지혜 변호사는 3일 “CCS 기술을 이용해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도 있겠지만 CCS와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 수준을 비교해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재생에너지 기술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방침을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제대로 된 설명’ 없는 일방적 폐지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당진화력의 김씨는 “현재의 자원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을 우리가 당겨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탄소 저감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다만 ‘전환의 당사자’인 이들에게 누군가는 제대로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산업 자체를 없앨 정도의 위기인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동의를 구하면 되지 않나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주지 않고) 주야장천 ‘탄소 배출이 문제야, 탄소를 줄여야 돼, 그러니까 석탄화력을 없애야 해’ 이렇게 공표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보령화력의 이씨는 정부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고 느낀다. 그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닥친 2018년 여름의 발전소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 내내 풀 출력으로 (발전소를) 돌리고 난리가 났었어요. 비상이었어요. 한 기라도 가동 중지되면 안 되니까 교체운전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불과 얼마 전 일인데, 그렇게 돌리다가 이제 와 다 없앤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업무는 다양하다. 크게는 항만에서 석탄을 나르는 일(석탄하역), 그 석탄을 발전기에 넣는 일(연료설비), 발전기를 돌리는 일(메인설비), 그 설비들이 모두 잘 돌아가도록 점검하고 정비하는 일(정비),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일(환경설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인설비인 발전기를 돌리는 일은 발전사 정규직이 담당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 몫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 중 일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익혀야 하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에 한정된 업무도 많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면, 많은 이들이 하던 일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당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경민씨(왼쪽)와 손일원씨가 당진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당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경민씨(왼쪽)와 손일원씨가 당진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하던 일만 계속할 수 있다면… 

석탄화력발전소에만 한정된 업무 많아
폐쇄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 가장 큰 걱정
“일 계속할 수 있다면 거주지 이전 감수”
 

먼저 폐지된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충남 서천군의 신서천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A씨는 그 전에는 보령 1호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황을 제거하는 탈황설비 일을 했다. 지난해 12월 보령 1·2호기가 폐지될 때쯤 새로 지어진 신서천화력이 운행을 시작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신서천에서 경력자들이 좀 필요했어요. (수요가) 맞아떨어진 거죠. 지원자를 뽑길래 옮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옮겼어요.” 집에서 20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40~50분으로 늘었지만 어쨌든 그는 거주지를 아예 옮기지 않고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사업장만 옮겼을 뿐 같은 업무를 하기 때문에 처우의 변동도 없었다.

“타이밍이 좋았죠.” 신보령화력의 남씨가 말했다. “보령 1·2호기 인력은 대부분 신서천화력으로 옮겨갔어요. 삼천포화력 인력은 고성발전소로 옮겨갔고요. 기존 발전소 폐지와 신규 발전소 가동이 맞물며 오히려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더 이상 지어지지 않는다.

석탄 노동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발전소 폐지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다. 연료설비, 환경설비 같은 업무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만 필요한 일이다. 경상정비의 경우 플랜트 등 다른 분야에서도 할 수 있지만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석탄 노동자는 거주지를 옮겨서라도 A씨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평생 살던 지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아서 지역을 옮기지 못할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반반이에요. 이 일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지역을 옮겨서라도 하겠다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태안화력의 이씨가 말했다.

태안화력의 박씨가 하는 계측제어 일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대체발전소가 들어와도 일을 계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역을 옮기고 싶지 않지만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옮겨야겠죠. 이 업무를 계속 영위만 할 수 있다면, 지역이 바뀌더라도 갈 용의는 있어요.”

환경설비를 하는 보령화력의 이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에라도 가야죠. 그렇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저 혼자만 가더라도 해야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노동자들은 다른 발전산업으로의 이직을 준비하기도 한다. 보령화력의 장씨 역시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산업 분야가 꼭 발전일 필요는 없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지는 못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이들의 일자리 

새로 지어지는 대체발전소에서 일을 계속하길 희망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LNG발전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 30기 중 24기를 LNG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한태교씨(42)는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석탄취급설비 일을 하다가 폐지된다고 다른 지역의 석탄설비로 보내지 말고, 다시 교육을 시켜서 LNG발전소에서 일하게 하는 게 옳지 않나요? LNG에 있는 기계들을 정비하는 것도 정비업체에서 하는 거고 제어시스템도 제어과에서 하는 건데, 교육만 받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없애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없애겠다는 건데, 고용을 보장해 줘야죠.”

“고용 전환은 되는지, 어떤 재교육 받을지…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LNG·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기기 위해
재교육받는다고 해도 미래는 불투명
임금·복지 등 동일하게 유지 어려울 듯
 

석탄 노동자들이 LNG발전이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길 경우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야 관련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노동 전환을 위해 필수적으로 연구돼야 할 부분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연구하고 있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체발전소로 가도 오작동 등 기초매뉴얼에 대한 습득 기간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의 임금 수준과 비슷한 업무로 가려면 1년6개월 이상은 교육받고 배치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재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모든 이들이 LNG발전소로 갈 수는 없다. LNG발전에는 기존 석탄화력에서 일하는 인력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인력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탄발전소가 폐지된 지역에 LNG발전소가 그대로 들어서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인 이들의 고용 전환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사)정의로운전환을위한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충남연구원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 ‘탈석탄 예정지역 연구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했다. “연료환경설비 노동자는 석탄발전소에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 교육을 통해 LNG발전소에서도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러나 발전사 정규직과 달리 이들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전환 배치는 공기업 발전사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

사실 환경 측면에서 본다면 LNG발전은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LNG는 가스전에서 채취한 메탄을 액화시켜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 방식이다. 발전 과정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덜 하지만, 이를 위한 채취 과정부터 되짚어보면 온실가스 배출에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많다. 박지혜 변호사는 “가스개발 단계부터 비교해 보면 LNG발전의 탄소 배출량은 석탄화력발전과 비슷하다”고 했다.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남상무, 장성일, 이진길씨(오른쪽부터)가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권도현 기자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남상무, 장성일, 이진길씨(오른쪽부터)가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권도현 기자

■재교육받는다 해도 불투명한 미래 

운이 좋아 대체발전소로 옮긴다고 해도 ‘지금의 처우가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다른 직무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받던 임금은 깎일 가능성이 크고, 복지 수준도 담보할 수 없다. 당진화력에서 일하는 김씨가 말했다. “사람은 일정한 양의 금액을 갖고 생활할 것으로 계획하잖아요. 그런데 그 금액을 엄청나게 줄여가면서 다른 지역으로까지 가야 한다고 하면, 그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죠.”

노동자들은 재교육받을 준비가 돼 있다. 태안화력의 박씨는 “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하지만 재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지, 재교육이 취업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태안화력의 한씨는 “교육을 한다면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도 명확한 게 없다. 나한테 꽃꽂이를 가르치고, 화원에서 일하라고 할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진화력의 손씨도 말했다. “교육을 다 받았는데 취업이 안 되면 또 문제잖아요. 또 교육은 일을 그만두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요. 실업급여만 받아가면서 교육을 받기에는 생활이 힘들잖아요.” 김 연구위원은 “실업급여 외에 부족한 부분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실업급여에 준해 줄 것인지, 아니면 정의로운 전환 기금에서 줄 것인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정부 

충남도는 지난 2월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을 위한 조례를 공포했다. 2025년까지 100억원의 전환 기금을 조성해 산업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지역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충남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먼저 이런 기금을 조성한 이유는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28기가 충남에 있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충남의 지역경제와도 직결된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찾아 지역을 빠져나가면 그것 자체로 큰 타격이다. “10년 전쯤인가,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회식을 금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발전소 주변 식당 주인들이 와서 회식 금지 취소하라고 시위를 했어요. 발전소 노동자들이 없으면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거예요.” 신보령화력의 남씨가 말했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지자체의 노력은 아직까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지자체에는) 기대를 못해요. 실사한다고 발전소를 오거든요? 그럼 ‘깨끗한 곳’만 가요. 실제로 저희가 일하는 공간은 정말 더럽고 힘든데, 그런데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김용균씨 사고 이후에 잠깐 왔다 갔을 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저희는 전혀 공감을 못하겠어요.” 태안화력의 박씨가 말했다.

지자체보다 더 힘 있는 곳’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다뤄주길 바라기도 한다. “지자체는 서로 눈치를 볼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곳이 뭔가 할 때까지 기다릴 것 같아요. 먼저 했다가 몰매 맞는 건 피하고 싶을 테니까요. 지자체의 파워가 얼마나 있는지도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정부와 입장이 다르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자체장인가, 아닌가가 중요해질 것 같아요.” 당진화력 김씨의 말이다.

‘대응이 늦다’는 지적을 받지만 노동조합은 나름대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노조는 최근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함께 비정규직 석탄 노동자 3600여명을 대상으로 현재의 전환 과정에 대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해 발표했다. 사실 노조가 아니라 더 풍부한 자원과 인프라를 갖춘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이다. “석탄발전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사회적으로 비판이 커지는 것을 보고 석탄발전이 오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던 거죠. 그런데 원래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이태성씨가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박낙호씨가 지난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태안화력 1호기는 2025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림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권도현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박낙호씨가 지난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태안화력 1호기는 2025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림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권도현 기자

■정의로운 전환이 되려면 

현장의 목소리 들어줄 ‘창구’가 절실
정부가 ‘공정한 전환’을 추진한다면
노동자들도 지원방안 논의 참여해야
 

‘전환의 당사자’인 석탄 노동자들이 보기에 지금까지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일단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줄 ‘창구’가 없다.

태안화력의 박씨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저희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어요. 이런 (인터뷰할)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저희 목소리를 내는 건 청와대나 광화문 앞에 가서 시위하는 그런 방법밖에 없고… 정부가 ‘공정한 전환’을 한다고 하면, 폐쇄되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를 정해서 같이 대화를 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항상 그림자인 거예요. 저희도 실체가 있고, 사람이고, 이 나라의 국민인데….” 이태성씨는 “옆에 있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해서 우리는 5조3교대도 감수할 수 있다. 줄어드는 임금을 전환 기금에서 일부 보상해주고, 재교육도 시키고, 그렇게 공정하게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식으로 ‘완만하게’ 갔으면 좋겠는데, 그냥 갑자기 폐지한다고만 하니까 불만이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오는 7월 산업 전환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이해당사자로서, 이 지원방안의 논의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이씨는 “정의로운 전환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으니, 사전에 촘촘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40600075&code=940702#csidx9e0ecfff944cc56bdca62073b0030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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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99일째... 언론의 예측은 틀렸다

접종률, 백신 수급, 예약률 모두 '청신호'... 11월 이전 집단면역 달성 가능 전망도

21.06.04 07:09l최종 업데이트 21.06.04 07:09l
 조선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자고나면 하나씩 차질 빚는 백신' 기사
▲  조선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자고나면 하나씩 차질 빚는 백신" 기사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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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 중앙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문 대통령 약속한 모더나 백신, 공수표 될 우려' 기사
▲  중앙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문 대통령 약속한 모더나 백신, 공수표 될 우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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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5일)이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지 딱 100일째다. 99일째인 4일 현재,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분위기는 암울했다. 백신 수급은 불안했고, 접종률은 낮았다. 백신 접종 한 달이 지나도록 인구 대비 1%대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부 목표였던 4월 300만 명, 6월 1200만 명 접종은 어림없어 보였다. 심지어 4월 7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논란으로 60세 미만 접종이 중단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11월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라는 지적과 함께 접종 계획을 현실적으로 수정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언론도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4월 말 화이자 2000만 명분 추가 도입, 300만 명 1차접종 목표 달성,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위탁생산 계약, 5월 27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60~74세 대규모 접종 시작, 잔여 백신 접종 열풍, 원활한 백신 수급 등...


언론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가 됐다. 
  
언론이 집단면역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근거는 '접종률과 백신 수급'이었다. 하지만 백신이 제때 들어오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백신 수급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상반응 관리만 잘한다면 괜찮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인구 대비 접종률은 13.1%로, 5월 27일부터 대규모 접종이 시작되면서 7일만에 5.3%p를 끌어올렸다. 6월까지 1400만명 접종이 무난한 분위기다. 오히려 정부는 접종 속도를 올려서 11월 이전 집단면역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얀센 예약 폭주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제1스포츠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제1스포츠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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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논란을 겪고 한국을 비롯해 유럽 다수 국가에서 접종 중단이 일어나면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 실제로 5월 대규모 접종까지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을 담는 기사는 반복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잔여백신 접종예약 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국민들은 줄곧 정부가 강조해왔던 아스트라제네카의 안전성을 믿었고, 접종예약 서비스를 이용했다. 

역시 '희귀 혈전'이 발생해 우려를 낳았던 얀센 백신 역시 대환영을 받았다. 미국으로부터 오는 100만회여분 중 일반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에게 공개된 백신분 90만회분이 18시간만에 예약을 마감했다. 

분명 '백신 보릿고개'였다. 4월 중순에는 그나마 300만 명 접종을 위해 한창 접종을 했지만, 5월 마지막주가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2차 접종에만 집중했다. 정부가 5월 14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공급된다고 밝혔지만, 예정대로 온다고 마냥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 발표대로 4일까지 2분기에 공급될 물량인 아스트라제네카 724만회분을 받게 된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700만회분중에 260만회분을 남겨두고 있고, 이 역시 6월 중에 순차적으로 공급받을 예정이다.

60~74세 접종 예약률 80% 육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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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5월 12일자 1면에 실린 <"아스트라 불신"...고령층 접종 예약률 예상치 밑돌아> 기사.
ⓒ 동아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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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1400만명 접종 목표에 가장 우려가 됐던 부분은 60~74세의 접종 예약률이었다. 그러나 2일 0시까지 77.7%로 정부의 목표치인 80%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갑 교수는 "무엇보다 내 친구가 맞았다는 것, 즉 사회생활이 비교적 활발한 60~74세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맞고 괜찮은 것을 보고 안심을 하게 된 것 같다"면서 "종교집회 등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크게 독려가 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역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자체가 좋은 신호다. 효과성과 안전성을 증명할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하지 않은 20%는 걱정스럽다. 20%를 접종 현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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